통합대장경

041_0140_b_01L대승중관석론 제11권
041_0140_b_01L大乘中觀釋論 卷第十一
안혜 지음
유정 등 한역
041_0140_b_02L安慧菩薩造
西天譯經三藏朝散大夫試鴻臚卿傳梵大師賜紫沙門臣 法護 奉 詔譯
16. 관박해품 ②
041_0140_b_04L觀縛解品第十六之餘
또 다시 질문이 있다. 만약 모든 현상이 소멸하고 또 중생이 소멸하면 응당 분별이 없겠는가?
041_0140_b_05L又復有問若諸行滅及衆生滅應無分別邪
그러므로 게송에서 대답하여 말한다.
041_0140_b_07L故頌荅言
【論】그 모든 현상에는 소멸이 없으니
이것이 어떻게 있을 수 있으리오.
중생도 또한 소멸이 없으니
다시 어떻게 있을 수 있으리오.
041_0140_b_08L彼諸行無滅
此云何可有
衆生亦無滅
復云何可有
【釋】만약 법이 항상하다면 곧 만들어지는 것이 없고, 그러므로 조금도 법이 소멸하는 일이 없다. 왜냐 하면 법이 항상하기 때문이다. 만약 항상하지 않고 전적으로 소멸하는 법이라면 이러한 것은 있지 않으며, 또 어떻게 소멸하겠는가? 만약 항상함과 항상하지 않음이 함께 말할 수 없다면 곧 잘못이 없다. 이것을 응당 잘 생각하여 간택하여야 한다.
041_0140_b_10L釋曰若法是常卽無所作是故無有少法可滅何以故以法常故若是無一向滅法此卽不有復云何滅無常俱不可說卽無過失此應思
혹시 있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체가 도리어 다른 의미를 이루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만약 법이 소멸할 수 있다면, 어찌하여 항상함이 있지 않겠는가? 만약 혹시 없다고 말한다면, 곧 법의 성품을 파괴하는 것으로, 이것은 이에 단멸을 이룬다. 그러므로 만약 있거나 만약 없거나 소멸한다고 말할 수 없다.
041_0140_b_15L或有說者自體還成異義可觀有法可滅何不有常若或言無卽壞法性此乃成斷是故若有若無不可說滅
혹은 어떤 사람이 말한다. 말하는 바 말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여래가 언전(言詮)을 그쳐 소멸시킨 것이다. 이 중에 다시 취하는 것이 있는가, 취하는 것이 없는가? 만약 취하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항상하지 않겠으며, 만약 취하는 것이 없다면 이것은 곧 단멸을 이룬다. 만약 다시 결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 곧 모든 부처님의 일체지(一切智)는 얻은 바가 있는 법이라, 여기에서 서로 어긋나므로 능히 부정하지 못한다.
041_0140_b_18L或有人言所言不可說者卽是如來息滅言詮是中爲復有所取邪無所取邪若有所取云何不常若無所取此卽成斷若復決定不可說者卽諸佛一切智有所得法此中相違不能遮遣
041_0140_c_02L【論】소멸이 곧 해탈이다. 해탈이란, 만약 자아가 있거나 만약 자아가 없거나, 있다면 곧 항상함이고, 만약 결정코 없다고 말하면 또한 지혜로운 자가 아는 것이 아니다.
041_0140_c_02L論者言滅卽解脫解脫者若有我無我有卽是常若定無說又非智者所了知故
또 어떤 사람이 말한다. 모든 결박과 해탈은 말하자면 원인과 결과가 자체가 있어 상속하여 유전할 때 모든 현상이 없지 않아, 탐욕 등이 생기할 때 그 원인법이 따라서 있게 된다. 이것을 곧 결박이라고 이름하는데, 태어남과 죽음 중에서 오고 가는 모든 자를 결박한다. 또 혹은 탐욕 등을 결박이라 이름하는데, 출세간의 지혜가 생길 때에 탐욕 등이 그쳐 소멸하는 것을 곧 해탈이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다시는 모든 취(趣)에서 태어남을 받지 않는다.
041_0140_c_05L復有人言諸縛解者謂因果有體續轉時非無諸行以貪等生起因法隨有此卽名縛縛生死中諸往來者又或貪等名縛出世閒智若生起時貪等息滅此卽名解是故不復諸趣受生
논자는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40_c_11L論者頌言
【論】모든 현상에는 생하고 소멸하는 법이 있지만
결박도 없고 또한 해탈도 없다.
결박과 해탈에 만약 만드는 자가 있다면
곧 결박과 해탈은 생기지 않으리라.
041_0140_c_12L諸行生滅法
無縛亦無解
縛解若有作
卽縛解不生
【釋】모든 현상의 자체가 상속하여 파괴되어 소멸의 상태에 있을 때에는 자체가 없어 결박이 있을 수 없다. 밖의 지(地) 등의 자체와는 필경에 서로 어긋나므로, 이것에 곧 해탈이 없다. 또 혹은 단멸하는 법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단멸할 때에 얻는 것이 있다면, 곧 결박과 해탈의 모습 둘은 상태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결박도 없고 역시 또한 해탈도 없다.
041_0140_c_14L釋曰諸行自體相續壞滅住時無體無縛可有如外地等自體畢竟相違此卽無解又或斷法無體故若斷時有得卽縛解相二無分位是故無縛亦復無解
혹은 어떤 사람이 말한다. 모든 현상 작용이 생길 때에 열반과 해탈이 있다고 설한다.
041_0140_c_19L或有人言諸行生時說有縛解
【論】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만약 이미 생한 법이 결박과 해탈이 있다면, 그와 같은 결박과 해탈의 둘은 화합하지 않는다. 만약 생할 때에 또 다시 성품이 없다고 말한다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중생도 또한 그러하여 결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 항상하다면 곧 만들어지지 않는다.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만약 만들어지는 것이 있다면 곧 항상하지 않고, 또한 항상하지 않음이 없어 현전에서 파괴되어 소멸한다.
041_0140_c_20L論者言此亦不然若已生法有縛解如是縛解二不和合若言生時又復無性如前所說衆生亦然無縛無常卽無作如虛空故若有所作非是常亦非無常現前壞滅
041_0141_a_02L혹은 어떤 사람이 말한다. 모든 취착을 결박이라 이름하고, 필경에 취착을 여의기 때문에 해탈이라고 이름한다.
041_0141_a_02L或有人言諸取名縛畢竟離取故名爲解
논자는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41_a_04L論者頌言
【論】만약 취착으로 말미암아 결박이라고 이름한다면,
취착이 있어도 곧 결박되지 않고
취착이 없어도 또한 결박되지 않으니
어떠한 상태에서 결박할 수 있으리오.
041_0141_a_05L若因取名縛
有取卽不縛
無取亦不縛
何分位可縛
【釋】오염된 취착이 없다면 여기에는 결박이 있지 않으며, 그러한 오염도 또한 곧 있지 않다. 이것은 또 어찌하여 그러한가? 이렇게 취착이 없고 또한 자체가 없으며, 지금 관찰하는 것도 또한 상태가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미는 결박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041_0141_a_07L釋曰無染污取此無有縛彼無染污亦卽不有此復云何而此無取亦復無體今所觀察亦無分位此中意者無所縛故
그러므로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如下頌言
중생을 결박할 수 있다면
그 결박은 곧 자체가 있으리라.
결박하는 법이 있어도 그가 만약 없다면,
조달(調達)1)이 결박하는 것과 같으리라.
041_0141_a_11L有衆生可縛
彼縛卽有體
縛法彼若無
如調達所縛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41_a_13L復次頌言
【論】만약 먼저 그 결박이 있다면
그 결박은 능히 육신을 결박하리라.
지금은 이미 결박되는 일이 없으니
거래품(去來品)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041_0141_a_14L若先有其縛
彼縛能縛身
今旣無所縛
如去來品說
【釋】이 중에는 능히 취착을 받는 자가 있지 않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곧 마땅히 결박하는 법을 얻을 수 없다.
041_0141_a_16L釋曰此中不有能受取者以不有故卽應無有縛法可得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41_a_18L復次頌言
【論】이미 결박된 것은 곧 결박되지 않으며
아직 결박되지 않은 것도 또한 결박되지 않는다.
이미 결박된 것과 아직 결박되지 않은 것을 여의고,
결박될 때에도 또한 결박되지 않는다.
041_0141_a_19L已縛卽不縛
未縛亦不縛
離已縛未縛
縛時亦不縛
【釋】이와 같으므로 이미 결박되는 것도 없고, 아직 결박되지 않은 것도 없으며, 또한 결박되는 때에도 결박하는 법이 최초로 생기하는 것도 없다.
041_0141_a_21L釋曰由如是故無已縛無未縛亦無縛時縛法初起
그러므로 게송에서 말한다.
是故頌言
【論】이미 결박되었다면 곧 해탈하지 못하며,
아직 결박되지 않았어도 또한 해탈하지 못한다.
만약 결박 중에 해탈이 있다면
결박과 해탈은 곧 동시이리라.
041_0141_a_23L已縛卽不解
未縛亦不解
若縛中有解
縛解卽同時
041_0141_b_02L【釋】이렇게 결박 가운데 해탈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 결박하는 법에 자체가 없다면, 어떻게 해탈이 있겠는가? 만약 결박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곧 해탈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결박과 해탈이 함께 없다. 그 둘이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041_0141_b_02L釋曰此不可說縛中有解若縛法無云何有解若有縛可說卽說有解今縛解俱無二相違故
혹은 어떤 사람이 말한다. 자아가 있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해탈을 얻을 수 없다. 만약 모든 집착하는 법이 필경에 그쳐 소멸한다면, 이것이 곧 해탈이다. 만약 그대가 말한 것처럼 자아의 법이 있지 않다면, 어떻게 이에 해탈을 구하는 자가 있으며, 그 해탈의 의미를 마땅히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041_0141_b_06L或有人言由有我故不得解脫若諸取法畢竟息滅此卽解脫若如汝言我法不有云何乃有求解脫者彼解脫義當云何說
논자는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41_b_10L論者頌言
【論】만약 자아가 소멸하여 취착이 없어지면
자신이 열반을 얻는다고 한다면,
이것은 혹시 그에게 집착이 존재하여
도리어 취착에 집착하는 것을 이루리라.
041_0141_b_11L若我滅無取
我得涅槃者
此或有彼執
還成執於取
【釋】또 어떤 사람이 말한다. 모든 취착의 근본은 자아[我]와 자아의 소유[我所)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자아가 그쳐 소멸하면, 모든 취착은 땔감이 다하여 불타는 것이 소멸하는 것과 같다. 자아가 소멸하면 모든 취착에서 마땅히 열반을 얻게 된다고 말하는 일이 있는데, 그 의미도 또한 이러하다. 그들이 말하는 의미는, 자아와 자아의 소유로 말미암기 때문에 모든 취착에 집착하고, 그것이 원인이 됨으로 인하여 나머지 취착이 곧 생한다. 그러므로 그는 취착하고 해탈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041_0141_b_13L復有人言諸取根本因我我所是故我今息滅諸取如薪盡火滅有言我滅諸取當得涅槃者其義亦然彼等意者因我我所故執諸取由彼因故餘取卽生是故彼取不得解脫
논자는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41_b_18L論者頌言
【論】응당 태어남과 죽음을 버리지 말 것이며 ,
응당 열반을 수립하지 말 것이다.
있음과 없음은 모두 비방을 이루어
이러한 설명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041_0141_b_19L不應捨生死
不應立涅槃
有無皆成謗
此說非道理
【釋】만약 혹시 모든 현상에 있어서 태어나고 죽음을 버릴 수 있고 열반을 수립할 수 있다면, 이것은 곧 도무지 만들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이에 태어나고 죽음과 열반의 두 가지가 있다고 분별하는가?
041_0141_b_21L釋曰若或諸行有生死可捨有涅槃可立此卽都無所作可得云何乃有生死涅槃二種分別
17. 관업품(觀業品) ①
041_0141_b_24L觀業品第十七
041_0141_c_02L아비담(阿毘曇) 사람이 말한다. 만약 승의제에서 일체는 모두 공하여 모든 법에 자체가 없다고 하면, 이와 같이 마땅히 업과 과보가 함께 없을 것이다. 어찌하여 부처님은 그 업과 과보가 있다고 말씀하셨는가?
041_0141_b_25L阿毘曇人言若勝義諦一切皆空法無體者如是亦應業果俱無何故佛說有其業果
경전의 게송에서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如經頌言
【論】스스로 능히 마음을 항복하고
다시 능히 다른 일을 섭수한다면
곧 자애로운 마음이 있는 것이며
이것은 항복의 자체를 말한다.
041_0141_c_04L自能降伏心
復能攝受佗
卽有慈愛心
此說降伏體
【釋】스스로 항복한다는 것은 몸[身]과 말[語]과 마음[意]의 업(業)이 모든 사악한 행위를 그쳐 버리고, 내지 능히 다른 이를 포섭하고 다른 이를 섭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보시와 다른 이를 이롭게 하는 행위와 자애로운 말을 하는 것이며, 두려움 등에서 구제하는 것 등이다.
041_0141_c_06L釋曰自降伏者卽身意業止諸惡乃能攝佗攝受佗者謂行布施愛語救怖畏等
이와 같이 작위하는 가운데 좋아하는 법으로 이루어진 것을 자애[慈]라고 이름하는데, 자애는 곧 좋아함[愛]이다. 자애는 유연함으로 자체를 삼는데, 이 유연하다는 의미는 곧 자애에 근접한 모습이며, 일체를 모두 평등하게 이끌어 마음으로 포섭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다. 곧 일체 법의 자신과 다른 것의 종자 및 생겨난 결과로, 심법(心法)에 포섭되며 최승한 것에 소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성립한 결과, 이것은 다시 능히 그 일체법을 포섭한다.
041_0141_c_09L如是所作此中愛法所成名之爲慈卽是愛慈者軟爲體此柔軟義卽是慈之近相切皆於等引心攝此有三種卽一切法自佗種子及所生果心法所攝勝所持然後成果此復能攝彼一切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如有頌言
【論】생각과 생각에서 생하는 업이
큰 선인[大仙]2) 말한 업이다.
그 업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
차례로 분별하리라.
041_0141_c_15L思及思所生
大仙所說業彼業有多種
次第而分別
【釋】이 분별이란 몸과 말과 마음으로 세 가지 업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041_0141_c_17L釋曰此分別者謂身語意有三種業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41_c_18L復次頌言
【論】그가 말한 생각이란 것은
곧 의업(意業)이며,
생각에서 생겨난 것이란
소위 신업(身業)과 어업(語業)이다.
041_0141_c_19L彼所說思者
此卽是意業
從思所生者
所謂身語業
041_0142_a_02L【釋】말[語]이란 말에 표현하는 바가 있음을 말한다. 또 다시 따로 몸과 말의 두 업이 있으니, 멀리 여읨[遠離]과 멀리 여의지 않음[不遠離]이다. 멀리 여의지 않음이란 곧 표상(表象)이 없는 것인데, 이 표상이 없음을 다른 곳에서는 멀리 여의지 않음이라 이름한다. 이것은 생각으로 일으킨 선한 업이 내가 지었거나 혹은 내가 짓지 않았거나, 널리 마음 등으로 베푸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밀리 여읨, 혹은 멀리 여의지 않음이라 이름하며, 이와 같이 일어나는 것을 곧 무표업(無表業)3)이라고 말한다.
041_0141_c_21L釋曰語謂語有所表又復別有身二業謂遠離不遠離不遠離者卽無表想此無表者餘處有說名不遠離此謂起思善業我作或我不作普施心等此名遠離或不遠離如是所起此卽說爲無表之業
혹은 어떤 사람이 말한다. 표상이 있는 것은 상속하는 업을 말하고, 표상이 없는 것은 오직 마음으로 얻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또한 다른 것으로 표상되는 일도 없다.
041_0142_a_04L或有人言有表者謂相續業無表者非唯心所得乃至無佗所表
게송에서 말한 바와 같다.
如有頌言
【論】수용(受容) 때문에 복을 생하며
수용을 베풀면 복이 생긴다.
복이 아닌 것도 역시 또한 그러하니
이것을 수용의 의미라 이름한다.
041_0142_a_06L受用故生福
施受用福生
非福亦復然
此名受用義
【論】아울러 생각을 일곱 가지로 하여
모든 업(業)의 법을 요지하면
몸[身]과 말[語]과 표(表)와 무표(無表)와
멀리 여읨[遠離]과 멀리 여의지 않음[不遠離]이 된다.
041_0142_a_08L幷思爲七種
了知諸業法
身語表無表
遠離不遠離
【釋】수용을 따라서 복과 복이 아닌 것이 생기며, 아울러 생각이 일곱 가지 법을 이룬다. 이것이 모든 업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결정코 제법의 자상(自相)은 마땅히 얻는 바가 있으며, 업과 과보가 화합하여 나고 죽음이 있게 된다.
041_0142_a_10L釋曰受用從生福及非福幷思成七是爲諸業相是故決定諸法自相當有所得業果和合而有生死
【論】또한 업이 허물어지지 않음이 없어서 과보 자체를 이루는데 이것은 혹은 머무른다고 하여도 잘못이고 혹은 소멸된다고 하여도 잘못이다. 이것은 또 어찌하여 그러한가? 그러므로 논에서 게송으로 말한다.
041_0142_a_13L論者言亦非不壞業生果體成辦或住邪或卽滅邪此復云何故論頌言
【論】업이 머물러 과보가 성숙하는 데에 이른다면
그 업은 곧 항상함이고,
만약 소멸한다면 곧 없어지는 것이니
어떻게 과보를 생함이 있으리.
041_0142_a_15L業住至果熟
彼業卽是常
若滅卽成無
云何有果生
【釋】만약 자체가 상속하여 허물어지지 않고 나중에 허물어짐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원인의 성품이 없는 것이다. 허물어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보를 만들어 생하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소멸하면 곧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041_0142_a_17L釋曰若言自體相續不壞後有壞者此無因性以有壞故亦無所作果生道理滅卽無體故
또 아비담 사람이 말하기를, 상속이 있기 때문에 과보가 생기함이 있다고 한다. 우리의 종파에서 게송으로 말하는 바와 같다.
041_0142_a_20L又阿毘曇人言有相續故有果生起如我宗頌言
【論】만약 싹 등이 상속하면
싹 등은 다시 다른 것을 생할 것이다.
종자가 먼저이고 과보가 나중이 되어
단멸도 아니고 상주도 아니다.
041_0142_a_22L若芽等相續
芽等復生餘
種先而果後
不斷亦不常
041_0142_b_02L【論】만약 먼저 종자를 심지 않고도
과보가 생하는 것은 곧 가능하지 않다.
원인은 과보의 법 중에 따라서
싹 등으로부터 상속한다.
041_0142_a_24L若不先植種
果生卽不能
因隨果法中
從芽等相續
【釋】과보가 생하는데 다른 원인이 과보 중에 따름이 없다. 그러므로 종자이면서도 또한 단절됨이 없다. 만약 과보가 생할 때 종자의 자상은 별다른 상태가 없으며, 이것은 곧 상주함이 아니다. 이 비유는 비유되는 법을 성립시킨다.
041_0142_b_03L釋曰果生無異因隨果中是故種子而亦不斷若果生時種子自相無別分位此卽不常此喩可成所喩法者
그러므로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42_b_06L故下頌言
【論】만약 마음에 상속이 있다면
마음의 법[心法]은 곧 드러나 전이할 것이고,
과보가 만약 마음을 여읜다면
상속이 전이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041_0142_b_07L若心有相續
心法卽現轉
果若離於心
無相續可轉
【論】마음으로부터 상속이 있으며
상속으로부터 과보가 있다.
업이 먼저이고 과보가 나중이어서
단별도 아니고 또한 상주도 아니다.
041_0142_b_09L從心有相續
從相續有果
業先而果後
不斷亦不常
【釋】말하는 바 비유는 차례로 마땅히 알 것이다. 이것은 또 어찌하여 그러한가?
041_0142_b_11L釋曰所說喩者次第應知此復云何
그러므로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42_b_12L故下頌言
【論】법을 구하는 방편은
열 가지 백업도(白業道)4)이며,
이 세상과 다른 세상에서
다섯 가지 욕망의 수승한 과보를 얻게 한다.
041_0142_b_13L求法方便者
是十白業道
此世及佗世
得五欲勝果
【釋】법은 마음의 종자의 차별에 의지하여 수행하고, 지님의 원인이 법의 방편이 되어 십선도(十善道)를 얻어 과보의 법을 성취한다. 이로 말미암아 마땅히 알 것이다. 만약 업과 과보 등이 합하지 않는다면, 이 중에는 또한 법을 구하는 방편이 없다. 어찌하여 세존은 과보의 법이 있다고 설하였는가?
041_0142_b_15L釋曰法依於心種子差別從修持因爲法方便得十善道果法成辦由此當知若業果等不有合者是中亦無求法方便何故世尊說有果法
논자는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42_b_19L論者頌言
【論】만약 그대의 설명과 같이
차례로 분별한다면
그에게는 과실이 생기며
그 과실은 많고도 또 클 것이다.
041_0142_b_20L若如汝所說
次第而分別
彼有過失生
其過多復大
041_0142_c_02L【釋】이 중에서의 분별은 성립되는 바가 있지 않으며, 내지 과실을 생한다. 나는 이제 대략 그 방량(方量)을 나타내 보겠다. 장차 어떤 사람이 있어 지옥에 떨어질 원인을 심었는데, 마음이 상속하므로 만약 능히 그가 선취(善趣)에 태어나게 되는 이런 도리는 있을 수 없다. 선취에 날 원인을 심고 악취(惡趣)에 태어나게 되는 것도 또한 도리에 맞지 않는다. 비유하면 세간에서 영마([寧+頁]摩)의 종자와 싹 등을 심어 상속하여도 곧 암몰라과(菴沒羅果)5)를 생할 수 없으며, 혹은 암마라 종자를 심어도 또한 영마의 열매를 생할 수 없는 것과 같다.
041_0142_b_22L釋曰此中分別非有所成乃生過失我今略爲顯示方量且如有人種地獄因以心相續故若能於彼善趣受無此道理種善趣因惡趣受生非道理譬如世閒植%(寧*頁)摩種芽等相卽不能生菴沒羅果或植菴沒羅亦不能生%(寧*頁)摩之果
모든 다른 법의 자체는 각각 마음의 모습으로, 일체의 취(趣)의 부류는 자체적으로 원인이 있어 선하고 선하지 않은 업과 화합하여 성립되며, 역능을 분별하여 성품이 있음을 표출한다. 이 표출된 원인과 결과는 생하지 않는다. 마치 욕계(欲界)에 계박된 마음이 능히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 및 무루계(無漏界)6)의 마음을 일으키고, 내지 무루계의 마음이 능히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마음을 일으키는 이 모두가 존재하지 않는다. 저 선 등의 모든 법의 설명도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여러 종류가 있으며 커다란 과실이 있다. 이 중에는 이렇게 분별하는 도리가 없다.
041_0142_c_06L諸異法體各各心相一切趣類自體有因善不善業和合所立分別力能表了有性所表了因果不生如欲界繫心能起無色界及無漏界心乃至無漏界心能起欲無色界心此皆不有彼善等諸法所說亦然故有多種及大過失是中無此分別道理
또 다시 아비담 사람이 또 게송을 인용하여 말한다.
041_0142_c_13L復次阿毘曇人又引頌言
【論】지금 나는 다시 이것을 말하여
바른 이치에 따라서 분별하니,
제불과 연각과
성문 등이 찬탄하여 설한 바이다.
041_0142_c_14L今我復說此
順正理分別
諸佛及緣覺
聲聞等讚說
【論】유실하지 않는 것은 계약서와 같고,
업(業)은 짊어져야 할 재물과 같다.
계(界)의 분별에는 네 가지가 있으며
그 모두의 자성은 무기(無記)7)이다.
041_0142_c_16L不失如契書
業如所負財
界分別有四
皆自性無記
【釋】비유하면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서 빚을 받고자 할 때, 먼저 계약서를 얻어내면 여러 곳을 돌아다녀도 그 채권이 산실되지 않는다. 그 후 이자가 전진되어도 전부 다시 되돌아온다.
왜냐 하면 계약서가 있기 때문에 적용되어 과보가 성립되어, 다시는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업도 또한 이와 같아 모든 상사한 업, 말하자면 욕계의 업은 욕계에 계박되고, 내지 무루계(無漏界)의 업은 무루계에 계박되어, 선을 지은 자는 다섯 가지 업을 갖는다.
041_0142_c_18L釋曰譬如有人從人擧債先得契書隨諸方處債無散失其後子本悉復還歸何以故以有契書故作用果成無復有壞業亦如是諸相似業所謂欲界卽欲界繫乃至無漏界卽無漏有作善者具五種業
또 다시 그는 법을 소실하지 않는데, 어떠한 지위에서 그러한 업을 단절하는가?
041_0142_c_24L復次彼不失法於何位斷邪
그러므로 다음의 게송에서 말한다.
故下頌言
041_0143_a_02L【論】견도(見道)에서 단절하지 못하고
수도(修道)에 이르러서 단절한다.
그러므로 소실되지 않는 법은
능히 업의 과보를 갖는다.
041_0143_a_02L見道所不斷
至修道乃斷
是故不失法
能持於業果
【釋】만약 무루업은 무루의 지위에서 단절하고, 만약 선을 지은 자가 혹시 선하지 않은 업을 단절한다면, 그 때문에 상사한 업이 없다. 이로 말미암아 곧 업과 과보가 따라 생하는 방편으로 원인의 성품이 없다.
041_0143_a_04L釋曰若無漏業無漏位斷若作善者或斷不善業故無相似之業由是卽無業果墮生方便因性
그러므로 다음의 게송에서 말한다.
故下頌言
【論】만약 괴로움을 보는 때8)에 단절한다면
그것에는 곧 잘못이 있다.
상사한 업이 있기 때문에
단절한다면 곧 업을 파괴한다.
041_0143_a_07L若見苦時斷
彼卽有過失
有相似業故
斷卽壞於業
【釋】만약 괴로움을 볼 때 단절한다면, 이와 같으면 다른 경우에도 차례로 전체가 얽혀버리고, 그리고 또 선(善)은 불선(不善)이 되고, 불선은 선이 된다. 이와 같으면 곧 잘못이 있게 된다. 만약 그 선하지 않은 모든 업과 법 등이 그 지위에서 그쳐버릴 때, 그 소실되지 않은 법은 곧 서로 어긋나게 된다. 그러므로 아라한(阿羅漢)은 견도에서 단절하고, 수다원(須陀洹) 사람은 과보를 지나고 나서 단절한다.
041_0143_a_09L釋曰若見若時斷如是餘處次第叢而復善爲不善不善爲善此如是卽有過失若彼不善諸業法等位止時彼不失法卽成相違是故阿羅漢於見道斷須陀洹人度果已斷
그 무상한 업은 설사 파괴됨이 있다 해도, 항상한 법에서 일어나는 것이 마치 계약서가 그에게 존재하듯 작용하여 업에 자체가 있어 유실되지 않아, 종자를 만나면 과보가 있게 되어 소멸함을 나타내고 성립됨을 나타낸다. 업도(業道)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곧 소멸하지 않는다. 그 선하지 않은 법을 아라한은 견도에서 단절하고, 수다원은 과보를 이루고 나서 단절한다.
041_0143_a_14L彼無常業設有所壞常法所起如契書在彼作用業有體不失植種有果現滅現成有業道故彼卽不滅其不善業法阿羅漢於見道斷湏陀洹人果成已斷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43_a_19L復次頌言
【論】서로 비슷한 모든 법은
모든 업에 계박됨이 있다.
모든 계(界)에서 하나의 법이 생하며
하나의 업으로부터 하나의 법이 일어난다.
041_0143_a_20L一切相似法
諸業有繫屬
諸界一法生
一業一法起
041_0143_b_02L【釋】그 계박된 모든 선 등의 업은 모든 과보 등을 대치하지 못한다. 욕계의 것은 욕계에 계박되고,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 및 무루계는 각 계에 계박된다. 그런데 그것을 대치하는데 닦아야 할 모든 계(戒)는 그 업을 단절하는 것에 연유한다. 유루업(有漏業)이 일어나는 것은 계박되지 않음이 없다. 마치 생각할 때 동시에 일어나는 모든 상념이 근본적인 법이 되듯이, 그 파괴되지 않는 업은 분량이 있는 것처럼 얻게 된다.
041_0143_a_22L釋曰彼所繫屬諸善等業而非對治諸果報等欲界者欲界繫色無色界及無漏界而彼對治所修諸戒由斷彼業有漏業起非不繫屬如思俱時所起諸想爲根本法彼不壞業如分量得
이제 간략히 살펴보면, 모든 어리석은 이생(異生)9)들은 삼계 속에서 일체에 계박되고, 부처님과 모든 성문들은 욕계에 계박된다. 사계(四界)10) 중에서 색(色)이면 계박이 있으니 말하자면 욕계를 제외하고, 무색(無色)이면 계박이 있으니 오직 무색계뿐이다. 이와 같이 욕계와 색계의 두 세계는 계박되고, 무루계(無漏界)는 계박되지 않으니 그 두 세계의 업이 다하였기 때문이다.
041_0143_b_05L今略聊簡諸愚異生於三界中一切繫屬諸聲聞欲界繫屬於四界中若色有繫屬謂除欲界若無色有繫屬唯無色界如是欲色二界繫不續無漏界以二界業盡故
계(戒)를 대치하는데 체(體)가 없으면 무색이 있지 않다. 계의 체에서 일어나는 업의 작용은 얻을 수 있으나, 업이 실제로 생하는 일이 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세 가지 법을 보고 처음 업을 일으킬 때부터 그것이 소실되지 않을 때까지, 이 업은 함께 일어나 모두 두 가지를 갖춘다. 이른바 누(漏)11)와 무루(無漏)12)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전적으로 모두 업의 과보가 있다.
041_0143_b_09L對治戒無體非無色有戒體所起業用可不見有業實所生故謂見三法從初起業至彼不失此業俱起皆具二謂漏無漏而彼一向皆有業果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43_b_13L復次頌言
【論】모든 두 가지 업은
현재로서 항상한 성품이 없지 않으니,
머물러 과보를 지날 때까지
이와 같이 도리어 다시 생한다.
041_0143_b_14L所有三種業
現非無常性
住至度果已
如是還復生
【論】혹은 생명이 종결됨에 이르러 소멸하고
혹은 과보를 지남에 이르러 소멸한다.
이것은 무루의 분별이며
그 모습도 또한 무루이다.
041_0143_b_16L或至命終滅
或至度果滅
此無漏分別
彼相亦無漏
【釋】과보를 지난다는 것은, 말하자면 증득에 이를 때 무엇을 단절하기 때문에 증득할 때 단절하는가? 이른바 계박된 것이 소멸하고 유루(有漏)의 성숙된 것이 소멸한다. 이러한 분별은 모두 근사한 모습이다. 이로 인하기 때문에 그 소실되지 않는 법이 존재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갖가지 세계에 태어나게 하여, 장소ㆍ분량ㆍ모습ㆍ괴로움과 즐거움 등에 따라 법이 차별되고 분별되어 업과 과보가 있게 된다. 이것은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041_0143_b_18L釋曰度果者謂至作證時斷何故作證時斷謂所繫屬滅有漏成熟滅此等分別皆是近相由是故有彼不失能令衆生受彼種種界趣方處形色苦樂等法差別分別有業果此不相違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如有頌言
041_0143_c_02L【論】비록 공(空)이라도 또한 단절되지 않고
나고 죽음도 또한 항상하지 않다.
업과 과보가 소실되지 않는
이 법은 부처님께서 설한 것이다.
041_0143_b_24L雖空亦不斷
生死亦不常
業果報不失
此法佛所說
【釋】여기에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업과 과보가 합하여 생하는 세계와 장소 등을 분별하는 상태가 없는 자는, 곧 흐름이 한 가지 성질이든 다른 성질이든 모두 말할 수 없다. 말하는 바 공이라는 것은 곧 아공(我空)13)을 분별하는 것이며, 보특가라(補特伽羅)14)의 상태가 있지 않다. 이것은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공이라고 이름한다. 유(有)도 또한 항상하지 않다. 또 파괴되기 때문에 공이라 이름하며, 공도 또한 단절되지 않는다.
041_0143_c_03L釋曰此中應知若業與果合界趣等分別無分位者卽波一性異性皆不可說所言空者卽是分別我空以補特伽羅無有分位此不可說故名爲有亦不常又壞故名空空亦不斷
또 나고 죽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장소는 종자가 상속되어 먼저의 업을 심어 삼유(三有)를 따라 생하는데, 이것도 또한 항상하지 않다. 번뇌와 업이 다하여 존재하지 않음을 공이라 이름하는데, 공도 또한 단절되지 않는다. 또한 지난 세상이 아니면 업의 원인이 일어나지 않으며, 이 업은 파괴되지 않아, 업이 있고 과보가 있어 방편으로 원인이 성품이 된다. 이와 같은 법이 있기 때문에 세존은 걸림이 없는 지혜로 방편으로 그 일체의 법을 잘 설하였다.
041_0143_c_08L又生死所起諸趣相續種植先業三有隨生此亦不常煩惱業盡不有名空亦不斷亦非先世不起業因業不壞有業有報方便因性有如是是故世尊以無礙智方便宣說彼一切法
【論】그대가 분별하여 말한 것은 훌륭하지 않다. 상속하여 업이 생하는 것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논자는 게송으로 말한다.
041_0143_c_14L論者言如汝分別所說不善以不可分別相續業生故論者頌言
【論】모든 업은 본래 생하지 않으며
살피고 헤아려 얻을 수 없다.
업력과 마음이 상속하는 것은
업과 과보의 둘이 모두 파괴된다.
041_0143_c_17L諸業本不生
非伺察可得
業力心相續
業果二俱壞
【釋】이것을 어떻게 아는가? 업에는 파괴됨이 있으니 이는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 모든 법에 자성이 있지 않다면, 곧 그 자성은 토끼뿔 등과 같다. 또한 업 등도 그와 같다. 그러므로 응당 업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참으로 업이 생하는 일이 있다면, 파괴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업은 파괴할 수 없다.
041_0143_c_19L釋曰此云何知業有壞邪以無自性若彼諸法無有自性卽彼自性如兔角等亦如業等是故應知無業可若實有業生可說不壞如佛所言無業可壞
또 다음에 게송으로 말한다.
041_0143_c_24L復次頌言
041_0144_a_02L【論】만약 업이 본래 생하지 않는다면
업이 어떻게 파괴됨이 있겠는가.
만약 그것이 생겨난 것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파괴되지 않겠는가.
041_0144_a_02L若業本不生
業云何有壞
若其有所生
彼云何不壞
【釋】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기를, “생겨나는 것이 없으므로 업은 파괴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마땅히 생겨남과 파괴됨이 있다면 곧 있음을 따르고, 만약 생겨남이 없다면 곧 파괴됨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 하면 항상하는 성품이 없기 때문이고, 업이 생겨나는 상태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041_0144_a_04L釋曰是故佛說無所生故無業可壞當知有生壞卽隨有若其無生卽無有壞何以故無常性故亦無業生分位可說
만약 반드시 소멸한다면 이 중에서 어떻게 업이 파괴될 수 있으며, 역시 또한 어떻게 과보가 생겨날 수 있겠는가? 그대가 먼저 설명한 것처럼 업이 있다면 파괴되지 않고, 이 중에는 또한 업과 과보가 결합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결정코 합하는 바가 있다면, 그렇다면 생겨남도 없고 또한 파괴됨도 없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법은 차례로 전부 파괴됨이 없이 모든 법의 갖가지 상태를 생하며, 파괴되지 않기 때문에 만약 업이거나 과보거나 둘 다 생하지 않는다.
041_0144_a_08L若畢竟滅此中云何有業可亦復云何有果生起如汝先說有業不壞此中亦無業與果合如是決定有所合者然以無生亦無所壞上所說諸法次第悉無所壞已生諸法種種分位以無壞故若業若果俱不生
혹은 어떤 사람이 말한다. 만약 법이 생하지 않는다면, 그 과거와 미래의 모든 사물의 자체도 또한 응당 생하지 않고, 모든 업도 생하지 않을 것에다. 이것은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논자가 먼저 설명한 것처럼, 업에는 자성이 없어 생하는 법을 세울 수 없다고 하였다. 열반도(涅槃道)를 닦는 자를 청정한 수행에 머무른다 이름하고, 열반도를 여의는 자를 청정한 수행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이름한다.
041_0144_a_14L或有人言若法不生者彼過去未來諸有物體亦應不生不生諸業無自性故如論者先說業無自性無生法可立者諸修涅槃道者名住梵行涅槃道有所修者名住非梵行
그런데 혹은 청정한 수행자가 아니라도 열반을 얻을 수도 있고, 청정한 수행자라도 응당 지옥에 떨어질 수토 있다. 이것은 곧 세간법에서 행해지는 것과 서로 어긋나서 파괴된다. 만약 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곧 경작하고 씨 뿌리는 등의 세간법이 파괴된다. 이와 같이 또한 마땅히 지은 죄와 복이 상대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니, 세간에서 어떻게 이 사람은 복을 지은 자이고 저 사람은 죄를 지은 자라고 하겠는가?
041_0144_a_19L若非梵行者或得涅槃修梵行者應墮地此卽壞世閒法所作相違若業是無作卽耕植等世閒法壞如是亦應所作罪福相對不有世閒何言此作福者此造罪者
논자는 게송으로 말한다.
041_0144_a_24L論者頌言
041_0144_b_02L【論】만약 법에 자체가 있어
업이 있고 머무를 수 있다면,
두 세상에서 과보를 받고 나서
그 업은 도리어 다시 존재할 것이다.
041_0144_b_02L若法有自體
有業而可住
二世受報已
被業還復在
【釋】업에 만약 자체가 있다면, 그 과보를 받고 나서 도리어 다시 머무를 것이다. 만약 자체가 없다면, 차별이 있을 수 있다. 그대가 먼저 말한 것처럼 차별을 얻는다면, 곧 잘못을 이루게 된다.
041_0144_b_04L釋曰業若有體彼受報已而還復在若無自體差別可有如汝先說差別所得卽成過失
아비담 사람이 말한다. 승의제(勝義諦) 가운데 결정코 모든 업이 있고 번뇌의 자체가 있다. 그것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만약 그 원인이 있다면, 업이 없을 수 없다.
041_0144_b_07L阿略曇人言勝義諦中定有諸業煩惱體爲彼因故若有其因業非不有
논자는 게송으로 말한다.
041_0144_b_09L論者頌言
【論】이 모든 업과 번뇌가
업의 번뇌로 말미암아 성립된다면,
그 번뇌는 참으로 없는 것인데
업이 어떻게 참으로 있겠는가.
041_0144_b_10L此諸業煩惱
業因煩惱成
彼煩惱無實
業云何有實
【釋】승의제 중에 만약 번뇌의 자성이 있다면, 곧 그 자성은 항상하는 법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하는 바가 없어서 앞에서 이미 부정하였다. 이와 같이 이 중에서 원인의 의미가 성립하지 못한다. 상사한 성품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041_0144_b_12L釋曰勝義諦中若有煩惱自性卽彼自性著於常法以無所生前已遮遣如是此中因義不成遮遣相似性故
혹은 어떤 사람이 말한다. 승의제 중에 업과 번뇌가 있다. 신체[身]의 원인과 신체의 과보가 있기 때문이다.
041_0144_b_15L或有人言勝義諦中有業煩惱而爲身因身果有故
논자는 게송으로 말한다.
041_0144_b_17L論者頌言
【釋】만약 업과 번뇌를 말함으로써
신체의 원인으로 삼는다면,
업과 번뇌는 스스로 공한데
신체의 원인이 다시 어떻게 있겠는가.
041_0144_b_18L若說業煩惱
以爲身因者
業煩惱自空
身因復何有
【釋】신체의 원인을 말하는 것은 세속제로서 승의제가 아니다. 승의제에서는 업과 번뇌가 공하여, 이 중에서 말하는 원인의 의미가 성립하지 못한다.
041_0144_b_20L釋曰說身因者是世俗諦非勝義諦勝義諦中業煩惱空此中所說因義不成
大乘中觀釋論 卷第十一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제5권에서 이미 설명한 제바달다와 같음.
  2. 2)마하리시(mahāṛṣi)의 번역어로, 곧 큰 성인인 부처님을 의미한다.
  3. 3)표면으로 나타나지 않는 행위. 그 행위의 여세가 행위자의 체내에 축적되어 있는 것.
  4. 4)선한 행위. 곧 열 가지 선한 업인 십선도(十善道)를 의미한다.
  5. 5)āmra의 음사(音寫)로 암마라과(菴沒羅果)와 같다. 망고나무의 열매를 말한다.
  6. 6)번뇌가 없는 진실한 세계.
  7. 7)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것.
  8. 8)견도(見道)를 말한다.
  9. 9)범부를 말한다. 범부는 선악업에 따라 태어나는 곳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에 이생(異生)이라 한다.
  10. 10)욕계ㆍ색계ㆍ무색계 무루계의 네 가지 세계.
  11. 11)육근(六根)에서 흘러나오는 번뇌의 다른 명칭.
  12. 12)흘러나오는 번뇌가 없는 것. 곧 번뇌가 없는 경지를 말함.
  13. 13)중생의 신체는 오온의 화합으로서 상일주재하는 자아가 없다는 것.
  14. 14)pudgala의 음사. 생명이 있는 존재, 유정(有情)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