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45_0319_b_01L조당집 제14권
045_0319_b_01L祖堂集卷第十四 江西下卷第一曹溪第二代法孫


강서江西 마조馬祖 화상

회양懷讓 선사의 법을 이었고, 강서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도일道一이며, 한주漢州의 시방현十方縣 사람으로서 속성은 마馬씨이다. 나한사羅漢寺에서 출가하여 회양에 의해 마음의 눈을 뜬 뒤로는 남창南昌에서 교화를 폈는데, 매번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들은 지금 각자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믿어라. 이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달마達摩 대사께서 남천축국南天竺國에서 오셔서 최상승最上乘의 일심법一心法을 전하시어 그대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셨다. 또 그대들이 뒤바뀌어 이 일심의 법을 제각기 지니고 있음을 믿지 않을까 봐 여러 차례 『능가경』의 문장을 인용하여 중생들의 마음 바탕을 인증해 보이셨다. 그러므로 『능가경』에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설명하시는 것으로 조종을 삼으셨고, 문 없음으로써 법문을 삼으셨다’ 하였다.”
선사가 또 말했다.
“무릇 법을 구하는 이는 구하는 바 없이 구해야 하나니,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없다. 선善을 취하지도 말고, 악惡을 버리지도 말아야 하며, 더럽고 깨끗한 양쪽 모두에 의지하지 않고 죄의 성품이 공함을 통달하면 생각마다 그 죄성이 있을 수 없나니, 제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삼계는 오직 마음뿐이요, 삼라만상森羅萬像은 한 법이 찍힌 것으로 무릇 보이는 물질은 모두가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마음 스스로 마음이라 하지 못하고, 형상에 의해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언제라도 현상 그대로가 진리임을 말하되, 도무지 걸림이 없어야 한다. 보리의 도과道果도 그러하여서 마음에서 난 것을 형상이라 하는데, 형상이 공空임을 알기 때문에 생生이 곧 불생不生인 것이다. 만일 이 뜻을 체득하면 그저 때에 따라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성인의 태胎를 기르면서 인연에 따라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니, 다시 무슨 일이 더 있으랴.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을 받고 게송을 들어라.”
045_0319_b_02L江西馬祖嗣讓禪師在江西師諱道一漢州十方縣人也姓馬於羅漢寺出家自讓開心眼化南昌每謂衆曰汝今各信自心是佛此心卽是佛心是故達摩大師從南天竺國來傳上乘一心之法令汝開悟又數引『楞伽經』文以印衆生心地恐汝顚倒不自信此一心之法各各有故『楞伽經』云 佛語心爲宗無門爲法門又云 夫求法者應無所求心外無別佛佛外無別心不取善不捨惡淨穢兩邊俱不依怙達罪性空念念不可得無自性故三界唯心森蘿萬像法之所印凡所見色皆是見心心不自心因色故有心汝可隨時言說卽事卽理都無所㝵提道果亦復如是於心所生卽名爲色知色空生卽不生若體此意但可隨時著衣喫飯養聖胎任運過時更有何事汝受吾教聽吾偈

마음 바탕을 때에 따라 말하나니
보리도 또한 그러할 뿐이다.
현실과 이치에 모두 걸림 없으면
생生이 곧 불생不生이다.
045_0319_b_18L心地隨時說
菩提亦只寧
事理俱無㝵
當生則不生

홍주洪州 대안사大安寺의 주지가 경과 논을 강론하는 좌주였는데, 오직 마조馬祖만을 비방하였다. 어느 날 밤 3경更에 귀신 사자가 와서 문을 두드리니, 주지가 물었다.
“누구인가?”
사자가 대답했다.
“귀신 세계의 사자인데, 주지 스님을 데리러 왔소.”
주지가 사자에게 말했다.
“내가 이제 67세인데 40년 동안 경과 논을 강하여 대중들로 하여금 지니게 하였으나 오직 말다툼만을 일삼았고 수행은 미처 하지 못했으니, 하룻밤 하루 낮만 말미를 주어 수행하게 해주시오.”
045_0319_b_19L有洪州城大安寺主講經講論座主只觀誹謗馬祖有一日夜三更時鬼使來搥門主云是什摩人對云鬼使來取寺主寺主云鬼使某甲今年得六十七歲四十年講經講論爲衆成持只觀貪諍論未得修行且乞一日一還得也無
045_0319_c_01L사자가 대답했다.
“40년 동안 경론을 강의하기를 탐하면서도 수행을 못했다면 이제 다시 수행을 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목마른 뒤에 우물을 파는 격이니, 무슨 소용이 있으랴. 주지가 아까 말하기를 ‘경론 강하기만을 탐하여 대중들로 하여금 지니게 했다’ 하는데, 옳지 못하다. 무슨 까닭인가? 경전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기를 ‘스스로를 제도한 뒤에 남을 제도하고, 스스로가 해탈한 뒤에 남을 해탈하게 하고, 스스로를 조복한 뒤에 남을 조복시키고, 스스로를 고요하게 한 뒤에 남을 고요하게 하고, 스스로가 편안한 뒤에 남을 편안하게 하고, 스스로가 때[垢]를 여읜 뒤에 남의 때를 여의게 하고, 스스로가 깨끗한 뒤에남을 깨끗하게 하고, 스스로가 열반에 든 뒤에 남을 열반에 들게 하고, 스스로가 즐거운 뒤에 남을 즐겁게 하라’ 하였는데, 그대는 자신조차 편안하고 고요하게 하지 못했는데, 어찌 남으로 하여금 도업道業을 이루게 할 수 있으랴. 그대는 또 듣지 못했는가? 금강장金剛藏보살이 해탈월보살에게 말하기를 ‘내가 바른 행을 닦은 뒤에야 남으로 하여금 바른 행을 닦게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만일 스스로가 바른 행을 닦지 못하고서 다른 이로 하여금 수행하게 함은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였는데, 그대는 생사의 더러운 마음으로 입을 놀려 따지기만 하여 불교를 잘못 전하여 어리석은 중생을 속였다. 이 까닭에 저 세계의 왕이 그대에게 화가 나서 나로 하여금 그대를 잡아서 곧 저 가운데 도수刀樹 지옥에 넣어 그대의 혀를 끊으라 했으니, 끝내 면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대는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지 못했는가? ‘말로써 설한 법을 작은 지혜들은 망령되게 분별하나니, 그러므로 장애를 일으켜서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조차 알 수 없는데, 어찌 바른 도를 알리오. 그들의 뒤바뀐 지혜 때문에 온갖 죄악을 늘린다’ 하였다. 그런데 그대는 40년 동안 구업口業을 지었으니, 지옥에 들지 않고 어찌하리오. 또 옛 경전에도 분명한 기록이 있는데, ‘말로써 모든 법을 말하여도 실상實相을 나타내지 못한다’ 하였다. 그대는 망상妄想의 마음을 가지고 입을 놀려 헛소리를 지껄였으니, 그러므로 반드시 죄를 받아야 한다. 그저 자신을 탓할지언정 남을 원망하지는 말라. 이제 서둘러 가자. 만일 늦으면 저 왕께서 나를 꾸짖을 것이다.”
045_0319_b_24L鬼使云四十年來貪講經論不得修行如今更修行作什摩臨渴掘井有什摩交寺主適來道 只觀貪講經論爲衆成持無有是處何以故教有明文 自得度令他得度自解脫令他解脫自調伏令他調伏自寂靜令他寂自安隱令他安隱自離垢令他離垢自淸淨令他淸淨自涅槃令他涅槃自快樂令他快樂是汝自身尚乃未得恬靜何能令他道業成持汝不見金剛藏菩薩告解脫月菩薩言 我當自修正行亦勸於他令修正行何以故若自不能修行正行令他修者無有是處汝將生死不淨之心口頭取辦錯傳佛教誑諕凡情因此彼王嗔汝教我取去彼中便入刀樹地獄斷汝舌根終不得免汝不見佛語 言詞所說法小智妄分是故生障㝵不了於自心不能了自心云何知正道彼由顚倒慧增長一切惡汝四十年來作口業不入地獄作什摩古教自有明文 言語說諸法不能現實相汝將妄心以口亂說所以必受罪報但嘖自嫌莫怨別人如今速行若也遲晩彼王嗔吾
이에 둘째 사자가 말했다.
“저 왕께서 벌써 이런 사실을 아실 터이니, 그로 하여금 수행하게 해준들 무슨 방해가 있겠는가?”
그러자 첫째 사자가 말했다.
“만일 그렇다면 하루쯤 놓아주어서 수행하도록 허락합시다. 우리들이 돌아가서 왕에게 아뢰어 허락해 주시면 내일 다시 오겠고, 만일 허락하지 않으시면 잠시 뒤에 다시 오겠소.”
사자들이 물러간 뒤에 주지가 이 일을 생각했다.
‘사자 귀신이 허락은 했으나 내가 하루 동안 어떻게 수행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런 계책이 없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릴 겨를도 없이 개원사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리니, 문지기가 말했다.
“누구시오?”
“태안사 주지인데 대사께 문안을 드리러 왔소.”
045_0319_c_15L其第二鬼使云彼王早知如是次第何妨與他修行其第一鬼使云若與摩放一日修行某等去彼中諮白彼王王若許日便來王若不許一餉時來其鬼使去後寺主商量這个事鬼使則許了也某甲一日作摩生修行無可計不待天明便去開元寺搥門門士是什摩人對云太安寺主來起居大師
문지기가 문을 열어 주니, 주지는 곧 마조馬祖 화상에게로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진술하고, 오체투지五體投地한 뒤에 말했다.
“죽음이 닥쳐왔는데, 어찌하여야 되겠습니까? 바라옵건대 화상께서 저의 남은 목숨을 자비로써 구제해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그를 자기의 곁에 서 있게 하였다. 날이 저물자 사자 귀신이 태안사로 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다시 개원사로 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이때 선사와 주지는 사자를 보았으나 사자는 선사와 주지를 보지 못했다.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용화龍華에게 물었다.
“주지는 그때 어디로 갔었기에 사자가 찾지 못했습니까?”
용화가 말했다.
“우두牛頭 화상이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 국사께서는 매우 훌륭하였겠습니다.”
용화가 말했다.
“남전南泉 화상이니라.”
045_0319_c_21L門士便開門寺主便去和尚處具陳前事後五體投地禮拜起云生死到來作摩生卽是乞和尚慈救某甲殘命師教他身邊立地天明了其鬼使來太安寺裏討主不見又來開元寺覓不得轉去也師與寺主卽見鬼使鬼使卽不見師與寺主也僧拈問龍華只如寺主當時向什摩處鬼使覓不得花云牛頭和尚僧云與摩則國師當時也太奇龍花曰南泉和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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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공양 끝 무렵에한 스님이 와서 위의를 갖추고 법당으로 올라와 선사를 뵈니, 선사가 물었다.
“지난밤에는 어디에 있었는가?”
“산 밑에 있었습니다.”
“밥은 먹었는가?”
“아직 먹지 않았습니다.”
“부엌에 가서 밥을 찾아 먹어라.”
그 스님이 대답하고 부엌으로 가니, 그때 백장이 전좌典座의 소임을 맡았었는데, 선뜻 자기 몫의 밥 반을 그에게 나누어 주어 공양하게 하였다. 그 스님은 밥을 다 먹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 뒤 백장이 법당으로 올라가니, 선사가 물었다.
“아까 밥을 먹지 못한 스님이 있었는데, 그대가 공양 좀 시킬 수 있겠는가?”
“예, 벌써 공양을 마쳤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뒷날 무량한 복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는 벽지불辟支佛의 지위에 이른 스님이기 때문에 그리 말했노라.”
“스님께서는 범인凡人으로서 어찌하여 벽지불의 절을 받으셨습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신통변화로는 그러하지만 만약 불법을 한 구절을 이야기하라면 노승만 못하느니라.”
045_0320_a_01L有一日齋後忽然有一个僧來具威儀便上法堂參師師問昨夜在什摩處對曰在山下師曰喫飯也未未喫飯師曰去庫頭覓喫飯其僧應喏便去庫頭當時百丈造典座卻自个分飯與他供養其僧喫飯了便去百丈上法堂師問適來有一个僧未得喫飯汝供養得摩對曰供養了師曰汝向後無量大福德人對曰和尚作摩生與摩師曰此是辟支弗僧所以與摩說進問和尚是凡人作摩生受他辟支弗禮師云神通變化則得若是說一句佛法他不如老僧

선사가 어느 날 승상에 올라서 앉자마자 침을 뱉으니, 시자가 물었다.
“화상께서는 조금 전에 무슨 연유로 침을 뱉으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노승이 여기에 앉으니, 산하대지山河大地와 삼라만상森羅萬像이 모두 여기에 있더구나. 그래서 그것이 싫어서 침을 뱉었느니라.”
“이는 좋은 일일 터인데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싫어하십니까?”
“그대 편에서는 좋겠지만 나로서는 싫으니라.”
“이는 어떤 사람의 경지입니까?”
“이는 보살의 경지니라.”
나중에 고산鼓山이 이 인연을 들어 말했다.
“옛사람은 그러했지만 여러분들은 보살의 경지도 아직 얻지 못했으면서 저 보살들을 싫어한다. 비록 싫은 것이라 해도 먼저 보살의 지위를 증득한 뒤에 싫어한 것이라야 싫어함이 된다. 노승은 보살의 지위를 알지도 못했으니, 어떻게 그러한 일을 싫어하랴?”

서천西川에 황삼랑黃三郞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두 아들을 마조馬祖에게 귀의하게 하여 출가시켰다. 한 해 남짓 지나서 그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두 스님을 보자마자 살아 있는 부처님을 보는 듯하여 절을 하면서 말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를 낳은 이는 부모요, 나를 이루어 준 이는 벗이다’ 했는데, 두 스님은 나의 벗으로서 이 늙은이를 이루어 주시오.”
두 스님이 말했다.
“아버지께서 비록 나이가 많으시나 그러한 마음이 있으시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045_0320_a_11L師有一日上禪牀纔與摩坐便涕唾侍者便問和尚適來因什摩涕唾師云老僧在這裏坐山河大地蘿萬像摠在這裏所以嫌他與摩唾侍者云是好事和尚爲什摩卻嫌師云於汝則好於我則嫌侍者云此是什摩人境界師云此是菩薩人境界後鼓山擧此因緣云古人則與摩是你諸人菩薩境界尚未得又故則嫌他菩薩雖則是嫌但以先證得菩薩之位後嫌也嫌老僧未解得菩薩之位作摩生嫌他這个事有西川黃三郞教兩个兒子投馬祖出家有一年卻歸屋大人纔見兩僧生佛一般禮拜古人道我者父母成我者朋友是你兩个僧便是某甲朋友成持老人大人雖則年老若有此心什摩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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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몹시 기뻐하였는데, 이로부터 이 거사는 두 스님을 따라 마조에게 갔다. 그 스님들이 그 동안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니, 대사는 곧 법당으로 올라갔다. 황삼랑도 법당 앞으로 나아가니, 대사께서 꾸짖으면서 말했다.
“쯧, 서천의 황삼랑이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서천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황삼랑은 서천에 있는가, 홍주洪州에 있는가?”
“가정에는 두 가장이 없고, 나라에는 두 왕이 없습니다.”
“그대의 나이는 얼마인고?”
“85세입니다.”
“비록 그렇다 치더라도 나이는 왜 따지는가?”
“만일 화상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헛되이 보낼 뻔하였습니다. 화상을 뵌 뒤에는 칼로 허공을 긋는 것 같습니다.”
“만일 진실로 그러하다면 어디를 가나 진실에 맡겨라.”
045_0320_a_25L大人歡喜從此便居士相共男僧便到馬祖處其僧具陳來旨大師便上法堂黃三郞到法堂前師曰西川黃三郞豈不是對曰師曰從西川到這裏黃三郞如今在西川洪州家無二主國無二王師曰年幾八十雖則與摩筭什摩年歲若不遇和尚虛過一生見師後如刀劃空師曰若實如此隨處任

황삼랑이 어느 날 대안사大安寺에 이르러 마루 앞에서 통곡을 하니, 양亮 좌주가 물었다.
“무슨 일로 통곡하십니까?”
황삼랑이 대답했다.
“좌주를 위해 웁니다.”
“나를 위해 울다니, 무슨 뜻입니까?”
“황삼랑이 마조馬祖께 의지해 출가해서 가르침을 받자마자 문득 깨달았다는 말을 들으셨을 터인데, 여러분 좌주들은 공연한 이야기나 지껄여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좌주가 이 말에 발심하여 곧 개원사開元寺로 가니, 문지기가 대사에게 말했다.
“대안사의 양 좌주가 와서 대사를 뵙고자 하고, 또 불법을 묻고자 합니다.”
이에 대사가 문득 법상에 오르니, 좌주가 와서 대사를 뵈었다. 대사가 좌주에게 물었다.
“듣건대, 좌주는 60본本 경론204)을 강講했다는데, 사실인가?”
좌주가 대답했다.
“그러하옵니다.”
“어떻게 강하는가?”
“마음으로 강합니다.”
“아직은 경론을 강할 줄 모르는군.”
“어째서 그렇습니까?”
“마음은 주인공이요, 뜻은 조연이라 했는데, 어찌 경론을 강할 줄 알겠는가?”
“마음이 강할 수 없다면, 허공은 강할 수 있습니까?”
“허공은 강할 수 있느니라.”
045_0320_b_04L黃三郞有一日到大安寺廊下便啼哭亮座主問有什摩事啼哭三郞曰啼哭座主座主云哭某等作摩三郞曰還聞道黃三郞投馬祖出纔蒙指示便契合汝等座主說葛藤作什摩座主從此發心便到開元寺門士報大師曰安寺亮座主來欲得參大師兼問佛法大師便昇座座主來參大師大師問見說座主講得六十本經論是不對云不敢師云作摩生講對云以心講師云未解講得經論在座主云作摩生心如工技兒意如和技者爭解講得經論在座主云心旣講不得將虛空還講得摩師云空卻講得
좌주가 뜻에 맞지 않아 당장 나와서 섬돌을 내려서려다가 크게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절을 하고 사례하니, 대사가 말했다.
“이 아둔한 중아, 절은 해서 무엇 하려는가?”
양 좌주가 일어나니 등에 땀이 줄줄 흘렀다. 밤낮으로 엿새 동안 대사의 곁을 떠나지 않고 모시다가 후에 좌주가 선사에게 말했다.
“제가 화상의 곁을 떠나 스스로의 수행 길을 살피려 하오니, 바라옵건대 화상께서 오래오래 세상에 계시어 많은 중생들을 제도해 주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좌주가 본사로 돌아와서 대중들에게 고했다.
“내 일생 동안의 공부를 앞지를 이가 아무도 없다고 여겼더니, 오늘 마조 대사께 꾸지람을 맞고서야 망정妄情이 몽땅 사라졌다.”
그리고는 학도들을 모두 물리치고 한 번 서산으로 들어간 뒤에는 다시는 소식이 없었다. 양 좌주가 이런 시구를 남겼다.
045_0320_b_15L座主不在意便出纔下階大悟廻來禮謝師云鈍根阿師禮拜作什摩亮座主起來霡霂汗流晝夜六日在大師身邊侍立後諮白某甲離和尚左右自看省路修行唯願和尚久住世間廣度群生伏惟珍重座主歸寺告衆某甲一生功夫將謂無人過得今日之下馬大師呵嘖直得情盡便散卻學徒一入西山更無消息座主偈曰

30년 동안 아귀 노릇을 하다가
오늘에야 사람의 몸을 회복했네.
푸른 산에는 원래 외로운 구름의 벗이 있는데
동자가 다른 이를 따라 다른 사람을 섬겼네.
045_0320_b_22L三十年來作餓鬼
如今始得復人身
靑山自有孤雲伴
童子從他事別人

장남漳南이 이 일을 들어서 물었다.
“허공이 경을 강하면 어떤 사람들이 듣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아까 잠시 남을 따라 기뻐했었습니다.”
장남이 말했다.
“무슨 뜻인가?”
“만일 다른 사람이라면 바로 거두시라 했을 것입니다.”
이에 장남이 말했다.
“그대는 역시 불을 잡을 뜻이 있구나.”
045_0320_b_23L漳南拈問僧虛空講經什摩人爲聽衆對云來暫隨喜去來漳南云是什摩義若是別人便教收取漳南曰汝也是把火之意
045_0320_c_01L
선사가 상당하여 양구하고 있으니, 백장이 면전에 있던 자리를 치워 버렸다. 그러자 곧 자리에서 내려왔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바로 그대의 목숨을 놓아 버릴 곳이니라.”
“4구句와 백비百非205)를 떠나서 서쪽으로부터 오신 뜻을 바로 보여 주십시오. 번거로이 여러 말씀을 하실 필요 없습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오늘은 아무 생각도 없어서그대에게 말해 줄 수 없으니, 서당西堂에게 가서 물어라.”
045_0320_b_26L師上堂良百丈收卻面前席師便下堂如何是佛法旨趣師云正是你放身命處請和尚離四句絕百非直指西來意不煩多說師云我今日無心情不能爲汝說汝去西堂問取智藏
그 스님이 서당에게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말하니, 서당이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화상께 묻지 않는가?”
“화상께서 저더러 상좌께 물으라고 하십니다.”
이에 서당이 손으로 머리를 짚으면서 말했다.
“내가 오늘 몹시 머리가 아파서 그대에게 말해 줄 수 없으니, 해(海:백장) 사형께 가서 물어라.”
그 스님이 백장百丈에게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물으니, 백장이 말했다.
“나는 그 경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그 스님이 다시 와서 선사에게 말하니, 선사가 말했다.
“장(藏:서당)의 머리는 희고, 해(海:백장)의 머리는 검도다.”

선사가 인편에 선경산先徑山 도흠道欽에게 글을 보냈는데, 글 속에는 다만 원상圓相만이 그려져 있었다. 경산이 이를 보자마자 붓을 들어 원상 안에다 한 획을 보탰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충忠 국사에게 전하니, 국사가 말했다.
“흠欽 대사가 또 마馬 대사에게 속았구나.”

어떤 사람이 선사의 앞에서 네 획을 그었는데, 위의 한 획은 길고 아래의 세 획은 짧았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가 길다고 해서도 안 되고 셋이 짧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이 네 구절을 떠나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한 획을 긋고 말했다.
“길다고도 말할 수 없고, 짧다고도 말할 수 없으니, 그대에게 대답해 주었노라.”
충 국사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다르게 대답했다.
“어째서 나에게 묻지 않았던가?”
045_0320_c_02L其僧去西堂具陳前問西堂云汝何不問和尚僧云尚教某甲來問上座西堂便以手點頭我今日可殺頭痛不能爲汝說汝去問取海師兄僧又去百丈乃陳前問百丈云某甲到這裏卻不會其僧卻擧似師師云藏頭白海頭黑師遣人送書到先徑山欽和尚處書中只畫圓相此纔見以筆於圓相中與一劃有人擧似忠國忠國師云欽師又被馬師惑有人於師前作四劃上一劃長下三劃短不得道一長不得道三短離此四句外請師答某甲師乃作一劃不得道長不得道短答汝了也忠國師聞擧別答云何不問某甲

어떤 좌주가 선사에게 물었다.
“선종에서는 어떤 법을 전하고 있습니까?”
선사가 도리어 좌주에게 물었다.
“좌주는 어떤 법을 전하고 있는가?”
“40본 경론206)을 강의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사자후獅子吼가 아닌가?”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선사가 “쉬쉬” 하고 소리를 내니, 좌주가 말했다.
“그것도 법입니다.”
“그게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을 나서는 법입니다.”
그러자 선사가 한동안 침묵했다. 좌주가 말했다.
“이 역시도 법입니다.”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에 있는 법입니다.”
그러자 선사가 물었다.
“들지도 않고 나지도 않는 것은 무슨 법인가?”
045_0320_c_14L有座主問師禪宗傳持何師卻問座主傳持何法對曰講得四十本經師云莫是師子兒不座主云不敢師作噓噓座主云此亦是法師云是什摩法對云師子出窟法師乃嘿然座主云此亦是法師云是什摩法對云師子在窟法師云不出不入是什摩
좌주가 대답을 못하고 마침내 하직하고 문밖을 나서니, 선사가 불렀다.
“좌주여.”
“예.”
“이것이 무엇인가?”
좌주가 대답이 없으니, 선사가 말했다.
“이 아둔한 중아.”
후백장後百丈이 다음과 같이 대신 말했다.
“보았는가?”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회남淮南에서 왔습니다.”
선사가 다시 물었다.
“동호東湖의 물이 찼던가?”
“아직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비가 왔는데도 아직 차지 않았구나.”
이에 도오道吾가 말했다.
“찼습니다.”
운암雲巖이 말했다.
“담담湛湛하였습니다.”
동산洞山이 말했다.
“어느 겁엔들 줄어든 적이 있었습니까?”
045_0320_c_20L座主無對遂辭出門師召云座主座主應喏是什摩座主無對師呵云這鈍根阿師後百丈代云見摩師問僧從什摩處來對云從准南來師云東湖水滿也未對云師云如許多時雨水尚未滿道吾云滿也雲嵒云湛湛底洞山云什摩劫中曾久小來
045_0321_a_01L
선사가 다음날 아침 입멸하려는데, 그날 저녁에 원주가 물었다.
“화상께서 4대大가 평안하지 못하셨는데,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니라.”207)

분주汾州 화상이 좌주로 있을 때 42본 경론208)을 강하고 선사에게 와서 물었다.
“3승 12분교는 제가 대략 그 뜻을 압니다만 종문宗門의 뜻은 어떠하옵니까?”
선사가 좌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좌우에 사람이 많으니 일단 가거라.”
분주汾州가 문을 나오는데 발을 문턱에 걸치자마자 선사가 “좌주야” 하고 불렀다. 이에 분주가 돌아보면서 “예” 하고 대답했다.
선사가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분주汾州가 당장에 깨닫고 절을 하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제가 42본 경론을 강하면서 아무도 나를 이길 이가 없다고 여겼었는데, 오늘날 화상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헛되이 보낼 뻔하였습니다.”
045_0320_c_25L師明晨遷化今日晩際主問和尚四體違和近日如何師曰日面佛面佛汾州和尚爲座主時講四十二本經論問師三乘十二分教某甲粗知未審宗門中意旨如何師乃顧示云左右人多且去汾州出門腳纔跨門䦘師召座主汾州廻頭應喏師云什摩汾州當時便省遂禮拜起來某甲講四十二本經論將謂無人過得今日若不遇和尚泊合空過一生

선사가 백장百丈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법으로 사람을 가르치는가?”
백장이 불자를 세움으로써 대답하니, 선사가 다시 물었다.
“다만 그것뿐인가, 아니면 따로 있는가?”
백장이 불자를 던졌다.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석문石門에게 물었다.
“한마디의 말로써 마 대사의 두 뜻을 점칠 수 있는 길을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석문이 불자를 들어 일으키면서 말했다.
“평소부터 어쩔 수 없었느니라.”

선사에게서 친히 법을 이어받은 제자 중 세상에 나와 교화를 편 이는 88인이고, 숨어서 지낸 이는 그 수효를 알 수 없다.
선사의 성품은 인자하고 모습은 준수하며, 발바닥에는 두 개의 바퀴무늬가 있고, 이마에는 주름이 세 가닥 잡혀 있다. 설법하며 세상에 머무르기 40여 년, 현현한 무리가 천여 명이다.
선사가 정원貞元 4년, 무진戊辰 2월 1일에 입적하니, 늑담氻潭 보봉산寶峰山에 탑이 있다. 칙명으로 대적大寂 선사 대장엄지탑大莊嚴之塔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배상裵相이 편액을 썼고, 좌승상左丞相인 호득흥護得興이 비문을 지었다.
정수淨修 선사가 송했다.
045_0321_a_05L師問百丈汝以何法示人百丈豎起拂子對師云只這个爲當別更有百丈拋下拂子僧拈問石門一語之中便占馬大師兩請和尚道石門拈起拂子尋常抑不得已大師下親承弟子摠八十八人出現于世及隱道者莫知其數大師志性慈慜容相瑰奇足下二輪頸有三約說法住世四十餘年玄徒千有餘衆師貞元四年戊辰歲二月一日遷化塔在氻潭寶峯山勅謚大寂禪師大莊嚴之塔裵相書額左承相護得興撰碑文淨修禪師頌曰

마조馬祖 도일道一 선사는
수행이 온전하여 금석金石과 같다.
근본을 깨달아 초연하고
가지를 찾아 애쓰셨다.
045_0321_a_14L師道一
行全金石
悟本超然
尋枝勞役

오랫동안 선정禪定하신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내던져 버리고
남창南昌에서 크게 교화를 펴니
1천 척尺짜리 겨울 소나무 같구나.
045_0321_a_15L久定身
一時拋擲
大化南昌
寒松千尺
045_0321_b_01L

대주大珠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고, 월주越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혜해慧海이며, 건주建州 사람이다. 선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그대들의 마음이 곧 부처이니, 부처를 가지고 부처를 찾지 말라. 그대들의 마음이 곧 법이니, 법을 가지고 법을 구하지 말라. 부처와 법이 화합한 것이 승가의 본체이니, 이를 일체삼보一體三寶라 부른다. 경에서 말하기를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세 가지는 차별이 없다’ 하였으니, 몸과 입과 뜻의 업이 청정함을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신 것이라 하고, 3업業이 청정하지 못함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것이라 한다. 마치 성났을 때에는 기쁨이 없고, 기쁠 때에는 성냄이 없는 것과도 같아서, 오직 한마음뿐이고 작용 또한 두 바탕이 없다. 근본 지혜가 으레 그러하듯 무루無漏의 법을 눈앞에 나타내나니, 마치 뱀이 용으로 변할 때 그 비늘을 바꾸지 않고, 중생이 마음을 돌려 부처가 될 때에 그 얼굴을 고치지 않는 것과 같다. 본성은 본래 청정해서 닦아 이루기를 기다리지 않나니, 증득함이 있고 구함이 있다면 바로 증상만憎上慢과 같다. 진공眞空은 막힘이 없고, 응용應用은 때가 없어서 시작도 마침도 없다. 영리한 근기가 먼저 무등등無等等209)의 지혜를 활용하면 그것이 아뇩보리阿耨菩提요, 성품에 형상이 없는 것이 바로 미묘한 색신色身이다. 형상 없음이 곧 실상實相이요, 성품과 본체가 본래 공한 것이 곧 끝없는 법신法身이요, 만행萬行으로 장엄하는 것이 곧 공덕이니, 바로 만 가지 변화의 근본이어서 이르는 곳에 따라 이름을 세웠을 뿐이니라. 지혜와 작용이 무진한 것을 무진장無盡藏이라 하고,만 가지 법을 내는 것을 대법장大法藏이라 하며, 온갖 지혜를 갖추는 것을 지혜장智慧藏이라 하고, 만법이 동일한 진여인 것을 곧 여래장如來藏이라 한다. 경에서 말하기를 ‘여래如來라 함은 모든 법이 여여如如하다는 뜻이라서, 온갖 세간의 생멸법 가운데 어느 한 법도 이 여如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 하였느니라.”
045_0321_a_16L大珠和尚嗣馬大師在越州師諱慧海建州人師謂衆曰汝心是佛不用將佛求佛汝心是不用將法求法佛法和合爲僧體喚作一體三寶經云 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身口意業淸淨名爲佛出世三業不淨名爲佛滅度喩如嗔時無喜喜時無嗔唯是一心用無二體本智法爾無漏現前如蛇化爲龍不改其鱗衆生廻心作佛不改其面性本淸淨不待修成有證有卽同增上慢眞空無滯應用無時無始無終利根先悟用無等等卽是阿耨菩提性無形相卽是微妙色身無相卽是實相性體本空則是無邊法身萬行莊嚴具卽是功德法身卽是萬化之本隨處立名智用無盡卽是無盡藏能生萬法是大法藏具一切智是智慧藏萬法同如是如來藏經云 如來者則諸法如義一切世間生滅法無有一法不歸如

왕王 장리長吏라는 이가 물었다.
“법사法師와 율사律師와 선사禪師 중 어느 쪽이 가장 수승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법사法師는 사자좌에 걸터앉아 폭포 같은 웅변을 토하여 빽빽하게 모인 여러 사람들을 상대로 반야의 묘한 문을 열고 3륜輪210)이 공적空寂한 경지에 이르게 한다. 만일 용상龍象이 도사린 기틀이 아니면 어떻게 사람들을 감당하리오. 율사律師는 비니毘尼의 법장을 열어 명예와 이익을 쌍으로 행하고, 가지거나 범하거나 열거나 막아서 위의는 남의 모범이 된다. 세 번 거듭하는 갈마211)를 행하여 4과果212)의 첫 인연을 만드나니, 만일 전생에 덕을 쌓은 흰 눈썹[白眉]이 아니면 어찌 감히 섣불리 하리오. 선사는 추요樞要213)를 찾아내어 마음의 근원을 곧장 깨닫고, 들고나고 펴고 오므림이 자유로이 사물에 응한다. 현실과 이치를 모두 균등히 하여 한순간에 여래如來를 활짝 보고 생사의 깊은 근원을 뽑아 버려 현전의 삼매를 얻는다. 만일 선정에 안정하여 조용히 생각하는 이가 아니면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어리둥절하리라.”
045_0321_b_04L有王長史問法師禪師阿那个最勝師云法師者踞師子座縣河之辯對椆人匡衆啓鑿玄閞開般若之妙等三輪之空際若非龍象蹴踏安敢當人師者啓毘尼之法藏名利雙行持犯開遮威儀作則疊三翻之羯摩作四果之初因若非宿德白安敢造次禪師者撮其樞要直了心源出沒卷舒縱橫應物咸均事理頓見如來拔生死之深根得現前之三昧若不安禪靜慮到者裏摠須恾然

어떤 좌주가 물었다.
“제가 선사의 뜻을 물으려는데 되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맑은 못의 달그림자를 마음대로 만지작거려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맑은 못에 얼굴을 대했을 때가 부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좌주가 어리둥절해서 다시 물었다.
“선사께서는 어떠한 법을 말해서 사람들을 제도합니까?”
“법이 있은 적이 없느니라.”
“선사는 한결같이 이러하군요.”
선사가 도리어 법사에게 물었다.
“어떤 법을 말하는가?”
“『금강경』을 20여 회 강하였습니다.”
“『금강경』은 누구의 말씀인가?”
“선사께서는 어찌 부처님의 말씀임을 모르십니까?”
선사가 말했다.
“만약 여래께서 설한 법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곧 여래를 비방하는 것이니, 그런 사람은 내가 말한 뜻을 알지 못한다. 만약 경전이 불설佛說이 아니라 한다면 그것은 곧 경전을 비방하는 것이니, 이것을 떠나 노승을 위해 법을 설하여라.”
법사가 대답이 없었다.
045_0321_b_13L有座主問某甲擬問禪師義得不師曰淸潭月影任意撮摩如何是佛師曰淸潭對非佛而誰座主恾然卻問禪師說何法度人師云未曾有法座主云禪師渾如此師卻問師說何法對云講『金剛經』二十餘座師曰『金剛經』是誰說對云禪師豈不知是佛說師云若言如來有所說法則爲謗佛是人不能解我所說若言經不是佛說卽爲謗經離此之外爲老僧說法師無對
045_0321_c_01L이에 선사가 다시 말했다.
“이 뜻을 잠시 제쳐두고 그 이치는 그만두고라도 경에서 말하기를 ‘만일 32상相으로 여래를 본다면 전륜성왕이 곧 여래일 것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만일 색色으로 나를 보려고 한다면 곧 여래를 볼 수 없는 것이다’ 하였으니, 경은 그만두고 대덕에게 묻노니, 일러 보라. 어떤 것이 여래인가?”
좌주가 대답했다.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어리둥절해집니다.”
선사가 꾸짖으면서 말했다.
“경을 20여 회나 강했다면서 전혀 여래를 알지 못하는구나.”
그리고는 또 말했다.
“여래라 함은 모든 법의 여여如如한 뜻이라 했는데, 대덕은 어째서 모르는가?”
법사가 다시 물었다.
“만일 그렇다면 모두가 여여하겠습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틀렸다, 틀렸다.”
“경에 그렇게 말했는데, 어째서 옳지 않다 하십니까?”
“법사는 여여한가?”
“예, 여여합니다.”
“목석木石이 여여한가?”
“여여합니다.”
“그대와 목석이 모두 여여하다는 말인가?”
“두 가지 여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대덕은 초목과 무엇이 다른가?”
법사가 대답이 없으니, 선사가 탄식하면서 말했다.
“이 사람은 문답하기 참 어려운 사람이로다.”
045_0321_b_21L師曰其義且置經云 若以三十二相觀如來者轉輪聖王卽是如來又云若以色見我乃至 不能見如來經且置待小時徵大德且道那个是如來對云到這裏卻迷去師呵云講經二十餘座渾不識如來師云如來者則諸法如義大德那得不知法師云若如是則一切皆如師云未是未是法師云經作此說那得不師云法師如不對云師云木石如不對曰師又云汝木石如不對曰無二如師云與摩則大德共草木何別法師無對乃嘆曰此上人極難酬對

어느 때에 어떤 속관(俗官:세속 관리)이 물었다.
“법사는 어째서 선법禪法을 믿지 않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름과 형상은 알기 쉬우나 지극한 이치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니라.”

어떤 행자行者가 물었다.
“마음이 곧 부처라 하는데,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선사가 도리어 물었다.
“그대는 어떤 것이 부처가 아니라고 의심하는가? 지적해 보라.”
행자가 대답이 없으니, 선사가 말했다.
“통달하면 온 경계가 그것이요, 깨닫지 못하면 영원히 어긋나서 멀어지느니라.”

『화엄경』을 강하는 좌주 몇 사람이 물었다.
“선사들은 어찌하여 청청한 푸른 대[竹]가 법신이요, 울창한 개나리꽃이 반야임을 인정하지 않으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법신은 형상이 없으나 푸른 대를 상대하여 형상을 이루고, 반야는 알음알이가 없으나 노란 개나리꽃을 상대하여 형상을 나타내나니, 그 노란 꽃이나 푸른 대를 떠나서 반야와 법신이 있을 수 있겠는가? 경에서 말하기를 ‘부처님의 참 법신은 허공과 같아서 사물에 응하여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 마치 물속의 달과 같다’ 하였으니, 노란 꽃이 반야라면 반야는 곧 무정지물과 같을 것이요, 푸른 대가 법신이라면 푸른 대가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가?”
좌주 몇 사람이 모두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
045_0321_c_03L時有俗官問法師何故不信禪法師云名相易解至理難見有行者問卽心卽佛那个是佛師云汝疑那个不是指出看行者無對師云達則遍境是不悟則永乖疏華嚴座主數人問禪師何不許 靑靑翠竹是法身鬱鬱黃花是般師曰法身無像對翠竹以成形般若無知黃花而現相非彼黃花翠竹而有般若法身乎經云 佛眞法身猶若虛空應物現形如水中月黃花若是般若般若則同無情翠竹若是法身翠竹還同應物不大德數人杜口無言

백장百丈 정政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고, 강서에서 살았다. 그의 행적을 보지 못해서 생애는 알 수 없다.
선사가 스님에게 말했다.
“그대가 나를 위해 밭을 일구어 주면 내 그대에게 큰 이치를 말해 주리라.”
스님이 말했다.
“밭을 다 일구었으니, 스님께서 큰 이치를 말씀해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두 손을 활짝 펴 보였다.

어떤 노숙이 창틈으로 햇살이 스며드는 것을 보고 물었다.
“창이 해 곁으로 갔습니까, 해가 창 곁으로 왔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장로의 방에 손님이 오셨으니 가 보시는 것이 좋겠소.”
045_0321_c_12L百丈政和尚嗣馬大師在江西未睹行錄不決化緣始終師向僧道汝與我開田了爲汝說大僧云開田了請師說大義師乃展開兩手老宿見日影透過窗爲復窗就日爲復日就師云長老房內有客且歸去好

삼산杉山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고, 지주池州에서 살았다. 이름은 지견智堅이며, 그의 실록을 보지 못해 생애는 알 수 없다.
운암雲巖이 달을 보고 선사에게 말했다.
“매우 좋은 달입니다.”
선사가 말했다.
“비추기는 하는가?”
운암이 고개를 숙여 버렸다.

선사가 남전에서 제1좌第一座로 있었는데, 남전이 수생(收生:중생교화)을 하면서 말했다.
“생生이다.”
선사가 말했다.
“무생無生입니다.”
“무생이라 하여도 역시 끝이니라.”
남전이 이렇게 말하고는 대여섯 걸음 걸으니, 선사가 “큰스님” 하고 불렀다. 남전이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어째서 그러는가?”
“그래도 끝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045_0321_c_17L杉山和尚嗣馬大師在池州師諱智堅未睹實不決化緣始終雲嵒見月問師太好月師云還照也無雲嵒低卻頭師在南泉造第一座泉收生次師云無生泉云無生猶是末泉行五六步師召云長老南泉廻頭云作摩莫道是末
045_0322_a_01L나중에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서 순덕順德에게 물었다.
“남전이 말하기를 ‘생이다’ 한 뜻이 무엇입니까?”
순덕이 말했다.
“급한 물결에 배를 띄우는 것이니라.”
“삼산이 ‘무생입니다’ 말한 뜻은 무엇입니까?”
“바람이 불지 않으면 나무 또한 움직이지 않느니라.”
“무생이라 해도 역시 끝이라 한 뜻이 무엇입니까?”
“칼날을 갈고, 칼끝을 문지르는데, 그대는 어떻게 피하려는가?”
“남전을 부른 뜻이 무엇입니까?”
“승전보를 들으려면 따로 행해 지녀야 하느니라.”
“남전이 고개를 돌린 뜻이 무엇입니까?”
“코끼리가 발길을 돌리니, 사자獅子가 신음을 하느니라.”
“‘끝이란 말씀을 마십시오’라고 한 뜻이 무엇입니까?”
“묘하게 몸을 피하니 고금에 드무니라.”
안국安國이 이 일을 들어서 명明 상좌에게 물었다.
“옛사람은 무생에 해당하는가, 무생에 해당하지 않는가?”
“무생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삼산의 뜻이 무엇인가?”
명 상좌가 대답이 없으니, 명진明眞 대사가 대신 말했다.
“그대가 들어 말해 보라.”
045_0321_c_23L後有人拈問順德南泉道意作摩生順德云急水行舟杉山道無生意作摩生德云風若不來樹亦不動無生猶是末意作摩德云磨鎽捺刃汝且作摩生廻避喚南泉意作摩生德云要擧勝今別旋行持南泉廻頭作摩生德云象王廻旋師子嚬呻莫道是末意作摩生德云妙个出身古今罕有安國拈問明上座古人當無生不當無生對曰不當無生國云杉山意作摩生明上座無對明眞大師代云汝試擧看

선사가 남전과 함께 불을 쪼이는데, 남전이 물었다.
“동쪽 서쪽을 가리키지 말고, 본분의 일을 곧장 일러 보시오.”
선사가 얼른 부젓가락을 집어 던지니, 남전이 말했다.
“그대가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왕 노사에 견주면 여전히 실 한 가닥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남전이 다시 조주에게 묻자, 조주가 손으로 원상圓相을 그리고 그 복판에 점 하나를 찍었다. 남전이 말했다.
“그대가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왕 노사에게 견주면 여전히 한 올의 실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중에 운문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남전은 다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높은 곳을 향해 오르기만 할 뿐 허공 속에서 놓아 버릴 줄은 몰랐다.”
“어떤 것이 본래의 몸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온 세상에 그와 비슷한 것은 없느니라.”

선사가 고사리나물을 들어 보이면서 남전에게 물었다.
“이것은 공양하기에 딱 좋겠습니다.”
남전이 대답했다.
“그것뿐이 아니라 설사 백미진수라도 그는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선사가 다시 말했다.
“비록 그러나 저마다 그에게 갚아야 합니다.”
045_0322_a_04L師與南泉向火次南泉問師不用指東指西本分事直下道將來師便把火筯放下南泉云饒你與摩猶較王老師一線道南泉又問趙州趙州以手作圓相中心一點泉云饒你與摩猶教王老師一線道雲門聞擧云南泉只是步步登高不解空裏放下如何是本來身師云擧世不相似師提起蕨菜問南泉這个太好供養南泉云非但這个百味珍羞他亦不顧師云雖然如此个个摠須償他始得

명계茗溪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으나 행장을 보지 못해 그의 생애를 알 수 없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수행의 길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훌륭한 중아, 공연히 나그네 신세가 되지 말라.”
“끝내 어떠합니까?”
“가만히 놓아둘 수는 없느니라.”

선사가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에게 큰 병이 있으니, 세상 의원으로서는 고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이 말로써 선조산先曺山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에게 큰 병이 있으니, 세상 의원으로서는 고칠 수 없다’ 하였는데, 그게 어떤 병입니까?”
조산이 대답했다.
“활촉으로 뚫을 수 없는 병이니라.”
“일체 중생에게도 이 병이 있습니까?”
“사람마다 모두 있느니라.”
“일체 중생은 어찌하여 앓지 않습니까?”
“중생이 만일 앓는다면 이미 중생이 아니니라.”
“화상께도 이 병이 있습니까?”
“일어나는 곳은 바야흐로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느니라.”
“부처님들께도 이 병이 있습니까?”
“있느니라.”
“있다면 어째서 앓지 않습니까?”
“또렷또렷하기 때문이니라.”
045_0322_a_12L茗溪和尚嗣馬大師未睹行錄不決化緣始終如何是修行路師云好个阿師莫作客僧云畢竟如何師云安置則不敢師有時云吾有大非世所醫有人問先曹山古人有言 吾有大非世所醫未審喚作什摩病曹山云攢蔟不得底病僧云一切衆生還有此病也無曹山云人人盡有僧云一切衆生爲什摩不病山云生若病則非衆生僧云和尚還有此病也無正覓起處不可得僧云未審諸佛還有此病也無山云進曰旣有爲什摩不病山云爲伊惺惺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바른 수행의 길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열반한 뒤에야 있음직한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한 뒤에 있음직한 것입니까?”
“씻을 얼굴이 없는 것이니라.”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얼굴이 없어서 씻으려 해도 씻을 수 없느니라.”
045_0322_a_23L如何是正修行路師云涅槃後有僧云如何是涅槃後有師云無洗面僧云學人不會師云無面可洗
045_0322_b_01L
석공石鞏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고, 무주撫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혜장慧藏이며, 출가하기 전에 사슴을 쫓아 마조의 암자 앞을 지나다가 물었다.
“스님, 사슴이 지나가는 것을 보셨습니까?”
마조가 말했다.
“그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예, 저는 사냥꾼입니다.”
“그대는 활을 쏠 줄 아는가?”
“압니다.”
“한 화살로 몇 마리의 짐승을 잡는가?”
“한 화살로 한 마리를 잡습니다.”
“그대는 전혀 활 쏠 줄을 모르는구나.”
이에 석공이 말했다.
“스님께서도 활을 쏠 줄 아십니까?”
“안다.”
“한 화살에 몇 마리나 잡으십니까?”
“한 화살에 한 떼를 잡는다.”
“피차가 모두 같은 생명인데, 어찌 그들을 쏘십니까?”
“그대가 이미 이와 같음을 아는데, 어째서 자신을 쏘지 않는가?”
“저 자신을 쏘라고 하시지만 손 쓸 곳이 없습니다.”
이에 마조가 말했다.
“이 놈의 무명번뇌가 한순간에 몽땅 사라지는구나.”
선사가 즉석에서 활과 화살을 꺾어 버리고, 칼을 뽑아 머리를 깎고 마조에게 귀의하여 출가하였다.
045_0322_a_25L石鞏和尚嗣馬大師在撫州師諱慧藏未出家趁鹿從馬大師庵前過問和尚還見我鹿過馬大師云汝是什摩人對云我是獵人馬師汝解射不對云解射馬師云一箭射幾个一箭射一个馬師云汝渾不解射進曰和尚莫是解射不馬師云我解射進曰一箭射幾个師云一箭射一群師云彼此生命何得射他汝旣知如此何不自射師曰若教某甲自射無下手處師云者漢無明煩惱一時頓消師當時拗折弓箭將刀截髮投師出家

그 뒤의 어느 날, 부엌에서 일을 하는데, 마조가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소를 먹입니다.”
“어떻게 먹이는가?”
“한번 풀밭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얼른 콧구멍을 잡아 끌어냅니다.”
이에 마조가 말했다.
“그대는 참으로 소를 먹일 줄 아는 사람이다.”

선사가 서당에게 물었다.
“그대는 허공을 잡을 줄 아는가?”
서당이 대답했다.
“잡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잡는가?”
서당이 손으로 허공을 잡는 시늉을 하니, 선사가 말했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잡겠는가?”
서당이 되레 물었다.
“스님은 어떻게 잡으십니까?”
선사가 서당의 코를 잡아끄니, 서당이 아픔을 참으면서 끙끙 소리 내어 말했다.
“지독하게 사람의 코를 잡아끌다니, 당장 놓아주시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반드시 이렇게 허공을 잡아야 한다.”
045_0322_b_07L師後因一日在廚作務次馬師問作什摩對云牧牛師曰作摩生牧對曰一廻入草去便把鼻孔拽馬師云子眞牧牛師問西堂你還解捉得虛空摩西堂云捉得師云作摩生捉西堂以手撮虛空勢師云與摩作摩生捉得虛空西堂卻問作摩生捉師便把西堂鼻孔拽著西堂作忍痛聲云太殺拽人鼻孔直得脫去師曰直須與摩捉他虛空始得

언젠가 스님이 와서 뵈니, 선사가 말했다.
“아까는 어디를 갔더냐?”
스님이 대답을 했다.
“여기에 있었습니다.”
“어디에 있었는가?”
스님이 손가락을 튀겨서 대답을 대신했다.

어떤 스님이 절을 하니, 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아무아무 곳에서 옵니다.”
“그것을 얻어 가지고 왔는가?”
“가지고 왔습니다.”
“어디에 있는가?”
스님이 손가락을 두세 번 튀겨서 대답을 대신했다.
045_0322_b_15L有時僧參次師云適來什摩處去來對云師曰在什摩處僧彈指而對僧禮拜師師云從什摩處來對曰某處來師云還將得那个來摩對云將得來師云在什摩處僧彈指兩三下

삼평三平 화상이 선사를 뵈니, 선사가 화살을 당기면서 외쳤다.
“화살을 보아라.”
삼평이 가슴을 벌리고 받는 시늉을 하니, 선사가 얼른 화살을 던지면서 말했다.
“30년 동안 여기에 있었지만 오늘에야 겨우 반 토막의 성인을 쏠 수 있었다.”
나중에 삼평이 주지住持가 된 뒤에 말했다.
“그날에는 내가 덕을 봤다고 여겼는데, 지금 살펴보건대 도리어 덕을 잃었다.”
석문이 이 일을 들어 명진明眞에게 물었다.
“어떻게 말했어야 반 토막의 성인이란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습니까?”
명진이 할을 하면서 말했다.
“이 들여우 요괴야.”
이에 석문이 말했다.
“알았다 해도 좋은 솜씨를 놀리지 말아야 합니다.”
선사가 농주음弄珠吟을 읊었다.
045_0322_b_19L三平和尚參師師架起弓箭看箭三平擗開胸受師便拋下弓箭云三十年在者裏今日射得半个聖人三平住持後云登時將謂得便宜如今看卻輸便宜石門拈問明眞作摩生道卽得免被喚作半个聖人明眞便喝云這野狐情石門云委得也莫弄好手有『弄珠吟』

밝디 밝은 명주가 온 누리에 빛나니
삼라만상이 거울 속에 나타난다.
광채는 삼천세계를 꿰뚫어 대천大千을 넘으니
4생生과 6류流가 같은 신령한 근원이다.
045_0322_b_25L落落明珠耀百千
森蘿萬像鏡中
光透三千越大千
四生六類一靈源

범부도 성인도 구슬에 대해 들으매 누가 부러워 않으랴마는
잠시라도 마음을 내어 구하면 전혀 보지 못한다.
얼굴을 맞대고 구슬을 보면서도 구슬인 줄 모르나니
구슬을 찾아 물건을 쫓으면 즉시에 변화한다.
045_0322_b_26L凡聖聞珠誰不羡
瞥起心求渾不見
對面看珠不識珠
尋珠逐物當時變

천 가지, 만 가지로 구슬을 비유하나니
구슬은 백비百非를 떠나고 4구句를 초월한다.
이 구슬이 생겼다지만 생긴 것 아니요,
무생無生을 위함이 아닐 때 구슬은 비로소 존재한다.
045_0322_b_28L千般萬般況珠喩
珠離百非超四句
只這珠生是不生
非爲無生珠始住
045_0322_c_01L
여의주如意珠ㆍ대원경大圓鏡이여,
또한 인간 속의 본성이라고도 불린다.
몸을 백ㆍ억 세계로 나누는 것, 내 구슬의 본분이나
예부터 본래 맑은 것, 지금껏 청정하다.
045_0322_c_01L意珠大圓鏡
亦有人中喚作性
分身百億我珠
無始本淨如今淨

일상생활의 참 구슬이 부처님이시니
어찌 수고로이 사물을 따르기에 허둥대는가?
숨었건 드러났건 두 모습 아니니
얼굴 맞대고 구슬을 보라. 알아볼 수 있던가?
045_0322_c_03L日用眞珠是佛陁
何勞逐物浪波波
隱現則今無二相
對面看珠識得摩

자옥紫玉 화상

마조 대사의 법을 이었고, 양양襄陽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도통道通인데, 행장을 보지 못해서 그의 생애를 확실히 알 수 없다.
양양襄陽의 염사廉師 우적于迪 상공相公이 자기 관내에 명을 내리기를 “우리 관내에서 행각行脚하는 스님이 있거든 모두 쫓아가서 한 스님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라” 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무수히 했다. 선사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그 상공을 만나러 가기 위해 대중에 같이 동행할 사람을 모으니, 열 사람이 나왔다. 선사가 열 사람을 거느리고 마침 그 경계 앞에 이르니, 열 사람은 겁이 나서 아무도 더 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이에 선사가 홀로 경계 안으로 들어갔다. 군인들이 선사가 오는 것을 보고 붙들어다가 칼을 씌워서 관아로 보냈다. 선사가 칼을 쓰고 문 밖에 이르러 가사를 수하고 대청으로 오르니, 상공이 검을 뽑아 들고 거만하게 걸터앉아서 호통을 쳤다.
“에끼, 이 중아, 양양의 절도사가 함부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
선사가 대답했다.
“법왕은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화상의 머리에도 귀가 있는가?”
“눈썹과 눈이 서로 장애하지 않듯이, 내가 상공을 만나는 데 무슨 장애가 있으리오?”
045_0322_c_04L紫玉和尚嗣馬大師在襄陽師諱道通未睹實不決生緣襄陽廉師于迪相公處分界內有行腳僧捉送無有一僧得命便殺如是得無師聞此消息欲得去相公處衆中覓人隨師近有十來人師領十人恰到界首十人怕不敢師猶自入界內軍人見師來便捉著枷送上師著枷到門外著納衣便上廳相公按釰大坐便云這阿師還知道襄陽節度使斬斫自由師云還知道法王不懼生死摩相公云和尚頭邊還有耳摩師云眉目無障㝵貧道與相公相見有何障㝵
그러자 상공이 문득 칼을 버리고 관복을 정돈하고서 절을 한 뒤에 물었다.
“듣건대 경전에서 말하기를 ‘거센 바람이 배를 불어 나찰귀국羅刹鬼國으로 떨어뜨린다’ 하였다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우적于迪아” 하고 부르니, 상공의 얼굴빛이 변하였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나찰귀국이 멀리 있지 않느니라.”
상공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선사가 “우적이여” 하고 불러 상공이 대답을 하자, 선사가 말했다.
“다른 곳에서 구하지 말라.”
상공이 이 말에 크게 깨달아 절을 하고 스승으로 모셨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약산에게 이야기하니, 약산이 말했다.
“그 놈을 결박해 죽였어야 했을 것이니라.”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어떠하십니까?”
약산이 말했다.
“이게 무엇인고?”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삼계를 벗어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그 안에 얼마나 있었던가?”
“어찌하여야 벗어날 수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푸른 산은 흰 구름이 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느니라.”
045_0322_c_15L相公便拋卻釰著公衣服便禮拜問承教中有言 黑風吹其舡舫漂墮羅剎鬼此意如何師便喚于迪相公顏色變異師曰羅剎鬼國不遠在又問如何是佛師喚于迪公應喏師云更莫別求相公言下大悟便禮爲有人擧似藥山藥山云縛殺者个漢僧便問和尚如何藥山云是什摩僧問如何出三界你在裏許多少時僧云如何得出離去師云靑山不㝵白雲飛
045_0323_a_01L
남원南源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고, 표주表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도명道明이며, 동산洞山이 처음 남원에 와서 법당으로 오르는데, 선사가 동산을 보자 말했다.
“이미 만나 보았으니, 더 올라올 필요가 없다.”
동산이 이 말을 듣고 바로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 뒤에 다시 조실로 찾아와 물었다.
“아까 말씀하시기를 ‘벌써 만났다’ 하셨는데, 어디가 저와 만난 경지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마음과 마음이 끊임없이 성품의 바다로 흘러 들어가느니라.”
“놓칠 뻔하였습니다.”
닷새가 지난 뒤 동산이 선사에게 하직을 고하니, 선사가 말했다.
“그대 편에 부탁할 일이 있는데, 되겠는가?”
동산이 절을 하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선사가 말했다.
“불법을 많이 배워서 널리 이익을 펼쳤다.”
“불법을 많이 배우는 일은 그만두고, 어떤 것이 널리 이익을 펴는 일입니까?”
“한 물건도 위하지 않는 것이니라.”
동산은 그 뒤로 두 해를 더 머물렀다.
045_0322_c_23L南源和尚嗣馬大師在袁州師諱道明洞山初到南源便上法堂次師纔望見洞山便云已相見了也不用更上來洞山便歸堂又去和尚處便問適來道已相見了也什摩處是與某甲相見處師云心心不間斷流入於性海洞山云錯放過洞山五日後辭師師云有事囑闍梨得洞山便禮拜云有什摩事師云多學佛法作利益洞山問多學佛法卽不問如何是廣作利益師云一物也不爲卽是洞山便住兩年矣


백장百丈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고, 강서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회해懷海이며, 복주의 장락현長樂縣 사람이다. 성은 황黃씨이며, 어릴 적에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나서 불상을 가리키면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저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처님이시다.”
“형상이 사람과 같아서 나와 다름이 없으니, 뒷날 나도 부처가 되겠습니다.”
그 뒤에 스님이 되어 최상승最上乘을 흠모하여 바로 대적(大寂:마조의 호)의 회상으로 가니, 대적이 선사를 한 번 보고 맞이하여 입실하게 하여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다.
선사가 평생 동안 고결한 성품으로 수행한 일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또한 날마다 울력에도 반드시 남보다 먼저 나서니, 주사主事가 차마 볼 수 없다 하여 연장을 숨기고 쉬기를 청하니, 선사가 말했다.
“내게 아무런 덕이 없는데, 어찌 남들만 수고롭게 하겠는가?”
선사가 여기저기 연장을 찾다가 찾지 못하면 공양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를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 하는 말이 천하에 퍼졌다.
045_0323_a_04L百丈和尚嗣馬大師在江西師諱懷海福州長樂縣人也姓黃童年之時隨母親入寺禮佛尊像問母此是何物母云此是佛子云形容似不異於我後亦當作焉自後爲僧志慕上乘直造大寂法會大寂一見延之入室師密契玄更無他往師平生苦節高行難以喩言凡日給執勞必先於衆主事不忍密收作具而請息師云吾無德爭合勞於人師遍求作具旣不而亦忘喰故有一日不作一日不食之言流播寰宇矣

어떤 스님이 울면서 법당으로 들어오니, 선사가 물었다.
“어째서 그러느냐?”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스님께서 장사지낼 날을 잡아 주십시오.”
선사가 말했다.
“우선 오늘은 돌아갔다가 내일 오너라. 한꺼번에 묻어 주리라.”

선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한 사람을 서당에게 보내어 말을 전하려 하는데, 누가 가겠는가?”
오봉五峰이 나서서 대답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어떻게 말을 전하겠는가?”
“서당을 만나면 바로 말하겠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겠는가?”
“돌아와서 화상께 고하겠습니다.”

위산潙山이 밤늦게 선사를 뵈러 왔는데, 선사가 그를 보고 말했다.
“화로의 불을 좀 돋우어다오.”
위산이 말했다.
“불이 없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아까 불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리고 벌떡 일어나 화롯가로 가서 손수 불을 헤쳐 한 덩이의 불을 집어 들고는 말했다.
“이게 불이 아니고 무엇인가?”
위산이 당장에 깨달았다.
045_0323_a_14L有僧哭入法堂師云作摩作摩僧對曰母俱喪請師擇日師云且去明日來一時埋卻師謂衆曰我要一人傳語西堂阿誰去得五峯對云某甲去師云作摩生傳語對云待見西堂卽道師云道什摩對云卻來說似和尚師見潙因夜深來參次師云你與我撥開火潙山云無火師云我適來見有自起來撥開見一星火夾起來云這个不是火是什摩潙山便悟

선사가 위산과 더불어 일을 하다가 물었다.
“불이 있는가?”
위산이 대답했다.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가?”
위산이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두어 번 분 뒤에 선사에게 바치니, 선사가 말했다.
“벌레가 나뭇잎을 먹은 것 같구나.”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누구인가?”
“저는 아무개라 합니다.”
“그대는 나를 아는가?”
“분명합니다.”
선사가 불자拂子를 세워 들고 말했다.
“그대는 이 불자를 보는가?”
“봅니다.”
이에 선사가 말을 그쳤다.
045_0323_a_21L師與潙山作務次師問有火也無對云師云在什摩處潙山把一枝木吹兩三下過與師師云虫喰木如何是佛師云汝是阿誰對云某甲師云汝識某甲不對云分明个師豎起拂子云汝見拂子不對曰師便不語
045_0323_b_01L
어느 날 울력을 하는데, 어떤 스님이 갑자기 북소리를 듣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 내어 웃으면서 절로 돌아오니, 선사가 말했다.
“장하도다. 그것이 관음이 진리에 드는 문이로다.”
그리고는 다시 그 스님에게 물었다.
“아까는 어떤 도리를 보았기에 그렇게 크게 웃었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제가 아까 북소리를 듣자돌아오면 밥을 먹을 수 있게 되겠구나 싶어, 그래서 크게 웃었습니다.”
선사가 그만두었다.
이에 장경이 대신 말했다.
“그 또한 재齋 때문에 찬탄한 것이로다.”
045_0323_a_26L有一日普請次有一僧忽聞鼓聲失聲大笑便歸寺師曰俊哉俊哉此是觀音入理之門師問其僧適來見什摩道理卽便大笑僧對曰某甲適來聞鼓聲動得歸喫飯所以大笑師便休長慶代曰也是因齊慶讚

어떤 이가 물었다.
“경에 의해서 뜻을 풀이하면 3세의 부처님이 원수요, 경을 떠나서 한 글자라도 말하면 마魔의 말과 같다 하는데, 어찌합니까?”
선사가 말했다.
“동작을 굳이 지키고 있으면 3세의 부처님이 원수요, 이 밖에 따로 구하면 마의 말과 같다.”
어떤 스님이 서당西堂에게 물었다.
“물음이 있고 대답이 있는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 묻지도 않고 대답하지도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장경이 대답했다.
“썩을 것을 걱정해서 무엇 하려는가?”
선사가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했다.
“전부터 나는 그 노장[老漢]을 수상히 여기고 있었느니라.”
스님이 물었다.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일합상一合相을 얻을 수 없느니라.”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다음과 같이 시켰다.
“장경에게 가서 그가 상당하여 설법하려고 하면 절을 하고 일어나서 그의 신발 한 짝을 들고 소매로 그 위의 먼지를 턴 뒤에 머리에 거꾸로 이고 나오라.”
그 스님이 장경에게 가서 선사의 지시대로 낱낱이 시행하니, 장경이 말했다.
“노승의 허물이로다.”
045_0323_b_03L依經解義三世佛怨離經一字卽同魔說如何師云固守動用三世佛怨此外別求卽同魔作僧問西堂有問有答則不問不問不答時如何答曰怕爛卻那作摩師聞擧云從來疑這个老漢僧云請師道師云一合相不可得師教僧去章敬和尚處見他上堂說法次禮拜起來收他一隻履以袖拂上塵倒頭覆下其僧去到一一依前師指章敬云老僧罪過

선사가 행각行脚할 때에 선권사善勸寺에서 경을 보려 하니, 사주(寺主:주지)가 허락하지 않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승의 의복이 깨끗하지 못하여 경을 더럽힐까 두렵소.”
선사가 그래도 경 보기를 간절히 요구하니, 사주가 마침내 허락하였다. 선사가 경을 다 본 뒤에 바로 대웅산大雄山에 가서 출세出世하였다. 그 뒤 공양주供養主를 하던 스님이 선권사로 와서 사주를 만나니, 사주가 물었다.
“어디서 떠났는가?”
“대웅산에서 왔습니다.”
“누가 주지로 계시는가?”
“아마도 우리 화상께서는 행각하실 때, 이 절에서 경을 보신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해(海:백장) 상좌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이에 사주가 합장을 하고 말했다.
“나는 참으로 범부로다. 그때 그가 인천人天의 참 선지식善知識임을 몰랐었다.”
또 물었다.
“여기까지 오신 뜻이 무엇인가?”
“소疏를 지으려 합니다.”
045_0323_b_10L師行卻到善勸寺欲得看經寺主不許禪僧衣服不得淨潔恐怕污卻經典師求看經志切寺主便許師看經了便去大雄山出世出世後供養主僧到善勸寺相看寺主寺主問離什摩處離大雄山寺主問什摩人住對曰恰似和尚行卻時在當寺看經寺主曰莫是海上座摩是也寺主便合掌某甲實是凡夫當時不識他人天善知識又問來這裏爲个什摩事對曰著疏
사주가 손수 소를 지어 온갖 일을 가르쳐 준 뒤에 공양주와 함께 백장에게로 왔다. 선사가 이 소식을 듣고 얼른 산 밑으로 내려와서 그들을 맞아 산으로 돌아와서 모든 인사를 마치고 사주에게 선상禪床에 앉을 것을 권하면서 말했다.
“내가 꼭 한 가지를 사주에게 물으려는 것이 있습니다.”
사주가 사양하다 못해 자리에 오르니, 선사가 문득 물었다.
“바야흐로 강을 하실 때에는 어떻게 하시는가요?”
사주가 대답했다.
“마치 금 소반 위에 구슬을 굴리듯 합니다.”
“금 소반을 들어 버리면 구슬은 어디에 있소?”
사주가 대답을 못했다.
또 물었다.
“교에서 말하기를 ‘분명하게 불성佛性을 보면 문수보살의 경지와 같아진다’ 하였는데, 이미 분명하게 불성을 보았다면 의당 부처님과 같아야 할 것이거늘 어찌하여 겨우 문수와 같다 하오?”
사주가 또 대답하지 못했다.
이 일로 인하여 곧 납의衲衣를 입고 선禪을 배워 호를 열반涅槃 화상이라 했으니, 그가 곧 제2의 백장百丈이었다.
045_0323_b_19L寺主自行疏教化一切了供養主相共上百丈師委得這个消息便下山來迎接歸山切了後請寺主上禪牀某甲有一段事要問寺寺主推不得便昇座師問寺主正講時作摩主云如金盤上弄珠師云拈卻金盤時珠在什摩處寺主無對又問教中道 了了見佛性猶如文殊等旣是了了見佛性合等於佛爲什摩卻等文殊無對因此便被納學禪號爲涅槃和尚便是第二百丈也
045_0323_c_01L
선사가 어느 날 저녁 깊은 잠에서 깨어나 갑자기 탕(湯:더운물)이 마시고 싶어졌다. 그러나 시자도 깊은 잠에 빠진 터라 불러도 깨어나지 않았다. 조금 뒤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 시자를 부르면서 말했다.
“큰스님께서 탕을 먹고자 하오.”
시자가 벌떡 일어나탕을 끓여 선사에게로 가져가니, 선사가 놀라 물었다.
“누가 그대더러 이렇게 탕을 끓여 오라 하던가?”
시자가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니, 선사가 손가락을 튀기면서 탄식했다.
“노승이 시종 수행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도다. 만일 수행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사람도 느끼지 못하고 귀신도 알지 못해야 하는데, 오늘 나는 토지신土地神에게 내 마음을 들키어 그렇게 하게 하였도다.”

선사가 운암雲巖을 보자, 다섯 손가락을 들어 세우면서 말했다.
“어느 것이 그대인가?”
운암이 말했다.
“다 아닙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어찌 그렇겠는가?”
045_0323_b_27L師有一日夜深睡次忽然便欲得喫湯然侍者亦是睡喚不得非久之間有人敲門喚侍者云和尚要喫湯侍者便起湯來和尚處和尚便驚問阿誰教你與摩煎湯侍者具陳前事師便彈指云老僧終不解修若是解修行人人不覺鬼不知今日之下土地覷見我心識造與摩次第師見雲嵒便提起五指云何个而也雲嵒云非也師云豈然乎

어느 날, 선사가 법당에서 4경更까지 앉아 있었다. 그때 시자이던 운암이 세 차례나 화상의 곁에 와서 모시고 섰었는데, 세 번째 왔을 때는 선사禪師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침을 뱉었다. 시자가 물었다.
“큰스님, 아까 무슨 연유로 침을 뱉으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의 경계가 아니니라.”
시자가 다시 물었다.
“큰스님께 고하옵니다. 저는 화상의 시자입니다. 저에게 이야기를 못하시면 누구에게 하시겠습니까?”
“물을 필요가 없느니라. 그대가 물을 일도 아니요, 또 내가 말할 일도 아니니라.”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에라도 알고자 합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사람을 몹시도 괴롭히는구나. 내가 사람이 되지 못해서 조금 전에 갑자기 보리와 열반이 생각이 났었느니라. 그러기에 침을 뱉었느니라.”
“만일 그러시다면 어째서 그토록 오랜 동안 보리와 열반과 요의了義와 불요의不了義를 말씀하셨습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남에게 전할 수 없다. 그러기에 그대가 물을 일이 아니며, 또 그대의 경계도 아니라 했던 것이다.”
045_0323_c_06L師有一日法堂裏坐直到四更當時侍者便是雲嵒和尚也三度來和尚身邊侍立第三度來和尚驀底失聲便唾侍者便問和尚適來有什摩事唾師云不是你境界侍者云啓師某甲是和尚侍者若不與某甲說爲什摩人說師云用問不是你問底事兼不是老僧說底事侍者啓師百年後要知乞和尚慈悲師云苦殺人老漢未造人在適來忽然憶著菩提涅槃所以與摩唾侍者云啓師若也如此如許多時因什摩說菩提涅槃了義不了義師云分付不著人所以向你道不是你問底事兼不是你境界

선사가 법어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목구멍도 입술도 다물고서 속히 일러 보라.”
어떤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학인은 말할 수 없습니다.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선사가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말하기는 사양하지 않겠으나, 뒷날 내 자손들을 속일 것이니라.”
이 말에 운암이 대답했다.
“스님, 지금도 있습니다.”
이에 선사가 문득 소리를 높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자손들을 망쳤도다.”

선사가 또 다음과 같이 법어를 내렸다.
“견해의 강물은 코끼리를 떠내려 보낼 수 있느니라.”
어떤 스님이 얼른 물었다.
“스님께서는 보셨습니까?”
“보았느니라.”
“보신 뒤에는 어떠하셨습니까?”
“견해가 둘이 아님을 보았느니라.”
“견해가 둘이 없음을 보셨다 하셨는데, 견해로써 견해를 볼 수는 없습니다. 만일 견해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앞의 것을 보십니까, 뒤의 것을 보십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견해를 볼 때에 견해는 견해가 아니니라. 견해라는 견해까지도 여읜 것이어서 견해로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045_0323_c_17L垂語云倂卻咽喉脣吻速道將來有人云學人道不得卻請師道師曰我不辭向你道已後欺我兒孫雲嵒對曰師今有也師便失聲云喪我兒孫師垂語云見河能漂香象僧便問師見不師云僧云見後如何師云見見無二僧云言見見無二不以見見於見若見更見爲前見爲後見師云見見之時見非是見見猶離見不能及
045_0324_a_01L
선사가 또 다음과 같이 법어를 내렸다.
“옛사람이 한 손을 들거나 한 손가락을 세우고서 그것을 선禪이다, 도道라 하였는데, 이 말은 무수한 사람을 속박하여 그칠 날이 없었느니라. 설사 아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역시 입으로 짓는 허물이로다.”
부怤 상좌가 이 일을 들어 취암翠巖에게 물었다.
“말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도리어 입의 허물이라 하였습니까?”
취암이 대답했다.
“그저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부 상좌가 이틀을 말없이 지냈는데, 취암이 문득 부 상좌에게 물었다.
“엊그제 그렇게 상좌에게 대답했지만 상좌의 뜻에 맞지 않는 모양인데,자비를 버리지 마시고 상좌에게 방편을 내려 주십시오. 말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오히려 입의 허물이라 했습니까?”
상좌가 손을 번쩍 들어 세우니, 취암이 오체투지를 하고 소리를 내어 통곡을 하였다.
045_0323_c_25L師垂語云古人擧一手豎一指是禪是此語繫縛人無有住時假饒不說亦有口過怤上座拈問翠嵒旣不說爲什摩卻有口過嵒云只爲不說怤上座便摑隔兩日翠嵒卻問怤上座前日與摩祗對不稱上座意旨便請上座不捨慈悲曲垂方便旣不說爲什摩卻有口上座擧起手翠嵒五體投地禮拜出聲啼哭

선사가 어느 날 시자로 하여금 제1좌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묻게 하였다.
“실제의 이치는 한 티끌도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불사를 하는 문 안에는 한 법도 버리지 않는다 하였는데, 요의에 속하는가, 불요의에 속하는가?”
제1좌가 대답했다.
“요의의 가르침에 속한다.”
시자가 돌아와서 화상에게 말하니, 화상이 시자를 때려서 내쫓았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대승으로서 도道에 들어 활짝 깨닫는 법입니까?”
045_0324_a_03L師教侍者問第一座實際理地不受一塵佛事門中不捨一法是了義教裏收是不了義教裏第一座云是了義教裏收侍者卻來擧似和和尚便打侍者趁出院問如何是大乘入道頓悟法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먼저 모든 반연을 쉬어라. 만사를 쉬어서 착한 일, 착하지 못한 일 등 세간의 온갖 일들을 모두 놓아 버려 기억하지도 말고 반연하지도 말며 그 몸과 마음을 버려 두어 자유롭게 하면, 마음은 목석같이 되고 입으로는 말할 것이 없고, 마음으로는 분별할 길이 없어져서 마음은 허공 같아서 지혜의 해가 저절로 드러나니, 마치 구름이 흩어지면 해가 비치는 것과 같으리라. 온갖 반연을 쉬고 탐욕ㆍ성냄ㆍ애착 등을 모두 쉬어서 더럽다거나 깨끗하다는 생각이 다하여 5욕欲214)과 8풍風215)을 대하더라도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에 속박 당하지 않고, 모든 경계에 홀림을 받지 않게 되면 자연히 신통과 묘용을 구족하리니, 이는 해탈한 사람이다. 온갖 경계를 대하되 마음에 조용함도 어지러움도 없고 거둠도 흩어 버리는 것도 없어서 온갖 빛과 소리를 만나더라도 걸림이 없으면 이는 도인道人이라 하느니라. 온갖 선악과 더러움과 깨끗함, 유위有爲 세계의 복과 지혜에 얽매이지 않으면 이는 부처의 지혜라 하고, 옳고 그르고, 아름답고 추하고, 이치와 이치 아님 등 온갖 소견을 모두 다하여 얽매이지 않고 곳곳에서 자유로우면 이는 처음 발심한 보살이 당장에 부처의 지위에 오른 것이라 하느니라.
045_0324_a_08L師答曰汝先歇諸緣休息萬事善與不世間一切諸法竝皆放卻莫記憶莫緣念捨身心令其自在心如木石口無所辯心無所心地若空慧日自現猶如雲開日出相似俱歇一切攀緣貪嗔愛取垢淨情盡對五欲八風被見聞覺知所縛不被諸境惑自然具足神通妙用是解脫人對一切境心無靜亂不攝不散透一切聲色無有滯㝵名爲道人但不被一切善惡垢淨有爲世間福智拘繫卽名爲佛慧非好醜是理非理諸知見摠盡不被繫縛處處自在名爲初發心菩薩便登佛地
온갖 모든 법은 스스로 공이라 말하지 않고, 스스로 색이라 말하지 않으며, 시비是非와 구정垢淨이라 말하지 않고, 사람을 속박할 생각도 없지만 단지 사람들이 스스로 허망하게 계교하고 집착하여 갖가지 견해를 짓고 갖가지 소견을 일으킨다. 만일 구정의 마음이 다하여 얽매임에 머무르지 않고 해탈에도 머무르지 않아서 온갖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견해가 없어져 평등한 마음으로 생사에 대처한다면 그 마음은 자유로울 것이다. 마침내는 헛된 번뇌와 온계蘊界와 생사와 모든 감관과 어울리지 않고 훤칠하게 뛰어나 의지한 곳이 없으리라. 어디에도 구애됨이 없고 가고 옴에도 걸림이 없으니, 생사의 길에 왕래하되 마치 문을 여닫는 것 같으리라. 만일 갖가지 괴로움과 즐거움 그리고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생기더라도 물러서는 마음이 없으며, 명예나 의식 등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온갖 공덕이나 이익 등을 탐내지 않고 세상 법에 마음이 걸리지 않는다면 비록 친하고 사랑하고 괴롭고 즐거운 것이라도 마음에 두지 않고 거친 음식으로 목숨을 잇고 옷을 입되 추위와 더위를 막을 뿐, 멍하니 바보 같고 귀머거리같이 되어야 비로소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몫이 있느니라. 생사의 길에서 알음알이를 널리 배우거나 복과 지혜를 구하여도 진리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나니라.
045_0324_a_18L一切諸法不自言空不自言色亦不言是非垢淨亦無心繫縛人但人自虛妄計著作若干種解起若干種知見若垢淨心盡不住繫縛不住解脫無一切有爲無爲解平等心量處於生死其心自在竟不與虛幻塵勞蘊界生死諸入和合迥然無一切不拘去留無㝵往來生死如門開合相似若遇種種苦樂不稱意事心無退屈不念名聞衣食不貪一切功德利益不與世法之所滯雖親愛苦樂不干於懷麤食接命補衣寒暑兀如愚如聾相似稍有相親分於生死中廣學知解求福求智於理無益
045_0324_b_01L 오히려 알음알이의 경계가 일으키는 바람에 떠내려가생사의 바다로 돌아가게 되리라. 부처는 구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니, 구하면 이치에 어긋난다. 진리는 구하는 것이 없는 이치이니, 구하면 잃는다. 만일 구함이 없는 것에 집착하면 도리어 구함이 있는 것과 같나니, 이 법은 실實도 없고 허虛도 없다. 만일 한평생 동안 마음이 목석과 같아서 5음ㆍ5욕ㆍ8풍에 흔들리지 않으면, 생사의 원인이 끊어져서 가고 옴이 자유로워 일체 유위有爲의 인과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며, 다른 날에는 도리어 속박 없는 몸과 같아서 중생을 이롭게 하되 속박 없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응대하며, 속박 없는 지혜로써 일체 속박을 풀며, 또한 병에 따라 약을 주게 되리라.”
045_0324_b_01L卻被知解境風漂卻歸生死海裏佛是無求人求之則乖理是無求求之則失若取於無求復同於有求此法無實亦無虛若能一生心如木石相似不爲陰界五欲八風之所漂溺則生死因斷去住自由爲一切有爲因果所縛他時還與無縛身同利以無縛心應一切以無縛慧解一切縛亦能應病與藥
어떤 이가 물었다.
“지금 계를 받고 몸과 마음이 청정하고 온갖 착한 법을 이미 다 갖추었다면 해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조금은 해탈할 수 있으나 심해탈心解脫을 얻지 못했고, 일체의 해탈도 얻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이 심해탈입니까?”
045_0324_b_08L如今受戒身口淸淨已具諸善解脫不師答曰小分解脫未得心解脫未得一切解脫如何是心解脫
“부처도 구하지 않고 알음알이도 구하지 않아서 더럽고 깨끗한 생각이 다한 뒤에도 구함 없는 경지를 옳다고 고집하지 않고, 경지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지옥의 속박도 두려워하지 않고, 천당의 즐거움도 즐겨하지 않으며, 일체 법에 구애되지 않아야 비로소 해탈하여 걸림이 없다 하나니, 몸과 마음 등 일체를 모두 해탈했다 하느니라. 그대들은 조그마한 계행이나 선행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항하의 모래와 같이 수많은 무루無漏의 계戒ㆍ정定ㆍ혜慧를 가졌다 하더라도 전혀 쓸모가 없으니, 노력하여 용맹정진 하라. 귀먹고 눈 어두워서 늙음의 고통이 몸에 미치기를 기다리지 말라.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마음은 두려움에 떨면 갈 곳이 없으리라. 그러한 때에 가서 행동을 정리한다면 설사 복과 지혜와 지식이 있다 하여도 전혀 구제할 수 없으리라.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고 오직 모든 경계를 반연하여 돌이킬 줄 모르고 도를 보지 못한다면 일생 동안의 악업이 모두 앞에 나타나 혹은 기쁘고 혹은 두려우며, 6도와 5온이 눈앞에 나타나면 모두가 훌륭한 집ㆍ배ㆍ수레로 그 빛이 찬란하게 보이는데, 이는 마음껏 탐욕과 애착을 따랐기에 보이는 것이 모두 좋은 경계로 변하여 중하게 여기는 바를 따라 태어나서 전혀 자유가 없게 된다. 따라서 용이 될지, 축생이 될지, 양반이 될지, 상놈이 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045_0324_b_10L師答曰不求佛不求知解垢淨情盡亦不守此無求爲是亦不住盡亦不畏地獄縛不愛天堂樂一切法不拘名爲解脫無㝵卽身心及一切皆名解脫汝莫有小分戒善將爲便了有恒沙無漏戒定慧都未涉一毫在努力猛作早與莫待耳聾眼頭白面皮皺老苦及身眼中流淚心中慞惶未有去處到與摩時整理腳手不得縱有福智多聞都不相救爲心眼未開唯緣念諸境不知返照復不見道一生所有惡業悉現於前或忻或怖六道五蘊現前盡見嚴好舍宅舟舡車輿光明現赫爲縱自心貪愛所見悉變爲好境所見重處受生都無自由分龍畜良賤亦摠未
“어찌하여야 자유로워집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지금 5욕과 8풍을 대해 버리거나 취할 마음이 없고, 더럽거나 깨끗함이 모두 없어져서 마치 해와 달이 하늘에 떠서 반연하지 않고 비추는 것같이 되어, 마음이 목석과 같고 코끼리가 강을 건너는 것같이 하여 전혀 의심이 없으면, 이 사람은 천당이나 지옥에 걸리지 않으리라.”
045_0324_b_23L如何得自由師答曰如今對五欲八風無取捨垢淨俱亡如日月在空不緣而照心如木石亦如香象截流而過更無疑滯此人天堂地獄不能攝也
045_0324_c_01L
선사가 또 말했다.
“경을 읽거나 가르침을 볼 때 언어는 완곡하게 돌아 모두 자기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온갖 교법은 오직 지금 현재 감각하는 성품인 자기만을 밝힐 뿐이니, 그저 온갖 유무의 모든 경계에 끄달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도사께서도 온갖 유무의 경계를 꿰뚫었으니, 이것이 금강의 인印이고 자유와 독립의 경지이다.만일 그렇게 되지 못하면 설사 12부의 위타圍陁216)를 다 외운다 하여도 모두가 증상만增上慢을 이룰 뿐이어서, 도리어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 되니, 이는 수행이 아니다. 경이나 어록을 보는 것이 만약 오직 세상이 착한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혹은 이치에 밝은 사람 쪽으로만 향하여 헤아리기 때문이라면 이는 옹색한 사람이다. 10지의 사람이 세상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생사의 강으로만 흘러 들어가는데, 지식으로써 어구를 찾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지식은 탐욕에 속하고, 탐욕은 병을 이루나니, 지금이라도 유무의 모든 법을 모두 여의어 3구句 밖으로 뚫고 나아가면 자연히 부처님과 차이가 없게 되리라. 이미 스스로가 부처이거니, 어찌 부처가 말을 하지 못할 것을 근심하랴. 오직 부처가 아니라서 유무 등 모든 법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할까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리가 서지 않았는데 복과 지혜가 있다면, 이는 마치 천한 이가 귀한 이를 부리는 것과 같나니, 차라리 진리가 먼저 선 뒤에 복과 지혜가 있어 때에 맞추어 행동하면, 흙을 잡아 금을 만들고, 바닷물을 소락蘇酪으로 바꾸고, 수미산을 뭉개어 먼지를 만들며, 한 이치를 무량한 이치로 하고, 무량한 이치를 한 이치로 하는 것만 못하리라.”
그 밖의 교화한 인연은 실록에 갖추어져 있다. 조칙으로써 시호를 대지大智 선사라 했고, 탑호는 대보승大寶勝이라 하였다.
045_0324_b_26L又云讀經看教語言皆須宛轉歸就自己但是一切言教只明如今鑑覺性己但不被一切有無諸境轉是故導師能照破一切有無境法是金剛印有自由獨立分若不能任摩得縱令誦得『十二圍陁經』只成增上慢卻是謗佛不是修行讀經看教若唯世間是好善事若向理明人邊數此是壅塞人十地之人不脫去流入生死河但不用求覓知解語義句知解屬貪貪變成病只如今俱離一切有無諸透過三句外自然與佛無差旣自是佛何慮佛不解語只恐不是佛被有無諸法轉不得自是以理未立先有福智載去如賤使貴不如於理先立後有福智臨時作得捉土爲金變海水爲蘇酪破須彌山爲微塵於一義作無量義於無量義作一義自餘化緣終始備陳實錄謚大智禪師大寶勝之塔

노조魯祖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고, 지주池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보운寶雲이니, 기개와 격조가 매우 현묘하고 높아서 무릇 학자가 뵈러 오면 벽을 향해 앉았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의 입이 어디에 있는가?”
“저는 입이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차나 밥을 먹는가?”
나중에 동산洞山이 그 스님을 대신하여 말했다.
“그는 시장한 일이 없는데, 무엇을 먹는다 합니까?”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님들의 스승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머리 위에 보배 일산이 있는 이는 아니니라.”
“어찌하여야 합니까?”
“머리 위에 보배 일산이 없어야 하느니라.”
045_0324_c_13L魯祖和尚嗣馬大師在池州師諱寶雲機挌玄學徒來參面壁而坐如何是言不言師云汝口在什摩處對云某甲無口師云將何喫茶自後洞山代云他不飢喫什摩如何是諸佛師師云頭上寶蓋生者不是僧云如何則是師云頭上無寶蓋

남전 화상이 오자 선사가 얼른 벽을 향해 앉았다. 남전이 손으로 선사의 등을 치니,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가?”
“보원普願입니다.”
“요즘 어떠한가?”
“그저 그렇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어찌 그리 일이 많은가?”
045_0324_c_19L南泉和尚到師便面壁而坐南泉以手拍師背師云你是阿誰泉云普願如何泉云也尋常師云汝何多事

남전이 어느 날, 채소밭을 돌아보다가 돌을 던져 원두圓頭를 맞추었다. 원두가 고개를 돌려보니 선사인지라, 곧 위의를 갖추어 절을 하고는 말했다.
“화상께서 지금 하신 일은 저를 깨우쳐 주신 것이 아니시겠습니까?”
남전이 얼른 한 발을 들고 말했다.
“깨우치는 것은 그만두고, 그럴 때는 어찌하는가?”
그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남전이 그 스님에게 다음과 같이 시켰다.
“그대는 노조에게로 가라. 그러면 무슨 소식이 있을 것이다.”
그 스님은 남전을 하직하고 바로 노조에게 갔다.
이때 선사가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벽을 향해 앉으니, 그 스님은 전혀 개의치 않고 도로 남전에게로 돌아갔다.
이에 남전이 물었다.
“노조에게 갔었던가?”
“갔었습니다.”
“어찌 그리 빨리 돌아왔는가?”
“노조 화상께서 저를 보자마자 바로 벽을 향해 앉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내 돌아왔습니다.”
045_0324_c_21L南泉有一日看菜園南泉把石打園頭僧廻頭看是師僧具威儀禮拜便問和尚適來豈不是驚覺學南泉便蹺足云驚覺則且置任摩時作摩生其僧無對南泉教僧你去魯祖處到彼中便有來其僧辭南泉便去魯祖處師纔見僧來便面壁坐其僧不在意卻歸南泉南泉問到魯祖處對曰泉曰廻太速乎對曰魯祖和尚纔見某甲便面壁坐所以轉來
045_0325_a_01L이에 남전이 말했다.
“왕王 노승老僧이 처음세상에 나오실 때,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시기 이전의 경지에서 알아들어야 한다’ 하였다. 그리해도 하나의 반도 채 얻지 못하는데, 그처럼 해서야 나귀 해가 되어도 하나의 반이나 얻을 수 있겠는가?”
안국安國 화상이 이 일을 들어 운거雲居에게 물었다.
“노조에게 어떠한 허물이 있었기에 남전의 꾸지람을 들었습니까?”
운거가 꾸짖자, 안국이 소리를 높여 곡을 하였다. 운거가 말했다.
“도리어 칭찬이 되었느니라.”
안국이 이로부터 마음이 트였다.
보복保福이 이 일을 들어 장경長慶에게 물었다.
“노조에게 어떠한 훌륭함이 있었기에 남전의 그러한 말을 들었습니까?”
장경이 대답했다.
“자기가 물러서고 남에게 양보하는 사람은 만에 하나도 얻기 어렵다.”
뒷날 장경이 이 일을 들어 말했다.
“그가 벽을 향해 앉은 것에서 생각할 것이 있다. 갑자기 당당하게 앉는다면 그대들은 어디를 향하여 구하겠는가?”
045_0325_a_01L南泉便云王老僧初出世時向你諸人道向佛未出世時體會尚自不得一个半个是伊與摩驢年得一个半个摩國和尚拈問雲居魯祖過在什摩處被南泉呵雲居便呵安國出聲啼哭雲居云卻成讚嘆安國從此止哭保福拈問長慶魯祖有什摩切峻處招得南泉此語長慶云退己進於人萬中無一个長慶擧此因緣云他家面壁坐有个摸索處忽然堂堂底坐你向什摩處摸索

어떤 스님이 용천龍泉에게 물었다.
“이산怡山이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입니까?”
용천이 말했다.
“귀머거리에다 벙어리까지 겹쳤느니라.”

고성高城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다. 선사의 휘는 법장法藏이니, 실록을 보지 못해 그의 생애를 알 수 없으나 노래 한 수가 세상에 퍼지고 있다.
045_0325_a_09L僧問龍只如怡山與摩道意作摩生泉云持聾得噁高城和尚嗣馬大師師諱法藏未睹行錄不決化緣終始師有『歌行』一首

옛사람은 금보다 의리를 소중히 여겼나니
곡조는 고결하나 화답하는 이는 적어 알아주는 이 드물다.
요즘의 지사志士들도 역시 그러하여서
말하고 침묵함에 자취를 찾기 힘들다.
045_0325_a_12L古人重義不重金
高和寡勿知音
今時志士還如此
語默動用迹難尋

애달프다. 세상의 기로에서 헤매는 자여,
종일토록 구차하게 어지러이 마음을 쓴다.
평탄한 길의 전단栴檀을 가지려 하지 않고
험난한 산에 올라 춘림椿林을 찾는구나.
045_0325_a_14L所嗟世上歧路者
終日崎嶇狂用心
平坦栴檀不肯取
要須登嶮訪椿林

가난한 아들이 아비를 버리고 멀리 떠나니
본 고향과는 소식이 아주 끊어졌도다.
가난한 아씨의 집안에 값진 보물 있건만
도리어 저울을 들고 남의 집 금을 사려 하네.
045_0325_a_15L窮子捨父遠逃
卻於本舍絕知音
貧女宅中無價寶
卻將秤賣他人金

마음은 형상 없으나 작용은 도리어 그윽하니
무상한 경계가 침입하지 못한다.
운용할 적에는 높고 낮음을 따르나
신령한 광채는 본래가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다.
045_0325_a_17L心無相用還深
無常境界不能侵
用能隨高與下
靈光且不是浮沈

형상 없고 마음 없음이 운용을 빛나게 할 수 있나니
소리와 빛에 응하여 방향 따라 비춘다.
비록 사방에 있으나 사방에 있는 것이 아니니
높낮음이 자유로워 모든 것에 오묘히 작용한다.
045_0325_a_18L無相無心能運
應聲應色隨方照
雖在方而不在方
任運高低摠能妙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는데
신령한 광채의 작용이 어디서 일어나는가?
지금 일어나는 것이 곧 마음이거니
마음 씀이 밝을 때, 그대 아니고 무엇이랴.
045_0325_a_20L亦無頭復無尾
靈光運運從何起
今起者便是心
心用明時更何你

사방에 머물지 않아 찾을 수 없나니
운용하는 데 자취도 없고 흔적도 없다.
지금 분명하게 찾는 사람 안다면
종일토록 다른 곳에서 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045_0325_a_21L不居方無處
運用無㗰復無迹
識取如今明覓人
終朝莫慢別求的

마음 부지런히 해서 배우고 총림을 가까이하여
병든 눈으로 화침花針을 잘못 알지 말라.
설교의 근본은 무상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니
널리 읽기만 하여서는 원래의 마음을 모른다.
045_0325_a_23L懃心學近叢林
莫將病眼認花鍼
教本窮無相理
廣讀元來不識心

마음을 알아내어 경계를 알아차리고
심식心識을 깨달으면 선禪의 강이 고요하다.
그저 경계만 깨달을 수 있다면 마음을 알 수 있나니
일체 법이 모두 건달바성217)의 그림자 같다.
045_0325_a_24L了取心識取
了心識境禪河靜
但能了境便識心
萬法都如闥婆影

권하나니, 더 배울지언정 스승이 되지는 말지니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려 하지 말라.
평탄한 들판은 금강으로 뚫을 필요 없나니
칼날 가운데서 잘못 송곳을 쓰는도다.
045_0325_a_26L勸且學莫爲師
不用登高向下窺
源不用金剛鑽
劍刃之中錯下錐

예전부터 너와 나를 가리지 않나니
산승의 곡조에 화답하는 이 드물다.
공空과 무상無相의 이치를 알면 그것이 법사法師이니
비단으로 깃발을 만들 필요 없어라.
045_0325_a_27L向前來莫人
山僧有曲無人和
了空無相卽法師
不用綾羅將作憣
045_0325_b_01L
그 안에서 깨닫기만 하면 대단히 장한 일이니
큰 사람은 그윽하여 불가사의하여라.
자기 품속의 참 보물은 망가뜨리고
종일토록 남에게서 누더기를 구걸하네.
045_0325_b_01L可中了大希奇
大人幽邃不思議
家壞卻眞寶藏
終日從人乞布衣

경계를 취하면 망정이 생기나니
마치 물 위에 물결 하나 이는 것 같다.
경계를 마주해도 망정과 계교가 없기만 하면
수면이 본래 평평함과 같으리라.
045_0325_b_02L取境界妄情
只如水面一波成
但能當境無情計
還同水面本來平

큰 몸에 응하고 작은 몸에 응하나니
운용함이 그저 여의주와 같도다.
털을 쓴 이, 뿔을 인 이 형상은 다르나
응하는 본마음은 원래 다르지가 않다.
045_0325_b_04L應大軀應小軀
運用只隨如意珠
毛戴角形雖異
能應之心體不殊

눈에 응할 때에 천 개의 해 같으니
만상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범부는 다만 보지 못할 뿐이니
그 어찌 스스로 가벼이 여겨 뒤로 물러서리오.
045_0325_b_05L應眼時若千
萬像不能逃影質
凡夫只是未曾觀
那得自輕而退屈

귀에 응할 때는 깊은 골짜기 같으니
크고 작은 음성이 부족함이 없다.
시방의 종과 북이 동시에 울려도
신령한 광채는 운운運運하여 항상 끊임없도다.
045_0325_b_07L應耳時若幽谷
大小音聲無不足
方鍾鼓一時鳴
靈光運運常相續

뜻에 응할 때는 분별은 끊기고
삼라만상 비추어서 길이길이 끊임없다.
산하와 석벽을 꿰뚫고 지나니
비칠 때에는 언제나 적멸해야 하느니라.
045_0325_b_08L應意時絕分
照燭森蘿長不歇
透過山河石壁間
要且照時常寂滅

경계는 허망한 것, 겁내지 말지니
종일토록 비추어도 상대할 형체 없다.
설사 허깨비 같은 허망한 몸 지탱한다 하여도
운용함에는 혀도 몸도 뜻도 없어라.
045_0325_b_10L境自虛不須畏
終朝照燭無形對
使任持浮幻身
運用都無舌身意

선사는 또 『대승경음의大乘經音義』를 편집하였는데, 해장海藏218)에 퍼지고 있다.
045_0325_b_11L師又集『大乘經音義』流通海藏矣

장경章敬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고, 장안長安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회휘懷暉요, 성은 사謝씨이며, 천주泉州의 동안현同安縣 사람이다. 어떤 스님이 석장을 들고 와서 선사를 세 바퀴 돈 뒤에 석장을 짚고 섰으니, 선사가 말했다.
“옳다, 옳다.”
그 스님이 대답을 못하자, 이에 장경長慶이 대신 말했다.
“화상의 불법심佛法心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스님이 다시 남전에게로 가서 선상을 세 바퀴 돈 뒤에 석장을 짚고 섰으니, 남전이 말했다.
“틀렸다, 틀렸다.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은 모두가 망가지게 될 것이다.”
스님이 물었다.
“장경 화상께서는 저에게 ‘옳다’ 하셨는데,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틀렸다’ 하십니까?”
남전이 대답했다.
“장경은 옳지만, 그대는 틀렸다.”
장경이 그 스님을 대신하여 말했다.
“화상께서는 이 무슨 마음씨이십니까?”
045_0325_b_12L章敬和尚嗣馬祖在長安師諱懷暉姓謝泉州同安縣人也有僧持錫到遶師三帀振錫而立師云其僧無對長慶代云和尚佛法心何在此僧又到南泉遶師三帀振錫而立南泉云不是風力所轉終歸敗壞僧云章敬和尚向某甲道是和尚因什摩道不是南泉云章敬則汝則不是長慶代云和尚是什摩心行

어떤 이가 물었다.
“마음의 법이 멸할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영인郢人219)이 별 재주도 없으면서 공연히 도끼를 휘두르느니라.”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동산洞山에게 이야기하니, 동산이 말했다.
“비록 그러나 작가作家를 가까이해야 하느니라.”
“그 뜻이 무엇입니까?”
동산이 말했다.
“모름지기 도끼를 휘둘러야 하느니라.”
“어디를 향해 휘둘러야 합니까?”
“이르지 못하는 곳을 향해 휘둘러야 하느니라.”

선사가 흥선사興善寺의 대철大徹 선사에게 가니, 대철이 물었다.
“어디에서 오는가?”
“천태산天台山에서 왔습니다.”
“천태산의 높이가 얼마나 되던가?”
선사가 대답했다.
“스스로 보십시오.”
운거雲居가 나서서 다시 물었다.
“보는 힘을 다하여도 보이지 않을 때에는 또 어찌합니까?”
그리고는 스스로가 대신하여 말했다.
“세간과 다릅니다.”
045_0325_b_19L法滅時如何師云郢人無污徒勞運釿有人擧似洞山洞山云雖然如此須親近作家始得此意如何洞山云須運釿始得僧云向什摩處運釿洞山云不到處師到興善大徹禪師處禪師問從什摩處來師云從天台來禪師云台高多少師云自看取雲居進云盡眼看不見又作摩生自代云異於世間
045_0325_c_02L
선사가 대적大寂220)의 법을 깨친 뒤에 승속이 모두 법회에 모여들었는데, 이로 인해 그의 명성이 황도까지 퍼져서 황제에게 전해졌다. 원화元和 초에 왕의 조칙을 받들어서 배알하러 가니, 그의 자리를 승록僧錄 수좌 밑에 배치하였다. 이에 왕이 승수僧首에게 그 연유를 물으니, 승수가 대답했다.
“스님은 여름을 지낸 법랍法臘에 의합니다.”
선사禪師는 이때 60세이므로 조칙에 의하여 좌수座首로 옮겨졌다.선사가 황제에게 선문禪門의 법교法敎를 이야기하니, 황제의 얼굴에 기뻐하는 기색이 만연했고, 존경하고 은근함이 남달랐다. 왕명으로 장경사章敬寺에서 살게 된 뒤로 서울을 크게 교화하여 부처님의 빛[佛日]을 높이 밝히니, 장안의 이름난 귀인들과 진리를 배우려는 무리가 앞을 다투어 구름같이 모였는데, 선사가 우렛소리를 크게 떨치니 뭇 영재英才들이 고개를 숙여 굴복하였고,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맞는 이는 뜻을 얻고 말을 잊었다.
원화元和 13년 무술戊戌 12월 21일에 천화遷化하니, 칙명으로 시호를 대각大覺 선사라 하고, 탑호를 대보광大寶光이라 하였다. 장사長沙의 가도賈島가 비명을 썼는데, 다음과 같다.
045_0325_b_26L師契大寂宗教緇儒奔趍法會自以道響天庭聞于鳳闕元和奉徵詔對位排僧錄首座已下聖上顧問首對云僧依夏臈師當時六十夏勅奉遷爲座對聖上言論禪門法教聖顏大悅慇敬殊常恩澤面臨宣住章敬寺大化京都高懸佛日城名公義學競集擊難者如雲師乃大震雷音群英首伏投鍼契意者得意忘言元和十三年戊戌歲十二月二十一日遷化勅謚大覺禪師大寶光之塔長沙賈島碑銘曰

본래의 성은 사謝씨인데
석가의 제자라 일컬었고
이름은 회휘懷暉이나
자字는 모를레라.
045_0325_c_08L實姓謝稱釋子名懷暉未詳字

속가는 천주泉州 땅
안집리安集里이고
관직은 없었으나
부처의 지위에 있었다.
家泉州安集里無官品有佛位

병신丙申에 시작하여
을미乙未에 마치셨다.
045_0325_c_09L始丙申終乙未
祖堂集卷第十四
  1. 204)60권본卷本 『화엄경華嚴經』을 말한다.
  2. 205)사구분별四句分別ㆍ사구문四句門이라 하여 변증법辯證法의 한 형식이다. 4구는 정립定立ㆍ반정립反定立ㆍ긍정종합肯定綜合ㆍ부정종합否定綜合이니, 이제 유有와 공空으로 만유 제법을 판정할 때에 제1구의 유有는 정립, 제2구의 공空은 반정립, 제3구의 역유역무亦有亦無는 긍정종합, 제4구의 비유비공非有非空은 부정종합이며, 처음 2구를 양단兩單, 뒤의 2구를 구시구비俱是俱非 또는 쌍조쌍비雙照雙非라 한다. 백비는 부정否定을 거듭하는 것으로서, 몇 번이고 부정을 거듭할지라도, 참으로 사물의 진상을 알기 어려울 때에 중생들로 하여금 유무有無의 극단적 견해에 걸림이 없게 한다.
  3. 206)40권본 『화엄경』을 말한다.
  4. 207)『불설불명경佛說佛名經』(보리류지 역) 제7권에, 월면불月面佛은 그 수명이 일일일야一日一夜이고, 일면불日面佛은 그 수명이 1천8백 세가 된다는 말이 나온다.
  5. 208)『화엄경』의 42반야바라밀문般若波羅蜜門을 말한다.
  6. 209)비견할 것이 없을 만큼 뛰어남을 뜻한다. 따라서 부처님에 대한 존칭尊稱으로 쓰인다.
  7. 210)신身ㆍ구口ㆍ의意 3업業을 가리킨다.
  8. 211)업業ㆍ사事ㆍ소작所作ㆍ작법作法 등으로 한역한다. 널리는 교단 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의식이나 작법을 말하며, 여기서는 스님이 되기 위해 계를 받는 것을 말한다. 계를 받을 때는 계사戒師가 세 번 다짐하는데, 그것을 ‘3갈마羯磨’라고 한다.
  9. 212)도를 수행하여 얻는 네 가지 성과成果, 또는 소승의 수행에서 얻어지는 네 가지 성과를 말한다.
  10. 213)가장 요긴하고 중요한 것을 말한다.
  11. 214)눈ㆍ귀ㆍ코ㆍ혀ㆍ몸의 5관官에 의하여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다섯 가지에 대한 감관적感官的 욕망을 말한다.
  12. 215)사람의 마음을 동요시키는 행幸과 불행不幸의 상태나 경향. 이익[利]ㆍ손실[衰]ㆍ욕됨[毁]ㆍ명예[譽]ㆍ칭찬[稱]ㆍ비방[譏]ㆍ괴로움[苦]ㆍ즐거움[樂]의 여덟 가지. 8법法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물건을 움직이는 바람에 비유한 것이다.
  13. 216)고대 인도의 성전聖典인 베다를 말한다.
  14. 217)실체實體가 없이 공중에 나타나는 성을 뜻한다.
  15. 218)부처님의 설법. 부처님의 설법은 바다와 같이 넓고 깊다는 뜻. 특히 『화엄경』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으니, 『화엄경』은 용수龍樹가 용궁에서 가져왔다고 하기 때문에 그렇다.
  16. 219)영郢 지방의 사람으로 벽을 바르는 명인名人. 일설에는 중국 고사故事에 나오는 목수木手로, 그는 남의 코끝에 진흙을 발라 놓고 도끼를 멀리서 내리쳐서 진흙을 떼어내되 코를 상하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17. 220)대적정大寂定. 커다란 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