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45_0343_b_01L조당집 제18권
045_0343_b_01L祖堂集卷第十八 江西下卷第五曹溪四五代法孫


조주趙州 화상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고, 북지北地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전심全諗이며, 청사靑社의 치구緇丘 사람이다. 어릴 적에 고향의 용흥사龍興寺에서 출가하여 숭산嵩山 유리단琉璃壇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경이나 율에는 취미가 없어 총림을 두루 돌다가 한 번 남전에 온 뒤로는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았으니, 거룩한 법연에 왔는데, 어찌 깨달음이 없었겠는가.
선사가 물었다.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남전이 말했다.
“평상심平常心이 도다.”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까?”
“나아가려 하면 어긋나느니라.”
“나아가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그것이 도인 줄 압니까?”
“도는 알고 모르는 데 있지 않나니, 안다면 허망한 깨달음이요, 모른다면 무기無記이다. 만일 나아가지 않는 도를 참으로 통달하면 마치 허공이 넓은 듯 트인 듯 되리니, 그 어찌 옳고 그름을 따지리오.”
선사가 이 말에 현현한 진리를 활짝 깨달아 마음이 보름달같이 밝아졌다. 인연에 따르고 성품에 맡기어 인생을 우스꽝스럽게 여기고 괴나리봇짐과 지팡이를 벗 삼아 천하를 두루 돌았다.
045_0343_b_02L趙州和尚嗣南泉在北地師諱全諗靑社緇丘人也少於本州龍興寺出家嵩山琉璃壇受戒不味經律遍參叢林一造南泉更無他往旣遭盛筵寧無扣擊師問如何是道南泉云平常心是道師云還可趣向否南泉云擬則乖師云擬時如何知是道南泉云道不屬知不知知是妄覺不知是無記若也眞達不擬之道猶如太廓然蕩豁豈可是非師於是頓領玄機心如朗月自爾隨緣任性笑傲浮生擁毳攜笻周遊煙水矣

선사가 어떤 좌주座主에게 물었다.
“무슨 일을 하는가?”
좌주가 대답했다.
“『유마경維摩經』을 강합니다.”
“유마에게도 할아버지가 있는가?”
“있습니다.”
“누가 유마의 할아버지인가?”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할아버지라면 어째서 손자의 말씀을 전파하고 있는가?”
좌주가 대답하지 못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학인이 부처를 이루고자 할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마음의 힘을 허비하는 것이니라.”
“마음의 힘을 허비하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부처가 되느니라.”
“밤에는 도솔천에 오르고 낮에는 염부제閻浮提에 내리는데, 마니주摩尼珠는 어찌하여 나타나지 않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하는가?”
스님이 다시 물으니, 선사가 대답했다.
“듣지 못했는가? ‘비바시불毘婆尸佛 때부터 일찍이 유심히 살피었건만 지금까지도 묘함을 얻지 못했다’ 하였느니라.”
045_0343_b_12L師問座主所業什摩對云講『維摩經』維摩還有祖父也無對云師云阿那是維摩祖父對云則某甲便是師云旣是祖父爲什摩卻與兒孫傳語座主無對學人擬作佛去時如何師云費心力僧云不費心力時如何師云作佛去夜昇兜率晝降閻浮其中摩尼爲什摩不現師云道什摩僧再問師云不見道毘婆尸佛早留心直至如今不得妙

어떤 스님이 하직을 고하니, 선사가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남방으로 가렵니다.”
선사가 말했다.
“3천 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기뻐하지 말라.”
스님이 말했다.
“학인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버들 솜, 버들 솜이니라.”

선사가 제1좌第一座에게 물었다.
“방 안에 조부祖父가 있는가?”
“있습니다.”
“불러다가 노승의 발을 씻게 하라.”
선사가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보였다.
“여기는 굴 안의 사자도 있고, 굴 밖의 사자도 있지만 오직 사자 새끼만은 없구나.”
이때 어떤 스님이 나와서 손가락을 두서너 번 튀기니, 선사가 물었다.
“왜 그러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사자 새끼입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내가 사자 새끼라고 말한 것도 벌써 어긋난 것이었는데, 그대가 다시 발길질을 하여 무엇 하려 하는가?”
045_0343_b_19L有僧辭什摩處對云南方去師云三千里外逢人莫喜僧云學人不會師云柳絮柳絮問第一座堂中還有祖父摩對云師云喚來與老僧洗腳師示衆我這裏亦有在窟師子亦有出窟師子只是無師子兒有僧出來彈指兩三下師云作什摩僧云師子兒師云我喚作師子早是罪過你又更蹴踏作什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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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가 물었다.
“이렇게 온 사람도 스님께서 제접해 주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제접하느니라.”
“이렇게 오지 않는 사람도 제접해 주십니까?”
“제접하느니라.”
“이렇게 오는 이는 제접하신다 해도, 이렇게 오지 않는 이야 어떻게 제접하시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만두어라. 더 말하지 말라. 나의 법은 묘하여 헤아리기 어려우니라.”
“어떤 것이 평상심平常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호랑이와 살쾡이니라.”
“교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대의 집 문을 드나들지 않느니라.”
“그러시면 그 사람을 너무 짓누르는 것이 아닙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매우 좋은 평상심이로구나.”
045_0343_b_26L與摩來底人師還接也無不與摩來底人師還接也無師云僧云與摩來底人從師接不與摩來底人師如何接師云止止不須說我法妙難思如何是平常師云虎狼野干是僧云還教化也無師云歷你門戶僧云與摩莫平沈那个人也無師云太好平常心

대왕大王이 와서 선사에게 절을 하는데, 선사가 평상에서 내리지 않자, 시자가 물었다.
“대왕이 왔는데,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땅에 내려서지 않으셨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들은 모르는가? 상등인上等人이 오면 승상繩床 위에서 제접하고, 중등인中等人이 오면 승상을 내려서 제접하고, 하등인下等人이 오면 3문門 밖에서 영접하느니라.”

선사가 어떤 좌주에게 물었다.
“오랫동안 무슨 일에 힘썼는가?”
“『열반경涅槃經』을 강講하였습니다.”
선사가 다시 물었다.
“내가 한 가지 물어도 되겠는가?”
“예, 됩니다.”
그러자 선사가 다리를 뻗어 허공을 차고는 입으로 후하고 분 뒤에 물었다.
“이런 것도 『열반경』의 도리인가?”
“그렇습니다.”
이에 선사가 다그쳤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5백 역사力士가 똘똘 뭉치는 이치니라.”
045_0343_c_04L大王禮拜師師不下牀侍者問王來師爲什摩不下地師云汝等不會上等人上繩牀接中等人來下繩牀接下等人來門外接師問座主夂蘊什摩業對云『涅槃經』問座主一段義得不對云師以腳剔空中卻問這个是『涅槃經』中義不師云會摩不會師云這个是五百力士結成之義

선사가 시중하여 말했다.
“내가 30년 전, 남방에 있을 때 화롯가에서 무빈주화無貧主話를 들었는데, 아직까지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구나.”
어떤 사람이 설봉雪峰에게 이 일을 들어 물었다.
“조주의 무빈주화란 어떤 것입니까?”
이에 설봉이 그를 걷어차서 쓰러뜨렸다.

선사가 어떤 노숙老宿에게 갔더니, 노숙이 말했다.
“노대인老大人께서는 어찌하여 머물 자리를 찾지 않으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어디가 내가 살 곳입니까?”
노숙이 말했다.
“노대인은 살 곳도 알지 못하시는군요.”
이에 선사가 말했다.
“30년 동안 말타기를 배웠는데, 오늘 나귀에게 채였도다.”
045_0343_c_10L師示衆我三十年前在南方火爐頭擧無賓主話至如今無人道著有人擧問雪峯趙州無賓主話作摩生道雪峯便踏倒師又到一老宿處宿云老大人何不覓取住處師云什摩處是某甲住處老宿云老大人住處也不識師云三十年學騎馬今日被驢撲

어떤 이가 물었다.
“교敎를 여의고 스님께서 결택해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그러한 사람이라면 되겠다.”
스님이 절을 하자마자, 선사가 말했다.
“좋은 물음이다, 좋은 물음이다.”
스님이 다시 말했다.
“화상께 여쭈옵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오늘은 대답을 않겠다.”

어떤 이가 물었다.
“맑고 맑아 티가 끊길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곳에서는 이처럼 나그네 노릇이나 하는 놈은 붙이지 않느니라.”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에게 말하지 않겠노라.”
“어째서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그것이 나의 가풍이니라.”
“어찌하여야 국왕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염불을 해야 하느니라.”
스님이 다시 말했다.
“거리의 비렁뱅이도 염불을 합니다.”
선사가 동전 한 닢을 주었다.
“어떤 것이 본분의 일입니까?”
선사가 그 학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것이 그대 본분의 일이니라.”
045_0343_c_16L離教請師決師云摩人則得僧纔禮拜師云好問好問僧云諮和師云今日不答話澄澄絕點時如何師云我此間不著這个客作漢如何是和尚家風師云不向你道僧云爲什摩不道師云是我家如何得報國王恩師云念佛僧云街頭貧兒也念佛師拈一个錢與如何是本分事指學人云是你本分事
“어떤 것이 화상 본분의 일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것이 나의 본분의 일이니라.”
“어떤 것이 부처님께서 위로 향하는 일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그대의 다리 밑에 있는 것이니라.”
“스님께서 어찌하여 학인의 다리 밑에 계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부처님의 위로 향하는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어떤 것이 외딴 방 안의 사람입니까?”
선사가 손을 벌리면서 말했다.
“다염전(茶鹽錢:용돈)이나 보시해다오.”
어떤 사람이 운거雲居에게 이 일을 들어서 물었다.
“조주가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입니까?”
운거가 말했다.
“80세의 노인이 과거장[場屋]에서 나오느니라.”
045_0343_c_23L僧云如何是和尚本分師云是我本分事如何是佛向上事師云我在你腳底僧云師爲什摩在學人腳底師云爲你不知有佛向上事如何是密室中人展手云茶鹽錢布施有人問雲居趙州與摩道意作摩生雲居云八十老公出場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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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나무에도 불성이 있습니까?”
“있느니라.”
“언제 성불합니까?”
“허공이 땅에 떨어지면 성불하느니라.”
“허공이 언제 땅에 떨어집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잣나무가 성불하기만 하면 허공이 땅에 떨어진다.”

새로 온 스님이 자리를 펴자, 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떠나왔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방향이 없습니다.”
선사가 일어나 그 스님의 등 뒤에 가서 서니, 스님이 방석을 잡고 일어서자, 선사가 말했다.
“퍽이나 방향이 없겠다.”

어떤 스님이 하직을 고하니, 선사가 물었다.
“외지에서 어떤 사람이 ‘조주를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대는 무엇이라 대답하겠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화상을 뵈었다고 하겠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노승은 한 마리의 나귀 같은데, 그대는 어떻게 보았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045_0343_c_28L柏樹子還有佛性也無師云僧云幾時成佛師云虛空落地僧云虛空幾時落地師云待柏樹成新到展座具次師問近離何方僧云無方面師起向僧背後立僧把座具起師云太好無方僧辭次師問外方有人問還見趙州也無摩生向他道僧云只道見和尚師云老僧似一頭驢汝作摩生見無對

선사가 새로 온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즘 어디서 떠났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최근 남방南方에서 떠났습니다.”
“누구와 동행을 하였는가?”
“짐승과 동행했습니다.”
“멀쩡한 중이 어째서 축생들과 길동무를 했는가?”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사가 다시 말했다.
“썩 좋은 축생이었구나.”
스님이 따져 물었다.
“어찌 긍정할 수 있겠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긍정할 수 없거든 길동무를 내게 돌려다오.”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어떤 스님이 절을 하자, 선사가 말했다.
“잘 가라.”
스님이 질문을 하니, 선사가 말했다.
“또 시작이구나, 또 시작이구나.”
“학인이 남방으로 가려는데, 설봉이 만약 조주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오리까?”
선사가 대답했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우니라.”
“도대체 조주의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직접 조주에서 왔으나 말을 전하는 사람은 아니니라.”
그 스님이 설봉에 이르니 과연 그와 같이 묻자, 그 스님이 낱낱이 위와 같은 일을 들어 대답하였다. 이에 설봉이 말했다.
“군자는 천 리 밖에서도 호흡이 맞느니라.”
045_0344_a_08L師問新到近離什摩處近離南方師云什摩人爲伴子僧云畜生爲伴子師云好个闍梨爲什摩卻與畜生作伴子僧云無異故師云太好畜生僧云爭肯師云肯則一任還我伴子來無對有僧纔禮拜師云珍重僧申問師云又是也又是也學人去南忽然雪峯問趙州意作摩生祇對師云遇冬則寒遇夏則熱進曰究竟趙州意旨如何師云親從趙州來不是傳語人其僧到雪峯果如所其僧一一如上擧對雪峯曰君子千里同風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
“화상께서는 경계를 들어 사람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나는 경계를 들어 사람에게 보이지 않느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
“어떤 것이 학인의 스승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구름은 산에서 나올 기세이나 물은 개울로 흐르는 소리를 내지 않느니라.”
“그런 것을 물은 것이 아닙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이것이 그대의 스승인데, 묻지 않았단 말인가?”
“모든 것이 이 경지에 이르렀을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말했다.
“아직도 노승보다 1백 걸음이 모자라느니라.”
“반듯하게 둥글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반듯하게 둥글지 않느니라.”
“그럴 때에는 어찌 해야 합니까?”
“반듯하기도 하고 둥글기도 하느니라.”
045_0344_a_17L如何是祖師西來意師云亭前柏樹子僧云和尚莫將境示人師云我不將境示人僧云何是祖師西來意師云亭前柏樹子如何是學人師師云雲有出山勢水無投㵎聲僧云問這个師云是你師不問頭頭到這裏時如師云猶較老僧一百步方圓不就時如何師云不方不圓與摩時作摩生師云是方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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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가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처 불佛 자 하나를 나는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도 사람들을 위해 지도하십니까?”
선사가 말했다.
“부처니라, 부처니라.”

“한 등불로 1백의 등불을 켠다는데, 한 등불이란 어떤 등불입니까?”
선사가 신 한 짝을 걷어차고는 또 말했다.
“만일 작가作家라면 그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것이 본래의 사람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노승을 알게 된 뒤로는 그냥 이 놈이었을 뿐 다른 것이 아니었느니라.”
“그렇다면 화상과는 생소하겠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1천 생뿐만 아니라 설사 1만 생을 지나도 노승을 만나지 못할 것이니라.”

선사가 위산潙山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위산이 시자를 불러 평상을 가져오게 하자, 선사가 말했다.
“주지가 된 뒤로 아직까지 진짜 선사를 만나지 못했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갑자기 만나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천 균鈞의 활은 다람쥐를 위해 쏘지는 않느니라.”
045_0344_a_25L師有時云佛之一字吾不喜聞僧問師還爲人不師云佛也佛也一燈燃百千燈未審一燈是什摩燈師跳出隻履又云若是作家不與摩問如何是本來人師云自從識得老僧後只這个漢更無別僧云與摩則共和尚隔生也師云非但千生與萬生也不識老僧師問潙山如何是祖師意潙山喚侍者將牀子來師云住已來未曾遇著一个本色禪師時有人問遇時如何師云千鈞之弩不爲奚鼠而發機

어떤 사람이 물었다.
“부처님들께도 스승이 있습니까?”
“있다.”
“어떤 것이 부처님들의 스승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아미타불이시니라.”
선사가 또 말했다.
“부처님은 곧 제자니라.”
어떤 스님이 장경長慶에게 물었다.
“조주가 그렇게 아미타불이라 한 말씀은 지도하는 말입니까, 아니면 꾸짖는 말입니까?”
장경이 대답했다.
“만일 두 끝에서 알려면 끝내 조주의 뜻을 보지 못하느니라.”
“그러면 조주의 뜻은 무엇입니까?”
장경이 손가락을 한 번 튀겨 소리를 내었다.
045_0344_b_04L人問諸佛還有師也無師云僧進曰如何是諸佛師師云阿彌陁佛又師云佛是弟子有僧問長慶趙州與摩道阿彌陁佛是道底語是嗟底語長慶云若向兩頭會盡不見趙州意僧進趙州意作摩生長慶便彈指一聲

진주鎭州 대왕大王이 선사의 상당을 청하니, 선사가 상당하여 곧 경을 읽었다.
이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스님께 상당법문을 청했는데, 어째서 경을 읽으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불제자가 경을 읽는데, 안 되는 일이 있는가?”
또 언젠가 선사가 상당하여 경을 외우니, 어떤 사람이 말했다.
“경은 외워서 무엇 하시렵니까?”
선사가 말했다.
“그대가 경을 외운다고 했기에 다행이지 자칫하면 깜박 잊을 뻔하였도다.”
“어떤 것이 현현한 것 가운데서도 현현한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 스님이 아직 있었더라면 올해 70세가 되었을 것이니라.”
“어떤 것이 현현한 가운데의 한 구절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여시아문如是我聞이 아니니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다시 물었다.
“무엇을 걸치지 않았다는 것인가?”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았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걸치지 않은 것을 몹시 좋아하는구나.”
“가섭迦葉 상인上人의 옷은 누가 입어야 제격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7불佛이 공연히 세상에 나타나시니, 도인道人이 전혀 알지 못하는구나.”
045_0344_b_09L鎭州大王請師上堂師昇座便念經有人問請和尚上堂因什摩念經師云佛弟子念經不得摩又別時上堂師念『心經』有人云念經作什摩師云賴得闍梨道念經老僧洎忘卻如何是玄中又玄師云那个師僧若在今年七十四也如何是玄中一句師云不是如是我聞寸絲不挂時如何師云不挂什摩僧云不挂寸絲師云太好不挂迦葉上行衣什摩人合得被師云七佛虛出世道人都不知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온 적이 있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차나 마셔라.”
그리고는 다른 스님에게 물었다.
“일찍이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온 적이 없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차나 마셔라.”
또 다른 스님에게 물었다.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화상께서 그것을 물어 무엇 하시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차나 마셔라.”
045_0344_b_18L師問僧還曾到這裏摩曾到這裏師云喫茶去師云還曾到這裏摩不曾到這裏師云喫茶去又問僧還曾到這裏摩對云和尚問作什摩師云喫茶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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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가 여기에 있은 지 몇 해나 되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5, 6년은 됩니다.”
“노승老僧을 본 적이 있는가?”
“뵈었습니다.”
“어떻게 보이던가?”
“한 마리의 당나귀 같았습니다.”
“어디서 한 마리의 당나귀 같다고 보았는가?”
“법계法界에 들어가서 뵈었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가거라. 노승을 보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동산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니, 동산이 대신 말했다.
“물도 먹고 풀도 먹는 곳에서 뵈었습니다.”

어떤 이가 물었다.
“밝은 달이 허공에 달렸을 때에는 누구나 다 알지만 방 안의 일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어릴 적부터 출가했었기 때문에 생계를 꾸리지 않았느니라.”
학인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현재를 위함이 아니십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내 병도 고치지 못하는데, 어찌 남의 병을 고칠 수 있으랴.”
“그러면 찾아오는 사람이 의지할 곳이 없겠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의지하려면 방석을 땅에 놓고, 의지하지 않으려면마음대로 여기저기로 헤매어라.”
045_0344_b_21L師問僧你在這裏得幾年對云五六年師云還見老僧也無對云師云見何似生對云似一頭驢什摩處見似一頭驢對云入法界見師云未見老僧在有人擧似洞山洞山代云喫水喫朗月處空時人盡委未審室內事如何自少出家不作活計學曰與摩則不爲今時去也師云老僧自疾不能救爭能救得諸人疾學曰與摩則來者無依師云依則榻著地不依則一任東西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오대산五臺山에서 왔습니다.”
“문수文殊를 보았는가?”
“문수는 뵙지 못했지만 한 마리의 수고우水牯牛는 보았습니다.”
“수고우가 무슨 말을 하던가?”
“예.”
“무어라 하던가?”
이에 그 스님이 대답했다.
“‘초봄이 아직 추우니, 바라옵건대 존체의 기거에 만복萬福하옵소서’ 했습니다.”
045_0344_c_02L師問僧從什摩處來對云從五臺山來師云還見文殊也無對云文殊則不見見一頭水牯牛師云水牯牛還有語也無對云師曰道什摩對云孟春猶寒伏惟和尚尊體起居萬福

선사가 어느 날, 일곱 살짜리 아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승이 종일토록 너와 토론을 하려 한다. 네가 만일 지면 호떡을 사서 노승에게 주고, 노승이 지면 너에게 호떡을 사 주리라.”
아이가 말했다.
“좋습니다. 스님께서 먼저 주장을 내세우십시오.”
선사가 말했다.
“비열한 것으로 종宗을 삼으면 토론해서 이기지 못한다. 노승은 한 마리의 당나귀 새끼이다.”
아이가 말했다.
“저는 당나귀의 똥입니다.”
선사가 말했다.
“그러면 네가 나에게 호떡을 사 주어야겠다.”
아이가 말했다.
“아닙니다, 화상이시여. 화상께서 저에게 호떡을 사주셔야 합니다.”
이와 같이 스승과 제자가 다투다가 판단이 나지 않으니, 선사가 말했다.
“이런 일은 나라의 일과도 같다. 관가官家에서 판결을 내리지 못하면 시골 늙은이를 불러다가 판결하는 법이다. 여기에 3백 명 대중이 있으니, 판결할 사람이 없다고는 못하리라. 대중은 노승을 위해 주인과 손님을 가려 보라. 두 집 가운데에 어느 집에 길이 트였는가?”
대중이 아무도 판단을 내리지 못하자, 선사가 말했다.
“모름지기 안목을 갖춘 선사라야 하겠구나.”
그런 지 3일 뒤에야 사미가 비로소 깨닫고 호떡을 사다가 화상에게 공양하였다.
045_0344_c_06L師有一日向七歲兒子云老僧盡日來心造與你相共論義你若輸則買餬餠與老老僧若輸則老僧買餬餠與你兒子云請師立義師云以劣爲宗不得諍勝老僧是一頭驢兒子云某甲是驢糞師云是你與我買餬餠子云不得和尚和尚須與某甲買餬餠始得與弟子相爭斷不得師云者个事軍國事一般官家若判不得須喚村公斷這裏有三百來衆於中不可無人大衆與老僧斷賓主二家阿那个是有路大衆斷不得師云須是具眼禪師始得三日以後沙彌覺察買餬餠供養和尚矣

예전에 어떤 관장官長이 스님을 억눌러 자기에게 절을 하라 하였는데, 마조馬祖의 제자인 낭서郞瑞 화상이 끝내 거절하자, 관장이 화가 나서 때려 죽였다.
어떤 사람이 일을 들어 선사에게 물었다.
“서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죽음을 당하였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가 목숨을 아꼈기 때문이니라.”
용화龍華가 이 일을 들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아낀 것은 어떤 목숨인가?”
그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용화가 대신 말했다.
“나에게 성을 내지 마십시오.”
어떤 이가 물었다.
“바야흐로 그러할 때에는 어찌하여야 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생공生公은 10년 동안 죽을 지경을 참았지만, 노승은 잠시도 참을 수 없다.”
045_0344_c_16L古時有官長教僧拜馬祖下朗瑞和尚不肯拜官長便嗔當時打殺有人問師瑞和尚爲什摩卻被打殺師云爲伊惜命龍花拈問僧惜个什摩命無對龍花代云嗔我不得正與摩時作摩生生公忍死十年老僧一時不可過
045_0345_a_01L
선사가 사미를 불렀다. 사미가 대답하니, 선사가 말했다.
“차를 달여 오너라.”
사미가 대답했다.
“차를 달이기는 어렵지 않으나 누가 마십니까?”
선사가 입을 움직이니, 사미가 말했다.
“차 마시기 퍽이나 힘드시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장남漳南에게 물었다.
“그에게 차를 끓이게 하여 차를 얻어 마시려면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이에 보복保福이 대답했다.
“비록 그렇기는 하나 어찌하여 관음觀音을 배우지 않았던고?”

어떤 사람이 노파老婆에게 물었다.
“조주로 가는 길이 어디요?”
노파가 대답했다.
“곧장 눈에 보이는 길로 가시오.”
“서쪽으로 가라는 것입니까?”
“아니오.”
“동쪽으로 가라는 것입니까?”
“아니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선사에게 이야기하니, 선사가 말했다.
“노승이 직접 가서 감정해 보리라.”
그리고는 선사가 직접 가서 물었다.
“조주로 가는 길이 어디오?”
노파가 대답했다.
“곧장 눈에 보이는 길로 가시오.”
선사가 길을 돌아와서 그 스님에게 말했다.
“노승이 이미 감정했느니라.”
045_0344_c_21L師喚沙彌沙彌應喏師云煎茶來沙彌云不辭煎茶與什摩人喫師便動口沙彌云大難得喫茶有人拈問漳南又須教伊煎茶又須得喫茶合作摩生保福云雖然如此何不學觀音有人問老婆趙州路什摩處去婆云驀底去僧云莫是西邊去摩婆云不是僧云莫是東邊去摩婆云也不有人擧似師師云老僧自去勘破師自去趙州路什摩處去老婆云驀底去師歸院向師僧云敢破了也

원주院主가 상당 법문을 청하니, 선사가 자리에 올라 여래범如來梵을 제창하자, 원주가 말했다.
“아까 상당 법문을 청했는데, 이것은 여래범이 아닙니까?”
선사가 말했다.
“불제자가 여래범을 제창해서 안 될 일이 있는가?”
“입을 열면 한 구절입니다. 어떤 것이 반 구절입니까?”
선사가 얼른 입을 열었다.

삼봉三峰이 선사를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좌上座는 어째서 머무르지 않는가?”
선사가 도리어 물었다.
“어디에서 살면 좋겠습니까?”
삼봉이 앞산을 가리키니, 선사가 말했다.
“이는 화상께서 사실 곳입니다.”
045_0345_a_02L院主請上堂師昇座唱如來梵院主云比來請上堂這个是如來梵師云佛弟子唱如來梵不得摩開口是一句如何是半師便開口三峯見師云上座何不住去師云什摩處住好三峯指面前山師云此是和尚住

선사가 사미沙彌의 신분으로 있을 때, 남전을 부축해서 호제胡梯에 오르다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옛사람은 세 가닥의 보배 층계[三道寶堦:煩惱道, 業道, 苦道]로써 사람을 제접했는데, 화상께서는 어떻게 제접하십니까?”
이에 남전이 그대로 사닥다리를 오르면서 말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이니라.”
선사가 이 일을 사형에게 이야기하니, 사형이 물었다.
“그대는 알겠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이에 사형이 말했다.
“칠, 팔, 구, 십이니라.”

남전이 동병銅甁을 가리키면서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안과 밖의 어디가 깨끗하다고 생각하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안팎이 모두 깨끗합니다.”
남전이 다시 선사에게 물으니, 선사가 걷어차 버렸다.
045_0345_a_07L師爲沙彌扶南泉上胡梯古人以三道寶階接人未審和尚如何接南泉乃登梯云一二三四五師擧似師伯師伯云汝還會摩師云師伯云七八九十南泉指銅甁問僧汝道內淨外淨僧云內外俱淨卻問師師便剔卻

선사가 남전에게 말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도는 물건 밖의 것이 아니요, 물건 역시도 밖의 것이 아니다’ 하니, 어떤 것이 물건 밖의 것이 아닌 도리입니까?”
이에 남전이 때리자, 선사가 말했다.
“잘못 때리지 마십시오.”
남전이 말했다.
“용과 뱀을 가리기는 쉬우나 납자의 눈을 속이기는 어려우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한 겨울은 몹시도 추우니라.”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운거雲居에게 이야기하고는 물었다.
“조주가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입니까?”
운거가 대답했다.
“겨울에는 있고, 여름에는 없느니라.”
그 스님이 다시 이 일을 선사에게 이야기하고는 이어 물었다.
“운거가 그렇게 말한 뜻은 무엇입니까?”
이에 선사가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045_0345_a_11L師問南泉古人道道非物外物外非道如何是物外非道泉便棒師云莫錯打南泉云龍蛇易弁子難謾如何是西來意師云仲冬嚴寒有人擧似雲居便問只如趙州與摩道意作摩生冬天則有夏月則無僧擧似師只如雲居與摩道意作摩生師因此便造偈曰

석교石橋의 남쪽, 조주趙州의 북쪽
그 중간에 관음觀音이 있고, 미륵彌勒도 있다.
조사께서 신발 한 짝을 남겨두신 뒤로
오늘까지 찾아도 찾지 못하네.
045_0345_a_17L石橋南趙州
中有觀音有彌勒
祖師留下一隻履
直到如今覓不得

자호紫胡 화상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고, 구주衢州에서 살았으나 행장을 보지 못해 생애를 기록하지 못한다.
선사가 유철마劉鐵磨를 감정하고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듣건대 유철마가 있다던데, 그대가 아닌가?”
철마 비구니가 대답했다.
“어디서 그런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왼쪽으로도 돌고, 오른쪽으로도 도느니라.”
비구니가 말했다.
“전도顚倒되지 마십시오.”
이에 선사가 때렸다. 남전이 그 비구니를 대신하여 말했다.
“이러한 방편에 익숙합니다.”

선사가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부터의 일은 형상이 아닌데 방편으로 이를 부처라 한다. 중하中下의 사람은 시비를 다투지만, 상등上等의 선비는 굴욕을 당한 줄을 비로소 알게 된다.”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30년 동안 자호紫胡에서 살면서 두 끼니의 밥과 죽으로 해서 기력이 떨어졌으므로 날마다 산에 올라 서너 바퀴 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그대들은 알겠는가?”
045_0345_a_19L紫胡和尚嗣南泉在衢州未睹實錄不決化緣始終師因勘劉鐵磨云見說有劉鐵磨莫便是尼云什摩處得這个消息來師云左轉右轉尼云莫顚倒師打之南泉代云貫得此便師有時云從來事非物方便名爲佛中下競是非士始知屈又云三十年來住紫胡二時齋粥氣力麤每日上山三五轉迴頭問汝會也無
045_0345_b_01L
선사가 밤중에 “도적이야, 도적이야” 하고 외치니, 대중이 모두 달려왔다. 이때 선사가 승당僧堂 뒤에서 한 스님을 보자 멱살을 거머잡고 외쳤다.
“도적을 잡았다. 도적을 잡았다. 유나維那를 불러오너라.”
그 스님이 말했다.
“저는 도적이 아니라 아무개입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넌 틀림없이 도적이다. 단지 그대가 자백을 하지 않을 뿐이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장남에게 물었다.
“자호가 도적을 잡았다고 외친 뜻이 무엇입니까?”
장남이 대답했다.
“그러한 파타(波咤:신음소리)를 긍정하여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다시 석문石門에게 물었다.
“자호가 도적을 잡은 뜻이 무엇입니까?”
석문이 대답했다.
“긍정하면 미친놈이고, 긍정하지 않으면 자호가 너를 때릴 것이니라.”
045_0345_a_26L師於半夜時叫喚賊也賊也大衆皆走師於僧堂後遇一僧攔胸把柱叫云捉得也捉得也喚維那僧云不是賊某甲師云你正是賊只是你不肯承當有人拈問漳南紫胡捉賊意作摩生還肯受與摩波咤摩又拈問石門紫胡捉賊意作摩生承當則駭漢不承當則紫胡打汝

육긍陸亘 대부大夫

남전 화상의 법을 이었으며, 직접 남전의 심계心戒를 받았다.
대부가 남전에게 물었다.
“제자의 집에 한 조각의 돌이 있었는데, 밟기도 하고 앉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은 다듬어서 불상佛像을 만들었는데, 여전히 앉을 수 있습니까?”
남전이 대답했다.
“되고 말고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안 되지, 안 되지요.”
이에 대해 운암雲巖이 말했다.
“앉으면 부처요, 앉지 못하면 부처가 아니다.”
동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앉지 못하면 부처요, 앉으면 부처가 아니다.”
이에 남전이 말했다.
“한 글자를 떼어다가 두 글자에 보태면 불법이 크게 퍼지는데, 떼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으니, 남전이 대신 말했다.
“지금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니라.”
045_0345_b_04L陸亘太夫嗣南泉和尚公親受南泉心戒大夫問南泉弟子家中有一片石或坐或踏如今鐫作佛像還坐得不南泉得得陸亘云莫不得不泉云不得不得雲嵒坐則佛不坐則非佛洞山云不坐則佛坐則非佛南泉云摘一个字添兩字佛法大行有人摘得摩無人對泉代云只今是有是無

대부가 남전에게 대중을 위하여 설법해 주기를 청하니, 남전이 대답했다.
“노승에게 무슨 말을 하라는 것인가?”
대부가 여쭈었다.
“화상에게 어찌 방편이 없으시겠습니까?”
남전이 대답했다.
“대부는 지금 그에게 무엇이 부족하다고 말하시는 게요?”

다른 때에 대부가 남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화상이시여, 매우 부사의하오니 이르는 곳마다 세계가 이루어집니다.”
남전이 말했다.
“지금까지 물은 것은 모두가 대부의 분상分上에 속하는 일입니다.”
대부가 또 척투(擲投:주사위)를 들어 올리고서 남전에게 물었다.
“이렇게 해도 되지 않고,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 않으니, 이대로 믿어 버릴 때는 어떠합니까?”
남전이 척투를 들어 던지면서 말했다.
“말라빠진 해골바가지를 열여덟 방망이 때린다.”
어떤 이가 이 일을 들어 말하였다.
“말라빠진 해골을 열여덟 방망이 때린다 한 뜻이 무엇입니까?”
석상石霜이 대답했다.
“그대가 반을 말하라. 내가 반을 말하리라.”
“스님께서 전부를 말씀하십시오.”
석상이 말했다.
“그대가 두렵구나.”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장경에게 물었다.
“남전이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입니까?”
장경이 쥐어박으면서 말했다.
“오늘은 옛사람을 밝힐 일이 아니니라.”
그리고는 또 말했다.
“하나의 경품[彩:도박, 놀음]에 두 개의 주사위[塞]로다.”
045_0345_b_11L大夫問南泉爲大衆請和尚說法泉云教老僧作摩生大夫云豈無和尚方便泉云大夫道他个欠少什摩大夫別時云則今和尚不可思議到處世界成就師云適來問底摠是大夫分上事夫又因拈起擲投問南泉與摩又不得不與摩又不得正與摩信彩去時如何南泉拈擲投下云臭骨頭打十八有人擧似石霜只如臭骨頭打十八意作摩生霜云汝道一半我道一進曰請師全道怕汝僧拈問長慶南泉與摩道意作摩生慶便摑之云今日非唯明古人又云一彩兩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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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산仰山 화상

위산潙山의 법을 이었고, 회화懷化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혜적慧寂이요, 속성은 엽葉씨이며, 소주韶州의 회화현懷化縣 사람이다. 15세에 출가하려 했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아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17세에 다시 출가하려 했으나 부모가 여전히 허락하지 않았다.
그날 밤, 두 가닥의 흰 광채가 조계曹溪로부터 뻗어 나와 곧장 그 집을 꿰뚫으니, 그의 부모는 그것이 아들이 출가할 징조임을 알고 감동하여 허락했다. 이때 선사는 왼손의 무명지無名指와 새끼손가락을 끊어 부모 앞에 놓고 그간 길러 주신 은혜에 감사하였다.
처음에는 남화사南華寺 통通 선사 밑에서 머리를 깎고, 18세에 사미가 되어 행각行脚을 떠났다. 먼저 종宗 선사에게 참문을 했고, 다음에는 탐원耽源에게 참문하여 그의 곁에 있기 몇 해 동안에경계와 지혜의 밝고 어두움이 한 모습인 도리를 배웠다. 그는 한 번 들으면 다시 묻지 않았다. 후에 모든 것을 버리고 대위大潙로 갔다.
045_0345_b_22L仰山和尚嗣潙山在懷化師諱慧寂俗姓葉州懷化人也年十五求出家父母不許年至十又再求去父母猶悋其夜有白光二道從曹溪發來直貫其舍父母則知是子出家之志而許之師乃斷左手無名指及小指置父母前答謝養育之恩初於南花寺通禪師下剃髮十八爲沙彌行腳先參宗禪師次禮耽原在左右數年學境智明暗一相一聞而不再問後捨之而造大潙
대위에 이르러 위산에게 참문하니, 위산潙山이 말했다.
“이 사미는 주인이 있는 사미인가, 주인이 없는 사미인가?”
선사가 대답했다.
“주인이 있는 사미입니다.”
“주인이 어디에 있는가?”
선사가 서쪽 구석에 섰다가 다시 동쪽 구석에 가서 서니, 위산이 선사의 됨됨이가 특이함을 알고, 대화를 시작하여 이끌어 주었다.
선사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위산이 대답했다.
“생각 없는 묘를 생각함으로써 돌이키는 신령한 광채가 끝이 없다. 생각을 다하여 근원에 돌아가면 성품과 모습이 항상 머무르고 진리와 현실이 둘이 아니며 참 부처가 여여如如하니라.”
선사가 이 말에 활짝 깨닫고는 감사의 절을 하였다. 이어서 위산에 머무르기를 14~15년 동안, 오로지 위산과 자리를 마주하면서 현현하고 비밀한 진리를 드날렸으니, 이는 마치 사리불의 날카로운 말재주가 부처님의 교화를 더욱 빛낸 것과 같다 하리라. 35세에 대중을 거느리고 출세出世하니, 앞뒤 고을의 절사節史ㆍ찰사察史ㆍ자사刺史 들이 앞을 다투어 귀화하였는데, 그 중 열한 사람이 선사를 스승으로 섬겼다. 선사가 세 곳에서 법륜法輪을 굴리니, 왕이 칙명으로 증허證虛 대사라는 호와 자색 가사를 하사하였다.
045_0345_c_03L初到自參潙山潙山曰者沙彌有主沙彌無主沙彌師云有主沙彌潙山云在什摩處師在西邊立卻向東邊立潙山察其異器與言引接師問如何是佛潙山云以思無思之妙返靈焰之無窮思盡還源性相常住事不二眞佛如如師於語下頓悟禮謝指要潙山盤泊十四五年閒凡在衆中祇對潙山揚玄祕可謂鶖子之利辨光大雄之化哉年三十五領衆出世住前後諸州府節察刺使相繼一十一人禮爲師師三處轉法輪勅錫澄虛大幷紫衣矣

선사가 날마다 상당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들, 모두가 각자 광채를 돌이키고 자신을 되찾되, 나의 말만 기억하지 말라. 나는 끝없는 예부터 밝음을 등지고 어둠을 향하여 허망을 좇는 뿌리가 깊어서 결국 뽑기 어렵게 된 그대들을 가엾이 여기노라. 그러므로 임시방편을 베풀어서 여러분의 티끌같이 많은 겁 동안에 쌓인 나쁜 지식을 뽑아 버리려 하나니, 마치 단풍잎으로 우는 아기의 울음을 달래는 것과 같으니라.
이는 또 어떤 사람이 1백 가지 재물과 황금 보화를 한 자리에 뒤섞어 놓고 찾아온 사람의 정도에 맞추어 파는 것과도 같다 하리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석두石頭는 진금포(眞金鋪:순금 가게)이지만 내가 있는 곳은 잡화포(雜貨鋪:잡화 가게)이니, 찾아온 이가 잡화를 구하면 나는 잡화를 주고, 찾아온 이가 진금을 찾으면 나는 진금을 준다’ 하노라.”
이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잡화포는 묻지 않겠습니다. 어떤 것이 화상의 진금포입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화살촉을 물고 입을 열려는 이는 나귀 해에 이르러도 알지 못하느니라.”
그 스님이 대답을 못했다.
045_0345_c_13L每日上堂謂衆云汝等諸人各自迴光返顧莫記吾語吾慜汝無始曠劫來背明投暗逐妄根深卒難頓拔所以假設方便奪汝諸人塵劫來麤識如將黃葉止啼亦如人將百種貨物雜渾金寶一鋪貨賣祇擬輕重來機以道石頭是眞金鋪我者裏是雜貨鋪有人來覓雜貨鋪則我亦拈他與來覓眞金我亦與他時有人問雜貨鋪則不問請和尚眞金師云鏃擬開口驢年亦不會無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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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가 또 말했다.
“찾으면 있고, 교역을 하려면 없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선종禪宗의 진리를 이야기하면 내 주변에 한 사람도 동무가 되어 주는 이가 없다. 그런데 어찌 5백 대중, 7백 대중이라 말하는가? 그러나 내가 이것저것 지껄이면 제각기 앞을 다투어 나서며 알았다고 들고 나오는데, 이는 마치 빈주먹을 쥐고 아기들을 속이는 것 같아서 전혀 실속이 없다.
내가 이제 분명히 그대들에게 이르나니 성현 쪽의 일에 마음을 두어 머무르려고 하지 말고, 오직 자신 앞의 진리를 향해 여실히 닦으라. 3명明과 6통通을 바라지 말지니, 이는 성현의 끝 부분에 속하는 일이다. 지금에라도 마음을 알고, 다만 근본을 얻되 끝을 걱정하지 않으면 언젠가 저절로 구족하리라. 만일 그 근본을 얻지 못하면 설사 온 마음으로 배웠다 해도 끝내 얻지 못하리라.
그대들은 보지 못했는가? 위산 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범부와 성인의 망정이 다하여 본체가 드러나면참 마음이 항상 머무르고 이치와 현실이 둘이 아니게 되리니, 이것이 곧 여여한 부처이니라’ 하셨느니라. 잘 가라.”
045_0345_c_21L又云索喚則有易則無所以我若說禪宗旨身邊覓一人相伴亦無說什摩五百七百我若東說西說則競頭向前採拾如將空拳誘誑小兒都無實處我今分明向汝說聖邊事且莫將心湊泊但向身前義海如實而修不要三明六通此是聖末邊事如今且要識心達本但得其本不愁其末他時後日自具足去在若未得其本縱饒將情學他亦不得汝何不見潙山和尚云凡聖情盡體露眞心常住理事不二卽是如如佛矣珍重

어떤 스님이 물었다.
“법신도 설법을 할 줄 압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나는 말할 수 없다 하는데, 다른 사람은 말할 수 있다 하느니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선사가 베개를 밀어내었다.
나중에 어떤 스님이 위산에서 이 일을 이야기하니, 위산이 말했다.
“적자(寂子:앙산)가 칼날 위의 일을 활용했구나.”
어떤 사람이 설봉雪峰에게 이야기하니, 설봉이 말했다.
“위산 화상이 등 뒤에서만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물었다.
“관리가 되었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복선福先은 손으로 때리는 시늉으로 대답을 대신 했고, 보은報恩은 다음과 같이 대신 말했다.
“누가 감히 나서겠는가?”
045_0346_a_02L身還解說法也無師云我則說不得別有人說進曰說得底人在什摩處師乃推出枕子後擧似潙山潙山云寂子用劍刃上事有人擧似雪峯雪峯云潙山和尚背後與摩道則得人拈問當衙時作摩生福先代以手作打勢恩代云誰敢出頭

선사가 스님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곁의 스님이 말했다.
“말을 하면 문수文殊요, 침묵하면 유마維摩입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말하지도 않고 침묵하지도 않을 때에는 그대가 아니겠는가?”
그 스님이 양구良久하니, 선사가 다그쳐 물었다.
“어째서 신통을 나타내지 않는가?”
스님이 말했다.
“신통을 나타나기는 어렵지 않으나 화상께서 교敎의 범주에 말려들까 걱정입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의 근본을 살펴보건대, 교 바깥의 안목을 갖추지 못했느니라.”
선사가 어떤 벼슬아치에게 물었다.
“직위가 무엇인가?”
“아추衙推237)입니다.”
선사가 주장자를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이것도 밀어낼[推] 수 있겠는가?”
벼슬아치가 대답이 없으니, 선사가 대신 말했다.
“그것이라면 다음으로 미룹시다.”
흥화興化가 대신 말했다.
“화상께서는 일이 있습니다.”
045_0346_a_08L師共僧說話次傍僧云語是文殊嘿底是維摩師云不語不嘿莫是公不僧良久師問曰何不現神通其僧云不辭現神恐和尚收入教師云鑑公來處未有教外之師問俗官至个什摩對云衙推師拈起柱杖還推得這个不無對師代云若是這个待別時興化代云和尚有事在

선사가 상좌에게 말했다.
“선善도 생각하지 말고 악惡도 생각하지 말라 하였으니, 바야흐로 이러할 때는 어찌하겠는가?”
상좌가 대답했다.
“바로 그러한 때가 제가 생명을 던질 곳입니다.”
“어째서 나에게 묻지 않는가?”
“그러할 때에는 화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나를 부축하되 일어서지 못하게 하는구나.”

선사가 누더기를 씻는데, 탐원耽源이 물었다.
“바야흐로 그러할 때에는 어떠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분명히 둘 모두 무위無爲이니라.”
또 말했다.
“바야흐로 그러할 때에 나는 그를 생각하지 않느니라.”
또 말했다.
“바야흐로 그러할 때에 어디에서 그를 보았는가?”
045_0346_a_14L師問上座不思善不思惡正與摩時作摩生上座云正與摩時厶甲放身命處師云何不問某甲與摩時不見有和尚師云扶我教不起師洗納衣次耽源問與摩時作摩生師云了然二俱無爲又云正與摩時某甲不思量渠又云正與摩時向什摩處見渠

선사는 경잠景岑 상좌가 뜰에서 볕을 쬐는 것을 보고, 그 곁을 지나면서 말했다.
“사람마다 모두 그런 일이 있는데, 다만 말을 하지 못할 뿐입니다.”
경잠이 말했다.
“마치 그대에게 말해 달라고 한 것같이 되었구나.”
선사가 물었다.
“어떻게 말하리까?”
이에 경잠이 선사의 멱살을 잡아 쓰러뜨리고 한 번 짓밟으니, 선사가 쓰러졌다 일어나면서 말했다.
“사숙師叔의 동작이 마치 호랑이 같으십니다.”

선사가 동평東平에서 경을 보는데, 어떤 스님이 모시고 서 있었다. 선사가 경을 덮고, 고개를 돌려 그 스님에게 물었다.
“알겠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저는 경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이 다음에 그대도 차차 알게 될 것이니라.”
선사가 위조韋曹 상공相公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자, 상공이 물었다.
“절에 몇 사람이나 살고 있습니까?”
“5백 명입니다.”
“경 읽는 일에 힘을 쓰십니까?”
“조계종의 종지는 경 읽는 일에 애를 쓰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거두지 않고, 조섭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045_0346_a_20L師見京岑上座在中庭向日次師從邊過人人盡有這个事只是道不得恰似請汝師云作摩生道岑上座便攔胸與一踏師倒起來云師叔用使直下是大虫相似師在東平看經時有僧侍立師卷卻經迴頭問還會摩某甲不曾看經爭得會師云汝向後也會去師與韋曹相公相見後問院中有多少人五百人公云還切看讀不師云曹溪宗旨切看讀公云作摩生師云不收不攝不思
045_0346_b_01L
상공이 위산에게 가서 게송을 청하니, 위산이 대답했다.
“마주 보며 주어도 여전히 둔한鈍漢을 면치 못하는데,하물며 종이와 먹으로이겠는가?”
그가 또 선사에게 와서 게송을 청하니, 선사가 종이에다 원상圓相을 하나 그리고, 원상 안에다 “아무개는 삼가 답하노라” 쓰고, 그 왼쪽 가에는 “생각해서 알면 둘째 무리에 떨어진다”고 쓰고, 그 오른쪽 가에는 “생각하지 않고 알면 셋째 무리에 떨어진다”고 써서 봉하여 상공에게 주었다.
상공이 물었다.
“둥근 달같이 당겨진 활이 화살촉을 씹는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화살촉을 씹고 입을 열면 나귀 해에도 알지 못하는데, 남전은 몸을 비스듬히 돌려 억지로 일어서려 하는구나.”
그리고 이 일을 들어서 물었다.
“화살촉을 씹고 입을 열려 하면 나귀 해에도 알지 못한다. 국사께서 ‘손익損益이야 상관없다’ 하셨는데, 그렇다면 손익이 상관없는 구절은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하여 정수淨修 선사가 답했다.
“앙산의 화살촉 씹는 화두話頭는 말로 해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선사가 지적하는 것은 오직 후생後生들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니, 말의 손해는 이쪽의 경계이다.”
석문이 이 일을 들어서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알았을까, 몰랐을까?”
그 스님이 대답을 못하자, 석문이 대신 말했다.
“알지 못했다.”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찌해야 알 수 있습니까?”
045_0346_a_28L相公就潙山乞偈子潙山云覿面相呈猶是鈍漢況上於紙墨又就師乞偈子師將紙畫圓相相中著某字謹答左邊思而知之落第二頭邊不思而知之落第三首乃封與相公彎弓滿月齧鏃意如何師云嚙鏃擬開口驢年也不南泉對側身立强大師拈問嚙鏃擬開口年也不會國師云損益只可句安在淨修禪師答曰仰山嚙鏃話擬議都難會指擬益後來損這邊在石門拈問僧古人留會不留會無對代云不留會進曰作摩生會

쌍봉雙峰이 위산을 떠나 앙산에 이르니, 선사가 물었다.
“사형께서 요즘은 어떠하신가요?”
쌍봉이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는 하나의 법法도 생각에 걸어둘 것이 없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그대의 소견은 아직 마음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쌍봉이 다시 물었다.
“나의 소견은 마음의 경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치고, 화상의 소견은 어떠하십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한 법도 생각에 걸어둘 것 없는 줄 아는 것이야 어찌 없을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위산에게 이야기하니, 위산이 말했다.
“적자寂子의 이 말이 천하 사람들을 홀리게 할 것이니라.”
순덕順德이 이 일을 송했다.
045_0346_b_10L雙峯離潙山仰山師問兄近日作摩生雙峯云某甲所見有一法可當情師云你所見不出心境進曰甲所見不出心境和尚所見如何師云豈無能知寔無一法可當情乎有僧擧似潙山潙山云寂子此語迷卻天下人去在順德頌

쌍봉의 현자가 스스로 거칠어서
앙산을 굴복시키지 못하였도다.
그대를 이끌어 결박을 풀게 하니
종도宗徒들의 여러 말을 무찔러 멈추었다.
한 소경이 여러 소경을 이끈다니
옛일이 오늘에 있음을 아는가?
045_0346_b_15L雙峯賢自
非是仰山屈
挑汝解繩抽
把當宗徒說
一盲引衆盲
會古在今日

선사가 언젠가 마침 눈을 감고 앉았을 때, 어떤 스님이 가만히 걸어와 선사의 곁에서 모시고 섰다. 선사가 문을 열고 땅 위에다 원상圓相을 그리고는 원상 안에다 물 수水 자를 써서 고개 돌려 그 스님에게 보이는데,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선사가 손으로 원상을 그리고, 원상 안에다 불佛 자를 써서 대답했다.

어떤 행자行者가 법사를 따라서 불전佛殿에 들어가서는 부처님을 향해 침을 뱉었다. 그러자 법사가 꾸짖었다.
“행자가 버릇이 없구나. 어째서 부처님께 침을 뱉는가?”
행자가 말했다.
“저에게 부처님 없는 곳을 가르쳐 주십시오. 거기다가 침을 뱉겠습니다.”
위산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어진 이가 도리어 어질지 않고, 어질지 않은 이가 도리어 어질구나.”
선사가 법사를 대신하여 말했다.
“법사는 다만 행자에게 침을 뱉고 행자가 무어라 하거든 ‘나에게 행자가 없는 곳을 보여 주면 침을 뱉겠노라’ 했어야 했다.”
045_0346_b_17L師有時正與摩閉目坐次有一僧潛步到師身邊侍立師開門便於地上作圓相圓相中書字顧示其僧無對如何是祖師意師以手作圓相圓相書字對有行者隨法師入佛殿行者向佛唾法師云行者少去何以唾佛行者云還我無佛處來唾潙山聞仁者卻不仁者不仁者卻是仁者師代法師但唾行者行者若有語卽云還我無行者處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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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벼슬아치가 위산에게 물건을 보내어 종鍾을 사는 데 쓰라고 하였는데, 위산이 선사에게 말했다.
“속인이 복을 사랑해서이니라.”
선사가 말했다.
“화상께서는 무엇으로 그들에게 보답하렵니까?”
위산이 주장자를 들어 승상의 귀를 두세 번 두드리고는 말했다.
“이것으로 그들에게 보답하려는데 되겠는가?”
선사가 말했다.
“이런 것을 무엇에 쓰겠습니까?”
위산이 말했다.
“그대는 무엇이 불만인가?”
선사가 말했다.
“저로서는 불만이 없습니다만 그것은 대중을 위한 것입니다.”
위산이 말했다.
“그대는 대중의 것임을 알고 있는데,다시 나에게서 무슨 보답을 찾는가?”
선사가 말했다.
“저는 화상께서 대중의 것을 가지고 인사치레에 쓰는 것을 의심하였습니다.”
이에 위산이 말했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달마가 인도에서 오실 때에도 이것을 가지고 인사를 차리셨느니라. 그대들 모두가 그 신표의 물건을 받은 무리들이니라.”
045_0346_b_25L有俗官送物充潙山贖鍾潙山謂仰山云子愛福也仰山云和尚將什摩酬他師把柱杖敲丈牀三兩下云將這个酬得他摩仰山云是這个用作什摩師云汝嫌个什摩仰山云甲卽不嫌這个是爲大家底師云汝旣知大家更就我覓什摩酬他仰山云怪和尚把大家底行人事潙山云汝不見達摩從西天來亦將此物行人事汝諸人盡是受他信物者

선사가 시중하여 말했다.
“그러할 때는 그만두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어찌하는가?”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위산에게 이야기하니, 위산이 말했다.
“적자寂子가 사람들을 위함이 너무 조급하구나.”

위산이 선사와 함께 산 구경을 하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질을 보면 곧 마음을 본다.”
선사가 물었다.
“지금 듣건대 ‘물질을 보면 마음을 본다’ 하셨습니다. 나무들은 물질이니, 어느 것이 화상께서 물질에서 보신 마음입니까?”
위산이 대답했다.
“그대가 이미 마음을 보았다면 어찌 물질을 본다 하는가? 물질을 본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니라.”
선사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먼저 마음을 본 뒤에 물질을 보라 하셔야 하는데, 어찌하여 물질을 본 뒤에 마음을 본다 하십니까?”
위산이 말했다.
“내 지금 나무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대는 들었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화상께서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신다면 그저 나무와 이야기를 하실 일이지 저에게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를 물어서 무엇 하시렵니까?”
“나는 지금 그대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들었는가?”
“화상께서 저와 이야기를 나누신다면 그저 저와 이야기를 나누실 일이지, 또 저에게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물어서 무엇 하시렵니까? 만일 저에게 들었는지 여부를 물으시려거든 먼저 나무에게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물으셔야 할 것입니다.”
045_0346_c_04L師示衆與摩時且置不與摩時作摩生有人擧似潙潙山云寂子爲人太早因潙山與師遊山話次見色便見心仰山云承和尚有言見色便見心樹子是色阿那个是和尚色上見底心山云汝若見心云何見色見色卽是汝心仰山若與摩但言先見心然後見色何見色了見心潙山云我今共樹子語汝還聞不仰山云和尚若共樹子語但共樹子語又問某甲聞與不聞作什摩潙山云我今亦共子語子還聞不仰山云和尚若共某甲語但共厶甲語又問某甲聞與不聞作什摩若問某甲聞與不聞取樹子聞與不聞始得了也

선사가 위산에 있을 적에 어느 눈 오는 날, 다음과 같이 물었다.
“저 물질을 제하고 다시 다른 물질이 있겠습니까?”
위산이 대답했다.
“있느니라.”
“어떤 것이 물질입니까?”
위산이 눈을 가리키니, 선사가 말했다.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위산이 말했다.
“옳거니, 이치가 옳으면 나아갈 뿐이다. 이 물질을 제하고 다시 물질이 있겠는가?”
“있습니다.”
“어떠한 물질인가?”
선사가 얼른 눈을 가리켰다.

동산이 선사에게 사람을 보내어 다음과 같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옳고, 어떻게 하면 옳지 않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옳으면 모두가 옳고, 옳지 않으면 모두가 다 옳지 않느니라.”
이에 동산이 스스로 말했다.
“옳으면 모두가 다 옳지 않은 것이고, 옳지 않으면 모두가 다 옳은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선사가 다음과 같이 송했다.
045_0346_c_16L師在潙山時雪下之日仰山置問除卻這个色還更有色也無山云師云如何是色潙山指雪仰山云某甲則不與摩潙山云是也理長則就除卻這个色還更有色也無仰山云潙山云如何是色山卻指雪洞山遣人問師作摩生卽是作摩生則不是師云是則一切皆是不是則一切不是洞山自云是則一切不是不是則一切是師偈曰

법신은 작위作爲가 없으나 화신은 작위가 있나니,
박가범薄伽梵은 현현하게 모든 병에 응하신다.
꽥꽥 소리를 듣는 것은 짐승의 울부짖음을 듣는 것과 같고
물안개 속에서 고기를 찾는 것은 어리석은 늙은 학과 같다.
045_0346_c_23L法身無作化身作
薄伽玄應諸病藥
啀喍聞響擬嗥吠
焰水覓魚癡老鶴
045_0347_a_01L
선사가 사미沙彌였을 때, 종宗 화상의 회상에서 산 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아이들 방에서 경을 읽고 있었다.
“누가 여기서 경을 읽고 있는고?”
선사가 대답했다.
“제가 혼자서 경을 읽고 있을 뿐,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이에 종 화상이 꾸짖으면서 말했다.
“무슨 경을 읽는 소리가 마치 노래 부르는 것 같으냐? 그렇게도 경을 읽을 줄 모르느냐?”
선사가 물었다.
“저는 그렇지만 화상께서는 경을 읽을 줄 아십니까?”
“나는 경을 읽을 줄 아느니라.”
“화상께서는 어떻게 읽으십니까?”
이에 종 화상이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고 시작하니, 선사가 말했다.
“그만두십시오.”
045_0346_c_25L師爲沙彌時在宗和尚處童行房裏念經宗和尚問誰在這裏念經對云專甲獨自念別無人宗和尚喝云什摩念恰似唱曲唱歌相似得與摩不解念經師便某甲則如此和尚還解念經也無我解念師曰和尚作摩生念宗和尚念如是我聞便云住住

어떤 이가 물었다.
“오늘 위산을 위해 재齋를 마련했는데, 위산께서 오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오면 가는 일이 있고, 가면 오는 일이 있느니라.”
위산이 선사를 불러 선사가 대답하니, 위산이 말했다.
“속히 일러라, 속히 일러라. 그대는 음陰에 떨어지지 말라.”
선사가 대답했다.
“저는 아직 믿음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믿음이 서지 않았느냐?”
“만약 저의 믿음이 섰다면 누구를 믿어야 합니까?”
“그대는 알기 때문에 믿음이 서지 않는 것인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믿음이 서지 않는 것인가?”
“믿음이 서지 않았으므로 안다, 모른다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정성성문定性聲聞238)이로구나.”
이에 선사가 말했다.
“저는 부처도 보지 못합니다.”
045_0347_a_03L今日設潙山齋未審潙山還來也師云來則有去去則有來潙山喚師師喏山云速道速道子莫落陰專甲信亦不立汝何故不立信若是專甲更信阿誰汝解故不立不解故不立若不立不說解不解汝是定性聲聞專甲佛亦不見

선사가 어떤 물건을 들고서 위산에게 물었다.
“이럴 때는 어떠합니까?”
위산이 대답했다.
“분별은 색진色塵에 속한다. 내가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화상께서는 몸이 있되 작용이 없습니다.”
“그대라면 어찌할 것인가?”
“저는 아직 믿음이 서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믿음이 서지 않았느냐?”
“만약 제가 믿음이 섰다면 다시 누구를 믿어야 합니까?”
위산이 다시 물었다.
“있어서 서지 않는 것인가, 없어서 서지 않는 것인가?”
선사가 대답했다.
“서지 않았으므로 있다 없다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정성성문이구나.”
“저는 이 경에 이르러 부처도 보이지 않습니다.”
위산이 말했다.
“그대는 훗날 나의 가르침을 펴면서 활개를 칠 것이다. 나는 그대에게 미치지 못하니라.”
045_0347_a_08L師擧起一物問潙山云與摩時如何潙山曰分別屬色塵到這裏與摩不與摩仰山云和尚有身而無用潙山云子如何仰山云某甲信亦不立潙山云爲什摩不立信仰山云若是某甲更信阿誰山云有不立無不立仰山云不立不說有無山云子是定性聲聞仰山云專甲到這裏佛尚不見潙山云子向後傳吾聲教行步闊狹吾不及子也

선사가 사미일 적에 탐원耽源의 회상에서 창례唱禮를 맡고 있었는데, 탐원이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창례를 맡고 있습니다.”
“예문禮文에 무엇이라 했는가?”
“모든 것을 공경하라 하였습니다.”
“갑자기 깨끗하지 못한 것을 만나면 어떻게 하는가?”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045_0347_a_16L師爲沙彌時在耽源唱禮次耽源問什摩師云唱禮源云禮文道什摩對云一切恭源云忽遇不淨底作摩生師曰不審

1. 위중승韋中承이 물었다.
“5조께서는 어찌하여 의발衣鉢을 혜능慧能에게 전하시고, 신수神秀에게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또 전하신 뒤에, 혜명慧明은 어찌하여 대유령大庾嶺까지 6조를 따라가서 의발을 빼앗으려 했으며, 또 무슨 뜻으로 의발을 얻지 못한 채 돌아왔습니까? 제가 성안에서 여러 스님들께 이 일을 물었는데, 모두 제각기 하는 말이 달랐습니다. 저는 항상 이 일을 의심하여 왔습니다. 바라옵건대 스님께서 한 말씀하셔서 풀어 주소서.”
선사가 대답했다.
“이는 종문宗門 안의 일이다. 내가 전에 스승께 들은 바에 의하면 그때 5조의 회상에는 7백 명의 대중이 있었다. 5조께서 열반하시려 할 때 대중 가운데 법을 전할 사람과 의발을 전할 사람을 찾으셨다. 대중 가운데 신수神秀라는 상좌가 있어, 게송을 지어 5조께 바쳤는데,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045_0347_a_18L第一韋中承問和尚曰五祖云何分付衣鉢與慧能不分付神秀旣分付後云何慧明又從五祖下趁到大庾嶺頭奪其衣鉢復有何意不得衣迴某甲在城曾問師僧悉各說不同某甲常疑此事和尚稟承有師願垂一決師答曰此是宗門中事曾於先師處聞說登時五祖下有七百僧五祖欲遷化時覓人傳法及分付衣鉢中有一上座名曰神秀遂作一偈上五祖

몸은 보리수菩提樹요
마음은 맑은 거울 틀이라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가 끼지 않게 하라.
045_0347_a_26L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莫遣有塵埃

방앗간에서 일을 하던 노盧 행자行者가 나중에 이 게송을 전해 듣고 게송 하나를 지어 5조께 바치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045_0347_a_27L後磨坊中盧行者聞有此偈遂作一偈上五祖
045_0347_b_01L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맑은 거울 역시 틀이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끼랴.
045_0347_b_01L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有塵埃

5조께서 이 게송을 보고 아무 말도 없으시다가 한밤중에서야 동자童子를 시켜 방앗간에 가서 행자를 불러오라 하셨다. 행자가 시자를 따라 5조에게로 오니, 5조께서는 시자를 내보낸 뒤 노 행자의 이름을 혜능이라 고쳐 주셨다. 그런 후 의발을 6조에게 전하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신수는 문 밖에 있지만 혜능은 문 안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법복을 입었다. 이로부터 20년 동안은 스스로 살피어서 나의 교법을 펴지 말라. 반드시 난리가 일어나리라. 이를 지난 뒤에는 미혹한 사람들을 잘 인도하라.’
혜능이 ‘어디로 가야 그러한 난리를 피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5조께서 말씀하시기를 ‘회懷를 만나면 숨고, 회會를 만나면 도망하라. 다른 성, 다른 이름이면 평안하리라’ 하셨다.
행자가 부촉과 의발을 전해 받자, 5조께서는 어서 떠나라 하셨다. 이에 혜능은 영남嶺南을 향해 길을 떠났다.
닷새 뒤에 5조께서 대중을 모아놓고 말씀하시기를 ‘여기에는 불법이 없다’ 하셨으니, 이 말씀은 6조의 일을 드러내는 뜻이다.
045_0347_b_02L五祖亦見此偈竝無言語遂於夜間教童子去碓坊中喚行者來行者隨童子到五祖五祖發遣卻童子後遂改盧行者名爲慧能授與衣鉢傳爲六祖向行者云秀在門外能得入門得座被衣向後自看二十年勿弘吾教有難起過此已後善誘迷人慧能便問當往何而堪避難五祖云逢懷卽隱遇會卽逃異姓異名卽當安矣行者旣得付囑衣鉢五祖發遣于時卽發去嶺南五日後五祖集衆人告曰間無佛法也此語意顯六祖
대중이 ‘의발은 누구에게 전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5조께서 ‘능能한 이가 얻었느니라’ 하셨다. 대중은 공론 끝에 방앗간의 행자를 찾아보고, 또 동자의 발설로 인하여 노 행자가 의발을 가지고 영남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중이 일제히 그쪽을 향해 뒤쫓았는데, 대중 가운데 속가에서 관직을 버리고 들어온 스님이 있었다. 그는 본래 3품品의 장군으로서 성은 진陳씨이며, 자는 혜명慧明이었다. 밤길을 달려 다른 이보다 앞서서 대유령大庾嶺에까지 이르렀다. 행자는 그가 뒤따라오는 줄 알고 의발을 버리고 숲 속에 들어가 돌 위에 앉았다. 혜명이 고개 마루턱에서 의발을 보고 그 앞으로 가서 손을 뻗어 들려 했으나 의발이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바로 자기의 힘이 부족함을 알게 되었다.
곧 산으로 들어가서 높은 봉우리 밑, 숲 속에서 행자가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행자는 멀리서 오는 혜명을 보자 의발을 빼앗으러 온 줄을 미리 알고 말하기를 ‘우리 조사께서 나에게 의발을 주시기에 내가 가지고 오기는 했으나 고개마루턱에 두었다. 가지려거든 가져가라’ 하니, 혜명이 대답하기를 ‘의발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오직 법을 위해서 왔습니다. 행자께서 5조의 곁을 떠나실 때 5조께서 어떠한 비밀의 뜻과 비밀의 말씀이 있으셨는지요?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하였다.
행자는 간절한 태도를 보자 말해 주려고 우선 그를 돌 위에 앉혀 조용히 생각하게 하였다. 그런 뒤 입을 열어 말하기를 ‘선善도 생각하지 말고, 악惡도 생각하지 말라. 바야흐로 이와 같이 생각을 하지 않을 때 나에게 그대의 본래 면목을 돌려다오’ 하였다.
혜명이 묻기를 ‘위에서 말씀하신 비밀의 뜻이 그것뿐입니까, 아니면 다른 뜻도 있습니까?’ 하니, 행자가 대답하기를 ‘내가 이제 분명히 그대에게 말해 주어서 도리어 비밀이 아닌 것이 되었다. 만일 그대가 스스로 자기의 면목을 얻으면 비밀한 뜻은 곧 그대 쪽에 있을 것이다’ 하였다.
045_0347_b_11L衆僧問五祖衣鉢分付何人五祖云能者卽得衆僧商議碓坊中行者又被童子泄語衆僧卽知盧行者將衣鉢歸嶺南衆僧遂趁衆中有一僧捨官入道先是三品將軍姓陳字慧明星夜倍程至大庾嶺頭行者知來趁遂放衣鉢入林向磻石上坐其慧明嶺上見其衣鉢向前已手擡之衣鉢不動便自知力薄卽入山覓行者於山高處林中見行者在石上坐行者遙見惠明便知欲奪衣鉢我祖分付衣鉢我苦辭不受雖將來見在嶺頭上坐欲要便請將去慧明荅能不爲衣鉢只爲法來不知行者離五祖時有何密意密願爲我說行者見苦來卽與說先教向石上端坐靜思靜慮不思善不思惡正與摩思不生時還我本來明上座面目來惠明問云上來密意卽這个是爲當別更有意旨行者云我今分明與汝說著卻成不密汝若自得自己面目密卻在汝邊
045_0347_c_01L혜명이 다시 묻기를 ‘행자께서 황매(黃梅:5조) 화상께 가지셨던 뜻은 또 무엇입니까?’ 하니, 행자가 대답하기를 ‘화상께서 내가 수秀 상좌의 게송에 화답한 것을 보시고,이내 내가 문 안에 들어갔음을 아시고, 혜능이라 이름을 지어 인가하셨다. 그리고 수는 문 밖에 있는데, 능은 문 안에 들어와서 자리를 얻고 옷을 입었다. 이 뒤로 스스로가 잘 살펴라. 이 의발은 예로부터 전해 온 것이니, 꼭 알맞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내가 이제 그대에게 전하니, 애써서 지키되 20년 동안은 절대 나의 가르침을 펴지 말라. 반드시 환난이 일어날 것이다. 그 뒤에는 미혹한 무리들을 잘 교화하라’ 하셨느니라.
그때 내가 묻되 ‘어디로 가야 이런 환난을 피하겠습니까?’ 하니, 5조께서 대답하시되 ‘회懷를 만나면 숨고, 회會를 만나면 도망하라. 회懷는 곧 회주懷州요, 회會는 곧 사회현四會縣이다. 다른 성, 다른 이름으로 살면 편안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자 혜명이 말하기를 ‘황매에서 머리는 깎았으나 선종의 면목은 전혀 알지 못했는데, 이제 들어갈 자리를 지시해 주심을 받고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면 차가운지 따뜻한지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행자는 저의 스승이오니, 지금 곧 이름을 고쳐서 도명道明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행자가 말하기를 ‘그대가 그렇다면 나도 그러하리라. 그대와 더불어 함께 황매를 섬긴 점에서 다르지 않으니, 잘 보존하여 간직하라’ 하였다.
도명이 말하기를 ‘화상께서는 빨리 남쪽을 향해 떠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쫓아오고 있습니다. 제가 그들의 길을 돌리게 할 때까지 잠시 기다리십시오. 저는 화상을 하직하고 북쪽으로 가겠습니다’ 하였다.
045_0347_b_28L慧明問行者云汝在黃梅和尚身意旨復如何行者云和尚看我對秀上座偈卽知我入門意卽印慧能云秀在門外能得入得座被衣向後自看此衣鉢從上來分付須得人我今付汝努力將去二十年勿弘吾教當有難起過此已後善誘迷情慧能問云當於何處而堪避難五祖云逢懷卽隱遇會卽逃卽懷州卽四會縣異姓異名當卽安矣時慧明雖在黃梅剃髮實不知禪宗面目今蒙指授入處如人飮水泠暖自知從今日向後行者卽是慧明師今便改名號爲道明行者曰汝若如吾亦如是與汝同師黃梅不異善自護持明曰和尚好速向南去在後大有人來趁和尚待道明盡卻指迴今便禮辭和尚向北去
도명이 고갯마루에서 6조와 헤어져 북을 향해 가는 도중에 호주虎州에서 노 행자를 찾는 50명의 승려를 만났다. 도명이 그들에게 ‘내가 대유령과 회화진懷化津에서 각각 5, 6일씩 묵으면서 여러 길목을 두루 수소문해 보았으나 아무도 그러한 행색을 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하더라’ 하고 말하니, 그들은 모두 북쪽으로 돌아서서 노 행자를 찾으면서 ‘그 사람이 돌을 지고 방아를 찧다가 허리를 다쳐서 길을 걷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로다’ 하였느니라.
사람들이 흩어진 뒤에 도명은 혼자서 여산廬山의 포수대布水臺에 들어가 3년을 지난 뒤에 몽산蒙山으로 돌아가 수행에 힘썼다. 나중에 출세하여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모두 영남에 가서 6조께 예배하게 하였는데, 지금도 몽산에는 영탑靈塔이 남아 있느니라.”
045_0347_c_13L道明在嶺頭分首便發向北去于虎州果見五十餘僧來尋盧行者道明向僧曰我在大庾嶺頭懷化鎭左右五六日等候借訪諸閞津竝不見此色目人過諸人卻向北尋覓其人石碓硾損行李恐難衆人分頭散後道明獨往盧山布水臺經三年後歸蒙山修行後出徒弟盡教嶺南禮拜六祖處至今蒙山靈塔見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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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완릉菀陵의 스님, 도존道存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사태沙汰 뒤에 호남湖南에 가셔서 위산潙山 화상을 뵈었을 때, 위산께서 어떤 미묘한 말씀이 있으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법난法難 뒤에 위산으로 갔더니, 어느 날 위산께서 물으시기를 ‘그대가 앙산仰山에서 주지住持할 때나 설법할 때에 다른 사람들을 속여 홀리지나 않았는가?’ 하시기에, 내가 답하기를 ‘자기의 안목眼目을 따를 뿐입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그대는 어떻게 제방의 뭇 스님들이 배운 곳이 있는지 또는 배운 곳이 없는지, 이론을 따지는 스님인지 선학禪學의 종취宗趣를 배우는 스님인지를 가려낼 수 있었는지 나에게 말해 보라’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가려낼 수 있었습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또 물으시기를 ‘제방의 학인들이 와서 조계曹溪의 참뜻을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저는 그에게 묻되 대덕大德은 어디서 왔는고?’ 하겠습니다. 학인이 대답하되 ‘요즘 제방 노숙의 회상에서 왔습니다’ 하면, 저는 즉시에 한 경계를 들어서‘제방의 노숙들도 이렇게 말하던가,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하고 묻겠습니다. 또는 한 경계를 들어 보이고는 말하되 ‘이것은 그만두고 제방 노숙들의 뜻은 어떠하시던가?’ 하겠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법칙은 경계와 지혜입니다.
위산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매우 좋은 말이다. 이 또한 예부터 전하는 종문의 아조(牙爪:손톱과 어금니)로구나’ 하셨느니라.
045_0347_c_20L第二菀陵僧道存問曰和尚沙汰後再到湖南禮覲潙山和尚復有何微妙言說和尚云我難後到潙山得一日問我汝在仰山住持及說法莫誑惑他人否仰山云隨自己眼目潙山云爭辯得諸方師僧知有師承知無師承知是義知是禪學宗門事宜說似我看仰山諮和尚辯得也潙山云有諸方學人來問汝曹溪意汝如何答渠仰山云大德近從何處來學人近從諸方老宿處來仰山卽擧一境問云方老宿還說這个不說這个或時擧一境云个則且置還諸方老宿意旨如何已上兩則境智也潙山聞說歎曰大好此亦是從上來宗門牙爪
위산께서 또 물으시기를 ‘갑자기 어떤 사람이 묻되 일체 중생은 다만 끝없는 업식業識만이 있어 의거할 근본이 없다고 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갑자기 그 학인을 불러 그가 대꾸하거든 제가 ≺무슨 물건인고?≻ 하고 물어서 그가 ≺모른다≻ 하면, 저는 그에게 ≺너 역시 의거할 근본이 없구나. 단지 업식만이 망망할 뿐이로다≻ 하겠습니다’ 했더니, 위산께서 칭찬하시기를 ‘이것은 사자의 젖 한 방울과 당나귀의 젖 여섯 섬이 동시에 쏟아져 나와 흩어지는 경지로구나’ 하셨다.
위산께서 또 물으시기를 ‘앙산의 곁에도 선을 배우는 승려가 있는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한두 사람이 있기는 하나 그저 얼굴 앞이거나 등 뒤일 뿐입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어찌하여 얼굴 앞이거나 등 뒤라 하는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남의 앞에서는 가르침을 받아들이나 다른 사람을 대하면 마치 등 뒤와 같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비추어 밝히는 곳을 기준해 보면 업성業性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또 물으시기를 ‘내 주변에도 선법을 배우는 스님이 있는가?’ 하시어, 내가 대답하기를 ‘위산에서 나온 지가 오래되어 있다 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그대가 가지고 있는 안목이 위산에게도 있던가?’ 하시어, 내가 대답하기를 ‘있다 해도 여러 동학同學ㆍ형제兄弟 들과 자세한 토론을 한 적이 없으므로 그들의 안목의 깊고 얕음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였느니라.
045_0348_a_05L潙山又云忽有人問一切衆生但有忙忙業識無本可據汝云何答仰山云驀呼於學人學人應諾仰山問是什摩物學人答云不會仰云汝亦無本可據非但忙忙業識潙山云是師子一滴乳六斛驢乳一時逬散潙山又問仰山身邊還有學禪僧不仰山云還有一兩个只是面前背後潙山問云何面前背後仰山云人前受持聲教祗對別人卽似背後揩定著渠自己照用處業性亦不識潙山云我身邊還有學禪人不仰山答云出山日早有亦不識他山云以汝在日眼目且潙山有不仰山答山中縱有諸同學兄弟不曾子細共他論量竝不知眼目深淺
045_0348_b_01L위산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대안大安은 어떠한가?’ 하시어, ‘그를 모릅니다’ 하였고, ‘전심全諗은 어떠한가?’ 하시어, ‘그도 모르겠습니다’ 하였으며, ‘지화志和는 어떠한가?’ 하시어, ‘그도 모르겠습니다’ 하였고, ‘지우志遇는 어떠한가?’ 하시어, ‘그도 모르겠습니다’ 하였으며, ‘법단法端은 어떠한가?’ 하시어, ‘그도 모르겠습니다’ 하였더니, 위산께서 꾸짖으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물은 것을 그대는 모두 모른다 하니, 무슨 뜻인가?’ 하셨느니라.
이때 내가 화상께 여쭙기를 ‘그들의 견해見解를 알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들의 행해行解를 알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하니, 위산께서 물으시기를 ‘그대는 무엇을 그들의 견해라 하는가?’ 하셨느니라.
내가 대답하기를 ‘그들이 견해를 얻었음을 알고자 하십니까? 위에 열거한 다섯 사람이 뒷날 화상의 가르침을 받고 남의 스승이 되어 모든 사람에게 말해 주되, 마치 한 병에 물을 쏟아 붓는 것 같아서 한 방울도 잃지 않을 것이니, 남의 스승이 된 이가 이러하고도 남음이 있으면 이를 견해라 합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무엇을 행해行解라 하는가?’ 하시니, 내가 대답하기를 ‘천안통天眼通과 타심통他心通을 갖추지 못하여서 비출 곳을 알지 못하니, 행해는 스스로 청탁淸濁을 따지므로 업용業用과 성품이 의밀意密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제가 강서江西에 있을 적에는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때 화상께서 저를 보고 선법禪法을 배우는 사람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니, 위산께서 대답하시기를 ‘그렇다면 내가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는 선禪을 모른다고 해도 되는가?’ 하셨느니라. 이에 내가 대답하기를 ‘제가 어떤개구리나 지렁이이기에 어찌 선을 이해한다 하십니까?’ 하니, 위산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광명을 누가 감히 막겠는가?’ 하셨다.
045_0348_a_17L潙云大安如何答云不識他全諗如亦不識他志和如何亦不識他志遇如何不識他法端如何亦不識潙山咄云我問汝摠道不識什摩意仰山諮和尚爲當欲得記他見爲當欲得行解潙山云汝云何說他見解何說他行解仰山云若欲記他見解上來五人向後受持和尚聲教爲人善知識說示一切人如瀉之一甁不失一滴爲人師有餘此是見解潙山云行解如何仰山云未具天眼他心不知他照用處緣行解自辯淸濁業性屬於意密以不知他只如慧寂在江西時盡頭無慚無愧今時和尚見了喚作學禪人不潙山云是我向一切人前說汝不解禪得不仰山云慧寂是何蝦蟆蛐蟮云何解禪潙山云是汝光明誰人障汝
내가 다시 위산께 묻기를 ‘서천西天의 제27조인 반야다라般若多羅께서 선종禪宗의 향후 3천 년의 일을 미리 예언하셨는데, 그때마다 조금도 예언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화상께서도 얻으신 바가 있으십니까?’ 하니, 위산께서 대답하시기를 ‘이는 행통行通 쪽의 일이다. 나는 지금 얻은 바가 없다. 나는 이통理通이라, 이통은 스스로 종宗이라 여긴다. 그러므로 아직 6통通을 갖추지 못했다’ 하셨느니라.
내가 또 묻기를 ‘6조께서 입적하실 적에 권속들에게 분부하시되, 무게가 두 근쯤 되는 무쇠 자물쇠를 내 목 뒤에다 붙여서 장사를 지내라 하시니, 권속들이 무쇠를 목 뒤에다 붙이라 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하였습니다.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종이와 먹과 벼루를 가져오라. 내가 예언을 써 주리라 하시고는, ≺5, 6년 무렵에 머리 위에서 부모를 봉양하고 입 안에는 밥을 먹인다. 만滿의 환난을 만나면 양楊과 유柳가 벼슬아치가 된다≻ 하셨습니다’ 하셨다. 이에 위산께서 나에게 물으시기를 ‘그대는 조사의 예언을 알겠는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알기는 합니다만 그 일은 지나간 일입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그 일이 지나간 일이기는 하나 그대는 말해 보라’ 하시기에, 내가 말하기를 ‘5, 6년이라 함은 30년 뒤라는 뜻이요, 머리 위에서 부모를 봉양한다 함은 한 효자孝子를 만난다는 뜻이요, 입 안에는 밥을 먹인다 함은 자주자주 재를 지낸다는 뜻이요, 만滿의 환난을 만난다 함은 여주汝州의 장정만張淨滿이, 신라의 스님, 김대비金大悲에게 팔려 6조의 머리와 의발을 훔치게 된다는 뜻이요, 양楊과 유柳가 벼슬아치가 된다는 것에서, 양은 소주韶州의 자사요, 유는 곡강현령曲江縣令으로서, 이 사실을 깨닫고 석각대石角臺에서 붙잡는다는 뜻입니다. 화상께서는 지금 이러한 견해가 있으십니까?’ 하고 물었느니라.
045_0348_b_02L仰山問潙山云西天二十七祖『般若多羅』玄記禪宗向後三千年事時至分寸不移只如和尚今時還得不潙山云此是行通邊事我今未得我是理通學亦是通自宗所以未具六通仰山諮潙山云只如六祖和尚臨遷化時付囑諸子取一鍉鋌可重二斤安吾頸中然後漆之諸子問曰安鐵頸中復有何意六祖云將紙茟來玄記之五六年中頭上養親口裏須飡遇滿之楊柳爲官潙山云汝還會祖師玄記意不山云會其事過也潙山云其事雖則過汝試說仰山云五六年中三十年也頭上養親遇一孝子口裏須飡數數設齋也遇滿之難是汝州張淨滿也被新羅僧金大悲將錢雇六祖截頭兼偸衣鉢楊柳爲官楊是韶州刺史柳是曲江縣令驚覺後於石角臺捉得和尚今時有此見不
위산께서 대답하시기를 ‘이는 행통이니, 나도 아직 얻지 못했다. 이는 6신통 중 하나에 속한다’ 하시기에, 내가 말하기를 ‘화상께서 남들의 견해를 예언하시는 것이야 괜찮다 하겠지만, 사람들의 행해行解를 예언하시는 것은 인정에 속하니, 불법이 아닙니다’ 하였느니라.
이에 위산께서 기뻐하면서 말씀하시기를 ‘백장百丈 선사께서 10여 인에게 불법을 안다, 선禪을 안다 하고 수기하시어 그 뒤로 천 몇 백 명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나 스스로가 그 숫자에 집착하셨겠는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그렇게 될까 걱정입니다. 그리되면 성현의 뜻이 헤아리기 어려워 때로는 거슬리기도 하고, 때로는 순종하게도 되니, 제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물으시기를 ‘그대는 뒷날 사람들의 공부를 수기할 것인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만일 수기를 한다면 견해만을 수기하고 행해는 수기하지 않겠습니다. 견해는 구밀口密에 속하고, 행해는 의밀意密에 속합니다. 조계 6조와 비슷한 경지가 아니므로 감히 남을 수기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위산께서 물으시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수기하지 않는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이는 연등燃登부처님 이전의 일이온데, 그 일은 중생들의 행해에 속하는 일이라 기댈 곳이 없습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연등부처님의 뒤라면 그대가 수기하겠는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연등부처님 뒤에는 또 그러한 사람이 있을 것이니, 제가 수기할 바가 아닙니다’ 하였느니라.
045_0348_b_18L潙山云此是行通我亦未得此亦是六通數仰山云諮和尚和尚今時若記人見解卽得若記人行解卽屬人情不是佛法潙山喜云百丈先師記十數人會佛法會禪向後千百人圍遶及其自住數不仰山云慮恐如此則聖意難測或逆或順亦非慧寂所知潙山云汝向後還記人不仰山云若記只記見解不記行解見解屬口密行解屬意密未齊曹溪不敢記人潙山云子何故不記仰山云燃燈身前事這邊屬衆生行解無憑潙山云燃燈後汝還記得渠不仰山云若燃燈後他自有人記亦不到慧寂記
045_0348_c_01L내가 다시 묻기를 ‘화상께서는 부구식(浮漚識:인식작용)이 요즘 평안하신지요?’ 하니,위산께서 대답하시기를 ‘나는 일 없이 5, 6년을 보냈느니라’ 하시기에, 내가 말하기를 ‘그러시다면 화상께서는 전생에 이미 삼매의 정수리를 몽땅 뛰어넘으신 것입니다’ 하니, 위산께서 대답하시기를 ‘아니다’ 하셨느니라.
내가 다시 묻기를 ‘성품 바탕의 부구(浮漚:뜬 거품)도 평안하신데 연등부처님 이전에 어째서 그렇지 않았습니까?’ 하니, 위산께서 대답하시기를 ‘비록 이치는 그러하나 나는 아직 보임保任하지 못했느니라’ 하셨다.
내가 다시 묻기를 ‘어디가 화상께서 보임하지 못하신 곳입니까?’ 하니, 위산께서 대답하시기를 ‘그대는 입으로만 해탈하지 말라.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안安 선사와 수秀 선사가 측천則天의 시험에 들어 물에 내려서고야 비로소 어른임을 알게 되었느니라.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무쇠 부처라도 땀이 흐를 것이니라. 그대는 모름지기 맹렬히 수행하되 종일토록 구밀口密로만 하지 말지니라’ 하셨느니라.
위산께서 또 물으시기를 ‘그대는 3생生 중에서 지금 어느 생에 있는가? 사실대로 나에게 말해 보라’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생각이 일어나면 모습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저는 벌써 담박淡泊해졌습니다만, 지금 바야흐로 번뇌의 흐름 속에 처해 있습니다’ 하였느니라.
045_0348_c_01L仰山又問潙山和尚浮漚識近來不知寧也未潙山云我無來經五六年仰山云若與如今和尚身前應普超三昧頂也潙山云仰山云性地浮漚尚寧燃燈身前何故未潙山雖然理卽如此我亦未敢保任仰山云何處是未敢保任處潙山云汝莫口解脫汝不聞秀二禪師被則天一試下水始知有長人到這鐵佛亦須汗流汝大須修行莫終日口密密又云汝三生中汝今在何生實向我說看山云想生相生仰山今時早已淡泊也今正在流注裏
위산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그렇다면 지혜의 눈이 여전히 흐린 것이다. 법안法眼의 힘을 얻은 사람이 되지 못하였는데, 내 어찌 뜬 거품[浮漚] 속의 일을 알겠는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태화太和 3년에 화상 분부를 받들고 진리를 궁구하여 실상의 성품과 실제의 묘리를 몽땅 밝히어 한순간에 자기 성품의 맑고 흐림을 가려냈고, 이론과 행의 갈피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 뒤로는 스승께서 가르치신 종지를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행과 이치의 역용力用은 끝내 말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지금 화상께서도 이러한 경지를 얻으셨습니까? 얻지 못했다면 해인삼매海印三昧로 맞추어 보시면 앞에 배운 이와 뒤에 배운 이에게 다른 길이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였느니라. 이에 위산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안목이 이와 같으니, 인연 따라 아무 곳에서나 수행해도 있는 곳 그대로가 출가한 것과 똑같게 되느니라’ 하셨느니라.
이에 내가 다시 묻기를 ‘제가 처음 화상께 절하고 하직할 때, 화상께서 지시해 주신 말씀이 있지 않았습니까?’ 하니, 위산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있었느니라’ 하셨느니라. 내가 말하기를 ‘그것이 비록 기리機理이기는 하나 그 일에 부합되지 않음이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니, 위산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역시 진秦나라 때의 탁락찬鐸落鑽239)이로다’ 하셨다.
내가 말하기를 ‘이러한 행리行李는 스스로 속이려 해도 속일 수 없습니다’ 하니, 위산께서 대답하시기를 ‘그대의 마음도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할 것이다’ 하셨느니라.”
045_0348_c_11L潙山云若與摩汝智眼猶濁在未得法眼力人何以知我浮漚中事仰山云大和三年奉和尚處分令究理頓窮實相性實際妙理剎那時身性淸濁辨得理行分明從此已後便知有師承宗旨雖則行理力用卒未可說如今和尚得與不得卽知以海印三昧印定前學後學無別有路潙山云汝眼目旣如此隨處各自修所在出家一般仰山諮潙山云初禮辭和尚時和尚豈不有語處分潙山云有語雖是機理不無含其事潙山云汝也是秦時鐸落鑽仰山云此行李處自謾不得潙山云仁子之心亦合如此
045_0349_a_01L도존道存이 다시 물었다.
“위산을 하직할 때에는 어떤 말씀이 있으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화상을 하직할 때, 분부하시기를 ‘5, 6년 동안 내가 있단 말을 듣거든 돌아오고, 내가 있지 않단 말을 듣거든 스스로가 살아갈 길을 선택해서 힘쓰라. 잘 가거라’ 하셨느니라.”
도존이 다시 물었다.
“화상께서 지금 조사의 교법敎法을 전해 받으시고도 후학後學들에게 수기를 주지 않으시면 그들은 어찌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내 분명히 그대에게 이르나니, 지금 나는 남의 견해를 시험할지언정 남의 행해는 시험하지 않는다. 그의 행해行解는 의밀意密에 속하는 것이니, 바야흐로 경계를 접할 때, 무거운 곳으로만 흘러 업의 밭에 싹이 돋으니, 다른 사람이 어찌 알아서 그들에게 수기하리오.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대이大耳 삼장이 서천에서 와서 숙종肅宗을 만났는데, 숙종이 묻기를 ‘삼장은 무슨 법을 아시오?’ 하니, 삼장이 대답하기를‘타심통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였느니라.
숙종은 마침내 중사中使에게 명하여 충忠 국사에게로 삼장을 보내어 삼장이 진실로 타심통을 아는지 여부를 시험하게 했다. 국사가 경계를 지나는 마음으로 삼장을 시험했더니, 삼장이 과연 생각이 간 곳이 경계에 반연한 곳임을 알아차렸다. 나중에 국사가 삼매에 들어 경계를 지나지 않는 마음을 삼장더러 찾으라 하니, 삼장이 찾지 못하였다. 이에 그를 꾸짖기를 ‘이 들여우의 혼신아, 성스러움이 어디에 있는가?’ 하였느니라.
이렇게 자수용삼매自受用三昧에 들면 현현한 경지를 누가 알 수 있으랴? 그러므로 행해는 알기 어렵다 하노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증득하는 것은 견지見知가 아니요, 증득하지 않는 것도 견지가 아니라’ 했노라.”
045_0348_c_22L道存問曰禮辭潙山時有何言語山云我辭和尚時處分五六年聞吾在卽歸來聞吾不在卽自揀生路行努力好去道存問云和尚今時傳持祖教若不記向後學人如何尚云我分明向汝道今時卽試人見解不試人行解他行解屬意密正涉境時重處偏流業田芽出別人爭知何處記他汝不聞大耳三藏從西天來得對肅宗肅宗問云三藏解何法三藏云善解他心肅宗遂令中使送到國師忠和尚處請試三藏實解他心不國師遂將涉境心試三三藏果見知心念去處緣爲涉境後國師入三昧心不涉境三藏覓國師意不得被呵云野狐精聖在何處若入自受用三昧去玄誰得所以行解難知故云證者非見知不證者非見
도존이 다시 물었다.
“어찌하여야 행해와 상응하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들은 선종의 제3현玄을 알아야 한다. 첫 마음이 귀중하니, 이는 문 안에 드는 제1현이요, 다음의 두 가지 현은 자리를 얻고 옷을 입는 것이니, 그대들 스스로 살피고, 또한 종각種覺과 종지種智240)가 있음도 알아야 한다. 종각이라 함은, 세 몸이 한결같은 것이다. 이무쟁理無諍이라고도 하고, 비로자나부처님의 담적湛寂이라고도 하느니라.
종지라 함은, 몸의 성품이 뚜렷이 밝은 뒤에 다시 몸 앞에 비추어 작용하되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는 것이다. 또는 비로자나부처님의 무의지(無依智:의지함이 없는 지혜)라고 하며, 또는 하나의 체體의 세 몸[一體三身]이라고도 하니, 곧 다툼 없는 행을 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몸의 성품이 뚜렷이 밝아서 번뇌가 다하고 뜻이 열리면 몸 앞에 업業이 없고 동정動靜에 머무르지 않으며, 생에서 나오고 사로 들어갈 적에 중생을 제접하여 이롭게 하나니, 이는 또 바른 행이라고도 하고, 머묾이 없는 수레라고도 한다. 그리되면 차츰 숙명통宿命通과 타심통他心通을 저절로 갖추게 된다.
3명明과 8해解는 성현들에게 있어서 끝부분에 속하는 일이니, 그대는 마음을 써서 머무르려 하지 말라. 나는 분명히 그대에게 이르나니, 성품의 바다로 들어가서 수행을 할지언정 3명과 6통을 바라지는 말라. 무슨 까닭인가? 흐림이 있고 맑음이 있으면 이 두 가지 모두가 망정妄情이기 때문이니라.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위산께서 말씀하시기를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망정이 다하면 본체가 드러나고 참된 성품이 항상 머물러서 현실과 작용이 둘이 아니게 된다. 이것이 곧 여여한 부처이니라’ 하셨느니라.”
045_0349_a_08L道存問云如何得行解相應和尚云汝須會得禪宗第三玄初心卽貴入門第一玄向後兩玄是得座被衣汝須自看亦須自知有種覺種種覺者卽三身如一亦云理無諍亦云遮那湛寂種智者卽得身性圓明後卻向身前照用不染不著亦云舍那無依智亦云一體三身行無諍如是身性圓明漏盡意解身前無業不住動靜出生入死接物利生亦云正行亦云無住他時自具宿命他心三明八解此是聖末邊汝莫將心湊泊我分明向汝道卻向性海裏修行不要三明六通何故如此然則有淸有但二俱是情汝不見潙山道凡聖情盡體露眞性常住事用不二卽是如如佛
045_0349_b_01L
3. 완릉菀陵의 스님, 도존道存이 물었다.
“제방의 여러분이 모두 말하기를 달마께서 네 권의 『능가경楞伽經』을 가지고 오셨다는데, 사실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거짓말이다.”
“어째서 거짓이라 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달마께서 양조梁朝에 오셨을 때 그 경을 가지고 오셨다면 어느 왕조 때 번역하셨으며, 그 전기는 어디에 실렸는가? 그 『능가경』은 앞뒤로 두 차례 번역이 되었다. 첫째는 송조 때 구나발마求那跋摩 삼장이 남해南海 시흥군始興郡에서 번역했는데, 범어의 질다質多를 삭삭생념數數生念이라 번역했고, 또 건율乾栗을 무심無心이라 번역했다. 이것이 첫째 것이니, 위의 목록에 나와 있다. 둘째는 강릉江陵의 신흥사新興寺에서 절두截頭 삼장이 번역했는데, 호어胡語 질다質多를 삭삭생념數數生念이라 번역했고, 호어 건율乾栗을 무심無心이라 번역했다. 이것이 둘째 것으로 뜻은 같으나 호어와 한어漢語에 차이가 있다.
만일 달마께서경을 가지고 오셨다면 뜻을 구체적으로 번역하셨을 것이다. 또 그것이 어느 해에 번역되고, 어느 지방에 퍼졌었는가?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6조께서 조계에 계실 적에 설법하시기를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 이름도 없고, 머리도 꼬리도 없고, 나와 남도 없고안도 없고 밖도 없다는 말이다., 모난 것도 없고 둥근 것도 없고 크고 작음도 없으며, 이것은 부처가 아니요, 이는 물건도 아니다’ 하시고는, 다시 대중에게 묻기를 ‘이것이 어떤 물건인가?’ 하였다.대중이 아무 말이 없었다.
045_0349_a_20L第三菀陵僧道存問和尚諸方大家說達摩將四卷『楞伽經』來未審虛實耶仰山云道存問云何知虛和尚云達摩梁時來若將經來在什摩朝翻譯復出何傳記其『楞伽經』前後兩譯第一譯是宋朝求那跋摩三藏於南海始興郡譯梵云質多此云數數生念又云乾栗此云無心此是一譯見上目錄又江陵新興寺截頭三藏譯胡云質多此云數數生念胡云乾栗此云無心此是 二譯義卽一般胡云漢云則有差別若言達摩將經來具翻譯義復是何年又復流行何土不聞六祖在曹溪說法時我有一物本來無字無頭無尾無彼無此無內無外無方圓無大小不是佛不是物返問衆僧此是何物衆僧無對
이때 신회神會란 어린 스님이 나서서 대답하기를 ‘신회는 이 물건을 알고 있습니다’ 하니,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주둥이만 나불거리는 사미야, 안다 하면 또 무슨 물건이라 말할 것인가?’ 하셨느니라.
신회가 다시 말하기를 ‘이는 부처님들의 본원本源이며, 또 신회의 불성佛性입니다’ 하니, 6조께서 주장자를 찾아 사미를 때리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이름도 자字도 없다 했거늘, 어찌하여 본원本源 불성佛性이라는 이름을 붙이는가?’ 하셨느니라.
그때 신회는 본원 불성이라는 이름을 붙이고도 몽둥이를 맞았다. 지금 달마께서 경을 가지고 오셨다 하니, 이는 멍청한 달마가 조종祖宗에 누를 끼친 것으로서 무쇠방망이를 맞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법이 이 땅에 들어온 지 3백여 년 동안에 앞뒤의 임금들이 경론을 번역한 것이 적지 않음을 어찌하겠는가? 달마께서 특별히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대들 모두가 3승乘과 5성性의 교리를 탐내고 집착하여 이론의 바다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달마 화상께서 그대들 모두의 미혹한 망정을 구제해 주셨던 것이다.
그가 처음으로 이 땅에 왔을 때, 양조의 보지寶志 선사禪師만이 그를 알아보았는데, 양무제가 묻기를 ‘그는 누구인가?’ 하니, 보지 선사가 대답하기를 ‘이는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려는 대사이시며, 관음성인이십니다’ 하셨을 뿐, 『능가경』을 전하러 오신 성인이라고는 하지 않았느니라.”
045_0349_b_05L時有小師神會出來對云神會識此物六祖云這饒舌沙彌旣云識喚作什摩物神會云此是諸佛之本源亦是神會佛性六祖索杖打沙彌數下我向汝道無名無字何乃安置本源佛性登時神會喚作本源佛性尚被與杖今時說道達摩祖師將經來此是謾糊達帶累祖宗合喫其鐵棒只如佛法到此土三百餘年前王後帝翻譯經論可少那作摩達摩特來爲汝諸人貪著三乘五性教義汨沒在諸義海中所以達摩和尚救汝諸人迷情初到此土時唯有梁朝寶志禪師一人識梁帝問寶志此是何人寶志答此是傳佛心印大師觀音聖人乎不云傳『楞伽經』聖人也
도존이 다시 물었다.
“달마의 『오행론』에서 말하기를 ‘교법에 의지하여 종지宗旨를 깨달으라’ 하였는데, 어떤 교법을 의지해야 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른바 ‘교법에 의지하여 종지를 깨닫는다’ 함은, 다만 입ㆍ말ㆍ이빨ㆍ목구멍ㆍ입술만을 의지하거나, 혹은 광명 놓는 것을 보고 이치를 아는 것을 말한다. 종지를 깨닫는다 함은, 곧 양무제에게 대답하기를 ‘성품을 보는 것을 공功이라 하고, 묘한 작용을 덕德이라 하나니, 공이 이루어지고 덕이 일어나는 것은 한 생각 사이에 있습니다. 이러한 공덕과 맑은 지혜의 묘한 작용은 세상에서 구할 바가 아닙니다’ 한 것을 이른 것이다.
또 조계의 6조께서 천사天使에게 하신 대답, 즉 ‘선도 악도 모두 생각하지 않으면 자연히 마음의 본체에 들어가서 담연하고 상적常寂하여 묘한 작용이 항하의 모래 같으리라’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천사가 듣고 감탄하여 말하기를 ‘묘함이 극진합니다. 이것으로써 불성은 선과 악을 생각하지 않고 묘한 작용이 자재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제가 성인(聖人:천자)을 뵙는 날에는 이 묘한 진리를 전하겠습니다’ 하였다. 황제께서도 이 말을 전해 듣고 단박에 깨닫고 감탄하여 말씀하시기를 ‘짐이 서울에서 일찍이 이런 말씀을 들은 적이 없도다’ 하셨다. 이 말씀이 실로 분명한 증거이니 삼가 수행자들에게 정례하노라.”
045_0349_b_18L道存問和尚云達摩『五行論』云借教悟宗復借何教仰山云借教悟宗但借口門言語牙齒咽喉脣吻云口放光卽知義也悟宗卽答梁帝云見性曰功妙用曰德功成德立在於一念如是功德淨智妙用非是世求只如曹溪六祖對天使云善惡都莫思量自然得入心體湛然常寂妙用恒沙天使頓悟歎曰妙盡故知佛性不念善惡妙用自在待某甲若見聖人與傳妙旨皇帝聞當時頓悟亦歎曰朕在京城不曾聞說此語實爲明據謹敬頂禮修行
045_0349_c_01L도존이 다시 물었다.
“달마께서 『능가경』을 가지고 오지 않으셨다면 마조의 어록과 제방 노숙들의 설법에 자주『능가경』의 말을 인용한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예로부터 전하는 말에, 달마 화상께서 설법하실 때 이 땅의 중생들이 현현한 진리를 믿지 않을까 걱정하여 여러 차례 『능가경』의 말을 인용하였으니, 그 경에는 비슷한 곳이 있어서 종통宗通과 설통說通으로써 어리석은 이들을 깨우쳐 주었기 때문이다. 종통을 수행하는 이와 청혜聽惠 바라문들이 부처님께 와서 서른여섯 가지 대구對句를 물으니, 세존께서 모두 드러내어 세상 이론에 집어 넣으셨다. 그것이 『능가경』이다.
비슷한 곳이 있다 함은, 인연에 따라 얻은 각覺과 본주법本住法은 마치 금과 은 따위의 성질과 같아서 여래께서 세상에 나타나시거나 나타나지 않으심에 관계없이 본성이 항상 머무른다는 것이니,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계시건 안 계시건 성품과 형상은 항상 머무른다고 하는 것이니라. 이는 한가로운 이야기로써 인용한 것이지 달마가 이것으로 조종의 분명한 뜻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달마께서 서천西天에 계실 때, 반야다라에게 묻기를 ‘제가 지금 법을 얻었는데 어디에 가서 교화를 펴리까?’ 하니, 반야다라般若多羅가 대답하기를 ‘그대가 지금 법을 얻었으나 빨리 떠나지 말고 내가 입멸한 지 61년 뒤에 진단震旦으로 가야 겨우 1구를 얻겠지만 지금 떠난다면 1백 일 뒤에 쇠멸하리라’ 하였을 뿐, 『능가경』을 가지고 가라는 분부를 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노라. 내가 이제 그대에게 말하나니, 만일 선도를 배우려거든 모름지기 자세히 살펴라. 만일 그 원유原由를 알지 못하거든 절대로 허망하게 종문 안의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 비록 착한 인연이기는 하나 반드시 나쁜 결과를 부르리라.”
045_0349_b_28L道存問曰達摩和尚旣不將『楞伽經』來馬大師語本及諸方老宿數引『楞伽經』復有何意仰山云從上相承說達摩和尚說法時恐此土衆生不信玄旨數數引『楞伽經』來緣經上有相似處宗通說通誘童蒙通修行者及聽惠婆羅門來問佛三十六對尊竝撥入世論又有相似處從緣所得覺及本住法如金銀等性如來出世及不出世本性常住故云有佛無佛性相常住此是閑睱語話引來非是達摩將此爲祖宗的意汝不聞達摩在西天時問般若多羅云我今得法當往何土而可行化般若多羅云汝今得法且莫遠去待吾滅度後六十一年當往震旦只得一九如今便去襄於日下亦不聞分付將『楞伽經』來此土我今告汝若學禪道直須穩審若也不知原由切不得妄說宗教中事雖是善因而招惡果

4. 유주幽州의 스님, 사익思𨜶이 물었다.
“필경 선종의 궁극적인 돈오입리頓悟入理의 문의 분명한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 뜻은 심히 어렵도다. 그들이 만일 조종祖宗 후예의 상상上上 근성根性, 즉 서천의 여러 조사와 이 땅의 여러 조사가 예부터 서로 전해 주고 전해 받은 하나의 현묘한 기틀과 하나의 경계 지혜 같은 것을 갖춘 이를 만난다면 바로 긍정하여 현현한 제 이치를 얻어 미혹한 경지를 떠나 다시는 문자 교법을 따르지 않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전하는 말에 ‘부처님들의 이론은 글과 글자에 관계되지 않는다’ 하였나니, 이러한 근기의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우니라.
그대에게 이르나니, 선법을 배우는 스님은 드물다. 어디에서인들 불법을 얻지 못하겠는가마는 다만 의지가 없기 때문이니라.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어떤 선덕이 말하기를 ‘만일 선에 안정하여 조용히 생각하지 않으면 이 경지에 이르러서 모든 것이 바쁘기만 하다’ 하였느니라.”
사익이 다시 물었다.
“이 한 가지 준칙 외에 달리 들어갈 곳이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있느니라.”
“어떤 것입니까?”
선사가 도리어 물었다.
“그대는 어느 곳 사람인가?”
“유연幽燕 사람입니다.”
“그대는 그 고장을 생각할 때가 있는가?”
“생각합니다.”
045_0349_c_15L第四幽州僧思𨜶問和尚畢竟禪宗頓悟入理門的的意如何仰山云此意甚難若見他祖宗苗裔上上根性如西天諸祖此土從上祖相承或一玄機或一境智他便肯去玄得自理不居惑地不隨於文教故相傳云諸佛理論不干文墨一根人難得向汝道少有學禪師僧何處有不得佛法只爲無志汝不聞先德道若不安禪靜到這裏摠須忙然思𨜶問云除此一格別更有入處不仰山云如何卽是仰山云汝是何處人思𨜶云幽燕人仰山云汝還思彼處不
045_0350_a_01L선사가 말했다.
“그곳은 경계이고 생각하는 것은 그대의 마음이니, 그 생각하는 것을 돌이켜 생각해 보라. 그곳이랄 것이 있는가?”
“그 경지에 이르면 그곳뿐 아니라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의 견해에 아직도 마음과 경계가 남아 있다. 믿음의 지위[信位]로는 맞다 하겠지만, 사람의 지위로는 맞지 않다.”
사익이 다시 물었다.
“그것을 제외하고 다른 뜻이 또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따로 있다거나 따로 없다고 한다면 불안하니라.”
사익이 다시 물었다.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어찌하여야 옳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의 견해에 의하면 그런대로 하나의 현현함을 얻어 자리를 얻고 옷을 입을 수 있으니, 뒷날 스스로 잘 지키라.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는 마음을 말미암아 깨닫는다’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깨달으라’ 하셨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선과 악 모두를 생각하지 않으면 자연히 마음의 본체가 담연湛然하고, 늘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서 묘한 작용이 항하의 모래와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만일 실로 이렇다면 스스로가 잘 보임해야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염려하신다 하셨나니, 만일 유루有漏하여 의근意根을 잊지 못하면 기억하는 생각을 눈앞의 뜻에 두어 5음陰의 몸에 끄달릴 것이니, 그때는 스스로 어찌 할 수가 없게 되리라.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코끼리가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아서 전혀 선을 보지도 못하고, 또 사자의 새끼도 되지 못한다’고 하셨느니라.”
045_0349_c_26L仰山云彼處是境思是汝心如今返思个思衣還有彼處不答云到這裏非但彼處一切悉無仰山云汝見解猶有心境在信位卽人位卽不是思𨜶問除卻這裏別更有意旨仰山云別有別無卽不安也思𨜶問到這裏作摩生卽是仰山云據汝解處還得一玄得坐被衣向後自看汝不聞六祖云道由心悟亦云悟心又云善惡都莫思量自然得入心體湛然常寂妙用恒沙若實如此善自保任故云諸佛護念若有漏不忘意根憶想在身前義海被五陰身所攝他時自不奈何故云如象溺深泥不見禪亦非師子兒也

5. 해동의 스님, 정육亭育이 물었다.
“선결(禪決:선문 어구)의 명칭과 분류에 대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으니, 그것은 앙산집운봉仰山集雲峯ㆍ가섭미가迦葉彌伽ㆍ사나舍那 ㆍ자나遮那ㆍ삼마발지三摩鉢底ㆍ사지師地ㆍ정려靜慮ㆍ사문沙門ㆍ혜적 등입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앙산집운봉仰山集雲峯이라 함은, 노사나盧舍那의 근본 몸과 현재의 업근業根에 의한 분단신(分段身:형체 있는 몸)으로 받은 바깥의 의보依報니라. 또는 승보僧寶가 머무는 곳이라고도 하느니라. 가섭미가迦葉彌伽라 함은 총總이라는 뜻이니, 가섭은 선종의 초조初祖로 부처님께 비밀한 삼매를 전해 받은 분이다. 그러므로 미가라 하느니라. 사나舍那라 함은, 비밀히 삼매를 이어받는다는 뜻이니라.”
정육이 다시 물었다.
“선결禪決에서 말하기를 ‘나의 본래 면목을 돌려 달라’ 하였는데, 그것이 삼매가 아닙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만일 그것이 그대의 본래 면목이라면 다시 나에게 돌 위에다 꽃을 재배하라고 할 것이고, 또한 한밤중의 나무 그림자 같다고 하리라.”
정육이 다시 물었다.
“한밤중의 나무는 분명히 있다 하겠지만 그 나무 그림자는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045_0350_a_09L第五海東僧亭育問和尚禪決名函不知所措仰山集雲峯迦葉彌伽舍那遮那三摩鉢底地靜慮沙門慧寂和尚云仰山集雲峯者卽是盧舍那本身及現在業根分段身所招外依報亦云僧寶住持處所迦葉彌迦者摠也迦葉禪宗初祖從婆伽婆處密傳三昧也故云弘伽也舍摩者密受三昧也亭育問和尚禪決中還我本來面目莫是此三昧以不仰山云是汝面目更教我說如石上裁花亦如夜中樹影問云夜中樹決定信其樹影爲有爲無
선사가 대답했다.
“있고 없는 것은 차치하고, 그대는 지금 나무가 보이는가?”
“자나遮那라 함은 몸의 성품이 여여如如함이요, 삼마발지三摩鉢底라 함은 계戒ㆍ정定ㆍ혜慧이며, 또는 보리의 묘한 꽃이다. 또는 화장장엄華藏莊嚴이라고도 하는데, 곧 안의 의보依報가 바깥 결과를 받는 것이니, 중생의 몸으로써 부처를 이루는 일이니라. 사지師地라 함은, 자기의 종지에 통하는 것이니, 자기의 종지에 통한 이는 곧 33조사이다. 정려靜慮라 함은, 곧 네 가지 무수無受의 삼매니라.”
정육이 다시 물었다.
“이 삼매에는 들고 남이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병病이 있으면 출입이 있지만 병이 없으면 약까지도 버려야 하느니라. 초심자는 들고 남을 배워야 하지만 근기가 익으면 맑고 맑아서 머무를 곳 없느니라.”
045_0350_a_19L仰山云有無且置汝今見樹不遮那者身性如也三摩鉢底者卽戒定慧亦云菩提妙花亦云花藏莊嚴卽內依報招外果者卽人相成佛是也師地者通自宗宗通卽三十三祖靜慮者卽四種無受三昧此三昧有出入不仰山云有病卽有出入無病藥還袪初心卽學出入熟根卽淨明無住
045_0350_b_02L정육이 다시 물었다.
“그 들고 나는 뜻이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들어가는 사람이 만일 무수(無受:무념)가 되면, 곧 법안삼매法眼三昧가 일어나 바깥으로부터의 받아들임을 여의고 성품에 들어간다. 만일 무수가 되면 곧 불안삼매佛眼三昧가 일어나안으로부터 받아들임을 여의고 한 체體로 들어간다. 만일 무수가 되면 지안삼매智眼三昧가 일어나 중간의 받아들임을 여의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게 된다 말한다. 취하거나 받아들임이 없으면 자연히 위에서 설명한 삼매에 들어가 일체가 모두 공해진다.
이는 혜안으로부터 일어나서 무無에 드는 것이요, 무無의 삼매는 도안道眼에서 일어난 것이니, 현통玄通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이 아무런 눈도 없고 눈병으로 인한 헛것도 없는 상태인 것과 같다. 위와 같은 삼매가 필경에는 청정하여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을 찬탄하였으니, 곧 정명삼매淨明三昧라고 한다.
여러 학인들께 고하나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게으름을 피우거나 헛된 생각으로 공연히 앉아서 무념無念ㆍ무생無生을 생각하거나 무사無思ㆍ무심無心을 생각하지 말라. 눈앞의 불생불멸不生不滅이나 두 변[二邊]과 중도中道 따위 이론의 바다를 이야기한다면 이는 다른 이의 그림자이니, 자기 앞에 있는 이론의 바다를 던져 버려라. 검은 산 하나를 굳이 껴안고 있다면 이는 어리석음의 세계이며, 또한 선禪이라고 할 수 없다.
사문이라 함은, 본성을 통달하고 반연을 쉬어서 위의 여러 삼매를 부지런히 닦아 온갖 삼매에 통달하는 것이니, 그래서 사문이라 하고, 또한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가 떠받들고 공경하여 도덕원비道德圓備라고 한다.
이 경지에 이르면 뒷날 남의 공양을 받기에 부끄러움이 없겠지만, 만일 그렇게 수행하지 않고 남의 공양을 받으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니, 대단히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혜적慧寂이라 함은, 주지住持 삼보三寶 중에 안에서 밖으로 의보依報를 부르는 도리를 처음 안 것과 다름이 없나니, 이 모두는 거짓이요, 빈 이름이다.”
045_0350_a_25L入其意如何仰山云入人如無受卽法眼三昧離外取受入性如無受卽佛眼三昧起卽離內取受入一體如無受卽智眼三昧起卽離中間取受亦云不著無取受自入上來所解三昧一切悉空卽惠眼所起入無無三昧卽道眼所卽玄通無㝵也譬如虛空諸眼不立絕無眼讚如上三昧畢竟淸淨無依住卽淨明三昧告諸學人莫勤精進懈怠懶墯空心靜坐想一个無念無生想一个無思無心論他身前不生不滅二邊中道義海是他人光影拋卻身前義海緊抱執一个黑山此是癡界亦不是禪門者達本性息緣慮勤修上來三昧則通達一切三昧故云沙門天人阿修羅頂戴恭敬故云道德圓備執此向後堪受人天供養若不如此修受人天供養一生空過大難大難惠寂者在住持三寶中與初解外招依報不別竝屬假名
이 밖의 법요와 행장은 『앙산록仰山錄』에 기록되어 있다. 칙명으로 시호를 지통智通 대사라 하고, 탑호를 묘광妙光이라 하였다. 동평東平에서 입적한 뒤 앙산仰山으로 모셨다.
045_0350_b_17L自餘法要及化緣之事多備『仰山行錄』勅謚智通大師妙光之塔東平遷化後歸仰山矣
祖堂集卷第十八
  1. 237)당대唐代에 절도사ㆍ관찰사 등의 밑에 속한 벼슬아치이다.
  2. 238)번뇌를 끊고 아공我空의 도리를 깨달아 아라한이 될 뿐 독각獨覺이나 불과佛果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자를 말한다.
  3. 239)진시황秦始皇이 아방궁阿房宮을 지을 때 사용한 거대한 수레의 장치인데, 공사가 끝난 뒤에는 이 거대한 이기利器가 쓸모가 없게 되었다고 한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로서 너무 커서 쓸모가 없게 된 재목을 가리켜 말한다.
  4. 240)모든 사물에 관한 원만한 지혜. 부처님의 지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