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마가타(摩伽陀)2) 나라에 용왕 형제가 있었는데, 하나는 길리(姞利)3)요, 또 하나는 아가라(阿伽羅)4)였다.
014_0597_a_13L是時,摩伽陁國有龍王兄弟:一名姞利,二名阿伽羅。
때에 맞추어 비를 내리니 나라에 흉년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를 감사하여 항상 중춘(仲春)계절이 되면 모두 모여서 용이 사는 곳으로 가서는 큰 대회를 열었다. 풍악을 연주하고 진리를 토론하며 이 날 하루를 보냈다. 그 모임은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으니, 용의 이름을 따서 이 대회의 이름을 짓게 되었다. 이 날에는 의례히 네 개의 높은 자리를 마련했다. 하나는 국왕을 위한 것이요, 둘은 태자를 위한 것이요, 셋은 대신을 위한 것이요, 넷은 논사(論士)를 위한 것이었다.
014_0597_b_01L이때 사리불은 여덟 살의 몸으로서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이 네 개의 높은 자리는 누구를 위해 베푼 것인가?” 이에 사람들이 대답했다. “국왕ㆍ태자ㆍ대신ㆍ논사를 위한 것입니다.” 이때 사리불이 사람들과 바라문들을 관찰해 정신[神情]을 들여다보니 자기를 이길 자가 없었다. 문득 자리에 올라 가부좌를 틀고 앉으니, 대중들은 의아해하고 기이하게 여겼다. 혹은 생각하기를 ‘어리석고 무지한 짓이다’ 하고, 혹은 생각하기를 ‘지혜가 보통 사람을 지날 것이다’ 했다.
제각기 그의 신기하고 특이함을 가상히 여겼으나 또한 제각기 자존심[矜]을 품고 있었기에 그가 나이 어림을 부끄러이 여겨 직접 마주하여 이야기하지 못한 채 모두가 나이 어린 제자들을 보내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치와 이론이 월등히 뛰어나니, 이때 모든 논사들은 처음 보는 일이라 찬탄하며 어리석건 지혜롭건 크건 작건 모두가 굴복했다. 왕도 매우 기뻐하여 곧 관리[有司]에게 분부하여 한 고을을 봉헌해 항상 그로부터 물건을 보내주도록 했다. 왕은 코끼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방울을 흔들면서 열여섯 큰 나라와 여섯 큰 성에 이 사실을 널리 알리니,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 두 사람은 재주와 지혜가 비슷하고 덕과 행이 서로 같아서 다닐 때에도 함께 다니고 머물 때에도 함께 머물렀다. 짧건 길건 항상 정답게 지냈으며, 약속을 맺어 변치 않기를 원했다. 나중에 모두 세상을 싫어하여 집을 떠나 도를 배워 범지(梵志)의 제자가 되었다. 간절하게 도문(道門)을 구했으나 오래 지나도록 징조가 없기에 그의 스승인 산사야(刪闍耶)5)에게 이 사실을 물으니, 그는 대답했다. “나도 도를 구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도과(道果)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없는 것인지, 과연 내가 도를 얻을 사람이 못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실제로 도를 얻지 못하고 있다.”
014_0597_c_01L다른 어느 날 그 스승이 병들어 누우니, 사리불은 머리맡에 섰고, 대목건련은 발 곁에 서 있는데, 스승은 숨 가쁘게 임종을 재촉하면서 가엾은 듯 빙긋이 웃었다. 두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웃는 뜻을 물었더니 스승이 대답했다. “세상 사람들은 바른 안목이 없어 은애(恩愛)의 침해를 당하고 있다. 내가 보니 금지(金地)6)의 왕이 죽었는데, 그 대부인이 스스로 불더미에 뛰어들어 한 곳으로 가려 했으나 이 두 사람의 행과 보가 각각 다르므로 두 사람이 태어난 곳도 동떨어지게 달랐다.”
두 사람은 스승의 말씀을 기록해 두어 그의 허와 실을 입증해보고자 했다. 뒤에 금지국의 상인이 멀리 마가다까지 왔기에 두 사람이 기록과 맞추어 보니, 과연 스승의 말과 같았다. 그러자 처연히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들은 진리를 아는 그런 사람이 못 되는구나. 이를 스승께서는 우리에게 숨겼던 것이로다.” 그리고는 서로 맹세했다. “만일에 먼저 감로의 법을 얻은 이는 반드시 도와서 함께 완성합시다.”
이때 부처님께서 가섭의 형제 천 사람들을 제도하시고 여러 나라를 유행하시다가 왕사성에까지 오셔서 죽원(竹園)에 머무셨는데 두 범지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 함께 왕사성으로 들어가서 그 소식을 들으려 했다. 그때 아설시(阿說示)다섯 비구 가운데 한 사람라고 부르는 비구가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와 걸식을 하고 있었다.
사리불은 그의 거동과 복장이 특이하며, 모든 감관이 고요히 가라앉아 있음을 보고는 가까이 가서 물었다. “그대는 누구의 제자이며, 스승은 어떤 사람인가?”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석씨 종족의 태자께서 늙음ㆍ앓음ㆍ죽음의 고통을 싫어하여 집을 떠나 도를 배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는데, 그가 나의 스승이시다.” 사리불이 말했다. “그대의 스승께서 가르친 것을 나에게 말해 주시오.” 이에 아설시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나는 나이도 어리고 배운지도 오래지 않으니 어찌 지극한 진리를 펴서 널리 여래의 법을 말하랴.
014_0597_c_16L我年旣幼稚, 學日又初淺, 豈能宣至眞,
廣說如來義。
사리불이 다시 “그 요점을 간략히 말해 주시오”라고 말하니, 아설시 비구가 이런 게송을 읊었다.
014_0597_c_18L舍利弗言:“略說其要!”爾時,阿說示比丘說此偈言:
모든 법은 인연으로 생기나니 그 가르침은 인연을 설함이며 이 법은 인연에 의해 다한다고 우리 큰 스승께서 말씀하셨네.
014_0597_c_20L諸法因緣生, 是法說因緣, 是法因緣盡,
大師如是說。
014_0598_a_01L 사리불은 이 게송을 듣고는 곧 초도(初道)7)를 얻었다. 곧 목건련에게 말하러 가니, 목건련은 그의 얼굴이 화평하고 기꺼운 것을 보고 맞이하면서 말했다. “그대는 감로의 법을 얻었는가? 나에게도 말해 달라.” 사리불이 곧 그를 위해 들었던 게송을 말해 주니, 목건련이 말했다. “한 번 더 설명해 주시오.” 이에 다시 말해 주었더니, 역시 그도 초도를 얻었다.
두 사람[師]이 250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부처님께로 오니, 부처님께서는 두 사람이 제자들과 함께 오는 것을 멀리서 보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저 범지들의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보았느냐?” 비구들이 대답했다. “이미 보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두 사람은 나의 제자 가운데서 지혜가 제일이며, 신통이 제일인 제자가 되리라.”
그들은 제자들과 함께 점점 부처님께 가까이 오더니, 이윽고 부처님 곁에 이르자 머리를 숙여 절하고 한쪽에 서서 다 같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불법 가운데 출가하여 계를 받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 “잘 왔구나, 비구여”라고 말씀하시니, 머리칼과 수염이 저절로 깎여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지고 의발이 갖추어져 성취계(成就戒)를 받았다.
반 달이 지난 뒤에 부처님께서 장조범지(長爪梵志)8)에게 설법하실 때 사리불은 아라한도를 얻었다. 반 달 뒤에 도를 얻은 까닭은 장차 이 사람은 부처님을 따라 법륜을 굴릴 스승이 될 것이기에 배우는 이의 경지에서 앞에 나타난 모든 법에 스스로 들어가서 갖가지로 갖추어 알아야 했다. 그러므로 반 달 뒤에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014_0598_b_01L【답】 사리불은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서 지혜가 제일이요, 수보리는 제자들 가운데서 무쟁삼매(無諍三昧)9)를 얻은 것으로 으뜸이다. 무쟁삼매의 특징은 항상 중생을 관찰하여 마음에 번뇌를 내지 않게 하고 가엾이 여기는 행을 많이 하는 것이요, 보살들은 큰 서원을 세워 중생을 제도한다. 곧 가엾이 여기는 모습이 같으므로 수보리에게 명하여 말하라 하신 것이다.
또한 이 수보리는 공삼매(空三昧)를 행하기 좋아했다. 부처님께서 도리천(忉利天)10)에서 여름안거를 보내 법랍[歲]을 하나 더하신 뒤 염부제에 내려오셨는데, 이때 수보리가 석굴 속에 있으면서 생각했다.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내려오셨으니, 내가 부처님께 가야 하는가, 가지 말아야 하는가?’ 또한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부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지혜의 눈으로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관찰하면 그것이 부처님을 뵙는 가운데서 으뜸이다≻ 하셨다.’
이에 수보리가 생각했다. ‘지금 이 대중이 아무리 뛰어나게 수승하나 형세가 오래 머물 수 없으니, 달아 없어지는 법으로서 모두가 무상(無常)으로 돌아가리라.’ 이러한 무상관의 초문(初門)에 의하여 수보리는 모든 법은 공하여 있지 않는 것임을 모두 알았고, 이러한 관찰을 행하자 곧 도를 증득했다.
014_0598_c_01L변화한 왕이 부처님께 가서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 비구니로서는 최초로 부처님께 예배를 했다. 부처님께서 비구니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처음 예배한 것이 아니라 수보리가 최초에 예배하였느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수보리는 모든 법이 공함을 관찰하였으니, 이는 부처의 법신을 본 것이며 참 공양을 얻은 것이다. 이는 공양 가운데 으뜸이니, 산 육신에다 예경한다고 해서 공양이 되는 것이 아니니라.” 이런 까닭에 “수보리는 항상 공삼매를 관하여 반야바라밀다의 공한 모습과 상응한다”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반야바라밀다를 말하게 하셨다.
또한 중생들은 아라한은 모든 누(漏)가 이미 멸하고 다했음을 믿고 공경하는 까닭에 그에게 명해 말하게 하셨으니, 대중이 맑은 믿음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보살들은 누가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만일 그들로써 알리고자[證] 한다면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사리불과 수보리로 하여금 함께 반야바라밀을 설하게 하셨다.
마타라(摩陀羅)13)라는 바라문출신의 논사가 있었는데, 왕은 그 사람이 토론에 능하다 하여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 읍을 주었다. 마타라는 줄곧 가정에 머물렀는데, 아내가 딸을 하나 낳았다. 눈이 사리새[舍利]를 닮았으므로 그 딸을 사리14)라 불렀다. 다음에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무릎 뼈가 굵고 크므로 구치라(拘郗羅)15)秦진나라 말로는 큰 무릎(大膝)이다.라 했다. 이 마타라 바라문은 줄곧 집에 있으면서 아들딸을 기르며, 배우던 경서는 모두 폐지하여 잊고 다시 새로운 것을 익히지 않았다.
014_0599_a_01L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면 “내가 배운 경서가 매우 많아서 배가 찢어질까 걱정이다. 그러므로 감싼다”라고 대답했다. “머리에는 어찌하여 불을 이고 가는가?”라고 물으면, “매우 어둡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물었다. “해가 떠서 밝은데 어찌하여 어둡다 하는가?” 그가 대답했다. “어두움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햇빛이 비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어리석음의 어두움에 덮인 것이다. 지금은 비록 해의 광명이 있으나 어리석음 때문에 오히려 어둡다.”
왕이 북소리를 듣고는 “누구의 짓이냐”고 물으니, 신하들이 대답했다. “남천축에 한 바라문이 있어 이름이 제사인데 큰 논사입니다. 토론할 대상을 구하기 위해 토론을 알리는 북을 쳤습니다.” 왕이 매우 기뻐하면서 곧 대중을 모아놓고 말했다. “능히 힐난[難]할 자가 있다면 그와 토론해 보거라.”
마타라는 이 말을 듣고 스스로를 의심했다. “내가 오랜 동안 공부를 쉬었고 또한 새 업을 짓지도 않았으니, 내가 이제 그와 겨룰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가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오고 있었는데, 도중에서 때마침 두 송아지가 싸우려는 것을 보자 문득 혼자 생각하기를 ‘이편의 소는 나요, 저편의 소는 그라고 생각하고 이것으로 점을 쳐서 누가 이길지 알아보리라’ 했다. 그런데 이쪽의 소가 지고 말았다. 그는 문득 큰 걱정을 하면서 생각했다. ‘점괘가 이렇다면 내가 질 모양이다.’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려는데 어떤 아낙이 병에 물을 담아 가지고 그의 앞까지 와서는 땅에다 던져 깨뜨렸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또한 매우 불길하고 심히 불쾌하도다.’ 매우 불쾌한 마음으로 대중들이 모인 곳에 들어가서 그 논사를 보니, 얼굴 모양과 기상에 이길 징조가 갖추어지고, 자기는 질 것이 분명했다. 어쩔 수 없이 그와 더불어 토론하는데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곧 지고 말았다.
014_0599_b_01L 왕이 몹시 기뻐하면서 말했다. “크게 지혜롭고 밝은 사람이 멀리서 우리나라에 오셨으니, 다시 한 고을을 봉해 주어 포상하고자 하노라.” 이에 신하들이 논의해 말했다. “하나의 총명한 사람만 오면 한 고을을 봉하시면서 공신에게는 상을 주지 않으시고 빈 말씀으로 칭찬만 하신다면 국가를 다스리고 안정시키는 도가 아닌 줄로 여기나이다. 이제 마타라가 토론해서 졌으니 응당 그에게 봉했던 읍을 빼앗아서 이긴 자에게 주어야 합니다. 다시 또한 이기는 이가 생기면 다시 빼앗아서 그에게 주면 될 것입니다.” 왕은 그들의 말을 따라 당장에 빼앗아서 뒷사람에게 주었다.
제사는 그 딸을 맞아 아내로 삼았다. 그의 아내가 임신을 하고 꿈을 꾸니, 어떤 사람이 몸에는 갑옷을 입고 손에는 금강방망이를 들고 산들을 두드려 부순 뒤에 큰 산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꿈을 깬 뒤에 그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이러이러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자 제사가 말했다. “그대가 아들을 낳으면 모든 논사들을 모두 굴복시키되 오직 한 사람만은 굴복시키지 못하고 그의 제자가 될 것이오.”
사리부인은 잉태한 뒤로 그 뱃속의 아기 때문에 엄마까지도 매우 총명해져 토론에 매우 능숙해졌다. 그의 동생인 구치라가 누이와 토론하면 항상 지기만 할 뿐 상대가 되질 못했다. 그는 잉태한 아기가 반드시 크게 지혜로울 것임을 알았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도 이렇거늘 하물며 태어난 뒤에야 어떠하겠는가’라고 생각하고는 곧 집을 버리고 떠나 학문을 닦았다. 남천축까지 가서 손톱도 깎지 않은 채 열여덟 가지 경서를 읽어 모두를 환하게 통달했다. 그러므로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장조(長爪) 범지라 불렀다.
그의 누이가 아기를 낳은 지 7일 뒤에 횐 요에 싸서 그의 아버지에게 보이니, 아버지가 생각했다. ‘나를 제사라 부르니, 내 이름을 따라 우바제사(憂波提舍)17)우바란 진나라 말로는 따른다는 뜻이며, 제사는 별의 이름이다.라 하리라.” 곧 이 우바제사는 부모 때문에 지어진 이름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사리부인에게서 태어났다 하여 모두가 사리불(舍利弗)불(弗)은 진나라 말로는 아들이다.이라 불렀다.
【답】 당시 사람들은 그의 어머니를 귀히 여겼다. 곧 그녀는 뭇 여인들 가운데 총명하기가 으뜸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사리불이라 불렀다.
014_0599_c_03L答曰:時人貴重其母,於衆女人中聰明第一,以是因緣故稱舍利弗。
【經】 보살마하살이 일체종(一切種)18)으로써 일체법을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하느니라.
014_0599_c_05L【經】 “菩薩摩訶薩欲以一切種知一切法,當習行般若波羅蜜。”
【論】 보살마하살의 뜻은 앞에 보살을 찬탄하는 품에서 말한 바와 같다.
014_0599_c_07L【論】 菩薩摩訶薩義,如先「讚菩薩品」中說。
【문】 무엇을 일체종이라 하고, 무엇을 일체법이라 하는가?
014_0599_c_08L問曰:云何名“一切種”?云何名“一切法”?
【답】 지혜문을 일러 종(種)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한 지혜의 문으로 관찰하고, 어떤 사람은 둘ㆍ셋ㆍ열ㆍ백ㆍ천ㆍ만 나아가서는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아승기 지혜의 문으로 모든 법을 관찰한다. 지금은 온갖 지혜의 문으로 온갖 종자에 들어가서 온갖 법을 관찰하나니, 이것이 일체종이다.
범부들은 세 가지로 관찰하나니, 욕계를 여의고 색계를 여의고자 하는 까닭에 욕계ㆍ색계의 추악함과 거짓됨과 혼탁함을 관찰한다.
014_0599_c_13L如凡夫人三種觀,欲求離欲、離色故:觀欲、色界麤惡、誑惑、濁重。
부처님의 제자에게는 여덟 가지의 관찰이 있다. 곧 무상하고, 괴롭고, 비어있고, 나 없고, 병과 같고, 종기 같고, 화살이 몸에 박힌 것 같고, 매우 괴로워함과 같다고 관찰한다. 이 여덟 가지 관찰은 4성제(聖諦)에 들어가면 열여섯 가지 행[十六行]19) 중의 넷이 된다.
열여섯 가지란, 먼저 고를 관찰함에 네 가지가 있으니 무상함ㆍ괴로움ㆍ공함ㆍ나 없음이요, 고의 원인을 관찰함에 네 가지가 있으니 쌓임[集]ㆍ인(因)ㆍ연(緣)ㆍ남[生]이요, 고가 멸함을 관찰함에 네 가지가 있으니 다함[盡]ㆍ사라짐[滅]ㆍ묘함[妙]ㆍ벗어남[出]이요, 고의 멸에 이르는 길[道]을 관찰함에 네 가지가 있으니 길[道]ㆍ바름[正]ㆍ행함[行]ㆍ자취[跡]이다.
014_0600_a_01L들고나는 호흡에도 또한 열여섯 가지 행이 있다. 하나는 드는 호흡을 관찰함이요, 둘은 나는 호흡을 관찰함이요, 셋은 호흡의 길고 짧음을 관찰함이요, 넷은 호흡이 온몸에 두루함을 관찰함이요, 다섯은 몸의 모든 활동[行]을 제거함이요, 여섯은 기쁨[喜]을 느낌이요, 일곱은 즐거움[樂]을 느낌이요, 여덟은 마음의 모든 활동을 받아들임이요, 아홉은 기쁨을 짓지 않음이요, 열은 마음을 가다듬음[攝]이요, 열하나는 심해탈(心解脫)을 이룸이요, 열둘은 무상함을 관찰함이요, 열셋은 흩어지고 무너짐을 관찰함이요, 열넷은 욕망을 여읨을 관찰함이요, 열다섯은 멸을 관찰함이요, 열여섯은 버림[棄捨]을 관찰함이다.
세간의 지혜ㆍ세간을 벗어나는 지혜 및 아라한ㆍ벽지불ㆍ보살ㆍ부처님의 지혜 등 이러한 지혜로써 모든 법을 아는 것을 일체종(一切種)이라 한다. 일체법이라 했는데, 의식이 반연하는 법이 곧 일체법이다. 이른바 안식(眼識)은 색을 반연하고, 이식(耳識)은 소리를 반연하고, 비식(鼻識)은 냄새를 반연하고, 설식(舌識)은 맛을 반연하고, 신식(身識)은 촉(觸)을 반연하고, 의식(意識)은 법을 반연한다. 눈을 반연하고, 색을 반연하고, 안식을 반연하며, 귀와 소리ㆍ코와 냄새ㆍ혀와 맛ㆍ몸과 촉감에 대해서도 이와 같으며, 나아가 뜻을 반연하고, 법을 반연하고, 의식을 반연한다. 이것을 일체법이라고 부르니, 이것은 식이 반연하는 법이 된다.
또한 지혜로써 반연하는 법이 곧 일체법이다. 이른바 괴로움을 아는 지혜로써 괴로움을 알고, 원인을 아는 지혜로써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멸함을 아는 지혜로써 괴로움의 사라짐을 알고, 길을 아는 지혜로써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알며, 세속의 지혜로써 고ㆍ집ㆍ멸ㆍ도ㆍ허공 및 비수연(非數緣)의 멸21)을 안다. 이것이 지혜로써 반연하는 법이다.
또한 두 가지 법으로 일체법을 포섭한다. 곧 색법과 무색법, 볼 수 있는 법과 볼 수 없는 법, 대할 수 있는 법과 대할 수 없는 법, 유루와 무루, 유위와 무위, 마음과 서로 응하는 법과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법, 업과 서로 응하는 법과 업과 서로 응하지 않는 법단주에 말하기를 심법(心法) 가운데 생각[思]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업과 상응한다. 곧 이것은 생각이기 때문에 제한다., 가까운 법과 먼 법 등 이와 같이 갖가지 두 법으로 일체법을 포섭한다.단주에 말하기를 ‘현재와 무위는 가까운 법이요, 미래와 과거는 먼 법이다’ 했다.
014_0600_b_01L또한 세 가지 법으로 일체법을 포섭한다. 곧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 유학ㆍ무학ㆍ유학도 아니고 무학도 아님, 견도(見道)에서 끊음ㆍ수도(修道)에서 끊음ㆍ끊지 않아도 되는 법[不斷]22)이다. 또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5중(衆)과 12입(入)과 18계(界)이다. 이러한 종종의 세 가지 법[三法]으로써 일체법을 포섭한다.
또한 네 가지 법이 있다. 곧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법과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닌 법, 욕계에 얽매인 법ㆍ색계에 얽매인 법ㆍ무색계에 얽매인 법ㆍ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법, 원인이 선한 법ㆍ원인이 불선한 법ㆍ원인이 무기인 법ㆍ원인이 선도 아니고 불선도 아니며 무기도 아닌 법, 인연을 반연하는 법[緣緣法]ㆍ인연을 반연하지 않는 법[緣不緣法]ㆍ인연을 반연하기도 하고 인연을 반연하지 않기도 하는 법[緣緣不緣法]ㆍ인연을 반연하지도 않고 인연을 반연하지 않는 것도 아닌 법[非緣緣非不緣法]이다. 이러한 네 가지 법으로 일체법을 포섭한다.
【문】 모든 법이 매우 깊고 미묘하여 불가사의하니, 일체 중생으로도 알기 어렵거늘 하물며 한 사람이 온갖 법을 다 알고자 함이겠는가. 마치 어떤 사람이 대지를 재려는 것과 같고, 대해의 물방울을 세려는 것과 같고, 수미산을 재려는 것과 같고, 허공의 끝을 알려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알 수가 없거늘 어찌 일체종으로써 일체법을 알려 하는가?
014_0600_c_01L이 보살은 큰 마음을 일으켜 두루 온갖 중생을 위하여 큰 지혜를 구한다. 그러므로 일체종으로써 온갖 법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마치 의원은 한두 사람을 위해서는 한두 가지 약만 쓰면 족하지만 만일 온갖 중생의 병을 고치려면 온갖 종류의 약을 써야 되는 것과 같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온갖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까닭에 일체종으로써 온갖 법을 알고자 한다.
014_0601_a_01L【답】 물은 뒤에 말씀하심은 부처님의 법으로서는 응당 그러한 것이다. 또한 사리불은 반야바라밀이 매우 깊고 미묘하고 형상 없는 법이어서 이해하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것임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지혜의 힘으로써 갖가지로 생각했다. “만일 모든 법의 무상함을 관한다면 이것은 반야바라밀인가, 아니면 반야바라밀이 아닌 것인가?” 하지만 스스로 알 수 없었기에 물었던 것이다.
또한 사리불은 일체지가 아니었으니, 부처님의 지혜 가운데에서는 마치 어린애와 같았다. 아바단나경(阿婆檀那經)23)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부처님께서는 기원(祇洹)에 머무시고 계셨다. 해질 무렵 경행을 하시는데 사리불이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이때 어떤 매가 비둘기를 쫓으니, 비둘기는 부처님 곁으로 날아와서 숨었다. 부처님께서 경행하시면서 그 비둘기를 지나니 그림자가 비둘기를 덮었다. 그러자 비둘기는 편안해지고 두려움이 제거되어 다시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나중에 사리불의 그림자가 비둘기 위에 이르니, 비둘기는 다시 소리를 지르면서 처음과 같이 두려움에 떨었다.
사리불이 삼매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 비둘기가 8만 대겁 동안 항상 비둘기의 몸이었으나 이보다 이전의 일은 더 알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만일 지난 일을 다 알 수 없다면 미래의 일을 관찰해 보거라. 이 비둘기가 언제라야 벗어나겠는가?”
014_0601_b_01L사리불이 곧 원지삼매(願智三昧)에 들어가서 이 비둘기를 관찰해보니, 1생ㆍ2생ㆍ3생 나아가서는 8만 대겁 동안 비둘기의 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지난 뒤의 일은 역시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삼매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이 비둘기를 보건대 1생ㆍ2생에서 8만 대겁에 이르기까지 비둘기의 몸을 벗지 못하겠으나 그 뒤의 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과거ㆍ미래 현재의 끝까지를 모르겠사옵니다. 이 비둘기가 언제라야 벗어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비둘기는 성문이나 벽지불이 아는 한계를 넘어서고 다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대겁 동안 항상 비둘기의 몸을 받으리라. 그러다가 죄를 다하고 비둘기의 몸을 벗어나면 5도(道) 가운데 헤매다가 나중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5백 생을 지나야 비로소 예리한 근[利根]을 얻게 되리라.
이때 어떤 부처님이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제도하신 뒤에 무여열반에 드시니, 남기신 법이 세상에 있으리라. 이 사람은 5계를 받은 우바새가 되어 비구에게서 부처님을 찬탄하는 공덕을 듣고는 여기에서 비로소 발심하여 부처가 되기를 서원하리라. 그런 뒤에 3아승기겁 동안 6바라밀을 행하고 10지(地)를 구족해 부처가 되며,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 뒤에 무여열반에 들리라.”
이때 사리불이 참회하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한 마리의 새에 대해서도 그 본말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물며 어찌 일체법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만일 부처님의 이러한 지혜를 알 수 있다면, 부처님의 지혜를 위하여 차라리 아비지옥(阿鼻地獄)26)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겁의 고통을 받는다 해도 마다하지 않으리다.” 이렇듯 모든 법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묻게 되는 것이다.
014_0601_c_01L【답】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렇게 말한다. “무루지혜[無漏慧]의 뿌리가 반야바라밀의 모습이다. 왜냐하면 일체의 지혜 가운데 으뜸가는 지혜를 반야바라밀이라 하는데, 무루지혜의 뿌리가 곧 으뜸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무루지혜의 뿌리를 반야바라밀이라 한다.”
【답】 보살이 비록 번뇌를 끊지 못했으나 행하는 모습[行相]은 무루의 반야바라밀을 닮아 있다. 그러므로 ‘무루의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한다. 비유하건대 성문의 사람이 난법(煖法)27)ㆍ정법(頂法)ㆍ인법(忍法)ㆍ세간제일법(世間第一法)을 행함에도 먼저 비슷한 무루의 법을 행하면 나중에 고법지인(苦法智忍)28)이 생기기 쉬운 것과 같다.
비유하건대 장로 아니로두(阿泥盧豆)가 숲 속에서 좌선할 때 정애천녀(淨愛天女) 등이 맑고 묘한 몸으로 찾아와서는 아니로두를 시험하려 했다. 이에 아니로두는 말하기를 “아가씨들아, 푸른빛으로 오너라. 뒤섞인 빛은 필요 없다”라고 하고는 부정(不淨)을 관하려 하였으나 관을 이루지 못했다. 황색ㆍ적색ㆍ백색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때 천수(天須)보살이 큰 가섭에게 물었다. “나이 많은 구숙(舊宿)께서는 12두타(頭陀)의 법을 행하심에 으뜸이거늘 어찌하여 자리에서 스스로 안정을 찾지 못하십니까?” 큰 가섭이 대답했다. “삼계의 5욕이 나를 요동시킬 수 없지만, 이는 보살의 신통한 공덕과 과보의 힘인 까닭에 나로 하여금 이렇게 하게 하는 것이다. 내게 마음이 있어서 스스로 안정치 못한 것이 아니다. 비유하건대 수미산은 사방에서 바람을 일으켜도 움직일 수 없으나 대겁이 다할 때에 이르러 비람풍(毘藍風)이 일어나면 마치 마른 풀이 날리듯 요동치는 것과 같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반야바라밀은 유루의 지혜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보살이 보리수[道樹] 밑에 이르러서야 번뇌를 끊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비록 큰 지혜와 한량없는 공덕이 있었으나 모든 번뇌를 아직 끊지 못했나니, 그러므로 보살의 반야바라밀을 유루의 지혜라 한다.”
014_0602_b_01L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보살의 유루ㆍ무루의 지혜를 모두 합해 반야바라밀이라 한다. 왜냐하면 보살은 열반을 관찰하고 불도를 행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로 인하여 보살의 지혜는 응당 무루일테지만, 아직 번뇌를 끊지 못했고 일을 다 끝내지 못했으므로 유루라 해야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보살의 반야바라밀은 무루이고, 무위이고, 볼 수 없고[不可見], 대할 수 없다[無對].”
014_0602_b_05L復有人言:菩薩般若波羅蜜,無漏無爲,不可見無對。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 반야바라밀은 얻을 수 없는 모습이니, 혹은 있는 듯, 혹은 없는 듯, 혹은 항상한 듯, 혹은 무상한 듯, 혹은 공한 듯, 혹은 실한 듯하다. 이 반야바라밀은 음(陰)ㆍ계(界)ㆍ입(入)에 속하지 않는다.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니며, 법도 아니고 법 아닌 것도 아니며, 취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으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 곧 유무(有無)의 사구(四句)를 벗어나 실로 집착할 바가 없다. 비유하건대 마치 불꽃이 사방 어디에서도 손을 댈 수 없는 것과 같다. 손을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의 모습도 역시 그와 같아서 만질 수 없으니, 삿된 소견의 불이 태우기 때문이다.”
014_0602_c_01L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에 대답한 것이 진실이다. 왜냐하면 깨뜨릴 수 없고,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법이 털끝만치라도 틈이 있다면 모두가 허물이 있으면 가히 깨뜨릴 수 있고, 설사 없다고 할지라도 또한 깨뜨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반야에는 유(有)도 없고 무(無)도 없고 비유비무(非有非無)도 없다. 나아가 이러한 말조차 없으니, 이것을 적멸하고 한량없고 희론 없는 법이라 한다. 그러므로 깨뜨릴 수 없고 무너뜨릴 수 없다. 이것을 참된 반야바라밀이라 하니, 가장 뛰어나 지날 이가 없다. 마치 전륜성왕이 모든 적을 항복시키고도 스스로 교만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 반야바라밀도 이와 같아서 온갖 말과 희론을 깨뜨렸으나 깨뜨린 바가 없는 것이다.
【문】 어떻게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서 능히 육바라밀을 구족한다고 하는가?
014_0602_c_06L問曰:云何名不住法住般若波羅蜜中,能具足六波羅蜜?
【답】 이와 같이 보살은 온갖 법은 항상함이 아니요 무상함도 아니며, 괴로움이 아니요 즐거움도 아니며, 공도 아니요 실도 아니며, 나도 아니요 나 없음도 아니며, 생멸도 아니요 생멸치 않음도 아닌 줄로 관찰하며 이처럼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되 반야바라밀의 모습에 집착되지도 않는다. 이것을 일컬어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 머무른다’고 한다. 만일 반야바라밀의 모습을 취한다면 이는 머무는 법으로 머무는 것이 된다.
【답】 보살은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먼저 서원을 세우기를 “내가 반드시 모든 중생을 제도하리라” 한다. 정진의 힘 때문에 비록 모든 법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아서 열반의 모습 같은 줄 알지만 다시 모든 공덕을 행하여 6바라밀을 구족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써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무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일컬어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 반야바라밀에 머문다’고 한다.
014_0603_a_01L 【문】 단바라밀에는 어떤 이익이 있기에 보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 단바라밀을 갖추고 완성하는가?
014_0602_c_23L問曰:檀有何等利益故,菩薩住般若波羅蜜中,檀波羅蜜具足滿?
【답】 단(檀)에는 갖가지 이익이 있다. 단은 보배 곳간[寶藏]31)이니, 항상 사람의 요구에 따른다. 단은 괴로움을 깨뜨리니 능히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다. 단은 능숙한 마부이니, 하늘에 태어나는 길을 열어 보인다. 단은 선부(善府)이니, 모든 선한 사람을 거둔다.보시는 모든 선한 사람을 거두어 인연이 되어 주기 때문에 거둔다고 말한다. 단은 안온함이니, 목숨을 마칠 때 마음에 두려움이 없다. 단은 자비의 모습이니, 모든 무리를 건진다.
단은 즐거움을 모음이니, 능히 괴로움을 깨뜨린다. 단은 큰 장수이니, 능히 인색함이라는 적군을 무찌른다. 단은 묘한 과보이니, 하늘과 인간이 사랑하는 바이다. 단은 깨끗한 길이니, 현인과 성인이 지나는 곳이다. 단은 선을 쌓음이니, 복과 덕의 문이다. 단은 일을 일으키니, 갖가지 인연을 모은다. 단은 착한 행이니, 사랑스런 결과를 낳는 씨앗이다. 단은 복된 업이니, 선한 사람의 모습이다. 단은 빈궁을 깨뜨리니, 3악도를 끊는다.
단은 복락의 과보를 완전하게 보호한다. 단은 열반의 첫 인연이며, 선한 사람들에게는 요긴한 법이며, 칭찬과 명예를 받는 중심이며, 대중에 들어가도 곤란함이 없게 되는 공덕이며, 마음에 후회 없게 하는 굴택(窟宅)이며, 착한 법의 도를 행하는 근본이며, 갖가지 즐거움의 숲이며, 부귀와 편안함의 복밭이며, 도를 얻어 열반에 이르는 나루터이며, 성인ㆍ대사ㆍ지혜로운 이들이 행할 바이며, 그 밖의 덕이 모자라고 지식이 얕은 무리들이 본받을 바이다.
또한 비유하건대 불 난 집에서 총명한 사람은 형세를 분명히 알아 불이 미치기 전에 급히 서둘러 재물을 끌어내는 것과 같으니, 비록 집은 탔지만 재물은 모두 남았으므로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보시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이와 같아서 몸은 위태한 것이고 재물은 무상한 것임을 잘 알아 복 닦기를 때에 맞추되 마치 불 속에서 재물을 끌어내는 것같이 한다. 뒷세상에서 복을 받음이 마치 저 불난 집의 사람이 다시 집을 고치고 복과 경사로 스스로가 만족하는 것과 같다.
014_0603_b_01L어리석은 사람은 다만 집이 아까운 줄만을 알아 부랴부랴 집을 구하려 한다. 미친 듯이 지혜를 잃은 채 불의 형세도 헤아리지 못한다. 사나운 바람과 치솟는 불꽃에 흙과 돌 등은 잠깐 사이에 쓸어버려 없어져버리니, 집도 구하지 못하고 재물도 다하여 주림과 추위에 시달려 근심과 고통 속에 한 평생을 마친다.
인색한 사람 역시 이와 같으니, 몸과 목숨이 무상하여 잠시도 보전할 수 없는 것임을 알지 못하여 더더욱 거두어 모으고 지키며 아깝게 수호하지만, 죽음이 오는 일 기약 없다가 갑자기 한 목숨 끊어지면 몸은 흙이나 나무처럼 흘러 다니고, 재물은 쓰레기와 함께 버려진다.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근심과 고통 때문에 계책을 그르치는 것과 같다.
또한 큰 사람은 큰 마음으로 능히 크게 보시하고, 능히 스스로를 이롭게 하거니와 작은 사람은 작은 마음으로 남을 이롭게 하지도 못하고, 자신을 보호하지도 못한다.
014_0603_b_11L復次,大人大心,能大布施,能自利己;小人小心,不能益他,亦不自厚。
또한 비유하건대 용맹한 장수는 적을 보면 반드시 소탕해 없애기를 기약하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이 밝아서 진리를 깊이 깨달았으므로 인색함의 적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꺾어버리어 반드시 뜻대로 이루어지게 한다. 좋은 복밭을 만나고 좋은 시절시절이라 함은 보시할 시기이니, 만나고서도 보시하지 않으면 때를 잃었다 한다.을 만나면 일을 깨닫고 마음이 응해 능히 크게 보시를 한다.
보시의 공덕은 부귀와 기쁨이다. 계행을 지니는 사람은 하늘에 태어나며, 선정과 지혜는 마음이 맑아지고 집착함이 없어 열반의 도를 얻는다. 보시의 복은 열반의 길에 좋은 양식이다. 보시를 생각하기에 환희하고, 환희하기에 마음이 하나가 되며, 하나 된 마음으로 생멸이 무상함을 관하고, 생멸이 무상함을 관하기 때문에 도를 얻는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그늘을 구하기 때문에 나무를 심으며, 혹은 꽃을 구하고 열매를 구하기 위하여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보시의 과보를 구함도 이와 같으니, 이 세상과 뒷세상의 즐거움은 마치 그늘을 구함과 같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는 꽃을 구함과 같으며, 성불은 열매를 구함과 같다. 이것이 단의 갖가지 공덕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착한 생각으로부터 몸과 입의 업을 일으키면 역시 단이 된다”고 하며, 또한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믿음과 복밭과 재물, 이 세 가지 일이 화합할 때 마음에서 희사할 생각이 우러나 능히 인색함을 깨뜨리면 이를 단이라 한다. 비유하건대 자의 관법[慈法]으로 중생들이 즐거워함을 관찰하면 마음에서 인자한 생각이 우러나는 것과 같다. 보시의 마음에 속하는 법[心數法]33)도 이와 같아서 세 가지 일이 화합하여 마음속에 희사할 생각을 내고 능히 인색함을 깨뜨린다.”
보시에 세 종류가 있으니, 욕계에 얽매이는 것과 색계에 얽매이는 것과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단주에 말하기를 ‘성인은 보시를 하되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한다’고 했다.
014_0603_c_18L檀有三種:或欲界繫,或色界繫,或不繫。丹本注云:聖人行施故名不繫
014_0604_a_01L마음과 상응하는 법이란 마음의 움직임[心行]을 따라 마음과 더불어 생기는 것이니, 물질의 법[色法]이 능히 대상[緣]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업도 아니다. 업과 상응한다 함은 업의 움직임[業行]을 따라 업과 더불어 생기는 것이니, 전생의 업보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두 가지 수행이 있으니, 행하는 수행과 얻는 수행이다. 두 가지 증득이 있으니, 몸으로 증득함과 지혜로 증득함이다. 사유단(思惟斷)과 부단(不斷)의 두 가지 견단(見斷)이나 유각유관(有覺有觀)34)의 법은 범부와 성인이 함께 행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아비담에서 널리 분별하여 말한 바와 같다.
또한 보시에 두 가지가 있으니, 깨끗함과 더러움이다. 더러운 보시라 함은 다만 베풀기만 하고 이룸이 없는 것이다. 설사 이루려는 일[爲]이 있더라도 재물을 구하기 위하여 보시하거나, 남이 창피해서 보시하거나, 책망 듣기 싫어서 보시하거나, 두려워서 보시하거나, 남의 기쁨을 사기 위해 보시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여 보시하거나, 사람을 홀리어 기쁘게 하기 위하여 보시하거나, 자신이 부귀하기 때문에 보시하거나, 경쟁 삼아 이기려고 보시하거나, 질투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보시하거나, 교만하여 높은 체하기 때문에 보시하거나, 명예 때문에 보시하거나, 주술적인 바람[呪願]을 위해서 보시하거나, 쇠운을 벗어나 길운을 구하기 때문에 보시하거나, 대중을 모으기 위하여 보시하거나, 가난한 이를 업신여겨 공경치 않으면서 보시하는 등 이와 같은 갖가지 보시를 더러운 보시라 한다. 깨끗한 보시란, 위의 여러 가지와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니, 이를 깨끗한 보시라 한다.
또한 도를 위하는 까닭에 보시하며, 청정한 마음이 생겨나 모든 번뇌가 없고, 금생과 후생의 과보를 구하지 않고, 공경하고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니, 이를 깨끗한 보시라 한다. 깨끗한 보시는 열반의 길로 나아가는 자량이다. 그러므로 ‘도를 위하는 까닭에 보시한다’고 한다. 만일 아직 열반을 얻기 못했을 때 보시하면 이는 인간이나 하늘의 과보인 즐거움 받을 인이 된다. 깨끗한 보시라 함은 마치 꽃으로 영락을 새로 만들어서 흩어지지 않아 향기롭고 정결하며 선명한 것과 같다. 열반을 위해 깨끗한 보시를 베풀어 과보의 향기를 얻음도 이와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나기 어려우니, 첫째는 출가한 이로서 비시해탈(非時解脫)한 비구요, 둘째는 집에 있는 속인으로서 능히 맑게 베푸는 사람이다. 이 깨끗한 보시의 모습은 한량없는 세대에까지 전달되어 세세에 잃지 않는다. 마치 중요한 문서가 끝까지 소실되지 않는 것과 같다. 이 보시의 과보는 인연이 화합할 때 문득 이루어지나니, 마치 나무가 시절을 만나면 문득 꽃과 잎과 열매가 생기고, 만일 아직 시절이 이르지 않으면 인만 있고 과가 없는 것과 같다.
보시한 물건에 대하여 아까워하지 않기 때문에 인색함을 제하고, 받는 이를 공경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질투를 제하고, 곧은 마음으로 보시하기 때문에 아첨과 굽음을 제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보시하기 때문에 들뜸을 제하고, 깊이 생각해서 보시하기 때문에 후회를 제하고, 받는 이의 공덕을 생각하기 때문에 공손치 못함을 제하고, 스스로 마음을 거두기 때문에 염치없음[不悔]을 제하고, 남의 좋은 공덕을 알기 때문에 남부끄러움[不悔]을 제하고, 재물에 집착되지 않기 때문에 애착을 제하고, 받는 이를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성냄을 제하고, 받는 이를 공경하기 때문에 교만을 제하고, 착한 법을 행할 줄 알기 때문에 무명(無明)을 제하고, 과보가 있음을 믿기 때문에 삿된 소견을 제하고, 결정코 과보가 있는 줄 알기 때문에 의심을 제한다.
이와 같은 갖가지 착하지 못한 번뇌들이 보시할 때에 모두 얇아지고 갖가지 착한 법을 모두 얻게 된다. 보시할 때에는 6근(根)이 청정해지고 착한 욕심이 생겨난다. 착한 욕심이 생기나는 까닭에 속마음이 청정해지고, 과보의 공덕을 관하는 까닭에 믿는 마음이 생기고, 몸과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까닭에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고,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까닭에 마음이 하나의 상태가 되고, 마음이 하나가 되는 까닭에 진실한 지혜가 생겨난다. 이러한 갖가지 착한 법을 모두 얻는다.
또한 보시를 할 때에 마음속에 비슷한 8정도(正道)가 생겨난다. 곧 보시의 과보를 믿고 희망하기 때문에 바른 견해[正見]를 얻고, 바른 견해에서 생각이 어지러워지지 않기 때문에 바른 생각[正思惟]을 얻고, 청정한 말을 하기 때문에 바른 말[正語]을 얻고, 몸의 행동을 바르게 하기 때문에 바른 행위[正業]를 얻고, 갚음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바른 생활[正命]을 얻고, 부지런한 마음으로 보시하기 때문엔 바른 노력[正方便]을 얻고, 보시할 생각을 쉬지 않기 때문에 바른 기억[正億]을 얻고, 마음이 안정되어 흐트러지지 않기 때문에 바른 집중[正定]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비슷한 서른일곱 가지 착한 법[三十七品]이 마음속에 생겨난다.
014_0604_c_01L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베푸는 일은 32상(相)을 얻는 인연이 된다”고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베풀 때에 마음이 더욱 견고해지므로 발밑이 평평하고 편안한 모습[足下安立相]을 얻으며, 보시할 때에 다섯 가지 일이 둘러싸고 받는 이는 권속이 되는 인연이 되므로 발바닥의 바퀴 모습[足下輪相]을 얻으며, 대단히 용맹한 힘으로 보시하기 때문에 발꿈치가 넓고 평평한 모습[跟廣平相]을 얻고, 보시는 사람을 거두기 때문에 손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는 모습[手足縵網相]을 얻으며, 맛있는 음식을 베풀기 때문에 손발이 보드랍고 일곱 곳이 풍만한 모습[手足柔軟七處滿相]을 얻고,
보시로써 생명을 이롭게 하므로 손가락이 길고 몸이 굽지 않아 크고 곧은 모습[長指身不曲大直相]을 얻고, 보시할 때에 ‘내가 마땅히 보시해 주리라’고 말함에 보시할 마음이 더욱 늘어나기 때문에 발등이 높고 몸의 털이 위로 향한 모습[足趺高毛上向相]을 얻고, 보시를 할 때에 받을 이가 구하는 말을 일심으로 잘 듣고 정중히 약속하되 반드시 빨리 얻게 하려는 까닭에 이니연(伊泥延) 사슴 같은 다리 모습을 얻고, 구하는 이에게 성을 내거나 업신여기지 않기 때문에 손이 무릎을 지나는 모습[臂長過膝相]을 얻고, 구하는 이의 뜻을 알아 말하기 전에 보시하므로 성기가 드러나지 않는 모습[陰藏相]을 얻고,
좋은 의복과 침구와 금ㆍ은 등의 진귀한 보배로 보시하므로 황금빛 몸매[金色身相]와 얇은 피부모습[薄皮相]을 얻는다. 또한 보시할 때 받은 이가 혼자서 마음대로 쓰게 하므로 낱낱 구멍마다 털 하나만이 나고[一一孔一毛生], 눈썹 사이에 흰 털이 나고[眉間白毫相], 구하는 이가 달라고 하면 즉석에서 ‘주리라’ 하였으므로 그 업 때문에 윗몸이 사자의 어깨같이 원만한 모습[上身如師子肩圓相]을 얻고, 병들은 자에겐 약을 주고 시장한 자에겐 음식을 주므로 양쪽 겨드랑 밑이 풍만한 모습[兩腋下滿]을 얻고, 최상의 맛난 음식을 얻는 모습[最上味相]을 얻고,
보시할 때에 남에게 보시하기를 권하고 위로해서 보시의 길을 열었으므로 머리에 상투를 지닌 모양[肉髻相]과 니구로다나무같이 몸이 원만한 모습[身圓如尼拘盧相]을 얻고, 구걸하러 온 이에게 주고자 할 때에 부드럽고 진실한 말로 허락하고 반드시 주어 헛되지 않으므로 넓고 긴 혀의 모습[廣長舌相]과 범의 음성과 같고[梵音相] 가릉비가 새의 소리 같은 모습[迦陵毘伽鳥聲相]을 얻고,
014_0605_a_01L 보시할 때에 실다운 말과 이로운 말을 하므로 사자의 뺨 같은 모습[師子頰相]을 얻고, 보시할 때에 받을 이를 공경하여 마음이 청정하므로 치아가 희고 고른 모습[牙白齒齊相]을 얻고, 보시할 때에 진실한 말과 화합하는 말을 하므로 치아가 빽빽한 모습[齒密相]과 마흔 대의 치아모습[四十齒相]을 얻고, 보시할 때에 성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 평등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보므로 푸른 눈[靑眼相]과 눈가가 황소 같은 모습[牛王相]을 얻는다. 이것이 32상의 인연을 심는 것이다.
또한 보시를 하되 지방의 필요에 따라 보시하므로 과보를 얻음이 더욱 많다. 먼 길에서 보시하므로 복 얻음이 더욱 많고, 항상 보시하여 폐하지 않으므로 갚음을 받음이 더욱 많고, 구하는 이의 소망같이 보시하므로 복 얻음이 더욱 많고, 보시한 물건이 소중하므로 복 얻음이 더욱 많다.
사원이나 동산이나 목욕터 등을 가지고 착한 사람에게 베푸니 갚음을 받음이 더욱 많고, 승가[僧]에 보시하므로 갚음을 받음이 더욱 많다. 베푸는 이와 받는 이가 모두 덕망이 있으므로단주에 이르기를 보살과 부처님께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이 곧 베푸는 것이요, 부처님ㆍ보살ㆍ아라한ㆍ벽지불에게 보시하면 그들이 곧 받는 사람이 된다. 갚음을 받음이 더욱 많고, 갖가지 방법으로 받는 이를 공경하므로 복 얻음이 더욱 많고, 얻기 어려운 물건을 보시하므로 복 받음이 더욱 많다.
014_0605_b_01L불가라성에서 북을 치고 큰 모임이 이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에 갔다가 승가들의 모임을 보고 신심이 깨끗해져서 곧 유나(維那)36)에게 물었다. “이 대중에 대하여 얼마나 되는 물건을 가지면 하루의 음식을 준비할 수 있겠소?” 유나가 이렇게 대답했다. “30냥이면 족히 하루의 음식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는 곧 가지고 있던 30냥의 돈을 유나에게 주고는 말했다. “나를 위해 하루의 음식을 장만해 주시오. 나는 내일 오겠습니다.” 그리고는 빈손으로 돌아오니, 부인이 물었다. “12년 동안 무엇을 얻었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30냥의 금을 벌었소.” “그 30냥의 금은 어디에 있나요?” “이미 복밭에 씨를 뿌렸소.” “복밭이라뇨?” “승가에게 공양하였소.”
그 아내는 당장 남편을 결박하여 관청에 보내 죄를 다스리고 일을 밝히고자 했다. 대관(大官)이 물었다. “무슨 사연인가?” 아내가 대답했다. “제 남편이 미치고 어리석어서 12년 동안 객지에서 번 30냥의 금을 처자는 생각하지도 않고 몽땅 남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관제(官制)대로 묶어서 끌고 왔습니다.” 대관이 다시 남편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처자식에게는 주지 않고 남에게 주었는가?”
남편이 대답했다. “저는 전생에 공덕을 닦지 못하여 금생에 가난하고 온갖 고통을 받습니다. 그런데 금생에 복밭을 만났으니, 복의 씨앗을 심지 않으면 내생에도 가난하여 가난함이 끊이지 않고 벗어날 시기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당장에 가난함을 버리고자 하여 돈을 전부 승가에 베풀었습니다.”
그리고는 몸에 걸었던 영락을 벗어 주고 타던 말과 마을 하나를 주면서 그에게 말했다. “그대가 처음으로 승가에게 보시했으나 승가는 아직 음식을 들지 않았소. 그렇다면 이는 곡물의 종자를 아직 심지도 않았는데 싹이 이미 돋아난 것이오. 커다란 과보가 바야흐로 내생에 있을 것이오.” 이것으로 보아 얻기 어려운 물건을 모두 보시하면 그 복이 가장 많다고 할 수 있다.
014_0605_c_01L또한 세간의 단(檀), 세간을 벗어난 단, 성인이 칭찬하는 단, 성인이 칭찬하지 않는 단, 불ㆍ보살의 단, 성문의 단이 있다. 어떤 것이 세간의 단인가? 곧 범부의 보시와 또는 성인이 유루(有漏)의 마음으로 짓는 보시이니, 이를 세간의 단이라 한다.
또한 세간의 베풂은 부정하고, 세간을 벗어난 보시는 깨끗하다. 두 가지 번뇌에서 하나는 애욕에 속하고 하나는 견해에 속하는데, 이 두 가지 번뇌에 끌리면 이것을 세간의 단이라 하고, 두 가지 번뇌가 없으면 이것을 세간을 벗어난 단이라 한다. 만일 세 가지 장애[礙]가 마음을 결박한다면 이는 세간의 단이다. 왜냐하면 인연으로 생긴 모든 법은 실로 나가 없거늘 ‘내가 주고, 그가 받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간의 단이라 한다.
보시하는 재물은 인연화합을 좇아 있는 것으로 어떤 법도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 마치 비단이나 베가 뭇 인연이 화합해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 올을 제하고 실을 제하면 비단이나 베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법도 이와 같아서 한 모습[一相]이고 모습 없으며, 모습은 항상 스스로 공한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을 일으켜 있다고 계교할 뿐이다. 뒤바뀌어 진실치 않으니, 이것이 세간의 단이다.
위라마는 재물이 한량없고 값진 보물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나를 일컬어 부귀한 사람이고 재물이 한량이 없어 중생들을 이롭게 한다고 한다. 지금이 바로 알맞은 때이니, 크게 보시를 하리라. 부귀가 비록 즐거우나 일체가 무상하며, 5가(家)39)가 공유하니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고 사람의 마음만 산란케 하고, 가벼이 치달려 안정치 못함이 마치 원숭이가 잠시도 멈추어 있지 못함과 같다. 사람이 목숨을 마침은 번갯불이 사라지는 것보다 빠르다. 사람의 몸은 덧없어 뭇 고통의 늪이다. 이런 까닭에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014_0606_b_01L이와 같이 생각하고는 손수 글을 지어 염부제 안의 모든 바라문과 출가한 사람들께 널리 알렸다. “원하건대 각각의 대덕들이시여, 부디 저의 집에 왕림하시기 바랍니다. 큰 보시를 베풀어 12년을 채우고자 합니다.” 그리고는 배를 띄울 만큼 많은 국[飯汁]을 마련하고, 소락[酪]으로 못[池]을 채우고, 쌀과 밀가루를 산처럼 쌓고, 소유(蘇油)를 개울처럼 흐르게 하고, 그 밖의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을 모두 지극한 것으로 마련해 12년간 보시를 행하고자 했다.
8만 4천의 흰 코끼리를 물소가죽으로 만든 갑옷[犀甲]과 금으로 장식하고 이름난 보배로 대금당(大金幢)을 세워 네 가지 보배로 장엄했다. 8만 4천의 말을 또한 물소가죽으로 만든 갑옷과 금으로 장식하고 네 가지 보물을 주렁주렁 걸었다. 8만 4천의 수레를 모두 금ㆍ은ㆍ유리ㆍ파리 등의 보배로 장식하고 그 위를 사자ㆍ범ㆍ이리 등의 가죽으로 덮고 백검(白劍)과 바라(婆羅)40)와 보배 휘장과 여러 가지 장식으로 장엄했다.
8만 4천의 네 가지 보배로 만든 평상에 갖가지 빛깔을 찬란하게 칠하고 갖가지 보드랍고 매끄러운 요를 펴서 잘 꾸몄으며, 붉은색 베개와 비단 이불을 평상 양쪽 끝에 두고 묘한 옷과 화려한 복장도 모두 갖추어 놓았다. 8만 4천의 황금 발우에 은싸래기를 가득히 담고, 은 발우에는 황금싸래기를 가득히 담고, 유리(琉璃) 발우에는 파리(玻璃) 싸래기를 가득히 담고, 파리 발우에는 유리싸래기를 가득히 담았다.
8만 4천 마리의 젖소가 있어 소마다 젖이 한 섬[石]씩 나오는데, 황금으로 뿔을 장식하고 횐 천으로 옷을 입혔다. 8만 4천의 미녀가 있어 단정하고 복스러운데 모두가 흰 구슬과 유명한 보배를 몸에 걸어 장식했다. 그 요점을 대략 들어봐도 이와 같거니와 세세한 것을 다 기록할 수 없다.
그때 바라바왕과 8만 4천의 여러 작은 왕들과 신하들과 부호와 장자들이 제각기 10만 냥의 오래된 금전[金錢]을 기증해서 공양준비를 도와 법을 설할 집[祠]을 마련하고 공양준비가 완전히 갖추어지자 보시를 마쳤다. 석제바나민(釋提婆那民)이 와서 위라마보살에게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했다.
이때에 마왕(魔王)이 정거천인에게 말했다. “이 바라문들은 모두가 출가하여 계를 지키고 청정하게 도에 들었거늘 어찌하여 말하기를 ‘복밭이 없다’ 하는가?” 정거천인이 대답했다. “이 보살은 불도를 위하여 보시하건만 이 여러 사람들은 모두가 삿된 소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복밭이 없다고 했다.” 마왕이 정거천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불도를 위하여 보시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이때 정거천인이 바라문의 몸으로 변화해서는 금병과 금지팡이를 들고 위라마보살에게 가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크게 보시하여 버리기 어려운 것을 능히 버렸거늘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전륜성왕이 되어서 일곱 가지 보배와 천 명의 아들을 갖추고 네 천하를 통치하려 하는가?” 보살이 대답했다. “그런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석제바나민이 되어서 8천 나유타 하늘 아씨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가?” “아니다.” “그러면 6욕천(欲天)의 주인이 되려하는가?” “아니다.” “그러면 범천왕의 삼천대천세계의 주인이 되어 중생들의 조상이 되고자 하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무엇을 구하는가?” 이때 보살이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했다.
014_0607_a_01L 나는 욕심 없는 경지를 구하고 생ㆍ노ㆍ병ㆍ사를 떠나서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하니
이러한 불도(佛道)를 구하노라.
014_0606_c_23L我求無欲處, 離生老病死, 欲度諸衆生,
求如是佛道。
변화한 바라문이 말했다. “시주(施主)여, 불도는 얻기 어려워서 큰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대 마음이 나약해 쾌락에 습관 들었으니 이런 도를 끝내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먼저 말했듯이 전륜성왕이나 석제바나민이나 6욕천왕이나 범천왕 등은 되기 쉬우니, 이런 것들을 구하는 것만 못하리라.” 이에 보살은 “그대는 나의 지극한 서원을 들어보라”고 말하고는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했다.
014_0607_b_01L이에 보살은 생각했다. ‘이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내 마음이 청정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혹은 보시하는 물건이 구족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무슨 이유로 이렇게 되었을까.’ 스스로 제사에 관한 경전[祠經]인 16종의 책을 살펴보았지만 조금도 티가 없었다. 이때 많은 하늘의 무리들이 보살에게 말했다. “그대는 의심하거나 후회하지 마시오. 그대가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이 바라문들이 악하고 삿되고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했다.
거룩한 바라문님이시여 맑은 유리빛 물이 위에서 흘러내려 아래로 부어지니 그대의 손 안에 떨어지리다.
014_0607_b_18L大婆羅門主, 淸琉璃色水, 從上流注下,
來墮汝手中。
이때 대바라문들은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 합장하고 보살께 귀명하니, 보살은 이런 게송을 말했다.
014_0607_b_20L是時,大婆羅門衆恭敬心生,合手作禮,歸命菩薩。菩薩是時說此偈言:
내가 지금 베푸는 것은 삼계의 복을 구함이 아니니 중생들을 위하는 까닭에 그로써 불도를 구하려 함이라네.
014_0607_b_22L今我所布施, 不求三界福, 爲諸衆生故,
以用求佛道。
014_0607_c_01L 이 게송을 말할 때 온갖 땅과 산ㆍ개울ㆍ숲ㆍ나무들이 모두 여섯 번에 걸쳐 진동했다. 위라마는 본래 이 대중이 공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베푼다고 했으나 이미 이 대중 가운데 받을 만한 이가 없음을 알았으므로 이제 가엾이 여기어 받은 물건으로 그들에게 베풀었다.
본생인연(本生因緣)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본래 보살이었을 때 큰 나라의 왕이 되셨는데 당시에는 세상에 부처님도 없었고 법도 없었고 비구승가도 없었다. 왕은 사방으로 나아가 불법을 구했으나 끝내 얻지 못했다. 그때 한 바라문이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부처님이 설하신 게송을 아니, 내게 공양한다면 마땅히 그대에게 말해 주리다.” 즉시 왕이 물었다. “어떠한 공양을 구하는가?” 바라문이 대답했다. “그대가 능히 몸 위의 살을 찢어서 등심지[燈炷]를 삼아 나에게 공양한다면 그대에게 게송을 일러 주리다.”
왕은 생각했다. ‘나의 이 몸은 위태롭고 약하고 부정하다. 여러 생 동안 고통을 받은 일은 이루 헤아릴 수 없건만 아직 이 몸을 법을 위해 쓴 적은 없다. 이제 비로소 쓸 곳을 얻었으니, 아까울 것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전다라(栴陀羅)41)를 불러서는 자신의 상반신을 베어 등불의 심지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흰 천으로 살을 감고 소락 기름을 부은 뒤에 일시에 불을 붙여서 온몸을 태웠다. 불이 타오르자 이윽고 그 바라문은 게송을 하나 일러 주었다.
또한 석가모니부처님은 본래 한 마리의 비둘기가 되어 설산에 있었는데, 때마침 큰 눈이 내렸다. 어떤 사람이 길을 잃고는 곤궁에 빠져 괴로워했다.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린 나머지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비둘기가 이 사람을 보자 즉시 날아가서 불을 구해다가 그를 위해 나무를 모아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을 불 속에 던져 이 굶주린 사람에게 베풀었다.
말로써 설명하는 것만을 일러 법보시라 하지는 않는다. 항상 맑은 마음과 착한 생각으로 일체를 교화하는 것을 법보시라 한다. 비유하건대 재물보시는 착한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복덕이라 할 수 없듯이, 법보시도 그와 같아서 맑은 마음과 착한 생각으로 하지 않는다면 법보시가 되지 못한다.
간략히 말하건대 법에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중생을 괴롭히지 않고 착한 마음으로 가엾이 여기는 것이니, 이는 불도에 드는 인연이다. 둘은 모든 법이 참으로 공함을 관찰하는 것이니, 이는 열반에 이르는 인연이다. 대중에 대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이 두 가지 법을 말하되 명예나 이익이나 공경과 공양을 위하지 않으면 이는 청정한 불도의 법보시가 된다.
이때 삼장(三藏)에 통달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젊은 법사로서 총명하고 단정했다. 설법할 차례가 되어 왕의 곁에 앉았는데 입에서 이상한 향취가 나거늘 왕이 매우 이상하게 여겨 생각했다. ‘점잖지 못하게도 향기로써 궁녀들의 마음을 흔들려 하는구나.’ 그는 비구에게 물었다. “입에 무엇이 들었는가? 입을 열어 보라.” 즉시에 입을 열었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물을 주어 양치질을 하게 하였으나 향취는 여전했다.
014_0608_c_01L 왕이 말했다. “대덕이시여, 그렇게 대략 말씀하셔서는 알 수 없으니, 나를 위해 자세히 말씀해 주시오.” 비구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일심으로 내 말씀을 잘 들어 보십시오. 나는 옛날 가섭부처님의 법 가운데 설법하는 비구가 되어 항상 대중 가운데에서 환희하고 연설하며, 가섭 세존의 한량없는 공덕과 모든 법의 실상과 한량없는 법문을 정성껏 찬탄해서 일체 중생을 가르쳐 깨우쳤습니다. 이때부터 항상 묘한 향이 입에서 나와 세세에 끊이지 않으니, 항상 오늘과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게송을 읊었다.
모든 초목과 꽃의 향기보다 이 향취가 훨씬 뛰어나니 능히 일체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세세에 항상해 멸하는 일 없네.
014_0608_c_04L草木諸華香, 此香氣超絕, 能悅一切心,
世世常不滅。
그때에 국왕이 부끄러움과 기쁨이 엇갈려 비구에게 말했다. “처음 보는 일이로소이다. 설법하는 공덕의 큰 과보가 이러하다니 말입니다.” 비구가 말했다. “이는 꽃이라고는 할지언정 아직 과보는 아닙니다.” 왕이 물었다. “그 과보란 어떤 것입니까? 부디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구가 대답했다. “간략히 말해 과보에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자세히 들어보십시오.” 그리고는 곧 게송을 말했다.
큰 명예와 단정함과 즐거움과 공경을 얻고, 위광(威光)이 일월 같아 모두에게 사랑 받는다.
014_0608_c_11L大名聞端政, 得樂及恭敬, 威光如日月,
爲一切所愛。
변재에 큰 지혜까지 있고 일체의 번뇌 능히 다하며 괴로움이 멸하고 열반 얻으니 이것이 모두 열 가지라오.
014_0608_c_13L辯才有大智, 能盡一切結,
苦滅得涅槃, 如是名爲十。
왕이 물었다. “대덕이시여,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한다면 어찌해서 이러한 과보를 얻습니까?” 그러자 비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014_0608_c_14L王言:“大德!讚佛功德,云何而得如是果報?”爾時,比丘以偈答曰: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여 모두가 두루 듣게 하였으니 이러한 과보 있는 까닭에 커다란 명예를 얻는다네.
014_0608_c_16L讚佛諸功德, 令一切普聞, 以此果報故,
而得大名譽。
부처님의 진실한 공덕 찬탄하여 모두가 기뻐하게 하였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세세에 항상 단정하다네.
014_0608_c_18L讚佛實功德, 令一切歡喜,
以此功德故, 世世常端正。
남에게 죄와 복을 말하여 편안하고 즐거움을 얻게 했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즐거움 누리고 항상 기쁘다네.
014_0608_c_19L爲人說罪福,
令得安樂所, 以此之功德, 受樂常歡豫。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여 모두의 마음을 굴복시켰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항상 공경 받는 과보를 얻네.
014_0608_c_20L讚佛功德力, 令一切心伏, 以此功德故,
常獲恭敬報。
설법의 등불을 밝게 드러내 중생들을 비추어 깨우쳤나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위광이 해처럼 밝다네.
014_0608_c_22L顯現說法燈, 照悟諸衆生,
以此之功德, 威光如日曜。
갖가지로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여 모두를 기쁘게 하였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항상 남의 사랑 받는다네.
014_0608_c_23L種種讚佛德,
能悅於一切, 以此功德故, 常爲人所愛。
014_0609_a_01L 묘한 말로 부처님을 찬탄하여 그 덕이 한량없고 끝없다 했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변재(辯才)가 다하는 일 없네.
014_0609_a_01L巧言讚佛德, 無量無窮已, 以此功德故,
辯才不可盡。
부처님의 묘한 법을 찬탄하여 아무도 지날 이 없다 했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큰 지혜 있고 청정하다네.
014_0609_a_03L讚佛諸妙法, 一切無過者,
以此功德故, 大智慧淸淨。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할 때 사람들의 번뇌 얇아지게 했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번뇌가 다하고 모든 때가 멸하네.
014_0609_a_04L讚佛功德時,
令人煩惱薄, 以此功德故, 結盡諸垢滅。
두 가지 번뇌가 다하였기에 열반의 몸 이미 증득했으니 마치 소나기가 퍼부은 뒤에 불은 꺼져 열기조차 없듯이.
014_0609_a_05L二種結盡故, 涅槃身已證, 譬如澍大雨,
火盡無餘熱。
다시 법사가 왕에게 말했다.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 있거든 지금이 바로 물을 때입니다. 지혜의 화살로 그대의 의혹의 군사를 무찔러 드리겠습니다.” 왕이 말했다. “법사여, 나는 마음이 기꺼우며 깨달아 의심이 없습니다. 커다란 복덕을 지닌 이께서는 부처님의 공덕을 잘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갖가지 인연으로 법을 설해서 사람을 제도하는 것을 법보시라 한다.
【답】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보시 가운데서 법보시가 수승하다. 그것은 왜냐하면 재물보시의 과보는 욕계에 있지만, 법보시의 과보는 삼계에 있거나 혹은 삼계를 벗어나기도 하기 때문이다”고 하셨다. 입으로 말함이 청정해서 깊이 도리가 통함을 얻는다면, 마음도 역시 그것을 얻는 까닭에 삼계를 벗어나게 된다.
014_0609_b_01L또한 재물보시의 습관[法]은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세상에 항상 있지만, 법보시는 부처님이 계신 세상에만 있다. 그러므로 법보시가 매우 어려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어찌하여 어려운가? 형상을 지닌 벽지불에 이르기까지도 설법은 하지 못하고 다만 다니면서 걸식하고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변화하여 사람들을 제도할 뿐이다.
또한 법보시로부터 능히 재물보시가 나오며, 성문ㆍ벽지불ㆍ보살들에 이르고 부처에 이른다. 또한 법보시는 능히 모든 법의 유루와 무루, 물질의 법과 물질이 없는 법, 유위와 무위의 법, 착한 법과 착하지 못한 법과 무기의 법, 항상한 법과 무상한 법, 있음의 법과 없음의 법 등 온갖 법의 진실한 모습과 청정하여 파괴할 수 없음을 잘 분별하나니, 이런 법을 간략히 설명하면 8만 4천이 되거니와 자세히 말하면 한량이 없다.
이러한 갖가지 법이 모두가 법보시에 의하여 분별해서 밝게 알 수 있으니, 그러므로 법보시가 수승하다고 한다. 이 두 가지 보시를 합쳐서 단(檀)이라 한다. 이 두 가지 보시를 행하여 부처가 되기를 원하면 능히 사람들로 하여금 불도에 이르게 하거늘 하물며 그 밖의 것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