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4_0633_c_01L대지도론 제14권
014_0633_c_01L大智度論釋初品中尸羅波羅蜜義之餘卷第十四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014_0633_c_02L 龍樹菩薩造


23. 초품 중 시라바라밀을 찬탄한 뜻을 풀이함②
014_0633_c_03L 後秦龜茲國三藏鳩摩羅什奉 詔譯

【문】 시라(尸羅)의 모습은 이미 알았거니와 어떤 것이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1)인가?
014_0633_c_04L 問曰 已知尸羅相云何爲尸羅波羅
【답】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보살이 계행을 지니되 차라리 자신의 몸을 잃어버릴지언정 조그마한 계도 범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시라바라밀이다” 한다.
014_0633_c_06L答曰有人言菩薩持戒寧自失身不毀小戒是爲尸羅波羅蜜
앞의 『소타소마왕경(蘇陀蘇摩王經)』2)에 의하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금계(禁戒)를 온전히 지킨 이야기가 있다. 곧 보살은 전생에 힘센 독룡(毒龍)이었는데, 어떤 중생이 그 앞에 있으되 몸의 힘이 약한 자는 눈으로 쳐다만 보아도 곧 죽어버리고, 힘이 센 자는 정신이 돌아 죽어버렸다.
그 용이 일일계를 받고, 집을 떠나 고요를 구해 숲 속으로 들어가서 사유했는데, 너무 오래 앉아 있었기에 피로해져서 잠이 들었다.
용이란 잘 때에는 그 모습이 마치 뱀과 같고, 몸에 무늬가 있는데 7보의 빛깔로 뒤섞여 있다.
014_0633_c_07L如上『蘇陁蘇摩王經』中說不惜身命以全禁如菩薩本身曾作大力毒龍若衆生在前身力弱者眼視便死身力强氣往而死是龍受一日戒出家求 入林樹閒思惟坐久疲懈而睡睡時形狀如蛇身有文章七寶雜
사냥꾼이 그것을 보고 놀랄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이 희유한 가죽을 국왕께 헌상하여 옷감으로 쓰게 하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는 곧 작대기로 그 머리를 누르고 칼로 그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014_0633_c_14L獵者見之驚喜言曰以此希有難得之皮獻上國王以爲服飾不亦宜 便以杖按其頭以刀剝其皮
용은 생각했다.
“내 힘이 자재하여서 이 나라를 뒤집기를 마치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있거늘 이 사람은 극히 작은 물건인데 어찌 나를 괴롭히는가. 내가 지금 계를 지키기 때문에 이 몸을 생각지 않고 부처님의 말씀만을 따라야 하리라.”
여기에서 스스로 참아 눈을 감고는 보지 않고, 기운을 막아 숨을 쉬지 않은 채 그 사람을 가엾이 여겼다. 계를 지키려는 까닭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껍질이 벗겨지면서도 후회하지 않았다.
이미 가죽을 잃고는 붉은 살이 땅에 놓였는데 때 마침 햇살이 몹시 뜨거워 땅 위를 꿈틀거리면서 큰물을 찾으려 했으나 작은 벌레들이 와서 그의 살을 물어뜯었다. 하지만 계행을 지니는 까닭에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생각했다.
014_0633_c_16L龍自念言我力如意傾覆此國其如反掌此人小物豈能困我我今以持戒故不計此身當從佛語於是自忍眠目不視閉氣不息憐愍此人爲持戒故一心受剝不生悔意旣以失皮赤肉在地時日大熱蜿轉土中欲趣大水見諸小虫來食其身爲持戒故不復敢動
014_0634_a_01L“나는 지금 이 몸을 벌레들에게 보시하는 것은 불도를 구하는 까닭이다. 지금 살로써 보시하여 그들의 몸을 살찌우게 해 주고, 나중에 성불하거든 다시 법으로 보시하여 그들의 마음을 이롭게 해 주리라.”
이렇게 맹세하자 몸이 마르고 목숨이 끊어져 둘째 하늘인 도리천에 태어났다.
014_0634_a_02L自思惟言今我此身以施諸虫爲佛道故今以肉施以充其身後成佛時當以法施以益其心如是誓已身乾命絕卽生第二忉利天上
그때의 독룡은 석가문불이시고, 사냥꾼은 제바달 등의 여섯 외도[六師]이고, 작은 벌레의 무리들은 석가문불께서 처음으로 법의 바퀴를 굴리실 때 도를 얻은 8만의 하늘 무리들이다.
014_0634_a_05L爾時毒龍釋迦文佛是是時獵者提婆達等六師是也諸小虫輩釋迦文佛初轉法輪八萬諸天得道者是
보살이 계행을 지니되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결정코 후회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으니, 이를 시라바라밀이라 한다.
014_0634_a_08L菩薩護戒不惜身命決定不悔其事如是是名尸羅波羅蜜
또한 보살은 계를 지니고 불도를 위한 까닭에 이렇게 큰 서원을 세운다.
“반드시 중생을 제도하리라. 금생이나 내생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으며, 좋은 이름이나 헛된 명예를 바라지 않으리라. 또한 스스로가 일찍 열반에 들기를 바라지 않으며, 오직 중생들이 긴 물결 속에 빠져 사랑에 속고 어리석음에 그르치는 까닭에 내가 마땅히 그들을 구제하여 피안에 이르게 하리라.”
한마음으로 계를 지니어 좋은 곳에 태어나며, 좋은 곳에 태어나는 까닭에 착한 사람을 만난다. 착한 사람을 만나는 까닭에 지혜가 생기고, 지혜가 생겨나는 까닭에 6바라밀을 행하게 되며, 6바라밀을 행하는 까닭에 불도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계를 지키는 것을 일컬어 시라바라밀이라 한다.
014_0634_a_10L復次菩薩持戒爲佛道作大要誓必度衆生不求今世世之樂不爲名聞虛譽法故亦不自爲早求涅槃但爲衆生沒在長流愛所欺愚惑所誤我當度之令到彼一心持戒爲生善處生善處故見善人見善人故生智慧生智慧故得行六波羅蜜得行六波羅蜜故得佛如是持戒名爲尸羅波羅蜜
또한 보살이 계행을 지니어 마음으로 착함을 즐기고 청정해짐은 나쁜 길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며, 하늘에 태어나기를 구해서도 아니다. 오직 착함과 청정함을 구하여 계율로써 마음을 길들여서 마음으로 하여금 착함을 즐기게 하려는 것이니, 이것이 시라바라밀이다.
014_0634_a_18L復次菩薩持戒心樂善淸淨不爲畏惡道亦不爲生天但求善淨以戒熏心心樂善是爲尸羅波羅蜜
또한 보살은 크게 인자한 마음으로 계를 지녀 불도에 이르게 되나니, 이것이 시라바라밀이다.
014_0634_a_21L復次菩薩以大悲心持戒得至佛道是名尸羅波羅蜜
또한 보살은 계를 지니어 능히 6바라밀을 내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시라바라밀이라 한다.
014_0634_a_23L復次菩薩持戒能生六波羅是則名爲尸羅波羅蜜
014_0634_b_01L어떻게 지계가 능히 계를 내는가? 곧 5계로 인하여 사미계를 얻고, 사미계로 인하여 율의계(律儀戒)를 얻고, 율의계로 인하여 선정의 계를 얻고, 선정의 계로 인하여 무루의 계를 얻나니, 이것을 일컬어 계에서 계가 생긴다고 한다.
014_0634_b_01L云何持戒能生戒因五戒得沙彌戒因沙彌戒得律儀戒因律儀戒得禪定戒因禪定戒得無漏戒是爲戒生戒
어찌하여 지계가 능히 보시[檀]를 내는가?
014_0634_b_04L云何持戒能生於檀
곧 보시에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재물보시[財施]요, 둘째는 법보시[法施]요, 셋째는 무외보시[無畏施]이다.
계행을 지니어 스스로를 단속하고 모든 중생의 재물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재물보시라 한다. 중생들이 보고는 그의 행을 흠모하거나 그들에게 법을 설해 주어 깨닫게 하거나 또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맑은 계행을 굳게 지니어 일체 중생을 위해 공양의 복밭이 되어 주고, 중생들로 하여금 무량의 복을 얻게 하리라’ 하나니, 이러한 갖가지는 법보시이다.
일체 중생은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계행을 지니어 해치지 않는다면, 이것이 곧 무외보시이다.
014_0634_b_05L檀有三種一者財施二者法施三者無畏施持戒自撿不侵一切衆生財物是名財施衆生見者其所行又爲說法令其開悟又自思我當堅持淨戒與一切衆生作供養福田令諸衆生得無量福如是種種名爲法施一切衆生皆畏於死持戒不害是則無畏施
또한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계행을 지니고, 이 지계의 과보로써 중생들을 위하여 전륜성왕이 되거나 염부제의 왕이 되거나 혹은 천왕(天王)이 되어서 중생들로 하여금 재물이 만족하여 모자람이 없게 하리라. 그런 뒤에야 보리수 밑에 앉아서 마군을 항복받고, 마군을 무찔러 위없는 도를 이루고는 중생들을 위하여 청정한 법을 설해 주어 한량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늙음ㆍ앓음ㆍ죽음의 바다를 건너게 하리라.’
014_0634_b_12L復次菩薩自我當持戒以此戒報爲諸衆生作轉輪聖王或作閻浮提王若作天王令諸衆生滿足於財無所乏短然後坐佛樹下降伏魔王破諸魔軍成無上道爲諸衆生說淸淨法令無量衆生度老死海
이것을 일컬어 지계의 인연으로 보시바라밀을 낸다고 하는 것이다.
014_0634_b_18L是爲持戒因緣生檀波羅蜜
또한 어떤 것이 지계로써 인욕이 생기는 것인가?
云何持戒生忍辱
곧 계를 지니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지금 계를 지니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것인데, 만약 계를 지니면서도 인욕이 없다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비록 계를 파하지는 않았더라도 인욕하는 마음이 없기에 악도를 면치 못하리니, 어찌 분한 생각을 따라 스스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겠는가. 오직 마음 때문에 3악취(惡趣)에 든다. 그러므로 스스로 힘써서 부지런히 인욕을 닦아야 하리라.”
014_0634_b_19L持戒之人心自念言我今持戒爲持心故若持戒無忍當墮地獄雖不破戒以無忍不免惡道何可縱忿不自制心但以心故入三惡趣是故應當好自勉懃修忍辱
014_0634_c_01L또한 행자(行者)가 계행의 공덕을 견고히 하고자 한다면, 인욕바라밀을 닦아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인욕은 큰 힘이 있어서 계행을 더욱 굳건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출가하여 모습이 속인과 다르거늘 어찌 마음을 방종히 하여 세상 사람들의 법과 같이 하겠는가. 마땅히 스스로 힘써서 참음으로써 마음을 조절하고, 몸과 입으로 참음으로써 마음으로도 역시 인욕을 얻어야 하리라. 만일 마음이 참지 못한다면 몸과 입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행자는 몸과 입과 마음으로 인욕해 모든 분노와 원한을 끊어야 한다.
014_0634_c_01L復次行者欲令戒德堅當修忍辱所以者何忍爲大力牢固戒令不動搖復自思惟我今出形與俗別豈可縱心如世人法自勉勵以忍調心以身口忍心亦得若心不忍口亦爾是故行者當令身心忍絕諸忿恨
또한 이 계를 간략히 말하면 8만 가지요 자세히 말하면 한량이 없나니, 어찌 내가 이 한량없는 계법을 다 지니겠는가? 오직 인욕으로써 뭇 계법이 저절로 얻어진다.
비유하건대 마치 어떤 사람이 왕에게서 형벌을 받는 것과 같으니, 왕은 죄인을 칼수레[刀車]에다 싣고 여섯 쪽에 날카로운 칼을 세우되 몸과 조그만치의 사이도 뜨지 않게 한 뒤에 험한 길을 분별없이 마구 달리게 한다. 이때에 몸을 잘 가눈다면 칼 때문에 몸을 상하지 않게 되나니, 이는 죽이되 죽지 않는 것이다. 계를 지니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계는 날카로운 칼날이요, 인욕은 몸을 지탱하는 것이니, 만약에 인욕하는 마음이 견고하지 못하면 계율 역시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다시 비유하건대 노인이 밤길을 가는데 지팡이가 없으면 넘어지는 것과 같다. 인욕은 계행의 지팡이여서 사람을 부축하여 도에 이르게 하는데, 복락의 인연은 요동치 않는 것이다.3)
014_0634_c_07L復次是戒略說則有八萬廣說則無量我當云何能具持此無量戒法唯當忍辱衆戒自得譬如有人得罪於王王以罪人載之刀車六邊利刃閒不容閒奔逸馳走行不擇路若能持身不爲刀傷是則殺而不死持戒之人亦復如是戒爲利刀忍爲持身若忍心不固亦傷人又復譬如老人夜行無杖則忍爲戒杖扶人至道福樂因緣能動搖
이러한 것들을 일컬어 지계가 인욕바라밀을 낳는다고 한다.
014_0634_c_17L如是種種名爲持戒生羼提波羅蜜
무엇을 일컬어 지계가 정진을 낳는다고 하는가?
云何持戒而生精進
계를 지니는 사람은 방일(放逸)을 제거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부지런히 위없는 법을 닦아 익히며, 세간의 쾌락을 버리고 선한 도에 들어가 열반 구하기에 뜻을 두어 모든 중생을 제도하며, 큰 마음으로 게을리 하지 않아 부처 구하는 것으로 본분을 삼는다. 이것을 일컬어 지계가 능히 정진을 낳는다고 하는 것이다.
014_0634_c_18L持戒之人除去放逸自力懃修習無上法世閒樂入於善道志求涅槃以度一大心不懈以求佛爲本是爲持戒能生精進
014_0635_a_01L또한 계를 지니는 사람은 세상의 고통과 늙음ㆍ앓음ㆍ죽음의 과환을 싫어하고 정진할 마음을 내어 스스로 벗어나려 하고 남도 제도하려 한다. 비유하건대 마치 야간(野干)4)이 숲 속에서 사자나 범ㆍ이리 등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이 남긴 고기를 얻어먹고 살아가는 것과 같으니, 간혹 헛탕을 치면 밤중에 성을 넘어 인가(人家) 깊숙이 들어가서 고기를 찾다가 얻지 못할 경우 으슥한 곳에서 잠시 잠에 들어 쉰다. 모르는 결에 새벽이 되었음을 깨닫고는 깜짝 놀라 갈피를 잡지 못한다. 달아나자니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이 걱정이요, 머물러 있자니 죽음의 고통이 두렵다. 그는 문득 죽은 듯이 땅에 엎드려 있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지나다가 보고는 “나는 야간의 귀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귀를 베어낸다. 이에 야간은 생각했다.
‘귀를 베이니 아프기는 하나 몸만은 보전케 하리라.’
다시 어떤 사람이 “나는 야간의 꼬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꼬리를 베어 가니, 야간은 다시 생각했다.
‘꼬리를 베이니 아프기는 하나 아직은 작은 일이다.’
다시 어떤 사람이 “나는 야간의 어금니가 필요하다”라고 말하자, 야간은 속으로 생각했다.
‘베어가는 자가 점점 많아지니, 혹 나의 머리를 끊는 자가 있다면 살아날 길이 없다.’
그리고는 곧 땅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의 지력을 다하여 트인 길을 찾아 용맹스럽게 빠져나가 겨우 살아났다.
수행자의 마음이 고난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도 이와 같나니, 늙음이 이르를 때엔 그래도 너그러워서 정성스럽게 결단을 내려 정진하지 않고, 병이 들어도 그러하다가 죽음이 이르려 할 때에야 더 바랄 것이 없음을 알고는 문득 스스로 힘써서 과감하게 성의를 다하여 크게 정진을 닦아 죽음에서 벗어나 마침내는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014_0634_c_22L復次持戒之人疲厭世苦死患心生精進必求自脫亦以度人譬如野干在林樹閒依隨師子及諸虎豹求其殘肉以自存活有時空乏夜半踰城深入人舍求肉不得屛處睡息不覺夜竟惶怖無計走則慮不自免住則懼畏死痛便自定心詐死在地衆人來見有一人言我須野干耳卽便截取野干自念截耳雖但令身在次有一人言我須野干便復截去野干復念截尾雖痛猶是小事次有一人言我須野干牙干心念取者轉多儻取我頭則無活卽從地起奮其智力絕踊閒關得自濟行者之心求脫苦難亦復如若老至時猶故自寬不能慇懃決斷精進病亦如是以有差期未能決死欲至時自知無冀便能自勉敢慇懃大修精進從死地中畢至涅
또한 계행을 지니는 법은 마치 활쏘기와 같아서 먼저 평평한 땅을 만나야 하나니, 땅이 평평하여야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이 안정되어야 마음껏 활을 당기며, 마음껏 활을 당겨야 깊이 꽂히는 법이다.
계율은 평평한 땅이요, 안정된 마음[意]은 활이요, 힘껏 당기는 일은 정진이요, 화살은 지혜요, 도적은 무명이니, 만약에 능히 이와 같이 힘써 정진하면 반드시 큰 도에 이르러 중생을 제도하리라.
014_0635_a_18L復次持戒之法譬如人射先得平地平然後心安心安然後挽滿滿然後陷深戒爲平地定意爲弓滿爲精進箭爲智慧賊是無明若能如是展力精進必至大道以度衆生
014_0635_b_01L또한 계를 지니는 사람은 능히 정진으로써 5정(情)을 스스로 제어하여 5욕을 받지 않나니, 마음이 흩어지면 거두어서 다시 돌아오게 한다. 이것이 곧 지계에 의해 능히 모든 감관을 잘 보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감관을 잘 보호하면 선정이 생기고, 선정이 생기면 지혜가 생기고, 지혜가 생기면 불도에 이르게 된다. 이것을 일컬어 지계에서 비리야바라밀이 생겨난다고 한다.
014_0635_a_22L復次持戒之人能以精進自制五情不受五欲若心已去能攝令還是爲持戒能護諸根護諸根則生禪定禪定則生智慧生智慧得至佛道爲持戒生毘梨耶波羅蜜
무엇을 일러 지계가 선(禪)을 낳는다 하는가?
014_0635_b_04L云何持戒生禪
곧 사람에게는 3업이 있으니, 만약에 몸과 입의 업이 선하다면, 뜻의 업도 자연히 선해진다. 예를 들어 굽은 풀이 마(麻) 가운데서 자라면 떠받혀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곧아지는 것과 같다. 지계의 힘은 능히 모든 번뇌[結使]를 약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능히 약하게 만드는 것인가? 만약에 계를 지니지 않는다면 성냄이 찾아왔을 때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욕망의 대상을 만나면 곧 음심이 드러난다.
만약에 계를 지닌다면 비록 미세한 성냄이 일어난다고 해도 살심(殺心)이 일어나지 않으며, 비록 음심이 있다고 해도 음사(陰事)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이것을 일컬어 지계로써 능히 모든 번뇌를 약하게 만든다고 하는 것이다.
모든 번뇌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선정을 얻기 쉽다. 비유하건대 늙고 병들어 기운을 잃으면 죽음이 오기 쉽듯이 결사가 약해지는 까닭에 선정도 얻기 쉬운 것이다.
014_0635_b_05L人有三業作諸善若身口業意業自然入善譬如曲草生於麻不扶自直持戒之力能羸諸結使云何能羸若不持戒瞋恚事來殺心卽生若欲事至婬心卽成若持戒者雖有微瞋不生殺心雖有婬念婬事不成是爲持戒能令諸結使羸諸結使羸禪定易得譬如老病失力死事易得結使羸故禪定易得
또한 사람의 마음은 쉬지 않고 항상 즐거움을 구한다. 수행자는 계를 지니어 세상의 복을 버리고 마음이 방일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선정을 얻기 쉬운 것이다.
014_0635_b_13L復次人心未常求逸樂行者持戒棄捨世福不放逸是故易得禪定
또한 계를 지니는 사람은 사람 가운데 태어나고, 6욕천에 태어나고, 색계에 이른다. 만약 물질의 모습[色相]을 파한다면, 무색계에 태어나게 된다.
계를 지니고 청정해 모든 결사를 끊는다면 아라한의 경지를 얻는다. 보리심[大心]으로 계를 지키고 중생을 연민한다면, 이것이 보살이다.
014_0635_b_15L復次持戒之得生人中次生六欲天上次至色若破色相生無色界持戒淸淨斷諸結使得阿羅漢道大心持戒愍念衆是爲菩薩
또한 계로써 거친 것을 단속하고, 선으로써 세밀한 것을 포섭한다.
014_0635_b_19L復次戒爲撿麤禪爲攝
또한 계는 몸과 입을 포섭하고, 선은 산란심을 그치게 한다. 사람이 지붕에 오를 때, 사다리가 아니면 오를 수 없듯이 계라는 사다리가 없다면 선정 역시 서지 못한다.
014_0635_b_20L復次戒攝身禪止亂心如人上非梯不昇不得戒梯禪亦不立
또한 계를 파한 사람은 결사의 바람이 강해서 그 마음이 산란해진다. 그 마음이 산란해지면 곧 선을 얻지 못한다.
계를 지니는 사람은 번뇌의 바람이 부드러워 마음이 크게 산란해지지 않아 선정을 얻기 쉽다.
014_0635_b_21L破戒之人結使風强散亂其心心散亂則禪不可得持戒之人煩惱風軟心不大散禪定易得
014_0635_c_01L이와 같은 종종의 인연이 있다면, 이것을 일컬어 지계로써 선바라밀을 낳는다 하는 것이다.
014_0635_c_01L如是等種種因緣是爲持戒生禪波羅蜜
어떻게 지계로써 능히 지혜를 낳는가?
014_0635_c_02L云何持戒能生智慧
계를 지니는 사람은 이 계의 모습이 어디에서 생기는가를 관찰하여 뭇 죄를 좇아 생겨남을 안다. 만일 뭇 죄가 없다면 계도 없다. 계의 모습도 이와 같아서 인연을 좇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까닭에 집착을 낳는가? 비유하건대 연꽃이 더러운 진흙에서 나오는 것과 같으니, 비록 빛깔을 아름다우나 나온 곳은 깨끗하지 못하다.
이것으로써 마음을 깨달아 집착을 내지 않게 한다면, 이것을 일컬어 지계로써 반야바라밀을 낳는다 하는 것이다.
014_0635_c_03L持戒之人觀此戒相從何而有知從衆罪而生若無衆罪則亦無戒戒相如是從因緣有何故生著譬如蓮華出自污泥色雖鮮好出處不淨以是悟心不令生著是爲持戒生般若波羅蜜
다시 계를 지니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계를 지니는 것을 귀히 여기어 취하고 계를 파하는 것을 천히 여기어 버린다고 한다면, 만일 이런 마음이 있으면 반야에 응하지 못한다. 지혜로써 헤아려 마음으로 계를 집착하지 않고 취하거나 버리지도 않는다면, 이것을 일컬어 지계로써 반야바라밀을 낳는다는 것이다.’
014_0635_c_08L復次持戒之人心自思惟若我以持戒貴而可取戒賤而可捨者若有此心不應般若智慧籌量心不著戒無取無捨是爲持戒生般若波羅蜜
다시 계를 지니지 않는 사람은 비록 날카로운 지혜가 있어도 세상의 갖가지 업무를 경영하면서 생업을 구하려 하기 때문에 지혜의 근기가 점점 둔해진다. 비유하건대 예리한 칼로 진흙을 가르면 마침내 무딘 칼이 되는 것과 같다. 만약에 출가해서 계를 지니고 세상일을 경영하지 않고 항상 모든 법의 참모습은 상이 없는 것임을 관찰한다면, 비록 먼저는 둔했으나 차츰차츰 날카로워진다.
014_0635_c_12L復次不持戒人有利智以營世務種種欲求生業之慧根漸鈍譬如利刀以割泥土成鈍器若出家持戒不營世業常觀諸法實相無相先雖鈍根以漸轉利
이러한 갖가지 인연을 일컬어 지계로써 반야바라밀을 낳는다고 한다.
014_0635_c_16L如是等種種因緣名爲持戒生般若波羅蜜
또 이와 같은 것을 일컬어 시라바라밀로써 6바라밀을 낳는다고 하는 것이다.
014_0635_c_18L如是名爲尸羅波羅蜜生六波羅蜜
다시 보살은 계를 지니어 그로써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우치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미혹하지 않는다. 또한 스스로의 열반을 위하지 않는 까닭이며, 지계란 오로지 일체 중생을 위한 까닭이며, 불도를 얻기 위한 까닭이며, 그리고 일체의 불법을 얻기 위한 까닭에 이와 같은 모습을 이름하여 시바라밀이라 한다.
014_0635_c_19L復次菩薩持戒不以畏故非愚癡非疑非惑亦不自爲涅槃故持戒但爲一切衆生故爲得佛道爲得一切佛法故如是相名爲尸羅波羅蜜
다시 보살은 죄와 죄 아닌 것을 얻을 수 없는 까닭에 이때를 이름하여 시바라밀이라 한다.
014_0635_c_23L復次若菩薩於罪不罪不可得故是時名爲尸羅波羅蜜
014_0636_a_01L【문】 만약에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것이 지계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죄와 죄 아닌 것을 얻을 수 없다 하는가?
014_0636_a_01L問曰捨惡行善是爲持戒云何言不罪不可得
【답】 사견과 거친 마음으로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에 깊이 모든 법상에 들어가 공삼매(空三昧)를 행한다면, 지혜의 눈으로써 관하는 까닭에 죄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죄를 얻을 수 없기에 죄가 아님도 얻을 수 없다.
014_0636_a_03L答曰非謂邪見麤心言不可若深入諸法相行空三昧慧眼觀罪不可得罪無故不罪亦不可得
다시 중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살인의 죄도 또한 얻을 수 없고, 죄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계율 역시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죽이는 죄가 있는 까닭에 곧 계율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죽임의 죄가 없다면 또한 계율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014_0636_a_05L衆生不可得故殺罪亦不可得不可得故戒亦不可得何以故以有殺罪故則有戒若無殺罪則亦無戒
【문】 지금 현재 중생이 있는데 어찌하여 중생을 얻을 수 없다 하는가?
014_0636_a_08L問曰今衆生現有云何言衆生不可
【답】 육안으로 보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만일 지혜의 눈으로 관찰한다면 중생을 얻을 수 없으리니, 마치 앞의 보시[檀] 가운데서 말한 바와 같다. 곧 베푸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으며, 베푸는 물건도 없으니, 이 역시 이와 같다.
014_0636_a_10L答曰肉眼所見是爲非見若以慧眼觀則不得衆生如上檀中說無施無受者無財物此亦如是
또한 만약에 중생이 있다면 이것은 5중(衆)인가, 아니면 5중을 여의었는가?
014_0636_a_12L復次有衆生是五衆耶離五衆耶
만일 5중이라면, 5중은 다섯이고 중생은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다섯은 하나가 되고 하나는 다섯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비유하건대 시장에서 물건을 바꾸는 것과 같다. 곧 값이 다섯 필(匹)인 것을 한 필만 주고 취하려 한다면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는 다섯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5중은 한 중생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014_0636_a_13L若是五五衆有五衆生爲一如是者五可爲一一可爲五譬如市易物直五疋以一疋取之則不可得何以故一不得作五故以是故知五衆不得作一衆生
또한 5중은 생멸하여 항상된 모습이 없는데, 중생의 법은 전생으로부터 와서 내생에 이르며, 죄와 복을 삼계에서 받는다. 만일 5중이 곧 중생이라면, 마치 초목이 저절로 생기고 저절로 멸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죄나 속박은 없고 해탈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5중이 곧 중생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014_0636_a_18L復次五衆生滅無常相衆生法從先世來至後世受罪福於三界五衆是衆生譬如草木自生自滅是則無罪縛亦無解脫以是故知非五衆是衆生
만일 5중을 떠나서 중생이 있다면 마치 먼저 말하기를 “신(神)이 항상하고 두루한다”고 하는 가운데 그 이치가 어긋남과 같다.
014_0636_a_22L若離五衆有衆生如先說神常遍中已破
014_0636_b_01L또한 5중을 여의었다면 나라는 소견이 생기지 않을 터인데, 만일 5중을 여의고도 중생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상견[常]에 떨어지는 것이요, 상에 빠지면 생도 없고 사도 없을 것이다.그것은 왜냐하면 생이란 ‘전에는 없던 것이 이제 있는 것’이요, 사란 ‘이미 생한 것이 멸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중생이 항상하다면 다섯 길[五道] 가운데 두루 차 있어야 한다. 먼저부터 이미 항상 있거늘 어찌 이제 다시 와서 태어나는 것인가. 만일 생이 없다면 곧 죽음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014_0636_a_23L復次離五衆則我見心不生若離五衆有衆生是爲墮若墮常者是則無生無死何以故生名先無今有死名已生便滅若衆生常者應遍滿五道中先已常有何今復來生若不有生則無有死
【문】 결정코 중생이 있거늘, 무슨 까닭으로 없다 하는가? 5중의 인연으로 중생의 법이 있는 것은 마치 다섯 손가락의 인연으로 주먹의 법이 생기는 것과 같다.
014_0636_b_05L定有衆生何以故言無五衆因緣有衆生法譬如五指因緣拳法生
014_0636_c_01L【답】 그 말은 옳지 못하다. 만일 5중의 인연으로 중생의 법이 있다고 한다면, 5중을 제하고 달리 중생의 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눈으로 스스로 색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알고, 몸으로 촉감을 느끼고, 뜻으로 법을 알거니와 공하여 나라는 법이 없으니, 이 여섯 가지 일을 여의면 다시 중생이라 할 것이 없다.
외도의 무리들은 뒤바뀐 소견 때문에 ‘눈으로 색을 보는 것이 중생이라 하고, 나아가서는 뜻으로 법을 아는 것이 중생이라 하고 또한 능히 기억하거나 고락을 받는 것이 중생이다’ 한다. 다만 이런 소견을 내는 중생의 실체는 알지 못한다.
비유하건대 마치 어떤 장로 대덕 비구의 경우와 같으니, 사람들은 그를 아라한이라 하여 많은 공양거리를 바쳤다. 나중에 그가 병들어 죽으니, 제자들은 공양을 잃을 것을 걱정하여 밤에 몰래 시신을 몰래 들어내어 장사지내고, 그가 누웠던 자리에 이부자리와 베개를 두어 마치 그 스승이 살아 있는 것과 같이 만들어 놓았다.
혹 사람들이 문법을 하며 “스승이 어디에 계시는가?”라고 물어오면 제자들은 말하기를 “그대는 저 침상에 있는 이부자리와 베개가 보이지 않으시오?”라고 했다.
어리석은 이들은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스승께서 앓아 누우셨다’ 하면서 크게 공양을 바치고 돌아갔다. 이렇게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 지혜로운 이가 와서 묻거늘 제자들은 전과 같이 대답했더니, 지혜로운 이가 말했다.
“나는 이부자리ㆍ베개ㆍ침상ㆍ옷자락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찾고 있소이다.”
그리고는 이불을 들치고 찾으니, 결국 사람은 없었다.
여섯 가지 일[六事]의 모습을 제하면 달리 나와 남은 없으며, 아는 자와 보는 자도 역시 이와 같다.
014_0636_b_07L此言非也若五衆因緣有衆生法除五衆則別有衆生法然不可得眼自見色耳自聞聲鼻嗅香舌知味身知觸意知法空無我法離此六事更無衆生諸外道輩倒見故言眼能見色是爲衆生乃至意能知法是爲衆生又能憶念能受苦樂是爲衆生但作是見不知衆生實譬如一長老大德比丘人謂是阿羅漢多致供養其後病死諸弟子懼失供養故夜盜出之於其臥處安施被枕令如師在其狀如臥人來問疾師在何許諸弟子言汝不見牀上被枕耶愚者不審察之謂師病臥大送供養而去如是非一復有智人來而問之諸弟子亦如是答智人言我不問被枕牀褥自求人發被求之竟無人可得除六事相更無我人知者見者亦復如是
또한 만약 중생이 5음의 인연으로 있다고 할 때, 5음이 무상하다면 중생도 무상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과가 서로 같기 때문이다. 만일 중생이 무상하다면 내생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다.
014_0636_c_02L復次若衆生於五衆因緣有者五衆無常衆生亦應無常何以故因果相似若衆生無常則不至後世
또한 만일 그대의 말과 같이 ‘중생이 본래부터 항상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면, 중생은 응당 5음을 내야 하고, 5음은 중생을 내지 말아야 한다.
지금 5음의 인연 때문에 중생이란 이름이 생겼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이름을 좇아서 진실을 구한다. 이런 까닭에 중생은 실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중생이 없다면 죽이는 죄도 없을 것이요, 죽이는 죄가 없기 때문에 또한 계를 지니는 일도 없다.
014_0636_c_05L復次如汝言衆生從本已來常有若爾者衆生應生五衆五衆不應生衆生五衆因緣生衆生名字無智之人逐名求實以是故衆生實無若無衆生亦無殺罪無殺罪故亦無持戒
또한 이 5음에 깊이 들어가서 관찰하고 분별하여 공함을 안다면, 마치 꿈속에서 보는 것과 같고, 거울 속의 모습 같다. 만약 꿈속에 보는 것이나 거울 속의 상을 죽인다면 죽임의 죄는 없으니, 5음이 공한 모습인 중생을 죽이는 것 역시 이와 같다.
014_0636_c_10L復次是五衆深入觀之分別知空如夢所如鏡中像若殺夢中所見及鏡中無有殺罪殺五陰空相衆生亦復如是
또한 어떤 사람이 죄를 원하지 않아 죄 없기를 탐착하면, 이 사람은 파계한 사람을 보면 곧 업신여기고 계를 지키는 착한 사람을 보면 곧 사랑하고 공경하게 된다. 이렇듯 계를 지니는 일은 곧 죄를 일으키는 인연이 된다.
014_0636_c_14L復次若人不樂罪貪著無罪人見破戒罪人則輕慢見持戒善人則愛敬如是持戒則是起罪因緣
그러므로 말하기를 “죄와 죄 아님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시라바라밀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014_0636_c_16L是故言於罪不罪不可得故應具足尸羅波羅蜜

24. 초품 중 찬제바라밀의 뜻을 풀이함
014_0636_c_18L 大智度論釋初品中羼提波羅蜜義第二十四

【經】 마음이 요동치 않는 까닭에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을 구족한다.
014_0636_c_19L 【經】
心不動故應具足羼提波羅蜜
【論】 【문】 무엇을 찬제(羼提)5)라 하는가?
014_0636_c_20L【論】
云何名羼提
【답】 찬제는 진나라에서는 인욕(忍辱)이라 한다.
答曰羼提秦言忍辱
014_0637_a_01L인욕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생인(生忍)과 법인(法忍)이다.
보살은 생인을 행해 무량의 복덕을 얻고, 법인을 행해 무량의 지혜를 얻는다. 복덕과 지혜, 두 가지를 구족하는 까닭에 원하는 바를 다 이룰 수 있다. 마치 사람이 눈과 발이 있으면 뜻하는 대로 갈 수 있는 것과 같다.
보살이 혹은 거친 말과 매도하는 말을 만나고, 혹은 폭력을 당한다고 해도 사유를 통해 죄와 복의 인연을 알고, 모든 법의 안팎이 끝내 공하여 나와 내 것이 없다고 하고, 세 가지 법인[三法印]으로 모든 법을 대조[印]하기 때문에 비록 힘으로 능히 당할 수 있으나 악심을 내지 않고 거친 말을 하는 업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때 마음에 속하는 법[心數法]6)이 생하는 것을 일컬어 인(忍)이라 한다.
이 참음의 특성[法]을 얻는 까닭에 인의 지혜 역시 견고해진다. 마치 채색으로 그림을 그릴 때 아교를 섞으면 견고하게 붙는 것과 같다.
014_0636_c_21L辱有二種生忍法忍菩薩行生忍無量福德行法忍得無量智慧福德智慧二事具足故得如所願譬如人有目有足隨意能到菩薩若遇惡口罵詈若刀杖所加思惟知罪福業因緣諸法外畢竟空無我無我所三法印印諸法故力雖能報不生惡不起惡口業爾時心數法生名爲得是忍法故忍智牢固譬如畫彩得膠則堅著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착한 마음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거친 것과 섬세한 것이다. 거친 것을 인욕이라 하고 섬세한 것을 선정이라 한다. 아직 선정을 얻지 못했으나 즐거운 마음으로 능히 뭇 악을 차단한다면 이를 인욕이라 하고, 마음이 선정을 얻어 뭇 악을 짓지 않음을 즐긴다면, 이것을 선정이라 한다.
014_0637_a_08L有人言善心有二種有細麤名忍辱細名禪定未得禪定心樂能遮衆惡是名忍辱心得禪定樂不爲衆惡是名禪定
이 인욕은 마음에 속하는 법[心數法]이어서 마음과 서로 응하여 마음 따라 움직이며, 업도 아니요 업보도 아니건만 업행을 따른다.”
014_0637_a_11L是忍是心數法與心相應隨心行非業非業報隨業行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두 세계에 속한다” 한다.
有人言二界繫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단지 욕계(欲界)에만 속하거나 혹은 속하지 않는다. 색계에는 참아야 할 바깥경계의 악이 없기 때문이다” 한다.
014_0637_a_13L有人言欲界繫或不繫色界無外惡可忍
나아가 “유루이기도 하고, 무루이기도 하다. 범부와 성인이 모두 얻기 때문이다”
014_0637_a_15L亦有漏亦無漏凡夫聖人俱得
혹은 “내 마음과 남의 마음의 착하지 못한 법을 막기 때문에 일컬어 선(善)이라 한다.
己心他心不善法故名爲善
선한 까닭에 혹은 사유로써 끊기도 하고, 혹은 끊지 않기도 한다” 한다.
014_0637_a_16L善故或思惟斷或不斷
이러한 갖가지를 아비담에서 자세히 분별했다.
014_0637_a_17L如是等種阿毘曇廣分別
【문】 무엇을 생인이라 하는가?
014_0637_a_18L問曰云何名生
【답】 두 종류의 중생이 보살에게 오나니, 첫째는 공경하고 공양하기 위해서이며, 둘째는 화내어 꾸짖고 때리기 위해서이다. 이때 보살은 그 마음을 능히 참아서 공경하고 공양하는 중생이라고 애착하지 않으며, 해[惡]를 가하는 중생이라고 화를 내거나 하지 않나니, 이것을 일컬어 생인이라 한다.
014_0637_a_19L答曰有二種衆生來向菩薩一者恭敬供養二者瞋罵打害爾時菩薩其心能忍不愛敬養衆生不瞋加惡衆生是名生忍
【문】 어찌하여 공경ㆍ공양을 해도 그에 대해서 참는다 하는가?
014_0637_a_22L問曰云何恭敬供養名之爲忍
014_0637_b_01L【답】 두 가지 번뇌[結使]가 있으니, 첫째는 애착에 속하는 번뇌요, 둘째는 성냄에 속하는 번뇌이다. 비록 공경ㆍ공양은 화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하여금 애착케 하나니, 이를 부드러운 도적[軟賊]이라 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이에 대해 스스로 잘 참아서 집착하지 말고 애착하지도 말아야 한다.
014_0637_a_23L答曰有二種結使一者愛結使二者屬恚結使恭敬供養雖不生恚令心愛著是名軟賊是故於此應當自忍不著不愛
그렇다면 어떻게 능히 참는가?
云何能忍
곧 그 덧없음을 관찰하여 이것이 곧 번뇌가 일어나는 곳이라고 보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양(利養)이라는 종기가 깊어짐은 마치 가죽을 뚫고 살에 이르고, 살을 뚫고 뼈에 이르며, 뼈를 뚫고 골수에 이르는 것과 같다. 사람이 이양에 집착되면 지계(持戒)의 가죽을 부수고, 선정의 살을 끊고, 지혜의 뼈를 깨뜨리며, 미묘한 선심(善心)의 골수를 잃는다.”
014_0637_b_03L其無常是結使生處如佛所說利養瘡深譬如斷皮至肉斷肉至骨斷骨至髓人著利養則破持戒皮斷禪定破智慧骨失微妙善心髓
부처님께서 처음에 가비라바국(迦毘羅婆國)7)으로 유행하셨을 때, 1250인의 비구와 함께하시니, 모두가 범지(梵志)의 몸으로서 불[火]을 공양하는 까닭에 형색이 초췌했으며, 음식을 끊고 고행하는 까닭에 몸이 여위고 피부는 검었다. 이에 정반왕은 생각했다. “내 아들의 시종들이 비록 마음이 깨끗하고 청결하나 모두가 용모가 모자라니, 나는 가문이 번성하고 자손이 많은 집을 골라서 집집마다 한 사람씩을 내게 하여 불제자로 만들어야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온 나라에 칙령을 내려 “여러 석가족이나 귀족의 자제 가운데 공고에 맞는 사람을 간택해서 모두 출가케 하라” 했다.
이때 곡반왕(穀飯王)8)의 아들인 제바달다(提婆達多)9)가 출가하여 도를 배워 6만의 가르침[法聚]을 외우고 부지런히 수행해 12년을 채웠다.
014_0637_b_07L如佛初遊迦毘羅婆國與千二百五十比丘悉是梵志之身供養火故形容憔絕食苦行故膚體瘦黑淨飯王心念言我子侍從雖復心淨淸潔竝無容貌我當擇取累重多子孫者家出一人爲佛弟子如是思惟已勅下國簡擇諸釋貴戚子弟應書之身皆令出家是時斛飯王子提婆達多家學道誦六萬法聚精進修行滿十二年
014_0637_c_01L그 뒤 공양의 이로움을 얻기 위해 부처님께 와서 신통 배우기를 구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담(憍曇)10)아, 너는 5음의 무상함을 관찰하면 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신통도 얻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더 이상 신통 얻는 법을 자세히 말씀하시지는 않으시니, 그는 나와서 사리불과 목건련 및 5백 명의 아라한을 구했으나, 아무도 신통 얻는 법을 말해 주지 않은 채 다만 말하기를 “그대가 5음의 무상함을 관찰하기만 하면 도를 얻고 신통도 얻을 것이다” 했다.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여 슬피 울면서 아난에게 가서 신통 얻는 법을 가르쳐 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난은 아직 타심통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 형을 공경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가르쳐 주었다.
그는 신통 얻는 법을 얻은 뒤에 깊은 산으로 들어가서 오래지 않아 5신통을 얻었다.
014_0637_b_17L其後爲供養利故來至佛所學神通佛告憍曇汝觀五陰無常以得道亦得神通而不爲說取通之出求舍利弗目揵連乃至五百阿羅漢皆不爲說汝當觀五陰無常可以得道可以得通不得所求涕泣不樂到阿難所求學神通是時阿難未得他心智敬其兄故如佛所言以授提婆達多受學通法入山不久便得五神通
5신통을 얻고는 생각했다.
“누가 나의 단월이 되어주겠는가? 아사세(阿閣世)11) 왕자는 대왕의 상호가 있으니, 그와 친해져야 되겠다.”
그리고는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음식을 취하고, 다시 울단월(鬱旦越)에 들러 저절로 생긴 쌀[粳米]을 구하고, 다시 염부숲에 들러 염부 열매를 따 가지고 와서는 아사세 장자에게 주었다. 어느 때는 스스로의 그 몸을 변화하여 코끼리ㆍ말보배가 되어 그의 마음을 현혹시켰으며, 혹은 어린아기가 되어 그의 무릎에 앉기도 했는데, 왕자는 안고 입을 맞추거나 핥아 줄 때면 가끔 자기의 이름을 말해서 태자로 하여금 알게 하며, 갖가지 변태를 부려 그 마음을 흔들었다.
014_0637_c_03L得五神通已自念誰當與我作檀越者如王子阿闍世有大王相欲與爲親厚到天上取天食還到鬱旦羅越取自然粳米至閻浮林中取閻浮果與王子阿闍世或時自變其身作象馬寶以惑其心或作嬰孩坐其膝王子抱之嗚唼與唾時時自說己令太子知之種種變態以動其心
왕자는 홀딱 반해서 나원(奈園) 안에다 큰 정사를 지어 바치고 네 가지 공양과 갖가지 물건을 공양하여 구비되지 않은 것이 없게 하였다. 그로써 제바달다에게 공양하고 날마다 대신들을 거느리고 가는 한편 스스로 5백 개의 솥에 국과 밥을 보냈다.
014_0637_c_10L王子意惑於奈園中大立精舍四種供養幷種種雜供無物不備以給提婆達多日日率諸大臣自爲送五百釜羹飯
제바달다는 많은 공양은 얻었으나 무리가 적은 것을 섭섭해 하면서 생각했다.
“나에게는 서른 가지 상호가 있으니, 부처님과는 불과 둘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만 제자가 모이지 않기 때문인데 만일 대중이 둘러싸 준다면 부처님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승단을 깨뜨려 5백 명의 제자를 얻었으나 사리불과 목건련이 다시 이들을 설법하고 교화하여 승단은 재차 화합하게 되었다.
014_0637_c_14L提婆達多大得供養而徒衆尟少自念我有三十相減佛未幾以弟子未集若大衆圍繞與佛何異如是思惟已生心破僧得五百弟子舍利弗目犍連說法教化僧還和合
이때, 제바달다는 더욱 나쁜 마음을 내어 산을 밀어 부처님을 압사시키려 했으나 금강역사(金剛力士)12)가 금강저(金剛杵)13)로써 멀리 던져버렸다. 하지만 부서진 돌조각이 날아와 부처님은 발가락에 상처를 입고 마셨다.
014_0637_c_18L爾時提婆達多便生惡心推山壓佛金剛力士以金剛杵而遙擲之碎石逬來傷佛足指
이를 본 화색(華色) 비구니14)가 그를 꾸짖으니, 그는 주먹으로 비구니를 때렸는데, 비구니가 눈알이 빠져 죽음으로써 세 가지 극악한 죄를 지었다.
014_0637_c_21L華色比丘尼呵之以拳打尼尼卽時眼出而死作三逆
그는 다시 나쁘고 삿된 스승인 부란나(富蘭那)15) 외도 등과 친교를 맺어 온갖 나쁜 짓을 하면서도 뉘우치는 마음이 없었다.
014_0637_c_23L與惡邪師富蘭那外道等爲親厚斷諸善根心無愧悔
014_0638_a_01L또한 독약을 손톱에 묻혔다가 부처님께 예배하는 기회에 해치려 했으나, 아직 왕사성에 채 이르기도 전에 땅이 저절로 갈라지고 불수레[火車]가 마중을 나오더니 산 채로 지옥으로 들어갔다.
014_0638_a_01L復以惡毒著指爪中欲因禮佛以中傷佛欲去未到王舍城中地自然破裂火車來迎入地獄
제바달다는 몸에 서른 가지 거룩한 모습이 있으되 그 마음을 항복시키지 못하여 공양 때문에 큰 죄를 짓고 산 채로 지옥에 들어갔다.
014_0638_a_04L提婆達多身有三十相而不能忍伏其心爲供養利故而作大罪生入地獄
그러므로 말하기를 “이양은 깊은 종기이어서 가죽을 뚫고 골수에 이른다” 하였으니, 마땅히 나에게 공양하는 사람을 애착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014_0638_a_06L以是故言利養瘡深破皮至髓應當除卻愛供養人心
이것을 일컬어 ‘보살은 참는 마음으로 공경하고 공양하는 사람에게 애착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014_0638_a_07L是爲菩薩忍心不愛著供養恭敬人
또한 공양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전생의 인연과 복덕 때문이요, 둘째는 금생의 공덕으로서 계행ㆍ선정ㆍ지혜를 닦기 때문에 남에게 공경과 공양을 받는 것이요, 셋째는 허망하고 거짓되게 속여 속에는 진실한 덕이 없으면서도 겉으로 청백한 체하여, 그로써 당시의 사람들을 홀려 공양을 얻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공양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전생의 인연으로 부지런히 복을 닦았기 때문에 이제 공양을 받는 것이라면 이는 자신이 부지런히 닦아 얻었을 뿐인데, 어찌 이에 대해 과시를 하겠는가. 마치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 것과 같으니, 스스로 노력해 얻었을 뿐이거늘 어찌 스스로 교만해질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사유해 그 마음을 굴복시킨다면 집착하거나 교만하지 않게 된다.
014_0638_a_08L復次養有三種一者先世因緣福德故今世功德修戒禪定智慧故爲人敬三者虛妄欺惑內無實德外如淸白以誑時人而得供養於此三種供養中心自思惟若先世因緣懃修福德今得供養是爲懃身作之而自得耳何爲於此而生貢高譬如春種秋穫自以力得何足自憍如是思惟已忍伏其不著不憍
014_0638_b_01L만약에 금생의 공덕으로 공양을 얻었다면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만 한다.
‘나는 지혜로써 모든 법의 실다운 모습을 알고 혹은 번뇌를 능히 끊었다. 이런 공덕 때문에 이 사람들이 공양하지만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이 사유해 그 마음을 굴복시킨다면 스스로 교만해지지 않는다. 이는 실로 공덕을 좋아할 뿐 나에 애착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계빈(罽賓)16)의 어떤 삼장(三藏) 비구가 아란야법(阿蘭若法)을 행하고 왕사(王寺)로 갔는데, 때마침 절에 큰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들어가려 했으나 문지기는 그의 의복이 남루한 것을 보고 문을 막아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여러 차례 거듭했으나 의복이 누추하기 때문에 번번이 들어가지 못하게 되므로 방편을 써서 좋은 의복을 빌려 입고 오니, 문지기는 막지 않고 들여보내 주었다. 모임에 이르러 자리에 않자 갖가지 음식이 나왔는데, 그는 먼저 음식을 옷에 부어 버렸다.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물었다.
“무슨 이유로 그러시오?”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나는 요즘 이곳에 자주 왔으나 번번이 들어오지 못했소. 이제 이 옷 덕분에 들어와서 여기에 앉아 이렇게 좋은 갖가지 음식을 얻게 되었으니, 실로 이 옷 때문에 얻은 것이요. 그래서 그것을 먼저 옷에다 부어 주는 것이요.”
수행자는 수행의 공덕과 지계와 지혜 때문에 공양을 얻거든 이렇게 생각한다.
‘이는 공덕을 위한 일이요, 나를 위함이 아니다.’
이와 같이 사유하여 능히 스스로 마음을 굴복시킨다면 이를 일컬어 인욕[忍]이라 한다.
014_0638_a_17L若今世功德故而得供當自思惟我以智慧若知諸法實若能斷結以此功德故是人供養於我無事如是思惟已自伏其心自憍高此實愛樂功德不愛我也如罽賓三藏比丘行阿蘭若法至一王寺寺設大會守門人見其衣服麤遮門不前如是數數以衣服弊故每不得前便作方便假借好衣而來門家見之聽前不禁旣至會坐得種種好食先以與衣衆人問言何以爾答言我比數來每不得入今以衣故得在此坐得種種好食實是衣故得故以與衣行者以修行功德持戒智慧故而得供養自念此爲功德爲我也如是思惟能自伏心是名爲
만일 허망하고 거짓되게 공양을 얻는다면 이는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니,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 응당 생각하기를 ‘만일 내가 이런 허망한 것으로 공양을 얻는다면 도적이나 강도가 밥을 얻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는 거짓으로 속이는 죄를 범할 뿐이다’고 해야 한다.
014_0638_b_10L若虛妄欺僞而得供養是爲自害不可近也當自思惟若我以此虛妄而得供養與惡賊劫盜得食無異爲墮欺妄罪
이와 같이 세 종류17)의 공양을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도 내지 말고 교만한 생각도 갖지 않는다면 이것을 생인이라 한다.
014_0638_b_13L如是於三種供養人中心不愛著亦不自高是名生忍
【문】 사람이 도를 얻기 전에 의식(衣食)이 급하거늘 나에게 공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능히 참아 그 마음이 베푸는 이에게 집착하거나 애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014_0638_b_14L問曰人未得道衣食爲急云何方便能得心不著不愛給施之人
014_0638_c_01L【답】 지혜의 힘으로 무상한 모습ㆍ괴로운 모습ㆍ나 없는 모습을 관하여 마음으로 항상 싫어한다. 마치 죄인이 형벌을 당하기 직전 아무리 맛난 음식이 앞에 있고 가족들이 권하더라도 죽음을 근심하기 때문에 맛난 음식을 먹더라도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행자 역시 이와 같으니, 항상 무상한 모습ㆍ괴로운 모습을 관한다면, 비록 공양을 얻을지라도 마음이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호랑이에게 쫓기는 사슴이 호랑이에게서 벗어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풀과 맑은 물을 얻어먹는다고 해도 마음에 염착이 없는 것과 같으니, 수행자 역시 그와 같아서 ‘항상 무상의 범에게 쫓기어 쉴 틈이 없다’고 사유해 싫어하는 마음을 낸다면, 비록 맛난 음식을 얻더라도 집착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공양하는 사람에 대해 그 마음이 스스로 인욕하게 되는 것이다.
014_0638_b_16L答曰以智慧力觀無常相苦相無我相心常厭譬如罪人臨當受戮雖復美味在家室勸喩以憂死故雖飮食餚膳不覺滋味行者亦爾常觀無常相雖得供養心亦不著又如獐鹿爲虎搏逐追之不捨雖得好草美水飮心無染著行者亦爾常爲無常虎逐不捨須臾思惟厭患雖得美味不染著是故行者於供養人中心得自忍
또한 여인이 와서 오락으로써 보살을 유혹하려 하거든, 이때 스스로 마음을 굴복시키고 참아서 욕망이 일어나지 않게 하여야 한다.
014_0638_c_03L復次若有女人來欲娛樂誑惑菩薩菩薩是時當自伏心忍不令起
마치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보리수 밑에 앉아계실 때 마왕(魔王)이 근심이 되어 세 딸[王女]을 보냈으니, 첫째는 낙견(樂見)이요, 둘째는 열피(悅彼)요, 셋째는 갈애(渴愛)였다. 그들은 와서 몸을 나타내어 갖가지 교태를 부리면서 보살을 무너뜨리려 하였다. 이때 보살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잠시도 눈을 주지 않으셨다. 이에 세 여자들은 생각했다.
‘사람의 마음은 같지 않아 좋아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 젊은이를 좋아하거나 혹은 중년에 애착하며, 키가 큰 이를 좋아하거나 혹은 키가 작은이를 좋아하며, 피부가 희거나 혹은 검은 사람을 좋아한다. 이렇듯 갖가지로 좋아함이 다르다.’
이때 세 여인은 각각 5백 명의 미녀로 변화했는데, 하나하나의 변화한 여자는 다시 한량없는 교태를 나타내며 숲에서 나왔으니, 마치 먹구름에서 잠시 번개가 나타나는 것 같았다.
혹은 눈썹을 드날리거나 눈길을 주거나 어리광을 부리거나 눈을 가늘게 떠 홀리며, 갖가지 풍악을 울리는 등 온갖 교태를 부리면서 보살에게 다가와서 교태로운 몸으로 보살에게 접촉하려 했다. 이때 밀적금강역사(密迹金剛力士)18)가 눈을 부릅뜨며 그들을 꾸짖었다.
“이 분이 누구이신데 너희들이 감히 음탕한 교태로 접근하려 하느냐.”
그리고 밀적은 게송으로써 그들을 꾸짖었다.
014_0638_c_04L如釋迦文尼佛在菩提樹下魔王憂遣三玉女一名樂見二名悅彼名渴愛來現其身作種種姿態欲壞菩薩菩薩是時心不傾動目不暫視三女念言人心不同好愛各異或有好少或愛中年或好長好短好黑好如是衆好各有所愛是時三女各化作五百美女一一化女作無量變態從林中出譬如黑雲電光暫現或揚眉頓睫嫈嫇細視作衆伎樂種姿媚來近菩薩欲以態身觸逼菩爾時密迹金剛力士瞋目叱之是何人而汝妖媚敢來觸嬈爾時迹說偈呵之

너희들은 천명(天命)을 모르는구나.
예쁜 모습 잃으면 머리카락 변하니
큰 바닷물 맑고 아름다웠으나
오늘엔 모두가 쓰고 짜게 변한 줄을.
014_0638_c_18L汝不知天命
失好而黃髥
大海水淸美
今日盡苦醎

그대들은 날로 줄어드는 도리를 모르는 구나.
바수(姿數)19)의 하늘들도 나쁜 길에 떨어지고
불이 본래는 하늘의 입이었으나
지금은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것을.
014_0638_c_20L汝不知日減
婆藪諸天墮
火本爲天口
而今一切噉

이어 말하기를 “너희들은 이런 줄 알지 못한 채 이 성인을 가벼이 여기는 구나” 하였다.
014_0638_c_21L汝不知此事敢輕此聖人
그때 여자들이 머뭇거리다가 조금 물러서서 보살에게 말했다.
“지금 이 아씨들은 모두가 단정하고 예쁨이 견줄 이 없으니 즐겨보실 만합니다. 우두커니 앉아서 무엇 하시렵니까.”
014_0638_c_22L是時衆女逡巡小退語菩薩言今此衆女端嚴無比可自娛意端坐何爲
014_0639_a_01L보살이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부정하고 더럽도다. 물러가 헛되이 말을 걸지 말라.”
이때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4_0639_a_01L菩薩言等不淨臭穢可惡勿妄談菩薩是卽說偈言

이 몸은 더러움의 숲
부정하고 부패한 무더기이니
실로 걸어다니는 뒷간이라 하리니
무엇이 즐거울 게 있으랴.
014_0639_a_03L是身爲穢藪
不淨物腐積
是實爲行廁
何足以樂意

여자들은 이 게송을 듣고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우리들이 청정한 하늘의 몸임을 모르는 채 이런 게송을 읊고 있구나.’
그리고는 곧 몸을 변하여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 찬란한 빛으로 숲을 비추고 하늘의 기악을 연주하며 보살에게 말했다.
“우리들의 몸이 이러하거늘 어찌 꾸짖을 수 있습니까?”
014_0639_a_05L女聞此偈自念此人不知我等淸淨天身而說此偈卽自變身還復本形光曜昱爍照林樹閒作天伎樂語菩薩言我身如是有何可呵
“때가 오면 스스로 알 것이니라.”
014_0639_a_09L菩薩答言時至自知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問曰此言何謂
그러자 보살은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以偈答言

하늘나라 동산 숲에
7보의 연꽃 피는 연못가에서
하늘사람이 서로 어울려 즐기나
잃을 때가 되면 너희들 스스로 알리라.
014_0639_a_10L諸天園林中
七寶蓮華池
天人相娛樂
失時汝自知

이때 무상이 나타나면
하늘의 즐거움 모두 고(苦)가 되니
그대들은 마땅히 욕락을 싫어하고
바르고 참된 도를 사랑해야 하리라.
014_0639_a_12L是時見無常
天上樂皆苦
汝當厭欲樂
愛樂正眞道

여자들이 이 게송을 듣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큰 지혜가 한량이 없다. 하늘의 즐거움이 청정하거늘 오히려 그 삿됨을 알고 있으니, 당할 수가 없도다.”
그리고는 즉시 사라졌다.
보살은 이와 같이 음욕의 즐거움을 관찰하고는 스스로 마음을 제어하고 인내해 요동치 않는 것이다.
014_0639_a_13L女聞偈已心念此人大智無量天樂淸淨猶知其惡不可當也卽時滅去菩薩如是觀婬欲樂能自制心忍不傾動
014_0639_b_01L또한 보살은 음욕의 갖가지 부정(不淨)을 이렇게 관찰한다.
“모든 쇠퇴함[衰] 가운데서 여자의 쇠퇴함이 가장 무겁다. 칼ㆍ불ㆍ우레ㆍ번개ㆍ벼락ㆍ원수ㆍ독사 따위는 오히려 잠시라도 가까이할 수 있으나 여자의 간탐ㆍ질투ㆍ성냄ㆍ아첨ㆍ추태ㆍ싸움ㆍ탐욕ㆍ시기 등은 가까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여자는 소인인지라 마음이 얕고 지혜가 얇아서 음욕만이 눈에 뜨이고, 부귀ㆍ지덕ㆍ명예는 보지 않으며, 오로지 음욕만을 행하여 남의 선근을 깨뜨린다. 결박ㆍ칼ㆍ우리ㆍ감옥이 벗어나기 어렵다 하나 오히려 풀기 쉽거니와 여자의 사슬이 사람을 결박함은 물듦이 굳고 뿌리가 깊어서 지혜 없는 자가 빠지면 벗어날 수가 없다.”
뭇 법 가운데서 여자의 법이 가장 무거우니, 부처님께서는 이런 게송을 말씀하셨다.
014_0639_a_17L復次菩薩觀欲種種不淨於諸衰中女衰最重刀火雷電霹靂怨家毒蛇之屬猶可暫近女人慳妒瞋諂妖穢鬪諍貪嫉不可親近何以故子小人心淺智薄唯欲是視不觀富智德名聞專行欲惡破人善根枷鎖閉繫囹圄雖曰難解是猶易女鎖繫人染固根深無智沒之可得脫衆病之中女病最重如佛偈言

차라리 달구어진 무쇠로
눈 속을 휘저을지언정
흩어진 마음으로 헛되이
여색을 살피지 말아라.
014_0639_b_02L寧以赤鐵
宛轉眼中
不以散心
邪視女色

웃음을 머금고 맵시를 부리며
교만하고 다시 수줍어하고
곁눈질하면서 눈알을 굴리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아양을 부린다.
014_0639_b_04L含笑作姿
憍慢羞恥
迴面攝眼
美言妒瞋

걸음걸이는 요염하여
사람을 홀리고
음욕의 그물을 널리 펴서
사람을 모두 걸려들게 한다.
014_0639_b_05L行步妖穢
以惑於人
婬羅彌網
人皆沒身

앉고 눕고 다니고 설 때
두리번거리며 교태를 부리면
지혜 얕은 어리석은 사람은
그 때문에 마음이 취하게 된다.
014_0639_b_06L坐臥行立
迴眄巧媚
薄智愚人
爲之心醉

검을 쥐고 달려드는 적군은
차라리 이길 수 있을지언정
여인이라는 도적이 사람을 해하는 일이야
막아낼 도리가 없다.
014_0639_b_08L執劍向敵
是猶可勝
女賊害人
是不可禁

독을 품은 독사는
차라리 잡을 수 있겠지만
여자의 정이 사람을 홀리는 것은
건드려서는 안 된다.
014_0639_b_09L蚖蛇含毒
猶可手捉
女情惑人
是不可觸

지혜로운 사람은
보지 말아야 하나니
만일 보고자 한다면
어머니나 누이같이 여기라.
014_0639_b_10L有智之人
所應不視
若欲觀之
當如母姊

자세히 관찰해 보라.
부정물(不淨物)의 쌓임이니
음욕의 불을 제거하지 못하면
그 때문에 타게 되리라.
014_0639_b_12L諦視觀之
不淨塡積
婬火不除
爲之燒滅

또한 여자란 공경을 받게 되면 남편으로 하여금 우쭐하게 만들고, 공경을 받지 못하면 남편으로 하여금 불안하게 만든다. 여자는 항상 이렇게 번뇌ㆍ근심ㆍ두려움을 사람들에게 끼치거늘 어떻게 가까이하겠는가. 친하고 좋아하던 이들이 등지고 갈라섬은 여자의 죄요, 남의 잘못[惡]을 교묘히 살핌은 여자의 지혜이다.
큰 불이 사람을 태우는 것은 오히려 가까이할 수 있고, 형체 없는 맑은 바람은 오히려 잡을 수 있고, 독을 머금은 독사는 오히려 건드릴 수 있지만 여자의 마음은 진실로 알기 어렵다. 왜냐하면 여자란 부귀ㆍ단정ㆍ명예ㆍ지덕ㆍ종족ㆍ기예ㆍ말재주ㆍ친분ㆍ사랑 등은 보지 않아 도무지 마음에 두지 않고 오직 음욕만을 보기 때문이다. 마치 교룡(蛟龍)이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오직 사람 죽이기만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
또한 여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근심ㆍ걱정ㆍ초췌함은 돌아보지 않으면서, 재산을 넉넉히 부양하고 공경해 받들어 주면 그 교만과 사치가 억제하기 어렵다.
014_0639_b_13L復次女人相者若得敬待則令夫心若敬待情捨則令夫心怖女人如恒以煩惱憂怖與人云何可近好乖離女人之罪巧察人要女人之大火燒人是猶可近淸風無形亦可捉蚖蛇含毒猶亦可觸女人之不可得實何以故女人之相不觀富貴端政名聞智德族姓技藝辯言親厚愛重都不在心唯欲是視譬如蛟龍不擇好醜唯欲殺人又復女人不瞻視憂苦燋悴給養敬待憍奢叵
014_0639_c_01L또한 여자는 착한 사람에게는 제멋대로 교만한 마음을 품고,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원수같이 여기고, 부귀한 사람에게는 따르면서 공경히 사랑하고, 빈천한 사람은 개보듯 하면서 항상 욕심만을 따르고 공덕은 따르지 않는다.
014_0639_c_02L復次若在善人之中則自畜心高無智人中視之如怨富貴人中追之敬愛貧賤人中視之如狗常隨欲心不隨功德
전하는 말에 어떤 국왕에게 구모두(拘牟頭)20)라는 딸이 있었는데, 때마침 술바가(述姿伽)라는 어부가 길을 따라가다가 멀리서 왕녀가 높은 누각에 있는 것을 창틈으로 보고는 애착심을 일으켜 잠시도 버리지 못했다.
날과 달이 갈수록 더욱 잊지 못해 음식을 먹지 못했다.
014_0639_c_05L如說國王有女名曰拘牟有捕魚師名述婆伽隨道而行見王女在高樓上窗中見面想像染心不暫捨彌歷日月不能飮食
그 어미가 그 사유를 물은즉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왕녀를 보고나니 잊을 수 없습니다.”
014_0639_c_08L問其故以情答母我見王女心不能
어미가 “너는 소인이요 왕녀는 존귀한 몸이니, 아니 될 말이다”라며 타이르니, 아들이 말했다.
“내 마음이 간절히 원하여 잠시도 잊을 수 없습니다. 내 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살지 못할 것입니다.”
014_0639_c_10L母諭兒言汝是小人王女尊貴可得也兒言我心願樂不能暫忘不如意不能活也
어미는 아들을 위하는 까닭에 왕궁에 들어가서 항상 살찐 물고기와 맛난 고기를 왕녀에게 바치면서도 그 값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014_0639_c_12L母爲子故入王宮常送肥魚美肉以遺王女而不取
왕녀는 이상하게 생각하여 물었다.
“무슨 원하는 게 있느냐?”
王女怪而問之欲求何願
그러자 어미는 왕녀에게 말했다.
“바라옵건대 잠시 좌우를 물러나게 해 주십시오. 사실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에게는 외아들이 있는데 왕녀를 사모하는 나머지 한이 맺혀서 병이 되어 목숨마저 멀지않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가엾이 여기시어 그의 생명을 건져 주십시오.”
014_0639_c_14L母白王願卻左右當以情告我唯有一子敬慕王女情結成病命不云遠願垂愍念賜其生命
이에 왕녀가 말했다.
“그대는 돌아가서 아무 달 보름날 아무 데 있는 천사(天祠) 안의 천상(天像) 뒤에 있으라.”
어미는 돌아와서 “네 소원이 이루어졌다”며 위의 사실을 다 이야기해 주었다. 그날이 되자 목욕을 하고 새 옷을 갈아입고, 천상 뒤에 기다리고 있었다.
014_0639_c_17L王女言汝去月十五於某甲天祠中住天像後母還語汝願已得告之如上沐浴新衣天像後住
왕녀는 때가 되자 부왕에게 말했다.
“저에게 불길한 조짐이 있으니, 부득이 천상 앞에 나아가서 복을 빌어야 되겠습니다.”
014_0639_c_20L王女至時白其父王我有不吉須至天祠以求吉福
왕은 “좋다”고 말했다.
王言大善
곧 수레 5백 대를 장엄시켜 천사까지 데려다 주게 했다.
천사에 이르자 모든 시종들에게 명해 문을 경계로 멈춰 서게 하고는 혼자서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014_0639_c_21L卽嚴車五百乘出至天祠旣到勅諸從者齊門而止獨入天祠
014_0640_a_01L이때 천신(天神)은 생각하기를 ‘이 일은 옳지 못하다. 왕은 인간세상의 주인인데 이 천한 백성이 왕녀를 욕되게 하게 할 수는 없다’ 하고는 곧 그 아들을 홀려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게 했다.
왕녀가 들어와서 보니 그가 깊은 잠에 들어 있었다. 흔들었으나 깨지 않기에 10만 냥어치나 되는 영락(瓔珞)을 그에게 남겨두고 떠나 버렸다.
그녀가 떠난 뒤에 깨어나서 보니, 영락이 목에 걸려 있었다. 곁의 사람들에게 물어보고서야 왕녀가 왔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정을 통하려던 원[情願]을 이루지 못한 채 근심하고 괴로워하더니 음욕의 불에 복받쳐 죽었다.
이런 예로 보아도 여자의 마음은 귀천을 가리지 않고 오직 음욕만을 쫓는다는 것을 알겠다.
014_0639_c_23L天神思惟此不應爾王爲世主不可令此小人毀辱王女卽厭此人令睡不覺王女旣入見其睡重推之不悟卽以瓔珞直十萬兩金遺之而去去後此人得見有瓔珞又問衆人知王女來願不遂憂恨懊惱婬火內發自燒而以是證故知女人之心不擇貴賤唯欲是從
또한 옛날 어떤 왕녀는 전다라(栴陀羅)21)를 따라다니면서 부정한 짓을 하였으며, 어떤 선인의 딸은 스승의 아들을 따라다녔다. 이러한 갖가지 형태의 여자들은 마음에 아무런 가리움이 없다.
014_0640_a_08L復次昔有國王女逐旃陁共爲不淨又有仙人女隨逐師子如是等種種女人之心無所選擇
이러한 갖가지 인연 때문에 여자에 대하여 욕정을 버리고 인내해 애착하지 말아야 한다.
014_0640_a_10L是種種因緣於女人中除去情欲不愛著
성내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여야 참을 수 있는가?
云何瞋惱人中而得忍辱
곧 응당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모든 중생은 죄지은 인연이 있어서 서로 침해한다. 나 또한 지금 시달림을 받는 것도 전생의 행위[本行]의 인연일 것이다. 비록 금생에 지은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내가 전생에 저지른 나쁜 갚음을 받는 것이니, 의당 달게 받아야 한다. 비유하건대 빚을 지는 것과도 같으니, 빚 주인이 달라고 하면 응당 기쁜 마음으로 갚을지언정 화를 내어서는 안 된다.”
014_0640_a_12L自思惟一切衆生有罪因緣更相侵我今受惱亦本行因緣雖非今世所作是我先世惡報我今償之應當甘受何可逆也譬如負債債主索之應當歡喜償債不可瞋也
또한 수행자는 항상 자애로운 마음을 써야 하며, 아무리 번뇌와 어지러움이 몸에 닥치더라도 반드시 참고 견디어야 한다.
014_0640_a_17L復次行者常行慈心雖有惱亂逼身必能忍受
014_0640_b_01L예컨대 찬제(羼提)22) 선인이 큰 숲에서 인욕을 닦고 자비를 행하는데, 이때에 가리왕(迦利王)이 채녀(採女)들을 데리고 숲으로 들어가 놀았다. 음식을 먹고는 왕이 잠시 잠든 사이에 궁녀들이 꽃나무 사이로 구경을 다니다가 이 선인을 보자 공경하여 절을 하고 한쪽에 섰다. 선인은 채녀들에게 자비와 인욕을 찬양하며 말해 주었는데, 그 음성이 아름답고도 미묘하여 듣는 이가 싫증이 나지 않아 오랫동안 돌아갈 줄을 몰랐다. 가리왕이 깨어나 보니 궁녀들이 보이지 않았기에 칼을 뽑아들고 자취를 찾아 쫓아가 그녀들이 선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자 교만과 질투가 복받쳤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내며 칼을 뽑아 겨누고서 물었다.
“너는 무엇 하는 자이냐?”
014_0640_a_18L譬如羼提仙人在大林中修忍行慈迦利王將諸婇女入林遊戲飮食旣訖王小睡息諸婇女輩遊花林閒見此仙人加敬禮拜在一面立仙人爾時爲諸婇女讚說慈忍其言美妙聽者無厭久而不去迦利王覺不見婇女拔劍追蹤見在仙人前立憍妒隆盛瞋目奮劍而問仙人汝作何物
선인이 대답했다.
“나는 여기서 인욕을 닦고 자비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014_0640_b_03L仙人答言我今在此修忍行慈
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그대를 시험해 보리라. 이 칼로 네 귀를 베고, 코를 자르고, 손발을 끊겠다. 그래도 성을 내지 않는다면 그대가 인욕을 닦는다고 알겠노라.”
014_0640_b_04L王言我今試汝當以利劍截汝耳鼻斬汝手足若不瞋者知汝修忍
선인이 대답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014_0640_b_06L仙人言
왕은 곧 칼을 들어 그의 귀와 코를 베어내고 손발을 끊고 나서 물었다.
“이래도 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느냐?”
014_0640_b_07L王卽拔劍截其耳鼻斬其手足問之言汝心動不
선인이 대답했다.
“나는 자비와 인욕을 닦아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014_0640_b_08L答言我修慈忍不動也
왕이 다시 말했다.
“네 한 몸만이 남아 있어 아무런 세력도 없거늘 아무리 입으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해도 누가 그 말을 믿겠느냐.”
014_0640_b_09L王言汝一身在此無有勢力雖口言不動誰當信者
이때 선인은 발원을 했다.
“내가 실로 자비와 인욕을 닦았다면, 피가 젖이 되게 해 주옵소서.”
014_0640_b_10L是時仙人卽作誓言若我實修慈忍血當爲乳時血變爲乳
그러자 즉시에 피가 젖으로 변했다. 이에 왕은 크게 놀라며 채녀들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014_0640_b_12L王大驚喜將諸婇女而
이때 숲 속에 있던 용신이 이 선인을 위해 천둥ㆍ벼락을 내리니, 왕은 그 독해(毒害)를 입고는 궁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죽어버리고 말았다.
014_0640_b_13L是時林中龍神爲此仙人雷電王被毒害沒不還宮
그러므로 말하기를 “번거로운 가운데서 능히 인욕을 행한다” 하는 것이다.
014_0640_b_14L以是故言惱亂中能行忍辱
또한 보살은 자애의 마음을 닦고 행하는데, 일체 중생은 항상 뭇 고통이 있으니, 태내에 있을 때엔 옹색해서 온갖 고통을 받고 나올 때엔 옹색함에 눌리어 뼈와 살이 부서지는 듯하고, 찬바람이 몸에 닿는 고통이 칼로 베이는 것보다 심하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모든 고통 가운데서 태어나는 고통이 가장 무겁다” 하셨다. 이와 같이 늙음ㆍ앓음ㆍ죽음의 고통과 갖가지 고액이 있으니, 어찌 수행자가 다시 그들에게 고통을 보태어 주랴. 이는 종기에다 다시 칼을 대어 흠집을 내는 것이다.
014_0640_b_15L復次菩薩修行悲一切衆生常有衆苦處胎迫隘諸苦痛生時迫迮骨肉如破冷風觸甚於劍戟是故佛言一切苦中苦最重如是老死苦種種困厄何行人復加其苦是爲瘡中復加刀
014_0640_c_01L또한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항상 생사의 흐름을 따를 것이 아니라. 마땅히 생사의 흐름을 거슬러서 그 근원을 다하여 열반[泥洹]의 길에 이르리라. 일체의 범부들은 침해를 당하면 곧 화를 내고, 이익을 만나면 곧 기뻐하며, 두려운 곳에서는 곧 겁을 먹는다. 하지만 나는 보살이거니 그들과 같을 수는 없도다.
비록 아직 번뇌의 씨앗을 다 끊지는 못했으나 스스로 억제하여 인욕을 닦되 해치더라도 화를 내지 않고, 공경과 공양을 하더라도 기뻐하지 않으며, 뭇 고통과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오직 중생들을 위하여 큰 자비심을 일으키리라.”
014_0640_b_21L復次菩薩自念我不應如諸餘人常隨生死水流我當逆流以求盡源入泥洹道一切凡人侵至則瞋益至則喜怖處則畏我爲菩薩不可如彼雖未斷結當自抑制修行忍辱惱害不瞋敬養不喜衆苦艱難不應怖畏當爲衆生興大悲心
또한 보살은 어떤 중생이 와서 괴롭히거든 스스로 이렇게 생각한다.
‘이는 나의 친구이며 나의 스승이다” 하고는 더욱 친애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하리라.’
그것은 왜냐하면 그가 온갖 괴로움을 가해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면 나는 인욕의 행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는 나의 친한 친구이며 또한 나의 스승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014_0640_c_04L復次菩薩若見衆生來爲惱亂當自念言是爲我之親厚亦是我師益加親愛敬心待之何以故彼若不加衆惱惱我則我不成忍辱以是故言是我親厚亦是我師
또한 보살은 명심해야 하나니,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중생들은 시작이 없고 세계는 한계가 없으니, 5도(道)를 오가며 끝없이 헤맨다. 나도 일찍이 중생들의 부모 형제가 되었고, 중생들도 나의 부모형제가 되었으며, 앞으로도 또한 그러하리라” 하셨다. 이로써 미루어보건대 삿된 마음으로 성내고 해하려는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한다.
014_0640_c_08L復次菩薩心知如佛所說衆生無始世界無際往來五道輪轉無量我亦曾爲衆生父母兄弟衆生亦皆曾爲我父母兄弟當來亦爾以是推之應惡心而懷瞋害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중생들 가운데는 부처의 종자가 매우 많으니, 내가 화를 내어 그들을 대한다면 이는 곧 부처님께 화를 내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부처님께 화를 낸다면 이미 끝난 것이다. 말씀하셨듯이 비둘기도 마땅히 부처를 이루리니, 지금은 비록 새이지만 가벼이 할 수 없다.’
014_0640_c_13L復次思惟衆生之佛種甚多若我瞋意向之則爲瞋若我瞋佛則爲已了如說鴿鳥當得作佛今雖是鳥不可輕也
또한 모든 번뇌 가운데서 성냄이 가장 무거우며, 착하지 못한 과보 가운데 성냄의 과보가 가장 크다. 다른 번뇌에는 이런 중한 죄가 없다.
014_0640_c_16L復次煩惱中瞋爲最重不善報中瞋報最餘結無此重罪
예컨대 석제바나민(釋提婆那民)이 부처님께 게송으로 물은 바와 같다.
014_0640_c_18L如釋提婆那民問佛偈言

어떤 것을 죽이면 안온해지고
어떤 것을 죽이면 후회가 없으며
어떤 것이 독의 근본이 되어서
모든 선근을 죽여 버리나이까?
어떤 것을 죽이면 칭찬받으며
어떤 것을 죽이면 근심이 없습니까.
014_0640_c_19L何物殺安隱
何物殺不悔
何物毒之根
呑滅一切善
何物殺而讚
何物殺無憂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014_0640_c_21L佛答偈言

성내는 마음을 죽이면 안온하고
성내는 마음을 죽이면 후회가 없으며
성냄이 독의 근본이어서
성냄은 일체의 선근을 멸해 버린다.
성냄을 죽이면 부처님들이 칭찬하시고
성냄을 죽이면 곧 근심이 없어진다.
014_0640_c_22L殺瞋心安隱
殺瞋心不悔
瞋爲毒之根
瞋滅一切善
殺瞋諸佛讚
殺瞋則無憂
014_0641_a_01L
다시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 연민[悲]을 행해 중생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하고자 한다. 성냄은 모든 선근을 멸하고 모든 것을 독으로 해치거늘 내 어찌 이 중한 죄를 범하겠는가. 만일 화를 낸다면 스스로 즐거움과 이익을 잃어버리니, 어떻게 중생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하겠는가.’
014_0641_a_01L菩薩思惟我今行悲欲令衆生得樂瞋爲呑滅諸善毒害一切我當云何行此重罪若有瞋恚自失樂利云何能令衆生得樂
또한 불보살들은 대비(大悲)로써 근본을 삼는다. 그러니 성을 낸다면 대비를 멸하는 독이 되고 마니, 특히나 안 될 일이다. 만일 대비의 근본을 무너뜨린다면 어찌 보살이라 하며, 보살이 어디로부터 나오랴. 그러므로 인욕을 닦아야 한다.
만일 어떤 중생이 온갖 성냄의 고통[瞋惱]을 가하더라도 그 공덕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 이 중생이 비록 한 가지 죄가 있으나 달리 묘한 여러 공덕들이 있을 것이니, 그 공덕 때문이라도 그에게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014_0641_a_05L復次諸佛菩薩以大悲爲本從悲而出瞋爲滅悲之毒不相宜若壞悲本何名菩薩菩薩從何而出以是之故應修忍辱若衆生加諸瞋惱當念其功德今此衆生雖有一罪更自別有諸妙功德以其功德故不應瞋
나아가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이 욕하거나 때리더라도 그것은 나를 다듬는 것이 된다. 마치 금쟁이가 금을 정련하면 티는 불을 따라 없어지고 순금만 남는 것과 같다. 이 또한 이와 같으니, 내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전생의 인연 때문이니, 이제 마땅히 그것을 갚아야 한다. 화를 내지 말고 인욕을 닦으리라.’
014_0641_a_11L復次此人若罵若打爲治我譬如金師煉金垢隨火去金獨在此亦如是若我有罪是從先世因緣今當償之不應瞋也當修忍
또한 보살은 인자한 마음으로 중생들을 마치 갓난아기같이 여기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염부제 사람들은 근심 걱정은 많고 즐거운 날이 없으므로 혹 와서 꾸짖고 모함하거나 혹은 중상을 가해 스스로 즐거워한다면, 이 즐거움은 얻기 어려운 것이니 네 마음대로 꾸짖으라. 왜냐하면 내가 본래 발심한 것은 중생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느니라.’
014_0641_a_15L復次菩薩慈念衆生猶如赤子浮提人多諸憂愁少有歡日若來罵或加讒賊心得歡樂此樂難得汝罵之何以故我本發心欲令衆生得歡喜故
‘세간의 중생들은 항상 모든 병고에 시달리고, 또한 항상 죽음의 도적이 그를 쫓아 엿보니, 마치 원수가 항상 안부를 묻는 것과 같다. 그러니 어찌 착한 사람으로서 사랑하여 가엾이 여기지 않겠는가.’
‘고통을 주고자 하나 고통이 그에게 미치기 전에 먼저 내가 해를 받을 것이다.’
이와 같이 사유해서 저들에게 화를 내지 말고 인욕을 닦아야 한다.
014_0641_a_19L復次世閒衆生常爲衆病所惱又爲死賊常隨伺之譬如怨家恒伺人便云何善人而不慈愍復欲加苦苦未及彼先自受害如是思惟不應瞋彼當修忍辱
014_0641_b_01L또한 마땅히 이렇게 관찰해야 한다.
‘성냄은 그 허물이 가장 깊어서 삼독 가운데서 이보다 깊은 것이 없다. 98사(使)가운데서 이것이 가장 견고하고, 모든 마음의 법 가운데 가장 고치기 어렵다. 성내는 사람은 착한 것도 모르고, 착하지 않은 것도 모르며, 죄와 복도 관찰하지 못하고, 이익과 손해도 알지 못한 채 스스로 억념하지도 못하다가 스스로 악도에 떨어진다. 착한 말을 망실하고 명예를 아끼지 않으며, 남의 괴로움을 모르고 자기의 몸과 마음이 피로하고 지치는 줄도 모른 채 성냄에 지혜의 눈을 가려 오로지 남을 괴롭히는 짓만을 한다.’
어떤 5통선인(通仙人)이 화를 냈기 때문에 비록 청정한 행을 닦았으나 한 나라 사람을 다 죽이기를 마치 전다라와 같이 했다.
014_0641_a_23L復次當觀瞋恚其咎最深三毒之中無重此者九十八使中此爲最堅諸心病中第一難瞋恚之人不知善不知非善不觀罪福不知利害不自憶念當墮惡道善言忘失不惜名稱不知他惱亦不自計身心疲惱瞋覆慧眼專行惱他如一五通仙人以瞋恚故雖修淨行殺害一國如旃陁羅
또한 화를 내는 사람은 마치 삵과 같아서 함께 머물기 어려우며, 마치 악성 종기와도 같아서 쉽게 화를 내고 쉽게 무너진다.
화를 내는 사람은 마치 독사와도 같아서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며, 화를 쌓은 사람은 악심이 점점 커져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러 아비도 죽이고 임금도 죽이며 악의를 품은 채 부처님께 향한다.
014_0641_b_08L復次瞋恚之人譬如虎狼難可共止又如惡瘡易發易壞瞋恚之人譬如毒蛇人不喜見積瞋之人惡心漸大至不可至殺父殺君惡意向佛
예컨대 구섬미국(拘睒彌國)23)의 비구들은 사소한 일로 성내는 마음이 점점 커져서 두 패로 나뉘게 되었다.
만일 판정을 하고자 한다면 석 달이 걸려도 풀리지 않았을 것이나, 부처님께서 오셔서 상륜(相輪)의 손을 들어 막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014_0641_b_12L如拘睒彌國比丘小因緣瞋心轉大分爲二部若欲斷終竟三月猶不可了佛來在衆相輪手遮而告言

비구들이여,
싸우지 말라.
거친 마음이 상속되면
괴로움의 과보도 무거워진다.
014_0641_b_15L汝諸比丘
勿起鬪諍
惡心相續
苦報甚重

그대들은 열반을 구해
세간의 이익을 버리고
착한 법 가운데 들어왔거늘
어찌 성내고 싸우는가?
014_0641_b_17L汝求涅槃
棄捨世利
在善法中
云何瞋諍

세상 사람들의 분쟁(忿爭)은
용서할 수야 있겠지만
출가한 사람이야
어찌 싸울 수 있으랴.
014_0641_b_18L世人忿諍
是猶可恕
出家之人
何可諍鬪

출가한 이가 마음에 독기를 품어
스스로 해치는 것은
마치 찬 구름에서 불이 나와
몸을 태우는 것과 같다.
014_0641_b_19L出家心中
懷毒自害
如冷雲中
火出燒身

비구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법왕이시니, 잠시 잠자코 계십시오. 이 무리들이 나를 침해하니 어찌 대꾸하지 않으리이까.”
부처님께서는 ‘이 사람은 제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고는 승중 가운데서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숲으로 들어가셔서 조용히 삼매에 드셨다.
014_0641_b_21L諸比丘白佛言佛爲法王願小默然是輩侵我不可不答佛念是人不可度也於衆僧中凌虛而去入林樹閒寂然三昧
014_0641_c_01L성내는 죄는 이와 같아서 부처님의 말씀까지도 듣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반드시 성냄을 제거하고 인욕을 닦아야 한다.
014_0641_c_02L瞋罪如是乃至不受佛語以是之故應當除瞋修行忍辱
또한 능히 인욕을 닦는다면 자비를 얻기 쉽고, 자비를 얻으면 곧 불도에 이르게 된다.
014_0641_c_03L復次能修忍辱慈悲易得得慈悲者則至佛道
【문】 인욕하는 법이 모두 좋기는 하나 단 한 가지만은 옳지 못하다. 곧 소인배들이 가벼이 여겨 말하기를 ‘겁을 낸다’ 한다. 이런 까닭에 모두 참을 수는 없다.
014_0641_c_05L問曰忍辱法皆好而有一事不小人輕慢謂爲怖畏以是之故應皆忍
【답】 만일 소인들이 가벼이 여겨 ‘겁낸다’고 하는 까닭에 참지 않으려 한다면 참지 않는 죄는 이보다 심하다.
014_0641_c_07L答曰若以小人輕慢謂爲怖畏而欲不忍不忍之罪甚於此也
왜냐하면 참지 못하는 사람은 현성의 착한 이들이 가벼이 여기시고, 인욕하는 사람은 소인들이 가벼이 여기나니, 그렇다면 두 가지 가벼이 여김 가운데서 차라리 어리석은 자에게 업신여김을 받을지언정 성현들의 천대를 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들은 업신여겨서는 안 될 것에 업신여기고, 성현은 천히 여길만한 것을 천히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인욕을 닦아야 한다.
014_0641_c_08L以故不忍之人賢聖善人之所輕賤忍辱之人爲小人所慢二輕之中爲無智所慢不爲賢聖所賤何以故無智之人輕所不輕賢聖之人賤所可賤以是之故當修忍辱
또한 인욕하는 사람은 비록 보시와 선정을 행하지 않더라도 항상 미묘한 공덕을 이루어 하늘이나 인간에 태어나며 나중에는 불도를 얻는다. 왜냐하면 마음이 부드럽기 때문이다.
014_0641_c_13L復次忍辱之人雖不行布施禪定而常得微妙功生天上人中後得佛道何以故柔軟故
또한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금생에 나를 괴롭히고 욕보이며, 이익을 빼앗고, 업신여기고, 꾸짖고, 속박하더라도 우선은 참아야 한다. 만일 내가 참지 못한다면 지옥에 떨어져서 무쇠기둥ㆍ무쇠담ㆍ뜨거운 땅에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리니, 태우고 삶고 굽는 등 고통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리라.’
소인들은 지혜가 없어서 비록 보잘것없는 것도 귀하게 여기며, 참지 못하여 위맹을 부려서 비록 상쾌한 일이나 천하게 여긴다. 그러기에 보살은 인욕해야 하는 것이다.
014_0641_c_16L復次菩薩思惟若人今世惱毀辱奪利輕罵繫縛且當含忍我不忍當墮地獄鐵垣熱地受無量燒炙燔煮不可具說以是故知小人無智雖輕而貴不忍用威雖快而是故菩薩應當忍辱
014_0642_a_01L또한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처음 발심해 중생들의 마음의 병을 다스려 주고자 맹세했거늘 어찌 그들 때문에 자신이 병들 수 있겠는가. 마땅히 인욕해야 하리라.’
마치 약사(藥師)가 모든 병을 고치는 것과 같으니, 귀신이 붙어 미친병이 들어 칼을 뽑아들고, 헐뜯으며 좋고 나쁨을 알지 못해도 의원은 귀신의 병인 줄 알기 때문에 오직 고쳐 주기만 할 뿐 화를 내지 않는다. 보살 역시 이와 같아서 만약 어떤 중생이 화를 내어 꾸짖으면 그 화를 내는 자가 번뇌의 병에 끄달리고 미친 마음에 시달린 줄을 잘 알아 방편으로 고쳐줄지언정 싫어함이 없다.
014_0641_c_21L復次菩薩思我初發心誓爲衆生治其心病此衆生爲瞋恚結使所病我當治之云何而復以之自病應當忍辱譬如藥師療治衆病若鬼狂病拔刀罵詈不識好醜醫知鬼病但爲治之而不瞋恚菩薩若爲衆生瞋惱罵詈知其爲瞋恚者煩惱所病狂心所使方便治之無所嫌責亦復如是
또한 보살은 일체를 기르고 사랑하기를 마치 아들과 같이 하나니, 어떤 중생이 보살에게 화를 내며 괴롭힐지라도 보살은 가엾이 여기어 화를 내거나 꾸짖지 않는다. 마치 인자한 아버지가 자손을 어루만져 기르지만 자손이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기에 때로는 꾸짖기도 하고 매를 들기도 하며, 공경할 줄도 두려워할 줄도 모르더라도 그 아버지는 그의 어리석음을 가엾이 여기어 더욱 사랑하며 설사 허물이 있더라도 성내거나 꾸짖지 않는다. 보살의 인욕도 이와 같다.
014_0642_a_06L復次菩薩育養一切愛之如子若衆生瞋惱菩菩薩愍之不瞋不責譬如慈父撫育子孫子孫幼稚未有所識或時罵打擲不敬不畏其父愍其愚小之愈至雖有過罪不瞋不恚菩薩忍亦復如是
또한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어떤 중생이 나에게 화를 내고 괴롭히더라도 나는 인욕해야 하리라. 만일 내가 참지 않으면 금생에 후회하고 나중에 지옥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요, 만일 축생이 되면 독한 용이나 뱀ㆍ사자ㆍ범ㆍ이리 따위가 될 것이요, 만일 아귀가 되면 입에서 불이 나올 것이니, 마치 사람이 불에 데며, 데일 때는 차라리 조금 아프지만 나중에 더욱 아파지는 것과 같으리라.’
014_0642_a_12L復次菩薩思惟若衆生瞋惱加我我當忍辱若我不忍今世心悔後入地獄受苦無量若在畜生作毒龍惡蛇師子若爲餓鬼從口出譬如人被火燒燒時痛輕痛轉重
또한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보살이 되어 중생을 이롭게 해야 한다. 만일 내가 인욕하지 못한다면 보살이라 할 수 없고 오히려 악인이 되리라.’
014_0642_a_17L復次菩薩思惟我爲菩薩爲衆生益利若我不能忍辱不名菩名爲惡人
또한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중생 무리[衆生數]요, 둘째는 중생 아닌 무리[非衆生數]이다. 나는 처음 발심해 모든 중생을 위하리라고 맹세했다. 만일 중생 아닌 무리, 즉 산과 돌ㆍ나무ㆍ들ㆍ바람ㆍ추위ㆍ서늘함ㆍ더위ㆍ물ㆍ비 따위가 침노해 오더라도 오직 피하려 할 뿐 처음부터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 중생들은 내가 위해야 할 대상이다. 나를 해친다고 해도 나는 마땅히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거늘 어찌 화를 내리오.’
014_0642_a_19L復次菩薩思惟世有二一者衆生數二者非衆生數我初發心誓爲一切衆生若有非衆生數山石樹木風寒冷熱水雨侵害但求徽之初不瞋恚今此衆生是我所爲加惡於我我當受之云何而瞋
014_0642_b_01L또한 보살은 여러 겁 이전부터 인연이 화합하여 거짓으로 사람이라 했을 뿐 실로 사람이라 할 법이 없음을 안다. 그러니 누가 감히 꾸짖을 수 있겠는가. 오직 뼈ㆍ피ㆍ가죽ㆍ살이 있을 뿐이다. 마치 벽돌을 쌓은 것과 같으며, 마치 나무로 만든 인형[木人]의 기관이 움직여 가고 오는 것과도 같다. 이와 같음을 안다면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만일 자신이 화를 낸다면 이는 어리석은 짓으로, 스스로 죄와 고통을 받게 된다. 이런 까닭에 인욕을 닦아야 한다.
014_0642_b_01L復次菩薩知從久遠已來因緣和合,假名爲人,無實人法誰可瞋者是中但有骨血皮肉,譬如累墼又如木人,機關動作有去有來知其如此不應有瞋若我瞋者是則愚癡自受罪苦以是之故應修忍辱
또한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과거에 한량없으며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부처님들께서 보살도를 닦으실 때에 모두가 먼저 생인(生忍)을 행하시고 나중에 법인(法忍)을 수행하셨다. 나도 이제 불도를 배우려 한다면 의당 부처님들이 행하신 법과 같이 할지언정 화를 내어 악마의 법과 같이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014_0642_b_07L復次菩薩思惟過去無量恒河沙等諸佛,本行菩薩道時,皆先行生忍然後修行法忍我今求學佛道當如諸佛法不應起瞋恚,如魔界法
이런 까닭에 인욕을 닦아야 한다.
以是故應當忍辱
이러한 갖가지 한량없는 인연에 의하여 능히 참으니, 이것을 생인(生忍)이라 한다.
014_0642_b_11L如是等種種無量因緣故能忍是名生忍
大智度論卷第十四
庚子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범어로는 śīla-pāramita. 계를 지니어 완전하게 만드는 일이다.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2. 2)범어로는 Sutasomarājasūtra.
  3. 3)복락의 인연 때문에 요동치 않는다.
  4. 4)여우[狐]의 일종이다.
  5. 5)범어로는 kṣānti. 찬제(羼提)란 참고 감내함을 뜻한다.
  6. 6)범어로는 caitasika-dharma. 신역어는 심소법(心所法). 심수(caitasika)란, ‘마음에 속하는 것’이란 뜻으로 ‘마음에 속하는 작용’ 나아가 ‘대상을 인식하는 마음작용’을 가리킨다.
  7. 7)범어로는 Kapilasastu.
  8. 8)범어로는 Dronodana.
  9. 9)범어로는 Devadatta.
  10. 10)범어로는 Gautama. 데바닷따의 성(性)이다.
  11. 11)범어로는 Ajātaśatru.
  12. 12)범어로는 Guhyakavajrapāṇi,
  13. 13)범어로는 vajrayudha. ‘결코 부서지는 일 없는 방망이’를 의미한다. 이 금강저(金剛杵)를 지니고 바즈라빠니(vajra-pāṇi, 執金剛)가 항상 부처님을 그 곁에서 수호한다고 한다.
  14. 14)범어로는 Utpalavarṇā.
  15. 15)범어로는 Pūrāna. 육사 외도 가운데 한 사람으로, 공견(空見)에 집착했다고 한다.
  16. 16)범어로는 Kaśmīr. 현재 북인도의 까슈미르 지역을 말한다.
  17. 17)의ㆍ식ㆍ주의 셋을 말한다.
  18. 18)인왕(仁王)이라고도 한다.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불법을 수호하는 야차. 28부중 가운데 하나. 인도에서는 나형, 중앙아시아 동부에서는 무장을 한 형태로 표현되고 있으며, 진나라 말로는 절문 좌우에 안치되어 사원을 지키는 수문존(守門尊)이 되고 있다. 이 금강역사를 안치하는 문을 ‘인왕문(仁王門)’이라 부른다.
  19. 19)범어로는 Vāsu.
  20. 20)범어로는 Kumuda. ‘지희화(地喜花)’라 의역한다. 혹은 ‘아직 개화되지 않은 연꽃’을 의미하기도 한다.
  21. 21)범어로는 caṇḍala.
  22. 22)범어로는 kṣānti.
  23. 23)범어로는 Kauśam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