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그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서는 받아 지니고 친근하고 읽고 외우며 바르게 기억하여 살바야(薩婆若)의 마음을 여의지 않는다면, 양쪽에서 진(陣)을 치고 싸울 때에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반야바라밀을 외우는 까닭에 싸움터에 들어간다 해도 끝내 생명을 잃지 않으며 칼과 화살에 상하지도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오랜 세월 동안 6바라밀을 행하면서 스스로 음욕(婬慾)의 칼과 화살을 제거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또한 음욕의 칼과 화살을 제거하게 하였고 스스로 성냄[瞋恚]의 칼과 화살을 제거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또한 성냄의 칼과 화살을 제거하게 하였으며, 스스로 어리석음[愚癡]의 칼과 화살을 제거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또한 어리석음의 칼과 화살을 제거하게 하였고 스스로 삿된 견해[邪見]의 화살을 제거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또한 삿된 견해의 칼과 화살을 제거하게 하였으며 스스로 스스로 얽매임과 더러움[纏垢]의 칼과 화살을 제거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또한 얽매임과 더러움의 칼과 화살을 제거하게 하였고 스스로 모든 번뇌[結使]의 칼과 화살을 제거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결사의 칼과 화살을 제거하게 하였기 때문이니라.
014_1068_a_01L교시가야,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서는 받아 지니고 친근하고 읽고 외우며 바르게 기억하며 살바야의 마음을 여의지 않는다면, 설령 독약의 냄새를 맡게 하거나 또는 저주하는 주술[蠱道]이나 불구덩이, 깊은 물에 빠뜨리고 칼로 죽이려 하거나 또는 독을 준다 해도, 이러한 여러 악한 일들이 전혀 그를 상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은 크고 밝은 주문[大明呪]이요 위없는 주문[無上呪]이기 때문이니라.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크고 밝은 주문 가운데에서 배우면 자신의 몸을 괴롭히지 않고 또한 남을 괴롭히지 않으며, 양쪽 모두를 괴롭히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나[我]를 얻지 못하고 중생(衆生)을 얻지 못하고 영혼[壽命]을 얻지 못하고 아는 이ㆍ보는 이를 얻지 못하며, 물질[色]ㆍ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을 얻지 못하며, 일체종지도 또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괴롭히지 않고 또한 남을 괴롭히지 않으며, 양쪽 모두를 괴롭히지 않느니라.
이 크고 밝은 주문을 배운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는 온갖 중생들의 마음을 관하면서 뜻에 따라 설법을 하나니, 왜냐하면 과거의 부처님께서 이 크고 밝은 주문을 배워 크고 밝은 주문을 배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고, 장차 오는 세상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 크고 밝은 주문을 배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은 삼천대천세계 안의 사천왕(四天王)의 모든 하늘에서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신들과 그리고 시방의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 안의 모든 사천왕의 하늘들에서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신들의 수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니, 이 반야바라밀이 있는 처소에는 모든 하늘들이 모두 다 와서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가느니라.
014_1068_b_01L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반야바라밀을 단지 경전에 베껴 써 놓고 집에서 공양만을 하면서 받지도 않고 읽지도 않으며 외지도 않고 해설하지도 않으며 바르게 기억하지도 않는다 하여도 금세에 이러한 공덕을 얻게 되느니라.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나 짐승이 보리수(菩提樹) 아래 근처로 들어가 있으면 가령 사람이나 사람 아닌 이가 와도 그의 틈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그리고 부처님이 되신 뒤에는 온갖 중생에게 두려움 없음[無畏]을 베풀어 주시고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들로 하여금 천상과 인간 안의 복락(福樂)을 받게 하며, 또한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들로 하여금 수다원의 과위를 얻고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기 때문이니, 이 반야바라밀의 힘 때문에 이곳은 공경과 예배와 꽃ㆍ향ㆍ영락ㆍ도향(擣香)ㆍ택향(澤香)ㆍ당기ㆍ번기ㆍ음악의 공양을 얻게 되느니라.”
【논】【문】현재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이도 싸움터에 들어가서 무기에 부상하기도 하고 혹은 목숨을 잃는 이가 있다. 또한 부처님은 업의 인연[業因緣]을 말씀하시면서 “허공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가운데에서 면할 수 있는 이도 없다.”고 하셨거늘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반야를 읽고 외는 이는 싸움터에 들어가도 무기가 상하게 하지 못하고 또한 목숨도 잃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가?
【답】두 가지 업의 인연이 있나니, 첫째는 반드시 과보를 받아야 할 이요, 둘째는 반드시 과보를 받지 않아도 될 이다. 반드시 과보를 받아야 할 이 때문에 『법구[法句]』에서 그렇게 설명했거니와 이 가운데에서는 반드시 과보를 받지 않아도 될 이를 위하여 “반야를 읽고 외면 무기도 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014_1068_c_01L비유컨대 마치 대역죄(大逆罪)의 중한 죄를 지은 이로써 죽어야 할 사람은 비록 강한 세력이 있고 재보가 있다 하더라도 면제될 수 없거니와 어떤 사람이 죄가 가벼운데 죽을 처지에 놓여 있을 때에 구제할 만한 이가 세력과 재물을 쓰면 목숨을 살릴 수 있고 구제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두면 죽게 되는 것과 같다.
또한 선남자ㆍ선여인이 만일 삿된 법을 멀리 여의고 그의 마음을 잘 다스리며, 번뇌가 꺾이어 줄어지고 일심으로 착한 법을 진실로 믿으면서 의심함이 없으며, 아득히 먼 오래 전부터 복덕과 지혜를 닦아 쌓았고 온갖 중생들에 대하여 자비의 마음이 있으면서 중생을 교화하고 악한 마음을 제거했다면, 이러한 선남자에게는 무기가 상하게 하지도 못하고 중도에 일찍 죽게 하지도 못한다. 마치 부처님께서 스스로 인연을 말씀하시면서 “오랜 세월 동안에 6바라밀을 행하면서 자기 자신과 다른 이에게 3독(毒)의 칼과 화살을 제거시켰다.”고 하신 것과 같다.
014_1069_a_01L【답】이 사람이 얻게 되는 공덕 역시 위에서와 같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먼저 이미 스승에게서 반야의 이치를 들어서 깊이 들어가 좋아하고 있었지만 문자(文字)를 모르는데다 스승까지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읽고 외울 수 없게 되자 재보를 아끼지 않고 사람을 고용하여 베껴 쓴 뒤에 마음을 다하여 갖가지로 공양한다면 그의 뜻은 읽고 외는 이와 동일하기 때문에 역시 공덕을 얻게 된다.
“사람이 틈[便]을 얻지 못한다.”고 함은, 모든 하늘들이 수호하기 때문이다. 이 일은 믿기 어렵기 때문에 부처님은 보리수(菩提樹)를 가지고 비유를 드신다. 부처님은 반야의 세력 때문에 보리수 아래서 위없는 도를 이루셨다. 이 위없는 도의 기세 때문에 그 처소조차도 오히려 위덕이 있어서 중생이 그 안에 들어가도 뭇 악(惡)이 그의 틈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반야바라밀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시고 선남자가 마음을 다하여 공양하는데 그런 공덕이 없겠는가.
【경】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꽃과 향과 영락과 또한 음악으로 공양하고, 다시 다른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사리(舍利)에 공양하고 또는 탑(塔)을 일으켜 공양한다면, 이 두 가운데에서 어떤 이가 복을 얻는 것이 더 많겠는지요?”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교시가야, 부처님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배워서 일체종지를 얻느니라. 교시가야, 이 몸을 바로 부처님이라 하지 않으며, 일체종지를 얻기 때문에 부처님이라 하나니, 교시가야, 이 부처님의 일체종지는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나오느니라.
그러므로 교시가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반야바라밀을 써서 받아 지니고 친근하고 읽고 외우며 해설하고 바르게 기억하면서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며 꽃ㆍ향ㆍ영락 내지 음악으로 공양하고, 다시 다른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사리에 공양하고 탑을 일으켜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꽃과 향 내지 음악으로 공양한다면, 그들 중에 저 선남자ㆍ선여인으로서 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며 공양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꽃과 향과 영락과 또한 음악으로 공양하는 이 사람의 얻는 복이 더 많으니라.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의 가운데에서 다섯 가지 바라밀이 나오고 내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와 4념처에서 18불공법까지와 또한 온갖 삼매와 온갖 선정과 온갖 다라니가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나오며,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는 것도 모두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나오기 때문이니라.
014_1069_c_01L보살의 집[家]이 성취되고 빛깔[色]이 성취되며 살림[資生之物]이 성취되고 권속(眷屬)이 성취되며 대자대비(大慈大悲)가 성취되는 것도 모두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나오고, 찰리(刹利)의 큰 성바지와 바라문(婆羅門)의 큰 성바지와 거사(居士)의 큰 집안도 모두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나오며, 사천왕천에서 아가니타천까지와 수다원에서 아라한과 벽지불과 모든 보살마하살과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의 일체종지가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나오느니라.”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염부제 안에서 몇 사람이나 부처님[佛]을 믿고 무너뜨리지 않고 가르침[法]을 믿고 무너뜨리지 않으며, 승가[僧]를 믿고 무너뜨리지 않더냐? 몇 사람이나 부처님에 대하여 의심함이 없고 가르침에 대하여 의심함이 없으며 승가에 대하여 의심함이 없더냐? 몇 사람이나 부처님에 대하여 확실히 알고 가르침에 대하여 확실히 알며 승가에 대하여 확실히 알더냐?”
염부제에서 몇 사람이나 3결(結)을 끊어 수다원(須陀洹)의 도(道)를 얻고, 몇 사람이나 3결을 끊어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얇아진 결과로 사다함(斯陀含)의 도를 얻으며, 몇 사람이나 5하분결(下分結)을 끊어 아나함(阿那含)의 도를 얻고, 몇 사람이나 5상분결(上分結)을 끊어 아라한(阿羅漢)이 되더냐?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교시가야, 얼마 되지 않는 사람만이 부처님을 믿고 무너뜨리지 않으며, 가르침을 믿고 무너뜨리지 않으며, 승가를 믿고 무너뜨리지 않느니라. 얼마 되지 않는 사람만이 부처님에 대하여 의심함이 없고 가르침에 대하여 의심함이 없으며, 승가에 대하여 의심함이 없느니라. 얼마 되지 않는 사람만이 부처님에 대하여 확실히 알고 가르침에 대하여 확실히 알며 승가에 대하여 확실히 아느니라.
교시가야, 또한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37품과 3해탈문과 8해탈과 9차제정과 4무애지와 6신통을 얻느니라. 교시가야, 또한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3결을 끊으면서 수다원이 되고, 3결을 끊고 또한 음욕에 성냄과 어리석음이 얇아져서 사다함이 되며, 5하분결을 끊어 아나함이 되고, 5상분결을 끊어 아라한이 되느니라.
많지 않은 사람들만이 벽지불을 구하고 그 가운데에서도 더 적은 사람들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며, 그 마음을 내는 이 가운데에서도 더 적은 사람들만이 보살의 도를 행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중생들은 전생에 부처님을 뵙지 못하고 가르침을 듣지 못했으며 비구승에게 공양하지 못했기 때문이니라.
또한 보시하지 않고 계율을 지니지 않았으며, 인욕하지 않고 정진하지 않았으며, 선정을 닦지 않고 지혜가 없었기 때문이니라. 내공ㆍ외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를 듣지 않고, 또한 4념처에서 18불공법까지를 듣지도 않고 닦지도 않았으며, 또한 모든 삼매문과 모든 다라니문을 듣지도 않고 닦지도 않았으며, 또한 일체지와 일체종지를 듣지도 않고 닦지도 않았기 때문이니라.
014_1070_b_01L교시가야, 이런 인연 때문에 얼마 되지 않는 중생들만이 부처님을 믿고 무너뜨리지 않으며, 가르침을 믿고 무너뜨리지 않으며, 승가를 믿고 무너뜨리지 않으며, 얼마 되지 않는 중생들만이 벽지불의 도를 구하고, 그 가운데에서도 더 적은 중생들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며, 그들 가운데에서도 더 적은 중생들이 보살의 도를 행하고, 그 가운데에서도 더 적은 사람들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교시가야, 내가 불안(佛眼)으로써 동쪽의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들을 보건대, 발심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수행하고 보살의 도를 행하여도 이 중생들은 반야바라밀의 방편의 힘을 멀리 여읜 까닭에 한 둘만이 아비발치(阿毘跋致)의 지위에 머무르고 거의 모두가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지느니라. 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무엇이 그 밖의 여러 가지 착한 법이냐 하면, 이른바 단(檀)바라밀ㆍ시라(尸羅)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禪)바라밀과 내공(內空)ㆍ외공(外空)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까지와 모든 삼매문(三昧門)과 모든 다라니문(陀羅尼門)과 4념처(念處)에서 18불공법(不共法)까지와 대자대비(大慈大悲)이니라.
이와 같이 한량없는 부처님 법을 우리들도 또한 따라 배워야 하나니,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곧 우리들이 존중할 바요 선바라밀과 한량없는 그 밖의 모든 착한 법도 또한 우리들이 존중할 바이며, 이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의 법인(法印)이요 모든 벽지불과 아라한과 아나함과 사다함과 수다원의 법인이기 때문이다.’
014_1071_a_01L【논】【문】부처님은 이미 갖가지로 반야의 공덕을 찬탄하셨거늘 지금 석제환인은 무엇 때문에 사리(舍利)로써 반야의 공덕이 많고 적음을 논쟁[校量]하는가?
014_1071_a_01L【論】問曰:佛已種種讚般若功德,今釋提桓因何故以舍利校般若功德多少?
【답】신근(信根)이 많은 이는 사리공양을 좋아하고, 혜근(慧根)이 많은 이는 경법(經法)을 독송하기 좋아하나니,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은 경전을 서사해 공양하고 어떤 사람은 사리를 공양하는데 어느 쪽이 더 복이 많습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꽃과 향과 영락 등의 뜻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함은, 네 가지 일의 대답 가운데에서 이것은 바로 반문의 대답[反問答]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은 곧 석제환인에게 반문하시기를 “혹 어떤 사람은 사리에 공양하여 복덕을 얻는 것이 많기도 하고 또한 어떤 사람은 반야바라밀에 공양하여 복덕이 많기도 하다.”고 하시면서, 그 사람의 마음을 따르면 부처님은 일정한 대답을 하실 수가 없나니, 이 때문에 반문하신 것이다.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다섯 가지 바라밀이 나온다.”고 함은, 후품(後品) 중에서 부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방편과 지혜와 보시와 회향이 없으면 단바라밀이라 하지 못한다.”고 하신다. 18공(空)은 곧 그것이 지혜이니, 지혜의 인연 때문에 4념처에서 일체종지까지 생긴다. 비록 모두 이것이 지혜는 아니라 하더라도 성품[性]이 같기 때문에 지혜로써 주(主)를 삼나니, 이 때문에 “반야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며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얻으면 보시(布施)와 지계(持戒) 등을 통달하게 되거니와 만일 반야의 실상을 얻지 못하면 보시와 지계 등을 통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온갖 법이 공이라면 죄도 없고 복도 없거늘 보시와 지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일 모든 법이 실로 존재[實有]하는 모양이라면 이(因)과 연(緣)으로부터 생기지 않아야 하리니, 먼저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중생이 항상 있는[常] 것이라면 마치 허공과 같아서 또한 죽는 이도 없을 것이요 만일 항상 없는[無常] 것이라면 정신은 몸과 함께 없어지고 또한 후세에 죄와 복도 없게 된다. 만일 중생이 없다면 어디에 살생(殺生)하는 죄가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역시 불살생계(不殺生戒) 등도 없게 된다.
014_1071_b_01L만일 이 반야바라밀의 실상의 법을 얻으면 있다[有] 없다[無] 하는 두 가지 치우침에 떨어지지 않고 중도(中道)를 쓰면서 보시와 지계 등을 통달하게 되나니, 이 보시와 지계 등의 과보 때문에 찰리(刹利)의 큰 성바지에서 모든 부처님들에 이르기까지 계시게 된다.
【문】염부제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이익과 복덕을 탐내면서도 무엇 때문에 반야바라밀에 공양하지 않는가?
014_1071_b_05L問曰:閻浮提人多貪利福德,何以不供養般若波羅蜜?
【답】지혜 있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니, 반야에 공양할 줄 모른다 하여 허물할 것이 없다. 비유컨대 마치 금의 보물은 소경이 식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염부제 사람들은 단지 3존(尊)을 믿는 이조차도 적거늘 하물며 알면서 능히 행하는 이이겠는가. 부처님은 석제환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설명하게 하려고 도리어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3존에 대하여 믿음을 무너뜨리지 않게 되는가” 등을 물으신 것이다.
【문】믿음을 무너뜨리지 않는[不壞信] 것과 의심함이 없는[無礙] 것과 확실히 아는 것 등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014_1071_b_11L問曰:不壞信、無疑、決了,有何差別?
【답】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차별이 없다. 부처님은 장엄으로 갖가지를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치고 알게 하시기 때문이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3보(寶)에 대하여 믿음을 무너뜨리지 않게 되는 것을 무엇으로써 아느냐 하면 그가 의심함이 없기 때문이요 무엇으로써 의심함이 없는 줄 아느냐 하면 그것은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고 한다.
3분성계(分聖戒)의 힘 때문에 믿음이 파괴되지 않고, 4분(分)의 힘 때문에 그것은 의심함이 없으며, 정견분(正見分)의 힘 때문에 바로 확실히 안다. 또한 견제도(見諦道) 안에서는 바로 믿음을 무너뜨리지 않고, 사유도(思惟道) 안에서는 바로 의심함이 없으며, 무학도(無學道) 안에서는 바로 확실히 안다. 이와 같이 갖가지로 분별하게 된다.
석제환인은 보생(報生)으로 다른 이들의 마음을 알며 또한 일찍이 천이(天耳)로써 모든 도(道)의 차별을 들었다. 또한 이 큰 보살은 근기가 영리하여 중생의 마음을 관하는 삼매[觀衆生心三昧]에 들었기 때문에 모든 도의 차별을 알 수 있었으니, 이 때문에 부처님께 대답하기를 “깊이 믿는 이는 적습니다.”고 한 것이다.
수다원에서 처음 발심한 이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도를 구하는 이는 갈수록 적어지고 갈수록 적어지기 때문에 반야에 공양할 줄을 알지 못한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적느냐 하면, 전생의 나고 죽는 동안에 3보의 이름을 듣지 못했고 일체종지의 이름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위의 일들을 증명하시려고 “내가 이제 불안(佛眼)으로써 시방의 한량없는 아승기 중생을 자세히 살펴보건대, 위없는 도를 일으킨 이도 반야의 방편의 힘을 여읜 까닭에 한 두 사람만이 겨우 아비발치(阿毘跋致)의 지위에 머물러 있다.”고 하신다.
“그 밖의 착한 법도 반야바라밀에 들어간다.”고 함은 바로 모든 그 밖의 경전을 말한다. 이른바 『법화경(法華經)』과 『밀적경(密迹經)』 등으로, 12부경(部經) 중에 그 이치가 반야와 동일한 경전이니, 비록 이름을 『반야바라밀경(般若波羅密經)』이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뜻과 진리가 곧 반야바라밀과 동일하다.
014_1072_a_01L【경】“교시가야, 만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하여 7보로 된 탑[寶塔]을 세우고 높이 1유순(由旬)이 되게 하여 하늘의 향ㆍ하늘의 꽃ㆍ하늘의 영락ㆍ하늘의 도향(擣香)ㆍ하늘의 택향(澤香)ㆍ하늘의 옷과 하늘의 당기ㆍ일산ㆍ하늘의 음악으로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한다면, 교시가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이러한 인연으로부터 얻는 복덕은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심히 많습니다. 심히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 선남자ㆍ선여인만은 못하나니, 곧 이 반야바라밀을 듣고서는 서사하고 받아 지니고 친근하고 바르게 기억하면서 살바야(薩婆若)의 마음을 여의지 않으며 또한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꽃과 향ㆍ영락ㆍ도향ㆍ택향ㆍ당기ㆍ일산ㆍ음악으로 공양하는 선남자ㆍ선여인의 그 복덕이 많은 것보다는 못하느니라.”
다시 부처님은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하나의 7보탑은 차치(且置)하고, 만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하여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7보탑을 염부제(閻浮提)에 가득 차게 일으켜 모두 높이를 1유순이 되게 하고는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꽃ㆍ향ㆍ영락ㆍ당기ㆍ일산과 음악으로 공양한다면, 교시가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얻는 복덕은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그 복은 심히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러한 선남자ㆍ선여인만은 못하나니, 곧 앞에서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공양하는 이의 복덕이 더욱 많느니라. 교시가야, 다시 한 염부제에 가득 찬 7보탑을 차지하고,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하여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7보탑을 사천하(四天下)에 가득 차게 일으켜 모두 높이를 1유순이 되게 하고는 공양하는 것이 앞에서와 같다면, 교시가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얻는 그 복덕은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대답했다. “심히 많습니다. 심히 많습니다.”
014_1072_b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러한 선남자ㆍ선여인만은 못하나니, 곧 반야바라밀을 써서 지니면서 공양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며 꽃과 향과 또한 음악으로 공양하는 사람의 복덕이 더욱 많느니라. 교시가야, 다시 사천하에 가득 찬 7보탑은 차치하고, 만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하여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7보탑을 소천(小千)세계에 가득 차게 일으켜 모두 높이를 1유순이 되게 하고는 공양하기를 앞에서와 같이 한다면, 교시가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얻는 그 복덕은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대답했다. “심히 많습니다. 심히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러한 선남자ㆍ선여인만은 못하나니, 곧 이 반야바라밀을 써서 받아 지니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꽃과 향 내지는 음악으로 공양하는 사람의 복덕이 더욱 많느니라. 교시가야, 다시 소천세계 안에 가득 찬 7보탑은 차지하고, 만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하여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7보탑을 중천(中千)세계에 가득 차게 일으켜 모두 높이를 1유순이 되게 하고는 앞에서와 같이 공양한다 하여도, 반야바라밀을 공양하는 이의 그 심히 많은 복덕보다는 못하느니라.
다시 중천세계 안에 가득 찬 7보탑은 차지하고, 만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하여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7보탑을 삼천대천세계 안에 가득 차게 일으켜 모두 높이를 1유순이 되게 하고는 그의 수명이 다하기까지 하늘의 꽃ㆍ하늘의 향ㆍ하늘의 영락 내지는 하늘의 음악으로 공양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얻는 복덕은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심히 많습니다. 심히 많습니다.”
014_1072_c_01L다시 삼천대천세계 안에 가득 찬 7보탑은 차치하고, 만일 삼천대천세계 안의 중생으로서 그 낱낱 중생들이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하여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저마다 7보탑을 일으키어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꽃과 향 내지는 음악으로 공양하고, 다시 다른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써서 지니고 또한 바르게 기억하면서 살바야의 마음을 여의지 않으며 또한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꽃ㆍ향ㆍ영락 내지는 음악으로 공양한다면, 바로 이 사람이 얻는 복덕이 더욱 많느니라.”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을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한다면, 곧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 것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의 중생으로서 그 낱낱 중생이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하여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저마다 7보탑을 일으켜 높이를 1유순이 되게 하고, 이 사람이 1겁이나 1겁이 조금 안 되는 동안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꽃과 향 내지는 음악으로 공양한다면, 세존이시여,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얻는 복덕은 많겠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심히 많느니라.”
석제환인이 말씀드렸다. “하지만 만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반야바라밀을 써서 지니고, 나아가 바르게 기억하며 또한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꽃과 향 내지는 음악으로 공양한다면, 그 복이 훨씬 크고 많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온갖 착한 법이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논】해석한다. 반야바라밀을 만일 듣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한량없는 공덕이 있으므로 다시 좀 더 말하기 위하여 비유를 들며 증명하신다. 사람이 흙으로 만든 탑[土塔]이 높고 큰 것을 보고 즉시 생각하면서 “이 탑을 일으킨 이[塔主]의 복덕은 지극히 크겠다.”고 하거늘 하물며 7보로 탑을 일으키고 높이가 1유순이 되는 것이겠는가. 이 때문에 부처님은 탑으로써 비유를 삼으신다.
【답】부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복덕이 많고 적음을 알리고 분별하게 하시려고 이런 비유를 드신 것이니, 그 거짓과 진실을 묻지 말아야 한다.
014_1073_a_15L荅曰:佛欲使人解知分別福德多小故,作是譬喩,不應問其虛實!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진실도 있고 가정도 있다.”고 한다. 마치 가섭부처님[伽葉佛]께서 열반하신 뒤에 길리길(吉梨姞)이라는 국왕이 있었는데, 그때에 사람의 수명 2만 세를 살면서 이 왕은 사리(舍利)에 공양하기 위하여 높이 50리(里)가 되는 7보탑을 세웠다. 또한 과거 세상에 덕주(德主)라는 전륜성왕은 하루 동안에 높이가 5백 유순씩이나 되는 5백의 탑을 세웠는데, 이것을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찼다.”고 하니, 이런 것이 가정하는 비유이다.
014_1073_b_01L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모두 그것은 진실로 있는 일이다.”고 한다. 마치 소국의 왕은 그의 힘에 따라 7보탑을 세우고 대국의 왕은 1유순의 7보탑을 세우기도 하고 혹은 1유순이 넘기도 하며, 소전륜왕(小轉輪王)은 7보탑을 사천하에 가득 차게 세우기도 하고 대전륜왕(大轉輪王)은 7보탑을 세우되 사천하를 더 넘기도 한다.
범천왕(梵天王)은 삼천대천세계의 주인이며 그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마음을 내어 변화로 탑을 세우면 높이는 범천(梵天)까지 이르고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게 하기도 하며, 혹 어떤 보살은 다라니문과 모든 삼매문을 얻어서 6바라밀을 깊이 행하므로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는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도록 7보탑을 세울 수도 있다.
“가득 찬다[滿]”고 함은 많다는 것이므로 간격도 말하지 않고 간격이 용인되지도 않는다. 뒤에서 설명한 “낱낱 중생”이란, 시주(施主)가 많기 때문에 복덕도 많은 것이다.
014_1073_b_08L“滿”者,擧其多故,不言閒不容閒。後言“一一衆生”者,施主多故福德多。
부처님은 여기서 스스로 복을 얻는 인연을 말씀하시면서 “10선도(善道)에서 일체종지(一切種智)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반야바라밀에 포섭되어 있나니, 이런 법이 화합하여 반야바라밀이라 하느니라.”고 하신다. 이 반야 가운데에서는 단지 부처님만이 출생하셔도 공양해야 한다. 그런데 하물며 3승(乘)과 인간 천상의 복락이 출생하는 것이 모두 반야바라밀로 인하여 있게 되거늘 어찌 공양하지 않겠는가.
【경】그때에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교시가야, 이 모든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경전을 지니고 받아 배우고 친근하고 읽고 외우며 설하고 바르게 기억하면서 꽃ㆍ향ㆍ영략ㆍ도향(擣香)ㆍ택향(澤香)ㆍ당기ㆍ일산ㆍ음악으로 공양한다면, 한량없고 수 없고 불가사의하고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는 복덕을 얻게 되느니라.
모든 부처님의 5안(眼)도 모두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생기고,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하는 것과 도종지와 일체종지와 모든 부처님의 법도 모두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생기며, 성문승(聲聞乘)과 벽지불승(辟支佛乘)과 불승(佛乘)도 모두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생기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교시가야,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경전을 지니고 친근하고 읽고 외우며 해설하고 바르게 기억하면서 게다가 다시 꽃과 향과 음악으로 공양한다면, 이것은 앞에서 7보탑(寶塔)에 공양하는 것보다 뛰어나니, 백분ㆍ천분ㆍ천억분의 일이나 만분의 일 또는 산수(算數)와 비유로도 미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교시가야, 만일 반야바라밀이 세간에 있으면 불보(佛寶)와 법보(法寶)와 비구승보(丘比僧寶)가 끝내 소멸하지 않으며, 만일 반야바라밀이 세간에 있으면 10선도(善道)와 4선(禪)과 4무량심(無量心)과 4무색정(無色定)과 단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까지와 4념처에서 18불공법ㆍ일체지ㆍ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세간에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니라.
014_1074_a_01L만일 반야바라밀이 세간에 있으면 세간에는 곧 찰리(刹利)의 큰 성바지와 바라문(婆羅門)의 큰 성바지와 거사(居士)의 큰 집안과 사천왕천(四天王天)에서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까지가 있게 되고 수다원의 과위에서 아라한에 이르기까지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보살마하살과 위없는 부처님의 도가 있게 되며, 법륜(法輪)을 굴리고 중생을 성취시키며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는 일이 있게 되느니라.”
【논】해석한다. 위에서 부처님은 제석(帝釋)에게 대답하시되 “반야를 공양하면 그 복덕이 심히 많다.”고 하셨으며, 다시 어떤 큰 하늘[大天]이 “제석은 일체지(一切智)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하는 말이 혹 착오도 있을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 때문에 부처님은 그의 하는 말을 인가(印可)하시면서 “참으로 그러하느니라.”고 말씀하신다.
【답】반야바라밀의 체성(體性)은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항상 머무르면서 소멸하지 않는다. 여기서 “세간에 있다.”고 함은, 이른바 반야경(般若經)을 닦아 익히고 독송해야 할 사람에 대해서 원인[因] 중의 결과[果]를 말한 것이다. 비유컨대 마치 우물이 깊은데 두레박줄이 짧아서 미치지 못하면 “우물을 잃었다.”고 말하지만 진실로 우물을 잃은 것이 아님과 같다. 반야바라밀의 실상(實相)도 마치 깊은 우물과 같고 경전을 두레박줄이라 하는 것과 같으며, 수행하는 이가 서사하고 닦아 익히지 못하기 때문에 ‘소멸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014_1074_b_01L【답】이 모든 법과 도는 모두 3보 안의 이치에서 널리 해설한다. 불보란, 부처님 법에 속하는 무학(無學)의 5중(衆)이다. 법보란 제3의 진리[諦]인 이른바 열반이니, 네 사문(沙門)에 속하는 배울 것이 있는 이[學]와 배울 것이 없는 이[無學]의 공덕을 제외한 그 밖의 나머지의 벽지불의 공덕과 보살의 공덕이며, 승보란 4향(向) 4과(果)의 배울 것 있는 이와 배울 것 없는 이의 5중(衆)이다.
그 밖의 다른 10선도와 4선과 4무량심 등은 모두가 도(道)의 방편문(方便門)이니, 이 때문에 따로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