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같이 ‘잡염’에 대하여 설명했다. 이제 ‘진리[諦]’에 관하여 말하겠다.1)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10_b_05L如是已說雜染,諦今當說。頌曰:
모든 진리[諦]에는 여섯 가지가 있네.
016_0010_b_06L“諸諦有六種。“
논하여 말한다. ‘진리’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속제(世俗諦)이고, 둘째는 승의제(勝義諦)이며, 셋째는 고제(苦諦)이고, 넷째는 집제(集諦)이며, 다섯째는 멸제(滅諦)이고, 여섯째는 도제(道諦)이다. 세속제(世俗諦)2)는 명칭[名身], 문구[句身], 글자[文身] 및 그 뜻에 의한 모든 언설 , 그리고 언설에 의해서 알게 된 의미를 말한다. 또는 세간의 심왕법과 심소법 및 그것이 행해지는 대상의 의미를 아는 것이다.
승의제(勝義諦)3)는 성스러운 지혜 및 그것이 행해지는 대상의 의미, 그리고 그것과 상응하는 심왕법과 심소법 등이다.
016_0010_b_12L勝義諦者,謂聖智,及彼所行境義,及彼相應心、心法等。
고제(苦諦)는 이에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세속제에 포섭되는 것이고, 둘째는 승의제에 포섭되는 것이다. ‘세속제에 포섭되는 것’이란 경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태어남의 괴로움, 늙음의 괴로움, 병듦의 괴로움, 죽음의 괴로움, 미워하는 이와 만나는 괴로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괴로움,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승의제에 포섭되는 것’이란 경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대략 일체의 5취온(取薀)을 포섭하는 괴로움이다.
016_0010_c_01L집제(集諦)는 이에 네 종류가 있다. 첫째는 전부에 속하는 것이고, 둘째는 뛰어난 것에 속하는 것이며, 셋째는 세속제에 속하는 것이고, 넷째는 승의제에 속하는 것이다. ‘전부에 속하는 것’이란 삼계의 일체 번뇌와 업을 모두 집제라고 이름하는 것을 말한다. ‘뛰어난 것에 속하는 것’이란 이미 얻은 것과 아직 얻지 못한 자체와 대상에 반연하여 일으켜진 애착, 다음 생의 존재에 대한 애착, 기쁨과 함께 행하는 애착, 여기저기의 기쁨의 애착을 모두 집제라고 이름하는 것을 말한다. ‘세속제에 속하는 것’이란 어떤 원인이 능히 세속제에 속한 고제를 초감(招感)하는 것이다. ‘승의제에 속하는 것’이란 어떤 원인이 능히 승의제에 속한 고제를 초감하는 것이다.
멸제(滅諦) 역시 네 종류가 있나니,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4) ‘전부에 속하는 것’이란 집제를 모두 포섭하여 남김없이 끊어 버리고 다 토해버려서 애욕을 떠나며 소멸해서 고요해지는 것을 말한다. ‘뛰어난 것에 속하는 것’이란 집제를 뛰어나게 포섭해서 남김없이 끊어버리고, 그와 같이 자세히 말한 것을 가리킨다.5) ‘세속제에 속하는 것’이란 세속제에 속하는 집제에 대해서 남김없이 끊어버리고, 그와 같이 자세히 말한 것을 가리킨다. ‘승의제에 속하는 것’이란 승의제에 속하는 집제에 대해서 남김없이 끊어버리고, 그와 같이 자세히 말한 것을 가리킨다.
도제 역시 네 종류가 있나니,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전부에 속하는 것’이란 일체의 각분(覺分)을 말한다. ‘뛰어난 것에 속하는 것’이란 8성도지(聖道支)를 말한다. ‘세속제에 속하는 것’이란 세속제에 속하는 고제ㆍ집제에 대해서 멸제가 두루 앎이 되는 까닭이고, 영원히 끊음이 되는 까닭이며, 증득이 되는 까닭에 일체의 거룩한 수도임을 말한다. ‘승의제에 속하는 것’이란 승의제에 속하는 고제ㆍ집제에 대해서 멸제가 두루 앎이 되는 까닭이고, 그와 같이 자세히 말한 것을 가리킨다.
고ㆍ집ㆍ멸ㆍ도가 거룩한 진리라는 의미는, 만약 이곳에서 거룩한 지혜가 행해지면 이곳의 고ㆍ집ㆍ멸ㆍ도는 바로 진리임을 말한다. 모든 성자가 다 이것이 진리라고 말하며, 이런 까닭에 거룩한 진리라고 이름한다. 이상과 같이 ‘진리[諦]’에 대하여 설명했다. 이제 ‘의지(依止)’에 관하여 말하겠다.6)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11_a_01L 논하여 말한다. 의지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4정려(靜慮)7)와 4무색정(無色定)8)을 말한다. 또한 두 가지가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초정려(初靜慮)에 두 가지가 있나니 세간과 출세간이며, 나아가 무소유처에 두 가지가 있나니 세간과 출세간이다. 비상비비상처에는 오직 세간만 있을 뿐이다.
세간의 초정려는 다음과 같다. 혹은 욕계의 욕망을 떠난 더욱 향상된[增上] 교법을 반연하거나, 혹은 그것을 떠난 더욱 향상된 가르침을 반연하여 경계로 삼는다. 이미 세간도(世間道)로 인하여 작의(作意)하고 관찰하며 치열하게 닦아 익히는 것 등으로써 전의(轉依)9)를 얻는다. 그러나 알아야 할 바의 뜻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수면(隨眠)10)을 영원히 없애지 못하고 자기 지위의 번뇌가 의지하는 곳이 된다. 이것은 퇴전하는 법이고, 자기 지위 삼마지의 심왕법ㆍ심소법이 의지하는 바이다. 세간의 초정려와 같아서 이와 같이 나아가서는 세간의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처)가 각각 아래 지위의 욕망을 떠난 더욱 향상된 교법을 반연하고,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다.11)
016_0011_b_01L출세간의 초정려는 다음과 같다. 전에는 그와 같은 행ㆍ그와 같은 상태ㆍ그와 같은 양상으로써 작의하여 초정려에 들었으나, 지금에는 그와 같은 행ㆍ그와 같은 상태ㆍ그와 같은 양상으로써 작의하지 않는다. 혹은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에 속하는 온갖 법에 대하여 사유하기를, 병과 같고 부스럼과 같으며 화살과 같고 장애이며 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무아라고12) 한다. 혹은 다시 사유하기를 괴로움은 괴로움이고, 집(集)은 집이며, 멸은 멸이고, 도는 도라고 한다. 혹은 다시 진여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를 사유한다. 이와 같이 온갖 법에 대해서 병과 같고 나아가서는 실제라고 사유한다. 이미 이와 같은 법에 대해서 마음에서 싫어함과 두려움을 일으키고, 싫어함과 두려움을 일으키고 나서, 죽음 없는 세계에 대해서 마음을 거두고 머문다. 혹은 진여ㆍ법성ㆍ실제에 대해서 마음을 거두고 머문다. 이곳은 분별이 없는 지혜이고, 그것에 상응하는 심왕법ㆍ심소법이며, 그것이 의지할 바인 전의(轉依)이다. 알아야 할 바의 뜻에 깊이 들어감으로써 곧 수면을 능히 영원히 없애고, 일체 번뇌가 의지할 곳이 아니며, 퇴전하지 않는 법이다. 이것을 출세간의 초정려라고 이름한다.
‘잡염’이란 위의 정려에 대하여 깊이 애착하는 견(見)ㆍ거만ㆍ의심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애착함에 열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선천적인 작의에 애착함이고, 둘째는 분별에 의해 일어난 작의에 애착함이며, 셋째는 자기 지위의 작의에 애착함이고, 넷째는 다른 지위의 작의에 애착함이며, 다섯째는 과거에 애착함이고, 여섯째는 미래에 애착함이며, 일곱째는 현재에 애착함이고, 여덟째는 하품(下品)에 애착함이며, 아홉째는 중품에 애착함이고, 열째는 상품에 애착함이다.
‘결백’이란 청정과 무루(無漏)를 말한다. 청정에 다시 세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이끌어내기 때문이고, 둘째는 위로 연마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번뇌를 제거함에 속하고 감당해내기 때문이다. 무루라는 이것 역시 세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출세간의 무루이고, 둘째는 이것과 등류(等流)인 무루이며, 셋째는 계박을 여읜 무루이다.
‘건립’은 이에 또한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근분(近分)을 건립함이고,13) 둘째는 근본을 건립함이며,14) 셋째는 정(定)을 건립함이고, 넷째는 태어남을 건립함이다. 근분과 근본을 건립함이란 다음과 같다. 경전에서 “이른바 이 몸은 이생희락(離生喜樂)15)으로 불리는 바이니, 두루 불리고 두루 알맞고 기쁘며 두루 흘러 퍼진다.”고 말한 바와 같나니, 이것은 초정려(初靜慮)의 근분을 가리킨다. 경전에서 또한 “곧 이 몸 안의 모든 곳에 이생희락으로 두루 충만하지 않은 곳이 조금도 없다.”고 말한 바와 같나니, 이것은 초정려의 근본을 가리킨다.16)
016_0011_c_01L경전에서 “곧 이 몸에 대하여 등지소생희락(等持所生喜樂)17)으로 불리는 바이니, 두루 불리고 두루 알맞고 기쁘며 두루 흘러 퍼진다.”고 말한 바와 같나니, 이것은 제2정려의 근분(近分)을 가리킨다. 경전에서 또한 “곧 이 몸 안의 모든 곳에, 등지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두루 충만하지 않은 곳이 조금도 없다.”고 말한 바와 같나니, 이것은 제2정려의 근본을 가리킨다.18)
경전에서 “곧 이 몸에 대하여 이희지락(離喜之樂)19)으로 불리는 바이니, 두루 불리고 두루 알맞고 기쁘며 두루 흘러 퍼진다.”고 말한 바와 같나니, 이것은 제3정려의 근분을 가리킨다. 경전에서 또한 “곧 이 몸 안의 모든 곳에, 기쁨을 여읜 즐거움으로 두루 충만하지 않은 곳이 조금도 없다.”고 말한 바와 같나니, 이것은 제3정려의 근본을 가리킨다.20)
경전에서 “곧 이 몸에 대하여 청정한 마음과 결백한 마음의 의해(意解)가 두루 충만하여 구족히 머문다.”고 말한 바와 같나니, 이것은 제4정려의 근분을 가리킨다. 경전에서 또한 “곧 이 몸 안의 모든 곳에, 청정심과 결백심으로 두루 충만하지 않은 곳이 조금도 없다.”고 말한 바와 같나니, 이것은 제4정려의 근본을 가리킨다.21)
016_0012_a_01L경전에서 “색상(色想)22)이 일체 벗어났기 때문이고, 유대색(有對色)에 대한 표상작용이 모두 소멸되었기 때문이며, 온갖 종류의 표상작용을 작의(作意)하지 않기 때문에 가없는 허공인 허공무변처에 들어간다.”라고 말한 바와 같나니, 이것은 허공무변처의 근본을 가리킨다. 경전에서 또한 “구족하게 머문다.”고 말한 바와 같나니, 이것은 허공무변처의 근본을 가리킨다.23)
경전에서 “일체의 무소유처를 벗어나 상(想)26)이 있지도 않고 상(想)이 없는 것도 아닌 비상비비상처에 들어간다.”고 말한 바와 같나니, 이것은 비상비비상처의 근분을 가리킨다. 경전에서 또한 “구족하게 머문다.”고 말한 바와 같나니, 이것은 비상비비상처의 근본을 가리킨다.27)
‘정(定)을 건립함’28)이란 경전에서 “욕망ㆍ악(惡)ㆍ불선법을 여의었기 때문에, 심구도 있고 사찰도 있으며[有尋有伺],29) 이생희락(離生喜樂)의 초정려(初靜慮)에 구족하게 머문다”고 말한 바와 같다. ‘욕망을 여읜다’는 것은 혹은 욕계의 욕망을 떠난 더욱 향상된 교법을 반연하거나 혹은 그 가르침을 반연하여 경계로 삼아서 이미 욕계 번뇌의 잡염법을 끊는 것이다. ‘악ㆍ불선법을 여읜다’는 것은 욕계 업의 잡염법을 끊음을 말한다. 살기 괴로운 세계[惡趣]30)에 능히 떨어지게 하기 때문에 악이라 이름하고, 능히 선법(善法)을 장애하기 때문에 불선법이라고 이름한다. ‘심구[尋]’란 두 가지의 잡염을 능히 다스려서 벗어남의 심구, 성냄 없음의 심구, 해침 없음의 심구를 말한다. ‘사찰[伺]’이란 두 가지 잡염을 능히 다스려서 벗어남의 사찰, 성냄 없음의 사찰, 해침 없음의 사찰을 말한다. ‘여읨[離]’이란 끊어서 다스려야 할 장애와 얻어야 할 전의를 닦아 익히고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016_0012_b_01L ‘생겨남[生]’이란 이로부터 생겨난 것을 말한다. ‘기쁨[喜]’31)이란 이미 전의(轉依)를 얻은 이가 식을 전환함에 의해서 마음이 기쁘고 마음이 용맹하며 마음이 알맞고 마음이 조화되어 편안하고 알맞은 느낌을 말하며, 수(受) 심소에 속한 것이다. ‘즐거움[樂]’이란 이미 전의를 얻은 이가 아뢰야식이 능히 의지처를 포섭함에 의지해서 몸으로 하여금 기쁘고 즐겁게 하여 편안하고 알맞은 느낌을 말하며, 수(受) 심소에 속한 것이다. ‘처음[初]’이란 순서적인 정(定)에서 이것이 가장 앞이 되기 때문이다. ‘정려(靜慮)’란 이미 욕계의 잡염법을 끊고, 심구[尋]ㆍ사찰[伺]ㆍ기쁨ㆍ즐거움이 의지하는 바로서, 전의에 의해 마음이 한 경계인 상태[一境性]32)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구족’이란 닦아 익힘이 원만한 것을 말한다. ‘머문다’는 것은 들어가거나 머물거나 나오는 것이 뜻대로 자재로운 것을 말한다.
또한 경전에 “심구와 사찰이 고요해지기 때문이고, 내면에 평정을 이루고 청정하기 때문이며, 마음이 한 갈래로 정해지기 때문에 무심무사삼마지(無尋無伺三摩地)33)에서 기쁨ㆍ즐거움이 생겨나서 제2정려에 구족하게 머문다”고 말한 바와 같다. ‘심구와 사찰이 고요해진다’는 것은 혹은 초정려의 욕망을 떠난 더욱 향상된 교법을 반연하거나 혹은 그 가르침을 반연하여 경계로 삼으며, 이미 초정려 지위에 있었던 심구와 사찰이 고요해져서 다시 현행하지 않음을 말한다. ‘내면에 평정을 이루고 청정하다’는 것은 심구와 사찰을 다스리기 위해서 생각을 거두어 자기 안의 자체를 바르게 알아서 그 마음이 놓아버리고 머물러서 심구ㆍ사찰의 거칠고 탁한 법을 멀리 여의기 때문에 이름하여 내면에 평정을 이루고 청정하다고 한다. ‘마음이 한 갈래로 정해진다’는 것은 이와 같이 들어갈 때 많이 상속(相續)하고 머물게 되어 온갖 심구ㆍ사찰의 법이 항상 현행하지 않음을 말한다. ‘심구도 없고 사찰도 없음’이란 심구와 사찰이 단멸되는 법을 증득하는 것을 말한다. ‘삼마지’란 이미 전의를 얻은 이가 마음이 한 경계인 상태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생겨남’이란 삼마지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을 말함이니,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제2정려’란 심구ㆍ사찰이 고요해져서 내면의 자체가 두루 청정하고, 삼마지에서 생겨난 기쁨ㆍ즐거움이 의지할 바이며, 전의(轉依)에 의해서 마음이 한 경계인 상태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34)
016_0012_c_01L또한 경전에서 “기쁨의 느낌을 떠남으로 인하여 평정[捨]ㆍ바르게 앎ㆍ즐거움ㆍ몸ㆍ바르게 섭수함에 머문다. 성자가 널리 말씀하기를 ‘평정ㆍ정념ㆍ즐거움에 머무는 것[捨念樂住]35)을 성취하여 제3정려에 구족하게 머문다’고 한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기쁨의 느낌을 떠남’이란 혹은 제2정려의 욕망을 여읜 더욱 향상된 교법을 반연하거나 혹은 그 가르침을 반연하여 경계로 삼으며, 이미 제2정려의 기쁨의 양상의 과실(過失)을 보는 것을 말한다. ‘평정에 머문다’는 것은 이미 생겨난 기쁨에 대한 생각과 작의(作意)에 대하여 인가하지 않기 때문이고, 싫어하여 떠남이 있기 때문에, 염오가 없음에 머무는 마음이고, 평등한 마음이며, 바르고 곧은 마음으로 변동없이 편안히 머무는 성질을 말한다. ‘정념’이란 이미 기쁨의 느낌[喜受]이 작용하지 않는 양상을 관찰한 것에 대해서 잊지 않고 분명히 알며, 기쁨의 느낌으로 하여금 결정코 다시는 현행하지 않게 함을 말한다. ‘바르게 앎’이란 혹시 기억함을 잃어서 기쁨의 느낌이 다시 현행할 때에는 현행한 기쁨의 양상에 대해서 분별하고 바르게 아는 것을 말한다.
‘즐거움’이란 이미 전의를 이룬 이가 기쁨의 느낌을 여의고, 용맹하고 편안하고 알맞은 느낌을 여의는 것을 말하며, 수(受) 심소에 속한다. ‘몸’이란, 이미 전의를 이룬 이가 전식(轉識)36)이거나 아뢰야식이거나 마음의 성품이 차별이 없어서 총괄적으로 몸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바르게 섭수함’이란 이미 전의를 이룬 이가 능히 몸을 섭수하여 몸으로 하여금 기쁘고 즐겁게 함을 말한다. 통틀어 모아서 즐거움ㆍ몸ㆍ바르게 섭수함[樂身正受]이라고 말한다. 이곳은 즐거움의 느낌[樂受]이 아주 매우 고요하고 가장 뛰어나며 미묘하여 위ㆍ아래의 지위에서는 없는 바이다. ‘성자’란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를 말한다. ‘널리 말한다’는 것은 나타내보이고 시설하며 성취함을 말한다. ‘평정ㆍ정념ㆍ즐거움에 안주함[捨念樂住]’이란 이 지위 이상에서는 미묘한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고, 아래 지위에서도 역시 이와 같은 뛰어난 즐거움도 없고 나아가서는 평정ㆍ정념도 없으며, 그것으로써 다스림을 삼는 것을 말한다. ‘제3정려’란 기쁨의 느낌을 여의고 이미 평정ㆍ정념ㆍ바르게 앎ㆍ즐거움의 의지할 바로서, 전의에 의해 마음이 한 경계인 상태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016_0013_a_01L또한 경전에서 “즐거움의 느낌을 끊었기 때문이고, 나아가 이전에 이미 괴로움의 느낌ㆍ기쁨의 느낌ㆍ근심의 느낌을 끊었기 때문에, 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느낌이고, 평정ㆍ기억의 청정함이며 제4정려에 구족히 머문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즐거움의 느낌을 끊음’이란 제4정려에 들어갈 때를 말한다. ‘이전에 이미 괴로움의 느낌을 끊었다’는 것은 제2정려에 들어갈 때를 말한다. ‘이전에 이미 기쁨의 느낌을 끊었다’는 것은 제3정려에 들어갈 때를 말한다. ‘이전에 이미 근심의 느낌을 끊었다’는 것은 초정려에 들어갈 때를 말한다. ‘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느낌’이란 이미 전의를 이룬 이가 편안하고 알맞음도 아니고 편안하고 알맞음이 아님도 아닌 느낌으로서, 수(受) 심소에 속한다. 색계에서 최고로 지극하고 더욱 향상된 고요함이며, 가장 수승한 섭수이고, 동요함이 없다.
‘평정의 청정함’이란 심구ㆍ사찰과 기쁨ㆍ즐거움의 느낌이 있는 세 가지 지위37)의 모든 동요를 벗어났기 때문에 마음이 평등한 성품이고, 마음이 바르고 곧은 성품이며, 마음이 변동 없이 편안히 머무는 성질을 말한다. ‘기억의 청정함’이란 심구ㆍ사찰과 기쁨ㆍ즐거움의 느낌이 있는 세 가지 지위를 벗어나서 모든 동요가 없기 때문에 마음이 잃어버림이 없어서 명료한 성질을 말한다. ‘제4’란 순서적인 정(定)에서 네 번째 숫자이기 때문이다. ‘정려’란 즐거움의 느낌이 끊어졌기 때문에 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느낌이고, 평정ㆍ기억함의 청정이 의지할 바이며, 전의에 의해서 마음이 한 경계인 상태에 머문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또한 경전에서 “색(色)에 대한 표상작용[想]38)을 모두 벗어났기 때문이고, 유대색(有對色)에 대한 표상작용이 소멸되었기 때문이며, 온갖 표상작용이 작의하지 않기 때문에 가없는 허공인 허공무변처(虛空無邊處)에 들어가서 구족하게 머문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일체’란 모든 행상(行相)을 말한다. ‘색에 대한 표상작용’이란 빛깔[顯色]에 대한 표상작용을 말한다. ‘벗어남’이란 그것의 욕망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벗어남의 뜻과 마찬가지로 ‘유대색에 대한 표상작용이 소멸되고, 온갖 표상작용이 작의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응당 그렇게 알아야 한다.
016_0013_b_01L‘유대색에 대한 표상작용’이란 그것의 의지처인 4대(大)에 대한 표상작용과 나머지로 이루어진 물질39)에 대한 표상작용을을 말한다. ‘온갖 표상작용’이란 곧 사대 그리고 사대로 이루어진 물질에 대해서 긴 것, 짧은 것, 모난 것, 둥근 것, 높은 것, 낮은 것, 반듯한 것, 반듯하지 않은 것, 광선, 그림자, 밝음, 어둠 등 이와 같은 종류의 임시적인 물질에 속한 갖가지 표상작용을 말한다. 만약 무변허공처에 바르게 들어갈 때에는 유대색에 대한 표상작용이 현행하지 않기 때문에 ‘소멸’이라 하며, 온갖 표상작용이 작의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와 같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색(色)에 대한 모든 표상작용에 의지함을 벗어난다. ‘가없음’이란 시방의 모든 모습을 분별할 수 없음을 말한다. ‘허공’이란 물질을 다스리는 것이 반연하는 경계를 말한다. ‘허공무변처’란 이곳이 전의이고 능히 정(定)에 의지함을 말한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또한 경전에서 “일체의 허공무변처를 벗어나서 가없는 식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가 구족히 머문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일체의 허공무변처를 벗어남’이란 근분(近分)과 더불어 근본을 벗어남을 말한다. ‘가없는 식(識)’이란 가없는 허공을 반연하는 식이 이제 이것을 반연하여 경계로 삼음을 말한다. ‘식무변처’란 이곳이 전의이고 능히 정(定)에 의지함을 말한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또한 경전에서 “일체의 식무변처를 벗어나서 조금도 소유하는 바가 없는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가서 구족히 머문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일체의 식무변처를 벗어남’이란 근분과 근본을 벗어남을 말한다. ‘조금도 소유하는 바가 없음’이란 식무변처에서 경계를 추구할 때 조금도 얻는 바가 없고, 무소유(無所有)를 제외하고는 다른 경계가 없음을 말한다. 오직 이 경계의 지극히 고요함만을 보기 때문이다. ‘무소유처’란 이곳이 전의(轉依)이고, 능히 정(定)에 의지함을 말한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016_0013_c_01L또한 경전에서 “일체의 무소유처를 벗어나서 표상작용이 있음도 아니고 표상작용이 없음도 아닌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가 구족히 머문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일체의 무소유처를 벗어남’이란 근분과 근본을 벗어남을 말한다. ‘표상작용이 있는 것이 아님[非有想]’이란 무소유처의 표상작용을 벗어남을 말한다. ‘표상작용이 없는 것이 아님[非無想]’이란 무소유처에서 경계를 추구할 때 오직 무소유처를 반연하는 지극히 미세한 심왕법ㆍ심소법만을 얻음을 말한다. 오직 이 경계의 지극히 고요함만을 보기 때문이다. ‘비상비비상처’란 이곳이 전의이고 능히 정(定)에 의지함을 말한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태어남을 건립함’40)이란 이전에 이 사이에서 하품ㆍ중품ㆍ상품으로 초정려를 닦은 이가 다음에 그곳에 태어나서 세 가지 하늘의 과보를 받음을 말하나니, 범신천(梵身天)41), 범보천(梵輔天)42), 대범천(大梵天)43)이다. 만약 심구는 없고 사찰만 있음[無尋有司]의 초정려를 잘 닦아 익힌 이는 대범천의 과보에 태어난다. 다시는 그곳보다 뛰어난 곳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전에 이 사이에서 하품ㆍ중품ㆍ상품으로 제2정려를 닦는 이라면, 다음에 그곳에 태어나서 세 가지 하늘의 과보를 받나니 소광천(少光天)44)ㆍ무량광천45)ㆍ극정광천(極淨光天)46)을 말한다. 만약 이전에 이 사이에서 하품ㆍ중품ㆍ상품으로 제3정려를 닦는 이라면, 다음에 그곳에 태어나서 세 가지 하늘의 과보를 받나니 소정천(少淨天)47)ㆍ무량정천(無量淨天)48)ㆍ변정천(遍淨天)49)을 말한다. 만약 이전에 이 사이에서 하품ㆍ중품ㆍ상품으로 제4정려를 닦는 이라면, 다음에 그곳에 태어나서 세 가지 하늘의 과보를 받나니 무운천(無雲天)50)ㆍ복생천(福生天)51)ㆍ광과천(廣果天)52)을 말한다.
016_0014_a_01L이로부터 그 위에서는53) 물질에 대한 탐욕을 떠나기 때문에 방위ㆍ처소의 차별이 없다. 비록 하품ㆍ중품ㆍ상품의 원인을 닦아 익힘이 있지만, 그러나 태어나는 과보의 차별을 건립하지 않는다. 하품ㆍ중품ㆍ상품으로 허공무변처를 닦는 이는 허공무변처천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는다. 하품ㆍ중품ㆍ상품으로 식무변처를 닦는 이는 식무변처천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는다. 하품ㆍ중품ㆍ상품으로 무소유처를 닦는 이는 무소유처천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는다. 하품ㆍ중품ㆍ상품으로 비상비비상처를 닦는 이는 비상비비상처천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는다.
정(定)의 고요함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고, 머무는 시간이 가득차거나 가득차지 않음에 의거해서 그것에 차별이 있다. 또한 초정려 나아가서는 비상비비상처를 애착하는 것에 많이 머무름으로써 수명을 다 채우지 않고 중간에 일찍 죽는 일이 있다. 하품의 세간법과 무루의 제4정려를 섞어서 닦는 이는 무번정궁천(無煩淨宮天)54)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는다. 중품을 섞어서 닦는 이는 무열정궁천(無熱淨宮天)55)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는다. 상품을 섞어서 닦는 이는 묘현정궁천(妙現淨宮天)56)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는다. 상품 중의 수승함을 섞어서 닦는 이는 묘견정궁천(妙見淨宮天)57)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는다. 상품 중의 지극함을 섞어서 닦는 이는 무애구경정궁천(無㝵究竟淨宮天)58)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는다. 만약 보살의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삼마지에서 이끌어진 제10지에서 제4정려를 잘 닦아 익힌 이라면 출과정궁대자재천(出過淨宮大自在天)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는다.
‘청정’이란 최상의 초정려가 이것에 의지해서 일체의 뛰어난 덕과 재빠른 신통을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초정려의 청정의 양상과 마찬가지로 그 외의 정려와 모든 무색정(無色定)도 응당 이와 같다고 알아야 한다. 이 중에서 무색정의 차이점은 그 지위의 해탈 등 공덕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 모든 정려와 무색정의 잡염ㆍ결백ㆍ건립ㆍ청정의 차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상과 같이 ‘의지(依止)’에 대하여 설명했다. 이제 ‘각분(覺分)’에 관하여 말하겠다.59)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14_b_01L 논하여 말한다. 보리분법(菩提分法)의 품류에 많은 종류가 있는데, 최초의 수승한 것에 서른 일곱가지가 있다. 사념주 등을 말하며60),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016_0014_a_23L論曰:菩提分法,品類多種,最初勝者,有三十七。謂四念住等,廣說如經。
4념주(念住)61)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신념주(身念住)62)이니, 혹은 몸을 반연하거나 혹은 다시 몸에 관한 더욱 향상된 교법을 반연하거나 혹은 그 가르침을 반연하여 경계로 삼음을 말한다. 그리하여 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나63) 혹은 오직 영상이나 혹은 일을 성취함으로 인하여 몸을 경계로 하는 곳[身境處]에 편안히 잘 머물고 기억하여, 몸으로 하여금 계박을 여읨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신념주와 마찬가지로 수념주(受念住)64)ㆍ심념주(心念住)65)ㆍ법념주(法念住)66)도 역시 그와 같다고 알아야 한다. 이 중에서 차이점은 각각 자기 경계에 대해서 그 상응하는 바와 같나니, 나아가서는 법으로 하여금 계박 여읨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온갖 곳에서 염(念) 심소와 상응하는 심왕법ㆍ심소법을 말해야 한다. 이와 같이 마음을 일으키고 관찰할 때에 반연되는 대상에 네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는 마음이 집착하는 바의 사실이고, 둘째는 마음이 받아들임의 사실이며, 셋째는 마음이 요별함의 사실이고, 넷째는 마음의 염오와 청정의 사실이다.
016_0014_c_01L4정단(正斷)67)이란,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68) 이미 생겨난 악ㆍ불선법을 끊기 위해서 의욕을 내고 책려(策勵)하며 정근(正勤)을 일으키고, 마음을 경책하고 마음을 지닌다. ‘이미 생겨남’이란 두드러진 얽음 번뇌[纏]에 속한 것을 말한다. ‘악ㆍ불선법’이란 능히 악행을 일으키는 욕계의 번뇌와 수번뇌(隨煩惱)를 말한다. 악ㆍ불선의 뜻은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끊기 위해서’란 그것의 다스림을 닦아서 미약하고 얇게 하기 위한 까닭을 말한다. ‘의욕을 냄’이란 증득과 끊음에 대한 즐거운 의욕을 일으킴을 말한다. ‘책려’란 악(惡)과 그것에 향하는 것을 묵인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끊기 때문이다. ‘정근을 일으킴’이란 그것의 다스림을 여러 가지로 견고하게 닦음을 말한다. 이상의 세 구절은 부정지(不定地) 중의 문혜(聞慧)ㆍ사혜(思慧)와 하품(下品)의 다스림을 나타낸다. ‘마음을 경책함’이란 그것의 다스림을 닦고 지혜의 현행을 닦음이니, 만약 마음이 번뇌와 염오에 잠기고 빠지면 마음을 경책하여 거기서 나오게 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지님’이란 곧 이 다스림이 현행할 때 만약 마음이 번뇌와 염오에 들뜨면 마음을 지녀서 가라앉게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69) 아직 생기지 않은 악ㆍ불선법을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아가 자세히 말한다.70) ‘아직 생기지 않음’이란 증성한 수면(隨眠)에 속한 것을 말함이니, 두드러진 현행 번뇌[纏]71)를 능히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란 두드러진 얽음의 번뇌로 하여금 현행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의욕을 냄’이란 증득하기 위하여 현행하지 않도록 하는 의욕을 일으킴을 말한다. ‘책려’란 잊지 않고 머무는 것으로 말미암아, 현행하지 않은 선(善)으로 하여금 머물고 기억하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정근을 일으킴, 마음을 경책함, 마음을 지님’에 대해서는 모두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셋째는72) 아직 생기지 않은 선법(善法)을 생겨나게 하기 위해서, 나아가 자세히 말한다. ‘아직 생기지 않음’이란 아직 얻지 못한 것을 말한다. ‘선법’이란 듣고 사유하고 닦음에서 생겨난 세 가지 지혜를73) 말함이니, 허물이 없다는 뜻에 의거해서 선이라 이름한다. ‘생겨나게 하기 위해서’란 그것으로 하여금 얻게 하기 때문이다. ‘의욕을 냄’이란 증득하고자 하는 의욕을 일으킴을 말한다. ‘책려’란 그 섭수하는 올바른 방편을 구하기 때문이다. ‘정근을 일으킴’이란 오랫동안 정성스럽고 많으며 견고하게 닦아 익히는 것을 말한다. 이상의 세 문구는 부정지(不定地)에서 악ㆍ불선법을 다스림과 문혜ㆍ사혜에 속하는 선법을 얻음을 나타낸다. ‘마음을 경책하고 마음을 지님’이란 증득을 위해 지혜를 닦기 때문이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016_0015_a_01L넷째는74) 이미 생겨난 선법을 머물게 하고 잊지 않게 하며, 닦아서 충만하게 하고 갑절로 닦도록 하며, 증장하게 하고 광대해지도록 하며, 의욕을 내고 책려하며, 나아가 자세히 말한다. ‘이미 생겨남’이란 이미 얻은 것을 말한다. ‘머물게 함’이란 문혜(聞慧)를 말한다. ‘잊지 않게 함’이란 사혜(思慧)를 말한다. ‘닦아서 충만하게 함’이란 수혜(修慧)를 말한다. 이상의 세 문구는 오직 이미 얻은 선을 수호함을 나타낸다. ‘갑절로 닦도록 하며, 증장하게 하고 광대해지도록 함’이란 그 차례대로 오직 그것에 대해서 지족(知足)을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욕을 냄’이란 증득하고자 하는 의욕을 일으킴을 말한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4신족(神足)75)이란,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의욕[欲]이 더욱 향상됨으로써 삼마지를 얻음이니, 저 어떤 수행자가 전생에 상품의 선근을 닦아 익혀서 큰 스승의 처소나 혹은 지혜 있고 청정행을 같이 닦는 이의 처소에서 믿음을 내고 의욕을 내며, 정법(正法)을 듣고 싶어하며, 그 믿은 바와 같이 정법을 듣고서는 점차 마음이 한 경계인 상태에 머무는 것을 증득하게 된다. 이 의욕으로 말미암아 삼마지가 성취되어, 이미 생겨났거나 아직 생겨나지 않은 악ㆍ불선법을 끊게 하고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의욕을 내고 나아가 마음을 지니게 된다. 만일 그 다스리는 선법(善法)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으면 그로 하여금 생겨나게 하기 때문이고, 이미 생겨난 것은 머무르게 하고 잊지 않도록 하며 닦아서 충만하게 하고, 갑절이나 닦도록 하며 증장하게 하고 광대하게 하기 때문에 의욕을 내고 나아가 마음을 지닌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이는 다시 의욕ㆍ책려(策勵)ㆍ믿음ㆍ편안함ㆍ바른 기억ㆍ바르게 앎ㆍ사유ㆍ평정의 여덟 가지 끊는 행을 닦는다.
‘이 의욕으로 말미암아 삼마지가 성취됨’이란 이 가운데서 자재로움을 얻는 것을 말한다. ‘이미 생겨났거나 아직 생겨나지 않은 악ㆍ불선법’이란 저 하품(下品)의 온갖 현행 번뇌[纏]에 속하는 것과, 저 작고 얇아서 아직 손해를 끼치지 않는 수면(隨眠)에 속하는 것을 말한다. ‘끊게 하고 일어나지 않게 함’이란 이미 생겨난 연약한 품류의 현행 번뇌를 여의기 위한 까닭이고, 작고 얇은 수면을 없애기 위한 까닭이다. ‘의욕을 내고 나아가 마음을 지니게 됨’이란 앞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다. ‘만일 그 다스리는 선법(善法)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으면 그로 하여금 생겨나게 하기 때문이고, 만약 이미 생겨난 것은 머무르게 하고 잊지 않도록 하며 닦아 충만하게 하고 갑절이나 닦도록 하며 증장하게 하고 광대하게 하기 때문에 의욕을 내고 나아가 마음을 지닌다.’는 것은 앞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이’란 이와 같이 수행하여 오랫동안 머무는 이를 말한다. ‘다시 의욕을 닦음’이란 그 현행하지 않은 것ㆍ없애는 것을 증득하려는 의욕을 말한다.
016_0015_b_01L‘책려’란 의욕이 원인이 되어 사마타ㆍ비발사나에 대해서 정근(正勤)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의욕을 일으키는 원인이니, 저 없앰과 증득한 바에 대해서 결정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편안함’이란 책려를 원인으로 하여 몸ㆍ마음의 추중(麤重)을 제거하여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감당하게 하기 때문이다. ‘바른 기억’이란 수번뇌(隨煩惱) 속에 잠기어 가라앉거나 들뜨는 것을 막고 보호하는 것에 대해서 마음으로 하여금 잊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바르게 앎’이란 혹시 정념을 놓쳐서 수번뇌가 현행할 때라도 분별하여 바르게 알기 때문이다. ‘사유’란 그침[止]과 드는 것[擧]에 대해서 마음을 조작하기 때문이다.76) ‘평정’이란 오염없이 머무는 마음ㆍ평등한 마음ㆍ바르고 곧은 마음에 있어서 변동이 없는 성질이다.77)
이와 같이 일체의 신족(神足) 중에서 여덟 가지 끊는 행을 알아야 한다. 이 중에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78) 둘째는 부지런함[勤]이 더욱 향상됨으로써 삼마지를 얻음이니, 저 어떤 수행자가 가르침과 훈계받은 법에 대해서, 혹은 비고 한적한 곳에 있거나, 혹은 숲에 머물거나, 혹은 그치고 조용한 방에 있거나, 이와 같은 곳에서 오랜 시간 용맹스럽고 순일하게 익히며 치열하게 정근(正勤)하여 마음이 한 경계인 상태에 머무는 것을 증득한다. 정근으로 인하여 삼마지가 성취되며,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016_0015_c_01L셋째는 마음이 더욱 향상됨으로써 삼마지를 얻음이니, 저 어떤 수행자가 이전에 이미 사마타행을 닦아 익히고,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내면적인 법을 사유하여 마음이 한 경계인 상태에 머무는 것을 속히 증득한다. 마음을 닦음을 인하여 삼마지가 성취되며,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넷째는 관찰이 더욱 향상됨으로써 삼마지를 얻음이니, 저 어떤 수행자가 많이 듣고, 듣고 지니며, 그 들은 것이 쌓여서, 홀로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있으면서 곧 그 법에 대해서 지혜로써 간택하고 지극히 자세하게 간택하며 두루 깨닫고 관찰한다. 이것으로 인하여 마음이 한 경계인 상태에 머무는 것을 증득한다. 관찰로 인하여 삼마지가 성취되며,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5근(根)79)이란,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신근(信根)이니, 세간도(世間道)로 인하여 마음이 청정하고 결백하여 더러움이 없게 하며, 수번뇌를 여의고, 동요 없음에 머무르며, 이로부터 이후에는 진리[諦]80)와 현관(現觀)81)을 구하고, 방편을 닦아 익히며, 수면을 영원히 끊기 위한 까닭이고, 그것의 다스림을 얻기 위한 까닭에 더욱 향상된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둘째는 정근근(正勤根)이니, 신근에 의지해서 더욱 나아가고 용맹하게 신근과 더불어 함께 행하는 것이다. 셋째는 염근(念根)이니, 정근근에 의지해서 명료하고 잊지 않으며 그것과 더불어 함께 행하는 것이다. 넷째는 등지근(等持根)이니, 염근에 의지해서 마음이 하나의 경계에 머물러서 그것과 더불어 함께 행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혜근(慧根)이니, 등지근에 의지해서 온갖 법을 간택하고 그것과 더불어 함께 행하는 것이다.
5력(力)82)이란,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곧 신근(信根) 등이니, 잘 닦아 익히고 잘 닦아 익힘으로 말미암아, 다시는 그 불신(不信) 등의 법에 잡란(雜亂)되지 않고, 또한 온갖 잡란된 법을 능히 다스린다. 굴복시킬 수 없다는 뜻에서 힘[力]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016_0016_a_01L7변각지(遍覺支)83)란,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염변각지(念遍覺支)84)이니, 세간도로 인하여 착한 힘을 갖추게 되고 견도(見道)85)가 현전하고, 이전에 세간도를 닦아 익힘으로 인하여 염변각지가 출세간의 공용(功用) 없고 분별 없음을86) 이끌어서 진리에 대하여 명료하고 진리를 잊지 않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택법변각지(擇法遍覺支)87)이니, 이전에 이끌어진 바 공용이 없고 분별이 없는 것이 기억함[念]을 의지하고 기억함과 더불어 함께 행하여 진리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진리를 깨달음을 말한다. 이와 같이 모든 변각지는 이전에 이끌어진 바 공용 없고 분별 없음에 의거해서 뒤의 것이 앞의 것을 의지하고 그것과 더불어 함께 행하나니, 모두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중에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제3 정근변각지(正勤遍覺支)88)는 진리에 대해서 마음이 용맹하고, 제4 희변각지(喜遍覺支)89)는 진리에 대해서 마음이 기쁘며, 제5 안변각지(安遍覺支)90)는 참다운 진리에 대해서 몸과 마음이 감당하고, 제6 3마지변각지(摩地遍覺支)91)는 참다운 진리에 대해서 마음이 하나의 경계에 머물며, 제7 사변각지(捨遍覺支)92)는 참다운 진리에 대해서 마음이 평등하고 마음이 바르고 곧으며 마음이 변동이 없는 성질이다.
또한 경전에서 “곧 이 가운데 또한 고요함의 의지(依止)를 잘 닦아 익히고.....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고요함의 의지’란 욕계의 고요함이 의지하기 때문이다. ‘욕망을 떠남의 의지’란 색계와 무색계가 욕망을 떠남의 의지처이기 때문이다. ‘소멸의 의지’란 이미 5온(薀)ㆍ18계(界)ㆍ12처(處)가 남김없이 영원히 단멸됨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윤회세계로 나아감을 버린다’는 것은 미래의 5온ㆍ18계ㆍ12처가 상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016_0016_b_01L8성도지(聖道支)란,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정견(正見)이니, 견도(見道)에서 변각지(遍覺支)를 얻을 때에 견해가 청정하고, 나아가 수도(修道)에서 뒤에 얻어지는 변각지를 안립하여 견해가 청정하나니, 이 두 가지를 총합하여 정견이라고 이름한다. 둘째는 정사유(正思惟)이니, 정견을 의지해서 그것과 더불어 함께 행하여 욕망을 여읜 사유이고, 성냄이 없는 사유이며, 해침이 없는 사유이다. 수도 중에서 작의(作意)를 상속하고, 온갖 진리를 사유하며, 무루(無漏)의 작의와 상응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취향(趣向)하여 들게 하고 지극히 취향하여 들게 하며, 찾아서 구하고 지극히 찾아서 구하며, 현전(現前)에서 찾아서 구하며, 깨달아 알고 헤아리며, 관찰하고 사유하는 사유의 성질이다. 셋째는 정어(正語)이니, 수도 중에서 바른 사유에 의지해서 무루의 작의를 상속함으로 인하여 온갖 진리를 사유함으로써 네 가지 어업(語業)93)을 얻는다. 성인이 좋아하는 계(戒)에 속한다. 즐기지 않고 즐김을 떠나며, 제거하여 없애고 갖가지로 떠나며, 맑고 깨끗하며, 막고 보호하며, 짓지 않고 짓는 것을 떠나며, 행하지 않고, 훼손하지 않고 범하지 않으며, 다리[橋梁]가 되고 배가 되고 뗏목이 되며, 멀리 떠나고, 어기거나 이탈하지 않고 갖가지로 어기거나 이탈하지 않는 성질이다. 넷째는 정업(正業)이니, 수도 중에서 무루의 작의가 상속함으로 인하여 온갖 진리를 사유함으로써 세 가지 신업(身業)94)을 얻는다. 성인이 좋아하는 계에 속한다. 즐기지 않고 즐김을 떠나며, 제거하여 없애고 갖가지로 떠나며,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95)
다섯째는 정명(正命)이니, 수도 중에서.....96) 나아가 온갖 진리를 사유함으로써, 지은 바 삿된 생계[邪命]와 악법을 멀리 떠난다. 성인이 좋아하는 계에 속하고,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다. 여섯째는 정책려(正策勵)97)이니, 수도 중에서..... 나아가 온갖 진리를 사유함으로써, 닦아 익힌 4념주ㆍ4정단ㆍ4신족ㆍ5근ㆍ5력에 대해서 좋아하고 바르게 노력하며 경책하고 용맹스럽고 감당하되, 억제하기 어려우면 마음에 바르게 분발하여 계속 정진하는 성질이다. 일곱째는 정념(正念)이니, 수도 중에서..... 나아가 온갖 진리를 사유함으로써, 혹은 사마타(奢摩他)의 수도에 의지하고, 혹은 비발사나(毗鉢舍那)의 수도에 의지하며, 혹은 두 가지 수도에 의지하여, 닦아 익힌 택법(擇法)ㆍ정근(正勤)ㆍ기쁨과 편안함ㆍ등지(等持)ㆍ사변각지(捨遍覺支)에 대해서 기억하고 나아가 바르게 기억하며, 기억을 따라 일어나는 온갖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여 마음에 분명히 아는 성질이다. 나아가 잊어버리지 않고, 지극히 잊어버리지 않으며, 온갖 법을 지극히 잊어버리지 않는 성질이다. 여덟째는 정등지(正等持)이니, 수도 중에서..... 나아가 온갖 진리를 사유함으로써, 또는 3도(道)98)에 의해 닦은 것에 대하여 바른 기억[正念]으로 포섭하기 때문에, 마음이 머물고 편안히 머물며 가까이 머물고 평등히 머물며, 어지럽지 않고 흩어지지 않으며, 사마타를 바르게 포섭하여 마음이 한 경계에 머무는 성질이다. 이 모든 수도의 지분[道支]은 나중의 것이 앞의 것에 의지하며 상응하여 함께 일어남을 알아야 한다. 또한 게송에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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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하여 말한다. ‘지(智)’는 10지(智)를 말하나니,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법지(法智)99)이니, 알아야 할 온갖 의미와 경계를 공통적으로 알고 현재 볼 수 있는 무루의 지혜이다. 둘째는 종류지(種類智)100)이니, 알아야 할 온갖 의미와 경계를 공통적으로 알고 현재 볼 수 없는 무루의 지혜이다. 셋째는 타심지(他心智)101)이니, 닦아서 생긴 바와 닦은 과보로서 능히 남의 마음과 심리작용[心法]102)을 아는 지혜이다. 그리고 모든 여래께서 온갖 중생을 아시고, 그들의 이해를 따르고 그들의 수면(隨眠)에 따라 가르쳐 주고 훈계하며 일으키는 미묘한 지혜이다. 넷째는 세속지(世俗智)103)이니, 세간의 지혜를 말한다. 이것에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여래께서 온갖 중생을 위해서 그들의 이해를 따르고 그들의 수면에 따라 미묘한 법을 널리 말씀한다. 다섯째는 고지(苦智)104)이니, 유루(有漏)의 모든 행(行)105) 중에서 무상ㆍ괴로움ㆍ공ㆍ이아(離我)106)에 대해서 사유하여 지혜나 견해로 분명하게 알고 깨달으며 지혜로 관찰하는 성품이다.
여섯째는 집지(集智)107)이니, 유루의 모든 행의 원인 중에서 원인의 쌓임과 생겨나는 조건[緣]에 대해서 사유하여 지혜나 견해로.....(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108). 일곱째는 멸지(滅智)109)이니, 유루의 모든 행의 소멸 중에서 소멸하여 고요함ㆍ미묘하게 떠남에 대해서 사유하여 지혜나 견해로.....(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여덟째는 도지(道智)110)이니, 유루의 모든 행을 능히 단멸하는 무루(無漏)의 도(道) 중에서 도와 같음ㆍ실천하여 벗어남에 대해서 사유하여 지혜나 견해로.....(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아홉째는 진지(盡智)111)이니, 괴로움을 이미 알았고, 집기(集起)를 이미 끊었으며, 소멸을 이미 증득했고, 도를 이미 닦았으며, 혹은 다함[盡]의 경계를 반연하고 혹은 다시 다함을 위해서 지혜나 견해로.....(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열째는 무생지(無生智)112)이니, 괴로움을 이미 알았고 다시는 알아야 하지 않으며, 집기를 이미 끊었고 다시는 끊어야 하지 않으며, 소멸을 이미 증득했고 다시는 증득해야 하지 않으며, 도를 이미 닦았고 다시는 닦아야 하지 않으며, 혹은 생겨남이 없는 경계를 반연하고 혹은 생겨남이 없음을 위해서 지혜나 견해로.....(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016_0017_a_01L해탈문(解脫門)은 세 가지 해탈문113)을 말한다. 첫째는 공해탈문(空解脫門)114)이고, 둘째는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115)이며, 셋째는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116)이다. ‘공(空)’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알아야 할 바[所知]이고, 둘째는 지혜[智]이다. ‘알아야 할 바’란 중생의 변계성(遍計性)으로 집착된 법 그리고 법의 변계성으로 집착된 법에 대해서 이 두 가지 변계성을 모두 여읜 무성(無性) 및 그 나머지 무아(無我)의 성품을 말한다. 모든 법에 대해서 변계성이 없으면 곧 무아의 성품이 있는 것이고, 모든 법에 대해서 무아의 성품이 있으면 곧 변계성이 없는 것이다. 곧 이 중에서 있음과 있지 않음의 두 가지가 없는 성품으로서 분별이 없는 경계이다. ‘지혜’란 그 경계를 반연하여 여실히 아는 것을 말한다.
‘무상’에도 역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알아야 할 바[所知]이고, 둘째는 지혜[智]이다. ‘알아야 할 바’란 곧 알아야 할 바의 공의 경계이니, 이 경계의 모습으로 말미암아 일체의 모든 모습이 행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지혜’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무원’에도 역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알아야 할 바이고, 둘째는 지혜이다. ‘알아야 할 바’란 지혜가 없음으로 인하여 뒤바뀜[顚倒]에서 생겨난 온갖 행의 모습을 말한다. ‘지혜’란 그런 경계를 반연하여 싫어하며 분명히 아는 것을 말한다.
016_0017_b_01L공(空)의 행이란 모든 행(行)117)에서 아(我)118)를 얻을 수 없음, 그리고 모든 형상에서 세속의 분별법을 얻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무상(無相)의 행이란 곧 모든 행에서 중생의 무아성을 얻을 수 있음, 그리고 모든 형상에서 세속의 분별법의 무아성을 얻을 수 있음, 그리고 멸(滅)에서 소멸ㆍ고요함ㆍ미묘함ㆍ떠남의 행을 말한다. 무원(無願)의 행이란 무상(無常)ㆍ괴로움ㆍ청정하지 못함ㆍ병과 같음ㆍ부스럼 같음ㆍ화살 같음, 원인ㆍ쌓임ㆍ생겨남ㆍ연(緣)의119) 행을 말한다. 지혜의 공도(空道)를 반연하여 도(道)ㆍ같음ㆍ행함ㆍ벗어남의120) 행을 지으면 이것도 역시 공의 행이다. 지혜의 무상도(無相道)121)를 반연하여 도ㆍ같음ㆍ행함ㆍ벗어남의 행을 지으면 이것도 역시 무상의 행이다. 지혜의 무원도(無願道)122)를 반연하여 도ㆍ같음ㆍ행함ㆍ벗어남의 행을 지으면 이것도 역시 무원의 행이다.
만약 차별없이 통틀어서 공ㆍ무상ㆍ무원이라고 이름한 것이라면, 이것은 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 및 세간ㆍ출세간에 통한다고 알아야 한다. 만약 공ㆍ무상ㆍ무원의 3마지(摩地)라고 이름한 것이라면, 오직 수혜이며 세간ㆍ출세간에 통한다고 알아야 한다. 만약 공ㆍ무상ㆍ무원의 해탈문이라고 이름한 것이라면, 이것은 오직 출세간이라고 알아야 한다.123)
‘행(行)’이란 네 가지 행을 말한다.124)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고지통행(苦遲通行)125)이니, 둔한 근기가 아직 현법낙주(現法樂住)를 얻지 못하고서 온갖 번뇌를 다 없애기 위한 행도(行道)를 말한다. 둘째는 고속통행(苦速通行)126)이니, 날카로운 근기가.....(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127). 셋째는 낙지통행(樂遲通行)128)이니, 둔한 근기가 이미 현법낙주를 얻고서 온갖 번뇌를 다 없애기 위한 도ㆍ행을 말한다. 넷째는 낙속통행(樂速通行)이니, 날카로운 근기가.....(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129).
적(迹)은 네 가지 법의 자취130)를 말하나니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탐욕 없음의 자취[無貪迹]이니, 능히 시라온(尸羅薀)131)의 법과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적(迹)이라고 이름한다. 만약 아직 받지 못한 이라면 나아가 받게 하고, 만약 이미 받은 이라면 수호하게 하고 증장하게 하며 광대하게 한다. 탐욕 없음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인 성냄 없음[無瞋]의 자취도 역시 그러하다. 셋째는 바른 기억의 자취[正念迹]이니, 능히 3마지온(摩地薀)의 법과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적(迹)이라고 이름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이는 생겨나게 하고, 이미 생겨난 이는 증장 광대하게 한다. 넷째는 바른 등지의 자취[正等持迹]이니, 능히 혜온(慧蘊)132)과 해탈ㆍ해탈지견온(解脫智見蘊)의 법과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적이라고 이름한다. 만약 아직 생겨나지 않고 아직 증득하지 않은 이라면 생겨나게 하고 증득하게 하며, 이미 생겨났고 이미 증득한 이라면 증장하게 하고 광대하게 한다.
논하여 말한다. ‘거처(居處)’란 네 가지 거처를 말하나니,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지혜의 거처이니, 방편을 자세히 관찰하는 세간의 지혜로 진리를 증득하는 출세간의 지혜의 의미를 안립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진리[諦]의 거처이니, 이미 출세간의 지혜를 자세히 관찰함을 얻고 그로 인하여 일[事]에 대한 뒤바뀜을 끊는 의미를 안립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사(捨)의 거처이니, 일[事]에 대한 뒤바뀜을 끊고 그로 인하여 번뇌를 남김없이 쉬고 단멸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넷째는 적정(寂靜)의 거처이니, 번뇌가 남김없이 다하여 고요해지고 그로 인하여 온갖 괴로움이 생겨나지 않는 의미를 안립하기 때문이다.
016_0018_a_01L‘의지처[所依]’는 네 가지 의지처를 말하나니,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법에 의지하고 중생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어느 법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거나 혹은 제자가 말한 십이분교(十二分敎)이면 따라서 배우고 따라서 나아갈 것이요, 중생이 행하는 바를 따라서 배우지 않고 또한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뜻에 의지하고 글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어느 법이 만들고 꾸며진 문장이나 자구(字句)의 수식하는 말이 아니고 오직 원만하고 청정하며 깨끗한 범행(梵行)을 능히 밝힌 것이면, 이 법에 대해서 공경하고 믿고 이해해야 할 것이요, 뒤바뀐 범행을 나타냈거나 나아가 범행을 밝힌 것이 아니고 다만 만들고 꾸며진 문장이나 자구의 수식하는 말에는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와 비슷하고 매우 심오한 공성(空性)에 대해서 상응하고 온갖 연(緣)에 수순하는 연기법에 대하여 말의 얕은 뜻에 망령되게 집착하지 않고, 또한 스스로 내면적으로 보고 취한 마음에도 머물지 않으며, 오직 요의(了義)를 나타내는 경전을 부지런히 찾고 연구하는 것이다. 넷째는 지혜에 의지하고 식(識)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오직 듣고나서 지식의 만족을 일으키고 곧 법수법행(法隨法行)에 나아가 닦으며, 모든 번뇌를 다하기 위해서 진제(眞諦)의 지혜를 부지런히 구하여 스스로 내면적으로 증득하는 것이다.
‘발심’이란 모든 보살이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보살이 보살의 법성에 머물러, 시방세계에 있는 유정들을 이익되게 하기 위해서, 그 행상(行相)을 의지하고 뛰어난 인연을 굳건히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해서 큰 서원을 일으키고 발심하는 법을 받아서 “나는 반드시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리라. 시방의 모든 유정을 제도하여 모든 번뇌를 여의게 하기 위해서이고, 모든 고난을 여의게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한다.
이 발심을 받는 것에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속의 발심이고, 둘째는 법성을 증득하는 발심이다. ‘세속의 발심’은 다음과 같다. 어떤 이가 지혜있는 사람 앞에 공경히 서서 더욱 향상된 의지를 일으키고 서원을 내어 말하되 “장로시여, 기억해주십시오.”라고 하거나 혹은 “성자시여, 기억해주십시오.”라고 하거나 혹은 “오파타야(鄔波拕耶)135)여, 저의 이름은 아무개인데 오늘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사오니 많은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부터 앞으로 무릇 제가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근(正勤)ㆍ정려(靜慮)ㆍ지혜를 닦는 것은 일체가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지금 여러 보살마하살과 더불어 화합하여 출가했습니다. 원하옵나니 존자께서는 제가 바로 보살임을 증명하여 알아주십시오.”라고 두번째와 세번째에도 역시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016_0018_b_01L‘법성을 증득하는 발심’이란 다음과 같다. 어떤 이가 이미 제1겁 아승기야(阿僧企耶)를 지나서 보살의 첫 번째 극희지(極喜地)를 이미 증득하고, 보살의 정무생위(定無生位)에 이미 들어가며, 최상의 보리 및 보리방편을 이미 여실히 알고, 자신이 대보리의 과위에 장차 가까워짐과 균등하게 가까워짐을 이미 깨달으며, 자신과 타인이 모두 평등함을 증득하여 대아(大我)의 뜻을 얻고, 유전(流轉)과 적멸에 머무르지 않는136) 보살도에 이미 도달했으므로 광대한 뜻을 얻는다. 이와 같음으로 인하여 대보리의 서원에서 퇴전하지 않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법성을 증득하는 발심이라 한다.
‘연민히 여김[悲愍]’은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발심한 보살이 시방세계의, 혹은 세 가지 퇴타(退墮)한 괴로움을 가진 유정, 혹은 5취(趣)의 결정적인 괴로움을 가진 유정, 혹은 네 가지 극심한 괴로움을 가진 유정, 혹은 여섯 가지 무거운 고고(苦苦)를 가진 중생, 혹은 세 가지 양상의 고고(苦苦)를 가진 유정에 대하여, 이러한 자들에게 괴로움을 여의게 하기 위해서 불해(不害)를 행함을 속성으로 삼는다.
‘여러 수행[行]’이란 열 가지 법행(法行)137)을 말한다. 자세히 말하면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보살장(菩薩藏)에 대해서 법이 많거나 적거나간에 존중하고 공경하며 쓰고 받아지니는 법행이다. 둘째는 열등하거나 뛰어나거나간에 모든 공양구(供養具)로 공양하는 법행이다. 셋째는 자기가 서사(書寫)한 뒤에는 가엽게 여기는 마음에서 남에게 베푸는 법행이다. 넷째는 만일 다른 사람이 뜻을 내어 공경하고 존중하며 미묘한 음성으로 널리 드날리고 홍포하며 독송하면, 그를 높이고 우러러보는 마음에서 자세히 듣는 법행이다. 다섯째는 청정한 믿음과 이해를 일으켜서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보고 읽는 법행이다.
016_0018_c_01L여섯째는 법을 닦아 익히고 법행을 따르기 위해서 스승에게 받고나서 외우는 법행이다. 일곱째는 이미 외우고는 굳게 지니기 위해서 넓고 미묘한 음성으로 자주 익히는 법행이다. 여덟째는 다른 이를 연민히 여기기 때문에 그에게 전해주어서 그 넓고 간략함에 따라 열어서 연설(演說)하는 법행이다. 아홉째는 홀로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있으면서 아주 잘 연구하고 이치에 알맞게 관찰하고 사유하는 법행이다. 열째는 사유한 바와 같이 사마타(奢摩他)와 비발사나(毘鉢舍那)를 수행하여 들어가려고 하며, 나아가서는 구하는 온갖 뜻을 성취하는 법행이다.
1)이하 9사(事) 중에서 네 번째로 진리[諦]에 관하여 세속제ㆍ승의제ㆍ4제(諦)의 순서로 설명한다. 제(諦)는 범어 satya의 번역으로서 진실하여 착오가 없는 것, 영원하여 변하지 않는 진실, 있는 그대로의 진상(眞相)을 말한다. 진리ㆍ도리ㆍ사실이란 뜻이다.
2)세제(世諦)ㆍ속제(俗諦)라고도 한다. 세상의 사물, 범부가 아는 진리라는 뜻이다. 언어로 표현되는 진리이다.
3)진제(眞諦)ㆍ제일의제(第一義諦)라고도 한다. 승의(勝義, paramārtha)란 ‘최고의 대상ㆍ사물’이란 뜻으로서 뛰어난 지혜의 경계[勝智對境], 즉 반야지(般若智)의 대상인 진여를 가리킨다. 승의제는 출세간적 진리, 진여법성의 세계에 관한 진리, 궁극적 진리이다. 승의제의 양상은 사려 분별이 작용하는 경계로부터 멀리 초월한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이다.
4)앞의 집제에 관한 설명 중에서 “첫째는 승의제에 속하는 것이고..... 넷째는 승의제에 속하는 것이다”를 가리킨다. 다음에 멸제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5)“이와 같이 자세히 말한 것을 가리킨다.”는 것은 앞의 전섭(全攝)에 대한 설명에서 “다 토해버려서 애욕을 떠나며 소멸하여 고요해지는 것”을 가리킨다. 이하 세속제섭과 승의제섭에서도 마찬가지다.
6)이하 9사(事) 중에서 다섯 번째로 의지(依止)에 관하여 4정려ㆍ4무색정을 세간ㆍ출세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7)정려(靜慮)는 범어 dhyāna의 의역(意譯)으로서 선(禪)의 이명(異名)이다. 사려(思慮)를 고요하게 한다는 뜻이다.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전주(專注)해서 자세히 사유하는 것으로서 지(止)와 관(觀)이 균등하다. 유심(有心)ㆍ무심(無心)과 유루(有漏)ㆍ무루(無漏)에 통하지만 색계의 정(定)에 한정되고 무색계의 정에는 통하지 않는다. 4정려는 색계의 4선(禪), 즉 초선(初禪, 初靜慮)ㆍ제이선(第二禪, 제2정려)ㆍ제삼선(第三禪, 제3정려)ㆍ제사선(第四禪, 제4정려)을 말한다.
8)무색계의 네 가지 선정인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말한다.
9) 번뇌를 바꾸어 열반을 얻는 것. 우리들의 미혹한 존재의 근거의 전환.
10)범어 anuśaya의 번역어로서 번뇌의 습기ㆍ종자를 가리킨다. 번뇌의 종자가 중생을 수축(隨逐)하여 아뢰야식에 면복(眠伏)해서 다음 현행의 인(因)이 되기 때문에 수면이라 이름한다.
11)여기서 “광설여전(廣說如前)”은 앞의 세간의 초정려에 대한 설명에서 “혹은 그것을 여의는 더욱 향상된 가르침을 반연하여.ㅡㅡ자기 지위 삼마지의 심왕법ㆍ심소법이 의지하는 바이다”를 가리킨다.
12)현상계 모든 사물의 공통된 양상[共相]이다.
13)근분정(近分定)은 그 정(定)에 가까워진 준비적 입문(入門)인 전단계를 가리킨다.
14)근본정(根本定)은 틀림없이 각각의 정(定)에 들어간 단계를 말한다.
15)이(離)는 끊어서 다스려야 할 장애와 얻어야 할 전의(轉依)를 닦아 익히고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생(生)은 이로부터 생겨나는 것을 가리킨다.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는 3계구지(界九地)의 하나로서 곧 색계의 초선천(初禪天)을 가리킨다. 욕계의 악을 여의고 초선천(初禪天)의 기쁨의 느낌[喜受]ㆍ즐거움의 느낌[樂受]을 생하는 경지이다. 이 경지에서는 8동법(動法:尋ㆍ伺ㆍ苦ㆍ樂ㆍ憂ㆍ喜ㆍ入息ㆍ出息) 중에서 괴로움의 느낌[苦受]과 근심의 느낌[憂受]을 여읜다.
16)초정려(初靜慮)의 근본정이란 틀림없이 초정려에 들어간 단계를 말한다.
17)정생희락(定生喜樂)이라고도 한다. 이 경지인 정생희락지는 색계 제이선천(第二禪天)에 해당된다. 초정려(初靜慮)의 수인(修因)에 의해 등지(等持)ㆍ정(定)으로부터 생기는 뛰어난 희수ㆍ낙수를 얻는 것을 말한다. 이 경지에서는 팔동법 중에서 다시 심(尋)과 사(伺)를 여읜다.
18)틀림없이 제2정려에 들어간 단계이다. 제2정려는 앞에서 설명한 정생희락지의 정려이다.
19)이희묘락(離喜妙樂)이라고도 한다. 이희묘락지는 삼계구지 중에서 색계의 제삼선천(第三禪天)을 가리킨다. 제2정려의 수인(修因)에 의해 제2선천의 희수(喜受)를 여의고, 마음을 거두어 제3정려의 정묘(靜妙)의 낙수(樂受)를 생하는 경지이다.
20)틀림없이 제3정려에 들어간 단계이다. 제3정려는 앞에서 설명한 의희묘락지의 정려이다.
21)틀림없이 제4정려에 들어간 단계이다. 제4정려는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의 정려이다. 낙수(樂受) 및 입식(入息)ㆍ출식(出息)을 여읨으로써 팔동법을 모두 이탈(離脫)하고 평정의 사념(捨念)만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일체의 사념(思念)이 청정해지므로 이 경지를 사념청정지라고 부른다. 또한 사념청정적정무동낙지(捨念淸淨寂靜無動樂地)라고 한다. 팔동법을 원리(遠離)하여 동전(動轉)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적정무동이라 하고, 여기서 낙(樂)이란 낙수(樂受)의 뜻이 아니라 심신(心身)의 안적(安適)을 나타낸다.
22)물질에 대한 표상작용[想]을 가리킨다.
23)무색계의 4천 가운데 제1천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나게 하고, 이 경지에서 드는 선정이다. 물질인 이 육신을 싫어하고 무변(無邊)한 허공을 생각하며, 허공이 무변하다는 견해를 내어 태어나는 곳 욕계ㆍ색계의 모든 물질적 형태를 떠나 무변의 공을 깨닫는 경지이다.
24)무색계의 제2천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나게 하고, 이 경지에서 드는 선정이다. 제1 공무변처정을 초월하여 식(識)이 무한대함을 사유함으로서 얻는 적정(寂靜)한 경지이다.
25)무색계의 제3천인 무소유처에 나게 하고, 이 경지에서 드는 선정이다. 제2 식무변처에서 마음으로 인식하는 대상이 무소유임을 관찰하여식(識)이 무한대인 경지를 싫어하고 무소유(無所有)임을 관찰하여 무소유의 이해를 얻고 이 행력(行力)에 의해 일체가 무소유라는 적정상(寂靜想)의 삼마지에 침잠하는 경지.
26)여기서 상(想)을 일반적으로 편의상 ‘생각’으로 번역하는데, 사실 이것은 포괄적인 개념의 번역어이다. 5온(蘊) 중의 세 번째인 상(想)이다. 이것은 ‘표상작용’ ‘개념화 작용’의 의미이다. 인식과정에서 대상의 모습을 취하여 “이것은 ~이다.”라는 명칭을 붙이는 작용을 말한다.
27)무색계의 제4천인 비상비비상처에 나게 하고, 이 경지에서 드는 선정이다. 이 하늘은 삼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으므로 유정천(有頂天)이라고도 한다. 이 하늘에 사는 이는 하지(下地)와 같은 거친 표상작용[想]은 없으므로 비상(非想)ㆍ비유상(非有想)이며, 그러면서도 아직 미세한 표상작용은 없지 않으므로 비비상(非非想)ㆍ비무상(非無想)이라 한다. 비유상(非有想)이므로 외도들은 이 경지를 진열반처(眞涅槃處)라고 하지만, 비무상(非無想)이므로 불교에서는 이것도 결국은 생사의 경계로 본다.
28)정려(靜慮)는 마음을 산란하지 않도록 통일하는 것이다.
29)심(尋)은 거친 표상(表象)작용이고 사(伺)는 미세한 표상작용이다.
30)악업의 결과로서 중생이 가지 않으면 않되는 곳이란 뜻. 행위의 업보로 태어나는 미혹의 세계.
31)오수 중에서 희수
32)심일경성(心一境性, cittaikāgratā)은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정(定)에 드는 것을 말한다. 정(定)의 자성이다.
33)‘심구(尋求)도 없고 사찰(伺察)도 없는 삼마지’ 즉 심구[尋]와 사찰[伺]의 심리작용[心所]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의 삼마지이다.
34)‘그 외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餘如前說]’는 것은 앞의 초정려에 대한 설명에서 ‘구족히 머문다’에 대한 설명, 즉 “‘구족’이란 닦아 익힘이 원만한 것을..... 뜻대로 자재함을 말한다”는 내용을 가리킨다. 이하 무색계의 비상비비상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35)제 4선천(禪天). 3界9地의 제5.
36)8식(識) 중에서 5식(識), 제6 의식, 제7 말나식을 총괄해서 전식(轉識)이라고 이름한다. 근본식인 아뢰야식으로부터 ‘전변생기(轉變生起)된 식’이란 뜻이다. 근본식과 전식과의 관계는 비유하면 바닷물과 파도와의 관계와 같다.
37)초정려, 제2정려, 제3정려를 가리킨다.
38)상(想,)의 심리작용[心所]을 말한다.
39)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의 사대 외에 미취 색취.
40)생득정(生得定). 전세의 선업의 힘에 의해 태어나면서 얻은 정(定)의 경지를 말함.
41)범중천(梵衆天)이라고도 한다. 색계(色界) 초선천(初禪天)에 속한 세 하늘 중에서 첫 번째 하늘이다. 대범천왕(大梵天王)이 통솔하는 천인(天人)들이 이곳에 살고 있으므로 범중천이라 이름한다. 이 천인들의 키는 반유순(半由旬)이며, 수명은 반겁(半劫)이라 한다.
42)색계 초선천에 속한 세 하늘 중에서 두 번째 하늘이다. 이 하늘의 천중(天衆)들은 모두 색계 초선천의 임금인 대범천왕을 돕고 있는 신하들이므로 범보천(梵輔天)이라 이름한다. 범천왕은 중앙의 높은 곳에 있으며, 천왕이 어디를 갈 때면 반드시 이 천중들이 앞에 가면서 천왕의 이익을 생각한다고 한다. 이 천중의 키는 1유순이고, 수명은 1겁이라고 한다.
43)대범천왕(大梵天王)이 있는 하늘이다. 대범천왕은 범천왕(梵天王)ㆍ범천(梵天)이라고도 하며, 색계 초선천의 임금이다.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실 때면 항상 제일 먼저 설법을 청한다고 하며,언제나 부처님을 오른쪽에 모시고 손에는 흰 불자(拂子)를 들고 있다. 대범천의 키는 1.5유순이고, 수명은 1.5겁이다.
44)색계 제이선(第二禪)에 해당되는 세 하늘 중 첫 번째 하늘이다. 제2선천 중에서 광명이 가장 적기 때문에 소광천(少光天)이라 이름한다. 이 하늘에 태어나는 이의 키는 2유순이고, 수명은 2겁이다.
45)제이선천(第二禪天) 중에서 두 번째 하늘이다. 이 하늘에 태어나면 몸으로 광명을 놓는 것이 한량없다는 의미에서 무량광천이라 이름한다. 이 하늘 중생의 키는 4유순이고, 수명은 4겁이다.
46)극광정천(極光淨天) 또는 광음천(光音天)이라고도 한다. 색계 제2선에 속한 세 하늘 중에서 가장 높은 하늘이다. 광명이 무량광천보다 수승하여 두루 자타(自他)를 비추기 때문에 극광정천이라 한다. 또한 이곳의 천인(天人)은 음성이 없고, 말할 때는 입으로 광명을 내어 말의 작용을 하기 때문에 광음천이라 이름한다. 이 하늘에 태어나는 이의 키는 8유순이고, 수명은 8겁이다.
47)색계 제삼선(第三禪)에 속하는 세 하늘 중에서 첫 번째 하늘이다. 이 하늘의 의식(意識)은 즐거운 느낌[樂受]과 상응하여 즐겁고 청정하다는 의미에서 정(淨)이라 하고, 이 청정이 제3선천 중에서 가장 열등하기 때문에 소(少)라고 한다. 이 하늘 중생의 키는 16유순이고, 수명은 16겁이다.
48)색계 제3선천 중에서 두 번째 하늘이다. 마음에 즐거운 느낌이 상응하는 것이 그 아래 소정천보다 승묘(勝妙)하여 헤아릴 수 없으므로 무량정천이라 이름한다. 이 하늘에 태어나는 이의 키는 32유순이고, 수명은 32겁이다.
49)색계 제3선천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하늘이다. 이 하늘은 거룩하고 깨끗하며 아름답고 즐거움이 가득 찼다는 의미에서 변정천(遍淨天)이라 이름한다. 이곳에 사는 천인의 키는 64유순이고, 수명은 64겁이다.
50)색계 제사선천(第四禪天)에 있는 9천 중에서 제1천이다. 이 하늘 아래는 공중(空中)에 있는 곳으로서 마치 구름이 빽빽이 모여 있는 곳과 같고, 이 하늘은 그 위의 구름 없는 곳에 있으므로 무운천(無雲天)이라 이름한다.
51)색계 제4선천의 제2천이다. 아주 수승한 복이 있어야 비로소 가서 태어날 수 있으므로 복생천이라 이름한다. 이곳의 천인은 키는 250유순이고, 수명은 250겁이다.
52)색계 제4선천 중의 제3천이다. 색계 중에서 중생의 과보로서는 가장 수승한 곳이므로 광과천이라 이름한다. 키는 5백 유순이고, 수명은 3겁이다.
53)색계 제4선천으로는 앞에서 말한 광과천 위에 차례로 무번천(無煩天), 무열천(無熱天), 선현천(善現天), 선견천(善見天), 색구경천(色究竟天)이 있다.
54)5정거천(淨居天)의 하나이며, 무번천(無煩天)이라고도 한다. 욕계의 괴로움과 색계의 즐거움을 다 버려서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는 일이 없는 하늘이다. 참고로 말하면 색계 제4선천에 속하는 무번천(無煩天), 무열천(無熱天), 선현천(善現天), 선견천(善見天), 색구경천(色究竟天)을 정거천(淨居天)이라 부른다. 불환과(不還果)를 증득한 성인이 이 하늘에 난다고 한다.
55)5정거천의 하나로서 무열천(無熱天)이라고도 한다. 이 하늘의 심경(心境)이 의(依)도 없고 처(處)도 없으며 청량자재(淸凉自在)하여 열뇌(熱惱)가 없으므로 그렇게 부른다.
56)5정거천의 하나로서 선현천(善現天)이라고도 한다. 천중(天衆)의 선묘(善妙)한 과보가 나타나므로 그렇게 부른다.
57)5정거천의 하나로서 선견천(善見天)이라고도 한다. 선정의 장애를 지극히 다스려서 보는 것이 매우 맑고 투철하므로 이렇게 부른다.
58)5정거천의 하나로서 색구경천(色究竟天)이라고도 한다. 색계 4선천(禪天)의 맨 위 하늘로서, 형상을 가진 세계에서는 마지막 하늘이므로 이렇게 부른다.
59)이하 9사(事) 중2에서 여섯 번째로 각분(覺分)에 관하여 37보리분법,지(智), 해탈문, 행적, 지(止), 관(觀), 거처, 의지처[所依], 발심, 연민히 여김[悲愍], 여러 행, 통달, 10지(地), 10바라밀다, 네 가지 보살행, 사섭사, 다라니, 무량에 대한 작의
61)4념처(念處)라고도 한다. 수식관(隨息觀)에 의해서 몸과 마음이 평온해진 상태에서 신체ㆍ느낌ㆍ마음ㆍ법의 네 가지에 대해서 관찰하는 수행법이다. 사념주에 관해서는 특히 『대염처경(大念處經)』에서 자세히 설해진다. 이 경전에서 이 행법의 중요성에 관하여 “수행자들이여, 이것은 중생의 정화를 위한, 슬픔을 건너기 위한, 괴로움의 소멸을 위한, 진리의 길을 걷기 위한, 열반의 증득을 위한 길이니, 즉 네 가지에 마음 집중을 굳건하게 하는 사념처이니라”고 말한다.
62)신체에 대한 관찰로서, 신념처(身念處)라고도 부른다. 신체는 부정한 것이라고 관찰하여 탐욕심을 다스린다. 구체적으로 몸에 대한 관찰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호흡에 대한 마음 집중.→ 몸의 움직임(걸음, 앉음, 앞으로 감, 뒤로 감, 먹고 마심, 말함, 대소변 등)을 매순간 관찰하여 번뇌 망상이 끼어들지 않고 깨어 있는 행동이 되도록 함. 완전한 알아차림이 되도록 함. →몸의 요소를 관찰함. 몸의 상태와 움직임, 몸의 32개 부분을 4대(大)와 관련해서 관찰함. 이들 요소들의 부정성(不淨性)을 인식함.→죽은 뒤 시체의 변화 과정을 자신의 몸과 비교하여 관찰함. 부정관, 백골관(白骨觀).
63)수습(修習)하여 얻는 바른 지혜.3혜(慧)의 하나.
64)느낌에 대한 관찰로서 수념처(受念處)라고도 한다. 즐거운 느낌ㆍ괴로운 느낌ㆍ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알아차림, 배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는 동안 피곤하거나 고통스럽거나 찌르는 듯한 고통이나 불쾌함이나 실망이나 즐거움이나 행복감 등을 알아차린다. 느낌 중에서 즐거운 느낌도 무상(無常)의 이치에서 보면 결국은 괴로운 것이라고 관찰한다.
65)마음에 대한 관찰로서 심념처(心念處)라고도 한다. 마음은 변화 생멸하는 무상한 것이라고 관찰한다. 산만한 마음, 착한 마음, 화나는 마음, 침착한 마음, 미혹한 마음, 게으름 등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린다.
66)법에 대한 관찰로서 법념처(法念處)라고도 한다. 존재ㆍ진리의 의미를 관찰하고, 현상적 존재에는 실체가 없으며, 내 소유물도 인연 따라 잠시 내 곁에 있는 것이지 사실은 고정된 소유자가 없는 것 등의 무아관(無我觀)을 한다.
67)네 가지 바른 노력을 하는 것으로서 4정근(正勤)이라고도 한다. ‘~단(斷)’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러한 노력이 태만심과 장애를 끊기 때문이다.
68)단단(斷斷)이라고 부른다. 이미 생긴 악(惡)을 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69)율의단(律儀斷)이라고 하며, 아직 나타나지 않은 악은 앞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70)“나아가 자세히 말한다[乃至廣說]”는 것은 앞의 첫 번째 정단(正斷)에 대한 설명 중에서 “의욕을 내고 책려하며..... 마음을 지닌다”를 가리킨다.
71)전(纏)은 현행적인 번뇌를, 수면(隨眠)은 잠재적인 번뇌를 가리킨다.
72)수호단(守護斷)이라고 부르며, 아직 나타나지 않은 선(善)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73)문혜(聞慧), 사혜(思慧), 수혜(修慧)를 말한다.
74)수단(修斷)이라고 하며, 이미 나타난 선을 증대하도록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75)4여의족(如意足)이라고도 한다. 뜻하는 대로 자유자재한 신통이 나타나는 네 가지 각족(脚足)을 말한다. 의욕[欲]ㆍ정진[勤]ㆍ마음[心]ㆍ사유(思惟)의 네 가지 신족은 각각 서원ㆍ노력ㆍ심념(心念)ㆍ관혜(觀慧)의 힘에 의해 일어난 선정이며, 이 선정에 의해 여러 가지 신통을 나타낸다.
76)사마타ㆍ위빠사나 수행에서의 장애와 그것을 없애는 방법을 말한다. 여기서 ‘그침[止]’이란, 마음이 들뜨거나 흥분할 때 싫어할 만한 법에 대한 작의를 일으켜서 사유하면 들뜸[掉擧]이 저절로 가라앉아 고요해지는 것을 말하며, 지상(止相)이라 부른다. ‘드는 것[擧]’이란, 마음이 침체나 혼침될 때 기뻐할만한 법에 대한 작의를 일으켜서 사유하면 혼침에서 벗어남을 말하며, 이것을 거상(擧相)이라 한다.
77)한결같이 사마타나 위빠사나만을 닦을 때나 혹은 지관(止觀)을 함께 행할 때에 들뜸과 혼침의 수번뇌에 오염되지 않은 작의이다. 마음에 아무런 조작도 가해지지 않고 자연히 자유롭게 움직이는 가운데의 작의로서, 이것을 평정의 양상[捨相]이라 부른다.
78)앞에서 말한 제1 욕(欲) 신족에 대한 설명 중에서의 차이점
79)믿음[信根], 정진[進根], 기억[念根], 집중[定根], 판별[慧根]의 다섯 가지 무루근(無漏根)을 말한다. 이것들은 번뇌를 억누르고 바른 깨달음의 도(道)에 나아가게 하는 데 뛰어난 작용이 있기 때문에 근(根)이라고 한다.
80)4성제(聖諦)를 가리킨다.
81)앞에 있는 경계를 관한다는 뜻. 현전(現前)에 명료하게 진리를 관찰하는 지혜.
82)이에 속하는 다섯 가지는 앞의 5근(根)과 같다. 오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것들은 악을 쳐부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83)참되고 거짓된 것과 선ㆍ악을 지혜로써 살펴서 판별하는 일곱 가지를 말한다. 7각지(覺支)ㆍ 7각분(覺分)이라고도 한다.
84)항상 잘 생각해서 선정과 지혜가 한결같게 한다.
85)무루성도(無漏聖道)를 처음으로 발견하여, 성자의 무리에 든 위(位)로 견제도(見諦道)라고도 한다.
86)의식적인 자각적인 노력없이도 자연스럽게 순일하게 일어남. 무분별지
87)지혜로써 일체법을 살펴서 선ㆍ악과 참ㆍ거짓을 판별하는 것이다.
88)용맹심으로써 삿된 행을 버리고 바른 수도에 전력하여 게으르지 않는 것이다.
89)마음에 선법(善法)을 얻어서 기뻐하는 것이다.
90)잘못된 견해나 번뇌를 끊어버림으로써 참되고 거짓됨을 잘 알아서 선근을 일으키는 것이다.
91)선정에 들어서 번뇌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92)외부대상에 집착하던 마음을 버림으로써, 허망된 것을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93)불망어(不妄語), 불기어(不綺語), 불양설(不兩舌), 불악구(不惡口)를 가리킨다.
94)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婬)을 가리킨다.
95)앞의 정어(正語)에 관한 설명 중에서 “맑고 깨끗하며, 막고 보호하며.....갖가지로 어기거나 이탈하지 않는 성질이다.”라는 부분을 가리킨다. 이하 정명(正命)에서도 마찬가지다.
96)앞의 정어에 대한 설명에서 “무루의 작의가 상속함으로 인하여”를 가리킨다. 이하 정책려(正策勵), 정념(正念), 정등지(正等持)에서도 마찬가지다.
97)정정진(正精進)
98)견도, 수도 무학도
99)욕계의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의 4제(諦)를 관찰하는 무루지(無漏智)를 말한다. 법을 아는 것이므로 법지라고 하며, 또한 현전의 법을 아는 것이므로 현지(現智)라고 한다.
100)유지(類智)라고도 한다. 색계ㆍ무색계의 사제를 관찰하는 지혜로서, 욕계의 사제를 관찰하는 법지(法智)와 비슷하므로 이렇게 부른다.
101)10지(智)의 하나로서, 타인의 마음과 생각을 아는 지혜이다.
102)여기서 심법(心法)은 심소법(心所法), 즉 심리작용을 의미한다.
103)세속의 범부의 지혜, 세속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지혜라는 뜻이다.
104)10지(智)의 하나로서, 삼계의 고제(苦諦)에 미혹하여 일어나는 번뇌를 끊는 무루지(無漏智)이다.
105)견도(見道) 이전에 하는 행위,또는 수도위(修道位) 중의 유루심을 말한다.
106)아집(我執)의 견계(見界)와 사량분별을 여의는 것.
107)삼계의 집제(集諦)에 미혹하여 일어나는 번뇌를 끊는 지혜이다.
108)“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餘如前說]”는 앞의 고지(苦智)에 대한 설명 중에서 “분명하게 알고 깨달으며 지혜로 관찰하는 성품이다”를 가리킨다. 이하 제10 무생지(無生智)까지 마찬가지다.
109)삼계의 멸제(滅諦)에 미혹하여 일어나는 번뇌를 끊는 지혜이다.
110)삼계의 도제(道諦)에 미혹해서 일어나는 번뇌를 끊는 지혜이다.
111)번뇌를 모두 끊었을 때 생기는 지혜이다. 이미 일체의 번뇌를 다 끊었으며, 자신이 이미 고(苦)를 알고 집(集)을 끊으며 멸(滅)을 증득하기 위해 도(道)를 닦았다고 아는 지혜이다. 곧 번뇌를 모두 단멸했을 때 생기는 자신(自信)의 지혜이다.
112)이미 미래의 고과(苦果)를 받지 않음을 확실히 자각하는 지혜이다. 이미 사성제를 체득했기 때문에 다시 체득할 것이 없다고 아는 지혜로서, 아라한의 최극지(最極智)이다.
113)해탈에 들어가는 문이 되는 세 가지 선정을 말한다.
114)중생과 법의 본성이 공한 것을 관조하는 것이다.
115)차별상(差別相)을 떠나는 것이다.
116)원하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117)여러 가지 형성력. 가변(可變) 가훼(可毁)의 일반현상. 모든 존재를 말한다.
118)상일주재성(常一主宰性)의 인격적 실체인 아뜨만과 같은 것.
119)집제에 있어서 인(因)ㆍ집(集)ㆍ생(生)ㆍ연(緣)의 4행상
120)도제(道諦)에 있어서 도(道)ㆍ여(如)ㆍ행(行)ㆍ출(出)의 4행상.
121)차별상(差別相)을 떠나는 것이다.
122)원하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123)3계의 번뇌를 떠나 깨달음의 경지에 드는 것.
124)4통행(通行)을 말하며, 4정행(正行)ㆍ4도(道)라고도 부른다. 사성제에 통달하여 열반의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네 가지 행도(行道)를 말한다.
125)‘힘들이며 더디게 통달하는 행도(行道)’라는 뜻으로서, 하삼무색정(下三無色定:공무변처정ㆍ식무변처정ㆍ무소유처정)과, 색계 4정려(靜慮)에서의 미지정(未至定:初靜慮의 전단계)과 중간정(中間定:초정려와 제2정려의 近分定의 중간 단계)에 머물고 있는 둔근(鈍根)의 수행자가 진리를 이해함이 더딘 것을 말한다. 이들 선정을 의지처[所依]로 하여 나타나는 도(道)는 지(止)ㆍ관(觀)이 균등한 상태가 아니므로 힘이 많이 들어서 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것을 고통행(苦通行)이라 이름한다. 그리고 우둔한 근기[鈍根]는 도를 통달하기가 더디고, 예리한 근기[利根]는 도를 빨리 통달하므로, 전자를 고지통행(苦遲通行)이라 하고, 후자를 고속통행(苦速通行)이라 이름한다.
126)‘힘들이며 빠르게 통달하는 행도(行道)’라는 뜻으로서, 이근(利根)의 경우이다. 자세한 내용은 앞의 ‘고지통행’에 관한 주(註) 참조.
127)앞의 고지통(苦遲通)에 대한 설명에서 “아직 현법낙주를 얻지 못하고서 온갖 번뇌를 다 없애기 위한 도나 행을 말한다”를 가리킨다.
128)색계의 4근본정(根本定)을 의지처로 하여 나타나는 도(道)는 사념(邪念)과 산란된 상념을 멈추게 하는 지(止)와 자세하고 명백히 대경(對境)을 식별하는 관(觀)이 서로 거의 균등상태이므로 힘은 조금 들고 행하기는 쉬우므로 이것을 낙통행(樂通行)이라 부른다. 그리고 둔근(鈍根)의 경우는 낙지통행(樂遲通行)이라 하고, 이근(利根)의 경우는 낙속통행(樂速通行)으로 구분한다.
129)앞의 낙지통(樂遲通)에 대한 설명에서 “이미 현법낙주를 얻고서 온갖 번뇌를 다 없애기 위한 도나 행을 말한다”를 가리킨다.
130)무탐적(無貪迹)을 포함한 4법적(法迹)을 말함.
131)계온(戒蘊)계율의 요소의 집합
132)지혜의 요소의 집합. 슬기 무더기.
133)범어 śamatha의 의역(意譯)사마타(奢摩他)로 음역된다.사마타(śamatha)는 ‘고요’ ‘평온’의 의미로서, 정신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함으로써 정신통일의 상태[心一境性]에서 신체와 마음의 평안[輕安]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무분별영상을 인식대상으로 한다. 이 지(止)의 수행에 의해서 8선정[色界定 4, 無色界定 4]을 이루고, 다섯 가지 신통을 성취할 수 있다(漏盡通은 위빠사나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하다). 3마지(摩地, 3昧, samādhi), 정(定, dhyāna)으로 바꾸어 사용되기도 한다.
134)범어 vipaśyanā의 의역이며, 비발사나(毘鉢舍那)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위빠사나(vipaśyanā)는 ‘꿰뚫어 봄’ ‘통찰’ ‘관찰’의 의미이다. 지(止, śamatha)에 의해 심신의 평안함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몸과 마음의 현상 등으로부터 연기ㆍ무아ㆍ중도ㆍ진여의 이법 등을 통찰한다. 지(止)가 하나의 대상에 집중함에 비하여, 관(觀, vipaśyanā)은 대상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진리를 통찰한다. 위빠사나에 의해 8선정이 완전한 선정을 이루게 되고, 멸진정(滅盡定)이 가능해진다. 이로써 3독심(毒心)을 영원히 소멸하고 견성ㆍ해탈ㆍ열반을 성취한다.
135)범어 upādhyāya의 음역(音譯)이며 오파타야(鄔波馱耶)라고도 한다. 친교사(親敎師)ㆍ화상(和尙)으로 의역(意譯)된다. 연소한 제자가 항상 가까이 모시면서 글 등 가르침을 받는 스승을 말한다. 또는 출가 수계할 때의 스승을 말하기도 한다.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장(師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136)생사계와 열반계가 불이(不二)인 중도(中道)의 이치를 깨달은 지혜로써 대지(大智)이므로 생사계에 안주하지 않고 대비(大悲)이므로 홀로 열반계에 안주하지 않는다.
137)경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열 가지 행법을 말한다. ①서사(書寫) … 경전을 기록해서 오래 보존케 함. ②공양(供養) …경전이 있는 곳을 부처님의 탑묘(塔廟)처럼 갖가지 공양구(供養具)로 공양하고 존중함. ③시타(施他)… 다른 이를 위해 바른 법을 말하거나 경전을 남에게 주어서 널리 교화함. ④제청(諦聽)… 다른 이가 경전을 읽거나 강의하는 것을 지극한 마음으로 경청함. ⑤피독(披讀)… 경전을 읽고 외우는 것 ⑥수지(受持)… 부처님의 교법을 받아 지님. ⑦개연(開演)… 불법을 말해서 다른 이로 하여금 믿고 알게 함. ⑧풍송(諷誦)… 소리를 내어 경전과 게송 등을 읽어서 다른 이로 하여금 좋아하는 마음을 내게 함. ⑨사유(思惟) …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의 뜻을 생각하고 헤아리며 기억해서 잊지 않음. ⑩수습(修習)…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을 몸소 수행해서 물러남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