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7_0560_c_01L성유식론 제7권
017_0560_c_01L成唯識論卷第七

호법 등 지음
017_0560_c_02L護法等菩薩造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017_0560_c_03L三藏法師 玄奘奉 詔譯

이상과 같이 스무 가지 수번뇌심소의 양상을 말하였다. 부정심소(不定心所)1)에 네 가지가 있는데, 그 양상이 어떠한가? 게송(『삼십송』의 제1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017_0560_c_04L已說二十隨煩惱相不定有四其相云何頌曰

부정의 심소는 회(悔)ㆍ면(眠)ㆍ
심(尋)ㆍ사(伺)이니, 둘에 각각 둘이 있네.
017_0560_c_06L不定謂悔眠
尋伺二各二

논하여 말한다. 회(悔)ㆍ면(眠)ㆍ심(尋)ㆍ사(伺) 심소는 선(善)과 잡염 등에 대해서 모두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촉(觸)심소 등이 반드시 심왕에 두루하는 것과는 같지 않기 때문이며, 욕(欲)심소 등이 반드시 모든 지위[地]에 두루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부정(不定)이라는 명칭을 건립한다.2)
017_0560_c_07L論曰伺於善染等皆不定故非如觸等定遍心故非如欲等定遍地故立不定名
‘회(悔)심소’3)는 지은 것을 미워하는 것[惡作]을 말한다.4) 지은 업을 미워하여 후회함을 체성으로 하고, 사마타[止]를 애함을 업으로 한다. 이것은 곧 결과에 대해서 원인의 명칭을 가립한 것이다. 먼저 지은 업을 미워하고, 나중에 비로소 후회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하지 않은 것을 뉘우치는 것도 역시 오작(惡作)에 포함된다. 후회해서 말하는 것과 같이, 내가 이전에 이러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은 나의 오작(惡作)이라고 말한다.
017_0560_c_10L悔謂惡作惡所作業追悔爲性障止爲業此卽於果假立因名先惡所作業後方追悔故悔先不作亦惡作攝如追悔言我先不作如是事業是我惡作
‘면(眠)심소’5)는 수면(睡眠)을 말한다. 자재하지 못하며 어둡고 빼앗기게 함[令]을 체성으로 하고, 위빠사나[觀]를 장애함을 업으로 한다. 수면 상태에서는 몸으로 하여금 자재하지 못하게 하고, 마음으로 하여금 매우 어둡고 용렬하게 하며, 하나의 문(門)에서만6) 전전하기 때문이다. 어둡다는 것은 선정에 들어 있는 것을 구분한다. 빼앗는다는 것은 깨어 있을 때를 구별한다. 하게 함[令]은 면(眠)심소가 자체ㆍ작용이 없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무심의 지위에 있어도 이 명칭을 가립한다.7) 다른 것과 같이, 덮고[蓋] 얽음[纏]으로써 심왕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017_0560_c_14L眠謂睡眠令身不自在昧略爲性障觀爲業謂睡眠位身不自在心極闇劣一門轉故簡在定略別寤時令顯睡眠非無體有無心位假立此名如餘蓋纏心相應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8) 이 두 가지9)는 오직 치심소를 자체[體]로 한다. 수번뇌와 치심소의 일부분이라고 말하기10)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1) 그렇지 않다. 역시 선품(善品)에도 통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잡염법이라면 치심소를 자체로 하고, 청정법이라면 곧 무치(無癡)라고 말이다.
017_0560_c_19L有義此二唯癡爲體說隨煩惱及癡分故有義不然亦通善故說此二染癡爲體淨卽無癡
017_0561_a_01L논서에서는 잡염분에 의지해서 수번뇌와 치심소의 일부분에 포함된다고 말한다.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2) 이 견해도 역시 이치가 아니어야 하다. 무기(無記)는 치(癡)ㆍ무치(無癡)의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오작(惡作)은 사(思)ㆍ혜(慧) 심소를 자체로 한다. 지은 업을 명료하게 생각해서 간택하기 때문이다. 면(眠)심소는 합하여 사(思)ㆍ상(想) 심소를 사용해서 자체로 삼는다. 갖가지 꿈의 경계에서의 모습들을 유지하고 표상하기 때문이다.
017_0560_c_21L論依染分說隨煩惱及癡分攝有義此說亦不應理無記非癡無癡性故應說惡作思慧爲體明了思擇所作業故眠合用思想爲體思想種種夢境相
논서에서 둘 다 세속유라고 말하기13) 때문이다. 그것의 염오인 것은 치심소의 등류이다. 불신(不信) 등처럼, 치심소의 일부분이다.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4) 그 견해도 이치가 역시 그렇지 않다. 사(思)ㆍ혜(慧)ㆍ상(想) 심소는 얽어매는[纏] 속성인 그것15)의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16)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각기 별도로 자체가 있다. 나머지 심소와 행상(行相)이 다르기 때문에 어리석음의 양상에 따라서 세속유라고 이름한다.
017_0561_a_04L論俱說爲世俗有故彼染污者是癡等流如不信等說爲癡分有義彼說理亦不然非思纏彼性故說此二各別有體與餘心所行相別故隨癡相說名世俗有
‘심(尋)심소’17)는 찾아 구하는 것[尋求]을 말한다. 심왕을 바쁘고 급하게 의식[意言]18)의 대상에 대해 두드러지게 전전하게 함을 체성으로 한다. ‘사(伺)심소’19)는 보면서 살피는 것[伺察]을 말한다. 심왕을 바쁘고 급하게 의식[意言]의 대상에 대해 미세하게 전전하게 함을 체성으로 한다. 이 둘은 모두 평안과 불안에 머무는 몸과 마음의 분위(分位)의 의지처가 되는 것을 업으로 한다.20) 둘 다 사(思)ㆍ혜(慧) 심소의 일부분을 사용해서 자체로 삼는다. 의식의 대상에 대해서 깊이 헤아리지 않고21) 깊이 헤아리는22) 뜻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ㆍ혜 심소에서 떠나서는 심(尋)ㆍ사(伺)두 가지가 체의 종류의 차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017_0561_a_08L尋謂尋求令心悤遽於意言境麤轉爲性伺謂伺察令心悤遽於意言境細轉爲性此二俱以安不安住身心分位所依爲業竝用思慧一分爲體於意言境不深推度及深推度義類別故若離思伺二種體類差別不可得故
(『삼십송』의 제14게송에서) “둘에 각각 둘이네”라는 것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3) 심(尋)ㆍ사(伺) 심소에 각각 잡염과 청정의 두 종류의 차이가 있음을 말한다.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4) 이 해석은 바른 논리가 아니다. 회ㆍ면 심소에도 역시 잡염과 청정의 두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앞에서와 같이 모든 잡염의 심소에 번뇌ㆍ수번뇌심소의 속성이 있으며, 이 두 가지에25) 각각 불선과 무기가 있다. 혹은 다시 각각에 얽어맴[纏]과 수면이 있다고 말이다.
017_0561_a_14L二各二者有義尋伺各有染淨二類差有義此釋不應正理眠亦有染淨二故應說如前諸染心所有是煩惱隨煩惱性此二各有不善無記復各有纏及隨眠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6) 그 해석도 역시 바른 논리가 아니다. 부정의 네 가지 심소의 뒷부분에 이러한 말이 있기 때문이다.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둘[二]’이라는 것은 두 가지의 두 종류를 나타낸다. 하나는 회ㆍ면 심소이고, 다른 하나는 심ㆍ사 심소이다. 이 두 가지의 두 종류는 종류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둘이라는 말은 둘의 두 종류를 나타낸다.27)
017_0561_a_19L有義彼釋亦不應不定四後有此言故應言二者顯二種二一謂悔二謂尋此二二種種類各別故一二言顯二二種
017_0561_b_01L여기에 각각 두 가지가 있으니, 잡염과 잡염되지 않은 것이다. 선과 잡염이 각각 오직 하나인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오직 잡염인 것을 가려내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한다. 어떤 곳28)에서 역시 수번뇌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부정(不定)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 ‘둘에 각각 둘’이라는 말을 한다.29) 따라서 이 말을 시설한 것은 의미 깊게 사용함이 있다.
017_0561_a_22L各有二謂染不染非如善染各唯一或唯簡染故說此言有亦說爲隨煩惱故爲顯不定義說二各二言置此言深爲有用
네 가지 중에서 심(尋)ㆍ사(伺) 심소는 반드시 가유(假有)이다. 사(思)ㆍ혜(慧) 심소와 합해서 이룬다는 것은 성스러운 가르침에서 말한 바이기 때문이다.회ㆍ면 심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역시 이것도 자체가 없는 존재이다. 『유가사지론』에서 세속유라고 말하기30) 때문이다.
017_0561_b_03L四中尋伺定是假有慧合成聖所說故眠有義亦是假有󰡔瑜伽󰡕說爲世俗有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31) 이 둘은 실물유(實物有)이다. 오직 나중의 두 가지만32)을 가유(假有)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세속유라는 말은 다른 것33)의 양상에 따라서 말한 것이다.앞의 두 가지도 반드시 가유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또한 비유하면 내부세계의 종자는 실유(實有)이지만, 논서에서 역시 세속유라고 말한34) 바와 같기 때문이다.
017_0561_b_06L有義此二是實物有唯後二種說假有故世俗有言隨他相說非顯前二定是假有又如內種體雖是實而論亦說世俗有故
네 가지 중에서 심ㆍ사 심소는 반드시 상응하지 않는다.35) 자체와 종류는 같고,36) 두드러짐과 미세함이 다르기 때문이다.37) 심ㆍ사 심소가 잡염이 있는 것과 잡염을 떠난 것에 의해서 유정이 머무는 세 가지 장소의 차이를 건립하며,38) 그것의 종자ㆍ현행이 있고 없음에 의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복잡하지 않다. (심ㆍ사 심소가) 모두 앞의 두 가지39)와 서로 상응함이 인정되고,40) 앞의 두 가지도 역시 서로 상응하는 뜻이 있다고 해야 한다. 네 가지 심소가 모두 제7식ㆍ제8식과는 함께하지 않는다.41) 그 뜻은 앞42)에서 말한 것과 같다. 회ㆍ면 심소는 오직 제6식과 함께한다. 5식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017_0561_b_09L四中尋定不相應體類是同麤細異故依於尋伺有染離染立三地別不依彼種現起有無故無雜亂俱與前二容互相應前二亦有互相應義四皆不與第七八俱義如前說眠唯與第六識俱非五法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43) 심ㆍ사 심소는 역시 5식과도 함께한다. 논서에서 5식에 심ㆍ사 심소가 있다고 말하기44) 때문이다. 또한 심ㆍ사 심소는 곧 일곱 가지 분별45)이라고 말하니,46) 형상이 있는 것 등이다. 『잡집론』에서 다시 자연히 일어나는 분별은 5식이라고 말하기47)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48) 심ㆍ사 심소도 오직 의식과 함께한다. 논서49)에서 심ㆍ사 등의 법은 모두 의식의 불공법(不共法)이라고50) 말하기 때문이다.
017_0561_b_15L有義尋伺亦五識俱論說五識有尋伺故又說尋伺卽七分別謂有相等󰡔雜集󰡕復言任運分別謂五識故有義尋伺唯意識俱論說尋求伺察等法皆是意識不共法故
또한 심ㆍ사 심소는 우수(憂受)ㆍ희수(喜受)와 상응할 뿐이라고 말하고, 일찍이 고수(苦受)ㆍ낙수(樂受)와 함께한다고는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수(捨受)는 두루하기 때문에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된다. 무슨 까닭으로 고수(苦受)ㆍ낙수(樂受)와 함께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초선천에서는 의식의 낙수가 있지만, 희수(喜受)에서 떠나지 않으므로 전체적으로 희수(喜受)라는 명칭을 말한다. 순전히 고통만 있는 곳에서는 의식의 고수(苦受)가 있지만, 우수(憂受)와 비슷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우수(憂受)라고 말한다.
017_0561_b_19L又說尋喜相應曾不說與苦俱故捨受遍故可不待說何緣不說與苦樂俱雖初靜慮有意地樂而不離喜摠說喜名雖純苦處有意地苦而似憂故摠說爲憂
017_0561_c_01L또한 심ㆍ사 심소는 명칭[名身] 등51)의미52)를 인식대상으로 한다고 말한다.53) 5식은 명칭 등과 뜻으로써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5식에 심ㆍ사 심소가 있다고 말한 것54)은 대부분 그것에 의거해서 일어나는 것을 나타내며, 그것과 상응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017_0561_c_01L又說尋伺以名身等義爲所緣非五識身以名身等義爲境故然說五識有尋伺者顯多由彼起非說彼相應
『잡집론』에서 말하듯이55)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분별은 5식을 가리킨다는 것은 『유가사지론』에서 말한 분별과 뜻이 각기 다르다. 거기(『잡집론』)에서는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곧 5식이라고 말하고, 『유가사지론』에서는 이것56)이 5식과 함께하는 분별의 의식과 상응하는 심ㆍ사 심소라고 한다. 따라서 그가 인용한 것은 증명이 되지 못한다. 이것에 의해 5식에서는 반드시 심ㆍ사 심소가 없다.
017_0561_c_04L󰡔雜集󰡕所言任運分別謂五識者彼與󰡔瑜伽󰡕所說分別義各有異彼說任運卽是五識󰡔瑜伽󰡕說此是五識俱分別意識相應尋伺彼所引爲證不成由此五識定無尋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57) 오작(惡作)심소는 우수(憂受)ㆍ사수(捨受)와 상응한다. 오직 근심의 작용에서만 전전한다.58) 무기에 통하기 때문이다.59) 면(眠)심소는 희수(喜受)ㆍ우수(憂受)ㆍ사수(捨受)와 함께 일어난다. 작용이 기쁨ㆍ슬픔ㆍ기쁨도 슬픔도 아닌 것에 공통적으로 전전하기 때문이다. 심ㆍ사 심소는 우수ㆍ희수ㆍ사수ㆍ낙수와 상응한다. 초선천 중에서는 의식의 낙수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017_0561_c_09L有義惡作憂捨相應唯慼行轉無記故睡眠喜捨受俱起行通歡慼中庸轉故尋伺憂喜樂相應靜慮中意樂俱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60) 이 네 가지 심소는 역시 고수(苦受)와도 함께한다. 순전히 고통만 있는 세계에서는 의식의 고수와 함께하기 때문이다.네 가지 심소는 모두 다섯 가지 별경심소와 함께한다고 인정된다.61) 인식작용도 인식대상도 서로 위배되지 않기 때문이다.
017_0561_c_12L有義此四亦苦受純苦趣中意苦俱故四皆容與五別境俱行相所緣不相違故
회ㆍ면 심소는 다만 열 가지 선심소와 함께한다고 인정된다.62) 이것은 오직 욕계에서만 있고, 경안(經安)에는 없기 때문이다. 심ㆍ사 심소는 열한 가지 선심소와 함께한다고 인정된다. 초선천 중에서는 경안과 함께하기 때문이다.회(悔)심소는 다만 무명과 상응하는 것이 인정된다.63) 이것은 인식작용이 두드러지고, 탐심소 등은 미세하기 때문이다. 면ㆍ심ㆍ사 심소는 열 가지 번뇌의 심소와 함께한다. 이것과 그것은 전전하여 서로 위배되지 않기 때문이다.
017_0561_c_14L眠但與十善容俱此唯在欲無輕安故伺容與十一善俱初靜慮中輕安俱悔但容與無明相應此行相麤貪等細故睡眠伺十煩惱俱此彼展轉不相違故
회심소는 중수번뇌와 대수번뇌심소와 함께한다고 인정된다.64) 분(忿) 등의 열 가지는 아니다. 각기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면ㆍ심ㆍ사 심소는 스무 가지 수번뇌와 함께한다고 인정된다. 수면 등의 지위 중에서 모두 그것을65) 일으키기 때문이다.이 네 가지 심소는 모두 선 등 세 가지 성품과 통한다.66) 무기의 업에서도 역시 뉘우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017_0561_c_19L悔與中大隨惑容俱忿等十各爲主故睡眠伺二十容眠等位中皆起彼故此四皆通善等三性於無記業亦追悔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처음의 두 가지67)는 오직 선천적으로 착한 성품[生得善]이다. (회심소는) 인식작용이 두드러지고 자신을 낮추며, (면심소는) 어둡고 빼앗기 때문이다. 뒤의 두 가지는 역시 가행선(加行善)에도 포함된다. 보고 들어서 이루는 지혜[聞所成慧] 등에 심ㆍ사 심소가 있기 때문이다.
017_0561_c_22L有義初二唯生得善行相麤鄙及昧略故二亦通加行善攝聞所成等有尋
017_0562_a_01L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처음의 둘도 역시 가행선이다. 문혜(聞慧)ㆍ사혜(思慧)의 지위 중에 회ㆍ면 심소가 있기 때문이다. 뒷부분의 셋은 모두 잡염과 청정의 무기68)에 통하다. 회심소는 잡염이 아니니, 이해가 두드러지고 맹렬하기 때문이다. 청정의 네 가지 무기 중에서 회심소는 가운데 두 가지이다.69) 인식작용이 두드러지고 맹렬하며, 선정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면심소에서는 네 번째 무기만을 제외한다. 선정에 이끌려 생겨난 것이 아니므로, 제6식의 이숙생의 심왕에도 역시 수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ㆍ사 심소는 첫 번째 것(이숙무기)만을 제외한다. 그것(이숙심)은 이해가 미세하고 열등해서 명칭 등과 의미를 심구ㆍ사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017_0562_a_02L有義初二亦加行善聞思位中有悔眠故後三皆通染淨無記惡作非染解麤猛故四無記悔唯中二相麤猛非定果故眠除第四非定引異熟生心亦得眠故伺除初解微劣不能尋察名等義故
회ㆍ면 심소는 오직 욕계에만 있다.70) 심ㆍ사 심소는 욕계와 초선천에 있다.다른 세계71)와 지위[地]72)의 법은 모두 승묘하고 적정하기 때문이다. 회ㆍ면 심소는 상부 지위[上地]에 있을 때는 반드시 일으키지 않는다. 심ㆍ사 심소는 상부 지위ㆍ하부 지위에 있으면서 역시 상부 지위ㆍ하부 지위의 것을 일으킨다. 하부 지위ㆍ상부 지위의 심ㆍ사 심소는 능히 상부 지위ㆍ하부 지위를 반연한다.
017_0562_a_07L惡作眠唯欲界有伺在欲及初靜慮地法皆妙靜故眠生上必不現伺上下亦起下上下上尋伺能緣上下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회ㆍ면 심소는 상부 지위를 반연할 수 없다. (회심소는) 인식작용이 두드러지고 가까우며, (면심소는) 매우 어둡고 빼앗기 때문이다.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이 두 가지도 역시 상부 지위의 대상을 반연한다. 삿된 견해가 있는 자는 상부 지위의 선정을 닦는 것을 뉘우치기 때문이다. 꿈속에서는 능히 널리 바꾸어진 대상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017_0562_a_11L有義悔眠不能緣上行相麤近極昧略故有義此二亦緣上境邪見者悔修定故夢能普緣所更事
회심소는 무학(無學)은 아니다.73) 욕망을 떠날 때 버리기 때문이다. 면ㆍ심ㆍ사 심소는 모두 세 종류에 통한다. 해탈을 구하는 자의 유위의 선법을 모두 유학이라고 이름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경지를 배우는 자의 유위의 선법은 모두 무학이기 때문이다.
017_0562_a_14L悔非無學離欲捨故睡眠尋伺皆通三種求解脫者有爲善法皆名學學究竟者有爲善法皆無學故
회ㆍ면 심소는 오직 견도에서 단멸되는 것과 수도에서 단멸되는 것에 통한다.74) 또한 사견 등의 세력에 의해서도 일어나기 때문이다.75) 무루도에서 직접 이끌려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76) 또한 우근(憂根)이 깊이 해탈을 구하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77) 만약 무학에서 이미 단멸되었기 때문에 단멸해야 할 것이 아닌 것[非所斷]이라고 이름한다면, 곧 무학의 면(眠)심소도 단멸해야 할 것이 아닌 것에 포함된다.
017_0562_a_16L眠唯通見修所斷亦邪見等勢力起非無漏道親所引生故亦非如憂深求解脫故若已斷故名非所斷無學眠非所斷攝
심ㆍ사 심소는 참다운 무루도78)가 아니지만, 능히 그것을 이끌고 그것에 따라서 이끌려 생겨나기 때문에, 견도에서 단멸되는 것과 수도에서 단멸되는 것 및 단멸해야 할 것이 아닌 것에 공통적으로 포함된다.
017_0562_a_20L尋伺雖非眞無漏而能引彼從彼引生故通見所斷攝
017_0562_b_01L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심(尋)ㆍ사(伺) 심소는, 단멸해야 할 것이 아닌 것은 다섯 가지 법79) 중에서 오직 분별에만 포함된다. 『유가사지론』에서 그것은 분별이라고 말하기80) 때문이다.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81) 이 두 가지는 역시 정지(正智)82)에 포함된다. 바른 사유83)는 무루라고 말하기84) 때문이다.그것(바른 사유)은 능히 심왕으로 하여금 찾아 구하는 것[尋求] 등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85) 또한 그것은 언설의 원인이라고 말하기86) 때문이다.
017_0562_a_22L有義尋伺非所斷者於五法中唯分別攝󰡔瑜伽󰡕說彼是分別故義此二亦正智攝說正思惟是無漏彼能令心尋求等故又說彼是言說因故
아직 궁극적으로 깨치지 못한 지위87)에서는 약(藥:能治)과 병(病:所治) 등에 대해서 능히 두루 알 수 없으므로, 후득지 속에서 타인을 위해 법을 말할 때에 반드시 심ㆍ사 심소에 의지한다. 부처님 지위의, 유위(有爲)에 의한 작용이 없는 상태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이 두 가지는 역시 무루에도 통한다.
017_0562_b_03L未究竟位於藥病等未能遍後得智中爲他說法必假尋伺如佛地無功用說故此二種亦通無
심ㆍ사 심소는 반드시 분별이라고 말하지만, 결정적으로 오직 세 번째 법88)에 속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후득의 바른 지혜89) 중에도 역시 분별이 있기 때문이다.다른 부문90)은 이상에 견주어서 논리에 맞게 생각해야 한다.
017_0562_b_06L雖說尋伺必是分別而不定說唯屬第三後得正智中亦有分別故門准上如理應思
【문】 이상과 같은 6위의 모든 심소법은 심왕(心王)의 자체를 떠나서 별도의 자성이 있는가, 아니면 심왕의 분위의 차이인가?91)
017_0562_b_08L如是六位諸心所法爲離心體有別自性爲卽是心分位差別
【답】 설사 그렇다고 말하더라도 무슨 과실이 있는가?둘 다 과실이 있다. 만약 심왕의 자체에서 떠나서 별도로 자성이 있다고 말하면, 어째서 성스러운 가르침에서 오직 식만이 있다고 말하는가?92) 또한 어째서 심왕이 멀리 홀로 작용한다고 말하고,93) 잡염법ㆍ청정법은 심왕에 의거한다고 하며,94) 유정은 6계95)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가?96)
017_0562_b_10L設爾何失二俱有過若離心體有別自性如何聖教說唯有識又如何說心遠獨行染淨由心士夫六界
『장엄론』에서 말하는 것을 또한 어떻게 회통하는가?97) 그것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017_0562_b_13L󰡔莊嚴論󰡕說復云何通如彼頌言

심왕이 둘로 사현(似現)한다고 인정된다.
이와 같이 탐(貪)심소 등으로 사현하고
혹은 신(信)심소 등으로 사현한다.
별도의 잡염ㆍ선(善)의 법은 없다.98)
017_0562_b_14L許心似二現
如是似貪等
或似於信等
無別染善法

만약 이것이 심왕의 분위의 차이라고 말하면,99) 어째서 성스러운 가르침에서 심왕과 상응한다고 말씀하는가?100) 다른 체성과 상응하고, 자성은 아니라고 말하기101) 때문이다. 또한 어째서 심왕과 심소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비유하면 태양과 빛과 같다고 말씀하는가?102) 또한 『유가사지론』에서 말하는 것을103) 어떻게 회통하는가? 거기서 심소는 곧 심왕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것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017_0562_b_16L若卽是心分位差別如何聖教說心相他性相應非自性故又如何說心與心所俱時而起如日與光󰡔瑜伽論󰡕說復云何通彼說心所非卽心故彼頌言

다섯 종류104)의 자성이 있다고 말함은 성립되지 않는다.
분위로써 차이가 있다고 말하면 과실이다.
인연이 차이가 없기 때문에105)
성스러운 가르침에 위배된다.
017_0562_b_21L五種性不成
分位差過失
因緣無別故
與聖教相違
017_0562_c_01L
마땅히 심왕에서 떠나서 별도의 자성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 심왕이 뛰어나기 때문106)에 오직 식 등이라고 말한 것이다. 심소는 심왕에 의지하는 세력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107)으로 사현(似現)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곧 심왕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식이나 심(心)이라는 말에는 역시 심소도 포함된다. 항상 상응하기 때문이다. 오직 식 등이라는 말과 그것으로 사현한다는 말은 모두 과실이 없다.
017_0562_b_23L應說離心有別自性以心勝故說唯識等心所依心勢力生故說似彼現非彼卽心又識心言亦攝心所恒相應故唯識等言及現似彼皆無有失
이것은 세속제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다. 만약 승의제에 의거해서 말하면, 심왕과 심소는 별개도 아니고 하나도 아니다[非難非卽]. 모든 식을 배대해서도 역시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대승의 진제와 속제의 미묘한 도리라고 말한다.이상에서 6식의 심소와 상응하는 것에 관하여 말하였다. 그러면 현행하는 분위를 마땅히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게송(『삼십송』의 제15ㆍ16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017_0562_c_04L此依世俗若依勝義心所與心非離非卽諸識相望應知亦然是謂大乘眞俗妙理已說六識心所相應云何應知現起分位頌曰

근본식에 의지하니108)
5식은 연(緣)에 따라 일어난다.
혹은 함께하고 혹은 함께하지 않으니,
파도가 바닷물에 의지함과 같다.109)
017_0562_c_08L依止根本識
五識隨緣現
或俱或不俱
如濤波依水

의식은 항상 일어난다.
무상천에 태어나는 것
및 무심의 두 선정과
잠잘 때와 기절했을 때는 제외한다.110)
017_0562_c_10L 意識常現起
除生無想天
及無心二定
睡眠與悶絕

논하여 말하다.111) ‘근본식’이란 아타나식이다. 잡염ㆍ청정의 모든 식이 현행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의지하는 것’은 6전식(轉識)을 말한다. 근본식을 공통적인 의지처112)와 직접적인 의지처113)로 삼는다.
017_0562_c_11L論曰根本識者阿陁那識染淨諸識生根本故依止者謂前六轉識以根本識爲共親依
‘5식’은 앞부분의 다섯 전식을 말한다.114) 부류가 비슷하기 때문115)에 총체적으로 그것을 말한다. “연(緣)에 따라 일어난다”는 말은 항상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연(緣)이란 작의(作意)ㆍ감각기관ㆍ대상 등을 말한다. 5식은 안으로는 근본식에 의지하고, 밖으로는 작의ㆍ다섯 감각기관ㆍ대상 등의 여러 연(緣)의 화합에 따라서 비로소 일어날 수 있다. 이것에 의해서 혹은 함께하고 혹은 함께하지 않는다. 외부세계의 연(緣)이 화합하는 것은, 단박에 이루어지는 것과 점차 이루어지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닷물의 파도가 연(緣)에 따라 많고 적음이 있음과 같다. 이와 같은 등의 법과 비유를 구체적으로 많이 말하는 것은 경전116)에서와 같다.
017_0562_c_14L五識者謂前五轉識種類相似故摠說之隨緣現言顯非常起緣謂作意境等緣謂五識身內依本識外隨作意五根境等衆緣和合方得現前由此或俱或不俱起外緣合者有頓漸故如水濤波隨緣多少此等法喩廣說如經
017_0563_a_01L다섯 전식은 인식작용[行相]이 두드러지고, 의지하는 갖가지 연(緣)을 때로는 거의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일어날 때는 적고, 일어나지 않을 때가 많다.117) 제6의식도 역시 두드러지게 작용하기는 하지만, 의지하는 연(緣)을 갖추지 못할 때가 없다. 거스르는 연[違緣]118)에 의거함으로써 어떤 때는 일어나지 않는다. 제7식과 제8식은 인식작용이 미세하고, 의지하는 여러 연(緣)이 언제나 있다.따라서 연(緣)으로서 장애하여 전체적으로 행하지 않게 하는 일이 없다.
017_0562_c_20L由五轉識行相麤動所藉衆緣時多不具故時少不起時多第六意識雖亦麤動而所藉緣無時不具由違緣故有時不起第七八識行相微細所藉衆緣一切時有故無緣㝵令摠不行
또한 5식은 사려(思慮)할 수 없고,119) 오직 감각기관[外門]에서 전전하며, 일어날 때에는 여러 연(緣)에 의지한다. 따라서 작용이 중단될 때가 많고, 현행할 때는 적다. 제6의식은 스스로 사려할 수 있고, 내면과 외부의 감각기관에서 전전하며, 많은 연(緣)을 의지하지 않는다. 오직 다섯 지위120)를 제외하면 항상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중단될 때는 적고 현행할 때가 많다. 이상에 의거해서 이것은 연(緣)에 따라 일어난다고 말하지 않는다.
017_0563_a_02L又五識身不能思慮唯外門轉起藉多緣故斷時多現行時少第六意識自能思慮內外門轉不藉多緣唯除五位常能現起故斷時少現起時多由斯不說此隨緣現

【문】 다섯 지위란 무엇인가?121)【답】 무상천에 태어나는 등이다.무상천(無想天)122)은 그 선정을 닦아서 6식의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상(想)심소를 싫어하는 힘에 의해 그 하늘에 태어난다.123) 항상 작용하지 않는124) 심왕ㆍ심소에 거스르는 상(想)을 멸함을 첫째로 삼기 때문에 무상천이라고 이름한다. 따라서 6전식이 거기서는 모두 단절된다.
017_0563_a_07L五位者何生無想等無想天者謂修彼定厭麤想力生彼天中違不恒行心及心所想滅爲首名無想天故六轉識於彼皆斷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25) 그 하늘에는 항상 6식이 없다. 성스러운 가르침에서 그곳에는 전식이 없다고 말하기126) 때문이다. 그곳에는 오직 물질적 요소[有色支]127)만이 있다고 말하기128) 때문이다. 또한 그곳은 제6의식이 작용하지 않는 지위[無心地]라고 말하기129) 때문이다.
017_0563_a_10L有義彼天常無六識聖教說彼無轉識故說彼唯有有色支故又說彼爲無心地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30) 그 하늘에서 장차 목숨이 다하려는 지위에서는 반드시 전식을 일으킨 연후에 목숨이 다한다. 그곳에서는 반드시 하부 지위의 태어남을 촉진하는 애착을 일으킨다고 말하기131) 때문이다. 『유가사지론』에서 “후에 상(想)심소가 일어나고 나서 이 모든 유정이 그곳에서 목숨이 다한다”132)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에 전식이 없다는 등으로 말하는 것133)은 오랜 기간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지, 전혀 없다는 말이 아니다.
017_0563_a_13L有義彼天將命終位要起轉識然後命終彼必起下潤生愛故󰡔瑜伽論󰡕說後想生已是諸有情從彼沒故說彼無轉識等者依長時說非謂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34) 태어날 때에도 역시 전식이 있다. 그곳의 중유(中有)135)에서는 반드시 태어남을 촉진하는 번뇌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다른 하늘의 본유(本有)136)의 초기와 같이, 반드시 전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가사지론』에서 말하기를 “만약 그곳에137) 태어날 때에는, 오직 (무심위에) 들어갈 때에만 (무상정을) 일으키지 않는다. 만약 그 상(想)심소가 일어날 때에는, 그곳에서 목숨이 다한다”138)고 하기 때문이다.
017_0563_a_17L有義生時亦有轉識彼中有必起潤生煩惱故如餘本有初必有轉識󰡔瑜伽論󰡕說若生於彼唯入不起想若生從彼沒故
그곳의 본유(本有)의 초기에 만약 전식이 없다면, 어떻게 들어간다고 이름하겠는가? 먼저 있는데 나중에 없게 됨을 이름하여 들어간다고 하기 때문이다. 「섭결택분」에서 “모든 선천적인 심왕ㆍ심소를 멸하는 것을 무상이라고 이름한다”139)고 말하기 때문이다.
017_0563_a_20L彼本有初若無轉識如何名入先有後無乃名入故「決擇分」言所有生得心心所滅名無想
017_0563_b_01L이 말의 뜻이 나타내는 것은 다음과 같다. 그곳의 본유의 초기에는 이숙생의 전식이 잠시 일어나지만, 과거의 인연의 세력140)에 의해 나중에는 다시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에 의해 이숙무기의 분위의 차이를 이끌어낼 때, 무상정이라고 이름한다. 선(善)에 이끌려 생겨나므로 두 가지 선정을 선이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 않다면 전식은 일체에 행하지 않는 것이 된다. 어떻게 오직 선천적인 것만을 멸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그곳의 초기의 지위에서는 전식이 잠시 일어난다.
017_0563_a_23L此言意顯彼本有初有異熟生轉識蹔起宿因緣力後不復生由斯引起異熟無記分位差別說名無想善引生二定名善不爾轉識一切不如何可言唯生得滅故彼初位轉識蹔起
그 하늘은 오직 제4선정에만 있다. 아래 지위141)에서는 상(想)심소가 두드러지게 작용하여 끊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상부 지위142)에서는 상심소가 없는 이숙처가 없기 때문이다. 곧 무상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思)심소가 능히 그 하늘의 이숙과를 초감하기 때문이다.
017_0563_b_05L彼天唯在第四靜慮下想麤動難可斷故上無無想異熟處故能引發無想定思能感彼天異熟果
제16게송에서 ‘및 무심의 두 선정’이란 무상정과 멸진정을 말한다.143) 둘 다 6식이 없기 때문에 무심정으로 이름한다. ‘무상정’은 어떤 범부가 변정천(遍淨天)144)까지의 탐욕을 조복하고 아직 상부 지위145)의 잡염을 조복하지 않으며, 출리상(出離想)의 작의(作意)심소를 우선으로 함으로써 항상 행하지 않는 심왕ㆍ심소를 멸하게 하고, 상을 멸하는 것을 첫째로 삼아 무상(無想)이라는 명칭을 건립하며, 몸을 편안하고 조화롭게 하기 때문에 역시 선정이라고 이름한다.
017_0563_b_08L及無心二定者謂無想滅盡定無六識故名無心無想定者謂有異生伏遍淨貪未伏上染由出離想作意爲先令不恒行心心所滅想滅爲立無想名令身安和故亦名定
이 선정을 닦고 익히는 데 품류(品類)를 구별하면 세 부류가 있다. 하품(下品)의 닦는 자는 현재법에서 반드시 퇴전하는데, 재빨리 돌아가서 이끌어 현전케 할 수 없다. 나중에 그 하늘에 태어나서는 매우 빛나고 청정하다거나 형색이 광대하지도 않으며, 반드시 장차 중간에 일찍 죽는다. 중품의 닦는 자는 현재법에서 반드시 퇴전하지는 않으며, 설사 퇴전한다 하더라도 재빨리 돌아가서 이끌어 현전케 한다. 나중에 그 하늘에 태어나서는 매우 빛나고 청정하며 형식이 광대하지만, 가장 뛰어난 것은 아니다. 중간에 일찍 죽긴 하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
017_0563_b_12L習此定品別有三下品修者現法必退不能速疾還引現前後生彼天甚光淨形色廣大定當中夭中品修者現不必退設退速疾還引現前生彼天雖甚光淨形色廣大而不最雖有中夭而不決定
상품의 닦는 자는 현재법에서 반드시 퇴전하지 않으며, 나중에 그 하늘에 태어나서는 가장 뛰어나게 빛나고 청정하며 형식이 광대하다. 반드시 중간에 일찍 죽지 않고, 수명의 길이를 끝까지 가득 채운 후에 비로소 죽는다.
017_0563_b_18L上品修者現必不退後生彼天最極光淨形色廣必無中夭窮滿壽量後方殞沒
이 선정은 오직 제4선정에만 속하고 또한 오직 선(善)이다. 그곳에서 이끌려지기 때문에 하부 지위와 상부 지위에는 없다. 앞에서 말한 것에 근거하기 때문이다.네 가지 업146)에 있어서는 세 가지에 공통되고, 금생에 받는 업[順現受]을 제외한다.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47) 이 선정은 오직 욕계에서만 일어난다. 모든 외도가 설교하는 세력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해하는 것이 매우 강하고 날카롭기 때문이다.
017_0563_b_20L定唯屬第四靜慮又唯是善彼所引故下上地無由前說故四業通三順現受有義此定唯欲界起由諸外道說力起故人中慧解極猛利故
017_0563_c_01L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48) 욕계에서 먼저 닦아 익힌 사람은 나중에 색계에 태어나서도 능히 이끌어 현전케 한다. 무상천을 제외하니, 구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想)심소를 싫어하고 그 결과를 기뻐하여 들어가기 때문에 오직 유루이고, 성인이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017_0563_c_01L義欲界先修習已後生色界能引現除無想天至究竟故此由厭想欣彼果入故唯有漏非聖所起
‘멸진정’은 어떤 무학149) 혹은 유학의 성인이 무소유처150)까지의 탐욕을 이미 조복하거나 혹은 떠난 것을 말한다. 상부 지위151)의 탐욕은 일정하지 않다. 상(想)을 멈추게[止息] 하는 미세한 심소152)를 우선으로 함으로써, 항상 작용하지 않는 것153)과 항상 작용하는 것154)의 염오의 심왕ㆍ심소를 멸하게 하므로 멸진이라는 명칭을 건립한다. 몸을 평안하고 조화롭게 하기 때문에 역시 선정이라고 이름한다. 집중적으로 수(受)와 상(想)을 싫어함에 의거해서,155) 역시 그것156)을 멸하는 선정이라고 이름한다.
017_0563_c_04L滅盡定謂有無學或有學聖已伏或離無所有貪上貪不定由止息想作意爲令不恒行恒行染污心心所滅滅盡名令身安和故亦名定由偏厭受想亦名滅彼定
이 선정을 닦고 익히는 데 품류(品類)를 구별하면 세 부류가 있다. 하품의 닦는 자는 현재법에서 반드시 퇴전하며, 재빨리 돌아가서 이끌어 현전케 할 수 없다. 중품의 닦는 자는 현재법에서 반드시 퇴전하지는 않으며, 설사 퇴전한다 하더라도 재빨리 돌아가서 이끌어 현전케 할 수 있다. 상품의 닦는 자는 구경에 이르러 퇴전하지 않는다.
017_0563_c_09L修習此定品別有下品修者現法必退不能速疾還引現前中品修者現不必退設退速疾還引現前上品修者畢竟不退
이 선정을 처음 닦는 사람은 반드시 유정천(有頂天)의 유관(遊觀)157)의 무루158)에 의지해서 가행으로 삼아 들어간다.159) 순차적인 선정160) 중에서 가장 나중에 머물기 때문이다.유정천에 속하긴 하지만 무루에 포함된다. 이 선정을 닦아서 이미 자재를 얻은 사람은 다른 지위161)의 심왕 이후에도 역시 현전할 수 있다.도제(道諦)에 속하지만 유학도 무학도 아닌 것[非學非無學]에 포함된다. 열반에 비슷하기 때문이다.
017_0563_c_12L定初修必依有頂遊觀無漏爲加行次第定中最居後故雖屬有頂而無漏攝若修此定已得自在餘地心後亦得現前雖屬道諦而是非學非無學攝似涅槃故
이 선정을 처음 일으키는 것은 오직 인간세상에서이다. 부처님과 제자들의 설법의 힘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고, 인간이 이해하는 것이 가장 강하고 날카롭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두 가지 상계162)에서도 역시 현전할 수 있고,163) 『오타이경(鄔陀夷經)』이 이것의 진실한 증거 문장이며, 무색계도 역시 의성천(意成天)164)으로 이름하기 때문이다. 아직 장식(藏識)에 관한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무색계에 태어나서는 이 선정을 일으키지 않는다. 색법과 심법이 없으므로 단멸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장식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은 그곳에 태어나서도 역시 현전할 수 있다. 장식이 있으므로 단멸되지 않는다고 알기 때문이다.
017_0563_c_17L此定初起唯在人佛及弟子說力起故人中慧解極猛利故後上二界亦得現前󰡔鄔陁夷經󰡕是此誠證無色亦名意成天故藏識教未信受者若生無色不起此恐無色心成斷滅故已信生彼亦得現前知有藏識不斷滅故
017_0564_a_01L반드시 3계의 견도에서 단멸되는 미혹을 끊어야 비로소 이 선정을 일으킨다. 범부는 유정천의 심왕ㆍ심소를 조복 단멸할 수 없기 때문이다.165) 이 선정은 미묘하므로 반드시 아공ㆍ법공의 이치를 증득한다. 상응한 것에 따라서 후득지에 이끌려 일어나기 때문이다.166)
017_0563_c_23L要斷三界見所斷惑方起此定異生不能伏滅有頂心心所故此定微妙要證二空隨應後得所引發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67) 아래 장소의 8지(地)168)의 수도에서 단멸되는 미혹 중에서 반드시 완전히 욕망을 끊고, 나머지를 조복하고 미혹을 단멸한 연후에 바야흐로 능히 처음으로 이 선정을 일으킨다. 욕계의 미혹의 종자는 두 가지 성품169)이 번잡해서 선정을 장애함이 강하기 때문이다. 오직 불환과(不還果)와 3승의 무학 및 여러 보살만이 이 선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상응한 바에 따라서 상부 지위의 8지(地)170)에 태어나서 모두 나중에 일어날 수 있다.
017_0564_a_03L有義下八地修所斷惑中要全斷欲餘伏或斷然後方能初起此定欲界惑種二性繁雜障定强故唯說不還三乘無學及諸菩薩得此定故彼隨所應生上八地皆得後起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71) 반드시 하부 지위의 4지(地)172)의 수도에서 단멸되는 미혹을 끊고, 다른 것을 조복하거나 혹은 단멸한 연후에 바야흐로 능히 처음에 이 선정을 일으킨다. 변이수(變異受)173)와 함께하는 번뇌의 종자는 선정을 장애함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상응한 바에 따라서 상부 지위의 5(地)에 태어나서 모두 나중에 일으킬 수 있다.174)
017_0564_a_08L有義要斷下之四地修所斷惑餘伏或斷然後方能初起此定變異受俱煩惱種子障定强故彼隨所應生上五地皆得後起
【문】 만약 하부 지위의 미혹을 조복하여 능히 이 선정을 일으킨다고 말하면, 나중에 단멸하거나 퇴전하지 않고서 상부 지위에 태어나는 자는, 어떻게 상부 지위에 태어난 이후에 도리어 하부 지위의 미혹을 단멸한다고 하는가?175)
017_0564_a_11L若伏下惑能起此定後不斷退生上地者豈生上已卻斷下惑
【답】 단멸한다고 말해도 역시 과실이 없다. 상부 지위에 태어나는 자가 하부 지위의 말나식과 함께 생겨나는 미혹을 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환과를 이룬 자는 다스리는 힘이 강하므로, 바로 태어남을 촉진하는 지위에서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다. 다만 미혹의 종자에 의해 상부 지위에 태어남을 촉진한다. 조복된 미혹은 퇴전과 불퇴전이 있긴 하지만, 하부 지위를 조복하고 상부 지위에 태어나는 뜻은 없다. 따라서 상부 지위에 태어나서 도리어 하부 지위의 것(종자)을 단멸한다고 말하는 과실이 없다.176)
017_0564_a_13L斷亦無失如生上者斷下末那俱生惑故然不還者對治力强正潤生位不起煩惱但由惑種潤上地生雖所伏惑有退不退而無伏下生上地義故無生上卻斷下失
017_0564_b_01L만약 모든 보살에 있어서, 먼저 2승의 지위에서 멸진정을 증득한 후에 마음을 대상으로 전향한 자177)는 모든 지위178)에서 이 선정을 일으킬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179) 혹은 어떤 사람은 7지(地)의 만심(滿心)에 이르러 바야흐로 능히 영원히 모든 번뇌를 조복한다. 아직 욕계의 수도에서 단멸되는 미혹을 영원히 단멸하지는 않지만, 이미 단멸한 것처럼 능히 이 선정을 일으킨다. 논서180)에서 이미 원행지(遠行地)181)에 들어간 보살이 바야흐로 멸진정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초지(初地)에서부터 곧 능히 모든 번뇌를 영원히 조복하는 것이 아라한과 같으며, 그는 10지 가운데에서 모두 이 선정을 일으킨다. 경전182)에서 보살은 앞의 6지 가운데에서도 역시 능히 멸진정을 일으킨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017_0564_a_17L若諸菩薩先二乘位已得滅定後迴心者一切位中能起此定若不爾者或有乃至七地滿心方能永伏一切煩惱雖未永斷欲界修惑而如已斷能起此定論說已入遠地菩薩方能現起滅盡定故有從初地卽能永伏一切煩惱如阿羅漢彼十地中皆起此定經說菩薩前六地中亦能現起滅盡定故
(제16게송에서) 의식이 작용하지 않는 지위[無心位]의 ‘잠잘 때와 기절했을 때’란, 어떤 매우 깊은 수면과 기절한 경우에는 6식을 모두 현행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매우 피곤한 것 등의 연(緣)에 이끌린 몸의 상태에서 6식에 거스르기 때문에 ‘매우 깊은 수면[極睡眠]’이라고 부른다.
017_0564_b_03L無心睡眠與悶絕者謂有極重睡眠悶絕令前六識皆不現行疲極等緣所引身位違前六識故極重睡眠
이러한 수면의 시기에는 그것183)의 자체[體]가 없지만 그것에 의거하고 그것에 비슷하기 때문에 가정적으로 그 명칭을 말한다. 바람이나 열(熱) 등의 연(緣)에 이끌려진 몸의 상태에서 역시 6식에 거슬리기 때문에 ‘매우 깊이 기절함[極悶絶]’이라고 부른다. 혹은 이것184)은 모두 촉처(觸處)의 일부이다. 이러한 다섯 지위를 제외하면 의식은 항상 일어난다.185)
017_0564_b_06L此睡眠時雖無彼體而由彼似彼故假說彼名風熱等緣所引身位亦違六識故名極重悶絕或此俱是觸處少分除斯五位意識恒起
참으로 태어나고 죽을 때에도 역시 의식이 없는데, 어째서 다만 다섯 지위에서만 작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186)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87) 죽고 태어나는 경우는 (제16게송에서) ‘및[及]’, ‘와[與]’라는 말로써 나타낸다고 말한다.188)
017_0564_b_09L正死生時亦無意識何故但說五位不行有義死生及與言顯
그가 말하는 것은 이치가 아니다.189) 무슨 까닭인가? 다만 여섯 가지 시기만을 무심이라고 말하기190) 때문이다. 곧 앞의 다섯 지위와 무여의열반191)을 말한다. 마땅히 죽음과 태어남의 경우는 곧 기절하는 것에 포함된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은 매우 지극한 기절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제16게송에서 ‘및[及]’, ‘와[與]’라는 말을 한 것은, 다섯 가지가 잡란이 없음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6식이 단절된 이후에 근본식 중의 자신의 종자에 의지해서 다시 일어남을 나타낸다. 이것에 의거해서 무여의열반에 들어가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192)
017_0564_b_11L彼說非理所以者何但說六時名無心故謂前五位及無餘依應說死生卽悶絕攝彼是最極悶絕位故說及與言顯五無雜此顯六識斷已後時依本識中自種還起由此不說入無餘依
이 다섯 지위 중에서 범부에게는 네 가지가 있으니, 멸진정에 들어 있는 경우는 제외한다. 성인에게는 오직 뒤의 세 가지193)뿐이다. 그 중에서 여래와 자재한 보살에게는 오직 하나(멸진정)만이 있으니, 수면과 기절함이 없기 때문이다.
017_0564_b_16L此五位中異生有四除在滅定聖唯後三於中如來自在菩薩唯得有一無睡悶故
이상과 같으므로 8식은, 모든 유정에 있어서 제8식과 말나식의 둘은 항상 함께 전전한다.194) 제6식을 일으킬 때에는 곧 셋이 함께 전전한다. 나머지는 연(緣)의 화합에 따라서 하나로부터 다섯에 이르기까지를 일으킬 때에는, 곧 네 가지가 함께 전전하고 나아가 여덟 가지가 함께한다. 이것을 식이 함께 전전하는 뜻을 간략히 말한다고 한다.
017_0564_b_19L是故八識一切有情心與末那二恒俱轉若起第六則三俱轉餘隨緣合起一至五則四俱轉乃至八俱是謂略說識俱轉義
017_0564_c_01L【문】 만약 하나의 유정에게 여러 식이 함께 전전한다고 말하면, 어떻게 그를 하나의 유정이라고 말하겠는가?195) 만약 유정을 건립하는 것이 식의 많고 적음에 의지한다고 말하면, 그대가 말하는 무심위는 마땅히 유정이 아니어야 한다. 또한 다른 분위[他分]196)의 심왕이 현전하는 지위를 어떻게 자기 분위[自分]의 유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197)
017_0564_b_22L若一有情多識俱轉如何說彼是一有情若立有情依識多少汝無心位應非有情又他分心現在前位如何可說自分有情
【정의】 그런데 유정을 건립하는 것은 명근(命根)198) 혹은 이숙식에 의지해서 말하는 것이 모두 바른 논리에 위배되지 않는다. 그것199)은 모두 항상 오직 하나만 있기 때문이다
017_0564_c_02L然立有情依命根數或異熟識俱不違理彼俱恒時唯有一故
【문】 하나의 신체에는 오직 하나의 등무간연(等無間緣)이 있는데, 어떻게 동시에 여러 식이 전전할 수 있단 말인가?【답】 이미 이 하나가 여러 심소를 이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어째서 이것이 능히 여러 심왕을 이끈다고 인정하지 않는가? 또한 누가 결정적으로 이 등무간연이 오직 하나라고 말했는가? 여러 식이 함께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 등무간연도 여러 가지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017_0564_c_04L一身唯一等無閒緣如何俱時有多識轉旣許此一引多心所寧不許此能引多心又誰定言此緣唯一說多識俱者此緣多故
또한 한때에 여러 대상을 취하고자 할 때에는, 여러 대상이 현전하는데 어째서 단박에 취하지 않는가? 여러 감각기관과 대상 등이 화합하는 힘을 같이하는 것을, 식이 이전 찰나와 이후 찰나에 일어난다고 말함은 바른 논리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심소의 체성이 차별이 없지만,200) 부류가 다르면 여럿이 함께 일어난다고 인정하면서, 어째서 심왕은 종류가 다른 것이 함께 일어난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가?
017_0564_c_08L又欲一時取多境者多境現前寧不頓取諸根境等和合力齊識前後生不應理故又心所性雖無差別而類別者許多俱生寧不許心異類俱起
또한 비유하면 파도나 영상이 하나에 의지해서 여럿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201) 따라서 하나의 심왕에 의지해서 여러 식이 함께 전전한다. 또한 의식이 5식과 함께한다고 인정하지 않으므로, 그것(5식)의 인식대상[所緣]을 취하는 것이 명료하지 않아야 한다. 산란된 의식이 과거[久滅]를 반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017_0564_c_12L又如浪像依一起多故依一心多識俱轉又若不許意與五俱彼所緣應不明了如散意識緣久滅故
【문】 어째서 5식과 함께하는 것에는 오직 하나의 의식뿐인데, 색경(色境) 등에 대해서 하나 혹은 여럿을 취하는가?202)【답】 안식 등이 각기 자기 대상에 대해서 하나 혹은 여럿을 취하는 것처럼 이것도 역시 그러하니 무슨 과실이 있는가? 상분과 견분은 모두 갖가지 양상이 있기 때문이다.203)
017_0564_c_15L如何五俱唯一意識於色等境取一或多如眼等識各於自境取一或多此亦何失相見俱有種種相故
【문】 어째서 모든 식에 있어서 같은 종류는 함께하지 않는가?204)【답】 자기의 인식대상[所緣]을 요별할 수 있으면, 오직 하나만 요별할 수 있다. 다른 것은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017_0564_c_17L何故諸識同類不俱於自所緣若可了者一已能了餘無用故
【문】 만약 그렇다면 5식이 이미 자기의 대상을 요별하는데, 어째서 함께 의식을 일으켜서 요별하는 데 사용하는가?【답】 5식과 함께하는 의식[五俱意識]은 5식을 도와서 일어나게 하며, 오로지 5식의 대상을 요별하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의식이 그것의 인식대상에 대해서 능히 명료하게 취하는 것이 안식 등과 다르다.따라서 작용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에 의거해서 성스러운 가르침205)에서 그 의식을 유분별이라고 이름하고,206) 5식을 그렇게 부르지는 않는다.
017_0564_c_19L若爾五識已了自境何用俱起意識了爲五俱意識助五令起非專爲了五識所緣又於彼所緣能明了取異於眼等識故非無用由此聖教說彼意識名有分別五識不爾
017_0565_a_01L【문】 여러 식이 함께 전전(展轉)한다면 어째서 상응하지 않는가?【답】 대상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207) 설사 같은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이것과 그것이 의지처208)의 자체와 수(數)가 다르기209) 때문이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식이 서로 상응하지 않는 것과 같다.
017_0565_a_01L多識俱轉何不相應非同境故設同境者彼此所依體數異故如五根識互不相應
8식의 자성은 반드시 하나라고는 말할 수 없다.210) 인식작용ㆍ의지처(감각기관)ㆍ인식대상ㆍ상응법(심소)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가 멸할 때에 나머지 다른 것이 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고, 능훈과 소훈 등의 양상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017_0565_a_03L八識自性不可言定一行相所依緣相應異故又一滅時餘不滅故所熏等相各異故
또한 반드시 다른 것도 아니다. 경전에서 말씀하기를 “8식은 마치 물과 파도211) 등의 관계와 같아서 차별이 없다”212)고 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다르다면 원인과 결과의 성질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고, 요술 등과 같이 결정적인 성질이 없기 때문이다.
017_0565_a_06L亦非定異經說八識如水波等無差別故定異應非因果性故如幻事等無定性故
앞에서 말한 식의 차별상은 도리세속제에 의거한 것이며, 참다운 승의제는 아니다. 참다운 승의제 중에서는 마음을 표현하는 길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게송(『입능가경』)에서 아래처럼 말씀한 바와 같다.
017_0565_a_08L如前所說識差別相依理世俗非眞勝義眞勝義中心言絕故如伽他說

심(心)ㆍ의(意)ㆍ식(識)의 여덟 가지는
속제에 의거해서는 양상의 차이가 있고
진제에 의거해서는 양상의 차이가 없다.
작용[相]과 자체[所相]가 없기 때문이다.213)
017_0565_a_10L心意識八種
俗故相有別
眞故相無別
相所相無故

이미 세 가지 능변식의 양상을 자체가 전변한 2분(分)의 의지처로 삼음을 자세히 분별하였다. 식이 어떻게 전변한 것에 의거해서214) 가정적으로 자아ㆍ법으로 말하고, 별도로 실유는 아니며, 따라서 일체는 오직 식만이 있다고 알아야 하는가?215) 게송(『삼십송』의 제17)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017_0565_a_12L已廣分別三能變相爲自所變二分所依云何應知依識所變假說我非別實有由斯一切唯有識耶頌曰

이 모든 식이216) 전변하여217)
분별[見分]과 분별되는 것[相分]이네.
이것에 의거해서 그것[實我ㆍ實法]은218)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체는 오직 식뿐이네.219)
017_0565_a_15L是諸識轉變
分別所分別
由此彼皆無
故一切唯識

논하여 말한다. ‘이 모든 식’이란 앞에서 말한 세 가지 능변의 식 및 그것의 심소를 말한다. 모두 능히 전변하여 견분ㆍ상분으로 사현하므로 전변이라는 명칭을 건립한다.220) 전변된 견분을 ‘분별’이라고 이름하니, 능히 모습을 취하기 때문이다. 전변된 상분을 ‘분별되는 것[所分別]’으로 이름하니, 견분에 취해지기 때문이다.221)
017_0565_a_17L論曰是諸識者謂前所說三能變識及彼心所皆能變似見相二分立轉變名所變見分說名分別能取相故所變相分名所分別見所取故
017_0565_b_01L이 바른 이치에 의거해서 그 실아(實我)ㆍ실법(實法)은 식이 전변된 것에서 떠나서는 모두 반드시 존재하지 않는다. 능취와 소취에서 떠나서는 별도의 사물이 없기 때문이다. 실유로서 두 가지 양상222)에서 떠난 것이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유위법ㆍ무위법223)은 실법(實法)이건 가법(假法)이건 간에 모두 식에서 떠나지 않는다. 『삼십송』의 제17게송에서 ‘오직[唯]’이라는 말은 식에서 떠난 실체의 사물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고, 식을 떠나지 않는 심소법 등은 아니다.
017_0565_a_21L由此正理彼實我法離識所變皆定非有離能所取無別物故非有實物離二相故是故一切有爲無爲若實若假皆不離識唯言爲遮離識實物非不離識心所法等
혹은 ‘전변’은 내부의 모든 식이 전환해서 자아와 법의 외부대상의 모습으로 사현하는 것을 말한다.224) 이 능전변을 ‘분별’이라고 이름하니, 허망분별로써 자성을 삼기 때문이다. 곧 3계의 심왕과 심소를 말한다. 이것의 집착된 대상을 ‘분별되는 것[所分別]’이라고 이름한다. 곧 망령되게 집착되는 실아(實我)ㆍ실법(實法)의 성(性)이다. 이 분별이 변하여 외부대상의 가아(假我)ㆍ가법(假法)의 양상으로 사현하기 때문에, 그 분별되는 것인 실아ㆍ실법의 체성은 결정적으로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앞225)에서 성스러운 가르침과 바른 논리를 인용하여 이미 자세하게 논파했기 때문이다.
017_0565_b_03L或轉變者謂諸內識轉似我法外境相現此能轉變卽名分別虛妄分別爲自性故謂卽三界心及心所此所執境名所分別卽所妄執實我法性由此分別變似外境假我法相彼所分別實我法性決定皆無前引教理已廣破故
그러므로 일체가 모두 오직 식만이 존재한다. 허망분별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다. ‘오직’이라고 말하는 것은 식에서 떠나지 않는 법이라면 부정되지 않기 때문이며, 참다운 공[眞空] 등도 역시 자성이 존재한다. 이상에 의거해서 증익(增益)과 손감(損減)의 두 극단을 멀리 떠나서 유식(唯識)의 뜻이 성립되고, 중도에 계합한다.226)
017_0565_b_09L是故一切皆唯有識虛妄分別有極成故唯旣不遮不離識法故眞空等亦是有性由斯遠離增減二邊唯識義成契會中道
【문】 어떠한 성스러운 가르침과 바른 논리에 의거해서 유식의 뜻이 성립되는가?227)【답】 어찌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由何教理唯識義成豈不已說
【문】 말하긴 했지만 알지 못하겠다. 다른 교의(敎義)를 논파함으로써 문득 자신의 교의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분명하게 이것(유식)을 성취하는 성스러운 가르침과 바른 논리를 말해야 한다.경전228)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3계는 오직 마음뿐이라고 한다. 또한 인식대상[所緣]은 오직 식이 현현한 것이라고 말씀한다.229) 또한 『능가경』에서 일체법은 모두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또한 유정은 마음에 따라서 잡염되거나 청정하다고 말씀한다.230)
017_0565_b_13L雖說未了非破他義己義便成應更礭陳成此教理如契經說三界唯心又說所緣唯識所現又說諸法皆不離心又說有情隨心垢淨
또한 네 가지 지혜를 성취한 보살이 능히 따라서, 오직 식뿐이고 식과 독립적인 외부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치를 깨달아 들어간다고 말씀한다.231) 첫째는 서로 다른 식의 양상을 아는 지혜[相違識相智]이니, 한 장소에 대해서 아귀ㆍ사람ㆍ천인(天人) 등이 업의 차이에 따라 보는 것이 각기 다른 것을 말한다.232) 대상이 만일 참으로 존재한다면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017_0565_b_17L又說成就四智菩薩能隨悟入唯識無境一相違識相智謂於一處鬼人天等隨業差別所見各異境若實有此云何成
둘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인식대상으로 하는 식을 아는 지혜[無所緣識智]이다. 과거와 미래ㆍ꿈속의 대상ㆍ영상 등 실유(實有)가 아닌 대상을 반연할 때, 식은 현재에 있을 수 있고, 그 대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것도 역시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233)
017_0565_b_20L二無所緣識智謂緣過未夢境像等非實有境識現可得彼境旣無餘亦應爾
셋째는 스스로 전도되지 않아야 함을 아는 지혜[自應無倒智]이다. 어리석은 범부의 지혜가 만약 실제의 대상을 얻는다면, 그는 자연히 전도되지 않아야 하고, 작용[功用]에 의하지 않고 해탈을 얻어야 한다.234)
017_0565_b_23L三自應無倒智謂愚夫智若得實境彼應自然成無顚倒不由功用應得解脫
017_0565_c_01L넷째는 다음 세 가지 지혜에 따라 바뀌는 것을 아는 지혜[隨三智轉智]이다.235) 하나는 자재자의 지혜에 따라 바뀌는 것을 아는 지혜[隨自在者智轉智]이다. 이미 마음의 자재함을 증득한 자236)가 욕구에 따라 땅 등을 변화시켜 모두 이룬다.237) 대상이 만약 실유라면 어떻게 전변할 수 있겠는가? 다른 하나는 관찰자의 지혜에 따라서 전전하는 지혜[隨觀察者智轉智]이다. 뛰어난 선정을 증득해서 법관(法觀)을 닦는 자가 따라서 하나의 대상을 관찰할 때에 갖가지 모습이 현전한다.238) 대상이 만약 참되다면 어찌 마음에 따라서 전전하겠는가? 마지막 하나는 무분별지혜에 따라서 전전하는 지혜[隨無分別智轉智]이다. 진실을 증득한 무분별지혜를 일으킬 때에는 모든 대상의 모습이 다 현전하지 않는다. 대상이 만약 참되다면 어찌 현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017_0565_c_02L四隨三智轉智一隨自在者智轉智謂已證得心自在者隨欲轉變地等皆成境若實有如何可變二隨觀察者智轉智謂得勝定修法觀者隨觀一境衆相現前境若是實寧隨心轉三隨無分別智轉智謂起證實無分別智一切境相皆不現前若是實何容不現
보살의 이 네 가지 지혜를 성취한 자는 유식의 도리에 대해서 결정적으로 깨달아 들어간다. 또한 게송(『후엄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017_0565_c_09L菩薩成就此四智於唯識理決定悟入又伽他說

심(心)ㆍ의(意)ㆍ식(識)의 인식대상은
모두 자성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일체가
오직 식만이 존재하고 다른 것은 없다고 말한다.
017_0565_c_10L識所緣
皆非離自性
故我說一切
唯有識無餘

이들 성스러운 가르침의 진실한 증거 문장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통적으로 인정되는[極成] 안식 등239)은 5식의 하나를 따르는 것[隨一]이기 때문에, 나머지240)와 같이 직접 자신에서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색경(色境) 등을 반연하지 않아야 한다.241) 나머지 식도 식이기 때문에, 안식 등처럼 역시 직접 자신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일체법을 반연하지 않아야 한다.242) 이것의 친소연(親所緣)은 반드시 이것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것의 능연과 같이, 두 가지243)의 하나를 따르는 것[隨一]이기 때문이다.244) 소연(所緣)의 법이기 때문에, 상응법처럼 결정적으로 심왕과 심소에서 떠나지 않아야 한다.245) 이들 바른 논리의 진실한 증거 문장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따라서 유식의 도리에 대해서 깊이 믿어 받아들여야 한다.
017_0565_c_12L此等聖教誠證非一極成眼等識五隨一故如餘不親緣離自色等餘識識故如眼識等亦不親緣離自諸法此親所緣定非離此二隨一故如彼能緣所緣法故如相應法決定不離心及心所此等正理誠證非一故於唯識應深信受
자아와 법은 실재[有]가 아니고 공(空)과 식은 비실재[無]가 아니며, 실재를 떠나고 비실재를 떠나기 때문에 중도에 계합한다.246)미륵보살이 이에 의거해서 다음과 같은 두 게송을 말씀하셨다.247)
017_0565_c_19L我法非有空識非無離有離無故契中道慈尊依此說二頌言

허망분별248)은 실재[有]이다.
이것에 있어서 두 가지249)는 모두 비실재[無]이다.
이것(허망분별) 중에서는 오직 공이 있고
그것(공성)에 있어서도 역시 이것(허망분별)이 있다.
017_0565_c_21L虛妄分別有
於此二都無
此中唯有空
於彼亦有此

그러므로 일체법은
공도 아니고250) 불공(不空)도 아니라고251) 말한다.
가유(假有)252)와 비실재[無]253) 및 실재[有]254)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중도에 계합한다고 말한다.255)
017_0565_c_23L 故說一切法
非空非不空
有無及有故
是則契中道
017_0566_a_01L
이 게송은 또한 잡염분의 의타기성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다. 진실로써 말하면 역시 청정분의 의타기성에도 있다.
017_0566_a_01L此頌且依染依他說理實亦有淨分依
【문】 만약 오직 내부의 식뿐으로서 외부대상에 사현해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세간의 유정과 무생물을 보는 데 장소, 시간, 유정의 신체, 외계대상의 작용의 일정함과 일정하지 않는 데서 전전한다고 말하는가?256)【답】 꿈속의 대상 등과 같다고 한다. 마땅히 이러한 의문을 해설해야 한다.
017_0566_a_03L若唯內識似外境起寧見世閒情非情物處身用定不定轉如夢境等應釋此疑
【문】 무엇에 연(緣)하여 세존께서 12처로 말씀하셨는가?257)【답】 식이 전변한 것에 의거해서이고, 별도로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공의 이치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62법을 말씀하셨다. 단견(斷見)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상속하는 유정을 말씀하신 것과 같다. 법공의 이치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다시 오직 식뿐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외부대상도 역시 실유가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017_0566_a_05L何緣世尊說十二處識所變非別實有爲入我空說六二如遮斷見說續有情爲入法空復說唯識令知外法亦非有故
【문】 이 유식성258)도 어찌 역시 공이 아니겠는가?259)【답】 그렇지 않다.
017_0566_a_08L此唯識性豈不亦空不爾
【문】 어째서인가?【답】 집착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이 전변된 것에 의거해서 망령되게 집착된 실법을 이치적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법공(法空)이라고 말한다. 언어를 떠난 바른 지혜의 증득된 유식성이 없기 때문에 법공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이 식이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문득 세속제가 없게 된다. 세속제가 없기 때문에 진제도 역시 없어야 한다. 진제와 속제는 서로 의지해서 건립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진리를 부정하는 것은 악취공(惡取空)이며,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치료할 수 없는 자라고 한다.마땅히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일체법은 공ㆍ불공(不空)이 있으며, 이에 의거해서 미륵보살께서 앞의 두 게송을 말씀하신 것이다.
017_0566_a_09L如何非所執故依識變妄執實法理不可得說爲法非無離言正智所證唯識性故爲法空此識若無便無俗諦俗諦無故眞諦亦無俗相依而建立故無二諦是惡取空諸佛說爲不可治應知諸法有空不空由此慈尊說前二頌
【문】 만약 모든 물질계[色處]가 역시 식으로써 자체[體]로 삼는다고 말하면, 무엇에 반연하여 물질의 모습으로 사현하고, 한 종류로 견고하게 상속해서 유전하는가?260)【답】 명언훈습의 세력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다.261) 잡염과 청정법의 의지처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262)이 만약 없다면 마땅히 전도됨이 없어야 하고, 그러면 문득 잡염도 없고 역시 청정법도 없게 된다. 따라서 모든 식이 역시 색법으로 사현한다.263) 게송(『대승장엄경론』)에서 아래처럼 말한 것과 같다.
017_0566_a_16L若諸色處亦識爲體何緣乃似色相顯現一類堅住相續而轉言熏習勢力起故與染淨法爲依處謂此若無應無顚倒便無雜染無淨法是故諸識亦似色現如有頌言

잡란264)의 형상265) 및 잡란의 자체266)
색식(色識:상분) 및 색식이 아닌 것[非色識:견분 등]으로 인정해야 한다.
만약 (잡란의 형상이) 없다면
나머지 다른 것267)도 역시 없어야 한다.268)
017_0566_a_20L亂相及亂體
應許爲色識
及與非色識
若無餘亦無
017_0566_b_01L
【문】 색경(色境) 등 외부대상을 분명히 현재에 깨닫고 현량으로 인식하는데, 어째서 부정하여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가?269)【답】 현량으로 깨달을 때는, 집착해서 외부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이후의 의식이 분별하여 망령되게 외부대상이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따라서 현량의 대상은 자신의 상분이고, 식이 전변된 것이기 때문에 역시 실재[有]라고 말한다. 의식이 집착한 외부의 실재의 색경 등은 망령되게 실재라고 계탁한 것이므로 그것을 비실재[無]라고 말한다. 또한 색경 등의 대상은 색경이 아니면서 색경으로 사현한 것이고, 외부대상이 아니면서 외부대상으로 사현한 것이다. 꿈속의 인식대상처럼 집착해서 이것은 실재이고 외부의 색경이라고 할 수 없다.
017_0566_a_22L色等外境分明現證現量所得寧撥爲無現量證時不執爲外後意分別妄生外想故現量境是自相分識所故亦說爲有意識所執外實色等妄計有故說彼爲無又色等境非色似色非外似外如夢所緣不可執爲是外色
【문】 만약 깨어 있을 때의 색경은 모두 꿈속의 대상처럼 식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꿈에서 깨어나서 그것은 오직 마음뿐이라고 아는 것과 같아야 한다. 어째서 깨어 있을 때에 자신의 색경에 대해서 오직 식뿐이라고 알지 못하는가?270)【답】 꿈이 깨지 않았을 때에는 스스로 알 수 없고, 반드시 깨어났을 때에 비로소 능히 따라서 깨닫는 것과 같이 깨어 있을 때의 대상의 색법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아직 참다운 깨달음271)이 아닌 지위에서는 스스로 알 수 없다. 참다운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에 역시 능히 따라서 깨닫는다. 참다운 깨달음을 얻지 않은 때에는 항상 꿈속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으므로, 부처님께서 생사의 긴 밤중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에 의해 아직 색경은 오직 식뿐이라고 알지 못한다.
017_0566_b_06L若覺時色皆如夢境不離識如從夢覺知彼唯心何故覺時於自色境不知唯識如夢未覺不能自知要至覺時方能追覺覺時境色應知亦爾未眞覺位不能自知至眞覺時亦能追覺未得眞覺恒處夢中故佛說爲生死長夜由斯未了色境唯識
【문】 외부의 색경은 참으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내부 식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어째서 자신의 인식대상이 아닌가?272)【답】 누가 다른 사람의 마음은 자기 식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는가? 다만 그것은 친소연(親所緣)이라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식이 일어날 때에는 참된 작용이 없어서, 손 등이 직접 외부 물건을 집거나,273) 태양 등이 빛을 펼쳐서 직접 외부대상을 비추는 것274)과 같지는 않다. 다만 거울 등처럼 외부대상에 사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요별한다고 이름하며, 직접 요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요별되는 것은 자신이 전변된 것이다.275) 따라서 경전에서 말씀하기를 “작은 법이라도 능히 나머지 다른 법276)을 취하는 것은 없다. 다만 식이 일어날 때에 그것과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그 사물을 취한다고 이름한다”277)고 한다. 타인의 마음을 반연한다고 말하는278) 것과 같이 색경 등도 역시 그러하다.
017_0566_b_12L外色實無可非內識境他心實有非自所緣誰說他心非自識境但不說彼是親所緣謂識生時無實作用非如手等親執外物日等舒光親照外境但如鏡等似外境現名了他心非親能了親所了者謂自所變故契經言無有少法能取餘法但識生時似彼相現名取彼物如緣他心色等亦爾
【문】 이미 다른 대상이 있는데, 어째서 유식이라고 이름하는가?279)【답】 기이하도다. 굳게 집착해서 닿는 곳마다 의심을 내는구나. 어째서 유식의 가르침이 다만 나 한 사람의 식만을 말하는 것인가?
017_0566_b_21L旣有異境何名唯識奇哉固執觸處生疑豈唯識教但說一識
017_0566_c_01L【문】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인가?【답】 그대는 마땅히 진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만약 오직 한 사람의 식뿐이라면 어떻게 시방에 범부와 성인, 존귀함과 비천함, 원인과 결과 등의 차이가 있겠는가? 누가 누구를 위해서 법을 설하며, 무슨 법을 어떻게 구하겠는가? 따라서 유식이라는 말에는 심오한 의미[意趣]가 있다. 식(識)이라는 말은 전체적으로 모든 유정에 각기 8식, 6위의 심소, 전변된 상분ㆍ견분 분위의 차별 및 그것의 공한 이치에서 드러나는 진여가 있음을 나타낸다. 식의 자상이기 때문이고, 식과 상응하기 때문이며, 두 가지280)가 전변된 것이기 때문이고, 세 가지281)의 분위이기 때문이며, 네 가지282)의 참다운 성품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체법은 모두 식에서 떠나지 않으며, 총체적으로 식이라는 명칭을 건립한다.
017_0566_b_22L不爾如何汝應諦聽若唯一識寧有十方凡聖尊卑因果等別誰爲誰說何法何求故唯識言有深意趣識言摠顯一切有情各有八識六位心所所變見分位差別及彼空理所顯眞如識自相故識相應故二所變故三分位故四實性故如是諸法皆不離識摠立識名
‘오직[唯]’이라는 말은, 다만 어리석은 범부가 집착하듯이 반드시 모든 식에서 떠나서 참으로 색법 등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을 부정한다. 만약 이와 같이 유식의 가르침의 취지를 아는 사람은, 문득 능히 전도됨이 없이 자량(資糧)283)을 잘 비축하여 속히 법공의 이치에 들어가서 최상의 깨달음을 증득하고, 유정이 생사에 윤회하는 것을 구해준다.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악취공자는 성스러운 가르침과 바른 논리에 위배되므로 능히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다. 따라서 반드시 일체가 오직 식뿐이라고 믿어야 한다.284)
017_0566_c_07L唯言但遮愚夫所執定離諸識實有色等若如是知唯識教意便能無倒善備資糧速入法空證無上覺救拔含識生死輪迴非全撥無惡取空者違背教理能成是事故定應信一切唯識

【문】 만약 오직 식뿐이고 전혀 외부대상이 없다고 말하면, 무엇에 의거해서 갖가지 분별을 일으키는가?285)게송(『삼십송』의 제18)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017_0566_c_12L若唯有識都無外緣由何而生種種分別頌曰

일체종자식이
이렇게 저렇게 전변함에 의거해서
전전하는 세력 때문에
이러저러한 분별286)이 생겨난다네.287)
017_0566_c_13L由一切種識
如是如是變
以展轉力故
彼彼分別生
논하여 말한다. ‘일체종자식’이란 근본식 중에서 능히 자기 결과를 일으키는 특수한 정신적인 힘[功能差別]을 말한다. 이것이 등류과288)ㆍ이숙과289)ㆍ사용과(士用果)290)ㆍ증상과291)를 일으키기 때문에 일체종자라고 이름한다.계박을 떠난 증과를 제외하는 것292)은 종자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증득할 수 있지만 종자의 결과는 아니다. 반드시 일어나서 도(道)293)로써 번뇌[結]를 단멸하여 증득하기 때문이다. 전전하는 뜻이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294) 여기서는 능히 분별을 일으키는 종자를 말하기 때문이다.
017_0566_c_15L論曰一切種識謂本識中能生自果功能差別此生等流異熟士用增上故名一切種除離繫者非種生故彼雖可證而非種果要現起道斷結得故有展轉義非此所說此說能生分別種故
이것(종자)은 식으로써 자체로 삼기 때문에 식이라는 명칭을 건립한다. 종자는 근본식에서 떠나서 별도의 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종자식이라는 두 단어로 된 용어는 종자식이 아닌 것을 가려낸다. 식으로서 종자가 아닌 것295)과 종자로서 식이 아닌 것296)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종자식이라는 말은 근본식 중의 종자를 나타내고, 종자를 지니는 식(제8식)은 아니다. 나중에 마땅히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017_0566_c_21L此識爲體故立識名種離本識無別性故識二言簡非種識有識非種種非識故又種識言顯識中種非持種識後當說故
017_0567_a_01L이 식 중의 종자가 나머지 다른 연(緣)297)에 도움받기 때문에 문득 “이렇게 저렇게 전변한다.” 생겨나는 지위로부터 전전하여 성숙한 때에 이르기까지298) 전변하는 종자가 많음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거듭해서 ‘이렇게[如是]’라고 말한다. 일체 종자에 세 가지 훈습,299) 공상과 불공상(不共相) 등의 식의 종자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017_0567_a_01L此識中種餘緣助故卽便如是如是轉變謂從生位轉至熟時顯變種多重言如是謂一切種攝三熏習不共等識種盡故
‘전전하는 세력’이란 여덟 가지 현행식과 그것의 상응법(심소) 및 상분과 견분 등을 말한다. 그것이 모두 서로 돕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현행식 등을 총체적으로 ‘분별’이라고 이름한다. 허망분별로써 자성으로 삼기 때문이다. 분별의 종류300)가 많기 때문에 ‘이러저러한[彼彼]’이라고 말한다.
017_0567_a_05L展轉力者謂八現識及彼相應見分等彼皆互有相助力故卽現識等摠名分別虛妄分別爲自性故分別類多故言彼彼
이 게송의 뜻은 다음과 같다.301) 외부대상은 실재하지 않지만, 근본식 중에서 모든 일체 종자가 전변하는 차별에 의거한다. 그리고 여덟 가지 현행식 등이 전전하는 세력으로써, 그들 분별이 역시 생겨날 수 있다. 어째서 외부대상을 의지해서 비로소 분별을 일으킨다고 말하는가? 모든 청정법이 일어나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고 알아야 한다.302) 청정한 종자와 현행을 연(緣)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017_0567_a_08L此頌意說雖無外緣由本識中有一切種轉變差別及以現行八種識等展轉力故彼彼分別而亦得生何假外緣方起分別諸淨法起應知亦然淨種現行爲緣生故

【문】 앞에서 말했듯이 종자와 현행을 연(緣)으로 하여 분별을 일으킨다면, 이것의 연(緣)과 생겨나는 양상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303)【답】 연(緣)에 다시 네 가지가 있다.첫째는 인연(因緣)이니, 유위법이 직접 자기 결과를 판별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의 자체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종자이고, 다른 하나는 현행이다. 종자는 근본식 중의 선ㆍ잡염ㆍ무기(無記) 및 여러 세계[界]와 지위[地] 등의 특수한 정신적인 세력[功能差別]을 말한다. 능히 다음의 자기 부류의 세력을 이끌고, 동시에 자기 부류의 현행과를 일으킨다.304) 이것(종자)은 오직 그것305)에 배대해서만 인연의 성품이 된다. 현행306)은 7전식과 그것의 상응법 및 전변된 견분과 상분, 세 가지 성품, 세계와 지위 등을 말한다. 부처님 지위의 선(善)과 매우 미약한 무기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근본식에 훈습하여 자기 부류의 종자를 일으킨다. 이것307)은 오직 그것308)에 배대해서만 인연의 성품이 된다.
017_0567_a_13L所說種現緣生分別云何應知此緣生相緣且有四一因緣謂有爲法親辦自果此體有二一種子二現種子者謂本識中善無記諸界地等功能差別能引次後自類功能及起同時自類現果此唯望彼是因緣性現行者謂七轉識及彼相應所變相地等除佛果善極劣無餘熏本識生自類種此唯望彼是因緣性
제8심품은 소훈처[所熏]가 없기 때문이고, 의지처(심왕)를 가려내어 심소가 홀로 능훈(能熏)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매우 미세하고309) 원만하기310) 때문에 종자를 훈습하지 않는다.311) 현행의 같은 부류가 전전하여 서로 배대해도 모두 인연이 아니다. 자기 종자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312)
017_0567_a_22L第八心品無所熏故非簡所依獨能熏故極微圓故不熏成種行同類展轉相望皆非因緣自種生
017_0567_b_01L모든 다른 부류를 전전하여 서로 배대해도 역시 인연이 아니다. 직접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곳에서 말하기를 “다른 부류ㆍ같은 부류의 현행을 전전해서 서로 배대하여 인연으로 삼는다”313)고 한 것은, 가설이거나314) 혹은 근거에 따른 방편문315)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곳316)에서 오직 종자만을 인연의 성품이라고 말한 것은 두드러지게 뛰어난 것에 의지해서 말한 것이지,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성스러운 가르침에서 전식과 아뢰야식은 전전하여 서로 배대해서 인연이 된다고 말하기317) 때문이다.
017_0567_b_02L一切異類展轉相望亦非因緣親生故有說異類同類現行展轉相望爲因緣者應知假說或隨轉門唯說種是因緣性彼依顯勝非盡理聖說轉識與阿賴耶展轉相望爲因緣故
둘째는 등무간연(等無間緣)318)이니, 여덟 가지 현행식과 그것의 심소법이 이전 찰나에 멸한 것이다. 나중에 자기 부류의 바로 다음 찰나에 평등하게 열어 이끌어서 그것을 반드시 생겨나게 함을 말한다. 같은 부류의 많은 종자는 동시에 전전하기 때문에, 불상응행법처럼 이 연(緣)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에 의해서 8식도 서로 연(緣)으로 삼지 않는다.
017_0567_b_07L二等無閒緣謂八現識及彼心所前聚於後自類無閒等而開導令彼定生多同類種俱時轉故如不相應非此緣攝由斯八識非互爲緣
심소와 심왕은 항상 함께 전전하지만, 상응하기 때문에 화합해서 하나인 것과 비슷하다. 분리해서 다른 것으로 시설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등무간연이 될 수 있다. 무여의열반에 들어가려는 마음은 매우 미세하고 약하므로 열고 이끄는[開導] 작용이 없다. 또한 장차 등무간의 법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이 연(緣)이 아니다.
017_0567_b_10L心所與心雖恒俱轉而相應故和合似一不可施設離別殊異故得互作等無閒緣入無餘心最極微劣無開導用又無當起等無閒法故非此緣
【문】 그러하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답】 논서319)에 진실한 말씀이 있다. 만약 이 식 등의 다음 찰나에 그 식 등이 결정적으로 생겨난다면, 곧 이것은 그것의 등무간연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곧 이 뜻에 의거해서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아타나식은 3계ㆍ9지에서 모두 서로 등무간연이 되는 것이 인정된다. 하부 지위[下地]와 상부 지위[上地]에서 죽고 태어날 때에 서로 열고 이끌기 때문이다. (제8식의) 유루의 다음 찰나에 무루가 생겨나는 일은 있지만, 무루가 반드시 유루를 일으키는 일은 없다. 대원경지는 일어나고 나서 반드시 단절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선(善)과 무기를 서로 배대하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017_0567_b_14L云何知然論有誠說若此識等無閒彼識等決定生卽說此是彼等無閒緣故卽依此義應作是說阿陁那識三界九地皆容互作等無閒緣下上死生相開導故有漏無閒有無漏生無漏定無生有漏者鏡智起已必無斷故善與無記相望亦然
017_0567_c_01L【문】 이것은 어떤 세계 이후에 (제8식의) 무루를 이끌어 내는가?320)【답】 색계로부터이거나, 혹은 욕계 이후이다. 모든 범부로서 부처님의 증과를 구하는 자321)는 반드시 색계 이후에 무루를 이끌어 낸다. 그는 반드시 정거천(淨居天)322)의 대자재천궁323)에 태어나 살면서 보리를 증득하기 때문이다. 2승(乘)으로서 대보리에 나아가는 자324)는 반드시 욕계 이후에 무루를 이끌어 낸다. 대보리에 나아가서 몸을 머무는 것은 오직 욕계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반드시 대자재천궁에 머물면서 비로소 성불할 수 있지만, 본래의 원력에 의해 머무는 생신(生身)은 욕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017_0567_b_21L此何界後引生無漏或從色界或欲界後謂諸異生求佛果者定色界後引生無漏彼必生在淨居天上大自在宮得菩提故二乘迴趣大菩提者定欲界後引生無漏迴趣留身唯欲界故彼雖必往大自在宮方得成佛而本願力所留生身是欲界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325) 색계에서도 역시 성문으로서 대승에 나아가서 본래 원력에 의해 몸을 머무는 자가 있다는 것은, 이미 성스러운 가르침과 바른 논리에 모두 위배되지 않는다. 따라서 성문의 제8의 무루식은 색계의 마음 이후에도 역시 현전할 수 있다. 그러나 5정거천에는 대보리에 전향해서 나아가는 자가 없다. 경전326)에서 거기서는 대보리심을 일으킨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017_0567_c_05L有義色界亦有聲聞迴趣大乘願留身者旣與教理俱不相違是故聲聞第八無漏色界心後亦得現前然五淨居無迴趣者經不說彼發大心故
제7전식도 3계ㆍ9지에서 역시 서로 등무간연이 되는 것이 인정된다. 제8식이 태어나는 곳에 따라서 계박되기 때문이다. 유루ㆍ무루도 서로 생겨나게 하는 것이 인정된다. 10지의 단계 중에서 서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선ㆍ무기를 서로 배대하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무기327) 중에서 잡염328)과 잡염되지 않은 것329)도 역시 서로 열고 이끈다. 아공의 이치를 체득한 바른 지혜와 증과[果]가330) 이전 찰나와 이후 찰나의 지위 중에서 서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욕계와 색계의 유루만이 무루와 서로 생겨나게 할 수 있으며, 무색계는 아니다. 10지 가운데에 있는 보살은 그곳에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017_0567_c_09L第七轉識三界九地亦容互作等無閒緣隨第八識生處繫故有漏無漏容互相生十地位中得相引故善與無記相望亦然於無記中染與不染亦相開導生空智果前後位中得相引故此欲色界有漏得與無漏相生非無色界地上菩薩不生彼故
제6전식은 3계ㆍ9지에서 유루ㆍ무루ㆍ선ㆍ불선 등이 각각 서로 등무간연으로 되는 것이 인정된다. 태어남을 촉진하는 지위 등에서 다시 서로 이끌기 때문이다. 처음에 무루331)를 일으키는 것은 오직 색계 이후이다. 결택분의 선(善)332)은 오직 색계뿐이기 때문이다. 안식ㆍ이식ㆍ신식(身識)은 두 가지 세계[二界]와 두 가지 지위[二地]333)에서, 비식과 설식은 한 세계[一界]와 하나의 지위[一地]334)에서 자기 부류가 서로 등무간연이 된다. 선(善) 등을 서로 배대해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17_0567_c_16L第六轉識三界九地有漏無漏不善等各容互作等無閒緣潤生位等更相引故初起無漏唯色界後決擇分善唯色界故身識二界二地舌兩識一界一地自類互作等無閒緣善等相望應知亦爾
017_0568_a_01L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335) 5식(識)도 유루와 무루의 자기 부류가 서로 등무간연이 된다. 아직 성불하지 않았을 때에는 서로 일으키는 것이 인정되기 때문이다.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336) 무루는 유루 이후에 일어난다. 무루 이후에 유루를 일으키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무루의 5식은 부처님이 아니면 없기 때문이고,337) 그 다섯 감각기관이 반드시 유루이기 때문이며,338) 이것은 이숙식의 상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유루이고,339) 공통되지 않으며,340) 반드시 함께하고,341) 대상을 같이하는342) 감각기관이 무루의식을 일으킨다는 것에 바른 논리가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343)는 대상에 대해서 밝고 어두움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017_0567_c_22L有義五識有漏無漏自類互作等無閒緣未成佛時容互起故有義無漏有漏後起非無漏後容起有漏無漏五識非佛無故彼五色根定有漏是異熟識相分攝故有漏不共必俱同境根發無漏識理不相應故二於境明昧異故
셋째는 소연연(所緣緣)이니, 존재하는 법[有法]344)이 자기 모습을 띠는 심왕, 혹은 상응법(심소)의 사려된 것345)과 의지된 것346)을 말한다. 이것의 자체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친소연연(親所緣緣)이고, 다른 하나는 소소연연(疎所緣緣)이다. 만약 능연(能緣)과 자체가 서로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서 견분 등 내부의 사려된 것과 의탁된 것이라면, 그것은 친소연연(親所緣緣)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능연과 자체가 서로 떨어지긴 하지만, 본질로 삼아 능히 내부의 사려된 것과 의탁된 것을 일으킨다면, 마땅히 알라. 그것은 소소연연(疎所緣緣)이다. 친소연연은 능연에 모두 있다. 내부의 사려된 것과 의탁된 것에서 떠나서는 반드시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소소연연은 능연에 혹은 있기도 하다. 외부의 사려된 것과 의탁된 것에서 떠나서 역시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347)
017_0568_a_05L三所緣緣謂若有法是帶己相心或相應所慮所託體有二一親二疏若與能緣體不相是見分等內所慮託應知彼是親所緣緣若與能緣體雖相離爲質能起內所慮託應知彼是疏所緣緣所緣緣能緣皆有離內所慮託必不生故疏所緣緣能緣或有離外所慮託亦得生故
제8식의 심품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348) 오직 친소연연만이 있다. 업과 종자[因]의 세력에 따라 자연적으로 변현하기 때문이다.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349) (친소연연이 있고) 역시 반드시 소소연연도 있다. 반드시 다른 사람의 제8식이 변현한 것에 의지하여, 본질로서 스스로 바야흐로 변현하기 때문이다.
017_0568_a_13L第八心品有義唯有親所緣緣隨業因力任運變故有義亦定有疏所緣緣要仗他變質自方變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350) 두 견해가 모두 바른 논리가 아니어야 한다. 자신ㆍ타인의 신체ㆍ국토를 서로 수용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제8식이 전변한 것을 자신의 본질로 삼기 때문이다.351) 자기 종자를 타인에 대해서 수용하는 논리가 없고, 타인이 이것을 변현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른 논리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유정은 종자가 모두 평등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352)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이 심품의 소소연연은 일체의 지위 중에서 있고 없음이 일정하지 않다.
017_0568_a_16L有義二說俱不應理自他身土可互受用他所變者爲自質故自種於他無受用理他變爲此不應理故諸有情種皆等故應說此品疏所緣緣一切位中有無不定
제7식의 심품은 전의(轉依)를 이루지 못한 지위에서는 함께 생겨나기 때문에 반드시 외부의 본질에 의지한다. 따라서 역시 반드시 소소연연이 있다. 이미 전의를 이룬 지위에서는 이것이 반드시 있는 것도 아니다. 진여 등을 반연하는 데는 외부의 본질이 없기 때문이다.
017_0568_a_20L第七心品轉依位是俱生故必仗外質故亦定有疏所緣緣已轉依位此非定有眞如等無外質故
017_0568_b_01L제6식의 심품은 인식작용이 강하고 예리하여 일체의 지위에서 능히 자재하게 전전한다. 의지되는 외부의 본질이 혹은 있고 혹은 없으며, 소소연연은 있고 없음이 일정하지 않다.
017_0568_a_23L第六心品行相猛於一切位能自在轉所仗外質或有或無疏所緣緣有無不定
전5식(前五識)의 심품은 전의를 이루지 못한 지위에서는 두드러지고 둔하며 미약하기 때문에 반드시 외부의 본질에 의지한다. 따라서 (친소연연이 있고) 역시 반드시 소소연연도 있다. 이미 전의를 이룬 지위에서는 이것은 반드시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와 미래 등을 반연하는 데는 외부의 본질이 없기 때문이다.
017_0568_b_02L前五心品未轉依位麤鈍劣故必仗外質亦定有疏所緣緣已轉依位此非定緣過未等無外質故
넷째는 증상연(增上緣)이니, 만약 존재하는 법이 뛰어난 세력이 있어서 능히 다른 법에 대해서 혹은 수순하고 혹은 거스르는[違逆] 것을 말한다. 앞의 세 가지 연(緣)도 증상(增上)이긴 하지만, 지금의 네 번째는 그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취한다. 모든 연(緣)의 차별된 양상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이 수순과 거스름의 작용은 네 곳에서 전전한다. 생겨나고, 머물고, 이루고, 얻는 네 가지 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017_0568_b_05L四增上緣若有法有勝勢用能於餘法或順或雖前三緣亦是增上而今第四除彼取餘爲顯諸緣差別相故此順違用於四處轉生住成得四事別故
그런데 증상연의 작용은 일에 따라서 많지만, 뛰어나게 나타나는 것은 오직 스물두 가지이니, 곧 스물두 가지 근[二十二根]353)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앞의 다섯 감각기관은 근본식 등이 전변된 안근 등의 승의근[淨色]으로써 자성으로 삼는다. 남근ㆍ여근의 두 가지 근(根)은 신근(身根)에 포함되기 때문에, 곧 그것의 일부분으로써 자성으로 삼는다. 명근(命根)은 다만 근본식의 직접적인 종자의 분위에 의거하여 가립하고, 별도로 자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의근은 전체적으로 8식으로써 자성으로 삼는다. 5수근(受根)은 상응하는 것처럼 각자의 감수작용[受]으로써 자성으로 삼는다. 신근(信根) 등 5근은 곧 신(信)심소 등과 선(善)의 염(念)심소 등으로써 자성으로 삼는다.
017_0568_b_09L增上用隨事雖多而勝顯者唯二十應知卽是二十二根前五色根以本識等所變眼等淨色爲性女二根身根所攝故卽以彼少分爲性根但依本識親種分位假立非別有意根摠以八識爲性五受根如應各自受爲性信等五根卽以信等及善念等而爲自性
4성제를 아직 알지 못하나 장차 알게 되는 지위에 있는 근[未知當知根]354)의 자체의 분위에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근본위이니, 견도에 있으며 다음 찰나를 제외하는 곳으로서,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장차 알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가행위이니, 난위(煖位)ㆍ정위(頂位)ㆍ인위(忍位)ㆍ세제일법위(世第一法位)를 말한다. 가까이 능히 근본위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셋째는 자량위이다. 좇아서 4성제의 현관(現觀)을 증득하기 위해서 결정적인 뛰어난 선법(善法)의 욕구355)를 일으키고, 나아가 아직 순결택분356)에서 선근을 얻지 못함에 이르기까지를 자량위라고 이름한다. 능히 멀리 근본위를 돕기 때문이다.
017_0568_b_17L未知當知根體位有三種一根本位謂在見道除後剎那無所未知可當知故二加行位世第一法近能引發根本位三資糧位謂從爲得諦現觀故起決定勝善法欲乃至未得順決擇分所有善根名資糧位能遠資生根本位故
017_0568_c_01L이 세 가지 지위에서 신근 등 5근과 의근(意根)ㆍ희근(喜根)ㆍ낙근(樂根)ㆍ사근(捨根)으로써 이 근(根)의 자성으로 삼는다. 가행위 등 (자량위)의 지위에서는 이후의 뛰어난 법에 대해서 증득하려고 추구하여 근심하므로 역시 우근(憂根)도 있지만, 진정한 선근이 아니기 때문에 (『유가사지론』 등에서) 자세하게 말하지 않는다.
017_0568_c_01L於此三位信等五根意喜捨爲此根性加行等位於後勝法求證愁慼亦有憂根非正善根故多不
앞의 세 가지 무색계에서 이 근(根)357)이 있다는 것358)은 뛰어난 견도359)에서 곁으로 닦아 얻는 것360)이 있기 때문이다.혹은 2승의 지위로부터 대승으로 전향해서 나아가는 자가 법공을 증득하기 위해 10지(地) 이전에서 역시 9지(地)에 포함되는 아공의 무루를 일으킨다. 그것을 모두 보살의 이 근(根)에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017_0568_c_04L前三無色有此根者有勝見道傍修得故或二乘位迴趣大者爲證法地前亦起九地所攝生空無漏皆菩薩此根攝故
보살의 견도에서도 역시 이 근(根)이 있다. (『유가론』 제57권에서) 다만 10지 이전만을 말한 것은 시기를 포착한 것이기 때문이다.361)처음에 견도의 최후 찰나로부터 나아가 금강유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근(信根) 등 무루의 아홉 가지 근[九根]362)은, 모두 미오인과(迷悟因果)의 도리를 이미 아는 근[已知根]363)의 속성이다.364) 아직 욕망을 떠나지 못한 자는 상부 지위[上地]의 해탈에 대해서 증득하고자 추구하여 근심하므로 역시 우근(憂根)도 있지만, 진정한 선근은 아니기 때문에 (『유가론』 등에서)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017_0568_c_07L菩薩見道亦有此但說地前以時促故始從見道最後剎那乃至金剛喩定所有信等無漏九根皆是已知根性未離欲者於上解脫求證愁慼亦有憂根非正善根故多不說
모든 무학위에서의 무루의 9근은 일체가 모두 갖춘 것을 아는 근[具知根]365)의 속성이다.366) 유정천(有頂天)에서는 유관(遊觀)의 무루가 있지만, 밝고 예리하지 않아서 뒷부분의 세 가지 근(根)이 아니다.22근의 자성은 이상과 같다. 나머지 모든 부문의 뜻은 논서367)와 같이 알아야 한다.
017_0568_c_12L諸無學位無漏九根一切皆是具知根性有頂雖有遊觀無而不明利非後三根二十二根自性如是諸餘門義如論應知
成唯識論卷第七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이하 부정심소(不定心所)에 관하여 해설한다.
  2. 2)부정심소라는 명칭을 건립한 이유를 설명한다. 이에 해당되는 심소들은 3성(性:선ㆍ악ㆍ무기) 중에서 그 성품이 일정하지 않고, 3계(界) 중에서 일어나는 것이 일정하지 않으며, 모든 식과 상응하는 것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부정심소(不定心所)라고 이름한다.
  3. 3)회(悔, kaukṛtya)심소는 ‘뉘우침’, ‘후회’, 즉 이전에 지은 업을 후회하고 싫어하는 심리작용이다. 오작(惡作)이라고도 한다. 뉘우쳐서 행동을 선(善), 수행으로 가게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선행(善行)을 했던 것을 후회하면서 자신을 더욱 괴롭힌다.
  4. 4)다음에 별도로 부정심소의 자체[體]를 설명한다.
  5. 5)면(眠, middha, nidra)심소는 ‘수면(睡眠)’, 즉 숙면의 상태로 유도하는 심소이다. 일단 숙면 상태가 되면 면(眠)심소는 더 이상 상응하지 않는다. 수면은 신체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마음을 암매(闇昧)하게 만들어서, 위빠사나를 수행하는 데 장애가 된다. 적당한 수면은 체력을 충전하여 활달하게 하지만, 지나친 잠은 무기력하게 만든다.
  6. 6)오직 하나의 의식(意識)에만 상응하는 것을 말한다.
  7. 7)세간과 성스러운 가르침에서 무심위(無心位)를 수면(睡眠)으로 이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가립(假立)이고 실제의 수면은 별도로 존재한다. 이것은 심왕을 덮고 얽어매기[蓋纏] 때문이다. 덮고 얽어매는 것은 반드시 심소법으로서 자체[體]가 없는 법이 아니다.
  8. 8)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9. 9)회(悔)ㆍ면(眼) 심소이다.
  10. 10)『유가사지론』 제55권(『고려대장경』 15, p.938下:『대정장』 30, p.604中).
  11. 11)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12. 12)제3사(第三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13. 13)『유가사지론』 제55권(『고려대장경』 15, p.938下:『대정장』 30, p.604中).
  14. 14)호법(護法)의 정의(正義)이다.
  15. 15)회ㆍ면 심소를 가리킨다.
  16. 16)이 문단에서 다음과 같이 삼지작법(三支作法)의 인명논리를 세울 수 있다.
    (宗) 잡염의 회(悔)ㆍ면(眼) 심소는 사(思)ㆍ혜(慧)ㆍ상(想)이 아니어야 한다.
    (因) 이것은 얽어매는 것[纏]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喻) 무참(無慚심)소 등과 같이.
    (宗) 청정의 회ㆍ면 심소도 역시 사(思)ㆍ혜(慧)ㆍ상(想)이 아니어야 한다.
    (因) 이것은 회ㆍ면 심소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喩) 잡염의 회ㆍ면 심소와 같이.
  17. 17)심(尋, vitarka)심소는 ‘심구(尋求)’, 즉 대상에 대하여 그 뜻과 이치를 대강 심구하는 심리작용이다.
  18. 18)의언(意言, manojalpa)은 의지(意地)의 심사(尋思) 또는 제6의식을 의미한다. 의언(意言)의 대상[境]은 제6의식의 인식대상[所緣境]으로서 일체법을 가리킨다.
  19. 19)사(伺, vicāra)심소는 ‘사찰(伺察)’, 즉 대상의 뜻과 이치를 세밀하게 분별하여 사찰한다. 이로써 몸과 마음의 평안 또는 불안이 있게 된다.
  20. 20)심(尋)ㆍ사(伺) 심소는 몸과 마음이 평안할 때에는 천천히 느린 것을 업으로 하고, 불안할 때에는 바쁘고 급한 것을 업으로 한다.
  21. 21)심(尋)심소를 가리킨다.
  22. 22)사(伺)심소를 말한다.
  23. 23)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24. 24)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25. 25)번뇌와 수번뇌심소를 말한다.
  26. 26)안혜(安慧)의 견해이며, 이것으로써 정의(正義)로 삼는다.
  27. 27)『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7권 본에 의하면, 이 두 가지의 두 종류에 대해서 열 가지 의미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①회(悔)ㆍ면(眠)은 오직 욕계뿐이고, 심(尋)ㆍ사(伺) 심소는 초선(初禪)에도 통한다. ②회ㆍ면 심소는 자체가 별도로 있고, 심ㆍ사 심소는 사(思)ㆍ혜(慧) 심소에 의지한다. ③회ㆍ면 심소는 실유(實有)이고, 심ㆍ사 심소는 가유(假有)이다. ④심ㆍ사 심소는 색계의 제4선정을 증득하여 단멸하고, 회심소는 분리단(分離斷)이며, 면심소는 아라한에서 영원히 단멸한다. ⑤제2선정을 얻으면 하부 지위[下地]의 심ㆍ사 심소를 일으키고, 상부 지위[上地]는 반드시 욕계의 회ㆍ면 심소를 일으키지 않는다. ⑥심ㆍ사 심소는 선지(禪支)이고, 회ㆍ면 심소는 그렇지 않다. ⑦회ㆍ면 심소는 덮고 얽어매는 것[蓋纏]이며, 심ㆍ사 심소는 그렇지 않다. ⑧심ㆍ사 심소는 언어의 작용이고, 회ㆍ면은 그렇지 않다. ⑨심ㆍ사 심소는 선정과 산란의 지위에 모두 있고, 회ㆍ면은 오직 산란의 지위에만 있다. ⑩심ㆍ사 심소는 유루와 무루에 통하고, 회ㆍ면은 오직 유루이다.
  28. 28)『유가사지론』 제55권(『고려대장경』 15, p.938中:『대정장』 30, p.604上).
  29. 29)『유식삼십송』의 제14게송에서 “둘에 각각 둘이 있네[二各二]”라는 설명을 시설한 이유를 밝힌다. 그것에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 두 가지의 두 종류는 잡염ㆍ잡염되지 않음의 양쪽에 통한다. 이것은 선심소는 오직 선(善)이고, 번뇌ㆍ수번뇌심소는 오직 잡염뿐으로서, 잡염ㆍ선(善)에 통하지 않는 것과 다른 것임을 나타낸다. 둘째, 분(忿) 등 오직 잡염의 심소를 가려내기 위함이다. 그것은 『유가사지론』 제55권에서 부정심소의 네 가지를 말하고 수번뇌심소라고 하기 때문에, 수번뇌심소처럼 이것이 오직 잡염뿐인가라고 생각할까 염려되어 이 말을 시설한다. 셋째, 이 두 가지의 두 종류는 그 성품이 일정하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30. 30)『유가사지론』 제55권(『고려대장경』 15, p.938下:『대정장』 30, p.604中).
  31. 31)호법의 정의이다.
  32. 32)심(尋)ㆍ사(伺) 심소를 말한다.
  33. 33)치(癡)심소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34. 34)『유가사지론』 제52권(『고려대장경』 15, p.916中:『대정장』 30, p.589上).
  35. 35)다음에 부정심소들이 서로 상응하는 관계를 밝힌다[有相應門].
  36. 36)자체[體]가 같다는 것은 심(尋)ㆍ사(伺) 심소가 모두 사(思)ㆍ혜(慧) 심소를 자체로 삼음을 말한다. 종류[類]가 같다는 것은 두 심소가 모두 헤아리는[推度] 작용을 함을 가리킨다.
  37. 37)비록 자체와 종류는 같지만, 양상이 두드러짐과 미세함의 차이가 있는 두 법은 함께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38. 38)설일체유부가 비판하기를, 심ㆍ사 심소가 함께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ㆍ무심유사지(無尋有伺地)ㆍ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 등 세 가지 지위[地]를 건립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답변한다.
  39. 39)회(悔)ㆍ면(眼) 심소를 말한다.
  40. 40)심ㆍ사 심소는 앞의 두 가지, 즉 회ㆍ수 심소와는 상응해야 한다.
  41. 41)부정의 심소와 8식과의 상응관계를 밝힌다[識相應門].
  42. 42)본 논서 제3권과 제4권 가운데 제8식과 제7식의 심소상응문에서 언급되었다.
  43. 43)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44. 44)『유가사지론』 제56권(『고려대장경』 15, p.1014中:『대정장』 30, p.610下).
  45. 45)형상이 있음[有相], 형상이 없음[無相], 자연히 일어남[任運], 찾아 구함[尋求], 보면서 살핌[伺察], 잡염됨[染汚], 잡염되지 않음[不染汚]을 말한다.
  46. 46)『유가사지론』 제5권(『고려대장경』 15, p.500中:『대정장』 30, p.302中).
  47. 47)『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고려대장경』 16, p.293上:『대정장』 31, p.703上).
  48. 48)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49. 49)『유가사지론』 제1권(『고려대장경』 15, p.534上:『대정장』 30, p.280中).
  50. 50)일곱 가지 분별은 심(尋)ㆍ사(伺) 심소의 차이에 의한다.
  51. 51)문구[句]와 글자[文]를 가리킨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본 논서 2권 참조.
  52. 52)명칭 등은 능전(能詮)이고 뜻[義]은 소전(所詮)이다.
  53. 53)『유가사지론』 제5권(『고려대장경』 15, p.500中:『대정장』 30, p.302中).
  54. 54)『유가사지론』 제56권(『고려대장경』 15, p.1014中:『대정장』 30, p.610下)에서 설한 내용을 회통한다.
  55. 55)『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고려대장경』 16, p.293上:『대정장』 31, p.703上). 여기서 말한 내용을 회통한다.
  56. 56)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분별[任運分別]을 가리킨다.
  57. 57)다음에 부정심소와 5수(受)와의 상응관계를 밝힌다[受俱不俱門]. 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58. 58)그러므로 희수(喜受)ㆍ낙수(樂受)와 함께하지 않는다.
  59. 59)따라서 사수(捨受)와 함께한다.
  60. 60)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61. 61)부정심소와 별경심소의 상응관계를 밝힌다[別境相應門].
  62. 62)부정심소와 선심소의 상응관계를 밝힌다[善俱門].
  63. 63)부정심소와 열 가지 번뇌심소의 상응관계를 밝힌다[十煩惱俱門].
  64. 64)부정심소와 수번뇌심소의 상응관계를 밝힌다[隨惑俱轉門].
  65. 65)분(忿)심소 등 스무 가지 수번뇌심소를 말한다.
  66. 66)부정심소의 3성(性)의 관계를 밝힌다[三性門].
  67. 67)회ㆍ면 심소이다.
  68. 68)유부무기(有覆無記)와 무부무기(無覆無記)를 말한다.
  69. 69)이숙(異熟)ㆍ위의(威儀)ㆍ공교(工巧)ㆍ변화(變化)의 네 가지 무기 중에서 위의무기와 공교무기를 가리킨다.
  70. 70)부정심소가 어떤 세계에 계박되는가를 밝힌다[界繫門].
  71. 71)색계와 무색계를 말한다.
  72. 72)제2선천(第二禪天) 이상을 가리킨다.
  73. 73)부정심소와 유학(有學) 등의 관계를 밝힌다[學等三門].
  74. 74)부정심소가 어떤 도(道)에서 단멸되는가를 밝힌다[見等所斷門].
  75. 75)회ㆍ면 심소는 소승에서는 오직 수도에서 단멸되는 것[修所斷]으로 말한다. 그러나 유식학에서 그것은 사견(邪見) 등의 세력에 의해서도 일어나기 때문에, 견도에서 단멸되는 것[見所斷]에도 포함된다고 한다.
  76. 76)고근(苦根)은 무루(無漏)가 아니지만 무학(無學)에서 성취하므로 부단(不斷)으로 이름한다면, 면(眠)심소도 역시 그러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이 있기 때문에, 지금 그것에 대하여 답변한다.
  77. 77)우근(憂根)은 무학(無學)이 아니지만, 22근(根) 중에서 부단(不斷)으로 이름한다. 회(悔)심소 등은 어째서 이렇게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답변한다.
  78. 78)무분별지혜를 말한다.
  79. 79)일체법의 자성을 분별한 다섯 가지, 즉 형상[相]ㆍ명칭[名]ㆍ분별ㆍ정지(正智)ㆍ진여[如如]를 말한다.
  80. 80)『유가사지론』 제5권(『고려대장경』 15, p.566下:『대정장』 30, p.302下).
  81. 81)호법의 정의이다.
  82. 82)5법(法) 중의 정지(正智)로서, 무루(無漏)의 후득지(後得智)이다.
  83. 83)정사유(正思惟)의 자체[體]는 곧 심(尋)심소이다.
  84. 84)『현양성교론』 제2권(『고려대장경』 16, p.68上:『대정장』 31, p.489中).
  85. 85)『유가사지론』 제29권(『고려대장경』 15, p.773上中:『대정장』 30, p.445上).
  86. 86)『십지경론(十地經論)』 제1권(『고려대장경』 15, p.126下:『대정장』 26, p.127下).
  87. 87)인위(因位)의 2승(乘)과 10지(地) 보살의 지위를 말한다.
  88. 88)5법(法) 중에 제3분별을 말한다.
  89. 89)5법 중에 제4정지(第四正智)를 가리킨다.
  90. 90)유루ㆍ무루를 반연하는 것, 자체가 있는 대상[有事]과 없는 대상[無事]을 반연한 것 등이다.
  91. 91)다음에 심왕법과 심소법이 별도의 자체인가, 아니면 분위(分位)의 차이인가를 밝힌다[王所一二].
  92. 92)『십지경론』 제8권(『고려대장경』 15, p.187中:『대정장』 26, p.169上).
  93. 93)무성(無性), 『섭대승론석』 제4권(『고려대장경』 17, p.194下:『대정장』 31, p.402上).
  94. 94)『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제2권(『고려대장경』 9, p.1044下:『대정장』 14, p.563中).
  95. 95)6계(界)는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공(空)ㆍ식(識)의 여섯 계(界)이다.
  96. 96)『유가사지론』 제56권(『고려대장경』 15, p.1012上:『대정장』 30, p.609上).유정이 6계(界)로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심소가 유정을 이룬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묻는다.
  97. 97)『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제5권(『고려대장경』 16, p.929中:『대정장』 31, p.613中).
  98. 98)이 게송은 현재 유통되는 『대승장엄경론』에는 없다. 이 게송에서 별도로 탐(貪)심소 등 잡염법과 신(信)심소 등 선법(善法)의 자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곧 심소법이 별도의 자체가 없다는 증거가 아닌가라는 취지이다.
  99. 99)다음에 심왕에서 떠나서 심소의 자체가 없다는 견해를 비판한다.
  100. 100)『입능가경(入楞伽經)』 제9권ㆍ제10권.
  101. 101)『유가사지론』 제56권(『고려대장경』 15, p.1011下:『대정장』 30, p.609上).
  102. 102)『입능가경』 제7권(『고려대장경』 10, p.888下:『대정장』 16, p.557下).
  103. 103)『유가사지론』 제56권(『고려대장경』 15, p.1012上:『대정장』 30, p.609中).
  104. 104)5온(蘊)을 말한다.
  105. 105)오직 식(識)뿐으로서 심소(心所)가 없다고 말하면, 어떤 차이의 인연이 있어서 하나의 식에 많은 인식작용[行相]이 있고 분위(分位)가 다르게 되겠는가라는 의미이다.
  106. 106)심왕과 심소의 관계에서 전자가 주체가 되고, 의지처이며, 인식작용이 총체적이고, 항상 결정적이기 때문에 뛰어나다고 이름한다.
  107. 107)심소(心所)를 말한다.
  108. 108)3능변식을 설명하는 9의(義) 중에 소의문(所依門)이다.
  109. 109)9의(義) 중에 구불구전문(俱不俱轉門)이다. 본문에서 ‘5식’만을 들었는데, 사실 제6의식은 5식 중의 1식이라도 일어나는 경우에는 반드시 동시에 구기(俱起)하기 때문에 따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안식이 생기하려면 9연(緣:공간ㆍ빛ㆍ根ㆍ境ㆍ作意ㆍ제6의식ㆍ말나식ㆍ아뢰야식ㆍ종자)을 필요로 한다. 이 식은 빛을 제외한 공간ㆍ감관ㆍ대상ㆍ작의 등 8연을 필요로 한다. 비식ㆍ설식ㆍ신식은 공간과 빛을 제외한 감관ㆍ대상ㆍ작의 등 7연을 필요로 한다.
  110. 110)9의(義) 중에 기멸분위문(起滅分位門)이다. 제6의식이 5위무심(位無心)을 제외하고 항상 일어나는 이유는 연(緣)을 가자(假藉)하는 일이 적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①부정심소인 심(尋)ㆍ사(伺)와 상응하기 때문에 스스로 능히 사려할 수 있음. ②타(他)에 이끌려서 생기하지 않고 스스로 생기함. ③내(內)ㆍ외문전(外門轉)의 식(識), 즉 외계의 두드러진 구체적 사물[麤事]에 대해서도 일어나지만, 또한 내계의 세사(細事:心法ㆍ理性)에 대해서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緣)이 구족되는 일이 용이하므로 간단(間斷)하는 일이 매우 적어서 거의 항시(恒時)에 현기(現起)한다. 다만 오위무심이라 하여 무상천에 태어남, 무상정ㆍ멸진정ㆍ극수면(極睡眠)ㆍ극민절(極悶絶)의 경우에는 제6의식이 생기하지 않는다.
  111. 111)다음에 6식(識)의 의지처[所依]를 밝힌다[六識所依門].
  112. 112)현행 제8식의 6식 모두의 의지처이므로 공통적인 의지처[共依]라고 한다.
  113. 113)직접적인 의지처[親依]는 공통되지 않는 의지처[不共依]라는 의미로서 종자의 근본식을 가리킨다. 6식은 각각의 자기 종자를 그 친인연(親因緣)으로 한다.
  114. 114)5식이 연(緣)에 따라 함께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음을 밝힌다[俱不俱門].
  115. 115)5식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다 같이 감각기관에 의지한다. 둘째, 물질계의 대상을 인식대상으로 한다. 셋째, 오직 현재법을 인식대상으로 한다. 5식은 과거와 미래의 법을 인식대상으로 할 수 없다. 넷째, 현량지(現量知)이다. 5식은 비량(比量) 등의 작용이 없다. 다섯째, 잠시 중단됨이 있다.
  116. 116)『해심밀경』 제1권(『고려대장경』 10, p.715上:『대정장』 16, p.692中).
  117. 117)다음에 일어나고 멸하는 분위를 밝힌다[起滅分位門].
  118. 118)5위(位)의 무심(無心)인 경우이다.
  119. 119)5식에는 심(尋)ㆍ사(伺) 심소가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120. 120)무상천(無想天)ㆍ무상정(無想定)ㆍ멸진정ㆍ극수면(極睡眠)ㆍ극민절(極悶絶)의 다섯 가지 무심위(無心位)를 말한다.
  121. 121)다음에 『유식삼십송』의 제16게송에서 “무상천에 태어나는 것 및 무심의 두 선정과 잠잘 때와 기절했을 때는 제외한다”라는 구절을 해석한다[五位無心].
  122. 122)색계 제4선천 중의 광과천(廣果天)을 가리켜서 별도로 무상천(無想天)이라고 이름한다.
  123. 123)두드러지게 작용하는 상(想)심소를 싫어한다는 것은, 모든 외도들이 상을 생사(生死)의 원인으로 삼기 때문에, 여기에 비중을 두어 그것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6식의 두드러지게 작용하는 상이고, 제7식과 제8식에서의 미세한 상심소는 아니다.
  124. 124)전6식(前六識)이 멸하여 전혀 작용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125. 125)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126. 126)『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고려대장경』 16, p.289上:『대정장』 31, p.700中).
  127. 127)5근(根) 등을 가리킨다.
  128. 128)『유가사지론』 제10권(『고려대장경』 15, p.602下:『대정장』 30, p.327中).
  129. 129)『유가사지론』 제13권(『고려대장경』 15, p.628下:『대정장』 30, p.345上).
  130. 130)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131. 131)『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9권(『고려대장경』 16, p.311上:『대정장』 31, p.714下). 윤생(潤生)의 애착을 일으킨다고 말하기 때문에, 제6식이 존재함을 안다.
  132. 132)『유가사지론』의 제56권(『고려대장경』 15, p.1009中:『대정장』 30, p.607中).
  133. 133)앞의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등에서 말한 내용을 회통한다.
  134. 134)호법의 정의이다.
  135. 135)중유(中有)는 죽은 뒤로부터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사이, 즉 사유(死有)와 생유(生有)의 중간의 생존상태이다.
  136. 136)생을 받은 뒤에 죽을 때까지의 사이, 즉 생유(生有)와 사유(死有)의 중간의 생존상태이다. 참고로 말하면 여기서 유(有)는 bhava의 번역어로서 중생의 생존을 말한다. 중생이 미혹의 생사세계를 윤회하는 한 기간의 생존상태를 4분(分)하여 생유(生有:각각의 세계에 생을 받는 托胎ㆍ結生의 한 찰나), 본유, 사유(死有:임종할 찰나), 중유의 4유(有)라고 한다.
  137. 137)색계 제4선천을 가리킨다.
  138. 138)『유가사지론』 제12권(『고려대장경』 15, p.622中:『대정장』 30, p.340下). 본문의 내용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무상천에 태어날 때에는 무심위에 들어갈 때만 심왕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무심위에 들어 있지 않을 때에는 심왕을 일으킨다. 이것은 태어나는 최초이므로, 생(生)의 최초에는 전식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죽을 때에는 심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139. 139)『유가사지론』 제53권(『고려대장경』 15, p.987下:『대정장』 30, p.592下).
  140. 140)과거 무심정을 익힌 인연의 세력을 말한다.
  141. 141)색계의 세 가지 선정을 가리킨다.
  142. 142)색계 제4선천 중의 다섯 가지 정거천(淨居天:無煩天ㆍ無熱天ㆍ善現天ㆍ善見天ㆍ色究竟天)과 무색계를 말한다.
  143. 143)다음에 두 가지 무심정을 해설한다.
  144. 144)색계 제3선천의 제3천이다. 이 하늘은 맑고 깨끗하며 쾌락이 가득 찼다는 뜻으로 변정천이라고 이름한다.
  145. 145)제4선정 이상을 가리킨다.
  146. 146)네 가지 업은 순현수업(順現受業)ㆍ순생수업(順生受業)ㆍ순후수업(順後受業)ㆍ부정수업(不定受業)이다.
  147. 147)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148. 148)호법의 정의이다.
  149. 149)무학(無學)은 구해탈(俱解脫)을 이룬 사람, 즉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떠나서 지혜와 선정에 있어서 자재를 얻은 아라한을 말한다.
  150. 150)무소유처(無所有處)는 무색계 4천 가운데의 제3천이다.
  151. 151)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는 무색계의 제4천으로서 3계의 맨 위에 있으므로 유정천(有頂天)이라고도 한다.
  152. 152)2승(乘)은 6식의 유루의 사려(思慮)함을 싫어하거나 혹은 무루심이 두드러지게 작용하는 것을 관찰한다. 보살은 또한 무심적정의 열반에 비슷한 공덕을 발생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것을 일으킨다.
  153. 153)전6식(前六識)을 가리킨다.
  154. 154)제7식을 말한다.
  155. 155)특히 강하게 싫어하는 것에 의거해서 멸수상정(滅受想定)으로 이름하며, 사실은 다른 심왕과 심소도 멸한다.
  156. 156)수(受)ㆍ상(想) 심소이다. 멸진정을 멸수상정이라고도 한다.
  157. 157)무분별지(無分別智)를 가행심(加行心)으로 하는 것을 가려내어[簡] 유관(遊觀)이라고 말한다.
  158. 158)유관무루(遊觀無漏)는 미혹을 단멸하지 않고, 진리를 관찰하지 않는 후득지(後得智)를 말한다.
  159. 159)아홉 가지 순차적인 선정 중에서 차례로 들어가는 수행자가 초선(初禪)부터 점진적으로 승진해 들어가서, 제8유정유관무루(有頂遊觀無漏)로부터 제9멸진정에 들어가기 때문에 유관무루로써 가행(加行)을 삼는다고 한다.
  160. 160)아홉 가지 순차적인 선정[九次第定], 즉 색계의 4선(禪), 네 가지 무색정[四無色定:空無邊處定ㆍ識無邊處定ㆍ無所有處定ㆍ非想非非想處定]ㆍ멸진정을 말한다.
  161. 161)하부 지위[下地]의 7지(地)이다.
  162. 162)색계와 무색계이다.
  163. 163)나중에는 욕계에서 일어나고, 반드시 불환과(不還果) 등을 얻기 때문이다.
  164. 164)색계와 무색계의 하늘은 의사(意思)로써 존재하기 때문에 의성천(意成天)이라고 한다.
  165. 165)범부는 유정천(有頂天)의 견소단(見所斷)의 심왕ㆍ심소를 복멸(伏滅)할 수 없기 때문에, 하부 지위의 8지(地)의 견혹(見惑)을 모두 조복할 수 없다. 그런데 어째서 오직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만을 말하는가 하면, 이것이 최후로 반드시 복단(伏斷)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166. 166)2승(乘)이 이 선정에 들어갈 때에는 오직 아공(我空)을 증득하는 후득지(後得智)로써 이끌려 일어난다. 보살과 부처님이 들어갈 때에는 아공ㆍ법공의 후득지로써 모두 이끌려 일어날 수 있다.
  167. 167)다음에 수도에서 단멸되는 미혹[修惑]에 관한 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168. 168)욕계로부터 무소유처정까지이다.
  169. 169)불선과 유부무기를 말한다.
  170. 170)색계의 네 가지 선정[四禪]과 무색계의 네 가지 선정[四無色定]을 말한다.
  171. 171)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172. 172)욕계와 색계의 제3선천까지의 4지(地)이다.
  173. 173)고락(苦樂) 등의 수(受)를 말한다.
  174. 174)색계의 제3선천 이하의 미혹은 이미 조복되기 때문에, 그곳에는 태어나지 않는다.
  175. 175)무루(無漏)로써 그 종자를 단멸하지 않고, 또한 퇴전하여 그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와 같이 상(想)심소가 작용하지 않는 지위[非想地]에 태어나는 사람이 그곳에 태어나서 도리어 제4선천 등의 미혹을 단멸하겠는가라고 묻는다.
  176. 176)이미 조복하긴 하지만 오히려 종자가 있어서 상부 지위[上地]에 태어남을 장애하므로, 그곳에 태어나는 뜻이 없다. 하부 지위[下地]의 종자를 단멸하고 나서 상부 지위[上地]에 태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곳에 태어나서 다시 도리어 하부 지위[下地]의 종자를 단멸한다고 말하는 과실이 없다는 의미이다.
  177. 177)점오(漸悟)의 보살을 말한다.
  178. 178)3대겁(大劫) 중에서의 모든 지위를 말한다.
  179. 179)돈오(頓悟)의 보살을 가리킨다.
  180. 180)『유가사지론』 제62권(『고려대장경』 15, p.1066下:『대정장』 30, p.646中).
  181. 181)10지(地) 중에서 제7지이다.
  182. 182)『불설십지경(佛說十地經)』 제5권(『고려대장경』 37, p.576上:『대정장』 10, p.557中) 등.
  183. 183)수면(睡眠)심소를 가리킨다.
  184. 184)무심위(無心位)의 수면과 기절한 경우이다.
  185. 185)총체적으로 결론 맺는다.
  186. 186)다음에 무심의 5위(位)를 요간(料簡)하는 데는 세 가지가 있는데, 먼저 태어나고 죽는 경우를 묻는다.
  187. 187)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188. 188)이 견해에 의하면, 무심위(無心位)는 5위(位), 죽음의 순간[死位], 태어나는 순간[生位]의 7위가 된다. 다만, 『삼십송』의 제16게송에서 죽음과 태어남의 두 가지 위(位)를 말하지 않은 것은 게송 중의 ‘및[及]’과 ‘와[與]’의 두 글자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189. 189)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190. 190)『유가사지론』 제13권(『고려대장경』 15, p.628下:『대정장』 30, p.345上).
  191. 191)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은 이숙(異熟)의 괴로움의 과보인 5온화합의 신체까지 모두 멸하며, 이제는 의지처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다.
  192. 192)무여의열반에 들어가는 지위를 말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다.
  193. 193)멸진정ㆍ수면ㆍ기절한 경우를 가리킨다.
  194. 194)이하 세 가지 능변식(能變識)을 요간(料簡)한다[三能變分別]. 먼저 8식이 함께 전전하는 관계를 밝힌다.
  195. 195)예를 들면, 욕계에서 제6식이 색계의 선정을 일으킬 때, 만약 식(識)에 의해서 유정을 판별한다면 이것은 항상 색계의 유정으로서, 욕계의 유정으로 말해서는 안 되잖겠는가라고 반대로 질문한다.
  196. 196)설일체유부에서 비판하기를, 유정에서 정(情)이란 식(識)을 의미하고, 여러 식의 자체(自體)가 있다면 많은 유정이지, 하나의 유정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겠는가라고 묻는다.
  197. 197)상부 지위의 다른 세계 분위[界分]나 다른 무루 분위[無漏分]를 말한다.
  198. 198)명근(命根)을 소승에서는 실유(實有)로 말하지만, 대승에서는 그것을 종자에서 가립하여 말한다.
  199. 199)명근이나 이숙식을 가리킨다.
  200. 200)심소법은 모두 심왕에 소속된 법으로서 동일한 능연(能緣)의 체성임을 말한다.
  201. 201)하나의 바다나 거울에 의해 많은 파도나 영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202. 202)비판하여 묻기를, 5식과 함께하는 의식[五俱意識]은 오직 하나뿐인데, 어떻게 그것이 색경(色境) 등 여러 대상을 취하는가라고 말한다.
  203. 203)견분(見分)이 하나 또는 여럿인 것은 인식대상[所緣境]이 하나 또는 여럿인 것에 의한다. 예를 들면 안식 앞에 꽃ㆍ나무ㆍ나비 등 여러 대상이 동시에 있을 때는 동시에 그들 여러 대상을 취한다. 견분이 그 상분(相分)의 수(數)에 응하여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의 의식이 여러 대상을 취하는 데 아무 자질이 없게 된다고 답변한다.
  204. 204)예를 들면 안식이 한 찰나에 둘ㆍ셋ㆍ넷 등 여러 안식이 함께 일어나는 것을 인정할 수 있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여러 식이 함께 일어남을 인정한다면, 같은 종류의 식이 여럿이 함께 일어나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고 묻는다.
  205. 205)『해심밀경』 제1권(『고려대장경』 10, p.715上:『대정장』 16, p.692中).
  206. 206)유분별(有分別)이란 심(尋)ㆍ사(伺) 심소가 함께하는 것으로서, 명료하게 취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다.
  207. 207)제6식과 제8식은 많은 대상을 반연하고, 5식과 제7식은 하나의 대상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208. 208)감각기관을 말한다.
  209. 209)수(數)가 다르다는 것은, 5식은 네 가지 의지처[所依]이고, 제6식은 두 가지이며, 제7식과 제8식은 하나의 의지처를 갖기 때문이다.
  210. 210)다음에 총체적으로 능변식의 자체가 하나인지 여럿인지[能變一異]를 밝힌다.
  211. 211)바닷물은 제8식을, 파도는 7식을 비유한다.
  212. 212)『입능가경』 제9권(『고려대장경』 10, p.906下:『대정장』 16, p.574中).
  213. 213)상동(上同).
  214. 214)이하 오직 식(識)이 전변된 것임을 밝힌다[唯識所變].
  215. 215)유식상(唯識相)을 밝히는 세 가지 큰 분단[大段] 중에서 이상 능변식의 양상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을 마치고, 이하 식전변(識轉變)에 의거해서 가아(假我)와 가법(假法)을 건립하는 일단(一段)이다. 먼저 “그것은 식이 전변한 것에 의거한다[彼依識所變]”는 문구를 자세히 해설한다.
  216. 216)8식과 그것에 상응하는 심소를 포함한다.
  217. 217)여기서 전변(轉變)은 개전(開轉)ㆍ변현(變現)의 뜻으로서, 심왕ㆍ심소의 자체분에서 능취(能取)의 견분, 소취(所取)의 상분이 현출(現出)됨을 의미한다.
  218. 218)심외(心外)에 실존한다고 망집(妄執)되는 아(我)ㆍ법(法)을 가리킨다. 범부나 외도가 집착하듯이, 심외에 아ㆍ법이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견분ㆍ상분 위에 가립된 것일 뿐이다.
  219. 219)유식(唯識)의 이치를 판별한다.
  220. 220)먼저 안혜와 호법의 해설을 서술한다. 그런데 안혜와 호법은 다 같이 식(識)의 자체분으로부터 견분과 상분을 변현한다고 설명하면서도, 2분(分)의 가실(假實) 문제에 있어서는 입장을 달리한다. 즉 안혜에 의하면, 그 전변된 견분과 상분은 변계소집성으로서 자체[體]가 없는 법이고, 다만 의타기성의 유(有)처럼 사현할 뿐이며, 자체분만이 의타기성으로서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도 중기 유식학파의 두 가지 사조(思潮) 중에서 무상유식론(無相唯識論, nir-kra-vijnavda)의 입장으로서, 식의 표상화 작용 그 자체를 궁극적으로 소멸되어야 할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표상은 인식의 본질이 아니라 허망한 것으로서, 사량 분별을 떠난 인식의 본질은 형상이 없는 ‘비춤 그 자체’, ‘순수한 조출성(照出性)’이기 때문이며, 이러한 사유방법은 중관학파와 비슷하다. 이에 반하여 호법은 견분과 상분을 의타기성의 자체가 있는 법으로 설명한다. 식의 자체분이 전변하여 의타기성의 2분(分)을 현현하고 그것이 변계소집의 아(我)ㆍ법(法)에 비슷하므로 여기에 아(我)ㆍ법(法)의 모습을 가립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유상유식론(有相唯識論, skra-vijnavda)의 입장으로서, 식상(識上)의 형상은 의타기성으로서, 전적으로 부정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실재(實在)로 간주된다. 이와 같이 인식상황 속의 형상은 진실성을 인정한 이유는 유식학의 심식론을 인식논리[因明]로써 설명하고 증명함으로써, 깨달음의 가능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221. 221)이 부분에서 세친(世親)이 식전변설을 수립한 의도가 잘 나타난다. 그는 식전변설의 체계 속에 인식성립의 역학적 구조를 담고 싶었다. 식의 본래의 기능은 분별, 즉 대상 인식작용이다. 종래의 ‘식=분별’에 세친은 분별하게 되는 원리로서 전변의 개념을 도입하여 ‘식=전변=분별’로 설명하였다. 식전변(識轉變)은 단순히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7식과 현상적 존재가 생겨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변의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능변식(8식과 이에 수반되는 심소)이 견분[能取相]과 상분[所取相]을 변현시키는 것이다.
  222. 222)능취(能取)와 소취(所取)를 말한다.
  223. 223)유위법은 식이 전변된 것[識所變]을 가리키고, 무위법은 식의 체성(體性)을 말한다.
  224. 224)다음은 난타(難陀)의 견해이다. 『성유식론술기』에 의하면, 그는 이분가(二分家)로서 자체분(自體分)을 건립하지 않고, 견분의 식이 의타기(依他起)의 상분을 전변하여 아(我)ㆍ법(法)의 외부대상의 모습으로 사현한다고 말한다. 다만 견분과 상분이 다 같이 의타기법(依他起法)이긴 하지만, 가실(假實)의 차이가 있어서 견분은 참다운 것[實]이고, 변현된 상분은 허망한 것[假]이다. 상분도 역시 참다운 것이라고 하면, 곧 유식(唯識)의 의리(義理)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225. 225)본 논서 제1권ㆍ제2권에서 실아(實我)와 실법(實法)을 논파하였다.
  226. 226)다음에 총체적으로 결론 맺는다. 마음에서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법[心外法]이란 없기 때문에 증익(增益)의 극단을 부정한다. 허망한 마음이 존재하므로 손감(損減)의 극단을 막는다. 그리하여 유식(唯識)의 뜻이 성립되고 중도에 계합된다.
  227. 227)이하 아홉 가지 문답으로써 만유유식(萬有唯識)의 도리를 자세히 해설한다[九難義].
  228. 228)『십지경(十地經)』 제8권 등.
  229. 229)『해심밀경』 제3권, 『유가사지론』 제77권. 능연(能緣)의 견분과 소연(所緣)의 상분은 모두 자체분이 현현된 것임을 나타냄으로써 만법유식(萬法唯識)ㆍ심외무법(心外無法)의 취지를 서술한다.
  230. 230)『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제2권(『고려대장경』 9, p.1044下:『대정장』 14, p.563中).
  231. 231)『아비달마경』에 나오는 문장이다. 무성(無性)의 『섭대승론석』 제4권에 인용되어 있다.
  232. 232)같은 사물에 대해서도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가 다르면, 그 사물은 다른 모습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아는 지혜를 말한다. 예를 들면 같은 물[水]에 대해서도 아귀는 고름이나 피가 가득한 강으로 보고, 물고기는 살아가는 장소나 통로로 본다. 천인(天人)은 보석으로 장식한 땅으로 보고, 인간은 깨끗한 물 또는 파도로 보는 등 제각기 다르게 인식한다.
  233. 233)실재하지 않는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인식이 현실적으로 있음을 아는 지혜를 말한다. 예를 들면 과거나 미래의 일, 꿈속의 대상, 물이나 거울에 비친 영상 등은 어느 것도 실재하지 않는데, 그것을 대상으로 인식한다.
  234. 234)공용(功用), 즉 수행하지 않고서 오류가 없는 무전도(無顚倒)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잘못임을 아는 지혜이다. 만약 인식대상이 인식되는 것처럼 실재한다면 범부도 진실을 인식하게 되고, 노력 정진하지 않고도 자연히 해탈을 이루게 될 것이다.
  235. 235)만약 인식대상이 실재한다면 다음 세 가지와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는데, 현실적으로 이들 세 가지 사실이 일어나므로 인식대상은 실재하지 않음을 논증한다.
  236. 236)8지(地) 이상의 보살이다.
  237. 237)마음이 자재함을 얻은 보살은 하고자 하는 대로, 예를 들면 땅을 물로, 또는 모래를 금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말한다.
  238. 238)지관(止觀)을 닦는 요가 수행자가 부처님의 교법을 관찰해서 사색할 때, 어떤 대상이 사색하는 대로 갖가지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239. 239)공통적으로 인정되는[極成] 안식 등이란, 공통적으로 인정되지 않는[不極成] 유법(有法)을 가려내기[簡] 위해서 붙인 것이다. 즉 대승의 다른 학파에서 주장하는 부처님의 안식 등, 소승에서 말하는 부처님의 비무루(非無漏)의 안식 등과 최후신(最後身)의 보살의 불선(不善)의 안식 등을 가려낸다. 그것들은 자타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自他極成]이 아니기 때문이다.
  240. 240)5식 중에서 안식을 제외한 나머지 4식을 말한다.
  241. 241)이상 6경(經)을 인용하여 증명했다. 다음에 바른 논리[正理]로써 만법유식(萬法唯識)의 뜻을 논증한다. 네 가지 입량(立量)을 열거하는데, 먼저 첫 번째 비량(比量)을 삼지작법(三支作法)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宗) 공통적으로 인정되는[極成] 안식 등은 직접 자신에게서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색경 등을 반연하지 않아야 한다.
    (因) 5식 중의 하나를 따르는[隨一] 데 포함되기 때문이다.
    (喩) 나머지 4식과 같이.
  242. 242)두 번째 비량(比量)을 삼지작법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宗)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나머지 식도 역시 직접 자신에게서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법을 반연하지 않아야 한다.
    (因) 이것은 식(識)이기 때문이다.
    (喩) 안식 등과 같이.
  243. 243)견분과 상분을 말한다.
  244. 244)세 번째 비량을 삼지작법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宗) 6식의 친소연(親所緣)은 반드시 6식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
    (因) 견분과 상분 중의 하나를 따르는 것[隨一]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喩) 그 능연(能緣)의 견분 등과 같이.
  245. 245)네 번째 비량을 삼지작법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宗) 6식의 친소연은 반드시 자신의 능연(能緣)인 심왕과 심소를 떠나지 않아야 한다.
    (因) 이것은 인식대상[所緣]의 법이기 때문이다.
    (喩) 상응법과 같이.
  246. 246)다음에 총체적인 결론으로서 위에서 밝힌 것을 논증한다. 먼저 바른 논리로써 증명하는데, 자아와 법은 변계소집성이고, 공(空)은 원성실성이며, 식(識)은 의타기성이다. 따라서 이것은 삼성대망(三性對望)하여 중도의 뜻을 나타낸다.
  247. 247)다음에 성스러운 가르침[聖敎]으로써 증명한다. 아래 게송은 『변중변론(辯中邊論)』 제1권에서 미륵보살이 말씀한 것이다.
  248. 248)3계의 의타기성의 허망분별심을 말한다.
  249. 249)소취(所取)와 능취(能取) 또는 자아와 법을 말한다.
  250. 250)공성(空性)과 허망한 마음[妄心]이 있으므로 공空이 아니다.
  251. 251)능취와 소취 또는 자아와 법이 없기 때문에 불공(不空)도 아니다.
  252. 252)허망분별, 즉 의타기성의 가유(假有)를 말한다.
  253. 253)2취(取), 즉 변계소집성의 실무(實無)를 가리킨다.
  254. 254)원성실성의 실재[實有]를 말한다. 또는 허망분별 중에서 공성이 있고[妄中有空], 공성에 대해서 허망분별이 있음[空中有妄]을 나타낸다.
  255. 255)따라서 오로지 공(空)만을 주장하는 중관학파의 청변(淸辯) 등과 같지 않고, 또한 오로지 실유(實有)를 말하는 소승과 같지 않으며, 참으로 중도에 계합함을 말한다.
  256. 256)다음에 만약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면 세간의 일과 어긋난다고 비판하는 것에 답변하는 것으로써 논증한다[第二世事乖宗難].
  257. 257)다음에 성스러운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비판하는 것에 대하여 답변함으로써 논증한다[第三聖敎相違難]. 만약 마음 밖에 색경(色境) 등의 참다운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존께서 어떻게 12처(處)가 있다고 말씀하셨는가라고 비판하여 묻는다.
  258. 258)여기서 유식성(唯識性)은 의타기법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고, 원성실성의 진리를 말하지 않는다.
  259. 259)비판하여 묻기를, 법집(法執)을 없애서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도리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유식의 가르침을 말한다면, 그 유식성 자체도 역시 궁극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것[畢竟空無]이 아니겠는가라고 한다[第四唯識成空難].
  260. 260)다음에 외부대상[色境]의 모습은 마음이 아니지 않겠느냐고 비판하여 묻는다[第五 色相非心難].
  261. 261)아득한 옛적부터 허망분별의 훈습력에 의해서, 상주하고 항상하며 변하지 않는 색경(色境)의 모습이라고 집착한다. 이러한 훈습에 의해 한 종류의 견고한 색경의 모습으로 사현한 것이지, 마음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의 대상[實境]은 아니다.
  262. 262)색경(色境) 등 외부대상을 가리킨다.
  263. 263)색경(色境) 등으로부터 잡염ㆍ청정법의 의지처로 된다. 왜냐하면 욕계와 색계의 유정이 아득한 옛적부터 색경 등에 미혹되게 집착함으로써 전도(顚倒)된 망심(妄心)을 일으키고, 그것에 의해 번뇌ㆍ업ㆍ생(生)의 잡염을 일으켜 생사에서 윤회한다. 만약 색경 등이 없다면, 전도된 망심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잡염이 없으면, 청정법도 있지 않아야 한다.
  264. 264)잡란[亂]은 심왕 등을 말한다. 허망하고 전도됨[妄倒]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265. 265)잡란의 형상[亂相]이란 색식(色識), 즉 상분을 말한다.
  266. 266)잡란의 자체[亂體]는 비색식(非色識), 즉 모든 식의 견분을 말한다.
  267. 267)잡란의 자체[亂體], 즉 견분을 가리킨다.
  268. 268)『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제4권(『고려대장경』 16, p.927中:『대정장』 31, p.612中).
  269. 269)외부대상을 현량(現量)으로 인식하는데 어째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비판하여 묻는다[第六 現量爲宗難]. 즉 색경(色境) 등 다섯 가지 외부대상은 5식의 현량으로써 분명히 깨달아 알고, 현량으로 인식하는 것은 확실한 것으로서 조금도 오류가 없다. 만약 외부대상이 실유(實有)가 아니라면, 현량으로써 반연하여 색경 등이라는 인식을 일으킬 수 없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270. 270)꿈과 깨었을 때의 차이점을 들어 비판하여 묻는다[第七夢覺相違難].
  271. 271)참다운 깨달음[眞覺]은 무루의 참다운 지혜를 말한다.
  272. 272)마음 밖의 실재 대상인 타인의 마음을 인식하는 경우를 들어 비판한다[第八外取他心難]. 즉 외계의 색경(色境) 등은 실체가 없고 내부의 식이 전변된 것이지만, 타인의 심식은 자기 마음에서 떠나서 외부에 그 자체가 있다. 만약 마음 밖의 실재의 대상을 반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 타인의 마음은 자신의 인식대상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타심지(他心智) 같은 것은 타인의 마음을 반연해야 하며, 그렇다면 이것은 마음 밖의 실재의 대상을 반연하는 것으로서, 유식(唯識)의 뜻이 성립되지 않아야 하지 않느냐고 비판하여 묻는다.
  273. 273)정량부(正量部)를 논파한다. 그들은 상분(相分)을 건립하지 않기 때문에 심왕과 심소법이 직접 대상을 취하는 것이, 마치 손[手] 등으로 외부 사물을 잡는 것과 같다고 말하므로 여기서 그것을 논파한다.
  274. 274)승론(勝論) 학파를 논파한다. 그들은 안식이 일어날 때 빛을 펴서 직접 눈앞의 대상을 비추는 것이, 마치 해와 달 등이 빛을 펴서 직접 외부대상을 비추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므로 여기서 논파한다.
  275. 275)타인의 마음은 능히 자기 식[自識]의 인식대상이 되므로, 타인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智]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타인의 마음으로써 친소연연(親所緣緣:상분)으로 삼는 것은 아니고, 오직 그것을 소소연연(疎所緣緣:본질)으로 한다. 자기 마음 위에 그 영상인 상분을 현현하여, 그것으로써 친소연연으로 반연할 뿐이므로 유식(唯識)의 뜻이 성립된다고 논증한다.
  276. 276)마음 밖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법[心外法]을 가리킨다.
  277. 277)『해심밀경』 제3권(『고려대장경』 10, p.723中:『대정장』 16, p.698中).
  278. 278)『유식이십론』(『고려대장경』 17, p.481上:『대정장』 31, p.77上).
  279. 279)타인의 마음 등 다른 대상이 있으므로 유식(唯識)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第九異境非唯難]. 즉 친소연연(親所緣緣:상분)은 아니지만 자기 마음 밖에 타인의 마음이라는 다른 대상[異境]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유식이 아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280. 280)심왕과 심소를 가리킨다.
  281. 281)심왕과 심소 및 색법을 말한다.
  282. 282)심왕ㆍ심소ㆍ색법ㆍ불상응행법이다.
  283. 283)복덕과 지혜를 말한다.
  284. 284)총체적으로 결론 맺으면서 믿을 것을 권한다.
  285. 285)이하 식이 전변된 것[識所變]에 의거해서 가아가법(假我假法)을 건립하는 두 가지 큰 분단[大段] 중에서 두 번째이다. 여러 외인들의 비판을 해석하여, 『삼십송』 제1게송의 “자아와 법을 가설함으로 인하여 (자아ㆍ법의) 갖가지 모습들이 생겨난다[由假說我法 有種種相轉]”는 문구를 자세하게 해설한다. 먼저 심법(心法)이 일어나는 연유를 밝힌다.
  286. 286)8식의 심왕과 그것에 상응하는 심소를 가리킨다. 허망분별로써 자성을 삼는 유루법(有漏法)이다.
  287. 287)심법(心法)이 생기하는 연유를 밝힌다. 심왕ㆍ심소는 반드시 그 소연(所緣)에 의탁해서 생기한다. 그런데 과연 내심(內心)만 있고 외경(外境)이 없다면 심왕ㆍ심소는 무엇을 말미암아서 생기할 수 있는가라는 힐난(詰難)에 대해서 심법이 생기하는 연유를 설명한다. 허망분별의 생기에는 내심의 종자ㆍ현행을 인(因)으로 삼고 연(緣)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심외(心外)에 실경(實境)이 없을지라도 그 생기(生起)에는 지장이 없다.
  288. 288)등류과(等流果)는 첫째, 종자생종자(種子生種子), 즉 종자가 전후 찰나에 자류상생(自類相生)하는 것이다. 둘째,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을 말한다. 그 현행은 종자의 동류(同類)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종자가 동류인(同類因)이 되어 종자와 현행의 등류과(等流果)를 일으킨다.
  289. 289)선ㆍ악의 업종자가 무기(無記)의 현행의 과보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290. 290)작의(作意) 종자가 이른바 종자경각(種子警覺)으로서 현행법을 일으키는 경우 사용과(士用果)를 얻는다. 사용은 사부(士夫)의 작용이라는 뜻으로서, 사람의 노력에 의해 어떤 사업을 성공하는 것처럼, 상응인(相應因)ㆍ구유인(俱有因)의 작용에 의해 얻은 결과를 사용과라고 한다.
  291. 291)어떤 유위법이 생겨날 때에, 자기 이외의 법이 직접적으로 힘을 주거나 또는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도와주는 관계로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곧 다른 것이 능작인(能作因)이 되어 그 증상력(增上力)에 의해 생긴 결과이다. 예를 들면, 제7식의 종자를 구유의(俱有依)로 하여 제8식의 현행을 생겨나게 할 때, 곧 증상과를 얻는 것이다.
  292. 292)계박을 떠난 증과[離繼果]란, 무루성도(無漏聖道)의 지혜의 힘으로써 번뇌의 계박을 떠나고 끊은[離繼] 데서 나타나는 열반의 진리를 가리켜서 말하기 때문에 종자생(種子生)이 아니므로 제외한다.
  293. 293)무루의 뛰어난 도[無漏勝道]이다.
  294. 294)종자로부터 지혜가 생겨나게 하고, 지혜가 미혹을 끊어 열반[離繼果]을 증득한다. 이와 같이 종자로부터 직접 열반을 얻는 것이 아니고, 중간에 지혜를 격(隔)하여 전전하여 생겨나게 하므로, 게송에서의 일체종자식에 의거한다는 말에는 상관이 없음을 밝힌다.
  295. 295)현행식(現行識)을 말한다. 이것은 내부의 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296. 296)외부의 곡식[外種] 등을 가리킨다. 이것은 식의 자체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297. 297)네 가지 연[四緣] 중에서 인연(因緣)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연(緣)을 말한다. 다만 심법을 일으키는 것은 세 가지 연이고, 색법을 생겨나게 하는 것은 오직 증상연(增上緣)뿐이다.
  298. 298)미숙(未熟)의 견인인(牽引因)의 지위로부터 이숙(已熟)의 생기인(生起因)의 지위에 이른다.
  299. 299)명언훈습(名言熏習)ㆍ아집훈습(我執熏習)ㆍ유지훈습(有支熏習)을 말한다. 명언훈습은 언어를 사용한 개념적인 사고(思考)에 의해 이식되는 것이다. 아집훈습은 자아가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견해[我見]에 의해 훈습되는 것이다. 유지훈습은 3유(有:三界)에서 생사윤회하게 만드는 훈습을 말한다.
  300. 300)자체분ㆍ견분ㆍ상분 등을 말한다.
  301. 301)총체적으로 게송의 의미를 결론 맺는다.
  302. 302)다음에 예(例)하여 청정법을 일으키는 것을 밝힌다.
  303. 303)이하 게송의 뜻을 자세하게 해설한다. 먼저 네 가지 연(緣)을 설명한다[四緣義].
  304. 304)종자생종자의 이시인과(異時因果)와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의 동시인과(同時因果)의 두 가지가 있다.
  305. 305)자기 부류의 종자 및 자기의 현행에 배대해서만 인연(因緣)이 된다.
  306. 306)현행훈종자(現行熏種子)의 경우를 말하며, 현행은 능훈의 현행이다.
  307. 307)능훈(能熏)의 현행을 말한다.
  308. 308)소훈(所熏)의 종자를 가리킨다.
  309. 309)인위(因位) 중의 제8식과 6식 중의 이숙의 심왕은 매우 미세하여 능훈이 아니다.
  310. 310)불과(佛果)의 제8식은 매우 원만하여 종자를 훈습하지 않는다.
  311. 311)만약 제8식은 스스로 소훈처(所熏處)로서, 다시 자신의 소훈처가 없으므로 능훈(能熏)이 아니라고 말하면, 제8식과 함께하는 심소(心所)로써 능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심에 대한 답변이다.
  312. 312)무슨 까닭으로 현행의 같은 부류가 이전 찰나의 것을 이후 찰나의 것에 배대하여 소승의 동류인(同類因)과 같이 인연이 아니라고 말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313. 313)『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4권(『고려대장경』 16, p.308下:『대정장』 31, p.713上).
  314. 314)실제로는 증상연(增上緣)이다.
  315. 315)근거에 따른 방편문[隨轉理門]이란, 설일체유부에서 구유인(俱有因) 등 다섯 가지 인(因)을 말하여 인연으로 삼은 것에 수순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316. 316)『유가사지론』 제3권(『고려대장경』 15, p.550下:『대정장』 30, p.292上).
  317. 317)『유가사지론』 제51권(『고려대장경』 15, p.969下:『대정장』 30, p.580中).
  318. 318)심왕과 심소법이 전념(前念)에서 후념(後念)으로 전전할 때에, 이전 찰나에 멸한 마음이 길을 열어 뒤에 생기는 마음을 끌어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때에 전념과 후념의 심왕과 심소의 수(數)는 같지 않더라도, 그 주체는 앞뒤가 평등하여 하나이므로 등(等)이라고 하고, 후념은 전념과의 사이에 설사 얼마의 시간이 경과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마음이 그 사이에 간격을 두지 않고 곧 생겨나므로 무간(無間)이라고 한다. 등무간연은 심왕ㆍ심소법에만 국한되고 다른 법에는 통하지 않으며, 또한 아라한이 열반에 들려는 최후심(最後心)의 심왕ㆍ심소를 제외하고는 모든 마음의 작용은 반드시 이 관계를 갖는다.
  319. 319)『유가사지론』 제3권(『고려대장경』 15, p.550下:『대정장』 30, p.292上).
  320. 320)제8식에 있어서 유루(有漏)가 무루를 생겨나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세계의 유루 이후에 무루를 생겨나게 하는가라고 외인(外人)이 묻는다.
  321. 321)돈오(頓悟)의 보살을 가리킨다.
  322. 322)색계 제4선천의 9천(天) 중 위의 5천, 즉 무번천(無煩天)ㆍ무열천(無熱天)ㆍ선견천(善見天)ㆍ선현천(善現天)ㆍ색구경천(色究竟天)을 말한다. 여기는 성자가 태어나는 곳으로서, 아래 4천의 외도가 태어나는 곳과는 크게 다르며, 그것을 5정거천(淨居天)이라고 이름한다.
  323. 323)색계의 정상에 있는 궁전으로서, 외도들이 제사 드리는 대자재천이 여기에 머문다. 또한 제10지 보살이 장차 성불하려고 할 때에, 이곳에서 정토(淨土)를 변현하여 시방(十方)의 여러 부처님으로부터 성불의 관정(灌頂)을 받는다고 한다.
  324. 324)점오(漸悟)의 보살을 말한다.
  325. 325)호법의 정의이다.
  326. 326)『대반야경』 제129권.
  327. 327)유부무기(有覆無記)를 말한다.
  328. 328)아집(我執)의 제7식 또는 유부무기(有覆無記)를 말한다.
  329. 329)법집(法執) 또는 이숙식(異熟識)의 무부무기(無覆無記)를 가리킨다.
  330. 330)후득지(後得智)와 그것에 이끌려진 멸진정을 말한다.
  331. 331)무루의 묘관찰지(妙觀察智)이다.
  332. 332)세제일법(世第一法)을 가리킨다.
  333. 333)욕계와 색계 초선천(初禪天)이다.
  334. 334)욕계의 일지(一地)를 말한다.
  335. 335)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336. 336)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337. 337)성소작지(成所作智)는 오직 불과(佛果)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338. 338)어째서 성소작지(成所作智)는 오직 불과(佛果)에서만 일어나는가 하면, 그 5식의 의지처인 5근(根)은 반드시 유루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유루인가 하면, 이것은 이숙식의 상분에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339. 339)무루의 감각기관을 가려낸다[簡].
  340. 340)유루의 제8식을 가려낸다. 이것은 공통된 것이기 때문에 무루식의 의지처도 되므로 제외한다.
  341. 341)등무간연(等無間緣)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낸다. 등무간연의 감각기관은 이전 찰나와 이후 찰나에 생겨나므로 유루에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342. 342)제7식을 가려낸다. 제7식도 제6식의 의지처[所依]가 되기 때문이다.
  343. 343)무루의 밝은 식[明識]과 유루의 어두운 감각기관[昧根]을 말한다.
  344. 344)가유(假有)와 실유(實有)로서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을 말하며, 변계소집성을 가려낸다.
  345. 345)사려된 것[所慮]이란 곧 소연(所緣)을 말한다.
  346. 346)의탁된 것[所託]이란 곧 연(緣)을 가리킨다.
  347. 347)소소연연(疎所緣緣)은 능연의 법에 혹은 있기도 하고 혹은 없기도 한다. 이것은 마음 밖의 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실아(實我)를 집착하는 것 등은 본질이 없지만, 그 법에서 떠나서 마음이 역시 일어나는 것과 같다.
  348. 348)다음에 8식(識)에 있어서 친소연연과 소소연연의 유무(有無)를 판별한다. 먼저 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349. 349)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350. 350)호법의 정의이다.
  351. 351)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논파한다.
  352. 352)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논파한다.
  353. 353)일체법 중에서 작용이 가장 뛰어난 스물두 가지 법을 선택하여 22근(根)이라고 이름한다. 여기서 근(根)은 최승(最勝)ㆍ자재ㆍ증상(增上)의 뜻으로서, 작용이 우수한 것을 말한다. 이에 6근(인식기관)ㆍ남근(男根)ㆍ여근(女根)ㆍ명근(命根)ㆍ5수근(受根)ㆍ5선근(善根)ㆍ3무루근(無漏根)이 있다.
  354. 354)세 가지 무루근[三無漏根:未知當知根ㆍ已知根ㆍ具知根] 중의 하나이다. 견도위(見道位)에서 일어나는 의(意)ㆍ낙(樂)ㆍ희(喜)ㆍ사(捨)ㆍ신(信)ㆍ근(勤)ㆍ염(念)ㆍ정(定)ㆍ혜(慧)의 아홉 가지 근(根)을 말한다. 16심(心) 중에서 앞의 15심은 견도에, 제16심은 수도(修道)에 포함된다. 견도위의 수행자는 일찍이 알지 못하던 4성제(聖諦)의 진리를 다음 생각인 제16심에서 온전하게 아는 위치에 있으므로, 이 지위에 있는 자가 가진 9근을 이렇게 이름한다.
  355. 355)여섯 가지 현관(現觀) 중에서 신현관(信現觀)을 말한다.
  356. 356)네 가지 선근(善根), 즉 난(煖)ㆍ정(頂)ㆍ인(忍)ㆍ세제일법(世第一法)이다.
  357. 357)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을 가리킨다.
  358. 358)『유가사지론』 제57권(『고려대장경』 15, p.1025中:『대정장』 30, p.618中)에 나온다.
  359. 359)일심진견도(一心眞見道)를 말한다.
  360. 360)상견도(相見道)이다.
  361. 361)보살의 3근(根)이란, 10지(地) 이전의 승해행지(勝解行地:十住ㆍ十行ㆍ十廻向)에서 제1근(根)을 건립하고, 10지에서 제2근을, 불지(佛地)에서 제3근을 건립한다. 이 의혹을 풀어 주기 위해서 보살의 견도에서도 역시 이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이 있지만, 오직 승해행지만을 말한 것은, 견도 중에서는 시기를 포착한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362. 362)믿음심소의 근[信根]ㆍ정진 심소의 근[勤根]ㆍ기억심소의 근[念根]ㆍ집중심소의 근[定根]ㆍ혜심소의 근[慧根]ㆍ의근[意根]ㆍ희수의 근[喜受根]ㆍ낙수의 근[樂受根]ㆍ사수의 근[捨受根]이다.
  363. 363)이지근(已知根)은 세 가지 무루근 중의 하나이다. 수도(修道)에서 일어나는 의(意)ㆍ낙수(樂受)ㆍ희수(喜受)ㆍ사수(捨受)ㆍ신(信)ㆍ근(勤)ㆍ염(念)ㆍ정(定)ㆍ혜(慧)의 아홉 가지 근(根)을 말한다. 이것은 이미 지혜로써 미(迷)ㆍ오(悟)ㆍ인(因)ㆍ과(果)의 도리를 다 아는 것이다.
  364. 364)이미 4성제의 도리를 아는 지위의 근[已知根]의 자체[體]를 밝힌다.
  365. 365)구지근(具知根)은 세 가지 무루근(無漏根) 중의 하나로서 아라한의 무루지(無漏智)를 말한다. 닦을 것을 모두 닦고, 끊을 번뇌도 이미 끊어 다시는 닦을 것이 없다고 아는 지혜이다.
  366. 366)다음에 갖춘 것을 아는 지위의 근[具知根]의 자체를 밝힌다.
  367. 367)『유가사지론』 제57권(『고려대장경』 15, p.1019上中:『대정장』 30, p.614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