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선납식 ⑨ 【論】 다섯 가지 보특가라(補特伽羅)54)가 있으니, 수신행(隨信行)ㆍ수법행(隨法行)ㆍ신승해(信勝解)ㆍ견지(見至)ㆍ신증(身證)이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문】무엇 때문에 존자는 이 결온(結蘊) 중에서 다섯 가지 보특가라에 의거하여 논을 짓고 뒤의 지온(智蘊)55)과 정온(定蘊) 중에서는 이 다섯 가지에 혜해탈(慧解脫)과 구해탈(俱解脫)을 더하여 일곱 가지 보특가라에 의거하여 논을 짓는가?
【답】 이것은 논을 짓는 이의 뜻이 그러하기 때문이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또 이 결온 중에서는 결(結)이 있는 이에 의거하여 논을 짓기 때문에 뒤의 둘을 말하지 않지만 지온ㆍ정온 중에서는 지(智)ㆍ정(定)이 있는 이에 의거하여 논을 짓기 때문에 결이 있는 이나 결이 없는 이를 모두 말해야 한다. 또 이 결온 중에서는 번뇌가 있는 이에 의거하여 논하기 때문에 뒤의 둘을 말하지 않지만 지온ㆍ정온 중에서는 지ㆍ정이 있는 이에 의거하여 논을 짓기 때문에 번뇌가 있는 이나 번뇌가 없는 이를 모두 말해야 한다. 또 이 결온 중에서는 보특가라로 장(章)을 삼고 번뇌로 문을 삼기 때문에 뒤의 둘을 말하지 않지만 지온ㆍ정온 중에서는 보특가로 장을 삼고 지ㆍ정으로 문(門)을 삼기 때문에 역시 뒤의 둘을 말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여기와 거기에서 다섯 또는 일곱 가지 보특가라에 의거하여 논을 짓는 것이다. 어떤 이를 수신행(隨信行)의 보특가라라 하는가? 본래의 품성은 믿음이 많고 사랑이 많고 생각이 많고 즐거움이 많고 따르는 것[隨順]이 많고 뛰어난 이해[勝解]가 많지만 생각하고 헤아리고 관찰하고 간택하기는 좋아하지 않는 어떤 무리가 있다고 하자. 그는 자신의 품성이 믿음 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어느 때에 부처님 혹은 부처님의 제자가 그를 위해 법요(法要)를 들려주며 가르쳐 주고 가르쳐 경계하며 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무아(無我)의 뜻을 널리 천명하면 그는 듣고서 ‘나를 위하여 말씀하신 무상ㆍ고ㆍ공ㆍ무아의 뜻은 매우 장하시다. 나로 하여금 이와 같은 관행(觀行)을 닦게 하고자 하시니 나는 마땅히 뒤바뀜 없이 부지런히 힘쓰고 닦고 배워야겠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부지런히 무상ㆍ고ㆍ공ㆍ무아 등의 관(觀)을 닦고 배워서 깨끗하게 한 뒤에는 점차로 세제일법(世才一法)을 끌어 일으키며 다음에는 다시56) 고법지인(苦法智忍)을 이끌어 내어 이로부터 견도(見道)의 15찰나(刹那)를 모두 다 수신행(隨信行)이라 한다. 이 수신행보특가라는 예류향(預流向)이기도 하고 일래향(一來向)ㆍ불환향(不還向)이기도 하다. 만일 구박(具縛)이거나 혹은 5품의 결을 끊고 정성이생에 들어간 이면 그는 견도 15심(心) 동안에 예류향이라 하고, 6품을 끊거나 8품의 결을 끊고 정성이생에 들어간 이면 그는 견도 15심 동안에 일래향이라 하며, 욕염(欲染)을 여의었거나 무소유처의 염을 여의고 정성이생에 들어간 이면 그는 견도 15심 동안에 불환향이라고 한다. 어떤 이를 수법행(隨法行)의 보특가라라 하는가? 본래의 품성은 생각이 많고 헤아림이 많고 관찰이 많고 간택이 많지만 믿음과 사랑과 생각과 즐거움과 따르는 것과 뛰어난 이해는 좋아하지 않는 무리가 있다고 하자. 그는 자신의 품성이 생각 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어느 때에 부처님 혹은 부처님의 제자가 그를 위해 법요를 들려주고 가르쳐 주고 가르쳐 경계하며 그를 위하여 무상ㆍ고ㆍ공ㆍ무아 등의 뜻을 널리 천명하면 그는 ‘나를 위하여 말씀하신 무상ㆍ고ㆍ공ㆍ무아 등의 뜻이 진실한 것인지 허망한 것인지를 관찰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세히 관찰한 뒤에 뒤바뀜이 없음을 알고 다시 ‘매우 장하시구나. 나로 하여금 이와 같은 관행을 닦게 하고자 하시니 나는 당연히 뒤바뀜 없이 부지런히 힘쓰고 닦아 배워야겠다’라고 생각한다. 그 밖의 자세한 설명은 수신행과 같다. 어떤 이를 신승해(信勝解)의 보특가라라 하는가? 수신행이 도류지(道類智)를 얻고서 수신행을 버리고 신승해를 얻는다. 【문】그는 그러한 때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는가? 【답】 이름[名]을 버리고 이름을 얻으며 도(道)를 버리고 도를 얻는다. 이름을 버린다 함은 수신행의 이름을 버리는 것이요, 이름을 얻는다 함은 신승해의 이름을 얻는 것이며, 도를 버린다 함은 견도(見道)를 버리는 것이요, 도를 얻는다 함은 수도(修道)를 얻는 것이다.
이 신승해 보특가라는 예류과(預流果)이기도 하고 일래향(一來向)ㆍ일래과(一來果)이기도 하고, 불환향(不還向)ㆍ불환과(不還果)이기도 하며, 아라한향(阿羅漢向)이기도 하다. 예류과에 머무르면서 아직 승진(勝進)이 오지 않으면 예류과라 하고, 이로부터 승진하면 일래향이라 하며, 일래과에 머무르면서 아직 승진이 오지 않으면 일래과라 하고, 이로부터 승진하면 불환향이라 하며, 불환과에 머무르면서 아직 승진이 오지 않으면 불환과라 하고, 이로부터 승진하면 아라한향이라고 한다. 어떤 이를 견지(見至)의 보특가라라 하는가? 수법행이 도류지를 얻고서 수법행을 버리고 견지를 얻는 것이다. 【문】그는 그럴 때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는가? 【답】 이름을 버리고 이름을 얻으며 도를 버리고 도를 얻는다. 이름을 버린다 함은 수법행의 이름을 버리는 것이요, 이름을 얻는다 함은 견지의 이름을 얻는 것이며, 도를 버린다 함은 견도를 버리는 것이요, 도를 얻는다 함은 수도를 얻는 것이다. 이 견지의 보특가라는 예류과이기도 하고 나아가 아라한향이기도 하다. 신승해처럼 그 모양을 해설해야 한다. 어떤 이를 신증(身證)의 보특가라라 하는가? 신승해나 견지로서 몸으로써 8해탈(解脫)57)을 빠짐없이 증득하면서도 아직 지혜로써 모든 번뇌를 다하지 못한 이면 그는 신승해나 견지를 버리고 신증을 얻는 자라 한다. 【문】그는 그럴 때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는가? 【답】 외국(外國)의 여러 논사들은 “이름을 버리고 이름을 얻으며 도를 버리고 도를 얻는다. 이름을 버린다 함은 신승해나 견지의 이름을 버리는 것이요, 이름을 얻는다 함은 신증의 이름을 얻는 것이며, 도를 버린다 함은 신승해나 견지의 도를 버리는 것이요, 도를 얻는다 함은 신증의 도를 얻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가습미라국(迦濕彌羅國)의 여러 논사들은 “여기에서는 이름을 버리고 이름을 얻는 것이지 도를 버리고 도를 얻는 것은 아니다. 신승해 등은 멸정(滅定)을 얻을 때에는 무루의 도[無漏道]를 버리지도 않고 얻지도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이를 혜해탈(慧解脫)의 보특가라라 하는가? 신승해나 견지로서 지혜로만 모든 번뇌를 끊었을 뿐이요, 아직 몸으로 8해탈을 빠짐없이 증득하지 못한 이를 가리켜 신승해나 견지를 버리고 혜해탈을 얻은 이라 한다. 【문】그는 그럴 때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는가? 【답】 이름을 버리고 이름을 얻으며 도를 버리고 도를 얻는다. 이름을 버린다 함은 신승해나 견지의 이름을 버리는 것이요, 이름을 얻는다 함은 혜해탈의 이름을 얻는 것이며, 도를 버린다 함은 수도(修道)를 버리는 것이요, 도를 얻는다 함은 무학도(無學道)를 얻는 것이다. 어떤 이를 구해탈(俱解脫)의 보특가라라 하는가? 혜해탈이나 견지나 혹은 신증으로 몸으로써 8해탈을 빠짐없이 증득하고, 또한 지혜로 모든 번뇌를 다한 이면 그를 혜해탈이나 견지 혹은 신증을 버리고 구해탈을 얻는 이라 한다. 만일 먼저 아라한과를 얻고 뒤에 멸정을 얻는 이면 그는 혜해탈을 버리고 구해탈을 얻는 자이므로 다만 이름을 버리고 이름을 얻을 뿐이요 도를 버리고 도를 얻는 것은 아니니 신승해 등을 버리고 신증을 얻는 데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일 먼저 멸정을 얻고 뒤에 아라한과를 얻는 이면 그는 신증을 버리고 구해탈을 얻는 자이므로 이름을 버리고 이름을 얻으며 도를 버리고 도를 얻는 것이다. 이름을 버린다 함은 신증의 이름을 버리는 것이요, 이름을 얻는다 함은 구해탈의 이름을 얻는 것이며, 도를 버린다 함은 수도를 버리는 것이요, 도를 얻는다 함은 무학도를 얻는 것이다. 만일 무상정등보리를 증득한 보살이라면 그는 진지(盡智)일 때에 견지를 버리고 구해탈을 얻는 것이므로 이름을 버리고 이름을 얻으며 도를 버리고 도를 얻는다. 이름을 버린다 함은 견지의 이름을 버리는 것이니 보살의 수위(修位)를 견지라 이름하기 때문이요, 이름을 얻는다 함은 구해탈의 이름을 얻는 것이니 모든 부처님은 모두 구해탈이기 때문이요, 도를 버린다 함은 수도를 버리는 것이요, 도를 얻는다 함은 무학도를 얻는 것이다. 서방의 논사는 “보살의 배우는 지위[學位]는 먼저 멸정을 일으키고 뒤에 보리를 얻는 것이므로 그는 신증을 버리고 구해탈을 얻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가습미라국의 여러 논사들은 “34념(念)58)에서 보리를 얻기 때문이고 배우는 지위에서는 아직 멸정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진지(盡智)일 때에 반드시 견지를 버리고 구해탈을 얻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반드시 근기가 둔한 이로서 아직 멸정을 얻지 못했다면 진지를 얻을 때에 구해탈을 이룸이 없기 때문에 신승해를 버리고 구해탈을 얻는 이가 없다. 【문】무엇 때문에 구해탈이라 하는가? 【답】 장애[障]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번뇌장(煩惱障)59)이요, 둘째는 해탈장(解脫障)이다. 두 장애에서 마음이 해탈하기 때문에 구해탈이라고 한다. 【문】만일 먼저 아라한과를 얻고 뒤에 멸정을 얻는 이면 그는 해탈장에서 어떠한 마음이 해탈하는가? 유루인가, 무루인가? 【답】 어떤 이는 “유루의 마음이다. 무루의 마음은 진지를 얻을 때에 이미 해탈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評】 이렇게 말해야 한다.
“유루ㆍ무루의 마음이 다 같이 해탈하게 된다. 왜냐하면 해탈에는 두 가지가 있기 때문이니, 첫째는 세간에 행하는 해탈이요, 둘째는 몸에 있는 해탈이다. 그가 아직 멸정을 얻지 못했을 때에 들고 나는 선정의 마음은 세간에 행할 수 없고 세간에 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몸에도 있을 수 없지만 만일 멸정을 얻고 나서 들고 나는 선정의 마음은 세간에 행할 수 있고 몸에 있기 때문에 해탈이라 한다. 이 때문에 유루ㆍ무루의 두 가지 마음이 다 같이 해탈하게 된다.” 구해탈이 뜻에 의거하여 이름을 붙인 것과 같이 앞의 다섯 가지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뜻에 의거해야 한다. 【문】무엇 때문에 수신행(隨信行)이라 하는가? 【답】 그는 믿음[信]에 의거하고 믿음에 따라서[隨] 행(行)하기 때문에 수신행이라고 한다. 유루의 믿음에 의거하고 무루의 믿음에 따라 행하며, 속박이 있는 믿음에 의거하고 해탈하는 믿음에 따라 행하며, 계박이 있는 믿음에 의거하고 계박을 여읜 믿음에 따라 행하는 것이니 곧 믿음을 우선으로 삼아 성도(聖道)에 들어가게 된다. 이와 같은 종류의 보특가라는 본래부터 믿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만일 다른 이가 “그대는 농사에 힘쓰며 살아가야 한다”라고 권하면 그는 ‘나는 농사를 지어야 하는가, 짓지 않아야 하는가? 지을 수가 있는가, 지을 수가 없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가, 마땅하지 않은 일인가?’하고 생각하거나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다른 이의 말을 듣는 즉시 곧 그렇게 한다. 혹은 다른 이가 “그대는 장사를 해야 한다”거나 “왕을 섬겨야 한다”거나 “서(書)ㆍ산(算)ㆍ인(印) 등의 갖가지 기능을 익히고 배워서 살아가야 한다”고 하면 역시 생각하거나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말을 듣자마자 곧 그렇게 한다. 혹은 다른 이가 “그대는 출가해야 한다”라고 권하면 역시 ‘출가해야 하는가, 출가하지 않아야 하는가? 출가할 수 있는가, 출가할 수 없는가? 계율을 지닐 수 있는가, 계율을 지닐 수 없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가, 마땅하지 않은 일인가?’하고 생각하거나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다른 이의 권유를 듣자마자 곧 출가한다. 출가하고 난 뒤에 만일 다른 이가 “그대는 외우고 익혀야 한다”고 권하면 그는 ‘외우고 익혀야 하는가, 외우고 익히지 않아야 하는가? 외우고 익힐 수 있는가, 외우고 익힐 수 없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가, 마땅하지 않은 일인가? 소달람(素怛纜)을 외우고 익혀야 하는가, 비나야(毘奈耶)를 외우고 익혀야 하는가? 아비달마(阿毘達磨)를 외우고 익혀야 하는가?’하고 생각하거나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다른 이의 권유를 듣자마자 곧 그렇게 외우고 익힌다. 혹은 다른 이가 “승가의 일[僧事]을 경영하라”고 권하면 ‘나는 해야 하는가, 하지 않아야 하는가? 나는 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가, 마땅하지 않은 일인가?’하고 생각하거나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듣자마자 곧 그렇게 한다. 혹은 다른 이가 “아련야(阿練若)에 머무르라”고 권하면 ‘나는 머물러야 하는가, 머무르지 않아야 하는가? 나는 머무를 수 있는가, 머무를 수 없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가, 마땅하지 않은 일인가?’하고 생각하거나 살피지도 않고 듣자마자 곧 그렇게 머무른다. 그는 그렇게 하면서 점차로 성도의 가행을 닦아 차츰차츰 세제일법을 끌어 일으키고 곧장 고법지인(苦法智忍)을 이끌어 내나니 이로부터 견도의 15찰나 동안을 수신행이라고 한다. 【문】무엇 때문에 수법행(隨法行)이라 하는가? 【답】 그는 법(法)에 의거하고 법에 따라서[隨] 행(行)하기 때문에 수법행이라 한다. 유루법에 의거하고 무루법에 따라 행하며, 속박이 있는 법에 의거하고 해탈하는 법에 따라 행하며, 계박이 있는 법에 의거하고 계박을 여읜 법에 따라 행하는 것이니 곧 지혜[慧]를 우선으로 삼아 성도에 들어가게 된다. 이와 같은 종류의 보특가라는 본래부터 성품에 지혜가 많기 때문에 만일 다른 이가 “그대는 농사에 힘쓰며 살아가야 한다”라고 권하면 그는 곧 ‘나는 농사를 지어야 하는가, 짓지 않아야 하는가? 지을 수가 있는가, 지을 수가 없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가, 마땅하지 않은 일인가?’라고 자세히 생각하고 관찰한 그런 뒤에야 그 일을 한다. 그 밖의 나머지 자세한 것은 앞의 수신행에서의 설명과 같다. 그는 점차로 성도의 가행을 닦아 차츰차츰 세제일법을 끌어 일으키고 곧장 고법지인을 이끌어 내나니 이로부터 견도의 15찰나 동안을 수법행이라 한다. 【문】수신행자에게 그 만큼의 믿음이 있는 것처럼 역시 그 만큼의 지혜가 있으며 수법행자에게도 그 만큼의 지혜가 있는 것처럼 역시 그 만큼의 믿음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하나는 수신행이라 하고 하나는 수법행이라고 하는가? 【답】 오직 다른 사람의 말을 믿어서 차츰 수행하여 성도에 드는 이가 있는가 하면 혹은 스스로 생각하고 살펴서 차츰 수행하여 성도에 드는 이가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믿어서 차츰 성도에 들어가는 이를 수신행이라 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살펴서 차츰 수행하여 성도에 들어가는 이를 수법행이라 한다. 또 혹은 인(因)의 힘ㆍ가행의 힘ㆍ방일하지 않는 힘이 모두 다 광대하지 않되 성도에 들어가는 이도 있고, 혹은 세 가지의 힘이 모두 다 광대해져 성도에 드는 이가 있기도 하다. 세 가지 힘이 모두 다 광대하지 않되 성도에 드는 이를 수신행이라 하고, 세 가지 힘이 모두 다 광대해져 성도에 드는 이를 수법행이라고 한다. 또 지(止)60)의 행으로 성도에 들기도 하고 혹은 관(觀)의 행으로 성도에 들기도 한다. 지의 행으로 말미암아 성도에 드는 이를 수신행이라 하고, 관의 행으로 말미암아 성도에 드는 이를 수법행이라 한다. 또 사마타(奢摩他)를 좋아하기도 하고 혹은 비발사나(毘鉢舍那)를 좋아하기도 한다. 사마타를 좋아하는 이를 수신행이라 하고, 비발사나를 좋아하는 이를 수법행이라 한다. 좋아하는 것과 같이 기뻐하고[憙] 바라는[欲] 것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또 지(止)를 우선으로 삼아 성도에 들기도 하고 혹은 관(觀)을 우선으로 삼아 성도에 들기도 한다. 지를 우선으로 삼아 성도에 드는 이를 수신행이라 하고 관을 우선으로 삼아 성도에 드는 이를 수법행이라 한다.
또 어떤 이는 사마타를 더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비발사나를 더하기도 한다. 사마타를 더하는 이를 수신행이라 하고 비발사나를 더하는 이를 수법행이라 한다. 또 지(止)로 말미암아 마음을 훈수(熏修)하고 관(觀)에 의지하여 해탈하게 되거나, 혹은 관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훈수하고 지에 의지하여 해탈하기도 한다. 지로 말미암아 마음을 훈수하고 관에 의지하여 해탈하게 되는 이를 수신행이라 하고, 관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훈수하고 지에 의지하여 해탈하게 되는 이를 수법행이라 한다. 또 어떤 이는 근기가 무디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근기가 예리하기도 하다. 근기가 무딘 이를 수신행이라 하고 근기가 예리한 이를 수법행이라 한다. 또 설지(說智)가 있기도 하고 혹은 개지(開智)가 있기도 하다. 설지가 있는 이를 수신행이라 하고 개지가 있는 이를 수법행이라 한다. 또 연(緣)의 힘으로 성도에 들기도 하고 혹은 인(因)의 힘으로 성도에 들기도 한다. 연의 힘으로 성도에 드는 이를 수신행이라 하고, 인의 힘으로 성도에 드는 이를 수법행이라 한다. 또 증상심(增上心)의 사마타를 얻었지만 증상혜(增上慧)의 비발사나는 얻지 못하기도 하며, 혹은 증상혜의 비발사나를 얻었지만 증상심의 사마타는 얻지 못하기도 하다. 전자를 수신행이라 하고 후자를 수법행이라 한다. 또 세존께서 “두 가지 인과 두 가지 연으로 바른 견해를 내는 것이니, 첫째는 밖으로는 다른 이의 법음(法音)을 듣고, 둘째는 안으로는 이치대로 뜻을 짓는 것[如理作意]이다”라고 말씀하셨으니, 밖으로 다른 이의 법음을 듣는 것이 많은 이를 수신행이라 하고 안으로 이치대로 뜻을 짓는 것이 많은 이를 수법행이라 한다. 또 계경에서 “사람에게 네 가지 법이 있으면 짓는 것이 많다. 첫째는 착한 사람[善士]을 가까이 사귀는 것이요, 둘째는 바른 법을 듣는 것이며, 셋째는 이치대로 뜻을 짓는 것이요, 넷째는 법수법행(法隨法行)이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착한 사람을 가까이 사귀고 바른 법을 듣는 것이 많은 이를 수신행이라 하고 이치대로 뜻을 짓고 법수법행이 많은 이를 수법행이라 한다. 또 어떤 이는 탐욕이 없는 선근에 많이 머무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어리석음이 없는 선근에 많이 머무르기도 한다. 탐욕이 없는 선근에 많이 머무르는 이를 수신행이라 하고 어리석음이 없는 선근에 많이 머무르는 이를 수법행이라 한다. 또 어떤 이는 밖으로 유정을 믿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안으로 바른 법을 생각하기도 한다. 밖으로 유정을 믿는 이를 수신행이라 하고 안으로 바른 법을 생각하는 이를 수법행이라 한다. 【문】무엇 때문에 신승해(信勝解)라 하는가? 【답】 그는 믿음[信]에 의하여 믿음에 대한 훌륭한 이해[勝解]를 얻기 때문에 신승해라 한다. 견도에 속한 믿음에 의하여 수도(修道)에 속한 믿음의 승해를 얻고 향도(向道)에 속한 믿음에 의하여 과도(果道)에 속한 믿음의 승해를 얻는 것이다. 또 그 보특가라는 믿음을 우선으로 삼음으로써 마음이 3결(結)을 벗어나기 때문에 신승해라 한다. 【문】무엇 때문에 견지(見至)라 하는가? 【답】 그는 견(見)에 의하여 견에 이르기 때문에 견지라고 한다. 견도에 속한 견에 의하여 수도에 속한 견에 이르게 되고 향도에 속한 견에 의하여 과도에 속한 견에 이르게 된다. 또 그 보특가라는 견을 우선으로 삼음으로써 마음이 3결을 벗어나기 때문에 견지라 한다. 【문】신승해도 신지(信至)라 해야 하고 견지도 견승해(見勝解)라 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하나는 신승해라고 하고 하나는 견지라고 하는가? 【답】 신승해를 신승해라 하는 것과 같이 견지도 견승해라고 해야 하며 견지를 견지라고 하는 것과 같이 신승해도 신지라고 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다른 모양[異相]과 다른 문[異門]으로 법을 말하여 모든 지혜로운 자들이 좋아하며 받아 지니게 하여 서로 뒤섞이거나 어지럽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문】무엇 때문에 신증(身證)이라 하는가? 【답】 그는 몸으로 8해탈(解脫)을 증득했지만 아직 지혜로써 모든 번뇌를 다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신증이라고 한다. 【문】무엇 때문에 혜해탈(慧解脫)이라 하는가? 【답】 그는 지혜로써 모든 번뇌를 다했지만 아직 몸으로써 8해탈을 증득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혜해탈이라고 한다. 구해탈(俱解脫)의 이름은 앞에서 해석한 것과 같다. 【문】견도에서 이둔(利鈍)의 구별에 의거하여 수신행과 수법행의 두 가지 보특가라를 세우는 것과 같이 수도에서도 이둔의 구별에 의거하여 신승해와 견지의 두 가지 보특가라를 세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무학도(無學道)에서는 이둔의 구별에 의거하여 두 가지 보특가라를 세우지 않고 통틀어 하나로 말하여 혜해탈이라 하거나 구해탈이라고 하는가? 【답】 욕계와 나아가 무소유처는 유루의 도를 단대치(斷對治)로 삼거나 무루의 도를 단대치로 삼기도 하지만 비상비비상처라면 오직 무루의 도만을 단대치로 삼기 때문에 통틀어 하나의 보특가라를 세울 뿐이다. 또 앞 지위[前位]에서는 탐욕을 많이 행하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지만 비상비비상처의 염(染)을 여의는 때의 몸은 똑같이 탐욕이 없기 때문에 통틀어 하나의 보특가라만을 세운다. 또 앞 지위에서는 어리석음을 많이 행하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지만 비상비비상처의 염을 여의는 때의 몸은 똑같이 어리석음이 없기 때문에 통틀어 하나의 보특가라만을 세운다. 또 앞 지위에서는 아만을 많이 행하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지만 비상비비상처의 염을 여의는 때의 몸은 똑같이 아만이 없기 때문에 통틀어 하나의 보특가라만을 세운다. 또 무학위의 해탈은 평등하기 때문에 통틀어 하나의 보특가라만을 세운다. 계경에서 “여래의 해탈과 아라한 필추의 해탈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또 무학위에서는 삼계의 번뇌의 무거운 상투를 똑같이 끊고 유정의 번뇌의 머리를 똑같이 자르며 삼계의 후유(後有)의 관문(關門)과 나루[津]를 똑같이 넘고 삼계의 후유의 애욕(愛慾)을 똑같이 버리기 때문에 통틀어 하나의 보특가라만을 세운다. 혹 어떤 이는 “무학위에서도 두 가지 보특가라가 있으니 시해탈(時解脫)과 불시해탈(不時解脫)61)이다”라고 말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오직 둔한 이와 예리한 이의 두 가지 보특가라만을 세워야 하고 혹은 견도(見道)ㆍ수도(修道)ㆍ무학위에 각각 두 가지, 즉 수신행 내지 제6불시해탈의 여섯 가지 보특가라만을 세워야 하는데 어찌하여 일곱 가지 보특가라를 세우는 것인가? 【답】 다섯 가지 연(緣)으로 말미암아 일곱 가지를 세운다. 첫째는 가행으로 말미암아서요, 둘째는 근(根)으로 말미암아서이며, 셋째는 정(定)으로 말미암아서요, 넷째는 해탈로 말미암아서며, 다섯째는 정과 해탈로 말미암아서이다.62) 가행으로 말미암아서라 함은 수신행과 수법행을 말하고, 근으로 말미암아서라 함은 신승해와 견지를 말하며, 정으로 말미암아서라 함은 신증을 말하고 해탈로 말미암아서라 함은 혜해탈을 말하며, 정과 해탈로 말미암아서라 함은 구해탈을 말한다. 수신행(隨信行)은 혹은 1이라고 말해야 하니, 일곱 가지에서 수신행을 이름한다. 혹은 3이라고 말해야 하니, 근(根)을 말미암은 하근ㆍ중근ㆍ상근을 이른다. 혹은 5라고 말해야 하니, 종성(種性)을 말미암은 퇴법(退法)과 나아가 감달(堪達)을 이른다.
혹은 15라고 말해야 하니, 도(道)를 말미암은 고법지인(苦法智忍)에서 도류지인(道類智忍)까지의 지위를 이른다. 혹은 73이라고 말해야 하니, 이염(離染)을 말미암은 욕계의 구박(具縛)63)과 1품과 나아가 9품의 염을 여의는 것을 10으로 삼고, 초정려의 1품과 나아가 9품의 염을 여의는 것을 9로 삼고, 욕계의 제10은 곧 초정려의 구박자이기 때문에 따로 말하지 않는다. 뒤의 종류에 있어서도 그러한 줄 알라. 나아가 무소유처의 1품에서 9품까지의 염을 여의는 것을 9로 삼으면 합하여 73이 된다. 혹은 657이라고 말해야 하니, 소의(所依)를 말미암은 삼주(三洲)와 육욕천(六欲天)의 소의에 각각 앞에서 말한 73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근(根)ㆍ종성(種性)ㆍ도(道)ㆍ이염(離染)ㆍ소의가 둘씩 합하고, 셋씩 합하고, 넷씩 합하고, 다섯씩 합하면 그 수는 더욱 더 커질 것이니 그 이치대로 생각해야 한다. 만일 몸에 있는 것과 찰나로써 분석한다면 마땅히 한량이 없는 것인 줄 알아야 한다. 수신행이라 함은 이 중에서는 통틀어 하나의 수신행을 말하는 것이다. 수신행의 수(數)에서와 같이 수법행(隨法行)에 있어서도 그러한 것이니 근ㆍ도ㆍ이염ㆍ소의는 평등하기 때문이요 오직 종성에서만 구별된다. 수법행은 오직 부동종성(不動種性)에만 속하기 때문이다.
신승해(信勝解)는 혹은 1이라고 말해야 하니, 일곱 가지에서 신승해를 말한다. 또는 3이라고 말해야 하니, 근(根)으로 말미암아서이다. 혹은 5라고 말해야 하니, 종성(種性)으로 말미암아서이다. 혹은 81이라고 말해야 하니, 이염(離染)으로 말미암아서이다. 곧 욕계의 구박과 1품에서 9품까지 여의는 것을 10으로 삼고, 초정려와 나아가 무소유처의 각각 1품에서 9품까지의 염을 여의면 63이 되며 비상비비상처의 1품에서 8품까지의 염을 여의는 것을 8로 삼으면 합하여 81이 된다. 어떤 이는 “염을 여의기 때문에 82이라고 말해야 한다. 앞에서 말한 81에 유정(有情)에서 제9품의 염을 여의는 무간도(無間道)의 때를 더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혹은 405라고 해야 하니 소의(所依)로 말미암아서이다. 곧 욕계의 소의64)에 81이 있고, 초정려의 소의에 72가 있으며, 제2 정려의 소의에 63이 있고, 제3 정려의 소의에 54가 있으며, 제4 정려의 소의에 45가 있고, 공무변처의 소의에 36이 있으며, 식무변처의 소의에 27이 있으며, 무소유처의 소의에 18이 있고, 비상비비상처의 소의에 9가 있으니 이를테면 그것의 구박(具縛)과 1품에서 8품까지의 염을 여의는 것을 9로 삼으며 합하면 405가 된다. 어떤 이는 “여기에서는 414라고 말해야 한다. 욕계의 소의에는 82가 있고, 초정려의 소의에는 73이 있으며, 제2 정려의 소의에는 64가 있고, 제3 정려의 소의에는 55가 있으며, 제4 정려의 소의에는 46이 있고, 공무변처의 소의에는 37이 있으며, 식무변처의 소의에는 28이 있고, 무소유처의 소의에는 19가 있으며, 비상비비상처의 소의에는 10이 있으니 이를테면 그것의 구박과 1품에서 8품까지의 염을 여의는 것을 9로 삼고 제9품을 여의는 무간도의 때를 그 제10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9지에 의거하여 소의를 분별하는 것이며 만일 29처(處)65)에 의거하여 소의를 분별한다면 그 수의 많고 적음은 그 이치대로 생각해야 한다. 근ㆍ종성ㆍ이염ㆍ소의의 둘ㆍ셋ㆍ넷으로써 합하면 그 수는 다시 더욱 광대해지며 만일 몸에 있는 것과 찰나로써 분석하면 한량이 없다고 말해야 한다. 신승해라 함은 이 중에서는 통틀어 하나의 신승해를 말하는 것이다. 신승해에서와 같이 견지(見至)에 있어서도 그러한 것이니 근ㆍ이염ㆍ소의가 평등하기 때문이다. 오직 종성에서만 구별되니 모든 견지는 오직 부동종성에만 속하기 때문이다. 신증(身證)은 1이라고 말해야 하니 일곱 가지에서 신증을 이름한다. 혹은 3이라고 말해야 하니 근(根)으로 말미암아서이다. 혹은 6이라고 말해야 하니 종성, 즉 퇴법(退法)과 나아가 부동법(不動法)의 여섯 가지 종성으로 말미암아서이다. 혹은 9라고 말해야 하니 이염(離染)으로 말미암아서이다. 곧 비상비비상처의 구박과 1품 내지 8품까지의 염을 여의는 것을 9로 삼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여기에서는 10이라고 말해야 한다. 앞의 9에 제9를 여의는 무간도의 때를 더하면 그것은 제10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혹은 2766)이라고 말해야 하니 소의(所依)로 말미암아서이다. 곧 욕계의 소의에 9가 있고 색계의 소의에 9가 있으며 무색계의 소의에 9가 있다. 여기에서는 오직 비상비비상처만이요 세 가지 무색[三無色]은 아니니 멸정(滅定)을 얻는 이는 거기에는 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여기에서는 30이라고 말해야 한다. 삼계에 각각 제9의 무간도의 때를 더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삼계의 소의에 의거하여 분별한 것이며 만일 지(地)와 처(處)의 소의에 의거하여 분별하면 그 수의 많고 적음은 그 이치대로 생각해야 한다. 근ㆍ종성ㆍ이염ㆍ소의의 둘ㆍ셋ㆍ넷으로써 합하면 그 수효는 다시 더욱 광대해진다. 만일 몸에 있는 것과 찰나로써 분석하면 그 수효는 한량이 없다.
신증이라 함은 여기에서는 통틀어 하나의 신증을 말하는 것이다. 혜해탈(慧解脫)은 1이라고 말해야 하니 일곱 가지에서 혜해탈을 이름한다. 혹은 3이라고 말해야 하니 근으로 말미암아서이다. 혹은 6이라고 말해야 하니 종성으로 말미암아서이다. 혹은 9라고 말해야 하니 소의로 말미암은 욕계와 나아가 비상비비상처의 소의이다. 이것은 9지(地)의 소의에 의거한 분별이며 만일 29처(處)에 의거하여 분별하면 29를 이룬다. 만일 근ㆍ종성ㆍ소의가 둘ㆍ셋으로 합하면 그 수는 이치대로 생각해야 하며 만일 몸에 있는 것과 찰나로써 분석하면 한량이 없다. 혜해탈이라 함은 여기에서는 통틀어 하나의 혜해탈을 말하는 것이다. 혜해탈의 수에서와 같이 구해탈(俱解脫)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차별이 있으니 그것의 소의이다. 구해탈은 아래의 3무색처(無色處)에는 있기 않기 때문이다.
【論】 이 다섯 가지 보특가라(補特伽羅)는 3결(結)과 나아가 98수면(隨眠)에 있어서 몇 가지를 성취(成就)하고 몇 가지를 성취하지 않는가?67)
여기에서 존자는 보특가라로써 장(章)을 삼고 번뇌로써 문(門)을 삼았기 때문에 이러한 문답을 하는 것이다.
【論】 수신행(隨信行)은 3결에 있어서 고류지(苦類智)가 아직 생기지 않았으면 모두 성취하며 고류지가 이미 생겼으면 둘은 성취하고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
둘은 성취한다고 함은 계금취(戒禁取)와 의(疑)를 말하는 것이니 그것은 삼계의 2부(部)와 4부(部)에 다 통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살가야견(薩迦耶見)을 말하는 것이니 그것은 오직 삼계의 견고(見苦)에서 끊는 것에만 통하기 때문이다.
【論】 3불선근(不善根)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欲染)을 여의지 못했으면 모두 성취하고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모두 성취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는 오직 욕계계(欲界繫)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욕염을 여읜 이면 그는 이생의 지위에서 먼저 3불선근을 이미 여의었기 때문이니 뒤에서는 이에 준하여 알아야 한다.
【論】 3루(漏)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모두 성취하고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둘은 성취하고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
둘은 성취한다고 함은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를 말하는 것이요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 함은 욕루(欲漏)를 말한다.
【論】 4폭류(暴流)ㆍ액(軛)ㆍ취(取)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모두 성취하고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셋은 성취하고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
셋은 성취한다고 함은 유(有)ㆍ견(見)ㆍ무명(無明)의 폭류와 액이요, 견(見)ㆍ계금(戒禁)ㆍ아어(我語)의 취이며,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욕(欲)의 폭류와 액과 취를 말한다.
【論】 4신계(身繫)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모두 성취하고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둘은 성취하고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
둘은 성취한다고 함은 계금취(戒禁取)와 차실집(此實執)의 신계이며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탐욕과 진에의 신계이다. 【論】 5개(蓋)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하고 도법지(道法智)가 아직 생기지 않았으면 모두 성취하며, 도법지가 이미 생겼으면 넷은 성취하고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모두 성취하지 않는다.
5개는 오직 욕계계이기 때문이다. 넷은 성취한다고 함은 앞의 4개를 말한다.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의개(疑蓋)를 말하니 도법지가 이미 생겼으면 그것은 이미 끊어졌기 때문이다.
【論】 5결(結)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모두 성취하고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둘은 성취하고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
둘은 성취한다고 함은 탐(貪)과 만(慢)의 결이니 삼계계(三界繫)에 통하기 때문이다.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진(瞋)과 질(嫉)과 간(慳)의 결이니 오직 욕계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論】 5순하분결(順下分結)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하고 고류지(苦類智)가 아직 생기지 않았으면 모두 성취하며 고류지가 이미 생겼으면 넷은 성취하고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
넷은 성취한다고 함은 맨 처음과 나중의 각각 둘씩68)이요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유신견(有身見)을 말한다.
【論】 이미 욕계의 염(染)을 여의었으나69) 고류지가 아직 생기지 않았으면 셋은 성취하고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
셋은 성취한다고 함은 뒤의 세 가지를 말하는 것이며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처음의 두 가지를 말한다.
【論】 고류지가 이미 생겼으면 둘은 성취하고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
둘은 성취한다70)고 함은 뒤의 두 가지를 말하며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처음의 세 가지를 말한다.
【論】 5순상분결(順上分結)에 있어서는 아직 색염(色染)을 여의지 못했으면 모두 성취하며 이미 색염을 여의었으면 넷은 성취하고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
넷은 성취한다고 함은 색탐(色貪)이 제외된 것이며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색탐을 가리킨다.
【論】 5견(見)에 있어서는 고류지가 아직 생기지 않았으면 모두 성취하며 고류지가 이미 생겼으면 셋은 성취하고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
셋은 성취한다고 함은 뒤의 세 가지를 말하는 것이며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처음의 두 가지이다.
【論】 6애신(愛身)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모두 성취하며 이미 욕염은 여의었으나 아직 범세(梵世)의 염을 여의지 못했으면71) 넷은 성취하고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
넷은 성취한다고 함은 처음과 나중의 각각 두 가지씩이며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코[鼻]와 혀[舌]의 접촉으로 생긴 애신(愛身)이다.
【論】 이미 범세의 염을 여의었으면 하나는 성취하고 다섯은 성취하지 않는다.
하나는 성취한다고 함은 제6의 것이며 다섯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앞의 다섯 가지이다.
【論】 7수면(隨眠)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모두 성취하며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다섯은 성취하고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
다섯은 성취한다고 함은 유탐(有貪) 등의 다섯 가지를 말하는 것이요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욕탐과 진에를 말한다.
【論】 9결(結)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모두 성취하며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여섯은 성취하고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
여섯은 성취한다고 함은 애(愛) 등의 여섯 가지이며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에(恚)와 질(嫉)과 간(慳)이다. 【論】 98수면(隨眠)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하고 고법지(苦法智)가 아직 생기지 않았으면 모두 성취한다. 구박자(具縛者)의 고법지인(苦法智忍)일 때 모든 수면은 성취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밖의 자세한 설명은 본론(本論)과 같다. 【문】무엇 때문에 도류지(道類智)가 이미 생긴 것은 말하지 않는가? 【답】 그것이 이미 생겼다면 수신행이 아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
【論】 수신행에서와 같이 수법행(隨法行)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이 둘은 지(地)와 도(道)와 이염(離染)과 소의(所依)가 모두 같으며 또한 선정[定]과 나는 곳[生處]에 있어서도 모두 같지 않음이 없다. 오직 근(根)만 차이가 있을 뿐이니 근기가 둔한 이를 수신행이라 하고 근기가 예리한 이를 수법행이라 하기 때문이다.
【論】 신승해(信勝解)는 3결(結)에 있어서 모두 성취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견도(見道)에서만 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論】 3불선근(不善根)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모두 성취하고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모두 성취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욕계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한 이라 함은 예류과ㆍ일래향ㆍ일래과ㆍ불환향이요, 이미 욕염을 여읜 이라고 함은 불환과와 아라한향이다. 그는 이생의 지위에서 이미 욕염을 여의기도 하고 혹은 성자의 지위에 이르러서야 욕염을 여의기도 한다. 뒤에서도 이에 준하여 알아야 한다.
【論】 3루(漏)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모두 성취하고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둘은 성취하고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
둘은 성취한다 함은 유루와 무명루이며, 하나는 성취지 않는다 함은 욕루이다.
【論】 4폭류(暴流)ㆍ4액(軛)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셋은 성취하고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
셋은 성취한다고 함은 욕(欲)과 유(有)와 무명(無明)의 폭류ㆍ액이며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견(見)의 폭류ㆍ액이다.
【論】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둘은 성취하고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
둘은 성취한다고 함은 유(有)와 무명(無明)의 폭류ㆍ액이요,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욕(欲)과 견(見)의 폭류ㆍ액이다.
【論】 4취(取)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둘은 성취하고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
둘은 성취한다고 함은 욕(欲)과 아어(我語)의 취이며,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 함은 견(見)과 계금(戒禁)의 취이다.
【論】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하나는 성취하고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
하나는 성취한다고 함은 맨 뒤의 한 가지이며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앞의 세 가지이다.
【論】 4신계(身繫)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둘은 성취하고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 둘은 성취한다고 함은 앞의 두 가지이며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뒤의 두 가지이다. 【論】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모두 성취하지 않는다.
앞의 두 가지는 오직 욕계계일 뿐이며 뒤의 두 가지는 오직 견도에서만 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論】 5개(蓋)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넷은 성취하고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
넷은 성취한다고 함은 앞의 네 가지를 말하는 것이며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뒤의 한 가지를 말한다.
【論】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모두 성취하지 않는다.
앞의 네 가지와 뒤의 한 가지는 모두 욕계계이기 때문이다.
【論】 5결(結)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모두 성취하며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둘은 성취하고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
둘은 성취한다고 함은 탐(貪)과 만(慢)의 결이며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진(瞋)과 질(嫉)과 간(慳)이다.
【論】 5순하분결(順下分結)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둘은 성취하고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
둘은 성취한다고 함은 앞의 두 가지를 말하며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뒤의 세 가지이다. 【論】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모두 성취하지 않는다.
앞의 두 가지는 욕계계이고 뒤의 세 가지는 견도에서 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論】 5순상분결(順上分結)에 있어서는 아직 색염(色染)을 여의지 못했으면 모두 성취하며 이미 색염을 여의었으면 넷은 성취하고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
넷은 성취한다고 함은 색탐(色貪)을 제외한 것이며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색탐이다.
【論】 5견(見)에 있어서는 모두 성취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견도에서 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論】 6애신(愛身)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모두 성취하며 이미 욕염은 여의었으나 아직 범세(梵世)의 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넷은 성취하고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
넷은 성취한다고 함은 처음과 나중의 각각 두 가지씩이며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중간에 있는 두 가지를 말한다.
【論】 이미 범세의 염을 여의었으면 하나는 성취하고 다섯은 성취하지 않는다.
하나는 성취한다고 함은 뒤의 한 가지를 말하는 것이며 다섯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앞의 다섯 가지이다.
【論】 7수면(隨眠)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다섯은 성취하고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 다섯은 성취한다고 함은 욕탐(欲貪)과 진에(瞋恚)와 유탐(有貪)과 만(慢)과 무명(無明)이며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견(見)과 의(疑)이다.
【論】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셋은 성취하고 넷은 성취하지 않는다.
셋은 성취한다고 함은 유탐과 만과 무명이며 넷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나머지 넷이다.
【論】 9결(結)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여섯은 성취하고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
여섯은 성취한다고 함은 애(愛)와 에(恚)와 만(慢)과 무명(無明)과 질(嫉)과 간(慳)의 결이며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견(見)과 취(取)와 의(疑)의 결이다.
【論】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면 셋은 성취하고 여섯은 성취하지 않는다.
셋은 성취한다고 함은 애(愛)와 만(慢)과 무명(無明)이며 여섯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나머지 여섯이다.
【論】 98수면에 있어서는 아직 욕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열은 성취하고 여든여덟은 성취하지 않는다.
열은 성취한다고 함은 삼계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것이며 여든여덟은 성취하지 않는다 함은 삼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論】 이미 욕염을 여의었으나 아직 색염을 여의지 못했으면 여섯72)은 성취하고 아흔둘은 성취하지 않는다.
여섯은 성취한다고 함은 색계와 무색계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것이며 아흔둘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삼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것과 욕계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論】 이미 색염을 여의었으면 셋은 성취하고 아흔다섯은 성취하지 않는다.
셋은 성취한다고 하지 않음은 무색계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것이며 아흔다섯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삼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것과 욕계와 색계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論】 신승해에서와 같이 견지(見至)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이 둘은 지(地)와 도(道)와 이염(離染)과 소의(所依)와 선정과 나는 곳[生]에 있어서도 모두 같지 않음이 없다. 오직 근(根)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니 근기가 둔한 이를 신승해라 하고 근기가 예리한 이를 견지라 하기 때문이다.
【論】 신증(身證)은 3결(結)과 3불선근(不善根)에 있어서 모두 성취하지 않는다.
3결은 오직 견도에서만 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며 3불선근은 오직 욕계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신증은 반드시 이미 삼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것과 아래 8지(地)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것을 여의기 때문이다. 【論】 3루(漏)에 있어서는 둘은 성취하고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
둘은 성취한다고 함은 유루와 무명루이며 하나를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욕루이다.
【論】 4폭류(暴流)와 4액(軛)에 있어서는 둘은 성취하고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
둘은 성취한다고 함은 유와 무명이며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욕과 견(見)이다.
【論】 4취(取)에 있어서는 하나는 성취하고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
하나는 성취한다고 함은 아어취(我語取)이며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나머지 3취(取)이다.
【論】 4신계(身繫)와 5개(蓋)에 있어서는 모두 성취하지 않는다.
앞의 두 가지 신계와 5개는 오직 욕계계일 뿐이기 때문이며 뒤의 두 가지 신계는 오직 견도에서만 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論】 5결(結)에 있어서는 둘은 성취하고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
둘은 성취한다고 함은 탐과 만의 결이며 셋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진과 질과 간의 결이다.
【論】 5순하분결에 있어서는 모두 성취하지 않는다.
앞의 두 가지는 오직 욕계계일 뿐이며 뒤의 세 가지는 오직 견도에서만 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論】 5순상분결에 있어서는 넷은 성취하고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
하나는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색탐(色貪)이며 넷은 성취한다고 함은 그 나머지 네 가지이다.
【論】 5견(見)에 있어서는 모두 성취하지 않는다.
견도에서 끊어지는 것을 오래 전에 이미 여의었기 때문이다.
【論】 6애신(愛身)에 있어서는 하나는 성취하고 다섯은 성취하지 않는다.
하나는 성취한다고 함은 여섯 번째를 말하는 것이며 다섯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앞의 다섯이다.
【論】 7수면(隨眠)에 있어서는 셋은 성취하고 넷은 성취하지 않는다.
셋은 성취한다고 함은 유탐(有貪)과 만과 무명이며 넷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나머지 네 가지이다.
【論】 9결(結)에 있어서는 셋은 성취하고 여섯은 성취하지 않는다.
셋은 성취한다고 함은 애와 만과 무명이며 여섯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나머지 여섯이다.
【論】 98수면에 있어서는 셋은 성취하고 아흔다섯은 성취하지 않는다. 셋은 성취한다73)고 함은 무색계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것이며 아흔다섯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삼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것과 욕계와 색계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문】성자(聖者)이면서 98수면을 성취한 이도 있는가? 【답】 있다. 구박자(九縛者)로서 정성이생(正性離生)에 들어가 고법지인(苦法智忍)에 머무르는 이이다. 【문】성자이면서 이미 88수면을 끊었지만 미처 10수면을 끊지 못하여 아직 과(果)를 얻지 못한 이도 있는가? 【답】 있다. 이미 색염(色染)을 여의고 정성이생에 들어가 멸류지(滅類智)에 머무르는 이이다. 그는 욕계의 36수면과 색계의 31수면과 무색계의 견고(見苦)ㆍ견집(見集)ㆍ견멸(見滅)에서 끊어지는 31수면을 이미 끊었지만 아직 무색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7수면과 수도에서 끊어지는 3수면을 끊지 못했으므로 아직 과를 얻지 못하고 향도(向道)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문】이미 98수면을 끊었지만 아직 아라한과를 얻지 못한 이도 있는가? 【답】 있다. 이미 무소유처의 염을 여의었으나 아직 비상비비상처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이다. 그는 이미 욕계의 36수면과 색계의 31수면과 아래 3무색(無色)의 31수면을 끊었지만 아직 아라한과를 얻지 못한 이이니 그는 이생이기도 하고 불환자(不還者)이기도 하다. 【評】 그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98수면은 계(界)에 의거하여 건립한 것이요 지(地)에 의거하여 건립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그러한 질문에는 당연히 “없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54)여기에서 다섯ㆍ일곱 보특가라(補特伽羅)라고 함은 『발지론(發智論)』 본론(本論)의 관계에서 보면 다섯 보특가라만을 설하고 있는데, 『비바사론(毘婆沙論)』에서는 그것에 이어 일곱 보특가라를 자세히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부터 3결(結)에서부터 98수면(隨眠)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門)의 분별을 했었고, 그것에 이어 곧장 그의 성취와 불성취의 문을 논해야 하는데도 그것을 성취하는 사람, 즉 보특가라가 번뇌를 아직 끊지 못했거나 이미 끊은 정도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따라서 이 문단은 모든 수면의 성취ㆍ불성취의 분별에 앞서 먼저 이 보특가라부터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다섯 보특가라는 수신행(隨信行)ㆍ수법행(隨法行)ㆍ신승해(信勝解)ㆍ견지(見至)와 신증(身證)이며, 일곱 보특가라의 경우는 혜해탈(慧解脫)과 구해탈(俱解脫)을 더한다. 이 일곱 보특가라의 분류는 견도(見道)ㆍ수도(修道)ㆍ무학도(無學道)의 3위(位)를 토대로 하지만 다시 그 위에 근성(根性)의 이둔(利鈍)과 멸정(滅定)의 얻고 얻지 못한 것에 의하여 분류되는 것이어서 비교적 구체적인 징표에 의한다고 할 수 있다. 곧 근성이 예리하거나 둔한 이에 의하여 견도위를 수법행과 수신행으로 나누고, 수도위에서도 그와 같이 견지와 신승해의 두 가지로 나누며 다시 이런 이들 가운데서 멸진정(滅盡定)을 얻은 이를 신증이라 일컫는다. 최후에 무학위에서 번뇌는 다했으나 아직 멸진정을 얻지 못한 이를 혜해탈이라 하고, 번뇌도 다하고 멸진정도 얻은 이를 구해탈이라고 한다.
55)지온(智蘊)은 『발지론』 제9권과 『비바사론(毘婆沙論)』 제109권에 있으며, 정온(定蘊)은 『발지론』 제18권과 『비바사론』 제168권에 있다.
56)세제일법(世第一法)을 지나서 정성이생(正性離生)으로 들어가 곧 고법지인(苦法智忍)이 이미 생한 뒤에 도류지인(道類智忍)에 이르기까지의 견도(見道) 15심(心) 동안을 여기서 수신행이라 한다. 수법행의 경우도 역시 같다.
57)8해탈(解脫)이란 첫째는 안으로 색이라는 생각이 있으면서 바깥의 색을 관하는 해탈이요, 둘째는 안으로 색이라는 생각이 없으면서 바깥의 색을 관하는 해탈이며, 셋째는 정해탈(淨解脫)을 몸으로 증득하여 구족하게 머무름이요, 넷째에서부터 일곱째까지는 4무색정(無色定)이 차례로 배대되어 4해탈이라 하며, 마지막 여덟째는 멸수상정(滅受想定)해탈이라 한다.
58)모든 보살은 보리수 아래에서 34념(念)으로 한 자리에 앉아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이룬다고 한다. 곧 모든 보살이 깨달음을 이룰 때에는 언제나 무소유처(無所有處)의 염(染)을 여의고 그 뒤에 제4 정려에 의하여 정성이생에 들고 사제현관의 16념(念)을 가행으로 삼아 이것과 유정(有頂) 9품(品)의 수혹(修惑)을 끊는 무간도(無間道)와 해탈도(解脫道)의 18념(念)을 합쳐서 34념이 된다.(『구사론』 제5권 참조)
59)번뇌장(煩惱障)은 견혹(見惑)ㆍ수혹(修惑)을 말하며, 해탈장(解脫障)은 멸진정(滅盡定:解脫)에 들어가는 것을 장애하는 번뇌를 말한다.
60)지(止)는 다음에서 설명하는 사마타(奢摩他)로서 멈춘다ㆍ그치고 쉰다[止息]는 뜻이 있다. 번뇌를 끊어 없애는 방법을 들으면 곧장 그 번뇌 망념으로 그치고 쉬는 행을 지의 행이라 한다. 관(觀)은 다음에서 설명하는 비발사나(毘鉢舍那)로서 끝까지 관한다ㆍ꿰뚫는다는 뜻이 있다. 똑같이 번뇌를 그쳐 쉬는 것을 들으면 먼저 번뇌를 천착(穿鑿)하고 관찰하면서 그것으로 무찔러 모조리 없애 버리는 것을 관의 행이라 한다.
61)시해탈(時解脫)이란 반드시 시절을 기다려서 해탈하는 것을 말하며 시애심(時愛心) 해탈이라고도 한다. 그 마음은 번뇌장(煩惱障)에서 벗어났으므로 해탈이라고 한다. 불시해탈(不時解脫)이란 시절을 기다리지 않고 해탈하는 것을 부동심(不動心) 해탈이라고도 한다. 물러나거나 동요하지 않으면서 마음이 해탈했기 때문이다. 이 둘의 차이를 말한다면 전자(前者)는 잠시의 해탈이어서 물러서거나 떨어지는 일이 있지만 후자(後者)는 필경 해탈하여 물러서거나 떨어지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62)첫째 가행으로 말미암아서라 함은 밖으로는 가르침[敎]을 듣고 그것을 믿고 행하며 안으로는 이치대로 뜻을 짓기[如理作意] 때문이요, 둘째 근(根)으로 말미암아서라 함은 근성이 둔하고[鈍] 예리한[利] 것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셋째 정(定)으로 말미암아서라 함은 특히 멸진정으로 닦음으로 말미암아서요, 넷째 해탈에 의한다는 것은 지혜[慧]로써 모든 번뇌를 다하기 때문이며, 다섯째 정(定)과 해탈(解脫)로 말미암는다 함은 셋째와 넷째를 겸해서 말한 것이다.
63)구박(具縛)ㆍ불구박(不具縛)이라 함은 수혹(修惑)을 이미 끊었는가, 아직 끊지 못했는가에 대하여 그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만일 수혹 81품의 전체에서 보면 구박은 욕계 수혹의 1품도 끊지 못한 이만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地)의 구별에 의하면 욕계와 4정려지(靜慮地)와 4무색지(無色地)로 나누어서 각각 9품씩 끊어야 될 혹이 있으므로 욕계지(欲界地)의 9품을 아직 끊지 못한 이를 구박자라고 한다. 이처럼 초정려지의 9품을 아직 끊지 못했거나 유정지(有頂地)의 9품을 끊지 못한 이도 다 같이 구박자라고 부르는 것이니 여기에 아홉 사람의 구박자가 있게 된다. 지금은 이 지(地)의 구별에 의한 구박자를 설하므로 ‘초정려의 구박’이라는 말을 한다. 곧 욕계의 구박을 제1로 하면 그 제10은 욕계의 9품은 완전히 끊은 사람이 되겠지만 초정려에서는 구박자이다. 이 수혹을 아직 끊지 못한 것과 이미 끊은 것에는 이생(異生)과 성자(聖者)에 구별이 있다. 다 같이 구박이라 하는 것이므로 지금은 성자의 경우에서 말하고 있다. 수신행(隨信行)을 이런 분별에 의하여 수(數)로 하면 이렇게 하여 무소유처(無所有處)의 9품을 완전히 끊기까지 곧 이미 끊은 것의 72와 욕계의 구박자 1을 보태서 73이 된다.(이하 세는 방법은 이에 따른다.) 유정(有頂)의 이염자(離染者)를 보태지 않는 것은 도류지(道類智)를 얻지 못하면 이것을 끊을 수도 없고 만일 그것을 얻게 되면 수신행은 아니기 때문이다.
64)여기에서 소의(所依)라 함은 욕계의 구박(具縛)을 첫 번째 소의로 하고 그가 유정(有頂)의 제8품의 염(染)을 여의기까지 경과해야 할 단계에 81이 있고 초정려의 구박자의 경우에는 72단계가 있는 것이니 이 하나의 단계를 하나의 소의로 보기 때문이다.
65)29처(處)라 함은 북구로주(北俱盧洲)가 제외된 인간의 3주(洲)ㆍ6욕천(欲天)ㆍ색계의 16처(處)ㆍ무색계의 4처(處)이다.
2766)신증(身證)의 최초 증득은 오직 욕계의 인간에서만 있으며 만일 물러나지 않으면 바로 유정지(有頂地)에 나며, 또한 그로부터 물러나면 색계에 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의신(依身)은 삼계에 있다. 이 3의신을 다시 이염(離染)에 결부하여 보면 27이 된다.
67)본 절에서는 전권(前卷)으로부터 온갖 번뇌, 즉 3결과 나아가 98수면(隨眠)의 모든 문(門)의 분별의 연속으로 “어느 보특가라가 어느 번뇌를 성취하는가? 또는 성취하지 않는가?”를 논하려는 것이다.
68)맨 처음과 나중의 각각 둘씩이라 함은 탐욕과 진에가 처음의 둘이고 계금취와 의가 나중의 둘이다. 유신견은 삼계의 견고에서 끊어지는 것이므로 고류지가 이미 생기면 성취하지 않는다.
69)이미 욕염(欲染)을 여의면 욕계의 수면인 탐욕과 진에의 둘은 성취하지 않는다.
70)이미 욕염을 여의면 탐욕과 진에는 성취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고류지(苦類智)가 이미 생겼기 때문에 삼계의 견고(見苦)에서 끊어지는 유신견(有身見)도 성취하지 않거니와 도류지(道類智)는 아직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삼계의 견도(見道)에서 끊어지는 계금취(戒禁取)와 의결(疑結)은 아직 끊지 못하는 것이니 곧 뒤의 두 가지는 성취한 것이다.
71)6식(識) 중 앞의 5식이 생하기 위해서는 심(尋)ㆍ사(伺)의 심소(心所)와 그의 소연(所緣)이 필요하다. 이미 욕염은 여의었으나 아직 범세(梵世:初靜慮)의 염(染)을 여의지 못했을 적에는 비식(鼻識)ㆍ설식(舌識)은 심ㆍ사는 있어도 소연이 이미 없기 때문에 이것은 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코ㆍ혀에서 생한 두 가지 애신(愛身)은 그때에 성취하지 않는다. 다음에 범세 이상, 즉 제2 정려 이상에서는 심ㆍ사가 없기 때문에 앞의 5식은 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거기에서 생한 앞의 다섯 가지 애신(愛身)도 성취하지 않는다.
72)여섯이라 함은 곧 색계ㆍ무색계의 수혹(修惑)으로서 탐(貪)ㆍ만(慢)ㆍ무명(無明)을 말한다.
73)무색계의 수혹(修惑) 셋을 성취한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유정(有頂)의 탐(貪)ㆍ만(慢)ㆍ무명(無明)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