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初)정려와 제2 정려와 제3 정려와 제4 정려이다.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가? 【답】 의심하는 이로 하여금 결정(決定)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다. 『품류족론(品類足論)』에서 “어떤 것이 초정려인가? 초정려에 포섭된 선(善)의 5온(蘊)이다. 나아가 어떤 것이 제4 정려인가? 제4 정려에 포섭된 선의 5온이다”라고 하였는데 거기에서는 오직 선(善)의 정려만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혹 어떤 이는 “정려는 오직 선일 뿐이요, 염(染)도 아니고 무부무기(無覆無記)도 아닌가?”라고 의심한다. 그런 이의 의심을 결단하고 4정려는 선과 염과 무부무기에 모두 통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것을 논하는 것이다. 【문】이 4정려의 자성은 어떤 것인가? 【답】 저마다 자기 지[自地]의 5온을 자성으로 삼는다. 이것을 정려의 자성ㆍ아물(我物)ㆍ자체(自體)ㆍ상분(相分)ㆍ본성(本性)이라고 한다. 이미 자성을 말했으므로 그 까닭을 이제 말하겠다.
【문】무엇 때문에 정려라 하는가? 결(結)을 끊을 수 있기 때문에 정려라 하는가? 바르게 관[正觀]할 수 있기 때문에 정려라 하는가? 만일 결을 끊을 수 있기 때문에 정려라 한다면 무색정(無色定)도 결을 끊을 수 있으므로 정려라고 해야 하며 만일 바르게 관할 수 있기 때문에 정려라 한다면 욕계의 삼마지(三摩地)도 바르게 관할 수 있으므로 정려라고 해야 한다. 【답】 어떤 이는 “결을 끊을 수 있으므로 정려라 한다”고 말한다. 【문】모든 무색정도 결을 끊을 수 있으므로 정려라고 해야 한다. 【답】 만일 정(定)으로서 불선(不善)과 무기(無記)의 두 결(結)을 끊을 수 있는 것이라면 정려라 하겠지만 모든 무색정은 오직 무기만을 끊을 뿐이고 불선은 끊지 못하기 때문에 정려라고는 하지 않는다. 【문】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오직 미지정(未至定)만을 정려라고 해야 하니 상지(上地)에서는 불선의 결을 끊지 않기 때문이다. 【답】 상지에서는 비록 그것의 단대치(斷對治)는 없다 하더라도 불선의 염괴대치(厭壞對治)는 있는 것이니 싫어하여 파괴함으로써 역시 끊는다고 한다. 【문】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상지의 멸(滅)과 도(道)의 법지품(法智品)과 그의 온갖 유지품(類智品)은 정려가 아니어야 하니 모두 욕계의 단(斷)과 염괴(厭壞)의 두 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답】 그것은 욕계에서는 비록 모든 계[全界]와 모든 지[全地]의 대치가 없다 하더라도 그 계ㆍ지에는 불선의 염괴대치가 있을 수 있으며 이 세력으로 말미암아 그 밖의 다른 것도 이름을 얻게 된다. 또 4정려에는 불선의 결을 대치하는 것이 있으나 무색(無色)에는 전혀 없기 때문에 정려라는 이름은 무색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묘음(妙音) 존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색계(色界) 6지(地)는 욕계의 결에 대하여 모두 단대치와 염괴대치가 있지만 미지정(未至定)이 이미 그것의 결을 끊었기 때문에 그 밖의 다른 지(地)의 대치로서 그것을 끊을 만한 것은 없다. 비록 그것을 끊을 만한 것은 없다 하더라도 대치의 작용은 있다. 예컨대 하루의 3분(分)이 모두 어두움을 깨뜨릴 수 있되 초분(初分)이 이미 깨뜨렸기 때문에 나머지는 깨뜨릴 만한 것이 없는 것과 같고, 또 여섯 사람이 한 사람의 원수를 해치려 할 때 한 사람이 이미 살해했다면 그 밖의 나머지 사람은 살해할 대상이 없는 것과 같으며, 또 여섯 개의 등불이 모두 어두움을 깨뜨릴 수 있되 한 등불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면 그 어두움은 벌써 사라졌기 때문에 나머지 다섯 개의 등불이 들어가더라도 어두움을 깨뜨릴 대상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6지는 욕계의 결에 대하여 모두 끊을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오직 미지정만은 그렇지 않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상(上) 5지(地)에 의하여 견도(見道)에 들 때 욕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모든 결의 이계(離繫)를 증득하지 않았어야 하는데도 이미 증득했기 때문에 6지는 욕계의 결에 대하여 단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만일 정(定)으로서 견도ㆍ수도에서 끊어지는 두 결을 모두 끊은 것이면 정려라고 하지만 모든 무색정은 오직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만을 모두 끊기 때문에 정려가 아니다.77) 또 만일 결을 끊고 5온(蘊)이 함께 생기어 소의(所依)가 되어서 많은 공덕을 일으키고 4지(支)와 5지(支)를 함께 섭수하며, 통(通)을 일으키고 4통행(通行)ㆍ3종변현(種變現)ㆍ3명(明)ㆍ3근(根)ㆍ3도(道)ㆍ3지(地)ㆍ4사문과(沙門果)ㆍ9변지도(遍知道)ㆍ견수(見修)의 2도(道)ㆍ법(法)과 유(類)의 2지(智)와 인(忍)ㆍ지(智)를 갖춘 것이면 정려라고 하지만 모든 무색정은 비록 결을 끊는다 하더라도 위에서 말한 공덕을 갖추지는 못하기 때문에 정려가 아니다.78)
또 어떤 이는 “바르게 관[正觀]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정려라고 한다”라고 말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욕계에는 삼마지(三摩地)가 있어서 역시 바르게 관을 할 수 있으니 정려라고 하여야 한다. 【답】 만일 바르게 관을 할 수 있고 또한 결을 끊을 수 있다면 정려라고 하지만 욕계의 삼마지는 비록 바르게 관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결을 끊을 수는 없기 때문에 정려라고는 하지 않는다. 또 만일 바르게 관을 할 수 있고 견고하고 파괴하기 어려우며 상속하며 오래도록 머무르고 소연의 경계에 대하여 오랫동안 뜻을 쏟으면서 버리지 않는 것이라면 정려라고 하지만 욕계의 삼마지는 이러한 공덕이 없기 때문에 정려가 아니다. 또 만일 삼마지로서 정(定)이라는 이름과 정의 작용을 모두 가지고 바르게 관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정려라고 하겠지만 욕계의 삼마지에는 비록 정이라는 이름은 있더라도 정으로서의 작용이 없다. 마치 진흙으로 된 서까래나 들보에는 이름은 있으나 작용은 없는 것과 같기 때문에 정려가 아니다. 또 만일 삼마지로서 산란(散亂)한 바람에 흔들리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 밀실(密室)에 있는 등불과 같으며 바르게 관을 할 수 있는 것이면 정려라고 하겠지만 욕계의 삼마지는 산란한 바람에 흔들리고 움직임이 많은 것이 마치 네거리에 켠 등불과 같기 때문에 정려가 아니다. 이와 같이 말하는 이도 있다. “반드시 두 가지 뜻을 갖추어야 비로소 정려라고 하는 것이니 결(結)을 끊을 수 있고 바르게 관[正觀]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욕계의 삼마지는 비록 바르게 관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결을 끊을 수가 없고 모든 무색정은 비록 결은 끊을 수 있다 하더라도 바르게 관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정려가 아니다.” 또 만일 두루 관(觀)하고 두루 결을 끊을 수 있는 것이면 정려라고 하겠지만 욕계의 삼마지는 비록 두루 관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두루 결을 끊을 수가 없으며 모든 무색정에는 두 가지 뜻이 모두 없기 때문에 정려가 아니다. 또 온갖 번뇌를 고요히 쉬고 온갖 소연(所緣)을 사려(思慮)하는 것이면 정려라고 하겠지만 욕계의 삼마지는 비록 온갖 소연을 사려한다 하더라도 온갖 번뇌를 고요히 쉴 수는 없으며 모든 무색정에는 두 가지 뜻이 모두 없기 때문에 정려가 아니다. 또 모든 무색정에는 고요함[靜]은 있으나 생각함[慮]은 없으며 욕계의 삼마지에는 생각함은 있으나 고요함은 없고 색정(色定)에는 모두 있기 때문에 정려라고 한다. 고요함은 등인(等引)을 말하고 생각함은 변관(遍觀)을 말하기 때문에 정려라고 한다. 4정려지(靜慮支)에는 모두 열여덟 가지가 있다.79) 초정려(初靜慮)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심(尋)이요, 둘째는 사(伺)이며, 셋째는 희(喜)요, 넷째는 낙(樂)이며, 다섯째는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다. 제2 정려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내등정(內等淨)이요, 둘째는 희(喜)이며, 셋째는 낙(樂)이요, 넷째는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다. 제3 정려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행사(行捨)요, 둘째는 정념(正念)이며, 셋째는 정혜(正慧)요, 넷째는 수락(受樂)이며, 다섯째는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다. 제4 정려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요, 둘째는 행사청정(行捨淸淨)이며, 셋째는 염청정(念淸淨)이요, 넷째는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다.
【문】4정려지의 이름에 열여덟 가지가 있다면 실체(實體)에는 몇 가지가 있는가? 【답】 열한 가지만이 있을 뿐이다. 초정려지에는 이름과 실체에 다 같이 다섯 가지가 있고, 제2 정려지에는 비록 네 가지가 있다 하더라도 셋은 앞의 것과 같고 내등정(內等淨)을 더했으며, 제3 정려지에는 비록 다섯 가지가 있다 하더라도 다섯 번째 것은 앞의 것과 같고 다만 앞의 네 가지만을 더했으며, 제4 정려지에는 비록 네 가지가 있다 하더라도 뒤의 셋은 앞과 같고 다만 첫 번째 것만을 더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정려지의 이름은 열여덟 가지가 있지만 실체는 열한 가지이다. 또 어떤 이는 “실체는 오직 열 가지일 뿐이다. 세 정려의 낙(樂)을 합하여 하나로 삼는다”라고 말한다. 【評】 그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초ㆍ2정려의 낙은 경안(輕安)의 낙이지만 제3 정려의 낙은 그와는 다르게 수락(受樂)이며, 초ㆍ2정려의 낙은 행온(行蘊)에 포섭되지만 제3 정려의 낙은 수온(受蘊)에 포섭되기 때문이니 앞에서 말한 것이 도리로 보아 옳다고 하겠다. 이름과 실체에서와 같이 이름의 시설과 실체의 시설ㆍ이름의 다른 모양과 실체의 다른 모양ㆍ이름의 다른 성품과 실체의 다른 성품ㆍ이름의 차별과 실체의 차별ㆍ이름의 건립과 실체의 건립ㆍ이름의 각(覺)과 실체의 각에 있어서도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문】여기에서 어느 것이 정려(靜慮)이며 어느 것이 정려지(靜慮支)인가? 【답】 심일경성이 정려이니 삼마지를 자성으로 삼기 때문이며, 이것과 그 밖의 것은 정려지이다. 【문】만일 삼마지가 정려라면 초정려와 제3 정려에는 각각 네 가지만 있어야 하고 제2와 제4 정려에는 각각 세 가지만 있어야 한다. 결국 정려지에는 당연히 열네 가지만 있어야 하는데 어찌하여 열여덟 가지가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답】 삼마지는 정려이면서 또한 정려의 갈래이지만 그 밖의 다른 것은 정려의 갈래이나 정려는 아니기 때문에 열여덟 가지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치 택법(擇法)은 각(覺)이면서 또한 각지(覺支)80)이지만 그 밖의 나머지는 각지이나 각은 아니요, 정견(正見)은 도(道)이면서 또한 도지(道支)81)이지만 그 밖의 나머지는 도지이나 도는 아니며, 때가 아닐 때 먹지 말라는 것은 재(齋)이면서 또한 재지(齋支)82)이지만 그 밖의 나머지는 재지이나 재는 아닌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것을 정려지의 자성ㆍ아물(我物)ㆍ자체(自體)ㆍ상분(相分)ㆍ본성(本性)이라고 한다. 이미 자성을 말했으므로 이제 그 까닭을 말하겠다. 【문】무엇 때문에 정려지(靜慮支)라 하며 정려지란 무슨 뜻인가? 【답】 고요하면서 생각하기 때문에 정려라 하고 이 정려에 수순하기 때문에 정려지라고 한다. 수순한다는 뜻이고 무거운 짐을 짊어진다는 뜻이며, 큰 일을 이룬다는 뜻이고 굳고 뛰어나다는 뜻이며, 분별한다는 뜻이 지(支)의 뜻이기 때문이다. 수순한다[隨順]는 뜻은 만일 법으로서 이 지(地)의 정려를 수순하면 이 지의 정려지라 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진다는 뜻은 만일 법으로서 이 지의 정려를 이끌면 이 지의 정려지라고 하며, 큰 일을 이룬다는 뜻은 만일 법으로서 이 지의 정려를 이룩하면 이 지의 정려지라고 하고, 굳고 뛰어나다는 뜻은 만일 법으로서 이 지의 정려를 돕고 이루면서 그로 하여금 견고하고 뛰어나게 하면 이 지의 정려지라고 하며, 분별한다는 뜻은 예컨대 군대 수레 등의 모든 차이를 분별하기 때문에 군대 수레지[軍車支]라고 하는 것처럼 정려의 모든 차이를 분별하기 때문에 정려지라고 한다. 이와 같이 정려지의 이름을 해석했으므로 다음에는 뒤섞임과 뒤섞임이 없는 모양을 분별하겠다. 【문】만일 초정려지인 것이면 또한 제2 정려지인 것인가?
【답】 4구(句)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것은 초정려지이면서 제2 정려지가 아닌 것이 있으니 심(尋)과 사(伺)이다. 어떤 것은 제2 정려지이면서 초정려지가 아닌 것이 있으니 내등정(內等淨)이다. 어떤 것은 초정려지이면서 또한 제2 정려지인 것이 있으니 희(喜)와 낙(樂)과 심일경성이다. 어떤 것은 초정려지도 아니고 또한 제2 정려지도 아닌 것이 있으니 앞의 모양[前相]에서 제외된 것이다. 【문】만일 초정려지인 것이면 또한 제3 정려지인 것인가? 【답】 4구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것은 초정려지이면서 제3 정려지가 아닌 것이 있으니 심(尋)과 사(伺)와 희(喜)와 낙(樂)이다. 어떤 것은 제3 정려지이면서 초정려지가 아닌 것이 있으니 사(捨)와 염(念)과 혜(慧)와 낙(樂)이다. 어떤 것은 초정려지이면서 또한 제3 정려지인 것이 있으니 심일경성이다. 어떤 것은 초정려지도 아니고 또한 제3 정려지도 아닌 것이 있으니 앞의 모양에서 제외된 것이다. 【문】만일 초정려지인 것이면 또한 제4 정려지인 것인가? 【답】 4구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것은 초정려지이면서 제4 정려지가 아닌 것이 있으니 심과 사와 희와 낙이다. 어떤 것은 제4 정려지이면서 초정려지가 아닌 것이 있으니 불고불락(不苦不樂)과 사(捨)와 염(念)이다. 어떤 것은 초정려지이면서 또한 제4 정려지인 것이 있으니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다. 어떤 것은 초정려지도 아니고 또한 제4 정려지도 아닌 것이 있으니 앞의 모양에서 제외된 것이다. 【문】만일 제2 정려지인 것이면 또한 제3 정려지인 것인가? 【답】 4구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것은 제2 정려지이면서 제3 정려지가 아닌 것이 있으니 내등정(內等淨)과 희(喜)와 낙(樂)이다. 어떤 것은 제3 정려지이면서 제2 정려지가 아닌 것이 있으니 사(捨)와 염(念)과 혜(慧)와 낙(樂)이다. 어떤 것은 제2 정려지이면서 또한 제3 정려지인 것이 있으니 심일경성이다. 어떤 것은 제2 정려지도 아니고 또한 제3 정려지도 아닌 것이 있으니 앞의 모양에서 제외된 것이다. 【문】만일 제2 정려지인 것이면 또한 제4 정려지인 것인가? 【답】 4구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것은 제2 정려지이면서 제4 정려지가 아닌 것이 있으니 내등정(內等淨)과 희(喜)와 낙(樂)이다. 어떤 것은 제4 정려지이면서 제2 정려지가 아닌 것이 있으니 불고불락(不苦不樂)과 사(捨)와 염(念)이다. 어떤 것은 제2 정려지이면서 또한 제4 정려지인 것이 있으니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다. 어떤 것은 제2 정려지도 아니고 또한 제4 정려지도 아닌 것이 있으니 앞의 모양에서 제외된 것이다. 【문】만일 제3 정려지인 것이면 또한 제4 정려지인 것인가? 【답】 4구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것은 제3 정려지이면서 제4 정려지가 아닌 것이 있으니 혜(慧)와 낙(樂)이다. 어떤 것은 제4 정려지이면서 제3 정려지가 아닌 것이 있으니 불고불락(不苦不樂)이다. 어떤 것은 제3 정려지이면서 또한 제4 정려지인 것도 있으니 사(捨)와 염(念)과 심일경성이다. 어떤 것은 제3 정려지도 아니고 또한 제4 정려지도 아닌 것이 있으니 앞의 모양에서 제외된 것이다. 【문】경안(輕安)과 행사(行捨)는 모든 지(地)에 있는데 무엇 때문에 초(初)ㆍ제2 정려에는 경안을 세워 지(支)로 삼으면서 행사는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제3ㆍ제4 정려에는 행사를 세워 지로 삼으면서 경안은 그렇지 않은가? 【답】 앞서 수순한다[隨順]는 뜻이 지의 뜻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경안은 오직 초ㆍ제2 정려에만 수순하기 때문에 세워서 지로 삼으며, 행사는 오직 제3ㆍ제4 정려에만 수순하기 때문에 세워서 지로 삼는다. 또 서로 서로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초ㆍ제2 정려에서는 경안의 작용이 뛰어나 행사를 덮어버리기 때문에 세워서 지로 삼으며, 제3ㆍ제4 정려에서는 행사의 작용이 뛰어나 경안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세워서 지로 삼는다. 【문】무엇 때문에 이 두 가지는 서로 덮어버리는가? 【답】 이 두 행상(行相)은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경안의 모양은 가뿐하지만 행사의 모양은 가라앉아 고요한 것이므로 함께할 때는 서로 어긋나니 예컨대 사람이 같은 때에 가기도 하고 서기도 하고 또한 자기도 하고 깨기도 하는 것은 한결같이 서로 어긋나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선심(善心) 안의 대치(對治)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함께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니 경안은 혼침(惛沈)을 다스리고 행사는 도거(掉擧)를 다스린다. 또 욕계의 5식신(識身)과 이끌려 나오는 몸의 거칠고 무거움을 대치하기 위하여 초정려에 경안을 세워 지로 삼고, 초정려의 3식신과 이끌려 나오는 몸의 거칠고 무거움을 대치하기 위하여 제2 정려에 경안을 세워 지로 삼으며, 제2ㆍ제3 정려에는 대치할 만한 거친 식신과 이끌려 나오는 몸의 거칠고 무거움이 없기 때문에 제3ㆍ제4 정려에서는 경안을 세워 지로 삼지 않는다. 거기에서는 이미 경안을 세워 지로 삼지 않기 때문에 행사를 세워 지로 삼는다. 또 초ㆍ제2 정려에는 염오(染汚)의 기쁨이 몸과 마음을 요동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경안을 익혀야 하고 사(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니 이 때문에 초ㆍ제2 정려에는 오직 경안만을 세워 지로 삼는다. 제3ㆍ제4 정려에는 염오의 기쁨이 몸과 마음을 요동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사(捨)에만 머물러야 하고 경안을 익히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이 때문에 제3ㆍ제4 정려에서는 오직 행사만을 세워 지로 삼는다. 또 초ㆍ제2 정려의 경안에는 인(因)이 있으니 모든 선(善)의 기쁨이다. 계경에서 “마음에 기쁨이 있기 때문에 몸이 가뿐해진다”라고 한 것이니 이 때문에 초ㆍ제2 정려에서는 오직 경안만을 세워 지로 삼는다. 제3ㆍ제4 정려의 경안에는 인이 없으니 선의 기쁨이 없다. 사(捨)에만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다만 행사만을 세워 지로 삼는다. 또 제3 정려에서는 지극한 기쁨을 버리고 제4 정려에서는 지극한 즐거움을 버리기 때문에83) 여기에서는 오직 행사만을 세워 지로 삼지만 초ㆍ제2 정려에서는 이미 행사를 세워 지로 삼지 않기 때문에 경안을 세워 지로 삼아도 서로 어긋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문】내등정(內等淨)은 곧 믿음이므로 모든 지(地)에 있는데 무엇 때문에 제2 정려에서만 세워서 지로 삼는가? 【답】 앞에서 수순(隨順)한다는 뜻이 지(支)의 뜻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믿음은 오직 제2 정려에서만 수순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직 여기에서만 믿음을 세워 지로 삼는다. 또 초정려 중에서 심(尋)ㆍ사(伺)는 불과 같고 신식(身識)은 진창과 같아 마음의 상속으로 하여금 심하게 번뇌하게 하고 어지럽히면서 믿음이 밝고 깨끗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마치 곤죽이 된 진창에는 얼굴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다. 하지만 제2 정려에는 심ㆍ사의 불과 식신의 진창도 없고 마음의 상속 가운데에 믿음의 모양이 맑고 깨끗한 것이 마치 맑고 차가운 물에는 얼굴 모습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여기에서 내등정의 지를 세운다. 제3 정려에는 지극한 기쁨의 느낌이 있으며 제4 정려에는 뛰어난 사(捨)의 느낌이 있어서 마음의 상속을 가려버리므로 믿음의 모양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거기에서와 초정려에서는 모두 내등정을 세우지 않는다. 또 제2 정려에서 모든 유가사(瑜伽師)는 염을 여의는 동안 처음에는 믿음을 내는 것이 뛰어나기 때문에 오직 여기에서만 내등정의 지를 세우는 것이다. 유가사는 욕계의 염을 여의고 초정려가 목전에 일어날 때 ‘나는 비록 이미 부정계(不定界)의 염은 여의었다 하더라도 모든 정지(定地)의 염을 여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는 뒤에 다시 초정려의 염을 여의고 제2 정려가 목전에 일어날 때 계(界)와 지(地)의 염을 모두 여의는 가운데 처음에 큰 믿음을 내어 ‘욕계의 염을 내가 이미 여읠 수 있었듯이 색계ㆍ무색계의 염도 반드시 여읠 수 있으며 초정려의 염을 이미 여읠 수 있었듯이 마침내 비상비비상처의 염까지도 반드시 여읠 수 있다’라고 한다. 그는 초정려가 목전에 나타날 때에 아직 결정된 믿음을 내지 못하면 뒤의 두 정려가 앞에 나타날 때에 비록 결정된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믿음의 모양은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모두 내등정의 지를 세우지 않는다. 또 증상의 믿음[增上信]을 일으키는 것은 반드시 큰 기쁨에 의거하는 것이니 기쁨으로 인하여 믿는 이는 믿음이 반드시 견고해진다. 제2 정려에는 극히 뛰어난 기쁨이 있기 때문에 오직 여기서만 내등정의 지를 세운다. 【문】혜(慧)는 모든 지(地)에 두루 하는데 무엇 때문에 오직 제3 정려에서만 지로 세우는가? 【답】 앞에서 수순한다는 뜻이 지의 뜻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지혜는 오직 제3 정려에서만 수순하기 때문에 거기에서만 정혜지(定慧支)를 세울 뿐이다. 또 제3 정려에는 쾌적한 기쁜 느낌이 있으며 모든 쾌적하게 기뻐하는 동안에 이것을 가장 수승하다고 여기며 여기에 탐착하기 때문에 모든 유가사들은 상지(上地)의 훌륭한 법을 기꺼이 구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느낌이 곧 자기 지[自地]를 방해한다. 이것을 대치하는 까닭에 정혜지를 세우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존께서는 “정혜로써 이 즐거움을 분명히 깨달아야 하며 굳게 탐착하여 상지를 구하지 않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니 상지ㆍ하지에서 자기 지를 지극한 즐거움으로 방해하는 것은 이 지 만한 것이 없다. 이 때문에 거기에서는 정혜를 세워 지로 삼지 않는다. 또 초정려에는 거친 심(尋)ㆍ사(伺)가 있어서 정혜를 가리고 덮으며, 제2 정려에서는 지극한 기쁨이 있어서 정혜를 가리고 덮으며, 제4 정려에서는 뛰어난 사수(捨受)가 있어서 정혜를 가리고 덮는 것이니 뛰어난 사수는 무명(無明)의 분한이요, 정혜는 명(明)인지라 명과 무명의 분한은 서로 어기고 해치기 때문에 모두 정혜를 세워 지로 삼지 않지만 제3 정려에서는 그 정혜를 덮을 만한 법이 없기 때문에 세워서 지로 삼는다. 【문】염(念)은 모든 지(地)에 두루 하는데 무엇 때문에 오직 뒤의 두 가지 정려에서만 염을 세워 지로 삼는가? 【답】 앞에서 수순한다는 뜻이 지의 뜻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염은 오직 뒤의 두 가지 정려만을 수순하기 때문에 다만 거기에서만 염을 세워 갈래로 삼는다. 또 뒤의 두 가지 정려에는 모두 다른 지의 매우 심한 방해가 있으므로 그것을 대치하기 위하여 염을 세워 지(支)로 삼지만 그 밖의 다른 지(地)는 그렇지 않다. 제2 정려에서는 매우 훌륭한 기쁨에 경솔하게 빠져서 이리저리 떠다니는 것이 마치 나찰사(羅刹斯)와 같아서 모든 유가사는 이로 말미암아 쇠퇴하게 되고 견고하게 자기 지의 염을 여의지 못하게 되므로 그것을 대치하기 위하여 제3 정려에서는 염을 세워 갈래로 삼는 것이니 이 때문에 세존께서는 “정념에 머물러야 하며 하지(下地)의 기쁨에 빠져서 떠다니며 자기 지에서 퇴실하지 말라”고 하셨다. 제3 정려에는 극히 뛰어난 즐거움이 있어서 생사의 즐거움 중에서는 이것이 가장 으뜸이어서 수행하는 이를 방해하는 것은 마치 친한 이나 원수에게 속임수를 쓰는 것과 같다. 모든 유가사는 이로 말미암아 쇠퇴하게 되고 견고하게 자기 지의 염을 여의지 못하게 되므로 그것을 대치하기 위하여 제4 정려에서는 염을 세워 지로 삼는 것이니 이 때문에 세존께서는 “정념에 머물러야 하며 하지의 즐거움에 방해를 당하여 자기 지에서 퇴실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다. 또 초정려에는 거친 심ㆍ사가 있는 것이 사나운 바람과 같아서 정념을 가지고 덮으며 제2 정려에는 지극한 기쁨이 있는 것이 물의 파도와 같아서 정념을 가리고 덮기 때문에 다 같이 정념을 세워 지로 삼지 않지만 뒤의 두 가지 정려에는 이런 허물이 없다. 이 때문에 다 같이 정념을 세워 지로 삼는다. 【문】만일 정려지인 것이면 또한 보리분(菩提分)인 것인가? 【답】 4구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것은 정려지이면서 보리분이 아닌 것이 있으니 사(伺)와 낙수(樂受)와 사수(捨受)이다. 어떤 것은 보리분이면서 정려지가 아닌 것이 있으니 정진(精進)과 정어(正語)와 정업(正業)과 정명(正命)이다. 어떤 것은 정려지이면서 또한 보리분인 것이 있으니 그 밖의 다른 보리분법84)이다. 어떤 것은 정려지도 아니고 또한 보리분도 아닌 것이 있으니 앞의 모양에서 제외된 것이다. 【문】무엇 때문에 사(伺)와 낙수(樂受)와 사수(捨受)는 보리분으로 세우지 않는가? 【답】 가리고 손해를 당하기 때문이다. 사(伺)는 정사유(正思惟)에게 가리고 손해를 당하며, 낙수(樂受)는 경안(輕安)의 즐거움에 가리고 손해를 당하며, 사수(捨受)는 행사(行捨)에 가리고 손해를 당하기 때문에 보리분법으로 세우지 않는다. 【문】만일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정려지로 세우는 것인가? 【답】 보리분 중에서 정견(正見)을 다잡기[策] 위하여 정사유를 세워 보리분을 세울 때에 사(伺)의 행상(行相)은 미세하므로 정견을 다잡는 가운데에서 심(尋) 때문에 가리고 덮이어도 정려지로 세운 것은 하지(下地)의 악불선법(惡不善法)을 막아서 서로 가리거나 손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리분 중에서 경안(輕安)과 낙수(樂受)는 동일한 찰나 동안에 서로 가리고 손해함이 있어도 정려지 중에서는 지(地)가 별도로 건립되므로 가리거나 손해한다는 뜻이 없으며, 보리분 중에서 행사(行捨)와 수사(受捨)는 동일한 찰나 동안에는 서로 가리고 손해함이 있어도 정려지 중에서는 대치하는 이익과 갈래의 작용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가리거나 손해하지 않는다. 【문】무엇 때문에 정진(精進)은 정려지가 아닌가? 【답】 모든 정려지는 자기 지[自地]에 수순하는 것이 뛰어난데 정진은 다른 지[他地]에 수순하는 것이 뛰어나다. 초정려의 정진은 제2 정려에 수순하는 것이 더 뛰어나고 나아가 무소유처(無所有處)의 정진은 비상비비상처(非相非非相處)에 수순하는 것이 더 뛰어나기 때문에 그것을 정려지로 세우지 않는다.
또 정진은 삼마지(三摩地)의 인(因)을 손상하고 해치는 것이니 삼마지의 인은 곧 뛰어난 즐거움이다. 계경에서 “즐거움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니 부지런히 힘써 정진하는 이는 몸과 마음에 괴로움이 많지만 삼마지를 닦으면 몸과 마음에 즐거움이 많아진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정진은 정려지가 아니다. 【문】무엇 때문에 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은 정려지가 아닌가? 【답】 정려지라 함은 정려와 상응하는 것을 말한다. 경계에 머무르면서 반드시 소의(所依)와 소연(所緣)과 행상이 있고 경각(警覺)이 있는 것이라야 비로소 상응이라고 한다. 정어ㆍ정업ㆍ정명에는 이와 같은 뜻이 없으니 이 때문에 정려지로 세우지 않는다. 이로 말미암아 4상(相)과 모든 득(得) 등의 상응하지 않는 법[不相應法]은 모두 정려지로 세우지 않아야 하니 등지(等持)를 도와 한 경계[一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무엇 때문에 참(慚)ㆍ괴(愧)ㆍ무탐(無貪)ㆍ무진(無瞋)ㆍ불방일(不放逸)ㆍ불해(不害) 등은 정려지가 아닌가? 【답】 모든 정려에 지극히 수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선법(善法)은 대부분 욕계 산지(散地)의 악법(惡法)에 대하여 가까운 대치(對治)가 되어 세력이 더욱 강한 것이요 정지(定地)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니 이 때문에 정려지로는 세우지 않는다. 【문】심(心)ㆍ상(想)ㆍ사(思) 등은 무엇 때문에 정려지로 세우지 않는가? 【답】 정려에 지극히 수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心)은 유전(流轉)에 수순하는데 정(定)은 환멸(還滅)에 수순하기 때문에 심은 정려지로 세우지 않는다. 또 심이 훌륭한 것은 왕과 같고 심소법(心所法)은 모두 신하와 같은 것이니 정(定)이 심소이기 때문에 심을 세워서 정려지로 삼지 않는 것은 예컨대 국왕이 신하를 섬기지 않는 것과 같다. 상(想)ㆍ사(思)ㆍ촉(觸)ㆍ욕(欲)도 모두 유전에 수순하면서 작용이 치우치게 뛰어나지만 정은 환멸에 수순하기 때문에 그것을 정려지로는 세우지 않는다. 작의(作意)는 오직 욕계 산지(散地)에만 있고 경계에 대한 작용은 뛰어나면서도 모든 정지(定地)는 아니기 때문에 역시 정려지로는 세우지 않으며, 승해(勝解)는 오직 무학의 자리[無學位]에서만 수승하지만 정려는 두루 모든 자리[一切位]에서 뛰어나기 때문에 그것을 정려지로는 세우지 않는다. 또 여기에서는 모든 정려지로써 4념주(念住)ㆍ4정단(正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등각지(等覺支)ㆍ8성도지(聖道支)를 배대[對]하여 차츰 서로 포섭해야 하고, 다시 초정려지와 나아가 제4 정려지로써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배대하여 차츰 서로 포섭해야 하며, 다시 마땅히 초정려지와 나아가 제4 정려지로써 4념주와 나아가 8성도지를 배대하여 차츰 서로 포섭해야 하리니 그 모양에 따라 하나하나를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문】정려의 근분(近分)과 무색정(無色定)은 지(支)를 세우는가, 세우지 않는가? 만일 지를 세운다면 여기에서는 어찌하여 말하지 않았는가? 만일 세우지 않는다면 『시설론(施設論)』의 말을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거기에서는 “혹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으로서 공무변처정에 대하여 근(根)이 뛰어나고 도(道)가 뛰어나며 정(定)이 뛰어나면서도 갈래[支]는 같은 것이 있는가? 있다. 공무변처정에서 일어나서 틈이 없이 다시 공무변처정에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답】 어떤 이는 “정려의 근분(近分)과 무색정에서도 지(支)를 세운다”라고 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시설론』의 말은 잘 통하겠지만 이제 여기에서는 무엇 때문에 말하지 않았는가? 【답】 이치로 보아서는 역시 말해야 하는데 말하지 않은 것은 여기에서는 그 밖의 다른 주장도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초정려의 근분(近分)에는 근본(根本)과 같이 역시 다섯 가지가 있으나 희수(喜受)를 빼고 사수(捨受)를 보태었다. 제2 정려의 근분에는 근본과 같이 역시 네 가지가 있으나 역시 희수를 빼고 사수를 보태었다. 제3 정려의 근분에는 근본과 같이 역시 다섯 가지가 있으나 낙수(樂受)를 빼고 사수를 보태었다. 제4 정려의 근분과 무색정에는 근본의 제4 정려와 같이 모두 역시 네 가지가 있다. 【評】 “정려의 근본과 무색정에는 모두 지(支)를 세우지 않으니 공덕이 적기 때문이요 괴로움의 길에 속하기 때문이다”라고 해야 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한 것에는 잘 통하겠지만 『시설론』의 말은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답】 인(因)의 장양(長養)에 의거하기 때문에 뛰어나다고 말하며, 지가 같다[支等]라고 말하는 것은 각도지(覺道支)이다. 【문】무엇 때문에 초정려와 제3 정려에서는 다 같이 다섯 가지를 세우고 제2ㆍ제4 정려에서는 다 같이 네 가지를 세우는가? 【답】 앞에서 수순(隨順)한다는 뜻이 지(支)의 뜻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네 가지 정려에는 저마다 그럴 만한 수순한 법이 있어서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다. 또 욕계의 모든 악은 끊기도 어렵고 깨뜨리기도 어려우며 뛰어 넘기도 어렵기 때문에 초정려에서는 다섯 가지의 갈래를 세워서 굳고 강한 대치(對治)를 삼는다. 제2 정려의 중지(重地)의 지극한 기쁨[極喜]은 끊기도 어렵고 깨뜨리기도 어려우며 뛰어넘기도 어렵기 때문에 제3 정려에서는 다섯 가지를 세워서 굳고 강한 대치를 삼는다. 초정려와 제3 정려에서는 모두 이와 같이 끊기 어렵고 깨뜨리기 어렵고 뛰어넘기 어려운 법이 없기 때문에 제2ㆍ제4 정려에서는 오직 네 가지만을 세우는 것이니 거기에는 모두 굳고 강한 대치를 빌리지 않기 때문이다. 또 욕계의 왕성한 5욕(欲) 경계의 탐(貪)을 대치하기 위하여 초정려에서는 다섯 가지를 세우고, 제2 정려의 5부(部) 중지(重地)의 기뻐하고 사랑함을 대치하기 위하여 제3 정려에서도 다섯 가지를 세우지만 초정려와 제3 정려에서는 이와 같이 대치할 것이 없기 때문에 제2ㆍ제4 정려에서는 다 같이 네 가지를 세울 뿐이다. 또 정을 초월하는 법[超定法]에 수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섯 지의 정[五支定]에서 초월하여 다섯 지의 정에 들어가고 다시 네 가지 지의 정에서 초월하여 네 가지 지의 정에 들어가는 것이니 지(支)가 같은 것이면 초월하여 들어가기 쉽기 때문이다. 【문】만일 제3 정려에서 초월하면 공무변처로 들어가고 다시 제4 정려에서 초월하면 식무변처로 들어가므로 거기에는 다 같이 지(支)가 없는데 어떻게 수순하는가? 【답】 모든 바깥과 안의 일은 처음에 지을 때는 어려워도 뒤에 이룩한 때에는 수순을 빌리지 않는다. 먼저 바깥 일에 대해서 말해 본다면 예컨대 차락가(遮諾迦)는 신하였던 회월(懷月)과 함께 12년 동안 황금을 만드는 법을 배우면서 처음에는 한 톨의 보리쌀만 하게 만들다가 곧 사자처럼 크게 외치면서 “우리들은 이제 황금산도 만들 수 있다”라고 한 것과 같다. 안의 일을 말해 본다면 유가사(瑜伽師)가 신경통(神境通)을 닦으면서 처음에 배울 때는 땅에서 떠오르기를 반(半) 거승(苣蕂) 정도 하다가 그 다음에는 다시 땅에서 떠오르기를 1거승 정도 하며 이와 같이 하여 반 맥(麥)ㆍ1 맥ㆍ반 지(指)ㆍ1지ㆍ반 걸(榤)ㆍ1걸ㆍ반 주(肘)ㆍ1주ㆍ반 심(尋)ㆍ1심 정도씩 점점 늘어나서 그가 뒷날 성취했을 때에는 마음에 원하는 대로 색구경천(色究竟天)에도 가고 자유자재로 갈 수 있는 것처럼 정(定)을 초월하는 것도 그러하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어렵기 때문에 지(支)와 같은 것을 빌리지만 뒷날에는 하기 쉽기 때문에 지를 세우지 않아도 초월하여 들어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초정려와 제3 정려에서는 각각 다섯 가지를 세우고 제2ㆍ제4 정려에서는 각각 네 가지를 세우는 것이다. 계경에서 “필추들이여,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천도(天道)가 있어서 유정으로 하여금 아직 청정하지 못한 이는 청정하게 하고 청정한 이는 변하여 밝게[明]한다”라고 하셨다.85) 【문】무엇 때문에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는가? 【답】 유정들로 하여금 천도에 나는 것에 대해서는 깊이 싫증과 공포를 내게 하여 승의의 천도[勝義天道]를 기꺼이 구하여 편안히 머무르게 하고자 해서이다.
하늘에 난다는 것은 삼십삼천(三十三天)을 말한다. 거기에는 장엄하고도 미묘한 네 개의 동산이 있으니 첫째는 중차(衆車)라 하고, 둘째는 추악(麤惡)이라 하며, 셋째는 환희(歡喜)라 하고, 넷째는 잡림(雜林)이라 한다. 이와 같은 네 동산에는 네거리가 있는데 하늘의 모든 채녀(婇女)들이 그곳으로 모여든다. 그리하여 눈부신 미인들이 그 안에서 놀며 갖가지 음악이 항상 울리고 여러 가지 술안주와 음식이 놓여 있다. 보배나무는 줄지어 서서 가지는 흐느적거리고 꽃과 잎은 무성하며 향기는 자욱하고 탐스럽게 영근 열매는 빛이 깨끗하고 달고 맛있으며 마음대로 모습을 바꾸는 새는 청아한 소리로 지저귀고 있다. 모든 하늘들은 그 안에서 모든 욕락(欲樂)을 받으며 재미있게 놀고 난 뒤에 서로 얼싸안고 동산으로 들어간다. 이 정법(正法) 비나야(毘奈耶) 중에서 택멸(擇滅)인 열반은 그 하늘의 동산과 같고 네 가지 묘한 정려는 네거리와 같아서 통명(通明)의 채녀가 그 안에 모이고 해탈하며 걸림 없는 아름다운 여인이 머물러 놀며, 3장(藏)의 음악이 항시 울리고 청정한 기쁨의 안주와 음식이 놓여 있으며, 보리분법의 보배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가운데 무량(無量)ㆍ해탈(解脫)ㆍ승처(勝處)ㆍ변처(邊處)의 나뭇가지가 흐느적거리고 각지(覺支)ㆍ도지(道支)의 꽃과 잎이 무성하며 모든 묘한 청정한 계[淨戒]의 향기가 자욱하고 모든 사문의 과(果)가 빛이 깨끗하고 달고 맛있다. 학(學)ㆍ무학(無學)의 마음대로 모습을 바꾸는 새가 청아한 소리로 지저귀는데 여러 성자들은 그 안에서 훌륭한 선정의 즐거움을 받다가 재미있게 놀고 난 뒤에는 다 같이 열반에 들어간다. 어떤 것을 네 가지 천도(天道)라 하는가? 욕(欲)과 악ㆍ불선법을 여의고 심(尋)과 사(伺)가 있으며 여읨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초정려에 구족(具足)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제일의 천도라고 한다. 먼저 욕과 악ㆍ불선법을 여의는 것에 대한 문답이다. 【문】초정려를 얻을 때에는 통틀어 욕계의 모든 법을 여의는데 무엇 때문에 다만 욕과 악ㆍ불선법만을 여읜다고 하는가? 【답】 악ㆍ불선법을 우두머리로 삼아 통틀어 욕계를 여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또 악ㆍ불선법은 성도(聖道)를 어기고 해치며 자성을 끊나니 그것이 만일 끊어지고 나면 다시는 성취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치우치게 말한다. 모든 유루선(有漏善)과 무부무기(無覆無記)는 성도를 어기지도 않고 자성을 끊지도 않으며 그것이 만일 끊어져도 오히려 성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루선과 무부무기는 악ㆍ불선을 끊을 때에도 따라서 끊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동일한 대치이기 때문이요 일시에 끊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등불은 어두움을 어기지만 심지와 기름과 종지는 그렇지 않으면서도 어둠을 깨뜨릴 때에는 역시 심지가 타고 기름이 닳아서 종지가 뜨거워지는 것과 같다. 또 악ㆍ불선 법은 끊기 어렵고 깨뜨리기 어렵고 뛰어 넘기도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치우치게 말한다. 또 악ㆍ불선법은 모든 허물과 환난이 많고 더욱 왕성하며 견고한 것이기 때문에 치우치게 말한다. 또 악ㆍ불선법은 욕염(欲染)을 여읠 때에는 지극히 장애가 되고 방해되며 계박하는 것이 사나운 옥졸(獄卒)과 같기 때문에 치우치게 말한다. 또 모든 유가사는 오로지 그 악ㆍ불선법을 끊기 위하여 초정려를 닦는 것이기 때문에 치우치게 말한다. 또 모든 유가사는 그것을 미워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통틀어 욕계를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치우치게 악ㆍ불선법을 떠난다고 말한다. 또 악ㆍ불선 법은 상지(上地)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치우치게 떠날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오직 욕과 악ㆍ불선법을 떠날 것을 말한다. 【문】여기에서 어느 것이 욕(欲)이고 어느 것이 악ㆍ불선법인가? 【답】 일거리의 욕[事具欲]이86) 욕이요, 번뇌의 욕이 악ㆍ불선법이다. 또 욕은 5욕(欲)을 말하고 악ㆍ불선법은 5개(蓋)를 말한다.
또 욕은 욕애(欲愛)를 말하고 악ㆍ불선법은 욕계의 그 밖에 모든 번뇌를 말한다. 또 욕은 욕심(欲尋)을 말하고 악ㆍ불선법은 에해심(恚害尋)을 말한다. 또 욕은 욕계(欲界)를 말하고 악ㆍ불선법은 에해계(恚害界)를 말한다.87) 또 욕은 욕상(欲想)을 말하고 악ㆍ불선법은 에해상(恚害想)을 말한다. 또 욕은 욕애(欲愛)를 말하고 악ㆍ불선법은 곧 욕애(欲愛)이니 이것은 갖가지 욕애를 떠나는 것을 말한다. 심도 있고[有尋] 사도 있다[有伺]는 것은 심(尋)과 함께하는 법을 심도 있다고 하고 사(伺)와 함께하는 법을 사도 있다고 한다. 다음은 여읨에서 생긴다[離生]는 것에 대한 문답이다. 【문】상지(上支)에서의 여읨[離]은 훌륭하고 묘하고 깨끗한 것이 초정려보다 더 뛰어난데 무엇 때문에 오직 초정려에서만 ‘여읨에서 생긴다’라고 말하는가? 【답】 여기에서는 처음의 것을 듦으로써 뒤의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세존께서는 어떤 곳에서는 뒤의 것을 듦으로써 처음의 것을 나타내니 예컨대 “어떤 것이 자기와 남을 해치는 것이 아닌가? 비상비비상처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처음과 뒤의 것을 드는 것과 같이 처음 들기 시작한 것ㆍ이미 제도된 것ㆍ가행(加行)ㆍ구경(究竟)에 있어서도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또 처음에 ‘여읨에서 생겨남[離生]’을 얻으면 희유하고도 기이하다는 생각을 일으키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또 초정려는 오직 여읨[離]에서 생기지만[生] 뒤의 모든 정려는 역시 정(定)에서 생긴다. 여읨에서 생기기 때문에 이생이라 하는 것은 물에서 생기는 것을 수생(水生)이라 하고 육지에서 생기는 것은 육생(陸生)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또 초정려의 여읨은 두 무루정(無漏定)을 권속으로 삼기 때문에 홀로 이생이라고 하니 미지정(未至定)과 정려중간(靜慮中間)이다.
또 초정려의 여읨은 뒤의 여읨 문[離門]이고 소의(所依)이며, 가행(加行)이고 인본(因本)이며, 길이고 안족처(安足處)이므로 홀로 여읨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또 초정려의 여읨은 뒤의 여읨을 끌어당기고 맡아 지니고 자라게 하는 것이므로 홀로 여읨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또 초정려의 여읨은 뒤의 모든 여읨의 생(生)ㆍ연(緣)ㆍ집(集)ㆍ기(起)이므로 홀로 여읨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또 상지(上地)의 모든 여읨은 결정코 초정려의 여읨의 득(得)과 앞에서 일어난 것에 의지하기 때문에 초정려에서 홀로 여읨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또 모든 유가사는 욕계의 염(染)을 여의고 초정려를 일으켜 앞에 나타나 있을 때에 기뻐하며 뛰노는 것이 뒷날의 것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에 홀로 여읨이라고 하니 마치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이 처음 음식을 얻었을 때에는 비록 거칠고 나쁜 음식이라 하더라도 기쁜 마음을 내는 것은 나중에 맛있는 음식을 얻은 것보다 더 큰 것과 같다. 또 세 부류의 수행하는 사람은 초정려에 의하여 이생(離生)을 얻게 되고 과를 얻고[得果] 근성을 연마하며[練根] 모든 번뇌를 다하기 때문에 홀로 여읨이라고 한다. 세 부류의 수행하는 사람이란 구박자(具縛者)와 일부분의 욕심을 여읜 이와 모든 욕심을 여읜 이[全離欲者]이다. 또 의심하는 이로 하여금 결정을 얻게 하기 때문에 홀로 여읨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니 예컨대 욕계에는 심(尋)이 있고 사(伺)가 있으며 모든 식신(識身)과 존비(尊卑)의 권속이 있는 것처럼 초정려에서도 이러한 것이 있다. 혹 어떤 이는 ‘욕계에 여읨이 없는 것처럼 초정려에 있어서도 그러하다’라고 의심하므로 이런 의심을 결단하기 위하여 “초정려에는 여읨이 있지만 욕계는 있지 않다”라고 말한다. 또 욕계에는 여읨이 없으므로 그것을 가까이 대치하기 위하여 초정려에서는 홀로 여읨이라는 이름을 세운다. 또 오직 초정려에서만 삼계의 모든 번뇌를 여읠 수 있으므로 홀로 여읨이라는 이름을 세운다. 또 오직 초정려에서만 4사문과(沙門果)의 도(道)와 9변지과(遍知果)의 도와 37보리분법(菩提分法)을 갖추기 때문에 홀로 여읨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오직 초정려에서만 모든 고근(苦根)ㆍ우근(憂根)ㆍ남근(男根)ㆍ여근(女根)ㆍ무참(無慚)ㆍ무괴(無愧)ㆍ식애(食愛)ㆍ음애(婬愛)ㆍ5개(蓋)ㆍ5욕(欲)ㆍ간탐(慳貪)ㆍ질에(嫉恚)와 5온(蘊)ㆍ12처(處)ㆍ18계(界) 등을 여의게 되기 때문에 홀로 여읨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오직 초정려만을 이생(離生)이라고 한다. 기쁨과 즐거움[喜樂]이란 기쁨은 희근(喜根)을 말하고 즐거움은 경안(輕安)의 즐거움을 말한다. 또 기쁨은 수온(受蘊)에 속하고 즐거움은 행온(行蘊)에 속한다. 초정려에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함은 초정려의 선(善)한 5온을 획득하고 성취한 것이니 획득하고 성취한 것을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한다. 또 다음에 심사(尋伺)가 소멸하고 내등정(內等淨)이며 마음이 한 곳으로 나아가며 심(尋)도 없고 사(伺)도 없는 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의 제2 정려에 구족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제2의 천도(天道)라 한다. 먼저 심사가 소멸한다는 것에 대한 문답이다. 【문】제2 정려를 얻을 때에는 통틀어 초정려의 모든 법이 소멸하는데 무엇 때문에 다만 심사만 소멸한다고 말하는가? 【답】 심ㆍ사를 우두머리로 삼아 통틀어 초정려가 소멸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또 심ㆍ사는 끊기 어렵고 깨뜨리기 어렵고 뛰어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치우치게 말한다. 또 심ㆍ사는 모든 허물과 환난이 많고 더욱 왕성하고 견고한 것이기 때문에 치우치게 말한다. 또 심ㆍ사는 초정려의 염(染)을 여읠 때에 지극히 장애하고 방해하며 계박하는 것이 사나운 옥졸과 같기 때문에 치우치게 이것을 말한다. 또 모든 유가사는 오로지 심ㆍ사를 끊기 위하여 제2 정려를 닦는 것이기 때문에 치우치게 말한다. 또 모든 유가사는 심ㆍ사를 미워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통틀어 초정려를 버리는 것이니 이 때문에 치우치게 이것을 말한다. 또 심ㆍ사는 상지(上地)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치우치게 말한다. 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다만 심ㆍ사가 소멸한다고 말한다. 내등정(內等淨)이란 내(內)는 마음을 말하고 등정은 믿음을 말한다. 믿음이 평등함으로 말미암아 안 마음[內心]으로 하여금 깨끗하게 하기 때문에 내등정이라고 한다. 세우(世友) 존자는 “심ㆍ사는 들썩거려 선정의 마음을 요란하게 하므로 믿음은 그것을 없애 마음으로 하여금 평등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 마치 물결이 쉬면 물이 맑디맑아지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믿음을 내등정이라 한다”고 말씀하셨다. 또 “염(染)의 기쁨[喜]은 날뛰어 선정의 마음을 혼탁하게 하므로 믿음은 그것을 없애 마음으로 하여금 평등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 마치 흐린 것을 여의면 물이 맑디맑아지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믿음을 내등정이라고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대덕 법구(法救)는 “수행하는 이가 장차 제2 정려에 들려고 할 때에 마음이 선정의 경계를 믿고 향하여 즐거이 머무르며 흐르지도 않고 내닫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고 오랫동안 한 경계에 머무르면 제2의 선정을 얻는 것이니 여기에 이런 도리가 있는 것은 믿음의 힘을 말미암아서이다. 이 때문에 믿음을 내등정이라고 한다”고 말씀하셨다. 마음이 한곳으로 나아간다[心一趣]고 함은 하나의 문(門)으로 옮아가는 것이니, 욕계의 마음이 여섯 개의 문으로 옮아가고 초정려의 마음이 네 개의 문으로 옮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니 제2 정려의 마음은 하나의 문으로 옮아가기 때문에 한곳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곧 이 마음이 하나의 경계를 짓는다[行]는 뜻이다. 심(尋)도 없고 사(伺)도 없다는 것은 심ㆍ사가 이미 소멸한 것을 말한다. 정에서 생김[定生]에 대하여 설명한다. 【문】초정려에도 정(定)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오직 제2 정려에서만 정에서 생긴다고 하는가? 【답】 제2 정려에서는 초정려보다 등지(等持)가 더욱 왕성하며 뛰어나고 묘하고 깨끗하므로 이 때문에 치우치게 말한다. 또 제2 정려는 정(定)이 이끌어내는 것이고 정으로 길러내는 것이어서 초정려 이후에 앞에 나타나기 때문에 정에서 생긴다고 하지만 초정려는 정이 이끌어내는 것도 아니고 정으로 길러내는 것도 아니어서 욕계의 마음 이후에 앞에 나타나기 때문에 정에서 생긴다고 하지 않는 것과 같지 않다. 또 초정려의 마음에는 정(定)이 있고 부정(不定)이 있으며 내문전(內門轉)이 있고 외문전(外門轉)이 있으며 안의 일[內事]을 반연하는 것이 있고 바깥 일[外事]을 반연하는 것이 있지만 제2 정려의 마음은 대부분 정에 있고 대부분 내문전일 뿐이며 안의 일만을 반연하기 때문에 정에서 생긴다고 한다. 또 제2 정려는 언어의 근본[語言本]을 소멸한다. 언어의 근본을 소멸한다고 함은 심(尋)과 사(伺)를 말한다. 계경에서 “반드시 심과 사의 뒤에야 언어를 일으키게 되고 심ㆍ사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제2 정려는 심ㆍ사가 이미 소멸하여 언어의 근본이 없기 때문에 정에서 생긴다고 한다. 또 제2 정려를 성스러운 침묵[聖黙然]이라고 하기 때문에 정에서 생긴다고 한다. 계경에서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제2 정려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 이것은 성자의 침묵의 법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정생(定生)은 오직 제2 정려에만 있을 뿐이다. 기쁨과 즐거움[喜樂]이란 기쁨은 희근(喜根)을 말하고 즐거움은 경안(輕安)의 즐거움을 말한다. 또 기쁨은 수온(受蘊)에 속하고 즐거움은 행온(行蘊)에 속한다. 제2 정려에 구족하게 머무른다[具足住]고 함은 제2 정려의 선한 5온(蘊)을 획득하고 성취하는 것이니 획득하고 성취하는 것을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한다.
77)무색(無色) 중에는 견도(見道)가 일어나지 않는다. 견도가 일어나는 곳은 오직 미지(未至)ㆍ중간(中間)ㆍ4근본(根本)의 여섯 가지 지[六地]에 의할 뿐이다.
78)무색(無色)에는 4온(蘊)이 구생(俱生)하며 4지(支) 5지(支)가 없다. 또 6통(通) 가운데 누진통(漏盡通)은 온갖 모든 지(地)에 의지하나 그 밖의 다섯 신통은 4선(禪)에만 의지하며 통행(通行) 가운데 고통행(苦痛行)은 무색(無色)과 미지(未至)와 중간(中間)에 의하지만 낙통행(樂通行)은 4선에만 의하며, 3종변현(種變現:三示導)은 신경(神境)ㆍ타심(他心)ㆍ누진(漏盡)의 세 가지 신통을 체(體)로 삼는 것이므로 또한 4선에 의하며, 3명(明)은 숙주(宿主)ㆍ사생(死生)ㆍ누진(漏盡)의 세 가지 신통을 체로 삼는 것이므로 4선에 의하며, 3무루근(無漏根)과 견도(見道)ㆍ수도(修道)ㆍ무학도(無學道)의 3도(道)와 유심유사(有尋有司)ㆍ무심유사(無尋唯伺)ㆍ무심무사(無尋無伺)의 3지(地) 등도 4선에만 있으며 무색정에는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정려가 아니다.
79)본 절(節)에서는 4정려 중에서 특수한 심적 작용이 있는 것을 들면서 그것을 정려지(靜慮支)로 세운다는 것을 설명하고 그것에 의하여 정려의 내용을 밝히는 문단이다. 여기서는 먼저 정려지의 명칭과 수에 대하여 논구한다. 심(尋)ㆍ사(伺)란 마음의 거칠고 미세한 성품을 말하고, 희(喜)란 마음이 기뻐지는 것[悅]을 말하며, 낙(樂)이란 가뿐해지는 즐거움을 말하고, 심일경성(心一境性)이란 마음이 일정한 경계에 머무르게 되는 성품을 말하며, 내등정(內等淨)이란 신근(信根)이어서 깊은 믿음이 생기는 것을 말하고, 행사(行捨)란 사(捨)의 심소(心所)를 말하며, 수락(受樂)이란 제3선(禪)에서의 마음의 기쁨을 말하고, 사청정(捨淸淨)ㆍ염청정(念淸淨)이란 제4선에서의 행사(行捨)이며 염(念)에는 여덟 가지 요란스러운 일[八擾亂事]이 없기 때문에 사청정ㆍ염청정이라고 한다.
80)각지(覺支)는 염(念)ㆍ택법(擇法)ㆍ정진(精進)ㆍ희(喜)ㆍ경안(輕安)ㆍ정(定)ㆍ행사(行捨) 일곱 가지를 말한다.
81)도지(道支)는 정견(正見)ㆍ정사유(正思惟)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ㆍ정정진(正精進)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 여덟 가지를 말한다.
82)재지(齋支)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 첫째는 중생을 죽이지 말라. 둘째는 훔치지 말라. 셋째는 음행하지 말라. 넷째는 거짓말하지 말라. 다섯째는 술을 먹지 말라. 여섯째는 꽃다발을 쓰거나 향을 바르고 노래하고 춤추거나 그런 일을 구경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라. 일곱째는 높고 넓고 잘 꾸민 평상에 앉지 말라. 여덟째는 때가 아닐 때에 먹지 말라.
83)지극한 기쁨이란 제2선의 기쁨을 말하며, 지극한 즐거움이란 제3선에 있어서의 즐거움을 말한다.
84)정견(正見)ㆍ정정(正定)ㆍ정념(正念)ㆍ정사유(正思惟)를 말한다. 정견은 혜(慧)를, 정사유는 심(尋)을 체로 삼는 것이므로 역시 정려지가 된다.
85)본 절은 욕계의 마음으로부터 초선(初禪)에 들어가고 나아가 제4선에 들어갈 때의 마음의 흐름을 밝히는 문단이며, 여기서 그것을 네 가지 천도(天道)라고 함은 제석천왕의 네 동산의 네거리에 비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