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타심지납식(他心智納息) ③ 방생취(傍生趣)에도 생처득지(生處得智)가 있어서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안다. 어떻게 그런 줄 아는가?1) 옛날 어떤 여인이 아이를 어느 곳에 놓아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한 마리 이리가 와서 그 아이를 물고 갔다. 옆에 있던 사람이 쫓아가면서 그 이리에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 무슨 연유로 남의 아이를 데리고 가느냐?” 이리가 대답하였다. “그 어미가 과거 5백 생(生) 동안 언제나 내 새끼를 살해하였으므로 나도 과거 5백 생 동안 늘 그의 자식을 살해하고 있다. 서로가 원수를 원수로 갚으면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가 만일 그것을 그만둔다면 나도 그 일을 그만둘 것이다.” 옆에 있던 사람이 곧 그 아이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만일 자식을 아낀다면 당신은 원한의 마음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여인이 대답하였다. “나는 이미 버렸습니다.” 이리가 여인의 마음을 자세히 관찰하여 보니 도무지 원한을 버리지도 않았고, 다만 아이만을 해칠까 두려워 거짓으로 ‘이미 버렸다’고 하므로 마침내 그의 자식을 살해하고는 떠났다. 【문】방생(傍生)은 어느 때에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아는가? 【답】 처음이나 중간이나 뒤의 단계[後位]에 모두 다 알게 된다. 【문】그는 어느 마음에 머무르면서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아는가? 선(善)의 마음인가, 염오(染汚)의 마음인가, 무부무기(無覆無記)의 마음인가? 【답】 세 가지의 마음에서 모두 다 안다. 【문】의식(意識)에 머무르면서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아는 것인가, 5식(識)에 머무르면서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아는 것인가? 【답】 오직 의식에만 머무르면서 알 뿐이다. 【문】위의로(威儀路)의 마음에 머물러서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것인가? 공교처(工巧處)의 마음에 머물러서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것인가? 이숙생(異熟生)의 마음에 머물러서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것인가? 【답】 세 가지에서 모두 다 안다. 거기에는 공교처의 마음도 나타나고 일어나기 때문이요, 거기에는 이숙생의 마음의 의식도 있기 때문이니, 지옥(地獄)이 결정코 선(善)의 이숙과(異熟果)를 받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귀취(鬼趣)에도 생처득지가 있어서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안다. 어떻게 그런 줄 아는가? 옛날 어떤 여인이 귀신에게 홀려서 몸이 바짝 마르면서 거의 죽어가고 있었으므로 주사(呪師)가 귀신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금 어찌하여 이 여인을 괴롭히는가?” 귀신이 대답하였다. “이 여인은 과거 5백 생 동안 늘 내 목숨을 해쳤으므로 나도 과거 5백 생 동안 늘 그의 목숨을 해쳤다. 서로가 원수를 원수로 갚으면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가 만일 그 원한을 버린다면 나도 그 원한을 버릴 것이다.” 주사는 이내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만일 목숨이 아깝다면 당신은 그 원한의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여인이 대답하였다. “나는 이미 버렸습니다.” 귀신이 여인의 마음을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도무지 원한은 버리지도 않았고, 목숨이 온전하지 못할까 두려워 거짓으로 ‘이미 버렸다’고 말을 하고 있었으므로 마침내 그의 목숨을 끊고는 버리고 떠나갔다고 한다. 【문】귀취는 어느 때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아는가? 【답】 처음이나 중간이나 뒤의 단계에서 모두 다 알게 된다. 【문】그는 어느 마음에 머무르면서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아는가? 선의 마음에서인가, 염오의 마음에서인가, 무부무기의 마음에서인가? 【답】 세 가지의 마음에서 모두 다 안다. 【문】의식(意識)에 머물러서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아는 것인가? 5식(識)에 머물러서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아는 것인가? 【답】 오직 의식에 머물러서 알 뿐이다. 【문】위의로의 마음에 머물러서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아는 것인가? 공교처의 마음에 머물러서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아는 것인가? 이숙생의 마음에 머물러서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아는 것인가? 【답】 세 가지에서 모두 다 아는 것이니, 방생취에서의 설명과 같다. 천취(天趣)에서도 생처득지가 있어서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알지만 미세(微細)하기 때문에 그것을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 밖의 나머지는 방생과 귀취에서의 자세한 설명과 같다. 인취(人趣)에서는 생처득지로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아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밭[田]과 그릇[器]이 아니기 때문이요, 뛰어난 도상지(覩相智)와 문어지(聞語智) 등에 가리고 훼손[覆損]되기 때문이며, 타심통(他心通)과 원지(願智) 등에 눌리고 가려지기[映蔽] 때문이다. 【문】누가 생처득지로 몇 취(趣)의 마음을 아는가? 【답】 어떤 이는 “저마다 오직 자기 취의 것만을 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지옥은 오직 지옥의 취만을 알고, 방생은 두 취의 것을 알며, 귀취는 세 취의 것을 알고, 천취는 다섯 취의 것을 안다”고 한다. 『시설론(施設論)』에서는 “애라벌나선주용왕(哀羅筏拏善住龍王)이 천취를 안다고 함은, 비상지(比相智)로 아는 것이요, 생처득지가 아니다”고 하였다. 【評】 “4취(趣)에서의 생처득지는 각기 5취(趣)의 것을 안다고 해도 이치로 보아서 어긋남이 없다”고 해야 한다. 【문】인취에도 본성염생지(本性念生智)의 종류가 있어서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알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말하지 않는가? 【답】 말해야 되는데도 말하지 않은 것은 이 뜻에는 그 밖의 다른 것이 있는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또 적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 인취에서 이 지(智)를 얻는 자는 극히 적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본성염생지의 종류는 다른 이의 심(心)ㆍ심소법(心所法)을 현재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論】 어떤 것은 타심지(他心智)이면서 또한 다른 이의 심ㆍ심소법을 현재 아는 것도 있다. 지(智)로 닦아 이룩한 것[修所成]이고 수행의 결과[修果]이며 수행에 의지(依止)하여 이미 얻어 잃지 않았으면서[已得不失] 다른 이의 현재의 욕계ㆍ색계의 심ㆍ심소법이거나 혹은 무루(無漏)의 심ㆍ심소법을 현재 아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타심지통(他心智通)에 대한 설명으로 그 자세한 것은 앞에서의 해석과 같다.
【論】 어떤 것은 타심지도 아니고, 다른 이의 심ㆍ심소법을 현재 아는 것도 아닌 것이 있다. 앞의 모양[前相]을 제외한 것이다.
모양[相]이라고 함은 이름한 것[所名]을 말한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행온(行蘊)에서 통틀어 3세(世)의 타심지통을 제외하고 현재의 도상지와 문어지와 생처득지(生處得智)로서 다른 이의 심ㆍ심소법을 현재 아는 것을 제외한 모든 그 밖의 행온과 4온(蘊)의 전부와 아울러 무위의 법[無爲法]이 제4구(句)가 된다.
【論】 모든 숙주수념지(宿住隨念智)는 모두 현재 모든 전생 일을 기억하여 아는가? 【답】 4구를 만들어야 한다.2)
여기에서 숙주수념지는 3세에 다 통하지만 현재 모든 전생 일을 기억하는 것은 오직 현재일 뿐이다. 그러나 숙주수념지에 통하는 것과 숙주수념지에 통하는 것이 아닌 것도 있기 때문에 4구가 있게 된다.
【論】 숙주수념지이면서도 현재 모든 전생 일을 기억하여 아는 것이 아닌 것이 있다. 과거와 미래의 숙주수념지이다.
이것은 숙주수념지의 상(相)은 있지만 현재 모든 전생 일을 기억하는 작용이 없는 것이니, 모든 과거의 것은 작용이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요, 미래의 것은 아직 작용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論】 현재 모든 전생 일을 기억하여 알면서도 숙주수념지는 아닌 것이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본성염생지를 얻었거나 이와 같은 생처득지를 얻어서 현재 모든 전생 일을 기억하여 아는 것이다.
본성염생지로서 현재 전생 일을 기억하여 안다고 함은 오직 인취에만 있을 뿐이니, 그 밖의 다른 4취(趣)에는 이런 지(智)가 없기 때문이다.
생처득지로서 현재 모든 전생 일을 기억하여 안다고 함은 지옥 등에서 존재한다. 그런 일은 어떤 것인가? 우선 지옥에서의 경우에 대하여 말하면 계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지옥의 유정은 서로가 ‘기이하구나. 자기 자신의 잘못이다. 우리들은 과거에 사문(沙門)이나 바라문(婆羅門)들이 모든 욕심[欲]은 과환(過患)이어서 미래에 두려울 만한 일을 끌어오는 것이니, 그대들은 끊어야 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었다. 우리들은 비록 들었으면서도 신용(信用)하지 않다가 이제 그 욕심으로 인하여 이런 극심한 고통을 받는구나’라고 말한다.” 【문】그는 어느 때에 전생 일을 기억하게 되는가? 【답】 처음에 막 지옥에 나서 아직 고통을 받기 전이다. 만일 고통을 받게 되면 바로 앞에 없어진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오래전에 없어진 일을 기억하며 알겠는가? 【문】그는 어느 마음에 머무르면서 전생 일을 기억하는가? 【답】 선과 염오와 무부무기에 머무르면서 모두 기억하여 안다. 6식(識)에서는 오직 의식(意識)에만 머물러서 알며, 세 가지의 무기[三無記]에서는 오직 위의로(威儀路)에만 머물러서 기억하여 안다. 【문】그의 생처득지는 몇 생을 기억하여 아는가? 【답】 한 생(生)을 기억하여 아는 것이니 거기에서 죽어서 여기에 난 것이다. 어떤 이는 “나아가 5백 생까지를 안다”고 한다. 방생취에 생처득지가 있어 현재 전생 일을 기억하여 안다고 함은, 계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 것과 같다. “나음(螺音)이라는 개가 있었는데 옛날 도제야(刀提耶)라는 범지(梵志)였다. 전생의 일을 기억하였으므로 그의 아들이 자리에 오르게 하여 밥을 주고 보물 둔 데를 가르쳐 달라고 하자 모두 그의 말대로 하였다.” 【문】어느 때에 전생 일을 기억하는가? 【답】 처음이나 중간이나 뒤의 단계[位]에서 모두 기억하여 안다. 【문】그는 어느 마음에 머무르면서 전생 일을 기억하는가? 【답】 선과 염오와 무부무기에 머무르면서 모두 기억하여 안다. 6식에서는 오직 의식에만 머물러서 알며, 세 가지의 무기에서는 세 가지 모두에 머무르면서 안다. 【문】그의 생처득지는 몇 생을 기억하여 아는가? 【답】 어떤 이는 “오직 한 생만을 기억할 뿐이니 거기에서 죽어서 여기에 난 것이다”라고 한다. 【評】 “여러 생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니, 마치 이리가 5백 생의 일을 기억하여 아는 것과 같다”라고 해야 한다. 귀취(鬼趣)에도 생처득지가 있어서 현재 전생 일을 기억하여 안다고 함은, 게송[伽陀]에서의 말과 같다.
나는 옛날에 값진 재물을 모으면서 법대로 혹은 법에 어긋나게 했으므로 다른 이는 지금 부(富)와 낙(樂)을 받고 있는데 나만 혼자 가난의 고통을 받는구나.
【문】그는 어느 때에 전생 일을 기억하는가? 【답】 처음이나 중간이나 뒤의 단계에서 모두 기억하여 안다. 【문】그는 어느 마음에 머무르면서 전생 일을 기억하는가? 【답】 선과 염오와 무부무기에 머무르면서 모두 기억하여 안다. 6식에서는 오직 의식에만 머물러서 알며, 세 가지의 무기에서는 세 가지의 모두에 머무르면서 안다. 【문】그의 생처득지는 몇 생을 기억하여 아는가? 【답】 어떤 이는 “오직 한 생만을 기억하여 알 뿐이니 거기에서 죽어서 여기에 난 것이다”라고 한다. 【評】 “여러 생을 기억하는 것이니, 마치 귀신이 5백 생의 일을 기억하여 아는 것과 같다”라고 해야 한다. 천취(天趣)에도 생처득지가 있어서 현재 전생 일을 기억하여 안다고 함은, 게송에서의 말과 같다.
내가 서다림(誓多林)에 가서 베풀었을 때 대법왕(大法王)께서도 계셨고 현성승(賢聖僧)도 수용(受用)하셨으니 그 때문에 나의 마음은 매우 기뻤었다.
【문】그는 어느 때 전생 일을 기억하는가? 【답】 처음이나 중간이나 뒤의 단계에서 모두 기억하여 안다. 【문】그는 어느 마음에 머무르면서 전생 일을 기억하는가? 【답】 선과 염오와 무부무기에 머무르면서 모두 기억하여 안다. 6식에서는 오직 의식에만 머무르면서 알며, 세 가지 무기에서는 세 가지 모두에 머무르면서 기억하여 안다. 【문】그의 생처득지는 몇 생을 기억하여 아는가? 【답】 어떤 이는 “오직 한 생만을 기억할 뿐이니 거기에서 죽어서 여기에 난 것이다”라고 한다. 【評】 “여러 생을 기억한다”라고 해야 한다. 인취에는 생처득지로 전생 일을 기억하는 일이 없는 것이니, 밭과 그릇이 아니기 때문이요, 본성염생지(本性念生智) 등에 훼손되고 가려지기 때문이며, 숙주수념지(宿住隨念智)와 원지(願智) 등에 눌리고 덮이기 때문이다.
【論】 숙주수념지이면서 또한 현재 모든 전생 일을 기억하는 것이 있다. 지(智)로 닦아서 이룩한 것이고 수행의 결과이며 수행에 의지하여 이미 얻어 잃지 않았으면서 현재 모든 전생 일의 갖가지 모습[相狀]과 말했던 바를 기억하여 아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숙주수념지통(宿住隨念智通)이니 자세한 것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論】 숙주수념지도 아니면서 현재 전생 일을 기억하여 아는 것도 아닌 것이 있다. 앞의 모양[前相]을 제외한 것이다.
모양이라고 함은 이름한 것을 말한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행온에서 통틀어 3세의 숙주수념지통을 제외하고 현재의 본성염생지와 생처득지로서 현재 전생 일을 기억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그 밖의 행온과 4온의 전부와 아울러 무위의 법이니, 이것이 제4구가 된다.
【論】 모든 숙주수념지는 다른 이의 과거의 온(蘊)ㆍ처(處)ㆍ계(界)의 마음의 상속을 전부 아는가? 【답】 4구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서 첫째 구는 자기의 상속[自相續]을 반연하는 숙주수념지이고, 둘째 구는 다른 이의 상속[他相續]을 반연하는 원지(願智)와 숙주수념지의 가행(加行)이며, 셋째 구는 다른 이의 상속을 반연하는 숙주수념지이고, 넷째 구는 자기의 상속을 반연하는 원지와 숙주수념지의 가행이다. 이것을 이곳의 약비바사(略毘婆沙)라고 한다.
【論】 숙주수념지이면서도 다른 이의 과거의 온ㆍ처ㆍ계의 마음의 상속을 아는 것이 아닌 것이 있다. 지(智)로 닦아서 이룩한 것이고 수행의 결과이며 수행에 의지하여 이미 얻어 잃지 않았으면서 스스로 전생의 과거 온ㆍ처ㆍ계의 마음의 상속을 아는 것이다.3)
이것은 곧 자기의 상속을 반연하는 숙주수념지이니 과거 생(生)의 자기의 전생 일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論】 다른 이의 과거의 온ㆍ처ㆍ계의 마음의 상속을 알면서도 숙주수념지가 아닌 것이 있다. 지(智)로 닦아서 이룩한 것이고 수행의 결과이며 수행에 의지하여 이미 얻어 잃지 않았으면서 다른 이의 이 생의 온ㆍ처ㆍ계의 마음의 상속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곧 다른 이의 상속을 반연하는 원지와 숙주지(宿住智)의 가행이니 현재 생(生)의 다른 이의 과거의 일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論】 숙주수념지이면서 또한 다른 이의 과거의 온ㆍ처ㆍ계의 마음의 상속을 아는 것이 있다. 지(智)로 닦아서 이룩한 것이고 수행의 결과이며 수행에 의지하여 이미 얻어 잃지 않았으면서 다른 이의 전생의 과거 온ㆍ처ㆍ계의 마음의 상속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곧 다른 이의 상속을 반연하는 숙주수념지이니, 과거 생의 다른 이의 전생 일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論】 숙주수념지도 아니고, 다른 이의 과거의 온ㆍ처ㆍ계의 마음의 상속을 아는 것도 아닌 것이 있다. 지(智)로 닦아서 이룩한 것이고 수행의 결과이며 수행에 의지하여 이미 얻어 잃지 않았으면서 자기 자신의 이 생의 과거의 온ㆍ처ㆍ계의 마음의 상속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곧 자기의 상속을 반연하는 원지와 숙주수념지의 가행이니 자신의 이 생의 과거의 일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서 원지는 오직 이 생의 과거의 모든 유루(有漏)의 법만을 반연하고, 숙주수념지는 오직 전생의 과거의 모든 유루의 법만을 반연하지만 숙주수념지의 가행은 역시 오직 이 생의 과거의 모든 유루의 법만을 반연할 뿐이다. 그러나 모든 원지는 3세를 모두 반연하면서도 여기에서는 오직 이 생의 과거의 유루의 법을 반연하는 것만을 취한다. 【문】앞에서 말한 본성염생지(本性念生智)는 무엇을 자성(自性)으로 삼는가? 【답】 혜(慧)를 자성으로 삼는다. 이것을 본성염생지의 자성ㆍ아물(我物)ㆍ자체(自體)ㆍ상분(相分)ㆍ본성(本性)이라고 한다. 이미 자성을 말했으므로 그 까닭을 이제 말하겠다. 【문】무엇 때문에 본성염생지라 하는가? 본성염생지라 함은 무슨 뜻인가? 【답】 생(生)이라 함은 전생의 모든 유루의 법을 말하고, 지(智)라고 함은 이것이 생김으로써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을 말하며, 염(念)이라고 함은 이 지혜와 함께 생기는 보다 훌륭한 염[勝念]을 말하고, 본성(本性)이라고 함은 닦아서 얻어지는 것[修得]과는 구별된 것을 말한다. 곧 본성의 지혜가 훌륭한 염의 힘으로 말미암아 과거 생의 모든 유루의 법을 알기 때문에 본성염생지라고 한다. 또 본성의 마음에 머무르면서 훌륭한 염의 힘으로 말미암아 이 지(智)를 일으켜 과거 생의 모든 유루의 법을 알기 때문에 본성염생지라고 한다. 본성의 마음[本性心]이라 함은 선과 염오와 무부무기를 말하며, 닦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성이라고 한다. 또 본성이라 함은 모든 법의 자성, 곧 과거 생의 모든 유루법의 자성을 말하며, 지(智)가 염의 힘으로 말미암아 본성의 생(生)을 알기 때문에 본성염생지라고 한다. 또 본성이라고 함은 전제(前際)의 법성(法性), 즉 과거 생의 유루의 법성을 말하며, 지가 염의 힘으로 말미암아 본성의 생을 알기 때문에 본성염생지라고 한다. 【문】이 지(智)와 함께 생기는 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다만 염(念)이라고만 말하는가? 【답】 염(念)의 힘이 더하기 때문이다. 마치 4념주(念住)와 지식념(持息念)과 숙주수념지는 비록 혜(慧)를 체(體)로 삼는다 하더라도 염의 힘이 더하기 때문에 염주 등이라고 하는 것과 같고, 복제색상(伏除色想)은 비록 체가 혜라 하더라도 상(想)의 힘이 더하기 때문에 복제색상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것도 그와 같아서 비록 체가 혜라 하더라도 염의 힘이 더하기 때문에 본성염생지라고 한다. 【문】이 본성염생지는 어느 세계[界]에 있는가? 【답】 오직 욕계에만 있을 뿐이다. 【문】이 본성염생지는 어느 취(趣)에 있는가? 【답】 오직 인취(人趣)에만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오직 욕계의 인취에서만 훌륭한 업(業)을 지을 수 있고 이 지(智)를 이끌어 얻기 때문이며, 또 인취의 지혜는 맹렬하고 예리한 것이 다른 취[餘趣]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문】이 본성염생지는 어떤 업의 힘[業力]으로 말미암아 끌어 일으키는가? 【답】 어떤 이는 “만일 모든 유정이 기뻐하면서 부드럽고 온화한 말[愛語]을 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기쁘게 하면 그 업의 힘으로 말미암아 이런 지(智)를 이끌게 된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만일 모든 유정이 기뻐하면서 좋은 일을 전해 주어 다른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몸에 안락을 얻게 하면 그 업의 힘으로 말미암아 이런 지를 이끌게 된다”라고 한다. 어느 다른 논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모든 유정이 다른 이가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방편으로써 위로하고 깨우쳐 주어 그를 위하여 귀의(歸依)할 데가 되고 두려움이 없음[無畏]을 얻게 하면 그 업의 힘으로 말미암아 이런 지를 이끌게 된다.” 혹 어떤 이는 “만일 모든 유정이 다른 이가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법으로써 깨우쳐 주어 근심이 없음[無憂]을 얻게 하면 그 업의 힘으로 말미암아 이런 지를 이끌게 된다”라고 한다. 어느 다른 이는 또 “만일 모든 유정이 험하거나 좁은 곳을 보면 수리하여 넓게 해 주어서 왕래하는 이로 하여금 힘들거나 고생이 없게 하면 그 업의 힘으로 말미암아 어머니 뱃속에 있으면서도 옥죄이는 고통이 없기 때문에 이 지를 얻게 된다”라고 한다. 혹 다른 어떤 이는 “만일 모든 유정이 다른 이에게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베풀면 그 업의 힘으로 말미암아 이런 지를 얻게 된다”라고 한다. 【評】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만일 모든 유정이 다른 이를 괴롭히거나 해치는 일을 하지 않고 항시 다른 이를 이롭게 하는 일을 하게 되면 이 업으로 말미암아 어머니의 뱃속에 있으면서 풍(風)ㆍ열(熱)ㆍ담(痰)ㆍ음병(癊病) 등의 핍박을 받지 않고 뒤에 태(胎)에서 나올 적에도 옥죄이는 고통이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모든 전생 일을 기억하게 된다. 그러므로 ‘만일 모든 유정으로서 어머니 뱃속에 머물러 있을 때나 태에서 나올 때에 여러 가지 병과 옥죄이는 고통을 받지 않은 이는 모두 당연히 과거 생의 일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어머니의 병과 옥죄이는 고통으로 말미암아 모두 다 그것을 잊게 될 뿐이다’라고 한다.” 【문】이 본성염생지는 처음이나 중간이나 나중의 어느 때가 더 훌륭한가? 【답】 이것은 결정되어 있지는 않다. 어떤 이는 처음 태어날 적에 더 훌륭한 일이 있기도 한데, 마치 세발라(世跋羅) 등이 처음 태어날 때에 “이제 이 집 안에 혹시 재물이 있게 되면 나로 하여금 뜻대로 보시하게 하겠는가?”라고 한 것과 같고, 혹 어떤 이는 중년(中年) 때에 더 훌륭한 일이 있기도 한데, 마치 존자 호국(護國) 등과 같으며, 혹은 어떤 이는 노년 때에 더 훌륭한 일이 있기도 한데, 마치 암바슬체(菴婆瑟搋) 등과도 같다. 이것의 자세한 설명은 계경에서와 같다. 【문】이 본성염생지는 몇 생의 일을 기억할 수 있는가? 【답】 어떤 이는 “오직 한 생(生)의 일만을 기억할 뿐이니 거기에서 죽어서 여기에 난 것이다”고 한다. 혹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2생에서 7생까지의 일을 기억할 수 있다. 예컨대 왕사성(王舍城)에 가타(伽吒)라 하는 한 백정이 있었다. 그는 미생원왕(未生怨王)과 어릴 적 친한 벗이었는데, 그 태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그대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 나의 어떤 소원을 들어주겠는가?’ ‘그대가 청한 대로 해주겠다.’ 뒤에 미생원이 부왕(父王)을 살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으므로 가타는 왕에게 그 소원을 청하였다. 그러자 왕은 말하였다. ‘그대의 뜻대로 청하라.’ 가타가 아뢰었다. ‘왕이시여, 저만이 왕사성에서 혼자 짐승들을 죽일 수 있게 해주소서.’ 왕이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어째서 이런 나쁜 원을 구하는가? 어찌 장차 오는 세상에 받게 될 고통이 두렵지도 않은가?’ 백정이 왕에게 아뢰었다. ‘모든 선악(善惡)의 업(業)에는 모두 과보가 없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왕은 드디어 말하였다. ‘그대는 어째서 그런 줄 아는가?’ 가타가 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과거의 여섯 생을 기억합니다. 이 왕사성에서 언제나 백정으로서 짐승을 죽였는데도 최후의 생에는 삼십삼천(三十三天)에 있으면서 많은 쾌락을 누렸었고, 그 하늘에서 죽어서 이 세간에 났는데, 어릴 적에는 왕과 친한 벗도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선악의 그 과보는 결정코 없는 줄 압니다.’ 왕이 듣고 의심을 내면서 곧 부처님께 가서 아뢰었더니,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이 일은 거짓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백정은 일찍이 한 끼의 밥을 독각(獨覺)에 베풀면서 삿된 원[邪願]을 세우며 ≺저는 언제나 왕사성에서 짐승을 죽이는 백정의 일을 혼자만 행하다가 그 뒤에 천상에 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훌륭한 업인(業因)으로 말미암아 그 원을 이룬 것이나 그의 먼저의 뛰어난 업의 여과(與果)는 이제 다했으므로 이로부터 7일 후에는 반드시 목숨을 마치고 호규지옥(號叫地獄)에 나서 차례로 먼저 짐승을 죽인 업의 괴로운 과보[苦果]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智)는 궁극[極]으로 7생까지를 안다.” 또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5백 생까지의 일을 기억한다. 어떤 필추(苾芻)가 자신이 과거의 5백 생 동안에 아귀취(餓鬼趣)에 떨어져 있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그가 받았던 배고프고 목말랐던 고통을 생각할 때는 온몸에서 땀이 흘렀으므로 마음속 깊이 두려워하면서 모든 할 일들을 쉬고 정진하기를 불길같이 맹렬하게 한 뒤에 많은 세월을 지나고서야 예류과(預流果)를 얻었다. 그는, ‘나는 예로부터 모든 필추들의 은혜로운 자구(資具)에 힘입어 나의 두려움을 이미 영원히 소멸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는 모든 생활을 돕는 살림[資身具]들을 끝까지 추구하고 찾아서 먼저 입었던 은혜를 갚으리라’고 생각한 뒤에 곳곳에서 여러 생활을 돕는 살림들을 찾고 구하였다. 모든 필추들은 그것을 보고서 말하였다. ‘그대는 전에는 일을 적게 하더니, 지금은 무엇 때문에 그리도 일이 많은가?’ 그러자 그는 마침내 다른 이들을 위하여 본사(本事)를 자세하게 말해 주었다. 또 어떤 필추는 스스로 과거 5백 생 동안에 지옥취(地獄趣)에 떨어졌던 일을 기억하였으므로 그가 받았던 지옥의 고통을 생각할 때는 모든 털구멍에서 온통 피가 흘러나와서 몸과 옷이 몹시 더러워졌고 악취가 났었다. 그러자 날마다 물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옷을 빨았으므로 여러 사람들은 그가 물에서 씻고 빨면 청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는 하는 일을 쉬고 정진하기를 불길처럼 맹렬하게 한 뒤에 오랜 세월을 지나 아라한을 증득[證]하고 그런 뒤에는 자주자주 목욕을 하거나 옷을 빨지 않았으므로 여러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기면서 묻자, 그도 다른 이들을 위하여 본사(本事)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었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이 지(智)는 궁극적으로 5백 생까지 기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다른 논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지(智)는 과거의 괴겁(壞劫)과 성겁(成劫)의 일을 알 수 있다. 부처님께서 옛날 보살이었을 적에 유정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큰 서원을 세우셨다. 어느 때에 삼구(三鉤)라는 이름의 전다라왕(旃茶羅王)이 되어서 온갖 서론(書論) 및 주술(呪術)을 잘 통달하였다. 그때에 아난(阿難)은 왕자가 되어 사자이(師子耳)라 하였으며, 얼굴 모습이 단정하여 세간에서는 짝할 이가 없었다. 그때 사리자(舍利子)는 지견(池堅)이라 하는 바라문이 되어서 명론(明論)과 모든 권속(眷屬)에 잘 통달하였다. 그에게는 정결(貞潔)이라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용모가 단정하고 조신하여서 여러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였다. 그때 왕이 바라문에게 가서 아들을 위해 결혼을 제의하자, 지견은 몹시 분해하면서 그 왕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모든 성바지[姓] 중에서 가장 낮고 하천하오. 나는 범지(梵志)여서 모든 성바지 중에서 높은 이인데, 무슨 연유로 여기에 와서 나를 업신여기고 모욕하는 것이오?’ 왕이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가문[族姓]의 높고 낮음은 또한 언제나 정해진 것이 없는데, 어째서 홀대(忽待)하면서 당신은 스스로가 높은 이라 자랑하는 것이오? 그대는 행여 모든 범서(梵書)의 글자를 누가 만들었는지 들은 일이 있습니까?’ 지견이 대답하였다. ‘나는 옛날 구빈타(瞿頻陀)라고 하는 바라문이 그것을 지었다고 들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그때의 구빈타가 지금의 내 몸입니다. 그대는 또 행여 거로슬타서(佉盧瑟吒書)라는 글자를 누가 지었는지 들은 일이 있으시오?’ 바라문이 말하였다. ‘옛날에 거로슬타(佉盧瑟吒)라는 대선인(大仙人)이 계셨는데 그가 지었다고 들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그때의 대선인이 지금의 내 몸입니다.’ 왕이 또 물었다. ‘그대는 행여 일찍이 모든 폐타론(吠陀論:베다론)과 그것의 권속이 되는 세속의 글들을 누가 지었는지 들은 일이 있으시오?’ 바라문이 말하였다. ‘그러그러한 부당(部黨)의 서론(書論)은 그 여러 바라문과 선인(仙人)들이 지었다고 합니다.’ 왕이 또 말하였다. ‘그들 모두가 나의 옛날의 이름인데 그대는 행여 알기나 하오? 어떻게 그대가 자신은 자랑하면서 멸시하는 것이오?’ 지견은 이런 것에 대하여 낱낱이 추궁하며 물어보았으나 왕이 말한 바와 같았으므로 이것은 사실이요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야 마음속 깊이 공경하고 앙모하면서 드디어 왕에게 혼사를 허락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이 지(智)는 궁극적으로 과거 세상의 겁(劫)이 성립되고 파괴된 일까지 기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읍주(邑主)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스스로 과거 91겁 이래로 청정한 계율의 밭[淨戒田]에 음식 등을 베풀면서 일찍이 그만둔 일이 없는 것을 기억하노라. 또 역시 음식 등 때문에 계율을 헐거나 손상되게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노라.’” 【문】세존께서는 숙주수념지(宿住隨念智)로써 이 일을 기억하며 아시는가, 본성염생지(本性念生智)로써 이 일을 기억하며 아시는가? 가령 그렇다면 어떤 허물이 있느냐 하면, 만일 숙주수념지로써 이 일을 기억하여 아신다 하면 무엇 때문에 다만 91겁만을 기억하시면서 더 많이 기억하지 못하시는가? 만일 본성염생지로써 이 일을 기억하여 아신다면 무엇 때문에 앞에서 어떤 이는 ‘이 지(智)는 오직 1생만을 기억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2생에서 궁극적으로는 7생까지를 기억한다’고 말하며, 어떤 이는 ‘500생을 기억한다’고 말하며, 어떤 이는 ‘겁의 성립과 파괴를 기억한다’고 말하면서도 91겁을 기억한다고는 말하지 않는가? 【답】 “세존께서는 숙주수념지로써 이 일을 기억하여 아신다”라고 해야 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다만 91겁만을 기억하면서 더 많이 기억하지 못하시는가? 【답】 실은 더 많이 기억하실 수 있는데도 잠시 그만큼의 것만을 말씀하셨을 뿐이다. 【문】만일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더 많이 기억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답】 협 존자(脅尊者)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온갖 것들이 의심을 내기 때문이다. 만일 더 많이 기억한다고 말하거나 더 적게 기억한다고 말하거나 하면 모두 의심을 내며 묻기 때문에 그 일에 따라 말씀하셨을 뿐이니, 이치로 보아 어긋남이 없으므로 책문(責問)하지 말아야 한다. 또 그것으로부터 7불(佛) 세존을 건립하기 때문에 치우치게 말씀하셨다. 또 그로부터 상호(相好)의 업(業)을 닦으셨기 때문에 치우치게 그것을 말씀하셨다. 또 그로부터 업도(業道)가 청정하여 악취(惡趣)에 떨어지지 않았고 항시 남자의 몸을 받았으며 언제나 전생 일을 기억하기 때문에 치우치게 말씀하셨다.” 또 어떤 이는 “세존께서는 본성염생지로써 이 일을 기억하며 아신다”라고 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앞에서 어떤 이는 ‘오직 1생만을 기억한다’고 하고, 또는 어떤 이는 ‘겁(劫)의 성립과 파괴를 기억한다’고 하면서도 91겁을 기억한다고는 말하지 않는가? 【답】 앞에서는 그 밖의 다른 사람이 많이 또는 적게 기억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요, 부처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것이니, 만일 부처님을 말한다면 역시 더 많은 것을 기억하신다. 【문】본성염생지(本性念生智)는 중유(中有)의 일을 기억하는가? 【답】 어떤 이는 “기억하여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중유의 일은 지극히 미세(微細)한 까닭에 이 지(智)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評】 “본성염생지도 중유의 일을 기억하여 안다. 왜냐하면 만일 기억하여 알지 못한다면 이 지(智)가 경계를 아는 데에 틈이나 뒤섞임[間雜]을 이루는 것이니, 일부분은 알 수 있고 일부분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해야 한다. 【문】보살의 전생에는 이미 본성염생지가 있었다. 최후의 생(生)에서도 있는가? 가령 그렇다고 한다면 어떠한 허물이 있는가 하면, 만일 있다 한다면 어찌하여 연의 힘[緣力]이 인의 힘[因力]보다 낫지 않은가? 만일 없다 한다면 어찌하여 보살이 점차 쇠퇴하지 않는가? 【답】 “보살의 최후의 몸에도 본성염생지가 있다”라고 해야 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어찌하여 연의 힘이 인의 힘보다 더 낫지 않은가? 【답】 연의 힘이 없는 것을 안의 인의 힘[內因力]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근성이 예리하기[利根] 때문에 안의 인의 힘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이 보살은 모든 유정들 중에 근성(根性)이 가장 뛰어나므로 인의 힘이 있다고 한다. 또 그 누가 보살에게 연의 힘이 없다고 말하겠는가? 정거천(淨居天)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나타내어 보살에게 생사(生死)를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했는데, 어찌 이것이 연의 힘이 아니겠는가? 또 녹석녀(鹿釋女)가 보살을 위하여 열반을 찬탄하는 게송을 말하여 보살에게 열반을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했으니, 이것도 연의 힘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래지 않아서 당신은 안락(安樂)을 어머니로 삼고 무우(無憂)를 아버지로 삼으며 적멸(寂滅)을 아내로 삼게 되시리다.
보살은 이와 같은 일을 보고 듣고 하신 뒤에 이미 싫어함과 기뻐함을 더한지라 성(城)을 넘어 출가하신 것이다. 또 과거 생에 한량없는 부처님들이 계시면서 보살을 위하여 보리(菩提)의 자량(資糧)을 말씀하셨으니, 이와 같은 것 등을 모두 연의 힘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보살의 최후의 몸에는 본성염생지가 없다”고 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어찌하여 쇠퇴하지 않는가? 【답】 비록 이 지(智)가 없다 하더라도 뛰어난 숙주수념지(宿住隨念智)와 원지(願智) 등이 있기 때문에 쇠퇴하지 않는다. 【評】 이 가운데서 앞의 설[前說]이 이치에 맞는 줄 알아야 하니, 91겁으로부터 항시 이 지(智)가 있었기 때문이다.
【論】 어떤 것이 시애심해탈(時愛心解脫)인가?4)……(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가? 【답】 계경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이니 계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필추는 대중과 함께 모이는 것을 좋아하지 말아야 하고, 희론(戱論)에 탐착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대중과 모이는 것을 좋아하고 희론에 탐착하는 이면, 시애심해탈과 부동심해탈을 증득하게 되는 일은 있을 수조차 없느니라. 만일 필추가 대중과 모이기를 좋아하지 않고 희론에 탐착하지 않는다면, 두 가지 해탈을 증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라.’” 비록 계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더라도 그 뜻을 자세히 해석하시지 않았고, 이 두 가지 해탈의 자성(自性)과 얻는 인연(因緣)도 말씀하시지 않았으며, 근온(根蘊)에서 비록 그 얻는 두 가지의 인연을 말했다 하더라도 자성은 나타내지 않았으므로 이제 그것을 나타내려고 한다. 또 다른 종(宗)을 그치고 바른 도리[正理]를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혹 어떤 이는 “시애심해탈은 유학(有學)으로서의 할 일[所作]이 있는 것이요, 부동심해탈은 무학(無學)으로서의 할 일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므로, 그 뜻을 차단하고 두 가지 해탈은 다 같이 무학으로서 다시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혹 어떤 이는 “시애심해탈은 유루(有漏)이고, 부동심해탈은 무루(無漏)이다”라고 하므로 그런 이의 뜻을 차단하고 두 가지의 해탈은 다 같이 무루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또 어떤 이는 시애심해탈은 유위(有爲)요, 부동심해탈은 무위가 되길 바라기도 한다. 그런 이의 뜻을 차단하고 두 가지 해탈은 다 같이 유위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등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논한다. 【論】 어떤 것이 시애심해탈인가? 【답】 시해탈 아라한(阿羅漢)의 진지(盡智)이며, 혹은 무학(無學)의 정견(正見)과 상응하는 마음의 승해[心勝解]요, 지나간 승해[已勝解]이며, 장차의 승해[當勝解]이다. 어떤 것이 부동심해탈인가? 【답】 부동법(不動法) 아라한의 진지와 무생지(無生智)이며, 혹은 무학의 정견과 상응하는 마음의 승해요, 지나간 승해이며, 장차의 승해이다.
여기에서 진지ㆍ무생지와 무학의 정견과 상응하는 마음이란 유학(有學)과 유루와는 구별된다는 것을 말한다. 마음의 승해라 함은 현재임을 말하고, 지나간 승해라 함은 과거임을 말하며, 장차의 승해라 함은 미래임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곧 무위의 해탈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어서 두 가지의 해탈은 오직 무학의 무루심(無漏心)과 상응하는 승해(勝解)만으로써 자성을 삼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온갖 법 중에서 오직 두 가지의 법만이 해탈의 자성이 있을 뿐이니, 무위법(無爲法) 중의 택멸(擇滅)은 해탈의 자성이며, 유위법(有爲法) 중의 대지법(大地法)에 속하는 승해는 해탈의 자성이다. 이 승해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염오(染汚)의 것이니 탐(貪) 등과 상응하는 것이어서 삿된 승해[邪勝解]라 하고, 둘째는 불염오(不染汚)의 것이니 무탐(無貪) 등과 상응하는 것이어서 바른 승해[正勝解]라고 한다. 이 바른 승해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루의 것이니 부정관(不淨觀)ㆍ지식념(持息念)ㆍ무량(無量)ㆍ해탈(解脫)ㆍ승처(勝處)ㆍ변처(遍處) 등과 상응하는 승해이며, 둘째는 무루의 것이니 학(學)ㆍ무학(無學)의 승해이다. 학의 승해라고 함은 4향(向) 3과(果)에 속하는 승해를 말하는 것이니, 곧 고법지인(苦法智忍)과 나아가 금강유정(金剛喩定)과 상응하는 승해이며, 무학의 승해라 함은 아라한과(阿羅漢果)에 속하는 승해를 말하는 것이니, 곧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와 무학의 정견(正見)과 상응하는 승해이다. 무학의 승해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시애심해탈(時愛心解脫)이니 곧 다섯 종류의 아라한과에 속하는 승해이어서 또한 시해탈(時解脫)이라고도 하며, 둘째는 부동심해탈(不動心解脫)이니 부동법(不動法)의 아라한과에 속하는 승해이어서 또한 불시해탈(不時解脫)이라고도 한다. 이 두 가지의 해탈에는 각각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심해탈(心解脫)이라 하는 것이니 탐애(貪愛)를 여의었기 때문이요, 둘째는 혜해탈(慧解脫)이라 하는 것이니 무명(無明)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문】만일 무학의 승해가 탐애를 여의었기 때문에 심해탈이라고 하고, 무명을 여의었기 때문에 혜해탈이라고 한다면 『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의 말을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거기에서는 “어떤 것이 심해탈인가? 무탐선근(無貪善根)이 탐애를 대치(對治)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혜해탈인가? 무치선근(無癡善根)이 무명을 대치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답】 『집이문족론』에서는 “어떤 것이 심해탈인가? 무탐선근과 상응하는 승해(勝解)이다. 어떤 것이 혜해탈인가? 무치선근과 상응하는 승해이다”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은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이니 선근(善根)에 의거하여 승해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만일 무탐에 의거하기 때문에 마음이 탐애에서 해탈한다면 이것과 상응하는 승해를 심해탈이라고 하고, 만일 무치에 의거하기 때문에 지혜가 무명에서 해탈한다면 이것과 상응하는 승해를 혜해탈이라고 한 것이니, 이 때문에 여기에서의 두 가지 심해탈은 다 같이 무학의 승해로써 자성을 삼는다. 이것을 해탈의 자성(自性)ㆍ아물(我物)ㆍ자체(自體)ㆍ상분(相分)ㆍ본성(本性)이라고 한다. 이미 자성을 말했으므로 이제 그 까닭을 말하겠다. 【문】무엇 때문에 시해탈이라 하는가? 시해탈이란 무슨 뜻인가? 【답】 그 해탈은 때를 기다림으로 말미암아 얻기 때문이다. 때에는 비록 여럿이 있지만 요약하면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좋은 옷을 얻은 때요, 둘째는 좋은 음식을 얻은 때이며, 셋째는 좋은 침구를 얻은 때요, 넷째는 좋은 처소를 얻은 때이며, 다섯째는 좋은 설법을 얻은 때요, 여섯째는 좋은 보특가라를 얻은 때이다. 좋은 옷[好衣]을 얻은 때를 기다린다고 함은, 그는 반드시 섬세하고 부드럽고 선명하고 깨끗하면서 훌륭한 의복을 얻은 때에야 비로소 해탈하게 되는 것이요, 만일 그렇지 못하면 해탈하게 되지 않는다. 좋은 음식[好食]을 얻을 때를 기다린다고 함은, 그는 반드시 맛있는 음식인 소(酥)와 꿀[蜜] 등을 얻을 때에야 비로소 해탈하게 되는 것이요, 만일 그렇지 못하면 해탈하게 되지 않는다. 좋은 침구[好臥具]를 얻을 때를 기다린다고 함은, 그는 반드시 두껍고 부드러운 침구나 평상이나 요 등을 얻을 때에야 비로소 해탈하게 되는 것이요, 만일 그렇지 못하면 해탈하게 되지 않는다. 좋은 처소[好處所]를 얻을 때를 기다린다고 함은, 그는 반드시 고요한 처소의 훌륭한 방사(房舍) 등을 얻을 때에야 비로소 해탈하게 되는 것이요, 만일 그렇지 못하면 해탈하게 되지 않는다. 좋은 설법[好說法]을 얻을 때를 기다린다고 함은, 그는 반드시 이치대로[如理]요, 그 시기에 알맞은[應機] 교계(敎誡)와 교수(敎授)를 얻은 때에야 비로소 해탈하게 되는 것이요, 만일 그렇지 못하면 해탈하게 되지 않는다. 좋은 보특가라(補特伽羅)를 얻을 때를 기다린다고 함은, 그는 반드시 훌륭한 덕행(德行)을 갖추고 품성(稟性)이 유화하여 같이 머무르기 쉬운 이를 만나서 함께 사는 때에야 비로소 해탈하게 되는 것이요, 만일 그렇지 못하면 해탈하게 되지 않는다. 【문】무엇 때문에 불시해탈(不時解脫)이라 하는가? 불시해탈이란 무슨 뜻인가? 【답】 그 해탈은 때에 상관없이 얻기 때문이다. 여기에서의 때[時]라고 함은, 앞에서 말한 여섯 가지와 같다. 좋은 옷을 얻을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함은, 그는 비록 나쁜 누더기[糞掃衣]를 얻을 때라 하더라도 속히 해탈하게 되는 것이니, 시해탈자(時解脫者)가 백천 냥 값어치의 옷을 얻을 때보다 더 뛰어난 것이다. 좋은 음식을 얻을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함은, 그는 비록 거칠고 나쁜 음식을 얻을 때라 하더라도 속히 해탈하게 되는 것이니, 시해탈자가 온갖 맛있는 음식을 얻을 때보다 더 뛰어난 것이다. 좋은 침구를 얻을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함은, 그는 비록 하찮은 침구나 돌침대[石床] 등을 얻을 때라 하더라도 속히 해탈하게 되는 것이니, 시해탈자가 훌륭한 침구를 얻을 때보다 더 뛰어난 것이다. 좋은 처소를 얻을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함은, 그는 비록 시끄러운 처소나 나쁜 방사를 얻을 때라 하더라도 속히 해탈하게 되는 것이니, 시해탈자가 고요하고 묘한 처소를 얻을 때보다 더 뛰어난 것이다. 그는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면서 속히 정(定)에 들기 때문이다. 좋은 설법을 얻을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함은, 그는 비록 도리에 어긋나고[違理] 시기를 잃은[失機] 교계와 교수를 얻을 때라 하더라도 속히 해탈하게 되는 것이니, 시해탈자가 이치대로 시기에 알맞은 교계와 교수를 얻을 때보다 더 뛰어난 것이다. 그는 설한 바를 싫어하면서 속히 정(定)에 들기 때문이다. 좋은 보특가라를 얻을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함은, 그는 비록 덕행을 갖추지 못하고 성품됨이 사나워서 같이 머무르기 어려운 이와 함께 살게 된다 하더라도 속히 해탈하게 되는 것이니, 시해탈자가 덕행 등을 갖춘 이와 함께 머무르게 되는 때보다 더 뛰어난 것이다. 그 추잡하고 나쁜 것을 싫어하면서 빨리 정에 들기 때문이다. 또 협소한 도[狹小道]에 의거하여 해탈을 얻기 때문에 시해탈이라고 한다. 협소한 도라고 함은, 지극히 빨라도 제1생(生) 중에는 선근(善根)을 심고, 제2생 중에는 성숙되게 하며, 제3생 중에는 해탈하게 되는 것이요, 그 밖의 나머지는 결정되지 않는다. 광대한 도[廣大道]에 의거하여 해탈을 얻으므로 불시해탈이라고 한다. 광대한 도라고 함은, 지극히 더딘 성문승(聲聞乘)이라 해도 60겁(劫)을 지나면 해탈을 얻는 것이니 마치 사리자(舍利子)와 같고, 독각승(獨覺乘)은 1백 겁을 지나면 해탈을 얻는 것이니 마치 인각유(麟角喩)와 같으며, 불승(佛乘)은 3무수겁(無數劫)을 지나면 해탈을 얻는다. 또 이열한 도[羸劣道]에 의거하여 해탈을 얻기 때문에 시해탈이라고 한다. 이열한 도라고 함은, 해탈하는 선품(善品)의 가행(加行)의 때에 항상 은중(殷重)하게 닦지 못하기 때문에 만일 아침나절에 닦게 되면 점심나절이나 저녁나절에는 닦지 못하며, 만일 초저녁에 닦게 되면 밤중에나 새벽에는 닦지 못하는 것이니, 비록 잠깐 동안 닦는다 하더라도 은중하지는 못한 것이다. 강하고 뛰어난 도[强勝道]에 의거하여 해탈을 얻기 때문에 불시해탈이라고 한다. 강하고 뛰어난 도라고 함은, 위와는 정반대의 도이다. 또 지가 더한 도[止增道]에 의거하여 해탈을 얻기 때문에 시해탈이라 하며, 관이 더한 도[觀增道]에 의거하여 해탈을 얻기 때문에 불시해탈이라고 한다. 또 끌리고 빼앗길 수 있는 도[可引奪道]에 의거하여 해탈을 얻기 때문에 시해탈이라고 한다. 끌리고 빼앗길 수 있는 도라고 함은, 닦는 도가 뜻에 맞거나 뜻에 맞지 않거나 이익되거나 이익되지 않거나 즐겁거나 괴롭거나 한 자구(資具)에 이끌리고 빼앗기게 되는 도를 말한다. 끌리거나 빼앗길 수 없는 도[不可引奪道]에 의거하여 해탈을 얻기 때문에 불시해탈이라 한다. 끌리거나 빼앗길 수 없는 도라고 함은, 위와는 정반대의 도이다. 또 다섯 종류의 종성의 도[五種種姓道]에 의거하여 해탈을 얻기 때문에 시해탈이라고 한다. 다섯 종류의 종성의 도라고 함은 퇴법종성의 도[退法種姓道]에서부터 나아가 감달법종성의 도[堪達法種姓道]까지를 말한다. 한 종류의 종성의 도에 의거하여 해탈을 얻기 때문에 불시해탈이라고 한다. 한 종류의 종성의 도라고 함은 부동법종성의 도[不動法種姓道]를 말한다. 여기에서는 다섯 종류의 종성 아라한은 시해탈이라 하며, 부동법종성의 아라한은 불시해탈이라 함을 뜻한다. 【문】논(論)으로 인하여 논해 보자. 무엇 때문에 앞의 다섯 종류의 아라한을 통틀어 세워서 하나의 시해탈로 삼고 여섯 번째의 아라한을 따로 세워서 하나의 불시해탈로 삼는 것인가? 【답】 다른 인연[別緣]이 있기 때문에 시해탈은 많고 불시해탈은 적은 것이니, 종성(種姓)에 의거하여 시설하면서 앞의 다섯 종성을 시해탈 아라한이라 하고, 여섯 번째 종성을 불시해탈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다른 인연이 있기 때문에 시해탈은 적고 불시해탈은 많은 것이니, 승(乘)에 의거하여 시설하면 오직 성문승(聲聞乘)에만 시해탈 아라한이 있지만 3승(乘)에는 모두 불시해탈 아라한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인연이 있기 때문에 두 가지의 해탈이 평등한 것이니, 두 가지의 해탈은 다 같이 번뇌를 여의고 다 같이 청정한 무학의 몸 안[身中]의 성도(聖道)에 속하기 때문이다. 또 시해탈은 하열[劣]하기 때문에 다섯 가지로 시설하지만 불시해탈은 뛰어나기 때문에 한 가지로 세운다. 마치 지금의 세간에 국왕ㆍ대신ㆍ장자ㆍ거사인 모든 부귀(富貴)한 자의 수(數)는 지극히 적지만 모든 빈천(貧賤)한 무리의 수는 심히 많은 것과 같다. 또 마치 세간에 부처님과 독각과 구경(究竟)에 이른 성문의 그 수는 지극히 적지만 모든 그 밖의 성문들의 수는 심히 많은 것과 같으며, 또 세간에는 총명하고 슬기로운 이는 적지만 어리석은 이들은 많은 것과도 같다. 또 마치 세간에는 선을 행하는 이는 적지만 악을 짓는 이는 많은 것과 같고, 또 세간에는 정견(正見)을 지닌 이는 적지만 사견(邪見)을 지닌 이는 많은 것과 같으며, 또 세간에는 단정하게 생긴 이는 적지만 추하고 남루하게 생긴 이는 많은 것과 같고, 또 세간에는 어울리고 부드러운 이는 적지만 억세고 강한 이는 많은 것과 같다. 그와 같아서 앞의 다섯 종류의 아라한은 하열하기 때문에 합하여 시해탈이라고 하고, 여섯 번째 아라한은 뛰어나기 때문에 특별히 불시해탈이라고 한다. 또 앞의 다섯 종류의 아라한은 세간에서 만나기 쉽기 때문에 합하여 하나로 세워 시해탈이라고 하며, 여섯 번째 아라한은 세간에서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따로 하나로 세워서 불시해탈이라고 한다. 마치 지금의 세상 사람이 지나국(至那國:支那國)이나 집사자국(執師子國:錫蘭)을 가게 되면 돌아오는 이가 지극히 적지만 가까운 이웃 취락에 가면 돌아오는 이가 심히 많은 것처럼 이것도 그와 같다. 또 앞의 다섯 종류의 아라한은 공력(功力)을 많이 쓰지도 않고 가행(加行)을 많이 베풀지도 않으며 뜻을 많이 짓지도 않으면서 얻기 때문에 합하여 하나로 세워 시해탈이라고 하지만, 여섯 번째 아라한은 위와는 서로가 반대이기 때문에 따로 하나로 세워서 불시해탈이라고 한다. 또 앞의 다섯 종류의 아라한은 더함[增]이 있고 덜함[減]이 있기 때문에 합하여 하나로 세워 시해탈이라고 하지만, 여섯 번째 아라한은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기 때문에 따로 하나로 세워서 불시해탈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더한다고 함은 나아감[進]을 말하고, 덜한다고 함은 물러남[退]을 말한다.
1)본 절(節)은 앞의 절(節)의 생처득지(生處得智)의 계속이다. 특히 방생취(傍生趣)와 귀취(鬼趣)와 천취(天趣)의 생처득지를 논술하며, 인취(人趣)에는 다른 이의 마음 등을 실제로 아는 생처득지가 없다는 것을 논한다.
2)본 절에서는 처음에 숙주수념지(宿住隨念智)와 숙주수념지는 아니면서도 전생 일을 실제로 아는 지혜와의 관계를 논하고, 그 다음에는 숙주수념지와 숙주지는 아니면서도 전생 일을 기억하는 지혜와 지적 작용, 그리고 이것을 아는 경계[所知境]로서의 마음의 상속(相續)이 자기의 것인지 남의 것인지를 구별하면서 능히 아는[能知] 것으로서의 앞의 두 가지의 지혜와의 관계를 4구(句)로써 분별한다.
3)앞의 논에 대한 답변이다.
4)본 절 이하 여러 절(節)에 걸쳐서 본 장(章)의 제2의 과제(課題)인 시애심해탈, 즉 시해탈(時解脫)과 부동심해탈(不動心解脫), 즉 불시해탈(不時解脫)의 두 가지 해탈론을 논술한다. 그 중에서 본 절에서는 먼저 이 두 가지의 해탈에 대하여 논의(論議)가 제기되는 연유를 기술하고, 이어서 그것의 정의(定義)와 자성(自性) 그리고 명의(名義) 등에 나아가 논단(論斷)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