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마음이 일어날 때는 이 마음은 반드시 함께 하는 것이 있으니 여러 심법(心法) 등의 적취 및 불상응행이 그것이다
028_0407_b_16L 若彼心起時, 是心必有俱, 諸心法等聚, 及不相應行。
제행(諸行)은 전전하여 서로를 원인으로 해서 생한다. 그 마음의 의지처나 대상[緣]3) 혹은 찰나가 생한다면 그 심법 등의 적취가 일어나는 것이다.
028_0407_b_18L諸行展轉相因生彼心。若依、若緣、若 剎那生,彼心法等聚生。
【문】무엇이 심법 등의 적취인가?
028_0407_b_20L問:云何心法 等聚?
【답】생각[想]과 욕망[欲] 및 촉(觸)과 혜(慧)와 염(念)과 사(思)와 해탈과 기억[憶]과 선정 및 수(受)이니 이러한 것들을 심[법] 등의 적취라고 한다.
028_0407_b_21L答: 想欲及觸慧, 念思與解脫, 憶定及與受, 此說心等聚。
028_0407_c_02L‘생각’4)이란 경계에 대해서 그 형상(形像)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욕망’5)이란 어떤 대상[緣]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촉’6)이란 의지처와 대상과 마음이 화합하여 생하는 접촉의 경계이다. ‘혜’7)란 대상에 대해서 결정을 내리고 밝게 살피는 것을 말한다. ‘염’8)이란 대상에 대해서 그것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9)’란 공덕과 악, 그리고 이 둘 모두에 속하지 않는 것[無記]을 조작하고 마음을 굴리는 것이다. ‘해탈’10)이란 대상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받아들여 이 일은 반드시 그렇다고 규정[限量]하는 것을 말한다. ‘기억’11)이란 대상에 대해서 깨달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정’12)이란 대상을 받아들여 산란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수’13)란 사랑스러운 것과 사랑스럽지 않은 것 및 그 둘 모두에 속하지 않은 상태14)를 경계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체의 마음이 생겨날 때는 이것이 생겨난다고 함은 성인이 말씀하신 바이다. 마찬가지로 함께 한 대상에서 행하고 또한 항상 상응하는 것이다.
028_0407_c_09L 一切心生時, 是生聖所說, 同共一緣行, 亦復常相應。
이 열 가지 법은 일체의 선ㆍ불선ㆍ무기의 마음과 함께 생하며, 큰 바탕15)에서 얻게 되는 까닭에 대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 함께 한 대상에서 행한다’란, 모든 마음과 동일한 대상에서 전개하여 서로 떨어지지 않으니 두 가지가 없이 결정된 것임을 말한다. ‘또한 항상 상응한다’란, [마음이] 전전하면서 함께 혹은 마음과 더불어 늘 상응하며 한 가지 일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문】마음의 법은 많기도 하고 혹은 적기도 한데, 어떻게 같다는 것이 곧 상응을 의미하는가?
028_0407_c_17L問:心法或多或少,云何 等義是相應義?
【답】일이 같기 때문이다. 만약 한 가지 마음 가운데 한 가지 상(想)과 두 가지 수(受)가 있다면 이것은 상응의 의미가 아니다. 한 가지 마음을 가지고 한 가지 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 밖에 다른 마음의 법 역시 이와 같다. 때문에 같다는 것이 상응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시절(時節)과 의지처[依]와 행상[行]과 대상[(緣]이 같다는 뜻이 곧 상응의 의미이다.
028_0408_a_02L시절이 같다17)고 함은 한 찰나에도 생기기 때문이다. 의지처가 같다18)고 함은 만약 마음이 눈에 의지해서 생했다면 마음의 법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행상이 같다19)고 함은 만약 마음이 청색(靑色)을 행해 생했다면 마음의 법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대상이 같다20)고 함은 만약 마음이 색을 연하여 생했다면 마음의 법도 역시 색과 연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항상 상응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미 마음의 법이 일체에 공통되는 것을 설명하였으니, 이제 공통되지 않는 측면을 설명하겠다.
여러 근(根)과 참괴(懺愧)와 신(信)과 기특함[猗]과 불방일(不放逸)과 불해(不害)와 정진과 사(捨)는 일체의 선한 마음과 함께 한다.
028_0408_a_03L 諸根有慚愧, 信猗不放逸, 不害精進捨, 一切善心俱。
‘여러 근’이란 불탐(不貪)21)ㆍ불에(不恚)22)의 두 가지 선한 근(根)을 말한다. 생명이나 생활의 자구에 대해서 탐착을 부수는 것을 불탐이라고 하며, 중생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나 비중생의 범주에 속하는 것에 대해 성냄과 노여움을 무너뜨리는 것을 부진에(不瞋恚)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허물과 악에 대해 스스로 싫어하는 것을 ‘참(慙)’23)이라 하고, 모든 허물과 악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워하는 것을 ‘괴(愧)’24)라고 한다. 3보(寶)와 4제(諦)에 대해 청정한 마음을 지니는 것을 ‘신(信)’25)이라 하고, 몸과 마음이 악(惡)에서 벗어나는 것을 ‘기특한 멈춤’26)이라 하며, 선한 방편을 지어 악에서 벗어나 [더 이상 악을] 짓지 않는 것을 ‘불방일(不放逸)’27)이라 부른다.
다른 사람을 핍박하지 않는 것을 ‘불해(不害)’28)라 하며, 일어났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을 끊으며 일어났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을 일으켜 방편으로 부지런히 닦아 쉬지 않는 것을 ‘정진(精進)’29)이라 하고, 마음이 평등한 것을 ‘사(捨)’30)라 부른다. 이 열 가지 선한 법은 모든 선한 마음 가운데 공통된다. 유루(有漏)ㆍ무루(無漏)의 5식(識)과 상응하고 또한 의식(意識)과 상응하는 까닭에 선의 큰 바탕[善大地]31)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미 선의 대지(大地)를 설명하였으니, 지금부터 번뇌의 대지32)를 설명하겠다.
028_0408_b_02L전도된 이해를 ‘사해탈(邪解脫)‘33)이라 부른다. 경계를 삿되게 받아들이는 것을 ‘부정억(不正憶)’34)이라 한다. 전도된 결정을 불순지(不順智)35)라 하고, 잘못 기억하고 함부로 받아들이는 것을 ‘실념(失念)’36)이라 한다. 3보와 4제(諦)에 부정한 마음을 갖는 것을 ‘불신(不信)’37)이라 한다. 일어났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을 끊지 못하고 일어났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을 일으키지 않은 채 부지런히 방편을 닦지 않는 것을 ‘해태(懈怠)’38)라 한다. 경계에 이끌려 흩어진 마음으로 여러 가지 연을 따라다니는 것을 ‘난(亂)’39)이라 한다. 과거 등을 모르는 것을 ‘무명’40)이라 하며, 마음이 조급하게 흔들려 쉬지 못하는 것을 ‘도(掉)’41)라고 한다. 선한 방편을 짓는 일에서 떠나는 것을 ‘방일(放逸)’42)이라 한다.
【문】수면[睡]43) 역시 일체의 오염된 마음과 함께 하거늘, 왜 [이것은] 번뇌의 대지라고 하지 않는가?
028_0408_b_09L問:睡亦一切穢污心俱,何故 不立煩惱大地?
【답】그것은 삼매[正受]에 순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중생들의 수면은 속히 정(定)을 일으킨다. 그런 까닭에 세우지 않는 것이다.
028_0408_b_10L答:順正受故。謂衆生 睡速發定,是故不立。
만약 대지(大地)라면 그것이 번뇌의 대지인지 마땅히 네 구(句)로 구분해서 설명해야 한다. 혹은 대지이면서 번뇌의 대지가 아닌 것이 있다. 이른바 수(受)ㆍ상(想)ㆍ사(思)ㆍ촉(觸)ㆍ욕(欲)이 그것이다. 혹은 번뇌의 대지이면서 대지가 아닌 것이 있다. 이른바 불신(不信)ㆍ해태(懈怠)ㆍ무명ㆍ들뜸[掉]ㆍ방일이 그것이다. 혹은 대지이면서 번뇌의 대지인 것이 있다. 이른바 기억[憶]ㆍ해탈ㆍ염ㆍ정(定)ㆍ혜(慧)가 그것이다. 혹은 대지도 아니고 번뇌의 대지도 아닌 경우가 있으니, 위에서 말한 일들을 제외한 나머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미 번뇌의 대지를 설명하였으니, 지금부터 불선대지(不善大地)44)를 설명하겠다.
이것은 이른바 모든 허물과 악에 대해 스스로 싫어하지 않는 것을 뉘우침 없다[無慙]45)고 한다. 또 모든 허물과 악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움 없다[無愧]46)고 한다. 이 두 가지 법은 오로지 불선으로, 일체의 불선심과 상응한다. 그런 까닭에 불선의 대지 가운데 두는 것이다. 이미 불선의 대지에 관하여 설명하였으니, 지금부터 소번뇌대지(小煩惱大地)47)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분노[忿]ㆍ원한[恨]ㆍ기만[誑]ㆍ인색[慳]ㆍ질투[嫉] 번뇌[惱]ㆍ아첨[諂]ㆍ부(覆)ㆍ고(高)ㆍ해(害) 등 이와 같은 여러 번뇌를 소대지(小大地)라고 한다.
028_0408_b_22L 忿恨誑慳嫉, 惱諂覆高害, 如此諸煩惱, 說爲小大地。
028_0408_c_02L요익되는 일을 요익되게 하지 않으며, 응당 지어야 할 일을 짓지 않은 채 오히려 짓지 말아야 할 일은 짓는 데 있어서 계속해서 성냄의 상(相)을 일으키는 것을 분노[忿]48)라고 한다. 추구해야 할 것은 추구하지 않으며 응당 지어야 할 것은 짓지 않은 채 오히려 짓지 말아야 할 것은 짓는 일에 있어서 계속 분노의 상을 일으키는 것을 원한[恨]49)이라고 한다. 상대를 속이기 위하여 공경히 모시는 모습을 기만[誑]이라고 한다. 재물과 법에 대하여 아까워하고 집착하는 것을 인색[慳]50)이라고 한다. 남이 가진 이양ㆍ공경ㆍ명예ㆍ공덕에 대해서 참지 못한 채 마음이 시기하는 것을 질투[嫉]라고 한다. 바라지 않던 일을 만나 바라던 일과 어그러지게 되었을 때 사유해서 마음이 열(熱)을 내는 것을 번뇌[惱]라고 한다.
자기의 본성을 덮어 감추고 왜곡하여 때와 편의에 맞추어 순종하는 것을 아첨[諂]51)이라고 한다.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 스스로 허물과 악을 숨기는 것을 부(覆)52)라고 한다. 성씨(姓氏)ㆍ족벌(族閥)ㆍ재산ㆍ부귀(富貴)ㆍ용모와 힘 또는 범행(梵行)ㆍ지계(持戒)ㆍ지혜ㆍ정업(正業) 등을 다른 이와 비교해 마음이 거만해지는 것을 고(高)53)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핍박하고자 하는 것을 해(害)54)라고 한다.
이 열 가지 법을 소번뇌의 대지[小煩惱大地]라 하는데, [모든 것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도(修道)의 단계에서 끊어야 하는 것이고, 견도의 단계에서 끊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뜻[意]의 경지에 있는 것이지 5식(識)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마음과 함께 생기는 것도 아니니, 행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가 있다면 곧 둘이 아닌 것이다.
불선의 심품(心品)가운데 마음의 법은 스물한 가지이니 욕계의 세 가지 견해에서는 하나를 줄이고 두 가지 견해에서는 셋을 제한다.
028_0408_c_21L 不善心品中, 心法二十一, 欲三見一減, 二見除三種。
028_0409_a_02L‘불선의 심품 가운데 마음의 법은 스물한 가지’라고 했는데, 불선이란 이른바 욕계에서 신견(身見)ㆍ변견(邊見)을 제외한 번뇌와 상응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사랑스럽지 않은 과보를 전성(轉成)하기 때문에 불선(不善)이라 한다. 불선에는 여덟 가지가 있으니, 탐욕ㆍ노여움ㆍ오만심ㆍ의심ㆍ사견(邪見)ㆍ견취(見取)ㆍ계취(戒取)와 이들과 함께 하지 않는 [무명]55)및 상응하는 무명56)이 그것이다. 탐욕ㆍ노여움ㆍ오만심ㆍ의심의 마음에는 스물한 가지 법이 함께 일어나니, 열 가지 대지 및 게으름 등의 열 가지 법으로, 곧 해태ㆍ무명ㆍ불신ㆍ방일ㆍ들뜸ㆍ혼침ㆍ거친 생각ㆍ미세한 생각ㆍ뉘우침 없는 마음과 부끄러움 없는 마음을 말한다
‘욕계의 세 가지 견해에서 하나를 줄이고’는, 욕계의 사견ㆍ견취ㆍ계취의 마음에는 그것과 상응하는 마음에 혜를 제외한 스무 가지 법이 함께 일어남을 말한 것이다. ‘두 가지 견해에서는 셋을 제한다’는, 욕계의 신견(身見)과 변견(邊見)에는 지혜ㆍ뉘우침 없는 마음ㆍ부끄러움 없는 마음을 제외한 열여덟 가지 법이 함께 생겨남을 말한 것이다. 나머지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뉘우침 없는 마음과 부끄러움 없는 마음을 제외하는 것은 [이 둘이] 오로지 불선이기 때문이며, 아울러 혜가 없는 것은 보게 하는 견이 곧 지혜이기 때문이다.
욕계의 선(善)은 스물 두 가지이며 공통되지 않은 것은 스무 가지이네. 무기(無記)는 열두 가지를 말하나 후회와 수면은 함께 곧 불어나게 된다.
028_0409_a_12L 欲善二十二, 不共有二十, 無記說十二, 悔眠俱卽增。
‘욕계의 선(善)’이란 이른바 욕계에서의 맑은 마음을 말한다. [이 마음이] 사랑할 만한 과보를 전성(轉成)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즉 태어날 때부터 얻는 것[生得]과 들어서[聞] 얻는 것 및 생각해서[思] 얻는 것이 그것이다. 그 마음에는 스물두 가지 법이 함께 일어나니, 열 가지 대지(大地)와 열 가지 선한 대지 및 거친 생각[覺]과 미세한 생각[觀]이 그것이다. ‘공통되지 않은 것은 스무 가지’라고 했는데, 공통되지 않은[不共] 것이란 그 마음에 유일한 무명번뇌를 말한 것이다. 여기에 스무 가지 마음의 법이 함께 일어나니, 이 한 번뇌만은 제외한 것이다. ‘무기는 열두 가지를 말하나’라고 한 것은, 욕계의 불은몰무기심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과보로 생긴 것[報生]ㆍ위의(威儀)ㆍ공교(工巧)ㆍ변화심(變化心)이 그것으로, 이 네 가지 무기의 마음에는 열두 가지 심법이 함께 일어남을 말한 것이다. 곧, 열 가지 대지와 거친 사유 및 미세한 사유를 말한 것이다.
028_0409_b_02L후회와 수면은 함께 곧 불어난다고 했는데, 마음이 좇아 변하는 것을 후회57)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가 [모두 해당한다]. 심품(心品) 중에는 후회를 더하는데, 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 후회에는 선ㆍ불선 및 불은몰무기의 세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머지는 그렇지 않으니, 자력으로 [생기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비바사(毘婆沙)의 논사는 말하기를,“후회[심]에 무기(無記)가 있다고는 하지 않는다. 민첩하고 예리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수면은 몸과 마음이 혼미하고 몽매해지는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서, 경계와 대략 연하는 것을 ‘잠잔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전체 다섯 품(品)의 마음과 함께 일어나므로 곧 그 심품(心品)에 수면을 더하는 것이다. 만약 후회와 수면이 함께 생긴다면, 세 품58) 가운데 두 가지를 더 불어나게 하는 것이다.
【답】초선(初禪)에서 불선(不善)을 벗어나니 나머지 경우는 욕유(欲有)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선(禪)의 중간에서 거친 사유[覺]가 제거되고 위의 경지[上]에서는 세밀한 사유[觀] 역시 그러하다.
028_0409_b_07L答: 初禪離不善, 餘知如欲有, 禪中閒除覺, 於上觀亦然。
초선에서는 불선[심]이 없어지는데, 여기에서는 네 품[品]의 마음이 있다. 즉 선한 [마음]ㆍ독자적인 [마음]ㆍ은몰무기의 [마음]ㆍ불은몰무기의 [마음]이 그것이다. 이 모든 마음의 품계에서는 뉘우침 없는 마음과 부끄러움 없는 마음은 제외되며, 나머지는 욕계의 경우와 같이 설명된다.
그 선한 품계는 스물두 가지이며, 사랑과 오만과 의심과 함께 생기는 것은 열아홉 가지이다. 다섯 가지 편견[五見]59) 및 독자적인 [마음]과 함께 생기는 것은 열여덟 가지이며, 불은몰무기의 [마음]은 열둘이다. 뉘우침 없는 마음과 부끄러움 없는 마음은 오로지 불선이기에 [여기서는 제외된다.]
그 색계ㆍ무색계에서는 후회와 수면이 없다. 선(禪) 중간에서 거친 사유[覺]가 제거되며, 나머지는 초선의 경우와 같이 설명된다. ‘상위의 경지에서는 세밀한 사유[觀] 역시 그러하다’란, 제2선ㆍ제3선ㆍ제4선 및 무색계에서는 세밀한 사유[觀]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이미 마음과 마음의 법이 수반하는 힘으로 생함을 설명하였으니 지금부터 색에 관해서 설명하겠다.
극미가 네 가지 근(根)에서는 열 가지임을 알아야 한다. 신근(身根)에서는 아홉이고 나머지는 여덟이니 이른바 유향지(有香地)이다.
028_0409_b_18L 極微在四根, 十種應當知, 身根九餘八, 謂是有香地。
‘극미가 네 가지 근에 있어서는 열 가지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네 가지 근에는 열 가지의 극미가 함께 일어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즉 4대와 색ㆍ냄새ㆍ맛ㆍ촉과 안근과 신근으로, 이근(耳根)ㆍ비근(鼻根)ㆍ설근(舌根)의 경우도 역시 그렇다. ‘신근(身根)에서는 아홉’이라고 한 것은, 그 밖에 신근에는 아홉 가지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거기에는 오직 신근(身根)의 종류만이 있는 것이다. 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나머지 여덟’이라고 한 것은, 근(根)을 떠난 색ㆍ냄새ㆍ맛ㆍ촉감의 극미는 여덟 가지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답】이른바 이것은 유향지(有香地)60)를 말한 것이다. 욕계 중의 극미는 냄새와 합쳐진다. 냄새와 맛은 서로 떨어질 수 없으니, 냄새가 있으면 곧 맛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색계의 극미는 단식(摶食)61) 성격의 것이 아닌 까닭에 냄새와 맛을 벗어난 것이다. 색계의 네 가지 근의 극미는 여덟 종류가 있고, 나머지 신근(身根)의 극미는 일곱 종류가 있으며 그 밖에 극미는 여섯 가지가 있다.
【문】만약 안근(眼根)의 극미가 열 종류라면 어찌하여 눈은 곧 색이면서 다른 종류는 되지 못하는가? 이와 같다면 법성(法性)이 뒤섞이고 어지러워져서 아비담(阿毘曇)과는 서로 어긋나게 된다. 아비담에서는 말하기를, “안근은 하나의 계ㆍ하나의 입(入)ㆍ하나의 음(陰)에 속한다”라고 하였다.
【답】두 종류의 극미62)가 있으니, 일의 극미[事極微]와 취극미(聚極微)이다. 일의 극미란 말하자면 안근의 극미가 곧 안근 [자신]의 [극]미라는 것이다. 다른 극미도 모두 자신의 일을 설한다. 사의 극미에 입각한 까닭에 아비담에서 말하기를,“안근은 하나의 계ㆍ하나의 입ㆍ하나의 음에 속한다”라고 한 것이다. 취의 극미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 가운데서는 [이러한] 취극미를 설하고 있는 것이다. 곧, 자상(自相)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법의 모습이 뒤섞이고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마치 마음과 상응하는 법은 그 모습이 각기 달라도 뒤섞여 혼란을 일으키지는 않는 것처럼 그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다. 네 종류의 원(遠)의 뜻은 이 품의 마지막에서 설명하겠다.
【문】앞에서 말하기를, 만약에 어떤 마음이 생기면 반드시 마음의 법이 함께 생기고 아울러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不相應行]도 생긴다고 했다. 이 가운데서 이미 마음의 법에 관해서는 말했다. 그렇다면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이란 어떤 것인가?
028_0409_c_17L問:前說若心 生必心法共生及不相應行。於中已 說心法,心不相應行云何?
【답】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은 태어나고 머물고 변하고 멸한다. 여기에도 역시 네 가지 상(相)이 있어서 전전하며 다시 서로 이룬다.
028_0409_c_19L答: 一切有爲法, 生住及異滅, 此亦有四相, 展轉更相爲。
‘일체의 유위법은 태어나고 머물고 변하고 멸한다’라고 한 것은, 일체의 유위법에는 네 가지 상이 있다는 것이다. 즉 태어나서 머물고 변하고 멸하는[生住異滅]63) [모습]이 그것이다. 세상[世] 가운데 일어나게 되는 까닭에 생(生)이며, 이미 일어나 스스로의 일을 세우게 되는 까닭에 주(住)이며, 이미 머물러 기세가 쇠해지게 되는 까닭에 이(異)이며, 이미 달라져 기세가 허물어지게 되는 까닭에 멸(滅)이다. 이러한 모습을 심불상응행이라고 말한다.
028_0410_a_02L【문】만약 일체의 유위법에 네 가지 상이 있다면 마땅히 그 상에도 다시 상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028_0410_a_02L問: 若一切有爲法有四相者,應相復有 相。
【답】여기에도 역시 네 가지 상이 있다. 즉 이 상과 함께 생겨나는 것이 있으니, 생생(生生)ㆍ주주(住住)ㆍ이이(異異)ㆍ멸멸(滅滅)이 그것이다.
028_0410_a_04L答:此亦有四相,卽此相俱生:生生、 住住、異異、滅滅。
【문】만약 그렇다면 [이 상의 변화는] 무궁한 것인가?
問:若爾者便無窮。
【답】전전하며 다시 상을 이루는 것이다. 상(相)과 수상(隨相)이 전전해서 상이 생겨난다면 무궁한 것은 아니다. 앞의 생(生)은 생생(生生)을 낳고, 다시 생생은 앞의 생을 낳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住)와 주주(住住)도 각각 서로 머물며, 이(異)와 이이(異異)가 각각 서로 달라지며, 멸(滅)과 멸멸(滅滅)이 각각 서로 멸하는 것이다.
【문】상(相)과 수상(隨相)이 전전하여 서로 이루는데, 앞의 상은 몇 가지 법을 이루는가?
028_0410_a_09L問:相隨相展轉相,爲 前相、爲幾法?
【답】마땅히 알아야 하니, 앞의 네 가지 상(相)은 상으로서 각각 여덟 가지 법을 이룬다. 수상 역시 상에 대한 상으로서 유일한 상을 이룸을 알아야 한다.
028_0410_a_10L答: 當知前四相, 相各爲八法, 隨相亦應知, 相相唯相一。
앞의 네 가지 상은 하나하나에 여덟 가지 법을 이루며, 앞의 생은 자기를 제외하고 여덟 가지 법을 낳으니,64) 세 가지 상과 네 가지 수상 및 그 법이다. 주(住)는 자기를 제외한 여덟 가지 법을 머물게 하고, 이(異)는 자기를 제외한 여덟 가지 법을 달라지게 하고, 멸(滅)은 자기를 제외한 여덟 가지 법을 멸하게 한다. [각각] 세 가지 상과 네 가지 수상과 내지 그 자체의 법이다. 자성은 그 스스로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자성은 스스로를 멸할 수 없다. 손가락 끝이 스스로를 만질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답】마땅히 알아야 하니, 수상은 상에 대한 상으로써 유일한 상을 이룬다. 이 네 가지의 수상은 각각 한 법을 이루는데,65) 수생(隨生)은 앞의 생을 낳고 수주(隨住)는 앞의 주를 일으키고 수이(隨異)는 앞의 이를 다르게 하고 수멸(隨滅)은 앞의 멸을 멸하게 한다. 이미 모든 행이 전전하면서 서로 생함을 설명하였다. 소위 일시에 생긴다 하더라도 혼란이 생기지 않음을 이제 설명하겠다.
다른 본성과 상(相)은 멀다[遠]고 말한다. 처소와 시간 또한 그러하니 계율과 종(種)과 대지와 모든 인식과 본성의 분별을 이룬다.
028_0410_a_22L 異性相說遠, 處所時亦然, 戒種及大地, 諸識性分別。
028_0410_b_02L‘다른 본성과 상(相)은 멀다[遠]고 말한다./처소와 시간 또한 그러하니’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멀다는 것에는 네 종류가 있다. 즉 본성이 달라서 멀다는 것[異性遠]과 모습이 멀다는 것[相遠]과 처소가 멀다는 것[處所遠]과 시간이 멀리 떨어졌다는 것[時遠]이 그것이다.
028_0410_a_24L異性相說遠處所時亦然者,遠有四 種,所謂異性遠、相遠、處所遠、時遠。
【문】어떤 것이 원법(遠法)인가?
028_0410_b_03L問: 何等遠法?
【답】계율과 종자와 대지와 모든 인식과 본성의 분별이 그것이다. 즉 본성이 달라서 멀다고 하는 것은 가령 하나의 몸 가운데서도 선(善)한 계율과 악한 계율이 작위없이 상속하여 생하는 것과 같다. [이 경우] 비록 한 몸 가운데서 일시에 일어나서 다 같이 무작(無作)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성질이 각기 다른 까닭에 [이것을] 멀다고 말하는 것이다.
‘상은 멀다’고 하는 것은, 4대종(大種)이 전전하며 서로 길러내고 함께 한곳에 머물고 합쳐져서 하나의 몸[體]을 이루지만 그 모습이 각기 다른 까닭에 멀다고 하는 것이다. ‘처소 또한 멀다’고 하는 것은 인도[天竺]와 중국[振旦]은 그 땅이 비록 동시에 생겨나 합쳐져서 한 바탕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처한 곳이 다른 까닭에 멀다고 하는 것이다. ‘때[時]가 멀다’고 하는 것은 눈에서 안식이 생할 때에도 이 경우 나중에 생긴 것과 먼저 생긴 것의 시간이 먼 까닭에 멀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제행이 일시에 생기더라도 혼란이 일어나지 않음을 설명하였다. 이제 제행이 인(因)으로부터 일어나는 그 인(因)에 대해 설명하겠다.
소작(所作)과 공(共)과 자분(自分)과 일체(一切)와 상응(相應)과 보(報) 이 여섯 종류의 인을 따라서 유위법(有爲法)이 굴러 생겨난다.
028_0410_b_13L所作共自分, 一切相應報, 從是六種因, 轉生有爲法。
말하자면 소작인(所作因)과 공유인(共有因)과 자분인(自分因)과 일체변인(一切遍因)과 상응인(相應因)과 보인(報因)이 있으니, 이 여섯 가지 인에 일체의 인이 포섭되며, 이 여섯 가지 인이 일체의 유위행(有爲行)을 낳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의 이름을 설명하였으니, 이제 그 낱낱의 상(相)을 설명하겠다.
서로 닮거나 서로 닮지 않은 것 각기 그 자성을 제외하고 일체는 곧 작인(作因)이니 생겨날 때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028_0410_b_19L相似不相似, 各除其自性, 一切是作因, 生時無障故。
028_0410_c_02L‘서로 닮거나 서로 닮지 않은 것/각기 그 자성을 제외하고/일체는 곧 작인이니’라고 한 것은, 가령 서로 닮은 법이나 서로 닮지 않은 법이 그 자성을 제외하고는 전전하면서 원인이 되는 것이 소작인66)임을 말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생겨날 때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법이 생길 때 그 자성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성품은 스스로 각기 다른 몫[分]으로 머물러 평등하게 장애하지 않음을 일으킨다. [예를 들면] 땅에 인하는 까닭에 청정하거나 부정한 업을 짓게 되고, 허공에 인하는 까닭에 오고 갈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가령 안식이 생길 때 다른 열일곱 계가 이것을 가로막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 때문에 이와 같은 일체계를 낳게 되는 것이다.
【답】자성은 그 스스로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 스스로에 의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성은 자성에서 길러지거나 줄어들지도 않으며, [다른 것을] 받아들이거나 해치거나 유지하지도 않고, 허물거나 불어나거나 줄어들지도 않으며, 이루거나 부수지 않는다. 장애를 일으키지 않는 것을 소작인이라고는 해도 자성은 자성에 있어서 부장애(不障碍)가 없기에67) 소작인(所作因)이라고 세우지 않는 것이다.68)
【문】만약 이와 같다면 어떤 한 사람의 살생하는 중생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중생들이 그것을 막지 않은 것인데, 왜 살생한 중생은 유죄이고 다른 중생은 죄가 아니라고 하는가?
028_0410_c_15L問:若如是 者,有一殺衆生,餘衆生不爲障㝵,何 故殺者有罪非餘衆生耶?
【답】악한 마음의 몫이 없고 또 업을 짓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69) 도둑질 등도 역시 이와 같다.
028_0410_c_17L答:無惡心 分,又不作業故。盜等亦如是。
【문】만약 외부의 물건이 일체 중생들의 증상(增上)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면 왜 주어지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이 일체 중생에 대해서 도둑질의 죄가 되지 않는가?70)
028_0410_c_18L問:若外 物是一切衆生增上所生者,何以故 不與取不於一切衆生邊得盜罪?
【답】[물건을] 받을 몫이 없기 때문이며, 사람의 공과(功果)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일체 중생이 모두 그 물건에 대해 받을 몫이 있고 사람의 공과가 있다면, 그것을 취한 사람은 그들에게는 도둑질의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71) 또한 하나의 물건이라도 중생이 다 받을 수 있거나 또는 남의 공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028_0411_a_02L세 종류의 증상(增上)72)이 있으니, 곧 자기증상[自增上]과 법의 증상[法增上]과 세간의 증상[世增上]이 그것이다. 자기증상이란, 그에게 번뇌의 경계가 눈앞에 나타날 때 능히 스스로를 수호하여 죄업(罪業)을 짓지 않아 스스로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법의 증상이란, 가령 많은 법을 들은 사람이 그에게 번뇌의 경계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법을 수호하기 위하여 죄를 짓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세간의 증상이란, 가령 어떤 명성 있는 대덕이 그에게 번뇌를 일으킬 경계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세간을 수호하기 위해서 죄를 짓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이상으로 소작인에 대해 설명했으니, 이제 공유인(共有因)73)에 관하여 설명하겠다.
일시에 일어난 성품에도 그 의지처가 있고 또한 의지처가 없다고도 말한다. 이것이 공유인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전전하면서 인과가 되느니라.
028_0411_a_08L 一起性有依, 亦復說無依, 當知共有因, 展轉爲因果。
‘일시에 일어난 성품에도 그 의지처가 있고/ 또한 의지처가 없다고도 말한다./ 이것이 공유인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라고 한 것은, 일시에 일어난 마음ㆍ마음의 법ㆍ마음을 따라 전개하는 심불상응행ㆍ선정과 함께 일어나는 계율[定共戒]ㆍ도와 함께 일어나는 계율[道共戒]74) 및 함께 생기는 4대(大)75) 등 이 모든 법들이 공유인(共有因)임을 말한다.
‘전전하면서 인과가 되느니라’는 가령 일시에 일어나 전전해서 과보를 이룬다면 이것은 공유인임을 말한다. 11입(入)은 비록 일시에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전전해서 과보가 되지는 않는다. 자분인(自分因)은 때를 달리하면서 하나의 결과를 공유하며, 공유인은 여러 행이 전전하는 힘에 의해 일시에 생겨난다. 즉 마음은 심법과 마음을 따라 전개하는 심불상응행 및 마음을 따라 전개하는 색에 있어서 [공유인이다]. 이것들은 또한 마음에 있어서, 눈은 생(生) 등에 있어서, 생 등은 눈에 있어서 [공유인이며] 나아가 4대종은 전전하여 공유인인 것이다.76) 대상이 있는[有對] 조색(造色)은 전전하는 과보가 아닌 까닭에 공유인(共有因)이 아니다.
028_0411_b_02L【답】가령 어떤 마음이 있으면 그에 해당하는 법이 존재한다. 즉 낮은 마음에는 낮은 법, 중간 마음에는 중간의 법, 높은 마음에는 높은 법이 존재한다. 비유하자면, 여기에는 열 가지의 따라 전개하는 것이 있다. 이른바 같이 일어나는 것[一起], 같이 머무는 것[一住], 같이 소멸하는 것[一滅], 같은 결과인 것[一果], 같은 의지처인 것[一依], 같은 과보인 것[一報] 및 선이라면 곧 선한 것, 불선이라면 곧 불선인 것, 무기라면 곧 무기인 것, 그리고 한 세상에 떨어져 태어나는 것 등이다. 이미 열 종류의, 따라 전개하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 가운데 유루(有漏)의 단결도(斷結道)에는 여덟 종류의 따라 전개하는 것이 있으니, [위의 열 가지 가운데] 불선(不善)과 무기(無記)를 제외한 것이 그것이다.
무루(無漏)의 단결도에는 일곱 종류의, 따라 전개하는 것이 있다. 곧 [열 가지 가운데] 불선과 무기 및 과보를 제한 것이 그것이다. 무루의 방편도와 해탈도와 승진도에는 여섯 종류의 따라 전개하는 것이 있다. 곧 [열 가지 가운데] 불선ㆍ무기ㆍ해탈과 및 과보를 제한 것이 그것이다. 불선한 마음[不善心]에는 일곱 종류의 따라 전개하는 것이 있다. 곧 [열 가지 가운데] 선ㆍ무기 및 해탈과를 제한 것이 그것이다. 무기의 마음[無記心]에는 여섯 종류의 따라 전개하는 것이 있다. 곧 [열 가지 가운데] 선ㆍ불선ㆍ해탈과 과보를 제한 것이 그것이다.
공유하면서 역시 공유인인 것이 있고 공유하지만 공유인이 아닌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눈의 경우 여덟 가지 법에 있어서 공유하면서 역시 공유인이다. 즉 네 가지 상82)과 네 가지 수상83)이 그것이다. 이 경우 상(相)은 눈에 있어서는 공유이면서 공유인이 된다. 그러나 수상은 눈에 있어서는 공유이지만 공유인은 아니다. [생ㆍ주ㆍ이ㆍ멸의 측면에서 설명한다면] 생(生)은 여덟 가지 법에 있어서 공유이면서 공유인이다. 즉 생의 자성을 제외한 눈과 나머지 상(相)과 수상(隨相) 이다. 다섯 가지 법84)은 생에 있어서 공유이면서 역시 공유인이다. 그러나 나머지 수상은 공유이지만 공유인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머지 상과 수상 역시 그러하며, 내지 촉입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러하다. 의입(意入)은 쉰여덟 가지 [법]에 있어서 공유하면서 공유인이다. 곧 ‘열 가지 대지와 40가지 대지의 상(相)과 의’85)입(意入)의 상과 수상 등의 여덟 법이다. 나머지에 있어서는 공유이지만 공유인은 아니다. 그리고 쉰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의입에 있어서 공유이면서 역시 공유인으로, 네 가지 수상은 제외한다.
028_0411_c_02L또한 말하기를, 열네 가지 법은 의입에 있어서 공유이면서 공유인이다. 즉 열 가지 대지와 네 가지 마음의 상이 그것이다. 나머지 여든네 가지 법은 공유이지만 공유인이 아니다. 대지도 역시 이와 같이 설명된다. 또 쉰네 가지 법은 마음에 있어서 공유이면서 공유인으로, 마음의 수상은 제외한다.
이것은 훌륭한 설명이니, 만약 이와 다르다면 그것은 『중사분아비담(衆事分阿毘曇)』86)’의 설명과 서로 어긋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신견(身見) 등의 법의 생ㆍ주ㆍ이ㆍ멸을 제외하면 그 밖의 나머지는 오염된 고제(苦諦)에 속한다. 이와 같이 해서 일체법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미 공유인을 설명하였으니, 이제 자분인(自分因)을 설명하겠다.
전생은 후생을 주는 것[與]이며 미생(未生)에 대해서도 또한 그렇게 말한다. 자기 경지[自地]의 서로 닮음이 인(因)이며 혹은 다른 경지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028_0411_c_07L 前生與後生, 亦說彼未生, 自地相似因, 或說於他地。
‘전생은 후생을 주는 것이’라고 한 것은, 과거의 전생은 과거의 후생 및 현재의 자분인(自分因)87)임을 말한 것이다.
028_0411_c_09L 前生與後生者,謂過去前生,於過去 後生,及現在自分因。
【문】이미 생긴 것을 이미 생긴 인이라고 하는가? 다시 아직 생겨나지 않은 인이라고 하는가?
028_0411_c_11L問:爲已生已生 因,復未生因耶?
【답】미생에 대해서도 또한 그렇게 말한다. 여기서 미생이란 미래를 말한다. 이와 같이 전생은 후생의 인이 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는 미래에 있어 자분인이 되어도 미래는 미래에 있어서 자분인이 되는 일이 없다고 알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미래에는] 앞뒤가 없기 때문이다.
【문】일체의 자기 경지(自地)는 일체의 자기 경지의 인이 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가?
028_0411_c_19L問:云何一切自地一切 自地因爲不?
【답】서로 닮은 것이 자분인이다. 자기 경지이면서 역시 서로 닮은 것이 자분인이지 닮지 않은 것은 [자분인이] 아니다. 가령 선(善)은 선의 인이고, 오염된 것은 오염된 것의 인이며 무기(無記)는 무기의 인인 것과 같다. 서로 닮은 것에는 서로 닮은 법이 상속하기 때문이다. 즉 선을 익히면 선을 낳고 불선을 익히면 불선을 낳으며, 공교(工巧)를 익히면 공교를 낳고 위의(威儀)를 익히면 위의를 낳는 것이다. 이것은 내분(內分)에 대한 설명인데, 외분(外分)88)이 종류에 따라 생함도 역시 그와 같다.
028_0412_a_02L【문】오로지 자기 경지만의 자분인인가? 다시 다른 경지에도 해당되는가?
028_0412_a_02L問:一向自 地自分因,復爲他地耶?
【답】혹은 다른 경지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이 경우 다른 경지란 마땅히 분별하여야 한다. 가령 무루법은 아홉 경지89)가 모두 전전하면서 인이 된다. 애착을 벗어났기 때문이며, 어떤 계에도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래의 것은 수승한 것을 위해 인이 되어도 수승한 것은 아래의 것의 인이 되지 않는다. 유루(有漏)는 갈애에 속박 당하고 또 계에 떨어지기 때문에 오직 자기 경지만이 있다. 이미 여러 가지 자분인을 설명하였다. 이제 선한 법이라고 해서 모든 선한 법의 인이 아님을 설명하겠다.
오염된 것에 아홉 종류가 있으니 전전하며 서로 인이 된다. 말하자면 수생(受生)으로 얻는 것이니 방편생(方便生)은 낮은 것이 아니다.
028_0412_a_08L 穢污有九種, 展轉更相因, 謂受生所得, 方便生非下。
‘오염90)된 것에 아홉 종류가 있으니’라고 한 것은, 이 오염된 [인연]이 아홉 종류임을 말한다. 곧 하지하(下之下)에서 상지상(上之上)에 이르기까지이다. ‘전전하며 서로 인이 된다’란, 전전하면서 서로 이어져 현재 눈앞에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이 생명을 부여받고 태어날 때는 일체를 문득 얻게 되기 때문이다.
【답】수생(受生)으로 얻는 것이니, 만약 수생으로 얻는 것이 선하다면 그것도 역시 아홉 종류로 전전하면서 서로 인이 된다.
028_0412_a_14L答: 謂受生所得。若受生得善,彼亦九種 展轉相因。
【문】방편생은 또 어떤 것인가?
問:方便生者復云何?
【답】방편생91)은 낮은 것이 아니다. 방편생은 이른바 듣고 생각하고 닦음으로써 생긴 것이라면, 그것은 대등한 것이나 더 나은[增上] 것에는 인이 되지만 낮은 것에는 인이 되지 않는다. 즉 낮은 것들(下下)은 낮은 것들의 인 내지 높은 것들(上上)의 인이 되기는 해도, 높은 것들은 오직 높은 것들의 인일 뿐 낮은 것들의 인이 되지는 않는다. 또한 듣는 것은 들음의 인ㆍ생각의 인ㆍ닦음의 인이지만, 생각은 생각의 인 및 닦음의 인이어도 들음의 인은 아니다. 낮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닦음은 오직 닦음의 인이지 다른 [인]은 아니다. 낮은 것이기 때문이다.
닦아서 얻은 지혜[修慧]에는 네 종류가 있으니, 즉 난법(煖法)ㆍ정법(頂法)ㆍ인법(忍法)ㆍ세간제일법(世間第一法)92)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난법은 네 종류의 인이 되며, 정법은 세 종류의 [인이 되고] 인법은 두 종류의 [인이 된다.] 하지만 세간제일법은 오직 세간제일법의 인이지 다른 것의 [인은] 아니다. 이것은 선한 유루법을 말한 것이다.
028_0412_b_02L불은몰무기에는 네 종류가 있으니, 보생(報生)과 위의(威儀)와 공교(工巧)와 변화심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보생은 네 종류의 인이 되고, 위의는 세 종류의 [인이 되며] 공교는 두 종류의 [인이 되나], 변화심은 오직 변화심의 인일 뿐이다. 이것은 유루(有漏)를 말한 것이다. 무루법의 경우, 고법인(苦法忍)은 고법인의 인 내지 무생지(無生智)의 인이어도 무생지는 오직 무생지의 인일뿐 다른 것에는 인이 되지 않는다. 이미 자분인(自分因)을 설명하였으니, 이제 이 인의 수과(受果)와 여과(與果)93)를 설명하겠다.
선(善) 등의 자분인은 수과이지 여과는 아니다. 혹은 여과이지 수과가 아니며 혹은 [둘을] 함께 지니기도 하고 지니지 않기도 한다고 말한다.
028_0412_b_07L 善等自分因, 受果而不與, 或與而不受, 或俱不俱說。
선한 자분인 중 수과이지 여과가 아닌 것이 있으니, 마땅히 네 구(句)로 구분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028_0412_b_09L 有善自分因受果而不與,應作四句。
수과이지 여과가 아닌 경우란, 즉 선근(善根)이 끊어질 때 최후로 [버려지는 선한] 얻음[善得]이다. 혹은 여과이지만 수과가 아닌 경우란, 즉 선근이 이어져 생겨날 때 최초로 생기는 얻음이다. 혹은 [여과와 수과가] 함께 하는 경우란, 끊어지지 아니한 선근이 다른 자성에 머무는 경우이다. 혹은 두 가지가 모두 아닌 경우란, 앞의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를 말한다. 또한 오염된 것은 수과이지만 여과가 아닌 경우는 곧 마땅히 아라한(阿羅漢)의 과를 얻게 되었을 때 얻은 오염을 최후로 버리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여과이지만 수과가 아닌 경우는 곧 아라한의 과에서 물러설 때 최초로 얻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가지를 함께 얻는 경우는, 애욕을 아직 벗어나지 못한 채 다른 자성에 머물고 있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두 가지가 모두 아닌 경우란, 앞에서 말한 일을 제외한 나머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미 무연(無緣)에 대해 설명하였다. 유연(有緣)의 법 중에서는 수과이지만 여과가 아닌 경우는 선심의 다음 차례에 오염되거나 무기(無記)의 마음이 눈앞에 나타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여과이지만 수과가 아닌 것은 오염된 마음과 무기의 마음의 다음 차례에 선한 마음이 눈앞에 나타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두 가지를 함께 하는 경우란, 선한 마음의 다음 차례에 선한 마음이 눈 앞에 나타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두 가지가 모두 아닌 경우는 위에서 말한 일들을 제외한 나머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오염된 마음이나 무기의 마음도 역시 이와 같이 설명된다. 이미 자분인(自分因)의 설명을 마쳤으니, 지금부터는 일체변인(一切遍因)94)을 설명하겠다.
028_0412_c_02L고제(苦諦)와 집제이면서 자기 경지[自地]에서의 의심과 편견과 무명을 일체변인이라고 설하나니
모든 번뇌 이전에 일어난 것이다.
028_0412_b_24L苦集於自地, 疑見及無明, 說一切遍因, 諸煩惱前起。
‘고제와 집제는 자기 경지[自地]에서의 의심과 편견과 무명을 일체변인이라고 설하나니’라고 했는데, 이것은 경계를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오로지 결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두 종류의 [번뇌가] 시킨 일이기 때문에, 일체의 번뇌는 고제와 집제에 포섭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고제와 집제를 보고 끊게 되는 번뇌의 종류로서 편견과 의심 그리고 그것과 상응하는 무명 및 불공무명(不共無明)이 있는데, 이 모든 번뇌는 부지런히 방편을 닦지 않으면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기 때문에, 또한 번뇌로 두루차기 때문에 이것을 일체변인(一切遍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인연은] 끊는 지혜[斷智]로 분별하게 되고 계로 분별하게 되는 까닭에 자기 경지[自地]에 속하는 것이지 다른 경지[他地]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답】모든 번뇌에 앞서서 일어나는 것이다. 즉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일체변인이면서 현재는 미래의 일체변인이 된다. 모든 번뇌심은 상속하여 생한다. [예를 들면] 아견(我見)은 편견의 힘으로 인해 살피고 헤아리고 집착함으로써 늘 살피고 진리의 모습[眞諦相]과 받아들이는 최고의 경지[受第一]와 청정한 경지를 비방하고 진리에 대해서 의심하니,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과 오만심 등의 모든 허물이 차별하여 생기게 된다. 이와 같이 모든 일체변인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변인은 「사품(使品)」에서 설명하게 될 것이다. 이미 일체변인을 설하였으니, 이제 상응인(相應因)에 관해서 설명하겠다.
동일한 행법이고 하나의 의지처와 하나의 시간과 또한 하나의 경계에서 전개되니 이것을 상응인이라고 한다.
028_0412_c_18L 謂同一行法, 一依亦一時, 及一境界轉, 是說相應因。
028_0413_a_02L혹은 행상95) 혹은 의지처 혹은 시간 혹은 경계96)에서 마음이 전개하면 그 행상과 그 의지처와 그 시간과 그 경계에서 수(受) 등의 심법이 전개되는 것이다. 만약 그 심법이 전개된다면 곧 그 마음도 전개된다. 성품이 약하고 뒤지기 때문에 전전력에 의해 생겨나니, 마치 갈대를 다발로 묶은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마음은 마음의 법에 있어서 상응인이며, 또한 마음의 법은 마음의 법과 마음에 있어서 [상응]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마음에 있어 [상응]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세 가지 일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즉 한 찰나에 두 마음이 함께 생기는 일은 없으며, 앞서 생긴 마음이 뒤에 생기는 마음을 기다리지 않으며, 일체법의 자성(自性)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색과 심불상응행에는 상응인이 없다. 무연(無緣)이기 때문이다. 이미 상응인을 설명하였으니, 이제 보인(報因)97)에 관해서 설명하겠다.
어떤 업(業)은 일입(一入)의 과보를 낳으니, 즉 명근(命根)이 그것이다. 만약 여기서 의입을 얻을 경우에는 두 입(入)이 있으니 의입(意入)과 법입(法入)이 그것이다. 촉입(觸入)도 또한 이와 같다. 만약 신입(身入)을 얻게 되면 세 가지 입(入)이 되나니, 즉 신입과 촉입과 법입이 그것이다. 색ㆍ향ㆍ미입 또한 이와 같다. 만약 안입(眼入)을 얻게 되면 네 가지 입이 되니, 즉 안입ㆍ신입ㆍ촉입ㆍ법입이 그것이다. 이ㆍ비ㆍ설입 또한 이와 같다.
어떤 업은 다섯ㆍ여섯ㆍ일곱ㆍ여덟ㆍ아홉ㆍ열ㆍ열한 가지 입(入)의 과보가 있다. 업이 갖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보도 갖가지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외종(外種)이 갖가지라면 그 과보 또한 갖가지임과도 같다. [예를 들면] 벼ㆍ감자ㆍ포도 등이 [종자의 종류에 따라 수확을 달리 얻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러나 갖가지로 다르지 않은 것도 있으니, 예를 들면 밀ㆍ보리 등과 같은 것이다. 내부의 연이 일어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1세(一世)의 업으로 3세의 과보를 받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3세의 업으로 1세의 업보를 받는 일은 없다. 과보는 인으로부터 감소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여 한 찰나의 업으로 많은 찰나의 과보를 받는 경우는 있어도 많은 찰나의 업으로 한 찰나의 과보를 받는 경우는 없는 것이다.
욕계에서는 한 음(陰)의 보인(報因)으로 한 가지 과보를 얻으니, 즉 득(得)98)이 그것이다. 또 두 가지 음의 보인으로 한 가지 과보를 얻는 경우가 있다. 즉 몸으로 짓는 업과 입으로 짓는 업이 그것이다. 또 네 가지 음의 보인으로 한 과보를 얻는 경우도 있다. 즉 선ㆍ불선ㆍ마음ㆍ마음의 법이 그것이다.
028_0413_b_02L색계에서는 한 음의 보인으로 한 과보를 얻는 경우가 있으니, 즉 득[得]과 무상정수[無想正受]99)가 그것이다. 또 두 음의 보인으로 한 과보를 얻는 경우가 있으니 초선(初禪)의 작색(作色)이 그것이다. 또 네 가지 음의 보인으로 한 과보를 얻는 경우가 있으니 무수전업(無隨轉業)에서의 선한 마음 및 마음의 법이 그것이다. 또한 다섯 음의 보인으로 한 과보를 얻는 경우가 있으니 유수전업(有隨轉業)에서의 선(善)한 마음 및 마음의 법이 그것이다.
하나의 업의 종자가 하나의 생을 이끌 뿐 여러 생을 이끌지는 않는다. 현실로 나타나는 업보 등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나율타경(阿那律陀經)’의 설법과 서로 어긋난다는 것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처음의 단계를 말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 것뿐이다.
한 번 베푼 업보로 큰 가문[大姓家]에 태어나는데, 태어나면서 숙명(宿命)을 알고 스스로 과거에 베푼 과보를 본 다음 다시 청정한 업이 더해져서 과보가 불어나고 넓어지니 마침내 번뇌를 다하게 된 것이다. 그 근본을 말한다면 한 톨의 씨앗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가 한 번 베푼 때를 말하더라도 거기에는 수많은 행이 있었던 것이다. 즉 그가 일연(一緣) 가운데 발원하지만, 혹은 하늘세계를 원하기도 하고 혹은 인간세계를 원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미 인의 자성(自性)을 설명하였으니 이제 이와 같은 인의 수과(受果)와 여과(與果)를 설명하겠다.
다섯 가지는 중세(中世)에서 과를 받고 또한 두 가지 여과가 있다고 말하니 이미 다한 여과는 하나이고 두 인은 마땅히 분별하여야 한다.
028_0413_b_17L 五中世受果, 亦說二與果, 已盡與果一, 二因當分別。
‘다섯 가지는 중세(中世)에서 과를 받고’라 했는데, [여기에서는] 현재를 중세(中世)라 하며, 다섯 가지 인101)은 현재세에 머물면서 과를 받는 것을 말한다. ‘또한 두 가지 여과가 있다’라고 한 것은, 상응인이나 공유인은 현재에 머물면서 과보를 주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 때에 과보를 받는다면 곧 이 때에 있어 여과가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두 가지 여과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미 다한 여과는 하나이고’라고 했는데, ‘이미 다하였다[已盡]’라고 함은 과거를 말하니, 보인(報因)[의 하나]는 과거에 머물면서 과를 주는 것이다.
028_0413_c_02L‘두 인은 마땅히 분별하여야 한다’라고 한 것은, 자분인(自分因)과 변인(遍因)은 현재세에 머물면서 과보를 주기도 하고 혹은 과거세에 [주기도 함을 말한 것이다]. 내용에 혼란이 생기기 때문에 소작인(所作因)은 설하지 않았다. 이미 인의 수과와 여과를 설하였으니, 지금부터 세(世)의 건립에 대해 설하겠다.
작인(作因)은 일체의 법이다. 두 인은 2세(世)라고 하고 나머지 세 인은 3세라고 한다. [이것으로] 불어나고 의지하고 과보와 공과(功果)를 얻는다.
028_0413_c_05L 作因一切法, 二因說二世, 餘三說三世, 增依報功果。
‘작인은 일체법이다. 두 인은 2세라고 하고, 나머지 세 가지 인은 3세라고 한다’라고 한 것은 유위(有爲)ㆍ무위(無爲)의 일체법을 작인이라고 말한 것이다. 자분인과 일체변인은 과거 및 현재라고 말하고, 나머지 세 가지 인은 3세(世)라고 한다. 이미 3세의 모든 인은 분별한 바이다. 가령 과보와 인이 과보를 지니게 되는 경우를 지금 마땅히 설명하겠으니, ‘불어나고 의지하고 과보와 공과를 얻는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즉 작인은 증상과(增上果)102)를 지니고 자분인과 변인은 의과(依果)103)를 지닌다. 보인(報因)은 보과(報果)104)를 지니고 상응인과 공유인은 공용과(功用果)105)를 지닌다. 이것으로 이미 여러 인을 분별하였으니, 지금부터 모든 법이 인을 따라 생겨나는 것을 설명하겠다.
과보로 생긴 마음과 마음의 법 및 모든 번뇌는 모두가 다섯 인을 따라 생겨나니 이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28_0413_c_15L 報生心心法, 及與諸煩惱, 悉從五因生, 是義應當知。
‘과보로 생긴 마음과 마음의 법 및 모든 번뇌는 다섯 인을 따라 생겨나니’라고 한 것은, 과보로 생기는 마음과 마음의 법 및 번뇌심과 마음의 법은 [모두] 다섯 가지 인으로부터 생겨남을 말한 것이다. 과보로 생기는 마음과 마음의 법의 다섯 가지 인이란 소작인ㆍ공유인ㆍ자분인ㆍ상응인ㆍ보인을 말한다. 소작인이란 어떤 법이 생길 때 그것과 서로 닮거나 닮지 않은 법이 장애가 되지 않으면서 머무는 것을 말한다.
028_0414_a_02L공유인이란 전전하는 힘으로 생겨나 전전하면서 동반자가 되거나 아울러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의 동반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 자분인이란 그 전생에서의 스스로의 몫인 법이다. 상응인이란 그것과 함께 일연(一緣) 가운데 전개되는 [마음과 마음의 법]이다. 보인이란 저 선과 불선이니, 이것은 곧 그것의 과보이다.
변인은 제외한다. 과보가 무기인 까닭이다. 번뇌의 마음과 마음의 법에서는 보인을 제외한다. 오염된 까닭에 변인에서 생겨난다. 나머지 네 가지 인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만약 저 상응하지 않는 것과 나머지 모든 상응하는 법 및 그 최초의 무루(無漏)를 제외한다면 이것은 네 가지 인을 좇아 생긴다.
028_0414_a_05L 若彼不相應, 諸餘相應法, 除其初無漏, 是從四因生。
과보인 색 및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行)은 네 가지 인을 따라 생겨난다. [5인 중] 변인을 제외하니, 무기(無記)인 까닭이다. 또한 상응인을 제외하니, 무연(無緣)이기 때문이다. 오염된 색 및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은 네 가지 인을 따라 생겨난다. 상응인을 제외하니, 무연이기 때문이다. 보인을 제외하니, 오염된 까닭이다.
‘나머지 모든 상응하는 법과 그 최초의 무루(無漏)를 제외한다면’이라고 한 것은, 선(善)한 유루의 마음과 마음의 법 및 위의(威儀)와 공교(工巧), 그리고 변화심과 마음의 법 및 고법인(苦法忍)에 상응하는 것을 제외한 그 나머지 모든 무루의 마음과 마음의 법은 네 가지 인을 따라 생겨남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변인과 보인을 제외한다.
그 밖에 상응하지 않는 것과 자분(自分)은 세 가지라고 알아야 하니 그 나머지 모든 상응하는 것과 처음에 생한 무루의 법이다.
028_0414_a_15L謂餘不相應, 自分當知三, 及諸餘相應, 初生無漏法。
처음 얻는 무루의 마음을 제외하고 과보로 얻거나 오염된 인 이외에 만약 자분인이 있다면 그것은 세 가지 인을 따라 생겨나니, 소작인ㆍ공유인ㆍ자분인이 그것이다. 상응인은 아니니, 무연(無緣)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인은 앞에서 이미 제외되었다. ‘그 나머지 모든 상응하는 것과 처음에 생한 무루의 법’이라 한 것은 가령 고법인과 상응하는 법과 마찬가지로 역시 세 가지 인을 따라 생겨남을 말한다. 곧, 소작인과 공유인과 상응인이 그것이다. 전생의 무루[심]이 없는 까닭에 자분인은 없으며 또한 변인과 보인도 없다.
028_0414_b_02L그 가운데 상응하지 않는 것, 이것은 두 인(因)을 따라 생긴다. 만약 하나의 인을 따라 생긴다고 한다면
그런 일은 결코 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28_0414_a_24L 於中不相應, 是從於二因, 若從一因生, 當知必無有。
‘그 가운데 상응하지 않는 것,/ 이것은 두 인을 따라 생긴다’라고 한 것은, 처음 무루의 품 중에서 색 및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心不相應行]은 두 인을 따라 생겨남을 말하니, 소작인과 공유인이 그것이다. 이미 일체의 유위법을 설명했다. 그 자세히 설명한 가운데서 한 가지 인을 따라 생기는 법이 있다고 한다면 결코 그런 일은 없다. 왜냐 하면 그 자성이 약하고 뒤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하나의 극미가 생하는 데에도 역시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일체법이 소작인이 되며, 나아가 공생(共生)의 생ㆍ주ㆍ이ㆍ멸 역시 공유인이다.
이 같은 총체적인 설명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네 종류의 법이 된다. 곧,생(報生)과 염오(染汚)와 과보 및 최초의 무루심은 제외한 나머지 불염오와 최초의 무루심과 그것의 보생인 상응ㆍ불상응 내지 최초의 무루법이 그것이다. 그 보생에 상응하는 것은 다섯 가지 인으로부터 생겨나는데 변인을 제외한다. 보생에 상응하지 않는 것은 네 가지 인을 따라 생겨나는데 변인과 상응인을 제외한다.
이와 같이 염오의 상응ㆍ불상응이 있는데, 구별하자면 오직 보인은 제하고 일체변인을 따라 생겨난다는 것이다. 과보 및 최초의 무루[심]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불염오와 상응하는 것은 네 가지 인으로부터 생겨나니, 변인과 보인을 제외한다. 상응하지 않는 것은 세 가지 인으로부터 생겨나니, 변인ㆍ상응인ㆍ보인을 제외한다. 최초의 무루[심]과 상응하는 것은 세 가지 인으로부터 생겨나니, 상응인ㆍ공유인ㆍ소작인이 그것이다. 상응하지 않는 것은 두 인을 따라 생겨나니, 소작인ㆍ공유인이 그것이다. 이것으로 여러 인(因)을 설명하였다. 이와 같은 인을 세존께서는 중생을 교화하시는 힘 및 진실한 모습을 깨달으신 힘이 있으신 까닭에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부터 연(緣)에 관해서 설명하겠다.
차제연[次第緣]과 소연연[緣緣]과 증상연[增上]과 인연[因]이 있네 법이 네 가지 연에서 생겨난다 하신 것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이다.
028_0414_b_22L次第亦緣緣, 增上及與因, 法從四緣生, 世尊之所說。
028_0414_c_02L일체법의 본성은 연력(緣力)106)과 경계력에 이끌려 생을 받으니, 그 본질이 나약하고 하열하기 때문이다. 일체의 연은 모두 네 가지 연에 포함된다. 곧, 개도(開導)를 위한 방편이 곧 차제연(次第緣)이다. 임장(任杖)107)의 방편이 되는 것이 곧 소연연[緣緣]이다. 장애가 되지 않는 몫이 곧 증상연(增上緣)이고 종자법108)의 방편이 곧 인연(因緣)이다.
나한(羅漢)의 최후심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마음과 마음의 법 항상 행(行)을 갖추어 이미 생겨나니 이것을 차제연이라 한다.
028_0414_c_05L 除羅漢後心, 諸餘心心法, 常有行已生, 是說次第緣。
아라한의 최후의 심상응(心相應)을 제외하고109) 나머지 모든 과거ㆍ현재의 마음과 마음의 법은 하나하나 서로 이어져 생겨난다. 그 모든 마음이 하나하나 생겨나 상속됨은 간단이 없는 까닭에 차제연(次第緣)110)이라 부른다. 아라한의 최후의 마음과 서로 호응하는 것은 차제연이 아니다. 나머지 이어질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미래의 마음과 마음의 법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나머지 마음이 이어질 것이 없다면 또한 차제연도 없는 것이다. 또한 미래에는 앞뒤로 또한 차례로 방편을 세우는 것도 아니다. 만약 미래에서 앞뒤로 또한 차례로 방편을 세운다면 바른 방편을 닦는 뜻을 허물게 된다. 바른 방편을 닦는 것과 잘못된 방편을 닦는 것은 마땅히 몫에 따라 차례로 생겨나는 것이다.
만약 한 마음에서 착하고 오염된 두 마음이 차례로 건립된다고 말한다면, 가령 바른 생각을 할 때는 선한 마음이 생기고 오염된 마음은 비수멸(非數滅)111)이 된다. 또한 잘못된 방편으로 생각을 할 때는 오염된 마음이 생하고 선한 마음은 비수멸이 된다. 비유하자면 마치 씨앗이 싹이 될 수도 있고 미세한 풀잎이 될 수도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만약 싹이 갖출 조건이 화합한다면 싹은 생겨도 풀잎은 생기지 않으며, 또한 풀잎이 갖출 조건이 화합하면 풀잎은 생겨도 싹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앞에서 이미 설명한 것처럼 앞뒤가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라한의 최후심은 의계(意界)이기 때문에 마땅히 이것도 차제연이 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연분(緣分)이 다르기 때문이다.
028_0415_a_02L만약 말하기를,“아라한의 최후심은 의식의 의지처가 되지 않더라도 역시 의계라고 이름하는 것은 의지처의 모습을 얻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라한의 최후심이 간단없이 상속되는 것을 또한 차제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면, 이 역시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연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습 때문에 계가 세워진다. 가령 안식이 작용하지 않는 눈은 색을 보지 못하는데 눈의 인식 작용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역시 안계(眼界)라 표현하니, 의지처[依]로서의 모습을 얻기 때문이다. 아라한의 최후심도 앞에서 말한 바와 같으니, 연(緣)이란 업(業) 때문에 세워지는 것이다. 아라한의 최후심이 차제연(次第緣)의 업을 짓고 간단없이 상속하여 일어나는 비분(非分)의 마음의 법[心法]도 역시 이와 같이 설명된다. 상(常)이라는 것은 자분인이나 변인과 같은 것이 아니다.
【답】어지럽기 때문이다. 어지럽지 않은 것을 차제연이라 말하는데 색과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은 어지럽기 때문에 차제연이 아니다. 일시에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ㆍ유루(有漏)ㆍ무루(無漏)의 각기 다른 경계의 행상이 눈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욕계에는 세 종류의 사유가 있으니, 들음의 지혜[聞慧]와 사유의 지혜[思慧]와 생함의 지혜[生慧]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닦음의 지혜[修慧]가 아니니, 마음이 산란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욕계에서는 들음의 지혜와 사유의 지혜의 다음 차례로 성도(聖道)가 눈앞에 나타나게 되며, 성도 다음으로 세 종류의 사유가 눈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색계에서는 세 종류의 사유가 있으니, 들음의 지혜와 닦음의 지혜와 생함의 지혜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사유의 지혜는 아니니, 색계는 정[禪定]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들음의 지혜와 닦음의 지혜의 다음 차례로 성도가 눈앞에 나타나게 되고 성도 다음으로 들음의 지혜와 닦음의 지혜가 눈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무색계에서는 두 가지의 사유가 있으니, 닦음의 지혜와 생함의 지혜가 그것이다. 그 닦음의 지혜 다음 차례로 성도가 눈앞에 나타나게 되고, 성도 다음으로 닦음의 지혜가 눈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내용은 「택품(擇品)」에서 자세히 설명하게 될 것이다.
혹은 법이 있어 마음의 다음 차례로 일어나도 그 마음은 무간(無間)이 아니며 또는 무간이지만 차제(次第)는 아니다. 함께 함과 함께 하지 아니함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28_0415_a_22L 或法心次第, 非彼心無間, 無間非次第, 俱不俱當知。
028_0415_b_02L‘혹은 법이 있어 마음의 다음 차례로 일어나도 그 마음은 무간이 아니며’라고 한 것은, 최초 정수(正受)의 찰나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정수의 찰나상속 및 선정에서 일어나는 마음[起定心]을 말한다. ‘무간이지만 차제는 아니다’라고 한 것은, 최초 정수(正受)의 찰나에 그것의 생ㆍ주ㆍ이ㆍ무상 (無常) 및 모든 상속하는 마음의 그 생ㆍ주ㆍ이ㆍ무상을 말한다. ‘함께 함’이란, 최초 정수의 찰나와 선정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상속하는 마음을 말한다. ‘함께 하지 아니함’이란, 최초 정수의 찰나와 그것의 생ㆍ주ㆍ이ㆍ무상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상속하는 정수의 찰나 등에서의 그 생ㆍ주ㆍ이ㆍ무상을 말한다.
만약 법이 있어 마음의 다음 차례라면 그것은 정수의 무간(無間)인가 하는 것은 마땅히 4구(句)로 구분해서 설명되어야 한다. 즉 ‘법이 있어 마음의 다음 차례로 일어나도 정수의 무간이 아니’라고 한 것은 최초 정수의 찰나와 선정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제외한 나머지 여러 상속하는 마음을 말한다. ‘혹은 정수의 무간이면서 마음의 차제는 아니’라고 한 것은, 최초 정수의 찰나와 그것의 생ㆍ주ㆍ이ㆍ무상을 제외한 나머지 여러 가지 상속하는 정수(正受) 등에 있어서 그 생ㆍ주ㆍ이ㆍ무상을 말한다. ‘함께 함’이란, 최초 정수의 찰나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상속되는 정수와 선정에서 일어나는 마음이다. ‘함께 하지 않음’이란 최초 정수의 찰나에 있는 그 생ㆍ주ㆍ이ㆍ무상과 선정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그 생ㆍ주ㆍ이ㆍ무상을 제외한 여러 나머지 상속하는 마음의 그 생ㆍ주ㆍ이ㆍ무상을 말한다.
멸진정수(滅盡正受)는 마음이 이끌어 가고 마음이 짓는 까닭에 마음의 다음 차례로 일어난 것이지만, 마음과 서로 다른 까닭에 마음의 차제연은 아니다. 선정에서 일어나는 마음이란 비록 앞에서 정(定)의 무간상속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마음이 아닌 까닭에 도리어 마음으로 차제연을 삼게 되는 것이다. 이미 차제연(次第緣)을 설명했으니, 이제 소연연[緣緣]112)에 관해서 설명하겠다.
하나의 색에 있어서 안식은 하나의 결정지(決定知)를 일으킨다. 아울러 [한 인식으로] 많은 색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빠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여러 것을 함께 보는 것은 아니니, 함께 라고 말한다면 증상만(增上慢)113)이다. 그것은 마치 빙빙 돌아가는 불수레[旋火輪]와 같은 것으로, 불수레는 결코 바퀴가 아닌 것이다. 바퀴라고 생각하는 것은 증상만일 뿐이다. 만약 명료히 색의 차별을 볼 수 있다면 그 총체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마치 우거진 숲[叢林]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도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이미 소연연을 설명하였으니, 이제 증상연(增上緣)에 관해서 설명하겠다.
저것이 소작인이라면 이것이 곧 증상연이다. 이른바 인연이란 나머지 인을 말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28_0415_c_09L若彼所作因, 此卽增上緣, 所謂因緣者, 當知餘因說。
앞에서 말한 소작인(所作因)이 곧 증상연(增上緣)114)임을 알아야 한다. 자성을 제외한 일체의 본질이 장애를 이루지 않기 때문이다. 법이 생길 때는 스스로 일을 지으며, 또한 뛰어나기에 증상연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것으로 증상연을 설명했으니, 이제 인연(因緣)115)에 관해서 설명하겠다. ‘이른바 인연이란 나머지 인을 말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소작인을 제외한 그 밖의 인을 인연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미 인연을 설명하였으니, 지금부터는 모든 법이 연을 따라 생기는 관계를 설명하겠다.
마음 및 여러 마음의 법은 네 가지 연을 따라 생한다. 두 가지 정수(正受)는 세 가지를 따라 생기니 이른바 나머지는 두 가지를 따른다고 말한다.
028_0415_c_16L 心及諸心法, 是從四緣生, 二正受從三, 謂餘說於二。
‘마음과 여러 마음의 법은 네 가지 연을 따라 생한다’라고 한 것은, 심ㆍ심법이 네 가지 연을 따라 일어남을 말한 것이다. 즉 앞장서서[前] 열고 인도하기[開導]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곧 그것의 차제연(次第緣)이며, 경계는 곧 그것의 소연연[緣緣]이 된다.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일체법은 곧 그것의 증상연(增上緣)이 된다. 나머지 인은 그 응하는 바에 따라 마땅히 인연(因緣)이라고 말해야 한다.
028_0416_a_02L‘두 가지 정수는 세 가지를 따라 생기니’라고 한 것은, 무상정수(無想正受)116)와 멸진정수(滅盡正受)117)는 세 가지 연으로부터 생긴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즉 두 가지 정수에 앞서서 일어나는 마음과 마음의 법은 곧 그것의 차제연(次第緣)이다. 또한 자기 경지[自地]를 얻기 전에 생긴 선한 법 및 그와 함께 일어나는 [생ㆍ주ㆍ이ㆍ멸의] 네 가지 모습은 곧 그것의 인연이다. 증상연(增上緣)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나머지는 두 가지를 따른다’고 한 것은, 무상정(無想定)ㆍ멸진정(滅盡定)을 제외한 나머지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心不相應行]과 색의 이 모든 법은 두 가지 연에서 생겨남을 말한다. 즉 인연(因緣)과 증상연이 그것이다. 이것으로 모든 법이 연을 좇아 생기는 것을 설명하였으니, 지금부터 유위법(有爲法)의 분제(分齊)118)에 관하여 설명하겠다.
【답】‘최초 분제는 일(一) 자로 설명되니 극미와 찰나는 나머지이다’라고 한 것이다. 소명(少名)이란 한 글자를 말하는데, 이름의 지극히 적은 것은 한 글자로 극치에 이르게 된다. 그런 까닭에 한 글자로 이름의 분제를 삼는 것이다. 소색(少色)이란 하나의 극미이다. 만약에 진실한 행지(行智)로 색의 모습을 분석한다면 색의 지극히 미세함은 일미에서 극치에 이른다. 때문에 일미(一微)를 설해 색의 한계로 삼는 것이다. 소시(少時)란 한 찰나(刹那)119)를 말한다. 시간의 지극히 적음은 일념에서 극치를 이른다. 때문에 찰나를 설해 시간의 한계로 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찰나의 양(量)을 말하기를,“건장한 사나이가 빠르게 눈을 돌려가며 수많은 별들을 두루 보고 지나갈 때 그가 경험한 한 별을 좇아 한 찰나가 있다. 이와 같이 해서 일체[의 별을 볼 경우 한 별이 머무는 순간마다 한 찰나가 지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말하기를,“가령 건장한 사나이가 한 번 손가락을 튀기는 사이에 64찰나가 지나간다”라고 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말하기를,“가령 건장한 사나이가 지극히 예리한 칼로 가시의(迦尸衣)120)의 미세한 실오라기를 자를 때 한 올을 자르는 순간이 한 찰나이다. 이와 같이 해서 모든 [실오라기를 자를 경우 한 올마다 한 찰나가 지나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말하기를,“세존께서는 찰나를 말씀하시지 않았다. 말씀하신 바에 따르자면,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 사람의 활 잘 쏘는 사람이 활을 잡고 동시에 쏘는 것과 같은 일이다’121)라고 하셨다”고 하였다. [찰나에 관해서는] 이와 같이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시간의 극미에 관해서는 이와 같이 이미 설명하였으니, 지금부터 색의 증장을 설명하겠다.
028_0416_b_02L일곱 개의 극미가 한 아뇩(阿耨) 이루고 일곱 아뇩이 한 동진(銅塵) 이루니 물 위 먼지와 토끼털 위 먼지 양털 위의 먼지도 일곱 개로부터 일어남을 알아야 한다.
028_0416_b_02L七微成阿耨, 七耨成銅塵, 水兔羊毛塵, 當知從七起。
일곱 개의 극미가 한 아뇩(阿耨)122)을 이루니 그것은 가장 미세한 색이며 천안(天眼)을 지닌 자나 보살123)ㆍ전륜왕124)이라야 볼 수 있는 색이다. 이 일곱 개의 아뇩이 구리 거울 위 한 개의 먼지125)를 이루고, 구리 거울 위 일곱 개의 먼지가 한 개의 물 위 먼지126)를 이루고, 일곱 개의 물 위 먼지가 한 개의 토끼털 위 먼지127)를 이루고, 일곱 개의 토끼털 위 먼지가 한 개의 양털 위 먼지128)를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서 일곱 개의 보리알로부터 전개되고 늘어나 한 개의 손가락이 되고 스물네 개의 손가락 만한 분량을 한 팔꿈치라 말하네.
028_0416_b_14L 如是七𪍿麥, 轉增爲一指, 二十四指量, 名之爲一肘。
일곱 개의 보리알을 손가락 하나로 삼고 스물네 개의 손가락을 한 개의 팔꿈치131)로 삼는다.
028_0416_b_16L 七𪍿麥爲一指,二十四指爲一肘。
네 개의 팔꿈치가 한 개의 활이 되고 5백은 구루사(拘屢舍)가 되며 마을을 벗어난 구루사 이것을 공처(空處)라 부른다.
028_0416_b_17L四肘爲一弓, 五百拘屢舍, 去村拘屢舍, 是名爲空處。
이와 같이 그 수가 몸의 분량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팔꿈치 네 개가 하나의 활이 되고, 마을을 벗어나는 길이는 활의 5백 배이니, 이를 공처(空處)132)라 부른다. 이것은 마갈제국(摩竭提國)133)에서는 1구루사(拘屢舍)134)이며, 북방에서는 구루사의 절반이라고 한다.
【문】이미 한 찰나에서 구루사에 이르기까지를 알았다. 8구루사를 1유순(由旬)135)이라 부르는데, 이것을 몸의 분량으로 설명한다면 어떤 몸의 분량에 해당되는가?
028_0416_b_22L問:已知剎 那乃至拘屢舍,八拘屢舍名一由旬。 當說身量,以何爲身量?
028_0416_c_02L【답】그 숫자가 곧 몸의 분량이다. 앞에서 말한 팔꿈치의 분량 및 구루사가 곧 몸의 분량임을 알아야 한다. 저 인간세계는 팔꿈치로 몸의 분량을 삼는다. 즉 염부제(閻浮提)136) 사람들의 키는 팔꿈치 세 개 반 내지 네 개이나, 불바제(弗婆提)137) 사람들의 키는 팔꿈치 여덟 개이며, 구다니(瞿陀尼)138) 사람들의 키는 팔꿈치 열여섯 개이고, 북울단월(北鬱單越)139) 사람들의 키는 팔꿈치 서른두 개이다.
앞에서 말한 구루사로 천신(天神)들의 몸의 분량을 헤아린다. 즉 사천왕(四天王)의140) 몸은 4분의1구루사이며, 삼십삼천(三十三天)141)은 반 구루사, 제석(帝釋)142)의 몸은 1구루사, 야마천(夜摩天)143) 몸은 4분의3구루사, 도솔천(兜率天神)144)의 몸은 1구루사, 화자재천(化自在天)145)의 몸은 1과 4분의1구루사,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146)의 몸은 1구루사반이다. 이것이 곧 욕계천의 몸의 크기이다.
색계 범천(梵天)147)의 몸은 2분의 1유순(由旬)이다. 범복루천(梵福樓天)148)의 몸은 1유순, 대범천(大梵天)149)의 몸은 1유순 반, 소광천(少光天)150)의 몸은 2유순, 무량광천(無量光天)151)의 몸은 4유순, 광음천(光音天)152)의 몸은 8유순, 소정천(少淨天)153)의 몸은 16유순, 무량정천(無量淨天)154)의 몸은 32유순, 변정천(遍淨天)155)의 몸은 64유순이다.
또한 복애천(福愛天)156)의 몸은 125유순이며 복생천(福生天)157)의 몸은 250유순이다. 광과천(廣果天)158)의 몸은 500유순이며 무상천(無想天)159) 몸 역시 마찬가지이다. 무희망천(無希望天)160)의 몸은 1천 유순이며, 무열천(無熱天)161)의 몸은 2천 유순, 선견천(善見天)162)의 몸은 4천 유순, 선현천(善現天)163)의 몸은 8천 유순, 색구경천(色究竟天)164)의 몸은 1만 6천 유순이다. 이것은 색계천의 몸의 분량을 말한 것으로, 이것을 ‘색의 분제(分齊)’라고 부른다.
‘욕계에서는 혹은 낮과 밤이지만, / 드높은 세계에서는 겁(劫)으로 센다’고 한 것은, 욕계 중생들의 수명을 말한 것으로, 곧 위에서 말한 낮과 밤의 수로 욕계의 수명의 양을 헤아리기도 하고 혹은 겁(劫)의 수로 헤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염부제(閻浮提) 사람들의 수명은 무량하기도 하고 혹은 열 살이기도 하다. 불바제 사람들은 [수명이] 250세이며, 구다니 사람들은 5백 세이고 울단월 사람들은 1천 세이다.
인간의 50년이 사천왕(四天王)의 천상에서는 1주야이다. 곧, 이러한 하루의 개념으로 30일이 한 달이고 12달이 1년이다. 이 같은 일월년으로 헤아려서 사천왕의 천수는 5백 세로, 인간의 9백만 세에 해당한다. 이것은 등활지옥(等活地獄)168)의 1주야이다. 이러한 하루의 개념으로 [등활지옥에서도] 30일이 한 달이 되고 12달이 1년이 되는데, 이러한 일월년으로 헤아려서 등활지옥의 수명은 5백 세가 된다.
028_0417_b_02L인간의 백년은 삼십삼천(三十三天)의 1주야이다. 이와 같은 일월년으로 헤아려서 삼십삼천의 수명은 1천 년이니, 인간의 3억 6백만 년에 해당된다. 이것은 다시 흑승대지옥(黑繩大地獄)169)의 1주야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일월년으로 헤아려서 흑승지옥의 수명은 1천 년에 달한다.
인간의 2백 년이 염마천상(焰摩天上)에서는 1주야이다. 이와 같은 일월년으로 헤아려서 염마천의 수명은 2천 세이니, 인간의 14억 4백만 년에 해당한다. 이것은 다시 중합대지옥(衆合大地獄)170)의 1주야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일월년으로 헤아려서 중합대지옥의 수명은 이천 세에 달한다.
인간의 4백 년이 도솔천상(兜率天上)에서는 1주야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일월년으로 헤아려서 도솔천의 수명은 4천 세이니, 인간의 57억 6백만 년에 해당한다. 이것은 다시 호지옥(呼地獄)171)의 1주야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일월년으로 헤아려서 호지옥의 수명은 4천 세에 달한다.
인간의 8백 년이 화락천상(化樂天上)172)에서는 1주야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일월년으로 헤아려서 화락천의 수명은 8천 세이니, 인간의 230억 4백만 년에 해당한다. 이것은 다시 대호지옥(大呼地獄)173)의 1주야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일월년으로 헤아려서 대호지옥의 수명은 8천 세에 달한다.
인간의 1천 6백 년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174)의 1주야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일월년으로 헤아려서 타화자재천의 수명은 1만 6천 세이니, 인간의 921억 6백만 년에 해당한다. 이것은 다시 열대지옥(熱大地獄)175)의 1주야에 해당한다. 이러한 일월년으로 헤아려서 열대지옥의 수명은 1만 6천 세에 달한다.
중열대지옥(衆熱大地獄)176)의 수명은 반 겁이고, 무택대지옥(無擇大地獄)177)의 수명은 1겁이다. 축생의 세계178)에서도 지극히 긴 수명은 역시 1겁에 달하니, 지지용왕(持地龍王)179)과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아귀(餓鬼)의 세계에서 지극히 긴 수명은 5백 세이다.
028_0417_c_02L【문】이미 욕계의 수명을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그 보다 높은 세계의 수명은 또 어떠한가?
問:已說欲界壽,上界復云何?
【답】그 위의 [세계에서는] 겁(劫)으로 헤아린다. 저 색계의 범신천(梵身天)의 수명은 반 겁(半劫)이며 범복루천(梵福樓天)의 수명은 1겁이다. 대범천(大梵天)의 수명은 1겁 반이며, 소광천(少光天)은 2겁, 무량광천(無量光天)은 4겁, 광음천(光音天)은 8겁, 소정천(少淨天)은 16겁, 무량정천(無量淨天)은 32겁, 변정천(遍淨天)은 64겁, 복애천(福愛天)은 125겁, 복생천(福生天)은 250겁이다. 광과천(廣果天)은 5백 겁이며 무상천(無想天) 역시 이와 같다.
무희망천(無希望天)은 1천 겁이며, 무열천(無熱天)은 2천 겁, 선견천(善見天)은 4천 겁, 선현천(善現天)은 8천 겁, 색구경천(色究竟天)180)은 1만 6천 겁이다. 무색계의 공처(空處)181)는 2만 겁이며, 식처(識處)182)는 4만 겁, 무소유처(無所有處)183)는 6만 겁,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184)는 8만 겁이다.
일체의 삼계(三界)185)에는 모두 중간세계[中天]가 있다. 다만 울단월(鬱單越)과 도솔천(兜率天)에서의 최후의 몸을 지니는 보살 및 무상천(無想天)은 제외한다.
028_0417_c_15L一切三界皆有中夭,唯 除鬱單越及兜率天最後身菩薩 及無想天。
【문】무엇 때문에 이 모든 법을 행이라고 설하는가?
028_0417_c_17L問:以何等故此諸法說 行?
【답】많은 법이 한 법을 낳고 한 법도 역시 많은 법을 낳을 수 있다. 연행(緣行)과 소작행(所作行) 이것이 행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28_0417_c_18L荅:多法生一法, 一亦能生多, 緣行所作 行, 是行應當知。
028_0418_a_02L어느 법이건 자력으로 생기는 일은 없다. 한 법은 많은 법의 힘으로 생기고 많은 법도 역시 한 법의 힘 때문에 생겨나니, 이와 같은 것이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이다. 그런 까닭에 ‘연행과 소작행 이것이 행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행에 연하기 때문에, 지어지는 바가 있기 때문에 연행(緣行)이라고 말한다. 행이 지어지기 때문에, 그 행을 짓게 되기 때문에 작행(作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行品을 마침]
141)범어로는 trāyastriṃṣa. 욕계 육욕천(六欲天) 가운데 두 번째인 도리천을 말함. 수미산 꼭대기에 있으며, 중앙에 제석천이 있고, 사방에 각각 여덟 명의 신들이 있어 모두 서른셋이 되기에 삼십삼천이라고 함. 33명의 신을 세우는 것은 베다 신화의 영향.
142)범어로는 śakra. 샤끄라는 원래 베다 신화에 등장하는 최고의 신으로 뒤에 불교에서는 범천(梵天)과 더불어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 되었다. 이 신의 이름을 팔리어 등의 속어로는 Sakka라고 불렀던 것에서 ‘釋’이라고 음사되었다.
143)범어로는 yāma. 6욕천의 제3천으로, 시분(時分)을 알고 5욕락을 즐기는 천. 1주야는 2백 년에 해당하며, 수명은 2천 세를 누린다고 함.
144)범어로는 tuṣita. 욕계(欲界) 6천 가운데 네 번째 천. 미래불이 되는 보살의 주처로서, 미륵보살이 법을 설하고 있다고 함.
145)범어로는 nirmāṇarataya.
146)범어로는 paranirmita vaśa vartina. 6욕천 가운데 최고인 제6천으로, 다른 천의 신들이 만들어 낸 욕락의 대상을 자유롭게 향수하는 신들의 세계.
147)범어로는 brahmakāyika. 범중천(梵衆天), 색계 초선의 첫 번째 천. 곧, 대범천에 속하는 신들이 사는 세계.
148)범어로는 brahma-purohita. 범보천(梵輔天), 색계 초선의 두 번째 천. 색계 세 번째 천인 대범천을 보좌한다.
149)범어로는 mahā-brahmā. 색계 초선의 세 번째 천. 위대한 범천이 사는 세계. 범중천ㆍ범보천ㆍ대범천이 모인 것이 범천이다.
150)범어로는 parittābha. 제2선의 첫 번째 천. 이 영역의 신들 가운데 가장 적은 빛을 발하는 신들의 세계.
151)범어로는 apramāṇabha. 제2선의 두 번째 천. 한량없는 빛을 발하는 신들의 세계.
152)범어로는 ābhāsavara. 극광천(極光天), 제2선의 세 번째 천. 맑은 빛으로 가득한 신들의 세계.
153)범어로는 parittaśubha. 제3선의 첫 번째 천. 정신적 쾌락을 정(淨, ṡubha)이라 하는데, 제2선천에 속하는 신들 가운데 즐거움의 향수(śubha)를 가장 적게 누리는 신들의 세계.
154)범어로는 apramaṇaśubha. 제3선의 두 번째 천. 한량없는 즐거움을 향수하는 신들의 세계.
155)범어로는 śubhakṛtna. 제3선의 세 번째 천. 두루 즐거움을 향수하는 신들의 세계.
156)범어로는 anabhraka. 제4선의 첫 번째 천. 무운천(無雲天)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이 하늘 이상에서는 신들이 구름이 모이듯이 모여드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157)범어로는 puṇyaprasava. 제4선의 두 번째 천. 뛰어난 공덕을 지은 범부가 태어나는 신들의 세계.
158)범어로는 bṛhatphala. 제4선의 세 번째 천. 가장 뛰어난 범부가 태어나는 신들의 세계.
159)범어로는 asaṁjñā. 제4선의 네 번째 천. 무상정을 수행하여 일체의 마음작용을 끝낸 하늘.
160)범어로는 abŗha. 제4선의 네 번째 천. 욕망을 여읜 성자가 번뇌의 티끌을 씻어내는 하늘세계.
161)범어로는 atapa. 제4선의 다섯 번째 천. 끓어오르는 번뇌를 여읜 신들의 세계.
162)범어로는 sudarśana. 제4선의 일곱 번째 천. 뛰어난 관찰력을 지닌 신들의 세계.
163)범어로는 sudṛśa. 제4선의 여섯 번째 천. 선정의 공덕이 쉽게 드러나는 신들의 세계.
164)범어로는 akaniṣṭha. 제4선의 일곱 번째 천. 물질적인 영역이 끝나는 색계 마지막 하늘세계. 곧 색계천의 최상위에 해당하는 하늘.
165)범어로는 tatkṣaṇa.
166)범어로는 lava.
167)범어로는 muhūrta.
168)범어로는 saṁjīva-naraka. 86지옥의 하나, 염부제에서 1천 유순의 거리에 있는 지옥이다.
169)범어로는 kālasūtra-mahānaraka. 8대지옥(大地獄)의 두 번째 지옥.
170)범어로는 saṁghāta-mahānaraka. 8대지옥의 세 번째 지옥.
171)범어로는 raurava-naraka. 규환지옥(叫喚地獄)이라고도 함. 8지옥의 네 번째 지옥.
172)범어로는 nirmāṇa-ratayaḥ. 스스로 지극히 즐거운 경지를 만들어 내는 신들의 세계. 6욕천 가운데 제5천으로 8천 세의 수명을 지닌다고 함.
173)범어로는 mahāraurava-naraka. 8대지옥의 다섯 번째 지옥. 대(大)규환지옥이라고도 함.
174)범어로는 paranirmita vaśa vartino. 6욕천 가운데 최고인 제6천으로, 다른 천의 신들이 만들어 낸 욕락의 대상을 자유롭게 향수하는 신들의 세계.
175)범어로는 tapana-mahānarka.
176)범어로는 pratapana-mahānaraka. 극열지옥(極熱地獄)이라고도 함.
177)범어로는 avici-mahānaraka. 무간지옥(無間地獄), 혹은 아비지옥(阿鼻地獄).
178)범어로는 tiryayonigata. 6취의 하나, 축생의 업을 지은 이가 태어나는 곳.
179)범어로는 airāvaṇa. Eravaṇa. 제석천이 타는 용왕이라고도 함.
180)범어로는 akaniṣṭha. 물질적[色]인 영역이 끝나는 신들의 세계.
181)범어로는 ākāṡānantyāyatana.
182)범어로는 vijñānantyāyatana.
183)범어로는 ākiñcanyāyatana.
184)범어로는 naivasamjñānāsaṁjñāyatana.
185)범어로는 tri-dhātu. 유정이 생사윤회하며 머무는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세 가지 미혹의 세계. 첫째는 욕계(kāma-dhātu)로서 음욕과 식욕 등 본능적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 둘째는 색계(rūpa-dhātu)로서 음욕과 식욕을 여의었으며, 절묘한 물질[色]로 이루어진 청정한 세계. 이는 또한 4선(禪)의 경지에 배대되는 경지이기도 하다. 셋째는 무색계(arūpa-dhātu)로서 물질의 얽매임을 뛰어넘어 고도의 정신만이 존재하는 세계로 4무색정에 의해 도달되는 경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