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 / 宗門圓相集

ABC_BJ_H0081_T_001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

006_0071_a_02L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
전법사문 지겸 집록傳法沙門 志謙 集錄
성재헌 (역)
총목차總目次
1. 원상圓相의 유래
2. 탐원 응진耽源應眞과 앙산 혜적仰山慧寂의 거량
3. 남양 혜충南陽慧忠 국사와 어떤 스님의 거량
4. 남양 혜충 국사와 자린紫璘 공봉供奉의 거량
5. 마조 도일馬祖道一과 경산 도흠徑山道欽의 편지를 통한 거량
6. 마조 도일과 어떤 스님의 거량1
7. 마조 도일과 어떤 스님의 거량2
8. 탐원 응진과 마조 도일의 거량
9. 탐원 응진과 앙산 혜적의 거량에 대한 전고典故
10. 남전南泉ㆍ귀종歸宗ㆍ마곡麻谷이 혜충 국사를 참례하러 가던 길에서의 일화
11. 남전 보원南泉普願과 삼산 지견杉山智堅ㆍ조주 종심趙州從諗의 거량
12. 남전 보원이 한 포기 채소 주위에 원을 그렸던 고사
13. 염관 제안鹽官齊安과 시자의 무소 부채(犀牛扇子) 공안
14. 장경 회운章敬懷惲과 나이 어린 어떤 스님의 거량
15. 경조 초당京兆草堂과 어떤 스님의 거량
16. 본계本溪 화상과 방거사龐居士의 거량
17. 위산 영우潙山靈祐와 어떤 스님의 거량
18. 위산 영우와 노盧 원외圓外의 거량
19. 위산 영우의 백년 후
20. 위산 영우와 앙산 혜적이 먼지를 보고 주고받은 거량
21. 위산 영우를 찾아온 염관 제안 휘하의 제자와 앙산 혜적 사이에 오고간 거량
22. 위산 영우가 양손을 맞잡아 보이자 앙산 혜적이 여인처럼 절을 올렸던 고사
23. 앙산 혜적이 소석가小釋迦로 불리게 된 고사
24. 앙산 혜적과 어떤 스님의 거량1
25. 앙산 혜적과 어떤 인도 스님의 거량
26. 앙산 혜적과 어떤 스님의 거량2
27. 위산 영우와 앙산 혜적의 거량
28. 앙산 혜적과 어떤 스님의 거량3
29. 앙산 혜적이 원상을 그리는 까닭
30. 앙산 혜적의 임종게
31. 원상을 그린 왕王 상시常侍와 원상을 지워 버린 앙산 혜적
32. 위산 영우와 위韋 상공相公의 거량
33. 앙산 혜적과 육陸 상공相公의 거량
34. 악주卾州의 무등無等 선사와 왕 상시의 거량
35. 목주睦州 진존숙陳尊宿과 어떤 수재秀才의 거량
36. 대수 법진大隋法眞과 어떤 스님의 거량
37. 남탑 광용南塔光涌과 어떤 스님의 거량
38. 동평 광목東平光穆과 어떤 스님의 거량
39. 오관산五冠山 서운사瑞雲寺 순지順之 화상의 도상과 법문
40. 암두 전활巖頭全豁과 앙산 혜적의 제자와의 거량
41. 흠산 문수欽山文邃ㆍ암두 전활巖頭全豁ㆍ설봉 의존雪峰義存이 차를 마시며 주고받은 거량
42. 자복 여보資福如寶와 어떤 스님의 거량
43. 자복 여보와 녹원鹿苑 화상의 거량
44. 자복 여보와 진조陳操 상서尙書와의 거량
45. 파초 혜청芭蕉慧淸과 공양주의 거량
46. 현사 사비玄沙沙備와 고산鼓山 스님의 거량
47. 경청 도부鏡淸道怤와 어떤 스님의 거량
48. 임계 철林溪徹이 방편문方便門으로 보인 6가지 도상
49. 양楊 시랑侍郞과 이李 부마駙馬가 당명 숭唐明 嵩 화상과 나눈 문답
50. 자명 초원慈明楚圓이 동짓날 승당에 건 패
51. 자명 초원의 상당 법문
52. 낭야 혜각瑯琊慧覺이 초조 달마 스님을 칭송한 게송
53. 명주明州 향산 지도香山智度 화상의 40소所
54. 법창 의우法昌倚遇와 대녕 관大寧寬의 거량
55. 황룡 혜남黃龍慧南이 법창 의우를 찾아가 거량하고 주고받은 도상과 게송
56. 명교 계숭明敎契嵩의 법문
57. 대녕 관大寧寬 화상과 어떤 스님의 거량
58. 자명 초원 스님의 제삿날, 양기 방회楊岐方會와 대중 사이에 오고간 거량
59. 보녕 인용保寧仁勇 화상이 갈葛 도인에게 보낸 편지
60. 대송大宋 인종仁宗의 선송禪頌과 연璉 스님의 송
61. 늑담 홍영泐潭洪英이 개당하던 날
62. 장로 자각長蘆慈覺의 법문과 영英 스님의 송
63. 목암 법사牧菴法思 화상의 문답
64. 용문 불안龍門佛眼의 상당 법문
65. 앙산 스님이 소석가小釋迦라 불리게 된 고사를 읽고 천동 정각天童正覺이 지은 송 2수와 상당 법문
66. 무시無示 화상의 게송과 이에 화답한 경덕사景德寺 자항慈航 화상과 심문 분心聞賁 화상의 게송
67. 운문 문언雲門文偃의 ‘투출일자透出一字’에 대한 심문 분 화상의 염
68. 원상의 유래와 6가지 명칭
발문跋文
1. 원상圓相의 유래
위앙종파潙仰宗派1)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달마達磨 대사의 제10세 손 위산 영우潙山靈祐2) 선사의 법사法嗣(후계자)이신 원주袁州 앙산仰山 혜적 통지慧寂通智3) 선사는 충 국사忠國師4)를 참방하고 오래도록 시자 생활을 하다가 후에 탐원耽源5) 스님의 문하로 들어갔다.6)
탐원 스님이 앙산에게 말했다.
“국사께서 당시 전해 받은 6대 조사의 원상圓相이 모두 97개인데 그것을 이 노승에게 주셨다. 돌아가실 때 이 노승에게 말씀하길 ‘내가 죽은 뒤 30년 후에 남쪽 지방에서 한 사미가 찾아와 이 법을 크게 일으킬 것이니, 차례로 전수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라.’고 하셨다. 내가 이제 너에게 맡기니 너는 받들어 간직하도록 하라.”
그러고는 그 책을 가져다 앙산에게 건네주었다. 앙산은 받아서 한번 훑어보고는 곧 불을 가져다 태워 버렸다.
탐원 스님이 하루는 물었다.
“지난번에 준 원상들은 소중히 간직해야만 하느니라.”
앙산이 대답했다.
“그때 한번 훑어보고는 바로 태워 버렸습니다.”
탐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법문法門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오직 돌아가신 스승과 여러 조사들, 그리고 큰 성인들이라야 소상히 알 수 있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태워 버렸는가?”
앙산이 말하였다.
“저 혜적은 한번 보고 그 뜻을 이미 알았습니다. 그저 얻기만 하면 그만이지 책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탐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대야 그럴 수 있겠지만 뒷사람들은 미심쩍어할 것이다.”
앙산이 말하였다.
“화상께서 필요하시다면 다시 기록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곧 한 권의 책을 다시 만들어 탐원 스님께 바쳤는데 빠지거나 잘못된 부분이 전혀 없었다. 이에 탐원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과연 그렇구나!”
2. 탐원 응진耽源應眞과 앙산 혜적仰山慧寂의 거량
탐원 스님께서 상당上堂하시자 앙산이 대중 가운데서 나와 ○ 모양을 만들고 손으로 받쳐 올리고는 물러나 차수하고 섰다. 이에 탐원 스님이 양손을 포개 주먹을 쥐어 보이자 앙산이 앞으로 세 걸음 나와 여자처럼 절을 하였다.

006_0071_a_01L

006_0071_a_02L1)宗門圓相集 [1]

006_0071_a_03L

006_0071_a_04L傳法沙門志謙集錄

006_0071_a_05L
潙仰宗派云達磨第十世潙山靈祐禪
006_0071_a_06L師法嗣袁州仰山慧寂通智禪師叅忠
006_0071_a_07L國師久爲侍者後造耽源之門
006_0071_a_08L源謂仰山曰國師當時傳得六代祖師
006_0071_a_09L圓相共九十七箇授與老僧曁臨
006_0071_a_10L滅時謂老僧曰吾滅後三十年南方
006_0071_a_11L有一沙彌到來大興此法次第傳授
006_0071_a_12L無令斷絕我今付汝汝當奉持遂將
006_0071_a_13L其本過與仰山山接得一覽便將火
006_0071_a_14L燒却耽源一日問前來諸相甚冝秘惜
006_0071_a_15L山曰當時看了便燒却也源曰此法
006_0071_a_16L門無人能會唯先師及諸祖師諸大聖
006_0071_a_17L方可委悉因何燒却仰山曰慧寂
006_0071_a_18L一覽已知其意但然用得不可執本
006_0071_a_19L源曰然雖如此於子卽得後人信
006_0071_a_20L之不及仰山曰和尙若要重錄不難
006_0071_a_21L卽重集一本呈上耽源更無遺失
006_0071_a_22L曰然耽源上堂仰山出衆作此○相
006_0071_a_23L以手托呈了却叉手立源以兩手相交
006_0071_a_24L作拳示之仰山進前三步作女人拜

006_0071_b_01L탐원 스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앙산이 곧 절을 하였다.
3. 남양 혜충南陽慧忠 국사와 어떤 스님의 거량
남양 충 국사께서 한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는 손으로 ○ 모양을 만들고 원상 가운데 일日 자를 썼다.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4. 남양 혜충 국사와 자린紫璘 공봉供奉의 거량
자린紫璘 공봉供奉7)이 충 국사께 아뢰었다.
“제가 『사익경思益經』을 주석하였습니다.”
국사께서 이에 모양을 그리고 물으셨다.
“아시겠습니까?”
공봉은 대답이 없었다.8)

개선 섬開先暹9) 화상이 대답을 대신하였다.
“저는 그렇게 주석하지 않습니다.”
5. 마조 도일馬祖道一과 경산 도흠徑山道欽의 편지를 통한 거량
마조馬祖10) 스님이 지장智藏11)을 시켜 경산徑山12) 스님께 편지를 보냈는데, 경산 스님께서 편지를 열어 ○ 모양 하나만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는 그 가운데 점을 하나 찍었다.
충 국사께서 이 이야기를 듣고 거론하여 말씀하셨다.
“흠欽 대사가 도리어 마馬 대사의 속임수에 당했구나.”

설두雪竇13) 스님이 이에 대해 말했다.
“경산 스님이 속임을 당한 것은 일단 접어 두고, 만일 국사께 그 편지를 드렸다면 달리 어떤 기량을 부려 그 속임수를 피했을까? 어떤 노숙老宿께서는 ‘당시 앉자마자 바로 그만두었어야지.’라고 했고, 또 ‘그저 찢어 버렸으면 될 걸.’이라고 말씀하신 분도 있었다. 만일 그렇다면 그건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것이다. 감히 말해 보건대, 천하의 노스님들이 각기 금강의 눈동자를 갖추고 널리 신통변화를 부렸어도 과연 속임수를 면할 수 있었을까? 설두의 견처見處를 모든 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구나. 저 마조 대사가 당시에 그림을 그린 것부터가 일찌감치 스스로 속은 것이니라.”14)
6. 마조 도일과 어떤 스님의 거량1
어떤 스님이 마조스님 앞에서 위의 한 획은 길고 아래 세 획은 짧게 네 획을 긋고 말했다.
“하나는 길고 셋은 짧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구四句를 벗어나고 백비百非를 끊고서 화상께서 대답해 주십시오.”
스님께서는 한 획만 긋고 말씀하셨다.
“짧다고도 길다고도 말할 수 없으니, 그대에게 대답했다.”
훗날 어떤 스님이 이 이야기를 충 국사께 거론하자 국사께서 말씀하셨다.
“왜 내게 묻지 않느냐?”
7. 마조 도일과 어떤 스님의 거량2
마조 스님께 어떤 스님이 참례하자 원상인 ○를 그리고 말씀하셨다.
“들어가도 때리고 들어가지 않아도 때리겠다.”
그 스님이 재빨리 들어가자 마조 스님께서 바로 때렸다. 그 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서는 저를 때리시면 안 됩니다.”
마조 스님께서는 주장자에 기대며 그만두었다.

설두 현雪竇 顯 스님이 이에 대해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끝마치지 못했다. ‘화상께서는 저를 때리시면 안 됩니다.’라고 하자

006_0071_b_01L源點頭仰山便禮拜

006_0071_b_02L
南陽忠國師見僧來以手作○相圓相
006_0071_b_03L中書日字僧無對紫璘供奉白忠國師
006_0071_b_04L某甲擬注思益經國師乃畫此相
006_0071_b_05L會麽供奉無語開先暹和尙代
006_0071_b_06L第一張某甲不恁麽注

006_0071_b_07L
馬祖令地藏馳書上徑山山接書開見
006_0071_b_08L一○相於中下一點忠國師聞擧云
006_0071_b_09L師猶被馬師惑雪竇云徑山被惑且置
006_0071_b_10L若將呈似國師別作箇什麽伎倆免被
006_0071_b_11L惑去有老宿云當時坐却便休亦有道
006_0071_b_12L但與劃破若與麽只是不識羞敢謂
006_0071_b_13L天下老師各具金剛眼睛廣作神通變
006_0071_b_14L還免得麽雪竇見處也要諸人共
006_0071_b_15L只這馬師當時畫出早自惑了也
006_0071_b_16L有僧於馬祖前作四畫上一畫長下三
006_0071_b_17L畫短云不得道一長三短離四句絕百
006_0071_b_18L請和尙答某甲但畫一畫云不得
006_0071_b_19L道長短答汝了也後有僧擧似忠國師
006_0071_b_20L國師云何不問我

006_0071_b_21L
馬祖因僧叅次乃畫圓相○云入也打
006_0071_b_22L不入也打僧纔入祖便打僧云和尙
006_0071_b_23L打某甲不得祖靠柱杖休去雪竇顯
006_0071_b_24L二俱不了和尙打某甲不得靠却

006_0071_c_01L주장자에 기대셨는데, 이때 따지며 달려들지 않는다면 등줄기를 갈겨 줘야 한다.”
8. 탐원 응진과 마조 도일의 거량
길주吉州 탐원산眈源山 진응眞應 선사께서 국사國師와 이별하고 돌아가는 길에 마조 스님을 찾아뵈었다. 땅에 하나의 원상인 ○를 그리고는 좌구坐具를 펴고 절을 올리자 마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부처가 되고 싶은가?”탐원 스님이 대답했다.
“저는 눈을 비빌 줄 모릅니다.”
마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대만 못하니라.”
설두 현 스님이 이에 대해 말했다.
“그렇다. 사나운 호랑이도 제 자식은 잡아먹지 않는 법인데 오는 말이 곱지 못한데 어찌하겠는가? 여러분은 탐원 스님을 알고 싶은가? 고작해야 몸을 숨긴다면서 그림자를 드러낸 놈일 뿐이다.”
9. 탐원 응진과 앙산 혜적의 거량에 대한 전고典故
『종문통요집宗門統要集』15)에서 말하였다.
“탐원 스님께 앙산이 입문했을 때 일이다. 하나의 ○ 모양을 그리고 손으로 바치는 시늉을 하고 물러나 차수하고 서자 스님께서는 양손을 겹쳐 주먹을 쥐어 보이셨다. 앙산이 앞으로 세 걸음 나와 여자처럼 절을 올리자 스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셨다.”
10. 남전南泉ㆍ귀종歸宗ㆍ마곡麻谷이 혜충 국사를 참례하러 가던 길에서의 일화
남전南泉16)ㆍ귀종歸宗17)ㆍ마곡麻谷18) 세 스님이 함께 충 국사를 참례하러 나섰는데, 도중에 남전이 땅바닥에 하나의 원상인 ○를 그리고 말하였다.
“말할 수 있다면 가겠습니다.”
그러자 귀종 스님이 원상 가운데에 앉았고 마곡 스님은 곧 여자처럼 절을 올렸다. 남전 스님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가지 않겠습니다.”
귀종 스님이 말하였다.
“거 무슨 심보인가!”

설두 현 스님이 이에 대해 송하였다.

由基箭射猿    유기由基19)가 화살로 원숭이를 쏘니
遶樹何大直    나무를 휘감으며 어찌 그리 정확한지
千箇與萬箇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
是誰曾中的    그 누가 맞혔던 적 있던가
相喚相呼歸去來  돌아가자며 서로를 부르고는
曹溪路上休登陟  조계의 길에 오르기를 그만뒀네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
“조계의 길이 평탄한데 왜 오르기를 그만뒀을까?”

『종문통요집』에서는 이 이야기를 거론하고는 “거 무슨 심보인가!” 다음에 “이에 서로를 부르며 돌아가자고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취암 지翠嵓芝20) 스님이 이에 대해 말하였다.
“당시 그 꼴을 보았다면 각각 한방씩 때려 주어 천하의 태평을 도모했을 것이다.”

006_0071_c_01L柱杖擬議不來劈脊便打

006_0071_c_02L
吉州躭源山眞應禪師辭國師歸省覲
006_0071_c_03L馬祖於地上作一圓相○ 展坐具禮拜
006_0071_c_04L祖云子欲作佛去源云某甲不解捏目
006_0071_c_05L祖曰吾不如汝雪竇顯云然猛虎不
006_0071_c_06L食其子爭奈來言不豊諸人要識躭源
006_0071_c_07L只是箇第二張藏身露影漢

006_0071_c_08L
宗門統要集云躭源因仰山入門畫一
006_0071_c_09L○相以手托呈却叉手而立師以兩
006_0071_c_10L手交過握拳示之仰山進前三步作女
006_0071_c_11L人拜師點頭而已

006_0071_c_12L
南泉歸宗麻谷同去禮拜忠國師至路
006_0071_c_13L南泉於地上畫一圓相○云道得卽去
006_0071_c_14L歸宗於圓相中坐麻谷便作女人拜
006_0071_c_15L云恁麽則不去也宗云是什麽心行
006_0071_c_16L竇顯頌曰由基箭射猿遶樹何大直
006_0071_c_17L千箇與萬箇是誰曾中的相喚相呼歸
006_0071_c_18L去來曹溪路上休登陟復云曹溪路
006_0071_c_19L坦平爲什麽休登陟

006_0071_c_20L
宗門統要集據此話至是什麽心行
006_0071_c_21L是相喚廻

006_0071_c_22L
翠嵓芝云當時若見每人與一棒
006_0071_c_23L圖天下2)大平

006_0071_c_24L{底}貞祐七年妙峯庵刊本「大」通「太」{編}

006_0072_a_01L
11. 남전 보원南泉普願과 삼산 지견杉山智堅ㆍ조주 종심趙州從諗의 거량
남전 스님이 삼산杉山21) 스님과 불을 쬐던 차에 말씀하셨다.
“동쪽을 가리켜 서쪽과 구분하는 그런 방법 말고, 본분사本分事를 곧장 말해 보시오.”
삼산 스님이 부젓가락을 화로에 푹 꽂자 남전 스님이 말씀하셨다.
“정말 그렇다면 이 왕노사王老師의 한 가닥 길(一線道)과 견줄 만하구만.”
또 똑같이 조주趙州22)에게 묻자 조주 스님은 ○ 모양을 그리고 그 가운데 점을 하나 찍었다. 남전 스님이 말씀하셨다.
“정말 그렇다면 이 왕노사의 한 가닥 길과 견줄 만하구나.”
12. 남전 보원이 한 포기 채소 주위에 원을 그렸던 고사
남전 스님이 울력(普請) 때 밭에 들어가 나물을 캐다가 한 줄기 채소 주위로 하나의 ○ 모양을 두르고는 표지를 꽂아 두고 수좌首座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된다.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말을 각자 한마디씩 해 보아라.”
그때 대중이 각기 견해를 피력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계합하지 못하였다. 남전 스님이 몽둥이로 쫓으며 말씀하셨다.
“저런 쓸모없는 놈들! 지혜는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처먹기만 하는구나. 내 조금의 채소도 너희들에게 줄 수 없다”
원두園頭가 불끈하여 그 표지를 밟아 쓰러뜨리고는 그 채소 줄기를 질질 끌고 절로 돌아갔다.
13. 염관 제안鹽官齊安과 시자의 무소 부채(犀牛扇子) 공안
염관鹽官23) 스님이 하루는 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내게 무소 부채(犀牛扇子)를 가져다오.”
시자가 말하였다.
“부채가 망가졌습니다.”
염관 스님이 말씀하셨다.
“부채가 망가졌거든 나에게 무소를 돌려다오.”
시자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투자投子 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데려오는 것은 사양치 않겠으나 뿔이 온전치 못할까 걱정입니다.”
설두雪竇 스님이 이에 대해 말했다.
“나는 온전치 못한 뿔이 필요하다.”
석상石霜24) 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화상께 돌려드릴 것은 없습니다.”
설두 스님이 이에 대해 말했다.
“무소가 아직 있구먼.”
자복資福25) 스님은 하나의 ○ 모양을 그리고 그 가운데 우牛 자를 썼다.
설두 스님이 이에 대해 말했다.
“아까는 왜 데리고 나오지 않았는가?”
보복保福26) 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화상께선 연세가 많으시니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설두 스님이 이에 대해 말했다.
“애석하게도 애는 썼지만 공이 없구나.”

(설두 스님이) 또 송하였다.

犀牛扇子用多時  무소 부채를 오래도록 써 왔건만
問著元來摠不知  물어 보니 원래부터 다들 몰랐네
無限淸風與頭角  끝없는 맑은 바람과 무소의 뿔은
盡同雲雨去難追  구름이나 비와 똑같아 따라잡기 어려워라


006_0072_a_01L
南泉與杉山向火次乃云不用指東劃
006_0072_a_02L西本分事直下道將來杉以火筯
006_0072_a_03L向爐內泉云直饒如是猶較王老師一
006_0072_a_04L線道又如前問趙州州遂畫○相中心
006_0072_a_05L1)下一點泉云直饒如是猶較王老師
006_0072_a_06L一線道

006_0072_a_07L
南泉因普請入園取菜乃畫一○相
006_0072_a_08L圍却一株菜以標揷之語首座大衆曰
006_0072_a_09L輙不得動着每人下一轉語來是時大
006_0072_a_10L各呈見解未甞有契泉以捧趂云
006_0072_a_11L這一隊漢無一箇有智慧喫却我多少
006_0072_a_12L菜不能與園頭出氣第三張 乃踏倒
006_0072_a_13L標子曳着菜株而歸

006_0072_a_14L
鹽官一日喚侍者與我將犀牛扇子來
006_0072_a_15L侍者云扇子破也官云扇子旣破還我
006_0072_a_16L犀牛兒來侍者無對投子云不辭將
006_0072_a_17L恐頭角不全雪竇云我要不全底
006_0072_a_18L頭角石霜云若還和尙則無也雪竇
006_0072_a_19L犀牛兒猶在資福畫一○相於中
006_0072_a_20L書一牛字雪竇云適來爲什麽不將
006_0072_a_21L保福云和尙年尊別請人好雪竇
006_0072_a_22L可惜勞而無功又頌曰犀牛扇子
006_0072_a_23L用多時問著元來摠不知無限淸風與
006_0072_a_24L頭角盡同雲雨去難追復云若要淸

006_0072_b_01L
(설두 스님이) 다시 말했다.
“맑은 바람이 다시 불고 무소의 뿔이 다시 돋기를 바란다면 선객들은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한마디를 해 보라. 묻겠다. 부채가 망가졌다면 나에게 무소를 돌려다오.”
이때 어떤 스님이 나와 말하였다.
“대중들이여 참선하러 갑시다.”
스님께서 할喝을 하고 말씀하셨다.
“낚시를 던져 고래를 잡으려 했더니 겨우 개구리가 낚이는구나.”
곧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14. 장경 회운章敬懷惲과 나이 어린 어떤 스님의 거량
장경사章敬寺 회운懷惲27) 선사에게 한 어린 스님이 행각하고 돌아와 뵙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네가 이곳을 떠난 지 몇 년이나 되었냐?”
어린 스님이 대답했다.
“화상 곁을 떠난 지 8년이나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뭘 좀 알아냈느냐?”
어린 스님은 땅에다 하나의 원상인 ○를 그렸다.
스님께서 물으셨다.
“그것뿐이냐, 다른 것도 있느냐?”
어린 스님은 원상을 지워 버리고 바로 절을 하였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틀렸구나, 틀렸어.”
15. 경조 초당京兆草堂과 어떤 스님의 거량
경조 초당京兆草堂28)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한 법도 없었을 때, 이 몸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스님께서 하나의 ○ 모양을 그리고 그 가운데 신身 자를 쓰셨다.
16. 본계本溪 화상과 방거사龐居士의 거량
본계本溪29) 화상께서 하루는 앉아 있는데 방공龐公30)이 찾아왔다. 스님이 돌아보자마자 방공은 주장자로 하나의 ○를 그렸다. 스님이 앞으로 다가가 발로 뭉개 버리자 방공이 말했다.
“이렇습니까, 이렇지 않습니까?”
스님께서도 원상을 그리자 방공 역시 앞으로 다가가 발로 뭉개 버렸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런가, 이렇지 않은가?”
방공이 그러자 주장자를 던져 버리고 섰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올 땐 주장자가 있더니 갈 땐 주장자가 없구나.”
방공이 말하였다.
“본래 원만하고 완성된 것이거늘 직접 보겠다고 괜히 애만 썼습니다.”
스님이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말씀하셨다.
“기특하구먼, 기특해. 하나도 얻을 게 없다네.”
방공이 주장자를 집어 들고 곧장 떠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길 조심하게나. 길 조심하게나.”
17. 위산 영우潙山靈祐와 어떤 스님의 거량
담주潭州 대위 영우大潙靈祐31) 선사께서 하루는 여의如意를 들어 보이고 또 ▼(◎+ο) 모양을 그리시고선 말씀하셨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 여의를 갖게 되리라. 말해 보라, 말해 보라.”
그때 어떤 스님이 말했다.
“그 여의는 본래 화상 것이 아닙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얻었는데도 쓸모가 없느니라.”
스님이 말했다.
“설령 주신대도 저 또한 둘 곳이 없습니다.”

006_0072_b_01L風再覆頭角重生請禪客下一轉語
006_0072_b_02L問云扇子旣破還我犀牛兒來時有
006_0072_b_03L僧出云大衆叅堂去師喝云拋釣釣
006_0072_b_04L鯤鯨釣得箇蝦䗫便下座

006_0072_b_05L
章敬寺懷惲禪師有小師行脚廻師問
006_0072_b_06L汝離此間得多少年耶小師曰離和尙
006_0072_b_07L左右將及八年師曰辦得箇什麽
006_0072_b_08L師於地上畫一○圓相師曰祇這箇別
006_0072_b_09L更有在小師乃畫破圓相便禮拜
006_0072_b_10L曰不是不是

006_0072_b_11L
京兆草堂禪師僧問未有一法時
006_0072_b_12L身在何處師畫一○相於中書身字

006_0072_b_13L
本溪和尙師一日坐次龐公至師纔
006_0072_b_14L顧視公以柱杖畫一○相師近前踏却
006_0072_b_15L公云恁麽不恁麽師亦畫圓相第四張
006_0072_b_16L公亦近前踏却師云恁麽不恁麽
006_0072_b_17L遂拋下柱杖而立師云來時有杖
006_0072_b_18L時無杖公云幸自圓成徒勞目視
006_0072_b_19L拊掌云奇哉奇哉一無所得公拈柱
006_0072_b_20L杖便行師云看路看路

006_0072_b_21L
潭州大潙靈祐禪師一日呈起如意
006_0072_b_22L畫此▼(◎+ο) 相云有人道得便得此如意道
006_0072_b_23L時有僧云此如意本不是2)知尙底
006_0072_b_24L師云得而無用僧云設擧某甲亦無著

006_0072_c_01L
18. 위산 영우와 노盧 원외圓外의 거량
노盧 원외圓外가 위산潙山 스님께 물었다.
“삼승三乘 십이분교十二分敎는 부처님 말씀입니까, 아닙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그저 한때 방편일 뿐이지요.”
외外가 다시 물었다.
“삼승 십이분교를 설한 분이 부처님입니까, 부처님이 아닙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깨닫는다면 그렇지만 깨닫지 못한다면 아닙니다.”
외가 말했다.
“대체 누가 삼승 십이분교를 설한 사람입니까?”
스님께서 ○ 모양을 그려 그것을 받쳤다. 그러자 외가 곧 감사를 표했다.
19. 위산 영우의 백년 후
위산潙山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이 노승이 백년 후엔 산 아래 단월檀越(시주)의 집에 한 마리 물소로 태어날 것인데, 왼쪽 옆구리에 ‘위산의 중 아무개(潙山僧某甲)’란 다섯 글자가 씌어져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위산의 중’이라고 불러야 옳을까, ‘물소’라고 불러야 옳을까?”
앙산이 대중 가운데서 나와 삼배를 올리고 나가 버리자 스님께서도 곧바로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길주吉州 자복資福 스님이 이에 대해 말했다.
“그때 ○ 모양을 그려 바치기만 했으면 될 걸.”
신라新羅 화상이 말했다.
“▼(○*牛) 이런 모양을 그려 바치기만 했으면 될 걸.”
또 말하였다.
“같은 길을 가는 자라야 알리라.”
파초 철芭蕉徹 화상이 말했다.
이런 모양을 그려 바치기만 했으면 될 걸.”
또 말하였다.
“설명하라면 다 설명했고 주석하라면 다 주석했으니, 깨닫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게송 한 수를 지으셨다.

不是潙山不是牛  위산도 아니요 소도 아니니
一身兩號實難酬  한 몸에 두 이름, 대꾸하기 어렵구나
離却兩頭應須道  양쪽을 모두 떠나 대답해야 마땅하니
如何道得出常流  어떻게 대답해야 보통사람 벗어날까
20. 위산 영우와 앙산 혜적이 먼지를 보고 주고받은 거량
위산 스님께서 앙산과 함께 길을 가는데 갑자기 앞에 먼지가 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영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앞에 이게 뭐냐?”
앙산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고는 물러나 ▼(車-曰+口) 이런 모양을 그리자 영우 스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006_0072_c_01L

006_0072_c_02L
盧員外問潙山三乘十二分敎是佛說
006_0072_c_03L不是師曰但一期方便外曰說三乘
006_0072_c_04L十二分敎是佛不是佛師曰悟卽是
006_0072_c_05L不悟卽非外曰阿誰是說三乘十二分
006_0072_c_06L敎底人師作此○相乃托呈之外便
006_0072_c_07L禮謝

006_0072_c_08L
潙山上堂曰老僧百年後向山下檀越
006_0072_c_09L作一頭水牯牛左脇下書字五箇曰
006_0072_c_10L潙山僧3)其甲當恁麽時喚作潙山僧
006_0072_c_11L喚作水牯牛是仰山出衆禮三拜
006_0072_c_12L出去師便下座吉州資福曰當時但作
006_0072_c_13L此○相拓呈之新羅和尙曰但作此▼(○*牛)
006_0072_c_14L拓呈之又曰同道者方知芭蕉徹和
006_0072_c_15L尙云但作此4)拓呈之又曰說
006_0072_c_16L說了也注也注了也悟取好乃述
006_0072_c_17L一偈云不是潙山不是牛一身兩號實
006_0072_c_18L難酬離却兩頭應須道如何道得出常
006_0072_c_19L第五張

006_0072_c_20L
潙山與仰山行次忽見面前塵起祐曰
006_0072_c_21L面前是什麽仰山近前看了却作此▼(車-曰+口)
006_0072_c_22L祐點頭

006_0072_c_23L「下」失劃{編}「知」疑「和」{編}「其」疑「某」
006_0072_c_24L{編}
」之三圓內有字然字形未審{編}

006_0073_a_01L
21. 위산 영우를 찾아온 염관 제안 휘하의 제자와 앙산 혜적 사이에 오고간 거량
위산潙山 스님께서는 대중에게 “일체중생 모두 불성이 없다.”라고 설법하셨다. 염관鹽官 스님께서는 “일체중생 모두 불성이 있다.”라고 설법하셨다. 그러고는 두 스님을 보내며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가서 그가 어떻게 하는지 살펴 보거라.”
두 스님은 뜻을 받들어 곧바로 위산으로 가서 위산 화상의 법문을 들었으나 그 한계를 측량할 수 없었다. 하루는 앙산仰山 스님과 얘기를 나누던 차에 앙산 스님에게 권하였다.
“정말 불법을 배우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네.”
앙산이 이에 ○ 모양을 그리고 손으로 바쳤다가는 도리어 등 뒤로 집어던지고 두 손을 폈다. 그러곤 두 스님에게 다가가 찾는 시늉을 하자 두 스님이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앙산 스님이 말했다.
“형兄들이 정말로 불법을 배워야만 비로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그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 버렸다. 이때 두 스님도 물러나 염관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던 길 30리쯤 왔을 때, 한 스님이 홀연히 깨달은 바가 있어 말했다.
“위산 스님께서 ‘일체중생 모두 불성이 없다.’라고 하신 말씀이 정말 틀린 말이 아니었구나.” 그러고는 곧 위산으로 돌아갔다. 다른 한 스님도 다시 몇 리를 더 가다가 시내를 건너던 차에 홀연히 깨닫고는 혼자 중얼거렸다.
“위산 스님께서 ‘일체중생 모두 불성이 없다.’라고 하셨는데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신 게 짐작이 가는구나.”
그 역시 위산으로 돌아가 오래도록 법석法席을 떠나지 않았다.
22. 위산 영우가 양손을 맞잡아 보이자 앙산 혜적이 여인처럼 절을 올렸던 고사
위산 스님께서 좌선하고 계시는데 앙산이 들어왔다. 스님께서 양손을 맞잡아 보이시자 앙산이 여자처럼 절을 올렸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그렇지.”
23. 앙산 혜적이 소석가小釋迦로 불리게 된 고사
앙산 스님께서 홍주洪州 관음원觀音院에 머무실 때 일이다. 하루는 좌선하고 계시는데 홀연히 어떤 스님이 앙산 앞에 나타나 절을 올렸는데 앙산 스님은 돌아보지도 않으셨다. 그 스님이 절하고 일어나 물었다.
“화상께선 문자도 아십니까?”
앙산 스님이 말했다.
“대충 조금은 알지.”
그러자 그 스님이 면전에다 한 획을 그었다. 앙산 스님이 한 획을 보태 십十 자를 만들자 그 스님이 또 획을 보태 만卍 자를 만들었다. 앙산 스님이 하나의 ○ 모양을 그려 만卍 자를 에워싸자 그 스님은 오른쪽으로 한 바퀴를 돌고는 앙산 앞에서 한쪽 발꿈치를 세우고서 루지불樓至佛32) 시늉을 하였다. 그러자 앙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모든 부처님들께서 호념하시는 바이니, 그대도 그렇고 나 역시 그렇다.”
그 스님은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애초에 동토로 와서

006_0073_a_01L
潙山示衆曰一切衆生皆無佛性鹽官
006_0073_a_02L示衆曰一切衆生皆有佛性遂令二僧
006_0073_a_03L汝去看彼如何其僧依旨卽到潙山
006_0073_a_04L聞潙山和尙擧揚莫測其涯因一日
006_0073_a_05L與仰山言話次乃勸仰山須是學佛法
006_0073_a_06L不得容易仰山乃作此○相以手拓呈
006_0073_a_07L却拋向背後遂展兩手就二僧索
006_0073_a_08L二僧罔措仰山曰吾兄直須學佛法
006_0073_a_09L始得不可容易便起去時二僧却廻鹽
006_0073_a_10L行三十里一僧忽然有省乃曰潙
006_0073_a_11L山道一切衆生皆無佛性信之不錯便
006_0073_a_12L廻潙山一僧更前行數里因過水忽然
006_0073_a_13L有省自曰潙山道一切衆生皆無佛性
006_0073_a_14L酌然有他恁麽道亦廻潙山久依法席
006_0073_a_15L潙山坐次仰山入來師以兩手相交示
006_0073_a_16L山作女人拜師云如是如是

006_0073_a_17L
仰山住洪州觀音院一日坐次忽有僧
006_0073_a_18L在仰山面前禮拜仰山亦不顧僧禮拜
006_0073_a_19L遂問和尙還識字否山曰粗識些
006_0073_a_20L僧於面前畫一畫山乃添爲十字
006_0073_a_21L僧又添成卍字山畫一○相圍卍字
006_0073_a_22L右旋一匝翹一足於仰山前作樓至佛
006_0073_a_23L山曰是諸佛護念汝亦如是第六張
006_0073_a_24L1)▣如是僧曰善哉善哉本謂來東

006_0073_b_01L문수를 참례할 생각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작은 석가를 뵙게 되었군요.”라 하고는 절하고 물러나 문밖을 나서더니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 일로 사람들이 ‘작은 석가(小釋迦)’라고 부르게 되었다.

『종문통요집』에는 이 부분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앙산 스님이 하루는 홀연히 이국의 승려가 허공으로 날아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절을 올리고 앞에 서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인가?’
‘아침에 서천을 떠났습니다.’
‘어쩌다 이리 늦었는가?’‘산구경하고 물놀이하느라구요.’
그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신통과 묘용은 없지 않지만 사리闍梨(阿闍梨)여, 불법은 이 노승에게 돌려주어야겠네.’
‘문수보살을 참례할까 싶어 일부러 통토東土로 왔다가 도리어 작은 석가를 뵙게 되었습니다.’
그러곤 서천의 패다엽貝多葉33)을 꺼내 스님께 드리고 절을 올리고는 구름을 타고 허공으로 날아갔다.”

동림 총東林摠34) 선사가 이에 대해 말했다.
“제방에서 이에 대해 거론하고 헤아리는 자들이 깨알처럼 좁쌀처럼 많은데 다들 ‘그 눈 푸른 외국인은 온 자취가 없고 간 자취도 없었으니, 참으로 고금에 빛나는 자라 하겠다. 앙산 스님이 아니라면 마음대로 빼앗지 못했을 것이다.’라고들 말한다.
여러 선덕禪德들이여, 전혀 모르고 있구나. 그 눈 푸른 외국인은 허공을 타고 왔다가 허공으로 사라지며 한평생을 그저 허공 속에서 살 궁리만 하는데, 그 무슨 고금에 빛남이 있겠는가? 알량한 앙산도 그가 가지고 온 두 바가지 구정물을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썼을 뿐이다. 당시 집운봉集雲峰 아래에선 바른 법령이 있었는데, 왜 시행하지 않았을까? 대중들이여, 말해 보라.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법령인가? 쯧!”
24. 앙산 혜적과 어떤 스님의 거량1
스님께서 하루는 좌선하고 계시는데 어떤 승려가 찾아와 절을 올렸다. 앙산이 돌아보지도 않자 그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선 글자를 아십니까?”앙산 스님이 말씀하셨다.
“조금.”
그 스님이 오른쪽으로 한 바퀴를 돌고 물었다.
“이것이 무슨 자字입니까?”
앙산 스님께서 땅에 십十 자를 써 보이셨다.
그 스님이 다시 왼쪽으로 한 바퀴를 돌고 물었다.
“이것은 무슨 자입니까?”
앙산 스님이 십十 자를 고쳐 만卍 자로 만들었다. 그 스님이 하나의 ○를 그려 양손으로 바치며 수라修羅(아수라)가 해와 달을 손아귀에 쥔 시늉을 하고 물었다.
“이것은 무슨 자입니까?”

006_0073_b_01L土禮文殊如今却見小釋迦禮拜而退
006_0073_b_02L出門後騰空而去因此人號小釋迦

006_0073_b_03L
宗門統要集云仰山一日忽見異僧乘
006_0073_b_04L虛而至作禮而立於前師問近離甚
006_0073_b_05L曰早辰離西天師云何大遲生
006_0073_b_06L遊山翫水師云神通妙用不無闍梨
006_0073_b_07L佛法須還老僧曰特來東土禮文殊
006_0073_b_08L遇小釋迦遂出西天2)具多葉與師作
006_0073_b_09L禮乘雲騰空而去

006_0073_b_10L
東林摠云諸方啇量如麻似粟盡道
006_0073_b_11L這碧眼胡兒來無蹤去無跡直是光前
006_0073_b_12L絕後若不是仰山也難爲縱奪諸禪
006_0073_b_13L德殊不知這碧眼胡兒騰空而來
006_0073_b_14L空而去一生只在虛空裏作活計
006_0073_b_15L3)广光前絕後大小仰山被他將兩
006_0073_b_16L杓惡水驀頭澆了也當時集雲峰下
006_0073_b_17L自有正令何不施行大衆且道作*广
006_0073_b_18L生是正令

006_0073_b_19L
師一日坐次有僧來作禮山不顧
006_0073_b_20L僧乃問師識字不山云隨分僧乃右
006_0073_b_21L旋一匝云是什麽字山於地上書十字
006_0073_b_22L詶之僧又左旋一匝云是什麽字
006_0073_b_23L改十字作卍字僧畫一○以兩手托
006_0073_b_24L如脩羅掌日月勢云是什麽字山乃畫

006_0073_c_01L
그러자 앙산 스님이 하나의 ○ 모양을 그려 만卍 자를 에워쌌다. 이에 그 스님이 누지樓至 시늉을 하자 앙산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렇지, 그렇지. 이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께서 호념하시는 바이니, 그대도 그렇고 나 역시 그렇다.”

『종문통요집』에서는 이 인연을 거론하고 ‘나 역시 그렇다.’ 다음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너는 잘 간직하라.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잘 가거라.’ 그 스님이 감사를 표하고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때 한 도자道者가 이 광경을 본 후 5일이 지난 뒤 어찌 된 연유인지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도 보았느냐?’
도자가 말하였다.
‘저는 그가 문을 나가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만 보았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는 저 서천의 나한羅漢인데 나의 도를 탐색하려고 일부러 찾아왔다.’
도자가 말하였다.
‘제가 갖가지 삼매를 다 보아 왔지만 이 이치는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치로 그대에게 설명하리라. 이것이 바로 여덟 가지 삼매이다. 이것은 깨달음의 바다가 변해 이치의 바다가 된 것이니, 그 바탕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이치에는 인因도 있고 과果도 있고 즉시卽時ㆍ이시異時ㆍ총摠ㆍ별別을 포함하고 있으면서 은신삼매隱身三昧를 벗어나지 않느니라.’”
25. 앙산 혜적과 어떤 인도 스님의 거량
어떤 한 인도 스님이 앙산 스님을 찾아와 참례하자 앙산 스님이 땅에 ○ 모양을 그렸다. 그 스님이 앞으로 다가와 원상을 하나 더 그리더니 발로 지워 버렸다. 앙산 스님께서 양손을 펴자 그 스님은 소매를 털고 곧 떠나 버렸다.
26. 앙산 혜적과 어떤 스님의 거량2
앙산 스님께서 눈을 그윽이 감고 좌선하고 계시는데 어떤 한 스님이 조용히 다가와 앙산 스님 앞에 섰다. 앙산 스님이 눈을 떠 그를 보고는 땅에다 이런 ○ 모양을 그려 보였다.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종문통요집』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땅에 ○ 모양을 그리고 아래에 수水 자를 쓰고는 그 스님을 쳐다보았다.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27. 위산 영우와 앙산 혜적의 거량
하루는 위산 스님께서 양손을 서로 포갰다가 각각 아래로 세 번 털고는 다시 손가락 하나를 세우셨다. 이에 앙산 스님도 양손을 서로 포갰다가 각각 아래로 세 번 털고는 다시 가슴팍에서 한 손은 위로 받들고 한 손은 아래를 덮고서

006_0073_c_01L一○圍却卍字僧乃作樓至勢山云如
006_0073_c_02L是如是此是諸佛之所護念汝亦如是
006_0073_c_03L吾亦如是第七張

006_0073_c_04L
宗門統要據此因緣至吾亦如是
006_0073_c_05L善護持善哉善哉好去其僧禮謝
006_0073_c_06L騰空而去時有一道者見後經五日
006_0073_c_07L遂問師云汝還見否者云某甲見出
006_0073_c_08L騰空而去師云此是西天羅漢
006_0073_c_09L來探吾道者云某甲雖覩種種三昧
006_0073_c_10L辨其理師云吾以義爲汝解釋此是
006_0073_c_11L八種三昧是覺海變爲義海體同
006_0073_c_12L此義合有因有果卽是異時摠別不離
006_0073_c_13L隱身三昧也

006_0073_c_14L
有一梵僧來叅仰山山於地上畫○相
006_0073_c_15L僧近前添作○相以脚抹却山展兩手
006_0073_c_16L僧拂袖便去

006_0073_c_17L
仰山冥目坐次有一僧潜至仰山前立
006_0073_c_18L山開眼見乃於地上畫此○相示之
006_0073_c_19L無對統要曰遂於地上作○相下書
006_0073_c_20L水字顧視其僧僧無對

006_0073_c_21L
師一日因潙山以兩手相交過各撥三
006_0073_c_22L却竪一指師亦以兩手相交過
006_0073_c_23L撥三下却向胷前仰一手覆一手
006_0073_c_24L▣疑「亦」{編}「具」疑「貝」{編}「广」疑「麽」
006_0073_c_25L{編}次同

006_0074_a_01L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위산 스님께서 그만두셨다.
28. 앙산 혜적과 어떤 스님의 거량3
어떤 스님이 앙산 스님께 물었다.
“스님께선 아는 글자가 있습니까?”
앙산 스님이 말씀하셨다.
“조금은.”
그 스님이 이런 ○ 모양을 그려서 바치자 앙산 스님은 옷소매로 털어 버리셨다.
그 스님이 다시 이런 ○ 모양을 그려서 바치자 앙산 스님은 두 손으로 등 뒤로 던지는 시늉을 했다.

『통록通錄』 구본舊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앙산 스님이 옷소매로 털어 버렸다. 그 스님이 다시 이런 ○ 모양을 그려 바치자 앙산 스님은 두 손으로 등 뒤로 던지는 시늉을 했다.”
『종문통요집』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 스님이 다시 반원 모양을 그려 바치자 앙산 스님은 양손으로 등 뒤로 던지는 시늉을 했다. 그 스님이 뚫어져라 쳐다보자 앙산 스님은 고개를 숙였다. 그 스님이 앙산 스님 주위를 한 바퀴 돌자 스님께선 바로 때렸다. 그 스님은 결국 나가 버렸다.”
29. 앙산 혜적이 원상을 그리는 까닭
어떤 스님이 앙산 스님께 물었다.
“화상께선 보통 선禪을 묻고 도道를 묻는 스님들을 보면 곧 ○ 모양을 그리고 그 가운데 혹 글자를 쓰곤 하십니다. 그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비를 베풀어 설명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것은 다 쓸데없는 짓들이다. 그대가 홀연히 알아차린다면 결코 밖에서 오지 않는 것이며,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해도 확고해서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내 이제 너에게 묻겠다. 참선하고 도를 배운 제방의 어른들이 네 몸에서 어디를 너의 불성이라고 가리키더냐? 또 그럴 때 대답을 해야 옳은가, 침묵해야 옳은가? 또 어떻게 한들 다 옳은가, 아니면 다 잘못인가? 그대가 만일 말하는 것을 옳다고 여긴다면 이는 봉사가 코끼리의 귀나 코나 상아를 더듬는 꼴과 같다. 만일 침묵하는 것을 옳다고 여기고 사념思念 없는 것을 옳다고 여긴다면 코끼리의 꼬리를 더듬는 꼴이다. 만일 말하지도 않고 침묵하지도 않는 것을 옳다고 여겨 이를 중도中道라 한다면 코끼리 등을 더듬는 꼴이다. 만일 모든 것이 다 옳다고 말한다면 코끼리 네 다리를 더듬는 꼴이요, 만일 모든 것이 다 잘못이라고 한다면 진짜 코끼리는 던져 버리고 공견空見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여러 봉사들은 모두들 코끼리를 보았다고 말들은 하지만 그 코끼리에 대해 명칭들은 아득히 차이가 난다. 그대가 만약 이 여섯 구절을 벗어날 수 있다면 코끼리를 더듬어 볼 필요도 없이 최고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살펴 깨닫는 것을 옳다고 말하지 말고, 또한 옳지 않다고 말하지도 말라. 그래서 조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菩提本無是    보리菩提엔 본래 이것이다 할 것 없고
亦無非菩提    또 보리가 아닌 것도 없나니

006_0074_a_01L目瞻視潙山休去

006_0074_a_02L
僧問仰山師還識字也無仰山曰隨
006_0074_a_03L僧畫此○相托呈山以衣袖拂之
006_0074_a_04L僧又作此○相拓呈山以兩手作背拋
006_0074_a_05L通錄舊本云山以衣袖拂之僧又
006_0074_a_06L作此○相拓呈山以兩手作背拋勢
006_0074_a_07L要云僧又作半日相杔呈師以兩手
006_0074_a_08L背拋勢僧以目視之第八張 師低頭
006_0074_a_09L僧遶師一匝師便打僧遂出

006_0074_a_10L
僧問仰山和尙尋常見僧問禪問道
006_0074_a_11L便畫○相中間或書字意在於何
006_0074_a_12L慈悲爲說師曰這箇也是閑事汝忽
006_0074_a_13L然會得也不從外來若也不會決定
006_0074_a_14L不失我今問汝叅禪學道諸方老宿
006_0074_a_15L向汝身上指那箇是汝佛性爲復道語
006_0074_a_16L底是默底是爲復揔是揔不是汝若認
006_0074_a_17L語底是如盲摸象耳鼻牙若取默底是
006_0074_a_18L無思無念是摸着象尾若不語不默底
006_0074_a_19L中道摸着象背若道揔是摸着象
006_0074_a_20L四足若道揔不是拋本象落在空見
006_0074_a_21L如是諸盲皆言見象祇於象上名邈差
006_0074_a_22L汝若透得六句不要摸象最爲第一
006_0074_a_23L莫道如今鑒覺是亦莫道不是所以祖
006_0074_a_24L師云菩提本無是亦無非菩提更覔

006_0074_b_01L更覔菩提處    기서 다시 보리 있는 곳을 찾는다면
終身累劫迷    몸이 다하도록 오랜 세월 미혹하리라

또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디에 먼지와 때가 끼겠느냐.’라고 말씀하셨느니라.”
30. 앙산 혜적의 임종게
앙산 스님께서 입적하시려 할 때 몇몇 스님이 임종을 지키고 있었다. 이에 스님께서 게송을 남기셨다.

一二二三子    첫째 둘째, 둘째 셋째 아들
平目復仰視    눈을 가지런히 뜨고 또 위를 쳐다보네.
兩口一無舌    입은 둘이나 한 사람도 혀가 없으니
卽是吾宗旨    이것이 바로 나의 종지宗旨니라.
31. 원상을 그린 왕王 상시常侍와 원상을 지워 버린 앙산 혜적
양주襄州의 왕王 상시常侍35)는 위산 스님께 참학하였다. 위산의 공양주가 찾아오자 상시가 물었다.
“산중 화상께선 요즘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공양주가 대답했다.
“어떤 스님이 ‘무엇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고 묻자 화상께선 불자를 들어 보이셨습니다.”
상시는 말했다.
“그런 위산 화상의 뜻이 무엇입니까?”
공양주가 말했다.
“물질을 빌려 마음을 밝히고 사물에 빗대어 이치를 드러낸 것입니다.”
상시가 말했다.
“저는 그리 생각지 않습니다.”
공양주가 말하였다.
“그럼 상시께서 말씀해 보십시오. 화상의 뜻이 무엇입니까?”
상시는 이런 ○ 모양을 그려 답했다. 공양주가 돌아가 이 이야기를 위산 스님께 말씀드리자 위산 스님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그렇지, 그가 도리어 그 일을 아는구먼.”
그러곤 이 이야기를 앙산 스님에게 들려주자 앙산 스님이 말했다.
“끝내 속기俗氣를 버리지 못하는군요.”
위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라면 어찌 하겠느냐?”
이에 앙산이 땅에다 원상을 그리고 발로 지워 버리고 바로 나가 버렸다. 그러자 위산 스님이 깔깔대며 크게 웃었다.

『종문통요집』에서는 “앙산 스님이 원상 하나를 그리고 그 안에 일日 자를 쓰고는 곧 발로 지워 버렸다.”라고 하였다.
32. 위산 영우와 위韋 상공相公의 거량
위韋 상공相公이 위산 화상을 찾아와 게송을 청하자 위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눈앞에서 서로를 드러내도 오히려 둔한 놈인데 하물며 종이와 먹으로 형상하는 짓이겠습니까?”
상공이 물러나 앙산 스님을 찾아가 게송을 청하자 앙산 스님은 종이에 이런 ○ 모양을 그리고 그 아래에 이렇게 주석을 달았다.
“사량하지 않고 알면 그건 두 번째요, 사량해서 알면 그건 세 번째입니다.”
이에 상공이 감사를 표했다.
33. 앙산 혜적과 육陸 상공相公의 거량
육陸 상공相公이 광주廣州로 부임하게 되어 홍주洪州를 지나던 길에 역사에서 하루 머물게 되었다.

006_0074_b_01L菩提處終身累劫迷又云本來無一
006_0074_b_02L何處惹塵埃

006_0074_b_03L
仰山欲順寂時數僧侍立師乃有頌示
006_0074_b_04L一二二三子平目復仰視兩口一
006_0074_b_05L無舌卽是吾宗旨

006_0074_b_06L
襄州王常侍叅潙山潙山供養主來
006_0074_b_07L侍問山中和尙近日有何言句主曰
006_0074_b_08L有僧問如何是祖師西來意和尙擧拂
006_0074_b_09L侍曰秪如和尙意作麽生主曰借
006_0074_b_10L色明心附物顯理侍曰下官卽不恁
006_0074_b_11L主曰常侍且道和尙意作麽生
006_0074_b_12L作此○相答主廻擧似潙山潙山點
006_0074_b_13L頭曰第九張 是他却會此事遂擧向
006_0074_b_14L仰山仰山曰終是俗氣不除潙山曰
006_0074_b_15L子又作麽生仰山於地上畫此○相了
006_0074_b_16L以脚抹却便出去潙山呵呵大笑
006_0074_b_17L要仰山却畫一圓相於中書日字却以
006_0074_b_18L脚抹着

006_0074_b_19L
韋相公就潙山和尙覔偈子潙山曰
006_0074_b_20L覿面相呈猶是鈍漢豈況1)▣於紙墨
006_0074_b_21L相公却就仰山覔仰山於紙上畫此○
006_0074_b_22L於下注曰不思而知之是第二頭
006_0074_b_23L思而知之是第三首相公謝之

006_0074_b_24L
陸相公徃廣州赴任經過洪州驛中安

006_0074_c_01L이에 수행하던 자에게 물었다.
“이곳엔 어떤 대덕스님이 계시는가?”
“관음원觀音院에 지종知宗 대사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 도가 매우 높고 거주하는 대중도 천여 명이나 됩니다.”
상공이 그러자 종이에 이런 ○ 모양을 그리고는 그것을 봉해 사람을 시켜 보냈다.
앙산 스님이 그 편지를 뜯어보고는 곧 원상 아래쪽에 글을 쓰셨다.
“사량해서 알면 그건 두 번째요, 사량하지 않고 알면 그건 세 번째입니다.”
그러곤 다시 봉해서 드렸다. 상공이 그 편지를 열어 보고는 스님을 찾아뵈었다.
34. 악주卾州의 무등無等 선사와 왕 상시의 거량
악주卾州의 무등無等 선사가 왕 상시를 찾아뵌 일이 있었다. 물러나 문을 나서는 찰나에 왕상시가 불렀다.
“화상!”
스님이 고개를 돌리자 왕 상시가 노주露柱를 세 번 두드렸다. 무등 선사는 손으로 이런 ○ 모양을 만들고 다시 그것을 세 번 털었다. 그리고 곧 돌아갔다.
35. 목주睦州 진존숙陳尊宿과 어떤 수재秀才의 거량
목주睦州 진존숙陳尊宿36)께서 한 수재秀才를 만났을 때 말씀하셨다.
“24가家의 서법을 안다면서.”37)
스님께서 주장자로 허공에 점 하나를 찍고 물으셨다.
“알겠는가?”
수재가 어찌할 바를 모르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24가의 서법을 안다고 말하더니 영永 자 8법도 모르는구먼.”

이에 대해 황룡 남黃龍 南38)스님이 말했다.
“목주 스님의 한 점이 진실로 위음왕威音王 이전39)에 있는 것이긴 하지만 급하게 8법으로 서체를 논해 도리어 그 속인에게 간파(勘破) 당해 버렸다. 만일 나 황룡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으리라. 공자의 제자 중엔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요, 푸른 눈의 이국 승려라야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리라.”
대위 철大潙喆 스님이 이에 대해 말했다.
“목주睦州 스님은 저 한 점의 오묘함을 부리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으며, 또 위세로 사람을 속이는 것과 흡사하다. 나 대위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의 ○ 모양을 그리고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글자의 뜻이 분명하니 문자에 점을 더하지 말라.”
36. 대수 법진大隋法眞과 어떤 스님의 거량
익주益州 대수 법진大隋法眞40)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하직을 고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어디로 가려는가?”
그 스님이 말했다.
“보현보살을 참례하러 갑니다.”
스님께서 주장자를 들고 말씀하셨다.

006_0074_c_01L乃問從者此間有什麽名德尊宿
006_0074_c_02L對曰有觀音院知宗大師甚有道價居
006_0074_c_03L衆千餘人相公遂於紙上畫此○相
006_0074_c_04L封了令人馳來仰山開封見卽於相
006_0074_c_05L下面書云思而知之是第二頭不思
006_0074_c_06L而知之是第三首却封納相公開見
006_0074_c_07L却來相訪

006_0074_c_08L
鄂州無等禪師嘗謁王常侍纔退出門
006_0074_c_09L王乃召云和尙師廻首王遂扣露柱
006_0074_c_10L三下師以手作此○相復三撥之便
006_0074_c_11L

006_0074_c_12L
睦州陳尊宿因秀才相看云會二十四
006_0074_c_13L家書師以柱杖空中點一點云會麽
006_0074_c_14L秀才罔指師云又道會二十四家書
006_0074_c_15L永字八法也不識黃龍南云睦州一點
006_0074_c_16L第一○張在威音王已前及乎八法
006_0074_c_17L論書却被箇俗人勘破若是黃龍卽不
006_0074_c_18L孔門2)第子無人識碧眼胡僧笑點
006_0074_c_19L大潙喆云睦州不妨用得這一點妙
006_0074_c_20L又似以勢欺人大潙卽不然畫一○相
006_0074_c_21L會麽字義炳然文不加點

006_0074_c_22L
益州大隋法眞禪師僧辭師問什麽處
006_0074_c_23L僧曰禮拜普賢去師擧柱杖曰
006_0074_c_24L▣字體或似「瑫」{編}「第」通「弟」{編}

006_0075_a_01L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모두 여기에 있느니라.”
그 스님이 ○ 모양을 만들어 등 뒤로 던지고는 양손을 펴자 스님께서 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차 한 덩어리를 가져다 저 스님에게 주거라.”
37. 남탑 광용南塔光涌과 어떤 스님의 거량
원주袁州 앙산仰山의 남탑 광용南塔光涌41)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의 성은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이런 ○ 모양을 만들어 보이셨다.
38. 동평 광목東平光穆과 어떤 스님의 거량
소주韶州 동평 광목東平光穆42)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돈법頓法입니까?”
스님께서 이런 ○ 모양을 만들어 보이셨다.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점법漸法입니까?”
스님께서 손으로 세 번 털더니 다시 ○ 모양을 만드셨다.
39. 오관산五冠山 서운사瑞雲寺 순지順之 화상의 도상과 법문
오관산五冠山 서운사瑞雲寺의 순지順之43) 화상은 앙산 혜적 선사의 법을 이은 분이다. 스님께선 때때로 도상圖相으로 법을 표현해 이치를 증득함에 있어 빠르고 더딤을 문도들에게 보이셨다. 여기에 4가지로 응대한 8가지 도상이 있다.

○, 이 상相은 ‘의지할 대상인 열반의 상(所依涅般相)’이며, 또한 ‘이치인 불성의 상(理佛性相)’이라고도 하니, 뭇 생령과 여러 성인들이 모두 이 상에 의지한다. 상相은 비록 다르지 않지만 깨달음과 미혹함이 같지 않으므로 범부가 있고 성인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상을 아는 자를 성인이라 부르고 이 상을 모르는 자를 범부의 부류라 부른다. 이런 까닭에 용수龍樹 보살은 남인도에 계실 때 설법을 하시며 여러 대중에게 기이한 현상을 보이셨던 것이니, 그 몸이 마치 달과 같았고 그 앉은 자리에선 설법하는 음성만 들릴 뿐 그 형체를 볼 수 없었다. 그 대중 가운데 한 어른이 있었으니 이름이 제바提婆였다. 그분이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이 서상瑞相을 알겠습니까?”
대중들이 말했다.
“어르신이 아니면 누가 판별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제바는 마음을 고요히 하였고 또한 그 서상을 보고서 묵묵히 계합해 아시고서는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이 서상은 스승께서 불성佛性을 나타낸 것이지 스승의 몸은 아닙니다. 무상삼매無相三昧는 그 형상이 보름달과 같습니다.”
불성의 뜻에 대한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용수보살께서 본래의 몸을 나타내 자리에서 게송을 읊으셨다.

身現圓月相    이 몸으로 둥근 달 모양을 나타내

006_0075_a_01L殊普賢總在這裏僧作此○相拋向背
006_0075_a_02L却展兩手師召侍者曰取一貼茶
006_0075_a_03L與這僧

006_0075_a_04L
袁州仰山南塔光涌禪師僧問和尙姓
006_0075_a_05L什麽師作此○相示之

006_0075_a_06L
韶州東平光穆禪師僧問如何是頓
006_0075_a_07L作此○相示之僧曰如何是漸師以
006_0075_a_08L手撥三撥却作此○相

006_0075_a_09L
五冠山瑞雲寺順之和尙嗣仰山寂禪
006_0075_a_10L師有時表相現法示徒證理遟疾
006_0075_a_11L此中四對八相

006_0075_a_12L
此相者所依涅槃相亦名理佛性
006_0075_a_13L群生衆聖皆依此相相雖不異
006_0075_a_14L悟不同故有凡夫有聖謂識此相者
006_0075_a_15L爲聖人迷此相者名爲凡流是故龍
006_0075_a_16L樹在南印土則爲說法對諸大衆
006_0075_a_17L現異相身如月輪當於坐上唯聞說
006_0075_a_18L不見其形彼衆之中有一長者
006_0075_a_19L曰提婆謂諸衆曰識此瑞不衆曰
006_0075_a_20L其長聖誰能辨耶第一一張 爾時提婆
006_0075_a_21L心根宿靜亦見相默然契會乃吿衆曰
006_0075_a_22L今此瑞者師現佛性非師身者無相
006_0075_a_23L三昧形如滿月佛性之義語猶未訖
006_0075_a_24L師現本身座上偈曰身現圓月相

006_0075_b_01L以表諸佛體    이로써 모든 부처님의 본체를 표현하니
說法無其形    법을 설하지만 그 형체가 없고
用辨非聲色    판별하지만 소리와 빛깔이 아니라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달 모양을 가지고 와 물으면 도상 가운데 우牛 자를 써서 응대하셨다.

▼(○*牛), 이 도상은 ‘소가 인욕의 풀을 먹는 상(牛食忍草相)’이라 하고, 또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는 상(見性成佛相)’이라고도 한다. 무엇 때문인가? 경에서는 말씀하셨다.
“설산雪山에 풀이 있으니 그 이름이 인욕忍辱이다. 소가 그 풀을 먹으면 곧 제호醍醐가 나온다.”44)
또 말씀하셨다.
“만일 중생들이 대열반大涅槃을 듣고 받아들이며 묻고 깨우칠 수 있다면 곧 불성을 보리라.”45)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풀은 묘법妙法을 비유한 것이고, 소는 돈기頓機를 비유한 것이며, 제호는 부처(佛)를 비유한 것이다. 그렇다면 소가 풀을 먹으면 곧 제호를 내놓는 것이요, 사람이 법을 이해하면 곧 정각을 이룬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가 인욕의 풀을 먹는 상’이라 하고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는 상’이라고도 한 것이다.

▼(○/犇), 이 도상은 ‘삼승이 공을 구하는 상(三乘求空相)’이다. 무엇 때문인가? 삼승을 닦는 사람들은 진공眞空에 대한 설명을 들고는 향해 나아가려는 마음은 있지만 진공에 깨달아 들어가지는 못한다. 따라서 원상 아래에 우牛 자 세 개를 써서 표현하였다. 만일 이 도상을 가지고 와 물으면 ‘점차적으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는 상(漸次見性成佛相)’으로 응대하셨다.

▼(○*牛), 이 도상은 ‘넓은 들판에 흰 소가 있는 상(露地白牛相)’이다 넓은 들판(露地)이란 부처의 지위(佛地)이고, 또 제일의공第一義空이라고도 한다. 흰 소(白牛)란 법신의 오묘한 지혜를 묻는 것이다. 따라서 한 마리 소가 원상에 들어간 모양으로 표현하였다.
물었다.
“무엇 때문에 달 모양 아래에 세 마리 짐승을 붙이고, 또 달 모양 가운데 우牛 자를 써서 그것에 응대하십니까?”
대답하셨다.
“달 모양 아래 세 짐승은 삼승三乘을 표현한 것이고, 달 모양 가운데의 한 마리 소는 일승一乘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권승權乘을 거론하면 깨달아 들어가는 실교實敎를 나타내 응대한다.”
또 물었다.
“앞에서 이미 달 모양 가운데 우牛 자를 쓴 것을 ‘소가 인욕의 풀을 먹는 상’이라고 설명하셨는데, 왜 또 달 모양 가운데 우牛 자 쓴 것을

006_0075_b_01L表諸佛體說法無其形用辨非聲色
006_0075_b_02L若有人將此月輪相來問相中心着牛
006_0075_b_03L字對也

006_0075_b_04L
▼(○*牛) 此相者牛食忍草相亦名見性成
006_0075_b_05L佛相何以故經云雪山有草名爲忍
006_0075_b_06L牛若食者則出醍醐又云衆生
006_0075_b_07L能聽受諮啓大涅槃則見佛性故當
006_0075_b_08L知草喩妙法牛喩頓機醍醐喩佛
006_0075_b_09L是則牛若食草則出醍醐人若解法
006_0075_b_10L則成正覺故云牛食忍草相亦名見
006_0075_b_11L性成佛相也

006_0075_b_12L
▼(○/犇) 此相者三乘求空相何以故
006_0075_b_13L乘人聞說眞空有心趣向未證入眞空
006_0075_b_14L故表圓相下畫三牛也若將此相來問
006_0075_b_15L以漸次見性成佛相對之

006_0075_b_16L
▼(○*牛) 此相者露地白牛相謂露地者
006_0075_b_17L亦名第一義空白牛者諮法身之
006_0075_b_18L妙慧也是故表一牛入圓相也問何故
006_0075_b_19L月輪相下着三獸又月輪相中心着牛
006_0075_b_20L字對之耶答月輪相下三獸是表三
006_0075_b_21L月輪相中心一牛是表一乘是故
006_0075_b_22L擧權乘來現實入證對之問向前已
006_0075_b_23L說月輪相中心着牛是牛食忍草相
006_0075_b_24L故又言月第一二張輪相中心着牛者

006_0075_c_01L‘넓은 들판에 흰 소가 있는 상’이라 하십니까? 두 가지 모두 같은 모양에 같은 우牛 자인데 왜 설명이 다릅니까?”
대답하셨다.
“설명은 비록 다르지만 그 모양과 우牛 자는 다르지 않다.”
물었다.
“만일 다르지 않다면 왜 두 곳에서 각기 같은 모양 같은 우牛 자를 나타내셨습니까?”
대답하셨다.
“모양과 우牛 자는 다르지 않지만 성품을 봄에 있어 그 더딤과 빠름이 같지 않다. 따라서 두 곳에 각기 같은 모양과 같은 우牛 자를 나타낸 것이다.”
물었다.
“만일 성품을 봄에 있어 그 더딤과 빠름의 차이를 논한다면 ‘인욕의 풀을 먹는 소’와 ‘넓은 들판의 흰 소’ 중에 어떤 것이 더딘 것이고 어떤 것이 빠른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인욕의 풀을 먹는 소는 화엄회상華嚴會上에서 단박에 진실한 성품을 보는 소를 밝힌 것이니 빠른 것이고, 넓은 들판의 흰 소는 법화회상法華會上에서 삼승을 모아 일승으로 귀결시키는 소를 밝힌 것이니 더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설명은 글이 비록 다르기는 하지만 증득하는 이치는 다르지 않다. 따라서 같은 모양에 같은 우牛 자를 거론하여 이지理智46)가 다르지 않음을 밝힌 것이지 그 유래가 완전히 같다는 말은 아니다.

▼(牛/○), 이 도상은 ‘과위에 계합하고서 인행을 닦는 상(契果修因相)’이다. 무엇 때문인가? 초발심주初發心住에서는 비록 정각正覺을 이루어 갖가지 행行에 장애되지 않고 그 지혜가 부처님의 지위와 동등하긴 하지만 행이 지위를 넘어서지 못한다. 따라서 이 상으로 표현하였다. 옛 성현께서 “여래께서 가신 자취를 따라 밟는다.”라고 하셨으니 바로 이 상에 해당한다.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가지고 와 물으면 또 달 모양 가운데 만卍 자를 써서 응대하셨다.

▼(○*卍), 이 도상은 ‘인행因行도 원만하고 과위果位도 원만한 상(因圓果滿相)’이다.
물었다.
“무엇 때문에 달 모양 위에 우牛 자를 붙이면 달 모양 가운데 만卍 자를 써서 응대하십니까?”
“달 모양 위에 우牛 자를 쓰는 것은 ‘과위에 계합하고서 인행을 닦는 상’이고, 달 모양 가운데 만卍 자를 쓰는 것은 ‘인행도 원만하고 과위도 원만한 상’이다. 인지因地를 거론하면 과위를 나타내 응대한다.”

▼(○/牛), 이 도상은 ‘공을 구해 부지런히 행하는 상(求空精行相)’이다. 말하자면 문 앞에 띠로 엮은 암자에서 보살이 공空을 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에서는 “삼아승기겁 동안 보살행을 닦아

006_0075_c_01L露地白牛相也兩處皆是同相同牛
006_0075_c_02L故說文不同耶答說文雖別相及牛則
006_0075_c_03L不異問若也不異何故兩處各現同相
006_0075_c_04L同牛耶答雖相及牛則不異見性遟疾
006_0075_c_05L不同故兩處各現同相同牛問若論見
006_0075_c_06L性遲疾各別者食忍草牛與露地白牛
006_0075_c_07L誰遲誰疾耶答食忍草牛則明華嚴會
006_0075_c_08L頓見實性之牛故疾露地白牛
006_0075_c_09L明法華會中會三歸一之牛故遲是故
006_0075_c_10L說文雖則不同證理不異故擧同相同
006_0075_c_11L明理智不異不言來處全同也

006_0075_c_12L
▼(牛/○) 此相者契果修因相何以故
006_0075_c_13L發心住雖成正覺而不碍衆行
006_0075_c_14L等佛地行不過位故表此相也古人
006_0075_c_15L履踐如來所行之跡則此相也
006_0075_c_16L有人將此相來問又作月輪相中心着
006_0075_c_17L卍字對之
006_0075_c_18L▼(○*卍) 此相者因圓果滿相也問何故月
006_0075_c_19L輪相上頭着牛字來月輪相中心着卍
006_0075_c_20L字對之答月輪相上頭着牛者契果
006_0075_c_21L修因相月輪相中心着卍字者因圓果
006_0075_c_22L滿相擧因來現果對之

006_0075_c_23L
▼(○/牛) 此相者來空精行相謂門前草庵
006_0075_c_24L菩薩求空故經云三僧祇修菩薩行

006_0076_a_01L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내고 실천하기 어려운 것을 실천하며 구하는 마음을 쉬지 않는다.”47)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 상으로 표현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가지고 와 물으면 달 모양 가운데 왕王 자를 써서 응대하셨다.

▼(○*王), 이 도상은 ‘점차적으로 실제를 증득하는 상(漸證實際相)’이다. 무엇 때문인가? 만일 보살이 오랜 겁에 걸쳐 수행하여 네 마귀의 적을 괴멸시키면 비로소 무루無漏의 참된 지혜를 얻어 부처의 지위에 깨달아 들어가게 되고, 여전하다고 할 만한 남은 습기가 다시는 없게 된다. 이는 성왕聖王이 뭇 적들을 항복시키면 온 나라가 평안하고, 여전하다고 할 만한 적이 다시는 없게 되는 흡사하다. 따라서 이 상으로 표현하였다.

아래의 두 가지로 응대한 네 가지 도상은 허망을 버리고 진실을 지적한 것이다.

▼(牛/(○*人)), 이 도상은 ‘남기신 가르침을 생각으로 헤아리는 상(想解遺敎相)’이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일승一乘 보법普法을 의지해 그 이치를 잘 연구하고 또 잘 해설할 수 있어 진실로 틀림이 없지만 자신의 이지理智는 깨닫지 못하고 전적으로 남의 말에만 의지한다. 따라서 이 상으로 표현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가지고 와 물으면 곧 위의 우牛 자를 떼어 버리는 것으로써 응대하셨다.

▼(○*人), 이 도상은 ‘근본을 알아 근원으로 돌아가는 상(識本還源相)’이라 한다. 경에서 “정신을 돌이켜 공空의 굴에 머물며 조복키 어려운 것을 조복시키면 악마의 결박에서 풀려나 초연히 넓은 들판에 앉을 것이며, 모든 식識과 음陰이 반열반般涅槃하리라.”’48)라고 한 것이 바로 이 상이다.
물었다.
“왜 위의 우牛 자만 떼어내고 원상 가운데 있는 인人 자는 떼지 않습니까?”
대답하셨다.
“원상 가운데 있는 인人 자는 이지理智를 표현하고, 위의 우牛 자는 사람들이 생각으로 이해하는 것을 비유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교설敎說에 의지해 삼장三藏의 교전敎典을 분석하지만 자신의 이지를 드러내지는 못한다면 이는 모조리 ‘생각으로 이해하는 것(想解)’이다. 생각으로 하는 이해가 더 이상 생기지 않으면 곧 이지가 나타난다. 따라서 위의 우牛 자를 떼어 내고 원상 가운데 인人 자는 떼어 내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그 병病을 없앨 뿐 법法은 없애지 않는다.’49)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물었다.
“무엇 때문에 보통 사람이

006_0076_a_01L難忍能忍難行能行求心不歇故表
006_0076_a_02L此相也若有人將此相來問月輪相
006_0076_a_03L中心着王字第一三張 對之

006_0076_a_04L
▼(○*王) 此相者漸證實際相何以故若有
006_0076_a_05L菩薩經劫修行壞四魔賊始得無漏眞
006_0076_a_06L證入佛地更無餘習所恒似聖王
006_0076_a_07L降伏群賊國界安寧更無怨賊所恒
006_0076_a_08L故表此相也

006_0076_a_09L
此下兩對四相遣虛指實

006_0076_a_10L
▼(牛/(○*人) 此相者想解遣敎相謂若有人
006_0076_a_11L依佛所說一乘普法善能討尋善能解
006_0076_a_12L實不錯謬而不了自己理智全依
006_0076_a_13L他人所說故表此相也若有人將此相
006_0076_a_14L來問則祛上頭牛字對之

006_0076_a_15L
▼(○*人) 此相者識本還源相經云廻神住
006_0076_a_16L空窟降伏難調伏解脫魔所縛超然
006_0076_a_17L露地坐識陰般涅槃者卽此相也
006_0076_a_18L何故祛上頭牛字不祛圓相中心人字
006_0076_a_19L答圓相中心人字者表理智上頭
006_0076_a_20L牛字者喩人想解若有人雖依敎分
006_0076_a_21L析三藏敎典而未顯自己理智者盡是
006_0076_a_22L想解想解不生則理智現前故祛上
006_0076_a_23L頭牛字不祛圓相中心人字是故經云
006_0076_a_24L但除其病而不除法問何故不許凡人

006_0076_b_01L교설에 의지해 법을 배우는 것을 허락지 않으십니까?”
대답하셨다.
“만일 이런 이지를 갖춘 자라면 교설에 의지해 어디에 쓰겠는가? 또 식심識心을 가진 범부라면 교설에 의지해도 아무런 이익이 없느니라.”
물었다.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삼장의 경전은 소용이 있지 않습니까?”
대답하셨다.
“허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교敎에 의지해 깨달아 들어가야지 교에 의지해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은 허망한 짓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선 아난에게 ‘설사 시방에 계신 여래께서 설하신 십이부경의 청정하고 오묘한 이치를 항하 모래알 수만큼 많이 기억하더라도 희론戱論만 늘릴 뿐이다.’50)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니 마땅히 알라. 교에 의지해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은 전혀 이익이 없느니라.”
물었다.
“그러면 왜 교설에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자는 모두 성스러운 과보를 이룬다.’고 하고, 또 ‘한 터럭만큼의 선善으로 자취를 드러내 부처의 지위에 머무른다.’51)고 하였습니까?”
대답하셨다.
“상근기의 사람이라면 교에 의지해 곧 깨달고 곧장 이지를 드러내 확고하고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하근기라면 교에 의지해 깨닫지 못하고는 생각으로만 헤아리니 아무런 이익이 없다. 이런 하근기의 사람은 교설로 훈습된 종자를 의지해 다음 생을 기약해야 한다. 비록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자들은 다 성스러운 과보를 이룰 것이며, 한 터럭만큼의 선으로도 자취를 드러내 부처의 지위에 머무를 것이다. 하물며 여러 경론을 널리 배우고 이를 강의하는 자들이겠느냐?”

▼((○*人)/牛), 이 도상은 ‘자기 머리를 모른 채52) 그림자를 인정하는 상(迷頭認影相)’이다. 무엇 때문인가? 혹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부처와 정토는 깨닫지 못하고서 다른 세계에 부처와 정토가 있다고 믿고 알며, 그 정토에 왕생하여 부처님을 뵙고 법문 듣기만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로지 원한다. 따라서 선행을 열심히 닦고 부처님의 명호와 정토의 풍경을 늘 생각한다. 따라서 이 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지공志公 법사께서 웃으며 “마음이 곧 부처임을 모르니 꼭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는 꼴이구나.”53)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 상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가지고 와 물으면 곧 원상 아래의 우牛 자를 떼어 대응하셨다.

▼(○*人), 이 도상은 ‘그림자를 등지고 자기 머리를 인정하는 상(背影認頭相)’이다.
물었다.
“왜 아래의 우牛 자는 떼고 원상 가운데 인人 자는 떼지 않습니까?”
대답하셨다.
“중생이 참된 지혜를 발현하지 못하고 진공眞空을 체달하지 못하면 오로지 다른 곳에 있는 정토와

006_0076_b_01L依敎學法耶答若是智者依敎何用
006_0076_b_02L識心凡人依敎無益問諸佛所說三藏
006_0076_b_03L經典有所用不答不是不許依敎悟
006_0076_b_04L依敎想解祇是虛妄是故佛吿阿
006_0076_b_05L雖復憶持十方如來十二部經淸淨
006_0076_b_06L妙理第一四張 如恒河沙只益戱論
006_0076_b_07L當知依敎想解無益問何故敎云聞佛
006_0076_b_08L敎者盡成聖果又云一毫之善發跡駐
006_0076_b_09L答約上根人依敎便悟直現理智
006_0076_b_10L決定明了若約下根依敎不悟想解
006_0076_b_11L無益此下根人依敎薰種待後世者
006_0076_b_12L誰言無益聞佛敎者盡成聖果一毫
006_0076_b_13L之善發跡駐佛何況廣學經論及講說
006_0076_b_14L

006_0076_b_15L
▼((○*人)/牛) 此相者迷頭認影相何以故
006_0076_b_16L有人不了自己佛及淨土信知他方佛
006_0076_b_17L淨土一心專求往生淨土見佛聞法
006_0076_b_18L故勤修善行念佛名號及淨土名相
006_0076_b_19L表此相也志公笑云不解卽心卽佛
006_0076_b_20L眞似騎驢覔驢者卽此相也若有人將
006_0076_b_21L此相來問則祛圓相下牛字對之

006_0076_b_22L
▼(○*人) 此相者背影認頭相問何故祛下
006_0076_b_23L頭牛字不祛圓相中心人字耶答衆生
006_0076_b_24L未發眞智未達眞空故專求他方淨土

006_0076_c_01L부처를 찾아 그 정토에 왕생하여 부처님을 뵙고 법문 듣기를 원하는 것이다. 중생이 만일 빛을 돌이켜 지혜를 발현하고 진공을 체달한다면 자신의 부처와 정토가 한순간에 드러나 마음 밖에서 정토와 부처를 찾지 않게 된다. 따라서 원상 가운데의 인人 자는 떼지 않고 아래의 우牛 자만 뗀 것이다.”
물었다.
“무엇이 자신의 부처이고 자신의 정토입니까?”
대답하셨다.
“중생이 만약 참된 지혜를 발현해 진공을 체달한다면 곧 그 참된 지혜가 부처이고 진공이 곧 정토니라. 만약 이와 같이 체득해 안다면 어느 곳에서 다시 다른 곳에 있는 정토와 부처를 찾겠느냐? 그러므로 경에서 ‘부처의 말은 빠짐없이 들어 기억하려 하면서 왜 너의 들음은 스스로 듣지 않느냐?’54)라고 하신 것이다.”

또 아래는 네 가지로 응대한 다섯 가지 도상이다.

C, 이 도상은 ‘함을 들고 뚜껑을 찾는 상(擧函素盖相)’이며, 또 ‘반달이 보름을 기다리는 상(半月待圓相)’이라고도 한다. 혹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가지고 와 물으면 스님께선 다시 반달을 보태 응대하셨다. 이는 곧 묻는 자가 함을 들고 뚜껑을 찾으면 답하는 자가 뚜껑을 함에 씌워 주어 함과 뚜껑이 서로 꼭 들어맞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앞에서 이미 둥근 보름달 모양을 나타냈던 것이다. 원상은 곧 모든 부처님의 본체를 표현한다.

○, 이 도상은 ‘옥 덩어리를 쥐고 다듬어 줄 이를 찾는 상(把玉覓契相)’이다. 혹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가지고 와 물으면 스님께선 원상 가운데에 무언가를 써서 응대하셨다. 이는 곧 묻는 자가 옥 덩어리를 쥐고 다듬어 줄 이를 찾으면 답하는 자가 구슬 감임을 알아차리고 바로 손을 쓰는 것이다.

▼(○*厶), 이 도상은 ‘낚시를 드리워 이을 것을 찾는 상(鈞入索續相)’이다. 혹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가지고 와 물으면 스님께선 이 글자 주변에 인人 자를 덧붙여 응대하셨다. 이는 곧 묻는 자가 낚시를 드리워 이을 것을 찾으면 답하는 자가 이어서 보배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佛), 이 도상은 ‘보배 그릇이 완성된 상(已成寶器相)’이다. 혹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가지고 와 물으면 다시 둥근 달 모양을 그리고 그 가운데 토土 자를 써서 응대하셨다.

▼(○*土), 이 도상은 ‘형상이 드러나지 않는 도장과 같은 종지의 상(玄印旨相)’이다. 이는 앞에서 나타내 보인 여러 상을 아득히 초월한 것이고, 또 교의敎意로는 포섭할 수 없는 것이다. 혹 그럴듯한 사람이 있어 대면하고서 이를 보여 주었더니,

006_0076_c_01L及佛往生淨土見佛聞法衆生若廻光
006_0076_c_02L發智達得眞空自己佛及淨土一時齊
006_0076_c_03L不求心外淨土佛故不祛圓相中
006_0076_c_04L心人字祛下牛字也問如何是自己佛
006_0076_c_05L及自己淨土答衆生若發眞智達得眞
006_0076_c_06L則眞智是佛空是淨土若能如是
006_0076_c_07L體會何處更求他方淨土及佛也是故
006_0076_c_08L經云將聞持佛佛何不自聞聞

006_0076_c_09L
又此下四對五相第一五張

006_0076_c_10L
C 此相者擧凾索盖相亦名半月待
006_0076_c_11L圓相若有人將此相來問更添半月
006_0076_c_12L對之此則問者擧凾索盖答者將盖
006_0076_c_13L着凾凾盖相稱故已現圓月相也
006_0076_c_14L相則表諸佛體也

006_0076_c_15L
○ 此相者把玉覔契相若有人將此
006_0076_c_16L相來問圓月中心着某對之此則問
006_0076_c_17L者把玉覔契故答者識珠便下手

006_0076_c_18L
▼(○*厶) 此相者釣入索續相若有人將此
006_0076_c_19L相來問某字邊添着人字對之此則
006_0076_c_20L問者釣入索續故答者續成寶器也

006_0076_c_21L
▼(○*佛) 此相者已成寶器相若有人將此
006_0076_c_22L相來問又作圓月相中心着土字對之
006_0076_c_23L▼(○*土) 此相者玄印旨相逈然超前現衆
006_0076_c_24L更不屬敎意所攝若有人似个對面

006_0077_a_01L과연 알아보지 못하였다. 따라서 삼조三祖께선 “털끝만큼만 어긋나도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다.”라고 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비밀스러운 알아차림(玄會)이 없지는 않으나 누가 이 도상을 식별해 낼 수 있을까? 만일 그자가 이를 보고서 암암리에 알아차렸다면 마치 자기子期가 백아白牙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제바가 용수의 참모습을 본 것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자가 얼굴을 마주하고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파촉 지역 사람이 백설白雪의 가락을 듣고55) 추자鶖子(사리불)가 유마거사의 회상에 들어간 것과 흡사하다. 만일 후학의 근기가 그윽하고 날카롭다면 이를 보였을 때 단박에 깨달을 것이니, 마치 어미 닭이 알을 품어 알 속 새끼가 졸졸거리며 소리를 낼 때 탁 깨트려 주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 근성이 느리고 둔한 자라면 배워도 깨닫기 힘들 것이니, 마치 맹인에게 색깔을 설명하면 점점 더 헷갈려 하는 것과 같을 뿐이다.

어떤 사람이 순지順之 화상께 물었다.
“무엇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이에 스님께서 불자拂子를 들어 보이셨다.
그러자 그 스님이 말했다.
“그저 그렇다고만 해서야 안 되지 않습니까?”
이에 화상께서 불자를 내려놓으셨다.
그 스님이 ▼((०+०+०)/(०+०)) 이런 도상을 그리자 스님께서는 손으로 찢어 버리고 이런 ○ 모양을 그려 답하셨다.
40. 암두 전활巖頭全豁과 앙산 혜적의 제자와의 거량
암두 전활巖頭全豁56) 선사께 관음원觀音院 회하會下의 한 스님57)이 찾아왔다. 그가 손으로 왼쪽에 하나의 ○ 모양을 그리고, 또 오른쪽에 하나의 ○ 모양을 그리고, 또 가운데에 하나의 ○ 모양을 그렸는데 미처 완성하기도 전에 암두 스님께서 손으로 단번에 지워 버렸다. 그 스님이 아무런 대꾸가 없자 암두 스님께서 곧 할을 하고 쫒아 버렸다. 그 스님이 문턱을 넘으려는데 암두 스님이 다시 불러 물었다.
“너는 홍주洪州 관음원에서 오지 않았느냐?”그 스님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 아까 오자마자 왼쪽에 그린 하나의 원상은 뭐냐?”
그 스님이 대답했다.
“그건 유구有句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른쪽 하나의 원상은?”
어허!
대답했다.‘그건 무구無句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운데 원상은 뭐냐?”
대답했다.
“그건 불유불무구不有不無句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한 짓은 또 뭐냐?”
그 스님이 대답했다.
“마치 칼로 물을 벤 것과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곧장 두들겨 패고 절 밖으로 쫒아 버렸다.


006_0077_a_01L付果然不見故三祖云毫釐有錯
006_0077_a_02L地懸隔然不無玄會之誰能識此相也
006_0077_a_03L若是其人見而諳會如子期聽白牙之
006_0077_a_04L提婆見龍樹之相不是其人對面不
006_0077_a_05L似巴人聞白雪之歌鶖子入淨名之
006_0077_a_06L假使後學根機玄利將是則頓曉
006_0077_a_07L如鷄抱卵啐啄同時根性遲鈍者
006_0077_a_08L而難曉似盲人相色而轉錯耳第一六
006_0077_a_09L

006_0077_a_10L
僧問順之和尙如何是祖師西來意
006_0077_a_11L擧拂子僧云莫只這便是也無師放
006_0077_a_12L下拂子僧作此▼((०+०+०)/(०+०))相師以手劃破
006_0077_a_13L此○相答之

006_0077_a_14L
巖頭全豁禪師因觀音會下有僧來叅
006_0077_a_15L以手左邊作一○相又於右邊作一○
006_0077_a_16L又於中心作一○相欲成未成
006_0077_a_17L師以手一撥僧無對師便喝出僧欲
006_0077_a_18L跨門師却喚廻問汝是洪州觀音來是
006_0077_a_19L僧云是師云只如適來左邊一圓
006_0077_a_20L相作麽生僧云是有句師云右邊一
006_0077_a_21L圓相 𦗚云 是無句師云中心圓相作
006_0077_a_22L麽生云是不有不無句師云只如吾
006_0077_a_23L與麽又作麽生僧云如刀劃水師便
006_0077_a_24L打趂出院

006_0077_b_01L『종문통요집宗門統要集』에 말하였다.
“암두 전활 선사께서 하루는 당에 올라 말씀하셨다.
‘내가 예전에 『열반경涅槃經』을 한 7, 8년 공부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석 냥의 가의假義58)는 납승들의 이야기와 흡사하였다.’
그러곤 말씀하셨다.
‘그만두자, 그만두자.’
이때 한 스님이 나서 예배하고는 대중에게 설명해 주실 것을 화상께 청하였다. 스님께서 결국 말씀하셨다.
‘내 가르침의 뜻은 ༜ 자의 세 점과 같다. 첫째 동쪽으로 한 점을 찍으니 점을 찍어 모든 보살의 눈을 틔워 주는 것이요, 둘째 서쪽으로 한 점을 찍으니 모든 보살의 생명의 근원에 점을 찍는 것이요, 셋째 위쪽으로 한 점을 찍으니 점을 찍어 모든 보살의 정수리를 열어 주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가의假義니라.’
또 말씀하셨다.
‘내 가르침은 마혜수라摩醯首羅59)의 이마가 열리면서 세로로 덧붙은 하나의 눈과 같으니, 이것이 두 번째 가의假義니라.’
또 말씀하셨다.
‘내 가르침은 마치 독이 발린 북(塗毒鼓)과 같아 소리를 한 번 울리면 먼 곳에 있건 가까이 있건 그 소리를 듣는 자는 모두 목숨을 잃게 되니, 이것이 세 번째 가의假義니라.’
이때 소엄小嚴 상좌가 물었다.
‘무엇이 도독고塗毒鼓입니까?’
양손으로 무릎을 쓰다듬으며 몸을 굽히고 말씀하셨다.
‘한신韓信이 조례에 참석했구나.’”
41. 흠산 문수欽山文邃ㆍ암두 전활巖頭全豁ㆍ설봉 의존雪峰義存이 차를 마시며 주고받은 거량
예주澧州 흠산 문수欽山文邃60) 선사께서 이리저리 행각을 다니실 때, 설봉雪峯ㆍ암두巖頭 두 스님과 한 가게에서 차를 마시게 되었다. 문수 스님이 말했다.
“몸을 바꿔 기운을 통하게 할 줄 모르는 자는 오늘 차를 마셔선 안 됩니다.”
암두 스님이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절대로 차를 마실 수 없겠구먼.”
설봉 스님이 말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흠산 스님이 말했다.
“이 두 늙은이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먼!”
암두 스님이 말했다.
“어디로 갈까?”
흠산 스님이 말했다.
“베자루 속 늙은 까마귀가 숨은 붙어 있지만 송장이나 진배없구먼.”
암두 스님이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봐라, 봐.”
흠산 스님이 말했다.
“활豁(암두 전활) 스님은 그렇다 치고 존存(설봉 의존) 스님이라면 어떻게 하겠소?”
설봉 스님이 하나의 ○ 모양을 그리자 흠산 스님이 말했다.
“물어 보지 않을 수 없군.”
암두 스님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너무 멀구먼.”
흠산 스님이 말했다.
“입은 있으나 차를 마시지 못할 자가 많구먼.”

006_0077_b_01L
宗門統要集云巖頭全豁禪師一日陞
006_0077_b_02L堂云吾嘗究涅槃經七八年中有三兩
006_0077_b_03L叚義頗似衲僧說話又云休休時有
006_0077_b_04L僧出禮拜請和尙爲衆擧師遂云
006_0077_b_05L敎意如༜字三點第一向東方下一點
006_0077_b_06L點開諸菩薩眼第二向西方下一點
006_0077_b_07L諸菩薩命根第三向上方下一點點開
006_0077_b_08L諸菩薩頂門此是第一叚義又云吾敎
006_0077_b_09L如摩醯首羅劈開面門竪亞一隻眼
006_0077_b_10L此是第二叚義又曰吾敎意猶如塗毒
006_0077_b_11L擊一聲遠近聞者皆喪此是第三
006_0077_b_12L叚義時有小嚴上座問如何是塗毒
006_0077_b_13L第一七張師以兩手按膝亞身曰
006_0077_b_14L信臨朝底

006_0077_b_15L
澧州欽山文邃禪師游方時同雪峯巖
006_0077_b_16L憩一店上喫茶師乃云不會轉身
006_0077_b_17L通氣者今日不得喫茶巖云若恁麽
006_0077_b_18L我今日定不得茶喫雪峯云某甲亦然
006_0077_b_19L師云這兩箇老漢話頭也不識巖云什
006_0077_b_20L麽處去師云布帒裏老鵶雖活如死
006_0077_b_21L巖頭退後云看看師云豁公且置
006_0077_b_22L公作麽生峯畫一○相師云不得不
006_0077_b_23L巖笑云大遠生師云有口不得茶喫
006_0077_b_24L者多

006_0077_c_01L
42. 자복 여보資福如寶와 어떤 스님의 거량
길주吉州 자복 여보資福如寶61)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선 옛 성현의 어떤 뜻을 얻고 곧 쉬게 되었습니까?”
스님께서는 이런 ▼(○*魚)도상을 그려 응대하셨다.

『통록』 구본舊本에는 원상 안에 어魚 자가 없다.
43. 자복 여보와 녹원鹿苑 화상의 거량
녹원鹿苑 화상이 이런 ○ 모양을 그리자 자복 스님이 말했다.
“구시나국抱尸那國62)에서도 몸소 이 영令을 시행하셨습니다.”
44. 자복 여보와 진조陳操 상서尙書와의 거량
진조陳操 상서尙書63)가 자복資福 스님을 뵈러 갔는데, 자복 스님께서 보자마자 하나의 ○ 모양을 그렸다.
진조가 말했다.
“제자가 이렇게 찾아와 아직 소식도 전하지 않았는데 거기다 원상까지 그리십니까?”
자복 스님께서 바로 문을 닫아 버렸다.

설두 스님이 이에 대해 말했다.
“진조는 겨우 한쪽 눈만 갖췄다.”

송하였다.
圑圑珠繞玉珊珊  둥글둥글 진주꾸러미 옥 같은 산호들
馬載驢駞上鐵舡  말에 싣고 나귀에 얹어 철선에 올라
分付海山無事客  바다 속 섬들의 일없는 나그네에게 나누어 주고
釣鰲時下▣捲攣  자라를 낚을 때는 하나의 올가미를 던진다

다시 또 말씀하셨다.
“천하의 납승들이 뛰어 봤자 벗어나질 못하는구나.”
45. 파초 혜청芭蕉慧淸과 공양주의 거량
정주郢州 파초산芭蕉山 혜청慧淸 화상에게 공양주가 이별을 고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네가 다른 곳에 갔을 때 어떤 사람이 너에게 ‘파초의 뜻을 얻어 왔느냐?’고 물으면 너는 어떻게 그에게 응대하겠느냐?”
공양주가 이런 ○ 도상을 그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나 파초의 것이다.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공양주가 손으로 털어 한 번에 지워 버리고 다른 쪽으로 지나가 서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진짜 파초에서 왔구나.”
공양주가 바로 절을 올렸다.
46. 현사 사비玄沙沙備와 고산鼓山 스님의 거량
복주福州 현사 사비玄沙師備64) 선사가 하루는 고산鼓山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하나의 ○를 그려 보였다.
고산 스님이 말했다.
“모든 사람이 거기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정식情識으로 아는 것이다. 네가 나귀의 태, 말의 배 속에서 살 궁리를 하는구나.”
고산 스님이 말했다.
“화상이라면 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이 거기서 벗어나질 못한다.”
고산 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선 그렇게 말씀하셔도 되고 저는 그렇게 말하면

006_0077_c_01L
吉州資福如寶禪師僧問和尙得古人
006_0077_c_02L什麽意旨便休歇去師作此▼(○*魚)相
006_0077_c_03L通錄舊本此圓相內無魚字

006_0077_c_04L
鹿苑和尙作此○相資福曰拘尸那國
006_0077_c_05L親行此令

006_0077_c_06L
陳操尙書看資福資福見來便畫一○
006_0077_c_07L陳操云弟子恁麽來早是不着便
006_0077_c_08L更畫圓相資福便掩却門雪竇云陳
006_0077_c_09L操只具一隻眼頌曰圑圑珠繞玉珊珊
006_0077_c_10L馬載驢駞上鐵舡分付海山無事客
006_0077_c_11L鰲時下1)▣捲攣復云天下衲僧跳不
006_0077_c_12L

006_0077_c_13L
郢州芭蕉山慧情和尙因供養主辭師
006_0077_c_14L乃問汝到外方有人問汝還將得芭
006_0077_c_15L蕉來否汝作麽生祇對他供養主作此
006_0077_c_16L○相師曰此是芭蕉底汝作麽生
006_0077_c_17L養主以手撥一撥過一邊立師曰親
006_0077_c_18L從芭蕉來供養主第一八張便2)▣▣
006_0077_c_19L福州玄沙備禪師一日見皷山來乃作
006_0077_c_20L一○相示之山云人人出這箇不得
006_0077_c_21L云情知汝向驢胎馬腹裏作活計山云
006_0077_c_22L和尙又作麽生師云人人出這箇不得
006_0077_c_23L山云和尙與麽道却得某甲爲甚麽道
006_0077_c_24L▣拈頌作「一」{編}▣▣疑「禮拜」{編}

006_0078_a_01L안 됩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래도 되지만 너는 안 된다.”

설두 스님이 이에 대해 말했다.
“그저 흰 물결 보는 재미에 빠져 손아귀의 노를 놓친 줄도 모르는구나.”
설봉 열雪峯悅 스님이 이에 대해 말했다.
“말해도 된다고 해도 말하면 안 된다고 해도 모두 현사 스님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현사 스님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47. 경청 도부鏡淸道怤와 어떤 스님의 거량
항주杭州 용책사龍冊寺 도부道怤65) 선사곧 경청 스님이시다.께서 하루는 승당 앞에서 몸소 종을 치고 말씀하셨다.
“현사玄沙 스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현사 스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그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현사 스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스님께서 이에 하나의 원상인 ○를 그렸다.
그 스님이 말했다.
“오래 참구하지 않았다면 어찌 알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짚신 값을 돌려다오.”

이에 대해 설두 스님이 말했다.
“하마터면 채주蔡州가 박살 날 뻔하였다.”
48. 임계 철林溪徹이 방편문方便門으로 보인 6가지 도상
정주郢州 임계 철林溪徹 선사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손님과 주인이 나눠지지 않은 한마디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손님과 주인이 각각 나눠진 한마디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말할 수 있는 사람 있느냐? 만약 말할 수 없다면 다시 방편문方便門에서 알아차려라.”
스님께서는 이런 ▼(○*佛) 도상을 보여 주시고 말씀하셨다.
“소중히 간직하라.”
스님께선 언젠가 이런 ▼(囗*智) 도상을 보여 주시고 말씀하셨다.
“판별할 수 있겠느냐? 만일 판별할 수 있다면 모든 부처님과 그 도道가 동일하고 모든 조사들과도 역시 그러하리라. 만일 판별할 수 없다면 깨닫는 것이 좋으리라. 소중히 간직하라.”
스님께서 언젠가 이런 Ⴖ 도상을 보여 주시고 말씀하셨다.
“판별할 수 있겠는가? 만일 판별할 수 없다면 나 임계가 그대에게 주석을 달아 주리라. 푸른 눈의 이국 승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느니라. 소중히 간직하라.”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런 ▼(囗*舌) 도상을 대중에게 보여 주시고 말씀하셨다.
“판별할 수 있겠는가? 만일 판별할 수 있다면 영산회상이 모두 이와 같았고, 소실봉少室峯 앞에서도 이와 별다른 뜻은 없었느니라. 만일 판별할 수 없다면 화롯가에 모여 하나를 취해야지 둘을 이루지는 말며, 쉬어서는 안 된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삶과 죽음이 닥쳐오면 어떻게 없앱니까?”
스님께서 이런 ▼(囗*生) 도상을 보여 주셨다.
49. 양楊 시랑侍郞과 이李 부마駙馬가 당명 숭唐明 嵩 화상과 나눈 문답
양楊 시랑侍郞과 이李 부마駙馬가 당명 숭唐明 嵩 화상과 문답한 내용이다.66)
물었다.

006_0078_a_01L不得師云我得汝不得雪竇云祇解
006_0078_a_02L貪觀白浪不知失却手中橈雲峯悅
006_0078_a_03L道得道不得揔在玄沙圈裏如今作
006_0078_a_04L麽生出得玄沙圈

006_0078_a_05L
杭州龍册寺道怤禪師即鏡
淸也
師一日於僧
006_0078_a_06L堂前自擊鍾云玄沙道底玄沙道底
006_0078_a_07L時有僧問玄沙道什麽師乃畫一圓相
006_0078_a_08L僧云若不久叅爭知與麽師云還
006_0078_a_09L我草鞋錢來雪竇云洎被打破蔡州

006_0078_a_10L
郢州林溪徹禪師上堂云賓主不分一
006_0078_a_11L作麽生道賓主各分一句作麽生
006_0078_a_12L還有人道得麽若道不得且向方
006_0078_a_13L便門中會取師示此▼(○*佛)相珍重師有
006_0078_a_14L時以此▼(囗*智)相示云還辨得麽若也辨得
006_0078_a_15L佛佛道同祖祖如是若也辨不得
006_0078_a_16L悟取好珍重師有時以此相Ⴖ示
006_0078_a_17L還辨得麽若辨不得林溪與你注
006_0078_a_18L破去也碧眼胡僧笑點頭珍重師上
006_0078_a_19L以此▼(囗*舌)相示衆云還辨得麽若辨得
006_0078_a_20L靈山會上悉皆如此少室峯第一九張
006_0078_a_21L更無別意若辨不得且向火爐頭
006_0078_a_22L會取一不成二不是歇去僧問生死
006_0078_a_23L到來如何除遣師以此▼(囗*生)相示之

006_0078_a_24L
場侍郞李駙馬與唐明嵩和尙問答

006_0078_b_01L“○ 모든 부처님이 모두 이 안에 계시니 움직이면 몸이 상하고 목숨을 잃을 것이요, 엿보려 하면 두 눈이 모두 멀 것입니다. 이를 헤아릴 땐 천 봉우리 산과 만 굽이 강을 그 자리에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는 숯가마 안에 자리를 펴고 앉는 꼴이라 눈썹을 아까워하지 않는 자라야 그 소식을 통하게 됩니다.”
숭嵩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참 잡다하구먼.”
양 시랑이 말했다.
“평생 헛말해 본 적 없습니다.”
숭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자네가 그 허물을 말해 보게.”
이 부마가 말했다.
“굴에서 나온 토끼가 덫에 걸렸습니다.”
숭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동서로 걸림이 없고 남북으로 자유롭구나.”

광혜 련廣慧 璉67) 선사가 이에 대해 말했다.
“휘두르는 주장자 아래 진흙소로다.”
분양 소汾陽 昭68) 선사가 이에 대해 말했다.
“산을 파고 절벽을 뚫느라 콧구멍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구나.”
경산 묘희徑山 妙喜69) 스님이 이에 대해 말했다.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다.”
50. 자명 초원慈明楚圓이 동짓날 승당에 건 패
자명慈明70) 선사께서 동짓날 승당에 패를 걸고는 ▼(°°°/〓)〓〓이런 글자를 쓰고 그 아래 주를 달았다.
“이를 아는 자가 있다면 사위의四威儀 가운데 그와 떨어지지 않겠다.”
수좌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화상께서 오늘은 참문을 허락지 않으시는군.”
자명 선사께서 이 얘기를 듣고 웃으셨다.
51 자명 초원의 상당 법문
또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세존의 삼매를 아난이 몰랐고, 아난의 삼매를 상나화수商那和修(아난의 제자)가 몰랐으며, 예부터 모든 성현의 삼매를 서로가 몰랐다.”
그리고 주장자를 들어 원상을 하나의 ○ 모양을 그리고 말씀하셨다.
“이게 뭐냐? 말할 수 있는 사람 있는가?”
한참을 묵묵히 계시다 말씀하셨다.
“길에서 검객을 만나면 반드시 검을 바쳐야 하고, 시인이 아니면 시를 바치지 않는다.”
할을 한 번 하시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52. 낭야 혜각瑯琊慧覺이 초조 달마 스님을 칭송한 게송
낭야 각瑯琊覺71) 화상께서 초조 달마 스님을 칭송하는 게송을 지었다.

師眼兮深     조사의 눈은 깊고
師鼻兮大     조사의 코는 크며
師耳兮穿     조사의 귀는 뚫렸고
師舌兮快     조사의 혀는 재빠르며
師身兮墨     조사의 몸은 검고
師心兮戴     조사의 마음은 공손하네
手攜隻履返流沙  신발 한 짝 손에 들고 사막으로 돌아가셨건만
熊耳石塔今猶在  웅이산態耳山 석탑은 지금도 남아 있구나

이 게송만으로 온 천하의 납승들을 점검하셨다.

묘희妙喜72) 스님이 이에 대해 말했다.
“▼(○*戴), 이 한 글자는

006_0078_b_01L○一切諸佛盡在裏許動則喪身失命
006_0078_b_02L覷著兩頭俱瞎擬議之時千山萬水
006_0078_b_03L直下會得也是炭庫裏坐地有不惜眉
006_0078_b_04L毛者通箇消息來嵩云百雜碎楊云
006_0078_b_05L平生不夌語嵩云也要道過李云出
006_0078_b_06L穴兎遭罥嵩云東西無滯礙南北得
006_0078_b_07L自由廣慧璉云振錫下泥犁汾陽昭
006_0078_b_08L穿山透石壁鼻孔血淋淋徑山妙
006_0078_b_09L喜曰自作自受

006_0078_b_10L
慈明禪師冬日牓僧堂作此字▼(°°°/〓)〓〓
006_0078_b_11L 其下注云若人識得
006_0078_b_12L離四威儀中有首座者見之謂曰
006_0078_b_13L尙今日放叅慈明聞而笑之

006_0078_b_14L
又上堂云世尊三味阿難不知阿難三
006_0078_b_15L商那和脩不知從上諸聖三昧互相
006_0078_b_16L不知乃拈柱杖子畫一○相云者箇
006_0078_b_17L是什麽還有人道得否良久云路逢
006_0078_b_18L劒客須呈劔不是詩人不獻詩喝一喝
006_0078_b_19L下座

006_0078_b_20L
瑯瑘覺和尙讃初祖達磨頌曰師眼兮
006_0078_b_21L師鼻兮大師耳兮穿師舌兮快
006_0078_b_22L身兮墨師心兮戴手攜隻履返流沙
006_0078_b_23L熊耳石塔今猶在只將此頌驗盡天
006_0078_b_24L下衲僧第二○張 妙喜曰▼(○*戴)此一字

006_0078_c_01L건드려선 안 된다. 건드리면 화가 생긴다.”
53. 명주明州 향산 지도香山智度 화상의 40소所
▼(༜/手) “삼승三乘이 똑같이 말이 없는 도道로써 열반으로 나아간다.”
또 말씀하셨다.
“똑같이 세 수레로 불난 집을 벗어난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무엇이 삼보리三菩提입니까?”
이 도상을 그려 응대하시고는 또 손을 세 번 쥐었다 폈다 하셨다.
학인이 “제가 이렇게 떠날 땐 어떻게 응대하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면 “네 견해는 맑고 시원하니 무언가에 머무르는 생각을 내지 말라.”라고 하셨고, 혹은 점 하나를 찍어 응대하셨다.
학인은 “알겠습니다.” 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다른 곳으로 향했다.

▼(༛/手/○) 어떤 학인이 “과거의 모든 여래께서는 어떻게 사람을 제접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이런 도상을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
“너는 영리하지 못하구나.”
학인이 말했다.
“보살이 가법假法에서 벗어날 때 이것을 씁니까?”
말씀하셨다.
“너는 삼가사견파三假四見破73)에 대해 자세히 알았다면서 여전히 사유思惟가 남아 있구나. 훤칠히 벗어남을 바르게 익혀야 곧 7만 3천 경계를 벗어나 저 조사의 뜻을 비로소 보게 될 것이다.”
학인이 말했다.
“화상이시여, 양민을 억압해 천민을 만들어선 안 됩니다.”
말씀하셨다.
“내 너를 믿게 할 수 없구나. 아, 그런 견해를 요즘 많이들 가지고 있지. 두 철위산 자락에서 능가산楞伽山을 바라보면 천만리나 아득히 떨어져 있느니라.”

▼(○*口) 『법화경』에서 “이 보배로운 수레를 타고 곧장 도량道場에 이른다.”74)라고 하였고, 또 “그 빠르기가 바람과 같다.”75)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운문雲門76) 대사께 “무엇이 드넓은 땅의 흰 소입니까?” 하고 묻자 “근기를 보아하니 고칠 길이 없구먼. 우吽!77)” 하였으니 운문이란 놈, 사람을 만 길 구렁텅이로 몰아넣는구나. 잘못 알지 말라.
또 “북두 속이다.” 하고 또 “오대산 위다.”라고 말씀하셨다.
또 이런 ◎ 도상을 그리자 발로 지워 버리셨다.
물었다.
“화상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씀하셨다.
“노승은 어려서 출가하고부터 문자를 모른다.”
물었다.
“문자를 아는 자는 어떻게 합니까?”
말씀하셨다.
“아이고, 아이고. 도둑놈이 네 만두를 뺏어 버렸는데 눈먼 놈이 스스로 그걸 호병胡餠이라 여기는구나.”


006_0078_c_01L不得動着動着則禍生明州香山智度
006_0078_c_02L和尙四十所

006_0078_c_03L
▼(༜/手) 三乘同以無言說道而趣涅槃
006_0078_c_04L云同以三車出於火宅有人問如何
006_0078_c_05L是三菩提作此相對又以手掬三掬
006_0078_c_06L學云某甲與麽去時如何對云汝見淸
006_0078_c_07L莫生住想或點一下對之學云領
006_0078_c_08L微笑向他

006_0078_c_09L
▼(༛/手/○) 有學人問過去諸如來以何接人
006_0078_c_10L作此相對之又云爲汝不靈利學云
006_0078_c_11L菩薩出假時用此否云汝須子細三假
006_0078_c_12L四見破猶有思惟正習透得卽離七萬
006_0078_c_13L三千境方見彼師之意學云和尙也
006_0078_c_14L不得壓良爲賤云我未敢信汝嗟見今
006_0078_c_15L時多行二鐵圍山畔望楞伽山猶隔千
006_0078_c_16L萬在

006_0078_c_17L
▼(○*口) 法華經云乘此寶乘直至道場
006_0078_c_18L其疾如風有僧問雲門大師如何是
006_0078_c_19L露地白牛云敵機無改路雲門者
006_0078_c_20L漢送人在萬丈坑中也不當差又云
006_0078_c_21L北斗裏又云五臺山上又作此◎ 相
006_0078_c_22L以脚抹却云和尙如何云老僧自小出
006_0078_c_23L不識文字識文字者如何云挨耶挨
006_0078_c_24L者賊漢棄汝箇饅頭瞎漢自是箇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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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口) 그 옛날 목련目連 존자께서 부처님의 음성이 어디까지 들리나 싶어 자신의 신통력으로 대천세계 밖 대철위산大鐵圍山에 이르러 부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마치 목전目前에서 듣는 것과 같았다.
부처님께서 신통력으로 목련을 멀리 20항하사 국토 밖의 한 불국토로 보냈는데, 그 불국토 사람들은 몸집이 커 발우鉢盂의 넓이만 20리였다. 목련이 발우 위를 거닐며 부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역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듯하였다.
그 국토의 성문聲門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게 무슨 벌레입니까? 생김새가 꼭 사문 같은데 제 발우 위를 다닙니다.”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자를 가벼이 보지 말라. 그는 사바세계 석가모니부처님의 신통력이 뛰어난 제자 대목건련大目揵連인데 부처님 음성의 한계를 알아보려고 내 국토까지 온 것이다.”
그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신통력을 보이라고 하시자 목련은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열여덟 가지 변화를 보였다. 이에 그 제자들이 그 사실을 믿게 되었다.
부처님의 음성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으면 이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다. 혹은 손으로 귀를 막기도 했으며, 혹 진盡 자를 쓰기도 하셨다.
학인이 물었다.
“지금의 모든 소리가 부처님의 음성은 아니지 않습니까?”
말씀하셨다.
“그래서는 안 된다. 겁겁 생생에 귀가 멀었구나. 지금 노랫가락과 현악기 관악기의 떠들썩한 소리와 저잣거리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모두 네 이식耳識이 변해 나타난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학인이 말했다.
“옛날에 누가 이 도상을 그리기 시작했습니까?”
말씀하셨다.
“너는 보지 못했는가, 정명淨名 거사께서 일찍이 이 도상을 보이셨느니라.”

▼(⊙/┼) 어떤 사람이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이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25법法, 56위位, 사륜四輪이 세계를 이루는 것, 동이同異의 3상相, 3연緣, 12생生, 천이백의 일용日用, 말해 보라 그건 어디서 생겨난 것이냐?”
학인이 대답했다.
“이 도상은 아니지 않습니까?”
말씀하셨다.
“노승老僧이 욕을 할 순 없지. 너는 꼭 굴보충屈步蟲(자벌레)을 닮았구나.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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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口) 昔目連尊者欲窮佛聲以己神力
006_0079_a_03L至大千外大鐵圍山聽佛音聲如在目
006_0079_a_04L佛以神力故使目連第二一張
006_0079_a_05L至二十恒河沙國土外至一佛土彼佛
006_0079_a_06L國土人身長大鉢盂廣二十里目連在
006_0079_a_07L鉢㿻上行聞佛音聲亦如對面彼士
006_0079_a_08L聲聞白佛言此是何蟲形似沙門在吾
006_0079_a_09L鉢上行彼佛吿言莫輕此人是娑婆
006_0079_a_10L世界釋迦神足弟子大目揵連爲窮佛
006_0079_a_11L至吾國土彼佛令目連現神足
006_0079_a_12L是目連涌身虛空現十八變彼弟子衆
006_0079_a_13L方信是事若有人問佛聲作此相對
006_0079_a_14L或以手掩耳或書盡字學云如今一切
006_0079_a_15L莫是佛聲否云不得與麽劫劫
006_0079_a_16L生生聾却耳去如今歌樂絲竹喧轟
006_0079_a_17L肆合雜不可揔是你耳識變造學云
006_0079_a_18L自古什麽人作此相來云你不見淨名
006_0079_a_19L居士曾現此相來

006_0079_a_20L
▼(⊙/┼) 有人問首楞嚴三昧如何作此相對
006_0079_a_21L又云二十五法五十六位四輪成界
006_0079_a_22L同異三相三緣十二生千二百日用
006_0079_a_23L且道從何而有學云莫是此相否
006_0079_a_24L老僧不能罵得汝一似屈步蟲相似

006_0079_b_01L그물에 걸린 새이고 움켜쥘 줄만 아는 부류니 어떻게 구해 줄 수 있겠느냐. 쯧, 요즘 도를 배운다는 자들을 보니 사람이 입을 여는 것을 보면 곧 입을 여는 쪽으로만 쏠리고, 사람이 입을 닫는 것을 보면 곧 입을 닫는 쪽으로만 쏠리는구나. 가련하구나. 불법佛法의 몰락이여! 너는 알고 싶으냐?”
이에 이 도상을 그려 보여 주셨다.

▼(囗*山) 어떤 사람이 “몸은 어디로부터 생겨났습니까?” 하고 묻자 이 도상을 그려 보여 주셨다.
학인이 말했다.
“저는 이걸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말씀하셨다.
“너는 경에서 ‘단단한 상相이 흙이 되고, 축축한 상이 물이 되며, 따듯한 촉감이 불이 되고, 움직임이 바람이 되며, 너의 담담하고 원만한 성품이 나뉘어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78)라고 하신 말씀을 보지 못하였느냐? 네가 모르겠다고 하니 다시 너에게 말해 주리라. 성품에서 이는 바람은 참된 공空이고 성품의 공함이 참된 바람이니, 맑고 깨끗한 본래 그대로의 모습이니라.”
학인이 말했다.
“이미 그렇다면 왜 서로를 핍박할 때가 있습니까?”
말씀하셨다.
“너는 보지 못했느냐. 정명 거사는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었느니라.”
말했다.
“그분은 성인이지 않습니까?”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성인의 마음도 벗어나지 못했으니 이 일을 밝히기 어렵다.”

▼(∩*王) 어떤 사람이 물었다.
“저는 윤회를 벗어나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 도상을 지목하고 말씀하셨다.
“너는 왜 이걸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학인이 말했다.
“제가 일전에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외팔이 귀신이 저를 한 주먹에 때려죽였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리석은 사람의 꿈은 솔직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느냐?”
또 말씀하셨다.
“지금 이후로 번갯불 속에 머물러선 안 된다. 천둥과 번개가 너를 죽일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금강金剛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야 한다. 그러면 이리나 여우도 너를 찾지 못하리라.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물살이 급한 곳에선 다시 자세히 살펴야 한다. 네 입으로 판별하는 것을 취하는 것이 아니니, 물살이 셀 때 보이지 않는다고 물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세히 또 자세히 살피라.”

이제二諦를 쌍으로 관조하는 것(雙照二諦)이니, 공空과 유有이다. 일체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

006_0079_b_01L是在羅之鳥應持之類有什麽救處
006_0079_b_02L嗟見今時學道之流見人開口便向開
006_0079_b_03L口處去見人閉口便向閉口處行
006_0079_b_04L憐佛法平沉你要會麽乃作此相示
006_0079_b_05L

006_0079_b_06L
▼(囗*山) 有人問身從何而立乃以此相示
006_0079_b_07L學云某甲未曉此事云你不見經
006_0079_b_08L中道堅相爲地溼相爲水第二二張
006_0079_b_09L煖觸爲火動搖爲風分汝湛圓爲視爲
006_0079_b_10L爲汝不知更向汝道性風眞空
006_0079_b_11L空眞風淸淨本然學云旣然如是
006_0079_b_12L何有相逼時云汝不見淨名以須彌內
006_0079_b_13L芥子中云彼聖人也曰你尙聖心未脫
006_0079_b_14L此事難搆

006_0079_b_15L
▼(∩*王) 有人問云某甲欲出輪廻去如何
006_0079_b_16L指此相云你爭奈這箇何學云某甲
006_0079_b_17L曾得一夢夢見一手鬼被我一時拳殺
006_0079_b_18L此事如何云不見道癡人夢直又云
006_0079_b_19L今後不得向霹靂光中住雷公電母打
006_0079_b_20L你須向金剛頭頂坐狐狼野干覷汝
006_0079_b_21L不見雖然如是水流急處更須子細
006_0079_b_22L非取你口辦流急不見非是無流
006_0079_b_23L子細子細

006_0079_b_24L
雙照二諦者空有也一切世間出

006_0079_c_01L범부와 성인이 출현하고 사라지는 일들이 모두 이 도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범부는 유有에 집착하기 때문에 삼계를 떠돌고, 이승二乘은 공空에 정체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식은 재처럼 한다. 요즘 선禪을 배운다는 이들은 물론 온 천하 사람들이 여기서 벗어나질 못하니, 무엇 때문인가? 이것은 마치 원숭이가 미끈한 진탕에 빠져 벗어나려 해도 그러지 못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 도상을 가지고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도상 안에 점 하나를 찍거나 혹은 불꽃을 일으키는 듯한 것이 변하면 도리어 곧 원만해진다.

두 변을 모두 부정하는 것(雙遮二邊)이다. 경에서는 “두 변을 절대로 수립하지 말고 중도中道에도 굳이 안주하려 말라.”79)라고 하였고, 동산洞山80) 스님께서는 “그렇게 갈 줄만 알고 그렇게 올 줄은 모르는구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럼 어떤 사람이 올까?
“흙으로 만든 나귀, 나무로 깍은 말이로다!”라고 하셨고, 또 “여래는 온 곳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으며, “너는 그럴 수 있느냐?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구나. 아이고, 아이고, 천 명의 성인들께서 멸도에 드셨구나.”라고 말씀하셨다.

▼(○/木) 공이 곧 색이다(空卽是色). 누군가 “『심경心經(반야심경)』은 아십니까?” 하고 묻자 이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성문과 벽지불과 보살이 모두 이 문을 통해 깨달음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기 때문에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또 “이는 대신주大神呪다.”81)라고 말씀하셨고, 충忠 국사께선 “담장이나 기와장과 자갈이다.”82)라고 하셨으며, 임제臨濟 스님께선 “저 눈먼 나귀 곁에서 없어지겠구나.”83)라고 말씀하셨다. 혹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그리면 그에게 “노승은 한평생 눈병을 앓은 적이 없어 허공 꽃을 보지 못했다.”라고 말하고, 또 발로 그 도상을 지워 버렸다.
또 말씀하셨다.
“너는 좌주座主라면서 이런 건 아직 배우지 못했구나. 그럼 내가 한번 물어 보자. 너는 매일 밥을 먹으며 음식을 씹는데 어느 정도가 색色이고 어느 정도가 공空이더냐? 만일 씹힌다면 색은 공이 아닐 것이요, 만일 씹히지 않는다면 공은 곧 색이 아닐 것이다. 또 이 둘을 모두 떠난다면 더욱 교섭할 길이 없느니라.”
또 말씀하셨다.
“살펴보라.”

▼(○/木) 색色 그대로가 곧 공空이지 색이 없는 것을 공이라 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색이라 하는가?

006_0079_c_01L世間凡聖出沒所爲盡不出此相
006_0079_c_02L夫着有故流浪二乘滯空故灰身今之
006_0079_c_03L禪學者天下出此不得何以故此事
006_0079_c_04L如獼猴墮油泥離之不得忽有將此相
006_0079_c_05L來時如何但去相內點一點或生燄子
006_0079_c_06L變却卽圓也

006_0079_c_07L
雙遮二邊經云二邊純莫立中道不
006_0079_c_08L須安洞山云祇解與麽去不解與麽
006_0079_c_09L什麽人却來云土驢木馬又云
006_0079_c_10L如來者無所從來云你得與麽不識好
006_0079_c_11L蒼天蒼天千聖入滅也

006_0079_c_12L
▼(木/○) 空卽是色若有問還解心經否
006_0079_c_13L此相對彼云第二三張善哉善哉
006_0079_c_14L聞辟支佛菩薩皆從此門而趣菩提
006_0079_c_15L以道依般若波羅密多故心無罣礙
006_0079_c_16L無罣礙故無有恐怖又云是大神呪
006_0079_c_17L忠國師云牆壁瓦礫臨濟云向者瞎
006_0079_c_18L驢邊滅却去若有人作此相來向伊
006_0079_c_19L老僧一生不曾患眼不見空花
006_0079_c_20L以脚抹却又云你是座主未曾歷事
006_0079_c_21L在我且問你每日噇飯咬著幾許色空
006_0079_c_22L若咬著色不卽空若咬不著空卽不
006_0079_c_23L去此轉無交渉又云照

006_0079_c_24L
▼(○/木) 色卽是空非色滅空何以爲色

006_0080_a_01L인연因緣 때문에 색이라 한다.
무엇 때문에 공이라 하는가? 허깨비와 같기에 공이라 한다.
무엇 때문에 연緣이라 하는가? 허망하기 때문에 연이라 한다.
무엇 때문에 환幻이라 하는가?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환이라 한다.
무엇 때문에 허망하다 하는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허망하다 한다.
무엇 때문에 실체가 아니라고 하는가? 본래 공하기 때문에 실체가 아니다.
실체가 아니고 성품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지 못하는데, 그 존재하지 않는 성품은 생겨나는 곳이 없으니 어디로 사라지겠는가? 이미 생기고 사라짐이 없다면 또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망인가? 진실도 허망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무슨 ‘즉卽’이 있고, 무슨 ‘색色’이 있으며, 무슨 ‘공空’이 있겠는가?
혹 어떤 사람이 “무엇이 색즉시공色卽是空입니까?” 하고 물으면 이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고, 또 혹은 엄지손가락을 세우셨으며, 혹은 “너는 『반야심경』도 모르냐? 『반야심경』도 안 보고 어쩌자는 거냐?” 하시곤 그렸던 도상을 지워 버렸다.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의 사마타奢麽他(止)를 닦는 선적의지禪寂意地에서 바르게 사유하지 않고 삿된 생각이 들게 되면 다섯 가지 음문陰門에서 기이한 경계와 특별히 뛰어나고 오묘한 경계를 잘못 발현하게 된다. 그러면 다들 “불ㆍ보살ㆍ벽지불ㆍ나한의 진실한 깨달음의 경지가 눈앞에 드러났다.”라고들 말한다. 수행자들은 닦은 관觀의 힘이 이와 같으면 모두들 깨달음을 얻었다는 생각을 내어 스스로 “나는 이미 성인의 경지를 증득했노라.”고 말하고 여러 청중들을 기만한다. 그러면 그 청중들 역시 바른 지혜가 없어 모두들 “성현의 도가 바로 이거구나.” 하고 떠들며 못하는 짓이 없고 방자한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된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가 함께 왕난王難에 빠지게 된다.”84)라고 했던 것이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오음五陰을 관찰하는 행行은 어떻게 닦아야 합니까?” 하고 물으면 이 도상을 그려 양손으로 움켜쥐고 등 뒤로 던지셨고, 혹은 원상으로 이 상을 에워싸 일승一乘으로 바꾸셨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세계와 마귀 세계가 똑같은 하나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도를 얻는다면 두루 융통하여 곧 음陰의 세계를 벗어나 오탁五濁의 세계를 초월하고 오분법신五分法身을 증득하리라. 그리하여 육근六根을 마음대로 바꾸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마치 유리 궁전 속에 보배로운 달을 품은 것과 같으리라.
혹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그리면 열반상 ▼(○*人)으로만 응대하셨고, 혹은 눈을 감아

006_0080_a_01L因緣故色何以爲空如幻故空何以
006_0080_a_02L爲緣虛妄故緣何以爲幻不實故幻
006_0080_a_03L何以爲虛妄不覺故妄何以不實
006_0080_a_04L空故不實不覺不實性無所有無所
006_0080_a_05L有性無所從生何所從滅旣無生滅
006_0080_a_06L復何眞妄眞妄尙不可得何卽之有
006_0080_a_07L何色之有何空之有或有人問如何
006_0080_a_08L是色卽是空作此相對或竪起指頭
006_0080_a_09L或云你不會心經未審心經作麽生
006_0080_a_10L遂畫破相

006_0080_a_11L
首楞嚴三味修著摩他於禪寂
006_0080_a_12L意地中1)▣思惟適遭邪慮而於
006_0080_a_13L五種陰門悞發異境殊特勝妙境界
006_0080_a_14L謂佛菩薩辟支佛羅漢眞證現前行人
006_0080_a_15L所修觀力如是盡作得想自言我已證
006_0080_a_16L以誑諸聽衆第二四張 彼衆亦無正
006_0080_a_17L悉謂聖道如之於是無所不爲
006_0080_a_18L情皆得所以云弟子與師俱陷王難
006_0080_a_19L有人問五陰觀行如何修作此相以兩
006_0080_a_20L手掬來拋向背後或以圓相圍之
006_0080_a_21L爲一乘所以佛界魔界同爲一體若得
006_0080_a_22L此道圓融便出陰界超五濁證五分
006_0080_a_23L六根互用如淨瑠璃內含寶月若有作
006_0080_a_24L此相來但以涅槃相▼(○*人)對之或閉目

006_0080_b_01L응대하셨다. 이 도는 구명하기 어려운 것이니 입으로 판별할 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스스로 증득해야만 한다.

▼(○*弗) 어떤 사람이 승문承聞 화상께 물었다.
“오랜 세월 3경經과 5론論의 불법佛法을 배워 교화의 장을 세우시고, 육대六代 조사를 비롯한 강서江西ㆍ호남湖南ㆍ덕산德山ㆍ임제臨濟ㆍ운문雲門ㆍ조주趙州ㆍ위앙潙仰ㆍ조동曹洞 등 여러 가문의 법도法道를 자세히 연구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들 하던데, 그 말이 사실입니까?”
이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고, 혹은 손을 세 번 아래로 흔드셨으며, 혹은 갑자기 얼굴에다 침을 뱉으셨다.
혹은 다음 날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물을 줄도 모르는구나. 모름지기 사람을 가까이할 때는 그러지 말거라. 세월은 신속하고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 법이니, 다음번에는 모쪼록 조심하고 조심하여라. 이 노승은 금침金針을 너에게 보여 준 적이 없건만 네가 수긍하고서 일어서지 못할까 걱정이구나.”

▼(○*米) 어떤 스님이 청평淸平 화상에게 물었다.
“무엇이 유루법有漏法입니까?”
“소쿠리와 삼태기니라.”
“무엇이 무루법無漏法입니까?”
“나무 국자니라.”
“무엇이 유루법이면서 무루법인 것입니까?”“깨진 가마솥 안에서 병을 삶는구나.”
“무엇이 유루법도 무루법도 아닌 것입니까?”
스님께서는 두 손을 펴셨고, 혹은 이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다. 유루의 선善과 악惡이란 하늘과 사람의 네 세계이고, 무루의 선이란 이승二乘이며, 유루이면서 무루인 것은 보살이고, 유루도 무루도 아닌 것은 모든 부처님이시다.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그리면 오음상五陰相으로 응대하셨으니, 즉 범부와 성인은 같다는 것이다. 혹은 “석가 영감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라고 하셨고, 또 “내가 너의 배 속에 있다.”라고도 말씀하셨다.

▼(°°°/○/°°°) “보리달마菩提達磨부터 조계曹溪 육대 조사에 이르기까지 얻은 어떤 도리道理도 없습니까?”
이 도상을 그려 응대하시고 말씀하셨다.
“너는 보지 못했느냐. 어떤 스님이 능能(六祖 慧能) 화상에게 ‘누가 황매黃梅(五祖 弘忍)의 뜻을 얻었습니까?’ 하고 묻자 ‘불법을 아는 자가 얻었다.’고 대답하셨고, ‘화상께선 얻으셨습니까?’ 하고 묻자 ‘나는 얻지 못했노라.’고 대답하셨다.

006_0080_b_01L此道難明非取口辦須自親證

006_0080_b_02L
▼(○*弗) 有人問承聞和尙久歷佛學三經
006_0080_b_03L五論建化門庭六代祖師江西湖南
006_0080_b_04L德山臨濟雲門趙州潙仰曹洞諸家法
006_0080_b_05L無不委細其言實否作此相對之
006_0080_b_06L或搖手三下或劈面唾之或明向伊道
006_0080_b_07L你不會問事且須近人莫與麽造
006_0080_b_08L度時光影迅速時不待人切忌切忌
006_0080_b_09L老僧未曾將金針示汝在恐汝承當不
006_0080_b_10L

006_0080_b_11L
▼(○*米) 僧問淸平和尙如何是有漏云筲
006_0080_b_12L如何是無漏云木杓如何是亦有
006_0080_b_13L漏亦無漏云破鑊裏煑湯瓶如何是非
006_0080_b_14L有漏非無漏展兩手或作此相對之
006_0080_b_15L且有漏善惡者人天四趣也無漏善者
006_0080_b_16L二乘也亦有漏亦無漏者菩薩也
006_0080_b_17L有漏非無漏者諸佛也有人作此相來
006_0080_b_18L以五陰相對之則凡聖一如也或云
006_0080_b_19L釋迦老子出此不得又云我在汝肚
006_0080_b_20L第二五張

006_0080_b_21L
▼(°°°/○/°°°) 自菩提達磨洎曹溪六代祖師
006_0080_b_22L得這箇道理也無乃作此相對之不見
006_0080_b_23L僧問能和尙云黃梅意旨什麽人得
006_0080_b_24L會佛法人得和尙還得也無云我不得

006_0080_c_01L‘화상께선 왜 얻지 못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불법을 모르노라.’
보지 못했느냐. 『인왕경仁王經』에서는 ‘나는 지금 설한 바가 없고 너도 이제 들은 바가 없으니, 이것이 일一의 뜻이고 이二의 뜻이다.’85)라고 하셨고, 또 ‘향상일로向上一路는 천 명의 성인께서도 전하지 못한 것인데, 배우는 이들이 몸만 고달프게 하니 원숭이가 달그림자를 건지려는 것과 같구나.’86)라고 하셨고, 또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유有를 모른다.’87)라고 하셨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무엇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고 묻자 이 도상을 그리신 뒤에 주장자로 지우고 또 말씀하셨다.
“이 노승은 귀가 먹었느니라.”
그 스님이 물었다.
“뜰 앞의 잣나무라는 건 또 뭡니까?”
말씀하셨다.
“너하고는 얘기가 안 되겠구나. 네 눈깔을 뽑아 버려야겠다. 이 종문을 파멸시킬 놈아! 너는 평지인데도 그리 뛰면서 세월이 가도 그걸 버리지 못하니 저 달마의 종족을 파멸시키리라.”

경에서는 이른바 겁탁劫濁ㆍ견탁見濁ㆍ번뇌탁煩惱濁ㆍ중생탁衆生濁ㆍ명탁命濁이라 했다. 비유하자면 맑은 물은 깨끗함 본래 그대로의 모습이지만 어떤 세간 사람이 흙가루를 가져다 맑은 물에 던지면 흙도 단단한 성질을 잃고 물도 맑고 깨끗한 성질을 잃어버려 그 모양새가 어지러운 것과 같으니 그것을 ‘탁濁’이라고 한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해야 이 도상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이런 ○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다. 혹은 불씨 모양을 덧붙이기도 하고, 혹은 점 하나를 찍기도 하셨으니, 범부를 전환하여 성인이 된다지만 성인 역시 두지 않아야 바야흐로 무생無生에 합하게 된다는 뜻이다. 혹은 본래 도상인 를 그리고 그 이유를 “음婬ㆍ노怒ㆍ치癡 삼독을 끊지 않고 또 그 삼독과 함께하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또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의 해탈을 중생의 마음 씀씀이에서 찾아야 한다. 어떤 좌주가 귀종歸宗 선사에게 ‘눈에 보이는 대로 보리菩提라는 게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귀종 선사께선 한쪽 발꿈치를 드셨다. 좌주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자 귀종 선사께선 ‘세 개가 드러나 있으니 마음대로 하나 골라라.’라고 말씀하셨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그리면 그저 두 손을 조용히 머리 위로 올려 주먹을 쥐기만 하셨다.

○ “독왕獨王의 정수리에 이 하나의 구슬이 있는데 예전엔 주지 않았지만

006_0080_c_01L和尙爲什麽不得云我不會佛法
006_0080_c_02L見仁王經云我今無說汝今無聽
006_0080_c_03L一義二義又云向上一路千聖不傳
006_0080_c_04L者勞形如猿捉影又云三世諸佛不
006_0080_c_05L知有忽有問如何是祖師西來意
006_0080_c_06L此有了以柱杖抹却又云老僧耳聾
006_0080_c_07L僧云庭前栢樹又作麽生云你不得與
006_0080_c_08L麽說話瞎却汝眼去這壞宗徒漢
006_0080_c_09L在平地走年深捨此不得也這滅胡種
006_0080_c_10L

006_0080_c_11L
經云所謂劫濁見濁煩惱濁衆生濁
006_0080_c_12L命濁譬如淸水淸潔本然有世間人
006_0080_c_13L彼土塵投之淸水土失留礙水忘淸潔
006_0080_c_14L容貌汨然名之爲濁忽有人問如何
006_0080_c_15L出得此相去乃以此○相對之或如
006_0080_c_16L燄子或點一下轉凡成聖聖亦不存
006_0080_c_17L方合無生或作本相 所以云不斷婬
006_0080_c_18L怒癡亦不以俱又云諸佛解脫向衆
006_0080_c_19L生心行中求有座主問歸宗如何是
006_0080_c_20L觸目菩提歸宗翹起一足座主云不
006_0080_c_21L宗云三箇現在一任選取忽有人
006_0080_c_22L作此相來但安兩手在頭上作拳

006_0080_c_23L
○ 獨王頂上有此一珠昔時不與
006_0080_c_24L▣疑「正」{編}

006_0081_a_01L지금은 주리니, 선재善才 동자와 용녀龍女가 남보다 앞서 이걸 얻었느니라. 그래서 이조二祖께서는 세 번 절하고 우뚝 섰고, 삼성三聖 스님에게 ‘저 눈먼 나귀 곁에서 없어지겠구나.’라고 하였으며, 사思 화상께선 한 발을 내려놓으시고88), 유학有學과 무학無學의 성문 제자들이 줄지어 모두 수기를 받았던 것이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물었다.
“무엇이 전륜성왕 정수리의 구슬입니까?”
스님께서 이 도상을 그려 보여 주시자 학인이 절을 하였다. 그러자 존숙께선 지워 버리셨다.

▼(○*火) “연등불然燈佛 이전에는 갖가지 행을 지었지만 연등불 이후에는 온갖 행을 모두 잊었다.”
“무엇이 연등불 이전입니까?”
말씀하셨다.
“안장이 말 등에 있는 것이다.”
“무엇이 연등불 이후입니까?”
말씀하셨다.
“안장도 말 등도 모두 없다.”
“무엇이 진짜 연등불입니까?”
그러자 이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다.
“연등불도 연등불이 아닌 것은 어떻습니까?”
그러자 발로 지워 버리셨다.
혹 어떤 사람이 물었다.
“저 석가釋迦만 연등불을 만난 것입니까, 아니면 삼세의 모든 여래가 모두 연등불입니까?”
말씀하셨다.
“네가 말해 보거라. 윗대의 모든 제왕이 모두 어린 시절이 있었느냐, 아니면 대당大唐의 천자에게만 어린 시절이 있었느냐?”
“만일 그렇다면 용녀는 여덟 살에 도를 이루었다는데 언제 연등불이었습니까?”
말씀하셨다.
“용녀가 연등불이 아닌 것만 보고 연등불이 용녀가 아닌 것은 보지 못하며, 석가가 연등불이 아닌 것만 알고 연등불이 석가가 아닌 것은 모르는구나.”

▼(○*呈) 어떤 사람이 물었다.
“저는 자기보토自己報土를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뭡니까?”
그러자 이 상을 그려 보여 주셨다.
“요즘은 서방정토에 태어났으면 하고 바라는 자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씀하셨다.
“그런 말하지 말라. 그런 자들이 연야다演若多의 무리임은 지금 밝혀진 게 아니다.”
학인이 물었다.
“『화엄경』ㆍ『법화경』ㆍ『정명경淨名經』(『유마경』)에 나와 있는 것은 그럼 무엇입니까?”
말씀하셨다.
“만일 육정六情과 육진六塵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모두들 기이하고 특별하다는 생각, 뛰어나다는 생각, 신통하다는 생각, 묘한 작용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아! 요즘의 법사니 선사니 하는 자들을 보면 경전의 문구나 꿰고 앉았다. 무릇 하나에서 무량한 세계가 나타나고 겨자씨 속에 수미산이 들어가는 것, 『법화경』의 삼변토전三變土田, 『정명경』에서 발가락으로 땅을 눌렀던 것,

006_0081_a_01L今與之第二六張 於善才龍女率先
006_0081_a_02L得之所以二祖三拜而立三聖者瞎驢
006_0081_a_03L邊滅却思和尙垂下一足學無學聲聞
006_0081_a_04L弟子例皆授記忽有人問如何是輪王
006_0081_a_05L頂上之珠作此相示之學者禮拜
006_0081_a_06L宿遂抹却

006_0081_a_07L
▼(○*火) 然燈前則屬衆行然燈之後衆行
006_0081_a_08L俱忘如何是然燈前云鞍在背如何
006_0081_a_09L是然燈後云鞍背俱無如何是正然燈
006_0081_a_10L乃作此相對然燈不然燈如何以脚抹
006_0081_a_11L或有人問爲復祗是釋迦遇然燈
006_0081_a_12L爲復三世如來揔然燈云你道從上諸
006_0081_a_13L帝王揔爲童稚爲祇是大唐天子爲童
006_0081_a_14L若如是者龍女八歲成道甚處然
006_0081_a_15L云祇見龍女不然燈不見然燈不龍
006_0081_a_16L祇知釋迦不然燈不知然燈不釋迦
006_0081_a_17L▼(○*呈) 有人問某甲未識自己報土如何
006_0081_a_18L作此相示之云今之人多樂求西方者
006_0081_a_19L如何云勿言之也彼演若多之類
006_0081_a_20L今所明也學云華嚴法華淨名所現者
006_0081_a_21L如何曰若情塵未脫皆生奇特想
006_0081_a_22L勝想神通想妙用想嗟見今之法師
006_0081_a_23L禪師銷解經文凡見一中現無量芥容
006_0081_a_24L須彌法華三變土田淨名足指按地

006_0081_b_01L『화엄경』에서 중중의 세계가 응해 나타나는 것들을 보고는 다들 ‘모든 부처님의 오묘한 작용이요, 신통하고 기이한 세계다.’라고 부르짖는다.
아, 괴롭고 괴롭구나! 한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경전깨나 읽는다 하는 자들이 다 그렇다. 아, 자기의 보토는 모르고 저 육정과 육진에 집착하고 장애되는구나. 따라서 그런 일들을 분명히 판별할 수 없어 결국 기이하고 특별하다는 생각, 일찍이 없었던 것이란 생각, 자기는 할 수 없다는 생각, 그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그래서 경에서는 ‘반연하는 마음을 자성自性이라 여긴다.’89)라고 하였고, 또 ‘식정識精(아다나식)이 원래 밝아 능히 모든 인연을 일으켰는데 그 인연 때문에 잃어버린 자이다.’90)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敎에서 ‘삼현과 십성은 과보에 머무르고 오직 부처님 한 분만 정토에 머무신다.’91)라고 하였으니, 삼현과 십성도 오히려 과보에 얽매이는데 하물며 일개 범부이겠는가?’ 또 ‘마음이 청정하면 불국토가 청정하다.’92)라고 하였고 달마 대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吾本來玆土    내가 이 나라로 와서
傳法救迷情    법을 전해 미혹한 중생 구제하니
一花開五葉    꽃 하나에 꽃잎은 다섯 장
結果自然成    그 열매는 저절로 맺히리라”

༚○༚ “불교와 도교와 유교, 이 세 가르침은 세상에 어떤 이익을 줍니까?”
말씀하셨다.
“모두 이익 될 것이 없다.”
“왜 이익이 없습니까?”
“도를 보지 못하면 귀한 것도 천해지기 때문이다.”
또 말씀하셨다.
“요堯 임금 순舜 임금의 인仁과 덕德이 도가 없어지게 된 단초니라.”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그리면 스님께선 그저 이런 도상으로 응대하셨다. 어느 하나도 버리지도 않고, 참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며, 성인도 아니고 범부도 아니며,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으며, 옳다고 하면 또한 곧 옳고 그르다고 하면 또한 곧 그르다.
혹은 둥근 달을 그려 응대하셨으니, 세 가지를 모아 하나로 귀결시킨다는 의미다. 혹은 모두 지워 버리셨으니 그 하나도 수립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세 가르침의 차이에 의거한다면 하루 만에 모두 얘기할 수 없을 정도이니 각 문호의 교화를 입은 지가 너무도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유교는 인仁과 의義를 근본으로 삼고 군신君臣을 존중하며, 도교는 자연自然을 근본으로 삼고 허적虛寂을 존중하며, 불교는 근본으로 삼는 것이 없으니, 이런 이유로 각기 그 길이 다르게 된 것이다.

▼(○/⸧) 모든 부처님께선 반연함이 없는 대자비로 널리 모든 생명들에게 다가가시고 중생들은 반연함이 없는 애처로움으로 뭇 성인들을 맞이하나니, 이런 까닭에 “감응하는 도의

006_0081_b_01L嚴重重應現皆喚作諸佛妙用神通奇
006_0081_b_02L特境界痛哉痛哉第二七張 非止一人
006_0081_b_03L而已今之銷經者例皆如是嗚呼不
006_0081_b_04L識自己報土彼情塵所著所礙故於是
006_0081_b_05L不能明了遂生奇特心未曾有想
006_0081_b_06L己不能想他能用想故經云用攀緣心
006_0081_b_07L爲自性者又云識精元明能生諸緣
006_0081_b_08L緣所遺者是以敎云三賢十聖住果
006_0081_b_09L唯佛一人居淨土三賢十聖猶滯果
006_0081_b_10L況凡夫乎又云心淨則佛土淨
006_0081_b_11L磨大師云吾本來玆土傳法救迷情
006_0081_b_12L花開五葉結果自然成

006_0081_b_13L
༚○༚ 佛敎道敎儒敎此三敎於世有何等
006_0081_b_14L云㧾無所益云爲何無益云不見
006_0081_b_15L遇貴卽賤又云堯舜仁德道喪之
006_0081_b_16L始也有人作此相來但以此相
006_0081_b_17L不遣不眞不妄不聖不凡不高不下
006_0081_b_18L是亦卽是非亦卽非或作圓月相對意
006_0081_b_19L云會三歸一或都抹却一亦不立
006_0081_b_20L據三敎殊途不可一日而言之門戶被
006_0081_b_21L化懸遠儒則宗仁義尊君臣道則宗自
006_0081_b_22L然尊虛寂佛則無所宗以此而殊途也
006_0081_b_23L▼(○/⸧) 諸佛以無緣大慈普赴群有衆生
006_0081_b_24L以無緣悲哀以感諸聖所以云感應道

006_0081_c_01L교류는 생각으로 헤아리기 어렵다.”93)라고 한 것이다.
또 “마치 닭이 알을 품어 새끼가 졸졸거리는 순간 어미가 쪼아 주는 것과 같다.”라고 하셨다. 또 “함과 뚜껑이 꼭 맞아 떨어지고, 화살촉과 창끝이 서로 맞부딪친 것과 같다.”라고 하셨다.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그리면 스님께선 그저 이런 ▼(○*合) 도상으로 응대하셨다. 혹은 “끊어라.” 하셨고, 혹은 “집안을 망칠 놈이구나!”라고도 하셨으며, 혹은 합장으로 응대하셨고, 혹 어떤 때는 그림을 찢어 버리셨다.
그래서 마조馬祖께서 당에 오르자 백장百丈이 자리를 걷었던 것이며, 이조二祖께서는 삼배의 예를 올리고 지위에 의지해 우뚝 섰던 것이며, 녹야원의 다섯 비구가 함께 윤회를 건너게 되었던 것이고, 임제 스님께서 “저 눈먼 나귀 곁에서 없어지겠구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어떤 학인이 “제가 어제 연못을 파 놓았으니 오늘은 밝은 달이 비출 때입니다.”라고 묻자 이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다. 학인이 이에 고개를 끄덕이자 말씀하셨다.
“너는 그저 봄이면 싹이 터 여름에 자라나고 가을이면 단풍 들어 겨울에 시드는 것만 보는구나. 지금 당장 네 두개골을 잘라 내고, 네 눈동자를 씻어 버리고, 네 코를 베어 버리고, 네 골수까지 도달하고서 한 구절을 말해 보라.”
학인이 아무 말도 못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그저 인연 따라 믿음의 업을 지으며 시류를 쫓을 뿐이구나. 요즘 온 천하 사람들이 모두 이 모양이니 그대만 그런 게 아니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벽黃蘗 스님께서는 ‘이 큰 당나라에 선사가 하나도 없다.’라고 하셨고, 또 운문 스님께서는 ‘평지에 시체가 수도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年) 배우는 사람은 자기를 또렷또렷하게 분명히 볼 수 있어 조금도 머뭇거리거나 걸릴 게 없어야 비로소 걸음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만일 실오라기만큼이라도 막아서는 것이 있다면 곧 그는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동산 스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切忌隨他覔  절대로 남에게서 찾지 말지니
迢迢與我踈  아득히 나와는 멀어진다네.
我今獨自徃  내 이제 홀로 가나니
處處得逢渠  가는 곳곳에서 그것과 만난다

渠今正是我  그것은 지금 분명 나이나
我今不是渠  나는 지금 그것이 아니나니
應須與麽會  반드시 이렇게 깨달아야
方得契如如  비로소 여여如如에 계합하리라

또 어떤 스님이 광덕廣德 스님에게 물었다.
“물을 긷고 꽃을 바칠 때는 어떻습니까?”
광덕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휘감는다면 사리闍梨(스님의 존칭)는 어떻게 할 텐가?”
그 스님이 말했다.
“그렇다 해도 꽃을 꺾고 물을 긷는 게 헛되진 않습니다.”
그러자

006_0081_c_01L交難思議又云如雞抱子啐啄同時
006_0081_c_02L云凾蓋相應箭鋒相柱有人作此相來
006_0081_c_03L但以此相▼(○*合)對之或云絕或云滅門
006_0081_c_04L或合掌對第二八張 或一時畫破
006_0081_c_05L以馬祖昇堂百丈卷席二祖禮三拜
006_0081_c_06L依位而立鹿苑五俱輪得度臨際云
006_0081_c_07L向者瞎驢邊滅却去有學人問某甲昨
006_0081_c_08L日開池今宵月應時以此相對之
006_0081_c_09L人點頭云汝祇見春生夏長秋變冬凋
006_0081_c_10L忽然搕損汝腦蓋骨洗却汝眼睛截却
006_0081_c_11L鼻孔向髑髏裏倒道將一句來學者
006_0081_c_12L無語云汝祇是隨緣信業逐時之宜
006_0081_c_13L今天下共同非唯闍梨不見黃蘗云
006_0081_c_14L大唐國內無禪師又雲門云平地上
006_0081_c_15L死人無數

006_0081_c_16L
▼(○/年) 有學者得見自己了了分明
006_0081_c_17L所留碍方能步步向1)▣ 如有絲毫隔
006_0081_c_18L則未是前進之人所以洞山云切忌
006_0081_c_19L隨他覔迢迢與我踈我今獨自徃處處
006_0081_c_20L得逢渠渠今正是我我今不是渠
006_0081_c_21L須與麽會方得契如如又僧問廣德云
006_0081_c_22L酌水獻花時如何德云忽然雲霧靉靆
006_0081_c_23L闍梨作麽生僧云與麽則採汲不虛
006_0081_c_24L▣疑「前」{編}

006_0082_a_01L광덕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중이여, 이 사람이 제2대 광덕이니라.”
그래서 삼승이 함께 나아가지만 성품을 봄에 있어선 차이가 나고, 세 짐승이 강을 건넘에 그 깊고 얕음이 각기 다른 것이며, 초암草菴 보살은 항상 자신의 가난함을 고수했던 것이고, 화엄과 이승이 이런 이유로 구분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 어떤 스님이 낙포洛浦94) 스님에게 물었다.
“학인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낙포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죽어 가시덤불 속에 누워 있는데 그대는 어디로 돌아가려는가?”
그 스님이 말했다.
“그렇다면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낙포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돌아가겠다고 했으니 꼭 돌아가야 한다. 너에게 양식 걱정 없는 한 가지 방법을 일러 주리라.”
그 스님이 곧바로 청하자 낙포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2시에 상당해서 여태 쌀 한 톨 씹질 못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무생無生의 이치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그에게 다가가 ▼(○/生) 이런 도상을 그려 보여 주셨다.
혹 어떤 학인이 이런 도상을 그려 종사宗師께 물으면 종사께선 이에 응대해 생生 자를 위로 옮김으로써 ‘이타상利他相’으로 변화시켰으니, 즉 본분사本分事로써 그를 대하신 것이다.
그래도 그가 깨닫지를 못하면 또 그에게 말씀하셨다“노승이 오늘은 등이 아프니 내일 너에게 말해 주리라.”
그 스님이 “오늘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하자 스님께선 주장자로 그를 때리며 말씀하셨다.
“저 불법을 파멸시킬 놈!”

▼(○*生) 왜 유有라고 하는가? 망상 때문에 유이고, 전도顚倒 때문에 유이고, 인연 때문에 유이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유이고, 허깨비와 같기 때문에 유이다.
왜 무無라고 하는가? 본체가 공空하기 때문에 무이고, 이치에 따르기 때문에 무이고, 불생不生이기 때문에 무이고, 허공과 같기 때문에 무이고, 무념無念이기 때문에 무이고, 분별이 없기 때문에 무이고, 자성이 없기 때문에 무이고, 타성他性도 없기 때문에 무이고, 본래 청정하기 때문에 무이다.
왜 역유역무亦有亦無인가? 중생을 제도하기 때문이요, 가법假法에서 벗어나기 때문이요, 주장을 논파하기 때문이요, 성품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이요, 갖가지 법도 때문이요, 행을 일으키기 때문이요, 법계에 들어가기 때문이요, 본제本際를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왜 비유비무非有非無인가? 항상 고요하기 때문이요, 성품의 깨달음은 오묘하고 밝기 때문이요, 여래장은 본래 공하기 때문이요,

006_0082_a_01L施也德云大衆此是第二代廣德
006_0082_a_02L以三乘同趣而見性差殊三獸渡河
006_0082_a_03L而淺深各異草菴菩薩尙守自貧華嚴
006_0082_a_04L二乘所以無分於是僧問洛浦云
006_0082_a_05L人擬欲歸鄕時如何浦云汝父母俱喪
006_0082_a_06L臥在荆棘林中子歸何所僧云與麽
006_0082_a_07L則不歸去也浦云歸去則須歸去
006_0082_a_08L汝一箇休粮方僧云便請浦云二時
006_0082_a_09L上堂不得咬破一粒米第二九張
006_0082_a_10L有人問無生之理如何趣向乃作此
006_0082_a_11L相▼(○/生)示之或有學人作此相來問宗師
006_0082_a_12L宗師應爲移生字上變作利他則本
006_0082_a_13L分事爲伊伊若不薦且向伊道
006_0082_a_14L僧今日背痛來日向汝道僧云今日請
006_0082_a_15L和尙便道以柱杖打云者滅佛法賊漢
006_0082_a_16L▼(○*生) 云何爲有妄想故有願倒故有
006_0082_a_17L緣故有不覺故有1)幼故有云何爲
006_0082_a_18L體空故無順理故無不生故無
006_0082_a_19L虛空故無無念故無無分別故無
006_0082_a_20L自性故無無他性故無本淸淨故無
006_0082_a_21L云何亦有亦無度衆生故出假故
006_0082_a_22L立故性本然故諸度故起行故入法
006_0082_a_23L界故不動本際故云何非有非無
006_0082_a_24L寂然故性覺妙明故如來藏本空故

006_0082_b_01L천 명의 성인께서도 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산藥山95) 스님께서는 “수소가 새끼를 낳으면 네게 말해 주리라.”라고 하셨고, 동산洞山 스님께서는 “동산의 물이 거슬러 흐르면 네게 말해 주리라.”라고 하셨으며, 황벽黃蘗 스님께선 등짝을 후려치셨고, 귀종歸宗96) 스님께선 뱀을 보자 괭이로 두 토막을 내셨으며, 운문雲門 스님께선 “북두성 속이다.”라고 하시고, 목주睦州 스님께선 갑자기 문을 닫으셨으며, 분주汾州97) 스님께서는 “망상부리지 말라.” 하시고, 보화普化98) 스님께선 바로 빼앗으셨던 것이다.
만일 지금의 학인들이 이런 올바른 방편을 얻는다면 출가한 보람이 조금은 있으리라. 만일 그저 문지방이나 방문 아래, 담장 밑 도랑 곁에서 의식으로 적당히 끼워 맞추고서 가풍家風이니 문풍門風이니 한다면 평등하고 진실하며 간절한 말씀들이 모조리 그저 그렇고 그런 말들이 되고 말 것이다. 그저 지어 말하지 말고 손가는 대로 집어 들지만 말 것이니 그런 건 모조리 일용사일 뿐이다.
만일 모두들 이와 같다면 이는 위로 조종祖宗을 더럽히고 아래로 후학들에게 누를 끼치는 짓이다. 이 일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니 백 천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이것으로 생사를 벗어나셨고, 이것으로 열반을 증득하셨다. 너희는 범부로서 음계陰界도 벗어나지 못했으면서 제 맘대로 심식心識을 휘둘러 이리저리 추측하고선 곧 ‘모든 부처님들도 다 똑같다.’고 떠든다. 자세하고 자세하게 살펴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니 다시 훌륭한 이들을 가까이하도록 하라.
어떤 사람이 물었다.
“무엇이 무생법인無生法忍입니까?”
그러자 이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고, 혹은 눈을 감기도 하셨으며, 혹은 몸의 중심을 잃고 엎어지기도 하셨다.
대저 이 법문은 생사生死나 열반涅槃이나 무명無明이나 정각正覺 등 일체를 널리 포괄하는 것이다. 보지 못했는가? 『능엄경』99)에서 부루나富樓那가 일어나 여래께 설법을 청하자, 3종의 상속100) 이것은 생멸이라 하시고, 오음五陰ㆍ육입六入ㆍ십이처十二處ㆍ십팔계十八界ㆍ칠대七大의 성품이 모두 여래장如來藏으로서 본래 생멸이 없는데 세상 사람들이 지혜가 없어 미혹하고선 인연이라 하고 자연적으로 있는 성품이라 하지만 그저 말만 있을 뿐 도무지 참된 뜻은 없다고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무생無生의 뜻이다.
또 말씀하셨다.
“생生이 생하고 생이 생하지 않으며 불생不生이 생하고 불생이 생하지 않으니, 곧 말길이 끊어지고 마음의 작용이 사라진다. 내 분명히 너에게 말해 주리니 반드시 알아들어야 한다. 세 마리 원숭이가 한밤중에 돈을 뿌리고 다니느니라.”


006_0082_b_01L千聖不傳故所以藥山云待特牛生兒
006_0082_b_02L則向汝道洞山云待洞水逆流則向汝
006_0082_b_03L黃蘗劈脊便打歸宗見虵钁作兩段
006_0082_b_04L雲門北斗裏睦州便閉却門汾州莫妄
006_0082_b_05L普化直掇若今之學人得此正方
006_0082_b_06L有少許出家分若祇門頭戶底牆壍
006_0082_b_07L識上配對作家風門風平實絕言
006_0082_b_08L切尋常但莫作道理信手拈來盡是日
006_0082_b_09L若揔是如此玷他祖宗累他後進
006_0082_b_10L此箇事非同容易百千諸佛以此離生
006_0082_b_11L以此證涅槃你凡夫人未離陰界
006_0082_b_12L擅自以心意卜度第三○張 便言諸佛
006_0082_b_13L一般子細子細莫與麽容易更親上
006_0082_b_14L有人問如何是無生法忍作此相
006_0082_b_15L或閉目或放身便倒大凡此箇法
006_0082_b_16L該愽一切或生死或涅槃或無明
006_0082_b_17L或正覺不見楞嚴中富樓那起請如來
006_0082_b_18L爲說三種相續此爲生滅也至如五陰
006_0082_b_19L六入十二處十八界七大性皆如來藏
006_0082_b_20L本無生滅世間無知惑爲因緣及自
006_0082_b_21L然性但有言說都無實義此則無生
006_0082_b_22L義也又云生生生不生不生生
006_0082_b_23L生不生則言語道斷心行處滅我分
006_0082_b_24L明向汝道要會麽三箇猢猻夜播錢

006_0082_c_01L▼(王/○) 어떤 사람이 “삼세의 여래와 육대의 조사들께선 어떻게 사람을 제접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이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다.
학인이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화상께선 어떻게 사람을 제접하십니까?”그러자 손으로 움켜쥐더니 등 뒤로 던져 버리셨다. 학인이 절을 올리자 주장자로 쫒아 버리셨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그려 종사께 묻자 종사께선 여래장상如來藏相으로 응대하셨다.
▼(○*藏), 이 의미를 말하자면 “나는 오묘하고 밝으며 없어지지도 생기지도 않음으로써 여래장如來藏에 합하였고, 여래장은 오직 오묘한 깨달음의 밝음이어서 법계를 두루 비춘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하나가 한량없는 것이 되기도 하고 한량없는 것이 하나가 되기도 하며, 작은 것 속에서 큰 것이 나타나기도 하고 큰 것 속에서 작은 것이 나타나기도 한다.”101)라는 것이다.
그래서 동산洞山 스님께서는 “정중래正中來여, 없음(無) 가운데 길이 있어 더러운 세계와는 차이가 있다.”102)라고 하셨으며, 앙산仰山 스님께선 “내가 한 가닥 싸릿대를 가져다 모래톱에 놓았으니 집 한 채를 옮길 방도를 일러 준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운문雲門 스님께선 “불전佛殿이 삼문三門을 타고 나간다.”라고 말씀하셨으니, 무릇 종사들께서 사람들을 제접해 제창하신 것들은 다 본분사本分事 아닌 것이 없었다. 혹 정식情識에 의지해 그저 평상심이라 일컫고 현지玄旨를 논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는 모두 도를 망치고 본분사를 망각하는 짓들이다. 겸하여 나아가는 이들이 무엇을 의지해 나아갈 수 있겠는가? 그저 여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니, 이곳은 그저 생사生死의 강일 뿐인데 어찌 무생無生에 속하겠는가? 영가永嘉103) 스님께선 “만일 진실로 생生이 없다면 생하지 않는 것도 없다.”104)라고 하셨다.

▼(囗*入) 범어梵語로는 가라라歌羅邏라고 하고 결라람結羅藍이라고도 하며, 중국 말로는 응활凝滑이라 하니, 즉 태胎에 들었을 때의 첫 번째 상태이다.
또 명색名色이라고도 한다. 명색이 연緣이 되어 육입六入이 생기는데 명색에 가까울 뿐 입入이라 하기엔 완전치 않다. 무엇 때문인가? 근根과 진塵이 상대하지 않으면 입入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지금 눈앞에서 근과 진이 서로 상대되어 듣고 보고 지각해야 비로소 그걸 입入이라 한다. 그러므로 근根이 인因이 되고 진塵이 연緣이 되며, 허망한 인과 허망한 연이 허망하게 화합하여 허망한 입入이 되고,

006_0082_c_01L
▼(王/○) 有人問三世如來六代祖師
006_0082_c_02L何接人作此相對學云未審和尙以
006_0082_c_03L何接人以手掬來拋向背後學人禮拜
006_0082_c_04L乃以柱杖趂之忽有人作此相來問宗
006_0082_c_05L宗師應以如來藏相對▼(○*藏)意云我
006_0082_c_06L以妙明不滅不生合如來藏而如來藏
006_0082_c_07L唯妙覺明圓照法界是故於中一爲無
006_0082_c_08L無量爲一小中現大大中現小
006_0082_c_09L以洞山云正中來無中有路隔塵埃
006_0082_c_10L仰山云我將一條篾向中洲上向汝
006_0082_c_11L道移一院屋了也雲門道佛殿騎三門
006_0082_c_12L出去大凡宗師接物提唱莫非盡以本
006_0082_c_13L分事儻依情識純用平常及玄旨等
006_0082_c_14L此皆喪道昧却本分事兼向去人憑何
006_0082_c_15L進向不可祇住此中此處祇是生死流
006_0082_c_16L第三一張 豈屬無生永嘉云若實無
006_0082_c_17L生無不生

006_0082_c_18L
▼(囗*入) 梵語歌羅邏亦云結羅藍此云凝
006_0082_c_19L卽受胎之初分亦爲之名色名色
006_0082_c_20L爲緣故生六入但近名色未全於入
006_0082_c_21L何故根塵未對則未能入也卽今現
006_0082_c_22L前根塵相須聞見知覺方謂之入
006_0082_c_23L以根爲因塵爲緣妄因妄緣妄合爲妄
006_0082_c_24L「幼」疑「幻」{編}

006_0083_a_01L허망한 현상을 형성하고, 허망한 업業을 짓고, 허망한 과보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경에서는 “인연이 화합하면 허망한 수受가 생기고 인연이 각기 흩어지면 허망한 이름도 사라지는데, 생겼다 사라지고 왔다 가는 것이 본래 여래장이고 오묘한 진여眞如의 성품임을 전혀 모른다.”105)라고 하셨던 것이다.
만일 이 도상을 그리는 자가 있으면 그저 여상如相으로 응대하시고 혹은 卍 이런 도상으로 응대하셨으니, 과果는 인因과 떨어져 있지 않다는 의미이며 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음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의 성품이 바로 해탈이라고 말씀하셨다.”106)라고 한 뜻이다.
혹 어떤 사람이 “여래의 근根과 진塵은 무엇을 받아들이십니까?” 하고 묻자 ⴲ 이런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다.
혹 어떤 사람이 “근과 진이 허깨비와 같다면 입入이라는 것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습니까? 만일 받아들이는 것이 있다면 허깨비라고 하지 못하고, 만일 받아들이는 것이 없다면 근이라 하지 못합니다.”라고 묻자 ▼(○*非) 이런 도상을 그리셨다. 이는 “허깨비가 아닌 것도 오히려 없는데 허깨비가 어디서 생겨날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이다.

▼(囗*土)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 이 여섯 가지는 중생을 끌어다 생사生死로 들어가게 할 수 있고 여러 성인들을 인도해 열반에 들게 할 수도 있다. 이런저런 중생들이 여기에 빠져 벗어나질 못하고, 이런저런 성현들은 이를 인연해 피안에 도달한다.
말해 보라. 중생과 성현의 이익과 손해가 어디에 있는가?”
이 도상 ▼(囗*土)을 그려 응대하고 말씀하셨다.
“아, 요즘 선禪을 배운다는 자들을 보니 여러 종사宗師라는 자들에 이르기까지 다들 여기서 벗어나질 못하고서 줄줄이 모두들 이것을 얻을 바로 삼고, 증득할 바로 삼으며, 깨달을 바로 삼고, 들어갈 바로 삼고, 쓸 바로 삼는구나.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요즘 종사라는 자들은 모두들 봄이면 싹이 터 여름에 자라나고 가을이면 단풍 들고 겨울이면 시든다고 하며, 춥고 따듯하고 시원하고 뜨겁다고 하며, 큰 달은 30일이요 작은 달은 29일이라 한다. 또 봄이 오면 풀들이 저절로 푸르러진다 하고, 한 잎 떨어지면 온 천하가 가을임을 안다고 하며, 5리마다 서 있는 팻말은 성 밖에 있다 하고, 집집마다 문만 나서면 장안長安으로 통한다고들 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하고 남자는 남자요 여자는 여자며 승려는 승려요 속인은 속인이며 긴 것은 길고 짧은 것은 짧으니 일체 그대로 진실이 드러난 것이라 하며, 갖가지 시설施設이 다 선문禪門의 종지宗旨니 다시

006_0083_a_01L成妄事作妄業受妄報所以經云
006_0083_a_02L因緣和合虛妄受生因緣別離虛妄
006_0083_a_03L名滅殊不能知生滅去來本如來藏
006_0083_a_04L妙眞如性若有作此相來但以如相對
006_0083_a_05L或以卍此相對意云果不離因經云
006_0083_a_06L佛說婬怒癡性卽是解脫或有人問
006_0083_a_07L來根塵所入如何乃作此ⴲ相對之
006_0083_a_08L人問根塵如幻入從何得若有所入
006_0083_a_09L則不名幻若無所入則不名根乃作
006_0083_a_10L此▼(○*非)相意云非幻尙無幻從何有

006_0083_a_11L
▼(囗*土) 色聲香味觸六種之物能牽衆生
006_0083_a_12L入生死能引諸聖入涅槃多小衆生
006_0083_a_13L泥此而不得解脫多小賢聖因此而得
006_0083_a_14L到彼岸且道衆生聖賢利害在甚處
006_0083_a_15L作此▼(囗*土)相對之嗟見今時禪學者
006_0083_a_16L諸宗師皆出不得例皆以此爲所得
006_0083_a_17L爲所證爲所悟爲所入爲所用何以
006_0083_a_18L知其然也今之宗師皆以春生夏長秋
006_0083_a_19L變冬凋寒溫冷熱大盡三十日小盡
006_0083_a_20L二十九春來草自靑第三二張 一葉
006_0083_a_21L落知天下秋五里牌在城外家家門口
006_0083_a_22L通長安山是山水是水男是男女是
006_0083_a_23L僧是僧俗是俗長是長短是短
006_0083_a_24L切任眞現前施設盡是禪門宗旨

006_0083_b_01L특별히 이해할 것이 없다 하며, 걸음을 옮기지 않고 오묘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고 아승기겁을 거치지 않고 법신을 획득한다고들 한다.
또 신통묘용이란 물을 긷고 땔감을 나르며 양념을 넣고 채소를 고르며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이 그것 아님이 없다고들 한다. 그래서 종사라는 이들은 고인들의 시편詩篇이나 외우면서 참신한 언구라도 얻게 되면 곧 화려한 4ㆍ6변려체로 대답한다. 혹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일용사를 지목해 산하대지 초목총림과 움직이고 행하는 것들을 불사佛事라 일컫고, 달마께서 전하신 것이라 하며, 오묘한 깨달음이라 하고, 나는 지견知見을 갖췄다고들 말한다. 그러곤 곧 자기는 모든 부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데 다른 이들은 모조리 갈등 속을 헤매고 있다고 말하며 다시 더 나아가지 않고 배우는 무리들의 마음 밭을 더럽힌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뜰 앞의 잣나무107)를 들먹거리고, 여릉廬陵의 쌀값,108) 대낮에 산을 본다,109) 바위가 큰 것은 크고 작은 것은 작다,110) 푸른 비단으로 만든 부채가 시원한 바람을 잘도 일으킨다, 네가 혜초다,111) 마 껍질이 서 근이다,112) 바람의 움직임도 아니요 깃발의 움직임도 아니다,113) 문 밖 빗소리다,114) 언계偃溪의 물소리가 들리는가,115)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116)는 등의 화두를 거론하니, 이런 종류의 화두는 무수한 백 천 가지나 되어 다 거론할 수도 없다. 이는 모두 소리와 빛깔을 벗어나지 못하고서 듣고 보고 지각하는 것인데도 육근과 육진이 함께 그림자 같은 현상에서 허망하게 이를 자기의 참된 실체라 여기고 불법의 지견이라 여기니, 참으로 괴롭고 괴롭구나.
성인께서 가신 지 너무도 오래되어 성품의 바탕에서 선근善根이라곤 어느 하나 찾아볼 수 없구나. 선대의 덕 높은 종사들께서 세상에 출현하여 동시에 너의 그 많은 삿된 정식情識을 빼앗고 올바른 지혜로 제접해 불법을 끊이지 않게 하고 조사들의 햇살을 다시 빛나게 한다 해도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만일 혹 이런 거짓말로 후대 학인들을 망쳐 놓기만 하는 자라면 반드시 가혹한 과보를 받으리라. 자세히 살피고 다시 훌륭한 덕을 갖춘 이를 찾아 조사의 종지宗旨를 깊이 따져 보기를 부탁한다. 그렇게 조사들의 마음을 쉽게 여기고 스스로도 전전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쳐 조사의 도를 매몰시켜서는 안 된다.
안타깝구나, 불법이 이렇게 사그라지다니. 괴롭고 괴로운 일이로다. 쓴 소리 하고 만족스럽게 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요즘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야 하니,

006_0083_b_01L不消別作解會不動步而登妙覺
006_0083_b_02L歷僧祇獲法身神通妙用運水般柴
006_0083_b_03L香擇菜著衣喫飯無非不是者所以
006_0083_b_04L宗師多念古人詩篇事持尖新言句便
006_0083_b_05L作四六答話或指現前日用山河大地
006_0083_b_06L草木叢林擧動施爲謂之佛事謂之
006_0083_b_07L達麽所傳謂之妙悟謂之我有知見
006_0083_b_08L便謂諸佛齊肩餘者盡屬葛藤更不用
006_0083_b_09L學徒汙心田所以多擧庭前栢樹
006_0083_b_10L陵米價日裏看山石頭大底大小底小
006_0083_b_11L靑絹扇子足凉風你是惠超麻皮三斤
006_0083_b_12L不是風動不是幡動門外雨滴聲還聞
006_0083_b_13L偃溪水聲竪起一指頭如是類話無數
006_0083_b_14L百千不能盡擧此皆不離聲色聞見知
006_0083_b_15L覺根塵并影事中妄認以爲自己誠實
006_0083_b_16L佛法知見痛哉苦哉去聖大遠性根
006_0083_b_17L善根小大如何得一先德宗師出世
006_0083_b_18L一時與汝換却許多邪識以正智接之
006_0083_b_19L佛法不斷祖日重光且愚也若或以
006_0083_b_20L此誑言徒毁末代學者必招異報
006_0083_b_21L子細詳審而別求名德啇議祖宗莫祇
006_0083_b_22L麽容易師心自是展轉敎他後進沈埋
006_0083_b_23L祖道可惜佛法祇與麽消却苦事苦事
006_0083_b_24L莫怪苦口第三三張盖見不平今人如

006_0083_c_01L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구제할 수 있겠는가? ▼(囗*土), 이 도상이 바로 육진상六塵相이니 육진을 벗어나 견해를 분명히 하길 바란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스님께선 뜰 앞의 잣나무라 하고, 여릉의 쌀값이라 하며, 마 껍질이 서 근이라 하는 것들을 소리와 빛깔을 듣고 보는 가운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럼 윗대의 덕을 갖춘 존경스러운 어른들이 모두 죄인이란 말씀입니까?”
대꾸하였다.
“거 참, 그렇지 않다. 비유하자면 눈병이 난 사람이 등불을 볼 때 여러 가지 다른 색깔과 둥근 그림자를 보는 것과 같다. 이것이 등불의 병이냐, 눈의 병이냐? 만일 이것을 등불의 병이라 한다면 눈병나지 않은 사람은 왜 그런 것을 보지 못하느냐? 그러니 등불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이 눈이 병든 것이듯, 옛사람과 그 말씀의 허물이 아니라 요즘 사람들의 견해가 병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법을 보는 눈이 병들어 그 법이 달라진 것이니, 법의 허물이 아니라 법을 보는 눈의 허물일 뿐이다. 만일 법을 보는 안목을 얻어 정말 어떤 결함도 가림도 없다면 일체 모든 경계와 언어에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囗*目) 어떤 사람이 물었다.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 등은 허망한 것입니까, 진실한 것입니까?”
이에 ▼(囗*目) 이런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다.
“또 너에게 분명히 말하리라. 너는 아득한 옛날부터 항상 그것과 함께하며 잠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그것 때문에 네가 지금 범부의 낮은 지위에 머물며 아침저녁을 보내게 된 것이다. 또 그것에 결박당해 네가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자유를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너는 다시 선禪을 닦고 불도佛道를 배우는 가운데 이것을 전환시킴으로써 간섭하지 말라. 이 경계는 벗어나기 어려우니 등한히 해선 안 된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함께한 것을 어떻게 풀어헤치고 떨쳐 버릴 수 있을까? 이치에 계합한 성인이 아니라면 자신의 능력만큼 끊을 수밖에 없으니 하물며 나 같은 사람이겠는가?”
혹은 “서로 바라보지만 성품이 없는 것이 서로 엇갈린 갈대와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혹은 “어떻게 할까?” 하시곤 ⊙ 이런 도상을 그리고 말씀하셨다.
“너라면 이것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 사람이 혹 ▼(○*卍) 이런 도상으로 바꾸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물속에 들어가 보아야 키가 큰 사람을 알아본다.”

⊙ “마갈다국摩竭陀國에서 몸소 이 도를 행하셨고, 비야리성毗耶梨城에서도 이 뜻을 행하셨다.”

006_0083_c_01L若不如是如何拯濟▼(囗*土) 此相者
006_0083_c_02L是六塵之相請脫去六塵令見分明
006_0083_c_03L或人云師若以庭前栢樹廬陵米價
006_0083_c_04L麻成三斤爲聲色聞見中過患者則從
006_0083_c_05L上先德尊宿皆爲罪人也對云噫不
006_0083_c_06L譬如眼病之人見燈光有諸異色圓
006_0083_c_07L此是燈病爲是眼病若謂是燈病
006_0083_c_08L不病眼人何以不見將知非燈之咎
006_0083_c_09L眼之自病耳非古人并言敎之咎是今
006_0083_c_10L人見解自病耳法眼旣病其法卽差
006_0083_c_11L非法之過法眼之咎耳儻得法眼正無
006_0083_c_12L瑕瞖則一切萬境語言何咎之有

006_0083_c_13L
▼(囗*目) 有人問眼耳鼻舌身等妄耶眞耶
006_0083_c_14L乃作此相▼(囗*目)對又明向伊道汝從無始
006_0083_c_15L常祇相隨未曾暫離由彼故使汝
006_0083_c_16L至今位在凡下日夕又被伊牽繫使汝
006_0083_c_17L伶俜不得自在汝更於禪學佛道中
006_0083_c_18L此轉勿干渉此境難脫不是等閑
006_0083_c_19L奈多劫來相隨如何解免除非入理聖
006_0083_c_20L猶自分斷況吾輩乎或云相見無性
006_0083_c_21L同於交蘆又云作麽生乃作此相⊙云
006_0083_c_22L你爭奈這箇何其人或變作此▼(○*卍)相
006_0083_c_23L云入水方見長人

006_0083_c_24L
⊙ 摩竭陀國親行此道毗耶棃城亦行

006_0084_a_01L
또 말씀하셨다.
“어둠을 만나야 밝아지는 것이니, 석두石頭117) 스님께선 ‘어둠 가운데 밝음이 있는 것이니 밝은 모양이라고 보지 말라.’118)고 하셨다.”
어떤 사람이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지 않으셨을 땐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十 이런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다.
또 “세상에 출현한 뒤엔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 이런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다.
이런 까닭에 어떤 승려가 영운靈雲119) 화상께 “혼돈이 나뉘기 전엔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영운 스님께서 “노주露柱가 아이를 배었구나.” 하시고, “나뉜 뒤엔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조각구름이 맑은 하늘에 찍힌 것과 같다.”라고 대답하셨던 것이다.120)
어떤 학인이 이 도상을 그려와 묻자 종사께선 “사리여, 그대는 어디에서 이 노승을 보는가?” 하셨다. 그 스님이 합장하자 종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노승이 있는 곳을 보지 못하는구나.”
그러자 그 스님이 말했다.
“저는 흑산黑山 아래 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너른 땅의 흰 소는 무엇을 먹습니까?” 하고 묻자 이 도상을 그려 보이셨다.
이런 까닭에 어떤 스님이 투자投子121) 화상께 “무엇이 너른 땅의 흰 소입니까?” 하고 묻자 투자 스님께선 “쯧쯧.” 하셨고, “무엇을 먹습니까?” 하고 묻자 “먹어라, 먹어.” 하셨던 것이니,122) 무릇 먹는 것은 한맛의 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한맛의 법法을 역량에 따라 설한다.”123)라고 하셨던 것이다.
또 위산潙山 화상이 비구니가 오는 것을 보고 곧 “늙은 암소야, 네가 왔구나.” 하자, 비구니는 “오늘 오대산에 재齋가 있는데 화상께서도 가시지 않겠습니까?” 하였고, 위산 스님께선 바로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시늉을 했던 것이다.
또 어떤 속가 수행자가124) 스님들께 음식을 접대했는데 어떤 행각승이 그곳에 와 이렇게 말했다.
“행자께서는 접대하는 일이 쉽지 않겠습니다.”
행자는 말하였다.
“어려울 게 뭐 있겠습니까. 나귀나 말을 먹이는 것과 같은데.”
그러자 그 행각승은 아무 말이 없었다.
위산 스님이 또 “노승은 백년 후에 산 아래 한 마리 물소가 되리라.”라고 하자 어떤 스님이 말했다.
“저도 스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위산 스님께선 말씀하셨다.
“네가 그러겠다면 찾아올 때 한 가락 풀을 물고 오너라.”
갑자기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그리고 묻자 종사께선 그저 그 안쪽 면에 우牛 자를 써서 응대하셨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해야 오온개공五蘊皆空의 도리를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006_0084_a_01L此旨又云遇暗卽明石頭云當暗中
006_0084_a_02L有明勿以明相覩有人問諸佛未出世
006_0084_a_03L時如何作此相十對之云出世後如
006_0084_a_04L第三四張 作此相⊙對之所以僧
006_0084_a_05L問靈雲和尙云混沌未分時如何云露
006_0084_a_06L柱懷胎分後如何云如片雲㸃大淸
006_0084_a_07L如有學人作此相來問宗師應云闍棃
006_0084_a_08L你向什麽處見老僧其僧合掌宗師云
006_0084_a_09L你未見老僧在僧云某甲不在黑山下
006_0084_a_10L 有人問露地白牛飮噉何物乃以
006_0084_a_11L此相示之所以僧問投子和尙如何是
006_0084_a_12L露地白牛投子云叱叱飮噉何物
006_0084_a_13L喫喫大凡所食無過一味草料故云
006_0084_a_14L一味之法隨力爲說潙山和尙見尼
006_0084_a_15L來便云老牸牛你來也尼云今日臺
006_0084_a_16L山有齋和尙還去無潙山便放身倒勢
006_0084_a_17L有俗行者接待僧喫食有行脚僧到彼
006_0084_a_18L云行者接待不易行者云有什麽不易
006_0084_a_19L譬如餧驢餧馬僧無語潙山又云
006_0084_a_20L僧百年後向山下作一頭水牯牛
006_0084_a_21L云某甲隨和尙來還得麽山云你若來
006_0084_a_22L含取一莖草來忽有人作此相來
006_0084_a_23L宗師但去裏面書牛字對之

006_0084_a_24L
有人問作麽生得五蘊皆空乃以

006_0084_b_01L이 도상을 그려 응대하였다.
혹 “윗대 어떤 분으로부터 이 도상을 얻으셨습니까?”라고 하자 “▼(○*音), 오직 이 분만 얻었다.”라고 대꾸하셨다.
“모르겠습니다. 뒤에 또 얻을 사람은 없겠습니까?”
말씀하셨다.
“내 너에게 말해 주는 건 사양치 않겠으나 네가 믿지 않을까 걱정이구나.”
“저는 깊이 믿습니다. 화상께선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牛) 이런 도상을 그려 보이셨다.
학인이 물었다.
“집에 있는 자(在宅者), 집을 나온 자(出宅者), 너른 땅에 있는 자(露地者), 다른 길을 가는 자(異路者), 돌아오는 자(廻來者)를 모르겠습니다. 이는 어떤 부류들입니까?”
대답하셨다.
“너는 배우고 묻는 자세가 매우 자세한 것이 마음이 거친 자는 아니구나. 요즘 배우는 자들은 전부 희고 검은 것도 구분하지 못하는데 말이야. 내 너에게 설명해 주리라. 집에 있는 자, 집을 나온 자, 다른 길을 가는 자는 일부만 얻고 아직 완전하진 못한 것이다. 너른 땅에 있는 자, 돌아오는 자라야 비로소 완전한 것이다. 너는 보지 못했느냐? 선재善財와 용녀龍女는 한 생각, 한 생애에 이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또한 우리도 믿고 향할 뿐이니, 그 다섯 놈들을 밤낮으로 잊지 않고 찾아다닌다고 어떻게 만난다고 기약할 수 있겠느냐. 그 큰 입을 벌려 그윽하고 맑은 물을 뒤흔들지 말라. 한 어미에게서 난 동기간도 알아보지 못하는데 하물며 다른 일이겠는가. 쯧!”

▼(口+㞢) 혹 어떤 사람이 “화상께선 어떤 분을 찾아뵙고 그런 도리를 얻었습니까?” 하고 묻자 이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다.
학인이 말했다.
“백장 선사가 마조 대사를 재차 참례했을 때도 이렇진 않았습니다.”
말씀하셨다.
“너는 좋고 나쁜 것을 전혀 모르는구나. 저 옛날 콧구멍 속의 ‘아얏’ 소리125)로 너를 때릴 수 없구나.”
학인이 말했다.
“한 가닥 길을 터서 제게 더 설명해 주십시오.”
“저 백장百丈ㆍ황벽黃蘗ㆍ임제臨濟ㆍ삼성三聖ㆍ흥화興化ㆍ남원南院 등 여러 훌륭한 어른들도 그저 이 기틀을 사용하셨을 뿐인데, 요즘은 이를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劒이라 하고, 땅에 웅크린 사자라 하며, 물고기를 유인해 낚는 풀줄기라 하며, 한번 물어 보는 행위라고들 한다. 혹은 먼저 관조하고 뒤에 작용하는 것이라 하고, 혹은 먼저 작용하고 뒤에 관조하는 것이라 하며, 혹은 동시同時라 하고, 혹은 점검을 마쳤다 하며, 혹은 객과 주인이 둘이다 하고, 혹은 객과 주인이 서로 바뀌었다고들 한다. 혹은 그것을 삼현三玄과 삼요三要라 하며

006_0084_b_01L此相對之或云從上什麽人得此相
006_0084_b_02L云▼(○*音) 唯此人得之未審後來還有人
006_0084_b_03L得也無云我不辭向汝道恐你信之不
006_0084_b_04L某甲深信請和尙指出遂作此相
006_0084_b_05L▼(○*牛)示之學云在宅者出宅者露地者
006_0084_b_06L異路者廻來者未審是何等類對云
006_0084_b_07L你也學問稍是子細不是麤心人
006_0084_b_08L之學者第三五張 並不分緇素我今爲
006_0084_b_09L汝說之且在宅者出宅者異路者
006_0084_b_10L分得未全露地者廻來者方全你不
006_0084_b_11L見善財龍女一念一生能辦此事且吾
006_0084_b_12L輩信向而已其奈五箇漢子朝暮相逐
006_0084_b_13L不忘云何而可希冀莫開大口幽淸
006_0084_b_14L擾動同分生機猶自未識豈況餘事
006_0084_b_15L▼(口+㞢) 或有人問和尙叅見什麽人便得
006_0084_b_16L與麽作此相對之學云百丈再叅見
006_0084_b_17L馬祖莫如此不云你大不識好惡
006_0084_b_18L鼻孔裏1)▼(尸/冋)未能打得汝學云放一線道
006_0084_b_19L容某甲請益只如百丈黃蘗臨濟三聖
006_0084_b_20L興化南院等諸尊宿皆用此機今之以
006_0084_b_21L謂金剛王寶釼踞地師子探竿影草
006_0084_b_22L作問行或先爲照後爲用或先爲用後
006_0084_b_23L爲照或同時或點破或賓主各二
006_0084_b_24L賓主互換或謂之三玄三要爲一家門

006_0084_c_01L한 가풍家風의 정종正宗과 체용體用으로 여기는데, 이런 여러 가지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부디 의심을 풀어 주시고, 요즘 사람들이 옥과 돌을 가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 상법象法과 말법末法의 끝자락이라 불법이 아득히 추락하였으니, 지금 천하에 불법이 떨치지 못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또 선대의 덕스럽고 훌륭한 어른들께서 세우신 법의 깃발은 비단 이런 법문法門뿐만 아니라 나아가 한 마디 말과 반 구절, 움직임과 보이신 행동, 한 방의 방망이질과 외마디 고함까지도 기연에 응해 제접하셨던 것이다. 마치 새가 하늘을 높이 날아가는 것과 같아 비록 우는 소리는 들리나 어디서 들려오는지 찾을 수가 없고, 비록 날아가긴 하나 그 자취를 따져 볼 수가 없는 것과 같다. 또 울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고 날아가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으니, 울며 날아갈 때 그 소리와 자취는 어디에 있는가?
근대에 옛 자취를 이어 스승이 된 자들은 식견과 법도가 분명치 못하고 정견正見을 깨닫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왜 옛 성인들의 법에 대해 잘못된 알음알이를 일으켜 이런 여러 가지 길을 만들고 차별을 드러내면서 그 길을 열고 이어가며 ‘고덕들은 진실로 이와 같았다.’고 떠드는 것일까?
괴롭고 괴롭구나. 말세의 배우는 이들은 선근이 희박하여 이런 종사를 만나면 곧 만 길 구덩이 속으로 떠밀리게 되니 언제 벗어날 수 있으리오. 이런 행태의 종사들이 지옥과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또 어떤 사람이 떨어지리오. 그래서 법을 비방한 죄는 경문에도 분명히 나와 있는 것이다.
너는 이런 견해들을 듣게 되거든 빨리 떠나거라. 만약 이미 배웠다면 빨리 그걸 버리고 다시 바르고 참됨을 구하도록 하라.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고 불법은 만나기 힘든 것이니 천 겁을 지난다 해도 듣기 어렵다. 결단코 잘못을 뉘우쳐야만 하니 등한히 하지 말고 자세하고 자세히 하라.”

C 어떤 관원이 스님께 설법을 청하자 이 도상으로 응대하셨다.
관원이 말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대답하셨다.
“‘적멸의 도량에서 움직이지 않고 녹야원에서 노니셨다.’126)는 말을 보지 못했소? 이제 녹야원의 법문을 그대에게 보인 것이오.”

006_0084_c_01L風之正宗體用此等諸般未識如何
006_0084_c_02L甲未曉願決所疑使今之人知是玉
006_0084_c_03L噫象末之季佛法淪墜使今天下
006_0084_c_04L之不振者非不由此也且先德尊宿
006_0084_c_05L建立法幢非但此之法門乃至一言半
006_0084_c_06L擧動施爲一棒一喝應機接物
006_0084_c_07L如飛鳥高空雖叫唳其聲不可尋逐
006_0084_c_08L雖飛行其跡不可見討又不可謂之不
006_0084_c_09L叫唳不可謂之不飛行第三六張飛行
006_0084_c_10L叫唳聲跡何在近代繼續先蹤爲師匠
006_0084_c_11L者識度不明正見不曉何於古聖法上
006_0084_c_12L悞生知解作此等諸般路布差別
006_0084_c_13L徑開張以謂古德眞實如此苦哉痛哉
006_0084_c_14L末代進學者善根微薄遭逢此之宗師
006_0084_c_15L被伊送向萬丈深坑何時得出此㨾
006_0084_c_16L宗師不墮地獄惡道更是何人所以
006_0084_c_17L謗法之罪經有明文汝聞此等見解
006_0084_c_18L速須離却若已學了速須葉捨別求正
006_0084_c_19L時不待人佛法難値千劫難聞
006_0084_c_20L須改悔不是等閑子細子細

006_0084_c_21L
C 有官員問請師說法乃以此相對之
006_0084_c_22L官員云何謂如此對云不見道不動
006_0084_c_23L寂場而遊鹿苑今以鹿苑法門示官
006_0084_c_24L「▼(尸/冋)」恐是「屙」之誤刻{編}.

006_0085_a_01L갑자기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그려 종사께 묻자 종사께서는 응대하여 원을 만드셨다.
“그대가 저것에게 말해 보시오.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라고.”

▼(○*堅) 혹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대불정수능엄왕大佛頂首楞嚴王이란 이름의 삼마제三摩提는 온갖 행行을 구족한 것으로서 시방의 여래께서 모두 이 한 문을 통해 벗어나신 오묘하고 아름다운 길이다.’127)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이에 이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다.
그가 말했다.
“기이하고 오묘합니다. 여래께선 인간과 천상에서 볼 수 없는 정수리에서 백가지 보배의 광명을 비추시고 화불化佛을 통해 널리 설법하셨습니다. 일곱 곳에서 마음을 밝히심에 있어선 진실도 아니고 허망도 아니라 하셨고, 두 가지 근본 또한 진실도 아니고 허망도 아니라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허망에서 진실을 판별하시니 오음五陰ㆍ육입六入ㆍ십이처十二處ㆍ십팔계十八界ㆍ칠대七大의 성품이 모두 여래장이라 하셨으며, 다음엔 진실에서 허망을 판별하시니 바로 세 가지 상속相續입니다. 그 후에야 진실과 허망이 화합하여 벗어남이란 곧 그름을 벗어남이고 옳음에 즉함이란 즉함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오탁五濁ㆍ사대四大ㆍ육근六根ㆍ이십오법二十五法ㆍ칠취七趣ㆍ오위五位ㆍ십이류생十二類生ㆍ오종관행五種觀行ㆍ오십마경五十魔境이 모두 이 도상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의 선정과 지혜의 근본입니다. 그래서 ‘성각性覺과 본각本覺은 시방세계 부처님의 어머니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도상을 그려 묻는 경우엔 그저 비환상非幻相인 ▼(○*幻)로 응대하셨으니, 그 이유를 말하자면 “허깨비가 아닌 것도 오히려 생기지 않는데 하물며 허깨비가 어떻게 있겠는가.” 하는 의미이다. 혹은 의어意語 ▼(○*墨)로 응대하셨다.

개開 어떤 스님이 “석가노인과 육대의 조사들은 어떤 일을 부촉하셨습니까?”라고 묻자 이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으니, 3ㆍ7일 이후의 일이라는 뜻이다.128)
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리菩提의 도량을 선두로 법화法華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앞의 일을 보인 것이니, 꽃을 들고 미소를 지으신 일뿐만 아니라 대유령大庾嶺에선들 어찌 이것을 뛰어넘으리오.”
이 도상을 그리는 사람이 있으면 열반상涅槃相으로 응대하셨으니, 그 의미는 ‘땅에서 넘어졌다.’는 것이다.

폐閉 가섭 존자께선 계족산雞足山에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 미륵을 기다렸다가 가사를 전하고, 그런 뒤에 신변神變을 나타내 천화하면 삼매의 불꽃이 그 몸을 태워

006_0085_a_01L忽有人作此相來問宗師宗師應爲
006_0085_a_02L圓却子向伊道日面佛月面佛

006_0085_a_03L
▼(○*堅) 或有人問三摩提名大佛頂首楞嚴
006_0085_a_04L具足萬行十方如來一門超出
006_0085_a_05L莊嚴路作麽生乃作此相對之彼云
006_0085_a_06L奇哉妙哉如來於無見頂中放百寶光
006_0085_a_07L化佛宣說以至七處徵心非眞非
006_0085_a_08L二種根本非眞非妄然後從妄辨
006_0085_a_09L五陰六入十二處十八界七大性
006_0085_a_10L如來藏次復從眞辨妄三種相續
006_0085_a_11L乃眞妄和合離卽離非是卽非卽
006_0085_a_12L濁四大六根二十五法七趣第三七張
006_0085_a_13L五位十二類生五種觀行五十魔境
006_0085_a_14L皆不離此相者諸佛寂照之根本
006_0085_a_15L以云性覺本覺十方佛母如有作此相
006_0085_a_16L但以非幻相對之▼(○*幻)所以云非幻
006_0085_a_17L尙不生幻法云何有或以意語對之▼(○*墨)
006_0085_a_18L僧問釋迦老子六代祖師俯爲何
006_0085_a_19L作此相對之者三七日後或曰菩
006_0085_a_20L提場爲首至于法華示其前事非唯
006_0085_a_21L拈花微笑大庾嶺頭豈越玆乎有人作
006_0085_a_22L此相來以涅槃相對之意云因地而倒
006_0085_a_23L迦葉於雞足山入滅盡定待彌勒
006_0085_a_24L傳付衣後現神變已化三昧火焚身

006_0085_b_01L적멸로 돌아간다고 했다. 고래의 천 성인께선 임종에 닥쳐 결국 이 도상으로 돌아가셨다.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그려 종사께 묻자 㞢 이런 도상으로 응대하셨다.
그리고 대꾸하셨다.
“그렇고 또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은 것이 그런 것이다. 법에 머물지 말고 법 아닌 것에도 머물지 말라. 일체 현성들께선 모두 무위법無爲法으로 차별을 보이셨던 것이다”
또한 말씀하셨다.
“적정하면서 항상 관조하고 관조하면서 항상 적정하다.”

▼(○*万) ‘부처님의 수명을 나타내는 상(佛壽量相)’이니 산의 무게와 바다의 물방울 수, 땅의 티끌 수와 허공의 양으로도 비유할 수 없다.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5백 천 만 억 나유타 아승기 세계에서 티끌 하나를 가져와 5백 천 만 억 나유타 아승기 세계 밖에 그 하나를 떨어뜨리는데, 이와 같이 계속하여 제대로 떨어뜨리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며 그 넓은 세계를 모두 티끌로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티끌 하나를 옮기는데 걸리는 시간을 1겁으로 계산해도 내가 실재로 성불한 후 보낸 시간은 그 수보다 많은 한량없는 백 천 억 겁이다. 그 사이에 나는 연등불 등에게 설법하기도 했느니라.”
혹 “석가불釋迦佛께선 언제 멸도하셨습니까?” 하고 물을 경우 이 도상으로 응대하셨다. 혹은 본本 자를 써서 응대하셨고, 혹은 적迹 자를 써서 응대하기도 하셨다. 혹은 “근본이 높고 자취가 낮으며, 근본이 낮고 자취가 높다.”라고 말씀하셨다.

‘공과 불공, 유와 불유의 상(空不空有不有相)’이다.
요즘 배우는 이들은 일체의 말과 마음의 상태에 막히고 빠져 사事와 이理를 나누고, 보고 듣고 지각한 온갖 경계를 나와 나의 것이라 하며, 88견으로 10계界니 100계界니 한다. 각 집안의 말을 세워서는 대답하고 맞받아치며 객과 주인으로 주관과 객관을 표현하고, 고기와 토끼를 잡는 통발과 그물이라 하며, 성인과 범부의 계위를 가풍에 귀속시키고, 종지가 오고 감에 깨끗하고 더러움을 구별하며, 법法을 방棒과 할喝로 표현하고, 기연을 맞아 대어代語와 별어別語를 늘어놓으며, 질문을 분석해 득실을 따진다. 스승에게서 제자로 법을 주고받으며 셀 수도 없는 백 천 가지로 교화의 사事와 이理를 세우는데 어느 하나 생각으로 확정짓지 않은 것이 없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여 이해를 얻고선 곧 “나는 불법의 종지宗旨와 조사들의 요묘要妙를 얻었다.”고 말한다.
아,

006_0085_b_01L歸于寂滅千聖化緣逗誘終歸此相
006_0085_b_02L人作此相問宗師應以此相㞢對之
006_0085_b_03L與麽又不與麽不與麽却與麽
006_0085_b_04L住於法亦不住非法一切賢聖皆以
006_0085_b_05L無爲法而有差別亦云寂而常照
006_0085_b_06L而常寂

006_0085_b_07L
▼(○*万) 佛壽量相山斤海滴地塵空界
006_0085_b_08L可爲喩又云五百千萬億那由他阿僧
006_0085_b_09L祇世界持以爲塵過五百千萬億那由
006_0085_b_10L他阿僧祗世界外下一點如是展轉
006_0085_b_11L與不點盡抹爲塵一塵一劫我實成佛
006_0085_b_12L已來復過是數無量百千萬億於其中
006_0085_b_13L或說然燈佛等或有問釋迦佛幾時
006_0085_b_14L滅度以此相對或書本字對第三八張
006_0085_b_15L或書迹字對或云本高迹下本下迹高
006_0085_b_16L 空不空有不有相今之學者滯泥
006_0085_b_17L一切言句及意地行相事理差別
006_0085_b_18L聞知覺萬境我我所八十八見十界
006_0085_b_19L百界建立門庭語句答對報酬賓主
006_0085_b_20L能所筌罤魚兎聖凡行位部屬門風
006_0085_b_21L宗旨去來淨穢相狀法相棒喝對機代
006_0085_b_22L辨問得失嗣續傳授無數百千
006_0085_b_23L化事理無不用意思措定誠實作解作
006_0085_b_24L便云我得佛法宗旨祖師要妙

006_0085_c_01L지혜의 덕으로 열심히 궁구하지만 이는 모조리 함이 있고, 지음이 있고, 머묾이 있고, 얻음이 있고, 깨달음이 있고, 들어감이 있는 것에 집착한 것이다. 모두 법 가운데 큰 병이요, 태어나고 죽게 하는 큰 인연이요, 눈을 가리는 큰 티끌이니 진실로 금침金針이 아니면 뽑아 버릴 수가 없다. 게다가 공견空見까지 있으니 낱낱이 기술할 수 없을 정도이다.
경에서 “두 변을 절대로 수립하지 말고 중도에도 굳이 안주하려 말라.”129)라고 말씀하셨건만 저들이 범부비구凡夫比丘인 것을 어찌하리오. 한량없는 세월 동안 육근과 육진과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어 법에 자재함을 얻지도 못했으면서 “나는 훌륭한 성인의 법을 얻었다.”라고 큰 거짓말을 일삼으니, 이 죄는 가볍지 않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으면 이런 도상을 보여 주셨다.

▼(○*王) 일체 세간과 출세간이 ‘이것(是)’과 ‘이것 아님(不是)’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경의 첫머리에서 “이와 같이(如是)”라고 하고, 또 “이것이 모든 법이다.”, “이 법이 법의 지위에 머문다.”130)라고 한 것이다. 세속에서는 “이것은 높고 이것은 낮으며, 이것은 남자고 이것은 여자다.” 등등으로 말한다. 또 경에서는 “색色도 아니요 공空도 아니며, 눈ㆍ귀ㆍ코 등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는 것에 즉하고, ‘그렇지 않다’는 것에 즉하면 그렇다는 것도 한마디 말일 뿐이요, 그렇지 않다는 것도 한마디 말일 뿐이며, 그러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도 한마디 말일 뿐이요,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것도 한마디 말일 뿐이다. 마치 그림자가 몸을 따르는 것과 같아 ‘그것’도 없고 ‘이것’도 없으며 ‘그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닌 것’도 없다. ‘그것’ 역시 스스로 ‘그것’이요 ‘이것’ 역시 스스로 ‘이것’이니, 몸을 잊고서 그림자를 쫓지도 않고 그림자를 버리고서 몸을 찾지도 않는다. 몸과 그림자 두 가지를 모두 잊으면서 몸과 그림자를 잊지 않는 것을 이 도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석두石頭 스님께선 “차라리 영겁토록 윤회할지언정 여러 성인들의 해탈은 구하지 않습니다.”131)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王) 어떤 스님이 고덕古德께 물었다.132)
“온갖 문이 모두 열렸을 때는 묻지 않겠습니다. 온갖 문이 모두 닫혔을 때는 어떻습니까?”
고덕께서 말씀하셨다.
“집안일은 어쩌고?”
대답했다.
“누가 그와 마주치겠습니까.”
뒷날 숙덕宿德께서 “누가 그 금침金針을 알아볼까.”라고 하셨다.
말씀하기를 “아내도 보고 싶어 하지 않으니 옥전玉展이 밤이면 쓸쓸하구나.”라 하고, 혹은 “무례해선 안 된다.”라고 하셨다.
혹 어떤 사람이. “무엇이 본래 근원입니까?” 하고 묻자

006_0085_c_01L以智德窮硏盡是著有爲有作有住有
006_0085_c_02L有悟有入皆爲法中大病生死大
006_0085_c_03L眼之大翳苟非金針無以挑去
006_0085_c_04L有空見不能細述雖經云二邊純莫
006_0085_c_05L中道不須安其奈凡夫比丘無量
006_0085_c_06L劫來根塵意地難捨故於法上不得自
006_0085_c_07L云我得上人法成大妄語此過非
006_0085_c_08L若有人問作麽生乃以此相示之
006_0085_c_09L明 一切世間及出世間不出是與不
006_0085_c_10L故經首云如是又云是諸法是法住
006_0085_c_11L法位世俗云是高是下是男是女等
006_0085_c_12L又經云非色非空非眼耳鼻等是卽
006_0085_c_13L非卽是亦一口非亦一口是不是亦
006_0085_c_14L一口非不非亦一口似影隨形無彼
006_0085_c_15L無此無非彼非此彼亦自彼第三九張
006_0085_c_16L此亦自此不忘形而就影不棄影而求
006_0085_c_17L身影兩忘不忘身影以此相而示
006_0085_c_18L可思也故石頭云寧可永劫沈淪
006_0085_c_19L不求諸聖解脫

006_0085_c_20L
▼(○*王) 僧問古德云萬戶俱開卽不問
006_0085_c_21L戶俱閉時如何古德云堂中事作麽生
006_0085_c_22L云誰人接得渠後宿德云誰人識得渠
006_0085_c_23L金針云渾家不喜見玉殿夜蕭條或云
006_0085_c_24L不得無禮或有人問如何是本源

006_0086_a_01L이 도상을 그려 보여 주셨다.
“결국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자 손으로 세 번 터셨다.
이런 까닭에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모든 법은 하나로 돌아간다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하고 물었을 때, 조주 스님께서 “내가 청주에서 지낼 때 삼베옷 한 벌을 지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 반이니라.”라고 하셨던 것이다.133)
혹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그려 종사께 물으면 종사께선 차수叉手로 응대하셨다.

▼(囗*○) 사事 가운데 이理가 있고 이 가운데 사가 있으니, 사는 있는데 이가 없는 경우는 없고 이는 있는데 사가 없는 경우도 없다. 사로 본다면 하나가 곧 일체요, 이로 본다면 일체가 곧 하나이다. 하나가 곧 일체이지만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늘어나는 것도 아니며, 일체가 곧 하나이지만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줄어드는 것이 아니므로 이가 저절로 그윽이 감응하고, 느는 것이 아니므로 사가 저절로 걸림이 없게 된다. 이와 사의 도道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따져서 그 끝을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곧 만 가지 변화와 유有ㆍ무無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 도상을 그려 오면 스님께선 ‘이도 아니고 사도 아닌 상(非理非事相)’ 으로 응대하셨다.

○ 물었다.
“이 법문에서 무엇을 암기暗機라 하고, 무엇을 자학字學이라 하며,134) 무엇을 의해義海라 하고, 무엇을 묵론黙論이라 하고, 무엇을 자의문字義門이라 하고, 무엇을 원상圓相이라 하고, 무엇을 의어意語라고 합니까? 또 이 일곱 가지는 같다고 해야 합니까, 다르다고 해야 합니까?”
이에 이런 도상을 그려 응대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암기暗機란 음성과 언어를 분명히 사용해 대답하지 않고 도상으로만 보여 주는 것인데, 곧 사와 이, 의도意度와 현묘玄妙를 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학字學이란 문자로 그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앙산 스님께 어떤 범승梵僧이 찾아와 ‘글자는 아십니까?’ 하고 묻자 앙산 스님이 ‘조금은.’이라고 대답하시고, 범승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나가자 앙산 스님께서 땅에 한 획을 그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006_0086_a_01L此相示之畢竟事如何以手拂三拂
006_0086_a_02L所以僧問趙州萬法歸一一歸何所
006_0086_a_03L云我在靑州作一領布衫重七斤半
006_0086_a_04L有人作此相來問宗師宗師應叉手對
006_0086_a_05L

006_0086_a_06L
▼(囗*○) 事中有理理中有事未有事而無
006_0086_a_07L理者未有理而無事者事則一卽一切
006_0086_a_08L理則一切卽一一卽一切非減非增
006_0086_a_09L一切卽一非增非減非減故理自玄應
006_0086_a_10L非增故事自無涯理事之道非心思口
006_0086_a_11L可盡其終極也則萬化有無莫得然
006_0086_a_12L有人作此相來以非理非事相
006_0086_a_13L對之

006_0086_a_14L
○ 問此法門云何謂之暗1)云何謂
006_0086_a_15L之義海云何謂之默論云何謂之字
006_0086_a_16L義門云何謂之圓相云何謂之意語
006_0086_a_17L此七種呼喚同耶異耶乃作此相對之
006_0086_a_18L第四○張

006_0086_a_19L
乃曰暗機者不明用音聲語言答對
006_0086_a_20L以相而示之則事理意度玄妙非不
006_0086_a_21L盡也

006_0086_a_22L
字學者以文字現其意如仰山有梵僧
006_0086_a_23L來問還識字否山云隨分梵僧從東
006_0086_a_24L邊過西邊仰山於地上畫一畫後不盡

006_0086_b_01L그 다음 얘기를 다 거론하진 않겠다.
의해義海란 또 앙산 스님께서 ‘깨달음의 바다가 변해 뜻의 바다가 되니, 대저 이 법문의 뜻과 이치는 깊고도 아득해 끝이 없고 한계가 없으며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으니, 이는 마치 큰 바다와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따라서 의해라 한다.
묵론黙論이란 첫째, 음성이나 설명ㆍ인연ㆍ비유ㆍ방棒ㆍ할喝 등으로 밝히지 않고 모나거나 둥근 여러 종류의 도상을 보여 주는 것이다. 둘째, 모든 법은 본래부터 치우친 적도 없고 둥근 적도 없으며, 그런 적도 없고 그렇지 않은 적도 없으며,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음성과 언어로 미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즉 일체의 시설과 기연에 응해 제창하는 것들이 모두 이 뜻이 아니다. 따라서 묵론이라 한다.
자의문字義門이란 『반야경般若經』의 42자, 혹은 36자, 혹은 52자, 혹은 24자와 같은 것들이니, 여러 경마다 다 다르다. 이른바 아阿로 시작해 차茶로 끝나는 것을 비롯해 여러 경의 신주장구神呪章句를 말하니, 혹은 한 자이기도 하고 혹은 셋, 혹은 여러 자로 이루어진 구이기도 하며, 혹은 『승가타경僧伽吒經』, 혹은 『마니달경摩尼達經』 등이다. 한 자 한 자 모두 미묘하고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해탈의 법문이므로 이를 암송하는 자는 모두 유위有爲의 선근과 과보를 얻게 된다.
원상이란 모난 것도 아니요 둥근 것도 아니며, 모나지 않고 둥글지 않은 것도 아니다. 또 원을 이爾라고도 부르니 곧 일체 성인과 범부, 의보依報와 정보正報, 이理와 사事, 듣고 보며 지각함, 근根과 진塵, 음陰과 처處를 비롯해 눈과 귀가 도달하고 도달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가 이 상相이다. 그러나 학자들이 이를 깨닫지 못해 결국 모나고 둥글게 형태를 변화시키고 왜곡되게 이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상을 ‘이爾’라고 하는 것이다.
의어意語란 마음속으로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 언어와도 다르고 문답과도 상관없다. 아는 자라면 한번 보고 곧 깨닫지만 모르는 사람이라면

006_0086_b_01L擧云云

006_0086_b_02L
義海者亦仰山云覺海變爲義海
006_0086_b_03L此門義理深邃幽遠無涯無際廣大用
006_0086_b_04L而無盡其若大海故云義海

006_0086_b_05L
默論者一則不明以音聲說授因緣比
006_0086_b_06L喩棒喝等以方圓多種相示之二以諸
006_0086_b_07L法從本以來未嘗偏未嘗圓未嘗是未
006_0086_b_08L嘗不是非可指非可授非音聲語言所
006_0086_b_09L卽一切施爲應機提唱俱非此旨
006_0086_b_10L故云默論

006_0086_b_11L
字義門者如般若經四十二字或三
006_0086_b_12L十六字或五十二字或二十四字
006_0086_b_13L經皆不同所謂先阿後茶等以至諸經
006_0086_b_14L神呪章句或一字三或多字句或僧伽
006_0086_b_15L或摩尼達字字皆是微妙不思議解
006_0086_b_16L脫法門所以誦之者皆獲有爲善根報
006_0086_b_17L

006_0086_b_18L
圓相者非方非圓非不方不圓且以
006_0086_b_19L圓爲號爾則一切聖凡依正事理
006_0086_b_20L見知覺根塵陰處盡眼耳所到不到
006_0086_b_21L皆相也學者旣不曉遂以方圓變態
006_0086_b_22L而曲巧示之所以謂圓相爾第四一張
006_0086_b_23L意語者可以意中玄解不同語言問答
006_0086_b_24L除非知者一見便曉其不知者徒自

006_0086_c_01L우두커니 서 있게 될 뿐이다.
이상의 여러 법문法門을 배우는 자들은 잠깐 보거나 잠깐 듣고서 말해서는 안 되니, 뒤얽힌 견해로 비방만 일삼게 되리라. 그대들은 배움도 깊지 못한데 하물며 불도의 드넓고 끝이 없는 법문과 성품의 바다이겠느냐.
옛 성현들께선 백 천 겁 동안 부처님과 보살을 가까이하며 지식을 섭렵하고도 오히려 보리를 증득하지 못했는데 지금의 범부들이겠는가. 그렇다고 앞에 큰일이라도 닥친 양 허둥대서도 안 되고 끙끙대며 어리둥절해서도 안 되니, 식정識情을 짊어진 자는 반드시 스스로 자세히 살펴야 한다.”

54. 법창 의우法昌倚遇와 대녕 관大寧寬의 거량
법창 우法昌 遇135) 선사에게 대녕 관大寧 寬 선사가 찾아오자 우遇 선사가 땅에 ▼(○*寸) 이런 도상을 그리고는 곧장 괭이를 끌고 나가 버렸다. 다음 날 법좌에 오르기 전에 관寬 선사에게 물었다.
“어제 그대는 무슨 생각을 했는가?”
그러자 관 선사가 ▼(○*牛) 이런 도상을 그리더니 곧바로 지워 버렸다.
우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관선두寬禪頭란 이름 아래 헛된 자는 없구먼.”
그러고는 법좌에 앉아 말씀하셨다.

忽地晴天霹靂聲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고
禹門三級浪崢嶸  우문禹門 세 계단엔 물살이 험난한데
幾多頭角爲龍去  그 몇이나 뿔이 돋아 용이 되어 떠났던가
鰕蟹依前努眼睛  새우와 게들 여전히 눈알만 멀뚱멀뚱

55. 황룡 혜남黃龍慧南이 법창 의우를 찾아가 거량하고 주고받은 도상과 게송
남南 선사가 게송을 지었다.136)

頭戴華巾離少室  화건華巾을 머리에 쓰고 소실봉少室峯을 떠나고
手攜席帽出長安  석모席帽를 손에 들고 장안長安을 출발해
鷲峯峯下重相見  영취산 봉우리 아래서 그댈 다시 만나니
鼻孔元來揔一般  콧구멍은 원래 모두 똑같았네

그리고 이런 도상을 그려 보이자 우遇 선사가 화답했다.

葫蘆棚上掛冬瓜  조롱박 시렁 위에 동과冬瓜를 걸어 놓고
麥浪堆中釣得鰕  보리 물결 언덕에서 새우를 낚네.
誰在畫樓沽酒處  누가 있어 술을 파는 저 화려한 누각에서
相邀來喫趙州茶  서로 만나 조주趙州의 차를 실컷 마셔 볼까.

그리고 이런 도상을 화답하자 남 선사가 말했다.

鐵牛對對黃金角  무쇠 소는 짝짝이 황금 뿔이요
木馬雙雙白玉蹄  나무 말은 쌍쌍이 백옥의 발굽
爲愛雪山香草細  설산의 부드러운 향초 맛을 좋아해
夜深乘月過前溪  깊은 밤 달을 타고 앞개울을 건너네

그리고 이런 ▼(○*─) 도상을 그려 보이자 우 선사가 화답했다.

玉麟帶日離霄漢  옥빛 기린 해를 꿰차고 하늘을 떠나고
金鳳衘花下綵樓  금빛 봉황 꽃을 물고 누각에 내려앉네
野老不嫌公子醉  촌 늙은인 젊은이의 취기 밉지가 않아
相將攜手御街游  서로 손을 맞잡고 거리를 누비네.

그리고 이런 ○ 도상을 그려 화답했다.

56. 명교 계숭明敎契嵩의 법문
명교 숭明敎 崇137) 화상께서 말씀하셨다.

006_0086_c_01L佇立已上諸法門學者乍見乍聞
006_0086_c_02L可謂之葛藤見解而便起謗蓋汝學力
006_0086_c_03L未深況佛道廣大無邊法門性海古聖
006_0086_c_04L經百千劫近佛菩薩知識歷學尙未證
006_0086_c_05L菩提今凡夫人且莫草草2)▣大有
006_0086_c_06L事在莫訝忉忉負識者必自詳委耳

006_0086_c_07L
法昌遇禪師大寧寛禪師至遇畫地作
006_0086_c_08L此▼(○*寸)相便曳钁出翌日未陞座謂寛曰
006_0086_c_09L昨日公按如何寛畫此▼(○*牛)相卽抹撒之
006_0086_c_10L遇曰寛禪頭名下無虛人乃坐曰忽地
006_0086_c_11L晴天霹靂聲禹門三級浪崢嶸幾多
006_0086_c_12L頭角爲龍去鰕蟹依前努眼睛南禪師
006_0086_c_13L作偈曰頭戴華巾離少室手攜席帽出
006_0086_c_14L長安鷲峯峯下重相見鼻孔元來揔一
006_0086_c_15L又畫此相示之遇和曰葫蘆棚
006_0086_c_16L上掛冬瓜麥浪堆中釣得鰕誰在畫樓
006_0086_c_17L沽酒處相邀來喫趙州茶又畫此
006_0086_c_18L答之南公曰䥫牛對對黃金角木馬
006_0086_c_19L雙雙白玉蹄爲愛雪山香草細夜深乘
006_0086_c_20L月過前溪又畫此▼(○*─)相示之遇和曰
006_0086_c_21L玉麟帶日離霄漢金鳳衘花下綵樓
006_0086_c_22L老不嫌公子醉相將攜手御街游
006_0086_c_23L畫此○相答之明敎嵩和尙云吾欲謂
006_0086_c_24L「機」下疑脫「云何謂之學」{編}▣疑「程」{編}

006_0087_a_01L
“내가 선禪을 말하고 싶지만 반드시 지견에 의지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논해 본다면 깨달음이란 ‘있다’고도 말할 수 없고, ‘없다’고도 말할 수 없고, ‘있으면서 없다’고도 말할 수 없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거나 ‘있지 않은 것도 아니고 없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도 말할 수 없다. 또한 일체가 없는 것이니, 마음작용이 사라지고 언어의 길이 끊어진 것이다. 이는 『대론大論』에 나온다. 그렇긴 하나 내 어찌 선종을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깨달음을 그 스승과 법칙으로 삼는다면 지당하고 지당하리라.
대저 선禪이란 이미 하나의 마음(一心)ㆍ하나의 진실(一實)로서 이름만 달리해 여러 부部에 들어 있는 것이다. 여러 부에서 그 이름만 달리했을 뿐이지 그 하나의 진실이 언제 달랐던 적이 있겠는가? 하나의 진실은 마치 땅(地)과 같다. 비록 만물의 명칭이 갖가지나 모두 땅에서 나오니, 땅에서 나온단 점에 있어선 결국 같은 종류일 뿐이다.
그렇긴 하나 선禪은 부처님의 미묘한 마음에 있는 것이니, 그 의미를 나열해 보자면 ‘비밀스럽다’, ‘오묘하다’, ‘긴요하다’는 표현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선을 큰 가르침 중 으뜸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옛날 부처님께서도 반열반般涅槃에 드시면서 이것을 대가섭에게 비밀히 부촉하시고 ‘청정한 법안法眼이요, 열반의 오묘한 마음이며, 미묘한 정법正法이다.’라고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선이다.”
57. 대녕 관大寧寬 화상과 어떤 스님의 거량
대녕 관大寧 寬 화상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음광飮光(가섭)의 정견正見이 어떠했기에 꽃을 들자 웃으신 겁니까?”
말씀하셨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으셨다.”
물었다.
“천하의 선객들이 무엇 때문에 ○ 이것에서 벗어나질 못합니까?”
말씀하셨다.
“흔히들 그러지.”
58. 자명 초원 스님의 제삿날, 양기 방회楊岐方會와 대중 사이에 오고간 거량
양기산楊岐山 보통선원普通禪院의 회會138) 화상께서 스승이셨던 자명慈明 스님의 제사를 지내는 날이었다. 제단을 차리고 대중이 모이자 스님께선 진영眞影 앞으로 다가가 두 손을 맞잡아 주먹을 쥐더니 머리에 얹었다. 『통요統要』에서는 두 손을 맞잡아 주먹을 쥐더니 머리에 뿔 모양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좌구로 한 획을 긋고 하나의 ○를 내려치고는 곧 향을 사르고 세 걸음 물러나 여자처럼 절을 올렸다.
수좌가 말했다.
“괴상한 짓 좀 그만하십시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수좌首座라면 어떻게 하겠나?”
수좌가 말했다.
“화상이시여, 괴상한 짓 좀 그만하십시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토끼 새끼가 소젖을 먹었구나.”
제2좌第二座는 가까이 다가가 하나의 ○를 내려치고는 곧 향을 사르고 역시 세 걸음 물러나 여자처럼 절을 올렸다. 스님께서 가까이 다가가 듣는 시늉을 하시자 제2좌는

006_0087_a_01L禪必資知見乃得而論曰第四二張
006_0087_a_02L悟不得言有不得言無不得言有無
006_0087_a_03L不得言非有非無非非有非非無
006_0087_a_04L無一切心行處滅言語道斷此見
大論

006_0087_a_05L吾烏敢不謂禪宗以悟而爲其師則者
006_0087_a_06L至至也夫禪旣以一心一實而變名
006_0087_a_07L乎諸部諸部但得其殊名耳其一實者
006_0087_a_08L何甞異耶一實猶地雖物名萬出于地
006_0087_a_09L而地竟一種也然禪在佛微例其意者
006_0087_a_10L密者玄者要者最効而吾謂禪爲大敎
006_0087_a_11L之宗何不然乎昔佛垂般涅槃以是
006_0087_a_12L密付大迦葉曰淸淨法眼涅槃妙心
006_0087_a_13L微妙正法者乃此禪也

006_0087_a_14L
大寧寛和尙僧問飮光正見爲什麽
006_0087_a_15L拈花却笑曰忍俊不禁問天下禪客爲
006_0087_a_16L什麽出這箇○不得曰往往如斯

006_0087_a_17L
楊岐山普通禪院會和尙因慈明先師
006_0087_a_18L忌晨設齋衆集師至眞前以兩手揑拳
006_0087_a_19L安頭上統要云以兩手揑拳
向頭上作角勢
以坐具劃一劃
006_0087_a_20L打一○便燒香退身三步作女人拜
006_0087_a_21L首座云休揑怪師云首座作麽生
006_0087_a_22L座云和尙休揑怪師云兎子喫牛嬭
006_0087_a_23L二座近前打一○便燒香亦退身三
006_0087_a_24L作女人拜師近前作聽勢第二座

006_0087_b_01L생각에 잠겼다. 스님께서 한 대 때리고 말씀하셨다.
“이놈의 칠통柒桶이 난리를 치는구나.”
59. 보녕 인용保寧仁勇 화상이 갈葛 도인에게 보낸 편지
보녕 용保寧 勇139) 화상이 구용句容의 갈葛 도인에게 보냈다.
이 도상은 불원비상不圓非相이다. 보지 못했는가? 위산潙山과 앙산仰山의 일면日面과 월면月面을.”
60. 대송大宋 인종仁宗의 선송禪頌과 연璉 스님의 송
대송大宋 인종仁宗의 선송禪頌
연璉 스님이 이에 대해 말했다.

凡聖同源     범부와 성인이 같은 근본이요
妙體無物     오묘한 본체엔 한 물건도 없지만
因而轉變     이를 인연해 갖가지로 변화하네
十字縱橫     열십자처럼 종으로 횡으로
61. 늑담 홍영泐潭洪英이 개당하던 날
늑담 영泐潭英140) 화상께서 개당하던 날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말씀하셨다.
“눈썹은 여덟 팔 자로 나뉘고 눈은 유성처럼 빛난다.”
스님이 물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말씀하셨다.
“몽둥이 한 대에 자국도 한 줄이니라.”
스님이 말했다.
“대중 앞에서 증명해 주심에 학인이 감사드립니다.”
영英 화상이 껄껄대며 크게 웃었다.
그 스님이 절을 하고 일어나 왼손으로 하나의 ○ 모양을 그리자 영 화상이 불자로 찔러 오른쪽으로 옮겼다. 그 스님이 오른손으로 하나의 ○ 모양을 그리자 영 화상은 불자로 찔러 왼쪽으로 옮겼다. 그 스님이 다시 양손으로 ○를 그려 바치자 영 화상은 불자로 한 획을 긋고 말씀하셨다.
“30년 동안 위앙潙仰의 자손을 만나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저 흙벽돌을 뭉개 버리는 놈을 만났구나.”
62. 장로 자각長蘆慈覺의 법문과 영英 스님의 송
장로 자각長蘆 慈覺141)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옛 부처께서 태어나시기 이전은 ○이다. 바로 그런 때, 옛 부처 이전의 일은 혼돈이 나뉘기 전이라 아버지 어머니도 태어나지 않았고, 포태胞胎도 갖추어지지 않았으니, 낱낱이 우뚝 솟은 산허리를 걷어차고 온몸엔 꿰맨 자국 하나 없다. 설령 정 같은 주둥이에 쇠로 된 혓바닥이라 해도 끝내 말과 이해로는 미치지 못하니, 가히 위로 향한 한 가닥 길이요 천 명의 성인도 전하지 못한 것이라 하겠다.”
게송을 읊으셨다.

古佛未生前    옛 부처가 태어나시기 전
凝然一相圓    엉긴 모양 하나의 원圓
釋迦猶不會    석가도 알지 못했는데
迦葉豈能傳    가섭이 어찌 전할 수 있을까

말후구末後句 ○, 모든 부처님도 여기에 이르러선 지혜와 증득이 둘 다 끊어지고, 근원은 본래 아무 작용도 없으나 인연을 따라 자유자재하다. 위로 향하는 한 가닥 길을 열고

006_0087_b_01L擬議師打一掌云這柒桶也亂做

006_0087_b_02L
保寧勇和尙寄勾容葛道人 是相
006_0087_b_03L不圓非相不見第四三張 潙山仰山日
006_0087_b_04L面月面

006_0087_b_05L
大宋仁宗禪頌 璉師云凡聖同源
006_0087_b_06L妙體無物因而轉變十字縱橫

006_0087_b_07L
泐潭英和尙開堂日僧問如何是佛
006_0087_b_08L曰眉分八字眼似流星僧云如何是
006_0087_b_09L祖師西來意曰一棒一條痕僧云大
006_0087_b_10L衆證明學人禮謝英呵呵大笑僧禮
006_0087_b_11L拜起以左手畫一○相英以拂子穿
006_0087_b_12L向右邊僧以右手畫一○英以拂子
006_0087_b_13L穿向左邊僧以兩手畫○拓呈英以拂
006_0087_b_14L子畫一畫云三十年來未曾逢潙仰子
006_0087_b_15L今日却遇著箇踏土𡐊漢

006_0087_b_16L
長蘆慈覺大師云古佛未生前○正當
006_0087_b_17L恁麽時古佛已前事混沌未分父母
006_0087_b_18L未生胞胎未具箇箇踢突巒通身無
006_0087_b_19L縫鏬假饒釘觜䥫舌也卒話會不及
006_0087_b_20L可謂向上一路千聖不傳矣頌曰古
006_0087_b_21L佛未生前凝然一相圓釋迦猶不會
006_0087_b_22L迦葉豈能傳

006_0087_b_23L
末後句○諸佛到此智證雙亡源本
006_0087_b_24L無功隨緣自在撥開向上一路截斷

006_0087_c_01L천 성인께서 가신 길을 끊어 버렸으니, 조사와 부처의 경지에도 그를 머물러 둘 순 없다. 누가 알까, 마지막 하나가 도리어 태어나기 이전 소식임을. “비록 오래된 누각이 한가로운 전원에 있다지만, 한 차례 그득 하고야 비로소 쉴 수 있다.”142)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영英 스님께서 송하셨다.

有得非爲得    얻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이 아니니
無功却有功    공功이 없어야 도리어 공이 있네.
一輪千聖外    하나의 수레바퀴 천 성인의 소관 밖이니
元是舊家風    원래 이것이 옛 집안의 가풍일세.
63. 목암 법사牧菴法思 화상의 문답
대위大潙 목암 법사牧菴法思 화상의 『종교정심론宗敎正心論』은 『심인연환결心印連環訣』이라고도 한다.
물었다.
“선정禪定, 이 하나의 문이 도에 들어가는 가장 요긴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방편을 모르는 자들은 도리어 쓴 고생만 할 뿐 구할수록 더욱 멀어지기만 하고, 죽을 때까지 부단히 애쓰지만 그 성공은 보지 못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어떤 법문法門, 어떤 요결要訣이라야 요즘 배우는 이들이 힘을 덜고 쉽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답하셨다.
“●”
물었다.
“학인學人의 마음이 밝질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깨닫겠습니까?”
답하셨다.
“○”
물었다.
“어찌 방편이 없겠습니까? 이 학인을 흘러 통하게 해 주십시오.”
답하셨다.
“▼(○*☰)”
“이 세 원상은 마혜수라摩醯首邏 얼굴의 세 눈과 같아 오묘하게 계합하고 묵묵히 증득하여 자기 마음의 광명을 확인하지 못할 자라면 가르쳐 주기가 어렵다. 이처럼 뜻으로 미루어 헤아리거나 마음대로 짐작해서는 안 되니, 그건 꼭 봉사가 손금을 보는 꼴과 같다. 어찌 맞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겠는가?”
물었다.
“이 세 가지 도상 외에 다시 다른 법문은 없습니까?”
이에 답해 공중에 하나의 ○를 그리고 이어서 손으로 세 번 아래로 터셨다.
“이처럼 배우는 자가 만일 이 말후상末後相 하나를 깨달을 수 있다면 백 천 법계의 문을 한순간에 몰록 확인하게 된다. 이 도상에서 유출되지 않은 법은 하나도 없고, 이 도상을 관통하지 않은 법은 하나도 없으며, 이 도상에 포섭되지 않는 법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옛 성인께서 ‘백 천 가지 법문이 모두 마음으로 귀결되고, 항하 모래알 같은 오묘한 뜻이 모두 마음 근원에 있다.’143)라고 하셨으니, 바깥에서 구할 필요가 없는데 어찌 수고롭게 다른 사람에게서 찾겠느냐. 너는 그저 인연에 얽힌 생각들을 놓아 버리고 육근과 육진을 벗어 버리고서

006_0087_c_01L千聖路頭祖佛位中留他不住誰知末
006_0087_c_02L後一著却是未生已前可謂雖然舊
006_0087_c_03L閣閑田地一度嬴來方始休英頌曰
006_0087_c_04L有得非爲得無功却有功一輪千聖外
006_0087_c_05L元是舊家風第四四張

006_0087_c_06L
大潙牧菴法思和尙宗敎正心論亦名
006_0087_c_07L心印連環訣問曰禪定一門最是入
006_0087_c_08L道之要然而迷方便者返致勤苦
006_0087_c_09L求愈遠終身疲役而不見其成功
006_0087_c_10L審以何法門何要訣今學者省力易悟
006_0087_c_11L答曰● 問曰學人心路未明如何曉
006_0087_c_12L答曰○ 問曰豈無方便令學人
006_0087_c_13L流通耶答曰▼(○*☰) 此三圓相如摩醯首
006_0087_c_14L羅面上三目非妙契默證印自心光者
006_0087_c_15L難與指陳然不可以義路推思意相卜
006_0087_c_16L直須如盲人觀掌去却有小分相應
006_0087_c_17L問曰此三相外還更有法門否答於
006_0087_c_18L空中畫一○隨以手撥三下然學者
006_0087_c_19L能曉此末後一相百千法界門一時
006_0087_c_20L頓印無有一法不從此相流出無有
006_0087_c_21L一法不從此相通貫無有一法不於此
006_0087_c_22L相隱攝所以古德云百千法門同歸方
006_0087_c_23L河沙妙義摠在心源不用外求
006_0087_c_24L勞他覔汝但放捨緣慮擺脫根塵

006_0088_a_01L텅 빈 마음으로 고요히 앉아 스스로 궁구하고 스스로 연마하라. 텅 틔어 밝아지면 다시 다른 일은 없느니라.”
물었다.
“예부터 위산과 앙산 같은 스승들께선 원상圓相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신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후대 사람들 역시 그것에 주석을 달아 해석하고 헤아린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것 역시 종문宗門의 바른 안목입니까?”
답하셨다.
“자신의 마음을 깨달으면 바른 안목이 된다. 그러나 만일 배워 이해한 것에만 의지해 주석을 달고 입으로 전한다면, 이는 모두 망상으로 반연하는 것이니 네 본분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느니라.”
물었다.
“이 『정심론正心論』은 진실로 지극하고 요긴한 것입니다. 자기 마음으로 깨달아야 할 바이고 부처와 조사께서 길이 전하신 것이니, 원컨대 널리 드러내 보이소서.”
답하셨다.

自心契本宗    자기 마음으로 근본 종지에 계합하라
佛祖其傳通    부처와 조사들 함께 전하신 것
無言言外旨    말씀이 없는 언어 바깥의 뜻이니
朗月大虛中    허공에 뜬 밝은 달과 같으니라

물었다.
“말후末後의 한 말씀을 선양하시길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답하셨다.
“▼(○*出)”
64. 용문 불안龍門佛眼의 상당 법문
용문 불안龍門 佛眼144) 화상께서 당堂에 올라 말씀하셨다.

不動龍門內    용문龍門 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行叅古佛機    행각을 떠나 옛 부처의 기봉을 참례하고
親逢渠面目    그 면목을 직접 대면하여야
肯話自容儀    자신의 모습도 말할 수 있다
凡聖心平等    범부와 성인 그 마음 평등하고
高低路坦夷    높은 길 낮은 길 평탄하기만 하니
丹霞燒木佛    목불木佛은 단하丹霞가 태웠는데
院主落鬚眉    수염과 눈썹은 원주가 빠졌다
何故       무엇 때문일까?
○        ○

자리에서 내려오셨다.145)
65. 앙산 스님이 소석가小釋迦라 불리게 된 고사를 읽고 천동 정각天童正覺이 지은 송 2수와 상당 법문
천동 각天童 覺 화상께서 앙산 스님이 소석가小釋迦라 불리게 된 고사를 읽어 보시고 송 두 수를 읊으셨다.146)

脫盡諸緣空不空  모든 반연 공空과 불공不空 다 벗어 버리니
杳無邊表喩難同  아득하고 끝없음 비유조차 어렵다 ⊙
須知月蛙腸中物  달이란 개구리 배 속 물건임을 알아야만 하고
體取雲犀角裏通  소뿔 속을 통하는 구름 직접 잡아야 하네 ▼(○*日)
建化何妨行鳥道  교화를 세움이 조도행鳥道行에 어찌 방해가 되리오
廻途復妙顯家風  길을 돌려 다시 묘하게 가풍을 드러낸다
大平遊子歸來也  태평세월에 떠돌던 아들 돌아오는구나
雲鬢霜眉內轉功  구름 같은 수염 서리 내린 눈썹에 속은 더욱 알차졌네 ◎

一念全超曠劫初  한 생각에 광겁의 시초를 완전히 초월하니 ○
玉人端坐白牛車  옥인玉人이 흰 소가 끄는 수레에 단정히 앉아 있네 ▼(○*目)
往來歷盡傍叅妙  온갖 곳을 오가며 오묘함을 엿보았는데
廻首途中物物渠  머리 돌려 돌아오는 길 물물마다 그것일세


006_0088_a_01L懷靜坐自究自硏豁爾開明更無餘
006_0088_a_02L問從上先德如潙仰等多以圓相
006_0088_a_03L示人後人亦有注解啇量者還是宗
006_0088_a_04L門中正眼否答悟於自心則爲正眼
006_0088_a_05L若也惟憑學解注記口傳此皆妄想攀
006_0088_a_06L於汝本分事中全無交渉問曰此
006_0088_a_07L正心論實爲至要爲自心所悟爲佛
006_0088_a_08L祖傳通願垂顯示答曰自心契本宗
006_0088_a_09L佛祖其傳通無言言外旨朗月大虛
006_0088_a_10L問曰末後一句幸冀宣揚答曰▼(○*出)
006_0088_a_11L第四五張

006_0088_a_12L
龍門佛眼和尙上堂云不動龍門內
006_0088_a_13L叅古佛機親逢渠面目肯話自容儀
006_0088_a_14L凡聖心平等高低路坦夷丹霞燒木佛
006_0088_a_15L院主落鬚眉何故○下座

006_0088_a_16L
天童覺和尙因覽仰山小釋迦語成
006_0088_a_17L道二首脫盡諸緣空不空杳無邊表喩
006_0088_a_18L難同⊙須知月蛙腸中物體取雲犀角
006_0088_a_19L裏通▼(○*日)建化何妨行鳥道廻途復妙顯
006_0088_a_20L家風大平遊子歸來也雲鬢霜眉內
006_0088_a_21L轉功◎

006_0088_a_22L
一念全超曠劫初○ 玉人端坐白牛車
006_0088_a_23L▼(○*目)往來歷盡傍叅妙廻首途中物物
006_0088_a_24L

006_0088_b_01L또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오늘은 석가노인이 태어나셨던 날이다. 장로長蘆 스님께서는 선禪을 설명할 줄 몰라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모양들을 그려 보이셨다. ‘마야 부인의 태 속에 계실 땐 어떻습니까?’ 할 경우엔 불자拂子로 ⊙ 이런 모양을 그리셨고, ‘깨끗한 물로 금빛 몸을 씻었을 땐 또 어떻습니까?’ 할 경우엔 스님께서 ▼(○*水) 이런 모양을 그리셨다. ‘두루 일곱 걸음을 걷고 사방을 둘러보시곤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켰으며, 도를 이루어 설법하고, 신통변화와 지혜와 변재로 49년 동안 삼백여 차례에 푸르다 하고 노랗다 하며 동쪽을 가리키고 서쪽을 지적하였으며, 반열반에 드신 것은 또 어떻습니까?’ 하고 물을 경우 스님께선 ⴲ 이런 모양을 그리고 ‘만일 안목을 갖춘 납승이라면 반드시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리라. 허나 그렇지 못하다면 하나하나 겪은 뒤에야 비로소 알리라.’라고 말씀하셨다.”
66. 무시無示 화상의 게송과 이에 화답한 경덕사景德寺 자항慈航 화상과 심문 분心聞賁 화상의 게송
천동산天童山 경덕사景德寺 자항慈航 화상께서 무시無示 화상이 방장 앞에 편안히 앉아 향로에 기대에 대중에게 보이셨던 법문을 거론하셨다.
그 게송은 다음과 같다.

波斯翫月甕裏坐  파사波斯에서 달구경하고 옹기 속에 앉았더니
新婦騎驢水上行  신부는 나귀를 타고 물 위로 가네
古廟香爐安鼻孔  오래된 사당의 향로 코끝에 감도니
十方世界放光明  온 시방세계가 빛을 놓는구나

자항 화상께서 화답하셨다.

赤脚波斯入大唐  다리를 드러낸 파사波斯 사람 대당국大唐國에 들어오니 ⊙
一家有事百家忙  한 집이 큰일 치르면 백 집이 부산한 법
如今四海淸如鏡  지금은 온 세계가 거울처럼 맑으니 ○
卛土普天歸我王  온 국토 넓은 하늘이 우리 임금께 귀의하네 ◎

심문 분心聞賁 화상께서 무시 화상이 보인 게송을 거론하셨다.

南山白額千尋尾  남산南山은 허연 이마에 천 심尋이나 되는 꼬리
東海赤梢三尺觜  동해東海는 붉은 가지에 세 척이나 되는 부리
夜半相逢笑一場  한밤중에 서로 만나 한바탕 웃어 젖히니
大家唱箇囉囉哩  온 집안이 노래를 부르네, 라라리 ⴲ

분賁 화상께서 화답하셨다.
玉麟憧忻兔兩角  옥 기린은 두 뿔을 떼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데
木馬却有虵四足  나무 말은 도리어 군더더기 네 다리가 있구나
驀然哮吼震乾坤  우렁차게 울부짖어 온 천지를 뒤흔드니
驚得石牛頭頸縮  놀란 돌 소가 목을 움츠린다 ⵀ
67. 운문 문언雲門文偃의 ‘투출일자透出一字’에 대한 심문 분 화상의 염
또 어떤 스님이 운문雲門 스님께 “무엇이 도입니까?”하고 묻자 운문 스님께서 “한 글자를 뚫고 지나가라(透出一字).”라고 하셨던 말씀을 거론하고 말씀하셨다.

006_0088_b_01L
又上堂云今日是釋迦老子降生之辰
006_0088_b_02L長蘆不解說禪與諸人畫箇㨾子祇如
006_0088_b_03L在摩耶胎時作麽生以拂子畫⊙ 祗如
006_0088_b_04L以淸淨水浴金色身時又作麽生師畫
006_0088_b_05L▼(○*水)祇如周行七步目顧四方指天指
006_0088_b_06L成道說法神通變化智慧辯才
006_0088_b_07L十九年三百餘會說靑道黃指東畫西
006_0088_b_08L入般涅槃又作麽生師畫ⴲ云若是
006_0088_b_09L具眼衲僧必也點頭相許其或未然
006_0088_b_10L一一歷過始得

006_0088_b_11L
天童山景德寺慈航和尙擧無示和尙
006_0088_b_12L方丈前安坐倚香爐示衆有頌曰
006_0088_b_13L斯翫月甕裏坐新婦騎驢水上行古廟
006_0088_b_14L香爐安鼻孔十方世界放光明師和曰
006_0088_b_15L第四六張 赤脚波斯入大唐⊙ 一家有
006_0088_b_16L事百家忙
006_0088_b_17L如今四海淸如鏡○ 卛土
006_0088_b_18L普天歸我王◎

006_0088_b_19L
心聞賁和尙擧無示和尙示偈曰南山
006_0088_b_20L白額千尋尾東海赤梢三尺觜
006_0088_b_21L半相逢笑一場大家唱箇囉囉哩ⴲ
006_0088_b_22L師和曰玉麟憧忻兔兩角木馬却有
006_0088_b_23L虵四足驀然哮吼震乾坤驚得石
006_0088_b_24L牛頭頸縮ⵀ

006_0088_b_25L
又擧僧問雲門如何是道門云透出

006_0088_c_01L
“그 글자가 뭔지 알고 싶은가? 위의 한 획은 길고 아래의 한 획은 짧으며, 왼쪽은 丿 하나, 위는 뾰족하고, 오른쪽은 곧장 내려오다 거꾸로 말아 올렸느니라. 『옥편玉篇』과 『광운廣韻』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고 범어로도 중국어로도 번역할 수 없다. 시험 삼아 글자를 아는 사람에게 물어본다한들 어떻게 주석註釋을 쓰겠는가?”
한참을 묵묵히 계시다 말씀하셨다.
“입을 열면 잘못되고 입을 닫으면 잃어버린다. 눈 푸른 서역승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리지만 공자孔子의 제자 중엔 아는 자가 없도다.”
68. 원상의 유래와 6가지 명칭
목암 선경睦庵善卿147)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원상圓相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남양南陽 국사에서 비롯되어 시자인 탐원眈源 스님에게 전해졌다. 탐원 스님은 비밀스러운 그 기록을 계승하여 앙산 스님에게 전하였고, 지금은 드디어 위앙종의 가풍으로 불리게 되었다. 명주明州 오봉 량五峯良 화상께서 일찍이 40칙則을 지었는데, 명교明敎 자잠자子潛子148)가 그를 위해 서문을 써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였다. 량良 스님은 ‘원상에 총 6가지 이름이 있으니 첫째는 원상圓相이요, 둘째는 의해義解며, 셋째는 암기暗機요, 넷째는 자학字學이며, 다섯째는 의어意語요, 여섯째는 묵론黙論이다.’라고 하였다.”

종문원상집

발문跋文
원상圓相의 제작은 남양 충 국사에게서 시작되었으니 진실로 윗대 부처님과 조사들로부터의 명맥이다. 그 지취旨趣는 그윽하고 현묘하며 광대하고 오묘하니 지식으로 의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배우는 이들은 다들 아득하기만 하여 그 끝을 규명하는 자가 없는데 하물며 널리 드날릴 수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남양南陽과 위산潙山 앙산仰山 이후로는 널리 전하는 자가 드물게 되었다. 지금 왕사王師이신 화장사華藏寺의 대선옹大禪翁만이 유독 그것에 밝아 옛 성현들의 골수를 꿰뚫어 보고는 선적禪寂의 여가에 한 손을 내밀어 여러 가문의 선록禪錄에 수록된 도상 170칙則을 수집하셨다. 장인들을 모아 판에 새겨 한량없이 인쇄해 베풀고 큰 법고法鼓를 울려 널리 제창하시니, 어찌 큰 법이 흥륭하는 것은 다 기다리는 것이 있음이 아니겠는가. 남양南陽 스님과 화장華藏 스님 이 두 분의 큰 어른은 모두 국사이시다. 국사께서 제작하고

006_0088_c_01L一字師云要識這箇字麽上一劃長
006_0088_c_02L下一劃短左邊一丿上尖右邊直落
006_0088_c_03L倒卷玉篇廣韻難尋覔梵語華言皆莫
006_0088_c_04L試問識書人如何通注釋良久云
006_0088_c_05L開口卽錯閉口卽失碧眼胡僧暗點頭
006_0088_c_06L孔門弟子無人識

006_0088_c_07L
睦庵善卿師云圓相之作始於南陽國
006_0088_c_08L付授侍者耽源源承讖記傳于仰
006_0088_c_09L今遂目爲潙仰家風明州五峯良和
006_0088_c_10L嘗製四十則明敎子潜子爲之序
006_0088_c_11L稱噵其美良云圓相㧾六名一圓相
006_0088_c_12L二義海三暗機四字學五意語六默
006_0088_c_13L論云爾第四七張

006_0088_c_14L
宗門圓相集

006_0088_c_15L
006_0088_c_16L
圓相之作始於南陽忠國師實從上佛祖
006_0088_c_17L之命脉也其旨趣幽玄宏妙非智識所可
006_0088_c_18L擬議學者皆溟涬然莫有窺其涯涘者
006_0088_c_19L況能發揚之乎繇是南陽潙仰已後尠有
006_0088_c_20L弘傳之者也今王師華藏寺大禪翁以獨
006_0088_c_21L見之明覷破先聖骨髓禪寂之外出一
006_0088_c_22L隻手搜集諸家禪錄中所著之相百七十
006_0088_c_23L鳩工鏤板印施無窮雷大法皷以演
006_0088_c_24L唱之豈非大法之興其有所待焉耳
006_0088_c_25L陽華藏是二大老皆國師也國師作之

006_0089_a_01L국사께서 계승하시니 가히 세상에 드문 일이라 하겠다. 어찌 지음知音의 작자가 화장이 아니고, 지금의 계승자가 남양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가운데 모든 조사께서도 그려내지 못하고 화장스님께서도 다 수집하지 못한 하나의 도상이 있으니, 안목을 갖춘 납자라면 시험 삼아 가려내기 바란다.
 때는 정우貞祐 7년(1219) 기묘 4월 8일, 묘봉암妙峰庵에서 몽여夢如 발문을 쓰다.

006_0089_a_01L國師繼之可不謂希世之事耶庸詎知昔
006_0089_a_02L之作者非華藏乎今之繼者非南陽乎
006_0089_a_03L然於中有箇諸師畫不出華藏收不盡底
006_0089_a_04L一相具眼衲子試請辨看

006_0089_a_05L
時貞祐七年己卯四月八日

006_0089_a_06L
妙峰庵夢如跋
  1. 1)위앙종파潙仰宗派 : 남종선南宗禪 5가 7종의 일파로 위산 영우潙山靈祐 선사와 그의 제자 앙산 혜적仰山慧寂 선사의 선풍을 이은 종파이다.
  2. 2)위산 영우潙山靈祐 : 771~853. 속성은 조趙씨이며, 복주 장계 사람으로 건선사 법상法常에게 승려가 되었고 23세에 백장 회해百丈懷海의 제자가 되었다. 원화 말년 회해의 명을 받아 장사로 가던 도중 대위산大潙山에 잠시 머물자 군민이 다투어 찾아와 귀의하고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40여 년 교화를 펼치고 대중 7년에 나이 83세로 입적하였으니, 시호는 대원선사大圓禪師이다. 문하에 앙산 혜적仰山慧寂ㆍ향엄 지한香嚴智閑ㆍ영운 지근靈雲志勤 등 걸출한 선승을 배출하였으며, 후대에 제자 앙산 혜적과 더불어 그 유풍이 위앙종으로 칭해지며 추앙되었다.
  3. 3)앙산仰山 혜적 통지慧寂通智 : 840~916. 속성은 섭葉씨이며, 소주韶州 출신이다. 『袁州仰山慧寂禪師語錄』에 따르면 9세 어린 나이에 출가하였는데, 14세에 부모가 집으로 데리고 가 결혼시키려 하자 무명지와 소지 두 개를 잘라 서원을 세우고 다시 출가하였다고 한다. 처음 탐원 응진耽源應眞 선사에게 참학하였고, 후에 위산 영우 선사의 법을 이어 원주袁州 앙산仰山에서 크게 교화를 펼쳤으며, 소주 동평산東平山에서 입적하였다. 시호는 지통선사智通禪師 또는 통지선사通智禪師이다.
  4. 4)충 국사忠國師 : 육조 혜능六祖慧能의 법을 이은 남양 혜충南陽慧忠(?~775) 선사를 말한다. 당자곡에 들어가 40여 년을 은거했으며 후에 출세하여 현종ㆍ숙종ㆍ대종 3대 황제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 시호는 대증선사大證禪師이다.
  5. 5)탐원耽源 : 법명은 응진應眞 또는 진응眞應이라 한다. 남양 혜충 국사의 법을 이었고, 길주吉州 탐원산耽源山에 주석하며 종풍을 선양하였다.
  6. 6)『袁州仰山慧寂禪師語錄』ㆍ『景德傳燈錄』ㆍ『祖庭事苑』 등 선종의 모든 사서에서는 탐원 응진 선사가 오래도록 혜충 국사의 시자 생활을 하며 원상을 전수 받고, 후에 탐원산으로 들어가 은거한 것으로 되어있다. 앙산 선사가 오래도록 혜충 국사의 시자 생활을 했다는 『宗門圓相集』의 기사는 작자의 오류라 생각된다.
  7. 7)자린紫璘 공봉供奉 : 공봉은 관직이다. 자세한 전기는 알 수 없고 남양 혜충 국사와의 여러 문답이 『景德傳燈錄』ㆍ『碧巖錄』ㆍ『聯燈會要』 등 많은 선적에 전한다.
  8. 8)혜충 국사와 자린 공봉의 문답이 『碧巖錄』에는 다르게 수록되어 있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혜충 국사가 자린 공봉에게 “공봉께서 『사익경』에 주해를 쓰셨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하고 묻자 공봉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국사께서 물으셨다. “경전을 주해하려면 반드시 부처님의 뜻을 아셔야 합니다.” 공봉이 대답하였다.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감히 경전에 주해를 붙이겠습니까?” 그러자 국사께서 시자에게 물 한 주발을 가져오게 한 후 쌀 일곱 톨을 띠우고 젓가락 한 짝을 주발에 얹어 공봉에게 보이며 물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공봉이 말하였다. “모르겠습니다.” 국사께서 말씀하셨다. “노승의 뜻도 모르면서 무슨 부처님 뜻을 말씀하십니까?” 『碧巖錄』 제48칙(T48, 183c).
  9. 9)개선 섬開先暹 : 송대宋代 운문종 스님으로 생몰 연대는 자세하지 않다. 법명은 선섬善暹이며 개선開先은 주석한 사찰명이다. 임강臨江 출신으로 덕산 혜원德山慧遠 선사와 설두 중현雪竇重顯 선사에게 참학하고 만년에 여산廬山 개선사開先寺에서 개당하여 종풍을 선양하였다.
  10. 10)마조馬祖 : 법명은 도일道一(709~788)이며, 한주漢州 습방什防 출신이고 속성이 마馬씨이다. 어렸을 때에 자주資州의 당 화상唐和尙에게 출가하고, 유주渝州의 원 율사圓律師에게 계를 받았다. 개원開元 연중(713~741)에 남악 회양南嶽懷讓 선사를 찾아가 선禪을 익히고 심인心印을 전수받았다. 대력大歷 연간(766~779)에 강서江西 종릉鍾陵의 개원사開元寺에 주석하자 이때부터 학자가 운집하여 선풍을 크게 드날렸다. 정원貞元 4년 건창建昌 석문산石門山에서 나이 80세로 입적하였으며 시호는 대적선사大寂禪師이다, 세상에 이름을 드러낸 제자 백장百丈ㆍ대매大梅ㆍ염관鹽官ㆍ남전南泉 등 139인과 더불어 남악南嶽의 종풍을 천하에 드날렸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강서江西 마조라고 일컬었다.
  11. 11)지장智藏 : 735~814. 마조 도일 선사 문하의 빼어난 인물 중 한 분이셨던 서당 지장西堂智藏 선사를 가리킨다. 서당西堂은 주석처 이름이고, 시호는 대각선사大覺禪師이다. 그 문하에 신라의 학승들이 많았으며 명적 도의明寂道義ㆍ체공 혜철體空慧哲 등이 그의 법을 신라로 전하였다.
  12. 12)경산徑山 : 학림 현소鶴林玄素의 법을 이은 도흠道欽(714~792) 선사를 가리킨다. 당 대종代宗이 그의 도풍을 흠모하여 깊이 공경하고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시호는 대각선사大覺禪師이다.
  13. 13)설두雪竇 : 법명은 중현重顯(980~1052)이며 설두는 주석했던 산 이름이다. 운문종 지문 광조智門光祚 선사의 법을 이어 동정의 취미봉翠微峰과 절강의 설두산雪竇山에서 문풍을 크게 선양하였다. 『景德傳燈錄』에서 선별한 100개의 고칙에 송을 붙인 『頌古百則』이 유명하다.
  14. 14)위 내용은 『明覺禪師語錄』 권3(T47, 687b)에도 수록되어 있다.
  15. 15)종문통요집宗門統要集 : 건계建谿 사문 종영宗永이 대각세존석가문불부터 남악 문하 11세, 청원 문하 10세에 이르는 불조의 기연機緣ㆍ공안公案ㆍ염고拈古를 집성한 책이다. 본연거사本然居士 정심鄭諶이 송宋 소흥紹興 5년(1135)에 지은 중간서重刊序와 순희淳熙 6년(1179)에 위왕魏王이 쓴 발문이 전한다.
  16. 16)남전南泉 : 마조 도일馬祖道一의 법을 이은 남전 보원南泉普願(748~834) 선사를 말한다. 속성을 따라 왕노사王老師라 자칭하였으며, 문하에 조주 종심趙州從諶 선사라는 걸출한 재목을 배출하였다.
  17. 17)귀종歸宗 : 마조 도일馬祖道一 선사의 법을 이은 지상智常 선사를 말한다. 귀종은 주석한 사찰명이며, 시호는 지진선사至眞禪師이다.
  18. 18)마곡麻谷 : 법명은 보철寶徹이고 생몰 연대는 자세하지 않다. 출가하여 마조 도일 선사께 참학하고 포주蒲州 마곡산麻谷山에 머물며 선풍을 고양하였다.
  19. 19)유기由基 : 초나라 사람으로 성은 양養씨이며 이름은 숙叔, 자는 유기由基이다. 초楚 장왕莊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흰 원숭이를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쏘게 하였는데 원숭이가 얼마나 날랜지 날아오는 화살을 잡고 희롱하였다. 누구도 그 원숭이를 맞히지 못하자 활을 잘 쏘는 유기를 시켜 맞히게 하였다. 유기가 활을 당기자 원숭이는 나무를 껴안고 슬피 울부짖었으며, 화살을 쏘자 나무를 끼고 돌며 피해 보려 하였으나 화살이 따라 돌며 원숭이를 적중시켰다고 한다.
  20. 20)취암 지翠嵓芝 : 임제 문하 7세인 균주筠州 대우 수지大愚守芝 선사를 말한다. 『古尊宿語錄』 권25(X68, 163a)에 어록이 전한다.
  21. 21)삼산杉山 : 법명은 지견智堅이고 마조 도일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생몰 연대는 정확치 않다. 『祖堂集』ㆍ『傳燈錄』 등에 남전 보원 선사ㆍ귀종 지상 선사와 관련된 행적이 수록되어 있다.
  22. 22)조주趙州 : 법명은 종심從諗(778~897)이며 시호는 진제대사眞際大師이다. 남전 보원南泉普願 선사의 법을 이어 조주趙州 관음원觀音院에서 종풍을 크게 선양하였으며, 제방에서 그 풍모를 흠모해 조주고불趙州古佛이라 칭하였다.
  23. 23)염관鹽官 : 법명은 제안齊安(?~842)이며, 염관은 주석했던 지명이다. 남악 지엄南嶽智嚴에게 구족계를 받고 마조 도일 선사에게 참학하여 법을 이었다. 항주 염관 진국 해창원海昌院에 오래 주석하였으며 시호는 오공대사悟空大師이다.
  24. 24)석상石霜 : 법명은 경저慶諸(807~888)이며 석상은 주석했던 산 이름이다. 도오 원지道吾圓智 선사의 법을 이었다.
  25. 25)자복資福 : 법명은 여보如寶이며 자복은 주석했던 사찰 이름이다. 생몰 연대는 자세하지 않고 앙산仰山 제2조로서 서탑 광목西塔光穆 선사의 법을 이어 길주 자복원資福院에서 종풍을 선양하였다.
  26. 26)보복保福 : 법명은 종전從展(?~928)이며 설봉 의존雪峰義存 선사의 법을 이었다. 장주 보복원保福院에 머물며 종풍을 선양하였는데 휘하에 늘 7백 대중 이상이 운집하였다고 한다.
  27. 27)장경사章敬寺 회운懷惲 : 시호는 대각선사大覺禪師(?~818)이며 마조 도일 선사의 법을 이었다.
  28. 28)경조 초당京兆草堂 : 마조 도일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생몰 연대는 자세하지 않다.
  29. 29)본계本溪 : 마조 도일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생몰 연대는 자세하지 않다.
  30. 30)방공龐公 : 방거사龐居士(?~808)를 말한다. 이름은 온蘊, 자는 도현道玄이며 형주 형양현 사람이다. 석두와 마조 대사에게 참학하여 거사의 신분임에도 날카로운 선지로 명성이 자자하였다.
  31. 31)대위 영우大潙靈祐 : 위산 영우 선사를 가리킨다.
  32. 32)루지불樓至佛 : 로지불盧至佛ㆍ루유불樓由佛ㆍ로자불盧遮佛이라고 하며, 애락불愛樂佛ㆍ제곡불啼哭佛로 의역하기도 한다. 현겁賢劫 천불 가운데 최후의 부처님이다.
  33. 33)패다엽貝多葉 : 흔히 패엽貝葉이라 한다. 남방에선 패다라나무의 잎에 경전을 기록하였고 이를 패엽경이라 한다. 곧 인도 말로 쓰인 경전을 의미한다.
  34. 34)동림 총東林摠 : 법명은 상총常總(1025~1091)이며, 황룡 혜남黃龍慧南 선사의 법을 이었다. 동림은 주석했던 사찰 이름이다.
  35. 35)왕 상시王常侍 : 생몰 연대는 자세하지 않으며 이름은 경초敬初이다. 상시常侍의 직무를 맡았다.
  36. 36)진존숙陳尊宿 : 속성은 진陳씨이고 법명은 도명道明 또는 도종道從이라 하며, 황벽 희운黃檗希運 선사의 법을 이었다. 목주睦州 용흥사龍興寺에 주석하셨으며, 짚신을 삼아 어머니를 모셨으므로 진포혜陳蒲鞋라 불렸고, 제방에서 그를 존경하여 진존숙陳尊宿이라 칭하였다. 임제 의현 스님을 황벽 스님께 인도한 일화로 유명하다.
  37. 37)『黃龍慧南禪師語錄』(T47, 632a)에 의거하면 중간에 결락된 부분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上堂, 擧睦州有一秀才相見, 州云, ‘會箇什麽?’ 秀才云, ‘會二十四家書.’ 州以拄杖空中點一點云, ‘會麽?’ 秀才罔措, 州云, ‘又道會二十四家書, 永字八法也不識.’ 師云, ‘睦州一點直在威音王已前, 及乎八法論書, 却被俗人勘破. 若是歸宗卽不然, 孔門弟子無人識, 碧眼胡僧笑點頭.’ 下座.” 『黃龍慧南禪師語錄』에 따르면 이 부분은 “목주 스님께서 물으셨다. ‘무엇을 아는가?’ 수재가 말했다. ‘24가의 서법을 알고 있습니다.’”가 된다.
  38. 38)황룡 남黃龍南 : 법명은 혜남慧南(1002~1069)이며, 속성은 장章씨이고 석상 초원石霜楚圓 선사의 법을 이었다. 융흥부의 황룡산에서 종풍을 크게 선양하여 후대 황룡파의 개조로 숭상되었다. 시호는 보각선사普覺禪師이다.
  39. 39)위음왕威音王 이전 : 위음왕불께서 세상에 출현하기 이전이란 말이다. 위음왕불威音王佛은 『法華經』 「常不輕菩薩品」에 등장하는 부처님으로 공겁空劫 최초의 부처님이시다. 한없이 오랜 옛적 또는 최초란 뜻으로 쓰이며 종문宗門에서는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ㆍ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 등의 말과 함께 본분향상本分向上의 실제이지實際理地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40. 40)대수 법진大隋法眞 : 834~919. 속성은 왕王씨며 재주梓州 염정현鹽亭縣 출신이다. 위산 영우 선사에게 참학하고 복주 대안福州大安 선사의 법을 이었다.
  41. 41)남탑광통南塔光涌 : 850~938. 강서성 예장 풍성豐城 출신으로 앙산 혜적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앙산의 남탑南塔에 주석하였다.
  42. 42)동평 광목東平光穆 : 서탑 광목西塔光穆이라고도 한다. 앙산 혜적 선사의 법을 이었다.
  43. 43)순지順之 : 속성은 박朴씨며 신라 출신이다. 20세 경에 오관산五冠山으로 출가하여 속리산俗離山에서 구족계를 받고 헌앙왕 3년(874)에 당나라로 들어가 앙산 혜적 선사께 참학하여 법을 잇고 귀국하였으며, 경문왕 14년(874)에 원창왕후元昌王后의 청으로 오관산 서운사瑞雲寺에 주석하며 ‘현법상표現法相表’의 종풍을 선양하였다. 『傳燈錄』 권22, 『祖堂集』 권20에 그의 법어가 전한다.
  44. 44)『大般涅槃經』에서 인용하였으나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大般涅槃經』 권27(T12, 784a)에서는 “雪山有草, 名曰忍辱, 牛若食之, 則成醍醐.”라고 하였다.
  45. 45)『大般涅槃經』 권27(T12, 525c).
  46. 46)이지理智 : 이理는 관찰의 대상이 되는 도리, 지智는 관찰하는 주체가 되는 지혜를 말한다. 이 둘이 명합冥合하는 것을 각오覺悟라고 한다.
  47. 47)정확히 일치하는 경문은 없으나 『大方廣佛華嚴經』 권29 「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T10, 792c)의 내용과 유사하다.
  48. 48)『金剛三昧經』 「序品」(T9, 368c).
  49. 49)『維摩詰所說經』 권중 「文殊師利問疾品」(T14, 544c).
  50. 50)『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권4(T19, 121c).
  51. 51)『淨名經關中釋抄』 권하(T85, 522a).
  52. 52)자기 머리를 모른 채 : 『首楞嚴經』에 나오는 연야달다演若達多 이야기에서 기인한다. 연야달다는 거울 속에 비친 얼굴에는 예쁜 눈도 눈썹도 있는데 자기 얼굴에는 눈과 눈썹이 없다고 여겨 두려워하고 미쳐서 거리를 뛰어다녔다고 한다.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권4(T19, 121b).
  53. 53)『景德傳燈錄』 권29 「梁寶誌和尙大乘讚十首」(T51, 449b).
  54. 54)『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권6(T19, 131a).
  55. 55)파촉 지역~가락을 듣고 : 백설곡白雪曲은 수도인 장안에서 지위와 식견을 갖춘 자들만 감상할 수 있었던 명곡이다. 파촉巴蜀은 예로부터 변방의 대명사로 불렸다. 따라서 이는 전혀 식견이 없는 촌놈이 명곡을 감상하는 격을 말한다.
  56. 56)암두 전활巖頭全豁 : 828~887. 설봉 의존ㆍ문수 흠산 선사와 함께 앙산 혜적 선사께 참학한 다음, 덕산 선감德山宣鑑 선사의 법을 이었다. 동정호반의 와룡산臥龍山에 은거했으나 많은 학인들이 그를 찾아 운집했다고 한다.
  57. 57)관음원觀音院 회하會下의 한 스님 : 당시 관음원觀音院에는 앙산 스님이 머물고 계셨다. 즉 앙산 스님의 제자라는 의미이다.
  58. 58)석 냥의 가의假義 : 『大般涅槃經』에 직접적으로 삼가三假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이에 대해 『大般涅槃經集解』ㆍ『大般涅槃經玄義』ㆍ『大般涅槃經疏』 등 후대 교가의 논소論疏에서는 수가受假ㆍ법가法假ㆍ명가名假의 삼가와 인성과因成假ㆍ상속가相續假ㆍ상대가相待假의 삼가로 체계화하여 설명하였다.
  59. 59)마혜수라摩醯首羅 : ⓢ Maheśvara의 음사이다. 대자재천大自在天ㆍ자재천自在天ㆍ위령제慰靈祭로 의역하기도 한다. 큰 권능을 소유한 색계 정상頂上의 천신天神으로 이 천신은 세 개의 눈을 가졌다고 한다.
  60. 60)흠산 문수欽山文邃 : 대자 환중大慈寰中 선사에게 출가하여 덕산 선감德山宣鑑 선사 등에게 참학하였고, 후에 동산 양개 선사의 법을 이어 예주 흠산에 주석하였다.
  61. 61)자복 여보資福如寶 : 생몰 연대는 자세하지 않다. 앙산仰山의 제2조로서 서탑 광목西塔光穆 선사의 법을 이어 길주 자복원資福院에서 종풍을 널리 선양하였다.
  62. 62)구시나국抱尸那國 : 부처님 열반처인 구시나가라를 말한다.
  63. 63)진조陳操 상서尙書 : 송대의 거사로 관직이 상서에 까지 올랐다. 목주睦州 자사刺史를 지낼 무렵 용흥사龍興寺 목주 도명睦州道明께 참학하고 심요를 전수받았다.
  64. 64)현사 사비玄沙師備 : 835~908. 황제로부터 종일선사宗一禪師라는 호를 하사받았으며, 속성인 사謝씨를 따라 자칭 사삼랑謝三郞이라 하였다. 현사원玄沙院에 오래 주석하셨다. 부용 영훈芙蓉靈訓에게 출가하였고 동학 선배인 설봉 의존雪峰義存 선사에게 참학하여 법을 이었다.
  65. 65)도부道怤 : 864~937. 온주溫州 영가永嘉 출신으로 설봉 의존 선사와 현사 사비 선사께 참학하여 법을 이었다. 월주越州 경청사鏡淸寺에 오래 주석하며 종풍을 선양하였으므로 흔히 경청 도부 선사라 지칭한다.
  66. 66)당명 숭 선사는 수산 성념首山省念 선사의 법을 이은 병주并州 승천 지숭承天智嵩 선사를 지칭한다. 승천은 주석했던 사찰명이며, 수록된 내용은 양대년楊大年과 이부마李駙馬 즉 이준욱李遵勗과 나눈 문답이다. 『古尊宿語錄』 권10(X68, 63b).
  67. 67)광혜 련廣慧璉 : 951~1036. 법명은 원련元璉이다. 수산 성념 선사의 법을 이었고 여주 광혜원廣慧院에 주석하며 종풍을 선양하였다.
  68. 68)분양 소汾陽昭 : 947~1024. 법명은 선소善昭이다. 수산 성념 선사의 법을 이었고 분양 태자원太子院에서 종풍을 선양하였다.
  69. 69)경산 묘희徑山妙喜 : 1088~1163. 원오 극근圓悟克勤 선사의 법을 이은 대혜 종고大慧宗杲 선사를 말한다. 경산은 주석하셨던 산 이름 중 하나이다. 호는 묘희妙喜 또는 운문雲門이라 하며 자는 담회曇晦이다. 담당 무준湛堂無準 선사를 참학하였고, 천녕사에 주석하던 원오 극근 선사를 참예해 대오하고 법을 이어 분좌설법分座說法하였다. 우승상右丞相 궁순도宮舜徒의 주청에 의해 고종으로부터 자의紫衣와 불일대사佛日大師라는 호를 하사받았으며, 효종으로부터 대혜선사大慧禪師라는 호를 하사받았다. 시호는 보각선사普覺禪師이다.
  70. 70)자명慈明 : 986~1040. 분양 선소 선사의 법을 이은 석상 초원石霜楚圓 선사를 말한다. 자명은 시호이다.
  71. 71)낭야 각瑯琊覺 : 법명은 혜각慧覺이고 시호는 광조선사廣照禪師며, 분양 선소 선사의 법을 이어 낭야산瑯琊山에서 크게 종풍을 선양하였다. 당시 설두 중현 선사와 더불어 2감로문甘露門으로 불렸다.
  72. 72)묘희妙喜 : 1088~1163. 임제종 양기파 원오 극근圓悟克勤 선사의 법을 이은 대혜 종고大慧宗杲 선사를 말한다. 법호를 묘희 또는 운문雲門이라 하였으며, 자는 담회曇晦이다. 우승상右丞相 궁순도宮舜徒의 주청에 의해 고종으로부터 자의紫衣와 불일대사佛日大師라는 호를 하사받았으며, 효종으로부터 대혜선사大慧禪師라는 호를 하사받았다. 시호는 보각선사普覺禪師이다.
  73. 73)삼가사견파三假四見破 : 삼가三假는 수가受假ㆍ법가法假ㆍ명가名假로서 제법이 실법이 아니라 가법임을 밝힌 교설이고, 사견四見은 무상無常ㆍ고苦ㆍ무아無我ㆍ부정不淨인 제법을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이라고 보는 잘못된 견해이다. 이런 미망迷妄과 전도된 견해를 타파하는 가르침을 가리킨다.
  74. 74)『妙法蓮華經』 권2 「譬喻品」(T9, 14b).
  75. 75)『妙法蓮華經』 권2 「譬喻品」(T9, 12c).
  76. 76)운문雲門 : 864~949. 법명은 문언文偃이고 황벽 희운黃蘗希運 선사와 목주 도명睦州道明 선사께 참학하고 후에 설봉 의존 선사의 법을 이었다.
  77. 77)우吽 : 소가 우는 소리를 흉내 낸 것이다.
  78. 78)『首楞嚴經』의 말씀이나 경문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大佛頂如來密印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권4(T19, 122b), “則汝身中, 堅相爲地, 潤濕爲水, 煖觸爲火, 動搖爲風, 由此四纏, 分汝湛圓, 妙覺明心, 爲視爲聽, 爲覺爲察.”
  79. 79)『金剛經』에 대한 부대사송傅大士頌에서 인용하였다. 경전의 말씀이라 한 것은 오류라 여겨진다. 『梁朝傅大士頌金剛經』(T85, 2a).
  80. 80)동산洞山 : 807~869. 법명은 양개良价이며, 운암 담성雲巖曇晟 선사의 법을 이었다. 광동의 신풍산新豊山과 동산洞山 보리원普利院에 주석하며 선풍을 널리 고취하고 일가를 이루었다. 시호는 오본悟本이다. 후대 그와 그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 선사의 종풍을 일컬어 조동종曹洞宗이라 하였다.
  81. 81)『般若心經』.
  82. 82)한 스님이 “무엇이 부처님의 마음입니까” 하고 묻자 위와 같이 대답하셨다. 『景德傳燈錄』 권28(T51, 437c).
  83. 83)임제 스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삼성三聖 스님에게 하신 말씀이다. 『鎮州臨濟慧照禪師語』(T47, 506c).
  84. 84)『大佛頂萬行首楞嚴經』 권9(T19, 150a).
  85. 85)『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 「二諦品」(T8, 839a).
  86. 86)유주幽州 반산 보적盤山寶積 선사의 말씀이다.
  87. 87)남전 보원南泉普願 선사의 말씀이다.
  88. 88)청원 행사靑原行思 선사와 석두 희천石頭希遷 선사의 고사이다. 『祖庭事苑』 권3(X64, 350c).
  89. 89)『大佛頂萬行首楞嚴經』 권1(T19, 108c).
  90. 90)『大佛頂萬行首楞嚴經』 권1(T19, 108c).
  91. 91)『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T8, 827c).
  92. 92)『維摩詰所說經』 「方便品」(T14, 538c).
  93. 93)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다. 여러 전적에서 예불할 때 창하는 찬불게讚佛偈의 일부로 기록하고 있다.
  94. 94)낙포洛浦 : 834~898. 낙포는 낙보樂普라고도 한다. 법명은 원안元安이며 취미 무학ㆍ임제 의현 선사 등께 참학하고 협산 선회夾山善會 선사의 법을 이었다. 호남성의 낙포樂浦와 낭주의 소계蘇谿에서 종풍을 선양하였다.
  95. 95)약산藥山 : 745~828. 법명은 유엄惟儼이며 석두 희천의 법을 이어 예주 약산에서 종풍을 선양하였다.
  96. 96)귀종歸宗 : 법명은 지상智常이며 마조 도일馬祖道一 선사의 법을 이었다. 귀종사歸宗寺에 주석하며 종풍을 선양하였고 시호는 지진선사至眞禪師이다.
  97. 97)분주汾州 : 760~821. 법명은 무업無業이며 마조 도일 선사의 법을 이었다. 산서성 분주 개원사開元寺에 주석하며 종풍을 선양하였다.
  98. 98)보화普化 : ?~861. 마조 도일 선사와 반산 보적盤山寶積 선사의 법을 이었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치 않다. 임제 의현 선사와 관련된 여러 일화가 전한다.
  99. 99)『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권4(T19, 212b).
  100. 100)3종의 상속 : 세간世間ㆍ업과業果ㆍ중생衆生 이 세 가지의 상속을 말한다.
  101. 101)『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권4(T19, 121a).
  102. 102)『瑞州洞山良价禪師語錄』(T47, 525c).
  103. 103)영가永嘉 : 665~713. 법명은 현각玄覺이고 진각대사眞覺大師라고도 하며, 온주부 영가현永嘉縣 출신이다. 좌계 현랑左溪玄朗과 더불어 천태 지자天台智者의 교관敎觀을 학습하였으며, 여러 강사講肆를 편력하고 선지식을 참방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涅槃經』을 열람하다가 홀연히 법지法旨를 깨닫고 즉시 조계曹溪로 찾아가 육조六祖의 인가印可를 구하였다. 그가 깊이 깨달은 것을 육조께서 찬탄하시자 곧바로 황급히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육조께서 하룻밤이라도 머물고 가라고 해 일숙각一宿覺이라 불렸다.
  104. 104)『證道歌』(T48, 395c).
  105. 105)『大佛頂萬行首楞嚴經』 권2(T19, 114a).
  106. 106)『維摩詰所說經』 「觀衆生品」(T14, 548a).
  107. 107)뜰 앞의 잣나무 : 조주 종심趙州從諗 선사의 화두이다. 『古尊宿語錄』 권13 「趙州眞際禪師語錄」(X68, 77b).
  108. 108)여릉廬陵의 쌀값 : 무주撫州 황산 월륜黃山月輪 선사와 협산 선회夾山善會 선사의 고사가 있다. 『聯燈會要』 권23(79, 200a).
  109. 109)대낮에 산을 본다 : 운문 문언雲門文偃 선사의 화두이다. 『雲門匡眞禪師廣錄』 권상(T47, 545b).
  110. 110)바위가 큰~것은 작다 : 연수사延壽寺 혜륜慧輪 선사의 법을 이은 도전道詮 선사의 화두이다. 『景德傳燈錄』 권24(T51, 403a).
  111. 111)네가 혜초다 : 법안 문익法眼文益 선사의 화두이다. 『碧巖錄』 제7칙(T48, 147a).
  112. 112)마 껍질이 서 근이다 : 동산 수초洞山守初 선사의 화두이다. 『碧巖錄』 제12칙(T48, 152c).
  113. 113)바람의 움직임도~움직임도 아니다 : 육조 혜능六祖慧能 대사의 화두이다. 『六祖大師法寶壇經』(T48, 349a).
  114. 114)문 밖 빗소리다 : 경청 도부鏡淸道怤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문밖에 무슨 소리냐?”라고 묻자 그 스님이 “빗소리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五燈會元』 권7 「越州鏡淸寺道怤順德禪師」(X80, 158a).
  115. 115)언계偃溪의 물소리가 들리는가 : 현사 사비沙宗師備 선사의 화두이다. 『景德傳燈錄』 권18(T51, 347a).
  116. 116)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 구지俱胝 화상의 고사다. 『碧巖錄』 제19칙(T48, 159a).
  117. 117)석두石頭 : 700~790. 법명은 희천希遷이다. 육조 혜능 대사께 득도하였으며, 육조께서 입적하시자 청원 행사 선사께 참학하고 법을 이었다. 형산衡山 남사南寺 동쪽 바위 위에 암자를 짓고 항상 좌선하며 지내 석두화상石頭和尙으로 불렸다.
  118. 118)『景德傳燈錄』 권30 「南嶽石頭和尙參同契」(T51, 459b).
  119. 119)영운靈雲 : 법명은 지근志勤이며, 위산 영우潙山靈祐 선사의 법을 이었다. 복주 대안福州大安ㆍ설봉 의존雪峰義存ㆍ현사 사비玄沙師備 등을 참례하였고, 복숭아꽃 피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일화로 유명하다.
  120. 120)『圓悟佛果禪師語錄』 권7(T47, 790b)에서는 이를 장생長生과 장경長慶 스님의 문답으로 기록하였고, 『祖庭事苑』 권5(X64, 387a)에는 위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121. 121)투자投子 : 819~914. 법명은 대동大同이며 취미 무학翠微無學 선사께 참학하고 투자산投子山에 은거하였다.
  122. 122)『古尊宿語錄』 권36 「投子和尙語錄」(X68, 233c)에 위 문답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汾陽無德禪師語錄』(T47, 610a)에서는 이를 덕산德山 스님과의 문답으로 기록하고 있다.
  123. 123)원문은 “一味之法, 隨力爲說”인데 전거를 찾을 수 없다. 『妙法蓮華經』 권3 「藥草喻品」(T9, 19c)에서 “한맛의 법을 역량에 따라 수행하다.(一味之法, 隨力修行.)”라고 한 것을 잘못 인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124. 124)『五燈會元』ㆍ『嘉泰普燈錄』 등 많은 선적에서 단하 자순丹霞子淳 선사의 법을 이은 지주池州 감지 행자甘贄行者의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다. 『五燈會元』 권4(X80, 98a).
  125. 125)길을 가다 마조 선사가 백장 스님에게 물었다. “저것이 무엇인가?” 백장이 “기러기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마조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디로 갔느냐?” 백장 스님이 “날아갔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마조 선사께서 백장 선사의 코를 비틀었다. 백장 선사가 참을 수 없어 ‘아얏!’ 하고 소리를 치자 마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가긴 어딜 가.” 『碧巖錄』 제53칙(T48, 187c).
  126. 126)『天台四敎儀』(T46, 774c).
  127. 127)『首楞嚴經』 권1(T19, 107a).
  128. 128)부처님께선 깨달음을 얻으시고 보리수 아래에서 21일 동안 삼매에 드셨다.
  129. 129)『金剛經』에 대한 부대사송傅大士頌에서 인용하였다. 경전의 말씀이라 한 것은 오류라 여겨진다. 『梁朝傅大士頌金剛經』(T85, 2a).
  130. 130)『妙法蓮華經』(T9, 8c).
  131. 131)『景德傳燈錄』 권5(T51, 240a).
  132. 132)『宏智禪師廣錄』 권3(T48, 28c)에 운개雲蓋 스님과 석상石霜의 문답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문장과 내용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참고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雲蓋問石霜, ‘萬戶俱開卽不問, 萬戶俱閉時如何?’ 霜云, ‘堂中事作麽生?’ 蓋無語, 經半年方乃云, ‘無人接得渠.’ 霜云, ‘道卽大殺道, 祇道得八成.’ 蓋云, ‘和尙作麽生?’ 霜云, ‘無人識得渠.’”
  133. 133)위 내용이 『碧巖錄』 권5 제45칙(T48, 181c) 등에 수록되어 있으나 문장과 내용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134. 134)무엇을 자학字學이라 하며 : 원문에는 이 부분이 없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 “云何謂之字學”이 누락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보입하여 번역하였다.
  135. 135)법창 우法昌 遇 : 1005~1081. 법명은 의우倚遇이며, 운문종 북선 지현北禪智賢의 법을 이었다.
  136. 136)황룡 혜남黃龍慧南(1002~1069) 선사가 법창 의우法昌倚遇 선사를 찾아가 거량한 뒤에 지은 게송이다. 『續傳燈錄』 권5(T51, 497a).
  137. 137)명교 숭明敎 崇 : 1007~1072. 법명은 계숭契嵩이며 법호는 명교明敎이다. 동산 효총洞山曉聰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불일산佛日山 정혜원定慧院에 오래 주석하셨다.
  138. 138)회會 : 996~1046. 법명은 방회方會이며, 초원 자명楚圓慈明 선사의 법을 이어 임제종의 종풍을 크게 진작하였다. 후대 양기파의 개조로 추앙되었다.
  139. 139)보녕 용保寧勇 : 법명은 인용仁勇이며 생몰 연대는 명확치 않다. 설두 중현 선사께 참학하였고, 양기 방회 선사의 법을 보녕사保寧寺에서 종풍을 선양하였다.
  140. 140)늑담 영泐潭 英 : 1012~1070. 법명은 홍영洪英이다. 황룡 혜남 스님의 법을 이어 석문산石門山 늑담사泐潭寺에서 종풍을 선양하였다.
  141. 141)장로 자각長蘆慈覺 : 임제종 양기파 스님으로 생몰 연대는 정확치 않다. 파암 조선破庵祖先 선사의 법을 이어 장로산長蘆山ㆍ운거사雲居寺 등지에서 종풍을 선양하였다.
  142. 142)용아 거둔龍牙居遁(835~923) 선사의 게송 일부이다. 『禪門諸祖師偈頌』(X66, 726c).
  143. 143)사조 도신四祖道信 선사께서 우두 법융牛頭法融 선사께 하신 말씀이다.
  144. 144)용문 불안龍門佛眼 : 1067~1120. 법명은 청원淸遠이며 임제종 양기파 오조 법연五祖法演 선사의 법을 이었다. 용문龍門은 주석했던 사찰명이며, 불안佛眼은 황제가 하사한 칙호이다.
  145. 145)『古尊宿語錄』권28 「舒州龍門佛眼和尙語錄』(X68, 182a).
  146. 146)『宏智禪師廣錄』 권8(T48, 100a).
  147. 147)목암 선경睦庵善卿 : 『祖庭事苑』을 편찬하신 분이다.
  148. 148)자잠자子潛子 : 누구를 지칭한 것인지는 명확치 않다. 『從容錄』 권5(T48, 276a)에서는 “嵩明敎, 爲序稱之.”라 하였고, 『人天眼目』 권4(T48, 321c)에서는 “明敎嵩禪師, 爲之序, 稱道其美.”라 하였다. 『鐔津文集』 권11(T52, 707c)에 명교 계숭明敎契嵩 선사가 쓴 「明州五峯良和尙語錄敘」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從容錄』과 『人天眼目』의 기록이 옳은 것으로 추정된다.
  1. 1){底}貞祐七年妙峯庵刊本。
  2. 2)「大」通「太」{編}。
  3. 1)「下」失劃{編}。
  4. 2)「知」疑「和」{編}。
  5. 3)「其」疑「某」{編}。
  6. 4)」之三圓內有字。然字形未審{編}。
  7. 1)▣疑「亦」{編}。
  8. 2)「具」疑「貝」{編}。
  9. 3)「广」疑「麽」{編}次同。
  10. 1)▣字體或似「瑫」{編}。
  11. 2)「第」通「弟」{編}。
  12. 1)▣拈頌作「一」{編}。
  13. 2)▣▣疑「禮拜」{編}。
  14. 1)▣疑「正」{編}。
  15. 1)▣疑「前」{編}。
  16. 1)「幼」疑「幻」{編}。
  17. 1)「▼(尸/冋)」恐是「屙」之誤刻{編}.
  18. 1)「機」下疑脫「云何謂之學」{編}。
  19. 2)▣疑「程」{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