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운봉선사심성론(雲峰禪師心性論) / 心性論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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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론 서
운봉 대지가 손을 씻고 향을 사르고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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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001_a_23L2)心性論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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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001_a_25L雲峯子大智盥手焚香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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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원만하고 공적한 마음의 본체를 가지고 있으니, 그 마음의 본체는 보고 들음을 초월하고 태허太虛를 포함하고 있다. 사람은 광대하고 신령하게 통하는 성품의 작용을 가지고 있으니, 그 성품의 작용은 일정한 방향과 처소를 떠나 있고 법계에 가득하다. 《비록 세간이 크다고 하지만 허공보다 크지 않고, 비록 한 물건이 있음을 알지만 다시 이것을 넘어 있다.》 그것은 고요히 텅 비고 깊이 그윽하여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없고 볼 수 있는 모습이 없다. 《실상은 이름을 떠나 있고 법신은 자취가 없어서 이름과 모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체體의 양이 넓고 커서 갠지스 강의 모래알같이 많은 성덕性德과 한량없는 묘용妙用을 원래부터 스스로 구족하고 있다. 《지체智體에 있는 갠지스 강의 모래알같이 많은 공덕과 한량없는 묘용이 온전히 중생의 몸 안에 원만하게 구족되어 있기 때문이다.》 허공 세계가 모두 본각 안에 있고, 삼계·육도가 모두 진실한 성품의 모습이다. 《대도大道는 끝이 없으니, 허공을 어찌 측량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능히 커져서 갠지스 강의 모래알같이 많은 세계를 모두 감싸 안을 수도 있고, 능히 작아져서 한 티끌 안에 있을 수도 있다. 감도 없고 옴도 없어서 천 겁을 지나도 낡아지지 않고,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어서 시방에 두루하되 다함이 없으니, 격렬한 천둥이라 하더라도 어찌 이보다 더 빠르겠는가. 신속한 번개도 이에 비하면 밝은 빛이 아닐 것이다. 《해와 달이 비록 밝지만, 그 밝음을 비유할 수 없다.》 그것은 일상 생활을 벗어나지 않아서 목마르면 물 마시고 배고프면 밥 먹으면서 항상 대면하며, 늘 움직이는 가운데서 일어났다 앉을 때 서로 함께하여 세월이 흘러도 늘 그러하다. 희미하고 어렴풋하여1) 생각과 의론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다.
다음 두 장 반2)의 내용은, 규봉 종밀이 여래장을 해석하면서 “일체중생의 몸에는 여래의 덕상德相이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으니, 나도 이와 다르지 않다.”3)고 말한 내용을 취하여 여러 초심자들로 하여금 일시에 부처님의 뜻을 원만히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규봉은 『원각경소』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였다.
일반적으로 ‘여래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감추어 덮고 있다는 뜻이다. 여래를 덮어 저장하고 있기 때문에 장藏이라고 한다. 장藏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여래가 저장되어 있음과 중생이 저장하고 있음이다. 그러므로 『이취반야경理趣般若經』에서 “일체중생은 모두 여래장이다.”라고 하였다. 일체중생은 태생胎生·난생卵生·습생濕生·화생化生의 준동함령蠢動含靈4)을 말한다. 『능엄경』에서 “화생化生은 떠남으로써 응하는 것이다.”5)라고 하였으니, 변역變易은 곧 떠남이다. 이것을 떠나 저것에 의지하고, 옛것을 돌려 새것으로 나아간다. 이름을 새롭게 하기 때문에 옛것을 상상하기 어렵고, 허물을 벗기 때문에 새것으로 나아간다. 가령 벌레가 나비로 변하면 꿈틀거리며 기어가던 것이 전화轉化되어 날아가게 되고, 참새가 조개로 변하면6) 날갯짓을 벗어 버리고 자맥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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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有圓滿空寂之心軆絕視聽而含太
009_0001_b_02L人有廣大靈通之性用離方處而
009_0001_b_03L周法界雖世間最大莫過虛空
雖知有一物更過於此
蕭焉空寂
009_0001_b_04L爾冲虛無名可名無相可覩實相離名
身無迹名狀
009_0001_b_05L不得故
云爾
體量恢恢恒沙性德無量妙用
009_0001_b_06L元自具足智體上恒沙功德無量妙用
全在衆生身中圓滿具足故

009_0001_b_07L世界皆在本覺之內三界六道悉是
009_0001_b_08L眞性之相大道無邊際
虛空豈度量
能大而俱該沙界
009_0001_b_09L能少而在一微塵無去無來歷千劫而
009_0001_b_10L不古非中非外徧十方而無窮疾雷何
009_0001_b_11L大急迅電亦非光日月雖明
能喩其明
不離日用
009_0001_b_12L渴飮飢飡常對面常在動用起坐相將
009_0001_b_13L歲月長希夷然恍惚焉逈出思議之表
009_0001_b_14L此下二紙半擇取圭山釋如來藏中
009_0001_b_15L一切衆生身內如來德相備足如我無
009_0001_b_16L異之說令諸初心一時圓見佛意圭峯
009_0001_b_17L通云如來藏者由三義故一隱覆義
009_0001_b_18L謂覆藏如來故云藏也藏有二義如來
009_0001_b_19L所藏衆生能藏故理趣般若經云
009_0001_b_20L切衆生皆如來藏一切衆生者胎卵
009_0001_b_21L濕化 [2] 動含靈者是也楞嚴云化以
009_0001_b_22L離應變易即離也離此托彼轉故趣
009_0001_b_23L名新故亂想蛻脫故趣新也如虫
009_0001_b_24L爲蝶則轉行爲飛如雀爲蛤則蛻飛

009_0001_c_01L무릇 다른 형상으로 바뀌는 것은 모두 전화이고 허물을 벗는 것이다. 이처럼 중생은 모두 온전한 하나의 여래장의 몸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능히 작아져서 인허鄰虛7)에 쏙 들어간다는 설을 결코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이취반야경』에서 다음으로 “여래법신은 일체중생 가운데 이미 두루하지만 가리고 덮여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생이 바로 여래장이다.”라고 하였다. 장藏에 여래가 있기 때문에 여래장이라고 한 것이지, 장藏이 곧 여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궤짝 안에 금이 있을 경우, 이름이 ‘금궤’이지 궤짝이 곧 금이 아닌 것과 같다. 궤짝은 곧 나무이다. 마찬가지로 장藏은 바로 중생이다.
『승만경勝鬘經』에서 “생사의 두 법을 여래장이라고 한다.”고8) 하였다. 세존이시여, 생사生死란 받았던 모든 육근이 없어지고 차례로 받은 육근이 모두 생겨나는 것이니, 이것을 생사라 합니다. 세존이시여, 생사의 두 법이 여래장이지만, 세상에 언설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있고 태어남이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육근이 파괴되는 것이고, 태어남은 모든 육근이 새롭게 일어나는 것이지, 여래장에 태어나고 죽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래장은 함이 있는 모습(有爲相)을 떠나 있어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장이라고 하는 것이니, 이것을 의지하고 지녀야 합니다.9) 또 “여래법신이 번뇌장을 떠나지 않는 것을 여래장이라 한다.”10)고 하였다.
『여래장경如來藏經』에서 “일체중생은 탐내고 화내며 어리석은 모든 번뇌 가운데 여래의 몸을 가지고 있고, 더 나아가 항상 물들거나 더러워짐이 없이 덕상德相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으니, 나도 이와 다르지 않다.”11)고 하였다. ‘일체중생’부터 ‘나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말까지는,

009_0001_c_01L爲潜凡以不同形相禪皆轉蛻也
009_0001_c_02L是衆生皆有全一如來藏體故能小而
009_0001_c_03L細入鄰虛之說無疑也必然理趣經次
009_0001_c_04L如來法身旣遍一切衆生中而隱
009_0001_c_05L覆不現故衆生即是如來藏也藏有如
009_0001_c_06L故名如來藏非謂藏即如來如樻
009_0001_c_07L中有金名曰金樻非樻即金樻乃是
009_0001_c_08L如藏是衆生勝鬘云生死二法
009_0001_c_09L如來藏世尊生死者諸受根沒次第
009_0001_c_10L諸受根起是名生死世尊生死者此
009_0001_c_11L二法是如來藏世間言說故有死有
009_0001_c_12L死者諸根壞生者新諸根起非如
009_0001_c_13L來藏有生有死如來藏離有爲相
009_0001_c_14L住不變是故名如來藏是依是持
009_0001_c_15L來法身不離煩惱藏名如來藏如來
009_0001_c_16L藏經云一切衆生貪嗔癡諸煩惱中
009_0001_c_17L如來身乃至常無染汙德相備足
009_0001_c_18L我無異言一切衆生至如我無異者
009_0001_c_19L{底}康熙二十五年自章書記本(國立圖書舘所
009_0001_c_20L藏) {甲}高麗大學校所藏刊年未詳本栖岩溪谷
009_0001_c_21L科釋本曾在明矣只斷簡數板殘存此書依其
009_0001_c_22L殘簡補缺處於底本以成一書也故編次多異
009_0001_c_23L異板亦混在其中編者示其相異於脚註以詳之
009_0001_c_24Lㆍ又有鉛印本佛敎學報第七輯收載
此序文
009_0001_c_25L無有{甲}
」疑「蠢」{編}次同

009_0002_a_01L경經의 서분序分에 “이때 세존께서 전단중각栴檀重閣에서 바르게 앉아 삼매에 들어가 신통변화를 나타내셨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연꽃이 화불化佛을 품고서 허공에 올라가 세계를 뒤덮고 있었다. 하나하나의 연꽃이 빛을 발하다가 동시에 꽃망울을 터뜨렸다. 잠깐 사이에 시들었지만 꽃 안의 화불은 여전히 가부좌하여 빛을 발하고 있었다. 대중들이 괴이하게 여겨 의심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 ‘거리낌 없이 물어 보라’고 말씀하셨다. 금강혜보살이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께서 변화하여 드러나심이 이와 같습니까?’라고 질문하였다.”고 한 것과, 다음 정종분의 처음에서 “부처가 화생한 수없이 많은 연꽃은 내가 부처의 눈으로써 일체중생의 탐냄·욕심·화냄·어리석음의 온갖 번뇌 가운데 여래장이 있고 항상 물들거나 더러워짐이 없이 덕상德相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는 것을 관찰한 것이니, 나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하시고, 곧바로 아홉 가지 비유로 깨우쳐 주신 것을 말한 것이다.
두 번째는 품어 포섭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래법신은 몸으로서의 국토와 신통한 대용과 한량없는 공덕을 품어 포섭하고 있고, 또한 일체중생을 품어 포섭하고 있으니, 이 모두가 여래장 안에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생겨나게 한다는 뜻이다. 이 법신이 이미 온갖 덕을 품어 포섭하였고 요달하여 증입하였으니, 생겨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십지론』에서 “지위의 지혜는 무루인과無漏因果를 생겨나게 할 수도 있고, 인천人天이 되는 행을 생겨나게 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진망화합12)에 의거해 보면 전체적으로 두 개의 행상行相이 있다. 이 『원각경』에서는 ‘여래장의 자성차별’을 말하였고, 『기신론』에서는 ‘진여와 생멸’을 말하였다. 그런데 진망화합에 각각 두 가지 뜻이 있다. 진眞에는 불변不變(변하지 않음)과 수연隨緣(인연을 따라 변함)이 있고, 망妄에는 체공體空(본체가 공함)과 성사成事(현상을 이룸)가 있다. 진眞에서의 불변과 망妄에서의 체공은 진여자성에 해당하고, 진眞에서의 수연과 망妄에서의 성사는 생멸차별生滅差別에 해당한다.13)
규봉 대사가 여래장을 설명하면서 “이 아래는 모두 일심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하고, 또 “『기신론』에서 일심을 가리켜 여래장이라고 하였다.”14)라고 한 대목에 이르러 보면, 경과 논의 글이 이름은 다르지만 뜻은 같다. 왜냐하면, 『기신론』에서는 ‘망상이 일어나매 닦아서 끊는 것’을

009_0002_a_01L初發起序云爾時世尊於旃檀重閣
009_0002_a_02L正坐三昧而現神變有無量蓮華
009_0002_a_03L開華內皆有化佛昇空彌覆世界
009_0002_a_04L一蓮華放光同時舒榮須臾萎變
009_0002_a_05L內化佛趺坐放光衆恠而疑佛言
009_0002_a_06L金剛慧菩薩問何故諸佛變現如
009_0002_a_07L次正宗初答云如佛所化無數蓮
009_0002_a_08L我以佛眼觀一切衆生貪欲恚癡諸
009_0002_a_09L煩惱中有如來藏常無染汙德相備
009_0002_a_10L如我無異便以九喩喩之二含攝
009_0002_a_11L謂如來法身含攝身相國土神通
009_0002_a_12L大用無量功德又亦含攝一切衆生
009_0002_a_13L皆在如來藏內故三出生義謂此法身
009_0002_a_14L旣含衆德了達證入即能出生故
009_0002_a_15L地論云地智能生無漏因果亦能生成
009_0002_a_16L人天行然約眞妄和合揔有二種行相
009_0002_a_17L謂此經下云如來藏自性差別論云眞
009_0002_a_18L如生滅然眞妄和合各有二義眞謂
009_0002_a_19L不變隨緣妄謂體空成事眞中不變
009_0002_a_20L妄中體空即眞如自性也眞中隨緣
009_0002_a_21L妄中成事即生滅差別也圭峯大師
009_0002_a_22L至如來藏中云此下皆是現一心也
009_0002_a_23L論指一心云如來藏經與論文
009_0002_a_24L別而義同何者論中生起修斷者

009_0002_b_01L일심법에 의거해 설하였고, 『원각경』에서는 ‘망상이 일어나매 닦아서 끊는 것’을 여래장에 의거해 설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신론』과 『원각경』뿐만 아니라 성교性敎 40여 부도 이와 같다.15)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온전한 하나의 여래장의 체가 업을 따라 발현한다.”16)라고 말씀하였다. 발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망妄을 따라 발현하는 것이니, 이것은 염연기染緣起이다. 두 번째는 진眞에 의거해 발현하는 것이니, 이것은 정연기淨緣起이다. 그러나 사람들뿐만 아니라 준동함령蠢動含靈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와 같다. 부처님께서 또 “그대들 한 사람이 진眞을 발하여 근원에 돌아가면 이 시방세계의 허공이 모두 없어질 것이다.”17)라고 하였다.
혹자가 물었다.
“유루有漏의 허공계는 중생들이 함께 느끼는 것인데, 어떻게 한 사람이 없앨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예나 지금이나 진眞을 일으킨 자가 많았는데도 허공계는 그대로 있으니, 어찌 없어지는 것이겠습니까?”
답한다.
“중생은 다함이 없고 세계는 끝이 없으므로 비록 한 사람이 진眞을 일으키더라도 대중들이 다시 번뇌를 불러들이기 때문에 허공계는 여전히 그대로 있는 것이다. 만약 같은 업을 가진 사람이 함께 진眞을 일으킬 수 있다면, 산하의 기세간器世間이 그 염원에 응하여 위없는 지각知覺을 이루어 깨끗하고 신묘한 불국토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삼계와 만법이 어디에도 돌아갈 고향이 없다’18)고 말하는 것이다.” 《또 불상응의 뜻을 해석하는 가운데 즉심卽心의 심心은 심왕心王이고, 즉심卽心의 불각不覺은 심수心數임이 분명하다.》
다음 한 장의 내용은 여러 단서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시험 삼아 전체적으로 결론을 내려 본 것이다. 이른바 법은 중생심이고 그 법의 체는 여래장심으로, 화합과 불화합의 두 문을 갖추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중생의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부처의 지위에 있다면, 화합의 뜻이 없어서 시각이 본각과 같다. 오직 진여의 뜻만을 드러낼 뿐이다. 《진여성을 설명하면서 비록 상相을 끊었다고 말하지만, 처음부터 물들거나 더러워짐이 없는 덕상德相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으니, 어떤 사람이 다만 상相을 끊는 뜻만을 말하고 성공덕性功德의 뜻을 말하지 않는다면 미혹한 것이다.》 지금은 번뇌에 오염된 중생의 지위에서 설명하기 때문에 두 문을 갖추게 된 것이다.19) 『기신론』에 각의覺義와 불각의不覺義가 있는데, 각의覺義에서 설명한 ‘주체적으로 깨닫는 시각과 그 대상인 본각의 뜻’은 『정원소貞元疏』20)에서 말한 ‘깨달음의 주체(能悟)와 깨달음의 대상(所悟)의 뜻’과 같다.

009_0002_b_01L一心法而作也圓覺中生起修斷者
009_0002_b_02L如來藏而作也然非徒起信圓覺性敎
009_0002_b_03L四十餘部亦復如是故佛云全一如
009_0002_b_04L來藏體循業發現發現者有二一隨
009_0002_b_05L妄發現此染緣起二依眞發現此淨
009_0002_b_06L緣起然非惟人等䘉動含靈皆亦如
009_0002_b_07L佛又云汝等一人發眞歸元此十
009_0002_b_08L方空皆悉消殞或曰有漏空界乃衆生
009_0002_b_09L同感云何一人而能消殞矧今古發眞
009_0002_b_10L者衆而空界依然安在其消殞耶
009_0002_b_11L衆生不可盡世界不可盡故雖一人發
009_0002_b_12L而衆復感結所以依然使同業之
009_0002_b_13L同能發眞則山河器界應念化成
009_0002_b_14L無上知覺而爲淨妙佛土矣故云三界
009_0002_b_15L與萬法匪歸何有鄕又不相應義釋中即心
之心者心王即心之不
009_0002_b_16L覺者心數
明矣
此下一紙疑有多端故甞試
009_0002_b_17L通決所言法者謂衆生心出其法體
009_0002_b_18L謂如來藏心具和合不和合二門以其
009_0002_b_19L在於衆生位故若在佛地則無和合義
009_0002_b_20L以始覺同本唯是眞如即當所顯義也
009_0002_b_21L眞如性中雖曰絕相然常無染汙德相俻足
有人但云絕相義不云性功德之義惑矣

009_0002_b_22L就隨染衆生位中故得具二門也論有
009_0002_b_23L覺不覺義覺義中能悟所悟始本二覺
009_0002_b_24L亦如貞元䟽中能悟所悟之義不覺

009_0002_c_01L불각에는 또 근본불각과 지말불각의 뜻이 있다. 근본은 『기신론』에서 ‘진여’라고 말한 것으로 미혹되는 대상(所迷)이다. 불각은 『기신론』에서 ‘알지 못한다(不知)’고 말한 것으로 미혹하는 주체(能迷)이다. 『원각경』에서 ‘이장理障’이라고 말한 것을 『원각경소』에서는 ‘근본무명’이라고 설명하였으니,21) 이름은 다르지만 뜻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장애하는 주체(能障)를 근본불각이라 이르는데, 이는 장애되는 대상(所障)으로부터 이름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미륵이 사장事障을 설명하는 주註의 마지막 문장에서 ‘이장지애理障智碍’라고 말한 것22)은 모두 장애되는 대상所障으로부터 이름을 얻은 것이다. 따라서 『기신론』의 본문에 “불각심이 일어나 그 망념이 있다.”23)고 한 것은 지말불각을 전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 다시 지말불각을 두었으니, 지말은 구상九相24) 육염六染25)으로서 미혹되는 대상(所迷)이고, 불각은 미혹하는 주체(能迷)라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사주지무명에 또 두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신상응지보살이 끊는바 견도와 수도의 사주지무명이니, 의식에 있는 집취상과 계명자상이 이것이다. 두 번째는 일법계를 통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음이 서로 상응하지 못하고 홀연히 망념이 일어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주지무명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설명하는 데 앞뒤의 순서가 있다. 윗글의 사위四位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에서, 끊어야 할 육염六染의 미혹을 완전히 다스리는 것에 대해 설하면서 무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무명까지도 다스려 없애야 함을 은근히 감추어 설하였다. 다시 거듭 살펴보건대, 비록 지위마다 무명을 다스려 없앤다고 하였지만 틀림없이 육염六染까지도 아울러 없애는 것일 것이다. “이 (아래)” 이하는 염심染心과 무명을 상응의 의미로 해석하였고, “윗글” 이하는 이끌어 증명한다는 의미로 밝혔다. 그렇다면 다스림과 없어짐이 모두 일시에 일어남을 알 수 있다.


009_0002_c_01L又有根本枝末二不覺義根本者文
009_0002_c_02L中眞如所迷也不覺者文中不知
009_0002_c_03L迷也圓覺理障中疏云根本無明
009_0002_c_04L別而義同可知又能障名根本不覺
009_0002_c_05L然從所障得名故彌勒事障末文註云
009_0002_c_06L理障智碍等皆從所障得名故大文
009_0002_c_07L次云不覺心起而有其念者枝末不
009_0002_c_08L揔標名也次下更有枝末不覺
009_0002_c_09L末者九相六染所迷也能迷不覺
009_0002_c_10L此可知四住地無明又有二義
009_0002_c_11L信相應地菩薩所斷見修四住地無明也
009_0002_c_12L意識中執取計名是也以不達一法
009_0002_c_13L界故心不相應者忽然念起者即是四
009_0002_c_14L住地無明無疑矣說有前後者上文四
009_0002_c_15L位中所斷六染之惑全治然影滅無
009_0002_c_16L明也更重料揀則雖有位位治滅無明
009_0002_c_17L兼滅六染明矣此字下染心與無明
009_0002_c_18L以相應之義釋之上字下以引證之
009_0002_c_19L明之然則治滅並一時之義可知矣
  1. 1)『도덕경』 제14장에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희希라 하며,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것을 미微라 한다. 이 세 가지는 끝내 단독으로는 밝힐 수 없어서 섞어서 하나가 된다. 그 위도 밝지 않고 그 아래도 어둡지 않으며 실타래처럼 이어지고 이어져서 이름 부를 수 없지만 결국 무無라는 물건에 돌아가니, 이것을 상태 없는 상태, 모양 없는 모양이라고 말하고, 또한 황홀이라고 말한다.(視之不見。名曰夷。聽之不聞。名曰希。搏之不得。名曰微。此三者。不可致詰。故混而爲一。其上不皦。其下不昧。繩繩不可名。復歸於無物。是謂無狀之狀。無象之象。是謂惚恍。)”라고 하였다.
  2. 2)‘다음 두 장 반(二紙半)’이라 한 것은 목판본을 종이에 인쇄할 경우 종이의 두 장 반에 해당하는 부분을 말한 것이다. 여기서 ‘종이 한 장’은 오늘날 인쇄본에서 2페이지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두 장 반’은 5페이지 분량에 해당한다.
  3. 3)『원각경소』 권1(T39, 535ab) 참조.
  4. 4)준동함령蠢動含靈 :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으로 영靈을 함유하고 있는 것, 즉 모든 중생을 말한다.
  5. 5)『수능엄경首楞嚴經』(T19, 120b).
  6. 6)『예기禮記』 권2에 “참새는 바다에 들어가서 조개가 된다.(雀入于海爲蛤)”고 하였다. 이로 볼 때, 옛사람들은 참새가 조개로 변화하였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7. 7)인허鄰虛 : ‘극미極微’와 같은 뜻으로 ‘지극히 작은 것’을 말한다.
  8. 8)『승만경』(T12, 222b) 참조.
  9. 9)『승만경』(T12, 222b).
  10. 10)『승만경』(T12, 221c).
  11. 11)『여래장경』 권1(T16, 457c) 참조.
  12. 12)진망화합眞妄和合 : 진眞과 망妄의 화합, 즉 불생불멸의 진여와 생멸하는 허망이 함께 있는 상태이다.
  13. 13)『원각경소』 권1(T39, 535ab) 참조.
  14. 14)『원각경소』 권1(T39, 535a)에 “여래장을 설명한 글에서 위의 두 문장은 제법을 밝힌 것이고, 이 아래는 모두 일심을 드러내었다. 『기신론』에서 일심을 가리켜 여래장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如來藏中。上二句明諸法。此下皆是顯一心也。論指一心云如來藏故。)”라고 하였다.
  15. 15)‘성교性敎’라고 말한 것은 규봉 종밀이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T48, 402b)에서 말한 ‘교삼종敎三種’ 중에서 세 번째인 ‘진심이 곧 성품임을 드러낸 가르침(顯示眞心卽性敎)’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현시진심즉성교’를 설명하면서 ‘성교性敎’의 40여 부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시진심즉성교’는 ‘화엄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16. 16)『수능엄경』(T19, 117c)에서 “여래장 가운데 성색의 진공과 성공의 진색은 본래부터 청정하고 법계에 두루하지만 중생심을 따라 응하여 알고 헤아리는 것이니, 업에 따라 발현한 것이다.(如來藏中。性色眞空。性空眞色。清淨本然。周遍法界。隨衆生心。應所知量。循業發現。)”라고 하였다.
  17. 17)『수능엄경』(T19, 147b).
  18. 18)『대혜보각선사어록』(T47, 937b).
  19. 19)현수 법장賢首法藏(643~712),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T44, 250) 참조.
  20. 20)『정원소』(X5)는 40권 『화엄경』(T10)에 대한 청량 징관의 해석서이다. 40권 『화엄경』이 정원貞元 14년(798)에 반야에 의해 번역되자 청량 징관이 이것을 해석한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청량 징관이 80권 『화엄경』을 해석한 것을 『화엄경소華嚴經疏』(T35)라 말하는데, 이것은 『정원소』보다 10여 년 전에 찬술된 것이다.
  21. 21)『원각경소』(T39, 552b)에서 “첫 번째는 이장理障이니, 바른 지견을 막는 근본무명이다.(一者理障。礙正知見。根本無明也。)”라고 하였다.
  22. 22)『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T30, 872c)의 내용인 것 같다.
  23. 23)『기신론』(T32, 577a).
  24. 24)구상九相 : 『기신론』의 삼세三細와 육추六麁를 합쳐서 구상이라고 한다. 삼세는 무명업상無明業相·능견상能見相·경계상境界相이고, 육추는 지상智相·상속상相續相·집취상執取相·계명자상計名字相·기업상起業相·업계고상業繫苦相이다.
  25. 25)육염六染 : 『기신론』에서 설명하는 여섯 가지 오염된 마음이다. 즉 집상응염執相應染·부단상응염不斷相應染·분별지상응염分別智相應染·현색불상응염現色不相應染·능견심불상응염能見心不相應染·근본업불상응염根本業不相應染이다.
  1. 1){底}康熙二十五年自章書記本(國立圖書舘所藏) {甲}高麗大學校所藏刊年未詳本。栖岩溪谷科釋本。曾在明矣。只斷簡數板殘存。此書依其殘簡。補缺處於底本。以成一書也。故編次多異。異板亦混在其中。編者示其相異於脚註。以詳之ㆍ又有鉛印本。佛敎學報第七輯收載。
  2. 2)此序文無有{甲}。
  3. 3)」疑「蠢」{編}次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