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선원제전집도서과평(禪源諸詮集都序科評) / 禪源諸詮集都序科評卷下

ABC_BJ_H0186_T_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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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제전집도서과평 하권(禪源諸詮集都序科評 卷下)
해동사문 설암 추붕 과평海東沙門 雪巖秋鵬 科評
선원제전집도서 하권

종남산 초당사 사문 종밀 지음

나) 다른 점을 분간하여 집착을 깨뜨림1)(3항목)

(가) 앞의 것을 이어서 뒤의 것을 표함

도서 위의 3교敎는 여래가 일대에 설한 경전과 여러 보살이 지은 논을 모두 다 포섭하고, 법과 의미를 자세히 살펴 세 가지 의미가 전적으로 다르지만 한 법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세 가지 의미 중에 제1(밀의의성설상교)과 제2(밀의파상현성교)는 공空과 유有의 상대이고, 제3(현시진심즉성교)과 제1은 성性과 상相의 상대로서 구분이 확실하여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오직 제2와 제3은 상을 깨뜨림(破相)과 본성을 드러냄(顯性)이 상대하는 것으로, 강講하는 자와 선禪 하는 자가 다 같이 혼미하게 된다. 그것은 이 1종宗과 1교敎가 모두 상相을 깨뜨리는 것으로써 진성眞性을 삼는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공종空宗과 성종性宗을 널리 구별하여 열 가지 다른 점을 밝히려 한다.

(나) 열 가지 다름을 널리 해석함(2항목)

㉮ 장章의 명칭을 표하여 배열함

도서 첫째, 법法과 의義, 진眞과 속俗이 다르다.
둘째, 심心과 성性 두 가지 명칭이 다르다.
셋째, 성性 자字의 두 본체가 다르다.
넷째, 참된 지혜와 참된 앎이 다르다.
다섯째, 아我와 법法의 있고 없음이 다르다.
여섯째, 차전遮詮과 표전表詮이 다르다.
일곱째, 명칭을 인정하고 본체를 인정함이 다르다.
여덟째, 이제二諦와 삼제三諦가 다르다.
아홉째, 삼성三性의 공空과 유有가 다르다.
열째, 불덕佛德의 공과 유가 다르다.

㉯ 문장에 의거하여 그에 따라 해석함(10항목)

ㄱ. 첫째 글(2항목)

ㄱ) 문장을 거듭하여 명칭을 표함

009_0220_c_02L1)禪源諸詮集都序科評卷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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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20_c_04L2)海東沙門 雪巖秋鵬科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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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源諸詮集都序卷下

009_0220_c_06L終南山草堂寺沙門 宗密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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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辨異破執文三初躡前標後

009_0220_c_08L
上之三敎攝盡如來一代所說之經
009_0220_c_09L諸菩薩所造之論細尋法義使見三義
009_0220_c_10L全殊一法無別就三義中第一第二
009_0220_c_11L空有相對第三第一性相相對皆迢
009_0220_c_12L然易見唯第二第三破相與顯性相對
009_0220_c_13L講者禪者同迷皆謂同是一宗一敎
009_0220_c_14L以破相便爲眞性故今廣辨空宗性宗
009_0220_c_15L有其十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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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廣釋十異二一標列章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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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法義眞俗異二心性二名異三性字
009_0220_c_18L二體異四眞智眞知異五我法有無異
009_0220_c_19L六遮詮表詮異七認名認體異八二諦
009_0220_c_20L三諦異九三性空有異十佛德空有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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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依章隨釋十一中文二一標名
009_0220_c_22L牒章

009_0220_c_23L題名編者補入撰者名在「終南…宗密
009_0220_c_24L述」之後編者移置於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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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첫째, 법法과 의義, 진眞과 속俗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

ㄴ) 표한 것에 의거해 분간하고 해석함(2항목)

(ㄱ) 공종의 해석(2항목)

㉠ 바로 밝힘

도서 공종空宗은 드러나지 않은 참되고 신령스런 본성을 반연하기 때문에 단지 일체 차별 현상을 법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법은 속제俗諦이다. 이 모든 법을 조명하는 데는 무위無爲·무상無相·무생無生·무멸無滅·무증無增·무감無減 등으로 의미를 삼는다. 그러므로 의미는 진제眞諦이다.

㉡ 인증

도서 그러므로 『지론』에서는 속제로 법무애변法無碍辯을 삼고, 진제로 의무애변義無碍辯을 삼는다.

(ㄴ) 성종의 해석(2항목)

㉠ 바로 밝힘

도서 성종性宗은 하나의 진성眞性으로 법을 삼고, 공과 유 등 여러 가지 차별로 의미를 삼는다.

㉡ 인증

도서 그 때문에 경에서는 “한량없는 의미가 한 법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하였으며, 『화엄경』과 『십지경』에서도 역시 법이란 자성을 아는 것이고, 의미란 생멸을 아는 것이며, 법이란 진제를 아는 것이고, 의미란 속제를 아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또 법이란 일승을 아는 것이고, 의미란 모든 승을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열 가지 차례로, 법과 의미 두 가지가 걸림이 없다는 뜻을 해석하려 한다.

ㄴ. 둘째 글(2항목)

ㄱ) 문장을 거듭하여 명칭을 표함

도서 둘째, 심心과 성性이라는 두 가지 명칭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

ㄴ) 표한 것에 의거하여 분간하고 해석함(3항목)

(ㄱ) 명칭이 다른 것을 바로 듦

도서 공종은 모든 법의 본원을 한 방향으로 지목하여 성性이라 하고, 성종은 모든 법의 본원을 다양하게 지목하여 심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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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法義眞俗異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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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依標辨釋二一空宗所解二
009_0221_a_03L正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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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宗緣未顯眞靈之性故但以一切差
009_0221_a_05L別之相爲法法是俗諦照此諸法
009_0221_a_06L爲無相無生無滅無增無減等爲義
009_0221_a_07L義是眞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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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引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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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智論以俗諦爲法無碍辯以眞諦爲
009_0221_a_10L義無碍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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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性宗所解二一正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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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宗則以一眞之性爲法空有等種種
009_0221_a_13L差別爲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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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引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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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經云無量義者從一法生華嚴十
009_0221_a_16L地亦云法者知自性義者知生滅
009_0221_a_17L法者知眞諦義者知俗諦法者知
009_0221_a_18L一乘義者知諸乘如是十番釋法義
009_0221_a_19L二無碍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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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中文二一標名牒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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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心性二名異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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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依標辨釋三一直擧名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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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宗一向目諸法本源爲性性宗多目
009_0221_a_24L諸法本源爲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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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두 번 거듭하여 제목을 해석함

도서 지목하여 ‘성性’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의 논서가 같기 때문에 서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목하여 마음이라고 한 것을 살펴보면, 『승만경』에서는 ‘자성청정심’이라 하였고, 『기신론』에서는 “일체의 법은 본래부터 언설과 명자와 마음으로 반연하는 등의 형상을 떠났으며, 내지 오직 일심”이라고 하였다. 『능가경』에서는 ‘견실심’이라고 설하였다.

(ㄷ) 성종의 수승함을 치우쳐 드러냄

도서 진실로 이 종파가 설한 본성은 단지 공적空寂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항상 아는 데 근거하기 때문에 마땅히 지목하여 심心이라고 하는 것이다.

ㄷ. 셋째 글(2항목)

ㄱ) 문장을 거듭하여 명칭을 표함

도서 셋째, ‘성性’ 자의 두 본체가 다른 것을 설명한다.

ㄴ) 표한 것에 의거하여 분간하고 해석함(2항목)

(ㄱ) 바로 밝힘

도서 공종은 모든 법에 본성이 없는 것으로 본성을 삼고, 성종은 신령스럽고 밝으며 항상 머물러 공하지 않은 본체로 본성을 삼는다.

(ㄴ) 결론으로 나타냄

도서 그러므로 성性이란 글자는 비록 같지만 그 본체는 서로 다른 것이다.

ㄹ. 넷째 글(2항목)

ㄱ) 문장을 거듭하여 명칭을 표함

도서 넷째, 참된 지혜와 참된 앎의 다름에 대해 설명한다.

ㄴ) 표한 것에 의거하여 분간하고 해석함(2항목)

(ㄱ) 공종의 해석

도서 공종은 분별을 앎이라 하고 무분별을 지혜라 하니, 지혜는 깊고 앎은 얕다.

(ㄴ) 성종의 해석(2항목)

㉠ 바로 밝힘

도서 성종은 성스런 이치를 증득할 수 있는 미묘한 지혜(妙慧)를 지혜(智)라 하고, 이지理智를 포괄하여 범부와 성인의 참 성품에 통하는 것을 앎(知)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앎은 널리 통하지만, 지혜는 국한된다.

㉡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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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雙牒釋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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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爲性者諸論多同不必叙述目爲心
009_0221_b_03L勝鬘云自性淸淨心起信云一切
009_0221_b_04L法從本已來離言說名字心緣等相
009_0221_b_05L至唯是一心楞伽云堅實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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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偏現性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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良由此宗所說本性不但空寂而乃自
009_0221_b_08L然常知故應目爲心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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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中文二一標名牒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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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性字二體異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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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依標辨釋二一正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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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宗以諸法無性爲性性宗以靈明常
009_0221_b_13L住不空之體爲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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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結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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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性字雖同而其體異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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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中文二一標名牒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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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眞智眞知異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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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依標辨釋二一空宗所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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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宗以分別爲知無分別爲智智深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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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性宗所解二一正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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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宗以能證聖理之妙慧爲智以該於
009_0221_b_23L理智通於凡聖之眞性爲知知通智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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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引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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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위에서 「문명품」을 이끌어 와 이미 스스로 (성종을) 분별하였으며, 더구나 「십회향품」에서는 진여를 설명하여 ‘조명하는 것이 본성’이라고 설하였다. 『기신론』에서는 진여 자체가 진실하게 인식하는 ‘앎’이라고 말한다.

ㅁ. 다섯째 글(2항목)

ㄱ) 문장을 거듭하여 명칭을 표함

도서 다섯째, 아我와 법法의 있고 없음이 다른 점을 설명한다.

ㄴ) 표한 것에 의거하여 분간하고 해석함(2항목)

(ㄱ) 공종의 해석

도서 공종은 아我가 있는 것을 허망이라 하고, 아我가 없는 것을 참됨이라 하지만,

(ㄴ) 성종의 해석(2항목)

㉠ 바로 밝힘

도서 성종은 아我가 없는 것을 허망이라 하고, 아我가 있는 것을 참됨이라 한다.

㉡ 인증

도서 그러므로 『열반경』에서는 아我가 없는 것을 생사라 하고, 아我가 있는 것을 여래라 한다고 설하였다. 또 아我를 무아無我라고 헤아리는 것은 전도된 법이라고 하여 이승의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견해를 널리 깨뜨렸다. (이러한 견해는) 마치 봄날 연못의 돌을 보배 구슬이라고 집착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이에 상락아정常樂我淨2)을 널리 찬탄하여 구경으로 삼았으며, 내지 무아법無我法 가운데 진아眞我가 있다고 설하였다.

원주 참으로 중생은 자신의 진아眞我에 미혹하여 오온五蘊을 아我라고 헛되이 집착하기 때문에 불타가 대소승 법상과 파상교破相敎 중에서 그것을 깨뜨려 무無라고 하였으나, 지금 성종性宗에서는 바로 진실한 본체를 밝히기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어 유有라고 하는 것이다.

ㅂ. 여섯째 글(2항목)

ㄱ) 문장을 거듭하여 명칭을 표함

도서 여섯째, 차전遮詮과 표전表詮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한다.

ㄴ) 표한 것에 의거하여 분간하고 해석함(3항목)

(ㄱ) 차遮와 표表로 법을 나타냄(3항목)

㉠ 차와 표를 간략히 밝힘

도서 막는다(遮)는 것은 그 잘못된 것을 버리는 것이고, 나타낸다(表)는 것은 그 옳은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 막는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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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引1)門明品已自分別況十品向品
009_0221_c_02L說眞如云照明爲性起信說眞如自體
009_0221_c_03L眞實識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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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中文二一標名牒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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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我法有無異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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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依標辨釋二一空宗所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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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宗以有我爲妄無我爲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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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性宗所解二一正明

009_0221_c_09L
性宗以無我爲妄有我爲眞

009_0221_c_10L
二引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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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湼槃經云無我者名爲生死有我
009_0221_c_12L者名爲如來又云我計無我是顚倒
009_0221_c_13L乃至廣破二乘無常無我之見如春
009_0221_c_14L池執石爲寶廣讃常樂我淨而爲究竟
009_0221_c_15L乃至云無我法中有眞我

009_0221_c_16L
良由衆生迷自眞我妄執五蘊爲我
009_0221_c_17L佛於大小乘法相及破相敎中
009_0221_c_18L破之云無今於性宗直明實體故
009_0221_c_19L顯之云有

009_0221_c_20L
六中文二一標牒章

009_0221_c_21L
六遮詮表詮異者

009_0221_c_22L
二依標辨釋三一現法遮表三
009_0221_c_23L畧明遮表

009_0221_c_24L
遮謂遣其所非表謂顯其所是又遮者
009_0221_c_25L「門」疑「問」{編}

009_0222_a_01L일체를 구별하는 것이고, 나타낸다는 것은 바로 그 당체를 보여 주는 것이다.

㉡ 경설을 널리 인용함(3항목)

a. 두 갈래로 바로 인용함

도서 모든 경전에서 설해지는 실로 미묘한 이성(眞妙理性)에 대해 매번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인因도 아니고 과果도 아니며, 상相도 없고 하는 것도 없으며,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며, 성性도 아니고 상相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모두 부정적인 언어로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遮詮).

원주 모든 경론 중에 언제나 아니다(非)라는 글자로 모든 법을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을 끌어내면 30개, 50개의 아니다(非)라는 글자가 있다. 아니라는 ‘불不’ 자나, 없다는 ‘무無’ 자도 또한 그렇다. 그러므로 백비를 끊는다고 하는 것이다.

b. 이유를 되풀이하여 해석함

도서 만일 지견知見이 깨어나 비추고, 영명한 식견이 빛나 밝으며, 낭랑하고 소소하다, 참으로 깨어나고 참으로 고요하다라는 등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모두 긍정하여 드러내는 것이다(表詮). 만일 지견 등의 본체가 없다면 어떤 법을 드러내어 본성을 삼으며, 어떤 법을 설하여 불생불멸 등이라 하겠는가. 반드시 본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증하여 지금 분명하게 ‘아는 것’이 곧 심성心性이니, 바로 이 ‘앎’을 불생불멸 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c. 비유로써 예를 들어 밝힘

도서 소금을 설명할 때, 싱겁지 않다고 하는 것은 부정적 표현(遮)이고, 짜다고 하는 것은 긍정적 표현(表)이다. 또 물을 설명할 때 건조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부정적 표현이고, 습濕하다고 하는 것은 긍정적 표현이다.

㉢ 교를 인용하여 설명을 결론지음

도서 모든 교가 언제나 “백 가지 잘못을 끊는다.”라고 하는 것은 다 부정적인 말이고, “하나가 옳다.”라고 곧바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긍정적인 말이다.

(ㄴ) 두 종파의 다름을 분간함

도서 공종空宗의 말은 단지 부정적인 표현뿐이고, 성종性宗의 말은 부정도 있고 긍정도 있다. 단지 부정적인 것만 주장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지만 긍정까지 겸한 사람은 분명하게 안다.

(ㄷ) 잘못된 견해를 결론으로 경책함


009_0222_a_01L揀却諸餘表者直示當體

009_0222_a_02L
二廣引經說三一正引雙指

009_0222_a_03L
如諸經所說眞妙理性每云不生不滅
009_0222_a_04L不垢不淨無因無果無相無爲非凡
009_0222_a_05L非聖非性非相等皆是遮詮

009_0222_a_06L
諸經論中每以非字非却諸法
009_0222_a_07L即有三十五十箇非字也不字無字
009_0222_a_08L亦爾故云絕百非也

009_0222_a_09L
二轉釋所以

009_0222_a_10L
若云知見覺照靈鑑光明朗朗昭昭
009_0222_a_11L惺惺寂寂等皆是表詮若無知見等體
009_0222_a_12L顯何法爲性說何法不生不滅等必須
009_0222_a_13L認得見今了然而知即是心性方說
009_0222_a_14L此知不生不滅等

009_0222_a_15L
三以喩例明

009_0222_a_16L
如說鹽云不淡是遮云醎是表
009_0222_a_17L水云不乾是遮云濕是表

009_0222_a_18L
三引敎結說

009_0222_a_19L
諸敎每云絕百非者皆是遮詞直顯
009_0222_a_20L一是方爲表語

009_0222_a_21L
二辨二宗異

009_0222_a_22L
空宗之言但是遮詮性宗之言有遮
009_0222_a_23L有表但遮者未了兼表者乃的

009_0222_a_24L
三結責錯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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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지금 사람들은 다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말은 심오하고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말은 얕다고 한다. 그러므로 오직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며, 작용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내지 무엇을 얻을 것도 없다는 말만을 중요하게 여긴다. 단지 아니라고 부정하는 말만을 미묘한 것으로 여기고, 스스로 증득하여 법체를 인정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것이다.

ㅅ. 일곱째 글(2항목)

ㄱ) 문장을 거듭하여 명칭을 표함

도서 일곱째, 명칭을 인정하고 본체를 인정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한다.

ㄴ) 표한 것에 의거하여 분간하고 해석함(2항목)

(ㄱ) 자세히 밝힘

(ㄴ) 법의 명칭과 본체(3항목)

㉠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불법과 세간법에는 하나하나 모두 명칭과 본체가 있다고 말한다.

㉡ 별도로 해석함(3항목)

a. 자세히 둘로 해석함(2항목)

a) 세속법의 명칭과 본질(2항목)

(a) 논을 인용하여 표한 것을 듦

도서 대개 세간에서 크다는 것은 사물四物3에 불과하다. 『지론』에서는 지·수·화·풍은 사물의 명칭이고, 단단함·습함·따뜻함·움직임은 사물의 본질이라고 하였다.3)

(b) 문답으로 자세히 밝힘

도서 이제 다시금 물(水)에 대해 설명하겠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깨끗이 하면 맑고, 혼탁하게 하면 흐리며, 저수지에 가두면 멈추고, 터놓으면 흐르지만, 만물에 물을 댈 수 있으며, 만 가지 더러움을 씻어 낸다고 한다.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공능의 의미와 작용을 들어 물은 것이다.】
대답한다.
“물이다.”【명칭을 들어 대답한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명칭만을 알고 이미 안다고 말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당연히 “어떤 것이 물이냐?”라고 다시 물으면,【그 본질을 물은 것이다.】 대답하기를, “습한 것이 바로 물이다.”라고 한다.

원주 궁극적인 본질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 한 말로 문득 정해 버리면, 달리 바꿀 수 있는 글자가 없다. 만일 얼음·파도·고임·흐름·깨끗함·흐림 등이 물이라고 말한다면, 저 질문과 무엇이 다르겠는가.4)

b) 불법의 명칭과 본체

도서 불법佛法도 또한 그러하다. 설사 어떤 사람이 묻기를, “모든 경전에서는 언제나 ‘그것에 미혹하면 더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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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時人皆謂遮言爲深表言爲淺
009_0222_b_02L唯重非心非佛無爲無相乃至一切不
009_0222_b_03L可得之言良由但以遮非之詞爲妙
009_0222_b_04L欲親自證認法體故如此也

009_0222_b_05L
七中文二一標名牒章

009_0222_b_06L
七認名認體異者

009_0222_b_07L
二依標辨釋二一廣明二法名體
009_0222_b_08L [1]
一摠標

009_0222_b_09L
謂佛法世法一一皆有名體

009_0222_b_10L
二別釋三一委曲雙釋二一世法
009_0222_b_11L名體二
一標擧引論

009_0222_b_12L
且如世間稱大不過四物如智論云
009_0222_b_13L水火風是四物名堅濕暖動是四物體

009_0222_b_14L
二問答詳明

009_0222_b_15L
今且說水設有人問每聞澄之即淸
009_0222_b_16L之即濁堰之即止決之即流而能漑灌
009_0222_b_17L萬物洗滌萬穢此是何物擧功能義
用而問之
答云
009_0222_b_18L是水擧名
答也
愚者認名便謂已解智者應
009_0222_b_19L更問云何者是水徵其
體也
答云濕即是水

009_0222_b_20L
剋體指也此一言便㝎更別無字可
009_0222_b_21L替也若云氷波凝流淸濁是水何異
009_0222_b_22L他所問之詞

009_0222_b_23L
二佛法名體

009_0222_b_24L
佛法亦爾設有人問每聞諸經云

009_0222_c_01L깨달으면 깨끗하며, 따라가면 범부이고, 닦으면 성인이다. 능히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 모든 법을 낼 수 있다’라고 한다.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라고 하면,【공능의 의미를 들어서 질문한 것이다.】 “마음이다.”라고 대답한다.【명칭을 들어 대답한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명칭만을 알아서 이미 알았다고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당연히 다시 “어떤 것이 마음인가?” 하고 다시 물으면,【그 본질을 물은 것이다.】 대답하기를, “앎이 곧 마음이다.”라고 한다.

원주 이것은 그 본질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 말이 가장 정확하고 나머지 글자는 맞지 않다. 만일 본성도 아니고 형상도 아니며, 능히 말하고 운동하는 것 등이 이 마음이라고 한다면, 저 질문한 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b. 거듭 의심을 경책함

도서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물의 명칭과 본질은 각각 오직 한 글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의미와 작용이다. 마음의 명칭과 본질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습하다(濕)는 한 글자가 깨끗함과 탁함 등 만 가지 작용과 만 가지 의미를 꿰뚫듯이, ‘앎(知)’이라는 한 글자도 또한 탐냄과 성냄, 자비와 인욕, 선악과 고락 등 만 가지 작용과 만 가지 의미를 꿰뚫는다. 요즈음 선禪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은 의심을 가지고 말한다. “달마는 단지 마음(心)을 설했는데, 하택은 왜 ‘앎(知)’을 말했는가?” 이와 같이 의심하는 것은 “단지 우물 가운데 물이 있다고 들었는데, 오늘에야 갑자기 깨달았는데, 왜 우물이 습한가.”라고 의심하여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c. 통하여 깨달을 것을 권면함

도서 물이란 명칭이지 물(의 본질)이 아니며, 습한 것은 물이지 명칭이 아니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맑음·흐림·얼음·파도·고임·흐름 등은 그 의미가 통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로 마음(마음이라는 말)이란 명칭이지 마음(본질)이 아니며, 앎은 마음이지 명칭이 아니다. 곧 참됨과 거짓, 더러움과 깨끗함, 선과 악 등은 그 뜻이 통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 결론으로 두 종파가 같지 않음을 판단함

도서 공종과 상종은 초학자와 얕은 근기에 대응하기 위한 종파이다. 두 종파는 학자들이 말을 따라 집착을 일으키는 것을 염려하여 단지 명칭을 표해서 그 잘못을 차단한다. 널리 의미의 작용을 가지고

009_0222_c_01L之即垢悟之即淨縱之即凡修之即
009_0222_c_02L能生世出世間一切諸法此是何
009_0222_c_03L擧功能義
用而問也
答云是心擧名
答之
愚者認名便
009_0222_c_04L謂已識智者應更問何者是心徵其
體也

009_0222_c_05L知即是心

009_0222_c_06L
指其體也此言最的餘字不如
009_0222_c_07L云非性非相能語言運動等是心者
009_0222_c_08L何異他所問之詞也

009_0222_c_09L
二並牒責疑

009_0222_c_10L
以此而推水之名體各唯一字餘皆義
009_0222_c_11L心之名體亦然濕之一字貫於淸
009_0222_c_12L濁等萬用萬義之中知之一字亦貫
009_0222_c_13L於貪嗔慈忍善惡苦樂等萬用萬義之處
009_0222_c_14L今時學禪人多疑云達摩但說心荷澤
009_0222_c_15L何以說知如此疑者豈不似疑云比只
009_0222_c_16L聞井中有水云何今日忽覺井中濕耶

009_0222_c_17L
三勉勸通悟

009_0222_c_18L
直須悟得水是名不是水濕是水
009_0222_c_19L是名即淸濁氷波凝流無義不通也
009_0222_c_20L以例心是名不是心知是心不是名
009_0222_c_21L即眞妄垢淨善惡無義不通也

009_0222_c_22L
[1] 結判二宗不同

009_0222_c_23L
空宗相宗爲對初學及淺機恐隨言生
009_0222_c_24L執故但標名而遮其非唯廣以義用而

009_0223_a_01L그 뜻을 끌어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성종性宗은 오래 공부한 학자와 상근기를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말을 잊고 본체를 알도록 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한마디 말로 바로 보여 주는 것이다.

원주 달마가 “한마디 말로 가리켜 바로 보여 준다.”라고 하니, 뒷사람들이 뜻을 알지 못하여 ‘어떤 말이 이 한마디 말인가?’라고 생각하였다. ‘곧 마음이 이 부처’라는 말이 한마디 말이라고 하자, “이것은 네 자의 말인데 어떻게 한마디 말이라고 하는가?”라고 하였다.5)

도서 본체를 확실히 인정하고 나서 본체상에 의미의 작용을 비추어 살피기 때문에 통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ㅇ. 여덟째 글(2항목)

ㄱ) 문장을 거듭하여 명칭을 표함

도서 여덟째, 이제二諦와 삼제三諦가 다르다는 것을 설명한다.

ㄴ) 표한 것에 의거하여 분간하고 해석함(2항목)

(ㄱ) 공종의 해석

도서 공종이 설하는 세간과 출세간 일체 모든 법은 이제二諦를 벗어나지 않는다. 학자들이 다 알기 때문에 인용하여 해석할 필요가 없다.

(ㄴ) 성종의 해석(3항목)

㉠ 숫자를 듦

도서 성종은 일체 성상과 자체를 포함하여 총 삼제三諦로 삼는다.

㉡ 형상을 해석함(2항목)

a. 법에 의거하여 바로 밝힘

도서 연기하는 색色 등 제법으로써 속제를 삼고, 연기하는 무자성 제법이 곧 공이라는 것으로써 진제를 삼는다.

원주 이것(성종)은 공종空宗·상종相宗과 함께 이제二諦의 의미에는 다름이 없다.

도서 하나의 참된 심체心體는 공도 아니고 색도 아니지만 공도 되고 색도 될 수 있으므로 중도제일의제中道第一義諦라 한다.

b. 비유로써 예를 들어 밝힘

도서 그것은 밝은 거울과 같아서 세 가지 의미를 갖추고 있다. 거울 가운데 영상은 청을 황이라 부를 수 없기 때문에 예쁘고 추함이 각각 구별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속제와 같다. 영상에는 자성이 없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전부 공하여 진제와 같다. 거울의 본체는 항상 밝아서 공도 아니고,

009_0223_a_01L引其意性宗對久學及上根令忘言
009_0223_a_02L認體故一言直示

009_0223_a_03L
達摩云指一言以直示後人意不解
009_0223_a_04L尋思何言是一言若言即心是佛
009_0223_a_05L是一言者此是四言何名爲一言

009_0223_a_06L
認得體已方於體上照察義用故無
009_0223_a_07L不通矣

009_0223_a_08L
八中文二一標名牒章

009_0223_a_09L
八二諦三諦異者

009_0223_a_10L
二依標辨釋二一空宗所解

009_0223_a_11L
空宗所說世出世間一切諸法不出二
009_0223_a_12L學者皆知不必引釋

009_0223_a_13L
二性宗所解三一標數

009_0223_a_14L
性宗則攝一切性相及自體摠爲三諦

009_0223_a_15L
二釋相二一約法正明

009_0223_a_16L
以緣起色等諸法爲俗諦緣無自性諸
009_0223_a_17L法即空爲眞諦

009_0223_a_18L
此與空宗相宗二諦義無別也

009_0223_a_19L
一眞心體非空非色能空能色爲中
009_0223_a_20L道第一義諦

009_0223_a_21L
二以喩例明

009_0223_a_22L
其猶明鏡亦具三義鏡中影像不得
009_0223_a_23L呼靑爲黃妍媸各別如俗諦影無自
009_0223_a_24L一一全空如眞諦其體常明非空

009_0223_b_01L청·황도 아니지만, 공도 되고 청·황도 될 수 있으니, 제일의제第一義諦와 같다.

㉢ 인증

도서 『영락경』·『대품경』·『본업경』 등의 경전에서 설하고 있는 것과 모두 같다. 그래서 천태종은 이러한 삼제三諦에 의지해 삼지三止와 삼관三觀을 닦고 삼덕三德6)을 성취한다고 설한다.

ㅈ. 아홉째 글(2항목)

ㄱ) 문장을 거듭하여 명칭을 표함

도서 아홉째, 삼성三性의 공空과 유有가 다르다는 것에 대해 살펴본다.

ㄴ) 표한 것에 의거하여 분간하고 해석함(2항목)

(ㄱ) 숫자로 명칭을 열거함

도서 세 가지는, 첫째,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원주 망정은 나와 일체법에 대해 두루 헤아려서 하나하나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집착한다. 마치 어리석은 아이가 거울 속의 사람 얼굴을 보고 그것에 목숨, 형색, 살, 뼈 등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과 같다.

도서 둘째, 의타기성依他起性,

원주 이 집착하는 법은 다른 것에 의존하는 여러 가지 연이 서로 인이 되어 일어난다. 전혀 자성이 없어서 오직 허상일 뿐이니 거울 속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도서 셋째, 원성실성圓成實性이다.

원주 본각진심本覺眞心이 시각始覺으로 드러난 것으로서, 원만 성취되어 진실하게 상주하니 거울의 밝음과 같다.

(ㄴ) 종파에 의거하여 다름을 분간함

도서 공종은, 모든 경전이 언제나 유有를 설하는 것은 변계성과 의타성에 의거한 것이고, 언제나 공空을 설하는 것은 곧 원성실성에 의거한 것이니, 삼법이 다 자성이 없다는 것이다. 성종은, 삼법이 모두 공과 유의 뜻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변계는 망정이 있지만 이치는 없고, 의타는 상相은 있지만 성性은 없으며, 원성은 망정이 없고 이치가 있으며, 상相은 없지만 성性이 있다고 설한다.


009_0223_b_01L非靑黃能空能靑黃如第一義諦

009_0223_b_02L
三引證

009_0223_b_03L
具如纓絡大品本業等經所說故天台
009_0223_b_04L依此三諦修三止三觀成就三德
009_0223_b_05L

009_0223_b_06L
九中文二一標名牒章

009_0223_b_07L
九三性空有異者

009_0223_b_08L
二依標辨釋二一擧數列名

009_0223_b_09L
三者謂遍計所執性

009_0223_b_10L
妄情於我及一切法周遍計度一一
009_0223_b_11L執爲實有如癡孩鏡中見人面像
009_0223_b_12L執爲有命質碍肉骨等

009_0223_b_13L
依他起性

009_0223_b_14L
此所執法依他衆緣相因而起
009_0223_b_15L無自性唯是虛相如鏡中影也

009_0223_b_16L
圓成實性

009_0223_b_17L
本覺眞心始覺顯現圓滿成就
009_0223_b_18L實常住如鏡之明也

009_0223_b_19L
二約宗辨異

009_0223_b_20L
空宗云諸經每說有者即約遍計依他
009_0223_b_21L每說空者即是圓成實性三法皆無性
009_0223_b_22L性宗即三法皆具空有之義謂遍
009_0223_b_23L計情有理無依他相有性無圓成則
009_0223_b_24L情無理有相無性有

009_0223_c_01L
ㅊ. 열째 글(2항목)

ㄱ) 문장을 거듭하여 명칭을 표함


도서 열째, 불덕佛德의 공空과 유有가 다름을 설명한다.

ㄴ) 표한 것에 의거하여 분간하고 해석함(2항목)

(ㄱ) 공종의 해석(2항목)

㉠ 바로 밝힘

도서 공종은 ‘부처는 공空으로 덕을 삼으니, 작은 법도 보리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 색으로 보고 소리로 구하는 것이 모두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 인증

도서 『중론』에서는 “오음五陰도 아니고 오음을 떠난 것도 아니며, 피차가 서로 있는 것도 아니다. 여래에게는 오음이 있지 않으니, 어느 곳에 여래가 있겠는가. 일체 형상을 떠난 것을 제불諸佛이라 부른다.”라고 말하였다.

(ㄴ) 성종의 해석

도서 성종은 ‘일체 제불이 자체에 모두 상락아정常樂我淨과 십신十身,7) 십지十智8)의 진실한 공덕을 갖추고 있으며, 거룩한 상호와 신통광명이 하나하나 다함이 없다. 본연자성이 스스로 본래 갖추어져 있어 기연機緣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 열 가지 다름을 총체적으로 결론지음

도서 열 가지 다름이 뚜렷하고 두 문이 선명하다.

다. 총체적으로 결론지음

과평 3교敎와 3종宗9)이 일미의 법임을 나타내어 착오와 오류, 의심과 비방의 폐단을 구한다. 바로 이것은 3교와 3종의 총결이다.10)

원주 3교敎와 3종宗은 일미법이기 때문에 비록 교상을 나누지만 망정에 막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반드시 먼저 3종種 불교에 의거하여 3종宗 선심禪心을 증득한 후에 선과 교를 모두 잊으면 마음과 부처가 함께 고요하다. 함께 고요하면 생각생각이 모두 부처이니 한 생각도 부처의 마음 아님이 없고, 둘 다 잊으면 구절구절이 모두 선이니 한 구절도 선과 교가 아님이 없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이 끊어져 붙일 곳이 없다는 말을 들어도

009_0223_c_01L
十中文二一標名牒章

009_0223_c_02L
十佛德空有異者

009_0223_c_03L
二依標辨釋二一空宗所解二
009_0223_c_04L正明

009_0223_c_05L
空宗說佛以空爲德無有少法是名菩
009_0223_c_06L色見聲求皆行邪道

009_0223_c_07L
二引證

009_0223_c_08L
中論云非陰不離陰此彼不相在
009_0223_c_09L來不有陰何處有如來離一切相
009_0223_c_10L名諸佛

009_0223_c_11L
二性宗所解

009_0223_c_12L
性宗則一切諸佛自體皆有常樂我淨
009_0223_c_13L十身十智眞實功德相好通光一一無
009_0223_c_14L性自本有不待機緣

009_0223_c_15L
[1] 摠結十異

009_0223_c_16L
十異歷然二門煥矣

009_0223_c_17L
三摠結
009_0223_c_18L三敎三宗現一味法救錯謬疑謗
009_0223_c_19L之弊正是三敎三宗摠結也

009_0223_c_20L
雖分敎相亦無滯情三敎三宗是一
009_0223_c_21L味法故須先約三種佛敎證三宗禪心
009_0223_c_22L然後禪敎雙忘心佛俱寂俱寂即念
009_0223_c_23L念皆佛無一念而非佛心雙忘即句句
009_0223_c_24L皆禪無一句而非禪敎如此則自然聞

009_0224_a_01L나의 집착하는 망정을 깨뜨리려는 것인 줄 알고, 망념을 쉬고 마음을 닦는다는 말을 들어도 나의 습기를 끊으려는 것인 줄 안다. 망정에 집착함이 깨어지고 진성이 드러나면 모든 것을 다 끊는 종(泯絶無寄宗)이 자성을 곧바로 드러내는 종(直顯心性宗)이고, 습기가 다하여 불도가 성취되면 마음을 닦는 것이 불도를 성취하는 행이 된다. 돈과 점, 공과 유가 이미 어긋남이 없으니, 홍주와 하택, 혜능과 신수가 어찌 서로 계합하지 않겠는가.
만일 이와 같이 통달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 설명하는 것이 미묘한 처방 아님이 없고, 다른 사람의 설명을 듣는 것이 묘약 아님이 없을 것이다. 약이 되고 병이 되는 것은 단지 집착하느냐, 통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선덕이 말하기를, “집착하면 글자마다 종기와 상처요, 통하면 문장마다 묘약이다.”라고 하였다. 통한다는 것은 3종이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11)

(2) 해와 행의 시작과 마침(2항목)

① 불교佛敎에 의거하여 선문禪門을 해석함(2항목)

가. 앞의 것을 거듭하여 질문을 일으킴

과평 이 질문으로부터 도표 아래의 질문에 이르기까지 앞부분은 돈오를 드러내어 점수를 도와주는 글이다. 돈과 점에 대한 한 사람의 행을 해석하여 선禪 하는 사람(禪者)이 돈종을 지나치게 전파하거나, 강하는 사람(講者)이 점의 의미를 지나치게 드러내는 폐단을 구제하고 있다. 이것은 선이란 글자도 또한 돈과 점이 어긋나고 막히는 데 두루 통한다는 것을 해석한 것이다.12)

앞에서 부처는 돈교頓敎와 점교漸敎를 설하고, 선가에서는 돈문頓門과 점문漸門을 열었다고 했는데, 3종種의 교 가운데 무엇이 돈이고, 무엇이 점인지 확실하지 않다.

나. 질문에 의거하여 결론으로 답함(3항목)

가) 부처가 돈교와 점교를 설한 것에 대해 바로 답함(2항목)

(가) 총체적으로 답함

도서 법과 의미의 깊고 얕음은 이미 3종의 선과 교에 다 갖추어져 있지만, 단지 세존의 교를 설하는 의식이 같지 않을 뿐이다. 어떤 때는 이치에 계합하는 돈頓을 설하고, 어떤 때는 근기에 따른 점漸을 설하였기 때문에 다시 돈교와 점교라고 부른 것이지, 3교 외에 별도로 돈과 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 별도로 답함(2항목)

㉮ 점교(2항목)

ㄱ. 교화 받아야 할 근기를 직접 듦


009_0224_a_01L泯絕無寄之說知是破我執情聞息妄
009_0224_a_02L修心之言知是斷我習氣執情破而眞
009_0224_a_03L性顯即泯絕是顯性之宗習氣盡而佛
009_0224_a_04L道成即修心是成佛之行頓漸空有
009_0224_a_05L旣無所乖洪荷能秀豈不相契若能
009_0224_a_06L如是通達則爲他人說無非妙方
009_0224_a_07L他人說無非妙藥藥之與病秪在執
009_0224_a_08L之與通故先德云執則字字瘡疣
009_0224_a_09L則文文妙藥通者了三宗不相違也

009_0224_a_10L
二解行始終二初約佛敎禪門釋
009_0224_a_11L
初牒前起問

009_0224_a_12L
自此問至圖下問前現頓悟資於
009_0224_a_13L漸修釋頓漸一人之行以救禪者
009_0224_a_14L偏播頓宗之弊講者偏彰漸義之
009_0224_a_15L此釋禪字亦通頓漸違妨也

009_0224_a_16L
前云佛說頓敎漸敎禪開頓門漸門
009_0224_a_17L未審三種敎中何頓何漸

009_0224_a_18L
二依問決答三一正答佛說頓漸
009_0224_a_19L敎二
一摠答

009_0224_a_20L
法義深淺已備盡於三種但以世尊
009_0224_a_21L設敎儀式不同有稱理頓說有隨機漸
009_0224_a_22L故復名頓敎漸敎非三敎外別有頓
009_0224_a_23L

009_0224_a_24L
二別答二一漸敎二一直擧所被

009_0224_b_01L
과평 결訣13)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돈에는 다시 둘이 있는데, 점에는 둘이 없는가. 만약 우리 불타가 일생 동안 대기 설법한 측면에서 논한다면, 일대의 점교는 전체가 축기점逐機漸(중생의 근기를 따라 설하는 점교)이다. 만일 점기漸機에 의거하여 과거세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14)에게 16왕자가, (부왕이 간곡하게 설하는) 『법화경』 강설을 들은 것이 되풀이되어 흘러온 것이라는 의미에서 논한다면, 일대점교 전체가 화의점化儀漸(중생을 교화하는 형식과 방법에 따라 나눈 점교)이다. 또한 인천교에서 파상교에 이르기까지는 곧 축기점이며, 법화·열반 등은 화의점이다.15)

도서 점차라고 하는 것은 중하의 근기가 그 자리에서 곧바로 원만하고 미묘한 이치를 믿고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설한 것이다.

ㄴ. 교화하는 가르침을 바로 밝힘

도서 또 앞에서 인천, 소승, 내지 법상法相【이상은 제1교이다.】과 파상破相【제2교이다.】을 설한 것은, 그 근기가 성숙하기를 기다려 비로소 요의를 설하기 위한 것으로, 『법화경』과 『열반경』 등이 여기에 속한다.

원주 이것(화의점)과 아래의 축기돈교逐機頓敎를 합하면 제3교(현성교)가 된다. 그 화의돈은 총 세 가지를 포섭한다. 서역과 이 나라의 고금 여러 대덕들이 판석한 교가 삼시三時 또는 오시五時가 되는데, 그것은 다만 점교漸敎 한 부류만을 위한 것으로, 『화엄경』 등의 경전은 포함되지 않는다.

㉯ 돈교(2항목)

ㄱ. 숫자로 표함

도서 돈頓이란 것은 다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축기돈逐機頓이고, 둘은 화의돈化儀頓이다.

ㄴ. 거듭 해석함(2항목)

ㄱ) 첫째 글(3항목)

(ㄱ) 근기에 따른 오悟와 수修를 듦(2항목)

㉠ 법에 의거하여 바로 드러냄(2항목)

a. 법을 듣고 단번에 깨달음

도서 축기돈이란, (성인이) 범부 중 상근인 총명하고 지혜로운 자를 만나 참된 법을 바로 보여 주면,

009_0224_b_01L

009_0224_b_02L
訣曰頓者復有二漸無二耶
009_0224_b_03L約吾佛一期對機說邊論之則一
009_0224_b_04L代漸敎都是逐機漸也若約漸機
009_0224_b_05L過去世於大通智勝佛十六王子
009_0224_b_06L所得聞曲講法華展轉流來義論
009_0224_b_07L則一代漸敎都是化義漸也且自
009_0224_b_08L人天至破相則逐機漸法華湼槃
009_0224_b_09L則化儀也

009_0224_b_10L
漸者爲中下根即時未能信悟圓妙理
009_0224_b_11L

009_0224_b_12L
二正明能被敎

009_0224_b_13L
且說前人天小乘乃至法相上皆第
一敎也
破相
009_0224_b_14L第二
敎也
待其根器成熟方爲說於了義
009_0224_b_15L法華湼槃經等是也

009_0224_b_16L
此及下逐機頓敎合爲第三敎也
009_0224_b_17L化儀頓即捴攝三般西域此方古今
009_0224_b_18L諸德所判敎爲三時五時者但是漸
009_0224_b_19L敎一類不攝華嚴等經

009_0224_b_20L
二頓敎二一數標

009_0224_b_21L
頓者復二一逐機頓二化儀頓

009_0224_b_22L
二牒釋二一中文三一擧機悟修
009_0224_b_23L
一約法正現二一聞法頓悟

009_0224_b_24L
逐機頓者遇凡夫上根利智直示眞法

009_0224_c_01L듣는 즉시 단번에 깨달아 (그 과덕이) 전적으로 부처의 과덕과 같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화엄경』 중의 “초발심시에 곧바로 아뇩보리를 얻는다.”라는 말씀과 『원각경』 중의 ‘관행이 곧 불도의 성취’라는 교설과 같다고 하겠다.

b. 교에 의거하여 점차적으로 닦음

과평 논평하여 말한다.
만일 상근기로서 영리한 지혜를 지닌 사람이라면, 이른바 지혜와 앎이 뛰어난 사람이니, 반드시 두 교(二敎, 돈교와 점교)의 실천문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만일 두 교의 실천문에 의거한다면, 앞에서 말한 들뜨고 거친 지혜를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니, 반드시 상근의 영리한 지혜를 지닌 자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왜 글이 서로 맞지 않는가?
앞에서는 실천문의 측면에서 공종과 상종의 사람이 성종을 훼손하는 잘못을 논파하기 위해 두 가지 수행을 갖추어 밝힌 것이고, 지금은 깨달음과 수행의 측면에서 돈과 점이 서로 돕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두 교 가운데 실천문을 편중해 든 것이다. 위와 아래의 내용이 같지 않은 것에는 깊은 까닭이 있다고 하겠다.16)

도서 그러나 처음 시작한 것은 앞의 두 교(돈교와 점교) 중 행문行門과 같다. 점차 범부의 습기를 제거하면, 차차 성인의 덕이 드러난다고 하기 때문이다.

㉡ 비유로써 예를 들어 밝힘

도서 바람이 대해를 세차게 흔들면 그림자가 나타날 수 없지만 바람이 단번에 멈추면 파도가 점차로 그치고 그림자가 드러나는 것과 같다.

원주 바람은 미혹한 망정을 비유한 것이고, 바다는 심성을 비유한 것이며, 파도는 번뇌를 비유한 것이고, 그림자는 공용을 비유한 것이다. (마명은) 『기신론』 중에 이것을 하나하나 배합하고 있다.

(ㄴ) 경을 모아 결론으로 보여 줌

도서 곧 『화엄경』 일분과 『원각경』, 『불정경』, 『밀엄경』, 『승만경』, 『여래장경』 부류의 20여 부 경전이 이것이다. 근기를 만나면 곧 설하여 선후를 정하지 않는다.

(ㄷ) 선을 배대하여 같음을 밝힘


009_0224_c_01L聞即頓悟全同佛果如華嚴中初發心
009_0224_c_02L即時阿耨菩提圓覺中觀行即成佛
009_0224_c_03L

009_0224_c_04L
二依敎漸修

009_0224_c_05L
評曰若是上根利智即所謂惠
009_0224_c_06L解明利者必不依二敎行門若依
009_0224_c_07L二敎行門即前所謂掉擧猛利者
009_0224_c_08L必不曰上根利智何故文不相當
009_0224_c_09L前就行門以破空相宗人毁性
009_0224_c_10L之非故具明二修今就悟修以
009_0224_c_11L現頓漸相資之義故偏擧二敎中
009_0224_c_12L行門上下不同深有所以也

009_0224_c_13L
然始同前二敎中行門漸除凡習漸顯
009_0224_c_14L聖德

009_0224_c_15L
二約喩例明

009_0224_c_16L
如風激動大海不能現像風若頓息
009_0224_c_17L則波浪漸停影像顯也

009_0224_c_18L
風喩迷情海喩心性波喩煩惱
009_0224_c_19L喩功用起信論中一一配合

009_0224_c_20L
二會經結現

009_0224_c_21L
即華嚴一分及圓覺佛頂密嚴勝鬘如來
009_0224_c_22L藏之類二十餘部經是也遇機即說
009_0224_c_23L不㝎初後

009_0224_c_24L
三配禪明同

009_0225_a_01L
도서 이것은 선문禪門의 ‘제3 바로 심성을 나타내는 종’과 전적으로 서로 같다.

ㄴ) 둘째 글(2항목)

(ㄱ) 화의化儀를 바로 밝힘

도서 둘째, 화의돈化儀頓이란, 불타가 처음 성도하여 숙세의 연이 성숙한 상근의 사람들을 위하여 성상性相과 사리事理, 중생의 만 가지 미혹과 보살의 만 가지 행, 성현의 지위를 일시에 단번에 설한 것을 말한다. 제불의 만 가지 덕이란, 인因이 과果의 바다를 감싸는 것이고, 초심에 곧 보리를 얻는다는 것은 과가 인의 근원을 관통하는 것이다. 이것은 (수행의) 지위가 모두 성취되어 오히려 보살에 계합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는 오직 『화엄경』 한 경전과 『십지경론』 한 가지 논서만이 해당되니, 돈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갖추지 못하였다.

원주 앞에서 서술한 외부의 힐난하는 질문 가운데 단번에 깨달아 성불하는 것은 경전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한 것에 대해, 내가 여기에서 분명하게 해결하였다.

(ㄴ) 의미를 들어 집착을 깨뜨림(3항목17))

과평 이 가운데 의미를 드는 데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인과가 서로 통하는 의미를 바로 밝힌 것이고, 둘째는 선禪과 강講이 각자가 집착하는 견해를 겸하여 깨뜨린 것이다. 글이 세 가지이다.

㉠ 사법계18)를 밝힘

도서 그 가운데 설한 모든 법은 전적으로 일심一心의 모든 법이고, 일심은 전적으로 모든 법의 일심이니, 성性과 상相이 원융하고, 하나와 많은 것이 자재한다.

㉡ 십현문19)을 밝힘

도서 그러므로 모든 부처와 중생이 서로 교감하고 정토와 예토가 서로 원융하게 통한다. 법마다 모두 피차를 서로 수용하고 티끌마다 다 세계를 포함하니, 서로 용납하고 서로 계합하여 걸림 없이 함께 융합한다.

㉢ 장애 없음을 밝힘

도서 십현문十玄門을 갖추어 중중무진20)하니, 장애가 없는 법계라고 부른다.

나) 선이 돈점의 문을 연 것을 바로 답함(3항목)

(가) 앞의 것을 결론짓고 뒤의 것을 일으킴

도서 위의 돈점은 다 부처에 따른 것으로서 교설을 취하여 설한 것이다. 만일 근기를 따라 깨달음과 닦음을 취하여 설한다면, 앞에서 서술한 여러 학자들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그 뜻하는 바가 또한 같지 않을 것이다.


009_0225_a_01L
與禪門第三直顯心性宗全相同也

009_0225_a_02L
二中文二一正明化儀

009_0225_a_03L
二化儀頓者謂佛初成道爲宿世緣熟
009_0225_a_04L上根之流一時頓說性相事理衆生萬
009_0225_a_05L菩薩萬行賢聖地位諸佛萬德
009_0225_a_06L該果海初心即得菩提果徹因源
009_0225_a_07L滿猶稱菩薩此唯華嚴一經及十地一
009_0225_a_08L名爲頓敎餘皆不備

009_0225_a_09L
前叙外難云頓悟成佛是違經者
009_0225_a_10L余今於此通了也

009_0225_a_11L
二擧義不執

009_0225_a_12L
此中擧義有二意初正明因果交
009_0225_a_13L徹之義二兼破禪講各執之見也
009_0225_a_14L文三一明四法界

009_0225_a_15L
其中所說諸法是全一心之諸法一心
009_0225_a_16L是全諸法之一心性相圓融一多自在

009_0225_a_17L
二明十玄門

009_0225_a_18L
故諸佛與衆1) 與穢土融通法法皆
009_0225_a_19L彼此互收塵塵悉包含2)淨土世界
009_0225_a_20L入相即無碍鎔融

009_0225_a_21L
三明無障碍

009_0225_a_22L
具十玄門重重無盡名爲無障碍法界

009_0225_a_23L
二正答禪開頓漸門三一結前起
009_0225_a_24L

009_0225_a_25L
此上頓漸皆就佛約敎而說若就機
009_0225_a_26L約悟修說者意又不同如前所叙諸家

009_0225_b_01L
(나) 돈과 점을 바로 밝힘(4항목)

㉮ 점漸은 근기를 위하여 세 가지로 대응함

도서 어떤 사람은 먼저 점수로 인해 공능이 성취되면 활연히 단번에 깨닫게 된다고 말하고,

원주 나무를 자르는데 한 조각 한 조각 점점 찍어서 마지막 한순간 단번에 쓰러뜨리는 것과 같다. 또 먼 도성을 찾아가는데 한걸음 한걸음 점점 다가가서 하루에 금방 도착하는 것과 같다.

도서 어떤 사람은 단번에 닦고 점차 깨닫는다고 한다.

원주 이것은 사람이 활쏘기를 배우는 것과 같다. 돈이란 화살을 가지고 곧바로 쏘는 것으로, 그 뜻은 과녁을 적중하는 데 있다. 점이란 오래도록 (활을) 쏘면 점차 익숙하여져 (과녁에) 적중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돈수)은 마음을 움직여 단번에 닦는다는 것이지, 공행이 단번에 완성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서 어떤 사람은 점차로 닦고 점차로 깨닫는다고 하였다.

원주 9층의 누대에 오를 때, 점차 높은 곳으로 밟아 오르면 점점 더 멀리 보이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시에서 “천리안으로 먼 곳을 보려는가. 다시 누각에 한 층 더 오르라.”라고 하였다.

도서 등等이라고 한 것은 모두 증오證悟를 말하는 것이다.

㉯ 바로 근기를 위한 한 가지 대응(2항목)

ㄱ. 표하여 듦

도서 어떤 사람이 “먼저 단번에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점차 닦을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알음알이에 의거해 말하는 것이다.

원주 “장애를 끊는다.”라는 주장에 따르면, 태양이 단번에 솟을 때 이슬과 서리가 점차 사라지는 것과 같고, “덕을 성취한다.”라는 주장에 따르면,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단번에 사지와 육근이 갖추어지지만, 성장하면서 점차 뜻과 기개 그리고 공용을 성취해 가는 것과 같다.

ㄴ. 인증

도서 그러므로 『화엄경』에서는 처음 발심할 때 정각을 성취하고 그 후에 삼현과 십성21)을 차례로 닦아 증득한다고 설한다. 만일 깨닫지 않고 닦는다면, 참된 닦음이 아닌 것이다.

원주 진실로 참된 사람들의 행이 아니면 참됨에 계합할 수 없을 것이다. 어찌 참됨을 닦는 수행이 참을 좇아 일어나지 않음이 있겠는가. 그 때문에 저 경은 “만일 이 법을 듣지 못했으면,

009_0225_b_01L
二正明頓漸四一漸爲機三對

009_0225_b_02L
有云先因漸修功成而豁然頓悟

009_0225_b_03L
如伐木片片漸斫一時頓倒亦如遠
009_0225_b_04L詣都城步步漸行一日頓到也

009_0225_b_05L
有云因頓修而漸悟

009_0225_b_06L
如人學射頓者箭箭直注意在於
009_0225_b_07L漸者久久方始漸親漸中此說
009_0225_b_08L運心頓修不言功行頓畢也

009_0225_b_09L
有云漸修漸悟

009_0225_b_10L
如登九層之臺足履漸高所見漸遠
009_0225_b_11L故有人詩云欲窮千里目更上一重
009_0225_b_12L樓也

009_0225_b_13L
等者皆說證悟也

009_0225_b_14L
二正爲機一對二一標擧

009_0225_b_15L
有云先須頓悟方可漸修者此約解言
009_0225_b_16L

009_0225_b_17L
約斷障說如日頓出霜露漸消
009_0225_b_18L成德說如孩子生即頓具四肢六根
009_0225_b_19L長即漸成志氣功用也

009_0225_b_20L
二引證

009_0225_b_21L
故華嚴說初發心時即成正覺然後
009_0225_b_22L三賢十聖次第修證若未悟而修
009_0225_b_23L眞修也

009_0225_b_24L
良以非眞流之行無以稱眞何有修
009_0225_b_25L眞之行不從眞起故彼經說若未聞

009_0225_c_01L다겁多劫에 육도 만행을 닦더라도 마침내 참됨을 증득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설한다.

㉰ 돈頓이 근기를 위한 한 가지 대응(3항목)

ㄱ. 근본문(本門)을 총체적으로 밝힘(2항목)

ㄱ) 상근의 출중함

도서 어떤 사람이 “단번에 깨닫고 단번에 닦는다고 하는 것은 최상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 근성根性【근기가 수승하기 때문에 깨달음】과 원력【하고자 함이 수승하기 때문에 닦음】이 모두 다 수승한 것을 가리킨다. 하나를 들으면 천 가지를 깨달아 대총지大摠持22)를 얻으며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아 전후의 구분이 끊어지게 된다.

원주 장애를 끊는 것은 한 타래 실을 자르면 만 가닥이 단번에 잘리는 것과 같으며, 덕을 닦는 것은 한 타래 실을 물들이면 만 가닥이 단번에 물드는 것과 같다. 하택은 “생각하는 본체가 없다는 것을 알면 경계를 따라 (사념이) 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한 생각이 본성과 상응하니, 8만 바라밀행波羅密行이 일시에 함께 작용한다.”라고 하였다.

도서 이 사람의 삼업三業은 오직 홀로 명료하여 나머지 사람은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원주 『금강삼매경』에서 “공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바라밀이 갖추어진다.”라고 하였으며, 『법화경』에서는 “부모가 낳아 주신 눈이 삼천세계를 꿰뚫어 본다.”라고 하였다.

ㄴ) 유사한 예를 지적하여 장애를 해결함

과평 선禪 하는 사람은 “일찍이 점수漸修란 우리가 할 바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거절하여 수용하지 않다가, 지금 돈수頓修란 말을 들은 후에 홀연히 의기양양하여, “오직 이 돈수만이 우리들이 할 바”라고 견고하게 집착하여 버리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여 말하고 있다.
“돈수란 우두 법융이 할 바이지 그대들이 할 바가 아니다. 대개 우두의 공문空門은 숙겁에 범행梵行을 심어 하나의 견지見地를 성취한 것이다. 4조 이후에 일체의 법과 의미가 흉금에서 유출되었다고 하여 마음을 닦고 다스리는 것에 의지하지 않았다. 어찌 계박에 얽힌 돈오자頓悟者와 동년同年 동일同日 선상에서 말할 수 있겠는가.”23)


009_0225_c_01L此法多刦修六度萬行竟不證眞也

009_0225_c_02L
三頓爲機一對三一摠明本門二
009_0225_c_03L一上根出衆

009_0225_c_04L
有云頓悟頓修者此說上上智根性

009_0225_c_05L
樂欲欲勝
故修
俱勝一聞千悟得大摠持
009_0225_c_06L一念不生前後際斷

009_0225_c_07L
斷障如斬一綟絲萬條頓斷修德如
009_0225_c_08L染一綟絲萬條頓色荷澤云見無
009_0225_c_09L念體不逐物生又云一念與本性
009_0225_c_10L相應八萬波羅密行一時齊用也

009_0225_c_11L
此人三業唯獨自明了餘人所不及

009_0225_c_12L
金剛三昧云空心不動具波羅密
009_0225_c_13L法華說父母所生眼徹見三千界等也

009_0225_c_14L
二指類通妨

009_0225_c_15L禪者嘗謂漸修非吾所爲拒以
009_0225_c_16L不受今聞頓修之言忽然色飛曰
009_0225_c_17L唯此頓修正是吾輩所爲堅執不
009_0225_c_18L故通之曰頓修牛頭融之所爲
009_0225_c_19L非汝之所爲盖牛頭空門宿植梵
009_0225_c_20L成就一見四祖後一切法義
009_0225_c_21L胷襟流出而不假修治豈可與縛
009_0225_c_22L地頓悟者同年而同日道㦲

009_0225_c_23L「生」下有「交徹淨土」淨源禪源諸詮集都序
009_0225_c_24L分科卷下中(本書第八册八二六頁上段){編}

009_0225_c_25L「淨土」無有淨源禪源諸詮集都序分科卷下
009_0225_c_26L(本中書第八册八二六頁上段){編}

009_0226_a_01L
도서 아울러 사안의 흔적으로 말한다면 우두 법융 대사의 무리와 같다고 하겠다.

ㄴ. 총설總說을 열어 별설別說을 성립시킴

도서 이 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깨달음으로 인해 닦는 것은 해오이고, (둘째,) 닦음으로 인해 깨닫는 것은 증오이다.

ㄷ. 장애를 해결하여 총체적으로 결론지음

과평 힐난하여 말했다.
“위의 내용은 총체적 대응으로서, 닦음과 깨달음이 일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숙세에 범행을 닦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오직 이 별문別門의 수행에서는 왜 계박에 얽힌 돈오자가 할 바가 아니라고 하는가?”
이에 대해 아래에 해결하여 말했다.
“별문의 수행은 오늘날 선禪 하는 사람이 하는 바와 유사하다. 그러나 위에서 운운한 것은 금생에 의거하여 논하기 때문에 돈수라고 하는 것이다. 만일 숙세까지 미루어 본다면, 오직 점수이지 돈수란 없다고 하겠다. 지금 돈수한 사람을 보니, 이미 다생에 점수의 훈습이 있었기 때문에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본래 계박에 얽힌 범부의 돈오돈수는 없으니, 번거롭게 힐문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원컨대 선 하는 자들은 먼저 돈오하고, 그 다음에 점수하기 바란다.”24)

도서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은 다 금생에 의거하여 논하는 것이다. 만일 먼 숙세의 일을 미루어 생각하면, 오직 점漸이지 돈頓은 없다고 하겠다. 지금 보는 돈이란 것은 이미 다생에 점차적으로 훈습된 것이 발현한 것이다.

㉱ 돈과 점은 오직 근기에 있음

도서 어떤 사람이 “법에 돈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돈점은 근기에 있다.”라고 하였으니, 진실로 그렇다. 이 이치는 참으로 말에 있지 않다. 본래 근기만을 논하는 것인데, 누가 법체를 말하는가.

(다) 널리 지적하고 간략하게 결론지음

도서 돈점의 의의에는 이처럼 많은 문이 있어 문마다 의도가 있으니 억지로 천착할 것이 아니다.

009_0226_a_01L
且就事跡而言之如牛頭融大師之類
009_0226_a_02L

009_0226_a_03L
二開摠成別

009_0226_a_04L
此門有二義若因悟而修即是解悟
009_0226_a_05L若因修而悟即是證悟

009_0226_a_06L
三通妨摠結
009_0226_a_07L難云上來摠對必是修悟一時
009_0226_a_08L謂宿植梵行者所爲唯此別門修
009_0226_a_09L則豈不是縛地頓悟者所爲故下
009_0226_a_10L通云別門修則雖似今時禪者所
009_0226_a_11L然上云云約今生而論故云
009_0226_a_12L頓修若推宿世唯漸修而無頓修
009_0226_a_13L今見頓者已是多生漸修之熏故
009_0226_a_14L發現本無從具縛地凡夫頓悟頓
009_0226_a_15L修者也不煩設難願禪者先須
009_0226_a_16L頓悟後漸修也

009_0226_a_17L
然上皆秪約今生而論若遠推宿世
009_0226_a_18L唯漸無頓今見頓者已是多生漸熏而
009_0226_a_19L發現也

009_0226_a_20L
四頓漸唯在機

009_0226_a_21L
有云法無頓漸頓漸在機者誠㦲此理
009_0226_a_22L固不在言本秪論機誰言法體

009_0226_a_23L
三指廣結畧

009_0226_a_24L
頓漸義意有此多門門門有意非强

009_0226_b_01L더구나 『능가경』에는 사점四漸과 사돈四頓25)【의미는 점수돈오와 유사하다.】이 있는데, 이것26)을 오히려 번거롭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 돈과 점이 서로 반대되는 것 같다는 의심을 별도로 결론지음(2항목)

(가) 앞에서 서술한 것을 결정함

도서 당시의 사람들이 논한 것을 비교하여 보면, 단지 돈점이라는 말만 있지 전반적으로 이를 분석하지 않았다. 교에 따르면 화의의 돈점과 응기의 돈점이 있고, 사람에 따르면 가르치는 방편의 돈점, 근기가 깨달아 들어가는 돈점, 뜻을 내어 수행하는 돈점이 있다.

(나) 의심을 끊는 것을 바로 밝힘(3항목)

㉮ 표하여 듦

도서 그 가운데 오직 먼저 돈오한 후에 점수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긋나는 것 같다.

㉯ 비유로 밝힘

도서 의심을 끊고자 하는가? 해가 단번에 솟음에 서리와 이슬이 점차 사라지고, 어린아이가 단번에 태어나지만【사지와 육근이 즉시 갖추어짐】 뜻과 기개는 점차 확립되는 것을 어찌 알지 못하는가.

원주 살과 피부, 여덟 가지 물질,27) 업과 기예는 모두 점차로 이루어진다.

도서 사나운 바람은 단번에 쉬지만 파랑은 점차로 멈추고, 타고난 신분은 단번에 성취되지만 예악禮樂은 점차로 배우는 것이다.

원주 고귀한 집 자손이 아주 어린 시절에 변란을 만나 몰락하여 노예가 되었는데, 본래 자신이 귀한 것을 알지 못하였다. 변란이 진정되자 부모를 찾아서 당일 귀한 몸이 되었지만 행적과 거취는 단번에 고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반드시 점차로 배워야 하는 것이다.

㉰ 결론으로 찬탄함

도서 돈점의 의미도 그것이 요점임을 알아야 한다.28)

② 미루어 궁리함에 의거하여 자세히 관찰하고 해석함(3항목29))

과평 논평하여 말한다. 위에서 비록 선교 두 문에서 돈과 점이라는 한 사람의 행을 바로 밝혔지만

009_0226_b_01L生穿鑿況楞伽四漸四頓義與漸修頓
悟相類也

009_0226_b_02L猶不敢繁云

009_0226_b_03L
三別決頓漸似反疑二一結前所
009_0226_b_04L

009_0226_b_05L
比見時輩論者但有頓漸之言都不分
009_0226_b_06L就敎有化儀之頓漸應機之頓漸
009_0226_b_07L就人有敎授方便之頓漸根性悟入之
009_0226_b_08L頓漸發意修行之頓漸

009_0226_b_09L
二正明決疑三一標擧

009_0226_b_10L
於中唯云先頓悟後漸修似違反也

009_0226_b_11L
二喩明

009_0226_b_12L
欲絕疑者豈不見日光頓出霜露漸
009_0226_b_13L孩子頓生四肢六
根即具
志氣漸立

009_0226_b_14L
肌膚八物業藝皆漸漸成也

009_0226_b_15L
猛風頓息波浪漸停訴良頓成禮樂
009_0226_b_16L漸學

009_0226_b_17L
如高貴子孫少小時亂沒落爲奴
009_0226_b_18L生來自不知貴時淸父母論得當日
009_0226_b_19L全身是貴人而行迹去就不可頓
009_0226_b_20L故須漸學也

009_0226_b_21L
三結歎

009_0226_b_22L
是知頓漸之義其爲要矣

009_0226_b_23L
二約推窮仰觀釋

009_0226_b_24L
評曰上來雖若禪敎二門正明頓

009_0226_c_01L(선과 교의) 양가兩家가 한편으로 집착하여 그 뿌리가 깊고 줄기가 매우 단단하다. 일시에 자르고 뽑아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확실하다. 다시 추구하고 관찰하여 (선과 교가) 서로 돕는다는 뜻을 자세히 가르침으로써 치우친 선양과 치우친 전파의 폐단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대체로 3종 교의를 깊이 연구하면 일진심체一眞心體일 뿐이고, 불의佛意를 우러러 관찰하여도 일대사인연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이고 둘이 아니며 인연 또한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선禪 하는 사람에게 돈오는 무슨 법이며, 강講하는 사람에게 점수는 무슨 법인가. 돈오는 바로 일심一心인 일대사를 단번에 깨닫는 것이고, 점수도 역시 일심인 일대사이다. 어찌 서로 비난하고 서로 배척하여 호나라와 월나라처럼 멀어질 수 있겠는가. 여기에 세 가지 문장이 있다.

가. 잠복된 난문을 조용히 해결함(2항목)

가) 서문에 의거, 거듭 힐난함

과평 힐난하여 말했다.
“처음에 선은 불교를 포섭하여 간략하게 한 것이 아니었다. 본래 차례와 시종이 없었으나, 이 이사理事와 해행解行이 화해함에 이르러 차례와 시종이 있게 되었다. 이제 교와 다름이 없으니, 어찌된 일인가?”
() “이에 달마 운운이라 하였다.”

도서 그러나 이 글의 본의를 말하면, 단지 선전禪詮만을 서술하여

나) 수집한 것을 들어 의미를 해석함30)

도서 달마 1종을 반연하고 있지만 이것은 불법佛法의 통체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서술한 것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지금 모아 하나의 장전으로 만들었다.
이에 이사理事를 모두 구족하고 깨달음과 이해 그리고 수증修證의 문호에 이르기까지 시종이 두루 원만하게 된 것이다. 또한 서술한 요구가 갖추어져 그 의도를 다 했으니, 혈맥血脉이 이어지고 본말의 차례가 정연하게 되었다.

나. 본말을 알게 함(2항목)

가)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본말과 차례를 알고자 하면, 먼저 이 위의 3종의 돈설頓說과 점설漸說의 가르침 가운데

009_0226_c_01L漸一人之行然兩家偏執深根固
009_0226_c_02L一時剪拔不可必矣更約推
009_0226_c_03L窮仰觀委諭相資之義使無偏彰
009_0226_c_04L偏播之弊大抵推窮三種敎義
009_0226_c_05L眞心體而已仰觀佛意一大事因
009_0226_c_06L緣而已矣然則一而非二也因緣
009_0226_c_07L亦一而非二也禪者頓悟何法
009_0226_c_08L者漸修何法耶頓悟正是頓悟一
009_0226_c_09L心一大事漸修亦是一心一大事
009_0226_c_10L豈可相非相斥如胡越之隔
009_0226_c_11L此文三一潜通伏難二一約序牒
009_0226_c_12L
難曰初禪非佛敎攝畧元無
009_0226_c_13L倫序始終至此理事解行和會
009_0226_c_14L有倫序始終今與敎無異何也
009_0226_c_15L然達摩云云

009_0226_c_16L
然此文本意雖但叙禪詮

009_0226_c_17L
二擧集釋疑

009_0226_c_18L
緣達摩一宗是佛法通體諸家所述
009_0226_c_19L又各不同今集爲一藏都成理事具足
009_0226_c_20L至於悟解修證門戶亦始終周圓故
009_0226_c_21L叙之須脩 [1] 盡其意令血脉連續本末有
009_0226_c_22L

009_0226_c_23L
二令解本末二一摠標

009_0226_c_24L
欲見本末倫序先須推窮此上三種頓

009_0227_a_01L논한 법이 본래 어디로부터 왔고, 현재 어느 곳에 있는가를 깊이 궁리해야 한다. 또 불타가 설한 이 교설의 의미가 본래 무슨 일을 위한 것인지를 잘 관찰하면, 일대장경의 시종始終과 본말本末이 일시에 밝아져 명료하게 될 것이다.

나) 개별적으로 해석함(2항목)

(가) 교敎가 온 곳을 깊이 연구함

도서 먼저 교법이 어느 곳으로부터 왔는가를 깊이 연구하여 보자. (교법은) 본래 세존의 일진심체一眞心體로부터 흘러와서 반복적으로 당시 사람들의 귀에 전달되고, 지금 사람들의 목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설한 의미 또한 범부와 성인이 의지하는 일진심체로서 연을 따라 흘러내려 일체 처소와 일체 중생의 신심 가운데 두루 반복하게 된 것이다. 다만 각각 자신의 마음으로 고요히 생각하여 여실한 도리로 사유하면 이와 같고 이와 같이 나타나게 된다.

원주 『화엄경』에서 “이와 같고 이와 같이 사유하면, 이와 같고 이와 같이 나타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 불타가 설한 의도를 관찰함(2항목)

㉮ 불타의 의도를 바로 밝힘(3항목)

ㄱ.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다음은 불타가 경을 설한 본의를 관찰한다. 세존은 스스로 “나의 본의는 오직 일대사인연을 위하여 세상에 출현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ㄴ. 별도로 해석함(2항목)

ㄱ) 일대사를 널리 밝힘(4항목)

(ㄱ) 일승을 바로 설함(2항목)

㉠ 바로 밝힘

도서 일대사一大事란,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佛知見을 열어 내지 불지견의 도에 들어가게 하고자 한다는 말이다. 모든 존재가 짓는 것은 항상 이 하나의 일31)을 위한 것이니, 오직 부처의 지견으로 중생에게 보여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운운】 나머지 이승 혹은 삼승은 없으니, 삼세 시방제불의 법도 또한 이와 같다. 비록 한량없는 무수한 방편과 여러 인연 비유와 언사로써

009_0227_a_01L說漸說敎中所論之法本從何來見在
009_0227_a_02L何處又須仰觀諸佛說此敎意本爲
009_0227_a_03L何事即一大藏經始終本末一時洞然
009_0227_a_04L明了也

009_0227_a_05L
二別釋二一窮敎來處

009_0227_a_06L
且推窮敎法從何來者本從世尊一眞
009_0227_a_07L心體流出展轉至於當時人之耳今時
009_0227_a_08L人之目其所說義亦祗是凡聖所依一
009_0227_a_09L眞心體隨緣流出展轉遍一切處
009_0227_a_10L一切衆生身心之中但各於自心靜念
009_0227_a_11L如理思惟即如是如是而顯現也

009_0227_a_12L
華嚴云如是如是思惟如是如是顯
009_0227_a_13L現也

009_0227_a_14L
二觀佛說意二一正明佛意三
009_0227_a_15L摠標

009_0227_a_16L
次觀佛說經本意者世尊自云我本意
009_0227_a_17L唯爲一大事因緣故出現於世

009_0227_a_18L
二別釋二一廣明一事四一正說
009_0227_a_19L一乘二
一正明

009_0227_a_20L
一大事者欲令衆生開佛知見乃至
009_0227_a_21L入佛知見道故諸有所作常爲一事
009_0227_a_22L唯以佛之知見示悟衆生
無有餘乘
009_0227_a_23L若二若三三世十方諸佛法亦如是
009_0227_a_24L雖以無量無數方便種種因緣譬喩言詞

009_0227_b_01L중생을 위해 모든 법을 연설하시지만, 이 법은 모두 일불승32)을 위한 것이다.33)

㉡ 인용하여 해석함(2항목)

a. 이치를 끊어 버리고 수행함

도서 “그러므로 내가 보리수 아래에서 처음 정각을 이루고 널리 일체중생을 보니 모두 다 정각을 이루었고, 내지 널리 일체중생을 보니 다 반열반般涅槃하여 있었다.”

원주 『화엄경』 「묘엄품」에서 “불타가 마갈제국摩竭提國 보리도량 중에서 처음 정각을 이루시니, 그 땅이 금강으로 이루어져 견고하였고, 그 보리수는 높고 커서 장엄하였다.”라고 설하였다. 「출현품」에서 “여래가 정각을 이루셨을 때 널리 중생을 보니”라고 하는 등의 말씀이 하나하나 글의 내용과 같다.

도서 “널리 일체중생을 보니, 탐·진·치 모든 번뇌 중에 여래의 몸과 지혜가 있어 항상 오염되지 않으며, 모든 덕상德相을 갖추고 있다.”【『여래장경』의 글이다.】라고 하였으며, “한 중생도 여래의 지혜를 갖추지 않음이 없지만,

b. 미혹한 중생에게 열어 보임(3항목)

a) 개시함을 바로 밝힘(2항목)

(a) 오직 본의만을 말함

도서 단지 망상집착으로 증득하지 못할 뿐이다. 내가 성도聖道로써 가르쳐 그들을 영원히 망상으로부터 떠나게 하고자 한다. 자기의 몸 가운데 여래의 광대한 지혜를 볼 수 있으면 나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34)라고 하였다.

원주 『화엄경』 「출현품」의 글이다. ‘당當’ 자를 ‘욕欲’ 자로 고쳐 그 어세를 따르게 하였다. 『법화경』에도 또한 “내가 본래 세운 서원은 일체중생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b) 직접 불타의 뜻을 드러냄

도서 “드디어 이들 중생을 위해, 보리도량에서 대방광법계35)에 부합함(稱)【거성去聲이다.】으로써 만행으로 인행의 꽃을 널리 펼쳤으며, 본성을 장엄하여

009_0227_b_01L而爲衆生演說諸法是法皆爲一佛乘
009_0227_b_02L

009_0227_b_03L
二引釋二一理絕修證

009_0227_b_04L
故我於菩提樹下初成正覺普見一切
009_0227_b_05L衆生皆成正覺乃至普見一切衆生
009_0227_b_06L皆般湼槃

009_0227_b_07L
華嚴妙嚴品云佛在摩竭提國菩提
009_0227_b_08L場中始成正覺其地堅固金剛所成
009_0227_b_09L其菩提樹高廣嚴顯出現品云
009_0227_b_10L來成正覺時普見衆生等一一如文

009_0227_b_11L
普見一切衆生貪恚癡諸煩惱中有如
009_0227_b_12L來身智常無染汚德相備足如來藏
經文也

009_0227_b_13L一衆生而不具有如來智慧

009_0227_b_14L
二迷有開示三一正明開示二
009_0227_b_15L唯談本意

009_0227_b_16L
但以妄想執着而不證得我欲 [1] 敎以聖
009_0227_b_17L令其永離妄想於自身中得見如
009_0227_b_18L來廣大智慧如我無異

009_0227_b_19L
華嚴出現品文也唯改當字爲欲字
009_0227_b_20L令順語勢法華亦云我本立誓願
009_0227_b_21L欲令一切衆如我等無異也

009_0227_b_22L
二徑現佛意

009_0227_b_23L
遂爲此等衆生於菩提場
於大方
009_0227_b_24L廣法界敷演萬行因華以嚴本性

009_0227_c_01L만덕의 불과를 성취케 하였다.

b) 숙세에 선행을 심어 증입함

도서 지난 겁에 나와 함께 선근을 심어 일찍이 내가 겁해 중에 사섭법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다.【또 「묘엄품」의 글이다.】 비로소 내 몸【사자빈신삼매36)에 든 노사나신】을 보고 내가 설한 것【위에서 설한 『화엄』】을 듣고서 곧 믿고 받아들여 여래의 지혜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37) 내지 서다림逝多林38)에서 내가 사자빈신삼매에 드니, 대중이 모두 법계를 증득하였다.”라고 설하였다.

c) 하열한 근기가 눈멀고 귀먹음

도서 먼저 소승을 수습하여 배우는 자와39)

원주 불타가 법화회상에서 “옛날 화엄회중華嚴會中에서, 5백 성문이 귀먹고 눈먼 것같이 부처의 경계를 보지도 못하고 원융한 법을 듣지도 못하였다.”라고 설한 것이 이것이다. 다음에 “내가 지금 또한 이 경을 듣고 부처의 지혜에 들어가도록 하였는데, 곧바로 40년 후에 이르러 법화회중에 모두 다 수기를 얻었다.”라고 한 것 또한 이것이다.

도서 탐애의 물속에 빠진 사람 등은 제외한다.

원주 또 「출현품」에서 “여래의 지혜도 오직 두 곳에서는 이로움을 줄 수가 없다. 그것은 이승二乘이 무위의 깊은 구덩이에 떨어지는 것과, 선근을 파괴하여 불법을 수지하지 못하는 중생이 대사견과 애욕의 늪 속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저들에 대하여 일찍이 싫어하거나 버린 적이 없었다.”라고 설하였다. 이를 해석하면, 『화엄』에서 말한 소승을 배우는 사람도 법화회 중에 다시 수기를 얻으며, 또 이 회중이 아니더라도 점차 반복하여 수기를 주게 하였으니, 이것이 ‘싫어하여 버리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ㄴ) 방편으로 삼승을 보임(3항목)

㉠ 근기가 어리석고 우둔함을 보여 줌

도서 이와 같이 중생은 모두 근기가 우매하고 오욕락에 집착하여 어리석음에 눈이 멀었으니, 제도하여 해탈시키기 어렵다.


009_0227_c_01L成萬德佛果

009_0227_c_02L
二宿植證入

009_0227_c_03L
其有徃刼與我同種善根曾得我於刼
009_0227_c_04L海中以四攝法而攝受者亦妙嚴
品文也
始見
009_0227_c_05L我身頻伸三昧
盧舍那身
聞我所說說上
華嚴
即皆信受
009_0227_c_06L入如來慧乃至逝多林我入師子頻伸
009_0227_c_07L三昧大衆皆證法界

009_0227_c_08L
三劣機盲聾

009_0227_c_09L
除先修習學小乘者

009_0227_c_10L
佛在法華會說昔在華嚴會中五百
009_0227_c_11L聲聞如聾若盲不見佛境界不聞
009_0227_c_12L圓融法是也次云我今亦令得聞此
009_0227_c_13L入於佛慧即直至四十年後法華
009_0227_c_14L會中皆得授記是也

009_0227_c_15L
及溺貪愛之水等也

009_0227_c_16L
亦出現品云如來智慧唯於二處
009_0227_c_17L不能爲作生長利益所謂二乘墮於
009_0227_c_18L無爲廣大深坑及壞善根非器衆生
009_0227_c_19L溺大邪見貪愛之水然亦於彼曾無
009_0227_c_20L厭捨釋曰即華嚴所說學小乘者
009_0227_c_21L華會中還得授記及不在此會
009_0227_c_22L展轉令與授記是此云不厭捨也

009_0227_c_23L
二權示三乘三一見機癡盲

009_0227_c_24L
如是衆生諸根闇鈍着樂癡所盲

009_0228_a_01L
㉡ 사유하고 칭찬받음

도서 나는 삼칠일 동안 이와 같은 일을 사유하였다. 내가 만일 단지 불승만을 찬탄한다면 저들(소승인)은 괴로움에 빠져 불교를 훼방하고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금방 악도에 떨어질 것이다.40) 만일 소승으로 제도하면 (교화가) 한 사람에게만 미쳐 내가 간탐에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이러한 일은 가볍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41) 진퇴가 어렵게 되었다. 마침내 과거불이 행하신 방편력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과거 제불은 그들을 모두 소승으로 유인한 후에 구경일승으로 들어가도록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가 지금 얻은 도를 또한 삼승에게 설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이때 시방제불이 모두 나타나 범음으로 나를 위로하고 달랬다.
‘착하도다. 석가문 제일 도사여, 이 무상법無上法을 얻어 일체 제불을 따라 방편을 쓰도록 하라.’42)라고 하였다.

㉢ 수순하여 교화를 엶

도서 “위로하고 달래는 말씀을 내가 듣고, 모든 부처님의 뜻을 따랐기 때문에 비로소 파라나국波羅柰國으로 가서 사제법륜을 굴리게 된 것이다. 교진여 등 다섯 사람을 제도하고 점점 여러 곳에서 (제도한 사람이) 내지 천만 명【양이 끄는 수레와 같다.】에 이르렀다. 또한 연각을 구하는 사람을 위해 십이인연을 설하고,【사슴이 끄는 수레와 같다.】 대승을 구하는 사람을 위해 육바라밀을 설하였다.”43)

원주 이것은 소가 끄는 수레44)와 같다. 이 위는 ‘첫 번째, 밀의密意로 성性에 의해 상相을 설하는 교’에 해당한다. 이 위의 세 수레는 모두 집 안에서 문 밖에 있는 것45)을 가리켜 말하는 것으로 권교 삼승을 비유한 것이다.【운운】

도서 “중간에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을 설하기 위하여 위와 같이 성문聲聞을 가려내고 모든 작은 보살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원주 이것은 ‘두 번째, 비밀한 뜻으로 상相을 깨뜨리고 성性을 드러내는 교敎’에 해당한다.


009_0228_a_01L可度脫

009_0228_a_02L
二思惟受1)

009_0228_a_03L
我於三七日思惟如是事我若但爲讃
009_0228_a_04L於佛乘彼即沒在苦毁謗不信故
009_0228_a_05L入於惡道若以小乘化乃至於一人
009_0228_a_06L我即墮慳貪此事爲不可進退難爲
009_0228_a_07L尋念過去佛所行方便力方知過去諸
009_0228_a_08L皆以小乘引誘然後令入究竟一
009_0228_a_09L乘故我今所得道亦應說三乘我如
009_0228_a_10L是思惟時十方佛皆現梵音慰喩我
009_0228_a_11L㦲釋迦文第一之噵師得是無上法
009_0228_a_12L隨一切諸佛而用方便力

009_0228_a_13L
三隨順開坼

009_0228_a_14L
我聞慰喩音隨順諸佛意故方始徃波
009_0228_a_15L羅柰國轉四諦法輪度憍陳如等五人
009_0228_a_16L漸漸諸處乃至千萬如羊
車也
亦爲求緣覺
009_0228_a_17L說十二因緣如鹿
車也
亦爲求大乘者
009_0228_a_18L六波羅蜜

009_0228_a_19L
如牛車也此上皆當第一密意依性
009_0228_a_20L說相敎此上三車皆是宅中指云在
009_0228_a_21L門外者以喩權敎三乘

009_0228_a_22L
中間爲說甚深般若波羅蜜淘汰如上
009_0228_a_23L聲聞進趣諸小菩薩

009_0228_a_24L
此當第二密意破相顯性敎也

009_0228_b_01L
(ㄷ) 셋을 회통하여 하나로 돌아감

도서 점점 그 근기가 성숙함을 보고 드디어 영취산에서 여래의 지견을 열어 보이고 널리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주었다.”

원주 구경일승究竟一乘은 사구도四衢道46) 중 흰 소가 끄는 수레와 같다. 권교의 소가 끄는 수레인 대승은, 실교의 흰 소가 끄는 수레인 일승과 같지 않다. 30여 부 경론에 다 분명한 글이 있다.

도서 “삼승의 법신평등을 보이고 일승도一乘道에 들어갔으며, 내가 멸도滅度하고자 함에 이르러 구시라성 사라쌍수 사이에서 크게 사자후를 하고 상주법常住法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말하였다.
‘일체중생은 다 불성이 있어서 무릇 이 마음이 있는 자는 확실히 장래에 부처가 될 것이니, 궁극적으로 열반에 들어 상락아정常樂我淨을 얻고 비밀장秘密藏47) 가운데 안주케 할 것이다.’”

『법화』에서는 삼승을 수용하고, 『열반경』에서는 널리 육도六道를 수용한다. 이와 같이 권교權敎를 회통하여 실교實敎로 들어가는 것은 점차를 따르기 때문이다.

(ㄹ) 법은 다름이 없음을 보임

도서 “화엄해회華嚴海會 중에 사자빈신삼매에 드신 것은 대중이 단번에 증득함과 다름이 없다.”48)

원주 『법화』와 『열반』은 점교 중 가장 궁극적인 교로서 『화엄』 돈교와 깊고 얕음이 다르지 않으니, 전체가 ‘세 번째, 진심眞心이 곧 성性임을 드러내 보여 주는 교’이다.

ㄴ) 제도하여 마치고 본원으로 돌아감

도서 “내가 이미 제도하여야 할 사람을 다 제도하였고, 제도되지 않은 사람도 제도 받을 인연을 지었기 때문에 사라쌍수 사이에서 대적멸의 선정에 들어감으로써

009_0228_b_01L
三會三歸一

009_0228_b_02L
漸漸見其根熟遂於靈鷲山開示如來
009_0228_b_03L知見普皆與授阿耨多羅三藐三菩提
009_0228_b_04L

009_0228_b_05L
究竟一乘如四衢道中白牛車也
009_0228_b_06L敎牛車大乘與實敎白牛車一乘不
009_0228_b_07L同者三十餘本經論俱有明文也

009_0228_b_08L
顯示三乘法身平等入一乘道乃至我
009_0228_b_09L臨欲滅度在拘尸那城娑羅雙樹間
009_0228_b_10L大師子吼顯常住法決㝎說言一切
009_0228_b_11L衆生皆有佛性凡是有心㝎當作佛
009_0228_b_12L究竟湼槃常樂我淨皆令安住秘密藏
009_0228_b_13L

009_0228_b_14L
法華且收三乘至湼槃經方普收六
009_0228_b_15L會權入實須漸次故也

009_0228_b_16L
四現法無異

009_0228_b_17L
即與華嚴海會師子嚬伸大衆頓證
009_0228_b_18L無有別異

009_0228_b_19L
法華湼槃是漸敎中之終極與華嚴
009_0228_b_20L等頓敎深淺無異都爲第三顯示眞
009_0228_b_21L心即性敎也

009_0228_b_22L
二度盡還源

009_0228_b_23L
我旣所應度者當已度訖未得度者
009_0228_b_24L爲作得度因緣故於雙樹間入大寂滅

009_0228_c_01L근본을 돌이켜 근원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시방삼세 일체 모든 부처님과 함께 항상 법계에 머물며, 항상 고요하고 항상 비출 것이다.”49)

과평 논평하여 말한다. 위의 세 장은 전부 경 가운데 불타 자신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단지 초록한 것이기 때문에 연속하여 엮은 곳에 혹 두세 글자를 가감하거나 고쳤을 뿐이다. 오직 화엄을 서술한 한 곳은 1행 반인데, 그것은 불타의 뜻을 바로 드러낸 것이긴 하지만, 불타의 본래 말씀은 아니다.50)

ㄷ. 결론으로 권함

도서 곧바로 청한다. 불타가 이 본의를 자술한 것을 가지고 앞의 3종 교종을 판단해 해석한다면, 어찌 권權과 실實이 일반이라 할 수 있으며, 시작과 마침이 두 법이라 할 수 있겠는가.51) 선종도 교종과 다르지 않으니, 누가 그렇지 않다고 하겠는가. 간절히 화회하고자 하는 것은 실제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누가 이 말을 듣고 의심을 없애지 않겠는가. 오히려 집착하여 미혹한다면, 나는 다시 (이 말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 불타의 말씀을 통하여 해석함(4항목)

ㄱ. 앞의 것을 거듭하여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그러나 위에서 인용한, 불타가 스스로 “널리 중생을 보니, 모두 정각을 이루었다.”라고 하신 말씀과, 또 “근기가 둔하여 어리석고 어둡다.”라고 하신 말씀은 말이 서로 어긋나는 듯하다. 다시 그 차례에 따라 통하도록 해석하고자 하였으나, 중간에 불타의 말씀이 섞이어 글이 상반되게 더해졌을까 두렵다. 지금 이후에는 전적으로 윗대 조사인 마명보살에 의거하여 중생심의 깨달음과 미혹함, 근본과 지말, 시작과 끝을 함께 밝혀 다 드러나게 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온통 부처의 중생이 시끄러운 생사이고, 온통 중생의 부처가 고요한 열반이며, 온통 돈오의 습기가 생각생각 반연이고, 온통 습기의 돈오가 마음마음 깨달아 비춤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즉 불타의 말씀이 서로 어긋나는 곳에서 어긋날 것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ㄴ. 의미를 해석하여 형상을 보여 줌(2항목)

ㄱ) 두루 일심이문에 의거하여 서로 어긋남이 없음을 밝힘(4항목)


009_0228_c_01L返本還源與十方三世一切諸佛
009_0228_c_02L住法界常寂常照也

009_0228_c_03L
評曰上來三紙全是於諸經中
009_0228_c_04L佛自言也但以抄錄之故不免於連
009_0228_c_05L續綴合之處或加減改換三字兩字
009_0228_c_06L而已唯叙華嚴處一行半是以徑
009_0228_c_07L顯佛意非佛本語也

009_0228_c_08L
三結勸

009_0228_c_09L
便請將佛此自述本意判前三種敎宗
009_0228_c_10L豈得言權實一般豈得言始終二法
009_0228_c_11L宗例敎誰謂不然切欲和會良由此
009_0228_c_12L誰聞此說而不除疑若猶執迷
009_0228_c_13L則吾不復也

009_0228_c_14L
二通釋佛語四一牒前摠標

009_0228_c_15L
然上所引佛自云見衆生皆成正覺
009_0228_c_16L又云根鈍癡盲語似相違便欲於其次
009_0228_c_17L通釋恐間雜佛語文相反加今於此
009_0228_c_18L方始全依上代祖師馬鳴菩薩具明
009_0228_c_19L衆生心迷悟本末始終悉令顯現
009_0228_c_20L然見全佛之衆生擾擾生死全衆生之
009_0228_c_21L寂寂湼槃全頓悟之習氣念念攀
009_0228_c_22L全習氣之頓悟心心覺照即於佛
009_0228_c_23L語相違之處自見無所違也

009_0228_c_24L
二釋義示相二一通約一心二門
009_0228_c_25L「譛」疑「讃」{編}

009_0229_a_01L
(ㄱ) 일심이 이문을 포함함을 밝힘

도서 육도 범부와 삼승 현성의 근본이 다 신령하고 밝아 청정한 일법계의 마음52)이고, 성각性覺53)의 보배 광명이 각각 원만하니 본래 제불이라 부를 수도 없고, 또한 중생이라 부를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이 마음이 신령스럽고 미묘 자재하여 자성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미혹함과 깨달음의 연을 따라 업을 짓고 고통을 받으면 중생이라 부르고, 수도하여 진여를 증득하면 제불이라 부른다. 또 비록 연을 따르지만 자성을 잃지 않기 때문에 항상 허망하지 않고, 항상 변하지 않으며, 파괴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오직 일심이니 진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일심은 항상 두 문을 갖추고 있어 잠시도 서로 떠나지 않는다.

(ㄴ) 앞의 것을 이어 그 까닭을 반복하여 해석함

도서 단지 수연문隨緣門 중에는 범성이 정해지지 않고 본래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번뇌가 시작이 없다고 하는 것이며, 수행하여 깨달으면 번뇌가 끊어져 다하기 때문에 마침이 있다고 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따로이 시각始覺이 없으며, 불각不覺 또한 없으니, 궁극적으로 평등하기 때문이다. 이 일심은 본래 그대로여서 진眞과 망妄의 두 가지 의미가 있으며, 두 의미 안에 다시 각각 두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항상 진여와 생멸 두 문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ㄷ) 네 가지 의미를 묶어 이문을 이룸

도서 각각 두 가지 의미란, 진眞에는 불변不變과 수연隨緣54)의 두 가지 의미가 있고, 망妄에는 체공體空과 성사成事55)의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을 말한다. 진은 불변이기 때문에 허망 자체가 본래 공한 것이 진여문이고, 진이 연을 따르기 때문에 망식이 현상을 이룬 것이 생멸문이다.

(ㄹ) 불타의 말씀이 진실임을 결론으로 보여 줌

도서 생멸이 곧 진여이기 때문에 모든 경전이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009_0229_a_01L明無相違四一明一心含二門

009_0229_a_02L
謂六道凡夫三乘賢聖根本悉是靈明
009_0229_a_03L淸淨一法界心性覺寶光各各圓滿
009_0229_a_04L本不名諸佛亦不名衆生但以此心
009_0229_a_05L靈妙自在不守自性故隨迷悟之緣
009_0229_a_06L造業受苦遂名衆生修道證眞遂名
009_0229_a_07L諸佛又雖隨緣而不失自性故常非
009_0229_a_08L虛妄常無變異不可破壞唯是一心
009_0229_a_09L遂名眞如故此一心常具二門未曾
009_0229_a_10L暫闕

009_0229_a_11L
二躡前轉釋所以

009_0229_a_12L
但隨緣門中凡聖無㝎謂本來未曾覺
009_0229_a_13L悟故說煩惱無始若修證即煩惱斷
009_0229_a_14L故說有終然實無別始覺亦無不
009_0229_a_15L畢竟平等故此一心法爾有眞妄
009_0229_a_16L二義二義復各二義故常具眞如生滅
009_0229_a_17L二門

009_0229_a_18L
三束四義成二門

009_0229_a_19L
各二義者眞有不變隨緣二義妄有體
009_0229_a_20L空成事二義眞不變故妄體本空
009_0229_a_21L眞如門由眞隨緣故妄識成事爲生
009_0229_a_22L滅門

009_0229_a_23L
四結現佛語眞實

009_0229_a_24L
以生滅即眞如故諸經說無佛無衆生

009_0229_b_01L본래 열반이고 항상 적멸한 상이다.”라고 설한다. 또 진여가 곧 생멸이기 때문에 경은 “법신이 오도에 유전하는 것을 중생이라 부른다.”라고 하는 것이다.

ㄴ) 별도로 후문에 근거하여 범성凡聖이 두 모양임을 밝힘(2항목)

(ㄱ) 미혹함과 깨달음을 총체적으로 논함

도서 이미 미혹과 깨달음, 성인과 범부가 생멸문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지금은 이 문(생멸문)에서 범과 성의 두 모습을 함께 밝히겠다. 곧 진과 망이 화합하여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은 것을 아리야식이라고 부른다. 이 식은 범부에게 있는 것으로, 본래 각覺과 불각不覺의 두 의미를 항상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각은 삼승 현성의 본원이고, 불각은 육도 범부의 근본이다.

(ㄴ) 개별적으로 명칭과 의미를 보임(3항목)

㉠ 범부의 근본과 지말(3항목)

a. 사람에 의거하여 숫자로 표함

도서 지금 곧 범부의 본말에 총 십중十重(10항목)이 있음을 보여 주려 한다.

원주 지금 매 항목(重)마다 꿈의 비유로써 측면 각주를 달아 하나하나 그것을 (본문에) 합편하였다.

b. 숫자에 의거하여 개별적으로 해석함(2항목)

a) 본각

도서 첫째, 일체중생에게는 모두 본각진심이 있다고 한다.

원주 단정하고 지혜가 많은 부귀한 사람이 스스로 집 안에 있는 것과 같다.

b) 불각(2항목)

(a) 근본불각

도서 둘째, 선우善友가 열어 보인 것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대로 본래 불각이다.

원주 집 안에 있는 사람이 자고 있으면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논에서는 “본각에 의거하여 불각이 있다.”라고 하였다.

(b) 지말불각(2항목)

ⓐ 삼세56)

도서 셋째, 불각 때문에 자연스럽게 망념이 일어난다.

원주 잠들면 자연스럽게 꿈을 꾸는 것과 같다. 논에서는 “불각에 의거하여 3종의 형상이 생겨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첫 번째이다.


009_0229_b_01L本來湼槃常寂滅相又以眞如即生滅
009_0229_b_02L故經云法身流轉五道名曰衆生

009_0229_b_03L
二別就後門具彰凡聖二相三 [1]
009_0229_b_04L摠論迷悟

009_0229_b_05L
旣知迷悟凡聖在生滅門今於此門
009_0229_b_06L具彰凡聖二相即眞妄和合非一非異
009_0229_b_07L名阿梨耶識此識在凡本來常有覺與
009_0229_b_08L不覺二義覺是三乘賢聖之本不覺是
009_0229_b_09L六道凡夫之本

009_0229_b_10L
二別示名義二 [1] 一凡夫本末三
009_0229_b_11L約人標數

009_0229_b_12L
今且示凡夫本末摠有十重

009_0229_b_13L
今每重以夢喩側脚注一一合之

009_0229_b_14L
一依數別釋二一本覺

009_0229_b_15L
一謂一切衆生皆有本覺眞心

009_0229_b_16L
如一富貴人端正多智自在宅中也

009_0229_b_17L
二不覺二一根本不覺

009_0229_b_18L
二未遇善友開示法爾本來不覺

009_0229_b_19L
如宅中人睡自不知也論云依本覺
009_0229_b_20L故而有不覺也

009_0229_b_21L
二枝末不覺二一三細

009_0229_b_22L
三不覺故法爾念起

009_0229_b_23L
如睡法爾有夢論云依不覺故生三
009_0229_b_24L種相此是初一也

009_0229_c_01L
도서 넷째, 망념이 일어나기 때문에 능견상이 있다.

원주 꿈속에서의 생각과 같다.

도서 다섯째, 이러한 견見이 있기 때문에 육근ㆍ신체ㆍ세계가 헛되이 나타난다.

원주 꿈속에서 타향살이하는 몸이 가난의 고통과 여러 가지 좋거나 나쁜 일의 경계를 본다.

ⓑ 육추57)

도서 여섯째, 이러한 것들이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일어남을 알지 못하고 확실하게 있다고 집착한다. 이것을 법집法執이라고 부른다.

원주 바로 꿈꿀 때 자연스럽게 꿈속에 보이는 물건에 집착해 틀림없이 실제의 물건이라고 여긴다.

도서 일곱째, 법에 대한 고정된 집착으로 자타가 다르다고 보는 것을 아집我執이라고 한다.

원주 꿈을 꿀 때, 타향에서 가난으로 고통 받는 몸이 틀림없이 자기의 본래 몸이라고 믿는다.

도서 여덟째, 이 사대가 나의 몸이라고 집착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망정에 따르는 모든 경계를 탐하여 애착한다. 나를 이롭게 하려고 망정에 거슬리는 모든 경계에 대해 성내고 혐오하여 나를 해치고 혼란시킬까 두려워한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망정으로 가지가지 생각하고 비교하여 헤아린다.

원주 이것이 삼독三毒이니, 꿈속 타향살이 중에 거스르거나 수순하는 등의 일과 같다. 이 또한 탐심과 진심이다.

도서 아홉째, 이로 말미암아 선악 등의 업을 짓는다.

원주 꿈속에서 어떤 때는 훔치고 빼앗으며 때리고 욕한다. 또 어떤 때는 은혜를 나누고 덕을 베푼다.

도서 열째, 업을 지으면 피하기 어렵다. 그림자와 메아리가 형체와 소리에 응하는 것처럼 육도의 업에 얽혀 괴로움을 받는다.

원주 꿈속에서 훔치고 빼앗으며 때리고 욕한 과보로 관가에 잡히어 구금되는 형벌을 받고, 은혜를 베푼 과보로 천거를 받아 관직에 오르는 것과 같다.

c. 어리석고 우둔함을 결론으로 보여 줌


009_0229_c_01L
四念起故有能見相

009_0229_c_02L
如夢中之想也

009_0229_c_03L
五以有見故根身世界妄現

009_0229_c_04L
夢中別見有身在他鄕貧苦及見種
009_0229_c_05L種好惡事境

009_0229_c_06L
二六麁

009_0229_c_07L
六不知此等從自念起執爲㝎有
009_0229_c_08L爲法執

009_0229_c_09L
正夢時法爾必執夢中所見之物
009_0229_c_10L實物也

009_0229_c_11L
七執法㝎故便見自他之殊名爲我執

009_0229_c_12L
夢時必認他鄕貧苦身爲己本身也

009_0229_c_13L
八執此四大爲我身故法爾貪愛順情
009_0229_c_14L諸境欲以閠我嗔嫌違情諸境恐損
009_0229_c_15L惱我愚癡之情種種計較

009_0229_c_16L
此是三毒如夢在他鄕所見違順等
009_0229_c_17L亦貪瞋也

009_0229_c_18L
九由此故造善惡等業

009_0229_c_19L
夢中或偸奪打罵或行恩布德也

009_0229_c_20L
十業成難逃如影響應於形聲故受六
009_0229_c_21L道業繫苦相

009_0229_c_22L
如夢因偸奪打罵被捉枷標決罰
009_0229_c_23L因行恩得報擧薦拜官署職也

009_0229_c_24L
三結現癡盲

009_0230_a_01L
도서 이상 십중十重이 생기한 차례로 혈맥이 이어지고 행상行相이 매우 분명하게 되었다. 단지 이치에 의거하여 마음을 관하고 미루어 비추면 뚜렷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깨달은 후에 닦고 증득함을 가리는 데 있어서도 역시 십중이 있다. 망을 뒤집으면 곧 진이니, 별다른 법이 없기 때문이다.

㉡ 성현의 시작과 마침(2항목)

a. 장애를 끊는 차례를 밝힘(3항목)

a) 닦아서 끊음을 총체적으로 밝힘

도서 그러나 미혹함과 깨달음의 의미가 다르고, 수순하고 거스르는 차례가 다르다. 앞의 것58)은 진실에 미혹하여 망을 좇는 것이니, 미세함을 따라 차례로 일어나 점점 반복하여 추중에 이른다. 이것59)은 망을 깨달아 진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추중을 따라 역 차례로 (망을) 제거하여 가면 점점 미세한 데까지 이르게 된다. 이 (망을) 뒤집는 지혜는 얕은 데에서 깊은 데로 옮겨 가는 것이다. 거친 장애는 버리기 쉬우니 얕은 지혜로도 (망을) 뒤집을 수 있기 때문이며, 미세한 번뇌는 제거하기 어려우니 깊은 지혜라야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십중은 뒤의 역순 차례를 따라 앞의 십중을 뒤집어 깨뜨리는 것이다. 오직 이 1항은 앞의 2항60)과 조금 어긋남이 있으니, 아래에서 곧바로 드러내 보이겠다.

b) 개별적으로 그 문을 보여 줌(3항목)

(a) 참되고 청정함을 믿고 앎

도서 십중十重에 대해 설명하겠다.
첫째, 중생이 위에서 설한 본각진심을 열어 보이는 선지식을 만나 숙세에 일찍이 들었던 것을 지금 깨달아 아는 것을 말한다.

원주 만일 숙세에 일찍이 듣지 않았다면 지금 듣고 반드시 믿지 않을 것이며, 혹 믿더라도 알지 못할 것이다. 사람마다 모두 불성이 있지만 지금 믿지 않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도서 사대四大는 아我가 아니고, 오온이 모두 공하니, 스스로의 진여와 삼보의 덕을 믿어야 할 것이다.

원주 자기의 마음이 본래 허망하지 않으며 본래 변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진여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논에서는 “스스로 자기의 본성을 믿어 마음이 허망하게 움직이는 것인 줄 알면 앞의 경계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신심에는 네 종류가 있다. 첫째, 근본을 믿는 것이니, 진여를 즐겨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부처에게는 한량없는 공덕이 있음을 믿는 것이니, 항상 친근하고 공양할 것을 생각한다.

009_0230_a_01L
此上十重生起次第血脉連接行相甚
009_0230_a_02L但約理觀心而推照即歷然可見
009_0230_a_03L次辨悟後修證還有十重翻妄即眞
009_0230_a_04L無別法故

009_0230_a_05L
二賢聖始終二一明斷障次第三
009_0230_a_06L一摠明修斷

009_0230_a_07L
然迷悟義別順逆次殊前是迷眞逐
009_0230_a_08L從微細順次生起展轉至麁此是
009_0230_a_09L悟妄歸眞從麁重逆次斷除展轉至細
009_0230_a_10L以能翻之智自淺之深麁障易遣
009_0230_a_11L智即能翻故細惑難除深智方能斷故
009_0230_a_12L故此十從後逆次翻破前十唯此一前
009_0230_a_13L有少參差下當顯示

009_0230_a_14L
二別示其門三一信解眞淨

009_0230_a_15L
十重者一謂有衆生遇善知識開示
009_0230_a_16L上說本覺眞心宿世曾聞今得悟解

009_0230_a_17L
若宿生未曾聞今聞必不信或信而
009_0230_a_18L不解雖人人有佛性今現有不信不
009_0230_a_19L悟者是此類也

009_0230_a_20L
四大非我五蘊皆空信自眞如及三寶
009_0230_a_21L

009_0230_a_22L
信自心本不虛妄本不變異故曰眞
009_0230_a_23L故論云自信己性知心妄動
009_0230_a_24L前境界又云信心有四種一信根本
009_0230_a_25L樂念眞如二信佛有無量功德常念

009_0230_b_01L셋째, 법에는 큰 이로움이 있음을 믿는 것이니, 항상 수행을 생각한다. 넷째, 스님을 믿는 것이니, 바른 행을 닦아 자타를 이롭게 하므로 항상 친하고 가까이하기를 즐긴다.”라고 하였다.
앞의 1항을 깨닫는 것은 앞의 2항을 뒤집은 것이니, 제1중이다.

(b) 보리심을 냄

도서 둘째, 자비·지혜·원을 발하여 보리를 증득하기를 서원한다.

원주 자비의 마음을 발한다는 것은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것이고, 지혜의 마음을 발한다는 것은 일체를 깨닫고자 하는 것이며, 서원하는 마음을 발한다는 것은 만행을 닦아 자비와 지혜를 돕고자 하는 것이다.

(c) 수증계위의 차이(4항목)

ⓐ 믿는 지위

도서 셋째, 능력에 따라 보시·지계·인욕·정진 및 지관문止觀門을 닦아 신근信根을 증장시킨다.

원주61)에서는 “수행에 다섯 가지가 있어서 이 믿음이 이루어진다.”라고 하였다. 지止와 관觀이 합해져서 하나의 행상이 되기 때문에 육도六度가 다섯이 된 것이다.62)

ⓑ 현인의 지위

도서 넷째, 대보리심大菩提心이 이것(五度)을 좇아 발현한다.

원주 즉 위의 3심이 개발되는 것이다. 논에서는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곧은 마음이니, 진여법을 바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깊은 마음이니, 모든 선행을 즐겨 익히는 것이다. 셋째, 대비심이니, 일체중생의 괴로움을 뽑아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63)

ⓒ 성인의 지위(2항목)

i) 현인과 성인을 합해서 논함

도서 다섯째와 여섯째,64) 법성에는 간탐 등의 마음이 없음을 알아서,

원주 ‘등’이라고 한 것은 욕망·성냄·게으름·산란·우치이다.

도서 육바라밀의 수행을 수순하는 정혜의 힘으로

원주 처음 닦는 것을 지관이라 하고, 성취하는 것을 정혜라고 한다.

도서 아와 법이 둘 다 없어지니,


009_0230_b_01L親近供養三信法有大利益常念修
009_0230_b_02L四信僧能修正行自利利他
009_0230_b_03L樂親近悟前一翻前二成第一重也

009_0230_b_04L
二發菩提心

009_0230_b_05L
二發悲智願誓證菩提

009_0230_b_06L
發悲心者欲度衆生發智心者
009_0230_b_07L了達一切發願心者欲修萬行
009_0230_b_08L資悲智也

009_0230_b_09L
三修證階差四一信位

009_0230_b_10L
三隨分修習施戒忍進及止觀門增長
009_0230_b_11L信根

009_0230_b_12L
論云修行有五能成此信止觀合爲
009_0230_b_13L一行故六度唯成五也

009_0230_b_14L
二賢位

009_0230_b_15L
四大菩提心從此顯發

009_0230_b_16L
即上三心開發論云信成就發心者
009_0230_b_17L有三種心一直心正念眞如法故
009_0230_b_18L二深心樂習諸善行故三大悲心
009_0230_b_19L欲拔一切衆生苦故也

009_0230_b_20L
三聖位二一合論賢聖

009_0230_b_21L
五六以知法性無慳等心

009_0230_b_22L
等者染欲嗔恚懈怠散亂愚癡也

009_0230_b_23L
隨順修行六波羅蜜㝎慧力用

009_0230_b_24L
初修名止觀成就名㝎慧

009_0230_b_25L
我法雙亡

009_0230_c_01L
원주 처음 발심할 때, 이미 교리에 의거하여 이집二執(我執·法執)이 공空함을 관하였고, 지금은 정혜의 힘에 의거하여 스스로 공임을 깨닫는다.

도서 자신도 없고 타인도 없어서,

원주 아공我空을 증득함이니 제5항이다.

도서 항상 공이고 항상 허상이다.

원주 법공法空을 증득함이니, 제6항이다. 색色은 공空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항상 공이고, 항상 허상인 것이다.

ii) 오직 본위에 해당됨

도서 일곱째, 색에 자재하니 일체가 원융하게 통하고,

원주 미혹할 때에는 자기의 마음에 따라 변하는 것인 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재하지 못하다. 지금은 이공二空의 지혜로 인하여 통달했기 때문에 원융하게 통하는 것이다.

도서 여덟째, 마음에 자재하니 비추지 않는 곳이 없다.

원주 이미 마음 밖에 경계가 별도로 있다고 보지 않는다. 경계란 오직 마음이기 때문에 자재라고 하는 것이다.

ⓓ 불위(2항목)

i) 등각

도서 아홉째, 방편을 원만하게 갖추니, 한 생각이 상응하여 마음이 처음 일어남을 깨달으면 마음에 처음이라는 형상이 없다. 미세한 망념을 떠났으니 마음은 항상 머무르며, 미혹한 근원을 깨달았으니 구경의 깨달음이라 부른다.

원주 초발심을 따라 무념을 닦으면, 여기에 이르러 비로소 성취한다. 성취했기 때문에 바로 부처의 지위에 들어간 것이다.

ii) 묘각

도서 열째, 마음에 이미 생각이 사라졌으니, 시각과 다를 것이 없다. 본래 평등하여 동일한 깨달음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참되고 깨끗한 마음의 근원(본각)에 조용히 합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응용이 항하의 모래처럼 무궁하여 미래가 다하도록 항상 법계에 머무니, 간절하게 원하면 곧 통하므로 대각존大覺尊이라 부르는 것이다.


009_0230_c_01L
初發心時已約敎理觀二執空
009_0230_c_02L即約㝎慧力親自覺空也

009_0230_c_03L
無自無他

009_0230_c_04L
證我空五

009_0230_c_05L
常空常幻

009_0230_c_06L
證法空六也色不異空空不異色故
009_0230_c_07L常空常幻也

009_0230_c_08L
二唯當本位

009_0230_c_09L
七於色自在一切融通

009_0230_c_10L
迷時不知從自心變故不自在今因
009_0230_c_11L二空智達之故融通也

009_0230_c_12L
八於心自在無所不照

009_0230_c_13L
旣不見心外別有境界境界唯心故
009_0230_c_14L自在

009_0230_c_15L
四佛位二一等覺

009_0230_c_16L
九滿足方便一念相應覺心初起
009_0230_c_17L無初相離微細念心即常住覺於迷
009_0230_c_18L名究竟覺

009_0230_c_19L
從初發心即修無念至此方得成就
009_0230_c_20L成就故即入佛位也

009_0230_c_21L
二妙覺

009_0230_c_22L
十心旣無念則無別始覺之殊本來平
009_0230_c_23L1)二覺故冥於根本眞淨心源
009_0230_c_24L用塵沙盡未來際常住法界感而即
009_0230_c_25L名大覺尊

009_0230_c_26L「二」底本欄外有註「一」{編}

009_0231_a_01L
c) 정각을 이룬 것을 결론으로 삼음

도서 부처는 달리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부처이다. 달리 새롭게 성취된 것이 없기 때문에 “널리 일체중생들을 보니 똑같이 동등한 정각을 이루었다.”라고 하는 것이다.

b. 역순이 서로 뒤집어짐을 드러냄(2항목)

a) 거듭 표함

도서 그 때문에 미혹과 깨달음에는 각각 십중이 있으니, 순차와 역차를 서로 뒤집으면 행상이 충분히 드러난다. 이곳의 제1항65)은 앞의 1항, 2항66)과 대응되고, 여기의 10항은 앞의 제1항과 부합된다.67) 나머지 8항은 모두 뒤의 역차를 따라 앞의 8항을 뒤집어 깨뜨리는 것이다.68)

b) 개별적으로 해석함(3항목)

(a) 처음의 1항을 자세히 밝힘(2항목)

ⓐ 앞의 1항과 2항이 대응되는 이유를 해석함

도서 제1항 가운데 깨달음(悟)은 앞의 제1항의 본각本覺으로, 앞의 제2항 불각不覺을 뒤집은 것이다. 앞에서는 불각이 본각과 어그러져 진과 망이 서로 어긋나기 때문에 양중으로 전개하였지만, 지금은 깨달음이 (본각과) 깊이 부합한다. 부합하여 서로 수순하기 때문에 달리 처음 깨달음이 없게 된다. 따라서 그것을 합하면 하나가 되는 것이다.69)

ⓑ 역차逆次가 어긋나는 이유를 해석함

도서 또 만일 역순의 차례에 의거하면, 여기서의 1항은 앞의 10항을 합하여 뒤집은 것이다.70) 지금 돈오문 중에서 이치로는 반드시 본체를 바로 인정해야 하지만, 앞의 본래 미한 것을 뒤집었기 때문에 앞의 1항과 2항에 대응되어야 한다.71)

원주 위에서 어긋난다고 한 것이 곧 이것이다.

(b) 나머지 8항을 대응하여 뒤집음

도서 제2항의 생사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삼심三心72)을 내는 것은, 자신을 제도하고 타인도 제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앞의 제10항 육도생사六道生死에 대응된다. 제3항의 수행과 제5항의 실천은 앞의 제9항 업을 짓는 것을 뒤집은 것이고, 제4항의 삼심을 내는 것은 앞의 제8항 삼독을 뒤집은 것이다.

원주 자비심은 성냄을 뒤집은 것이고, 지혜로운 마음은 어리석음을 뒤집은 것이며, 서원하는 마음은 탐애를 뒤집은 것이다.

도서 제5항의 아공을 증득함은 앞의 제7항 아집을 뒤집은 것이고, 제6항의 법공을 증득함은 앞의 제6항 법집을 뒤집은 것이며, 제7항의 색色이 자재함은 앞의 제5항 경계를 뒤집은 것이다.

009_0231_a_01L
三結成正覺

009_0231_a_02L
佛無異佛是本佛無別新成故普見
009_0231_a_03L一切衆生皆同成等正覺

009_0231_a_04L
二現逆順相翻二一牒標

009_0231_a_05L
故迷與悟各有十重順逆相翻行相
009_0231_a_06L甚顯此之第一對前一二此十合前
009_0231_a_07L第一餘八皆從後逆次翻破前八

009_0231_a_08L
二別釋三一詳明初一二一釋對
009_0231_a_09L前一二致由

009_0231_a_10L
一中悟前第一本覺翻前第二不覺
009_0231_a_11L以不覺乖於本覺眞妄相違故開爲
009_0231_a_12L兩重今以悟即冥符冥符相順無別
009_0231_a_13L始悟故合之爲一

009_0231_a_14L
二釋逆次叅差所以

009_0231_a_15L
又若據逆順之次此一合翻前十今以
009_0231_a_16L頓悟門中理須直認本體翻前本迷故
009_0231_a_17L對前一二

009_0231_a_18L
上云參差即是此也

009_0231_a_19L
二對翻餘人 [1]

009_0231_a_20L
二中由怖生死之苦發三心自度度他
009_0231_a_21L對前第十六道生死三修五行翻前
009_0231_a_22L第九造業四三心開發翻前第八三毒

009_0231_a_23L
悲心翻嗔智心翻癡願心翻貪

009_0231_a_24L
五證我空翻前第七我執六證法空
009_0231_a_25L翻前第六法執七色自在翻前第五境

009_0231_b_01L또 제8항의 마음이 자재함은 앞의 제4항 능견能見을 뒤집은 것이고, 제9항의 망념을 떠남은 앞의 제3항 망념이 일어남을 뒤집은 것이다.

(c) 성불로 결론지어 해석함73)(2항목)

ⓐ 시각과 본각이 둘이 아님

도서 그러므로 제10항의 성불은 부처에게 다른 체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시각始覺이 앞의 제2항 불각을 뒤집은 것으로 앞의 제1항 본각과 부합한다. 시각과 본각은 둘이 아니고 오직 진여가 드러난 것뿐이니, 법신대각法身大覺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처음으로 깨달음(初悟, 곧 始覺)과 (법신대각은) 두 체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역순의 차례가 어긋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인과가 다름이 없음

도서 제1항은 인因이 과果의 바다를 감싸는 것이고, 제10항은 과果가 인因의 근원을 꿰뚫어 통하는 것이다. 『열반경』에서는 “발심과 필경(열반) 두 가지는 구별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며, 『화엄경』에서는 “처음 발심할 때에 곧 아뇩보리를 얻는다.”라고 하였으니, 바로 이 의미이다.

㉢ 다하여 가지런히 보게 함(5항목)

a. 도표의 뜻을 밝힘

도서 그러나 비록 역순이 서로 마주 대하고 전후가 서로 조명하여 법과 의미가 밝게 드러나지만, 오히려 글은 정리되지 못했고, 뜻이 함께 드러나지 않아 머리와 꼬리가 서로 맞지 않게 되었으니, 정연하게 볼 수 없지 않을까 두렵다. 지금 그림으로 도표를 만들어 범성의 본말과 대장경의 종취宗趣가 일시에 마음의 거울에 나타나도록 하려고 한다.

b. 그림을 보는 차례를 정함

도서 이 도표의 머리는 중간에 있으니, ‘중생심衆生心’ 세 글자가 이것이다. 이 세 글자를 따라 읽으면, 양편으로 나뉜다.

c. 그림에 표기하는 뜻이 있음을 분간함

도서 붉은 획은 깨끗하고 미묘한 법을 나타내고, 검은 획은 더러움에 물든 법을 나타낸 것으로 일일이 혈맥을 찾아 상세하게 하였다. 붉은 획으로 된 이 ‘○’ 기호는 깨끗한 법인 십중의 차례를 기록한 것이고, 검은 획으로 된 ‘●’ 기호는 물든 법인 십중의 차례를 기록한 것이다.

d. 글의 출처를 나타냄

도서 이 기호는 본론의 글이고, 이 점은 의미로 설한 논의 글이다.74)


009_0231_b_01L八心自在翻前第四能見九離念
009_0231_b_02L翻前第三念起

009_0231_b_03L
三結釋成佛二一始本不二

009_0231_b_04L
故十成佛佛無別體但是始覺翻前第
009_0231_b_05L二不覺合前第一本覺始本不二
009_0231_b_06L是眞如顯現名爲法身大覺故與初悟
009_0231_b_07L無二體也逆順之次參差正由此矣

009_0231_b_08L
二因果無殊

009_0231_b_09L
一即因該果海十即果徹因源湼槃經
009_0231_b_10L發心畢竟二不別華嚴經云初發
009_0231_b_11L心時即得阿耨菩提正是此意

009_0231_b_12L
三盡令齊覩五一明爲圖意

009_0231_b_13L
然雖逆順相對前後相照法義昭彰
009_0231_b_14L猶恐文不頓書意不並現首尾相隔
009_0231_b_15L不得齊覩今畫之爲圖令凡聖本末
009_0231_b_16L大藏經宗一時現於心鏡

009_0231_b_17L
二定圖看次

009_0231_b_18L
此圖頭在中間云衆生心三字是也
009_0231_b_19L此三字讀之分向兩畔

009_0231_b_20L
三辨畫有表

009_0231_b_21L
朱畫表淨妙之法墨畫表垢染之法
009_0231_b_22L一尋血脉詳之朱爲此號 [1] 記淨法十重
009_0231_b_23L之次墨爲此號 [2] 記染法十重之次

009_0231_b_24L
四現文出處

009_0231_b_25L
此號是本論之文此點是義說論文

009_0232_c_01L
e. 바로 도표를 그림(3항목)75)

a) 중생심


○중생심衆生心
경에서는 “하나의 진실한 경계란 중생심이다. 내지 마음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진심이요, 둘은 망심이다.” 라고 설했다. 논에서는 “이른 바 법이란 중생심이다. 이 마음은 일체 세간 출세간법을 총체적으로 포섭한다. 이 마 음에 의거하여 마하연의 의미를 드러내어 보여 준다.”라고 하였다.
○망妄
논에서는 “일법계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홀연히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무명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무명이 물 들여 오염된 마음이 있고 근신, 진경이 확실하여 마침내 어지럽게 분별하고 여러 가지로 생각한다. 위에서 잠자는 사람이 꿈에 자신의 빈천과 갖가지 다른 형상을 보고 갖가지로 근심하고 즐거워하는 것과 같으며, 또 어두울 때 나뭇등걸이 사람 형상이나 귀신의 모양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잠을 자지 않는 몸이나 어둡지 않은 곳의 나무와는 같지 않다.
○진眞
논에서는 “마음이란 본래부터 자성이 청정하며 탕탕하고 공적하여 뚜렷이 알아 깨닫는다.”라고 하였다. 복덕과 지혜를 갖추고 형용이 단엄하다. 부귀한 사람이 자기 집 안에서 잠자는 것과 같고, 광야의 나뭇등걸과도 같다.
○성사成事
진여가 연을 따르 기 때문에 망식이 현상 제법을 지어 내어 생멸이 된다.
○체공體空○수연隨緣○불변不變
진은 불변이기 때 문에 허망한 본체 가 본래 공한 것이 진여이다.
생멸문 ─ ○아려야식
진여문 ─ ○진여

도서 이상은 계위를 표시하고【이 도표 중 계위를 표한 것이다. 중생심이라고 하는 것은 속박된 불성이다. 본론과 경에서는 이를 모두 여래장이라 하였다.】 의미의 문【진과 망에 각각 두 가지 의미가 있으니, 진여문과 아리야식의 근본 의리이다.】을 설명한 것이다. 두 가지 측면은 표시한 마음 가운데 성性【진여】·상相【아리야】·염染【불각위不覺位 중 모든 법】·정淨【각 중의 모든 법】의 법체이다. 미혹할 때에도 무루의 깨끗하고 미묘한 덕용이 단지 숨어 있을 뿐 멸하지 않기 때문에 진여 본각은 유루식 가운데 있다.【일체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다는 것은 이 의미이다.】 깨달을 때는 유루의 물든 상이 반드시 없어져야 하기 때문에 무명·식상·망념·업과 등이 진여문에는 있지 않다. 오직 깨끗하고 미묘한 덕용만이 홀로 진여심 중에 있으니, 그것을 부처라고 한다.


009_0231_c_01L
不覺位諸法

009_0231_c_02L

009_0231_c_03L迷有十重
009_0231_c_04L此是迷眞逐妄從微細順次生起展轉至麤之相
009_0231_c_05L●本覺
009_0231_c_06L謂一切衆生皆有本覺眞心如富貴人端正多智在自宅中住也
009_0231_c_07L○二不覺
009_0231_c_08L未遇善友開示法爾本來不覺不覺迷眞也論云不如實知眞如法如宅中人睡自不知也
009_0231_c_09L●三念起
009_0231_c_10L不覺故法爾念起如睡法爾有夢論云以依不覺故心動說名爲三細相此其第一也
009_0231_c_11L○四見起
009_0231_c_12L念起故有能見相如夢中之想也論云以依動故能見不動則無見
009_0231_c_13L●五境現
009_0231_c_14L以有見故根身世界妄現如夢中別見有身在他鄕貧苦及見種種好惡事境
009_0231_c_15L○六執法
009_0231_c_16L不知境從自心起執爲實有名爲法執如正夢時法爾必執夢中所見之物爲實有也
009_0231_c_17L●七執我
009_0231_c_18L執法定故見自他之殊計自爲我名爲我執如夢時必認他鄕貧苦之身爲己本身也
009_0231_c_19L○八煩惱
009_0231_c_20L執四大爲我身故貪愛順情境嗔違情境愚痴計校如夢在他鄕所見違順等事亦貪嗔也
009_0231_c_21L●九造業
009_0231_c_22L由三毒擊發故造善惡等業如夢中或偸奪打罵或行恩布德等也
009_0231_c_23L○十受報
009_0231_c_24L業成難逃如影響應於形聲故受六道業繫之苦已受之身非可斷法故無對治之法如夢因偸奪打罵被捉枷禁決罰或因行恩得報擧薦拜官署職也

009_0232_a_01L
b) 생멸문(2항목)


009_0232_a_01L

009_0232_a_02L二生滅門中二(一)不覺位中諸法
009_0232_a_03L●不覺六道凡夫之本
009_0232_a_04L
009_0232_a_05L○阿黎耶識
009_0232_a_06L一信根本樂念眞如法故
009_0232_a_07L二信佛有無量功德常念供養
009_0232_a_08L三信法有大利益常念修行
009_0232_a_09L四信僧能正修行常樂親近精進無厭
009_0232_a_10L頓悟謂有衆生遇善知識開示上說本覺眞心宿世曾聞今得悟解四大非我五蘊皆空發起四種信心 
009_0232_a_11L三乘賢聖之本
009_0232_a_12L○覺
009_0232_a_13L悟有十重
009_0232_a_14L此是悟妄歸眞從麁重逆次斷除展轉至細之相
009_0232_a_15L1)(二)漸修
009_0232_a_16L二怖苦發心
009_0232_a_17L發悲智願推證大菩提漸修菩薩解行論云發悲心者欲度衆生發智心者欲了達一切法發願心者欲修萬行以資悲智也
009_0232_a_18L三修五行覺妄念
009_0232_a_19L五行一隨分施二戒十惡若出家即習頭陀三忍他惱四精進不怠五止觀住靜止一切境正念唯心觀察世間無可愛樂覺知前念起惡能止後念令其不起也
009_0232_a_20L
009_0232_a_21L
009_0232_a_22L
009_0232_a_2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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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불각위不覺位 중의 제법諸法

도서 [미迷의 십중十重]-이것은 진여에 혼미하여 망념을 따르는 것이니, 미세微細한 것으로부터 차례로 생기하여 점차 추상麤相에 이르는 모양이다.


○아려야식
○불각○각
육도범부의 근본삼승현성의 근본
1. 본각本覺2. 불각不覺3. 염기念起4. 견기見起5. 경현境現6. 집법執法7. 집아執我8. 번뇌煩惱9. 조업造業10. 수보受報
일체중생에게 모두 본각진심이 있는 것을 말한다. 단정하고 지혜가 많은 부귀한 사람이 자기 집 안에 있는 것과 같다.선우가 열어 보임을 만나지 못하여 본래부터 깨닫지 못한 것이니 진여에 미혹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논에서는 여실한 진여의 법 이라고 하였다. 집 안에서 사람이 잠을 자는 동안 스스로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불각 때문에 저절로 생각이 일어난다. 잠을 자면 저절로 꿈을 꾸는 것과 같다. 논에서는 “불각에 의하여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삼세의 상相이다.” 라고 한다. 이것이 첫 번째이다.생각이 일어나기 때문에 능견이 있다. 이것은 꿈속에서 생각하는 것과 같다. 논에서는 “움직임에 의하여 볼 수 있으며 움직이지 않으면 볼 수 없다.”라고 하였다.견이 있기 때문에 근신 세계가 헛되이 나타난다. 그것은 마치 꿈 가운데 자신의 몸이 타향에서 가난한 괴로움과 갖가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의 경계를 보는 것과 같다.경계란 자기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인 줄 알지 못하고 실제로 있다고 집착하는 것을 법집이라고 부른다. 바로 꿈을 꿀 때 자연스럽게 꿈속에서 보는 물건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과 같다.법이 정해진 것이라고 집착하는 까닭에 자타가 다르다고 보며 스스로 헤아려 아我라고 생각한다. 꿈을 꿀 때 타향에서 가난과 고통을 받는 몸이 자기의 본래 몸이라고 확실하게 믿는 것과 같다.사대가 나의 몸이라고 집착하여 망정에 따르는 경계는 탐하여 애착하고 망정에 어긋나는 경계에는 성내고 어리석게 비교한다. 꿈에 타향에서 순하거나 거스르는 등의 일을 보는 것과 같다. 이 또한 성내고 탐애하는 것이다.삼독이 격발하여 선악 등의 업을 짓는다.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훔치고 빼앗으며 때리고 욕설하거나 혹은 은혜를 베풀고 덕을 펴는 등과 같다.업을 지으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림자와 메아리가 형상과 소리를 따르는 것과 같이 육도의 업에 계박되는 괴로움을 받는다. 이미 받은 몸은 끊을 수 있는 법이 아니기 때문에 대치할 방법이 없다. 꿈속에서 훔치고 빼앗으며 때리고 욕하면 붙잡혀 구금되고 벌을 받기도 하고 혹은 은혜를 베푼 과보로 벼슬에 천거되어 관직을 받기도 하는 것과 같다.


009_0232_b_01L四開發即前悲智願心今開發也
009_0232_b_02L云信成就發三心一直心
009_0232_b_03L念眞如法故二深心樂習
009_0232_b_04L諸善行故三悲心欲拔衆生
009_0232_b_05L苦故
009_0232_b_06L五我空於眞如理深解現前所修離
009_0232_b_07L以知性體無慳無染離嗔
009_0232_b_08L離怠常寂常照故隨順修行
009_0232_b_09L施戒忍進禪慧六度
009_0232_b_10L六法空法無性故常空常幻悟色空
009_0232_b_11L不異也離我執故無自無他
009_0232_b_12L七色自在色自在地已證境是自心
009_0232_b_13L所現故於色自在融通
009_0232_b_14L慧力用我法雙亡
009_0232_b_15L八心自在心自在地不見外有定實之
009_0232_b_16L故於一切自在無所不照
009_0232_b_17L九離念滿足方便一念相應覺心初
009_0232_b_18L心無初相離微細念
009_0232_b_19L即常住覺於迷源名究竟
009_0232_b_20L從初發心即修無念
009_0232_b_21L此方得成就
009_0232_b_22L十成佛證而實無有始覺之異本來
009_0232_b_23L平等同一覺故冥於根本眞
009_0232_b_24L淨心源應用塵沙盡未來際
009_0232_b_25L常住法界感而即通名大覺
009_0232_b_26L
009_0232_b_27L一頓悟本覺悟前一翻前二爲第一重
009_0232_b_28L(二)覺位中諸法三{一}頓悟

009_0232_b_01L
(b) 각위覺位 중의 제법諸法(3항목)

ⓐ 돈오


돈오頓悟○ 각점수漸修
○1. 돈오본각頓悟本覺○10. 성불成佛○9. 이념離念○8. 심자재心自在○7. 색자재色自在○6. 법공法空○5. 아공我空○4. 개발開發○3. 오행을 닦아 망념을 깨달음○2. 괴로움을 두려워하여 발심함
앞의 1 항을 깨닫는 것은 앞의 2 항을 뒤집은 것이니 제 1 중이다.증득하면 실제로 시각이 ( 본각과 ) 다름이 없다. 본래 평등하여 동일한 각覺이기 때문이다. 근본이 되는 진실하고 깨끗한 마음의 근원에 조용히 계합하니 응용이 무궁하고 미래가 다하도록 항상 법계에 머문다. 간절하게 원하면 곧 통하니 대각존이라 부른다.방편을 원만히 갖추니 한 생각이 상응하여 마음이 처음 일어남을 깨달으면 마음에 처음의 형상이 없다. 미세한 생각을 떠나 마음이 항상 머무르며 미혹한 근원을 깨닫는 것을 구경각이라 한다. 초발심으로부터 무념無念을 수행하여 여기에 이르면 비로소 성취한다.심에 자재한 지위 ( 제 9 지 ) 이다. 바깥에 확실한 실제의 경계가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일체에 자재하여 비추지 않음이 없다.색에 자재한 지위 ( 제 8 지 ) 이다. 이미 경계란 자기 마음이 현현한 것임을 증득했기 때문에 색에 대해 자재 융통하고 정과 혜의 힘으로 아와 법이 둘 다 사라진 것이다.법은 체성이 없기 때문에 항상 공하고 항상 허망하니 색과 공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집을 떠났기 때문에 자타도 없다.진여의 이치에 대해 깊은 이해가 현전하여 닦음이 형상을 떠난 것이다. 자성 자체가 탐냄과 물듦도 없고 성냄과 게으름도 없으며 항상 고요하고 항상 비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 · 지혜의 육도六度를 따라서 수행한다.곧 앞의 비悲 · 지智 · 원願의 삼심을 지금 개발하는 것이다. 논에서는 “믿음의 성취는 삼심의 개발이다. ”라고 하였다. 첫째 직심은 진여법을 바로 생각하는 것이고, 둘째 심심은 모든 선행을 즐겨 익히는 것이고, 셋째 비심은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 주고자 하는 것이다.오행이란 첫째 능력에 따라 베풂 둘째 십악을 경계함이니 출가하면 곧 두타행을 익힘 셋째 다른 고뇌를 참음 넷째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음 다섯째 고요한 곳에 머무르며 지관을 행함이다. 일체의 경계를 멈추고 오직 마음임을 바로 생각하여 세간에는 탐애하고 즐거워할 것이 없다고 관찰한다. 앞의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깨달아 앎으로써 악을 멈추고 뒤의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비悲 · 지智 · 원願의 마음을 일으켜 대보리심을 증득할 것을 서원하며 점차 보살의 해행을 닦는다. 논에서는 “비심을 발하는 것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고 지심을 발하는 것은 일체법을 요달하기 위함이며 원심을 발하는 것은 만행을 닦아 자비와 지혜를 돕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도서 돈오頓悟
중생이 선지식의 열어 보임을 만나 위에서 설한 본각진심을 숙세에 일찍이 들었기 때문에 지금 사대가 아我가 아니며, 오온이 다 공하다는 것을 깨달아 4종 신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4종 신심이란,) 첫째, 근본을 믿는다. 진여의 법을 즐겨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 부처에게는 무량공덕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항상 공양하기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셋째, 법에는 큰 이익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항상 수행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넷째, 승려는 바른 수행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항상 정진을 가까이하고 즐겨 게으름이 없기 때문이다.

ⓑ 점수

도서 [오悟의 십중]-이것은 망념을 깨닫고 진여로 돌아가는 것이다. 추중을 따라 역차례로 끊어 없애 점점 미세한 상에까지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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由眞隨緣故妄識成事爲生滅
009_0232_c_02L生滅門
009_0232_c_03L○成事
009_0232_c_04L●妄
009_0232_c_05L論云以不達一法界故忽然念起名爲無明無明所染有其染心確然根身塵境紛然分別緣慮如上寢臥之人夢見自身貧賤種種異狀種種憂喜又如迷上杌木謂爲人身神鬼不同不睡之身不迷之木也
009_0232_c_06L眞如門
009_0232_c_07L○體空
009_0232_c_08L衆○生心
009_0232_c_09L五正畫爲圖三(一)衆生心
009_0232_c_10L經云一實境界者所謂衆生心乃至心有二種一者眞二者妄論云所言法者謂衆生心是心總攝一切世出世間法依於此心顯示摩訶衍義
009_0232_c_11L◉隨緣
009_0232_c_12L○眞
009_0232_c_13L論云是心從本已來自性淸淨蕩然空寂了然知覺如福德智慧相自端嚴富貴之人於自宅堂中寢臥亦如曠野杌木
009_0232_c_14L○不變
009_0232_c_15L由眞不變故妄軆本空爲眞如
009_0232_c_16L此上是標位標此圖中之位也云衆生心者是在纏佛性本論及經皆目爲如來藏及義門眞妄下二義是眞如及梨耶識根本義理兩畔是所標心中

不覺位
中諸法
覺中
諸法
法體也迷時無漏淨妙德用但隱而不滅故眞如本覺在有漏識中一切衆生皆有
佛性是此義也
悟時有漏染相必無故無明識相妄念業果等不在眞如門也唯淨妙德用獨在眞如心中名之爲佛也
009_0232_c_17L
009_0232_c_1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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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32_c_2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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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32_c_24L次圖表中數字次序如下「[一](一)(一)」{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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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


불佛
체대體大상대相大용대用大
진여의 용이란, 모든 부처가 인행의 지위에서 육바라밀을 행하여 중생을 섭화하는 것을 말한다. 큰 방편지혜로 무명을 제거하여 없애고, 본래 법신이 자연스럽게 부사의 업용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본다. 두루 일체 장소에서 그 중생을 따른다.
법신法身응신應身보신報身
진여자체상이란, 대지혜광명이 있어 두루 법계를 비 추는 것을 말한다. 상락아정 등의 의미를 진실하게 알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항하사보다 더한 부사의 불법을 갖추고 있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이런 이유로 여래법신이라고 부른다.범부나 이승의 마음이 보는데 의지하는 것을 응신이라고 한다. 전식이 나타난 것임을 모르기 때문이며, 밖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보아 색을 분간하여 차별을 인정하니,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모든 보살이 초발의에서 십지에 이르기까지 마음이 보는 것에 의지하는 것을 보신이라고 한다. 몸에는 무량한 색이 있고, 색에는 무량한 상相이 있으며, 상에는 무량한 호好가 있다. 머물러 의지하는 경계에도 또한 무량한 갖가지 장엄이 있다. (보신을) 따라서 나타내 보이는 것은 끝이 없으며 다함이 없다. 무루행의 훈습과 본각훈습의 성취로 인해 무량한 즐거움의 모습을 갖추었기 때문에 보報(곧 보신의 보)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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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33_a_02L[(三)]眞如門
009_0233_a_03L○眞如
009_0233_a_04L○○眞實心
009_0233_a_05L心眞如者即是一法界大總相法門體所謂心性不生不滅又云所謂心性常無念故名爲不變
009_0233_a_06L○妄識空
009_0233_a_07L一切諸法唯依妄念而有差別若離妄念則無一切境界之相
009_0233_a_08L離言
009_0233_a_09L不空以有自體具足無漏性功德故又云已顯法體空無妄故即是眞心常恒不變淨法滿足
009_0233_a_10L是故一切法從本已來離言說相離名字相離心緣相畢竟平等無有變異不可破壞唯是一心故名眞如
009_0233_a_11L從本以來一切染法不相應故謂離一切差別之相以無虛妄心念故妄念分別皆不相應也
009_0233_a_12L
009_0233_a_13L
009_0233_a_1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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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33_a_1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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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33_a_1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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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진여문


○진여眞如
○진실심眞實心○망식공妄識空
심진여란, 곧 일법계대총상법문체一法界大總 相法門體이니, 이른바 심성은 불생불멸이다. 또 “심성은 항상 생각함이 없기 때문에 불변이다.”라고 하는 것이다.일체 제법은 오직 망념에 의해 차별이 있다. 만 일 망념을 떠나면 일체 경계의 상이 없어진다.
이언離言
그러므로 일체법은 본래부터 언설상言說相을 여의고 명자상名字相을 여의고 심연상心緣相 을 여의어서 궁극에는 평등하여 달라짐이 없고 파괴할 수 없다. 오직 일심이므로 진여라 한다.
불공不空공空
자체에 무루성공덕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또 “법체가 공하여 허망하지 않음이 드러났기 때 문에 진심은 상주하여 변하지 않으며, 청정한 법이 원만 구족하다.”라고 하였다.본래부터 일체 염오된 법에 상응하지 않기 때 문이고, 일체 차별상을 떠나 허망한 심념이 없기 때문이며, 망념분별이 모두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ㄷ. 스스로 의심을 풀게 함76)

도서 앞에서 서술한 것을 자세히 연구하고, 이 도표를 상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 자타를 비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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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33_b_02L(三)三大
009_0233_b_03L法身體大相大
009_0233_b_04L眞如自體相者有大智慧光明徧照法界眞實識知常樂我淨等義故具足如是過恒沙不思議佛法滿足無有所少名爲如來法身也
009_0233_b_05L用大
009_0233_b_06L眞如用者識佛本在因地行六波羅蜜攝化衆生大方便智除滅無明見本法身自然而有不思議業用徧一切處隨其衆生見聞得益
009_0233_b_07L應身依凡夫二乘心所見者名爲應身以不知轉識現故見從外來取色分齊不能盡知故
009_0233_b_08L報身依諸菩薩從初發意乃至十地心所見者名爲報身身有無量色色有無量相相有無量好所住依界亦有無量種種莊嚴隨所示現即無有邊不可窮盡皆由無漏行熏及本覺熏之所成就具足無量樂相故名爲報也
009_0233_b_09L
009_0233_b_10L
009_0233_b_11L
009_0233_b_12L
009_0233_b_13L
009_0233_b_14L
009_0233_b_15L
009_0233_b_16L
009_0233_b_17L
009_0233_b_18L
009_0233_b_19L
009_0233_b_20L
009_0233_b_21L
009_0233_b_22L

009_0233_b_23L
三使自決疑

009_0233_b_24L
詳究前述諦觀此圖對勘自他及想

009_0233_c_01L성현과 같은가 다른가, 진眞인가 망妄인가, 또 나는 지금 어느 문에 있고 부처는 어떤 지위에 있는가, 응당 별체別體인가, 다시 같은 근원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범부에도 집착하지 않고, 성위聖位에도 어긋나지 않으며, 애견에 탐착하여 빠지지 않고, 불심佛心을 남에게 미루어 사양하지도 않을 것이다.

ㄹ. 막힌 것을 해결하여 결론으로 설명함(2항목)

ㄱ) 중생과 불이 평등하다는 의문을 해결함

도서 그러나 처음 십중十重은 일대장경이 대치對治하는 법신 가운데【제1중이다.】 번뇌의 병이 생기는 근본 이유에 관한 것이다.【다음 삼중이다.】 그것이 점점 증가하여【아법我法의 이집二執】 추중【삼독三毒 조업造業】에 이르면 지혜가 사라지는 상태가 된다.【과보를 받음】 뒤의 십중은 법신이 처방을 믿고 약을 복용하여【앞의 삼중이다.】 병이 낫는 데 관한 것【보리심을 개발하는 것】이다. 병이 차도가 있으면 요양하고 휴식하여【육바라밀】 점점 줄어들어【6부터 9까지】 평상 상태를 회복【성불】하게 된다.
마치 어떤 사람이【속박된 법신】 모든 감각기관이 갖추어져【항하사 공덕】 강건하고【상주불변하여 허망함이 물들일 수 없음】 재능【항하사 묘용】이 많았지만 홀연히 병을 얻는다.【무시무명】 점점 병이 커져【그 다음의 7중】 숨이 끊어졌는데,【제10중】 오직 심장만은 따뜻하였다.【아뢰야식 중 무루지의 종자】 뜻밖에 좋은 의사【대선지식】를 만나니, 의사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범부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봄】 신통한 묘약을 먹여【처음 듣고는 믿지 않았으나 자주 설하니 버리지 않음】 뜻하지 않게 환자를 소생시킨 것과 같다.【깨달아 앎】 처음에는 말조차 할 수 없었지만【처음 깨달은 사람이 설법할 때 다른 사람의 힐난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실제로 정확하지 않다.】 점점 말하는 데까지 이른다.【법을 알아서 설함】 점차 주변을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어【십지와 십바라밀】 바로 평상을 회복하게 된다.【성불】 그가 안 재능은 무엇이든 못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신통광명의 일체종지】

도서 법으로 일일이 배대하여 합하면 무슨 의심인들 제거하지 못하겠는가. 곧 일체중생이 신통작용을 할 수 없는 것은 단지 업식의 미혹한 병에 걸린 것이지, 자기의 법신이 미묘한 덕성을 갖추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어리석은 사람이 힐난하여 물었다.
“그대가 이미 돈오했다면 곧 부처인데 어떻게 방광放光을 하지 않는가?”
(대답했다.)
“그것은 병을 회복하지 않은 사람에게 본래 지닌 재주를 부리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ㄴ) 반대로 설명하는 데 따른 힐난을 해결함(2항목)

(ㄱ) 비유에 의거하여 바로 답함


009_0233_c_01L聖賢爲同爲異爲妄爲眞我在何門
009_0233_c_02L佛在何位爲當別體爲復同源即自
009_0233_c_03L然不執着於凡夫不僣濫於聖位不耽
009_0233_c_04L滯於愛見不推讓於佛心也

009_0233_c_05L
四通妨結說二初通生佛齊等難

009_0233_c_06L
然初十重是一藏經所治法身中第一
重也

009_0233_c_07L煩惱之病生起元由次三
重也
漸漸加增我法
二執

009_0233_c_08L乃至麁重三毒
造業
慧滅之狀
後十重是法
009_0233_c_09L身信方服藥前三
重也
病差菩提心
開發
將理方法

009_0233_c_10L
漸漸減退從六
至九
乃至平復
之狀
009_0233_c_11L有一人在纒
法身
諸根具足恒沙
功德
强壯常住不變
妄不能染

009_0233_c_12L多藝恒沙
妙用
忽然得病無始
無明
漸漸加增其次
七重

009_0233_c_13L乃至氣絕第十
重也
唯心頭暖賴耶識中
無漏智種
忽遇
009_0233_c_14L良醫大善
知識
知其命在見凡夫人
即心是佛
强灌神藥
009_0233_c_15L初聞不信
頻說不捨
忽然蘇醒
初未能言初悟人說法
答他問難
009_0233_c_16L悉未
的也
乃至漸語解說
法也
漸能行李十地十波
羅蜜也

009_0233_c_17L至平復
所解技藝無所不爲神通光明
一切種智

009_0233_c_18L以法一一對合有何疑事而不除也
009_0233_c_19L知一切衆生不能神通作用者但以業
009_0233_c_20L識惑病所拘非己法身不具妙德
009_0233_c_21L愚者難云汝旣頓悟即佛何不放光者
009_0233_c_22L何殊令病未平復之人便作身上本藝

009_0233_c_23L
二通隨反具說難二一約喩正答

009_0234_a_01L
도서 그러나 세간에서 의사가 처방하는 데도 먼저 병세를 묻고 맥을 짚는다. 만일 병 상태의 경중을 살피지 않는다면 어떻게 처방전에 대한 시비를 가리며, 치료의 심천에 의거하지 않고 어떻게 요양하는 법칙을 논할 수 있겠는가.

(ㄴ) 법의 예에 의거하여 결론함

도서 법法의 의사도 또한 그러하다. 그 때문에 지금 미迷와 오悟의 각 십중 본말을 갖추어 서술하게 된 것이다. 앞의 경론을 가지고 세 종류의 심천을 통합하고 서로 대조하면 손바닥 가리키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

다. 해解와 행行을 결론으로 권함(2항목)

가) 총체적으로 서술함

도서 모든 학자들에게 권하노니, 스스로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행할 때는 임의대로 한 길(門)을 따르더라도, 이해할 때는 반드시 통달하여 걸림이 없어야 한다. 또 협소하게 치우치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 넓고 아득한 것을 좇아 지향할 곳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나) 개별적으로 밝힘(2항목)

(가) 비유에 의거하여 앎에 걸림이 없기를 권함

도서 원류를 깊이 살피어 쉬운 것부터 분간하도록 하라. 반드시 같은 가운데 다르고, 다른 곳에서 같은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거울의 영상이 천차만별이라도 아름답고 추함에 집착하지 말 것이며, 거울의 밝음은 한 모습이니 청색과 황색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금으로 만든) 천 개의 그릇도 한가지로 황금이니 금의 성질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하나의 구슬에 천 가지 영상이 비치지만, 본래 영상은 섞이어진 것이 아니다.

(나) 일에 의거하여 행을 폐하지 못함을 밝힘(3항목)

㉮ 행문을 표하여 일으킴

도서 뜻을 세우고 마음 쓰는 것을 허공계와 같이 하고, 잘못을 막고 생각 살피는 것을 잠시도 잊지 않아야 한다.

㉯ 세심하게 닦을 것을 바로 밝힘(2항목)

ㄱ. 경계를 살펴 수행을 권함

도서 사물을 보고 소리를 듣는 것이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다고 스스로 생각하는가. 몸을 움직이고 뜻을 드는 것이 불법佛法이라고 스스로 헤아리는가. 좋은 반찬이나 거친 밥을 싫어하거나 좋아함이 없는지 스스로 생각하는가. 덥고 서늘하며 차갑고 따뜻함을 면하고 피하려 하는가를 스스로 살펴보는가. 번영과 쇠망, 폄훼와 기림, 칭찬과 나무람, 괴로움과 즐거움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실제로 망정의 일종인가를 하나하나 살피고 스스로 반조하는가.77)

009_0234_a_01L
然世醫處方必先候脉苤不對病狀輕
009_0234_a_02L何辨方書是非若不約痊愈淺深
009_0234_a_03L何論將理法則

009_0234_a_04L
二約法例結

009_0234_a_05L
法醫亦爾故今具述迷悟各十重之本
009_0234_a_06L將前經論統三種之淺深相對照
009_0234_a_07L如指與掌

009_0234_a_08L
三結勸解行二一摠叙

009_0234_a_09L
勸諸學者善自安心行即任隨寄一門
009_0234_a_10L解即須通達無碍又不得慮其偏局便
009_0234_a_11L莽蕩無所指歸

009_0234_a_12L
二別明二一約喩勸解無碍

009_0234_a_13L
洞鑑源流令分菽麥必使同中見異
009_0234_a_14L異處而同鏡像千差莫執好醜鏡明
009_0234_a_15L一相莫忌靑黃千器一金雖無阻隔
009_0234_a_16L一珠千影元不混和

009_0234_a_17L
二約事明行不廢三一標起行門

009_0234_a_18L
建志運心等虛空界防非察念在毫
009_0234_a_19L釐間

009_0234_a_20L
二正明審修二初驗境勸修

009_0234_a_21L
見色聞聲自思如影響否動身擧意自
009_0234_a_22L爲佛法否美饍糲飡自想無嫌愛
009_0234_a_23L炎凉凍暖自看免避就否乃至利
009_0234_a_24L衰毁譽稱譏苦樂一一審自返照實得

009_0234_b_01L반드시 스스로 헤아려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색은 그림자 같지 않고 소리는 메아리 같지 않을 것이다. 설사 실제로 돈오한다고 하여도 마침내 점수해야 할 것이니, “가난한 사람이 종일 다른 사람의 돈을 세지만, 자신에게는 반 푼의 돈도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경우만도 못할 것이다.78)

ㄴ. 옛말을 인용하여 득도를 권함

도서 육조 대사는 “부처가 일체법을 설한 것은 일체 마음을 제도하기 위함이지만, 나에게 일체의 마음이 없으니 어떻게 일체법이라 하겠는가.”79)라고 하였다. 요즈음 사람들은 단지 이 말을 가지고 듣고 배우는 것을 가벼이 여기고 도무지 스스로 관觀을 하지 않으니, 실제로 이것이 무심無心인가. 무심은 팔풍八風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습기가 다하지 않아 성내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날 때라도 다른 사람을 꾸짖거나 원수처럼 여기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탐심이 저절로 일어날 때라도 추구하여 얻으려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 다른 사람의 번영과 명예를 볼 때라도 질투하거나 그 수승함을 구하려는 마음이 없어야 (무심이라) 하는 것이다. 어느 때나 자기에게 근심과 배고픔과 추운 마음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가볍게 보고 천하게 여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내지 갖가지 이러한 것들이 없으면 일체 마음이 없다고 할 수 있으니, 이것을 수도라고 부른다.80) 역경이나 순경에 대하여 전적으로 탐함과 성냄, 좋아함과 싫어함이 없으면 도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81) 각각 반조하여 병이 있으면 치료하고, 병이 없으면 약을 쓰지 않아야 한다.

㉰ 문답으로 절실히 권함(2항목)

ㄱ. 망이 공한데 왜 닦는가를 물음

도서 탐하고 성냄 등이 공하므로 일체 마음이 없다고 하면서 왜 반드시 대응하여 치료해야 한다고 하는가?

ㄴ. 체는 공한데 현상이 성립되는 것에 대해 답함(2항목)

ㄱ) 묻는 것에 바로 답함

도서 만일 그렇다면 그대가 지금 중병을 만나 고통으로 괴로워한다고 하자. 아프고 괴로움이 공하여 병이 없을 텐데, 왜 반드시 약을 쓰고 치료하는가. 탐하고 성냄이 항상 공하지만 업을 발생케 하고, 업 또한 공하지만 괴로움을 불러올 수 있다. 괴로움 또한 공하지만

009_0234_b_01L情意一種否必若自料未得如此
009_0234_b_02L色未似影聲未似響也設實頓悟
009_0234_b_03L須漸修莫如貧窮人終日數他寶
009_0234_b_04L無半錢分

009_0234_b_05L
二引古勸得

009_0234_b_06L
六祖大師云佛說一切法爲度一切心
009_0234_b_07L我無一切心何須一切法今時人但將
009_0234_b_08L此語輕於聽學都不自觀實無心否
009_0234_b_09L無心者八風不能動也設習氣未盡
009_0234_b_10L嗔念任運起時無打罵讐他心貪念任
009_0234_b_11L運起時無營求令得心見他榮盛時
009_0234_b_12L無嫉妬求勝心一切時中於自己
009_0234_b_13L憂飢凍心無恐人輕賤心乃至種種此
009_0234_b_14L亦得名爲無一切心也此名修道
009_0234_b_15L若得對違順等境都無貪嗔愛惡此名
009_0234_b_16L得道各各返照有病即治無病不藥

009_0234_b_17L
三問答切勸二一妄空何修問

009_0234_b_18L
貪嗔等即空便名無一切心何必對
009_0234_b_19L

009_0234_b_20L
二體空成事答二一正答所問

009_0234_b_21L
若爾汝今忽遭重病痛苦痛苦即空
009_0234_b_22L便名無病何必藥治須知貪嗔常空
009_0234_b_23L而能發業業亦空而能招苦苦亦空

009_0234_c_01L이렇게 참기 어렵기 때문에 앞의 그림 중에서 본체本體가 공하지만 현상이 이루어진다고 한 것이다.

원주 나뭇등걸의 귀신이(나뭇등걸을 귀신으로 잘못 앎) 전적으로 공하지만, 여기에 놀란 사람이 도망가다가 땅에 넘어져 머리가 깨어지고 이마가 찢어지는 것과 같다.

ㄴ) 반복하여 결론으로 경책함

도서 업이 공하지만 공한 것이 이렇게 업을 짓는다. 태우고 삶는 지옥의 고통도 또한 공하지만, 공한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고통을 감당해야 할 사람이라고 한다면, 지금 어떤 사람이 불로 태우고 칼로 자른다 하더라도 어떻게 고통을 면할 수 있겠는가. 지금 도를 배우는 사람을 보니, 한마디 거슬리는 말을 듣고도 오히려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태우고 자르는 것을 흔쾌히 감당하겠는가.

원주 이와 같은 경우가 십중팔구이다.

3) 유통으로 총 결론함(2항목)

(1) 서술한 것을 모아 다 회통함(2항목)

① 질문

도서 위에서 서술한 것은 3종種의 교敎와 3종宗의 선禪, 열 가지 이유와 열 가지 다름, 윤회와 닦아 증득함, 그리고 각각의 십중은 이치가 궁극적이지 않음이 없고, 사상事相이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다. 연구하고 찾아 잘 음미하면 충분히 마음을 닦을 수 있는데, 왜 반드시 다시 장경과 모든 선의 게송을 읽어야 하는가?

② 대답(2항목)

가. 질문을 뒤집어 답을 취함

도서 중생의 번뇌 병이 각각 같지 않아 그 수가 미진과 같으니, 어찌 8만 번뇌뿐이겠는가. 모든 성인의 방편에는 헤아릴 수 없는 문門이 있고, 일심一心의 성상性相에는 수없는 의미가 있으니, 위에서 서술한 것은 단지 강령만을 든 것이다. 또한 그것을 통합하면 그동안 진술한 것을 벗어나지 않지만, 그것을 사용하면 천의 변화와 만의 형세가 된다. 앞선 현철과 뒤따른 준걸이 각각 장점이 있고, 옛날의 성자와 지금의 현자가 각각 이점이 있기 때문에 여러 학자들의 훌륭한 기록을 모두 모으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종도가 불안해하는 것은 고쳐 바꾸지 않았고, 뜻의 형세로 보아 잃어버리고 빠진 것만을 주석하여 온전하게 하였다.

009_0234_c_01L只麽難忍故前圖中云體空成事

009_0234_c_02L
如杌木上鬼全空只麽驚人得奔走
009_0234_c_03L倒地頭破額裂

009_0234_c_04L
二反覆結責

009_0234_c_05L
若以業即空空只麽造業即須知地獄
009_0234_c_06L燒煑痛椘亦空空只麽椘痛若云亦任
009_0234_c_07L椘痛者即現今設有人以火燒刀斫
009_0234_c_08L汝何得不任今觀學道者聞一句違情
009_0234_c_09L猶不能任豈肯任燒斫乎

009_0234_c_10L
如此者十中有九也

009_0234_c_11L
三摠結流通二一集序具通二
009_0234_c_12L

009_0234_c_13L
上來所叙三種敎三宗禪十所以
009_0234_c_14L十別異輪廻及修證又各十重理無
009_0234_c_15L不窮事無不備斫尋翫味足可修心
009_0234_c_16L何必更讀藏經及諸禪偈

009_0234_c_17L
二答二一翻問奪答

009_0234_c_18L
衆生惑病各各不同數等塵沙
009_0234_c_19L唯八萬諸聖方便有無量門一心性
009_0234_c_20L有無量義上來所述但是提綱
009_0234_c_21L統之不出所陳而用之千變萬勢
009_0234_c_22L先哲後俊各有所長古聖今賢各有
009_0234_c_23L所利故集諸家之善記其宗徒有不安
009_0234_c_24L亦不改易但遺闕意勢者注而圓

009_0235_a_01L문자가 번거롭고 중복된 것은 주석으로 변별하였으며, 여기에 언제나 일가一家의 첫머리82)마다 주석을 붙여 대의를 논평하였다. 벼리를 끌어올리는 것은, 그 뜻이 그물망을 펼치는 데 있으니, 그물망을 버리고 벼리를 놓아둔다는 것은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원주 『화엄경』에서는 “대교의 그물을 펼쳐서 인천의 고기를 건져 열반의 언덕에 놓아둔다.”라고 하였다.

도서 옷깃을 드는 것은 그 뜻이 옷을 입는 데 있으니, 옷을 버리고 옷깃을 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만일 단지 모으기만 하고 서술하지 않는다면 벼리가 없는 그물이고, 서술만 하고 모으지 않는다면 그물 없는 벼리와 같다고 하겠다. 잘 생각하고 살펴서 힐난하는 질문(難問)으로 혼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 권고를 따라 다 통함

도서 그러나 자신을 극복하고 혼자 선善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널리 찾을 필요가 없지만, 만일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두루 본말에 통해야 한다.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을 때, 이것이 어떤 종파 어떤 교설의 의미인가를 반드시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야 한다. 만일 그것을 적용하는 데 어긋나지 않는다면 모두 묘약이 되지만, 적용에 착오가 생기면 도리어 독(惡)【음은 ‘오汚’이다.】이 될 것이다.

(2) 차례에 따랐음을 총 결론함(4항목)

① 이유를 표하여 서술함(2항목)

가. 표하여 일으킴

도서 그러나 결집한 차례는 그 배열을 바꾸지 않았다.

나. 바로 밝힘(4항목)

가) 도에 들어가는 차례

도서 도에 들어가는 방편에 의거하면, 먼저 본심을 열고, 다음에는 이사理事에 통하며, 그 다음에 법의 미묘함을 찬탄하고 세상의 허물은 꾸짖는다. 다음에 닦아 익힐 것을 권하고 경책하며, 마지막으로 이를 대응하여 다스리는 방편과 점차적인 문호를 보이는 것도 합당하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순서에 의거하여 편찬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나) 당해 종파의 불편함

도서 이에 스승과 제자의 차례가 전도됨을 깨닫고 도리어 편하지 않았다. 곧 6대 이후에

009_0235_a_01L文字繁重者注而辨之仍於每一
009_0235_a_02L家之首注評大意提綱意在張綱
009_0235_a_03L可去網存綱

009_0235_a_04L
華嚴云張大敎綱 [1] 漉人天魚置湼
009_0235_a_05L槃岸

009_0235_a_06L
擧意在着衣不可棄衣取領若但集
009_0235_a_07L而不叙如無綱之綱 [1] 若只叙而不集
009_0235_a_08L如無綱 [2] 之綱思之悉之不煩設難

009_0235_a_09L
二從勸俱通

009_0235_a_10L
然克己獨善之輩不必遍尋若欲爲人
009_0235_a_11L之師直須備通本末好學之士披閱
009_0235_a_12L之時必須一一詳之是何宗何敎之義
009_0235_a_13L用之不錯皆成妙藥用之差互皆成
009_0235_a_14L返惡

009_0235_a_15L
二摠結綸次四一標叙由致二
009_0235_a_16L標起

009_0235_a_17L
然結集次第不易排綸

009_0235_a_18L
二正明四初入道次第

009_0235_a_19L
據入道方便即合先開本心次通理事
009_0235_a_20L次讃法勝妙呵世過患次勸誡修習
009_0235_a_21L後示以對治方便漸次門戶欲令依此
009_0235_a_22L編之

009_0235_a_23L
二當宗不便

009_0235_a_24L
乃覺師資昭穆顚倒反不穩便且如六

009_0235_b_01L많은 사람들이 일진一眞83)을 기술했지만, 달마 대사는 도리어 사행四行84)을 가르쳤다. 손자가 책의 첫머리에 오고, 조부가 말편末篇이 되어야 하니,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85)

다) 제가諸家가 통하지 않음

도서 수일간 이 일을 생각하여 달마종 지류枝流에 속하는 바깥 종파86)를 책의 첫머리에 두고자 하기도 하고, 또 저 여러 학자가 가르친 선禪과 그 서술한 이치를 중심으로 모으려 하기도 하였으나, 대대로 스승이 되고 모든 곳에 통할 만한 떳떳한 방법이 아니었다. 혹은 수련의 공으로 증득에 도달함으로써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구나求那·혜조慧稠·와륜臥輪의 부류】 혹은 성인의 가르침을 듣고 읽어 그 알음알이로 대중을 거두어 교화하기도 한다.【혜문 선사의 부류】 혹은 그 행적을 낮추고 그들의 뜻에 맞추어 일시에 어리석은 무리를 경책하고,【지공志公·부 대사傳大士·왕범지王梵志의 부류】 혹은 그 지조를 높이고 법을 지켜 일국의 궤범승이 되기도 하였다.【여산 혜원의 부류】 그 찬술한 것이, 어떤 것은 궁극적인 도를 읊어 노래한 것이고, 어떤 것은 미혹한 범부를 탄식한 것이며, 어떤 것은 단지 의미만을 해석하고, 어떤 것은 행行만을 장려한 것이었다. 또 어떤 때는 모든 교를 망라하지만 마침내 지남이 되지 못하고, 어떤 때는 하나의 길만을 지나치게 찬탄하여 일이 대중에게 통하지 않았다. 모두 선문에 영향을 주는 불법의 나팔 소리지만, 만일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한 가르침에 의지하는 것이 석가의 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옳은 일이 아니다.

원주 천태교가 넓고 커서 시종을 갖추었지만 이 전집 안에는 넣지 않았다.

라) 마땅히 달마가 으뜸이 됨

도서 마음으로 전하여 이은 것은 오직 달마종뿐이다. 마음은 법의 근원이니, 어떤 법이 갖추어지지 않았겠는가. 닦는 선행禪行은 한 문門에 국한된 것 같지만, 전한 마음의 종지는 실제로 삼학三學87)에 통한다. 거듭 그 시작된 근원을 찾는다면,

원주 시작은 가섭과 아난이다.

도서 친히 석가의 뜻을 받은 것이다. 대대로 서로 이어 한 사람 한 사람 직접 전해 줌으로써 37세,


009_0235_b_01L代之後多述一眞達摩大師却敎四
009_0235_b_02L不可孫爲部首祖爲末篇

009_0235_b_03L
三諸家不通

009_0235_b_04L
數日之中思惟此事欲將達摩宗枝之
009_0235_b_05L外爲首又以彼諸家所敎之禪所述之
009_0235_b_06L非代代可師通方之常道或因修鍊
009_0235_b_07L功至證得即以之示人求那慧稠
臥輪之類
或因聽
009_0235_b_08L聖敎生解而以之攝衆慧聞禪
師之類
或降
009_0235_b_09L其迹而適性一時間警策群迷志公傳大
士王梵志
009_0235_b_10L
或高其節而守法一國中軌範僧侶
009_0235_b_11L盧山遠
公之類
其所製作或詠歌至道或嗟嘆
009_0235_b_12L迷凡或但釋義或唯勵行或籠羅諸敎
009_0235_b_13L竟不指南或偏讃一門事不通衆
009_0235_b_14L皆禪門影響佛法笙簧若始終依之
009_0235_b_15L爲釋迦法即未可也

009_0235_b_16L
天台之敎廣大雖備有始終又不在
009_0235_b_17L此集內也

009_0235_b_18L
四宜首達摩

009_0235_b_19L
以心傳嗣唯達摩宗心是法源何法
009_0235_b_20L不備所修禪行似局一門所傳心宗
009_0235_b_21L實通三學況覆尋其始

009_0235_b_22L
始者迦葉阿難也

009_0235_b_23L
親禀釋迦代代相承一一面授三十七
009_0235_b_24L

009_0235_c_01L
원주 어떤 사람은 천축에 이미 38조가 있었다고 한다. 『육조전』 서문에 잘 분석되어 있다.

도서 나의 스승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원주 멀리 생각하니, (종밀이) 석가의 38대 적손이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② 바로 차례를 밝힘

도서 그러므로 지금 모아 엮은 차례는 먼저 달마 1종을 기록하고, 다음에는 여러 학자들의 잡문을 편집하여 싣고, 뒤에는 종통으로 인가한 성교聖敎를 기록하여 넣었다. 성교를 뒤에 둔 것은 세상에서 관리의 조문條文에 조판曹判이 먼저이고, 존관尊官이 조판의 뒤인 것과 같다.

원주 오직 베껴 쓴 글에서 정확히 맞는 것이 10여 권뿐이다.

③ 계박을 풀어 머무름이 없음

도서 해당 종파 중에 높고 낮은 순서를 배열하고, 그것을 전개하여 차례를 삼았다. 그중에 돈과 점이 서로 사이에 끼어들고 이理와 행行이 서로 참여하면서 번갈아 계박을 푸니, 자연히 마음에 머무름이 없게 된 것이다.

원주 『정명경』에서는 “선미禪味에 탐착하는 것은 보살의 계박이고, 방편이 생기는 것은 보살의 해탈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유가론』에서는 “자비가 증장하고 지혜가 증장하는 것이 서로 계박을 푸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④ 현재의 법이 오래 머묾

도서 깨달음과 수행의 도가 이미 갖추어지니, 해解와 행行이 여기에 원만히 통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제가들의 주장을 별도로 살펴, 견문을 넓힌 후에 성교聖敎를 받들어 읽고 시종을 인가한다면, 어찌 이에 의지하지 않고 정법이 오래 머물겠는가.

3. 회향으로 총결함(三摠結回向)
나의 뜻에는 비록 구하는 바가 없지만, 법을 보호하는 마음은 신神의 섭리도 나를 꺾을 수 없을 것이다. 이어받은 공은 선조先祖도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009_0235_c_01L
有云西國已有三十八祖者六祖傳
009_0235_c_02L序中即具分析

009_0235_c_03L
至于吾師

009_0235_c_04L
緬思何幸爲釋迦三十八代嫡孫也

009_0235_c_05L
二正明次第

009_0235_c_06L
故今所集之次者先錄達摩一宗次編
009_0235_c_07L諸家雜述後寫印宗聖敎聖敎居後者
009_0235_c_08L如世上官司文案曹判爲先尊官判後
009_0235_c_09L

009_0235_c_10L
唯寫文剋的者十餘卷也

009_0235_c_11L
三解縛無住

009_0235_c_12L
就當宗之中以尊卑昭穆展轉倫序
009_0235_c_13L而爲次第其中頓漸相間理行相叅
009_0235_c_14L遆相解縛自然心無所住

009_0235_c_15L
淨名云貪着禪味是菩薩縛以方
009_0235_c_16L便生是菩薩解又瑜伽說悲增智
009_0235_c_17L互相解縛也

009_0235_c_18L
四現法久住

009_0235_c_19L
悟修之道旣備解行於是圓通次傍
009_0235_c_20L覽諸家以廣見聞然後捧讀聖敎
009_0235_c_21L印始終豈不因此正法久住

009_0235_c_22L三摠結回向

009_0235_c_23L
在余之志雖無所求然護法之心
009_0235_c_24L理不應屈我繼襲之功先祖不應捨我

009_0236_a_01L법을 베푼 은혜는 후학도 나를 저버릴 수 없을 것이다. 등지지 않고 굴하지 않으며 버리지 않으니, 함께 모두 같은 인연으로 속히 제불의 회상에 모이기를 원하는 바이다.

선원제전집도서 하권


009_0236_a_01L法施之恩後學不應辜我如不辜不屈
009_0236_a_02L不捨即願共諸同緣速會諸佛會矣

009_0236_a_03L
禪源諸詮集都序卷下

009_0236_a_04L
  1. 1)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아래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위에서 화회하여 이미 한 법을 드러내었지만, (병을 치유하려고) 치유하고자 하면 더욱 치유가 멀어지는 법이다. 공空은 성性과 같은 것처럼 보이므로 병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 특별히 (공교와 성교의) 열 가지 다른 점을 구별한다. ① 대개 성교性敎의 드러내 말하는 것은 말마다 모두 드러나고, 공교空敎는 은밀한 말이므로 말마다 모두 숨는다. 법과 의리가 얕은 것을 깊은 것이라 여기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이전에는 법과 의와 진眞과 속俗을 구별하였다. ② 진실로 공적空寂하다고 알고 있는데, 비록 위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공적을 물리치기 위해 오히려 이성理性을 법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심心과 성性이란 두 명칭으로 구별하였다. ③ 비록 위와 달리 본성을 보는 것이 밝지 않음을 알고 있고, 또 무성無性으로 본성을 삼으므로 성性이라는 글자에 두 본체를 구별한다. ④ 비록 위와 달리 깨달은 마음이 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또다시 분별로 앎을 삼기 때문에 참된 지혜와 참된 앎을 구별한다. ⑤ 지혜를 잊지 않았다고 알고 있으면서 또 ‘아’가 있는 것이 망상이라 하기 때문에 아와 법의 유무有無를 구별한다. ⑥ 망정은 오히려 거친 것으로 알고 있으나 불타의 부정과 긍정을 표하는 두 말에 어둡기 때문에 차전과 표전을 구별한다. ⑦ 가르침에 국한되고 치우친 것인 줄 알지만, 또 명칭과 본체가 각기 다른 것에 어둡기 때문이라 하니, 명칭과 본체를 함께 확인하여 구별한다. ⑧ 이치에 미혹함이 허물임을 알지만, 이는 둘에 즉하는 중도에 어둡기 때문이라 하여 이제二諦와 삼제三諦를 구별한다. ⑨ 이미 견見이 있는 줄 알지만 또 원성실성으로 공을 삼기 때문에 삼성三性의 공空과 유有를 구별한다. ⑩ 영원히 망념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또 부처의 공덕이 공空하다고 하기 때문에 부처의 공덕에 대한 공과 유를 구별한다.”
  2. 2)상락아정常樂我淨 : 『涅槃經』에 나오는 말로 열반의 사덕四德을 말한다. ① 열반의 경지는 생멸변화가 없으므로 상常이고, ② 생사의 고통을 떠나 무위 안락하므로 낙樂이고, ③ 망아를 떠나 자재한 진아를 얻었기 때문에 아我이고, ④ 번뇌를 떠나 청정하기 때문에 정淨이다. 무상·고·무아·부정의 네 가지 법을 뒤집은 것이다.
  3. 3)사물四物 : 지·수·화·풍의 사대를 말한다.
  4. 4)물의 속성인 맑음·흐림·고임·흐름 등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그것을 물이라고 한마디로 단정하여 대답한다면, 그것은 질문의 본질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물이라는 명칭에 이끌려 그것을 안다고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그 본질을 꿰뚫으려 한다는 것이다. 파도·얼음·고임·흐름 등을 물이라 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의 질문과 다름이 없다는 말이다.
  5. 5)한자로 즉심시불卽心是佛은 네 글자이다. 여기에서는 마음(心)이라는 한 글자가 주어이므로, 대답한 사람의 의도가 심心이라는 한 글자에 있었기 때문에 한 글자라고 말했지만, 듣는 사람은 네 글자(卽心是佛)로 이해한 것이다.
  6. 6)삼덕三德 : 불과의 공덕을 세 가지로 나눈 것. ① 지덕-평등한 지혜로 일체 것을 다 아는 덕. ② 단덕-일체 번뇌를 다 끊어 남김이 없는 것. ③ 은덕-중생을 구하려는 서원으로 중생을 구하여 해탈케 하는 것.
  7. 7)십신十身 : 불보살의 몸을 그 공덕에 따라 열 가지로 나눈 것. 보리신·원신·화신·역지신·상호장엄신·위세신·의생신·복덕신·법신·지신의 열 가지 몸을 가리킨다.
  8. 8)십지十智 : 부처님의 열 가지 지혜. 십종지라고도 한다. 삼세지·불법지·법계무애지·법계무변지·충만일체무변지·보조일체세간지·주지일체세계지·지일체중생지·지일체법지·지무변제불지의 열 가지이다.
  9. 9)3교敎와 3종宗 : 3교는 공교·상교·성교이고 3종은 공종·상종·성종이다.
  10. 10)이상의 주석은 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 없다. 추붕의 주석으로 보인다.
  11. 11)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위에서는 선사의 말씀이 부처의 뜻에 부합함을 밝혔다. 공종과 상종의 화회를 마친다.”
  12. 12)이상의 주석은 다른 본에는 없는 내용이다.
  13. 13)결訣 : 사물의 주요 내용을 운율에 맞추어 표현하는 글로서 쉽게 기억하도록 구성된 문구이다.
  14. 14)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 : 3천 진점겁 전에 세상에 출현하신 부처님 이름. 아촉·아미타·석가 등 16부처님은 이 부처님 재세 시의 왕자였다고 한다.
  15. 15)이상 주석은 추붕의 견해로 여타 본에는 없다.
  16. 16)이 글은 설암 추붕의 논평문이다.
  17. 17)3항목 : 바로 아래의 과평의 마지막 문장에 의거하여 추가하였다.
  18. 18)사법계四法界 : 이법계·사법계·이사무애법계·사사무애법계의 네 가지를 가리킨다.
  19. 19)십현문十玄門 : 십현연기라고도 한다. 법계 중에 사사무애법계의 모습을 표시한 것으로, 이 의미를 통해 화엄 대경의 현묘한 법해에 들어가기 때문에 현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 이 10문이 상호 연이 되어 일어나기 때문에 연기라고도 한다. 이 십현문에는 신·구의 구별이 있다. 지엄이 세운 것을 구십현문이라 하고 법장이 계승하여 『五敎章』에 정리한 것을 신십현문이라 한다. 신십현문은 다음과 같다. ①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 - 일체 현상이 동시에 상응하고 동시에 원만 구족함. ②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礙門 - 공간의 광협이 대립하여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것을 매개로 상즉상입하여 자재무애함. ③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 - 하나는 많은 것을 갖추고 많은 것은 하나를 포용함. ④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 - 관련된 현상의 본체는 일과 일체가 상호 공과 유가 되어 둘이 일체가 되는 것. 서로 융합하고 서로 포섭하여 자재무애함. ⑤ 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 - 연기의 현상. 하나가 있어서 모습을 드러낼 때 많은 것은 공이 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즉 숨고 드러남이 서로 일체화되어 동시에 성립하는 것. ⑥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 - 연기할 때, 작은 것이 큰 것에 들어가고, 하나가 많은 것을 포섭하여도 혼란하지 않아 하나와 많은 것을 파괴하지 않고 질서 정연한 것. ⑦ 인타라망법계문因陀羅網法界門 - 삼라만상이 일일이 서로 발현하여 중중무진한 것. ⑧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 - 깊고 미묘한 이치는 천근한 사법事法에 의지하여 나타난다. 의탁하는 사와 드러나는 이는 다르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는다는 것. ⑨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 - 모든 시간의 간격도 피차 상즉상입하여 선후 장단이 동시에 구족하여 나타나 시간과 법이 서로 떨어지지 않음. ⑩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俱德門 - 연기하는 모든 현상은 하나를 들면 그것은 주가 되고, 다른 현상은 그 짝이 된다. 이와 같이 서로 주가 되고, 그 짝이 되어 일체 덕을 구족한 것.
  20. 20)중중무진重重無盡 : 『화엄경』의 말로서, 일체 존재가 끝없는 상호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21. 21)삼현과 십성 : 삼현은 보살의 수행계위인 52위 중 십주·십행·십회향의 지위에 있는 보살. 십성은 십지 보살을 가리킨다.
  22. 22)대총지大摠持 : 총지에 크다는 말을 붙인 것. 총지란 다라니의 음역으로 한량없는 뜻을 포함하여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선법을 가져 잃지 않게 하고, 악법을 지녀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23. 23)이상의 해설은 설암 추붕의 글이다.
  24. 24)이상의 해설은 설암 추붕의 글이다.
  25. 25)사점四漸과 사돈四頓 : 이는 성인이 중생을 개오시키는 방법으로, 네 가지 형태가 있다. 점수돈오·돈오점수·점수점오·돈수돈오를 말한다. 『楞伽經』에서는 점수를 아마륵과, 도예가가 질그릇 만드는 일, 생명을 기르는 대지, 기예를 익히는 것으로, 돈오는 거울의 비침, 일월의 비춤, 아뢰야식이 단번에 앎, 불광이 단번에 비춤 등에 비유한다.
  26. 26)이것 : 선가의 돈오점수 논쟁을 가리킨다.
  27. 27)여덟 가지 물질(八物) : 여덟 가지는 삶고 익혀서 만든 중국의 여덟 가지 미식으로 다음과 같다. 순오淳熬(밭벼로 지은 죽)·순모淳母(기장쌀로 만든 죽)·포돈炮豚(구운 돼지고기)·포장炮牂(구운 암양의 고기)·도진擣珍(소나 양의 등심을 다져서 만든 음식)·지漬(담근 음식)·오熬(볶은 음식)·간료肝膋(짐승의 간과 곱창을 구운 것). 이 음식들은 굽거나 삶아서 만들기 때문에 요리에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점수에 비교된다.
  28. 28)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위에서 돈오가 점수를 도와줌을 밝혔다. 선과 교의 화회를 마친다.”
  29. 29)3항목 : 바로 아래의 과평의 마지막 문장에 의거하여 추가하였다.
  30. 30)이 과목은 문맥상 바로 앞에 나오는 『도서』의 본문인 “그러나 이 글의 …… 서술하여”의 앞으로 가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이지만, 저본의 배치에 따라 이와 같이 처리하였다.
  31. 31)하나의 일 : 모든 존재가 짓는 것은 한 이치를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한 이치로 한 사람을 교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길장이 지은 『法華義疏』 권3에 실린 글이다.
  32. 32)일불승一佛乘 : 일체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기 때문에 방편인 삼승에 의하지 않고 오직 하나의 불승에 의해서만 성불한다고 한다. 하나의 불승이란 뜻이다.
  33. 33)이는 『法華經』 「方便品」의 글이다.
  34. 34)인용문은 모두 『華嚴經』 「出現品」의 문장이지만, 규봉이 두 곳의 인용문을 한 군데 모아 둔 것이다. 즉 “한 중생도……못할 뿐이다.”(T10, 272c5~6)와 “내가 성도로써……없을 것이다.”(T10, 272c28~273a1)의 두 단락을 한곳에 인용하였다.
  35. 35)대방광법계 : 대방광이란 법계를 형용하는 말이다. 법계란 무한히 크고 만법의 모범이 되며 덕이 우주를 관통한다는 의미로, 그러한 공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36. 36)사자빈신삼매師子頻伸三昧 : 혹은 사자분신삼매라고도 한다. 사자분신이란 사자가 재빨리 움직여 그 기세가 당당한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여래의 선정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37. 37)원문 주석에 이 인용문을 화엄설로 간주하고 있으나 실제는 『法華經』 「安樂行品」에 있는 글이다.
  38. 38)서다림逝多林 : 기원정사가 있는 곳을 말한다. 기원정사는 중인도 사위성 남쪽에 있는 기수급고독원으로, 수달 장자가 부처님께 바쳤다고 한다.
  39. 39)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이하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從地涌出品」의 글이다.” 이 경문 또한 『法華經』 「安樂行品」에 있다.
  40. 40)이 내용은 『法華經』 「方便品」의 설이다. 다음 글과의 사이에는 상당한 게송이 생략되었다.
  41. 41)『法華經』 「方便品」의 글이다.
  42. 42)이상 인용한 경문은 『法華經』 「方便品」이지만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였고, 배열도 경문 순서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43. 43)『法華經』 「方便品」의 글이다.
  44. 44)소가 끄는 수레 : 대승을 구하는 사람을 위해 육바라밀을 설한 것을 말한다.
  45. 45)『法華經』 「譬喩品」에 있는 말이다. 화택 가운데 놀고 있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간 아버지가 문밖을 가리키며 저곳에 장난감으로 만든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46. 46)사구도四衢道 : 이 중 사구四衢는 사거리란 뜻으로 고집멸도의 사제四諦를 가리킨다. 소승인은 사제의 이치에 의거하므로 사구도에 비유한다. 『法華經』의 설이다.
  47. 47)비밀장秘密藏 : 비밀한 법장을 말한다. 불의 경계는 심오하여 범상한 지혜로는 요해할 수 없기 때문에 밀密이라 하고, 여래의 심법을 깊이 간직하여 쉽게 설하지 않기 때문에 비秘라고 한다.
  48. 48)『涅槃經』의 글이다.
  49. 49)『遺敎經』의 글이다.
  50. 50)위 『都序』 본문에 대한 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도 설암 추붕의 『都序科評』과 거의 동일한 문구가 나오고, 추붕에게는 없는 협주 역시 나온다. 이를 모두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상봉 정원, 『都序分科』, “評曰。 上來三紙。 全是於諸經中。 錄佛自言也。 但以抄錄之故。 不免於連續綴合之處。 或加減改換三字兩字而已。 唯叙華嚴處一行半。 是以經題徑顯佛意。 非佛本語也。【評曰。 下三行文皆是註也。 半書大文半書註可恠。 又是以下落經題二字。 學者詳之。】” 여기서 협주 내용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평론한다는 3행의 글은 모두 주석이다. 반은 대문大文으로 쓰고 반은 주석으로 썼으니 괴이하다. 또 ‘是以’ 아래는 ‘經題’ 두 글자가 빠졌다. 학자들은 살펴보라.” 이에 따르면 추붕의 『都序科評』에는 ‘是以’ 아래에 ‘徑顯佛意’라고만 되어 있어서, 정원의 『都序分科』에서 지적한 대로 ‘經題’ 두 글자가 빠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추붕의 논평문이 이미 정원의 『分科』에 수록되어 있는 점이다. 정원(1621~1709)은 추붕(1651~1706)보다 30년이 앞서고, 간행 연도도 『都序分科』(1701년)가 『都序科評』(1740년)보다 40년 가까이 앞선다. 따라서 행적으로 보면 이 논평문을 추붕의 것으로 보기가 어렵다. 다만 30년의 연령차에도 불구하고 입적한 시기가 비슷하고, 게다가 정원의 『都序分科』 간행 시(1701년)에 추붕이 생존하고 있었으므로, 이 글을 추붕의 논평으로 보아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 같다.
  51. 51)‘권權’은 중생의 근기에 따른 방편이고, ‘실實’은 진실법이기 때문에 방편과 진리가 일반이 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또 시종이란 진실을 가르치기 위해 방편을 시설한 것이기 때문에 동일 선상에 있으므로 다르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52. 52)일법계의 마음(一法界心) : 진여의 이체인 마음을 말한다. 유일한 만유제법의 근본인 마음이 일법계심이다.
  53. 53)성각性覺 : 진성이 본래 깨달아 있다는 말이다. 심체는 본래 망념을 떠나 밝고 영명하며 청정무구하다는 것이다.
  54. 54)불변不變과 수연隨緣 : 진여자성의 두 측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불변이란 자성이 청정하고 탕연 공적하여 생멸이 없으며 변하지 않는 것이고, 수연이란 이러한 진여가 연을 따라 변하여 생멸을 이루는 것이다. 중생심의 두 측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55. 55)성사成事 : 현상 제법이 성립된다는 말이다. 청정자성이 무명으로 인해 일체의 차별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가리킨다.
  56. 56)삼세三細 : 『大乘起信論』의 설로, 무명업상無明業相·능견상能見相·경계상境界相을 가리킨다. 이 삼세는 일체 현상 제법을 일으키는 근본으로서 무명을 그 원인으로 하고 있다. 무명업상은 주객이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로 무명이 진여를 움직이는 것이다. 능견상은 무명업상이 주관과 객관으로 나뉠 때 그 주관적인 측면이다. 경계상은 능견상이 인식하는 객관적인 대상을 말한다. 그것은 허망한 가유假有의 상이다.
  57. 57)육추六麤 : 중생의 미망迷妄이 일어나는 것은 근본무명으로 인해 나타난 세 종류의 미세한 삼세三細의 상 때문이다. 여기에 다시 삼세 중에 나타나는 경계를 인연하여 6종의 거친 형상이 나타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지상智相·상속상相續相·집취상執取相·계명자상計名字相·기업상起業相·업계고상業繫苦相 등의 여섯 가지이다. 이상은 『起信論』의 설이다.
  58. 58)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이하에 다음의 주석이 있다. “미迷의 십중.”
  59. 59)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이하에 다음의 주석이 있다. “오悟의 십중.”
  60. 60)이 1항은 앞의 2항 : 이 1항은 오悟의 십중 가운데 제1중을 가리킨다. 앞의 2항 중 1항은 미迷의 십중 가운데 각覺이고, 2항은 불각不覺이다.
  61. 61)논 : 『大乘起信論』이다.
  62. 62)육바라밀은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여섯 덕목이다. 그러나 『起信論』은 선정과 지혜 둘을 지관 하나로 합하여 모두 5문으로 분류하였다. 여기에서는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63. 63)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정원의 견해로 보이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개인적으로 말한다. 『華嚴疏』에서 ‘깊은 마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법에 대해 크고 무거운 것을 깊다고 하는 것이니, 곧 선행을 즐겨 닦는 것이다. 둘째, 이치에 계합하는 것을 깊다고 하는 것이니, 깊이 이치에 진입하기 때문이다. 곧은 마음이라고 말한 것은 단지 뒤의 한 가지 의미만 있는 것이니, 진여법을 바로 생각하는 것이다. 앞에서 서원하는 마음이라 한 것을 여기서는 곧은 마음이라 하였으며, 여기에서 깊은 마음이라고 한 것을 앞에서는 지혜의 마음이라 하였다. 그러나 양자는 서로 다르다’라고 하였다.”
  64. 64)다섯째와 여섯째 : 아공과 법공이다. 하나의 항목으로 묶은 뒤, 그 안에서 다시 다섯째와 여섯째로 나누어 설명한다.
  65. 65)오悟의 십중과 미迷의 십중을 비교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1항은 오悟의 본각이다.
  66. 66)1항, 2항 : 1항은 본각이고, 2항은 불각이다.
  67. 67)오悟의 십중은 결국 앞의 제1항인 본각과 부합한다.
  68. 68)본각과 불각을 제외한 나머지 미와 오의 8중을 가리킨다. 8중은 서로 대응되어 미의 8중을 뒤집으면 오의 8중이 된다.
  69. 69)깨달으면 본각과 다르지 않으므로 본각과 시각은 하나가 된다.
  70. 70)여기서의 1은 본각이다. 본각은 앞의 미迷의 십중 전체를 뒤집은 것이다.
  71. 71)앞의 1은 본각이고 2는 불각이다. 오悟의 십중이 미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앞의 1과 2 둘에 대응된다고 하는 것이다.
  72. 72)삼심三心 : 『起信論』에서는 직심·심심·대비심이라고 한다.
  73. 73)이하에 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앞의 1에서는 깨달음의 본각을 해석하고 불각의 이유를 뒤집어 시각의 모양을 밝혔다. 여기의 십중에는 별도로 시각과 다름이 없음을 해석한 것이다. 근원으로 돌아가고 근본에 합하는 모양을 밝혔기 때문에 말이 번거롭고 중복되는 것 같지만 뜻은 그렇지 않다.”
  74. 74)이 문장에 나오는 ‘기호’와 ‘점’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宇井伯壽, 『禪源諸詮集都序』(岩波書店, 1939), p.136에서도 이에 대해 불명不明이라고 보았다. 한편 이지관李智冠의 『四集私記』(해인총림 승가대학, 1991), p.219에 따르면, ‘本論之文’은 『大乘起信論』의 본문을 뜻하고, ‘義說論文’이란 『大乘起信論』의 본문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의미에 따라 인용하였다는 뜻이다.
  75. 75)원문의 과목은 다시 세 가닥으로 분과되어 있다. 그것은 ① 중생심, ② 생멸문, ③ 진여문이다. 생멸문과 진여문은 중생심에서 나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3과로 나누는 것은 오류인 것 같다. 목판 판각 과정의 오류로 판단되지만 원문 과목을 그대로 따랐다.
  76. 76)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이 글 아래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어떤 사람이 의심하여 말했다. 법신은 속박에 얽힘과 속박에서 벗어남을 통하여 부르는 명칭으로 중생심을 가리킨다. 당연히 응신도 부처가 응한 자취이니, 중생심을 가리킨다. 진실로 믿을 수 없는 것은, 만일 실제로 (법신이) 중생심이라면, 제불은 몸에 따르는 지혜의 신통광명과 훌륭한 말솜씨의 미묘한 작용으로 하나하나 뜻대로 하지만, 중생은 이와 반대이니, 어떻게 그와 같다고 하겠는가. 그러므로 아래에서 그것을 통하게 한다.”
  77. 77)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이 글 아래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하는 바를 징계하는 것이다.”
  78. 78)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이 글 아래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점수를 권한 것이다.”
  79. 79)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이 글 아래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조사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80. 80)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이 글 아래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무념을 닦는 것이다.”
  81. 81)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이 글 아래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증득이다.”
  82. 82)첫머리 : 선종에 여러 종파가 있기 때문에 『禪源諸詮集』 본문에는 한 종파를 설명할 때마다 첫머리에 논평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83. 83)일진一眞 : 일一이란 평등하여 둘이 아니라는 뜻이고, 진眞은 참된 진여라는 말이다. 곧 허망하지 않은 불변의 진리를 가리킨다.
  84. 84)사행四行 : 보리달마의 설이다. 달마는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이라는 이입설二入說을 주장했다. 사행이란 이입 중 행입의 실천 방법이다. 먼저 이입二入이란 관과 행으로 진성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입理入은 이理에 계합하여 무분별하고 적연 무위함에 머문다는 말이고, 행입行入이란 비록 진성에 계합했지만 아직은 증득의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대승의 실천행으로 그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사행으로 사행은 괴로운 과보에 대해 원망이 없는 보원행, 연을 따르되 마음에 증감이 없는 수연행, 모든 유를 버리고 생각을 쉬어 구함이 없는 무소구행, 집착이 없고 피차가 없는 칭법행의 네 가지 행을 가리킨다.
  85. 85)일진은 근본이고 사행은 방편이다. 근본부터 서술하면 일진을 말한 후대의 선사가 첫머리에 와야 하고, 연대순으로 하면 달마가 첫머리인데 달마는 지말을 설했으니, 편자의 고민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86. 86)바깥 종파 : 선의 정맥이 아닌 방계의 종파를 가리킨다.
  87. 87)삼학三學 : 불교에서 닦아야 할 세 가지 실천도. 계·정·혜의 셋이다.
  1. 1)題名。編者補入。
  2. 2)撰者名。在「終南…宗密述」之後。編者移置於此。
  3. 1)「門」疑「問」{編}。
  4. 1)「生」下有「交徹淨土」。淨源禪源諸詮集都序分科卷下中(本書第八册八二六頁上段){編}。
  5. 2)「淨土」無有。淨源禪源諸詮集都序分科卷下(本中書第八册八二六頁上段){編}。
  6. 1)「譛」疑「讃」{編}。
  7. 1)「二」底本欄外有註「一」{編}。
  8. 1)次圖表中數字次序如下「[一](一)(一)」{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