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무경실중어록(無竟室中語錄) / 無竟室中語錄[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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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실중어록(無竟室中語錄) 권2
문文
결제에 향을 들고
이 한 조각 향을 위없이 높이 들고 다다를 수 없는 곳을 우러르며 향로에 사르고서 주상 전하를 위해 진실하게 축원하오니, 성수가 하늘처럼 길어지고 복의 터전이 대지처럼 장구하소서.
이 한 조각 향을, 삼강168)을 함양하고 오덕169)을 길러, 향로에 사르고서 조정의 모든 문무 훈신과 모든 도와 모든 읍의 여러 지위에 있는 존귀한 관원들을 위해 받드오니, 지위地位와 명망名望이 더욱 두터워지고 하늘의 복록이 길이 이어지소서.
이 한 조각 향을 다생에 몽매했다가 오늘에야 들어 향로에 사르고서 임제종 29세 적통 추계당 대화상을 위해 엎드려 올리오니, 이로써 법의 젖으로 길러 주시고 노파심으로 돌봐 주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학인에게 횡수법을 지시하다
최초의 일심一心 가운데 두 가지 횡수橫竪가 있다. 첫째는 생멸문170)으로서 교의 측면에서 시처횡수時處橫竪라 한다. 말하자면 시간에 걸림이 없고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원융·부처의 지혜·쌍으로 부정함·관조하는 고요다. 둘째는 진여문171)으로서 법의 측면에서 피차횡수彼此橫竪라 한다. 말하자면 이것과 저것이 서로 상대하는 것이 수이고 이것과 저것이 서로 상대하지 않는 것이 횡이니, 이것이 항포·조사의 뜻·쌍으로 관조함·고요한 관조다.
부처와 조사가 융통하고 부정과 관조가 둘이 아니면 오직 하나의 마음일 뿐이니, 이 일심의 이름과 자취를 세우는 것을 여래선이라 하고, 이 일심의 흔적과 조짐을 제거하는 것을 조사선이라 한다. 만약 일용 가운데서 그 부류를 거론한다면

009_0436_b_01L無竟室中語錄[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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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436_b_03L1)

009_0436_b_04L結制拈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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這一瓣香高無上仰無及爇向爐中
009_0436_b_06L端爲祝延主上殿下聖壽天長福基
009_0436_b_07L地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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這一片香㴠三綱毓五德爇向爐中
009_0436_b_09L奉爲滿朝文武勳臣本道本邑各位尊
009_0436_b_10L地望尤重天祿長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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這一穗香昧多生拈今日焫向爐中
009_0436_b_12L伏爲臨濟宗二十九世嫡統秋溪堂大和
009_0436_b_13L用酬法乳老婆之恩

009_0436_b_14L

009_0436_b_15L示學人橫竪法

009_0436_b_16L
最初一心中有二橫竪一生滅門中
009_0436_b_17L約敎言時處橫竪謂時無碍處無碍
009_0436_b_18L圓融佛慧雙遮照寂也二眞如門
009_0436_b_19L法言彼此橫竪謂彼此相望爲竪彼此
009_0436_b_20L不相望爲橫是行布祖意雙照寂照也
009_0436_b_21L佛祖融通遮照不二即惟一心立此
009_0436_b_22L一心之名迹曰如來禪去此一心之痕
009_0436_b_23L曰祖師禪也若擧類於日用中

009_0436_c_01L여래선은 곧 보름의 달이요, 조사선은 보름의 태양이요, 융통선은 그믐의 한밤이다.
무릇 배우는 자라면 그 일심 가운데의 두 가지 횡수법을 몰라서는 안 된다. 따라서 그 핵심을 대략 보였다.
원돈관심법을 지시하다
삼관三觀172)은 왜 만들었는가. 천태 대사173)께서 원돈학인들이 그 마음을 관하도록 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이른바 마음이라는 것은 높아서 우러를 수가 없고 넓어서 끝이 없으며 길어서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혹 가득 찼는가 하면 텅 비었고, 혹 어두운가 하면 밝으며, 혹 지나쳤는가 싶으면 알맞나니, 오묘한 만법이 곧 허깨비처럼 화현한 것이라 어찌 하나의 실상과 진심이 아니겠는가. 즉 방편설이나 점교나 소승의 근기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법화회상에 이르러서야 제법의 실상을 구경까지 완전히 밝힐 수 있었던 것이다.
실상이란 반드시 모든 법이고, 모든 법은 반드시 십여시十如是이고, 십여시는 반드시 십계十界174)이며, 십계는 반드시 신체와 국토이다. 이들이 결합하여 이룬 삼천175)이 곧 삼제니, 삼제는 곧 이 삼관의 대상이다. 공으로 관하면 삼천이 함께 공해 하나의 형상도 성립하지 않고, 가법으로 관하면 삼천이 모두 가법이라 모든 법이 완연하다. 중도로 관하면 삼천이 모두 중도라 법마다 절대이고 닦음과 성품이 둘이 아니며 관하는 주체와 대상이 한결같아 똑같이 한 마음에 있으니, 사량으로 헤아릴 수 없는 중도이다.
시험 삼아 이를 논해 보겠다. 만약 ‘십법계十法界’라는 이 세 글자를 분리하고 합하여 “열 가지가 모두 법계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공으로 세계를 삼은 것이고, “열 가지 법이 세계가 된다.”고 말한다면 이는 가법으로 세계를 삼은 것이다. 만약 합하여 “열 가지 법계”라고 말한다면 이는 중도로 세계를 삼은 것이다.
이와 같이 분리하고 합하여 통합해 이를 상대하고 구별해 이를 상대하면, 하나하나가 삼제 아닌 것이 없어 비록 셋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셋이다. 이를 부정하면 곧 공·가·중이 아니요,

009_0436_c_01L來禪即望日之月也祖師禪即望日之
009_0436_c_02L日也融通禪即晦日之中夜也凡爲學
009_0436_c_03L不可不知其一心中二橫竪法故槪
009_0436_c_04L現其要領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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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436_c_06L示圓頓觀心法

009_0436_c_07L
三觀何爲而作也天台師爲圓頓學人
009_0436_c_08L之觀其心而作也盖所謂心也者高不
009_0436_c_09L可仰廣不可涯長不可尋或盈而虛
009_0436_c_10L或晦而明或過而中妙萬法即幻化
009_0436_c_11L何莫非一實相眞心則非權漸小機所
009_0436_c_12L能荷擔故終至法華會乃能究盡諸法
009_0436_c_13L實相實相必諸法諸法必十如十如
009_0436_c_14L必十界十界必身土結成三千即三諦
009_0436_c_15L三諦即此三觀之境空則三千俱空
009_0436_c_16L相不立假則三千俱假諸法宛然
009_0436_c_17L則三千俱中法法絕對修性不二
009_0436_c_18L境一如同在一心不可思議中也
009_0436_c_19L甞論之若就十法界三字離合言之
009_0436_c_20L十皆法界此以空爲界也十法爲界
009_0436_c_21L此以假爲界也若合十法界言之此以
009_0436_c_22L中爲界也如是離合通對之別對之
009_0436_c_23L一一無非三諦雖三而一一三遮之則
009_0436_c_24L「文」一字編者補入

009_0437_a_01L이를 관조하면 바로 공·가·중이다. 따라서 하나의 세계마다 십계가 서로 갖춰져 1백 계가 되고, 세계마다 십여시가 있어 곧 1천이 되며, 삼세간176)을 편력하며 3백 법이 된다. 중생은 가명이고 오온은 실법이기에 2천 법이 정보正報177)가 되고, 국토인 1천 법이 의보依報178)가 된다.
의보와 정보가 이미 일심一心에 있는데 일심이 어찌 능能과 소所로 나뉘겠는가. 무릇 이와 같이 관한다면 나의 일심 가운데 십법계를 구족하고, 하나의 세계 가운데 또 십법계를 구족하기에 십법계 가운데서 또 1백 법계가 구족하게 되며, 하나의 세계 가운데 3십 종 세간을 구족하기에 1백 법계가 곧 3천 종 세간을 구족하게 된다. 이 3백 법은 나의 한 생각 마음 가운데 있으면서 함께 있지도 않고 따로 있지도 않고 세로로 나열되지도 않고 가로로 나열되지도 않아 사량으로는 헤아릴 수가 없다. 따라서 고덕께서 “이 마음 그대로 공이고, 그대로 가법이고, 그대로 중도다.”179)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일심삼관一心三觀이다.
이 마음이 그대로 앞에 구족한 3천 가지 마음이므로 전체 경계가 관이 된다. 또 (이 마음이) 그대로 공이기 때문에 하나가 공함에 일체가 공해 가법도 없고 중도도 없지만 그렇다고 공하지도 않고, (이 마음이) 그대로 가법이기 때문에 하나가 가법임에 일체가 가법이라 공도 없고 중도도 없지만 그렇다고 가법도 아니며, (이 마음이) 그대로 중도이기 때문에 하나가 중도임에 일체가 중도라 공도 없고 가법도 없지만 그렇다고 중도도 아니다. 이와 같이 쌍으로 부정하고 쌍으로 관조하여 상대를 끊음으로써 세 가지가 몰록 끊어진 것을 이름하여 원만함 속의 영원한 경계라 한다. 즉 천태 대사는 원돈의 근기들로 하여금 단박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는 일에 있어서는 도리어 부처님과 조사들보다도 뛰어남이 있었다. 따라서 그 마음을 관하는 핵심을 조술祖述하여 이렇게 전하지만, 가히 두려울 뿐이다.
격외 참선을 지시하다
참선이란 옛 조사의 뜰에서 사람들에게 격식 밖으로 곧장 질러가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곧장 질러간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일으킨다면 벌써 의리義理의 소굴에 떨어진 것이다. 여기에서 반드시 한 가지 선교방편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에, 아무런 맛도 없는 화두를 특별히 집어

009_0437_a_01L非空假中照之則是空假中故一界
009_0437_a_02L十界互具成百界界界十如則成一
009_0437_a_03L歷三世間成三千法衆生假名五
009_0437_a_04L蘊實法二千爲正國土一千爲依
009_0437_a_05L正旣居一心一心豈分能所夫如是
009_0437_a_06L作觀則於我一心中具十法界一界
009_0437_a_07L中又具十法界十法界中又具百法界
009_0437_a_08L一界中具三千 [7] 種世間百法界即具三
009_0437_a_09L千種世間此三千法在我一念心中
009_0437_a_10L不並不別不縱不橫不可思議故古
009_0437_a_11L德云此心即空即假即中一心三觀
009_0437_a_12L此心即前具三千之心全境爲觀
009_0437_a_13L又卽空故一空一切空無假無中
009_0437_a_14L而不空即假故一假一切假無空無
009_0437_a_15L中而不假即中故一中一切中無空
009_0437_a_16L無假而不中如是雙遮1)雙照絕對三
009_0437_a_17L種頓絕名爲圓中常境則天台之使
009_0437_a_18L圓機頓入之功反有賢於佛祖矣
009_0437_a_19L祖述其觀心要領以貽可畏云

009_0437_a_20L

009_0437_a_21L示格外叅禪

009_0437_a_22L
叅禪古之祖庭敎人直截於格外而若
009_0437_a_23L有纔起直截之念則早墮於義理窠窟
009_0437_a_24L這裏須資一種善巧方便特提沒滋

009_0437_b_01L학인의 면전에 던지고 그들로 하여금 참구하게 한다. 따라서 “시방에서 찾아와 한자리에 모여 다들 무위법을 배우네, 여기가 바로 부처를 뽑는 시험장이니 마음이 공하면 급제하여 고향 가리라.”180)고 하였다. 이로써 조사치고 화두를 들어 의심을 일으키고 한마디 말에 무생無生을 단박 깨치지 않은 자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저 학인이 일용 가운데서 공안公案을 또렷또렷하게 들고, 들뜨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아 허허롭고 밝은 것이 물에 비친 달과 같고 현을 조율하듯 완급을 조절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듯 어린아이가 엄마를 생각하듯 시시각각으로 간절하고 또 간절하게 참구하기만 한다면, 허공이 통째로 부서지면서 붉은 해가 동쪽 숲으로 떠오르는 것을 반드시 보리라. 선문의 학인들은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
선가의 정편설
무릇 무극성천無極性天은 그저 원만하고 원만하며 고요하고 고요하기만 한데 그 하나로부터 현묘함과 밝음이 처음 나뉘어 비로소 바름과 치우침으로 서로 바뀜이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선도禪道가 열리게 된 까닭이다. 갑자기 바름이었다가 갑자기 치우침이 되어 바름과 치우침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은 선도의 작용이요, 능히 바름이 되고 능히 치우침이 되어 바름과 치우침이 끝이 없는 것은 선도의 본체며, 본체와 작용이 하나의 이치이고 하나의 이치라는 그 자취마저 없애 버리는 것이 선도의 종지이다.
무릇 이 종지는 천 명의 성인도 전하지 못하고 십지보살도 예측하기 어렵나니, 함도 없고 하지 않음도 없으며 있는 곳도 없고 있지 않는 곳도 없다. 높고도 높으며, 아득하고도 아득하구나, 천고를 지나고 만세가 지나도록 환히 알고 홀로 존재하는 자로다. 티끌처럼 많은 모든 세계와 한량없는 부처님과 조사, 8만 4천 법장과 1천7백 기연, 그와 같은 항하사세계181)와 진묵겁182)의 낱낱의 천지와 낱낱의 일월과 낱낱의 산하와 낱낱의 사시와 낱낱의 오행과 낱낱의 만물과 무성한 풀, 우거진 숲, 온갖 형상, 온갖 색깔, 하나하나 낱낱의 유정이건 무정이건 그 어느 것도 이 종지가 아닌 것이 없다.

009_0437_b_01L味也話頭拋向學人面前令其叅究
009_0437_b_02L故曰十方同聚會箇箇學無爲此是選
009_0437_b_03L佛塲心空及第歸是知諸祖無不有
009_0437_b_04L看話起疑於一言下頓悟無生者矣
009_0437_b_05L學人於日用中曆曆提起公案莫浮莫
009_0437_b_06L虛明如水月緩急如調絃時時切
009_0437_b_07L切於花奴之捉鼠嬰兒之憶母則必見
009_0437_b_08L虛空都撲落紅日上東林矣禪門學人
009_0437_b_09L勉諸勉諸

009_0437_b_10L

009_0437_b_11L禪家正偏說

009_0437_b_12L
夫無極性天但圓圓寂寂一自玄明肇
009_0437_b_13L始有正偏回互此禪道之所以闢也
009_0437_b_14L忽正忽偏正偏不測者禪道之用也
009_0437_b_15L能正能偏正偏無窮者禪道之體也
009_0437_b_16L體用一理一理捺迹者禪道之宗也
009_0437_b_17L此宗者千聖不傳十地難測無爲無
009_0437_b_18L不爲無在無不在巍巍乎蕩蕩乎歷千
009_0437_b_19L古亘萬世而分曉獨存者也一切塵刹
009_0437_b_20L無量佛祖八萬法藏千七百機若其
009_0437_b_21L恒沙界塵墨劫一一天地一一日月
009_0437_b_22L一一山河一一四時一一五行一一
009_0437_b_23L萬物䓗䓗者林林者形形者色色者
009_0437_b_24L一一箇箇有情無情何莫非些宗也

009_0437_c_01L
이 종지를 증득한 자는 부처님이요, 이 종지를 깨달은 자는 조사며, 이 종지를 미혹한 자는 범부요, 이 종지를 헐뜯는 자는 마귀다. 부처·조사·마귀·범부가 비록 다르지만 그 종지는 곧 하나이니, 같음과 다름 양쪽을 모두 잊고 잊음도 잊고 그것마저도 잊으면 반야가 앞에 나타나 만물과 내가 같은 근원이니라. 두두물물이 바로 마음의 본체이고 두두물물이 바로 오묘한 작용이기에, 침묵하면 공왕의 도장 문양이요 말을 하면 노사나불의 법륜이며, 실체가 없는 본체가 시방 허공을 온통 뒤덮고 작용이 없는 작용이 십계를 두루 주유하느니라.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것이 꼭 맑은 허공 같아 이를 집어 들면 시방과 고금을 말끔히 쓸어버리지만, 시설할 것이 없는 가운데서 시설을 방해하지 않고 풍류랄 것 없는 곳에서 풍류를 방해하지 않는다. 바름과 치우침이 스스로 이와 같아 만물과 내가 모두 평등하나니 부처는 부처요 조사는 조사며, 나아가 하늘은 하늘이요 땅은 땅이며, 해는 해요 달은 달이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범부는 범부요 성인은 성인이며, 남자는 남자요 여자는 여자며, 승려는 승려요 속인은 속인이며, 유정과 무정 풀과 개자, 꿈틀거리는 벌레들까지 그 하나하나가 낱낱이 자신의 지위를 편안히 수립하여 그 어떤 것도 교란되지 않는다.
납승의 뱃속은 대해처럼 넓고 광대하며 금강의 눈동자 아래에는 한 무더기 불덩이가 이니, 이런 경지에 도달했다면 선가의 참학하는 일을 마쳤다고 말할 수 있다. 혹 그렇지 못하다면 설령 바닷물을 쏟아붓듯이 대장경을 암송하고 꽃이 놀라 떨어질 만큼 대단한 법을 설한다 해도 자기의 본분사本分事에 있어서는 끝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쯧, 결국 어떻게 해야 할까?
조주께서 드러낸 칼 서리꽃이 핀 검
총림에 남겨 두셨으니 다들 참구하라
자기 집안의 세 왕이 세 개의 구슬을 길이 연마한다
하나의 성품에 세 명의 왕이 있어 이치는 동일하나 본체는 구별되나니, 크고 하나인 본래의 오묘함은 셋으로 나뉘었다가 하나로 합한다. 왕들은 겁의 초기부터 오묘하게 천지를 건립하고는 여러 방향으로 얼굴을 가지런히 하고서 한 마음으로 뜻을 같이하나니, 응하는 자는 셋이지만 모두 하나이고 하나를 운용하지만 모두 셋이다.

009_0437_c_01L此宗者佛也領此宗者祖也迷此宗者
009_0437_c_02L凢也毁此宗者魔也佛祖魔凢雖殊
009_0437_c_03L則一也一異兩忘忘忘亦忘則般若
009_0437_c_04L現前物我同源頭頭是心體物物是
009_0437_c_05L妙用默則空王印文語則舍那法輪
009_0437_c_06L體之體大覆十虛無用之用遍周十界
009_0437_c_07L無聲無臭一㨾淸空提起掃蕩十方今
009_0437_c_08L無施設中不妨施設不風流處
009_0437_c_09L妨風流正偏自若物我皆平佛則佛
009_0437_c_10L祖則祖至如天天地地日日月月
009_0437_c_11L山水水凢凢聖聖男男女女僧僧俗
009_0437_c_12L有情無情草芥蠢動一一箇箇
009_0437_c_13L立其位摠不動着衲僧肚裏汪洋大
009_0437_c_14L金剛眼下一團火聚到此田地
009_0437_c_15L謂禪家叅學事畢其或未然直饒誦大
009_0437_c_16L藏如翻海說大法驚花落於自己本分
009_0437_c_17L事上了沒交涉畢竟如何趙州露
009_0437_c_18L刃霜華劒留與叢林箇箇叅

009_0437_c_19L

009_0437_c_20L自家三王長鍊三珠

009_0437_c_21L
一性三王理同體別太一本妙分三
009_0437_c_22L合一王自劫初妙建天地多方齊面
009_0437_c_23L一心同志應三偕一運一偕三性體
009_0437_c_24L「雙照」底本作小文字編者改爲本文活字

009_0438_a_01L(따라서) 성품·본체·작용·다스림 이 넷은 각각 하나의 마음이고, 왕·지위·구슬·신하 이 넷에는 각각 세 가지가 섞여 있다. 대통묘공왕大通妙空王·공감대명왕空鑒大明王·공명총통왕空明摠統王은 한 성품의 세 왕이고, 비밀궁秘密宮·비담궁秘湛宮·비융궁秘融宮은 한 지위의 세 방이며, 큰 침묵의 보배 구슬(大默寶珠)·큰 광명 구슬(大光明珠)·원융한 지혜 구슬(圓融智珠)은 세 가지 덕183)에 배속되는데, 존귀한 그 지위에서 작용은 하나지만 구슬은 세 개인 것이라 해도 역시 옳다고 하겠다. 적정안심현寂靜安心賢·소명지조현昭明智照賢·정명불이현靜明不二賢이라는 세 현신賢臣이 함께 어울리나니, 이들 역시 세 왕의 본체·작용·중도에 감응하는 신神이다. (세 도적은) 대혼암적귀大昏暗賊鬼·다상백적귀多想白賊鬼·양계쌍탈귀兩界雙奪鬼이다. 큰 성품의 으뜸과 기반을 본체·작용·중도로 구분하고, 큰 성품의 참된 주인을 다시 세 분의 존자로 구분하고, 큰 성품의 참된 빛을 이에 세 가지 으뜸으로 구분한다. 큰 성품이 만물을 교화하면 세 가지 응함이 또한 열리며, 큰 성품이 혼란스러우면 세 도적이 앞다투어 찾아온다. 참 사람이 참 지위에 거처하면 세 신하가 떠나지 않아 삼매가 완연히 성취되고 세 도적이 엿볼 틈이 없게 되니, 한 성품의 세 가지 다스림을 오랜 시간 수련하도록 하라.
대통묘공왕은 공여래장空如來藏의 비밀궁에 그 지위를 두고서 해와 달을 머금는다. 그런 후에 비담궁의 원래 또렷또렷한 땅으로 돌아가 적정안심현을 침묵으로 대하며 성품에 계합하고 뜻을 합해 고요히 움직이지 않으면, 원만히 응결하고 고요한 오묘함이 구슬이 되어 쌍차雙遮를 배양한다. 그것이 나타난 가운데 밝게 비춰 그 빛이 공계空界를 꿰뚫으면 적정안심현이 이를 왕에게 알린다. 나타난 구슬이 크게 밝으면 무명의 어두운 세계에서 귀신이 이를 보고는 빼앗으려 하고, 망령되게도 가보라 여기고는 빛을 쫓아서 찾아와 틈을 노린다. 그러다 임금과 신하가 정신이 혼미하면 구슬을 훔쳐 캄캄한 어둠의 세계(幽暗世界)로 돌아가 그 구슬을 사용하면서 기뻐한다. 그 주인은 구슬을 잃어버린 사실을 모르지만 다른 두 왕은 구슬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기에 같은 심정이 되어 구제하고자 묵묵히 현명한 신하들을 생각한다. 그러면 정명불이현이 기연에 응하여 묵묵히 남쪽으로 돌아서고, 소명지조현은 그 뜻을 알아차려 도적을 찾아가 구슬을 다시 빼앗고 공여래장의 물로 세척해 왕에게 바친다. 왕은 그때서야 깨닫고 도적을 잡아 이후로 다시는 훔치지 말라고 엄히 꾸짖는다.
공감대명왕은 불공여래장不空如來藏의 비담궁에 그 지위를 두고서 법계에 도장을 찍어 해와 달을 환히 드러낸다. 그런 후에 비밀궁의 원래 묵묵한 땅으로 돌아가 소명지조현을 밝음으로 대하며

009_0438_a_01L [8] 四各一心王位珠臣四各三叅
009_0438_a_02L大通妙空空鑑大明空明總統總統王一性
009_0438_a_03L三王秘密融一位三房大默光珠
009_0438_a_04L與圓融智此配三德尊貴其位一用
009_0438_a_05L三珠是亦可誼寂靜安心昭明智照
009_0438_a_06L靜明不二三賢共調是亦三王體用
009_0438_a_07L中神大昏暗賊多想白賊兩界雙奪
009_0438_a_08L大性元基體用中分大性眞主還分
009_0438_a_09L三尊大性眞光乃分三元大性化機
009_0438_a_10L三應亦開大性昏亂三賊爭來眞人
009_0438_a_11L眞位三臣不離三昧宛成三賊沒窺
009_0438_a_12L一性三治修鍊多時

009_0438_a_13L
大通居位空藏秘密包含日月然廻
009_0438_a_14L秘湛元的的地默對安心契性合意
009_0438_a_15L寂然不動圓凝寂妙成珠遮養現中
009_0438_a_16L明照光通空界安心告王現珠大明
009_0438_a_17L無明昏方鬼見欲奪妄作家珍尋光
009_0438_a_18L伺隙君臣昏神奪歸暗界治珠喜悅
009_0438_a_19L主昧其失二王知失同心欲濟默然
009_0438_a_20L思賢靜明應機嘿面南旋昭明知意
009_0438_a_21L尋賊還奪洗空藏水呈王王覺捉賊
009_0438_a_22L警勑後更勿窃

009_0438_a_23L
空鑑居位不空湛闕印出法界開朗
009_0438_a_24L日月然廻秘密元嘿嘿地明對昭明

009_0438_b_01L마음에 계합하고 뜻을 합해 맑고 허허롭게 비추면 원만히 응하는 맑은 오묘함이 구슬이 되어 쌍조雙照를 함양한다. 그것이 나타난 가운데 고요하게 비춰 그 빛이 색계色界를 비추면 소명지조현이 이를 왕에게 알린다. 드러난 구슬이 두루 비추면 반연攀緣의 어지러운 세계에서 귀신이 이를 보고 빼앗으려 하고, 망령되게도 가보라 여기고는 빛을 쫓아서 찾아와 틈을 노린다. 그러다 임금과 신하가 어지럽게 뒤섞이면 구슬을 훔쳐 망령된 환상의 세계(幻妄世界)로 돌아가 그 구슬을 사용하면서 기뻐한다. 그 주인은 구슬을 잃어버린 사실을 모르지만 다른 두 왕은 구슬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기에 같은 심정이 되어 구제하고자 또렷이 현명한 신하들을 생각한다. 그러면 정명불이현이 기연에 응하여 눈을 크게 뜨고 북쪽으로 돌아서고, 적정안심현은 그 뜻을 알아차려 도적을 찾아가 구슬을 다시 빼앗고 불공여래장의 성품의 물로 세척해 왕에게 바친다. 왕은 그때서야 깨닫고 도적을 잡아 이후로 다시는 훔치지 말라고 엄히 꾸짖는다.
공명총통왕은 공불공비공비불공여래장空不空非空非不空如來藏의 비융궁에 그 지위를 두고서 두 지위를 모두 합해 하나의 중도에 원만히 융합한다. 그런 후에 원래 허허로운 곳으로 다시 돌아가 정명불이현을 원융으로 대하며 둘이 아닌 중도에 계합하면 두 가지 오묘함이 원만히 응하여 구슬이 되고, 부정(遮)과 비춤(照)이 동시인 중도를 나란히 꿰뚫는다. 그리하여 공계와 색계가 툭 트여 훤하면 정명불이현이 이를 왕에게 알린다. (이 구슬이) 어둠의 세계와 밝음의 세계 두 영역을 밝게 비추면 그곳에 있던 양계쌍탈귀가 이를 보고는 빼앗고 싶어 빛을 쫓아서 찾아와 틈을 노린다. 그러다 구슬을 훔쳐 밝음도 아니고 어둠도 아닌 세계(非明非暗世界)로 돌아가 그 구슬을 사용하면서 기뻐한다. 그 주인은 구슬을 잃어버린 사실을 모르지만 다른 두 왕은 구슬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기에 같은 심정이 되어 구제하고자 한다. 그러면 적정안심현이 기연에 응하여 중앙으로 돌아 우뚝 서고, 소명지조현은 그 뜻을 알아차려 구슬을 다시 가져다 공불공여래장의 물로 세척해 왕에게 바친다. 왕은 그때서야 깨닫고 도적을 잡아 이후로 다시는 훔치지 말라고 엄히 꾸짖는다.
세 지위가 서로 응하고 서로를 비춤
若大通妙空王     대통묘공왕이
對空鑑揖大統     공감대명왕과 마주해 공명총통왕에게 읍을 하면
三賢慶會於北     세 현신이 축하하며 북쪽에 모이고
密天四海廓洞     비밀스러운 하늘과 사해가 탁 트인다.
若空鑑大明王     공감대명왕이
對大通揖統王     대통묘공왕과 마주해 공명총통왕에게 읍을 하면
三賢慶會於南     세 현신이 축하하며 남쪽에 모이고
湛刹萬國和昌     맑은 세계와 모든 나라가 화평하고 창성한다.

009_0438_b_01L契心合意湛然虛鑑圓應湛妙成珠
009_0438_b_02L照養現中靜照光照色界昭明告王
009_0438_b_03L顯珠遍照攀緣亂方鬼見欲奪妄作
009_0438_b_04L家珍尋明窺際君臣亂雜奪歸幻界
009_0438_b_05L用珠喜悅主昧其失二王知失同心
009_0438_b_06L欲濟的然思賢靜明應機豁目北旋
009_0438_b_07L安心知意尋賊還奪不空性水洗呈
009_0438_b_08L王覺捉賊警勑後更勿窃

009_0438_b_09L
空明總統居空不空非空不空佛秘
009_0438_b_10L融宮該合二位圓融一中然後還廻
009_0438_b_11L元虛虛中融對靜明不二契中二妙
009_0438_b_12L圓應成珠兼徹遮照同中洞然空色
009_0438_b_13L不二告王發照兩域昏明之界中有
009_0438_b_14L雙奪見且欲之尋光窺隙奪歸非明
009_0438_b_15L非暗世界用珠歡喜主元不解二王
009_0438_b_16L知失同心欲渡安心應機廻中特立
009_0438_b_17L昭明知意還取完璧空不空水洗呈
009_0438_b_18L王覺捉賊警勑後更勿窃

009_0438_b_19L

009_0438_b_20L三位互應互照

009_0438_b_21L
若大通妙空王對空鑑揖大統

009_0438_b_22L三賢慶會於北密天四海廓洞(一)

009_0438_b_23L若空鑑大明王對大通揖統王

009_0438_b_24L三賢慶會於南湛刹萬國和昌(二)

009_0438_c_01L若空明總統王     공명총통왕이
對通鑑揖大統     공감대명왕과 마주해 대통묘공왕에게 읍을 하면
三賢慶會於中     세 현신이 축하하며 중앙에 모이고
天下道盡無用     온 천하에 도가 구현되어 쓸 일 없게 된다.

위는 세 왕이 서로 응함이다.

默珠由大明珠     큰 침묵의 보배 구슬이 큰 광명 구슬로 말미암아
寂而照通寂光     고요하면서도 비춰 고요한 빛을 통달하면
昏遇以之不露     이로써 혼미한 어리석음은 드러나지 않게 되고
法身智恒淸淨     법신의 지혜가 항상 청정하게 된다.
明珠由大嘿珠     큰 광명 구슬이 큰 침묵의 보배 구슬로 말미암아
照而寂洞照明     비추면서도 고요해 비추는 밝음을 꿰뚫으면
緣慮以之不起     이로써 연려는 일어나지 않게 되고
般若智恒大淸     반야의 지혜가 항상 너무도 맑게 된다.
智珠由明黑珠     원융한 지혜 구슬이 큰 침묵 구슬과 큰 광명 구슬로 말미암아
寂照兼明融光     고요함과 비춤을 겸해 원융한 빛을 밝히면
昏慮以之兩忘     이로써 혼미함과 연려 두 가지를 잊게 되고
解脫智恒全彰     해탈의 지혜가 항상 온전히 드러나게 된다.

위는 세 구슬이 서로를 비춤이다.

昭明昏對安心     소명지조현이 적정안심현과 마주해
指暗昏衢昭寂     어둠을 지적하면 캄캄한 거리가 밝으면서 고요하다.
安心晨對昭明     적정안심현이 소명지조현과 마주해
指亂攀緣靜赫     어지러움을 지적하면 반연이 조용하면서 밝다.
兩界中不二賢     두 세계 중간에서 정명불이현이
對安心昭明至     적정안심현과 소명지조현과 마주하기를 지극히 하면
兩失處齊圓成     두 가지를 잃어버린 곳에서 일제히 원만하게 성취되나니
大㦲大性家治     위대하구나, 큰 성품의 집안 다스림이여.

위는 세 신하가 서로 응함이다.
세 지위의 융통
임금과 신하는 도가 합하고, 구슬과 도적은 도가 같으며, 본체와 작용은 한 근원이고, 만물과 나는 같은 궁궐이며, 두두물물이 마음의 본체이고, 두두물물이 오묘한 작용이다. 침묵하면 문마다 공왕의 도장 문양이요, 말하면 노사나불의 법륜이며, 운용하면 걸음마다 참된 종지인 하나의 으뜸이요, 굽어보고 우러러보면 눈길 부딪치는 곳마다 도량 아닌 곳이 없으며, 집어 들어 고금과 시방을 말끔히 쓸어버리면 구름 걷힌 천 리에 맑은 허공 일색이요, 내려놓아 건립하면 달이 연못에 떨어짐에 하늘 위도 하늘 아래도 오직 하나의 광명이로다. 사자의 포효 한 번에 모든 마귀가 으슥한 곳으로 숨고, 여여히 움직이지 않아도 온 법계를 가득 채우나니,

009_0438_c_01L若空明總統王對通 [9] 鑑揖大統
009_0438_c_02L三賢慶會於中天下道盡無用(三)

009_0438_c_03L
右三王互應

009_0438_c_04L
默珠由大明珠寂而照通寂光

009_0438_c_05L昏遇 [10] 以之不露法身智恒淸淨(一)

009_0438_c_06L明珠由大嘿珠照而寂洞照明

009_0438_c_07L緣慮以之不起般若智恒大淸(二)

009_0438_c_08L智珠由明黑 [11] 寂照兼明融光

009_0438_c_09L昏慮以之兩忘解脫智恒全彰(三)

009_0438_c_10L
右三珠互照

009_0438_c_11L
昭明昏對安心指暗昏衢昭寂(一)

009_0438_c_12L安心晨對昭明指亂攀緣靜赫(二)

009_0438_c_13L兩界中不二賢對安心昭明至

009_0438_c_14L兩失處齊圓成大㦲大性家治(三)

009_0438_c_15L
右三臣互應

009_0438_c_16L

009_0438_c_17L三位融通

009_0438_c_18L
君臣道合珠賊道同體用一源物我
009_0438_c_19L同宮頭頭心體物物妙用嘿則門門空
009_0438_c_20L王印文語則舍那法輪運用步步眞宗
009_0438_c_21L一元俯仰觸目無非道塲提起掃蕩
009_0438_c_22L古今十方雲掃千里一㨾淸空放下
009_0438_c_23L建立月墮潭中上天下天唯一光明
009_0438_c_24L獅子一吼衆魔潜屏如如不動徧滿

009_0439_a_01L육근·기세계·나·남이 모조리 공이라 걸림이 없도다.
석녀가 세 아들을 낳아 둘은 옆구리에 끼고 하나는 안고서 장대 꼭대기를 활보하며 아이를 희롱하고 펄떡펄떡 춤을 추는구나.
위는 이치로 모아 융통함이다.

향상의 대통大統184)은 묵묵하고 원만하나니, 본체의 자리인 세 지위에는 본체와 작용과 중도가 현묘하다. 세 가지 덕을 갖춘 지혜 구슬은 세 왕이 신하에게 명령하는 것이요, 세 궁전의 세 현신은 세 왕의 응신이며, 혼미하고 연려하는 세계의 귀신은 세 구슬을 훔치는 도적이다. 세 도적이 이미 사라졌다면 서로 다르지 않아 차이가 없게 되고, 다르지 않아 차이가 없으면 지혜의 구슬이 극도로 원만해지며, 지혜의 구슬이 극도로 원만하면 세 왕이 지위에 안주하게 되고, 세 왕이 지위에 안주하면 만고의 세월에 걸쳐 한결같이 다스려진다.
위는 도표로 모아 융통함이다.

세 왕이 모두 모여 큰 성품이 비밀스러운 궁전의 세 가지 현묘함을 원만히 머금으면 문도 없고 창도 없고 냄새도 없고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고 그림자도 없고 보위마저 모습을 감춘다. 이와 같은 경지가 되면 오직 하나의 원만함만 존재하는데, 하나라고 한 그 하나는 천 성인도 논할 수 없고, 원만함은 그 열다섯 가지185)를 모두 모아 융합하기도 하고 통달하기도 한다. 이를 통달하면 세 구슬이 하나의 성품 가운데서 완연하나니, 큰 침묵의 보배 구슬로 본체가 밝으면 대원경지大圓鏡智가 청정해지고, 큰 광명 구슬로 작용이 원만하면 평등성지平等性智가 밝아지고, 원융한 지혜 구슬로 일체를 포괄하면 성소작지成所作智가 정교해지고, 세 구슬이 서로 다르지 않음으로 나와 남을 동시에 꿰뚫으면 묘관찰지妙觀察智가 세 집안에 두루 원만해진다. 이를 융합하면 (세 구슬이) 하나의 성품으로 회귀하나니, 하나의 성품을 셋으로 나눈 뜻에 증명할 것이 있다. 해와 달이 비록 각자 허공을 의지해 밝음을 일으키지만 허공은 일찍이 밝아진 적이 없고, 해와 달이 비록 각자 허공을 의지해 어둠을 일으키지만 허공은 어두워지지 않는다. 각자 일으킨 본래 광명은 중생의 마음을 따라 결국 밝음과 어둠이 되고, 만물 모두로 하여금 각자 오묘한 작용을 이루게 하며, 다시 하나의 성품으로 끝난다. 모두를 모아 융통하는 대단大端을 궁극까지 이미 밝혔다면 큰 성품의 원만함 가운데서 모든 이들의 증득 또한 같으리라.
위는 모두를 모아 융통함이다.

009_0439_a_01L法界根器自他盡空無罣石女三子
009_0439_a_02L兩脇一包濶步竿頭弄兒舞跳

009_0439_a_03L
右理會融通

009_0439_a_04L
向上大統默默圓圓體座三位體用
009_0439_a_05L中玄三德智珠三王命臣三宮三賢
009_0439_a_06L三王應身昏慮界鬼三珠䖥賊三賊
009_0439_a_07L已滅不二無隔不二無隔智珠圓極
009_0439_a_08L智珠圓極三王安位三王安位萬古
009_0439_a_09L一治

009_0439_a_10L
右圖會融通

009_0439_a_11L
三王總會1)性□ [12] 秘宮三玄無門
009_0439_a_12L無戶無臭無聲無影無跡寶位沒形
009_0439_a_13L當如是地唯一圓存一之所一千聖
009_0439_a_14L莫論圓會五三或融或通通則三珠
009_0439_a_15L完一性中默珠體明大圓鏡淸明珠
009_0439_a_16L用圓平等智明智珠光該所作智精
009_0439_a_17L三珠不二同徹自他妙觀察智徧圓
009_0439_a_18L三家融則三珠會歸一性一性三分
009_0439_a_19L義有所證日月雖各依空發明空會
009_0439_a_20L不明日月雖各依空發暗空不暗各
009_0439_a_21L自發本光隨衆生心遂致明暗使萬
009_0439_a_22L機僉各成妙用還一性終總會融通
009_0439_a_23L大端旣窮大性圓中箇箇證同

009_0439_a_24L
右總會融通

009_0439_b_01L
선가의 일용(禪家日用)
순당
방에 들어온 것을 순純이라 하고 당에 오른 것을 당堂이라 하나니, 성품의 본체에는 잡됨이 없고 신비로운 작용에는 일정한 방소方所가 없다. 순수하게 본체와 함께 선정에 들어 오른쪽으로 돌아 북쪽을 마주하면, 공여래장 앞에서 고요히 움직이지 않고 성품이 하나의 원만함에 합한다. 당당하게 작용과 함께 선정에서 나와 왼쪽으로 돌아 남쪽을 마주하면, 불공여래장 앞에서 지혜가 일체를 통달하고 비밀스러운 거울이 맑아진다.
그 순이란 것을 설명하자면 밖으로 모든 반연을 끊어 깨끗함이 순순하게 엉긴 상태에서 선정에 들어 진여에 그윽이 계합하는 것이니, 벽을 향해 하나에 이른 것을 순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당이란 것을 설명하자면 안으로 얻을 것이 없어 마음과 경계가 함께 공한 상태에서 앉아서 생각의 극치를 조망하는 것이니, 밝음을 향하여 미혹하지 않은 것을 당이라 함도 적당하다고 하겠다. 순당純堂과 향벽向壁의 이치는 사실 하나다.
향벽
간艮186)은 흙(土)과 빛(光)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으니, 흙이 빛나는 것이 창(向)이고, 빛이 작용을 감춘 것이 벽壁이다. 창을 설명하자면 빛을 얻어서 만물을 비추는 것이다. 무릇 삼재三才의 도가 간에서 시작해 인寅이 되면 일체가 모두 남쪽을 받드나니, 이 이치는 견고한 진실이다. 면벽을 설명하자면 흙의 그침을 얻은 것이니, 이치를 감출 수 있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따라서 삼재의 도가 간에서 마무리되어 축丑에서 그치면 일체가 모두 북쪽을 받드나니, 이 이치 역시 바뀌지 않는다. 창을 등지고 벽을 마주하면 순수하고 한결같아 잡됨이 없나니, 남두가 북두를 받들고 천지가 하나로 모인다. 벽을 등지고 창을 향하면 당당하게 비추고 꿰뚫나니, 북두가 남두를 받들고 천지가 일제히 펼쳐진다.
순당純堂과 향벽向壁의 도가 다하고 무위無爲의 작용이 굳건해지면 순수하지도 않고 당당하지도 않으면서 남쪽 뜰을 길이 비추고, 밝음을 향하지도 않고 벽을 마주하지도 않으면서 밝음을 향하고 벽을 마주해 항상 성성하다. 간혹 움직일 때면 동남쪽으로 위세를 떨치고 간혹 정지할 때면 서북쪽으로 몰려가며, 움직이면 산하를 무너뜨리고 정지하면 천지를 기울어뜨리나니, 하늘과 땅에는 그림자가 없어지고 문과 창에는 번뇌가 끊어진다.

009_0439_b_01L禪家日用

009_0439_b_02L純堂

009_0439_b_03L
入室曰純升堂曰堂性體無雜神用
009_0439_b_04L無方純純共體入㝎右旋回于北面
009_0439_b_05L空如來前寂然不同性合一圓堂堂
009_0439_b_06L共用出㝎左斡回于南面不空藏佛
009_0439_b_07L智通一切密鑑湛然若言其純外絕
009_0439_b_08L諸緣白淨純凝入定冥眞向壁至一
009_0439_b_09L可不曰純若言其堂內無所得心境
009_0439_b_10L俱空坐望思極向明不惑曰堂可的
009_0439_b_11L純堂向壁理實則一

009_0439_b_12L

009_0439_b_13L向壁

009_0439_b_14L
若曰艮者土光二得土光明向光藏
009_0439_b_15L用壁若曰其向得光照物盖三才道
009_0439_b_16L始艮而寅一切皆南理固其眞曰向 [13]
009_0439_b_17L壁者得土之止而能藏理固當然矣
009_0439_b_18L故三才道終艮止丑一切皆北理亦
009_0439_b_19L不易反向面壁純一無雜南斗共 [14]
009_0439_b_20L天地一統反面向明堂堂照洞北斗共 [15]
009_0439_b_21L天地一彰純向道盡無爲用强
009_0439_b_22L純不堂長照南庭不向不壁向壁恒
009_0439_b_23L有時或動東南震懾有時或靜西
009_0439_b_24L北沒適動裂山河靜傾天地天地無

009_0439_c_01L또 하나의 이치가 있어 선언하지 않을 수 없구나. 벽처럼 고요한 것은 6187)인 땅이고 남쪽이 밝은 것은 9188)인 하늘이다. 고요함이 극치에 이르면 하늘이 열려 삼재가 반연을 일으키고, 밝음이 극치에 이르면 하늘이 닫혀 다섯 가지 이익이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래서 그 옛날 실달189)은 6년 동안 고행하고 비로소 삼재를 열어 만법을 밝게 통달하였으며, 달마 역시 9년 동안 면벽하고 결국 다섯 가지 이익을 닫고 비로소 다섯 잎을 이룬 것이다. 하늘과 땅인 9와 6은 부처와 조사의 종극이니, 고금의 학자가 모두 이를 향벽이라 한다.
문답을 통해 의심을 해결하다
물었다. 최초구最初句190)와 말후구末後句191)는 같은가, 다른가?
(답하였다.) 종사宗師가 혹 최초구를 지향하여 근기를 상대한다면, 하근기는 어떤 도리도 없는 한 구절을 얻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명백한 변별이 없을 것이고, 중근기는 스스로 고질병에 걸려 아무 일도 없다고 아는 병에 걸릴 것이다. 혹 일착一著192)을 지향하여 향상사向上事에 눈을 높이 뜬다면 주재자가 되고 법칙이 되리라. 따라서 중근기나 하근기의 부류는 겨우 법신이나 알아차릴 것이고, 또한 하근기가 일색변一色邊193)의 인因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 역시 단정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얕은 곳에서 깊은 곳에 이르고 깊고도 깊은 세계에 도달하게 하는 말후구만 못하니, (말후구는) 배우는 자로 하여금 미세한 법의 속박을 가슴에서 말끔히 씻어 버리고 바른 깨달음을 원만히 성취하게 한다. 암두岩頭194)가 “덕산德山이 말후구를 모른다.”195)고 하고, 대혜大慧196)가 “부처님이 마지막 한 수를 아셨더라면…….” 하고 말했던 것은 부처와 조사를 책망한 것이 아니라 그저 말후구를 원만하게 하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다. 말후구의 극치가 곧 최초구이니, 말후구를 알고 싶은가? 태어나기 이전 소식이니라.
선禪과 교敎는 같은가, 다른가?
만약 같다면 선에서는 가섭迦葉의 마음을 전하고 교에서는 아난阿難의 말을 전수하며, 세존께서 최후에 꽃을 들어 마음을 전했던 일이 왜 있었겠으며, 달마가 무엇 때문에 또 찾아와 선을 전했겠는가? 만약 다르다면 왜 “삼승에서 이치를 체득한다면 어느 곳에 다시 조사선의 종지가 있으리오.”라고 말했겠는가? 이는 진정 같다고도 다르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날씨가 춥기는 매한가지라도 닭은 추우면 나무로 올라가고 오리는 추우면 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수묵 한 방울로

009_0439_c_01L門戶絕累又有一理不可不宣
009_0439_c_02L靜六神 [16] 南明九乾靜極天開三才起緣
009_0439_c_03L明極天閉五利始成故昔悉達六載
009_0439_c_04L苦業始開三才明通萬法亦有達摩
009_0439_c_05L九載面壁終閉五利始成五葉乾坤
009_0439_c_06L九六佛祖終極古今學者皆曰向壁

009_0439_c_07L

009_0439_c_08L問答決疑

009_0439_c_09L
問最末句同別奚若宗師或向初句
009_0439_c_10L對機不過下得沒道理句故無辨白
009_0439_c_11L中器自痼無事會病或向一著向上
009_0439_c_12L高眼作主作則故中下流只認法身
009_0439_c_13L又下悟得一色邊因亦未可定不如
009_0439_c_14L末後從淺至深至深深趣能使學者
009_0439_c_15L微細法縛蕩盡胸中圓成正覺巖頭所
009_0439_c_16L謂德山不會末後句者大慧所話佛得
009_0439_c_17L末後之一著者非咎佛祖只要圓可末
009_0439_c_18L後句故末極即初要識末後未生前歟
009_0439_c_19L禪敎同別若同何有禪傳葉心敎授
009_0439_c_20L難口世尊末梢拈花已傳達摩何故
009_0439_c_21L又來傳禪若別何曰三乘體理何處
009_0439_c_22L更有祖師禪旨言同言別正當不得
009_0439_c_23L一般天寒鷄寒上樹鴨寒入水一點
009_0439_c_24L此下底本三字空白{編}

009_0440_a_01L두 곳에서 용을 이룬다면 그 뜻이 또한 분명할 것이니,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떨어지지 말고 정면으로 곧장 가라. 이치와 성품의 덕스러운 작용을 ‘원융圓融’이라 하고 ‘이것’이라 하며, 가르침과 형상의 시설施設을 ‘항포行布’라 하고 ‘저것’이라 한다. 원융이 항포를 장애하지 않고 항포가 원융을 장애하지 않으면 원융과 항포가 자재하고 하나와 많음이 원만하게 통하게 되며, 하나가 무량이 되고 무량이 하나가 되면 은밀하고 은밀하게 융통하고 겹겹이 서로를 포섭하게 된다. 성품에 즉한 형상이기에 건립을 방해하지 않고, 이치에 즉한 현상이기에 참됨과 영원함을 장애하지 않으며, 공에 즉한 존재이기에 번창함을 장애하지 않고, 움직임에 즉한 정지이기에 맑고 고요함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장애하지 않는다고 한 뜻은 이것으로써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저 이렇기만 하다면 이것 역시 일개 범부의 머뭇거리는 자취일 뿐이니, 반드시 선과 교를 변별할 수 있어야 한다.
여래선如來禪이란 문수보살의 지혜 경계니, 한 덩어리 맑은 허공에서 눈을 가리는 실오라기를 그림자마저 쓸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푸르고 푸른 대나무가 바로 진여의 색신이요, 잔잔한 시냇물 소리가 바로 광장설이며, 빽빽이 우거진 국화가 바로 반야의 빛이요, 묵묵한 청산이 바로 상주하는 법신이다. 백옥의 한 점 흠집이 바로 유리색이요 홍진이 눈에 가득하나 모래가 움직이지 않나니,197) 보고 들음 이대로가 보고 들음이 아니기에 달리 그대에게 보일 만한 소리와 빛깔은 없다.198) 형상이 형상 아님을 본다면 곧 참 부처를 보리니,199) 진여의 평등한 도리는 무엇과 같은가? 중생과 부처가 나란히 사라지고 나와 남이 함께 적멸하며, 범부와 성인이 뒤섞이고 용과 뱀이 뒤엉킨다. 하늘이 땅이고 땅이 하늘이라 하늘과 땅이 전환하고, 강이 산이고 산이 강이라 강과 산이 공하나니, 온 산하에 조짐이 끊어져 작은 풀조차 없고 큰 바다도 수미산도 모습을 감춘다. 삼세 모든 부처님이 우러른다 해도 미칠 수가 없고 역대 조사라 해도 엿볼 수가 없나니, 범부도 성인도 통과하지 못해 오고 감이 함께 끊어진다. 입을 열어도 잘못이요 입을 닫아도 잘못이며, 나아가려 해도 문이 없고 물러나려 해도 설 땅이 없다. 세 가지 모두 안되는 경지200)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칼이 예리해 부처가 와도 베어 버리고 조사가 와도 베어 버리니, 참사람 면전에서 가법假法을 설하는 걸 누가 허용하리오. 이것이 바로 부처의 지혜요 상대적인 오묘함의 격식이며,

009_0440_a_01L水墨兩處成龍意亦可的不落左右
009_0440_a_02L正面直適理性德用曰圓融是敎相
009_0440_a_03L施設曰行布彼融不碍布布不碍融
009_0440_a_04L融布自在一多圓通一爲無量無量
009_0440_a_05L爲一隱隱融通重重攝入即性之相
009_0440_a_06L不妨建立即理之事不碍眞常即空
009_0440_a_07L之有不碍繁彰即動之靜不虧湛寂
009_0440_a_08L故不碍義以此甚悉若只如此一丸 [17]
009_0440_a_09L滯迹直須辨得禪敎是得

009_0440_a_10L
如來禪者文殊智境一亘淸空纎翳
009_0440_a_11L掃影靑靑翠竹是眞如色潺潺澗水
009_0440_a_12L是廣長舌鬱鬱黃花是般若光嘿嘿
009_0440_a_13L靑山是法身常白玉點破琉璃色
009_0440_a_14L塵滿目不動沙即此見聞非見聞
009_0440_a_15L餘聲色似君家見相非相即見眞佛
009_0440_a_16L眞如平等道理奚若生佛併沉自他
009_0440_a_17L俱寂凡聖交叅龍蛇混雜天地地天
009_0440_a_18L天地轉水山山水水山空山河絕朕
009_0440_a_19L無寸草大海須彌沒形容三世諸佛
009_0440_a_20L仰望不及歷代祖師窺覰不得凢聖
009_0440_a_21L不通去來俱絕開口也錯閉口也錯
009_0440_a_22L進亦無門退亦無域三不得地殺人
009_0440_a_23L刀銛佛來也斬祖來也斬眞人面前
009_0440_a_24L誰容假說此是佛慧相對妙格亦名

009_0440_b_01L신훈新勳이라고도 하고 원융圓融이라고도 하나니, 이는 억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법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저 이렇게만 한다면 후대의 자손이 멀쩡한 육지에서 고스란히 침몰하리니 누가 종문을 계승하리오.
조사선祖師禪이란 보현보살의 쌍탑雙塔 경계이니, 시설할 것 없는 가운데 시설을 방해하지 않고 풍류랄 것 없는 곳에서 풍류를 방해하지 않는다. 부처는 부처요 조사는 조사고, 승려는 승려요 유생은 유생이며, 하늘은 하늘이요 땅은 땅이고, 강은 강이요 산은 산이니, 범부와 성인, 남자와 여자 등 온갖 종류가 각기 자신의 지위에 안주해 어떤 것도 교란되지 않는다. 납승의 뱃속이 드넓은 바다처럼 광활한 것은 학의 다리를 잘라 오리에게 붙인 뒤에 그리된 것이 아니다. 세 가지 모두 괜찮은 경지201)에서 도가 저절로 이렇게 원만한 것이니, “돌 틈 맑은 계곡이 악기를 연주하고, 우뚝 선 바위의 푸른 이끼가 그림을 펼치네. 이 보고 들음 그대로 모든 경계가 고요하니, 따라서 소리와 빛깔이 아니라 본래 없는 것이구나.”라고 하였다. 이것이 상대를 끊은 오묘함으로서 항포라고도 하고 본분이라고도 하나니, 이를 활로活路라 한다.
개간 동문록
송광사 주지 태밀太密, 전 주지 인옥印玉, 초수初修, 승택勝澤, 영승靈勝, 형계 설영荊溪雪瑛, 목암 처우牧菴處愚, 양성 성휘養性性輝, 양심 영봉養心靈峯, 고암 일상古庵一尙, 고송 회경古松懷瓊, 허암 성일虛庵性一, 선월 축종船月竺宗, 목암 진행牧岩震行, 사곡 자간沙谷自侃, 송곡 옥최松谷玉蕞, 한암 청호寒岩淸瑚, 해환海還, 신총信聰, 설봉 성원雪峯性元, 한매 각민寒梅覺敏, 대양 지일大陽智日, 함월 제추涵月霽秋, 관성 보운貫性普雲, 진곡 취일震谷就一, 태종太宗, 지헌智軒, 도원道圓, 종일宗日, 도화道華, 인기印琦, 황악 청양黃岳淸陽, 도엄道嚴, 쾌민快旻, 체원體圓, 청신사 가선嘉善 김윤택金潤澤.

009_0440_b_01L新勳亦名圓融不是强爲法如是故
009_0440_b_02L若只如此後代兒孫陸地平沉誰繼
009_0440_b_03L宗門

009_0440_b_04L
祖師禪者普賢雙塔無施設中
009_0440_b_05L妨施設不風流處不妨風流佛佛祖
009_0440_b_06L僧僧儒儒天天地地水水山山
009_0440_b_07L凢聖男女種種百般各安其位捴不
009_0440_b_08L動着衲僧肚裏汪洋海濶不是折鶴
009_0440_b_09L續鳬後然三得得地道自是圓境澄
009_0440_b_10L石澗鳴琴竺碧立苔巖展畫圖即此
009_0440_b_11L見聞諸境寂故非聲色本來無是絕
009_0440_b_12L對妙亦名行布亦名本分是曰活路

009_0440_b_13L
無竟語錄終

009_0440_b_14L

009_0440_b_15L開刊同門錄

009_0440_b_16L
松廣寺住持太密前住持印玉初修
009_0440_b_17L勝澤靈勝荊溪雪瑛牧菴處愚
009_0440_b_18L養性▼忄+土輝養心靈峯古庵一尙
009_0440_b_19L松懷瓊虛庵性一 [18] 月竺宗牧岩
009_0440_b_20L震行沙谷自侃松谷玉蕞寒岩淸
009_0440_b_21L海還信聰雪峯性元寒梅覺
009_0440_b_22L大陽智日涵月霽秋貫性普雲
009_0440_b_23L震谷就一太宗智軒道圓宗日
009_0440_b_24L道華印琦黃岳淸陽道嚴快旻
009_0440_b_25L體圓信士嘉善金潤澤

009_0440_c_01L각수 : 전 판사前判事 신명信明이 큰 틀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이상 나열한 많은 분들은 모두 동문의 형제들이고 한마음으로 재물을 기부한 자들입니다. 청휘淸徽202)가 욕되게도 스승 문하의 가장자리에 끼어 함부로 법의 은택을 입은 것이 깊고도 또 크건만 그 은혜를 만분의 일도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그저 온몸으로 힘을 다해 판목과 솜씨 좋은 장인들을 구하여 유문의 법어를 출간하고 후세에 전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너무도 한스러운 것은 모연한 재물이 넉넉지 못하여 『보경삼매찬寶鏡三昧纂』·『이학류편理學類篇』·『하락주설河洛註說』 이 3집을 출간하지 못한 점입니다. 여러 형제들이 이런 마음을 분발하시기를 또 기다립니다.
건륭 3년(1738) 무오 6월 일에 전광도203) 임실 신흥사에서 개판하다.
[부록附錄]
선과 교를 비교해 변별하다
요즘 선禪과 교敎를 배우는 자들은 선과 교가 선과 교가 된 이유를 모른다. 따라서 실교實敎204)에서 “소나무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고 학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은 그대로 참 모습이 아닌 것이 없다.”205)고 하고, “삼계는 오직 마음일 뿐이요 만법은 오직 식일 뿐이다.”라고 한 것을 선에서 말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달빛 내려앉은 모래사장이 참마음을 활짝 드러내고, 노란 국화와 푸른 대나무가 반야를 환히 보여 준다.”206)로 여기는 자가 있고, 원돈교圓頓敎207)에서 “해인海印은 지혜의 본체로서 인因을 벗어나고 과果를 벗어났다.”고 한 것을 선에서 말하는 심인心印으로 여기는 자가 있고, 돈교頓敎에서 “일체법이 인연을 벗어나고 형상을 벗어나고 주체를 벗어나고 대상을 벗어나 하나하나가 잡됨이 없나니 오직 여여하고 청정한 해탈일 뿐이다.”라고 한 것을 선에서 말하는 본해탈本解脫로 여기는 자가 있다. 즉 조사가 혀가 없는 경지에서 교화의 주체와 대상을 보지 않는 것을 교문敎門에서 마음을 증득했을 때 교화의 주체와 대상을 보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자가 있고, 조사가 정식情識을 잊고 이치에 계합한 것을 교문에서 말하는 정식을 잊고 이치에 계합함으로 여기는 자가 있다.

009_0440_c_01L
刻手前判事信明助功大器

009_0440_c_02L
右列僉芳皆同門兄弟而同心出財
009_0440_c_03L者也淸徽忝厠師門叨沾法澤
009_0440_c_04L深且大而無計報答萬一之恩但勞
009_0440_c_05L筋役體貿板倩工讐出遺文法語
009_0440_c_06L傳於世而已然所大恨者緣財不給
009_0440_c_07L寶鏡三昧纂理學類篇河洛註說
009_0440_c_08L未能刊出且待諸兄之奮發此心
009_0440_c_09L

009_0440_c_10L
乾隆三年戊午六月開板于全
009_0440_c_11L光道任實新興寺

009_0440_c_12L
009_0440_c_13L

009_0440_c_14L1)「附錄」

009_0440_c_15L禪敎對辨

009_0440_c_16L
今之學禪敎者不知禪敎之此 [19] 以爲禪
009_0440_c_17L敎也故有以實敎所謂松直棘曲鶴長
009_0440_c_18L鳬短無非實相所謂三界唯心萬法唯
009_0440_c_19L爲禪之所謂風柯月渚披露眞心
009_0440_c_20L花翠竹宣明般若有以圓頓海印智體
009_0440_c_21L離因離果爲禪之心印有以頓敎中一
009_0440_c_22L切法離緣離相離能離所一一無雜
009_0440_c_23L唯如如淸淨解脫爲禪之本解脫即以
009_0440_c_24L祖師無舌上不見能所化爲敎門證心
009_0440_c_25L不見能所化有以祖師忘情契理
009_0440_c_26L「附錄」二字編者補入

009_0441_a_01L이와 같이 잘못 아는 자들이 있게 된 것은 다른 탓이 아니니, 선과 교가 왜 선과 교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금의 여러 대가들의 별록에 의거해 하나하나 해석하겠다.
일찍이 『금설록金屑錄』208)을 열람하였더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교란 규모規模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니, 새가 진흙을 밟고 걸으면 추적할 수 있는 자취를 남기는 것과 같다. 선이란 틀어잡을 코가 끝내 없는 것이니, 새가 허공으로 날아가면 추적할 그림자가 없는 것과 같다. 실교에서 비록 ‘소나무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고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의 다리는 짧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아직 실상이라는 규모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고, 비록 ‘삼계는 오직 마음일 뿐이요 만법은 오직 식일 뿐이다’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아직 마음과 식이라는 규모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선이라면 그렇지 않다. 비록 ‘온갖 풀마다 조사의 뜻이 분명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달빛 내려앉은 모래사장이 참마음을 드러낸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말은 뜻에 있지 않고 뜻은 말에 있지 않아 뜻과 말이 엇갈려 치달린다. 또한 웃음 속에 칼날이 있고 구절 속에 칼날을 감추며 아무런 맛도 없고 모색할 수도 없으니, 생각과 의론 밖으로 아득히 벗어난 것이다.”
이를 좇아 관찰해 보면, 선과 교는 언구로 설한 바는 비록 비슷하지만 그 지취旨趣는 하늘과 땅만큼 아득히 차이가 난다.
또 『수선록竪禪錄』209)을 살펴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원돈교의 해인과 선의 심인은 서로 비슷하지만 비슷하지 않다. 왜 그런가. 해인은 처음에 인과가 있는 상태를 설하고 마지막에 인과를 잊어버리는 경지로 돌아간다. 심인은 그렇지 않다. 인도 없고 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인과가 없다는 흔적마저 없다. 또 돈교에서 비록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본래 스스로 사념을 벗어난 것이다. 사념을 일으키기 때문에 중생이니, 중생이라도 만약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곧 부처다. 따라서 최초의 지위(初位)210)가 곧 부처의 지위(佛位)이고, 삼현三賢이 곧 십지十地이다’라고는 하였다. 그렇지만 만약 진여를 환히 밝히지 못한다면 인연과 형상을 벗어난 이해(解)를 성취할 방법이 없고, 이런 이해가 없다면 또한 이런 실천(行)의 성취도 없다. 이런 이해와 이런 실천이 어찌 소위 말하는 망기忘機211)의 해탈행이겠는가. 비록 이를 망기의 해탈행이라고 한다 해도 여전히 증득할 대상인 진여와 증득하는 주체인 지혜의 본체, 일으켜야 할 정념正念과 일으키지 말아야 할 망념妄念이 있는 것이다.

009_0441_a_01L爲敎門中忘情契理有如是錯了者
009_0441_a_02L他坐在不知禪敎之所以爲禪敎故也
009_0441_a_03L故將古今諸家別錄一一解釋焉曾覽
009_0441_a_04L金屑祿 [20] 敎也者未脫規模如鳥踏泥
009_0441_a_05L有跡可尋禪也者了沒巴鼻如鳥飛
009_0441_a_06L無影可追實敎中雖曰松直棘曲
009_0441_a_07L鶴長鳬短未脫實相之規模雖曰三界
009_0441_a_08L唯心萬法唯識未脫心識之規格 [21]
009_0441_a_09L則不然雖曰祖意分明百草頭風柯月
009_0441_a_10L渚露眞心言不在意意不在言意句
009_0441_a_11L交馳㗛中有刃句裏藏鋒無滋味沒模
009_0441_a_12L▼扌+索 逈出思議之表迹此觀之禪敎言
009_0441_a_13L句所說雖相似其旨趣則大地逈隔
009_0441_a_14L又按竪禪錄圓頓海印與禪心印
009_0441_a_15L似而不相似也何也海印者始說有因
009_0441_a_16L果之處終歸忘因果之地心印則不然
009_0441_a_17L非但無因無果亦無無因果之痕點
009_0441_a_18L頓敎中雖曰諸佛境界本自離念
009_0441_a_19L故衆生衆生而若一念不生則佛
009_0441_a_20L初位即佛位三賢即十地然而若不洞
009_0441_a_21L明眞如無以成離緣離相之解無此解
009_0441_a_22L亦無成此行此解此行豈所謂忘機之
009_0441_a_23L解行者乎雖以忘機之解行猶有所證
009_0441_a_24L眞如能證智體所生正念所不成 [22]

009_0441_b_01L선은 그렇지 않다. 본래 한 생각도 없는데 어떤 생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생각이 이미 본래 없는 것인데 최초의 지위가 어디에 있고 부처의 지위가 어디에 있겠는가? 형상과 생각이 본래 공한데 무슨 형상과 생각을 벗어나고, 이름과 글자가 본래 없는데 무슨 이름과 글자를 벗어난단 말인가?”
또 『진각대사망정록眞覺大師忘情錄』212)을 열람했더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정식을 잊고 이치에 계합함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살이다. 말하자면 (보살은) 부처님이 대승을 설해도 대승에 빠지지 않고, 소승을 설해도 소승에 빠지지 않으며, 이치와 현상을 설해도 이치와 현상에 빠지지 않고, 색과 공을 설해도 색과 공에 빠지지 않나니, 글자 하나하나 구절 하나하나에서 임시로 설정한 이름들을 파괴하지 않고서 원융하게 이를 알아차린다. 둘째는 조사다. 말하자면 부처님이 대승을 설해도 본래 대승이란 없고, 소승을 설해도 본래 소승이란 없고, 이치와 현상을 설해도 본래 이치와 현상이란 없고, 색과 공을 설해도 본래 색과 공이란 없다. 따라서 대승과 소승, 이치와 현상, 색과 공 등 모든 법 그 하나하나에서 새가 허공을 날듯이 한다. 저 규산圭山213)도 ‘원돈교 위에 따로 한 법이 있다’214)고 하였으니, 원교·돈교·시교215) 이 3교에서 말한 바는 선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또한 알 수 있다. ‘삼종세간三種世間의 모든 법 하나하나가 해인삼매海印三昧 가운데 나타난 것이므로 나타난 것 가운데서 해탈할 일이 없고, 또한 주체가 대상을 교화해 해탈시키는 일도 없다’고 하지만 이것 역시 있음과 없음, 주체와 대상, 결박하고 해탈시킴을 면하지 못한 것이다. 선은 그렇지 않다. 본색本色216)을 회복한 고상한 사람의 마음 작용에는 깨끗한 풀도 더러운 풀도 본래 자라지 않기 때문에 깨끗하거나 더러운 풀 가운데 출입한 흔적 또한 없다.”
이를 좇아 관찰해 보면, 보살과 조사의 이해와 실천은 그 느림과 빠름이 하루와 1겁보다 더 차이가 난다. 따라서 한 구절에 8만 4천 법문이 원래 스스로 구족하여 인과도 없고 수행도 증득도 없으며 원융과 항포에 자재해 장애가 없는 것이 선이고, 인과가 있고 수행과 증득이 있으며 원융과 항포에 자재하지 못한 것이 교이다.
『불조선격佛祖禪格』에서 말하였다.
“교란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르쳐 깨달아 증득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권설權說이나 실설實說이나 횡설橫說이나 직설直說 등

009_0441_b_01L禪則不然本無一念不起何念
009_0441_b_02L旣本無初位何在佛位何在相念本
009_0441_b_03L離何相念名字本無離何名字
009_0441_b_04L眞覺大師忘情錄忘情契理有二
009_0441_b_05L者菩薩謂佛說大乘而不滯大乘說小
009_0441_b_06L乘而不滯小乘說理事而不滯理事
009_0441_b_07L色空而不滯色空一一字一一句不壞
009_0441_b_08L假名而圓融會之二者祖師謂佛說大
009_0441_b_09L乘而本無大乘說小乘而本無小乘
009_0441_b_10L理事而本無理事說色空而本無色空
009_0441_b_11L於諸大小理事色空諸法一一如鳥飛
009_0441_b_12L豈圭山所謂圓頓之上別有一法者
009_0441_b_13L又圓頓始三敎所說不及於禪
009_0441_b_14L可知矣三種世間諸法一一現於海印
009_0441_b_15L三昧中而無所現中之解亦無能所化
009_0441_b_16L之解然而亦未免有無能所使之解之
009_0441_b_17L禪則不然本色高人心行中本不生
009_0441_b_18L淨穢草故亦無穢草中出入之迹
009_0441_b_19L此觀之菩薩祖師之解行遲速亦日劫
009_0441_b_20L倍簁故一句八萬法門元自具足
009_0441_b_21L因果無修證圓融行布自在無碍者
009_0441_b_22L禪也有因果有修證圓融行布未能
009_0441_b_23L自在者敎也佛祖禪格曰敎者以誨
009_0441_b_24L人之不了令悟就證故或權或實

009_0441_c_01L갖가지 방편과 언어로 삼승의 법을 가르치고 설해 일승의 도를 깨닫게 하고 이로써 여래최상승선如來最上乘禪에 이르게 하나니, 이것이 이른바 불사문佛事門에서는 하나의 법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이란 사람들의 정식과 말을 벗어남으로써 증득한 것에도 집착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설正說이나 비설比說이나 수설竪說이나 횡설橫說이나 실설實說이나 권설權說로 기연을 들고 눈길을 부딪치면서 침묵하고 고함을 치고 이야기하고 몽둥이로 때린다. 이렇게 문자를 수립하지 않고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삼승의 법을 아득히 벗어나 크게 쉬는 경지(大休歇地)에 이르게 한다.”
『순정록順正錄』217)에서는 “모든 부처님의 말씀은 활이고, 모든 조사의 말씀은 시위다. 교가의 장애 없는 법은 바야흐로 한맛으로 귀결되는데, 이 한맛이라는 흔적을 털어 버리면 비로소 선가에서 말하는 한마음을 보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고인은 “다함없는 성품의 바다는 한맛을 머금었나니, 이 하나의 맛을 서로 침투시키는 것이 바로 나의 선이다.”218)라고 말씀하시고, 또 “뜰 앞의 잣나무라는 말은 용장龍藏219)에도 없던 것이다.”220)라고 말씀하였다.
선과 교의 우열이 별록別錄에 분명하게 실려 있는데 왜 요즘 배우는 이들은 이처럼 눈이 캄캄할까? 이미 선과 교의 득실도 모르는데 하물며 그 가운데서 운용하는 마음의 참과 거짓이겠는가. 반조하는 안목, 심왕의 죽음과 삶, 이해와 실천의 느림과 빠름, 지견의 옳고 그름을 실오라기만큼도 빠뜨리지 않고 잘못 들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릇 십이시十二時의 사위의四威儀에서 부딪치는 경계와 만나는 인연인 하나하나의 사건과 하나하나의 물건이 그 무엇도 취모검吹毛劍의 날카로운 칼날 아닌 것이 없나니, 이를 가까이하면 두 토막이 나고 입을 열면 하늘과 땅만큼 격차가 벌어진다. 생각으로 헤아릴 길이 없고 아무런 맛도 없는 이런 도리로 일용사 가운데서 관찰하는 것이 선을 닦는 자들의 마음 씀씀이다. 삼계는 오직 마음일 뿐이고 만법은 오직 식일 뿐이어서, 현상으로 나타난 모든 법 하나하나가 완전하고 참되므로 한마음의 현묘한 화로에 만법의 온갖 형상들을 녹이면 바야흐로 한맛으로 귀결된다. 주체도 대상도 없고 이것도 저것도 없어 만물과 내가 한 몸이고 범부와 성인이 차이가 없는 이런 평등한 하나의 이치로 이를 관찰하는 것이 교를 배우는 자들의 마음 씀씀이다. 따라서 비록 원돈교라 해도 모두 아직은 연기가 걸림 없다는 견해와

009_0441_c_01L橫或直種種方便言詮敎說三乘之法
009_0441_c_02L令悟一乘之道以至如來最上乘禪
009_0441_c_03L所謂佛事門中不捨一法也禪者以脫
009_0441_c_04L人之情謂令證不着故或正或比或竪
009_0441_c_05L或橫或實或權擧機目擊默喝談棒
009_0441_c_06L不立文字直指人心逈脫三乘之法
009_0441_c_07L至大休歇地順正錄曰諸佛說弓諸祖
009_0441_c_08L說弦敎家無碍之法方歸一味拂此
009_0441_c_09L一味之迹始觀禪家一心故古云
009_0441_c_10L盡性海含一味一味相深我禪又曰
009_0441_c_11L庭前栢樹子龍藏未有底禪敎之優劣
009_0441_c_12L昭載別錄中胡今之學者貿貿若是耶
009_0441_c_13L旣不知禪敎之得失況其中用心之眞
009_0441_c_14L返照之眼目心王之死活解行之
009_0441_c_15L遲速知見之是非能纎悉而不誤入耶
009_0441_c_16L夫十二時中四威儀內觸境逢緣
009_0441_c_17L一事一一物何莫非吹毛利刃近之則
009_0441_c_18L分爲兩段開口則隔同天地沒義路
009_0441_c_19L滋味以此道理日用觀之者禪者之
009_0441_c_20L用心也三界唯心萬法唯識一切事
009_0441_c_21L一一全眞以一心玄爐鎔萬法群
009_0441_c_22L方歸一味無能所無彼此物我同
009_0441_c_23L凡聖無二以平等一理觀之者敎者
009_0441_c_24L之用心也故雖圓頓敎皆未免有緣起

009_0442_a_01L이름을 벗어나고 형상을 끊는 이해와 실천이 있음을 면하지 못한 것이니, 오직 선문에서만 틀어잡을 콧구멍이 없는 이러한 도리로 마음을 운용하는 방편을 삼는다.
또 십이시 가운데서 선과 악, 더러움과 깨끗함, 유위와 무위, 세간과 출세간의 복덕과 지혜의 구속을 받지 않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이다. 옳고 그르고 좋고 싫은 일체 모든 법에 대해 지견을 일으키지 않고, 그 지견 역시 다해 그 마음이 자재한 것은 초발심보살初發心菩薩의 마음 씀씀이이고 이해와 실천이다. 또 일체의 소리와 빛깔에 빠지거나 걸리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선과 악, 옳고 그름을 운용하는 일조차 없고, 일체법을 받아들지도 않고 일체법을 버리지도 않는 것은 대승인大乘人의 수행이다.
또 구이口耳의 지혜221)로 터무니없이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겨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진실의 세계에는 발도 디딘 적 없어 말과 행실이 서로 어긋나며, 산수山水나 논하고 찾아다니며 밥그릇 숫자나 세고, 교의 그물에 걸려 속임수나 부리며 한평생을 보내는 것은 교를 배우는 이들의 병통이다.
또 한가함에 젖는 것이 습성이 되어 흑산黑山222) 귀신굴 속에서 그저 끙끙거리다 앉아서 잠이나 자고, 모든 일과 반연에서 훌쩍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선을 배우는 이들의 병통이다. 움직이지도 않는 노끈인데 뱀이라 의심하고 본래 텅 빈 방인데 귀신이 있다고 두려워하며, 참된 마음과 허망한 마음이 있다는 견해와 범부의 성품과 성인의 성품이 있다는 헤아림으로 누에가 실을 토하듯 자신을 스스로 얽어매는 것은 삼승인의 병통이다. 즉 선과 교의 병통 역시 몰라서는 안 된다. 무릇 선과 교를 배우는 자라면 어찌 자세히 알아 직접 깨닫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아, 참과 허망을 엉터리로 이해한 무리들이 옛 조사들의 전승을 제멋대로 전하고, 혹은 돈교와 실교의 법문을 정맥이라 하고 원돈교의 법문을 조사의 종지라 하고 있구나. 하지만 어찌 한 국자 깊이나 되겠는가. 이에 고금 여러 대가들의 별록을 수집하여 선과 교를 배우는 이들의 의혹을 풀어 주노라.
옹정維雍 갑인년(1734) 늦봄에 무경 늙은이가 나이 일흔하나에 문하 여러 도인들을 위하여 보경실寶鏡室에서 쓰다.

009_0442_a_01L無碍之知見離名絕相之解行唯禪門
009_0442_a_02L以此沒巴鼻道理爲用心方便也
009_0442_a_03L又時中不被善惡垢淨有爲無爲世出
009_0442_a_04L世福德智慧之所拘繫者佛智慧也
009_0442_a_05L非善 [23] 一切諸法不生知見知見亦
009_0442_a_06L是心自在者初發心菩薩用心解行
009_0442_a_07L又非但一切聲色無有滯碍善惡
009_0442_a_08L是非無有運用亦不受一切法亦不
009_0442_a_09L捨一切法者大乘人修行者也又徒將
009_0442_a_10L口耳之慧妄自矜衒於人脚不點實際
009_0442_a_11L言行相違討水尋山打散粥飯滯在
009_0442_a_12L敎網賺過一生者敎者之病也又習閑
009_0442_a_13L成性黑山鬼窟裏徒勞勞坐睡一切
009_0442_a_14L事緣上未能透脫者禪者之病也
009_0442_a_15L不動而疑蛇室本空而怖鬼心有眞妄
009_0442_a_16L之見性有凡聖之量如蚕吐絲自纒
009_0442_a_17L其身者三乘人之病也則禪敎之病痛
009_0442_a_18L亦不可不知也凡學禪敎者豈可不詳
009_0442_a_19L知而體會也繆會眞妄之徒錯傳
009_0442_a_20L上祖之承或以頓實之門爲正脉圓頓
009_0442_a_21L之門爲祖宗 [23] 胡杓之甚耶遂摭古今諸
009_0442_a_22L家別錄以解禪敎學者之惑云

009_0442_a_23L
維雍正甲寅抄春無竟老漢年七十
009_0442_a_24L一爲門僉道人落筆於寶鏡室中
  1. 168)삼강三綱 :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로 군위신강君爲臣綱·부위자강父爲子綱·부위부강夫爲婦綱이다.
  2. 169)오덕五德 : 인仁·의義·예禮·지知·신信을 말한다.
  3. 170)생멸문生滅門 :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교설이다. 진여가 무명無明에 의해 요동하여 생멸하는 현상을 일으키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4. 171)진여문眞如門 : 『대승기신론』의 교설이다. 본체인 진여에 이르는 과정인 정법淨法을 설명한 것이다.
  5. 172)삼관三觀 : 밝은 지혜로 공제空諦·가제假諦·중제中諦를 관하는 공관空觀·가관假觀·중관中觀을 말한다.
  6. 173)천태 대사 : 천태종의 개조開祖로 법명은 지의智顗(538~597)이다. 혜사慧思로부터 심관心觀을 사사하고 천태산天台山에서 『법화경』을 중심으로 불교 교학을 정비해 크게 교화를 펼쳤다. 지자 대사智者大師·법공 보각 존자法空寶覺尊者·영혜 대사靈慧大師라고도 한다. 그의 제자 장안 관정章安灌頂이 찬집한 『법화현의法華玄義』·『마하지관摩訶止觀』 등 30여 부의 저술이 전한다.
  7. 174)십계十界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성문·연각·보살·불의 세계를 말한다.
  8. 175)삼천三千 : 만유萬有를 뜻한다.
  9. 176)삼세간三世間 : 삼종세간三種世間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을 제외한 일체 중생을 중생세간衆生世間이라 하고, 중생이 의지해 살아가는 국토를 기세간器世間 또는 국토세간國土世間이라 하며, 앞의 두 가지의 통체通體인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을 오온세간五蘊世間이라 한다.
  10. 177)정보正報 : 과거에 지은 업인業因으로 받는 과보果報 가운데 육신을 말한다.
  11. 178)의보依報 : 과거에 지은 업인으로 받는 과보 가운데 국토·가옥·의복 등을 말한다.
  12. 179)『천태사교의天台四教儀』(T46, 774c)
  13. 180)방 거사龐居士가 지은 게송이다. 『벽암록碧巖錄』 권5(T48, 179b)
  14. 181)항하사세계(恒沙界) :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드넓은 세계를 갠지스강의 모래알에 비유한 말이다.
  15. 182)진묵겁塵墨劫 :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을 먼지의 수량에 비유한 말이다. 진점겁塵點劫이라고도 한다. 삼천대천세계를 부수고 미진微塵을 만들어 하나의 미진을 1겁으로 계산했을 때 전체 미진의 숫자에 해당하는 겁수이다.
  16. 183)세 가지 덕 : 열반삼덕涅槃三德인 법신·반야·해탈을 말한다.
  17. 184)대통大統 : 왕통王統과 같은 말이다.
  18. 185)열다섯 가지 : 삼왕三王·삼위三位·삼주三珠·삼신三臣·삼적귀三賊鬼를 말한다.
  19. 186)간艮 : 팔괘八卦의 하나로 방위로는 동북東北이고, 시각으로는 오전 2시부터 4시까지이다.
  20. 187)6 : 음陰을 말한다. 역易에서 음효陰爻를 6이라 한다.
  21. 188)9 : 양陽을 말한다. 역易에서 양효陽爻를 9라 한다.
  22. 189)실달悉達 : 석존의 출가 전 이름인 Siddhārtha의 음역이다. 살바실달다薩婆悉達多·실달다悉達多라고도 하고, 일체의성一切義成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23. 190)최초구最初句 : 만법의 차별이 발생하기 이전, 또는 만법의 근원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말한다. 운문 문언雲門文偃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무엇이 최초의 한 구절입니까?” 하고 묻자, “9·9는 81이다. ”라고 하였다. 『선문염송禪門拈頌』 제1027칙.
  24. 191)말후구末後句 : 구경각, 즉 완벽한 깨달음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말한다. 또한 선사들이 임종에 남기는 최후의 말씀도 말후구라 한다.
  25. 192)일착一著 : 일착자一著子·일물一物이라고 한다. 만법의 근원인 진여, 또는 만법의 주인공인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26. 193)일색변一色邊 : 일색一色과 같은 뜻이다. 상대적 분별을 초월하여 일체가 평등한 경지를 일컫는 말이다.
  27. 194)암두岩頭 : 법명은 전활全奯(828~887)이고, 덕산 선감德山宣鑑의 법을 이었다.
  28. 195)덕산이 말후구를 모른다 : 설봉 스님이 덕산 스님의 회상에 있으면서 밥 짓는 소임을 맡았는데, 하루는 공양이 늦자 덕산 스님이 발우를 들고 법당으로 내려왔다. 이에 설봉이 “종도 울리지 않고 북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이 늙은이가 발우는 들고 어디 가는가?” 하자 덕산 스님이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를 숙인 채 방장실로 돌아갔다. 설봉 스님이 이 이야기를 암두 스님에게 말하자 암두 스님이 “알량한 덕산 스님이 말후구를 몰랐구나. ”라고 하였다. 『벽암록碧巖錄』 권6(T48, 186a).
  29. 196)대혜大慧 : 법명은 종고宗杲(1088~1163)이고, 호는 묘희妙喜다. 담당 무준湛堂無準에게 참학하고, 원오 극근圜悟克勤의 법을 이었다.
  30. 197)백옥의 한~움직이지 않나니 : 양산 연관梁山緣觀 선사의 법어에서 인용하였다. 어떤 스님이 “무엇이 일용사입니까?” 하고 묻자 이와 같이 대답하였다. 『선종송고연주통집禪宗頌古聯珠通集』 권37(X65, 706c)에는 “碧玉點破瑠璃色。 滿目紅塵不見沙。”로 되어 있다.
  31. 198)보고 들음~빛깔은 없다 : 삼평 의충三平義忠 선사의 게송에서 인용하였다. 게송 전문을 밝히면 다음과 같다. “即此見聞非見聞。 無餘聲色可呈君。 箇中若了全無事。 體用何妨分不分。” 『오등회원五燈會元』 권5(X80, 117a).
  32. 199)형상이 형상~부처를 보리니 :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T8, 749a)에서 “무릇 존재하는 모든 형상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님을 본다면 곧 여래를 보리라.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라고 하였다.
  33. 200)세 가지~ 안되는 경지 : 이렇게 해도 안되고, 이렇게 하지 않아도 안되고,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하지 않아도 모두 안되는 것이다.
  34. 201)세 가지~괜찮은 경지 : 이렇게 해도 되고,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하지 않아도 모두 괜찮은 것이다.
  35. 202)청휘淸徽 : 호는 고경古鏡이고, 무경 자수의 법을 이었다.
  36. 203)전광도全光道 : 조선 영조 4년(1728)부터 14년(1738)까지 ‘전라도’를 고쳐 부른 이름.
  37. 204)실교實敎 : 권교權敎에 상대되는 말로, 곧 대승진실교大乘眞實敎를 뜻한다.
  38. 205)『수능엄경首楞嚴經』 권5(T19, 125b)에서 “현전한 갖가지들, 솔은 곧고 가시나무는 굽고 고니는 희고 까마귀는 검은 그 근본 유래를 모두 안다. (現前種種松直棘曲。 鵠白鳥玄皆了元由。)”고 하였다.
  39. 206)『선가귀감禪家龜鑑』(X63, 744c)에서 법안종法眼宗의 가풍을 설명하며 “風柯月渚顯露眞心。 翠竹黃花宣明妙法。”이라 하였다.
  40. 207)원돈교圓頓敎 : 천태종의 교상판석敎相判釋에서 화의사교化儀四敎 중 돈교頓敎, 화법사교化法四敎 중 원교圓敎에 해당하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곧 『화엄경華嚴經』을 말한다. 천태종에서는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부처님의 교화 형식에 따라 돈교頓敎·점교漸敎·비밀교秘密敎·부정교不定敎의 화의사교로 분류하고, 교리의 내용에 따라 장교藏敎·통교通敎·별교別敎·원교圓敎의 화법사교로 분류한다.
  41. 208)『금설록金屑錄』 : 퇴은退隱, 즉 서산 휴정西山休靜의 저술로 추정되는 『선가금설록禪家金屑錄』을 지칭한 듯하다.
  42. 209)『수선록竪禪錄』 : 1293년(고려 충렬왕 19)에 진정 국사眞靜國師 천책天頙이 지은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X64, 809a)에 본문과 비슷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천책은 이를 『현각선사교외수선장玄覺禪師教外竪禪章』에서 인용하였다고 밝혔다. 『현각선사교외수선장』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본문에 기술된 내용과 기타 인용문들이 대거 『선문보장록』에 수록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무경 스님이 『선문보장록』에서 재인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43. 210)최초의 지위(初位) : 신위信位를 말한다. 『화엄경』에서는 수행의 과정을 십신十信·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回向·십지十地·등각等覺·묘각妙覺으로 설명한다.
  44. 211)망기忘機 : 망기亡機라고도 한다. 깨달은 자가 탁월한 기용機用마저 잊어버리는 것, 깨닫고 그 깨달음조차 잊어버리는 것이다.
  45. 212)『진각대사망정록眞覺大師忘情錄』 : 현전하지 않는 책이다. 『선문보장록』에 본문에 인용된 것과 비슷한 내용의 문장이 수록되어 있는데, 천책 스님은 이를 『현각선사교외수선장玄覺禪師教外竪禪章』에서 인용하였다고 밝혔다. 영가 현각永嘉玄覺(647~713) 선사의 시호가 진각 대사眞覺大師이다.
  46. 213)규산圭山 : 징관澄觀의 법을 이은 화엄종 제5조 종밀宗密(780~841)의 호다. 규봉圭峯이라고도 한다.
  47. 214)어디서 인용하였는지 분명치 않다. 『선문보장록』에는 이 부분이 “『화엄소』에서 ‘원돈교 위에 따로 한 종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말을 잊고 뜻에 합하는 종이다. (如華嚴疏云。 圓頓之上。 別有一宗。 此亡詮會旨之宗。)”로 되어 있다. 『선문보장록』(X64, 809a).
  48. 215)시교始敎 : 곧 대승시교大乘始敎를 말한다. 화엄종 제3조 현수 법장賢首法藏(643~ 712)은 부처님의 일대시교를 소승교小乘敎·대승시교大乘始敎·대승종교大乘終敎·돈교頓敎·원교圓敎의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49. 216)본색本色 : 본래의 모습.
  50. 217)『순정록順正錄』 : 현전하지 않는 책이다. 『선문보장록』(X64, 808b)에 아래에 인용된 것과 비슷한 내용의 문장이 수록되어 있는데, 천책 스님은 이를 『순덕선사록順德禪師錄』에서 인용하였다고 밝혔다.
  51. 218)이 게송 역시 『선문보장록』(X64, 808b)에 수록되어 있는데, 천책 스님은 이를 진정 문眞淨文(1025~1102) 화상의 게송이라 하였다. 참고로 게송의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十佛壇場一海印。 三種世間總在焉。 無盡性海合一味。 一味相沈是我禪。”
  52. 219)용장龍藏 : 바닷속 용궁에 보관된 대장경이란 뜻이다. 용수보살이 용궁에 들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승경을 열람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일부를 암송해 유포한 것이 『화엄경』이라고 한다.
  53. 220)『선문보장록』(X64, 808b)에서는 『적음존자록寂音尊者錄』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히며 “僧問趙州祖師西來意旨。 云庭前栢樹子。 此一句。 龍宮海藏。 所未有底。”라 하였다. 『선가귀감』에도 위와 비슷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諸佛說弓。 祖師說絃。 佛說無礙之法。 方皈一味。 拂此一味之迹。 方現祖師所示一心。 故云庭前栢樹子話。 龍藏所未有底。” 『선가귀감』(X63, 738b).
  54. 221)구이口耳의 지혜 : 매우 수준이 낮은 학식을 일컫는 말이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소인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귀로 듣고는 곧바로 입으로 내놓는다. 입과 귀 사이는 불과 네 치일 따름이니, 일곱 자나 되는 이 몸을 어떻게 아름답게 할 수가 있겠는가. (小人之學也。 入乎耳。 出乎口。 口耳之間則四寸耳。 曷足以美七尺之軀哉。)”라고 하였다.
  55. 222)흑산黑山 : 대철위산과 소철위산 중간에 있는 암흑세계로서 곧 지옥이다. 지혜가 결여된 무명無明을 비유한 말이다.
  1. 1)「文」一字。編者補入。
  2. 1)「雙照」底本作小文字。編者改爲本文活字。
  3. 1)此下。底本三字空白{編}。
  4. 1)「附錄」二字。編者補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