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삼봉집(三峰集) / 〔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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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화담 대사 부도비명華潭大師浮屠碑銘
판부사 이유원 찬判府事李裕元撰

동방의 불법이 태고 화상 때 비로소 성대하여 서산西山·편양鞭羊·풍담楓潭·월담月潭·환성喚醒·함월涵月·완월玩月·한암寒巖을 거쳐 화악에 이르러 드디어 크게 번성하여 승당升堂160)한 자가 많았다. 그 의발을 얻은 한 분이 화담 법사이니 이름은 경화敬和, 선호禪號는 시중示衆, 교호敎號는 화담이다.
스님은 본관이 박씨로 대대로 밀양 사람이다. 어머니 남양 홍씨가 꿈에 맑은 시내에서 은가락지를 얻고 임신하여 스님을 낳았으니 건륭 병오년(1786, 정조 10) 4월 18일이었다. 어려서부터 비린내와 훈채를 좋아하지 않았다. 18세에 양주 화양사華陽寺 월화月華 장로에게 삭발하였다.

010_0481_b_14L〔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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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481_b_16L華潭大師浮屠碑銘

010_0481_b_17L判府事李裕元撰

010_0481_b_18L
東方佛法始盛於太古和尙累傳之
010_0481_b_19L西山鞭羊楓潭月潭喚醒涵月玩月漢巖
010_0481_b_20L至于華嶽遂大以蕃升堂者衆而得
010_0481_b_21L其衣鉢之一曰華潭法師敬和其名
010_0481_b_22L衆禪號華潭敎號也師本朴氏世爲
010_0481_b_23L密陽人母南陽之洪夢得銀環於淸溪
010_0481_b_24L於是有娠生師乾隆丙午四月十八
010_0481_b_25L日也自幼不喜腥葷十八剃髮于楊州

010_0481_c_01L이윽고 농월弄月과 율봉栗峯을 좇아 수계하고 수참受懺하였다. 법을 전수한 스승은 화악 지탁 대사이다.
스님은 성품이 허령虛靈하고 비분강개함이 많았으며 정결하여 세속의 허물이 없었다. 석장으로 운수행각한 곳은 모두 화엄대법회로 스님이 주체가 되었다. 을해년부터 시작하여 명산에 불법도량을 편 것이 쉰다섯 번으로 도합 83회였다. 주야로 가사를 벗지 않고 옆구리가 자리에 닿지 않아 솔잎과 미음만 먹은 것이 40년이었다. 호남의 지리산에서 서봉瑞鳳 대사를 만나 『선문염송』의 격외格外의 법을 배웠다. 관동 보개산 석대암에 많이 거주하여 여러 번 『화엄』과 『열반』 등의 여러 경전을 보았고 『팔양경八陽經』을 주석할 때는 꿈에 달을 씹는 기이함이 있었다. 일찍이 금강산 마하연에서 대교大敎를 설할 때 꿈에서 문수와 보현을 뵙고 황금 종을 크게 쳤는데 소리가 만폭동을 울렸으니 스님의 전법 제자가 만 명에 이르게 될 조짐이었다.
영남의 해인사에서 좌선할 때에

我今解了如來性       이제 여래의 성품을 깨쳤나니
如來今在我身中       여래는 나의 마음속에 있도다.
我與如來無差別       나와 여래는 차별이 없어
如來即是我眞如       여래가 곧 나의 진여로다.

라는 말을 얻고 홀연히 크게 깨달아 말하기를 “이는 꿈속의 일이 아닌데 나는 이미 쿨쿨 잠이 들었구나.” 하였다. 마곡사에서 호랑이 두 마리가 앞길을 인도하고, 영취산에서 황구가 경을 듣고 껍질을 벗었다는 이야기는 혹 허탄하지만 또한 경전의 신령함이나 스님의 정성일 수도 있겠다.
스님은 수련이 이미 오래되어 경전을 읽는 여가에 게송 67품을 연설하였는데 세상에 전해진다. 유가의 경서를 섭렵하였으며 부모의 위패를 모셔 놓고 아침저녁으로 공양하였으니 이는 스님의 성품이다. 전국의 명승지를 두루 유람하여 머무는 곳마다 무리들이 사방에서 왔다. 후에는 가평 현등사懸燈寺에 들어가 무리들을 해산시키고 정혜定慧에 정진하였는데 그때의 나이가 63세였다.

010_0481_c_01L華陽寺月華長老旣又從弄月栗峯
010_0481_c_02L受戒受懺其受法華嶽堂知濯大師是
010_0481_c_03L師性虛靈多慷慨淨潔無俗累飛
010_0481_c_04L錫雲遊盡是華嚴大會師爲之主
010_0481_c_05L自乙亥名山法場爲五十五凡八十
010_0481_c_06L三會也晝宵不離袈裟脇不至席
010_0481_c_07L四十年啜松饘亦如之湖南之智理山
010_0481_c_08L逢瑞鳳大師學拈頌格外之法多住關
010_0481_c_09L東寶盖山石臺庵閱華嚴涅槃諸經者
010_0481_c_10L累而註八陽夢有嚼月之異嘗於金剛
010_0481_c_11L之摩訶衍夜說大敎夢見文殊普賢
010_0481_c_12L大擊金鐘聲振萬瀑師之傳法萬衆
010_0481_c_13L兆於此嶺南之海印寺坐禪得我今解
010_0481_c_14L了如來性如來今在我身中我與如來
010_0481_c_15L無差別如來即是我眞如之語忽然大
010_0481_c_16L悟曰此非夢中作而我則已睡矣
010_0481_c_17L麻谷兩虎導前鷲山黃狗聽經脫殼事
010_0481_c_18L或誕而抑經之靈師之誠歟師鍊業旣
010_0481_c_19L讀經之暇演偈頌六十七品行于
010_0481_c_20L涉獵儒家書奉父母神牌朝夕供
010_0481_c_21L此師之性也周覽諸道名勝所憇
010_0481_c_22L處徒衆四至後入加平之懸燈寺散徒
010_0481_c_23L精於定慧時年六十三戊申季春
010_0481_c_24L此跋文底本在卷頭序文之後編者移置於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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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년(1848, 헌종 14) 늦봄 병술삭 계축일에 제자들을 불러 입적을 알렸다. 제자 혜소慧昭의 무리가 십념十念으로 합장할 것을 청하자 스님이 손을 들어 미소 지으며 말하기를 “소승은 염구念句에 집착한다.” 하고 붓을 찾아 귀적시歸寂詩를 쓰고 드디어 세상을 떠났으니 법랍이 48년이었다. 혜소와 제자들이 영골靈骨을 절 북쪽에 안장하고 탑을 세웠다. 스님의 제자는 100여 명인데 혜소慧昭·혜문慧文·묘행竗行·법천法天·묘각妙覺·성활性闊이 더불어 말할 만하였다. 이제는 혜소·성활·묘각만 있을 뿐이다. 혜소와 묘각은 늙어 산으로 들어가고, 성활은 내 마을 암자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항상 스님의 계행을 나에게 말하곤 한다.
나는 항상 『금강경』을 보고 불가의 문자를 짓기 좋아하여 듣고 안 것을 써서 응대한다. 대저 불씨에게 오계가 있는 것은 유가의 인·의·예·지·신과 같다. 스님이 스승을 잊지 않는 것은 우리 유가의 친친親親의 인과 유사하고, 대중에게 가르침을 베푸는 것은 유가의 존존存存161)의 의리와 유사하다. 법의를 벗지 않는 것은 유가의 장보章甫의 예와 같고 경문을 해석하는 것은 유가의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지와 같으며, 참선을 게을리 않고 죽음에 임하여 조용한 것은 우리 유가 자신의 내면에 간직한 신과 같다. 옛 사람이 청련靑蓮의 잎과 백하白荷의 꽃이 한 뿌리라고 하니 우리 유학이 불가의 도와 다르지만 도를 추구하는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계율은 선정을 낳고, 선정은 지혜를 낳으며, 지혜는 8만 4천 법문을 낳으니 이것이 어찌 “고요하면 능히 생각하고 생각하면 능히 깨친다.”는 말과 다르며 또한 펼치면 육합에 가득하다는 것은 “우리 유가의 도가 크게 밝게 드러나 더할 것이 없다.”고 하는 말이다.
내가 처음 가오嘉梧에 터를 잡을 때 꿈에 한 스님을 따라 자지봉紫芝峯에 올랐다. 스님이 지팡이로 맑은 시냇가를 가리키며 요사채 하나를 지어주기를 청하고 나에게 푸른 책을 주었는데 그 붉은 인장의 문자에 만회암晩悔庵이라고 쓰여 있었다. 다음날 암석 사이에서 고불古佛을 발견하고 성활 스님으로 하여금 공양케 했다. 성활이 스님의 상像을 다른 감실에 봉안하였으니

010_0482_a_01L丙戌朔之癸丑召門弟子告示寂
010_0482_a_02L子慧昭徒請十念合掌師擧手微哂曰
010_0482_a_03L小乘着於念句索筆書歸寂詩遂化去
010_0482_a_04L法臘四十八慧昭與徒衆藏靈骨于寺
010_0482_a_05L之北爲塔師徒弟百餘人慧昭慧文竗
010_0482_a_06L行法天妙覺性闊可與語今有昭闊覺
010_0482_a_07L而已昭覺老入山闊住余村庵每以
010_0482_a_08L師之戒行言於余余常看金剛經
010_0482_a_09L作佛家文因書所聞知以應之夫佛氏
010_0482_a_10L之有五戒與仁義禮智信同耳師不忘
010_0482_a_11L於先有似吾儒親親之仁設敎於衆
010_0482_a_12L有似吾儒存存之義不卸法衣有似吾
010_0482_a_13L儒章甫之禮解釋經文有似吾儒格致
010_0482_a_14L之智趺坐不怠臨歸寂然政似乎吾
010_0482_a_15L儒有諸己之謂信也古人以靑蓮葉白
010_0482_a_16L荷花同是一根吾儒之於釋其爲道
010_0482_a_17L不一其所以爲道之心則一故也
010_0482_a_18L生定定生慧慧生八萬四千法門
010_0482_a_19L何異於靜而能慮慮而能得而至若放
010_0482_a_20L之彌六合則吾道之大皓皓乎不可尙
010_0482_a_21L余始卜嘉梧夢隨一緇衣登紫芝
010_0482_a_22L僧以杖指淸流上乞搆一寮與我
010_0482_a_23L靑卷其朱璽文曰晩悔庵翌日得古佛
010_0482_a_24L於巖石間使性闊供奉闊以師之像

010_0482_b_01L암자 또한 스님의 귀의처가 되었다. 아! 암자는 꿈 때문에 이루어졌고 나의 후회가 또한 만년에 나타난 것은 혹 스님의 도움이리니, 불가의 도가 어찌 모두 허무로만 귀결될 것인가. 게송에 이르기를

如是我聞華潭禪       이와 같이 들었다. 화담 선사는
前身應是銀海仙       전신이 응당 은해의 신선이리.
上溯太古和尙緣       위로 거슬러 태고 화상의 법연이요,
近法華嶽上人賢       가까이 화악 상인의 어짊 본받았네.
卓乎精英靈壽延       우뚝한 정령은 영수를 연장하고
守律護戒得眞詮       계율을 수호하여 진전을 얻었네.
混沌沉默雲在天       혼돈의 침묵 속에 구름은 하늘에 있고
陵遷谷轉虎兒眠       변천하는 언덕과 골에 호랑이 누웠네.
六九道場山外川       산수 사이에 55개의 도량을 세우고
八三大會後復前       전후로 83회의 화엄대회를 펼쳤네.
撞鍾萬壑大夢先       종소리 만학 울려 꿈에 조짐 보였고
手手眼眼觀千千       대비천수안으로 중생을 제도했네.
十樣迦羅松葉饘       열 가지 가라162)와 솔잎을 먹고
懷中淡淡月光圓       마음은 둥근 달빛처럼 담담했네.
摩鷲引導獸脫圈       마곡사와 영취사에서 인도하고 껍질을 벗어
惠炬遍照迦陀篇       은혜의 빛이 두루 게송을 비추었네.
我有一物其孔玄       나에게 한 물건 있어 매우 현묘하니
前乎我生萬刼年       나보다 만 겁 앞서 태어났도다.
善哉因果長綿綿       착하도다. 인과가 끝없이 이어져
過去未來寶珠聯       과거 미래에 보주가 연결되었네.
法身無爲薪火傳       법신은 무위하나 불꽃은 전해져
聚相屹立山之巓       형상 모아 산 정상에 우뚝 세웠네.
慧骨槎枒刻香栴       지혜의 영골 빛나 전단목 새기니
慈雲印月恒河船       자비의 구름 시내의 달 항하의 배로다.
優婆塞夷檀越錢       우바새와 단월의 시주 돈으로
衆生泥梨種福田       중생의 지옥에 복전을 심누나.
曰嘉陵北嶽叅乾       가릉 북악에서 하늘을 참배하니
柢花紛紛一燈懸       저화가 분분한데 등 하나 걸렸구나.
鈕螭龜趺輦爾肩       교룡과 거북이의 어깨로 떠받치니
氷滑脩石碧樹蓮       매끄러운 긴 돌에 푸른 나무의 연꽃.
我偈載成詔爾鐫       내 게송 이루어 너에게 명해 새기네.
영찬影讃
상동上同

진영은 스님의 본뜻이 아니나 나는 뜻을 가졌고
찬은 스님이 뜻을 둔 것이 아니나

010_0482_b_01L異龕妥藏庵亦爲師依皈之所也嘻噫
010_0482_b_02L庵之成由於夢而余之悔又祗于晩曩
010_0482_b_03L之現或師之助而釋之道豈盡歸之
010_0482_b_04L於虛無也偈曰

010_0482_b_05L如是我聞華潭禪前身應是銀海仙

010_0482_b_06L上溯太古和尙緣近法華嶽上人賢

010_0482_b_07L卓乎精英靈壽延守律護戒得眞詮

010_0482_b_08L混沌沉默雲在天陵遷谷轉虎兒眠

010_0482_b_09L六九道場山外川八三大會後復前

010_0482_b_10L撞鍾萬壑大夢先手手眼眼觀千千

010_0482_b_11L十樣迦羅松葉饘懷中淡淡月光圓

010_0482_b_12L摩鷲引導獸脫圈惠炬遍照迦陀篇

010_0482_b_13L我有一物其孔玄前乎我生萬刼年

010_0482_b_14L善哉因果長綿綿過去未來寶珠聯

010_0482_b_15L法身無爲薪火傳聚相屹立山之巓

010_0482_b_16L慧骨槎枒刻香栴慈雲印月恒河船

010_0482_b_17L優婆塞夷檀越錢衆生泥梨種福田

010_0482_b_18L曰嘉陵北嶽叅乾柢花紛紛一燈懸

010_0482_b_19L鈕螭龜趺輦爾肩氷滑脩石碧樹蓮

010_0482_b_20L我偈載成詔爾鐫

010_0482_b_21L

010_0482_b_22L影讃

010_0482_b_23L上同

010_0482_b_24L
影非師之本意我則有意賛非師之有

010_0482_c_01L내가 이미 뜻을 두었도다.
소수炤水의 뜻과 수월水月의 뜻은 서천 여래의 뜻에서 나왔노라.

影非師之本意 我則有意
賛非師之有意 我已在意
炤水之意
水月之意
出自西天如來之意
우又
추사 김정희 찬秋史金正喜撰

계행의 괴로움과 반야의 즐거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이 원적圓寂의 세계에 부모를 업고 수미산을 백천 번 돌면
완연히 진상이 드러나 장엄봉에 등불 빛나고 화악의 달이 못에 비치리.

戒行之苦 般若之樂 苦耶樂耶
即此圓寂 負肯父母 繞須彌百千匝
宛以眞相解脫莊嚴峯 燈吐華嶽月印潭
우又
불초 법자 보월 혜소 배서不肖法子寶月慧昭拜書

篤志力學          뜻을 돈독히 하여 학문에 힘쓰고
精修苦節          깨끗하고 청고한 절개 닦으셨네.
奉持戒律          계율을 받들어 수지하니
淨如氷雪          빙설처럼 청정하셨네.
脇不至席          옆구리를 자리에 대지 않고
講若晝一          강론은 한 일자 긋듯 전일하셨네.
錫環八垓          석장 짚고 사방을 행각하니
風淸明月          바람 맑고 달빛은 밝구나.
행장行狀
상동上同

불법이 동쪽으로 전해진 후 신라시대에 시작되고 고려시대 때 성대하여 왕공 귀인이 모두 높여 믿고 공경히 받들었다. 때문에 그 도를 전하고 계율에 전통한 이를 국사·왕사라고 칭하여 불교의 가르침이 세상에 크게 행해졌다. 우리 조선에 들어와서 순전히 문명文明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인효仁孝로써 백성을 교화하여, 석자釋子를 일러 군친을 버리고 인륜을 도외시한다 하여 매우 배척하니 우리 불자들이 진작하여 일어나지 못하였다.
청허 휴정 대사에 이르러 깊이 서산에 은거하여 무리를 모아 불법을 강론하였다. 왜구가 창궐할 때를 맞아 의승義僧 700을 모집하여

010_0482_c_01L我已在意炤水之意水月之意
010_0482_c_02L自西天如來之意

010_0482_c_03L

010_0482_c_04L

010_0482_c_05L秋史金正喜撰

010_0482_c_06L
戒行之苦般若之樂苦耶樂耶即此
010_0482_c_07L圓寂負肯父母繞須彌百千匝宛以
010_0482_c_08L眞相解脫莊嚴峯燈吐華嶽月印潭

010_0482_c_09L

010_0482_c_10L

010_0482_c_11L不肖法子寶月慧昭拜書

010_0482_c_12L
篤志力學精修苦節奉持戒律

010_0482_c_13L淨如氷雪脇不至席講若晝一

010_0482_c_14L錫環八垓風淸明月

010_0482_c_15L

010_0482_c_16L行狀

010_0482_c_17L上同

010_0482_c_18L
佛法東漸後昉于羅盛于麗王公貴
010_0482_c_19L無不崇信敬事故傳其道精于戒
010_0482_c_20L稱國師王師而敎大行于世矣
010_0482_c_21L我朝純以文明治國仁孝化民謂釋
010_0482_c_22L子棄君親外倫紀斥絕之甚吾徒不能
010_0482_c_23L振起至淸虛休靜大師深居西山
010_0482_c_24L徒講法當倭猖獗之時募義僧七百

010_0483_a_01L순안에서 대가大駕(임금 수레)를 맞이하고 평양에서 왜장을 축출하였다. 그 제자 사명 유정四溟惟政·기허 영규騎虛靈圭·뇌묵 처영雷黙處英으로 하여금 대신 의병을 거느리게 하고 옷을 떨치고 산으로 돌아가 불법의 힘을 빌려서 임금의 수를 그윽이 도왔다. 기허와 중봉 조헌重峯趙憲163)은 금산에서 순절하고, 처영은 해남에서 왜장을 죽이려다 도리어 화를 입었다. 사명은 적진에 출입하며 왜구의 상황을 정탐하고 가등청정加藤淸正164)에게 너의 머리가 보물이라고 말하여 왜노들을 두렵게 하였다. 마침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서 관백關伯165)에게 의리를 깨우쳐 포로 3천여 명을 송환하여 칠치柒齒로 하여금 의를 사모하게 하였다. 오늘날까지 300여 년 태평을 누리며 사림들이 칭송하고 조정에서는 사당을 세워 충성에 보답하였다.
청허로부터 8세를 전법하여 화악 지탁華嶽知濯 대사에 이르렀다. 스님은 깨우친 재주와 넓은 지혜, 공손하고 부지런한 행동과 문장의 재능으로 세상에 이름났으며 풍고楓皐 김 선생의 방외의 벗이다. 법을 전수받은 자가 100여 사람인데 유독 계율에 정통하여 율호律虎라 칭해지고, 강설은 의룡義龍에 견주어지며, 교화를 행함은 선가禪家의 현인과 같아 생사를 초탈하여 초연히 독보적인 분은 우리 화담 대사이다.
대사의 속성은 박씨로 밀양인이다. 어머니 홍씨는 남양인이다. 휘는 경화敬和, 호는 화담 혹은 시중示衆으로도 부른다. 어머니가 꿈에 옥계수玉溪水 속에서 은가락지를 얻고 임신하여 건륭 병오년 불탄일 10일 후에 태어났다. 스님은 나서부터 우유를 먹지 않아 어머니를 번거롭게 하지 않았으며, 자라서는 비린내와 훈채를 싫어하고 맑은 물을 좋아하였다. 5세에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슬퍼하는 것이 성인과 같았고 한시라도 차마 어머님 곁을 떠나지 않아 사람들이 효동이라고 칭송하였다. 18세에 많은 사람들이 계속 왕래하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묻자 모두 말하기를 “제봉霽峯 대사가 신흥사에서 설법을 하여 가서 듣는다.”고 하였다.

010_0483_a_01L迎大駕於順安逐倭將於平壤以其徒
010_0483_a_02L泗溟惟政騎虛靈圭雷默處英代領義
010_0483_a_03L拂衣還山祈佛法力冥資聖壽
010_0483_a_04L虛與趙重峯殉節于錦山處英欲殺倭
010_0483_a_05L將於海南反受其禍泗溟出入賊陳
010_0483_a_06L詗探倭情諭淸正爾頭爲寶慴伏倭奴
010_0483_a_07L終至涉海徃日本諭義理於關伯
010_0483_a_08L還俘虜三千餘口使㓒齒慕義至于今
010_0483_a_09L三百餘年昇平士林稱頌朝家建祠酬
010_0483_a_10L淸虛八傳而至華嶽知濯大師
010_0483_a_11L頴悟之才博達之慧恭勤之行文章
010_0483_a_12L之能名于世而爲楓臯金先生之方外
010_0483_a_13L有授法者百餘人而獨以精戒稱
010_0483_a_14L律虎講說侔義龍行化如禪賢脫於
010_0483_a_15L生死超然獨出者我大師其人也
010_0483_a_16L師俗姓朴氏密陽人也母洪氏南陽
010_0483_a_17L人也諱敬和號華潭或稱示衆母夢
010_0483_a_18L於玉溪水中得銀指環仍以有娠
010_0483_a_19L隆丙午誕佛之後十日而誕焉師生
010_0483_a_20L而不飮乳不煩母長而惡腥葷愛淸
010_0483_a_21L五歲而孤哀毁如成人不忍一時
010_0483_a_22L離母側人以孝童稱焉至十八歲
010_0483_a_23L衆人絡繹徃來問其故咸曰有霽峯大
010_0483_a_24L在於新興寺說法故徃聽焉師聞

010_0483_b_01L
스님이 듣고 기뻐서 무리 가운데 끼어 가서 참배하니 대사께서 말하기를 “너는 속세의 사람이 아니니 출가하겠는가.” 하니 스님이 기뻐하고 응낙하였다. 형이 그 뜻을 빼앗자 돌아가서 병을 얻었는데 치료해도 효과가 없었다. 길흉을 점쳐 보니 “출가를 해야만 나을 수 있다.”고 하였다. 어머니가 울면서 말하기를 “나는 자식과 헤어질 마음이 없는데 아이는 어머니를 버릴 뜻이 있구나. 아버지도 죽고 형도 가난하니 내가 장차 누구를 의지할꼬. 그러나 부득이 너의 소원을 따르니 원컨대 너는 목련目連166)의 수행을 닦아 나를 도리천忉利天167)으로 제도하라. 나는 다시 너를 기다리지 않으리라.” 하니, 스님이 울며 하직하였다. 화양사華陽寺로 가서 월화 성찬月華性讚 장로를 참례하고 삭발하니 성찬 장로가 스님을 밭에서 일하게 하였다.
스님은 낮에는 밭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단정히 앉아 수행하였는데, 문득 한 두타가 지나가다가 말하기를 “그대의 기상을 보면 불가의 동량이 될 수 있을 터인데 어찌 여기에서 지체하는가.” 하니, 스님이 말하기를 “도에 뜻이 있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두타가 말하기를 “보개산寶蓋山 석대암石臺庵에서 율봉 청고栗峯靑杲 대사께서 설법하여 법중法衆이 운집하니 거기 가는 것이 좋겠다.” 하여, 스님이 곧 가서 참배하러 막 문에 들어서자 율봉이 보고 말하기를 “나의 도를 전할 자가 왔구나.” 하고, 방장에 들어가자 어루만지며 인가하였다.
수년을 머무르다 율봉이 금강산 마하연으로 옮기자 스님도 또한 따랐다. 그때에 보덕굴普德窟에서 관세음보살을 공양하였는데, 스님은 청정한 공양을 행하시어 매일 대비주大悲呪 108번을 염송하고 쌀을 108번 씻으며 108번의 예배를 하였다. 100일째 되는 밤에 이르러 꿈에 백의白衣의 대사가 머리를 어루만지며 수기授記하여 말하기를 ‘이 뭐꼬(是什麽)’ 화두를 참구하라 하였다. 스님이 꿈에서 깨어나서 크게 깨우치니 감로수를 마신 듯하였다. 죽비로 책상을 치며 게송을 지었다.

咄咄西來碧眼胡       쯧쯧, 서쪽에서 온 푸른 눈의 납승이여.
直指面前眼裏人       곧바로 눈앞의 사람을 가리켰도다.
何必九年窮妙旨       하필 9년 면벽하며 묘한 이치 궁구했나.
花灼鳥喃眞法身       꽃 피고 새 우는 것이 참 법신인 것을.

이로부터 모든 경전의 깊은 뜻을 듣지 않아도 통하였다.

010_0483_b_01L而喜之輥于隊徃拜焉大師曰汝非
010_0483_b_02L塵勞中人也肯出家乎師喜而諾之
010_0483_b_03L有兄奪其志歸而得疾醫莫效焉
010_0483_b_04L卜之曰出家後可瘳母泣曰娘無離
010_0483_b_05L子之心兒有拋母之志父亡兄寒
010_0483_b_06L將何依然不得已即從汝願願汝修
010_0483_b_07L目連之行度我於忉利天吾不復作倚
010_0483_b_08L門之望師泣辭往華陽寺禮月華性
010_0483_b_09L讃長老剃髮讃投師于畎畝中師晝則
010_0483_b_10L事田夜則端坐忽有一頭陀過見曰
010_0483_b_11L觀子氣像可作佛家棟樑何滯於此
010_0483_b_12L師曰果有志於道而不知何往頭陀曰
010_0483_b_13L寶盖山石臺庵有栗峯靑杲大師說法
010_0483_b_14L法衆雲集汝可以往矣師即往叅
010_0483_b_15L才入門栗峯見之曰傳吾道者來矣
010_0483_b_16L入方丈撫而印之留數年栗峯移金
010_0483_b_17L剛山摩訶衍師亦從焉時有設供觀音
010_0483_b_18L于普德窟師往作淨供每日念大悲呪
010_0483_b_19L百八遍洗米百八遍禮拜百八遍
010_0483_b_20L百日夜夢白衣大師摩頂授記曰
010_0483_b_21L叅是什麽話師夢覺豁然大悟如飮
010_0483_b_22L甘露以竹篦打床作頌云咄咄西來
010_0483_b_23L碧眼胡直指面前眼裏人何必九年窮
010_0483_b_24L妙旨花灼鳥喃眞法身自此凡諸經文

010_0483_c_01L화악 지탁 대사를 찾아가 참배하니 화악이 큰 그릇으로 여기고 대소의 경문을 입으로, 마음으로 전수하니 스님이 이로부터 날로 더욱 심오하게 되었다. 화악 대사가 게송으로 법을 전하였다.

赤手單刀客         빈손에 칼 한 자루 지닌 나그네
物無可與傳         물건을 전해 줄 수 없구나.
無上寶王印         위없는 보배왕의 심인은
眞子已能傳         참자식이 이미 전했나니.

이에 스님은 호남으로 가서 서봉 두옥瑞鳳斗玉 대사를 참배하고 3년을 머물러 솔잎만을 먹으며 적적寂寂하게 지관止觀을 수행하고 대장경을 보면서 성성惺惺하게 정혜定慧를 닦았다. 하루는 서봉 대사가 스님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목우가를 지었는데 그대가 화답하겠는가.” 하니, 스님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저는 스승님이 있습니다.” 하였다. 다시 1년을 거처하다 하직하여 떠나려 하니 서봉이 게송을 지어 찬탄하였다. 스님은 이때부터 여러 이름 있는 종사를 참배하고 여쭈어 모두 종지를 얻고 인가를 받았다. 다시 율봉 대사를 참배하니 크게 기뻐하며 법의와 불자를 주었다. 또 화악 대사를 알현하니 기뻐하며 말하기를 “오늘에야 발을 뻗고 자겠구나.” 하였다.
그때에 큰 흉년을 만나 형이 죽자 이에 어머니를 받들어 장경니사長慶尼寺에 모시었다. 스님은 마하연에 머물며 매일 발우의 밥을 이고 가서 어머니를 공양했으니 거리가 20리였다. 하루는 사나운 눈보라가 몰아쳐 얼음이 두껍게 얼어 길이 미끄러웠다. 스님이 만폭동 위에서 실족하여 넘어졌으나 발우의 밥은 무사하였으니 사람들이 효성이 감응한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하루는 율봉이 스님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일상의 전체 기용機用을 보면 가만히 불조와 합치되니 어찌 산에 주석하지 않는가.” 하니, 스님이 말하기를 “제가 어떤 사람이라고 감히 산에 주석하겠습니까.” 하였다. 율봉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우리 불교의 본뜻은 교화의 인연을 유통시키는 것이 귀하니 어찌 빈산에서 부러진 수레 굴대를 지키며 초목과 함께 썩겠는가. 고해에 자비의 배를 띄워 인천人天을 피안으로 교화하는 것이 좋으니 가서 공경히 행하라.” 하였다. 스님이 이에 하직인사를 하고 수업사受業師인 성찬 스님을 뵈니 성찬이 기뻐하여 말하기를

010_0483_c_01L奧意不聽而通焉往叅華嶽知濯大師
010_0483_c_02L華嶽深器之大小經文口授心傳
010_0483_c_03L自此日益深奧華嶽以偈傳法云赤手
010_0483_c_04L單刀客物無可與傳無上寶王印
010_0483_c_05L子已能傳於是師徃湖南叅瑞鳳斗玉
010_0483_c_06L大師留三年餌松葉而寂寂止觀
010_0483_c_07L大藏而惺惺定慧一日瑞鳳謂師曰
010_0483_c_08L作牧牛歌子能和乎師答曰某甲自
010_0483_c_09L有師在復居一年將辭行瑞鳳作頌
010_0483_c_10L讃嘆師自是凡諸名現宗師無不咨叅
010_0483_c_11L皆得宗旨俱蒙印可再叅栗峯大師
010_0483_c_12L大喜授以法衣拂子又覲華嶽大師
010_0483_c_13L老僧今日展脚睡矣時當大饑
010_0483_c_14L迺奉母安于長慶尼寺師住摩訶
010_0483_c_15L每日戴鉢飯往饗焉相距二十里
010_0483_c_16L一日饕風虐雪大作氷堅路滑
010_0483_c_17L於萬瀑洞上失足仆之而鉢飯無事
010_0483_c_18L人稱孝感所致也一日栗峯謂師曰
010_0483_c_19L子日用全機暗與佛祖相合何不住山
010_0483_c_20L師曰某甲何人敢言住山栗峯曰
010_0483_c_21L不然吾佛本意貴在流通化緣豈可
010_0483_c_22L守折軸於空山與草木俱腐便可駕慈
010_0483_c_23L舟於苦海化人天於彼岸徃欽哉
010_0483_c_24L於是禮辭徃覲受業師讃長老讃喜曰

010_0484_a_01L“예전에 내가 안목이 없어서 그대를 소금수레168)에 곤궁하게 하였는데 어찌 이제 천리의 준족을 펼칠 줄 알았으랴. 미래의 중생을 제도하기 바라노라.”
이로부터 도인의 명성이 널리 퍼져 보문사普聞寺에서 개당開堂하니 대궐에서 향촉香燭을 내리고 『능엄경』을 하사하여 보내 주었다. 사부대중이 운집하자 스님이 향을 피워 임금을 축원하고 법좌에 올라 불자를 세우고 침묵하셨다. 이윽고 대중을 불러 이르기를 “이 이치는 삼세의 제불도 말해 미치지 못하고 역대 조사도 전할 수 없다. 한 걸음 나아가면 하늘 가득 가시덤불이요, 한 걸음 물러나면 만 길 깊은 구덩이니 헤아릴 수 있겠으며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만약 깨우쳐 안다면 문득 부처·조사와 함께 손을 잡고 걸어 갈 것이요, 국은과 불은을 일시에 갚을 것이지만 만일 깨닫지 못한다면 산승이 곡진히 그대들을 위해 설파하리라.” 하고 일할을 외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니 사부대중이 일시에 크게 깨우쳐 미증유의 법을 얻었다.
이로부터 인연을 따라 설법하여 팔도의 명산의 사찰을 돌면서 쉬지 않았다. 혹은 여름결제 혹은 겨울결제를 하기도 하고 혹은 행각하면서 교화하고 혹은 법석을 펴기도 하였다. 정미년에 봉은사에서 지내실 때 사부대중이 운집하였는데 서울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남녀 신도들이 주야로 왕래하자 스님이 괴롭게 여기고 밤을 틈타 떠나서 범어사로 들어가셨다. 이 해 겨울 문인에게 이르기를 “보개산 석대암은 선사께서 다년간 도를 강론하신 곳이요, 내가 입문한 절인데 근래에 매우 퇴락해졌으니 어찌 무심할 수 있겠는가. 너희는 속히 수리하도록 하라. 내 장차 내년에 돌아가리라.” 하고 게송을 지었다.

這邊那邊應用物       이곳저곳에 응용하는 한 물건
明如日月黑如柒       밝기는 일월 같고 어둡기는 옻칠 같네.
有時高踞毗盧頂       때로 비로 정상에 우뚝 앉아 있다가
忽然懶臥生死岸       홀연히 생사 언덕에 게을리 누웠네.

무신년 봄에 걸음을 재촉하여 운악산雲岳山 현등사懸燈寺로 가서 10여 일을 머물렀다. 28일 새벽에 이르러 상당설법을 마치고 문도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잘 들어라. 나는 열반하여 불사를 마칠 것이다.”라고 하니 이 때 스님이 병을 느끼신 지 3일이었다.

010_0484_a_01L昔年吾無靑眼困子于鹽車豈知今展
010_0484_a_02L足千里願度來世自是道譽騰播
010_0484_a_03L堂于普聞寺自大內降香燭賜送楞
010_0484_a_04L嚴經四衆雲集師拈香祝聖罷昇坐
010_0484_a_05L竪拂子良久召大衆云這介三世諸
010_0484_a_06L佛說不及歷代祖師傳不得進一步則
010_0484_a_07L漫天荆棘退一步則萬丈深坑思量得
010_0484_a_08L言說得麽若能會得便與佛祖
010_0484_a_09L手共行國恩佛恩一時報得若也不
010_0484_a_10L山僧曲爲諸人說破喝一喝下坐
010_0484_a_11L四衆一時大悟得未曾有自是隨緣說
010_0484_a_12L八道名山寺刹循環不息或結夏
010_0484_a_13L結冬或行化演坐至丁未坐于奉恩
010_0484_a_14L四衆雲集京城密邇故士女晝夜
010_0484_a_15L絡繹往來師苦之乘夜遁去入梵魚
010_0484_a_16L是歲冬謂門人曰寶盖山石臺庵
010_0484_a_17L是先師多年講道之處亦吾入道之寺
010_0484_a_18L近甚頹圮烏得無心汝速修葺明春
010_0484_a_19L吾將歸矣頌曰這邊那邊應用物明如
010_0484_a_20L日月黑如㓒有時高踞毗盧頂忽然懶
010_0484_a_21L臥生死岸戊申春促駕至雲岳山懸燈
010_0484_a_22L留十餘日至二十八日晨上堂說
010_0484_a_23L法已謂門徒曰汝等諦聽余作涅槃
010_0484_a_24L佛事畢矣是時師感微疾三日也僧問

010_0484_b_01L한 중이 묻기를 “스님께서 이제 열반에 들려고 하시니 불멸의 이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스님이 발을 오므려 보이시는데 곁의 중이 잡담을 하자 스님께서 명하기를 “산문 밖으로 쫓아내라.” 하시고 또 이르기를 “옛사람이 이르기를 ‘대명大明(해)도 긴 밤의 어두움을 깨뜨리지 못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도 돌아가신 후엔 자식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하니 너희들은 노력하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후회하지 말라.” 하였다. 말을 마치시고 고요히 떠나시니 때는 사시巳時169)로 태양이 빛을 잃었고 새와 짐승이 슬피 울었다. 안색은 변하지 않았고 몸은 황금과 같아 승상에 기대어 앉았다. 5일 만에 다비茶毗를 하니 정골頂骨이 타지 않고 색이 옥설과 같아 침실에 봉안하였다. 8월에 탑을 절 북쪽 봉우리 아래 세웠다.
스님의 세수는 63이요, 법랍은 48이었다. 학인을 제접하고 중생을 이롭게 한 지 34년이요, 장좌불와를 한 지 29년이었다. 『화엄경』을 강론하여 마친 것이 55회요, 『법화』, 『열반』 등의 경전을 무수히 강론하였다. 아미산으로 행차할 때는 백호가 몸을 숨겨 눈길을 모셔 따랐고, 천마산의 법회에서는 황구가 당에 올라 법을 듣고 변화하여 떠났다. 혹은 꿈에서 불조와 조용히 법을 논하고, 혹은 꿈에서 황금 종을 치니 소리가 대천세계를 울렸으며, 혹은 꿈에서 법왕의 심인을 받고 관정灌頂하였으며, 혹은 꿈에서 백우거白牛車를 타고 유희하기도 하며, 혹은 꿈에서 불광佛光이 얼굴에 비치기도 하며, 혹은 꿈에서 연화蓮花가 음장陰藏에 피기도 하는 등 이와 같은 신이함을 다 기록할 수 없다.
『팔양경八陽經』과 염송 1,700공안·『화엄』·『법화』·『열반경』 등의 품목에 주를 달았는데 뜻이 매우 심오하였다. 사람이 혹 법을 물으면 불법의 뜻을 곡진하게 설하여 간절하게 깨우쳐 주니 오는 자마다 불법의 이로움을 얻고 물러나서 서로 말하기를 “직접 뵙는 것이 귀로 듣는 것보다 백 배나 나으니 참으로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다.”고 하였다. 부모와 스승의 위패를 봉안하고 조석으로 공양하며 삶을 마쳤으니 자비의 마음과 공손하고 부지런한 행실이 천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010_0484_b_01L師今欲化不滅安在師蹵脚而示之
010_0484_b_02L傍僧有雜話師勑之曰門外出送
010_0484_b_03L古人云大明不能破長夜之昏慈母
010_0484_b_04L不能保身後之子汝等努力勤修勿取
010_0484_b_05L後悔言已寂然而逝時當巳時也
010_0484_b_06L無光色鳥獸悲鳴顏色不變身如黃
010_0484_b_07L倚繩坐五日茶毗頂骨不燒色如
010_0484_b_08L珂雪安于寢室八月樹塔于寺之北峯
010_0484_b_09L師俗壽六十三法臘四十八接物
010_0484_b_10L利生三十四年長坐不臥二十九年
010_0484_b_11L華嚴經終篇五十五廻也講法華涅槃
010_0484_b_12L等經不知幾許也峩嵋之行白虎隱
010_0484_b_13L侍行於雪路天摩之會黃狗昇堂
010_0484_b_14L聽法而化去或夢與佛祖從容論法
010_0484_b_15L或夢擊金皷聲振大千或夢受法王印
010_0484_b_16L而灌頂或夢乘白牛車而遊戱或夢佛
010_0484_b_17L光射于面門或夢蓮花發于陰藏如是
010_0484_b_18L等神異亦不可盡記也註釋八陽經拈
010_0484_b_19L頌千七百公案及華嚴法華涅槃經等品
010_0484_b_20L義極深奧人或問法曲盡法意
010_0484_b_21L勤恳恳而諭之故來者咸得法利退
010_0484_b_22L相謂曰面謁百倍于耳聞眞一佛出世
010_0484_b_23L奉父母及師傅位牌朝夕供饗終師之
010_0484_b_24L慈悲之心恭勤之行出於天性

010_0484_c_01L헐벗은 자를 보면 옷을 벗어 입혀 주고 굶주린 자를 보면 먹을 것을 주셨다.
문인이 그린 영정을 보고 주장자로 머리를 가리키며 이르시기를 “그대가 나인가, 내가 그대인가. 나의 색상도 본래 허망한 것이거늘 하물며 색상과 유사한 것이랴. 쯧쯧. 양염陽焰과 공화空華로다.” 하였다. 옛 충신열사가 절의를 세워 목숨을 버린 것을 보면 반드시 강개하며 눈물을 흘리시고 말하기를 “남아가 세상에 살아가면서 마땅히 살신성인해야지 의를 저버리고 구차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계행이 청정하면 때 묻은 옷과 더러운 모습의 비천한 자라도 존경할 만하고, 만약 행업이 청정하지 못하다면 비록 비단옷에 수레를 타더라도 귀할 것이 없다.” 하였다. 또 문인들을 훈계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비록 군친君親을 여의고 출가하였으나 군친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하였고, 게으른 중을 보면 반드시 위의를 갖추어 탄식하고 말하기를 “너희는 군친을 받들지도 않고 부역의 괴로움도 없으며 처자에게 매이지도 않고 농사의 괴로움도 없으니 만일 깨닫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시주물만 먹다가 어느 날 과보가 차게 되면 염라노자閻羅老子의 철봉鐵棒은 말할 것도 없고 장차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 군친을 뵐 것인가.” 하시니, 무릇 사람을 훈도하는 정성이 이와 같았다.
아! 스님이 만약 신라·고려시대에 계셨다면 반드시 왕사·국사와 같이 존귀하게 되어 세상에 빛났을 것이나 또한 이도 스님의 본뜻이 아니다. 만약 국가가 어렵고 위태로운 시절을 만났다면 반드시 절의를 세워 임금님께 보답하여 청허淸虛의 제자와 함께하였을 것이니 어찌 다만 불법을 널리 통달하고 계율에 엄정한 것만을 칭송했겠는가.
문도 수백 명 중 선사의 행업을 이을 만한 사람이 없으니 참으로 비통하다. 나는 선사의 덕행이 사라져서 알려지지 않을까 두려워 만분지일이나마 채집하여 삼가 기록한다.

010_0484_c_01L裸者脫衣衣之見餓者推食食之
010_0484_c_02L門人畫影幀以主杖占頭云爾是我耶
010_0484_c_03L我是爾耶我且色相本是虛忘況似乎
010_0484_c_04L色相者乎陽焰空華聞古忠臣烈士
010_0484_c_05L立節捨生處則必慷慨流涕曰男兒生
010_0484_c_06L當殺身而成仁不可背義而苟生
010_0484_c_07L又曰戒行淸淨雖垢衣土面賤隷可尊
010_0484_c_08L可敬若行業不淨雖錦衣乘轎不足
010_0484_c_09L貴也又誡門人曰汝等雖離君親出家
010_0484_c_10L不可忘君親之恩也見僧懈怠必歛容
010_0484_c_11L而嘆曰汝等無君親之奉征役之苦
010_0484_c_12L妻子之係稼穡之艱若不省悟而坐
010_0484_c_13L食施物一朝報滿休論閻家老子鐵棒
010_0484_c_14L將何面目歸見君親乎凡誨人之誠
010_0484_c_15L類皆如是師若在羅麗之時必不
010_0484_c_16L免王師國師之尊而誇耀於世然亦非
010_0484_c_17L師意也若當國家板蕩之時必能立節
010_0484_c_18L報主與淸虛門徒同矣豈徒以佛法之
010_0484_c_19L博達戒律之精嚴稱而已哉門徒數
010_0484_c_20L無一人堪係先師行業者甚可悲慟
010_0484_c_21L余恐先師之德行泯沒無聞略採
010_0484_c_22L萬一而謹記

010_0484_c_23L
1)三峯集附錄終

010_0484_c_24L「三峯集附錄終」六字底本在刊記後編者移
010_0484_c_25L置於此

010_0485_a_01L
청찬거사 이유길 교정
자음산인 문재규 서
기사(1869) 중하 양주 천마산 보광사 간인
수법受法
보월 혜소, 태월 지총, 몽오 몽찬, 호월 영선, 보암 법징, 한파 정묵, 원봉 지심, 호운 전우, 천담 법천, 청월 묘언, 수월 묘행, 선월 신영, 월암 봉우, 법운 묘각, 연봉 청식, 보성 정안, 예봉 학윤, 낙암 성오, 인담 지연, 신월, 청담 의현, 금담 찬민, 남명
수선受禪
송암 대원, 월하 세원, 무공 지현, 덕월 정유, 눌암 정찬, 모운 정선, 금해 수린, 몽산 성첨, 침허, 호월 성의, 제봉 민설, 일암 양연, 경월 보함, 월파 지유, 효암 윤찰, 금담 덕원, 인월 원민, 대화 행순, 묵암 각해, 뇌봉 혜우, 수좌 수겁, 한운 영흡, 동곡 의석, 임성 후심, 응월, 수봉 법총, 용곡 사문, 보응, 중봉 혜호, 법우-이외에 많은 사람을 알지 못하여 기록하지 못함.
원근문정遠近門庭
혜암 성혜, 응허 도흡, 은봉 신경, 인허 유성, 연월 희찬, 용암 전우, 혜봉 최성, 남명 해문, 충허 혜묵, 연봉 도희, 응암 지원, 혼허 양찬, 명허 묘진, 상운 정한, 남파 취엽, 혼성 치운, 혼성 치선, 영제 법선, 동월 처전, 완성 태현, 금하 여옥, 화운 취상, 월허 우관,

010_0485_a_01L
淸羼居士李裕吉校正

010_0485_a_02L紫陰散人文載圭書

010_0485_a_03L己巳仲夏楊州天摩山寶光社刊印

010_0485_a_04L
010_0485_a_05L
受法

010_0485_a_06L
寶月慧昭太月智聰夢悟夢讃顥月英
010_0485_a_07L寶庵法澄漢波淨默圓峯智心顥雲
010_0485_a_08L典愚天潭法天淨月妙彥水月妙行
010_0485_a_09L月信永月庵奉佑法雲妙覺蓮峯淸湜
010_0485_a_10L寶城定安禮峯學閏洛庵性悟印潭智
010_0485_a_11L信月淸潭義賢錦潭賛敏南溟

010_0485_a_12L
受禪

010_0485_a_13L
松巖大遠月霞世元無空知玄德月定
010_0485_a_14L訥庵政燦慕雲珽璇錦海修璘夢山
010_0485_a_15L性添枕虗顥月性誼霽峯敏說一庵良
010_0485_a_16L鏡月普咸月坡智宥孝庵允察錦潭
010_0485_a_17L德爰印月圓旻待華幸順默巖覺海
010_0485_a_18L峯惠雨首座修劫漢雲永洽東谷宜錫
010_0485_a_19L任性厚心應月秀峯法聰龍谷師文
010_0485_a_20L中峯慧皓法宇此外許多
下知不錄

010_0485_a_21L
遠近門庭

010_0485_a_22L
慧庵性慧應虛燾洽隱峯信瓊印虗惟
010_0485_a_23L烟月熈粲庸庵典愚慧峯最性南溟
010_0485_a_24L海紋冲虗惠默蓮峯道希應庵智圓
010_0485_a_25L虗良讃明虗妙眞祥雲定閑南坡就曄
010_0485_a_26L混性致雲混性治善泳濟法善桐月處
010_0485_a_27L玩性太玄錦荷呂玉華雲就尙月虗

010_0485_b_01L경허 정엽, 도봉 도하, 호봉 응규, 우담, 보경 상순, 영운 치청, 용곡 덕윤, 운곡 성함, 명암 묘선, 철허 계함, 서봉 보성, 순암 부혜, 영봉 태유, 덕월 상념, 추공 한붕, 경암 도겸, 한봉 법률, 해운 천우, 덕산 영진, 화운 성기, 덕송 두첨, 송악, 의봉 자경, 징월 채관, 서은 응인, 고산 관식, 보암 재회, 완성 보효, 우담, 정담 도완, 법은, 성은 의홍, 보은 쾌현, 고담 행문, 계산 장헌, 하성 법열, 침계 민열, 철경 영관, 취봉 유철, 서운 영선, 봉성 서린, 경선 응석, 우룡 태주, 춘곡 준향, 서암 성윤, 포응 계성, 연허 도윤, 월명, 용해 윤권, 충흔, 보윤, 시현, 정오, 선찰, 태인, 의철, 법진, 영수, 영전, 취호, 보인, 니묘첨, 묘보, 정혜, 처한, 정환, 부함
신녀信女
남씨 도광화, 이씨 비운화, 조씨 혜념화, 안씨 대경화, 김씨 사자화, 전씨 전단화, 김씨 대희심, 이씨 호담화, 이씨 보당화, 이씨 보경화, 우씨 대심화, 윤씨 단웅화, 임씨, 최씨 구품화, 김씨 왕생화, 김씨 자성화, 전씨 대도화, 전씨 무상화, 어씨 묘각심, 장씨 광명심, 김씨
통도사사중通度寺寺中
본사 노덕 : 용봉 성훈 선백 : 금호 달성·응운

010_0485_b_01L祐寛檠虗定曄道峯道河虎峯應奎
010_0485_b_02L寶鏡尙淳永雲致淸龍谷德允雲谷
010_0485_b_03L性咸明庵妙宣徹虗戒咸瑞峯普性
010_0485_b_04L庵富慧永峯太宥德月尙念秋空翰鵬
010_0485_b_05L鏡庵道謙漢峯法律海雲天雨德山永
010_0485_b_06L華雲性璣德松斗沾松岳義峯自警
010_0485_b_07L澄月彩寛西隱應仁杲山寛植普庵再
010_0485_b_08L玩性普曉藕潭淨潭道玩法隱
010_0485_b_09L隱宜洪普隱快玄古潭幸文溪山壯憲
010_0485_b_10L河城法悅枕溪敏悅鐵鏡永寛翠峯宥
010_0485_b_11L瑞雲永宣鳳城瑞麟慶船應釋雨龍
010_0485_b_12L太注春谷俊逈瑞巖性允布凝啓性
010_0485_b_13L虗導胤月溟龍海倫權忠忻普允
010_0485_b_14L定悟善察泰仁宜喆法珍永守
010_0485_b_15L永典就昊寶印尼妙瞻妙寶正惠
010_0485_b_16L定煥富含

010_0485_b_17L
信女

010_0485_b_18L
南氏道光華李氏悲雲華趙氏慧念華
010_0485_b_19L安氏大敬華金氏獅子華田氏栴檀華
010_0485_b_20L金氏大喜心李氏顥潭華李氏寶幢華
010_0485_b_21L李氏寶鏡華禹氏大心華尹氏端雄華
010_0485_b_22L林氏崔氏九品華金氏徃生華金氏自
010_0485_b_23L性華全氏大道華全氏無上華魚氏妙
010_0485_b_24L覺心張氏光明心金氏

010_0485_b_25L
通度寺寺中

010_0485_b_26L
本社老德龍峯性訓禪伯錦湖達性
010_0485_b_27L應運

010_0485_c_01L조전 교증 : 환은 윤정
 동역 : 고경 성활
 유사 : 신월 장관·두연·위현
 별좌 : 묘흡
 공사 : 태화
 내왕 : 김돌이·이흥연
 담시 : 마흥이
삼강
 주장 : 정운
 서기 : 응삼
 장무 : 봉기
 시자 : 원길·복동

010_0485_c_01L
祖殿校證幻隱允定

010_0485_c_02L蕫役古鏡性闊

010_0485_c_03L有司信月莊寛斗演謂賢

010_0485_c_04L別座妙洽供司太化

010_0485_c_05L來徃金乭伊李興連擔柴馬興伊

010_0485_c_06L
三綱

010_0485_c_07L
主丈正雲書記應三掌務奉琪

010_0485_c_08L侍者完吉福童
  1. 160)승당升堂 : 학문이 점점 깊어짐을 비유하는 말.
  2. 161)존존存存 : 잘 보존함. 『주역』 「계사전繫辭傳」 상上의 “부여받은 성을 보존하고 보존함이 도의의 문이다.(成性存存。 道義之門。)”에서 나온 말.
  3. 162)가라迦羅 : ⓢkālāguru. 흑黑이라 번역. 향료의 일종.
  4. 163)중봉 조헌重峯趙憲 : 1544~1592. 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영규 등 승병과 합세해 청주를 탈환하였다. 이어 전라도로 향하는 왜군을 막기 위해 금산전투에서 분전하다가 의병들과 함께 모두 전사하였다. 뛰어난 학자로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지지하여 이이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켰다.
  5. 164)가등청정加藤淸正 : 가토 기요마사. 1562~1611. 일본의 무장武將.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 개의 주력부대 중 하나를 이끌고 함경도 방면으로 출병하였다.
  6. 165)관백關伯 : 천황을 보좌하며 정무를 총괄하는 관직.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는 조정대신 중에서 사실상 최고위직이었다.
  7. 166)목련目連 : 목건련目犍連. ⓢMaudgalyāyana. 부처님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 불교에 귀의한 뒤에는 여러 고장으로 다니면서 부처님의 교화를 펼쳤다. 신통 제일. 전설에 의하면 목련존자目連尊者가 아귀도에서 먹지 못하는 고통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처에게 그 방법을 묻고 어머니를 구했다고 한다.
  8. 167)도리천忉利天 : ⓢTrāyastriśa. 욕계 6천의 제2천. 남섬부주南贍部洲 위에 8만 유순 되는 수미산 꼭대기에 있다. 중앙에 선견성善見城이라는 4면이 8만 유순씩 되는 큰 성이 있고, 이 성 안에 제석천帝釋天이 있고 사방에는 각기 8성이 있는데 그 권속 되는 하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사방 8성인 32성에 선견성을 더하여 33이 된다. 부처님이 일찍이 하늘에 올라가서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하여 석 달 동안 설법하고, 3도道의 보계寶階를 타고 승가시국에 내려왔다고 전한다.
  9. 168)소금수레 : 천리마가 소금수레를 메고 비탈길을 올라가다가 백락伯樂(말의 명인)을 만나서 슬피 울었다고 한다. 뛰어난 재주를 지닌 사람이 자신의 재주를 펼치지 못함을 뜻함.
  10. 169)사시巳時 : 오전 9시~11시.
  1. 1)此跋文。底本在卷頭序文之後。編者移置於此。
  2. 1)「三峯集附錄終」六字底本在刊記後。編者移置於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