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 / 殺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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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살활변殺活辨53)
1. 살활의 의미
1) 살활과 체용體用
살殺이라는 말은 본체(體)에 의지하여 세웠고, 활活이라는 말은 작용(用)에 의지하여 세웠다. 대체로 진실 그대로인 공空이라는 본체에는 갖가지 망상이 이를 수 없고 설령 이르는 경우가 있더라도 터럭에 불이 붙으면 곧바로 타듯이 사라질 것이다. 이는 본체에 지혜가 있어서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육조는 “혜慧는 지智의 본체요, 지智는 혜慧의 작용이다. 본체에 혜慧가 있다면 작용인 지智가 어리석지 않을 것이다.”54)라고 말했다.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그 자리에 번뇌가 없는 성스러운 공덕을 본래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경에서 “생멸의 작용이 다하면 고요하게 관조하는 빛이 눈앞에 나타나리라.”55)라고 말한 것과 같다. 생멸의 작용이 그친 경계본체는 살殺이고,

010_0828_c_18L殺活

010_0828_c_19L
殺之言依體而立活之言依用而立
010_0828_c_20L葢以如實空體之中諸妄不能著到
010_0828_c_21L有到著如毛著火即便燒空是則體
010_0828_c_22L有慧而妄不生也六祖曰慧是知 [41] 智是慧
體若有慧用智不愚

010_0828_c_23L妄不生處本自具足無漏聖功德如經
010_0828_c_24L所云生滅 [42] 寂照現前生滅已 [43]

010_0829_a_01L고요하게 관조하는 빛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작용은 활活이다.조사는 말했다. “텅 비고 고요한 본체에 본래의 지혜로 아는 작용이 원래 있다.”56) 이상은 다만 법의 본체를 기준으로 하여 살과 활을 말했을 뿐이다.
2) 살활과 기연機緣
만약 말하고 듣는 관계(機緣)를 기준으로 살과 활을 말한다면 『열반경』의 다음 말과 같다. “나의 교의는 마치 독 바른 북(塗毒鼓)을 한 번 쳐서 먼 곳이나 가까운 곳에서나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누구나 상하는 것과 같다.”57)진실 그대로의 참된 법을 들은 사람은 심心·의意·식識(의 번뇌)이 모두 죽는다.
또한 각범 혜홍覺範慧洪의 『임제종지』에 “이 삼현·삼요의 법문은 모든 중생이 허우적대는 뜨거운 번뇌의 바다 가운데 던져진 시원하고 고요한 법의 깃발인 셈이다. 이 깃발을 세운 취지는 마치 도독고塗毒鼓를 두드려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만드는 이치와 같다.”58)라고 한다. 이는 매달린 절벽에서 잡은 손을 뿌리쳐 놓고 스스로 수긍하며 알아차릴59) 결정적인 기회이다.
또한 문수사리文殊師利 보살이 약초 캐는 일로 선재동자善財童子에게 “약이 되지 않는 풀을 캐어 오라.”고 한 일화가 있다.60)

010_0829_a_01L寂照現前用爲活祖師云空寂體上
自有本智能知

010_0829_a_02L直約法體而言殺活若約說聽機緣而
010_0829_a_03L言殺活如涅槃經云吾敎義如塗毒皷
010_0829_a_04L一擊遠近聞者皆喪聞如實之眞法者
心意識皆死
又覺
010_0829_a_05L範臨濟宗旨云此三玄三要之法門
010_0829_a_06L一切衆生熱惱海中淸凉寂滅法幢
010_0829_a_07L幢之建譬如塗毒鼓撾之聞者皆死
010_0829_a_08L是則懸崖撒手自肯承當之時節也
010_0829_a_09L文殊師利因採藥謂善財曰不是藥者
010_0829_a_10L採將來此如祖師所云不是心不是佛
010_0829_a_11L不是物之例也不是藥者即是不是物
010_0829_a_12L亦即是不是佛又即是不是心者也
010_0829_a_13L四不是之空體名不能安相不得著故
010_0829_a_14L但以不是强言之智者即其不是
010_0829_a_15L知其所是也故善財對云山中無不是
010_0829_a_16L藥者知答也旣知焉則不妨喚作是心
010_0829_a_17L是佛是物是藥故文殊拈起善財所呈
010_0829_a_18L是藥者而示衆曰此藥亦能殺人亦能
010_0829_a_19L活人人能服此四不是之靈丹心意識
010_0829_a_20L蘊處界一時殂落即其心意識殂落處
010_0829_a_21L便是淨法身活現時此其是藥之所以
010_0829_a_22L亦能殺人亦能活人者也文殊耑午令善財
採藥曰不是藥者
010_0829_a_23L採將來善財還告曰山中無不是藥者文殊曰
藥者採來善財於足間采呈一莖艸文殊接得示衆
60) 이는 조사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다’61)라고 한 예와 같다. 약이 되지 않는 풀이란 중생이 아닌 것이고 또한 부처도 아닌 것이며 또 마음도 아닌 것이다. 이렇게 네 가지 ‘아니다’라는 공空이라는 본체에는 어떤 이름도 붙일 수 없고 어떤 형상도 붙이지 못하기 때문에 ‘아니다’라는 부정어로써 억지로 말한 것일 뿐이다. 지혜로운 자라면 ‘아니다’라는 말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렇다’고 긍정하는 근거도 알 것이다. 그러므로 선재가 “산속에 약이 되지 않는 풀이란 없습니다.”라고 한 대답은 진정 대답할 줄 아는 말이었다. 알고 있는 이상 ‘마음이고 부처이며 중생이고 약이 된다’고 불러도 무방하다. 이 때문에 문수는 선재가 약이라면서 바친 풀을 집어 들고서 대중에게 “이 약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라고 한 것이다.
누구든 이 네 가지 ‘아니다’라는 신령한 단약丹藥을 복용한다면 심心·의意·식識과 오온五蘊·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를 한꺼번에 쓰러뜨릴 것이다. 심·의·식을 쓰러뜨린 바로 그때가 청정한 법신이 살아서 나타나는 순간이다. 그 약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문수가 단오62) 때 선재에게 약을 캐어 오라고 시키면서 “약이 되지 않는 풀을 캐어오라.”고 하였다. 선재가 돌아와서 “산속에 약이 되지 않는 풀이란 없습니다.”라고 하자 문수는 “그럼 약이 되는 풀을 캐어 오라.”고 하였다. 선재가 다리 사이에서 아무 풀이나 한 줄기 뽑아 바치자 문수가 그것을 손에 쥐고 대중에게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약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2. 살활과 지혜-살인도·활인검
또한 도를 닦고 번뇌를 끊는다는 관점에서 말하면, 혜慧로 번뇌를 끊는 작용을 가리켜 살殺이라 하고 지智로 진실을 관조하는 작용을 가리켜 활活이라 한다. 번뇌라는 도적을 죽인다는 뜻에서 아라한阿羅漢을 살적殺賊63)이라 한역하는 것과 같다. 무명無明의 도적을 베어 죽이고 법신法身의 부처를 살아 있는 그대로 나타나게 하니, 이는 금강반야金剛般若의 신통력이 아님이 없다. 조사는 말했다. “이는 대신주요 대명주요 무상주이니 모든 괴로움을 제거하고 진실로 거짓이 없다.64) 이를 가리켜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는 다라니의 창고(無盡陀羅尼藏)라 하고, 또한 예리하게 번득이는 보검(靈鋒寶劍)이라고도 한다.”65) 한산寒山의 시에는 “항상 지혜의 검을 쥐고서, 번뇌라는 도적을 물리치고자 한다.”66)고 하였고, 『화엄경』 「여래출현품」에는 “성문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큰 법의 비를 내리니, 이것을 지혜의 칼로써 모든 번뇌의 원적怨賊을 베어 버린다고 한다.”67)라고 하였다.
옛사람은 여기에 검劔 자를 붙여서 “이 검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68)라고 하였으니, 수행자의 끊어 없애는 지혜를 비유한 말이다. 영가 현각永嘉玄覺은 “반야의 칼날이여, 금강왕金剛王의 불꽃과 같이 거세구나.”69)라고 하였으며, 임제는 “지혜의 칼 뽑았지만 베어 낼 것 하나도 없다.”라고 하였다. 임제가 대중에게 말했다. “누구라도 도를 행하고자 하면 도는 행하여지지 않고, 온갖 종류의 삿된 경계가 다투어 일어나리라. 지혜의 칼 뽑았지만 베어 낼 것 하나도 없으니, 차별의 현상(明頭) 드러나기도 전에 평등한 이치(暗頭)70) 드러난다네.”
칼자루가 손아귀에 들려 있는 이 순간에 대나무에 붙어 사는 귀신71)을 베어 버리고 하늘까지 뻗친 칡넝쿨을 잘라내어라. 사람도 죽이고 귀신도 죽이며,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며, 자기 몸과 더불어 마음까지 함께 죽여야 한다. 마땅히 부처에 집착하지 말고 구하며 조사에 집착하지 말고 구하라. 만일 집착하면 부처와 조사가 다시 원적怨賊이 될 것이니72) 몸과 마음에 애착하는 것도 그렇다. 마음은 의식意識이다.
이상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한 말의 근거이니 사람을 죽이는 칼(殺人刀)이라 할 만하다.
우리가 본래 부처이지만 부처가 되지 못하는 까닭은 정식情識의 분별이 본성의 바다(性海)에서 물결치며 치솟고, 문자라는 칡넝쿨이 마음밭을 얽어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분간하고 귀신으로 가르며 부처를 구하고 조사에 집착하면서 자신이 뛰어나다는 진실을 믿지 않고 기꺼이 하열한 인간이 되고자 하다가 한번 휘두른 지혜의 검에 남김없이 모조리 죽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서 갠지스 강의 모래알과 같이 무수한 성덕聖德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묘용妙用을 한꺼번에 갖추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르면 사람이나 귀신이나 조사나 부처나 원래 나에게 달려 있으며 진실하고 변함없는 한 집안의 존재들로서 동일한 본체이면서 다른 작용은 없다. 이러면 사람도 안착하고 귀신도 안착하며 부처도 안착하고 조사도 안착한다.
이상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고 한 말의 근거이니

010_0829_b_01L此藥亦能殺
亦能活人
又以修斷而言之慧能
010_0829_b_02L斷惑之謂殺智能照眞之謂活類如阿
010_0829_b_03L羅漢此飜爲殺賊斷殺無明賊活現
010_0829_b_04L法身佛此莫非金剛般若之神力也

010_0829_b_05L是大神呪大明呪无上呪 [44] 能除一切苦眞實不虛
是名無盡陀羅尼藏亦名靈鋒寶劔寒山詩云常持
010_0829_b_06L智慧劔擬破煩惱賊華嚴經如來現相品 [45]
求聲聞衆生雨大法 [46] 名以智劔斷一切煩惱怨

010_0829_b_07L人於此安着劔字曰此劔亦能殺人
010_0829_b_08L亦能活人盖喩行人能斷之智慧也
010_0829_b_09L嘉曰般若鋒兮金剛銛 [47] 臨濟曰智劔
010_0829_b_10L出來無一物臨濟示衆曰若人行道道不行萬般
邪境競頭生智劒出來無一物明頭
010_0829_b_11L未現暗
頭明
正當欛柄在手斬斷竹木精靈
010_0829_b_12L截斷彌天葛藤人也殺鬼也殺佛也
010_0829_b_13L祖也殺并與自身和心同殺宜乎不
着佛求
010_0829_b_14L不著祖求若著之則佛祖還爲怨
身心愛著則亦然心則意識也
此其所以亦
010_0829_b_15L能殺人處便可名殺人刀也我本佛也
010_0829_b_16L所以不得爲佛者以其精 [48] 識之分別
010_0829_b_17L騰於性海文字之葛藤羂繞於心田
010_0829_b_18L分人別鬼求佛著祖不信自殊勝
010_0829_b_19L作下劣人及乎智劔一揮都殺了無餘
010_0829_b_20L於是乎恒沙聖德無量妙用一時具足
010_0829_b_21L到這裏人鬼祖佛元在我眞常家裡
010_0829_b_22L同體而無異用是則人也安鬼也安
010_0829_b_23L佛也安祖也安此其所 [49] 亦能活人處

010_0829_c_01L사람을 살리는 검(活人劒)이라 할 만하다.
어떤 사람은 살활殺活이라는 두 글자를 마주치는 대상마다 짝지우지만 그것이 유래한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짝이 잘못 섞이거나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010_0829_c_01L便可名活人劔也今有人以殺活二字
010_0829_c_02L觸處配之而不知其所自來義故便多
010_0829_c_03L錯雜違越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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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53)각주 1) 참조.
  2. 54)『金剛經解義』 「序文」(X24, 517b22). 이 문헌은 혜능의 이름을 가탁했을 뿐 친설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3. 55)“고요하게 관조하는 빛이 눈앞에 나타나리라(寂照現前)”는 말은 징관澄觀과 종밀宗密이 쓰던 말이며 경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경전에서 가장 근접하는 것은 『楞嚴經』 권6(T19, 128b21)의 “생멸의 작용이 사라지면 고요하게 소멸한 경계가 눈앞에 나타나리라.(生滅旣滅, 寂滅現前.)”는 구절이다. 징관의 『華嚴經疏鈔』 권9(T3, 68a11)에 적조현전이라는 말이 보인다. 본서에 인용된 구절은 종밀의 『都序』 권상 1(T48, 403a9)에 보인다.
  4. 56)신회神會의 말. 『神會語錄』(中國禪宗大全, 42쪽) 등에 나오지만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며, 『起信論疏筆削記』 권6(T44, 330a27)이나 『宗鏡錄』 권78(T48, 846a23) 등에 본서와 동일한 구절을 제시하며 ‘조사의 말’로 인용하고 있다.
  5. 57)듣기만 하면 죽게 되는 독이 발린 북(塗毒鼓)은 『涅槃經』의 교설을 비유한다. 이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번뇌가 다 사라지게 된다는 뜻이다. 경전의 본래 내용은 다음과 같다. 『涅槃經』 권9(T12, 661a20),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잡다한 독약을 큰 북에 발라 두고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 북을 쳐서 소리를 내면 비록 듣고 싶은 마음 없이 듣더라도 듣기만 하면 모두 죽는 것과 같다. 그러나 횡사하지 않는 한 부류의 사람은 제외한다. 대승경전인 이 『대반열반경』도 이와 같다. 어느 곳에서나 수행하는 대중들 중에서 이 경전 읽는 소리를 듣는 자는 그 마음에 있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소멸하여 남김없이 사라진다. 그들 중에 비록 그 뜻을 생각하고 기억해 둘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대열반의 인연력 때문에 번뇌를 소멸시켜 번뇌의 결박이 저절로 사라지고 사중금四重禁이나 오무간五無間에 떨어질 죄를 범했을지라도 이 경을 다 듣고 나면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성취할 인연을 지어 점차로 번뇌를 끊을 것이다. 그러나 횡사하지 않는 일천제의 무리는 제외된다.(譬如有人, 以雜毒藥, 用塗大鼓, 於衆人中, 擊令發聲, 雖無心欲聞, 聞之皆死. 唯除一人, 不橫死者. 是大乘典大涅槃經, 亦復如是. 在在處處, 諸行衆中, 有聞聲者, 所有貪欲瞋恚愚癡, 悉皆滅盡. 其中雖有無心思念, 是大涅槃因緣力故, 能滅煩惱, 而結自滅, 犯四重禁, 及五無間, 聞是經已, 亦作無上菩提因緣, 漸斷煩惱. 除不橫死一闡提輩.)”
  6. 58)『臨濟宗旨』(X63, 168b16).
  7. 59)모든 활로가 끊어진 궁지에서 맞이하는 활로를 나타낸다. 『圜悟語錄』 권11(T47, 761c10), “절벽에 매달려 잡고 있는 손을 놓아야 스스로 수긍하고 알아차릴 것이다. 모든 생각이 끊어진 다음에 소생하면 누구도 그대를 속일 수 없으리라.(直得懸崖撒手, 自肯承當. 絶後再穌, 欺君不得.)”
  8. 60)경전상의 근거는 없고 문수와 선재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창안된 공안이다. 『五燈會元』 권2 「文殊菩薩章」(X80, 65b5), “문수보살이 하루는 선재동자에게 약초를 캐어 오라고 시키면서 ‘약이 되는 풀을 캐어 오라’고 하였다. 선재가 대지를 두루 살펴보았으나 약이 아닌 것이 없었다. 마침내 돌아와서는 ‘약이 되지 않는 풀은 없습니다’라고 아뢰었다. 문수가 ‘그럼 약이 되는 풀을 캐어 오라’고 하자 선재가 마침내 땅에서 아무 풀이나 한 줄기 집어서 문수에게 건네주었다. 문수가 그것을 손에 쥐고 대중에게 들어 보이며 말했다.
  9. 60)‘이 약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文殊菩薩, 一日, 令善財採藥曰, ‘是藥者採將來.’ 善財遍觀大地, 無不是藥. 却來白曰, ‘無有不是藥者.’ 殊曰, ‘是藥者採將來.’ 善財遂於地上拈一莖草, 度與文殊. 文殊接得, 呈起示衆曰, ‘此藥亦能殺人, 亦能活人.’)” 『頌古聯珠通集』 권3(X65, 489a2), 『宗門拈古彙集』 권3(X66, 18c4) 등의 공안집에도 수록되어 있다.
  10. 61)마조 도일馬祖道一의 다음 말에서 시작되었다. 『馬祖語錄』(X69, 4c19), “어떤 학인이 마조에게 물었다. ‘화상께서는 무엇 때문에 마음이 곧 부처라 하십니까?’ ‘어린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함이다.’ ‘울음이 그쳤을 때는 어찌합니까?’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하리라.’ ‘이 두 가지 견해를 다 버린 사람이 찾아오면 어떻게 가르치시겠습니까?’ ‘그에게 중생도 아니라고 말하겠다.’(僧問, ‘和尙, 爲甚麽說卽心卽佛?’ 祖曰, ‘爲止小兒啼.’ 曰, ‘啼止時如何?’ 祖曰, ‘非心非佛.’ 曰, ‘除此二種人來, 如何指示?’ 祖曰, ‘向伊道不是物.’)” 『景德傳燈錄』 권7 「徑山國一傳」(T51, 253a29)에도 마조의 말로 제시된다. 마조의 제자 남전 보원南泉普願도 즐겨 활용했다. 『南泉普願禪師語要』 古尊宿語錄12(X68, 71b18) 참조.
  11. 62)이 공안은 전통적으로 약초를 캐는 절기인 단오절에 제시되는 경향이 있다. 『大慧語錄』 권4(T47, 829a3), 『虛堂錄』 권8(T47, 1041c4), 『雪巖祖欽語錄』 권1(X70, 599b17), 『虛舟普度語錄』(X71, 88c21) 등 참조.
  12. 63)살적殺賊 : 아라한(ⓢarhat)의 번역어 중 하나. 보통 살적殺賊·응공應供·무생無生 등 세 가지 뜻으로 번역한다. 『大般涅槃經疏』 권18(T38, 145b8), “범어 음사어인 아라하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살적·불생(무생)·응공을 말한다.(梵云阿羅訶有三義. 謂殺賊·不生·應供.)” 『一切經音義』 권25(T54, 463c22), “아라한한역하여 무생無生이라 하고 살적이라고도 한다. 업業의 속박이 사라져 삼계三界를 이미 넘어섰다는 뜻이다.(阿羅漢此云無生, 或云殺賊. 業結斯亡, 已超三有.)” 『大智度論』 권2(T25, 71b19), “또한 아라하라고도 하는데, 무엇을 가리켜 아라하라 하는가? ‘아라’는 적賊, ‘하’는 살殺을 뜻하니 이를 살적이라 한다.(復名阿羅呵, 云何名阿羅呵? 阿羅名賊, 呵名殺, 是名殺賊.)”
  13. 64)『般若心經』(T8, 849c17).
  14. 65)진각 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의 말이다. 『眞覺國師語錄』 「示黙雷禪人」(H6, 24b).
  15. 66)『寒山子詩集』(J20, 660c22).
  16. 67)『華嚴經』 권51(T10, 270b22).
  17. 68)정확히 일치하는 구절은 없지만, 조사선 일반에서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살활殺活 어느 편으로나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검으로 본분의 선기禪機를 나타낸다. 『碧巖錄』 75則 「垂示」(T48, 202b7), “예리하게 번득이는 보검이 항상 눈앞에 드러나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저편에도 있고 이편에도 있으며 얻을 때는 함께 얻고 잃을 때는 함께 잃는다. 우리가 붙들고 지키고자 하면 붙들고 지키는 대로(提持:殺) 할 수 있고, 평탄하게 펼쳐 보이고자 하면 평탄하게 펼쳐 보이는 대로(平展:活) 할 수 있다.(靈鋒寶劍, 常露現前, 亦能殺人, 亦能活人. 在彼在此, 同得同失. 若要提持, 一任提持, 若要平展, 一任平展.)” 『廣敎省語錄』 古尊宿語錄23(X68, 151c7), “이 종문 중에서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려면 사람을 죽이는 칼을 가져야 하며, 사람을 살리려면 사람을 살리는 구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람을 죽이는 칼과 사람을 살리는 구절이란 어떤 것일까? 바르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서 대중들에게 말해 보라! 만일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다면 평상시에 드러난 소식을 전혀 몰랐다는 뜻이다.(此宗門中, 亦能殺人, 亦能活人. 殺人, 須得殺人刀;活人, 須得活人句. 作麽生是殺人刀活人句? 道得底出來, 對衆道看! 若是道不得, 卽辜負平生.)”
  18. 69)공空을 아는 지혜를 반야의 칼날로 묘사했다. 『景德傳燈錄』 권30 「永嘉證道歌」(T51, 460c9), “대장부여, 지혜의 칼을 잡았구나! 반야의 칼날이여, 금강왕의 불꽃과 같이 거세구나! 비단 외도의 마음을 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찍이 천마의 간담까지 떨어뜨렸도다.(大丈夫, 秉慧劍! 般若鋒兮, 金剛焰! 非但能摧外道心, 早曾落卻天魔膽.)”
  19. 70)명두明頭는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 천차만별의 현상, 암두暗頭는 이것과 저것이 구별되지 않아 마치 어둠 속에 있는 듯한 무차별의 평등한 경계. 칼을 뽑아들었으나 베어 버릴 대상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무차별의 평등한 경계와 상응한다.
  20. 71)대나무에 붙어 사는 귀신(竹木精靈) : 다른 대상에 의존하여 벗어나지 못하는 부자유스러운 의식. 온갖 관념의 틀에 얽매여 있는 마음이 마치 대나무에 깃들어 그로부터 떨어지지 못하는 귀신과 같다는 뜻이다. 이것도 앞의 말과 마찬가지로 임제에게서 빌려왔다. 『臨濟錄』(T47, 500b28), “산승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줄 법은 하나도 없고, 다만 병을 고치고 속박을 풀어 줄 뿐이다. 그대들 여러 선문에서 도를 추구하는 무리들이여!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말고 한번 나와 보라. 내 그대들과 더불어 법에 대해 문답하고자 한다. 15년 동안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모두들 풀이나 나뭇잎에 의지하여 살고 대나무에 붙어 사는 귀신과 도깨비 들이며 똥덩어리를 마구 씹어 먹는 자들뿐이었다.(山僧無一法與人, 祇是治病解縛. 爾諸方道流! 試不依物出來. 我要共爾商量. 十年五歲, 並無一人, 皆是依草附葉, 竹木精靈, 野狐精魅, 向一切糞塊上亂咬.)”
  21. 72)이 또한 『臨濟錄』(T47, 499c21)에, “그대가 만일 부처를 구한다면 부처라는 마구니에 사로잡힐 것이고, 만일 조사를 구한다면 조사라는 마구니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대가 구하는 일이 있기만 하면 무엇이나 괴로움이 되고 말기에 아무 일도 없는 것만 못하다.(爾若求佛, 卽被佛魔攝;爾若求祖, 卽被祖魔縛. 爾若有求皆苦, 不如無事.)”라고 한 임제의 말, 그리고 『維摩經』 권1(T14, 526c27)에서 “법을 구하는 자는 부처에 집착하지 말고 구하며, 법에 집착하지 말고 구하고, 승단(衆)에 집착하지 말고 구하라.(夫求法者, 不著佛求, 不著法求, 不著衆求.)”고 한 구절 등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松源語錄』 권하 「惠文伯居士請贊」(X70, 105c20),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말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 마라. 인천 대중의 스승이 되는 안목으로 보면 부처와 조사가 모두 원수이다.(不著佛求, 不著法求. 人天眼目, 佛祖冤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