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선학입문(禪學入門) / 禪學入門上卷

ABC_BJ_H0254_T_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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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입문禪學入門 上卷
총목차總目次
선학입문 서
범례
상권
제1. 입식문入式門
제1장 선바라밀의 해석
제2장 수증修證의 명칭과 뜻
제3장 근본인 세 가지 문을 세움
제4장 먼저 방편의 대강을 설함
제2. 식문息門
제5장 호흡을 세는 법
제6장 호흡을 따르는 법
제7장 호흡을 관찰하는 법
제8장 욕계정欲界定
제9장 초선정
제10장 제2선정
제11장 제3선정
제12장 제4선정
제13장 사무량심四無量心
제14장 공처정空處定
제15장 식처정識處定
제16장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제17장 비유상비무상처정非有想非無想處定
제18장 육묘문六妙門
제19장 십육특승十六特勝
제20장 통명관通明觀
하권
제3. 색문色門
제21장 구상九想
제22장 팔념八念
제23장 십상十想
제24장 팔배사八背捨

010_0894_c_02L禪學入門上卷

010_0894_c_03L

010_0894_c_04L月窓居士金大鉉述
010_0894_c_05L伊齋居士劉敬鍾校

010_0894_c_06L1)總目次

010_0894_c_07L
卷上

010_0894_c_08L
第一入式門

010_0894_c_09L
釋禪波羅蜜第一章修證名義第二章
010_0894_c_10L立宗三門第三章先說方便大綱第四章

010_0894_c_11L
第二息門

010_0894_c_12L
數息第五章隨息第六章觀息第七
010_0894_c_13L欲界定第八章初禪定第九章
010_0894_c_14L二禪定第十章三禪定第十一章
010_0894_c_15L禪定第十二章四無量心第十三章
010_0894_c_16L處定第十四章識處定第十五章
010_0894_c_17L所有處定第十六章非有想非無想處定
010_0894_c_18L第十七章六妙門第十八章十六特勝
010_0894_c_19L第十九章通明觀第二十章

010_0894_c_20L
卷下

010_0894_c_21L
第三色門

010_0894_c_22L
九想第二十一章八念第二十二章
010_0894_c_23L想第二十三章八背捨第二十四章
010_0894_c_24L目次編者作成補入

010_0895_a_01L제25장 팔승처八勝處
제26장 일체처一切處
제27장 구차제정九次第定
제28장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
제29장 초월삼매超越三昧
제4. 방편문方便門
제30장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춤
제31장 다섯 가지 욕망을 다스림
제32장 다섯 가지 덮개를 버림
제33장 다섯 가지 법을 조절함
제34장 다섯 가지 법을 행함
제35장 삼지三止
제36장 선정 중에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을 증험함
제37장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의 진위 판별
제38장 악근이 나타나는 모습을 증험함
제39장 나쁜 장애를 대치하는 법
제40장 편안한 마음으로 선을 닦음
제41장 병을 치료하는 법
제42장 마사魔事를 밝힘
발문
선학입문 후기
발문
제1. 입식문入式門
제1장 선바라밀의 해석
선바라밀禪波羅蜜1)은 당나라 말로 정도定度이다. 선나禪那는 중국말로 정려靜慮정靜은 곧 선정(定)이고, 려慮는 곧 지혜(慧)이다.이고, 또한 사유수思惟修선정에 들어 고요히 사유하는 것을 선나라고 한다는 의미이다.라고도 한다. 바라밀波羅蜜은 중국말로 도피안到彼岸생사는 이 언덕이고 열반은 저 언덕이며 번뇌는 그 사이에 흐르는 강이다. 보살은 무상無相의 오묘한 지혜로 선정의 배를 타고 생사의 이 언덕에서 번뇌의 강을 건너 열반의 저 언덕에 도달한다.이라 하고, 또한 사구경事究竟이라고도 한다. 선이라 말하는 것에는 세간선世間禪·범부선凡夫禪·외도선外道禪·이승선二乘禪 등도 있어 모두 선이라고 부르지만 구경이 아니며 피안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오직 이 법문만이 범부가 닦는 세간선으로부터 출세간선에 이르고 구경의 피안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바라밀이라고 한다.

010_0895_a_01L勝處第二十五章一切處第二十六章
010_0895_a_02L九次第定第二十七章師子奮迅三昧第
010_0895_a_03L二十八章超越三昧第二十九章

010_0895_a_04L
第四方便門

010_0895_a_05L
具五緣第三十章訶五欲第三十一章
010_0895_a_06L棄五蓋第三十二章調五法第三十三章
010_0895_a_07L行五法第三十四章三止第三十五章
010_0895_a_08L定中驗善根發相第三十六章辨善根發
010_0895_a_09L相眞僞第三十七章驗惡根發相第三十
010_0895_a_10L八章惡障對治法第三十九章安心修
010_0895_a_11L禪第十四章治病方法第四十一章
010_0895_a_12L魔第四十二章

010_0895_a_13L

010_0895_a_14L第一入式門

010_0895_a_15L釋禪波羅蜜第一章

010_0895_a_16L
禪波羅蜜唐言定度禪那此云靜慮
010_0895_a_17L靜即定
慮即慧
亦云思惟修言定中有靜慮
是名禪那
波羅蜜
010_0895_a_18L此云到彼岸生死爲此岸涅槃爲彼岸煩惱爲
中流菩薩以無相妙慧乘禪定舟
010_0895_a_19L從生死此岸度煩惱
中流到涅槃彼岸也
亦云事究竟言禪
010_0895_a_20L有世間禪凡夫禪外道禪二乘禪皆名
010_0895_a_21L爲禪而非究竟非到彼岸唯是法門
010_0895_a_22L從凡夫修世間禪至得出世間禪究竟
010_0895_a_23L到彼岸故名禪波羅蜜也

010_0895_a_24L

010_0895_a_25L修證名義第二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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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수증修證의 명칭과 뜻
선을 닦는 법을 나누어 구별하면 네 가지 이름이 있으니, 첫째는 세간선世間禪, 둘째는 세간이기도 하고 출세간이기도 한 선(亦世間亦出世間禪), 셋째는 출세간선出世間禪, 넷째는 세간도 아니고 출세간도 아닌 선(非世間非出世間禪)이다.
세간선이란 곧 사선四禪·사무량심四無量心·사무색정四無色定 등의 법이다. 세간이기도 하고 출세간이기도 한 선이것은 유루有漏이기도 하고 무루無漏이기도 하다.은 육묘문六妙門·십육특승十六特勝·통명관通明觀 등의 법이다. 출세간선무루선無漏禪이라고도 한다.은 곧 구상九想·팔념八念·십상十想·배사背捨·승처勝處·일체처一切處·차제정次第定·사자삼매師子三昧·초월삼매超越三昧 등의 법이다.
부정관문不淨觀門 가운데 구상·팔념·십상의 세 가지 법은 괴법壞法을 관하는 선이고, 배사·승처·일체처의 세 가지 법은 불괴법不壞法을 관하는 선이며, 차제정은 단련하는 선이고, 사자삼매는 훈숙하는 선이며, 초월삼매는 정교하게 가다듬는 선이다.
처음 수행에 들어갈 때는 그저 근기에 따라 자신에게 알맞은 것을 따라가야지 함부로 수승한 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가령 마음에 어지러운 생각이 많은 사람일 경우엔 식문息門을 따라 들어가야만 한다. 즉 호흡을 헤아리는 데 온 마음을 쏟아 순간순간의 마음에 틈이 없어 어지러운 생각이 끼어들지 못하면 마음속 생각이 모이고 고요해져 도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탐욕이 많은 사람일 경우엔 부정관문不淨觀門을 따라 들어가야 한다. 혐오하는 마음을 일으켜 음욕과 탐욕이 스스로 수그러들면 도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제3장 근본인 세 가지 문을 세움
선법을 닦는 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아나파나문阿那波那門2)아나阿那은 중국말로 입식入息이고 파나波那은 중국말로 출식出息이다. 곧 식문息門이다.이고, 둘째는 부정관문不淨觀門곧 색문色門이다. 색色은 몸을 말한다.이며, 셋째는 심문心門이 책에 식息과 색色 두 문만 있고 심문心門을 따로 나열하지 않은 것은 식문과 색문 모두에 지관止觀이 있고 지관이 곧 심법心法이기 때문이다. 심법이 여러 문 가운데 산재해 있으므로 따로 문을 세우지 않았다.이다.

010_0895_b_01L
修禪之法分別有四種名一名世間禪
010_0895_b_02L二名亦世間亦出世間禪三名出世間
010_0895_b_03L四名非世間非出世間禪世間禪
010_0895_b_04L即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等法
010_0895_b_05L世間亦出世間禪者是爲亦有
漏亦無漏
即六妙門
010_0895_b_06L十六特勝通明觀等法出世間禪者亦名
無漏
010_0895_b_07L
即九想八念十想背捨勝處一切處次
010_0895_b_08L第定師子三昧超越三昧等法是也

010_0895_b_09L
不淨觀門中以九想八念十想三法
010_0895_b_10L壞法觀禪以背捨勝處一切處三法
010_0895_b_11L不壞法觀禪以次第定爲鍊禪以師
010_0895_b_12L子三昧爲熏禪以超越三昧爲修禪
010_0895_b_13L入式但當隨機從宜不可妄用勝法
010_0895_b_14L心多亂想者當從息門入謂專心在數
010_0895_b_15L心心無間亂想無得以干則心慮凝靜
010_0895_b_16L可以入道如貪慾多者當從不淨觀門
010_0895_b_17L謂心生厭惡而淫貪自靖則可以
010_0895_b_18L入道

010_0895_b_19L

010_0895_b_20L立宗三門第三章

010_0895_b_21L
法門有三一者阿那波那門阿那此云入息
波那此云出息
010_0895_b_22L即息
門也
二者不淨觀門即色門
身也
三者心門
010_0895_b_23L書中有息色二門而不列心門者息色皆有止觀
止觀即心法也故心法散在諸門中而不別立門也

010_0895_c_01L
호흡으로 선을 닦는다는 것은, 호흡으로 마음을 거두어 사선四禪·사공四空·사무량심四無量心·특승特勝·통명通明 등의 선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을 사지事止곧 세간선世間禪이다.라고 한다. 색으로 선을 닦는다는 것은, 부정관不淨觀 등으로 마음을 거두어 구상九想·팔념八念·십상十想·배사背捨·승처勝處·일체처一切處·차제정次第定·사자삼매師子三昧·초월삼매超越三昧 등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을 이지理止곧 출세간선出世間禪이다.라고 한다. 마음으로 선을 닦는다는 것은, 지혜를 가지고 마음의 성품을 반조해 법화法華·염불念佛·반주般舟·각의覺意·수능엄首楞嚴의 여러 대삼매와 자성선自性禪 내지 청정정선淸淨淨禪3) 등의 법에 이르는 것이다. 이는 곧 출세간상상선문出世間上上禪門이다.
왜 세 가지 법으로 문을 삼는가? 첫째는 법상과 같기 때문이고, 둘째는 편리함에 따랐기 때문이며, 셋째는 법을 다 포함하기 때문이다.
법상과 같다는 것에 대해 말한다. 가라라歌羅邏4) 때에가라라는 중국말로 응활凝滑이며, 태에 든 처음 모습이다. 세 가지가 있으니, 명命과 난煖과 식識이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명이라 하고, 썩거나 문드러지지 않는 것을 난이라 하며, 이 가운데 있는 마음과 뜻을 식識이것은 순간순간 인지하는 마음이다.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 법이 화합하여세 가지 법이란 명·난·식이며, 명·난·식은 곧 식息·신身·심心이다. 오음五陰·사대四大·육근六根·육식六識은 이 세 가지 법에 의해 이루어지고 세 가지 법이 화합해 생긴 것이다. 따라서 세 가지 법은 셋이면서 곧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셋으로 돌아간다. 태어나 어른이 될 때까지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서 이 가운데서 인상人相·아상我相·중생상衆生相5) 등을 멋대로 일으킨다. 그리하여 온갖 업행業行을 저지르고 마음에 집착을 일으키며 이렇게 전도된 인연으로 삼계三界를 유전하는데, 만약 그 근원을 찾아본다면 본래 이 세 가지 법을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세 가지 법문을 세운 것이니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것이다.
편리함에 따랐다는 것에 대해 말한다. 호흡으로 선을 닦으면 두 가지 편리함이 있다. 첫째는 선정을 빨리 얻을 수 있고, 둘째는 무상함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또 색으로 문을 삼으면 두 가지 편리함이 있다. 첫째는 탐욕을 끊을 수 있고, 둘째는 가짜임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마음으로 문을 삼는 것에도 두 가지 편리함이 있다.

010_0895_c_01L以息爲禪者因息攝心以至四禪四空
010_0895_c_02L四無量心特勝通明等禪謂之事止即世
間禪
010_0895_c_03L
以色爲禪者因不淨等觀攝心以至
010_0895_c_04L九想八念十想背捨勝處一切處次第定
010_0895_c_05L師子超越等處謂之理止即出世
間禪也
以心
010_0895_c_06L爲禪者若用智慧反觀心性以至法
010_0895_c_07L華念佛般舟覺意首楞嚴諸大三昧
010_0895_c_08L自性禪乃至淸淨淨禪等法是則出世
010_0895_c_09L間上上禪門云何以三法爲門一如法
010_0895_c_10L二隨便易三攝法盡所謂如法相
010_0895_c_11L歌羅邏時歌羅邏此云凝滑
即成胎初相也
即有三事
010_0895_c_12L曰命曰煖曰識有出入息是謂命
010_0895_c_13L不臭不爛是謂煖此中心意是謂識
010_0895_c_14L即是刹那
覺知心也
三法和合三法者命煖識也命煖識
息身心也五陰四大
010_0895_c_15L六根六識依此三法而成三法和合
而爲生三法三而即一一而歸三
從生至長
010_0895_c_16L無增無減愚夫不了而於中妄計人
010_0895_c_17L我衆生作諸業行心生染著顚倒因
010_0895_c_18L往來三界若尋其源本不出此三
010_0895_c_19L故立此三門不多不少也

010_0895_c_20L
所謂隨便易者如因息修禪則有二便
010_0895_c_21L一者疾得禪定二者易悟無常也以色
010_0895_c_22L爲門亦有二便一者能斷貪欲二者
010_0895_c_23L易了虛假也以心爲門亦有二便

010_0896_a_01L첫째는 일체의 번뇌를 조복시킬 수 있고, 둘째는 공의 이치를 쉽게 깨칠 수 있다.
법을 다 포함한다는 것에 대해 말하면, 이 세 가지 법이 선문禪門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주요한 것을 들자면 세 가지에 지나지 않지만 이것을 벌여 놓으면 한량이 없다. 예를 들어 식문 중에는 호흡을 세는 것, 호흡을 따르는 것, 호흡을 관찰하는 것이 있다. 색문에도 바깥의 색을 대상으로 삼기도 하고, 자신의 색을 대상으로 삼기도 하며, 자비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부처님의 상호를 대상으로 삼아 실상을 깨닫는 관에 이를 수도 있다. 심문에도 지止·관觀·각覺·료了 등이 있다. 또한 온갖 마음을 깨달아서 마음이 아닌 것에 들어가고 마음이 아닌 것을 깨달아 한량없는 마음을 내기도 하며, 혹은 마음도 아니고 마음이 아닌 것도 아님을 깨달아 일체의 마음과 마음 아닌 것을 알기도 한다. 이처럼 세 가지 문에는 각기 한량없는 법이 있고 이르는 경지 또한 같지 않다. 따라서 세 가지 문이 일체의 선문을 총괄한다고 하였다.
이 세 가지 문은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모두 지을 수 있다. 왜 그런가? 불제자인 경우 세간선을 닦더라도 성스러운 깨달음을 얻고, 외도들의 경우 역시 마음을 관찰하지만 다른 견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 가지 문이 서로 통하지만 마음을 쓰는 것이 다르므로 선을 닦아 도를 얻는 것도 각각 다른 것이다.
제4장 먼저 방편의 대강을 설함
왜 먼저 방편을 설하는가? 방편의 조목이 방편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나 도를 닦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알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방편의 대강大綱을 입식문入式門에서 설명하여 학인들이 미리 알도록 하겠다.
방편에는 내방편과 외방편의 두 문이 있다. 외방편에는 또 다섯 가지 조목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다섯 가지 조건(五緣)을 갖추는 것이고, 둘째는 다섯 가지 욕망(五欲)을 다스리는 것이며, 셋째는 다섯 가지 덮개(五蓋)를 버리는 것이고, 넷째는 다섯 가지 법(五法)을 조절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다섯 가지 법을 행하는 것이다. 다섯 조목에 각기 다섯 항목인 이 25법은 모두 선정을 얻지 못했을 때 처음 닦는 방편이다.

010_0896_a_01L者能降一切煩惱二者易悟空理也

010_0896_a_02L
所謂攝法盡者此三法是禪門根本
010_0896_a_03L擧要雖三開則無量如息門中或數
010_0896_a_04L或隨或觀如色門中或緣外色或緣
010_0896_a_05L內色或作慈悲或緣佛相乃至得解
010_0896_a_06L實觀如心門中或止或觀或覺
010_0896_a_07L或覺了諸心入於非心覺了非心
010_0896_a_08L出無量心或覺了非心非不心能知
010_0896_a_09L一切心非心三門各有無量法而至處
010_0896_a_10L亦不同故說三門攝一切禪門也

010_0896_a_11L
此三門通作世間出世間法何以故
010_0896_a_12L如佛弟子修世間禪而得聖道如外道
010_0896_a_13L亦觀心而起異見當知三門互通而用
010_0896_a_14L心異故發禪得道亦各不同也

010_0896_a_15L

010_0896_a_16L先說方便大綱第四章

010_0896_a_17L
云何先說方便其中條目詳在方便門
010_0896_a_18L而將欲修道須當先知故今說大
010_0896_a_19L綱於入式門中使學者預知焉

010_0896_a_20L
方便有內外二門外方便中復有五種
010_0896_a_21L云何五種一具五緣二訶五欲三棄
010_0896_a_22L五蓋四調五法五行五法凡此五五
010_0896_a_23L二十五法并是未得禪時初修方便者
010_0896_a_24L

010_0896_b_01L다섯 가지 조건을 갖춘다는 것은, 첫째는 계를 청정하게 지키고, 둘째는 옷과 음식을 빠짐없이 갖추며, 셋째는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 거처하고, 넷째는 모든 세속의 반연을 끊으며, 다섯째는 선지식을 만나는 것이다. 이것이 선을 닦을 때 갖출 다섯 가지 조건이다.
다섯 가지 욕망을 다스린다는 것은, 세간의 빛깔·소리·냄새·맛·촉감 등의 법은 항상 사람을 속이고 미혹하게 하여 온갖 착한 일들을 파괴한다. 만약 이들의 허물을 분명하게 알아 다스리고 싫어하며 떠나지 않는다면 어떤 선이나 삼매도 얻을 길이 없다.
다섯 가지 덮개를 버린다는 것은, 첫째 탐욕의 덮개, 둘째 성냄의 덮개, 셋째 수면의 덮개, 넷째 산란과 후회의 덮개, 다섯째 의심의 덮개(를 버리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는 삼독으로부터 일어나 그 마음을 덮고 가려서 청정함을 얻지 못하게 하니 빨리 물리치고 버려야만 한다.
다섯 가지 법을 조절한다는 것은, 첫째는 음식을 조절하고, 둘째는 수면을 조절하며, 셋째는 몸을 조절하고, 넷째는 호흡을 조절하며, 다섯째는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가 알맞게 조절되면 삼매가 쉽게 생긴다. 만약 고르지 못한 것이 있으면 방해와 어려움이 많아져서 선근이 일어나기 어렵다.
다섯 가지 법을 행한다는 것은, 첫째 의욕, 둘째 정진, 셋째 염念, 넷째 선교방편의 지혜, 다섯째 일심(을 행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는 마음을 일으켜 정진하고 마음을 오로지 해 한결같이 행하는 것이다.
내방편에도 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문止門을 밝히고, 둘째는 선악의 근성을 증험하는 것을 밝히며, 셋째는 마음을 편안히 하는 법을 밝히고, 넷째는 병환 다스리는 것을 밝히며, 다섯째는 마사魔事를 알아차리는 것을 밝힌다.
지止라고 하는 것은, 첫째는 계연지繫緣止, 둘째는 제심지制心止, 셋째는 체진지體眞止이다. ‘지’는 마음을 한곳에 매어 두고 잡념을 그쳐서 흘러 다니지 않게 하는 것이다. ‘묶어 두는 대상(繫緣)’에는 다섯 곳이 있다. 마음을 정수리에 집중하거나, 이마 끝단이나 콧등이나 배꼽 아래의 단전이나 발바닥에 집중한다.

010_0896_b_01L
所謂具五緣者一持戒淸淨二衣食具
010_0896_b_02L三閒居靜處四息諸緣務五得善
010_0896_b_03L知識此修禪五緣也

010_0896_b_04L
所謂訶五欲者如世間色聲香味觸等
010_0896_b_05L常能誑惑壞諸善事若不明識過
010_0896_b_06L訶責厭離則諸禪三昧無由可獲矣
010_0896_b_07L所謂棄五蓋者一貪欲蓋二瞋恚蓋
010_0896_b_08L三睡眠蓋四掉悔蓋五疑蓋此五者
010_0896_b_09L從三毒起覆蔽其心不得淸淨急當
010_0896_b_10L屛棄也

010_0896_b_11L
所謂調五法者一調節飮食二調節睡
010_0896_b_12L三調身四調氣息五調心此五事
010_0896_b_13L和適則三昧易生若有所不調則多
010_0896_b_14L諸妨難善根難發也

010_0896_b_15L
所謂行五法者一欲二精進三念
010_0896_b_16L巧慧五一心此五者發心精進專心
010_0896_b_17L守一而行也

010_0896_b_18L
內方便中復有五種一先明止門
010_0896_b_19L明驗善惡根性三明安心法四明治病
010_0896_b_20L五明覺魔事

010_0896_b_21L
所謂止者一曰繫緣止二曰制心止
010_0896_b_22L三曰軆眞止止者棲心止息不令流
010_0896_b_23L動也繫緣有五處或繫心頂上或在
010_0896_b_24L髮際或在鼻柱或在臍間或在地輪也

010_0896_c_01L제심지란, 마음은 본래 모습과 빛깔이 없고 처소도 없으니 어찌 그것을 대상에 매어 둘 수 있겠는가? 다만 그 마음을 모아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쉬면 곧 이것이 지를 닦는 것이다. 체진지란, 바른 지혜로 모든 법을 체달하여 관찰하면 모두 자성이 없고 일체가 다 공하여 취할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다. 그러면 망상이 저절로 쉬어 없어진 듯이 깨끗해진다. 이것을 체진지라 한다.
선악의 근성을 증험한다고 하는 것은, 첫째 선한 근성, 둘째 악한 근성(을 증험하는 것)이다. 수행자가 지를 닦으면 그 마음이 맑고 고요해져 과거세의 업과 습기가 자연히 드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정에 들어갔을 때 홀연히 좋은 경계를 보기도 하고 홀연히 나쁜 습기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이때 선정만을 닦아 어떤 것도 취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면 선정의 힘이 점점 깊어지고 선근이 더욱 드러나게 된다. 선이라면 길러 자라게 하고 악이라면 다스려야 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법에는 대략 다섯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편의便宜를 따르고, 둘째는 대치對治를 따르며, 셋째는 좋아하는 것(樂欲)을 따르고, 넷째는 차례를 따르며, 다섯째는 제일의第一義를 따르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근성이 나타나면 편의에 따라 선한 습성은 따르고 악한 습성은 없애며, 각기 좋아하는 바에 따라 편안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마음을 편안히 하여 도를 닦는 수행자라 하더라도 몸에 오래된 병환이 있기도 하고 혹은 음식을 잘못 먹어 병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 병의 원인을 잘 파악하여 그에 따라 방법을 써야 한다.
마사魔事를 알아챈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마魔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번뇌의 마, 둘째는 음陰·입入·계界의 마, 셋째는 죽음의 마, 넷째는 욕계천자欲界天子의 마이다. 이와 같은 마들은 사람들이 행하는 도를 파괴하니, 잘 살펴서 미혹하지 않아야만 한다.

010_0896_c_01L制心止者心非形色亦無處所豈可
010_0896_c_02L繫之在境但凝其心息諸亂想即是
010_0896_c_03L修止也

010_0896_c_04L
軆眞止者以正智慧軆觀諸法俱無
010_0896_c_05L自性一切皆空無取無着妄想自息
010_0896_c_06L泯然淸淨是名軆眞止也

010_0896_c_07L
所謂驗善惡根性者一者善根性二者
010_0896_c_08L惡根性行人修止其心澄靜宿世業
010_0896_c_09L自然開發定中忽見善境界忽見
010_0896_c_10L惡習相但修禪定悉不取著定力愈
010_0896_c_11L善根愈發善則長養之惡則對治
010_0896_c_12L之也

010_0896_c_13L
所謂安心法者略有五意一曰隨便宜
010_0896_c_14L二曰隨對治三曰隨樂欲四曰隨次第
010_0896_c_15L五曰隨第一義謂宿根顯發隨其便宜
010_0896_c_16L善習從之惡習除之各隨樂欲而安
010_0896_c_17L心行之也

010_0896_c_18L
所謂治病方法者行者旣安心修道
010_0896_c_19L而或身有宿患或失攝生病即當善識
010_0896_c_20L病源隨用方法也

010_0896_c_21L
所謂覺魔事者魔有四種一曰煩惱魔
010_0896_c_22L二曰陰入界魔三曰死魔四曰欲界天
010_0896_c_23L子魔此等諸魔壞人道事當善觀察
010_0896_c_24L不令迷惑也

010_0897_a_01L
제2. 식문息門일명 아나파나문이다(一名阿那波那門)
제5장 호흡을 세는 법
호흡 세는 법을 닦고자 하면 먼저 호흡의 상을 분별해야 한다. 호흡에는 네 가지 상이 있다. 첫째는 풍상風相이고, 둘째는 천상喘相이며, 셋째는 기상氣相이고, 넷째는 식상息相이다. 이 네 가지 상에 대한 설명은 제33장의 호흡을 조절하는 법에 자세히 나온다. 풍상의 호흡을 세면 기운이 흩어지고, 천상의 호흡을 세면 기운이 맺히며, 기상의 호흡을 세면 피곤하다. 이 세 가지는 병이므로 모두 사용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호흡을 고르는 법을 이용해 소리도 나지 않고 맺히지도 않고 거칠지도 않게 하여 들어오고 나감이 면면히 이어져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식상이니 비로소 쓸 수 있다고 하겠다.
날숨을 세거나 들숨을 세어야지 두 가지를 함께 세어선 안 된다. 날숨을 세게 되면 기도가 켕기지 않고 몸이 팽만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 삼매에 쉽게 들어간다. 들숨을 세면 호흡을 따라 안으로 마음이 거두어져서 쉽게 정에 들어갈 수 있으며, 기식氣息이 안으로 충실해져 몸의 기력이 가뿐하고 왕성해진다. 들숨과 날숨을 함께 세면 호흡이 막히는 병이 목구멍 속에 생겨서 마치 풀잎이 걸린 것처럼 토해도 나오지 않고 삼켜도 넘어가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날숨을 세거나 들숨을 세어야 하며, 그 선택은 편의에 맡긴다.
호흡을 세는 법이란, 호흡을 세는 것에 마음을 집중하고 세밀하게 이를 되새겨 마음으로 하나부터 열에 이르기까지 산란하지 않게 하고 그 중간에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것이다. 만일 열을 채우지 못하면 그걸 숫자가 모자란다고 하고, 열하나까지 세면 그걸 숫자가 남는다고 한다. 남거나 모자라게 세는 것 모두 선정을 얻는 길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경우가 많아서는 안 되니, 그런 경우가 많아지면 기운이 가득 차고 배가 불러 앉으려 해도 편안하지 못하게 된다.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세밀하게 하나하나 숫자를 세어 하나에서 열에 이르고, 끝나면 다시 하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오래도록 익히고 연습하면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상응하게 된다. 이럴 때, 호흡은 허공이 엉긴 듯하고

010_0897_a_01L第二息門一名阿那
波那門

010_0897_a_02L數息第五章

010_0897_a_03L
欲修數息先當分別息相息有四相
010_0897_a_04L一曰風相二曰喘相三曰氣相四曰
010_0897_a_05L息相此四相詳在第三
十三章調息法中
數風則散數喘則
010_0897_a_06L數氣則勞三者病也皆不可用
010_0897_a_07L用調息之法俾得不聲不結不麤而出
010_0897_a_08L入綿綿若存若亡是爲息相始可用
010_0897_a_09L

010_0897_a_10L
或數出息或數入息而不可并數
010_0897_a_11L出息則氣道不急身不脹滿而身心
010_0897_a_12L輕利易入三未也數入息則隨息內
010_0897_a_13L易得入定氣息內實身力輕盛也
010_0897_a_14L出入俱數則有息遮病生在喉中
010_0897_a_15L如草葉吐之不出咽之不入故數出
010_0897_a_16L數入任其所便也

010_0897_a_17L
數息之法繫心在數以細念之心從
010_0897_a_18L一至十不令散亂而無間一之失
010_0897_a_19L不滿十則謂之數減若至十一則謂
010_0897_a_20L之數增增減之數皆非得定之道也
010_0897_a_21L故不得多取若取多則氣滿腹脹
010_0897_a_22L欲不安但可安心細密歷歷記數
010_0897_a_23L一至十終而復始久久習熟則不假
010_0897_a_24L功力而任運相應爾時息相虛凝

010_0897_b_01L마음은 점점 미세해져 세는 것이 거추장스러워지고 세고자 하는 뜻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방법을 바꾸어야만 하는데, 호흡 따르는 법을 닦을지 호흡 관찰하는 법을 닦을지는 오직 방편에 달려 있다.
제6장 호흡을 따르는 법
호흡을 세는 것이 익숙해져 마음과 호흡이 서로 의지하게 되면 마음으로 애써 세지 않아도 호흡을 세는 것이 저절로 어긋나지 않으니, 이것을 상응相應마음이 세는 숫자와 응하고 세는 숫자가 마음과 응하는 것이다.이라 한다. 이때에는 호흡 세는 것을 버리고 호흡 따르는 법을 닦아야 한다. 따른다고 하는 것은 한마음으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숨이 들어올 때는 마음도 그것을 따라 코에서부터 목구멍에 이르고 다시 심장, 배꼽, 엉덩이, 넓적다리에 이르며 끝에는 발가락에까지 이른다. 숨이 나올 때는 마음도 따라 나온다. 숨이 몸 밖으로 나와 한 뼘 또는 한 길이나 떨어질 때까지 마음으로 항상 그 뒤를 따른다. 익숙하도록 익혀서 공이 이루어지면 저절로 상응하고 뜻과 생각이 편안해지며 고요히 응어리진다. 이것도 싫증나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면 곧 지관止觀 등의 법을 닦는 것으로 바꿔야만 한다. 호흡을 따르는 법은 제19장 십육특승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참조하라.
제7장 호흡을 관찰하는 법
마음이 항상 대상에 있어서 머물러 어지럽지 않으면‘대상에 있다’고 함은 호흡을 셀 때는 한마음이 세는 데에 있고, 호흡을 따를 때는 한마음이 오직 따르는 데 있으며, 관觀을 닦을 때는 한마음이 관에만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항상 대상에 있다고 한다. 마음이 항상 대상에 있으면 다른 마음이 끼어들지 못하므로 마음이 머무를 수 있게 된다. 곧 호흡 따르는 법을 버리고 호흡 관찰하는 법을 닦아야 한다. 수행자가 선정에 든 마음에서 마음의 눈으로 몸속에서 미세하게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잘 살피면 그 모양이 허공의 바람과 같다. 또 피부와 힘줄과 뼈와 살 등의 서른여섯 가지 물질6)은 모두 파초와 같이 알맹이가 없고 안과 밖이 모두 더러워 몹시 싫어진다. 또한 숨이 몸에 머무는 것은 마치 구슬을 꿰고 있는 실과 같으며, 차가워지기도 하고 따뜻해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관찰한다. 또 심식心識은 생겨났다 사라짐이 무상하여 한 찰나도 머무르지 않으므로 집착할 곳이 없음을 관찰한다.
이와 같이 관찰할 때

010_0897_b_01L相漸細以數爲麤意不欲數則當用
010_0897_b_02L轉法而修隨修觀惟在方便矣

010_0897_b_03L

010_0897_b_04L隨息第六章

010_0897_b_05L
數息習熟心息相依不用心數而數
010_0897_b_06L自不差謂之相應言心與數應
數與心應也
爾時即當
010_0897_b_07L捨數修隨也隨者謂一心依隨息之出
010_0897_b_08L息入時心乃隨之從鼻至喉至心
010_0897_b_09L臍髖髀乃至脚指息出時心亦隨之
010_0897_b_10L息出離身至於一磔一尋心恒隨之
010_0897_b_11L熟習功成任運相應意慮怡然凝靜
010_0897_b_12L心欲厭捨即當轉修止觀等法隨息之義
詳在第十
010_0897_b_13L九章十六特勝
叅互看

010_0897_b_14L

010_0897_b_15L觀息第七章

010_0897_b_16L
心常在緣止而不亂在緣謂數息時
一心在數隨息時一心在隨
010_0897_b_17L修觀時一心在觀故曰心在緣中
常在緣他念不干故心得以止也
即當捨隨
010_0897_b_18L修觀行者於定心中以心眼諦觀身
010_0897_b_19L中微細出入息相如空中風皮筋骨肉
010_0897_b_20L三十六物如芭蕉不實內外不淨
010_0897_b_21L可厭惡又觀息住身中如珠中縷
010_0897_b_22L冷爲煖爲損爲益又觀心識生滅無
010_0897_b_23L刹那不住無可著處如是觀時

010_0897_c_01L심안이 밝게 열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모든 털구멍에 두루 퍼져 있음을 알게 되고, 안팎의 오장육부와 벌레들까지도 속속들이 보게 된다. 또한 온갖 괴로움이 핍박하고 한순간에 뒤바뀌며, 일체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고, 마음에 생겨나는 슬픔과 기쁨도 의지할 곳이 없음을 보게 된다. 그러면 곧 사념처四念處사념처란 육신이 고통임을 생각하고, 느낌이 고통임을 생각하고, 마음이 무상함을 생각하고, 법에는 주체가 없음을 생각하는 것이다.를 얻어서 네 가지 뒤바뀐 생각7)을 타파하게 된다. 이미 나와 남이 없거늘 선정인들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이렇게 관觀을 통한 이해가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각覺과 염念8)을 움직인다면 그것 역시 진실한 도가 아니다. 이때에는 방법을 바꾸어 환還과 정淨 등의 법을 닦아야 하는데 그 설명은 제18장 육묘문六妙門에 있다.
제8장 욕계정欲界定
호흡법을 수행함에 따라 마음이 점점 비고 집중되어 다시는 대상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거칠게 머무는 마음(麤住心)’이라 한다. 그 마음이 없어지듯 점점 미세해지는 것을 ‘미세하게 머무는 마음(細住心)’이라 한다. 또한 이 거친 모습과 세밀한 모습이 생길 때에는 반드시 몸을 지탱하는 법(持身法)이 일어난다. 즉 자연히 몸과 마음이 바르고 곧아져 앉아 있어도 피곤하지 않은 것이 마치 어떤 물건이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것 같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그저 미미하게 몸을 지탱하는 힘이라면 그건 좋은 경계이다. 그러나 만일 그 힘이 너무 급하고 강하면 (지신법이) 생겼을 땐 몸을 긴장되게 하여 괴롭고, (지신법이) 사라졌을 땐 늘어져 사람을 노곤하게 한다. 따라서 이것은 선법善法이 아니다.
마음이 아주 세밀해져 감각이 자연히 밝고 깨끗해지며, 선정법이 마음을 유지해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들어가 뜻이 흩어지지 않으면 이것을 욕계정欲界定이라 한다. 이는 욕계보신欲界報身9)의 상相이 아직 다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이즈음에서 만약 방편을 잘 쓰지 못해 어기거나 범하는 바가 있다면 선정을 잃게 된다. 예를 들어 수행자가 선정에 든 모습을 드러내거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여 다른 사람이 알게 하거나 혹은 어떤 일을 인연해 선정의 모습이 파괴된다면 이는 밖의 장애(外障)이다. 바라는 마음·의심하는 마음·놀라거나 두려워하는 마음·기뻐하는 마음·애착하는 마음·근심하거나 후회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는 안의 장애(內障)이다.

010_0897_c_01L眼開明覺息出入徧諸毛孔徹見內
010_0897_c_02L外臟腑及諸蟲戶見得衆苦逼迫
010_0897_c_03L那變易一切諸法悉無自性心生悲
010_0897_c_04L無所依倚即得四念處四念處者念身
是苦念受是苦
010_0897_c_05L念心無常
法無我也
破四顚倒旣無人我定何
010_0897_c_06L所依觀解旣發覺念流動亦非眞實
010_0897_c_07L之道爾時轉修還淨等法在六妙門中
010_0897_c_08L

010_0897_c_09L

010_0897_c_10L欲界定第八章

010_0897_c_11L
因修息道心漸虛凝不復緣慮名爲
010_0897_c_12L麤住心其心泯泯轉細名爲細住心
010_0897_c_13L復此麤細相時必有持身法起謂自然
010_0897_c_14L身心正直坐不疲倦如物持身若但
010_0897_c_15L微微扶助身力則是好境界若堅急勁
010_0897_c_16L來則苦其堅急去則寛緩困人
010_0897_c_17L非好法也

010_0897_c_18L
心旣精細覺心自然明淨定法持心
010_0897_c_19L任運不動從淺入深無分散意者
010_0897_c_20L名欲界定謂欲界報身之相尙未盡也
010_0897_c_21L此際若不善用方便有所違犯則退失
010_0897_c_22L禪定如行者或現定相或向人說
010_0897_c_23L他知覺或有事緣而相壞者是爲外障
010_0897_c_24L或有希望心疑心驚怖心喜心愛心憂悔

010_0898_a_01L이 여섯 가지 마음도 선정을 파괴하니 반드시 알아 두어야만 한다.
모든 선정 사이마다 미도지정未到地定이 있다. 즉 욕계정에 있으면서 아직 초선을 얻지 못했을 때 다른 경계가 있어서 초선을 생기게 하는 것이다. 욕계정에 든 뒤 몸과 마음이 없어진 듯 확 트여 욕계의 몸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고, 앉아 있는 가운데 머리와 손을 볼 수 없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다면, 이를 미도지정이라 한다. 이것이 곧 초선의 방편정方便定으로 미래선未來禪이라고도 하고, 또 홀연담심忽然湛心이라고도 한다. 이 선정을 얻었을 때 간혹 삿된 거짓이 생기는데, 첫째 지나치게 밝은 것과 둘째 지나치게 어두운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삿된 선정이다. 밝다는 것은 선정에 들었을 때 마치 신통을 얻은 것처럼 바깥 경계의 모든 색과 형상을 보는 것이다. 어둡다는 것은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아무 지각도 없는 것이니, 이것을 무심상법無心想法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를 만나면 빨리 버려야만 한다.
제9장 초선정
수행자가 욕계의 미도지정 가운데서 ‘움직이는 감촉(動觸)’의 열 가지 선법善法을 얻고, 움직이는 감촉이 발생한 뒤 또 열여섯 가지 감촉을 증득하여 성취하는 것이 초선의 모습이다.10) 즉 미도지정에서 선정에 점점 깊이 들어가면 몸과 마음이 비고 고요하여 안팎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나 이레를 경과하고 혹은 한 달이나 한 해가 지나도록 선정에 든 마음을 허물지 않으며 지키고 증장시키면, 선정 중에 홀연히 몸과 마음이 응집되어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움직일 때 도리어 그 몸이 구름 같고 그림자 같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먼저 몸의 윗부분에서부터 생기면 대부분 선정에서 물러나게 되고, 먼저 아랫부분에서부터 생기면 선정이 진전되는 경우가 많다.
움직이는 감촉이 일어날 때는 공덕이 한량없으나 대략 말하면 열 가지 선법善法이 권속이 된다. 첫째 안정됨(定), 둘째 걸림 없음(空), 셋째 밝고 깨끗함(明淨), 넷째 희열喜悅, 다섯째 즐거움(樂), 여섯째 좋은 마음이 생김(善心生), 일곱째 지견이 밝아짐(知見明了), 여덟째 번뇌의 얽힘에서 벗어남(無累解脫),

010_0898_a_01L是爲內障此六種心亦能破定
010_0898_a_02L當知之

010_0898_a_03L
諸禪中間皆有未到地定謂欲界定中
010_0898_a_04L未及得初禪而別有境界能生初禪也
010_0898_a_05L欲界定後身心泯然虛豁而失欲界身
010_0898_a_06L坐中不見頭手猶若虛空者是名
010_0898_a_07L未到地定即是初禪方便定亦名未來
010_0898_a_08L亦名忽然湛心得此定時或有邪
010_0898_a_09L一者過明二者過暗并是邪定也
010_0898_a_10L明者入定時見外境界諸色諸像
010_0898_a_11L得神通暗者無所覺知如熟睡眠
010_0898_a_12L謂無心想法遇此二者當急去之

010_0898_a_13L

010_0898_a_14L初禪定第九章

010_0898_a_15L
行者於欲界未到地中得動觸十法
010_0898_a_16L動觸發後又證十六觸成就者是爲
010_0898_a_17L初禪相謂於未到地中入定漸深
010_0898_a_18L心虛寂不見內外或經一日七日
010_0898_a_19L至一月一年而定心不壞守護增長
010_0898_a_20L定中忽覺身心凝然運運而動當動之
010_0898_a_21L還覺其身如雲如影先從上發者多退
先從下發者多進

010_0898_a_22L動觸發時功德無量略陳十種善法
010_0898_a_23L以爲眷屬一定二空三明淨四喜悅
010_0898_a_24L五樂六善心生七知見明了八無累

010_0898_b_01L아홉째 경계가 눈앞에 나타남(境界現前), 열째 마음이 고르고 유연함(心調柔輭)이다. 이 열 가지 권속이 움직이는 감촉과 함께 생겨 하루가 가기도 하고 혹은 한 달이나 한 해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지나간 뒤에는 다시 다른 감촉들이 차례대로 일어난다. 움직임(動)·가려움(痒)·시원함(凉)·따스함(煖)·가벼움(輕)·무거움(重)·거침(澁)·매끄러움(滑) 등의 여덟 감촉과 흔들림(掉)·기댄 느낌(猗)·차가움(冷)·뜨거움(熱)·들뜸(浮)·가라앉음(沈)·딱딱함(堅)·부드러움(輭) 등의 여덟 감촉, 합하여 열여섯 감촉이 된다. 여기에도 권속으로 수많은 선법이 있다. 왜 그런가? 색계의 청정한 사대가 욕계의 몸속에 머물게 되면 거친 것과 세밀한 것이 서로 어긋나기 때문에 흔들림(掉擧) 등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열여섯 가지 감촉은 다 갖춰지는 경우도 있고, 혹은 다 갖춰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미도지정을 얻기 전에 먼저 이 감촉이 일어나게 되거나 또는 열 가지 선법이 수반되지 못하면 대부분 병든 모습이거나 혹은 마사魔事이니 반드시 잘 분별해야만 한다.
초선에는 다섯 가지 지支가 있다. 첫째는 각지覺支이니, 처음 마음으로 지각해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관지觀支이니, 세밀한 마음으로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희지喜支이니, 그 마음이 경사스럽고 기쁜 것을 말한다. 넷째는 낙지樂支이니, 그 마음이 편안하고 담담한 것을 말한다. 다섯째는 일심지一心支이니, 고요히 흩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지支’란 갈래가 나뉜다는 뜻이며 가지가 지탱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치 나무가 뿌리와 줄기로 인하여 가지가 있고, 또 뿌리와 줄기는 하나뿐이지만 가지는 각각 다른 것과 같다. 지금 한 선정의 마음속에서 다섯 가지 지가 생겨나는 것이 마치 많은 나무가 숲을 이루는 것과 같으므로 또 지의 숲(支林)이라고도 한다. 욕계의 미도지정에도 비록 하나의 고요한 선정심禪定心이 있긴 하지만 각과 관 등의 다섯 가지가 서로를 지탱하지 못하므로 선정에 든 마음이 얕고 엷어서 잃어버리기가 쉽다. 만약 초선을 얻어 다섯 가지 지가 숲을 이루면 선정에 든 마음이 안온하고 굳세어서 파괴하기 어렵다. 초선을 ‘벗어났다(離)’고도 하고 ‘갖추었다(具)’라고도 한다. 벗어났다는 것은 다섯 가지 덮개(五蓋)를 벗어났음을 말하고, 갖추었다는 것은 다섯 가지 지(五支)를 갖추었음을 말한다. 제2선·제3선·제4선에도 모두 지의 숲이 있다. 따라서 모두 이구선離具禪이라 한다.

010_0898_b_01L解脫九境界現前十心調柔輭此十
010_0898_b_02L種眷屬與動俱生或經一日一月一年
010_0898_b_03L而此事過後復有餘觸次第而發
010_0898_b_04L痒凉煖輕重澁滑等八觸掉猗冷熱浮
010_0898_b_05L沉堅輭等八觸合爲十六觸而其間
010_0898_b_06L亦有許多善法眷屬何以故色界淸淨
010_0898_b_07L四大住在欲界身中麤細相違故有
010_0898_b_08L掉擧等事也十六觸有具足者或有
010_0898_b_09L不具足者若未得未到地定而先發此
010_0898_b_10L又無十種善法以作眷屬者多是
010_0898_b_11L病相或是魔事須當分別也

010_0898_b_12L
初禪有五支一曰覺支謂初心覺悟也
010_0898_b_13L二曰觀支謂細心分別也三曰喜支
010_0898_b_14L謂其心慶悅也四曰樂支謂其心恬澹
010_0898_b_15L五曰一心支謂寂然不散也支者
010_0898_b_16L支離義亦枝持義如樹因根莖而有
010_0898_b_17L枝條根莖是一而枝條各異今從一
010_0898_b_18L定心中而出生五支如多樹成林
010_0898_b_19L亦名支林欲界未到地中雖有單靜定
010_0898_b_20L而未有覺觀等五支共相扶持
010_0898_b_21L定心淺薄易失若得初禪而五支成林
010_0898_b_22L則定心安隱牢固難壞也初禪亦名爲
010_0898_b_23L亦名爲具離者謂離五盖也具者
010_0898_b_24L謂具五支也二三四禪皆有支林

010_0898_c_01L
제10장 제2선정
초선의 미도지정에서 각과 관을 싫어하여 떠나게 되니, 이것을 ‘성스러운 침묵의 선정(聖黙然定)’이라 한다. 사선四禪의 미도지정 뒤에는 모두 고요한 마음이 있다. 이전의 선은 물러나고 새로운 선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때, 그 마음이 조용하고 고요한 것을 말한다. 각覺이란 신근身根과 신식身識이 상응하는 것을 말하고, 관觀이란 의근意根과 의식意識이 상응하는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 법은 마음을 어지럽게 하므로 받아들이거나 집착하지 않아서 그 마음이 고요한 것이다.
수행자가 초선의 허물을 다스릴 수 있으면 초선의 다섯 가지 지와 고요함까지 모두 물러간다. 초선은 이미 떠났고 제2선은 아직 생겨나지 않은 그 사이에도 또 선정법이 있다. 이것을 중간선中間禪이라고 하는데, 그 마음이 모두 사라져 없어진 듯한 것이다. 한마음으로 오로지 정진하여 공들이기를 그치지 않으면 그 마음이 맑고 고요해져 흩어짐이 없게 되는데, 이를 미도지정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오랜 시간 동안 잃거나 물러나지 않으며 마음을 오로지하기를 그치지 않으면 그 마음이 확 트여 밝고, 맑고, 희고, 깨끗해지면서 선정의 마음이 기쁨과 함께 일어난다. 마치 어떤 이가 어두운 방에서 나와 바깥의 광명을 보는 것처럼 활연히 밝아진다.
열 가지 선법은 초선에서 일어난 모양과 같으나 기쁨이 더 크고 아름답고 오묘해 초선보다 뛰어나다. 다만 초선은 촉觸의 즐거움을 느낄 때 신식身識과 상응하기 때문에 ‘바깥의 깨끗함(外淨)’이라고 하는 데 반해, 제2선에서는 심식心識과 상응하기 때문에 ‘안의 깨끗함(內淨)’이라 한다. 마음에 각과 관이 있으면 ‘안의 더러움(內垢)’이 되지만 지금은 각과 관이 없으므로 ‘안의 깨끗함(內淨)’이 된다.
제2선에는 네 가지 지가 있다. 첫째는 내정內淨, 둘째는 희喜, 셋째는 낙樂, 넷째는 일심一心이다. 일심지一心支란 비록 기쁨과 즐거움이 있긴 하지만, 안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반연하지 않고 밖으로 생각을 반연하지 않아 한마음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일심지라 한다.

010_0898_c_01L俱名離具禪

010_0898_c_02L

010_0898_c_03L二禪定第十章

010_0898_c_04L
初禪中未到地厭離覺觀曰聖默然定
010_0898_c_05L四禪未到地後俱有默然心言舊禪已
新禪未生之際其心默然寂靜也
覺者
010_0898_c_06L根身識相應之謂也觀者意根意識相
010_0898_c_07L應之謂也以二法爲擾亂故不受不著
010_0898_c_08L而其心默然也行者旣能訶責初禪之
010_0898_c_09L而五支及默然並皆謝退初禪旣
010_0898_c_10L二禪未生而中間亦有定法是謂
010_0898_c_11L中間禪其心蔑蔑屑屑然也一心專精
010_0898_c_12L加功不已則其心澹然澄靜無有分散
010_0898_c_13L是爲未到地也如是經久不失不退
010_0898_c_14L專心不止則其心豁然明淨皎潔定心
010_0898_c_15L與喜俱發如人從暗室中出而見外光
010_0898_c_16L豁然明亮十種善法如初禪發相
010_0898_c_17L而喜勇美妙勝於初禪也但初禪
010_0898_c_18L觸樂時身識相應故名外淨二禪
010_0898_c_19L識相應故爲內淨心有覺觀則爲內
010_0898_c_20L而今無覺觀故爲內淨也二禪有
010_0898_c_21L四支一內淨二喜三樂四一心
010_0898_c_22L心支者雖有喜樂而內不緣喜樂
010_0898_c_23L不緣思想一心不動故云一心支也

010_0899_a_01L
제11장 제3선정
제2선은 일명 희구선喜俱禪이라고도 하니, 그 선정이 기쁨과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다. 제3선은 일명 낙구선樂俱禪이라고도 하니, 이 선정이 몸 전체에 가득한 즐거움과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다.
수행자가 제2선을 관찰하면 선정이 안의 깨끗함으로부터 일어나긴 하지만 큰 기쁨이 용솟음쳐 선정이 견고하질 못하다. 따라서 세 가지 법으로써 그것을 물리치니, 첫째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다스리는 것이며, 셋째는 마음을 관찰하여 끝까지 검토하는 것이다. 모든 선정에서 허물을 다스릴 때 모두 이 세 가지 법을 쓴다. 끝까지 검토해 허물을 알고, 허물을 알아서 다스리며, 다스려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쁨과 고요함이 점차 물러난다. 제3선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중간에도 선정이 있다. 일심으로 오로지 제3선의 공덕을 상념하면 그 마음이 맑고 고요하게 되는데, 이것이 제3선의 미도지정이다. 그 후에 마음이 없어진 듯 선정에 들어가니 안팎에 의지하지 않고 즐거움과 함께 일어난다. 이에 따르는 공덕의 권속은 앞서 말한 것과 같다. 다만 용솟음치는 기쁨이 없고, 면면히 이어지는 즐거움이 안의 마음에서 일어나 아름답고 오묘함이 비유하기도 어려운 점이 다를 뿐이다.
즐거움의 선정(樂定 : 第三禪)이 처음 생겨 아직 몸에 두루 미치지 않았을 때 대부분 세 가지 허물이 있게 된다. 첫째는 즐거움의 선정이 아직 얕은데도 그 마음이 가라앉아서 지혜의 작용이 적은 것이다. 둘째는 즐거움의 선정은 미약한데 마음과 지혜가 세차게 일어나 편안하지 못한 것이다. 셋째는 즐거움과 지혜가 모두 면면하고 미묘하면 대부분 탐착을 일으켜 그 마음이 미혹하고 취해 버린다. 그러므로 경전에 “이 즐거움을 성인은 버릴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은 버리기 어렵다.”11)라고 하였으니 수행자는 잘 조절해야만 한다.
만일 마음이 가라앉으면 염念·정진精進·혜慧 등의 법을 써서 북돋워야 한다. 만일 마음이 지나치게 일어나면 삼매 선정의 법을 생각하여 그것을 거둬들여야 한다. 만일 마음이 미혹되어 취하면 나중의 즐거움과 여러 가지 뛰어나고 오묘한 법문을 생각해 스스로 정신을 차리고 마음이 집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만약 즐거운 법을 잘 닦는다면 그것이 점점 늘어나 온몸에 가득 찰 것이다. 이때는 식을 일으키는 바깥 경계가 없어도

010_0899_a_01L三禪定第十一章

010_0899_a_02L
二禪一名喜俱禪謂其定與喜俱發也
010_0899_a_03L三禪一名樂俱禪言此定與徧身樂
010_0899_a_04L俱發也行者觀二禪定雖從內淨發
010_0899_a_05L而大喜勇動定不牢固故用三法而遣
010_0899_a_06L一者不受二者訶責三者觀心窮
010_0899_a_07L諸禪訶責
用此三法也
窮檢而知過知過而訶責
010_0899_a_08L訶責而不受 則喜及默然漸次退謝
010_0899_a_09L三禪未生中間有定一心專念三禪功
010_0899_a_10L其心湛然安靜是爲三禪未到地
010_0899_a_11L其後心得泯然入定不依內外與樂俱
010_0899_a_12L而功德眷屬具如前說但無動勇
010_0899_a_13L之喜而綿綿之樂從內心而發美妙
010_0899_a_14L難喩爲異耳樂定初生未及徧身之
010_0899_a_15L多有三過一者樂定旣淺其心沉
010_0899_a_16L少有智慧用二者樂定微少心智
010_0899_a_17L勇發故不能安穩三者樂與慧等綿
010_0899_a_18L綿微妙多生貪著其心迷醉故經云
010_0899_a_19L是樂聖人得能捨餘人捨爲難行者
010_0899_a_20L當善調適若心沈沒用念精進慧等法
010_0899_a_21L而策起之若心勇發念三昧定法而攝
010_0899_a_22L若心迷醉念後樂及諸勝妙法門
010_0899_a_23L以自醒悟令心不著若能善修樂法
010_0899_a_24L漸漸增長徧滿身分爾時雖無外塵發

010_0899_b_01L즐거운 법이 안에서 나와 모든 근根에 가득 차고 의식과 상응할 것이니, 세간의 제일가는 즐거움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이다.
제3선에도 다섯 가지 지가 있다. 첫째는 사捨, 둘째는 염念, 셋째는 지智, 넷째는 낙樂, 다섯째는 일심一心이다. 사지捨支란 즐거움의 선정이 생겨날 때 기쁜 마음을 버리는 것이고, 염지念支란 조화롭고 적당함을 되새겨 즐거움을 늘어나게 하는 것이고, 지지智支란 세 가지 법을 알맞게 써서 세 가지 허물을 벗어나는 것이고, 낙지樂支란 상쾌한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며, 일심지一心支란 즐거움을 누리던 마음이 쉬어 한마음으로 고요하고 안정된 것이다.
제12장 제4선정
수행자는 제3선에서 즐거움에는 고통과 근심이 있음을 깊이 보고 한마음으로 싫어하면서 다스려서 집착하지 않는다. 이에 움직이지 않는 선정(不動定)인 제4선을 구하면 미도지정에 들어가 마음에 움직임이나 흐트러짐이 없게 된다. 그 후에 활연히 눈앞이 열리고 선정에 든 마음이 안온해지면서 들고 나는 호흡이 끊어지니, 이것이 제4선이다.
선정이 일어날 때,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사수捨受12)가 함께 생겨나므로 사구선捨俱禪이라 한다. 마음이 밝은 거울처럼 움직이지 않고, 또한 맑은 물에 파도가 없는 것처럼 모든 어지러운 생각이 끊어지고 바른 생각이 견고하며, 허공처럼 모든 더러움에 물듦이 없으므로 또한 부동정不動定이라 한다. 또 세간의 진실한 선정(世間眞實禪定)이라고도 한다. 이때 수행자는 마음이 선善에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악惡에 의탁하지도 않는다. 의지하여 기대는 바가 없고 모양도 없고 바탕도 없으나 신통변화가 모두 이 선정으로부터 나온다.
제4선에는 네 가지 지가 있다. 첫째는 불고불락지不苦不樂支, 둘째는 사지捨支, 셋째는 염청정지念淸淨支, 넷째는 일심지一心支이다. 이 선정은 처음 일어날 때 사수와 함께 일어나 괴로움이나 즐거움과 상응하지 않는다.

010_0899_b_01L而樂法內出充滿諸根與意識相
010_0899_b_02L世間第一樂中之上也

010_0899_b_03L
三禪有五支一捨二念三智四樂
010_0899_b_04L五一心捨支者樂定生時能捨喜心
010_0899_b_05L念支者能念調適令樂增長智支者
010_0899_b_06L善巧三法而離三過樂支者快樂徧
010_0899_b_07L身受一心支者受樂心息一心寂定
010_0899_b_08L

010_0899_b_09L

010_0899_b_10L四禪定第十二章

010_0899_b_11L
行者於三禪深見樂有苦患而一心
010_0899_b_12L厭離訶責不著乃求四禪不動定
010_0899_b_13L入未到地心無動散其後豁然開發
010_0899_b_14L定心安穩出入息斷是爲四禪也
010_0899_b_15L發之時無苦無樂與捨俱生故名捨
010_0899_b_16L俱禪心如明鏡不動亦如淨水無波
010_0899_b_17L絕諸亂想正念堅固猶如虛空無諸
010_0899_b_18L垢染故亦名不動定又名世間眞實禪
010_0899_b_19L爾時行者心不依善亦不附惡
010_0899_b_20L所依倚無形無質而禪通變化皆從
010_0899_b_21L此定出也

010_0899_b_22L
四禪有四支一曰不苦不樂支二曰
010_0899_b_23L捨支三曰念淸淨支四曰一心支
010_0899_b_24L禪初發與捨受俱發不與苦樂相應

010_0899_c_01L그러므로 ‘불고불락’이라 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선정을 얻고 나면 아래 단계의 뛰어난 즐거움을 버리고도 혐오나 후회를 일으키지 않는다. 또 선정에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음이 생각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지’라 한다. 선정이 명료하여 평등한 지혜로 비추어 깨달으므로 ‘염청정지’라고 한다. 선정에 든 마음이 고요하여 온갖 대상을 대하여도 마음에 움직임이 없으므로 ‘일심지’라 한다.
대개 이 제4선에서는 여전히 색계의 속박이 남아 있다. 외도들은 유위법인 몸과 마음이 생멸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여 고요하고 영원하며 즐거운 열반을 구하려고 하지만 진실로 색을 파괴하는 법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저 삿된 지혜로 그 마음을 없애고는 삿된 법과 상응하여 마음에 기억과 생각이 없게 되면 열반을 증득했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 목숨을 버리고는 무상천에 태어나는데, 여전히 이는 색계色界이며 또한 객천客天이라고도 한다.
혹 어떤 수행자는 색이 있는 게 감옥과 같다고 여겨 한마음으로 색을 파괴하고는 곧장 네 가지 공한 선정(四空定)을 닦는데, 이는 범부선凡夫禪이다. 만일 불제자라면 자신의 수행을 갖춘 뒤엔 다시 남들을 이롭게 하고자 하므로 먼저 사무량심을 닦는다.
제13장 사무량심四無量心
사무량심四無量心이란 자慈·비悲·희喜·사捨이다. ‘자’란 중생을 사랑으로 생각하여 늘 즐거운 일로 그들에게 이익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비’란 중생이 다섯 갈래 세계13)에서 괴로움 겪는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늘 선법善法으로 고통에서 구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희’란 중생들이 모두 기쁨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사’란 세 가지 마음14)을 버리고 다만 중생을 생각함에 미워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것이다.
‘무량’이란 이 네 가지 마음이 친구나 원수, 가까운 사람이나 먼 사람이라는 차별 없이 시방에 두루 미쳐 평등한 것을 말한다.

010_0899_c_01L故云不苦不樂也旣得不苦不樂定
010_0899_c_02L下勝樂而不生厭悔又於定發心不
010_0899_c_03L念著故名捨支也禪定分明等智照
010_0899_c_04L故云念淸淨支也定心寂靜雖對
010_0899_c_05L衆緣而心無動念故云一心支也

010_0899_c_06L
盖此四禪猶有色縛外道之人深厭
010_0899_c_07L有爲心識生滅欲求涅槃寂靜常樂
010_0899_c_08L不知眞實破色之法直以邪智滅却其
010_0899_c_09L則邪法相應心無憶想而謂證涅
010_0899_c_10L及其捨命即生無想天中猶是色
010_0899_c_11L亦名客天也

010_0899_c_12L
或有行人視有色如牢獄一心破色
010_0899_c_13L直修四空定是爲凡夫禪若佛弟子
010_0899_c_14L旣得自行具足欲復利他故先修四無
010_0899_c_15L量心也

010_0899_c_16L

010_0899_c_17L四無量心第十三章

010_0899_c_18L
四無量心者曰慈曰悲曰喜曰捨也
010_0899_c_19L慈者愛念衆生常欲以樂事饒益之也
010_0899_c_20L悲者愍念衆生之受五道中苦常欲以
010_0899_c_21L善法濟拔之也喜者欲令衆生皆得
010_0899_c_22L歡喜也捨者捨三種心而但念衆
010_0899_c_23L不憎不愛也無量謂此四心
010_0899_c_24L親無怨無近無遠心徧十方平等不

010_0900_a_01L그러므로 중생의 성내는 느낌을 없애기 위해 자심을 닦고, 중생의 괴로운 느낌을 없애기 위해 비심을 닦으며, 중생의 즐겁지 않음을 없애기 위해 희심을 닦고, 중생의 증오와 사랑을 없애기 위해 사심을 닦는다.
어떻게 자무량심慈無量心을 닦는가? 선정에 들어가려고 할 때 먼저 “일체중생이 다 쾌락을 누리는 것을 내가 선정 가운데서 수·상·행·식을 통해 보리라.”라고 서원한다. 처음 닦을 때 염청정念淸淨의 마음을 써서 먼저 가장 가깝고 좋아하는 사람, 예를 들면 부모나 형제 중 한 사람을 선택해 그가 즐거움을 누리는 모습을 한마음으로 반연한다. 만일 다른 생각이 끼어들면 거두어서 돌이키고, 다른 경계가 보이더라도 모두 취하지 않는다. 그저 한마음으로 그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관찰하여 확실하고 분명하게 상속하여 끊이지 않으면 삼매가 곧 발생하고, 삼매의 힘을 갖추기 때문에 곧 선정 가운데서 그가 즐거움을 누리며 몸과 마음으로 기뻐하고 얼굴색이 온화해지는 것을 명료하고 분명하게 보게 된다. 이와 같이 친한 사람을 보고 나서는 점점 확대하여 다음에는 그저 그런 관계의 사람들을 보고 나아가 원수에게까지 이른다. 또 열 사람, 백 사람, 한 나라, 한 천하까지 확대시킨다. 이렇게 시방 다섯 갈래 세계의 중생에 이르기까지 다들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봄으로써, 선정의 마음이 점차 깊어져 고요히 움직임이 없어지고 성냄과 원한 등의 괴로움을 벗어나게 된다. 즐거운 일을 중생에게 주는 것은 중생을 반연한 자심(衆生緣慈)이고, 그들에게 법을 주는 것은 법을 반연한 자심(法緣慈)이며, 무위심無爲心으로 취하거나 버림이 없고 주체나 대상의 구분도 없어 중생으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하면 반연이 없는 자심(無緣慈)이다. 비심·희심·사심 또한 이 경우와 같다.
어떻게 비무량심悲無量心을 닦는가? 수행자는 자심의 선정 가운데서 늘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생각하다가, 자심의 선정에서 깨어났을 때 여전히 중생들이 여러 가지 몸과 마음의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는 마음에 불쌍히 여기는 생각을 일으킨다.
“다섯 갈래 세계의 중생이

010_0900_a_01L隔也故爲除衆生瞋覺而修慈心
010_0900_a_02L除衆生惱覺而修悲心爲除衆生不悅
010_0900_a_03L而修喜心爲除衆生憎愛而修捨
010_0900_a_04L心也

010_0900_a_05L
云何修慈無量心欲入禪定時先作誓
010_0900_a_06L一切衆生悉受快樂我於定中
010_0900_a_07L見受想行識初修時用念淸淨心
010_0900_a_08L取最所親愛人若父母兄弟中一人
010_0900_a_09L樂之相而一心緣之若有異念攝之
010_0900_a_10L令還若見他境界亦皆不取但以一
010_0900_a_11L觀彼得樂之相的的分明相續不
010_0900_a_12L則三昧即發以三昧力故即於定
010_0900_a_13L見彼受樂身心悅䂊顏色和適
010_0900_a_14L了分明如是見親人已漸漸廣大
010_0900_a_15L見中人乃至怨人又至十人百人一國
010_0900_a_16L一天下以至十方五道衆生悉得受樂
010_0900_a_17L而定心轉深湛然無動離於瞋恨怨惱
010_0900_a_18L以樂事與衆生爲衆生緣慈以法
010_0900_a_19L與之爲法緣慈以無爲心無取捨
010_0900_a_20L能所令衆生得益爲無緣慈悲喜捨
010_0900_a_21L亦同此例也

010_0900_a_22L
云何修悲無量心行者於慈定中
010_0900_a_23L念欲與衆生樂從慈定起猶見衆生
010_0900_a_24L受種種身苦心苦心生憐愍曰五道衆

010_0900_b_01L이런 큰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나는 알 수 없었고 볼 수도 없었다. 긴 세월 게으름만 떨며 구제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았으니 눈 없는 장님과 같았구나. 바라건대 선정 가운데서 모두 알고 모두 보아 부지런히 구제하고 보호하리라.”
이와 같이 원을 세우고 곧 선정에 들어 자심의 관법과 같이 먼저 가깝고 좋아하는 한 사람을 선택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나아가 시방의 다섯 갈래 세계 일체중생까지 확대한다. 삼매의 힘으로 명료하게 보게 되면 비심이 점점 깊어지게 된다.
어떻게 희무량심喜無量心을 닦는가? 수행자는 비심의 선정에서 고통으로 핍박받는 중생을 불쌍히 여겨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어떤 법으로 구제해야 저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고 모두 환희하게 될까?”
이때 다음과 같이 깊이 관찰한다.
“중생들이 비록 괴로움을 받으나 이 괴로움은 실체가 없다. 없는 것을 있다고 여기니 본래 이것은 망령된 법이다. 저 고통은 이미 실체가 아니므로 쉽게 없앨 수 있다. 내 마땅히 감로법을 중생에게 널리 베풀어 번뇌의 병을 없애고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하리라.”
자심과 비심의 관법에 의거하여 한 사람에서 열 사람까지 이르고, 나아가 한량없는 중생이 기쁨을 누리는 모습을 명료하고 분명하게 본다. 그 마음의 기쁨을 말로 다할 수 없지만 마음에 동요가 없으면 선정이 점점 깊어진다.
어떻게 사무량심捨無量心을 닦는가? 수행자는 희심의 선정에서 나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자심으로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비심으로 괴로움을 없애 주며, 희심으로 크게 기뻐하게 했다고 해서 내가 이익을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또한 뛰어난 행이 아니다. 비유하면 자애로운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익을 주어도 은덕을 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내가 즐거움을 주고 기쁨을 주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부덕한 짓이다. 지금 마땅히 이 세 가지 마음을 버려야 한다. 바라건대 중생과 더불어 모두 묘한 사심으로 장엄하리라.”
이와 같이 선정에 들어 중생이 괴로워하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는 모습을 낱낱이 보면 그 마음이 평등해져 좋아하거나 미워함이 없게 되며, 삼매가 점차 깊어져 견고하고 안온해진다.

010_0900_b_01L受此大苦而我不能知不能見
010_0900_b_02L夜懈怠不生救拔之心是同無目
010_0900_b_03L於定中悉知悉見勤加救護如是立
010_0900_b_04L即入禪定依慈心觀法先取一親
010_0900_b_05L愛人受苦相乃至十方五道一切衆生
010_0900_b_06L以三昧力得見明了悲心轉深也

010_0900_b_07L
云何修喜無量心行者於悲定中
010_0900_b_08L愍衆生受苦逼迫我當以何法拔濟
010_0900_b_09L令彼衆生脫苦得樂皆生歡喜爾時
010_0900_b_10L深觀衆生雖受苦惱而此苦無實
010_0900_b_11L無而有本是妄法彼旣非實容易可
010_0900_b_12L我當以甘露法徧與衆生除煩惱
010_0900_b_13L得涅槃樂依慈悲觀法從一至十
010_0900_b_14L乃至無量受喜之相了了分明其心悅
010_0900_b_15L不可備說而心無動轉定漸增深
010_0900_b_16L

010_0900_b_17L
云何修捨無量心行者從喜定出
010_0900_b_18L自思惟若慈與衆生樂悲欲拔苦
010_0900_b_19L令歡喜而謂我能利益者亦非勝行
010_0900_b_20L譬如慈父益子不求恩德若曰我能與
010_0900_b_21L樂與喜即是不德今當捨此三心
010_0900_b_22L與衆生皆得妙捨莊嚴如是入定
010_0900_b_23L見衆生受不苦不樂之相其心平等
010_0900_b_24L無有愛憎三昧轉深堅固安隱也

010_0900_c_01L사심 가운데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갖가지 일을 하면서도 취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니, 이것이 사심이다.
이 네 가지 마음을 닦으면 공덕이 넓고 커 현세에서는 뜻밖의 죽음을 당하는 일이 절대 없고 선신들이 옹호할 것이며, 내세에는 범왕梵王15)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그가 중생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제14장 공처정空處定
색계의 네 하늘은 곧 앞의 사선四禪이다. 무색계의 네 하늘은 곧 사공처四空處이고, 일명 사무색정四無色定이라고도 하니, 형태가 없고 빛깔이 없음을 말한다. 또한 사공정처四空定處라고 하는데, 이미 형태와 빛깔이 없으므로 다만 관찰되는 경계로서 처를 삼음을 말한다. 염처念處·승처勝處·일체처一切處가 모두 관찰하는 대상을 따라 처라는 이름을 얻은 것과 같은 경우이다.
사공四空이란 첫째 공처空處, 둘째 식처識處, 셋째 무소유처無所有處, 넷째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이다. 이들은 모두 각도 없고 관도 없는 성스럽고 고요한 마음이며, 또한 사구선捨俱禪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경에 “허공처정虛空處定을 얻으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그 마음이 점차 늘어난다.”16)고 하였다.
공처정空處定은 다음과 같다. 수행자는 먼저 색법色法의 허물과 죄를 깊이 생각한다.
“만약 형색을 갖춘 몸이 있으면 안으로 굶주림·목마름·질병·거침·무거움·헛됨·거짓 등의 고통이 있고, 밖으로 추위·더위·칼·몽둥이·묶임·형벌 등의 괴로움을 받게 된다. 인연이 화합하여 과보로 받은 이 몸이 곧 괴로움의 근본이다. 또 색법은 마음을 얽매어 자유롭지 못하게 하니, 이것은 마음의 감옥이다. 어찌 탐착하랴. 허공은 형색이 없이 확 트이고 고요하여 어떤 허물이나 근심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한마음으로 자기 몸을 자세히 관찰한다. 모든 털구멍과 아홉 구멍이 비고 성근 것을 모두 보며, 마치 얇고 고운 비단처럼 안팎이 서로 통하고

010_0900_c_01L捨心中能作種種利益衆生事而不取
010_0900_c_02L不着是爲捨心也

010_0900_c_03L
修此四心者功德廣大現世終不橫死
010_0900_c_04L善神擁護來世多作梵王以其攝衆生
010_0900_c_05L故也

010_0900_c_06L

010_0900_c_07L空處定第十四章

010_0900_c_08L
色界四天即前四禪也無色界四天
010_0900_c_09L四空處也一名四無色定言無形無色
010_0900_c_10L亦名四空定處言旣無形色但以
010_0900_c_11L所觀之境爲處如念處勝處一切處
010_0900_c_12L悉從所觀處得名也四空者一曰空處
010_0900_c_13L二曰識處三曰無所有處四曰非有想
010_0900_c_14L非無想處并是無覺無觀聖默然心
010_0900_c_15L捨俱禪所攝故經云得虛空處定不苦
010_0900_c_16L不樂其心轉增也

010_0900_c_17L
空處定者行者深思色法過罪若有
010_0900_c_18L色身則內有飢渴疾病麤重虛假等苦
010_0900_c_19L外受寒熱刀杖繫縛刑罰等苦因緣和
010_0900_c_20L報得此身即是苦本且色法繫縛
010_0900_c_21L於心不得自在是心之牢獄也何可
010_0900_c_22L貪着虛空無色虛豁寂靜無諸過患
010_0900_c_23L作此念已一心諦觀己身一切毛孔九
010_0900_c_24L悉見虛踈如羅縠相內外相通

010_0901_a_01L또 파초처럼 겹겹이 싸여 있지만 알맹이가 없다는 것을 본다. 그러면 떡시루의 체와 같고, 거미줄 같다가 점점 미미해져 몸이라는 구분이 모두 사라진다.
이와 같이 관찰할 때 눈으로 보던 빛깔이 없어지고 소리·냄새·맛·촉감도 차례차례 모두 사라진다. 색법이 사라지고 나서 한마음으로 공을 반연하면 색의 선정이 곧 물러나는데, 공처정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도 중간선이 있다. 이때 절대로 걱정하거나 후회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오로지하여 부지런히 힘쓰면서 공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곧 그 마음이 사라지고 저절로 공의 연緣에 머물게 되니, 이것이 미도지정의 모습이다. 그런 후에 활연히 공과 상응하여 그 마음이 밝고 깨끗해지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이 점점 늘어나고, 선정에서 오직 끝없는 허공만 보이며 마음에 흐트러짐이 없게 된다. 그러면 이미 색의 속박이 없어져 심식이 맑고 고요하며 걸림 없이 자재하게 되니, 마치 새가 새장을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것과 같다.
제15장 식처정識處定
수행자가 공처정에서 색법을 타파하고 허공을 관하는 것은 바깥의 법을 반연하는 것이므로 흩어져 없어지기 쉽다. 따라서 식처정識處定만 못하다. 식처정은 안의 법을 반연하는 것이므로 선정에 안온함이 많다. 이에 곧 공처정을 버리고 한마음으로 현재의 심식을 반연하여 찰나찰나 떠나지 않으면 곧 그것이 사라지고 저절로 식의 연에 머무르게 되니, 이것이 미도지정이다.
그 후 활연히 식과 상응하여 마음이 안정돼 움직이지 않고, 다른 현상은 보이지 않고 오직 현재의 심식心識이 찰나찰나 머물지 않는 것만 보게 된다. 그러면 선정의 마음이 분명하고 식으로 생각함이 대단히 넓어 한량없고 끝이 없다. 또한 선정 가운데서 과거에 이미 사라진 한량없고 끝없는 식을 기억하며, 미래에 일어날 한량없고 끝없는 식도 다 선정 중에 나타나 식법識法과 상응한다. 식법을 마음에 지니면 산란한 뜻이 없게 된다. 이 선정은 편안하고 청정하고 고요하며, 심식이 밝고 예리해지는 것이 어떤 비유로도 설명할 수 없다.

010_0901_a_01L如芭蕉重重無實如甑篩如蛛網
010_0901_a_02L漸微末身分皆盡如是觀時眼見色
010_0901_a_03L聲香味觸次第皆滅色法旣滅
010_0901_a_04L心緣空而色定便謝空定未發亦有
010_0901_a_05L中間禪爾時愼勿憂悔專心精勤
010_0901_a_06L空不捨 則其心泯然任運自住空緣
010_0901_a_07L此爲未到地相也於後豁然與空相應
010_0901_a_08L其心明淨不苦不樂漸得增長定中
010_0901_a_09L唯見無邊虛空心無分散旣無色縛
010_0901_a_10L心識澄靜無礙自在如鳥出籠飛騰
010_0901_a_11L自在矣

010_0901_a_12L

010_0901_a_13L識處定第十五章

010_0901_a_14L
行者於空定中觀破虛空是外法緣
010_0901_a_15L易於散失不如識處是內法緣定多
010_0901_a_16L安穩於是便捨空處一心繫緣現在心
010_0901_a_17L念念不離即便泯然任運自住識
010_0901_a_18L是未到地定此後豁然與識相應
010_0901_a_19L心定不動而不見餘事惟見現在心識
010_0901_a_20L念念不住定心分明識慮廣濶無量
010_0901_a_21L無邊亦於定中憶過去已滅之識
010_0901_a_22L量無邊未來應起之識亦無量無邊
010_0901_a_23L悉現定中與識法相應識法持心
010_0901_a_24L分散意此定安隱淸淨寂靜心識明

010_0901_b_01L
제16장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은 불용처정不用處定이라고도 한다. 말하자면 공은 바깥 경계고 마음은 안의 경계인데 이 두 경계를 버리고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소처정少處定이라고도 하니, 이 선정은 일체를 다 버렸으나 의근에 아직 법진法塵이 조금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 무상정無想定이라고도 한다.
수행자는 식처정의 과실과 우환을 깊이 알아야 한다. 즉 “과거·현재·미래의 심식은 한량없고 끝이 없으므로 식을 반연하여 선정에 들어가는 것은 진실한 법이 아니니, 오직 심식처가 없어 마음에 의지할 것이 없어야 비로소 편안함(安隱)이라 부를 수 있다.”고 알아야 한다. 그러면 곧 식처를 버리고 마음을 무소유처에 매어 둔다. 무소유란 공도 아니고 식도 아닌 무위법의 경계이며 분별도 없다.
이와 같이 알고 나서 그 마음을 고요히 쉬고 무소유법을 생각한다. 이때 식처정이 곧 사라지고 중간정인 미도지정이 나타난다. 이때 수행자는 한마음으로 안이 깨끗하며 공하여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모든 법을 보지 않고, 고요하고 편안하여 마음에 흔들림이 없다. 이러한 선정을 얻었을 때 은은한 기쁨이 샘솟고 고요하며 생각이 끊어져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데 하물며 다른 법이 보이겠는가. 분별하는 바가 없으니, 이를 무소유처정이라 하고 또 무상정이라고도 한다.
제17장 비유상비무상처정非有想非無想處定
이 선정의 이름에 대한 고금의 해석이 제각각인데 각기 의미가 있으므로 모두 소개한다. 어떤 이는 “비상非想은 거친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고, 비비상非非想이란 미세한 생각이 아님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이미 거친 생각은 없지만 여전히 미세한 생각이 남아 있기 때문에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이라 한다.”고 설명한다.

010_0901_b_01L不可說喩也

010_0901_b_02L

010_0901_b_03L無所有處定第十六章

010_0901_b_04L
無所有處定者亦名不用處定言空爲
010_0901_b_05L外境心爲內境捨此二境而不用也
010_0901_b_06L亦名少處定言此定一切俱捨而意
010_0901_b_07L猶餘少分法塵也亦名無想定
010_0901_b_08L深知識處過患謂三世心識無量
010_0901_b_09L無邊緣識入定非眞實法惟其無心
010_0901_b_10L識處心無依倚乃名安隱即捨識處
010_0901_b_11L繫心無所有處無所有者非空非識
010_0901_b_12L無爲法塵無有分別如是知己靜息
010_0901_b_13L其心而念無所有法是時識定便謝
010_0901_b_14L而現中間未到地定爾時行者一心內
010_0901_b_15L空無所依不見諸法寂然安隱
010_0901_b_16L無動搖得此定時怡然寂絕諸想不
010_0901_b_17L尙不見心相何况他法無所分別
010_0901_b_18L是名無所有處定亦名無想定也

010_0901_b_19L

010_0901_b_20L非有想非無想處定第十七章

010_0901_b_21L
此定之名古今解釋多有不同然各
010_0901_b_22L有義致故并存之或曰非想者非麤
010_0901_b_23L非非想者非非細想此人旣無麤
010_0901_b_24L而尙餘細想故云非想非非想也

010_0901_c_01L
어떤 이는 “식처정일 때는 생각이 있고, 불용처정일 때는 생각이 없는데, 지금 이런 있고 없음을 함께 버리는 것이다. 비상으로 생각 있음을 버리고 비비상으로 생각 없음을 버리기 때문에 비상비비상이라 한다.”고 설명한다. 또 어떤 이는 “이 선정에서는 어떤 모습도 보지 않으므로 비유상非有想이라 한다. 그렇다고 만약 오로지 생각이 없기만 하다면 마치 나무나 돌과 같을 것이니, 어찌 생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비무상非無想이라 한다.”고 설명한다.
수행자는 무상無想 중의 허물과 죄를 깊이 알아야 한다. 즉 “이 무소유처정은 우매한 것 같고 취한 것 같으며 잠자는 듯 어둠 속에 있는 듯하다. 무명에 덮여 깨달아 아는 것도 없으니 사랑하거나 즐거워할 이유가 없다.”고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선정(무소유처정)의 수·상·행·식이 아무리 미세하다 해도 역시 무상·고·공 등의 법임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세밀히 관찰하고 곧 그것을 떠나 비유비무를 관찰한다. 무슨 까닭인가? 나의 지금 이 마음은 과거·현재·미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으며, 이미 모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처소도 없으므로 마땅히 ‘있는 것이 아님(非有)’을 알아야만 한다. 또 만약 말 그대로 ‘없다’면 무엇을 마음이라 부르겠는가? 만약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면 다시 별도로 없다 할 것도 없다. 무슨 까닭인가? ‘없음’은 저 홀로 없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있음’에 대한 집착을 타파하기 위해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만약 ‘있음’이 없다면 ‘없음’도 없다. 그러므로 ‘비유비무非有非無’라고 한다.
이와 같이 관할 때 있음도 없음도 보지 않고 한마음으로 중도를 반연하며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비유상비무상정을 수습하는 것이다. 이때 불용처정이 문득 사라져 중간선을 얻고, 그 마음이 저절로 중도를 반연하여 머물게 된다. 그런 후 갑자기 진실한 선정이 발생해 있고 없는 모습을 보지 않게 되며, 일체가 없어진 듯 고요해 마음에 동요가 없게 되며, 편안하고 청정한 것이 열반의 모습과 같게 된다.
이 선정은 미묘하여 삼계에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외도가 이것을 증득하면, 이것을 중도실상中道實相인 열반涅槃으로 여겨 상常·낙樂·아我·정淨이라 하면서 이 법에 애착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이 선정에 들어가면

010_0901_c_01L或曰識處是有想不用處是無想今雙
010_0901_c_02L遣有無以非想遣有想以非非想
010_0901_c_03L無想故云非想非非想也或曰此定中
010_0901_c_04L不見一切相貌故言非有想而若一向
010_0901_c_05L無想如木石則云何能知無想故言
010_0901_c_06L非無想也

010_0901_c_07L
行者深知無想中過罪是無所有定
010_0901_c_08L如痴如醉如眠如暗無明覆蔽無所
010_0901_c_09L覺了無可愛樂諦觀其定受想行識
010_0901_c_10L雖甚細微而亦不免無常苦空等法
010_0901_c_11L便謝離而觀於非有非無何以故
010_0901_c_12L今此心過去現在未來求之皆不可得
010_0901_c_13L旣無形相亦無處所當知非有若果
010_0901_c_14L是無云何名心若心非無更無別無
010_0901_c_15L何以故無非自無破其有著故謂之
010_0901_c_16L曰無若無有則無無故云非有非無也
010_0901_c_17L如是觀時不見有無一心緣中不念餘
010_0901_c_18L是爲修習非有想非無想定爾時不
010_0901_c_19L用處定便即謝滅而得中間禪其心
010_0901_c_20L任運住在緣中於後忽然眞實定發
010_0901_c_21L見有無相貌泯然寂絕心無動搖
010_0901_c_22L然淸淨如涅槃相是定微妙三界無
010_0901_c_23L外道證之謂是中道實相涅槃
010_0901_c_24L樂我淨愛著是法更不前進入此定

010_0902_a_01L있고 없음을 보지는 않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마음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외도들은) 곧 이 마음을 계탁하여 “이것이 진신眞神으로서 멸하지 않는 것이다.”라고들 한다. 그러나 만약 불제자라면 이것 역시 네 가지 음陰이 화합하여 있는 것으로서 허망하고 실체가 없으며, 별도의 신지神知는 없다는 것을 안다.
또한 허공처정은 색을 타파하므로 공空이라 한다. 식처정은 공을 타파하므로 식識이라 하고 유상有想이라고 한다. 불용처정은 식을 타파하므로 무식無識이라 하고 무상無想이라고 한다. 지금 이 선정은 무소유를 타파하므로 비무상非無想이라 하고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이라고 한다. 이 선정에서는 들뜨고 가라앉음이 완전히 평등하고 공과 유가 균등하므로 세간선 중에 가장 높고 뛰어나다.
또한 무상無想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무상천정無想天定이고, 둘째는 비유상비무상정非有想非無想定이며, 셋째는 멸수상정滅受想定이다. 외도 가운데 방편을 모르는 자는 마음을 멸해 무상천정에 들어가고 방편을 아는 자는 마음을 멸해 비유상비무상정에 들어가지만, 불제자는 마음을 멸해 멸수상정에 들어간다.
제18장 육묘문六妙門
육묘六妙란 첫째 수數, 둘째 수隨, 셋째 지止, 넷째 관觀, 다섯째 환還, 여섯째 정淨이다. 왜 묘문妙門이라 하는가? 이 여섯 가지 법을 통해 열반에 이르기 때문에 묘문이라 한다. 앞의 세 가지는 선정법이고 뒤의 세 가지는 지혜법이며, 유루이면서 무루라는 뜻17)이 여기에 있다. 수행하여 깨닫는 측면에서 설명하자면 모든 선이 다 육묘문六妙門에 속하나 지금은 단지 순서대로 생기는 양상만을 취해 도에 들어가는 바른 요체로서 육묘문을 밝히겠다.
첫째, 수數란 호흡을 세는 법에 따라 닦아 익히는 것이다. 호흡을 세는 법이 이루어져

010_0902_a_01L不見有無而覺有能知非有非無之
010_0902_a_02L即計此心謂是眞神不滅若佛弟
010_0902_a_03L知是四陰和合而有虛誑不實
010_0902_a_04L別神知也

010_0902_a_05L
復次虛空處定破色故謂空也識處定
010_0902_a_06L破空故謂識謂有想也不用處定
010_0902_a_07L識故謂無識謂無想也今此定破無
010_0902_a_08L所有故謂非無想而言非有想非無想
010_0902_a_09L此定浮沈正等空有均平世間禪中
010_0902_a_10L最爲尊勝也

010_0902_a_11L
復次無想有三義一無想天定二非有
010_0902_a_12L想非無想定三滅受想定外道不知方
010_0902_a_13L便者滅心入無想天定知方便者
010_0902_a_14L心入非有想非無想定佛弟子滅心入
010_0902_a_15L滅受想定

010_0902_a_16L

010_0902_a_17L六妙門第十八章

010_0902_a_18L
六妙者一數二隨三止四觀五還
010_0902_a_19L六淨何謂妙門言此法能通至涅槃
010_0902_a_20L故云妙門也三是定法三是慧法
010_0902_a_21L有漏亦無漏之義在此也以修證言之
010_0902_a_22L諸禪皆屬六妙門攝而今但取次第相
010_0902_a_23L入道正要以明之

010_0902_a_24L
一數者謂依數息法而修習數法旣成

010_0902_b_01L호흡이 허공이 엉긴 듯하게 되면 마음의 모습이 점점 미세해지면서 호흡을 세는 것이 거추장스럽게 여겨진다. 이때 세는 법을 버리고 수隨를 닦는다.
둘째, 수隨란 호흡을 따르는 법에 의거하여 닦아 익히는 것이다. 마음과 호흡이 서로를 의지해 뜻과 생각이 즐거워지면 호흡을 따르는 것이 거추장스럽게 여겨진다. 이때에는 호흡을 따르는 법을 버리고 지를 닦는다.
셋째는 지止이다. 지에는 세 가지 법첫째는 계연지繫緣止, 둘째는 제심지制心止, 셋째는 체진지體眞止이다. 방편문 중 제35장에 나온다.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제심지법을 이용해 대상에 대한 모든 생각을 그친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이 사라지고 선정에 들어간다. 이 선정법으로 마음을 지속시키면 저절로 동요함이 없게 되는데, 이때는 관법을 닦아야만 한다.
넷째는 관觀이다. 관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혜행관慧行觀이니 참된 지혜를 관하는 것이고, 둘째는 득해관得解觀이니 즉 가상관假想觀이며, 셋째는 실관實觀으로서 현상 그대로 관하는 것이다. 혜행관과 득해관은 사제四諦·십이인연十二因緣·구상九想·배사背捨 등에 설명이 있고, 실관은 관식법觀息法에 있다. 마땅히 세 가지 관법에 따라 닦아 익혀야만 한다.
다섯째는 환還이다. 관법이 이루어져 관하는 생각이 움직이게 되면 스스로 이렇게 생각한다.
“이 관은 마음으로부터 생겨난 것인가, 마음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닌가? 마음으로부터 생겨났다면 마음과 관이 다른 것이 된다. 마음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라면 앞에서 호흡을 세는 법·호흡을 따르는 법·그치는 법을 닦을 때는 왜 관하는 마음이 없었을까?”
그러면 곧 “관하는 마음은 본래 스스로 생겨나지 않았다. 생겨나지 않았으므로 있지 않고, 있지 않으므로 곧 공이며, 공이므로 별도의 관하는 마음도 없다. 이미 관하는 마음이 없는데 어찌 관할 대상이 있겠는가?”라고 알게 된다. 이와 같이 관할 때 대상과 앎이 함께 없어지고 마음과 지혜가 개발되니, 이것이 ‘근본으로 되돌리고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返本還源)’이다.
여섯째는 정淨이다. 근원으로 돌이키는 법이 이루어졌으면 깨끗이 하는 법을 닦아야 한다. 색의 깨끗함을 알기 때문에 망상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며, 수·상·행·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망상의 더러움을 쉬고, 분별의 더러움을 쉬고, ‘나’에 집착하는 더러움을 쉬면 주체와 객체를 얻을 수 없게 된다.

010_0902_b_01L息旣虛凝心相漸細以數爲麤而捨
010_0902_b_02L數修隨也

010_0902_b_03L
二隨者謂依隨息法而修習心息相依
010_0902_b_04L意慮怡然以隨爲麤而捨隨修止也

010_0902_b_05L
三止者止有三法一曰繫緣止二曰制心止
三曰體眞止在方便門第
010_0902_b_06L三十五
章中
而此用制心止法息諸緣慮
010_0902_b_07L身心泯然入定定法持心任運不動
010_0902_b_08L爾時應修觀法也

010_0902_b_09L
四觀者觀有三種一慧行觀觀眞之
010_0902_b_10L二得解觀即假想觀三實觀如事
010_0902_b_11L而觀也慧行及得解觀在四諦十二
010_0902_b_12L緣九想背捨等中實觀在觀息法中
010_0902_b_13L當依三種觀法修習也

010_0902_b_14L
五還者觀法旣成觀念流動自念
010_0902_b_15L爲從心而生乎非從心而生乎
010_0902_b_16L從心生則心與觀爲二若非從心生
010_0902_b_17L則前修數隨止時何無觀心即知觀心
010_0902_b_18L本自不生矣不生故不有不有故即空
010_0902_b_19L空故無別觀心旣無觀心豈有觀境
010_0902_b_20L如是觀時境智雙忘心慧開發是爲
010_0902_b_21L返本還源也

010_0902_b_22L
六淨者還法旣成應修淨法以知色
010_0902_b_23L淨故不起妄想分別受想行識亦復
010_0902_b_24L如是息妄想垢息分別垢息取我垢

010_0902_c_01L그러면 활연히 마음과 지혜가 상응하여 걸림 없는 방편이 저절로 개발되고 바른 삼매에 들어 마음에 의지함이 없게 되며, 나아가 무루의 지혜가 발생해 삼계의 더러움이 다하게 된다. 따라서 깨끗함이라고 한다.
또한 중생이 공함을 관하므로 ‘관’이라고 하고, 실제법의 공함을 관하므로 ‘환’이라 하며, 평등공을 관하므로 ‘정’이라고 한다.
또한 공삼매空三昧18)와 상응하므로 ‘관’이라 하고, 무상삼매無相三昧19)와 상응하므로 ‘환’이라 하며, 무작삼매無作三昧20)와 상응하므로 ‘정’이라고 한다.
또한 모든 외관外觀을 ‘관’이라 하고, 모든 내관內觀을 ‘환’이라 하며, 모든 내관도 외관도 아닌 것을 ‘정’이라고 한다.
또한 보살이 가假로부터 공空에 들어가는 관을 ‘관’이라 하고, 공으로부터 가에 들어가는 관을 ‘환’이라 하며, 공과 가를 한마음으로 관하는 것을 ‘정’이라고 한다.
또한 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도에 들어가는 초입에 먼저 육묘문으로 근본을 삼으셨다. 그러므로 보살이 육묘문에 잘 들어가면 모든 불법을 갖출 수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제19장 십육특승十六特勝
십육특승十六特勝이란 첫째 숨이 들어오는 모습을 아는 것, 둘째 숨이 나가는 모습을 아는 것, 셋째 호흡이 길고 짧음을 아는 것, 넷째 호흡이 몸에 두루 퍼짐을 아는 것, 다섯째 모든 몸의 작용을 하지 않는 것, 여섯째 기쁨을 느끼는 것, 일곱째 즐거움을 느끼는 것, 여덟째 여러 마음작용을 느끼는 것, 아홉째 기쁜 마음을 짓는 것, 열째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 열한째 마음이 해탈하는 것, 열두째 무상을 관하는 것, 열셋째 나가서 흩어지는 것을 관하는 것, 열넷째 욕망을 관하는 것, 열다섯째 멸함을 관하는 것, 열여섯째 포기하고 버림을 관하는 것이다.

010_0902_c_01L而不得能所豁然心慧相應無礙方便
010_0902_c_02L任運開發三昧正受心無依倚乃至
010_0902_c_03L無漏慧發三界垢盡故名淨也

010_0902_c_04L
復次觀衆生空故名爲觀觀實法空
010_0902_c_05L故名爲還觀平等空故名爲淨也

010_0902_c_06L
復次空三昧相應故名爲觀無相三昧
010_0902_c_07L相應故名爲還無作三昧相應故名
010_0902_c_08L爲淨也

010_0902_c_09L
復次一切外觀名爲觀一切內觀
010_0902_c_10L爲還一切非內非外觀名爲淨也

010_0902_c_11L
復次菩薩從假入空觀故名爲觀
010_0902_c_12L空入假觀故名爲還空假一心觀
010_0902_c_13L名爲淨也

010_0902_c_14L
復次三世諸佛入道之初先以六妙門
010_0902_c_15L爲本當知菩薩善入六妙門即能具
010_0902_c_16L一切佛法也

010_0902_c_17L

010_0902_c_18L十六特勝第十九章

010_0902_c_19L
十六特勝者一知息入二知息出
010_0902_c_20L知息長短四知息徧身五除諸身行
010_0902_c_21L六受喜七受樂八受諸心行九心作
010_0902_c_22L十心作攝十一心作解脫十二觀
010_0902_c_23L無常十三觀出散十四觀欲十五觀
010_0902_c_24L十六觀棄捨

010_0903_a_01L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지 않았을 때, 외도들도 사선과 사공처정을 얻었으나 대치對治21)하는 관행이 없었기 때문에 생사를 벗어나지 못했다. 여래께서는 처음 사제四諦를 설했을 때 혹 깨닫지 못하는 이가 있으면 다시 구상·배사 등의 부정관법을 설하여 그것을 대치했다. 부정관을 수행하는 자가 탐욕은 제거했지만 간혹 싫어하는 마음이 지나쳐 무루를 일으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자 부처님께선 곧 부정관을 버리고 이 특승법을 닦게 하셨다. 이 법에는 정定도 있고 관觀도 있어서 모든 선禪을 구족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들숨을 관하는 법은 숨의 기운이 없어질 때까지 관하는 것이다. 둘째, 날숨을 관하는 법이란 코끝에 이르러 멈출 때까지 관하는 것이다. 셋째, 호흡의 길고 짧음을 관하는 법이란 몸이 불안하고 마음이 산란하면 나가고 들어오는 호흡이 짧고,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고요하면 나가고 들어오는 호흡이 길다. 넷째, 호흡이 몸에 두루 퍼진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편안하면 기도가 막히지 않아 호흡이 몸에 두루 충만한 것이다. 다섯째, 모든 몸의 작용을 없애는 것이란, 상想과 수受가 마음의 작용이고, 각覺과 관觀이 입의 작용이며, 날숨과 들숨은 몸의 작용이 된다는 것이다. 호흡이 몸에 두루 퍼지고 나면 그 감각이 거친 생각을 일으킬 것이 우려된다. 따라서 모든 거친 생각을 제거하므로 모든 몸의 작용을 없앤다고 한다. 여섯째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고, 일곱째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미미한 기쁨과 즐거움만 있어도 그것이 온몸에 가득 퍼지고, 몸과 마음이 가득 차고 나면 안으로 마음에 희열이 있게 된다. 따라서 즐거움이라고 한다. 여덟째, 온갖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것이란, 이미 마음속에 즐거움을 느꼈다면 반드시 마음의 즐거운 경계에 의지하여 여러 가지 마음의 작용이 따라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온갖 마음의 작용을 느낀다고 한다. 아홉째, 기쁜 마음을 짓는 것이란, 마음이 한 경계에 머물게 되었어도 지혜로 이해하는 작용이 없으면 가라앉은 마음에 반드시 덮이고 만다. 따라서 기쁨으로 그 마음을 일으켜 가라앉지 않게 하므로 기쁨을 일으킨다고 한다. 열째,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란, 기뻐하는 마음이 정상보다 지나치게 일어나 산란해지면 그것을 거두어 돌아오게 하고, 온갖 연으로 달아나 흩어지는 일이 없도록 한다. 따라서 거두어들인다고 한다. 열한째, 마음이 해탈하는 것이란, 마음이 들뜨거나 산란하지 않고

010_0903_a_01L
佛未出世時外道等已得四禪四空
010_0903_a_02L而無對治觀行故不出生死矣如來初
010_0903_a_03L說四諦而或有不悟者更說九想背捨
010_0903_a_04L等不淨觀法而對治之修不淨觀者
010_0903_a_05L貪欲雖除而或有厭患心重不能發無
010_0903_a_06L漏者佛即令捨不淨觀而修此特勝法
010_0903_a_07L蓋此法中有定有觀具足諸禪故也

010_0903_a_08L
或曰一觀入息至於氣滅也二觀出息
010_0903_a_09L至於鼻端也三觀息長短者若身
010_0903_a_10L不安心散亂則出入息短若身安心
010_0903_a_11L則出入息長也四息徧身者形心
010_0903_a_12L旣安則氣道無壅充徧身中也五除
010_0903_a_13L諸身行者想受爲心行覺觀爲口行
010_0903_a_14L出入息爲身行旣息徧身中患彼覺動
010_0903_a_15L麤念除諸麤故名除諸身行也六受
010_0903_a_16L七受樂者雖有微喜樂能徧滿
010_0903_a_17L識旣滿內心喜悅故名樂也八受諸
010_0903_a_18L心行者旣受樂在懷必有數法相隨
010_0903_a_19L倚心樂境故名受諸心行也九心作喜
010_0903_a_20L旣止心一境未有慧解必爲沉心
010_0903_a_21L所覆沒以喜擧之令不沉沒故名作
010_0903_a_22L喜也十心作攝者喜心動散則發越
010_0903_a_23L過常攝之令還不使馳散諸緣故名
010_0903_a_24L作攝也十一心作解脫者心不掉散

010_0903_b_01L고르고 평등하여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해탈이라고 한다. 열두째, 무상을 관하는 것이란, 이미 자재함을 얻어 가라앉거나 들뜨는 일이 없게 되었으므로 ‘모든 법은 무상하여 찰나찰나 생멸하니 즐거워할 것도 없다’고 관할 수 있는 것이다. 열셋째, 흩어져 무너짐을 관하는 것이란 ‘이 몸은 오래지 않아 흩어져 무너지고 닳아 없어지는 법으로서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관하는 것이다. 열넷째, 욕망에서 벗어남을 관하는 것이란, 이 몸은 오직 고통의 근본일 뿐이므로 마음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욕망을 벗어난다고 한다. 열다섯째, 멸함을 관하는 것이란, 이 마음은 머물다 사라지고 갖가지 허물과 근심이 많으므로 머무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여섯째, 버림을 관하는 것이란 ‘이러한 모든 법이 다 허물과 근심이다’라고 관하는 것이다. 따라서 버림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열여섯 가지 법은 반드시 여러 단계 선의 여덟 가지 관법과 서로 관련지어 차례로 대치해야 한다. 왜 그런가? 첫째와 둘째 호흡이 드나듦을 아는 것은 호흡을 세는 법을 대치하고, 셋째 호흡의 길고 짧음을 아는 것은 욕계정을 대치하고, 넷째 호흡이 몸에 두루 퍼짐을 아는 것은 미도지정을 대치하고, 다섯째 모든 몸의 작용을 없애는 것은 초선의 각지覺支를 대치하고, 여섯째 기쁨을 느끼는 것은 초선의 희지喜支를 대치하고, 일곱째 마음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초선의 낙지樂支를 대치하고, 여덟째 온갖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것은 초선의 일심지一心支를 대치하고, 아홉째 기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제2선의 내정지內淨支와 희지喜支를 대치하고, 열째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제2선의 일심지를 대치하고, 열한째 마음이 해탈에 머무는 것은 제3선의 낙지를 대치하고, 열두째 무상을 관함은 제4선인 부동정不動定을 대치하고, 열셋째 흩어져 버림을 관함은 공처정을 대치하고, 열넷째 욕망으로부터 벗어남을 관하는 것은 식처정을 대치하고, 열다섯째 멸함을 관하는 것은 불용처정을 대치하고, 열여섯째 버림을 관하는 것은 비상비비상처정을 대치하기 때문이다.”22)
첫째와 둘째, 호흡의 드나듦을 아는 것은 호흡 세는 법을 대치할 수 있다. 수행자가 호흡을 조절하여 그것이 면면히 이어지게 되었다면

010_0903_b_01L均等無累故名解脫也十二觀無常者
010_0903_b_02L已得自在不爲沈浮所敗故能觀諸法
010_0903_b_03L無常念念生滅不可樂也十三觀散
010_0903_b_04L壞者此身不久當是散壞磨滅之法
010_0903_b_05L非眞實有者也十四觀離欲者此身惟
010_0903_b_06L是苦本心欲離之故名離欲也十五
010_0903_b_07L觀滅者是心住滅多諸過患不欲住
010_0903_b_08L故也十六觀棄捨者觀此諸法皆是
010_0903_b_09L過患故名棄捨也

010_0903_b_10L
或曰此十六法應須竪對諸禪八觀法
010_0903_b_11L相關所以者何一二知息入出者
010_0903_b_12L於數息也三知息長短者對欲界定也
010_0903_b_13L四知息徧身者對未到地定也五除諸
010_0903_b_14L身行者對初禪覺支也六受喜者
010_0903_b_15L初禪喜支也七心受樂者對初禪樂支
010_0903_b_16L八受諸心行者對初禪一心支也
010_0903_b_17L九心作喜者對二禪內淨喜支也十心
010_0903_b_18L作攝者對二禪一心支也十一心住解
010_0903_b_19L脫者對三禪樂支也十二觀無常者
010_0903_b_20L對四禪不動定也十三觀出散者對空
010_0903_b_21L處也十四觀離欲者對識處也十五
010_0903_b_22L觀滅者對不用處也十六觀棄捨者
010_0903_b_23L對非想非非想處也

010_0903_b_24L
一二知息入出對代數息者行者旣調

010_0903_c_01L한마음이 호흡을 의지하며 따르기에 숨을 들이쉴 때 그 숨이 코에서 배꼽까지 이르는 것을 알고, 숨을 내쉴 때 그 숨이 배꼽에서 코에 이르는 것을 안다. 이와 같이 한마음으로 호흡을 관조하며 의지해 따르고 산란함이 없게 된다. 다시 호흡의 거칠고 미세하고 가볍고 무겁고 껄끄럽고 매끄럽고 차갑고 따뜻한 상태를 안다. 저 호흡을 세는 법은 그저 어두운 마음으로 호흡을 세기만 하고 관하는 행법이 없으므로 애착·아견·자만 등의 허물이 생기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지금 호흡을 따를 때에는 곧 이 호흡이 무상함을 알게 된다. 목숨(命)은 호흡에 의지하므로 호흡을 목숨으로 삼는다. 한번 내쉰 숨이 돌아오지 않으면 목숨 또한 따라서 떠나는 것이다. 호흡이 이미 무상하고 목숨 또한 견고하지 않으므로 애착·아견·자만 등이 저절로 생기지 않게 된다. 또 수행자가 한마음으로 호흡에 의지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고서 선정에 들어가기 때문에 ‘애착이기도 하다(亦愛)’고 하며, 무상을 깨닫기 때문에 ‘다스림이기도 하다(亦策)’고 한다. 선정과 상응하기 때문에 ‘유루이기도 하다(亦有漏)’고 하고, 관행으로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무루이기도 하다(亦無漏)’고 한다.
또한 호흡을 셀 때에는 어둡고 우매한 마음으로 세기 때문에 비추어 깨닫는 바가 없다. 따라서 선정을 증득할 때에도 마음에 보이는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 호흡을 따르는 법은 곧 밝은 마음으로 호흡을 관조하는 것이므로 선정을 증득할 때 마음의 눈이 밝게 열려 몸의 서른여섯 가지 물질을 보고 애착·아견·자만을 깨뜨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호흡을 세는 법보다 특별히 뛰어난 점이다.
셋째, 호흡의 장단을 아는 것은 욕계정을 대치하는 것이다. 욕계정에 들었을 때에는 선정의 마음이 밝고 깨끗하나 도무지 호흡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선정에서는 들어오는 숨이 긴 것과 나가는 숨이 짧은 것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마음이 이미 안에 고요하게 자리해 숨이 마음을 따라 들어오므로 들이쉬면 곧 긴 것을 알고, 마음이 밖을 반연하지 않으므로 내쉬면 곧 짧은 것을 안다.
또한 마음이 세밀하면 호흡도 세밀해지고 호흡이 세밀하면 숨을 들이쉴 때 코로부터 배꼽에 이르는 것이 미세하고 느리며 길어진다. 숨을 내쉴 때도 배꼽에서 코에까지 이르는 것이 미세하고 길어진다. 마음이 거칠면 호흡도 거칠어지고, 호흡이 거칠면 곧 숨이 들고 나는 것이 아주 급하고 짧아진다.

010_0903_c_01L息綿綿一心依隨於息息入時知其
010_0903_c_02L從鼻至臍息出時知其從臍至鼻
010_0903_c_03L是一心照息依隨不亂復知息相之麤
010_0903_c_04L細輕重澁滑冷煖若彼數息者直闇心
010_0903_c_05L無有觀行故多生愛見慢等諸過矣
010_0903_c_06L今隨息之時即知此息無常命依於息
010_0903_c_07L而以息爲命一息不還則命亦隨去
010_0903_c_08L息旣無常命亦不固故愛見慢等
010_0903_c_09L不能生也復次行者一心依息令心
010_0903_c_10L不散得入禪定故名亦愛也覺悟無
010_0903_c_11L故名亦策也與定相應故名亦有
010_0903_c_12L觀行不著故名亦無漏也復次若
010_0903_c_13L數息時則以冥闇心而數無所照了
010_0903_c_14L故證定時心無所見今隨息則明心照
010_0903_c_15L故證定時心眼開明能見身中三
010_0903_c_16L十六物而破愛見慢此即特勝於數息
010_0903_c_17L

010_0903_c_18L
第三知息長短對欲界定者欲界定時
010_0903_c_19L定心明淨都不覺息今此定中覺入
010_0903_c_20L息長出息短何以故心旣靜住於內
010_0903_c_21L隨心入故入則知長心不緣外故
010_0903_c_22L出則知短也復次心細則息細息細則
010_0903_c_23L入息從鼻至臍微緩而長出息從臍至
010_0903_c_24L亦微而長也心麤則息麤息麁則

010_0904_a_01L
또한 호흡이 짧기 때문에 마음이 세밀하다는 것을 알고 호흡이 길기 때문에 마음이 거칠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마음이 이미 더욱 고요해졌다면 내쉬는 숨은 배꼽에서 시작해 가슴에 이르러 끝나고, 들이쉬는 숨은 코로부터 목구멍에 이르러 끝난다. 이것은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에 호흡이 짧은 것이다. 마음이 거칠면 (내쉬는) 숨이 배꼽에서 코에 이르는 것을 느끼며 그 길은 멀고도 길다. 이것은 곧 마음이 거칠기 때문에 호흡이 긴 것이다.
또한 (호흡이) 짧은 가운데 길다고 느끼면 곧 선정이 세밀한 것이고, (호흡이) 긴 가운데 짧다고 느끼면 선정이 거친 것이다. 왜냐하면 호흡이 코에서부터 가슴에 이르러 끝날 경우에는 행로는 비록 짧지만 그 움직임은 미세하고 느려서 오랜 시간이 걸려야 배꼽에 다다른다. 이것은 지나간 거리는 짧지만 시간이 길게 걸리는 것이다. 만약 마음이 거칠면 코에서 배꼽에 이르는 길이 비록 멀지만 그 움직임이 거칠어 금방 되돌아 나온다. 이것은 지나간 거리는 길지만 시간이 짧게 걸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할 때 곧 무상함을 알게 되고, 마음의 생멸이 일정치 않은 것을 말미암아 능히 욕계정을 깨트리게 된다.
넷째, 호흡이 온몸에 두루 퍼지는 것을 알아 미도지정을 대치한다. 근본선의 미도지정에서는 몸의 모습이 허공처럼 없어지는 것만 느낄 뿐, 몸과 호흡이 있는지 없는지는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특승에서는 미도지정을 일으켰을 때에도 다 없어진 듯이 선정에 들어가서 구름이나 그림자처럼 몸이 점점 나타남을 느낀다. 또한 내쉬고 들이쉬는 숨이 온몸의 털구멍까지 두루 퍼지는 것을 깨닫고, 숨이 들이쉬어도 쌓이지 않고 내쉬어도 흩어짐이 없이 무상하게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본다. 또 몸은 공空이고 가假23)로서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또한 생멸하며 찰나도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세 가지24)가 화합해 선정이 생기지만 세 가지가 이미 공하므로 선정은 의지할 곳이 없다. 공을 아는 것 또한 공해 선정 가운데서 집착하지 않으면 곧 근본 미도지정을 타파하니, 애착하고 가책한다는 뜻이 이미 그 가운데 있다.
다섯째, 몸의 모든 작용을 제거하는 것은 초선정의 각지覺支와 관지觀支를 대치한다.

010_0904_a_01L出入急疾而短也復次息短故知心之
010_0904_a_02L息長故知心之麁何以故心旣轉
010_0904_a_03L則出息從臍至胸而盡入息從鼻
010_0904_a_04L至咽而盡此則心靜故息短也心麁者
010_0904_a_05L覺息從臍至鼻道里長遠此則心麤故
010_0904_a_06L息長也復次短中覺長則定細長中覺
010_0904_a_07L短則定麤何以故如息從鼻至胸而盡
010_0904_a_08L則行路雖短而其行微緩久方至臍
010_0904_a_09L此則行處短而時節長也若心麤而從
010_0904_a_10L鼻至臍道里雖長而其行麁率欻然
010_0904_a_11L還出此則行處長而時節短也如是觀
010_0904_a_12L即知無常由心生滅不定能破欲
010_0904_a_13L界定也

010_0904_a_14L
第四知息徧身對未到地定者根本未
010_0904_a_15L到地但覺身相泯然如虛空而不覺
010_0904_a_16L身息之有無今特勝中發未到地時
010_0904_a_17L亦泯然入定即覺漸漸有身如雲如影
010_0904_a_18L復覺出入息徧身毛孔見息入無積聚
010_0904_a_19L出無分散無常生滅覺身空假不實
010_0904_a_20L亦知生滅刹那不住三事和合故有
010_0904_a_21L定生三事旣空則定無所依知空亦
010_0904_a_22L於定中不著即破根本未到地
010_0904_a_23L策之義已在其中矣

010_0904_a_24L
1) [2] 五除諸身行對初禪覺觀支者行者

010_0904_b_01L수행자가 호흡이 몸에 두루 퍼지는 것을 깨달아 초선을 일으키게 되면 마음의 눈이 활짝 열려 냄새나고 더러우며 혐오스러운 몸의 서른여섯 가지 물질을 보게 된다. 이때 서른여섯 가지 물질은 모두 사대四大로 말미암아 존재하기에 하나하나가 다 아我가 아니고 하나하나가 다 내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것이 곧 욕계의 몸을 없애는 것이다. 다시 욕계의 몸에서 색계의 사대를 구한다면 그것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인가, 안에서부터 나오는 것인가, 중간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만약 (색계의 사대가) 없다면 어떻게 색계의 촉감을 느끼며, 만약 있다면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이와 같이 관할 때에 끝내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이 곧 초선의 몸을 제거하는 것이다. (몸의 모든 작용을 제거한다고 할 때의) ‘작용(行)’이란 곧 관지觀支이다. 몸이 제거되면 작용 또한 따라서 멸한다.
여섯째, 기쁨을 느끼고, 일곱째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초선의 희지와 낙지를 대치한다. 이 선정은 곧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도 그 성품이 공함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지도 집착하지도 않아 어떤 허물과 죄도 없다. 그러므로 느낀다(受)고 한다.
여덟째, 모든 마음의 작용을 받아들이는 것은 초선의 일심지를 대치한다. 각 등의 사지25)를 움직이는 작용(動行)이라 하고, 일심지를 움직이지 않는 작용(不動行)이라 한다. 근본선에서 일심으로 들어갈 때는 마음에 애착이 생기지만, 이 선정에서는 이 일심이 헛되고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 곧 취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바르게 삼매에 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마음의 작용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아홉째, 마음으로 기쁨을 짓는 것은 제2선의 내정지와 희지를 대치한다. 제2선의 희지는 지혜로 비추어 깨닫는 작용이 없으나 지금 여기에서는 이 기쁨을 관찰하여 곧 헛된 것임을 알고 애착을 일으키지 않는다. 따라서 마음으로 기쁨을 짓는다고 한다.
열째, 마음으로 거두어들이는 것은 제2선의 일심지를 대치한다. 앞에서 마음으로 기쁨을 일으키는 것이 비록 바르기는 하지만 동요되는 허물이 없지 않다. 따라서 기쁨의 성품이 끝내 공적함을 돌이켜 관찰한다. 그러면 선정심이 산란하지 않고 기쁨을 따라 동요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마음으로 거두어들인다고 한다.

010_0904_b_01L因覺息徧身而發得初禪心眼開明
010_0904_b_02L見身三十六物臭穢可惡爾時即知三
010_0904_b_03L十六物皆由四大而有一一無我
010_0904_b_04L一非身此即除欲界身也復於欲界身
010_0904_b_05L求色界四大爲從外來耶爲從內
010_0904_b_06L出耶爲在中間住耶若無者云何受
010_0904_b_07L色界觸若有者今何所在如是觀時
010_0904_b_08L畢竟不可得此即除初禪身所謂行者
010_0904_b_09L即觀支也身除則行亦隨滅矣

010_0904_b_10L
第六受喜第七受樂對破初禪喜支樂
010_0904_b_11L支者此定即於喜樂知其性空故
010_0904_b_12L受不著無諸過罪故云受也

010_0904_b_13L
第八受諸心行對初禪一心支者覺等
010_0904_b_14L四支名動行一心支名不動行根本
010_0904_b_15L入一心時心生愛著而此定知此
010_0904_b_16L一心虛誑不實即不取著則是三昧
010_0904_b_17L正受故云受諸心行也

010_0904_b_18L
第九心作喜對二禪內淨喜支者二禪
010_0904_b_19L喜支無智慧照了而今觀此喜即知
010_0904_b_20L虛誑不生愛著故名心作喜也

010_0904_b_21L
第十心作攝對二禪一心支者前心作
010_0904_b_22L喜雖正而不無動過故返觀喜性
010_0904_b_23L竟空寂定心不亂不隨喜動故云作
010_0904_b_24L攝也

010_0904_c_01L
열한째, 마음이 해탈에 머무는 것은 제3선의 낙지를 대치한다. 제3선에는 온몸에 두루 퍼지는 즐거움이 있어 범부가 이를 얻으면 대부분 애착을 일으켜 그것에 묶여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이제 관하는 지혜로써 분석하여 타파하면, 온몸에 두루 퍼지는 즐거움을 증득할 때 “이 즐거움은 인연으로 생겨났으므로 공하고 자성이 없으며 헛되고 진실하지 못하다.”고 안다. 이렇게 즐거움을 관하여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자재하게 된다. 따라서 마음으로 해탈한다고 한다.
열두째, 무상을 관하는 것은 제4선인 부동정을 대치한다. 제4선을 부동정이라 하는데, 범부가 이를 얻으면 대부분 이것이 영원하다는 생각을 내어 애착하고 취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이제 이 선정도 세 가지 모습26)으로 변천하는 것임을 관하여, 이것이 파괴되며 불안한 모습임을 안다. 그러므로 무상을 관찰한다고 한다.
열셋째, 나가서 흩어짐을 관하는 것은 공처정을 대치한다. 나가서 흩어진다는 것은 색을 벗어나서 마음이 허공을 의지해 소멸하고 흩어져 자재함으로써 색법에 구속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나가서 흩어진다고 한다. 범부는 이 선정을 얻을 때 이것이 진실한 공이며 안온함이라 여겨 마음에 집착을 일으킨다. 지금 ‘나가서 흩어짐을 관찰한다’고 하는 것은, 수행자가 처음 허공처정에 들어갔을 때 곧바로 “사온27)이 화합해 있을 뿐 실제로는 자성이 없어 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마음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의 마음은 아직 이르지 않았으며, 현재의 마음은 머물지 않으니, 곧 마음은 세 가지 모습으로 변천하는 것이다. 또 공은 앎이 없는 법이니, 마음이나 공에서 얻을 곳이 없다. 따라서 마음에 애착이 없다. 이를 나가서 흩어짐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열넷째, 욕망으로부터 벗어남을 관하는 것은 식처정을 대치한다. 무릇 애착이 있으면 모두 욕망이라 한다. 식처정에서는 바깥 법을 여의고 안의 법을 반연하며 공을 여의고 식을 반연하지만 역시 욕망에 대한 집착임을 면치 못한다. 지금 이 선정에서는 이를 능히 관하여 타파한다.
열다섯째, 멸함을 관하는 것은 무소유처정을 대치한다. 불용처정은

010_0904_c_01L
第十一心住解脫對破三禪樂支者
010_0904_c_02L禪有徧身之樂凡夫得之多生愛染
010_0904_c_03L爲其所縛不得解脫今以觀慧破析
010_0904_c_04L證徧身樂時即知此樂從因緣生
010_0904_c_05L無自性虛誑不實觀樂不著心得自
010_0904_c_06L故名心作解脫也

010_0904_c_07L
第十二觀無常對破四禪不動定者
010_0904_c_08L禪名不動定凡夫得之多生常想
010_0904_c_09L生愛取今觀此定三相所遷知是破
010_0904_c_10L壞不安之相故名觀無常也

010_0904_c_11L
第十三觀出散對破空處定者出散
010_0904_c_12L出離於色而心依虛空消散自在不爲
010_0904_c_13L色法所縛故名出散凡夫得此定時
010_0904_c_14L是眞空安穩心生取著今言觀出散者
010_0904_c_15L行人初入虛空處定時即知四陰和合
010_0904_c_16L而有實無自性不可取也何以故
010_0904_c_17L去心已謝未來心未至現在心無住
010_0904_c_18L則心是三相所遷空是無知之法於心
010_0904_c_19L於空無可得處故心無愛著是名觀
010_0904_c_20L出散也

010_0904_c_21L
第十四觀離欲對識處定者凡有愛著
010_0904_c_22L皆名爲欲識處離外而緣內離空而緣
010_0904_c_23L亦未免著欲今此定能觀破析也

010_0904_c_24L
第十五觀滅對無所有處者不用處定
010_0904_c_25L「等」疑「第」{編}

010_0905_a_01L무위법의 경계를 반연하므로 마음이 무위와 상응한다. 따라서 범부가 이를 얻으면 버릴 수가 없다. 지금 “멸함을 관찰한다.”고 한 것은 이 선정을 얻었을 때 식이 조금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 식이 비록 적긴 하지만 역시 수·상·행·식의 사온이 화합한 무상하고 무아인 법이니 물들고 집착해서는 안 된다.
열여섯째, 포기하고 버림을 관하는 것은 비상비비상처정을 대치한다. 초선으로부터 각 단계의 선정에서 두루 버리긴 했지만 비상비비상처정에 이르러 유와 무를 모두 버리니, 이것은 버림 가운데서도 가장 지극한 것이다. 범부가 이를 얻으면 열반이라 여겨 버리지를 못한다. 지금 이 선정에 들었을 때에는 그 법 역시 무상·고·공·무아로서 진정한 열반이 아니라고 관할 수 있다. 따라서 포기하고 버림을 관찰한다고 한다.
근기가 날카로운 이라면 꼭 열여섯 가지를 다 닦을 필요는 없다. 즉 호흡을 따르는 법에서도 무상을 잘 깨달아 곧장 큰 깨달음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두세 가지를 얻기도 하고 네다섯 가지를 얻기도 하는데, 이는 사람의 근기에 달렸다. 그러므로 특승이라고 한다.
제20장 통명관通明觀
통명관通明觀이란 호흡·색·마음의 세 가지를 통틀어 관하여 마음의 눈을 밝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통명이라고 한다. 또한 육통六通과 삼명三明을 속히 얻는 것을 말한다. 육통은 천안통天眼通·천이통天耳通·타심통他心通·숙명통宿命通·신경통身境通·누진통漏盡通이고, 삼명은 생사지명生死智明·숙명지명宿命智明·누진지명漏盡智明이다. 이 선정을 단박에 성취하고 점진적으로 성취하는 차이는 사람의 근기에 달렸다. 비록 수행계위의 순서는 없지만 지금은 선문의 순서에 따라 먼저 초선에 의거한 통명관의 모습을 밝힌다. 초선의 오지는 곧 각覺·관觀·희喜·안安·정定이다. 『대집경大集經』28)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무엇을 각이라 하는가? 여심如心·각覺·대각大覺·사유思惟·대사유大思惟·심성을 관함(觀於心性)을 각이라 한다. 무엇을 관이라 하는가? 심행心行·대행大行·변행徧行·수의隨意를 관찰하는 것을 관이라 한다. 무엇을 희라 하는가?

010_0905_a_01L緣無爲法塵心與無爲相應凡夫得之
010_0905_a_02L不能捨離今言觀滅者得此定時
010_0905_a_03L有少識此識雖少亦是四陰和合
010_0905_a_04L常無我之法不可染著也

010_0905_a_05L
第十六觀棄捨對非想非非想者從初
010_0905_a_06L禪以來處處徧捨至非想而雙捨有無
010_0905_a_07L是捨中之極凡夫得之以謂涅槃
010_0905_a_08L能捨離今此定時能觀其法亦是無
010_0905_a_09L常苦空無我而非眞涅槃故云觀棄捨
010_0905_a_10L

010_0905_a_11L
若利根者未必具修十六即於隨息中
010_0905_a_12L亦能覺悟無常便入大道故或得二三
010_0905_a_13L或至四五在人根機故名特勝也

010_0905_a_14L

010_0905_a_15L通明觀第二十章

010_0905_a_16L
通明觀者謂通觀息色心三事明淨心
010_0905_a_17L故云通明亦云疾得六通三明也
010_0905_a_18L六通者天眼通天耳通他心通宿命通身境通
漏盡通三明者生死智明宿命智明漏盡智明

010_0905_a_19L此禪頓漸在人根機雖無位次然今
010_0905_a_20L依禪門次第先明通明初禪之相初禪
010_0905_a_21L五支即覺觀喜安定大集經曰云何
010_0905_a_22L爲覺如心大覺思惟大思惟觀於
010_0905_a_23L心性是名爲覺云何爲觀觀心行
010_0905_a_24L徧行隨意是名爲觀云何爲喜

010_0905_b_01L여진실지如眞實知·대지大知·마음이 움직일 때 마음에 이는 것(心動至心)을 희라 한다. 무엇을 안이라 하는가? 심안心安·신안身安·수안受安·즐거운 감촉을 느낌(受於樂觸)을 안이라 한다. 무엇을 정이라 하는가? 심주心住·대주大住·대상에 동요되지 않음(不亂於緣)·잘못되지 않음(不謬)·전도되는 일이 없음(無有顚倒)을 정이라 한다.”
이것이 오지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여심如心이란 곧 초선의 미도지정이다. 수행자가 처음 마음을 안정시킬 때부터 호흡·색·마음 세 가지가 모두 분별이 없다고 관하는 것이다. 세 가지를 관함에 있어 먼저 반드시 호흡을 관찰해야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고요히 앉아 호흡을 조절하고 온몸에 들고 나는 호흡의 모습을 한마음으로 잘 관찰한다. 만약 지혜와 마음이 밝고 예리하다면, 숨이 들어와도 쌓이지 않고 숨이 나가도 흩어짐이 없으며 들어와도 지나간 곳이 없고 나가도 자취가 없어 허공에 부는 바람처럼 성품이 없다는 것을 곧바로 깨닫는다. 이것을 호흡이 마음과 같음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호흡은 몸을 의지하고 몸을 떠나서는 호흡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면 곧 한마음으로 몸의 색이 여여함을 잘 관찰해야 한다. 이제 이렇게 관찰한다.
“이 색신은 본래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생의 망상이 인연이 되어 금세의 사대四大를 불러온 것이다. 이 사대로 이루어진 색이 허공을 둘러싼 것을 몸이라고 부르지만 머리 등 여섯 부분29)과 서른여섯 가지 물질, 사대四大와 사미四微30) 어느 하나도 몸이 아니다.”
이때 마음의 분별이 없어지고 곧 색의 여여함을 통달하게 된다.
다음은 마음의 여여함을 관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이 관한다.
“마음이 있기 때문에 몸의 색이 있어 오가고 움직인다. 만약 이러한 마음이 없다면 색이 무엇을 인하여 생기고 또 누가 분별하겠는가? 다시 관찰해 보면, 이 마음은 인연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신속하게 생겼다 사라지기에 머무는 자리를 볼 수 없고, 또한 형체도 없다.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나 이름 또한 공하다.”
이것이 곧 마음의 여여함을 통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할 때 (호흡·색·마음) 세 가지의 성품의 차이를 찾을 수 없으니, 이것을 여심如心이라고 한다.
호흡을 관할 때 이미 호흡을 얻을 수 없었다면, 몸과 마음 역시 공적함을 곧바로 통달하게 된다. 왜냐하면 세 가지 법은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010_0905_b_01L眞實知大知心動至心是名爲喜
010_0905_b_02L何爲安謂心安身安受安受於樂觸
010_0905_b_03L是名爲安云何爲定謂心住大住不亂
010_0905_b_04L於緣不謬無有顚倒是名爲定此釋
010_0905_b_05L五支義也

010_0905_b_06L
如心者即是初禪未到地行者從初
010_0905_b_07L安心即觀息色心三事俱無分別
010_0905_b_08L三事者先須觀息攝心靜坐調和氣
010_0905_b_09L一心諦觀息相徧身出入若慧心
010_0905_b_10L眀利即覺息入無積聚出無分散
010_0905_b_11L無所經由去無所履涉如空中風
010_0905_b_12L無所有是爲觀息如心也旣知息依於
010_0905_b_13L而離身無息即應一心諦觀身色如
010_0905_b_14L今觀此色本自不有皆是先世妄想因
010_0905_b_15L招感今世四大造色圍空名身
010_0905_b_16L頭等六分三十六物四大四微一一
010_0905_b_17L非身爾時心無分別即達色如也
010_0905_b_18L觀心如以由有心故有身色去來動
010_0905_b_19L若無此心色因何生更誰分別
010_0905_b_20L觀此心藉緣而有生滅迅速不見住處
010_0905_b_21L亦無相貌但有名字而名字亦空
010_0905_b_22L達心如也如是觀時不得三性別異
010_0905_b_23L是名如心以觀息時旣不得息則便
010_0905_b_24L達色心亦復空寂何以故三法不相

010_0905_c_01L세 가지가 이미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일체법 역시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세 가지가 화합하여 음陰·입入·계界와 온갖 고통과 번뇌를 일으키고, 선행과 악행의 업으로 다섯 갈래의 세계를 오가며 쉼 없이 윤회하기 때문이다. 만약 세 가지가 본래부터 자성이 없음을 깨달으면 일체 모든 법이 그 자리에서 공적하다. 이것을 여심을 관하여 수행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관할 때 그 마음은 저절로 진여에 머물게 되고, 다 없어진 듯이 밝고 깨끗해진다. 이를 욕계정欲界定이라 한다. 이 선정을 얻고 나서 마음이 진여에 의지하고 진여와 상응하여 진여법으로 마음을 유지하면 마음이 안정되어 동요하지 않게 되며, 몸·호흡·마음 세 가지 법의 차이가 갑자기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고 허공처럼 한결같게 된다. 따라서 여심이라고 하니, 이것이 곧 통명관의 미도지정이다.
각覺과 대각大覺을 설명하겠다. 각이란 초선에서 감촉이 생기는 모양을 지각知覺하는 것이다. 대각이란 활연히 마음의 눈이 밝게 열려 (호흡·몸·마음) 세 가지를 밝게 보는 것이니, 이것을 대각이라 한다. 또한 각은 세간世間의 모습을 지각하는 것이고, 대각은 출세간의 모습을 지각하는 것이다.
세간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근본세간根本世間이니, 한 생애 동안의 정보正報31)인 오음五陰이 그것이다. 둘째는 의세간義世間이니, 근본법과 그 외 일체법의 뜻과 이치의 상호관계를 아는 것이다. 셋째는 사세간事世間이니, 오신통32)이 생겼을 때 일체중생의 종류 및 세간의 현상을 모두 보는 것이다.
출세간出世間 역시 세간과 상대하여 세 가지로 나뉜다. 초선이 일어날 때 이 몸이 공하고 성근 것과 모든 모공으로 두루 호흡하는 것, 그리고 서른여섯 물질털·머리카락·손발톱·이빨·표피·진피·힘줄·살·뼈·골수·지라·콩팥·심장·간·허파·작은창자·큰창자·위·태의·쓸개·대변·소변·때·땀·눈물·콧물·침·고름·피·핏줄·누렇고 흰 가래·멍·비계·기름·뇌·막 등을 말한다. 이 서른여섯 가지 중 열 가지는 몸 밖의 물질이고, 스물여섯 가지는 몸 안의 물질이다. 또 스물두 가지는 지대地大에 속하는 물질이고, 열네 가지는 수대水大에 속하는 물질이며, 따뜻하고 뜨거운 것은 화대火大, 움직이고 바뀌는 것은 풍대風大이다.을 활연히 보게 되어 분명하게 깨닫는다. 이 사대를 관찰해 보면 마치 네 마리의 뱀이 한 상자에 있는 것과 같이 그 성질이 각각 다르다. 수행자는 이를 보고 나서 마음으로 크게 놀라게 된다. 이 서른여섯 물질은 사대가 임시로 화합한 것으로 더럽고 혐오스럽다고 볼 뿐만 아니라,

010_0905_c_01L離故也三事旣不可得則一切法亦不
010_0905_c_02L可得何以故三事和合能生陰入界
010_0905_c_03L衆苦煩惱善惡行業往來五道流轉
010_0905_c_04L不息若了三事本自無生則一切諸
010_0905_c_05L當處空寂名爲修觀如心之相也
010_0905_c_06L如是觀時其心任運自住眞如泯然
010_0905_c_07L明淨名欲界定得此定後心依眞如
010_0905_c_08L與如相應如法持心心定不動泯然
010_0905_c_09L不見身息心三法異相一往如虛空
010_0905_c_10L名如心即是通明未到地也

010_0905_c_11L
覺大覺者覺是初禪覺觸發相大覺者
010_0905_c_12L豁然心目開明明見三事是名大覺也
010_0905_c_13L復次覺者覺世間相大覺者覺出世
010_0905_c_14L間相也世間有三種一者根本世間
010_0905_c_15L即一期正報五陰是也二者義世間
010_0905_c_16L知根本之法與外一切法義理相關也
010_0905_c_17L三者事世間即發五通時悉見一切衆
010_0905_c_18L生種類及世間事也出世間亦相對爲
010_0905_c_19L初禪發時豁然見一身空踈息徧
010_0905_c_20L毛孔三十六物毛髮爪齒薄皮厚皮筋肉骨髓
脾腎心肝肺小膓大膓胃胞膽
010_0905_c_21L屎尿垢汗淚涕唾膿血脉黃白痰癊肪膏腦膜此三十
六物十是外物二十六是內物又二十二是地物
010_0905_c_22L十四是水物溫熱
是火動轉是風
了了分明觀此四大
010_0905_c_23L四蛇同處一篋其性各異行者見已
010_0905_c_24L心大驚悟非但見其三十六物四大假

010_0906_a_01L다섯 가지 더러움(五種不淨)에 대한 생각도 알게 된다. 첫째, 열 가지 바깥 물질의 더러움을 본다.33) 둘째, 자기 몸 안의 스물여섯 가지 물질의 더러움을 보는데, 이것이 자성의 더러움(自性不淨)이다. 셋째, 이 몸이 부모의 정액과 피가 화합하여 몸이 된 것임을 스스로 알게 되니, 이것이 종자의 더러움(種子不淨)이다. 넷째, 이 몸이 태 안에 있을 때 생장生臟과 숙장熟臟 두 장기 사이에 있었음을 알게 되니, 이것이 태어난 곳의 더러움(生處不淨)이다. 다섯째, 이 몸이 죽은 뒤에는 썩어 문드러져 악취를 풍길 것임을 알게 되니, 이것이 최후의 더러움(究竟不淨)이다. 이 몸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더러운 것으로 이루어져 즐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매우 혐오스러운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나는 지난날 이 더러운 몸에 집착하여 갖가지 악업을 지으면서 무량겁을 지내다가 지금 비로소 깨닫고 보니 슬픔과 기쁨이 교대로 몰려든다.
또 선정 가운데 심식이 온갖 대상을 반연하여 찰나찰나 멈추지 않고, 모든 마음작용이 연달아 일어나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르고 또한 한 가지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 다음에 삼매가 점점 깊어지면 오장 안에서 호흡하는 모양이 각기 다름을 지각하게 된다.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흰 것 등으로 장기마다 각기 색깔이 다르고, 빠져나와 모공에 이른다.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갈 때도 색깔이 역시 다르다.
또 이 몸의 피부와 막이 각각 99겹으로 되어 있고, 크고 작은 뼈가 360개이며, 나아가 골수가 각기 98겹으로 되어 있고, 뼈와 살 사이에 각종 벌레가 있어 머리가 네 개인 것, 입이 네 개인 것, 꼬리가 아흔아홉 개인 것 등으로 각각 모양이 다른 것을 보게 된다. 나아가 이 벌레들이 들고 나며 오가는 것과 소리와 언어까지도 모두 다 지각하게 된다.
뇌에는 네 부분이 있고, 오장은 연꽃처럼 조각조각이 서로를 덮고 있으며, 몸의 구멍은 비고 성글어 안팎이 서로 통한다. 또 몸 안의 모든 핏줄을 지각하게 된다. 심장의 핏줄이 중심이 되고, 심장의 핏줄로부터 네 개의 큰 핏줄이 생겨나며, 네 개의 큰 핏줄에서 각각 열 개의 핏줄이 갈라지고, 그 하나하나가 또 아홉 개의 핏줄을 갖춰 모두 404개의 핏줄을 이룬다. 이 핏줄에는 모두 바람의 기운이 있어 피의 흐름이 서로 뒤섞이며, 또한 모든 핏줄에는 미세한 벌레들이 혈관에 붙어살고 있다.

010_0906_a_01L不淨可惡亦知五種不淨之想
010_0906_a_02L見外十物之不淨二者見內二十六
010_0906_a_03L物之不淨是爲自性不淨三者自知
010_0906_a_04L此身從父母精血和合以爲身是爲
010_0906_a_05L種子不淨四者此身處胎之時在生熟
010_0906_a_06L二臟之間是爲生處不淨五者此身
010_0906_a_07L死後壞爛臭穢是爲究竟不淨當知
010_0906_a_08L此身從始至終不淨所成無一可樂
010_0906_a_09L甚可厭惡我於已往著此不淨之身
010_0906_a_10L而造諸惡業經無量刼今始覺悟
010_0906_a_11L喜交集復覺定內心識緣諸境界
010_0906_a_12L念不停諸心數法相續而起所念相
010_0906_a_13L亦復非一其次三昧漸深即覺五
010_0906_a_14L臟之內息相各異靑黃赤白色隨臟
010_0906_a_15L出至毛孔從外入時色相亦異
010_0906_a_16L見此身皮膜各有九十九重大小骨三
010_0906_a_17L百六十及髓各有九十八重骨肉之間
010_0906_a_18L有諸虫四頭四口九十九尾各相不一
010_0906_a_19L乃至出入去來音聲言語亦悉覺知
010_0906_a_20L腦有四分五臟葉葉相覆如蓮華
010_0906_a_21L竅空踈內外相通又覺身內諸脉
010_0906_a_22L脉爲主從心脉生四大脉四大脉各
010_0906_a_23L而一一各具九脉共成四百四脉
010_0906_a_24L悉有風氣血流相注亦有諸脉細蟲

010_0906_b_01L
이와 같이 이 몸은 파초처럼 안팎으로 알맹이가 없음을 지각한다. 또한 마음의 작용이 대상을 따라 일어날 때 모두 수·상·행·식의 네 가지 마음으로 차별됨을 관찰한다. 또한 호흡이 잘 조화되어 파란색도 노란색도 빨간색도 흰색도 아닌 유리그릇처럼 한 모양으로 같아지는 것을 본다. 또한 호흡의 출입도 생멸이 무상하여 모두 공적함을 본다. 또한 몸의 형상이 신진대사로 늘 새롭게 바뀌는 것을 본다. 왜냐하면 음식은 밖의 사대로서 이것이 배 속에 들어와 몸의 자양분이 될 때 새로운 사대가 생기고 옛 몸은 따라서 소멸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초목에 새잎이 나면 옛 잎은 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몸의 형상이 무상하여 늘 새롭게 나고 없어지며 공하여 자성이 없으므로 색은 얻을 수 없는 것을 지각해 알아차린다. 또 한 생각이 생길 때 60찰나의 생멸이 있을 정도로 바뀌고 달라짐이 신속하다. 이렇게 공하여 자성이 없으므로 마음도 얻을 수 없다.
다시 호흡이 여덟 가지 모습으로 변천함을 지각한다. 여덟 가지 모습이란 나고(生), 머물고(住), 변하고(異), 소멸하는 것(滅)과 나게 하고(生生), 머물게 하고(住住), 변하게 하고(異異), 소멸하게 하는 것(滅滅)이다. 호흡이란 바람이다. 풍대만 이런 게 아니라 사대가 모두 이렇다.
이처럼 색과 호흡과 마음 세 법을 분별해 보면 임시로 붙인 이름은 다르지만 실제의 법은 체가 같으므로 ‘같다(如)’고 말한다. 똑같이 무상하게 생멸함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으므로 ‘같다’고 하고, 생멸은 곧 공과 다르지 않으므로 ‘같다’고 한다. 색·호흡·마음 세 법의 낱낱의 차별상을 지각하는 것을 각覺이라 하고, 그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체가 같은 것을 대각大覺이라 한다. 무상하게 생멸함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은 것을 대각이라 하고, 모든 상은 본래 공적하여 다르지 않은 것을 대각이라 한다.
사유思惟와 대사유大思惟를 설명하겠다. 처음 마음이 참과 거짓의 모습을 지각해 알아차리는 것을 각과 대각이라 하고, 뒤의 마음이 거듭 사려해 관찰하는 것을 사유와 대사유라 한다. 각에 대비되는 것이 사유이고 대각에 대비되는 것이 대사유이니, 앞의 설명을 비추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010_0906_b_01L依脉而住如是覺知此身內外不實
010_0906_b_02L猶如芭蕉復觀心數隨所緣時悉有
010_0906_b_03L受想行識四心差別復見氣息調和
010_0906_b_04L爲一相如瑠璃器非靑黃亦白色
010_0906_b_05L見息之出入無常生滅悉皆空寂
010_0906_b_06L見身相新新代謝何以故飮食是外
010_0906_b_07L四大入腹資身時新四大生而故身
010_0906_b_08L隨滅譬如艸木之新葉生而故葉落矣
010_0906_b_09L如是覺悟身相無常新新生滅空無自
010_0906_b_10L則色不可得又一念生時有六十
010_0906_b_11L刹那生滅遷化迅速空無自性則心
010_0906_b_12L不可得矣復次覺息爲八相所遷
010_0906_b_13L相者生生住住異異滅滅
010_0906_b_14L息者風也風大旣然四大皆然如分
010_0906_b_15L別色息心三法假名爲異而實法同軆
010_0906_b_16L曰如同一無常生滅不異曰如生滅
010_0906_b_17L即空無異曰如覺色息心三法一一
010_0906_b_18L差別曰覺其名雖異其軆不二曰大
010_0906_b_19L無常生滅不異曰大覺諸相本來
010_0906_b_20L空寂不異曰大覺也

010_0906_b_21L
思惟大思惟者初心覺悟眞僞之相
010_0906_b_22L覺大覺後心重慮觀察曰思惟大思惟
010_0906_b_23L對小覺爲思惟對大覺爲大思惟照前
010_0906_b_24L可知也

010_0906_c_01L
마음의 성품을 관찰한다(觀於心性)는 것은 곧 사유의 주체인 마음을 돌이켜 관찰하는 것이다. 지금 관찰하고 있는 이 마음은 마음을 관찰함에서 생긴 것인가, 마음을 관찰함에서 생긴 것이 아닌가? 두 가지 모두 성립할 수 없으니, 마음도 끝내 공적함을 알아야 한다.
심행과 대행을 관찰하는 것(觀心行大行)을 설명하겠다. 성문인聲聞人은 사제四諦를 대행大行이라고 한다. 즉 마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무명을 깨닫지 못해 온갖 결박과 업을 짓는 것을 집제라고 한다. 집제를 인연으로 미래의 명색名色과 괴로운 과보를 반드시 초래하는 것을 고제라고 한다. 마음의 성품을 관하면 계율·선정·지혜를 모두 갖추고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34)을 실천하게 되므로 도제라고 한다. 바른 도가 있으면 현재에서는 번뇌가 생기지 않고 미래의 괴로운 과보 역시 소멸하므로 멸제라고 한다. 연각인緣覺人은 십이인연으로 대행을 삼는다. 보살인菩薩人은 곧 생멸이 없는 바른 도와 바른 관에 들어가 적정유리삼매寂定瑠璃三昧를 증득한다.
변행徧行이란, 관찰하는 도가 조금씩 예리해지면 각종 대상을 두루 섭렵하며 사제를 관찰하고 열여섯 가지 관법(十六行觀)35)을 낼 수 있다. 따라서 변행이라 한다.
수의隨意를 설명하겠다. 변행은 선정에 들었을 때는 온갖 대상을 볼 수 있지만 선정에서 나오면 관찰되지 않는다. 그러나 수의는 선정에 들어가건 나오건 간에 일체법에 대한 관찰이 작의作意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를 수의라 한다.
희지喜支에서의 여진실지如眞實知와 대지大知를 설명하겠다. 앞에서 설명한 마음의 성품과 사제의 진리에 대한 관찰에 의거하여 관을 행하고 진리를 살피면 대상 안에 머무르다가 관에 부합해 알게 된다. 따라서 진실지라고 한다. 만일 확 트이듯이 깨달음이 열려 이치에 부합해 알게 되면 마음에 법희法喜가 생긴다. 따라서 대지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일 때 마음에 이르는 것(心動至心)을 설명하겠다. 법희를 얻고 나면 마음이 동요하게 되는데 만일 이 기쁨을 좇는다면 전도되고 만다.

010_0906_c_01L
觀於心性者即是返觀能思惟之心也
010_0906_c_02L今此能觀之心爲從觀心生耶爲從非
010_0906_c_03L觀心生耶俱不可得則當知觀心畢竟
010_0906_c_04L空寂矣

010_0906_c_05L
觀心行大行者聲聞人以四諦爲大行
010_0906_c_06L謂不了心故無明不了造諸結業
010_0906_c_07L爲集諦集諦因緣必招未來名色苦果
010_0906_c_08L是名苦諦若觀心性具足戒定智慧
010_0906_c_09L行三十七品故名道諦若有正道
010_0906_c_10L現在煩惱不生而未來苦果亦滅名爲
010_0906_c_11L滅諦也緣覺人以十二因緣爲大行也
010_0906_c_12L菩薩人即入無生正道正觀證於寂定
010_0906_c_13L瑠璃三昧也

010_0906_c_14L
徧行者觀道稍利則能徧歷諸緣
010_0906_c_15L於四諦出十六行觀故名徧行也

010_0906_c_16L
隨意者徧行雖在定內得見諸緣
010_0906_c_17L定時則觀不相應隨意者隨出入定
010_0906_c_18L觀一切法任運自成不由作意是名
010_0906_c_19L隨意也

010_0906_c_20L
喜支如眞實知大知者依上觀於心性
010_0906_c_21L四諦眞理觀行審諦停住緣內稱觀
010_0906_c_22L而知故云眞實知若豁然開悟稱理
010_0906_c_23L而知心生法喜故名大知也

010_0906_c_24L
心動至心者旣得法喜心動若隨此喜

010_0907_a_01L이제 이 마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곧 기쁨의 성품을 얻게 된다. 따라서 ‘마음에 이른다’고 한다.
신안身安이란 무엇인가? 몸의 성품을 깨달아 몸으로 짓는 업에 동요되지 않으면 곧 몸이 안정된다.
심안心安이란 무엇인가? 마음의 성품을 깨닫기 때문에 마음으로 짓는 업에 동요되지 않으면 곧 마음이 즐거워진다. 따라서 마음의 안정이라 한다.
수안受安이란 무엇인가? 관찰하는 주체인 마음을 수受라 한다. 수가 곧 수가 아님을 알아 모든 수를 끊어 버리기 때문에 느낌이 안정된다.
즐거운 감촉을 느낌(受於樂觸)이란, 세간과 출세간 두 가지의 즐거운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심주心住와 대주大住를 설명하겠다. 세간의 선정법에 머물러 마음을 산만하지 않게 유지하는 것을 ‘머묾(住)’이라고 하고, 진여의 선정법에 머물러 마음을 산만하지 않게 유지하는 것을 ‘크게 머묾(大住)’이라고 한다.
대상에 동요되지 않음(不亂於緣)이란, 비록 한마음에 머무르고 있지만 세간의 모습을 분별하며 어지럽지 않은 것이다.
잘못되지 않음(不謬)이란, 진여를 확실히 깨달아 망령된 취착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되지 않는다’고 한다.
전도되지 않음(不顚倒)을 설명하겠다. 만일 마음이 세간의 모습만 편벽되게 취하면 곧 있다는 견해를 따르게 되어 해탈을 얻지 못한다. 반대로 편벽되게 진여의 모습만 취하면 공이라는 견해를 따르게 되어 세간의 인과를 파괴하고 선한 법을 닦지 않게 되니, 이는 참으로 두려워해야 한다. 이제 참과 거짓을 잘 통달하여 이 양극단을 여의면 이것을 ‘전도되지 않음’이라 한다. 또 이승인二乘人은 이 마음을 얻어 네 가지 전도를 깨뜨리면 ‘전도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보살은 이 마음을 얻어 여덟 가지 전도를 깨뜨려야 ‘전도되지 않았다’고 한다. 괴로움을 즐거움이라 계탁하고, 무상한 것을 영원하다고 계탁하며, 무아를 아라고 계탁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다고 계탁하는 것을 범부의 네 가지 전도라 한다. 영원한 것을 무상하다고 계탁하고, 즐거움을 괴로움이라 계탁하고, 아를 무아라 계탁하고, 깨끗한 것을 더럽다고 계탁하는 것을 이승의 네 가지 전도라 한다. 합해서 모두 여덟 가지 전도이다.

010_0907_a_01L則爲顚倒今了此心無即得喜性
010_0907_a_02L名至心也

010_0907_a_03L
身安者了達身性不爲身業所動
010_0907_a_04L得身安也

010_0907_a_05L
心安者了達心性故不爲心業所動
010_0907_a_06L即得心樂故名心安也

010_0907_a_07L
受安者能觀之心名之爲受知受非
010_0907_a_08L斷諸受故受安也

010_0907_a_09L
受於樂觸者世間出世間二種樂法成
010_0907_a_10L故受於樂也

010_0907_a_11L
心住大住者住世間定法持心不散
010_0907_a_12L名爲住也住眞如定法持心不散
010_0907_a_13L爲大住也

010_0907_a_14L
不亂於緣者雖住一心而分別世間之
010_0907_a_15L相不亂也

010_0907_a_16L
不謬者諦了眞如妄取不起故言不
010_0907_a_17L謬也

010_0907_a_18L
不顚倒者若心偏取世間相即隨有見
010_0907_a_19L不得解脫若心偏取如相即隨空見
010_0907_a_20L而破世間因果不修善法是爲可畏
010_0907_a_21L今善達眞僞離此二邊是名不顚倒也
010_0907_a_22L復次二乘人得此心破四倒名不顚倒
010_0907_a_23L菩薩人得此心破八倒名不顚倒也
010_0907_a_24L苦計爲樂無常計常無我計我不淨計淨是名凡
夫四倒常計無常樂計爲苦我計無我淨計不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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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가 처음 초선을 얻어 근본세간根本世間의 모습을 보고 나면 이로 인해 그 뜻을 알게 되니, 이를 의세간義世間이라 한다. 이때 삼매 가운데서 마음과 지혜가 밝고 예리해져 몸 안의 사대와 오음이 어떤 인연으로 존재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관찰한다. 그러면 이 몸은 모두 전생에 오계五戒36)를 닦은 업력이 중음中陰37)에서도 단멸되지 않고 유지되다가 부모가 교합할 때 업력이 식識으로 변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즉 크기가 작은 콩알만 한 부모의 정혈 두 방울을 자신의 소유라 여겨 식이 그 가운데 의탁하는 것이다. 이때 곧바로 신근身根·명근命根·식심識心의 세 가지 법이 모두 갖춰진다. 식 안에는 오식五識38)의 성품이 갖춰져 있는데 이레마다 한 번씩 변화하면서 점차 자라 모든 법이 다 갖춰지게 된다. 이에 간장은 혼魂을 간직하고, 폐장은 백魄을 간직하고, 신장은 의지(志)를 간직하고, 심장은 신神을 간직하고, 비장은 뜻(意)을 간직한다. 사대가 화합하여 오행五行이 성취되면 뼈로 기틀을 잡고, 골수로 기름칠을 하고, 힘줄로 봉합하고, 핏줄로 관통하고, 피로 윤택하게 하고, 살로 감싸고, 피부로 덮는다. 이러한 인연으로 곧 머리·몸·손·발의 여섯 신체 부위가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근본세간과 의세간이다. 또 이 몸은 관찰하면 하늘과 땅을 본뜬 것이니, 만법을 구족하여 외부 사물과 서로 연관되어 있다. (초선의) 오지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수행자는 초선에서 육신통六神通을 얻어 세상사를 손바닥 위의 물건처럼 또렷이 보게 되니, 이것이 사세간事世間이다. 상근기인 사람은 복덕과 지혜의 힘 때문에 다섯 신통을 얻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치가 있다. 첫째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고, 둘째는 수행하여 얻는 것이다. 저절로 생긴다는 것은, 색계의 사대가 청정하게 만든 색을 얻어 천안이 성취되면 이 청정한 색의 심안心眼으로 시방 모든 색의 일과 형상을 투철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천이통·타심통·숙명통·신족통 역시 이와 같다.

010_0907_b_01L是名二乘四倒
合爲八倒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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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者初得初禪旣見根本世間相仍知
010_0907_b_03L其義曰義世間爾時三昧中心慧明
010_0907_b_04L諦觀身內四大五陰由何因緣而有
010_0907_b_05L即覺此身皆由先世五戒業力持於中
010_0907_b_06L不斷不滅乃於父母交會之時
010_0907_b_07L力變識即以父母精血二滴大如黍豆
010_0907_b_08L以爲己有而識托其中爾時即有
010_0907_b_09L身根命根識心三法具足識中具有五
010_0907_b_10L識之性七日一變次第生長諸法具
010_0907_b_11L於是肝藏魂肺藏魄腎藏志心藏
010_0907_b_12L脾藏意四大和合五行成就骨以
010_0907_b_13L柱之髓以膏之筋以縫之脉以通之
010_0907_b_14L血以潤之肉以裹之皮以覆之以是
010_0907_b_15L因緣即有頭身手足六分之軀此則根
010_0907_b_16L本義世間又觀此身法象天地具足
010_0907_b_17L萬法與外相關也分別五支之義
010_0907_b_18L上所說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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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者於初禪獲六神通的見世事
010_0907_b_20L掌中物此爲事世間上根人以福德智
010_0907_b_21L慧力故得五通有二種義一者自發
010_0907_b_22L二者修得自發者得色界四大淸淨造
010_0907_b_23L天眼成就則以此淨色之心眼
010_0907_b_24L見十方諸色事相天耳他心宿命身通

010_0907_c_01L수행하여 다섯 신통을 얻는다는 것은, 전일한 마음으로 선정에 들어 몸이 완전히 공한 것을 보아 색의 형상을 멀리 여의면 곧 신족통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나머지 신통도 이와 같다. 이처럼 점차 사선四禪과 사공처四空處에 이르는 것을 모두 통명선通明禪이라 부른다.

010_0907_c_01L亦如其法也修得五通者專心入定
010_0907_c_02L見身悉空遠離色相即得身通餘皆
010_0907_c_03L倣此如是漸至四禪四空俱稱通明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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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學入門卷上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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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선바라밀 : 육바라밀의 하나로 온전하게는 선나바라밀禪那波羅蜜(ⓢdhyāna-pāramitā)이라 하며, 정도定度·정도피안定到彼岸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또한 선바라밀禪波羅蜜·정바라밀定波羅蜜·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정려바라밀靜慮波羅蜜이라고도 한다.
  2. 2)아나파나阿那波那(ⓢāna-apāna) : 안나반나安那般那 또는 줄여서 안반安般이라고도 한다. 오정심관五停心觀의 하나로서 선관禪觀의 기초적 수행법이다. 안반은 안나반나安那般那(ⓢānāpāna)로서 안나安那(ⓢāna)는 입식入息이고, 반나般那 즉 안반나安般那(ⓢapāna)는 출식出息을 가리키는 말로서 안나반나념安那般那念 또는 수식數息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출입식으로 선정禪定을 일으키는 것을 안반념安般念이라 한다. 이것은 요컨대 호흡을 중심으로 점차 그 관찰의 범위를 확대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 안나반나安那般那의 호흡법에 관하여 그 수행 방법과 효능에 대해 설한 것이 『安般守意經』이다. 본 경전은 『佛說大安般守意經』, 『安般守意經』, 『大安般經』, 『安般經』, 『守意經』이라고도 불린다. 후한後漢시대 안세고安世高의 역으로 안반, 즉 오정심관 가운데 특히 수식관數息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안나(出息)와 반나(入息)를 관찰함으로써 마음의 산란함을 방지하는 방법으로 수식數息·상수相隨·지止·관觀·환還·정淨 등 여섯 가지로 상세하게 상·하 2권에 걸쳐서 설하고 있다. 그런데 경설에 약간의 혼잡한 점이 보이는 것은 본 경전의 후서後序를 붙인 곳에 경문과 주를 합해 설명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3. 3)자성선自性禪 내지 청정정선淸淨淨禪 : 보살이 닦는 최고의 선인 구종대선九種大禪을 말한다. 자성선自性禪·일체선一切禪·난선難禪·일체문선一切門禪·선인선善人禪·일체행선一切行禪·제번뇌선除煩惱禪·차세타세선此世他世禪·청정정선淸淨淨禪 등의 아홉 가지이다.
  4. 4)가라라歌邏羅(ⓢkalala) : 갈랄람羯剌藍·갈라람羯邏藍이라고도 한다. 태내胎內 5위位의 하나로 수정되고 7일까지의 상태이다. 미음처럼 끈끈하고 약간 굳은 상태를 말한다.
  5. 5)인상人相·아상我相·중생상衆生相 : 여기에 수자상壽者相을 더해 흔히 사상四相이라 한다. 인연의 화합일 뿐인 인간에 대해 실체나 자아가 있다고 여기는 잘못된 견해의 총칭이다.
  6. 6)서른여섯 가지 물질 :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을 특성에 따라 36종으로 분류한 것으로 제20장 통명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분류한 물질은 경론마다 약간의 차이가 보인다.
  7. 7)네 가지 뒤바뀐 생각(四顚倒) : 일체의 세간법은 무상하고, 고통스러우며, 주체가 없고, 더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영원하고, 즐거우며, 주체가 있고, 깨끗하다고 보는 잘못된 견해를 말한다.
  8. 8)각覺과 염念 : 호흡에 대한 지각과 사념처를 말한다.
  9. 9)욕계보신欲界報身 : 숙세에 지은 업의 과보로 받은 욕계의 몸을 욕계보신이라 한다. 지금의 이 선정에서는 아직 욕계보신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욕계정이라고 부른다는 뜻이다.
  10. 10)일반적으로 초선정 이후부터 진정한 선정의 개념으로 간주한다. 보다 명확하게는 색계의 선정을 선이라 하고 무색계의 선정을 정이라 한다.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이런 점에서 욕계의 선정은 진정한 선정이 아니다.
  11. 11)『大智度論』 권17(T25, 185c)에 “성인은 버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버리기 어려워라, 만약 즐거움이 환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움직이지 않음을 보고 크게 편안하리라. (聖人得能捨。餘人捨爲難。若能知樂患。見不動大安。)”라고 하였고, 『釋禪波羅蜜次第法門』 권5, 「釋禪波羅蜜修證」 제7의 1(T46, 515a)에서도 이를 인용하고 있다.
  12. 12)사수捨受 : 삼수三受 또는 오수五受의 하나로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라고 한다. 몸과 마음에 고통도 즐거움도 느끼지 않는 일종의 감각 작용이다.
  13. 13)다섯 갈래 세계(五道) : 지옥·축생·아귀·수라·인간·천상의 육도六道에서 천상 또는 아수라 세계를 제외한 중생세계 전체를 오도라 총칭한다.
  14. 14)세 가지 마음 : 앞서 설명한 자심慈心·희심喜心·비심悲心을 말한다.
  15. 15)범왕梵王(ⓢBrahma) : 몰라함마沒羅含摩·범마梵摩라고 하며 범천왕梵天王·대범천왕大梵天王이라고도 한다. 색계 초선천의 왕으로서 별명을 시기尸棄·세주世主 등이라 한다. 인도 신화에서는 겁초劫初에 광음천에서 내려와 만물을 창조했다고도 하며, 혹은 비쉬누의 배꼽에서 나온 천 잎 연꽃 가운데서 태어나 일체 만물의 근원이 되었다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제석과 함께 정법을 옹호하는 신神으로 여긴다.
  16. 16)『大智度論』 권17(T25, 186c)에 “이때에는 무량무변한 공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 관찰을 얻고 난 후에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없어 그 마음에 계속 늘어난다.(是時能觀無量無邊空。得此觀已。無苦無樂。其心轉增。)”고 하였고, 『釋禪波羅蜜次第法門』 권6, 「釋禪波羅蜜修證」 제7의 1(T46, 521a)에 “대승에서는 ‘허공처정을 얻으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그 마음이 점차 늘어난다’라고 하였다.(摩訶衍云。得虛空處定。不苦不樂其心轉增。)”고 하였다.
  17. 17)유루이면서 무루라는 뜻 : 선정은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온몸에 생겨 애착하게 하므로 유루법이고, 지혜는 이런 애착의 허물을 가책하므로 무루법이다. 육묘문은 선정과 지혜를 다 갖췄으므로 유루이면서 무루이고, 세간이면서 출세간에 속하는 수행법이라 한다.
  18. 18)공삼매空三昧 : 모든 법은 인연이 화합하여 생긴 것으로서 거기엔 어떤 주체도 실체도 없음을 관하는 삼매이다. 공삼매·무상삼매·무원삼매를 흔히 삼삼매三三昧 또는 삼해탈문三解脫門이라 한다.
  19. 19)무상삼매無相三昧 : 모든 법이 공이므로 남자나 여자, 같다거나 다르다는 등 차별되는 모습이 있을 수 없음을 관하는 삼매이다.
  20. 20)무작삼매無作三昧 : 무원삼매無願三昧라고 한다. 일체법에 차별상이 없으므로 얻을 것도, 지을 것도, 바랄 것도 없다고 관하는 삼매이다.
  21. 21)대치對治 : 병의 증세에 따라 방법을 달리해 치유하듯 문제점이나 오류가 있을 때 이를 보완하고 치유하는 것이다.
  22. 22)여기까지 십육특승의 작용에 대한 몇 가지 학설을 소개하였다. 다음부터는 십육특승에 대한 천태 대사의 설명이다.
  23. 23)공空이고 가假 : 모든 법은 끊임없이 생멸변화하며 고정된 실체가 없으므로 ‘공’이라 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전무한 것이 아니라 임시적이나마 이름과 형상을 가지고 현상적으로 차별되므로 이를 ‘가’라 한다.
  24. 24)세 가지 : 호흡과 색과 마음을 뜻한다.
  25. 25)각 등의 사지 : 각覺·관觀·희喜·낙樂을 말한다.
  26. 26)세 가지 모습(三相) : 생기고(生) 변화하고(異) 없어지는(滅) 유위법의 변천상을 말한다. 여기에 머묾(住)을 더해 흔히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사상四相이라 한다.
  27. 27)사온 : 수受·상想·행行·식識을 말한다.
  28. 28)『大方等大集經』 권22(T13, 161a).
  29. 29)여섯 부분 : 머리와 몸통 그리고 두 팔, 두 다리를 말한다.
  30. 30)사미四微 : 사진四塵이라고도 한다. 지·수·화·풍 사대와 함께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서 색色·향香·미味·촉觸을 말한다.
  31. 31)정보正報 : 과거에 지은 업이 인연이 되어 현세에 받는 과보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람이나 짐승 또는 천인 등 유정有情의 몸이니 이를 정보라 하고, 또 하나는 유정이 의지하고 살아가는 환경, 즉 기세간器世間이니 이를 의보依報라 한다.
  32. 32)오신통五神通 : 오통五通·오신변五神變이라고도 한다. 5종의 불가사의하고 자재한 작용으로서 멀리 있는 사물이나 미래의 일을 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 먼 곳의 소리나 짐승과 귀신 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천이통天耳通, 자신과 남의 전생을 알 수 있는 숙명통宿命通,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타심통他心通,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장애 없이 마음대로 가고 몸을 신비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신족통神足通을 말한다.
  33. 33)『釋禪波羅蜜次第法門』에서는 이것을 자상부정自相不淨이라 하였다.
  34. 34)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 :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삼십칠보리분법三十七菩提分法이라고도 한다. 열반의 이상경理想境에 나아가기 위해 닦는 도행道行을 총칭한 것이다. 사념처四念處·사정근四正勤·사여의족四如意足·오근五根·오력五力·칠각분七覺分·팔정도분八正道分을 말한다.
  35. 35)열여섯 가지 관법(十六行觀) : 십육행상十六行相이라고도 한다. 사제四諦를 관할 때 각각 네 가지로 다르게 관하는 총 열여섯 가지의 관법을 말한다. 고제苦諦에서는 무상無常·고苦·공空·무아無我를 관하고, 집제集諦에서는 인因·집集·생生·연緣을 관하며, 멸제滅諦에서는 멸滅·정靜·묘妙·이離를 관하고, 도제道諦에서는 도道·여如·행行·출出을 관한다.
  36. 36)오계五戒 : 불제자가 지키는 불살생不殺生·불투도不偸盜·불사음不邪淫·불망어不妄語·불음주不飮酒의 다섯 가지 금계이다. 여기서는 계율 전체를 가리키는 포괄적 의미로 쓰였다.
  37. 37)중음中陰 : 중유中有(ⓢantarā-bhava)라고도 한다. 윤회전생할 때에 이 생을 끝내고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중간 존재를 말한다. 극히 선하거나 극히 악한 업을 지은 사람은 죽자마자 곧장 다음 생을 받으므로 중음이 없으나, 보통 사람들은 49일 이내에 다음 생의 과보가 결정된다고 한다.
  38. 38)오식五識(ⓢpañca-vijñāna) : 오식신五識身이라고도 한다.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의 오경五境을 인식하는 5종의 심식인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말한다.
  1. 1)目次。編者作成補入。
  2. 1)「等」疑「第」{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