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刪補集) / 梵音集删補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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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刪補集 卷上
해동사문海東沙門 지환智還 집集

범음집산보서梵音集删補序1)
『산보집刪補集』은 무슨 까닭으로 지었는가? 지환智還 스님이 범패梵唄의 학문이 진실을 잃어버릴까 우려하여 지은 것이다.

대개 백마白馬가 동쪽으로 건너온 이래로 불교(像敎)2)가 점차 뻗어 오면서 범패가 전해졌다. 위魏나라 진사왕陳思王 조식曺植3)이 어산魚山에 올라갔다가 홀연히 공중에서 들려오는 범천梵天의 음악 소리를 듣고 돌아와 상문桑門(佛門)의 성악聲樂을 만들었다. (오늘날) 어산범음魚山梵音4)이라고 일컫게 된 것도 이런 이유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당唐나라 삼장법사인 현장玄奘 공이 법을 구하기 위해 서천西天(印度)에 들어갔다가 저 범성梵聲을 들었는데, 이 범패와 큰 틀이 같았다. 그래서 고종高宗이 자은사慈恩寺5)를 짓고 경찬慶讚 법회를 열었을 때 현장이 이 음악을 연주하였더니 왕이 매우 기뻐하였다고 한다.

신라新羅 시대에 진감眞鑑 노승이 서쪽 중국에서 법의 등불을 잇고 겸하여 이 방법을 익히고 돌아와서 옥천사玉泉寺에 메아리를 남겨 주었으니, 이는 범패가 우리나라에 크게 떨치는 계기가 되었다. 기복祈福을 하거나 영가靈駕를 위하여 재를 올릴 때에 범패가 아니면 할 수가 없어 마침내 이 범패가 예로부터 계속 이어졌다.

오늘날 그 방법을 이을 수 있는 이는 안국사安國寺의 증계證戒 스님 바로 그분이로다. 지환 스님으로부터 그 법을 터득하고 그 절묘함을 전하니 푸른 물감이 쪽에서 나왔으나 그보다 더 푸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의식문을 살펴보니 글자에 잘못이 있고 글귀에도 착오錯誤가 생겨서 물에 우유를 섞어 놓은 것과 같았다. 그래서 다시 첨가할 것은 첨가하고 깎아 버릴 것을 깎아 내 바로잡았으며 모든 소례문小禮文과 대례문大禮文, 그리고 예수문預修文, 지반문志磐文, 자기문仔夔文과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을 참고해서 산보刪補하고 절충하고 나서야 조례條例의 실마리가 정해졌다. 그런 뒤에 전문가들에게 두루 자문을 받아 인가印可를 얻은 후, 이를 모아서 3편으로 펴내고 그 이름을 『산보집刪補集』이라 하였다.

그러고 나서 또 나를 불러 교정을 보게 하고 서문을 쓰라 하기에 내가 그 책을 열람해 보고 원류源流를 대략 서술하여 서문을 쓴다.


011_0458_c_01L[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刪補集]

011_0458_c_02L1)梵音集删補序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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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_0458_c_04L
删補集何爲而述也還上人憂梵學
011_0458_c_05L之失其眞而述也盖自白馬東還像敎
011_0458_c_06L [1] 而梵唄之傳有自來矣魏陳思王
011_0458_c_07L曺植於魚山忽聞空中梵天之音
011_0458_c_08L作桑門之聲樂今稱魚山梵音者非是
011_0458_c_09L之謂歟唐三藏奘公求法西天聞彼
011_0458_c_10L梵聲與此大同而高宗剏慈恩寺慶讃
011_0458_c_11L奘以此樂樂之龍顏大悅羅代眞鑑老
011_0458_c_12L燈續西華兼習此道而還自有玉泉遺
011_0458_c_13L大振於吾東如所祈福爲靈非此
011_0458_c_14L不能此終古繼繼承承而不可絕者也
011_0458_c_15L當今之時能繼其道者安國寺證戒
011_0458_c_16L人也得智還上人而傳其妙還靑於
011_0458_c_17L藍者覽其儀文字誤句錯水乳相雜
011_0458_c_18L於是更加删正而叅諸小大禮預志仔
011_0458_c_19L五種集删補折中條例有緖 [2] 質諸
011_0458_c_20L已蒙印可而彙成三篇題曰删補
011_0458_c_21L旣又徵余校且序余三閱其文
011_0458_c_22L述源流而序之

011_0458_c_23L{底}康煕六十年京畿陽州地三角山重興寺開板
011_0458_c_24L本(國立圖書舘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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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癸卯6) 중춘仲春 일日에 석실 명안石室明眼은 삼가 제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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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卯仲春日石室明眼謹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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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번역 대상인 『한국불교전서』의 저본은 강희康煕 60년(1721) 경기京畿 양주陽州 삼각산三角山 중흥사重興寺 개판본(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이다.
  2. 2)像敎 : 상법像法 시대의 교敎란 뜻이다. 또는 형상을 만들어 교화하는 교란 뜻이기도 하다.
  3. 3)조식曺植 : 192∼232.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시인. 자는 자건子建. 시호는 사思. 안휘성安徽省 출생. 마지막 봉지封地가 진陳이기 때문에 진사왕陳思王이라고도 불린다. 위의 무제武帝 조조曺操의 셋째 아들이며, 문제文帝 조비曺丕의 아우이다. 그들 세 사람을 삼조三曺라 하며, 건안문학建安文學의 중심적 존재로서 ‘문학사상의 주공周公·공자孔子’라 칭송되었다. 맏형 비와 태자 계승문제로 암투하다가 29세 때 아버지가 죽고 형이 위의 초대 황제로 즉위한 뒤, 시인 정의丁儀 등 그의 측근들이 죽음을 당하였고, 그도 평생 정치적 위치가 불우하게 되었다. 그의 재주와 인품을 싫어한 문제는 거의 해마다 새 봉지에 옮겨 살도록 강요하였고, 그는 엄격한 감시 속에서 신변의 위험을 느끼며 불우한 나날을 보내다가, 마지막 봉지인 진陳에서 죽었다.
  4. 4)어산범음魚山梵音 : 범패 수도장의 발상지. 인도는 이민달라산이고, 중국은 어산이 범패의 발상지라고 한다. 불경의 게송에 곡을 붙인 노래를 범패라 하는데, 중국 위魏나라 때에 진사왕 조식이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동아현에 있는 어산에서 놀다가, 공중에서 범천梵天이 소리하는 음성音聲을 듣고, 그 음률音律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한다. 범음梵音·어산魚山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로 ‘범패’는 인도(梵)의 소리(唄)라는 뜻이다. 불교 이전의 브라만교에서 비롯되었다 하며, 한국에는 830년(太和 4) 당나라에서 진감 대사眞鑑大師가 들여왔다. 그 후 절에서 각종 재齋를 올릴 때 썼으며, 가곡, 판소리와 함께 한국의 3대 성악곡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불가는 절에서 재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와 절 밖에서 시주를 걷으며 축원하는 노래로 나뉘는데, 재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는 다시 안채비소리와 겉채비소리로 나뉜다. 안채비소리는 절 안의 병법秉法이나 법주法主와 같은 학식이 많은 승려가 부르는 노래로, 유치由致나 청사請詞 같은 축원문을 요령搖鈴을 흔들며 낭송한다. 흔히 염불이라고도 하며 ≺착어성着語聲≻, ≺창혼唱魂≻, ≺유치성由致聲≻, ≺청문성請文聲≻, ≺편계성徧界聲≻, ≺소성疏聲≻, ≺축원성祝願聲≻ 등이 있다. 겉채비소리란 범패를 전문으로 하는 외부 범패승의 노래로 큰 재를 올릴 때 초청하여 부르게 한다. 이 겉채비소리는 세련되고 복잡하여 음악적으로도 높이 평가되는데, 대개 리듬과 화성이 없는 단성선율이며 유장한 느낌을 준다. 이는 다시 그 음악적인 스타일에 따라 홋소리·짓소리·화청和請·회심곡으로 분류한다.
  5. 5)자은사慈恩寺 : 중국 장안성 남쪽 곡강曲江의 북쪽에 있는 절. 당나라 고종이 태자로 있을 때 문덕황후를 위하여 창건했는데 현장 삼장玄奘三藏이 이 절에서 경을 번역하였다. 그의 제자 기基(窺基)도 여기서 스님과 함께 법상종法相宗을 넓혔다.
  6. 6)계묘년은 강희康熙 2년(1663)과 60년 뒤인 옹정雍正 1년(1723)이다. 저본의 간기는 1721년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서문을 쓴 석실 명안의 생몰연대는 1646~1710년, 또 다른 서문을 쓴 수연秀演의 생몰연대는 1651~1719년, 발문을 쓴 자수子秀의 생몰연대는 1664~1737년이며, 또 다른 발문을 쓴 성능聖能은 경종 4년 계묘(1723)로 되어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1663년이나 1723년 모두 적절치 않다. 1663년이라 하면 명안은 서문을 18세에 썼고, 수연은 13세, 자수는 태어나기도 전이다. 어린 나이에 서문을 썼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 1723년이라 하면 간기에 간행연도가 1721년이니 이 또한 맞지 않다. 이는 선행하는 판본을 이어 복각, 재판각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인데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문헌학적 혜안을 가진 연구자의 연구가 기대되는 바이다.
  1. 1){底}康煕六十年。京畿陽州地三角山重興寺開板本(國立圖書舘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