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摩訶般若鈔經卷第五

ABC_IT_K0005_T_005
005_0668_a_01L마하반야초경 제5권
005_0668_a_01L摩訶般若鈔經卷第五


담마비ㆍ축불념 공역
이창섭 번역
005_0668_a_02L秦天竺沙門曇摩蜱共竺佛念譯

10. 수공품(守空品)
005_0668_a_03L守空品第十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찌하여 공(空)이기 때문에 지어지는 것에 탐내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공을 지키는 것이 곧 삼매가 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면 색(色)을 공(空)이라 비추어보고,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을 공이라고 비추어 본다.
이렇게 관(觀)한 사람은 오직 한마음이 되어, 자신이 비추어본 그대로 법에 있어서도 보는 것이 없다[無所見]. 또 법 가운데서는 밝히는 증험을 짓지 아니한다[不作證].”
005_0668_a_04L須菩提白佛言云何爲空所作不貪云何守空卽是三昧佛語須菩提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者觀色空觀痛痒思想生死識空作是觀者爲一心如所觀於法亦爲無所見於法中而不作證
수보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공으로 증거를 만들지 아니한다 하셨는데, 어찌하여 보살들이 삼매에서 공으로 증험을 짓지 아니하게 됩니까?”
005_0668_a_10L須菩提白佛言佛所說不以空作證云何菩薩摩訶薩於三昧不以空作證耶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색이 갖고 있는 것이 모두 공이라고 비추어 보며 또 증험을 짓지 아니한다. 이 관(觀)을 짓는 사람은 증(證)을 취하지 아니하며 증거를 만들지 아니하는 관에는 곧 탐내는 것이 없다. 비추어봄으로써 탐내는 것이 없게 되면 이것이 곧 그 사람의 관이 된다. 이 경지로 향하고자 할 때에도 거기서 증험을 하지도 아니하며 탐내지도 아니한다. 그 때는 마음에서 삼매의 인연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생각이 된다. 그 때에는 보살의 본래의 법을 잃지 아니하며 중도(中道)가 아니더라도 증험을 얻게 된다. 왜냐 하면 지은 공덕의 법이 매우 깊고 탐내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005_0668_a_12L佛語須菩提菩薩摩訶薩觀一切色所有皆空不作證作是觀者爲不取證不作證觀卽無所貪是者爲觀以無所貪是卽爲觀欲向是時而不證不貪其時心不念三昧因緣是者爲念爾時不失菩薩本法不中道得證何以故所作功德法甚深不貪
005_0668_b_02L이 때는 짐짓 증거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반야바라밀로부터 보호받게 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용감해서 능히 적에 저항하여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됨이 단정하여 못하는 것이 없고, 병법(兵法)의 예순 네 가지 변화를 모두 알고, 다섯 가지 깨우침을 모두 찾아내서 대중으로부터 공경 받는 사람이 되며, 그가 있어 이루는 곳에는 이득을 얻지 못하는 곳이 없다. 이로부터 얻은 것을 바꾸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그의 마음에 사람들은 기뻐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005_0668_a_19L是時故不取以從般若波羅蜜得護譬如人若勇若捍能卻敵者爲人端正猛健所不能悉知兵法六十四變悉索五爲衆所敬在所致處無不得利是所得轉分布與人其心人俱莫不歡喜
이 사람에게 만약 다른 어떤 일이 있어 부모 처자와 함께 지극히 심하고 어려운 재난 속을 지나가게 되더라도, 그 사람은 곧 스스로 편안하게 그 부모 처자들에게 말하기를 ‘무서워하지 말고 겁내지 마십시오. 지금 곧 이 재난 속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만약 그 가운데 원수 진 집안의 가족들이 찾아와도 그 사람은 지혜롭고 꾀가 많아 때맞추어 그 부모 처자를 재난 밖으로 벗어나게 하며, 그의 고향마을로 돌아가게 하여 모두가 완전히 구족하게 할 것입니다. 또 악한 사람이나 원수 맺힌 집안 사람들이 없을 경우에도 역시 중상 당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이 사람의 작용은 밝게 깨닫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이 사람은 용감하고 씩씩하여 변화에 대처하는데, 원수 진 집안 사람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원수 진 집안 사람이 이 사람을 만나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여 모두 달아나기 때문에, 그의 부모 처자들은 재난 속에서 벗어나 그들의 처소로 돌아갈 수 있고 환희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게 된다.
005_0668_b_04L若有他事與父母妻子俱過大劇難之中其人便自安其父母妻子莫恐莫怖今當俱出是難之中於其中怨家卒來其人慧黠應時出其父母妻子送歸鄕里皆得完具無有惡及於怨家亦無所中傷何以用無所不曉其人勇健爲變化於怨家怨家見者莫不恐怖而皆走其父母妻子得出難中歸其處所無不歡喜
수보리여,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도 모든 사람들에게 큰 자비심을 품는다. 이때 보살마하살이 지닌 자비심을 모든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은, 때묻고 탁한 악마들의 부류들이 베푸는 자비심을 넘어서고, 성문ㆍ벽지불의 자비심을 넘어선 자비심이다. 보살은 삼매 가운데 서서 바라밀을 다 사용할 곳이 없는 까닭에 공에 있어서도 탐내는 것이 없게 된다. 이 행을 지을 때 이 보살마하살은 공(空)삼매를 행하게 되는 것이며 해탈의 문을 향하게 된다. 이 경우에도 유(有)로써 상(相)을 삼지도 아니하고 무(無)로써 상을 삼지도 아니하는 까닭에 증거[證]를 취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날아다니는 새와 같다.
005_0668_b_13L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於一切人極大慈心是時菩薩摩訶薩持慈心悉施於人過諸垢濁魔之所部復出聲聞辟支佛道地上菩薩於三昧中立而無所盡用波羅蜜故於空爲無所貪作是行時是菩薩摩訶薩爲行空三昧向脫門亦不以有相不以無相故不取證譬若飛鳥
005_0668_c_02L수보리여, 공중에서 날면 몸에 부딪치고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느니라. 이 보살마하살도 공을 행하여 공에 이르게 되고, 무상(無相)으로 향해 가서 무상(無相)에 이르게 되고, 무원(無願)으로 향해 가서 무원(無願)에 이르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으로 해서 그것 때문에 공중에서 떨어지지는 아니하며, 부처님의 모든 법을 모두 구족하고자 하는 것이니라.
수보리여, 비유하면 활을 잘 쏘는 기능자와 같다. 명사수(名射手)는 화살 하나를 공중에 쏘아 올리고 나서, 또 하나의 화살을 쏘아 올려 앞에 쏜 화살에 맞추고, 다시 또 하나의 화살을 쏘아 올려 그 앞에 쏜 화살에 각각 맞추게 되더라도 화살이 각각 땅에 떨어져 내리지 아니하며, 그 사람이 앞에 쏜 화살을 떨어지게 해야만 마침내 이 화살들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005_0668_b_20L菩提飛行空中無所觸㝵是菩薩摩訶薩爲行空至空向無相至無相無願至無願不以空無相無願故墮悉欲具足佛諸法譬如工射之人菩提射空其箭在空中復以一箭中箭後復射前各各中之而不墮地其人欲令前箭墮爾乃墮之
수보리여,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도 구화구사라의 보호를 받아 간직하게 되기 때문에, 스스로 궁극의 진리에 도달하며 중도에서 증험을 취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 공덕이 가득하기에 이르면 모두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기에 이른다. 공덕에서 가득한 경지를 이룬 사람은 부처님의 경지를 얻어 능히 궁극의 진리를 위하여 증험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내용이며 이 법은 실존하는 법[法有]에서 생기는 법이다.”
005_0668_c_04L如是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者以爲漚和拘舍羅之所護持自於本際不中道取證成滿其功德悉逮得阿耨多羅三耶三菩於功德以成滿者得佛能爲本際作證是菩薩摩訶薩爲行般若波羅蜜是法於法有生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은 진실로 고통을 싫어하여 이 배움을 이루면서도 중도에서 증험을 취하지 아니합니다. 천중천이시여, 근본부터 이를 행하시어 안온하게 스스로 성불을 이루실 수 있으셨으니 거룩하십니다.”
005_0668_c_10L須菩提白佛言菩薩摩訶薩實慊苦作是學而不中道取證大哉天中天從本行是安隱自致得成佛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까닭에 이것이 본지(本地)에서의 염원의 소치에 해당된다. 그런 까닭에 모든 사람을 보호할 수 있으면서 도탈(度脫)을 얻게 된다. 이것이 공을 지키는 삼매[守空三昧]로서 해탈의 문을 향해 가는 길이다. 이 경우에도 마음의 염원은 분별을 하게 된다.
어떤 것이 그 분별에 해당되느냐? 수공(守空)삼매를 분별하게 되고, 무상(無相)삼매를 분별하게 되고, 무원(無願)삼매를 분별하게 되지만 그러나 중도에서 증험을 취하지 아니하고, 궁극의 진리에서 증험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 하면 구화구사라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처음 발심하였을 때의 염원이 모든 사람을 보호하고자 하여, 짐짓 이 염원한 소원을 지니고 구화구사라의 속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중도에서 증험을 취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005_0668_c_13L佛語須菩提菩薩摩訶薩欲護一切人故爲本願之所致能護於一切而得度脫是爲守空三昧向脫門念分別何等爲分別守空三昧爲分無相三昧爲分別無願三昧爲分而不中道爲本際取證何以故漚和拘舍羅之所護初發心時念欲護一切故持是所念得入漚和拘舍故不中道取證
005_0669_a_02L또 수보리여, 만약 보살마하살로서 깊은 경지에 들어가 해탈한 사람이라면 공(空)삼매로써 해탈의 문을 향해 가든지, 무상(無相)삼매로써 해탈의 문을 향해 가든지 또는 무원(無願)삼매에서 해탈의 문을 향해 가든지, 이러한 작용을 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속에서 이를 분별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은 발심한 이래로 오랜 세월 동안 인연한 것을 그의 행으로 그 객관적인 인연을 버리게 한다. 이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에서 말하는 법에 해당한다. 이것이 공삼매를 지키면서 해탈의 문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며, 무상삼매를 지키면서 해탈의 문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며, 무원삼매를 지키면서 해탈의 문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다.
005_0668_c_22L復次須菩提若菩薩摩訶薩深入處脫者若空三昧向脫門無相三昧向脫門無願三昧向脫門用是故其心分別之是人已來久遠所因其行令棄所因是爲阿耨多羅三耶三菩之所說法是爲守空三昧向脫門守無相三昧向脫門無願三昧向脫門
이 무원삼매로 해탈의 문을 향해 나아가는 일은 본지(本地)의 마음에서 일어난 행이 구화구사라를 입어 중도에서 증험을 짓지 아니하고, 궁극의 진리에서 증험을 짓게 되는 것이다. 이 행위는 자비심에 손상됨이 없으며 이것이 중생들을 보호하고 평등하게 자애하고 가엾게 생각하는 삼매에 해당한다. 그 까닭은 구화구사라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 보살마하살은 법에 도움이 되어 많은 지혜를 얻고, 힘을 이루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005_0669_a_06L是爲無願三昧向脫門本心所發蒙漚和拘舍羅不中道爲本際作證是爲於慈無所損爲護等哀三昧所以者何用漚和拘舍羅故是菩薩摩訶薩爲益於法便得多智成於力無所不覺
또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염원하는 것은 이 사람이 처음 발심한 이래로 오랜 세월 동안 법에서 이익이 있었고, 거기서 얻고 알게 된 것으로 그 힘을 이룩하였기에 깨닫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005_0669_a_11L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之所念是人已來從久遠而有益於法得所知成其力無所不覺
또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염원한 것에 해당되며, 이 사람이 오랜 옛날부터 생각[想]ㆍ인식[識]ㆍ호흡이 있어서, 그것으로 ‘나의 존재가 있다’라고 생각하였음을 알게 되고, 이 사람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었을 때 이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시킨 까닭에, 그 법을 말하여 모든 사람들이 무상(無相)삼매를 이루어 해탈의 문을 향해 나아가도록 마음의 염원을 일으킨 것이다. 이것이 구화구사라에 해당한다. 이 길을 선택한 까닭에 중도에서 증(證)을 취하지 아니하고 궁극의 진리에서 증험을 짓는 것이다.
이 행위는 자비심에 손상되는 것이 없으며, 이것이 호(護)삼매ㆍ등(等)삼매ㆍ애(哀)삼매에 해당되는 것이며,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법에서 도움을 받아 그 알음알이를 얻고, 그 힘을 이루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되는 이유이다.
005_0669_a_14L復次須菩提是爲菩薩摩訶薩之所念知人從久遠有想識呼爲有作阿耨多羅三耶三菩時用一切人故爲說其法令作無相三昧向脫門發心念是爲漚和拘舍羅用是故不中道爲本際作證是爲於慈無所是爲護等哀三昧是爲菩薩摩訶薩益於法得所知成其力無所不覺
005_0669_b_02L또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염원한 것에 해당된다. 그 염원이란,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무상함을 생각하였고, 그것이 고통임을 생각하였고, 그것이 공허한 것임을 생각하였고, 그것이 현재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였다. 이에 보살은 스스로 염원하기를 ‘내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룩하였을 때는 이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 법을 말해주어야 한다. 즉 그들이 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즐거움을 따라갔기 때문이며, 그들이 공허하다고 생각한 것은 유(有), 즉 모든 것은 영구히 존재한다는 관념을 따라갔기 때문이며, 그들이 무아(無我), 즉 자유자재한 나의 존재는 없다고 생각한 것은 모두가 나[我]라는 존재의식을 따라갔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005_0669_a_21L復次須菩提是爲菩薩摩訶薩之所人從久遠已來想無常想其苦其空想現在菩薩自念言我作阿耨多羅三耶三菩時用一切人故說其法無常者爲從樂其空者爲從無我皆從我
이러한 염원이 작용하기 때문에 구화구사라를 얻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일이 된다. 부처님께서는 삼매에 들지 아니하여도 삼매 속에 앉아 계심을 알고, 오직 부처님의 모든 법을 구족하고자 한다. 이것이 무원삼매에서 해탈의 문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증험을 짓지 아니하는 일에 해당한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어디가 아뇩다라삼야삼보가 일어나는 곳인지를 알아야 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은 사람에게서 일어난 것이며, 이 사람은 오랜 옛날부터 줄곧 그가 행한 것인데도 행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그의 상상(想像) 속에서 행한 일인데도 상상에서 행하지 아니하였다고 생각하고, 그의 상상의 행에서 구한 일인데도 상상에서 행하지 아니하였다고 생각하고, 그의 행과 상상에서 모여든 것인데도 행과 상상에서 모여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가 행한 곳에 있었던 일인데도 행한 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의 행에서 바르지 아니한 일이었는데도 바르지 아니한 길을 걸어오지 아니하였다고 생각한다.
005_0669_b_04L用是念故得漚和拘舍羅是爲行般若波羅蜜知佛不三昧而坐三昧但欲具足佛諸法是爲無願向脫門而不作證菩薩摩訶薩當作是知何所阿耨多羅三耶三菩心之所發者是人所發者是人爲從久遠已來其所行者而無所行其想行而不想行於其想行求而不行想於其行想聚而不行想聚於其所行有而不行所有於其行不正而不行不正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염원하기를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하겠다’라고 한다.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염원을 하였을 때 이 염원으로 모든 사람에게 진리를 밝히게 되며 이러한 염원을 지었을 때 그것이 구화구사라에 해당되며 이것이 매우 깊고 미묘한 관(觀)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 법을 뚫어지게 내다보는 사람은, 공(空)이 되는 것이 곧 무상(無相)ㆍ무원(無願)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생사가 없는 경지에 해당되며, 곧 생겨나는 곳도 없는 것에 해당되며, 어떤 것도 나의 것이 아닌 무소유의 경지에 해당한다.
005_0669_b_14L念使一切人皆令無是菩薩摩訶薩念是時爲以明於一切人作是念時是爲漚和拘舍羅是爲甚深微妙觀視其法是者爲空卽爲無無願是爲無生死卽爲無所生爲無所有
005_0669_c_02L수보리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지혜의 법에 해당되며, 생겨나는 곳이 없는 법에 해당한다. 혹 그가 삼계에서 알지 못한 사람이 찾아와 물어본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어주고자 하는 까닭에, 그 이유로 그 방법을 알고자 하는 것이니 마땅히 어떻게 하여야만 진귀한 보배 같은 마음이 발생하는가를 말해준다. 보살마하살에 있어서는 공(空)으로 증험을 이루지 아니하며, 무상(無相)으로도 증험을 이루지 아니하며, 무원(無願)으로도 증험을 삼지 아니하고, 생사윤회로도 증험을 삼지 아니하며, 생겨나는 것이 있는 것으로도 증험을 삼지 아니하고, 무념(無念)으로도 증험을 삼지 아니한다.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염원하는 사람이다.
005_0669_b_19L是者須菩提爲菩薩摩訶薩慧法爲無所生其於三界而不知來有所問是菩薩摩訶薩欲成阿耨多羅三耶三菩故以是故欲知其當云何發珍寶心於菩薩摩訶薩不以空而作證亦不無相亦不無願亦不生死亦不有所生亦不以無念作證是爲念般若波羅蜜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이미 수기(授記)를 받고 나서 염원하는 것은 여여(如如)한 공(空)의 세계며, 무상(無相)ㆍ무원(無願)ㆍ무생사(無生死)ㆍ무소종생(無所從生)의 세계며, 여여한 무소유의 세계를 염원한다. 그 사람이 혹 본래 어떤 것도 없는 세계에서 거룩한 마음이 일어나지 아니한다면, 이러한 일을 알 수가 없다. 혹 이를 해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보살마하살은 과거부터 부처님 계신 곳에서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관한 일을 들은 사람이며 그의 마음은 이미 물러서거나 바꾸어지지 아니하는 사람이다. 왜냐 하면 또 다른 보살마하살이 있어 법을 염원하여도 이를 밝힐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혹 어떤 사람이 와서 물어보는 경우가 있게 되어도 이를 풀이해서 의문을 없애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보살도의 경지에 있지 아니하는 사람이며, 그의 경계는 아유월치의 지위와 호응하지 못하는 경계이다.”
005_0669_c_03L是者須菩菩薩摩訶薩爲已受決所念如空無相無願無生死無所從生念如無所有其本無不發善心者不能知是其能解者是菩薩摩訶薩爲從過去佛所聞阿耨多羅三耶三菩事其心以不轉已何以故復有菩薩摩訶薩念法而不能明其有問者亦不能解遣知是未在菩薩道地不應阿惟越致其界
부처님께서는 다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바라밀에서 말하는 법문을 듣지 못하였다가 혹 들은 사람이 있거나, 또는 듣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 지혜를 능히 해득할 수 있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에 해당된다.”
005_0669_c_12L佛語須菩提若不聞波羅蜜之所言其有聞者若不聞者能解其是菩薩摩訶薩爲阿惟越致
수보리가 말하였다.
“보살이 된 사람은 매우 많지만 천중천이시여, 능히 해득할 수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아유월치의 지혜를 얻은 경지에 있는 보살은 적다. 그 가운데 수기를 받은 사람이라야만 마침내 이를 해득할 수 있다. 이 보살마하살의 공덕은 매우 크다고 하겠으며, 이는 모든 천신과 인간과 아수륜과 세간의 지혜로 알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005_0669_c_14L須菩提言其爲菩薩者甚多天中天少有能解者佛語須菩提少有菩薩在阿惟越致慧地其受決者乃能解之菩薩摩訶薩其功德爲甚大非是諸天及人阿須倫世閒之所知

11. 원리품(遠離品)
005_0669_c_19L摩訶般若波羅蜜遠離品第十一
005_0670_a_02L
또 수보리여, 그 진리라고 하는 것은 보살마하살에 있어서는 꿈속에서도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는 들어가지 아니하며, 삼계에서 구하는 것이 있기를 염원하지 아니하며, 또 그 속에서 찾는 것이 있지도 아니하고, 모든 법을 보기를 꿈속과 같이 보면서 그 가운데서 증험을 이루지 아니한다. 수보리여, 이런 사람이면 보살마하살로서 아유월치의 모습이 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또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 수백ㆍ수천ㆍ수억천의 제자들과 함께 모여 그 가운데 앉아서 모든 비구승들을 위하여 말하면서, 그 설법이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이 말한 법과 같다면 수보리여, 이 사람은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이며, 이것이 아유월치의 모습임을 알아야 한다.
005_0669_c_20L復次須菩提其諦者菩薩摩訶薩於夢中不入聲聞辟支佛道地於三界不念有所求亦不那中有所索視諸法若夢不那中作證是者須菩提知菩薩摩訶薩是爲阿惟越致相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於夢中若干百若干千若干億千弟子共會在其中坐爲諸比丘僧說法如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佛之所說法須菩提阿惟越致菩薩摩訶薩知是爲阿惟越致相
또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 날아올라 공중에 있으면서, 그곳에 앉아서 비구승들을 위하여 설법하다가 문득 스스로 일곱 자 길이의 광명이 다른 곳에서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것을 보고, 그 작위(作爲)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과 같다면 그 꿈속에서 이것을 본 사람은, 그가 보살마하살이며 이것이 아유월치의 모습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005_0670_a_08L復次須菩提薩摩訶薩於夢中飛在空中坐爲比丘僧說法還自見七尺光自在所變化於餘處其所作爲如佛之所說法其於夢見是者當知菩薩摩訶薩是爲阿惟越致相
또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꿈속에서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겁내지 아니하고 어려워하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 아니한다. 가령 크고 작은 고을이 보이고 그 가운데서 전쟁이 일어나 서로 공격하고 무찌르면서 불이 일어난 것을 보았을 때나, 혹 호랑이ㆍ이리ㆍ사자 및 다른 짐승들이 보이거나, 혹 사람의 머리를 자르는 것을 보았거나, 그밖에 이변[變]이 심하고 지극히 고통스럽고 곤궁함이 많고 주리고 목마름이 있는 사람이 보일 경우, 그 액난을 보고도 마음속에 무섭지도 아니하고 두렵지도 아니하며 놀라지도 아니하고 흔들리지도 아니하고, 밤에 꿈속에서 본 일에 대해서, 깨어나면 일어나 앉아서 이런 생각을 한다. 즉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일은 꿈과 같다. 내가 부처가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을 설법해서 두루 이들에게 가르쳐주겠다’라고 하나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보살마하살이며 이것이 아유월치의 모습이니라.
005_0670_a_13L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於夢中不恐不怖不難不畏見郡縣其中兵起展轉相攻伐若火若見虎狼師子及餘獸若見斷人頭者如是餘變甚大劇苦多有困窮若飢渴者見其厄難心中不恐不畏不驚不動搖夜於夢中所見覺卽起作是念世界所有譬若如夢我作佛時悉爲說法而遍教之當知菩薩摩訶薩是爲阿惟越致相
005_0670_b_02L또 수보리여, 어떻게 이 보살마하살이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겠느냐? 아유삼불의 경지가 이루어지면 그 때는 그 경계 안에는 모든 곳에 악한 일이 없어진다. 바로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경지다.
수보리여, 꿈속에서 가령 축생들이 서로 잡아먹고 백성들이 몹쓸 병에 걸린 것을 보게 되면 그의 마음에 점점 염원하는 것이 있게 된다. 그리하여 ‘내가 부처가 되었을 때는 나의 경계 안에서 일체의 모든 악이 없게 하소서’라고 기원하게 된다. 이런 염원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의 모습이 청정함을 알게 된다. 알아야 한다. 보살마하살에 있어서는 이것이 아유월치의 모습이다.
005_0670_a_22L復次須菩云何知是菩薩摩訶薩當得阿耨多羅三耶三菩成阿惟三佛時其境內一切無有惡正是菩薩摩訶薩菩提於夢中若畜生相食人民疾疫其心稍稍有念願我作佛時使我境界中一切無有惡用是故知其相爲淸淨當知菩薩摩訶薩是爲阿惟越致相
또한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꿈속에서도 깨달음을 얻는다. 가령 재난이나 잘못된 불이 일어난 것을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즉 ‘내가 꿈속에서 본 일이다’라고 하고 그의 마음은 평상시와 다름이 없게 된다. 이것을 지니고 그의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비교해본다면 이 사람이 보살마하살이고 아유월치라는 것을 아느니라. 만약 보살아하살이 ‘내가 그 행상을 살피는 것과 같다면 마땅히 말한 대로 다름이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 지금 이 성곽에서 일어난 불은 곧 모조리 사라져 버리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할 것이다.”
005_0670_b_07L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於夢中得覺若見災邪火起便作是念於夢中所見其心等無異持是比用是相具足知是菩薩摩訶薩阿惟越若菩薩摩訶薩作是念如我審應相行者當如所言無異今是城郭所起火者當爲悉滅消去不復見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만약 불이 모두 소멸되어 없어졌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수기를 받은 보살로서 과거세에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이 계신 곳에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받은 보살임을 알게 되며, 이것이 아유월치의 경지가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이 소멸되지 아니할 경우에는 이 보살은 아직 수기를 받지 못한 보살임을 알 수 있다. 가령 불이 한 집을 모두 태우거나, 한 집은 그만두고 다시 번져 온 마을을 태우거나, 한 마을은 그만두고 더 많은 마을을 태울 경우 수보리여, 알아야 한다. 이는 아무개의 집에 사는 사람이 전생(前生)에 법을 단절케 한 죄의 소치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무리의 사람들이 짓는 업은 모두 숙명임을 깨닫게 되면 염원으로 그가 있는 곳이 더욱 악하게 보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법을 단절케 한 재앙을 모조리 제거하게 되면 이로 인하여 불길도 모두 소멸될 것이다. 이런 점을 적용하기 때문에 수보리여, 알아야 한다. 이 보살마하살은 곧 아유월치의 경지에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룬 사람이니라.
005_0670_b_13L佛言若火悉爲消滅去者知是菩薩摩訶薩受決以爲過去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佛之所受阿耨多羅三耶三知是爲阿惟越致令火不滅消去知是菩薩未受決設火焚燒一舍置一舍復越燒一里置一里是須菩當知某家居人前世時爲斷法罪之所致覺是輩人所作皆是宿命以見在所更惡令悉除其所斷法殃因是皆得消盡用是故須菩提當知是菩薩摩訶薩卽阿惟越致阿耨多羅三耶三菩
005_0670_c_02L또 수보리여, 이런 점을 적용하여 그의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비교해 본다면, 곧 이 보살마하살이 아유월치의 경지를 이룬 사람과 같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점을 적용하기 때문에 그 모습과 행동을 비교해보고 곧 이를 알게 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혹 때로는 어떤 남자나 여자가 귀신이 있는 곳에서 내려와서 그가 있는 곳을 지킬 경우, 그곳에 있는 보살이 혹 생각하기를 ‘설사 내가 수기를 받음으로써 과거세의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께서 나에게 아뇩다라삼야삼보를 내려주셨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고통을 싫어함에는 차이가 있다. 마땅히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의 경지를 얻어야 한다. 만약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의 경지에서 염원하는 일이 모두가 청정하다면 아라한과 벽지불의 마음을 물리치게 될 것이다. 가령 아라한과 벽지불의 마음을 물리침으로써 그런 사람들만이 모인다면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어 스스로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루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005_0670_c_02L復次須菩提用是比相其行具足當視是菩薩摩訶薩如阿惟越致用是故說其比相行當令知或時須菩提若男子女人爲鬼神所下若爲所持是彼菩薩若作是念設我受決以過去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佛授我阿耨多羅三耶三菩實慊苦有異當得阿耨多羅三耶三菩阿惟三佛若於阿耨多羅三耶三菩阿惟三佛所念皆淸淨者爲卻羅漢辟支佛心設以卻羅漢辟支佛心者會當作阿耨多羅三耶三菩得不成自致阿惟三佛
만약 곧 부처가 되어 아뇩다라삼야삼보의 경지가 된 사람이라면 아승기(阿僧祇)같이 무수한 국토에 현존하는 모든 부처님을 만나지 못한 부처님이 없을 것이며, 증험하지 못한 부처님이 없을 것이다. 지금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들께서도 모두 나의 생각을 알 것이며, 나와 다름없이 참으로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룬 분들이니 살펴보면 참으로 내가 한 말과 같을 것이다’라고 염원하게 될 것이다.
005_0670_c_14L若當得佛爲阿耨多羅三耶三菩者阿僧祇剎土現在諸佛無不見者無不證者今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佛悉知我所念無有異我審作阿耨多羅三耶三菩阿惟三佛者審如我之所言
005_0671_a_02L그렇게 되면 그곳에 온 귀신은 곧 그곳을 떠나 문득 이 남자와 여자에게 말하기를 ‘어떤 귀신 때문에 이곳을 지키고 있느냐?’라고 할 것이다. 귀신이 이 말을 듣게 되면 곧 그곳을 떠나게 될 것이다. 가령 이 말을 하였을 때 귀신이 떠나지 아니한다면, 이 보살은 아직 수기를 받지 못한 보살이며 과거세의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보들께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내려주지 아니한 보살이다. 그러나 이 말을 하였을 때 사악한 귀신이 곧 떠나게 되면, 이 보살은 수기를 받음으로써 과거세의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보들께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전수받은 보살임을 알 수 있다.”
005_0670_c_19L是鬼神卽當去便告言是男子女人爲何鬼神所持鬼神聞其所言卽去說是語時設不去者是菩薩爲未受決去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菩不授阿耨多羅三耶三菩若說是言邪卽去者知是菩薩爲以受決過去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菩所授阿耨多羅三耶三菩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참으로 지성스런 사람이라면, 몹쓸 마군(魔群)이 보살마하살이 있는 곳을 찾아갈 경우, 보살이 이르기를 ‘나는 참으로 지성스런 사람이며 이미 수기를 받았고, 아뇩다라삼야삼보의 경지가 되어 사악한 귀신도 당장 내 곁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면 몹쓸 악마는 이런 점을 이용하기 때문에 좋은 마음을 지어 조화를 부려 사악한 귀신을 모두 그곳에서 떠나게 할 것이다. 그 까닭은 몹쓸 악마라도 지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악마는 위력과 신통력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악한 귀신들이 감히 이를 당해낼 수 없다. 이는 모두가 악마의 위신력과 신통력이 물리친 결과다.
005_0671_a_04L佛語須菩提其人審至誠者弊魔往到菩薩摩訶薩所若菩薩言我審至誠者已受決爲阿耨多羅三耶三菩是邪鬼神卽當去弊魔用是故作好心化令邪鬼神悉去以者何弊魔極尊有威神故諸邪鬼神不敢當之是皆魔威神之所辟
이런 점을 이용하는 까닭에 귀신들을 모조리 제거하게 되는 것인데, 이 경우에 만약 보살마하살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의 위신력과 신통력이 작용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라고 한다면, 그 보살마하살은 스스로 혼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이 일 때문에 곧 도리어 스스로 자기를 높이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며 모습에 드러나게 다른 사람을 비웃으며 마음에 새겨두는 것이 없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과거세에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들로부터 그분들이 전수해 주신 수기를 받았으나, 나머지 다른 사람은 모조리 아직 수기를 받지 못하였으며, 나는 아뇩다라삼야삼불께서 내려주신 결택을 받았으나 나머지 다른 사람은 모두 아직 수기를 받지 못해 아뇩다라삼야삼보가 되지 못하였다’라고 말하게 된다.
005_0671_a_10L是故悉爲除去若菩薩自念用我威神故是彼菩薩摩訶薩以自謂是便反自貢高輕易於人形笑他人而無所錄語人言我從過去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佛所授決以其餘人者悉未受決爲阿耨多羅三耶三佛所授決以其餘人者悉未受決爲阿耨多羅三耶三菩
005_0671_b_02L이런 점을 선택하는 까닭에 스스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기를 높이면서, 마음에 거슬리면 노여움과 분노가 점차 더해져서 곧 살운야에서 떠나게 된다. 만약 멀리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지혜를 잃게 되면 이러한 무리들의 보살에게는 구화구사라가 없는데도 스스로 자기를 높이 떠받드는 무리임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사람들은 곧 성문과 벽지불의 땅에 떨어져 그 두 길의 경지에 있게 된다. 수보리여, 이러한 무리의 보살들은 지닌 도를 이루지 못하여 이루더라도 악마의 행위임을 모르고 도리어 훌륭한 스승을 버리고 떠나게 되며, 일에 종사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새겨두고 보지 아니한다. 이런 길을 선택하는 까닭에 악마 때문에 고달픈 일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보살마하살은 곧 그것이 악마가 한 짓임을 깨달아야 한다. 무엇으로 이것을 점쳐야 하는가?
005_0671_a_18L用是故自可自高怒稍增卽離薩云若大遠失阿耨多羅三耶三佛慧知是輩菩薩無漚和拘舍羅而自貢高便在二道地墮聲辟支佛地是輩菩薩須菩提持不成作成不知魔爲反捨善師而去不與從事亦不錄視用是故爲魔所是菩薩摩訶薩當覺知魔爲以何占之
느낌으로 악마가 와서 보살 앞에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악마는 변화를 하여 색다른 옷을 입고 보살에게 왕래하면서 말하기를 ‘보살마하살께서 만약 과거세의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들께서 내려주신 수기를 받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었다면, 가령 본래의 이름은 아무개이고 어머니의 이름은 아무개이며, 아버지의 이름은 아무개이고 형의 이름은 아무개이며, 누이의 이름은 아무개이고 아우의 이름은 아무개이며, 친하게 잘 아는 사람의 이름은 아무개이고 그의 부형의 이름은 아무개이며, 7대 조부의 이름은 아무개이고 어머니의 외가의 이름은 아무개이며, 아버지의 외가의 이름은 아무개이고 살던 성(城)은 아무개 성에서 태어나서 아무개 나라에서 아무개 군(郡)ㆍ현(縣)ㆍ고을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면서 항상 부드러운 말을 한다. 이와 같은 말을 하게 된 것은 모두가 곧 전생의 소치라고 말하면서 또 이렇게 부드러운 말씨로 말해 준다.
005_0671_b_03L覺知魔來在菩薩前魔作變化爲異被服往來作是言語菩薩摩訶薩若從過去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佛之所授決阿耨多羅三耶三菩若本字某若母字某若父字某若兄字某若姊字某若弟字某親厚知識字某若父兄字某若七世祖父字某若母外家字某若父外家字某若在某城生若在某國生若在某郡生在某縣生若在某鄕生若常軟語令作是語者皆乃前世之所致亦復作是軟語
혹 높은 재주를 지닌 사람에게는 곧 다시 형상에 따라 말하기를 전생(前生)에서도 고명(高名)한 분이었다고 말해 준다. 이 몹쓸 악마는 때에 따라서는 혹 스스로 계율을 지킬 때 나타나기도 하고, 혹 걸식할 때에 나타나기도 하며, 혹 한 곳에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혹 식사자리로 나아가기도 하며, 혹 때에 따라서는 먼저 과일과 채소를 먹고 밥은 물리치기도 하며, 혹 언덕 무덤 사이에 있기도 하고 혹 인적이 없는 적막한 곳에 있기도 하며, 혹 때에 따라서는 큰 나무 사이에 멈추어 있기도 하고 혹 초청을 받는 일도 있고 혹 초청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경우도 있고 혹 때에 따라서는 얼마간의 물건만 취하면 만족하는 경우도 있고, 혹 때에 따라서는 한 곳에 멈추어 있기도 하며, 혹 때에 따라서는 마유(麻油)를 몸에 바르지 아니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때는 좋은 소리를 내고 어떤 때는 이빨사이로 내는 소리로 말할 때도 있다.
005_0671_b_14L或時高才者便復隨形言若前世時亦復高明或見自守或見乞食或時一處飯或時就飯者或時先食果菜卻食飯或時在丘墓閒時寂寞處或時樹閒止或時受請者或時不受請或時多少取足或時一處止或時麻油不塗身或時聲好時互談
005_0671_c_02L왜냐 하면 악마가 다시 말하기를 ‘이런 인연은 모두가 전생(前生)의 덕으로 이를 얻게 한 것이다’고 하면서 가령 ‘전생에는 아무개 집안의 아들이었으며 그 집안은 찰리족(刹利族)이었고, 또한 이름은 아무개였는데 전생에서 이런 공덕이 있었기에 지금도 그 때문에 역시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말해 준다.
그때 그 보살은 문득 생각하기를 ‘내가 상상해 보아도 역시 그렇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면, 이때 악마는 곧 다시 말하기를 과거세에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들로부터 수기를 받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었다는 등등을 말해준다. 그리하여 이 인연공덕이 작용한 까닭에 지금 아유월치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말하게 된다.”
005_0671_b_21L何以故魔復言是因緣者前世時德之所致令逮得是若前世時某家子若剎利姓若復字某前世有是德今故亦爾彼菩薩心便作是想我且爾是弊魔便復作是言以受決過去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佛授若阿耨多羅三耶三菩用是因緣功德故若是阿惟越致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말하는 아유월치의 보살마하살은 그렇지 아니하다. 이런 관점을 지니고 그 모습과 행을 비교하여 이를 점쳐보아서, 내가 말한 것과 같은 조건을 구족하여 얻지 못하고 도리어 멋대로 자신이 홀로 작용하는 사람은 알지어다. 이러한 보살의 무리는 끝내 도를 이루지 못하고 악마 때문에 허물어지게 되느니라. 왜냐 하면 이러한 점을 적용해서 그 모습과 행동을 비교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경지에 오른 보살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며, 끝까지 이런 뜻이 없을 것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무리의 보살들은 악마가 말하는 명예로운 이름을 듣게 되면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참으로 그렇다’라고 하여 곧 스스로를 높이 떠받들고 행동하는 모습이 사람들을 비웃고 함께 같이 배운 도반을 경멸하여 업신여기면서 도리어 스스로 이 점을 이용하게 된다.
수보리여, 그러한 보살마하살은 이 이름을 받아들이는 길을 선택한 까닭에 이로 인하여 그 근본을 잃어버리고, 곧 악마가 쳐놓은 그물 속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005_0671_c_05L佛語須菩提我所說阿惟越致菩薩摩訶薩不爾持是比相行占之如我所說者不具足得反自用者當知是菩薩輩終不成爲魔所壞何以故用是比觀其相行知是卽非阿惟越致菩薩摩訶薩者終不有是意是輩菩薩聞魔乃語名字心大歡喜自謂審然便自貢高行形笑人輕易同學而反自用是彼菩薩摩訶薩須菩提用受是字因失其本便墮魔網
또 수보리여, 그가 선택하여 악마가 지은 이름을 받아들인 까닭에 이 보살마하살은 악마의 행위를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스스로 일컫기를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었다고 하게 된다.
그때 악마는 다시 그 보살에게 말해주기를 ‘가령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어 곧 부처님이 되었을 때, 아마도 그 부처님의 이름은 아무개 부처님이라 할 것이다’라고 일러준다. 보살이 이름을 듣게 되면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장차 얻을 이름은 없다. 그러나 전생에서 나도 생각하기를 또 그렇게 생각하였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005_0671_c_15L復次須菩提用受字故是菩薩摩訶薩不覺魔爲反自呼得阿耨多羅三耶三菩魔復作是言若當作阿耨多羅三耶三菩若作佛時當字某是菩薩聞是字心中作是念我將得無我亦先時念復如是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이 보살은 지식에 있어서 아는 것이 매우 적고, 구화구사라가 없는데도 도리어 이런 생각을 하고, 명예와 이름을 희망하면서 스스로 ‘내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게 되면 그때 나의 이름은 마땅히 이와 같이 불러야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005_0671_c_21L佛言是菩薩於知爲甚少無漚和拘舍羅反作是念希望名字我作阿耨多羅三耶三字當如是
005_0672_a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악마가 가르쳐 준 것과 같이 행동하는 사람은 마천(魔天)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다가 지금 비구가 되어 악마 때문에 길을 잃고 헤매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는 내가 본지(本地)에서 발심한 공덕의 소치로 지금 이 이름을 얻은 것이다’라고 믿게 된다. 그의 말대로 한다면 과거세의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께서 나에게 수기를 받게 하여 주심으로써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부처가 된 것이다.”
005_0671_c_24L佛言如魔所教者爲從魔天今作比丘爲魔所迷自念是我本發心之所致今得是字爲如所言過去怛薩阿竭阿羅呵三耶三佛受我決以爲阿耨多羅三耶三菩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말하는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이런 점을 적용하여 그 모습과 행을 비교해보고 이것이 옳다고 하지 아니한다. 그가 이름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그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곧 다른 보살마하살을 경멸하게 되면, 이 경멸하는 길을 선택한 까닭에 살운야와 아뇩다라불(阿耨多羅佛 : 아뇩다라삼약삼보리)의 지혜에서 떠나게 되고, 구화구사라를 멀리함으로써 반야바라밀을 떠나게 되고, 그러므로 훌륭한 스승을 떠나게 되고 이로써 나쁜 스승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보살은 때맞추어 성문이나 벽지불의 길목ㆍ경지의 그 두 가닥 길에 떨어지게 된다. 그 이후 만약 매우 오랜 세월 동안 부지런히 고행한 이후에 마침내 다시 부처가 되기를 구하는 사람은 반야바라밀의 은혜가 작용하기 때문에, 아마도 다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어 스스로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루게 될 것이다.”
005_0672_a_05L佛語須菩提我所說阿惟越致菩薩摩訶用是比相行而不爲是其以字自念我是便輕餘菩薩摩訶薩用是輕離薩云若阿耨多羅佛慧遠漚和拘舍羅以爲離般若波羅蜜以爲離善師以爲得惡師是菩薩會墮二道若聲聞辟支佛道地若大久遠勤苦以後乃復求佛者用般若波羅蜜恩當復得阿耨多羅三耶三菩自致成阿惟三佛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때 뜻을 일으켜 이 이름을 받아 들였다가 곧 깨닫고 뉘우쳐서 고치지 아니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곧 성문ㆍ벽지불의 길목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005_0672_a_15L佛言爾時發意受是字不卽覺改悔者如是當墮聲聞支佛道地
005_0672_b_02L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비구승에게 4중금(重禁)5)이 있고 이 밖에 또 다른 일도 죄를 범하게 되는 까닭에, 이런 사람은 다시는 승단의 비구가 될 수 없고 부처의 아들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이 보살의 도를 허무는 죄는 비구승의 4중금보다도 더 무거운 죄다. 이 보살이 나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떤 나라에 태어났다고 말하면서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 죄는 비구의 4중금보다도 가장 무겁고 또 5역죄를 능가하는 죄가 된다. 이렇게 죄가 무거운 이유는 그 이름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악마가 한 일이 미묘한 짓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 수보리여, 번뇌에서 멀리 벗어나는 공덕을 말한다면, 악마가 보살마하살 앞에 찾아와 ‘멀리 벗어나는 법은 바로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께서 칭찬하시고 부추겨 올린 법에 해당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005_0672_a_17L佛言比丘有四重事禁復他事所犯故不復成沙門不復爲佛子是壞菩薩之罪重於比丘四事是菩薩言我字某生於某國心作是念其罪最重於四事禁復過五逆所以罪重者何爲受字故不知魔事之所爲微妙復次須菩提遠離之菩薩摩訶薩弊魔須於前作是言遠離之法正當如是怛薩阿竭阿羅呵三耶三佛之所稱譽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아니하였다. 멀리 떠난다는 것은 내가 보살마하살에 가르치기를 홀로 있는 곳이나 나무 사이의 한적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고 하였다.”
005_0672_b_03L佛語須菩提我不作是說遠離教菩薩摩訶薩止於獨處樹閒閑處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들에게는 남다르게 멀리 벗어나는 길이 있습니까?”
005_0672_b_05L須菩提白佛云何天中天菩薩摩訶薩有異遠離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설사 보살마하살로 하여금 그 생각을 황홀하게 할지라도 성문에서 생각하는 경지이다. 생각이 황홀하다는 것은 곧 벽지불이 생각하는 황홀한 경지이며, 행(行)이 황홀한 것이 보살마하살의 황홀한 경지이다. 비록 성곽 안에 있더라도 계속 수행하며, 멀리 번뇌를 벗어나는 행을 하고 황홀한 행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마하살에게 있어서는 모든 악한 마음이 일어날 곳이 없게 하는 일이며 황홀한 행에 해당한다. 이 보살마하살이 만약 홀로 나무 사이 한적한 곳에 처하여 그곳에 멈추어 있다면, 이는 보살마하살의 멀리 벗어나는 행[遠離行]에 해당한다. 이것은 4덕(德)6) 가운데 아(我)ㆍ락(樂)이며 보살마하살로 하여금 이것을 행하게 하는 것이다. 멀리 벗어나는 수행은 곧 낮이나 밤이나 이를 잊지 않고 생각하여야 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멀리 벗어나는 행을 하는 일이다. 보살마하살의 멀리 벗어나는 수행을 한다는 것은 보살마하살로서 멀리 벗어나는 수행을 하는 사람은 비록 큰 성(城) 옆에 있더라도 끊임없이 황홀행(恍惚行)을 수행한다.
005_0672_b_06L佛語須菩提正使菩薩摩訶薩念恍忽爲聲聞之所念念恍忽者爲是辟支佛之所念行恍忽者是菩薩摩訶薩雖在城郭續爲行遠離行恍忽是菩薩摩訶薩於一切惡法而無所起恍忽者是菩薩摩訶薩若獨處樹閒閑處止是菩薩摩訶薩續行遠離者我樂使菩薩摩訶薩作是行是遠離之行當晝夜念之是爲菩薩摩訶薩遠離行菩薩摩訶薩遠離行菩薩摩訶薩行遠離者雖在城傍續行恍
005_0672_c_02L만약 홀로 나무 사이 한적한 곳에 처하여 그곳에서 멈추어 있는 사람이 황홀한 경지에 있거나, 혹은 홀로 나무 사이 한적한 곳에 살면서 황홀행을 수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이것으로 멀리 벗어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았다’고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때 악마가 문득 그 보살을 찾아가서 그에게 멀리 벗어나는 수행을 하라고 시키면서 말하기를 ‘마땅히 홀로 나무 사이 한적한 곳에 머물러야 하며 마땅히 이 행을 하여야 한다’라고 할 것이다. 이 보살이 악마가 시키는 말에 따르게 되면 곧 멀리 벗어나는 경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때 악마는 다시 말하기를 ‘도의 행위는 모두가 평등하다. 성문ㆍ벽지불도 모두 이런 생각을 한다. 그 생각에 다름이 없으며 이 생각을 하는 사람은 반야바라밀을 구족하게 되며 이로써 곧 이 행을 하게 된다’라고 말할 것이다.”
005_0672_b_18L若在獨處樹閒閑處止者恍忽在獨處樹閒閑處止者行恍忽是菩薩摩訶薩自念我以知遠離爾時魔便往教之令行遠離若當於獨處樹閒閑處止當作是行是菩薩隨魔所教便亡遠離魔復言道爲悉等聲聞辟支佛道皆作是念無有異作是者爲具足般若波羅蜜以當作是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보살마하살이 생각하는 법은 청정한 법이 아니다. 자신은 법에 따라 수행한다고 생각하지만 도리어 자신의 생각만을 적용하고 다른 보살을 가볍게 생각하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누가 나를 넘어설 수 있겠느냐?’라고 하면서 성(城) 옆에서 수행하는 청정한 보살을 우습게 보고 업신여긴다. 그의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은 성문ㆍ벽지불의 법에도 들어가지 못하며 그가 가진 악한 마음은 선열(禪悅)을 받지 못한다. 삼매와 삼매를 초월한 경지를 모두 얻는 데 이르러야 소원이 모조리 구족되어 번뇌의 강물을 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005_0672_c_03L佛言是菩薩摩訶薩所念法非淸淨謂以隨行而反自用輕餘菩薩自念誰能過我輕易城傍行菩薩淸淨者其心所念不入聲聞辟支佛法所有惡心不受禪悅三昧三摩越逮得所願悉具足度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화구사라가 없는 보살을 바야흐로 4천 리의 텅 빈 못 가운데 짐승도 이르지 못하고 도적도 이르지 못하고 나찰도 이르지 못하는 곳에 있게 하더라도, 비록 그곳에 있으면서 일 년ㆍ백 년ㆍ천 년ㆍ백천 년ㆍ백천만 년ㆍ백천만억 년을 그곳에 있거나, 이보다 더 많은 세월을 그곳에 있게 하더라도, ‘멀리 벗어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모여도 아무 이익 되는 것이 없고 보살마하살의 멀리 벗어나는 행을 구족하게 갖출 수가 없다. 그런데도 스스로 생각하기를 모든 것을 얻었고 모든 것을 밝혔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악마가 문득 그곳을 찾아가 날아올라 공중에서 말하기를 ‘훌륭하고도 훌륭하도다. 선남자야, 이것이 진정 멀리 벗어나는 행이다.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께서 말씀하신 법이며, 바로 마땅히 이 멀리 벗어나는 행을 따라 수행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빠른 시일 안에 아뇩다라삼야삼보리와 아유삼불의 경지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005_0672_c_08L佛言無漚和拘舍羅菩薩者正使在四千里空澤之禽獸所不至處賊所不至羅剎不至處雖在彼閒若一歲若百歲若千若百千歲若百千萬歲若百千萬億歲正使復過是者不知遠離會無所益不能具足爲菩薩摩訶薩遠離自念謂悉得已悉明已弊魔便往飛在空中作是言善哉善哉善男子眞遠離怛薩阿竭阿羅呵三耶三菩所說正當隨是遠離行如是者疾得阿耨多羅三耶三菩阿惟三佛
이 보살마하살은 이 말을 듣게 되면 멀리 벗어난 곳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나 성(城) 옆에서 멀리 벗어나는 수행을 하는 보살이 있는 곳을 찾아가거나 또는 비구로서 도를 성취하여 도가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 스스로를 높이 떠받들며, 도리어 찾아간 사람을 업신여기는 말을 하면서 ‘그대가 수행하는 법은 잘못된 것이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005_0672_c_19L是菩薩摩訶薩聞是便從遠離起去往到城傍遠離菩薩所若比丘成就有道人所而自貢高反往輕言若所行法是卽爲非
005_0673_a_02L이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황홀한 행을 따라 수행하던 보살마하살은, 이 보살마하살이 바르게 수행한 것을 도리어 반대로 아니라고 부르며, 그 가운데 반대되는 행동이 있는 것을 도리어 옳은 일이라고 부르며, 당연히 공경하지 아니하여야 할 것을 반대로 공경하고, 당연히 공경하여야 할 것은 반대로 노여움으로 대항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행한 멀리 벗어나는 수행은 이런 길을 선택한 까닭에 사람 아닌 신이 나를 찾아와 〈훌륭하고도 훌륭하도다. 그대가 수행한 것과 같은 것이 참으로 멀리 벗어나는 수행이다〉라고 하였다. 가령 성(城) 옆에서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가 당장 그를 찾아와 이렇게 말해줄 것인가?’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005_0672_c_23L佛言其隨恍忽之行是菩薩摩訶薩爲正反呼言非中有反行反呼爲是不當敬者而反敬之當所敬者反瞋向之我所行遠離用是有非人來語我言≺善哉善哉若所行審是遠離≻若在城傍行者誰當來語若誰當告若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보살은 공덕이 있는 보살인데도 반대로 이를 업신여기니 수보리여, 이와 같은 보살은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마치 죽은 사람을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과 같아서 씨앗이 되살아날 곳이 없는 가운데서 반대로 보살에게 모자라는 곳이 있다고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과는 원수진 집안이며 그가 보살을 미워하는 것은 곧 천상천하의 큰 역적에 해당하는 행위이다. 바야흐로 가령 승단의 스님의 옷을 입게 하더라도 이 사람은 승단의 역적에 해당되며 보살의 공덕이 있는 사람 가운데 있어서도 역적이다.
005_0673_a_06L佛言是菩薩有德人而反輕之如是須菩提菩薩當知是人如擔死人種無所復中反呼菩薩有短是爲菩薩怨家其爲厭菩薩以是天上天下之爲大賊正使如沙門被服亦復是賊於菩薩有德人中亦復是賊
수보리여, 이러한 무리들과도 함께 일에 종사하여서는 안 되며, 함께 말을 주고받아서도 안 되며 또한 공경하는 마음으로 이를 바라보아도 안 된다. 왜냐 하면 이런 무리들은 노여워하고 분노를 일으키는 일이 많으며 사람들을 망치니 좋은 마음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이 보살마하살이란 살운야에서 손을 놓지 아니하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버리지 아니한다. 만약 보살마하살로서 살운야에서 손을 떼지 아니하는 사람이라면 이 때문에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의 경지를 얻게 되며, 모든 사람을 위하여 짐짓 의지하는 바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무리의 보살들은 사람을 허무는 무리와 더불어 일에 종사하여서는 안 되며 이들을 공경하지 말아야 하고 더불어 모여서도 안 된다.
005_0673_a_12L是曹輩者須菩提不當與共從事不當與共語言亦不當恭敬視之何以故當知是輩多瞋怒起敗人好心何所須菩提是菩薩摩訶薩不釋薩芸若不捨阿耨多羅三耶三菩若菩薩摩訶薩不釋薩芸若者是故阿耨多羅三耶三菩阿惟三佛爲一切人故作依是輩菩薩不當與壞人者從事不敬之不當與會
005_0673_b_02L마땅히 지켜야 할 법을 마땅히 스스로 굳게 간직하고 늘 생사의 윤회에 시달리며 골똘히도 고통 받는 곳을 생각하면서, 그 가운데 들어가서는 안 되며 삼계에서 더불어 사귀어서는 안 된다. 삼계란 곧 보살의 도를 허무는 무리들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늘 마땅히 자비심으로 그들 삼계에 사는 사람들을 가엾고 애처롭게 생각하고 이들을 보호하면서 스스로 염원하기를 ‘나는 이런 악한 곳에 태어나는 일이 없게 하소서’라고 염원하고 마음에 죄스럽게 여기는 바가 있어야 한다. 가령 착하지 못한 마음이 있을 경우 ‘내가 빨리 이를 버리게 하소서’라고 염원하면서, 곧 배운 것을 적용시키는 까닭에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최상의 지식이 되느니라.”
005_0673_a_20L所當護法當自堅持當念之常畏怖生死勤苦之處不當入中於三界而不與是彼壞菩薩輩在所止處常當慈心哀愍護之自念使我無得生是惡心令有所愆設有不善疾使我棄之當用學故是者須菩提菩薩摩訶薩之爲上知

12. 선지식품(善知識品)
005_0673_b_04L摩訶般若波羅蜜善知識品第十二

“또한 수보리여,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의 경지를 얻고자 하는 그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훌륭한 스승과 친근해야 하며, 그 종사하는 이들과 더불어 공경하게 받들어 섬겨야 하느니라.”
005_0673_b_05L復次須菩提其諸菩薩摩訶薩欲得阿耨多羅三耶三菩阿惟三佛者親近善師與共從事恭敬承事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이시여, 어느 곳이 보살마하살의 훌륭한 스승이 있는 곳이며 마땅히 어떻게 그것을 알아내야 합니까?”
005_0673_b_08L須菩提白佛言何所是天中天菩薩摩訶薩善師當何以知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천중천은 보살마하살의 훌륭한 스승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반야바라밀이 보살의 훌륭한 스승이라고도 한다. 그가 들은 반야바라밀의 설법에 따라 가는 것이 곧 번뇌의 강물을 건너가는 일이 되며 사람들을 그 가운데 들어가게 하는 일이다. 곧 이러한 알음알이를 짓게 되면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훌륭한 스승에 해당된다. 6바라밀은 사달라(舍怛羅 :父母), 즉 모든 중생들의 스승이다. 6바라밀이란 곧 도이며 6바라밀이란 곧 어둠을 제거하는 일이며 6바라밀이란 곧 높은 누대(樓臺)이며 6바라밀이란 곧 밝음에 해당한다. 과거세의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들도 모두 6바라밀을 따라 세상에 나온 사람들이며 미래의 세계에 나타날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들도 모두 6바라밀을 따라 세상에 나올 것이며 지금 현존하는 아승기 수(數)의 모든 국토에 있는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들도 모두 6바라밀을 따라 세상에 나와서 살운야를 이룬 분들이다. 이 모두가 4사(事)을 따라 뒤섞여 인간 세계에 베푼 것이다. 그 첫 번째는 보시(布施)이며, 두 번째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歡樂)이며, 세 번째는 풍요한 이익을 주신 일이고, 네 번째는 모든 중생들에게 평등하게 주신[等與] 일이다.
005_0673_b_10L佛語須菩提天中天者是菩薩摩訶薩善師有說般若波羅蜜者從其所聞般若波羅蜜卽爲度教人入中當作是知爲是菩薩摩訶薩善師六波羅蜜者是菩薩善師六波羅蜜是舍怛羅六波羅蜜者是道六波羅蜜者是爲去冥六波羅蜜者是卽爲臺六波羅蜜者是卽爲明以過去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佛皆從六波羅蜜出甫當來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佛皆從六波羅蜜出今現在阿僧祇諸剎土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佛皆從六波羅蜜成薩芸若皆從四事雜施於人者布施二者歡樂三者饒益四者等
005_0673_c_02L수보리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모든 스승이며 이것이 곧 보살의 어머니며 이것이 곧 보살의 아버지며 이것이 곧 보살의 집이며 이것이 곧 보살의 누대며 이것이 곧 보살의 수호자며 이것이 곧 보살이 귀의하는 곳이며 이것이 곧 보살의 인도자이다. 이 모두가 6바라밀이며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일이다. 보살마하살의 6바라밀을 배운 사람은 그 작용에 극한이 없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이 이리저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의심을 끊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05_0673_c_02L是者須菩提菩薩摩訶薩舍怛羅是卽爲母是卽爲父是卽爲舍是卽爲臺是卽爲護是卽爲歸是卽爲導是皆六波羅蜜是爲益於一切人者菩薩摩訶薩學六波羅蜜者用無有欲斷人之狐疑以是故當學般若波羅蜜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이시여, 어느 곳이 반야바라밀의 모습이 있는 곳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 것이라도 가로막는 장애가 없는 것이 반야바라밀의 모습이다.”
005_0673_c_08L須菩提白佛何所是天中般若波羅蜜相佛語須菩提無所罣㝵是般若波羅蜜相
수보리가 말하였다.
“천중천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면 이 모습은 실상(實相)인 반야바라밀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지닌다면 모든 법을 얻게 됩니까?”
005_0673_c_10L須菩提言天中天所說是相實般若波羅蜜是相者爲得諸法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수보리여, 그 여여(如如)한 모습은 반야바라밀을 얻은 모습에 해당하고 이와 같은 모습은 모든 법을 얻게 되는 모습이다. 왜냐 하면 수보리여, 모든 법은 모두가 황홀한 것이며 모든 법은 모두가 공(空)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수보리여, 황홀한 것과 공허한 것, 이것이 반야바라밀의 모습에 해당한다. 모든 법의 모습도 황홀하며, 이 허공도 황홀하다. 수보리여, 천중천(天中天 : 부처님)이 설법하는 모든 법문도 모두 황홀하며 이것은 공이다. 왜냐 하면 사람들은 생명을 존속시키고자 여념이 없을 때 그 황홀한 경지에는 그런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황홀하면서도 생멸이 없고 공이라는 것도 욕망이 없으며 공이라는 것은 생겨난 곳도 없다. 황홀한 경지와 공(空)에는 아뇩다라삼야삼보도 아유삼불도 없다. 그러나 또한 다른 법을 따라 생기는 것도 아니다. 황홀한 경지와 공에서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의 경지를 얻게 된다.”
005_0673_c_12L佛言如是須菩提其如相爲得般若波羅蜜如是相者爲得諸法何以故須菩提諸法皆是恍忽諸法皆是空以是故須菩提忽與空是爲般若波羅蜜相諸法之相亦恍忽是空亦恍忽須菩提天中天說諸法悉恍忽是空何然人欲有生無有盡時其恍忽者無欲其恍忽者而無生其空者無欲其空者無所恍忽與空無阿耨多羅三耶三菩阿惟三佛亦不從異法恍忽空得阿耨多羅三耶三菩阿惟三佛
005_0674_a_02L수보리가 말하였다.
“어떻게 하면 천중천께서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마음 속에 염원하고 말하기를 ‘이것은 나의 소유물이고 또 이것은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라고 하며 살아왔다. 이러한 원칙을 적용하였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이 지경을 이루게 된 것이다.”
005_0673_c_23L云何中天所說而可得知佛語須菩提從久遠念言是我所有非我所有是故因致是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중천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은 진실로 오랜 옛날부터 마음속에서 염원하며 말하기를 ‘이것은 나의 소유물이고 저것은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말해왔습니다.”
005_0674_a_03L須菩提言如是天中天所說人實從久遠念言是我所有我所有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은 나의 소유물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공허한 생각인가, 아닌가?”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공허한 것에 해당됩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74_a_05L佛言云何須菩提是我所有爲空不須菩提言是爲空天中天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이것은 나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공허한 것에 해당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이것도 공허한 생각이 됩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74_a_06L云何須菩提非我所有爲空不菩提言是爲空天中天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스스로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말하기를 ‘이것은 나의 소유며 이것은 나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생사번뇌 속에 있으면서 끝날 날이 없는 것이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중천이시여,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생사의 번뇌 속에 있으면서 쉴 날이 없습니다.”
005_0674_a_08L佛語須菩提人用是故自念言是我所非我所是故在於生死無有已時須菩提言如是天中天人用是故在於生死無有休時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이것은 사람들이 욕망을 따라 문득 인간 세계 가운데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장 이런 알음알이를 지어야 하고 구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이후에는 곧 다시는 집착하지 않게 되느니라. 수보리여, 그 진리라고 하는 것은 더욱 불어난 이익이 되는 것이 있다. 이것은 나의 소유며 저것은 나의 소유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여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일이 된다.
수보리여, 이것은 그가 생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그 이후로는 이것이 생멸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일이며,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일이 되느니라.”
005_0674_a_12L佛言是者須菩提人從欲便著於人之中當作是知不當有所求後便不復著其諦者須菩提有所增不當念是我所有非我所有是爲行般若波羅蜜是者須菩提其所生後不作是生是菩薩摩訶薩爲行般若波羅蜜
005_0674_b_02L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이시여, 이 수행을 하는 사람은 색을 행하지 아니하게 되며,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을 행하지 아니하게 될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이 행하는 곳은 보살마하살이 염원하는 곳이며 세속을 따라가게 되지만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행이 되는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모든 성문과 벽지불이 미치지 못하는 곳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행하는 것에 이것이 그 극치에 해당됩니다. 과거에 이것으로 얻은 경지를 아무도 거기에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최상의 행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여기에서 염원하는 것이 반야바라밀이 되는 것이며 보살마하살이 낮이나 밤이나 이 수행을 하여 그 수행한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빠른 시일 안에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까워지고 아유삼불의 자리에 앉게 될 것입니다.”
005_0674_a_18L須菩提白佛作是行者天中天爲不行色不行痛痒思想生死識是所行者天中天菩薩摩訶薩所念爲隨俗是爲菩薩摩訶薩行中天諸聲聞辟支佛所不及一切人之所行是彼極過去以是所得處無能逮者是爲菩薩摩訶薩之極上中天是所念者爲般若波羅蜜菩薩摩訶薩晝夜作是行如所行者疾近阿耨多羅三耶三菩阿惟三佛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만약 이 염부리의 사람들과 모든 보살이 사람들에게 작용하게 하여 모두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수행하고 발심하여 부처가 되는 길을 찾아 목숨이 다하도록 보시를 하고 이 베풂을 지닌 채 더불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는다면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이 보살마하살이 지은 이 보시의 복덕은 많으리라 생각하느냐, 아니하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매우 많을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74_b_04L云何須菩提若閻浮利人及一切菩薩悉令作人皆行阿耨多羅三耶三菩發心索佛各各盡壽作布施是施與作阿耨多羅三耶三菩於須菩提意云何是菩薩摩訶薩作是布其福寧多不須菩提言甚多甚多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복덕도 보살마하살이 오로지 반야바라밀만을 염원하는 하루동안의 수행으로 얻는 복덕만 같지 못하다. 이 복덕은 그 복덕을 초과한다. 혹 때에 따라서는 오로지 반야바라밀만을 염원하면서 그 행하는 것도 이와 같다면, 이 사람은 모든 대중 가운데 가장 높이 존경받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이 자비심이 없고 모든 부처를 제외하고는 이 보살과 비등할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선남자가 들어가는 경지는 매우 깊고 모든 것을 환하게 깨닫고 모조리 알며 세간에서 알고 본 것이 크게 가엾게 여겨지고, 그 눈은 뚫어지게 사물의 원리를 투시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 사람을 만나고자 한다.
005_0674_b_11L佛言不如菩薩摩訶薩專念般若波羅蜜一日之行其福以過彼或是菩薩所專念般若波羅蜜其所行是者都於衆中爲極上尊以故其餘人無有是慈除諸佛無有與摩訶薩等者是善男子所入爲甚曉了悉知見於世閒是卽大憫眼徹視見不可計人悉欲見之
이 사람에게는 게으를 때가 없으며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지만 상상을 하지 아니하고 또한 모든 사람과 차이도 없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크게 밝은 마음이며 비록 아직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을 이루지는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곧 그가 수행한 그 행이 지극히 존귀하여 세상 사람의 위에 뛰어나며 아뇩다라삼야삼보의 경지에서 끝내 되돌아와서 인간 세계에 생명을 부여받지 아니할 것이다.
005_0674_b_18L無有懈時念於一切人而不作想亦無有是者須菩提卽菩薩摩訶薩之大雖未作阿耨多羅三耶三菩阿惟三佛者是卽所行其行極尊出於世閒之上於阿耨多羅三耶三菩終不復還
005_0674_c_02L이 사람에게는 의복과 음식과 침상과 잠자리 도구와 의약품이 모두 갖추어진다. 마음이 반야바라밀에 머무는 사람은 비록 사람들이 주는 보시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 공덕이 이미 청정하기 때문에 짓는 복덕으로 살운야에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된다. 그런 까닭에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먹는 것이 있더라도 죄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고자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그 지름길을 보여주고자 하고, 그가 갖고 있는 밝은 비춤은 매우 많은 대중을 제도하고자 하며 그 극한이 없다. 감옥 안에 갇힌 사람들도 제도하여 옥살이를 벗어나게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눈을 청정하게 하고자 한다. 이것이 반야바라밀이 염원하는 행이 되며 이 가르침을 따라 반야바라밀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일이 있어도 곧 흔들리지 아니한다. 왜냐 하면 그 흔들리는 마음이 작용하는 것은 그가 염원하는 것에 상상(想像)이 있기 때문에 이는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며, 이는 곧 반야바라밀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땅히 반야바라밀과 같이 작용하여 밤낮으로 이를 염원하여야 한다.
005_0674_b_24L受人衣被飯食牀臥醫藥悉具住於般若波羅蜜者雖受施與其德已淨所作福德令近薩芸若坐是故須菩提菩薩摩訶薩有所食無有罪欲益於一切人悉欲示人道徑其有照明欲甚度大無有極諸在牢獄之中悉欲度脫欲使一切人眼皆悉淸是爲般若波羅蜜之所念行隨是念般若波羅蜜者有是卽爲不動何以故其作動者所念有想卽非般若波羅蜜是卽非護當作如般若波羅蜜行晝夜念之
수보리여, 비유하면 어떤 사나이가 마니주(魔尼珠)를 지니고 있다고 하자. 전에는 얻지 못하던 것을 문득 훗날 이것을 얻게 되니 뛸 듯이 기뻐하게 될 것이다. 마니보주(摩尼寶珠)를 얻었다가 다시 또 이를 잃어버리면 마니보주의 작용이 없어진다. 그런 까닭에 이 사람은 곧 크게 시름하고 앓게 되며 앉으나 서나 근심이 있으며 이 근심을 해결할 길이 없어진다.
수보리여,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도 진귀한 보배를 찾고자 하는 사람은 항상 마음을 굳게 간직하여 살운야를 잃어서는 안 되며 항상 염원하여야 한다.”
005_0674_c_12L譬如男子須菩摩尼珠前所不得卻後得之歡喜踊躍得摩尼珠以復亡之用亡是故便大愁毒坐起有憂而無有解已須菩提菩薩摩訶薩欲索珍寶者常堅持心無得失薩芸若念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염원하는 것은 자연을 벗어나는 것에 해당하는데 어찌하여 보살마하살이 살운야를 염원하는 것은 자연의 염원에서 벗어나지 아니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이 보살마하살이 이런 알음알이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반야바라밀을 잃는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수보리여, 반야바라밀이란 공(空)이며 불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아니하기 때문이다.”
005_0674_c_17L須菩提白佛一切所念爲離自然云何菩薩摩訶薩念薩芸若不離於念佛語須菩提設是菩薩摩訶薩作是知爲不失般若波羅蜜何以故須菩提般若波羅蜜者是空不增不減
005_0675_a_02L수보리가 말하였다.
“천중천이시여, 반야바라밀이 진실로 공에 해당된다면 어찌하여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에서 공덕이 불어나서 그 행이 성취되어, 아뇩다라삼야삼보와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불어나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법을 설할 때 이를 듣고도 무서워하지도 아니하고 두려워하지도 아니한다면, 이 선남자는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사람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005_0674_c_22L須菩提言般若波羅蜜者天中天實爲是空何是菩薩摩訶薩增於般若波羅蜜成就其行近阿耨多羅三耶三菩坐佛語須菩提菩薩摩訶薩亦不有增亦不有減說是法時聞之不恐不怖當知是善男子爲行般若波羅蜜以
수보리가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반야바라밀이란 공(空)의 수행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야.”
005_0675_a_05L須菩提白佛般若波羅蜜者是爲空報言須菩提
“또 다른 공이 있어서 그것으로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야.”
005_0675_a_07L能有異空而行般若波羅蜜者報言須菩提
“이것이 색의 수행에 해당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야.”
005_0675_a_08L爲是色報言須菩提
“이것이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을 행하는 것에 해당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야.”
005_0675_a_09L爲痛痒思想生死識行報言須菩提
“또 다른 색이 있어 그곳에서 행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야.”
005_0675_a_10L能有異色所行報言須菩提
“또 다른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이 있어 거기에서 행할 수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야.”
005_0675_a_11L能有異痛痒思想生死識行報言須菩提
“천중천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하여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야, 스스로 법을 보고 법의 가는 길로 가는 것이 반야바라밀이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볼 수 없습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75_a_12L云何天中天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佛言須菩提爲自見法法之所行般若波羅蜜須菩提言不見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능히 스스로 보고 반야바라밀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볼 수 없습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75_a_15L佛言云何須菩提菩薩摩訶薩能自見行般若波羅蜜者須菩提言不見天中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야, 능히 법의 생겨나는 곳이 있음을 볼 수 있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볼 수 없습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75_a_18L佛言云何須菩提能見法有所生處不須菩提言不見天中天
005_0675_b_02L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아무 곳에서도 생겨난 곳이 없는 법의 즐거움과 법의 지혜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된 사람은 곧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을 이루는 수기를 받게 된다. 이것이 과거세의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들의 두려울 것이 없는 경지이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짓는 행이며 이 힘이란 부처님 지혜에 미치게 되는 힘이며, 이것이 곧 큰 지혜이면서 또한 자유자재한 지혜며, 살운야의 지혜며 달살아갈의 지혜이다. 혹 이 경지가 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능히 올바른 경지를 이룰 수 없다.”
005_0675_a_19L佛語須菩提是爲菩薩摩訶薩無所從生法樂忍如是者卽爲受決阿耨多羅三耶三菩是怛薩阿竭阿羅呵三耶三佛無所畏是菩薩摩訶薩所作行是力者爲逮佛慧是卽大慧而自在慧薩芸若慧怛薩阿竭慧其不爲是能自能是處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법은 생겨난 곳이 없는 것으로부터 수기를 받아 아뇩다라삼야삼보가 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005_0675_b_03L須菩提白佛諸法爲從無所生受決爲阿耨多羅三耶三菩佛語須菩提
수보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에게 수기를 내려주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게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능히 스스로 법을 밝히면 법이 수기를 내려주어 아뇩다라삼야삼보가 되는 것이다.”
005_0675_b_05L須菩提白佛云何中天授菩薩摩訶薩決得阿耨多羅三耶三菩佛語須菩提能自見法法授決爲阿耨多羅三耶三菩
수보리가 말하였다.
“저 법을 밝히지 아니하고도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려 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나의 것으로 얻을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 법으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고, 혹 이런 생각을 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스스로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룰 수 없는 것이다.”
005_0675_b_08L須菩提我不見法當作阿耨多羅三耶三佛語須菩提諸法不可得作是念是法成阿惟三佛其不作是不自致阿惟三佛

13. 석제환인품(釋提桓因品)
005_0675_b_12L摩訶般若波羅蜜釋提桓因品第十三

석제환인이 대중들이 모인 가운데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깊고도 깊은 것이 반야바라밀입니다. 천중천이시여, 깨닫기 어려운 것이 보살이 하는 일의 황홀함입니다. 혹 복덕이 있는 사람이 반야바라밀의 설법을 듣고 이를 글로 써서 지니고 배운다면 그 복덕이 작지 아니하겠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익이여, 만약 이 염부리의 사람들이 모두가 10선도(善道)를 지니고 그 공덕의 백 배ㆍ천 배ㆍ만 배ㆍ만억 배ㆍ거억 배(巨億倍)의 공덕이 있거나 또는 다시 이 공덕을 초과하는 공덕이 있더라도, 이 공덕은 비단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의 설법을 듣는 공덕만 같지 못할 뿐 아니라, 이를 써서 지니고 배우는 사람의 공덕만 못하다.”
앉아 있던 대중 가운데 한 비구가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이것으로 구익보다 더 높이 솟아나게 되었다.”
005_0675_b_13L釋提桓因從衆會中白佛言甚深甚深者般若波羅蜜天中天難了菩薩事之爲恍忽其有德人聞般若波羅蜜者便書持學其福不小佛語拘翼若閻浮利人都皆持十善其功德百倍千倍萬倍萬億倍巨億倍若復過是不啻不如善男子善女人聞般若波羅蜜書持學者坐中有一比丘釋提桓因是爲以出拘翼上去
005_0675_c_02L제석천왕이 대답하였다.
“마음가짐을 한번 뒤집어 생각해도 내 위로 벗어나 떠나게 되는데, 하물며 반야바라밀의 설법을 듣고 이를 글로 써서 간직하며 배우는 사람이랴. 법문을 들음으로써 이 가르침을 따라 관(觀)을 세우게 되면, 모든 사람이 모든 천신ㆍ아수륜ㆍ세간 사람들의 경지 위로 벗어나 더 높은 경지에 오르게 될 것이다. 만약 보살마하살로서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비단 모든 천신ㆍ아수륜ㆍ세간 사람들의 경계 위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의 경계까지도 모두 넘어서게 될 것이다. 이 보살마하살로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사람은 비단 벽지불의 경계 위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또한 보살로서 단바라밀을 행하면서 구화구사라가 없는 사람에게 이르러도 그 바라밀을 벗어나 더 높이 올라가게 될 것이다.
005_0675_b_22L釋提桓因報是比丘持心一反念者出我上去何況聞般若波羅蜜以書持學聞以隨是教立都出諸天阿須倫世閒人上若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者不獨過諸天阿須倫世閒人乃至須陁洹斯陁含阿那含阿羅辟支佛都悉過是若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者不獨過辟支佛上亦復至菩薩行檀波羅蜜無漚和拘舍羅離波羅蜜上去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마하살은 비단 단바라밀을 수행하는 보살의 경지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또한 시바라밀을 수행하면서 구화구사라가 없는 보살이나 찬제바라밀을 수행하는 보살 혹은 유체바라밀과 선바라밀을 수행하는 보살로서 구화구사라가 없이 반야바라밀의 영역에서 벗어난 보살에 이르기까지도 그 경지 위로 높이 올라가게 될 것이다.
005_0675_c_09L是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者不獨過檀波羅蜜亦復及行尸波羅蜜羼波羅蜜惟逮波羅蜜禪波羅蜜無漚和拘舍羅離般若波羅蜜上去
만약 보살마하살로서 신명나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천신들과 아수륜과 세간 사람들이 모인다 하더라도 끝내 그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그 작용이 지극히 존귀하여 반야바라밀과 친근하게 되기 때문에 이 보살마하살은 살운야를 따르게 된다. 만약 끊어지는 일이 없는 보살을 말한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이름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는 보살이며, 이것이 보살마하살로서 부처님과 떨어지지 아니한 곳에 앉는 경지를 얻게 되는 일이다.
005_0675_c_13L若菩薩摩訶薩復諷起行般若波羅蜜者都合會諸天阿須倫世閒人終不能勝行般若波羅蜜菩薩摩訶薩用爲極尊親近般若波羅蜜故是菩薩摩訶薩爲隨薩芸若言無所斷是菩薩摩訶薩不離怛薩阿竭字是爲菩薩摩訶薩獲不離佛坐
005_0676_a_02L이 보살마하살이 지난날에 갖고 있던 게으른 마음은 다시는 생겨나지 아니한다. 이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을 배우게 되며 성문ㆍ벽지불의 학문을 배우지 아니한다. 이 배움이 보살마하살을 위한 배움이다. 그리하여 곧 사천왕이 찾아가서 문안을 드리며 쉽게 얻고 빠르게 배우게 할 것이다. 이 배움으로 곧 부처님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며, 스스로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루어 곧 사부대중의 제자들을 제도하게 될 것이다. 보살마하살로서 이 배움을 이룬 사람은 4천왕이 곧 찾아가 문안을 드릴 것인데 하물며 다른 천신들의 아들들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005_0675_c_20L是菩薩摩訶薩所有懈怠不復生是菩薩摩訶薩所學爲學尊學聲聞辟支佛學是學爲菩薩摩訶薩學四天王當往問訊令樂得疾學是學當坐佛坐自致阿耨多羅成阿惟三佛當度四部弟子菩薩摩訶薩作是學者四天王當往問訊何況餘天子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마하살은 항상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을 잊지 않고 생각하는 대상이 된다. 반야바라밀이란 곧 보살의 행이다. 만약 세간에서는 고통받는 질병이 있는데도 이 몸에 우연히 이 악한 병이 없다면, 이는 보살마하살이 되어 반야바라밀을 행하였기 때문에 이루어진 결과다. 그리하여 문득 현존하는 법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005_0676_a_04L是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常爲怛薩阿竭阿羅呵三耶三佛之所念般若波羅蜜者是菩薩行於世閒有勤苦之疾是身會無此惡是爲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之所致便得現在法福
그때 아난이 생각하였다.
‘저 석제환인은 자신의 지혜로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부처님의 위신력과 신통력을 지니고 말하는 것일까?’
석제환인이 아난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일을 알고 곧 아난에게 말하였다.
“내가 말하는 것은 부처님의 위신력과 신통력을 지니고 말하는 것입니다.”
005_0676_a_09L阿難作是念提桓因自以智說耶持佛威神說提桓因知阿難心所念卽語阿難所說者持佛威神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와 같으니라. 아난이여, 석제환인이 말한 것은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력과 신통력으로 이룩된 것이다. 아난이여, 혹 때로는 보살마하살이 여기에 관하여 깊이 반야바라밀의 행을 생각한다면 곧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때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국토에 사는 악마들은 모두 지독한 시름에 잠길 것이며, 보살들로 하여금 중도(中道)를 궁극의 진리라 생각하고 거기에서 증험을 지어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를 얻게 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게 한다면 빠른 시일 안에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루게 될 것이다.”
005_0676_a_12L佛言如是如是是釋提桓因所說悉佛威神之所或時阿難菩薩摩訶薩於是深念般若波羅蜜行便念學般若波羅蜜爾時三千大千剎土中弊魔一切皆爲愁毒欲使菩薩摩訶薩中道以本際作證令得聲聞若辟支佛道使得阿耨多羅三耶三菩疾成阿惟三佛
摩訶般若鈔經卷第五
己亥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5)4중금계(重禁戒)라고도 한다. 4바라이죄(波羅夷罪)를 말한다. 수행승(修行僧)이 지켜야 할 계율(戒律) 가운데, 가장 중대한 네 가지 죄. 이 계(戒)를 범하면 승려(僧侶)의 자격을 잃게 된다. 즉 살생(殺生)ㆍ투도(偸盜)ㆍ음행(婬行)ㆍ망어(妄語)를 말한다.
  2. 6)열반4덕(涅槃四德)이니, 즉 상(常)ㆍ락(樂)ㆍ아(我)ㆍ정(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