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阿差末菩薩經卷第二

ABC_IT_K0070_T_002
007_0969_b_01L아차말보살경 제2권
007_0969_b_01L阿差末菩薩經卷第二


서진 월지국 삼장 축법호 한역
이진영 번역
007_0969_b_02L西晉月氏國三藏竺法護譯


아차말보살이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의 마음을 내는 것은 끝내 다함이 없으니, 꾸미지 않고 아첨하지도 않으며 정직하기 때문에 수승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청정하기에 공평하고 삿되지 않으며, 그 마음이 부드러워서 거친 면이 없고, 진실로 믿음이 돈독하여 변함이 없으며, 견고한 마음을 세워 흔들리지 않으므로 누구도 미워하거나 해치는 자가 없습니다.
007_0969_b_03L阿差末菩薩謂舍利弗發菩薩心永無窮盡所以者何不文飾故亦不諛其心質直故曰殊特不爲綺辭淸淨故平正無邪其心柔軟而無麤篤信眞要未曾變改所立堅强而無動轉正住不搖無能憎嫉而嬈害
어찌하여 해롭게 하는 자가 없는가 하면, 그 행의 업을 따를 이가 없기 때문에 누구도 헐뜯거나 비방하는 자가 없습니다. 어찌하여 비방하는 자가 없는가 하면, 업을 짓는 데 있어서 얽매임이 없기 때문이며 얽매임이 없어서 중립적이기 때문입니다.
007_0969_b_10L以何等故無能嬈者其行治業莫能逮故有所建立無能誹者所以莫能譏謗者何敢所興造無根原故以無根用中正故
또한 그 말씀이 다 지극하므로 끝내 다름이 없고, 공훈을 짓되 무엇을 바라거나 명성을 구하지 않으며, 결점이 없어서 대중들이 다 우러러보며 존경합니다. 결점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 매우 안온(安穩)하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스스로 안온하다고 하는가 하면, 공덕을 일으키는 데 있어서 나태함이 없기 때문이고 일체 중생들을 한없이 가엾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007_0969_b_13L所言至誠終無有有所興功無所悕望不求名稱衆所歎咸共戴仰無能得短所以無能得其短者有所造作長安隱故
어찌하여 중생들을 가엾이 여긴다고 하는가 하면, 끝없는 자비심으로써 나태하지 않고 정진하기 때문이고, 중생들을 돌보아 길러내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중생들을 돌보아 길러낸다고 하는가 하면, 이로 말미암아 공덕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힘써 닦되 복을 바라거나 구하지 않으니, 그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고 다 법의 은혜를 입기 때문입니다.
007_0969_b_16L以自致永安隱何所興功德無懈惓所以不厭用愍一切衆生之故以愍念衆生者何用無極慈爲懈惓者而興精進所以者何欲以養育衆生之故所以養育衆生者何由斯之便成功德故所修效力不悕望福所以無求其心淨故皆蒙法恩故
007_0969_c_02L다른 사람의 힘을 구하지 않고 신력(神力)으로 하니, 그 신력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부처님의 위신력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으로써 일체를 옹호하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옹호한다고 하는가 하면, 중생들로 하여금 그 처소를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처소를 얻게 한다고 하는가 하면 한(恨)을 없애 주기 때문입니다.
007_0969_c_02L無所人亦有力何謂爲力曰是佛力是之義護一切故所以護之欲令黎各得其所所以欲令各得所者使無恨故
어찌하여 한을 없애 준다고 하는가 하면 업을 짓는 데 있어 끝내 진리에 머무르기 때문이며, 진리란 이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어떤 강요나 간섭도 없이 적정케 하니, 마치 자마금(紫磨金)에 얼룩조차 없는 것과 같습니다.
007_0969_c_07L所以無恨所作事業極安諦所以諦者由是之故無能制止能諫抑令止寂然猶若紫金而無點
어찌하여 자마금과 같다고 하는가 하면, 더러움이 없기 때문이고, 어찌하여 더러움이 없다고 하는가 하면, 본래 청정하기 때문이며, 어찌하여 본래 청정하다고 하는가 하면, 더러움을 제거하였기 때문이고, 어찌하여 더러움을 제거하였다고 하는가 하면 마음을 정화하였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허물을 소멸시켰다고 하는가 하면, 허물을 이미 다 소멸시켰기 때문이니, 이로 말미암아 청정합니다.”
007_0969_c_10L所以喩之如紫金色以無有穢以無穢用本淨故所以爲淨本行去穢故所以去穢內以淨故所以消瑕瑕已盡故由是淸淨
아차말보살이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청정한 마음이란 탐욕의 불을 끈 것이니, 저 탐욕이 없어야만 이 청정한 마음이 다하지 않습니다. 모든 악한 마음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청정한 마음이 악한 마음을 다스리니, 이로 말미암아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내는 마음에는 온갖 탐욕이 있고 또 탐욕에 급급하여 교만하게 되므로 다함이 없는 마음도 다하게 됩니다.
007_0969_c_13L阿差末謂舍利心已淨者貪欲轉消其無貪欲是不可盡其諸惡心不能復亂又其心明護於惡意由是之故曰不可盡心瞋怒有所衆貪汲汲于欲貢高自諸所不可皆悉盡索
그러나 보살은 항상 이 마음을 단속하기에 환히 알아서 다함이 없습니다. 또 산란함과 온갖 더러움을 버리게 하고 이 마음을 마땅히 게으르게도 하지 않으니, 곧 그 마음을 알아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007_0969_c_18L將爲菩薩常護是心當曉是心而不可盡捨無瞻勢及諸垢濁當達是心不令懈怠知其心爲不可盡
만약 혼란스러우면 그 마음을 때때로 단속하고, 어리석은 자이면 그를 돌보고 기르며, 일체 중생에 대해 헤아려서 그들로 하여금 공덕의 법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다 큰 안락을 얻게 제도하니, 곧 그 마음을 알아 다함이 없습니다.
007_0969_c_21L若憒亂者隨時將其無智者養育使成計於一切衆生之黨--有功德法無功德法--咸便度脫至於大安則知其心而不可盡
또 재난에 빠진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다 한없는 공덕을 세우게 하니, 곧 그 마음을 알아 영원히 다함이 없습니다.”
007_0969_c_24L誨一切衆生之等諸在厄難皆令興立無極功德則知是心永不可盡
007_0970_a_02L아차말보살이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보살은 닦는 것 또한 다함이 없으니, 보시를 베풀기에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온갖 은혜를 베푸는 이것을 일컬어 한없는 시도무극(施度無極)을 닦는다고 합니다. 일체의 물질에 대해 그 많고 적음이 있더라도 만족하게 여겨 급급해 하지 않으니, 이것을 일컬어 한없는 계도무극(戒度無極)을 닦는다고 합니다.
007_0970_a_02L成呂阿差末菩薩謂舍利弗菩薩所習亦不可盡所以者何用所布施故不可諸可惠與是名曰習施度無極一切物多少取足不以汲汲是則名曰戒度無極
일체의 것들이 보살의 몸을 괴롭히더라도 터럭만큼도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니, 이것을 일컬어 한없는 인도무극(忍度無極)을 닦는다고 합니다. 공덕을 쌓는 것도 항상 다른 사람들의 앞에 있지 뒤에 있지 않으므로, 이것을 일컬어 한없는 진도무극(進度無極)을 닦는다고 합니다.
007_0970_a_08L一切有嬈於菩薩身起瞋心如毛髮者是則曰習忍度無所積功德常在衆前而不在後則曰習進度無極
일체의 행을 닦음에 다 그 마음을 힘써 운용하므로, 이것을 일컬어 한없는 적도무극(寂度無極)을 닦는다고 합니다. 모든 배움에 다 통달하고자 하므로, 이것을 일컬어 한없는 지도무극(智度無極)을 닦는다고 합니다.
007_0970_a_11L一切所學悉勤用是則曰習寂度無極諸所聽聞悉欲博達是則曰習智度無極
또 보살은 마땅히 큰 자비심을 배우고 닦습니다. 어떤 것이 큰 자비심인가 하면, 중생들에게 재난이 닥치게 되었을 때 돌아와서 그들을 구제하되 자신의 목숨은 버릴지언정 그 원을 저버리지 않으니, 이것이 곧 큰 자비심을 닦는 것입니다.
007_0970_a_13L菩薩當學修于大慈何謂大慈若有厄難來自歸者欲求救濟寧亡身命不負要是則習慈
또 큰 자비심을 행함이 마치 저울과 같이 평등하여서, 이로움이 더하게 되더라도 기뻐하지 않고 가령 비방하는 자가 있더라도 근심하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이 때때로 큰 자비심을 평등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007_0970_a_16L其行哀者等猶如稱有加益不以忻悅設誹謗者不以憂是爲菩薩隨時等哀
또 보살은 세 가지를 닦으니, 몸ㆍ입ㆍ마음을 청정이 하여 끝내 악을 저지르지 않고 삿되고 어리석은 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살이 비록 스승 없이 홀로 뛰어나더라도 역시 자만하지 않고, 그 배움에 있어서도 넓은 지식과 날카로운 지혜를 버리지 않으며, 모든 부처님의 법과 보살의 업을 취하여서 중생들이 구하는 대로 그 마음을 거스르지 않고 모자람이 없으니, 일체의 법에 이르러 자재함을 얻습니다.
007_0970_a_18L菩薩所學則以三事淨身終不傳惡未曾念邪愚惷之業菩薩雖學獨步無師亦不自大其所學意不捨普智諸通敏慧攬諸佛法菩薩之業在人所求不逆其心無所短乏致一切法而得自
007_0970_b_02L또 보살은 자신의 허물에 대해 참회하고 죄악을 감추지 않으며, 한량없는 복을 지어 공덕을 더하고 보살의 수행에 대해 찬탄하며 모든 부처님께 도(道)의 이치에 대해 선포하길 권합니다. 또 바른 선비의 법을 받들어 배우고 이러한 법을 배움으로써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니, 그 마음이 견고하여 한없는 공덕의 갑옷과 서원을 버리지 않으며, 이를 버리지 않음으로써 일체 중생들을 교화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007_0970_a_24L又習悔過身有罪惡未曾藏匿無量福勸助功德菩薩修學讚勸諸佛頒宣道義奉習勤學正士之法成呂以學此正士之法欲成覺故其心堅不捨弘誓無極德鎧所以不捨化一切衆生之故
아차말보살이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에게는 네 가지 다하지 않음이 있으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이고, 두 번째는 법을 베푸는 것이며, 세 번째는 중생들을 깨우쳐 가르치는 것이며, 네 번째는 공덕을 쌓는 것입니다.
007_0970_b_06L阿差末菩薩謂舍利弗菩薩有四爲不可盡何謂爲四一曰開示之心二曰法施三曰訓誨衆生四曰積累功德是爲四
다시 네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산 속 고요한 곳에서 조용히 머무르며 닦되 보시에 많고 적음이 있더라도 만족하게 여기는 것이고, 두 번째는 뭇 공덕에 대해 만족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며, 세 번째는 널리 배우고 닦아서 게으르지 않는 것이고, 네 번째는 지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007_0970_b_09L復有四一曰習在閑居山巖獨處有施多少趣足而已二曰於衆功德而無厭足三曰博學不惓四曰所願智慧不以爲勞是爲四
다시 네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계율을 지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시작과 끝을 사유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지혜를 통달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널리 구족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007_0970_b_13L復有四一曰校計規度二曰思惟本末三曰智慮通達四曰所念普具是爲四
다시 네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뭇 악함에서 벗어나 해탈을 구하여 닦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해탈이야말로 보살의 가르침인 것이며, 세 번째는 모든 악의 근원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미묘하고 위없는 해탈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007_0970_b_15L復有四一曰離于衆惡而修上脫二曰其上脫者是菩薩教三曰解諸惡本四曰念于微妙無上之脫是爲四
다시 네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5음(陰)을 깨닫는 것이고, 두 번째는 4대(大)인 땅ㆍ물ㆍ불ㆍ바람에 대해 깨닫는 것이며, 세 번째는 6쇠(衰)의 원인을 환히 아는 것이며, 네 번째는 12연기(緣起)의 끝없음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007_0970_b_18L復有四事一曰於五陰二曰曉於四大--地了六衰之原四曰其所睹見十二因緣無有邊際是爲四
다시 네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생사의 덧없음을 말하니 다함이 없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고통을 가르침으로 삼으며, 세 번째는 나[我]가 없음을 스스로 훈계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적막하고 함이 없는 업이니 역시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007_0970_b_21L復有四事無常生死之語而不可盡二曰痛之教三曰無吾我訓四曰寂寞無爲之業亦不可盡是爲四
아차말보살이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간략히 말하면 모든 보살의 배움은 다 부처님의 도(道)에 가깝고 이러하기에 도속(道俗)을 분별하는 것이 모두 다함이 없습니다.”
007_0970_b_24L阿差末謂舍利弗擧要言之諸菩薩學皆近佛以是之故分別道俗悉不可盡
007_0970_c_02L아차말보살이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은 그 마음을 닦는 것이 다함이 없으니, 온갖 공덕 쌓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점차로 그 처소에 나아가 그것을 성취하니, 어떤 것이 처소인가 하면, 바로 보살의 10지(地)를 말하는 것입니다.
007_0970_c_02L成呂阿差末菩薩謂舍利弗菩薩修行心不可盡所以者何於諸功德而不懈從次轉上成就其處所云處者薩十地
또 그 수행이 큰 바다와 같아서 감싸안음이 구족함이 없으니, 일체 중생을 다 구제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 수행이 모든 수행의 으뜸이 되니, 어느 것보다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또 최상의 수행으로 모든 중생들을 거두어들이니, 그들로 하여금 일체의 법을 전일 하게 닦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갖가지 좋은 점을 지니니, 가장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007_0970_c_07L其所修行猶如大海所苞無所以然者多所救度一切衆生所修行則爲元首所以然者出其上修行最上所可摠攬諸在下者令修專行一切法故若持衆善所以者用最尊故
또 도를 닦음으로 인해 수결(手決)을 받으니, 전일 함으로 말미암아 물러남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스스로 구족하니, 전일 함으로 말미암아 원하는 것을 문득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또 큰 원을 성취하니, 그 수행이 영원히 의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곧 이것은 선정에 든 것을 말합니다.
007_0970_c_12L所以修度因則受決皆由專精用不退故自致具足因其專精所願輒成以成大願其所修行永無所恃則是定意
또 수순하여 닦아 행을 지어도 번뇌가 없고 마음을 다해 수행하여 도를 스스로 지키니, 다시는 온갖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정성을 다해 보시하니, 보살은 몸과 마음으로 탐착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보시를 늘이기 때문입니다.
007_0970_c_15L依修柔軟所造行者而不缺漏修行伏意是其道業修行自守所以者何以不復與衆惡從事故專精布施菩薩不以身心有所貪愛轉增上故
또 계율을 일심으로 받드는 것 역시 행하기 매우 어려운 일이니, 계율을 범한 자를 가르쳐서 악하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일심으로 정진하고 인내하는 것 역시 행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니, 비록 높은 지위와 많은 재산과 안락한 처지에 있더라도 미천하거나 약한 자를 깔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욕(忍辱)입니다.
007_0970_c_19L專精奉戒亦爲甚難所以然者教犯戒者使不爲惡故精忍辱亦爲甚難所以然者雖在尊財富極樂不輕貧賤羸劣弱者爲忍辱
또 정진하는 것 역시 행하기 어려운 일이니, 보리수 아래에서 정진하고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내가 그 자리에 앉을 것이니 그대는 물러가라’고 말하더라도 부처님의 도를 먼저 성취하기에 곧 자리를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정진(精進)입니다.
007_0970_c_23L所修專行精進難及坐佛樹下若有人來言避去我坐其處取佛道卽捨與處是爲精進
007_0971_a_02L또 선정에 드는 것 역시 이르기 어려운 일이니, 마음을 다해 닦아 곧 성취하여서 더 바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선정(禪定)이라고 합니다.
또 지혜를 갖추는 것 역시 매우 얻기 어려운 것이니, 공덕 쌓는 것을 힘들거나 괴롭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혜(智慧)입니다.
007_0970_c_25L專精禪思所以難者莫能及逮所修專精輒成呂能成辦無所悕望故是曰禪思專智慧難所以者何積功累德不以勞煩是爲智慧
또 나가고 들어오는 것과 걷는 것에 있어서 조용하고 기품이 있으며 위의를 다 갖추었으니, 그 굳센 공덕의 모습을 누구도 범할 수 없기 때문이고, 무소외(無所畏)를 닦고 심오한 법을 깨쳐서 그윽한 곳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007_0971_a_06L出入行步安庠和雅威儀備悉所以然者其功祚强無能危修無所畏曉了深法鉤玄致遠故
또 존중하는 마음으로 받들어 닦으니, 그 밝고 미묘한 이치를 통달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행이 다함이 없으니, 견고함에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전일 함이란, 그 마음이 평등하게 항상 일체 중생을 생각하여서 의지할 데 없는 자로 하여금 의지할 곳을 얻게 하기 때문이고, 어둠 속을 헤매는 자로 하여금 도의 광명을 보게 하여 모두 돌아갈 길을 찾게 하기 때문입니다.
007_0971_a_08L奉修尊心所以然者其明極微無不達故行不可盡所以者何所住堅固何謂專精其意坦然常念一切無所依者令得其依若有闇冥使睹道明無所歸者悉受其歸
또 좋은 벗을 잃은 자에게 좋은 벗이 되어 주고, 아첨하는 자에게는 순박한 행을 닦게 하며, 거친 자에게는 인욕과 부드러움을 보여주니, 덕화(德化)로써 하기 때문입니다.
007_0971_a_13L其無善友爲之善厚其諛諂者令修質朴見其麤獷顯示忍辱柔軟和雅所以者何以德化故
또 간사한 중생을 심오한 이치에 돌아가게 하고, 거짓말을 좋아하는 자에게 꾸밈을 버리게 하며, 은혜와 공덕을 모르는 자에게 그 은혜와 공덕을 거듭 행하게 하고, 갖가지 나쁜 짓을 저지르는 자에게 착한 행을 닦게 하며, 물러서는 자에게 더욱 용맹스러운 힘을 갖게 하고,
007_0971_a_16L在譎詭中而爲列露眞正之義於校飾中不爲綺大在無反復行報恩德在衆惡處而修善行在廢退處奉修德祚
거만하게 거들먹거리는 자에게 항상 공경하게 행하게 하며, 크게 시주하는 자에게 큰 자만심을 품지 않게 하고, 방편을 구하는 자에게 그 단점을 제거하게 해 주며, 다른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게 하고, 결점을 드러내어 말하지 않게 하며, 만약 바르지 않으면 문득 돌아와 단속하여서 바른 진리에 들게 하고,
007_0971_a_19L在欺慢處常行恭恪在貢高處不懷自大在求便處無能得短不念人惡不宣缺漏若在不正輒往將護使入正諦
일체 중생들을 성내는 마음 없이 다 기쁘게 해 주고, 나아감과 물러감, 당연함과 당연하지 않음을 깨우쳐 주며, 마음에 다하거나 덜함이 없게 해 주고, 화복(禍福)에 대해 돈독히 믿어 귀의하게 하며, 만약 광야나 산 속에 머물더라도 법대로 하여 다름이 없게 하고, 이해를 탐하지 않고 신명을 아끼지 않으니,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007_0971_a_22L一切衆生皆來到所見之欣然無瞋恚心其有諫喩示進退宜當然不然心無增減篤信禍福所作歸身若在曠野山居巖處如法無異不貪利害不惜身命心淨之故
007_0971_b_02L또 처음부터 더하거나 덜함이 없고, 항상 그 입을 단속하여 망령된 말을 퍼뜨리지 않으며, 받들어 지니거나 공경 받기를 원하지 않으니, 언제나 절제와 만족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 그 마음이 부드러워도 나쁜 것을 따르지 않으며 예의를 잃지 않으니, 공덕(功德)이 있기 때문입니다.
007_0971_b_02L成呂初不增減常護其口不忘傳語不求奉敬所以者何恒知節限止足而已其心柔和不隨弊惡失禮義者有功德故
또 생사를 건너 중생들의 고통을 그치게 하니, 이것은 보살의 지혜로운 마음이 영원히 다함이 없기 때문이고, 생사를 반복하는 것도 다함이 없기 때문이며, 지혜의 방편으로써 명료하게 하여 수시로 시종일관 미혹되어 있는 중생들을 깨우침도 다함이 없기 때문이고, 부처님의 도를 구하게 하여 밝히는 것도 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007_0971_b_07L度於生死息衆苦患所以者何由是之故菩薩慧意永不可盡生死往反亦不可盡以權方便明了隨時訓誨衆生迷於終始不可盡者使求佛道明不可盡
이에 사리불이 아차말보살에게 물었다.
“이밖에도 다함이 없는 것이 있습니까?”
아차말이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007_0971_b_11L舍利弗問阿差末言乃有異不可盡乎阿差末言
“그렇다면 어떤 것입니까?”
아차말이 대답하였다.
“보살의 보시 또한 다함이 없으니, 6도무극이 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의 보시는 다 어떤 한계도 없으니, 만약 어떤 한계를 둔다면 누구는 옳고 누구는 옳지 않다던가, 또 누구에게는 보시해야 하고 누구에게는 보시하지 않아야 하므로, 그 보시는 넓은 구제가 될 수 없을뿐더러 보시라고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007_0971_b_12L所是阿差末曰菩薩布施復不可盡所以者何六度無極不可盡故菩薩布施悉無有限所謂限者某是某非當施與某不施與某甲施不普濟應爲施
사리불이 말하였다.
“보살은 어떠한 법으로 보시하는 것입니까?”
아차말보살이 대답하였다.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보시하는 것이니, 그들은 음식에 의지하여 목숨을 유지하고 숨쉴 수 있으며, 동시에 앉거나 일어서거나 간에 말하는 모든 행동이 자유로워서 신체가 건강하고 기력이 왕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007_0971_b_17L舍利弗問言菩薩之法當云何施阿差末曰飢者食之所以者何人依衣食乃得存命便能蘇息坐起言語則爲安隱身體康寧氣力强盛
또 목마른 자에게 음료[漿]를 보시하여 그 갈증을 없애 주니, 만약 다음 생에 생사를 거듭하더라도 목마름에 허덕이는 일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수레를 구하면 곧 그 뜻에 따라 주니, 이로 말미암아 다음 생에 그 과보로 신족(神足)을 얻어서 원하는 곳마다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007_0971_b_20L渴者施漿除其消渴所以者何若在後世周旋生死常不渴乏有求車者輒隨意與由是之報後所生處神足飛行在所至到
또 옷 없는 자에게 옷을 보시하니, 다음 생에 태어나더라도 항상 부끄러움을 알아서 벌거벗은 몸으로 다니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어둠 속을 헤매는 자에게 등불을 보시하니, 중생들로 하여금 도의 눈을 얻어서 시방을 환히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007_0971_b_24L其無衣者因施與之後世所生便不抵突常抱慚愧若於冥處施之燈火則得道眼通見十方
007_0971_c_02L또 세존과 스승 또는 부모와 장로 앞에서 기악을 베풀어 즐겁게 하니, 다음 생에 태어나도 도를 얻어서 귀로 듣는 것이 한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향이 없는 자에게 향을 보시하니, 다음 생에 태어나더라도 계율ㆍ지혜ㆍ선정ㆍ해탈의 향을 갖추어서 이 몸이 공덕의 향을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온갖 향과 좋은 향을 구하는 자에게 기분 좋게 그것을 보시하니, 다음 생에 태어나더라도 그 향으로 몸을 정결히 하여 모두 환희심을 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007_0971_c_02L成呂若於世尊師父寺舍二親長老前而作倡伎以娛樂之後世所生得道耳聽徹聞無極若無香者則施與之世所生逮致戒香解脫知見品是身爲被德熏之香若復有求雜香名熏卽與所好後世所生身體香潔莫不悅豫
또 달고 맛있는 것을 구하는 자가 와서 그것을 구하면 곧 그 뜻에 따라 보시하니, 다음 생에 태어나더라도 항상 음식을 얻고, 비록 맛이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맛있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또 수건이 없는 자에게 수건을 보시하니, 다음 생에 태어나더라도 때 없이 정결하여 사람들의 보호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007_0971_c_10L所有甘美殊異之味來求者輒從意與後世所生常得餚若不甘者入口卽美宿之所殖而得是相其無手巾因施與之後世所生淸淨無垢爲人所護
또 의지할 데 없는 자를 보호하니, 마치 집과 같아서 사람을 거두어 주기 때문입니다.
또 그 궁핍한 것에 따라 보시하니, 다음 생에 태어나더라도 항상 풍부하게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007_0971_c_14L其無護者爲之將護猶若屋室所以喩室覆蓋人隨其所乏而施與之後世所生悉獲所當尋得周給
또 병든 자에게 약을 주니, 다음 생에 태어나더라도 항상 몸에 병이 없고 생사가 없으며 온갖 근심거리가 없이 안온하여서 일체를 구족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노비가 없는 자에게 노비를 주니, 다음 생에 태어나더라도 만승(萬乘)의 제왕처럼 상하를 통솔하여서 모자람이 없이 저절로 구족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007_0971_c_17L病與醫藥後世所生身常無病不生不死無有衆患獲安隱一切備足靡所不主其無僕使給與奴婢後世所生自然具足乘帝主制上御下無所乏少
또 온갖 보배를 구하는 자에게 보시하니, 다음 생에 태어나더라도 대인의 32상(相)을 다 갖추어서 성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그 외의 갖가지 물건들을 보시하니, 다음 생에 태어나더라도 80종호(種好)를 다 갖추게 되기 때문입니다.
007_0971_c_21L其求衆寶則能與之後世所生備悉成就三十有二大人之相布施雜物若干種後世所生得八十種衆好之姿
007_0972_a_02L또 코끼리와 말을 보시하니 후세에 그 끝없는 대승의 뜻을 얻게 되기 때문이고, 논밭을 보시하니 이로 인하여 끝없는 깨달음을 구족하게 되기 때문이며, 처자 없는 자에게 처자의 사랑과 즐거움을 받게 하니 다음 생에 다른 애욕의 마음 없이 부처님의 도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연유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더없이 존귀하여 비할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007_0971_c_24L馬施者後得大乘無極之意以田施與因得具足寂度無極妻子施與成呂所珍愛後無異心當得佛道所以者佛者極上尊無儔疋
또 가령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보살을 쫓게 하여 창고에 가득 찬 곡식을 요구하게 하더라도 능히 다 보시하니, 탐욕과 인색함이 없어서 다음 생에 법의 창고에 이르고 도의 지혜를 모자람 없이 갖추게 되기 때문입니다.
007_0972_a_05L假使有人從其菩薩求滿倉穀卽能與之未曾貪後逮法藏充備道慧無所匱乏
또 보살이 만약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지위를 얻어 온 4천하의 7보를 충족하더라도 만약 그것을 요구하는 이가 있을 때에는 아낌없이 보시하니, 다음 생에 일체지(一切智)를 체득하고 통달하여 중생을 널리 구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007_0972_a_07L薩設得爲轉輪王主四天下七寶盈滿若有來求而不愛惜輒能盡施所生處逮一切智諸通聖慧廣濟一
또 묘한 음악으로 보시하니, 다음 생에 경전을 읽는 즐거움을 얻고 법의 즐거움으로 환희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세력과 지위를 구하는 자에게 그것을 얻게 하니, 다음 생에 보살의 법을 돕는 것이 마치 임금의 충신과 같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자가 와서 스스로 정치를 보좌하고자 하여도 그렇게 하게 하니, 이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007_0972_a_11L以妙伎樂而施與者後得經典以法樂莫不歡然若爲勢位有忠羽翼行菩薩法--猶如王者之忠臣--有人來求以自輔政卽能與之由是之故
또 보살이 법을 성취하기 위해 보리수 도량에 앉고자 하니, 다음 생에 모든 마병(魔兵)을 항복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007_0972_a_14L後佛法教欲坐道場於佛樹下降伏魔兵
또 손을 보시하니 다음 생에 일체 법의 으뜸이 되기 때문이며, 귀ㆍ코를 보시하니 다음 생에 몸을 구족하여 하나의 이지러짐도 없게 되기 때문이고, 눈을 보시하니 다음 생에 법의 눈을 얻어 일체의 법을 관찰하게 되기 때문이며, 머리를 보시하니 다음 생에 3세(世)의 으뜸이 되어서 홀로 뛰어나고 짝할 이 없이 모든 지혜를 통달하게 되기 때문이고, 힘줄과 살을 보시하니 다음 생에 부처님의 도를 성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경전의 법을 연설함으로써 모든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진정한 보살의 모습을 얻게 하기 때문이며, 뼈를 보시하니 다음 생에 마치 흔들림 없는 금강처럼 부처님의 도의 몸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007_0972_a_16L以手施人後爲一切道法之首鼻施者後身具足無一缺漏以眼施者後逮法眼爲一切首道法之眼以頭施者後所生處三世特尊獨步無侶諸通敏慧肌肉施者後成佛道人來聽經捨諸不要皆獲眞正菩薩破骨以髓施者後得佛道身如金剛無能動搖
007_0972_b_02L이에 아차말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보살은 물질이 아니라 올바른 수행으로 보시하므로 어떤 사람이 요구하는 것이 많거나 적거나 간에 다 주어서 만족하게 합니다. 보시할 때에는 두려워하거나 공포를 느끼지 않으며, 탐욕 없이 보시하여서 후회하는 마음도 없고 변하지도 않습니다.
007_0972_a_23L阿差末曰菩薩不以色故而有所施用修正故若來求多後人求少悉遍與之使各得足若施與時不恐不怖不畏不懅無貪行施不懷悔恨心未曾變
또 보살은 남을 멸시하거나 아첨하기 위해 보시하는 것이 아니며, 소용에 맞지 않는 나쁜 물건을 보시하지도 않습니다.
또 보살은 보시할 때, 어떤 사람이 복이 있다거나 어떤 사람이 죄가 있다거나 관찰하지 않고, 의심하거나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별하지 않으며, 보시를 중단하거나 남기는 것 없이 행합니다.
007_0972_b_05L菩薩無輕慢施專心而與無諛諂施不持惡物無所中者以與人也菩薩布施未曾觀察某有福祚甲有罪殃無有狐疑不別好醜不中斷絕遺漏施也
중단하거나 남기는 것 없이 보시하는 것이란, 대중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는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루 다 구제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보살은 항상 게으르지 않고 근심하지도 않으며 돈독한 믿음 그대로 보시하기 때문입니다.
007_0972_b_09L何謂中斷遺漏施於大會中獨與一人不與一人悉欲遍濟以者何菩薩所施常懷篤信不念懈無惱患施
또 보살은 보시할 때, 보시 받을 사람을 자기 앞에 불러 놓고 직접 그 얼굴을 보며 보시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는 착하다거나 누구는 나쁘다거나 생각하는 것도 아니며, 반드시 도를 성취하고자 하는 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 보시하고, 보시한 뒤에도 누구는 부처님의 도를 얻었고 누구는 부처님의 도를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007_0972_b_12L菩薩布施不呼人至前目自見面乃與之也亦不思惟某善某惡不必選求得成道者來者便與施人之後不作是念某已得道某不得道
또 보살은 보시할 때, 계율을 지키는 사람이 와서 받는다고 해서 기뻐하는 것도 아니고, 계율을 범한 사람이 와서 받는다고 해서 다른 마음을 갖는 것도 아니며, 그 보시에 대해 과보를 바라거나 명예를 구하지도 않으며, 칭찬을 좋아하거나 비방을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007_0972_b_16L菩薩施與見奉持戒人來受其物不以欣然見無戒者亦無異心其所施與不望還報有所施者不求名稱使遠近聞不自咨嗟不惡誹謗
또 보살은 보시할 때, 괴로워서 하거나 후회하여 하는 것도 아니고, 화가 나서 하는 것도 아니며, 환희심이 나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007_0972_b_19L菩薩施與不行煩擾不懷恨施無瞋恚施不歡喜施
또 보살은 보시할 때, 다음 생에 그 복을 바라는 것도 아니기에 그 어떠한 것을 요구받더라도 꾸짖거나 성내지 않습니다. 요구하는 대로를 다 보시하되 가벼이 여기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주지도 않으며 직접 가서 보시합니다.
007_0972_b_21L菩薩布施不念後世當得其福不起忿心罵詈愚施有來求者不前卻彼乃施與之不輕易施不倩他人持物往與
007_0972_c_02L 왜냐 하면 언제나 직접 보시함으로써 ‘나의 눈앞에서 요구하는 자에게는 보시하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보시할 필요가 없다’는 따위의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보살의 보시는 걸림이 없는 보시이고 자신이 마음껏 하는 보시이며 무리하지 않는 보시이고 자신이 손으로 직접 주는 보시이며 후회하지 않는 보시이고 보시한다는 마음조차 없는 보시입니다.
007_0972_b_24L所以者何手自斟酌亦不念言値吾前施不當前者不施與之不罣㝵施自用心施不卒暴施手自授之不沈吟施乍與乍不與
또 보살은 보시할 때, 보시로 말미암아 매우 지치고 괴롭다던가 과거부터 많은 보시를 했다던가 적은 보시를 했다던가 하는 따위의 생각을 하지 않으며, 나쁜 것은 주고 좋은 것은 남기는 선택의 마음까지 벗어나서 요구하는 본래의 말 그대로 덜함이 없이 보시할 뿐입니다.
007_0972_c_04L薩不念吾所可施疲惓勞極施從來不多不少不選擇物惡者與之者留之若有來求如本言要未曾減
또 보살은 보시할 때, 중생을 널리 가엾게 여겨 치우침이 없으며 보시 받는 자로 하여금 항상 평안하게 합니다. 가령 보시할 때는 그 사람을 자기 국토의 사람으로 생각하니, 그 일체의 국토가 다 보살의 도지(道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보시하는 물건이 적어서 멸시하거나 많아서 기뻐하지도 않으니, 이는 그 보시가 비록 많다고 하더라도 ‘나는 지금 많은 보시를 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법대로 보시할 뿐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007_0972_c_08L菩薩所施愍念衆生弘無偏黨令受者常獲安隱若施與時則念人是吾國界所以者何一切皆是菩薩之道地也又所施者少不輕己不歡喜雖布施多不自察言我今廣施所與如法無悕望故
또 보살은 보시할 때, 보시로 말미암아 다음 생에 그 공덕의 복이 되는 과보를 받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왜냐 하면 일체 중생들에게 은혜를 입게 할 뿐, ‘나는 널리 중생들에게 보시하여서 천상천하(天上天下)에 홀로 존귀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공덕으로 사천왕ㆍ제석천왕ㆍ범천왕의 지위를 구하거나, 또 전륜성왕을 탐하거나 성문ㆍ연각의 마음을 닦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007_0972_c_13L菩薩所施是福當有所生受其功報所以者施於一切衆生蒙恩故所施人者亦不念之吾於天上天下人中獨致尊勢其所施與普爲衆生不以其福求慕四王釋梵之位亦復不貪轉輪聖王不習聲聞緣覺之心
또 보살은 보시할 때, ‘구족하게 보시하니 그 공덕 또한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왜냐 하면 보시가 구족하거나 구족하지 않거나 간에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모든 통달한 지혜를 여의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보시는 무기나 독약이 아니고 누구를 해치지도 않는 안락함이어서 어떤 시기와 처소에서도 다 걸맞습니다.
007_0972_c_19L菩薩施與心不念言所施具足亦不惟少足與不足有所施者使一切衆不離於佛諸通敏慧所施與者常得其時無有不應不以兵仗毒藥施與以安施人不加嬈害
007_0973_a_02L또 보살의 보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니, 일체의 보시가 공(空)하므로 그 공의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도 다함이 없고, 일체 보시가 상(想)이 없으므로 그 상의 인연 따라 건립되는 것도 다함이 없으며, 일체의 보시가 원(願)이 없으므로 그 원의 인연 따라 선한 업을 짓는 것도 다함이 없고, 일체의 보시가 도법(道法)의 이치이므로 도법의 인연 따라 파괴할 수 없는 견고한 마음을 갖추는 것도 또한 다함이 없습니다.
007_0972_c_24L菩薩布施從佛法教所可惠施知一切空所以施者以爲因緣有所興發由斯之故而不可盡所施成呂與者悉曉無想爲諸想者建其因緣故不可盡所可施者皆達無願爲諸願者作善因緣由是之宜故不可盡以道法意而有所施其心堅强完具甚安無所破壞
또 보살의 보시는 삼계(三界)에 누구도 따를 수 없으니, 왜냐 하면 보시하는 그 공덕의 복을 일체 보살의 업으로 돌려서 항상 일체지(一切智)의 마음을 세우기에 이로 말미암아 다함이 없습니다. 또 보시할 때 온갖 생각에서 벗어나 모든 마군을 거두어 들여서 그들로 하여금 자재롭지 못하게 하고 모든 번뇌를 다 여의게끔 하기에 다함이 없습니다.
007_0973_a_08L菩薩所施其在三界無能逮者所可施與欲令其福歸流一切菩薩之業其志常建一切智心以是之故爲不可盡所施與者以脫諸想摠攬衆魔令不自在離諸煩苛故不可盡
또 보살의 보시는 어떠한 보시보다도 뛰어나서 열반의 즐거움을 밝히고, 뭇 의심을 끊어주기 때문에 다함이 없습니다. 또 부처님의 도에 바르게 머물러 다른 마음 없이 평등한 보시로써 소원을 이루어주기에 다함이 없습니다.
007_0973_a_13L菩薩所施與衆超異明泥洹故所可施者決衆疑心故不可盡所施與者正住佛道不懷異心所施等願故不可盡
또 보살의 보시는 보리수 아래에 앉아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게 합니다. 보시한 것을 헤아릴 수 없으니, 그 무수한 중생들에게 다 제도의 은혜를 입혔기 때문에 다함이 없고 그 보시도 다함이 없습니다. 그 보시는 매우 커서 도를 얻게 할 뿐만 아니라 누구도 동요시키거나 초월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보시하기에 다함이 없는 것이니, 보시하는 마음이 담담하여서 마치 일체지(一切智)와 같기에 다함이 없습니다.
007_0973_a_16L菩薩所施坐佛樹下得成正覺所施與者及無央數不可稱計衆生之類皆荷濟度故不可盡所施與者不可盡矣其事廣大所施與者以得道處無能動者無能超踰況復施者故不可盡所施與者其心坦然如一切智故不可盡
사리불이 다시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아차말보살이여, 어진 이께서 말씀하신 보살의 다함 없는 보시를 들으니 매우 기쁩니다. 원컨대, 보살의 다함 없는 계율이란 또 어떤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007_0973_a_22L舍利弗言善哉善哉仁者阿差末嘆菩薩施及不可盡快哉乃爾願欲受聽菩薩戒禁不可盡誼
007_0973_b_02L아차말보살이 대답하였다.
“보살의 청정한 계율 역시 다함이 없으니, 예순 네 가지가 있습니다.
보살의 인(仁)의 행은 중생들에게 해로운 마음을 품지 않으니, 살생하지 않고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으며 남의 아내를 범하지 않습니다.
007_0973_a_25L阿差末曰薩戒淨亦不可盡有六十四事何謂六十四菩薩行仁不懷害心加于衆身亦不殺不取人物不犯他妻
또 보살이 중생을 돌볼 때에는 항상 정성을 다하며 조금도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싸우는 자가 있을 때에는 그들을 화해시킬 뿐, 꾸짖거나 욕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항상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지니며 말하는 것을 단속하고 망령된 말을 함부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007_0973_b_05L見菩薩及向衆生常行至誠未曾兩有諍訟者常和解之終無罵詈不爲惡口所以者何常有慚恥所言護不妄說事
또 일체의 사람들에게 질투심을 내지 않고 성내는 마음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이러한 인욕으로 말미암아 다음 생에 단정한 모습을 갖추게 되고, 항상 그 마음이 반듯하여서 다른 외도의 학문을 닦지 않기 때문입니다.
007_0973_b_09L於一切人不念嫉妒興恚心向于衆生所以者何由此能後世端正常正其心不事餘學
또 항상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도에 머무니 그 마음이 청정하고 번뇌가 없기 때문이고, 부처님의 법을 즐기니 어떠한 법도 부처님의 법보다 뛰어난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며, 지극한 마음을 도에 두니 인자함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007_0973_b_11L抱悅心在於佛道所以者何其心淸無有塵垢愛樂佛法所以然者無異法能出上者至心在道用慈仁
또 보살은 사문이나 범지(梵志)를 보더라도 5체(體)로 예배합니다. 그 다섯 가지는 두 손을 합장하고 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이로 말미암아 부처님의 도를 얻고 일체를 귀의시키기 때문입니다.
007_0973_b_15L若見沙門梵志輒以五體而自歸何謂爲五兩手兩膝及其頭腦首足下所以者何因得佛道一切歸
또 보살은 마음이 항상 부드러우면서도 다른 사람의 범죄를 볼 때에는 그들을 훈계하여 다시는 계율에 어긋나지 않게 하니, 성문(聲聞)ㆍ연각(緣覺)의 마음을 초월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보살은 모든 계율에 있어서 특히 살생을 범하지 않으니, 다음 생에 우매한 고기잡이의 집에 태어나길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007_0973_b_18L心常柔軟見人犯非愼己不爲不缺戒無有聲聞緣覺心故於諸犯戒而無所犯所以者何後世不欲生在於魚獵愚闇家故
또 보살은 항상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으니, 삿된 무리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보살은 계율을 완전히 구족하니, 지혜와 덕이 있는 자를 가까이 하고 계율을 어기는 자를 멀리 하기 때문입니다.
007_0973_b_21L常修精進而不懈怠所以者何不與邪惡共從事故戒禁完具未曾闕漏親近智德解深法者不違遠故
또 계율에 대한 믿음이 돈독하니, 바르게 받들기 때문입니다. 또 일체 중생이 다 찬탄하니, 법대로 계율에 수순하기 때문입니다. 또 청정한 계율을 철저히 지켜서 참된 이치에 이르니, 본래의 마음이 호쾌하기 때문입니다.
007_0973_b_24L篤信禁戒所奉正故順戒如法一切衆生皆歌歎故其護戒禁淸徹至眞本心快故
007_0973_c_02L또 계율을 지니고 행함에 있어서 결점과 더러움을 찾아낼 수 없으니, 삿된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계율을 완전히 갖추니, 6쇠(衰)에 다시는 미혹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계율을 받들어 존중하니, 부처님으로부터 모든 바른 깨달음의 수행에 대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007_0973_c_02L行持戒要無能傳非說其瑕穢無邪心故其戒完具不復迷惑從六衰故所奉戒行莫不宣聞諸佛正覺之所知故
또 계행 이외의 다른 것을 구하지 않으니, 계행이 곧 안락함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 계행에 따라 만족함을 그칠 줄 아니, 탐착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그 계행에 수순하여 온갖 나쁜 것에 물들지 않으니, 몸과 마음이 평안하여 계행 이외에는 다른 즐거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항상 고요한 곳을 좋아하여 머무니, 혼잡한 곳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계율을 다 갖추어 법대로 행하니, 다른 사람에게서 법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007_0973_c_06L戒無所求如己樂故戒知止足無所貪故其戒純淑不雜衆惡身意坦然無所樂故常好閑居未曾喜樂於衆鬧故戒能備悉如道法訓不從他人有所受故
또 보살은 계행에 신중하여서 좋은 옷으로 몸을 꾸미지 않고, 맛있는 음식으로 그 뜻을 어지럽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본래 서원한 그대로 누구도 이를 수 없는 공덕을 얻습니다. 왜냐 하면 법의 힘으로 온갖 악함을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007_0973_c_11L謹愼禁戒不以好服而爲綺飾德無能逮誓如本願不以甘美而亂意也所以者何以有道力制衆惡故
또 모든 천인과 사람들이 기쁨을 내지 않음이 없으니 계율 그대로 행하기 때문이고, 또 자비심으로 계율을 행하니 중생을 옹호하기 때문이며, 또 자비심으로 계율을 닦으니 뭇 고통을 참아 견디기 때문이고, 계율을 옹호하여 따르니 나태하지 않기 때문이며, 평등한 마음으로 계율을 행하니 일체 중생들의 선악에 대해 갖는 두 가지 마음이 없기 때문이고,
007_0973_c_13L所行如戒諸天人民莫不悅故行慈心戒護衆生故修悲哀戒忍衆苦故遵于護戒不懈怠故以等心戒爲一切衆任於善惡無二心故
항상 스스로를 살펴서 계율을 손상시키지 않으니 그 마음가는 대로 방탕하지 않기 때문이며, 계율에 비추어서 남의 나쁜 일을 기억하거나 비리를 알리지 않으니 일체 중생을 옹호하기 때문이고,
007_0973_c_17L常察禁戒不爲損耗不聽其心爲馳騁故戒不念惡不傳人非護一切故
계율을 굳게 지키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그 뜻에 따르지 않기 때문이며, 보시의 계율에 수순하니 일체 중생을 길러내기 때문이고, 인욕의 계율을 따르니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며, 정진의 계율을 지키니 물러남이 없기 때문이고, 선정의 계율을 닦으니 안정을 얻기 때문이며, 지혜의 계율을 받드니 바른 이치를 널리 듣더라도 만족함이 없기 때문이고,
007_0973_c_19L堅執持戒不聽其意隨所欲故順布施戒養育一切衆生之故爲忍辱戒不起心故志精進戒不迴轉故禪思之戒得安定故奉智慧戒博聽正義無厭足故
007_0974_a_02L 널리 들어 계율을 닦으니 법의 요체를 깨닫기 때문이며, 선한 스승의 계율을 따르니 모든 법을 통달하기 때문이고, 악한 스승의 계율과 온갖 삿된 학문을 버리니 진정한 길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 몸에 치우치지 않는 계율을 닦으니 모든 만물이 다 무상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고, 생명에 탐착하지 않는 계율을 닦으니 그 공덕의 업이 자마금(紫磨金)과 같기 때문이며,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계율을 닦으니 그 뜻이 청정하기 때문이고, 허식이 없는 계율을 닦으니 그 배움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007_0973_c_23L修廣聞戒覺要法故隨善師戒達諸法故捨惡師戒離衆邪學不眞路故無猗身戒知諸萬物皆無常故不貪成呂命戒其功德業如紫金故無悔恨戒其意淨故無虛飾戒學淸淨故
번잡하지 않는 계율을 닦으니 그 뜻이 분명하여 물듦이 없기 때문이고, 조급하지 않는 계율을 닦으니 애태우지 않기 때문이며, 미혹하지 않는 계율을 닦으니 욕심에 따르지 않기 때문이고, 위태롭지 않는 계율을 닦으니 위해가 없기 때문이며, 충돌하지 않는 계율을 닦으니 마음이 어지럽지 않기 때문이고, 마음을 다스리는 계율을 닦으니 그 뜻이 그릇됨이 없기 때문이며, 적정한 계율을 닦으니 속된 업에 더럽혀지지 않기 때문이고, 진정한 계율에 수순하니 그 지혜가 가르침과 같기 때문이며,
007_0974_a_05L不煩苛戒其意鮮明無垢濁故不燋然戒不燒身故不迷惑戒不隨欲故不危燒戒無所害故無抵突戒心不亂故伏心之戒意無誤故通寂靜戒不爲俗業之所廢故順眞正戒智如教故
모든 서원의 계율을 구족하니 본래 청정하기 때문이고, 여래의 계율을 본받으니 본래의 법요(法要)를 따르기 때문이며, 선정의 계율을 본받으니 항상 평등한 마음으로 중생들을 제도하기 때문이고, 일체지(一切智)로 도(道)의 문에 들어가는 계율을 따르니 아무런 원한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보살의 예순 네 가지 청정한 계율로서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007_0974_a_10L具諸願戒本淸淨故如如來戒所以者何隨本要故如佛定戒常懷等心度衆生故從一切智入道門戒所以者何不抱恨故是爲菩薩六十四事淸淨禁戒而不可盡
아차말보살이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은 이 예순네 가지 이외에 또 청정한 계율이 있으니, 자기의 몸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일체의 것에 대해서도 그것을 품지 않고, 나라든가 사람이라든가 수명이란 것에 대해 헤아리지 않으므로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땅ㆍ물ㆍ불ㆍ바람의 4대(大)에 의지하지 않으므로 4대에 대한 계율을 지니고, 눈에 대한 물질과 귀에 대한 소리와 코에 대한 냄새와 혀에 대한 맛과 몸에 대한 감촉과 마음에 대한 법을 갖지 않으므로 몸ㆍ입ㆍ뜻의 업이 한결같이 청정하여 그 계율이 미혹에 빠지는 일이 없고, 모든 계율의 법을 관찰하여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해탈문(解脫門)에 들어가므로 또한 형상 없이 삼계(三界)를 벗어납니다.
007_0974_a_15L阿差末菩薩復謂舍利弗言菩薩復有淨戒不自貪身不念一切不想我不計壽命不思名色猗四種各有四大戒不有眼色耳聲鼻香舌味身觸心法無身其戒向淨是相一心而不迷荒諦觀諸法戒以過空無想不願亦無形像過於三界
007_0974_b_02L또 집착도 속박도 없으니 그 계율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고, 나지 않으니 남이 없기 때문이고, 계율로써 지음이 없으니 짓지 않기 때문이고, 본래 조작함이 없으니 이로 말미암기 때문이고, 계율에 경계가 없으니 중간에 머무르되 또한 머무름이 없기 때문이고, 마음이 청정하여 어떤 알음알이에 머무름 없으니 상념(想念)이 없기 때문이고, 아무런 속박이 없으니 애욕의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007_0974_a_23L不著不縛其戒不念爾故不爲已生所以者何無所生所以爲戒無作不作本無所造是之故戒無部界此止中閒亦無所成呂意淨爲戒識無所住所以者何想念故戒無所拘所以然者無欲力
또 보살의 계율은 물질에 머물지 않고 물질에 머물지 않음도 없고 그 물질과 함께 더럽혀지지도 않기에, 이것을 일컬어 계율이라고 합니다. 또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여의고 해탈의 경지에 나아가기에, 이것을 일컬어 계율이라고 합니다.
007_0974_b_06L亦不住色亦不無色而俱同塵名曰戒離婬因愚冥脫是故曰不著不斷捨十二緣是故曰戒
또 12연기(緣起)에 집착하지도 않고 끊어 버리지도 않기에, 이것을 일컬어 계율이라고 합니다. 또 나라든가 나가 아니라든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 모든 애욕에 머무르지 않기에, 이것을 일컬어 계율이라고 합니다.
007_0974_b_08L念我所除我不我不住欲故是故曰無作不求不住色想亦不處在一切名色是故曰戒
또 지음도 없고 구하지도 않으며 물질에 대한 생각에도 머무르지 않고 일체의 물질에도 머무르지 않기에, 이것을 일컬어 계율이라고 합니다. 또 인연에 따라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나라든가 나가 아니란 것을 벗어나 조금도 의심하지 않기에, 이것을 일컬어 계율이라고 합니다. 또 공덕이 없지 않으면서도 복을 탐하지 않고 그 모든 악함과 그릇된 법을 초월하기에, 이것을 일컬어 계율이라고 합니다. 또 몸과 마음을 괴롭히지 않기에, 이것을 계율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007_0974_b_11L不隨因緣無煩無我非我不與疑合是故曰戒不貪福不無功德以越諸惡非法之所以者何愚者非法是故曰戒有擾惱其身心止是故戒相
또 이 모든 계율을 받들어 행하려면, 마치 병든 자가 좋은 약을 끊지 않아야 건강한 몸을 얻는 것처럼, 부처님의 바른 경전을 끊지 않아야 하니, 법의 몸이 당당하여 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법의 몸은 끊어짐이 없으니, 두 가지 업이 없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물질에 탐착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경전의 법을 끊지 않는 것입니다. 또 거룩한 대중들과 관계를 끊지 않으니 이로 인해 해탈하기 때문이고, 모든 학문을 끊지 않으니 계율에 수순하기 때문입니다.”
007_0974_b_15L奉愼戒者如病得愈不斷諸佛經典正籍身坦然不可盡故不斷法身所以者無二業故一者不著二者不斷斷聖衆因用脫故不斷諸學所以者順禁戒故
아차말보살이 계속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의 계율은 본래 청정하기에 다함이 없습니다. 세속의 계율이라고 하는 것은 생사에 얽매여 다함이 있으니, 5취(趣)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다함이 있다고 하니, 그것은 오고가는 것이기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007_0974_b_20L阿差末菩薩謂舍利弗因本淸淨故不可盡何謂俗戒謂生死處亦有盡所以者何在于五趣故名曰盡以盡者有往反故不住一處
007_0974_c_02L그밖에 신선들이 말하는 5신통(神通)의 계율도 한갓 수명을 늘이는 세속의 지혜이기에 그 수명도 언젠가는 다함이 있기 마련이니, 그 계율이 다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세간 사람들이 말하는 10선업(善業)1)의 계율도 끝내 다함이 있기 마련이니, 그 계율을 저버리기 때문입니다.
007_0974_b_24L其外神五通之戒世俗之智求上長壽足命盡所以者何戒禁盡故人戒十善亦復有盡所以者何違捨戒故
또 욕계(欲界) 천자들의 계율도 다함이 있기 마련이니, 그 공덕이 끝내 다하기 때문입니다. 또 색계(色界) 천자들의 계율도 다함이 있기 마련이니, 그 안정된 마음이 산란해지기 때문입니다. 또 무색계(無色界) 천자들의 계율도 다함이 있기 마련이니, 그 고요한 뜻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또 유학(有學)2)ㆍ무학(無學)3)ㆍ아라한(阿羅漢)의 계율도 다함이 있기 마련이니, 열반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성문ㆍ연각의 계율도 다함이 있기 마련이니, 큰 자비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007_0974_c_04L欲天子戒亦有盡所以者何功德畢諸色天子定戒亦盡所以者何定亂故無色天子寂戒亦盡所以者寂意荒故其道迹學無學羅漢戒亦有盡所以者何猗泥洹故其緣覺戒亦復有盡所以者何無大哀故
아차말이 사리불에게 다시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오직 보살의 계율만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에 사리불이 다시 질문하였다.
“그 다함이 없는 계율이란 어떤 것입니까?”
007_0974_c_10L阿差末謂舍利弗言唯菩薩戒獨不可盡舍利弗問以何等故戒不可盡
아차말보살이 대답하였다.
“다함이 있는 계율은 모두 계율이 아니니, 보살의 계율만이 모두 다함이 없어서 그 마음이 일체지(一切智)를 저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계율이어서 일체의 종자를 끊지 않기 때문에 다함이 없습니다. 또 도의 과(果)라고 하는 것도 다함이 없는 것이니, 그 종자는 보살의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라고 하는 것도 곧 부처님의 10력(力)을 말하는 것으로 다함이 없습니다. 이에 보살의 계율은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007_0974_c_12L阿差末曰其戒盡者斯皆非戒所以菩薩戒不可盡其心不捨一切智故是正眞戒爲不斷種故不可盡何謂果實道果無盡所言種者謂菩薩心所云果實則佛十力至不可盡故曰菩薩戒不可盡
아차말보살이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의 인욕 역시 다함이 없으니, 서른두 가지의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서른두 가지의 다함이 없는 것이겠습니까? 애착하지도 않고 이러한 마음을 일으키지도 않는 것으로서, 자신의 몸뚱이를 비롯해 처자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범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범하게 하지도 않으니, 이로 말미암아 인욕 역시 다함이 없습니다.
007_0974_c_18L阿差末謂舍利弗言菩薩忍辱亦不可盡有三十二事何謂三十二無盡不著欲者不興此念是我妻子身皆不犯不令他犯是故忍辱亦不可盡
007_0975_a_02L즉, 남의 나쁜 일을 기억하지 않고, 일체의 원한을 품지 않으며, 중생을 미워하지 않고, 나쁜 일을 들추어 내지 않으며, 싸움에 말려들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잊지 않으며, 자신을 헐뜯는 것에 대해 반격하지 않고, 자신의 허물을 덮거나 변명하지 않으며, 스스로 그 몸의 행을 단속하고, 다른 사람의 행도 보호해 주며, 자기의 마음을 삼갈 뿐 남의 시비에 따르지 않고, 항상 덕이 있는 자를 생각하여 애욕을 없애며, 몸을 장엄함으로써 선악의 과보에 대해 굳게 믿고, 입으로 망령된 말을 하지 않으며, 그 마음이 항상 청정하고,
007_0974_c_22L不念衆惡不恨一切不恚衆生不惟人惡不與人諍不忘助人有所毀擊亦不掩戲自護身行將護衆人愼己心不隨常思善德無愛欲意得莊嚴成呂信作善惡當得報應口不妄語心淸淨
마음이 강인하여 일체의 선한 업을 버리지 않으며, 삿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가를 항상 스스로 살피고, 자신의 허물을 깨닫는 대로 곧 참회하며, 그 마음이 항상 부드럽고, 그 마음을 단속하여 나쁜 생각이 자라나지 못하게 하며, 범천(梵天)으로 태어나게 청정한 행을 닦고, 중생을 위해 천상에서 다시 인간세계로 태어나며, 공덕이 구족하여 80종호(種好)를 갖추고, 범천처럼 부드러운 음성을 체득하며,
007_0975_a_05L菩薩心强不捨一切諦自思計心所念邪卽覺知之心和柔軟護其心令惡不生修淸淨行生于梵從天上下還在人閒具足德相衆好八十逮致和音猶如梵天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벗어나고, 나쁜 얼굴로 행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향해 성내거나 원망하지 않고, 언제나 그 공덕을 일으키는 것을 잊지 않으며, 외도의 학문과 삿된 술법에 미혹되지 않고, 뭇 질병을 다 제거하며, 온갖 재난을 만나지 않고, 모든 부처님의 도의 법을 구족하니, 이것이 다함이 없는 보살의 서른 두 가지 인욕인 것입니다.
007_0975_a_09L脫婬不以惡顏恚恨向人所作功德未曾亡失降伏外學衆邪異術以捨衆不遭厄難以順具足諸佛道法爲忍辱悉不可盡三十二事是菩薩忍辱
다시 그 인욕이 무엇인가 하면, 어떤 사람이 욕설을 퍼붓더라도 침묵하며 대응하지 않는 것이고, 마구 때리더라도 보복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인욕이라고 합니다. 왜냐 하면 때린 자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동시에 자신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니, 매나 몽둥이가 본래 공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007_0975_a_14L何謂忍辱若罵詈身默不和之若撾捶者不念報之是謂忍辱所以者何不見撾者不睹己身杖本空故
또 성내는 자에게 원한을 품지 않으니, 마치 허깨비와 같다고 생각하여 불쾌한 마음을 억누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 나쁜 마음을 품고 오더라도 스스로가 모르는 체 하면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비록 나쁜 마음을 품고 오지만, 나는 그것을 본받지 않으리라’라고 하니, 그러므로 칭찬하는 자가 있어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 칭찬으로 말미암아 이익을 얻으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마음을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007_0975_a_16L若有瞋者亦不懷恨言若幻化其起意來不生心逆能伏意故若念惡者心若不知自思惟之斯人齎惡吾不宜效有稱譽者不用悸喜所以者何不生此念得利益也降伏心故
또 어떤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근심하지 않으니, 만족에 그칠 줄 알기 때문입니다. 또 찬탄하는 자가 있어도 기뻐하지 않고 비방하는 자가 있어도 동요하지 않으니, 지혜가 넓고 크기 때문입니다.
007_0975_a_21L若有衰耗不以憂慼己知足故見人歎者不用爲綺若有誹謗不以爲動所以者何智廣大故
007_0975_b_02L또 자기에게 공경하는 자가 있어도 스스로 훌륭한 체하지 않으니, 그 성품의 수양이 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예를 올리는 자가 있어도 기뻐하지 않고 ‘그대가 예를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하지 않으며, 어떤 지위와 세력을 얻었다고 해서 교만해 하지도 않으니,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007_0975_a_24L有恭敬者不自貢高修性安故設禮拜者不用悅豫亦不說言卿宜當然若得勢位不以自大所以者何心不動故
또 중생을 가엾게 여겨 비록 많은 고초를 겪더라도 그것을 싫어하지 않고, 안락한 처소에 머무르더라도 기뻐하지 않으니, 세속의 일이 다 무상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007_0975_b_03L愍哀衆生雖在勤苦不以患厭在於樂處不用歡喜曉了俗事皆無常故
또 세간의 여덟 가지 일에 쏠리거나 흔들리지 않으니, 그 가운데 있더라도 남이 괴롭히지 못하고 감히 보복하거나 위해를 가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그 팔ㆍ다리를 갈래갈래 찢더라도 다 참아 견디니, 이로 말미암아 보살의 업을 구족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007_0975_b_05L不以世八事而見傾動所以者何不處其中爲人所嬈終不還報無敢犯者假使有人節節解身悉能忍之因欲具足菩薩業故
또 그 몸에 해를 입히려는 자가 있더라도 끝내 생각을 달리하지 않습니다. 4대(大)로 화합된 몸은 흩어져 사라지는 것임을 아니 어찌 탐착하겠습니까? 이러한 인욕으로 말미암아 부처님의 몸을 얻습니다. 또 온갖 고통과 셀 수 없는 재난을 다 참으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큰 안락을 얻어 도력(道力)을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007_0975_b_09L若害身者終無異意了身四大合成散滅何足可貪所以者何緣是忍故當得佛身悉忍衆惱不可計難所以者何緣是得致建立大安至道力故
또 보살이 범지(梵志)들 속에서 몸을 나타내어 불길 속에 빠뜨려지더라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으니, 그들로 하여금 마음의 청정함을 알게 하는 동시에 그들의 미혹된 마음을 바로 잡아 천상에 태어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범지들의 요구에 따라 모든 변화를 나타내되 그 뛰어난 도덕의 힘을 보이니, 범천ㆍ제석ㆍ사천왕들이 다 보살에게 머리 조아려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보살의 인욕은 끝이 없기에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007_0975_b_13L菩薩若在梵志學中現身入火無所傷害欲令其人知心淸淨化于惑意使志反眞因得上天其梵志學好喜火祠菩薩所現無所不變道德超殊莫能逮者所以者何諸梵帝釋四方天王稽首菩薩皆爲作禮菩薩忍辱無有邊底以是之故曰不可盡
또 모욕하더라도 참으며 원망하지 않을 뿐 아니라 누가 나를 모욕했다는 것까지도 생각하지 않으니, 이로 말미암아 고요히 법의 지혜에 들기 때문입니다. 또 나의 눈ㆍ귀ㆍ코ㆍ입ㆍ몸ㆍ뜻을 모욕했다던가 마음을 모욕했다던가 그 무엇을 모욕했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으니, 이 모든 6쇠(衰)에서 벗어나서 곧 법의 지혜를 체득하기 때문입니다. 또 누가 와서 나를 모욕했다는 따위의 일체의 생각을 떠나니, 바로 나와 남이 없는 지혜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007_0975_b_19L其罵者忍不以爲恨亦不念之誰罵我者因是寂然便入法忍不思惟之罵吾眼若罵心乎罵所在耶則過諸衰便逮法忍不念一切誰來罵者尋能得入無人之忍
007_0975_c_02L 또 이러한 모든 인욕은 다 인욕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이것은 하나의 명호(明號)를 가칭한 것일 뿐, 산중의 메아리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곧 무상(無常)의 인욕에 들어가 나와 남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중화(中和)의 인욕을 얻어, ‘나는 법의 가르침에 머무르지만 누구는 그것에 머무르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인욕이란 바로 이러한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007_0975_b_24L是諸忍者悉不爲忍所以者何假有號耳諦計其忍猶山中響有解此者入無常忍不念得我及得他人逮中和忍亦不自念身隨法教某不住法是名曰忍
그러므로 ‘나만이 도에 머물 뿐 다른 사람은 도에 머물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나만이 공(空)을 생각할 뿐 실제를 생각하지 않으며, 나만이 무상(無想)을 생각할 뿐 유상(有想)을 생각하지 않으며, 나만이 무여(無餘)를 생각할 뿐 유여(有餘)를 생각하지 않으며, 나만이 무원(無願)을 생각할 뿐 유원(有願)을 생각하지 않으며, 나만이 생사(生死)가 없는 지혜를 생각할 뿐 그 시작과 끝이 있는 지혜를 생각하지 않으며,
007_0975_c_06L我獨住道其餘人者不建立道不興斯念我念空不念實念無思想不念有想念忍無餘不念忍餘念忍無願不念有願忍無生死不有終始
나만이 올바른 법을 생각할 뿐 올바르지 않은 법을 생각하지 않으며, 나만이 덕이 있는 이를 생각할 뿐 덕이 없는 이를 생각하지 않으며, 나만이 세간을 제도할 뿐 세간과 화합하지 않으며, 나만이 도(道)에 들 뿐 도가 없는 것에 들지 않으며, 나만이 해탈을 생각할 뿐 해탈이 아닌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나만이 열반을 깨달을 뿐 생사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살이 인욕을 닦음에 있어서 왜 이러한 생각을 내지 않는가 하면 그 모든 생각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007_0975_c_09L忍爲可無不可忍爲有德不爲無德念忍無生不念所生忍度於世不與世合忍爲入道不爲無道念忍爲脫不爲無脫解忍泥洹不爲生死菩薩忍辱不生此念所以者何不平等故
그렇다면 보살의 평등한 인욕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공함을 깨달아 단절도 집착도 없으니, 이것을 보살의 평등한 인욕이라고 합니다. 또 나는 것도 나지 않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화생(化生)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으며, 유(有)와 무(無)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이치를 깨쳐 다함이 없으니, 이것을 일컬어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007_0975_c_14L菩薩等忍爲何謂也解入空無所斷無所著是菩薩忍亦不念生不念不不念化生若無化生不興念言有之與無曉了此義至不可盡以是名曰不可盡
또 인욕은 아무런 지음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마땅함과 마땅하지 않음을 생각하지 않고, 현현함도 없고 속박도 해탈도 없고 생기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니, 남이 없어 다함도 없습니다. 이러한 인욕은 마침내 생이 없는 무생법인을 얻으니, 마치 여래께서 보리수 아래에 앉아 무생법인에 대해 깨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인욕에 들어가는 자는 마땅히 여래로부터 수결(受決)을 받게 되니, 이것을 일컬어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007_0975_c_19L忍悉無所作不思當然及與不然無有現者無縛無脫亦無所無造起者故無所生而不可盡忍如斯是爲逮得無所從生法忍計無所從生法忍至于如來坐佛樹入此忍者應得受決曰不可盡
007_0976_a_02L아차말보살이 인욕품(忍辱品)에 대해 연설할 때 함께 있던 대중들이 다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고도 훌륭합니다. 아차말보살의 연설이야말로 진실로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007_0975_c_24L是法忍品時其在會者咸皆讚曰成呂哉善哉如阿差末所說誠無有異
그때 시방에서 모여든 천인들이 하늘의 꽃ㆍ향ㆍ깃발ㆍ일산으로써 아차말보살을 비롯한 여러 보살들에게 공양하였다. 그러자 천상으로부터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저절로 울려 퍼져서 모두들 평온하고 행복하여 일제히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007_0976_a_04L十萬天悉以天華名香幡蓋供養散阿差末身諸菩薩上諸天伎樂自然爲鳴以娛樂之心各曠然懷寬弘一切皆言
“모든 대중들로 하여금 널리 광명을 얻게 하니, 만약 부처님의 이 인욕의 연설을 듣게 되면, 공포도 두려움도 없고 부끄러워하는 마음도 없게 되며 그 아름다운 꽃ㆍ향ㆍ깃발ㆍ일산이 온 삼천대천세계의 불국토에 충만하리라.”
007_0976_a_08L令諸衆生普悉得明若如來忍其聞此音不恐不懼心不在諸華名香幡蓋充滿遍于三千大千佛土
阿差末菩薩經卷第二
己亥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살생(殺生)ㆍ투도(偸盜)ㆍ사음(邪婬)ㆍ망어(妄語)ㆍ양설(兩舌)ㆍ악구(惡口)ㆍ기어(綺語)ㆍ탐욕(貪欲)ㆍ진에(瞋恚)ㆍ사견(邪見)을 짓지 않는 것이다.
  2. 2)아직까지 배울 것이 남아 있는 경지를 말한다.
  3. 3)이미 다 배워서 배워야 할 것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경지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