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等集衆德三昧經卷中

ABC_IT_K0140_T_002
010_0337_b_01L
등집중덕삼매경 중권
010_0337_b_01L等集衆德三昧經卷中


서진 월지 축법호 한역
최봉수 번역
010_0337_b_02L西晉月氏三藏竺法護譯


그때 세존이 다시 이구위 역사에게 말씀하셨다.
“족성자야, 보살은 이와 같은 행적에 대해 듣는다면 마땅히 부지런히 받들고 행해야 한다. 어떻게 존귀한 어른으로부터 들을 것을 구하고 들을 것을 여쭈어야 하는가? 항상 공경하고 교만함을 없애버려야 한다. 언어가 부드럽고 화평하며 마음이 인자하고 조절되어 있어야 한다.
법에 대해서는 의약(醫藥)과 같다고 관찰하고 생각해야 한다. 스승과 화상에 대해서는 세존이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 스스로 그 몸을 관찰하되 법의 약을 사유하고 선택하여 의왕이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 여러 중생들에 대해서는 질병이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하고 법을 구하는 데 열심히 할 뿐, 마땅히 몸에 대해 애착해서는 안 된다. 목숨을 탐하지 않고 수명에 기대지 않는다. 착용할 의복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경전을 좋아하고 법으로써 근본을 삼아야 한다.
010_0337_b_03L爾時世尊復告離垢威力士言族姓菩薩若聞如此行迹當勤奉行何求聞稟聽尊長常行恭敬棄捐憍言語柔和志性仁調觀念於法猶如醫藥於師和上設世尊想自察其身思撰法藥發醫王想於諸衆生爲疾病想若務求法不當愛身不貪命不倚壽不慕於容被服常好經典以法爲本
일체의 소유물을 보시하고도 아까워하지 않아야 한다. 법의 도리를 이익할 것을 지향하고 재물의 이익은 경시하여 내다 버려야 한다. 장차 법의 보배를 보호하고 세속의 진귀한 것을 떠나야 한다. 법을 이익 되게 하려는 까닭에 일체 세간의 재물을 멸진하고 제거해야 한다. 법의 보배로써 이익을 삼고 평범한 세속에서 그리워하는 진귀한 것은 제거해야 한다.
중생의 티끌에 시달리는 일과 애욕과 일체의 하자를 제거하고자 하여 항상 마땅히 바른 법의 경전을 그리워하고 구해야 한다. 일체 중생의 무리들을 건지어 모두 멸도에 이르게 하고자 하여 바른 법으로써 마땅히 보호하고 간직하고 인도해야 한다. 바른 법의 경전으로 인도하고 보호하는 자는 일체의 행해야 할 덕의 근본을 두루 획득하고 장차 키워야 한다.
010_0337_b_12L一切所有施而不悋志利法誼放忽財利將護法寶離俗所珍利法故滅除一切世閒財賄以法寶利蠲除凡俗所慕之珍欲除衆生塵勞愛欲一切之瑕常當慕求正法之欲度一切衆生之類皆至滅度便當護持導以正法以能導護正法典則能普獲將養一切所行德本
010_0337_c_02L그런 까닭에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도를 구하고자 하거나 최상의 바른 깨달음에 이르러 성취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법의 기둥을 굳게 세우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널리 배워야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족성자야, 산 중의 왕인 수미산(須彌山)은 천상의 큰 기둥이다. 만약 천상의 높은 기둥이면 우뚝 솟아 덮고 가리는 바가 많고도리천까지 솟아 있어 도리천에 의해 장엄히 장식된다.”
010_0337_b_19L是之故假使有人欲求佛道若欲逮成最正覺者欲得豎立於法柱者學博聞譬如族姓子須彌山王爲天大柱若天上柱則爲巍巍多所覆蓋所在嚴飾於忉利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보살 대사는 널리 보고 널리 듣는 것으로 지혜의 기둥을 삼는다. 노닐고 거주하는 곳이 천상이든 세간이든 그 빛이 웅장하게 비춘다. 만일 족성자야, 어떤 보살이 부처님 도를 뜻하고 원하여 ‘나는 마땅히 성불하겠다’고 하면 권화와 방편을 깨달아 널리 듣고 항상 정진을 닦아 익혀야 한다. 일체의 중생이 사악한 앎에 머물고 있다면 그들을 위해서 지혜의 등불을 설치해야 한다.
만일 보살이 널리 듣는 수행에 들어갔을 때에 아울러 정진하여 지혜를 구한다면 중생에 대한 앎을 구족하게 되어 할 바를 다해 마치게 된다.”
그때 여러 천신들이 그 사람을 위하여 소리를 높여 찬탄하였다.
“환희롭고 선한 마음이 생하였다. 지금 이 바른 장부는 이와 같이 도리의 모습을 보이었다. 그는 널리 듣는 것의 힘으로 열 가지 힘에 이를 것이다. 최상의 바른 깨달음에 이르러 여러 감관이 밝게 통달할 것이다. 그와 같은 도리의 이익으로 보살행을 위할 것이다. 지혜의 칼을 잡아 티끌에 시달리는 우리의 일체의 애욕을 끊을 것이다.
만일 보살에게 그와 같은 도리의 모습이 있고 또한 밝은 지혜로 경전에 설해진 법을 감히 당해낸다면 중생의 티끌에 시달리는 일과 위험과 액난을 제거할 것이다. 만일 보살이 그와 같은 도리의 모습을 지닌다면 법을 설하여 애욕을 멸진하고 제거할 것이다.
그와 같이 이 보살은 예전의 세존께서 노닐고 거주하던 곳으로 돌아가고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도리의 모습이 있다면 악마와 그 관리 권속을 항복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감당하여 열두 가지 일[事:行相]을 갖춘 법의 바퀴를 굴릴 것이다.
010_0337_c_03L佛言如是菩薩大士博覽廣聞則爲慧柱所可遊居天上世閒光色巍巍族姓子若有菩薩志願佛道我當成佛則當曉了㩲便博聞常修精進一切衆生在於邪智則爲然設智慧燈明假使菩薩入博聞時精勤求慧則爲具足衆生之智所作已辦爾時諸天則爲其人擧聲咨歎歡喜善心生焉今此正士如是誼像博聞之力逮十種力最正覺諸根明達如是利誼爲菩薩執智慧刀割截一切塵勞之欲有菩薩如是像誼堪任明慧所說經則能蠲除衆生塵勞危厄若有菩薩如是像誼便能說法滅除愛欲是菩薩則能歸趣往古世尊所可遊如是誼像則能降伏魔及官屬是堪任以十二事法輪爲轉
010_0338_a_02L그와 같이 족성자야, 보살 대사는 널리 듣는 것에서 정진하여 성스런 통달을 확립한다. 그리고 그때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존재하는 온갖 악마는 근심하고 걱정하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가능한 것들이 어려워진다. 그리고 ‘지금 이 보살은 우리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우리의 본래 마음을 위배한다. 우리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고 자유를 얻지 못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족성자야, 듣는 것으로부터 앎을 획득하니 앎은 티끌에 시달리는 무리에 있어서 최상으로 존귀한 것이다.그에게는 애욕의 티끌이 없으니 악마가 그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이렇게 보아야 한다. 만일 보살이 널리 듣는 것을 열어서 그곳에 들어가며 경전을 분별하고 법을 좋아하고 즐거워하면 그것으로부터 이미 가르쳐 줄 수 있는 궁극에까지 간 것이 된다. 그리하여 온갖 악마를 항복받고 제압하니 곧 애욕의 티끌이라는 악마와 음의 덮개라는 악마와 일어나고 멸함의 악마와 천마와 그 권속의 악마이다. 이것이 네 가지 악마인데 자연히 절복된다.
010_0337_c_20L族姓菩薩大士精勤博聞立於聖達時卽普三千大千世界所有衆魔爲憂愁悒慼難可今此菩薩不從我教違吾本心皆見棄捐不得自由以者何族姓子從聞獲智智於塵勞爲最尊其無塵欲魔不得便以是之故當作斯觀假使菩薩開入博聞分別經典好樂於法從是已往所可教降制衆魔塵欲魔陰蓋魔起滅魔天魔官屬是爲四魔自然爲伏
또한 족성자야, 옛날의 여러 보살들조차 널리 듣는 것에 들어가서 법의 도리를 분별하고 경전을 좋아하고 즐거워했으니, 지금 대강을 들어서 핵심 되는 것을 간략히 설하겠다.
아주 오래 전 먼 과거세의 시절이 있었으니 헤아릴 수 없는 겁 이전이며 측량이고 한계 지을 수가 없으며 널리 두루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이전이었다. 그때의 겁 가운데 한 선인이 있었으니 이름이 울달(鬱怛)1)이었다.
그는 나무 수풀 속에 거주하면서 다섯 신통을 얻었다. 항상 평등한 마음으로 행하고 자애와 슬픔과 기쁨과 평정을 행하였다. 그윽한 숲 속에서 노닐고 거처하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자애의 마음을 행하니 그 몸이 부드럽고 항상 희열에 젖어 있고 안온하다. 그러나 자애로써 중생의 자재한 애욕을 멸진하고 제거할 수는 없다. 티끌에 시달리는 일인 애욕을 끊고 멀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자애만으로 성인과 현자의 바른 견해에 이를 수도 없고 복덕에 이를 수도 없고 현자 및 현자의 바른 견해에 이를 수도 없고 복덕에 이를 수도 없고 현자 및 성인과 동등한 관점에 이르러 성취할 수도 없는 것이다.’
010_0338_a_07L又族姓子猶如往古諸菩薩者所入博聞分別法誼好樂經典今當粗擧略說其要乃至曩昔久遠世時無央數劫不可稱限廣普無量不可思議彼時劫中有一仙人名曰鬱怛處在林樹得五神通常行等心慈悲喜護遊居幽藪心自念言吾行慈心其身柔濡常悅安隱不可以慈滅除衆生自在愛欲亦不可去瞋恚愚癡曠絕邈路塵勞之欲不以此慈能致聖賢之正見也不可致福安能逮成賢聖等觀
010_0338_b_02L다시 스스로 생각하였다.
‘항상 두 가지 일로써 의존해야 현자와 성인의 바른 견해에 이를 수 있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다른 자의 소리를 듣고 성찰하는 인연과 그것을 사유하고 고요하게 뜻을 두는 행이다.’
곧 환희하여 큰 정진을 일으켰다. 그리고 법으로 들어가서 생각하였다.
‘나는 어디에서 이 교설을 들을 수 있을까?’
그리하여 법 때문에 경전을 욕구하여 고을과 나라와 현과 읍과 마을과 촌락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경전을 욕구하였으나 오래도록 들을 수 없었다. 그때 천마가 그 장소에 와서 말하였다.
‘족성자여, 나는 부처님께서 받들고 보호하는 독송(讀誦)이라고 이름하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가령 족성자여, 스스로 자신의 몸을 핍박하여 한낮의 폭염 속에 드러내고 그 귀로 스스로 받들고 음성을 듣고 나서 그 뒤에 그와 같은 여러 게송을 글로 쓸 수 있다면 그대는 이 네 구절로 끊어지는 게송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010_0338_a_18L復自念言常以二事可緣致賢聖正何謂二聽省他音因緣思惟靜志在行尋卽歡喜發大精進亦復入于我於何所得聞是說則以法故欲求經典入於郡國縣邑丘聚欲求經卷永不可聞時魔天人往至其所言族姓子吾有佛名將護讀誦假族姓子自逼迫身日自暴炙自聞其身所護音聲然後乃書如是諸頌爾乃令仁得聞此頌四句之絕
그때 족성자야, 울달 선인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셀 수 없고 한계 지을 수 없는 겁 이래로 이 몸을 포기하고 잃어가면서 감옥과 매질과 채찍질과 날카로운 칼의 괴로움도 즐거워하였다. 마디마디 몸이 잘리어 형체가 제 모습을 잃어가고 흩어졌으니 피부와 살점이 잘리고 끊어졌다. 그러면서도 애욕 때문에 결박에 묶이는 경우에 이르렀다. 그와 같은 환난을 만난 것이 셀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 몸이 쓰이지 못했으니 위태로운 느낌이란 쓸 만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몸으로 일체에 이익 되는 것을 더한 적이 없었다. 만일 이미 군생(群生)을 인도하고 이익 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마땅히 이 견고하지 못한 몸으로써 경전을 구하여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선한 이익을 획득하여 마음으로 희열을 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땅히 그 천인을 따른다면 일찍이 만나지 못했던 경전의 뜻을 듣게 될 것이다.’
이처럼 세간에서 제일가는 존귀한 마음을 일으키고 공경하고 삼가하는 마음을 품었다. 그리하여 날카로운 칼을 취하여 그 몸을 잘랐다. 그리고 해 아래에 스스로 드러내어 친히 가르침을 받아[親炙] 귀로 소리를 듣고자 하여 천인에게 말하였다.
010_0338_b_05L於時族姓子鬱怛仙士心自念言我從無數難限劫來棄捐此身樂於牢獄撾杖鞭撻或以利刀段段解身形體離散肌肉斷絕以愛欲故致得繫縛遭是衆患不可稱數不用此身不用危痛痒曾以身加益一切假使能已導利群吾當以此無堅固身求得經典獲善利心懷悅豫當從天人逮得聞志未曾有興世尊心而懷恭恪取利刀自割其身日中自炙從耳聽而謂天言
010_0338_c_02L‘원하건대 천인이여, 부처님께서 받들고 보호하는 독송이라고 이름하는 것을 연설해 주십시오. 나는 법을 공경하는 까닭에 몸을 던지고 버리며 목숨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 인연으로 들은 것을 함께 모으고자 합니다.’
그때 족성자야, 울달 선인이 법을 공경하고 삼가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그와 같이 우뚝 솟은 것을 보고는 그 천인은 안색이 참담하고 초췌해졌다. 그 공덕을 보기 어려워 숨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울달 선인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장차 시련이 없이 어찌 내가 이 게송을 듣겠는가? 법을 공경하고 받들며 그것에 순응하는 까닭에 스스로 몸을 던지고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그것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경전을 합치고 모으고 공경하면서 심은 덕의 근본은 그 공을 잃지 않을 것이며 속임수와 미혹함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가령 내 몸이 지극히 정성스럽고 허망하지 않다면 그리고 솔직하고 아첨하지 않고 중생을 불쌍히 여긴다면 그리고 몸과 목숨에 탐착하지 않고그 육체적인 수명을 버린다면 그 성실한 진실로 말미암아 이 법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현세에 다른 방위의 부처님 국토 가운데 법을 받들고 닦는 자가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면전에 모습을 드러내어야 한다. 그리하여 내가 그를 보고 경의 법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010_0338_b_16L願天演說佛名將護讀吾恭敬法故放捨身不惜壽命是因緣等集所聞族姓子睹見上仙恭恪樂法巍巍如是顏色黮黤憔功德難睹卽沒不現於是上仙心自念言將無試吾聞此偈乎爲之恭敬奉順法故自捨其身不惜壽命得聞之耶吾所合集恭敬經典所殖德本不失其功不見欺惑假使我身至誠不虛質直無諂愍哀衆生不貪身命捨其體壽聞此法者由是誠諦此現世他方佛國奉修法者斯等之人令現面像使我見之得聞經法
그는 이러한 원을 세운 뒤에 입으로 다시 말하였다.
마침 그때 아래 방향으로 부처님의 국토를 서른두 번 지나 간 뒤에 한 세계가 있었는데 이름을 보등이구(普等離垢)라고 하였다. 그곳의 부처님의 명호는 무구칭왕(無垢稱王)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었으니 지금 현재에도 법을 설하고 계신다.
그때 그 부처님께서 울달 선인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아셨고 또한 염부제의 사람들을 교화하고자 하셨다. 그리하여 비유하면 용감한 장부가 팔을 굽혔다가 펴는 것처럼 짧은 시간에 그 부처님 세계로부터 홀연히 사라지셨다. 그리고 울달 선인의 앞에 멈추어 서셨다.
그리고 5백 보살과 함께 그 여래는 세간에 나타나셔서 자연스럽게 큰 광명으로 두루 비추셨다. 천상의 꽃을 취하였고 백 천의 기악이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울렸다. 그리고 여러 보살도 그 숲 속에 모였다.
그때 장엄한 나무의 모든 뿌리와 밑둥과 줄기와 마디와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가 모두 법의 소리를 내었다. 울달2) 선인은 그 부처님으로부터 친히 듣고 그 형상을 보면서도 마음에 두려워하는 바가 없었다. 그리고 그 몸이 즉시에 이전과 같이 회복되어 상처의 흔적조차 없었다.
010_0338_c_05L這立此願口復說言應時下方過三十二諸佛國土有世界名普等離彼佛號曰無垢稱王如來至眞正覺今現在說法於時其佛卽見上仙心之所念又欲教化閻浮提人如勇士屈申臂頃彼佛如是斯須之從己佛土忽然不現卽住止于上仙之前及與菩薩五百俱其如來這現世閒自然大光普有所照而取天花億百千伎樂不鼓自鳴諸菩薩會于彼林藪於時巖樹一切根實皆出法音上勝仙士適聞彼佛見其形像心無所畏卽時其體平復如故無有創疣
010_0339_a_02L이에 울달 선인은 무구칭왕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친견하고 그 상호가 우뚝 솟은 것이 수미산과 같음을 보았다. 그 위신력의 광명이 해와 달을 넘어가며 신비하고 미묘하게 통달하여 천신과 인간 가운데서 존귀하신 것을 보았다. 여러 감관이 고요하고 안정된 것이 허공과 같아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음을 보았다. 그리하여 뛸듯이 기뻐하며 선한 마음이 드러나고 피어났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의복을 정돈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뒤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한 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의 세존이시여, 안주하시는 대성이시여,저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교법에 귀의하고 성스런 승단에 귀의합니다. 부처님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법을 설해주십시오. 경을 듣는다면 건립하고 받들어 행할 것이며 중생의 탐착하고 취착하는 행을 제거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른 견해를 일으키어 경전을 설할 것입니다.’
010_0338_c_19L於是族姓子仙見無垢稱王如來至眞等正覺好巍巍猶須彌山威神光明踰於日神妙聖達爲天人尊諸根寂定若虛空不增不減歡喜踊躍善心顯發卽從坐起更整衣服偏袒右肩右膝著地叉手白佛是我世尊安住大聖我歸命佛及法聖衆唯佛世尊爲我說法若聞經者建立奉行蠲除衆生所貪受行興于正見而說經典
그때 족성자야, 그 무구칭왕 여래ㆍ지진ㆍ정등각은 선인을 인연으로 하여 여러 천자와 여러 보살을 위하여 이 등집중덕삼매의 정(定)을 분별하여 설하셨다. 그러자 모인 대중 가운데서 이미 과거에 도리와 이치에 입각해 짓고 행하고 닦고 다스린 8천의 천자가 곧 법인(法忍)을 체득하였다.
울달 선인은 이 삼매에 관해 듣고는 뛸 듯이 기뻐하고 환희하며 미묘한 가운데에 들어갔다. 그리고 즉시 다함이 없는 변재를 얻었다. 그때 그 여래는 여덟 문장의 구절을 설하시면서 자신의 가르침을 다시 포섭하고 취하셨다.
010_0339_a_05L時族姓子彼無垢稱王如來至眞等正覺緣仙士故爲諸天子及諸菩薩分別說此等集衆德三昧之定於衆會中八千天子往古造行修治誼理卽逮法忍上勝仙士聞是三昧踊躍歡喜入於微妙尋時逮得無盡辯才時彼如來說八章句又復攝取
어떤 것들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본래 청정하니 생각과 집착으로부터 근원에 이르면 자연히 청정하기 때문이다. 둘째, 제법은 무루(無漏)이니 일체의 여러 누(漏)가 모두 다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제법에는 집착함이 없으니 모두가 일체의 집착할 바를 건넜기 때문이다. 넷째, 제법은 허망하지 않고 또한 나와 남이 뚜렷이 있는 것이 아니니 일체의 여러 법문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제법은 어떠한 문(門)이라도 되니 일체의 여러 법문은 두루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섯째, 제법에는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니 제법은 오는 것을 부수고 또한 일체의 거취를 단멸하고 제거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제법은 평등하니 삼세라고 해도 과거와 미래와 현재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덟째, 그리하여 두 가지란 없는 것이다.
울달이여, 이것이 여덟 문장의 구절을 설한 것이니 일체를 계몽하고 제도하고 싫어하게 하여 온갖 환난을 없앤다.’
010_0339_a_12L何等爲八一切諸法皆爲本淨從想著致原自然淨也諸法無漏一切諸漏皆爲盡故也諸法無著皆度一切諸所著故諸法不虛亦無有明吾我及人等一切諸法門故也諸法何門普現一切諸法門故也諸法無來亦無往諸法懷來斷除一切諸所趣故也諸法平等於三世無去來今故也無有二是爲上勝八章句說一切啓厭諸所有無有衆患
010_0339_b_02L부처님께서 울달 선인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여덟 문의 구절이 있으니 둘이 없음에 이른다. 어떤 것들이 여덟인가? 첫째, 제법은 임시로 호칭되는 것이니 이름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둘째, 제법은 모양과 색을 지니는 것이니 이름을 따라 일어나기 때문이다. 셋째, 제법은 합해지고 모여진 것이니 문자에 의지하고 집착하기 때문이다.넷째, 제법은 스스로를 식별하는 것이니 자의적인 데 말미암기 때문이다. 다섯째, 제법은 저절로 그러한 것이니 무명이 저절로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제법에는 다함이 있으니 익히고 행한 것이 어리석기 때문이다. 일곱째, 제법에는 문을 건립할 처소가 없으니 머무는 것이 무상하기 때문이다. 여덟째, 제법은 평등하니 문을 향하여 하나로 정진하며 나아가기 때문이다.
울달이여, 이것이 여덟 구절의 문이니 본래 둘이 없으면서도 둘에 이르는 것이다.’
010_0339_a_22L佛告上勝仙士有八門句至無有二何謂八諸法假號倚名故也諸法像猶從名興故也諸法合會依著字故也諸法識自由恣故也諸法自然則以無明自然故也諸法爲盡習行愚故也諸法無處立於門者住無常故也諸法平等以一精進趣於門故是爲上勝八句門也本無有二而致於二
부처님께서 울달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여덟 정진의 구절이 있으니 다함이 없는 것에 이르게 하여 자재로움을 얻게 한다. 어떤 것들이 여덟인가? 첫째, 없다[無]는 것이다. 이것은 정진을 수습하는 일로서 권하고 돕고 주문을 외우고 서원하여 수습해야 할 경전이 본래 없었던 곳에서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둘째, 저것[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진을 행하는 구절로서 궁극적인 법의 도리를 보여주고 드러내는 것이다. 셋째, 아니다[不]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진을 준수하는 구절로서 명색을 제거하기 위하여 법을 보여주고 드러내는 것이다. 경전에서 설한 법은 모두 버릴 것을 명한다. 넷째, 남이다[他]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진을 받들어서 고요한 법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섯째, 여섯[六]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진에 뜻을 두어 경의 법을 강설하여 일체의 여러 가지 막히고 걸리는 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것이다. 여섯째, 본래 없다[無本]는 것이다. 이것은 정진을 염하는 구절로서 여래의 본래 없는 법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일곱째, 원인[因]이라는 것이다. 정진하여 일체의 연고가 되는 법을 드러내어 죄와 복을 다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덟째, 동등하다[等]는 것이다. 이것은 정진의 삼매로서 제법의 분별과 거취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울달이여, 이것이 여덟 정진의 구절이니 변재가 다함이 없다.’
010_0339_b_08L佛告上勝復有八精進句至無有盡而得自在何謂八無者修精進事助呪願所修經典爲現無處彼者精進句便能示現究竟法誼不者精進句爲除名色爲示現法所說經法悉令蠲除他者奉于精進現寂然六者志于精進講說經法超度一切諸所罣礙無本者念精進句爲現如來無本之法因者精進爲現一切緣法罪福爲盡等者精進三昧示現諸法分別所趣是爲上勝八精進句無盡辯才
010_0339_c_02L부처님께서 울달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미묘한 법의 구절을 이루는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제법이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고 요달한다. 어떤 것들이 여덟인가? 첫째, 공성이라는 인의 구절이니, 의지하는 바가 없이 법을 드러내는 것이다. 둘째, 무상(無相)이라는 인(印)의 구절이니, 건립하는 바가 없이 경전을 드러내는 것이다. 셋째, 무원(無願)이라는 인의 구절이니, 의지하지 않고 기대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구하지 않으면서 법을 드러내는 것이다. 넷째, 궁극적인 끝이라는 인의 구절이다. 이것은 본래 공성이라는 구절이니동등하게 제어하면서 경전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섯째, 법계라는 인의 구절이니, 제법을 동등하게 제어하면서도 근본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섯째, 본래 없다는 인의 구절이니, 이것은 제법에 현재 들어가는 것이다. 일곱째, 여(如)와 같다는 인의 구절이니, 과거ㆍ미래ㆍ현재를 제거하면서 본래의 법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덟째, 멸진(滅盡)이라는 인의 구절이니, 궁극적인 멸진과 제법의 영원한 제거에 의해 본래의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울달이여, 이것이 여덟 인의 구절이니 모두 빠짐없이 제법을 평등하게 분별하여 성취할 수 있게 한다.
010_0339_b_20L佛告上勝復有八法爲妙法句覺了諸法爲志平等何謂八空爲印句無所倚而爲現法無想印句無所建立而現經典無願印句不依不倚不求而爲現法本際印句爲本空而等御之爲現經典法界印句御諸法而爲本現無本印句現入諸猶如印句蠲除去今所本現法滅盡印句究竟滅盡永除諸法之所本現是爲上勝八印句也皆悉分別平等諸法而得成就
울달이여, 그러므로 자재의 구절과 문의 구절과 정진의 구절과 여러 인(印)의 구절에 대해 항상 안온하고 상세하게 그 구절을 행하고 정진하며 배워야 한다.’
그와 같이 족성자야, 그 무구칭왕은 질문한 바를 분별하고 이러한 앎을 남긴 뒤 그 세계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다른 보살 곧 오천억 백천해 나유타 보살도 그 잠깐 사이에 스스로 뜻을 일으키고 나서 짧은 시간에 자신들의 부처님의 국토로 돌아갔다. 그러나 비록 돌아갔다 하더라도 감도 없고 옴도 없으니 그 국토의 인민들은 여래가 가고 오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010_0339_c_08L是故於斯上勝自在之句及所問句精進句幷諸印句常當安詳順行其句而精進學如是族姓子於彼無垢稱王分別所問於此遣智至彼世界及餘菩薩五千億百千姟菩薩斯須之閒如發意頃自還佛土雖還本土無去無來其土人民不見如來爲去爲來
010_0340_a_02L여기에서 족성자야, 울달 선인은 다함이 없는 변재를 얻어 그 뜻이 의혹하거나 망령되지 않고 또한 잃는 바도 없었다. 또한 여러 천신이 옹호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천신을 구호하고 온갖 악마를 항복시키고 외도와 이학(異學)들도 항복시켰다. 지방과 나라와 현과 읍과 고을과 성과 큰 지방으로 들어가 일체의 사람들을 위하여 경의 법을 강설하였다.
곧 이 등집중덕삼매를 분별하고 연설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천 년이 가득 차도록 이 경전을 선양하고 드러내어 8만 4천의 군맹의 무리들을 개화시켜 성문으로 머물게 하였다. 그리고 8만 4천의 보통 존재들을 모두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에 뜻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리고 8만 4천의 보통 사람들을 권하고 도와서 뒤에 모두 전륜성왕이 되게 하였다.그리고 각각 8만 4천의 중생으로 하여금 제석천이 되게 하고 범천이 되게 하고 자애를 닦게 하고 슬픔을 닦게 하고 기쁨을 닦게 하고 평정을 닦게 하였다.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얻었다.
울달 선인은 뒤에 선인으로서 죽게 되자 무구칭왕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의 국토에 태어났다. 그리고 1만 4천 천자와 함께 보등무구 세계에서 머물렀다.”
010_0339_c_16L於是族姓子上勝仙士獲無盡意不疑妄亦無所失得爲諸天之所擁護救護諸天降伏衆魔及外異行入郡國縣邑州域大邦爲一切人講說經法分別演斯等集衆德三具足千歲宣現此典開化八萬四千群萌之類住於聲聞發起八萬四千衆生志於緣覺八萬四千黎庶皆發無上正眞道意勸助八萬四千蒸民後悉當爲轉輪聖王八萬四千建立帝釋梵天慈悲喜護無央數人得生天上上勝仙士至于末後仙沒之生於無垢稱王如來至眞正覺之在於普等無垢世界與萬四千天子俱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족성자야, 그때의 울달 선인이 다른 사람이라고 알려고 하는가? 그렇게 보지 말라.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극한 정성으로 올바른 서원을 건립하자 아래 방향의 세계에 계시던 무구칭왕 여래가 나에게 와서 이르렀던 것이다.
010_0340_a_07L佛言族姓子欲知爾時上勝仙士爲異人乎勿造斯觀所以者何吾是也吾以至誠建立心願卽致下方所在世界無垢稱王如來至
그러므로 족성자야, 마땅히 이렇게 보아야 한다. 법을 즐거워하는 보살에게는 여래가 일찍이 멸도를 취하는 일이 없다. 바른 법의 가르침도 멸진하지 않는다. 그 법을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자가 보살이 되면 다른 방위의 세계에 있는 부처님 세존이 곧 그의 눈앞에 나타난다.
만일 바위 위에 있든지 나무 밑에 있든지 한가한 곳에 혼자 거주하든지 사람들 가운데 앉아 있든지 즉시에 총지문(總持門:다라니문)을 얻어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손바닥 위에 놓이기도 하고 어깨에 걸친 천조각 위에 나타나기도 한다. 머리 위에 있기도 하고 정수리 위에 있기도 하니, 가까이 있어 멀지 않다.
010_0340_a_10L以是之故族姓子當作是觀於樂法菩薩如來未曾取滅度正法之教亦無滅盡其好樂法爲菩薩者他方世界諸佛世尊則現目前樂法菩薩在巖處若在樹下獨閑居者若中閒卽時得見受摠持門置于手掌若現裓上若在頭上若在頂上近而不
법을 즐거워하는 보살은 이미 일찍이 과거의 여러 부처님을 보았던 자이다. 그리고 천인들이 그 변재를 일으키니 그는 또한 변재의 지혜를 따르고 받아들이려 한다. 법을 좋아하는 보살은 이 경전에 있어 궁극에 이르도록 다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여러 부처님 세존 및 여러 천인들이 그 서원을 빼앗지 않으며 도에서 건립한 바는 자재를 얻은 것과 같아, 머물러 있고자 한다면 백 세이든 천 세이든 일 겁이든 일 겁이 지나든 자신의 욕구로 말미암아 얻게 된다.
법을 좋아하는 보살은 늙음과 병과 죽음을 제거하기 위해 그 마음을 일어나게 한다. 그 뜻이 머무는 바는 견고하고 강건하고 오래되고 굳은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변재의 지혜를 제어한다. 또한 법을 좋아하는 보살은 일찍이 타인을 범하려는 뜻을 일으킨 적이 없다.
010_0340_a_18L樂法菩薩已爲曾見過去諸佛諸天人發其辯才亦復從受辯才之樂法菩薩於此經典無有窮盡佛世尊及諸天人不奪其願道所建立猶得自在欲得住立百歲千歲過劫亦得由己樂法菩薩除老死興發其心其意所在堅强久固於大智辯才之慧樂法菩薩未曾發意犯於他人
010_0340_b_02L그러므로 이구위야, 이 널리 듣는 것이 쌓게 되는 행에 대하여 들었다면 준수하고 받들고 정진하여 이러한 이름의 덕을 잡고 획득해야 한다. 또한 이것을 더 넘어가서 셀 수 없이 배가해야 한다.
만일 어떤 보살이 두루한 복덕의 곳간을 얻으려 하고 그것에 이르려 욕구한다면 그는 경사[慶]가 끝이 없고 기존의 복록이 무궁하게 되고 보살의 두터운 공덕은 한량없고 측량하거나 한계를 지을 수 없고 그 궁극이나 그 끝을 다할 수 없다.
이구위야, 큰 바다의 물은 그 물방울을 셀 수 있고 그 한량을 측정해 알아서 그 바닥에 이를 수 있다 하더라도 보살이 일으키는 세 가지 일인 계율을 지키는 것과 널리 듣는 것과 은혜로운 보시는 그보다 더 수승할 수 없고 그 끝을 결코 한계 지을 수 없다.
삼천대천세계는 오히려 측량하여 그 무게를 알 수 있고 아울러 그 끝을 다할 수 있다 하더라도 보살이 일으키는 세 가지 일인 계율을 지키는 것과 널리 듣는 것과 보시의 도는 한계를 지을 수 없고 양을 잴 수 없다.
010_0340_b_03L以是之故離垢威聞斯博聞所積行者遵奉精進便當逮獲於此名德當復過是復倍無數若有菩薩欲得獲致福藏德普慶無終旣祿無窮已菩薩所厚功祚無量不可稱限無能盡極其邊際者離垢威其大海水尚可數渧測知限量得其底泥菩薩所興三事——戒施惠可勝限得其邊際三千大千世界尚可稱量知其銖兩盡其邊際欲盡菩薩所興三事戒聞施道不可限量
족성자야, 이것이 세 가지 일을 행하는 품이다. 그런데 세 가지 일 가운데 널리 듣는 것이 존귀하다. 수승하고 장대하고 필적할 만한 범주가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그것은 수미산왕과 같으니 계율을 지키는 것과 은혜로운 보시는 수미산 곁에 있는 겨자와 같다. 그러므로 널리 듣는 것은 수미산의 왕과 같다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나는 새가 허공에 높이 날아올라 그림자로 가리는 것이 어찌 허공과 같을 수 있겠는가? 계율을 지키는 것과 은혜로운 보시라는 것은 그와 같다. 또한 비유하면 허공이 크고 넓어 끝이 없는 것과 같으니, 널리 듣는 것의 덕도 그와 같다.
010_0340_b_13L爲族姓子三事行品三事之中博聞爲尊爲勝爲長爲無疇疋譬如須彌山王持戒施惠猶如芥子在須彌山當觀博聞則須彌山王也譬如飛鳥翺翔虛空足影所翳寧幾如乎施惠猶如斯也譬如虛空弘普無博聞之德其若茲矣
010_0340_c_02L왜냐하면 족성자야, 보시에는 두 가지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빈궁함을 떠나는 것과 거대한 부자가 되는 것이다. 계율에도 두 가지 이익이 있다. 악취(惡趣)에서 제도되는 것과 천상으로 올라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널리 듣는 것에도 두 가지 이익이 있다. 성스러운 지혜를 얻는 것과 사악한 의혹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시라는 것은 여러 누(漏)와 받는 바 음(陰)에서 떠나지 못한다. 그리고 계율을 간직한다는 것도 받는 바 음 역시 누와 함께 한다. 그러나 널리 듣는다는 것은 여러 누도 없고 또한 음을 받지 않는다.그러므로 이구위야, 이것을 일컬어 보살은 응당 널리 듣는 것에 상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010_0340_b_20L所以者何姓子施有二益離貧匱得大富戒有二益度惡趣生昇天聞有二益得聖除邪疑其布施者不離諸漏所受之陰其持戒者所受諸陰亦與漏俱其博聞者無有諸漏亦不受陰以是之故離垢威斯謂菩薩博聞之應
부처님께서 보시와 계율과 널리 듣는 것에 대하여 설하셨을 때 3만 2천의 군생들이 본래 심었던 온갖 덕으로 말미암아 모두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에 뜻을 일으켰다. 그리고 5백 비구가 누를 다하고 마음이 해탈하여 청정한 법의 눈을 얻었다.
010_0340_c_03L說施博聞之時三萬二千群生殖衆德本皆發無上正眞道德五百比丘漏盡意解得法眼淨
그때 이구위 역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은 몇 가지 법을 행하면 빨리 생겨남이 없는 법인[不起法忍:無生法忍]을 얻게 됩니까?”
010_0340_c_06L於是離垢威力士白佛言菩薩幾法疾得不起法忍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족성자야,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의 행이 있어 빨리 불기법인을 얻게 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몸을 그림자와 같다고 관찰하여 해탈을 얻는다. 둘째, 모든 법에 대해 메아리와 같다고 관찰한다. 셋째, 그 마음이 환화(幻化)와 같다고 밝게 아는 것이다. 넷째, 온갖 법이 모두 멸진으로 돌아간다고 관찰한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어 재빨리 불기법인을 얻게 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자애를 널리 닦고 크게 하여 여러 중생에게 더한다. 그리하여 설령 유학(有學)인 자가 사람이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깨달아 이해하도록 권한다. 둘째, 일체의 제법에 다함이 없음을 기필코 알고 어떤 일도 조작하지 않는다. 셋째, 여러 부처님의 법을 모두 다 두루 보되 육안(肉眼)에 의하지도 않고 천안(天眼)도 아니고 또한 법안(法眼)에 의해서도 아니니 의지하거나 기대는 바가 없다. 넷째, 마음이 들어가는 바를 분명히 깨닫되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마음을 보는 것도 아니고 또한 인연이 모이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40_c_08L佛言族姓子菩薩有四法行疾得不起法忍何謂四觀身如影而得解脫入於諸法如呼聲響曉了其心猶如幻化察一切法皆歸盡滅是爲四菩薩疾得不起法忍復有四法何謂四普修弘慈加諸衆生設使學者起於人想勸使曉一切諸法令知盡無不造有事皆睹見諸佛之法不以肉眼亦非天亦非法眼無所依倚分明曉了心之所入亦無有心亦不見心亦無緣是爲四
010_0341_a_02L다시 네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일체의 소유물을 보시하되 아까워하지 않는 것, 사견을 포기하여 버리는 것, 청정한 금기를 받는 것, 고요하여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인욕을 준수하는 힘으로 모든 법에 들어가는 것, 모두 알며 다하도록 찾는 것, 정진을 숭상하는 것, 담백한 법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선정을 체득하여 의지하는 바가 없는 것, 지혜를 관찰하니 가볍게 희론하지 않는 것, 권화 방편을 섭수하여 중생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 것, 행할 바를 모두 갖추니 동등하지 않고 비교할 수 없는 것에 들어가는 것이다.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40_c_19L復有四何謂四一切所有施而不悋棄捐邪見奉淸淨禁寂除塵勞是爲四復有四何謂四遵忍辱力入于諸法悉知盡索而崇精進澹泊法是爲四復有四何謂四逮得禪定則無所倚察於智慧亦不輕戲攝㩲方便不著衆生皆具所行入無等倫是爲四
다시 네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항상 큰 자애를 행하여 중생을 인도하고 이익 되게 하는 것, 큰 슬픔을 구족하여 윤회를 싫어하지 않는 것, 큰 기쁨을 행하여 법을 흔연히 즐거워하는 것, 큰 평정을 행하여 여러 가지 기댈 만한 집착을 제거한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세 가지 해탈문을 부분마다 증명하는 것,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삼세를 제거하는 것, 삼계를 넘어서는 것, 일체법이 본래 청정하여 더러운 것이 없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010_0341_a_03L復有四何謂四常行大慈導利衆生具足大悲不厭終始于大喜欣樂於法行于大護除諸倚是爲四復有四何謂四證明部分於三脫門除諸三世過去超度三界觀一切法本淨無穢佛言離垢是爲四法行菩薩大士疾得不起法忍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구위야, 이것이 네 가지 법을 행하는 것이니 보살 대사는 빨리 불기법인을 얻게 된다.”
부처님께서 이것을 설하실 때 이구위보살이 불기법인을 체득하였다. 그리하여 환희하고 기뻐서 허공으로 뛰어올랐으니 땅에서 넉 장 아홉 척을 나아갔다. 그리고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종류로 진동하고 큰 광명이 세계를 두루 비추었다. 천상의 꽃이 내리고 백천 가지의 기악이 연주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울렸다.
010_0341_a_10L佛說此時離垢威菩薩逮得不起法歡喜踊躍昇處虛空去地四丈九三千大千世界六反震動其大光明普照世界而雨天花百千伎樂不鼓自鳴
그때 세존은 이구위보살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는 때마침 흔연히 미소를 지으시니 오색의 광명이 입에서 나왔다. 그것은 시방의 셀 수 없는 부처님 국토를 비추고 다시 돌아와 세 번 돌고는 정수리로 들어갔다. 이에 현자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의복을 정돈한 뒤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댄 뒤에 합장한 채 부처님께 게송으로 찬탄하며 말씀드렸다.
010_0341_a_15L於時世尊知離垢威菩薩所尋時欣笑五色光從口出照於十方無數佛國還繞三帀從頂上入者阿難卽從坐起更整衣服偏袒右肩右膝著地叉手白佛以偈讚曰

존귀하고 청정한 지혜를 얻으시어
그 눈은 깨끗하고 밝고 훌륭합니다.
여러 감관은 고요하고 안정되며
담백하시어 피안으로 건넜습니다.
010_0341_a_19L得尊淨智慧
其目淸明好
諸根爲寂定
澹泊度無極

광명이 일곱 척을 비추이고
금색의 얼굴이 신비하고 우뚝 솟았습니다.
어떤 이유로 즐거이 미소를 드러내십니까.
원하건대 분별해 주소서.
010_0341_a_21L光明照七尺
金容神巍巍
何故現欣笑
唯願爲分別

여러 천신과 인간의 행을 아시고
그 마음과 뜻이 나아가는 바를 아시니
삼세에 걸쳐 청정하게
그 모습과 종류에 대해 보십니다.
010_0341_a_22L知諸天人行
心意所歸趣
三世之淸淨
睹之所像類

그 지혜는 항상 통달하여
막히거나 걸린 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즐거이 미소를 드러내셨는지
달과 같은 자비로써 설해 주소서.
010_0341_a_23L其慧常通達
未曾有罣礙
何故現欣笑
月姿哀爲說
010_0341_b_02L
과거세의 하늘 중의 하늘
미래세의 세존
지금 현재의 시방의 부처님은
지혜가 통달하여 끝이 없습니다.
010_0341_b_02L過世天中天
將來之世尊
今現十方佛
智慧暢無量

수행하신 바는 모두 청정하고 순백하니
온갖 병을 치유하십니다.
일체를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시니
원하건대 분별하여 설하소서.
010_0341_b_03L修行悉淸白
療愈若干病
一切靡不了
願爲分別說

이 여러 부처님의 국토에 있어
그 몸이 두루 주위에 가득하니
셀 수 없는 국토에 있어
음성이 빠짐없이 이릅니다.
010_0341_b_04L其身普周遍
於此諸佛國
言音悉暢達
無數之剎土

마음으로 일체의 사람을 향하되
항상 큰 자애를 크게 드리웁니다.
가장 수승하신 슬픔으로써 설해 주소서.
그 미소의 뜻을 부연하십시오.
010_0341_b_06L心向一切人
常垂弘大慈
最勝哀爲說
敷演斯笑意

궁구하시고 단련하신 법이 있으니
고요하여 달처럼 노니십니다.
달리 비유가 없으니 환상의 화작과 같으며
자연히 꿈과 같습니다.
010_0341_b_07L所在究練法
寂然如月遊
無喩如幻化
自然若如夢

획득하고 도달한 이익이라는 것은
항상 비에 피어오르는 물방울과 같습니다.
어떤 이유로 즐거이 미소를 드러내십니까?
다른 사자란 없는 유일한 사자시여.
010_0341_b_08L所獲致得利
常如雨泡起
何故現欣笑
無師子師子

공성을 알아 생각이 없으시며
원(願)과 해탈의 문을 넘어서 건너셨으며
제법은 자연스럽게
궁극적인 도리를 명료히 드러냅니다.
010_0341_b_10L解空無有想
超度願脫門
諸法爲自然
了現究竟誼

고요하고 침묵하며 항상 조화롭고 안정되니
노닐듯이 거닐되 허공과 같습니다.
원하건대 부처님은 그 뜻을 분별하소서.
무엇을 치료하고자 느끼셨기에 지금 웃으십니까?
010_0341_b_11L寂默常調定
遊步如虛空
願佛分別意
今笑何感療

누가 미묘한 마음을 일으켜
그 뜻으로 존귀한 깨달음의 지혜를 원합니까?
누가 지금 힘으로 악마를 제거하며
응당 나무의 왕 아래에 앉겠습니까?
010_0341_b_12L孰爲發妙心
志願尊覺慧
誰令力除魔
應坐樹王下

누가 오늘 가장 수승한 자로서
옹호를 받게 되겠습니까?
어떤 이유로 흔연히 미소를 드러내십니까?
큰 영웅이시여, 말씀을 일으키어 남기소서.
010_0341_b_14L最勝今日誰
而爲超擁護
何故現欣笑
大雄發遣說

여러 성문의 무리는
능히 이 땅을 밟을 수 없습니다.
일체의 연각도
이 길을 감히 체득할 수는 없습니다.
010_0341_b_15L諸聲聞之衆
不能蹈斯地
一切之緣覺
莫敢逮此道

이것은 여러 부처님의 경계이어서
그 덕은 큰 바다와 같습니다.
무엇을 느끼셨기에 혼연히 미소를 지었습니까?
수승한 분이시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그것을 설하소서.
010_0341_b_16L是諸佛境界
其德如大海
何感而欣笑
世勝哀說之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정녕 땅에서 솟아올라 넉 장 아홉 척을 떠나 허공에 머물러 있는 이구위를 보는가?”
010_0341_b_18L佛告阿難爾爲寧見離垢威踊在虛空去地四丈九尺乎
이에 대해 말씀드렸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이미 보았습니다.”
010_0341_b_20L對曰已見天中
010_0341_c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구위 역사 보살은 삼백의 헤아릴 수 없는 나유타의 겁을 지나서 마땅히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를 체득할 것이다. 그리고 최상의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그 명호를 역엄정왕(力嚴淨王)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위(天人師爲)ㆍ불중우(佛衆祐)라고 할 것이다. 청정(淸淨)이라고 이름하는 동방의 세계에 머물 것이며겁의 이름은 정탄(淨歎)이라고 할 것이다.
010_0341_b_21L佛言離垢威力士菩薩過三百不可計會劫當逮得無上正眞爲最正號力嚴淨王如來正眞等正覺行成爲善逝世閒解無上士道法御天人師爲佛衆祐在于東方世界名淸淨劫名淨歎
역엄정왕 여래의 청정한 세계는 부유함과 즐거움이 치성하며 인민은 안온하고 쌀과 곡식은 흔하게 널려 있다. 그 쾌락은 미치기 어렵고 여러 천신과 인민이 셀 수 없이 늘어간다. 그 국토의 백성이 입는 의복과 먹는 음식과 거주하는 집은 비유하면 욕계의 네 번째 하늘인 도솔천(兜率天)과 같다.
그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되 기이하고 특별한 다른 종류의 말씀은 없다. 오직 대승장경[菩薩篋藏]뿐이다. 그 부처님 국토에는 성문과 연각이란 이름조차 없으니 모두 순수한 보살로서 법인을 체득한 자들이다. 그 여러 보살의 무리는 매우 많아서 끝이 없다.
그리고 부처님의 수명은 한량없으니 그 국토에는 여덟 가지 곤란한 것이 없다. 온갖 악마를 항복받고 원수의 적들을 억제한다. 그리고 사악한 여러 외도와 이학(異學)의 무리들이 없다. 그 부처님 세계의 땅은 감색의 유리로 되어 있고 자마(紫磨) 황금이 그 사이에 나뉘어져 섞여 있다.”
010_0341_c_03L力嚴淨王如來淸淨世界富樂熾盛人民安隱米穀平賤快樂難及諸天人播殖無數彼國人民被服飮食居止舍宅譬如第四兜率天上其佛說法無有奇特異種之唯但宣暢菩薩篋藏其佛國土無有聲聞緣覺之名皆純菩薩逮得法諸菩薩衆甚多無極其佛壽命無有限量其土無有八據之難降伏衆魔抑制怨敵無有群邪諸外異道佛世界地紺琉璃紫磨黃金分錯其
그때 이구위보살은 허공에서 내려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절하고는 세존께 귀의하였다. 그리고는 부처님께 출가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010_0341_c_14L於是離垢威菩薩從虛空下稽首佛足歸命世尊從佛請求欲得出家
010_0342_a_02L그때 구쇄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말씀드렸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괴이하여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 지금 대성께서 경전을 강설하시는 것에 맞추어 허공에 있는 저 여러 천신들로서 명성과 덕망이 높고 미묘한 자들은 모두 여래께 왔습니다. 그리고 여래를 친견한 뒤 즉시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만함과 자신을 위대하다고 여기는 마음을 버리고 세존께 머리를 조아리고 몸을 던지며 스스로 귀의하고 있습니다.
대성이시여, 이 이구위 역사의 스스로 위대하다고 여기는 교만마저도 교화 하셔서 그로 하여금 부처님 계신 곳에 와서 위대한 법을 체득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중생의 무리들을 위하여 경의 법을 연설하시어 교만과 방자함을 제거하여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이구위보살 대사는 몇 분의 부처님 여래ㆍ지진ㆍ등정각에게서 온갖 덕의 근본을 심었기에빨리 이와 같은 신통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010_0341_c_15L爾時鉤鎖菩薩前白佛言天中天怪未曾有如今大聖講說經典其有諸天在於虛空名德高妙皆詣如來適見如來尋時歡喜棄捐貢高自大之念稽首世尊投身自歸大聖乃能開化於此離垢威力士憍高自大詣佛所逮得大法當爲無量不可思議衆生之類演說經法令除慢恣世尊其離垢威菩薩大士爲從幾如來至眞等正覺殖衆德本乃能疾逮如是神通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구쇄야, 이렇게 알아야 한다. 이 이구위 역사 보살은 일찍이 62억의 여러 부처님 대성을 만나 공양하였고 온갖 덕의 근본을 심었고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를 건립하였다. 다시 셀 수 없는 여러 부처님을 항상 받들어 섬기고 범행을 청정히 닦았던 것이다.”
010_0342_a_03L世尊告曰鉤鎖欲知其離垢威力士菩薩已曾得供養六十二億諸佛大聖殖衆德本建立無上正眞之道當復奉事無數諸佛修梵行
다시 구쇄가 아뢰었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이구위 역사는 어느 곳에서 덕이 없는 근본을 심어서 도에의 뜻을 잊었기에 마음으로 교만과 자신을 위대하다고 여기는 성품을 품고 세존이 계신 곳으로 와서 시험해보려고 하였습니까?”
010_0342_a_07L鉤鎖又問唯然世尊以何所殖無德之本而忘道意心懷憍慢自大之性來詣世尊欲有所試
부처님께서 구쇄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일의 법이 있다. 그것이 보살이 행할 때 도에의 뜻을 잊게 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마음으로 교만을 품는 것, 법을 공경하지 않는 것, 훌륭한 스승을 가볍고 쉽게 여기는 것, 뒤에 비방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성문의 승(乘)을 다시 익히고 즐거워하며 그들과 함께 돌아가는 것, 하천하게 제도하는 것에 뜻을 두어 즐거워하는 것, 보살을 비방하는 것, 법을 가르친 스승의 은혜를 잊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아첨하는 것, 법을 업신여기는 것, 두 가지 일로 스스로 생활하는 것, 이양을 추구하여 받들고 모셔지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악마의 일을 깨닫지 못하는 것, 죄에 덮여 있는 것, 법을 가리고 덮는 것, 뜻과 성품이 겁 많고 약한 것이다. 구쇄야, 이 네 가지 법이 보살로 하여금 도에의 뜻을 잃어버리게 한다.
010_0342_a_09L佛告鉤有四事法爲菩薩行而忘道意謂四心懷憍慢不恭敬法輕易善師從後謗議是爲四復有四法何謂四而復習樂聲聞之衆與同所歸志樂下度誹謗菩薩忘法師恩是爲四有四何謂四其行諛諂於法慢誕事自活求於利養而著奉侍是爲四復有四何謂四不覺魔事爲罪所蓋纏緜蔽法志性怯弱鉤鎖是爲四法菩薩忘失道意
010_0342_b_02L구쇄야, 또 이구위는 무엇 때문에 보살로서 행하다가 도에의 뜻을 잃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듣도록 해라.
옛날 과거세에 이 현겁 가운데에 최초로 한 부처님이 계셨다. 명호는 구루진(拘婁秦)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었다. 그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였을 그때 재물이 많고 세력이 크고 성이 귀하고 지극히 부유한 바라문이 있었다. 그에게 한 아들이 있었는데 악마에 의해 미혹당하여 스스로 높다고 여겼다.
그는 여래께서 긴 밤 동안 이익이 되는 법을 설하시는데도 찾아가 뵈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여러 장자들과 함께싸우고 다투고 욕하며 비방하는 경우가 많았다. 법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또한 법을 보지 못하였으며 법을 설하는 스승을 얻지 못하였고 또한 그 가르침을 공경하거나 계승하거나 순응하지도 않았다.
010_0342_a_19L鉤鎖又聽離垢威用何等故爲菩薩行而忘道意往古世此賢劫中初始有佛號曰拘婁秦如來至眞等正覺興出于世於彼世有善財大勢貴姓極富梵志時有一子魔所惑立自發貢高不欲往詣於如來所長益法與沙門梵志諸長者俱鬪諍罵詈多所誹謗不肯受法亦不見法不得法師亦不恭敬承順其教
당연히 그는 현세에서 다섯 가지 법을 어긴 것이다.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인가? 부처님을 떠나서 다시 친견하지 못하고 법을 듣지 않는 것, 다시는 보살의 업을 건립하지 않고 다시 자문하지도 않는 것, 마땅히 행할 것인데도 다시 온갖 덕의 근본을 망실하는 것, 도의 마음에 대하여 견고한 뜻이 없는 것, 선하지 못한 것을 섭취하여 즉시 도를 행하려는 마음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그때 그는 이렇게 다섯 가지 법에서 행하는 것을 떠났던 것이다.”
010_0342_b_05L當爾現世違失五法何謂五離於佛不復相見不得聞法不復建立菩薩之業不復諮問所當行者而復忘失衆德之本無堅固意在於道攝取不善尋時則離於道行心時尋離此五法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쇄야, 그때 유명하고 훌륭하고 재물 많고 세력이 크고 성(姓)이 귀한 그 바라문의 아들이 누군지 너는 알고자 하는가? 어찌 그가 다른 사람이었겠는가? 너는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의 이구위보살이 그이기 때문이다.
그 세상에 있을 때에 자신이 위대하다고 마음에 품고 있었기 때문에 곧 도를 닦으려는 뜻을 망실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다시 과거의 삶에서 덕의 근본과 여러 신통한 지혜의 마음을 보호하였고 다른 복이 있어 다시는 여러 신통한 지혜를 비방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역사가 되고 큰 세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성스런 취지를 계승하여 온갖 악을 짓지 않았다. 부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문득 스스로 일어나 와서 자기의 힘을 여래와 비교하려 한 것이다.
또한 세존이 보살의 힘에 대해 설하는 것을 듣고 곧 스스로를 높이는 것과 교만함과 방자함을 버렸다. 그리고 과거 세상에서 심어 왔던 온갖 선한 일의 근본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 법인(法忍)에 문득 이르렀다. 그리고 위신력과 신통한 지혜를 갖추었으면서 상념하는 바는 없는 것이다.”
010_0342_b_10L佛言鉤鎖欲知是時所名善財大勢貴姓梵志子乎是異人勿作斯觀所以者何則今離垢威菩薩是也於彼世時心懷自大尋則忘失所修道意久復將護宿命德本諸通慧心又有餘福不復誹謗於諸通慧故爲力士而有大勢承佛聖旨不爲衆惡聞佛音聲便自發來自以己力欲比如來又聞世尊說菩薩力尋卽棄捐貢高慢恣往古所殖衆善之本則現目前便逮法忍威神通慧無所想念
그때 역사 구쇄보살이 이구위에게 질문하였다.
“족성자여, 어떤 법을 일으켰기에 법인에 이르렀습니까?”
010_0342_b_21L爾時力士鉤鎖菩薩謂離垢威族姓子興發何法逮得法忍
“일체의 범부의 법을 일으켰습니다.”
010_0342_b_23L離垢威答曰發起一切凡夫之
“어떻게 일으켰습니까?”
又問云何而發
010_0342_c_02L“일으킨 것은 후에 궁극에 이른다 하더라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고 또한 달라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일으킨 것은 항상 의지하고 있는 것을 다시 있게 할 수 없고 또한 증득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010_0342_b_24L答曰所發起者後究竟永無所有亦非不異其所發常不復令有所依倚亦無所證
구쇄가 다시 질문하였다.
“족성자여, 범부의 법과 부처님의 법에는 어디에 차이가 있습니까? 정녕 몇 가지 차이가 있다고 하겠습니까?”
010_0342_c_03L鎖又問族姓子凡夫之法及與佛法有何差別寧有若干乎
“임시로 호칭하여 이름한다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도리3)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010_0342_c_05L卽便答曰號而名因有若干其誼無異
다시 질문하였다.
“족성자여, 범부의 법은 무엇으로 그 도리를 이해해야 합니까?”
010_0342_c_06L又問族姓子其凡夫法以何解誼
“상주하는 것이란 없으며 상념도 없습니다. 전도된 것도 없으니 그것이 도리입니다.”
010_0342_c_07L答曰常亦無想念無顚倒誼
다시 질문하였다.
“이른바 도리라고 하는 것은 어디로 나아가야 합니까?”
010_0342_c_08L又問族姓子所謂誼者何所歸趣
“구쇄여, 도리에 도달한다는 것은 또한 범부의 법을 제거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울러 부처님 도의 법을 획득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010_0342_c_09L答曰鉤鎖其達誼者亦不蠲除凡夫之法亦不獲於佛道法
다시 질문하였다.
“족성자여, 무엇을 법의 도리라고 합니까?”
又問族姓子何謂法誼
“둘이 없다는 도리가 모든 법의 도리입니다.”
010_0342_c_11L答曰無有二誼爲諸法誼
다시 질문하였다.
“바른 견해란 두 가지 인연에 말미암습니다. 하나는 타인에게서 듣는 것이고 둘은 사유하는 것이니, 그 행동은 거기에 갖추어지게 됩니다.”
그러자 이구위가 질문하였다.
“구쇄여, 여래께서는 단지 핵심이 되는 도리에 귀의하시는 까닭에 도리가 곧 핵심을 성취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인연으로 핵심이 도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미사여구를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010_0342_c_12L又問不曰其正見者有二因緣從他聞若思惟厥行猶具又問鉤鎖如來不說但歸要誼之故誼則成要因此何緣要得誼乎不取美辭
010_0343_a_02L다시 구쇄에게 질문하였다.
“가르침은 단지 핵심의 도리만을 취하는 것이 아닙니까? 마침내 보살의 미사여구를 훼손하거나 부수어 버리는 것 아닙니까?”
“잃어버린다든지 스스로 훼손한다는 것은 없습니다. 비록 미사여구의 도리를 얻는다고 하지만 그가 체득한 것에는 획득한 바가 없습니다. 그 보살은 핵심의 도리에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법에는 획득한 바가 없습니다. 그 보살은 핵심의 도리에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법의 도리를 설한 것입니다. 총기 있고 명철한 까닭입니다.
그는 체득하지도 않고 도리의 보답을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일체의 모든 법에 자재를 얻은 것과 같습니다. 존귀하고 훌륭하니 동등하거나 필적할 만한 자는 없습니다. 분별할 수 있는 한계까지 분별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소멸하고 멸도합니다. 과거와 미래에 영원히 고요하니 이것이 모습의 도리입니다. 세존께서 설한 것에 입각한 까닭입니다.
구쇄여, 그 도리에 귀의한다는 것은 곧 법을 제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생각한 것도 없고 제어한 것도 없다는 것은 버리지도 않고 제어하지도 않는 것입니다.그 생각한 바가 없다는 것이 곧 견고한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이 견고한 것을 일컬어 도리라고 합니다.”
010_0342_c_16L又問鉤鎖答曰教不但取要誼終不毀壞爲菩薩美辭乎則無有失自損毀也假使有得美辭誼者彼所逮者亦無所獲其菩薩者不歸於要誼而說法誼以聰哲故其不逮不用誼報一切諸法猶得自在爲長爲無等倫所可分別限時消滅究竟滅度本末永寂則爲相誼尊所說以故鉤鎖其歸命誼則不御亦無所念亦無御者不捨不御無所念則爲堅要其要堅者彼乃謂
구쇄가 다시 질문하였다.
“족성자여, 그 핵심의 도리에 돌아가는 것에 대해 그 방향을 계교할 수 있습니까? 핵심의 도리에 돌아가는 것은 곧 핵심되는 일체법에 돌아가는 것입니까?”
010_0343_a_04L鉤鎖又問族姓子豈有方計歸要誼彼則歸要一切法乎
“족성자여, 있습니다.”
010_0343_a_05L答曰族姓子
다시 질문하였다.
“무엇을 인연으로 합니까?”
又問以何因緣
“모든 법은 본래 없는 것이고 일체는 모두 공이며 모든 법은 담백한 것입니다. 만일 공의 도리에 입각해 핵심에 돌아간다면 핵심도 담백한 것이고 도리도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족성자여, 핵심의 도리에 돌아간다는 것은 일체의 모든 법에 돌아가는 도가 되는 것입니다.”
말하였다.
“족성자여,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모든 법이 모두 핵심의 도리에 돌아간다고 말씀하시거나 요지하신 것 아닙니까?”
010_0343_a_06L答曰諸法無一切悉空諸法澹泊假使歸要於空誼者要澹泊誼亦復如斯以是之族姓子其歸要誼則爲道歸一切諸法答曰族姓子佛不言曰了一切諸法悉歸要御
답하였다.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법에서 본래 도리의 근원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핵심에 돌아가게 되면 그것이 궁극적인 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문(門)은 제일의 도리입니다. 그러므로 말한 대로 마땅히 그대로의 것과 장소를 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행을 추구하는 자에게는 법은 없으며 또한 법이 아닌 것도 없습니다. 또한 일어나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습니다. 여러 현자와 성인의 도에는 두 가지 도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짓는 바도 없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고 또한 만드는 것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와 같이 하면 보살의 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에는 만드는 바가 없고 도리를 구하지도 못합니다. 또한 옳은 것은 착란되지 않습니다.”
이구위가 이러한 이야기를 설할 때에 5백 비구와 8백 천자가 티끌과 때를 멀리 떠나 청정한 법의 눈을 얻었다.
010_0343_a_11L答曰如斯以是之故一切諸法推究本誼根原所歸要者其究竟誼是等之門則第一誼如云何當求所如所也求如是行者設無有法亦非法亦無所起亦無所滅賢聖道無有二道亦無所作亦非不亦非無造如是則造菩薩之道無所造亦不求誼亦儀不錯亂離垢威說是語時五百比丘八百天子離塵垢得法眼淨
010_0343_b_02L이구위보살이 구쇄에게 말하였다.
“족성자여, 여래께서 설하신 바는 핵심의 도리에 돌아가는 것이니 미사여구를 취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도리를 헤아리는 자에게는 두 가지 행이 없습니다. 그 도리의 궁극에 이른 자에게는 또한 생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여래께서는 이 도리를 설하신 것입니다.
단지 핵심의 도리에 돌아갈 뿐 미사여구를 취하지 않습니다. 핵심의 도리에 돌아간 것이 아울러 미사여구일 뿐입니다. 본래 청정하고 평등하니 뜻의 성품은 자연스러워 초월하는 것마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여래께서는‘단지 핵심의 도리에 돌아갈 뿐 미사여구를 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010_0343_a_20L離垢威菩薩謂鉤鎖曰族姓子如來所說但歸要誼不取美辭計此誼者無有二行究竟其誼亦無所生是故如來說此誼耳歸要誼不取美辭其歸要誼幷及美本淨平等志性自然無所超越來故曰但歸要誼不取美辭
다시 족성자여, 여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두 가지 일에 의하여 바른 견해를 일으키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하나는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고 살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성찰한 것에 입각해 사유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교법과 계율에 대해 널리 듣지 못한 자는 비록 삼매에 순응한다 하더라도 윤회 속에 있으면서 자신을 높이 여기는 교만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법과 계율을 듣고 살펴라. 그리고 널리 듣고 많이 권하고 돕도록 하라. 경의 법을 들은 것을 빠짐없이 받들고 행하여라. 치료해야 할 자를 정화하여 현자와 성인의 도에 이르게 하라.’”
010_0343_b_03L復次族姓子如來所以說此言者以二事故興於正見何等爲二聽察他音緣省思惟其不博聞於法律者順以三昧在於終始墮于貢高類斯之故世尊告曰聽省法律乃爲博聞多所勸助以聽經法悉以奉行淨於所療至賢聖道
다시 질문하였다.
“비구는 어떻게 치료하는 행위를 사유합니까?”
010_0343_b_10L又問云何比丘思惟療行
“법으로써 치료하고 행하지만 또한 행한 바가 없습니다. 이것이 핵심되는 일을 사유하는 것이니 여기에 치료하는 행위가 있습니다. 족성자여, 이것이 치료하는 행위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다시 족성자여, 만일 보살이 치료하고 행한다면 음성을 일으키지도 않아야 하고 나의 자아라는 것을 일으키지도 않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행하게 되는 거처에 대해 강설합니다만 가는 자라고 설하든 돌아오는 자라고 설하든 일체는 모두 가는 일도 없고 얻는 바도 없습니다.
또한 과거에 이러한 여러 가지 일을 닦았다는 것도 없고 미래에 그러할 것이라는 것도 없고 현재에 이러한 여러 가지 일을 닦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일컬어 핵심을 사유하는 자는 그것으로써 치료하고 행한다고 합니다.
010_0343_b_11L答曰以法療行亦無所行是爲思惟要事有療行族姓子是爲療行之所謂者復次族姓子假使菩薩療行不發音聲不起吾我有所講說諸行處者若說去者若說還者一切皆亦無住亦無所得亦無過去亦無當來亦不現在修此諸事是謂思惟要者而以療行
010_0343_c_02L만일 모든 법을 보되 일체가 자연히 빠짐없이 돌아가 멸진하는 것을 본다면, 또는 그렇게 모든 법을 수용한다면 핵심을 사유하고 관찰하는 것이 있어 정화된 것입니다. 만일 일체의 모든 법이 본래 청정하고 동일한 모습이었음을 살피고 본다면 이 또한 핵심을 보는 것이 정화된 것입니다.
만일 일체의 모든 법이 자연히 본래부터 청정하게 일어난 것임을 본다면 이 또한 핵심을 보는 것이 정화된 것입니다. 만일 일체의 모든 법이 본래 청정하게 멸도된 것이라고 관찰하고 본다면 이 또한 핵심을 보는 것이 정화된 것입니다.
또한 고요하지도 않고 관찰한 바도 없으니 이것을 일컬어 관찰이라고 합니다.그리고 그 관찰한 바라고 하지만 관찰한 바도 없고 또한 본 바도 없는 것입니다. 만일 보는 것이 없고 관찰한 바도 없다면 본 바도 그와 같아 역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010_0343_b_18L設見諸法一切自然悉歸滅盡設受諸法思觀要淨假令察見一切諸法本淨同像亦睹要淨設見一切諸法諸法自然從本淨起亦觀要淨設使觀見一切諸法本末不生究竟無起究竟無滅亦觀要淨設使觀見一切諸法本淨滅度亦觀要淨亦不寂然亦無所觀是謂爲觀是所觀者亦無所觀亦無所見假使無見無所觀者所見如是亦不見不名曰有所見也
이에 세존이 이구위보살을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족성자야. 설한 바가 있다면 마땅히 네가 설한 것과 같아야 한다. 핵심을 사유하는 것에 있어 정화된 보살은 법에 있어 허망하지 않다. 그 핵심을 사유하는 것에 있어 정화된 보살은 법에 있어 음(陰)과 덮개[蓋]가 없다. 그 핵심을 사유하는 것에 있어 정화된 보살은 이 법이라는 것도 없고 해탈문도 역시 없다.
그 핵심을 사유하는 것에 있어 정화된 보살은 행한 법이 있다 해도 제거하는 바가 없다. 그러면서 또한 행한 바도 없고 가고 오는 것도 없다. 이것이 곧 동등하게 관찰하는 것으로 바른 견해인 것이다. 일체법을 평등하게 보는 까닭에 평등하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눈에 보이는 바와 같이 분명하다.”
010_0343_c_05L於是世尊讚離垢威菩薩曰善哉善哉族姓子有所說當如仁說其思要淨爲菩薩者不虛妄其思要淨爲菩薩者法無陰其思要淨爲菩薩者無有此法亦無脫門其思要淨爲菩薩者所行法者亦無所除亦無所行亦無去來則等觀爲正見也見一切法以平等亦不不等如有所見
다시 여쭈었다.
“어찌하여 일체의 모든 법이 평등하지 않게 됩니까?”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고 안 보이는 것은 안 보이는 것과 같다. 또한 족성자야, 이 모든 법이라는 것에는 흔쾌히 보는 것도 없고 보지 않는 것도 없다. 과거 또는 미래에 있어 평등하니 또한 생하는 바도 없다. 바로 이것을 일컫는 것이다. 또한 생하는 바도 없고 존재하는 바도 없다. 보는 바를 넘어서지도 않고 고요함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이것을 일컬어 평등이라고 한다.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존재하는 바도 없다. 또한 자연도 아니고 자연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것을 일컬어 평등이라고 한다.
그리고 말한 바라고 하는 것은 또한 말하고 행한 바도 없고 생하는 바도 없다. 또한 보는 것도 없고 또한 넘어서는 것도 없어 평등하고 고요하다. 이것을 일컬어 평등하게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평등한 것에 들어가는 까닭이다.”
010_0343_c_13L又問云何一切諸法而不等如有所見如無所見族姓子此諸法者亦無欣見亦無不見本末平等亦無所生此之謂也亦無所生亦無所有不越所見不入寂然此謂平等亦不不有亦無所有亦非自然非不自然是謂平等是所言者亦無所說行無所生亦無有見亦無越度平等寂然斯謂等觀以能入于平等故也
다시 여쭈었다.
“무엇 때문에 고요함에 평등히 들어가는 것이라고 이름합니까?”
010_0343_c_22L又復重問何故名曰平等入寂然乎
답하셨다.
“나의 자아에 대해서도 평등하고 자아가 아닌 것에 대해서도 평등하다. 일체의 모든 법은 형상이 없고 또한 훼손되는 바도 없다. 이것을 일컬어 고요함에 평등히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010_0343_c_23L答曰等於吾我亦等非我一切諸法亦無形像亦無毀呰是謂平等入于寂然
010_0344_a_02L이에 구쇄보살이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일찍이 없었던 것에 이르렀으며 고요함에 바르게 들어갔습니다. 모습으로 말미암은 것은 본래 깨끗이 멸도된 것입니다. 보살은 모두 그와 같이 모든 법을 압니다. 만일 이것을 듣고 믿고 이해하는 자는 어디에서 노닐고 거주한다 해도 중도에서 멸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010_0344_a_02L於是鉤鎖菩薩白佛言唯然世尊至未曾有正入寂所由相者本淨滅度菩薩皆知如是諸法若復聞者乃能信解有所遊居亦不中半而取滅度
부처님께서 구쇄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보살은 훌륭한 권화와 방편으로 즐거움을 삼아야 한다. 권화와 방편을 닦고 구족하고 행해야 한다. 일체의 마음을 일으켜 노닐고 거처할 네 가지 법에 돌아가야 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큰 자애를 행하고, 끝없는 슬픔을 지니고, 여러 신통한 지혜를 위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단절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만일 이 법을 받들고 선양하고 닦는다면 고요함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거취의 모습은 일체가 본래 청정하여 빠짐없이 멸도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써 여러 법의 행을 고요하게 하는데 이르니 이것을 듣고서 믿고 즐거워하면 어디에서 노닐고 거주한다 해도 중도에서 멸도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의 근원을 분별하니 그는 곧 적막하지만 담백한 것조차 없으며 또한 타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체의 중생을 포기하거나 버리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010_0344_a_06L佛告鉤鎖故菩薩善㩲方便而以爲樂以㩲方便修具足行發一切心歸於遊處四何等四行大慈無極哀爲諸通慧不斷佛教是爲四假使能奉宣修此則入寂然所趣之相一切本淨悉爲滅度以至寂寞諸法之行這聞此已則便信樂所可遊居亦不中半而取滅度是故分別諸法之原彼則寂寞亦無澹泊亦不墮落所以者何欲棄捨一切衆生
이구위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어디에서 보살은 순수하고 정숙합니까?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로 고요함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010_0344_a_16L離垢威菩薩白佛何所菩薩純淑如佛所言不墮寂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족성자야, 만일 보살에게 여러 견해가 없고 또한 상념도 없다면 이것이 순수하고 정숙한 것이다. 그런데 여러 성문과 일체의 중생은 평등을 닦지 않으며 부처님 법의 가르침을 떠난다. 또한 대승의 행을 권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여러 신통한 지혜를 의심하고 무원(無願)을 떠난다. 또한 고요한 경지로 멸도에 들어가지 않는다. 곧 그 가운데서 보살의 마음을 증득하려 하면서도 뜻은 성문과 연각에 있어서 멸도에 들어간다.
010_0344_a_18L世尊告曰族姓子假使菩薩無有諸見亦無想念是爲純淑於諸聲聞一切衆生不修平等離佛法教亦不勸樂大乘之行疑諸通慧離於無願亦不滅度入於寂滅則於其中證菩薩心志在聲聞緣覺而入滅度
010_0344_b_02L또한 족성자야, 보살이 만일 고요한 모습에 들어간다면 모두 일체의 제법을 분별한다. 발흥하는 것이 있다면 일체가모두 부처님과 교법과 승단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여러 신통한 지혜를 일으키고 그것에 거주하기 위하여 대승을 준수하고 수습한다. 일체의 군맹의 무리들을 불쌍히 여긴다. 두루 일체를 보아 뜻과 함께 원을 갖춘다. 일찍이 타인이 바라는 바를 단절케 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족성자야, 마땅히 이렇게 보아야 한다. 곧 보살을 헤아려 보면 모두 고요함에서 순수하고 정숙하게 노닌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010_0344_a_23L又族姓子菩薩若能入於寂然相者皆能分別一切諸法有所興發悉爲一切順佛法衆遵修大乘爲諸通慧之所興居愍傷一切群萌之類普見一切與志願俱未曾斷絕他人所僥以是之故族姓子當作斯觀計於菩薩而皆純淑遊於寂然
이구위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 보살의 행은 차이나고 특별합니다. 모두가 성문 및 연각이 미칠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010_0344_b_07L離垢威白佛言曾有世尊菩薩所行而有差特悉非聲聞緣覺之地所能及也
그때 구쇄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지금 박수(溥首) 동진(童眞)이 모임 가운데에 있는데 조용히 앉아 있을 뿐 이 삼매에 대하여 강설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문수사리가 마음속에서 사념하는 바를 살피시어 마음으로 박수 동진에게 요청하면서 관찰해 주십시오.”
010_0344_b_09L於是鉤鎖菩薩白佛言今此溥首童眞者在是會中靜然而坐亦不講說於此三昧世尊尋見文殊師利心之所念以心請觀溥首童眞
그러자 박수 동진이 구쇄보살에게 말하였다.
“보살이 행할 때는 공덕 때문에 부처님의 도를 준수하고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양(利養) 때문도 아니고 천상에 태어나는 것 때문도 아닙니다. 재산과 사업 때문도 아니고 명성을 듣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 덕을 찬탄 받고 그 공적을 선양받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의복ㆍ음식ㆍ걸상ㆍ잠자리ㆍ병에 필요한 의약품 때문도 아닙니다. 생활을 위한 업 때문도 아니고 국왕과 대신의 상과 하사물 때문에 부처님의 도를 준수하고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010_0344_b_13L溥首童眞謂鉤鎖菩菩薩所行不以功德遵修佛道以利養不以生天不以財業不以名嗟歎德稱宣暢其績不以衣食病瘦醫藥生活之業不以國王大臣賞賜故
구쇄가 다시 물었다.
“박수보살이여, 어떤 이유 때문에 보살도를 행합니까?”
010_0344_b_18L鉤鎖又問溥首菩薩以何等故行菩薩道
박수가 답하여 말하였다.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그리고 그를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법의 도리로써 군중을 개화하는 것입니다. 대승을 뜻하는 까닭에 허망한 여러 가지 힘들고 애쓰는 환난을 제거합니다.
고요함을 일으키는 까닭에 애쓰고 괴로운 바를 참습니다. 그리고 중생이 편안하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욕구합니다. 의심이 없으며 희망하는 것이 없는 까닭에 집착하는 바도 없고 의지하는 바도 없고 수용하는 바도 없고 오로지 거처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궁극적으로 좋다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010_0344_b_19L溥首答曰爲衆生故如愍傷之故以法之誼開化群黎大乘故除於虛妄諸勤勞患生寂然故已忍勞苦欲安衆生令得所願所狐疑無悕望故則無所著亦無所亦無所受亦不專處亦不究竟無有善哉
010_0344_c_02L또한 나의 자아라는 사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퇴전하지도 않고다시 되돌아가지도 않습니다.
만일 모든 법에 흔들리거나 구르는 것이 없다면 가만히 있지도 진동하지도 않으며 장차 간다는 것도 없습니다. 위험과 해로움도 없고 환희하는 것도 없습니다. 수척하지도 않고 자기 홀로 용맹하지도 않습니다. 승리하는 자도 없고 굴복하는 자도 없습니다. 넘어가는 것도 없고 초췌하지도 않습니다.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바가 없으며 무서워하지도 않고 떨지도 않습니다. 졸속하지도 않고 조폭하지도 않으며 스스로 위대하다는 것도 없습니다.
또한 마음과 뜻이 없으면서 항상 적막한 곳에 거처합니다. 항상 무념으로 머물면서 동일한 도리와 일승과 하나의 가르침과 동일한 형상으로 항상 동등한 행을 실천합니다. 빠짐없이 중생을 구호하고 제도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010_0344_c_02L亦不吾我無有斯念亦不退亦不還反設使諸法無所動轉不肅震無有將往無所危害無有歡亦不愁慼己獨勇猛無能勝者無能伏者莫能踰者亦不憔悴無所畏難不恐不懼不卒不暴無有自大亦無心意常處寂寞常住無念同誼一乘一教同像常作等行悉欲救度衆生之故
박수가 말하였다.
“족성자여, 보살의 소행은 그와 같이 비교할 만합니다. 그런 까닭에 행을 세우는 것입니다.”
010_0344_c_10L溥首言族姓子菩薩所行如斯比類是故造行
구쇄가 다시 질문하였다.
“박수여, 어디에 보시하는 것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이 됩니까?”
010_0344_c_11L鉤鎖又問溥首何所施造爲菩薩行
박수가 답하였다.
“족성자여, 만일 그 보살이 멸진을 행하지 않는다 해도 일어나는 것도 없고 또한 일어나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여러 가지가 멸진하게 되니 그것은 마땅히 멸진할 것으로서 멸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 과거와 미래를 염(念)하지 않기에 일어나는 것이 없으며 생하는 바도 또한 없는 것입니다. 또한 총명하게 행을 세운다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것이 보살행이며 또한 마땅한 도의 행입니다.
010_0344_c_12L溥首答曰設族姓子其爲菩薩不行於盡亦無所起亦無不起究竟諸盡盡所當盡不念諸本末無起亦無所生亦無聰明造行是爲菩薩行乃應道行
다시 구쇄여, 보살 대사는 과거의 뜻을 멸진하려고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미래의 뜻을 일으키고 행하는 바도 없습니다. 또한 현재의 뜻에서 머무는 바도 없고 행하는 바도 없습니다. 마음이 또한 과거ㆍ미래ㆍ현재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준수하고 수행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또한 마땅한 도의 행입니다.
다시 구쇄여, 보시가 바로 도의 마음이니 중생과 여래에는 둘이 없습니다. 계율을 간직하는 것과 인욕과 정진과 한 마음과 지혜가 바로 도이니 중생과 여래에게는 둘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보살이 항상 이 여섯 도무극(度無極:波羅蜜多)을 준수하여 그것에서 행한 바가 있다면 그 행의 모습에서는 윤회를 근심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준수하고 수행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또한 마땅한 도의 행입니다.”
010_0344_c_16L復次鉤鎖薩大士不行盡過去意於當來意無所起行於現在意而無所住亦無所心亦不著去今也遵修如是爲菩薩行乃應道行復次鉤鎖布施道心衆生如來則無有二持戒忍辱一心智慧道及衆生至于如來則無有二假使菩薩常遵此六度無極有所行者所行之相不憂終始遵修如此爲菩薩行乃應道行
等集衆德三昧經卷中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원어가 ‘uttara’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구마라집 본에는 ‘최승(最勝)’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2. 2)원문에는 ‘상승(上勝)’으로 되어 있으나 원어는 같다고 봐서 울달로 옮겨 통일하였다. 이하도 그러하다.
  3. 3)『구마라집』 본에는 ‘의미[義]’로 되어 있다. 아마 원어 ‘artha’의 번역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