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等集衆德三昧經卷下

ABC_IT_K0140_T_003
010_0345_b_01L
등집중덕삼매경 하권
010_0345_b_01L等集衆德三昧經卷下


서진 월지 축법호 한역
최봉수 번역
010_0345_b_02L西晉月氏三藏竺法護譯


“다시 구쇄여, 보살이 준수해야 할 것은 색이 공하다고 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니 색은 자체가 공하기 때문입니다. 또 통양(痛痒:受)과 사상(思想:想)과 생사(生死:行)와 식(識)이 공하다고 보지 말아야 하니, 식은 자연히 공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색이 공하다고 보지 않게 해야 하니 색은 바로 공하기 때문입니다. 근본과 지말이 다 없는 것을 자연이라고 합니다. 통양ㆍ사상ㆍ생사ㆍ식이 또한 공이 됩니다. 다하고자 하는 것은 근본과 지말이 다 공해집니다. 그러므로 식은 공이고 또한 자연이라고 합니다. 만일 이미 다 소진했다면 일체의 모든 법도 또한 다시 마땅히 소진합니다. 만일 모든 법이 소진하면 색도 또한 마땅히 소진합니다. 통양ㆍ사상ㆍ생사ㆍ식도 그러하니 식도 곧 소진합니다.
만일 일체의 여러 색이 소진한다면 또한 일체의 모든 법도 또한 마땅히 소진합니다. 만일 모든 법이 소진한다면 식도 또한 마땅히 소진할 것입니다. 만일 보살이 그와 같이 준수하고 수행한다면 그것이 보살행이며 또한 마땅한 도의 행입니다.
010_0345_b_03L復次鉤鎖菩薩所遵不行色空色者自空亦不空痛痒思想生死識行自然空亦不教人行色爲空色者則本末盡無則曰自然痛痒思想識則亦爲空若欲盡者本末盡空故曰識空亦曰自然若已盡者一切諸法亦當復盡若諸法盡色亦當盡痛痒思想生死識以便盡假使一切諸色盡者一切諸法亦當復盡使諸法盡者識亦當盡假使菩薩遵修如是爲菩薩行則應道行
다시 구쇄보살이여, 보살이 행하는 것에 입각하면 범부의 법을 단절하거나 제거하지 않으면서 행합니다. 부처님 법에 이르기까지 역시 그러하니 힘써 생사에서 제도하지 않으면서 행합니다. 또한 멸도하는 일을 구족하지 않습니다.
또한 선하지 않은 법이 일어나는 것을 보지도 않으며 여러 선한 법의 유래도 관찰하지 않습니다. 지혜에 입각하지 않는 까닭에 식별을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식별을 사용하지 않는 까닭에 지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 법계(法界)를 파괴하지 않으며 행합니다. 그리하여 믿고 기뻐하는 바가 있어 해탈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보살이 그와 같이 준수하고 수행하면 그것이 보살행이며 또한 마땅한 도의 행입니다.
010_0345_b_14L復次鎖菩薩菩薩所行亦不斷除凡夫法至於佛法亦不殷勤度生死行也亦不具足於滅度事亦不睹見不善法興亦不觀察於諸善法之所由來不以惠故亦不見識不用識故而見於慧亦不破壞諸法界行有所信喜至於解脫也假使菩薩遵修如是爲菩薩行則應道行
010_0345_c_02L다시 족성자여, 만일 보살 대사가 실천하고 실행하되 법계가 한량없고 인계(人界)가 무한하다면법계와 혜계(慧界)와 인계(人界)가 무한하다는 것을 모두 믿고 이해하여 빠짐없이 소진해야 합니다. 법계에서 행하든 인계에서 행하든 그것에는 둘이 없습니다.
법계에 입각하면 손실되는 것이 없으며 또한 소진되는 것도 없습니다. 모습도 그와 같으며 인계도 역시 그러합니다. 그런데 인계는 모습이 있는데 법계는 모습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인계와 더불어 이 모습이라는 것도 곧 모습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없다는 것은 일체법이 모두 모습이 없음을 보는 것입니다.
010_0345_b_22L復次族姓子菩薩大士若造行者法界無量人界無限而悉信解法界無限慧界人界悉盡所行法界人界則無有二不以法界而有所損亦無有盡想亦如是人界亦然人界有相法界無相及與人界如此相者則無有相其無有相睹一切法悉無有相
인계를 소진하지 않지만 행하는데 늘어나는 바도 없습니다. 핵심되는 사상(思想)은 없으면 없을수록 흥기하고 발흥합니다. 전도된 일과 속여서 미혹하게 만든 모습이 그 가운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행하는 자는 애욕이 소진된 것을 제거하지도 않으며 생하는 것을 그리워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명성을 듣지도 않고 상주하는 것을 헤아리지도 않고 또한 무너뜨리는 일도 없습니다. 또한 자아와 인간과 목숨을 멸진하거나 제거하지 않습니다. 만일 보살이 그와 같이 준수하고 수행하면 그것이 보살행이며 또한 마땅한 도의 행입니다.”
이러한 보살의 행에 관한 품을 설하였을 때 백천(百千) 천자가 법인을 얻었다.
010_0345_c_08L不盡人界行無所畏益從無要思想而興起發也顚倒之事誑詐化惑相處其中其所行者不除欲塵不慕所生亦不名聞亦不計亦無所壞亦不滅除我壽命使菩薩遵修如是爲菩薩行則應道說是菩薩所行者品時百千天子逮得法忍
그때 이구위보살은 찾고 아뢰고 받아들인 뒤 큰 음성을 내어 찬탄하고 노래하며 말씀드렸다.
“일체의 인간과 군맹의 무리들이 원하는 바를 모두 얻고 그 이익과 도리를 두루 획득하되 부처님 세존과 같도록 하려면 모두 이 삼매의 정을 믿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010_0345_c_15L爾時離垢威菩薩卽尋啓受擧大音聲而歎頌言使一切人群萌之類所願皆得普獲利誼如佛世尊悉令信樂此三昧定
그때 마왕 파순이 박수 동진에게 말하였다.
“나도 보살이 행하는 대로의 보살도에 대해 감히 찬탄할 수 있겠습니까?”
010_0345_c_18L爾時魔王波旬謂溥首童眞曰我爲堪任歎菩薩道如菩薩行乎
박수가 답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010_0345_c_20L溥首答可行也
그때 악마가 말하였다.
“일체 인간들의 행이 곧 보살행입니다. 여러 성문과 보살의 행도 곧 보살행입니다. 아래로 집에 거주하는 자들이 익히고 있는 일체의 음습한 행도 곧 보살행입니다. 일체 악마의 행도 곧 보살행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이 모두 그 가운데서 함께 거처하기에 일체가 모두 그 보살이 배울 바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010_0345_c_21L時魔言曰一切人行則菩薩行諸聲聞緣覺行則菩薩行下一切居家所習蔭擔之行則菩薩行切魔行則菩薩行所以者何菩薩皆當同處其中一切悉學是菩薩學
010_0346_a_02L이에 구쇄보살이 악마가 있는 곳에 가서 말하였다.
“보살은 어떻게 빠짐없이 두루 배워야 합니까?”
010_0346_a_02L鎖菩薩往詣魔所而謂之曰云何菩薩而悉普學
악마가 답하였다.
“8만 4천 종류의 중생의 행이 있습니다. 그 중 2만 1천은 탐욕에 속한 행이고 2만 1천은 성냄에 속한 행이고 2만 1천은 어리석음에 속한 행이고 2만 1천은 등분(等分)에 속한 행입니다. 이들 종류가 모두 빠짐없이 보살의 행에 두루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구쇄여, 탐욕의 행을 행할 때 탐욕을 떠나면서 행해야 하고 성냄의 행을 행할 때 성냄을 떠나야 하고 어리석음의 행을 행할 때 어리석음을 떠나야 하고 등분의 행을 행할 때 등분을 떠나면서 다만 집착이 없어야 합니다.
또한 족성자여, 만일 보살이 두루 일체 중생의 행을 준수한다면 곧 군맹의 행을 관찰할 수 있고 일체 중생들을 개화시킬 수 있습니다. 만일 보살이 그와 같이 수행하면 그것이 보살행이며 또한 마땅한 도의 행입니다.”
010_0346_a_04L魔答曰八萬四千種衆生之行二萬一千則屬貪欲行二萬一千屬瞋怒行二萬一千屬愚癡行二萬一千屬等分行是等之類皆悉遍入菩薩之行是故鉤鎖行貪欲行而離於欲行瞋怒行而離於怒行愚癡行而離於癡行等分行而離等分適無所著又族姓子若有菩薩普遵一切衆生之行則能遍察群萌之行開化一切黎庶之類若有菩薩所修如是爲菩薩行則應道行
다시 악마에게 질문하였다.
“어째서 일체 악마의 행을 보살행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010_0346_a_14L又問魔曰何謂一切魔行爲菩薩行
답하였다.
“보살은 모두가 여러 악마의 마음의 흐름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으킨 것으로 일으킨 것을 삼지 않기 때문에 악마의 일이 가르친 것을 따르지 않습니다. 악마의 행을 깨닫고 요지하면서 중생의 행을 교화하는 것이고 그 행을 보면서도 그 행을 닦지는 않는 것이며, 홀로 악마의 무리 속에 있으면서도 악마의 행을 행하지 않는 것을 시현하는 것입니다. 또한 악마를 다스리고 교화할 방법을 마땅히 닦고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마의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악마의 사건이 그에게는 없습니다.”
010_0346_a_15L答曰菩薩皆當入諸魔心之所行故也不以起爲起不隨魔事之所教也覺了魔行化衆生行觀其所行不修彼行獨於魔衆而示現不行魔行又當修學魔之治化雖在魔中而無魔事
다시 악마에게 질문하였다.
“어째서 일체 성문과 연각의 행을 보살행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010_0346_a_20L又問魔何謂一切聲聞緣覺行爲菩薩行
010_0346_b_02L답하였다.
“족성자여, 만일 보살이 여러 성문과 연각을 위하여 경의 법을 강설하고 소원을 구족시켜 주며 그들 가운데 있으면서 정진의 행을 준수하고 숭상하고 길게 하고 늘린다면 마땅히 그러한 은혜를 구하는 것이지만 그 승(乘)을 사유하여 멸도를 취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족성자여, 일체의여러 행은 모두 자연히 그 행이 담백합니다. 보살이 마땅히 믿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을 행한다면 그러한 행은 이미 일체의 행한 바를 넘어선 것이니 진리를 살피는 행과 같습니다.
일체 여러 행에는 머무는 바가 없습니다. 또한 일체 여러 행은 무위의 행입니다. 또한 합하고 모인 것이 없으며 일어나는 행도 없고 머무는 행도 없습니다. 보살은 마땅히 그와 같은 행을 숭상해야 합니다.”
010_0346_a_21L答曰族姓子假使菩薩爲諸聲聞講說經法具足所願在於彼行遵崇長益精進之行當求斯惠不用彼乘而取滅度也復次族姓子一切諸行皆自然行爲泊澹行菩薩所當信樂行者其行已過一切所如審諦行一切諸行無所住切諸行悉無爲行亦無合會無所起行無所住行菩薩當崇如是之行
마왕이 또 박수에게 질문하였다.
“그대는 두터운 은혜를 내리어 다시 이 여러 행에 대해 설해 줄 수 있습니까?”
010_0346_b_07L魔王又問溥首仁可垂恩重復說此諸所行乎
박수가 답하였다.
“변재(辯才)가 일체를 모두 제도할 수 있다면 모든 경계가 다 보살행입니다. 왜냐하면 그 행하는 자는 안계(眼界)와 함께하거나 합쳐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색계(色界)와 합치고 모이는 것이 아니고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촉감, 법과 의계와 합하고 모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왕이여, 마땅히 이렇게 봐야 합니다. 곧 여러 경계를 건넌다면 이름하여 바른 장부[正士]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천자여, 보살이 만일 그와 같이 행한다면 여러 부처님 세존을 속이거나 미혹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행하는 것이 바로 보살행이고 마땅한 도의 행입니다.”
010_0346_b_09L溥首答曰辯才堪任皆度一切所有境界爲菩薩行所以者何其彼行者不與眼界而俱合也不與色界而合會也不與耳更意意界而俱合也以是故當作斯觀假使能度諸境界者號曰正士復次天子菩薩設能如是行者不爲欺惑諸佛世尊如是行爲菩薩則應道行
다시 질문하였다.
“박수여, 어째서 보살이 행하는 바가 여러 부처님 세존 및 일체법을 속이거나 미혹하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까?”
010_0346_b_17L又問何謂溥首菩薩所而不欺惑諸佛世尊及一切法
박수보살이 답하였다.
“여래께서 설하신 참된 진리는 모든 법이 공임을 요해하고 있습니다. 일체에는 모두 최상의 바른 깨달음에 이른 것이 없습니다. 만일 보살이 견해의 몸과 여러 부처님 법에 의지하고 기댄다면 아울러 열반을 본다고 한다면 이것이 여러 여래를 속이고 미혹하게 하는 것입니다.
천자여, 여래의 행을 알고자 하는 자는 일체법에서 생각과 집착이 없어야 하고 바른 깨달음을 얻겠다는 것도 없어야 합니다. 만일 보살이 일체법에서 생각하는 바가 있고 생각과 더불어 노닐고 거주하기를 구한다면, 이것은 곧 여래를 속이고 미혹하게 하는 것입니다.
010_0346_b_18L首菩薩答曰如來所說誠諦解諸法空一切悉無逮最正覺假使菩薩依倚見身及諸佛法幷見泥洹則爲欺惑諸如來也天子欲知如來行者一切法而無想著乃逮正覺假使菩薩於一切法有所想求與想遊居爲欺惑於如來也
010_0346_c_02L천자여, 여래의 자세하고 사실이고 성스러운진리에는 좇아서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또한 생하는 것도 없고 일어나는 것도 없습니다. 존재하는 것도 없고 의지하는 것도 없습니다. 오는 모습도 없고 온 것도 없고 머무는 것도 없습니다. 본성이 청정하며 본성이 밝게 통달한 것이며 본래 청정한 멸도인 것입니다. 비유하면 허공과 같아 형태와 모양이 없습니다. 일체법 또한 모두 그와 같다고 요해해야 하니 내지 바른 깨달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010_0346_c_02L天子如來審實誠無所從出亦無所生亦無所起無所有亦無所倚亦無有相來無所亦無所住本性淸淨本性明達淨滅度猶如虛空無有形貌解一切法亦悉如是乃逮正覺
만일 보살이 모든 법에 대하여 감도 있고 옴도 있고 들어감도 있고 나옴도 있다거나 혹은 일어날 것이 홀연히 나타났을 때 어떤 존재에서 나왔다거나 어떤 모습에 의지한다고 여기거나 혹은 가고 되돌아옴이 있다거나 혹은 세울 바가 있어서 청정함이 없다거나 혹은 티끌에 시달리는 무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윤회하면서 색의 영역을 획득하여 방일한다거나 이런 사념을 하는 이는 곧 여래를 속이는 것입니다.
010_0346_c_07L假使菩薩在於諸法有往有來有入有出若所起忽然現者出於所有依因於相若有往返若有所立無有淸淨若有塵勞終始周旋獲色所有而爲放逸有所思念卽爲欺惑如來
만일 천자여, 어떤 보살이 공을 동등하게 제어하고 이해하여 일체법을 요해한다면 여러 견해에 대해 사상(思想)이 없게 됩니다. 행할 바를 동등하게 제어하여 일체법을 이해한다면 여러 생각을 빠짐없이 제거합니다. 무원(無願)을 동등하게 제어하여 제법을 분별한다면 삼계를 건너게 됩니다.
그리고 공과 같다라고 동등하게 제어하여 일체법을 이해한다면 본래 청정한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준수하고 수행하여 보살이 된 자는 부처님 세존을 속이거나 미혹하지 않게 합니다.”
010_0346_c_12L假使天子若有菩薩等御解空了一切法皆於諸見而無思想等御所行解一切法悉除諸想等御無願分別諸法度於三界等御如空解一切法不著本淨遵修如是爲菩薩者不爲欺惑諸佛世尊
그때 대성께서 박수를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동진이여, 착하고 착하다. 그와 같이 행하는 것이 보살행이다. 만일 보살이 행하는 바가 그와 같다면 빨리 수기를 얻게 된다.”
010_0346_c_17L於時大聖讚溥首曰善哉善哉童眞如是行者爲菩薩行若有菩薩所行如是疾得受決
010_0347_a_02L부처님께서 박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과거 정광(錠光) 부처님 시절을 기억하는데 나는 몸소 청정하고 순백한 법을 권하고 돕고 행하였다. 그때 행하는 바에 행이란 없었고 또한 고요함에 들지 않아 수기를 얻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의 행에 처하는 것을 이름하여 나타난 빛[所現光]이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본 뒤에 다시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그때 색을 차지하는 것이 뜻을 날카롭게 하는 것만 못하다고 여겼더니 바로 정광 여래 대성으로부터 수기를 받고 본래 청정한 것을 요지하였다. 그러자 즉시에일체의 모든 법에 결코 일어나는 것이 없음을 두루 요해하였다. 그 뒤에 나에게 수기의 내용을 보이셨다.
010_0346_c_20L佛言溥首吾憶往古錠光佛時己身勸助行淸白法所行無行亦不寂滅得受決也所以者何處一切行名曰所現光這睹斯已何爲想行時有色莫若而志利義適從錠光如來大聖受決則了本淨卽時普解一切諸法悉無所起然後錠光如來所見受決
‘그대는 미래세에 부처를 이룰 것이니 그 명호를 능인(能仁)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중우(佛衆祐)라고 할 것이다.’
그 세계에서 바로 그때 나는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찾아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박수야, 만일 보살이 재빨리 불기법인을 얻고자 욕구한다면 마땅히 이러한 행을 닦아 여러 가지 퇴전하는 것을 구제해야 한다.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어야 하고 이익 되는 업 때문에 정진해서는 아니 된다. 법을 행하여도 처소가 없고 제도하고 해탈하여도 처소가 없고 건너도 처소가 없으니 그렇게 건너고 내지 해탈을 얻는 것이다.”
010_0347_a_04L仁於來世當得作佛號曰能仁如來至眞等正覺明行成善逝世閒解無上士道法御天人爲佛衆祐於彼世時尋逮得不起法忍以是之故溥首若有菩薩欲疾逮得不起法忍當修此行救諸退轉心無所著不以利業精進行法無所脫度無所度無所度乃得解脫
박수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합니다. 그런데 법인을 얻을 때 어느 곳에서 얻습니까?”
010_0347_a_11L溥首又問佛言唯然世尊得法忍時爲何所逮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색을 얻지 않기에 법인에 이른다. 통상과 사상과 생사와 식에 얻는 바가 없기에 법인에 이른다. 음(陰)과 종(種:界)과 여러 입처를 얻지 않기에 법인에 이른다. 상주[常]와 공(空)과 청정(淸淨)과 안온(安穩)과 아울러 자아와 몸을 얻거나 헤아리지 않기에 법인에 이른다. 다시 일체 제법을 얻지 못하는 것을 영원히 보기에 법인에 이른다.”
010_0347_a_13L世尊告曰不得於色乃逮法忍痛痒思想生死亦無所得乃逮法不得陰種諸入乃逮法忍不得計安隱及與我身乃逮法忍復永睹不得一切諸法乃逮法忍
010_0347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박수야, 모든 법은 모두 소진하는 까닭에 얻는 바가 없다고 말한다. 박수야, 법인은 이르는 것이 없는 것이고 또한 얻는 바도 없다. 세속의 행을 따르고 익히는 까닭에 이름하여 얻음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범부의 법도 아니고 유학의 법도 아니고 무학의 법도 아니다. 또한 연각의 법도 아니고 보살의 법도 아니고 부처님의 법에서 행하는 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일체법에서 도무지 행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하여 법인을 모두 얻는다고 말한다.
일체의 제법은 또한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름하여 법인을 모두 얻는다고 말한다. 만일 법인이 공(空)이고 무소유(無所有)라면 일체의 생각에서 여러 가지 행한 바가 있다 해도 두려움이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하여 법인을 모두 모색하고 얻는다고 말한다.
010_0347_a_17L溥首諸法悉盡故曰爲無所得法忍無逮亦無所得隨習俗行故名曰得非凡夫法亦非學法非不學非緣覺法非菩薩法亦非佛法有所行也於一切法都無所行故名曰盡逮得法忍一切諸法亦不可得是故曰盡逮得法忍假使法忍空無所有於一切想諸所行者而無所畏故曰盡索逮得法忍
그 법인에는 눈이 없고 또한 안식(眼識)이 없다. 귀가 없고 또한 이식(耳識)이 없다. 코가 없고 또한 비식(鼻識)이 없다. 혀가 없고 또한 설식(舌識)이 없다. 몸이 없고 또한 신식(身識)이 없다. 뜻이 없고 또한 의식(意識)이 없다. 여러 경계에 다함이 없는 까닭에 법인이라고 이름한다. 무위계를 일컬어 법인이라고 한다. 의계가 없으며 내지 그것을 일컬어 법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모두 빠짐없이 소진하고 모색하니 내지 법인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010_0347_b_03L彼無有眼亦無眼識無有耳亦無耳識無有鼻亦無鼻識無有舌亦無舌識無有身亦無身識無有意亦無意識諸畏無盡則曰法無爲界則謂法忍無有意界乃謂法忍皆悉盡索乃得法忍
이 법인 및 제법의 소진과 모색에 대하여 설할 때 5백 보살이 불기법인을 얻어 동일한 소리를 내며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러합니다. 저희들은 마땅히 등집중덕삼매를 구족하겠습니다. 또한 마땅히 일체법을 두루 준비하여 일어남이 없는 것에 이르도록 하겠습니다. 이 심오하고 미묘한 법을 보살은 마땅히 계승하고 순응하며 배워야 합니다. 만일 들은 바가 있는 자라면 마땅히 기뻐하고 믿고 수용하고 간직하고 독송하되 법대로 받들고 행해야 합니다.”
010_0347_b_08L說是法忍諸法盡索時五百菩薩得不起法忍同音擧聲白佛言唯然世尊我等當具等集衆德三昧亦當普備於一切法逮無所起是深妙法諸菩薩學所當承順若有聞者當歡喜信受持如法奉行
그때 구쇄보살이 박수에게 말하였다.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할 바를 다 갖추고 온갖 일을 다 성취합니까? 보살은 마땅히 몇 가지 법에서 실천해야 할 온갖 일을 궁극적으로 성취하고 다 갖춥니까?”
010_0347_b_14L於是鉤鎖菩薩謂溥首有所言曰所作已辦衆事成就薩當以幾法所作衆事究竟成辦
박수가 답하였다.
“족성자여, 만일 보살이 일체법이란 실천할 것이 없다고 안다면 그와 같은 보살은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 됩니다. 일체의 제법이 모두 무소유이고 또한 행하는 바가 없으니 제법에 대해 통효하되 그와 같이 한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 됩니다.
또한 앎도 없고 둘도 없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 됩니다. 또한 실천을 떠나지도 않고 실천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실천하지 않는 것도 없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 됩니다.
010_0347_b_16L首答曰族姓子若有菩薩知一切法而無所作如是菩薩所作已辦究竟成就一切諸法悉無所有亦無所行曉了諸法能如斯者所作已辦究竟成就亦不有智亦無有二所作已辦究竟成就亦不離作亦非不作亦無不作所作已辦究竟成就
010_0347_c_02L또한 해야 될 것이 있을 때 선양하는 바가 있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 됩니다. 만일 은혜를 얻은 자가 얻은 은혜에 보답한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 됩니다.반복이 없는 경지를 만나 더욱 반복해 공부하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 됩니다.
마땅히 공양하는 자가 그것에 대하여 겸손하고 자신을 굽히고 보시하는 예를 올린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 됩니다. 반복에 대해 알기에 반복을 떠난다면 또한 일을 다 갖추어 일을 다 갖추지 않는 것을 떠난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 됩니다.
010_0347_b_23L有所者有宣揚所作已辦究竟成就若得恩者報所得恩所作已辦究竟成就遭無反復加以反復所作已辦究竟成就當供養者爲之謙卑自屈施禮所作已辦究竟成就知反復者若離反復若能辦事離不辦事所作已辦究竟成就
만일 나를 가볍고 손쉽게 여기는 자로부터 업신여김과 손상됨을 당하고도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린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 됩니다. 무엇인가를 실천한 자가 실천한 법으로 이루어진 행에 집착하지 않거나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의 허물됨을 보지 않으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 됩니다.
만일 보시한 자가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시켜서 도에 들어가게 한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 됩니다. 또한 보시를 얻지 못하고 도도 얻지 못하고 자아도 얻지 못하고 사람도 얻지 못하고 또한 타인도 얻지 못한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 됩니다.
010_0347_c_07L若輕易者而見忽損稽首爲所作已辦究竟成就有所作者不得所作法之所行有所遭睹不得所所作已辦究竟成就若布施者勸使入道所作已辦究竟成就亦不得施亦不得道亦不得我亦不得人亦不得他所作已辦究竟成就不護禁忍辱精進一心智慧亦無所護勸使趣道所作已辦究竟成就
또한 금기ㆍ계율ㆍ인욕ㆍ정진ㆍ한마음ㆍ지혜를 보호하지 않고 또한 보호하고 권하고 시켜서 도로 나아가게 하는 바가 없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보시하여 베풀고 계율을 간직하고 인욕하고 정진하고 한마음이고 지혜를 갖추고 도에 들어가도록 권하고 시킨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 됩니다.
앎도 아니고 어리석음도 아니고 자아도 없고 남도 없고 또한 얻는 바도 없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 됩니다. 몸으로 행하고 입으로 말하고 뜻으로 염하되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고 이 일을 분별하며 또한 몸ㆍ입ㆍ뜻으로 행한 온갖 선이 있다 해도 역시 얻는 바도 없고 집착하는 바도 없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라고 합니다.”
010_0347_c_15L若有施持戒忍辱精進一心智慧勸使入所作已辦究竟成就非智非愚無他亦無所得所作已辦究竟成身行口言意念奉行衆善分別此若身意所行衆善亦無所得亦無所著是則名曰所作已辦究竟成就
그때 상견정진(常堅精進)보살이 박수에게 말하였다.
“저도 보살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추고 궁극적으로 성취했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 마땅히 설하여도 되겠습니까?”
010_0347_c_21L爾時常堅精進菩薩謂溥首曰我爲應往說菩薩所作已辦究竟成就乎
박수가 말하였다.
“족성자여, 그렇게 하십시오.”
010_0347_c_23L溥首答曰堪任
010_0348_a_02L박수에게 말하였다.
“만일 한 사람에게라도 권하여 도(道)의 소리를 듣게 하였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춘 것이며대승경전[大乘嚴藏]에 때때로 스스로가 익히고 다른 사람에게 부처님의 소리와 교법의 소리와 성스런 대중의 소리를 얻게 한 뒤에 관찰한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춘 것이 됩니다.
만일 한 중생을 교화하여 계율과 금기를 수용하도록 시키고 부처님과 교법과 성스런 승단에 귀의하게 하여 뜻을 삼보에 두게 한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춘 것이 되고 보살이 경전을 구족하고 또한 공양한 것이 됩니다.
만일 노닐고 거주하는 곳에서 보시하는 자 또는 받는 자에게 권하고 도와서 이 두 가지 일에 입각하여 뜻을 도에 두게 한다면 이것이 곧 보살의 청정한 중우(衆祐)입니다. 만일 보시하는 자 또는 받는 자로서 이미 이 법을 행하였고 또한 이 두 가지 일을 권하여 교화하는 자가 있다면 이것이 모두 보살의 청정한 중우입니다.
010_0347_c_24L族姓子白溥首曰勸一人令聞道音所作已辦菩薩篋藏應時自恣若令得佛音法音聖衆之音則當察之所作已辦若化一人使受戒禁使歸命佛及法聖衆志在三所作已辦具足菩薩篋藏供養所遊居若有施者若有受者勸助志道此二事者則是菩薩淸淨衆祐有施者及有受者已斯法行而勸化此二事者悉是菩薩淸淨衆祐
만일 보살이 부처님을 사유하고 염하며 또한 경의 법과 성스런 승단과 보살과 중생을 사유하고 염한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춘 것이 되며 대승경전에 입각하여 공양을 받은 것이 됩니다.
만일 보살이 자애의 마음과 슬픔의 마음과 기쁨의 마음과 평정의 마음을 수행한다면, 그리고 한 사람의 하열하고 빈궁한 도적을 만났는데 그가 회를 치고 욕을 하고 거침없이 말하더라도 그것을 인내하고 성냄을 일으키지 않고 자애의 마음을 계속 행하며 오히려 기뻐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모시고 이익 되는 도리를 늘려 주고자 해서 정진을 더한다면, 이것이 실천해야 할 바를 다 갖춘 것이 됩니다.
만일 백 가지 이익 또는 천 가지 이익 또는 백천 가지 이익 또는 억백천 가지 이익을 획득할 수 있다 해도 또한 염부제를 가득 채울 만한 진기한 보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해도 그 보배 때문에 일찍이 험담을 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다시 다른 사람에게 지혜에 대해 자문을 구하고는 정녕 몸과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 뒤에서 나쁜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법을 잊지도 않고 법 아닌 것을 계승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을 보살이 실천해야 할 바를 구족하고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라고 봅니다.
010_0348_a_10L使菩薩思惟念佛若復思念經法菩薩衆生所作已辦菩薩篋藏而受供養假使菩薩修行慈心悲喜護若値一人下劣貧匱盜賊屠魁詈衝口而能忍之不以瞋怒續行慈歡悅之意以待其人欲益利誼益加精進所作已辦若獲百利若千利若百千利億百千利若以珍寶滿閻浮提得斯利者未曾以寶而發兩舌又復諮啓問他人慧寧失身命不從其後而說惡也不忘於法不承非法觀此菩薩所作已具究竟成就
010_0348_b_02L다시 박수여, 보살이 만일 칠 일 동안 공양이 끊기어 음식을 얻지 못했는데 음식을 받은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다가온다 해도 여러 신통한 지혜의 마음에 허망한 것은 없습니다. 또한 일체의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키고자 하며 군맹의 무리를 구제하고자 하고 염하니 이것을 보살이 실천해야 할 바를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라고 봅니다.
만일 천하에 물이 두루하고 가득차서 그 땅을 주위로 둘러싸고 있다 해도 마땅히 이것을 넘고 건너서 법을 구하고 청하러 갑니다. 또한 만일 불이 두루 가득하다 하더라도 마땅히 넘고 건너서 법을 구하고 들으러 갑니다. 그렇게 몸을 아끼지 않고 목숨을 탐내지 않고 수명에 애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음(陰)과 종(種)과 여러 입처(入處)는 쉽고도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여러 부처님 세존을 만나 뵙는다는 것은 어려우며 경법(經法)을 듣기도 어려우며 법을 아끼고 공경하는 자를 만나기도 역시 어렵다’라고 봅니다. 만일 이러한 관점에 자주 들어간다면 이것이 바로 보살이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입니다.
010_0348_a_22L復次溥首假使菩薩七日斷供而不得食若復有人受飮食者其人則近諸通慧心不爲虛妄又欲度脫一切衆生欲念救濟群萌之類觀此菩薩所作究竟假使天下普遍滿水周帀其地當越度此行求聽法若遍滿火亦當越度行求聞法亦不惜身亦不貪命亦不愛壽而造斯觀陰種諸入易易得耳諸佛世尊難得値遇經法難聞恭恪於法亦復難遭若入此數觀菩薩究竟成就
다시 또 보살이 이 네 구절로 된 게송을 듣고서 환희하고 기뻐서 뛰어오르되 전륜성왕이 되는 복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정녕 이 네 구절로 된 게송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듣게 하고 기쁘고 즐겁게 만들되 제석천의 지위를 즐거워하지만 않습니다. 정녕 온갖 보시를 건립하여 개와 같은 짐승과 용신 등도 유도하고 교화하지만 범천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여러 신통한 지혜의 마음을 흔연히 즐거워하되 삼천 세계를 가득 채우는 일곱 보배를 탐내지는 않습니다. 기뻐하고 뛰며 한 가지 덕의 근본을 심고자 원하고 뜻하면서 일체 중생을 괴롭히지 않으며 공양하는 이익을 얻습니다. 보살이 그와 같이 행하고 닦는다면 이것이 바로 보살이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010_0348_b_10L復次菩薩若聞四句之頌歡喜踊躍不願享祚爲轉輪聖寧以四句頌令人得聞熙怡豫悅不樂帝釋位寧立衆施誘化狗犬龍神不生梵天欣樂諸通慧心貪三千世界之七寶喜踊願志殖一德本不僥一切衆生供養之利菩薩所行修如斯者當觀菩薩成就究竟
상견정진보살이 다시 박수에게 말하였다.
“만일 보살로서 항상 견고하게 정진하고 항상 널리 듣기를 구한다면 마음으로 마땅히 이렇게 염해야 합니다. 곧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몸을 조각조각 마디마디 나눈다 해도 오히려 환희하고 스스로 힘써야 한다’고 염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두 세속의 법에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부처님 도에 뜻을 두고 수행해야 합니다. 정녕 몸과 목숨을 잃는다 하더라도 마침내 계율을 범하지 않으며 대승을 버리지 않고 어리석은 마음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사악한 힘을 일으키지 않고 인욕의 힘을 이루어야 입으로 하는 말이 거칠지 않게 되며 모두 감당해 냅니다. 그리고 끝내 나태 하는 일이 없이 정근의 행을 닦아야 합니다.
010_0348_b_17L常堅精進菩薩復謂溥首有菩薩常堅精進常求博聞心當念此假使有人段段節節解其身者當發歡喜以自勸勉是皆俗法之所致也專志修行念於佛道寧失軀命終不犯戒捨大乘不爲愚心不興邪力致忍辱力口言不麤悉能堪任終不懈怠修精勤行
010_0348_c_02L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하고 정화하며 중생을 구제하여 법 아닌 것을 실행해서는 아니 됩니다.일체의 여러 도무극(度無極:바라밀다)을 두루 구해야 하며 반당(伴黨:朋黨)을 구하거나 중생을 희망해서는 아니 됩니다. 지혜에 굳게 머물러야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끊어지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뜻의 성품이 강건하고 용맹스러워 일체의 실천해야 할 바로서 성취되지 않았거나 다 갖추지 않은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 뜻은 어질고 온화하며 아첨하는 것을 버리며 탐착하고 그리워하는 바가 없으며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편의(便宜)한 것을 통효하고 단련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서 있지 못하는 자는 스스로 청정한 계율을 받드는데 귀의하게 해야 합니다.
어른이 질문하면 답하는 말이 부드럽고 사용하는 말에 꾸미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비유하면 땅과 같이 구하는 바가 없어야 합니다. 구하는 바도 없고 묶고 기대는 바도 없이 그 성품이 순수한 선을 행해야 합니다. 답하는 바가 안온하고 설하는 바가 항상 쾌활하고 공경하고 수용하고 잘 단련해야 합니다. 교만함을 버리어 항상 그 뜻을 겸손히 하고 낮추어야 합니다.
말하는 바는 지극히 정성스러워야 하니 화내거나 다투어서는 안 됩니다. 설한 바는 있는 그대로여야 하니 헐뜯거나 아첨하는 말이어서는 안 됩니다. 말과 행은 상응해야 하니 평등한 마음을 준수하고 숭상해야 합니다.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항상 자애의 마음을 갖추어야 합니다. 군맹을 향하고 뜻을 큰 슬픔에 두어야 합니다.
010_0348_c_02L嚴淨佛土而救衆生不爲非普求一切諸度無極不求伴黨不望衆生堅住智慧不斷佛教志性强猛一切所作無不成辦其意仁和捐媮嫍無所貪慕不惜身命曉練便不久立者令得自歸奉戒淸淨人問訊語言柔軟辭不綺飾譬若如地離於所求無所求無所結倚性行純善所答安隱所說常快敬受善諫棄除貢高常遜卑意所言至誠無有忿訟所說如實無有讒諛言行相應遵尚等心愍於衆生常有慈心向諸群萌志於大哀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하자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일체의 온갖 덕의 근본을 건립하고 그것에 대해 흔쾌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일체의 소유물을 보시하되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평정을 행함으로써 욕심에서 구제해야 합니다. 재물과 사업을 획득하되 마땅히 안온하게 행해야 합니다. 일체의 여러 가지 탐착과 애욕을 내다버려야 합니다.
내 것이라는 것이 없어야 하며 소유물에 기대어서도 아니 됩니다. 끝내 자기를 위대하다고 해서는 아니 되니 세 가지 때를 제거해야 합니다. 해탈을 뜻하고 구해야 하며 상념을 떠나야 합니다. 사유하는 바와 집착하는 바가 있어 여러 견해에 떨어져서는 아니 됩니다. 62견(見)이 없어야 하며 항상 널리 듣는 것을 행해야 합니다. 일곱 가지 재물을 구족하고 그 마음을 항상 강건하고 용맹하게 해야 합니다.
들은 것을 밝게 알아야 하고 일찍이 그것을 싫어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마땅히 지혜를 배워 그것에서 건립된 바가 있어야 합니다. 용맹한 데서 머물러 번뇌를 항복시켜야 합니다.
010_0348_c_14L爲黎庶故無有瑕疵建立一切衆德之本而懷欣豫一切所有施而不惜當以行護救濟所欲及得財業當行安隱放捨一切諸所貪愛無有我所不倚所有終不自大蠲除三垢志求解脫離於想念所思所著不墮諸見無六十二當行博聞足七財心常强勇所聞曉解未曾有當學智慧有所建立住於勇猛降伏塵勞
010_0349_a_02L애욕의 때를 떠나고 일체 중생의 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항상 중우가 되어야 하니 일찍이 버리고 떠나는 것이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여러 신통한 지혜의 마음으로 복의 밭을 성취해야 합니다. 여러 중생들로 하여금 빠짐없이 은혜를 입도록 해야 합니다.연꽃처럼 행하여 여러 세속에서 집착하는 바가 없어야 합니다. 뱃사공처럼 여러 군생에게 네 가지 병의 환난을 건너게 해야 합니다. 뜻을 왕의 도로와 같이하여 귀하거나 비천하거나 중간의 사람을 경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마땅히 샘의 근원이 하천과 강으로 흘러가듯이 설해진 경전이 소진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큰 바다와 같이 행하여, 들어서 얻은 지혜가 포섭한 것에 바닥이 없어야 합니다. 한량없는 덕이 쌓이고 모여야 합니다. 성품이 수미산과 같이 초월하고 드러나서 세간에서 우뚝 솟아 지극히 높아야 합니다.
항상 정진을 즐거워하고 뜻의 성품은 강개(慷愷)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은 겁이 없고 열등하지 않아야 하며 마음은 문지방과 같아야 합니다. 뜻으로 견고하게 원해야 하니 그 뜻은 학의 털과 같아야 합니다. 그 성품은 조화롭고 항상 존귀한 마음을 행해야 합니다. 중생을 제도하고 인도하며 자재를 닦아야 합니다. 그 의지가 기특하고 품위 있는 곳에 머물도록 권하고 도와야 합니다.
010_0348_c_23L離於欲垢療治一切衆生之常爲衆祐未曾捨離諸通慧心成就福田令諸衆生悉得蒙恩行如蓮花於諸世俗而無所著猶如舩師度諸群生四病之患志如王路不得輕慢貴賤中閒之人當如泉源川流所說經典而不可盡行如大海所聞智慧苞無崖底無量之德之所積性如須彌起現于世峻極而高樂精進志性慷愷心不怯劣心如門志願堅固意如鶴毛調和其性當行尊心濟導衆生修於自在勸助其意志存奇雅
미묘하게 해탈하되 제석천과 같이 행해야 합니다. 중생을 품고 오게 하되 범천과 같이 준수해야 합니다. 권위 있고 청정한 행을 분별해야 합니다. 일체법에서 자재를 얻어야 합니다. 마땅히 항상 자애를 행하여 궁극적으로 멸도해야 하니 행하는 것은 끝내 없어지는 것입니다.
건드리고 범하는 자가 지은 것이나 짓지 않은 것이나 모두 인욕해야 합니다. 엄한 아버지를 대하듯이 마음으로는 수용한 것을 지극히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도반의 무리들과 같이 여러 덕의 근본에 뜻을 두어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뜻으로는 여러 경계에 기대는 바가 없어야 합니다. 위험과 해로움이 없이 행하고 자애와 인자함을 닦아 머무는 곳이 상서롭습니다. 태어난 곳에서 또한 장부에게 보시하니 법을 보시하는 것입니다. 일체의 여러 선하지 않은 법을 단절하고 제거해야 합니다. 일체의 온갖 선한 법을 받들고 행해야 합니다. 방일하지 않은 것을 준수하고 스스로 방자하고 교만한 일을 제거해야 합니다. 계율을 배우고 정진하되 행하는 바가 견고하고 강건해야 합니다. 방일하지 않고 보살행을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에 이르고 획득하여 최상의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010_0349_a_12L微妙解脫行如天帝來衆生遵如梵天分別㩲宜淸淨之於一切法而得自在常當行慈究竟滅度行如終沒若有觸犯作與不作悉能忍辱心如嚴父所受至重如伴黨作諸德本而無所著意無所於諸境界行無危害而修慈仁在吉祥於所生也爲布施士謂法施斷除一切諸不善法奉行一切衆善之法遵無放逸除於自恣憍慢之學戒精進所行堅强爲無放逸修菩薩行乃能致得無上正眞之道爲最正覺
010_0349_b_02L그때 세존께서 상견정진(常堅精進)보살을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족성자야, 착하고 착하다. 시원하게 보살행을 설하였고그와 같이 온갖 덕을 건립하였다. 만일 보살이 등집중덕삼매를 체득하려고 욕구한다면 두루 일체의 공덕을 분별하고 여러 죄와 허물을 떠나야 한다.”
010_0349_a_24L於時世尊讚常堅精進菩薩善哉善哉族姓子說菩薩行快乃如是建立衆德若有菩薩設欲逮得等集衆德三昧普當分別一切功德離諸罪舋
그때 구쇄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만일 보살이 이 등집중덕삼매를 얻는 경우 그 공덕과 서응(瑞應)을 비교한다면 어느 정도입니까?”
010_0349_b_05L爾時鉤鎖菩薩前白佛言若有菩薩逮得於是等集衆德三昧功德瑞應比類若何
부처님께서 구쇄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이 등집중덕삼매를 보살 대사가 획득한다면 악취의 땅을 멀리 떠나게 되며 여덟 가지 액난이 활거하는 곳이 그에게는 없다. 빈궁하고 가난한 것을 제거하고 단절하게 되어 풍요롭고 기름진 것을 공양받으니 자연히 즐거워한다. 여러 감관이 구족되고 서른두 가지 위대한 사람의 특징을 성취하게 된다.
법은 무궁무진하고 변재를 얻으며 총지를 획득하여 항상 뜻을 잃지 않고 일체의 복덕에서 자재한다. 바퀴를 굴리어 기대는 것이나 막히는 것이 없게 한다. 온갖 중생들이 그를 받들고 섬기게 된다. 제석천이 그에게 여쭙는 것을 보게 된다. 범천이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게 된다. 신통을 획득하여 밝게 도달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 본래의 서원을 얻어 태어나는 것에 자재하다.
010_0349_b_08L佛告鉤鎖令此等集衆德三昧菩薩大士獲此定者則能遠離惡趣之地無有八據厄難之處除斷窮寠供膳豐沃自然富樂諸根具足便能成就三十二大士之相法無窮盡逮得辯才獲于摠持常不失意一切福得自在成轉輪王無所倚㝵爲諸群黎之所奉事爲天帝釋所見咨嗟梵天稽首而爲作禮逮獲神通靡不明達得其本願自在所生
010_0349_c_02L권화와 방편과 나아가고 물러서는 지혜를 행하여 선(禪)의 가르침과 지혜를 준수하고 닦는 것을 따르지 않아 일체의 견해를 떠났기에 지극히 존귀하고 특히 귀중하여 성문과 연각이 미치지 못하는 바이다. 여러 공포와 두려움 및 성문과 연각의 지혜를 떠났다. 중생의 여러 근기를 분별해서 중생의 오락하는 여러 견해를 요달하고는 한마음의 해탈문에 속하는 일에 뜻을 둔다. 머물되 처소가 없이 항상 보시한 바에 순응한다. 계율을 건립하여 세 가지 청정함을 지킨다. 인욕을 분별하며 궁극에는 형태란 없으며 아첨 또는 허위의 생각을 떠난다. 강설하고 정진해도 그 뜻에 나태함과 권태로움이란 없다. 선정을 해설하여 항상 고요함을 건넌다. 지혜를 널리 펴고 눈으로 항상직접 보며 빠짐없이 분별한다.
눈으로 집착하는 바가 없으니 항상 집착한 것을 내다 버린다. 여섯 경로를 제거하여 일찍이 위배되거나 멀어진 적이 없게 된다. 항상 여러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한다. 성스런 승단을 받들고 섬기며 힘써 수행한다. 공(空)ㆍ무상(無想)ㆍ무원(無願)을 떠나지 않는다.
010_0349_b_17L行㩲方便進退智慧不隨禪教遵修智慧離一切見極尊特貴聲聞緣覺所不能及離諸恐畏聲聞緣覺智慧分別諸根曉了衆生本末娛樂諸見志于一心脫門之事住無處所常順所施建立于戒護三淸淨分別忍辱竟無有形離諂僞想講說精進志無懈惓解說禪定常度寂然敷演智慧目常睹見而悉分別目無所著而常棄捐除於六徑未曾違遠常見諸佛好樂聽法奉事聖衆殷勤修行不離於空無想無願
이미 들은 경전에 입각하여 일체의 여러 부처님의 공덕을 게송으로 노래하고 찬송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빠짐없이 수용하니 곧 여쭙고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생을 위하여 그것을 잘 분별하고 설해준다. 도솔천에 있으면서도 불퇴전(不退轉)의 법을 버리고 떠난 적이 없다. 일체의 부처님의 국토를 유행하고자 욕구한다면 막히거나 걸리는 것이 없으니 두루 여러 부처님을 뵙게 된다.
악마와 원수를 항복받으니 네 가지 악마가 없다. 심오한 법인을 보며 불퇴전의 법에 거처한다. 신통을 밝히는 일은 도업에 있으니 법은 넓지 않는 것이 없다. 품고 간직해온 것은 적연하고 청백하다. 행한 바에 부처님 법이 구족되어 있음을 보니 불퇴전행(不退轉行)의 나아갈 바를 나타낸다.
막고 걸리는 일체의 집착을 제거한다. 나의 자아의 색이 환상의 현현과 같음을 본다. 일체의 몸을 모두 관찰하니 이길 자가 없고 모든 외도들에게 간직하고 지켜야 할 바른 법과 여러 부처님의 존귀한 경전을 말해준다.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행하는 바에서 열심히 하여 바른 도리를 간직하고 받든다.
부처님의 경계를 드러내어 영원히 단절되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한다. 이미 열반에 들었지만 멸도(滅度)하지 않는다.
010_0349_c_06L所聞經典歌頌一切諸佛功德悉受佛誨卽以諮受善爲衆生分別說之在兜率天未曾捨離不退轉法若欲遊行一切佛土無有罣㝵普見諸佛降伏魔怨無有四魔見深法忍處不退轉法逮明神通在於道業法靡不博懷來寂然淸白睹見所行具足佛法現不退轉行之所趣除一切著所可罣㝵見吾我色猶如幻現觀察悉見一切身復無能勝者謂諸異道受護正法諸佛尊典不惜身命其行殷勤持御正誼現佛境界常無永絕雖已泥洹而不滅度
무소외(無所畏)를 얻었기에 모인 대중들 가운데 있으면서도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다. 총명하고 밝게 통달하여 실천할 바를 따르고 제거할 것을 잘 제거한다. 일체의 교만과 스스로 위대하게 여기는 것을 제거한다. 환(幻)의 삼매로써 위대한 장엄을 닦으니 감동하는 바가 있다.
만일 광명을 방출한다면 모든 해와 달과 별의 밝음과 불타는 번개를 덮고 가리니 견고하고 강력한 힘을 얻어 그 몸은 구쇄와 같고 그 행은 금강과 같다. 일체의 여러 가지 악하고 결핍된 것을 모두 제도한다. 두루 도량에서 깨끗하게 노니니 한량없는 부처님 국토에서 그 소리를 듣는다. 부처님이 건립한 몸ㆍ입ㆍ뜻의 청정함으로 악마의 병사를 항복받는다.
010_0349_c_18L得無所畏遊在衆會而無恐難聰明睿達隨其所作而善蠲除去於一切貢高自大修大莊嚴以幻三昧有所感動若放光明而悉覆蔽日月星明火電得堅强力身如鉤鎖行如金剛皆度一切諸惡所乏普道場淨遊無量佛土普聞其聲佛所建立身口意淨降伏魔
010_0350_a_02L신족의 변화로 무극으로 건너간다.
일체 여러 부처님 국토를 진동시킨다. 총명한 지혜를 얻어 법의 도리의 뜻을 분별한다. 변재가 구족되고 지혜에 막히거나 걸리는 것이 없다. 여러 중생을 위하여 정진을 준수하고 실행한다. 부처님 일을 일으키고 드러내는 데 방일(放逸)한 적이 없다. 여러 신통한 지혜에서 부처님의 경계를 드러낸다.
그와 같이 구쇄야, 보살이 이 등집중덕삼매를 얻는다면 이 여러 보살의 서응(瑞應)을 인연으로 나타난 위의의 모습이 그와 같고 온갖 덕과 명예로운 일이 우뚝 솟은 것이 그와 같다.”
010_0350_a_03L神足變化度於無極震動一切諸佛國土得聰明慧分別法誼之所歸辯才具足慧無罣礙爲諸衆生遵行精進興顯佛事而無放逸於諸通慧現佛境界如是鉤鎖若有菩薩逮得於斯等集衆德三昧是諸菩薩瑞應因緣儀像衆德名聞之事巍巍如
구쇄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모든 일체 중생의 무리들이 함께 다 같이 이 등집중덕삼매에 이르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만일 이 정을 얻는 자라면 온갖 덕과 명예가 당당한 것이 그와 같으니 이것은 성문과 연각이 미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삼매에 대해 듣고서 믿지 않는다면 악마에 의해 괴롭혀져 굳어진 것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010_0350_a_10L鉤鎖白佛皆令一切衆生之類共逮此等集衆德三昧所以者何世尊若有逮得於此定者衆德名聞堂堂乃爾聲聞緣覺所不能及使有人聞此三昧而不信者則當知爲魔所嬈固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구쇄야, 네가 말한 그대로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삼매를 믿는다면 그 명성과 덕의 공훈이란 불가사의하다. 그는 부처님의 가호를 받게 된다.”
010_0350_a_15L佛言如是如是鉤鎖如所云假使有人信是三昧名德之勳不可思議爲佛所護
그러자 구쇄가 박수에게 질문하였다.
“만일 보살이 등집중덕삼매를 얻고자 의욕을 낸다면 마땅히 어떤 법을 행해야 합니까?”
010_0350_a_17L於是鉤鎖又問溥首曰若有菩薩意欲逮得等集衆德三昧當行何法
박수가 답하였다.
“만일 보살이 등집중덕삼매를 얻으려고 의욕을 낸다면 일찍이 범부의 법을 훼손하거나 부수는 일이 없는 그러한 행을 행해야 합니다. 부처님 도의 법에서 실천하고 실행하는 자는 얻는 바가 없습니다. 만일 행하려고 하는 자는 마땅히 이러한 행을 실천해야 하니 곧 법도 없고 봄도 없고 또한 근심하는 바도 없는 것입니다.
010_0350_a_19L溥首答曰若有菩薩意欲逮得等集衆德三昧未曾毀壞凡夫之法當修斯行所造行者於佛道法亦無所得若欲行者當作此行無法無見亦無所憂
010_0350_b_02L다시 구쇄여, 만일 보살이 시종 찬탄하는 이러한 정을 얻고자 한다면 생사에 더럽혀지지 않고 무위를 얻어야 하며성문 또는 연각의 승에서 멸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구쇄여, 보살로서 이 정의를 얻으려고 하는 자는 온갖 덕을 구족해야 하고 배워야 할 금기와 계율에 대해서 마땅히 배워야 합니다. 또한 유루의 복을 상념해서도 안 되고 무루의 복을 상념해서도 안 됩니다. 죄 없는 것을 상념해서도 안 되고 죄를 상념해서도 안 됩니다. 있는 것도 안 되고 없는 것도 안 되며 집착도 안 되고 멀리하는 것도 안 되며 가는 것도 안 되고 오는 것도 안 되며 세간도 안 되고 출세간도 안 되니 일찍이 그러한 여러 상념을 품었던 적이 없어야 합니다.
010_0350_a_23L復次鉤鎖若有菩薩欲得斯定誓歎終始不爲生死之所沾污得於無爲不於聲聞緣覺之乘而取滅度也鉤鎖菩薩欲得斯定意者具足衆當學所學之禁戒也亦不想念有漏之福無漏之德無罪不罪不有不著不捨不去不來世不度世曾懷念如此諸想
법계를 동등하게 제어해야 하며 온갖 덕을 믿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복이 있든 복이 없든 상주하든 무상하든 염이 있든 염이 없든 시종 집착하고 있는 모습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일체의 사람들이 온갖 덕 속으로 노닐고 들어가도록 해야 하지, 단 한 사람이 행복 속에 노닐고 거처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의 덕이 중생의 처소로 두루 들어가야 합니다. 유루의 복이든 무루의 복이든 분별하지 말아야 하니 분별로써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일체 부처님의 덕이 곧 한 부처님의 덕입니다.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곧 교화받을 자에게 여러 부처님 법을 설함에 차이도 없고 특별한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땅히 이것을 믿고 알아야 합니다. 곧 유학의 복이든 무학의 복이든 연각의 복이든 보살의 복이든 여래의 복이든 이것은 곧 상주하는 것이 못 되고 형태도 없고 모양도 없고 색도 없고 형상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땅히 일체의 복덕이 흘러 모이는 곳을 즐겁게 믿고 기뻐해야 합니다. 비유하면 구쇄여, 여러 형색이 있으니 모두 4대(大)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러 보살의 법도 역시 그와 같으니 모두가 중생을 건져서 해탈문에 이르게 하고 동등한 복을 받들고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행하는 자든 흥기하여 번성하는 자든 모두 무상하고 소진하는 법입니다.
010_0350_b_08L等御法界信樂衆有福無福有常無常有念無念入終始所著之相爲一切人遊入衆不爲一人處遊福祐以一人德入衆生之所有福若漏無漏不復分別不以此教一切佛德則一佛德作斯念所可教化說諸佛法無有差當信知此其所學福無所學福若緣覺福若菩薩福若如來福此則無常亦無形貌色像也當喜信樂一切諸德福之所湊譬如鉤鎖諸有形色皆有四大亦復如是諸菩薩法皆度衆生至于脫門奉行等福當所爲者所興盛者無常盡法
다시 구쇄여, 만일 보살로서 이 정의를 얻으려고 하는 자라면 네 가지 한량없는 것에서 두려움과 무서움을 품어서는 아니 됩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인계(人界)가 한량없는 것, 부처님의 국토가 무한한 것, 부처님의 지혜가 끝이 없는 것, 중생의 행에 바닥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입니다.
010_0350_b_21L復次鉤鎖若有菩薩欲得此定意四無量不懷恐懼何等四人界無量佛土無限佛慧無邊衆生之行無有是爲四
010_0350_c_02L다시 구쇄여, 만일 보살로서이 정의를 얻으려고 하는 자라면 네 가지 불가사의한 것을 권하고 도와야 합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죄와 복에 상응하는 댓가가 불가사의한 것, 중생의 행이 불가사의하되 나아가는 길에 차별이나 특이한 것이 없는 것, 여러 보살의 지혜가 불가사의하니 신족(神足)과 세력과 해탈문이 그것이요, 모든 보살이 나아가는 길은 불가사의하니 생하는 바가 청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입니다.
010_0350_c_02L復次鉤鎖若有菩薩欲得此定常當勸助四不可思議何等四福報應不可思議衆生之行不可思而所趣路無有差特諸菩薩慧不可思議神足力勢脫門諸菩薩之所歸趣不可思議所生淸淨是爲四
그러므로 구쇄여, 만일 보살로서 이 삼매에서 소진함이 없는 것을 보는 자라면 마땅히 네 가지 법을 행해야 합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보살의 복을 건립한 곳에 머무르니 소진할 수 없는 것, 온갖 행을 구족하니 역시 소진할 수 없는 것, 변재가 걸림 없으니 또한 소진할 수 없는 것, 지혜로 도달한 바가 또한 소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입니다.
010_0350_c_07L是故鉤鎖若有菩薩於此三昧見無盡行四法何等四於斯建立菩薩之福住不可盡具足衆行亦不可盡無㝵辯才亦不可盡智慧所達亦不可盡是爲四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열심히 법에서 정진하니 온갖 덕의 근본을 쌓는 데에 있어서 결코 싫어하는 일이 없는 것, 마땅히 부지런히 행할 것을 생각하여 들음에 싫어함이 없는데 들어가고 또 그렇게 경전을 설해야 하는 것, 마땅히 부지런히 행할 것을 생각하여 다함이 없는 온갖 선한 덕을 권하고 도와야 하는 것, 여러 부처님 국토를 관찰하여 그 장엄한 것을 보고 그것으로 자기의 국토에 들어가 청정함을 성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입니다.”
010_0350_c_12L復有四事何等四勤精於法積衆德本而無厭極當念勤行入聞無厭而說經典當念勤行勸助無邊衆善之德觀諸佛土所見莊嚴以入己土而成淸淨是爲四
구쇄보살이 박수에게 말하였다.
“비유하면 유리명월(琉璃明月)이라는 보배 구슬이 그릇에 담겨 있는 것과 같습니다. 금 그릇이든 은 그릇이든 수정 그릇이든 자거 그릇이든 유리명월이라는 보배 구슬은 그릇의 위덕 때문에 자신의 본성을 잃지는 않습니다.
그와 같이 박수여, 보살이 이 삼매에 머물면 집에 머물러 있는 자이든 출가하여 사문이 되어 머무는 자이든 법계에서 헤아리면 자연의 행에는 두 가지 해탈문이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박수여, 보살은 어떤 행에서 준수하고 수행해야 합니까? 그리하여 삼매를 잃지 않으며 소진함이 없는 복덕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까?”
010_0350_c_16L鉤鎖菩薩謂溥首譬如琉璃明月寶所著器中若在金器銀器水精器車璖器則以琉璃明月珠寶器威德之故不失自然如是溥首若有菩薩住是三昧若在居家若復出家住在沙門計於法界自然之行無二脫門溥首菩薩何行有所遵修不失三有所逮得德慧無盡
010_0351_a_02L박수가 답하였다.
“보살이 마땅히 행해야 할 네 가지 일을 알고자 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몸과 수명을 아끼지 않으며 모든 공양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 것, 공ㆍ무상ㆍ무원을 행하고 성문승과 연각승에 뜻을 두지 않으며 부처님의 지혜를 얻고자 그 행을 사유하는 것, 상응하는 것이든 상응하지 않는 것이든 사유한 것과 생각한 것을 여러 신통한 지혜에 입각하여 내다 버리는 것, 일체 중생이 동등하게 들어가서 자아와 사람과 수명에서 건너게 해야 하니 그것들은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입니다.”
010_0350_c_24L溥首答曰欲知菩薩當行四事何謂四不惜身壽命不求一切供養之利行空無願不志聲聞緣覺之乘欲得佛慧思惟其行於諸通慧放捨所思所想可應不應一切衆生等入行度壽命亦不可得是爲四
다시 구쇄가 박수에게 질문하였다.
“이 삼매는 나중에 어디로 돌아갑니까? 그리고 보살이 이 경권을 취하여 몸에 간직하고 품으며 또한 인욕을 일으킨다면 집에 거주하는 자이든 출가한 자이든 배움을 인연으로 하는 것이며 배우며 행하는 것이 됩니까?”
010_0351_a_07L鉤鎖又問溥首此三昧者然後歸趣何所菩薩若取經卷著在身懷若興忍辱設使居家若出家學因緣學行乎
박수가 구쇄에게 답하였다.
“나중에 이 삼매를 얻는 자는 그 이름을 들었다 해도 곧 집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니 출가를 인연으로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쇄여, 그러므로 만일 보살이 삼매에 머문다면 곧 존재하는 두 가지 생각을 떠나서 노닐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목숨과 지혜에 소진함이 없으니 궁극에 이르도록 잃는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중생을 개도하고 교화하되 싫어함이 없으며 보살의 형태와 유형을 스스로 시현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흘러 모이는 곳에서 머물되 그렇게 머문 모든 것에 끝이란 없으며 또한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010_0351_a_10L溥首答鉤鎖曰後若有得此三昧者假使有人逮聞其名則非居家出家因緣以者何是故鉤鎖若有菩薩住三昧則離二想所在遊行其壽智慧不可盡極無所忘失開化衆生不以爲厭不自示現菩薩形類又在所奏一切無邊亦無因緣
비유하면 구쇄여, 해와 달이 노니는 곳은 그 모두가 끝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은 그와 같이 관찰하여 기대어 행하는 것이란 없으니 만일 집의 땅에 머물러 집을 따라 의지하고 기대어 출가하지 않았다 해도 그것은 출가한 것입니다. 다시 출가의 덕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행하니 이 두 가지 일에서 또한 그리워하는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이 내놓는 것은 모두가 집착함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구쇄여, 얻는 것이 없는 자가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에게는 네 가지 일이 있어 행하니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존귀한 자를 위하고 연장자를 위하는 것, 최승(最勝)자를 위하는 것, 일체의 여러 가지 견해의 일을 버리고 제거하는 것, 그리고 일체의 여러 가지 부처님의 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입니다.”
010_0351_a_17L譬如鉤鎖日月所遊一切無邊菩薩如是觀無倚行若在家地隨家依倚亦不出家爲出家行亦復不著出家之德於斯二事亦無所慕所以者何菩薩所出悉無所著譬如鉤鎖無所得者乃成正覺於此菩薩有四事行何等四爲尊爲上而爲最勝棄除一切諸所見事及入一切諸佛之法是爲四
010_0351_b_02L다시 구쇄가 박수에게 질문하였다.“보살은 어떻게 유행하고 거처할 만한 곳에 처합니까?”
010_0351_b_02L鉤鎖又問溥首云何菩薩處於遊居
박수가 답하였다.
“보살에게는 네 가지 일이 있어 행합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자애ㆍ슬픔ㆍ기쁨ㆍ평정[護]이니, 이것이 네 가지입니다. 그는 이 네 가지 범행을 받들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유행하고 거처할 만한 곳이라고 일컫습니다.
다시 네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유행하고 거처하는 곳이 취락인 경우, 집이나 방이 유행하고 거처하는 곳인 경우, 다시 한가한 곳에서 거처하고 유행하는 경우, 선반 같은 누각과 여러 층이 있는 집에서 행을 실천하니 그것을 유행하고 거처할 만한 곳에 처하는 것으로 삼는 경우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입니다.”
010_0351_b_03L溥首答曰菩薩有四事行何等四是爲四其有奉行是四梵行吾乃謂斯爲遊復有四何等四若復遊處聚落舍則處遊居假使復在於閑居行在棚閣重屋作行則亦處於遊居爲四
다시 박수가 구쇄에게 말하였다.
“이 네 가지 범행을 받들고 수행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나는 유행하고 거처할 만한 곳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여러 천신과 인간을 속이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 부처님 세존께서는 네 가지 범행이야말로 유행하고 거처할 만한 곳이라고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네 가지 범행은 곧 그 정상에 처한 것입니다. 그것은 청정하게 행하니 유행하고 거처할 만한 곳에 처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토에서 자신의 몫과 호위와 음식을 받는데 그 위신력이 정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쇄여, 네 가지 범행을 보지 못하는 자는 곧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의 행을 멀리 떠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만일 다시 청정한 범행을 닦는다면 모두 빠짐없이 네 가지 범행을 원인으로 하여 그것으로부터 현자와 성인의 지혜를 일으키고 얻게 됩니다. 세간에서 스스로 신견(身見)을 이루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교만하고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여기는 자라면 사람이라는 생각을 제거하지 못한 것입니다.”
010_0351_b_09L溥首復謂鉤鎖曰其不奉修此四梵行而自念言我處遊居其人則爲欺諸天人所以者何諸佛世尊說四梵行乃謂遊居其四梵行則處其是淸淨行而處遊居在於國土受分衛食威神在頂是故鉤鎖其有不見四梵行者則爲遠離四等心行復有修梵淨行皆悉因從四梵行起得賢聖慧不爲世閒自見身也貢高自大不除人想
다시 구쇄가 박수에게 질문하였다.
“어떻게 보살은 자애의 마음을 받들어 행해야 합니까? 무엇을 일컬어 슬픔이라고 하며 무엇을 일컬어 기쁨이라고 하며 무엇을 일컬어 평정이라고 합니까?”
010_0351_b_18L鉤鎖又問溥首云何菩薩奉慈心行何謂悲何謂喜何謂
010_0351_c_02L박수가 답하여 말하였다.
“환사(幻事)로써 일체 중생의 무리를 구호하는 것이 자애를 행하는 것입니다. 환사로써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는 것이 슬픔을 행하는 것입니다. 환사로써 군맹을 안온하게 하는 것이 기쁨을 행하는 것입니다. 환사로써 여러 중생에게 멸도를 얻게 하는 것이 평정을 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구쇄여, 중생계가 공임을 믿고 이해하는 것이 자애를 행하는 것입니다. 법계와 중생계가 짓는 것도 아니고짓지 않는 것도 아님을 믿고 이해하는 것이 슬픔을 행하는 것입니다. 여러 군맹의 계에 집착도 없고 해탈도 없다는 것을 믿고 이해하고 요지하는 것이 기쁨을 행하는 것입니다. 중생들의 계에 왔다고 하나 온 것이 없음을 믿고 이해하고 요지하는 것이 평정을 행하는 것입니다.
010_0351_b_20L溥首答曰則以幻事救護一切衆生之類則爲行慈而以幻事度脫衆則爲行悲若以幻事安隱群萌爲行喜說以幻事令諸黎庶逮得滅則爲行護復次鉤鎖信解衆生界則爲行慈信解法界衆生之界無作非不作則爲行悲信解了知諸群萌界無著無脫則爲行喜信解了知黎庶之界來無所來則爲行護
다시 구쇄여, 일체의 중생에게 나의 자아가 없다 해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으니 이것이 자애를 행하는 것입니다. 일체의 중생이 빠짐없이 담백하다 해도 무서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이것이 슬픔을 행하는 것입니다. 일체의 여러 법과 법계가 평등하다고 해도 두려움을 품지 않으니 이것이 기쁨을 행하는 것입니다. 일체 부처님의 국토가 소진됨이 없는 국토임을 믿고 이해하고 분별하니 이것이 평정을 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구쇄여, 위험과 해로움의 모습이 없는 것을 자애라고 합니다. 동등하거나 필적할 만한 모습이 없는 것을 슬픔이라고 합니다. 두 가지 모습이 없는 것을 기쁨이라고 합니다. 이름도 없고 집착하는 모습도 없는 것을 평정이라고 합니다.
010_0351_c_05L復次鉤鎖一切衆生無有吾我亦不恐怖則爲行慈一切衆生悉爲澹泊亦不畏懅則爲行悲一切諸法法界平等亦不懷懼則爲行喜信解分別一切佛土無盡之國則爲行護復次鉤鎖無危害相則謂爲慈無等倫相則謂爲悲無有二相則謂爲喜無有名無所著相則謂爲護
다시 구쇄여, 자애지만 큰 자애가 아닌 것에 머물러서는 아니 됩니다. 슬픔이지만 큰 슬픔이 아닌 것에 머물러서는 아니 됩니다. 그 무엇을 큰 자애가 아니라고 합니까? 비유하면 성문이 곧 ‘여러 중생에게 모두 안온함을 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성문의 자애는 큰 자애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큰 자애라고 합니까? 만일 군맹의 무리들에 대해 평등한 마음을 지니고 그것으로 온갖 고뇌와 환난을 모두 제도하고 해탈시킨다면 이것이 큰 자애입니다.
그 무엇을 큰 슬픔이 아닌 슬픔이라고 합니까? 보통 존재들의 무리는 5취(趣)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불쌍하고 슬프게 여기면서 생사하는 가운데서 꺼내어 구제하고자 합니다. 이것을 큰 슬픔이 아닌 슬픔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큰 슬픔이라고 합니까? 만일 5취에 생사하는 중생들을 본다면 그 태어난 곳에 가서 슬퍼하고 불쌍히 여깁니다. 스스로 몸의 편안함을 버리고 5취에서 구호합니다. 이것을 일컬어 큰 슬픔이라고 합니다.
010_0351_c_13L復次鉤鎖無所住慈不爲大慈無所住悲不爲大悲何謂不爲大慈猶如聲聞發是念言令諸衆生皆獲安隱是聲聞慈不爲大慈何謂大慈假使等心於群萌類而皆度脫衆惱之患是爲大慈彼何謂悲不爲大悲黎庶之類生在五趣愍傷哀之於生死中而欲拔濟是謂爲悲不爲大悲何謂大悲見於五趣生死蒸庶所生之處而行愍哀自捨身安救護五趣便能濟拔衆生之界尋時建立於平等道是謂大悲
010_0352_a_02L그러므로 구쇄여, 마땅히 이렇게 봐야 합니다. 곧 성문에게 자애가 있다 해도 큰 자애가 아니며또한 슬픔이 있다 해도 큰 슬픔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쇄여, 보살이라면 마땅히 큰 자애와 큰 슬픔을 구족하고 행해야 합니다.”
010_0351_c_24L是故鉤鎖當作斯觀聲聞有慈不爲大慈亦復有悲不爲大悲是故鉤鎖若有菩薩當具足行大慈大悲
박수가 이러한 이야기를 설하였을 때 8천의 천인들이 모두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에 뜻을 일으켰다. 그리고 함께 찬탄하며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지금 저희들은 마땅히 저 박수가 설한 대로 이행을 받들고 수행하겠습니다.”
그리고 10만 천인들이 이 삼매를 얻었고 8천 보살이 불기법인을 얻었다.
010_0352_a_04L溥首說是語時八千天人皆發無上正眞道意俱共歎言唯然世尊我等亦當奉修此行如今向者溥首所說百千天人逮得是三昧八千菩薩得不起法忍
그때 구쇄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원하옵건대 여래께서는 설해 주십시오. 백 가지 복을 지닌 상호가 있으니 어떤 공덕을 지었기에 부처님 세존께서는 그러한 상호를 성취하셨습니까?”
010_0352_a_08L於是鉤鎖菩薩白佛言如來願說百福之相作何功德而佛世尊成斯相
그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쇄야,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항하강의 모래알 수와 같은 여러 부처님 세계에 가득 찬 중생에게 구족된 공덕이 있는데, 그것을 빠짐없이 모두 합하고 모으면 그것이 전륜성왕 한 몸의 덕이다. 이 여러 중생이 소유한 공덕을 모두 전륜성왕과 같게 하여 빠짐없이 모두 합하고 모으면 그것이 제석천 한 몸의 복이다.
다시 별도로 항하강의 모래알 수와 같은 여러 부처님 세계가 있다. 그곳에 있는 일체 중생들은 복덕이 구족하여 성취된 것이 제석천과 같은데, 제석천의 복과 같은 이 중생들의 복을 빠짐없이 모두 합하고 모으면 그것이 한 범천의 복에 미친다.
010_0352_a_11L時佛告曰譬如鉤鎖江河沙等諸佛世界悉共合集滿中衆生功德具爲轉輪王一身之德是諸衆生所有功德皆如轉輪聖王悉共同合天帝釋一身之福復有別異江河沙等諸佛世界一切衆生使其福德具足成就如天帝釋悉復合集此衆生福如帝釋福爾乃及於一梵天福
다시 별도로 항하강의 모래알 수와 같은 여러 부처님 세계가 있다. 그곳에 있는 중생의 무리들이 지닌 복덕은 각각 범천과 같고 동등한데, 그 복을 합하고 모으면 그것이 한 성문의 복을 이룬다.
다시 별도로 항하강의 모래알 수와 같은 여러 부처님 세계가 있다. 그곳에 있는 중생의 무리들이 지닌 공덕은 각각 성문과 같은데, 그 복을 빠짐없이 합하여 구족하고 갖추게 한다면 그것이 합해졌을 때 한 연각의 복이 된다.
010_0352_a_18L有別異江河沙等諸佛世界衆生之其福各各譬如梵天悉備具足諸衆生其福各各等如梵天合集此福以爲成一聲聞之福復有別異江河沙等諸佛世界衆生之類各各功德如聲聞者悉合此福令具足備乃合爲一緣覺福
010_0352_b_02L다시 별도로 항하강의 모래알 수와 같은여러 부처님 세계가 있다. 그곳에 있는 일체 중생들이 지닌 복덕을 각각 연각과 같게 하여 빠짐없이 갖추고 구족하게 한 다음 합한다면 그것이 한 보살의 복을 이룬다. 그러나 보살의 복은 오히려 이것을 넘어서니 측량할 수 없고 한계 지을 수 없다.
그런데 만일 등집중덕삼매의 정을 체득한 자가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우는 중생들을 모두 역시 등집중덕삼매의 정을 얻게 하여 이 중생들이 지닌 삼매의 덕을 합하고 모은다면 그것으로써 하나의 막히지도 걸리지도 않는 사사(祠祀)를 이루며 하자가 없는 지혜를 이루며 생각과 집착이 없는 지혜를 이루는 것이다.
010_0352_b_02L復有別異江河沙等諸佛世界一切衆生其福如緣覺者悉備具足爾乃合爲一菩薩福菩薩之福則過於彼不可稱限假使逮得等集衆德三昧定者正使三千大千世界滿中衆生悉令逮得等集衆德三昧定者合集於此衆生三昧之德以爲一無罣㝵祠無瑕之慧無想著
그러므로 구쇄야, 이렇게 비교된 지혜가 가히 사사를 이루게 된 것인데 그것을 모두 빠짐없이 합하고 모은 것이 법사(法祠)를 이룬다. 그리고 그 복을 선택하여 합한 것이 여래의 대인상(大人相) 하나를 이루는 것이다. 서른두 가지 상호는 그와 같이 비교하고 유추해야 하는 것이니, 각각이 그와 같이 이루어져 여래의 몸의 상호가 구족된 것이다. 그것은 일체 중생이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여래의 몸에 있는 백 가지 복의 상호는 불가사의하다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010_0352_b_10L是故鉤鎖如是比慧所可祠祀悉合集而爲法祠撰合斯福乃爲如來一大人相如是比類三十二相各若茲乃成如來具足身相一切衆生不能思議是故名曰不可思議如來之身百福之相
부처님이 이 백 가지 복과 공덕을 지닌 대인상에 대해서 설하실 때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종류로 진동하였다. 그 큰 광명이 두루 세계를 비추었고 천상의 꽃을 내렸다. 그리고 여러 천상의 기악(妓樂)이 연주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울었다.
그러자 여러 천신과 세간의 사람들은 일찍이 없었던 일에 괴이해 하면서도 기뻐 뛰어오르며 환희하였다. 그리하여 각자 합장한 채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는 소리 높여 찬탄하며 함께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만일 족성자 또는 족성녀가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에 뜻을 일으켜 선한 이익을 갖춘 끝없는 경사를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와 같이 비교되는 백 가지 복을 지닌 상호를 얻어 빠짐없이 구족하고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곧 제석천과 범천과 사왕천 및 일체의 성문과 여러 연각들을 넘어서게 됩니다.
010_0352_b_15L佛說此百福功德大人相時三千大千世界六反震動其大光明普照世界而雨天花百千伎樂不鼓自鳴諸天世人怪未曾有踊躍欣喜各各叉手爲佛作禮擧聲而歎俱白佛言若族姓女其發無上正眞道意爲得善利無極之慶乃當逮得如是之比百福之相悉具足備則爲超過釋梵四王一切聲聞及諸緣覺
010_0352_c_02L세존이시여, 그러합니다. 그가 이 등집중덕삼매를 듣는다면 통쾌하고 통쾌한 일이니 보살의 이익을 얻은 것이 됩니다.만일 그 이름을 들었다고 해도 그 덕에 미치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그 사람이 듣고 믿고 즐거워하고 받들고 행한다면 더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삼매를 구족하여 유행하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그 땅의 중생을 옹호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이 경전이 유행되는 것이 있다면 그 땅은 부처님께서 건립한 곳이라고 헤아려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항하강의 모래알 수와 같은 여러 부처님 세계를 가득 채운 불이 있다 하더라도 마땅히 그 가운데를 통과하여 이 법을 듣고자 하고 이 경을 듣고자 한다면 큰 안온함에 돌아갈 것입니다.”
010_0352_b_24L唯然世尊其有聞此等集衆德三昧快哉快哉爲得菩薩利若得聞名其德難及何況其人聞信樂奉行假使有人持是三昧所遊之處則爲擁護其土衆生令此經典所遊之處計其土地佛所建立假使世尊江河沙等諸佛世界滿其中火當入中過求聞是法聞是經者則歸大安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다, 천자여. 너희가 말한 그대로이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삼매에 대해서 듣고도 즐거이 믿지 않고 들은 것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악마에 의해 괴롭혀져 굳어진 것이다.
그리고 보살로서 이 삼매를 듣는 것에 이르지 못했고 또한 수용하지도 간직하지도 읊지도 독송하지도 설하지도 않는 자라면, 나는 그를 들은 것이 많은 지혜로운 자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010_0352_c_08L世尊告曰如是如是天子誠如所云假使有人聞是三昧而不信樂不能聞受爲魔所固其有菩薩不得逮聞是三昧者亦不受持諷誦說者吾不名之爲聞多智
천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 세존이시여, 여래의 성스런 취지로 이 법을 건립하셨습니다. 후세에도 두루 얻게 되고 선포되도록 하십시오.”
010_0352_c_13L天子白佛唯佛世尊如來聖旨建立此法令於後世遍得宣布
그때 세존은 미간의 상호와 육계의 상호[髻相]에서 빛을 방사하셨고 그 빛은 한량없고 끝없는 여러 부처님 세계를 두루 비추었다. 이어서 그 빛은 자연히 소리를 내며 찬탄하고 노래하였다.
“여래께서는 이미 이러한 법을 건립하셨다.”
010_0352_c_14L爾時世尊放眉閒相及髻相光其光普照無量無邊諸佛世界尋其光明自然出聲而歎頌曰如來已爲建立斯法
그때 세존께서 현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나는 오래지 않아 마땅히 반열반에 들 텐데 석 달 남짓 남았을 뿐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권하고 돕고자 하였기에 나는 너에게 이 경전을 부촉한다. 너는 마땅히 수용하고 간직해야 하며 모이는 여러 대중들을 위하여 널리 분별하여 설해주어라. 만일 사람이든 보살이든 이 삼매를 배우고 간직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부처님이 멸도하지 않으며 법이 멸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난아, 그 법을 수용하여 행하는 사람은 곧 부처님을 보는 것이 되고 만일 모이는 대중을 위하여 강론하고 강설하는 자라면 이것은 법을 보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010_0352_c_18L爾時世尊告賢者阿難今吾不久當般泥洹餘有三月佛語阿難已爲勸吾囑累汝於此經典汝當受持諸衆會廣分別說若有人及菩薩學持三昧則爲其人佛不滅度法不滅所以者何其有阿難受行其法爲見佛若爲衆會講論說者此爲護
010_0353_a_02L그때 현자 아난이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일 겁 또는 일 겁 이상을 더 머무십시오. 천상과 세간을 많이 불쌍히 여기시고 많이 슬프게 여기시고 많이 안온하게 해 주십시오.”
010_0353_a_03L時賢者阿難淚出而白佛言唯然世尊願住一劫復過一劫多所愍傷多所哀念多所安隱天上世閒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근심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라. 너에게 내가 설하지 않았느냐? 이 법을 구족한 자에게는 부처님이 영원히 머무시는 것이다. 또한 여러 부처님 세존이 떠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색으로써 마땅히 여래를 볼 수는 없으며 상호로써도 아니니 바로 이 법을 볼 때에야 부처님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010_0353_a_05L世尊告曰阿難且止莫憂勿愁向者吾不說乎具足是法者佛則永存亦復不離諸佛世尊所以者何不當以色觀如來也亦非相好若睹此法則爲見
부처님께서 그와 같이 설하시자 구쇄보살ㆍ박수보살ㆍ이구위보살과 여러 보살들 그리고 현자 아난을 비롯한 대성문들 그리고 일체의 모인 대중들과 여러 천신ㆍ용ㆍ건달바와 세간의 사람들과 아수라들로서 환희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니 모두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렸다.
010_0353_a_10L佛說如是鉤鎖菩薩溥首菩薩垢威菩薩及諸菩薩賢者阿難及大聲聞一切衆會諸天乾沓和阿須倫莫不歡喜稽首作禮
等集衆德三昧經卷下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