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解深密經卷第二

ABC_IT_K0154_T_002
010_0715_c_01L해심밀경 제2권
010_0715_c_01L解深密經卷第二


대당 현장 한역
김달진 번역
010_0715_c_02L大唐三藏法師玄奘奉詔譯


4. 일체법상품(一切法相品)
010_0715_c_03L一切法相品第四

그때 덕본(德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모든 법상(法相)에 공교한 보살을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법상에 공교한 보살이란 어디에 한하여 모든 법상에 공교한 보살이라 하며, 여래께서는 어디에 한하여 그들을 모든 법상에 공교한 보살이라고 시설하십니까?”
010_0715_c_04L爾時德本菩薩摩訶薩白佛言世尊如世尊說於諸法相善巧菩薩於諸法相善巧菩薩者齊何名爲於諸法相善巧菩薩如來齊何施設彼爲於諸法相善巧菩薩說是語已
그때 세존께서 덕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덕본이여. 그대가 지금 이와 같이 깊은 뜻을 여래에게 묻는구나. 그대는 지금 무량한 중생에게 이익을 주고 안락하게 하려고, 세간과 모든 하늘ㆍ사람ㆍ아소락들을 불쌍히 여겨 의리(義利)와 안락을 얻게 하려고 이렇게 질문하는구나. 그대는 자세히 들어라.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해 모든 법상을 말하리라.”
010_0715_c_09L爾時世尊告德本菩薩曰善哉德本汝今乃能請問如來如是深義汝今爲欲利益安樂無量衆生哀愍世閒及諸天阿素洛等爲令獲得義利安樂故發斯問汝應諦聽吾當爲汝說諸法相
010_0716_a_02L이른바 모든 법상에 대략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이요, 둘째는 의타기상(依他起相)이요, 셋째는 원성실상(圓成實相)이다.
무엇이 모든 법의 변계소집상인가? 이른바 이름으로 거짓되게 세워진 일체 법의 자성과 차별이고, 나아가 말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무엇이 모든 법의 의타기상인가? 이른바 일체 법의 인연으로 생기는 자성이니, 즉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는 것이다. 이른바 무명(無明)은 행(行)의 연이 되고, 나아가 순전히 큰 괴로움의 덩어리를 부르고 모은다. 무엇이 모든 법의 원성실상인가? 이른바 일체 법의 평등한 진여이다. 이 진여를, 모든 보살들은 용맹 정진을 인연하기 때문에 진리대로 생각하고 잘못됨 없이 사유하는 것을 인연하기 때문에 통달할 수 있다. 이러한 통달에서 점점 닦고 모아서, 나아가 위없는 정등보리(正等菩提)를 바야흐로 원만하게 깨치게 되는 것이다.
010_0715_c_15L謂諸法相略有三種何等爲三一者遍計所執相二者依他起三者圓成實相云何諸法遍計所執相謂一切法名假安立自性差別乃至爲令隨起言說云何諸法依他起相謂一切法緣生自性則此有故彼有此生故彼生謂無明緣行乃至招集純大苦蘊云何諸法圓成實相謂一切法平等眞如於此眞如諸菩薩衆勇猛精進爲因緣故如理作意無倒思惟爲因緣故乃能通達於此通達漸漸修集乃至無上正等菩提方證圓滿
선남자여, 눈병 난 사람의 눈에 생긴 눈병의 허물처럼, 변계소집상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눈병 난 사람은 눈병으로 여러 모습 즉 머리털이나 바퀴, 벌과 파리와 거승(巨勝)과 혹은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따위의 차별이 나타남과 같이, 의타기상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은 눈에 눈병의 허물을 여의고 이 맑은 눈의 본성으로 행하는 바에 어지러운 경계가 없음과 같이 원성실상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010_0716_a_06L善男子如眩瞖人眼中所有眩瞖過患遍計所執相當知亦爾如眩瞖人眩瞖衆相或髮毛蜂蠅巨勝或復靑白等相差別現前依他起相當知亦爾如淨眼人遠離眼中眩瞖過患卽此淨眼本性所行無亂境界圓成實相當知亦爾
선남자여, 비유컨대 청정한 파지가(頗胝迦)보배는 푸르게 물든 빛과 합하면 곧 제청(帝靑)이나 대청(大靑)의 마니(摩尼)보배와 비슷하니, 삿된 집착으로 말미암아 제청이나 대청의 마니보배라고 집착하는 까닭에 유정들을 어지럽히는 것과 같다. 만일 붉게 물든 빛과 합하면 곧 호박(琥珀)의 마니보배와 비슷하니, 삿된 집착으로 말미암아 호박의 마니보배라고 집착하는 까닭에 유정들을 어지럽히는 것과 같다. 만일 초록으로 물든 빛과 합하면 곧 말라갈다(末羅羯多) 마니보배와 비슷하니, 삿된 집착으로 말미암아 말라갈다 마니보배라고 집착하는 까닭에 유정들을 어지럽히는 것과 같다. 만일 노랗게 물든 빛깔과 합하면 곧 금의 모습과 비슷하니, 삿된 집착으로 말미암아 진짜 금의 모습인 양 집착하는 까닭에 유정들을 어지럽히는 것과 같다.
010_0716_a_12L善男譬如淸淨頗胝迦寶若與靑染色則似帝靑大靑末尼寶像由邪執取帝靑大靑末尼寶故惑亂有情與赤染色合則似琥珀末尼寶像邪執取琥珀末尼寶故惑亂有情與綠染色合則似末羅羯多末尼寶由邪執取末羅羯多末尼寶故亂有情若與黃染色合則似金像邪執取眞金像故惑亂有情
010_0716_b_02L이와 같아서 덕본이여, 저 파지가보배에 상응하는 물든 빛깔이 나타나는 것처럼, 청정한 의타기상에 나타나는 변계소집상의 말과 습기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저 청정한 파지가를 두고 제청과 대청과 호박과 말라갈다와 금 따위가 있다고 여기는 삿된 집착처럼, 의타기상에 변계소집상을 집착하는 것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저 맑은 파지가보배처럼 의타기상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저 맑은 파지가에 나타난 제청과 대청과 호박과 말라갈다와 진금 따위의 모습은 언제나 진실함이 없고 자성이 없는 성품인 것처럼, 의타기상에 나타난 변계소집상은 항상 언제나 진실함이 없으며 자성이 없는 성품이다. 원성실상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010_0716_a_21L如是如彼淸淨頗胝迦上所有染色相依他起相上遍計所執相言說習氣當知亦爾如彼淸淨頗胝迦上所有帝靑大靑琥珀末羅羯多金等邪執依他起相上遍計所執相執當知亦如彼淸淨頗胝迦寶依他起相知亦爾如彼淸淨頗胝迦上所有帝大靑琥珀末羅羯多眞金等相常常時於恒恒時無有眞實無自性卽依他起相上由遍計所執相常常時於恒恒時無有眞實無自性圓成實相當知亦爾
또 덕본이여, 상(相)과 명(名)이 상응하는 것을 인연으로 삼는 까닭에 변계소집상을 알 수 있다. 의타기상에 나타나는 변계소집상은 집착을 인연으로 삼는 까닭에 의타기상을 알 수 있다. 의타기상에 변계소집상의 집착이 없음을 인연으로 삼는 까닭에 원성실상을 알 수 있다.
010_0716_b_10L復次德本相名相應以爲緣故遍計所執相而可了知依他起相上遍計所執相執以爲緣故依他起相而可了依他起相上遍計所執相無執以爲緣故圓成實相而可了知
선남자여, 만일 모든 보살이 모든 법의 의타기상 위에서 여실히 변계소집상을 깨닫는다면 곧 일체 모습 없는 법[無相法]을 깨달을 것이며, 만일 모든 보살이 여실히 의타기상을 깨닫는다면 곧 여실히 일체 잡되고 물든 모습의 법[雜染相法]을 깨달을 것이며, 만일 모든 보살이 여실히 원성실상을 깨닫는다면 곧 일체가 청정한 모습의 법[一切淸淨相法]을 깨달을 것이다.
010_0716_b_15L善男子若諸菩薩能於諸法依他起相上實了知遍計所執相卽能如實了知一切無相之法若諸菩薩如實了知依他起相卽能如實了知一切雜染相法若諸菩薩如實了知圓成實相卽能如實了知一切淸淨相法
선남자여, 만일 모든 보살이 의타기상 위에서 여실히 모습 없는 법을 깨닫는다면 곧 잡되고 물든 모습의 법을 끊을 것이요, 만일 잡되고 물든 모습의 법을 끊는다면 곧 청정한 모습의 법을 증득할 것이다.
010_0716_b_21L善男若諸菩薩能於依他起相上如實了知無相之法卽能斷滅雜染相法若能斷滅雜染相法卽能證得淸淨相法
010_0716_c_02L이와 같아서 덕본이여, 모든 보살은 여실히 변계소집상과 의타기상과 원성실상을 깨닫는 까닭에, 여실히 모든 모습 없는 법과 잡되고 물든 모습의 법과 청정한 모습의 법을 깨닫는 것이다. 여실히 모습 없는 법을 깨닫는 까닭에 온갖 잡되고 물든 모습의 법을 끊고, 일체 잡되고 물든 모습의 법을 끊는 까닭에 일체가 청정한 모습의 법을 증득한다. 이에 한하여 모든 법의 모습에 공교한 보살이라 하며, 여래는 이에 한하여 그들은 모든 법의 모습에 공교한 보살이라고 시설한다.”
010_0716_c_02L如是德本由諸菩薩如實了知遍計所執相依他起相圓成實相故如實了知諸無相法雜染相法淸淨相法如實了知無相法故斷滅一切雜染相法斷滅一切染相法故證得一切淸淨相法齊此名爲於諸法相善巧菩薩如來齊此施設彼爲於諸法相善巧菩薩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0_0716_c_09L爾時世尊欲重宣此而說頌曰

만일에 모습 없는 법을 깨치지 못하면
잡되고 물든 모습의 법 끊을 수 없나니
잡되고 물든 모습의 법 끊지 못하는 까닭에
미묘하고 맑은 모습의 법 깨치지 못하는 것이다.
010_0716_c_10L若不了知無相法
雜染相法不能斷
不斷雜染相法故
壞證微妙淨相法

모든 행의 뭇 허물을 관찰하지 않으면
방일(放逸)하는 허물이 중생을 해치리라.
게으름은 머무름과 움직이는 법에서
없음과 있음의 실수가 있느니라.
010_0716_c_12L不觀諸行衆過失
放逸過失害衆生
懈怠住法動法中
無有失壞可憐愍

5. 무자성상품(無自性相品)
010_0716_c_14L解深密經無自性相品第五
010_0717_a_02L
그때 승의생(勝義生)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예전에 고요한 곳에 홀로 앉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무량한 문으로 모든 온(蘊)에 있는 자상(自相)과 나는 모습[生相]과 멸하는 모습[滅相]과 영원히 끊음[永斷]과 변지(遍知)를 말씀하신 적이 있다. 모든 온에 대해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처(處)와 연기(緣起)와 모든 식(食)에 대해서도 그러셨다. 무량한 문으로 일찍이 모든 제(諦)에 있는 자상과 변지와 영원히 끊음과 작증(作證)과 닦고 익힘[修習]을 말씀하셨다. 무량한 문으로 모든 계(界)에 있는 모습과 갖가지 계(界)의 성품과 하나가 아닌 계(界)의 성품과 영원히 끊음과 변지를 말씀하셨다. 무량한 문으로 일찍이 염주(念住)에 있는 자상과 다스려야 할 것을 다스림과 닦고 익힘과 생기지 않은 것을 생기게 함과 이미 생긴 것은 견고히 머물러 잊지 않고 곱으로 닦아 더하고 넓어지게 함을 말씀하셨다. 염주(念住)를 말씀하심과 같이, 정단(正斷)과 신족(神足)과 근(根)과 역(力)과 각지(覺支)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셨고, 무량한 문으로 8지성도(支聲道)에 있는 자상과 다스려야 할 것을 다스림과 닦고 익힘과 생기지 않은 것을 생기게 함과 이미 생긴 것은 견고히 머물러 잊지 않고 곱으로 닦아 더하고 넓어지게 함을 말씀하셨다. 세존께서는 또 일체 법이 모두 자성(自性)이 없으며,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고요하여 자성이 열반이라고 말씀하셨다. 잘 모르겠구나. 세존께서는 무슨 밀의(密意)에 의지해 이와 같이 일체 모든 법은 모두 자성이 없으며,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고요하여 자성이 열반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제가 이제 여래께 이 뜻을 여쭙니다. 바라건대 여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어, 일체 법이 모두 자성이 없으며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이 열반이라고 하신 말씀에 담긴 밀의를 해석해 주십시오.”
010_0716_c_15L爾時勝義生菩薩摩訶薩白佛言我曾獨在靜處心生如是尋思尊以無量門曾說≺諸薀所有自相滅相永斷遍知≻如說諸薀諸處諸食亦爾以無量門曾說≺諸諦所有自相遍知永斷作證修習≻以無量門曾說≺諸界所有自相種種界性一界性永斷遍知≻以無量門曾說≺念住所有自相能治所治及以修習生令生生已堅住不忘倍修增長≻如說念住正斷神足覺支復如是以無量門曾說≺八支聖道所有自相能治所治及以修習未生令生已堅住不忘倍修增長廣大尊復說一切諸法皆無自性無生本來寂靜自性涅槃未審世尊依何密意作如是說一切諸法皆無自無生無滅本來寂靜自性涅槃今請問如來斯義惟願如來哀愍解說一切法皆無自性無生無滅來寂靜自性涅槃所有密意
그때 세존께서 승의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승의생이여, 그대가 생각한 것은 이치에 매우 합당하니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지금 여래에게 이렇게 깊은 뜻을 묻는구나. 그대는 지금 무량한 중생에게 이익을 주고 안락하게 하려고, 세간과 모든 하늘ㆍ사람ㆍ아소락들을 불쌍히 여겨 의리(義利)와 안락을 얻게 하려고 이렇게 질문하는구나. 그대는 자세히 들어라. 내가 지금 그대에게 ‘일체 법이 모두 자성이 없고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고요하여 자성이 열반이다’라고 말한 밀의(密意)를 해석해 주리라.
010_0717_a_13L爾時世尊告勝義生菩薩曰善哉勝義生汝所尋思甚爲如理善哉善哉善男子汝今乃能請問如來如是深義汝今爲欲利益安樂無量衆哀愍世閒及諸天阿素洛等令獲得義利安樂故發斯問汝應諦吾當爲汝解釋所說一切諸法皆無自性無生無滅本來寂靜自性涅槃所有密意
010_0717_b_02L승의생이여, 마땅히 알라. 나는 세 가지 무자성성(無自性性)의 밀의에 의지해 일체 법이 모두 자성이 없다고 말한다. 이른바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ㆍ생무자성성(生無自性性)ㆍ승의무자성성(勝義無自性性)이다.
010_0717_a_22L勝義生當知我依三種無自性性密說言一切諸法皆無自性所謂相無自性性生無自性性勝義無自性
선남자여, 무엇이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인가? 이른바 모든 법의 변계소집상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는 거짓된 이름을 말미암아 세워져서 모양이 된 것이요, 자상을 말미암아 세워져서 모양을 삼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상무자성성이라 한다.
010_0717_b_03L善男子云何諸法相無自性性諸法遍計所執相何以故此由假名安立爲相非由自相安立爲相是故說名相無自性性
무엇이 모든 법의 생무자성성(生無自性性)인가? 이른바 모든 법의 의타기상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는 다른 연의 힘을 의지했기 때문에 있는 것이요, 자연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생무자성성이라 한다.
010_0717_b_06L云何諸法生無自性性謂諸法依他起相何以故此由依他緣力故有非自然有是故說名生無自性性
무엇이 모든 법의 승의무자성성(勝義無自性性)인가? 이른바 모든 법이 생무자성성을 말미암는 까닭에 무자성성이라 부르니, 즉 인연으로 생긴 법도 승의무자성성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법 가운데서 만일 이 청정으로 반연한 경계라면 나는 그것을 드러내 승의무자성성이라 한다. 의타기상은 청정으로 반연한 경계가 아니니, 그러므로 또한 승의무자성성이라 부른다. 또 모든 법의 원성실상이 있으니, 또한 승의무자성성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일체 법의 법무아(法無我)의 성품을 승의(勝義)라 하며, 또는 무자성성(無自性性)이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체 법의 승의제이기 때문이며, 무자성성에서 나타난 것인 까닭이다. 이러한 인연에 의지해 승의무자성성이라 한다.
010_0717_b_09L云何諸法勝義無自性謂諸法由生無自性性故說名無自性性卽緣生法亦名勝義無自性何以故於諸法中若是淸淨所緣境界我顯示彼以爲勝義無自性性依他起相非是淸淨所緣境界是故亦說名爲勝義無自性性復有諸法圓成實相亦名勝義無自性性何以一切諸法法無我性名爲勝義得名爲無自性性是一切法勝義諦無自性性之所顯故由此因緣爲勝義無自性性
010_0717_c_02L선남자여, 비유컨대 ‘허공의 꽃’과 같아서 상무자성성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비유컨대 꼭두각시의 모형과 같아서 생무자성성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1분(分)의 승의무자성성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비유컨대 허공은 오직 모든 색(色)이 없는 성품이 나타난 것으로서 일체 처소에 두루 함과 같이, 1분의 승의무자성성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법무아의 성품이 나타난 것인 까닭이며, 일체에 보편한 까닭이다.
010_0717_b_20L善男子譬如空花相無自性性當知亦爾譬如幻像無自性性當知亦爾一分勝義無自性性當知亦爾譬如虛空惟是衆色無性所顯遍一切處一分勝義無自性當知亦爾法無我性之所顯故一切故
선남자여, 나는 이러한 세 가지 무자성성의 밀의(密意)에 의지해 일체 법이 모두 자성이 없다고 말하노라.
010_0717_c_03L善男子我依如是三種無自性性密意說言一切諸法皆無自性
승의생이여, 마땅히 알라. 나는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의 밀의에 의지해, 일체 법이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고요하여 자성이 열반이라고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법의 자상(自相)이 도무지 있는 것이 없으면 곧 생기는 것이 없을 것이요, 생기는 것이 있지 않으면 곧 멸하는 것이 있지 않을 것이요,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면 곧 본래 고요할 것이요, 본래 고요하면 곧 자성이 열반이다. 그 가운데는 다시 그로 하여금 열반에 들게 할 것이 아예 조금도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상무자성성의 밀의에 의지해, 일체 법이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고요하여 자성이 열반이라고 말한다.
010_0717_c_04L勝義生當知我依相無自性性密意說言一切諸法無生無滅本來寂靜自性涅槃何以故若法自相都無所則無有生若無有生則無有滅無生無滅則本來寂靜若本來寂靜則自性涅槃於中都無少分所有更可令其般涅槃故是故我依相無自性性密意說言一切諸法無生無滅本來寂靜自性涅槃
선남자여, 나는 또한 법무아(法無我)의 성품으로 나타난 것인 승의무자성성의 밀의에 의지해, 일체 법이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고요하여 자성이 열반이라고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법무아의 성품에 의지해 나타난 승의무자성성은 언제나 어느 때나 모든 법의 법성(法性)에 머무는 무위(無爲)이니, 일체 잡염(雜染)과 어울리지 않는 까닭에, 언제나 어느 때나 모든 법의 법성에 머무는 까닭에 무위이다. 무위인 까닭에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일체 잡염과 어울리지 않는 까닭에 본래 고요하며 자성이 열반이다. 그러므로 나는 법무아의 성품으로 나타난 승의무자성성의 밀의에 의지해, 일체 법이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고요하여 자성이 열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010_0717_c_13L善男子我亦依法無我性所顯勝義無自性性密意說言一切諸法無生無滅本來寂靜自性涅槃何以故法無我性所顯勝義無自性性於常常時於恒恒時法法性安住無爲一切雜染不相應於常常時於恒恒時諸法法性安住故無爲由無爲故無生無滅一切雜染不相應故本來寂靜自性涅槃是故我依法無我性所顯勝義無自性性密意說言一切諸法無生無滅本來寂靜自性涅槃
010_0718_a_02L또 승의생이여, 유정의 세계에서 모든 유정의 무리는 따로따로 변계소집(遍計所執)의 자성(自性)을 관찰하여 자성을 삼는 까닭에, 또 그들이 따로따로 의타기(依他起)의 자성과 원성실(圓成實)의 자성을 관찰하여 자성을 삼는 까닭에 나는 세 가지 무자성성(無自性性)을 세운 것이 아니다.
010_0717_c_24L復次勝義生非由有情界中諸有情別觀遍計所執自性爲自性故非由彼別觀依他起自性及圓成實自性爲自性故我立三種無自性性然由有情於依他起自性及圓成實自性上增益遍計所執自性故我立三種無自性性
유정들이 의타기의 자성과 원성실의 자성 위에 변계소집의 자성을 더하는 까닭에 내가 세 가지 무자성성을 세운 것이다. 변계소집자성(遍計所執自性)의 모습에 의지해 모든 유정이 의타기의 자성과 원성실의 자성 가운데 마음대로 말을 일으켜 ‘여여하다[如如]’고 하고, 마음대로 말을 일으켜 ‘이와 같다[如是]’고 한다. 이처럼 언설(言說)로 훈습하는 마음을 말미암는 까닭에, 언설에 따른 깨달음[隨覺]을 말미암는 까닭에, 언설의 수면(隨眠)을 말미암는 까닭에 의타기의 자성과 원성실의 자성 가운데서 변계소집의 모습을 ‘여여하다’고 집착하고 ‘이와 같다’고 집착한다. 이처럼 의타기의 자성과 원성실의 자성 위에서 변계소집의 자성을 집착하니, 이러한 인연으로 오는 세상의 의타기의 자성을 일으킨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번뇌잡염(煩惱雜染)에 물들며, 혹은 업잡염(業雜染)에 물들며, 혹은 생잡염(生雜染)에 물들어 나고 죽는 가운데서 오래도록 헤매고 오래도록 굴러다니며 쉴 사이가 없고, 혹은 나락가(那落迦)나 방생(傍生)이나 아귀(餓鬼)나 천상이나 아소락(阿素洛)이나 혹은 사람 가운데 태어나 온갖 괴로움을 받는다.
010_0718_a_08L由遍計所執自性相彼諸有情於依他起自性及圓成實自性中隨起言說如如隨起言說如是如是由言說熏習心故由言說隨覺故由言說隨眠故於依他起自性及圓成實自性中執著遍計所執自性相如如執著如是如是於依他起自性及圓成實自性上執著遍計所執自性由是因緣生當來世依他起自性由此因緣或爲煩惱雜染所或爲業雜染所染或爲生雜染所於生死中長時馳騁長時流轉有休息或在那落迦或在傍生或在餓鬼或在天上或在阿素洛或在人受諸苦惱
010_0718_b_02L또 승의생이여, 만일 모든 유정이 본래로부터 아직 선근을 심지 않고, 아직 장애[障]를 맑히지 못하고, 아직 상속(相續)을 익히지 못하고, 아직 많은 승해(勝解)를 닦지 못하고, 아직 복덕과 지혜 두 가지 자량(資糧)을 모으지 못했다면, 나는 그들을 위하는 까닭에 생무자성성(生無自性性)에 의지해 모든 법을 말한다.
그들은 이것을 듣고 모든 인연으로 생기는 행 가운데서 분수에 따라 무상(無常)하고 무항(無恒)하며 편안치 못하고 변해 무너지는 법임을 깨닫고, 일체 행상에 대하여 마음에 두려움을 내며, 깊이 싫어하는 생각을 낸다. 마음에 두려움을 내어 깊이 싫어하고, 모든 악을 막고 그치며, 모든 악한 법을 짓지 않으며, 모든 선법은 부지런히 닦고 익힌다. 착한 인을 익히는 까닭에 아직 선근을 심지 못한 이는 능히 선근을 심고, 아직 업장을 맑히지 못한 이는 능히 업장을 맑히며, 아직 상속이 성숙하지 않은 이는 능히 성숙시킨다. 이러한 인연으로 승해(勝解)를 많이 닦고, 또한 복덕과 지혜 두 가지의 자량을 많이 쌓고 모으게 된다.
010_0718_a_22L復次勝義生若諸有情從本已來種善根未淸淨障未成熟相續未多修勝解未能積集福德智慧二種資我爲彼故依生無自性性宣說諸彼聞是已能於一切緣生行中分解了無常無恒是不安隱變壞法於一切行心生怖畏深起厭患生怖畏深厭患已遮止諸惡於諸惡法能不造作於諸善法能勤修習善因故未種善根能種善根未淸淨障能令淸淨未熟相續能令成熟此因緣多修勝解亦多積集福德慧二種資糧
그들이 비록 이러한 모든 선근을 심고, 나아가 복덕과 지혜의 두 가지 자량을 모았다고 해도, 생무자성성(生無自性性) 가운데서 아직은 상무자성성과 두 가지 승의무자성성을 여실히 깨닫지는 못한다. 또한 일체 행(行)에서 아직은 바르게 싫어하지 못하며, 아직은 바르게 욕심을 여의지 못하며, 아직은 바르게 해탈하지 못하며, 아직은 두루 번뇌의 잡염에서 해탈하지 못하며, 아직은 두루 모든 업의 잡염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아직은 두루 생의 잡염에서 해탈하지 못한다.
그래서 법요(法要)를 말하는 것이니, 이른바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과 승의무자성성(勝義無自性性)이다. 그들로 하여금 일체 행에서 능히 바르게 싫어하게 하려는 까닭이며, 바르게 욕심을 버리게 하려는 까닭이며, 바르게 해탈케 하려는 까닭이며, 일체 번뇌의 잡염을 뛰어넘게 하려는 까닭이며, 일체 업의 잡염을 뛰어넘게 하려는 까닭이며, 일체 생의 잡염을 뛰어넘게 하려는 까닭이다.
010_0718_b_12L彼雖如是種諸善根至積集福德智慧二種資糧然於生無自性性中未能如實了知相無自性性及二種勝義無自性性於一切行未能正厭未正離欲未正解脫遍解脫煩惱雜染未遍解脫諸業雜未遍解脫諸生雜染如來爲彼更說法要謂相無自性性及勝義無自性性爲欲令其於一切行能正厭故正離欲故正解脫故超過一切煩惱雜染故超過一切業雜染故超過一切生雜染故
010_0718_c_02L그들은 이러한 설법을 들으면 생무자성성에서 능히 바르게 상무자성성과 승의무자성성을 믿고 간택하며 생각하고 실답게 통달한다. 의타기의 자성 가운데 능히 변계소집자성의 모습에 집착하지 않는다. 말[言說]로 훈습되지 않는 지혜를 말미암는 까닭에, 말을 따라 깨닫지 않는 지혜를 말미암는 까닭에, 말의 수면(隨眠)을 떠난 지혜를 말미암는 까닭에, 능히 의타기상을 멸하고 현재의 법 가운데서 지혜의 힘을 유지해 오는 세상의 인연을 영원히 끊어 버릴 수 있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일체 행에서 바르게 싫어하고, 바르게 욕심을 여의며, 바르게 해탈하고, 번뇌잡염ㆍ업잡염ㆍ생잡염 세 가지에서 두루 해탈할 수 있다.
010_0718_b_23L彼聞如是所說法已生無自性性中能正信解相無自性性及勝義無自性性簡擇思惟如實通達於依他起自性中能不執著遍計所執自性相由言說不熏習智故由言說不隨覺智故由言說離隨眠智故能滅依他起相於現法中智力所持能永斷滅當來世因由此因緣於一切行能正厭患能正離欲能正解脫能遍解脫煩惱生三種雜染
또 승의생이여, 모든 성문승종성(聲聞乘種性)의 유정(有情)도 또한 이 도(道)와 이 행적(行迹)을 말미암는 까닭에 위없고 편안한 열반을 증득하며, 모든 독각승종성(獨覺乘種性)의 유정과 모든 여래승종성(如來乘種性)의 유정도 또한 이 도와 이 행적을 말미암는 까닭에 위없고 편안한 열반을 증득한다. 일체 성문과 독각과 보살이 모두 이 하나의 묘하고 청정한 도[一妙淸淨道]를 같이하고, 모두 이 하나의 끝끝내 청정함[一究竟淸淨]을 같이하는 것이니, 다시 두 번째는 없다. 내가 이에 의지하는 까닭에 밀의로써 오직 일승(一乘)만 있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고 일체 유정계(有情界) 가운데 갖가지 유정의 종성(種性)이 없는 것은 아니니, 둔근성(鈍根性)이나 중근성(中根性)이나 이근성(利根性)의 유정으로 차별된다.
010_0718_c_09L復次勝義生諸聲聞乘種性有情由此道此行迹故證得無上安隱涅諸獨覺乘種性有情諸如來乘種性有情亦由此道此行迹故證得無上安隱涅槃一切聲聞獨覺菩薩共此一妙淸淨道皆同此一究竟淸更無第二我依此故密意說言有一乘非於一切有情界中無有種種有情種性或鈍根性或中根性利根性有情差別
010_0719_a_02L선남자여, 만일 한 결 같이 고요함에만 빠지는 성문종성의 보특가라(補特伽羅)라면, 비록 모든 부처님께서 시설하여 갖가지 용맹한 가행(加行)과 방편(方便)으로 교화하고 인도하더라도, 끝내 도량에 앉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치게 하지 못한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은 본래 하열(下劣)한 종성만 가졌기 때문이며, 자비가 박약하기 때문이며, 매양 뭇 괴로움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양 자비가 박약하기 때문에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저버리며, 그들은 한결같이 뭇 괴로움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지어야 할 모든 행을 일으키는 것을 저버린다. 나는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한결같이 저버리는 자와 지어야 할 모든 행을 일으키는 것을 한결같이 저버리는 자도 도량에 앉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다고 끝내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를 한결같이 고요함에만 빠지는 성문이라 한다. 만일 보리로 회향(廻向)한 성문종성의 보특가라라면, 나는 또한 다른 문으로써 그를 보살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그는 번뇌장(煩惱障)을 해탈하였으니, 만일 모든 부처님들의 깨우쳐 주심을 입으면 소지장(所知障)에서도 그 마음이 분명 해탈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최초에 자기의 이익을 위해 가행을 닦아 번뇌장을 해탈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래는 그를 시설하여 성문종성이라 한다.
010_0718_c_19L善男子若一向趣寂聲聞種性補特伽羅雖蒙諸佛施設種種勇猛加行方便化導終不能令當坐道場證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以故由彼本來唯有下劣種性故一向慈悲薄弱故一向怖畏衆苦故由彼一向慈悲薄弱是故一向棄背利益諸衆生事由彼一向怖畏衆苦是故一向棄背發起諸行所作我終不說一向棄背利益衆生事者一向棄背發起諸行所作者當坐道場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故說彼名爲一向趣寂聲聞若迴向菩提聲聞種性補特伽羅我亦異門說爲菩薩何以故彼旣解脫煩惱障已蒙諸佛等覺悟時於所知障其心亦可當得解脫由彼最初爲自利益行加行脫煩惱障是故如來施設彼爲聲聞種性
또 승의생이여, 이와 같아서 나의 좋은 말이며 좋은 제도의 법인 비나야(毘奈耶)와 가장 청정한 뜻과 즐거움을 말한 좋은 교법 가운데서 모든 유정들은 갖가지로 차별되는 뜻과 알음알이를 얻을 수 있다. 선남자여, 여래는 다만 이와 같은 세 가지 무자성성에 의지해 깊은 밀의를 말미암아 이미 말한 불요의경(不了義經)에서 은밀한 모습으로 모든 법요(法要)를 말하니, 이른바 일체 법이 모두 자성이 없으며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이 열반이니라.
010_0719_a_14L復次勝義生如是於我善說善制法毘奈耶最極淸淨意樂所說善教法諸有情類意解種種差別可得男子如來但依如是三種無自性性由深密意於所宣說不了義經以隱密相說諸法要謂一切法皆無自性無生無滅本來寂靜自性涅槃
010_0719_b_02L이 경 가운데서 만일 모든 유정들이 이미 상품(上品)의 선근을 심고, 이미 모든 업장을 청정히 하고, 이미 상속을 이룩하고, 이미 많은 승해를 닦고, 이미 상품의 복덕과 지혜의 자량을 모으고 쌓았다면, 그들이 이와 같은 법을 듣는다면 나의 매우 깊은 밀의의 설법을 여실히 깨닫고 이러한 법에 깊은 마음과 신해(信解)를 낼 것이며, 이러한 뜻에 뒤바뀜이 없는 지혜로써 여실히 통달할 것이다. 이 통달에 의지해 잘 닦는 까닭에 능히 빠르게 가장 극진한 구경(究竟)을 증득할 것이며, 또한 나에게 청정한 믿음을 깊이 일으키고, 이것이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이 일체 법에서 현전에 등정각을 이룬 것임을 알 것이다.
010_0719_a_21L於是經中若諸有情已種上品善根已淸淨諸障已成熟相續已多修勝解能積集上品福德智慧資糧彼若聽聞如是法已於我甚深密意言說實解了於如是法深生信解於如是以無倒慧如實通達依此通達善修習故速疾能證最極究竟亦於我所深生淨信知是如來正等覺於一切法現正等覺
010_0719_c_02L만일 모든 유정이 이미 상품의 선근을 심고 이미 모든 업장을 맑히고 이미 상속을 성숙시키고 이미 많은 승해(勝解)를 닦았지만 아직 상품의 복덕과 지혜의 자량을 모으고 쌓지는 못했다면, 그 성품이 강직[質直]하다면, 이 강직한 무리가 비록 폐하고 세울 것을 생각하고 가려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은 없지만 자기의 견취(見取)에 머물지는 않는다면, 그들이 이와 같은 법을 듣는다면 나의 매우 깊고 비밀한 말에 비록 여실히 깨달을 힘과 능력은 없어도 이 법에 대해 승해를 낼 것이며, 청정한 믿음을 내어 ‘이 경전은 여래의 말씀이며, 이는 매우 깊은 이치를 드러낸 것이며, 매우 깊은 공의 성품과 상응하여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려워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며, 모든 심사(尋思)로 행할 수 있는 경계가 아니며, 미세하고 자세하게 살피는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고 믿을 것이다. 이 경전의 말씀에 대하여 스스로를 낮추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모든 부처님의 보리는 가장 깊으며, 모든 법의 법성 또한 가장 깊어서 오직 부처님만 요달하실 수 있지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갖가지 승해로 유정들을 위해 바른 법의 가르침을 펴시니, 모든 부처님은 무변한 지견(知見)이시고, 우리들의 지견은 소 발자국의 물과 같다.’
그들은 이 경전을 공경하고, 남을 위해 말하고, 쓰고, 지니고, 읽고, 널리 퍼뜨리고, 소중히 여겨 공양하고, 외우고, 익히기는 하지만 그 닦는 모습[修相]으로써 가행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이런 까닭에 내가 매우 깊은 밀의로써 말한 가르침을 통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인연에 의지해 모든 유정들이 또한 능히 복덕과 지혜의 두 가지 자량을 더할 것이며, 그가 아직 상속이 성숙하지 않은 자라면 또한 성숙할 것이다.
010_0719_b_07L若諸有情已種上品善根已淸淨諸障已成熟相續多修勝解未能積集上品福德智慧資糧其性質直是質直類雖無力能思擇廢立而不安住自見取中彼若聽聞如是法已於我甚深秘密言說雖無力能如實解了然於此法能生勝解發淸淨信信此經典是如來說是其甚深顯現甚深空性相應難見難悟不可尋思非諸尋思所行境界微細詳審聰明智者之所解了於此經典所說義中自輕而住作如是言諸佛菩提爲最甚深諸法法性亦最甚深唯佛如來能善了達非是我等所能解了諸佛如來爲彼種種勝解有情轉正法教諸佛如來無邊智見我等智見猶如牛迹於此經典雖能恭敬爲他宣說書寫護持披閱流布殷重供養受誦溫習然猶未能以其修相發起加行是故於我甚深密意所說言辭不能通達由此因緣彼諸有情亦能增長福德智慧二種資糧於彼相續未成熟者亦能成熟
010_0720_a_02L만일 모든 유정들이, 널리 말하건대 내지 아직 상품(上品)의 복덕과 지혜 두 가지 자량을 쌓지 못했고 성품이 강직하지 못하다면, 성품이 강직하지 못해 비록 폐하고 세울 것을 생각하고 선택할 힘과 능력이 있긴 하지만 아직도 자기의 견취(見取)에 머물러 있다면, 그들은 이와 같은 법을 듣더라도 나의 매우 깊은 밀의의 말을 여실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법에 믿는 마음을 낸다고 해도 그 뜻을 말을 따라 집착해 ‘일체 법은 단정코 모두 자성이 없으며, 단정코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단정코 본래 고요하며, 단정코 자성이 열반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모든 법에 대하여 없다는 견해와 모습이 없다는 견해를 얻을 것이다. 없다는 견해와 모습이 없다는 견해를 얻었음으로써 일체 모습은 모두 무상(無相)이라고 부정해 버리며, 모든 법의 변계소집상과 의타기상과 원성실상을 비방하고 부정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의타기상과 원성실상이 있는 까닭에 변계소집상도 시설할 수 있는 것이니, 만일 의타기상과 원성실상을 없는 모습이라고 본다면 그는 또한 변계소집상도 비방하고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세 가지 모습을 비방하고 부인한다’고 말하니, 비록 나의 법에 대하여 법이란 생각을 일으키긴 하지만 뜻이 아닌 것 가운데서 뜻이란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나의 법에 대하여 법이란 생각을 일으키고 뜻 아닌 가운데 뜻이란 생각을 일으키는 까닭에, 옳은 법 가운데서 옳은 법이라 지니고 잘못된 뜻 가운데서 옳은 뜻이라고 지닌다. 그는 법에 대하여 믿음을 일으킨 까닭에 복덕이 증장하긴 하지만 뜻이 아닌 것에 대하여 집착을 일으킨 까닭에 지혜를 잃으며, 지혜를 잃는 까닭에 광대하고 무량한 좋은 법에서 물러난다.
010_0719_c_06L若諸有情廣說乃至未能積集上品福德智慧資糧性非質直非質直類雖有力能思擇廢立而復安住自見取中彼若聽聞如是法已於我甚深密意言說不能如實解了於如是法雖生信解然於其義隨言執著謂一切法決定皆無自性決定不生不滅決定本來寂靜決定自性涅槃由此因緣於一切法獲得無見及無相見由得無見無相見故撥一切相皆是無相誹撥諸法遍計所執相依他起相成實相何以故由有依他起相及圓成實相故遍計所執相方可施設於依他起相及圓成實相見爲無相彼亦誹撥遍計所執相是故說彼誹撥三相雖於我法起於法想而非義中起於義想由於我法起法想故非義中起義想故於是法中持爲是於非義中持爲是義彼雖於法起信解故福德增長然於非義起執著退失智慧智慧退故退失廣大無量善法
다시 어떤 유정이 법을 법이라 하고 뜻 아닌 것을 뜻이라고 하는 말을 남에게서 듣고 그 소견에 따른다면, 그는 곧 법에서 법이란 생각을 일으키고 뜻 아닌 것에서 뜻이란 생각을 일으켜, 법을 집착하여 법이라 하고 뜻 아닌 것을 집착하여 뜻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라, 그들은 함께 선법(善法)에서 물러나리라.
만일 어떤 유정이 이러한 견해를 따르지는 않지만, 남에게서 홀연히 ‘일체 법은 모두 자성이 없으며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이 열반이다’는 말을 듣고는 문득 두려움을 내고, 두려움을 내고는 ‘이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마군의 말이다’고 말하며, 이러한 소견을 내고는 이 경전에 대하여 비방하고 헐뜯고 욕한다면, 이런 인연으로 큰 쇠퇴와 손해를 얻고 큰 업장(業障)을 범하리라. 이러한 인연으로 나는, 일체 모습에 대하여 모습이 없다는 견해를 일으키고 뜻이 아닌 것을 뜻이라고 소리 높여 말하는 이가 있으면 이는 광대한 업장을 일으키는 방편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무량한 중생을 구렁에 빠뜨리고, 그들로 하여금 큰 업장을 얻게 하는 까닭이다.
010_0720_a_05L復有有情從他聽聞謂法爲非義爲義若隨其見彼卽於法起於法想於非義中起於義想執法爲非義爲義由此因緣當知同彼退失善法若有有情不隨其見從彼欻聞一切諸法皆無自性無生無滅來寂靜自性涅槃便生恐怖生恐怖作如是言此非佛語是魔所說此解已於是經典誹謗毀罵由此因獲大衰損觸大業障由是緣故說若有於一切相起無相見於非義中宣說爲義是起廣大業障方便彼陷墜無量衆生令其獲得大業障
010_0720_b_02L선남자여, 만일 모든 유정이 선근을 심지 못했고, 업장을 맑히지 못했고, 상속을 익히지 못했고, 승해를 많이 닦지 못했고, 복덕과 지혜의 자량을 모으지 못했고, 성품이 강직하지 못하고, 성품이 강직하지 못한 무리로서 버리고 세울 것을 가릴 힘과 능력이 있으나 항상 자기의 견취 가운데 안주한다면, 그들은 이와 같은 법을 듣더라도 나의 매우 깊은 밀의(密意)의 말을 여실히 알지 못할 것이며, 또 이 법에 믿음을 내지 못할 것이며, 옳은 법 가운데 잘못된 법이란 생각을 일으키고 옳은 뜻 가운데 잘못된 뜻이란 생각을 일으킬 것이며, 옳은 법을 잘못된 법이라 집착하고 옳은 뜻을 잘못된 뜻이라고 집착하며 ‘이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이는 마군의 말이다’고 소리 높여 말할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고는 이 경을 비방하고 욕하고 거짓이라고 부정하며 무량한 문으로써 이러한 경전을 헐뜯고 무시할 것이며, 이 경전을 믿는 모든 이들을 원수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예전부터 모든 업장에 장애되었으니, 이러한 인연으로 다시 이러한 업장에게 장애되는 것이다. 이러한 업장은 처음에 시설하기는 쉬우나 백천 구지(俱胝) 나유타(那由陀)겁을 지나도 벗어날 기약이 없다.
010_0720_a_18L善男子若諸有情未種善根未淸淨障未熟相續無多勝解未集福德智慧資糧性非質直非質直類雖有力能思擇廢立而常安住自見取中彼若聽聞如是法已不能如實解我甚深密意言說亦於此法不生信解於是法中起非法想於是義中起非義想於是法中執爲非法於是義中執爲非義唱如是言此非佛語是魔所說作此解已於是經典誹謗毀罵撥爲虛僞以無量門毀滅摧伏如是經典於諸信解此經典者起怨家想彼先爲諸業障所障由此因緣復爲如是業障所障如是業障初易施設乃至齊於百千俱胝那庾多劫無有出期
선남자여, 이와 같이 나의 좋은 말이며 좋은 제도의 법인 비나야와 가장 청정한 뜻의 즐거움으로 말한 좋은 가르침 가운데서 이와 같은 여러 유정들의 무리가 갖가지로 차별되는 견해를 얻는다.”
010_0720_b_10L善男子如是於我善說善制法毘奈耶最極淸淨意樂所說善教法有如是等諸有情類意解種種差別可得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0_0720_b_13L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頌曰

일체 법은 모두 자성이 없고
생함도 멸함도 없고 본래 적멸이며
모든 법의 자성은 언제나 열반이니
지혜로운 자 뉘라서 밀의(密意)가 없다 말하리오.
010_0720_b_14L一切諸法皆無性
無生無滅本來寂
諸法自性恒涅槃
誰有智言無密意

상(相)ㆍ생(生)ㆍ승의(勝義)의 무자성
이와 같이 내가 이미 드러냈으니
만일 부처님의 이러한 밀의 모르고
바른 길을 잃어버린다면 가지 못하리라.
010_0720_b_16L相生勝義無自性
如是我皆已顯示
若不知佛此密意
失壞正道不能往

모든 맑은 도에 의지해 청정하려면
이 하나만 의지할 뿐 두 번째는 없나니
그러므로 그 가운데 1승(乘)을 세웠건만
유정들의 성품은 차별이 없지 않더라.
010_0720_b_18L依諸淨道淸淨者
惟依此一無第二
故於其中立一乘
非有情性無差別

중생계의 무량한 중생들
한 몸만 제도하고 적멸로 나아가니
대비(大悲)와 용맹으로 열반 깨치고
중생들 버리지 않을 자 매우 얻기 어려워라.
010_0720_b_20L衆生界中無量生
惟度一身趣寂滅
大悲勇猛證涅槃
不捨衆生甚難得

미묘하여 알 수 없는 무루세계
그곳의 해탈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고
모든 뜻 이루어져 혹(惑)과 고(苦)가 없거늘
두 가지 종성 달리 말해 상(常)과 낙(樂)이라 하네.
010_0720_b_22L微妙難思無漏界
於中解脫等無差
一切義成離惑苦
二種異說謂常樂
010_0720_c_02L
그때 승의생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여래의 밀의(密意)의 말씀은 매우 기이하고 희유하고 극히 미묘하며 매우 깊으며, 지극히 통달하기 어렵습니다.
010_0720_b_24L爾時勝義生菩薩復白佛言世尊佛如來密意語言甚奇希有乃至微妙最微妙甚深最甚深難通達最難通達
이와 같이 저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였습니다. 혹은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이 의지하는 대상인 행상(行相) 중에 거짓으로 이름을 세워 색온(色蘊)이라 하고, 혹은 자성의 모습이나 혹은 차별의 모습을 삼으며, 거짓 이름을 세워 색온의 생함[生]을 삼고 색온의 멸함[滅]을 삼으며, 색온의 영원히 끊어짐[永斷]과 변지의 자성의 모습과 혹은 차별의 모습을 삼으니, 이것을 변계소집상이라고 부릅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모든 법의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을 시설하셨습니다. 만일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의 의지하는 대상이 되는 행상이라면 이는 의타기상이라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모든 법의 생무자성성(生無自性性)과 1분의 승의무자성성(勝義無自性性)을 시설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저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였습니다. 이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의 의지하는 대상인 행상 가운데서는 변계소집상이 실다움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에, 이 자성의 무자성성(無自性性)과 법무아(法無我)와 진여(眞如)인 청정의 소연(所緣)을 원성실상이라 부릅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1분의 승의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색온에서와 같이 이렇게 다른 온에서도 모두 널리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온에서와 같이 이렇게 12처(處)의 낱낱 처에 대해서도 모두 널리 말할 수 있을 것이며, 12유지(有支)의 낱낱 지에 대해서도 모두 널리 말할 수 있을 것이며, 4식(食)의 낱낱 식에 대해서도 널리 말할 수 있을 것이며, 6계(界)와 18계(界)의 낱낱 계에 대해서도 널리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010_0720_c_05L如是我今領解世尊所說義者若於分別所行遍計所執相所依行相中假名安立以爲色薀或自性相或差別相假名安立爲色薀生爲色薀滅及爲色薀永斷遍知或自性相或差別相是名遍計所執相世尊依此施設諸法相無自性性若卽分別所行遍計所執相所依行相是名依他起相世尊依此施設諸法生無自性性及一分勝義無自性性如是我今領解世尊所說義者若卽於此分別所行遍計所執相所依行相中遍計所執相不成實故卽此自性無自性性法無我眞如淸淨所緣是名圓成實相世尊依此施設一分勝義無自性性如於色薀如是於餘薀皆應廣說如於諸薀如是於十二處一一處中皆應廣說於十二有支一一支中皆應廣說於四種食一一食中皆應廣說於六界十八界一一界中皆應廣說
010_0721_a_02L이와 같이 저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였습니다.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의 의지하는 대상인 행상 위에서 거짓 이름을 세워 고제(苦諦)와 고제의 변지(遍知)와 혹은 자성의 모습과 혹은 차별의 모습을 삼으니, 이것이 변계소집상입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모든 법의 상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이 의지하는 대상인 행상을 의타기상이라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모든 법의 생무자성성과 1분의 승의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저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였습니다. 이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의 의지하는 대상인 행상 위에서 변계소집상이 실다움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에, 곧 이 자성의 무자성성과 법무아와 진여인 청정의 소연을 원성실상이라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1분의 승의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고제(苦諦)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다른 제(諦)에서도 모두 널리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성제(聖諦)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모든 염주(念住)와 정단(正斷)과 신족(神足)과 근(根)과 역(力)과 각지(覺支)와 도지(道支)에서도 낱낱이 모두 널리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010_0721_a_02L如是我今領解世尊所說義者若於分別所行遍計所執相所依行相中假名安立以爲苦諦苦諦遍知或自性相或差別相是名遍計所執世尊依此施設諸法相無自性性若卽分別所行遍計所執相所依行是名依他起相世尊依此施設諸法生無自性性及一分勝義無自性如是我今領解世尊所說義者卽於此分別所行遍計所執相所依行相中由遍計所執相不成實故此自性無自性性法無我眞如淸淨所緣是名圓成實相世尊依此施設一分勝義無自性性如於苦諦如是於餘諦皆應廣說如於聖諦如是諸念住正斷神足覺支道支中一一皆應廣說
010_0721_b_02L이와 같이 저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였습니다.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의 의지하는 대상인 행상 위에서 거짓 이름을 세워 정정(正定)을 삼고, 또 정정의 다스려야 할 것을 다스림과 바른 닦음과 생기지 않은 것을 생기게 하고 이미 생긴 것은 견고히 머물러 잊지 않으며 곱으로 닦아 더하고 넓어지게 함이라 하며, 혹은 자성의 모습이라 하고 혹은 차별의 모습이라 하니, 이를 변계소집상이라 부릅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모든 법의 상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이 의지하는 대상인 행상을 의타기상이라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모든 법의 생무자성성과 1분의 승의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저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였습니다. 이 분별로 행해진 변계소집상의 의지하는 대상인 행상 위에서 변계소집상은 실다움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에, 곧 이 자성의 무자성성과 법무아와 진여인 청정의 소연을 원성실상이라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지해 모든 법의 1분의 승의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010_0721_a_18L如是我今領解世尊所說義者若於分別所行遍計所執相所依行相中假名安立以爲正定及爲正定能治所治若正修未生令生已堅住不忘倍修增長廣大自性相或差別相是名遍計所執相世尊依此施設諸法相無自性性卽分別所行遍計所執相所依行相是名依他起相世尊依此施設諸法生無自性性及一分勝義無自性性如是我今領解世尊所說義者若卽於此分別所行遍計所執相所依行相中由遍計所執相不成實故卽此自性無自性性法無我眞如淸淨所是名圓成實相世尊依此施設諸法一分勝義無自性性
세존이시여, 비유컨대 비습박약(毘濕縛藥)은 일체 산약(散藥)과 선약(仙藥)의 방문에 모두 상응하여 넣을 수 있는 것처럼, 세존의 이 모든 법은 모두 자성이 없으며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이 열반이며, 무자성성에 의지한 요의(了義)의 가르침은 두루 일체 요의가 아닌 경전에 모두 있을 수 있습니다.
010_0721_b_10L世尊譬如毘濕縛藥一切散藥仙藥方中皆應安如是世尊依此諸法皆無自性無滅本來寂靜自性涅槃無自性性了義言教遍於一切不了義經應安處
세존이시여, 그림의 바탕은 일체 그림 그리는 사업에 보편하여 모두가 한맛이며 청ㆍ황ㆍ적ㆍ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채색을 나타낼 수 있는 것처럼, 세존의 이 모든 법은 모두 자성이 없고 널리 말하면 나아가 자성이 열반이며, 무자성성에 의지한 요의의 가르침은 두루 일체 요의가 아닌 경전에서도 모두 한맛이며, 또 그 모든 경전의 요의가 아닌 뜻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010_0721_b_15L世尊如彩畫地遍於一切彩畫事業皆同一味或靑或黃或赤復能顯發彩畫事業如是世尊此諸法皆無自性廣說乃至自性涅無自性性了義言教遍於一切不了義經皆同一味復能顯發彼諸經中所不了義
세존이시여, 비유컨대 요리한 모든 진수(珍羞)와 모든 떡과 과일에 숙소(熟酥)를 넣으면 더욱 훌륭한 맛을 내는 것처럼, 세존께서는 이 모든 법의 자성이 없고 널리 말하면 나아가 자성이 열반이며, 무자성성에 의지한 요의의 가르침을 일체 요의가 아닌 경전에 두어 수승한 환희를 일으키게 하셨습니다.
010_0721_b_21L世尊譬如一切成熟珍羞諸餠果內投之熟酥更生勝味世尊依此諸法皆無自性廣說乃至自性涅槃無自性性了義言教於一切不了義經生勝歡喜
010_0721_c_02L세존이시여, 비유컨대 허공이 모든 일체 처소에 보편하되 모두 한맛이어서 일체 짓는 바를 장애하지 않는 것처럼, 세존의 이 모든 법은 모두 자성이 없고 널리 말하면 나아가 자성이 열반이며, 무자성성에 의지한 요의의 말씀은 일체 요의가 아닌 경에 보편하며 모두 같은 한맛이어서 일체 성문과 독각과 모든 대승의 수행하는 사업을 장애하지 않습니다.”
010_0721_c_02L世尊如虛空遍一切處皆同一味不障一切所作事業如是世尊依此諸法皆無自性廣說乃至自性涅槃無自性性了義言教遍於一切不了義經皆同一味不障一切聲聞獨覺及諸大乘所修事業說是語已
그때 세존께서 승의생보살을 칭찬하셨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여래가 말한 매우 깊은 밀의(密意)의 말과 뜻을 잘 알았고 또 이 뜻의 비유를 잘 들었으니, 이른바 세간의 비습박약과 채색의 그림 바탕과 숙소와 허공이다. 승의생이여, 그렇고 그렇다. 틀림없으니 이와 같이 그대는 받아 지녀라.”
010_0721_c_08L爾時世尊歎勝義生菩薩曰善哉善男子汝今乃能善解如來所說甚深密意言義復於此義善作譬喩所謂世間毘濕縛藥雜彩畫地熟酥虛空勝義生如是如是更無有異如是汝應受持
그때 승의생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처음 언젠가 바라니사(婆羅尼斯) 선인이 떨어진 곳, 사슴에게 베푼 동산에서는 오직 성문승으로만 향해 나아가는 이들을 위해 4제법으로 바른 법륜(法輪)을 굴리셨습니다. 매우 기이하고 매우 희유한 일로서 일체 하늘과 인간에서 누구도 일찍이 굴린 이가 없는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때 굴린 법륜은 그보다 나은 것이 있고 용납할 것이 있어 요의가 되지 못하였으니, 모든 시비가 발을 붙일 곳이었습니다.
010_0721_c_14L爾時勝義生菩薩復白佛言世尊於一時在婆羅痆斯仙人墮處施鹿林中惟爲發趣聲聞乘者以四諦相轉正法輪雖是甚奇甚爲希有一切世閒諸天人等先無有能如法轉者而於彼時所轉法輪有上有容是未了義是諸諍論安足處所
010_0722_a_02L세존이시여, 옛날에 두 번째로 오직 대승을 향해 수행하는 이들을 위해 일체 법이 모두 자성이 없고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고요하여 자성이 열반이라고 말씀하시고, 이에 의지해 은밀한 모습으로 바른 법륜을 굴리셨습니다. 비록 훨씬 기이하고 매우 희유하였사오나 그때 굴린 법륜 또한 그보다 나은 것이 있고 용납할 것이 있어 요의가 되지 못하였으니, 모든 시비가 발을 붙일 곳이었습니다.
010_0721_c_21L世尊在昔第二時中惟爲發趣修大乘者依一切法皆無自性無生無滅本來寂靜自性涅槃以隱密相轉正法輪雖更甚奇甚爲希有而於彼時所轉法輪亦是有上有所容受猶未了義是諸諍論安足處所
세존이시여, 지금 세 번째로 널리 일체승을 향하는 이들을 위해 일체 법이 모두 자성이 없고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고요하여 자성이 열반인 무자성성이라 말씀하시고, 이에 의지해 뚜렷한 모습으로 바른 법륜을 굴리십니다. 제일 기이하시고 가장 희유하십니다. 지금 세존께서 굴리신 법륜은 그보다 나은 것이 없고 용납할 것도 없어 참으로 요의이니, 모든 시비가 발을 붙일 곳이 아닙니다.
010_0722_a_04L世尊於今第三時中普爲發趣一切乘者依一切法皆無自無生無滅本來寂靜自性涅槃自性性以顯了相轉正法輪第一甚最爲希有于今世尊所轉法輪無上無容是眞了義非諸諍論安足處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일체 법이 모두 자성이 없고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이 열반인 것에 의지해 말씀하신 매우 깊은 요의의 교법을, 선남자ㆍ선여인이 듣고 믿고 쓰고 지니고 공양하고 퍼뜨리고 받아 외우고 닦고 이치대로 생각하고 그 닦는 모습으로써 가행을 일으킨다면 복덕이 얼마나 생기겠습니까?”
010_0722_a_10L世尊若善男子或善女人於此如來依一切法皆無自性無生無滅來寂靜自性涅槃所說甚深了義言聞已信解書寫護持供養流布修習如理思惟以其修相發起加生幾所福說是語已
010_0722_b_02L그때 세존께서 승의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승의생이여, 그런 선남자ㆍ선여인에게 생기는 복덕은 무량하고 무수하여 알기가 어려우니, 내가 지금 그대에게 조금만 말하리라. 손톱 위의 흙을 대지의 흙과 비교하면 백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천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수(數)ㆍ산(算)ㆍ계(計)ㆍ유(喩)ㆍ오파니살담(鄔波尼殺曇)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함과 같다. 소 발자국의 물을 4대해의 물과 비교하면 백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널리 말하자면 나아가 오파니살담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함과 같다. 이와 같아서 모든 요의가 아닌 경을 듣고 믿고, 나아가 그 수행하는 모습으로써 가행을 일으켜 얻은 공덕을, 지금 말한 요의경의 가르침을 듣고 믿어서 모인 공덕이나 나아가 그 닦은 모습으로써 가행을 일으켜 모인 공덕과 비교하면 백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널리 말하면 나아가 오파니살담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010_0722_a_15L爾時世尊告勝義生菩薩曰勝義生是善男子或善女人其所生福無量無數難可喩知吾今爲汝略說少分如爪上土比大地土百分不及一千分不及一百千分不及一數筭計喩波尼殺曇分亦不及一或如牛迹中水比四大海水百分不及一廣說乃至鄔波尼殺曇分亦不及一如是諸不了義經聞已信解廣說乃至以其修相發起加行所獲功德比此所說了義經教聞已信解所集功德說乃至以其修相發起加行所集功百分不及一廣說乃至鄔波尼殺曇分亦不及一說是語已
그때 승의생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해심밀법에서 이 교법을 저희들이 무엇이라고 하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010_0722_b_06L爾時勝義生菩薩復白佛言世尊是解深密法門中當何名此教我當云何奉持
부처님께서 승의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는 승의요의(勝義了義)라는 교법이니, 그대들은 이렇게 받들어 지녀라.”
010_0722_b_09L佛告勝義生菩薩曰善男此名勝義了義之教於此勝義了義之教汝當奉持
이 승의요의의 교법을 말씀하셨을 때 큰 모임 가운데 있던 60만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며, 30만 성문이 티끌[塵垢]을 멀리 벗어나 모든 법에 법안(法眼)이 맑아졌으며, 15만 성문이 모든 번뇌[漏]가 영원히 다해 심해탈(心解脫)을 얻었으며, 7만 5천의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010_0722_b_11L說此勝義了義教於大會中有六百千衆生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三百千聲聞遠塵離垢於諸法中得法眼淨一百五十千聲聞永盡諸漏心得解脫七十五千菩薩得無生法忍
解深密經卷第二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