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222_T_001
- 011_0419_a_01L문수사리문보리경(文殊師利問菩提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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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_0419_a_01L文殊師利問菩提經
一名伽耶山頂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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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진(姚秦) 구자(龜茲)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김달진 번역 - 011_0419_a_02L姚秦龜茲三藏鳩摩羅什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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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 011_0419_a_03L如是我聞:
- 어느 때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득도(得道)하시어 마가타국(摩伽陀國)의 가야산사(伽倻山祠)에서 큰 비구 대중 천 사람들과 함께 계시었다. 그들은 과거에 모두 머리를 땋은 선인(仙人)으로서 다 아라한(阿羅漢)이 되어 할 일을 이미 끝냄으로써 마음이 자재하여 자기 이익을 얻고 모든 번뇌를 끊어 바른 지혜로 해탈한 이들이었다.
- 011_0419_a_04L一時,佛初得道,在摩伽陁國伽耶山祠,與大比丘衆千人俱。其先悉是編髮仙人,皆阿羅漢,所作已辦,心得自在,逮得己利,盡諸有結,正智解脫。
- 또한 보살 1만 사람이 다 시방세계로부터 모여왔는데 큰 위덕(威德)이 있었고, 모든 지혜와 모든 다라니(陀羅尼)와 모든 깊은 삼매를 얻고 모든 신통을 구족했는데, 문수사리(文殊師利)보살ㆍ관세음(觀世音)보살ㆍ대세지(大勢至)보살ㆍ향상(香象)보살ㆍ용시(勇施) 보살ㆍ수지행(隨智行)보살 등이 상수(上首)였다. 이러한 보살 대중이 백천만억이어서 그 수가 한량없는 데다가 아울러 모든 하늘ㆍ용ㆍ야차(夜叉)ㆍ건달바(乾闥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와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人非人] 등의 대중들이 다 둘러싸고 있었다.
- 011_0419_a_08L菩薩萬人,皆從十方世界來集,有大威德,皆得諸忍、諸陁羅尼、諸深三昧,具諸神通。文殊師利菩薩、觀世音菩薩、大勢至菩薩、香象菩薩、勇施菩薩、隨智行菩薩以爲上首,如是等菩薩大衆,百千萬億其數無量,幷諸天、龍、夜叉、乾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人非人等,大衆圍繞。
- 그때 세존께서 제불심심삼매(諸佛甚深三昧)에 드시어 여실히 모든 법의 성품과 형상[性相]을 자세히 관하시고 이렇게 생각하셨다.
- 011_0419_a_15L爾時,世尊入諸佛甚深三昧,如實諦觀諸法性相,而作是念:
-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고 일체 지혜를 얻어서 모든 무거운 짐[擔]을 제거하여 3유(有:界)의 험한 길을 건너고 무명(無明)을 소멸하여 참된 밝음을 얻고 삿된 화살을 뽑아 애욕에 대한 탐착을 끊었으므로 법의 배[法船]를 이루고 법의 북[法鼓]을 두드리고 법의 소라를 불고 법의 당기[法幢]를 세우며, 생사의 종류를 바꿔 열반(涅槃)의 성품을 보이고 삿된 길을 막아서 바른 길을 열고 모든 악업을 떠나서 복 밭[福田]을 보이리라.
- 011_0419_a_17L‘我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得一切智慧,除諸重擔,度三有險道,滅無明,得眞明,拔邪箭,斷渴愛,成法舩,擊法鼓,吹法蠡,建法幢,轉生死種,示涅槃性,閉塞邪道,開於正路,離諸惡業,示于福田。
- 011_0419_b_02L내가 이제 관하건대 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되 그것을 몸으로써 얻는다 하거나 마음으로써 얻는다 하겠는가.
- 011_0419_a_22L我今當觀誰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爲以身得?爲以心得?
- 만약 몸으로써 얻는 것이라면, 몸이란 곧 아는 것이 없고 하는 것이 없어 마치 풀ㆍ나무ㆍ기와ㆍ돌과 같고, 4대(大)로 만들어졌으며, 부모로부터 생겨났고, 의복ㆍ음식ㆍ와구와 목욕하는 것으로써 존립하는 것이어서 반드시 허물어져 덧없이 마멸되기 마련이다. 이 보리(菩提)란 다만 명자(名子)일 뿐이어서 세속 때문에 말하는 것일 뿐, 어떤 형체도 없고, 빛깔도 없고 정해진 것도 없고 모양도 없고, 나아가는 것도 없고 들어오는 것도 없고 길도 없는가 하면 모든 언설(言說)을 벗어나 삼계(三界)를 뛰어넘어 보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고, 깨닫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고, 희론(戱論)도 없고 물음도 없고, 보임도 없고 문자(文字)도 없고 언어의 길도 없다.
- 011_0419_b_03L若以身得,身則無知無作如草木瓦石四大所造從父母生,以衣服、飮食、臥具、澡浴而得存立,必歸敗壞,無常磨滅。而是菩提,但有名字,世俗故說,無形無色,無定無相,無向無入無道,過諸言說,出於三界,無見無聞,無覺無知,亦無所得,亦無戲論,無問無示,無有文字,無語言道。
- 만약 마음으로써 얻는 것이라면 마음이란 뭇 인연을 따라 나며, 뭇 인연을 따라 나기 때문에 공(空)함이 환(幻)과 같아서 처소도 없고 모양도 없고 성품도 없고, 또한 존재하는 것도 없다. 이 가운데 보리를 얻는 것이란 그 법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인만큼 이 법은 다 공한 것이며, 다만 명자가 있어 세속 때문에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다 기억해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일 뿐, 실상 아무것도 없어 근본도 없고 형체와 모양도 없고, 느낌도 없고 집착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고 하나의 형상[相]이니, 여읠 것도 없어서 이른바 상이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법 가운데 법을 얻은 이도 없고 법을 쓸 것도 없고, 또한 보리란 것도 없다. 이와 같이 통달한다면 그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하리라.’
- 011_0419_b_11L若以心得,心從衆緣生,衆緣生故,空如幻,無處,無相,無性,亦無所有,於是中,得菩提者,所用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法皆空,但有名字,以世俗故而有言說。是皆憶想分別,實無所有,無有根本,亦無體相,無受無著,無染無離一相,所謂無相。是故於此法中,無有得者,無所用法,亦無菩提。如是通達,是則名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
- 그때 문수사리 법왕자가 큰 모임 가운데서 부처님 오른편에 서서 큰 보배 일산을 잡고 부처님 머리 위를 덮고 있으면서 때에 문수사리가 잠자코 세존께서 생각하심이 어떠한 것인 줄을 알고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 011_0419_b_19L爾時,文殊師利法王子,在大會中,立佛右面,執大寶蓋,以覆佛上。時,文殊師利默知世尊所念如是,卽白佛言:
- “세존이시여, 만약 보리가 이러한 상(相)이라면 선남자ㆍ선여인들이 어떻게 발심해야 합니까?”
- 011_0419_b_22L“世尊,若菩提如是相者,善男子善女人,云何發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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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선남자ㆍ선여인은 마땅히 보리의 상을 따라 그 마음을 내어야 하리라.” - 011_0419_b_24L佛告文殊師利:“善男子善女人,當隨菩提相,而發其心。”
- 011_0419_c_02L“세존이시여, 보리의 상이란 어떠한 상을 말하는 것입니까?”
- 011_0419_c_02L“世尊,菩提相者當云何說?”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 佛告文殊師利:
- “문수사리여, 보리의 상이란 삼계를 벗어나 세속의 법을 뛰어넘어 언어의 길이 끊어졌으므로 내거나 내지 않는 것이 없는 그것이 바로 보리심을 내는 것이니라.
- 011_0419_c_03L“菩提相者,出於三界,過世俗法,語言道斷,滅諸發無發,是發菩提。
- 문수사리여, 이 때문에 보살은 내는 것이 없이 보리심을 내어야 하리니, 내는 것 없는 그것이 곧 보리심을 내는 것이다. 보리심을 낸다는 것은 법의 성상(性相) 그대로이고, 진리의 경계 그대로인지라, 분별하는 것도 없고 몸과 마음에 반연하는 것도 없으니, 이것이 보리심을 내는 것이다.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아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는 이것이 보리심을 내는 것이니, 마치 거울 속의 영상과 같고 뜨거울 때의 화염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고 물 속의 달과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리심을 내어야 하리라.”
- 011_0419_c_05L文殊師利,是故菩薩應滅諸發,發菩提心無發,是發菩提。發菩提心者,如如、法性相,如實際,無分別,不緣身心,是發菩提,不著諸法,不增不減,不異不一,是發菩提,如鏡中像,如熱時焰,如影,如響,如水中月,應當如是發菩提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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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모임 가운데 월정광덕(月淨光德)이라는 천자가 물러나지 않는 지위[阿惟越致]를 얻어서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물었다.
“보살이 무슨 일로 보살의 도를 행하는 것입니까?” - 011_0419_c_11L爾時,會中有天子,名月淨光德,得阿惟越致,問文殊師利法王子言:“菩薩緣何事故,行菩薩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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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대는 이것을 세존께 물어보시오.” - 011_0419_c_14L文殊師利言:“汝可以此,問於世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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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부처님께서 곧 문수사리에게 분부하셨다.
“그대는 월정광덕 천자가 물은 보살로서의 행하는 법에 대해 대답해 주어라.” - 011_0419_c_15L佛卽告文殊師利:“汝答月淨光德天子所問行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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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는 천자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잘 들으시오. 내가 이제 해설하리다. 천자여, 모든 보살의 도가 대비(大悲)로써 근본 연(緣)으로 삼는 것은 중생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 두시오.” - 011_0419_c_16L文殊師利謂天子言:“汝可善聽,我今當說。天子!當知諸菩薩道,以大悲爲本,緣於衆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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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는 말하였다.
“보살의 대비는 무엇을 근본으로 삼는 것입니까?” - 天子言:“菩薩大悲以何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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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정직한 마음으로 근본을 삼습니다.” - 011_0419_c_19L文殊師利言:“以直心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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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정직한 마음은 무엇을 근본으로 삼습니까?” - 011_0419_c_20L又問:“直心以何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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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일체 중생들에게 평등하게 대하는 그 마음으로 근본을 삼습니다.” - 答言:“於一切衆生,等心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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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평등한 마음은 무엇을 근본으로 삼습니까?” - 011_0419_c_21L又問:“等心以何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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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차별함이 없는 행으로 근본을 삼습니다.” - 011_0419_c_22L答言:“無別異行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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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차별함이 없는 행이란 무엇을 근본으로 삼습니까?” - 又問:“無別異行以何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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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깊고 깨끗한 마음으로 근본을 삼습니다.” - 011_0419_c_23L答言:“以深淨心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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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깊고 깨끗한 마음이란 무엇을 근본으로 삼습니까?” - 011_0419_c_24L又問:“深淨心以何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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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_0420_a_02L대답하였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으로 근본을 삼습니다.” - 011_0420_a_02L答言:以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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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은 무엇을 근본으로 삼습니까?” - 011_0420_a_03L又問:“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以何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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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6바라밀(波羅蜜)로 근본을 삼습니다.” - 答言:“以六波羅蜜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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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6바라밀은 무엇을 근본으로 삼습니까?” - 011_0420_a_04L又問:“六波羅蜜以何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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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방편의 지혜로 근본을 삼습니다.” - 011_0420_a_05L答言:“方便慧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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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방편의 지혜는 무엇을 근본으로 삼습니까?” - 又問:“方便慧以何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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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방일하지 않는 것으로 근본을 삼습니다.” - 011_0420_a_06L答言:“不放逸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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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방일하지 않는 것은 무엇을 근본으로 삼습니까?” - 又問:“不放逸以何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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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세 가지 선한 행[三善行]으로 그 근본을 삼습니다.” - 011_0420_a_07L答言:“三善行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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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세 가지 선한 행은 무엇을 근본으로 삼습니까?” - 011_0420_a_08L又問:“三善行以何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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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열 가지 선한 업[十善業]으로 근본을 삼습니다.” - 答言:“以十善業道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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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열 가지 선한 업은 무엇을 근본으로 삼습니까?” - 011_0420_a_09L又問:“十善業道以何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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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6(根)을 포섭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습니다.” - 答言:“以攝六根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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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6근을 포섭하는 것은 무엇을 근본으로 삼습니까?” - 011_0420_a_10L又問:“攝六根以何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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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바르게 억념(憶念)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습니다.” - 011_0420_a_11L答言:“以正憶念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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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바르게 억념하는 것이란 무엇을 근본으로 삼습니까?” - 又問:“正憶念以何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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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바르게 관찰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습니다.” - 011_0420_a_12L答言:“以正觀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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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바르게 관찰하는 것이란 무엇을 근본으로 삼습니까?” - 又問:“正觀以何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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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굳게 기억하여 잊어버리지 않는 것으로 근본을 삼습니다.” - 011_0420_a_13L答言:“以堅念不忘爲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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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는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보살은 몇 가지 마음이 있어서 인(因)을 포섭할 수 있고, 과(果)를 포섭할 수 있습니까?” - 011_0420_a_14L天子言文殊師利菩薩:“有幾心,能攝因,能攝果?”
-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 文殊師利言:
- “천자여, 모든 보살은 네 가지 마음이 있어서 인을 포섭할 수 있고 과를 포섭할 수 있나니, 이른바 그 네 가지란, 첫째 처음 내는 마음이고, 둘째 도를 행하는 마음이고, 셋째 퇴전하지 않는 마음이고, 넷째 일생보처(一生補處)1)의 마음입니다. 처음 내는 마음은 도를 행하는 마음의 인연이 되고, 도를 행하는 마음은 퇴전하지 않는 마음의 인연이 되고, 퇴전하지 않는 마음은 일생보처의 마음의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 011_0420_a_16L“天子!諸菩薩有四心,能攝因,能攝果。何等爲四?一者初發心,二者行道心,三者不退轉心,四者一生補處心。初發心爲行道心作因緣,行道心爲不退轉心作因緣,不退轉心爲一生補處心作因緣。
- 011_0420_b_02L다시 천자여, 이것을 알아 둘지니, 처음 내는 마음은 마치 곡식 종자를 밭에 심는 것과 같고, 도를 행하는 마음은 곡식 종자가 자라나는 것과 같고, 퇴전하지 않는 마음은 꽃과 과일이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과 같고, 일생보처의 마음은 꽃과 과일이 유용하게 되는 것과 같으며, 또 처음 내는 마음은 마치 수레를 만드는 목수가 자재를 수집하는 것과 같고, 도를 행하는 마음은 재목을 쪼개어 다듬는 것과 같고, 퇴전하지 않는 마음은 재목을 제자리에 안치하는 것과 같고, 일생보처의 마음은 수레가 만들어져 운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 011_0420_a_21L復次,天子!當知初發心如種穀田中,行道心如穀子增長,不退轉心如華果始成,補處心如花果有用。又初發心如車匠集材,行道心如釿治材木,不退轉心如安施材木,一生補處心如車成運致。
- 또 처음 내는 마음은 마치 초생달이 새로 돋는 것과 같고, 도를 행하는 마음은 닷샛날 밤의 달과 같고, 퇴전하지 않는 마음은 열흘날 밤의 달과 같고, 일생보처의 마음은 열나흘날 밤의 달과 같고, 여래의 지혜는 보름날 밤의 달과 같습니다. 또 처음 내는 마음은 능히 성문(聲聞)의 자리를 벗어난 것이고, 도를 행하는 마음은 능히 벽지불(辟支佛)의 자리를 벗어난 것이고, 퇴전하지 않는 마음은 능히 결정이 없는 자리를 벗어난 것이고, 일생보처의 마음은 능히 안정된 자리에 편히 머무는 것입니다.
- 011_0420_b_04L又初發心如月新生,行道心如月五日,不退轉心如月十日,一生補處心如月十四日,如來智慧如月十五日。又初發心能過聲聞地,行道心能過辟支佛地,不退轉心能過不定地,一生補處心安住定地。
- 도를 처음 내는 마음은 마치 경전의 첫째 장(章)을 배우는 것과 같고, 도를 행하는 마음은 둘째 장을 배우는 것과 같고, 퇴전하지 않는 마음은 능히 배운 장으로써 사용하는 것과 같고, 일생보처의 마음은 깊은 경전을 다 통달한 것과 같으며, 또 처음 내는 마음은 인(因)을 따라 나는 것이고, 도를 행하는 마음은 지혜를 따라 나는 것이고, 퇴전하지 않는 마음은 끊음을 따라 나는 것이고, 일생보처의 마음은 그 과(果)를 따라 나는 것입니다.
- 011_0420_b_09L又初發心如學初章,行道心如學第二章,不退轉心如能以章爲用,一生補處心如通達深經。又初發心從因生,行道心從智生,不退轉心從斷生,補處心從果生。
- 또 처음 내는 마음은 인(因)의 세력이고, 도를 행하는 마음은 지혜의 세력이고, 퇴전하지 않는 마음은 끊음의 세력이고, 일생보처의 마음은 과(果)의 세력이며, 또 처음 내는 마음은 병자가 약을 구하는 것과 같고, 도를 행하는 마음은 약을 분별하는 것과 같고, 퇴전하지 않는 마음은 병자가 약을 복용하는 것과 같고, 일생보처의 마음은 병이 나은 것과 같으며, 또 처음 내는 마음은 법왕의 집에 태어나는 것이고, 도를 행하는 마음은 법왕의 법을 배우는 것이고, 퇴전하지 않는 마음은 능히 법왕의 법을 배워 구족하는 것이고, 일생보처의 마음은 능히 법왕의 법을 배워 자재한 것입니다.”
- 011_0420_b_14L又初發心因勢力,行道心智勢力,不退轉心斷勢力,補處心果勢力。又初發心如病者求藥,行道心如分別藥,不退轉心如病服藥,補處心如病得差。又初發心法王家生,行道心學法王法,不退轉心能具足學法王法,補處心學法王法能得自在。”
- 그때 대중 가운데 정광명주(定光明主)라는 천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퇴전하지 않았는데, 이 정광명주 천자가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말하였다.
- 011_0420_b_20L爾時,大衆中有天子,名定光明主,不退轉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定光明主天子語文殊師利法王子言:
-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간략한 도[略道]이고, 이 간략한 도로써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까?”
- 011_0420_b_23L“何等是菩薩摩訶薩略道,以是略道,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 文殊師利言:
- 011_0420_c_02L“천자여, 보살마하살의 간략한 도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이 간략한 도로써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다. 두 가지는 무엇인가. 첫째는 방편이고, 둘째는 지혜이니, 선한 법을 포섭하는 것을 방편이라 하고, 모든 법을 분산하는 것을 지혜라 합니다.
- 011_0420_c_02L“天子!菩薩摩訶薩略道有二,以是略道,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等爲二?一者方便,二者慧。攝善法名爲方便,分散諸法名爲慧;
- 그리고 또 방편이라 함은 중생들의 행에 따르는 것이고, 지혜라 함은 일체 법상(法相)에 퇴전하지 않는 것이며, 방편이라 함은 중생들의 마음을 기다려 그대로 응하는 것이고, 지혜라 함은 일체 법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며, 방편이라 함은 모든 법을 화합하는 것이고, 지혜라 함은 모든 법을 여의는 것이며, 방편이라 함은 인연을 일으키는 것이고, 지혜라 함은 인연을 없애는 것입니다.
- 011_0420_c_06L又方便名爲隨衆生行,慧名不轉一切法相;方便名待應衆生心,慧名不待一切法;方便名和合諸法,慧名捨離諸法;方便名起因緣,慧名滅因緣;
- 방편이라 함은 모든 법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고, 지혜라 함은 법성(法性)을 분별하지 않는 것이며, 방편이라 함은 불토(佛土)를 장엄하는 것이고, 지혜라 함은 불토를 장엄하되 분별함이 없는 것이며, 방편이라 함은 중생들의 영리한 근기와 우둔한 근기를 아는 것이고, 지혜라 함은 중생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며, 방편이라 함은 능히 도량에 이르는 것이고, 지혜라 함은 능히 일체 불법을 얻는 것입니다.
- 011_0420_c_10L方便名知分別諸法,慧名不分別法性;方便名莊嚴佛土,慧名莊嚴佛土無所分別;方便名知衆生諸根利鈍,慧名不得衆生,方便名能至道場,慧名能得一切佛法。
- 천자여, 알아 두오. 보살마하살은 또 두 가지 도가 있어 이 두 가지 도로써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나니, 두 가지는 무엇인가. 첫째는 돕는 도이고, 둘째 끊는 도인데, 돕는 도란 5바라밀이 그것이고, 끊는 도란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 그것입니다.
- 011_0420_c_14L天子!當知菩薩摩訶薩,復有二道,以是二道,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等爲二?一者助道,二者斷道。助道者,五波羅蜜。斷道者,般若波羅蜜。
- 또 두 가지 도가 있으니, 두 가지가 무엇인가. 첫째는 얽매임이 있는 도이고, 둘째는 얽매임이 없는 도인데, 얽매임이 있는 도란 5바라밀이고, 얽매임이 없는 도란 반야바라밀입니다.
- 011_0420_c_18L復有二道,何等爲二?一者有繫道,二者無繫道。有繫道者,五波羅蜜,無繫道者般若波羅蜜。
- 또 두 가지 도가 있으니, 첫째는 한량이 있는 도이고, 둘째는 한량이 없는 도인데, 한량이 있는 도란 상(相)의 분별을 갖는 것이고, 한량이 없는 도란 상의 분별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 011_0420_c_21L復有二道,一者有量道,二者無量道。有量道者,取相分別,無量道者不取相分別。
- 두 가지 도가 있으니, 첫째는 지혜의 도이고, 둘째는 끊는 도인데, 지혜의 도란 초지(初地)로부터 7지까지이고, 끊는 도란 8지로부터 내지 10지까지입니다.”
- 011_0420_c_23L復有二道,一者智道,二者斷道,智道者,初地至七地,斷道者,八地至十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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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_0421_a_02L그때 모임 가운데 있던 수지용행(隨智勇行)이란 보살이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보살의 이치라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의 지혜라 합니까?” - 011_0421_a_02L爾時,會中有菩薩,名隨智勇行。問文殊師利法王子言:“何謂爲菩薩義,何謂爲菩薩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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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이치란 아무런 작용이 없는 것이고, 지혜란 작용이 있는 것입니. 왜 이치를 작용이 없는 것이라 하는가 하면, 이치란 바로 무위(無爲)로서 무위법(無爲法)은 법에 있어서 작용과 작용 아님이 없기 때문이며, 또 이치란 물든 상(相)이 아니고 상을 여읜 것도 아니니, 이 이치가 법에 있어서 작용과 작용 아님이 없기 때문이며, 또 이치란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나니, 법에 있어서 작용과 작용 아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 011_0421_a_05L文殊師利言:“善男子,義名無用,智名有用。何謂義名無用?義是無爲,無爲法於法無用非用。又義者,非染相非離相,是義於法無用非用。又義不增不減,於法無用非用。
- 천자여, 지혜란 어떤 것이냐 하면, 지혜는 곧 인욕의 길입니다. 이 마음의 소용은 작용이 없는 것이 아니니, 이 때문에 지혜는 작용이 있는 것이지, 작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며, 또 지혜의 공(功)은 끊는 데에 귀착하나니, 이 때문에 지혜는 작용이 있는 것이지, 작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며, 또 지혜는 5음(陰)과 12입(入)과 18계(界)와 12인연의 그럴 수 있고, 그럴 수 없음을 잘 아나니, 이 때문에 지혜는 작용이 있는 것이지, 작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합니다.
- 011_0421_a_09L天子!何謂爲智?智是忍道,是心所用非無用,是故智名有用非無用,智功歸於斷。是故智名有用非無用,智名善知五陰、十二入、十八界、十二因緣、是處非處,是故智名有用非無用。
- 다시 천자여, 모든 보살은 열 가지 지혜가 있으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인(因)의 지혜이고, 둘째는 과(果)의 지혜이고, 셋째는 이치의 지혜이고, 넷째는 방편의 지혜이고, 다섯째는 슬기로운 지혜이고, 여섯째는 포섭하는 지혜이고, 일곱째는 바라밀의 지혜이고, 여덟째는 대비의 지혜이고, 아홉째는 중생을 성취시키는 지혜이고, 열째는 일체 법에 집착하지 않는 지혜입니다.
- 011_0421_a_14L復次,天子!諸菩薩有十智,何等爲十?一者因智,二者果智,三者義智,四者方便智,五者慧智,六者攝智,七者波羅蜜智,八者大悲智,九者成就衆生智,十者不著一切法智。
- 다시 천자여, 모든 보살은 열 가지 내는 것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 011_0421_a_19L復次,天子!諸菩薩有十發,何等爲十?
- 첫째는 몸으로 내는 것이니 중생들로 하여금 신업(身業)을 청정하게 하려 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입으로 내는 것이니 중생들로 하여금 구업(口業)을 청정하게 하려 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뜻으로 내는 것이니 중생들로 하여금 의업(意業)을 청정하게 하려 하기 때문이며, 넷째는 안으로 내는 것이니 일체 안의 물건에 탐착하지 않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바깥으로 내는 것이니 중생들로 하여금 바른 행에 머물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 011_0421_a_20L一者身發,欲令衆生身業淸淨故,二者口發,欲令衆生口業淸淨故,三者意發,欲令衆生意業淸淨故,四者內發,一切內物不貪著故,五者外發,欲令衆生住正行故。
- 011_0421_b_02L 여섯째는 지혜로 내는 것이니 부처님의 지혜를 구족하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자비로 내는 것이니 일체 공덕을 장엄하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중생을 성숙시킴으로써 내는 것이니 지혜의 약을 수호하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유위의 지혜로서 내는 것이니 정정취(正定聚)를 구족하기 때문이며, 열째는 무위의 지혜로서의내는 것이니 마음을 삼계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011_0421_b_02L六者智發,具足佛智故,七者慈發,念一切功德莊嚴故,八者衆生成熟發,守護智慧藥故,九者有爲智發,具足定聚故,十者無爲智發,心不著三界故。
- 다시 천자여, 모든 보살은 열 가지 행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바라밀의 행이고, 둘째는 포섭하는 행이고, 셋째는 지혜로운 행이고, 넷째는 방편의 행이고, 다섯째는 대비의 행이고, 여섯째는 지혜를 돕는 법을 구하는 행이고, 일곱째는 지혜를 구하는 법의 행이고, 여덟째는 마음이 청정한 행이고, 아홉째는 모든 진리를 관하는 행이고, 열째는 일체 애욕에 탐착함이 없는 행입니다.
- 011_0421_b_06L復次,天子!諸菩薩有十行,何等爲十?一者波羅蜜行,二者攝行,三者慧行,四者方便行,五者大悲行,六者求助慧法行,七者求智法行,八者心淸淨行,九者觀諸諦行,十者一切所愛無貪著行。
- 다시 천자여, 모든 보살은 또 열 가지 다 됨을 생각하는 것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일의 다 됨을 생각하는 것이고, 둘째는 느낌의 다 됨을 생각하는 것이고, 셋째는 법의 다 됨을 생각하는 것이고, 넷째는 번뇌의 다 됨을 생각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소견[見]의 다 됨을 생각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삿된 것의 다 됨을 생각하는 것이고, 일곱째는 애욕의 다 됨을 생각하는 것이고, 여덟째는 다 됨에 집착하지 않는지를 생각하는 것이고, 아홉째는 번뇌로 인한 그 속박의 다 됨을 생각하는 것이고, 열째는 도량에 집착하는 행의 다 됨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 011_0421_b_12L復次,天子!諸菩薩復有十思惟盡,何等爲十?一者思惟事盡,二者思惟受盡,三者思惟法盡,四者思惟煩惱盡,五者思惟見盡,六者思惟邪盡,七者思惟愛盡,八者思惟不著盡,九者思惟結使盡,十者思惟著道場行盡。
- 다시 천자여, 모든 보살은 또 열 가지 다스리는 법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 011_0421_b_18L復次,天子!諸菩薩復有十治法,何等爲十?
- 첫째는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다스림이니 보시의 비를 퍼붓기 때문이며, 둘째는 파계하는 마음을 다스림이니 세 가지 법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을 다스림이니 자비와 인욕을 수행하기 때문이며, 넷째는 게으른 마음을 다스림이니 부처님의 법을 구함에 있어 염증을 없애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좋지 못한 각관(覺觀)의 마음을 다스림이니 선정 해탈의 자재함을 얻기 때문입니다.
- 011_0421_b_20L一者治慳貪心,雨布施雨故;二者治破戒心三法淸淨故三者治瞋恚心,修行慈忍故;四者治懈怠心,求佛法無厭故;五者治不善覺觀心,得禪定解脫自在故;
- 011_0421_c_02L 여섯째는 어리석은 마음을 다스림이니 결정코 반야바라밀의 법을 돕는 마음을 내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모든 번뇌의 마음을 다스림이니 도법(道法)을 돕는 마음을 내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뒤바뀐 도의 마음을 다스림이니 4제법(諦法)을 돕는 마음을 닦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마음을 다스림이니 때이거나 때가 아니거나 자재하게 행하기 때문이며, 열째는 나[我]라는 마음을 다스림이니 무아(無我)의 법을 관하기 때문입니다.
- 011_0421_b_24L六者治愚癡心,生助決定般若波羅蜜法故;七者治諸煩惱心,生助道法故,八者治顚倒道心,修助四諦法故;九者治心,時非時自在行故;十者治我,觀無我法故。
- 다시 천자여, 모든 보살은 또 열 가지 선한 자리[十善地]가 있으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 011_0421_c_05L復次,天子!諸菩薩復有十善地,何等爲十?
- 첫째는 몸에 대한 선함이니 몸의 세 가지 악을 여의기 때문이며, 둘째는 입에 대한 선함이니 입의 네 가지 악을 여의기 때문이며, 셋째는 뜻에 대한 선함이니 뜻의 세 가지 악을 여의기 때문이며, 넷째는 안에 대한 선함이니 현재의 몸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바깥에 대한 선함이니 일체 법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011_0421_c_07L一者身善,離身三惡故;二者口善,離口四惡故;三者意善,離心三惡故;四者內善,不著見身故;五者外善,不著一切法故;
- 여섯째는 지혜를 돕기에 집착하지 않는 선함이니 도를 돕는 법에 탐착하지 않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스스로가 훌륭한 체하지 않는 선함이니 성스러운 도의 성품을 생각하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몸을 제거하는 것의 선함이니 반야바라밀을 닦아 모으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뒤바뀜을 여의는 것의 선함이니 일체 중생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며, 열째는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의 선함이니 대비로써 중생들을 교화하기 때문입니다.
- 011_0421_c_10L六者不著助智善,不貪助道法故;七者不自高善,思惟聖道性故;八者除身善,修集般若波羅蜜故,九者離倒善,不誑一切衆生故,十者不惜身命善,以大悲化衆生故。
- 다시 천자여, 모든 보살이 법을 따라 행하는 것을 귀중하게 여김은 보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며, 법을 따라 행하는 것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음은 법을 따라 행하는 자는 말과 같이 실행하고, 법을 따라 행하지 않는 자는 다만 말만 있을 뿐, 그 말한 대로 실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011_0421_c_14L復次,天子!諸菩薩貴隨法行者,能得菩提,非不貴隨法行,隨法行者,如說能行,不隨法行者,但有言說,不能如所說行。
- 다시 천자여, 모든 보살은 또 법을 따라 행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도를 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끊음을 행하는 것입니다.
- 011_0421_c_18L復次,天子!諸菩薩復有二隨法行,何等爲二?一者行道,二者行斷。
- 또 법을 따라 행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자신이 선한 일을 수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이며,
- 011_0421_c_20L復有二隨法行,何等爲二?一者身自修行善,二者教化衆生。
- 또 법을 따라 행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슬기로운 행을 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슬기로운 행을 행하지 않는 것이며,
- 011_0421_c_22L復有二隨法行,何等爲二?一者行智行,二者不行智行。
- 또 법을 따라 행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모든 지위를 잘 분별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 지위와 지위 아닌 것을 분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 011_0421_c_23L復有二隨法行。何等爲二?一者善分別諸地,二者不分別地非地。
- 011_0422_a_02L 또 법을 따라 행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모든 지위에 있어서의 허물을 알아 능히 점차로 전진하는 것이고, 둘째는 구족할 줄을 잘 알아서 하나의 지위로부터 또 하나의 지위에 나아가는 것이며,
- 011_0422_a_02L復有二隨法行,何等爲二?一者知諸地過,而能轉進,二者善知具足,從一地至一地。
- 또 법을 따라 행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그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성문과 벽지불의 도를 잘 아는 것이고, 둘째는 부처님의 도를 잘 알아서 퇴전하지 않는 행입니다.”
- 011_0422_a_04L復有二隨法行,何等爲二?一者善知聲聞、辟支佛道,二者善知佛道不退轉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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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 법왕자를 칭찬하셨다.
“너는 능히 모든 보살마하살들을 위해 본업(本業)의 도를 잘 설하였도다. 진실로 설한 바와 같으니라.” - 011_0422_a_06L爾時,佛讚文殊師利法王子言:“善哉善哉!汝能爲諸菩薩摩訶薩,說本業道,誠如所說。”
- 이 법을 설할 때에 십천의 보살들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으며, 문수사리 법왕자를 비롯하여 일체 세간의 하늘ㆍ사람ㆍ아수라 들이 다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믿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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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_0422_a_09L說是法時,十千菩薩得無生法忍。文殊師利法王子、一切世閒、天人、阿修羅,聞佛所說,歡喜信受。
文殊師利問菩提經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 1)한 생만 지내면 부처님의 지위에 오른다는 뜻.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