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418_T_001
- 013_0626_a_01L문수사리문보살서경(文殊師利問菩薩署經)
- 013_0626_a_01L文殊師利問菩薩署經
-
지루가참(支婁迦讖) 한역
김달진 번역 - 013_0626_a_02L後漢月氏三藏支婁迦讖譯
-
사리불(舍利弗)이 나아가 길게 꿇어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묻고자 하오니 부처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이에 감히 묻겠습니다.” - 013_0626_a_03L舍利弗前長跪白佛:“願欲有所問,唯佛肯者,乃敢問。”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불이여. 마땅히 물어야 하리라. 네가 문수시리(文殊尸利)로부터 여래[怛薩阿竭]1)의 행[署]에 대한 인연법의 명칭만 듣고 그 사실은 다 듣지 못했으리라. 이제 너를 위해 말하겠으니, 자세히 들어라.”
사리불은 아뢰었다.
“분부하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 013_0626_a_05L佛言:“善哉!善哉!舍利弗當問。汝若從文殊尸利,但聞怛薩阿竭署因緣法名,未悉得其事,今爲汝說之。諦聽!諦聽!”舍利弗言:“受教。”
- 그러자 마하목건란(摩訶目犍蘭)과 마하가섭(摩訶迦葉)과 마하가전연(摩訶迦栴延)과 마하구치빈(摩訶拘絺邠)과 이문타불(利文陀弗)ㆍ수보리(須菩提)ㆍ아난율(阿難律)ㆍ주리감(朱利敢)ㆍ마하감(摩訶敢)ㆍ내타화라(奈吒和羅)ㆍ아난(阿難) 등과 낱낱 존자 나한(羅漢)들이 다 모임 가운데 있다가 모두 일어나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아뢰었다.
- 013_0626_a_08L及摩訶目揵蘭、摩訶迦葉、摩訶迦旃延、摩訶拘絺、邠利文陁弗、須菩提、阿難律、朱利敢、摩訶敢、奈咤和羅、阿難,一一尊羅漢悉在會中,皆起爲佛作禮,白佛:
- “즐거이 듣기를 원하옵니다. 보살들로 하여금 다 그 인연에 따라 큰 서원[摩訶僧那僧涅]을 내게 하고, 어떤 남자나 여인이라도 들은 이가 있다면 다 이것을 구하게 하며, 여러 성문들 역시 이 법으로 인하여 큰 서원을 구하므로 일체 그 해탈해야 할 자로 하여금 다 나한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 013_0626_a_13L“願樂欲聞,令菩薩悉當因緣摩訶僧那僧涅。若男子、若女人,聞者皆當求之;諸聲聞者,皆當因其法所以求僧那僧涅者,欲令一切其當脫者,悉得羅漢。”
- 낱낱 존자 비구들이 다 꽃을 부처님 위에 뿌려 여래의 행에 공양하고, 모든 욕계의 천자들은 날아다니면서 하늘 꽃을 공양하는 동시에 하늘의 기악(伎樂)으로써 즐겁게 하니, 왜냐하면 그들이 본래부터 그 명자(名字)마저 듣지 못했거늘 하물며 지금 구족히 들은 것이랴. 한편 석제환인(釋提桓因)은 천상의 구기화(拘耆華)나무로써 그 기원(祇洹)에 가득 차게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 013_0626_a_17L諸一一尊比丘,以華散佛上,供養怛薩阿竭署。諸欲天子悉以天華飛行供養,以天伎樂以樂之。所以者何?從本所不聞其字,何況今當具足聞之。釋提桓因,以天上拘耆華樹而化滿其祇洹。
-
013_0626_b_01L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행[恒薩阿竭署]이란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네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뜻을 내는 것이고, 둘째는 퇴전하지 않는 것[阿惟越致]이고, 셋째는 보살이 나무 아래 앉는 것이고, 넷째는 불법을 구족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네 가지이니라.” - 013_0626_a_22L佛語舍利弗:“怛薩阿竭署者有四事。何謂四事?一者、發意;二者、阿惟越致;三者、菩薩坐於樹下;四者、具足佛法。是爲四。”
-
사리불은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뜻을 낸다는 것입니까?” - 013_0626_b_03L舍利弗問:“何因緣發意?”
- “보살로서 뜻을 내는 것이 첫째의 행이라. 이른바 뜻을 냄이란 하는 일이 일체 시방을 위해 공덕을 지음이니, 왜냐하면 다 큰 서원[僧那僧涅]을 얻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첫째 행이라 하며, 퇴전하지 않음이란 일체 하는 일에 희망을 갖지 않고 다만 안온한 자리[地]와 생각 없는 자리와 견고한 자리를 구함이니, 이것이 바로 부처님 법의 기본 경계이기 때문에 둘째 행이라 하느니라.
- 013_0626_b_04L“菩薩有一署,所謂發意所作爲一切十方作功德。所以者何?欲令皆得僧那僧涅故,名曰一署。阿惟越致署者,一切有所作爲,無所希望求是地:安隱地、無所想地、堅固地,是爲佛法基界,故曰爲二署。
- 나무 아래 앉음이란 헛되이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려면 곧 도를 성취하기 때문에 힘을 여의지 않으면 두려움이 없음이니 이것을 셋째 행이라 하며, 여래의 행이란 행하는 그대로가 진리인지라. 그 행과 같은 행은 헤아릴 수 없고 특히 높은 행이어서 이미 여래[怛薩阿竭]ㆍ아라하(阿羅呵:阿羅漢)ㆍ삼야삼불타(三耶三佛陀:正遍知)에 머무른 법교(法敎)이니, 이것을 넷째 행이라 하느니라.”
- 013_0626_b_09L坐於樹下者,由不空起,起者當成道故,不離力、無所畏,是爲三署。怛薩阿竭署者,如所署、審如所署署、不可數特尊之署,已住怛薩阿竭、阿羅呵、三耶三佛陁,已法教。是爲四署。”
-
부처님께서는 다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또 두 가지 행이 있으니, 두 가지 행이란, 성문을 위해 법 바퀴를 굴리는 것과 퇴전하지 않는 이를 위해 법 바퀴를 굴리는 것이니, 이것이 두 가지 행이라. 여래께서 행하신 그 행도 이미 그 가운데 있는 것이어서 곧 법에 따라 교(敎)가 있고 세간의 법인 동시에 부처님의 법이며, 느끼고 생각하고 나고 죽고 의식하는 법인 동시에 부처님의 법이다. 사리불아, 그 법이란 부사의한 법이어서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이 법은 얻을 수 있고, 이 법은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라.” - 013_0626_b_14L佛語舍利弗:“菩薩復有二署。何謂二?爲聲聞轉法輪、爲阿惟越致轉法輪,是爲二署。怛薩阿竭署名署,已在中者,已法有教,色法佛法,痛痒、思想、生死,識法佛法,其法者,舍利弗不可議;譬如愚人所作,言是法可得,是法不可得。”
-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얻을 수 없는 것은 버릴 수 없는 것이니, 본래 공한 것이 모든 교법이기 때문에 여래의 행이라 하노라.” - 013_0626_b_20L佛語舍利弗:“不可得者不教,捨本空者,諸法教故,名曰怛薩阿竭署。”
-
사리불은 물었다.
“어떤 것이 바로 여래의 행이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그것이 바로 여래의 행이니라.” - 013_0626_b_22L舍利弗言:“何所是怛薩阿竭署?”佛言:“不可勝數是爲署。”
-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반문하셨다.
“어떤 지혜가 이 행이겠는가?” - 013_0626_b_23L佛問舍利弗:“何所慧是署?”
-
013_0626_c_01L사리불은 대답하였다.
“여래께서는 법으로 법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법이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지혜의 행이라 하니, 이것이 보살로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배우는 자로서 여래의 행을 배움에 있어서 과거 세속의 법을 생각하지 않고 도법에 응해야 하며, 세속 법이 나쁘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 동시에 도법(道法)이 좋다는 것도 말하지 않아야 하나니, 이와 같이 배우는 자라야 여래의 행을 배운다 하리며, ‘이것은 배울 것이고 이것은 배울 것이 아니다.’라는 의식을 갖지 않는가 하면, ‘이렇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아야만 여래의 행을 배우는 이라 할 것입니다. - 013_0626_c_01L舍利弗言:“怛薩阿竭不以法取法,法者不可得故,是曰爲慧署;是菩薩所當學,學者當學怛薩阿竭署。不念以過去世俗法以應道法,不說俗事之惡、不言道事可好,如是學者,爲學怛薩阿竭署。不以識學是,非是不作是學,爲怛薩阿竭署。
- 그리고 물질[大]을 분별하지 않아야 하나니, 물질이란 눈[眼]과 빛깔[色]과 의식[識]입니다. 분별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눈으로 분별하여 일체 생각을 둔다면 이는 여래의 행을 배우지 못한 이라 하리며, ‘이 사람은 제도할 수 있고, 이 사람은 제도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자도 여래의 행을 배우지 못한 이라 할 것입니다. 여래의 행이란 일체 사람의 행인만큼 이러한 것을 배운 사람은 여래의 행을 배운 이라 할 것입니다. 여래의 행인 그 한량없는 행을 배워서 일체 법에 끊임이 없어야만 여래의 행을 배우는 이라 하겠습니다.”
- 013_0626_c_08L不分別大,大者謂眼色識,不分眼分別,一切有念,是爲不學怛薩阿竭署。是人可度、是人不可度,作是學,爲不學怛薩阿竭署。怛薩阿竭署者,則一切人之署;作是學者,爲學怛薩阿竭署,學怛薩阿竭署、無央數署,一切法無所斷絕,是爲學怛薩阿竭署。”
-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이 나는[生]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래의 행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것이 없어야만 여래의 행을 배움이라 하리니, 있다거나 없다는 것을 다 생각하지 않아야 하리라.” - 013_0626_c_15L佛語舍利弗:“不念諸法當有所生,於怛薩阿竭署無所想,是爲學怛薩阿竭署,不念是所有、無所有。”
-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 여래의 행을 배우려 하는 자는 여래라는 생각마저 하지 않아야만 여래의 행을 배우게 되며, 모든 법에 대해서도 구하는 것이 없어야만 이것을 행이라 하리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행이니라.” - 013_0626_c_17L佛語舍利弗:“其欲學怛薩阿竭署者,不想怛薩阿竭,爲學怛薩阿竭署。諸法無所求是爲署,是則怛薩阿竭署。”
-
013_0627_a_01L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색법(色法)이 곧 부처님의 법이며, 느끼고 생각하고 나고 죽고 의식하는 법 역시 여래의 법이니, 모든 법에 집착하는 바 없이 행에 따라 일체 모든 법을 가르치는지라,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고 나서 그 있고 없는 것까지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이 곧 가르침을 따름이며, 이미 있고 없음에 집착하지 않으면 근본 없는 가르침을 따름이니,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이 바로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이리라. 그리고 행이란 것은 또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없으므로, 이러한 행은 일체를 보기도 하고 일체를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 013_0626_c_20L佛語舍利弗:“色法佛法,痛痒、思想、生死、識法,怛薩阿竭法,諸法無所著,隨署教一切諸法不著已,不念有無,是則隨教。已不著有無,則隨無根之教如是學,爲學怛薩阿竭署。署者,亦無過去當來今現在,如是署者,見一切亦不見一切。”
-
사리불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본다고 하옵니까?”
“덮임도 없고 가림도 없으므로 죄다 보는 것이니 이를 여래의 행이라 하느니라.” - 013_0627_a_04L舍利弗白佛言:“何謂爲見?”“無所覆、無所蔽、悉見,是爲怛薩阿竭署。”
- “무엇을 일체 보지 않는다고 하옵니까?”
- 013_0627_a_05L“何謂爲不見一切?”
- “이른바 그 문(門)을 보지 않아 들어가는 데가 없으므로 보지 않는 것이니 이를 여래의 행이라 하며, 또 행에 있어서 공과 합하지 않고 생각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고 볼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어 진리 그대로 고요함이 바로 그 행의 청정한 것인 만큼 행이란 길고 짧음을 얻을 수 없고, 행이란 또한 도와줌이 없고 도움을 받을 수도 없으며, 행이란 또한 다름이 있지도 않나니, 이것이 바로 행이어서 어디로부터 나는 데가 없는 행이므로, 이 행을 여래의 행이라 하느니라.
- 013_0627_a_06L“所謂不見其門、無所入,是故不見,是爲怛薩阿竭署。亦不於署與空合,幷亦不思想、亦不願、亦不可見、亦不可得,如寂者,則其署淸淨。署無能得長短,署亦無有助,署者不可得助,署者亦無有異,是爲署;無所從生署,是謂怛薩阿竭署。
- 또한 발을 계교하지도 않고 복사뼈를 계교하지도 않고, 무릎을 계교하지도 않고 종지뼈[臏]를 계교하지도 않고, 배[腹]를 계교하지도 않고 팔을 계교하지도 않고, 손을 계교하지도 않고 턱[頤]을 계교하지도 않고 머리를 계교하지도 않으며, 안을 계교하지도 않고 바깥을 계교하지도 않고 중간을 계교하지도 않고, 끝나지 않음을 계교하지도 않고 끝남이 없음을 계교하지도 않고, 위아래와 네 간방[四維]과 동서남북을 계교하지도 않으며, 사람을 계교하지도 않고 수다원(須陀洹)을 계교하지도 않고, 아라한[羅漢]을 계교하지도 않고 벽지불(辟支佛)을 계교하지도 않고, 또한 여래를 계교하지도 않으며, 유여(有餘)이거나 무여(無餘)임을 계교하지도 않고, 해탈이거나 해탈이 아님을 계교하지도 않고, 법의 그 소재(所在)를 계교하지도 않나니, 계교할 수 없는 것이 이 행인 만큼 아무런 명자(名字)가 없는 이러한 행이 바로 여래의 행이니라.”
- 013_0627_a_12L不亦不足計、亦不踝計、亦不膝計、亦不臏計、亦不腹計、亦不臂計、亦不手計、亦不頤計、亦不頭計、亦不內計、亦不外計、亦不中閒計、亦無不極計、亦不無極計、亦不上下四維東西南北計、亦不人計、亦不須陁洹計、亦不羅漢計、亦不辟支佛計、亦不怛薩阿竭計、亦不有餘無餘計、亦不脫有脫計、亦不計法所在,不可計署,無有字署,是則怛薩阿竭署。”
-
013_0627_b_01L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모인 비구들 가운데 이것을 듣지 못한 이가 많으리라. 듣지 못함으로써 있는 것이 무엇이고 없는 것이 무엇임을 계교하여 말하되, ‘나의 이 몸뚱이처럼 모든 법이 다 그러하다.’고 하나니, 이렇게 말하는 자는 곧 그 말에 따라 행을 지어 계교하지 않아야 할 것을 계교하고, 법에 있어서도 이러한 계교로 인하여 주고받을 것이 있는 줄을 생각하며, 또 생명이 있는 것을 생각하여 오랜 수명을 얻으려 하고, 오랜 수명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그 수명에 대한 집착을 갖게 되느니라.” - 013_0627_a_22L佛語舍利弗:“今會者比丘多有不聞是者,未聞計言:‘有是、無有是,如我身諸法悉爾。’作是語者,便隨其語作行,不可計而爲作計爲法處者,因是有取與,便有命持,思想壽欲壽壽,欲得壽欲壽壽已,欲壽壽壽壽。”
-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행도 또 법을 따르지 않는가 하면 법 아닌 것을 따르지도 않고, 또한 있음을 따르지 않는가 하면 없음을 따르지도 않나니, 이 따름이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지라, 여래의 행은 따라도 역시 따르는 것이 아니며, 또 여래의 행이란 무너져 없어지지도 않고 생각하여 깨닫는 것도 아닌 이것이 바로 여래의 행인 만큼, 그 깨달음을 들을 수도 없나니, 이 때문에 이러한 말을 들으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든 진리의 말씀은 다 공(空)을 말씀하신 그 진리와 같으니라.” - 013_0627_b_05L佛語舍利弗:“署亦不從法、亦不從非法、亦不從有、亦不從無,當作是從不可說怛薩阿竭,從亦不從。怛薩阿竭者,亦不壞敗、亦不想覺,是爲怛薩阿竭。覺不可聞,是故審聞如是說,則怛薩阿竭說諸所說審,說如空說審。”
-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어디로부터 오는 데가 없는 그것이 바로 여래의 행이고, 오는 처소가 없는 그것이 바로 여래의 행이고, 처소에 의지함이 없는 그것이 바로 여래의 행이고, 의지하여 굽히는 일도 없고 펴는 일도 없는 그것이 바로 여래의 행이니, 여래의 행을 얻을 수 없듯이 모든 법을 얻을 수 없음도 역시 그러하느니라. - 013_0627_b_10L佛語舍利弗:“無所從來是爲怛薩阿竭,來無有處是爲怛薩阿竭,處無所依是爲怛薩阿竭,依無所屈、無所申,如怛薩阿竭不可得,諸法亦不可得。
- 마음이란 나는 데가 없기에 편히 머무는 데도 없고, 공덕을 짓는 데에도 구하는 것이 없나니, 교화하는 그대로 아무런 행이 없는 그것이 바로 행이니라. 이 종자가 나는 데가 없기 때문에 이 공덕 역시 근본도 없고 진실함도 없으며, 큰 서원[僧那]이란 얽매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고 조작하는 것도 없기에 이를 정진이라 하며, 보는 것이 없고 본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기에 보는 자가 곧 두 가지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지혜란 얻을 것이 없어 그 지혜가 하는 것이 없고 일으키는 것도 없고 증득하기 위해 구하는 것도 없나니, 이와 같이 구하고 이와 같이 생각함이란 아무런 명자(名字)가 없는 것이며, 그 말만 주장하는 이는 자비를 얻을 수 없나니, 그러므로 얻었다고 말하는 자도 없거니와 그렇게 생각할 사람도 없으며, 그 수호하는 자도 잠깐 염(念)하거나 잠깐 염하지 않는 그것마저 일으키지 않느니라.”
- 013_0627_b_14L心無所生、無所安住,諸所作功德無所求,如所教無所行,是爲行;是種無所生,是功德亦無根,亦無實僧那者,無所縛、無有脫、無所作,是爲精進。無所觀亦不作是視,所見者不作二心,智無所得,其智無所爲亦無所起,不以證而作求,作是求作是念。無有名,其語政者,謂不可得,其哀若道;其得等者,無人不念人;其護者,不作是乍念乍不念。”
-
013_0627_c_01L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지혜 없는 것이 바로 이 지혜이어서 12인연도 나는 데가 없고, 그 화합하는 것도 화합함이 없으며, 도를 얻을 수 없는 것이 곧 도를 얻는 것이며, 생각함이 없는 그것이 곧 비구의 생각이며, 가질 것이 없는데도 발우를 잡고 옷을 입으며, 깎을 것 없는 그것이 곧 머리를 깎는 것이며, 계율을 받을 것 없는 그것이 곧 계율을 지키는 것이니, 이와 같이 비구가 도를 좋아하나 좋아하는 것이 없는 것이 바로 비구가 좋아하는 것이다. 정(定)에 뜻을 둔 이는 다른 뜻이 없고, 이미 정에 든 이는 몸과 마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나니,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곧 비구의 지혜이니라. - 013_0627_c_01L佛語舍利弗:“無慧是則慧,十二因緣無所生,其合者無有合,不可得道、可得無所念。是比丘念無所持而持鉢被服,無所剃是爲剃頭,無所受戒而持戒,而無如是。比丘好道所好,是比丘所好用意定者,無有異意。其已定者,無有身心念,不念慧者是比丘數。
- 이미 만족함을 말하는 자는 사실 만족함을 모르는 것이니, 비구의 만족이란 아무리 적고 적은 것일지라도 만족하게 여기기 때문에 만족한 것이라, 헤아릴 수 없는 법을 알 수 있다거나, 도는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이미 부처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자이며, 부처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자라면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 그대로의 경계가 아니니, 이 때문에 부처님의 경계에는 법이 없는가 하면, 여래의 법은 법을 조작함이 없고, 법을 조작함이 없기 때문에 그 법이 없다고 말하며, 모든 법에 들어가되 들어감이 없는 그것이 여래의 행이라, 들어가지 않고서 모든 법에 이미 걸맞기 때문에 여래의 행이라 하느니라.”
- 013_0627_c_08L其說已足者以不足,若比丘足者謂爲少少。不可計法而言可知,已無有知。已不從是法者,如所教無有界,是故佛界無有法,是故怛薩阿竭法無作法,法無所作,故曰無有法。諸法所入悉當盡,是爲怛薩阿竭署,無所入已,應怛薩阿竭署。”
-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약에 여래의 행을 배우려는 이가 있다면, 그 용맹이 사자와 같아야 하며, 남자나 여인으로서 마땅히 청정한 계율을 닦아 다른 뜻이 없어야만 마음이 청정하리니, 청정한 지혜의 일으킴이고 생각 없는 것의 일으킴이니라. 그 음식에 있어서도 만족을 취할 뿐이어서 만일 걸식하되 모든 생각이 이미 청정하여 다른 마음이 없으므로 일체 사람들에게 생각을 가지지 않고, 모든 법에 희망을 두지 않으며, 상ㆍ중ㆍ하의 일을 생각하지도 않아 하는 일이 항상 평등할 것이니, 비구가 이렇게 배운다면 이미 배우는 이라 하리라.” - 013_0627_c_14L佛語舍利弗:“若有欲學怛薩阿竭署者,其有勇猛如師子者,若男子、若女人,當作淸淨戒,無有異意,心淸淨;淸淨慧之所作,無所念之所作,其飮食取足而已。若乞丐諸所,思想已淸淨無有異心,不於一切人如有想,不於諸法有所希望,亦不念下中上之事,所作常等,比丘作是學者已爲學。”
-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 구하는 것이 없이 배우는 자가 바로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이니라.” - 013_0627_c_22L佛語舍利弗:“其無所求學者,爲學怛薩阿竭署。”
-
013_0628_a_01L마하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구는 한 가지 일로써 배우되 큰 서원[僧那僧涅]을 내고 나서 여래의 행을 배워야 하리니, 한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입니다.” - 013_0627_c_23L摩訶迦葉白佛:“比丘以一事學僧那僧涅已,爲學怛薩阿竭署。何謂一事?諸法無所著,是爲學怛薩阿竭署。”
-
수보리(須菩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구는 두 가지 일로써 배워야 하리니, 두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모든 법에 희망하는 것이 없음과, 일체 사람들에게 평등한 마음으로써 하되 일체 평등하게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음이 이 두 가지 일입니다. 비구는 이와 같이 여래의 행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 013_0628_a_03L須菩提白佛:“比丘以二事學。何謂二事?於諸法無所悕望,爲以等心;一切人不念,以等一切。是爲二,比丘學怛薩阿竭署。”
-
마하목건련(摩訶目犍連)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구는 세 가지 일로써 배워야 하리니, 세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법의 요지만을 배우고 꾸밈을 배우지 않는 것과, 나[我]를 가까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과, 또 나를 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세 가지 일입니다.” - 013_0628_a_07L摩呵目揵連白佛:“比丘以三事學。何謂三事?但學要法不學飾,亦不念我以近,亦不念我以遠。是爲三事。”
-
문타불(文陀佛)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구는 네 가지 일로써 배워야 하리니, 네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어디로부터 얻을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어떤 것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일체가 다 같이 청정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음가짐을 허공처럼 하는 것, 이것이 네 가지 일입니다. 이와 같이 배운다면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 013_0628_a_09L文陁弗白佛言:“比丘以四事學。何謂四事?不念有所從得,亦不念何所當得,一切如等淨,所持若空。是爲四事,如是學爲學怛薩阿竭署。”
-
마하가전연(摩訶迦栴延)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구는 다섯 가지 일로써 배워야 합니다. 다섯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탐내거나 아낌이 없는 것과, 법으로써 제사를 받으려고 하는 것과, 일체를 위해 인자한 마음을 지니되 일체 인자한 마음을 지닌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또 그 밖의 일체의 것을 생각하지 않음과, 모든 법에 구하는 것이 없음이 이 다섯 가지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입니다.” - 013_0628_a_13L摩訶迦旃延白佛:“比丘以五事學。何謂五事?無所貪惜,欲以法祠祀,爲一切有慈,不念一切有慈,不念一切於諸法作無所求。是爲五事,爲學怛薩阿竭署。”
-
내타화라(奈吒和羅)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구는 여섯 가지 일로써 배워야 하리니, 여섯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한 가지 뜻도 내지 않는 것과, 공(空)함을 구하지 않는 것과, 진여의 경지[本際]를 배우지도 않는 것과, 두 가지 일을 인연하지 않는 것과, 이미 부처님 말씀에 귀향함과 어떤 것이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음이 이 여섯 가지 일입니다. 이것이 비구로서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입니다.” - 013_0628_a_17L奈咤和羅白佛:“比丘以六事學。何謂六?不發一意,亦不求空,亦不學本際。所以者何?不因緣二事。已向佛所,脫,不起念思惟:‘何所是佛證?’是爲六事,比丘學怛薩阿竭署。”
-
013_0628_b_01L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일체 법이나 일체 사람을 모두 여래의 행으로써 보되 달리 보지도 않고 자연으로 보지도 않고 법으로 보지도 않아야 하리니, 이렇게 배운다면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이 되리라.
내타화라야, 다시 비구가 배워야 할 끝없는 행에 대해서 들어라. 이것이 곧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이니라. 그 즐거운 것을 즐거움이라고 보지 않는 이러한 행을 닦는 비구라면 그는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이 되고, 여래의 행을 배우는 자는 곧 불법을 배우는 것이 되나니, 부사의한 법이 일체를 작용하는 법이기 때문이니라.” - 013_0628_a_22L佛言:“一切法一切人,悉以怛薩阿竭署見,亦不異見、亦復不見自然、亦不見法,作是學,爲學怛薩阿竭署。奈咤和羅復聽!比丘所學無極署,是乃應怛薩阿竭署,如所樂不見其樂,如是行者,比丘爲學怛薩阿竭署。學怛薩阿竭署者,以爲學佛法,不可議法,用一切故。”
-
내타화라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에 비구가 여래의 행을 배우려면 어떻게 스스로 가져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의 뜻에 일체 사람이 있음을 생각하지도 않고 일체 법이 있음을 생각하지도 않으며, 편안하게 여기지도 않고 위태롭게 여기지도 않아야 하리니, 이것이 비구로서 스스로 가져야 할 것이니라.” - 013_0628_b_06L奈咤和羅白佛:“若比丘學怛薩阿竭署者,云何而自持?”佛言:“比丘!意不念有一切人,不念有一切法,亦不安亦不危,是爲比丘而自持。”
-
내타화라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제 여래는 누구를 위해 여래의 행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그 참다운 행을 배우려는 자에게 말하는 것이니라.”
“누가 배울 자입니까?” - 013_0628_b_10L奈咤和羅白佛言:“今怛薩阿竭,爲誰說怛薩阿竭署?”佛言:“其欲學如署者,爲是說。”“何所是學者?”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큰 서원을 내는 자를 위해 그 때문에 말하노니, 이것저것과 중간을 생각하지 않고 일체 구하는 것이 없어야 이것이 여래의 행이니라. 그 어떤 생각이 있어서 행하는 자는 이 때문에 행이 아니니, 이러한 자는 스스로 훌륭한 체하고 다른 사람을 천하게 여기느니라. - 013_0628_b_12L佛言:“用摩呵僧那僧涅故說,亦不念是彼中閒,一切無有求,是爲怛薩阿竭署。其有想行者,是故非署,如是者爲自貢高而賤他人。
- 그 간탐하고 질투하는 자도 이 행에 맞지 않으며, 그 아첨하여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와 허망한 말을 하는 자도 다 이 행에 맞지 않으며, 그 중생을 사랑하지 않는 자이거나, 그 홀로 가지려고 하는 자이거나, 나쁜 것을 좋아하는 자이거나, 다른 사람이 안온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 자이거나, 그 어떤 생각함이 있어 자기 존재를 부르짖는 자이거나, 그 두 가지 마음을 가지는 자이거나, 좋아하고 싫어함이 다름이 없다 하여 그러한 생각을 일으키는 자이거나, 깊은 법을 여의는 자이거나, 맞지 않는 일을 생각하는 자이거나, 이롭거나 해로움을 구하는 자이니라.
- 013_0628_b_16L其慳貪嫉妒不應是署;其有諛諂不慚愧者、妄語者,皆不應是署;其有不愛樂衆者、其欲獨有者、若樂惡者、不喜人安隱者,其有所念呼爲有。其有二心者,謂好惡無有異作思想者、離深法者、念不中事者、求利害者。
- 013_0628_c_01L 발우 또는 의복[震越]ㆍ침구ㆍ의약 등을 시주들에게 구걸하는 자이거나, 음식을 구하려고 하는 자이거나, 선우[迦羅蜜]를 여의고 나쁜 스승에게 아부하는 자이거나, 과거 부처님께 공덕이 없었던 자이거나, 항상 진여의 경지[本際]를 두려워하는 자이거나, 세속 일에 마구 뛰어들어 그 하는 일이 명자(名字)만을 구하려 하고 도달함이 없는 자이니라.
- 013_0628_b_22L若求乞瓦鉢、震越、牀臥具、病瘦醫藥,若欲求飮食,離於迦羅蜜,親附於惡師,於本佛所無功德者,常有怖懼於本際。欲於世事轉相克識所作,但求名字,而無至者。
- 다섯 가지 욕락을 좋아하는 자이거나, 그 하는 일이 어떤 소득이 있기를 희망하는 자이거나, 이러한 자로서 산간 한적한 곳에 머물러 인자한 마음을 닦지 못하는 자이거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여의고 항상 마군의 일에 빠져 부처님의 계율을 믿지 않는 자이거나, 하는 일이 모두 그 법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항상 산란한 마음과 안온하지 않는 마음을 좋아하는 자이거나, 그 마음이 미치고 어지럽고 그 마음이 갈래가 많음으로써 좋은 마음을 여의고 미묘한 마음을 여의고 극진한 마음을 여의는 자이니라.
- 013_0628_c_03L愛樂於五所欲,有所作悕望得者,所以如是者,不能在山閒空閑寂靜有慈心之意,離於哀心常在魔事。離信佛戒者,所作悉不隨其法教,常喜亂心、不安隱心,其心狂亂、其心多端,用是故,離於好心、離於微妙之心、離於盡心。
- 다만 부처님의 형상 몸[色身]만을 생각하고 법을 보려고만 생각하고 비구승가를 보려고만 생각하는 자이거나 5음(陰)의 공덕을 여의고 4대(大)의 공덕을 여의고 6쇠(衰:色ㆍ聲ㆍ香ㆍ味ㆍ觸ㆍ法)의 공덕을 여의고 12인연의 공덕을 여의고 일체 사람의 공덕을 여의는 자 등 이러한 마음을 가진 자도 모두 여래의 행에 맞지 않으며, 그 반면 아첨하지 않고 항상 질박하여 깊은 법을 생각하는 자이니라.”
- 013_0628_c_09L但念佛色身、但念欲見法、但欲見比丘僧,離五陰功德、離四大功德、離六衰功德、離十二因緣功德、離念一切人之功德,其有是心者,悉不應怛薩阿竭署,其有不諛諂常質朴,念諸深法。”
-
부처님께서는 내타화라에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자라면, 이는 이미 여래의 행에 맞으리니, 항상 부처님을 찬탄하는 자로서 이미 일체 부처님을 염(念)하기 때문이고, 여래의 행을 배우려 하기 때문이니라. 그 배움이 있는 자이건 배움이 없는 자이건 여래께서는 그들을 다 아시고 또 관찰해 보시는 만큼, 부처님의 뜻이란 저 도시ㆍ촌락ㆍ산중 어느 곳에 있어서도 보는 것이 있기에 여래의 행은 이것을 다 보시느니라.” - 013_0628_c_14L佛語奈咤和羅:“其有心如是者,已應怛薩阿竭署;其有歎歌佛者,已有念一切佛故,欲學怛薩阿竭事故;其有學者不學者,怛薩阿竭悉知觀視。佛意者,若在城郭丘聚縣邑有所見,怛薩阿竭署悉見之。”
-
부처님께서는 내타화라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여래의 행을 알 수 있겠느냐?”
내타화라는 대답하였다.
“부처님께 묻고 부처님께 들어야 하거늘 제 자신이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부처님께서 말씀해 주소서. 비구로서 가져야 할 것을 듣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내타화라가 말한 바와 같으니라.” - 013_0628_c_20L佛語奈咤和羅:“若能知怛薩阿竭署不?”奈咤和羅言:“當從佛聞、當從佛聽,何能身自知之?唯佛說之,願樂欲聞,以比丘當持。”佛言:“善哉!善哉!如賴咤和羅所說。”
-
013_0629_a_01L그리고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나머지 범부의 뜻으로선 여래의 행을 알 수 없나니, 여래의 도 자리[道地]를 만들지 못하기에 여래의 행을 알 수 없고, 그 궁극의 수(數)를 다할 수 없기에 이 때문에 행이라 하며, 관찰해 볼 수 없나니, 관찰해 볼 수 없기 때문에 여래의 행이라 하노라. 그 여래의 행을 알려고 하는 자는 자신의 목숨과 그 밖의 일체를 아끼지 않고 일체 사람들에게 평등한 마음을 가짐으로써 일체 허식(虛飾)된 일이 그 속에 있지 않아야 하리니, 그 두 가지 마음이 있는 자는 함께할 수 없다. 여래의 행을 배우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리라.” - 013_0629_a_01L佛言:“其餘凡意者,不能知怛薩阿竭署,而不作怛薩阿竭道地者,而不能知怛薩阿竭署,不可盡極數,是故名曰署。不可觀視!不可觀視!是故名怛薩阿竭署;其欲知怛薩阿竭署者,以不愛惜身壽命一切,等心於一切人,一切諸虛飾之事不在其中。其有二心者不與共同,其欲學怛薩阿竭署者,當作是學。”
-
내타화라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모임 가운데 여래의 행을 배울 만한 이가 있습니까?”
대답하셨다.
“문수시리보살이 있느니라.” - 013_0629_a_09L奈咤和羅白佛:“於是會中,乃有學怛薩阿竭署者不?”曰:“有文殊尸利菩薩耶!”
-
부처님께서는 다시 내타화라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어떤 사람이 큰 바다의 값진 보배인 마니(摩尼)구슬이 있는 곳에 이르렀는데, 구슬의 값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나, 그 사람이 값진 보배가 있는 곳에 머물면서도 마니구슬의 값을 알지 못하므로, 어떤 사람이 그 보배가 있는 곳에 머무는 자에게 이르기를, ‘지금 이 보배가 있는 곳에 있으면서 정녕 마니구슬이 있는 곳을 모르느냐?’라고 하니, 그 사람이 도리어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과 같나니, 왜냐하면 그 사람이 마니구슬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이제 내타화라 역시 유명한 보배 속에 있으면서 보배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니, 왜냐하면 뭇 마하연(摩呵衍) 속에 있으면서도 마하연을 모르기 때문이니라.” - 013_0629_a_12L佛復語奈咤和羅:“譬如人到大海,名珍寶摩尼處,其價不可計數;其人於珍寶中住,而不知摩尼珠價。若有一人,謂其住寶中者:‘今在是中寧,知摩尼處不?’其人反言不曉。所以者何?其人不知摩尼珠故。今奈咤和羅在名寶中而不知寶處。所以者何?在衆摩呵衍中而不知。”
-
다시 사염(闍炎)이라는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에 큰 서원을 배우는 이가 없다면 제가 평등한 마음으로 광명을 일체에 비추고자 하옵니다.” - 013_0629_a_19L復有比丘名闍炎闍炎,白佛:“若無學僧那者,我欲等心以光明照於一切。”
-
다음엔 삼파시사리(三陂諟師利)라는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여래의 행을 배우려 하오니,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에 제가 구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 013_0629_a_21L復有比丘名三陂諟師利,白佛:“我欲學怛薩阿竭署。所以者何?一切諸法我無所求。”
-
013_0629_b_01L다음엔 삼마사리(三摩師利)라는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도 여래의 행을 배우기 위해 모든 법에 두 가지 마음을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무지 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이 곧 여래의 행을 배움이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배우는 자로선 마땅히 그렇게 배워야 하리라.” - 013_0629_a_23L復有比丘,名三摩師利:“我欲學怛薩阿竭署,我不欲於諸法有二心。所以者何?了無所見故。作是學,乃可爲學怛薩阿竭署。”佛言:“而所學署當作是學。”
-
다시 염사리(染師利)라는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일체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또한 사람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있지도 않으며, 사람을 제도하되 제도할 사람을 보지도 않고, 또 법을 보되 어떤 법으로 가르쳐야 할 것을 보지 않으려 하오니, 이렇게 하여 여래의 행을 배우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행을 배우려면 마땅히 그와 같이 배워야 하리라.” - 013_0629_b_04L復有比丘,名曰染師利,白佛:“我不以一切人爲他人,亦不於人有所思想;欲度人,亦不見當所度者,亦不見法,當以何法教?欲作是學怛薩阿竭署。”佛言:“如所學署當學。”
-
다시 발(勃)이라는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인욕[忍]으로써 일체 사람들에게 훌륭한 체하는 일이 없으니,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스스로 훌륭한 체하더라도 제 자신은 훌륭한 체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 저는 있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어떤 사람이 마음속으로 훌륭한 체함이 있더라도 저 자신은 마음속으로 훌륭한 체함이 없으니, 왜냐하면 일체 사람들을 염려하기 때문에 일체 사람들을 염려하여 그들을 다 안온케 하려 하고, 제가 또한 나쁜 것으로써 머물지 않고 법의 광명으로 머물기 때문에 일체 사람들을 염려하여 다 어두움이 없이 밝게 하려 함이니라. 저는 이와 같이 여래의 행을 배우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땅히 네가 배우는 바 그대로 배워야 하리라.” - 013_0629_b_09L復有比丘,名曰勃,白佛:“我以忍於一切亦無有貢高。所以者何?他人自貢高,我不以身自貢高,我不以所有想有,若有以內自貢高,我不以內自貢高。所以者何?用念一切人故,念一切欲令安隱;我亦不以惡住,以法明故,住念一切悉欲令明,不欲令有冥,我作是學怛薩阿竭署。”佛言:“當學而所學。”
-
다시 사이 종족(奢夷種族)으로서 다화광(多和光)이란 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일체 사람들을 가르치되 생사를 벗어났거나, 또는 생사를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제도할 수 있는 자는 다 여래의 행을 배우게 하려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땅히 행을 배우되, 배운 것과 같아야 하리라.” - 013_0629_b_17L復有奢夷種,名曰多和光,白佛言:“我欲教一切人過於生死,亦不得生死而可度者,欲作是學怛薩阿竭署。”佛言:“當學署如所學。”
-
다시 유사기교사(惟闍耆橋沙)라는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부처님께서 부처님 나무[佛樹] 아래에 계시는 것처럼 부처님 나무를 보지도 않고 얻지도 않으려 하오니, 이와 같이 하여 여래의 행을 배우고자 하옵니다.” - 013_0629_b_21L復有比丘,名曰惟闍耆橋沙,白佛:“我欲如佛在佛樹下,亦不見佛、樹亦不得,欲作是學怛薩阿竭署如所學。”
-
013_0629_c_01L다음엔 지라말(坻羅末)이란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모든 법을 배우지 않겠습니다. 세속의 법은 물론 불법도 배우지 않겠으며, 그 밖의 모든 법이란 법을 다 배우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네가 말하는 것과 같노라. 여래의 행은 일체에 작용하기 때문에 배우려고 하는 것이니라.” - 013_0629_c_01L復有比丘,名坻羅末,白佛:“我不學諸法,我亦不學欲所法,是所有法悉不學,諸法法而不學。”佛言:“如所言,怛薩阿竭署用一切故欲學。”
-
때마침 그 좌중에 있던 1만 비구니와 3천 사람이 다 일어나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도 여래의 행을 배우고자 하오니 일체에 작용하기 때문에 구족히 배우고자 합니다.”
다음엔 7천 우바새와 5천 우바이가 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뢰었다.
“저희들도 온전하게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때 또 8만 천자들이 다 말하였다.
“저희들도 다 온전하게 배워야 하겠으니, 일체를 가르쳐 주옵소서.” - 013_0629_c_05L應時於坐中,有萬比丘尼三千人,皆起白佛:“吾等欲學怛薩阿竭署,用一切故欲具足學。”復有七千優婆塞、優婆夷五千人,皆從坐起言:“吾等當具學。”爾時,復有八萬天子,悉言:“當具足學,教告一切。”
-
다음엔 사가난(私呵難)이란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법은 얻을 것이 없고, 모든 법은 얻을 수도 없거늘 어떻게 여래의 행을 배운다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행을 배운 바와 같이 마땅히 배워야 하리라.” - 013_0629_c_10L復有比丘,名私呵難,白佛:“諸法無所得,諸法不可得,當云何學怛薩阿竭署?”佛言:“如若所學署當學。”
-
다음엔 이삼복(利三匐)이란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일체 법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여래의 행을 배운다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행을 배운 바와 같이 마땅히 배워야 하리라.” - 013_0629_c_13L復有比丘,名利三匐,白佛:“我不轉於一切法,當云何學怛薩阿竭署?”佛言:“如所學署當學。”
-
다음엔 왕자의 종족인 마가파나타유촉(摩呵波那陀惟▼(噞*刂))이란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나[我]라는 것이 없지도 않고 나라는 것이 있지도 않으며, 지혜가 있지도 않고 지혜가 없지도 않으며, 파괴라는 것도 없고 증득하는 것도 없으며, 이 뜻 가짐이 다름이 없고 모든 인연이 인연됨이 없나니, 이와 같이 여래의 행을 배우려 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행을 배운 바와 같이 마땅히 배워야 하리라.” - 013_0629_c_15L復有比丘,名摩呵波那陁惟▼(噞*刂),王者種,白佛:“亦不無我、亦不有我,亦不智、亦不無智,亦無所破壞、亦無有證,是意無有異,諸所因緣無所因,作是爲學怛薩阿竭署。”佛言:“如所學署當學。”
-
013_0630_a_01L다음엔 사이(奢夷) 종족인 비타변(非陀遍)이란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일체 모든 법의 변제[際]를 볼 수 없음은 변제란 것이 없기 때문이거늘, 있다거나 없다거나 또는 변제가 없다거나 없다는 그것마저 없다거나, 명자(名字)도 없다고 이른다면 이러한 것은 곧 소홀한 말이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느니라. 만약 변제가 없다면, 변제가 없고 나면 원(願)도 없고 원하는 이도 없으리니, 이 때문에 보살이라 하느니라.” - 013_0629_c_20L復有比丘奢夷種,名曰非陁遍,白佛:“一切諸法不見際、無有際者,謂若有、若無有,亦無際、亦無無有、亦無字,其如是者,乃可忽?”佛言:“不可!若無際,無際已無願,無願者是故菩薩。”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의 말과 같노라. 원이 없음은 곧 헤아릴 수 없고 알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머무를 수 없고 두려울 것이 없으며, 명자[字]마저 없고 평등하여 배울 것이 없으며, 가질 것도 없고 무너뜨릴 것도 없고, 조작할 것도 없음이니, 그 일체 얻을 것이 없고 명색(名色)이 없기 때문이다. 보살도 역시 명색이 없는 만큼 스스로 옳다 함이 옳음이 아니고 스스로 그르다 함도 그름이 아니어서야 거리낌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배울 바 행과 같이 마땅히 배워야 하리라.” - 013_0630_a_02L佛言:“善哉!善哉!如仁之所說。無願不可議、不可知、不可思想、不可住、無所畏、無有字,平等無所學、無所持、無所壞、無所造、無所作;其知一切無所得,無有色,菩薩亦無名色,亦自是非是學非者,亦不可得,無所罣㝵。”佛言:“如所學署當學。”
-
그때 5백 바라문들이 사위국(舍衛國)을 나와 길을 앞지르면서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나아가 예배하고 물러서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말씀하시는 대로 즐거이 듣고자 하오니 항상 안온하게 하여 주옵소서.” - 013_0630_a_08L爾時,有五百婆羅門,出舍衛國,因道徑到佛所,前爲佛作禮而卻住,白佛言:“如所說,願樂欲聞,令常安隱。”
-
부처님께서는 여러 바라문들에게 물으셨다.
“무엇 때문에 듣고자 하는가?”
여러 바라문들은 말하였다.
“사람들에게 이것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것을 누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래의 행이 있으니, 과거부터 여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이제 나도 이것을 말하리라.” - 013_0630_a_11L佛問諸婆羅門:“用誰故欲聽聞?”諸婆羅門言:“無有人,是故人用是故。”佛言:“有怛薩阿竭署,從本諸佛所說,今我所語是。”
-
그러자 수환사리(羞桓師利)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머니 배 속에 있으면서 이미 여래의 행을 들었습니다.” - 013_0630_a_14L有婆羅門,名羞桓師利,白佛:“在於母腹中,以聞怛薩阿竭署。”
-
다음엔 삼마진시(三摩震諟)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마침내 어머니 태중에 들어가자마자, 이미 여래의 행을 들었습니다.” - 013_0630_a_16L復有婆羅門,名三摩震諟,白佛言:“適向母胞胎,已聞怛薩阿竭署。”
-
다음엔 설진제(雪眞提)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출생하자마자 곧 여래의 행을 들었습니다. 사면이 환하기에 보니 여래께서 허공에 계시면서 손으로 저의 머리를 만지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앞으로 불가견정불(不可見頂佛)이란 명호를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 013_0630_a_18L復有婆羅門,名雪眞提,白佛言:“適生便聞怛薩阿竭署,四面而明見怛薩阿竭,飛在上住以手著我頭,便言:‘若當號爲不可見頂佛。’”
-
다음엔 알진제(頞眞提)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출생한 이래 오래지 않아 곧 여래의 행을 들었으니 공중에서 부처님께서 내려와 말씀하시기를, ‘너는 앞으로 여래의 행을 듣고 배울지니라.’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 013_0630_a_21L復有婆羅門,名頞眞提,白佛:“生以來不久,便聞怛薩阿竭署,於空中見佛來而言:‘若當聞學怛薩阿竭署。’”
-
013_0630_b_01L다음엔 나라사목갈(那羅沙目竭)이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바로 밤중에 사면에서 네 부처님께서 저의 처소에 오시기에 곧 엎드려 예배하였더니, 여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사의한 여래의 행이 있노라. 저 기원(祇洹)의 석가모니부처님[釋迦文佛] 처소에 가서 받아 들어라.’ 하셨으니, 이것이 저의 과거의 서응(瑞應)입니다.” - 013_0630_b_01L復有婆羅門,名曰那羅沙目竭,白佛:“今夜半見四面、四佛來到我所,便以頭面作禮,諸佛言:‘有不可議怛薩阿竭署,於祇洹釋迦文佛所聽受。’是我本之瑞應。”
-
다음엔 아진제라무야(阿眞提羅蕪耶)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바로 밤중에 키가 20리 이고 32상(相)과 모든 종호(種好)를 구족하신 부처님께서 저에게 이르기를 ‘앞으로 여래의 행을 배울지니라.’ 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듣고 나선 홀연히 다시 볼 수 없었으니, 이것이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 013_0630_b_05L復有婆羅門,名阿眞提羅蕪耶,白佛:“今夜半見佛長高二十里,三十二相諸種好,謂我:‘當學怛薩阿竭署。’聞之忽然而不復見,我本之瑞應。”
-
다음엔 삼파기(三波耆)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출생하여 땅에 떨어질 적에 어떤 사람이 오는데 온 집안이 환하더니, 그 사람이 저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젖을 먹이지 말고 이 아이로 하여금 여래의 행으로서 음식을 삼게 하시오.’ 하므로, 어머니께서 듣고 기뻐하셨으니, 이것이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 013_0630_b_09L復有婆羅門,名三波奢,白佛:“我生墮地時,有人而來擧舍而明,謂我母:‘勿以乳子,令是子當以怛薩阿竭署而爲飮食。’母聞之歡喜,是我本之瑞應。”
-
다음엔 예삼불(倪三颰)이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과거 바라문의 일을 배울 적에 공중에서 32상과 모든 종호(種好)를 구족하신 부처님을 보았는데,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마땅히 배우고 너는 마땅히 섬겨야 하리라.’ 하시기에, 제가 이 말씀을 들은 즉시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묻기를, ‘어떤 것을 배우고 어떤 것을 섬겨야 하리까?’ 하였습니다.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의 행이란 것이 있노라. 이것을 네가 배우고 이것을 네가 섬길지니 이것을 배우기만 한다면 모든 법을 다 알 수 있으며, 또 이것이 바로 법도이고 이것이 바로 여래의 행이기 때문에 세속에 목욕하는 자는 이른바 그 때[垢]를 제거하고 부사의함에 목욕하는 자는 이것이 곧 보살의 목욕이어서 이른바 모든 법이 다 앞에 있으니, 해탈한 이나 해탈하지 못한 이나 바라문 가운데 존귀한 이가 되려면 마땅히 이 행을 배울지니라.’ 하셨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면서 두뇌 속에 그 교훈을 받아 간직하였습니다. - 013_0630_b_13L復有婆羅門,名倪三颰,白佛言:“我本學婆羅門事時,於空中見佛,有三十二相諸種好,便擧言:‘若當學、若當事。’聞之則以頭面著地,問:‘何所是學?何所是事?’其佛言:‘有怛薩阿竭署,是若學、是若事。如學是者,諸法悉可知,是則爲度、是則怛薩阿竭事。是故俗浴者謂去垢,不可議浴是菩薩浴。所謂諸法悉在前脫不脫者,欲於衆婆羅門中而尊,當學是署。’我聞其言,踊躍歡喜,以頭腦受其教。
-
013_0630_c_01L 이제 부처님께 묻자오니, 무엇 때문에 앞서 이러한 서응이 있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여래의 행에 대한 서응이니라.” - 013_0630_c_01L問佛:‘何以故前有是瑞?’”佛言:“是怛薩阿竭署之瑞應。”
-
다시 마하 가루나(迦婁那)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목욕을 하고 나서 큰 불을 일으켜 제사를 지내려다가 32상과 모든 종호(種好)를 구족하신 부처님의 몸을 머리 위에서 보았는데,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불을 일으켜 제사 지내는 그러한 법은 옳지 않으니, 왜냐하면 불이란 것은 일어나서 다시 사라지기 때문이니라.’ 하셨습니다. - 013_0630_c_02L復有婆羅門,名摩呵迦婁那,白佛:“我行洗浴,還作大火欲祠之,於上見佛身,有三十二相諸種好,其佛言:‘如若祠火之法,不當爾。所以者何?起復而滅故。’
- 제가 다시 묻기를, ‘이를 끄지 않으면 어떻게 꺼지겠습니까?’ 하였던 바, 그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남이란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나[我]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수명(壽命)이란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있다거나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화합이란 것을 생각하지지도 않고 나뉨이란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어떤 사상을 생각하지도 않으면, 이 불은 사라지게 하는 이가 없어도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니 만큼, 그 불은 자연히 된 것이요, 섶[薪]을 쓰지 않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 013_0630_c_06L我卽時復問:‘不作是滅,當何以滅之?’其佛言:‘不念人、不念我、不念壽命、不念有無有、亦不念合、亦不念中分、亦不念思想;是火而無滅者而自滅,其火可令自然而不用薪。’
- 그래서 제가 자세히 들은 즉시 합장하고 부처님께 다시 묻기를, ‘불을 일으키는데 어찌 섶을 쓰지 않겠습니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사의한 여래의 행이 있으니, 네가 이것을 배워라. 이것을 배우고 나면 곧 불을 일으키되 섶을 쓰지 않으며, 이것을 배운 자는 음욕[婬]과 진심[怒]과 우치[癡]를 생각하지도 않으리니, 이 때문에 불이 곧 사라지느니라.’ 하셨습니다. 제가 듣고서 두뇌 속에 그 교훈을 받아 간직했으니, 이와 같이 본 것이 바로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 013_0630_c_11L我諦聞之,卽叉手問佛:‘當云何作火而不用薪?’其佛言:‘有不可議怛薩阿竭署,若當學,學已便能作火而不用薪。作是學者,亦不念婬怒癡,以故火卽爲滅。’聞之卽以頭腦受其教。所見者,是我本之瑞應。”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네가 말한바 그대로가 바로 여래의 서응이니라.” - 013_0630_c_16L佛言:“如若所說,是怛薩阿竭之瑞應。”
-
다시 모리사리(牟梨師利)란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마침 제각(提胳)을 불 속에 넣어서 불을 치성하게 하려다가 문득 몸에 32상과 모든 종호(種好)를 구족하신 여래를 보았는데,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 불을 섬기기보다는 여래의 행이 있거늘 어째서 배우지 않는가?’ 하시기에, 제가 곧 그 부처님께 묻기를, ‘어느 곳에 가서 배워야 하리까?’ 하였더니, ‘기원(祇洹)의 석가모니부처님 처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 013_0630_c_17L復有婆羅門,名牟梨師利,白佛:“我適提胳欲著火中,欲令之熾盛,便見怛薩阿竭,身有三十二相諸種好,卽時其佛言:‘用是火爲事,有怛薩阿竭署,何以不學?’應時問其佛:‘當何所學?’‘往到祇洹釋迦文佛所。’是我本之瑞應。”
-
013_0631_a_01L다음엔 분진자교천(分畛者橋泉)이란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집[盧]에 이르러 꽃을 따서 가지고 돌아오려다가 몸에 32상과 모든 종호(種好)를 구족하신 여래의 몸을 보았는데,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꽃을 따되 너처럼 꽃을 따지 말지니 꽃을 땀으로 해서 무너뜨림이 있기 때문이니라.’ 하시기에, 제가 즉시 묻기를, ‘꽃을 어떻게 따야 합니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손으로 따지 말고 그 가지를 흔들지 않고서 꽃을 따야 하리라. 여래의 행을 배우는 자는 스스로 지혜의 손이 있어 그 꽃을 따느니, 지혜의 손이란 부사의한 꽃을 딸 수 있는지라, 일체 사람들이 다 바로 꽃인 만큼 그들을 교화한다면 열반을 얻게 할 수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저의 서응입니다.” - 013_0630_c_23L復有婆羅門,名曰分畛者橋泉,白佛:“我到廬上取花欲持歸,見怛薩阿竭,身三十二相諸種好,其佛言:‘取花不如,若如取花,取花有所壞敗。’我應時復問:‘取華云何?’其佛言:‘莫以手取,莫動搖其枝,而可得取,當學怛薩阿竭署,自如有慧手,爲若取其華。慧手者,可得不可議花,一切人皆是華,可以教化得泥洹。’是之瑞應。”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땅히 여래의 행을 배움에는 네가 배운 바와 같아야 하리라.” - 013_0631_a_09L佛言:“當學怛薩阿竭署,如若所學。”
-
다시 빈타시(邠陀施)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저자에 가다가 길 복판에 돈이 떨어져 땅에 있는 것을 보고 그 돈을 모아 가지려 하던 차에 마침 머리 위를 우러러보자, 32상과 모든 종호(種好)를 구족하신 여래의 몸을 보았는데, 나에게 물으시기를,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시기에, 제가 대답하기를, ‘땅에 떨어진 돈을 줍고 있습니다.’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어렵지 않지만, 다섯 갈래[五道] 생사에 떨어진 일체 사람들을 줍되 그 가운데서 세어 보지도 않고 어떤 생각을 하지도 않는 이것이 어려운 일이노라.’ 하셨습니다. - 013_0631_a_10L復有婆羅門,名曰邠陁施,白佛:“我到市,於道中央失墮錢散在地,以聚欲取訖,以仰頭上視,怛薩阿竭身有三十二相諸種好,問我:‘作何等?’我言:‘拾地所失錢。’其佛言:‘是不爲難。若當拾五道生死一切人,亦不那中作數,亦不想是,乃爲難。’
- 제가 또 묻기를, ‘이것을 배우려면 그 무엇부터 듣고 무엇부터 배워야 하리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의 행이란 것이 있노라.’ 하셨으며, ‘어느 곳에 가서 들어야 하리까?’ 하였더니, 곧 말씀하시기를, ‘기원(祇洹)에 계시는 석가모니부처님께 가서 들어라. 전세(前世)에 지은 것인 만큼 금세에 얻을 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 013_0631_a_16L卽問:‘是學當所從聞,當所從學。’其佛言:‘有怛薩阿竭署當學,當那所聞。’卽時言:‘有佛名釋迦文,在祇洹,當從是聞,前世所作今世逮得。’是本瑞應。”
-
013_0631_b_01L다음엔 분하주(分訶舟)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저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잡향(雜香)을 사서 돌아오는데 집에까지 못 와서 여래를 보고 마음이 즉시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 부처님께 물으시기를, ‘손에 가진 것이 무엇이냐?’ 하시기에, 곧 대답하기를, ‘잡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였더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향은 말할 것이 못되고 불가의향(不可議香)이란 유명한 향이 있어 그 향내가 위아래와 네 간방과 동서남북에 두루 풍기느니, 이러한 향을 구해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 013_0631_a_20L復有婆羅門,名曰分訶舟,白佛:“到市向歸欲買雜香,買以還歸,未到舍,見怛薩阿竭,其心卽時踊躍,佛問:‘手中持何等?’卽謂:‘持雜香。’佛言:‘是香不足言,有香名爲不可議香,其香聞上下四維、東西南北方,當求是香。’
- 제가 즉시 묻기를, ‘그렇다면, 이 향은 뿌리ㆍ밑둥ㆍ줄기ㆍ가지ㆍ잎ㆍ꽃ㆍ열매 그 어디에서 실제로 향내가 나는 것입니까?’ 하였더니,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이 향은 뿌리도 없고 밑둥도 없고 줄기도 없고 가지도 없고 잎도 없고 꽃도 없고 열매도 없으면서 실재로 향내를 풍기니 마땅히 이 향을 구해야 하리라.’ 하셨으며, 즉시 또 묻기를, ‘어느 곳에 가서 구하리까?’ 하였더니, 곧 말씀하시기를, ‘기원(祇洹)의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 가서 여래의 행을 들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제가 들은 바의 과거 서응입니다.”
- 013_0631_b_03L應時復問:‘是香者,是根、是本、是莖、是枝、是葉、是華、是實,實之所香?’佛言:‘是香者,亦無根、亦無本、無莖、無枝、無葉、無華、無實,實而香,當求是香。’卽問:‘當於何所求?’卽言:‘於祇洹釋迦文佛所,當聞怛薩阿竭署。’是我所聞之瑞應。”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네가 들은 바 그대로이니라.” - 佛言:“如所聞。”
-
다시 아누가유연(阿耨迦惟延)이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성(城) 밖에 가서 나무 아래 앉으매 마음이 안정되기를 마치 선정에 들어간 것 같이 하였는데, 사방에 넓고 큰 광명이 비추는 그곳에서 한량없는 부처님들을 보았는가 하면, 그 부처님들께서 다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좌선(坐禪)을 해서는 옳지 않노라.’ 하셨습니다. - 013_0631_b_09L復有婆羅門,名曰阿耨迦惟延,白佛:“我所至城外,坐於樹下,其心安定譬若如禪,視四面如普大明,見無央數佛,悉言:‘不當坐禪如是。’
- 제가 즉시 그 부처님들께 물었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生]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는 이것이 올바른 선정이라 보는 바가 있기 때문이니, 보는 바가 없는 그것이 바로 보는 것이니 마음에 없으면 무엇에 얽매일 것이 있으랴. 왜냐하면 그 마음에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정을 닦을 것이니, 여래의 행이라는 법이 있다. 석가모니부처님께 가서 묻고 이 법을 배워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 013_0631_b_13L應時卽問其佛,其佛言:‘亦無所生、無所滅,是爲應禪;所以持所視故,無所視者是爲視。無心何以繫者?何以故?其心無有想,故當作是禪。有法名怛薩阿竭署,當從釋迦文佛所問,當從是學其法。’是故本瑞應。”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땅히 그와 같이 배워야 하리라.” - 佛言:“當學如所學。”
-
013_0631_c_01L다시 나나의다(羅那懿多)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마침 저자에 가서 금(金)을 사는데 저울로서 금을 달아보려고 하다가 문득 여래를 보았는데, 그 광명이 매우 밝았습니다.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금을 달아서 무엇 하랴. 저울질할 수 없는 법이 있으니 마땅히 이 법을 구해야 하네.’ 하시기에, 제가 즉시 묻기를 ‘저울질 할 수 없는 법이란 어떤 것입니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은 저울로써 달 수 없는지라. 마치 허공을 저울로써 달 수 없듯이 일체 법도 그러하노라.’고 하셨으며, 제가 다시 묻기를, ‘즐거이 듣고자 합니다. 어떻게 이 법을 배울 수 있으리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의 행이란 것이 있으니 이것을 배우고 이것을 들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들은 것이 바로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 013_0631_b_19L復有婆羅門,名羅那懿多,白佛:“適到市買金,欲以稱稱之,便見怛薩阿竭,其光明甚明,其佛言:‘用是稱爲?有法名不可稱,當如求之。’則時復問:‘何所是不可稱者?’其佛言:‘諸法不可以稱稱之,譬如空不可稱,一切諸法如是。’我言:‘願樂欲聞,何所是法而可學者?’其佛言:‘有名曰怛薩阿竭署,當學、當聞。’是我本之瑞應之所問。”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땅히 들은 바 그대로 배울지니 이것이 다 전세(前世)의 공덕 때문에 얻어진 서응이니라.” - 013_0631_c_05L佛言:“當學如所聞,是皆前世功德之所致,故逮是應。”
-
다시 아피아차(阿披阿遮)라는 바라문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한밤중에 바깥으로 나가서 별을 관찰하다가 큰 광명이 있으므로 보니 여래인지라. 땅에 엎드려 예배하자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되 너처럼 보아서는 아니 되느니라.’라고 하시기에, 제가 즉시 물었더니, 그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별을 쳐다보지 말라.’ 하셨습니다. - 013_0631_c_06L復有婆羅門,名曰阿披阿遮,叉手白佛:“我夜已半出觀星宿,有大明而見怛薩阿竭,便以頭面作禮,其佛言:‘不見視星宿,如若所視。’應時卽問,其佛報言:‘亦不可仰向。’
- 그 부처님께서 다시 반문하시기를, ‘지금 네가 보는 별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시기에, 제가 즉시 대답하기를, ‘모르겠습니다.’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별의 이름이 실진(悉盡)이라, 네가 배울 바와 같이 모든 법이 들어가는 바를 배우면 보는 바 너의 일을 다 알리라.’고 하시기에, 곧 다시 묻기를, ‘어느 곳에 가면 이 법을 들을 수 있으리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원(祇洹)의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 가야만 이 말씀을 들으리라.’ 하시고는, 홀연히 보이지 않아 그곳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여래의 행을 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 013_0631_c_11L佛復還問:‘今若所視星宿名何等?’我卽應言:‘不知。’其佛言:‘是名悉盡,如若所學當學,諸法所入,悉知所見汝事。’卽復問:‘何所處可聞是法?’其佛言:‘當於祇洹釋迦文佛所,聞是語。’忽而不知處,是故所聞怛薩阿竭署本之瑞應。”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땅히 들은 바 그대로 배워야 하리라.” - 佛言:“當學如所聞。”
-
다시 술사사리(術闍師利)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마침 농작물의 씨를 뿌리다가 문득 여래께서 앞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 명의 비구 승가를 데리고 함께 계시는 것을 보았는데,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처럼 농작물의 씨를 뿌려서는 옳지 않노라.’ 하시기에, 제가 즉시 묻기를, ‘어떻게 씨를 뿌려야 합니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가져오지도 않고 내버리지도 않으니 이렇게 뿌린 씨라야만 그 씨가 나지도 않고 시들지도 않으니라.’라고 하셨습니다. - 013_0631_c_17L復有婆羅門,名曰術闍師利,白佛:“適以種農種,便見怛薩阿竭在前住,與不可數千比丘僧俱,其佛言:‘不當如若已種農種。’應時則問:‘當云何種?’其佛言:‘亦不取、亦不放,當作種,亦不生、亦不枯。’
- 013_0632_a_01L 곧 다시 부처님께 묻기를, ‘어느 곳에 가서 이 법을 배우리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의 행이란 것이 있으니, 이것을 배우고 들어라. 이것을 듣고 나면 이러한 씨는 일체 법을 취할 것도 없고 취하지 않을 것도 없고 조작할 것도 없고 생각할 것도 없노라. 이렇게 아는 이는 그 법이 나는 데가 없는지라. 조작함이 없기 때문에 나는 것이 없고 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시들거나 사라짐이 없으며, 씨가 없기 때문에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부처님께 묻자오니 이것이 어떠한 서응이옵니까?”
- 013_0631_c_22L則時復問佛:‘當何所處而學是法?’其佛言:‘有怛薩阿竭署,當學當聞,聞已是若之種,亦不取一切之法、亦無所取、亦無所造、亦不思想,知是者,其法無所生,無所造故無所生,已無所生,故無所枯滅,無有種,而不生亦不滅。’”卽問佛:“是何等瑞應?”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여래의 행의 서응이니 그 불수(佛樹) 아래 앉는 이라야 이러한 서응이 있느니라.” - 013_0632_a_06L佛言:“是怛薩阿竭署之瑞應,其當於佛樹下坐者,是之瑞應。”
-
다시 아화진(阿禾眞)이란 바라문이 있었는데, 이 아화진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집을 나와 마을 입구에서 죽은 사람을 보고 문득 죽은 사람을 생각하면서 즉시 무슨 말을 홀로 중얼거리다가 곧 부처님을 만나보았는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처럼 생각해서는 옳지 않으니, 왜냐하면 나쁜 물질을 보고 곧 생각을 가지기 때문이라. 모든 법은 얻을 수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고 마땅히 이렇게 생각할지니라. 그 도를 얻은 이가 하는 일은 생각을 하지 않고 얻으려 하지도 않기 때문에 다른 생각이 있거나 두 가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없나니, 생각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없다. - 013_0632_a_08L復有婆羅門,名曰阿禾眞,阿禾眞白佛:“出舍於里門見死人,便念死人乃如是。應時獨語,便見佛。佛言:‘不當如若所念。所以者何?見惡色便有思想,諸法不可得而無所得,當作是念。其得道者,所作不以想,亦不用得故便有餘念,亦無二心之所念。無所想,是故無有想。
- 이것이 도를 얻은 이가 짓는 생각이고, 얻은 것 없는 그것이 바로 도를 얻음이며, 두 가지 마음을 아는지라 이 때문에 구하는 것 없는 그것이 바로 도를 얻은 이가 하는 일이고, 보는 것 없는 그것이 바로 도의 보는 것이니라. 뒷날 법이 다하려고 할 적에 생각하는 것으로써 사람을 가르치되 혹은 무덤 사이에서 마른 흰 뼈를 보고 앉아서 곧 해탈하기를 생각하거나, 혹은 오색 빛을 보고서 그 가운데로부터 계교하여 해탈하기를 구하거나, 혹은 내쉬는 숨과 들이쉬는 숨을 계교하여 해탈하기를 구하리니, 알아 두라. 법이 다 되려고 할 적엔 이러한 일을 하리라.’ 하셨습니다.
- 013_0632_a_15L是道所作,念無可所得是乃爲得,以知二心者,是故無所求。是道之所作,無所見是道所見,後法欲盡時,以思想教人,若於塚閒見枯白骨坐,念便得脫。若念五色,從是中教計而求脫,教計出息入息,欲求脫,知欲法盡,便有作是。’
- 013_0632_b_01L 제가 즉시 부처님께 묻기를, ‘무엇을 배워야만 이러한 일을 여읠 수 있으리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도를 배우고 이러한 법을 배우되 여래의 행을 배울지니 여래께서 하시는 일, 그 법의 이름이 여래의 행인 만큼, 이것을 듣고 배우려면 마땅히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들어야 하리라.’ 하시고는, 보이던 것이 홀연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 013_0632_a_21L應時復問佛:‘當云何學便離是事?’其佛言:‘當學道,如是法當學怛薩阿竭署;如怛薩阿竭事,有法名怛薩阿竭署,當聞當學,當從釋迦文佛聞是。’忽然不見,所以見是。”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여래의 행의 서응이니, 마땅히 도 자리[道地]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니라.” - 013_0632_b_03L佛言:“是怛薩阿竭署之瑞,當在道地故。”
-
다시 아유시진(阿惟示眞)이란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넓은 들판에 갔다가 많은 죽은 사람들 중에 혹은 축생들에게 뜯어 먹힌 것이 있고, 혹은 냄새가 나거나 허물어진 것이 있고, 혹은 푸른빛ㆍ붉은빛ㆍ검은빛으로 변한 것이 있음을 보고서 문득 스스로 생각에 잠겨 그 자리에 앉아서 이것을 계교하고 수습하려다가 곧 동방에서 오시는 부처님의 32상을 보고 먼 곳을 향하여 예배하였는데,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이런 물건을 보더라도 생각할 수 있는가?’ 하셨습니다. - 013_0632_b_04L復有婆羅門,名阿惟示眞,白佛:“我到曠野,見衆多死人,中有爲畜狩所食噉者、中有臭者、中有壞敗者、有靑色者、有赤色者、有黤黮者,便自念,欲於坐教計狀念是,便見東方佛來,有三十二相,便遙向而爲作禮,其佛言:‘雖觀是物以爲想。’
- 제가 즉시 그 부처님께 묻기를, ‘무슨 법을 배워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를 벗어나게 할 수 있으리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의 행이란 법이 있으니, 이 법을 듣고 또 배워라. 이것을 배운 자는 일체 모든 갈래를 위해 공덕을 지으니, 석가모니부처님께 가면 구족히 들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과거의 서응입니까?”
- 013_0632_b_10L卽時問其佛:‘我當學何法?而教一切令脫生死。’其佛言:‘有法名怛薩阿竭署,當聞當學,學是者,爲一切諸道作功德,從釋迦文佛具足聞之。’是何本瑞應?”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여래의 행의 서응이니라. 이 행을 배우는 자는 배우기 위해 불수 아래에 앉아 있느니라.” - 013_0632_b_14L佛言:“是怛薩阿竭署之瑞應,作是學者,爲學在佛樹下坐。”
-
다시 파리만다(波梨漫多)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밤에 그 문으로부터 빠져나왔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다섯 개의 횃불을 켜서 그것으로 촛불로 삼았으니, 왜냐하면 험한 도랑과 구덩이와 갚은 우물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곧 스스로 생각하기를, ‘무슨 법을 배워야 일체 중생들을 위해 광명을 일으켜서 그 어두움을 없앨 수 있을까?’ 했습니다. - 013_0632_b_16L復有婆羅門,名曰波梨漫多,白佛:“我夜出竇無所可見,便然五舍以爲燭火。所以者何?避溝坑深井,便自念:‘當學何法而爲一切作明令其無冥?’
- 이렇게 생각하던 차에 문득 부처님을 보았는데, 부처님께서 허공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훌륭하고 훌륭하다, 이는 훌륭한 사람이 하는 일이고 범인들이 하는 일이 아니나니, 모든 진심ㆍ탐욕ㆍ우치와 아첨ㆍ허식 등 이러한 것이 없는 이라야 이 일을 생각할 수 있고, 그 밖의 사람으로선 미칠 수 없는지라, 평등한 마음으로 일체를 생각하고 또한 자주 일어나는 생각을 생각하지 않음이 마치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 앉아서 성문(聖文)조차 생각하지 않으심과 같네.’ 하셨습니다.
- 013_0632_b_20L這有是念,便見佛在虛空中住言:‘善哉!善哉!是上人之所作,非凡人之所爲。諸怒根、貪餮、諛諂、虛飾,已無是者能念是事,非餘所及,以等心念一切,亦不念數數所念,如佛在樹下,不念聖文。’
- 013_0632_c_01L 그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여래의 행이 있으니 이 법을 듣고 배우면 너의 뜻에 구족하리라.’ 하시기에, 다시 그 부처님께 묻기를, ‘누구에게 들어야 하리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들을지니, 그 들어야 할 자는 모두 거기에 가서 듣느니라. 그리고 산ㆍ언덕ㆍ도시ㆍ촌락과 성곽(城郭)ㆍ군국(郡國)에서도 다 이 법 가운데서 보고 듣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끝나자 홀연히 그곳을 알 수 없었으니, 이것이 무슨 서응이옵니까?”
- 013_0632_c_02L其佛言:‘有法名怛薩阿竭署,當聞當學,具足若意。’復問佛:‘當從所聞。’其佛言:‘當從釋迦文佛所聞,其所當聞者悉在彼聞,若丘聚、縣邑、城郭、郡國,悉於是法中而見。’聞是言已,恍惚不知其處。是何瑞應?”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제가 마땅히 여래의 행을 듣고 배워야 하기 때문에 이 서응이 있었던 것이니, 그 보살로서 배워야 할 것이 모두 이 법에 있느니라.” - 013_0632_c_07L“佛言:‘用若當聞怛薩阿竭署故、當學故,是之瑞應;其菩薩所當學,悉在是法。’
-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몇 가지 행의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경계처럼 그 행도 그러한지라, 그 행이 부처님의 경계와 다름이 없어 모든 법이 다 이 행을 따르나니, 마음을 명령하는 서응과 같으니, 다시 나에게 물어라. 이 법의 미묘하고도 심오함이 이러한 만큼 이것은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느니라.” - 013_0632_c_09L復問佛:‘有幾署所當可學?’佛言:‘如佛境界,其署如是;其署者,如佛境界等無異,諸法皆從是署如勅心瑞應。’時復問我:‘是法微妙深乃如是,是不可見、不可知。’”
-
다시 실달슬(悉達膝)이란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수백천 바라문들과 함께 사당에 나아가 제사를 지내면서 깊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어떻게 제사를 지내야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다 해탈하여 그 애쓰는 고통을 없앨 수 있을까?’라고 했습니다. - 013_0632_c_13L復有婆羅門,名曰悉達膝,白佛:“我與數百千婆羅門俱,如行祠祀,熟自念:‘當何祠祀,令一切皆得解脫,令無勤苦?’
- 이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여래의 광명과 상(相)과 모든 종호(種好)를 보았는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훌륭하고 훌륭하다, 네가 이러한 생각을 했으니, 마땅히 네가 하려는 그 생각대로 해야 하리라.’ 하시고, 그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洹阿難邠祇阿藍]의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 가면 그 제사에 대한 뜻을 자세히 말씀해 주실 것이며, 여래의 행이란 법이 있으니, 그 법을 듣고 배워라. 이 법은 다 과거 모든 부처님들께서 설하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 013_0632_c_16L這作是念,便見怛薩阿竭光明及相諸種好,便言:‘善哉!善哉!乃作是念,當作念如若所爲。’其佛言:‘往到舍衛國祇洹阿難邠祇阿藍釋迦文佛所,當爲若廣說其祠祀意。有法名怛薩阿竭署,當聞當學,是皆以過去諸佛之所說。’”
-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떻게 제사를 지내야 합니까?” - 復問:“當何以祠祀?”
-
013_0633_a_01L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보살이 음식으로써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것으로 이 제사를 지내어 삼계(三界)를 해탈시킴이요, 의식의 제사가 있나니 스스로 구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음이요, 인욕의 제사가 있으니 나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대하지 않음이요, 정진의 제사가 있으니 이는 5도(道)를 벗어나려 함이요, 삼매의 제사가 있으니 어떤 인연을 지어 희망을 가지지 않음이요, 다문(多聞)의 제사가 있으니 온갖 문자[名身]와 글귀[數身]로써 바라밀의 지혜를 구족하려 함이요, 법시(法施)의 제사가 있으니 사람의 욕심을 행하는 자에게 법으로써 일체를 교화함이라. 어떤 축생이 법을 듣고자 하더라도 중간에 버리지 않음은 물론 그를 위해 경을 설해 주고 물질[色]로써 설해 주지 않으며, 법의 인자한 마음으로 일체를 교화해야 하리라.” - 013_0632_c_23L佛言:“菩薩以飮食所有施與人,作是祠祀而脫於三界,有識祠,不自念有求故;有忍辱祠,不以心惡向一切;有精進祠,欲拔脫五道;有三昧祠,不作因緣有所希望;有多所聞祠,一切名身諸數身具足波羅蜜知;有法施祠,若行人欲以法化一切,若有畜生欲聞法者,不中捨而爲說經,亦不以色說,以法慈心教詔一切。”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한 사람은 그 몸을 아끼지 않고서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각각 안온케 하기 위해 근심하지 않고 사람들을 교화하나니, 왜냐하면 다시 좋은 몸을 얻기 때문이니라. 마치 마니(摩尼) 구슬을 물에 씻어 더욱 좋게 만들어 두면 그 왕의 아들들이 모두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과 같으니, 왜 사랑하고 기뻐하는가 하면 티와 더러움이 없기 때문이라. - 013_0633_a_09L佛言:“有上人不惜其身,趣欲令一切各得安隱,不以憂心而教人。所以者何?用更得好軀,譬若摩尼珠洗之倍好,其王者子莫不愛喜。所以愛喜者何?無瑕穢故。
- 그 법사(法師)도 이와 같아서 비록 생사를 겪더라도 다시 몇 배의 좋은 몸을 얻느니, 왜냐하면 그 몸이 나쁨도 없고 비방할 이도 없기 때문이며, 왜냐하면 항상 부처님을 찬탄하기 때문에 비록 부처님과의 거리가 멀더라도 항상 친근하려 하며, 왜냐하면 이미 구하는 것 없이 곧 제사 지나는 것이 제사이다. 신심을 내는[三拔致] 이도 제사가 있을 뿐 다른 것이 없으니, 왜냐하면 원한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일체에게 나쁜 뜻이 없느니라.
- 013_0633_a_13L其法師譬如是,雖有生死,所更倍好。所以者何?身亦無惡亦無榜者。所以者何?常歌歎佛,故雖佛遠常欲親近。所以者何?已無所求,卽祠是爲祀。其有三拔致者,亦有祠而無有異。所以者何?無有恨心故,於一切無惡意。
- 013_0633_b_01L 보살이 하는 이 제사보다 더 훌륭한 것이 없는 만큼 이것을 염하는 자는 이 때문에 훌륭하고, 염하지 않는 자는 훌륭한 것이 없나니, 공덕으로써 자신과 다른 사람을 길러내기 때문에 보살의 뜻이니라. 왜냐하면 법으로써 싸우지 않으므로 투쟁이 없고 얽매임이 없고 갇힘[閉]이 없으며, 이 제사를 지내는 자에겐 그 누구도 진심[瞋]을 낼 자가 없으므로 어떤 법을 계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느니라. 이것이 바로 훌륭한 사람의 하는 일이니라.
- 013_0633_a_19L菩薩有祠無有勝者,若有念是者是故勝,不念之者無所勝,以功德長養身及他人,是故菩薩意。所以者何?不以法有所諍,以故無鬪、無有繫、無有縛、無有閉,其有作是祠者,莫有能瞋者,亦不念何法可計可挍,是上人之所作。
- 자기가 처할 바를 관찰하여 공덕 가운데 어떤 생각을 갖지도 않고 파괴하여 죄를 짓지도 않나니, 왜냐하면 그 근본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허물이 없으며, 또 보살의 높은 법이란 능히 교화받을 자를 오게 하여 기뻐하기도 하고 게을리 하지도 않아 사람들에게 성내는 마음을 갖지 않는지라. 왜냐하면 마하연(摩訶衍)은 이러한 것을 따라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하연이라 함이니, 그 마하연이란 것을 생각하지도 않느니라.”
- 013_0633_b_02L已處觀其處處,亦不於功德中有所想,亦不破壞所作罪。所以者何?不失其本故。亦無有過菩薩上之尊法,能來教化者亦歡喜,亦無懈怠,亦不與人如有怒心。所以者何?摩訶衍不從是得。故曰摩訶衍,亦不想其衍。”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실달슬이여, 네가 지내던 그 본래의 제사를 버리고 이러한 제사를 지낼지니, 이것이 바로 보살 제사의 서응(瑞應)이고, 네가 보았던 여래처럼 이 모두 과거세에 마하연을 닦음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 왜냐 하면 눈을 뜨고서 부처님을 본 것은 다 과거의 서응이기 때문이니라.” - 013_0633_b_08L佛語悉達膝:“捨若本祠祀,當作是祠祀,卽菩薩祠祀之瑞應。如若所見怛薩阿竭,是皆先世習衍之所致。所以者何?若覺眼見佛者,是皆本之瑞應。”
-
다시 난두다라(難頭多羅)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흐르는 물에 어떤 사람이 외나무 다리[一木橋] 놓는 것을 보고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의 하는 일이 매우 적구나. 왜 좀 넓고 크게 하지 않을까?’ 하였으니, 왜냐하면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다 건너갈 수 있게 하려는 때문이었습니다. - 013_0633_b_12L復有婆羅門,名難頭多羅,白佛:“我見流水,有一人而持一木作橋,我念:‘子之所作,甚何小矣!等作可以廣大。所以者何?欲令一切悉可得度過。’
- 이러한 생각을 하다가 마침 동방에서 백 부처님께서 나타나심을 보았는데, 그 부처님들께서 다 말씀하시기를, ‘훌륭하고 훌륭하다, 이야말로 훌륭한 사람의 생각이로다. 일체 사람들로 하여금 건너게 할 수 있는 것 역시 무수한 사람들의 길이라. 이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기원(祇洹)에 계시니, 그대가 그곳에 가서 법을 모두 받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본래 나의 서응이니, 여래를 뵈옵고 그 교훈을 들은 것입니다.”
- 013_0633_b_16L適有是念,東方便有百佛而來現,悉言:‘善哉!善哉!是上人之所念,令一切人如得度,亦無央數人之路。今釋迦文佛在於祇洹,子往,可悉從受法,得致阿耨多羅三耶三菩提。’是我本之瑞應,得見怛薩阿竭,聞其教戒。”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노라.” - 佛言:“善哉!善哉!如子所言。”
-
013_0633_c_01L다시 전울다사리(旃鬱多師利)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성문 바깥을 나갔더니 어떤 거사[迦羅越]가 저에게 말하기를, ‘나의 집에 들러 주신다면 당신에게 2백만을 보시하리다.’ 하기에, 곧 그를 따라가 집에 들어가니 크고 높은 자리가 있었는데, 저를 자리에 앉게 하고 향을 살러 공양하는 동시에 음식을 갖춰 대접하고서 과연 2백만을 보시[達儭]했습니다. 제가 즉시 생각하기를, ‘무슨 방편을 세워야 이 보시보다 더할까?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청정한 보시를 하면, 보다 더 특이하리라.’고 했습니다. - 013_0633_b_22L復有婆羅門,名曰旃鬱多師利,白佛:“我出城門外,有迦羅越,謂我:‘如過舍,施若二百萬。’便隨其歸。入舍有大高座,令我如坐,燒香供養,具作飮食已,二百萬爲達儭。我應時自念:‘當何以自作方便而過達儭?如阿耨多羅三耶三菩淸淨之達儭,可得如異。’
- 이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동방으로부터 천 부처님께서 날아오시는 것을 보았는데, 여래께서 다 앞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훌륭하고 훌륭하다. 이야말로 훌륭한 사람이 하는 것과 같이 일체 사람들을 위해 하려고 하거든 곧 기원(祇洹)의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 가라. 그대를 위해 자세히 그 법을 설하여 주시리라. 만약 청정함을 얻기만 한다면 그 보시를 받을 수 있고, 받는 자는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다 안온하게 하리라.
- 013_0633_c_06L適作念,便見東方千佛悉飛,如來悉在前住,皆言:‘善哉!善哉!如上人之所作,爲一切人欲作,便往到祇洹釋迦文佛所,當爲若廣說其法。如若得淸淨,其達儭如可以受,受之者,令一切皆可得安隱。
- 왜냐하면 삼천대천세계가 다 열 가지 선한[十善] 일을 받들어 행하므로 그 보시를 받는다 하더라도 보살이 뜻을 내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위해 보시를 받는 것보다는 못하리니, 이것이 위의 하는 일에 비하면 휠씬 뛰어나기 때문이니라.’고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황홀히 그곳을 알 수 없었습니다.”
- 013_0633_c_11L所以者何?若三千大千剎土,悉奉行十善受施,不如菩薩發意爲阿耨多羅三耶三菩提心而受施,悉過是上作是。’語已恍惚不知其處?”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곧 여래 행의 서응이니, 왜냐하면 과거에 시방 부처님들을 공양했기 때문에 이 법은 체득하는 것이니라.” - 013_0633_c_15L佛言:“卽怛薩阿竭署之瑞應。所以者何?以先供養十方佛故,逮得是法。”
-
다시 염부사리(閻符師利)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산중에서 마치 선(禪)을 얻은 것처럼 안심하고 앉아 있다가 공중에 계시는 오백 부처님들을 보았더니, 사방이 다 향기로움이 천상의 향내와 같았는데, 그 부처님들께서 다 저의 이름을 부르고 말씀하셨습니다. - 013_0633_c_17L復有婆羅門,名曰閻符師利,白佛:“在山中安心而坐譬如得禪,於上見五百佛,四面皆香,如天香,皆呼我名言:
- 013_0634_a_01L ‘훌륭하고 훌륭하다. 네가 구하는 바 그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구하고 다른 선정을 닦지 말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무엇이냐 하면, 일체 사람들을 모두 인자한 마음으로써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남이란 생각을 하지 말고 부사의한 선정을 닦으며, 이 선정을 닦되 마음에 어떤 생각을 갖지 말고 일체를 다 안온케 하기 위해 남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가 하면, 자신이란 생각도 하지 말지니라.’고 하셨으며, 그 여러 부처님들은 또 말씀하시기를, ‘기원(祇洹)의 석가모니부처님께 가면 마땅히 그대를 위해 그 법을 갖춰 말씀하시리니, 여래의 행이란 것을 배워라. 이것을 배운 자는 있는 곳마다 할 일을 할 수 있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뒤엔 모든 부처님들의 곳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 013_0633_c_20L‘善哉!善哉!如若所求,當作阿耨多羅三耶三菩法,勿作異禪。何謂爲阿耨多羅三耶三菩?悉念一切人以慈心故,勿以想人,作不可思惟禪。作是禪,勿想心念,一切皆令安隱,勿念人想,勿念身想。’其諸佛言:‘往到祇洹釋迦文所,當爲若具說其法,怛薩阿竭署,當作是學,學是者在所作爲。’說是已,而不知諸佛處。是我本之瑞應。”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과연 네가 본 바와 다름이 없노라. 왜냐하면 불수(佛樹) 밑에 앉아야 할 자는 곧 이러한 서응이 있기 때문이니, 이러한 서응은 이미 과거세에 7천 부처님들을 공양했기 때문이니라.” - 013_0634_a_06L佛言:“審如若所見無有異。所以者何?其有當坐於佛樹下者,卽有是瑞應,應若已先世供養七千佛故。”
-
다시 하사만(荷沙漫)이란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여러 바라문들을 보았는데,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바라문들이 갠지스 강 물에서 목욕하고 나서 저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다시 목욕을 한다면 몸에 있는 오로(惡露)와 뭇 악이 죄다 물을 따라 제거되리라.’고 하기에, 문득 스스로 생각하기를, ‘어찌 목욕을 한다 해서 몸의 모든 뭇 악이 다 물을 따라 제거될 수 있으랴.’고 했습니다. - 013_0634_a_09L復有婆羅門,名曰荷沙漫,白佛:“我見諸婆羅門,不多不少,於恒水浴已,語我:‘汝復行浴,身所惡露衆惡,悉當隨水如去。’便自思惟:‘何如而浴身,諸衆惡當隨水去?’
- 이렇게 생각하다가 마침 허공에 계시는 부처님을 보았는데,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시기에, 제가 즉시 대답하기를, ‘여러 바라문들이 저로 하여금 목욕을 하면 몸의 뭇 악이 죄다 물을 따라 제거될 것이라 하므로 앉아서 이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기원의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 가면 너를 위해 법[現法]을 설해 주시므로, 모든 뭇 악이 죄다 제거되리라.’고 하셨습니다.
- 013_0634_a_13L便自見佛在於虛空中,其佛言:‘汝何思惟?’我應時對曰:‘諸婆羅門令我浴,身所衆惡悉當隨水去,故坐思惟是事。’其佛言:‘若到祇洹釋迦文所,當爲若說現法,諸所衆惡悉當除去。’
- 그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유명한 법이 있으니 이 법은 아주 깊어 밑이 없고, 그 물이 매우 아름다운 만큼 여기에서 목욕하는 자는 다 청정결백하게 되는지라. 만약 목욕하려는 자가 이 물 속에서 목욕하면 뭇 삿된 악을 소멸할 수 있고, 목욕한 뒤엔 모든 하늘ㆍ사람과 일체 중생이 다 안온하게 되고, 법으로써 교화하되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나니, 왜냐하면 과거 부처님들께서도 다 요기에서 목욕하신지라. 이 때문에 이 서응을 나타내노라.’고 하셨습니다.”
- 013_0634_a_18L其佛言:‘有名諸法甚深無有底,其水甚美,於是浴者悉得淨潔。若欲浴者當於中浴,衆邪惡可以消除。浴已,諸天人及一切皆得安隱,便以法教化無所不遍。所以者何?諸過去佛悉那中浴,是故現瑞應。’”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땅히 여래의 행이란 것을 들을지니, 이것이 바로 과거의 서응이니라.” - 013_0634_a_23L佛言:“當聞怛薩阿竭署者,是本瑞應。”
-
013_0634_b_01L다시 유기선(惟耆先)이란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꽃을 가지고 바라문의 신사(神祠)에 가서 그 신사 문에 들어가다가 여래께서 공중에서 날아와서 멈추어 계시는 것을 보았는데, 그 부처님께서 저에게 묻기를, ‘이 꽃을 가지고 누구에게 줄 것인가?’ 하시기에, 곧 대답하기를, ‘신(神)에게 올리려고 합니다.’ 했습니다. - 013_0634_b_01L有婆羅門,名曰惟耆先,白佛:“我齎華持到婆羅門神祠,入門見怛薩阿竭飛在虛空中而住,其佛問我:‘持是華給何所?’卽應言:‘欲以上神。’
-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중천(天中天)이란 여래께서 계시니, 이 꽃을 올려 공양할지니라. 왜냐하면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이 있게 되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곧 아뇩다라의 선정을 얻기 때문이니라.’고 하시므로, 제가 곧 꽃을 받들어 공양하려 하니, 그 꽃이 모두 부처님으로 변화하여 다 자마금(紫磨金) 빛에다가 그 광명이 일곱 자[尺]이고 32상(相)과 80종호(種好)를 구족하며, 여러 부처님들께서 다 말씀하시기를, ‘그 마음이 공덕에 견고한 자는 이러한 서응을 이룩하노라.’고 하셨습니다.
- 013_0634_b_05L其佛言:‘有怛薩阿竭,號曰天中天,可以華供養上之。所以者何?因是可有功德,而到阿耨多羅三耶三菩,便可逮得阿耨多羅禪。’卽欲以華供養,其華悉化作佛,悉紫磨金色,其光七尺,三十二相種好悉具,諸佛皆言:‘其心以堅於功德者,能致是應。’
- 그리고 제가 즉시 또 묻기를, ‘어떤 방편을 닦아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짓게 됩니까?’ 했습니다.
- 013_0634_b_12L卽時復問:‘當作何方便,令功德不可勝數?’
-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보살로 부처님을 보는 자가 있다면 다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기 마련이라. 그 중에 화신 부처님[化佛]을 보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고 그 중에 절을 보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고, 그 중에 부처님의 앉고 일어나는 곳을 보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고, 그 중에 부처님의 경행(經行)하는 곳을 보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고, 그중에 부처님의 음성을 듣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느니라.
- 013_0634_b_13L其佛言:‘若有菩薩見佛者,因是作功德;中有見化佛者,因是作功德;中有見寺者,因是作功德;中若見佛坐起處,因是作功德;中有見佛經行處,因是作功德;中有聞佛者,因是作功德。
- 그중에 위아래와 네 간방과 사방에 부처님의 훈계하시는 일체를 듣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고, 그 중에 부처님의 사리(舍利)를 모시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고, 그중에 늙고 병들고 죽음을 보고서 스스로 계교하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고, 국토의 도시ㆍ촌락이 파괴되거나 곡식이 귀하며 인민들이 굶주림을 보고서 스스로 계교하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느니라.
- 013_0634_b_18L中有聞上下、四維、四方,有佛教誡一切,因是作功德;中有佛舍利者,因是作功德;中有老、病、死而自計挍,因是作功德。若見郡國、縣邑破壞者,若穀貴、人民飢餓,而用是自計,因是作功德。
- 왜냐하면 앞에 말한 이 모든 일들을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인하여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 있기 때문이니, 이른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공덕이니라.’고 하셨습니다.”
- 013_0634_b_23L所以者何?念前事故,因是有不可數功德,所謂阿耨多羅三耶三菩功德。’”
-
013_0634_c_01L다시 사갈말(沙竭末)이란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바다에 들어가 목욕하다가 마침 이런 생각이 들었고, 곧 만 부처님을 보았는데, 모두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생각처럼 바다를 건너려 해서는 부당하노라.’고 하시며, 또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 나머지 목욕하는 자들도 역시 여기에서 들으면 마땅히 이런 이상함이 있어서 바다를 건너거나 목욕하고자 생각하리라.’고, 이렇게 생각하니, 다시 만 부처님들을 보게 되어 모두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생각처럼 바다를 건너거나 목욕하려 해서는 부당하니라.’ 하셨습니다. - 013_0634_c_02L復有婆羅門,名曰沙竭末,白佛:“我入海浴,適有是念,便見萬佛,皆言:‘不當如子之意欲度海。’便自念:‘其餘有浴者,亦在是聞當有此異,其意欲度海浴。’適有是念便見萬佛,皆言:‘不當如子之意欲度而浴。’
- 그래서 제가 즉시 묻기를, ‘어떤 묙욕을 해야 합니까?’ 했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을 벗어나는 도가 있으니, 그 법 가운데 목욕하여라. 이러한 목욕을 한 자는 이미 제도되었느니라.’고 하시며, 그때 제가 다시 묻기를, ‘세간을 제도할 이가 누구입니까?’ 했더니, 대답하기를, ‘부처란 이가 이미 제도하셨느니라.’고 하시며, 또 제가 묻기를, ‘어떤 법으로서 누구를 따라 배워야 합니까?’ 했더니, ‘석가모니란 부처님께서 기원에 계시니 그 부처님을 따라 배우고 물어라. 네 소원대로 모두 갖추어 들을 수 있고, 또 너를 위해 다 설하시어 너로 하여금 깨닫게 하리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듣고 나선 홀연히 그곳을 볼 수 없었습니다.”
- 013_0634_c_07L我卽時復問:‘當何浴?’其佛言:‘有道度諸法,可於其中,其作是浴者,已爲度也。’應時復問:‘何所如可度於世閒者?’報言:‘佛者已爲度。’卽復問:‘何所法而可從學?’‘有佛名釋迦文,在祇洹中,當從學問;如若所願悉當具聞,悉爲若說之,令若得解。’聞是已,忽然不見其處。”
-
그리고 그는 곧 부처님께 물었다.
“어떤 법이 제도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일체를 제도하는 모든 법이란 바라밀이 곧 그것이니라.” - 013_0634_c_15L便問佛言:“何所法而可度者?”“度一切諸法者,波羅蜜是。”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네가 모든 법을 제도하려면 마땅히 일체 사람들에게 평등한 마음을 가져야 하리라. 왜냐하면 일체 사람들의 생사를 제도하려고 생각하는 것이 마치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으며, 이 일을 배워 일체 모든 법을 제도할 수 있으며, 또한 법이 있음을 생각하지도 않고 법이 없음을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니, 이렇게 한 후에는 일체 사람들을 위해 법을 설할 수 있으리라.” - 013_0634_c_16L佛言:“汝欲度諸法者,當等心於一切人。所以者何?當念度一切人之生死。譬若度海,當學是事,便得度一切諸法,亦不想法、亦不想無法,作是若後,當爲一切說法。”
-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사갈말(沙竭末)이여, 보살이 한 가지 일로써 모든 지혜를 구족케 하나니, 한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세간의 나쁜 법이 다 되려고 할 그때에 그 법을 제정하여 일체를 가르쳐 법을 끓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 한 가지 일이라, 이것으로써 모든 지혜를 구족케 하느니라. - 013_0634_c_20L佛語沙竭末:“菩薩用一事,具足諸慧。何謂一事?世惡法欲盡,爾時其欲制其法教導一切,令法而不斷絕。是爲一事,具足得諸慧。
- 013_0635_a_01L 또 두 가지 일이 있어서 보살이 이것을 배워 빨리 부처를 체득하나니, 두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모든 법을 내 것이라든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일체 모든 법을 보되 자연 그대로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것이 두 가지 일이다.
- 013_0635_a_01L復有二事,菩薩學是疾逮得佛。何謂二?不念諸法是我所非我所,亦不念見一切諸法自然處。是爲二事。
- 또 세 가지 일이 있으니,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것을 받들어 행한다면 빨리 성불할 수 있나니, 세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모든 법을 광명처럼 보아서 모든 법을 밝히는 것과, 많음도 없고 적음도 없어서 많다거나 적다는 생각을 하지 않음과, 이미 법에 순응하여 한결같이 다른 마음을 갖지 않음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세 가지로 인하여 부처라 이르나니 이것이 바로 세 가지 일이다.
- 013_0635_a_04L復有三事,若善男子、女人,奉行是者疾成至佛。何謂三?以諸法視之,如光明明於諸法,亦無多、亦無少,不作是念。二、已應而一,無有異心。所以者何?諸法不可得故。三、是因名佛。是爲三事。
- 또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네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첫째 모든 법을 다 가지는 것이고, 둘째 항상 여래께 공덕을 짓는 것이고, 셋째 마음을 허공처럼 가져 일체 남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고, 넷째 공양하는 자와 공양하지 않는 자에게 그 마음의 다름이 없는 것이라. 만약 남자나 여인이 이 법을 받들어 행한다면 빨리 부처에 이르리니, 이것이 네 가지 일이니라.
- 013_0635_a_09L復有四事。何謂四事?一者、摠持諸法;二、常於怛薩阿竭而作功德;三、持心如空,不想一切人;四者、若有供養不供養者,其心無異。若男子、女人,奉行是法疾得至佛。是爲四事。
- 또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다섯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첫째 모든 경계에 아무런 생각이 없음이라. 이른바 경계란 눈의 빛과 귀의 소리와 코의 냄새와 혀의 맛과 몸의 부드러움[細滑]과 뜻의 얻고자 함인데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 항상 불법(佛法)에 있어서 공덕을 짓는 것이고, 셋째 같은 보살을 보면 그 마음을 즐겁게 함이라. 왜냐하면 소용이 실로 크기 때문이고, 넷째 일체 중생들에게 허식하는 마음이 없음이라. 왜냐하면 내가 제도해야 하기 때문이고, 다섯째 그러면서도 이 가운데 생각하는 것이 없음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일이니라.”
- 013_0635_a_13L復有五事,何謂五事?一、不於諸界有所念。何謂諸界?眼色、耳聲、鼻香、舌味、身細滑,意欲所得,不作是念。二、常於佛法而作功德。三、若見同菩薩其心有悅。所以者何?用實大故。四、於一切無虛飾之心。所以者何?我當度故。五、亦於是中無所想。是爲五事。”
-
013_0635_b_01L사갈말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다섯 가지 일을 받들어 행하는 자는 빨리 성불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스스로가 성불하리니, 이것이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것인 만큼 법으로써 일체 중생들 가르치기를 여래처럼 한다면 제도하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그 지극한 마음으로 보살의 공덕에 굳게 머무는 자도 곧 이 서응을 얻으리라. 그러나 만약 생각이 있으면 중도에 증득하였다 할까 염려되느니라.” - 013_0635_a_20L沙竭末白佛:“其有奉行是五事者,疾得佛。”佛言:“當作是學,疾得阿耨多羅三耶三菩,自致成佛;是爲度生死之海,以法教於一切,令如怛薩阿竭無所不度。其有至心,堅住於菩薩功德者,便逮是瑞應。若有念,恐中道取證。”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러한 법은 근심하지 말고 여래의 열 가지 힘을 구족해야 하느니라.”
모든 들은 이들이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
013_0635_b_02L佛言:“如是法者,勿得憂念,具足怛薩阿竭十種力。”一切聞者莫不歡喜。”
文殊師利問菩薩署經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 1)산스크리트 tathāgata에서 마지막 a가 빠진 것의 음역으로서 여래(如來)와 같은 뜻이다. 이하 달살아갈(恒薩阿竭)은 여래로 번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