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551_T_008
- 015_0168_b_01L미륵보살소문경론 제8권
- 015_0168_b_01L彌勒菩薩所問經論卷第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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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위 보리류지 한역 - 015_0168_b_02L後魏天竺三藏菩提流支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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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편을 잘 앎을 성취한다 함을 묻겠다. 어떠한 이치 때문에 한량없음을 말한 뒤에 다음으로 방편을 잘 앎을 성취하는 것을 말하는가? - 015_0168_b_03L“成就善知方便。”問曰:“以何義故,說無量後次說成就善知方便?”
- 【답】방편의 힘으로써 닦았던 네 가지 한량없음의 행을 포섭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려 함이니, 자기의 마음을 따라 과보를 받기 때문에 마치 네 가지 원소의 따름을 말하는 것과 같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보살에게는 두 가지의 아주 교묘하게 이롭게 하는 방편이 있음을 간략히 말한다.
- 015_0168_b_05L答曰:“爲欲示現以方便力攝取所修四無量行,隨順自心受果報故,如說四大隨順。此明何義?略說菩薩二種善巧利益方便,
- 외도들은 모두가 첫째가는 뜻의 진리와 교묘한 방편이 없기 때문에 한량없음을 수행하여도 애욕에 젖음을 받아서 형상세계의 과보를 이룬다. 또 성문과 벽지불승의 사람들은 열반을 취득하기 위하여 마지막이 될 선한 뿌리만을 취득하여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을 버리고 세속의 도리로써 하는 일의 모든 업을 버린다.
- 015_0168_b_09L以外道等一切無有第一義諦巧方便故,修行無量爲愛所潤成色界果。又諸聲聞辟支佛人,爲取涅槃心取以爲究竟,善根棄捨利益一切衆生,棄捨世諦所作諸業,
- 그 마음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므로 네 가지 한량없음을 사실대로 닦을 수 없고 마지막에 모든 번뇌를 끊을 수 없으며, 다만 온갖 번뇌를 꺾어 조복할 수 있을 뿐이다.
- 015_0168_b_13L其心專爲利益自身,不能如實修四無量,不能究竟斷諸煩惱,唯能折伏一切煩惱。
- 만약 보살마하살들이라면 두 가지의 법인 함이 있음과 함이 없음을 사실대로 알 수 있으므로 중생을 자세히 살피어 함이 있음을 버리지 않고, 비록 고요함의 함이 없음을 사실대로 안다 하더라도 온갖 부처님 법을 성취하기 위하여 함이 있음에 떨어지지 않는다.
- 015_0168_b_15L若諸菩薩摩訶薩等,能如實知二種之法有爲無爲,觀察衆生不捨有爲,雖如實知寂靜無爲,以爲成就一切佛法不墮有爲,
- 모든 닦은 것은 다른 이를 이롭게 하기 위하고 사실대로 자상(自相)과 동상(同相)을 알며 마음대로 자재할 수 있으나 결정코 형상 세계의 깨끗한 과보는 얻지 아니하고, 네 가지 한량없음의 행은 저 욕망의 마음에 젖음을 받지 아니하면서 마음을 따르며 과보를 성취하는 것이 마치 네 가지 원소를 따르는 것과 같다.
- 015_0168_b_19L以諸所修爲利益他,以如實知自相同相,以不能得隨心自在定得色界淸淨果報;四無量行,以彼愛心所不能潤,而隨順心成就果報,如隨順四大。
- 015_0168_c_01L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네 가지 원소와 같은 형상으로서는 바로 첫째가는 뜻의 진리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니, 마치 선정하는 사람이 마음의 힘을 따라서 네 가지 원소와 자상을 버리고 여읠 수 있는 것처럼, 이것도 그와 같아서 비록 함이 있음의 법 모습을 성취하는 모든 보살들은 깨끗하게 계율 지닌 공덕의 무리로서 네 가지 한량없음을 닦고 마음의 힘을 따르며 과보를 성취한다 하더라도 네 가지 한량없음의 마음을 따르지 않는다.
- 015_0168_c_01L此明何義?如四大相非是成就第一義諦,如禪定人隨順心力而能捨離四大自相;此亦如是,雖復成就有爲法相,以諸菩薩淸淨持戒諸功德衆,修四無量隨順心力成就果報,而不隨順四無量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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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치 때문에 거룩한 이『사익범천소문(思益梵天所問)수다라』에서 여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네 가지 선정을 수행하면 욕심세계에 태어나느니라.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 마음에 자재함을 얻음이며, 둘째 모든 선한 뿌리의 힘을 완전히 갖춤이며, 셋째 온갖 중생들을 자세히 살핌이며, 넷째 방편반야(方便般若)를 수행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방편으로 한량없음을 포섭하여 수행하면서 마음을 따라 과보 받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한량없음을 말한 뒤에 다음으로 방편을 말씀한 것이다. - 015_0168_c_06L以是義故,『聖者思益梵天所問修多羅』中,如來說言:‘若諸菩薩摩訶薩等,成就四法修行四禪生於欲界。何等四法?一者、得心自在;二者、具足諸善根力;三者、觀察一切衆生;四者、修行方便般若。’是故示現方便攝取無量修行隨心受果,說無量後次說方便。”
- 【문】방편이라는 뜻을 말해야 하리라. 무엇이 방편이라는 뜻인가?
- 015_0168_c_13L問曰:“應說方便義。云何方便義?”
- 【답】다음에 방편이라는 뜻을 말하리니, 두 가지가 있다. 첫째가 다르게 구한다[求異]는 뜻이며, 둘째가 두 가지를 버리지 않는다[不捨二]는 뜻이다. 마음에 모든 행을 닦아 지혜로써 자세히 살핌을 방편이라 한다.
- 015_0168_c_14L答曰:“次說方便義,有二種:一者、求異義;二者、不捨二義,心修諸行智慧觀察名爲方便。
-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다르게 구한다는 뜻은 모든 보살들이 앞에 나타나게 거룩한 도의 과위를 증득하기 위함도 아니고 세간의 괴로움을 싫어하여 세간의 마음을 버리기 위함이 아니면서도,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고 자신이 큰 보리를 취득하기 위하며 방편으로 중생들에게 보리의 방편을 가르치기 위하고
- 015_0168_c_17L此明何義?求異義者,諸菩薩等非爲現前證聖道果,亦非爲厭世閒苦惱捨於世閒心,爲利益一切衆生,及爲自身取大菩提方便、爲教衆生菩提方便,
- 크게 가엾이 여김 등의 행을 깨끗이 하여 보리의 법을 취득하려 하면, 성문과 벽지불 등이 증득하게 되는 지위와 도의 공덕 등으로 다스릴 것의 법을 넘어서게 되어 보살로서 증득할 것의 거룩한 도가 앞에 나타나나니, 다르게 구한다고 하는 뜻이다.
- 015_0168_c_21L及欲淸淨大悲等行取菩提法,出過聲聞辟支佛等所證之位、道功德等所對治法,菩薩所證聖道現前,名求異義。
- 015_0169_a_01L두 가지를 버리지 않는다는 뜻은, 말하자면 보살의 마음은 세속의 도리와 첫째가는 뜻의 진리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 015_0169_a_01L不捨二義者,謂菩薩心不捨世諦、第一義諦故。此明何義?
- 모든 보살은 온갖 함이 있는 모든 법이 모두 다 무상한 줄 실제로 보지만 중생들을 자세히 살피어 온갖 함이 있는 모든 법을 버리지 않으며 함이 있는 법을 여의지 않으며 함이 없는 법도 버리지 않으니, 이와 같이 하는 보살마하살의 반야행은 물러나지 않는 원인이므로 방편이라고 말한다.
- 015_0169_a_03L以諸菩薩實見一切有爲諸法皆悉無常,觀察衆生不捨一切有爲諸法,不離有爲法、不捨無爲法,如是菩薩摩訶薩般若行不退轉因,說名方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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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거룩한 문수사리가 경전에서 말씀한 것과 같다.
“천자야, 보살마하살의 반야 지혜는 보살마하살이 함이 있음을 행하지 않는 지혜와 함이 없음에 떨어지지 않는 지혜를 아는 것이니,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은 두려움이 없는 보살[無畏菩薩]이라 하느니라. - 015_0169_a_07L如聖者文殊師利於經中說:‘天子!菩薩摩訶薩般若智,知菩薩摩訶薩非行有爲智、不墮無爲智。如是菩薩摩訶薩,名爲無畏菩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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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천자야, 만약 모든 보살이 중생을 자세히 살피어 함이 있음의 행을 버리지 않고 모든 부처님 법을 자세히 살피어 함이 없음의 행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이러한 보살마하살을 두려움이 없는 보살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은 것 등이다. - 015_0169_a_10L復次,天子!若諸菩薩觀察衆生不捨有爲行,觀察諸佛法不墮無爲行,如是菩薩摩訶薩,名爲無畏菩薩。’如是等。
- 또, 마음에서 구하는 것의 이치를 따르고 마음에서 구하는 것에 알맞게 행을 성취할 수 있으면 방편이라고 하며, 또 마침내는 지혜를 완전히 갖추기 때문에 방편이라고 한다.
- 015_0169_a_13L又隨順心所求之義,稱心所求能成就行,名爲方便。又以畢竟具足智故,名爲方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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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세속의 도리를 잘 안다 하는 이와 같은 등의 구절은, 어떠한 뜻을 말하는가?
【답】세속의 도리를 잘 안다 함은 자상(自相)을 잘 알기 때문이며, 첫째가는 뜻의 진리를 잘 안다 함은 동상(同相)을 잘 알기 때문이며, 두 가지 이치를 잘 안다 함은 자상과 동상을 잘 알기 때문이다. - 015_0169_a_15L問曰:“善知世諦者,如是等句說何等義?”答曰:“善知世諦者,善知自相故。善知第一義諦者,善知同相故。善知二義者,善知自相同相故。”
- 【문】다만, 세속의 도리를 잘 알고 첫째가는 뜻의 진리를 잘 안다고만 말하여도 만족하거늘, 무엇 때문에 말하는가?
- 015_0169_a_19L問曰:“但說善知世諦、善知第一義諦便足,何故復說善知二義?”
- 015_0169_b_01L【답】보살의 훌륭한 이치로 아는 방편을 나타내 보이려 하기 때문에 다시 두 가지 이치를 잘 안다고 말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외도는 실다운 반야 지혜를 멀리 여의어 오직 세상의 지혜만을 지니고 세상을 넘어서는 지혜가 없으며, 성문과 벽지불은 세간의 지혜를 버리고 다만 열반의 지혜만을 지니므로 세간의 지혜가 없다.
- 015_0169_a_21L答曰:“爲欲示現菩薩勝義知方便故,是故復說善知二義。此明何義?外道遠離如實般若智,唯有世智無出世智;聲聞辟支佛捨世閒智,但有涅槃智無世閒智;
- 보살마하살은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려 하여 미묘한 법을 구하기 때문에 세속의 도리 중에서나 첫째가는 뜻의 진리 중에서나 간에 방편 지혜를 닦는다. 여래께서는 보살의 훌륭한 방편 지혜를 나타내 보이려고, 그 때문에 다시 두 가지 이치를 잘 안다고 말씀하셨다.
- 015_0169_b_02L菩薩摩訶薩爲欲利益一切衆生求妙法故,於世諦中及第一義諦中修行方便智。如來爲欲示現菩薩勝方便智,是故復說善知二義,成就般若波羅蜜。”
- 【문】반야바라밀을 성취한다 하시는데, 무엇 때문에 여래께서는 방편을 말씀하신 뒤에 다음으로 반야바라밀을 성취한다고 말씀하시는가?
- 015_0169_b_07L問曰:“何故如來說方便,後次說成就般若波羅蜜?”
- 【답】방편으로 반야를 포섭함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며, 또 모든 보살들이 증득하게 된 지위의 이치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방편을 말씀한 뒤에 다음으로 반야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을 말씀하셨다.
- 015_0169_b_08L答曰:“示現方便攝取般若故,又以示現諸菩薩等所證位義,是故如來說方便後,次說成就般若波羅蜜。
-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보리분법(菩提分法)을 이룰 수 있는 깨끗하고 선한 뿌리를 자세히 살핀다. 보살은 진여(眞如)의 법 바탕[法體]을 보려고 하나 아직 진여의 실다운 지혜를 볼 수가 없으므로 먼저 성문ㆍ벽지불의 지위와 다스리는 것의 법에서 넘어서는 것을 자세히 살피고 크게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 등을 자세히 살피고 근본의 크게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 등을 성취한 연후에 그 진여의 법을 볼 수가 있게 된다.
- 015_0169_b_11L此明何義?以觀能成菩提分法淸淨善根,菩薩欲見眞如法體,而未能見眞如實智,於先觀察出過聲聞辟支佛位所對治法,觀察大慈悲等,成就根本大慈悲等,然後得見彼眞如法。
- 이런 이치 때문에, 진여의 법을 보고서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나니,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수행하는 차례의 이치를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먼저 방편을 말하고 다음으로 반야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을 말씀하셨다.
- 015_0169_b_16L以是義故,見眞如法不墮聲聞辟支佛地,是故如來示現修行次第義故,先說方便次說成就般若波羅蜜。”
- 【문】반야바라밀을 성취한다 함의 반야의 뜻을 말해야 하리라. 실답게 알고 봄을 반야라고 하는가, 살펴야 할[所觀] 경계를 자세히 살피는 것을 반야라고 하는가, 깊고 얕은 수량을 사실대로 아는 것을 반야라고 하는가? 이 뜻을 말해야 하리라.
- 015_0169_b_19L問曰:“成就般若波羅蜜者,應說般若義,如實知見名爲般若,能觀所觀境界名爲般若。如實知深淺數量名爲般若,是義應說。”
- 015_0169_c_01L【답】저 언덕에 이르기[到彼岸] 때문에 바라밀이라 하며, 또 모든 부처님ㆍ여래께서는 이미 저 언덕에 이르렀으므로 바라밀이라 하며, 초지 보살은 그가 마침내 저 언덕에 이를 것이기 때문에 바라밀이라 하며, 모든 보살은 마침내 저 언덕의 행을 얻을 것이기 때문에 바라밀이라 한다.
- 015_0169_b_23L答曰:“到彼岸故名波羅蜜義。又諸佛如來已到彼岸名波羅蜜,初地菩薩以其畢竟到彼岸故名波羅蜜,以諸菩薩畢竟得彼岸行名波羅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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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여래께서는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저 행(行)을 따름을 바라밀이라 하느니라”고 하셨나니, 저곳은 아직 저 언덕이라는 뜻이 결정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무진의소문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만족하게 보살의 행을 행함을 바라밀이라 하며, 상쾌하고 깊은 지혜가 만족함을 바라밀이라 하느니라”고 하신 이와 같은 것 등이다. - 015_0169_c_04L是故如來經中說言:‘隨順彼行名波羅蜜,以彼處未決定,彼岸義故。’是故如來於『無盡意所問經』中說:‘滿足行菩薩行名波羅蜜義,快深智滿足名波羅蜜義。’如是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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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반야바라밀의 뜻을 말해야 하리라. 무엇이 반야바라밀의 뜻인가?
【답】부처님의 보리를 구하고 크게 인자함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일으키는 방편 지혜를 포섭하여 온갖 법의 같은 모습과 다른 모습의 훌륭한 뜻을 사실대로 알 수 있음을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뜻이다. - 015_0169_c_08L問曰:“應說般若波羅蜜義。云何般若波羅蜜義?”答曰:“求佛菩提大慈悲心,攝取所起方便智慧,能如實知一切諸法同相別相勝義,名爲般若波羅蜜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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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취한다는 뜻을 말해야 하리라. 무엇이 성취한다는 뜻인가?
【답】구경(究竟)이라는 뜻이 성취한다는 뜻이다. 온갖 범부를 멀리 여의면 반야바라밀이라 하며 구경이라는 뜻이며,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세간을 멀리 여의고 마지막이라는 뜻을 얻으므로 반야바라밀이 성취한 것이라 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마지막의 두려움이 없는 곳을 얻는 것이다. - 015_0169_c_13L問曰:“應說成就義。云何成就義?”答曰:“究竟義成就義,遠離一切凡夫名爲般若波羅蜜究竟義,依般若波羅蜜遠離世閒得究竟義,名爲般若波羅蜜成就。此明何義?依般若波羅蜜,得究竟無畏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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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약 그와 같다면, 초지를 증득할 때에 바로 마지막이라 이름할 수 있고 반야바라밀을 성취하는가?
【답】그것은 그 부분대로의 차례에 의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초지로부터 부처님 보리를 얻으면 다스림의 법이 앞에 나타나게 되나니, 다스림의 법을 얻기 때문이다. - 015_0169_c_19L問曰:“若如是者,證初地時卽得名爲究竟成就般若波羅蜜?”答曰:“彼依如分次第應知。此明何義?從初地來得佛菩提,以得對治法現前,以得對治法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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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_0170_a_01L또, 초지의 방편으로 방편 반야를 포섭하여 온갖 나쁜 갈래를 여의고 성문ㆍ벽지불의 지위를 여의나니, 이와 같이 다른 지(地)에서도 그 부분을 따라 서로가 응하는 부분의 곳인 줄 알아야 한다.
보살이 만약 이와 같이 알 수 있으면, 실다운 지혜의 반야를 따라 함이 있음의 행은 다른 것의 힘과 서로가 의지하여 제 바탕이 없는 것임을 자세히 살핀다. - 015_0169_c_23L又初地方便攝取方便般若,離一切惡道及離聲聞辟支佛地,如是餘地隨分相應分處應知。菩薩若能如是知者,隨順如實智般若,觀有爲行他力相依,無有自體。”
- 【문】“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있고,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고 거듭하여 말하는데, 어떠한 훌륭한 이치가 있는가?
- 015_0170_a_05L問曰:“依此法有此法,依此法生此法,而重說者,有何勝義?”
- 【답】두 가지의 원인인 이치를 나타내려고 두 가지로 말한 것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함이 있음의 행은 나는 원인에 두 가지가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가 먼저 나는 원인[先生因]이며, 둘째가 같이 나는 원인[共生因]이다.
- 015_0170_a_07L答曰:“爲欲示現二種因義故二種說。此明何義?有爲行生因有二種。何者爲二?一者、先生因;二者、共生因。
- 먼저 나는 원인이라 함은 마치 안식(眼識) 등이 나려고 할 때에 먼저 의식이 나는 것과 같다. 서로 비슷하게 따르면서 앞의 마음이 없어지지 아니하면 뒤의 마음을 용납하지 않으며 반드시 앞의 마음이 없어져야 뒤의 마음이 나게 되므로 앞의 마음이 비록 없어졌다 하더라도 뒤의 원인이 되어 주므로 먼저 나는 원인이라고 한다.
- 015_0170_a_10L先生因者,如眼識等欲生之時,先生意識相似隨順,前心不滅不容後心,要前心滅後心得生,前心雖滅與後爲因,名先生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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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나는 원인이라 함은 모든 식(識)이 서로 응하여 느낌 등의 법과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법이 그 법과 함께 나는 것이다. 눈 등의 모든 법은 인연을 지을 수 있고 그 법에 의지하여 그 법을 낼 수 있으며 그 법을 낼 때에 원인을 지어줄 수 있으므로 같이 나는 원인이라 한다.
또, 이 법에 의한다 함은 먼저 나는 원인을 말하고, 이 법이 난다 함은 같이 나는 원인을 말한다. - 015_0170_a_13L共生因者,諸識相應,謂受等法及心不相應法,共彼法生,眼等諸法能作因緣,依止彼法能生彼法,彼法生時能與作因,名共生因。又依此法者,說先生因,生此法者,說共生因。”
- 【문】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고 말하는데, 이 이치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같이 나는 법은 일정한 원인이 없기 때문이며, 인과의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같이 나는 법에서는 이 법이 바로 원인이며 이 법이 바로 결과이므로 이와 같이 규정된 원인의 차별이 없으며, 이 법이 바로 원인이고 이 법이 바로 결과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한 인과로 인한 차별이 없다.
- 015_0170_a_18L問曰:“說依此法生此法者,此義不然。何以故?共生之法無定因故、無因果差別故。此明何義?共生之法,此法是因、此法是果,無有如是定因差別,以不可說此法是因、此法是果、故無定因因果差別。”
- 015_0170_b_01L【답】보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역시 세간에서 같이 나는 법을 보면 하나의 법은 원인이며 하나의 법은 원인이 아닌 것은, 마치 심지에서 비추어짐이 함께 같이 나지만 이 심지는 비추어짐의 원인이 될 수 있으나 비추어짐은 심지의 원인이 되어 줄 수 없는 것과 같다. 왜 그러한가? 이 비추어짐의 법은 심지를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 015_0170_a_23L答曰:“以見故說。此明何義?亦見世閒共生之法:一法是因、一法非因。猶如燈炷共照俱生,而此燈炷能作照因,照不能與燈炷作因。何以故?以此照法隨順燈炷。
-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비추어지는 법은 심지를 따르나 심지는 비추어짐을 따름이 아닌 것을 보며, 심지는 더함이 있고 덜함이 있으며 비추어짐도 그와 같아서 더함이 있고 덜함이 있으며, 심지가 없어지면 비추어짐도 따라서 없어질뿐더러 또 심지가 다른 곳으로 떠나갈 때에 비추어짐도 따라서 떠나감을 보게 된다.
- 015_0170_b_05L此明何義?以見照法隨順燈炷,而非燈炷隨順於照,以見燈炷有增有減,照亦如是有增有減,以燈炷滅照亦隨滅。又以燈炷異處去時照亦隨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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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안식 등의 법이 함께 나는데, 눈과 몸 따위에 의하고 몸과 눈 따위로 인하여 안식(眼識) 등이 나는 것이며, 안식으로 인하여 눈과 몸 따위가 나는 것이 아니다.
또 이 법에 의한다 함은 모든 보살들은 이와 같이 먼저 나는 법은 짓는 이가 없고 오직 인연과 함께 화합하여 날 뿐이며, 이 법이 있으면 이 법이 난다고 자세히 살피기 때문이다. - 015_0170_b_09L如是共生眼識等法,依眼身等、因身眼等生眼識等,非因眼識等生眼身等。又依此法者,諸菩薩等如是觀察,先時生法無有作者,唯共因緣和合而生,以有此法生此法故。
- 또, 보살들은 이러한 마음을 내나니, ‘원인이 이미 무상하거늘, 어떻게 이 법을 낼 수 있을까?’ 라고 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이러한 마음을 낸다. ‘이 법에 의하기 때문에 이 법이 나고, 먼저 법이 있다 하여 뒤의 법이 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먼저 있으므로 뒤에 난다고 하면 곧 이는 항상한 법이리라.’
- 015_0170_b_14L又諸菩薩生如是心:‘因旣無常,云何而得生于此法?’是故菩薩生如是心:‘依此法故而生此法,非先有法於後時生法。若先有後時生者,卽是常法。’
- 이런 이치 때문에, 곧 법이 날 때에 인연이 화합하며 하나의 법도 일정하고 진실이라는 것이 없고 일정하고 진실한 안식의 경계로 환히 비추어 안다는 따위의 법이 없다. 이런 이치 때문에, 이 법이 날 때에 결정코 그곳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 015_0170_b_18L以是義故,卽法生時因緣和合,無有一法是定實者,無有定實眼識境界照了等法。以是義故,此法生時決定不從彼處而來。
- 또, 곧 함께하는 인연으로써 없어지나니, 만약 법이 곧 함께 하는 인연으로써 없어진다면 모든 인연이 떠났다고 생각할 때에는 머무르지 않는다. 이런 이치 때문에, 이 법이 없어질 때에는 이곳으로부터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 015_0170_b_21L又以卽共因緣而滅,若法卽共因緣滅者,離諸因緣念時不住,以是義故,此法滅時不離此處而餘處去。
- 015_0170_c_01L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그것과 그 인연이 화합함에 의하여 그것과 그 법이 생기고 그것과 그 법을 보는 것이니, 그 법은 인연으로 나는 것이며,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 보인다.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자세히 살핌으로 인한 생각 때문이다.
- 015_0170_c_01L又依此法生此法者,謂依彼彼因緣和合,生彼彼法、見彼彼法,示現彼法因緣而生非無因緣。又依此法生此法者,因觀念故。
-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과거의 무명(無明)과 지어감[行]의 부분을 나타내 보인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과거의 무명 등의 두 가지에 의하여 현재의 의식[識] 등의 여덟 가지 부분이 있게 되므로 현재의 부분이 있음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 015_0170_c_04L又依此法生此法者,示現過去無明行分。此明何義?以依過去無明等二,得有現在識等八分,示現現在有分故。
-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현재에 부분이 있음을 나타내 보인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현재에 부분이 있음에 의하여 속히 나고 늙고 죽는 부분이 있음을 나타내 보인다.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무명과 욕망[愛]ㆍ잡음[取]으로써 번뇌의 길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이 번뇌의 길에 의하여 지어감과 존재[有]의 업의 길이 생긴다. - 015_0170_c_07L又依此法生此法者,示現現在有分。此明何義?依現在有分示現速有生老死分。又依此法生此法者,以無明愛取示現煩惱道,依此煩惱道生行有業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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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업의 길에 의하여 다른 갈래가 생기나니, 이른바 괴로움의 길 등이다.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무명ㆍ지어감ㆍ욕망ㆍ잡음ㆍ존재에 의한 쌓임의 진리[集諦]의 원인이기 때문이니, 나머지 일곱 가지 부분이 나면 괴로움의 진리[苦體]라 한다.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곧 일곱 가지 부분인 괴로움의 진리에 의하기 때문에 무명 등의 다섯 가지 부분인 쌓임의 진리가 생긴다. - 015_0170_c_12L又依此法生此法者,依於業道生餘有支,謂苦道等。又依此法生此法者,依無明行及愛取有集諦因故,生餘七分名爲苦諦。又依此法生此法者,卽依七分苦諦法故,生無明等五分集諦。
-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여래의 수다라에서 말씀하시기를 “무명과 지어감에 의하여 의식 등이 나느니라”고 하셨으며, 또 어떤 수다라에서 말씀하시기를 “지어감의 인연에 의하여 무명이 나느니라”고 하셨다.
- 015_0170_c_17L又依此法生此法者,如來修多羅中說,依無明行而生識等。復有修多羅中說,依行因緣生於無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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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습이 생길 때에 무명 등의 법은 마음과 서로 응하고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것과 함께 몸의 업ㆍ입의 업이 모두 다 같이 생기며 뒤의 시기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곧 생각을 낼 때에 무명의 어두운 지혜가 같이 동시에 나는 것이며, 먼저 나는 것이 아니다. - 015_0170_c_19L此明何義?以生相時無明等法共心相應,及心不相應法身業口業皆悉共生,非後時生。又依此法生此法者,卽生念時無明闇智共同時生,非先時生。”
- 015_0171_a_01L【문】무명의 인연이 처음의 인연이 된다고 말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12인연은 곧 시작이 있게 되는가? 왜 그런가? 무명의 앞에서는 다시 다른 인연이 있음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모든 세간의 함이 있음의 법 중에서는 그 무명이 최초가 되기 때문이다.
- 015_0171_a_01L問曰:“說無明因緣以爲初因緣,若如是者,十二因緣則爲有始。何以故?以無明前更不說有餘因緣故,於諸世閒有爲法中,以彼無明爲最初故。”
- 【답】번뇌를 내는 업은 갈마들며 인연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이 뜻이 무엇인가? 낢[生]으로부터 번뇌가 나며 번뇌로부터 업이 나며 업으로부터 낢이 나므로, 마치 시작이 없는 수레바퀴와 같이 나는 것이다. 이런 이치 때문에, 세간은 시작이 없다.
- 015_0171_a_05L答曰:“以生煩惱業迭共因緣故。此義云何?從生生煩惱,從煩惱生業,從業生生,如是無始輪生。以是義故,世閒無始。”
- 【문】자재천(自在天)들이 하는 일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자재천과 작은 티끌 등에서 세간이 생긴다. 이런 이치 때문에, 세간은 시작이 있다.
- 015_0171_a_09L問曰:“自在天等所作,此明何義?從自在天及微塵等而生世閒,以是義故,世閒有始。”
- 【답】그 이치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항상하는 법이 세간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니, 하나의 법이라도 자재천과 작은 티끌 등에서 생김을 보지 못했다. 무상한 인연으로부터 생김을 보았고 항상하는 법 중에서는 생김을 못 보았으며, 무상한 인연 중에서 생김을 보았으므로 그대의 법 중에 자재천 등은 모두 다 이는 항상한 것이다. 이런 이치 때문에, 자재천 등은 법을 낼 수가 없다.
- 015_0171_a_11L答曰:“此義不然。何以故?常法不能生世閒故,不見一法從自在天微塵等生,見從無常因緣中生。以不見從常法中生,見從無常因緣中生,而汝法中自在天等皆悉是常。以是義故,自在天等不能生法。
- 또, 다르고 달리되는 원인 중에서 갖가지 결과가 생김을 실제로 본다. 왜 그러한가? 코끼리ㆍ말ㆍ소ㆍ양ㆍ당나귀ㆍ낙타에서 사람과 하늘 등에 이르기까지 차별이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자재천 등이 지은 것이 아니다.
- 015_0171_a_16L又以現見異異因中生種種果。何以故?以見象馬牛羊驢駝至人天等有差別故。以是故,非自在等作。”
- 【문】인연으로부터 온갖 법이 생기지 않았다. 왜 그러한가? 가시나무와 공작새 등을 보건대 다르고 달리되며 같지 않기 때문이니, 무명의 인연으로부터 세간이 생기지 않았음을 알겠다.
- 015_0171_a_19L問曰:“非從因緣生一切法。何以故?以見棘刺及孔雀等異異不同故,知不從無明因緣有世閒生。
-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인연이 없어도 세간은 생긴다. 왜 그러한가? 나는 가시나무와 공작새 등을 보건대, 인연으로부터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세간은 무명으로 생긴 것이 아니다.
- 015_0171_a_22L此明何義,以無因緣有世閒生。何以故?我見棘刺及孔雀等,非從因緣而有差別,如是世閒非無明生。”
- 015_0171_b_01L【답】이 이치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나는 실제로 결과를 보면, 인연으로부터 나며 원인이 없이 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종자가 땅과 물과 시절이 잘 화합하면 싹이 나고 이들의 갖가지 인연을 여의면 싹이 나지 않는 것과 같다.
- 015_0171_b_02L答曰:“此義不然。何以故?我以現見果從因生、非無因生,猶如種子,地水時熟和合生芽,非離此等種種因緣而有芽生。
- 만약 원인을 여의고 원인 없이 만물이 생긴다고 하면 이 이치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다르고 달리되는 법을 보건대 다르고 달리되는 법에서는 비지[比智]로써도 세간은 역시 그러한 줄 알겠으며, 일찍이 원인을 여의고서 원인 없이 법이 생기는 것을 보는 일이 없다. 이런 이치 때문에, 원인으로부터 결과가 생긴다. 그러므로 세간의 온갖 법은 원인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 015_0171_b_05L若離於因無因而有萬物生者,此義不然。何以故?見異異法。於異異法以比智知。世閒亦爾,未曾見有離因無因而有法生。以是義故,從因生果,是故世閒一切諸法非無因生。
- 또, 허물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갖가지의 결과가 생기지 않거늘, 그대는 결과가 원인 없이 있다고 말한다. 만약 그렇다면, 만물은 으레 똑같아야 하고 세간에서는 갖가지 결과가 생기지 않아야 하겠지만, 나는 실제로 갖가지 원인으로부터 갖가지 결과가 생김을 본다. 이런 이치 때문에, 원인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 015_0171_b_09L又有過咎,若爾不應生種種果。從種種因生種種果,不離種種因生種種果。而汝說果無因而有。若如是者,萬物應等,世閒不應生種種果,以我現見,從種種因生種種果,以是義故,非無因生。
- 또 다시, 대답이 있다. 만약 온갖 물건이 원인 없이 생긴다 하면, 응당 하나의 물건 중에서 온갖 법이 생겨야 하며 그렇지 않더라도 온갖 물건 중에서는 하나하나가 저마다 있고 온갖 물건이 생겨야 하는데도 그 이치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이치 때문에, 인과가 없는 것이 아니다.
- 015_0171_b_15L又復有答,若一切物無因生者,應一物中一切法生,不爾便應一切物中一一各有一切物生。而此義不然。以是義故,非無因果。
- 또 다시 대답이 있다. 으레 변하고 달라짐이 없어야 한다. 이 이치는 무엇인가? 만약 온갖 물건이 인연으로부터 생기지 않는다면 변하고 달라지지 않아야 할 것이니, 마치 허공과 같아야 한다. 그러나 이 이치는 그렇지 못하다.
- 015_0171_b_18L又復有答應無變異。此義云何?若一切物不從因生,應不變異猶如虛空。而此義不然。
- 왜 그런가 하면, 변하고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변하고 달라지는가? 먼저 있던 것이 뒤에는 없으며, 이미 있던 것이 도로 없어져서 다르게 생기고 다르게 없어지는데, 원인 없는 법 중에서는 이와 같은 결과의 법이 바꾸어지고 변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인연으로부터 생기며, 인연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 015_0171_b_21L何以故?以變異故。云何變異?先無後有、已有還無,異生異滅,無因法中不見如是果法轉變,是故諸法從因而生,非無因生。
- 015_0171_c_01L또 허물이 있는데, 온갖 하는 일의 모든 업이 공(空)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만약 원인이 없이 온갖 물건이 생긴다면 모든 하는 일의 업이 공하여 이익이 없을 터인데 실은 이와 같은 일이 있음을 보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원인 없이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 015_0171_c_01L又復有過,一切所作諸業空故。此明何義?若無因生一切物者,諸所作業空無利益。而實不見有如此事,以是故非無因有果。”
- 【문】나는 지혜로부터 지혜가 생기는 것을 본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현실로 바깥 물건인 함이 있는 법 중에서 종자가 원인이 되고 과거가 원인이 아님을 본다. 이와 같이 실제로 안의 함이 있는 법을 보건대 붉고 흰 것 등이 화합함으로 인하여 생기며 과거가 원인이 아니다.
- 015_0171_c_04L問曰:“我見從智生智。此明何義?現見外物有爲法中種子爲因,非過去因,如是現見內有爲法,因赤白等和合而生,非過去因。”
- 【답】그 이치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현재의 지혜는 과거의 지혜로부터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지혜의 생김을 보건대 과거 지혜의 원인으로부터 존재하며 지혜 없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 015_0171_c_08L答曰:“此義不然。何以故?以現在智從過去智而得生故。此明何義?以見智生從於過去智因而有,非無智生。
- 만약 지혜가 앞의 지혜로부터 생기지 않는다면, 응당 흙덩이와 나무며 돌 따위로부터 생겨야 하며 또한 다르게 서로 계속하는 데서부터 생기지 않아야 한다. 왜 그러한가? 만약 다르게 서로 계속하면서 지혜를 낸다고 하면 부모도 아이의 지혜를 낼 수 있어야 한다.
- 015_0171_c_11L若智不從前智生者,應從土塊木石等生,亦非從於異相續生。何以故?若異相續生於智者,父母亦應能生兒智。
- 이 때문에 나는 저 태(胎) 등의 중생들의 지혜는 상속함에서부터 생기는 것인 줄 안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태 등의 지혜 앞에는 다시 지혜가 있으며 그 태 등의 지혜는 먼저의 지혜를 여의지 않으면서 계속하여 나니, 그러므로 과거 세상의 원인이 있는 줄 알리라.
- 015_0171_c_14L以是故,我知彼胎等諸衆生智從相續生。此明何義?以胎等智前更有智,彼胎等智不離先智相續而生,是故知有過去世因。”
- 【문】그 이치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마치 부싯돌을 비비는 사람의 공력과 소똥의 뭇 인연이 화합하면 먼저 불이 없어도 불이 생길 수 있는 것처럼, 지혜도 그와 같아서 먼저 지혜 인연의 화합이 없어도 지혜가 생길 수 있는 것과 같다.
- 015_0171_c_17L問曰:“此義不然。何以故?如從攢燧、人功、牛糞衆緣和合,先無有火而能生火;智亦如是,先無有智,因緣和合而能生智。”
- 015_0172_a_01L【답】그 이치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다른 법을 보고서 견주어 아는 지혜로써 알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어떠한 법 중에서 생기는 법을 보건대 그 법과 서로 비슷하여야 법을 낼 수 있으며, 서로가 비슷함이 없는 다르게 생긴 가운데서는 보는 것은 아니니, 마치 벼가 생기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비록 벼를 보지 않더라도 벼로부터 도로 벼를 내는 것을 보나니, 그러므로 종자는 벼다.
- 015_0171_c_21L答曰:“此義不然。何以故?以見餘法比智知故。此明何義?以見何等法中生法,彼法相似,能生於法,非無相似異生中見。如見從稻生稻,雖不見稻,而見從稻還生於稻,是故種稻;
- 불도 그와 같아서 불을 비비는 것과 소똥 등 가운데에서 불이 생기는 것을 보나니, 비록 불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싯돌을 비비는 따위 가운데서 불을 구한다. 이와 같이 지혜로부터 지혜가 생기는 것으로 보면 비록 지혜를 보지 않더라도 지혜는 과거의 지혜로부터 생기는 것인 줄 안다.
- 015_0172_a_02L火亦如是,以見從於攢燧、牛糞等中生火,雖不見火,而從攢燧等中求火。如是以見從智生智,雖不見智,而知智從過去智生。
- 이로써 그대가 말한 “먼저 불이 없어도 불을 낼 수가 있고, 먼저 지혜가 없어도 지혜가 생길 수 있다”고 한 것과 “온갖 물건은 오직 현재의 원인으로부터 생길 뿐이며, 과거의 원인으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라고 한 것과 같은 그런 이치는 옳지 못하다.
- 015_0172_a_06L是以汝說如先無火而能生火,先無有智而能生智,說一切物唯從現在因生,不從過去因生者,是義不然。
- 이런 이치 때문에 번뇌의 업으로부터 세간의 법이 생긴다. 이를 어떻게 아는가? 성인이 말씀하고 세간 사람들이 말한 것이다. 이 뜻이 무엇인가? 번뇌를 여읜 온갖 성인이신 모든 부처님ㆍ여래와 부처님 제자인 성문승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것을 말씀하시기를 “번뇌 업의 원인으로부터 세간이 생긴다”고 하시고,
- 015_0172_a_09L以是義故,從煩惱業生世閒法。此云何知?以聖人論世閒人說。此義云何?以離煩惱一切聖人諸佛如來及佛弟子聲聞人等,彼如是說從煩惱業因而生世閒。
-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만약 사람이 집착하고 탐을 내어 몸으로 나쁜 행을 짓고 입으로 나쁜 행을 지으며 뜻으로 나쁜 행을 지으면, 그 사람은 나쁜 행의 인연에 의하여 그 몸이 무너진 뒤에는 나쁜 갈래에 나게 된다”고 하셨다. 온갖 의론도 역시 그와 같아서 ‘업으로부터 낢[生]이 있다’고 한다.
- 015_0172_a_13L作如是言:‘若人著貪,身作惡行、口作惡行、意作惡行。彼人依於惡行因緣,此身壞已生惡道中。’一切諸論亦如是說,從業有生。
-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밝음으로부터 밝음에 들어가고 어두움으로부터 어두움에 들어가느니라”고 하셨다. 세간의 사람도 역시 그와 같이 “업으로부터 낢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하나니 “온갖 즐겁지 않은 데에 나는 것이 두려우면 모든 가지가지의 나쁜 행을 멀리 여읠 것이며, 온갖 즐길 만한 데에 나는 것을 구하면 모든 갖가지 선한 행을 수행하라”고 하였다.
- 015_0172_a_16L是故經言:‘從明入明,從闇入闇。’世閒之人亦如是說,從業有生,作如是言:‘以畏一切不樂生處,遠離一切種種惡行,以求一切可樂生處,修行一切種種善行。’
- 이런 이치 때문에, 모든 성인에 의지하고 온갖 의론에 의지하며 세간 사람에게 의지하여, 나는 이와 같이 업의 원인으로부터 세간이 생기는 것이며, 원인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닌 줄 안다.
- 015_0172_a_21L以是義故,依諸聖人、依一切論、依世閒人,我如是知從業因故而生世閒,非無因生。”
- 015_0172_b_01L【문】원인이 되는 생각이 머무르지 않거늘, 어찌 결과가 생길 수 있겠는가? 이는 무슨 뜻인가? 모든 번뇌의 업은 찰나 동안에도 머무르지 않아서 번뇌의 업은 찰나에 곧 없어지나니, 그러므로 모든 업의 번뇌로부터 세간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 015_0172_a_23L問曰:“因念不住何能生果。此以何義?諸煩惱業剎那不住,以煩惱業剎那卽滅,是故非從諸業煩惱而生世閒。”
- 【답】원인이 없어져도 결과가 생김을 나는 본다. 이는 무슨 뜻인가? 원인이 없어져도 그 없어진 원인에 의하여 결과가 생기게 됨을 보나니, 마치 마다융가(摩多隆伽)의 열매 가운데서는 신맛이 있음을 보는데, 그 씨와 싹ㆍ줄기ㆍ가지ㆍ잎ㆍ꽃 등의 안에는 모두 다 신맛이 없고 그 씨와 싹ㆍ줄기ㆍ가지 등에서 서로가 이어졌다가 뒷날 열매의 가운데 있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마다융가의 열매 속에 있는 신맛은 곧 그 원인이 아니며 또한 달라진 원인도 아니다.
- 015_0172_b_03L答曰:“我見因滅而能生果。此以何義?以見因滅,依彼滅因而能生果,如於摩多隆伽果中見有酢味,而於彼子芽莖枝葉及華等中悉皆不見,而依彼子芽莖枝等相續,後時於果中見。而彼摩多隆伽果中所有酢味,非卽彼因亦非異因。
- 이와 같이 보이는 것은 바깥 인과가 화합하여 생긴 것이며, 이와 같은 법은 이렇게 견주어서 아는 지혜로 알게 되나니, 원인이 없어진 뒤에도 그 없어진 원인에 의하여 세간이 생기는 것이며 원인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며 달라진 원인도 아니다.
- 015_0172_b_10L如是見外因果和合生如是法,如是比智知因滅已,依彼滅因有世閒生,非無因生亦非異因。”
- 【문】만약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니고 뒤바뀐 원인이 아닌 것으로 세간을 내고 업의 번뇌에 의하여 세간이 있다고 하면, 이를 어떻게 아는 것인가?
- 015_0172_b_12L問曰:“若非無因、非顚倒因生於世閒,而依業煩惱有世閒者。此云何知?”
- 【답】허물이 생기는 줄 모르고서 업행(業行)을 짓게 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세간 사람들은 허물이 생기는 줄 모르나니, 그 사람은 곧 다섯 가지 욕심 경계인 온갖 이익 없는 일을 집착하여 세간의 갖가지 이익 없는 일을 내게 한다. 그러므로 수행은 세간의 과보를 얻게 되며, 짓는 업은 번뇌를 끊어 없애기 위하여 짓는 업이 아니다.
- 015_0172_b_14L答曰:“不知生過爲作業行。此明何義?諸世閒人不知生過,彼人則著五欲境界一切種種無利益事,爲生世閒一切種種無利益事,是故修行爲得世閒果報,作業非爲除斷煩惱作業。
- 이는 무슨 뜻인가? 온갖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자세히 살필 수가 없으며, 무명의 어두운 지혜로써 한량없는 백천의 가지가지 괴로움 가운데서 공덕의 생김이 있음을 보고 미래세상에서 받을 즐거운 과보를 구하기 때문에 공덕을 행하며 계율 보시 등의 모든 공덕 될 행을 수행한다.
- 015_0172_b_19L此以何義?一切世閒愚癡凡夫無智慧故,不能觀察,以無明闇智於無量百千種種苦惱中見有功德生,求未來世受樂果故,行功德行修戒施等諸功德行。
- 015_0172_c_01L또, 어떤 사람은 마음이 뒤바뀌었기 때문에 현재세상의 다섯 가지 욕심의 경계에 집착하여 미래세상에 복과 덕이 없음을 당하나니, 그러므로 복덕 없는 행인 살생 따위의 업을 수행한다.
- 015_0172_c_01L又復有人心顚倒故,著現在世五欲境界,見未來世無有福德,是故修行無福德行殺生等業。
- 또, 어떤 사람은 삼매의 즐거움으로 선정을 사랑하고 선정에 대한 소견을 내고 선정에 대하여 오만하고 선정을 의심하고 선정에 뛰어난 체하는 따위에 집착하여 온갖 통달하는 등의 행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저 세 가지 세계 중에 나는 것이 끊어지지 않으며 나서부터는 다시 온갖 번뇌를 일으키고 번뇌 때문에 모든 업을 일으키나니, 이와 같이 하여 세간은 끝없이 끊어지지 않는다.
- 015_0172_c_03L又復有人,著三昧樂愛禪、見禪、慢禪、疑禪、增上禪等,修行一切諸通等行,是故於彼三界中生不斷不絕、從生復起一切煩惱,從煩惱故起一切業,如是世閒無始以來不斷不絕。”
- 【문】만약 온갖 번뇌로부터 세간의 행이 생긴다 하면, 여래께서는 이 수다라 중에서 무엇 때문에 무명으로부터 세간이 생긴다고만 말씀하셨는가?
- 015_0172_c_08L問曰:“若從一切煩惱而生世閒行者,如來於此修多羅中,何故唯說從於無明而生世閒?”
-
【답】비록 무명만을 말씀하셨으나 탐냄 따위의 온갖 번뇌를 포섭하겠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비록 무명만을 말한다 하더라도 탐냄 따위의 온갖 허물들이 포섭된다.
이를 어떻게 아는가? 어리석은 사람이 탐냄 따위를 일으키고 지혜가 없기 때문에 탐냄 따위의 온갖 번뇌를 일으키지만 허물이 없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 015_0172_c_11L答曰:“雖說無明,攝得貪等一切煩惱。此明何義?雖說無明而攝貪等一切諸過。此云何知?以愚癡人起於貪等,以無智故起於貪等一切煩惱非無過起。
-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무명의 인연은 탐냄의 허물을 일으키고, 성냄의 허물을 일으키며, 어리석음의 허물을 일으키느니라”고 하신 것과 같다.
그러므로 저 무명의 근본은 그 밖의 번뇌의 모든 허물이 포섭되었다 함을 말씀한 것이니, 마치 세간에서 왕이 오고 왕이 가면 그 신하와 병사들이 또한 오고 또한 가는 것과 같다. - 015_0172_c_15L如經中說,無明因緣起於貪過、起於瞋過、起於闇過。是故說彼無明根本攝得其餘煩惱諸過,猶如世閒王來王去,諸臣兵衆亦來亦去。”
- 【문】어떠한 이치 때문에, 과거 부분 중에서 무명을 말하고 욕망[愛]은 말하지 않으며, 미래 부분 중에서는 욕망만을 말하고 무명은 말하지 않는가?
- 015_0172_c_19L問曰:“以何義故?過去分中唯說無明而不說愛,未來分中而但說愛不說無明。”
- 【답】경계가 크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무명은 온갖 경계에 두루하지만 욕망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무슨 뜻인가? 저 무명은 온갖 처소에 두루하지만 욕망은 두루하지 않기 때문이다.
- 015_0172_c_22L答曰:“大境界故。此明何義?以無明遍一切境界,愛不如是。此以何義?以彼無明遍一切處,愛不遍故。
- 015_0173_a_01L또, 함이 있음과 함이 없음에 반연한다. 이는 무슨 뜻인가? 저 무명은 함이 있는 법과 함이 없는 법에 반연하지만, 욕망은 그렇지 못하여 오직 함이 있음에 반연할 뿐이다.
- 015_0173_a_01L又以緣於有爲無爲。此以何義?以彼無明緣有爲法及無爲法,愛不如是唯緣有爲。
- 또, 같은 자리[同地]와 같지 않은 자리[不同地]에 반연한다. 이는 무슨 뜻인가? 무명은 같은 자리와 같지 않은 자리에 반연하지만 욕망은 그렇지 못하여 같은 자리에만 반연할 뿐이다.
- 015_0173_a_04L又以緣於同不同地。此以何義?以無明緣同不同地,愛不如是唯緣同地。
- 또, 온갖 번뇌와 서로 응한다. 이는 무슨 뜻인가? 저 무명은 온갖 번뇌에 모두 함께 서로 응하지만 욕망은 그렇지 못하여 어리석은 사람만이 일으키고 지혜로운 이는 일으키지 않는다.
- 015_0173_a_06L又以一切煩惱相應。此以何義?以彼無明一切煩惱皆共相應,愛不如是,唯愚人起非智者起。
- 또, 온갖 고통이 끊어지지 않는 원인이다. 이는 무슨 뜻인가? 무명은 온갖 괴로움의 무더기로서 근본이 되나니, 이런 이치 때문에 처음 부분 중에서 무명만을 설명하고, 저 둘째 번뇌의 문 중에서 욕망만을 나타내보였다. 그러므로 저 미래의 부분 중에서는 욕망만을 설명하고 무명을 설명하지 않았다.
- 015_0173_a_08L又一切苦不斷絕因。此以何義?以無明於一切苦聚以爲根本。以是義故,於初分中唯說無明,依彼第二煩惱門中唯示現愛,是故於彼未來分中唯說於愛不說無明。”
- 【문】어떠한 이치 때문에 과거세상 동안에 포섭된 모든 업이 어떠한 번뇌를 따르면 원인을 지어 줄 수 있으며, 그 모든 번뇌는 무명이라는 이름으로써 말하는가? 현재세상 동안에 포섭된 모든 업이 어떠한 번뇌를 따르면 원인을 지어줄 수 있으며, 그 모든 번뇌는 욕망의 잡음[愛取]이라는 이름으로써 말하는가?
- 015_0173_a_13L問曰:“以何義故,過去世中所攝諸業,隨何煩惱能與作因?彼諸煩惱以無明名說,現在世中所攝諸業,隨何煩惱能與作因,彼諸煩惱以愛取名說?”
- 【답】나타나 보이지 않는 것과 나타나서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인가? 과거세상 동안의 모든 번뇌는 바로 멀기 때문에 실제로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 동안의 번뇌는 차별하여 나타내 보일 수도 없으며, 그 어두움의 형상을 말할 수조차 없나니, 그러므로 모두를 무명이라는 이름으로써 말한다.
- 015_0173_a_17L答曰:“以非現見、以現見故。此以何義?過去世中所有煩惱,以是遠故不可現見,是故彼中煩惱差別不可示現,以彼闇相不可得說,是故皆以無明名說。
- 015_0173_b_01L현재세상에 살면서 포섭된 번뇌는 실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번뇌는 차별하여 말할 수도 있고 나타내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욕망의 잡음[愛取]이며, 이것이 바로 욕심의 잡음[欲取]이며, 이것이 바로 소견[見取]의 잡음으로써 이와 같은 따위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모든 번뇌는 욕망의 잡음이라는 이름으로써 말한다.
- 015_0173_a_22L現在世生所攝煩惱可現見故,彼諸煩惱差別可說,可得示現此是愛取,此是欲取,此是見取,如是等,是故現在所有煩惱以愛取名說。”
- 【문】이 설명은 바로 미묘한 설명이다. 번뇌의 업으로 인하여 세간의 나고 죽음이 있다 하고 자재천과 작은 티끌 등이 아니기 때문이라 하는데, 무명 등의 12인연은 그 뜻이 어떤 것인가?
- 015_0173_b_02L問曰:“此說是妙說,以因煩惱業有世閒生死,非自在天微塵等故。而無明等十二有支,其義云何?”
- 【답】3세 중의 일을 사실대로 모르는 것을 무명이라 하며, 무명이 더욱 일어나서 후 세상의 원인을 취득하는 복의 업[福業]과 죄의 업[罪業]과 움직이지 않는 업[不動業] 등을 바로 지어감[行]이라 하며, 지어감의 원인이 있음에 의하여 분별하고 물듦의 뜻을 내는 것을 의식[識]이라 하며, 그 의식이 머무르게 됨을 이름과 물질[名色]이라 하며, 그 깨끗한 의식이 의지하고 머무르는 데를 바로 여섯 가지 감관[六入]이라 한다.
- 015_0173_b_05L答曰:“不如實知三世中事,名爲無明;無明轉起取後有因,福業、罪業、不動業等,是名爲行;依行因有生分染意,是名爲識;爲彼識住,名爲名色;彼淸淨識之所依止,名爲六入;
- 감관[根]과 의식과 경계의 세 가지 일이 화합하여 의지(意地)에 맞닿는 법을 닿음[觸]이라 하며, 닿음에 의하여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는 두 가지 뒤바뀐 생각을 내서 받아들임을 느낌[受]이라 하며, 느낌 따위를 보고 집착하여 즐거움을 모으는 것을 욕망[愛]이라 하며,
- 015_0173_b_10L根識境界三事和合,對意地法是名爲觸;依觸而生愛、不愛二顚倒念受,是名爲受;見著受等集樂名愛;
- 욕망에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보유하기를 구하고 보유하기를 끊으며 나[我]의 의지하고 머무를 데를 취득하며 모든 번뇌를 즐기고 번뇌를 따르는 것을 잡음[取]이라 하며, 잡음을 점차로 일으켜 후생의 원인인 몸ㆍ입ㆍ뜻의 업을 취득하는 것을 존재[有]라 한다.
- 015_0173_b_13L依止於愛求有斷有,取我依止樂諸煩惱隨順煩惱,是名爲取;取能轉起取後生因身口意業,是名爲有;
-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지어가는 존재로 뒤 세상의 몸을 취득하는 것을 낢(生)이라고 하며, 낢에 의지하여 머무르는 몸이 더욱 자라서 갈수록 변하여짐을 늙음[老]이라 하며, 먼저 얻은 몸이 무너짐을 죽음[死]이라 하며, 여의지 않을 것을 멀리 여의고 사랑하지 않을 일을 사랑하며 공양을 구하는 것 따위가 의지로부터 나면서 자기 마음을 태우는 것을 근심[憂]이라 한다.
- 015_0173_b_15L依止行有取後世身,是名爲生;依止生身增長熟變,是名爲老;先得身壞,是名爲死;遠離不離愛不愛事求供養等從意地生,焚燒自心,是名爲憂;
- 근심을 품은 마음에 의하여 사랑하는 공덕을 말하면서 속마음에는 걱정이 맺혀 가지가지로 슬프게 말함을 울음이라 하며, 빛깔에 의한 몸이 뜻과 함께 서로 응하면서도 사랑과 즐거움의 느낌이 아님을 괴로움이라 하며,
- 015_0173_b_19L依懷憂心說愛功德,內心愁縛種種悲言名爲啼哭;依色識身共意相應,非愛樂受,是名爲苦;
- 015_0173_c_01L 의식만이 의지와 서로 응함을 걱정[愁]이라 하며,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는 두 가지 경계에서 보유하기를 구하기도 하고 보유하기를 구하지도 않으며 자량을 구하기 때문에 갖가지 고통을 느끼어 그 마음이 몹시 괴로워짐을 바로 극심함[極]이라 한다.
- 015_0173_b_22L唯意識身意地相應,是名爲愁;於愛不愛二種境界,或有求有或不求有求資生故受種種苦,其心逼惱,是名爲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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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명은 지어감에 반연한다 하는데, 무엇을 지어감이라 하는가?
【답】의지하고 머무르며 받아들이고 짝하며 자세히 살피고 일으키며 따르고 같이 내는 것을 지어감이라 한다. - 015_0173_c_02L問曰:“無明緣行,云何名行?”答曰:“依止容受伴侶觀起隨順共生,名爲行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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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연(因緣)이라는 이름을 해석하여야 하리라. 무엇을 인연이라 하는가?
【답】결과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을 인(因)이라 하고, 이 법에 의하여 저 법을 나타낼 수 있고 이 법으로 인하여 저 법을 낼 수 있는 것을 연(緣)이라 한다. - 015_0173_c_04L問曰:“應釋因緣名,云何名因緣?”答曰:“能成就果是名爲因;依此法故能顯彼法、因此法故能生彼法,是名爲緣。”
- 【문】무엇 때문에 다만 무명은 지어감에 반연한다고만 말하고, 무명은 지어감에 원인한다고는 말하지 않는가?
- 015_0173_c_07L問曰:“何故但說無明緣行,而不說言無明因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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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온갖 인연을 포섭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무명은 지어감에 원인한다 하면 원인을 포섭하는 인연뿐이며, 인연을 포섭하지 않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무명은 행에 원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네 가지 인연의 무명 등은 함께 인연할 수 있는 행이니, 그러므로 인연만의 이름에 의하여 말한 것이며, 네 가지 인연을 포섭할 수 있기 때문이다. - 015_0173_c_09L答曰:“爲攝一切諸因緣故。若說無明因於行者,但攝因因緣不攝因緣,是故不說無明因行。以四因緣無明等共能因緣行,是故唯依因緣名說,以能攝取四因緣故。”
- 【문】지어감도 무명의 인연이 될 수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무명은 지어감에 반연한다고만 말하고 지어감은 무명에 반연한다고는 말하지 않는가?
- 015_0173_c_13L問曰:“行亦能作無明因緣。若如是者,何故但說無明緣行,而不說言行緣無明?”
- 【답】두 가지 이치는 일정함과 일정하지 않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인가? 무명이라는 원인은 반드시 행에 반연하지만 업행은 반드시 무명에 반연하지 않는다. 무엇으로써 아는가? 아라한은 비록 업은 있다손 치더라도 무명은 없나니, 그러므로 업은 반드시 무명에 반연하지 않으며, 그 때문에 지어감은 무명에 반연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 015_0173_c_15L答曰:“以有二義:定、不定故。此以何義?以無明因定緣於行,而非業行定緣無明。何以知之?以阿羅漢雖復有業而無無明,是故非業定緣無明,是故不說行緣無明。
- 또, 무명의 인연에 의하여 업에 있나니, 이런 이치 때문에 저 무명의 인연에 의하여 업이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다만 무명의 인연에만 의지하여 업이 있으므로 무명을 멀리 여의면 업이 있지 않아야 하는데 실은 무명을 멀리 여의고서도 업이 있으니, 그러므로 무명에 의하여 지어감에 반연한다고 하며 지어감에 의하여 무명에 반연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 015_0173_c_20L又依無明因緣有業,以是義故依彼無明因緣有業。若如是者,唯依無明因緣有業,不應遠離無明有業。而實遠離無明有業,是故說依無明緣行,不說依行緣於無明。”
- 015_0174_a_01L【문】무슨 이치 때문에 이미 결과의 업을 받았으면 지어감이라는 이름으로써 말하며, 아직 결과의 업을 받지 못했으면 존재[有]라는 이름으로써 말하는가?
- 015_0174_a_01L問曰:“以何義故,已受果業以行名說,未受果業以有名說?”
- 【답】아직 결과의 업을 받지 못했으면 다만 함이 있음의 부분만이 있나니, 그러므로 존재라고 말한다. 마침내 존재하기 때문에 미래의 세상에 마침내 과보를 얻으며, 업의 바탕이 비록 없어졌다 하더라도 마침내는 존재하여 반드시 미래세상의 과보를 줄 수 있나니, 그러므로 존재라 하며 존재라는 이름으로써 말한다.
- 015_0174_a_03L答曰:“未受果業但有有爲分,是故說有。以畢竟有故,以未來世畢竟得果,業體雖滅而畢竟有,以必能與未來世果,是故名有,以有名說。
- 이미 결과의 업을 받았고 이미 함이 있음의 부분을 받았으므로 그 때문에 지어감이라 하며, 결과를 얻고 받을 것이므로 존재라 하며 존재라는 이름으로써 말한다.
- 015_0174_a_07L已受果業、已受有爲分,是故說行以得受果,是故名有,以有名說。
- 또, 뜻이 있다. 무엇 때문에 존재라고 하는가? 이 법에 의하여 낼 수 있으므로 존재라 한다. 이는 무슨 뜻인가? 어떠한 업을 따라서 끝내는 미래의 세상의 과보를 내게 하므로 존재라는 이름으로써 말하며, 어떠한 업을 따라서 이는 끝내 미래의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면 마치 앙구리마라(鴦瞿離魔羅)6) 등의 업은 일찍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지어감이라는 이름으로써 말하는 것과 같다.
- 015_0174_a_08L又復有義,何故名有?以依此法能生名有。此以何義?隨何等業#能畢竟生未來世果,以有名說。隨何等業非是畢竟未來世有,如鴦瞿離魔羅等業未曾有故,以行名說。
-
그러므로 경전 중에서 “지어감은 업의 과보에 연유하므로 의식이라는 이름으로써 말하고 낢(生)라는 이름으로써는 말하지 않느니라”고 하셨다. 왜 그러한가? 저 지어감의 업은 마침내 낢의 인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인가? 현재의 몸 중에서 과보의 업을 받는 그 업행의 인연은 의식을 낼 수 있으나, 저 낢은 낼 수 없기 때문이다. - 015_0174_a_13L是故經中行緣業果,以識名說,非生名說。何以故?以彼行業非是畢竟生有支故。此以何義?以現身中受果報業,彼業行緣能生識支,而不能生彼生支故。
- 또, 힘이 있음과 힘이 없음을 보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인가? 무엇 때문에 지어감이라 하는가? 일을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세상에 살면서 한 일의 모든 업은 그것이 힘이 있어서 결과를 이룰 수 있음을 보나니, 그러므로 그 업은 지어감이라는 이름으로써 말한다. 현재세상에 살면서 한 일의 모든 업은 아직 그 힘을 못 보았고 아직 결과를 이루지 못했으며, 그 업의 과보는 미래에 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그 업은 지어감이라 할 수 없고 존재라는 이름으로써 말한다.
- 015_0174_a_17L又以見有力無力故。此以何義?何故名行?能辦事故。過去世生所作諸業,見彼有力以能成果,是故彼業以行名說。現在世生所作諸業,未見彼力,以未成果,彼業果報在未來故,是故彼業不得名行,以有名說。”
-
015_0174_b_01L【문】어떠한 이치 때문에 움직이지 않음[不動]이라 하는가?
【답】다른 자리에서는 과보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음이라 한다. 이는 무슨 뜻인가? 욕심세계의 업 같은 것은 다른 자리 가운데서 과보를 줄 수 있어서 어떠한 선한 뿌리의 업 길에 따라서 사람 안에 태어나야 하지만, 곧 저 선한 업은 서원과 구하는 마음에 의하여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까지 난다. 마치 여래께서 공덕에 의하여 난다는 수다라에서 말씀하시기를 “또, 어떠한 악행과 선하지 못한 업을 따라서 으레 지옥에 나야 하느니라”고 하신 것과 같다. - 015_0174_a_23L問曰:“以何義故名爲不動?”答曰:“異地不能與果報故,名爲不動。此以何義?如欲界業於異地中能與果報,隨以何等善根業道應生人中,卽彼善業依願求心,乃至生於他化自在,如如來依『功德生修多羅』說:‘又隨何等惡不善業應生地獄受果報者。’
- 과보를 받는 이는 곧 그 업에 의하여 인간 안에서 고통을 받지만, 저 여래의『의염유경(依鹽喩經)』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형상세계와 무형세계의 업은 그와 같을 수 없다. 이는 무슨 뜻인가? 초선 자리의 업으로 2선에 나지 않고 2선 자리의 업으로 초선에 나지 않나니, 이와 같이 그 밖의 자리에서도 모두가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 015_0174_b_07L卽依彼業人中受苦。如如來依『鹽喩經』說:‘色無色業不得如是。’此以何義?初禪地業不生二禪,二禪地業不生初禪,如是餘地皆亦如是應知。
-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형상세계와 무형세계의 업을 움직이지 않음이라 하느니라’고 하셨으며, 또 모든 번뇌로써 움직일 수 없는 것이므로 움직이지 않음이라 하는데, 마치 문을 꼭 닫아둔 방의 등불과 같다.
-
015_0174_b_11L是故佛說色無色業名爲不動,又諸蓋障所不能動,故名不動,如密室燈。”
彌勒菩薩所問經論卷第八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 6)범어 Angulimāla의 음역으로, 바라문 스승의 잘못된 인도로 999인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어머님을 죽이려 하다가 부처님을 만나 정법을 듣고 귀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