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558_T_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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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반야바라밀경론 중권 - 015_0324_c_01L金剛般若波羅蜜經論卷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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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친보살 지음 - 015_0324_c_02L天親菩薩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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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위(元魏) 보리류지 한역
김두재 번역 - 015_0324_c_03L元魏天竺三藏菩提流支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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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 부처님께서 수보리(須菩提)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항하강(恒河江) 가에 있는 모래알의 수효를 예로 든다면 이와 같이 많은 모래알과 비등한 항하의 수에 대하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여러 항하의 모래알이 어찌 많지 않겠는가?” - 015_0324_c_04L經曰:佛言須菩提:“如恒河中所有沙數,如是沙等恒河,於意云何?是諸恒河沙寧爲多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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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가 아뢰었다.
“매우 많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다만 그 모든 항하만 하더라도 오히려 헤아릴 수 없이 많을 터인데 더구나 그 모래의 수효이겠습니까?” - 015_0324_c_07L須菩提言:“甚多。世尊!但諸恒河尚多無數,何況其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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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내가 지금 진실한 말로 너에게 알려주리니, 만약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일곱 가지 보배로써 항하강을 가득 채운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를 채울 만한 것을 가지고 모든 불ㆍ여래에게 보시한다면 수보리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저 선남자와 선여인이 얻는 복이 많겠느냐?” - 015_0324_c_08L佛言:“須菩提!我今實言告汝。若有善男子善女人以七寶滿爾所恒河沙數世界以施諸佛如來。須菩提!於意云何?彼善男子善女人得福多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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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가 말하였다.
“매우 많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 선남자와 선여인이 얻는 복은 매우 많을 것입니다.” - 015_0324_c_12L須菩提言:“甚多。世尊!彼善男子善女人得福甚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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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항하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일곱 가지 보배를 보시하는 데 쓴 이가 있고, 또한 다른 선남자와 선여인은 이 법문과 나아가 4구게(句偈) 등을 받아 지녀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법한다면, 이 복덕은 앞의 복덕보다 훨씬 뛰어나서 한량없는 아승기와 같으니라.” - 015_0324_c_14L佛告須菩提:“以七寶滿爾所恒河沙世界持用布施,若善男子善女人於此法門乃至受持四句偈等爲他人說,而此福德勝前福德無量阿僧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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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앞에서 이미 많은 복덕에 대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왜 또다시 말씀하셨는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24_c_18L論曰:前已說多福德譬喩,何故此中復說?偈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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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이 많다는 뜻을 말씀하신 것이며
또한 뛰어난 비교로 헤아림도 이룩하였다.
뒤의 복이 앞에 것을 능가하기 때문에
거듭 비유를 들어 앞에 것보다 나음을 말씀하셨다. -
015_0324_c_20L說多義差別,
亦成勝挍量;
後福過於前,
故重說勝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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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_0325_a_01L
이 게송의 뜻은 무엇인가?
앞에서 삼천세계의 비유를 들어 복덕이 많음을 밝혔는데, 이제 거듭 한량없이 많은 삼천세계를 말씀하셨으니, 왜 앞에서는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것은 점차로 중생들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가장 으뜸가는 묘한 이치를 믿는 마음이 생기게 하기 위한 까닭이었다.
또 앞에서는 어떤 훌륭한 공덕으로써 큰 보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 비유를 들어 그 공덕을 성취하게 하기 위하여 거듭 앞의 것보다 뛰어나다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것이다. - 015_0324_c_22L此義云何?前說三千世界譬喩明福德多,今重說無量三千世界故。何故不先說此喩?爲漸化衆生令生信心上妙義故。又前未顯以何等勝功德能得大菩提故,以此喩成彼功德,是故重說勝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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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 “또 수보리야, 살고 있는 곳에 따라 이 법문을 설명하거나 해서 마침내 4구게 등에 이르기까지를 설명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라. 이곳은 일체 세간의 천상과 사람과 아수라가 모두 마땅히 부처님 탑묘(塔廟)에 공양하듯이 공양해야 할 것이니라. 그런데 더구나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모조리 다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것이겠느냐?
수보리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가장 으뜸가는 최상의 희유(希有)한 법을 성취하게 될 것이니라.
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이라면 곧 부처님께서 계신 곳이니, 마치 부처님을 존중하듯이 해야 할 것이니라.” - 015_0325_a_06L經曰:“復次須菩提!隨所有處說是法門,乃至四句偈等,當知此處一切世閒天、人、阿修羅皆應供養如佛塔廟,何況有人盡能受持讀誦此經。須菩提!當知是人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若是經典所在之處則爲有佛,若尊重似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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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장차 이 법문(法門)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며, 저희들은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만 합니까?” - 015_0325_a_13L爾時須菩提白佛言:“世尊!當何名此法門?我等云何奉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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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법문의 이름을 금강반야바라밀(金剛般若波羅蜜)이라고 하라. 너희들은 마땅히 이러한 이름으로 받들어 지녀야 하리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께서 설하신 법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 015_0325_a_14L佛告須菩提:“是法門名爲『金剛般若波羅蜜』,以是名字汝當奉持。何以故?須菩提!佛說般若波羅蜜,則非般若波羅蜜。須菩提!於意云何?如來有所說法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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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말씀하신 법이 없습니다.” - 須菩提言:“世尊!如來無所說法。”
-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미세한 먼지가 많다고 생각하느냐?”
- 015_0325_a_19L“須菩提!於意云何?三千大千世界所有微塵是爲多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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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가 말하였다.
“그 미세한 먼지는 매우 많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 015_0325_a_21L須菩提言:“彼微塵甚多。世尊!”
-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께서 이 모든 미세한 먼지를 미세한 먼지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이것을 미세한 먼지라고 부르며, 여래께서 세계는 세계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이것을 세계라고 부르느니라.”
- 015_0325_a_22L“何以故?須菩提!是諸微塵,如來說非微塵,是名微塵。如來說世界,非世界,是名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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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_0325_b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서른두 가지 큰 사람의 모습[大人相]으로 여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 015_0325_b_01L佛言:“須菩提!於意云何?可以三十二大人相見如來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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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서른두 가지 큰 사람의 모습은 곧 모습이 아니므로 이것을 일컬어 서른두 가지 큰 사람의 모습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 015_0325_b_02L須菩提言:“不也。世尊!何以故?如來說三十二大人相卽是非相,是名三十二大人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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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무엇이 저렇게 뛰어난 복을 성취하게 하는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25_b_05L論曰:云何成彼勝福?偈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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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곳이 존중받는 까닭은
원인을 익혀 큰 몸을 증득했기 때문이다.
저 원인을 익힌 까닭에 번뇌에 찌든 사람도
번뇌를 항복시켜 복으로 승화시킨다. -
015_0325_b_06L尊重於二處,
因習證大體;
彼因習煩惱,
此降伏染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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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송의 뜻은 무엇인가?
‘두 곳이 존중받는다’는 것은 첫째는 법을 설명할 처소이니, 어떤 종류의 처소를 따라 이 경을 설명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신기하고 특별한 모습을 존중하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둘째는 법을 설명하는 사람이니, 어떤 종류의 사람을 따라 능히 받아 지니고 다른 사람에게 설법하여 경론(經論)을 존중하게 하기 때문이다. 일곱 가지 보배 등을 가지고 어떤 곳을 따라 보시하거나 어떤 사람을 따라 보시함으로써 이와 같은 존경과 존중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요, 이 법문은 모든 불ㆍ여래가 증득한 법과 더불어 수승한 원인을 짓기 때문이다. - 015_0325_b_08L此義云何?尊重於二處者,一者所說處,隨何等處說此經,令生尊重奇特相故;二者能說人,隨何等人能受持及說,以尊重經論故,非七寶等隨何處捨、隨何人能捨,如是生敬重故,此法門與一切諸佛如來證法作勝因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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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에 “수보리가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말씀하신 법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무슨 뜻인가?
어느 한 법도 유독 여래 혼자서만 하신 말씀도 없었고, 다른 부처님도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진귀한 보배를 보시하여 얻은 복덕은 곧 더러운 번뇌를 일으키는 원인이니, 능히 번뇌의 일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번뇌의 원인을 멀리 여의어야 함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지의 미세한 먼지에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 015_0325_b_15L如經“須菩提言:世尊!如來無所說法故”,此義云何?無有一法唯獨如來說、餘佛不說故。彼珍寶布施福德是染煩惱因,以能成就煩惱事故。此因示現遠離煩惱因故,是故說地微塵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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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에 “수보리야, 여래께서는 이 모든 미세한 먼지를 미세한 먼지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므로 이것을 일컬어 미세한 먼지라고 부르며, 여래께서는 세계는 세계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므로 이것을 세계라고 부른다”라고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는가?
저 미세한 먼지는 탐욕 등 번뇌의 바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대지의 미세한 먼지라고 부른 것이다. 저 세계는 번뇌에 물드는 인자(因子)가 없는 세계이니, 그런 까닭에 세계라고 말한 것이다. - 015_0325_b_20L如經“須菩提!是諸微塵,如來說非微塵是,名微塵。如來說世界,非世界,是名世界”故。何故如是說?彼微塵非貪等煩惱體,以是義故名爲地微塵,故彼世界非煩惱染因界,是故說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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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_0325_c_01L이것은 무슨 뜻을 밝힌 것인가?
저 복덕은 곧 번뇌의 먼지에 의해 더럽혀지는 원인이 된다. 이런 까닭에 비록 이것이 밖의 무기(無記)라 하더라도 먼지는 저 복덕과 선근(善根)을 행하는 데 가장 비근(卑近)한 것이니, 어찌 이러한 복덕이 불보리(佛菩提)를 이룩할 수 있는 것에 비교될 수 있겠는가? 또 저것은 대장부의 모습을 성취한 것이어서 복덕 중에 가장 뛰어난 복덕이기 때문이다. - 015_0325_c_02L此明何義?彼福德是煩惱塵染因,是故於外無記塵,彼福德善根爲近,何況此福德能成佛菩提故,及成就大丈夫相福德中勝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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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법문을 받아 지니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연설하는 것은 능히 불보리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어서 저 복덕보다 더 뛰어난 것이다. 왜냐하면 저 모습은 불보리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며, 저것은 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장부의 모습이라고 말한 것은 저것이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법문을 받아 지녀서 다른 이에게 설법한 복덕이 능히 불보리를 성취하므로 저것(보시의 복덕)은 이것(경을 지닌 복덕)보다 뛰어나지 못하다고 말한 것이다. - 015_0325_c_05L是故受持演說此法門,能成佛菩提勝彼福德。何以故?彼相於佛菩提非相故,以彼非法身故。是故說大丈夫相,以彼相故。此受持及說福德能成佛菩提,是故彼非勝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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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저 복덕은 능히 진귀한 보배 등으로 보시하여 얻은 복덕을 항복시킬 수 있으니, 어찌 이 복의 원인 때문에 저것(보시의 복덕)을 항복시킬 수 있는 것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복은 가장 비근하면서도 가장 수승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와 같아서 저 단(檀:布施) 등의 복덕 중에 이 복덕이 가장 뛰어나다는 이런 이치가 성립되는 것이다. - 015_0325_c_10L又彼福德能降伏珍寶等福,何況此福故能降伏,是故此福最近最勝。如是彼檀等福德中,此福德最,如是成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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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항하(恒河)강의 모래알만큼 많은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보시하는 사람이 있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이 이 법문(法門)과 나아가 4구게(句偈) 등을 받아 지녀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법한다면 그 복은 더욱 많아서 한량없는 아승기와 같을 것이다.” - 015_0325_c_13L經曰:佛言:“須菩提!若有善男子善女人以恒河沙等身命布施。若復有人於此法門中,乃至受持四句偈等爲他人說,其福甚多,無量阿僧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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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수보리가 이 경의 설법을 듣고 그 깊은 이치를 이해하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슬피 울다가 눈물을 닦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드문 일입니다. 바가바(婆伽婆)시여, 매우 드문 일입니다. 수가타(修伽陀)시여,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법문을 설명하시니, 제가 예전부터 오늘날까지 얻었던 혜안(慧眼)으로는 일찍이 이와 같은 법문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 015_0325_c_17L爾時須菩提聞說是經,深解義趣,涕淚悲泣,捫淚而白佛言:“希有婆伽婆!希有修伽陁!佛說如是甚深法門,我從昔來所得慧眼未曾得聞如是法門。”
- “왜냐하면 수보리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 015_0325_c_21L“何以故?須菩提!佛說般若波羅蜜卽非般若波羅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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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_0326_a_01L“세존이시여,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들을 수 있게 되어 신심(信心)이 청정해졌다면 실상(實相)이 생길 것이니, 이 사람이야말로 가장 으뜸가는 희유(希有)한 공덕을 성취한 사람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실상은 곧 모습이 아니니, 그런 까닭에 여래께서 이것을 실상, 실상이라고 부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와 같은 법문을 듣고 믿어 이해하고 받아 지니기는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만약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어떤 중생이 이 법문을 듣고 믿어 이해하고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은 가장 보기 드문 사람이 될 것입니다. - 015_0325_c_23L“世尊!若復有人得聞是經,信心淸淨則生實相,當知是人成就第一希有功德。世尊!是實相者則是非相,是故如來說名實相實相。世尊!我今得聞如是法門,信解受持不足爲難;若當來世其有衆生,得聞是法門信解受持,是人則爲第一希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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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이 사람은 나라는 모습, 남이라는 모습, 중생이라는 모습, 수명이라는 모습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나라는 모습은 곧 모습이 아니며, 남이라는 모습, 중생이라는 모습, 수명이라는 모습도 곧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모든 모습을 여의는 것을 곧 부처라고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 015_0326_a_06L何以故?此人無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何以故?我相卽是非相,人相、衆生相、壽者相卽是非相。何以故?離一切諸相則名諸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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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서 놀라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매우 드문 사람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께서 말씀하신 제일바라밀(第一波羅蜜)은 제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여래께서 말씀하신 제일바라밀은 저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들께서도 바라밀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이것을 일컬어 제일바라밀이라고 하느니라.” - 015_0326_a_10L佛告須菩提:“如是,如是。若復有人得聞是經,不驚不怖不畏,當知是人甚爲希有。何以故?須菩提!如來說第一波羅蜜非第一波羅蜜。如來說第一波羅蜜者,彼無量諸佛亦說波羅蜜,是名第一波羅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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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여기서부터 아래의 경문(經文)은 저 복덕 중에 이 복덕이 더욱 뛰어나다는 것을 거듭 밝힌 것이다.
그 뜻은 어떤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26_a_15L論曰:自下經文重明彼福德中此福轉勝。此義云何?偈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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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괴롭지만 저것보다 훌륭한 것은
희유(希有)하고 뛰어난 이치인
저 지혜의 언덕인데 헤아려 알기 어렵고
또한 다른 법과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
015_0326_a_17L苦身勝於彼,
希有及上義,
彼智岸難量,
亦不同餘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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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실하고 심오한 이치이므로
다른 수다라(修多羅)보다 뛰어나다.
큰 원인 있고 청정하기 때문에
복 가운데 어느 복덕보다 뛰어나다. -
015_0326_a_19L 堅實解深義,
勝餘修多羅,
大因及淸淨,
福中勝福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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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_0326_b_01L
이 두 게송은 무슨 뜻을 말한 것인가?
신명(身命)을 버리는 것이 귀중한 보배를 보시하여 자생(資生)하는 것보다 더 중하지만 이와 같이 한량없는 신명을 버려서 얻은 과보의 복덕인 저 복덕보다 이 복이 더 뛰어나다. 왜냐하면 저 신명을 버리는 것이 신심(身心)을 괴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구나 법을 위해 보시를 행하는 것에 비교할 수 있겠느냐?
이 몸은 괴로운 것임을 깨닫고 혜명(慧命) 수보리는 법을 존중하였기 때문에 슬피 울면서 눈물을 흘린 것이니, 경에서 “그때 수보리가 이 경의 설법을 듣고 깊은 이치를 이해하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슬피 울었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 법문은 매우 드문 것이다. - 015_0326_a_20L此二偈說何義?捐捨身命,重於捨資生珍寶等。彼如是捨無量身命果報福德,此福德勝彼福。何以故?彼捨身命苦身心故,何況爲法捨故。念彼身苦,慧命須菩提尊重法故,悲泣流淚。如經“爾時須菩提聞說是經,深解義趣,涕淚悲泣”故。此法門希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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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존자 수보리가 비록 지혜의 눈을 가지긴 했지만 옛날부터 지금껏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매우 드문 것이니, 마치 경에서 “제가 예전부터 오늘날까지 얻었던 혜안(慧眼)으로는 일찍이 이와 같은 법문은 듣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또 이 법문은 가장 으뜸가는 것이다.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설명하기 위한 까닭이니,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최상의 이치를 성취할 수 있는가? - 015_0326_b_04L何以故?尊者須菩提雖有智眼,昔來未曾得聞,是故希有。如經“我從昔來所得慧眼,未曾得聞如是法門”故。又此法門第一,以說名般若波羅蜜故。此云何成?以上義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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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에서 “왜냐하면 수보리야, 부처님께서 설하신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왜 저 지혜의 언덕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하였는가?
저 지혜의 언덕은 사람들이 능히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바라밀이 아니라고 말했다. - 015_0326_b_09L如經“何以故?須菩提!佛說般若波羅蜜卽非般若波羅蜜”故。何故如是說?彼智岸故。彼智岸無人能量,是故非波羅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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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이 법문은 같이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가운데에는 실상(實相)이 있기 때문이요, 그밖에 다른 것에는 실상이 없기 때문이다. 불법을 제외하고 다른 곳에는 실상이 없기 때문에 그 이치를 일찍이 없었던 것이요, 일찍이 믿음을 내지 못했던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경에서 “세존이시여,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게 되어 신심이 청정해지면 실상이 생길 것이니, 이러한 사람은 가장 으뜸가고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사람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 015_0326_b_12L又此法門不同。何以故?此中有實相故。餘者非實相,除佛法餘處無實故。以彼處未曾有、未曾生信,以是義故。如經“世尊!若復有人得聞是經,信心淸淨則生實相,當知是人成就第一希有功德”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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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법문은 견실하고 매우 심오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전을 받아 지녀서 생각하여 헤아려보고 닦아 익히면 나[我]라는 따위의 모습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나라는 따위의 모습이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취해야 할 경계가 뒤바뀜이 없는 모습임을 보인 것이요, ‘나라는 따위의 모습은 곧 모습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경계를 취하는 사람도 뒤바뀜이 없는 모습임을 보인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나라는 것도 공(空)하고 법이라는 것도 공하여 아지(我智)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 - 015_0326_b_17L又此法門堅實深妙。何以故?受持此經思量修習,不起我等相故。又不起我等相者,示可取境界不倒相故。我等相卽非相者,示能取境界不倒相故。此二明我空、法空,無我智故。
- 015_0326_c_01L이와 같은 차례는 경에서 “왜냐하면 이 사람은 나라는 모습, 남이라는 모습, 중생이라는 모습, 수명이라는 모습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나라고 하는 모습은 곧 모습이 아니며, 남이라는 모습, 중생이라는 모습, 수명이라는 모습도 곧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이 일체의 모습을 여의면 곧 모든 부처라 부르기 때문입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여래께서 수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은 이치를 말씀하여 주신 것이다.
- 015_0326_b_22L如是次第,如經“何以故?此人無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何以故?我相卽是非相,人相衆生相壽者相卽是非相。何以故?離此一切諸相則名諸佛”故。如來爲須菩提說如是義。
- ‘놀란다’는 것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 하여 생겨나는 두려움이니, 바른 도가 아닌 것을 행하여 꾸짖음을 받게 되기 때문이요, ‘무섭다’는 것은 마음과 몸이 무서워하기 때문이니, 의심을 끊어 없애지 못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이며, ‘두려워한다’는 것은 한결같이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끝내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어지기 때문이니, 이러한 곳에서 멀리 떠나는 것으로서 경에서 “놀라지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라고 한 것과 같다.
- 015_0326_c_04L驚者,謂非處生懼,是故名驚,以可訶故,如非正道行故。怖者,心體怖故。以起不能斷疑心故,畏者一向怖故。其心畢竟驚怖墮,故遠離彼處。如經“不驚不怖不畏”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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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법문은 다른 수다라보다 훨씬 수승하니 마치 경에서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께서 말씀하신 제일바라밀은 제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또 이 법문은 큰 원인[大因]이라고 부르니, 마치 경에서 “여래께서 제일바라밀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 015_0326_c_08L又此法門勝餘修多羅,如經“何以故?須菩提!如來說第一波羅蜜非第一波羅蜜”故。又此法門名爲大因,如經“如來說第一波羅蜜者”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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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법문을 청정하다고 일컬으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든 부처님께서 다 같이 말씀하신 법문이기 때문이다. 경에서 “저 한량없이 많은 모든 부처님께서도 바라밀을 말씀하셨으므로 이것을 제일바라밀이라고 부른다”라고 한 것과 같다.
저 진귀한 보배를 보시하는 것 따위는 이와 같은 공덕이 없으니, 그런 까닭에 저 복덕보다는 이 복덕이 훨씬 뛰어나다는 이런 이치가 성립되는 것이다. - 015_0326_c_12L又此法門名爲淸淨,以無量佛說故。如經“彼無量諸佛亦說波羅蜜,是名第一波羅蜜”故。彼珍寶檀等無如是功德,是故彼福德中此福爲勝,如是成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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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여기서부터 아래 경문은 또 다른 의심을 끊기 위한 것이다.
어떤 의심인가?
“앞에서 이 몸은 괴로운 것임을 깨달아 그 몸을 희사하는 것은 고통 받는 몸의 과보(果報)이므로 그 복은 열등한 것이다”라고 말했으니, 만약 그렇다면 이 법문을 받아 지녀서 다른 사람에게 연설할 때, 여러 보살들이 고행(苦行)을 행하는 그러한 고행도 역시 괴로움의 과보라고 해야 할 터인데, 왜 이 법문에서는 괴로움의 과보가 되지 않는가? 이런 의심이 생길 것이므로 이 의심을 끊기 위해서이다. - 015_0326_c_16L論曰:自下經文復爲斷疑。云何疑?向說彼身苦,以彼捨身苦身果報而彼福是劣。若爾,依此法門受持演說,諸菩薩行苦行,彼苦行亦是苦果,云何此法門不成苦果?爲斷此疑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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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_0327_a_01L【經】 “수보리야, 여래께서 말씀하신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은 곧 인욕바라밀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내가 옛날에 가리왕(歌利王)에 의해 온몸이 분해되고 잘려진 일이 있었다. 나는 그때에 나라는 모습이 없었고, 남이라는 모습도 없었으며, 중생이라는 모습도 없었고, 수명이라는 모습도 없었으며, 어떤 모습이나 모습 아닌 것도 없었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내가 지난 옛날 마디마디와 사지가 분해될 때에 만약 나라는 모습ㆍ남이라는 모습ㆍ중생이라는 모습ㆍ수명이라는 모습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노여움과 원한이 생겼을 것이다. - 015_0326_c_21L經曰:“須菩提!如來說忍辱波羅蜜,卽非忍辱波羅蜜。何以故?須菩提!如我昔爲歌利王割截身體,我於爾時無我相、無人相、無衆生相、無壽者相,無相亦非無相。何以故?須菩提!我於往昔節節支解時,若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應生瞋恨。
- 수보리야, 또 기억해 보건대 과거에 5백 세(世) 동안 인욕선인(忍辱仙人)이 되었었는데, 그때 그 장소에서도 나라는 모습ㆍ남이라는 모습ㆍ중생이라는 모습ㆍ수명이라는 모습이 없었느니라.
- 015_0327_a_05L須菩提!又念過去,於五百世作忍辱仙人,於爾所世無我相、無人相、無衆生相、無壽者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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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모양을 여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마음에 머무름이 있다면 곧 머무르지 않게 해야 하니, 물질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을 내야 하고, 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에도 머무르지 않고 마음을 내야 하느니라. 그리하여 마땅히 머무는 곳이 없는 마음을 내야 하느니라.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살은 마음이 물질에 머무르지 않고 보시해야 한다’라고 하셨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를 하여야 하느니라.” - 015_0327_a_07L是故須菩提!菩薩應離一切相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何以故?若心有住則爲非住。不應住色生心,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應生無所住心,是故佛說菩薩心不住色布施。須菩提!菩薩爲利益一切衆生,應如是布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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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일체 중생의 모습은 곧 모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일체의 중생은 곧 중생이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 015_0327_a_13L須菩提言:“世尊!一切衆生相卽是非相。何以故?如來說一切衆生卽非衆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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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이것은 무슨 뜻을 나타낸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27_a_15L論曰:此示何義?偈言:
-
능히 고행(苦行)을 참아낼 적에
고행을 훌륭한 일이라 생각하면
그 복은 헤아릴 수 없으니
이와 같은 가장 훌륭한 뜻이 있다. -
015_0327_a_16L能忍於苦行,
以苦行有善,
彼福不可量,
如是最勝義。
-
나라는 모습과 성내는 모습 여의었기 때문에
진실로 고뇌(苦惱) 없었으니
즐거움을 같이하고 자비 있었기에
괴로움을 행한 결과가 이와 같다. -
015_0327_a_18L 離我及恚相,
實無於苦惱,
共樂有慈悲,
如是苦行果。
-
015_0327_b_01L
이 두 게송은 무슨 뜻을 말한 것인가?
비록 이 고행이 고행의 결과와 함께 한다 하더라도 이 고행은 고되지 않다. 그런 까닭에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이 제일이라고 말한 것이다.
피안(彼岸)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바라밀은 청정한 선근(善根)의 바탕이요, 둘째, 피안의 공덕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경에서 “이것은 곧 바라밀이 아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바라밀이 아니다’라는 것은 어떤 사람도 저 피안의 공덕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바라밀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일가는 법을 얻게 되는 것이니, 이 고행이 저 몸을 버려 희사하는 것보다 뛰어난 것인데 더구나 나라는 모습과 진에(瞋恚)의 모습을 여읜 것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 015_0327_a_19L此二偈說何義?雖此苦行同於苦果,而此苦行不疲惓,以有羼提波羅蜜名爲第一故。彼岸有二種義:一者波羅蜜淸淨善根體;二者彼岸功德不可量。如經“卽非波羅蜜”故。非波羅密者,無人知彼功德岸故。言非波羅蜜,是故爲得第一法。此苦行勝彼捨身,何況離我相、瞋恚相故。
- 또 이 행(行)엔 괴로움이 없으니 비단 괴로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즐거움이 있었으니 이것은 자비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경에서 “나는 그때 나라는 모습이 없었고 나아가 모습이라는 것도 없었으며, 모습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없었다”라고 한 것과 같다.
- 015_0327_b_04L又此行無苦,不但無苦,及有樂,以有慈悲故。如經“我於爾時無我相,乃至無相亦非無相”故。
-
이것은 자비의 마음이 서로 호응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만약 어떤 보살이 나라는 모습 따위를 여의지 못한다면 그 보살은 고행의 괴로움을 보고, 또한 보리의 마음을 버리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그를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니, 경에서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모습 따위를 여의어야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은 무슨 뜻을 밝힌 것인가?
어떤 사람이 제일가는 보리의 마음을 내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허물이 있을 것이므로 이 허물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27_b_07L此明慈悲心相應,故如是說。若有菩薩不離我相等,彼菩薩見苦行苦,亦欲捨菩提心,爲彼故說。如經“是故須菩提!菩薩應離一切相”等。此明何義?未生第一菩提心者有如是過,爲防此過。偈言:
-
보리를 버리지 않는 마음을 일으키려면
견고하고 수행해야 하나니
인욕바라밀을 행함으로써
저 능히 배우는 마음을 익힐 수 있다. -
015_0327_b_12L爲不捨心起,
修行及堅固;
爲忍波羅蜜,
習彼能學心。
-
이 게송의 뜻은 무엇인가?
어떠한 마음을 일으키는 인식작용으로 수행을 해야 하며, 어떠한 마음이 보리를 버리지 않는 모습인가?
게송에 이르기를 “인욕바라밀을 행함으로써 저 능히 배우는 마음을 익힐 수 있다”라고 하였다. - 015_0327_b_14L此義云何?爲何等心起行相而修行?爲何等心不捨相?偈言“爲忍波羅蜜,習彼能學心”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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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제일의(第一義)의 마음이라’라고 한 것은 이미 초지(初地)에 들어가서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忍辱波羅蜜)을 얻었기 때문이니, 이것을 머무르지 않는 마음[不住心]이라고 한다.
경에서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모양을 여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켜야 하느니라”라고 하였다. - 015_0327_b_17L又第一義心者,已入初地得羼提波羅蜜故。此名不住心,如經“是故須菩提!菩薩應離一切相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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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까닭인가?
이것은 머무르지 않는 마음이 생겨나는 이치를 보여준 것이다. 만약 마음이 물질 따위의 법(法)에 머무른다면 그 마음은 틀림없이 불보리(佛菩提)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 015_0327_b_20L何以故?示不住生心義故。若心住於色等法,彼心不住佛菩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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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_0327_c_01L이것은 머무르지 않는 마음으로 보시를 행해야 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 경문에서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일으켜 방편을 행한다”라고 설한 것은 단(檀:布施)바라밀이 여섯 가지 바라밀을 포섭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수행이며, 또한 중생의 일에 머물지 않는 것인가?’라는 이와 같은 의심을 끊게 하기 위하여 경에서 “수보리야, 보살은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를 해야 하느니라”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을 밝히려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27_b_22L此明不住心行於布施。此經文說不住心起行方便,以檀波羅蜜攝六波羅蜜故。云何爲利益衆生修行,而不名住於衆生事?爲斷此疑,如經“須菩提!菩薩爲利益一切衆生,應如是布施”故。此明何義?偈言:
-
수행은 중생을 이롭게 하나니
이와 같은 원인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중생과 일의 모습에 대하여
멀리 여의어야 한다는 것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
015_0327_c_05L修行利衆生,
如是因當識;
衆生及事相,
遠離亦應知。
-
이 게송의 뜻은 어떤 것인가?
보살의 수행은 이익을 주는 원인이요 바탕이 되기 때문에 그가 수행을 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지만, 중생의 모습이나 중생을 위한 일이라는 것에 집착해서도 안 되기 때문임을 나타낸 것이다. 어떤 것이 중생의 일인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27_c_07L此義云何?利益是因體故。彼修行利益衆生,非取衆生相事故。何者是衆生事?偈言:
-
임시로 붙여진 이름과 5음(陰)의 일이니
여래는 그러한 모습을 여읜다
모든 부처님은 저런 두 가지가 없기에
진실한 법을 볼 수 있다. -
015_0327_c_10L假名及陰事,
如來離彼相;
諸佛無彼二,
以見實法故。
-
이 게송의 뜻은 무엇인가?
중생과 그 5음의 일을 모습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어떤 것을 수행하여 중생의 일과 모습을 멀리 여읜다고 하는가?
곧 저 모습이라고 이름 붙인 모습은 모습이 아니니, 그것은 실체(實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중생은 곧 중생이 아니라고 한 것인데 어떠한 법으로써 5음(蔭)을 중생이라고 일컬었는가? - 015_0327_c_12L此說何義?名相衆生及彼陰事故。云何彼修行遠離衆生事相?卽彼名相相非相,以無彼實體故。以是義故,衆生卽非衆生。以何等法?謂五陰名衆生。
-
저 5음엔 중생의 실체가 없으니 실상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이 법에도 나라는 것이 없고 인(人)에도 나라는 것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무슨 까닭에 모든 불ㆍ여래께서는 여러 가지 모습을 멀리 여의셨는가?
이 구절은 저 두 가지 모습이 실상이 아님을 밝힌 것이니, 게송에 이르기를 “여래는 그러한 모습을 여의니 모든 부처님은 저런 두 가지가 없으므로 실상의 법을 볼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무슨 뜻을 말한 것인가? - 015_0327_c_17L彼五陰無衆生體,以無實故。如是明法無我、人無我。何以故?一切諸佛如來遠離一切相故。此句明彼二相不實,偈言“如來離彼相,諸佛無彼二”,以見實法故。此說何義?
- 만약 저 두 가지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모든 불ㆍ여래께서는 마땅히 저 두 가지 모습이 있다고 하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불ㆍ여래는 실상을 보시기 때문이다.
- 015_0327_c_21L若彼二實有者,諸佛如來應有彼二相。何以故?諸佛如來實見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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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_0328_a_01L【經】 “수보리야, 여래는 참된 말씀만 하시는 사람이요, 실제의 말씀만 하시는 분이며, 여여한 말씀만 하시는 분이요, 변함이 없는 말씀만 하시는 분이니라.
수보리야, 여래께서 증득하신 법과 말씀하신 법은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느니라.” - 015_0327_c_23L經曰:“須菩提!如來是眞語者、實語者、如語者、不異語者。須菩提!如來所得法,所說法無實、無妄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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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이 가운데에서 어떤 이가 의심하기를 ‘증득한 과(果)에는 도(道)가 없는데, 어떻게 그는 과에서 인(因)을 만들 수 있는가?’라고 하므로 이런 의심을 끊기 위하여 경에서 “수보리야, 여래는 참된 말씀만 하시는 분이요, 실제의 말씀만 하시는 분이며, 여여한 말씀만 하시는 분이요, 변함이 없는 말씀만 하시는 분이다”라고 하였다.
이 네 구절은 어떠한 이치를 말씀하신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28_a_03L論曰:此中有疑於證果中無道,云何彼於果能作因?爲斷此疑,如經“須菩提!如來是眞語者、實語者、如語者、不異語者”故。此四句說何等義?偈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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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에는 비록 도가 머물지 않더라도
도는 능히 과의 인(因)이 된다.
모든 부처님께선 진실한 말씀만 하시는데
그 지혜에 네 가지가 있다. -
015_0328_a_07L果雖不住道,
而道能爲因;
以諸佛實語,
彼智有四種。
-
이 게송의 뜻은 무엇인가?
저 경계에 네 가지가 있다. 그런 까닭에 여래께는 네 가지의 진실된 말이 있다고 한 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28_a_09L此義云何?彼境界有四種,是故如來有四種實語。云何四種?偈言:
-
진실한 지혜[實智]와 소승(小乘)을 말씀하시고
마하연법(摩訶衍法:大乘法)도 말씀하시며
일체의 수기(授記)의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헛된 말씀 아니 하시네. -
015_0328_a_11L實智及小乘,
說摩訶衍法,
及一切授記,
以不虛說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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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송은 무슨 뜻을 밝힌 것인가? 여래께서는 진실한 지혜로써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 불보리(佛菩提)에 대한 것, 소승법, 대승법, 수기의 일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것 하나도 거짓말이 아니니, 이러한 네 가지 경계가 있기 때문에 네 가지 말을 차례로 열거하였으니, 경에서 “수보리야, 여래는 참된 말씀만 하시는 분이요, 실제만을 말씀하시는 분이며, 여여한 말씀만 하시는 분이요, 변함이 없는 말씀만 하시는 분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 015_0328_a_13L此明何義?以如來實智,不妄說佛菩提,及小乘、大乘、授記之事皆不妄說,以是四境故。次第說四語,如經“須菩提!如來是眞語者、實語者、如語者、不異語者”故。
- 소승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소승의 괴로움의 진리[苦諦] 등 이러한 진리를 말씀하신 것이요, 대승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법은 나라는 것이 없는 진여(眞如)임을 말씀하신 것이니, 진여라는 것은 곧 참되고 여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 015_0328_a_18L不妄說小乘者,說小乘苦諦等唯是諦故。不妄說大乘者,說法無我眞如故,眞如者卽是眞如故。
-
수기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모든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수기에 대한 말씀으로,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그와 같이 하신 말씀은 조금도 뒤바뀜이 없기 때문이다.
경에서 “다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께서 증득하신 법과 말씀하신 법은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다’”라고 하였는데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28_a_20L不妄說授記者,一切過去未來現在授記故。如彼義,如是說,不顚倒故。經復言“須菩提!如來所得法,所說法無實、無妄語”者。何故如是說?偈言:
-
015_0328_b_01L
저 실지(實智)만을 따르고 순종하기 때문에
진실하지도 않고 거짓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설법을 듣고 증득한 과업에 집착하므로
이것을 다스리기 위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
015_0328_b_01L隨順彼實智,
說不實不虛;
如聞聲取證,
對治如是說。
-
이 게송의 뜻은 어떤 것인가?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에는 이 법이 저 법을 따르고 순종하여 증득할 수 있는 이치가 없다. 말씀하신 법으로써 저 법을 증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들었던 법에도 이와 같은 이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실이 아니라고 했고, 또한 설법하신 이 법을 따르고 순종하여 저 법을 증득할 수 있기 때문에 거짓말도 없다고 한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여래께서 증득하신 법과 말씀하신 법을 설명하신 걸까? 문자나 문장의 문구에 의존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 때문에 여래께서는 앞에서 여래는 참다운 말씀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또다시 말씀하신 법은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다고 말씀하셨는가? - 015_0328_b_03L此義云何?諸佛所說法,此法不能得彼法。而隨順義故。以所說法不能得彼證法。何以故?如所聞聲無如是義故,是故無實。以此所說法,隨順彼證法,是故無妄語。若爾,何故說如來所得法、所說法?以依字句說故。何故如來前說如來是眞語者,復言所說法無實無妄語?
- 게송에 이르기를 “설법한 것을 듣고 증득한 과업에 집착하므로 이것을 다스리기 위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라고 하였다.
- 015_0328_b_11L偈言“如聞聲取證,對治如是說”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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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 “수보리야,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깜깜한 곳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처럼, 만약 보살이 일에 마음이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한다면 그것도 이와 같으니라.
수보리야, 비유하면 눈이 있는 어떤 사람이 밤이 다 지나고 햇빛이 밝게 비추면 가지가지 빛깔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만약 보살이 일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하면 그것 또한 이와 같으니라.” - 015_0328_b_12L經曰:“須菩提!譬如有人入闇,則無所見。若菩薩心住於事而行布施,亦復如是。須菩提,譬如人有目,夜分已盡,日光明照見種種色。若菩薩不住於事行於布施,亦復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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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다시 어떤 이가 의심하기를 ‘만약 성인은 작용이 없는 진여법(眞如法)으로 성인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면 저 진여라는 것은 어느 때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것인데, 어째서 머무르지 않는 마음만이 불보리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가? 그렇다면 머무르지 않는 마음이 아니지 않는가? 만약 어느 때 어느 곳에나 진실로 진여가 있다고 한다면 어째서 어떤 사람은 증득하고 어떤 사람은 증득하지 못하는가?’라는 이런 의심이 일어날 것이므로 그런 의혹을 끊어주기 위해서 깜깜한 곳에 들어가는 등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떤 뜻을 밝히려고 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28_b_17L論曰:復有疑,若聖人以無爲眞如法得名,彼眞如一切時一切處有,云何不住心得佛菩提則非不住?若一切時一切處實有眞如,何故有人能得、有不得者?爲斷此疑,故說入闇等喩。此明何義?偈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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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_0328_c_01L
진여는 어느 때, 어느 곳에나 항상 있건만
그런데도 진여를 증득하지 못한다.
지혜롭지 못하여 법에 머무르기 때문이니
그런 사람 말고는 지혜를 증득할 수 있다. -
015_0328_b_23L時及處實有,
而不得眞如;
無智以住法,
餘者有智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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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송의 뜻은 무엇인가?
‘모든 때[一切時]’라고 한 것은 과거ㆍ현재ㆍ미래를 말한 것이요, ‘모든 곳[一切處]’라고 한 것은 3세(世)를 말한 것이다.
진실로 진여법(眞如法)이 있다면 중생들이 어째서 진여를 증득하지 못하는가?
게송에 말하기를 “지혜롭지 못하여 법에 머무르기 때문이니”라고 하였으니 저들은 지혜롭지 못하여 마음이 법에 머무르기 때문에 진여를 증득하지 못한다. - 015_0328_c_02L此義云何?一切時者,謂過、現、未來。一切處者,謂三世。衆生實有眞如法,何故不得?偈言“無智以住法”故。彼無智以心住法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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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또 무슨 뜻이 있는가?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마음이 법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진여를 얻을 수 있다.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모든 불ㆍ여래는 청정한 진여로 그 이름을 얻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머무름이 있는 마음으로는 불보리를 증득하지 못한다.
또 여기에서 든 비유는 무슨 뜻을 밝히려고 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28_c_06L此復何義?不淸淨故。以有智者心不住法,是故能得。以是義故,諸佛如來淸淨眞如得名,是故住心不得佛菩提。又此譬喩明於何義?偈言:
-
깜깜하여 어두운 것은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것과 같고
밝은 것은 지혜가 있는 것과 같다.
대치(對治)와 대법(對法)이 되니
법을 얻고 법을 잃음도 이와 같다. -
015_0328_c_10L闇明愚無智,
明者如有智;
對治及對法,
得滅法如是。
-
이 게송은 무슨 뜻이 있는가?
저 어둠과 밝음으로 비유하는 것이 법과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것’이라고 한 것은 지혜가 없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요, ‘햇빛처럼 밝다’는 것은 지혜가 있는 이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눈이 있는 사람’이란 무슨 뜻을 밝힌 것인가?
게송에 말하기를 ‘대치와 대법이 되니, 법을 얻고 법을 잃음도 이와 같다’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기 때문에 이와 같은 차례가 있게 되었다.
또 ‘눈이 있다’고 한 것은 능히 대하여 치료하는 법과 같고 ‘밤이 다 끝났다’라고 한 것은 다스려야 할 깜깜한 법이 다한 것과 같다.
‘햇빛이 밝게 비춘다’라고 한 것은 능히 다스리는 법이 앞에 나타난 것과 같으니, 경에서 “수보리야,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깜깜한 곳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처럼”이라고 한 것과 같다. - 015_0328_c_12L此義云何?彼闇明喩者,相似法故。闇者示現無智,日光明者示現有智。有目者明何義?偈言“對治及對法,得滅法如是”故。如是次第,又有目者如能對治法故。夜分已盡者,如所治暗法盡故。日光明照者,如能治法現前故。如經“須菩提!譬如有人入暗,則無所見”如是等故。
- 【經】 “또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능히 이 법문(法門)에서 그 뜻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수행하면 여래는 부처님의 지혜로써 이런 사람을 다 알 것이요, 이런 사람들을 모조리 볼 것이며, 이런 사람을 다 깨닫게 하여 모두 한량없고 끝없는 공덕의 덩어리를 성취할 수 있게 할 것이니라.
- 015_0328_c_20L經曰:“復次須菩提!若有善男子善女人,能於此法門受持讀誦修行,則爲如來以佛智慧悉知是人、悉見是人、悉覺是人,皆得成就無量無邊功德聚。
-
015_0329_a_01L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른 아침에 항하강의 모래알만큼 많고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한낮에 다시 항하강의 모래알만큼 많고 많은 몸으로 보시하며, 저녁 무렵에 또다시 항하강의 모래알만큼 많고 많은 몸으로 보시하여 이와 같이 항하강의 모래알만큼 한량없이 많은 몸과 이와 같이 백천만억 나유타(那由他)겁만큼 많은 몸을 보시하는 이가 있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이 법문을 듣고 신심을 내어 비방하지 않는다면 그 복은 저 한량없는 아승기겁만큼 많은 몸을 보시한 복보다 뛰어날 것이다.
더구나 이 경을 베껴 쓰거나 받아 지녀서 읽고 외우며 수행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자세히 설법한 사람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 015_0329_a_02L須菩提!若有善男子善女人,初日分以恒河沙等身布施,中日分復以恒河沙等身布施,後日分復以恒河沙等身布施。如是捨恒河沙等無量身,如是百千萬億那由他劫以身布施。若復有人聞此法門,信心不謗,其福勝彼無量阿僧祇,何況書寫受持讀誦修行爲人廣說!”
-
【論】 이 아래는 다시 무슨 뜻을 말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29_a_09L論曰:自下復說何義?偈言:
-
어떤 법을 수행하여
어떠한 복덕을 얻는가?
또는 어떤 업(業)을 성취하는지
이와 같은 수행법을 설한 것이다. -
015_0329_a_10L於何法修行,
得何等福德?
復成就何業?
如是說修行。
-
‘어떤 법을 수행하는가’라고 한 것은 그 수행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어떻게 나타내 보였는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29_a_12L於何法修行者,示現彼行。云何示現?偈言:
-
명자(名字)에 세 가지 법 있으니
받아 지니고 듣고 남을 위해 연설하는 것이다.
수행은 다른 이로부터 자신에게 미치고
듣고 사색하여 수(修)의 지혜를 증득한다. -
015_0329_a_14L名字三種法,
受持聞廣說,
修從他及內,
得聞是修智。
-
이 게송에서는 무슨 뜻을 말했는가?
저 명자(名字)에서 문혜(聞慧)를 성취할 수 있다. 여기에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받는 것이요, 둘째는 지니는 것이며, 셋째는 읽고 외우는 것이다. - 015_0329_a_16L此說何義?於彼名字得成聞慧。此有三種:一者受;二者持;三者讀誦。
-
015_0329_b_01L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게송에서 이르기를 “받아 지니고 듣고 다른 사람을 위해 연설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받아 지니는 수행은 법을 그대로 보호하여 지니는 마음에 의지하기 때문이요, 읽고 외우는 수행은 문혜(聞慧)를 넓히는데 의지하기 때문이니, 널리 많이 읽고 익히는 것을 문혜라고 한다. 이 명자(名字)에 세 가지 수행법이 있으니, 경에서 “또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능히 이 법문에서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라고 한 것과 같다.
그 수행으로 어떤 것을 얻는가?
게송에 이르기를 “수행은 다른 이로부터 자신에게 미치고 듣고 사색하여 수(修)의 지혜를 증득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 015_0329_a_18L此云何知?偈言“受持聞廣說”故。受持修行,依摠持法故。讀誦修行,依聞慧廣故。廣多讀習亦名聞慧,此是名字中三種修行。如經“復次須菩提!若有善男子善女人,能於此法門受持讀誦”故。彼修行云何得?偈言“修從他及內,得聞是修智”故。
-
이것은 무슨 뜻인가?
여기에서 닦아서 얻는 모습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에게 미치는 형태이다.
어째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에게 미친다고 하는가?
법문을 듣고 나서 닦기 때문에 이러한 차례대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법을 듣고 안으로 스스로 생각하여 수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명자를 말하여 수행한다 했는데 여기서는 왜 자신(自身)을 말했는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29_b_02L此義云何?爲修得相,於他及自身。云何於他及自身?謂聞及修如是次第,從他聞法、內自思惟,爲得修行故。向說名字及以修行,此爲自身。偈言:
-
여기서는 스스로를 순숙(淳熟)하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중생도 교화하나니
일과 시간이 크기 때문에
복 가운데 가장 뛰어난 복덕이 된다. -
015_0329_b_06L此爲自淳熟,
餘者化衆生;
以事及時大,
福中勝福德。
-
이 게송의 뜻은 무엇인가?
저 명자는 문혜(聞慧)와 수행(修行)이 자기 자신을 순숙하게 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널리 설법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복덕을 얻는가?
어느 복덕이 더 뛰어난지 비교하여 헤아려본 것을 나타내 보였으니, 게송에 이르기를 “일과 시간이 크기 때문에 복 가운데 더 뛰어난 복덕이 된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니, 여기에서 몸을 버린 복덕이 앞에서 몸을 버린 복덕보다 더 뛰어나다. - 015_0329_b_08L此義云何?彼名字聞慧修行爲自身淳熟故,餘者化衆生廣說法故。得何等福德者,示現勝挍量福德故。偈言“以事及時大,福中勝福德”故,此捨身福德勝於前捨身福德。
-
어째서 더 뛰어난가?
일이 뛰어나기 때문이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니, 곧 하루 동안에 많은 시간 동안 몸을 희사하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시간에 몸을 희사하기 때문에 경에서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첫 아침에 항하강의 모래알만큼 많고 많은 몸을 보시하고 나아가 또 다른 어떤 사람이 이 법문을 듣고 신심을 내어 비방하지 않는다면 그 복은 저 한량없는 아승기겁만큼이나 많은 몸을 보시한 복보다 뛰어날 것이다. 더구나 이 경을 베껴 쓰거나 받아 지녀서 읽고 외우며 수행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자세히 설법하는 사람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한 것과 같다. - 015_0329_b_13L云何勝?以事勝故、以時大故,卽一日時多捨身故,復多時故。如經“須菩提!若善男子善女人,初日分以恒河沙等身布施,乃至若復有人聞此法門信心不謗,其福勝彼無量阿僧祇,何況書寫受持、讀誦修行、爲人廣說”故。
-
015_0329_c_01L【經】 “수보리야, 요약하여 말하건대 이 경에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하고 칭량(稱量)할 수 없으며 끝없이 많은 공덕이 있으니, 이 법문은 여래께서 대승(大乘)의 마음을 일으킨 사람을 위하여 말씀하셨고, 최상승(最上乘)의 마음을 낸 사람을 위하여 말씀하셨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녀서 읽고 외우며 수행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한다면, 여래께서는 이런 사람을 다 알고 이런 사람을 다 보며 그들로 하여금 모두 불가사의하고 칭량할 수 없으며 끝없고, 한량없는 많은 공덕의 덩어리를 성취하게 할 것이니, 이와 같은 사람들은 곧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어깨에 메게 되리라. - 015_0329_b_19L經曰:““須菩提!以要言之,是經有不可思議不可稱量無邊功德。此法門如來爲發大乘者說、爲發最上乘者說,若有人能受持讀誦修行此經廣爲人說,如來悉知是人、悉見是人,皆成就不可思議不可稱無有邊無量功德聚。如是人等,則爲荷擔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
-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소승의 법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 경에 대해 능히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수행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해설(解說)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나라는 견해, 중생이라는 견해, 남이라는 견해, 수명이라는 견해를 가진 이가 있으면, 이 법문에서 그 뜻을 받아 지니거나 읽고 외우거나 수행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해설하는 그런 이치는 없을 것이다. - 015_0329_c_04L何以故?須菩提!若樂小法者,則於此經不能受持讀誦修行爲人解說。若有我見、衆生見、人見、壽者見,於此法門能受持讀誦修行爲人解說者,無有是處。
- 수보리야, 어느 곳이든지 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이면 일체 세간의 천상과 인간과 아수라(阿修羅)들이 틀림없이 공양할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그리고 이곳은 곧바로 탑이 되어 모두 공경하며 예를 올리고 주위를 에워싸고 돌 것이요, 여러 가지 꽃과 향을 그곳에 뿌리게 될 것이니라.
- 015_0329_c_08L須菩提!在在處處若有此經,一切世閒天、人、阿修羅所應供養,當知此處則爲是塔,皆應恭敬作禮圍繞,以諸花香而散其處。
- 또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데도 사람들에게 경멸당하거나 천대받는 일이 있다면, 무슨 까닭이겠는가? 이 사람은 과거 세상에서 지은 죄업(罪業)으로 틀림없이 악한 세계에 떨어질 것이로되 금세에서 사람들에게 경멸당하고 천대받기 때문에 과거세에 지은 죄업이 소멸되고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되리라. 수보리야, 내가 생각해보니 과거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을 연등(燃燈)부처님 앞에서 84억 나유타(那由他) 백천만 여러 부처님을 만날 수 있었는데, 내가 다 친히 받들어 공양하고 헛되이 세월을 지나쳐버린 적이 없었느니라.
- 015_0329_c_12L復次須菩提!若善男子善女人,受持讀誦此經,爲人輕賤。何以故?是人先世罪業應墮惡道,以今世人輕賤故,先世罪業則爲消滅,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須菩提!我念過去無量阿僧祇阿僧祇劫,於然燈佛前得値八十四億那由他百千萬諸佛,我皆親承供養無空過者。
- 수보리야, 이와 같이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들을 내가 다 몸소 받들어 공양하고 헛되이 세월을 보낸 적이 없었느니라.
- 015_0329_c_19L須菩提!如是無量諸佛,我皆親承供養無空過者。
- 만약 또 어떤 사람이 후세(後世) 말법시대에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거나 읽고 외우며 수행하는 이가 있어 그렇게 해서 얻은 공덕이 있다면, 내가 모든 부처님들께 공양한 공덕은 저것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분, 나아가 어떠한 산수(算數)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을 것이니라.
- 015_0329_c_21L若復有人於後世末世,能受持讀誦修行此經所得功德,我所供養諸佛功德,於彼百分不及一,千萬億分乃至筭數譬喩所不能及。
-
015_0330_a_01L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후세 말법 시대에 이 경을 받아 지니거나 읽고 외우며 수행하면 그렇게 해서 얻은 공덕은, 가령 내가 다 갖추어 말한다면, 혹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곧 미쳐서 날뛸 것이요, 의혹하고 믿지 않을 것이니라.
수보리야,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이 법문도 불가사의하지만 과보(果報)도 불가사의하리라.” - 015_0330_a_01L須菩提!若有善男子善女人,於後世末世有受持讀誦修行此經,所得功德若我具說者,或有人聞心則狂亂疑惑不信。須菩提!當知是法門不可思議,果報亦不可思議。”
-
【論】 다시 어떤 업(業)을 수행하여 성취하는가?
지금 그가 수행하는 업에 대하여 밝히겠다.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30_a_06L論曰:復成就何業修行者?今顯彼修行業。偈言:
-
다른 경계가 아닌
오직 이 성품만이 큰 사람이 의지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네.
희유하여 듣고 믿기 힘든 법
무상계(無上界)를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
015_0330_a_08L非餘者境界,
唯依大人說,
及希聞信法,
滿足無上界。
-
참되고 미묘한 법 받아 지니고
존중하면 몸이 복을 얻으리.
모든 장애 멀리 여의면
또한 속히 법을 증득할 수 있으리. -
015_0330_a_10L 受持眞妙法,
尊重身得福,
及遠離諸障,
復能速證法。
-
가지가지 세력 이루고
크고 묘한 과보(果報) 얻으리니
이와 같은 뛰어난 업(業)
이 법에서 수행하는 것임을 알라. -
015_0330_a_11L 成種種勢力,
得大妙果報,
如是等勝業,
於法修行知。
-
이 세 게송에서는 무슨 뜻을 설명하려고 한 것인가?
‘불가사의한 것이 있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경계를 보인 것이요, ‘칭량(稱量)할 수 없다’는 것은 오직 대인(大人)만을 말한 것이요, 성문(聲聞) 등과는 함께 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가장 으뜸가는 대승에 머무는 중생을 위하여 설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은 큰 사람만이 의지하는 것임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 015_0330_a_12L此三行偈說何等義?有不可思議者,示不可思議境界故。不可稱量者,謂唯獨大人,不共聲聞等,以爲住第一大乘衆生說故,此示依止大人故。
- 또 ‘대승(大乘)이라고 말한 것은 가장 오묘한 대승이 수행하는 것이 뛰어나기 때문이요, ‘소승(小乘)을 믿는 사람은 이 법을 들을 수 없다’라고 한 것은, 듣고 능히 법을 믿는 이가 드물다는 것을 보인 것이니, 경에서 “요약하여 말하건대 이 경에는 불가사의하고 칭량할 수 없는 한량없이 많은 공덕이 있으니, 여래께서 대승의 마음을 일으킨 사람을 위하여 말씀하셨고, 최상승(最上乘)의 마음을 낸 사람을 위하여 말씀하셨느니라”라고 한 것과 같다.
- 015_0330_a_16L又說大乘者,最妙大乘修行勝故,。以信小乘等則不能聞此,示希聞而能信法故。如經“以要言之,是經有不可思議不可稱量無邊功德,如來爲發大乘者說、爲發最上乘者說”故。
- 015_0330_b_01L‘희유하여 듣기 어렵다’는 것은 불가사의 등의 문구(文句)를 말하는 것이니, 불가사의한 복덕을 얻어 만족한 성품을 나타낸 때문이요, 복덕과 선근이 만족하기 때문이니, 이것은 불가사의 등의 문구를 설명한 것으로서 경에서 “모두 불가사의하고 칭량(稱量)할 수 없는 끝없고, 한량없는 많은 공덕의 덩어리를 성취하게 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 015_0330_a_21L希聞者,謂不可思議等文句。得不可思議等福德,顯滿足性故。以福德善根滿足故,此說不可思議等文句。如經“皆成就不可思議、不可稱、無有邊、無量功德聚”故。
- ‘이와 같은 사람 등은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어깨에 짊어지게 될 것이다’라고 한 것은 진실하고 미묘한 법을 받아 지님을 나타내 보이려고 한 까닭이요, ‘법을 받아 지닌다’라고 한 것은 곧 큰 보리를 어깨에 짊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경에서 “이와 같은 사람 등은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어깨에 짊어진다”라고 한 것과 같다.
- 015_0330_b_03L如是人等則爲荷擔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示現受持眞妙法故。受持法者,卽是荷擔大菩提。如經“如是人等,則爲荷擔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
- ‘이 경이 있는 곳마다 공양을 하게 된다’라고 한 것은 이 사람은 틀림없이 아주 확실하게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리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리니, 경에서 “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일체 세간의 천상과 인간과 아수라들이 틀림없이 공양할 것이니, 이곳은 탑이 되어 모두 공양하여 예를 올리고 주위를 에워싸고 돌면서 여러 가지 꽃과 향을 그곳에 뿌리게 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 015_0330_b_07L在在處處供養者,當知是人必定成就無量功德。如經“在在處處若有此經,一切世閒天、人、阿修羅所應供養,當知此處則爲是塔,皆應恭敬作禮圍繞,以諸花香而散其處”故。
-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데도 사람들에게 경멸당하고 천대받는다’라고 한 것은 일체의 장애를 멀리 여읜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준 것이다.
왜 사람들에게 경멸당하고 천대받는데 모든 장애를 여읜다고 말하는가?
큰 공덕이 있기 때문이니, 경에서 “이 사람은 과거 세상에서 지은 죄업이 소멸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 015_0330_b_12L受持讀誦此經爲人輕賤者,示現遠離一切諸障故。何故爲人輕賤而離諸障?以有大功德故。如經“是人先世罪業則爲消滅”故。
-
‘연등부처님 앞에서 모든 부처님을 공양한 공덕에 비해 미래의 말법 시대에 이 법문을 받아 지닌 공덕은 그 복이 저것보다 훨씬 많다’라고 한 것은 곧 많은 복덕의 장엄을 속히 원만하게 성취하기 때문이니, 경에서 “만약 또 어떤 사람이 후세 말법 시대에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수행하면 그렇게 해서 얻은 공덕은 내가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고 얻은 공덕이 그것에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분의 일, 나아가 어떤 산수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 법문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과보(果報)도 불가사의하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을 밝힌 것인가? - 015_0330_b_15L於然燈佛前供養諸佛功德,於後末世受持此法門功德福多於彼者,此示速證菩提法故,以多福德莊嚴速疾滿足故。如經“若復有人,於後世末世能受持讀誦修行此經,所得功德,我所供養諸佛功德,於彼百分不及一,千萬億分乃至筭數譬喩所不能及”故。當知是法門不可思議,果報亦不可思議者,此明何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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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_0330_c_01L게송에 이르기를 “가지가지 세력 이루고 크고 묘한 과보를 얻는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니, 이른바 사천왕(四天王)ㆍ석제환인(釋提桓因)ㆍ범천왕(梵天王) 등을 거두어 받아들여 세력을 성취한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만약 이 일을 들으면 그 마음이 혼미하고 혼란해진다’라고 한 것은 그 과보가 불가사의하고 매우 수승하고 절묘하기 때문이니, 지(智)로써 생각해서 헤아릴 수 있는 경계가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저기에 머물러 수행하는 동안에 이와 같은 공덕을 이룩하니, 그런 까닭에 저것을 수행한 업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마치 경에서 “이 법문도 불가사의하지만 과보도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리라”라고 한 것과 같다. - 015_0330_c_01L偈言“成種種勢力,得大妙果報”故。所謂攝受四天王、釋提桓因、梵天王等,成就勢力故。若聞此事其心迷亂者,以彼果報不可思議甚爲勝妙,示非思量智境界故。住彼修行中成如是等功德,是故彼修行等業應知。如經“當知是法門不可思議,果報亦不可思議”故。
-
【經】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야 하며,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수행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합니까?” - 015_0330_c_08L經曰:爾時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菩薩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云何住?云何修行?云何降伏其心?”
-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려고 하면, 마땅히 이런 마음을 내야 하느니라. 즉 ‘나는 마땅히 모든 중생들을 멸도(滅度)케 하여 그들로 하여금 무여열반(無餘涅槃)의 경계에 들어가게 하리라. 이와 같이 모든 중생들을 멸도케 한 뒤에라도 한 중생도 실제로 멸도케 한 사람이 없다’라고 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중생이라는 모습, 남이라는 모습, 수명이라는 모습이 있다면 곧 보살이 아니니라.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진실로 어떠한 법도 없는 것을 일컬어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다고 하기 때문이니라.” - 015_0330_c_11L佛告須菩提:“菩薩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當生如是心:“我應滅度一切衆生令入無餘涅槃界。”如是滅度一切衆生已,而無一衆生實滅度者。何以故?須菩提!若菩薩有衆生相、人相、壽者相,則非菩薩。何以故?須菩提!實無有法名爲菩薩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故。”
-
【論】 무슨 까닭에 앞에서 세 가지 수행에 대하여 말했는데 지금 다시 거듭 말하는가? 여기에서 어떤 것이 더 뛰어난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30_c_19L論曰:何故前說三種修行,今復重說,此有何勝?偈言:
-
속마음으로 스스로 수행하면서
나는 보살이 될 것이라는 마음 남아 있다면
이것은 곧 마음에 장애가 되리니
머무르지 않는 도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
015_0330_c_21L於內心修行,
存我爲菩薩,
此卽障於心,
違於不住道。
-
015_0331_a_01L
이 게송의 뜻은 무엇인가?
만약 보살이 자신의 세 가지 수행에 대하여 이와 같은 마음을 내어 ‘나는 보살의 대승에 머무른다, 나는 이와 같이 수행한다, 나는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시킨다’는 따위, 보살이 이러한 분별심을 낸다면 보리행(菩提行)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게송에 이르기를 “속마음으로 스스로 수행하면서 ‘나는 보살이 될 것이다’라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이것은 마음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 015_0330_c_23L此義云何?若菩薩於自身三種修行,生如是心:“我住於菩薩大乘,我如是修行,我如是降伏其心。”菩薩生此分別,則障於菩提行。偈言“於內心修行,存我爲菩薩,此卽障於心”故。
-
어떤 것들이 마음에 장애가 되는 것인가?
게송에 이르기를 “머무르지 않는 도에 어긋나기 때문이다”라고 했기 때문이니, 경에서 “왜냐하면 수보리야, 진실로 아무 법도 없는 것을 일컬어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한 까닭이다. - 015_0331_a_05L障何等心?偈言“違於不住道”故。如經“何以故?須菩提!實無有法名爲菩薩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故。
- 【經】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께서 연등부처님의 처소에 있었을 때에 어떤 법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했다고 생각하느냐?”
- 015_0331_a_08L經曰:“須菩提!於意云何?如來於然燈佛所,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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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일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풀이한다면 부처님께서 연등부처님의 처소에 계셨을 적에 어떤 법에서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 015_0331_a_11L須菩提白佛言:“不也。世尊!如我解佛所說義,佛於然燈佛所,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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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수보리야, 실제로 어떤 법에서도 여래가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없느니라. - 015_0331_a_13L佛言:“如是,如是。須菩提!實無有法如來於然燈佛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 수보리야, 만약 법에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있다면, 연등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수기(授記)를 주시면서 ‘너는 다음 세상에 틀림없이 부처가 되리니 이름은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할 것이다’라고 하시지 않았을 것이니라. 진실로 어떤 법에서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것이 없었으니, 그런 까닭에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를 주시면서 ‘마나바(摩那婆)여, 너는 다음 세계에 틀림없이 부처가 되리니 이름을 석가모니라고 하리라’는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라는 것은 진실로 진여이기 때문이다.
- 015_0331_a_15L須菩提!若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然燈佛則不與我授記:‘汝於來世當得作佛,號釋迦牟尼。’以實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故然燈佛與我授記,作如是言:‘摩那婆!汝於來世當得作佛,號釋迦牟尼。’何以故?須菩提!言如來者卽實眞如。
-
015_0331_b_01L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셨다’라고 한다면 이 사람의 말은 진실이 아니니라.
수보리야, 진실로 어떤 법에서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여래께서 증득하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그 가운데 진실한 것도 아니요 거짓말도 아니니, 그런 까닭에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든 법은 다 부처님의 법이니라.
수보리야, 이른바 일체법(一切法), 일체법이라고 하는 것은 곧 일체법이 아니니 그러므로 일체법이라고 부르느니라.” - 015_0331_a_22L須菩提!若有人言‘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是人不實語。須菩提!實無有法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須菩提!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於是中不實不妄語,是故如來說一切法皆是佛法。須菩提!所言一切法,一切法者卽非一切法,是故名一切法。”
-
【論】 여기에서 의심하기를 ‘만약 보살이라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면, 왜 석가여래는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보살행을 행하셨을까?’라고 할 것이므로 이런 의심을 끊게 하기 위하여 경에서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께서 연등부처님의 처소에 계셨을 적에 어떤 법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했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말한 것과 같다.
이것은 무슨 뜻을 밝히려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31_b_07L論曰:此中有疑,‘若無菩薩,云何釋迦如來於然燈佛所行菩薩行?’爲斷此疑,如經“‘須菩提!於意云何?如來於然燈佛所,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不也。世尊!’”如是等。此明何義?偈言:
-
뒷세상의 일을 수기하셨으므로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행한 것은 훌륭한 게 아니다.
보리는 그의 수행과 동등하여
진실로 유위(有爲)의 모습이 아니다. -
015_0331_b_12L以後時授記,
然燈行非上;
菩提彼行等,
非實有爲相。
-
이 게송의 뜻은 무엇인가?
연등부처님의 처소에 계셨을 때에 가장 으뜸이 되는 보살행(菩薩行)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때에 수행한 여러 가지 행은 어떤 법에서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 부처님의 처소에서 이미 보리를 증득하였다면 훗날 모든 부처님들께서 나에게 수기(授記)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 015_0331_b_14L此義云何?於然燈佛時非第一菩薩行。何以故?我於彼時所修諸行,無有一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若我於彼佛所已證菩提,則後時諸佛不授我記,
- 그러므로 나는 그때의 수행으로는 부처를 성취하지 못했다고 하였으므로 게송에 이르기를 “뒷세상의 일을 수기하셨으니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수행한 것은 훌륭한 게 아니다”라고 하였다. “만약 보리(菩提)가 없다면 곧 모든 불ㆍ여래도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비방하면서 한결같이 모든 부처님은 없다고 주장하게 될 것이므로 이런 의혹을 끊게 하기 위하여 경에서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는 진실로 진여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 015_0331_b_19L是故我於彼時行未成佛,故偈言“以後時授記,然燈行非上”故。若無菩提,卽無諸佛如來。有如是謗,謂一向無諸佛。爲斷此疑,如經“何以故?須菩提!言如來者卽實眞如”故。
- 여기에서 ‘진실[實]’이라고 한 것은 뒤바뀌지 않는다는 뜻이요, ‘진여(眞如)’라고 한 것은 달라지거나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 015_0331_b_23L實者非顚倒義故,眞如者不異不變故。
-
015_0331_c_01L‘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말한다면’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이려는 것인가?
게송에 이르기를 “보리는 그의 수행과 동등하다”라고 하였다. - 015_0331_c_01L‘須菩提!若有人言: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此示何義?偈言“菩提彼行等”故。
-
이 뜻은 어떤 것인가?
저 보살행에 대하여, 만약 어떤 사람이 진실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허망한 것이다. 이와 같아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어떤 사람이 말한다면 이것도 허망한 것이기 때문에 ‘보리는 그의 수행과 동등하다’라고 말한 것이다. - 015_0331_c_04L此義云何?彼菩薩行,若人言有實者,此則虛妄。如是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若人言得者,此亦虛妄故,言“菩提彼行等”故。
-
만약 이와 같아서 어떤 사람이 비방하면서 말하기를 “여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할 것이므로 이런 의심을 끊게 하기 위하여 경에서 “수보리야, 여래가 증득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진실도 아니요 거짓말도 아니다”라고 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의미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여래께서는 저 보리를 증득하셨기 때문이니, 게송에 이르기를 “진실로 유위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위의 모습’이라는 것은 5음(陰)의 모양을 말한 것이니, 저 보리법에는 물질 등의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 무엇을 말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31_c_07L若如是有人謗言:如來不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爲斷此疑,如經“須菩提!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不實不妄語”故。此義云何?以如來得彼菩提故。偈言“非實有爲相”故。有爲相者,謂五陰相,彼菩提法無色等相故。此復云何?偈言:
-
저것은 곧 모습이 아닌 것을 모습이라 하였으니
거짓말이 아니고
이 법은 곧 모든 부처님의 법이니
모두가 자체(自體)의 모습이다. -
015_0331_c_14L彼卽非相相,
以不虛妄說;
是法諸佛法,
一切自體相。
-
이 게송의 뜻은 무엇인가?
저것은 곧 색(色) 등의 모습이 아니요 색 등이 없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저것은 곧 보리의 모습이니, 그런 까닭에 게송에 이르기를 “저것은 모습이 아닌 것을 모습이라 하였으니 거짓말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여래께서 일체법은 곧 부처님의 법이다”라는 이러한 말씀을 하셨는데 이 뜻은 무엇인가? - 015_0331_c_16L此義云何?彼卽於色等非相,無色等相故,彼卽菩提相故。是故偈言“彼卽非相相,以不虛妄說”故。“是故如來說一切法佛法”如是等,此義云何?
- 여래께서 이와 같은 법을 증득하셨기 때문이니, 게송에 이르기를 “이 법은 곧 모든 부처님의 법이니 모두가 자체의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자체의 모습’이라는 것은 체가 아닌데 자체라고 한 것이다.
- 015_0331_c_20L以如來得如是法。偈言“是法諸佛法,一切自體相”故。自體相者,非體自體故。
-
015_0332_a_01L이것은 무슨 뜻을 밝힌 것인가?
모든 법은 진여의 바탕이기 때문이요, 그 법을 여래께서 증득하셨으니 그런 까닭에 모든 법은 부처님의 법이라고 하였다.
그곳에는 색(色) 등의 모습이 머물지 않기 때문에 저 일체 색 등의 모든 법은 법이 아니니, 이와 같이 모든 법은 법이 아니므로 이 모든 법이 불법인 것이다. 저 법은 모습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그 법의 모습에 지속적으로 머물지 않는 것이다. - 015_0331_c_22L此明何義?一切法眞如體故。彼法如來所證,是故言一切法佛法。彼處色等相不住故,彼一切色等諸法非法。如是諸法非法,卽是諸法,法以無彼法相,常不住持彼法相故。
-
【經】 “수보리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그 몸이 미묘하고 큰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몸이 미묘하고 크다는 것은 큰 몸이 아니니, 그런 까닭에 여래께서 큰 몸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 015_0332_a_04L經曰:“須菩提!譬如有人其身妙大。”須菩提言:“世尊!如來說人身妙大,則非大身,是故如來說名大身。”
-
【論】 큰 몸에 비유한 것은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32_a_07L論曰:大身譬喩,示現何義?偈言:
-
저 법신 부처님께 의지하였으므로
큰 몸에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그 몸은 모든 장애를 벗어나서
일체의 경계에 두루 계신다. -
015_0332_a_08L依彼法身佛,
故說大身喩,
身離一切障,
及遍一切境。
-
큰 공덕 큰 바탕 이루었으므로
큰 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몸은 존재하는 실체의 몸 아니니
그런 까닭에 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
015_0332_a_10L 功德及大體,
故卽說大身;
非身卽是身,
是故說非身。
-
이 두 게송은 무슨 뜻을 보인 것인가?
필경에 번뇌장(煩惱障)과 지장(智障:所智障)을 멀리 여의었으며, 마침내 법신(法身)을 원만하게 갖추었기 때문이다.
여기엔 어떤 두 가지 뜻이 있는가? - 015_0332_a_11L此二偈示何義?畢竟遠離煩惱障智障,畢竟具足法身故。此復云何?有二種義:
-
하나는 모든 처소에 두루 존재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공덕이 큰 것이다. 그런 까닭에 큰 몸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니, 게송에서 “큰 공덕 큰 바탕 이루었다”라고 하였다.
‘모든 처소에 두루 존재한다’는 것은 진여(眞如)는 모든 법에 존재하여 차별이 없기 때문이니, 게송에 이르기를 “그 몸은 존재하는 실체의 몸이 아니니 그런 까닭에 몸이 아니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 015_0332_a_14L一者遍一切處;二者功德大,是故名大身。偈言“功德及大體”故。遍一切處者,眞如一切法不差別故。偈言“非身卽是身,是故說非身”故。
- 경에서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몸이 미묘하고 크다고 한 것은 큰 몸이 아니니, 그런 까닭에 여래께서 큰 몸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무슨 뜻인가?
- 015_0332_a_17L如經“世尊!如來說人身妙大,則非大身,是故如來說名大身”故。此說何義?
- ‘몸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모든 모습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요, ‘큰 몸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진여의 실체가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미묘하고 큰 몸이라 하였으니, 경에서 “이것을 일컬어 미묘하고 큰 몸이라고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 015_0332_a_19L非身者無有諸相,是名非身;大者,有眞如體,如是卽名妙大身。如經“是名妙大身”故。
-
【經】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보살도 이와 같아서 만약 ‘나는 마땅히 한량없는 중생들을 멸도(滅度)케 하리라’라고 이런 말을 한다면 보살이 아니니라.” - 015_0332_a_21L經曰:佛言:“須菩提!菩薩亦如是。若作是言:‘我當滅度無量衆生。’則非菩薩。”
-
015_0332_b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떠한 실제의 법도 보살이라고 할 것이 있겠느냐?” - 015_0332_a_23L佛言:“須菩提!於意云何?頗有實法名爲菩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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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진실로 어떤 법도 보살이라고 부를 것이 없사옵니다.” - 015_0332_b_02L須菩提言:“不也。世尊!實無有法名爲菩薩。”
-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법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중생이라는 것도 없으며, 남이라는 것도 없고, 수명이라는 것도 없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나는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해야 한다’라고 이와 같은 말을 한다면 이것은 보살이라고 부를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부처님 국토를 장엄하게 한다, 부처님 국토를 장엄하게 한다’라고 한 것은 곧 장엄이 아닌데, 이것을 일컬어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내가 없다는 이치와 나의 법이 없다는 이치를 통달하였다면 여래는 진실로 이를 보살, 보살이라고 말씀하시리라.” - 015_0332_b_03L是故佛說一切法無‘’我、無衆生、無人、無壽者。須菩提!若菩薩作是言:‘我莊嚴佛國土。’是不名菩薩。何以故?如來說莊嚴佛土,莊嚴佛土者卽非莊嚴,是名莊嚴佛國土。須菩提!若菩薩通達無我無我法者,如來說名眞是菩薩菩薩。”
-
【論】 여기에서 어떤 이가 의심하기를 ‘만약 보살이 없다면 모든 부처님도 큰 보리를 성취하지 못할 것이며, 중생들도 큰 열반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또한 청정한 부처님의 국토도 없을 터인데, 만약 이와 같다면 무슨 까닭에 모든 보살마하살이 발심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열반에 들어가게 하려고 하며, 마음을 일으켜 수행하여 부처님의 국토를 청정하게 하려고 할까?’라고 할 것이므로 이 아래의 경문(經文)에서는 이런 의문을 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어떻게 의심을 끊는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32_b_09L論曰:此中有疑,若無菩薩者,諸佛亦不成大菩提,衆生亦不入大涅槃,亦無淸淨佛國土。若如是,爲何義故,諸菩薩摩訶薩發心欲令衆生入涅槃,起心修行淸淨佛國土?自下經文爲斷此疑。云何斷疑?偈言:
-
진여의 법계를 통달하지 못하여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마음 일으키거나
국토를 청정하게 하겠다는 생각 일으키니
이런 마음 일어나면 이것은 곧 뒤바뀐 생각이다. -
015_0332_b_15L不達眞法界,
起度衆生意,
及淸淨國土,
生心卽是倒。
-
이 게송의 뜻은 무엇인가?
만약 이와 같은 마음을 낸다면 곧 이것은 뒤바뀐 망상으로 보살이 아닐 것이니, 만약 그렇다면 어떤 마음을 일으켜야 보살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경에서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나라는 것이 없다는 진리와 나의 법이라는 것도 없다는 진리를 사무치게 깨달으면 여래는 진실로 이를 보살, 보살이라고 하리라” 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이려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5_0332_b_17L此義云何?若起如是心卽是顚倒非菩薩者,起何等心名爲菩薩?如經“須菩提!若菩薩通達無我無我法者,如來說名眞是菩薩菩薩”故。此示何義?偈言:
-
중생과 보살이
모든 법에 나라는 것이 없음을 안다면
성인이 아니더라도 자지(自智)의 믿음과
성인의 지혜 있다고 하리. -
015_0332_b_22L衆生及菩薩,
知諸法無我,
非聖自智信,
及聖以有智。
-
015_0332_c_01L
이 게송은 무슨 뜻을 밝힌 것인가?
‘나라는 것과 나의 법이라는 것이 없음을 안다’는 것은 중생과 보살을 가리킨다. 어떤 중생과 어떤 보살이 저 법에 대하여 만일 자지(自智)의 믿음이 있다면, 세간지(世間智)이든 출세간지(出世間智)이든, 즉 이른바 범부(凡夫)든 성인이든 간에 이 사람들을 모두 보살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세제보살(世諦菩薩)과 출세제보살(出世諦菩薩)을 포함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거듭 보살, 보살이라고 말한 것이니, 경에 “여래께서는 진실로 이들을 보살, 보살이라고 부를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
015_0332_c_01L此明何義?知無我無我法者,謂衆生及菩薩。何等衆生?何等菩薩?於彼法若能自智信,若世閒智出世閒智,所謂凡夫聖人,是人名爲菩薩。此言攝世諦菩薩、出世諦菩薩,是故重說菩薩菩薩。如經“如來說名眞是菩薩菩薩”故。
金剛般若波羅蜜經論卷中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