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百論卷下

ABC_IT_K0581_T_002
016_0557_c_01L백론 하권
016_0557_c_01L百論卷下

제바보살지음
바수개사풀이
요진삼장 구마라집한역
박인성 번역
016_0557_c_02L提婆菩薩造
婆藪開士釋
姚秦三藏鳩摩羅什譯

4. 다름을 타파하는 장[破異品]
016_0557_c_04L破異品第四

【외도】 그대가 앞에서 존재와 단일성과 물단지가 다르다는 것 이것에도 과실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과실들이 있는가?
016_0557_c_05L外曰汝先言有甁異是亦有過何等過
【불자】 만약 존재 등이 다르다면 하나하나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네.수투로
만약 존재와 단일성과 물단지가 다르다면 하나하나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물단지가 존재와 단일성과 다르다면 이 물단지는 존재가 아니고 단일성이 아닐 것이다. 존재가 단일성과 물단지와 다르다면 물단지가 아니고 단일성이 아닐 것이다. 단일성이 존재와 물단지와 다르다면 물단지가 아니고 존재가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하나가 상실된다. 또 물단지가 상실될 때 존재와 단일성은 상실되지 않을 것이다. 존재가 상실될 때 단일성과 물단지는 상실되지 않을 것이다. 단일성이 상실될 때 물단지는 상실되지 않을 것이다. 다르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이 사람이 죽을 때 저 사람은 죽지 않는 것과 같다.
016_0557_c_07L內曰若有等異一一無修妒路
若有甁異各各無甁與有一異者此甁非有非一有與一甁異者非甁非一一與有甁異者非甁非有如是各各復次若甁失一不應失有失甁不應失一失甁不應失以異故譬如此人滅彼人不應滅
【외도】 그렇지 않네. 존재와 단일성이 합하기에 존재와 단일성과 물단지는 성립하네.수투로
존재와 단일성과 물단지가 비록 다르긴 하지만 물단지가 단일성과 합하기 때문에 물단지를 단일성이라고 한다. 그대가 “물단지가 상실되지만 존재와 단일성은 상실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 말은 잘못된 것이다. 왜 그러한가? 다름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화합의 다름[合異], 둘째는 분리의 다름[別異], 셋째는 변화의 다름[變異]이다. ‘화합의 다름’이란 실체[陀羅驃]와 속성[求那]의 다름 같은 것이다. ‘분리의 다름’이란 이 사람과 저 사람의 다름 같은 것이다. ‘변화의 다름’이란 소똥덩어리가 잿덩어리로 변화되는 것 같은 것이다. 다른 것이 합한 것이기 때문에 물단지가 상실될 때 단일성 또한 상실되고 단일성이 상실될 때 물단지 또한 상실된다. (그러나) 존재는 상주하기 때문에 상실되지 않는다.
016_0557_c_13L外曰不然一合故甁成修妒路
甁雖異與有合故甁名有甁與一合故甁名汝言甁失一不應失者是語非何以故異合故異有三種合異別異變異合異者如陁羅驃別異者如此人彼人變異者如牛糞團變爲灰團以異合故甁失一亦一失甁亦失有常故不失
016_0558_a_01L【불자】 만약 그렇다면 물단지가 많을 것이네.수투로
물단지가 존재와 합하기 때문에 ‘물단지가 존재한다’이다. 물단지가 단일성과 합하기 때문에 ‘한 물단지’[一甁]이다. 또 물단지이기에 ‘물단지’이다. 그러므로 물단지가 많다. 그대가 “실체와 속성은 화합의 다름이기 때문에 물단지가 상실될 때 단일성도 상실되고 단일성이 상실될 때 물단지도 상실된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대의 다름을 타파하고자 한다. 어떻게 다름으로써 다름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다시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016_0557_c_21L內曰多甁修妒路
甁與有合故有甁甁與一合故一甁又甁亦甁是故多甁汝言陁羅驃求那合異故甁失一亦失失甁亦失我欲破汝異云何以異證異應更說因
【외도】 보편이기에, 속성이기에, 존재와 단일성은 물단지가 아니네.수투로
존재는 보편[總相]이기 때문에 물단지가 아니다. 단일성은 속성이기 때문에 물단지가 아니다. 물단지는 실체[陀羅驃]이다.
016_0558_a_04L外曰摠相故求那故一非甁修妒路
有是摠相故非甁一是求那故非甁甁是陁羅驃
【불자】 만약 그렇다면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네.수투로
만약 존재는 보편이기에 물단지가 아니고 단일성은 속성이기에 물단지가 아니라면, 물단지는 실체이기에 존재가 아니고 단일성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016_0558_a_06L內曰若爾修妒路
若有是摠相故非甁一是求那故非甁甁是陁羅驃故非有非一則無甁
【외도】 많은 물단지를 인정하네.수투로
그대는 앞에서 많은 물단지를 말했다. 하나의 물단지를 타파하고자 다시 많은 물단지를 인정한다.
016_0558_a_09L外曰受多甁修妒路
汝先說多甁欲破一甁更受多甁
【불자】 단일성이 존재하지 않기에 많음도 존재하지 않네.수투로
그대는 “물단지가 존재와 합하기 때문에 ‘물단지가 존재한다’이다. 물단지가 단일성과 합하기 때문에 ‘한 물단지’이다. 또 물단지이기에 ‘물단지’이다”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世界]이 ‘한 물단지’라고 말할 때 그대는 그것을 ‘많은 물단지’라고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一] 물단지가 많은 물단지가 된다. 단일한 것[一]이 많은 것[수다한 것]이 되기 때문에 한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많은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전에는 단일한 것이고 후에는 많은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네.수투로
또 수[數法]의 최초는 하나이다. 만약 하나[단일]가 물단지와 다르다면 물단지는 단일한 것이 되지 않는다. 단일한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016_0558_a_10L內曰一無故亦無修妒路
汝言甁與有合故有甁甁與一合故一甁又甁亦甁若爾世界言一甁而汝以爲多甁是故一甁爲多一爲多故則無一甁一甁無故多亦先一後多故復次初數無故修妒路
法初一若一與甁異則甁不爲一無故多亦無
【외도】 물단지가 존재와 합하기 때문이네.수투로
물단지가 존재와 합하기 때문에 물단지를 존재라 하지만, 완전히 존재인 것은 아니다. 그렇듯이 물단지가 단일성과 합하기 때문에 물단지를 단일한 것이라고 하지만 완전히 단일한 것은 아니다.
016_0558_a_17L外曰甁與有合故修妒路
與有合故甁名有非盡有如是甁與一合故甁名一非盡一
【불자】 단지 이 언설이 있을 따름이다. 이것은 앞에서 이미 타파한 바 있다. 만약 존재가 물단지가 아니라면 물단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다시 설명하겠다.
물단지는 물단지가 아닐 것이네.수투로
만약 물단지가 존재와 합하기 때문에 물단지가 존재한다면 이 존재는 물단지 아닌 것이다. 만약 물단지와 물단지 아닌 것이 합한다면 물단지가 왜 물단지 아닌 것이 되지 않겠는가?
016_0558_a_19L內曰但有是語此事先已破若有非甁則無甁今當更說甁應非甁修妒路
若甁與有合故甁是有非甁若甁與非甁合者甁何以不作非甁
016_0558_b_01L【외도】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합함이 없기에 물단지 아닌 것이 되지 않네.수투로
물단지 아닌 것은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합함이 없다. 그러므로 물단지는 물단지 아닌 것이 되지 않는다. 이제 존재가 있기 때문에 합함이 있다. 합함이 있기 때문에 물단지가 존재한다.
016_0558_a_23L外曰無無合故非非甁修妒路
非甁名無甁無則無合是故甁不作非甁今有有故應有合有合故甁
【불자】 이제 존재가 물단지와 합하기 때문이네.수투로
만약 물단지 아닌 것이라면 존재는 없다. 존재가 없다면 합함이 없다. 이제 존재가 물단지와 합하기 때문에 존재는 물단지가 될 것이다. 만약 그대가 “물단지는 아직 존재와 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합함이 없다”고 말한다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비존재[無法]이기 때문에 합함이 없다. 이와 같이 아직 존재와 합하지 않았을 때 물단지는 비존재이고 비존재이기 때문에 존재와 합하지 않을 것이다.
016_0558_b_03L內曰今有合甁故修妒路
若非甁則無無有則無合今有合甁故有應爲若汝謂甁未與有合故無無故無如先說無法故無合如是未與有合時甁則無法無法故不應與有合
【외도】 그렇지 않네. 존재는 물단지 등을 인식하기 때문에. 등불이 그러하듯.수투로
존재는 물단지 등 사물들의 원인인 것만이 아니다. 또한 물단지 등의 사물들을 인식한다. 등불이 사물들을 비추듯이. 그렇듯이 존재는 물단지를 인식하기 때문에 물단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016_0558_b_07L外曰不然有了甁等故如燈修妒路
有非但甁等諸物因亦能了甁等諸物如燈能照諸物如是有能了甁故知有甁
【불자】 만약 존재[有法]가 인식하는 것이 마치 등불과 같다면 물단지는 미리 존재할 것이네.수투로
이제 사물들이 미리 존재하고 이후에 등불이 비추는 것이다. 존재가 만약 이와 같다면 존재와 아직 합하지 않았을 때 물단지 등의 사물들은 미리 존재할 것이다. 만약 미리 존재한다면 이후에 존재를 어떻게 쓰겠는가? 만약 존재와 아직 합하지 않았을 때 물단지 등의 사물들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와 합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면, 존재는 만듦의 원인[作因]이 아니고 인식함의 원인[了因]일 것이다. 만약 상[相]에 의해 상을 갖는 것[可相]이 성립한다면 왜 하나는 둘이 되지 않는가?수투로
또 만약 그대가 존재는 물단지의 상이기 때문에 물단지가 존재하는 것을 인식한다고 말한다면, 만약 상이 없다면 상을 갖는 사물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존재도 또한 변해서 다시 상이 있는 것이다. 만약 다시 상이 없어도 사물[法]이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고서 존재한다고 한다면 물단지 등도 그러할 것이다. 등불의 비유는 앞에서 이미 타파한 바 있다. 또 등불이 스스로 비추고 바깥의 비춤에 의지하지[假] 않는 것과 같이 물단지도 스스로 존재하고 바깥의 존재에 의존하지[待] 않는다.
016_0558_b_11L內曰若有法能了如燈甁應先有修妒路
今先有諸物然後以燈照了若如是者有未合時甁等諸物應先有若先有者後有何用若有未合無甁等諸物有合故有者有是作因非了因復次若以相可相成何故一不作二修妒路
若汝以有爲甁相故知有甁者若離相可相之物則不成是故有亦應更有相若更無相知有法爲有者甁等亦應爾燈喩先已破復次如燈自照不假外照甁亦自有不待外有
【외도】 몸의 상[身相]과 같네.수투로
부분[分]인 발에 의해서 전체[有分]를 인식하고서 몸이라고 할 때 발에서 다시 상(相)을 구하지 않듯이, 그렇듯이 존재가 물단지의 상이기 때문에 물단지가 존재하는 것을 인식할 때 존재에서 다시 상을 구하지 않는다.
016_0558_b_22L外曰如身相修妒路
如以足分知有分爲身足更不求相如是以有爲甁故知有甁有更不求相
016_0558_c_01L【불자】 만약 부분 속에 전체가 갖추어져 있다면 왜 머리 속에 발이 있지 않은가?수투로
만약 몸[身法]이 있다면 일부인 발 등(等) 속에 전체가 있는가, 부분이 있는가? 만약 전체가 있다면 머리 속에 발이 있을 것이다. 몸은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부분이 있다면 또한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전체는 부분과 같네.수투로
만약 발 속에 부분이 있다면 부분인 발과 동일할 것이다. 여타의 부분도 또한 그러하다면 전체는 부분과 동일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전체를 몸으로 하는 일은 없다. 그렇듯이 부분인 발 등 자체에 전체가 있다는 것도 동일하게 타파된다. 전체가 없기 때문에 부분들도 또한 없다.
016_0558_c_01L內曰若分中有分具者何故頭中無足修妒路
若有身法於足分等中爲具有耶爲分有若具有者頭中應有足身法一故若分有者亦不然何以故有分如分修妒路
若足中有分與足分等餘分中亦爾者則有分與分爲一是故無有有分名爲身如是足分等自有有分亦同有分無故諸分亦無
【외도】 그렇지 않네. 극미가 존재하기 때문이네.수투로
부분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극미에는 부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분 속에 존재하지 않긴 하지만 극미들이 적집해서 물단지 등의 결과를 생기게 한다. 그러므로 전체가 존재한다.
016_0558_c_09L外曰不然塵在故修妒路
諸分不無何以故微塵無分不在分中微塵集故能生甁等果是故應有有分
【불자】 만약 적집해서 물단지가 된다면 모든 것은 물단지가 될 것이네.수투로
그대가 “극미에는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저 이 언설이 있는 것일 뿐이니 후에 타파할 것이다. 지금은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극미가 적집해서 물단지가 될 때 만약 일체가 적집해서 물단지가 된다면 모든 극미가 남김없이 물단지가 될 것이다. 만약 일체가 적집해서 물단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극미는 물단지가 되지 않을 것이다.
016_0558_c_12L內曰若集爲甁一切修妒路
汝言微塵無分但有是語後當今當略說微塵集爲甁時若都集爲甁一切微塵盡應爲甁若不都集爲甁一切非甁
【외도】 실과 물방울의 적집하는 힘과 같이 극미도 그러하네.수투로
한 올 한 올의 실이 코끼리를 만들 수 없고 한 방울 한 방울의 물방울이 물단지를 채울 수 없지만 많이 적집하면 할 수 있듯이 그렇듯이 극미들이 집적하기 때문에 그 힘이 물단지가 될 수 있다.
016_0558_c_16L外曰如縷渧集力塵亦爾修妒路
如一一縷不能制象一一水渧不能滿甁多集則能如是微塵集故力能爲甁
【불자】 그렇지 않네. 확정되는 것[不定]이 아니기 때문에.수투로
한 명 한 명의 석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고 한 명 한 명의 장님이 색을 볼 수 없고 한 알 한 알의 모래가 기름을 낼 수 없으니 많이 적집해도 할 수 없듯이 그렇듯이 극미들 한 개 한 개도 할 수 없고 많이 적집해도 할 수 없다.
016_0558_c_19L內曰不然不定故修妒路
譬如一一石女不能有子一一盲人不能見色一一沙不能出油多集亦不如是微塵一一不能多亦不能
016_0559_a_01L【외도】 부분 부분이 힘이 있기에 확정되지 않은 것이 아니네.수투로
실과 물방울 부분 부분이 힘이 있기 때문에 코끼리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물단지를 채울 수 있다. 석녀ㆍ장님ㆍ모래 부분 부분은 힘이 없기 때문에 많이 적집해도 힘이 없다. 그러므로 확정되지 않은 것이 아니기에 석녀ㆍ장님ㆍ사막을 비유로 삼아서는 안 된다.
016_0558_c_22L分分有力故非不定修妒路
渧分分有力能制象滿甁石女盲沙分分無力故多亦無力是故非不定不應以石女盲沙爲喩
【불자】 부분과 전체는 같음과 다름의 과실이 있기 때문이네.수투로
부분과 전체가 만약 같거나 다르다고 한다면, 이 과실은 앞에서 이미 타파한 바 있다. 또 전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부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가 아직 존재하지 않을 때 부분을 얻을 수 없는데 어떻게 만드는 힘이 있겠는가? 만약 전체가 이미 존재한다면 부분의 힘을 어디에 쓰겠는가?
016_0559_a_03L內曰有分一異過修妒路
有分若一若異是過先已破復次有分無故分亦無若有分未有分不可得云何有作力若有分已有者分力何用
【외도】 그대는 법을 파괴하는 사람이네.수투로
세상 사람들은 모두 물단지 등의 사물들을 보는데 그대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인과 연들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그대는 법을 파괴하는 사람이다.
016_0559_a_07L外曰汝是破法人修妒路
世人盡見甁等諸物汝種種因緣破是故汝爲破法人
【불자】 그렇지 않다. 그대는 “존재가 물단지와 다르다”고 말하고 나는 “만약 존재가 물단지와 다르다면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비존재를 존재로 보고 존재를 비존재로 보는 것 따위이네.수투로
그대는 법을 파괴하는 사람과 같다. 이에 또 과실이 깊다. 왜 그러한가? 부분인 머리 등이 화합해서 이 몸이 나타날 때 그대는 몸이 아니라고 말하고 이것을 떠나서 이미 별도로 전체가 있어서 몸이라고 한다. 또 바퀴ㆍ굴대[軸] 등이 화합해서 나타나 수레가 될 때 그대는 이것을 떠나서 이미 별도로 수레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대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016_0559_a_09L內曰不然汝言有與甁異我說若有與甁異是則無甁無見有有見無等修妒路
汝與破法人乃復過甚何以故頭足分等和合現是身汝言非身離是已別有有分爲身復次輪軸等和合現爲車汝言離是已別有車是故汝爲妄語人

5. 근을 타파하는 장[破情品]
016_0559_a_15L破情品第五

【외도】 나의 것[我所]이 실제로 존재하고 법이 실제로 존재하네. 눈 앞에 존재하기 때문이네.수투로
근[감관]과 경계[대상]와 의(意)가 합하기 때문에 인식이 발생한다. 이 인식은 직관의 인식[現前知]이다. 이 인식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감관과 대상과 의(意)가 존재한다.
색을 보고 난 이후에 인식이 발생한다면 어디에 쓰겠는가?수투로
만약 눈이 전에 색을 보고 난 후에 인식이 발생한다면, 인식을 어디에 쓰겠는가? 만약 이전에 인식이 발생하고 난 이후에 눈이 색을 본다면 이것도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016_0559_a_16L外曰定有我所有法現前有故修妒路
意合故知生此知是現前知是知實有故意有
016_0559_b_01L【불자】 만약 색을 보지 않았다면 인과 연들이 없기에 발생도 없네.수투로
만약 눈이 전에 색을 보지 않았다면 인과 연들이 합하지 않은 것이다. 합하지 않았기에 인식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대는 “근(根)과 경계[塵]와 의(意)가 합하기에 인식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합하지 않았을 때 인식이 발생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016_0559_a_19L內曰見色已知生何用修妒路
若眼先見色然後知生者復何用若先知生然後眼見色者是亦不然何以故若不見色因緣無故生亦修妒路
若眼先不見色則因緣不合合故知不應生汝言情意合故知若不合時知生者是則不然
【외도】 만약 동시에 발생한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016_0559_b_02L外曰若一時生有何過
【불자】 만약 동시에 발생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네. 이미 발생한 것[生],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無生], 둘은 동시에 발생하지 않네. 존재이기 때문에, 비존재이기 때문에, 앞에서 이미 타파했기 때문에.수투로
봄[見]과 인식[知]이 이전에 존재해서 서로 의존해서 동시에 발생하거나, 이전에 존재하지 않거나, 이전에 반은 존재하고 반은 존재하지 않거나이다. 셋 중에서, 동시에 발생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만약 이전에 봄과 인식이 존재한다면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전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또한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서로 의존하는 일이 없어서 또한 발생하는 일도 없다. 만약 반은 존재하고 반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앞의 둘이 논에서 각각 이미 타파되었기 때문이다. 또 한 법이 어떻게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겠는가? 또 만약 동시에 발생한다면 인식은 봄에 의존하지 않고 봄은 인식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016_0559_b_03L內曰若一時生事不然無生共不一時生有故無先已破故修妒路
若見知先有相待一時生若先無若先半有半無於三中一時生者是則不然何以故若先有見知者不應更生以有故若先無者亦不應生以無故若無者則無相待亦無生若半有半無者前二修妒路各已破故復次一法云何亦有亦無若一時生知不待見見不待知
눈이 색이 도달해서 보는가, 색에 도달하지 않고서 보는가? 만약 눈이 간다면 먼 곳에 있는 것은 늦게 볼 것이네.수투로
또 만약 눈이 가서 색에 도달해서 본다면 먼 곳의 색은 늦게 볼 것이고 가까운 곳의 색은 빨리 볼 것이다. 왜 그러한가? 감은 본래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가까운 곳의 물단지와 먼 곳의 달이 동시에 보인다. 그러므로 눈이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가지 않는다면 화합함이 없다. 또 만약 눈의 힘이 색에 도달하지 않고서 색을 본다면, 왜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보이고 먼 곳에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가? 먼 곳에 있는 것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동시에 보일 것이다.
016_0559_b_12L眼爲到色見耶爲不到色見耶眼去遠遲見修妒路
若眼去到色乃見者遠色應遲見近色應速見何以故法爾故而今近甁遠月一時見是故知眼不去若不去則無和合復次眼力不到色而見色者何故見近不見遠遠近應一時見
016_0559_c_01L또 설사 눈이 간다면 보고 나서 가는가, 보지 않고서 가는가?
만약 보고 나서 간다면 다시 어디에 쓰겠는가? 수투로
만약 눈이 색을 이미 보았다면 사물이 이미 변별되었는데 감을 다시 어디에 쓰겠는가?
만약 보지 않고서 간다면 의(意)가 파지하는 것과 같지 않을 것이네.수투로
만약 눈이 이미 색을 보지 않고서 간다면 의(意)가 파지하는 것과 같지 않을 것이니 파지할 수 없을 것이다. 눈에는 인식이 없기 때문에 동쪽으로 가려고 할 때 서쪽으로 가게 될 것이다.
눈이 없는 곳에서는 또한 파지하지 못하네.수투로
또 만약 눈이 가서 색에 도달해서 색을 파지한다면, 몸에는 눈이 없을 것이다. 몸에 눈이 없기 때문에 이것은 파지함이 없게 된다. 만약 눈이 가지 않고서 색을 파지한다면 색은 눈이 없게 될 것이다. 색에 눈이 없기 때문에 그것도 또한 파지함이 없게 된다. 또 만약 눈이 가지 않고서 색을 파지한다면 천계(天界)의 색과 장애물 바깥의 색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016_0559_b_19L復次眼設去者爲見已去耶爲不見去耶若見已去復何用修妒路
若眼先見色事已辨去復何用若不見去不如意所取修妒路
若眼先不見色而去者如意所取則不能眼無知故趣東則西復次無眼處亦不取修妒路
若眼去到色而取色者則無眼身無眼故此則無取若眼不去而取色者色則無眼色無眼故亦無取復次若眼不去而取色者見天上色及障外色然不見是故此事非也
【외도】 눈의 성질은 봄이기 때문에.수투로
봄은 눈의 성질이다. 연(緣)에 힘이 있기에 파지할 수 있다. 본성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이다.
016_0559_c_07L外曰眼相見故修妒路
見是眼相於緣中有力能取性自爾故
【불자】 만약 눈이 봄의 성질을 갖는 것이라면 스스로 눈을 볼 것이네.수투로
만약 눈이 봄의 성질을 갖는 것이라면 마치 불이 뜨거움[熱]의 성질을 갖고 있어서 스스로를 뜨겁게 할 수 있고 다른 것을 뜨겁게 할 수 있듯이, 그렇듯이 눈이 만약 봄의 성질을 갖는 것이라면 스스로 눈을 볼 것이다. 그러나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눈은 봄의 성질을 갖지 않는다.
016_0559_c_08L內曰眼見相自見眼修妒路
若眼見相如火熱自熱能令他熱如是眼若見相自見眼然不見是故眼非見相
【외도】 손가락과 같네.수투로
눈은 비록 봄의 성질을 갖고 있긴 하지만 스스로 눈을 보지 못한다. 마치 손가락 끝이 스스로를 감촉할 수 없듯이, 그렇듯이 눈이 비록 봄의 성질을 갖고 있긴 하지만 스스로를 볼 수 없다.
016_0559_c_11L外曰如指修妒路
眼雖見相不自見眼如指端不能自觸如是眼雖見相不能自見
【불자】 그렇지 않네. 감촉은 손가락의 행위이기 때문이네.수투로
감촉은 손가락의 행위이지 손가락의 성질인 것이 아니다. 그대가 “봄이 눈의 성질이다”고 말한다면 왜 스스로 눈을 보지 못하는가? 그러므로 손가락의 비유는 잘못된 것이다.
016_0559_c_13L內曰不然觸指業故修妒路
觸是指業指相汝言見是眼相者何不自見眼是故指喩非也
【외도】 빛과 의(意)가 가기에 색을 보네.수투로
눈의 빛과 의(意)가 가기 때문에 그것에 도달해서 색을 파지할 수 있다.
016_0559_c_16L外曰光意去故見色修妒路
眼光及意去故到彼能取色
【불자】 만약 의가 가서 색에 도달한다면 이것에는 지각이 없네.수투로
의(意)가 만약 색에 도달한다면 의는 그것에 있는 것이다. 의가 만약 그것에 있다면 몸은 의가 없는 것이다. 마치 죽은 사람과 같다. 그러나 의는 실제로는 가지 않는다. 먼 곳에 있는 것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동시에 파지하기 때문이다. 비록 과거와 미래의 일을 생각하긴 하지만 생각[念]은 과거와 미래에 있지 않다. 생각할 때 가지 않기 때문이다.
016_0559_c_17L內曰意去到色此無覺修妒路
意若到色者則在彼意若在彼身則無意猶如死然意實不去遠近一時取故雖念過去未來念不在過去未來念時不去故
【외도】 의(意)는 몸에 있네.수투로
의(意)가 비록 몸에 있긴 하지만 먼 것에 있는 것을 인식한다.
016_0559_c_22L外曰意在身修妒路
意雖在身而能遠知
016_0560_a_01L【불자】 만약 그렇다면 화합하지 않을 것이네.수투로
만약 의(意)가 몸에 있고 색이 그 곳에 있다면 색은 그 곳에 있기 때문에 화합함이 없을 것이다. 만약 화합함이 없다면 색을 파지할 수 없을 것이다.
016_0559_c_23L內曰若爾不合修妒路
若意在身而色在彼色在彼故則無和合若無和不能取色
【외도】 그렇지 않네. 의(意)와 빛과 색이 화합하기에 보네.수투로
눈과 의(意)는 몸에 있기에 화합하고, 의의 힘에 의해서 눈과 빛이 색과 화합하게 한다. 이와 같이 색을 본다. 그러므로 화합함을 잃지 않는다.
016_0560_a_02L外曰不然色合故修妒路
意在身和合以意力故令眼光與色合如是見色是故不失和合
【불자】 만약 화합해서 봄이 발생한다면 보는 자가 없네.수투로
만약 그대가 “화합하기에 색을 본다”고 말하고 “오직 눈만이 색을 보고, 오직 의(意)만이 색을 파지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016_0560_a_04L內曰若和合故見生無見者修妒路
汝謂和合故見色若言但眼見色但意取色是事不然
【외도】 화합함을 인정하기에 색을 파지하는 일이 성립하네.수투로
그대가 화합함을 인정하면 화합함이 존재한다. 만약 화합함이 존재한다면 색을 파지하는 일이 존재할 것이다.
016_0560_a_07L外曰受和合故取色成修妒路
汝受和合則有和合若有和合應有取色
【불자】 의(意)는 봄이 아니네. 눈은 인식함이 아니다. 색은 봄과 인식함이 아니네. (그러니) 어떻게 보겠는가?수투로
의는 눈과 다르기에 의는 봄의 성질을 갖는 것이 아니고, 봄의 성질을 갖는 것이 아니기에 볼 수 없다. 눈은 4대(大)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인식함의 성질을 갖는 것이 아니고, 인식함의 성질을 갖는 것이 아니기에 인식할 수 없다. 색은 봄의 성질을 갖는 것도 아니고 인식함의 성질을 갖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은데 다시 화합한다고 해서 어떻게 색을 파지하겠는가?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도 이와 같이 타파된다.
016_0560_a_09L內曰意非見眼非知色非見知云何見修妒路
意異眼故意非見相非見相故不能見眼四大造故非知相知相故不能知色亦非見相亦非知如是雖復和合云何取色耳鼻舌身亦如是破

6. 경계를 타파하는 장[破塵品]
016_0560_a_14L破塵品第六

【외도】 근[감관]이 존재하네. 물단지 등이 파지되기 때문에.수투로
이제 물단지 등의 사물들이 파지되는 것이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근들이 경계[대상]들을 파지할 수 없다면 어떤 것들이 파지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근들이 물단지 등의 사물들을 파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016_0560_a_15L外曰應有情甁等可取故修妒路
今現見甁等諸物可取故若諸情不能取諸當用何等取是故知有情能取甁等諸物
【불자】 색만이 물단지인 것이 아니네. 그러니 물단지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네.수투로
물단지의 색은 눈에 보이지만 냄새[香] 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색만이 물단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냄새 등이 합해서 물단지를 이룬다. 물단지가 만약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냄새 등도 눈에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물단지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016_0560_a_19L內曰非獨色是甁是故甁非現修妒路
甁中色現可見香等不可見獨色爲甁香等合爲甁甁若現可見香等亦應現可見而不可見是故甁非現見
016_0560_b_01L【외도】 부분이 파지되기에 전체[一切]가 파지되네. 믿음[信]이 있기 때문에.수투로
물단지의 부분이 눈에 보이는 것이기에 물단지가 눈에 보이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사람이 물단지를 보고 나서 ‘나는 이 물단지를 본다’고 믿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016_0560_a_23L外曰取分故一切取信故修妒路
甁一分可見故甁名現見何以故人見甁已信知我見是甁
【불자】 만약 부분을 파지한다면 전체를 파지하는 것이 아니네.수투로
물단지의 부분인 색은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다른 부분인 냄새[香] 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부분은 전체[有分]가 되지 않는다. 만약 부분이 전체가 된다면 냄새 등 부분들도 눈에 보여야 한다. 그러므로 물단지는 전부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단일성을 타파하는 장과 다름을 타파하는 장에서 설명한 바 있다.
016_0560_b_02L內曰若取不一切取修妒路
甁一分色可見香分等不可見今分不作有分若分作有分者香等諸分亦應可見是故甁非盡可見是事如破一破異中說
【외도】 물단지가 눈에 보이는 일이 있네. 색이 눈에 보인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수투로
그대가 색이 눈에 보인다는 것을 인정하니 물단지도 또한 눈에 보여야 할 것이다.
016_0560_b_06L外曰有甁可見受色現可見故修妒路
汝受色現見故甁亦應現見
【불자】 만약 이 부분이 눈에 보인다면 저 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네.수투로
그대가 색이 눈에 보인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색은 형태가 있는 것이기에 저 부분과 가운데 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부분이 장애하기 때문이네. 저 부분도 또한 이와 같다. 또 앞의 “만약 부분을 파지한다면 전체를 파지하는 것이 아니네”와 같은 것에 그는 대답해야 할 것이다.
016_0560_b_08L內曰若此分現見分不現見修妒路
汝謂色現見是事不然有形故彼分中分不現見以此分障故彼分亦如是復次如前若取分不一切彼應答此
【외도】 극미는 부분이 없기에 절대 타파되지 않네.수투로
극미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전체[一切]가 눈에 보인다. (그러니) 무슨 과실이 있겠는가?
016_0560_b_12L外曰微塵無分故不盡破修妒路
微塵無分故一切現見有何過
【불자】 극미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네.수투로
그대의 경전에서 “극미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하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법(法)이 되지 않는다. 만약 극미도 또한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색과 같이 타파된다.
016_0560_b_13L微塵非現見修妒路
汝經言微塵非現是故不能成現見法若微塵亦現與色同破
【외도】 물단지는 눈에 보이는 것이네. 세상 사람들이 믿기 때문이네.수투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물단지는 눈에 보이는 것이고 쓰임새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016_0560_b_16L外曰甁應現見世人信修妒路
世人盡信甁是現見有用故
【불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네.수투로
그대가 “만약 물단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이 때 물단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물단지가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물단지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016_0560_b_17L現見無非甁無修妒路
汝謂若不現見是時無甁者是事不然甁雖不現非無甁是故甁非現見
【외도】 눈과 화합하기에 과실이 없네.수투로
물단지가 비록 눈에 보이는 것[現見相]이긴 하지만 눈과 아직 만나지 않았을 때는 사람이 스스로 보지 못한다. 이 물단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016_0560_b_20L外曰眼合故無過修妒路
甁雖現見相眼未會時人自不見是甁非不現見相
016_0560_c_01L【불자】 눈에 보이는 것이 발생하듯이 존재도 실제로는 있지 않네.수투로
만약 물단지가 아직 눈과 화합하지 않았을 때는 아직 다름[異相]이 있지 않고 후에 볼 때 적은 다름이 발생한다면 이 물단지에는 눈에 보이는 것[現見相]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실제로는 다름이 발생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은 발생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발생하지 않듯이 물단지의 존재도 있지 않다.
016_0560_b_22L內曰如現見生無有亦非實修妒路
若甁未與眼合時未有異相後見時有少異相生者知此甁現見相生今實無異相生故現見相不生如現見相生無甁有亦
【외도】 다섯 경계의 일부분이 타파되었지만 다른 부분은 존재하네.수투로
5신(身)이 물단지이다. 그대가 (그 중의) 하나인 색을 타파했지만 향 등은 타파하지 않았다. 이제 향 등이 타파되지 않았기에 경계[塵]가 존재한다.
016_0560_c_04L外曰五身一分破餘分有修妒路
五身是汝破一色不破香等今香等不破故應有塵
【불자】 전체가 감각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색 등과 화합하겠는가? 수투로
그대가 “5신(身)이 물단지를 이룬다”고 말한다면 이 말은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부분인 색 등이 감각될 때 다른 부분은 감각되지 않는다. 어떻게 감각되는 것[觸]과 감각되지 않는 것[不觸]이 합하겠는가? 그러므로 5신(身)이 물단지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016_0560_c_06L內曰若不一切觸云何色等合修妒路
汝言五身爲甁是語不然以故色等一分是觸餘分非觸云何觸不觸合是故非五身爲甁
【외도】 물단지와 합하기 때문에.수투로
부분인 색 등이 서로서로 합하지는 않지만 부분인 색 등이 물단지와 합한다.
016_0560_c_09L外曰合故修妒路
色分等各各不合而色分等與甁合
【불자】 다르거나 제거된다면, 어떻게 물단지와 감각되는 것이 합하겠는가? 수투로
만약 물단지와 감각되는 것[觸]이 다르다면 물단지는 감각되는 것이 아니다. 감각되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감각되는 것과 합하겠는가? 만약 색 등에 제거된다면 다시 법인 물단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법인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감각되는 것과 물단지가 합하겠는가?
016_0560_c_11L內曰異除云何甁觸合修妒路
甁與觸異者甁則非觸非觸云何與觸合若除色等更無甁法若無甁法云何觸與甁合
【외도】 색은 눈에 보이는 것이네. 경전을 믿기 때문에.수투로그대의 경전에서 “색은 4대(大)와 4대로 이루어진 것[四大造]이다”고 말하고 있다. 4대로 이루어진 것 중에서 색처[色入]1)에 속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왜 눈에 보이는 색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016_0560_c_14L外曰色應現見信經修妒路
汝經言色名四大及四大造色分中色入所攝是現見汝云何言無現見色
【불자】 4대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눈에 보이는 것을 생기게 하는가? 수투로
지(地)는 단단함의 성질[堅相]을 갖는 것이고, 수(水)는 축축함의 성질[濕相]을 갖는 것이고, 화(火)는 뜨거움의 성질[熱相]을 갖는 것이고, 풍(風)은 움직임의 성질[動相]을 갖는 것이다. 이 4대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면 이 4대로 이루어진 색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닐 것이다.
016_0560_c_17L內曰四大非眼見云何生現見修妒路
地堅相水濕相火熱相風動是四大非眼見者此所造色應非現
【외도】 신근(身根)이 파지하기에 4대가 존재하네.수투로
이제 신근이 4대를 파지하기에 4대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불 등의 사물들과 4대로 이루어진 것 또한 존재한다.
016_0560_c_20L外曰身根取故四大有修妒路
今身根取四大故四大有是故火等諸物四大所造亦應有
016_0561_a_01L【불자】 불 속의 모든 것은 뜨겁기 때문이네.수투로
4대 중에서 오직 불만이 뜨거움의 성질을 갖는 것이고 그 밖의 것은 뜨거움의 성질을 갖는 것이 아니다. 이제 불 속의 4대는 모두 뜨거움의 성질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불은 4대[身]가 아니다. 만약 그 밖의 것이 뜨거움이 아니라면 불이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은 4대가 아니다. 지(地)의 단단함의 성질, 수(受)의 축축한 성질, 풍(風)의 움직임의 성질도 또한 이와 같다.
016_0560_c_22L內曰火中一切熱故修妒路
四大中但火是熱相餘非熱相今火中四大都是熱相是故火不爲四身若餘不熱不名爲火是故火不爲四地堅相水濕相風動相亦如是
【외도】 색은 눈에 보이는 것이네. 현재시(現在時)에 존재하기 때문이네.수투로
안근[眼情] 등은 현재시에 경계를 파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현재시라고 한다. 만약 안근 등이 색경[色塵] 등을 파지하지 않는다면 현재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실제로는 현재시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색은 눈에 보이는 것이다.
016_0561_a_03L色應可見現在時有故修妒路
以眼情等現在時取塵故是名現在時若眼情等不能取色塵等則無現在時今實有現在時是故色可見
【불자】 만약 법 이후에 낡은 것[故]이라면 최초에도 낡은 것이네.수투로
만약 법 이후에 낡은 상[故相]이 나타난다면 이 상은 지난 때[故時]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최초에 발생할 때 이미 따라서 존재하지만 미미하기 때문에 인식되지 않는다. 낡은 상이 바뀌어 나타나서 이 때에 인식된다. 사람이 나막신[屐]을 신는 것과 같다. 최초에 이미 미미하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지만 지각되지도 않고 인식되지도 않는다. 오래되면 상이 나타난다. 만약 최초에 낡은 것[故]이 존재하지 않다면 후에도 존재하지 않으니 이것은 항상 새로울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낡은 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최초에는 미미하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고 후에 상이 나타난다. 이제 법들은 머물지 않기 때문에 머묾의 때가 없다. 만약 머묾의 때가 없다면 경계를 파지하는 곳이 없다.
016_0561_a_07L內曰若法後初亦故修妒路
若法後故相現是相非故時生初生時已隨有微故不知相轉現是時可知如人著屐初已微隨之不覺不知久則相現若初無後亦無是應常新若然者故相不應生是以初微故隨之後則相現今諸法不住故則無住時若無住時無取塵處
【외도】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을 인정하기에 현재시에 존재하네.수투로
그대는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을 인정한다. 발생에 의존해서 새로운 것이라 하고, 다름에 의존해서 낡은 것이라 한다. 이 두 상은 과거시에 파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미래시에 파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016_0561_a_15L外曰受新故故有現在時修妒路
受新相故相觀生時名爲新觀異時名爲故是二相非過去時可取亦非未來時可取以現在時故故相可
【불자】 그렇지 않네. 발생이기에 새로운 것이고 다르기에 낡은 것이네.수투로
만약 법이 오래되어서 발생한다면 새로운 것은 이미 이 새로운 것을 지나간다. 새롭게 다른 것을 낡은 것이라고 한다. 만약 낡은 것이 발생한다면 낡은 것은 새로운 것이 된다. ‘이것은 새로운 것이다’, ‘이것은 낡은 것이다’ 하고 오직 언설이 있을 뿐이다. 제일의(第一義) 중에는 새로운 것이 없고 중간의 것이 없고 낡은 것이 없다.
016_0561_a_19L內曰不然生故新異故故修妒路
若法久生新相已過是新相異新則名故若故相生故則爲新是新是故但有言說第一義中無新無中無故
【외도】 만약 그렇다면 무슨 이익을 얻는가?
016_0561_a_22L外曰得何利
016_0561_b_01L【불자】 영원한 원리(遠離)를 얻네.수투로
만약 새로운 것은 중간의 것이 되지 않고 중간의 것은 낡은 것이 되지 않는다면, 씨ㆍ싹ㆍ줄기ㆍ마디가 파괴되어 꽃ㆍ열매 등 각각과 합하지 않는 것과 같다. 각각 합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법은 머물지 않는다. 머물지 않기 때문에 원리(遠離)한다. 원리하기 때문에 파지할 수 없다.
016_0561_a_23L內曰得永離修妒路
若新不作中不作故如種子節壞華實等各不合各不合故諸法不住不住遠離遠離故不可得取

7. 원인 속에 결과가 있다는 것을 타파하는 장[破因中有果品]
016_0561_b_03L破因中有果品第七

【외도】 모든 법은 머물지 않는 것이 아니네. 존재는 상실되지 않기 때문에. 비존재는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수투로
존재[有相]를 갖는 모든 법은 진흙덩어리와 같이 덩어리에서 밑바닥으로, 밑바닥에서 배로, 배에서 목으로, 목에서 입으로, 전과 후가 원인과 결과가 되어서 여러 결과가 발생할 때 여러 원인이 상실되지 않는다. 만약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다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단지 원인이 변해서 결과가 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존재한다.
016_0561_b_04L外曰諸法非不住有不失故無不生修妒路
有相諸法如泥團從團底從底從腹咽從咽口前後爲因果種種果生時種種因不失若因中無果則不生但因變爲果是故有諸法
【불자】 만약 결과가 발생하기에 존재[有]가 상실되지 않는다면 원인이 상실되기에 결과도 상실되네.수투로
그대가 “결과인 물단지가 발생할 때 진흙덩어리가 상실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물단지가 그대로 진흙덩어리이다. 만약 결과인 물단지가 발생할 때 원인인 진흙덩어리가 상실된다면 원인이 없는 것이 된다. 만약 진흙덩어리가 상실되지 않는다면 진흙덩어리와 물단지에 다름이 있다고 분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실제로는 형태ㆍ시간ㆍ힘ㆍ인식ㆍ이름 등에 다름이 있는 것을 보기 때문에 존재가 상실된다.
016_0561_b_09L若果生故有不失因失故有失修妒路
汝言甁果生時泥團不失甁卽是泥團若甁果生是時失泥團因故是則無若泥團不失不應分別泥團甁有今實見形名等有異故有應失
【외도】 손가락을 구부리거나 펴는 것과 같네.수투로
손가락은 구부리거나 펼 때 형태가 달라지긴 해도 실제로는 하나의 손가락이다. 그와 같이 진흙덩어리의 형태와 물단지의 형태가 달라지긴 해도 진흙은 달라지지 않는다.
016_0561_b_15L外曰如指屈申修妒路
指雖屈申形實是一指如是泥團形甁形雖異而泥不異
【불자】 그렇지 않네. 행위와 능력은 달라지기 때문에.수투로2
구부리거나 펴는 것은 손가락의 행위이고 손가락은 능력이다. 만약 행위가 능력이라면 구부릴 때는 손가락이 상실될 것이다. 또 구부리는 것과 펴는 것이 하나가 될 것이다. 그대의 경전에서는 진흙덩어리가 그대로 물단지이기 때문에 손가락의 비유는 잘못된 것이다.
016_0561_b_17L內曰不然業能異故修妒路
申是指業指是能若業卽是能者時應失指復次屈申應是一如汝經團卽是甁故指喩非也
【외도】 어린 것과 젊은 것과 늙은 것과 같네.수투로
한 사람이 몸은 어린 것이기도 하고 젊은 것이기도 하고 늙은 것이기도 하듯이, 원인과 결과도 이와 같다.
016_0561_b_20L外曰如少修妒路
如一人身亦少亦壯亦老因果亦如是
016_0561_c_01L【불자】 동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수투로
어린 것은 젊은 것이 아니고 젊은 것은 늙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대의 비유는 잘못된 것이다.
만약 존재가 상실되지 않는다면 상실됨이 없네.수투로
또 만약 존재가 상실되지 않는다면 진흙덩어리는 변해서 물단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존재가 상실되지 않는다면, 비존재는 없기 때문에 또한 상실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실됨이 절대로 없다.
016_0561_b_22L內曰不一故修妒路
少不作壯壯不作老是故汝喩非也復次若有不失無失修妒路
若有不失者泥團不應變爲是則無甁若有不失者無無故不應失然則都無失
【외도】 상실됨이 없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수투로
만약 상주하기 때문에 상실됨이 없다면 진흙덩어리는 변해서 물단지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무상이 없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016_0561_c_03L外曰無失有何修妒路
若常故無失泥團不應變爲甁無常有何過
【불자】 만약 무상(無常)이 없다면 죄와 복 등이 없네.수투로
만약 무상이 없다면 죄와 복 등이 모두 또한 없을 것이다. 왜 그러한가? 죄인은 항상 죄인이 되고 복인(福人)이 되지 않을 것이다. 복인은 항상 복인이 되고 죄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죄와 복 등’이란, 보시와 절도, 지계(持戒)와 범계(犯戒) 등이다. 이와 같이 모두 없다.
016_0561_c_05L內曰若無無常無罪福修妒路
若無無常罪福等悉亦當無以故罪人常爲罪人不應爲福福人常爲福人不應爲罪罪福等者竊盜持戒犯戒等如是皆無
【외도】 원인 속에 미리 결과가 있네. 원인이 있기 때문에.수투로
만약 진흙 속에 미리 물단지가 있지 않다면 진흙은 물단지의 원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016_0561_c_09L外曰因中先有果因有故修妒路
若泥中先無泥不應爲甁因
【불자】 만약 원인 속에 미리 결과가 있기에 결과가 있다면 결과가 있지 않기에 원인은 결과가 없는 것이네.수투로
만약 진흙덩어리가 물단지가 될 때 진흙덩어리가 상실되지 않기에 원인 속에 결과가 있다고 한다면, 이 물단지가 만약 파괴된다면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을 것이다.
016_0561_c_11L內曰若因先有果故有果果無故因無果修妒路
若泥團作泥不失故因中有果是甁若破因中無果
【외도】 원인과 결과는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수투로
원인인 진흙과 결과인 진흙덩어리, 원인인 진흙덩어리와 결과인 물단지와 같이, 원인이 변해서 결과가 되는 것이지 다시 다른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다고 해서는 안 된다.
016_0561_c_14L外曰因果一故修妒路
如土因泥泥因甁果因變爲果更無異法故不應因中無果
【불자】 만약 원인과 결과가 동일하다면 미래가 없을 것이네.수투로
가령 진흙덩어리가 현재라면 물단지는 미래가 된다. 만약 원인과 결과가 동일하다면 미래가 없다. 미래가 없기 때문에 또한 현재가 없다. 현재가 없기 때문에 또한 과거도 없다. 그와 같다면 삼세(三世)가 뒤섞이게 된다.
016_0561_c_16L內曰若因果一未來修妒路
如泥團現在甁爲未來若因果一則無未來無未來故亦無現在無現在故亦無過去如是三世亂
【외도】 이름 등이 상실되어 이름 등이 발생하기 때문에.수투로
다시 새로운 법이 있지 않고 낡은 법도 상실되지 않는다. 오직 이름이 시간[時]에 따라 다를 뿐이다. 하나의 진흙덩어리가 물단지가 되고 물단지가 파괴되어 동이가 되고 동이가 파괴되어 다시 진흙덩어리가 되듯이, 그렇듯이 절대로 과거와 미래가 없다. 물단지와 동이는 안정되게 있으니 단지 시간에 따라서 이름을 얻을 뿐이다. 그 실체는 다름이 없다.
016_0561_c_19L名等失名等生故修妒路
更無新法而故法不失但名隨時異如一泥團爲甁破爲瓫瓫破還爲泥如是都無去來甁瓫安在但隨時得名其實無異
016_0562_a_01L【불자】 만약 그렇다면 원인에는 결과가 없네.수투로
만약 이름이 상실해서 이름이 발생한다면 이 이름은 전에는 없다가 후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원인 속에 결과가 없다. 만약 이름이 미리 있다면 진흙덩어리가 그대로 물단지이다. 그러므로 미리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016_0561_c_23L若爾因無果修妒路
若名失名生者此名先無後有故因中無果若名先有泥卽是甁是故知非先有果
【외도】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네.수투로
진흙덩어리에서 한 개의 그릇이 확정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흙덩어리에 이름이 확정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016_0562_a_03L外曰不定修妒路
泥團中不定出一器是故泥中不定有名
【불자】 만약 진흙덩어리가 확정된 것이 아니라면 결과도 확정된 것이 아니네.수투로
만약 진흙덩어리 속에서 물단지가 확정된 것이 아니라면 그대가 원인 속에 미리 결과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또한 확정적인 것이 아니다.
016_0562_a_05L內曰若泥不定果亦不定修妒路
若泥團中甁不定汝言因中先有果亦不定
【외도】 미세한 형태가 있기 때문이네.수투로
진흙덩어리 속의 물단지의 형태는 미세하기 때문에 인식하기가 어렵다. 도공의 힘에 의지해서야 이 때에 명확하게 인식한다. 진흙덩어리 속의 물단지는 인식되지 않는 것이긴 하지만, 진흙덩어리 속에는 반드시 미세한 형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두 종류의 인식되지 않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인식되지 않고 어떤 것은 존재하긴 하지만 원인[因緣] 때문에 인식되지 않는다. 원인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 여덟 가지란 어떤 것들인가? 멀기 때문에 인식되지 않는다. 먼 나라가 그러하다. 가깝기 때문에 인식되지 않는다. 눈의 속눈썹[眼睫]이 그러하다. 근(根)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인식되지 않는다. 귀먹거리나 장님이 그러하다. 마음[心]이 머물지 않기 때문에 인식되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意]이 산란되었을 때 그러하다. 미세하기 때문에 인식되지 않는다. 극미가 그러하다. 장애물이 있기에 인식되지 않는다. 벽 바깥의 사물들이 그러하다. 월등하기 때문에 인식되지 않는다. 큰 물 속에 있는 적은 량의 소금이 그러하다. 서로 유사하기 때문에 인식되지 않는다. 한 톨의 쌀을 큰 쌀더미 속에 던질 때가 그러하다. 그렇듯이 진흙덩어리 속의 물단지를 눈이 보지 못하긴 하지만 결코 부들[蒲]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미세한 물단지가 진흙덩어리 속에 확정되어 존재한다.
016_0562_a_07L外曰微形有故修妒路
泥團中甁形微故難知陶師力故是時明了泥中甁雖不可知當知泥中必有微有二種不可知或無故不知或有以因緣故不知因緣有八何等八故不知如遠國土近故不知如眼睫根壞故不知如聾盲心不住故不知如人意亂細故不知如微塵障故不如壁外事勝故不知如大水少鹽相似故不知如一粒米投大聚中是泥團中甁眼雖不見要不從蒲出是故微甁定在泥中
【불자】 만약 미리 미세한 형태가 있다면 원인에는 결과가 없네.수투로
만약 물단지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을 때 진흙덩어리 속에 미세한 형태가 있어서 후에 거칠 때 인식된다고 한다면, 이것은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은 것이다. 왜 그러한가? 본래에는 거친 상[相]이 없다가 후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다.
016_0562_a_18L內曰若先有微因無果修妒路
若甁未生時泥中有微後麤時可知者是則因中無果以故本無麤相後乃生故是以因中無果
016_0562_b_01L【외도】 원인 속에 결과가 있네. 각각 원인을 취하기 때문이네.수투로
원인 속에 미리 결과가 있다. 왜 그러한가? 물단지를 만들 때 진흙을 취하지 부들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다면 또한 부들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진흙에서 물단지가 생기고 찰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었을 때 불길에 견딘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에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다.
016_0562_a_22L外曰因中應有果各取因故修妒路
因中應先有果何以故作甁取泥取蒲若因中無果者亦可取蒲而人定知泥能生甁埏埴成器堪受燒故是以因中有果
【불자】 만약 앞으로 있을 것이라면 있고 앞으로 있지 않을 것이라면 있지 않네.수투로
만약 그대가 “진흙덩어리 속에서 물단지가 나올 것이기 때문에 원인 속에 미리 결과가 있다”고 말한다면, 이제 물단지가 파괴되었기에 결과가 있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을 것이다.
016_0562_b_03L內曰若當有有若當無無修妒路
汝言泥中當出甁故因中先有果今甁破故應當無果是以因中無果
【외도】 발생ㆍ머묾ㆍ괴멸의 순서가 있기에 과실이 없다.수투로
물단지 속에 깨짐의 성질[破相]이 있긴 하지만 반드시 최초에 발생하고 다음에 머물고 최후에 파괴된다. 왜 그러한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면 파괴가 없기 때문이다.
016_0562_b_06L外曰生住壞次第有故無過修妒路
甁中雖有破相要先生次住後破以故未生無破故
【불자】 만약 최초에 발생하지 최후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과가 없는 것과 같을 것이네.수투로
만약 진흙 속에 물단지의 발생과 머묾과 괴멸이 있다면, 왜 반드시 최초에 발생해서 최후에 괴멸해야 하고 최초에 괴멸해서 최후에 발생해서는 안 되는가? 그대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기에 파괴가 있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렇다면 물단지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을 때 머묾이 있지 않고 괴멸이 있지 않다. 이 둘은 최초에 있지 않고 뒤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다.
016_0562_b_08L內曰若先生非後無果同修妒路
若泥中有甁生便壞者故要先生後壞不先壞後生汝言未生故無破如是甁未生時無住無壞此二先無後有故因中無果
【외도】 그대는 결과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에 단멸의 과실이 있네.수투로
만약 원인 속에 결과가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면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을 것이다. 만약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다면 단멸(斷滅)에 떨어진다.
016_0562_b_12L外曰破有果故有斷過修妒路
若因中有果爲非者應因中無果若因中無果則墮斷滅
【불자】 상속(相續)하기에 단멸하지 않네.수투로
그대는 알지 않는가? 곡식의 씨앗에서 싹 등이 상속하기에 단멸(斷滅)하지 않고 곡식의 씨앗 등의 원인이 파괴되기에 상주(常住)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와 같이 부처님들께서는 열두 분지의 연기[因緣生法]를 말씀해 주시고 ‘원인 속에 결과가 있다’, ‘결과가 있지 않다는 것’을 벗어나서 단멸과 상주에 집착하지 않으시고 중도(中道)를 가셔서 열반으로 들어가신다.
016_0562_b_15L內曰續故不斷壞故不常修妒路
不知耶從穀子牙等相續故不斷子等因壞故不常如是諸佛說十二分因緣生法離因中有果無果故著斷常行中道入涅槃

8. 원인 속에 결과가 없다는 것을 타파하는 장[破因中無果品]
016_0562_b_19L破因中無果品第八

【외도】 발생이 있기에 하나는 당연히 성립할 것이네.수투로
그대는 “인과 연들에 의지해서 모든 법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 발생은 원인 속에 미리 있는가, 원인 속에 미리 있지 않은가? 이 발생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둘 중의) 하나가 있어야 한다.
016_0562_b_20L外曰生有故一當成修妒路
汝言因緣故諸法生是生若因中先有若因中先此生有故必當有一
016_0562_c_01L【불자】 발생이 있는 것이나 발생이 없는 것은 발생하지 않네.수투로
만약 발생이 있다면 원인 속에 미리 있는 것인가, 원인 속에 미리 있지 않은 것인가? 이와 같이 사유해 볼 때 얻을 수 없는데, 하물며 어찌 발생이 없는 것이랴? 그대에게 있어서 만약 물단지의 발생이 있다면 물단지의 최초에 물단지일 때 (발생이) 있는 것인가, 진흙덩어리의 최후에 물단지가 아닐 때 (발생이) 있는 것인가? 만약 물단지의 최초에 물단지일 때 물단지의 발생이 있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물단지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최초와 중간과 최후는 함께 서로 의존[因待]한다. 만약 중간과 최후가 없다면 최초도 없다. 만약 물단지의 최초가 있다면 반드시 중간과 최후가 있다. 그러므로 물단지가 이미 최초에 존재한다면 발생을 어디에 쓰겠는가? 만약 진흙덩어리의 최후에 물단지가 아닐 때 물단지가 발생한다면 이것도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물단지에 최초ㆍ중간ㆍ최후가 없다면 이것은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물단지의 발생이 있겠는가? 또 만약 물단지의 발생이 있다면 진흙덩어리의 최후에 물단지일 때 존재하거나, 물단지의 최초에 진흙덩어리일 때 존재할 것이다. 진흙덩어리의 최후에 물단지일 때 물단지의 발생은 없다. 왜 그러한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물단지의 최초에 진흙덩어리일 때 물단지의 발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왜 그러한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016_0562_b_23L內曰生無生不生修妒路
若有生因中先有因中先無如是思惟不可得何況無生汝若有甁生爲甁初甁時有耶爲泥團後非甁時有耶若甁初甁時有甁生者是事不然何以故甁已有故是初中後共相因待若無中後則無初若有甁初必有中後是故甁已先有生復何用若泥團後非甁時甁生者是亦不然何以故未有故若甁無初中後是則無甁若無甁云何有甁生復次若有甁生若泥團後甁時應有若甁初團時應有泥團後甁時無甁生何以已有故亦非甁初泥團時有甁生何以故未有故
【외도】 지금 발생하고 있는 것이 발생하는 것이기에 과오가 없네.수투로
나는 이미 발생한 것[已生]이나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未生]에 발생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제3의2) 법인 지금 발생하고 있는 것이 발생한다.
016_0562_c_14L外曰生時生故無咎修妒路
我不言若已生若未生有甁生二法生時是生
【불자】 지금 발생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네.수투로
지금 발생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한 바 있다. 만약 발생한다면 이미 발생했거나 아직 발생하지 않았거나이다. (그러니) 어떻게 발생이 있겠는가? 지금 발생하고 있는 것은 반은 이미 발생한 것[生]이고 반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未生]이다. 두 가지 모두3) 과실이 있다. 또 앞에서 타파한 바와 같다. 그러므로 발생이 있지 않다.
016_0562_c_16L內曰生時亦如是修妒路
生時如先說若生是則生已若未生云何有生生時名半生半未生二俱過亦如前破是故無生

【외도】발생과 성립은 동일한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네.수투로
나는 물단지가 이미 발생했을 때 발생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 아직 발생하지 않았을 때 발생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제 물단지가 현재에 성립할 때 이것이 물단지의 발생이다.
016_0562_c_19L外曰生成一義故修妒路
我不言甁生已有生亦不言未生有生今甁現成是卽甁生
【불자】 만약 그렇다면 발생은 최후이네.수투로
성립은 이미 발생한 것이다. 만약 발생이 없다면 최초가 없고 중간이 없다. 만약 최초가 없고 중간이 없다면 성립이 없다. 그러므로 성립을 발생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발생이 최후에 있기 때문이다.
016_0562_c_21L內曰若爾生後修妒路
成名生已若無生無初無中若無初亦無中無成是故不應以成爲生生在後故
016_0563_a_01L【외도】 최초와 중간과 최후는 순서대로 발생하기에 과오가 없네.수투로
진흙덩어리에서 순서대로 물단지의 밑바닥, 배ㆍ목ㆍ입 등이 발생한다. 최초와 중간과 최후는 순서대로 발생하지 진흙덩어리 다음에 물단지가 성립하는 일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흙덩어리일 때 물단지가 발생하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물단지일 때 물단지가 발생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단지가 발생하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016_0563_a_01L外曰初中後次第生無咎修妒路
泥團次第生甁底口等初中後次第生非泥團次有成甁故非泥團時有甁生亦非甁時有甁亦非無甁生
【불자】 최초와 중간과 최후는 순서대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네.수투로
최초란 전이 없고 후가 있는 것을 말하고, 중간이란 전이 있고 후가 있는 것을 말하고, 최후란 전이 있고 후가 없는 것을 말한다. 그와 같이 최초와 중간과 최후는 함께 서로 의존하는 것이다. 만약 분리된다면 어떻게 (최초와 중간과 최후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최초와 중간과 최후는 순서대로 발생하지 않는다.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도 옳지 않네.수투로
만약 동시에 발생한다면 ‘이것은 최초이다’, ‘이것은 중간이다’, ‘이것은 최후이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또 서로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옳지 않다.
016_0563_a_05L內曰初中後非次第修妒路
初名無前有後中名有前有後名有前無後如是初中後共相因待云何有是故初中後不應次第生時生亦不然修妒路
若一時生不應言是初是中是後亦不相因待是故不然
【외도】 발생과 머묾과 괴멸과 같네.수투로
유위의 상(相)인 발생과 머묾과 괴멸이 순서대로 있는 것과 같이 최초와 중간과 최후도 그러하다.
016_0563_a_10L如生住壞修妒路
如有爲相生住壞次第有初中後亦如是
016_0563_b_01L【불자】 발생과 머묾과 괴멸도 이와 같네.수투로
순서대로 있든, 동시에 있든 이 둘은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머묾이 없다면 발생이 없다. 만약 머묾이 없는데 발생이 있다면 또한 발생이 없이 머묾이 있을 것이다. 괴멸도 이와 같다. 만약 동시라면 ‘이것은 발생이다’, ‘이것은 머묾이다’, ‘이것은 괴멸이다’ 하고 분별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곳에 모든 것이 있을 것이네.수투로
또 ‘모든 곳’이란 세 가지 유위의 상(相)을 말한다. 만약 발생과 머묾과 소멸이 또한 유위의 상이라면 이제 발생 속에 세 가지 상(相)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유위법이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속에 다시 세 가지 상(相)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한역행이 된다. 머묾과 괴멸도 또한 이와 같다. 이제 발생과 머묾과 괴멸 속에 다시 세 가지 상(相)이 있지 않다면 이제 발생과 머묾과 괴멸을 유위의 상이라고 하지 못한다. 만약 그대가 “발생과 발생이 함께 발생하는 것이 아버지와 아들과 같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면 발생과 발생은 원인 속에 미리 있으면서 서로 의존하든가, 원인 속에 미리 있지 않으면서 서로 의존하든가, 원인 속에 미리 조금 있기도 하고 조금 있지 않기도 하면서 서로 의존하든가일 것이다. 이 세 가지는「근(根)을 타파하는 장」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또 아버지가 이미 있고 난 이후에 아들을 낳는 것과 같다. 아버지에게는 다시 아버지가 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잘못된 것이다.
016_0563_a_12L內曰生住壞亦如是修妒路
若次第有若一時有是二不何以故無住則無生若無住有生亦應無生有住壞亦如是若一時不應分別是生是住是壞復次一切處有一切修妒路
一切處名三有爲相生住壞亦有爲相者今生中應有三是有爲法故一一中復有三相則無窮住壞亦如是若生住壞中更無三相今生住壞不名有爲相若汝謂生生共生如父子是事不然如是生生若因中先有相待若因中先無相待若因中先少有少無相待是三種破情中已說復次如父先有然後生子是父更有父是故此喩非也
【외도】 발생이 실제로 존재한다. 발생되어야 할 법이 존재하기 때문에.수투로
만약 발생이 존재한다면 발생되어야 할 것[可生]이 존재한다. 만약 발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발생되어야 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물단지 등 발생되어야 할 법이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반드시 발생이 존재한다.
016_0563_b_02L定有生可生法有故修妒路
若有生可生若無生則無可生今甁等可生法現有故必有生
【불자】 만약 발생이 존재한다면 발생되어야 할 것이 존재하지 않네.수투로
만약 물단지에 발생이 존재한다면 물단지는 이미 발생한 것이니 발생되어야 할 것이라 하지 못한다. 왜 그러한가? 만약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또한 물단지의 발생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약 발생이 존재한다면 발생되어야 할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어찌 발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이겠는가?
자기에게서, 타자에게서, 양자에게서도 또한 이와 같네.수투로
또 만약 발생과 발생되어야 할 것 이 둘이라면 자기에게서 발생하든가, 타자에게서 발생하든가, 양자에게서 발생하든가 일 것이다.「길상을 타파하는 장」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016_0563_b_05L內曰若有生無可修妒路
若甁有生甁則已生不名可生何以故若無甁亦無甁生是故若有生則無可生何況無生復次自他共亦如是修妒路
若生可生是二若自生他生若共生破吉中已說
【외도】 확정되어 존재하네. 발생과 발생되어야 할 것은 함께 성립하기 때문이네.수투로
전에 발생이 있고 후에 발생되어야 할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함께 성립한다.
016_0563_b_10L外曰定有可生共成故修妒路
非先有生後有可一時共成
【불자】 발생은 발생되어야 할 것을 발생하게 하지 않네.수투로
만약 발생되어야 할 것이 발생을 성립시킨다면 발생은 발생되어야 할 것이므로 발생하게 하는 것이라 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발생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발생되어야 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둘은 모두 있지 않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 의존한다는 것은 옳지 않네.수투로
또 이제 발생되어야 할 것은 아직 있지 않기 때문에 없음[無]이다. 발생은 있음[有]이다. 있음과 없음이 어떻게 서로 의존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모두 있지 않다.
016_0563_b_12L內曰生可生不能生修妒路
若可生能成生者則生是可生不名能生若無生何有可生是故二事皆復次有無相待不然修妒路
今可生未有故無生則是有有無何得相待故皆無
【외도】 발생과 발생되어야 할 것은 서로 의존하기에 모든 법이 성립하네.수투로
발생과 발생되어야 할 것만이 서로 의존해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서로 의존하기 때문에 물단지 등의 사물들이 성립한다.
016_0563_b_17L外曰生可生相待故諸法成修妒路
非但生可生相待成是二相待故甁等諸物成
【불자】 만약 둘로부터 발생한다면 어떻게 셋이 존재하지 않는가? 수투로
그대는 “발생과 발생되어야 할 것이 서로 의존하기에 모든 법이 성립한다”고 말한다. 만약 둘로부터 결과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제3의 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들을 낳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이제 발생과 발생되어야 할 것을 떠나서 다시 물단지 등 제3의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옳지 않다.
016_0563_b_19L內曰若從二生何以無修妒路
汝言生可生相待故諸法成從二生果者何不有第三法如父母生今離生可生更無有甁等第三法是故不然
016_0563_c_01L【외도】 생이 존재하네. 원인이 괴멸하기 때문에.수투로
만약 결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원인이 괴멸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물단지의 원인이 괴멸하는 것이 보이니 발생이 존재한다.
016_0563_b_23L外曰應有生因壞故修妒路
果不生因不應壞今見甁因壞故有生
【불자】 원인이 괴멸하기에 발생도 괴멸하네.수투로
만약 결과가 발생한다면 이 결과는 원인이 괴멸할 때 존재하는가, 괴멸한 이후에 존재하는가? 만약 원인이 괴멸할 때 존재한다면 괴멸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발생도 또한 괴멸한다. 만약 괴멸한 이후에 존재한다면 원인이 이미 괴멸했기 때문에 원인이 존재하지 않고 원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원인 속에 결과가 확정되어 있기 때문에.수투로
또 원인 속에 미리 결과가 있든, 미리 결과가 있지 않든, 둘 모두 발생이 있지 않다. 왜 그러한가? 만약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다면 왜 진흙덩어리에만 물단지가 있고 실에만 천이 있는가? 만약 그 둘에 있지 않다면 진흙덩어리에는 천이 있을 것이고 실에는 물단지가 있을 것이다. 만약 원인 속에 결과가 미리 있다면, 이 원인 속에서 이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이것은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이 원인이 그대로 이 결과이다. 그대의 교법에 따르면 원인과 결과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인 속에 결과가 미리 있든, 미리 결과가 있지 않든, 이것은 모두 발생하지 않는다.
016_0563_c_02L內曰因壞故生亦滅修妒路
若果生者是果爲因壞時有耶爲壞後有耶因壞時有者與壞不異故生亦滅壞後有者因已壞故無因無因故不應生復次因中果定故修妒路
若因中先有果先無果二俱無生何以故因中無果者何以但泥中有甁縷中有布若其俱無泥應有布縷應有甁若因中先有果者是因中是果生事不然何以故是因卽是果汝法因果不異故是故因中若先有果若先無果是皆不生
원인과 결과가 많기 때문에.수투로
또 만약 원인 속에 결과가 있다면 우유 속에 타락[酪]과 연유 등이 있을 것이다. 또 연유 속에 타락과 우유 등이 있을 것이다. 만약 우유 속에 타락과 연유 등이 있다면 한 원인 속에 많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만약 연유 속에 우유와 타락 등이 있다면 한 결과 속에 많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이 전후의 원인과 결과는 동시에 모두 과실이 있다. 만약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다면 또한 이와 같은 과실이 있다. 그러므로 원인 속에 결과가 있든 결과가 있지 않든 이것에는 모두 발생이 있지 않다.
016_0563_c_13L復次因果多故修妒路
因中先有果者則乳中有酪酥等酥中有酪乳等若乳中有酪酥等一因中多果若酥中有酪乳等則一果中多因如是先後因果一時俱有若因中無果亦如是過是故因中有果無果是皆無生
【외도】 인과 결과는 타파되지 않기에 발생과 발생되어야 할 것이 성립하네.수투로
그대는 “원인 속에 결과가 많다는 것과 결과 속에 원인이 많다는 것이 과실이 된다”고 말했지, “원인과 결과가 있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발생과 발생되어야 할 것이 성립한다.
016_0563_c_19L外曰因果不破故生可生成修妒路
汝言因中多果果中多因爲過不言無因果是故生可生成
016_0564_a_01L【불자】 존재와 존재, 비존재와 비존재는 서로 발생하게 하지 않네.수투로
존재[物]에서 존재가 발생하지 않고, 비존재[非物]에서 비존재가 발생하지 않는다. 존재에서 비존재가 발생하지 않고, 비존재에서 존재가 발생하지 않는다. 만약 존재에서 존재가 발생하는 것이 마치 어머니에게서 아들이 태어나는 것과 같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어머니는 실제로는 아들을 낳지 않는다. 아들이 이미 있고 나서 어머니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만약 어머니의 난자에서 태어나기에 존재에서 존재가 발생한다고 말한다면, 이것도 옳지 않다.왜 그러한가? 난자 등을 떠나서 어머니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가령 변해서 태어나는 것을 존재에서 존재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것도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젊은 것은 변해서 늙은 것이 되지만 젊은 것이 늙은 것을 생기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가령 거울 속의 상(像)을 존재에서 존재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것도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거울 속의 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016_0563_c_21L內曰物物非物非物互不生修妒路
物不生物非物不生非物物不生非物物不生物若物生物如母生子者則不然何以故母實不生子子先有母出故若謂從母血分生以爲物生物者是亦不然何以故離血分等不可得故若謂如變生以爲物生物是亦不然何以故壯卽變爲老壯生老故若謂如鏡中像以爲物生物者是亦不然何以故鏡中像無所從來故
또 거울 속의 상이 얼굴과 유사한 것과 같이 다른 결과도 또한 원인과 유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존재에서 존재가 발생하지 않는다. ‘비존재에서 비존재가 발생하지 않는다’란, 가령 토끼의 뿔에서 토끼의 뿔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존재에서 비존재가 발생하지 않는다’란, 가령 석녀에게서 아들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비존재에서 존재가 발생하지 않는다’란, 가령 거북이의 털에서 부들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생[生法]이 있지 않다.
016_0564_a_09L復次如鏡中像與面相似果亦應與因相似而不然是故物不生物非物不生非物者如兔角不生兔角物不生非物者如石女不生子非物不生物者如龜毛不生蒲是故無有生法
또 만약 존재에서 존재가 발생한다면 그렇다면 두 종류의 법으로 발생할 것이다. 원인 속에 결과가 있든가,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든가 이다. 이것은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만약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다면 원인은 결과를 발생시키지 못할 것이다. 원인의 가장자리에서 다른 결과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원인 속에 미리 결과가 있다면 어떻게 발생하고 소멸하겠는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수투로
만약 물단지와 진흙덩어리가 다르지 않다면 물단지가 발생할 때 진흙덩어리가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진흙덩어리가 물단지의 원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진흙덩어리와 물단지가 다르지 않다면 물단지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물단지가 진흙덩어리의 결과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원인 속에 결과가 있든,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든, 존재에서 존재가 발생하지 않는다.
016_0564_a_14L復次若物生物者是應二種法生若因中有果若因中無果則不然何以故若因中先無果者不應生果因邊異果不可得故若因中先有果云何生滅不異故修妒路
若甁與泥團不異者甁生時泥團不應滅泥團亦不應爲甁因若泥團與甁不異者甁不應生甁亦不應爲泥團果是故若因中有果若因中無果物不生物

9. 상주함을 타파하는 장[破常品]
016_0564_a_23L破常品第九
016_0564_b_01L
【외도】 모든 법들이 존재하네. 원인이 없는 상주하는 법이 타파되지 않았기 때문에.수투로
그대가 원인이 있는 법을 타파하긴 했지만 원인이 없는 상주하는 법은 타파하지 않았다. 가령 공간[虛空]ㆍ시간[時]ㆍ방향[方]ㆍ극미[微塵]ㆍ열반과 같은 이 원인이 없는 법은 타파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법이 존재한다.
016_0564_b_01L外曰應有諸法無因常法不破故修妒路
雖破有因法不破無因常法如虛空微塵涅槃是無因法不破故有諸法
【불자】 만약 이유 없이[强] 상주한다고 한다면
그대는 원인이 있기에 상주한다고 말하는가, 원인이 없기에 상주한다고 말하는가? 만약 상주하는 법이 원인이 있다면 원인이 있기에 무상한 것이 된다. 만약 원인이 없기에 상주한다고 말한다면 무상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016_0564_b_05L內曰若强以爲常無常同修妒路
汝有因故說常耶無因故說常耶常法有因有因則無常若無因說常亦可說無常
【외도】 인식함의 원인이기에 과실이 없네.수투로
두 종류의 원인이 있다. 하나는 만듦의 원인[作因]이고 다른 하나는 인식함의 원인[了因]이다. 만약 만듦의 원인으로 본다면 이것은 무상한 것이다. 우리의 공간[虛空] 등의 상주하는 법은 인식함의 원인이기에 상주한다고 말하는 것이지 원인이 없기에 상주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원인이 있기에 무상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유 없이[强] 상주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016_0564_b_08L外曰了因故無過修妒路
有二種因作因了因若以作因是則無常我虛空等常法以了因故說常非無因故說常亦非有因故說無是故非强爲常
【불자】 이 원인은 타당하지 않네.수투로
그대가 비록 상주하는 법이 원인이 있다고 말하긴 하지만 이 원인은 타당하지 않다. ‘나[神]’는 이미 타파되었다. 다른 상주하는 법은 후에 타파될 것이다.
016_0564_b_12L內曰是因不然修妒路
汝雖說常法有因是因不然神先已餘常法後當破
【외도】 상주하는 법은 존재하네. 만들어진 법[作法]은 무상하기에 만들어지지 않은 법[無作法]이 상주하네.수투로
물단지 등의 사물들이 무상하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만약 이 법과 다르다면 상주할 것이다.
016_0564_b_14L外曰應有常法法無常故不作法是常修妒路
眼見甁等諸物無常若異此法應是常
【불자】 존재하네. 또한 함께 존재하지 않네.수투로
그대는 만들어진 법[作法]과 상반되기 때문에 만들어지지 않은 법[不作法]이라고 한다. 이제 만들어진 법 속에 존재성[有相]이 보이기 때문에 만들어지지 않은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그대는 “만들어진 법과 상반되기 때문에 만들어지지 않은 법을 상주한다”고 한다면, 이제 만들어진 법과 상반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무상할 것이다. 왜 그러한가? 만들어지지 않은 법과 만들어진 법은 동일하게 감각되는 것[觸]이 없기 때문에, 만들어지지 않은 법은 무상할 것이다. 이와 같이 편재하는 상주법(常住法)과 편재하지 않는 상주법을 모두 이미 합쳐서 타파했다. 이제 하나하나 타파할 것이다.
016_0564_b_16L內曰亦共有修妒路
汝以作法相違故名不作今見作法中有相故應無不作法復次汝以作法相違故不作法爲常者今與作法不相違故是應無常所以者何不作法作法同無觸故不作法應無常如是遍常不遍常悉已摠破當別破
016_0564_c_01L【외도】 공간[虛空法]이 실제로 존재하네. 상주하고 편재하며 부분이 없네. 모든 곳에, 모든 때에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네.수투로
세상 사람들은 모든 곳에 공간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편재한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때에 공간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상주한다.
016_0564_b_23L外曰定有虛空法常亦遍亦無分一切處一切時信有故修妒路
世人信一切處有虛空是故遍信過去現在一切時有虛空是故常
【불자】 부분 속에서 부분과 합하기에 부분과 다르지 않네.수투로
물단지에 내부[向中] 공간이 있을 때 이 내부 공간에 전체[都]가 존재하는가, 부분이 존재하는가? 만약 전체가 존재한다면 편재하지 않는다. 만약 이것을 편재한다고 한다면 물단지도 편재할 것이다. 만약 부분이 존재한다면 공간은 단지 부분일 뿐이므로 전체[有分]를 공간이라고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간은 편재하는 것이 아니다. 또 상주하는 것도 아니다.
016_0564_c_03L內曰分中分合故分不異修妒路
若甁中向中虛空是中虛空爲都有耶爲分有耶若都有者則不遍若是爲遍甁亦應若分有者虛空但是分無有有分名爲虛空是故虛空非遍亦非常
【외도】 공간이 실제로 존재한다. 편재하고 또 상주하네. 행동[作]이 있기 때문에.수투로
만약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드는 일[擧]이 없고 내리는 일[下]이 없으며 가거나 오는 일 등이 없다. 왜 그러한가? 수용하는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실제로 행동[所作]이 있다. 그러므로 공간이 존재한다. 편재하고 상주한다.
016_0564_c_08L定有虛空遍相亦常有作故修妒路
無虛空者則無擧無下無去來等以者何無容受處故今實有所作以有虛空亦遍亦常
【불자】 그렇지 않네. 공간이 공간에 거처하게 되네.수투로
만약 공간이 존재한다면 거주하는 장소가 있을 것이다. 만약 거주하는 장소가 없다면 비존재[無法]이다. 만약 공간이 빈 곳[孔穴] 속에 거주한다면 그렇다면 공간은 공간 속에 거주하는 것이다. 수용하는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공간은 빈 곳 속에 거주하지 않는다. 또 충실한 곳[實]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충실하다면 공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수투로
충실하다면 공간이라 하지 않는다. 만약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거주하는 장소가 없다. 수용하는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또 그대가 행동의 장소[作處]를 공간이라고 말한다면 충실한 곳에는 행동의 장소가 없기 때문에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간은 편재하는 것도 아니고 상주하는 것도 아니다.
또 성질[相]이 없기 때문에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법은 각각의 성질이 있다. 성질이 있기 때문에 모든 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지(地)의 단단한 성질, 수(水)의 축축한 성질, 불(火)의 뜨거운 성질, 풍(風)의 움직이는 성질, 식(識)의 인식하는 성질이 그러하다. 그러나 공간은 성질[相]이 없다. 그러므로 존재하지 않는다.
016_0564_c_12L內曰不然虛空處虛空修妒路
若有虛空法應有住處無住處是則無法若虛空孔穴中住是則虛空住處空中有容受處故而不然是以虛空不住孔穴中亦不實中住何以故實無空故修妒路
是實不名空若無空則無住處以無容受處復次汝言作處是虛空者實中無作處故則無虛空是故虛空亦非遍亦非常復次無相故無虛空諸法各各有相以有相故知有諸法如地堅相水濕相火熱相風動相識知相而虛空無相是故無
016_0565_a_01L【외도】 공간은 성질[相]이 있다. 그대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없을 뿐이다. 색 없음[無色]이 공간의 성질이다.
016_0565_a_01L外曰虛空有相汝不知故無無色是虛空相
【불자】 그렇지 않다. 색 없음은 색이 파괴된 것을 의미한다. 다시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나무를 절단했을 때 다시 법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공간의 성질은 없다. 또 공간은 성질이 없다. 왜 그러한가? 그대가 “색 없음이 공간의 성질이다”고 말한다면, 만약 색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 때는 공간의 성질이 없다. 또 색은 무상한 법이고 공간은 상주하는[有常] 법이다. 색이 아직 있지 않을 때에도 이미 공간은 존재할 것이다. 만약 아직 색이 있지 않다면 소멸하는 바가 없으니 공간은 성질이 없는 것이다. 만약 성질이 없다면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색 없음이 공간의 성질인 것이 아니다. 오직 이름이 있을 뿐 실질이 없다. 모든 편재하고 상주하는 것도 합쳐서 이와 같이 타파할 수 있다.
016_0565_a_02L內曰不然色名破色非更有法猶如斷樹更無有法是故無有虛空相復次虛空無何以故汝說無色是虛空相者色未生是時無虛空相復次色是無常法虛空是有常法若色未有時先有虛空法若未有色無所滅虛空則無相若無相則無法是故非無色是虛空相但有名而無實諸遍常亦如是摠破
【외도】 시간[時法]이 존재하네. 상주함의 상(相)이 있기 때문에.수투로
어떤 법은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공통 표상[共相]에 의지해서 추리할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와 같이 시간은 미세해서 비록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절기ㆍ꽃ㆍ열매 등에 의해서 알 수 있다. 이것은 결과를 보고서 원인을 인식하는 것이다. 또 동시, 동시 아님, 멀고 가까움 등의 성질[相]에 의해서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상주한다.
016_0565_a_11L外曰有時法常相有故修妒路
有法雖不可現見以共相比知故信如是時雖微細不可見以節氣花實等故知有時此則見果知因復次以一時不一時久近等相故可知有無不有時是故常
【불자】 과거는 미래 속에 없네. 그러니 미래는 없네.수투로
가령 진흙덩어리일 때는 현재, 진흙일 때는 과거, 물단지일 때는 미래인데, 이것이 시간의 상(相)이다. 상주하기 때문에 과거 시간[過去時]은 미래 시간[未來時]이 되지 않는다. 그대의 경전에 “시간은 단일한 법이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과거 시간은 결코 미래 시간이 되지 않는다. 또한 현재 시간[現在時]도 되지 않는다. 만약 과거가 미래가 된다면 뒤섞이는 과실이 있다. 또 과거 속에 미래가 있지 않다. 그러므로 미래가 있지 않다. 현재도 이와 같이 타파된다.
016_0565_a_16L內曰過去未來中無是故無未來修妒路
如泥團時現在土時過去甁時未來此則時相常故去時不作未來時汝經言時是一法是故過去時終不作未來時亦不作現在時若過去作未來者則有雜過又過去中無未來時是故無未來在亦如是破
016_0565_b_01L【외도】 과거를 인정하기에 시간이 존재하네.수투로
그대가 과거 시간을 인정하기 때문에 반드시 미래 시간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시간이 실제로 존재한다.
016_0565_a_23L外曰受過去故有時修妒路
汝受過去時故必有未來時是故實有時法
【불자】 미래의 상(相)은 과거가 아니네.수투로
그대는 내가 앞에서 과거의 진흙은 미래의 물단지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듣지 않았는가? 만약 미래의 상 속에 떨어졌다면 이것을 미래의 상(相)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과거라고 하겠는가? 그러므로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016_0565_b_02L內曰非未來相過去修妒路
汝不聞我先說過去土不作未來甁若墮未來相中是爲未來相云何名過去是故無過去
【외도】 시간이 존재하네. 자상(自相)이 구별되기 때문에.수투로
만약 현재라면 현재의 상이 있고, 만약 과거라면 과거의 상이 있고, 만약 미래라면 미래의 상이 있다. 그러므로 시간이 존재한다.
016_0565_b_05L外曰應有時自相別故修妒路
若現在有現在相若過去有過去若未來有未來相是故有時
【불자】 만약 그렇다면 모든 것은 현재이네.수투로
만약 3시(時)에 자상이 있다면 이제 모두 현재일 것이다. 만약 미래라면 이것은 무(無)이다. 만약 유(有)라면 미래(未來)4)라고 해서는 안 되고 이래(已來)5)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주장은 옳지 않다.
016_0565_b_07L內曰若爾一切現在修妒路
若三時自相有者今盡應現在若未來是爲無若有不名未來應名已來是故此義不然
【외도】 과거와 미래는 자기의 상을 행하기에 과오가 없네.수투로
과거 시간과 미래 시간은 현재의 상을 행하지 않는다. 과거 시간은 과거의 상을 행하고 미래 시간은 미래상을 행한다. 이것들이 각각 자기의 상을 행하기 때문에 과실이 없다.
016_0565_b_10L過去未來行自相故無咎修妒路
過去未來時不行現在相過去時行過去相未來時行未來相是各各行自相無過
【불자】 지나갔다면 과거가 아니네.수투로
만약 과거가 지나갔다면[過去] 과거라 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자기의 상(相)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불이 뜨거움을 버렸다면 불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자기의 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만약 과거가 지나가지 않았다면 이제 과거 시간이 과거의 상을 행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미래도 또한 이와 같이 타파한다. 그러므로 시간[時法]은 실질이 없고 다만 언설이 있을 뿐이다.
016_0565_b_14L內曰過去非過去修妒路
若過去過去者不名爲過去何以故離自相如火捨熱不名爲火離自相故過去不過去者今不應說過去時行過去相未來亦如是破是故時法無但有言說
【외도】 방향[方]이 실제로 존재하네. 상주함의 상이 있기 때문에.수투로
‘태양과 합하는 장소’가 방향의 상이다. 우리의 경전에서 “과거든, 미래든, 현재든 태양과 최초로 합하는 장소를 동쪽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다른 방향도 태양을 좇아서 이름을 짓는다”고 말하고 있다.
016_0565_b_19L外曰實有方常相有故修妒路
日合處是方相如我經說若過去若未來若現在日初合處是名東方如是餘方隨日爲名
016_0565_c_01L【불자】 그렇지 않네. 동쪽은 최초일 때가 없기 때문에.수투로
태양은 네 천하6)를 지나가고 수미산을 돈다. 울단월(鬱單越)7)의 한낮은 불우체(弗于逮)8)의 해뜰 때이어서 불우체의 사람들은 동쪽이라고 한다. 불우체의 한낮은 염부제(閻浮提)9)의 해뜰 때이어서 염부제의 사람들은 동쪽이라고 한다. 염부제의 한낮은 구야니(拘耶尼)10)의 해뜰 때이서 구야니의 사람들은 동쪽이라고 한다. 구야니의 한낮은 울단월의 해뜰 때이어서 울단월의 사람들은 동쪽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모두가 동쪽이고 남쪽이고 서쪽이고 북쪽이다.
또 태양과 합하지 않는 장소 이것에는 방향이 없다. 상(相)이 없기 때문이다. 또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쪽을 동쪽이라고 하고 저쪽을 서쪽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실재하는 방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016_0565_b_22L內曰不然東方無初故修妒路
日行四天下繞須彌山單越日中弗于逮日出弗于逮人以爲東方弗于逮日中閻浮提日出浮提人以爲東方閻浮提日中拘耶尼日出拘耶尼人以爲東方拘耶尼日中鬱單越日出鬱單越人以爲東如是悉是東方南方西方北方日不合處是中無方以無相故不定故此以爲東方彼以爲西方是故無實方
【외도】 그렇지 않네. 이 방향의 상(相)은 한 천하에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수투로
이 방향의 상은 한 천하에 의지해서 말하는 것이기에 전체를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동쪽은 최초일 때가 없다는 과실이 없다.
016_0565_c_09L外曰不然是方相一天下說故修妒路
是方相因一天下說非爲都說是故東方非無初過
【불자】 만약 그렇다면 한계가 있는 것이네.수투로
만약 태양과 최초에 합하는 곳을 동쪽이라고 한다면 모든 방향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부분이 있다. 부분이 있기 때문에 무상하다. 그러므로 언어로 표현할 때 방향이 있는 것이지 실제로는 방향이 있지 않은 것이 된다.
016_0565_c_11L內曰若爾有邊修妒路
若日先合處是名東方者諸方有邊有邊故有分有分故無常是故言說有方實爲無方
【외도】 편재하는 상주하는 것은 없지만 편재하지 않는 상주하는 극미는 존재하네.수투로
세상 사람들은 결과를 보고서 원인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거나 원인을 보고서 결과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싹 등을 보고서 씨 등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과 같다. 세계의 법인, 모든 발생하는 사물들을 볼 때 전에는 미세하고 후에는 조대하다. 그러므로 두 극미를 최초의 결과로 하고 한 극미를 원인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극미가 존재한다. 둥글며 상주한다. 원인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016_0565_c_14L外曰雖無遍常有不遍常微塵是果相有故修妒路
世人或見果知有因或見因知有果如見芽等知有種子世界法見諸生先細後麤故可知二微塵爲初果以一微塵爲因是故有微塵圓而常無因故
016_0566_a_01L【불자】 두 극미가 몸 전체와 합하는 것이 아니네. 결과는 둥글지 않기 때문에.수투로
극미들의 결과가 발생할 때 몸 전체와 합하는 것이 아니다. 왜 그러한가? 두 극미 등의 결과는 눈에 보일 때 둥근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극미가 몸 전체와 합한다면 두 극미 등의 결과도 둥글 것이다.
만약 몸 전체와 합한다면 둘도 동일하게 괴멸하네.수투로
또 만약 극미가 거듭 합한다면 결과는 높고, 만약 많이 합한다면 결과는 크다. 부분으로써 합하기 때문에 극미는 ‘부분을 갖는 것[有分]’이다. 부분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무상하다.
016_0565_c_20L內曰二微塵非一切身合不圓故修妒路
諸微塵果生時非一切身何以故二微塵等果眼見不圓故若微塵身一切合者二微塵等果亦應圓復次若身一切合二亦同壞若微塵重合則果高若多合則果大以一分合故微塵有分有分故無常
극미는 무상하네. 공간에 의해 나누어지기 때문에.수투로
또 만약 극미가 존재한다면 허공과 함께 나누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극미는 ‘부분을 갖는 것’이다. 부분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무상하다.
색과 미(味) 등에 의해 나누어지기 때문에.수투로
또 만약 극미가 존재한다면 색과 미(味) 등의 부분을 가질 것이다. 그러므로 극미는 ‘부분을 갖는 것’이다. 부분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무상하다.
형태가 있는 법은 상(相)이 있기 때문에.수투로
또 만약 극미가 형태가 있다면 장형ㆍ단형ㆍ사각형ㆍ원형 등을 가질 것이다. 그러므로 극미는 부분을 갖는 것이다. 부분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무상하다. 무상하기 때문에 극미가 존재하지 않는다.
016_0566_a_03L復次微塵無常以虛空別故修妒路
若有微塵應當與虛空別是故微塵有分有分故無常復次以色味等別故修妒路
若微塵是有應有色味等分是故微塵有分有分故無常復次有形法有相故微塵有形應有長短方圓等是故微塵有分有分故無常無常故無微塵
【외도】 열반[涅槃法]이 존재하네. 번뇌 없음과 열반은 다르지 않기 때문에.수투로
애(愛) 등의 번뇌들을 영원히 멸진한 것을 열반이라고 한다. 번뇌가 있다면 태어남과 죽음[生死]이 있다. 번뇌가 없기 때문에 영원히 다시 태어나고 죽지 않는다. 그러므로 열반이 상주한다고 하는 것이다.
016_0566_a_10L有涅槃法常無煩惱涅槃不異故修妒路
愛等諸煩惱永盡是名涅槃有煩惱者則有生死無煩惱故永不復生死是故涅槃爲常
【불자】 그렇지 않네. 열반은 지어진 법[作法]이기 때문에.수투로
수도(修道)에 의지하기 때문에 번뇌들이 없다. 만약 번뇌 없음이 열반이라면 열반은 지어진 법이다. 지어진 법이기 때문에 무상하다. 또 만약 번뇌 없음이라면 이것을 ‘존재하지 않음[無所有]’이라 한다. 만약 열반이 번뇌 없음과 다르지 않다면 열반은 존재하지 않는다.
016_0566_a_14L內曰不然涅槃作法修妒路
因修道故無諸煩惱若無煩惱是卽涅槃者涅槃則是作法作法故無常復次若無煩惱是名無所有涅槃與無煩惱不異者則無涅槃
【외도】 능작인[作因]이기 때문에.수투로
열반은 번뇌 없음의 능작인이 된다.
016_0566_a_18L作因故修妒路
涅槃爲無煩惱作因
【불자】 그렇지 않네. 타파하는 것[能破]은 타파되는 것[破]이 아니네.수투로
만약 열반이 해탈을 위한 것이라면 해탈이 아니다. 또 아직 번뇌를 멸진하지 않았을 때 열반이라 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결과가 없기 때문에 원인이 없다.
016_0566_a_19L不然能破非破修妒路
若涅槃能爲解脫者則非解脫復次未盡煩惱時應無涅槃所以者何無果故無因
016_0566_b_01L【외도】 번뇌 없음의 결과이네.수투로
이 열반은 번뇌 없음이 아니다. 또한 번뇌 없음의 원인도 아니다. 이것은 번뇌 없음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열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016_0566_a_22L外曰無煩惱果修妒路
此涅槃非是無煩惱非無煩惱因是無煩惱果是故非無涅槃
【불자】 계박하는 것과 계박되는 것과 방편이 다르다면 이것은 쓸모가 없네.수투로
계박하는 것이란 번뇌와 업(業)을 말하고, 계박되는 것이란 중생을 말하고, 방편이란 8성도(聖道)를 말한다. 도(道)에 의해서 계박을 해탈하기 때문에 중생은 해탈을 얻는다. 만약 열반이 존재하는데 이 세 법이 다르다면 쓸모가 없다. 또 번뇌가 없다면 이것을 ‘존재하지 않음[無所有]’이라고 한다. 존재하지 않음은 원인이 되지 않는다.
016_0566_b_02L內曰可縛方便異此無用修妒路
縛名煩惱及業可縛名衆生方便名八聖道以道解縛故衆生得解脫有涅槃異此三法則無所用復次煩惱是名無所有無所有不應爲因
【외도】 열반이 존재하네. 이것은 없음[無]과 같네.수투로
만약 계박하는 것과 계박되는 것과 방편의 셋에 처소가 없다면 이것을 열반이라고 한다.
016_0566_b_06L外曰有涅槃是若無修妒路
若縛可縛便三事無處是名涅槃
【불자】두려운 곳이 어떻게 물들 수 있는가?.수투로
무상의 과환(過患)이기 때문에 지혜가 있는 자는 유위법을 버려서 탐욕을 벗어난다. 만약 열반에 근(根)들과 탐욕하는 것이 없다면 열반은 유위법보다 심대히 두려운 곳[畏處]이다. 그대는 왜 마음이 물드는가? 열반이란 모든 집착을 버리고 모든 그릇된 기억과 표상을 소멸시키고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며 존재[物]도 아니고 비존재[非物]도 아닌 것을 말한다. 등불이 소멸하는 것과 같기에 논설(論說)할 수가 없다.
016_0566_b_08L內曰畏處云何可染修妒路
以無常過患故智者於有爲法棄捐離欲若涅槃無有諸情及所欲事者則涅槃於有爲法甚大畏處何故心染涅槃名離一切著滅一切憶想非有非無非物非非物譬如燈不可論說
【외도】 누가 열반을 얻는가? 수투로
이 열반은 어떤 사람이 얻는가?
016_0566_b_14L外曰誰得涅槃修妒路
是涅槃何人得
【불자】 열반을 얻는 일이 없네.수투로
나는 앞에서 “등불이 소멸한다면 동쪽으로 가는 것도 동ㆍ서ㆍ남ㆍ북ㆍ4유(維)ㆍ상하(上下)로 가는 것도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열반도 이와 같다”고 말했다. 모든 언설이 소멸해서 논설할 수가 없다. 이것이 ‘존재하지 않음’이다. 누가 얻는 자이겠는가? 설사 열반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얻는 자가 없다. 만약 ‘나[神]’가 열반을 얻는다고 말한다면 ‘나’는 상주하고 편재하기 때문에 열반을 얻지 못할 것이다. 5온(蘊)도 열반을 얻지 못한다. 왜 그러한가? 5온은 무상하기 때문이고 5온은 생멸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데 열반이 누구에게 속하겠는가? 만약 열반을 얻는다고 말한다면 세간의 언설일 뿐이다.
016_0566_b_15L內曰無得涅槃修妒路
我先說如燈滅不可言東去南西北方四維上下涅槃亦如是一切語滅無可論說是無所有誰當得者設有涅槃亦無得者若神得涅槃神是常是遍故應得涅槃五陰亦不得涅槃何以故五陰無常故五陰生滅故如是涅槃當屬誰若言得涅槃是世界中說

10. 공을 타파하는 장[破空品]
016_0566_b_22L破空品第十
016_0566_c_01L
【외도】 모든 법이 존재하네. 부정[破]이 있기 때문에. 만약 부정이 없다면 다른 법들이 존재하기 때문에.수투로
그대는 모든 법상(法相)을 부정한다. 만약 이 부정이 있다면 “모든 법은 공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부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부정이 있기에 모든 법이 부정된다고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부정이 없다면 모든 법이 존재한다.
016_0566_b_23L外曰應有諸法破有故若無破餘法有故修妒路
汝破一切法相是破若有應言一切法空以破有故是破有故名破一切法若無破一切法有
【불자】 부정은 부정되어야 할 것과 같네.수투로
그대는 부정에 집착하기 때문에 유와 무의 법으로써 이 부정을 부정하고자 한다. 그대는 알지 않는가? 부정이 성립하기 때문에 모든 법이 공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부정[破]이 만약 존재한다면 이미 부정되어야 할 것[可破]에 떨어지니, 공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부정이 존재하지 않는데 그대는 무엇을 부정하겠는가? 제2의 머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부정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없다”고 말할 때 “없다”고 말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정과 부정되어야 할 것도 이와 같다.
016_0566_c_04L內曰破如可破修妒路
汝著破故以有無法欲破是破汝不知耶破成故一切法空無所有是破若有已墮可破中空無所有是破若無汝何所破如說無第二頭不以破故便有如人言無不以言無故有可破亦如是
【외도】 모든 법이 존재하네. 이것과 저것을 주장하기 때문에.수투로
그대는 다른 법을 주장하면서 한 법의 과실을 말하고 한 법을 주장하면서 다른 법의 과실을 말한다. 이 두 주장이 성립하기 때문에 모든 법이 존재한다.
016_0566_c_10L外曰應有諸法執此彼故修妒路
汝執異法故說一法過執一法故說異法過是二執成故有一切法
【불자】 한 법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네. 다른 법도 그러하네.수투로
한 법[一]과 다른 법[異]을 얻을 수 없다. 앞에서 이미 부정했다. 앞에서 이미 부정했기 때문에 주장하는 것이 없다. 또 만약 어떤 사람이 “그대는 주장하는 것이 없지만 나는 한 법과 다른 법을 주장한다”고 말한다면, 만약 이 물음이 있다면 이와 같이 부정할 것이다.
016_0566_c_13L內曰一非所執異亦爾修妒路
一異不可得先已破先已破故無所復次若有人言汝無所執我執一異法若有此問應如是破
【외도】 다른 법을 부정하기에 그대는 법을 파괴하는 사람이네.수투로
그대는 다른 법을 부정하길 좋아하고 이유 없이[强] 과실을 범하고, 스스로 주장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대는 파괴하는 사람[破人]이다.
016_0566_c_16L外曰破他法故汝是破法人修妒路
汝好破他法强爲生過自無所執是故汝是破人
【불자】 공함[空]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주장하는 것이 없다. 주장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파괴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대는 자기의 법을 주장하고 타인의 주장을 부정하기 때문에 그대야말로 파괴하는 사람이다.
016_0566_c_18L內曰汝是破人修妒路
說空人無所執無所執故非破人汝執自法破他執故汝是破人
【외도】 타인의 법을 부정하기에 자기의 법이 성립하네.수투로
그대가 타인의 법을 부정할 때 자기의 법이 성립한다. 왜 그러한가? 만약 타인의 법이 진다면 자기의 법이 이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파괴하는 사람이 아니다.
016_0566_c_20L外曰破他法故自法成修妒路
汝破他法自法卽成何以故他法若負自法勝故是以我非破人
016_0567_a_01L【불자】 그렇지 않네. 긍정함[成]과 부정함[破]은 동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네.수투로
‘긍정함’이란 좋은 점[功德]을 칭찬하는 것이다. ‘부정함’이란 그 나쁜 점[過罪]을 배척하는 것이다. 좋은 점을 칭찬하는 것과 나쁜 점을 배척하는 것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긍정함에는 삼감[畏]이 있네.수투로
또 ‘삼감’이란 힘이 없는 것[無力]을 의미한다. 사람이 자기의 법은 삼가기 때문에 긍정할 수 없지만 타인의 법은 삼가지 않기 때문에 부정하길 좋아한다. 그러므로 긍정함과 부정함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만약 타인의 법을 부정하는 것이 곧 자기의 법을 긍정하는 것이라면 그대는 왜 앞에서 “공함[空]을 말하는 사람은 타인의 법을 부정하기만 할 뿐 자기가 주장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는가?
016_0566_c_23L內曰不然成破非一故修妒路
成名稱歎功德破名出其過罪歎德出罪不名爲一復次成名有修妒路
畏名無力若人自於法畏故能成於他法不畏故好破是故成破不一若破他法是卽自成法者汝何故先言說空人但破他法自無所執
【외도】 타인의 주장의 과실을 말한다면 자기의 주장이 긍정되네.수투로
그대는 왜 자기의 법을 긍정하지 않고서 타인의 법을 부정하기만 하는가? 타인의 법을 부정하기 때문에 자기의 법을 긍정하는 것이다.
016_0567_a_06L外曰說他執過自執成修妒路
汝何以不自執成法但破他法破他法故卽是自成法
【불자】 타인의 법을 부정할 때 자기의 법을 긍정하기에 모든 법이 성립하지 않네.수투로
타인의 법을 부정하기 때문에 자기의 법을 긍정한다. 자기의 법을 긍정하기 때문에 모든 법이 성립하지 않는다. 모든 법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긍정하는 것이 없다.
016_0567_a_09L內曰破他法自法成故一切不修妒路
破他法故自法成自法成故切不成一切不成故我無所成
【외도】 그렇지 않네. 세간과 상반되기 때문에.수투로
만약 모든 법이 공하고 무상(無相)한 것이라면 세상 사람들[世間人]은 모두 믿고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016_0567_a_11L外曰不然世閒相違故修妒路
若諸法空無相世閒人盡不信受
【불자】 이 법을 세상 사람들은 믿네.수투로
이 연기의 법[因緣法]을 세상 사람들은 믿고서 받아들인다. 왜 그러한가? 연기의 법[因緣生法]은 상이 없는 것이다. 그대는 “우유 속에 타락과 연유 등이 있고, 여자애[童女]가 이미 아이들을 회임(懷妊)하고 있고 밥 속에 똥이 있다. 또 대들보와 서까래 등 바깥에 별도로 다시 집이 있고, 실 바깥에 별도로 천이 있다”고 말한다. 혹은 “원인 속에 결과가 있다”고 말하고 혹은 “원인 속에 결과가 있지 않다”고 말하고 혹은 “인과 연들 없이 법들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실제로는 공허해서 세상의 일을 말하지 못할 것이다. 이 사람이 주장하는 것을 누가 믿고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의 법은 그렇지 않다. 세상 사람들의 것과 같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믿고서 받아들인다.
016_0567_a_13L內曰是法世閒修妒路
是因緣法世閒信受所以者何因緣生法是卽無相汝謂乳中有酪酥等童女已妊諸子食中已有糞除梁椽等別更有屋除縷別有布言因中有果或言因中無果或言離因緣諸法生其實空不應言說世事是人所執誰當信受我法不爾與世人同故一切信受
【외도】 그대에게 주장하는 바가 없다고 하는 이 법이 성립하네.수투로
그대가 주장이 없다고 말하는 것 이것이 주장이다. 또 나의 법은 세상 사람들의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 이것이 자기의 주장이다.
016_0567_a_21L外曰汝無所執是法成修妒路
汝言無執是卽執又言我法與世人同是則自執
016_0567_b_01L【불자】 주장이 없는 것을 주장이라고 하지 않네. 무(無)와 같네.수투로
나는 앞에서 연기[因緣生]의 법들은 상이 없는 것[無相]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나는 주장하는 바가 없다. 주장이 없는 것을 주장이라고 하지 않는다. 무(無)를 말하는 경우와 같다. 이것은 실제로는 무이다. 무를 말한다고 해서 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주장이 없는 것도 이와 같다.
016_0567_a_23L內曰無執不名如無修妒路
我先說因緣生諸法是卽無相是故我無所執無所執不名爲譬如言無是實無不以言無故便有無無執亦如是
【외도】 그대는 상이 없는 것[無相法]을 말하기에 법을 소멸시키는 사람이네.수투로
만약 모든 법이 공해서 상이 없는 것이라면 이 주장도 무(無)이다. 그렇다면 모든 법이 없다. 모든 법이 없기 때문에 법을 소멸시키는 사람이라고 한다.
016_0567_b_04L外曰汝說無相法故是滅法人修妒路
若諸法空無相此執亦是則無一切法無一切法故是名滅法人
【불자】 법을 소멸시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 이 사람이야말로 법을 소멸시키는 사람이네.수투로
나 자신에게는 법이 존재하지 않기에 부정하는 것이 없다. 그대가 내가 법을 소멸시킨다고 말하면서 부정하고자 한다면 그렇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법을 소멸시키는 사람이다.
016_0567_b_07L內曰破滅法人是名滅法人修妒路
我自無法則無所破汝謂我滅法而欲破者是則滅法人
【외도】 법이 존재하네. 서로 의존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수투로
만약 긴 것이 있다면 반드시 짧은 것이 있다. 만약 올라가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내려가는 것이 있다. 공허[空]가 있다면 반드시 충실[實]이 있다.
016_0567_b_09L外曰應有法相待有故修妒路
若有長必有短若有高有下有空必有實
【불자】 어떻게 서로 의존하는 일이 있겠는가? 하나를 부정하기 때문이네.수투로
만약 하나가 없다면 서로 의존하는 일이 없다. 만약 조금이라도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서로 의존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만약 공하지 않은 것이 없다면 공한 것이 없다. 어떻게 서로 의존하겠는가?
016_0567_b_11L內曰何有相待破故修妒路
若無一則無相待若少有不應有相待若無不空則無空云何相待
【외도】 그대가 무(無)를 긍정한다면 이것이 긍정함[成]이네.수투로
건물이 공해서 말[馬]이 없다고 말한다면 말의 없음[無]이 존재하는 것과 같이 그와 같이 그대가 “모든 법이 공해서 상이 없는 것이다”고 말한다 해도 여러 마음[心]이 일어나기 때문에 무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무를 긍정하는 것이니, 이것이 긍정함[成]이다.
016_0567_b_14L外曰汝無成是成修妒路
如言室空無則有無馬如是汝雖言諸法空無而能生種種心故應有無是則無成是成
【불자】 그렇지 않네. 유와 무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네.수투로
나의 실상[實相]에는 유와 무가 모두 공하다는 것을 여러 법문에서 말하고 있다. 왜 그러한가? 만약 유가 없다면 무도 없다. 그러므로 유와 무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016_0567_b_17L內曰不然有無一切無故修妒路
我實相中種種法門說有無皆空以故若無有亦無無是故有無一切
【외도】 부정은 그렇지 않네. 스스로 공하기 때문이네.수투로
모든 법은 자성이 공해서 지음[作]이 있는 일이 없다면 지음이 없기 때문에 부정이 없다. 가령 어리석은 사람들은 허공을 부정하고자 해서 부질없이 스스로 고달프게 한다.
016_0567_b_20L外曰破不然自空故修妒路
諸法自性無有作者以無作故不應有破愚癡人欲破虛空徒自疲勞
016_0567_c_01L【불자】 자성이 공한데 상(相)을 취해서 계박되네.수투로
모든 법이 자성이 공한데 그릇된 상(想)을 분별해서 계박된다. 이 전도(顚倒)됨을 부정하기 위해 말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부정되는 것이 없다.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뜨겁게 타오를 때의 불을 보고서 허망되게 물의 상(想)을 내고 그것을 좇아서 고달파지는 것과 같다. 지혜가 있는 자가 “이것은 물이 아니다”고 올바르게 말해 주는 것은 그의 상(想)을 끊기 위해서이지 물을 부정하고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이 모든 법은 자성이 공한데 중생은 상(相)을 취해서 집착한다. 이 전도됨을 부정하기 위해 부정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부정되는 것이 없다.
016_0567_b_22L內曰自性空取相故縛修妒路
一切法雖自性但爲邪想分別故縛爲破是顚倒故言破實無所破譬如愚人見熱時妄生水想逐之疲勞智者告言非水也爲斷彼想不爲破水如是諸法性空衆生取相故著爲破是顚倒故言破實無所破
【외도】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법이 큰 경전에는 없기 때문에.수투로
그대는 유를 부정하고 무를 부정하고 유이면서 무인 것을 부정하기에 이제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에 떨어진다. 이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유와 무의 상(相)은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법이라고 한다. 이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법은 『위세사경[衛世師經]』ㆍ『승거경[僧佉經]』ㆍ『니건법(尼乾法)』 등의 경전에서는 모두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
016_0567_c_06L外曰無說法大經無故修妒路
汝破有破無破有無今墮非有非無是非有非無不可說何以故有無相不可得故是名無說法是無說法『衛世師經』『僧佉經』『尼乾法』等大經中皆無故不可信
【불자】 제4구가 있네.수투로
그대의 큰 경전에도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법이 있다. 가령 『위세사경』의 “말[聲]은 크다고도 할 수 없고 작다고도 할 수 없다” 하는 것, 『승거경』의 “진흙덩어리는 물단지도 아니고 물단지 아닌 것도 아니다” 하는 것, 『니건법』의 “빛은 밝음도 아니고 어둠도 아니다”고 하는 것이 그렇다. 그와 같이 모든 경전에는 제4구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법이 있다. 그대는 어찌 없다고 말하는가?
016_0567_c_11L內曰有第四修妒路
汝大經中亦有無說法如『衛世師經』聲不名大不名小『僧佉經』泥團非甁非非甁『尼乾法』光非明非闇如是諸經有第四無說法汝何言無
【외도】 만약 공하다면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 있지 않을 것이네.수투로
만약 완전히 공해서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법이 이렇다11)고 한다면 이제 어떻게 선법과 악법을 언어로 표현해서 교화할 수 있겠는가?
016_0567_c_15L外曰不應有說修妒路
若都空以無說法爲今者何以說善惡法教化耶
【불자】 세속의 언설을 따르기에 과실이 없네.수투로
부처님들의 설법은 항상 속제와 제일의제에 의지한다. 이 둘은 모두 진실(眞實)이기에 허위의 말이 아니다. 가령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이 상이 없다[無相]는 것을 아시지만 아난에게 “사위성에 들어가서 걸식하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만약 흙과 나무 등을 제외하면 성(城) 얻을 수 없는 것이지만 세속의 언설에 따르기에 허위의 말에 떨어지지 않는다. 나도 부처님을 따라서 배우기 때문에 과실이 없다.
016_0567_c_17L內曰隨俗語故無過修妒路
諸佛說法常依俗第一義諦是二皆實非妄語也佛雖知諸法無相然告阿難入舍衛城乞食若除土木等城不可得而隨俗語故不墮妄語我亦隨佛學故無
【외도】 속제는 없네.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수투로
만약 속제(俗諦)가 진실이라면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들어간다. 만약 진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제(諦)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016_0567_c_23L外曰俗諦無不實故修妒路
俗諦若實則入第一義諦若不實何以言諦
016_0568_a_01L【불자】 그렇지 않네. 서로 의존하기 때문에. 큰 것과 작은 것이 그러하듯이.수투로
속제는 세상 사람들[世人]에 있어서 진실이고 성인에 있어서는 진실이 아니다. 한 개의 능금은 대추보다는 크지만 오이보다는 작은 것과 같다. 이 둘은 모두 진실이다. 만약 대추보다 작다고 말하고 오이보다 크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허위의 말이다. 그와 같이 세속의 언어 따르기 때문에 과실이 없다.
016_0568_a_01L不然相待故如大小修妒路
俗諦於世人爲實於聖人爲不實譬如一柰於棗爲大於瓜爲小此二皆實若於棗言小於瓜言大者是則妄語如是隨俗語故無過
【외도】 이 과실을 안다면 무슨 이익을 얻는가? 수투로
최초의 죄와 복을 버리는 것에서 공함[空]을 부정하는 것에 이르듯이 그렇듯이 법들은 모두 과실이 있다고 본다면 어떤 이익들을 얻는가?
016_0568_a_06L外曰知是過得何等利修妒路
如初捨罪福乃至破空如是諸法皆見有過得何等利
【불자】 그와 같이 나[我]를 버리는 것을 해탈을 얻는다고 말하네.수투로
그와 같이 세 가지로 법들을 부정한다. 최초에 죄와 복을 버리고, 중간에 나를 부정하고, 최후로 모든 법을 부정한다. 이것을 ‘나 없음[無我]’, ‘나의 것 없음[無我所]’이라고 한다. 또 법들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있다고 들어도 기뻐하지 않으며 없다고 들어도 근심하지 않으니, 이것을 해탈이라고 한다.
016_0568_a_08L內曰如是捨我名得解脫修妒路
如是三種破諸法初捨罪福中破神後破一切法是名無我無我所又於諸法不受不著聞有不喜聞無不憂是名解脫
【외도】 “해탈을 얻는다고 한다”고 말하면서 왜 실제로는 해탈을 얻지 못하는가?
016_0568_a_12L外曰何以言名得解脫不實得解脫耶
【불자】 영원히 청정하기 때문에.수투로
‘나[神]’를 부정하기에 사람[人]이 없고 열반을 부정하기에 해탈이 없다. 어떻게 “사람이 해탈을 얻는다”고 말하겠는가? 속제에 있어서이기 때문에 해탈이라고 말한다.
016_0568_a_13L內曰畢竟淸淨故破神故無人破涅槃故無解脫云何言人得解脫於俗諦故說名解脫
百論卷下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색경(色境)을 가리킨다.
  2. 2)‘제이(第二)’를 송ㆍ원ㆍ명 3본에 의거해서 ‘제삼(第三)’으로 바꾸었다.
  3. 3)원문의 이미 발생한 것과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4. 4)아직 오지 않은 것을 뜻한다.
  5. 5)이미 온 것을 뜻한다.
  6. 6)4주(洲)를 말한다. 한 가운데에 수미산(須彌山)이 있고 그 둘레에 4대주(大洲)가 있다.
  7. 7)4대주의 하나이며 북구로주(北俱盧洲)라고도 한다.
  8. 8)4대주의 하나이며 동승신주(東勝身洲)라고도 한다.
  9. 9)4대주의 하나이며 인도국을 말한다.
  10. 10)4대주의 하나이며 서우화주(西牛貨洲)라고도 한다.
  11. 11)완전히 공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