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589_T_001
- 016_1081_a_01L순중론의입대반야바라밀경초품법문번역기(順中論義入大般若波羅蜜經初品法門飜譯記)
- 016_1081_a_01L順中論義入大般若波羅蜜經初品法門翻譯之記
- 여러 나라의 언어 중에서 중천축[中天]1)의 소리가 정확하다. 그 곳에서 말하는 나가이리순나(那伽夷離淳那)2)는 용승(龍勝)을 말하는데, 이름과 의미를 모두 구족하여 상세(上世)의 덕인(德人)이다. 용수(龍樹)3)라고 말하는 것은 조각들을 합하여 하나의 상자[箱]4)를 만드는 식이므로 온전히 타당한 것은 아니다.
- 016_1081_a_02L諸國語言,中天音正,彼言那伽夷離淳那,此云龍勝,名味皆足,上世德人。言龍樹者,片合一廂,未是全當。
- 용승보살은 법을 통달한 스승으로, 대반야(大般若)5)에 의거하여 『중론(中論)』을 지어서 여러 경전들의 의미를 포용하기는 하였으나, 끝까지 궁구하지는 못하였다. 그 후 아승거(阿僧佉)6)라 이름하는 대승 논사가 중론에서 해설하지 못한 부분을 해석하여, 따로 이 논부(論部)를 이루었다.
- 016_1081_a_05L龍勝菩薩,通法之師,依『大般若』而造『中論』衆典,於義包而不悉。大乘論師,名阿僧佉,解未解處,別爲此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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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魏)의 상서령(尙書令) 의(儀)는 고공연국(高公延國)7)의 상빈(上賓)인 구담류지(瞿曇流支)8)와 함께 차례로 공양하였는데 불법(佛法)에 정통하였으며, 석담림(釋曇林)9)과 대론하여 이러한 의미를 지닌 논서를 역출하게 되었다.
무정(武定) 원년10) 세차(歲次) 계해(癸亥) 8월 10일 병인(丙寅)에 휘사(揮辭)하노니, 글자는 무릇 일만 삼천칠백이십칠 자이다. - 016_1081_a_08L魏尚書令儀同高公,延國上賓瞿曇流支,在第供養,正通佛法,對釋曇林,出斯義論。武定元年歲次癸亥八月十日,揮辭丙寅,凡有一萬三千七百二十七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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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중론의입대반야바라밀경초품법문
(順中論義入大般若波羅蜜經初品法門) 상권 - 016_1081_a_12L順中論義入大般若波羅蜜經初品法門卷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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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승(龍勝) 지음
무착(無着) 주석
반야류지(般若流支) 한역 -
016_1081_a_13L龍勝菩薩造無著菩薩 釋
元魏婆羅門瞿曇般若流支譯
- 일체지(一切智)에 귀명합니다.
- 016_1081_a_15L歸命一切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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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하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으며
단절되지도 않고 상주하지도 않으며
한 가지 의미도 아니고 다른 의미도 아니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
016_1081_a_16L不滅亦不生,
不斷亦不常,
不一不異義,
不來亦不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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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미 인연을 말씀하시어
모든 희론(戱論)하는 법을 단절시켰다.
그러므로 나는 설법하는 스승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머리 숙여 예배드린다. -
016_1081_a_18L佛已說因緣,
斷諸戲論法,
故我稽首禮,
說法師中勝。
- 이와 같은 『중론(中論)』의 게송이 이 논서의 근본이다. 나는 그 논의 의미를 모두 섭수하기 위하여 이제 다시금 해석하는 것이다. 그 게송에는 또한 의미가 있으니 이와 같고 이와 같으며, 그 의미의 설명은 이와 같고 이와 같으며, 중생들의 즐거움과 탐착을 단절하는 것도 이와 같고 이와 같다. 의미에 따라 논서를 지은 것에는 차례가 있지 않다.
- 016_1081_a_19L如是論偈,是論根本,盡攝彼論。我今更解,彼復有義。如是如是,如彼義說;如是如是,斷諸衆生喜樂取著;如是如是,隨義造論,無有次第。
- 016_1081_b_02L【문】 그대는 이 논서를 말하였는데, 의미에 차례가 있는가, 혹은 차례가 없는가? 어떠한 뜻을 인연으로 하여 의론(義論)1)을 말하여, 의지하는 법대로 이 논서를 지었는가?
- 016_1081_b_02L問曰:汝說此論,義無次第,或有次第,何意因緣,而說義論,如所依法,如是造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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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이다. 세존께서 이미 대경(大經)에서 말씀하셨다.
“‘교시가(憍尸迦)2)야, 미래 세상에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자신의 뜻과 이해에 따라 다른 이를 위하여 이 반야바라밀을 말한다면, 그들은 오직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과 유사한 것을 말한 것이고, 진실된 반야바라밀을 말한 것이 아니다.’ - 016_1081_b_05L答曰:此如是義,世尊已於『大經』中說言:“憍尸迦!於未來世,若善男子、若善女人,隨自意解,爲他說此般若波羅蜜。彼人唯說相似般若波羅蜜,非說眞實般若波羅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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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왕(帝釋王)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진실한 반야바라밀이기에 유사한 것은 진실한 반야바라밀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나이까?’ - 016_1081_b_09L帝釋王言:“世尊!何者是實般若波羅蜜,而言相似非實般若波羅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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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그 사람은 응당 색(色)이 무상(無常)하다고 말하고, 식(識)에 이르기까지 무상하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고(苦)ㆍ무아(無我)ㆍ부적정(不寂靜)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원(無願)을 말하며, 이와 같이 일체지(一切密)에 이르기까지를 말한다. 저 그와 같은 사람은 방편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얻는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 016_1081_b_11L佛言:“憍尸迦!彼人當說色無常,乃至說識無常,如是說苦、無我、不寂靜、空、無相、無願,如是乃至說一切智。彼如是人不知方便,有所得故,如是應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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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왕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진실한 반야바라밀입니까?’ - 016_1081_b_15L帝釋王言:“世尊!何者是實般若波羅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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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오히려 색조차 없는 것이거늘 그 어디에 마땅히 항상함과 무상함이 있겠느냐? 이와 같이 일체지에 이르기까지도 없는 것인데, 어디에 다시 항상함과 무상이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 016_1081_b_16L佛言:“憍尸迦!尚無有色,何處當有常與無常?如是乃至無一切智,何處復有常與無常?如是等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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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와 같이 다른 이로 하여금 반야바라밀을 수행하고 반야바라밀을 말하게 하려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선남자야, 와서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선남자야, 그대는 나아가 조그마한 법에도 집착할 것3)이 없으니, 그대의 마음을 작은 법 중에도 머무르지 않도록 하라. - 016_1081_b_19L又言:“憍尸迦!若善男子、若善女人,如是敎他修行般若波羅蜜而說般若波羅蜜,作如是言:善男子來!修行般若波羅蜜。汝善男子!乃至無有少法可捨,汝心勿於少法中住。
- 016_1081_c_02L 왜냐 하면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 중에는 정법(正法)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과거라 하는 것은 곧 법이 없는 것이니, 어디에 머무르겠느냐? 왜냐하면 교시가야, 모든 법은 자체의 성품이 공(空)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법의 자체가 공하다면, 그 법은 자체가 없는 것이고 그 자체가 없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 016_1081_b_24L何以故?如是般若波羅蜜中無有正法。若過法者,是則無法,於何處住?何以故?憍尸迦!如一切法自體性空。若其彼法自體空者,彼法無體;若無體者,是名般若波羅蜜。
- 만약 이것이 반야바라밀이라면, 그것은 법을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으며, 생하거나 소멸하지도 않고, 단절되거나 상주하지도 않고, 한 가지 뜻이거나 다른 뜻도 아니며, 오거나 가지도 않는다. 이것이 진실한 반야바라밀이니라.’”
- 016_1081_c_06L若是般若波羅蜜者,彼無少法可取可捨,若生若滅,若斷若常,若一義若異義,若來若去,此是眞實般若波羅蜜。”
- 이러한 인연에 의거하여 이 논서를 지은 것이다.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알고 이 방편에 의하여 이제 해석할 것이니, 이른바 중론(中論)에 들어가는 문[入中論門)이다.
- 016_1081_c_09L依彼因緣,故造此論。我如是知般若波羅蜜,此方便故,我今解釋,所謂入『中論』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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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선남자와 선여인이 말하였다.
“나는 색(色)이 무상함을 말고, 식(識)에 이르기까지 무상하고 괴로움, 무아 등이 무상함을 안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이것은 유사한 반야바라밀이지 진실한 반야바라밀은 아니다. - 016_1081_c_11L彼善男子善女人言我知色無常乃至識無常、苦、無我等,以此因緣故,是相似般若波羅蜜,非是眞實般若波羅蜜。
- 【문】 만약 색이 공(空)하고 무상(無相)하며 무원(無願)이라고 말한다면, 어찌하여 이 법이 오직 상사한 것이고 진실한 반야바라밀이 아니란 말인가? 이 세 가지 해탈(解脫)4)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유위(有爲)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 공도 또한 유사한 것이겠는가?
- 016_1081_c_14L問曰:若說色空、無相、無願,云何此法唯是相似,非實般若波羅蜜耶?此三解脫,世尊所說,非有爲故,云何彼空亦相似耶?
- 【답】 취착(取著)5)하기 때문이다.
- 答曰:以取著故。
- 【문】 어떠한 법을 취착한다는 말인가?
- 016_1081_c_18L問曰:取著何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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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_1082_a_02L【답】 색(色)에 취착하고 공(空)에 취착하고 혹은 유(有)에 취착한다면,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얻겠는가? 이 취착이 어찌 이러한 견해뿐이겠는가? 일체의 견해들이 모두 여래(如來)에 의하여 공이라고 설해졌으므로 단절해야 한다. 또 다시 어떤 사람이 곧 저 공을 보는데, 그 사람은 또 어떠한 법으로써 대치[對活]하는가? 오직 이제(二際)6)가 없다는 것만이 곧 그런 견해를 제거할 수 있다. 이제가 없기 때문에 제(際)가 아니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여래는 이미 가섭(迦葉)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일체의 모든 견해들은 공을 봄으로써 벗어날 수 있으나, 만약 사람이 공을 취하고 공에 대하여 견해를 일으킨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구제할 수 없느니라.”
이러한 의미에서 스승7)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016_1081_c_19L答曰:於色取著,於空取著。若有取著,云何得是般若波羅蜜?此取著者,豈非是見?一切諸見皆因如來說空故斷,又復何人卽見彼空?彼人復以何法對治?唯無二際,是則能除無二際故,名爲非際。是故如來已爲迦葉如是說言:“一切諸見,見空得出。若人取空,於空生見,我不能救。”以此義故,師說偈言:
-
공(空)은 일체의 견해를 대치하니
이것은 여래께서 하신 말씀이다.
공에 대하여 견해를 일으킨다면
그에게는 곧 대치할 수가 없다. -
016_1082_a_04L空對一切見,
是如來所說,
於空生見者,
彼則無對治。
- 또 다시 라후라발다라(羅睺羅跋多羅)8)라 이름하는 다른 스승도 말씀하셨다.
- 016_1082_a_06L又復餘師名羅睺羅跋陁羅言:
-
일체의 견해를 대치하는 것은
여래께서 설한 공이 그것이다.
공을 탐애하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게 되지만
공에 집착하면 공도 또한 사물일 뿐이다. -
016_1082_a_07L一切見對治,
如來說空是,
不愛空不著,
著空空亦物,
-
공(空)과 불공(不空)을 탐애하지 말라.
이 두 가지는 탐애 아님이 없다.
부처님 말씀은 훼손할 수 없으며
부처님 말씀은 곳곳에 두루하다. -
016_1082_a_09L不愛空不空,
此二非不愛,
無能壞佛語,
佛語處處遍。
- 또 다시 경전에서 부처님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 016_1082_a_10L又復經中佛說偈言:
-
무릇 사람은 바르게 보지 못하고
지혜가 적기 때문에 공에 취한다.
마치 뱀을 견고하게 잡지 못하고
주술을 잘 성취하지 못함과 같다. -
016_1082_a_11L夫人不正見,
少智故取空,
如捉蛇不堅,
如呪不善成。
- 모두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색(色)에 취착하거나 색의 자체에 취착하고, 혹은 공(空)하다고 분별하거나 공하지 않다고 분별한다. 그러나 그러한 색은 필경 어떠한 사물도 없으니, 어떻게 공과 공하지 않음이 있겠는가?
- 016_1082_a_13L諸如是等,取著於色,取著色體,或分別空,分別不空。彼如是色畢竟無物,云何當有空與不空?
-
또 저 색의 경우처럼 모든 법이 또한 그러하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바와 같다.
“색과 다른 별도의 다른 공이 있지 않은 것처럼, 또한 공과 다른 별도의 다른 색이 있지 않다. 색이 공인 것처럼, 공이 색인 의미도 역시 또한 그러하다.” - 016_1082_a_16L又如彼色,一切諸法皆亦如是。如佛世尊如是說言:“如不異色,別更有空,亦不異空,別更有色。如色於空,空於色義亦復如是。如是等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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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법이 공하지 않음을 본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법이 또한 공이고, 공이 또한 법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 016_1082_a_20L又復經中佛言:“迦葉!若有何人,見法不空,如是之人,法亦是空,空亦是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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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_1082_b_02L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말하는 바 공이란 것은 공 자체가 공하고, 말하는 바 색이란 색 자체가 공하다. 만약 법이 조금이라도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에는 곧 공이 있는 것이다. 일체의 모든 법은 모두 자체가 없으니, 어디에 마땅히 공과 공하지 않음이 있겠느냐?”
이러한 의미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게송에서 말하였다. - 016_1082_a_22L又佛說言:“所言空者,空自體空;所言色者,色自體空。若有少法而不空者,彼則有空。一切諸法皆無自體,何處當有空與不空?”依此義故,有偈說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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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공하지 않은 법이 있다면
공도 또한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
공하지 않은 법이 있지 않으니
어떤 법에 의하여 공을 말하리. -
016_1082_b_03L若法有不空,
空亦得言有。
無有法不空,
依何法說空?
- 나는 이에 의하여, 취착하기 때문에 비슷한 주장이 성립한다는 것을 안다.
- 016_1082_b_05L我依此知,以取著故,相似義成。
- 【문】 만약 스승들이 이와 같이 그러한 방편으로써 반야바라밀을 해석하였다면, 무슨 뜻으로 먼저 『중론』을 짓고는 조작이라 말하고 경(經)이라 하지 않았는가?
- 016_1082_b_06L問曰:若師如是以此方便解釋般若波羅蜜義,以何義故,先造『中論』名爲造作,而非是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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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만약 사람이 어리석으면 지혜롭지 못하여, 그 사람은 마음을 일으켜 이와 같이 분별하며 모든 경전을 훼방할 것이다.
곧 “경(經)은 성숙하지 못하고 오직 논(論)만이 참다우며, 그 밖의 법은 논할 바가 못 된다”라고. 그러한 사람을 위하여 여기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016_1082_b_09L答曰:若人愚癡,非是黠慧。彼人起心,如是分別毀呰諸經,謂經不熟,唯論是實,餘法無論。爲彼人故,此有偈言:
-
번뇌의 원수를 모두 베어버리고
유(有)에서 구제하고 악도(惡道)에서 구제한다.
여래에게는 번뇌를 베어버림과 구제가 있으나,
이 둘은 그 밖의 법에는 없다. -
016_1082_b_12L伐煩惱怨盡,
救有救惡道,
如來有伐救,
此二餘法無。
- 이 게송은 다만 바로 이 논의 근본일 뿐만 아니라, 또한 찬탄으로써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다. 또한 일체의 희론(戱論)과 분별과 모든 취착 등을 단절하기 때문에, 이 게송을 설한 것이다.
- 016_1082_b_14L此偈非唯直是根本,亦以讚歎供養如來,亦斷一切戲論分別、諸取著等,故說此偈。
- 【문】 어찌하여 그러한가?
- 問曰:云何?
- 【답】 여래에게 공양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여래는 무량한 공덕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제 일단 대략 세 가지의 공양을 설명하겠다. 첫째는 법에 따라 수행하는 공양이고, 둘째는 자산과 재물을 바치는 공양이며, 셋째는 자신의 몸으로 예배하는 공양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 법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 공양 가운데 수승하다. 이 게송 가운데 법으로써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 공양 중에서 수승하며, 물질적 공양은 수승하지 못하다.
- 016_1082_b_17L答曰:有無量種供養如來,以如來有無量功德。今且略說三種供養:一者、隨法順行供養;二者、資財奉施供養;三者、自身禮拜供養。此初隨法順行供養,供養中勝。以此偈法供養如來,供養中勝,非物供養。
- 【문】 이것은 어떤 사람이 여래에게 공양하는 것을 말하는가?
- 問曰:此說何人供養如來?
- 016_1082_c_02L【답】 사람으로서 생함이 없는 이치를 통달한 자이다. 또 다시 하는 말이 있다. 수보리(須菩提)가 이전에 예경하였고, 우리 논사(論師)9)도 이와 같이 이 게송의 법으로 여래에게 공양하였다.
- 016_1082_b_23L答曰:若人通達不生際者,又復有說言:“須菩提於先禮我。”論師如是以此偈法供養如來。
- 【문】 세존에게 공양하는 것은 제일 길상한 일이다. 그러므로 논의 처음에 마땅히 법으로 공양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 게송의 법으로써 능히 일체의 취착과 희론 등을 단절한다는 말과 같은 것을 이제 응당 설명해야 할 것이다.
- 016_1082_c_03L問曰:供養世尊,第一上吉,是故論初應法供養。謂此偈法,如說能斷一切取著、戲論等者,今應當說。
- 【답】 그대는 들으라. 나는 이제 그대를 위하여 설명할 것이니 잘 생각할지어다. 회론이라고 말하는 것은 소위 얻음이 있다는 것[有得]과 사물이 있다는 것[有物]의 두 가지에 취착하고, 또 참되지 않은 모든 모습들을 취하는 것이다. 이는 희롱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희론이라 이름한다. 그것을 이제 대략 설명하겠다. 소위 자체(自體)10)를 취착하거나, 혹은 자체 아닌 것을 취착하거나, 혹은 자체이기도 하고 자체 아니기도 한 것을 취착하거나, 혹은 자체도 아니고 자체 아님도 아닌 것을 취착하는 것 등을, 이 게송은 여기에서 일체 모두를 단절한다.
- 016_1082_c_05L答曰:汝聽,我今爲說,善意思念。言戲論者,所謂取著有得有物二,及不實取諸相等,是戲弄法,故名戲論。彼今略說,所謂取體,若取非體,取體非體,或取非體非非體等。此偈於彼一切皆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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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어찌하여 모두 단절하는가?
【답】 게송에서 말하였다. - 問曰:云何皆斷?答曰:偈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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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미 인연을 말씀하시어
모든 희론하는 법을 단절시켰다.
그러므로 나는 설법하는 스승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머리 숙여 예배드린다. -
016_1082_c_11L佛已說因緣,
斷諸戲論法,
故我稽首禮,
說法師中勝。
- 인연에 의해 생하는 것은 모두 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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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_1082_c_13L因緣生者,
皆是戲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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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인연으로 생하는 것이 어찌하여 희론인가?
【답】 인연으로 생하는 것은 세존께서 이미 소승불교에서 말씀하시어, 차례대로 법의 뜻에 들어갈 수 있게 하고, 또한 외도들이 법에 취착하는 것을 대치하였다. - 016_1082_c_14L問曰:因緣生者,云何戲論?答曰:因緣生者,世尊已於小乘中說,隨順次第得入法義,亦以對治外道取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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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_1083_a_02L【문】 어떻게 대치하였는가?
【답】 외도는 삿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자체(自體)가 있다는 견해나, 단견(斷見)11)과 상견(常見)12)을 갖고 있다. 이렇게 집착을 즐겨 일체의 세계는 마혜수라(摩醯首羅)13)ㆍ시절(時節)14)ㆍ미진(微塵)15)ㆍ승(勝)16) 등으로 인하여 자성(自性)17)과 단멸(斷滅)18) 등이 생한다고 분별한다. 저 외도들이 이렇게 분별하면, 곧 인연의 뜻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이와 같이 희론을 즐기기 때문에 삿된 견해라고 이름한다. 이러한 희론은 모든 외도들이 취착하는 법이다. 이것을 단절하기 위하여 세존께서는 이미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명을 인연으로 하여 행(行)이 생하고,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모든 행이 소멸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가 생겨나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세계가 소멸하기도 하는 것이지, 다른 법 때문에 이와 같이 세계가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 016_1082_c_17L問曰:云何對治?答曰:外道惡見,彼有體見,有斷常見,如是樂著一切世界,摩醯首羅、時節、微塵、勝及自性、斷滅等,生如是分別。彼外道人如是分別,則失因緣。彼人如是樂戲論,故名爲惡見。此之戲論,是諸外道取著之法,爲斷此故,世尊已說無明因緣而生於行,無明滅故,諸行滅等。以如是故,有世界生;以如是故,則世界滅;非餘法故,如是生滅。
- 【문】 마혜수라ㆍ시절ㆍ미진ㆍ승과 자성 및 단멸 등 이것들이 인연이 되어 능히 세계가 생겨나거나 세계가 소멸된다는 그러한 모든 인연들은 가히 희론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인연으로 생겨나고 인연으로 소멸한다면, 어떻게 희론이라 하겠는가?
- 016_1083_a_03L問曰:摩醯首羅、時節、微塵、勝者、自性及斷滅等,此等因緣能生世界,滅世界者,此諸因緣可是戲論。若因緣生,因緣滅者,云何戲論?
- 【답】 취착하기 때문에 차례로 취착하여, 나아가 열반에 취착하게 된다. 그렇기에 여래도 또한 그러한 것을 금지하였으니, 하물며 인연에 취착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겠는가. 외도 사람들은 자체에 취착하기 때문에, 선도(善道)를 잃어버리고 악도(惡道)를 행하며 희론하고 참되지 못하다.
- 016_1083_a_07L答曰:以取著故。次第乃至取著涅槃,如來亦遮,何況不遮取著因緣。外道之人取著體故,失於善道,行於惡道,戲論不實。
- 【문】 어찌하여 그러한가?
- 016_1083_a_10L問曰:云何?
- 【답】 마혜수라가 만약에 세계를 만든다면 그것은 항상하는 것인가, 무상한 것인가, 다른 이를 위하여 만드는 것인가, 다른 이를 위하여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이미 생겨나서 만드는 것인가, 아직 생겨나지 않고 만드는 것인가, 존재하는데 만드는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데 만드는 것인가? 그것은 이와 같은 모든 경우에 모두 옳지 않다. 만약 세계를 만든다면 항상하는데 만드는 것인가, 무상한데 만드는 것인가, 다른 이를 위하여 만드는 것인가, 다른 이를 위하여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겨난 것인가 생겨난 것이 아닌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이와 같은 모든 것은 상응하지 않는다. 도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 016_1083_a_11L答曰:摩醯首羅若作世界,彼爲是常?爲是無常?爲爲他作?不爲他作?彼爲生已而有所作?爲是未生而有所作?爲有而作?爲無而作?彼如是等,皆悉不然。若作世界,爲常而作,無常而作?爲爲他作,不爲他作?爲生不生?爲有爲無?如是一切,皆不相應,無道理故。
- 【문】 어찌하여 도리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 016_1083_a_18L問曰:云何名爲無道理耶?
- 【답】 만약 항상하는 법이라면, 어떻게 세계를 조작할 수 있겠는가. 만약 항상하는 법이 세계를 만든다면, 허공도 또한 마땅히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만약 무상한 법이 세계를 만든다면, 병(甁) 등도 또한 응당 세계를 만들 것이다. 만약 항상하며 무상한 법이 세계를 만든다면, 허공과 병이 모두 응당 세계를 만들 것이다. 이런 얼은 있을 수 없다.
- 016_1083_a_19L答曰:若是常法,云何而得造作世界?若是常法作世界者,虛空亦應得作世界,是事不可。若是無常作世界者,甁等亦應造作世界。若常無常作世界者,虛空與甁皆應得作,是事不可。
- 016_1083_b_02L 만약 그대가 생각하기를, 항상하고 무상한 것은 과오이며 항상한 것과 무상한 것을 여의고 다시 다른 작업이 있어서 세계를 만든다고 한다면, 이것은 곧 무궁한 작업이 세계를 만드는 것이 되고, 또 다시 작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있게 된다. 여기에도 또한 과오가 있으니, 병도 또한 응당 작업이 있어 세계를 만들 것이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만약 그대가 생각하기를, 그것은 허물이니 곧 만드는 자가 없이 세계를 만드는 것이 있다라고 한다면, 이 뜻도 성립하지 않는다.
- 016_1083_a_24L若汝意謂常無常過,離常無常,更別有作作世界者,是則無窮作世界作。更復有作之所作故,此復有過。甁亦應是作世界作,是事不可。若汝意謂此是過者,則無作者而作世界,此義不成。
- 【문】 어찌하여 성립하지 않는가?
- 016_1083_b_06L問曰:云何不成?
- 【답】 중생(衆生)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작자가 없다면, 오히려 만드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데, 하물며 다시 만드는 것이 있겠는가. 그 만드는 것이 없는데도 만들어진 것이 있다면, 이것은 곧 사물이 없는데도 또한 응당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다면, 토끼뿔[兎角]19)도 만들 것이고, 또한 응당 석녀(石女)의 자식20)도 만들 것이며, 또한 응당 허공의 화만(花鬘)21)도 만들 것이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또한 병을 만들 수는 있으나, 모두 만들지 않는 것이다.
- 016_1083_b_07L答曰:無衆生故。若無作者,尚自非有,況復有作。如其無作得有造作,是則無物亦應得作。若其得作#兔角,亦應作石女兒,又亦應作虛空花鬘,是事不可,亦可作甁,而皆不作。
- 만약 이미 생겼다면 마땅히 세계를 만들 수 없음을 알 것이니, 병을 만들지 않음과 같다. 만약 아직 생기지 않았다면 또한 만들 수 없으니, 석녀의 아이와 같다. 만약 이미 있다면 세계를 만들지 않으니, 마치 그 사람(자신)과 같다. 만약 아직 없다면 세계를 만들지 않으니, 마치 토끼뿔과 같다. 이렇게 세계에서 항상함과 무상함 등은 비슷하지 않은 과오가 있는 것이다.
- 016_1083_b_12L若已生者,當知不得造作世界,如甁不作;若未生者,亦不得作,如石女兒。若是有者,不作世界,猶如其人;若是無者,不作世界,猶如兔角。此於世界常無常等不相似過。
- 이와 같이 마혜수라와 항상함과 무상함 등이 만약 이 세계를 만드는 인연이라면, 세간의 죄(罪)와 복(福)도 또한 이들이 만든 것이 된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만약 그와 같다면, 일체의 죄와 복은 곧 과보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간을 보게 되면 죄와 복에는 모두 과보가 있다.
- 016_1083_b_17L又復如是摩醯首羅常無常等,若是世界之因緣者,世閒罪福亦是所作,是事不可。若如是者,一切罪福則無果報,然今現見世閒罪福皆有果報。
- 016_1083_c_02L또 다시 수승[勝] 등은 사물 자체가 없기 때문에 세계를 만들지 않는다. 이 의미가 성취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자세히 말하였다. 인연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없는 것이다. 또한 장부(丈夫)22)가 장부를 만드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스스로 성립하지 않으므로 법을 성립시킬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장부가 존재한다면 유전(流轉)하는 행위가 있을 것이다. 수승함 같은 것은 항상하는 것으로서 인연이 없기 때문에, 수승함에는 유전하는 행위가 없다. 이것은 항상하기 때문이다. 장부가 깨닫고 장부가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곧 항상함은 수승한 것과 같다.
- 016_1083_b_21L又復勝等,無物體故,不作世界,此義成就,先已廣說,以無因緣,是故彼無。若丈夫作丈夫不成,自不成故,不能成法。若有丈夫,可有轉行。如勝是常,無因緣故,勝無轉行。以是常故,如丈夫覺、丈夫無覺,則常如勝。
- 만약 이와 같다면, 일체의 모든 법은 모두 다 항상하는 것이다. 만약 사물이 없다면 어떤 법이 항상하고, 만약 법이 항상하지 않다면 어떻게 유전(流轉)이 행해지는 것 등을 분별하겠는가? 가비라사(迦卑羅師),23) 그대는 제자이니 어찌 수승함이 있겠으며, 장부가 존재한다면 그대는 마땅히 설명하여 그 의미가 성립하게 하라. 그러한 후에야 항상함 등의 법이 성립될 것이다.
- 016_1083_c_04L若如是者,一切諸法皆悉是常。若無物者,何法爲常?若無法常,云何分別流轉行等?迦卑羅師,汝是弟子,云何有勝?有丈夫者,汝當說之,令義成就,爾乃於後常等法成。
-
【문】 어찌하여 수승함이 없는가?
【답】 어떻게 수승함이 있겠는가. - 016_1083_c_09L問曰:云何無勝?答曰:云何有勝?
-
【문】 아함(阿含)24) 때문이다.
【답】 나도 지금 또한 아함 때문에 없다고 한 것이다. - 016_1083_c_10L問曰:以阿含故。答曰:我今亦以阿含故無。
-
【문】 도리(道理)에 의하여 수승함의 존재함이 성취된다. 교대로 서로 포섭하기 때문이다.
【답】 무엇이 도리인가? - 016_1083_c_11L問曰:以道理故,有勝成就,迭相攝故。答曰:何者道理?
- 【문】 수승함이 있으니, 차례로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마치 나무의 껍질을 보고 나무에 마을이 있음을 아는 것과 같다.
- 016_1083_c_13L問曰:有勝以見次第有壞相故,如見樹皮,知有樹心。
- 【답】 만약 이와 같다면, 그것은 그대 학파 중에서 개인적으로 헤아려 도리가 성취된 것일 뿐이다. 실제로 이 수승함은 없으니,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토끼뿔과 같으니, 토끼뿔에서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의 껍질 등도 그와 같다.
- 016_1083_c_14L答曰:若如是者,是汝家中私量所量,道理成就,實無此勝見壞相故,猶如兔角。兔角是有見壞相故,如樹皮等。
- 만약 그대가 생각하기를, ‘비록 겉모습[面] 등이 없어도 이것이 있다’고 한다면, 서로 유사한 종류가 아니므로 곧 수승함이 없음을 알 것이다. 생함이 없기 때문에 석녀의 아이와 같다. 만약 허공과 같다면 곧 성취되지 않을 것이고, 만약 열반과 같다면 이것은 곧 사물도 없고 실체도 없는 것이다. 어떻게 있고 있지 않음을 이루겠는가.
- 016_1083_c_17L若汝意謂,雖無面等,而是有者,不相類故,則知無勝,以不生故,如石女兒。若如虛空,則不成就;若如涅槃,是則無物無體,云何成有不有?
- 지금 나의 이러한 설명에 의하면, 그대가 비록 말을 한다고 해도 도무지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대가 지난 번처럼 종(宗)ㆍ인(因)ㆍ유(喩)25)로써 설명하여도 모두 상응하지 않는다. 이것을 나는 이제 설명하겠다. 그대가 주장한 수승한 법을 파괴하는 데는 무량한 종류가 있어 자세히 말할 수 없으나, 대략 조금만 설명하겠다.
- 016_1083_c_21L此我今說,汝雖有語,都無義理,如汝向者見宗、因、喩而有所說,皆不相應。此我今說,破汝勝法有無量種,不可具說,略說少分。
- 016_1084_a_02L그대가 말한 법 중에서 장부(丈夫)라고 말하는 것은, 중생이 없고 인연이 없기 때문에 마치 토끼뿔과 같다. 그대가 지난 번에 장부는 세계의 인연이라고 말하였는데, 이미 인용한 비유인 세계의 인연을 이제 함께 헤아려 보자. 만약 설명할 수 없다면, 인연의 구비됨이 곧 감소[減]한다. 인연의 구비됨이 감소하기 때문에, 이에 곧 과오가 있게 되어 비유가 감소한다. 그대는 곧 패퇴하여 일체의 논쟁에 대하여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비유가 없기 때문이다. 응당 먼저 스스로 자신의 주장26)을 관찰하라.
- 016_1084_a_02L於汝法中,言丈夫者,此無衆生,無因緣故,猶如兔角。如汝向者言丈夫是世界因緣,已引喩者,世界因緣,今共籌量。若不能說緣具則減,緣具減故,是則有過,譬喩則減,汝則退壞一切諍對不成就者。無譬喩故,應先自觀己之朋。
- 이미 자인상(自因相)을 설명하였다. 만약 그것이 항상하다면 곧 작자(作者)가 아니고, 만약 무상하다면 또한 작자가 아니며, 만약 타인이 만들었다면 또한 작자가 아니고, 타인이 만들지 않았다면 또한 작자가 아니다. 만약 그 자체가 이미 생하였다면 또한 작자가 아니고, 만약 아직 생하지 않았다면 또한 작자가 아니며, 만약 그것이 있다면 또한 작자가 아니고, 만약 그것이 없다면 또한 작자가 아니다. 모두 비유가 있어서 자세히 설명할 수가 없으니, 마땅히 세심하게 생각하여 헤아려 보라. 자붕(自朋)27)은 비유가 있으나 타붕(他朋)28)은 비유가 없다.
- 016_1084_a_09L已說自因相,若其是常,則非作者;若是無常,亦非作者;若爲他作,亦非作者;不爲他作,亦非作者;若體已生,亦非作者;若是未生,亦非作者;若其是有,亦非作者;若其是無,亦非作者。皆有譬喩,不能具說,當審思量。自朋有喩,他朋無喩,
- 이와 같이 마혜수라와 시절, 미진 등이 세계의 인연이 된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이 성립된다면, 만드는 것과 만들어지는 것이 교대로 서로 상대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존재한다면 마혜수라는 곧 수승함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수승함도 또한 마혜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저 외도들이 말하는 만드는 것과 만들어지는 것은 교대로 서로 어긋나서 모두 상응하지 않는다.
- 016_1084_a_15L如是如是,摩醯首羅、時、微塵等世界因緣,則不成就。若此成就,作與所作迭互相作,無如是事。若有此事,摩醯首羅則能作勝,勝亦能作摩醯首羅。如是等故,如是外道說作所作,迭互相違,皆不相應。
- 【문】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인연을 구비함이 성립되지 않으면, 이것은 곧 과오이며 비유도 즉시 소멸된다. 또 패퇴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나는 이제 설명하겠다. 어떤 것이 인연을 구비함이고, 어떤 것이 감소하는 모습이며, 어떠한 사람들이 그러한가? 종(宗)ㆍ인(因)ㆍ유(喩) 등의 셋이 인연을 구족함인데, 그와 같은 사람은 곧 세 가지가 감소되어 오직 인(因)29)과 비유[喩]만 있게 된다. 이 두 가지로는 과오가 있다.
- 016_1084_a_21L問曰:如汝所說,緣具不成,是則有過,譬喩則減,復退壞者,此我今說,何等緣具?何者減相?若何等人?宗、因、喩等三是緣具,彼如是人則三種減。唯因、譬喩,此二有過。
- 016_1084_b_02L 인연을 구비하기 때문에 종(宗)은 곧 감소될 수 없다. 이것이 언설의 근본이기 때문이며, 또 의미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이미 세 가지의 감소와 인과 비유의 두 가지 감소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만약 사람이 이것의 세 부분을 분별한다면, 구족하여 화합하므로 인연을 구족한다고 이름한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는 응당 세 가지의 감소가 있다.
- 016_1084_b_02L以緣具故,宗則無減。以是言說之根本故,又義成故,此久已說。有三種減,因、喩二減,若人分別此之三分具足和合,故名緣具,彼如是人應三種減。
-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인(因)의 세 가지 모습[因三相]30)을 말한다면, 즉시 인연을 구족하는 것인데, 그 사람에게 세 가지 중 어떠한 감소가 있겠는가? 인연이 구족되는 것이 잘못인가, 비유가 감소되는가, 어떻게 그 사람에게 응당 감소가 있겠는가? 만약 인연이 구족되는 것이 잘못이라면, 그대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비유가 감소되었기에 인연을 구족하는 잘못이 있다거나 또는 패퇴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 016_1084_b_06L若復有人因三相語則是緣具,彼人三種云何有減?若緣具過,若譬喩減,云何彼人而當有減?若緣具過,汝未知故,作如是說:說喩減已,得緣具過,若復退壞。
- 【답】 어찌하여 이렇게 허공을 쳐대는가, 만약 능히 마혜수라에 관한 주장을 떨쳐 버린다면, 그 즉시 마음을 일으켜 스스로 지혜롭다고 할 만하여, 이내 약야수마(若耶須摩)31)의 주장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그대가 이렇게 하는 말은, 출세간법(出世間法)과 세간법(世間法)을 설명할 수도 없고 또한 상응하지도 않는다. 그 허망한 것이 지극히 범속하고 비루하기 때문이다.
- 016_1084_b_10L答曰:云何如是撾打虛空?若能捨離摩醯首羅之朋分已,則可起心,自謂黠慧,爾乃攝取若耶須摩之朋分也。汝此語言不能說,於出世閒法與世閒法復不相應,以其虛妄最凡鄙故。
- 사정이 이러하므로 곧 대답할 필요조차 없다. 약야수마 논사가 말한 그 언어법(言語法)32) 같은 것이 어떻게 또 세제(世諦)33)의 법을 여의겠는가. 이렇게 내가 지금 하는 말은, 어떤 것이 그 인(因)의 세 가지 모습인가? 만약 어떤 법의 말이 인연을 구족한다면, 다시 어떤 것이 인의 세 가지 모습인가?
- 016_1084_b_15L此如是故,則不須答。若耶須摩論師說言:“此言語法,云何復離世諦之法?”此我今說,以何者是彼因三相?若何者法語爲緣具?復以何者是因三相?
- 【문】 주장 중의 법은34) 상대하는 주장이 없고,35) 또 자신의 주장이 성립한다.36) 마치 소리[聲]가 무상한 것과 같다.37) 조작되기 때문이고, 인연이 허물어지기 때문이며, 조작된 후생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으므로 만약 법이 조작되면 모두 무상하다. 비유하면 병(甁) 등과 같다. 소리도 또한 이와 같이 조작되므로 무상하다. 이와 같이 일체의 법은 조작된 것이므로 무상하다.
- 016_1084_b_19L問曰:朋中之法,相對朋無,復自朋成。如聲無常,以造作故,因緣壞故,作已生故,如是等故。若法造作,皆是無常,譬如甁等。聲亦如是,作故無常。諸如是等一切諸法,作故無常。
- 016_1084_c_02L【답】 어떤 것을 조작된 법이라고 말하는가? 곧 조작된 것을 조작이라 말하는가, 조작을 여의고 조작이라 말하는가? 이것을 이제 해석하겠다. 만약 조작되었기 때문에 조작이라 말한다면, 소리는 조작된 법이며 소리는 모두 조작된 것이므로 조작된 것이라 말한다. 만약 이와 같다면, 주장하는 법은 포섭할 수 없어 곧 소리는 주장하는 법이라고 말할 수 없다.
- 016_1084_b_24L答曰:何名作法?爲作名作?離作名作?此今解釋。若以作故,名爲作者,聲是作法,聲皆是作,是故名作。若如是者,朋法不攝,則不得言聲是朋法。
- 만약 그대가 생각하기를, ‘이러한 과오가 있기는 하지만 소리와 조작이 달라서 소리는 곧 조작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만약 법이 조작을 여읜다면 조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소리는 조작이 아님을 안다. 만약 소리가 조작이 아니라면, 이것은 곧 법이 아닌 것이다. 만약 법이 아니라면, 어떻게 항상하다고 말하거나 혹은 무상하다고 말하겠는가. 만약 사물을 분별한다면, 사물을 분별하는 병이 어떻게 소리를 조작하겠는가.
- 016_1084_c_06L若汝意謂有如是過,聲與作異,聲則非作。若法離作,不得言作。以如是故,知聲非作。若聲非作,是則無法。若無法者,云何言常或言無常?若分別物,分別物法,云何作聲?
- 있기 때문에 조작이고 없기 때문에 조작이라는 것을 이제 해석하겠다. 있는 법은 조작되지 않고, 없는 법도 또한 조작되지 않으며, 만약 법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여도 역시 조작되지 않는다. 만약 그대가 말하기를, ‘소리는 조작된 법이다, 그러므로 무상한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 일은 옳지 않다. 또 그대가 세 가지 모습을 말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조작된 법이라 이름하고, 인(因)과 인의 말[因語]이 모두 인연을 구족한다고 하면, 곧 상응하지 않는다.
- 016_1084_c_11L爲有故作?爲無故作?此今解釋。有法不作,無亦不作,若法有無,亦不成作。若汝說言,聲是作法,故無常者,是事不然。又如汝說三種相故,是名作法,因及因語皆是緣具,則不相應。
- 【문】 어찌하여 상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 問曰:云何名爲不相應耶?
- 【답】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체의 조작된 법에는 세 가지 모습이 없다. 주장의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조작된 주장의 상대인 그 주장은 조작되지 않으므로 서로 파괴한다. 만약 조작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곧 법이 없는 것이다. 만약법이 없다면, 어떻게 파괴되겠는가. 이와 같이 양쪽의 주장은 동등하지도 않고, 수승하지도 않으며, 조작된 법도 아니다. 만약 법의 파괴가 없다면, 또한 토끼뿔도 파괴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의미가 상응하지 않는다.
- 016_1084_c_16L答曰:以不成故。一切作法無三種相,無朋對故,作朋之對,彼朋不作,是故相破。若不作者,是則無法。若無法者,云何破壞?如是兩朋,非等非勝,非有作法。若無法壞,亦可說言兔角破壞,以無體故,義不相應。
- 016_1085_a_02L만약 그대가 생각하기를, ‘무상하다는 주장과 항상하다는 주장이 상대하여 이렇게 따라 일어난다’고 한다면, 이것을 내가 이제 설명하겠다. 그대는 대단히 어리석어 성립되지 않는 법을 가지고 성립시키려고 한다. 이 무상한 것을 이름하여 사물이 없다고 한다. 만약 사물이 없다면 곧 자신의 주장이 없고, 자신의 주장이 성립되지 않으면 따라 일어날 수도 없고 전변할 수도 없다. 만약 이와 같다면 허공 등과 같다. 사물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가 타붕(他朋)은 항상하다고 말한다면, 이 일은 옳지 않다.
- 016_1084_c_22L若汝意謂無常之朋、常朋相對,如是隨起。此我今說,汝甚愚癡,以不成法而欲成法。此無常者,名爲無物;若無物者,則無自朋;自朋不成,不得隨起,不得迴轉。若如是者,不得言朋如虛空等,以無物故。若汝說言他朋常者,是義不然。
- 【문】 어찌하여 옮지 않은가?
- 問曰:云何不然?
- 【답】 항상함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항상함이란 것은 있는 사물인가, 없는 사물인가? 만약 있는 사물이라면, 병(甁)은 곧 항상할 것이다.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만약 항상함이 없는 사물이라면, 토끼뿔은 응당 항상할 것이다.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항상하다거나 무상하다고 말할 수 없다. 만약 그대가 말하기를, “조작된 법은 자신의 주장[自朋]을 따라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이 일은 옳지 않다. 그 자신의 주장이 성취되지 않기 때문이다.
- 016_1085_a_05L答曰:常不成故,如此常者,爲是有物?爲是無物?若是有物,甁則是常,以有物故;若常無物,兔角應常,以無物故,是故不得言常、無常。若汝說言,作法隨自朋不離,是義不然,以其自朋不成就故。
- 【문】 어찌하여 성취되지 않는가?
- 016_1085_a_10L問曰:云何不成?
- 【답】 이것은 주장과 더불어 비슷함이 성립되지 않음을 말한다. 비슷하다고는 말할 수 있으나, 비슷하기 때문에 자붕(自朋)과 타붕(他朋)이 있다. 그러나 그대의 주장은 곧 상응하지 않는다. 성취되어야 할 법이 성취되지 않기 때문이다.
- 016_1085_a_11L答曰:此說不成,與朋相似,得言相似;以相似故,有自他朋。而汝朋者,則不相應,以所成法未成就故。
- 【문】 어찌하여 성취되어야 할 법이 성취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 016_1085_a_13L問曰:云何名爲所成未成?
- 【답】 성취되어야 할 법이 무상하기 때문이다. 무상한 것은 사물이 없는 것이다. 그 없는 사물이 어디에 비슷한 것이 있겠으며, 무엇이 비슷하단 말인가. 소위 병(甁)은 무상하지만 또한 비슷하게 생한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말한다면, 성취되는 법은 비슷함과 다름이 있어도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고, 비슷하기 때문에 자붕과 타붕이 있다. 이것이 성립되어야 할 법이다.
- 016_1085_a_14L答曰:以所成法是無常故,無常無物。如其無物,何處相似?何者相似?謂甁無常,亦相似生。若如是說,所成之法,有異相似,得言相似。以相似故,有自他朋。此所成法,
- 만약 두 가지가 있으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병과 무상은 두 가지 법이 있으므로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두 가지 법이 없으므로 비슷하지 않다. 저 성취되어야 할 법이 만약 생기지 않는다면, 무엇을 무상이라고 말하며, 어떻게 성취되어야 할 것이 성취된다고 말하며, 어떻게 무상함이 성취되어야 할 것을 성취하겠는가?
- 016_1085_a_19L若有二種,得言相似。甁與無常,有二種法,得言相似;無二種法,故不相似。彼所成法,若未生者,何名無常?云何名爲所成成就?云何無常所成成就?
- 【문】 어찌하여 성취되어야 할 것이 성취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 問曰:云何名爲所成不成?
- 016_1085_b_02L【답】 그런데 이 성취되어야 할 것이 때로는 소리[聲]이고, 때로는 무상(無常)이며, 때로는 소리와 무상이 합하거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일체는 모두 성취될 수 없다. 만약 성취되지 않는다면, 어디에 성취되는 법이 있겠는가. 만약 사물을 분별한다면, 분별하는 사물의 법에는 비슷함이 있게 된다.
- 016_1085_a_23L答曰:然此所成,或時是聲,或是無常,或聲無常,若合或和,此等一切皆不可成。若不可成,爲於何處有所成法?若分別物,分別物法,若有相似。
- 만약 그대가 생각하기를, ‘소리와 무상의 두 가지 법을 여의고 그 밖에 다시 다른 사물을 포섭하는 것이 성취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이 일은 옮지 않다. 사물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어떤 사물이 소리와 무상 등의 두 가지를 여의고 어디에 포섭되기에 사물이라 이름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만약 소리라면, 그것은 곧 성취되는 것이라 말할 수 없다. 만약 무상이라면, 그것은 없는 법이므로 성취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리는 파괴할 수 없다. 만약 합하는 것이라면,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있는 사물과 없는 사물은 합할 수 없기 때문에 합해지지 않는다. 조화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여 얻을 수 없다.
- 016_1085_b_04L若汝意謂離聲,無常二種法外,更攝餘物名所成者,是義不然。物不成故,彼何者物?離聲等二,於何處攝而得言物?彼若是聲,彼則不得名爲所成,以成就故;若是無常,彼無法故,所成不成,聲不能破;若是合者,是亦不然。物與無物不可得合,是故不合,和亦如是而不可得。
- 만약 그대가 다시 생각하기를, ‘소리는 다른 것으로 성취된다’고 한다면, 이 일은 옳지 않다. 무상과 소리는 별다르지 않기 때문이며, 다르게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가 말하기를, “주장이 있으면 법을 만든다”라고 한다면, 이일은 옳지 않다. 주장을 여의고 법이 있다는 것은 성취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佛敎)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물을 여의고 그 밖에 다시 사물이 있는 법이 없다.
- 016_1085_b_12L若復意謂,聲異所成,是義不然。無常與聲不別異故,不異成故。若汝說言有朋法作,是義不然。離朋有法,義不成就。於佛法中,離物以外,更無物法。
- 【문】 인연을 구비함과 성취되는 것, 이 둘은 상대되는 것으로, 사물과 사물의법[物物法]이라 이름한다
- 016_1085_b_16L問曰:緣具所成,此二相對,名物物法。
- 【답】 인연을 구비함과 성취되는 것의 둘은 모두 성립되지 않는다. 만드는 사물을 여의고 그 밖에 다시 만드는 법이 없다. 이와 같이 만드는 법과 주장은 서로를 여의지 않는다. 만약 만드는 것이 주장을 여읜다면, 주장은 곧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직 만드는 것이 법이며, 만드는 것을 여의고 법이 없다. 소리를 여의고 만드는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말하였다.
- 016_1085_b_17L答曰:緣具所成,二皆不成,離作物外,更無作法,如是作法,與朋不離。若作離朋,朋則非作,唯作是法,離作無法,不離於聲而有作法,是故偈言:
-
생함을 만드는 것은 오직 형상일 뿐이며
만드는 자도 또한 이와 같다.
일체의 생함은 진실하지 않으며
생하는 법은 토끼뿔과 같다. -
016_1085_b_21L生作唯相貌,
作者亦如是。
一切生不實,
生法如兔角。
- 016_1085_c_02L이와 같이 만드는 법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고,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며, 또 다시 있고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만드는 법의 세 가지 양태는 도리에 상응하지 않는다. 만드는 법은 사물이 없으니 말[語]이 어디에서 인연을 구비하겠는가, 세 가지 양태가 감소하는 데에서인가, 인연이 구비되는 잘못에서인가?
- 016_1085_b_23L如是作法,非有故有,非無故有,亦復非是有無故有。如是思量,作法三相,義不相應。作法無物語,於何處得爲緣具?若三種減,若緣具過。
- 또 다시 말[語言]은 세 가지 양태에서 상응하지 않는다. 말로 설명된 법은 모두 공(空)하여 없기 때문이고, 자체의 모습[自相]이 없기 때문이다. 구(句)와 말[言]은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글자[字]를 여의고 구(句)가 없다. 그 둘은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글자는 미진(微塵)으로 구성되며, 미진으로 인하여 있게 된다. 그러나 그 미진은 분량을 얻을 수 없다. 분량이 없기 때문이다. 미진은 자체가 없어서 생성되거나 소멸하는 일이 성립될 수 없다.
- 016_1085_c_04L又復語言於三種相則不相應,語所說法皆空無故,無自相故。句之與語,非一非異;離字無句,非一非異。字微塵成,因微塵有,然彼微塵無分可得;以無分故,微塵自無,不能有成,若起若滅。
- 【문】 그대는 말한 바와 같이 법이 공하다고 말하는데, 법이 공하기 때문에 말[語]의 세 가지 양태가 모두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 말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고, 그 말이 말하는 바는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연의 파괴 등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법이 공하다고 말하는 것은 세 가지 양태를 부정하는 것이다.
- 016_1085_c_10L問曰:如汝所言,所說法空,以法空故,語三種相皆不成者,是義不然。所說有故,此語所說有可得故。因緣壞等,云何而言所說法空,遮三種相?
- 【답】 인연의 파괴라는 것은 도리에 상응하지 않는다.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리의 인연이 파괴된다면, 어떻게 상응하겠는가? 시시각각으로 생멸하기 때문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이미 없는 물건인데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는가? 인연의 파괴는 생함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토끼뿔과 같다. 또한 무상(無常)이라는 이 말의 세 가지 양태는, 항상하거나 무상하거나 그 둘은 모두 상응하지 않는다.
- 016_1085_c_14L答曰:因緣破壞,義不相應,不成就故。聲因緣壞,云何相應?以念念故,以不住故。旣是無物,何處得有因緣破壞?以不生故,猶如兔角。若復無常,此語三相若常、無常,二不相應。
- 마치 허공이 없는 것과 같고, 또한 병(甁)과 같아 인연이 다. 이와 같이 인연은 일체가 모두 없으니, 두 가지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일체는 다 이렇게 삿된 법에 소속되며 모두 희론이지만, 외도(外道)를 깨뜨리기 위하여 부처님께서 인연을 설한 것이다.
- 016_1085_c_19L如虛空無,又亦如甁,無有因緣。如是因緣,一切皆無,有二過故。此等一切悉皆如是,邪法所攝,皆是戲論。破外道故,佛說因緣。
-
016_1086_a_02L【문】 만약 이와 같다면, 어떻게 인연을 희론(戱論)이라 할 수 있는가? 여래(如來) 세존(世尊)께서는 모든 인연이 진실하기 때문에 설하였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무명(無明) 등은 큰 괴로움의 무리로서 화합하여 생긴다. 만약 무명이 멸하면 큰 괴로움의 무리도 멸한다.”
여래 세존은 이렇게 고성제(苦聖諦)38)를 말씀하거나, 혹은 괴로움의 소멸을 말씀하셨다. 만약 이것이 진실이라면 어떻게 희론이라 하겠는가? - 016_1085_c_22L問曰:若如是者,云何因緣得言戲論?如來世尊以諸因緣是實故說,佛如是說:此無明等,是大苦聚,和合而生。若無明滅,大苦聚滅。如來世尊說苦聖諦,或說苦滅,若是實者,云何戲論?
- 【답】 현명하게 마땅히 잘 들어라, 이제 이것을 대략 설명하겠다. 무엇을 무명이라 이름하는가? 네 가지 전도(四顚倒)39)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명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어떻게 진실하다고 말하겠는가. 또 괴로움은 고성제라고 말하였는데, 여래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 016_1086_a_04L答曰:賢面當聽!此今略說。何名無明?以不能知四顚倒故,說名無明。云何名實?又言苦是苦聖諦者,如來世尊不如是說。
-
『승사유범천소문경(勝思惟梵天所問經)』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梵天)이여, 만약 저 괴로움[苦]이 진실로 성스런 진리라면, 일체의 소나 돼지 등의 모든 축생들도 응당 진실한 진리를 갖고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은 모두 갖가지 괴로움을 받기 때문이다.’ - 016_1086_a_08L如『勝思惟梵天問經』:“佛言:‘梵天!若彼苦是實聖諦者,一切牛、豬諸畜生等,應有實諦。何以故?以彼皆受種種苦故。’
-
또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만약 저 괴로움의 발생[集]40)이 진실로 성스런 진리라면, 육도(六道)의 중생들은 응당 진실한 진리를 갖고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은 괴로움의 발생으로 인하여 그 모든 생존계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 016_1086_a_11L又言:‘梵天!若彼集是實聖諦者,六道衆生應有實諦。何以故?以彼因集生諸趣故。’
-
또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만약 저 괴로움의 소멸[滅]41)이 진실로 성스런 진리라면, 일체 세간의 삿된 단견(斷見)에 떨어져 일체의 소멸을 말하는 자들은 응당 진실한 진리를 갖고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은 소멸하는 법이 열반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 016_1086_a_13L又言:‘梵天!若彼滅是實聖諦者,一切世閒墮邪斷見,說滅法者,應有聖諦。何以故?彼說滅法爲涅槃故。’
-
또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만약 저 도(道)42)가 진실로 성스런 진리라면, 일체의 유위도(有爲道)를 반연하는 것에 응당 진실한 진리가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은 유위법(有爲法)43)에 의지하여 유위법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괴로움은 진실한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016_1086_a_16L又言:‘梵天!若彼道是實聖諦者,緣於一切有爲道者應有實諦。何以故?以彼依有爲法求離有爲法故。’以是故知,苦非實諦。”
-
또 다시 말씀하셨다.
“괴로움이 생겨남이 없음을 아는 것을 괴로움에 대한 진실로 성스런 진리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경전에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 016_1086_a_19L又復說言:“知苦無生,是名苦實聖諦。”是故如來經說偈言:
-
한 가지 진리가 있어 생하지 않음[不生]이라 이름하는데
사람들은 네 가지 진리[四諦]를 설한다고 한다.
도량에서는 한 가지도 보지 않거니와
하물며 어찌 다시 네 가지가 있으랴. -
016_1086_a_21L一諦名不生,
有人說四諦,
道場不見一,
何況復有四。
-
이와 같이 미래 세상에는
항상 여러 비구들이 있어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출가한 후
이렇게 나의 법을 파괴할 것이다. -
016_1086_a_23L如是未來世,
當有諸比丘,
惡意出家已,
如是壞我法。
-
016_1086_b_02L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법은 전부 다 생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통달하여 안다면, 이것이 진실로 성스런 진리이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수보리(須菩提)야, 나아가 미진 등의 법조차도 없기 때문에 생하지 않는다고 이름한다. 그대가 어떠한 법을 알았기에 생하지 않는 법을 안다고 말하는가 하면, 무생인(無生忍)44)을 아는 것을 무생법인(無生法忍)45)이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괴로움 등의 네 가지 법은 사성제(四聖諦)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만약 저 사람들처럼 분별한다면, 곧 지혜가 될 수 없다. 만약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을 안다면, 이에 진리를 얻었다고 할 수 있고, 지혜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를 성자 수보리는 여래께 이렇게 질문하였다. - 016_1086_a_24L是故得知一切諸法悉皆不生,通達知者,是實聖諦。是故如來復有說言:須菩提!乃至無有微塵等法,故名不生。彼何法知而得名爲知不生法,若無生忍而得名爲無生法忍。以是故知,苦等四法非四聖諦。若如彼人之所分別,則非是智,若有能知不生不滅,乃得言諦,乃得言智,此如是義聖。須菩提問如來言:
-
괴로움[苦]이 열반입니까,
괴로움을 아는 지혜[苦智]가 열반입니까?
괴로움의 발생[集]이 열반입니까,
괴로움의 발생을 아는 지혜[集智]가 열반입니까? -
016_1086_b_10L爲苦是涅槃?
苦智是涅槃?
爲集是涅槃?
集智是涅槃?
-
괴로움의 소멸[滅]이 열반입니까,
괴로움의 소멸을 아는 지혜[滅智]가 열반입니까?
괴로움을 없애는 길[道]이 열반입니까,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아는 지혜[道智]가 열반입니까? -
016_1086_b_12L爲滅是涅槃?
滅智是涅槃?
爲道是涅槃?
道智是涅槃?
-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 佛言:須菩提!
-
괴로움은 열반이 아니고
괴로움을 아는 지혜도 열반이 아니다.
괴로움의 발생은 열반이 아니고
괴로움의 발생을 아는 지혜도 열반이 아니다. -
016_1086_b_13L苦非是涅槃,
苦智非涅槃;
苦集非涅槃,
集智非涅槃;
-
괴로움의 소멸은 열반이 아니고
괴로움의 소멸을 아는 지혜도 열반이 아니다.
괴로움을 없애는 길은 열반이 아니고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아는 지혜도 열반이 아니다. -
016_1086_b_15L苦滅非涅槃,
滅智非涅槃;
道非是涅槃,
道智非涅槃。
-
또 다시 수보리야,
사성제(四聖諦)는 평등하니
나는 이것을 열반이라 말한다.
이와 같이 열반이란 것은 -
016_1086_b_16L又復須菩提!
四聖諦平等,
我說是涅槃。
如是涅槃者,
-
괴로움도 아니고 괴로움을 아는 지혜도 아니며 ,
이와 같이 차례로 내지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아니고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아는 지혜도 아니다. -
016_1086_b_17L非苦非苦智,
如是次第至,
非道非道智。
-
그때 성자 수보리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또 어떤 것이 사성제가 평등하다는 말입니까?” - 016_1086_b_18L時聖須菩提白佛言:世尊!復以何者是,四聖諦平等?
-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 佛言:須菩提!
-
평등이라 말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 임하게 되어도
괴로움도 아니고 괴로움을 아는 지혜도 아니며,
이와 같이 차례로 내지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아니고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아는 것도 아니다. -
016_1086_b_20L所言平等者,
隨在於何處?
非苦非苦智,
如是次第至,
非道非道智。
-
저 일체의 법은
일체법이 진여(眞如)로서
허망하지 않은 진여이니
이렇게 법은 평등하다. -
016_1086_b_22L若彼一切法,
一切法眞如,
不虛妄眞如,
如是法住等,
-
나는 저 열반이
괴로움 등이 아니라고 말한다.
일체의 법은 생하지 않으니
자체(自體)가 없기 때문이다. -
016_1086_b_23L我說彼涅槃,
而非是苦等。
一切法不生,
以無自體故。
-
이렇게 말할 때 능히
일체의 법이 생하지 않음을 아는 것을
진실로 성스런 진리라고 이름한다. -
016_1086_b_24L如是說能知,
一切法不生,
是名實聖諦。
- 016_1086_c_02L【문】 만약 이와 같다면, 어떠한 뜻으로 여래께서는 경전 중에서 사성제를 말씀하셨는가?
- 016_1086_c_02L問曰:若如是者,以何義故,如來經中說四聖諦?
-
【답】 그것은 차례로 순서를 따라 진리에 들어가게 하려고 부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제일의(第一義)46)가 아니며, 혹은 진실하고 혹은 허망한 말이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진실로 성스런 진리, 진실로 성스런 진리라고 말하는데, 어디에 진실하지 않고 허망하지 않은 말이 있단 말인가.”
이러한 일 때문에 네 가지 전도가 발생하니, 그러한 지혜는 진실하지 않다. 이와 같이 괴로움이 진리라는 것은 진실로 성취되지 못하고, 나의 주장이 성취된다. - 016_1086_c_04L答曰:此爲次第隨順入故,佛如是說,非第一義,或實或妄語,是故世尊說言,梵天言實聖諦。實聖諦者,何處無實無妄語等?以是義故,四顚倒起,此智非實。如是苦諦,實不成就,我義成就。
- 【문】 나는 지혜가 아닌 것을 진실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나는 지혜가 아닌 것을 깨닫기 때문에 진실이라 이름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말하는가 하면, 무상(無常)한 법을 항상하다[常]고 말하기 때문에 지혜가 아니라고 말하며, 괴로움[苦]을 즐거움[樂]이라 말하기 때문에 지혜가 아니라고 말하며, 무아(無我)를 자아[我]라 말하기 때문에 지혜가 아니라고 말하며, 청정하지 못한 것을 청정[淸]하다고 말하기 때문에 지혜가 아니라 이름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지혜가 아니다. 만일 무상한 것을 무상한 줄 알고,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알고, 무아의 법에서 능히 무아를 알며, 부정한 법에서 능히 부정을 안다면, 이와 같이 아는 자를, 그는 지혜를 얻고 그는 진실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내가 말한 지혜를 진실하다고 이름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지혜와 진실이 없는 것이 아니다.
- 016_1086_c_09L問曰:我則不說非智爲實,我說非智覺故名實。云何而說?於無常法謂是常法,故名非智;於苦謂樂,故名非智;無我謂我,故名非智;不淨謂淨,故名非智。如是等者,皆非是智。若於無常能知無常,於苦知苦,於無我法能知無我,於不淨法能知不淨,如是知者,彼得言智,彼得言實。如是我說智名爲實,非無智實。
- 【답】 이는 불쾌한 냄새가 바람에 실려와서 내게 풍기는 것과 같다. 이것은 희론이기 때문이며, 이 불쾌함은 최대로 집착을 즐기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 016_1086_c_18L答曰:此癡臭氣風來薰我以戲論故,此癡最大,樂著智故。
- 【문】 어찌하여 그러한가?
- 問曰:云何?
- 【답】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答曰:偈言:
-
만약 무상함이 있다면
항상함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
이미 조금도 무상함이 없는데
어디에 마땅히 항상함이 있으리. -
016_1086_c_20L若其有無常,
可得言有常;
旣無少無常,
何處當有常?
-
만약 괴로움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즐거움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
이미 조금도 괴로움이 없는데
어디에 마땅히 즐거움이 있으리, -
016_1086_c_22L若其少有苦,
可得言有樂;
旣無微少苦,
何處當有樂?
-
만약 조금이라도 무아가 있다면
자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
이미 무아가 있지 않은데
어디에 마땅히 자아가 있으리. -
016_1086_c_23L若少有無我,
可得言有我;
旣無有無我,
何處當有我?
-
016_1087_a_02L만약 적정(寂靜)하지 않음이 있다면
적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
이미 적정하지 않음이 없는데
어디에 적정이 있으리. -
016_1086_c_24L若有不寂靜,
可得有寂靜;
旣無不寂靜,
何處有寂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色) 자체에 탐욕하여 집착한 후, 혹은 항상하다고 분별하거나 무상하다고 분별한다. 그러나 색 자체는 공(空)하여 필경 아무런 물체도 없다. 어디에 항상함이 있고 또 무상함이 있겠는가. 이러한 종류들은 색이 그러하듯 모든 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희론을 성립한다. 그러나 이 인연도 또한 희론이다. 다만 인연만이 이러한 희론일 뿐 아니라, 부처님에 대한 견해를 취하는 것까지도 또한 희론이다.
- 016_1087_a_03L而於色體貪取著已,或分別常,分別無常。色自體空,畢竟無物,何處有常及有無常?如是等類,如色如是至一切法,皆此因緣成就戲論。然此因緣亦是戲論,非唯因緣如是戲論,乃至取佛亦是戲論。
- 【문】 어찌하여 그러한가?
- 016_1087_a_09L問曰:云何?
- 【답】 선남자여, 그대는 이 말을 듣고서 교만하지 말라. 부처님의 지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세존(世尊)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 016_1087_a_10L答曰:善男子!聽!汝勿憍慢,佛智難解。世尊偈言:
-
마음을 금강(金剛)같이 지니고
부처님의 지혜를 깊이 믿으라.
심지(心地)47)가 본래 무아임을 안다면
능히 미세한 지혜를 얻어 들을 것이다. -
016_1087_a_11L持心如金剛,
深信佛智惠。
知心地無我,
能聞微細智。
- 이제 그대는 착한 뜻으로 금강같이 선한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그대를 대면하여 이제 희론과 희론하지 않는 모습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 016_1087_a_13L今汝善意生,金剛心善面,汝今聽說戲論不戲論相。
- 【문】 어떠한 것인가?
- 016_1087_a_15L問曰:云何?
-
【답】 그것은 이와 같은 의미이다. 부처님께서 대경(大經)48)에서 깨달은 보살을 위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자체 아닌 것은 자체 아님을 깨닫지 못한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자체는 능히 자체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수보리야.’ - 016_1087_a_16L答曰:此如是義,佛大經中覺菩薩故言:“須菩提!非體不覺非體。”須菩提言:“世尊!云何體能覺非體耶?”佛言:“不爾,須菩提!”
-
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자체 아닌 것이 능히 자체를 깨달을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수보리야.’ - 016_1087_a_19L須菩提言:“世尊!云何非體能覺體耶?”佛言:“不爾,須菩提!”
-
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자체가 능히 자체를 깨달을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수보리야.’ - 016_1087_a_20L須菩提言:“世尊!云何體能覺體耶?”佛言:“不爾,須菩提!”
-
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자체 아닌 것이 자체 아닌 것을 깨달을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수보리야.’ - 016_1087_a_22L須菩提言:“世尊!云何非體能覺非體耶?”佛言:“不爾,須菩提!”
-
016_1087_b_02L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일체의 법을 얻을 수 없으며, 깨달을 수도 없고, 증득할 수도 없습니까? 자체는 자체 아닌 것을 깨달을 수 없고, 자체 아닌 것은 자체를 깨달을 수 없으며, 자체는 자체를 깨달을 수 없고, 자체 아닌 것은 자체 아닌 것을 깨달을 수 없다면, 이것은 마땅히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016_1087_a_23L須菩提言:“世尊!云何一切法不可得耶?不可覺耶?不可證耶?若體不覺非體,非體不覺體,體不覺體,非體不覺非體,此當無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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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깨달음이 있고 얻음이 있는 이 네 가지 유형의 법은 옳지 못하다.’ - 016_1087_b_04L佛言:“有覺有得,非此四句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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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어떻게 깨달아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자체도 아니고 자체 아님도 아니라고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 어디에도 희론이 없다고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 희론도 아니고 희론하는 법도 아니라고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 - 016_1087_b_05L須菩提言:“世尊!云何覺?”佛言:“須菩提!非體非非體,彼如是覺,何處無戲論?彼如是覺非戲論,非戲論法彼如是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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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에게 어떤 것이 희론입니까?’ - 016_1087_b_08L慧命須菩提白佛言:“世尊!菩薩摩訶薩何者戲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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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에게 색(色)이 항상하다거나 무상하다는 것이 희론이며,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 항상하다거나 무상하다는 것이 보살마하살에게 희론이다. 혹은 색을 안다거나 모른다는 것이 보살마하살에게 희론이며, 이와 같이 수ㆍ상ㆍ행ㆍ식을 안다거나 수ㆍ상ㆍ행ㆍ식을 모른다는 것이 보살마하살에게 희론이다. 일체가 괴로움이라는 성스런 진리를 안다는 것이 희론이고, 괴로움의 발생을 단절한다는 것이 희론이며,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한다는 것이 희론이고, 괴로움을 없애는 도를 닦는다는 것이 희론이다. - 016_1087_b_09L佛言:“須菩提!色常無常者,菩薩摩訶薩戲論。須菩提!受想行識常無常者,菩薩摩訶薩戲論。若知色若不知色者,菩薩摩訶薩戲論。如是知受想行識不知受想行識者,菩薩摩訶薩戲論。知苦聖諦者戲論,斷集者戲論,證滅者戲論,修道者戲論。
- 네 가지 선정[四禪]49)을 수행하는 것이 희론이고, 네 가지 무량[四無量]50)ㆍ네 가지 무색정[四無色]51) 삼마발제(三摩跋提)52)를 수행하는 것이 희론이다. 사념처(四念處)ㆍ사정근(四正勤)ㆍ사여의족(四如意足)ㆍ오근(五根)ㆍ오력(五力)ㆍ칠각분(七覺分)ㆍ팔성도(八聖道)53)를 수행하는 것이 희론이며, 공해탈문(空解脫門)ㆍ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ㆍ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54)을 수행하는 것이 희론이다. 팔해탈(八解脫)55)ㆍ구차제정(九次第定)56)ㆍ수순행(隨順行) 삼마발제(三摩跋提)를 수행하는 것이 희론이며, 수다원과(須陀洹果)ㆍ사다함과(斯陀含果)ㆍ벽지불도(辟支佛道)를 얻는 것이 회론이다.
- 016_1087_b_16L修行四禪者戲論,修行四無量、四無色、三摩跋提、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者戲論,修行空解脫門、無相無願解脫門者戲論,修行八解脫、九次第隨順行、三摩跋提者戲論,得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道者戲論。
- 016_1087_c_02L나는 인연을 만나 보리(菩提)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이 희론이고, 나는 보살의 십지[十菩薩地]57)를 구족하였다고 하는 것이 희론이다. 나는 또한 보살행(菩薩行)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 희론이고, 나는 중생을 교화하여 성취시켰다고 하는 것이 회론이다.
- 016_1087_b_23L我得緣覺菩提者戲論,我具足滿十菩薩地者戲論,我得菩薩行者戲論,我敎化衆生令成就者戲論,
- 나는 여래의 열 가지 힘[十力]58)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 희론이고, 나는 네 가지 두려움 없음[四無所畏)59)과 네 가지 걸림없는 지혜[四無礙智]60)와 열여덟 가지 함께 할 수 없는 법[十八不共法]61)을 얻어 만족하였다고 하는 것이 희론이다. 또한 일체를 얻어 구족하였다는 것이 희론이고, 나는 일체의 결습(結習)62)을 끊었다고 하는 것이 희론이다.
- 016_1087_c_03L我生如來十力者戲論,我得四無所畏、四無碍智、十八不共法滿足者戲論,我得一切具足者戲論,我斷一切結習者戲論。
-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수행하여 이미 색이 항상하다거나 무상하다고 하는 것은 희론임을 알고, 응당 이와 같이 희론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보살은 회론하지 말아야 하며, 나는 일체지(一切智)63)를 얻었다고 하는 희론까지 응당 이와 같이 희론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 016_1087_c_06L彼菩薩摩訶薩修行般若波羅蜜已,知色若常無常戲論,不應如是戲論,菩薩如是不戲論,乃至我得一切智者戲論,不應如是戲論,如是不戲論。
- 왜냐 하면, 자체를 자체라고 희론하지 않고, 자체 아닌 것을 자체 아닌 것이라고 희론하지 않으며, 자체를 자체 아닌 것이라고 희론하지 않고, 자체 아닌 것을 자체라고 희론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어떠한 희론할 수 있는 법이 없으니, 어디에 희론이 있으며, 누가 희론을 하며, 어떤 것이 희론이며, 어떻게 희론하겠는가?
- 016_1087_c_10L何以故?自體自體不戲論,非自體非自體不戲論,自體非自體不戲論,非自體自體不戲論。更無有法可以戲論,何處戲論?誰爲戲論?何者戲論?云何戲論?
- 그러므로 수보리야, 색에 대하여 희론하지 않고, 식에 이르기까지 회론하지 않으며, 대략 말하여 보리(菩提)64)에 이르기까지 회론하지 않아야 한다. 수보리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희론하지 않으며, 응당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하여야 한다.’
- 016_1087_c_14L是故,須菩提!色不戲論乃至識不戲論,略說乃至菩提不戲論。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如是不戲論,應如是修行般若波羅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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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색에 대하여 희론하지 않고 식에 이르기까지 희론하지 않으며, 보리에 이르기까지 희론하지 않는 것입니까?’ - 016_1087_c_18L須菩提言:“世尊!云何色不戲論乃至識不戲論,略說乃至菩提不戲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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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_1088_a_02L부처님께서 혜명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색은 자체가 없고, 식에 이르기까지 자체가 없으며, 일체지에 이르기까지 자체가 없어서 그것에 대하여 희론하지 않는다. 수보리야, 이와 같은 인연으로 색에 대하여 희론하지 않고, 식에 이르기까지 희론하지 않으며, 일체지에 이르기까지도 희론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한다면, 보살법을 성취할 것이니라.’”
그대는 이제 잘 생각하여 그 희론과 희론하지 않는 양상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게송에서 말하였다. - 016_1087_c_20L佛告慧命須菩提言:“須菩提!色無自體乃至識無自體,略說乃至一切智無自體,彼不戲論。須菩提!如是因緣,色不戲論乃至識不戲論,乃至一切智不戲論。如是菩薩摩訶薩修行般若波羅蜜成菩薩法。”汝今善意知此戲論不戲論相。偈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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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미 인연을 말씀하시어
모든 희론하는 법을 단절시켰다.
그러므로 나는 설법하는 스승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머리 숙여 예배드린다. -
016_1088_a_04L佛已說因緣,
斷諸戲論法,
故我稽首禮,
說法師中勝。
- 이 게송은 네 가지 소득(所得)에 대한 희론을 단절시키는 뜻을 성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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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_1088_a_06L此偈成就,四種所得戲論則斷。
順中論義入大般若波羅蜜經初品法門卷上
癸卯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 1)부처님이 탄생하여 불교를 창시하고 전파한 인도를 옛날 중국과 한국에서는 신성시하여 천축(天竺)이라 칭하였다. 그 천축은 매우 광대하여 중심부와 동ㆍ서ㆍ남ㆍ북의 다섯 지역으로 구분하여 다섯 천축이라고도 하였다. 그 대표적 사용례는 신라의 혜초(慧超)스님이 지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 잘 나타난다. 중천(中天)은 중천축(中天竺)을 가리킨다.
- 2)범어 Nāgārjuna(龍樹)를 소리나는 대로 이렇게 표시한 것이다.
- 3)이 순중론(順中論)의 서문격인 번역기(飜譯記)를 지은 위나라 상서령(尙書令) 의(儀)는 중관파(中觀派)의 조사인 Nāgārjuna를 용승(龍勝)이라 해야 하고, 용수(龍樹)라고 하면 완전히 타당하지 않다는 독특한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예로부터 보통 용수라고 번역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역시 이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 4)번역 대본에서는 상(廂)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다른 판본에 나오는 상(箱)과 같다.
- 5)경전의 부피가 큰 『대품반야바라밀경(大品般若波羅蜜經)』 계통의 경전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반야경인지는 차후 자세한 연구가 요구된다.
- 6)인도 유가행파(瑜伽行派)의 논사인 Asaṅga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며, 무착(無着)이라 번역한다. 무착보살은 그 유명한 세친보살(世親菩薩)의 형이며, 중관파(中觀派)와 더불어 인도불교의 2대학파의 하나인 유가행파(瑜伽行派)의 실질적인 조사이다.
- 7)서역(西城)에 존재했던 많은 나라들 중의 하나인 고창(高昌:Turfan)을 고연국(高延國)이라 표기하였던 듯하다.
- 8)반야류지(般若流支:Prajñāruci)를 말한다. 남인도 사람인 반야류지는 그 성이 구담씨(瞿曇氏)이기에 구담류지, 또는 구담반야류지라고도 한다. 바라문 출신으로서 어려서부터 불교를 배워 경전의 뜻에 깊이 통하였다. 북위(北黎) 효명제(孝明帝) 희평(熙平) 원년(元年:516)에 비목지선(毘目智仙)과 함께 낙양(洛陽)에 오고, 그 뒤에 업도(鄴都)로 천도하자 역시 따라가서 원상(元象) 원년(538)부터 무정(武定) 원년(543) 사이에 금화사(金華寺)와 창정사(昌定寺) 등에서 경론을 번역하였다. 그가 번역한 경전은 여러 기록마다 차이가 나지만, 인정할 만한 것으로 『정법염처경(正法含處經)』, 『순중론(順中論)』, 『회쟁론(廻諍論)』, 『업성취론(業成就論)』 등이 있다[반야류지가 번역한 경론은 보리류지의 번역과 혼동되기 쉬우므로 주의가 요청된다].
- 9)태어나고 사망한 연대가 자세하지 않은 담림은 중국 선종의 개조인 보리달마의 제자이며, 선종의 2조(祖)인 혜가(慧可)의 친한 도반이었던 듯하다. 담림의 전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북위(北魏)의 원상(元象) 원년부터 무정(無定) 원년까지 구담반야류지와 비목지선(毘目智仙), 보리류지(菩提流支) 등의 번역을 도우며 필수(筆受)하고 또는 서문을 짓기도 하였다. 가상 길장(嘉祥吉藏)의 『승만경보굴(勝鬘經寶窟)』에 담림의 『승만경소(勝鬘經疏)』가 인용되어 있어, 그가 승만경의 연구자로 알려져 있다.
- 10)무정(武定)은 동위(東魏) 효정제(孝靜帝)의 연호이며, 그 원년은 서기 543년에 해당한다.
- 1)이 『순중론의입대반야바라밀경초품법문(順中論義入大般若波羅蜜經初品法門)』을 간략하게 줄여서 이렇게 부른 것이다.
- 2)범어 Kauśika를 소리나는 대로적은 것임. 교시가는 제석천(帝釋天)의 속명인데, 제석은 모든 신들의 왕으로 도리천(忉利天)의 천주(天主)이기도 하다.
- 3)다른 판본에 의거해 사(捨)로 해석하지 않고 취(取)로 해석한다.
- 4)삼해탈문(三解脫門)의 약칭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세 가지의 해탈문이다. 즉 공해탈문(空解脫門)ㆍ무상해탈문(無相解說門)ㆍ무원해탈문(無顧解脫門)이 그것이다.
- 5)마음 밖에 어떤 대상이 실재한다고 보고, 그 실재한다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 6)대립하는 두 가지의 극단을 말한다. 예를 들면 유(有)와 무(無), 열반(涅槃)과 생사(生死)같은 것이다.
- 7)여기서 말하는 스승은 부처님이 아니라 『중론(中論)』의 저자인 용수(龍樹)를 뜻한다.
- 8)범명은 Rāhulabhadra이다. 티베트에서 전하는 바로는 용수의 스승이라는 설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용수의 제자인 제바(提婆)의 제사라고 간주해 왔다. 따라서 그의 생존연대는 대략 서기 200~300년 정도로 추정된다. 그의 저서로는 『찬반야바라밀게(讚般若波羅蜜偈)』 등이 있었고, 그 외에도 저서가 있었으나 모두 현존하지 않는다.
- 9)한역자의 번역대로라면 수보리가 용수보살에게 예배하였다는 것처럼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수보리는 부처님 생존시의 인물이므로 용수와 만난 일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이 구절은 수보리가 게송으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용수논사도 게송으로 여래에게 공양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10)사물 그 자체, 본체를 말한다.
- 11)세계는 한 번 단절되면 없어진다는 견해로서, 사람도 한 번 죽으면 단멸되어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잘못된 주장.
- 12)단견에 반대되는 견해로서, 세계는 상주불멸하며 사람은 육신이 사멸한 후에도 자아가 영구불멸한다고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
- 13)인도 종교에서 말하는 우주를 주재하는 신인 마헤스와라(Maheśvara)를 소리나는 대로 표기한 것으로, 쉬바(Śiva)신의 별명이기도 하다. 인도 종교에서는 이 마혜수라신이 세계를 창조하는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 14)시간을 말함. 시절이 곧 존재를 성립시키는 근본이라 보는 것이다.
- 15)일상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극히 미세한 최소의 물질을 말하며, 오늘날 물리학에서 말하는 원자의 개념에 해당한다.
- 16)프라크리터(prakrti)를 번역한 말이다. 인도 철학 중에 상캬(Sāṁkhya) 학파에서는 이프라크리터가 근원적인 물질의 본질로서, 이것으로부터 모든 사물이 생성되어 현상계가 존재하게 된다고 한다.
- 17)사물 자체의 본성. 존재의 고유한 성실.
- 18)절단되어 없어지는 것.
- 19)토끼의 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 20)돌로 만든 여인이 낳은 자식. 역시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 21)허공에는 꽃으로 만든 꽃다발이 존재하지 않지만. 환상에 빠져 있는 줄 착각할 때 쓰는 비유.
- 22)일반적으로 나이 든 남자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세계를 전개시키는 원인인 푸루샤(Puruṣa)를 의미한다. 이 말은 오래 전에 베다(Vēda) 성전에서 세계의 창조자로서 설명되었으나, 이 『순중론』에서 지적하는 것은 그 보다 후대에 전개된 상캬학파에서 제시한 정신적 원리인 푸루샤를 말한다.
- 23)카필라(kapila)를 말한다. 카필라는 상캬철학의 개조라고 전해지며, 그 생존연대는 대략 BC 350~250년경으로 추정된다.
- 24)인도말인 Āgama를 그대고 옮긴 것. 이 아함이란 말을 인도철학 일반에서는 예전부터 전승되던 가르침이란 의미로 사용하며, 바라문 종교에서는 주로 베다 성전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의미하며, 대승불교가 흥기한 뒤로는 원시불교의 경전을 『아함경(阿含經)』이라 불렀다.
- 25)불교에서는 논리학(論理學)을 인명(因明:hetu-vidyā)이라 불렀다. 인명학은 처음 인도철학 중의 하나인 니야야(Nyāya)학파의 가우타마(Gautama:서기 50~150년경)에 의하여 창시되었다는 전승이 있으며, 나중에 불교학자인 진나(陳郡:Dignāga, AD 480~540)에 의해 개혁되어 대성되었다. 니야야학파에서는 종(宗)ㆍ인(因)ㆍ유(喩)ㆍ합(合)ㆍ결(結)이라는 다섯 가지에 의거한 오지작법(五支作法)을 제시했으나, 진나의 손을 거치며 종(宗)ㆍ인(因)ㆍ유(喩)만으로 가능한 삼지작법(三支作法)으로 간략히 정착되었다. 종(宗:pritiñā)은 주장하는 명제로서 논증되어야 할 것이며, 인(因:hetu)은 논증이 성립되는 근거이며, 유(喩:dṛṣṭānta)는 종과 인의 관계를 명확히 밝히는 비유이다.
- 26)붕(朋)은 일반적으로 친구ㆍ벗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나, 인명학에서는 논쟁에 있어서 어느 한 쪽이나 그 한 쪽의 주장을 말한다. Pakṣa를 번역한 말이다.
- 27)동품정유성(同品定有性)에 해당한다. 다음의 주 30)을 참조.
- 28)이품편무성(異品遍無性)에 해당한다. 다음의 주 30)을 참조.
- 29)삼지작법 중의 가운데 조건. 종(宗)ㆍ인(因)ㆍ유(喩)에 대해서는 앞의 주 25)를 참조.
- 30)불교논리학과 인도철학에서 이유로 제시되는 개념인 인(因)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 본래 이 인삼상(因三相)이라는 논리는 『순중론(順中論)』의 기록에 의거하면, 아마도 정리과(正理派:Nyāya) 계통에 속하는 약야수마(若耶須摩)에 의하여 설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나중에 불교학자인 진나(塵那:Dignāga)에 수용되어 확고하게 확립되었다. 인(因)의 세 가지 조건이란 편시종법성(遍是宗法性)ㆍ동품정유성(同品定有性)ㆍ이품편무성(異品遍無性)이다. 예를 들면 ‘저 산에 불[火]이 있다. 연기[煙]가 있기 때문에’라는 논리가 있을 때, 이유개념인 인(因)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편시종법성(pakṣadharmatva):이유개념이 증명되어야 할 명제의 주어의 종법(宗法)이라는 것이다. 곧 연기라는 인(因)이 종(宗)인 저 산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동품정유성(sapakṣesattvaṃ):이유개념이 증명되어야 할 명제의 술어(述語:불)와 같은 종류 중에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다. 곧 부엌의 아궁이에서 불과 연기의 양쪽이 보이기 때문에 아궁이는 저 산과 같은 종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因:연기)과 종(宗:산)의 양쪽 사이에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이품편무성(vipakṣésattvameva):이유개념이 증명되어야 할 명제의 술어와 모순되는 것, 다른 종류 중에는 반드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곧 바다나 강은 산과 다른 종류인데 이 경우에는 불이 없는 곳에 연기가 나지 않듯이, 이품(異品) 전체에 인(因)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말한다.
- 31)누구인지 명확한 자료가 없으나, 논리학파인 니야야학파에 속하는 논리가로 추측되고 있다.
- 32)인명학(因明學)에서 말하는 논리방식.
- 33)세속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상식적인 진리. 속제(俗諦)라고도 한다.
- 34)인(因)의 삼상(三相) 중에서 편시중법성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서는 앞의 주 30)을 참조.
- 35)인(因)의 삼상(三相) 증에서 이품편무성에 해당한다. 앞의 주 30) 참조.
- 36)인의 삼상 중에서 동품정유성에 해당한다. 앞의 주 30) 참조.
- 37)소리, 말, 언어를 의미하는 śabda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항상하지 않고 무상하다는 것. 이에 대하여 미맘사(Mīmāṁsā) 학파에서는 소리는 그 말에 해당하는 실재하는 것이 나타난 것이라 하여 성상주론(聲常住論)을 취하였다.
- 38)세간의 모든 것은 괴로운 것이며, 이것은 성스런 진리라는 뜻임. 이것은 원시경전에서 말한 사성제의 첫 번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사성제를 대승경전에서 대승적으로 말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 39)진리에 어긋나는 네 가지 뒤바뀐 범부들의 견해. 첫째, 상전도(常顚倒):무상한 것을 항상하다고 보는 것. 둘째, 낙전도(樂顚倒):괴로운 것을 즐겁다고 보는 것. 셋째, 아전도(我顚倒):자아는 없는데도 영원히 있다고 보는 것. 넷째, 정전도(淨顚倒):부정한 것을 깨끗하다고 보는 것이다.
- 40)사성제(四聖諦)의 두 번째 진리인 집제(集諦)를 말한다.
- 41)사성제의 세 번째 진리인 멸제(滅諦)를 말한다.
- 42)사상제의 네 번째 진리인 도제(道諦)를 말한다.
- 43)여러 가지 인연에 의하여 생겨나고 소멸하는 현상계의 모든 사물을 유위법이라 부른다.
- 44)절대불변의 진리를 깨달아 다시는 미혹한 세계로 타락하지 않고 안심하게 되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
- 45)제법이 불생불멸(不生不滅)하다는 진리를 증득하는 것. 줄여서 무생인(無生忍)이라고도 한다.
- 46)가장 뛰어난 진실한 진리로, 진제(眞諦)라고도 한다.
- 47)사람마다 본래 갖추고 있는 참된 마음을 대지(大地)에 비유하여 부르는 말임. 대지가 일체의 존재를 생장시키는 것처럼, 마음이 모든 선과 악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한 것이다.
- 48)『대품반야경』 계통의 경전.
- 49)네 가지 단계의 선정으로 사선(四禪)이라고도 한다. 초선(初禪)ㆍ이선(二禪)ㆍ삼선(三禪)ㆍ사선으로, 욕계(欲界)의 미혹을 벗어나 색계(色界)에 출생하는 네 단계의 선정임.
- 50)네 가지 광대한 마음으로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고도 한다. 그 네 가지는 자무량(慈無量)ㆍ비무량(悲無量)ㆍ희무량(喜無量)ㆍ사무량(捨無量)이다.
- 51)무색계에서 닦는 네 단계의 선정으로 사무색정(四無色定)이라고도 한다. 공무변처(空無邊處)ㆍ식무변처(識無邊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네 선정.
- 52)범어 samāpatti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며, 등지(等至)라 번역하기도 한다. 정신통일에 의하여 마음이 안온하게 평등해진 상태를 말함.
- 53)소위 삼십칠보리분법(三十七菩提分法)을 말한다. 깨달음을 성취하게 하는 수행법이므로 보리분법이라 한다.
- 54)소위 삼해탈문(三解脫門)을 말한다. 앞의 주 4) 참조.
- 55)삼계(三界)의 번뇌를 벗어나 그 계박에서 해탈하는 여덟 가지 선정. 사선정(四禪定)과 사무색정(四無色定) 그리고 멸진정(滅盡定)을 말한다. 이 선정들을 수행하면 미혹을 떠나 깨달음을 얻기 때문에 해탈이라 한다.
- 56)사선정(四禪定)ㆍ사무색정(四無色定)ㆍ멸수상정(滅受想定)의 아홉 가지 선정을 말한다.
- 57)보살이 수행해야 할 십지(十地)를 말한다. 이 보살 십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공지(共地)이고 또 하나는 단보살지(但菩薩地)이다. 전자는 반야경에 설해진 것이고 후자는 화엄경에 설해진 것인데, 여기서 의미하는 보살지는 『대반야경』에 설해진 반야경의 십지이다.
- 58)부처님에게 구족되어 있는 처비처지력(處悲處智力)에서부터 누진지력(漏盡智力)에 이르기까지의 열 가지 힘으로, 부처님이 전지자임을 나타내는 지혜의 힘.
- 59)사무소외(四無所畏)라고도 한다. 부처님과 구도자가 가르침을 설할 때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자신 있게 설법할 수 있는 네 가지 지혜. 그 네 가지는 정등각무외(正等覺無畏)ㆍ누영진무외(漏永盡無畏)ㆍ설장법무외(說障法無畏)ㆍ설출도무외(說出道無畏)이다.
- 60)부처님과 보살이 설법할 때 아무런 장애 없이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지혜의 능력으로 사무애변(四無礙辯)이라고도 한다. 그 네 가지는 법무애(法無礙)ㆍ의무애(義無礙)ㆍ사무애(辭無礙)ㆍ요설무애(樂說無礙)이다.
- 61)오직 부처님에게만 갖추어져 있는 열여덟 가지 뛰어난 특징을 말한다. 그것은 여래의 십력(十力)과 사무소외(四無所畏)와 삼념주(三念住), 그리고 대비(大悲)이다. 삼념주(三念住)는 부처님께서 정지정념(正智正念)에 머물러 세 가지로 평정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중생이 부처님을 믿어도 기뻐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 두 번째는 중생이 부처님을 믿지 않아도 근심하지 않는 것, 세 번째는 어떤 사람은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아도 기쁨과 근심을 생하지 않는 것이다. 대비(大悲)는 많은 사람들의 괴로움을 구제하고자 하는 부처님과 보살의 큰 자비심ㆍ자애심을 말한다.
- 62)번뇌(煩惱)와 습기(習氣)를 말한다.
- 63)모든 것을 알며, 완전한 지혜를 갖고 있는 전지자(全知者). 곧 부처님을 말한다.
- 64)범어나 팔리어(pāli)의 bodhi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말. 이 보리, 즉 보디는 미혹과 번뇌에서 자각하여 깨달은 바른 지혜, 정각(正覺)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