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究竟一乘寶性論卷第三

ABC_IT_K0600_T_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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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일승보성론(究竟一乘寶性論)제3권
017_0371_c_01L究竟一乘寶性論卷第三


견혜 지음
륵나마제 한역
한길로 번역
017_0371_c_02L後魏中印度三藏勒那摩提譯


5. 일체중생유여래장품(一切衆生有如來藏品)
017_0371_c_03L一切衆生有如來藏品第五

여기서부터 나머지 게송을 논한 것은 차례로 저 네 글귀에 의지해 널리 차별하여 설한 것이니, 알아두라.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앞서 게송에 이렇게 말하였다.
017_0371_c_04L論曰自此已後餘殘論偈次第依彼四句廣差別說應知此以何義向前偈言

진여는 더러움에 섞여 있는가 하면
모든 더러움을 아주 여읜 것이고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이기도 하고
또는 부처님의 하시는 업이기도 하네.
017_0371_c_07L眞如有雜垢
及遠離諸垢
佛無量功德
及佛所作業

이와 같은 묘한 경계는
모든 부처님의 아시는 바이라
이 묘한 법신(法身)에 의지하여
삼보(三寶)를 출생하는 것이네.
017_0371_c_09L如是妙境界
是諸佛所知
依此妙法身
出生於三寶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이냐 하면, 앞서 설한 바와 같이 일체 중생은 다 여래장이 있는지라 무슨 뜻에 의지하여 이와 같이 설했는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71_c_10L此偈示現何義如向所說一切衆生有如來藏彼依何義故如是說偈言
부처님의 법신은 두루 가득하고
진여는 차별이 없는 것이어서
다 진실로 불성이 있는지라
이 때문에 항상 있다고 설함이네.
017_0371_c_12L佛法身遍滿
眞如無差別
皆實有佛性
是故說常有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세 가지 뜻이 있다. 이 때문에 여래께서 어느 때 어떤 중생이건 다 여래장(如來藏)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른바 그 세 가지란, 첫째는 여래의 법신이 일체 중생들의 몸에 두루 있는 것이니, 게송에 ‘부처님의 법신은 두루 가득하다’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둘째는 여래와 진여가 차별이 없는 것이니, 게송에 ‘진여는 차별이 없다’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셋째는 일체 중생이 다 실지도 진여의 불성이 있는 것이니, 게송에 ‘다 진실히 불성이 있다’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라, 이것이 세 글귀의 뜻이다. 여기서부터 논한 것은 여래장 수다라(修多羅)에 의지하여 내가 뒤에 설한 것이니, 알아두라. 게송의 본래 말한 그대로이다.
017_0371_c_14L此偈明何義有三種義是故如來說一切時一切衆生有如來藏何等爲一者如來法身遍在一切諸衆生偈言佛法身遍滿故二者如來眞如無差別偈言眞如無差別故三者一切衆生皆悉實有眞如佛性偈言皆實有佛性故此三句義自此下論依如來藏修多羅我後時說應知偈本言
017_0372_a_01L
일체 중생들의 경계가
모든 부처님의 지혜를 여의지 않는 것은
저 청정하여 때[垢] 없는 체성(體性)이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라
017_0372_a_01L一切衆生界
不離諸佛智
以彼淨無垢
性體不二故

일체 부처님들의
평등한 법 성품의 몸에 의지하여
일체 중생들에게도
다 여래장이 있는 줄을 아는 것이네.
017_0372_a_03L依一切諸佛
平等法性身
知一切衆生
皆有如來藏

체(體)와 인(因)ㆍ과(果)ㆍ업(業)과
상응(相應)과 또는 행(行)과
때의 차별과 모든 곳에 두루함과
변하지 않음과 차별이 없는
017_0372_a_04L體及因果業
相應及以行
時差別遍處
不變無差別

이러한 묘한 이치의 차례가
곧 제1의 참된 법 성품이라
나 이렇게 대략 설해 두노니
그대는 이제 잘 알아야 하네.
017_0372_a_05L彼妙義次第
第一眞法性
我如是略說
汝今應善知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이냐 하면, 대략 이 게송을 설한 것이 열 가지 뜻이 있다. 이 열 가지에 의지하여 제1의 이치와 진실한 지혜의 경계와 불성의 차별을 설한 것인 줄 알아두라. 이른바 그 열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첫째 체(體)요, 둘째 인(因)이요, 셋째 과(果)요, 넷째 업(業)이요, 다섯째 상응(相應)이요, 여섯째 행(行)이요, 일곱째 때의 차별이요, 여덟째 일체 곳에 두루함이요, 아홉째 변하지 않음이요, 열째 차별이 없음이라. 맨 처음 체(體)와 인(因)에 의지하여 이 때문에 한 게송을 설한 것이다.
017_0372_a_07L此偈示現何義略說此偈有十種義依此十種說第一義實智境界佛性差別應知何等爲十一者體二者因三者果四者業五者相應六者行者時差別八者遍一切處九者不變十者無差別初依體因故說一偈

자성(自性)의 항상 더럽히지 않음이
보배와 허공과 깨끗한 물 같으니
법을 믿음과 또는 반야(般若)와
삼매와 대비 등이 곧 그러하다.
017_0372_a_13L自性常不染
如寶空淨水
信法及般若
三昧大悲等

이 게송에 있어서 앞의 반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72_a_15L此初半偈示現何義偈言

자재한 힘은 변하지 않는지라
그 실다운 체(體)의 부드러움을 생각하건대
보배ㆍ허공ㆍ물의 공덕과
서로 비슷한 상대의 법이네.
017_0372_a_16L自在力不變
思實體柔軟
寶空水功德
相似相對法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앞서 세 가지 뜻을 설했는데 이 세 가지 뜻을 그 자체의 모양과 또는 같은 모양에 의지하여 설한 것이다. 여래의 법신 세 가지 청정한 공덕이 마치 보배 구슬[如意寶珠]과 허공과 깨끗한 물과 같아서 그것이 서로 비슷한 상대의 법이니, 알아두라. 이것이 또 무슨 뜻을 밝힘이냐 하면, 생각함이란, 바로 여래의 법신에 의지하여 생각하는 것이니, 닦는 것을 죄다 성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의 반 게송이 또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72_a_18L此偈明何義向說三種義彼三種義次第依於自相同相如來法身三種淸淨功德如如意寶珠虛空淨水相似相對法應知此明何義思者依如來法身所思所修皆悉成就故後半偈者示現何義偈言
017_0372_b_01L
네 가지 장애가 있으니
법을 비방함과 ≺나≻에 집착함과
세간의 괴로움을 두려워함과
모든 중생을 버림이 그것이네.
017_0372_b_01L有四種障㝵
謗法及著我
怖畏世閒苦
捨離諸衆生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72_b_03L此偈明何義偈言

잇찬티카[一闡提]이거나 외도이거나
성문(聲聞)이거나 독각(獨覺)이거나
믿는 등의 네 가지 법이
곧 청정한 인(因)인 줄 알라.
017_0372_b_04L闡提及外道
聲聞及自覺
信等四種法
淸淨因應知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대략 일체 중생계 가운데 세 종류의 중생이 있음을 설한 것이다. 이른바 그 세 종류란, 첫째 ≺유(有)≻를 구하는 중생이고, 둘째 ≺유≻를 아주 구하지 않는 중생이고, 셋째 저 두 가지를 다 구하지 않는 중생이 그것이며, ≺유≻를 구하는 것에 또 두 종류가 있다. 해탈의 도를 비방하여 열반의 성품이 없는 자로서 항상 세간에 머물기를 구하고 열반을 증할 것을 구하지 않는 중생이 그 하나이고, 불법 가운데에 잇찬티카[一闡提]와 같은 지위의 중생이 그 둘이니, 이는 대승(大乘)을 비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부증불감경(不增不減經)에 말씀하시기를, “사리불(舍利弗)이여, 만약에 어떤 비구ㆍ비구니와 우바새(優婆塞)ㆍ우바이(優婆夷)가 한 가지 소견[見]을 일으키거나 두 가지 소견을 일으켜서 모든 부처님, 여래를 저 세존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사리불이여, 이 사람은 두 가지 소견을 일으키는 인연으로써 어두움을 따라 어두움에 들어가고 캄캄한 데를 따라 캄캄한 데에 들어가리라. 나는 이러한 사람을 잇찬티카라고 말하노라”고 하셨다. 게송에 이른바 법을 비방하는 자라든가 또는 잇찬티카라는 것이 이 때문이었다.
017_0372_b_06L此偈明何義略說一切衆生界中有三種衆生何等爲三一者求有二者遠離求有三者不求彼二求有有二何等爲二一者謗解脫道無涅槃常求住世閒不求證涅槃二者於佛法中闡提同位以謗大乘故是故『不增不減經』言舍利弗若有比丘丘尼優婆塞優婆夷若起一見若起二見諸佛如來非彼世尊如是等人非我弟子舍利弗是人以起二見因從闇入闇從冥入冥我說是等名一闡提故偈言謗法故闡提故
017_0372_c_01L다음 ≺유≻를 아주 구하지 않는 것이 또 두 종류가 있으니, 이른바 두 종류란, 도를 구할 방편이 없는 자가 그 하나이고, 도를 구할 방편이 있는 자가 그 둘이다. 도를 구할 방편이 없는 자가 또 두 종류이니, 그 두 종류란, 첫째는 많은 종류의 외도로서 갖가지 삿된 계교를 하는 자들이니 이를테면, 승카[僧佉]와 위세사(衛世師)와 니건타야제자(尼㨜陀若提子) 따위로서 도를 구할 방편이 없는 그러한 자이다. 둘째는 불법 가운데에 외도들의 행(行)과 같은 자로서 비록 불법을 믿기는 하되 뒤바뀐 소견을 가진 자가 바로 그것이니 이를테면, 독자(犢子) 따위들이 그 몸속에 ≺나≻가 있다고 보아서 제1의 진리를 믿지 않고, 진여 법의 ≺공≻함을 믿지 않으므로, 부처님께서 그러한 사람을 외도와 다름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공≻을 계교하여 ≺유≻라 하거나, 아상(我相)으로써 교만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그들을 위해 공해탈문(空解脫門)을 설하사 깨달아 알게 하시건만, 저 사람들의 계교하는 것은 ≺공≻ 뿐이고 진실함이 없는지라 저 사람들 때문에 보적경(寶積經) 가운데 부처님이 가섭(迦葉)에게 말씀하시기를, “차라리 ≺나≻를 계교하는 것이 수미산(須彌山)과 같음을 볼지언정 교만한 중생이 ≺공≻을 계교하여 ≺유≻라고 하는 것은 보지 않으리라. 가섭이여, 일체 삿된 소견은 ≺공≻을 깨달아야 그 삿된 소견을 여읠 수 있다. 만약에 ≺공≻을 보고서 ≺유≻라고 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교화하여 세간을 여의게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게송에 이른바 ≺나≻에 집착하는 자라든가, 또는 외도라는 것이 이 때문이었다.
017_0372_b_18L遠離求有者亦有二種何等爲二一者無求道方便二者有求道方便無求道方便者亦有二種何等爲二一者多種外道種種邪計謂僧佉衛世師揵陁若提子等無求道方便二者於佛法中同外道行雖信佛法而顚倒彼何者是謂犢子等見身中有我不信第一義諦不信眞如法空說彼人無異外道復有計空爲有我相憍慢故何以故以如來爲說空解脫門令得覺知而彼人計唯空無爲彼人故『寶積經』中佛告迦葉見計我如須彌山而不用見憍慢衆生計空爲有迦葉一切邪見解空得若見空爲有彼不可化令離世閒偈言及著我故;及外道故
다음, 도를 구할 방편이 있는 자가 또 두 가지이니, 그 두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성문이니 게송에 이른바 세간의 괴로움을 두려워하는 자라든가, 도는 성문이라는 것이 이 때문이다. 둘째는 독각이니 게송에 이른바 모든 중생을 버리는 자라든가, 또는 독각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저 두 가지를 다 구하지 않는 것이란, 이른바 제일 영리한 근기의 중생과 모든 보살마하살들이다. 왜냐하면, 모든 보살은 저 ≺유≻를 구하는 잇찬티카들과 같지 않기 때문이고, 또 도를 구할 방편이 없는 갖가지 외도들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또 도를 구할 방편이 있는 성문ㆍ독각들과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하면, 모든 보살은 세간과 열반을 보는 길이 평등하기 때문이고, 열반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기 때문이고, 세간의 법으로선 더럽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세간의 행을 수행하여 자비와 열반을 굳게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고, 근본 청정한 법 가운데에 잘 머물기 때문이다.
017_0372_c_11L有方便求道者亦有二種何等爲二一者聲偈言怖畏世閒苦故聲聞故二者辟支佛偈言捨離諸衆生故及自覺不求彼二者所謂第一利根衆生諸菩薩摩訶薩何以故以諸菩薩不求彼有如一闡提故又亦不同無方便求道種種外道等故又亦不同有方便求道聲聞辟支佛等故何以故以諸菩薩見世閒涅槃道平等故不住涅槃心故以世閒法不能染故而修行世閒行堅固慈悲涅槃心故以善住根本淸淨法中故
017_0373_a_01L그리고 또 저 ≺유≻를 구하는 중생인 잇찬티카 사람들과 불법 가운데에서 잇찬티카의 지위와 많은 자들을 이르되 사정취(邪定聚) 중생이라 한다.
또 아주 ≺유≻를 구하지 않는 중생 가운데 도를 구할 방편이 없는 데에 떨어진 중생들을 이르되, 부정취(不定聚) 중생이라 한다. 또 ≺유≻를 아주 구하지 않는 중생 가운데 세간을 떠나서 도를 구할 방편이 있는 성문, 독각과 저 두 가지를 다 구하지 않는 평등한 도의 지혜인 보살마하살을 이르되 정정취(正定聚) 중생이라 한다.
또 한편으론 장애 없는 도의 대승(大乘)을 구하는 중생을 제외하고서 그 나머지 네 종류의 중생이 있다. 그 네 종류가 무엇이냐 하면, 첫째 잇찬티카이고, 둘째 외도이고, 셋째 성문이고, 넷째 독각이니, 저 네 종류의 중생들은 네 가지 장애가 있기 때문에 증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어서 여래의 성품을 볼 수 없는 것이다.
017_0372_c_23L又彼求有衆生一闡提人及佛法中同闡提位名爲邪定聚衆生又遠離求有衆生墮無方便求道衆生名爲不定聚衆生又遠離求有衆生中求離世閒方便求道聲聞辟支佛及不求彼二平等道智菩薩摩訶薩名爲正定聚衆生又除求於無障㝵道大乘衆生餘有四種衆生何等爲四一者闡提二者外道三者聲聞四者辟支佛四衆生有四種障故不能證故不能會故不能見如來之性
017_0373_b_01L네 가지 장애가 무엇이냐 하면, 대승의 법을 비방하는 잇찬티카의 장애가 그 첫째이다. 이 장애를 대치(對治)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믿는 대승이라, 게송에 이른바 법을 믿는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자신의 몸 가운데 ≺나≻가 있는 줄을 그릇 계교하는 외도들의 장애가 그 둘째이다. 이 장애를 대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보살마하살들의 수행하는 반야(般若) 바라밀이니 게송에 이른바 반야라는 것이 이 때문이다. 세간의 모든 괴로움을 두려워하는 성문 사람들의 장애가 그 셋째이다. 이 장애를 대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보살마하살들의 수행하는 허공장(虛空藏) 또는 수능엄(首楞嚴) 삼매 등이니 게송에 이른바 삼매라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을 이익되게 할 것을 어기고 대비한 마음을 버리는 독각들의 장애가 그 넷째이다. 이 장애를 대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대비를 수행하여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니 게송에 이른바 대비라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것을 이르되 네 가지 장애, 네 가지 중생이라 함이니, 저 네 가지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대승 등 네 가지 대치하는 법을 믿어 수행하여서 더없는 청정한 법신(法身)을 얻어 제1의 저 언덕[彼岸]에 이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네 가지 청정한 법계에 의지해 선한 법을 수습(修習)하는 그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께 수순하는 법의 아들로서 부처님의 집에 태어나기 때문이라, 이 때문에 게송에 말하였다.
017_0373_a_11L何等爲四者謗大乘法一闡提障此障對治諸菩薩摩訶薩信大乘故偈言信法二者橫計身中有我諸外道障障對治謂諸菩薩摩訶薩修行般若波羅蜜故偈言及般若故三者怖畏世閒諸苦聲聞人障此障對治謂諸菩薩摩訶薩修行虛空藏首楞嚴等諸三昧故偈言三昧故四者背捨利益一切衆生捨大悲心辟支佛障障對治謂諸菩薩摩訶薩修行大悲爲利益衆生故偈言大悲故是名四種障障四種衆生爲對治彼四種障諸菩薩摩訶薩信修行大乘等四種對治法得無上淸淨法身到第一彼岸何以故依此四種淸淨法界修習善法此是諸佛隨順法子於佛家是故偈言

대승의 믿음으로 아들을 삼고
반야로써 어머니를 삼으니
선(禪)의 태(胎)에다가 대비의 젖이라
모든 부처님의 여실한 아들이네.
017_0373_b_05L大乘信爲子
般若以爲母
禪胎大悲乳
諸佛如實子

게송에 ‘믿음 등의 네 가지 법이 곧 청정한 인(因)인 줄 알라’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그리고 또 과(果)와 업(業)에 의지하기 때문에 한 게송을 설한 것이다.
017_0373_b_07L偈言信等四種法淸淨因應知故依果業故說一偈

정(淨)ㆍ아(我)ㆍ낙(樂)ㆍ상(常) 등은
저 언덕[彼岸] 공덕의 과(果)이고
괴로움을 싫어하여 열반을 구하는 것은
욕망과 소원 따위의 모든 업(業)이네.
017_0373_b_09L淨我樂常等
彼岸功德果
厭苦求涅槃
欲願等諸業

이 게송 가운데 앞의 반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73_b_11L此初半偈示現何義偈言

대략 네 글귀의 뜻을 설함이니
네 가지 뒤바뀐 법이 그것이라
법신 가운데에 뒤바뀜도
이 대치하는 법을 수행하네.
017_0373_b_12L略說四句義
四種顚倒法
於法身中倒
修行對治法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저 믿음 등의 네 가지 법은 여래의 법신도 이것으로 인하여 청정하는 지라, 저 앞서 네 가지 법을 설하고 그 다음에 차례로 네 가지 뒤바뀜을 대치하는 것을 설했다. 여래의 법신 네 가지 공덕 바라밀의 과[波羅蜜果]가 곧 이것인 줄을 알아두라. 게송에 ‘네 글귀의 뜻을 대략 설함이라’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017_0373_b_14L此偈明何義彼信等四法如來法身因此能淸淨彼向說四種法彼次第略說對治四顚倒如來法身四種功德波羅蜜果應知偈言略說四句義
017_0373_c_01L이것이 도 무슨 뜻을 밝힘이냐 하면, 이른바 물질[色] 등의 무상(無常)한 일 가운데에 상(常)의 생각을 일으키고, 괴로운 법 가운데에 즐거움의 생각을 일으키고, ≺나≻없는 법 가운데에 ≺나≻의 생각은 일으키고, 청정하지 않는 법 가운데에 청정하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이러한 것들을 이름하여 네 가지 뒤바뀜이라, 하나니 알아두라. 게송에 ‘네 가지 뒤바뀐 법이 그것이라’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이 네 가지 뒤바뀜을 대치하기 위해 네 가지 뒤바뀜이 아닌 법이 있는 줄을 알아 둘지니, 그 네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이른바 물질 등의 무상한 일 가운데엔 무상의 생각과 괴로움의 생각과 ≺나≻ 없는 생각과 청정하지 않다는 생각 등을 일으킴이 그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네 가지 뒤바뀌지 않은 법이라 하나니, 대치(對治)할 것임을 알아두라. 게송에 ‘대치하는 법을 수행하네’라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또 이러한 네 가지 뒤바뀜을 대치함에 있어서 미래의 법신에 의지하는 것이 다시 뒤바뀐 것인 줄을 알아 둘지니, 게송에 ‘법신 가운데에 뒤바뀜’이라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017_0373_b_19L此明何義謂於色等無常事中起於常想於苦法中起於樂想於無我中起於我想於不淨中起於淨想等名爲四種顚倒應知偈言四種顚倒法故爲對治此四種顚倒故有四種非顚倒法應知何等爲四謂於色等無常事中生無常想苦想無我想不淨想等是名四種不顚倒對治應偈言修行對治法故
그리고 이 뒤바뀜을 대치함에 있어서 네 가지 여래의 법신 공덕 바라밀의 과가 있다고 설한 것은 그 네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이른바 상(常)바라밀, 낙(樂)바라밀ㆍ아(我)바라밀ㆍ정(淨)바라밀이 그것이니, 알아두라. 게송에 ‘대치하는 법을 수행하네’라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자승만경(聖者勝鬘經)’에 말씀하시기를, “세존이시여, 범부 중생들은 다섯 가지 쌓임[五陰]의 법에 뒤바뀐 생각을 일으키나이다. 이를테면 무상(無常)한 것에 상(常)의 생각을, 괴로운 것에 즐거운 생각을, ≺나≻없는 것에 ≺나≻의 생각을, 청저하지 않는 것에 청정하다는 생각을 일으키나이다. 세존이시여, 일체 아라한(阿羅漢)과 벽지불(辟支佛)의 ≺공≻한 지혜로서는 일체지혜의 경계와 여래의 법신을 본래 보지 못하거니와 만약에 어떤 중생은 부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여래의 법신에 대하여 항상하다는 생각과 즐거움의 생각과 ≺나≻의 생각과 청정하다는 생각을 일으킨다면 세존이시여, 저 중생은 뒤바뀐 소견이 아닌지라 이를 바른 소견이라고 하리라. 왜냐하면 여래의 법신만이 이 상(常)바라밀이고, 낙(樂)바라밀이고, 아(我)바라밀이고, 정(淨)바라밀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어떤 중생이 부처님의 법신에 이러한 소견을 일으킨다면, 이야말로 바른 소견이라 하리니, 세존이시여, 바른 소견이란, 곧 부처님의 참된 마음이라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나고 부처님의 법으로부터 나고 법으로부터 화생하여 법의 나머지 재산을 얻겠나이다”고 하였다. 여래의 법신이란, 곧 이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017_0373_c_04L如是四種顚倒對治依如來法身復是顚倒應知偈言於法身中倒故對治此倒說有四種如來法身功德波羅蜜果何等爲四所謂常波羅蜜樂波羅蜜我波羅蜜淨波羅蜜應知偈言修行對治法故是故『聖者勝鬘經』言世尊凡夫衆生於五陰法起顚倒想謂無常常苦有樂想無我我想不淨淨想一切阿羅漢辟支佛空智者於一切智境界及如來法身本所不見有衆生信佛語故於如來法身起常想樂想我想淨想世尊彼諸衆生非顚倒見是名正見何以故唯如來法身是常波羅蜜樂波羅蜜我波羅淨波羅蜜世尊若有衆生於佛法身作是見者是名正見世尊正見者是佛眞子從佛口生從正法生從法化生得法餘財如是等故
017_0374_a_01L또 이 네 가지 여래의 법신 공덕 바라밀은 인(因)으로부터 과(果)를 향하는지라 그 차례대로 정(淨)ㆍ아(我)ㆍ낙(樂)ㆍ상(常)을 설한 것이니, 알아두라. 어떤 것이 그 차례대로 인으로부터 과를 향하는 것이냐 하면, 이를테면 대승(大乘)을 비방하는 잇찬티카[一闡提]들은 실상 청정함이 없는 데에도 마음으로 세간의 청정함을 좋아하여 집착하는지라, 이 장애를 대치하는 것이 이른바 모든 보살마하살이 대승을 믿어 수행하여서 제1의 정(淨)바라밀을 얻는 것이니, 알아두라. 다음엔 다섯 가지 쌓임 가운데 신아(神我)가 있다고 보는 외도들의 장애이다. 이들은 실상 신아가 없는 데에도 신아를 좋아하여 집착하는지라, 이 장애를 대치하는 것이 이른바 모든 보살마하살이 반야(般若)바라밀을 수행하여서 제1의 아(我)바라밀을 증득하는 것이니, 알아두라. 이것이 무슨 뜻을 밝힘이냐 하면, 일체 외도들은 물질 따위의 진실하지 않은 일에 집착하여 ≺나≻가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저 외도들은 아상(我相)에 집착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아상의 허망함과 뒤바뀜이 없으면 일체 ㄸ대에 ≺나≻가 없으리니, 이러한 뜻에서 여래의 여실한 지혜는 일체 법의 ≺나≻없음을 아시어 제1의 저 언덕에 도달하시는지라, 여래는 피아(彼我)가 없고 아상(我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 때에 여실히 보고 아시는 것이 허망하지 않기 때문이고, 뒤바뀜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곧 ≺나≻없음이 ≺나≻있음이라고 한다. 곧 ≺나≻없음이란, 저 외도의 허망한 신아(神我)가 없다는 것이다. ≺나≻있음이라고 하는 것은 여래께서 저 자재함을 얻는 〈나〉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게송에 말하였다.
017_0373_c_22L又此四種如來法身功德波羅蜜從因向果次第而說淨我樂常應知云何次第從因向果謂誹謗大乘一闡提障實無有淨而心樂著取世閒淨此障對治謂諸菩薩摩訶薩信大乘修行證得第一淨波羅蜜果應知於五陰中見有神我諸外道障實無神我而樂著取我此障對治謂諸菩薩摩訶薩修行般若波羅蜜證得第一我波羅蜜果應知此明何義一切外道執著色等非眞實事以爲有我而彼外道取著我相無如是我相虛妄顚倒一切時無我以是義故說言如來如實智知一切法無我到第一彼岸而如來無彼我無我相何以故以一切時如實見知不虛妄故非顚倒故此以何以卽無我名爲有我卽無我者彼外道虛妄神我名有我者如來有彼得自在我是故偈言

청정한 허공과 같이
제1의 〈나〉 없음을 얻은지라
모든 부처님이 청정한 몸을 얻은
그것을 이름하여 큰 몸을 얻음이라 하네.
017_0374_a_18L如淸淨眞空
得第一無我
諸佛得淨體
是名得大身
017_0374_b_01L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큰 몸을 얻음이란, 이른바 여래가 제1 청정한 진여의 법신(法身)을 얻음이라, 저 모든 부처님ㆍ여래의 실다운 〈나〉는 자재한 몸을 얻으셨기 때문이고, 제1 청정한 몸을 얻으셨기 때문이다. 게송에 ‘모든 부처님이 청정한 몸을 얻음’이라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또 이러한 뜻이기에 모든 부처님은 청정하고도 자재함을 얻으심이니, 게송에 ‘큰 몸을 얻음이라 하네’라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이런 뜻이기 때문에 이 뜻에 의지하여 모든 부처님, 여래가 무루계(無漏界) 가운데에서 제일 가장 자재한 〈나〉를 얻으신 것이다.
또 이러한 뜻에 의지하기 때문에 여래의 법신은 있는 몸이라고 하지 않나니, 아상(我相)이 없고 법상(法相)이 없기 때문이라, 이러한 뜻에서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저 상이 이와 같이 없기 때문에 여래의 법신은 없는 몸이라고도 하지 않나니, 저 진여인 나의 몸만은 있는지라, 이 때문에 법신을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저 상이 이와 같이 있기 때문이다. 이 뜻에 의지하기 때문에 모든 외도들이 묻기를, “여래가 죽은 뒤에 그 몸이 있습니까? 그 몸이 없습니까?”라고 하지만, 이러한 것이 있기 때문에 여래께서 기억해 듣지도 않고 대답하지도 않는 것이다.
017_0374_a_20L此偈明何義得大身者謂如來得第一淸淨眞如法身彼是諸佛如來實以得自在體以得第一淸淨身諸佛得淨體故以是義故諸佛名得淸淨自在偈言是名得大身故是義故依於此義諸佛如來於無漏界中得爲第一最自在我又復卽依如是義故如來法身不名爲有以無我相無法相故以是義故不得言有以如彼相如是無故又復卽依如是義故如來法身不名爲無以唯有彼眞如我體是故不得言無法身以如彼相如是有故依此義故諸外道問如來死後爲有身耶爲無身耶有如是等是故如來不記不答
모든 성문(聲聞) 사람들은 세간의 괴로움을 두려워함으로, 저 세간의 괴로움을 두려워하는 것을 대치하기 위해 모든 보살마하살이 일체 세간의 삼매와 세간을 뛰어난 삼매를 수행하여 제1의 낙(樂)바라밀 과를 증득하는 것이니, 알아두라. 벽지불(辟支佛) 사람들은 일체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버리고서 고요함에 머물기를 좋아함으로, 저 중생들을 버리는 것을 대치하기 위해 모든 보살마하살이 대비를 수행하여 한량이 없는 세간에 머물면서 항상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에 제1의 상(常)바라밀의 과위를 증득하는 것이니, 알아두라. 이것이 이른바 모든 보살마하살의 믿음과 또는 반야와 삼매와 대비인 네 가지 수행이다. 이와 같이 차례로 여래의 몸 정(淨)ㆍ아(我)ㆍ낙(樂)ㆍ상(常)의 네 가지 공덕 바라밀의 과를 얻는 것이니, 알아두라.
017_0374_b_12L諸聲聞人畏世閒苦爲對治彼畏世閒苦諸菩薩摩訶薩修行一切世閒出世閒諸三昧故證得第一樂波羅蜜果應知辟支佛人棄捨利益一切衆生樂住寂靜爲對治彼棄捨衆生諸菩薩摩訶薩修行大悲住無限齊世閒常利益衆生證得第一常波羅蜜果應知是名諸菩薩摩訶薩信及般若三昧大悲四種修行如是次第得如來身淨我樂常四種功德波羅蜜果應知
017_0374_c_01L또 다른 뜻이 있으니, 이 네 가지에 의지하여 여래의 법신을 일컬어 그 광대(廣大)함이 법계와 같고 끝없음이 허공과 같고 미래세를 다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이 무슨 뜻을 밝힘이냐 하면, 대승을 믿어 수행하는지라, 이 때문에 모든 부처님ㆍ여래께서 항상 청정한 법계(法界)를 얻어 제일의 저 언덕에도 달하시나니, 이 때문에 그 광대함이 법계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며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지라, 이 때문에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허공인 법신을 성취하사 기세간(器世間)으로써 끝까지 〈나〉가 없고 허공장(虛空藏) 등 한량없는 삼매를 수행하시나니, 그 때문에 일체 처소와 일체 법 가운데에 다 지재로움을 얻으신다. 이 때문에 그 끝 없음이 허공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대비를 수행함으로써 일체 중생들에게 한량없는 시절을 겪으면서 자비한 마음을 얻어 평등하신지라, 때문에 미래세를 다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017_0374_b_22L又復有義依此四種如來法身名爲廣大如法界究竟如虛空盡未來際此明何義信修行大乘是故諸佛如來常得淸淨法界到第一彼岸是故說言廣大如法界;修行般若波羅蜜是故諸佛如來成就虛空法身以器世閒究竟無我以修行虛空藏等無量三昧以是義故於一切處一切法中皆得自在是故說言究竟如虛空以修行大悲於一切衆生無限齊時得慈悲心平等是故說言盡未來際
017_0375_a_01L또 이 네 가지 바라밀은 번뇌 없는 세계[無漏界] 가운데 평등히 머무는 지라 성문ㆍ벽지불이나 큰 힘을 얻는 자재한 보살로서도 여래의 공덕 법신인 제1의 저 언덕을 증오하기 위해선 네 가지 장애가 있다. 그 네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연의 상[緣相]이고, 둘째는 인의 상[因相]이고, 셋째는 나는 상[生相]이고, 넷째는 무너지는 상[壞相]이다. 연의 상이란, 이를테면 무명(無明)의 머무는 자리가 그것이니, 곧 이 무명의 머무는 자리가 행(行)을 더불어 연을 짓는지라, 무명이 행을 연하는 것과 같이 무명의 머무는 자리 연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인의 상이란, 이를테면 무명의 머무는 자리가 행을 연하는 것이니, 곧 이 무명의 머무는 자리가 행을 연하는 그것이 인이 되는지라, 행이 식(識)을 연하는 것과 같이 번뇌 없는 업[無漏業]의 연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나는 상이란, 이를테면 무명의 머무는 자리 연이 번뇌 없는 업의 인에 의지하여 세 가지 뜻대로 나는 몸[三種意生身]의 인에 의지하여 세 세계[三界]에 나는 것과 같이 세 가지 뜻대로 나는 몸의 나는 것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상이란, 이를테면 세 가지 뜻대로 나는 몸이 부사의한 그 변해 바꿔지는 죽음을 연하는 것이니, 나는 연에 의지하기 때문에 늙어 죽음이 있는 것과 같이 세 가지 뜻대로 나는 몸이 그 부사의한 변해 바꿔지는 죽음을 연하는 것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017_0374_c_10L又此四種波羅蜜等住無漏界中聞辟支佛得大力自在菩薩爲證如來功德法身第一彼岸有四種障等爲四一者緣相二者因相三者生四者壞相緣相者謂無明住地此無明住地與行作緣如無明緣行無明住地緣亦如是故因相者謂無明住地緣行卽此無明住地緣行爲如行緣識無漏業緣亦如是故相者謂無明住地緣依無漏業因生三種意生身如四種取緣依有漏業因而生三界三種意生身生亦如是壞相者謂三種意生身緣不可思議變易死如依生緣故有老死三種意生身緣不可思議變易死亦如是
또 일체 번뇌의 더럽힘은 다 무명의 머무는 자리 근본에 의지하는지라, 무명의 머무는 자리를 떠나지 못함으로써 성문ㆍ벽지불이나 큰 힘을 얻은 보살로서도 무명의 머무는 자리 때[垢]를 아주 떠날 수 없으니, 이 때문에 마지막 함이 없는 정(淨)바라밀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또 저 무명의 머무는 자리 연에 의지하여 미세한 상[細相]과 희론(戱論)의 습기를 아주 멸할 수 없으니, 이 때문에 마지막 함이 없는 아(我)바라밀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또 무명의 머무는 자리를 연하여 미세한 상과 희론의 쌓임이 있고 번뇌 없는 업을 인하여 뜻을 쌓임[意陰]을 내는 것을 아주 멸할 수 없으니, 이 때문에 마지막 함이 없는 낙(樂) 바라밀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번뇌의 더럽힘과 업의 더럽힘과 나는 것의 더럽힘을 아주 멸할 수 없음으로써 이 때문에 마지막 감로(甘露)인 여래의 법신을 증득하지 모하고, 부사의한 그 변해 바꿔지는 생사를 멀리 여의지 못함으로써 항상 열반할 수 없으니, 이 때문에 변해 달라지지 않는 몸을 얻지 못하고, 이 때문에 마지막 함이 없는 상(常)바라밀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017_0375_a_03L又一切煩惱染皆依無明住地根以不離無明住地聲聞辟支佛力菩薩未得遠離無明住地垢是故未得究竟無爲淨波羅蜜又卽依彼無明住地緣以細相戲論習未得永是故未得究竟無爲我波羅蜜卽緣彼無明住地有細相戲論集無漏業生於意陰未得永滅是故未得究竟無爲樂波羅蜜以諸煩惱染業染生染未得永滅是故未證究竟甘露如來法身以未遠離不可思議變易生死常未究竟是故未得不變異體是故未得究竟無爲常波羅蜜
017_0375_b_01L또 번뇌의 더럽힘과 같이 무명의 머무는 자리도 그러하다. 업의 더럽힘과 같이 번뇌 없는 업의 행도 그러하다. 나는 것의 더럽힘과 같이 세 가지 뜻대로 나는 몸과 또는 그 부사의한 행에 바꿔지는 죽음도 그러한지라 ‘성자승만경(聖者勝鬘經)’에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마치 번뇌 있는 업의 인을 연하여 세 세계[三有]에 나는 것처럼,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무명의 머무는 자리 연과 번뇌 없는 업의 인에 의지하여 아라한(阿羅漢)ㆍ벽지불(辟支佛)과 큰 힘을 얻은 보살의 세 가지 뜻대로 나는 몸을 내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삼승(三乘)의 자리 세 가지 뜻대로 나는 몸과 또는 번뇌 없는 업으로 나는 것은 다 무명의 머무는 자리에 의지하니 만큼, 이는 연이 있지, 연이 없는 것이 아니옵니다”고 말한 것과 같음이다. 이러한 것을 ‘성자승만경’에 널리 설했으니 알아두라.
017_0375_a_15L又如煩惱染無明住地亦如是如業無漏業行亦如是如生染三種意生身及不可思議變易死亦如是如『聖者勝鬘經』言世尊譬如取緣有漏業因而生三有如是世尊依無明住地緣無漏業因生阿羅漢辟支佛大力菩薩三種意生身世尊此三乘地三種意生身生及無漏業生依無明住地有緣非無緣如是等『勝鬘經』中廣說應知
다시 성문ㆍ벽지불이나 큰 힘을 얻은 보살로서의 그 세 가지 뜻대로 나는 몸 가운데엔 정(淨)ㆍ아(我)ㆍ낙(樂)ㆍ상(常)바라밀인 저 언덕 공덕의 몸이 없는지라, 이 때문에 ‘성자승만경(聖者勝鬘經)’에 말하기를, “오직 여래의 법신만이 상(常)바라밀이고, 낙(樂) 바라밀이고, 나[我]바라밀이고, 정(淨)바라밀인것”이라고 하였으니, 바로 이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슨 뜻을 밝힘이냐 하면, 여래의 법신은 그 자성(自性)이 청정하여 일체 번뇌장(煩惱障)과 지장(智藏)의 습기를 여의었기 때문에 청정한지라, 이 때문에 여래의 법신만이 정(淨)바라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제일 고요하고도 자재한 〈나〉를 얻었기 때문에, 또는 〈나〉없는 희론(戱論)을 떠나서 마지막으로 고요하기 때문에 〈나〉라고 한다. 이 때문에 여래의 법신만이 아(我)바라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뜻대로 나는 쌓인 몸[陰身]의 인(因)을 아주 여의었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다, 이 때문에 여래의 법신만이 낙(樂)바라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세간과 열반을 평등하게 증득했기 때문에 항상한 것이다, 이 때문에 여래의 법신만이 상(常)바라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017_0375_b_02L復次以聲聞辟支佛大力菩薩三種意生身中無淨我樂常波羅蜜彼岸功德身是故『聖者勝鬘經』言唯如來法身是常波羅蜜樂波羅蜜我波羅淨波羅蜜如是等故此明何義如來法身自性淸淨離一切煩惱障智障習氣故名爲淨是故說言唯如來法身是淨波羅蜜以得寂靜第一自在我故離無我戲論究竟寂靜名爲我是故說言唯如來法身是我波羅蜜以得遠離意生陰身因故名爲樂是故說言唯如來法身是樂波羅蜜以世閒涅槃平等證故故名爲是故說言唯如來法身是常波羅
017_0375_c_01L다시 두 가지 법이 있음을 대략 설하겠으니, 이 두 가지 법에 의지하여 여래의 법신이 정(淨)바라밀이 있는 줄을 알아두라. 두 가지 법이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본래의 자성이 청정함이니, 인의 상[因相]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더러움을 떠나서 청정함이니, 수승한 상[勝上]이기 때문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이 두 가지 법에 의지하여 여래의 법신이 아(我)바라밀이 있는 줄을 알아두라. 그 뚜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모든 외도들의 치우침을 멀리 여의는 것이니, 허망한 〈나〉의 희론을 여의기 때문이다. 둘째는 모든 성문들의 치우침을 멀리 여의는 것이니 〈나〉없음의 희론을 여의기 때문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이 두 가지 법에 의지하여 여래의 법신이 낙(樂)바라밀이 있는 줄을 알아두라. 그 두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일체 괴로움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둘째는 일체 번뇌의 습기를 멀리 여의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으로써 어떻게 일체 괴로움을 멀리 여의는가 하면, 일체 종류의 괴로움을 없애기 때문에 또는 일체 뜻대로 나는 몸을 없애기 때문이다. 어떻게 번뇌의 습기를 멀리 여의는가 하면, 일체 법을 증득하기 때문이다.
017_0375_b_17L又復略說有二種法依此二法來法身有淨波羅蜜應知何等爲二一者本來自性淸淨以因相故二者離垢淸淨以勝相故有二種法依此二法如來法身有我波羅蜜應知等爲二一者遠離諸外道邊以離虛妄我戲論故;二者遠離諸聲聞邊離無我戲論故有二種法依此二法如來法身有樂波羅蜜應知何等爲一者遠離一切苦二者遠離一切煩惱習氣此以何義云何遠離一切以滅一切種苦故以滅一切意生身故云何遠離煩惱習氣以證一切法故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이 두 가지 법에 의지하여 여래의 법신이 상(常)바라밀이 있는 줄을 알아두라. 그 두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일체 함이 있는 행을 없애지 않는 것이니, 아주 없다는 소견[斷見]의 치우침을 여의기 때문이다. 둘째는 일체 함이 없는 열반을 없애지 않는 것이니, 항상 있다는 소견[常見]의 치우침을 여의기 때문이다. 이런 뜻이기 때문에 ‘성자승만경(聖者勝鬘經)’ 가운데 설하기를, “세존이시여, 모든 행을 무상(無常)으로 본다면 이는 아주 없다는 소견이고 바른 소견이 아니며, 열반을 상(常)으로 본다면 이는 항상 있다는 소견이고 바른 소견이 아니리니 허망한 생각으로 보기 때문에 이러한 소견을 일으키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이런 뜻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앞서 법계법문의 제일 진리를 설한 것에 의지하여 곧 세간의 법을 열반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이 세간과 열반의 두 가지 법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세간과 열반의 집착하지 않을 것을 증득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게송에 말하였다.
017_0375_c_07L有二種法依此二法如來法身有常波羅蜜應知何等爲二一者不滅一切諸有爲行以離斷見邊故者不取無爲涅槃以離常見邊故是義故『聖者勝鬘經』中說言世尊諸行無常是斷見非正見見涅槃常是常見非正見妄想見故作如是見以是義故依如是向說法界法門第一義諦說卽世閒法名爲涅槃此二法不分別故以證不住世閒涅槃故是故偈言

분별이 없는 사람은
세간을 분별하지도 않고
열반을 분별하지도 않나니
열반이야말로 평등이 있기 때문이네.
017_0375_c_17L無分別之人
不分別世閒
不分別涅槃
涅槃有平等

이 게송에 있어서 뒤의 반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75_c_19L後半偈者示現何義偈言

만약에 불성이 없는 자라면
모든 괴로움을 싫어할 수 없고
열반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고
또 하고자 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을 것이네.
017_0375_c_20L若無佛性者
不得厭諸苦
不求涅槃樂
亦不欲不願
017_0376_a_01L
이런 뜻이기 때문에 ‘성자승만경(聖者勝鬘經)’에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만약에 여래장(如來藏)이 없는 자라면 괴로움을 싫어하거나 열반을 구하기를 즐겨할 수 없으리다. 또 열반에 대한 욕망도 없고 원하여 구하지도 않으리다”고 하였으니, 이와 같음이다. 이것이 무슨 뜻을 밝힘이냐 하면, 대략 말하건대 불성의 청정함이 바로 부정취(不定聚) 중생을 인하여 두 가지 업을 지을 수 있다. 그 두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세간의 갖가지 고뇌를 보는 것에 의지하여 모든 고뇌를 싫어하기 때문에 마음을 내어서 그 세간의 일체 고뇌를 여의려고 하는 것이다. 게송에 ‘만약에 불성에 없는 자라면 모든 괴로움을 싫어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둘째는 열반의 즐거움을 보는 것에 의지하여 그 고요한 즐거움을 바라기 때문에 구하는 마음과 하고자 하는 마음과 원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니, 게송에 ‘만약에 불성이 없는자라면 열반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고, 또 하고자 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을 것이네’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017_0375_c_22L以是義故『聖者勝鬘經』言世尊若無如來藏者不得厭苦樂求涅槃亦無欲涅槃亦不願求如是等此明何義略說佛性淸淨正因於不定聚衆生能作二種業何等爲二一者依見世閒種種苦惱厭諸苦故生心欲離諸世閒中一切苦惱偈言若無佛性者不得厭諸苦故二者依見涅槃樂悕寂樂故生求心欲心願心偈言若無佛性者不求涅槃樂亦不欲不願故
또 하고자 하는 것이란, 열반을 구하기 때문이고, 구하는 것이란, 열반을 희구(忄希求)하기 때문이고, 희구하는 것이란, 그 법을 희구함에 있어서 겁약(怯弱)하지 않기 때문이다. 얻고자 하는 것이란, 그 구하는 법 가운데 방편으로 추구(追求)하기 때문이고, 또는 자문(諮問)하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이란, 그 법을 기대하는 것이고, 기대하는 것이란, 마음과 마음이 서로 행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게송에 말하였다.
017_0376_a_09L又欲者求涅槃故求者悕涅槃故於悕求法中不怯弱故欲得者所求法中方便追求故及諮問故所期法中所期法者心心相行故偈言

괴로움의 과(果)요 즐거움의 과를 보는 것은
불성에 의지하여 있는 것이니
만약에 불성이 없는 자라면
이러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네.
017_0376_a_14L見苦果樂果
此依性而有
若無佛性者
不起如是心
017_0376_b_01L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무릇 모든 세간의 괴로운 과를 보는 것과 무릇 모든 열반의 즐거운 과를 보는 것이 바로 이 두 가지 법이다. 선근(善根)의 중생으로서 일체 의지함이 있는 것은 진여의 불성을 인하여 그런 것이고 불성을 떠나선 인연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 게송에 ‘괴로움의 과와 즐거움의 과를 보는 것은 불성에 의지하여 있다’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만약에 인연이 없으면서도 이러한 마음을 내는 것이라면, 잇찬티카[一闡提] 따위 열반을 성품이 없는 자도 응당 보리심(菩提心)을 내어야 하리니, 게송에 ‘만약에 불성이 없는 자라면 이러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그 성품이 아직 일체 객(客)ㆍ진(塵) 번뇌의 모든 때[垢]를 여의지 못했다면 이는 삼승(三乘) 가운데에 일찍 일승(一乘)에 대한 신심을 닦아 익히지 못했거나 또는 선지식(善知識)들에게 친근하지 않고 선지식들에게 친근할 인연을 닦아 익히지 앟았기 때문이다.
017_0376_a_16L此偈明何義凡所有見世閒苦果者凡所有見涅槃樂果者此二種法根衆生有一切依因眞如佛性非離佛性無因緣故起如是心偈言見苦果樂果此依性而有故若無因緣生如是心者一闡提等無涅槃性應發菩提心偈言若無佛性者不起如是心故以性未離一切客塵煩惱諸垢於三乘中未曾修習一乘信心又未親近善知識等亦未修習親近善知識因緣
이 때문에 화엄성기(華嚴性起) 가운데 말하기를, “또한 사견취(邪見聚) 중생들의 몸속에도 다 여래의 해 바퀴[日輪] 광명이 비추는 것은 저 중생들의 이익을 짓고, 미래 인연의 선근을 짓고, 모든 깨끗한 법을 더 늘어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앞에 설하기를 ‘잇찬티카들이 항상 열반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열반의 성품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으니, 이 뜻이 무엇인가 하면, 대승(大乘)을 비방하는 그 인연을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또 무슨 뜻을 밝힘이냐 하면, 대승을 비방하는 마음과 대승을 구하지 않는 마음을 돌이키려고 하기 때문이라, 한량이 없는 때에 의지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또는 저 중생들도 실상 청정한 성품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라 해서 항상 끝까지 청정한 성품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서로 걸맞는 뜻에 의지하여 이 때문에 한 게송을 설한 것이다.
017_0376_b_04L是故華嚴性起中言次有乃至邪見聚等衆生身中皆有如來日輪光照作彼衆生利益作未來因善增長諸白法故向說一闡提常不入涅槃無涅槃性者此義云何爲欲示現謗大乘因故此明何義爲欲迴轉誹謗大乘心不求大乘心故依無量時故如是說以彼實有淸淨性故不得說言彼常畢竟無淸淨性又依相應義故說一偈

큰 바다의 그릇과 보배와 물이
한량없고도 다할 수 없고
등불 광명의 달빛과 같이
불성의 공덕도 그러한 것이라.
017_0376_b_13L大海器寶水
無量不可盡
如燈明觸色
性功德如是

이 게송에 있어서 앞의 반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76_b_15L此初半偈示現何義偈言

부처님 법신의 지혜ㆍ선정ㆍ대비가
중생들의 성품을 섭수하는 그것이
마치 큰 바다의 보배와 물과
서로 비슷한 상대법이네.
017_0376_b_16L佛法身慧定
悲攝衆生性
海珍寶水等
相似相對法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세 가지 곳이 있기 때문이니, 차례로 세 가지 있는 것이 마치 큰 바다와 서로 비슷한 상대 법이다. 여래의 성품 가운데에 인(因)을 의지하여 필경 서로 걸맞은 뜻을 성취하는 것이니 알아두라. 그 세 가지 곳이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법신의 청정한 인(因)이고, 둘째는 부처님의 지혜를 모은 인이고, 셋째는 여래의 대비를 얻은 인이다.
017_0376_b_18L此偈明何義以有三處故次第有三種大海相似相對法於如來性中依因畢竟成就相應義應知何等三處一者法身淸淨因二者集佛智因者得如來大悲因
017_0376_c_01L법신의 청정한 인이라, 대승을 수행하는 그 그릇이 서로 비슷한 상대 법이니, 한량없이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송에 이른바 부처의 법신이란 것이 이 때문이다. 바다와 서로 비슷한 상대 법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지혜를 모은 인이란, 난야와 삼매가 값진 보배와 더불어 서로 비슷한 상대 법이니, 게송에 이른바 지혜와 선정이란 것이 이 때문이다. 여래의 대비를 얻은 인이란, 대자대비하신 마음이 물과 서로 비슷한 상대법이니, 게송에 이른바 ‘대비로써 중생들의 성품을 섭수한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물과 서로 비슷한 상대 법이기 때문이다.
017_0376_b_23L法身淸淨因者修行大乘器相似相對法以彼無量不可盡故偈言佛法身故海相似相對法故集佛智因者般若三昧珍寶相似相對法偈言慧定故珍寶相似相對法故得如來大悲因者大慈悲心水相似相對法偈言悲攝衆生性水相似相對法故
또 지혜와 삼매문을 수행하는 것이 보배와 서로 비슷한 상대법이니, 저 분별 없고 부사의한 큰 세력과 공덕을 지닌 것이 서로 걸맞기 때문이다. 또 보살의대비를 수행하는 것이 물과 서로 비슷한 상대 법이니, 일체 중생들에게 부드럽게 하는 그 대비로써 한결같은 맛과 평등한 맛을 얻음이 서로 걸맞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저 세 가지 법에 이 세 가지 인이 화합되니, 필경 버리거나 떠나지 않기 때문에 서로가 걸맞는다고 이르는 것이다. 그리고 뒤의 반 게송은 또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76_c_07L又修行智慧三昧門寶相似相對法以彼無分別不可思議有大勢力功德相應故又修行菩薩大悲水相似相對法以於一切衆生柔軟大悲得一味等味相行如是彼三種法此三種因和合竟不相捨離故名相應後半偈者現何義偈言

신통과 지혜와 때[垢]없음이
진여(眞如)를 떠나지 않는지라
등불 광명의 뜨거운 빛과 같이
때 없는 세계도 그와 비슷한 것이네.
017_0376_c_14L通智及無垢
不離於眞如
如燈明煖色
無垢界相似
017_0377_a_01L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역시 세 가지 곳이 있으니 그 차례의 세 가지가 등불과 서로 비슷한 상대법이다. 여래의 법계 가운데에 과(果)를 의지하여 서로 걸맞은 법이니 알아두라. 그 세 가지 곳에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신통이고, 둘째는 번뇌의 다됨을 아는 지혜이고, 셋째는 그 번뇌가 다된 것이다.
이것이 또 무슨 뜻이냐 하면, 신통이란 다섯 가지 신통이 있으니, 그 광명이 서로 비슷한 상대법이라 수용(受用)하는 일이 능히 흩어버리거나 없앨 수 있는 것이어서 지혜와 서로 통하고 어두움을 대치하는 법이어서 그 대치하는 것이 서로 비슷한 상대 법이기 때문이다. 게송에 이른바 신통이란 것이 이 때문이고, 또 광명이란 것이 이 때문이다. 번뇌의 다됨을 아는 지혜란, 번뇌 없는 지혜의 그 뜨거운 것이 서로 비슷한 상대법이라 능히 업과 번뇌를 남김없이 다 사를 수 있으므로 사를 수 있는 그것이 서로 비슷한 상대되는 법이기 때문이니, 게송에 이른바 지혜란 것이 이 때문이다. 또 뜨거움이란 것이 이 때문이다. 번뇌가 다 된 것이란, 몸을 바꿔 번뇌가 다된 그 빛이 서로 비슷한 상대되는 법이니, 항상 때가 없이 청정함으로써 그 광명을 구족한 모양의 때 없이 서로 비슷한 상대법이기 때문이다. 게송에 이른바 때 없이란 것이 이 때문이고, 빛이란 것이 이 때문이다.
017_0376_c_16L此偈明何義有三處次第三種燈相似相對法於如來法界中依果相應義應知何等三處一者通二者知漏盡智三者漏盡此以何義通者有五通光明相似相對法以受用事能散滅彼與智相違所治闇法能治相似相對法故偈言通故明故知漏盡智者無漏智煖相似相對法以能燒業煩惱無有餘殘能燒相似相對法故偈言智故煖故漏盡者轉身漏盡色相似相對法以常無垢淸淨光明具足相無垢相似相對法故偈言無垢故色故
또 때가 없는 것이란, 번뇌의 장애[煩惱障]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청정한 것이란, 지혜의 장애[智障]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광명이란, 자성(自性) 그대로의 청정한 몸이니, 저 두 가지 장애가 바로 객(客)ㆍ진(塵)번뇌이다. 이와 같이 대략 여섯 가지를 설함이다. 번뇌 없는 지혜란, 그 번뇌를 여읜 무학(無學)들이 몸소 법을 섭수한 것이라, 번뇌가 없는 법계 가운데엔 저것과 이것이 공통되어 서로가 버리거나 떠나지 않고 차별하지 않나니, 법계의 평등한 그것이 마침내 서로 걸맞은 뜻인 줄을 알아두라. 그리고 또 행(行)의 뜻에 의지하여 이 때문에 한 게송을 설한 것이다.
017_0377_a_06L又無垢者以離煩惱障淸淨者以離智障故光明者如自性淸淨體彼二是客塵煩惱如是略說六種無漏智離煩惱無學身所攝於無漏法界中彼此迭共不相捨不差別法界平等畢竟名相應義應知又依行義故說一偈

실상을 보는 이는 말하기를
범부나 성인이나 부처님이나
중생의 여래장(如來藏)으로선
그 진여가 차별이 없다 하네.
017_0377_a_12L見實者說言
凡夫聖人佛
衆生如來藏
眞如無差別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77_a_14L此偈示現何義偈言
범부는 마음이 뒤바뀌었고
실상을 보는 이는 범부와 다르고
여실히 뒤바뀌지 않으신
모든 부처님은 희론(戱論)을 여의셨네.
017_0377_a_15L凡夫心顚倒
見實異於彼
如實不顚倒
諸佛離戲論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앞서 여래의 법계 가운데 일체 법을 밝히되 진여의 청정함은 모두가 같은 모양인 것임을 밝혔으니, 이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의 분별없는 지혜 법문 등에 의지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해 설한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대략 세 종류의 사람에 의지함을 밝힘이다. 그 세 종류가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여실히 보지 못하는 범부이고, 둘째는 여실히 보는 성인이고, 세 번째 필경 여실함을 성취한 여래의 법신이다.
017_0377_a_17L此偈明何義向明如來法界中一切法眞如淸淨明同相依般若波羅蜜無分別智法門等爲諸菩薩摩訶薩此以何義略明依三種人何等爲一者不實見凡夫二者實見聖人三者畢竟成就如來法身
017_0377_b_01L이것이 이른바 세 종류의 행이니, 알아두라. 어떻게 아는가 하면, 뒤바뀜을 갖는 것과 뒤바뀜을 여읜 것과 희론(戱論)을 여읜 이러한 차례이다. 이것이 또 무슨 뜻이냐 하면, 뒤바뀜을 갖는 것이, 이를테면 모든 범부들은 세 가지 허망한 생각의 마음으로 보기 때문이니, 게송에 ‘범부는 마음이 뒤바뀌었다’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뒤바뀜을 여읜 것이란, 성인으로선 허망한 생각의 마음으로 보는 것을 아주 여의었기 때문이니, 게송에 ‘실상을 보는 이는 범부와 다르다’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희론을 여읜 것이란, 바로 뒤바뀜과 모든 희론을 여의고 번뇌의 장애, 지혜의 장애와 또는 번뇌의 습기를 모든 여래께서 그 근본을 아주 다 끊으셨기 때문이다. 게송에 ‘여실히 다 바뀌지 않으신 모든 부처님은 희론을 여의셨네’라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곧 이행에 의지하여 나머지 네 종류의 뜻을 널리 차별하여 설했으니, 알아두라. 다시 저 세 종류의 사람들에 의지하고 때의 차별에 의지하여 이때에 한 게송을 설한 것이다.
017_0377_a_23L是名三種行應知應云何知謂取顚倒離顚倒離戲論如是次第此以何義取顚倒謂諸凡夫三種虛妄想心見故凡夫心顚倒故離顚倒者以聖人遠離虛妄想心見故偈言見實異於彼故離戲論者正離顚倒及諸戲論以煩惱障智障及煩惱習氣諸佛如來根本永盡故偈言如實不顚倒佛離戲論故自此以下卽依此行四種義廣差別說應知又復卽依彼三種人依時差別故說一偈

부정(不淨)이 있고 청정이 있고
또는 선정(禪淨)이 있음으로써
이와 같이 차례대로 말하기를
중생이고 보살이고 부처님이라 하네.
017_0377_b_11L有不淨有淨
及以善淨等
如是次第說
衆生菩薩佛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77_b_13L此偈示現何義偈言

체(體) 등 여섯 글귀의 뜻은
대략 법의 본성과 본체를 밝힌 것이고
그 차례의 세 때[三時] 가운데엔
세 종류의 명자(名字)를 설한 것이네.
017_0377_b_14L體等六句義
略明法性體
次第三時中
說三種名字
017_0377_c_01L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앞서 번뇌 없는 법의 성품을 밝힌 그것이 곧 여래께서 널리 설하신 갖가지 법문이라 저 모든 법문을 여섯 글귀의 뜻에 의지하여 대략 설하였으니, 이른바 체(體)와 인(因)ㆍ과(果)와업(業)과 상응(相應)과 행(行)을 다 포섭한 것이다. 게송에 ‘체등 여섯 글귀의 듯은 법의 본성과 본체를 대략 밝힘이라’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세 때 가운데엔 차례로 저 세 종류에 의지하여 명자(名字)를 설한 것이니, 알아두라. 게송에 ‘그 차례의 세 때 가운데엔 세 종류의 명자를 설함이라’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이것이 또 무슨 뜻을 밝힘이냐 하면, 부정한 그 때를 이름하여 중생이라 함이니, 게송에 이른바 부정함이 있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부정을 청정케 하는 그 때를 이름하여 보살이라 함이니, 게송에 이른바 청정함이 있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선정(善淨)한 그 때를 이름하여 여래라 함이니, 게송에 이른바 선정함이 있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017_0377_b_16L此偈明何義謂向所明無漏法性來廣說種種法門彼諸法門略說依於六種句義所謂攝因果業相應及行偈言體等六句義略明法性體故於三時中次第依彼三種名字畢竟應知偈言次第三時中說三種名字故此以何義謂不淨時名爲衆生偈言有不淨故不淨淨時名爲菩薩偈言有淨故於善淨時名爲如來及以善淨故
이런 뜻이기 때문에 부증불감경(不增不減經)에 말씀하시기를, “사리불(舍利弗)이여, 곧 이 법신도 항하사[恒沙]겁을 지나는 동안 한량없는 번뇌에 얽매여서 처음이 없는 시절로부터 세간의 생사 물결에 수순하여 가고 오기도 하고, 나고 죽기도 했으니, 이를 이름하여 중생이라 하느니라. 사리불이여, 곧 이 법신이 세간의 생사 고뇌를 싫어하여 일체 욕심을 버리고는 열 가지 바라밀을 닦아 8만 4천의 법문을 섭수하고 보리행 닦는 이를 이름하여 보살이라 하느니라. 사리불이여, 곧 이 법신이 일체 번뇌의 얽매임을 떠나서 일체의 고뇌를 벗어나고, 일체 번뇌의 때를 떠나서 청정한 법 속에 머물러서 일체 중생을 관찰하는 지위에 도달하고, 일체 경계 가운데 다시 수승할 이가 없어서 일체의 장애를 여의고, 일체 법 가운데에 자재한 힘을 얻었으니, 이를 이름하여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라 하느니라”고 하셨다. 게송에 ‘이러한 차례대로 설한 것이 곧 중생이고 보살이고 부처님이네’라고 말한 것이 역시 이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곧 저 세 때에 의지하여 여래의 법성(法性)이 일체 곳에 두루함을 밝힘이니, 이 때문에 한 게송을 설한 것이다.
017_0377_c_03L以是義故『不增不減經』言舍利弗卽此法身過於恒沙無量煩惱所纏從無始來隨順世閒生死濤波去來生退名爲衆生舍利弗卽此法身厭離世閒生死苦惱捨一切欲行十波羅蜜攝八萬四千法門修菩提行名爲菩薩舍利弗卽此法得離一切煩惱使纏過一切苦一切煩惱垢得淨得淸淨得住彼岸淸淨法中到一切衆生所觀之地一切境界中更無勝者離一切障離一切㝵於一切法中得自在力名爲如來正遍知故偈言如是次第說菩薩佛故自此以下卽依彼三時明如來法性遍一切處故說一偈

허공이 일체를 두루하지만
허공은 분별함이 없는 것처럼
자성(自性)의 때[垢]없는 마음도
역시 두루하되 분별함이 없다.
017_0377_c_17L如空遍一切
而空無分別
自性無垢心
亦遍無分別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77_c_19L此偈示現何義偈言

과실ㆍ공덕ㆍ필경 그 어느 때에나
두루 이르고 또 같은 모양이라
그 하등ㆍ중등ㆍ상등의 일체 중생이
마치 허공 가운데의 빛과 같음이네.
017_0377_c_20L過功德畢竟
遍至及同相
下中勝衆生
如虛空中色
017_0378_a_01L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모든 범부나 성인이나 부처님의 그 자성이 청정하고, 마음이 평등함은 분별이 없는지라 저 청정한 마음이 세 때의 차례에 있어서 과실의 때이건, 공덕의 때이건, 공덕이 청정한 필경의 때이건, 그 동일한 모양의 차별 없는 것이 마치 허공이 기와ㆍ은ㆍ금 세 종류 그릇 속에 있되 평등하여 다름이 없고 차별이 없어서 어느 때라도 있는 것과 같음이다. 이런 뜻이기 때문에 경(經) 가운데, 세 때의 차례가 있는 것을 설하였다. 부증불감경(不增不減經)에 설하시기를, “사리불이여, 중생계를 떠나서 법신이 있지 않고 법신을 떠나서 중생계가 있지 않으니, 중생계가 곧 법신이고 법신이 곧 중생계라, 사리불이여, 이 두 법은 뜻이 같고 이름만 다르기 때문이니라”고 하셨다. 여기서부터는 곧 이 세 땡 의지하여 여래의 법성이 일체 곧고 두루 이르는 것을 밝힘이라 부정한 때이거나 청정한 때이거나 변하지 않고 다르지 않는 것을 설한 것이 열다섯 게송이 있으니, 이러한 여러 게송이 그 중요한 뜻을 대략 설한 것이다. 알아두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77_c_22L此偈明何義所有凡夫聖人諸佛如自性淸淨心平等無分別彼淸淨心於三時中次第於過失時於功德於功德淸淨畢竟時同相無差別猶如虛空在瓦金三種器中平等無異無差別一切時有以是義故經中說有三時次第如『不增不減經』言舍利不離衆生界有法身不離法身有衆生界衆生界卽法身法身卽衆生舍利弗此二法者義一名異故此已下卽依此三時明如來法性遍至一切處依染淨時不變不異有十五偈此等諸偈略說要義應知偈言

모든 과실의 객(客)ㆍ진(塵)이 와서
자성의 공덕과 어울리더라도
진여의 법체는 변하지 않아서
본래와 같이 뒤에도 그러하네.
017_0378_a_12L諸過客塵來
性功德相應
眞法體不變
如本後亦爾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78_a_14L此偈明何義偈言

열한 게송과 두 게송은
차례로 부정한 때에 있어서
번뇌의 객ㆍ진 과실이다.
017_0378_a_15L十一偈及二
次第不淨時
煩惱客塵過

열넷째, 열다섯째의 게송은
선정(禪淨)한 때에 있어서
항하사 보다 지나는 부처님 법의
그 이탈하지 않고 부사의한
부처님의 자성의 공덕이라
017_0378_a_16L第十四十五
於善淨時中
過恒沙佛法
不離脫思議

과거세에나 현재세에나
또는 미래세에나
여래 진여의 성품은
그 본체가 변치도 않고 다르지도 않네.
017_0378_a_18L佛自性功德
本際中閒際
及以後際等
如來眞如性
體不變不異

처음 부정한 때에 의지하여 변하지 않고 다르지 않음을 설한 것이 이 열한 게송이다.
017_0378_a_19L初依不淨時不變不異十一偈者

허공이 두루 이르지만
허공 자체는 미세한 티끌도 더럽히지 않듯이
불성도 중생들에 두루하지만
모든 번뇌가 더럽히지 않으며
017_0378_a_20L如虛空遍至
體細塵不染
佛性遍衆生
諸煩惱不染

일체 세간이
허공을 의지해 생멸하듯이
번뇌 없는 경계를 의지하여
모든 근(根)의 생멸이 있네.
017_0378_a_22L如一切世閒
依虛空生滅
依於無漏界
有諸根生滅

불이 허공을 사르지 못하거늘
만약에 사른다면 그럴 이치가 없으리니
이와 같이 늙고 병들어 죽음도
불성을 사를 수는 없는 것이며
017_0378_a_23L火不燒虛空
若燒無是處
如是老病死
不能燒佛性
017_0378_b_01L
땅이 물을 의지해 머물고
물이 또 바람을 의지하고
바림이 또 허공을 의지하지만
허공은 땅ㆍ물ㆍ바람을 의지하지 않는다.
017_0378_b_01L地依於水住
水復依於風
風依於虛空
空不依地等

이와 같이 쌓임과 경계와 감관이
번뇌의 업 속에 머물고
모든 번뇌의 업들은
불선한 생각을 의지하며
017_0378_b_03L如是陰界根
住煩惱業中
諸煩惱業等
住不善思惟

불성한 생각의 행(行)은
청정한 마음속에 머물지만
자성의 청정한 마음은
저 모든 법에 머물지 아니하네.
017_0378_b_04L不善思惟行
住淸淨心中
自性淸淨心
不住彼諸法

쌓임ㆍ느낌ㆍ경계는 땅과 같고
번뇌의 업은 물과 같고
바르지 않는 생각은 바람과 같고
청정한 마음의 경계는 허공과 같음이라.
017_0378_b_05L陰入界如地
煩惱業如水
不正念如風
淨心界如空

성품에 의지해 삿된 생각이
삿된 생각이 번뇌의 업을 일으키고
또 번뇌의 업을 의지하여
쌓임과 느낌과 경계를 일으키나니
017_0378_b_07L依性起邪念
念起煩惱業
依因煩惱業
能起陰入界

다섯 가지 쌓임인 경계와 느낌 등
그 모든 법을 의지하여
모든 근(根)의 생멸 있는 그것이
마치 세계의 이룩되고 무너지는 것과 같네.
017_0378_b_08L依止於五陰
界入等諸法
有諸根生滅
如世界成壞

청정한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고
또 화합하는 이치도 없고
나고 머물고 사라짐도 없는지라
017_0378_b_09L淨心如虛空
無因復無緣
及無和合義
亦無生住滅

허공과 같은 청정한 마음이야말로
항상 밝아서 바뀌거나 변함이 없거늘
허망한 분별을 일으키기 때문에
객ㆍ진 번뇌의 더럽힘이 되네.
017_0378_b_11L如虛空淨心
常明無轉變
爲虛妄分別
客塵煩惱染

이 허공 비유의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이냐 하면, 여래의 성품이 부정한 때에 의지하여 그 법체(法體)가 변하지 않는 것을 밝힘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78_b_12L此虛空譬喩偈示現何義明如來性依不淨時法體不變偈言

바르지 않은 생각은 바람이고
모든 업의 번뇌는 물이고
자성의 마음은 허공이니
이 허공이 저 바람, 물을 의지해 나기 않는지라
017_0378_b_14L不正思惟風
諸業煩惱水
自性心虛空
不爲彼二生

자성의 청정한 마음은
그 모양이 허공과 같으므로
삿된 생각의 바람이
흩어지거나 무너뜨릴 수 없으며
017_0378_b_16L自性淸淨心
其相如虛空
邪念思惟風
所不能散壞

모든 업의 번뇌 물도
허공만은 적실 수 없고
늙고 병들고 죽는 치성한 불도
허공만은 사를 수 없는 것이네.
017_0378_b_17L諸業煩惱水
所不能濕爛
老病死熾火
所不能燒燃
017_0378_c_01L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며, 마치 삿된 생각의 바람 바퀴[風輪]를 의지하여 업의 번뇌 불덩어리를 일으키는 것처럼 업의 번뇌 불덩어리를 의지하여 쌓임과 느낌과 경계의 세간을 낼 수는 있으되, 자성인 마음 허공은 나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나니, 게송에 ‘바르지 않는 생각은 바람이고 업의 번뇌는 물이고 자성인 마음 허공이 저 바람ㆍ물을 의지해 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삿된 생각의 풍재(風災)와 업이 지나가는 번뇌의 수재(水災)와 늙고 병들고 죽는 등의 화재(火災)를 의지하여 쌓임과 느낌과 경계의 세간을 불고 적시고 사르고 무너뜨릴 수는 있으되, 자성이 청정한 마음의 허공만은 헝상 머물러서 무너지지 않는지라, 이와 같이 부정한 때에 있어서 기세간(器世間)과 서로 비슷한 상대 법이라 모든 번뇌의 더럽힘과 업의 더럽힘과 나는 것의 더럽힘은 쌓임도 있고 사라짐도 있지만 모든 부처님ㆍ여래의 함이 없는 성품은 마치 허공이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것처럼 항상 변하거나 바꿔지지 않아 법체(法體)를 나타내 보이나니 이것이 바로 자신의 청정한 법문인 허공 비유라, 다라니자재왕보살수다라경(多羅尼自在王菩薩修多羅經) 가운데 널리 설한 것과 같으니, 알아두라.
017_0378_b_18L此偈明何義如依邪念風輪起業煩惱水聚依業煩惱水聚生陰界入世而自性心虛空不生不起偈言正思惟風諸業煩惱水自性心虛空不爲彼二生故如是依邪念風災行煩惱水災老病死等火災吹浸燒壞陰入界世閒而自性淸淨心虛空常住不壞如是於不淨時中器世閒相似相對法諸煩惱染業染生染有集有滅諸佛如來無爲之性猶如虛空不生不滅常不變易示現法體自性淸淨法門虛空譬喩如『陁羅尼自在王菩薩修多羅』中廣說應知
저 경 가운데 말씀하시기를, “여러 선남자여, 번뇌는 본래 체(體)가 없는데, 진여의 성품은 밝고도 깨끗하다. 일체 번뇌는 약하고도 얇은데, 비바사나(毘婆舍那)는 큰 세력이 있으며, 일체 번뇌는 객(客)이고 진(塵)인데, 자성은 청정한 마음의 근본이다. 일체 번뇌는 허망한 분별인데 자성의 청정한 마음은 여실히 분별하지 않느니라. 여러 불자(佛子)여, 마치 큰 땅은 물을 의지해 머물고, 물은 바람을 의지해 머물고, 바람은 공허를 의지해 머물지만, 저 허공만은 의지하여 머무는 곳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여러 선남자여, 이러한 네 가지 요소[四大]가 바로 땅ㆍ물ㆍ바람ㆍ허공인데, 이 네 가지 요소 가운데 허공 요소만을 가장 수승한 것이라 하고, 큰 힘이라 하고 견고한 것이라 한다. 또 변동하지 않는 것이라 하고 조작하지 않는 것이라 하고, 해산하지 않는 것이라 하고,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아서 자연히 머무는 것이라 하느니라.
017_0378_c_08L經中言諸善男子煩惱本無體眞性本明淨;一切煩惱羸薄毘婆舍那有大勢力;一切煩惱客塵自性淸淨心根本;一切諸煩惱虛妄分別自性淸淨心如實不分別諸佛子譬如大地依水而住水依風住風依空住而彼虛空無依住處諸善男子如是四大地大水大風大空大此四大中唯虛空大以爲最勝以爲大力以爲堅固以爲不動以爲不作以爲不散不生不滅自然而住
017_0379_a_01L여러 선남자여, 저 세 가지 요소는 나고 사라짐이 서로 어울리어 실다운 체성(體性)이 없으므로 찰나에도 머물지 않느니라. 여러 불자여, 이 세 가지 요소는 변하고 달라지는 것이 무상(無常)하느니라. 여러 불자여, 그런데 허공계만은 항상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느니라. 여러 불자여, 이와 같이 쌓임과 경계와 느낌은 업의 번뇌를 의지해 머물고, 모든 번뇌의 업은 바르지 않는 생각을 의지해 머물고, 바르지 않는 생각은 불성인 자성의 청정한 마음을 의지해 머무느니라고 하셨다. 또 이런 뜻이기 때문에 경(經) 가운데 말씀하시기를, “자성의 청정한 마음이 객진 번뇌에 더럽히나니 여러 선남자여, 모든 삿된 생각과 모든 번뇌의 업과 모든 쌓임ㆍ경계ㆍ느낌 이러한 법은 인연의 화합을 따라 나고 인연의 파괴로써 사라지느니라. 여러 선남자여, 저 자성의 청정한 마음은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기 때문에 화합하는 것이 없어 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느니라. 여러 선남자여, 허공의 경계와 같이 자성의 청정한 마음도 그러하고, 바람 요소의 경계와 같이 바르지 않는 생각도 그러하고, 물 요소의 경계와 같이 모든 업의 번뇌도 그러하고, 땅 요소의 경계와 같이 쌓임ㆍ느낌 등도 그러하느니라”고 하셨다. 이 때문에 일체 법은 다 근본이 없고 다 견고함이 없나니, 머묾이 없음은 머무는 근본이 없기 때문이고 근본이 청정함은 그 근본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017_0378_c_19L諸善男子彼三種大生滅相應無實體性剎那不住諸佛此三種大變異無常諸佛子而虛空界常不變異諸佛子如是陰界入依業煩惱住諸煩惱業依不正思惟不正思惟依於佛性自性淸淨心以是義故經中說言自性淸淨心客塵煩惱染諸善男子所有邪念有煩惱業所有陰界入如是諸法從於因緣和合而生以諸因緣壞散而滅諸善男子彼自性淸淨心無因無緣故無和合不生不滅諸善男子如虛空界自性淸淨心亦復如是如風大不正思惟亦復如是如水大界業煩惱亦復如是如地大界陰界入等亦復如是是故說言一切諸法皆無根本皆無堅實無住無住本根本淸淨無根本故
이미 부정한 때를 의지하여 그 분별없는 모양과 자성(自性)의 청정한 마음이 허공의 경계와 서로 비슷한 상대 법임을 설하였다. 이미 저 바르지 않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바람 경계와 서로 비슷한 상대 법임을 서라고, 이미 바르지 않은 생각에 의지한 그 모든 업 번뇌의 원인 모양이 물 경계와 서로 비슷한 상대 법임을 설하였다. 그리고 이미 저 쌓임ㆍ경계ㆍ느낌을 내는 그 결과 모양의 변천하는 것이 땅과 서로 비슷한 상대 법임을 설하였으나, 저 죽고 병들고 늙음을 사르는 모든 과환(過患)의 모양이 불과 서로 비슷한 상대 법임을 설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다음의 게송을 설하였다.
017_0379_a_13L已說不淨時中依無分別相自性淸淨心虛空界相似相對法已說依彼起不正念風界相似相對法已說依不正念諸業煩惱因相水界相似相對法已說依彼生陰界入果相轉變地相似相對法未說彼焚燒死病老等諸過患相火相似相對法是故次說偈言

세 가지 불이 있어서
차례로 인간과 지옥을 사르며
갖가지 고통을 일으키기도 하고
모든 행의 근(根)을 녹이기도 하네.
017_0379_a_20L有三火次第
劫燒人地獄
能作種種苦
能熟諸行根
017_0379_b_01L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이 세 가지 불이 부정한 때에 있어서 저 여래장(如來藏)을 변하게 하거나 다르게 할 수는 없음을 밝힘이니, 이 때문에 ‘성자승만경(聖者勝鬘經)’에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생사란 세간의 이치[三諦]에 의지하기 때문에 생사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죽음이란, 모든 근(根)이 무너지는 것이고, 나는 것이란, 모든 근이 새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여래장은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늙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여래장이란, 함이 있는 모양의 경계를 여의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이란 항상하고 청량(淸凉)하여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고 하였다.
이미 주정한 때를 의지하여 변하지 않고 다르지 않는 것은 설하고, 다음 부정을 청정케 하는 때를 의지하여 변하지 않고 다르지 않는 것을 설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두 게송을 설한 것이다.
017_0379_a_22L此偈明何義明此三法老死火不淨時中不能變異彼如來藏是故『聖者勝鬘經』言世尊生死者依世諦故說有生死世尊死者諸根壞世尊生者新諸根起世尊而如來藏不生不死不老不變何以故世尊如來藏離有爲相境界世尊如來藏者恒淸涼不變故已說依不淨時不變不異次說依淨不淨時不變不異故說二偈

보살마하살은
여실히 불성을 아나니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늙음도, 병드는 것도, 없는 그것이 불성이라
017_0379_b_09L菩薩摩訶薩
如實知佛性
不生亦不滅
復無老病等

보살이 이와 같이 알고
능히 생사를 벗어나서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생멸 있는 것을 나타내 보이네.
017_0379_b_11L菩薩如是知
得離於生死
憐愍衆生故
示現有生滅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79_b_12L此偈示現何義偈言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괴로움의 불을
성인은 아주 다 꺼버린지라
그러므로 모든 보살에겐
업의 번뇌를 의지해 나는 불이 없네.
017_0379_b_13L老病死諸苦
聖人永滅盡
依業煩惱生
諸菩薩無彼
017_0379_c_01L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늙고 병들고 죽는 따위 고통의 불이 부정한 때에 있어서 업의 번뇌 뿌리를 의지해나는 그것이 마치 세간의 불이 섶나무 뿌리를 의지해 나는 것과 같음을 밝힘이다. 모든 보살은 뜻대로 나는 몸[意生身]을 얻어 남으로써 그 부정을 청정케 할 때에 필경 모든 고통을 아주 다 없애버리나니, 이런 뜻이기 때문에 모든 업의 번뇌가 항상 사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비(慈悲)의 힘에 의지하기 때문에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나타내 보이면서도 그 나고 죽는 것 등을 멀리 여의나니 진실 그대로를 보기 때문이다. 또 이런 뜻이기 때문에 모든 보살마하살은 선근(善根)에 의지해 나지 않는다. 마음의 자재한 힘을 의지해 나고, 대비의 힘을 의지해 세 세계[三界]에 출현하는지라, 나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고 늙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고, 병든 것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고, 죽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되, 그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고통의 법이 없나니, 진실 그대로 진여의 불성은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것임을 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부정을 청정케 하는 때라고 한다. 수다라(修多羅) 가운데 번뇌 없는 업의 좋아하는 근본 번뇌의 의지해 널리 설한 것과 같으니, 알아두라. 그것이 바로 여래께서 대해혜보살경(大海慧菩薩經) 가운데 설하신 것과 같습니다.
017_0379_b_15L此偈明何義明此老病死等苦火於不淨時依業煩惱本生如世閒火依薪本生以諸菩薩得生意生身於淨不淨時畢竟永滅盡以是義故諸業煩惱等常不能燒燃而依慈悲力故示現生老病死而遠離生等以見如實故以是義故諸菩薩摩訶薩依善根結使生非依業煩惱結使生以依心自在力生依大悲力現於三界現生示現老示現病示現死而彼無有生老病死諸苦等法以如實見眞如佛性不生不滅是名不淨淨時修多羅中依愛無漏業根本煩惱廣說應知如如來於『大海慧菩薩經』中說言
그 경에 설하시기를, “대해혜여, 어떤 것이 세간에 머무는 선근(善根)으로서 번뇌에 상응(相應)되는 것이냐 하면, 이른바 모든 선근을 모음에 있어서 만족하게 여김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의 소원으로 태어나서 모든 유(有)를 거둬 가지기 때문이고, 일체 부처님, 여래를 구해 뵙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을 교화하되 마음으로 지치거나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이고, 일체 부처님들의 묘법을 거둬 가지기 때문이고, 모든 중생들에게 항상 이익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항상 모든 법을 즐거이 탐구하는 그 번뇌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고, 항상 모든 바라밀을 구하는 그 번뇌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니라. 대해혜여, 이것을 이르되, 모든 보살마하살의 그 세간의 선근이 번뇌에 상응되는 것이라 하나니, 이 번뇌를 의지해 모든 보살마하살이, 세 세계[三界]에 태어나서 갖가지 괴로움을 받되, 그 세 세계 번뇌의 허물에 더럽힘이 되지는 않느니라.”
017_0379_c_07L大海慧何者能住世閒善根相應煩惱所謂集諸善根無有厭足以心願生攝取諸有故求見一切諸佛如來故教化一切衆生心不疲惓攝取一切諸佛妙法故於諸衆生常作利益故常不捨離樂貪諸法結使故常不捨離諸波羅蜜結使故海慧是名諸菩薩摩訶薩世閒善根相應煩惱依此煩惱諸菩薩摩訶薩生於三界受種種苦不爲三界煩惱過患之所染污
대해혜 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선근을 무슨 뜻으로써 번뇌라고 이름하나이까?”
부처님은 대해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해혜여, 이러한 번뇌는 모든 보살마하살이 세 세계에 태어나 갖가지 괴로움 받을 수 있음으로써 이 번뇌에 의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 세계가 있는 것이고 번뇌에 더럽혀서 세 세계에 태어나는 것은 아니니라. 대해혜여, 보살은 방편의 지혜 힘으로써 선근의 힘에 의지하기 때문에 세 세계에 태어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이것을 이르되 선근이 번뇌에 상응되어서 세 세계에 태어나는 것이고, 더럽힌 마음으로 태어나는 것을 아니라고 하느니라.
017_0379_c_17L大海慧菩薩白佛言世尊此諸善根以何義故說名煩惱佛告大海慧菩薩言大海慧如是煩諸菩薩摩訶薩能生三界受種種依此煩惱故有三界非染煩惱三界中生大海慧菩薩以方便智力善根力故心生三界是故名爲善根相應煩惱而生三界非染心生
017_0380_a_01L 대해혜여, 마치 어떤 장자(長者)나 거사(居士)가 다만 외아들이 있을 뿐이어서 매우 사랑하고 매우 생각함으로, 보는 이들도 기뻐했는가 하면, 저 외아들이 어리석은 마음에다가 장난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주 깊은 뒷간 똥구덩이 속에 떨어졌다. 그 때 저 부모와 또는 친척들이 그 깊고 깊은 뒷간 구덩이 속에 떨어져 있는 외아들을 보고는 한심하고 슬퍼하고 울부짖으면서도 그 깊고 깊은 똥구덩이 소에 들어가 외아들을 꺼내지 않는지라, 때마침 그 곳 대중 가운데 다른 어떤 장자의 아들이나 혹은 거사의 아들이 있다가 그 아이가 깊고 깊은 똥구덩이 속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빨리빨리 외아들이란 생각을 내어서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일 뿐, 조금도 나쁜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곧 그 깊은 뒷간 똥구덩이 속에 들어가 그 외아들을 꺼내는 것과 같으니라. 대해혜여, 앞서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이 비유를 설하는 것이다. 대해혜여, 어떤 것이 그 뜻이냐 하면, 대해혜여, 깊고 깊은 똥구덩이란 것은, 세 세계를 말하는 것이고, 외아들이란 것은 일체 중생을 말하는 것이니, 모든 보살로선 그 일체 중생들에게 외아들이란 생각을 내어야 하는 것이다.
017_0380_a_01L大海譬如長者若居士等唯有一子愛甚念見者歡喜而彼一子依愚癡心因戲樂故墮在極深糞廁井中彼父母及諸親屬見彼一子墮在大廁深坑糞中見已歔欷悲泣啼哭不能入彼極深廁糞屎器中而出其子爾時彼處衆中更有一長者子或一居士子見彼小兒墮在深廁糞屎井見已疾疾生一子想生愛念心不起惡心卽入深廁糞屎井中出彼一大海慧爲顯彼義說此譬喩大海何者彼義大海慧言極深井糞屎坑者名爲三界大海慧言一子者切衆生諸菩薩等於一切衆生生一子想
017_0380_b_01L대해혜여, 그 때의 부모와 친척들은 말하자면 성문(聲聞)ㆍ벽지불(辟支佛)과 같은 사람이니, 2승(乘)의 사람으로서 중생들이 깊고 깊은 똥구덩이 속에 떨어져 잇는 것을 본다면, 보고 나서 슬피 울기는 하되, 저 중생들을 꺼낼 수는 없느니라. 대해혜여, 그 때에 있었던 다른 어떤 장자의 아들과 거사의 아들이란 것은, 보살마하살을 말하는 것이니, 모든 번뇌를 벗어나 청정하여 때[垢]가 없는지라, 때를 벗어난 마음으로써 현전에 함이 없는 진여의 법계를 보고 그 자재한 마음으로 곧 세 세계에 태어나서 저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이다. 대해혜여, 이것이 이른바 보살마하살의 대비이니 필경 모든 존재[有]를 멀리 여의고, 필경 모든 얽매임을 멀리 여의고서 세 세계 가운데, 거듭 태어나되 방편의 지혜 힘 때문에 모든 번뇌의 불이 사를 수 없는지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얽매임을 멀리 여의게 하기 위해 법을 설하는 것이다. 대해혜여, 내가 이제 이 수다라(修多羅) 글귀를 설하는 것은 모든 보살의 마음에 의지함이니, 일체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위해 자재한 힘을 얻어서 세 세계에 태어나는 것은 모든 선근과 자비한 마음의 힘에 의지하고 방편 반야의 힘에 의지하기 때문이니라”고 하셨다. 이것이 이른바 그 부정을 청정케 하는 때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017_0380_a_17L大海慧爾時父母及諸親者爲聲聞辟支佛人以二乘人見諸衆生墮在世閒極大深坑糞屎井中見彼已悲泣啼哭而不能拔彼諸衆大海慧彼時更有一長者子一居士子者名爲菩薩摩訶薩離諸煩惱淸淨無垢以離垢心現見無爲眞如法界以自在心現生三界爲教化彼諸衆生故大海慧是名菩薩摩訶薩大悲畢竟遠離諸有畢竟遠離諸縛而迴生於三界有中以依方便般若力故諸煩惱火不能焚燒欲令一切諸衆生等遠離諸縛而爲說法大海我今說此修多羅句依諸菩薩心爲利益一切衆生得自在力而生三依諸善根慈悲心力依於方便般若力故是名示現淨不淨時
017_0380_c_01L또 보살마하살은 여실한 지혜로써 여래의 법신의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줄을 아는지라, 이 때문에 그와 같은 보살마하살의 공덕 법체(法體)를 얻는 것이다. 이 수다라 글귀는 앞서 이미 설하셨고, 여기서부터는 큰 비유리(毘琉璃) 마니 보배[摩尼寶]의 비유를 들어 설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해혜여, 마치 값진 큰 비유리 마니 보배 구슬을 잘 다루어서 그 매우 청정하고 훌륭한 광명의 것이 진흙 속에 떨어져 1천년 동안을 묻혀 있다가, 저 마니 보배가 천년을 지난 뒤에야 곧 저 진흙에서 나왔다. 나와서는 물에 씻고 씻고 나선 매우 깨끗하고 매우 깨끗이 씻은 뒤엔 아주 빛이 나서 곧 본래 청정하여 때[垢]가 없던 그 마니 보배의 몸을 잃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대해혜여,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이, 일체 중생들의 자성(自性)은 청정하고 광명이 있는 깨끗한 마음이지만 그것이 객(客)ㆍ진(塵) 번뇌에 더럽히게 되는 줄을 여실히 아느니라. 대해혜여, 모든 보살은 마음을 내기를, ‘저 모든 번뇌가 중생들의 자성 청정한 마음을 더럽히지 않건만, 이 모든 번뇌의 객ㆍ진이 허망한 분별의 마음을 일으키는구나’ 하고, 저 모든 보살은 다시 마음을 내기를, ‘내가 이제 필경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객ㆍ진 번뇌의 때를 멀리 여의게끔 그들을 위해 설법하리라’고 하나니, 이러한 보살은 겁약(怯弱)한 마음을 내지 않고, 일체 중생들에게 돌아다니면서 증상(增上)의 힘을 내어 내가 필경 해탈을 얻게 하리라고 하는 것이다.
017_0380_b_10L又菩薩摩訶薩以如實智知如來法身不生不滅故得如是菩薩摩訶薩功德法此修多羅句向前已說自下次說大毘琉璃摩尼寶喩佛言大海慧如無價大毘琉璃摩尼寶珠善治善淨善光明墮在泥中住一千年彼摩尼寶經千年後乃出彼泥出已水洗洗已極淨極淨洗已然後極明卽不失本淸淨無垢摩尼寶體大海慧薩摩訶薩亦復如是如實知見一切衆生自性淸淨光明淨心而爲客塵煩惱所染大海慧諸菩薩等生如是彼諸煩惱不染衆生自性淨心諸煩惱客塵虛妄分別心起而彼諸菩薩復生是心我今畢竟令諸衆生遠離客塵諸煩惱垢爲之說法如是菩薩不生怯弱心轉於一切衆生生增上力我要畢竟令得解脫
보살은 그 때 다시 마음을 내기를, ‘이 모든 번뇌는 아무런 체(體)가 없는 것이구나’ 하고, 보살은 그 때 또 마음을 내기를, ‘모든 번뇌가 체가 없고 모든 번뇌가 약하고도 얇으니 만큼 이 모든 번뇌는 머무는 곳이 없구나’고 하나니, 이러한 보살은 그 모든 번뇌가 허망한 분별을 의지해 있고 삿된 소견의 생각을 의지해 있으니만큼 바른 소견을 지닌 자에겐 모든 번뇌의 때가 일어날 수 없는 줄을 여실히 아는 것이다. 보살은 그 때 다시 마음을 내기를, ‘나는 마땅히 모든 번뇌가 다시 나지 않는 것임을 여실히 관찰하리니, 그 번뇌를 내지 않음으로써 모든 선한 법을 내리라’ 하고, 보살은 그 때 또 마음을 내기를, ‘내 스스로가 만약 모든 번뇌를 일으킨다면, 어떻게 그 번뇌에 얽매인 중생들을 위해 설법하여 번뇌에의 얽매임을 벗어나게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보살은 그 때 또 마음을 내기를 ‘내가 모든 번뇌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그 번뇌에 얽매인 중생들을 위해 설법할 수 있을지라, 나는 마땅히 모든 바라밀을 수행하리라’고 하나니, 번뇌가 선근에 상응되는 것을 모든 중생들을 위해 교화하려고 하기 때문이니라”고 하였다.
017_0380_c_05L菩薩爾時復生是心此諸煩惱無有少體薩爾時復生是心諸煩惱無體諸煩惱羸薄是諸煩惱無有住處如是菩薩如實知諸煩惱虛妄分別而有邪見念而有以正見者諸煩惱垢不能得起菩薩爾時復生是心我應如實觀諸煩惱更不復生以不生煩惱故生諸善法菩薩爾時復生是心若自起諸煩惱者云何而得爲諸煩惱所縛衆生說法令離諸煩惱縛薩爾時復生是心以我不著諸煩惱是故得爲諸煩惱縛衆生說法應修行諸波羅蜜結使煩惱相應善爲欲教化諸衆生故
017_0381_a_01L또 어떤 것을 이름하여 세간이라 하는가 하면, 세 세계[三界]가 거울의 형상과 서로 비슷한 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슨 뜻을 밝힘이냐 하면, 번뇌 없는 법계 가운데 의지해 세 가지 뜻대로 나는 몸이 있으니, 알아두라. 저 번뇌 업음으로 인하여 선근을 짓는 것을 세간이라 하는가 하면, 번뇌 있는 모든 업으로 인하여 번뇌를 짓는 그 세간을 여의기 때문에 이것을 열반이라고도 하나니라. 이런 뜻에 의지하기 때문에 ‘성자승만경(聖者勝鬘經)’에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함이 있는 세간이 있고 함이 없는 세간도 있으니, 세존이시여, 함이 있는 열반이 있고, 함이 없는 열반이 있기 때문이다. 또는 함이 있고 함이 없는 심왕(心王)법의 상응하는 법이 있기 때문이옵니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그 부정을 청정케 하는 때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뜻은 제6의 보살 현전(現前) 지위에서 말하는바 저 모든 번뇌가 다되어 장애 없는 반야바라밀의 해탈하는 현전에서 대비를 수행하되, 일체 중생들을 구호하기 때문에 증득을 취하지 않는 것이니, ‘보만경(寶鬘經)’ 가운데 번뇌가 다됨에 의지해 성(城)에 들어가는 비유를 설한 것과 같음이다.
017_0380_c_19L又復云何名爲世閒以三界相似鏡像法故此明何義依無漏法界中有三種意生身應知彼因無漏善根所作名爲世閒;以離有漏諸業煩惱所作世閒法故亦名涅槃依此義故『聖者勝鬘經』言世尊有有爲世閒有無爲世閒世尊有有爲涅槃有無爲涅槃故又有爲無爲心心數法相應法故故說名爲淨不淨時此義於第六菩薩現前地彼諸漏盡無障㝵般若波羅蜜解脫現前修行大悲以爲救護一切衆生故不取證如『寶鬘經』中依漏盡故說入城喩
그 경 가운데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여, 마치 어떤 성(城)의 가로와 세로와 넓이가 각각 1유순(由旬)이고, 많은 성문이 있는가 하면, 그 길이 험하고 캄캄 어두워서 매우 겁이 나긴 하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사람은 많이 안락을 받는데, 어떤 사람이 외아들이 있을 뿐이어서 매우 사랑하고 매우 생각하던 나머지, 저 성이 그렇게 쾌락하다는 것을 전해 듣고는, 곧 외아들을 버리고 가서 성에 들어가려고 했다. 이 사람이 방편으로 험한 길을 거쳐 저 성문에 이르러서 한쪽 발은 문 안에 들여 놓고 한쪽 발은 아직 들지도 않은 찰나에 문득 그 아들이 염려되어서 곧 생각하기를, ‘나에겐 외아들뿐이거늘 내가 올 때에 어째서 끝까지 데리고 오지 아니했을까. 그 누가 기르고 보호하여 뭇 고통을 여의게 하겠는가’ 하고는, 곧 성을 버리고 아들 있는 처소에 되돌아가는 것과 같으니라.
017_0381_a_09L彼經中言善男子譬如有縱廣正等各一由旬多有諸門嶮黑闇甚可怖畏有人入者多受安復有一人唯有一子愛念甚重聞彼城如是快樂卽便捨子欲往入是人方便得過嶮道到彼城門足已入一足未擧卽念其子尋作是我唯一子來時云何竟不與俱能養護令離衆苦卽捨樂城還至子
017_0381_b_01L선남자여,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이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다섯 신동[五通]을 닦아 익히고 닦아 익히고는, 곧 번뇌를 다할 수 있으되 증득을 취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번뇌가 다된 신통을 버리고 가서 범부의 지위 가운데 다니느니라. 선남자여, 큰 성은 큰 반열반(般涅槃)에 비유한 것이고, 성문이 많은 것은 8만 삼매문에 비유한 것이다. 길이 험난한 것은, 마군의 업[魔業]에 비유한 것이고, 성문에 도달한 것은, 다섯 신통에 비유한 것이고, 한쪽 발을 드리어 놓은 것은, 지혜에 비유한 것이고, 한쪽 발을 들지도 못한 것은, 보살로서의 해탈을 증하지 못함에 비유한 것이고, 외아들을 말한 것은 다섯 갈래[五道]의 일체 중생들에 비유한 것이다. 그 외아들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은, 대비한 마음에 비유한 것이고, 아들의 처소에 돌아가는 것은, 중생을 조복하는 것에 비유함이다. 해탈할 수 있으면서도 그것을 증득하지 않는 것은, 곧 방편이다.
017_0381_a_18L善男子菩薩摩訶薩亦復如是憐愍故修集五通旣修集已垂得盡漏而不取證何以故愍衆生故捨漏盡通乃至行於凡夫地中善男子者喩於大般涅槃多諸門者喩於八萬諸三昧門路嶮難者喩諸魔業城門者喩於五通一足入者喩於智一足未入者喩諸菩薩未證解脫言一子者喩於五道一切衆生顧念子者喩大悲心還子所者喩調衆生能得解脫而不證者卽是方便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의 대자대비는 헤아릴 수 없는지라, 그러므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큰 방편의 힘으로 큰 정진을 내고 견고한 마음을 일으켜 선정을 수행하여서 다섯 신통을 증득하나니라. 이러한 보살은 선정과 신통의 업을 의지하여 마음이 청정한 번뇌가 없음[無漏]을 잘 닦아서 멸진정(滅盡定)이 현전에 나타나며, 이러한 보살은 곧 대비한 마음을 낼 수 있어서 일체 중생들을 구호하기 때문에 현전에 번뇌 없는 지혜의 신통으로 돌아다녀 적멸(寂滅)의 열반을 취하지 않고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기 때문에 세간에 돌아다니면서 또한 범부의 지위를 나타내 보이느니라. 제4의 보살 염혜(焰慧) 지위에 있어선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정진을 잘 일으키고 남을 이익되게 하기 위해 견고한 마음을 잘 일으키나니, 이는 번뇌가 다된 현전이다. 제5의 보살 난승(難勝) 지위에 있어선 다섯 신통에 의지하며 스스로가 이롭고 남을 이롭게 함으로써 마음 작용의 번뇌 없음을 잘 성숙하나니, 이는 멸진정이 현저함이다. 이 때문에 제6의 보살 지위에 있어선 장애 없는 반야바라밀로써 번뇌가 다된[漏盡]현전을 일으키며, 이 때문에 제6의 보살 현전 지위에 있어선 번뇌가 다된 자재함을 얻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청정이라 한다.
017_0381_b_05L善男菩薩摩訶薩大慈大悲不可思議如是善男子菩薩摩訶薩大方便力發大精進起堅固心修行禪定得證五通如是菩薩依禪通業善修心淨無漏滅盡定現前如是菩薩卽得生於大悲之心爲救一切諸衆生故前無漏智通而迴轉不取寂滅涅槃以爲教化諸衆生故迴取世閒乃至示現凡夫人地於第四菩薩焰地中爲自利益善起精進爲利益他善起堅固心漏盡現前於第五菩薩難勝地中依止五通自利利他善熟心行無漏滅盡定現前是故於第六菩薩地中無障㝵般若波羅蜜起漏盡現是故於第六菩薩現前地中得漏盡自在說名淸淨
017_0381_c_01L이 보살이 이렇게 자신이 바르게 수행함으로써 중생들을 교화하여 저 곳에 안치시키고, 대자 대비한 마음을 얻어 뒤바뀐 중생들에게 구호하는 마음을 내어서 적멸의 열반에 집착하지 않는다. 저 모든 방편을 잘 일으켜 세간문(世間門)을 나타내는가 하면, 중생들을 위하기 때문에 열반문(涅槃門)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은 보리분(菩提分)을 만족하였기 때문이다. 네 가지 선정[四禪]을 수행해 욕심 세계에 도로 태어나서 지옥ㆍ축생ㆍ아귀(餓鬼)ㆍ범부 등 갖가지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위해 모든 몸을 나타내 보이는 것은 자재한 힘을 얻었기 때문이니라”고 하셨다.
이미 부정을 청정케 하는 때를 의지하여 변하지 않고 다르지 않는 것을 설하였다. 다음 선정(禪淨)한 때를 의지하여 변하지 않고 다르지 않음을 설하기 때문에 두 게송을 설한 것이다.
017_0381_b_21L是菩薩如是自身正修行教化衆生令置彼處得大慈悲心於顚倒衆生生救護心不著寂滅涅槃善作彼方便現前世閒門衆生故現前涅槃門爲菩提分滿足修行四禪迴生欲界以爲利益地獄畜生餓鬼凡夫種種衆生示現諸以得自在故已說依不淨淨時不變不異次說依善淨時不變不異故說二偈

부처님 몸이 변하거나 다르지 않음은
다함이 없는 법을 얻으셨기 때문이고
중생들이 귀의하게 되는 것은
그 그지없는 경계이기 때문이며
017_0381_c_07L佛身不變異
以得無盡法
衆生所歸依
以無邊際故

언제나 두 가지 아닌 법에 머무심은
허망한 분별을 떠나셨기 때문이고
항상 집착하지 않고 조작하지 않음은
그 청량한 마음의 힘이시기 때문이네.
017_0381_c_09L常住不二法
以離妄分別
恒不熱不作
淸淨心力故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81_c_10L此偈示現何義偈言

나지 않고 죽지 않고
병들지 않고 늙지도 않고
항상 청량한 그대로이고
또는 변하거나 다르지 않기 때문이네.
017_0381_c_11L不生及不死
不病亦不老
以常恒淸涼
及不變等故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인가를 또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81_c_13L此偈明何義偈言

항상하기 때문에 나지 않나니
뜻대로 나는 몸을 여의었기 때문이고
언제나 항상하기 때문에 죽지 않나니
부사의한 죽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017_0381_c_14L以常故不生
離意生身故
以恒故不死
離不思議退

청량하기 때문에 병들지 않나니
번뇌의 습기가 없기 때문이고
변하지 않기 때문에 늙지 않나니
번뇌 없는 행이 없기 때문이네.
017_0381_c_16L淸涼故不病
無煩惱習故
不變故不老
無無漏行故
017_0382_a_01L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여래의 성품이 부처님 지위에서 그 때[垢]없이 청정한 광명이 항상 자성(自性)의 청정함에 머무는 것을 밝힘이라, 과거세부터 항상하기 때문에 나지 않나니, 뜻대로 나는 몸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미래세에도 항상하기 때문에 죽지 않나니 부사의하게 변하거나 바꿔지는 죽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라 과거세부터 청량하기 때문에 병들지 않나니, 무명(無明)의 머무는 지위에 속하는 것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는 세 세상[三世]에 떨어지지 않아 변하지 않기 때문에 늙지 않나니, 번뇌없는 업에서 회전함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다시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81_c_17L此偈明何義明如來性於佛地時無垢淸淨光明常住自性淸淨以本際來常故不生以離意生身故以未來際恒故不死以離不可思議變易死以本後際來淸涼故不病以離無明住地所攝故若如是者不墮三世彼則不變是故不老以離無漏業迴轉故又復偈言

둘이 있고 또 둘이 있는가 하면
다시 둘둘의 글귀가 있으니
차례대로 여상(如常)한 그것이
곧 번뇌 없는 경계 가운데이네.
017_0382_a_02L有二復有二
復有二二句
次第如常等
無漏境界中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항상하고 또는 언제나 그대로인 것과, 청량하고 또는 변하지 않는 이것이, 곧 네 글귀이라, 번뇌없는 법계 가운데에 차례차례 하나하나의 글귀가 둘둘의 근본인지라, 이 둘둘에 대한 뜻의 차별을 해석함이다. 부증불감수다라(不增不減修多羅) 가운데 설하시기를, “사리불(舍利弗)이여, 여래의 법신이 항상한 것은 다르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고 다하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었다. 사리불이여, 여래의 법신이 언제나 그대로인 것은 항상 귀의할 수 있기 때문이고 미래세에도 평등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여래의 법신이 청량한 것은 두 가지 법이 아니기 때문이고, 분별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여래의 법신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없어지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고 조작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니라”고 하신 것과 같음이다.
이미 변하거나 다르지 않는 것을 설하고, 그 다음 차별 없음을 설하였으니, 차별이 없는 것이란, 곧이 선정(善淨)의 때에 의지해 과거세부터 끝까지 자체의 모양이 선정한 것은 여래장(如來藏)이 차별이 없기 때문이라 이 때문에 한 게송을 설한 것이다.
017_0382_a_04L此偈明何義常恒淸涼及不變等此四種句於無漏法界中次第一一句二二本二二釋義差別如『不增不減修多羅』中說言舍利弗如來法身常以不異法故以不盡法故舍利弗來法身恒以常可歸依故以未來際平等故舍利弗如來法身淸涼以不二法故以無分別法故舍利弗如來法身不變以非滅法故以非作法故已說不變異次說無差別無差別者卽依此善淨時本際以來畢竟究竟自體相善淨如來藏無差別故一偈

법신과 또는 여래와
거룩한 진리와 또는 열반의
그 공덕이 서로 떠나지 않음이
마치 광명이 태양을 떠나지 않는 것과 같네.
017_0382_a_17L法身及如來
聖諦與涅槃
功德不相離
如光不離日

이 게송 가운데 앞의 반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82_a_19L此初半偈示現何義偈言

법신이나 또한 열반이
뜻은 같으면서 이름만 다른지라
번뇌 없는 경계 가운데 머물러
네 가지 뜻의 차별이 있음은 대략 밝힘이네.
017_0382_a_20L略明法身等
義一而名異
依無漏界中
四種義差別
017_0382_b_01L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번뇌 없는 법계 가운데에 여래장을 의지한 것이 네 가지 뜻이 있고, 네 가지 뜻을 의지한 것이 네 가지 이름이 있음을 대략 설함이니, 알아두라. 어떤 것이 그 네 가지 뜻인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82_a_22L此偈明何義略說於無漏法界中依如來藏有四種義依四種義有四種名應知何等四義偈言

불법의 서로 떠나지 않음과
또는 저 진여의 성품과
법체(法體)의 허망하지 않음과
또 자성의 본래 청정하이 그것이네.
017_0382_b_02L佛法不相離
及彼眞如性
法體不虛妄
自性本來淨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불법의 서로 떠나지 않는 것이란, 이 뜻에 의지하기 때문이니, ‘성자승만경(聖者勝鬘經)’에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공〉하지 않는 여래장은 항하사 보다 지나는 떠나지 않고 벗어나지 않는 부사의 한 부처님의법입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저 진여의 성품이란, 이 뜻에 의지하기 때문이니, 육근취경(六根聚經)에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여섯 감관이 바로 처음이 없는 때로부터 필경 모든 법체이옵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법체의 허망하지 않는 것이란, 이 뜻에 의지하기 때문이니, 경 가운데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또 제1의 진리는 이른바 허망하지 않는 열반에 그것이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저 성품은 과거세부터 항상 법체로서 변하지 않기 때문이옵니다”고 하였다. 자성의 본래 청정한 것이란, 이 뜻에 의지하기 때문이니, 경 가운데 부처님이 문수사리(文殊師利)에게 말씀하시기를,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는 과거세부터 열반에 드셨느니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017_0382_b_04L此偈明何義佛法不相離者依此義『聖者勝鬘經』言世尊不空如來藏過於恒沙不離不脫不思議佛法故及彼眞如性者依此義故『六根聚經』世尊六根如是從無始來畢竟究竟諸法體故法體不虛妄者依此義經中說言世尊又第一義諦者不虛妄涅槃是也何以故世尊彼性本際來常以法體不變故自性本來淨者依此義故經中佛告文殊師利如來正遍知本際以來入涅槃故
017_0382_c_01L또 이 네 가지 뜻에 의지하여 차례로 네 가지 이름이 있는 것이란, 그 네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법신이고, 둘째는 여래이고, 셋째는 제1의 진리이고, 넷째는 열반이라 이런 뜻이기 때문에 ‘부증불감경(不增不減經)’ 가운데, 사리불(舍利弗)이 사뢰기를, “여래장이란 곧 법신이기 때문이옵니다”고 하였고, 또 ‘성자승만경’에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법신을 떠나서 여래장이 있지 않고 여래장을 떠나서 법신이 있지 않으니, 세존이시여, 한 가지 괴로움이 사라짐의 진리[苦滅論]에 의하여, 이를 여래장이라고 말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여래의 법신을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이라 하나이다”고 하였는데, 세존께서 대답하시기를, “열반 그것이 바로 여래의 법신이기 때문이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뒤의 반 게송이 또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가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82_b_15L又復依此四義次第有四種名何等爲四者法身二者如來三者第一義諦者涅槃以是義故『不增不減經』言利弗言如來藏者卽是法身故又復『聖者勝鬘經』言世尊不離法身有如來藏世尊不離如來藏有法身世尊依一苦滅諦說名如來藏世尊如是說如來法身無量無邊功德世尊言涅槃者卽是如來法身故後半偈者示現何義偈言

일체의 지혜를 깨닫고
일체의 습기를 여읜지라
부처님 몸과 열반의 몸은
제1의 이치를 떠나지 아니하네.
017_0382_c_02L覺一切種智
離一切習氣
佛及涅槃體
不離第一義

이 네 가지 이름은 여래의 법신 번뇌 없는 경계 가운데에 같은 맛이고, 같은 뜻이어서 서로가 버리거나 떠나지 아니하나니, 이 때문에 비록 네 가지 이름이 있긴 하나 저 네 가지 뜻이 한 법문을 떠나지 않고, 한 법체를 떠나지 않는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일체 법을 증득하고 일체 지혜를 깨달은 것과 또는 일체 지혜의 장애와 번뇌의 장애 습기를 떠나는 이 두 가지 법이 번뇌 없는 법계 가운데에서 다르지 않고 차별하지 않으며, 끊어지지 않고 서로 떠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뜻이기 때문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가운데 게송으로 말하였다.
017_0382_c_04L此四種名於如來法身無漏界中一味一義不相捨離是故雖復有四種而彼四義不離一法門不離一法此以何義所證一切法覺一切智及離一切智障煩惱障習氣此二種於無漏法界中不異不差別不斷不相離以是義故『大般涅槃經』中偈言

한량없는 공덕이
일체 부사의하사
차별하지 아니하는 해탈이시니
해탈 그것이 곧 여래이네.
017_0382_c_11L無量種功德
一切不思議
不差別解脫
解脫卽如來

이 뜻이기 때문에 ‘성자승만경(聖者勝鬘經)’에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성문(聲聞)ㆍ벽지불(辟支佛)이 열반을 얻은 것은 부처님의 방편이기 때문이옵니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뜻을 밝힘이냐 하면, 성문ㆍ벽지불로서 열반이 있다함은 이는 부처님의 방편이다. 부처님께서 저 기나긴 길 넓은 벌판에 멀리 여행하다가 피로에 지쳐 있는 중생들을 보고 퇴전(退轉)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하사 그들을 위해 쉬게 하기 때문에 조화의 성[化城]을 조작하시는지라, 여래께서 이와 같이 일체 법 가운데에 큰 자재함과 큰 방편을 얻으셨기 때문에 이러한 뜻을 밝힌 것이며, 또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께선 평등한 열반을 증득하셨기에 일체 공덕이 한량없고 그지없고 헤아릴 수 없고 청정하여 필경 맨 마지막 경지에 도달하셨나이다”고 하였다.
017_0382_c_13L以是義故『聖者勝鬘經』言世尊言聲聞辟支佛得涅槃者是佛方便故明何義言聲聞辟支佛有涅槃者是諸佛如來方便見諸衆生於長道曠野遠行疲惓恐有退轉爲止息故造作化城如來如是於一切法中得大自在大方便故故明如是義世尊如來應正遍知證平等涅槃一切功德無量無邊不可思議淸淨畢竟究
017_0383_a_01L이것이 무슨 뜻을 밝힘이냐 하면, 네 가지 뜻에 의지한 필경의 공덕은 모든 부처님 여래가 차별이 없는지라 열반의 모양은 더없는 과(果) 가운데이고 부처님과 열반은 일체 공덕이 서로 버리거나 떠나지 않거늘, 만약에 부처님의 지위 더없는 과 가운데를 떠나서 지혜를 증득한다면, 다시 어떠한 사람도 열반의 법이 있지 않으리니, 이러한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그리고 일체 지혜에 의지하며 모든 부처님ㆍ여래의 번뇌 없는 법계를 비유로써 나타내 보였다. 이것이 무슨 뜻을 밝힘이냐 하면, 보만경(寶鬘經)에 화사(畵師)의 비유로써 일체 공덕 구족한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그것이니, 알아두라. 게송으로 말하겠다.
017_0382_c_23L此明何義依四種義畢竟功德諸佛如來無差別涅槃相無上果中佛及涅槃一切功德不相捨離若離佛地果中證智更無餘人有涅槃法現如是義依一切種智於諸佛如來無漏法界中譬喩示現此明何義『寶鬘經』中畫師譬喩示現具足一切功德應知偈言

마치 갖가지 화사(畵師)의
그들 아는 것이 각각 차별이어서
저 한 사람의 아는 부분을
둘째의 사람은 알지 못하는지라.
017_0383_a_07L如種種畫師
所知各差別
彼一人知分
第二人不知

어떤 자재한 국왕(國王)이
그 모든 화사들에게 명령하되
저 그림판이 마련된 곳에
나의 몸을 원만히 그릴지어다
017_0383_a_09L有自在國王
勅諸畫師言
於彼摽畫處
具足作我身

온 나라의 모든 화사들은
일체 다 손을 모을지니
너희들 한 사람도 빠지지 않아야
곧 이 국왕의 형상을 완성하리라고
017_0383_a_10L國中諸畫師
一切皆下手
若不闕一人
乃成國王像

화사들이 명령을 받고 나서
국왕의 형상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저 모든 화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 참여하지 못한지라
017_0383_a_11L畫師受勅已
畫作國王像
彼諸畫師中
一人行不在

저 한 사람이 없으므로 말미암아
국왕의 형상이 이룩되지 않는 것은
그 온 몸의 낱낱 부분을
만족케 할 수 없기 때문인 것과 같음이네.
017_0383_a_13L由無彼一人
國王像不成
以其不滿足
一切身分故

이른바 모든 화사는
보시 계율 등 모든 행에 비유한 것이고
이른바 국왕의 형상은
일체 지혜를 나타내 보인 것이며
017_0383_a_14L所言畫師者
喩檀戒等行
言國王像者
示一切種智

한 사람이 참여하지 못한 것은
한 가지 행이 모자람을 비유한 것이고
국왕의 형상이 이룩되지 않은 것은
〈공〉의 지혜가 구족하지 못한 것이네.
017_0383_a_15L一人不在者
示現少一行
王像不成者
空智不具足
017_0383_b_01L
이 게송에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이런 뜻이기 때문이다.
보만경(寶鬘經)에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내가 이제 너를 위해 다음의 비유를 설하리라. 마치 삼천대천(三千大千)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죄다 그림을 잘 아는지라, 그중에 혹은 물감을 잘 버무리어 바르기도 하고, 혹은 잘 갈아서 무늬를 내기도 하며, 혹은 몸뚱이를 그릴 줄 아는 반면 손발을 그릴 줄은 모르고, 혹은 손발을 그릴 줄 아는 반면 얼굴이나 눈을 그릴 줄은 모른다. 그때 어떤 국왕이 비단 한 폭을 이 여러 사람들에게 주면서 명령하기를 〈무릇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는 죄다 모여와서 이 비단 폭 위에 나의 몸 형상을 그릴지니라〉고 하자, 그 때 여러 사람들이 과연 다 모여들어서 그들의 능한 부분에 따라 공동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마침 화사(畵師)한 사람이 어떤 사고를 반연하여 끝내 올 수가 없으므로, 이미 모인 여러 사람들끼리 그리고 나서 공동으로 국왕께 바친 것과 같으니라.
017_0383_a_17L此偈明何義以是義故『寶鬘經』言男子諦聽諦聽我今爲汝說此譬喩善男子譬如三千大千世界所有衆生悉善知畫其中或有善能泥塗能磨彩或曉畫身不曉手足或曉手足不曉面目時有國王以一張疊與是諸人而告之言凡能畫者皆悉聚於此疊上畫吾身像爾時諸人悉來集聚隨其所能而共作之有一畫以緣事故竟不得來諸人畫已持共上王
선남자여, 그렇다면, 이 그림을 그 여러 사람들이 죄다 모여서 만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여, 내가 이 비유만을 설해선 그 뜻이 나타나지 않는구나. 선남자여, 한 사람이 오상을 이미 성취했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불법도 그러한 지라 만약에 한 가지 행을 성취하지 않은 것이 있더라도 여래의 바른 법을 구족했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니, 이 때문에 요컨대 모든 행을 구족해야 더없는 보리(菩提)를 성취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 이 보시 등 모든 바라밀의 낱낱 차별은 오직 여래만이 아시는 경계니, 여래께선 저 갖가지 차별을 아시는 것이 한량없고 그지없는지라. 저 산수(算數)와 자재한 힘으로서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저 간탐[慳] 등 모든 번뇌를 대치하나니, 이 때문에 청정한 보시 등 모든 바라밀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017_0383_b_05L善男子可言諸人悉集作不不也世尊善男子我說此喩其義未善男子一人不來故不得言一切集作亦不得言像已成就佛法行者亦復如是若有一行不成就者則不名具足如來正法是故要當具足諸行名爲成就無上菩提故又此檀等諸波羅蜜一一差別唯是如來所知境如來知彼種種差別無量無邊應以彼算數自在力等不能思議故以對治彼慳等諸垢是故得成淸淨檀等諸波羅蜜
017_0383_c_01L또 일체 갖가지 지혜와 일체 〈공〉의 지혜와 갖가지 삼매문을 수행함으로써 여덟째의 보살 부동 지위[不動地]에 있어선 일체 보살의 지위를 분별하지 않고 간격 없이 자연 도(道)의 지혜에 의지해 생사 없는 법의 지혜[無生法忍] 얻을 것을 수행하여서 여래의 번뇌 없는 계율[無漏界]을 성취 구족하고 일체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아홉째의 보살 선혜 지위[善慧地]에 있어선 아승지 삼매 다라니 바다문[陀羅尼海門]에 의지해 한량없고도 그지없는 모든 부처님의 법을 섭취하고, 일체 중생들의 근(根)을 아는 지혜에 의지해 한량없고도 그지없는 공덕의 지혜에 의지해 한량없고도 그지없는 법의 지혜를 얻는다. 열째의 보살 법운 지위[法雲地]에 있어선 일체 여래의 현전 바라밀 지혜에 의지해 한량없고도 그지없는 공덕덩어리를 성취하여 생사 없는 공의 법 지혜[無生空法忍]를 얻는다. 그 다음엔 모든 삼매를 얻어 일체 번뇌의 장애와 지혜의 장애를 끊음으로써 모든 해탈문의 지혜에 의지해 청정한 저 언덕[彼岸]의 공덕을 성취하여 일체 갖가지 지혜와 일체 〈공〉의 지혜를 구족히 얻는지라, 이러한 네 가지 지위의 지혜는 성문, 벽지불의 지위가 아니니, 성문ㆍ벽지불들의 지위로선 그 거리가 매우 먼지라, 이런 뜻이기 때문에 차별하지 않는 열반의 경계라고 말하는 것이고, 이 때문에 게송에도 말하였다.
017_0383_b_16L又以修行一切種一切空智及種種三昧門於第八菩薩不動地中不分別一切菩薩地無閒無隔自然依止道智修行得無生法成就具足如來無漏戒成就一切功德於第九菩薩善慧地中依阿僧祇三昧陁羅尼海門攝取無量無邊諸佛之法依止解一切衆生根智就無量無邊功德空智得無生法忍於第十菩薩法雲地中依止一切如來現前蜜智智成就無量無邊功德得無生空法忍次後得諸三昧一切煩惱障智障依止諸解脫門智成就淸淨彼岸功德具足得一切種一切空智以如是等四種地智中聲聞辟支佛地以彼聲聞辟支佛等去之甚遠以是義故說彼四種成就不差別涅槃界是故偈言

혜(慧)와 지(智)와 해탈은
법계의 본체를 떠나지 않는지라
차별이 없는 열반의 경계가
마치 태양과 서로 비슷한 상대이네.
017_0383_c_10L慧智及解脫
不離法界體
無差涅槃界
日相似相對
017_0384_a_01L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어떤 혜(慧)이건 어떤 지(智)이건 어떤 해탈이건 저 세 가지는 법계의 진실한 체를 떠나지 않는지라, 저 네 가지 공덕이 차별없는 열반의 경계를 성취하는 것임을 밝힘이니, 게송에 ‘차별이 없는 열반의 경계’라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그리고 저 네 가지 뜻의 차례 때문에 네 가지의 서로 비슷한 상대법이 있으니, 알아두라. 그 네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부처님의 법신 가운데 세간을 뛰어난 분별없는 혜(慧)에 의지하여 능히 제일 무명(無明)의 캄캄한 어두움을 깨뜨리는 그것이 저 광명의 비춤과 서로 비슷한 상대 법이다. 게송에 이른바 ‘혜(慧)’라는 것이 이 때문이고 ‘마치 태양과 서로 비슷한 상대이네’라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둘째는 지혜에 의지하기 때문에 일체 지혜를 얻어서 그 지혜가 일체 갖가지를 아는 그것이 저 일체 사물을 비춰 방출하는 광명의 그물과 서로 비슷한 상대법이니, 알아두라. 게송에 이른바 ‘지(智)’라는 것이 이 때문이고, ‘마치 태양과 서로 비슷한 상대이네’라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셋째는 저 두 가지에 의지해 자성(自性)의 청정한 마음으로 해탈한 그것이 때[垢]가 없고 때를 여읜 광명 바퀴의 청정한 것과 서로 비슷한 상대법이니, 알아두라. 게송에 이른바 ‘해탈’이란 것이 이 때문이고, ‘마치 태양과 서로 비슷한 상대이네’라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넷째는 곧 이 세 가지가 법계를 떠나지 않고 진실한 본체를 떠나지도 않아서 서로가 버리거나 떠나지 않는 그것이 서로 비슷한 상대법이니, 알아두라. 게송에 이른바 ‘법계의 본체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 때문이고, ‘마치 태양과 서로 비슷한 상대이네’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이러므로 게송에 말하였다.
017_0383_c_12L此偈明何義以何等慧以何等智何等解脫彼三不離法界實體明彼四種功德成就無差別涅槃界偈言無差別涅槃界故爲彼四種義次第有四種相似相對法應知何等爲一者佛法身中依出世閒無分別能破第一無明黑闇彼光明照相似相對法應知偈言慧故日相似相對故二者依智故得一切智智知一切種照一切事放光明羅網相似相對法應知偈言智故日相似相對故三者依止彼二自性淸淨心解脫垢離垢光明輪淸淨相似相對法應偈言解脫故日相似相對法故者卽此三種不離法界不離實體相捨離相似相對法應知偈言不離法界體故日相似相對故是故偈言

모든 부처님의 몸을 증득하지 않고는
열반을 얻을 수 없는 그것이
마치 광명을 버리고는
태양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음이네.
017_0384_a_06L不證諸佛身
涅槃不可得
如棄捨光明
日不可得見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앞서 설한 바 ‘번뇌 없는 법계 가운데 처음이 없는 세계로부터 모든 부처님 법신 가운데의 번뇌 없는 모든 법은 일체 공덕이 서로 버리거나 떠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이런 뜻이기 때문에 여래의 장애 없는 법신의 지혜를 멀리 떠나서는 일체 장애를 떠난 열반의 체상(體相)을 볼 수도 없고 증할 수도 없는 것이 마치 태양의 광명을 떠나서는 태양의 바퀴를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또 이런 뜻이기 때문에 ‘성자승만경(聖者勝鬘經)’에 말하기를, “법은 우열(優劣)이 없기 때문에 열반을 얻는가 하면, 그 모든 법의 평등함을 아는 지혜이기 때문에 열반을 얻으며, 평등한 지혜이기 때문에 열반을 얻는가 하면, 평등한 해탈지견 때문에 열반을 얻고, 그 평등한 해탈임을 알아보기 때문에 열반을 얻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여래께서 열반의 경계는 하나의 맛이고 평등한 맛이라‘고 설하셨다. 이를테면, 해탈은 하나의 맛임을 밝히기 때문이다.”
017_0384_a_08L此偈明何義以如向說無漏法界中無始世界來諸佛法身中無漏諸法一切功德不相捨離以是義故遠離如來無障無㝵法身智慧離一切障涅槃體相不可得見不可得證如離日光明無日輪可見以是義故『聖者勝鬘經』言法無優劣故得涅槃知諸法平等智故得涅槃平等智故得涅平等解脫故得涅槃平等解脫知見故得涅槃是故世尊說涅槃界一味等味謂明解脫一味故
017_0384_a_19L究竟一乘寶性論卷第三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