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乘起信論卷下

ABC_IT_K0623_T_002
017_0709_a_01L
대승기신론 하권
017_0709_a_01L大乘起信論卷下


마명보살 지음
실차난타 한역
김월운 번역
017_0709_a_02L 馬鳴菩薩造
大周于闐三藏實叉難陁奉 制譯


대치사집(對治邪執)이란 일체 삿된 집착이 모두가 나라는 소견[我見]에 의해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없나니, 만일 아견을 여의면 삿된 집착도 없다.
017_0709_a_04L對治邪執者一切邪執莫不皆依我見而起若離我見則無邪執
아견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인아견(人我見)이요, 둘째는 법아견(法我見)이다.
017_0709_a_06L我見有二種一人我見二法我見
인아견이란 모든 범부에 의하면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경에 “여래의 법신은 끝내 적멸하여 마치 허공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을 어리석은 범부들이 듣고는 그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집착하기를 ‘여래의 성품은 허공과 같아서 항상 두루했다’고 한다. 그런 집착을 제거해 주기 위하여 허공의 모습도 오직 분별일 뿐 실제로 얻을 수 없다고 밝힌다. 볼 수 있는 색[有見色]과 대할 수 있는 색[有對色]으로 모든 색을 상대하는 것은 마음의 분별일 뿐이므로 허공이라 말한다. 색(色)이 이미 망심의 분별일 뿐이라면 허공도 또한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체 경계의 모습은 오직 망심의 분별이기에 만일 망심을 여의면 경계의 모습도 사라져서 오직 진여의 마음이 두루하지 않은 곳이 없나니, 이것이 여래의 자성이 허공과 같다는 뜻일 뿐이요 허공이 항상하다든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017_0709_a_07L人我見者依諸凡夫說有五種一者如經中說如來法身究竟寂滅猶如虛空凡愚聞之不解其義則執如來性同於虛常恒遍有爲除彼執明虛空相唯是分別實不可得有見有對待於諸以心分別說名虛空色旣唯是妄心分別當知虛空亦無有體一切境相唯是妄心之所分別若離妄心卽境界相滅唯眞如心無所不遍此是如來自性如虛空義非謂如空是常是有
둘째는 경에서 “일체 세간의 법은 모두가 끝내 공한 것이며, 나아가 열반이나 진여의 법까지도 끝내 공하니, 본 성품이 이와 같아서 일체의 모습을 여의었다”고 말씀하신 것을 어리석은 범부들이 듣고는 그 이치를 알지 못하므로 곧 ‘열반이나 진여의 법도 오직 공뿐이어서 아무 것도 없다’고 집착한다. 그런 집착을 깨뜨려 주기 위하여 진여와 법신은 자체가 공하지 않음을 밝히나니, 한량없는 본성의 공덕을 구족했기 때문이다.
017_0709_a_18L二者如經中說一切世法皆畢竟空乃至涅槃眞如法亦畢竟空性如是離一切相凡愚聞之不解其卽執涅槃眞如法唯空無物爲除彼執明眞如法身自體不空具足無量性功德故
017_0709_b_01L셋째는 경에서 “여래장(如來藏)에는 일체 성품의 공덕이 갖추어져 있어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을 어리석은 범부가 듣고는 그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곧 ‘여래장에는 원래 색과 심의 제 모습의 차별이 갖추어졌다’고 집착한다. 그런 집착을 깨뜨려 주기 위하여 진여에는 본래 물든 법의 차별이 없으므로 끝없는 공덕의 모습이 있다는 주장을 세웠을 뿐, 물든 모습은 아니라고 밝힌다.
017_0709_b_01L三者如經中說如來藏具足一切諸性功德不增不減凡愚聞已不解其則執如來藏有色心法自相差別爲除此執明以眞如本無染法差別立有無邊功德相非是染相
넷째는 경에서 “일체 세간의 모든 잡되고 물든 법은 모두가 여래장에 의해 일어나므로 일체 법은 진여와 다르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을 어리석은 범부가 듣고는 그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장에 일체 세간의 잡되고 물든 법이 갖추어졌다’고 말한다. 그런 집착을 제거해 주기 위하여 여래장에는 본래부터 항하사 수효를 지나는 청정한 공덕이 갖추어져 있어 진여와 다르지 않고, 항하사 수를 지나는 번뇌의 물든 법은 오직 허망으로 있을 뿐이요 본래 제 성품이 없어서 끝없는 옛적부터 잠시도 여래장과 어우른 적이 없다고 밝힌다. 만일 여래장이 물든 법과 어우른다면 그것을 증득해 깨달음으로써 허망한 물듦이 쉬어진다는 것은 옳지 않다.
017_0709_b_06L四者如經中說一切世閒諸雜染法皆依如來藏起一切法不異眞如凡愚聞之不解其義則謂如來藏具有一切世閒染法爲除此執明如來藏從本具有過恒沙數淸淨功德不異眞如恒沙數煩惱染法唯是妄有本無自從無始來未曾暫與如來藏相應若如來藏染法相應而令證會息妄染者無有是處
017_0709_c_01L다섯째는 경에서 “여래장에 의해야 생사도 있고, 열반도 얻는다”고 말씀하신 것을 어리석은 범부가 듣고는 그 뜻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곧 ‘여래장에 의해서 생사가 시작된다’고 말하고, 시작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다시 열반에 끝이 있다고 한다. 이런 집착을 제거해 주기 위하여 여래장에는 시작[初際]이 없는데 무명이 그를 의지하므로 생사에 시작이 있다고 밝힌다. 만일 누군가가 “삼계 밖에 다시 중생이 처음 생기는 곳이 있다”라고 말하면 이는 외도경(外道經)의 말이요 불교는 아니다. 여래장은 끝이 없으므로 이를 증득해서 생사의 종자를 영원히 끊고 열반을 얻으면 역시 끝이 없다.
인아견에 의하여 네 가지 견해가 생기나니, 그러므로 여기에 그 네 가지를 세운다.
017_0709_b_15L五者如經中說依如來藏有生死涅槃凡愚聞之不知其義則謂依如來藏生死有始以見始故復謂涅槃有其終盡爲除此執明如來藏無有初際無明依之生死無始若言三界更有衆生始起者是外道經中說非是佛教以如來藏無有後際證此永斷生死種子得於涅槃亦無後際依人我見四種見生是故於此安立彼四
법아견(法我見)이란 이승들은 둔근(鈍根)이기 때문에 세존께서 인무아만을 말씀해 주시니, 그들은 문득 오온(五蘊)의 생멸을 끝까지 집착하여 생사를 두려워하고 허망하게 열반의 법을 취하려 한다. 이런 집착을 제거해 주기 위하여 오온의 법은 본 성품이 나지 않는다고 밝힌다. 나지 않기 때문에 멸함도 없고, 멸하지 않기 때문에 본래 열반이니, 만일 분별과 집착을 끝까지 여의면 일체 물든 법과 깨끗한 법이 모두 상대함을 안다.
017_0709_c_02L法我見者以二乘鈍根世尊但爲說人無我彼人便於五蘊生滅畢竟執怖畏生死妄取涅槃爲除此執五蘊法本性不生不生故亦無有滅不滅故本來涅槃若究竟離分別執則知一切染法淨法皆相待
그러므로 알라. 일체 모든 법은 본래부터 빛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요 앎도 아니며, 없음도 아니요 있음도 아니다. 끝내는 모두가 말로 말할 수 없는 모습이건만 말로써 보이고 가르치신 적이 있는 것은 모두가 여래의 선교(善巧)한 방편으로 언어를 의지하여 중생을 인도해서 문자를 버리고 진실에 들게 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말을 따라 이치에 집착하여 허망한 분별을 더하면 실다운 지혜를 낼 수도 없고 열반을 얻을 수도 없다.
017_0709_c_08L立是故當知一切諸法從本已來非色非非智非識非無非有畢竟皆是不可說相而有言說示教之者皆是如來善巧方便假以言語引導衆生令捨文字入於眞實若隨言執義妄分別不生實智不得涅槃
분별수행정도상(分別修行正道相)이란 일체 여래께서 도를 얻으시던 바른 인행[正因]을 일체 보살들이 발심하고 닦아 익히어 오롯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017_0709_c_14L分別修行正道相者謂一切如來得道正因一切菩薩發心修習令現前
발심(發心)을 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 모습이 있으니, 첫째는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이요, 둘째는 해행발심(解行發心)이요, 셋째는 증발심(證發心)이다.
017_0709_c_17L略說發心有三種相一信成就發二解行發心三證發心
신성취발심이란 어떤 지위에 의하여 어떤 행을 닦아야 믿음이 성취되어 발심하기에 족한가?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부정취(不定聚)에 의하여 법으로 훈습한 선근의 힘 때문에 업과 과보를 깊이 믿고 십선도(十善道)를 행하며,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위없는 깨달음을 구하다가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을 만나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면서 모든 행을 골고루 수행하기 십천 겁에야 믿음이 비로소 성취된다.
017_0709_c_18L信成就發心者依何位修何行得信成就堪能發心當知是人依不定聚以法熏習善根力故深信業果行十善道生死苦求無上覺値遇諸佛及諸菩承事供養修行諸行經十千劫乃成就
017_0710_a_01L이로부터 혹은 모든 부처님이나 보살들께서 가르쳐 주시는 힘이나 혹은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나 혹은 정법이 멸하려는 것을 보고 법을 지키려는 마음 때문에 발심하는 이가 있나니, 이렇게 발심하기만 하면 정정취(正定聚)에 들어가서 끝내 물러나지 않고 부처님의 종성(種性)에 머물러 수승한 인(因)과 서로 응한다.
017_0710_a_01L從是已後或以諸佛菩薩教或以大悲或因正法將欲壞滅護法故而能發心旣發心已入正定畢竟不退住佛種性勝因相應
혹은 어떤 중생은 아주 오랜 옛적부터 선근이 미약하고 적으며, 번뇌가 깊고도 두텁게 그 마음을 덮고 있기 때문에 비록 모든 부처님이나 보살들을 만나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더라도 겨우 인간이나 하늘에 태어날 종자만을 심거나 혹은 이승의 과위를 얻을 보리종자를 심는다. 혹은 대승의 보리를 구하더라도 근기가 안정되지 못하여 혹은 전진했다가 혹은 후퇴하기도 한다. 혹은 부처님들이나 보살님들을 만나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고 온갖 행을 수행하더라도 십천 겁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인연을 만나 발심하기도 한다.
017_0710_a_04L有衆生久遠已來善根微少煩惱深覆其心故雖値諸佛及諸菩薩事供養唯種人天受生種子或種二乘菩提種子或有雖求大菩提道根不定或進或退或有値佛及諸菩供養承事修行諸行未得滿足十千大劫中閒遇緣而發於心
어떤 인연을 만나는가?
이른바 부처님의 형상을 뵙거나 혹은 여러 스님들에게 공양하거나 혹은 이승에게 가르침을 받거나 혹은 다른 이가 발심하는 것을 보는 것 등이다. 이러한 발심들은 모두가 결정되지 못한 것이니, 만약 나쁜 인연을 만나면 간혹 이승의 경지로 물러나 떨어지기 때문이다.
017_0710_a_11L遇何等所謂或見佛形相或供養衆僧二乘所教或見他發心此等發心悉未定若遇惡緣或時退墮二乘地故
또 신성취발심을 간략히 말하건대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바르고 곧은 마음을 일으킴[發正直心]이니 이치에 맞게 진여의 법을 바로 생각하는 일이요, 둘째는 깊고도 중한 마음을 일으킴[發深重心]이니 모든 선행(善行)을 즐거이 모으는 일이요, 셋째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킴[發大悲心]이니 일체 중생의 고통을 건져 주기를 원하는 일이다.
017_0710_a_15L復次信成就發心略說有三一發正直心如理正念眞如法故二發深重樂集一切諸善行故三發大悲心願拔一切衆生苦故
【문】 일체 중생과 일체 모든 법은 모두가 동일한 법계이어서 두 모습이 없나니, 이치에 의거하건대 다만 진여(眞如)만을 똑바로 생각할 것이거늘 어찌 다시 일체 선행을 닦아 일체 중생을 구제해야 하는가?
017_0710_a_19L一切衆生切諸法皆同一法界無有二相據理但應正念眞如何假復修一切善行救一切衆生
017_0710_b_01L【답】그렇지 않다. 마치 마니보배의 본 성품이 맑고 깨끗한데 더러운 광석 속에 있거든 어떤 사람이 애써 생각만 할 뿐 방편을 쓰지 않거나 공력을 들이지 않으면 마니보배의 청정함은 끝내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진여의 법도 그와 같아서 그 본체는 비록 밝고 맑아 공덕이 구족하지만 끝없는 객진(客塵)에 의해 더럽혀졌거든 어떤 사람이 애써 생각만 할 뿐 방편을 쓰지 않거나 모든 행을 닦지 않고서 진여의 청정함을 구하고자 한다면 끝내 이치를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일체 선행을 모으고 일체 중생을 구제하여야 하나니, 끝없는 객진으로 물든 때를 여의면 그 자리에 진여의 법이 나타난다.
017_0710_a_22L不然如摩尼寶本性明潔在鑛穢假使有人勤加憶念而不作方便不施功力欲求淸淨終不可得眞如之法亦復如是體雖明潔具足功德而被無邊客塵所染假使有人勤加憶念而不作方便不修諸行欲求淸終無得理是故要當集一切善行救一切衆生離彼無邊客塵垢染現眞法
그 방편의 행에는 대략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모든 수행의 근본이 되는 행근본방편(行根本方便)이니, 이른바 일체 법은 본 성품이 생함이 없다고 관찰하여 망견(妄見)을 여의고 생사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요, 또 일체 법은 인연으로 화합하여 업과(業果)를 잃지 않는 것이라고 관찰하여 대비심을 일으켜 모든 선한 행을 닦고 중생들을 거두고 교화하여 열반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니, 진여는 생사와 열반을 여윈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행(行)은 법성을 수순함으로 근본을 삼기 때문에 행근본방편이라 한다.
둘째는 능지식방편(能止息方便)이니, 이른바 부끄러워함[慚愧]과 잘못을 뉘우침[悔過]이다. 이는 일체 악법을 멈추어서 더 자라지 못하게 하니, 진여는 일체 과실(過失)을 여윈 모습이기 때문이다. 진여를 수순해서 모든 악을 그치고 쉬므로 이를 능지식방편이라 한다.
017_0710_b_08L彼方便行略有四種一行根本方便謂觀一切法本性無生離於妄見住生死又觀一切法因緣和合業果不失起於大悲修諸善行攝化衆生不住涅槃以眞如離於生死涅槃相此行隨順以爲根本是名行根本方便二能止息方便所謂慚愧及以悔過此能止息一切惡法令不增長以眞如離一切過失相故隨順眞如止息諸惡是名能止息方便
017_0710_c_01L셋째는 생장선근방편(生長善根方便)이니, 이른바 삼보에 대하여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존중하고 공양하고 정례(頂禮)하고 칭찬(稱讚)하고 수희(隨喜)하고 권청(勸請)하여 바른 믿음이 자라나고, 나아가서는 마음을 모아 위없는 보리를 구하며 불ㆍ법ㆍ승의 위신력과 가호를 받아 업장이 청정해지고 선근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다. 진여는 일체 장애를 여의고 일체 공덕을 갖추었기 때문에 진여를 수순해서 착한 업을 수행하니, 이를 생장선근 방편이라 한다.
넷째는 대원평등방편(大願平等方便)이니, 이른바 큰 서원을 세우되 미래제가 다하도록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구제하여 그들로 하여금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머무르게 하리라 하는 것이다. 일체 법은 본 성품이 둘이 없고, 피차가 평등하고 끝내 적멸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진여의 이러한 세 가지 모습에 수순하여 큰 서원을 세운다. 이를 대원평등방편이라 한다.
017_0710_b_18L三生長善根方便謂於三寶所起愛敬心重供養頂禮稱讚隨喜勸請正信增乃至志求無上菩提爲佛法僧威力所護業障淸淨善根不退以眞如離一切障具一切功德故隨順眞如修行善業是名生長善根方便四大願平等方便謂發誓願盡未來際等救拔一切衆生令其安住無餘涅以知一切法本性無二故彼此平等故究竟寂滅故隨順眞如此三種發大誓願是名大願平等方便
보살이 이렇게 발심할 때에 부처님의 법신을 조금 보고, 원력(願力)에 따라 여덟 가지 일을 나타내나니, 이른바 도솔천궁에 내려오고, 태에 들고, 태에 머무르고, 태에서 나오고, 출가하고, 성불하고, 법륜을 굴리고, 열반에 드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법신이라 이름하지 못하나니, 과거 무량겁 이래의 유루업(有漏業)을 다 끊지 않았기 때문이니, 혹은 악업 때문에 적은 고통을 받는 일이 있으나 원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요, 업에 얽매인 것은 아니다. 어떤 경에서 “신성취발심에 이른 보살이 악취(惡趣)에 퇴타(退墮)라는 일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초학자들이 게으른 마음이 많아서 바른 지위에 들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해서 용맹심을 더하게 했을 뿐이요 진실된 말씀은 아니다.
017_0710_c_06L菩薩如是發心之時則得少分見佛法身能隨願力現八種事謂從兜率天宮來下入胎住胎出胎出家成佛轉法輪般涅槃然猶未得名爲法身以其過去無量世來有漏之業未除斷故或由惡業受於微苦願力所持非久被繫有經中說信成就發心菩或有退墮惡趣中者此爲初學心多懈怠不入正位以此語之令增勇非如實說
또 이 보살이 한 번 발심한 뒤에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로 모든 고행을 닦되 마음에 겁냄이 없어 이승(二乘)의 경지에 떨어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거늘 하물며 악도(惡道)이겠는가? 만일 무량한 아승기겁 동안 갖가지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닦아야 비로소 부처를 이를 수 있다는 말을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거늘 하물며 이승의 마음을 일으키거나 악도에 떨어지는 일이 있겠는가? 그 이유는 일체 모든 법이 본래부터 본성이 열반임을 결정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017_0710_c_16L又此菩薩一發心後自利利他修諸苦行心無怯弱尚不畏墮二乘之地況於惡道若聞無量阿僧祇劫勤修種種難行苦行方始得佛不驚不怖何況有起二乘之心及墮惡趣以決定信一切諸法從本已來性涅槃故
017_0711_a_01L해행발심(解行發心)이라 함은 마땅히 알라. 더욱 수승해지는 지위이니, 첫 아승기겁이 곧 차려는 까닭이며, 진여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기 때문이며, 일체 행을 닦되 모두에 집작됨이 없기 때문이다.
017_0710_c_22L解行發心者當知轉勝初無數劫欲滿故於眞如中得深解故修一切皆無著故
이 보살이 법성에는 간탐(慳貪)의 모습을 여윈 것이 곧 청정한 시도(施度)임을 알아서 단나바라밀(檀那波羅蜜)을 수순하여 수행하고, 법성에는 오욕(五欲)의 경계를 여의고 파계(破戒)의 모습이 없는 것이 곧 청정한 계도(戒度)임을 알아서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을 수순하여 수행하며, 법성에는 고뇌(苦惱)가 없고 성냄의 모습을 여윈 것이 곧 청정한 인도(忍度)임을 알아서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을 수순하여 수행하고, 법성에는 몸과 마음의 모습을 여의었고 게으름이 없는 것이 곧 청정한 진도(進度)임을 알아서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을 수순하여 수행하며, 법성에는 움직임이 없고 어지러움이 없는 것이 곧 청정한 선도(禪度)임을 알아서 선나바라밀(禪那波羅蜜)을 수순하여 수행하고, 법성에는 어리석음[痴暗]을 여읜 것이 곧 청정한 혜도(慧度)임을 알아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수순하여 수행한다.
017_0711_a_02L此菩薩知法性離慳貪是淸淨施度隨順修行檀那波羅知法性離五欲境無破戒相是淸淨戒度隨順修行尸羅波羅蜜知法性無有苦惱離瞋害相是淸淨忍度順修行羼提波羅蜜知法性離身心無有懈怠是淸淨進度隨順修行毘梨耶波羅蜜知法性無動無亂淸淨禪度隨順修行禪那波羅蜜法性離諸癡闇是淸淨慧度隨順修行般若波羅蜜
증발심(證發心)이란 정심지(淨心地)로부터 보살의 구경지(究竟地)에 이르기까지 어떤 경계를 증득하는가 함이니, 이른바 진여이다. 전식(轉識)에 의하기 때문에 경계(境界)를 말하거니와 실제로 증득한 경지에는 경계의 모습이 없다.
이 보살은 분별이 없어진 지혜[無分別智]로써 언설을 여읜 진여[離言說眞如]의 법신을 증득하였기 때문에 잠깐 사이에 시방 일체 세계에 두루 가서 여러 부처님들께 공양하고 법륜 굴리시기를 청하되 오직 중생을 위하여 이익된 일을 하려할 뿐 아름답고 묘한 음성을 듣기 위함은 아니다.
혹은 겁약한 중생을 위하여 큰 정진으로 무량겁을 뛰어넘어 속히 정각을 이루는 모습을 시현하며, 혹은 게으른 중생을 위하여 무량 아승기겁을 지나도록 오랫동안 고행을 하고서야 비로소 성불하기도 한다.
017_0711_a_12L證發心者從淨心地乃至菩薩究竟證何境界所謂眞如以依轉識爲境界而實證中無境界相此菩薩以無分別智證離言說眞如法身故能於一念遍往十方一切世界供養諸佛請轉法輪唯爲衆生而作利益不求聽受美妙音詞或爲怯弱衆生示大精進超無量劫速成正覺爲懈怠衆生故經於無量阿僧祇劫久修苦行方始成佛
017_0711_b_01L이렇듯 무수한 방편을 시현하는 것은 모두가 일제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거니와 실제에는 보살의 종성(種性)이나 모든 근(根)이나 발심이나 깨달음[作證]이 모두가 동등하여 유달리 뛰어난 법이 없나니, 분명 모두가 삼 아승기겁을 지나서 정각을 이루기 때문이다. 다만 중생들의 세계가 같지 않으므로 수행하는 모습도 갖가지로 차별됨을 보인다.
017_0711_a_22L如是示現無數方便皆爲饒益一切衆生而實菩薩種性諸根發心作證皆悉同等無超過法決定皆經三無數劫成正覺故但隨衆生世界不同所見所聞根欲性異示所修行種種差別
이 증발심에 세 가지 모습이 있다. 첫째는 진심(眞心)이니 분별이 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방편심(方便心)이니, 걸림 없이 남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업식심(業識心)이니 미세하게 일어났다 멸했다 하기 때문이다.
017_0711_b_04L此證發心有三種心一眞心無有分別故方便心任運利他故三業識心微細起滅故
또 이 보살이 복덕과 지혜 두 가지 장엄을 모두 원만하게 한 뒤에 색구경처(色究竟處)에서 일체 세간에서 가장 존귀하고 수승한 몸을 성취하고는 한 생각에 상응하는 지혜로 무명의 뿌리를 몽땅 뽑아내고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갖추어 걸림 없이 부사의업(不思議業)을 일으켜 시방의 무량한 세계에서 중생을 널리 교화한다.
017_0711_b_07L又此菩薩福德智慧二種莊嚴悉圓滿已於色究竟得一切世閒最尊勝以一念相應慧頓拔無明根具一切種智任運而有不思議業於十方無量世界普化衆生
【문】허공이 끝이 없는 까닭에 세계가 끝이 없고, 세계가 끝이 없는 까닭에 중생이 끝이 없고, 중생이 끝이 없는 까닭에 마음의 흐름[心行]도 차별되어 역시 끝이 없다. 이러한 경계는 끝이 없어 알기도 이해하기도 어렵거늘 무명이 끊어져서 영원히 마음의 모습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일체 종류를 요달하여 일체 종지를 이루는가?
017_0711_b_12L虛空無邊故世界無邊世界無邊衆生無邊衆生無邊故心行差別亦復無邊如是境界無有齊限難知難解若無明斷永無心相云何能了一切種成一切種智
【답】일체 허망한 경계는 원래부터 사실은 오직 일심의 성품인데 일체 중생은 허망한 경계에 집착되어 모든 부처님들의 제일의제(第一義諦)의 성품을 알지 못하거니와 모든 부처님께서는 집착이 없기 때문에 모든 법의 실다운 성품을 현전에 보고, 또 큰 지혜가 있어 일체 염ㆍ정법의 차별을 분명히 비추어 보고는 한량없고 끝없는 선교(善巧)한 방편을 써서 알맞은 바에 따라 중생을 이롭고도 즐겁게 한다.
017_0711_b_17L一切妄境從本已來理實唯一心爲性一切衆生執著妄境不能得知一切諸法第一義性諸佛如來無有執著則能現見諸法實性而有大智顯照一切染淨差別以無量無邊善巧方便隨其所應利樂衆生是故妄念心滅了一切種成一切種智
017_0711_c_01L【문】부처님들께 끝없는 방편이 있어 능히 시방에서 걸림 없이 중생들을 이롭게 하신다면 무슨 까닭에 중생들은 항상 부처님을 뵙거나 혹 신통변화를 뵙거나 혹은 설법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017_0711_c_01L若諸佛有無邊方便能於十方運利益諸衆生者何故衆生不常見或睹神變或聞說法
【답】여래에게는 실로 그러한 방편이 있거니와 중생들의 마음이 청정해진 뒤에야 몸을 나투시나니, 마치 거울에 때가 있으면 형상이 나타나지 못하다가 때가 제거되면 나타나는 것과 같이, 중생도 그러하여서 마음에 때를 여의지 못해서는 법신이 나타나지 않다가 때를 여의면 바로 나타난다.
017_0711_c_04L如來實有如是方便但要待衆生其心淸淨乃爲現身如鏡有垢色像不現垢除則現衆生亦爾心未離垢法身不現離垢則現
어떤 것이 수신분(修信分)인가? 이는 아직 정정취(正定聚)에 들지 못한 중생을 의지한다.
017_0711_c_08L云何修習信分此依未入正定衆生說
어떤 것이 신심(信心)이며, 어떻게 닦아 익히는가?
017_0711_c_09L何者爲信心云何而修習
믿음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근본을 믿음[信根本]이니 이른바 좋아서 진여의 법을 생각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부처님을 믿음[信佛]이니 끝없는 공덕이 갖추어졌음이요, 이른바 항상 정례하고 공경하고 공양하기를 좋아하며, 바른 법을 듣고는 법답게 수행하고 나아가 일체지(一切智)에 회향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법에 큰 이익이 있음을 믿음[信法]이니 이른바 항상 모든 바라밀을 수행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승가가 바르게 행함을 믿음[信僧]이니, 이른바 모든 보살들께 공양하고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을 바르게 닦기 때문이다.
017_0711_c_10L信有四種一信根本樂念眞如法故二信佛具足無邊功謂常樂頂禮恭敬供養聽聞正法如法修行迴向一切智故三信法有大利益謂常樂修行諸波羅蜜故信正行僧謂常供養諸菩薩衆正修自利利他行故
다섯 부문의 행[五門行]을 닦으면 능히 이 믿음을 이룰 수 있나니, 이른바 시문(施門)ㆍ계문(戒門)ㆍ인문(忍門)ㆍ정진문(精進門)ㆍ지관문(止觀門)이다.
017_0711_c_16L修五門行能成此信所謂施門戒門忍門精進門止觀門
017_0712_a_01L어떻게 시문을 닦는가? 이른바 어떤 중생이 구걸하러 오거든 자기의 물건과 재물로써 힘에 따라 베풀어 주어 자신의 인색함을 버리고 중생을 기쁘게 해 줄 것이요, 만일 어떤 중생이 위급한 환난에 시달리는 것을 보거든 방편으로 구제해 주어 두려움이 없게 해 줄 것이요, 만일 어떤 중생이 법을 구하러 오거든 자기가 아는 바에 따라 알맞게 말해 줄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보시를 수행할 때에 좋은 소문을 위하지도 않고 이익을 구하지도 않고 세간의 과보를 탐내지도 않고 오직 나와 남이 모두 이익하고 안락함과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할 것만을 생각한다.
017_0711_c_17L云何修施門謂若見衆生來從乞求以己資財隨力施與捨自慳著令其歡喜若見衆生危難逼迫方便救濟令無怖畏若有衆生而來求法以己所解隨宜爲說修行如是三種施時不爲名聞不求利養亦不貪著世間果報但念自他利益安樂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어떻게 계문(戒門)을 닦는가? 이른바 재가보살이거든 살생ㆍ투도ㆍ사음ㆍ망어ㆍ양설ㆍ악구ㆍ기어ㆍ간탐ㆍ진질(瞋嫉)ㆍ첨광(諂誑)ㆍ사견을 여의어야 할 것이요, 만일 출가자이거든 모든 번뇌를 끊어 굴복시키기 위하여 시끄러운 곳을 떠나 항상 고요한 데 의지해야 하며, 만족함을 아는 두타행(頭陀行) 등을 닦아 익히되 적은 죄라도 큰 두려움을 내어 참회하고 뉘우치며, 여래께서 지으신 금계(禁戒)를 잘 지키어 보는 이로 하여금 혐오스러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게 하며,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악을 버리고 선을 닦게 한다.
017_0712_a_02L云何修戒門所謂在家菩薩當離殺偸盜邪婬妄言兩舌惡口綺語瞋嫉諂誑邪見若出家者爲欲折伏諸煩惱故應離憒鬧常依寂靜習止足頭陁等行乃至小罪心生大慚愧悔責護持如來所制禁戒令見者有所譏嫌能使衆生捨惡修
어떻게 인문(忍門)을 닦는가? 이른바 악한 것을 보아도 혐의치 않고 괴로움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으며, 항상 매우 깊은 진리의 말씀을 즐기어 관찰한다.
017_0712_a_10L云何修忍門所謂見惡不嫌遭苦不動常樂觀察甚深句義
어떻게 정진문(精進門)을 닦는가? 이른바 온갖 착한 행을 닦되 마음에 게으르지 않는 것이다. 생각하기를 과거 끝없는 겁부터 세간의 탐욕 경계를 구하기 위하여 헛되이 몸과 마음의 온갖 큰 고통만 얻었을 뿐 끝내는 조그마한 자미(滋味)도 없었다. 미래 세상에 이러한 고통을 여의기 위하여 마땅히 정진해서 게으름을 내지 말고 대비로써 일제 중생을 이롭게 하리라 한다.
017_0712_a_11L云何修精進門所謂修諸善行心不懈退當念過去無數劫來爲求世閒貪欲境界虛受一切身心大苦畢竟無有少分滋味爲令未來遠離此苦應勤精進不生懈怠大悲利益一切衆生
이들 초학보살(初學菩薩)이 비록 신심 내는 법을 수행하나 전생부터 무거운 죄와 악업의 장애가 있으므로, 혹은 마(魔)에게 시달리고, 혹은 세속 업무에 얽매이고, 혹은 갖가지 병고에 쫓긴다. 이러한 일들이 장애를 이루는 것이 하나가 아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착한 법 닦는 일을 폐하게 한다. 그러므로 용맹하게 정진하여 밤낮으로 여섯 차례 부처님께 예배ㆍ공양ㆍ찬탄ㆍ참회ㆍ권청(勸請)ㆍ수희(隨喜)하여 무상보리에 회향하고, 큰 서원 세우기를 끊임없이 하여 나쁜 업장이 소멸되고 선근이 늘어나게 한다.
017_0712_a_17L其初學菩薩雖修行信心以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或爲魔邪所惱或爲世務所纏或爲種種病緣之所逼迫如是等事爲難非一令其行人廢修善品是故宜應勇猛精進晝夜六時禮拜諸佛供養讚歎懺悔勸請隨喜迴向無上菩提發大誓願無有休息令惡障銷滅善根增長
017_0712_b_01L어떻게 지관문(止觀門)을 닦는가? 이른바 온갖 희론의 경계를 쉬어 없애는 것이 지(止)요, 인과와 생멸의 모습을 분명히 보는 것을 관(觀)이라 하는데 처음에는 각기 따로따로 닦아서 차즘 늘어나서 성취하게 되면 자유로이 쌍으로 수행한다. 지(止)를 닦으려는 이는 고요한 곳에 가부좌(跏趺坐)를 틀되 몸은 단정하고 뜻은 바르게 하며, 기운과 호흡에 의지하지 말고, 형상과 빛에도 의지하지 말고 허공에도 의지하지 말고 지ㆍ수ㆍ화ㆍ풍에도 의지하지 말고 나아가서는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기능에도 의지하지 않고 일체 분별과 상념(想念)을 모두 제거하고는 제거했다는 생각마저도 제거할지니, 온갖 법은 불생불멸이어서 모두가 일정한 상(相)이 없기 때문이다.
017_0712_b_01L云何修止觀門謂息滅一切戲論境界是止義明見因果生滅之相是觀初各別修漸次增長至于成就運雙行其修止者住寂靜處結加趺端身正意不依氣息不依形色依虛空不依地水火風乃至不依見聞覺知一切分別想念皆除亦遣除以一切法不生不滅皆無相故
앞의 마음이 경계를 의지하거든 이내 경계를 버리고 뒤의 생각이 마음을 의지하거든 다시 마음을 버리며, 마음이 바깥 경계로 달리거든 곧 거두어들여 속마음에 머물러 두라. 그런 뒤에 다시 마음이 일어나거든 마음이란 상에 집착하지 말지니, 진여를 떠나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행ㆍ주ㆍ좌ㆍ와 언제나 이와 같이 수행하여 항상 끊이지 않으면 차츰차츰 진여삼매(眞如三昧)에 들어가서 마침내는 온갖 번뇌를 굴복시키고 신심이 늘어나서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속히 이루겠거니와 만일 의심 내는 마음이 있어 비방하여 믿지 않거나 업장에 끄달려 아만과 게으름에 빠진 이들은 들어갈 수 없다.
017_0712_b_09L心依境次捨於境後念依心復捨於以心馳外境攝住內心後復起心不取心相以離眞如不可得故行住坐臥於一切時如是修行恒不斷絕漸次得入眞如三昧究竟折伏一切煩惱信心增長速成不退若心懷疑惑誹謗不信業障所纏我慢懈怠是等人所不能入
또 이 삼매에 의하여 법계의 모습을 증득한 이는 일체 여래의 법신과 일체 중생의 몸이 평등하여 둘이 없음에 모두가 한 모습이라는 사실을 아나니, 그러므로 이를 일상삼매(一相三昧)라 한다. 만일 이 삼매를 닦아 익히면 무량한 삼매를 내나니 진여가 일체 삼매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017_0712_b_17L復次依此三昧證法界相知一切如來法身與一切衆生身平等無二皆是一相是故說名一相三昧若修習此三昧能生無量三昧以眞如是一切三昧根本處故
017_0712_c_01L혹 어떤 중생은 선근이 미소(微少)하기 때문에 온갖 마와 외도와 귀신이 유혹하고 어지럽히되 혹은 악한 형상을 나투어 두려움을 주거나 혹은 예쁜 여색으로 나타나서 그의 마음을 흘리거나 혹은 하늘 무리의 형상이나 보살의 형상이나 심지어는 부처님의 상호가 장엄하신 형상으로도 나타나거나 혹은 총지(總持)의 법을 설하기도 하고 혹은 모든 바라밀을 설하거나 혹은 모든 해탈문(解脫門)과 원망 없음[無怨]ㆍ친함 없음[無親]ㆍ원인 없음[無因]ㆍ결과 없음[無果]과 모든 법은 끝내 공적(空寂)하여 본 성품이 열반이라고 말한다.
017_0712_b_21L或有衆生善根微少爲諸魔外道鬼神惑亂或現惡形以怖其心或示美色以迷其意或現天形或菩薩形乃至佛形相好莊嚴或說摠持或說諸度或復演說諸解脫門無怨無親無因無果一切諸法畢竟空寂本性涅槃
혹은 과거와 미래의 일과 타심통을 알게 하기도 하며, 변재(辯才)와 이야기 솜씨가 막힘이 없고 끊임이 없게 하여 명예와 이양(利養)을 탐내게 하며, 혹은 자주 화를 내거나 자주 기뻐하게 하며 혹은 슬픔이 많거나 사랑이 많게 하며, 혹은 오래도록 잠자기를 좋아하거나 혹은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게도 하며, 혹은 몸에 병이 걸리게 하거나 혹은 성품이 게으르거나 혹은 갑자기 정진을 했다가 곧 그만두게도 하며, 혹은 정(情)에 의흑이 많아 믿음을 내지 못하게 하며, 혹은 본래의 수승한 행을 버리고 달리 잡된 업을 닦게 하며, 세상일에 애착되어 흠뻑 빠져 들어서는 입맛에만 따르게 하며, 혹은 외도들의 모든 선정에 들게 하되 하루, 이틀, 나아가서는 이레까지 이르게 하며, 선정 속에서 좋은 음식을 얻어 몸과 마음이 쾌적하여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게 하며, 혹은 여색 등을 받아 누리도록 권하며, 혹은 음식의 분량을 갑자기 많다가 갑자기 적게도 하며 혹은 그의 얼굴 모습이 예쁘게도 하고 밉게도 한다. 만일 이러한 모든 소견의 번뇌에 시달리면 곧 지난날의 선근에서 물러나게 된다.
017_0712_c_05L或復令知過去未來及他心事辯才演說無滯無斷使其貪著名譽利養或數瞋數喜或多悲多愛或恒樂昏寐或久不睡眠或身嬰疹疾性不勤策或卒起精進卽便休廢情多疑惑不生信受或捨本勝行更修雜業愛著世事溺情從好或令證得外道諸定一日二日乃至七日於定中得好飮食身心適悅不飢不或復勸令受女等色或令其飮食乍少乍多或使其形容或好或醜爲諸見煩惱所亂卽便退失往昔善
그러므로 자세히 살피고 관찰하여 생각하기를 ‘이는 모두가 나의 선근이 약하고 업장이 두터워서 마와 귀신 등에게 물렸기 때문이다’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안 뒤에는 저 모든 것이 오직 마음뿐이라고 생각할지니 이렇게 생각하면 찰나에 사라져서 모든 강을 멀리 여의고 참 삼매에 들게 된다. 마음의 상을 이미 여의고 참이라는 모습도 다하면 선정에서 일어나도 모든 소견과 번뇌가 모두 나타나지 않나니, 삼매의 힘으로 그 씨앗을 파괴시켰기 때문이다. 수승한 선법[善品]으로 수순하고 상속함으로써 온갖 장난을 모두 멀리 여의고, 다부진 정진을 일으켜 항상 끊임이 없어야 한다.
017_0712_c_17L是故宜應審諦觀察當作是念皆以我善根微薄業障厚重爲魔鬼等之所迷惑如是知已念彼一切皆唯是心如是思惟剎那卽滅遠離諸相入眞三昧心相旣離眞相亦盡從於定起諸見煩惱皆不現行以三昧力壞其種故殊勝善品隨順相續一切障難悉皆遠離起大精進恒無斷絕
017_0713_a_01L만일 이 삼매에 의존치 않으면 여래의 종자성품[如來種性]에 들 수 없나니, 다른 삼매는 모두가 상이 있는 것이어서 외도와 함께 하므로 불ㆍ보살과는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이 삼매를 부지런히 닦아 익히어 끝까지 성취하게 해야 한다.
017_0713_a_01L若不修行此三昧者無有得入如來種性以餘三昧皆是有相與外道共不得値遇佛菩薩故是故菩薩於此三昧當勤修習令成就究竟
이 삼매를 닦으면 생전에 열 가지 이익을 얻나니, 첫째는 항상 시방의 여러 불ㆍ보살님 보살피심을 받고, 둘째는 온갖 악마나 악귀의 시달림을 받지 않고, 셋째는 온갖 삿된 도에 홀리지 않고, 넷째는 깊은 법을 비방하던 무거운 죄와 업장이 모두 엷어지고, 다섯째는 온갖 의무과 나쁜 지식이 소멸되고, 여섯째는 여래의 경계에 대하여 믿음이 더욱 늘어나고, 일곱째는 근심과 뉘우침을 멀리 여의어 생사의 길거리에서 용맹하여 겁냄이 없고, 여덟째는 교만을 멀리 여의고 부드럽고 화하고 인욕하여 항상 일체 세간의 공경을 받고, 아홉째는 설사 선정에 들지 않았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번뇌가 점점 엷어져서 끝내 다시 나타나지 않고, 열째는 만일 선정에 들었으면 온갖 음성 등의 반연에 동요되지 않는다.
017_0713_a_05L修此三現身卽得十種利益一者常爲十方諸佛菩薩之所護念二者不爲一切諸魔惡鬼之所惱亂三者不爲一切邪道所惑四者令誹謗深法重罪業障皆悉微薄五者滅一切疑諸惡覺觀六者於如來境界信得增長者遠離憂悔於生死中勇猛不怯者遠離憍慢柔和忍辱常爲一切世閒所敬九者設不住定於一切時一切境中煩惱種薄終不現起十者若住於定不爲一切音聲等緣之所動亂
또 만일 지(止)만을 닦으면 마음이 침체되어서 혹은 게으름을 내어서 온갖 좋은 일을 좋아하지 않고 대비(大悲)의 마음을 멀리 여읜다. 그러므로 관(觀)을 겸해서 닦아야 한다. 어떻게 닦는가?
017_0713_a_17L復次若唯修止心則沈沒或生懈怠不樂衆善遠離大悲是故宜應兼修於觀云何修耶
017_0713_b_01L이른바 세간의 모든 법은 생멸하여 머무르지 않는다. 무상하기 때문에 괴롭고, 괴롭기 때문에 내가 없다고 관하며, 과거의 법은 꿈같고, 현재의 법은 번개 같고, 미래의 법은 구름 같아서 잠깐 나타난 것이라고 관하며, 이 몸은 도두가 부정한 것이어서 온갖 벌레ㆍ때ㆍ번뇌들과 뒤섞였다고 관하며, 모든 어리석은 범부들이 보는 모든 법은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있다고 허망되게 계교한다고 관하며, 인연에서 생긴 모든 법은 모두가 허깨비 같아서 끝내 실체가 없다고 관하며, 제일의제(第一義諦)는 마음으로 미칠 바가 아니어서 비유도 할 수 없고, 설명도 할 수 없다고 관하며, 일체 중생은 끝없는 예부터 모두가 무명이 훈습하는 힘 때문에 무량한 몸과 마음의 큰 고통을 받으며, 현재와 미래도 그와 같아서 가도 없고 끝도 없고 벗어나기도 어렵고 건너기도 어렵거늘 항상 그 안에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니 심히 가엾다고 관한다.
017_0713_a_20L謂當觀世閒一切諸法生滅不停以無常故苦苦故無我應觀過去法如夢現在法如電未來法如雲忽爾而起應觀有身悉皆不諸蟲穢污煩惱和雜觀諸凡愚所見諸法於無物中妄計爲有觀察一切從緣生法皆如幻等畢竟無實第一義諦非心所行不可譬喩不可言說觀一切衆生從無始來皆因無明熏習力故受於無量身心大苦在未來亦復如是無邊無限難出難常在其中不能覺察甚爲可愍
이렇게 관하고는 결정된 지혜를 내고, 광대한 자비를 일으키며 큰 용맹을 내고 큰 서원을 세운다. 바라옵건대 내 마음이 모든 뒤바뀐 전도를 여의고 모든 분별을 끊으며, 여러 불ㆍ보살님들을 가까이 섬겨 정례ㆍ공양ㆍ공경ㆍ찬탄하며, 바른 법을 듣고는 말씀대로 수행하되 미래 세상이 다하기까지 쉬지 않으며, 무량한 방편으로 고해의 일체 중생을 구제해서 열반제일의락(涅槃第一義樂)에 머무르게 하리라고 서원한다.
이렇게 서원한 뒤에 언제나 자기의 능력이 미치는 한 자리이타의 행을 닦고. 행ㆍ주ㆍ좌ㆍ와에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항상 부지런히 관찰해야 한다. 이를 일러 관(觀)을 겸해서 닦는다 한다.
017_0713_b_08L是觀已生決定智起廣大悲發大勇立大誓願願令我心離諸顚倒斷諸分別親近一切諸佛菩薩頂禮供恭敬讚歎聽聞正法如說修行未來際無有休息以無量方便拔濟一切苦海衆生令住涅槃第一義樂作是願已於一切時隨己堪能修行自利利他之行行住坐臥常勤觀察應作不應作是名修觀
또 만일 관(觀)만을 닦으면 마음이 안정되지 못해서 의혹을 많이 내고 제일의제에 수순하지 않으므로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와 관을 겸하여 수행해야 하나니, 이른바 비록 모든 법은 모두가 자성이 없어 불생불멸하며, 본래 적멸이어서 본 성품이 열반이라고 생각하나 또한 인연이 화합하는 도리로 선ㆍ악 업보가 잃어지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음을 보며, 비록 인연이 화합하는 도리와 선ㆍ악 업보를 생각하나 또한 일체 모든 법은 남[生]도 없고 성품도 없고 나아가서는 열반이라고 본다.
017_0713_b_17L復次若唯修觀則心不止息多生疑不隨順第一義諦不出生無分別是故止觀應竝修行謂雖念一切皆無自性不生不滅本來寂滅性涅槃而亦卽見因緣和合善惡業不失不壞雖念因緣善惡業報亦卽見一切諸法無生無性乃至涅
017_0713_c_01L그렇다면 지(止)를 수행하는 이는 범부들의 생사에 집착하는 병을 대치(對治)하고 또 이승이 생사에 집착되어서 두려움을 내는 병을 대치하며, 관(觀)을 수행하는 이는 범부들의 선근을 닦지 않는 병을 대치하고, 또 이승의 대승심을 일으키지 않는 좁은 마음씨의 허물을 대치한다. 그러므로 지와 관은 서로 돕는 것이어서 잠시도 여윌 수 없나니, 만일 지와 관이 갖춰지지 않으면 반드시 위없는 보리를 얻지 못한다.
017_0713_c_02L然修行止者對治凡夫樂著生死亦治二乘執著生死而生怖畏修行觀者對治凡夫不修善根亦治二乘不起大悲狹劣心過是故止觀互相助成不相捨離若止觀不具必不能得無上菩提
또 초학(初學)보살이 이 사바세계에 있는 동안 혹은 추위ㆍ더위ㆍ바람ㆍ비, 또는 때 아닌 주림의 고통 등을 만나기도 하고 혹은 착하지 못하고 두려운 중생들이 삼독(三毒)에 얽매이고 삿된 소견에 뒤바뀌어져서 착한 길은 등지고 나쁜 법을 익히어 행한다. 보살이 그런 속에 있기에 마음이 약해지고 겁을 내어 여러 불ㆍ보살님을 만나 뵙지 못할까 걱정하고 청정한 신심을 성취하지 못할까 걱정하고 의심을 내고 물러날 생각을 내는 이는 ‘시방에 계신 모든 불ㆍ보살님께서 모두가 큰 신통을 얻어 장애가 없으셨고, 갖가지 익숙한 방편으로 일체 위험하고 고단한 중생을 건져 주셨다’고 생각한다.
017_0713_c_07L復次初學菩薩住此娑婆世界或値寒熱風雨不時飢饉等苦或見不善可畏衆生三毒所纏邪見顚倒棄背善道習行惡法菩薩在中心生怯弱恐不可値遇諸佛菩薩恐不能成就淸淨信心生疑欲退者應作是念方所有諸佛菩薩皆得大神通無有障㝵能以種種善巧方便救拔一切險厄衆生
이런 생각을 하고는 큰 서원을 내되 일념으로 부처님과 보살님을 염하리라 한다. 이렇게 결정된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여기서 수명이 다하고는 반드시 다른 불국토에 왕생하여 불ㆍ보살님들을 뵈옵고 신심이 성취되어 영원히 악도를 여읜다. 경에서 “만일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서방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을 오롯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그 모든 선근으로 회향하여 왕생을 원하면 결정코 왕생하여 항상 그 부처님을 뵈옵고 신심이 증장하여 영원히 물러나지 않으며, 거기에서 법을 듣고 부처님의 법신을 뵈오며, 더욱 차츰 수행하여 바른 지위[正位]에 들어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017_0713_c_16L作是念已發大誓願一心專念佛及菩薩以生如是決定心故於此命終必得往生餘佛剎中見佛菩薩信心成就永離惡趣如經中說若善男子善女人專念西方極樂世界阿彌陁佛以諸善根迴向願生定得生常見彼佛信心增長永不退於彼聞法觀佛法身漸次修行得入正位
017_0714_a_01L어떤 것이 이익분(利益分)인가? 이와 같은 대승의 비밀구의(秘密句義)를 이제 간략히 말했으니, 만일 어떤 중생이 여래의 심히 깊은 경계와 광대한 법 안에서 맑은 믿음과 깨달아 아는 마음을 내어 대승의 도에 들어가되 장애가 없기를 바라거든 이 간략한 논을 부지런히 듣고 생각하고 닦아 익힐지니, 이 사람은 결정코 일체 종지를 속히 이룰 것이다. 만일 이런 법을 듣고 놀라지 않으면 이 사람은 결정코 불종자를 계승하여 속히 수기를 얻으리라.
017_0714_a_01L云何利益分如是大乘秘密句義今已略說若有衆生欲於如來甚深境廣大法中生淨信覺解心入大乘無有障㝵於此略論當勤聽受惟修習當知是人決定速成一切種若聞此法不生驚怖當知此人紹佛種速得授記
가령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을 교화하여 십선도(十善道)에 머물게 하더라도 잠깐 동안 이 법을 생각한 것만 못하나니, 앞의 공덕보다 지남이 무량하고 끝이 없을 것이요, 만일 하루 낮이나 하루 밤에 말씀과 같이 수행하여 생긴 공덕은 무량하고 끝이 없고 말할 수 없다. 가령 시방 세계의 여러 부처님께서 각기 한량없는 아승기겁을 두고 말씀하셔도 다할 수 없나니, 진여의 공덕은 끝이 없기 때문에 수행의 공덕도 역시 끝이 없다.
017_0714_a_08L假使有人化三千大千世界衆生令住十善道不如於須臾頃正思此法過前功德無量無若一日一夜如說修行所生功德無量無邊不可稱說假令十方一切諸佛各於無量阿僧祇劫說不能盡以眞如功德無邊際故修行功德復無邊
만일 이 법에 대하여 비방할 마음을 내는 이는 무량한 죄를 받아 아승기겁에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에 대하여 결정되게 믿을지언정 비방할 마음을 내지 말라. 스스로를 해치고 남도 해치며 삼보의 종자를 끊는다.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이에 의해 수행하셔서 위없는 지혜를 이루셨고, 일체 보살들이 이를 말미암아 여래의 법신을 증득하였다. 과거의 보살들도 이에 의하여 대승의 맑은 믿음을 이루었고 현재의 보살은 현전에 이루고 미래의 보살은 장차 이룬다. 그러므로 자리와 이타의 수승한 행을 완성코자 하는 이는 이 논을 부지런히 힘써 배워야 한다.
017_0714_a_15L若於此法生誹謗者獲無量於阿僧祇劫受大苦惱是故於此應決定信勿生誹謗自害害他斷三寶種一切諸佛依此修行成無上智一切菩薩由此證得如來法身過去菩薩依此得成大乘淨信現在今成未來當成是故欲成自利利他殊勝行者當於此論勤加修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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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제 매우 깊고 광대한
진리 말씀 해석해 마쳤으니
그 공덕 뭇 중생에게 돌려
모두가 진여의 법을 보게 하고자 하노라.
017_0714_a_22L我今已解釋
甚深廣大義
功德施群生
令見眞如法
大乘起信論卷下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