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阿毘曇心論卷第四

ABC_IT_K0959_T_004
028_0380_b_01L아비담심론 제4권
028_0380_b_01L阿毘曇心論卷第四


법승 지음
승가제바ㆍ혜원 공역
김 재천 번역
028_0380_b_02L尊者法勝造
晉太元元年僧伽提婆共惠遠於廬山譯


8. 계경품(契經品)
028_0380_b_04L契經品第八

이미 「정품(定品)」을 설명하였으니, 이제 「계경품(契經品)」을 설명하겠다.

일체지(一切智)께서 말씀하신
계경의 미묘한 뜻
이것을 나는 이제 말하노니
응당 선한 마음으로 들으라.
028_0380_b_05L已說定品契經品今當說 一切智所說
契經微妙義
此吾今當說
宜應善心聽

비록 온갖 아비담 계경의 뜻이 있지만, 모든 계경을 자세하게 분별해서 이제 설명하겠다.
세존께서는 삼계를 말씀하셨으니,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이다.
【문】이는 무엇인가?

【답】욕계에 열 가지 거처가 있고
색계에는 열일곱 곳이 있으며
무색 중에 넷이 있으니,
3유(有)도 또한 그러하다.
‘욕계에 열 가지 거처가 있다’고 함은 이 욕계에는 지옥ㆍ축생ㆍ아귀ㆍ인간과 사왕천ㆍ삼십삼천ㆍ염마(炎摩)ㆍ도사다(兜師哆)ㆍ화락천ㆍ타화자재천의 6욕천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중생은 바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이 처소들 중에서 물건을 얻을 수 있다면 모두 다 음욕의 소유를 원망하니, 그 때문에 욕계라고 말한다.
028_0380_b_08L 雖有一切阿毘曇契經義然諸契經 應具分別今當說世尊說三界欲界 色界無色界此云何 欲界十居止
色界說十七
無色中有四
三有亦復然
欲界十居止者此欲界十居止地獄 畜生餓鬼六欲天四王天三十三 炎摩兜師哆化樂他化自在是衆 生起欲想此處所中若可得物盡望婬欲 所有是以說欲界
028_0380_c_02L【문】색계는 무엇인가?
【답】색계는 열일곱이라고 말한다. ‘색계는 열일곱이라고 말한다’고 함은 범신(梵身)1)ㆍ범부루(梵富樓)2)ㆍ광소광(光少光)ㆍ무량광ㆍ광요(光曜)ㆍ소정(少淨)ㆍ무량정(無量淨)ㆍ변정(遍淨)ㆍ무괘애(無罣礙)3)ㆍ수복(受福)ㆍ과실(果實)ㆍ무상중생(無想衆生)ㆍ불번(不煩)ㆍ불열(不熱)ㆍ선견(善見)ㆍ선현(善現)ㆍ색구경(色究竟) 등이 있는 것을 말한다. 이 처소에서는 욕애의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다만 극히 묘한 색을 이루어 남자도 여자도 아닌 모습이다. 그러므로 색계인 것이다.
‘무색 중에 넷이 있다’고 함에서 ‘무색의 넷’이란 무량공처(無量空處)ㆍ무량식처(無量識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상비비상처에 있는 것을 말한다. 이들 처소에는 색이 없고 색욕을 여의었다. 그러므로 무색계라고 말한다.
028_0380_b_18L色界云何界說十七色界說十七者居梵身梵樓光少光無量光光曜少淨無量淨 遍淨無罣㝵受福果實無想衆生煩不熱善見善現色究竟此處所不 起欲想但成極妙色非男非女形故色界無色中有四者無色界四無量空處無量識處無所有處非想 非非想處此處所無色彼離色欲以說無色界
【문】세존께서는 세 가지 유(有)인 욕유ㆍ색유ㆍ무색유를 말씀하시는데, 이들은 무엇인가?
【답】세 가지 유도 또한 그러하다. 말하자면 앞의 삼계의 분별이 곧 세 가지 유이다.
【문】세존의 말씀인 일곱 가지 식주(識住)란 무엇인가?

【답】선취(善趣)4)는 욕계와
색계에 세 곳[三地]이 있고
무색계도 역시 이와 같으니
지혜로써 모든 식주를 알아야 한다.
028_0380_c_06L世尊說三有欲有無色有此云何三有亦復然前三界分別卽是三有如世尊所 說七識住是云何 善趣是欲界
及色界三地
無色亦 如是
慧知諸識住

이 욕계 중의 취(趣)로서 선(善)에 속하는 것은 사람과 6욕천과 색계 앞의 세 가지 경지와 무색계 앞의 세 가지 경지, 즉 초선지 위에 2선지(禪地)가 셋이고 2선지 위에 3선지가 셋이고 3선지 위에 4선지는 아홉인데, 그 중에서 앞의 세 가지 지와 무색계 앞의 세 가지 지를 일곱 가지 식주라고 한다. 왜냐하면 식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취(惡趣) 중에서는 고통으로 파괴되므로 식주를 세울 수 없고, 제4선은 무상정(無想定)으로 파괴되므로 역시 식주를 세울 수 없으며, 비상비비상처는 멸진정으로 파괴되므로 식주를 세울 수 없다. 그러므로 말하지 않는다.
028_0380_c_11L 此欲界中若趣善數如人及六欲天 色界前三地無色前三地初禪地上 二禪地三二禪地上三禪地三三禪 地上四禪地九於中前三地及無色前 三地是說七識住何以故不壞識故惡趣中苦痛壞故不得立識住第四 禪無想定壞故亦不得立識住非想 非非想處滅盡定壞故不得立識住 是故不說
028_0381_a_02L
제일유(第一有)와 무상(無想)을 합하여
중생거(衆生居)를 아홉이라고 한다.
모든 유루의 네 가지 음(陰)은
네 가지 식주(識住)라고 말한다.

‘제일유와 무상을 합하여 중생거를 아홉이라고 한다’고 함은 이들 일곱 가지 식주와 무상중생과 비상비비상처가 아홉 가지 중생거라는 것이며, 그곳에 중생이 거처하므로 중생거(衆生居)라고 말한다.
‘모든 유루의 네 가지 음은 네 가지 식주라고 말한다’고 함은 유루의 색ㆍ통ㆍ상ㆍ행은 식이 상속하면 이들이 동반하므로 식주라고 한다는 것이다.
028_0380_c_20L 第一有無想
衆生居說九
諸有漏四陰
是說四識住
第一有無想衆生居說九者此七識 住及無想衆生非想非非想處是說 九衆生居於中衆生居止是故說衆 生居諸有漏四陰是說四識住者漏色若識相續有此伴是故 說識住
【문】세존께서는 열두 갈래의 연기를 말씀하셨으니, 이 모습에 대해서도 또한 설명해야 한다.

【답】모든 번뇌와 업과
유체(有體)는 점차로 생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유지(有枝)라고 하니
중생 모두에게 생겨난다.

그 중에서 번뇌는 무명과 애(愛)와 수(受)이다. 업이라고 부르는 것은 행과 유요, 체라 부르는 것은 나머지 지분[枝]을 말한다. 일체의 중생에게 점점 생겨나니, 체에 의지하여 번뇌를 세우고, 번뇌가 만드는 것은 업이며, 업으로써 만드는 것은 체이다. 그러므로 열두 가지로 분별하는 것이다.
028_0381_a_05L世尊說十二枝緣起此亦 應當說相 諸煩惱及業
有體漸漸生
是名說有枝
衆生一切生
於中煩惱是無明名說業者及有名說體者餘枝是一切衆生漸 漸生依體立煩惱煩惱所作業業所 作體是故十二種分別
【문】이 가지는 일시에 행하는가, 점점 행하는가?
【답】일시에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열두 가지 고음(苦陰)을 12지(枝)라고 하는데, 무명이 우두머리가 된다.

그것들이 차례로 세워지면
생사 중에서 받게 되니,
과거와 미래와
그 중간에 여덟 가지를 말한다.
028_0381_a_12L此枝爲一 時行爲漸漸非一時十二苦陰說 十二枝無明爲首 彼是次第立
受於生死中
過去及未來
處中說於八
028_0381_b_02L
저들 유지는 차례로 세운다. 그 중에서 전생시의 일체의 번뇌와 함께 하고 동반하는 것을 무명이라고 말한다. 이것으로 인하여 업을 만들고 업은 과보를 만드는데 그것은 곧 행이다. 그것이 종자심을 만드니, 이것이 식이다. 그것과 함께 생하는 네 가지 음(陰)이 상속하는 것이 명색이요, 그 중에서 소의(所依)의 눈을 첫째로 하는 모든 근(根)이 6입(入)이다. 근과 경계와 심이 화합하는 것이 갱락(更樂)이다. 갱락이 만드는 느낌이 통(痛)이요, 통에 집착하는 것이 애(愛)이다. 통과 함께 번민하고 근심하는 것이 수(受)이고, 그 근심하는 업을 만드는 것은 유이다. 그 중에서 다시 과보를 받는 것이 생이며, 그 생 중에서 무량으로 일어나는 재앙과 근심이 노사(老死)이다. 이와 같이 이들 유지는 일체의 생 가운데에 있다. 두 가지5)는 과거세에 속하고, 두 가지6)는 미래, 여덟 가지7)는 현재 생 가운데에 속한다.
028_0381_a_16L 彼有枝次第立於中前生時一切煩 惱共有及伴說無明由此故造業造果是行彼生種心是識彼共生四 陰相續是名色於中所依眼爲首根是六入根境界心和合是更樂樂所生受是痛痛所著是愛痛具所 煩勞是受彼所勞造業是有於中更 受果是生彼生中無量起災患是老 如是此有枝一切生中二攝過去 二未來八現在生中攝
【문】세존께서는 여섯 가지 계(界)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답】모든 요소[大]에는 네 가지가 있으며
그리고 유루식과
또한 색계 중간임을 알아야 하니
이들 세계를 생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모든 요소에는 네 가지가 있으며, 그리고 유루식과 또한 색계 중간임을 알아야 한다’고 함은, 4대(大)인 지ㆍ수ㆍ화ㆍ풍과 유루식 및 물질의 중간으로서 알 수 있는 곳8), 이들 여섯 가지 법을 계(界)라고 한다는 것이다.
028_0381_b_03L世尊說 六界此云何 諸大謂有四
及與有漏識
亦色中閒知
是界說生本
諸大謂有四及與有漏識亦色中間 知者四大有漏識及色中 閒可知謂眼所受此六法說界
【문】무엇 때문에 수많은 법 중에서 여섯 가지 계를 말하는가?
【답】‘이들 계는 생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이들 여섯 가지 법은 생사의 근본으로서, 이 가운데 사람들의 생각이 있다. 그 중에서 몸은 땅이 생하는 것이고, 물은 적시는 것이고, 불은 익혀서 썩은 냄새를 제거하고, 바람은 일어나는 것이다. 빈 중간9)에서 먹고 마시고, 바람의 출입으로 해서 식이 성립하나니, 이 가운데서 사람의 생각을 일으킨다. 이 죽고 사는 성질 때문에 계라고 한다.
【문】세존께서는 네 가지 성제(聖諦)를 말씀하셨는데, 그 모습은 무엇인가?

【답】모든 행은 과(果)가 있는 것으로서
유루인 것을 고(苦)라고 한다.
인(因)이 있는 것은 습(習)이며,
고(苦)를 다하는 것을 멸이라고 한다.
028_0381_b_09L何等故於衆多法中說六界是界 說生本是六法生死之本此中有士 夫想於中身地所生水所潤火成熟 除爛腐臭風所起空中閒飮食由風 行出入識所立此中起士夫想是生 死性故說界世尊說四聖諦此相 云何 諸行若有果
有漏是說苦
若有因是習
苦盡謂之滅
028_0381_c_02L
‘모든 행은 과가 있는 것으로서 유루인 것을 고라고 한다’고 함은 일체의 유루행은 원인을 따라 생하고 또한 일체의 고통과 근심을 만들므로 모든 행을 고제라고 한다는 것이다.
‘인이 있는 것은 습이다’고 함은 일체의 유루행은 다른 것의 원인이 되므로 일체의 행을 습제라고 한다는 것이다. 한 여자를 또는 어머니라고 하기도 하고 또는 여자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 앞뒤로써 말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유루행도 고제라고 하고 또는 습제라고도 하니, 이미 생한 것과 앞으로 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를 다하는 것을 멸이라고 한다’고 함은 일체의 유루행이 멸하여 그치는 것을 멸제라고 한다는 것이다.
028_0381_b_18L 諸行若有果有漏是說苦者一切有 漏從行因中生亦作一切苦患是故 一切行說苦諦若有因是習者一切 有漏行他因是以一切行說習諦一女亦說母亦說女前後故如是有 漏行亦說苦諦亦說習諦已生當生 苦盡謂之滅者一切有漏行滅謂之滅諦

만약 무루행이 있으면
이것을 말하여 도제라고 한다.
그것은 두 가지 일 때문이니
잘 보면 곧 미세한 것을 안다.

‘만약 무루행이 있으면, 이것을 말하여 도제라고 한다’고 함은 일체의 무루행을 도제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를 그칠 때 이것도 모두 함께 그치기 때문이다.
028_0381_c_03L若有無漏行
是說爲 道諦
彼爲二事故
見著則知微
若有 無漏行是說爲道諦者一切無漏行 說道諦何以故休息苦時盡是具
【문】무엇 때문에 제(諦)라고 말하는가?
【답】그것은 두 가지 일 때문이다. 두 가지 일을 제라고 말하니, 자상(自相)의 진실로서 뒤집어지지 않는 것과, 그것을 보고 뒤집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문】앞이 원인이고 뒤가 결과인데 무엇 때문에 세존께서는 앞에 과를 말씀하시고 뒤에 인을 말씀하셨는가?
【답】잘 보면 곧 미세한 것을 안다. 성제는 비록 앞이 습이고 뒤가 고이며 앞에서 수도(修道)해서 뒤에 멸을 얻음이 있다고 해도, 다만 먼저 고제를 보고 뒤에 습제를 보며, 마찬가지로 먼저 멸제를 보고 뒤에 도제를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는 거칠고 습은 미세하며, 멸은 거칠고 도는 미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먼저 고제를 말씀하시고 뒤에 습제를 말씀하셨으며, 먼저 멸제를 말씀하시고 뒤에 도제를 말씀하신 것이다.
028_0381_c_07L何以故說諦彼爲二事故事說諦自相眞實非顚倒及見彼得 非顚倒意如前因後果以何等故 世尊前說果後說因見著則知微 聖諦雖有前習後苦先修道後得滅 但應前見苦諦後見習諦如是應先 見滅諦後見道諦何以故苦麤習細 滅麤道細是故世尊先說苦諦後說 習諦先說滅諦後說道諦
【문】세존께서 네 가지 성스러운 사문과(沙門果)를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몇 가지인가?

【답】성스러운 과보에 여섯 가지가 있으니
가장 뛰어난 것은 아홉 가지 지(地)에 있다.
세 번째는 여섯 가지 지에 있고
두 가지는 모두 미래에 의지한다.

‘성스러운 과보에 여섯 가지가 있다’고 함은 여섯 종류로서 네 가지 사문과가 있는 것을 말하니, 무루의 다섯 가지 음(陰)과 수연멸(數緣滅)10)이다.
028_0381_c_15L世尊說 四聖沙門果此幾種 聖果有六種
最勝在九地
第三在六地
二俱依未來
聖果有六種者六種四沙門果無漏 五陰及數緣滅
028_0382_a_02L【문】네 가지 사문과는 어느 지(地)에 소속되는가?
【답】가장 뛰어난 것은 아홉 가지 지에 있으며, 가장 뛰어난 것은 무착과(無著果)이다. 아홉 가지 지에 포섭되니, 근본사선(根本四禪)과 세 가지 무색과 미래 및 중간이다.
‘세 번째는 여섯 가지 지에 있다’고 함은 불환과(不還果)는 여섯 가지 지에 포함되어 4선과 미래 및 중간선을 함께 갖춘다는 것이다. 무색은 아니니, 법지가 없기 때문이다.
‘두 가지는 모두 미래에 의지한다’고 함은 수다원과(須陀洹果)와 사다함과(斯陀含果)는 미래선에 포섭되는 것을 말하니, 아직 탐욕을 여의지 못했기 때문이다.
028_0381_c_20L四沙門果何地所 最勝在九地最勝是無著果九地所攝根本四禪三無色未來及 中閒第三在六地者不還果六地所 具足四禪未來及中非無色以無法智 二俱依未來者須陁洹果及斯陁含 未來禪所攝以未離欲故
【문】세존께서는 네 가지 도를 말씀하셨으니, 고비속통(苦非速通)ㆍ고속통ㆍ낙불속통(樂不速通)ㆍ낙속통이다. 그것은 어떠한 모습인가?

【답】종신행(從信行)의 모든 법에
번뇌가 없는 것이 지상(遲想)이요
종법행의 모든 법에
번뇌가 없는 것이 속상(速想)이다.
028_0382_a_03L世尊說 四道苦非速通苦速通樂不速通速通此何相 從信行諸法
無煩惱遲想
從法行諸法
無煩惱速想

‘종신행의 모든 법에 번뇌가 없는 것이 지상이다’고 함은 종신행의 무루법은 빠르지 않아서 둔근(鈍根)의 무리에 소속된 것은 늦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받는 것으로 신해탈(信解脫)과 시해탈(時解脫)을 알아야 하니 역시 받는 것이 똑같이 둔근이기 때문이다.
‘종법행의 모든 법에 번뇌가 없는 것이 속상이다’고 함은 종법행의 무루법은 이근(利根)의 무리에 소속되므로 빠르다는 것이다. 이것을 받는 것으로 견도(見到)와 불시해탈을 알아야 하니, 역시 받는 것이 똑같이 이근이기 때문이다.
028_0382_a_07L 從信行諸法無煩惱遲想者從信行 無漏法是非速鈍根輩所攝是遲受此當知信解脫時解脫亦受同鈍 根故從法行諸法無煩惱速想者法行無漏法利根輩所攝是速若受 當知見到不時解脫亦受同利根故

근본선지(根本禪地) 중에는
임시로 낙상(樂想)이라고 부름을 알라.
적고 얻기 어려운 까닭에
나머지는 모두 고상(苦想)이다.

‘근본선지 중에는 임시로 낙상이라고 부름을 알라’고 함은 근본사선 중에 이근과 둔근의 법을 낙도(樂道)라고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止)와 관(觀)이 동등하기 때문이고 즐거운 행이기 때문이다.
‘적고 얻기 어려운 까닭에 나머지는 모두 고상이다’고 함은 나머지 지(地)가 포섭하는 무루는 고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적기 때문이다. 미래선과 중간선에서는 지도(止道)가 적고, 무색 중에서는 관이 적다. 그러므로 고통이 극심하다. 오로지 얻기도 어렵고 얻어도 그 양이 적으므로 고라고 말한다.
028_0382_a_13L 根本禪地中
知假名樂想
小及難得故
餘皆是苦想
根本禪地中知假名樂想者根本四 禪中利根及鈍根法說樂道何以故 止觀導等故及樂行故小及難得故 餘皆是苦想者餘地攝無漏是苦想 所以者何以小故未來禪中閒禪止 道小無色中觀小是故極苦一向難 得及小故說苦
028_0382_b_02L【문】세존께서는 불괴정(不壞淨)을 말씀하셨으니, 부처님에 대한 불괴정과 법ㆍ승ㆍ성스러운 계(戒)에 대한 불괴정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답】자각과 성문법과
해탈과 또한 나머지 인(因)의
청정무구한 믿음과
성스러운 계와 그리고 결정이다.
‘자각과 성문법과 해탈과 또한 나머지 인의 청정무구한 믿음’이라고 함에서 자각이란 부처님을 말한다. 그 부처님은 무착과에 포섭되고, 무학의 공덕은 곧 불법이다. 이 법에서 무루의 믿음이 있으면 이것을 부처님에 대한 불괴정이라고 말한다. 이미 바른 깨달음을 성취한 성문의 학ㆍ무학의 공덕을 성문법이라고 한다. 이 법에서 무루의 믿음이 있으면, 이것을 승(僧)에 대한 불괴정이라고 한다. 열반 중에 무루의 믿음과 나머지 유위법의 고제ㆍ습제의 믿음처럼, 보살의 무루 공덕의 믿음과 학ㆍ무학ㆍ벽지불법의 믿음을 법에 대한 불괴정이라고 한다.
‘성스러운 계’란 무루의 계이니, 이것을 계에 대한 불괴정이라고 말한다.
028_0382_a_22L世尊說四不壞淨 於佛不壞淨於法僧聖戒不壞淨云何 自覺聲聞法
解脫亦餘因
淸淨無垢信
聖戒及決定
自覺聲聞法解脫亦餘因淸淨無垢 信者自覺是佛彼佛無著果所攝學功德是佛法於此法若無漏信說於佛不壞淨已取正證聲聞彼學 無學功德是說聲聞法於此法若無 漏信是說於僧不壞淨涅槃中無漏 信及餘有爲法如苦諦習諦信菩薩 無漏功德信學無學辟支佛法信說於法不壞淨聖戒者無漏戒是說 於戒不壞淨
【문】무엇 때문에 불괴정은 오로지 무루일 뿐 유루가 아닌가?
【답】결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결정된 것이니, 정견(正見)을 따르는 그 가운데에 생하기 때문이다. 무루의 믿음과 무루의 계는 무루라고 결정된다. 유루의 믿음은 믿지 않는 것에 의해 파괴된다고 하고, 유루의 계는 계가 아닌 것에 의해 파괴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무루는 파괴되지 않는 것으로서 후생(後生)에 이르므로 결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불괴정은 오직 무루이다.
【문】세존께서는 선정을 닦는 데 네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현법 중에서 낙거(樂居)를 얻는 수정이 있고, 지견(知見)을 얻는 수정이 있고, 분별혜의 수정이 있고, 누진(漏盡)을 얻는 수정이 있다. 이것은 어떠한 모습인가?
028_0382_b_13L以何等故不壞淨一 向無漏非有漏及決定此是決定 從正見中生故無漏信無漏戒定無 有漏信者爲不信所壞有漏戒 者爲非戒所壞是以不決定無漏不 壞至後生是以決定故不壞淨一向無 世尊說修定有四有修定於現 法中得樂居有修定得知見有修定 分別慧有修定得漏盡此何相
028_0382_c_02L
【답】초선이 만일 선(善)이면
현법을 일러 곧 낙이라고 한다.
만약 생사에 대하여 알면
이것을 이름하여 지견이라고 한다.

‘초선이 만일 선이면 현법을 일러 곧 낙이라고 한다’고 함은 정(淨)과 무루의 초선은 능히 현법낙거(現法樂居)를 얻는다는 것이다.
‘만약 생사에 대하여 알면, 이것을 이름하여 지견이라고 한다’고 함은 생사지통(生死智通)을 일러 선정을 닦는 지견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모두 5음(陰)에 의지한다.
028_0382_b_21L 初禪若有善
說現法是樂
若知於生死
是說名知見
初禪若有善說現法是樂者淨及無 漏初禪能得現法樂居若知於生死是說名知見者生死智通是說修定 知見共依五陰

알아야 하니, 분별하는 지혜로써
모든 공덕을 구하여 얻는다.
금강유(金剛喩)의 4선(禪)을
이름하여 누진이라고 한다.

‘알아야 하니, 분별하는 지혜로써 모든 공덕을 구하여 얻는다’고 함은 방편으로 생한 공덕은 욕계계(欲界戒)ㆍ문(聞)과 사수(思修)의 공덕ㆍ일체 색무색계의 선법(善法)ㆍ일체 무루의 유위법을 가리키고, 이 모두는 수정의 분별혜라는 것이다.
‘금강유의 4선을 이름하여 누진이라고 한다’고 함에서, 금강유는 최후의 학심(學心)ㆍ공상응(共相應)ㆍ공유(共有)를 가리키며 제4선에 소속된다. 이것을 수정의 누진이라고 한다. 무슨 뜻인가는 친히 여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028_0382_c_04L 慧分別當知
求得諸功德
金剛喩四禪
是名爲漏盡
慧分別當知求得諸功德者方便生 功德名欲界戒聞思修功德一切色 無色界善法一切無漏有爲法是一 切修定分別慧金剛喩四禪是名爲 漏盡者金剛喩名最後學心共相應 共有第四禪所攝是說修定漏盡此如來自已說
【문】세존께서는 4여의족(如意足)과 4정단(正斷)과 4의지(意止)를 말씀하셨다. 이것도 또한 그 모습을 설명해야 한다.

【답】선(善)한 유위(有爲)의 법들이
방편을 구하여 같이 일어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여의족이라고 말했고
또한 정의단(正意斷)을 나타낸다.

‘선한 유위의 모든 법이 방편을 구하여 같이 일어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여의족이라고 하신다’고 했는데, ‘방편을 구하여 같이 일어나는 것’은 앞의 수정의 분별혜에서와 같이 설명한다. 이 모두가 여의족(如意足)이니, 마음대로 타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의단을 나타낸다’고 함은 곧 이 일체의 공덕을 정단(正斷)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028_0382_c_13L世尊說四如意 四正斷四意止彼亦應當說相 善有爲諸法
求方便等起
佛說如意足
亦現正意斷
善有爲諸法求方便等起佛說如意 足者求方便等起如前修定分別慧 是一切如意足如意乘器故亦現 正意斷者卽此一切功德說正斷
028_0383_a_02L
그것은 또한 의지(意止)이며
4성종(聖種)도 역시 그러하다.
은력(恩力)이 있어 생한다는 것이
저 성인의 말씀이다.

‘그것은 또한 의지이다’고 함은 곧 이 법을 또한 의지(意止)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문】세존께서 4성종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답】4성종도 또한 그러하나니, 즉 이 법을 또한 4성종이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문】무엇 때문에 이 일체의 공덕을 의지ㆍ정단ㆍ여의족ㆍ성종이라고 하는가?
【답】이른바 세력[恩力]이 있어 생한다는 것은 저 성인의 말씀이다. 이들 모든 법은 이른바 선정의 세력[定恩力]으로 인하여 생겨나서 선정을 말미암아 머문다. 그러므로 여의족이라고 한다. 정진의 세력으로 생하므로 정단이라고 하고 염의 세력으로 생하므로 의지라고 하며, 소욕지족의 세력으로 생하므로 성종이라고 한다.
028_0382_c_20L 彼亦是意止
四聖種亦然
謂有恩力生
彼聖之所說
彼亦是意止者卽此法亦說意止 世尊說四聖種此云何四聖種亦 卽此法亦說四聖種何以故此一 切功德說意止正斷如意足聖種 謂有恩力生彼聖之所說此諸法謂 定恩力生由定住是故說如意足進恩力生故說正斷念恩力生故說 意止少欲知足恩力生故說聖種
이미 함께 「도품(道品)」을 분별하였다. 이제 자상(自相)을 설명하겠다.

정신(淨信)과 정진과 염과
희와 혜와 의각(倚覺)과
호(護)와 사유와 계와 정(定)
이 법을 도품이라고 이른다.

이 열 가지 법을 도품이라고 하고 나머지는 도품이 아니다. 그 중에서 ‘신’이란 신근과 신력이요, ‘정진’이란 4정단(正斷)과 정진근ㆍ정진력ㆍ정진각지ㆍ정방편이다. ‘염’이란 염근ㆍ염력ㆍ염각지ㆍ정념이요, ‘희’란 희각지이다. ‘혜’란 4의지(意止)와 혜근ㆍ혜력ㆍ택법각지ㆍ정견이요, ‘의’란 의각지이다. ‘호’란 호각지이고, ‘사유’란 정지(正志)이다. ‘계’란 정어ㆍ정업ㆍ정명이요, ‘정’이란 네 가지 여의족과 정근ㆍ정력ㆍ정각지ㆍ정정(正定)이다.
028_0383_a_07L共分別道品自相今當說 淨信精進念
喜慧及倚覺
護思惟戒定
是法謂道品
此十法說道品非餘於中信是信根 信力精進是四正斷精進根精進力 精進覺枝正方便念是念根念力覺枝正念喜是喜覺枝慧是四意止 慧根慧力擇法覺枝正見倚是倚覺 護是護覺枝思惟是正志戒是正 正業正命定是四如意足定根定覺枝正定
【문】무엇 때문에 이 법은 이와 같이 여러 종류로 분별하는가?

【답】처(處)와 방편과 일의(一意)와
연둔(軟鈍)과 이근(利根)과
견도(見道)와 사유도로 하여
부처님께서는 서른일곱을 말씀하신다.
028_0383_a_18L何以此法如是多 種分別 處方便一意
濡鈍及利根
見道思 惟道
佛說三十七
028_0383_b_02L
‘처’란 정념이 연(緣) 중에 선 것이므로 의지(意止)를 말한다. ‘방편’이란 바른 방편이므로 정단(正斷)11)을 말한다. ‘일의’란 한 가지 뜻을 세우므로 여의족(欲)12)을 말한다. ‘연둔’이란 (연약하고 둔하다는) 뜻을 얻으므로 근(信)13)이라고 말한다. ‘이근’이란 예리한 근이라는 뜻을 얻으므로 역(力)14)이라고 말한다. ‘견도’란 견도를 얻는 것이므로 도지(道支)15)라고 말한다. ‘사유도’란 사유도를 얻는 것이므로 각지16)라고 말한다. 이렇게 일을 분별하므로 부처님께서는 서른일곱을 말씀하셨다. 이 열 가지 법의 일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서른일곱 가지를 말씀하신 것이다.
028_0383_a_21L 處者正念立緣中故說意止方便者 正方便故說正斷一意者立一意說如意足濡鈍意得故說根利根者 利根意得故說力見道者見道得說道支思惟道者思惟道得故說覺 是謂分別事故佛說三十七此十 法事故佛說三十七
【문】이들 도품은 어떠한 지에 포섭되는가?

【답】제2선(第二禪)과 미래선에서는
서른여섯 가지를 말하고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서른다섯이며
중간선도 역시 그러하다.

‘제2선과 미래선에서는 서른여섯 가지를 말한다’고 함은 제2선에는 정지(正志)가 없고 미래선에는 희각지가 없으며, 나머지는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서른다섯이며 중간선도 역시 그러하다’고 함은 제3과 제4선과 중간선에는 희각지가 없고 정지가 없으며 나머지는 있다는 것이다.
028_0383_b_05L此道品何地 所攝禪第二未來
是說三十六
四三十五
中閒禪亦然
禪第二未來 是說三十六者第二禪無正志未來 禪無喜覺枝餘有三四三十五中閒 禪亦然者第三第四中閒禪無喜 覺枝無正志餘有

제1선에서는 일체(一切)라고 말하고
세 가지 공에서는 서른하나를 말하며,
최상은 스물하나이고
욕계는 스물둘이다.

‘제1선에서는 일체라고 말한다’고 함은 초선은 서른일곱 가지 모두를 갖춘다는 것이다.
‘세 가지 공은 서른하나이다’고 함은 세 가지 공 중에는 서른한 가지가 있음을 말하니, 희ㆍ정지(正志)ㆍ정어ㆍ정업ㆍ정명ㆍ신의지(身意止)는 그 중엔 없고 나머지는 있다.
‘최상은 스물하나이다’고 함은 비상비비상처에는 7각지(覺支)와 8정도(正道)와 신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욕계는 스물둘이다’고 함은 각지와 도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있다는 것이다.
028_0383_b_11L 第一說一切
三空三十一
最上二十一
欲界二十二
第一說一切者初禪具有三十七空三十一者三空中有三十一正語正業正命身意止彼中無最上二十一者非想非非想處七覺八道及身意止欲界二十二者 除覺枝道枝餘有
028_0383_c_02L【문】세존께서는 네 가지 식(食)을 말씀하셨으니, 췌식(揣食)ㆍ갱락식(更樂食)ㆍ의사식(意思食)ㆍ식식(識食)이다. 이는 어떤 모습인가?

【답】모든 식 중에서 췌식은
욕계의 것으로서 세 가지이다.
식(識)과 사(思)와 갱락의 식은
유루라고 한다.

‘모든 식 중에서 췌식은 욕계의 음식으로서 세 가지이다’고 함은 췌식은 향과 맛과 미끄러움의 세 가지라는 것이다. 배고픔과 목마름을 제거하므로 식(食)이라고 한다.
‘식과 사와 갱락의 식은 유루라고 한다’고 함은 유루식ㆍ유루사ㆍ유루갱락을 식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무슨 뜻이냐 하면, 뒤에 생하는 상속이 끊어지지 않으므로 식이라고 말한다.
028_0383_b_19L世尊說四食更樂食意思食識食是何想 諸食中揣食
是欲界三種
識思及更樂
是食謂有漏
諸食中揣食是欲界三種者欲界揣 食三種細滑除飢渴故說食思及更樂是食謂有漏者有漏識漏思有漏更樂是說食有何義後生 相續不斷故說食
【문】세존께서는 세 가지 삼마제(三摩提)를 말씀하시니, 공과 무원(無願)과 무상(無相)이다. 이 삼마제는 어떠한 행이고 몇 가지 행이 있는가?

【답】무원에 열 가지 행(行)이 있고
두 가지 행은 바로 공정(空定)이다.
성스러운 행 중의 네 가지 행은
무상정(無想定)이라고 한다.

‘무원에 열 가지 행이 있다’고 함은 무원삼마제는 열 가지 행을 하는 것을 말하니, 무상행(無常行)과 고행(苦行)과 습제의 네 가지 행과 도제의 네 가지 행이다.
‘두 가지 행은 바로 공정이다’고 함은 공삼마제는 두 가지 행, 곧 공과 무아행이라는 것이다.
‘성스러운 행 중의 네 가지 행은 무상정이라고 한다’고 함은 무상삼마제는 멸제의 네 가지 행이라는 것이다.
028_0383_c_04L世尊說三三摩 無願無相此三摩提云何行幾 無願有十行
二行是空定
聖行中四行
說是無想定
無願有十行者無願三摩提行十行 無常行苦行習諦四行道諦四行行是空定者空三摩提二行空及無 我行聖行中四行說是無想定者想三摩提滅諦四行
【문】세존께서는 네 가지 전도(顚倒)를 말씀하신다. 무상(無常)에 대하여 유상(有常)하다는 생각의 심전도(心顚倒)ㆍ상전도(想顚倒)ㆍ견전도(見顚倒)와 고에 낙이 있다는 생각ㆍ깨끗하지 않은 것에 깨끗한 것이 있다는 생각ㆍ내가 아닌 것에 내가 있다는 생각의 심전도ㆍ상전도ㆍ견전도이다. 이것은 어떠한 견해를 끊는 것으로서 어떤 본성이라고 하는가?
【답】밝게 알아야 하니, 견고단(見苦斷)에
네 가지 전도된 것이 있다.
세 가지 견(見)의 본성의 소유이니,
견을 버리면 정견이라고 한다.

‘밝게 알아야 하니, 견고단에 네 가지 전도된 것이 있다’고 함은 네 가지 전도는 일체가 견고단으로, 괴로운 곳에서 행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028_0383_c_13L世尊說四顚 於無常有常想心顚倒想顚倒顚倒苦有樂想不淨有淨想非我有 我想心顚倒想顚倒見顚倒此何見 爲何性 曉了見苦斷
四種是顚倒
三見性所有
捨見正見說
028_0384_a_02L‘세 가지 견의 본성의 소유이니, 견을 버리면 정견이라고 한다’고 함은 전도는 견의 본성으로서 세 가지 견 중에서 최상인 것을 곧 전도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신견(身見)에서는 나를 말한다. 나라고 여기는 것이 아견이기 때문이다. 변견(邊見)에서는 항상하는 것과 끊어지는 것을 본다. 견도(見盜)에서는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한 것이라고 본다. 이들 일체는 괴로운 곳에서 행하고 견의 본성의 소유이다. 심(心)ㆍ상(想)ㆍ견(見)이 혼란을 만들므로 심전도ㆍ상전도ㆍ견전도라고 말하는 것이지 다만 본성이 전도되는 것은 아니다.
028_0383_c_19L 曉了見苦斷四種是顚倒者一切四 顚倒見苦斷以行苦處故三見性所 有捨見正見說者顚倒是見性三見 中最上卽是說顚倒身見是說我見 是我見故邊見見有常及斷見盜 不淨見淨彼一切行苦處及見性所 有心想見作亂故說心顚倒想顚倒 見顚倒但非性顚倒
【문】세존께서는 많은 견을 말씀하셨으니 육십이 가지를 으뜸이라고 한다. 이것은 어떠한 견에 포섭되는가?
【답】일체의 견은 다섯 가지 견에 포섭되며, 신견이 으뜸이 된다.
【문】어떻게 아는가?

【답】진실을 비방하는 것을
사견(邪見)이라고 말한다.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이라고 보는 것은
두 가지 견과 지(智)이다.
028_0384_a_04L世尊說多見 六十二首是何見所攝一切見是 五見所攝身見爲首云何知 誹謗於眞實
此說爲邪見
非實而見實
是二見及智

‘진실을 비방하는 것을 사견이라고 말한다’고 함은 말하자면 견해를 가지고 진실법은 없다고 비방하는 것이니, 소위 베푸는 것이 없고 재(齋)17)가 없고 말씀[說]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일체를 사견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이라고 보는 것은 두 가지 견과 지이다’고 함은 5음(陰) 중 진실하지 않은 것에서 나를 보고 내가 실제로 있다고 보는 견을 신견(身見)이라 하며, 진실하지 않은 즐거움과 깨끗함에 즐거움과 깨끗함이 있다고 하는 것을 견도(見盜)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삿된 지(智)의 사유가 끊어야 할 것이 있으니, 마치 밤에 보이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적(賊)이라고 하는 것과 같고, 마치 서 있는 나무를 사람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028_0384_a_08L 誹謗於眞實此說爲邪見者謂見誹 謗眞實法無此如說無施無齊無說如是一切說邪見非實而見實是二 見及智者五陰中不眞實我見我觀 有是實見說身見非眞實樂淨觀有 樂淨是見見盜及餘邪智思惟所斷 如夜有見謂是賊如豎木人像

정견(淨見)을 계도(戒盜)라고 하나니
이것은 인이 아닌 것을 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변견(邊見)을 받아들인다 함은 이 견을 말함이니
단멸과 유상(有常)에 의지한다.

‘정견을 계도라고 하나니, 이것은 인이 아닌 것을 인이라고 보는 것이다’고 함은, 말하자면 여러 법에 있어서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이라고 보는 견을 계도라고 한다는 것이니, 마치 고행으로 해탈에 이른다고 하는 것과 같다.
‘변견을 받아들인다 함은 이 견을 말함이니, 단멸과 유상에 의지한다’고 했는데, 이른바 무상한 일을 항상한 것이라고 보는 것을 상견이라고 한다면 인연의 상속을 알지 못한 채 이미 끊어졌다고 보는 것을 단견이라고 하니, 말하자면 이것이 수변견이다.
028_0384_a_15L 淨見謂戒盜
是非因見因
受邊說此見
依斷滅有常
淨見謂戒盜是非因見因者謂法於 法非因見是因此見是戒盜如苦行 至解脫受邊說此見依斷滅有常者 謂見無常事見常是謂有常見謂因 緣相續不識已見斷是謂斷見謂之 受邊見
028_0384_b_02L
건립과 모든 비방과
인은 두 가지 변(邊)에 의지한다.
만약 일이 움직여 행함이 있으면
이것은 정견으로 끊어야만 한다.

‘건립과 모든 비방’이란 사견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고를 비방하면 이것은 견고단(見苦斷)이다. 만약 습을 비방하면 견습단이요, 만약 멸을 비방하면 견멸단이다. 만약 도를 비방하면 견도단이니, 신견(身見)은 고아(苦我)에 대해 이것을 나라고 건립하니, 이것은 견고단이요, 견도(見盜)는 고를 낙이라고 건립하니, 이것도 견고단이다. 만약 습이라면 이것은 견습단이요, 만약 멸이라면 이것은 견멸단이다. 정법을 받지 못하면 이로 해서 견멸단이고, 도도 또한 그러하다. 계도는 유루처에서 행하면 견고단이요, 무루처에서 행하면 견도단이다. 끊어지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항상한 것이라고 계교하는 것 역시 견고단이다. 나타난 5음에서 단멸을 느끼거나 항상함을 생각하지만, 그것은 드러나지 않은 것이 아닐 뿐이다. 이들 중에서 일체의 견들을 분별한다.
028_0384_a_23L 建立諸誹謗
因依於二邊
若有事轉行
是正見應斷
建立諸誹謗者說邪見彼若誹謗苦 是見苦斷若誹謗習是見習斷若誹 謗滅是見滅斷若誹謗道是見道斷 身見建立於苦我是我是見苦斷盜建立苦爲樂是見苦斷若習是見 習斷若滅是見滅斷不受正法是故 見滅斷道亦復然戒盜若行有漏 是見苦斷若行無漏處是見道斷 見斷滅計常是亦見苦斷現五陰受 斷滅計常非不現此中分別一切諸
【문】세존께서는 스물두 가지 근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어떤 것인가?

【답】여러 계(界)로서 안에 존재하는 것과
몸의 셋과 그리고 명근(命根)
이들 근은 생사에 의지한다는 것은
성인께서 하신 말씀이다.

‘여러 계로서 안에 존재하는 것’이란 안ㆍ이ㆍ비ㆍ설ㆍ의이다.
‘몸의 셋’이란 신근의 세 종류인 신근ㆍ남근ㆍ여근이요, ‘그리고 명근’이란 아홉 번째 명근을 말한다.
‘이들 근은 생사에 의지한다는 것은 성인께서 하신 말씀이다’고 함은 이들 아홉 가지 근은 생사에 의지하므로 근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중생은 이들 생사의 생각이다.
028_0384_b_13L世尊說二十二根此云何 諸界在於內
身三及命根
是根生死依
聖人之所說
諸界在於內者身三者 身根三種身根男根女根及命根者 命根第九是根生死依聖人之所說 此九根生死依故說根衆生是生 死想
028_0384_c_02L
통(痛)을 따라 여러 번뇌가 생긴다.
믿음을 첫째로 하는 것은 청정에 의지함이니,
아홉 가지 근이 무루일 경우
이 세 가지로 도에 의지한다.

‘통을 따라 여러 번뇌가 생긴다’고 함은 낙근ㆍ고근ㆍ희근ㆍ우근ㆍ호근(護根)의 모든 통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를 따라 모든 번뇌가 있으므로 근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믿음을 첫째로 하는 것은 청정에 의지한다’고 함은 신근ㆍ정진근ㆍ염근ㆍ정근ㆍ혜근에 의해 해탈하므로 근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아홉 가지 근이 무루일 경우 이 세 가지로 도에 의지한다’고 함은, 믿음을 첫째로 하는 다섯 가지 근과 세 가지 통과 의근이 무루이면 도에 의지하므로 근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종신행(從信行)ㆍ종법행(從法行)의 도에 포섭되는 것은 미지근(未知根)이요, 사유도(思惟道)에 포섭되는 것은 이지근(已知根)이며, 무학도에 포섭되는 것은 무지근(無知根)이다.
028_0384_b_20L 從痛諸煩惱
信首依淸淨
九根謂無漏
是三依於道
從痛諸煩惱者樂根苦根喜根憂根 護根是諸痛從此諸煩惱故說根首依淸淨者信根精進念定慧根此解脫故說根九根謂無漏是三依 於道者信首五根三痛及意根是若 無漏依道故說根謂從信行法行所攝是未知根謂思惟道所攝是已 知根謂無學道所攝是無知根
【문】이 중 몇 가지가 욕계에 매이고, 몇 가지가 색계에 매이며, 몇 가지가 무색계에 매이는가?

【답】욕계는 네 가지이고 선(善)은 여덟 가지이다.
색종성(色種性)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모든 심수(心數)는 열 가지이고
한 가지는 마음이라는 것이 지혜로운 분의 말씀이다.

‘욕계는 네 가지’라고 함은 남근ㆍ여근ㆍ고근ㆍ우근은 오로지 욕계에 매인다는 것이며, 나머지는 「계품」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선은 여덟 가지’라고 함은 믿음을 첫째로 하는 다섯 가지 근과 세 가지 무루를 말한다.
‘색종성에 일곱 가지가 있다’고 함은 색의 근에 일곱 가지가 있으니, 다섯 가지 색근과 남근과 여근을 말하며, 나머지는 색이 아니라는 것이다.
028_0384_c_07L中幾欲界繫幾色界繫幾無色界 欲界四善八
色種性有七
諸心數者十
一心慧所說
欲界四者男根女根苦根憂根是一 向欲界繫餘如界品說善八者信首 五根及三無漏色種性有七者色根 有七五色根男根女根餘者非色
【문】몇 가지가 성심(性心)이고 몇 가지가 성심에 속하는 것이며 몇 가지는 성심도 아니고 성심수도 아닌가?
【답】모든 심수는 열 가지이니, 믿음을 첫째로 하는 다섯 가지 근과 다섯 가지 통이다.
‘한 가지는 마음이라는 것이 지혜로운 분의 말씀이다’고 함은 의근을 말하는 것이다. 그 나머지 근은 성심이 아니고 성심에 속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문】몇 가지가 과보가 있는 것[有報]이고, 몇 가지가 과보가 없는 것[無報]인가?

【답】하나와 열은 과보를 지닌다는 것이
지혜로운 분의 말씀이다.
열셋은 시보(是報)라고
견실자(見實者)는 분별한다.
028_0384_c_15L 幾性心幾性心數幾非性心非性心 諸心數者十信首五根及五痛 一心慧所說者意根是餘根非性心非性心數幾有報幾無報 一及十有報
是慧之所說
十三中 是報
見實者分別
028_0385_a_02L
‘한 가지’라고 함은 우근(憂根)을 말한다. 일정하게 유보(有報)이니, 오로지 선과 불선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방편으로 일어나니, 이것은 과보에 따라 생하지 않고, 위의(威儀)도 아니며, 공교(工巧)도 아니다. 그러므로 무기(無記)가 아니기 때문에 오직 유보이다.
‘열은 과보를 지닌다는 것이 지혜로운 분의 말씀이다’고 함은 믿음을 으뜸으로 삼는 다섯 가지 근은 말하자면 유루이면 과보를 지니고, 무루이면 과보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근과 세 가지 통은 무기 및 무루이면 과보를 지니지 않고, 나머지 선과 불선이면 과보를 지닌다. 또 고근은 무기이면 과보를 지니지 않고 나머지는 과보를 지닌다.
028_0384_c_21L一者憂根一定有報一向善不善故 現在方便起是不從報生非威儀非 工巧是以非無記故一向有報及十 有報是慧之所說者信首五根謂有 漏是有報謂無漏是無報意根及三 謂無記及無漏是無報餘善不善 是有報苦根謂無記是無報餘有報
【문】몇 가지가 과보에 따라 생하는 것[是報]이고, 몇 가지는 과보에 따라 생하지 않는 것[非是報]인가?
【답】열셋은 시보라고 견실자는 분별한다. 열세 가지 근 중에서는 혹은 본성이 시보이거나 혹은 아니다. 색근의 일곱 가지18)와 명근과 의근과 네 가지 통19)의 무기법은 선과 불선 중에서 생하므로 과보이다.
【문】살아 있을 때에는 몇 개의 근이 최초의 과보를 얻는가?

【답】둘 혹은 여섯ㆍ일곱ㆍ여덟은
처음에 얻을 수 있다.
욕 중에 과보를 지니는 모습이 있으며
또한 여섯과 위는 하나이다.
028_0385_a_05L幾是報幾非是報十三中是報 見實者分別十三根中或性是報或 非色根七命根意根及四痛無記法 善不善中生故報生時幾根最 初得報 二或六七八
謂初時可得
欲中有報相
亦六及上一

‘둘 혹은 여섯ㆍ일곱ㆍ여덟은 처음에 얻을 수 있다’고 함은, 말하자면 점점 근을 이루는 것이다. 난생ㆍ습생ㆍ태생과 같은 것은 제일 처음에 두 가지 근이 생하니, 신근과 명근이다. 화생(化生)의 무형(無形)20)은 여섯 가지 근을 얻으니, 다섯 가지 색근과 명근이다. 한 가지 형태는 일곱, 두 가지 형태는 여덟이다.
‘욕 중에 과보를 지니는 모습이 있다’고 함은 이것은 오직 욕계의 중생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여섯과 위는 하나이다’고 함은, 색계는 최초에 여섯 가지 근을 얻고 무색은 하나의 근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때 오로지 더러운 마음이므로 오직 더러움을 얻고,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은 과보가 아니다.
028_0385_a_12L 二或六七八謂初時可得者謂漸漸 成根如卵生濕生胎生是最初時二 根生身根及命根化生無形得六根 五色根及命根一形七二形八欲中 有報想者此說是一向欲界衆生六及上一者色界最初得六根無色 一根彼爾時一向穢污心是以一向 穢污得心心數法非報
【문】목숨이 다했을 때에는 몇 가지 근을 최후에 버리는가?

【답】넷을 버리고 여덟이나 아홉이기도 하며
혹은 다시 열을 버리기도 한다.
죽을 때에 점점 없어지니,
선한 버림[捨]은 각각 다섯을 더한다.
028_0385_a_20L命終時幾 根最後捨 四捨八與九
或復捨於十
死時漸漸滅
善捨各增五
028_0385_b_02L
‘넷을 버리고 여덟이나 아홉이기도 하며 혹은 다시 열을 버리기도 한다. 죽을 때에 점점 없어진다’고 함은 무기심으로서 점차 목숨이 끝날 때에는 최후에 네 가지 근을 버리나니 신ㆍ의ㆍ명ㆍ호근이고, 무형이 일시에 무기심으로서 목숨이 끝나는 것은 여덟 가지 근을 버리고, 한 가지 형태는 아홉, 두 가지 형태는 열 가지라는 것이다.
‘선한 버림[捨]은 각각 다섯을 더한다’고 함은 곧 그것이 선심이라면 믿음을 첫째로 하는 다섯 가지 근을 더한다는 것이다. 색계ㆍ무색계의 근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028_0385_a_23L 四捨八與九或復捨於十死時漸漸 滅者無記心漸命終時最後捨四根 護根無形一時無記心命終 捨八根一形九二形十善捨各增五 卽彼善心加增信首五根如是色 無色界隨根可得亦如是
【문】몇 가지는 견단이고, 몇 가지는 사유단이며, 몇 가지는 무단(無斷)인가?

【답】두 가지 단(斷)과 무단은 넷이고
두 가지 근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며
세 가지 미묘는 부단(不斷)이니,
이른바 나머지는 사유단이다.
028_0385_b_06L幾見斷 幾思惟斷幾無斷 二斷無斷四
二種根有六
三微妙不斷
謂餘思惟斷

‘두 가지 단과 무단은 넷이다’고 함은 네 가지 근은 견단ㆍ사유단ㆍ무단이니 의근과 세 가지 통(痛)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 근에는 여섯이 있다’고 함은 믿음을 첫째로 하는 다섯 가지 근과 우근을 말한다.
‘세 가지 미묘는 부단이다’고 함은 세 가지 무루는 부단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나머지는 사유단이다’고 함은 아홉 가지 근은 사유단이라는 것이니, 명근의 여덟과 고근을 말한다.
028_0385_b_09L 二斷無斷四者四根見斷思惟斷意根及三痛二種根有六者信首 五根及憂根三微妙不斷者三無漏 是不斷謂餘思惟斷者九根思惟斷 命根八及苦根
이미 모든 경을 설명하였으니, 이제는 문(門)을 설명하겠다.
【문】세존께서는 여섯 가지 식을 말씀하시니, 안식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식이다. 이들 식은 어떠한 법을 식별하는가?

【답】모든 근의 의(義)를 취하는 것은
다섯 가지 심계(心界)이고
일체의 법들을 받는 것은
이를 의식계라고 한다.
028_0385_b_14L已說諸經門今當說 世尊說六識眼識耳鼻舌身意識 此識識何法 若取諸根義
是五種心界
受一切諸法
是謂意識界

‘모든 근의 의를 취하는 것은 다섯 가지 심계이다’고 함에서, 의21)는 다섯 가지 물질[色]을 가리킨다. 이것은 5식(識)이 식별하나니, 안식은 물질을 식별하고 나아가 신식은 세활을 식별한다.
‘일체의 법들을 받는 것은, 이를 의식계라고 한다’고 함은 의식은 일체의 법들을 식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온갖 법을 경계로 한다.
028_0385_b_18L 若取諸根義是五種心界者義名五 種色是五識識眼識識色乃至身識 識細滑受一切諸法是謂意識界者 意識識一切諸法此境界一切諸法
028_0385_c_02L【문】열 가지 법이 있으니, 욕계의 상응ㆍ불상응과 색계의 상응ㆍ불상응과 무색계의 상응ㆍ불상응과 유위 무루의 상응ㆍ불상응과 무위의 두 가지인 선과 무기이다. 이 중에서는 지(智)를 분별해야 한다. 하나하나의 지는 어떠한 법을 경계로 하는가?
【답】알아야 하니, 다섯 가지 법은
법지(法智)의 경계이다.
미지지(未知智)는 일곱이 되고
타심(他心)은 셋을 경계로 한다.
028_0385_b_22L 有十法欲界相應不相應色界相 應不相應無色界相應不相應有爲 無漏相應不相應無爲二種善及無 此中應分別智一一智境界幾法 五法應當知
法智之境界
未知智爲七
他心境界三

‘알아야 하니, 다섯 가지 법은 법지의 경계이다’고 함은 다섯 가지 법은 법지의 경계라는 것이다. [다섯이란] 욕계의 상응ㆍ불상응과 무루의 상응ㆍ불상응과 무위의 선이다.
‘미지지는 일곱이 된다’고 함은 미지지는 일곱 가지 법을 경계로 한다는 것이니, 색계ㆍ무색계와 무루의 상응ㆍ불상응과 무위의 선이다.
‘타심[지]는 셋을 경계로 한다’고 함은 타심지는 세 가지 법을 경계로 한다는 것이니, 욕과 색과 무루의 상응이다.
028_0385_c_05L 五法應當知法智之境界者五法智境界欲界相應不相應無漏相應 不相應無爲善未知智爲七者未知 智境界七法無色界及無漏相應不相應無爲善他心境界三者他心 智境界三法色及無漏相應

유루지는 열 가지가 있고
인과 과는 여섯을 경계로 한다.
해탈지는 하나의 법이요
도는 둘이고 나머지는 아홉이다.

‘유루지는 열 가지가 있다’고 함은 유루지는 등지(等智)이고 이것은 일체의 열 가지 법을 경계로 한다는 것이다. 일체법을 경계로 하기 때문이다.
‘인과 과는 여섯을 경계로 한다’고 함은 고지(苦智)와 습지(習智)는 여섯 가지 법을 경계로 한다는 것이니, 삼계(三界)의 상응ㆍ불상응이다.
‘해탈지는 하나의 법이다’고 함은 멸지는 하나의 법을 경계로 한다는 것이니, 오직 무위의 선이다.
‘도는 둘’이라 함은 도지는 두 가지 법을 경계로 한다는 것이니, 유위 무루의 상응ㆍ불상응이다.
‘나머지는 아홉’이란 그 밖의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는 아홉 가지 법을 경계로 한다는 것이다. 무위의 무기는 제외된다. 이것을 지해(智解)라고 말한다.
028_0385_c_11L 有漏智有十
因果境界六
解脫智一法
道二謂餘九
有漏智有十者有漏智是等智彼一 切十法境界一切法境界故因果境 界六者苦智及習智是境界六法界相應不相應解脫智一法者滅智 境界一法唯無爲善道二者道智境 界二法有爲無漏相應不相應謂餘 九者餘盡智無生智是境界九法其無爲無記是謂智解
028_0386_a_02L자신의 지(地)의 번뇌는
반드시 자신의 지를 소사(所使)한다.
일체에 두루하는 것과 이들 종류[種]는
그 유(類)에 따라 존재한다.

‘자신의 지의 번뇌는 반드시 자신의 지를 소사한다’고 함은 욕계의 모든 번뇌는 욕계에 대하여 번뇌를 부리고[所使]하고, 범세(梵世)의 모든 번뇌는 범세에 대하여 번뇌를 부린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상비비상처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알아야 한다.
‘일체에 두루하는 것과 이들 종류는 그 유에 따라 존재한다’고 함은 일체에 두루하여 통하는 것과 일체에 두루하여 통하지 않는 것의 모든 번뇌는 종류에 따라 번뇌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일체에 두루하여 통하는 것은 또한 다른 종류도 있다. 마치 신견을 견고로써 끊는 경우, 이 가운데 고제로써 끊어야 할 것으로서 일체의 번뇌에 부림을 받는 것과 아울러 견습으로써 끊어야 할 것으로서 일체에 통하는 것이 있다. 마찬가지로 또한 명근(命根)의 사유단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사유로써 끊어야 할 일체의 것으로서 번뇌에 부림을 받는 것과 아울러 일체에 통하는 것이 있다.
028_0385_c_21L 自地煩惱定
所使於自地
一切遍是種
隨在於彼類
自地煩惱定所使於自地者欲界諸 煩惱所使於欲界梵世諸煩惱所使 於梵世如是至非想非非想處盡當 一切遍是種隨在於彼類者通一 切遍不通一切遍諸煩惱所使隨種 通一切遍亦他種如身見見苦斷中苦諦所斷一切使所使及見習斷 通一切如是至命根思惟斷此思惟 所斷一切所使及通一切

삼계의 번뇌가 정한 것은
반드시 삼계에 있다.
두 가지 계는 마땅히 알아야 하니
하나의 계도 역시 그러하다.

‘삼계의 번뇌가 정한 것은 반드시 삼계에 있다’고 함은 말하자면 법이 삼계에 포섭되는 것은 결정코 삼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삼계는 일체 사(使)의 소사이다. 마치 의근이 반드시 삼계에 있고 이 중에서 일체 사의 소사인 것과 같다.
‘두 가지 계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고 함은 말하자면 법이 두 가지 계에 포섭되는 것은 두 가지 계에서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두 가지 계의 일체 사의 소사로서, 계에 따라 얻을 수 있다. 각(覺)ㆍ관(觀)이 반드시 욕ㆍ색계에 있고, 이 중에서 욕ㆍ색계의 일체 사의 소사인 것과 같다.
‘하나의 계도 역시 그러하다’고 함은 말하자면 법이 결정적으로 하나의 계에 있는 것은 이 중에서 하나의 계의 일체 사의 소사라는 것이다. 마치 우근(憂根)이 반드시 욕계에 있고, [이 중에서] 욕계의 일체 사의 소사인 것과 같다.
028_0386_a_09L 三界煩惱定
定在於三界
二界應當知
一界亦復然
三界煩惱定定在於三界者謂法三 界所攝是定在於三界此中三界一 切使所使如意根定在三界此中一 切使所使二界應當知者謂法二界 所攝是定於二界此中二界一切使 所使隨界可得如覺觀定在欲色界此中欲色界一切使所使一界亦復 然者謂法定在一界此中一界一切 使所使如憂根定在欲界一切使所使
028_0386_b_02L
여기에 부처님께서는 계경을 말씀하시어
모든 법을 드러내 보여 주셨다.
식(識)과 지(智)와 모든 사(使)의
세 가지 문(門)을 분별한다.

여기에 부처님께서는 계경 중에 모든 법을 말씀하시어 이를 세 가지 문에 응하여 분별하였으니, 식문과 지문과 사문이다. 그것은 마치 욕유 중의 다섯 가지 근(根)의 대상은 6식으로 식별하며, 색계는 네 가지 식(識)으로서 비식ㆍ설식을 제외한 것이고, 상응ㆍ불상응이므로 일곱 가지 지(智)22)로 알고[知], 다섯 가지이므로 욕ㆍ색계의 사(使)의 소사(所使)인 것과 같다.
028_0386_a_20L 此佛說契經
顯示於諸法
識智及諸使
分別此三門
此佛契經中若說諸法是三門應分 識門智門使門如欲有中五根義 是六識識色界四識除鼻識舌識應不相應故七智知五種故欲色界 使所使

9. 잡품(雜品)
028_0386_b_04L雜品第九
이미「계경품」을 설명하였으니, 이제「잡품」을 설명하겠다.

이미 상응에 따라
하나하나 법을 분별하여 설명하였다.
위에서의 여러 복잡한 뜻을
이제 간단하게 설명하니 잘 들으라.

유연(有緣)과 또한 상응과
유행(有行)과 혹은 의(依)와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은
동일한 의미를 말한 것이다.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은 그 이름에 차별이 있다. 일체의 행은 하나의 연이므로 유연이라고 한다. 또 서로 상응하므로 상응이라 하고, 경계에서 행하므로 행이라 하며, 의를 연유하여 생하므로 의라고 한다.
028_0386_b_05L已說契經品雜品今當說 已說隨相應
一一分別法
於上衆雜義
今略說善聽
有緣亦相應
有行或與依
心及心數法
是同一義說
心及心數法此名差別一切行一緣是故 說有緣更互相應故說相應境行故說行由依生故說依

연에 따라 생하는 것과 또한 인과
유인(有因)과 유위와
설처(說處)와 유도로(有道路)와
유과(有果)라고 마땅히 알아야 한다.

유위법 중에 이들 이름의 차별이 있다. 연을 의지하기 때문에 연이라고 하고, 다른 것을 일으키므로 인이라고 한다. 인을 의지하므로 유인이라고 하고, 만드는 것을 의지하고 있으므로 유위라고 한다. 많은 방편의 선한 드러남이므로 처라고 하고, 과거ㆍ미래ㆍ현재의 길에 의지하므로 도로라고 한다. 과를 움직여 이루는 것이므로 유과라고 한다.
028_0386_b_12L 從緣生亦因
有因及有爲
說處有道路
有果應當知
有爲法中此名差別由依緣故說緣 生他故說因由依因故說有因由依 造有故說有爲多方便善顯現故說 依過去未來現在道路故說道路 有轉成果故說有果
028_0386_c_02L
유악(有惡)과 또한 은몰(隱沒)과
예오(穢汚)와 하천(下賤)과 흑이다.
선유위(善有爲)와 습(習)이며
또한 수학(修學)이라고 이름한다.

‘유악과 또한 은몰과 예오와 하천과 흑이다’고 함은 불선과 은몰 무기법에 이들 이름의 차별이 있다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무리 중에 서므로[立] 유악이라고 하고, 번뇌에 덮이므로 은몰이라고 한다. 번뇌의 때가 더러우므로 예오라고 하고, 평범하고 비천하므로 하천이라고 하며, 지혜가 없이 어둡고 어지러우므로 흑이라고 한다.
‘선유위와 습’이란 선의 유위법에 이들 이름의 차별이 있다는 것이다. 혜 중에서 생하므로 선이라고 하고, 행할 때에 능히 공덕을 얻고, 행할 수 있으므로 습과 수라고 한다.
028_0386_b_19L有惡亦隱沒
穢污下賤黑
善有爲及習
亦復名修學
有惡亦隱沒穢污下賤黑者不善及 隱沒無記法此名差別不可說輩中 立故說有惡煩惱所覆故說隱沒惱垢污故說穢污凡鄙故說下賤智闇亂故說黑善有爲及習者善有 爲法此名差別慧中生故說善行時 能得功德及可行故說習及修
이미 심상응행을 설명하였으니, 이제 심불상응행을 말하겠다.

무사상(無思想)과 두 가지 정(定)과
또한 중생의 종류와
구신(句身)과 미(味)ㆍ명신(名身)과
명근(命根)과 법득(法得)이며

범부 본성의 소유와
모든 법의 네 가지 상(相)으로서
색이 아닌 것의 불상응인 것이 있으니
이를 유위행이라고 말한다.
028_0386_c_05L已說 心相應行心不相應行今當說 無思想二定
亦衆生種類
句身味名身
命根與法得
凡夫性所有
及諸法四相
非色不相應
說是有爲行

‘무사상(無思想)’이란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나서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두 가지 정’이란 무상정(無想定)과 멸진정이니, 무상정은 생사를 싫어하는 해탈상으로서 제4선(第四禪)을 통하여 마음의 상속(相續)이 일시 끊어지는 것을 말한다. 멸진정은 수고롭고 힘쓰는 것을 싫어하는 식지상(息止想)으로서 비상비비상처를 통하여 마음의 상속이 일시 끊어지는 것을 말한다.
‘중생의 종류[衆同分]’란 처에 생한 뒤에 이 처에서 생하는 중생의 의(依)와 마음이 서로 비슷한 것이다.
‘구’란 이름이 모여 말하게 되는 것이니, 마치 행하는 것이 영원하지 못하여 흥하고 쇠하는 법이라는 것과 같다.
‘미(味)’란 구(句)가 모여 이루어진 것이니, 자세히 말하면 게(偈)와 계경과 같다.
‘명’이란 자(字)가 모여 뜻을 말하는 것이니, 마치 ‘상(常)’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028_0386_c_09L 無思想者生無想天心心數法不起 二定者無想定滅盡定無想定名厭 於生死解脫想由第四禪心相續一 時斷滅盡定名厭於勞務息止想非想非非想心相續一時斷亦衆生 種類者生處已生於此處衆生依及 心相似句者名會所說如所行非常 謂興衰法味者句會事廣說如偈及 契經名者字會說義如說常
‘명근’이란 근(根)과 대(大) 등이 상속하여 끊이지 않는 것이다.
‘득’이란 모든 법을 성취하여 버리지 않는 것이다.
‘범부의 본성(凡夫性)’이란 바르게 깨달아 여의는 성인의 법을 아직 취하지 않은 것으로, 이는 범부 본성의 소유이다.
‘네 가지 상’이란 생(生)ㆍ주(住)ㆍ노(老)ㆍ무상(無常)이다.
‘색이 아닌 것’이란, 이들 온갖 법으로서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것은 색이 아닌 것이고 색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상응’이란 연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유위행이라고 말한다’고 함은 유위가 짓는 것이므로 유위행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028_0386_c_18L命根者 根及大等相續不斷得者成就諸法 不捨凡夫性者未取正證離聖法凡夫性所有四相者無常色者此一切諸法如上所說非色非 色所攝不相應者無緣故說是有爲 行者有爲造故說有爲行
028_0387_a_02L【문】이 중 몇 가지가 선이고, 몇 가지가 불선이며, 몇 가지가 무기인가?

【답】선은 두 가지이고, 다섯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일곱 가지는 마땅히 무기이다.
둘은 색계에 있다고 알아야 하고
하나는 무색지(無色地)에 있다.

‘선은 둘이다’고 함은 무상정과 멸진정을 말한다.
‘다섯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함은 득ㆍ생ㆍ노ㆍ주ㆍ무상으로서 선 중에 있는 것은 선, 불선 중에 있는 것은 불선, 무기 중에 있는 것은 무기라는 것이다.
‘일곱 가지는 마땅히 무기이다’고 함은 무상천(無想天)ㆍ중생의 종류ㆍ구(句)ㆍ미(味)ㆍ명(名)ㆍ명(命)ㆍ범부 본성의 소유라는 일곱 가지가 무기라는 것이다.
028_0386_c_24L此中幾 幾不善幾無記 善二三種五
七應是無記
二在色當知
一在無色地
善二者無想定滅盡定三種五者 無常善中善不善中不善記中無記七應是無記者七無記想天衆生種類凡夫性所
【문】이 중 몇 가지는 욕계에 매이고, 몇 가지는 색계에 매이며, 몇 가지는 무색계에 매이는가?
【답】두 가지는 색에 있고 하나는 무색지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둘은 색에 있다’고 함은 무상정과 무상천은 색계라는 것이다.
‘하나는 무색지에 있다’고 함은 멸진정은 무색계에 있다는 것이다.
028_0387_a_09L此中幾欲界繫幾色界繫幾無 色界繫二在色當知一在無色地 二在色當知者無想定及無想天是 色界一在無色地者滅盡定在無色界

두 가지 계에는 셋을 말하고
나머지는 삼계에 있다.
유루ㆍ무루인 것은 다섯 가지가 있고
그 나머지는 반드시 유루이다.

‘두 가지 계에는 셋을 말한다’고 함은 구(句)ㆍ미(味)ㆍ명(名)은 욕계에 있고 또한 색계에 있다는 것이다. 무색계에 있는 것은 아니니, 언어를 떠났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삼계에 있다’고 함은 중생의 종류ㆍ명(命)ㆍ득ㆍ범부성의 소유 및 네 가지 상(相)은 모두가 삼계에 있다는 것이다.
028_0387_a_12L 二界說於三
謂餘在三界
有漏無漏五
其餘定有漏
二界說於三者名亦在欲界亦 在色界非無色界離言語故謂餘在 三界者衆生種類凡夫性所有 及四相通在三界
【문】이 중 몇 가지는 유루이고, 몇 가지는 무루인가?
【답】‘유루ㆍ무루인 것은 다섯이다. 그 나머지는 반드시 유루이다.’ 다섯이란 득ㆍ생ㆍ노ㆍ주ㆍ무상으로서, 유루 중에 있는 것은 유루이고 무루 중에 있는 것은 무루이다.
‘그 나머지는 반드시 유루이다’고 함은 말하자면 나머지 일체는 반드시 유루라는 것이다.
【문】이들 성인의 법을 여읜 것을 임시로 범부라고 이름하니, 삼계 중의 무기이다. 이것은 어떻게 하여 버리고, 어떻게 하여 끊는가?

【답】처음 무루심 중에서
성인은 성취하지 않고 버린다.
범부는 모든 세계에서 떠돌다가
욕을 여읠 때에는 모두 멸진한다.
028_0387_a_18L此中幾有漏無漏答曰有漏無漏五其餘定有漏無常在有漏中有漏無漏中無漏其餘定有漏者謂餘一 切定有漏此離聖法假名凡夫界中無記此云何捨云何斷 初無漏心中
聖不成就捨
凡夫流諸界
離欲時滅盡
028_0387_b_02L
‘처음 무루심 중에서 성인은 성취하지 않고 버린다’고 함은 제일무루심 중에서 성인의 법을 얻을 때 득(得)은 성취되지 않고 버려진다는 것이다.
‘범부는 모든 세계에서 떠돈다’고 했는데, 모든 세계를 떠돌면서 이른바 처소에서 목숨이 끊어지면 그 처소를 버리는 것이며, 처소에서 생하면 그 처소에서 얻는 것이니, 무기이기 때문이다.
‘욕을 여읠 때에 멸진한다’고 함은 이른바 경지[地]를 말하는 것으로서, 범부의 소유로서 만약 이 경지에서 욕을 여의면 그때에 범부성을 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심불상응행을 설명했으니 이제 무위를 설명하겠다. 세 가지 무위법이 있으니, 수연멸(數緣滅)23)과 비수연멸(非數緣滅)24)과 허공이다. 그 중에서 수연멸은 모든 번뇌에서 해탈하는 것이다. 수연멸에 의해 유루법은 번뇌를 여의고 해탈한다. 수연력(數緣力)ㆍ지력(智力)은 일을 계교한다 해도 무(無)이니, 이것을 수연멸이라 한다. 걸림이 없는 모습을 이름하여 허공이라고 하니, 말하자면 색을 장애하지 않는 것이 허공이다.
028_0387_b_02L 初無漏心中聖不成就捨者第一無漏 心中得聖法時得不成就捨凡夫流 諸界者流諸界時謂處所命終此處 所捨謂處所生彼處所得無記故欲時滅盡者謂地凡夫所有若此地 離欲爾時得滅凡夫性已說心不相 應行無爲今當說三無爲法數緣滅 非數緣及虛空於中數緣滅者解脫 諸煩惱依於數緣滅有漏法離煩惱 解脫數緣力智力計挍事有而無名數緣滅無罣㝵之相是名曰虛空 謂不障㝵色是虛空

모든 법은 여러 가지 연으로 일어나고
또한 의(依)와 연을 따른다.
갖추지 않으면 생하지 않나니
이러한 멸은 명(明)이 아니다.

일체의 유위법은 여러 가지 연을 따라 생하나니, 연이 없으면 곧 생하지 않는다. 안식이 눈에 의지하고 색에 의지하고 공간[空]에 의지하고 밝음에 의지하고 땅에 의지하고 적연(寂然)에 의지하는 것과 같다. 이들 일체가 함께 화합하면 다시 생함을 얻는다. 나머지가 갖춰지지 않으면 다시 생함을 얻지 않나니, 눈의 경우와 같다. 눈이 모든 순간에 생한다 해도 그때 이들 나머지 일이 갖춰지지 않으면 안식은 생함을 얻을 수 없다. 그 안식이 생해야 하는데도 생하지 않으면 눈이 이미 생해도 결국 다시 또 생하지 않으니, 이 연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것이 있어도 미래에 다시 당연히 생하지 않으니, 그 갖춰 일어나는 것이 잘못되고 멀어 화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수연멸이다. 이와 같은 일체의 행을 모두 다 알아야 한다.
이미 무위를 설명하였으니, 이제 인을 설명하겠다.
028_0387_b_14L 諸法衆緣起
亦從依與緣
不具以不生
此滅非是明
一切有爲法從衆緣而生無緣則不 如眼識依根依色依空依明依地 依寂然若此一切共和者便得生餘不具便不得生如眼時眠一切時 爾時是餘事不具眼識不得生彼眼識應當生而不生眼生已終不 復更生離此緣故是有未來不復當 彼起具差違不和是非數緣滅是一切行盡當知已說無爲因今當
028_0387_c_02L【문】유위법은 인이라고 말한다. 이 중에서 어떻게 하여 인이 되는 것이고, 무엇의 인이라고 하는 것인가?

【답】앞의 인(因)은 상사(相似)와 증(增)이며
혹은 함께 의지하여 생한다.
두 가지 인과 하나의 연은
오로지 이미 생한 것이라고 말한다.
028_0387_c_03L有爲法說是因此中云何因爲誰因 前因相似增
或俱依倚生
二因及一緣
一向已生說

‘앞의 인은 상사와 증이다’고 함은 앞에서 생한 법은 뒤에 생하는 것의 상사인과 전증(轉增)이라고 하는 것이다. 연약한 선[軟善]은 자신의 경지에서 연약한 선의 인과 중간의 인, 위의 인이다. 그리고 중은 중간에서의 인이고, 위의 인이며, 위는 오직 위의 인인 것과 같다. 법을 행할 때에는 머무는 것이 있고 더하는 것이 있어도 끝내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연약한 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혹은 함께 의지하여 생한다’고 함은 혹 인이 함께 생하는 것이 상응인과 공유인과 같다는 것이다.
‘두 가지 인과 하나의 연은 오로지 이미 생한 것이라고 말한다’고 함은 자연인으로서 이미 생한 것은 당연히 인이고 생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의 것은 뒤에 것의 인이다. 생하지 않은 것에는 앞뒤가 없다. 만약 있다고 하면 수시로 생하고 인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 다만 그렇지 않으므로 있지 않은 것이다. 일체변인도 또한 이와 같으며 차제연도 역시 [그러하다].
028_0387_c_05L前因相似增者前生法後生相似因 轉增如濡善於自地濡善因及中因 上因中於中因及上因上唯上因法時有住有增終不減以是故非爲 濡因或俱依倚生者或因俱生如相 應因及共有因二因及一緣一向已 生說者自然因已生當言因非不生 前者後因未生者無前後若爲有者 應隨時生不從因但不爾是故不有 一切遍因亦如是及次第緣
028_0388_a_02L【문】이들 보(報)는 중생의 범주인가, 비중생의 범주인가?
【답】보는 중생의 범주이다. 보란 중생에 속한 법 가운데서 말하고 중생에 속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중생의 범주는 공유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요, 비중생의 범주는 공유이므로 보가 아니다.
【문】이것의 과법(果法)은 무엇인가?
【답】유위와 해탈과이다. 일체 유위법의 본성은 과의 소유이니, 인연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무위의 해탈과는 또한 도과(道果)라고 말해야 한다.
【문】유연법(有緣法)은 어떻게 연을 행하는가?
【답】유연인 것은 함께 갖추는 것이다. 유연법은 상응이고 함께 갖추는 것이니, 하나의 연 중에서 행하여 떠나지 않는 것이다.
【문】어느 곳에서 행하는가?
【답】다른 경계에서 행한다. 다른 경계 중에서 행하므로 자성(自性)은 아니다. 자기를 떠나 행하나니 차별을 연하기 때문이다.
028_0387_c_15L謂此 報者爲是衆生數爲非衆生數 報是衆生數報者衆生數法中說不衆生數所以者何衆生數者不共 非衆生數共有是故非報是果 法云何有爲解脫果一切有爲法 性果所有由因緣故無爲解脫亦應 說道果有緣法云何行緣有緣 共俱有緣法是相應是共俱一緣 中行不別何處行行於他境界 他境界中行非自性離自行及緣差 別故
【문】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에는 처소가 있다고 하는가, 처소가 없다고 하는가?
【답】처소가 없다. 그것은 왜냐하면 보인(普因)이기 때문이다. 보인이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생한다. 두 개의 눈으로 인하여 하나의 식을 생한다. 만약 머무는 곳이 있으면 마땅히 하나의 눈 중에 머물러야 하니, 하나의 식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두 번째의 눈은 마땅히 색을 보지 못해야 하지만 본다. 그러므로 하나의 눈 중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일체를 모두 다 알아야 한다. 만약 이와 같다면 그 때문에 머무는 곳이 없는 것이다.
【문】세존께서 설하신 바 심해탈은 무엇인가? 심해탈은 과거라고 하는가, 미래라고 하는가, 현재라고 하는가?
【답】생겨날 때에 해탈하니, 도가 일어날 때에 해탈하는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도가 생할 때에 모든 번뇌가 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겨날 때에 해탈한다고 한다.
【문】도가 생할 때에 번뇌를 끊는 것인가?

【답】도가 멸할 때에 결박을 멸한다는 것은
밝은 지혜 지니신 분의 말씀이다.
028_0388_a_04L心心數法爲有處所爲無處 無處所所以者何普因故普因 生心心數法因二眼生一識若有住 處者應住一眼中一識故若爾者二眼不應見色而見是故非一眼中 如是一切盡知若如是者以是故 無住處世尊說心解脫云何心解 爲過去爲未來爲現在生時而 解脫道生時解脫所以者何道生時 諸煩惱滅是故生時解脫道生時 斷煩惱爲不 道滅時滅結
明慧之所說

도가 멸할 때에 모든 번뇌를 끊고, 생할 때에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왜냐 하면 도가 생할 때란 바로 미래이니, 미래의 도란 일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애도가 멸할 때에 번뇌가 끊어지고, 해탈도가 생할 때에는 해탈한다.
【문】세존께서 유애(有愛)ㆍ무유애를 말씀하셨다. 유애는 몇 가지이고, 무유애는 몇 가지인가?

【답】유애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며
무유는 오직 하나의 모습뿐이다.
028_0388_a_15L 道滅時斷諸煩惱非生時所以者何 道生時是未來未來道者不能行事 以是故無㝵道滅時斷煩惱解脫道 生時解脫世尊說有愛無有愛愛幾種無有幾種 有愛有五種
無有獨一相
028_0388_b_02L
‘유애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유애란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애착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다섯 가지이니, 견고단ㆍ견습ㆍ멸ㆍ도단ㆍ사유단이다.
‘무유는 오직 하나의 모습이다’고 함은 무유애는 이미 끊음을 보고 끊음을 즐거워하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것을 무유애라고 하는데 이는 한결같이 사유단뿐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견에 따르는 애는 사유단이기 때문이다. 이는 움직이거나 행하여 상속하지 않는 중의 애이고 애의 견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유단이라는 것이다.
028_0388_a_21L 有愛有五種有愛名於生不生物若 是名有愛此五種有苦斷見習滅 道斷及思惟斷無有獨一相者無有 愛名已見斷樂於斷是名無有愛一向思惟斷所以者何從見愛思惟 此是不轉行相續中愛非愛見故思惟斷
【문】세존께서는 삼계를 말씀하시니, 단계(斷界)ㆍ무욕계ㆍ멸계이다. 이것은 어떠한 모습인가?

【답】애(愛)와 처(處)와 나머지 번뇌를 멸하면
삼계를 (벗어난다).

갈애를 끊으면 이는 무욕계이고, 처(處)를 끊으면 멸계이며, 나머지 번뇌를 끊으면 단계이다.
028_0388_b_05L世尊說三界斷界無欲 滅界此何相 愛處餘煩惱
滅盡是三界
愛斷是無欲界處斷是滅界餘煩 惱斷是斷界
【문】열 가지 마음[心]이 있다. 욕계의 선(善)ㆍ더러움ㆍ무기와 색계의 선ㆍ더러움ㆍ무기와 무색계의 선ㆍ더러움ㆍ무기 및 무루이다. 이러한 마음은 몇 가지가 더러운 마음 중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고, 몇 가지가 선한 마음 중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며, 몇 가지가 무기심 중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인가?

【답】더러운 마음은 열 가지를 얻는다는 것은
바르게 깨달은 분의 말씀이다.
선한 마음 중에서 여섯을 얻으며
무기는 곧 무기이다.
028_0388_b_09L十心欲界善穢污無記色界善穢污無記無色界穢污無記及無漏此心幾穢污心 中可得幾善心中可得幾無記心 穢污心得十
正覺之所說
善心中得六
無記卽無記

‘더러운 마음은 열 가지를 얻는다는 것은 바르게 깨달은 분의 말씀이다’고 함은 더러운 마음 중에서는 일체 열 가지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다. 계(界)와 지(地)가 돌아올 때에 삼계의 선ㆍ더러움과 무기를 이 마음은 모두 얻으며, 물러갈 때에는 무루를 얻는다.
‘선한 마음 중에서 여섯을 얻는다’고 함은 선한 마음 중에서는 여섯 가지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다. 곧, 욕계에서 선하게 구하고 배워 얻는 것으로, 신(身)ㆍ구(口)의 행과 변화하는 마음인 무기와 색계의 선과 변화하는 마음인 무기와 무색계의 선한 마음과 무루이다.
‘무기는 곧 무기이다’고 함은 무기심은 오직 무기를 얻는다는 것이니, 열등하기 때문이다.
028_0388_b_15L 穢污心得十正覺之所說者穢污 心中得一切十心界及地來還時 三界善穢污及無記此心一切得 退時得無漏善心中得六者善心 中得六心欲界善求學得及身口 亦變化心無記色界善變化心 無記無色界善心及無漏無記卽 無記者無記心唯無記以劣故
028_0388_c_02L【문】앞에서 이미 도품의 열 가지 법을 설명했는데, 이 가운데 몇 가지가 근의 본성을 소유하고, 몇 가지는 근이 아닌 것인가?

【답】도품에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것이 근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가운데 여섯 가지 법은 근의 본성을 소유하니, 믿음을 첫째로 하는 다섯 가지 근25)과 희(喜)이다. 나머지는 근이 아닌 것의 소유이다.
028_0388_b_23L 前已說道品十法此中幾根性所 幾非根 道品有六法
當知是爲根
此中六法根性所有信首五根及喜 餘者非根所有
【문】모든 법은 자성과 서로 호응하는가, 타성과 서로 호응하는가?

【답】모든 법에 대하여 서로 호응하나니
이것을 타(他)라고 한다.

모든 법은 타성과 서로 호응하고 자성과는 서로 호응하지 않는다. 자성은 자성을 동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028_0388_c_05L諸法爲自性相應 爲他性相應於諸法
是說謂爲他
諸法他性相應不自性非爲自性於 自性伴
【문】이들의 해탈은 어떠해야 하는가?

【답】연(緣) 중에서 결박을 푼다는 것이
대선(大仙)께서 하신 말씀이다.

모든 번뇌는 대상에 대한 어리석음이다. 즉 그가 어리석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연 중의 결박은 곧 그 가운데에서 풀어진다. 서로 호응하는 것으로는 서로 호응하는 것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공하기 때문이다.
028_0388_c_08L若此解脫當云何緣中 解於縛
大仙人所說
諸煩惱於緣中 愚卽彼不起愚緣中縛卽於中解可以相應解相應所以者何以空故
【문】만약 끊으면 즉 이는 해탈과 다르다고 하는가?
【답】이처럼 만약 해탈한다면 곧 그것이 끊어진 것이다.
【문】끊어도 해탈한 것이 아닌 경우가 있는가, 없는가?
【답】있다. 끊고 나서도 본래대로 결박인 경우이니, 견도와 사유가 그것이다.
고지(苦智)는 이미 생하고 습지가 아직 생하지 않았으면, 견고에서 끊어야 할 번뇌가 끊어져도 견습에서 끊어야 할 번뇌에 매인다. 이와 같이 사유에서 끊어야 할 일체의 종류도 그러하니, 다시 서로 연(緣)이 되기 때문이다.
028_0388_c_11L 若斷卽是解脫爲異如是若解 脫者卽是斷頗斷非解脫不斷已故縛見道及思惟苦智已生習 智未生見苦所斷煩惱斷而見習所 斷煩惱縛如是思惟所斷一切種互相緣故
【문】네 가지 진제를 보고 어떻게 불괴정(不壞淨)을 얻는가?

【답】둘은 3제(諦)를 이해하고
넷은 바른 도를 봄으로써
깨끗한 믿음을 일으키나니
두 세계에서 닦고 익혀야 한다.

‘둘은 3제를 이해한다’고 함은 고ㆍ습ㆍ멸을 관찰하여 법에서 불괴정을 얻는다는 것이다. 즉 고지(苦智)ㆍ습지ㆍ멸지와 서로 호응하는 믿음이니, 이를 불괴정이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이것과 성계(聖戒)를 얻는다.
‘넷은 바른 도를 봄으로써 깨끗한 믿음을 일으킨다’고 함은 도를 볼 때 함께 네 가지를 얻는다는 것이다.
028_0388_c_17L見四眞諦云何得不壞 二解於三諦
四由見正道
興起淸淨信
修習於二世
二解於三諦者觀苦習滅得於法不 壞淨苦智習滅相應信是名不壞淨得是及聖戒四由見正道興起淸淨 信者見道時具得四
028_0389_a_02L【문】어느 세계에서 닦는가?
【답】수습은 두 가지 세계에서 [일어난다]. 모든 법은 두 가지 세계에서 닦나니, 현재는 행수(行修)26)이고 미래는 득수(得修)이다.
【문】마음과 함께 행하는 법은 무엇인가?

【답】일체의 마음에 속한 법[心數法]은,
이를 마음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의 모습과 나머지 법과
작용에 대해서도 또한 알아야 한다.
028_0388_c_24L幾世修習於二世諸法修於二世現在修行 未來者得修心共行法云何 一切心數法
說是心共行
此相及餘法
作亦應當知

‘일체의 마음에 속한 법은, 이를 마음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고 함은 마음에 속한 법은 모두가 마음과 함께 행한다는 것으로, 마음과 가깝기 때문이다.
‘이것의 모습’이란, 이 마음에 네 가지 모습이 있다는 것이니, 생ㆍ주ㆍ노ㆍ무상이며, 또한 마음과 가깝기 때문이다.
‘나머지 법’이란 나머지 마음에 속한 법의 모습도 역시 마음과 함께 행한다는 것이다.
‘작용에 대해서도 또한 알아야 한다’고 함은 무교(無敎)의 계(戒)를 말하니,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028_0389_a_05L 一切心數法說是心共行者一切心 數法說心共行心近故此相者此心 有四相無常亦心近故及餘 法者餘心數法相亦心共行作亦應 當知者無教戒如前說
【문】단법(斷法)은 어떤 것인가?
【답】끊어야 할 것은 모든 유루법이다. 일체의 유루법을 끊어야 하나니, 뒤섞이고 거칠기 때문이다.
【문】지법(知法)은 어떤 것인가?
【답】지와 여러 때 묻지 않은 유루 및 무루이니, 이 일체가 지법이다. 온갖 지혜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문】원법(遠法)이란 무엇인가?
【답】과거와 미래를 멀다고 하니, 사건을 변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근법(近法)이란 무엇인가?
【답】나머지를 근이라고 말한다. 즉 현재는 근이니, 사건을 변별하기 때문이다. 무위는 근이니, 빨리 얻기 때문이다.
028_0389_a_10L斷法云何 斷諸有漏法一切有漏法斷雜惡 知法云何知及諸無垢有漏 及無漏是一切知法一切智境界故 遠法云何過去未來是說遠不辦 事故近法云何餘說近現在近 辦事故無爲近速得故
【문】정법(定法)이란 무엇인가?

【답】무간(無間)의 구제할 수 없는 업과
모든 무루행을, 지혜 있는 분께서
정해졌다고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무간업27)은 결정코 지옥에 이르기 때문이요, 무루행도 역시 결정코 해탈과에 이르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028_0389_a_16L定法云何 無閒無救業
及諸無漏行
慧者說 是定
五無閒業是定必至地獄故漏行亦是定必至解脫果故餘不定
【문】견처(見處)란 무엇인가?
【답】견처란 반드시 유루이다. 일체의 유루법은 견처이니, 다섯 가지 견28)의 처소이기 때문이다.
【문】만약에 근을 성취한다면, 몇 가지 근을 성취하는 것인가?

【답】열아홉 가지 근이 있다고 말하니,
성취가 가장 많은 것이다.
작은 성취의 최대는 여덟이라는 것이
근을 밝게 깨달은 이의 말씀이다.
028_0389_a_19L 見處云何見處必有漏一切有 漏法見處五見處所故若成就根 是成就幾根 說有十九根
謂成就極多
少成就極八
曉了根所說
028_0389_b_02L
‘열아홉 가지 근이 있다고 말하니, 성취가 가장 많은 것이다’고 함은 열아홉 가지 근의 성취가 가장 많다는 것이다. 2형(形)29)과 근을 갖춘 자가 욕을 아직 여의지 못하고 진리를 보는 것과 같다.
‘작은 성취의 최대는 여덟이라는 것이 근을 밝게 깨달은 자의 말씀이다’고 함은, 여덟 가지 근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신근(身根)을 갖추지 못한 자가 선한 근을 끊는 것, 그리고 무색 가운데 생하는 범부와 같다.
028_0389_a_24L 說有十九根謂成就極多者十九根 成就極多如二形及具根者未離欲 見諦少成就極八曉了根所說者就八根如不具身根斷善根及生無 色中凡夫
【문】몇 가지의 갱락(更樂)이 있는가?
【답】다섯 가지이다.

증(增)과 유대(有對)와 무명과
처중(處中)과 명(明)의 갱락이다.
성도(聖道)에는 모두 두 가지가 있어
능히 흥기하여 과(果)를 이룬다.

의식과 상응하는 갱락은, 이를 증갱락(增更樂)이라고 한다. 5식(識)이 서로 호응하는 갱락은, 이를 유대갱락(有對更樂)이라고 일컫는다. 더러움의 갱락은, 이를 무명갱락(無明更樂)이라고 한다. 무루의 갱락은, 이를 명갱락(明更樂)이라고 한다. 유루의 더럽지 않은 갱락은, 이를 비명비무명갱락(非明非無明更樂)이라고 한다.
028_0389_b_06L幾種更樂五種 增有對無明
處中明更樂
聖道俱有二
能興起成果
意識相應更樂是說增更樂五識相 應更樂是謂有對更樂穢污更樂說無明更樂無漏更樂是說明更樂 有漏非穢污更樂是說非明非無明 更樂
【문】어떠한 도가 과를 얻는가? 무애도인가? 해탈도인가?
【답】성도에는 모두 두 가지가 있어 능히 흥기하여 과를 이룬다. 두 가지 도는 함께 과를 얻으니, 하나는 결박을 풀고, 둘은 해탈을 얻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도가 과를 이룬다.
【문】무착은 어떠한 마음에 머물러 반열반하는가?
【답】무착심 가운데서 무위열반을 얻는다. 무착은 일체의 일에서 만드는 것이 없고 하는 것이 없으며 머무름을 구하는 것이 없으니, 보심(報心)을 따라서 그 가운데서 반열반한다.
【문】몇 가지 유(有)가 있는가?

【답】생유(生有)와 사유(死有)와
근본유와 중유[中]이다.
028_0389_b_13L何等道德果爲無㝵道爲解 脫道聖道俱有二能興起成果二道 共得果一者解縛二者得解脫此二 道成果無著住何心般涅槃著心中得無爲涅槃無著一切事所作無爲無所求住從報心中便般 涅槃幾有 生有及死有
根本亦復中

‘생유’란 처음 생할 때의 음(陰)이니, 이것을 생유라고 한다.
‘사유’란 죽을 때의 음이니, 이것을 사유라고 한다.
‘근본유(根本有)’란 생유와 사유를 제외한 그 중간의 음이니, 이것을 근본유라고 한다.
‘중유(中有)30)’란 유에 이르는 바의 음이니, 이것을 중유라고 이른다.
028_0389_b_20L 生有者始生時陰是謂生有死有者 死時陰是謂死有根本有者除生有 及死有於其中閒陰是謂根本有有者有所至陰是謂中有
028_0389_c_02L【문】싫어함이 있고, 욕을 여읨이 있다고 말하는데, 무엇이 싫어함이고, 무엇이 욕을 떠나는 것인가?

【답】모든 지혜로서 고와 인에 있는 것과
이것의 인(忍)은 싫어함을 닦는다.
욕을 멸하고 무욕을 얻는 것은
널리 네 가지 중에 있다고 말한다.

‘모든 지혜로서 고와 인에 있는 것과 이것의 인은 싫어함을 닦는다’고 했는데, 지(智)와 인(忍)으로서 고ㆍ습을 연하는 것을 싫어함이라고 하니, 싫어하는 곳에서 행하기 때문이다.
‘욕을 멸하고 무욕을 얻는 것은 널리 네 가지 중에 있다고 말한다’고 함은 4제(諦) 중의 지와 인을 욕을 여의는 것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능히 욕탐을 끊기 때문이다.
028_0389_b_24L說有厭 有離欲云何厭云何離欲 諸智在苦因
此忍修於厭
滅欲得無欲
說普在四中
諸智在苦因此忍修於厭者若智及 忍緣苦習是說厭行厭處故滅欲得 無欲說普在四中者四諦中智及忍 說離欲能斷欲故

10. 논품
028_0389_c_08L論品第十

위의(威儀)와 위의가 아닌 것을
만약 여의었어도 다시 획득한다면
이 때문에 승(勝)에 이르지 못함이 [있는가?]
능히 결정될 수 있다면 답하라.

【답】있다. 무색에 따라 색을 일으킨다.

성과(聖果)를 얻을 때
일체의 모든 악을 떠나
유위의 정선법(淨善法)을
얻고 나서는 닦지 않음이 있는가?
028_0389_c_09L威儀不威儀
若離復獲得
不由此致勝
能決定者答
從無色生色 頗得聖果時
一切離諸惡
有爲淨善法
得已而不修

【답】있다. 물러날 때에 과거를 얻는다.

도가 흥기할 때에
아직 모든 악을 멀리 여의지 못했다면
해탈할 때에는 악을 여의는 일이 [있는가?]
이미 결정된 것이 있으면 대답해 주기 바란다.

【답】있다. 말하자면 미래의 닦음[修]31)이다.

광요(光曜)의 번뇌는
정해진 때에 흥기하고
청정한 초선 가운데에서
떨어지고 쇠퇴함을 획득하는 일이 [있는가?]
028_0389_c_14L 退時得過去 道者興起時
未遠離諸惡
解脫時離惡
願答已必定
謂當來願 頗光曜煩惱
興起於定時
淸淨初禪中
獲得墮衰退
028_0390_a_02L
【답】있다. 무착과의 수행과 훈수(勳修)이다.

견제도 중에서
모든 선한 법을 얻는 데에 이르면
이 법은 역시 연이 있어도
성자는 그 연을 보지 않는 일이 [있는가?]

【답】있다. 욕계 중에서 수행하는 등지이다.

혜의 유루과로서
깨끗한 공덕을 멀리 떠나고
마음에 따라 떠나지 않으면서
이 역시 그것의 과(果)인 것이 [있는가?]
028_0389_c_20L 無著果修及勳修 頗見諦道中
逮得諸善法
是法亦有緣
聖者不見緣
欲界中修行等智 頗慧有漏果
遠離淨功德
不離從於意
此亦是彼果

【답】있다. 욕계의 변화하는 마음이다.

무애도에 머물러
모든 멸을 성취하고
모든 번뇌의 그것에 따르는
무루견과 같은 것에는 아닌 것이 있는가?

【답】있다. 모든 도를 수학할 때이다.

묶이고 해탈하지 못함을
때 묻지 않은 자는 획득하고
그래도 번뇌를 끊지 않는
이런 때 묻지 않고 다하는 일이 있는가?
028_0390_a_03L 欲界變化心 頗住無㝵道
成就於諸滅
諸煩惱從彼
非如無漏見
修學諸道時 頗結不解脫
無垢者獲得
而不斷煩惱
謂此無垢盡

【답】있다. 광요(光曜)로부터 범천에 생할 때이다.

무루의 깨끗한 지(地)를
미증득(未曾得)으로 이미 얻는데
욕을 떠나지 않고 물러나는 것이 아닌
견도에 의하지 않음이 있는가?

【답】있다. 색욕을 떠나 깨달음을 취할 때에 무루무색의 사유도를 얻는다.

아직 모든 법을 얻지 않고
그래도 이 법을 체득한 채
그것을 버리지 않고 얻지 않는 일이 있는가?
만약 능히 아는 자는 답하라.

【답】있다. 나머지 초무루심품이니, 범부의 일을 버리는 나머지 무루의 공덕을 얻으며, 나머지 일체는 얻지 못한다.
028_0390_a_09L 從光曜中生梵天時 頗無漏淨地
未曾得已得
不離欲非退
不依於見道
離色欲取證時得無漏無色思 惟道 頗未得諸法
而逮得此法
不捨彼不得
若能知者答
有餘初無漏心品得餘無漏功德 捨凡夫事餘者一切不得
阿毘曇心論卷第四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범어로는 Brahmakāyika. 범중천(梵衆天)이라고도 한다.
  2. 2)범어로는 Brahmapurohita. 범보천(梵輔天)이라고도 한다.
  3. 3)범어로는 Anabharaka. 제4선의 첫 번째 천으로, 복애천(福愛天)이라고도 한다. 한편, 이 하늘 이상에서는 신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일이 없기 때문에 무운천(無雲天)이라고도 한다.
  4. 4)범어로는 sugati. 악취(惡趣, durgati)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른바 인간ㆍ신의 둘, 혹은 아수라ㆍ인간ㆍ신의 셋을 가리킨다.
  5. 5)무명과 행을 가리킨다.
  6. 6)생과 노사를 가리킨다.
  7. 7)식에서 유까지를 가리킨다.
  8. 8)허공[空]을 가리킨다.
  9. 9)신체 내의 위나 장 등의 빈 공간을 가리킨다.
  10. 10)범어로는 pratisaṁkhyā-nirodha. 택멸(擇滅)이라고도 한다.
  11. 11)율의단(律儀斷)ㆍ수호단(隨護斷)ㆍ수단(修斷)을 가리킨다.
  12. 12)정진ㆍ심ㆍ혜를 가리킨다.
  13. 13)정진ㆍ염ㆍ정ㆍ혜를 가리킨다.
  14. 14)신ㆍ정진ㆍ염ㆍ정ㆍ혜를 가리킨다.
  15. 15)정견ㆍ정사유ㆍ정어ㆍ정업ㆍ정명ㆍ정정진ㆍ정념ㆍ정정을 가리킨다.
  16. 16)택법ㆍ정진ㆍ희ㆍ지ㆍ염ㆍ정ㆍ호를 가리킨다.
  17. 17)범어로는 upoṣadha 혹은 poṣadha. 재계(齋戒)를 말한다.
  18. 18)안ㆍ이ㆍ비ㆍ설ㆍ신과 남녀의 근을 가리킨다.
  19. 19)희근ㆍ낙근ㆍ고근ㆍ호근의 넷을 가리킨다.
  20. 20)남녀의 근이 없는 존재를 말한다.
  21. 21)소연의 경계, 즉 대상을 가리킨다.
  22. 22)열 가지 지에서 미지지ㆍ도지ㆍ멸지를 제외한 것을 말한다.
  23. 23)범어로는 pratisaṁkhyā-nirodha. 택멸(擇滅)이라고도 한다.
  24. 24)범어로는 apratisaṁkhyā-nirodha. 비택멸(非擇滅)이라고도 한다.
  25. 25)신근ㆍ정진근ㆍ염근ㆍ정근ㆍ혜근의 다섯을 말한다.
  26. 26)이본에 의거해 원문의 수행(修行)을 행수(行修)로 고쳐 읽는다.
  27. 27)살모ㆍ살부ㆍ살아라한ㆍ출불신혈ㆍ파승의 5역죄(逆罪)를 가리킨다.
  28. 28)신견ㆍ변견ㆍ사견ㆍ견도ㆍ계도의 다섯을 가리킨다.
  29. 29)남녀의 근을 동시에 지닌 자를 가리킨다.
  30. 30)범어로는 antarā-bhava. ‘중간적 존재’라는 의미이다.
  31. 31)이본에 의거해 원문의 원(願)을 수(修)로 고쳐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