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諸經要集卷第十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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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19권
031_0255_c_01L諸經要集卷第十九


석도세 편집
031_0255_c_02L西明寺沙門釋道世 集


29. 송종부(送終部)[여기에는 아홉 개의 연(緣)이 있음]
031_0255_c_03L送終部第二十九 此有九緣

1) 술의연(述意緣)
031_0255_c_04L述意緣 瞻病緣
醫療緣 安置緣
斂念緣 捨命緣
遣送緣 受生緣
祭祠緣
述意緣第一
031_0256_a_02L대체로 삼계(三界)는 멀고도 넓으며 육도(六道)는 번성하게 일어나되 모두가 다 네 가지 요소에 의지하여 서로 도우며 다섯 가지 감관에 의하여 바탕을 이루지 아니함이 없다.
그것이 모이면 몸이 되고 흩어지면 공(空)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바람과 불은 그 성질이 다르고 땅과 물도 그 바탕이 달라서 각기 그 분수에 맞추어 모두 적합한 것을 구하려고 하지만 적합한 것을 구하는 도리[理]는 이미 어려운 일이다.
그런 까닭에 그 조화(調和)가 무너지기는 쉽고 하나의 요소[大]가 조화를 이 루지 않으면 네 개의 요소가 다 같이 손상된다.
가령 땅이라는 요소가 증장하면 그 형체가 꺼멓게 되고 살은 푸르스름하게 멍 이 들며, 그리하여 응어리가 맺히면 쇠처럼 되거나 돌처럼 된다.
만약 땅이라는 요소가 이지러지면 곧 사지(四支)가 연약하여 대부분 반쯤 몸을 잃게 되어 편고(偏枯)1)하게 되거나 비틀어지고 실명하게 되며, 듣는 것을 잃게 된다.
만약 물이라는 요소가 증장하면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몸에 화색(華色)이 없으며, 온몸이 늘어지고 황달기가 돌고 얼굴이 참담[慘憺]하며, 종아리에 붉으스레하게 종기가 나고 방광(膀胱)이 팽창하여 급박하게 된다.
만약 물이라는 요소가 크게 손상되면 몸이 말라 뼈대만 튀어나오며, 입술이 마르고 혀가 마르며, 귀가 타고 코가 막히며, 오장(五藏)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진액(津液)은 밖에서 다 없어지며, 육부(六腑)는 소모되어 스스로 존립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불이라는 요소가 증장되면 온몸에 번열이 나서 가마솥에 삶기는 것 같고 불에 타듯이 바짝 마르고 열이 나서 옹절(癰癤)ㆍ저종(疽腫)ㆍ창이(瘡痍)가 생겨 곪고 문드러져 피고름이 줄줄 흘러 넘치고 더러운 냄새로 가득 차게 된다.
만약 불이라는 요소가 크게 손상되면 온몸이 파리하게 마르고 육부와 오장이 얼음처럼 냉랭해지며, 삼초(三焦)가 막히고 엉겨 차디 차며, 입은 마치 서리를 머금은 것 같이 되어 더운 여름에 털가죽옷을 껴입어도 아예 더운 줄을 모르며, 무엇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고 항상 구역 (嘔逆 : 嘔吐)이 생긴다.
또 바람이라는 요소가 증장하면 숨이 차고 가슴이 막히며, 장부와 위(▼(月+胃))가 막히고 손과 발이 나른하고 힘이 없으며, 온몸이 아프고 마비된다. 만약 바람이라는 요소가 크게 손상되면 몸이 파리하고 수척하며, 움직이기만 하면 피로해지고 숨을 쉬는 것이 억지로 뽑아 내는 것 같으며, 기침이 나오고 트림과 딸꾹질이 나와서 목구멍과 혀가 몹시 긴급해지며, 헛배가 부르고 퉁은 구부러지며, 심장 속은 얼음과 같아지고 목의 힘줄과 목구멍의 맥이 세차게 고통치고 팽창한다.
이와 같은 갖가지 모습은 모두 네 가지 요소가 잠시 증가했거나 줄어들면서 질병이 일어나게 한다. 이미 하나의 요소가 쇠약해지면 곧 세 가지 요소가 다 고통을 받아 점점 바뀌어져서 모두 질병이 걸리게 되어 함께 괴로움을 받게 된 다.
네 개의 요소가 서로 배반하여 육부(六府)2)의 조절이 어려워지는 것은 진실로 전생에 쌓은 악한 업인(業人) 때문에 이제 와서 괴로운 과보를 당하는 것이다. 남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이 없고 자신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이 없으며, 은혜도 베풀 줄 모르고 의리도 없으며, 항상 네 계절[四時]에 따라 필요한 것을 자급(資給)받아 밤낮없이 기르는데도 일찍이 은혜를 갚은 적도 없었고 한편으로라도 이바지하여 받드는 것조차 상실하여 곧 질병의 고통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미 은혜를 베풀 줄 몰랐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부질없이 양육(養育)을 위해 애태우고만 있을 뿐이니, 비록 맛있는 음식과 화려한 의복을 더한다 하더라도 끝끝내 똥처럼 더러운 것만 이룩하고 말 것이다.
다만 나아가 사지의 몸을 얻어서 배고픔과 목마름만을 제거하되, 끝내 그대를 위해서 앞으로 나가며 축적(蓄積)하지 못하고 제 마음만 수고롭게 함으로써 도를 구하여 닦는 일을 폐지할 따름이다.
진실로 이 몸뚱이는 거짓되고 괴로운 그릇이요 음(陰 : 五陰)은 곧 술잔이나 병(甁) 같은 것이니, 손상하기는 쉽고 유지하기는 어려운 것으로서 그 처지가 물거품과 같다.
네 가지 요소는 부질없고 허망한 것인데도 궁극에는 서로 어기고 배반하며, 오음(五陰)은 그 인연이 임시로 이루어진 것이건만 괴로움과 걱정을 많이 자아 내게 한다.
그런 까닭에 인간 세계에 몸을 받아 이렇게 더럽고 혼탁한 때를 만나게 되었고, 색질[色]을 받아 이 몸뚱이가 되어 이렇게 두렵고 무서운 지경에 살게 되었나니, 깊숙하고 어두운 데는 한량없이 많고 귀신은 항하강 모래알처럼 많으며, 종족은 이보다 더더욱 많아서 풀이나 산가지[籌]로도 분별하지 못한다.
혹은 방에 의지하기도 하고 묘(廟)에 의지하기도 하며, 산악에 달라붙거나 구릉에 달라붙기도 한다. 무릇 심령(心靈)을 지닌 중생이면 모두 다 지기(地祇)의 메아리가 있게 되나니, 정신을 어둡게 만들고 의식과 사려를 혼몽하고 아득하게 하여 심지어는 자나깨나 공포만 많아진다.
바라건대 위태로운 곳에 임하여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으면 세 번의 저울질[三稱]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험난한 곳에 있으면서 편안함을 만난 격이니 어찌 천 번인들 수고롭다고 하겠는가? 원하는 것은 더욱더 신비한 도를 더하고 더 한층 위엄스런 빛을 구족하여 선으로써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서로 괴롭히거나 해치지 말기 바란다. 이 정성스런 말을 기록하면 신험(信驗)의 정조가 있을 것이다.
031_0255_c_10L夫三界遐曠六道繁興莫不皆依四大相資五根成體聚則爲身散則歸然風火性殊水質異各稱其分皆欲求適求適之理旣難所以調和乖爲易忽一大不調四大俱損地大增則形體𪒠黑肌肉靑淤癥瘕結聚如鐵如石若地大虧則四支尫多失半體偏枯殘戾毀明失聽水大增則膚肉虛滿體無華色擧身痿黃神顏慘怛長腳洪腫膀光脹急若水大損則瘦削骨立筋現脈沈舌乾燥耳鼻燋閉五藏內煎津液外六府消耗不能自立若火大增擧體煩鑊燋熱如燒癰癤疽腫瘡痍潰爛膿血流溢臭穢競充若火大損則四體羸瘠府藏冰冷焦隔凝寒若含霜夏暑重裘未嘗溫慰食不消恒常歐逆若風大增則氣滿胸塞府胃否隔手足緩弱四體疼痹若風大損則身形羸瘠氣裁如線動轉疲引息如抽咳嗽噫噦咽舌難急厭背軁心內若冰頸筋喉脈奮作鼓脹如是種種皆是四大乍增乍損致有病疾旣一大嬰羸則三大皆苦展轉皆病俱生前惱四大交反六府難調良由宿積惡因今遭苦報無愧無恥無恩無義常隨四時資給所須晝夜將養未曾荷恩片失供承便招病苦旣知無恩徒勞養育縱加羙食華服終成糞穢但趣得支身以除飢終不爲汝踵前蓄積以勞我心求修道寔由身僞苦器陰是坏甁損難持劇同泡沫四大浮虛極相乖五陰緣假多生惱患所以稟形人逢此穢濁之時受質爲身居斯怖畏之境幽冥無量神鬼恒沙種族尤草籌未辯或依房依廟附嶽附丘凡有含靈竝皆祇響致使神爽冥昧識慮昏茫至於寤寐多有恐怖庶得臨危攝念無俟三稱在嶮逢安寧勞千遍願增益神道加足威光以善利無相惱害誠言可錄信驗有徵矣

2) 첨병연(瞻病綠)
031_0256_b_08L瞻病緣第二
031_0256_c_02L오직 평범한 위치에 있는 사람치고 누군들 병이 없겠는가? 과보가 있는 몸이기 때문에 항상 질병에 걸리게 되나니, 혹은 세속을 버리고 출가한 이가 외롭게 다니다가 혼자서 묵을 때가 있기도 하고, 혹은 가난하고 병들고 늙고 연약한 이가 모시거나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도 한데, 그럴 때에 만약 서로 보살펴 주지 않으면 목숨을 장차 어디에 의탁하겠는가?
그러므로『사분율(四分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이 뒤로는 마땅히 병든 사람을 간호해야 하고 병든 사람을 돌보아야 하느니라. 만약 나에게 공양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먼저 병든 사람을 공양하라. 나아가 길에서 다섯 종류 대중으로서 출가한 사람이 병든 사람을 만나면 나 부처는 일곱 대중으로 만들어서 다 그들로 하여금 머물며 간호하게 할 것이니, 만약 그들이 버리고 돌보지 않는다면 모두가 죄를 짓는 것이 되리라.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의 마음이란 큰 자비(慈悲)로써 본체를 삼나니, 나의 말을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곧 부처님의 마음이니라.’”
『승기율(僧祈律)』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 길에서 출가한 다섯 종류의 대중으로서 병든 사람을 만나거든 곧 마땅히 탈 것을 찾아서 싣고 와야 하고 법대로 공양해야 하며, 나아가 죽었을 때에도 마땅히 사유(闍維 : 火葬)하여 묻어주어야 하고 버려 두어서는 안 되느니라.
병든 사람이 아홉 가지 법을 성취하면 반드시 횡사(橫死)하게 되느니라.
첫째는 요익(饒益)하지 못한 음식인 줄 알면서도 탐내어 먹는 것이요, 둘째는 양을 계산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며, 셋째는 먹은 음식이 미처 소화되기도 전에 또 먹는 것이요, 넷째는 음식이 아직 소화되지도 않았는데 들추어서 토해내는 것이며, 다섯째는 이미 소화된 것은 마땅히 나와야 하는데도 억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요, 여섯째는 음식을 병세에 따라 먹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병이 들어 먹는 음식에 그 양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며, 아홉째는 지혜가 없는 것이니라.’”[『약사경(藥師經)』같은 데에도 또한 구횡(九橫)3)의 내용이 있는데 그 대의 (大意)를 알 만하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병든 사람을 돌보는 이로서 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병이 낫지 않고 병자는 늘 평상이나 이부자리에 누워 있게 된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병든 사람을 돌보는 이가 좋은 약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요, 둘째는 게으르고 용맹스런 마음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늘 성내기를 좋아하고 또한 잠자기를 좋아하는 것이요, 넷째는 다만 옷과 음식만을 탐하기 때문에 병든 사람을 돌보아주는 것이며, 다섯째는 법으로써 공양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병든 사람과 더불어 함께 말을 주고 받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병든 사람을 돌보는 사람으로서 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병이 낫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앞의 다섯 가지 법을 뒤집으면 병은 빨리 낫게 된다.]
또 『생경(生經)』에서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사람이 마땅히 질병에 걸린 사람을 돌봐줄 때엔
모든 위험과 액난을 캐어 물어야 하나니
선과 악에는 꼭 보응(報應)이 있는 것이
마치 과일 나무를 심으면 꼭 결실을 얻는 것과 같아서이네.

세존은 곧 아버지가 되고
경법(經去)은 어머니가 되며
함께 배운 사람은 형제가 되나니
이것을 인 (因)하여 해탈할 수 있으리라.

또 『법구유경(法句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나라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현제(賢提)였다.
그 때 어떤 장로(長老) 비구가 오랫동안 병에 걸려 있어 몸이 매우 수척하고 야위었으며 더러운 때가 낀 초췌한 모습으로 현제의 정사(精舍) 안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그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부처님께서 오백 명의 비구를 데리고 그 곳으로 가셔서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다 함께 그를 돌보게 하시고 그를 위하여 미음을 쓰게 하셨다.
그런데 모든 비구들은 그 곳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고 다 함께 그를 천대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제석(帝釋)으로 하여금 끓는 물을 가져오게 하여 부처님의 금강수(金剛手)로써 병든 비구의 신체(身體)를 씻어 주셨다.
그러자 조금 뒤에 땅이 진동하며 할연(▼(害+各)然)히 크게 밝아졌으므로 모두들 놀라 숙연해지지 않는 이가 없었다. 국왕ㆍ신하ㆍ백성ㆍ하늘ㆍ용ㆍ귀신 등 무앙수 (無央數)의 중생들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드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에 가장 존경받는 분이시며 삼계(三界 : 欲界ㆍ色界ㆍ無色界)에서 비교할 수 없으신 분이시며, 도덕(道德)까지 이미 갖추신 분이신데 어찌하여 생각을 굽히시어 병든 비구를 씻어 주셨습니까?’
부처님께서 국왕과 그 모임에 모인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하신 까닭은 바로 이렇게 곤궁하고 재액이 있는데도 보호해줄 사람이 없는 이들을 위해서이니라. 병들고 수척한 사문과 도인을 공양하고 여러 가난한 이와 고독한 노인들을 공양하게 되면 그 복이 한량없어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뜻대로 되고 마침내는 도를 증득하게 되느니라.’
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이 비구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오랜 세월 동안 병에 시달리고 아무리 치료해도 낫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지나간 옛날에 어떤 왕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악행(惡行)이었습니다. 그의 치정(治政)은 너무도 가혹하고 포악하여 아주 힘센 오백을 거느린 군주(君主)를 시켜 그들로 하여금 사람들을 매질하게 하였습니다. 이 오백을 거느린 거짓 왕은 성을 내어 위협하면서도 사사롭게 춥고 더움[寒暑 : 속과 곁이 다름]이 있었습니다. 만약 매를 맞아야 할 사람이 값진 물건을 싸가지고 와서 그 물건을 얻게 될 경우에는 매질을 가볍게 하고 뇌물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는 매질이 중했으므로 온 나라 백성들이 근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한 어진 사람이 남의 모함을 당하여 매를 맞게 되었는데, 그가 오백을 거느린 군주에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본래 아무 죄도 허물도 없는데, 남의 모함을 받았으니 부디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자 오백을 거느린 군주는 그가 부처님의 제자라는 말을 듣고 손으로 가볍게 스치기만 하고 그의 몸에 회초리를 대지 않았습니다. 그 후 오백을 거느린 군주는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떨어져서 온갖 고문으로 온갖 고통을 당했고, 그 뒤에 죄가 소멸되자 다시 축생(畜生)의 세계에 떨어져서 오백여 생 동안 항상 매를 맞다가 죄가 다하여 사람이 되었으나 늘 중병에 걸려 그 고통이 몸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 때의 국왕은 바로 지금의 조달(調達)이요, 오백을 거느린 군주는 바로 지금의 이 비구이며, 그 때의 어진 사람은 바로 지금의 내 몸이었습니다.
나는 전생에 그들에게 용서를 받아 채찍이 몸에 닫지 않았으므로 그, 때문에 세존이 되었으면서도 몸소 그들을 씻어준 것입니다.
사람이 선을 짓거나 악을 지으면 그 재앙과 복이 사람을 따르는 법이니, 비록 다시 나고 죽고 하더라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어 세존께서 곧 게송을 설하셨다.

어질고 착한 사람을 회초리로 매질하거나
죄가 없는 이를 거짓으로 참소하면
그가 받는 재앙은 열 배나 되나니
재앙은 신속하여 용서받을 수 없느니라.

태어날 때마다 혹독한 고통을 받고
형체는 헐어지고 꺾어지게 되며
저절로 병이 들어 시달리게 되고
뜻을 잃고 황홀(恍惚)해지리라.

사람들에게 멸시당하고 비웃음당하며
혹은 관청의 액난(厄難)을 만나
재산은 소모되고 탕진하게 되며
친척들은 이별하여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집과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물은
화재 (火災)를 당하여 모두 타버리고
죽으면 지옥에 들어가리니
이것이 그 열 가지이니라.

그 때 병든 비구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게송과 전생의 일을 듣고는 마음 깊이 자책하였으므로 앓던 병이 다 낫고 아라한도(阿羅漢道)까지 증득하였으며, 현제(賢提) 국왕은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실천하다가 수다원도(須陀洹道)를 증득하였다.
또 『선생경(善生經)』에서 말하였다.
“병든 사람을 돌봐주는 사람은 싫어하는 기색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자신에게 물질이 없으면 밖에 나가 구해 와야 하며, 만약 물질을 얻지 못했을 때에는 삼보(三寶)의 물건이라도 빌려서 간병하고 질병이 나은 뒤에는 열 배로 갚아 하느니라.”
또 『오백문사경 (五百門事經)』에서 말하였다.
“병든 사람을 간호하는 사람은 병든 사람의 물건을 가져다가 병든 사람만을 위해서 필요한 물건을 공급해야 한다. 병든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은 물건이거나 혹은 물어보았으나 싫다는 생각을 일으킨 물건이면 모두 사용해서는 안 된다.
만약 자신이 가져온 물건이 있으면 꼭 갚아야 하고 갚지 못하면 중죄(重罪)를 범하게 된다.”
또 『사분율(四分律)』에서 말하였다.
“병든 사람을 간호하면 다섯 가지 공덕을 얻는다.
첫째는 병든 사람이 먹을 수 있는가, 먹을 수 없는가를 알아서 먹을 수 있는 것이면 곧 주는 것이요, 둘째는 병든 사람의 대변과 소변ㆍ침ㆍ토해낸 것에 대하여 싫어하거나 그를 천대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서 음식이나 의복 따위를 위해서 간병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일을 처리하거나 약을 달이는 일은 병이 나을 때까지, 또는 목숨을 마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병에 걸린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기쁘게 해주는 것이니, 자기 자신의 착한 법도 더욱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031_0256_b_09L惟居凡位誰之無病以有報身常加疾疹或有捨俗出家孤遊獨宿或有貧病老弱無人侍衛若不互看命將安寄故四分律佛言自今以去應看病人應作贍病人若欲供養我者先供養病人乃至路値五衆出家人佛制七衆皆令住看若捨而不看皆結有罪故諸佛心者以大慈悲爲隨順我語卽是佛心也如僧祇律云若道逢出家五衆病人卽應覓車乘馱載令如法供養乃至死時亦應闍維殯埋不得捨棄病人有九法成就必當撗死一知非饒益食而貪食二不知籌量三內食未消而食四食未消而摘吐出五已消應出而强持六食不隨病七隨病食而不籌量八懈怠九無慧如藥師經亦有九撗大意可知又增一阿含經云爾時世尊告諸比若瞻病人成就五法不得時差在牀縟云何爲五一瞻病之人不別良藥二懈怠無勇猛心三常喜瞋恚亦好睡眠四但貪衣食故瞻視病人五不以法供養故亦不與人語談往反是謂瞻病之人成就五法不得時差翻前五法病得速差又生經世尊以偈讚曰人當瞻疾病 問訊諸危厄 善惡有報應如種果獲實 世尊則爲父 經法以爲母同學者兄弟 因是而得度又法句喩經云昔有一國名曰賢提有長老比丘長病委頓羸瘦垢穢在賢提精舍中臥無瞻視者佛將五百比丘往到其所使諸比丘傳共視爲作漿粥而諸比丘聞其臭處共賤之佛使帝釋取其湯水佛以金剛之手洗病比丘身體地尋震動然大明莫不驚肅國王天龍神無央數人往到佛所稽首作禮佛言佛爲世尊三界無比道德已備云何屈意洗病比丘佛告國王及衆會者言如來所以出現於世正爲此窮厄無護者耳供養病瘦沙門道人及諸貧窮孤獨老人其福無量所願如意會當得道王白佛言今此比丘宿有何罪困病積年療治不差佛告王曰往昔有王名曰惡行治政嚴暴使一多力五百主令鞭人五百假王威怒私作寒暑若欲鞭者齎其價得物者鞭輕不得鞭重擧國患之一賢者爲人所謀應當得鞭報五百吾是彿弟子素無罪過爲人所抂願小垂恕五百聞是佛弟子輕手過鞭無著身者五百壽終墮地獄中掠萬毒罪滅復出墮畜生中恒被撾杖五百餘世罪畢爲人常嬰病痛不離身爾時國王者今調達是五百者今此病比丘是時賢者今吾身是以前世爲其所恕鞭不著身是故世尊躬爲洗之人作善惡殃福隨人更生死不可得免於是世尊卽說偈言撾扙良善 妄讒無罪 其殃十倍災迅無赦 生受酷痛 形體毀折自然惱病 失意恍惚 人所輕笑或縣官厄 財產耗盡 親戚離別舍宅所有 災火焚燒 死入地獄如是爲十病比丘聞佛此偈及宿命事剋心自責所患除愈得阿羅漢道賢提國王沒命奉行得須陁洹道又善生經云瞻病人不應生厭若自無物出外求之若不得物貸三寶物看差已十倍還之又五百問事云看病人將病人物病人供給所須不問病者或問起嫌竝不得用若已取者應償不還犯重罪又四分律云看病得五功德一知病人可食不可食可食便與二不惡賤病人大小便利唾吐三有慈愍心爲衣食故看四能經理湯藥乃至差病若命終五能爲病人說法歡喜身善法增長

3) 의료연(醫療緣)
031_0257_b_21L醫療緣第三
031_0257_c_02L대체로 사람에게는 사지(四支)와 오장(五藏)이 있다. 한때는 깨어 있고 한때는 잠을 자며,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정기 (精氣)가 오고 간다.
기운이 흐르면 영혈(榮血)과 위기(衛氣)가 되고 밖으로 드러나면 기색(氣色)이 되며, 발산하면 음성(音聲)이 되나니 이것이 사람의 평상적인 작용이다.
양기[陽]를 쓰면 정(精)이 되고 음(陰)을 쓰면 형상이 되나니, 그것은 사람마다 모두 동일하다. 그것을 상실할 지경에 이르러 더워지면[蒸]열이 생겨나고 막히면 찬 기운이 생겨나며, 맺히면 혹이나 사마귀가 되고 가라앉으면 옹저(癰疽)가 되며, 치달리면 두려워 떨게 되고 다 사라지면 타게 된다.
그런 까닭에 훌륭한 의사는 그것을 침석(針石)으로 인도하고 약을 조제하여 구원하며, 성인은 지극한 덕[至德]4)으로써 화합하고 사람의 일로써 유익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폼에는 고칠 수 있는 질병이 있고 하늘과 땅에는 소멸시킬 수 있는 재앙이 있는 법이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큰 걱정거리가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첫째는 풍(風)이 큰 걱정거리가 되고, 둘째는 담(痰)이 큰 걱정거리가 되며, 셋째는 냉(冷)이 큰 걱정거리가 된다.
그러나 세 가지 좋은 약이 있으면 치료할 수 있다. 만약 풍에 걸린 환자라면 소(蘇)가 좋은 약이 되나니 소로써 밥을 지어 먹으면 되고, 만약 담에 걸린 환자라면 꿀이 좋은 약이 되나니 풀로 밥을 지어 먹으면 되며, 만약 냉병에 걸린 환자라면 기름이 좋은 약이 되나니 기름으로 밥을 지어 먹으면 된다.
이것을 세 가지 큰 질환을 세 가지 좋은 약으로 치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비구들에게도 세 가지 큰 걱정거리가 있나니, 첫째는 탐욕이요, 둘째는 진에(瞋恚)이며, 셋째는 어리석음이다. 그러나 이것도 세 가지 좋은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
첫째 만약 탐욕이 일어날 때에는 부정법(不浮法)으로써 다스리되 부정도(不浮道)를 생각하면 되고, 둘째 만약 성냄의 큰 걱정거리가 있으면 자심법(慈心法)으로써 다스리되 자심도(慈心道)를 생각하면 되며, 셋째 만약 어리석음의 큰 걱정거리가 있으면 지혜법(智慧法)으로써 다스리되 인연소기도(因緣所起道)를 생각하면 된다.
이것을 비구에게 이러한 세 가지 큰 걱정거리가 있을 적에 이러한 세 가지 약으로 다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능히 팔만 사천 가지 병의 근본을 제거할 수 있다. 이 팔만 사천 가지는 다 네 가지 병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첫째는 탐냄이요, 둘째는 성냄이며, 셋째는 어리석음이요, 넷째는 세 가지 독(毒)이 등분(等分)된 것이다.
네 가지 병은 각각 이만 일천 가지로 나뉘어진다. 부정관(不淨關)5)으로써 탐욕의 이만 일천 가지 번뇌를 제거하고 자비관(慈悲關)6)으로써 진에(瞋恚)의 이만 일천 가지 번뇌를 제거하며, 인연관(因緣關)7)으로써 우치(愚癡)의 이만 일천 가지 번뇌를 제거시키나니, 통틀어 위의 약을 사용하여서 등분으로 만들어진 이만 일천 가지 번뇌를 제거시킨다.
비유하면 마치 보배 구슬이 깜깜하고 어둠을 제거하는 것처럼 반야바라밀도 세 가지 독으로 생겨나는 번뇌를 제거할 수 있다.
031_0257_b_22L夫人有四支五藏一覺一寐呼吸吐精氣往來流而爲榮衛暢而爲氣發而爲音聲此人之常數也陽用其精陰用其形人人所同也及其失烝則生熱否則生寒結而爲瘤贅陷而爲癰疽奔而爲惴竭而爲焦良醫導之以鍼石救之以藥濟聖人和之以王德益之以人事故體有可愈之病天地有可消之災也如增一阿含經云爾時世尊告諸比有三大患云何爲三一風爲大患二痰爲大患三冷爲大患然有三良藥治若風患者蘇爲良藥及蘇所作飯食若痰患者蜜爲良藥及蜜所作飯若冷患者油爲良藥及油所作飮是謂三大患有此三藥治如是比亦有三大患一貪欲二瞋恚三愚然有三良藥治一若貪欲起時不淨法治及思惟不淨道二若瞋恚大患者以慈心法治及思惟慈心道三若愚癡大患者以智慧法治及因緣所起道是謂比丘有此三大患此三藥治又智度論云般若波羅蜜能除八萬四千病根本此之八萬四千皆從四病起一貪二瞋三癡四毒等分此之四病各分二萬一千以不淨觀除貪欲二萬一千煩惱以慈悲觀除瞋恚二萬一千煩惱以因緣觀除愚癡二萬一千煩惱摠用上藥除等分病二萬一千煩惱譬如寶珠能除黑闇般若波羅蜜亦能除三毒煩惱病

4) 안치연(安置緣)
031_0258_a_08L安置緣第四
031_0258_b_02L대개 들으니 삼계의 집은 곧 사대(四大)의 그릇이요, 육진(六塵)의 경계는 바로 오음(五陰)의 거주처이다.
진실로 허망한 생각으로 헛되이 얽어져서 의혹[惑]과 뒤바뀜[倒]이 번갈아 일어나고 일만 가지 괴로움이 다투어 얽히고 일백 가지 근심이 다 모여 든다. 이제 이미 과보가 익숙해져서 목숨은 바람 앞에 촛불처럼 되었다. 그런데도 중생들이 탐내고 집착하여 죽을 때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옛 곳에 있으면서 자재 (資財)를 그리워하고 애착하며 권속(眷屬)에 염착하고 있으니, 그것을 저어하여 부처님께서는 처소를 옮기라고 가르치시고 그들로 하여금 싫어하는 마음을 내어 여의게 하셨으며, 장차 무상함이 다가올 것을 알아서 마음에 바른 생각을 일으키게 하셨던 것이다.
『승기율 (僧祇律)』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 대덕(大德)이 병이 들면 마땅히 밝게 트인 처소로서 가장 좋은 방에다 모시고 도인과 속인으로 하여금 문안하여 그의 선을 본뜨게 해야 한다. 병든 사람을 간호하는 사람은 늘 꼭 향을 사르고 등불을 켜고 향즙(香汁)을 땅에 바르고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접해야 한다.
『서역기환사도(西域祈桓寺圖)』에 의하여 말한다.
“사찰의 서북쪽 모퉁이 햇빛이 없는 곳에 무상원(無常院)을 만들었다. 만약 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그 곳에 안치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당호(堂號)를 무상(無常)이라고 하였다. 그곳은 대부분 싫어하고 등지게 되는 곳이었는데, 그 곳에 가는 이는 매우 많았으나 거기서 되돌아오는 이는 한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집 안에는 금색으로 도금한 한 구의 입상(立像)을 안치하였는데, 얼굴이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병이 든 사람은 마땅히 불상 앞에 앉아 있게 해야 하나, 만일 기력이 없는 사람은 병든 사람으로 하여금 눕게 하되 얼굴이 서쪽을 향하게 하여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관찰하게 했다. 그 불상의 손 안에는 한 개의 오색(五色)으로 된 비단 번기를 매어 두고 병든 사람으로 하여금 손으로 번기의 끝을 잡고 정토(淨土)에 가서 태어나겠다는 뜻을 짓게 하였다.
앉아 있는 자리에서 비록 대변과 소변을 눈다 하더라도 세존께서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것을 근원으로 하여 이 땅에서도 본래는 잡되고 더러운 곳이었지만 오히려 신령함이 내려와 굽어 보며 하류(下類)의 중생들을 접인(接引)하는 곳으로 여겼거늘, 하물며 지금은 목숨을 가져다가 부처님께 던지고 있으니 어찌 서로 버릴 수가 있겠는가?
병든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어떤 경계인가에 따라 혹은 아미타불(阿彌陀佛)ㆍ미륵불(彌勒佛)ㆍ아촉불(阿閦佛)ㆍ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등의 형상을 만들어 앞의 격식처럼 안치(安置)하고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는 공양을 끊이지 않게 하면서 병이 든 사람이 착한 마음을 내게 해야 한다.”
031_0258_a_09L蓋聞三界之宅寔四大之器六塵之是五陰所居良由妄想虛搆惑倒交興致使萬苦爭纏百憂摠萃今旣報熟命臨風燭然衆生貪著至死不恐在舊所戀愛資財染著眷屬教移處令生厭離知無常將至使興心正念也如僧祇律云若是大德病者應在露處上好房中擬道俗問訊生善病人每須燒香燃燈香汁塗地供待人客依西域祇桓寺圖云寺西北角日光沒處爲無常院若有病者安置在中堂號無常多生厭背去者極衆還唯一二其堂內安置一立像金色塗者面向東方當置病人在像前坐若無力者令病人臥面向西方觀佛相好像手中繫一五色綵幡令病人手執幡腳作往生淨土之意坐處雖有便世尊不以爲惡原其此土本是雜穢之處猶降靈俯接下類群生況今將命投佛寧相棄捨隨病人所樂何或作彌陁彌勒阿閦觀音等形前安置燒香散花供養不絕生病者善心

5) 염념연(斂念緣)
031_0258_b_11L斂念緣第五
031_0258_c_02L대체로 삼계(三界)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요, 오음(五陰)도 다 없는 것이며, 네 가지 전도四倒]와 열 가지 얽매임[十纏]이 함께 서로 화합한 것이다. 모든 것은 마치 번개와 같아서 만 겁(劫)을 잠깐 동안에 물리쳐 버리고 구렁이나 우물에 빠지기 쉬워서 백 년을 손바닥에다가 쓰는 것과 같다.
길이 헷갈려 마침내 멀어지고 길을 잃어 되돌아가지 못하며, 구구한 일곱 자의 몸에 대하여 그것이 거짓됨인 줄 알지 못한다. 귀와 눈 밖의 것은 마침내 저절로 공(空)한 이야기여서 의지할 곳도 없고 구원할 것도 없건만 믿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생령(生靈)이 한 번 하직하면 다시 돌아올 기약이 없으나, 그런 까닭에 마음을 어루만져 스스로 헤아리면서 위험에 다달아 생각을 닦도록 하라.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한 것과 같다.
“간병(看病)하는 사람은 마땅히 병든 사람이 먼저 익히고 배운 바를 따라서 찬탄해 주되 그를 헐뜯거나 나무라서 본래 착했던 마음에서 물러나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분율 (四分律)』에서 말하였다.
“병이 든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그로 하여금 기뻐하게 해야 할 것이다.”
또 『비니모론(毘尼母論)』에서 말하였다.
“병든 사람이 간병(看病)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거나 간병하는 사람이 병든 사람의 뜻을 어기면 모두 죄를 얻는다.”
또 『화엄경(華嚴經)』에서 임종(臨終)할 때 병에 걸린 사람을 위하여 게송을 말하였다.

또 광명을 놓으면 부처님을 뵈었다고 말하나니
그 광명을 목숨을 마치려는 이가 깨달아 알면
염불삼매(念佛三味)로 반드시 부처님을 뵙고
목숨을 마친 뒤에 부처님 앞에 태어나리라.

그로 하여금 임종할 때에 선을 생각하라고 권하고
또 존귀한 형상을 보며 우러러 공경하게 하며
또 다시 권유하여 그로 하여금 부처님께 귀의하게 하면
이로 인하여 부처님의 광명을 볼 수 있으리라.

또 『왕생론(往生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선남자와 선녀인들로서 다섯 가지 생각을 닦아 성취한 사람은 필경(畢竟)에는 안락국토(安樂國士)에 태어날 수 있으며 거기에서 저 아미타불을 뵙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예배하는 것이요, 둘째는 찬탄하는 것이며, 셋째는 서원을 세우는 것이요, 넷째는 관찰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회향(廻向)하는 것이다.”
또 『수원왕생경(隨願往生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보광(普廣)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사배(四輩)의 남자나 여인이 임종하는 날에 시방의 부처님 국토에 태어나기를 서원하면, 마땅히 먼저 깨끗이 목욕하고 몸에는 깨끗하게 빤 옷을 입고 온갖 이름 있는 향을 피우며, 비단으로 만든 번기와 일산을 달고 노래를 불러 삼보를 찬양하며, 존귀한 경전을 독송해야 한다. 그리고 병든 사람을 위해서는 인연과 비유의 훌륭하고 교묘한 말솜씨로써 미묘한 경전의 뜻을 말해주며, 괴롭고 공(空)하여 진실된 것이 아니고, 사대(四大)가 임시로 화합하여 이루어진 형체는 마치 파초(芭蕉)와 같아서 그 속에 실상이 없음을 말해주어야 한다.
또 전광(電光 : 번개 빛)과 같아 오래 머물지 못함을 말해주어야 한다. 그런 까닭에〈색질은 오래도록 선명하지 못하고 장차 무너져 없어지는 데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하였나니, 정성스레 도를 실천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마음 속으로 원하는 바를 따라 결과를 얻지 아니함이 없느니라.’”
[自述]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가르치고 난 뒤에 다시 경전과 불상을 모셔다가 병에 걸린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 경전의 이름과 불상의 이름을 그에게 말해 주고 보여주면서 그로 하여금 눈을 떠서 보게 하고 그로 하여금 분명하게 깨닫게 하며, 겸하여 덕과 지혜가 있는 사람을 청하여 대승경전을 독송하게 하면서 찬패(讚唄)를 돕고 드날리게 하고 번기와 꽃이 어지러히 떨어지게 하여 그의 눈앞에 완전(婉轉)케 하며, 향기가 그윽하게 하여 항상 코에 맴돌게 하고 언제나 그와 더불어 착한 말만 하며 나쁜 말은 전하지 말라.
임종하려고 할 때에는 대부분 악한 업의 모습이 나타나므로 뜻을 세워 배제(排除)하려 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런 까닭에 병든 사람을 보살피는 사람은 특별히 선교방펀(善巧方便)으로 유도하여 그로 하여금 마음과 마음이 상속(相續)하여 찰나(刹那) 동안이라도 머무르지 않게 하며, 이 복의 힘에 의지하여 정토에 가서 태어나야겠다는 마음을 짓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생전에 선을 지었더라도 임종 때에 악한 생각을 하면 곧 악한 세계에 가서 태어나고 생전에 악한 업을 지었더라도 임종할 때에 착한 생각을 하면 천상(天上)에 태어나게 된다.”
또 『유마경(維摩經)』에서 말하였다.
“닦았던 복을 기억하고 깨끗한 생활을 생각해야 한다.”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계를 지키는 어떤 중생이 은혜를 구하지도 않는 계율을 깨뜨린 병든 사람에 대하여 마음으로 피곤해 하거나 싫어하지도 않으면 목숨을 마친 뒤에 보관천(普觀天)에 태어나 오욕(五欲)을 마음대로 누리되 만족할 줄 모른다.”
031_0258_b_12L夫三界非有五陰皆無四倒十纏共相和合一切如電揮萬劫於俄頃井易淪括百年於抵掌迷途遂遠喪亡歸區區七尺莫知其假耳目之終自空談靡依靡救不信不受靈一謝再返無期所以撫心自測危修念也如十誦律云看病人應隨病者先所習學而讚歎之不得毀呰退本善心又四分律云爲病人說法令其歡喜又毘尼母論云病人不用看病人語看病人違病者意竝得罪又花嚴經臨終爲病人說偈云又放光明名見佛 彼光覺悟命終者念佛三昧必見佛 命終之後生佛前令彼臨終勸念善 又示尊像令瞻敬又復勸令歸依佛 因是得成見佛光又往生論云若善男子善女人修五念成就者畢竟得生安樂國土見彼阿彌陁佛何等爲五一者禮拜二者讚歎三者作願四者觀察五者迴向又隨願往生經云佛告普廣菩薩四輩男子女人臨終之日願生十方佛剎土者當先洗浴身體著鮮潔之衣燒衆名香懸繒幡蓋歌讚三寶讀誦尊經爲病者說因緣譬喩善巧言詞微妙經義苦空非實四大假合形如芭蕉中無有實又如電光不得久故云色不久鮮當歸壞敗精誠行可得度苦隨心所願無不獲果述曰如前教已復將經像至病人所題其經名像名告語示之使開目睹令其惺悟兼請有德智人讀誦大助揚讚唄幡花亂墜宛轉目前氣氛氳常注鼻根恒與善語勿傳惡以臨終時多有惡業相現不能立排除是故瞻病之人特須方便巧誘訹使心心相續剎那不駐乘此福力作往生淨土之意故智度論云從生作善臨終惡念便生惡道從生作惡臨終善念而生天上又維摩經憶所修福念於淨命又正法念經云若有衆生持戒之人於破戒病人不求恩慧心不疲厭養病人命終生普觀天五欲縱逸知厭足

6) 사명연(捨命緣)
031_0259_a_12L捨命緣第六
031_0259_b_02L생각해 보건대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독 그릇은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데, 여섯 도적[六賊 : 六根]의 미친 주인이 이것으로 경계를 삼아 모두 집착하고 있으므로 다시는 거슬러 흐를 기약이 없고, 오직 순환(循環)하는 세력만 있을 뿐이다.
심지어는 한 개의 털을 뽑으면 천하가 다 이롭게 된다고 했는데도 그것을 아껴서 뽑지 않았고 한 술의 밥을 거두어서 다른 사람의 양식을 이어주자는 말에도 아끼고 주지 않았다. 나고 죽음[生死]에 빠지고 막혀 작용이 있는 것을 굳게 집착하고 있으므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염려하여 눈쌀을 찌푸리셨고 보살들은 이에 대하여 울면서 피눈물을 흘렸다.
가만히 살펴 보건대 세속의 무리들로서 귀하고 권세 있는 이들은 부모의 상을 당하면 대부분 훌륭하게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산 생명을 많이 잡고 친족(親族)들을 모아 들이며, 찾아오는 손님들을 공양하여 대접한다. 그들은 구차스럽게 현재의 훌륭한 것을 구하려고 업인(業因)을 피하지 않고 혹은 밖에서 나무라는 것을 두려워하여 안으로 법을 닦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아버지가 죽으면 여기에 고통을 겹치게 하고 어머니가 죽으면 끓는 물과 숯을 더욱 증가시킨다. 이리하여 삼계(三界)를 완연하게 돌면서 끊임없이 여섯 갈래 세계를 다니나니, 사취(四趣)는 돌아가기는 쉬우나 만 겁이 지나도 인도하기 어렵다. 자모(慈母)의 혼령에 통곡하고 역자(逆子)의 수독(酬毒)을 가엾게 여길 뿐이다.
다만 심한 가뭄이 오래 가면 꼭 단비의 은택을 생각하고 만약 질환의 재앙이 많으면 지극히 훌륭한 의사를 기대할 뿐이다.
생각하건대 이 고비(考妣 : 父母)도 이미 범부이기 때문에 악한 엽이 없다 해도 죄의 원인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니 그 업보는 물리치기 어렵다. 그러니 만약 여러 가지 훌륭한 복을 의지하지 않으면 어찌 즐거운 과보를 증득할 수 있겠는가?
바라건대 그들로 하여금 임종할 때에 이르러서는 시타(屍陀)8)에 들게 하고 장례 도구와 자재(資財)로 아울러 공덕을 닦아 날아다니는 새와 기어다니는 짐승들의 굶주림을 구제하게 하여 장차 다가오는 세상에 부채를 면할 수 있었으면 한다.
『십이품생사경(十二品生死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죽음에는 열두 가지 품류가 있다. 어떤 것이 그 열두 가지인가?
첫째는 여한이 없는 죽음이니 이른바 아라한으로서 집착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죽음을 건너는 사람이니 이른바 아나함(阿那含)으로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남음이 있는 죽음이니 이른바 사다함(斯陀含)으로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요, 넷째는 죽음을 건너는 것을 배우는 사람이니 이른바 수다원 (須陀洹)으로서 도의 자취를 보는 것이며, 다섯째는 속음이 없는 죽음이니 이른바 여덟 가지가 평등한 사람이요, 여섯째는 환희하며 죽는 것이니 이른바 일심(一心)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일곱째는 자주자주 죽는 사람이나 이른바 나쁜 계율을 행하는 사람이요, 여덟째는 죽음을 후회하는 사람이니 이른바 범부이며, 아홉째는 횡사(橫死)하는 것이니 이른바 고독하고 고통받는 사람이요, 열째는 죽음에 얽매이고 집착하는 것이니 이른바 축생(畜生)을 말하며, 열한째는 타거나 데어서 죽는 것이니 이른바 지옥을 말하고, 열두째는 배고프고 목마르고 죽는 것이니 이른바 아귀(餓鬼)이다.
비구들은 마땅히 분명하게 알아야 하나니, 즉 방일하게 살지 말아야 한다.’”
또 『정토삼매경(淨土三味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선업이나 악업을 지으면 천상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떨어지는데 목숨을 마치려고 할 때엔 저마다 영접하는 사람이 있다. 병이 들어 죽으려고 할 때에 그의 눈으로 와서 영접하는 사람을 직접 보게 되는데, 장차 천상에 가서 태어날 사람이면 하늘 사람이 옷을 가지고 기악을 연주하면서 와서 영접하고, 마땅히 다른 지방에 태어날 사람이면 그의 눈으로 존귀한 사람이 그를 위해 미묘한 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만일 악한 짓을 하여 지옥에 떨어질 사람이면 눈으로 병사(兵士)가 칼과 방패ㆍ큰 창ㆍ작은 창을 가지고 그를 찾아 빙 둘러서는 것을 보게 된다. 이와 같이 그가 보는 것이 일정하지가 않아 입으로 이루 다 말할 수는 없나니, 제각기 제가 지은 업에 따라 그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하늘은 억울하게 함부로 함이 없고 공평하고 정직하여 두 마음이 없으며, 오직 그가 지은 바를 따라서 하늘의 그물로 그를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또 『화엄경(華嚴經)』에서 말하였다.
“사람이 죽으려고 할 때엔 중음(中陰)의 모양을 보게 된다. 만약 악한 업을 지은 사람이면 세 갈래 악한 세계에서 고통받는 것을 보게 되고 혹은 염라왕(閻羅王)이 여러 가지 무기를 가지고 와서 붙잡아 가두어 가지고 데리고 가는 것을 보기도 하며, 혹은 고통받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만약 착한 일을 실천한 사람이라면 여러 천상의 궁전에서 기녀(妓女)들이 장엄하게 꾸민 모습으로 재미있게 놀면서 쾌락을 누리는 이와 같은 좋은 일을 보게 된다.
또 『법구유경(法句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부처님께서 기환정사(祈桓精舍)에 계셨을 때였다. 부처님께서 천인(天人)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셨다. 그 때 어떤 장자가 길 가에 살고 있었는데 재물이 넉넉하여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에게는 오직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아이의 나이 스무 살이 되자 처음으로 장가를 들어 아내를 맞이하게 되었다. 장가든 지 채 이레가 되지도 않았을 때 부부는 서로 공경하면서 후원(後園)에 이르렀었다. 때는 마침 상춘(上春) 삼 월이었다. 동산에 나가 구경하고 노는 가운데 그 동산에 한 그루 벗나무가 있었는데 키가 높고 큰 데다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었다. 신부는 그 꽃을 가지고 싶었으나 아무도 꺾어다 줄 사람이 없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나무에 올라갔는데 마침내 가느다란 가지에 미치자 가지가 부러지면서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온 집안 대소(大小)사람들이 그 아이가 죽은 곳으로 황급히 달려와서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다가 기절하고,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나곤 했으니, 그 말을 들은 사람치고 상심(傷心)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마침내 염(險)하여 관(棺)에 넣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집에 돌아와서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세존께서 그들의 어리석음을 가없게 여기시어 그곳에 가셔서 문안하셨다. 장자와 집안 대소 사람들은 부처님을 뵙고 비감(悲感)한 마음으로 예배하고 극심한 고통을 자세히 진술하였다.
부처님께서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울음을 그치고 법을 들어라. 온갖 물질은 덧없는 것이어서 오래도록 보존할 수 없느니라. 태어나면 죽음이 있고 죄와 복이 서로를 쫓는 법이니라.
이 아이는 세 곳에서 그를 위해 통곡하고 울며 괴로워하다 기절하였고, 또 견디지 못해 하였으나 마침내 그는 누구의 아들이며, 누가 또 그의 어버이인가?’
그리고는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목숨은 마치 꽃과 과일 같아서 성숙하게 되면
언제나 떨어지지나 않을까 두려워한다.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면 모두가 고통인 것을
어느 누군들 죽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처음부터 애욕(愛欲)을 좋아하여
포태(胞胎) 안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나
몸을 받고 나면 그 목숨은 번개처럼 빨라
밤낮없이 흘러 멈추기 어렵다네.

이 몸뚱이는 죽음을 위한 물건이고
정신 또한 형상이 없는 법이라서
목숨을 마쳐 죽고 나면 다시 또 태어나지만
죄와 복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느니라.

마치고 다시 시작한 것이 한 세상만이 아니거늘
어리석기 때문에 장구(長久)하기를 바라네.
스스로 지어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나니
몸은 죽지만 정신은 없어지지 않는다.

장자는 그 게송을 듣고 마음이 놓이고 걱정이 사라져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아이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한창 좋은 나이에 갑자기 요절하였습니까? 오직 바라옵건대 본래 지였던 죄를 말씀해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지나간 과거 어느 때에 한 어린 아이가 있었다. 그는 활과 화살을 가지고 아름다운 나무 숲속에 들어가 놀고 있었다. 그 곁에 어떤 사람 세 명이 그 안에서 구경하며 놀고 있었다. 마침 나무 위에 참새가 앉아 있었는데, 어린아이가 그 새를 쏘려고 하자 세 사람이 권유하며 말하였다.
〈만약 참새를 맞출 수 있다면 세상에 가장 씩씩한 아이가 될 것이다.〉
어린아이는 그 말에 기분이 좋아져 활을 당겨 쏘았다. 참새가 화살에 맞아 즉사하자 세 사람이 함께 웃었고. 그를 도와 환희하면서 제각기 떠나갔다. 그 후 나고 죽으면서 여러 겁을 지나는 동안 서로 만나면서 그 죄를 받았다.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복이 있어서 지금 천상에 살고 있고 한 사람은 바닷속에 태어나 용왕으로 화생(化生)하였으며, 한 사람은 바로 오늘날 장자의 몸이니라. 이 어린아이는 앞에는 천상(天上)에 태어나서 그 하늘의 아들이 되었다가 목숨을 마치고 장자의 아들이 되어가지고는 지금 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것이다. 그는 곧 바닷속으로 가서 용왕의 아들이 되었겠지만, 그가 태어나는 바로 그 날에 금시조(金翅鳥)왕이 즉시 그를 잡아 먹을 것이다. 그들은 현재까지도 세 곳에서 괴로워하며 슬프게 울고 있으리니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느냐?
전생에 그 어린아이를 도와 기뻐하였기 때문에 이 세 사람은 이와 같은 과보를 받는 것이니라.’
그리고 나서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의 정신은 삼계의
좋고 좋지 못한 세 곳으로 나아가
남몰래 다니면서 잠자코 이르거니와
태어나는 곳마다 메아리의 호응이 있는 것과 같다네.

색계와 욕계와 무색계의
일체는 전생에 지은 업 때문이니
그것은 마치 종자가 본래의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아서
저절로 그 과보가 그림자처럼 따른다네.

부처님께서 게송을 설하여 마치시자 장자는 마음이 놓였고 크고 작은 가족들이 모두 환희하였으며, 이들 모두는 수다원도(須陀洹道)를 증득하였다.”
또 『사분율(四分律)』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중생들에게 이익이 되게 하기 위하여 왕9)이 목숨을 마치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일체 것은 반드시 다함으로 돌아가나니
높은 곳에 있는 이는 꼭 장차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태어난 사람치고 죽지 않는 이는 없나니
목숨이 있는 것은 다 무상한 것이니라.

중생들은 작용이 있는 곳에 떨어지나니
일체는 다 작용이 있어서
모든 세간에는
늙고 죽지 않는 이가 아무도 없느니라.

중생이란 바로 평범한 법이어서
어느 생(生)이나 할 것 없이 다 결국엔 죽고 말지만
그 지은 업을 따라서
죄와 복의 과보가 있게 마련이다.

악한 업을 지으면 지옥에 떨어지고
착한 업을 지으면 천상에 태어난다.
고상한 행업 때문에 좋은 세상에 태어나면
무루(無漏)의 열반(涅槃)을 증득하리라.
031_0259_a_13L惟四大毒器有穢斯充六賊狂主境皆著無復逆流之期唯有循環之至如析一毛以利天下則吝而弗撤一飡以續餘糧則惜而不與滯生死封執有爲諸佛爲其斂眉薩於茲泣血竊見俗徒貴勝父母喪多造葬儀廣殺生命聚集親族待人客茍求現勝不避業因或畏外不修內典所以父亡於斯重苦終偏增湯炭是以宛轉三界緜歷六四趣易歸萬劫難啓痛慈母之幽愍逆子之酬毒但亢陽如久必思甘雨之澤災勵若多剋待良醫之藥惟斯考妣旣是凡夫能無惡業罪因不滅業報難排若不憑諸勝福樂果何容得證庶使臨終發願令入屍陁葬具資財竝修功德冀濟飛走之飢得免將來之債也如十二品生死經云佛言人死有十二品何等十二一曰無餘死者謂羅漢無所著也二曰度於死者謂阿那含不復還也三曰有餘死者謂斯陁含往而還也四曰學度死者謂須陁洹見道迹也五曰無欺死者謂八等人也六曰歡喜死者謂行一心也曰數數死者謂惡戒人也八曰悔死謂凡夫也九曰撗死者謂孤獨苦十曰縛著死者謂畜生也十一曰燒灼死者謂地獄也十二曰飢渴死謂餓鬼也比丘當曉知是勿爲放逸也又淨土三昧經云若人造善惡生天墮地獄臨命終時各有迎人病欲死眼自見來迎應生天上者天人持伎樂來迎應生他方者眼見尊人爲說妙言若爲惡墮地獄者眼見兵士持刀戟索圍遶之所見不同口不能言各隨所作得其果報天無抂濫平直無二隨其所作天網治之又華嚴經云人欲終時見中陰相行惡業者見三惡受苦或見閻羅持諸兵杖囚執將去或聞苦聲若行善見諸天宮殿伎女莊嚴遊戲快樂如是勝事又法句喩經云佛在祇桓精舍天人說法有一長者居在路側財富無數正有一子其年二十新爲娶妻未滿七日夫婦相敬欲至後園上春三月看戲園中有一柰樹高大好花婦欲得花無人取與夫爲上樹乃至細枝枝折墮地死居家大小奔走兒呼天嗥哭斷絕復蘇聞者莫不傷棺斂送還家啼不止世尊愍傷其往問訊之長者室家大小見佛感作禮具陳辛苦佛語長者止息聽萬物無常不可久保生則有死福相追此兒三處爲其哭泣懊惱斷亦復難勝竟爲誰子何者爲親是世尊卽說偈言命如華果熟 常恐會零落 已生皆有苦孰能致不死 從初樂愛欲 可望入胞影受形命如電 晝夜流難止 是身爲死物精神無形法 作命死復生 罪福不敗亡終始非一世 從癡愛長久 自從受苦樂身死神不喪長者聞得意解忘憂長跪白佛此兒宿命作何罪舋盛羙之壽而便中夭唯願說本所行罪佛告長者乃往昔有一小兒持弓箭入神樹中戲有三人亦在中看樹上有雀小兒欲三人勸言若能中雀世間健兒兒羙言引弓射之中雀卽死三人共助之歡喜而各自去經歷生死數劫之中所在相會受罪三人中一人有福今在天上一人生海中爲化生龍王一人今日長者身是小兒者前生天上爲天作子而終墮樹命終生海中爲龍王作子卽以生日金翅鳥王而取食之今日三處懊惱涕泣寧可言也以其前世助其喜故此三人受報如此於是世尊卽說偈言識神造三界 善不善三處 陰行而默至所生如響應 色欲不色有 一切因宿行如種隨本像 自然報如影佛說偈已長者意解大小歡喜皆得須陁洹道又四分律云爾時世尊爲利益衆生命終說偈云一切要歸盡 高者會當墮 生者無不死有命皆無常 衆生墮有數 一切皆有爲一切諸世間 無有不老死 衆生是常法生生皆歸死 隨其所造業 罪福有果報惡業墮地獄 善業生天上 高行生善道得無漏涅槃

7) 견송연(遣送緣)
031_0260_b_15L遣送緣第七
031_0260_c_02L[自述] 나고 죽음이 고리처럼 연이어져 세속의 진리를 여의지 못한다. 비록 또한 출가하여 수승한 도 구하기에 뜻을 둔다고 하더라도 분단(分段)을 버리기 어렵고 변역(變易)을 제거하지도 못하며, 잇따라 삼계를 의지하고 세속을 따라 옮겨 흘러가고 있다. 그리하여 나고 죽음에 대하여 모두 안과 밖을 의지하고 있으니, 목숨을 마치려고 하는 날에 안치(安置)하기에 마땅한 곳을 구하는 것과 장례하여 보낼 때의 위의(威儀)에 대해 다음에 자세히 갖추어 말하겠다.
우선 죽은 시체에 대하여 논하면 남쪽과 북쪽에 안치하는 것은 혼백(魂魄)이 같지 않기 때문이니 이제 이에 대하여 간략하게 기술하겠다.
『예기(禮記)』의「예운(禮運)」편에서 말하였다.
“체백(體魄)은 내려가고 지기(知氣)는 위에 있으므로 죽은 사람은 머리를 북쪽으로 두게 하고 살아 있는 사람은 머리를 남쪽으로 눕게 하였다.”
「교특생(郊特生)」10)편에서 말하였다.
“혼(塊)의 기운은 하늘로 돌아가고 형체의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제사를 지낼 때에는 모든 음양(陰陽)의 이치를 구해야 한다.”
「제의(祭儀)」11)편에 말하였다.
“기운이라는 것은 신(神)의 성대함이요, 혼이라는 것은 귀신의 성대함이다.”
『좌전(左傳)』소공(昭公) 이년(二年)12)에 말하였다.
“자산(子産) 조경자(趙景子)에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사람이 났다가 죽어 변화[人生死化]13) 하는 것을 넋[魄]이라고 합니다. 이미 넋이 생기고 난 뒤에 양기가 그 몸에 붙는 것을 혼(塊)이라고 합니다. 물건을 씀에 있어서 정기가 많으면 넋과 혼도 강성해집니다. 그런 까닭에 정(精)이 쌓이고 상(爽)이 쌓여서 신명(神明)에 이르나니, 평범한 남녀[匹夫匹婦]가 비명에 죽음을 당하면 그 혼과 넋이 오히려 다른 사람에 의지하여 음려(淫厲 : 寃鬼)가 되거늘 더구나 어질고 어진 하늘이겠습니까?”
『회남자(淮南子)』14)에서 말하였다.
“하늘의 기운[天氣]은 혼이 되고 땅의 기운[地氣]은 넋이 된다. 넋이 혼에게 물었다.
‘도(道)에서는 무엇으로써 그 바탕[體]을 삼는가?’
혼이 대답하였다.
‘아마도 형상이 없는 것으로써 바탕을 삼을 것이다.’
넋이 말하였다.
‘형상은 있을 것이다. 만약 형상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묻겠는가?’
혼이 말하였다.
‘나는 다만 만나는 바가 있을 뿐이다. 아무리 보아도 형상이 없고 들어 보아도 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유명(幽冥)이라고 말하나니, 유명이라는 것은 그런 까닭에 도에 비유하지만 그것은 도가 아니다.’
또 물었다.
‘이미 혼과 넋이 별개의 것임을 알았다. 오늘날 세속에서 사람이 죽으면 무엇 때문에 옷을 들고 혼만 부르고 넋은 부르지 않는가?’
대답하였다.
‘혼은 곧 영(靈)이요 넋은 곧 시체이다. 그러므로 예(禮)에서는 처음으로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이 입고 있던 옷을 가지고 시백(屍魄)의 위에 옮겨 놓고, 혼은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옷을 가지고 가서 혼을 부르면 그 혼은 자기의 옷임을 알고 옷을 찾아 넋에게로 돌아간다. 만약 혼이 넋에게 돌아가면 시체의 입을 막은 솜이 움직이고 만약 혼이 넋에게로 돌아가지 않으면 입을 막은 솜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러한 이치로써 말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혼을 부른다고 말하지 넋을 부른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소상복요기(蕭喪服要記)』에서 말하였다.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그 아비의 장례를 치르자 공자(孔子)가 물었다.
‘어떻게 혼의(魂衣)를 시설하셨습니까?’
애공이 말하였다.
‘혼의(魂衣)는 백도(伯桃) 때에 생겨난 것입니다. 백도가 형산(荊山) 아래를 지나가다가 길에서 친구 양각(羊角)의 얼어 죽은 시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슬퍼하며 가서 그 시체를 맞이하였는데 혼신(魂神)이 추위에 떨고 있을 것을 불쌍히 여긴 끝에 일부러 혼의를 다시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생전에 수놓은 비단옷을 입으셨었고 죽어서도 옷을 입고 계셨는데, 무엇 때문에 옷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물었다.
“어째서 반드시 번기[幡]위에 그의 성명(姓名)을 써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번기의 혼을 불러서 그 마른 땅에 안치하는 것이다. 혼은 제 이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 이름을 찾아서 깜깜한 방으로 들어가고 넋에게 의탁하기도 한다. 혹은 죵실(重直龍反室)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죵(重)이란 겹친다는 뜻이다. 중첩되게 안에다 제사 음식을 갖추어 두나니, 이는 살아 있는 이와 죽은 이가 각각 다르고 밝고 어두운 것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귀신은 어두운 곳에서 음식을 먹고 살아 있는 사람은 밝은 데에서 음식을 먹는다. 그래서 겹으로 만든 거제(籧蒢)로써 그 음식거리를 싸서 골방 안에 두는 것이니, 이는 신지(神地)에 안치하기 위함이다.
서역의 장례법에 의하면 장례를 치르는 법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물에 떠내려 보내는 것이요, 둘째는 불에 태우는 것이며, 셋째는 땅 속에 묻는 것이요, 넷째는 숲 속에 버리는 것이다.
『오분율(五分律)』에서 말하였다.
“만약 불에 태울 때에는 돌 위에 시체를 올려놓아야 하고 풀이나 흙 위에서 태워서는 안 된다. 그 까닭은 벌레가 상하게 될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사분율 (四分律)』에서 말하였다.
“여래 (如來)와 전륜성왕(轉輪聖王) 두 사람만은 모두 화장(火葬)을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앞에 네 가지 장례법을 통상적으로 따르면 된다.
『오분율』에서 말하였다.
“시체는 마땅히 땅에 묻어야 한다.”[이것은 왕법(王法)에 몸을 남에게 보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한 여름에 시체를 태우면 벌레들을 상하게 될까 염려되기 때문에 시체를 땅에 묻게 한 것이다. 그 밖에 물이나 숲 속에 버리는 것은 논란하지 않았다.]
『사분율』과『오백문사(五白問事)』에서 말하였다.
“만약 여래의 탑묘(塔廟)를 보거나 다섯 가지 대중으로서 출가한 사람의 무덤이나 탑을 보았을 때에는 자기보다 위이면 다 살았을 때의 나이와 법랍(法臘)의 선후에 따라 예를 베풀면 된다.
만약 모든 속인들이 출가한 사람의 무덤이나 탑을 보았을 적에는 크고 작은 이를 가릴 것 없이 모두 꼭 공경하고 예배해야 한다.
[自述] 이미 이러한 것들을 알았다. 모든 도인(道人)이나 속인들로서 만약 사승(師僧)이나 부모가 죽은 관을 알현하기 위해 외부에서 조문하러 온 사람이 죽은 사람보다 아래이면 그 시신이 있는 곳으로 가서 평상법대로 예를 올린 뒤에 먼저 상주[孝子]가 있는 곳에 이르러 묵묵히 위로하고 조문한 다음에 대덕(大德)의 처소에 이르러 애통한 심정을 갖추어 말하고 조문하며 절하면 된다.
또한 어리석은 속인이 함부로 법교(法敎)를 행하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까지도 가르치며 부모ㆍ작은아버지ㆍ큰아버지ㆍ존친(尊親)의 망령에게 예를 올리지 않고 입으로 말하기를 “나는 이미 계율을 받았고 그들은 귀신이 되었으니, 예를 올리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다. 계율을 깨뜨릴까 두렵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일은 성인의 뜻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무지(無知)한 죄만을 초래하는 것이다.
엎드려 생각해 보건대 사승(師僧) 등은 나의 법신(法身)을 길러 주셨고 부모와 작은아버지ㆍ큰아버지 등은 나의 생신 (生身 : 肉身)을 길러주셨으니, 이 분들에 의지하여 젖을 먹고 장대해지고 성인이 되었다. 이런 은덕(恩德)을 생각하면 하늘처럼 끝이 없어 보답하기란 어렵고 몇 겁(劫)을 지내도록 그 은혜를 갚아야 하겠거늘 어찌 일생만으로 사례할 수 있겠는가?
은혜를 공경하여 간직하지 않고 도리어 업신여기는 마음을 낸다면 뒤를 따르는 비루한 범부라 하겠거늘 어찌 효자라고 하겠는가?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지극하신 성인이건만 그래도 몸소 돌아가신 부왕(父王)의 시체를 부축하여 보내셨거늘 하물며 하천하고 어리석은 범부로서 태만(怠慢)한 마음을 내서야 되겠는가?
그러므로『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였다.
“은혜를 아는 것은 대비(大悲)의 근본이요,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축생보다 더 심하다.”
또 『정반왕니원경(淨飯王泥洹經)』에서 말하였다.
“백정왕(白淨王)이 사이국(舍夷國 : 舍衛國)에 있으면서 병이 위독하여 죽으려고 할 때 세존과 난타(難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에 계셨으므로 여기서부터 거리가 오십 유순(由旬)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세존께서 영취산(靈鷲山)에 계실 때에 천이(天耳)로써 부왕이 생각하는 소리를 멀리에서 들으시고 곧 아난 등과 함께 허공을 타고 부왕에게 이르러 손으로 왕의 이마를 만지시면서 왕을 위로하고 나서 왕을 위하여『마하바라본생경(摩訶波羅本生經)』을 설하셨다. 왕은 그 경을 듣고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증득하였으며, 왕은 부처님의 손을 잡아당겨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부처님께서 또 법을 설하시자, 부왕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였다. 그러다가 무상(無常)이 닥쳐와서 목숨이 다하고 기운이 끊어져서 갑자기 후세(後世)로 나아갔다.
그래서 사유(闍維 : 茶毘)하려고 할 적에 부처님께서는 난타 동과 함께 시체의 머리 앞에 엄숙하고 공손한 모습으로 서 계셨고 아난(阿難)과 나운(羅雲)은 죽은 이의 발 뒤에 서 있었다.
아난타가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직 바라옵나니 저로 하여금 백부(伯父)의 관(棺)을 메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나운도 또 아뢰었다.
‘바리옵나니 부디 저로 하여금 조왕(祖王)의 관을 메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 그들을 위로하며 말씀하셨다.
‘미래 세계의 세상 사람들은 모두 흉악하고 포악하여 부모가 길러주신 은혜를 갚지 않을 것이다. 이 불효(不孝)한 중생들을 위하여 교화하는 법을 시설하기 위해서라도 여래가 몸소 부왕의 관을 메려고 하느니라.’
그러자 즉시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일체의 숱한 산들은 짧은 시간에 솟아올랐다가 잠겼다 하기를 마치 물 위의 배가 출렁이는 것과 같이 하였다.
그 때 모든 하늘과 용신(龍神)들이 다 와서 장례에 참예하였고 소리 높여 슬피 울었다. 사천왕(四天王)도 귀신 억백천 무리를 데리고 와서 다 함께 상여를 들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미래세계에 부모에게 불효하려는 이들을 위하여 큰 자비로써 몸소 부왕의 관을 메시겠다고 하신 것입니까?’
사왕천도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우리들은 바로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 수다원(須陀洹)을 증득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이 마땅히 부왕의 관을 메어야만 합니다.’
부처님께서 사천왕에게 부왕의 관을 메도록 허락하시자 곧 변하여 사람이 되었다. 일체 인민들치고 울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세존께서는 몸소 자신의 손으로 향로를 들고 앞에 서서 묘소로 나아 가셨다. 그리고 천 명의 아라한으로 하여금 큰 바닷가 늪지대로 가서 우두전단향(午頭旃檀香)과 갖가지 향나무를 가져오게 하여 그것으로 불을 피우게 하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괴롭고 공(空)하고 무상하기가 마치 허깨비와 같고 물 속에 달과 같으며 거울 속에 비치는 영상과 같느니라.’
시신이 타서 이미 다하자 그 때 모든 왕들은 각각 오백 개의 병에 우유를 담아가지고 그것으로써 불을 껐다. 불이 꺼진 뒤에는 다투어 함께 뼈를 거두어 금강함(金剛函)에 넣고 곧 그 위에 탑을 세우고서 비단 번기와 일산을 담고 그 탑묘에 공양하였다.
부처님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부왕이신 정반왕께서는 청정한 사람이라서 정거천(淨居天)에 태어나셨다.’”
또 『불모니원경(佛母泥洹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의 이모님이신 대애도(大愛道)비구니는 부처님께서 후에 마땅히 멸도 하시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먼저 멸도하시려고 제근녀(除饉女) 오백 명과 함께[제근녀는 곧 비구니를 말한다. 강승회(康僧會)가『법경경(法鏡經)』의 주석에서 말하기를 “범부는 육진(六塵)을 탐하여 물든다. 그것이 마치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탐 하여 싫어할 줄 모르는 것과 같다. 성인은 탐욕을 끊고 육진의 기근(飢饉)을 끊기 때문에 출가한 비구니를 제근이라고 말한다”고 하였다.]손으로 부처님의 발을 어루만지고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는 예배하고 떠나갔다. 그리고는 신족(神足)의 덕을 나타내어 저절로 자리에서 사라져 동쪽으로부터 와서 허공 중에 있으면서 열여덟 가지 신통변화를 나타냈다. 팔방(八方)과 상하에서도 또한 그와 같이 하면서 큰 광명을 놓아 모든 깜깜한 곳을 비추고 위로는 모든 하늘까지 밝게 비추었다. 그리고 오백 명의 제근녀들은 변화로 다 함께 불에 타 한꺼번에 먼저 니원(泥洹 : 涅槃)에 들었다.
부처님께서는 이가(理家)들에게 권유하여 오백 개의 상여를 만들게 하고 참깨 기름과 향ㆍ꽃과 갖가지 재목으로 오백 명의 제근녀를 장사 지내고 참다운 기악과 바른 음악으로 공양하였다.
일체의 범부와 성인들은 그것을 보고 슬피 울지 않는 이가 없었고, 사유를 마치자 사리(舍利)를 받쳐 들고 부처님의 처소로 나아갔다. 그 때 사방에서 각각 이백오십 명의 응진(應眞 : 阿羅漢)이 신족(神足)으로 날아 와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사리가 있는 곳에 이르러 천 명의 비구들과 함께 자리에 나아갔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를 가져다가 발우에 담아 내 손 위에 올려 놓아라.’
아난이 명하신 대로 하자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리는 본래 더러운 몸으로서 흉악하고 어리석으며 사악하고 포악하며 질투와 음모로써 도를 부수고 덕을 깨뜨렸었다. 그러나 이제 어머니는 구제되어 장부의 행위를 일으켜 응진도(應眞道 : 阿羅漢道)를 획득하시고서 영(靈)을 옮겨 갑자기 없어졌으니 어찌 장하지 아니하냐?’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칙명을 내려 탑묘(塔廟)를 세우고 공양하라 하셨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타와 나운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대애도의 몸을 모시고 오너라. 내가 마땅히 몸소 공양해야 하겠다.’
그 때 석제환인(釋提桓因)과 사천왕 등이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부디 원하옵건대 스스로 정신을 피로하게 하지 마십시오. 저희들이 마땅히 공양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왜냐 하면 부모는 자식을 낳고 많은 이익을 주셨기 때문이다. 길러 주신 은혜가 막중하고 젖을 먹이고 품에 안으셨으니 꼭 그 은혜를 갚아야 하며, 갚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과거와 미래 모든 부처님의 어머님들께서도 먼저 멸도를 취하셨으며, 모든 부처님께서도 다 몸소 사유한 사리를 공양하셨느니라.’
그 때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 모든 귀신들을 시켜 전단림(旃檀林)으로 가서 전단나무를 가져오게 하여 넓은 들판 사이에 이르러 부처님께서 몸소 상여의 한쪽 다리를 들고 난타가 다른 한쪽 다리를 들고 또 나운이 다른 한쪽 다리를 들고 아난이 마지막 한쪽 다리를 듣고서 허공을 날아 무덤 사이에 이르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 스스로 전단나무를 가져다가 대애도의 폼 위에 올려 놓으신 다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탑을 세우고 공양해야 할 네 사람이 있으니, 그 첫째는 부처님이요, 둘째는 벽지불(辟支佛)이며, 셋째는 누(漏)가 다한 아라한이요, 넷째는 전륜성왕이다. 이들은 모두 열 가지 선행으로써 중생을 교화했느니라.’
그 때 인민들은 곧 사리를 가져다가 각각 탑을 세우고 공양하였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 의하면 이러하다.
“애도(愛道)는 부처님의 이모로서 곧 난타(難陀)의 친어머님이시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사부(四部) 제자들 중에서 도를 증득한 맨 앞사람과 맨 뒷사람을 간략하게 말하면 우선 여덟 사람을 열거할 수 있다.
비구 중에서 맨 처음 득도한 사람은 구린(拘隣)비구이니 능히 교화를 잘 하였고 위의(威儀)를 잃지 않았다. 맨 마지막에 득도한 사람은 수발타라(須跋陀羅)이니, 그는 득도하던 날 바로 반열반(般涅槃)에 들었다.
비구니 중에서 맨 처음 득도한 이는 대애도(大愛道)비구니이고, 맨 마지막에 득도한 사람은 다라구이국(陀羅俱夷國)비구니이다.
우바새(優婆塞) 중에 맨 먼저 득도한 이는 상객남(商客男)이요, 맨 마지막에 득도한 이는 구이나마라(俱夷那摩羅)이다.
우바이(優婆夷) 중에서 맨 먼저 득도한 이는 난파녀(難婆女)이고 맨 마지막으로 득도한 이는 남(藍)우바이이다.”
031_0260_b_16L述曰生死連環不離俗諦雖復出家志求勝道分段難捨變易未除仍依三界隨俗遷流至於存亡皆依內外臨終之日安置得所葬送威儀具存下說且論亡屍安置南北魂魄不同今此略述禮記禮運曰體魄則降氣在上死者北首生者南向郊特生曰魂氣歸於天形魄歸於地故祭求諸陰陽之義祭義曰氣也者神之盛魂也者鬼之盛左傳昭二年子產對趙景子曰人生死化曰魄旣生魄陽曰魂用物精多則魂魄强是以有精爽至於神明夫疋婦强死其魂魄猶能憑依於人以爲淫厲況良霄乎淮南子曰天氣爲魂地氣爲魄魄問於魂曰道何以爲體魂曰以無有形魄曰有形也若也無有何而問也魂曰吾直有所遇之耳視之無形之無聲謂之幽冥幽冥者所以喩道而非道也問曰旣知魂與魄別今時俗亡何故以衣喚魂不云喚魄答曰魂是靈是屍故禮以初亡之時以己所著之將向屍魄之上以魂外出故將衣喚魂魂識己衣尋衣歸魄若魂歸於則屍口纊動若魂不歸於魄則口纊不動以理而言故云招魂不言喚魄故蕭喪服要記曰魯哀公葬其父子問曰寧設魂衣乎哀公曰魂衣起伯桃伯桃荊山之下道逢寒死友人羊角哀往迎其屍愍魂神之寒故改作魂衣吾父生服錦繡死于衣被用衣爲問曰何須幡上書其姓名幡招魂置其乾地以魂識其名名入於闇室亦投之於魄或入於重直龍反室重者重徒用反也以重之內具安祭以存亡各別明闇不同故鬼神闇生人明食故重用蘧蒢裹其食具以安重內置其神地也依如西域葬法有四一水漂二火焚三土埋四施林五分律云若火燒時安在石上不得草土上恐傷虫故分律云如來輪王二人悉火葬餘人通前五分律云屍應埋之此謂王法不許施身復恐夏燒殺虫故令埋之自外無難水林亦得依四分律及五百問事若見如來塔廟及見五衆出家人冢塔大於已者皆須展轉依生時年而設禮若一切白衣見出家人冢不簡大小皆須敬禮述曰旣知此諸道俗等若見師僧母亡柩外人弔來小於亡者至其屍如常設禮已先至孝子所默慰弔後至大德所具展哀情弔而拜之亦見愚癡白衣妄行法教展轉教他不聽禮父母叔伯尊親亡靈口云旣受戒彼爲鬼神故不合禮恐破戒此不會聖意反招無知之罪伏惟師僧等長養我法身父母叔伯等長養我生身依斯乳哺長大成人思此恩德昊天難報歷劫酬恩豈一生能不存敬恩反起慢墯繼踵鄙夫成孝子故世尊極聖尚自躬扶亡父屍送況下凡愚輒生怠慢故涅槃經知恩者大悲之本不知恩者甚於畜生又淨飯王泥洹經云白淨王在舍夷病篤將終思見世尊及難陁等尊在王舍城耆闍崛山中去此懸遠五十由旬世尊在靈鷲山天耳遙聞父思憶聲卽共阿難等乘空而至手摩王額上慰勞王已爲王說摩訶波羅本生經王聞得阿那含果王捉佛手捧置心上佛又說法得阿羅漢無常對至命盡氣絕忽就後世闍維時佛共難陁等喪頭前肅恭而阿難羅雲在喪足後阿難陁長跪白佛言唯願聽我擔伯父棺羅雲復唯願聽我擔祖王棺世尊慰言來世人皆凶暴不報父母育養之恩爲是不孝衆生設其化法故如來躬欲擔於父王之棺卽時三千大千世界六種震動一切衆山頗俄涌沒水上舩爾時一切諸天皆來赴擧聲啼哭四天王將鬼神億百千皆共輿喪白佛言佛爲當來諸不孝父母者故以大慈悲親欲自身擔父王棺四王俱白佛言我等是佛弟從佛聞法得須陁洹以是之故曹宜擔父王之棺佛聽四王擔父王卽變爲人一切人民莫不啼泣尊躬自手執香鑪在前行詣於墓所令千羅漢往大海渚上取牛頭旃檀種種香木以火焚之佛言苦空無常猶如幻化水月鏡像燒身旣竟爾時諸王各持五百甁乳以用滅火滅火之後競共收骨盛置金剛函卽於其便共起塔懸繒幡蓋供養塔廟告衆會父王淨飯是淸淨人生淨居天又佛母泥洹經云大愛道比丘尼是佛姨母不忍見佛後當滅度欲先滅度與除饉女五百人卽是比丘尼也康僧會注法鏡經云凡夫貪染六塵猶餓夫貪飯不知厭足令聖人斷貪除六情飢饉故號出家尼爲除饉也以手摩佛足遶佛三帀稽首而去現神足德於自座沒從東方來在虛空中作十八變八方上下亦復如是放大光明以照諸冥上曜諸天五百除饉變化俱然同前泥洹佛勸理家作五百輿麻油香華種種梓材事各五百伎正音當以供養一切凡聖睹之不哀泣闍維畢捧舍利詣佛所於是四方各二百五十應眞神足飛來首佛足至舍利所千比丘俱皆就坐佛告阿難取舍利盛之以鉢著吾手阿難如命佛告諸比丘斯舍利本是穢身凶愚惡暴嫉妒陰謀敗道壞今母能拔與丈夫行獲應眞道靈卒無何其健哉勅令興廟供養又增一阿含經云佛告阿難陁羅雲汝等輿大愛道身我當親自供養釋提桓因四天王等前白佛言願勿自勞神我等自當供養佛言所以然者父母生子多有所益養恩重乳餔懷抱要當報恩不得不過去未來諸佛母先取滅度諸佛皆自供養闍維舍利也毘沙門天王使諸鬼神往栴檀林取旃檀薪曠野之間佛躬自擧牀一腳難陁擧一腳羅雲擧一腳阿難擧一腳飛在虛空往至塚間爾時佛自取旃檀木著大愛道身上佛言有四人應起塔供養一者佛二者辟支佛三者漏盡阿羅漢四者轉輪聖王皆以十善化爾時人民卽取舍利各起塔供養依雜阿含經愛道姨母卽是難陁親母也又增一阿含經云四部弟子中略取前後者且列八人比丘中最初得道者如拘鄰比丘善能勸化不失威儀最後得道者如須跋陁羅臨得道日入般涅槃比丘尼中最初得道如大愛道尼最後得道者如陁羅俱夷國尼優婆塞中最初得道者商客男最後得道者如俱夷那摩羅優婆夷中初得道者難婆女最後得道者如藍優婆夷

8) 수생연(受生緣)
031_0262_b_23L受生緣第八
031_0262_c_02L대체로 태어나면 여덟 가지 인식작용이 부지(扶持)하고 죽으면 사대(四大)가 흩어진다. 빠르기도 하다. 백 년이란 세월이 훌쩍 가버려 끝내는 마멸(摩滅)로 돌아가고 삼계(三界)를 순환(循環)하면서 벙벙 돌아 멈추지 않는구나.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였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마침이 있나니, 이미 생겨났으면 사라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말한 성인의 가르침은 헛되지 않으니, 눈으로 보고 예의를 올려야 한다. 그런 까닭에 이 연(緣)에서는 대략 여섯 가지 문(門)을 들어 기술하겠다.
그 첫 번째 문은 목숨을 마칠 때에 임하는 태도이다.
몸이 차가운지 따뜻한지를 검사하여 그 선과 악을 증험해 보면 미래의 과보를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유가론(瑜伽論)』에서 말하였다.
“이 유정(有情)은 물질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다. 임시로 목숨을 지니게 된 것은 크건 작건 간에 다 똑같고 죽을 때는 통상 단번에 죽거나 점차로 죽는다고 모든 스승들이 서로 전하고 있다. 착한 짓을 한 사람은 아래로부터 찬 기운이 닿기 시작하여 배꼽에까지 이르고, 그 이상은 따뜻한 기운이 있다가 나중에 다 없어지게 된다. 그런 사람은 곧 인간 세계에 태어나며, 만약 얼굴[頭面]에 따뜻한 기운이 있다가 나중에 그 기운이 다하면 곧 천도(天道)에 태어난다.
만약 악한 짓을 한 사람이면 이와 서로 반대이니, 위에서부터 허리까지 따뜻한 기운이 있다가 나중에 사라지는 이는 귀신의 세계에 태어나며, 허리에서부터 무릎까지 따뜻한 기운이 있다가 나중에 사라지게 되면 축생(畜生)의 세계에 태어나고, 무릎 이하 다리 끝까지 다 사라진 이는 지옥의 세계에 태어난다.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이 열반에 들면 혹은 심장 부위에 따뜻한 기운이 있기도 하고 더러는 정수리에 따뜻한 기운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유가론』에서 말하였다.
“갈라람(羯羅藍)의 뜻은 맨처음에 의탁하는 곳이어서 곧 육심(肉心)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의식이 이곳에 가장 먼저 의탁하여 생겨나나니, 그래서 이곳을 가장 나중에 버리게 된다.”
이를 해석하여 말한다.
『유가론』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착한 업을 지으면 위에 태어나기 때문에 아래로부터 점점 버리기 시작하여 육심에 이르고 나중에 가서야 비로소 위에까지 다 버리게 되며, 악한 업을 지은 사람은 아래에 태어나기 때문에 먼저 위에서부터 버리기 시작하여 육심에 이른 뒤에야 비로소 아래까지 다 버린다는 뜻이다.”
『구사론(俱舍論)』에 의거하여 말한다.
“만약 사람이 금방 죽었으면 몸 어느 부분에서 의식이 단멸(斷滅)하는가?
만약 일시(一時)에 몸이 죽으면 감각기관과 함께 의식도 일시에 다 사라지지만, 만약 사람이 차례로 죽게 되면 다음 게송에서 말한 것과 같다.

차례로 죽는 것은 다리에서 배꼽15)으로
그리고 심장에서 의식이 끊어지는데
하인(下人)은 하늘에 나지 못한다.

이 논 중에서 해석하여 말하였다.
‘만약 사람으로서 틀림없이 악한 세상에 태어날 사람이거나 인간 세계에 태어날 이와 같은 사람은 차례로 죽으며, 아라한 같은 사람은 심장에서부터 의식이 단절된다. 어떤 다른 부파에서는 머리에서부터 끊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 하면 몸의 감관이 이곳에서 의식과 함께 소멸되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금방 죽으면 이 몸의 감각기관은 뜨거운 돌과 물이 점점 식어가듯이 다리 언저리에서부터 차례로 식어간다.’
해석하여 말한다.
“『구사론(俱舍論)』은 소승(小乘)의 이치를 기술하였기 때문에 ‘몸은 이들 처소에서부터 의식과 함께 소멸한다’고 하였으나 만약 대승(大乘)에 의거하면 ‘몸의 감각기관은 이들 곳에서부터 본식(本識)과 함께 소멸한다’고 하였다.”
두 번째는 생(生)을 받는 방법이다.
『구사론』에 의하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서 이르는 곳이 바로 마땅히 태어나게 될 세계가 되기 때문에 여기에서 생긴 중음(中陰)인 중생이 전생 업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안근(眼根)은 비록 가장 먼 곳에 머물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땅히 장차 태어나야 할 곳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부모가 될 사람이 그 가운데에서 변이(變異 : 性交)의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만약 변화하여 남자가 될 사람이면 그 어머니에 대하여 곧 남자의 자격으로서 음심(淫心)을 일으키고, 만약 변화하여 여자가 될 사람이면 그 아버지에 대하여 곧 여인의 자격으로서 음욕의 마음을 일으킨다.
뒤바뀐 이러한 마음으로 성을 내면 이 가운데 있던 중생은 두 가지 뒤바뀐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가 애욕의 장난치는 곳을 찾는다. 그는 애욕으로 즐기는 곳을 찾아 자신이 태어날 곳으로 가서 아버지의 정액이 흘러 들어가면 이것은 곧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여 즐거워하나니, 이 때에 부정(不淨 : 淨液)이 이미 태(胎)의 처소에 이르러 환희하면서 그대로 거기에 의탁하여 생겨난다.
이 찰나(刹那)로부터 이 중생은 오음(五陰)이 화합하여 견실(堅實)해지고 중유(中有)의 오음은 즉시 사라지게 된다. 이와 같이 되어야 비로소 생(生)을 받았다고 말한다.
만약 태 안의 것이 사내아이라면 어머니의 왼쪽 옆구리에 의지하여 얼굴은 어머니를 향하여 밖을 둥지고 걸터 앉고 만약 태 안의 것이 여자 아이라면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에 의지하여 얼굴을 어머니의 옆구리를 향하여 등지고 머무르며, 만약 사내도 아니고 여아도 아닐 경우에는 어머니의 태 안에서 되고 싶은 한 종류를 따라 의탁하여 생겨난다. 머무르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
중유(中有)는 남자나 여자와는 달라서 모두 감각기관을 구족함이 없기 때문에 혹은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간에 어머니의 태에 생을 의탁하여 머무르고 있다가 나중에 태 안에 있으면서 점점 자라나서는 혹 황문(黃門)이 되기도 한다. 가령 태생(胎生)과 난생(卵生)이 두 생으로 생(生)을 의탁하는 도리는 이와 같다.
만약 중생이 습기를 받아 태어나고자 하면 그는 향기를 사랑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태어날 곳에 이르게 된다. 이 향기는 혹은 깨끗하기도 하고 혹은 깨끗하지 않기도 하니, 그것은 전생의 업을 따르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화생(化生)이면 처소를 사랑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태어날 곳에 이르게 된다.
만약 이와 같이 그러하다면 지옥으로 가는 중생은 어찌 그곳을 좋아해서 태어나는가?
그것은 마음이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중생은 찬 바람과 찬 비를 맞이하게 되어 그것이 몸에 닿으면 괴로워하다가 지옥의 불이 맹렬하게 타올라 치성한 모습을 보고는 그것을 사랑하게 되어 따뜻한 감촉을 얻고자 일부러 그곳으로 가서 들어가게 된다.
또 몸에 따뜻한 바람을 받아 빛과 불꽃 동에 구워지면서 너무 아파 참기 어려워하다가 한랭(寒冷)지옥의 서늘한 기운을 보고는 차가운 것이 몸에 닿는 것을 사랑하고 좋아하게 되어 일부러 그곳으로 가서 들어간다.
태생 (胎生)과 난생(卵生), 이 두 생은 부모가 변이(變異)하는 일에 대하여 자신이 태어날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습생(濕生)과 화생(化生), 이 두 생은 그렇지 않고 적백(赤白)에 의탁하여 몸이 된다. 그러므로 이런 변화는 없다.
습생은 다만 향기만을 사랑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제가 태어날 곳에 이르는데 전생 업의 선하고 악함을 따라 좋아하는 향기에 저절로 깨끗하고 더러움이 있을 뿐이다.
화생(化生)은 다만 의지할 처소만을 좋아할 뿐이다. 지옥이 비록 고통을 받는 처소이기는 하나 그러나 죄인은 좋아하고 또한 사랑하는 곳을 얻게 되어 그 가운데에서 생을 받는 것이다.
왜냐 하면 사랑하지 않으면 생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논(論)에서 말하였다.
“지나간 옛날에 지었던 것이 있으면 이와 같은 것을 느껴 태어나게 되나니, 자신의 이와 같은 자리[位]를 보면 즐겁게 여기는 것이다. 저 중생들도 또한 그러할 것으로 보는데 그런 까닭에 그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옛날에 모든 스승들도 이와 같은 말을 하였다.
“만약 어떤 중생이 나이 서른 살이었을 때에 살생의 업을 행하였는데, 중생들을 그물로 잡았다고 하자. 그 일을 할 때에는 반드시 동반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 업으로 지옥의 생(生)을 감당해야 하지만, 훗날 중음신으로 있을 동안에도 제 자신이 옛날 나이 서른 살이었을 적에 그물로 산 목숨을 잡았을 때와 똑같은 언행과 지위를 보게 되고, 또 옛날의 친구들도 옛날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지옥을 볼 때에도 옛날 강호(江湖)에서 본 여러 벗들과 같은 이들이기에 서로 끌어당기면서 함께 그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를 인연하여 변화를 일으켜 곧 그 안에서 생을 받게 된다.
그러다 나중에서야 옛날에 지었던 업이 비록 많기는 했어도 기필코 이 한 가지 업으로 인해 이끌리어 지옥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혹은 나이 스무 살 때에 이런 업을 지었거나 혹은 서른 살 때에 이런 업을 지었거나 간에 뒷날 중음신으로 있을 동안에는 자신의 붐이 옛날에 업을 지었을 당시 젊고 늙음과 같이 지옥의 중생을 볼 적에도 모두 자기의 나이와 같아서 그 나이가 서로 비슷함을 보게 되므로 이 중생들에 대하여 변화했다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곧 그곳으로 나아가게 되며, 그런 뒤에 이 애욕 때문에 생을 받는 것이다.”
경부(經部)의 논사(論師)들이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이다.
또 『유가론(瑜伽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생활에 있어 복이 잃은 사람은 장차 하천한 집안에 태어나게 된다. 그는 죽을 때에나 태 안에 들어갈 때 곧 갖가지 어지럽고 혼란한 소리를 듣게 되고, 또 자신의 망견(妄見)으로 총림 (叢林)ㆍ대나무ㆍ갈대ㆍ노적 (蘆荻) 따위의 속에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만약 복이 많은 사람은 장차 존귀한 집안에 태어난다. 그는 그 때 곧 스스로 적정(寂靜)하고 미묘(美妙)하여 마음에 맞는 음성을 듣게 되고, 또 자신의 망견으로 궁전에 오르는 등 마음에 흡족한 모습을 보게 된다.
또 『구사론(俱舍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사람이 죽으려 할 때에 삿된 견해의 마음을 일으키면 이 사람은 과거의 착하지 못한 일이 원인이 되고 삿된 견해가 연(緣)이 된다. 그러므로 그는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어떤 논사가 말하였다.
‘일체의 착하지 못한 일은 모두가 다 지옥으로 가는 원인이 되지만, 이 착하지 않은 것 외의 일로써 축생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아귀의 세계에 태어나기도 한다.’”
또 전생의 업이 왕성하기 때문에 중생의 세계에 떨어지는데, 그것은 마치 음욕이 왕성한 까닭에 비둘기ㆍ참새ㆍ원앙 따위로 태어나고 성을 내는 것이 왕성하기 때문에 도마뱀ㆍ독사ㆍ전갈 따위로 태어나며, 어리석음이 왕성하기 때문에 돼지ㆍ양ㆍ조개 따위로 태어나고 교만함이 왕성하기 때문에 사자ㆍ호랑이ㆍ이리 따위로 태어나며, 들뜸과 장난이 왕성하기 때문에 원숭이 중에 태어나고 간탐과 질투가 왕성하기 때문에 굶주린 개로 태어나는 것과 같다.
만약 그 중에서도 조그마한 선행을 하였거나 다른 복이 있으면 비록 축생 세계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미미한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몸과 입의 두 가지 업이 비록 마음이 주(主)가 되기는 하나 저 입으로 지은 업 때문에 과보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령 남에게 욕설을 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되 마치 원숭이처럼 하였으면 곧 원숭이의 세계에 태어나고, 만약 “탐내고 사납기가 마치 까마귀와 같다”고 말했거나 “말하는 것이 마치 개짖는 소리와 같다”고 하거나 “미련하기가 마치 돼지나 양 같다”고 하거나 “소리가 마치 나귀 우는 소리와 같다”고 하거나 “다니는 모습이 마치 낙타와 같다”고 하거나 “스스로 뽐내는 것이 마치 코끼리와 같다”고 하거나 “악하기가 마치 미쳐 날뛰는 소와 같다”고 하거나 “음탕하기가 마치 참새와 같다”고 하거나 “겁 많은 것이 마치 고양이나 살쾡이 같다”고 하거나 “아첨하는 모습이 마치 여우와 같다”고 하면, 이와 같은 모든 악은 구업 (口業)을 따라 과보를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삼독(三毒)이 근본이 되기 때문이니, 삼독 중에 애욕을 탐하는 것이 가장 중하다. 그것은 마치 삼베의 한쪽 끝을 잡아당기면 나머지가 다 딸려 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애욕을 끊지 않고 사랑하면 함께 생한다.”
그런 까닭에 네 종류의 중생[四生 : 胎ㆍ卵ㆍ濕ㆍ化)은 다 애욕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니, “마치 음욕이 많으면 참새로 태어나는 것과 같고, 맛을 많이 탐하면 측간 가운데 생을 받는다”고 말한 것과 같다.
또 애욕 때문에 난생과 태생이 되고 향기와 맛을 탐하기 때문에 습생을 받는 것이니, 그 사랑하는 바를 따르기 때문이다. 또 은중(殷重)한 업을 일으키면 화생(化生)을 받지만 만약 은중한 마음으로 죄업(罪業) 행하기를 좋아하면 죽을 때에 망령되이 지옥을 보고 그 곳에서 화생의 몸을 받으며, 만약 은중하게 복을 받으면 천상 세계에 가서 화생한다.
그러므로『성론(成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나무 뿌리를 뽑아내지 않으면 그 나무는 오히려 소생하듯이, 탐욕의 뿌리를 뽑아내지 않으면 괴로움의 나무는 늘 존재하게 된다.”
또 『유가론(瑜伽論))』에서 말하였다.
“어떻게 하여 내가 생기는가? 애욕이 간단없이 생기기 때문이다.”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쓸모 없는 논리에 집착한 것이 그 원인이 되어 이미 훈습(薰習)되었기 때문이요, 깨끗하고 깨끗하지 못한 업이 원인이 되어 이미 훈습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의지할 본체는 이 두 가지 원인의 우세한 세력 때문에 종자를 따르나니, 곧 이 종자 가운데 이숙(異熟)이 있어서 간단없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죽을 때에는 마치 저울의 두 끝이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결국에는 똑같아지는 것처럼 이 가운데에서 반드시 모든 감각기관을 원만하게 갖추게 된다.
악한 업을 지은 이가 얻게 되는 중유(中有)는 검은 양의 빛깔과 같고 혹은 깜깜한 밤의 빛깔과 같으며, 선한 업을 지은 이는 흰 옷의 빛깔과 같고 맑게 개인 밤의 빛깔과 같다.
『구사론(俱舍論)』에서 말하였다.
“이 중유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구족하고 있는데, 그것은 금강(金剛) 등도 장애하지 못한다. 수미산(須彌山) 아래의 금강 가운데에 두꺼비[蝦蟆]가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 생을 받는 중유는 아주 미세한 물질이라서 금강도 장애하지 못한다. 천안(天眼)을 지닌 사람만이 이 일을 볼 수 있다.”
다시 들었던 일을 들어 증명하면 일찍이 어떤 사람에게 들었던 말인데, 쇠를 달구어서 뜨겁게 한 뒤에 그것을 깨뜨려 보았더니 거기에서 벌레가 나왔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수명의 길고 짧은 일이다.
『구사론(俱舍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생이 결정되지 않고 다른 곳에 살고 있을 적에는 이 세계 가운데에서 모두 생을 받을 수 있다.
비유하면 마치 소는 여름철에 애욕의 일을 많이 하고 개는 가을철에 많이 하며, 곰은 겨울철에 많이 하고 말은 봄철에 많이 하며, 야간(野干) 등은 어느 때나 애욕의 일[欲事 : 交尾]을 많이 하는 것과 같다.
이 때에 이 중생들은 마땅히 소에게로 가서 태어나야 할 것이나 만약 여름철이 아니면 야간에게로 가서 태어나며, 만약 개의 세계에 태어나야 할 터이나 제 철이 아니면 야간의 세계에 태어나는 것과 같다.
또 구사론(俱舍)의 소승(小乘) 대사들에게 네 가지 해석이 있는데, 동일하지가 않다.
첫 번째 설(說)에서는 지극히 짧은 시간에 죽고 나면 곧 오음을 받아 태어난다고 한다.
두 번째 설에서는 칠 일 동안만 머무를 수 있고, 이레가 꽉 차고 나면 중유로 있으면서 시절에 아무 제한이 없다고 한다.
세 번째 설에서는 사십구 일 동안 머무를 수 있고 태어날 연(緣)이 미처 갖추어지지 않았으면 죽은 뒤에 다시 받되 또한 시절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네 번째 설에서는 생을 받을 인연을 따르되 나아가 겁(劫)이 지나도록 머물러 있으면서 목숨을 마치지 않는다고 한다.
다섯 번째 설에서는『유가론(瑜伽論)』에 의거하여 말했다.
“만약 아직 태어날 인연을 얻지 못하면 이레가 다하도록 머무르다가 죽어서 다시 태어나되 나아가 칠칠일(七七日 : 四十九日)이 되도록 죽고 남[死生]을 받으며 그 이후는 결정코 태어날 인연을 얻는다.”
이것은 앞의 네 가지 경우와는 다 같지 않다.
네 번째는 신통력의 더디고 빠름에 대해서이다.
『구사론(俱舍論)』에서 말하였다.
“이 중음(中陰)이 허공을 떠돌아 다니면서 떠나가는 것이 마치 사람이 목숨을 버리는 것처럼 마땅히 한량없는 세계 밖에 이르러서 생을 받아야 할 경우 잠깐 사이에 곧 그곳에 이르게 된다.
이승(二乘)의 신통력으로는 미처 하나의 세계도 벗어나지 못할 시간인데도 중음신은 벌써 한량없이 많은 세계 밖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아무리 부처님의 신통력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차단하여 그로 하여금 가서 태어나지 못하게 할 수 없나니, 이렇게 다른 세계에 가서 머물 수 있는 것은 그가 지은 업력(業力) 때문에 이미 가서 태어날 곳이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통의 수승함을 논하자면 뛰어난 범부는 이승의 신통조차도 억누를 수 있다.
『바사론(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신통의 우세하기는 부의 신속한 신통도 억누를 수 있다.”
다섯 번째는 서로 보는 견해가 같지 않다는 것이다.
『구사론』에 의거하면 이러하다.
“만약 같은 세계에 태어날 중음이면 반드시 서로가 본다고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천안(天眼)을 지니고 있고 가장 청정(淸淨)하다면, 이 사람은 제일가는 세계의 지혜로운 중생이어서 이 사람도 또한 그가 태어나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만약 과보로 천안을 얻었다면 볼 수 없나니, 그것은 가장 미세하기 때문이다.”
살바다부(薩婆多部)에서 말하였다.
“만약 똑같이 인간 세계 가운데에서 생을 받을 사람은 인간 세계의 중음(中陰)과 똑같으므로 서로가 볼 수 있으나, 이런 이치는 결정된 것이어서 그 밖의 다른 세계의 중음은 볼 수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수행하여 천안통(天眼通)을 증득했으면 이 천안통은 곧 도류(道類)로서 중음의 빛깔을 볼 수 있지만 만약 과보로 증득한 천안통이면 중음의 빛깔을 볼 수 없나니, 그 중음의 빛깔이 다른 빛깔보다 미세하기 때문이다.”
정량부(正量部)에 의하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늘 세계의 중음은 다섯 갈래 세계에 있는 중음의 빛깔을 다 볼 수 있지만 인간 세계의 중음은 네 세계는 볼 수 있으나 하늘 세계의 중음만은 볼 수 없나니, 그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차례로 바로 앞의 세계까지는 볼 수 없으며, 나아가 지옥 세계의 중음에 이르면 앞의 네 갈래 세계의 중음은 볼 수 있는 대상에서 제외되나니, 그것은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지옥의 중음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여섯 번째는 몸의 양(量)이 크고 작음이다.
『구사론』에서 말하였다.
“몸의 크기가 예닐곱 살 되는 어린아이만 하고 아는 지식이나 총명하고 영리하기도 그 정도이다. 보살이 중음신으로 있으면 조금 병든 사람에게 크고 작은 모습이 모두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비록 중음신으로 있다고 하더라도 막 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면서 일만 구지(俱胝) 염부주(剡浮洲)를 두루 비출 수 있다.”
031_0262_b_24L夫生則八識扶持死則四大離散矣百齡終歸磨滅循環三界迴轉靡故經曰有始必終旣生則滅聖教不虛目睹交臂所以於此緣中略述六門第一門中臨命終時撿身冷熱驗其善惡具知來報故瑜伽論云此有情者非色非心假爲命者大小皆同通漸頓諸師相傳造善之人從下冷至臍已上煖氣後盡卽生人中至頭面熱氣後盡卽生天道若造惡與此相違從上至腰熱後盡者於鬼趣從腰至膝熱氣盡者生於畜從膝已下乃至腳盡生地獄中學之人入涅槃者或在心煖或在頂然瑜伽論云羯羅藍義最初託處卽名肉心如是識於此處最初託生卽從此處最後捨命釋云依瑜伽論由造善生上故從下漸捨至肉心後方說上捨由造惡生下故先從上捨至肉心後從下捨也依俱舍論云若人正死於何身分中意識斷滅若一時身死根共意識時俱滅若人次第死此中偈曰次第死腳齊 於心意識斷 下人天不生論中釋曰若人必往惡道受生及人如此人等次第於阿羅漢此人於意識斷絕有餘部說於頭上何以身根於此等處與意識俱滅故人正死此身根如熱石水漸漸縮減於腳等處次第而滅釋云俱舍論述小乘義故云身死於此等處與意識俱滅若依大乘身根於此等處與本識俱滅也第二受生方法者依俱舍論云爲行至應生道處故起此中陰衆生由宿業勢力所生眼根雖住最遠處能見應生處於中見父母變異事若變成於母卽起男人欲心若變成女父卽起女人欲心倒此心起瞋此中有衆生由二起顚倒心故求欲戲往至生處是卽樂得屬己是時不淨已至胎處卽生歡喜仍託彼生從此剎是衆生五陰和合堅實中有五陰卽滅如此方說受生若胎是男依母左脅面向母背蹲坐若胎是女依母右脅面向母脅而住若胎非男非女隨欲類託生住亦如此無有中有異於男女皆具根故是故或男或女生而住後時在胎中增長或作黃門若託生胎卵二生道理如此若衆生欲受濕生愛樂香故至生處此香或淨或不淨隨宿業故若是化生愛樂處所故至生處如是若爾地獄衆生云何生樂處所由心顚倒故此衆生見寒風冷雨觸惱身見地獄火猛熾盛可愛欲得煖觸故往入彼復見身爲熱風光及火焰等所炙苦痛難忍見寒冷地獄淸涼愛樂冷觸故往入卵二生於父母變異事生處化二生不由託赤白爲身故無此變濕生但愛著香故至所生處隨業善所愛之香自有淨穢化生但愛所依之處地獄雖是苦處然罪人樂得愛處於中受生何以故非愛不受生故論云如往昔造作能感如此生樂見身是如此位見彼衆生亦爾故往彼先舊諸師作如此說若衆生年三十時行殺生業網捕衆生行此事時必有伴類此業能感地獄生於中陰中見自身如昔年三十行絅捕時故言位又見昔伴與昔不差地獄時如昔見江湖諸伴類等相牽共入其中緣此起變卽於中受生解昔所造業雖多必以一業牽地獄或於年二十時作此業或三十時作此業後於中陰中見自身如昔作業少老見地獄衆生竝如己年時時旣相似於此衆生起變卽往就彼由此愛故受生依經部師作如此釋又瑜伽論云若居薄福者當生下賤彼於死時及入胎時便聞種種紛亂之聲及自妄見入於叢林荻等中若多福者當生尊貴家於爾時便自聞有寂靜羙妙可意音聲及自妄見昇宮殿等可意相見又俱舍論云若人臨終起邪見心人以先不善爲因邪見爲緣故墮地有論師言一切不善皆是地獄因此不善之餘生畜生餓鬼中又往業盛故墮畜生中如婬欲盛故生於鴿鴛鴦之中瞋恚盛故生於蚖蝮蛇蝎中愚癡盛故生猪羊蚌蛤中憍慢盛故生於師子虎狼中掉戲盛故獼猴中慳嫉盛故生餓狗中若有少分施善餘福雖生畜生於中微樂口二業雖由心爲主然其口業受報者多如罵人輕躁喩如獼猴卽生猴若言貪悷如鳥語如狗吠騃如猪聲如驢鳴行如駱駝自高如象如逸牛婬如鳥雀怯如猫狸諂如野如是諸惡隨口受報然由三毒爲三毒之中貪愛爲重如捉布一頭餘則盡隨故智度論云若不斷愛則同生是故四生皆由愛起如說多欲生鳥雀中多貪味故廁中受生愛欲故卵生胎生貪香味故受濕生隨其所愛故起殷重業則受化生殷重心樂行罪業死時妄見地獄其化生若殷重受福上界化生故成論云如樹根不拔其樹猶生貪根不苦樹常在又瑜伽論云云何生我愛無間已生無始樂著戲論因已熏習故淨不淨業因已熏習故彼所依體由二種增上力故從種子卽於是處中異熟無間得生死時如稱兩頭低昂時等而此中必具諸根造惡業者得中有如黑羺光或陰暗夜作善業如白衣光或晴明夜俱舍論云中有具足五根金剛等所不能礙彌山下金剛中有蝦蟆於中受生有細色金剛不能礙之有天眼者見此事更擧所聞事證曾聞人說鐵令熱破之見虫第三壽量長短者俱舍論云若不定處於餘處此道中皆得受生譬如牛於夏時欲事偏多狗於秋時熊於冬時馬於春時野干等欲事無時此衆生應生牛中若非夏時則生野牛中若應生狗中非時則生野干又俱舍小乘師有四釋不同一說促時死已卽受陰生二說得住七七滿已處中有不限時節三說得住四十九日生緣未具死已更受亦不限時節四說隨受生緣乃至經劫住不命終第五依瑜伽論云若未得生極七日住死而復生乃至七七日受死生自此已後決得生緣此與前皆不同也第四通力遲速者俱舍論云此中陰遊空而去如人捨命應至無量世界外受生俄頃卽到二乘通力未出一世界中陰已至無量世界外縱佛神亦不得能遮令不往生得住餘道以業力定故論通勝者據勝凡夫二乘神通婆沙論云神足勝者據佛神通速也第五互見不同者依俱舍論云若同生道中陰定互相見若人有天眼最淸淨是一道慧類此人亦得見彼生若報得天眼則不能見以最細故薩婆多部云若同於人道中受生同是人道中陰互得相見此義爲定能見餘道中陰若人修得天眼此天眼則是道類能見中陰色若報得天則不能見中陰色中陰色細餘色依正量部云天道中陰備能見五道中陰色人道中陰能見四道除天道中陰非其所能見如是次第除前乃至地獄道中陰除前四道中陰其所見唯見地獄道中陰第六身量大小者俱舍論云身量如六七歲小兒而識解聰利菩薩在中如圓滿少病人具大小相是故雖在中陰正欲入胎而能遍照萬俱胝剡浮洲

9) 제사연(祭祠緣)
031_0265_a_07L祭祠緣第九
031_0265_b_02L가만히 듣건대 금이나 옥은 다른 보물이나 사람에게 있어서는 모두가 보배요, 불교와 유교의 다른 이치도 멀고 가까운 사람이 다 함께 따르나니, 어찌 꼭 공자[尼]16)가 제 나라에서 태어났다 하여 곧 스승으로 삼고자 할 것이며, 부처님께서 먼 나라에 살고 있다고 하여 마음 속으로 버릴 생각을 하겠는가?
일의 절박함을 견디지 못해 문득 어리석은 견해를 진술하지만 옳고 그른 이치에 대해서야 감히 스스로 독단할 수는 없다.
옛날에 공구(孔丘)가 다니던 사당은 천 년의 규모요, 석가(釋迦)께서 다니셨던 사찰은 만대(萬代)의 신령스런 탑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형상을 보고 생각을 극복하고 형상을 바라보고 마음을 귀의함으로써 스승을 공경하고 임금에게 충성케 하는 것은 그 이치가 마찬가지이다.
정란(丁蘭)이 속대(束帶)하고 나무로 만든 어머님 형상을 효도로써 섬긴 것과 같은 일이요, 무진(無盡)이 영낙[瓔]을 풀어 다보불탑(多寶佛塔)에 받들어 올린 것과 같은 경우이다.
아득히 먼 옛날을 살피고 막막하게 청진(淸塵)을 생각하며 이미 발자취를 이어 숲을 이룩한 것도 이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또 『예경(禮)』을 상고하여 말하면 이러하다.
“천자(天子)는 일곱 대까지 제사를 지내고[七廟]제후는 다섯 대까지 제사 지내며, 대부(大夫)와 경사(卿士)는 각각의 계급이 있다. 그래서 하늘은 신(神)이라 하여 원구(圓丘)에서 제사를 지내고 땅을 기(祇)라 하여 방택(方澤)에서 제사를 지내며, 사람은 귀(鬼)라 하여 종묘(宗廟)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용귀(龍鬼)가 비를 내리는 노고와 소[牛畜]가 쟁기를 끄는 효용에 대해선 혹은 마을 저자거리에 형상을 만들어 세우고 그 모습을 성문(城門)에 세우거늘 어찌 천상과 천하의 삼계(三界)대사이시며, 이 세계와 저 세계의 사생(四生)의 자부(慈父)로서 그 위엄과 덕은 만억 중생이 따르는 바요, 풍속과 교화는 백령(百靈)의 본보기가 되는 것에 있어서야 두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착한 사람의 회향은 온갖 갈래의 지류(支流)가 넓은 바다로 돌아가는 것과 같고 큰 광명이 포섭하여 받아들이는 것은 해와 달이 온갖 별을 이끄는 것과 같다. 월지(月支)에서 그림자를 남기고 나갈(那竭)에서 몸을 불살라 얻은 사리가 두루 퍼져서 기환(祇桓)에서 드디어 그 형상이 만들어졌다. 성인과 현인이 이 경복(景福 : 큰 복)에 의지하니, 혹은 존중하고 혹은 귀하게 여기면서 여기에서 편안함 얻기를 바라고 있다.”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모든 인민들이 살고 있는 집[舍宅]에는 모두 귀신이 있어서 빈 자리가 없다.
거리ㆍ골목ㆍ길ㆍ밭두둑 길ㆍ푸줏간ㆍ시장ㆍ가게와 온갖 산 속 무덤에도 다 귀신이 있어서 조금도 비어 있는 곳이 없다. 모든 귀신들은 다 의지하는 바를 따라서 곧 그 이름이 있게 된다.
가령 사람이 처음 날 때부터 다 귀신이 그를 따라다니면서 그를 옹호하며, 만약 사람이 죽으려고 할 때에는 귀신이 정기(精氣)를 거두어 들인다.
열 가지 악을 실천한 사람은 천이건 백이건 다 한 신 (神)이 보호하고, 열 가지 선을 실천한 사람은 마치 백천 사람이 국왕을 모시고 호위하듯이 그를 호위 하고 모신다.”
또 『시방비유경 (十方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천상이나 천하의 귀신들은 당장 닥치거나 앞으로 다가올 사람의 수명과 죄복(罪福)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을 살려낼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으며, 또 사람들을 부귀(富貴)하게 하거나 빈천(貧賤)하게 할 수도 없다. 다만 남을 시켜서 악을 짓거나 살생을 범하게 할 뿐이다. 사람이 쇠모(衰耗)해질 때를 틈타서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가지고 그에게 재앙과 복을 이야기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에게 와서 제사를 지내게 할 뿐이다.”[그러므로 부질없이 귀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현세의 복을 구하려고 해도 그 힘을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 『보요경(普曜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가섭(迦葉)이 게송으로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스스로 생각해 보면 제사를 지내온 지
이미 팔십 년이 지났네.
바람ㆍ물ㆍ불의 신과
해ㆍ달ㆍ산ㆍ냇물의 신 받들기를

밤이건 낮이건 게을리하거나 폐하지 않고
마음 속에는 다른 생각 없었지만
끝끝내 얻은 것 아무것도 없고
부처님을 만나고야 곧 일들이 편안해졌네.”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바라문이 있었는데, 사당의 하늘신을 섬겨 밤낮으로 받들어 모셨다.
그러자 천신이 그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을 구하느냐?’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저는 지금 이 천사(天祀)의 주인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천신이 말하였다.
‘저기에 소 떼가 있다. 너는 그 중 맨 앞에 가는 놈에게 물어보라.
곧 천신의 말대로 가서 그 소에게 물어 보았다.
‘너는 지금 어떠하냐? 고통스러우냐, 즐거우냐?’
소가 곧 대답하였다.
‘나는 지금 너무도 괴롭다. 가시는 나의 양쪽 갈비를 찌르고 시목(柴木)은 뒤틀려서 척추가 다 부서졌다. 그런데도 멍에를 메고 무거운 짐을 싣고 끌고 다니며 잠시도 휴식할 때가 없다.’
또 물었다.
‘너는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소의 폼을 받았느냐?’
소가 대답하였다.
‘나는 천사의 주인이었을 때 스스로 방자하게 내 마음대로 천사의 물건을 썼다가 목숨을 마치고는 소가 되어 지금 이런 고뇌를 받고 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곧 천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천신이 그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도 천주(天主)가 되고 싶으냐?’
바라문(婆羅門)이 말하였다.
‘제가 이 사실을 관찰해보니 이젠 정말로 천사의 주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천신이 말하였다.
‘사람들은 선과 악을 행하여 스스로 그 과보를 받는 것이다.’
그러자 바라문은 잘못을 뉘우치고 곧바로 온갖 선행을 닦고 전생의 악을 고쳤다.”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노인이 있었는데 그의 집은 큰 부자였다. 이 노인은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어 거짓 방편을 써서 밭가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면서 그 아들에게 말하였다.
‘우리 가업(家業)으로 큰 부자가 된 이유는 이 나무신의 은혜와 복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너희들은 마땅히 저 양떼들 중에 양 하나를 잡아서 제사를 지내야 할 것이다.’
그 때 여러 아들들은 아버지의 분부를 받들어 조금 후에 양을 잡아 이 나무 신에게 기도하고 정성을 드리기 위해 곧바로 나무 아래에 천사(天祀)를 짓고 제사를 지냈다.
그의 아버지가 뒤에 목숨을 마치고는 지은 업에 쫓겨 자기 집 양의 무리에 환생하게 되었다. 그 때 그 아들들이 나무의 신에게 제사 지낼 때가 되자 곧 한 마리 양을 붙잡았는데, 우연히 그의 아버지[후]를 붙들어 죽이려고 하였다.
양은 곧 ‘매에 매에’하고 울다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 나무에 무슨 신령함이 있겠느냐? 내가 과거에는 고기가 먹고 싶어서 너희들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도록 하여 너희들과 함께 이 고기를 같이 먹은 적이 있었다. 이제 그 죄갚음을 나 홀로 먼저 당하게 되었구나.’
그 때 마침 어떤 아라한이 우연히 밥을 얻으려고 그 집에 이르렀다가 그들의 죽은 아버지가 양의 폼을 받은 것을 보고 곧 그 양의 주인에게 도안(道眼)을 빌려주어 스스로 관찰하게 하였다. 그들은 마침내 그 양이 자기 아버지임을 알고 마음속에 괴로움이 생겨 곧 니무 신을 파괴하고서 잘못을 뉘우치고 복을 닦아 다시는 살생을 하지 않았다.”
또 『우바새계경(優婆塞械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아들이 착한 법을 닦으면 아버지가 착하지 않은 일을 하더라도 아들이 선을 닦음으로 인하여 그의 아버지는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는다〉 고했다.
그러나 그 뜻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업이 부자(父子) 간에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 아귀(餓鬼)의 세계에 떨어졌을 때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복을 벌면 장차 그 아비는 천상에 태어 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천상에 태어나더라도 그는 인간 세계의 물건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는 천상(天上)에서 뛰어나고 절묘한 보배를 성취하였기 때문이다. 또 지옥에 떨어져서도 온갖 고뇌를 받기 때문에 생각하고 기억할 겨를이 없으니, 그런 까닭에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축생이나 인간 세계에서도 그 일은 또한 그러하다. 만약 그렇다면 무슨 까닭에 유독 아귀만 명복을 벌어주면 복을 얻을 수가 있는가? 그것은 본래 가지고 있는 애욕ㆍ탐욕ㆍ간탐ㆍ인색함 때문에 아귀에 떨어졌고, 이미 아귀가 되었으면 늘 본래의 잘못을 뉘우치고 명복 얻기를 사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명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가 지은 업 때문에 다른 세계에 태어나고 그 나머지 권속들이 아귀의 세계에 떨어졌으면 그들도 다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아귀를 위하여 복덕을 지으라고 권유해야 하느니라.[『政法念經)』의 내용도 그 대의는 역시 이와 같다.]
만약 사당에 제사를 지내면 누가 그것을 받는가? 그 사당이 있는 곳을 따라서 받는 이가 있게 된다. 가령 나무 숲 가까이에 있으면 나무신이 받고 집ㆍ강ㆍ우물ㆍ숲ㆍ언덕 등도 역시 이와 같다.
이 사람은 제사를 지낸 뒤에 또한 복덕을 얻게 된다.
왜냐 하면 그 제사를 받는 이로 하여금 기쁜 마음을 내게 하였기 때문이니, 이렇게 제사를 지낸 복덕으로 그의 몸과 재물을 보호해 준다. 그러나 만약 살생을 하여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얻은 복은 그 이치가 그러하지 못하다.
왜냐 하면 세상 사람이 이란(伊蘭)의 씨앗을 심어 전단(旃檀)나무가 나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생의 목숨을 끊고서 어떻게 복덕을 얻겠는가?
만약 제사를 지내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향ㆍ꽃ㆍ우유ㆍ낙(酪)ㆍ소(蘇)ㆍ과일 등을 써야 한다. 죽은 사람을 위하여 명복을 벌어주는 데에는 세 때[時]가 있으니, 몸에는 정월(正月)이요 여름에는 오월(五月)이며, 가을에는 구월(九月)이다.
또 집이나 방ㆍ침구ㆍ탕약ㆍ원림(園林)ㆍ못ㆍ우물과 소ㆍ양ㆍ코끼리ㆍ말 등 갖가지 생활용품들을 다른 사람에게 보시할 경우, 그렇게 보시한 뒤에 목숨을 마치고 나면 이 사람의 복덕은 보시한 물건을 따라 오랜 시간이 지난 뒤나 가까운 시일에 복덕이 항상 생긴다.
이 복이 사람을 따르는 것은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느니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목숨을 마친 뒤에는 그것이 다 없어진다〉고 하나, 그 뜻은 그럴 리가 없느니라.
왜냐 하면 물건이 파괴되어 쓰지 못하게 된 것은 두 때 사이에 사라지고 목숨이 다할 때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출가한 사람이 속가에 있는 사람을 본받아 해마다 절일(節日)에 음식을 버리는 것은 세간법을 따르는 것이므로 진실이 아니다. 이것은 또한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믿기 때문이다.
만약 집안에 간직하고 있는 좋고 나쁜 것을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보시하면 그것을 일체시(一切施)라고 말하고, 만약 자기 몸에 지니고 있거나 처자(妻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들을 남에게 보시하면 이것을 부사의시(不思議施)라고 이름한다.’”
또 『바사론(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아귀를 위해 복을 지으면 아귀는 그 음식을 얻고 또한 몸이 더욱 불어나고 냄새를 맡으면 향내를 얻고 나쁜 빛깔도 다 좋은 빛깔로 변한다.”
또 경전에서 말하였다.
“모든 귀신들이 먹는 것이 같지 않다. 어떤 귀신은 고름을 먹기도 하고 어떤 귀신은 똥을 먹기도 한다. 이들은 보시를 얻고 나면 이 모든 것을 가장 절묘한 색깔과 맛으로 변화시킨다. 만약 귀신이 다른 곳에서 태어나더라도 친히 보시를 받을 때에는 그 귀신은 업의 힘으로 멀리서 그것을 알고 기쁜 마음을 낸다. 만약 속가에 돌아와 있으면서 괴로운 과보를 받을 때라도 친히 보시를 받으면 귀신도 친히 보고 기쁨을 낸다.”
또 『바사론』에서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법에 맞지 않게 재물을 구하거나 재물을 얻었을 때에 그 재물을 탐하고 아끼기 때문에 자기의 권속들에게도 오히려 주고 싶은 마음이 없거늘 더구나 다른 사람이겠는가?
남에게 보시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아귀의 세계에 떨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만약 그 집 부근에 있는 깨끗하지 못한 변소 같은 곳에 머물게 되면 모든 친척과 이웃들이 고뇌(苦惱)하는 마음을 내어 이와 같은 생각을 한다.
‘저 사람은 재물을 저만큼 모아 쌓아 두고도 스스로 쓰지도 않고 또 남에게 보시하지도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고뇌에 빠지기 때문에 그 음식을 보시하려고 하여 모든 권속과 친우(親友)ㆍ지식(知識)ㆍ사문(沙門)ㆍ바라문(婆羅門) 등을 청하여 그 음식을 보시하면, 그 때 아귀(餓鬼)는 직접 스스로 그것을 보고 권속들의 재물에 대하여 자기의 소유라는 생각을 내고 또 이와 같이 생각한다.
‘이 재물은 내가 전에 모아서 쌓아두었던 것인데 지금 남들에게 보시하는구나.’
그리고는 마음으로 크게 환희하면서 복전(福田)의 처소에 대하여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낸다. 그러나 만약 다른 세계에 태어나면 대부분 힘을 얻지 못한다. 가령 죽은 사람이 이 복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를 위해 선행을 닦으면 스스로 큰 이익을 얻나니, 마치 자비를 일으켜 스스로 늘 복을 얻는 것과 같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자비한 마음으로 모든 중생들을 염려하여 그들로 하여금 쾌락(快樂)을 얻게 하면 중생들이 비록 얻은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그 복을 많이 얻는다. 만약 보시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비록 천상에 태어나거나 성인이 되었더라도 도리어 의복과 음식이 모자라게 되리라.”
그러므로『우바새계경(優婆塞械經)』에서 말하였다.
“계율을 잘 지켜서 비록 아라한이 되었어도 배고픈 괴로움을 막지 못하나, 만약 보시 행하기를 좋아하면 비록 귀신이나 축생의 세계에 떨어져도 늘 배 부르고 부족한 것이 없을 것이다.”
또 『미증유경(未曾有經)』에서 말하였다.
“어떤 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우리 아버지인 선왕은 외도를 받들어 섬겨서 항상 보시를 실천하변서 범천(梵天)의 복을 구했습니다. 이와 같이 한 공덕으로는 어떤 하늘에 태어납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전왕(前王)은 그 과보로 지금 지옥에 있습니다. 왜냐 하면 훌륭한 시기를 만나지 못하고 좋은 벗을 만나지 못했으며, 좋은 방편도 없었으므로 비록 공덕을 닦았지만 죄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시를 한 공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뒤에 죄를 마치고 나면 그 때야 비로소 복을 받게 될 것이니라. 복을 닦는 것은 죄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선제(先帝)대왕께서는 다섯 가지 악한 업이 있었기에 지옥에 태어났습니다.
첫째는 오만하고 질투하며 폐악하여 일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곧바로 회초리로 매질하고 벌하면서 인욕(忍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보물과 재산을 탐내고 사랑하여 일의 판단이 공평하지 못해서 천하로 하여금 원한을 품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이리저리 다니면서 사냥을 하며 기뻐한 것이니, 인민(人民)들을 괴롭게 하고 고달프게 하였으며 중생들이 가장 사랑하는 목숨을 상하거나 해쳤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여색에 빠져 집착하는 것이니, 새 것을 얻으면 옛 것을 싫어하면서 어루만져 대접함이 공평하지 못하여 원한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는 계율을 깨뜨린 것입니다.
이 글로 증명할 수 있으니,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삿된 것을 섬겨 복을 닦는 다는 것은 선과 악은 항상 달라서 괴로움과 즐거움 두 가지 과보는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영리한 근기와 많이 들음으로써 삼보(三寶)를 바르게 믿었는데 어찌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겠는가?”
또 『유무삼매경(有無三昧境)』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사람으로서 도를 구하고 선정(禪定)에 안주(安住)하려면 먼저 꼭 잡념부터 끊어야 한다. 사람이 이 세간에 태어나 도를 증득하지 못하는 까닭은 다만 앉아서 생각하되 더러운 잡념이 많기 때문이다. 한 생각이 오면 한 생각이 가니 하루 낮 하룻밤 동안 팔억 사천만 생각이 일어나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쉬 질 않는다. 한 번 선을 생각한 사람은 또한 선한 과보를 얻고, 한 번 악한 것을 생각한 사람은 그 또한 악한 과보를 받는다. 그것은 마치 메아리가 소리를 따라 호응하는 것과 같고 그림자가 형상을 따라 나타나는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선하고 악한 것과 죄와 복은 각각 다른 것이니라.’”
또 『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죽은 사람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 음식을 보시하면, 아귀에 태어난 이는 그 음식을 얻어 먹을 수는 있겠으나 다른 세계에 태어난 중생들은 제외되어 얻어 먹지 못하나니, 그것은 저마다 먹고 살아가는 음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친족으로서 아귀의 세계에 태어나지 못한 이는 다만 보시하면 그것은 보시한 사람만이 그 복을 얻고 나아가 시주(施主)가 여섯 갈래 세계에 태어났을 때에도 보시하는 물건이 항상 따른다. 계율을 잘 지켰기 때문에 비록 사람의 몸을 얻긴 하겠지만 반드시 다른 복으로 도와주는 과보가 있어야 하느니라.”
또 『왕생경(往生經)』에서 말하였다.
“죽은 뒤에 그 죽은 이를 위하여 복을 지으면 죽은 사람은 그 복의 칠분의 하나를 얻고 나머지는 현재 복을 벌어 주는 이에게 속한다.”
또 『관정경(灌頂經)』에서 말하였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약 사람이 목숨을 마치면 산이나 들로 전송하여 그곳에 무덤을 만들고 탑을 세운다면 죽은 사람의 정기와 영혼은 거기에 살고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거기에 있기도 하고 혹은 있지 않기도 하느니라. 만약 사람이 살아 있었을 때 선근(善根)을 짓지 않고 삼보(三寶)를 알지도 못했었으나 그래도 악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선으로 받을 복도 없고 악으로 받을 재앙도 없으며 선지식(善知識)이 그를 위하여 복을 닦아주는 일도 없으면, 이 때문에 정혼(精魂)이 그 무덤이나 탑 속에 있나니 그것은 그 혼령이 아무데도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곳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혹 그가 전생에 어떤 세상에 살았을 적에 복과 선을 크게 닦고 부지런히 도를 실천하면 혹은 천상에 태어나 삼십삼천 안에서 복을 받으며, 혹은 인간 세계의 부호(富豪) 집안에 태어나서 그가 가는 곳마다 자연 마음대로 모든 것이 생기나니 그 또한 있지 않는 것이요, 혹은 그가 전생에서 살았을 적에 삿된 도에 기도하고 제사를 지냈거나 참되고 비른 것을 믿지 않고 나쁜 직업으로 스스로 생활하면서 아첨하고 거짓말하며 남을 속였으므로 아귀나 축생의 세계에 떨어져서 온갖 고통을 갖추어 받거나 지옥을 두루 돌아다니면 그 때문에 무덤이나 탑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있지 않는 경우를 말하자면 혹은 다섯 가지 곡식의 경우 곡식의 뼈대가 아직 썩어 문드러지지 않았을 때에는 미세한 영(靈)이 있다가 그 뼈대가 다 썩어 문드러지면 이 영은 곧 사라져서 아무런 기세(氣勢)가 없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을 위하여 온갖 화도 복도 지을 수 없다. 영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을 때라 하더라도 혹 고향의 친한 사람으로서 목숨을 마친 사람이 세상에서 아무런 복이 없거나 또는 삿되고 아첨만 일삼으면 마땅히 귀신 세계에 떨어지고, 혹은 나무나 잡된 물건의 정기[精]가 되어 받을 만한 하늘의 복도 없고 지옥에서도 거두어 주지 않으면 비록 세간을 버렸더라도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을 떠돌아 다니게 된다. 그들에게는 이미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충동하여 온갖 변괴(變怪)를 지어 사람의 마음을 선동한다.
혹 요망한 도깨비나 삿된 스승에게 의지하는 것으로써 복이 된다 하고 온갖 복을 찾아 오래 살기를 얻으려 하며, 어리석고 삿된 소견으로 생물을 잡아 제사 지내다가 죽어서는 지옥ㆍ아귀ㆍ축생 세계에 떨어져 벗어날 기약조차 없거늘 삼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만약 어떤 사람이 목숨을 마치는 날에는 마땅히 향을 피우고 등불을 늘 켜두어 밝히며, 탑사(塔寺) 가운데 찰간(刹竿) 위에 표시하고 명과번(命過幡)을 달고 존귀한 경전을 읽으면서 삼철일 (三七日)을 마쳐야 한다.
왜냐 하면 목숨을 마친 사람은 중음(中陰)으로 있으면서 그 몸이 어린아이 같고 죄와 복이 결정되지 않았으므로 마땅히 그를 위하여 복을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죽은 이의 생신(生神)이 시방의 한량없는 찰토(刹土)에 태어나게 되기를 원하면 이 공덕을 이어 틀림없이 왕생(往生)할 것이다.
죽은 이가 세상에 있었을 적에 만약 죄와 허물이 있어서 꼭 여덟 가지 환난에 떨어질 처지라 하더라도 번기와 등의 공덕으로써 반드시 해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선(善)한 서원이 있으면 마땅히 부모에게 태어날 것이나, 다른 세계에 있게 되어 빨리 태어날 수 없는 처지라도 번기와 등의 공덕으로써 모두 빨리 태어날 것이며 머물러 있어야 하는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만약 태어남을 얻고 난 뒤에는 마땅히 사람이 되는데 복덕이 있는 아들로 태어나 삿된 귀신들이 틈을 엿볼 수 없게 되고 그 종족도 또한 호강(豪强)할 것이니, 그런 까닭에 복과 선이 되는 번기와 동의 공덕을 닦아야 하느니라.
또 만약 네 부류의 남녀(男女)로서 목숨을 마치려고 할 때나 또는 이미 목숨을 마친 뒤에 그가 죽은 날 누런 번기를 찰간 꼭대기에 달아서 죽은 이로 하여금 복덕을 얻게 하고, 팔난(八難)의 고통을 여의게 하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깨끗한 국토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번기와 일산을 공양하면 마음 속에 원하는 바를 따라 마침내 보리를 이룩하게 한다. 번기가 바람을 따라 움직여 모두 파손되고 다하여 마침내 작은 먼지로 되어버리면 바람이 그 작은 먼지를 불어 날리어 그 복은 한량없이 많게 될 것이다.
번기가 한 번 펄럭일 때 전륜왕(轉輪王)의 자리와 나아가 티끌처럼 많은 작은 왕의 자리까지 불어버리면 그 과보는 한량없이 많을 것이다. 사십구 일 동안 온갖 유명(幽冥)을 비추고 만약 고통받는 중생이 있으면 그 광명의 힘을 입어 다 서로들 보게 될 것이다. 이 복덕을 연(緣)하여 저 중생들을 구제하여 다 휴식(休息)을 얻게 할 것이니라.’
또 『정도삼매경(淨度三味經)』에서 말하였다.
“팔왕일(八王日)에는 모든 천제석(天帝釋)의 진신(鎭臣) 서른두 사람과 사진대왕(四鎭大王)과 목숨을 맡은 관리[司命]와 기록을 맡은 관리[司錄]와 오라(五羅)대왕과 여덟 왕의 사자가 다 나와 덮여진 그의 행업을 찾기 위하여 사방에 포고령을 내린다.
또 네 왕이 보름날과 그믐날에 아뢰는 백성들이 행한 선과 악을 조사하며 지옥의 왕도 또한 보신(輔臣)과 작은 왕들을 보내고 그들은 동시에 함께 나와 죄가 있으면 곧 기록하곤 한다.
먼저 여덟 왕의 재일(齋日)에는 죄를 범해도 복의 힘이 강하므로 구원을 받아 안온해지고 다른 복의 힘을 벌지 않아도 용서를 받는다. 뒤의 재일에 이르러 중한 죄를 범한 수효가 많으면 수명이 감해지거나 이름을 기록하였다가 꼭 죽인다.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 어느 때라고 적어 지옥에 내려주면, 그 지옥에서는 그 문서를 받들어 곧 지옥 귀신에게 보내 그 이름을 기록하여 지니게 한다. 지옥 귀신은 자비가 없어 죽을 날이 오기도 전에 강제로 재촉하여 악을 짓게 하고 그의 목숨을 앗아가며 복이 많은 이는 그 수명을 더욱 늘려준다.
하늘은 선신(善神)을 보내 그의 몸을 보호하여 비록 지옥에 내려보내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죄명을 없애어 죽음을 제거하여 결정코 살게 하며 그는 나중에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
또 『관불삼매경(觀佛三昧境)』에서 말하였다.
“그 때 광야(曠野)의 귀신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항상 사람을 물어 먹는데 이제 살생하지 말라 하시니 그러면 장차 저는 무엇을 먹어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귀왕(鬼王)에게 타이르셨다.
‘너는 단지 살생만은 하지 말라. 내가 내 제자들에게 경계하여 항상 너에게 먹을 것을 베풀어 주고, 나아가 법이 멸하는 지경에 이르더라도 나에게 힘이 있기 때문에 너로 하여금 늘 배가 부르도록 하리라.’
귀왕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부처님의 오계(五械)를 받았다.”
그러므로『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였다.
“여러 성문(聲聞) 제자들을 시켜 중생들에게 먹을 먹을 것을 내어 주고 광야의 귀신들을 구제하게 하였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귀신은 사람들로부터 음식을 조금 얻으면 곧 그것을 변화시켜 많게 만들어 귀신들을 배불리 먹인다.”
또 『비유경(譬喩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阿難)과 함께 강가에 이르러 거닐고 계셨다. 그러다가 오백 명의 아귀들이 노래를 부르며 가는 것을 보셨고 또 수백 명의 좋은 사람들이 울면서 지나가는 것을 보셨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귀신은 무엇 때문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울면서 다닙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대답하셨다.
‘아귀 집안의 아이들과 친속(親屬)들은 그들을 위해 복을 지어 해탈을 얻었다. 그런 까닭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들의 집안 아이들과 친속들은 오직 살생만 하고 어느 한 사람도 복을 짓지 않다가 훗날、큰 불이 그들을 핍박하였다. 그런 까닭에 울면서 다니느니라.’
또 『숙원과보경(宿願果報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바라문 부부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에겐 자식이 없었다. 재물은 풍부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았는데 목숨을 마치려고 할 때에 제각기 서로를 보고 말하였다.
‘우리 각자 꼭 돈을 삼켰다가 저승가는 길에 자량(資糧)으로 삼읍시다.’
그런데 그 나라 풍속엔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지 않고 다만 나무 밑에 그대로 놓아두곤 하였다. 그들은 저마다 돈 오십 전을 삼켰었는데 시체가 썩어 문드러지자 그 시체에서 돈이 나왔다.
그 나라에 어떤 현인 한 사람이 있었는데 길을 가다가 이것을 보고 불쌍하게 여겨 눈물을 철철 흘리며 그들의 간탐에 대하여 매우 상심해했다.
그리하여 그 돈을 가지고 그들의 복을 벌어주기 위하여 부처님과 스님들을 초청했고 그 돈을 다 써서 음식을 장만하여 부처님 앞에 공양을 올리고 주문을 외우며 발원을 하였다.
그 때 인색했던 바라문 부부는 아귀로 있으면서 고통을 받다가 곧 천상에 태어나게 되어 사배(四輩)17) 사종승이란 부처님이나 독각(獨覺)처럼 스스로 도를 깨달은 승도사문(勝道沙門), 사리불과 같이 법을 말하여 도를 보이는 시도사문(示道沙門), 아난과 같이 계ㆍ정ㆍ혜 삼학으로 목숨을 삼는 명도사문(命道沙門), 죄가 많은 비구인 오도사문(汚道沙門)을 말한다.
를 초청했다. 천상에 태어난 이 부부는 곧 천안(天眼)을 얻어 그 사실을 알고는 복을 짓기 위하여 천상에서 내려와 변화로 나이 젊은 사람이 되어 단월 (檀越)을 도왔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주방의 나이 젊은 사람이야말로 정말 참다운 단월이로구나.’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시자 그들은 곧 도적(道跡 : 須陀洹)을 증득하였고, 어진 이도 또한 도적을 증득하였으며, 대중 스님들도 기뻐하였고 모두들 천상에 태어났다.”
또 『백유경(百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상인들이 있었다. 그 상인들은 큰 바다로 들어가려고 하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길을 인도할 사람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곧 함께 길을 인도할 사람 하나를 구하여 서로 데리고 길을 떠났는데 넓은 들판에 이르렀을 때 어떤 천사(天寺)를 만나게 되었다. 이 천사는 꼭 거기에 사람을 죽여 제사를 올리고 나서야 지나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 때 여러 상인들은 함께 생각을 말하였다.
‘우리는 똑같이 친한 사이인데 어떻게 죽일 수가 있겠는가? 오직 이 길잡이를 죽여 제사를 지낼 수밖에 없겠구나.’
그리고는 곧 길잡이를 죽여 제사를 지냈다. 하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난 뒤에 길을 가다가 길을 잃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몰라 극심한 고생을 하다가 다 죽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도 이와 같아서 법해(法海)에 들어가 보배를 취해 오려거든 먼저 꼭 선행 (善行)을 닦고 그것으로 길잡이를 삼아야만 하느니라. 그런데도 선행을 헐어 깨뜨리고 나고 죽음의 황량한 벌판에서 영영 벗어날 기약조차 없이 세 갈래 악한 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고통 받음이 길고도 멀구나.
그것이 마치도 저 상인들이 장차 바다로 나아가려고 하면서도 그 길잡이를 죽여 버리고 나루를 잃어 끝내는 고생하다가 죽고 마는 것과 같느니라.”
게송을 읊는다.

고당(高堂)은 진실로 여행하는 사람을 맞는 곳이요
마음 속에 품은 업의 이치는 항상 서로 끌어당기네.
옥갑(玉匣)은 바로 관(觀)에 맡기고
금대(金臺)도 더 이상 늘리지 말게.

상두 노래[挽聲]는 길을 따라 멀어져만 가고
송자의 그림자[蘿影]는 소나무에 걸려 있네.
어찌 열 가지 생각[十念]18)에 머무를 수 있으랴.
오직 네 가지 연(緣)만을 따라야 하네.

환공(幻工)이 같고 다름을 교묘하게 만들어
변화하고 희롱하며 많은 폼 만들 적에
어리석은 세속 사람 나니 남이니 다투거늘
어느 누군들 또한 진실이라고 말하지 않으리.

그릇된 사람은 오래 가고 견고하리라고 의심하나
깨달은 사람은 허깨비요 나그네임을 안다네.
승침(升沈)과 고락(苦樂)이 이미 다르거늘
부질없이 푸른 하늘에 제사 지내며 곡(哭)을 하겠는가.
031_0265_a_08L竊聞金玉異珍在人共寶玄儒別義遐邇同遵豈必死生自國便欲師之佛處遠邦有心捐棄不勝事切輒陳愚見是非之理不敢自專孔丘辭逝廟千載之規摹釋迦言往寺萬代之靈塔欲使見形剋念面像歸心師忠主其義一也至如丁蘭束帶事木母之形無盡解瓔奉承多寶佛眇尋曠古邈想淸塵旣踵成林理不越又案禮經云天子七廟諸侯五廟大夫卿士各有階級故天曰神祭天於圓丘地曰祇祭地於方澤曰鬼祭之於宗廟鬼降雨之勞畜挽犂之效由或立形村市樹像豈況天上天下三界大師此方方四生慈父威德爲萬億所遵風化爲百靈之範故善人迴向若群流之歸溟壑大光攝受如兩曜之伴衆星自月支遺影那竭灰身舍利遍流桓遂造乃聖乃賢憑茲景福或尊或冀此獲安者矣如長阿含經云一切人民所居舍宅皆有鬼神無有空者街巷道陌屠膾市肆及諸山塚皆有鬼神無有空處凡諸鬼神皆隨所依卽以爲名若人初生皆有鬼神隨逐擁護若人欲死鬼收精氣行十惡人若百若千共一神護行十善者猶如國王以百千人而侍衛之又十方譬喩經云天上天下鬼神知人壽命當至未至能活人不能殺人不能使人富貴但欲使人作惡犯殺因人衰耗狂亂之語其禍福令人向欲得設祠祀耳故知空祭鬼神欲求現福難可得力也又普曜經於時迦葉以偈報佛自念祠祀來 已歷八十年 奉風水火神日月諸山川 夙夜不懈廢 心中無他念至竟無所獲値佛乃安寧又雜寶藏經云昔日有一婆羅門廟室天晝夜奉事天卽問言汝求何婆羅門言我今求作此天祀主彼有群牛汝問最前行者卽如天往問彼牛汝今何似爲苦爲樂卽答言極爲大苦刺刺兩肋柴戾脊駕挽載重無休息時復問言汝以何緣受是牛形牛答之言我是天祀自恣極意用天祀物命終作牛受是苦惱聞是語已卽還天所天卽問言汝今欲得作天主不婆羅門言我觀此事實不敢作天言人行善惡自得其報婆羅門悔過卽修諸善改往前惡又雜寶藏經云昔有老公其家巨富而此老公思得肉食詭作方便指田頭樹語諸子言令我家業所以諧富由此樹神恩福故爾今日汝等宜可群中取羊以用祭祀諸子等承父教勅尋卽殺羊禱賽此樹卽於下立天祀舍其父後時壽盡命終行業所還生己家羊群之中値諸子欲祀神樹便取一羊遇得其父將欲殺羊便咽咽笑而言曰而此樹者何神靈我於往時爲思肉故妄使汝皆共汝等同食此肉今償殃罪先當之有羅漢遇到乞食見其亡父受於羊身卽借主人道眼令自觀乃知其父心懷懊惱卽壞樹神過修福不復殺生又優婆塞戒經云佛言或有說言修善法父作不善因子修善令父不墮三惡道者是義不然何以故意業各別異故若父喪已墮餓鬼中子爲追福當知卽得若生天中都不思念人中之物何以故天上成就勝妙寶故若入地獄受諸苦惱不睱思是故不得畜生人中亦復如是謂餓鬼何緣獨得以其本有愛故墮餓鬼旣爲餓鬼常悔本過念欲得是故得之若所爲者生餘道其餘眷屬墮餓鬼者皆悉得之故智者應爲餓鬼勸作福德正法念經大意亦同若有祠祀誰是受者隨其祠處而爲受者若近樹林則樹神受山林堆阜亦復如是是人祀已亦得福德何以故令彼受者生喜心故祀福德能護身財若說殺生祠祀得是義不然何以故不見世人種伊蘭子生栴檀樹斷衆生命而得福德若欲祠者當用香華乳酪蘇果爲亡追福則有三時春時正月夏時五月秋時九月若以房舍臥具湯藥園林池井牛羊象馬種種資生布施於他施已命終是人福德隨所施物住用久近福德常生是福追人如影隨形或有說言終已便失是義不然何以故物壞不二時中失非命盡失若出家人效在家人歲節之日棄飮食者隨世法故非眞實也亦信世法出世法故若能隨家所有好惡常樂施者名一切施若以身分及以妻子所重之物施於人者是則名爲不思議施又婆沙論云爲餓鬼作福鬼得飮食亦增益身臭者得香惡色得好色經云如諸鬼等所食不同或膿或糞得是施已一切變成上妙色味若鬼異處受生親爲施時彼鬼業力遙知生喜若還在家受苦報者親爲施者鬼自親見生喜又婆沙論云有人不如法求財及其得時以慳惜故於己眷屬尚無心與況復餘人以無施心故身壞命終餓鬼中若在本舍邊不淨糞穢廁溷中住諸親里等生苦惱心作如是彼積聚財自不受用又不施人苦惱故欲施其食請諸眷屬親友沙門婆羅門施其飮食爾時餓鬼親自見之於眷屬財物生己有想如是念如此財物我所積聚今施與心大歡喜於福田所生信敬心生餘道多不得力縱令亡人不得此故爲修善自得大利如似起慈常獲福又智度論云如慈心念諸衆生令得快樂衆生雖無所得念者大得其福若不樂施縱生天得聖還乏衣食優婆塞戒經云持戒雖得羅漢不遮飢苦若樂行施雖墮鬼畜常飽無乏又未曾有經云有王白佛言我父先王奉事外道常行布施求梵天福斯功德生何天耶佛告王曰前王果今在地獄所以者何不値善時遇善友無善方便雖修功德不得免布施之功亦無失也後罪畢時當受福當知修福不與罪合先帝大王有五種惡業生地獄中一者傲慢姤弊事無麤細便起鞭罰不忍辱故二者貪愛寶貨斷事不平致令天下懷怨恨故三者遊獵嬉戲苦困人民傷害衆生所愛命故四者耽著女色得新厭舊撫接不平致怨恨故五者破戒以此文證故知事邪修福善惡恒別苦樂兩報不相雜亂何況利根多聞正信三寶而招苦報又惟無三昧經云佛告阿難善男子人求道安先當斷念人生世間所以不得道但坐思想穢念多故一念來一念一日一宿有八億四千萬念念念不息一善念者亦得善果報一惡念亦得惡果報如響應聲如影隨形是故善惡罪福各別又中阿含經云若爲死人布施祭祀若生入餓鬼中者得食除餘趣不由各有活命食故若親族不生中但施自得其福乃至施主生六趣施物常隨以持戒故雖得人身須餘福助報又往生經云亡後作福死者七分獲一餘者屬現造者又灌頂經云阿難問佛言若人命終送著山野造立墳塔是人精魂在中以不佛言亦在亦不在若人生時造善根不識三寶而不爲惡無善受無惡受殃無善知識爲其修福以精魂在塚塔中未有去處是故言或其前生在世之時大修福善勤行道或生天上三十三天在中受或生人閒豪姓之家到處自然意所生又不在者或其前生在世之然禱祀邪道不信眞正邪命自活謟僞欺人墮在餓鬼畜生之中備受衆苦經歷地獄故言不在塚塔中也或不在者或是五穀之穀骨未朽爛故有微靈骨若糜爛此靈卽滅有氣勢亦不能爲人作諸禍福靈未滅時或是鄕親命終之人在世無福又行邪謟應墮鬼神或爲樹木雜物之精無天福可受地獄不攝縱捨世浮遊人村旣其無食恐動於人諸變怪扇動人心或有魃魅邪師倚爲福覓諸福祐欲得長生愚癡邪殺生祠祀死入地獄餓鬼畜生有出時可不愼之又若人命終之日當爲燒香然燈續明於塔寺中表剎之上懸命過幡轉讀尊經竟三七日所以然者命終之人在中陰中身如小兒罪福未定應爲修福願亡者生使生十方無量剎土承此功德得往生亡者在世#若有罪愆應墮八難以幡燈功德必得解脫若有善願應父母在於異方不得疾生以幡功德皆得疾生無復留難若得生已當爲人作福德之子不爲邪鬼之所得便種族豪强是故應修福善幡功德又若四輩男女若臨終時若已命過是其亡日造作黃幡懸著剎上使獲福德離八難苦得生十方諸佛淨土幡蓋供養隨心所願至成菩提幡隨風轉破碎都盡至成微塵風吹微塵其福無量幡一轉時轉輪王位乃至吹塵小王之位其報無量燈四十九照諸幽冥苦痛衆生蒙此光明皆得相見緣此福德拔彼衆生皆得休息又淨度三昧經云八王日諸天帝釋鎭臣三十二人四鎭大王司命司錄五羅大王八王使者盡出四布覆行復隨四王十五日三十日所奏案挍人民立行善惡地獄王亦遣輔臣小王同時俱出有罪卽記前齋八王日犯過福强有救安隱無他用福原赦到後齋日重犯罪數多者減壽條名剋死歲月日時關下地獄地獄承文書卽遣獄鬼持名錄名獄鬼無死日未到强催作惡令命促盡多者增壽益筭天遣善神營護其身移下地獄拔除罪名除死定生後生天上又觀佛三昧經云爾時曠野鬼神白佛言我恒噉人今者不殺當食何物佛勅鬼王汝但不殺我勅弟子常施汝食乃至法滅以我力故令汝飽滿鬼王聞喜受佛五戒故涅槃經云諸聲聞弟子出衆生食濟野鬼神智度論云鬼神得人少許飮食卽能變使多令得充足又譬喩經云佛與阿難到河邊行五百餓鬼歌吟而行復見數百好人啼哭而過阿難問佛鬼何以歌儛何以啼哭佛答阿難餓鬼家兒子爲其作福行得解脫是以歌儛人家兒子親屬唯爲殺害無有與作福之者後大火逼之是以啼哭也又宿願果報經云昔有婆羅門夫婦二人無有兒子財富無數臨壽終時自相謂言各當呑錢以爲資糧其國俗法死者不埋但著樹下各呑五十金錢身爛錢出國中有一賢者行見愍之泫然流淚傷其慳貪取爲設福請佛及僧盡用供辦擎飯佛前稱名呪時慳夫婦受餓鬼苦卽生天上請四輩生天上者卽得天眼知爲作福從天下來化作年少佐助檀越佛言此廚間年少是眞檀越佛爲說卽得道迹賢者亦得道迹衆僧歡皆得生天又百喩經云昔有賈客欲入大海須導師卽共求覓得一導師相將發至曠野中有一天寺當須人祀後得過於是衆賈共思量言我等盡如何可殺唯此導師中用祀天殺導師以用祭祀祀天已竟迷失道不知所趣窮困死盡一切世人復如是欲入法海取其珍寶當修善以爲導師毀破善行生死曠路無出期經歷三塗受苦長遠如彼商將入大海殺其導者迷失津濟致困死頌曰高堂信逆旅 懷業理常牽 玉匣方委觀金臺不復延 挽聲隨徑遠 蘿影帶松懸詎能留十念 唯應逐四緣 幻工作同異變弄巧多身 愚俗諍人我 誰復非謂眞謬者疑久固 達者知幻賓 升沈苦樂異徒祭哭倉天
諸經要集卷第十九
癸卯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1. 1)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느 한쪽을 쓰지 못하게 된 반신불수(半身不隨)의 사람.
  2. 2)담(胆)ㆍ위 (胃)ㆍ대장(大腸)ㆍ소장(小腸)ㆍ방광(膀胱)ㆍ삼초(三焦)를 말한다.
  3. 3)『약사경(藥師經)』에서 말하는 아홉 가지 횡사로는 첫째 병에 걸렸을 때 좋은 의사나 좋은 약이 없는 것, 둘째 국법에 저촉되어 사형당하는 것, 셋째 주색에 빠져 헛것에게 정기를 빼앗기는 것, 넷째 불에 타는 것, 다섯째 물에 빠지는 것, 여섯째 사나운 짐승에 잡아먹히는 것, 일곱째 절벽에 떨어져 죽는 것, 여덟째 독약ㆍ저주 등에 해를 입는 것, 아홉째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죽는 것 등이다.
  4. 4)고려대장경 본원에는 이 부분이 ‘왕(王)’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의미상 잘 맞지 않고,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송(宋)ㆍ원(元)ㆍ명(明)본과 궁(宮)본에는 모두 ‘왕(王)’자가 ‘지 (至)’자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므로 역자도 이를 따라 번역하였다.
  5. 5)다섯 가지 정심관(停心觀) 가운데 하나. 탐욕을 다스리기 위하여 육신(肉身)의 부정한 모습을 관찰하는 것.
  6. 6)다섯 가지 정심관 가운데 하나. 성냄이 많은 사람이 일체 중생을 관하고 자비심을 일으켜 성냄을 없애기 위하여 수행하는 관법.
  7. 7)다섯 가지 정심관 가운데 하나. 또는 연기관(緣起觀)이라고도 한다. 어리석음이 많은 사람이 닦는 관법으로 열두 가지 인연이 삼세에 인과상속(因果相續)하는 도리를 관하여 우치를 제거하는 관법.
  8. 8)범어로는 Śitavana. 시타림(尸陀林) 또는 시타벌나(尸陀伐那)라고도 음역한다. 번역하여 한림(寒林)이라 하며, 중인도 마갈타국 왕사성 북쪽 문에 있는 숲을 말함. 본래는 성 안에 살던 사람의 시체를 내다버렸던 공동 묘지와 같은 것이었는데 뒤에 죄인들을 살게 하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금방 죽은 사람을 위하여 설법하고 염불하는 것을 시타림한다고 하였다.
  9. 9)고려대장경 본문에는 ‘왕(王)’이라는 글자가 본래 없다.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궁 (宮)본에는 이곳에 ‘왕(王)’자가 더 있다”고 하였으므로 독자들의 역자도 이를 따라 왕이 라는 말을 덧붙여 번역하였다.
  10. 10)이것도『예기(禮記)』편명의 하나이다.
  11. 11)『예기』편명의 하나.
  12. 12)『좌전』소공 2년이라고 한 것은 잘못된 기록인 듯하다. 이 내용은 본래 『좌전』에는 소공 7년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二)’ 자가 ‘칠(七)’자의 오류이거나 아니면『춘추좌전』에 소공편을 제1에서부터 제7까지로 나누고 있는데 소공 7년은 제이(第二)에 해당하므로 소공 2년이 아닌 제2라는 뜻일 수도 있다.
  13. 13)『춘추화전(春秋左傳)』의 본문에는 ‘인생사화(人生死化)’로 되어 있지 않고 ‘인생시화(人生始化)’로 되어 있다. 그 뜻은 ‘사람이 생겨날 때 제일 먼저 생겨나는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뜻이 더 의미에 부합하는 것 같으나 우선 원문대로 번역하고 독자의 참조를 위해 각주로 처리하였다.
  14. 14)책 이름. 스물한 권으로 되어 있으며 전한(前漢)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막하(幕 下)의 제자들에게 명하여 각각 그 도(道)를 강론(講論)시켜 만든 책. 책 이름은 애초에『회남홍열(淮南鴻烈)』이라 하였는데, 뒤에 이 이름으로 바꾸었다. 사상은 도가(道家) 사상의 색이 짙다.
  15. 15)고려대장경 본문에는 이 부분이 ‘제(齊)’자로 되어 있다. 이것이 ‘배꼽 제(臍)’자와 서로 통해 쓴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의미가 서로 통하지 않는다.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송ㆍ원ㆍ명본과 궁본에는 모두 ‘제(齊)’자가 ‘제(臍)’자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므로 역자도 이를 따랐다.
  16. 16)‘니(尼)’자는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사(死)’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죽을 사’자로는 해석하여 문맥을 잇기가 어렵고 더구나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명(明)본에는 ‘사(死)’자가 ‘니(尼)’자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므로 역자도 이를 따라 번역하였다.
  17. 17)사중(四衆) 또는 사종승(四種僧)을 말함. 사중이란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또는 비구ㆍ버구니ㆍ사미ㆍ사미니를 말하는 경우와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 그 자리에 있던 대 중의 시종(始終)에 따라 네 가지로 나눈 발기중(發起衆)ㆍ당기중(當機衆)ㆍ영향중(影響衆)ㆍ결연중(結緣衆)을 말한다.
  18. 18)염불(念佛)ㆍ염법(念法)ㆍ염중(念衆)ㆍ염계(念戒)ㆍ염시(念施)ㆍ염천(念天)ㆍ염휴식(念休息)ㆍ염안반(念安般)ㆍ염신(念身)ㆍ염사(念死)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