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古今譯經圖紀卷第三 吹

ABC_IT_K1059_T_003
031_0935_a_01L고금역경도기 제3권
031_0935_a_01L古今譯經圖紀卷第三 吹


석정매 지음
주법장 번역
031_0935_a_02L大唐翻經沙門釋 靖邁 撰


6. 진(秦) 부씨(符氏) 시대
진(秦)은 부씨(符氏)가 장안(長安)에 도읍[都]한 나라이다.
031_0935_a_03L秦符氏都長安

1) 담마특(曇摩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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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담마특은 중국말로, 법해(法海)라고 한다. 서역(西域) 사람이다. 율장(律藏)을 잘 수지[持]했고, 계경(契經)의 이치를 잘 알았다. 부진(符秦) 건원(建元) 3년(367) 세차 신미(辛未)7)에 축불념(竺佛念)과 함께 장안에서, 『십송비구계본(十誦比丘戒本)』1권ㆍ『수니이세단문(授尼二歲壇文)』1권 등 2부합하여 2권를 번역했다. 혜택(惠澤)이 필수(筆受)했다.
031_0935_a_05L沙門曇摩特此言法海西域人善持律藏妙入契經以符秦建元三年歲次辛未共竺佛念於長安譯十誦比丘戒本一卷授尼二歲壇文一卷凡二部合二卷惠澤筆受

2) 석혜상(釋惠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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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석혜상은 계행[戒䡄]이 엄격하고 높았으며, 비니(毘尼:律)에 밝았다. 담마특(曇摩特)ㆍ축불념 등과 함께 부진(符秦) 건원(建元) 4년(368) 세차 임신(壬申)8)에 장안에서, 『비구니대계(比丘尼大戒)』1권를 번역했다.
031_0935_a_10L沙門釋惠常戒軌嚴峻慧善毘尼曇摩特竺佛念等以符秦建元四年歲次壬申於長安譯比丘尼大戒一卷

3) 구마라불제(鳩摩羅佛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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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구마라불제는 중국말로, 동각(童覺)이라고 한다. 서역 사람이다. 부진(符秦) 건원 5년(369)부터, 7년에 세차 을해(乙亥)에 이르기까지, 축불념ㆍ불호(佛護) 등과 함께 장안의 안업사(安鄴寺)에서 『사아함모초경(四阿含暮抄經)』 1부2권를 번역했고, 사문 승도(僧導)ㆍ담구(曇究)ㆍ승예(僧叡) 등이 필수했다.
031_0935_a_13L沙門鳩摩羅佛提此言童覺西域人以符秦建元五年至七年歲次乙亥共竺佛念佛護等於長安安鄴寺譯四阿含暮抄經一部二卷沙門僧導曇究僧睿等筆受

4) 승가발징(僧伽跋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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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35_b_01L사문 승가발징은 중국말로, 중현(衆現)이라고 한다. 계빈국(罽賓國) 사람이다. 사람됨이 의연하며, 깊고 훌륭한 역량이 있었다. 명망 높은 스승을 찾아 배우고 삼장(三藏)을 갖추어 모았으며, 뭇 경전을 널리 열람하고 비바사(毘婆沙)를 암송하여, 그 미묘한 뜻을 꿰뚫었다. 여러 지방을 유행하면서 풍속을 살펴보고 불법을 널리 펴는 데 뜻을 두다가, 부진 건원(建元) 17년(381) 세차 을유(乙酉)9)에 관중(關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석도안(釋道安) 등과 함께 『잡아비담바사론(雜阿毗曇婆沙論)』 1부14권ㆍ『존자바수밀소집론(尊者婆須蜜所集論)』 1부10권『승가나찰집경(僧伽羅刹集經)』3권 등 3부 27권을 번역했고, 건원 21년(385) 세차 기축(己丑)10)에 『불도나찰전어(佛圖羅察傳語)』를 마쳤는데, 사문 민지(敏智)와 황문랑(黃門郞) 조문업(趙文業)이 필수했다.
031_0935_a_18L沙門僧伽跋澄此云衆現罽賓國人毅然有淵懿之量歷尋名師備集三博覽衆經暗誦毘婆沙貫其妙旨浪志遊方觀風弘化以符秦建元十七年歲次乙酉來入關中共釋道安等譯雜阿毘曇婆沙論一部一十四卷尊者婆須蜜所集論一部十卷僧伽羅剎集三卷合三部二十七卷至建元二十一年歲次己丑訖佛圖羅察傳語門敏智及黃門郞趙文業筆受

5) 담마비(曇摩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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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담마비는 중국말로, 법애(法愛)라고 한다. 인도 사람이다. 그는 도량이 크고 명민하고 민첩했으며, 뜻이 불법 펴기를 좋아했다. 부진 건원 18년(382) 세차 병술(丙戌)11)에 축불념과 함께 장안에서, 『마하반야바라밀경초(摩訶般若波羅蜜經抄)』 1부5권를 번역했다.
031_0935_b_05L沙門曇摩蜱此言法愛印度人器宇明敏志好弘誘以符秦建元十八年歲次丙戌與竺佛念共於長安譯摩訶般若波羅蜜經抄一部五卷

6) 담마난제(曇摩難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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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담마난제는 중국말로, 법희(法喜)라고 한다. 도거륵국(兜佉勒國) 사람으로, 어린나이에 출가하였다. 지혜롭고 총명했으며, 경전을 깊이 연구하고 독송하되 목표한 바를 이룰 때까지 오로지 힘써 정진하였다. 삼장(三藏)을 두루 열람했고 아함(阿含)을 암송했으며, 널리 들어서 박식(博識)하여 달통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따라서 멀고 가까운 외국(外國)에서까지도 다 함께 받들며 따랐다. 어려서부터 여러 지방을 살피고 항상 불법을 널리 펴는 일에 힘썼다.
부진 건원 연중에 장안에 도착했는데, 부견[堅]은 전부터 담마난제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기에 그를 최고의 예(禮)로 맞이했다. 건원 20년(384) 세차 무자(戊子)12)에 부견이 도안(道安)을 파견하여 의학승(義學僧:敎學에 뜻을 둔 學僧)을 모이게 하고, 담마난제를 초청하여 『중아함경(中阿含經)』59권ㆍ『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51권ㆍ『아육왕태자법익괴목인연경(阿育王太子法益壞目因緣經)』1권ㆍ『승가나찰집경(僧伽羅刹集經)』3권ㆍ『삼법도경(三法度經)』2권 등 총 5부 114권을 번역했다. 사문 축불념이 중국말로 옮기고 혜숭(慧嵩)이 필수했다.
031_0935_b_09L沙門曇摩難提此言法喜兜佉勒國齠年離俗聰慧夙成硏諷經典以專精致業遍觀三藏暗誦阿含博識洽聞靡所不綜外國遠近咸共推伏少而觀遍涉諸國常以弘化爲務以符秦建元年中達于長安堅先聞提譽見禮接以建元二十年歲次戊子遣道安集義學僧請難提譯中阿含五十九卷增壹阿含經五十一卷阿育王太子法益壞目因緣經一卷僧伽羅剎集經三卷三法度經二卷摠五部合一百一十四沙門竺佛念度語慧嵩筆受

7. 진(秦) 요씨(姚氏) 시대
진(秦)은 요씨(姚氏)가 상안(常安:長安)에 도읍한 나라이다.
031_0935_b_20L秦姚氏都常安

1) 축불념(竺佛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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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35_c_01L사문 축불념은 양주(涼州) 사람으로, 약관의 나이[弱年]에 출가하였다. 지업(志業)이 맑고 고결했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온화하고 내면은 밝고 맑았다. 총명하고 명민하여 뭇 경전에 모두 통달했고, 『삼창[蒼]』과 『이아[雅]』보다 더욱 뛰어났기 때문에 그 가세(家世)를 서하(西河)에까지 떨쳤다. 사투리[方語]에 능통했고, 특히 범어[梵]와 진어[秦]의 음의(音義)를 해박하게 통달했다. 부진 건원 원년(365)에 승가발징(僧伽跋澄) 등과 함께 장안에 들어와서 경전을 번역[度語]했는데, 부진[符]과 요진[姚] 2대(代)에 걸쳐 번역한 사람 가운데에서 으뜸이었다.
부진 건원 10년(374) 세차 무인(戊寅)13)부터, 요진(姚秦)때 까지, 『출요론(出耀論)』20권ㆍ『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12권ㆍ『십주단결경(十住斷結經)』11권ㆍ『비내야경(鼻柰耶經)』10권ㆍ『십지단결경(十地斷結經)』10권ㆍ『보살처태경(菩薩處胎經)』5권ㆍ『대방등무상경(大方等無相經)』5권ㆍ『지인보살경(持人菩薩經)』3권ㆍ『보살보처경(菩薩普處經)』3권ㆍ『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2권ㆍ『왕자법익괴목인연경(王子法益壞目因緣經)』1권ㆍ『중음경(中陰經)』2권ㆍ『십송비구니계소출본말(十誦比丘尼戒所出本末)』1권 등 모두 13부 82권을 번역했다.
031_0935_b_22L沙門竺佛念涼州人弱年離俗志業淸高外和內朗通鑑明敏綜習群經尤工蒼雅家世西河洞曉方語梵秦音義莫不博洽符秦建元年與跋澄等同入長安爲澄等度語於符姚二代爲譯人之宗然念自符秦建元十年歲次戊寅訖至姚秦譯出耀論二十卷菩薩瓔珞經一十二卷十住斷結經一十一卷鼻柰耶經十卷十地斷結經十卷菩薩處胎經五卷大方等無相經五卷持人菩薩經三卷菩薩普處經三卷菩薩瓔珞本業經二卷王子法益壞目因緣經一卷中陰經二卷十誦比丘尼戒所出本末一卷摠一十三部合八十二卷

2) 담마야사(曇摩耶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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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36_a_01L사문 담마야사는 중국말로, 법칭(法稱)이라고 한다. 계빈국(罽賓國) 사람이다. 어릴 적에는 학문을 좋아하였고, 나이가 들어서는 더욱더 독실해졌다. 정신이 맑고 매우 청아하여 경과 율을 널리 열람했고, 8선정[禪]을 닦되 마음이 7각지[覺]에 노닐었다. 총명함이 무리 가운데 뛰어나 세간 밖의 이치를 깊이 깨우쳤다.
온갖 고난을 겪으며 불과[果]를 구하고자 할 적에 천신(天神)이 깨우쳐 말했다.
“어찌하여 여러 지방을 돌아보면서 불법을 널리 펴지 않고, 홀로 작은 선근[小善]만을 고수하고 있는가?”
이에 여러 지역을 유행하면서 마침내 널리 구원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늘 다섯이나 셋의 성승(聖僧)들이 나타나 석장[錫]을 짚고 허공에서 내려와 법칭(法稱)과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진(晋)나라 안제(安帝) 융안(隆安) 연중(年中)에 광주(廣州)에 도착해서는 백사사(白沙寺)에서 청신녀(淸信女) 장보명(張普明)을 위해서 『차마경(差摩經)』1권을 번역했다. 또 요진(姚秦) 홍시(弘始) 9년(407) 세차 병오(丙午)14)부터, 16년(414) 세차 계축(癸丑)15)에 이르기까지, 장안에서 『사리불아비담(舍利弗阿毗曇)』 1부22권를 번역했다. 진나라의 태자(太子) 홍(泓)이 직접 관리했고, 사문 석도표(釋道摽)가 서문(序文)을 썼다. 모두 2부 23권이다.
031_0935_c_13L沙門曇摩耶舍此言法稱罽賓國人少而好學長而彌篤神爽高雅該覽經律陶思八禪遊心七覺明悟出群幽鑑物表欲苦節求果天神悟云不觀方弘化而獨守小善於是歷遊諸國遂以曠濟爲懷常有聖僧或五或三執錫自空詣法稱談話以晉安帝隆安年中達于廣州於白沙寺淸信女張普明譯差摩經一卷又以姚秦弘始九年歲次丙午至十六年歲次癸丑於長安譯舍利弗阿毘曇一二十二卷秦太子泓親管理味沙門釋道摽制序凡二部二十三卷

3) 구마라집바(鳩摩羅什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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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36_a_01L사문 구마라집바는 중국말로, 동수(童壽)라고 한다. 본래 인도 사람이었던 아버지는 총명하고 영민한 능력으로 칭송이 자자했는데, 구자국(龜玆國)의 왕이 그 소문을 듣고 누이동생을 아내로 삼게 하여 구마라집바를 낳았다. 구마라집바가 태(胎) 속에 있을 때, 그 어머니는 말재주와 슬기로움이 나날이 늘어났다.
그는 7세 때, 출가하여 하루에 천 개의 게송을 외웠고, 그 뜻에도 또한 달통했다. 9세 땐, 외도(外道)16)와 논쟁하여 뛰어난 말재주로 삿된 예봉[邪鋒]을 꺾자, 외도들이 모두 부끄럽게 여기며 복종했다. 12세 땐, 어떤 아라한(阿羅漢)이 그를 기이하게 여겨 그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항상 잘 지키고 보호하십시오. 만약 35세까지 파계(破戒)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불법(佛法)을 크게 일으켜 무수한 사람들을 제도할 것입니다.”
또 오명론(五明論)과 사위타전(四韋陁典)과 음양(陰陽)에 대한 서적과 성산(星算:天文曆數) 등을 학습하여 그 미묘한 이치를 모두 다 규명했다. 뒤에 대승(大乘)을 배워 자주 외도를 물리쳤기 때문에 멀고 가까운 모든 나라에서 그를 신이(神異)하게 여겼다. 어머니는 구마라집바를 낳은 뒤에 곧바로 출가했는데, 총명한 지혜가 뭇 비구니 중에서 뛰어났으며, 세 번째 과위를 증득했다.
이윽고 구마라집바가 구족계를 받자, 그 어머니가 말했다.
“방등(方等)17)의 심오한 교법을 마땅히 진도(秦都)에서 크게 드러내어 밝혀야 하는데, 네 자신에게는 아무런 이익이 없을 것이다. 괜찮겠느냐?”
구마라집바가 말했다.
“보살행(菩薩行)이란 중생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의 몸을 잊는 것입니다. 큰 교화는 반드시 행해지기 마련이니,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 있다 해도 한스럽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후부터 널리 대승경전을 외우고, 그 알리지 않은 심오한 뜻 또한 통달했다. 서역(西域)의 왕들이 구마라집바를 초청하여 강설(講說)할 때, 반드시 강석[座] 곁에서 구마라집바가 무릎을 밟고 강석에 오를 수 있도록 두 무릎을 꿇고 허리를 바로 세웠다.
부견(符堅) 건원 9년(373) 세재(歲在) 정축(丁丑)18)에 태사(太史)가 아뢰었다.
“별자리를 살펴보니 외국의 대덕지인(大德智人)이 중국에 들어와서 도와줄 듯합니다.”
부견이 말했다.
“짐(朕)이 듣기로는 ‘서역(西域)에는 구마라집바가 있고, 양양(襄陽)에는 도안(道安)이 있다’고 하던데, 혹시 그들이 아니겠는가?”
그 뒤에 과연 장군 여광(呂光) 등을 파견하여 군사 7만을 거느리고 가서 서쪽의 구자국(龜玆國)을 정벌하게 하였다. 여광이 구자국을 정벌하고, 구마라집바와 함께 오는 중도에, 구마라집바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자주 조언을 하자, 여광은 그것을 다 수용했다. 여광은 서량(西涼)에 거점을 정하고19) 구마라집바에게 그곳에 머물기를 요청했다. 요진(姚秦) 홍시 3년(401)에 이르러 요흥[興]이 서량을 멸망시키자, 비로소 장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자 진(秦)의 군주인 요흥이 각별히 예우하여 맞이하고, 서명각(西明閣)과 소요원(逍遙園)의 별관(別館)에서 편히 머물게 하였다. 그리고 승략(僧䂮) 등 800명 사문에게 칙령을 내려 구마라집바에게 불법의 뜻을 묻고, 또한 수지[受]하도록 했다. 요흥은 만승(萬乘)의 마음을 낮추고, 삼보(三寶)의 가르침을 존중했다.
구마라집바는 초당사(草堂寺)에서 3천여 명의 승려들과 함께 이미 번역된 경전을 들고 손수 대조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았다. 그 깊은 뜻을 세세하게 파고들어 꿰뚫지 못한 것이 없었다. 그 당시 승예(僧叡)라는 승려가 있었는데, 요흥이 매우 가상하게 여겼다. 구마라집바는 번역한 경전을 승예와 함께 범본과 대조하여 바로잡았다.
구마라집바는 요진(姚秦) 홍시(弘始) 4년(402) 세차 신축(辛丑)20)부터 번역을 시작하여, 『대품경(大品經)』27권ㆍ『대집경(大集經)』24권ㆍ『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20권ㆍ『소품경(小品經)』10권ㆍ『화수경(華首經)』13권ㆍ『검제죄복경(檢諸罪福經)』10권ㆍ『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7권ㆍ『현겁경(賢劫經)』7권ㆍ『십주경(十住經)』5권ㆍ『사익범천문경(思益梵天問經)』4권ㆍ『대수긴나라왕소문경(大樹緊那羅王所問經)』4권ㆍ『지세경(持世經)』4권ㆍ『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3권ㆍ『불장경(佛藏經)』4권ㆍ『보살장경(菩薩藏經)』3권ㆍ『칭양제불공덕경(稱揚諸佛功德經)』3권ㆍ『선경(禪經)』3권ㆍ『선경비요법(禪經秘要法)』3권ㆍ『선법요해(禪法要解)』2권ㆍ『아사세경(阿闍世經)』2권ㆍ『아란야습선법경(阿蘭若習禪法經)』2권ㆍ『선요경(禪要經)』2권ㆍ『발보리심경(發菩提心經)』2권ㆍ『자재왕경(自在王經)』2권ㆍ『선신마하신주경(善信摩訶神呪經)』2권ㆍ『신수릉엄경(新首楞嚴經)』2권ㆍ『범망경(梵網經)』2권ㆍ『대선권경(大善權經)』2권ㆍ『무량수불경(無量壽佛經)』1권ㆍ『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1권ㆍ『미륵성불경(彌勒成佛經)』1권ㆍ『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1권ㆍ『제법무행경(諸法無行經)』2권ㆍ『보리경(菩提經)』1권ㆍ『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經)』1권ㆍ『유교경(遺敎經)』1권『십이인연관경(十二因緣觀經)』1권ㆍ『보살하색욕경(菩薩訶色欲經)』1권ㆍ『잡비유경(雜譬喩經)』1권ㆍ『수마제보살경(須摩提菩薩經)』1권ㆍ『문수회과경(文殊悔過經)』1권ㆍ『비구응법행경(比丘應法行經)』1권ㆍ『무사의광해동보살경(無思議光孩童菩薩經)』1권ㆍ『대방등정왕경(大方等頂王經)』1권ㆍ『대금색공작왕경(大金色孔雀王經)』1권ㆍ『장엄보리심경(莊嚴菩提心經)』1권ㆍ『불제자화마자게송경(佛弟子化魔子偈誦經)』1권ㆍ『태백마왕견신경(太白魔王堅信經)』1권ㆍ『개화마경(開化魔經)』1권ㆍ『마업경(魔業經)』1권ㆍ『과마법계경(過魔法界經)』1권ㆍ『불문아수륜대해유감경(佛問阿須輪大海有減經)』1권ㆍ『마왕변신경(魔王變身經)』1권ㆍ『동방선화세계불좌진동경(東方善華世界佛座震動經)』1권ㆍ『다라니법문육종동경(陁羅尼法門六種動經)』1권ㆍ『불적현천폭륜상경(佛跡現千輻輪相經)』1권ㆍ『불제화출보살경(佛齊化出菩薩經)』1권ㆍ『왕고생화불국원행법전경(往古生和佛國願行法典經)』1권ㆍ『불경해철시방경(佛謦咳徹十方經)』1권ㆍ『과거무변광정불토경(過去無邊光淨佛土經)』1권ㆍ『불변시회신경(佛變時會身經)』1권ㆍ『무량낙불토경(無量樂佛土經)』1권ㆍ『왕후위강랑경(王后爲蜣蜋經)』1권ㆍ『불심총지경(佛心總持經)』1권ㆍ『미후여비공희치변경(獼猴與婢共戱致變經)』1권ㆍ『수우왕경(水牛王經)』1권ㆍ『작왕경(雀王經)』1권ㆍ『토왕경(兎王經)』1권ㆍ『보살신위합왕경(菩薩身爲鴿王經)』1권ㆍ『불석위록왕경(佛昔爲鹿王經)』1권ㆍ『목우경(牧牛經)』1권ㆍ『허공장보살문지경기공덕경(虛空藏菩薩問持經幾功德經)』1권ㆍ『관세음경(觀世音經)』1권ㆍ『미륵보살본원대시성불경(彌勒菩薩本願待時成佛經)』1권ㆍ『등지인연경(燈指因緣經)』1권ㆍ『관보현보살경(觀普賢菩薩經)』1권ㆍ『섬본기경(睒本起經)』1권ㆍ『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1권ㆍ『보망경(寶網經)』1권ㆍ『문수사리문보리경(文殊師利問菩提經)』1권『낙영락장엄경(樂瓔珞莊嚴經)』1권ㆍ『청관세음경(請觀世音經)』1권ㆍ『사유요략법경(思惟要略法經)』1권ㆍ『지지경(持地經)』1권ㆍ『보살계본(菩薩戒本)』1권ㆍ『십송비구계본(十誦比丘戒本)』1권ㆍ『대지도론(大智度論)』1부100권ㆍ『반야경론집(般若經論集)』 1부20권ㆍ『성실론(成實論)』 1부16권ㆍ『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1부14권ㆍ『대장엄론(大莊嚴論)』 1부15권ㆍ『십주론(十住論)』 1부14권ㆍ『중론(中論)』4권ㆍ『백론(百論)』2권ㆍ『십이문론(十二門論)』1권ㆍ『마명전(馬鳴傳)』1권ㆍ『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1권ㆍ『제바보살전(提婆菩薩傳)』1권ㆍ『바수반두전(婆藪槃豆傳)』1권ㆍ『실상론(實相論)』1권 등을 11년(409) 무신(戊申)21)에 이르러 번역을 마쳤다. 번역한 경전은 모두 98부경(部經) 421권이다.
승예(僧叡)ㆍ승조(僧肇)ㆍ도항(道恒) 등이 필수했다. 구마라집바가 비유하는 말은 완곡하고 명료하여, 나오는 말마다 훌륭한 문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도도할 정도로 냉철한 정신과 마음은 무리 가운데 뛰어났다. 상대하는 이의 근기에 따라 응대했으니, 그와 짝할만한 이가 드물었다. 또한 성품이 독실하며 어질고 후덕하여 두루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를 비우고 남을 인도하되 온종일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031_0936_a_03L沙門鳩摩羅什婆此言童壽本印度父以聰敏見稱龜茲王聞以女妻而生於什什居胎日母增辯慧歲出家日誦千偈義旨亦通至年九與外道論義辯挫其邪鋒咸皆愧年十二有阿羅漢奇之謂其母曰常守護之若年三十五不破戒者大興佛法度無數人又習五明論韋陁典陰陽星算必窮其妙後轉習大乘數破外道遠近諸國咸謂神異母生什後亦卽出家聰拔衆尼得第三果什旣受具母謂之曰方等深教應大闡秦都於汝自身無利如何菩薩之行利物亡軀大化必行鑊無恨從此已後廣誦大乘洞其秘西域諸王請什講說必長跪座命什蹹而登焉符堅建元九年歲在丁丑太史奏云有星現外國當有大德智人入輔中國堅曰朕聞西有羅襄陽有道安將非此耶後果遣將軍呂光等率兵七萬西伐龜茲光與什同來什在道數言應變光盡用之光於是卽據西涼亦請什留至姚秦弘始三年興滅迺召方入長安秦主興厚加禮之延入西明閣及逍遙園別館安置勅僧䂮等八百沙門諮受什旨興卑萬乘之心尊三寶之教草堂寺共三千僧手執舊經而參定莫不精究洞其深旨時有僧睿興甚嘉焉什所譯經睿竝參正什以姚秦弘始四年歲次辛丑起譯大品經二十七卷大集經二十四卷放光般若經二十卷小品經十卷華首經十三卷撿諸罪福經十卷妙法蓮華經七卷賢劫經七卷十住經五卷思益梵天問經四卷大樹緊那羅王所問經四卷持世經四卷維摩詰所說經三卷佛藏經四卷菩薩藏經三卷稱揚諸佛功德經三卷三卷禪經秘要法三卷禪法要解二卷闍世經二卷阿蘭若習禪法經二卷禪要二卷發菩提心經二卷自在王經二卷信摩訶神呪經二卷新首楞嚴經二卷網經二卷大善權經二卷無量壽佛經一卷彌勒下生經一卷彌勒成佛經一卷金剛般若經一卷諸法無行經二卷菩提經一卷仁王護國般若波羅蜜經一卷遺教經一卷十二因緣觀經一卷菩薩訶色欲經一卷雜譬喩經一卷須摩提菩薩經一卷文殊悔過經一卷比丘應法行經一卷無思議光孩童菩薩經一卷大方等頂王經一卷大金色孔雀王經一卷莊嚴菩提心經一卷佛弟子化魔子偈誦經一卷太白魔王堅信經一卷開化魔經一卷魔業經一卷過魔法界經一卷佛問阿須輪大海有減經一卷魔王變身經一卷東方善華世界佛座震動經一卷陁羅尼法門六種動經一卷佛迹現千輻輪相經一卷佛臍化出菩薩經一卷往古生和佛國願行法典經一卷佛謦咳徹十方經一卷過去無邊光淨佛土經一卷佛變時會身經一卷無量樂佛土經一卷王后爲蜣蜋經一卷佛心摠持經一卷獼猴與婢共戲致變一卷水牛王經一卷雀王經一卷兔王經一卷菩薩身爲鴿王經一卷佛昔爲鹿王一卷牧牛經一卷虛空藏菩薩問持經幾功德經一卷觀世音經一卷彌勒菩薩本願待時成佛經一卷燈指因緣經一卷觀普賢菩薩經一卷睒本起經一卷觀佛三昧經一卷寶網經一卷文殊師利問菩提經一卷樂瓔珞莊嚴經一卷請觀世音一卷思惟要略法經一卷持地經一卷薩戒本一卷十誦比丘戒本一卷大智度論一部一百卷般若經論集一部二十卷成實論一部十六卷十住毘婆沙論一部十四卷莊嚴論一部十五卷十住論一部十四卷中論四卷百論二卷十二門論一卷馬鳴傳一卷樹菩薩傳一卷提婆菩薩傳一卷婆藪槃豆傳一卷實相論一卷至十一年戊申凡譯九十八部經合四百二十一卷睿僧肇道恒等筆受然什詞喩婉約出言成章神情鑑徹傲岸出群應機領會鮮有其疋且篤性仁厚汎愛爲虛己善誘終日無倦

4) 불타야사(佛駄耶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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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37_b_01L사문 불타야사는 중국말로, 각명(覺名)이라고 한다. 계빈국(罽賓國) 사람이다. 몸가짐이 지조 있고 곧고 깨끗했으며, 계행[戒]도 절조[節] 있고 견고했다. 그의 겉모습과 행동은 상서롭고 단정하여서, 일반 사람과 같지 않았다. 오명(五明)ㆍ사위(四韋)의 논서와 삼장(三藏)ㆍ십이부(十二部)의 경전에 있어서 남달리 심오한 이치를 깨달았고, 말재주는 물이 흐르듯 막힘이 없었다.
요진 홍시 연간에 고장(姑臧)에 도착했는데, 구마라집바 선사(先師)가 요흥[興]에게, 나아가서 불타야사를 맞이하라고 권청하니, 요흥은 곧바로 칙령을 내리고는, 그를 맞이하고, 아울러 선물을 보냈다. 그러나 불타야사는 웃으면서 선물을 받지 않고 말했다.
“밝으신 성지[明旨]를 이미 내려주셔서 곧바로 달려왔습니다. 단월(檀越)22)께서는 학승을 이미 후하게 대접하셨으나 구마라집바가 처해 있는 것을 보니 감히 칙명[命]을 받아들일 수 없나이다.”
이에 중사(重使)23)가 간곡히 청하여 비로소 장안에 도착했는데, 요흥이 몸소 나아가서 맞이하고, 새로운 기관인 소요원(逍遙園)24)을 특별히 건립하여 4사(事)25)공양했으나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때가 되면 걸식하여 하루 한 끼만 먹을 뿐이었다.
불타야사는 붉은 수염을 지녔고, 비바사(毘婆沙)26)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은 “적자비바사(赤髭毘婆沙)”라고 불렀고, 구마라집바의 스승이었으므로 대비바사사(大毘婆沙師)라고도 칭송했다. 요흥이 공급한 의복과 와구(臥具)가 세 칸의 집에 가득 찼으나, 불타야사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요흥은 또한 재물을 기부하여 절을 건립하기도 하였다.
불타야사는 요진 홍시 5년(403) 세차 임인(壬寅)27)부터 번역하기 시작하여, 15년(413) 세차 임자(壬子)28)에 이르기까지, 『장아함경(長阿含經)』22권ㆍ『허공장보살신주경(虛空藏菩薩神呪經)』1권ㆍ『사분계본(四分戒本)』1권ㆍ『사분율(四分律)』45권 등 4부 69권을 번역했다. 요흥이 번역하는 곳에 명주 만 필을 기부했으나,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축불념 등이 필수했다.
031_0937_a_16L沙門佛馱耶舍此云覺名罽賓國人操行貞白戒節堅固儀止祥淑視瞻不凡五明四韋之論三藏十二之典特悟深致流辯無滯以姚秦弘始年達于姑臧什先師之勸興往邀興卽勅迎幷有贈遺笑而不受曰明旨旣便應載馳檀越待士旣厚脫如羅什見處未敢聞命重使敦喩方至長興自出迎別立新省於逍遙園事供養竝皆不受至分衛一食而耶舍爲人赤髭善毘婆沙人號爲赤髭毘婆沙什旣師之亦稱大毘婆沙師興凡所供給衣服臥具滿三間屋不以關心興爲貨之造寺耶舍自姚秦弘始五年歲次壬寅創譯十五年歲次壬子譯長阿含經二十二卷空藏菩薩神呪經一卷四分戒本一卷四分四十五卷四部合六十九卷解座興施布絹萬疋悉皆不受竺佛念等筆受

5) 불야다라(弗若多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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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불야다라는 중국말로, 공덕화(功德華)라고 한다. 계빈국 사람이다. 그는 계행[戒]이 절조[節]가 있어 보는 이마다 칭송했고, 삼장(三藏)에 두루 통달했다. 또한 오로지 『십송률(十誦律)』을 세세하게 연구했고, 4선정(禪定)29)을 닦았다.
요진 홍시 연중(年中)에 석장을 떨치며 호경(鎬京)으로 들어왔는데, 요주(姚主)인 요흥이 상빈(上賓)의 예(禮)로 대접했으며, 법사 구마라집바도 그 훌륭한 풍모에 예를 갖추었을 정도였다. 또한 후덕(厚德)한 모습은 높이 받들만하고 비범하여 항상 다른 이의 본보기가 되었다.
홍시 6년(404) 세차 계묘(癸卯)30) 10월 17일에 의학승(義學僧) 수백 사람을 모으고, 장안중사(長安中寺)에 초청하여 『십송률』 1부58권를 번역했는데, 구마라집바가 중국말로 옮겼다.
031_0937_b_12L沙門弗若多羅此云功德華罽賓國以戒節見稱備通三藏專精十誦計念四禪以姚秦弘始年中振錫入姚主興待以上賓之禮法師羅什亦挹其風儀厚相崇敬特異常範弘始六年歲次癸卯十月十七日義學僧數百人請於長安中寺譯十誦律一部五十八卷羅什度語

8. 서진(西秦) 걸복씨(乞伏氏) 시대
서진(西秦)은 걸복씨(乞伏氏)가 원천(菀川)에 도읍한 나라이다.
031_0937_b_19L西秦乞伏氏都菀川

1) 법견(法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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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37_c_01L사문 법견은 혹 견공(堅公)이라고도 한다. 그는 도량이 커서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항상 품고 있었다. 걸복 서진 태초(太初) 연간에 하남국(河南國)에서 걸복건귀(乞伏乾歸)를 위해서 『방등왕허공장소문경(方等王虛空藏所問經)』5권ㆍ『연도속업경(演道俗業經)』1권ㆍ『보살소생지경(菩薩所生地經)』1권『패경(孛經)』1권ㆍ『현수경(賢首經)』1권ㆍ『태자수대나경(太子須大拏經)』1권ㆍ『동가섭해난경(僮迦葉解難經)』1권ㆍ『섬자경(睒子經)』1권ㆍ『무애제지법문경(無涯際持法門經)』1권ㆍ『관불경(灌佛經)』1권ㆍ『제공재환경(除恐災患經)』1권ㆍ『칠녀본경(七女本經)』1권ㆍ『부인우고경(婦人遇辜經)』1권ㆍ『아난문사불길흉경(阿難問事佛吉凶經)』1권 등 14부 18권을 번역했다. 『수대나경(須大拏經)』 등은 강릉(江陵)의 신사(辛寺)에서 번역했는데, 유상(庾爽)이 필수했다. 나머지 10부의 경전은 『시흥록(始興錄)』에도 보이는데, 오직 서진(西秦)에서만 번역한 것은 아니다.
031_0937_b_21L沙門法堅或云堅公爲量弘普利物戒心以乞伏西秦太初年間於河南爲乞伏乾歸譯方等王虛空藏所問經五卷演道俗業經一卷菩薩所生地一卷孛經一卷賢首經一卷太子須大拏一卷僮迦葉解難經一卷睒子經一卷涯際持法門經一卷灌佛經一卷除恐災患經一卷七女本經一卷婦人遇辜經一卷阿難問事佛吉凶經一卷一十四部合一十八卷如須大拏經等在江陵辛寺譯庾爽筆受餘十部見始興錄唯西秦譯也

9. 북위(北魏) 원씨(元氏) 시대
북위(北魏)는 원씨(元氏)가 중산(中山)에 도읍한 나라이다.
031_0937_c_09L北魏元氏都中山

1) 석담각(釋曇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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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석담각은 일명 혜각(慧覺)이라고도 한다. 양주(涼州) 사람이다. 그는 8척의 장신으로, 그 키가 하늘에 닿을듯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슬기롭고 비범했으며, 계행이 뛰어나게 맑고 깨끗했고, 지혜로는 미묘한 이치를 통달했다. 우전국(于殿國)에서 『현우경(賢愚經)』의 범본(梵本)을 가지고 와서, 위나라 태무제(太武帝) 태평진군(太平眞君) 6년(445) 세차 을유(乙酉)에 고창군(高昌郡) 천안사(天安寺)에서, 『현우경』 1부15권를 번역했다.
031_0937_c_11L沙門釋曇覺一云慧覺涼州人牆仞連霄風神爽悟戒地淸拔慧鑑通微於于殿國得賢愚經梵本以魏太武帝太平眞君六年歲次乙酉於高昌郡天安寺譯一部十五卷

2) 석담요(釋曇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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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38_a_01L사문 석담요는 항안(恒安)의 석굴에 있는 통락사(通樂寺)의 승려이다. 어려서 출가했는데, 기량[器宇]31)이 넓고 높았으며, 풍채는 넉넉하면서도 단정했고, 계행(戒行)이 견고하면서도 곧았다.
위나라 태무황제(太武皇帝)는 태평진군(太平眞君) 7년(446)에 최호(崔晧)32)의 삿되고 아첨하는 말을 믿고서, 도사 구겸지[寇謙]를 떠받들고 존중하고는, 승려들을 잔인하게 해쳤으며 불법(佛法)을 폐지했다. 이에 몇 년이 안 되어 태무제[太武]는 몹쓸 병[惡疾]에 걸렸는데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어 뉘우치고는, 곧바로 최호를 주살(誅殺)하여 도읍의 저잣거리에 묻고, 그 입구는 뒷간으로 만들어 뭇 사람들로 하여금 더럽히게 했다. 태무제가 죽고 그의 아들 문성(文成)이 즉위하여 연호를 흥안(興安)이라 부르고, 그 원년(452)에 불법(佛法)을 다시 부흥시켰다.
화평(和平) 3년(462) 세차 임인(壬寅)에 담요(曇耀)를 소현통(昭玄統)으로 삼았는데, 이전 황제 때 불법을 능멸하고 폐지한 일을 개탄하고, 현황제 때 다시 불법을 부흥시킨 것을 기뻐하였다. 북대(北臺) 석굴사(石窟寺)에서 인도의 사문과 모든 대덕(大德)들을 모아 『정도삼매경(淨度三昧經)』1권ㆍ『부법전(付法傳)』4권 등 2부 5권을 번역했다.
031_0937_c_16L沙門釋曇耀恒安石窟通樂寺僧少出家器宇崇峙風鑑閑約戒行堅以魏太武皇帝太平眞君七年崔皓邪佞崇重寇謙殘害釋種毀癈佛法未盈數年太武遭惡疾自生悔卽誅崔皓埋之都市以口爲廁衆穢之太武帝崩子文成立稱興安元年興隆佛法至和平三年歲次壬曇耀爲昭玄統慨前陵廢欣今再自於北臺石窟寺對印度沙門諸大德譯淨度三昧經一卷付法傳四卷凡二部合五卷

3) 길가야(吉迦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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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길가야는 중국말로, 하사(何事)라고 한다. 서역 사람이다. 유행하며 불법을 펴면서도, 계율과 선정을 닦았다. 또한 중생을 인도하는 데 뜻을 두었다.
위(魏)나라 효문제(孝文帝) 연흥(延興) 2년(472) 세차 임자(壬子)에 승통(僧統) 담요(曇曜)와 함께 『잡보장경(雜寶藏經)』 등 5부 25권을 번역했고, 유효표(劉孝標)가 필수했다. 그 경전들은 『잡보장경(雜寶藏經)』13권ㆍ『부법장인연경전(付法藏因緣經傳)』6권ㆍ『칭양제불공덕경(稱揚諸佛功德經)』3권ㆍ『대방광보살십지경(大方廣菩薩十地經)』1권ㆍ『방편심론(方便心論)』2권 등 이다.
031_0938_a_05L沙門吉迦夜此云何事西域人遊化戒慮導物在心以魏孝文帝延興二年歲次壬子爲僧統曇曜譯雜寶藏經等五部合二十五卷劉孝標筆受譯雜寶藏經十三卷付法藏因緣經傳六卷稱揚諸佛功德經三卷大方廣菩薩十地經一卷方便心論二卷

10. 북량(北涼) 저거씨(沮渠氏) 시대
북량(北涼)은 저거씨(沮渠氏)가 고장(姑臧)에 도읍한 나라이다.
031_0938_a_11L北涼沮渠氏都姑臧

1) 석도공(釋道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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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석도공은 마음을 비우고 널리 베풀어서 중생들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을 도(道)로 삼았다. 북량(北涼) 하서왕(河西王) 신새(神璽) 영초(永初) 연간에 장액(張掖)에서, 몽손(蒙遜)을 위하여 『비화경(悲華經)』 1부10권ㆍ『보량경(寶梁經)』 1부2권를 번역했다.
031_0938_a_13L沙門釋道龔虛心廣運弘利爲道北涼河西王神璽永初年閒於張掖爲蒙遜譯悲華經一部十卷寶梁經一二卷

2) 법중(法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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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법중은 고창군(高昌郡) 사람이다. 그 역시 북량(北涼) 저거씨(沮渠氏) 영초 연간에 장액에서, 하서왕(河西王) 몽손을 위하여 『대방등단특다라니경(大方等檀特陁羅尼經)』 1부4권를 번역했다.
031_0938_a_17L沙門法衆高昌郡人亦以北涼沮渠氏永初年中於張掖爲河西王蒙遜譯大方等檀特陁羅尼經一部四卷

3) 승가타(僧伽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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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승가타는 서역 사람이다. 항시 중생 구원하는 데 뜻을 두어 교화하고 인도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북량(北涼) 저거(沮渠) 영초 연중에 장액에서, 몽손을 위해서 『혜상보살문대선권경(慧上菩薩問大善權經)』 1부2권를 번역했다.
031_0938_a_20L沙門僧伽陁西域人意存兼濟化誘居懷以北涼沮渠永初年中於張掖爲蒙遜譯慧上菩薩問大善權經一二卷

4) 담마참(曇摩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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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38_b_01L사문 담마참은 혹은 담무참(曇無讖)이라고도 하고, 중국말로는 법풍(法豊)이라고 한다. 중인도(中印度) 사람이다. 6세에 출가하여 하루에 일 만 언구의 경전을 외웠다. 처음엔 소승(小乘)ㆍ오명(五明) 등의 모든 논을 배웠지만, 후일 백두선사(白頭禪師)의 대승교(大乘敎)를 만나 10일 동안 논쟁을 벌이다 대승(大乘)의 큰 뜻을 깨닫고, 마침내 대승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담무참은 주술(呪術)에도 밝아서 가는 곳마다 영험을 보였다. 따라서 서역에서는 대신주사(大神呪師)라고 불렀다.
북량(北涼) 저거(沮渠) 현시(玄始) 원년(412) 세차 임자(壬子)에 고장(姑臧)에 이르러 『열반경전분(涅槃經前分)』10권과 『보살계경[菩薩戒]』을 싸가지고 와서 전사(傳舍:여관)에서 머무르며 묵게 되었는데, 경본(經本)을 잃어버릴 것을 염려하여 베개 삼아 베고 누워서 잤다. 그런데 밤중에 어떤 신인(神人)이 담무참을 방바닥으로 떨어뜨렸는데, 담무참은 그를 도둑으로 생각했다. 이와 같이 세 차례에 걸쳐 행한 후, 허공에서 소리내어 말했다.
“이것은 여래해탈장(如來解脫藏)인데, 어찌하여 베개로 삼는가?”
이에 담무참이 알아차리고 높은 곳에 안치했다. 그날 밤에 도둑이 들어와서 경본을 훔쳐서 들고 가려고 하였는데, 끝내 들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담무참이 경본을 가뿐히 들자, 도둑이 말했다.
“성인(聖人)이시니, 모두 와서 절하고 사죄드리자.”
몽손은 담무참의 이러한 명성을 듣고서, 후하게 대우했다. 그리고 경전 번역을 요청했다. 마침내 현시(玄始) 3년(414) 세차 갑인(甲寅)부터 번역하기 시작하여, 현시 10년(421) 신유(辛酉)에 이르기까지,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부40권ㆍ『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 1부31권ㆍ『비화경(悲華經)』 1부10권ㆍ『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1부10권ㆍ『보살계경(菩薩戒經)』 1부8권ㆍ『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 1부6권ㆍ『방등대운경(方等大雲經)』 1부6권ㆍ『허공장경(虛空藏經)』 1부5권ㆍ『불본행경(佛本行經)』 1부5권ㆍ『금광명경(金光明經)』 1부4권ㆍ『해룡왕경(海龍王經)』 1부4권ㆍ『능가경(楞伽經)』 1부4권ㆍ『신선경(信善經)』 1부2권ㆍ『무위도경(無爲道經)』 1부2권ㆍ『승만경(勝鬘經)』1권ㆍ『라마가경(羅摩伽經)』1권ㆍ『수진천자경(須眞天子經)』1권ㆍ『거사청승복전경(居士請僧福田經)』1권『문타갈왕경(文陁竭王經)』1권ㆍ『공덕보광보살경(功德寶光菩薩經)』1권ㆍ『복중녀청경(腹中女聽經)』1권ㆍ『결정죄복경(決定罪福經)』1권ㆍ『보살계본경(菩薩戒本經)』1권ㆍ『보살계단문(菩薩戒壇文)』1권 등 모두 23부 148권의 경전을 번역했다. 혜숭(慧嵩)이 필수(筆受)했다.
도속(道俗)33) 수백 사람들의 질문에, 무참은 의심나고 막힌 것을 해석해주었는데, 청아한 말재주가 물 흐르듯 하였다. 『열반경』은 세 번에 걸쳐서 번역이 완성되었다.
031_0938_b_01L沙門曇摩懺或云曇無讖此云法豐中印度人六歲出家日誦萬言初學小乘五明諸論後遇白頭禪師教以大乘十日交諍方悟大旨遂專大乘讖明解呪術所向皆驗西域號爲大神呪師以北涼沮渠玄始元年歲次壬子至姑臧齎涅槃經前分十卷幷菩薩戒止於傳舍慮失經本枕之而臥夜乃有神人牽讖墮地讖謂爲盜是三夕乃聞空中聲曰此是如來解脫之藏何爲枕之讖慚悟乃安高處果有盜者夜捉提擧竟不能勝明旦讖持不以爲重盜謂聖人悉來拜謝遜聞讖名厚遇請譯遂以玄始三年歲次甲寅起譯至玄始十年辛酉大般涅槃經一部四十卷大方等大集經一部三十一卷悲華經一部十卷菩薩地持經一部十卷菩薩戒經一部八卷優婆塞戒經一部六卷方等大雲經一部六卷虛空藏經一部五卷佛本行經一部五卷金光明經一部四卷海龍王經一部四卷楞伽經一部四卷信善經一部二卷無爲道經一部二卷勝鬘經一卷羅摩伽經一卷須眞天子經一卷居士請僧福田經一卷文陁竭王經一卷功德寶光菩薩經一卷腹中女聽經一卷決定罪福經一卷菩薩戒本一卷菩薩戒壇文一卷摠二十三部合一百四十八卷慧嵩筆受道俗數百人問難讖釋疑滯淸辯若流涅槃三譯乃訖

5) 저거경성(沮渠京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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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39_a_01L안양후(安陽侯) 저거경성은 몽손(蒙遜)의 사촌 동생이다. 여러 분야에 박식하여서 경(經)과 사(史)를 섭렵하였다. 또한 내전(內典)34)을 열람하고 5계(戒)35)를 받들어 지켰으며, 아내의 방에 출입을 끊고 명예와 이익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항상 담마참(曇摩讖)을 따라서 경전을 번역하였다. 또한 서쪽 우전국[于殿]으로 가서, 인도에서 온 법사(法師) 불타사나(佛駄斯那)에게 도의(道義)에 대해 자문을 구하곤 하였다.
불타사나는 천부적인 재주와 총명함으로 5천만 개의 게송(偈頌) 경구를 외웠으며, 선법(禪法)36) 또한 명확하게 알았다. 따라서 서방(西方)의 여러 나라에서, 인중(人中)의 사자(師子)라고 불렀다. 그리고 안양후[安陽]는 불타사나에게 선법(禪法)을 수학(受學)하고서, 모든 비밀스런 이치가 입을 통해 기술된 범본(梵本)37)을 가지고 북량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북량 영화(永和) 연중에 『선법요해(禪法要解)』 1부2권를 번역했다.
북위[魏]가 북량[涼]을 멸망시킨 후 남쪽 건강(建康:南京)으로 피신하여 송나라 효무제(孝武帝) 효건(孝建) 원년(454)에 수도에 도착했다. 그리고 효건 2년(455) 세차 을미(乙未)부터 양도(楊都)의 죽원사(竹園寺)와 종산(鍾山)의 정림상사(定林上寺)에서, 『치선병비법(治禪病秘法)』2권ㆍ『정반왕반열반경(淨飯王般涅槃經)』1권ㆍ『팔관재경(八關齋經)』1권ㆍ『보명왕경(菩明王經)』1권ㆍ『불대승대경(佛大僧大經)』1권ㆍ『생사변식경(生死變識經)』1권ㆍ『분화단왕경(忿惒檀王經)』1권ㆍ『장자음열경(長子音悅經)』1권ㆍ『현자율의경(賢者律儀經)』1권ㆍ『진학경(進學經)』1권ㆍ『우바새오계경(優婆塞五戒經)』1권ㆍ『야기경(耶祇經)』1권ㆍ『마달경(摩達經)』1권『오백범지경(五百梵志經)』1권ㆍ『전타월경(旃陁越經)』1권ㆍ『오반복대의경(五反覆大義經)』1권ㆍ『가섭금계경(迦葉禁戒經)』1권ㆍ『제자사부생경(弟子死復生經)』1권ㆍ『제자사불길흉경(弟子事佛吉凶經)』1권ㆍ『오고장구경(五苦章句經)』1권ㆍ『석종문우바새경(釋種問優婆塞經)』1권ㆍ『바사닉왕상모경(波斯匿王喪母經)』1권ㆍ『보살서경(菩薩誓經)』1권ㆍ『중음경(中陰經)』1권ㆍ『불모반니원경(佛母般泥洹經)』1권ㆍ『마이비구경(▼(磨-石+女)夷比丘經)』1권ㆍ『범마황경(梵摩皇經)』1권ㆍ『우바새오법경(優婆塞五法經)』1권ㆍ『오공포세경(五恐怖世經)』1권ㆍ『말라왕경(末羅王經)』1권ㆍ『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1권ㆍ『관세음관경(觀世音觀經)』1권ㆍ『간왕경(諫王經)』1권ㆍ『청신사아이선경(淸信士阿夷扇經)』1권ㆍ『제자만위기역술경(弟子慢爲耆域述經)』1권 등 모두 35부 36권을 번역했다.
단양(丹陽) 윤맹의(尹孟顗)가 이를 보고 훌륭하게 여겨서, 재물을 넉넉히 보시하여 각별하게 예우했다. 그리고 그는 그 번역한 경전을 매우 오래 독송하고서, 대중들에게 그 내용을 널리 알렸는데, 그 말과 글에 막힘이 없었다.
031_0938_c_08L安陽侯沮渠京聲蒙遜從弟爲人博涉獵經史閱意內典奉持五戒於妻室不拘榮利常隨曇摩讖譯經西至于殿從印度法師佛馱斯那諮問道義斯那天才聰朗誦半億偈經明了禪法西方諸國號爲人中師子安陽從那受學禪法諸秘要術口說梵本東歸於涼以北涼永和年中禪法要解一部二卷魏滅涼後南奔建以宋孝武帝孝建元年達至京邑卽以孝建二年歲次乙未於揚都竹園寺及鍾山定林上寺又譯治禪病秘二卷淨飯王般涅槃經一卷八關齋經一卷普明王經一卷佛大僧大經一卷生死變識經一卷忿和檀王經一卷長者音悅一卷賢者律儀經一卷進學經一卷優婆塞五戒經一卷耶祇經一卷摩達經一卷百梵志經一卷旃陁越經一卷五反覆大義經一卷迦葉禁戒經一卷弟子死復生一卷弟子事佛吉凶經一卷五苦章句一卷釋種問優婆塞經一卷波斯匿王喪母經一卷菩薩誓經一卷中陰經一卷母般泥洹經一卷𡡉夷比丘經一卷梵摩皇經一卷優婆塞五法經一卷五恐怖世一卷末羅王經一卷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一卷觀世音觀經一卷諫王經一卷淸信士阿夷扇經一卷弟子慢爲耆域述經一卷摠三十五部合三十六卷丹陽尹孟顗見而奇之資贍隆厚所譯之經諷誦旣久對衆弘宣文無滯㝵

6) 부타발마(浮陁跋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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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부타발마는 혹은 불타(佛陁)라고도 하는데, 중국말로는 각개(覺鎧)라고 한다. 서역 사람이다. 지조 있고 분명하며, 올곧고 총명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매우 뛰어났다. 또한 삼장(三藏)을 두루 섭렵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비바사론(毘婆沙論)』에 있어서만큼은 매우 해박했다. 따라서 항상 이 『비바사론』을 외우는 것을 마음의 가장 중요한 요점으로 삼았다.
북량(北涼) 영화(永和) 5년(437) 세차 을해(乙亥)38)에는 하서왕 자건(子虔)을 위해서 『비바사론(毘婆沙論)』 1부 100권을 번역했는데, 도태(道泰)가 필수했다. 그 무렵 위(魏)나라가 북량[涼]]을 멸망시켰기 때문에, 경서(經書) 40권은 불에 타서 없어졌고, 지금은 60권만 남아 있다.
031_0939_a_16L沙門浮陁跋摩或云佛陁此言覺鎧西域人志操明直聰悟出群雖復遍集三藏偏善毘婆沙論常誦此部爲心要以北涼永和五年歲次乙亥爲河西王子虔譯毘婆沙論一部百卷道泰筆受屬魏滅涼經書被焚失四十卷今唯六十卷在

7) 석도태(釋道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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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석도태(釋道泰)는 『대장부론(大丈夫論)』 1부2권ㆍ『입대승론(入大乘論)』 1부2권을 번역했다.
031_0939_a_23L沙門釋道泰譯大丈夫論一部二卷大乘論一部二卷

8) 석지맹(釋智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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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39_b_01L사문 석지맹은 옹주(雍州) 신풍현(新豊縣) 사람으로, 타고난 성품이 단정하고 곧았으며, 계행이 청렴결백했다. 어린 나이에 법복(法服)을 입고 성심껏 수업(修業)하였는데, 경을 외우는 소리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그의 뜻은 멀고 먼 인도로 가서 심오한 불법(佛法)을 구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신령한 자취를 찾아 서역으로 갔다. 또 북량 영화 연간 서역에서, 옥문관(玉門關)을 지나 귀국하였다. 그리고 양토(涼土)에서, 『반니원경(般泥洹經)』 1부[20권]를 번역했다.
031_0939_b_02L沙門釋智猛雍州新豐縣人稟性端厲明行淸白少襲法服修業專誠諷誦之音以夜續日志度宏邈情深佛西尋靈迹以北涼永和年中自西而返塗經玉門卽於涼土譯般泥洹經一部二十卷

9) 실역경(失譯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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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17권는 번역한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없는 경전이다. 승우(僧祐)의 『신집(新集)』과 석도안(釋道安)의 『양사록(涼士錄)』에서 번역한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양대(涼代)의 경전을 언급했는데, 이제 다시 양세목록(涼世目錄)에 덧붙여 넣었다. 비록 번역한 사람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번역한 시대는 대략 알 수 있다. 그 경전은 『대인욕경(大忍辱經)』10권ㆍ『불퇴전경(不退轉經)』 4권ㆍ『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1권ㆍ『금륜왕경(金輪王經)』1권ㆍ『현겁오백불명(賢劫五百佛名)』1권 등이다.
031_0939_b_08L失譯人名經五部一十七卷僧祐新集及釋道安涼土錄竝云是涼代失譯人今還附入涼世目錄雖不知譯人名庶知譯時代也大忍辱經十卷不退轉經四卷金剛三昧經一卷金輪王經一卷賢劫五百佛名一卷

11. 송(宋) 유씨(劉氏) 시대
송(宋)은 유씨(劉氏)가 건강(建康)에 도읍한 나라이다.
031_0939_b_13L宋劉氏都建康

1) 불타집(佛陁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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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불타집은 중국말로, 각수(覺壽)라고 한다. 계빈국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미사색부율[彌沙塞部]』을 수업하여 오로지 율품(律品)을 자세하게 연구했고, 선요(禪要)39)에도 달통했다. 송나라 폐제(廢帝) 형양왕(滎陽王) 경평(景平) 원년(423) 세차 계해(癸亥) 7월에 양도(楊都)에 도착했다. 법현(法顯)이 이전에 사자국(師子國)에서 『미사색률(彌沙塞律)』을 가져왔지만, 번역하지 못하고 입적했다. 따라서 불타집이 율(律)에 정통하다는 소문을 들은 경읍(京邑)의 승도(僧徒)들이 『미사색부율』을 번역해주길 간청했다. 그해 겨울, 용광사(龍光寺)에서 『미사색부율』 34권ㆍ계본(戒本)1권ㆍ갈마(羯磨)1권 등 모두 36권을 번역했다. 아울러 우전국(于闐國) 사문 지승(智勝)이 말을 옮겼고, 사문 축도생ㆍ혜엄(慧嚴) 등이 필수했다. 그리고 시중(侍中) 왕련(王練)이 단월(檀越)40)이 되었다.
031_0939_b_15L沙門佛陁什此言覺壽罽賓國人受業於彌沙塞部專精律品兼達禪以宋廢帝滎陽王景平元年歲次癸亥七月到於楊都法顯先於師子國得彌沙塞律未譯而終京邑僧徒聞什善律衆請譯出卽以其年冬於龍光寺譯爲三十四卷幷戒本一卷一卷合三十六卷于闐沙門智勝傳沙門竺道生慧嚴等筆受侍中王練爲檀越

2) 담마밀다(曇摩蜜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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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39_c_01L사문 담마밀다는 중국말로, 법수(法秀)라고 한다. 계빈국 사람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일자 눈썹이었다. 사람됨이 침착했고 속이 깊었으며, 지혜가 있어 다른 이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선신(善神)이 모습을 감추고, 항상 따라다니면서 은밀히 보호했다. 그리하여 국경에 도착할 때마다 신(神)이 그 나라 왕의 꿈에 어김없이 나타나 알려주었다. 또 그 나라를 떠날 때에도 그와 같았다. 여러 지역을 유행하면서 교화하기로 굳게 마음먹었기에, 명예와 이익에 구애받지 않았다.
처음 돈황(燉煌)에 도착해서는 선각(禪閣)을 건립하고, 능금나무 천 그루를 심어 백 이랑 정도의 동산을 만들었다. 그러자 선정(禪定)을 배우고자 하는 무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송나라 문제(文帝) 원가(元嘉) 18년41) 세차 갑자(甲子)42)에 비로소 건업(建業)에 도착했다. 기원사(祇洹寺)에서, 『선비요경(禪秘要經)』5권ㆍ『오문선요법(五門禪要法)』1권ㆍ『관보현보살행법경(觀普賢菩薩行法經)』1권ㆍ『허공장보살관경(虛空藏菩薩觀經)』1권ㆍ『제법용왕경(諸法勇王經)』1권ㆍ『불승도리천위모설법경(佛昇忉利天爲母說法經)』1권ㆍ『전여신경(轉女身經)』1권ㆍ『상액경(象腋經)』1권ㆍ『욱가장자소문경(郁伽長者所問經)』1권ㆍ『허공장보살신주경(虛空藏菩薩神呪經)』1권 등 모두 10부 12권을 번역했다. 그는 주술(呪術)에 뛰어났으며, 그가 그린 가비라상(迦毘羅像)은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031_0939_c_01L沙門曇摩蜜多此言法秀罽賓國人生而連眉爲人沈邃甚有慧鑑常有善神潛形密護每之國境神必託夢告其王知去亦如之誓以遊方教化爲志不拘名利初到燉煌卽立禪閣柰千株開園百畝學禪定衆趍者如雲以宋文帝元嘉十八年歲次甲子來至建業於祇洹寺譯禪秘要經五卷五門禪要法一卷觀普賢菩薩行法經一卷虛空藏菩薩觀經一卷諸法勇王經一卷佛昇忉利天爲母說法經一卷轉女身經一卷腋經一卷郁伽長者所問經一卷虛空藏菩薩神呪經一卷摠一十部合一十二善呪術傳畫迦毘羅像形

3) 강량야사(畺梁耶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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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강량야사는 중국말로, 시칭(時稱)이라고 한다. 서역 사람이다. 성품이 강직하였으며, 욕심이 적었다. 또한 삼장(三藏)에 능통하여 아는 것이 많았으며, 선사(禪思:禪定)엔 더욱 능숙했다. 송나라 문제(文帝) 원가 원년(元年:424) 세차 갑자(甲子)에 건강(建康)에 도착했는데, 문제가 매우 가상히 여겨 종산(鍾山)의 도림정사(道林精舍)에서 머물도록 지시했다. 거기에서 『관약왕약상이보살경(觀藥王藥上二菩薩經)』1권ㆍ『무량수관경(無量壽觀經)』1권 등을 번역했는데, 사문 승함(僧含)이 필수했다.
開封 연남
031_0939_c_15L沙門畺梁耶舍此言時稱西域人剛直寡嗜欲善三藏多所諳知尤工禪思以宋文帝元嘉元年歲次甲子達于京邑帝深加賞勅住鍾山道林精舍譯觀藥王藥上二菩薩經一卷無量壽觀經一卷沙門僧含筆受

#4) 이섭바라(伊葉波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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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이섭바라는 중국말로, 자재(自在)라고 한다. 서역 사람이다. 삼장(三藏)에 매우 달통했고, 사함(四含)43)을 해박하게 꿰뚫었다. 송나라 문제 원가(元嘉) 연중(年中)에 팽성(彭城) 북쪽에 있는 서주자사(徐州刺史) 왕중덕(王仲德)을 위해서, 『잡아비담심론(雜阿毗曇心論)』 1부11권를 번역했다. 자사(刺史)가 몸소 필수했다.
031_0939_c_21L沙門伊葉波羅此云自在西域人通三藏解貫四含以宋文帝元嘉年遊於彭城爲比徐州刺史王仲德譯雜阿毘曇心論一十一卷刺史親自筆受

5) 석지엄(釋智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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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0_a_01L사문 석지엄은 양주(涼州) 사람이다. 약관(弱冠)의 나이에 출가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으로 업(業)을 삼았다. 그리하여 누더기를 걸쳐 좌선하고, 거친 음식을 먹었다. 또한 영원히 별청(別請)44)을 받지 않았으며, 탁발하여 스스로 먹고 살았다.
진나라 의희(義凞) 13년(417)에 송나라 무제[武]가 요홍(姚泓)을 정벌하고 돌아오던 길에, 시흥공(始興公) 왕회(王恢)가 어가[駕]를 수행하며 산수를 돌아보다가 지엄[嚴]이 참선하는 것을 보고, 곧바로 청하여 경도[都]로 함께 왔다. 지엄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치자, 가르침을 받은 유명(幽明)45) 모두 닿았기에, 다 감복했다.
앞서 서역에서 얻어온 범본(梵本) 경전을 미처 번역하지 못하다가, 송나라 문제 원가 4년(427) 세차 정묘(丁卯)에 양도(楊都)의 지원사(枳園寺)에서 보운(寶雲) 등과 함께 『보요경(普曜經)』8권ㆍ『무진의보살경(無盡意菩薩經)』6권ㆍ『생경(生經)』5권ㆍ『광박엄정불퇴전륜경(廣愽嚴淨不退轉輪經)』4권ㆍ『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2권ㆍ『비라삼매경(毘羅三昧經)』2권ㆍ『아나함경(阿那含經)』2권ㆍ『사천왕경(四天王經)』2권ㆍ『선덕바라문문제바달다경(善德婆羅門問提婆達多經)』1권ㆍ『일음현정법경(一音顯正法經)』1권ㆍ『조복중생업경(調伏衆生業經)』1권ㆍ『선덕우바새경(善德優婆塞經)』1권ㆍ『법화삼매경(法華三昧經)』1권ㆍ『정도삼매경(淨度三昧經)』1권 등 모두 14부 36권을 번역했다.
지엄은 출가하기 전, 5계(戒)를 받고 파계한 적이 있었다. 후일 구족계[大戒:具足戒]를 받을 때가 되자,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의심이 생겨 마침내 바닷길을 따라 인도국(印度國)에 가서 나한(羅漢) 비구에게 자문(諮問)을 구했다. 그때 나한 비구도 결정하지 못하여 미륵(彌勒)에게 묻자, 미륵이 대답하기를, “구족계를 받을 수 있다”고 하자 지엄은 매우 기뻐하였다.
031_0940_a_02L沙門釋智嚴涼州人弱冠出家精勤爲業納衣宴坐蔬食永歲不受別請分衛自資晉義熙十三年宋武伐姚泓還始興公王恢從駕觀山見嚴禪卽請還都然嚴道化所被幽顯咸先於西域得經梵本未譯以宋文帝元嘉四年歲次丁卯於楊都枳園寺共寶雲等譯普曜經八卷無盡意菩薩經六卷生經五卷廣博嚴淨不退轉輪四卷菩薩瓔珞本業經一卷毘羅三昧二卷阿那含經二卷四天王經一卷善德婆羅門問提婆達多經一卷一音顯正法經一卷調伏衆生業經一卷善德優婆塞經一卷法華三昧經一卷淨度三昧經一卷摠一十四部合三十六卷然嚴未出家前曾受五戒有所虧犯後受大疑不得戒遂汎海至印度國諮問羅漢比丘羅漢不決爲詣彌勒勒答云得戒嚴甚喜焉

6) 구나발마(求那跋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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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0_b_01L사문 구나발마는 중국말로, 공덕개(功德鎧)라고 한다. 계빈국 사람이다. 그는 바로 계빈국 왕의 작은 아들로서 구부(九部)46) 경전에 모두 밝았다. 특히 사함(四含)을 해박하게 알았다. 그리고 율장(律藏)에 깊이 통달했고, 선요(禪要)를 섬세하게 깨달았으며, 경전 백여 만 구절을 암송하기도 했다. 계빈국 왕이 죽자, 많은 사람들이 왕위에 오를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계율에 방해될 것이 꺼려져 숲속과 골짜기에 은거한 채 산야(山野)를 홀로 다녔다. 그리고 인간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의 위의(威儀) 있는 모습은 중생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에, 보는 이들마다 발심(發心)하곤 하였다. 그러다 송나라 문제 원가 연중에 건업(建業)에 도착하였는데, 문제가 은근슬쩍 물었다.
“저는 항상 부정(不淨)한 일을 멀리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살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다급할 때 저절로 중생들을 뒤따르고 있으니, 내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법사(法師)께서는 무엇으로 저를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구나발마가 말했다.
“도(道)는 마음에 있는 것이지 현상[事]에 있는 것이 아니며, 법(法)은 자기를 말미암는 것이지 남을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또 제왕(帝王)과 필부(疋夫)는 하는 일이 각기 다릅니다. 그러므로 필부의 몸은 천박하고 이름도 졸렬하며, 하는 말도 위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자신의 고충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제왕은 4해(海)로 집을 삼고, 억조창생으로 자식을 삼기 때문에, 한 번 유익한 말씀을 하시면 사녀(士女)들이 모두 기뻐하고, 한 번 선정(善政)을 펴시면 사람과 신(神)이 화합하여, 형벌로 생명을 죽일 일도 없고, 부역[役]시키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비바람은 때에 알맞게 있을 것이며, 추위와 더위도 절기에 알맞아 백곡(百穀)이 무성하고 뽕나무와 삼[麻]이 울창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재계[戒齋]를 지키는 것 또한 큰 이익이 있고, 살생하지 않는 것에도 많은 이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궁궐에 있으면서 반나절의 식사를 하는 것이 한 마리 새의 목숨을 온전히 해준 것과 같겠습니까? 이렇게 한 뒤에라야 바야흐로 백성을 널리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文帝)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구나발마 법사께서는 진리를 깨달아 명민하게 일의 이치를 통달하셨으니, 마치 천인(天人)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구나.”
그리고는 기원사(祇桓寺)에 머물도록 조처하고서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여 융숭하게 대우하였다. 그로 인해 바로 원가(元嘉) 연중에 양도에서,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20권ㆍ『잡아비담심론(雜阿毗曇心論)』12권ㆍ『사분비구니갈마(四分比丘尼羯磨)』1권ㆍ『우바새오계약론(優婆塞五戒略論)』1권ㆍ『삼귀급우바새계(三歸及優婆塞戒)』1권ㆍ『사미위의(沙彌威儀)』1권ㆍ『오문선요용(五門禪要用)』1권ㆍ『경률분이기(經律分異記)』1권 등 모두 7부 38권을 번역했다. 그리고 제이과(第二果:斯陁含果)를 증득했다.
031_0940_a_21L沙門求那跋摩此言功德鎧罽賓國卽其國王之少子也洞明九部博曉四含深達律品妙入禪要誦經百餘萬言罽賓王薨衆請紹位恐爲戒障遂林棲谷飮孤行山野遁迹人世形感物見者發心以宋文帝元嘉年達于建業文帝慇懃問曰弟子常欲齋而不殺迫以身徇物不獲從志法師將何以教之跋摩曰夫道在心不在事法由己非由人且帝王與疋夫所修各異疋夫身賤名劣言令不若不剋己苦躬將何爲用帝王以四海爲家兆民爲子出一嘉言則士女咸悅布一善政則人神以和刑不夭命役無勞力則使風雨適時寒暖應節百穀滋繁桑麻鬱茂如此持戒齋亦大矣不殺亦衆矣寧在闕半日之食全一禽之命然後方爲弘濟耶帝大悅曰跋摩法師開悟明達可與談於天人之際矣勅住祇桓寺供給隆厚卽以元嘉年於楊都譯菩薩善戒經二十卷雜阿毘曇心論十二卷四分比丘尼羯磨一卷優婆塞五戒略論一卷三歸及優婆塞戒一卷沙彌威儀一卷五門禪要用一卷經律分異記一卷摠七部合三十八卷證第二果

7) 보운(寶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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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0_c_01L사문 보운은 서량주(西涼州)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학식이 많고 깊은 사람에게서 부지런히 공부했다. 뜻이 품위가 있고 강직하고 고결하여, 세상에서 짝할 이가 없었다. 법(法)을 구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자신을 잊고 도(道)를 따랐다. 그러다 마침내 진나라 융안(隆安) 연초(年初)에 서역으로 부처님의 신령스러운 자취를 찾아 나섰다. 그는 나찰(羅刹)이 사는 벌판을 지나가다 하늘의 북소리를 들었었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남기신 자취[影迹]에도 예배했으며, 나한(羅漢)의 말을 받아 품기도 하였고, 서방(西方)을 두루 유행(遊行)하기도 하였다. 범서(梵書)와 범어[語]에 능통했다. 따라서 인도말의 자음(字音)ㆍ훈석(訓釋)ㆍ사구(辭句)를 모두 다 잘 알았다. 이후 장안(長安)으로 왔다가 다시 강좌(江左)로 갔는데, 모든 번역하는 사람 중에서 범어 해석에 있어서는 보운(寶雲)이 최고였다.
처음에는 지엄과 함께 경을 번역하였는데, 지엄이 입적한 뒤에는 보운 혼자서 번역했다. 그리하여 송나라 문제 원가 연중에 육합산사(六合山寺)에서, 『불본행찬경전(佛本行讚經傳)』7권ㆍ『부법장경(付法藏經)』6권ㆍ『불소행찬경전(佛所行讚經傳)』5권ㆍ『신무량수경(新無量壽經)』2권ㆍ『신정도삼매경(新淨度三昧經)』2권 등 모두 4부 15권을 번역했다. 사문 혜관(慧觀) 등이 벗으로서 그를 도와주었다.
031_0940_b_23L沙門寶雲西涼州人自少出家精勤碩學志韻剛潔不偶世群求法懇惻忘身殉道遂以晉隆安年初西尋靈經羅剎之野聞天鼓之音禮釋迦影迹受羅漢之語歷遊西方善梵書印度字音訓釋辭句悉皆備解來長安復至江左諸飜譯人傳譯梵於雲爲最初與智嚴共同出經旣遷化雲獨宣譯以宋文帝元嘉年中於六合山寺譯佛本行讚經傳七卷付法藏經六卷佛所行讚經傳五卷新無量壽經二卷新淨度三昧經二卷摠四部合十五卷沙門慧觀等友而善之

8) 승가발마(僧伽跋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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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승가발마는 중국말로, 중개(衆鎧)라고 한다. 인도국(印度國) 사람으로, 어릴 때부터 출가했다. 계덕(戒德)47)이 맑고 드높았으며, 율장(律藏)을 잘 알았다. 특히 『잡아비담심론[雜心]』에 정통했다. 또한 타고난 기품이 매우 정숙하여, 도인과 속인들이 각별하게 공경했다. 그가 번역한 경전은 글의 뜻이 자세하여 범본[梵]과 송본[宋]이 차이가 없었다. 그리하여 팽성왕(彭城王) 유의강(劉義康)이 그 계율[戒範]을 숭상하였다. 따라서 초청하여 스승으로 삼으니, 이름이 경읍(京邑)에 드날렸다.
송나라 원가(元嘉) 10년(433) 세차 계유(癸酉)에 장간사(長干寺)에서, 『아비담비바사론(阿毘曇毘婆沙論)』14권ㆍ『살바다마덕륵가비니(薩婆多摩德勒伽毘尼)』10권ㆍ『대용보살분별업보약집(大勇菩薩分別業報略集)』1권ㆍ『용수보살권발제왕요게(龍樹菩薩勸發諸王要偈)』1권ㆍ『청성승욕문(請聖僧浴文)』1권 등 모두 5부 27권을 번역했다. 보운(寶雲)이 중국말로 말하고, 도량사(道場寺) 혜관(慧觀)이 필수했다.
031_0940_c_12L沙門僧伽跋摩此言衆鎧印度國人少而棄俗戒德淸峻善解律藏尤精雜心器宇宏肅道俗敬異其所譯經竝文義詳允梵宋不差彭城王劉義崇其戒範請以爲師名重京邑宋元嘉十年歲次癸酉於長干寺阿毘曇毘婆沙論一十四卷薩婆多摩德勒伽毘尼十卷大勇菩薩分別業報略集一卷龍樹菩薩勸發諸王要偈一卷請聖僧浴文一卷摠五部合二十七卷寶雲傳語道場寺慧觀筆受

9) 구나발타라(求那跋陁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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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1_a_01L사문 구나발타라는 중국말로, 공덕현(功德賢)이라고 한다. 중인도(中印度) 사람이다. 어려서 오명(五明)ㆍ사위타(四韋陁) 등의 논(論)을 배웠다. 지성(志性)은 총명하고 민첩했다. 또한 도량(度量)이 해박(該博)했다. 후일 『잡아비담심론[雜心]』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깊은 경지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비로소 불법(佛法)이야말로 높고 깊은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머리를 깎고 모습을 바꾸어 출가하여, 오로지 지업(志業)을 세세하게 닦았다. 그리고 널리 삼장(三藏)에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는 자비롭고 온화하며, 공손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품고, 스승 섬기는 일에 예(禮)를 다하였다. 소승(小乘)을 버리고 대승(大乘)을 배워서, 그윽한 뜻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송나라문제 원가 12년(435)에 양도에 오게 되었는데, 문제가 깊히 존중하여 기원사(祇洹寺)에 머물도록 했다. 그리하여 송나라 원가 20년(443) 세차 계미(癸未)에 이르기까지, 양도의 와관사(瓦官寺)에서 『잡아함경(雜阿含經)』50권ㆍ『중사분아비담(衆事分阿毗曇)』12권ㆍ『능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4권ㆍ『앙굴마라경(央掘魔羅經)』4권ㆍ『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4권ㆍ『석육십이견경(釋六十二見經)』4권ㆍ『대방광보협경(大方廣寶篋經)』2권ㆍ『현재불경(現在佛經)』3권ㆍ『보살행방편신통변화경(菩薩行方便神通變化經)』3권ㆍ『정도삼매경(淨度三昧經)』3권ㆍ『상속해탈요의경(相續解脫了義經)』3권ㆍ『대법고경(大法鼓經)』2권ㆍ『아란야습선경(阿蘭若習禪經)』2권ㆍ『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경(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經)』1권ㆍ『무량수경(無量壽經)』1권ㆍ『빈두로돌라사위우타연왕설법경(賓頭盧突羅闍爲優陁▼(王+延)王說法經)』1권ㆍ『반니원경(般泥洹經)』1권ㆍ『팔길상경(八吉祥經)』1권ㆍ『무우왕경(無憂王經)』1권ㆍ『출무량지문경(出無量持門經)1권ㆍ『삼소겁경(三小劫經)』1권ㆍ『사식경(四食經)』1권ㆍ『십이유경(十二遊經)』1권ㆍ『십이두타경(十二頭陁經)』1권ㆍ『삼인연경(三因緣經)』1권ㆍ『이처칠처삼관경(異處七處三觀經)』1권ㆍ『십일상사념여래경(十一想思念如來經)』1권ㆍ『십이품생사경(十二品生死經)』1권ㆍ『십보법삼통약경(十報法三統略經)』1권ㆍ『죄복보응경(罪福報應經)』1권ㆍ『육재팔계경(六齋八戒經)』1권ㆍ『사인출현세간경(四人出現世間經)』1권ㆍ『사품학법경(四品學法經)』1권ㆍ『신도본경(申兜本經)』1권『구생경(舅生經)』1권ㆍ『나선경(那先經)』1권ㆍ『일난경(日難經)』1권ㆍ『군신경(君臣經)』1권ㆍ『비마숙경(鞞摩肅經)』1권ㆍ『앵무경(鸚鵡經)』1권ㆍ『부채위우경(負債爲牛經)』1권ㆍ『월난경(越難經)』1권ㆍ『나뢰경(那賴經)』1권ㆍ『이교사경(二僑士經)』1권ㆍ『석마남본경(釋摩男本經)』1권ㆍ『아란나경(阿蘭那經)』1권ㆍ『노모경(老母經)』1권ㆍ『수제가경(樹提伽經)』1권ㆍ『아속달경(阿遬達經)』1권ㆍ『대의경(大意經)』1권ㆍ『목련항룡왕경(目連降龍王經)』1권ㆍ『아난견기악제곡무상경(阿難見伎樂啼哭無常經)』1권ㆍ『사리불등비구득신작증경(舍利弗等比丘得身作證經)』1권ㆍ『불왕위가섭병경(佛往慰迦葉病經)』1권ㆍ『청반특비구경(請槃特比丘經)』1권ㆍ『불명아난예최승장자경(佛命阿難詣最勝長者經)』1권ㆍ『목련제보시망보경(目連弟布施望報經)』1권ㆍ『사리불반니원경(舍利弗般泥洹經)』1권ㆍ『마하가섭도빈모경(摩訶迦葉度貧母經)』1권ㆍ『아나율칠념장경(阿那律七念章經)』1권ㆍ『잡장경(雜藏經)』1권ㆍ『허공장보살경(虛空藏菩薩經)』1권ㆍ『보살가욕경(菩薩呵欲經)』1권ㆍ『아미타경(阿彌陁經)』1권ㆍ『제법무행경(諸法無行經)』1권ㆍ『빈자수뢰경(貧子須賴經)』1권ㆍ『무량의경(無量義經)』1권ㆍ『살룡제일국경(煞龍嚌一國經)』1권ㆍ『무애제지법문경(無涯際持法門經)』1권ㆍ『타주착해중경(墮珠着海中經)』1권ㆍ『당래선택제악세계경(當來選擇諸惡世界經)』1권ㆍ『아난타목거니아리타경(阿難陁目佉尼阿離陁經)』1권ㆍ『불입감로조정의경(佛入甘露調正意經)』1권ㆍ『과거행단바라밀경(過去行檀波羅蜜經)』1권ㆍ『본행육바라밀경(本行六波羅蜜經)』1권ㆍ『제일의오상략집(第一義五相略集)』1권 등 모두 78부 161권을 번역했다. 그리고 혜관(慧觀) 등이 필수했고, 제자 법용(法勇)이 중국말로 바꾸었다.
형주자사(荊州刺史) 남초왕(南譙王) 유의선(劉義宣)이 일찍이 『화엄경(華嚴經)』 강의를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구나발타라는 송나라 말이 서툰 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아침ㆍ저녁으로 관세음보살님께 절하고, 죄를 참회하며, 구제해 줄 것을 빌었다. 그러던 중 홀연히 꿈속에서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났는데,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다른 손에는 사람의 머리를 들고 서, 구나발타라에게 말했다.
“무엇을 고민하는가?”
구나발타라가 속마음을 말하자, 답하여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
그리고는 곧바로 칼로 구나발타라의 머리를 자르고, 들고 있던 새로운 머리를 붙이고서 물었다.
“아프지 않은가?”
대답했다.
“아프지 않습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자, 매우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이에 경을 강의하였는데, 중국말이 능수능란하여 물이 흐르는 것과 같았다.
뒤에 다시 양도로 돌아왔는데, 마침 문제가 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이때 왕공(王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문제는 구나발타라에게 재치 있는 말솜씨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는 힘에 대한 여부(與否)를 시험하려 하였다. 문제가 구나발타라의 흰 머리를 보고 말했다.
“법사[師]께서 지금 먼 곳까지 오신 뜻을 저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오직 한 가지만이 남아 있다고 하는 것이오?”
공덕현(功德賢)이 곧 대답했다.
“천자(天子)의 덕을 사모하여 멀리서 찾아와 은혜를 입은 지, 어언 3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제 나이 71세이니, 오직 한 번 죽는 일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에 문제가 크게 기뻐하며 어좌[御]에 가까이 앉도록 했다.
그는 주술에도 능했고, 대승(大乘)을 잘 알았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은 마하승(摩訶乘)이라고 불렀다.
031_0940_c_23L沙門求那跋陁羅此言功德賢中印度人幼學五明四韋陁論志性明敏度量該博後遇雜心莫測涯際方悟佛法崇深投簪落彩專精志業博通三藏慈和恭恪事師盡禮捨小學大則深悟幽旨以宋文帝元嘉十二年來至楊都帝深重之勅住祇洹寺宋元嘉二十年歲次癸未於楊都瓦官寺譯雜阿含經五十卷衆事分阿毘曇十二卷楞伽阿跋多羅寶經四卷央掘魔羅四卷過去現在因果經四卷釋六十二見經四卷大方廣寶篋經二卷現在佛經三卷菩薩行方便神通變化經三卷淨度三昧經三卷相續解脫了義經三卷大法鼓經二卷阿蘭若習禪經二卷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經一卷無量壽經一卷頭盧突羅闍爲優陁延王說法經一卷般泥洹經一卷八吉祥經一卷無憂王經一卷出無量持門經一卷三小劫經一卷食經一卷十二遊經一卷十二頭陁經一卷三因緣經一卷異處七處三觀經一卷一想思念如來經一卷十二品生死經一卷十報法三統略經一卷罪福報應經一卷六齋八戒經一卷四人出現世間經一卷四品學法經一卷申兜本經一卷舅生一卷那先經一卷日難經一卷君臣經一卷鞞摩肅經一卷鸚鵡經一卷負債爲牛經一卷越難經一卷那賴經一卷二僑士經一卷釋摩男本經一卷阿蘭那經一卷老母經一卷樹提伽經一卷阿遬達經一卷大意經一卷目連降龍王經一卷阿難見伎樂啼哭無常經一卷舍利弗等比丘得身作證經一卷佛往慰迦葉病經一卷請槃特比丘經一卷佛命阿難詣最勝長者經一卷目連弟布施望報經一卷舍利弗般泥洹經一卷摩訶迦葉度貧母經一卷那律七念章經一卷雜藏經一卷虛空藏菩薩經一卷菩薩呵欲經一卷阿彌陁經一卷諸法無行經一卷貧子須賴經一卷量義經一卷殺龍濟一國經一卷無涯際持法門經一卷墮珠著海中經一卷當來選擇諸惡世界經一卷阿難陁目佉尼阿離陁經一卷佛入甘露調正意經一卷過去行檀波羅蜜經一卷本行六波羅蜜經一卷第一義五相略集一卷摠七十八部合一百六十一卷慧觀等筆受弟子法勇傳語荊州刺史南譙王劉義宣嘗請講華嚴經跋陁自愧未善宋言遂旦夕禮懺求觀世音忽夢有人白服持劍擎一人頭來謂陁曰故憂耶陁以意對答曰不須多憂卽便以劍易於陁首更安新頭問曰無痛耶答云不痛旣悟心神喜悅是就講辯注若流後還楊都屬帝宴會王公畢集帝欲試其機辯幷解人意不帝見其白首而謂之曰師今日不負遠來之意自外如何唯有一在賢卽答言慕化遠來天子恩遇垂三十載今年七十一唯一死在帝大悅勅命近御而坐兼工呪術旣善大乘時人號曰摩訶乘

10) 담무갈(曇無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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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담무갈은 중국말로, 법용(法勇)이라고 한다. 성(姓)은 이(李)씨이고, 유주(幽州)의 황룡(黃龍) 사람이다. 어린 나이에 사미(沙彌)48)가 되었는데, 선(禪)을 닦고 고행하며, 계행을 잘 지켰고 경을 잘 외웠다. 이에 스승이 소중하게 여겼다.
일찍이 법현(法顯)이 몸소 불국(佛國)으로 갔다는 소문을 듣고, 곧 자신이 마음속에 맹세한 것을 잊고 있었음을 개탄하였다. 그리고 송나라 무제(武帝) 영초(永初) 원년에 뜻을 같이한 석승맹(釋僧猛)등 25인을 불러 모아 함께 서역으로 갔다. 그 지역에서 20여 년간 경전을 찾아다는 동안 현지에서 모두 죽었다. 그러나 오직 담무갈만 살아남아, 계빈국(罽賓國)에서 범본(梵本) 경전을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원가(元嘉) 말년(末年, 453)에 양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직접 『관세음수기경(觀世音受記經)』1권을 번역했다.
031_0941_c_15L沙門曇無竭此言法勇姓李幽州黃龍人幼爲沙彌禪修苦行持戒誦經爲師所重嘗聞法顯躬踐佛國乃慨然有忘身之誓以宋武帝永初元年招集同志釋僧猛等二十五人共遊西域二十餘年自外竝死唯竭獨還於罽賓國得梵經本元嘉末年達于楊都手自宣譯觀世音受記經一卷

11) 석혜간(釋慧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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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2_a_01L사문 석혜간은 송나라 효무제(孝武帝) 대명(大明) 원년(457) 세차 정유(丁酉)에 녹야사(鹿野寺)에서, 『관정약사유리광불경(灌頂藥師琉璃光佛經)』1권ㆍ『상인구재경(商人求財經)』1권ㆍ『염왕오천사경(閻王五天使經)』1권ㆍ『선생자경(善生子經)』1권ㆍ『해태경자경(懈怠耕者經)』1권ㆍ『석가필죄경(釋迦畢罪經)』1권ㆍ『빈궁노공경(貧窮老公經)』1권ㆍ『살신제고인경(殺身濟賈人經)』1권ㆍ『사위성중인상자발광경(舍衛城中人喪子發狂經)』1권ㆍ『비유경(譬喩經)』1권ㆍ『청빈두로법경(請賓頭盧法經)』1권ㆍ『아난견수광서경(阿難見水光瑞經)』1권ㆍ『주원경(呪願經)』1권ㆍ『구담미기과경(瞿曇彌記果經)』1권ㆍ『학인난의경(學人亂意經)』1권ㆍ『절위사문경(竊爲沙門經)』1권ㆍ『불모반니원경(佛母般泥洹經)』1권ㆍ『장자자육과출가경(長者子六過出家經)』1권ㆍ『엽사사가학도사경(獵師捨家學道事經)』1권ㆍ『구담미경(瞿曇彌經)』1권ㆍ『전사마폭지방불사경(旃闍摩暴志謗佛事經)』1권ㆍ『이로남녀견불출가득도경(二老男女見佛出家得道經)』1권ㆍ『진위사문경(眞爲沙門經)』1권ㆍ『불열반후제비구경(佛涅槃後諸比丘經)』1권ㆍ『대역사출가득도경(大力士出家得道經)』1권 등 모두 25부 25권을 번역했다.
031_0941_c_23L沙門釋慧簡以宋孝武帝大明元年歲次丁酉於鹿野寺譯灌頂藥師琉璃光佛經一卷商人求財經一卷閻王五天使經一卷善生子經一卷懈怠耕者經一卷釋迦畢罪經一卷貧窮老公經一卷身濟賈人經一卷舍衛城中人喪子發狂經一卷譬喩經一卷請賓頭盧法經一卷阿難見水光瑞經一卷呪願經一卷瞿曇彌記果經一卷學人亂意經一卷竊爲沙門經一卷佛母般泥洹經一卷長者子六過出家經一卷獵師捨家學道事經一卷瞿曇彌經一卷旃闍摩暴志謗佛事經一卷二老男女見佛出家得道經一卷爲沙門經一卷佛涅槃後諸比丘經一卷大力士出家得道經一卷摠二十五部合二十五卷

12) 공덕직(功德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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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공덕직은 서역(西域) 사람으로, 도량이 깊었다. 또한 널리 교화함이 나날이 새로웠다.
송나라 대명(大明) 6년(462) 세차 임인(壬寅)에 형주(荊州)로 와서, 사문 석현창(釋玄暢)과 함께 『보살염불삼매경(菩薩念佛三昧經)』6권ㆍ『무량문파마다라니경(無量門破魔陀羅尼經)』1권 등을 번역했다. 석현창은 그 문의(文義)를 바로잡았는데, 그 뜻을 나타내는 문장이 완곡하고도 치밀했다. 석현창은 손을 펴면 향기가 나왔고, 손바닥 안에서는 물이 흘렀다. 따라서 그 신이함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031_0942_a_16L沙門功德直西域人道契旣廣善誘日新以宋大明六年歲次壬寅到荊爲沙門釋玄暢譯菩薩念佛三昧六卷無量門破魔陁羅尼經一卷暢刊正文義詞旨婉密而暢舒手出香中流水莫之測也

13) 축법권(竺法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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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2_b_01L사문 축법권은 인도 사람이다. 뜻한 바가 천성적으로 넓고 너그러웠으며, 중생들을 깨우쳐 이롭게 하는 일에 힘썼다. 송나라 명제(明帝) 태시(太始) 연중(年中)에 광주(廣州)에서, 『무진의경(無盡意經)』10권ㆍ『해의경(海意經)』7권『여래은지부사의경(如來恩智不思議經)』5권ㆍ『보정경(寶頂經)』5권ㆍ『아술타보살경(阿述陀菩薩經)』1권ㆍ『삼밀저야경(三密底耶經)』1권 등 모두 6부 29권을 번역했다.
031_0942_a_22L沙門竺法卷印度人志性弘簡開利爲務以宋明帝太始年中於廣州無盡意經十卷海意經七卷如來恩智不思議經五卷寶頂經五卷阿述陁菩薩經一卷三密底耶經一卷摠六部合二十九卷

14) 석삭공(釋朔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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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석삭공은 송대(宋代)에 남해군(南海郡)에서, 『유수보살무상청정분위경(濡首菩薩無上淸淨分衛經)』2권을 번역했다.
031_0942_b_04L沙門釋朔公於宋代在南海郡譯濡首菩薩無上淸淨分衛經二卷

15) 석도엄(釋道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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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석도엄은 송대(宋代)에 『영락본업경(瓔珞本業經)』2권ㆍ『불장대방등경(佛藏大方等經)』1권 등 모두 2부 3권을 번역했다.
031_0942_b_06L沙門釋道嚴於宋世譯瓔珞本業經二卷佛藏大方等經一卷摠二部合三卷

16) 석용공(釋勇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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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석용공은 송대에 『공정삼매경(空淨三昧經)』1권ㆍ『차닉경(車匿經)』1권ㆍ『권진학도경(勸進學道經)』1권ㆍ『범녀수의경(梵女首意經)』1권 등 모두 4부 4권을 번역했다.
031_0942_b_08L沙門釋勇公於宋世譯空淨三昧經一卷車匿經一卷勸進學道經一卷梵女首意經一卷摠四部合四卷

17) 석법해(釋法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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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법해는 송대에 『낙영락장엄방편경(樂瓔珞莊嚴方便經)』1권ㆍ『적조의소문경(寂調意所問經)』1권을 번역했다.
031_0942_b_11L沙門釋法海於宋世譯樂瓔珞莊嚴方便經一卷寂調意所問經一卷

18) 석선공(釋先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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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석선공은 송대에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1권을 번역했다.
031_0942_b_13L沙門釋先公於宋世譯月燈三昧經一卷古今譯經圖紀卷第三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7)부진 건원 3년(367) 세차 신미(辛未)는 정묘(丁卯)가 맞다.
  2. 8)부진 건원 4년(368) 세차 임신(壬申)은 무신(戊辰)이 맞다.
  3. 9)부진 건원 17년(381) 세차 을유(乙酉)는 신사(辛巳)가 맞다
  4. 10)부진 건원 21년(385) 세차 기축(己丑)은을유(乙酉)가 맞다.
  5. 11)부진 건원 18년(382) 세차 병술(丙戌)은임오(壬午)가 맞다.
  6. 12)건원 20년(384) 세차 무자(戊子)는 갑신(甲申)이 맞다.
  7. 13)부진 건원 10년(374) 세차 무인(戊寅)은 갑술(甲戌)이 맞다.
  8. 14)요진 홍시 9년(407) 세차 병오(丙午)는 정미(丁未)가 맞다.
  9. 15)요진 홍시 16년(414) 세차 계축(癸丑)은 갑인(甲寅)이 맞다.
  10. 16)불교 이외의 가르침을 말한다.
  11. 17)대승 불교(大乘佛敎) 경전(經典)의 총칭을 말한다.
  12. 18)부견 건원 9년(373) 세재(歲在) 정축(丁丑)은 계유(癸酉)가 맞다.
  13. 19)부견이 패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였다.
  14. 20)요진 홍시 4년(402) 세차 신축(辛丑)은 임인(壬寅)이 맞다.
  15. 21)요진 홍시 11년(409) 세차 무신(戊申)은 기유(己酉)가 맞다.
  16. 22)사찰이나 승려에게 물건을 베푸는 불교신자를 말한다.
  17. 23)지위가 높은 비중 있는 사자를 말한다.
  18. 24)요진 때 장안에 세운, 범문(梵文)으로 된 불전(佛典)을 한문으로 번역한 기관을 말한다.
  19. 25)음식(飮食)ㆍ의복(衣服)ㆍ와구(臥具)ㆍ탕약(湯藥)을 말한다.
  20. 26)주석서(註釋書)를 말한다.
  21. 27)요진 홍시 5년(403) 세차 임인(壬寅)은 계묘(癸卯)가 맞다.
  22. 28)요진 홍시 15년(413) 세차 임자(壬子)는계축(癸丑)이 맞다.
  23. 29)초선ㆍ2선ㆍ3선ㆍ4선을 말한다.
  24. 30)요진 홍시 6년(404) 세차 계묘(癸卯)는갑진(甲辰)이 맞다.
  25. 31)사람의 외모ㆍ풍채ㆍ용모의 비슷한 말이다.
  26. 32)태평진군(太平眞君) 7년(446)에 최호(崔晧)의호(晧)는 호(浩)가 맞다.
  27. 33)도인(道人)과 속인(俗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28. 34)불전(佛典)을 이르는 말이다.
  29. 35)불교에 입문한 재가(在家)신도가 지켜야 할 5가지 계율, 즉 불살생(不殺生)ㆍ불투도(不偸盜)ㆍ불사음(不邪淫)ㆍ불망언(不妄語)ㆍ불음주(不飮酒)를 말한다.
  30. 36)선(禪)을 닦는 방법을 말한다.
  31. 37)범어(梵語), 곧 산스크리트로 된 원전을 말한다.
  32. 38)북량 영화 5년(437) 세차 을해(乙亥)는 정축(丁丑)이 맞다.
  33. 39)선법(禪法)의 요의(要義)를 적은 책이다. 또한 불교학과 중 사집과(四集科)의 하나이다.
  34. 40)사찰이나 승려에게 물건을 베푸는 불교신자를 말한다.
  35. 41)원년(元年)이 맞다. 원년(元年)이면 A. D. 424년이고 18년이면 A. D. 441년이다. 담마밀다의 생몰연대는 A. D. 356~442이다.
  36. 42)송나라 문제 원가(元嘉) 18년 세차 갑자(甲子)는 원가(元嘉) 18년이면 신사(辛巳)이다.
  37. 43)독(毒)ㆍ력(力)ㆍ양(量)ㆍ성(醒)을 말한다.
  38. 44)여러 승려 가운데 특히 한 사람만을 청하여 공양하는 일을 말한다.
  39. 45)어둠과 밝음, 저승과 이승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인간과 8부 대중을 이르는 말이다.
  40. 46)수다라(修多羅)ㆍ가타(伽陀)ㆍ본사(本事)ㆍ본생(本生)ㆍ미증유(未曾有)ㆍ인연(因緣)ㆍ비유(譬喩)ㆍ기야(祇夜)ㆍ우바제사(憂婆提舍)를 말한다.
  41. 47)조계종에서 비구니 법계(法階)의 5급을 말한다.
  42. 48)십계(十戒)를 받고, 구족계(具足戒)를 받기 위하여 수행하고 있는 어린 남자 승려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