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御製緣識幷序 輕

ABC_IT_K1261_T_002
035_1001_c_01L어제연식 제2권


태종 지음
이창섭 번역


높은 산의 석실(石室)은 반은 비어 있는 굴이니,
영지(靈芝)를 골라 취하려고 풀을 모두 베어냈다.
법문의 뜻 닦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 같은데
도의 정(情)에 어찌 입을 세 번 봉할 필요가 있겠는가?
단사(丹砂)를 중요하게 보호하니 맑은 경계 열리고
백발은 비취빛 바위와 서로 기대노라.
지나간 겁의 연(緣) 중에 인(因)의 종자 있었기에
포의(布衣:평범한 사람)에게 학신(鶴神)이 영지를 물고 돌아왔도다.

묘법(妙法)에 귀의하매 오로지 정진이 필요하니,
눈길 다하도록 아득한 하늘 길은 외지지 아니하다.
해와 달은 밝게 삼계(三界)에 통하는 눈이며
구름사다리 위에는 십주(十洲)의 신선이 있다.
자비와 원력으로 더욱 어디에 도달하려 하는가?
번뇌를 제거할 수 있는 도(道)가 가장 견고하도다.
괴로움을 구하려면 관음(觀音)의 이름이 이익이니
경문에 남겨져서 세간에 전해졌네.

마음을 닦고 도를 사모하여 현묘한 기틀에 들어가고
방편의 문에 멈추어 단계적으로 의지한다.
종성(種性)이 선정(禪定)에만 구속되어 집착케 하지 말지니
인연의 가고 머묾이 서로 어긋나게 하지 말라.
다른 생각 여의고 욕심을 줄여 음공(陰功)을 쌓고
담박하고 깊은 마음에 이르면 시비는 끊어진다.
허망한 세상의 이익과 명예는 항상 스스로 버려지니
진공(眞空)과 망상이 일시에 돌아가노라.

이근(耳根)이 청정함은 본래부터 닦았고
만법은 마음을 따르니 밖에서 구하지 말라.
바다와 산악이 흔들리니, 산 빛깔이 달라지고
현주(玄珠:道의 本體)는 모두 눈 속에 거두어들인다.
재(齋)를 지니는 도사는 붉은 약을 찾는데
술 취해 누워 있는 신선은 아직 머리가 희지 않았다.
고라니, 사슴과 함께 무리 지으니 비로소 믿을 수 있어
봄이 되어도 다만 웃기만 할 뿐 꽃 피는 가을 즐기네.

기틀[機]을 잊고 깨달으니 곧 진전(眞詮)1)을 보았고
도의 위의(威儀)를 사모하여 착한 인연 세웠도다.
말하든 침묵하든 다만 세상 밖의 쓰임을 가르치고
현묘하고 미묘함에 통달하니 스스로 더욱 견고하네.
이익과 명예에 물들고 집착한 일 도리어 꿈과 같고
성상(性相)에 돌아오니 사나움이 샘물과 같다.
3업(業) 가운데서 질문을 발(發)할 만하더라도
만법을 정순하고 전일(專一)치 못하게는 하지 말라.

기연(機緣)을 따라 질문을 발해서 친소(親疎)를 끊으니
법계(法界)의 밝은 문채[明文]도 본래부터 다르지 않네.
만상(萬像)을 포함한 중생들이 싫고 괴로워서
대각(大覺)에 귀의하여 3무(無)2)에 도달했네.
연꽃이 피어도 고요하고 맑으니 진여(眞如)의 경계요
집안의 공연한 수고로움도 모두가 허망하다네.
연기(緣起)의 성품 가운데 평등한 작용 있으니
진실로 도(道)를 즐기며 착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리.

도(道)가 인간 세계에 높아서 주선(周旋)함을 찾으며
말과 침묵에 바보 같아서 마치 말 못하는 듯하니
씻어내고 씻어내서 심지(心地)를 고요하게 해야지
요리조리 의심하며 물 위에 뜬 부평초 뒤집듯 하지 말라.
진리 닦는 법은 경서(經書)에서 다 말하였으니,
세월을 막지 말고 인용[引]ㆍ원용[援]하는 일을 그만두고,
슬기롭게 무위(無爲)의 깊은 견식(見識)과 합치하라.
음양(陰陽)은 가고 머물면서 겨울과 봄을 재촉한다.

신단(神丹)의 묘한 도(道)는 짐짓 나이를 연장하니
어찌 범속한 무리가 큰 신선을 알아채겠느냐?
노자(老子)조차도 능히 이 일을 말하기를 꺼렸고
헌황(軒皇)3)은 어지럽게 서로 전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누가 알겠느냐, 조화(造化) 공부의 힘을.
금생에서 숙세의 인연을 헤아리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하였다.
맹호가 조복되니 용에 올라타 몰고 가면서
오색구름 위로 치솟으니 생각이 유연하도다.

큰 가르침을 만남은 숙세의 인연이니
인연의 기약으로 결정코 참된 신선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
산중의 수련은 마을의 수련이 아니니
성 안에는 황량한 곳 없어서 저잣거리에 숨는다.
비술(秘術)을 어찌 쉽게 얻도록 하겠는가.
그윽하고 심오한 도는 도리어 번갈아 전함을 허락한다네.
범부를 뛰어넘어 성인으로 들어감도 혼연한 한가로운 일이니
사람들을 택해서 십통천(十洞天)4)을 물어 보라.

푸른 소나무 본래 쓸쓸하게 심은 것은 아닌데
배우는 선비는 무엇 때문에 지혜를 스스로 수고롭게 하는가?
금수(金水)는 낭연(朗然)하여 교결(皎潔)하게 밝은데
설산에 쌓인 것이 그 가운데서도 높구나.
뜻있는 마음으로 오직 삼신산(三神山)5)의 약(藥)만을 찾았으나
범인의 눈으로는 만 리 밖의 터럭을 보기 어렵다.
나 홀로 한가한 사람이니 누가 나의 뜻을 알겠느냐?
유유하도다. 아름다운 태양이 신선이 사는 곳을 누르는구나.

하늘과 땅이 화로가 됨은 나 스스로 아는 것이니
멀리까지 생각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의심을 하리라.
공부가 굳지 못하면 수고롭게 상념에 걸려서
경계 밖의 소리 듣는 일, 고치고 바꾸지 아니한다.
기연의 교묘함을 어찌 쉽게 만날 수 있겠는가?
시비(是非)를 끝까지 캐서 어디로 가려 하는가?
큰 바다 깊고 깊은 이치를 생각하고 헤아리면
세월만 헛되게 보내면서 그림자만 들쑥날쑥 하리라.

곤륜산(崑崙山) 위에 모여든 신선들
날개를 타고 다투어 가도 생각은 치우치지 않으니,
눈 쌓인 산마루에서 멀리 내려다보면서 하계(下界)를 흠향(歆饗)하고
산꼭대기에서 높이 인식함은 솟아 흐르는 샘물일세.
진공(眞空)은 적실(的實)해서 견주기가 어렵고
기이한 경관은 모두 조화의 변천 따라 생긴다.
비밀을 어찌 쉽게 가려낼 수 있겠는가?
현묘함 속에 처해서도 다시 깊고 현묘하도다.

드넓은 창해(滄海) 물결 깊이 배어들고
안개에 덮인 깊은 산은 쉽게 찾지 못한다.
자운(紫雲) 덮인 동정호 위에 사람들은 학을 타고
무지개 늘어선 성곽에는 도인들이 숲을 이룬다.
유현(幽玄)함과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솜씨 있든 서툴든 지혜의 침투를 말미암을 수 없으니
모두 같은 인연으로 서로 인도하고 접촉하면서
조용히 여덟 신선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오색구름 타고 가볍게 올라가 천진(天津:은하수)을 압도하며
춤추는 학 마중 나온 봉황 속의 자유자재한 몸
달그림자 비친 계수나무 가지 밝은 삼도(三島)6)의 나무여,
복숭아꽃 바람을 희롱하는 십주(十洲)의 봄이로다.
서로 전하는 신령하고 기이한 일 허망한 이야기가 아니니
도리는 분명하여 모두가 진실이다.
오직 믿으면서 이 가운데서 깊이 수호하고 삼가하며
원하는 일 수행함에 우물쭈물하지 말라.

하늘이 도를 사랑함이 아니라 사람에게 닦기를 허용하는데
학사(學士)들 어리석고 미혹해서 염원에 이르지 못하도다.
내부의 경계를 견주어서 무엇에 쓰려 하는가?
아득히 깊고 깊은 경지 알지만, 짐짓 구하기는 어렵구나.
붉은 노을 은밀해서 기대고 의지할 만하고
운월(雲月)은 종횡으로 품류(品類)의 흐름에 들어가네.
소식은 자연히 세상의 사려를 잠식(潛息)시키니
모든 옛 성인의 길에도 강하고 부드러운 구별이 있도다.

안팎에서 소요해서 모든 하늘 세계와 섞였으니
맑고 화창한 그 가운데 사계절의 사이라네.
먼지 털고 닦아 내서 인월(印月)을 밝혀내고
두루 귀신을 몰아내서 여산(驪山)에 가두도다.
축(筑)에 덧붙여 출몰함이 무엇이 기이한가?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참[眞]을 갈무리하니 아직 한가롭지 못하다.
다만 맑은 경관 안에서 소상(消詳:소요)하는 것이 좋고
의심의 사려(思慮)를 낳아서 기관을 움직이지 말라.

자애로운 호랑이의 강유(剛柔) 속에 성인의 방향 숨어 있으니
일시에 화합하여 음양을 움직인다.
널리 짝의 종류를 알아서 소홀하다 잃는 일 없으면
만물의 성품은 원래부터 그 이치가 장구하도다.
솥 안에 꽃이 피면 다섯 가지 채색으로 단장되고
마음으로 불의 온도[火候]를 밝혀서 삼황(三黃)7)을 다스려라.
다시 화지(華池)의 묘함에 통달할 수 있다면
아무도 동서남북에서 감당하지 못하리라.

수정 궁전의 달빛은 밝고
백옥의 담장에는 불이 침범하지 못한다.
팔경(八境)에 바람 높아 날개 돋은 가마 달리고
구중(九重) 하늘 위엔 붉은 주렴 깊도다.
물정은 빛나게 밝아 가로막힘이 없으니
범부 사이에서 비교되는 무리가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아득하고 질펀한 진인(眞人)들의 놀이에 누가 도달할 수 있으랴.
계수나무 꽃향기 청결하고 그림자가 삼삼하도다.

근원에 돌아가면 진정한 귀의처 나타나니
이는 허망하게 전해짐이 아니라서 우화(羽化)하여 날아간다.
크게 삼가면서 한가로움을 갖고 작용을 마련하지 말지니,
정성으로 수행하여 따로 체득해서 문득 기틀을 잊어라.
힘을 안배하여 온전히 용궁(龍宮) 안에 들어가서
변역(變易)하여 끝까지 호정(虎鼎)의 위력 숨겨서
하늘과 땅의 신묘한 이치를 활연히 통달하면
소요하는 가운데 연홍(鉛汞)이 서로 의지하리라.

니환(泥丸)은 본래 모든 명근(命根)의 궁궐
소식(消息)으로 때에 임하면 말과 이야기가 통한다.
대도(大道)는 요즘 와서 기(氣)의 술법 행하지만
그 나머지 효험은 음공(陰功)에 기댄 것이다.
물정(物情)의 이치는 모두 청정하고
조화는 현미(玄微)하여 일이 똑같지 않도다.
진중한 이 말씀, 깊이 뜻 새겨둘 만하니
뱃속에서 해가 운행하면 솥 안의 꽃은 비어 있으리라.
하늘이 낳은 얼굴 모습, 그 얼마나 많은가?
학(鶴)의 뼈 지니고 노을을 먹고 사는 신선은 속세 보기를 싫어하니
적수(赤水)ㆍ화지(華池)8)란 누가 만든 법칙인가?
백은(白銀)으로 지은 궁궐 또한 볼 만하구나.
전래된 소리의 지취(旨趣)가 함께 자연히 뒤섞였으니
건립된 존비(尊卑)를 이단(異端)으로 보지 말라.
역순의 이치 가운데 이치의 성품[理性]이 열리면
마음 밭이 고요해지니, 외부에서 어찌 서로 간섭하겠는가?

소요하는 나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고
학이 잠자고 노을이 깃드는 경치 가운데 있느니라.
스스로 편안함을 얻어서 아울러 도를 길러내고
다시 이익으로 군웅(群雄)을 소리 죽여 숨 쉬게 하니
연원 깊은 옛일 이끌어서 지금의 작용 알게 되고
나누어 구분하니 모두 통할 수 있게 되었다.
화창한 오음(五音)이 그에 따라 활발해지니
하늘과 땅 안에 노을이 아득하고 몽롱하구나.

산봉우리서 한번 바라보니, 물은 깊은 못을 이루었는데
인연의 정을 그 누가 알아서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어두운 방 스스로 열리니 해와 달이 밝고
도심(道心)은 기이하여 산골 암자에서 늙었노라.
묘리(妙理)의 참 소식을 연구하고 궁구하니
경계하고 기피한 선현들 사양하고 탐내지 아니하였다.
옛일을 돌아보니 아직도 지금의 법칙이 되는데
어리석고 몽매함이 너무 심하여 괴롭게 계속 이야기하네.

사람의 입이란 쏟아지는 분하(汾河)와 같지는 않지만
이런 무리가 티끌 세계 속에 너무나 많이 있도다.
마음에는 원한 품고, 모습은 공손하게 안정된 거동이 없고
혀는 단정하다 자랑하면서 어지러이 뒤틀면서 와전(訛傳)한다.
관리되어 선정(善政)을 펼치면 몸은 영화롭게 녹봉 받으나
날카로운 칼을 돌 위에서 갈게 하지 말라.
건립하고 지닌 것이 가득하면 배에 물이 스며들어
바람결에 기대어 따르다가 바다 귀신의 먹이가 되리라.

정성스럽고 자상한 말과 거동에 사문(四門)이 열리고
참담한 기운이 펴져서 따뜻한 기운으로 변하는 일이 뜻밖에 이루어지니,
멀리 풍진(風塵)을 보면서 지난날의 일 생각하니
무궁한 세월 갔다간 다시 오네.
즐겁구나. 지향해 가는 곳이 세 가지 바탕[三體]으로 돌아가니
돌고 도는 이치는 구해(九垓)에 두루하도다.
현인ㆍ성인ㆍ인간ㆍ천상(天上)이 항상 법칙으로 삼으니
상서로운 구름은 재 마루 위에 눈처럼 희구나.

탐욕의 번뇌가 아직도 온다면 이치를 통하지 못함이니
헛되게 세월만 보내면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네.
전부터 나름대로 범부의 마음과는 달랐으니
이익 얻어 모름지기 상제(上帝)의 공덕에 귀의하라.
통부(洞府)의 이름 높음은 경치(景致)와 똑같으니
먼지와 진흙탕의 발자취로는 공(空)을 알지 못한다.
잘못을 버리고 오직 연(鉛)을 향해 지으면
변화하여 날아 치솟아서 큰 도의 영웅되리라.
도에 통한 참사람[眞人]을 본 사람은 드무니
어찌 쉽고도 한가하게 알 수 있겠는가?
음양의 조화란 진실 아님이 없고
천지의 원정(元精)은 움직임이 올바름과 합치한다.
삼천세계의 공덕행 모름지기 중생들에게 미치게 하고
구전(九轉)의 환단(還丹)은 하늘로 올라가 간직하라.
바쁜 가운데의 세월 바쁨 속에 보내니
나는 본래 어리석어서 여기에서 옮기지 않는다.

마음이 은일(隱逸)에 깃드는 것은 일상적이지 않으니
크게 잡아서 항상 요체를 영원히 지녀야 한다.
청정한 좋은 행위 모두가 이로우며
주선(周旋)하는 도리와 법도 자세하게 살핀다.
법으로 중생들을 몰고 감에 모름지기 평온하여야 하고
세월에 순응하여 공을 이루는 것은 스스로 짐작해 헤아린다.
소홀한 사이에 배필이 될 만하여
때에 임하여 교묘함과 졸렬함으로 둥글고 모남을 나타내네.

향탕에 목욕하고 다시 맑게 재계하여
모름지기 형구(形軀)를 움직여서 사체(四體)를 가볍게 하라.
마귀들은 자연히 부끄러움과 공포심이 생기고
정신과 혼은 반드시 안정되어 더욱 편안하리라.
무에서 유로 들어가면 모두가 진실이라
가고 머묾에 어려움이 없어서 묘함이 최고의 정수로다.
오행(五行)의 모이고 흩어짐은 하나의 바탕으로 돌아가니
신령한 근원에는 이와 같이 끓이고 삶을[煎烹] 필요가 없도다.

일신(一身)이 홀로 착해서 어디로 가려 하는가?
어찌 의관을 풀고 갓끈을 쓰다듬은 일만 하겠는가?
뜬세상의 얕은 정은 한량이 없으니
어리석고 몽매한 사람과는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곧바로 분명한 설법에 기대고 의지하여
신령한 근원을 맺어 취하는 일, 물어서 알 수 있게 하여라.
통천(洞天) 가운데의 한가한 세월을 보고자 하면
그늘에서 제도하는 일은 부질없는 잘못된 행위로다.

도(道)의 맛을 찾고 사유하면서 노래하고 읊조리니
가고 머문 선현들 얼마나 많았던가?
성품의 식(識)은 의심할 바 없이 요묘(要妙)를 열었고
부침(浮沈)은 실마리에 의거해도 많이 말하지 아니하였다.
오직 자세하고 분명한 말을 지녔더라도
잘못을 막기를 두려워하다가 오히려 마군에게 당한다.
세상을 구제하는 일 요즘 와선 마음의 큰 소원이나
소요로 다 현문(玄門)을 두드리는 노래 속으로 들어간다.

무위(無爲)의 도는 위대하여 유현한 경지에 들어가니
얼마나 많은 풍광(風光) 속에서 선현들을 사모하였던가?
경계를 대하면 다 똑같은 한가로운 견식(見識)인데
바쁜 가운데 모두가 급해서 마음을 다리는구나.
배필은 다만 넉넉함으로 고아하고 담박해야 하니
때마침 만날 때가 있어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수련에는 오직 뜻과 기(氣)를 굳게 하여
은밀함을 참작해 살펴서 더욱 주선(周旋)하여라.

사람 마음 많은 경우 서로 투합하는 일 적어서
티끌세계에서 상품(上品)의 무리를 인식하지 못한다.
참다운 종지로 만물의 이치에 귀의하지 않으면
반드시 도의 앞뒤가 없음을 알기 어렵다.
생전에 내면의 솥을 알맞게 팽련(烹鍊)하면
뛰어난 화지(華池)에서 점점 닦기가 좋으리라.
오직 완전한 금단(金丹)이 토(土)의 덕에 기대는 것을 밝힌다면
화후(火候)를 조절하여 약이 모두 가을의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현묘하고 또 현묘한 가운데 다시 진공(眞空)을 보고
교묘함과 졸렬함은 때에 임해서 요묘(要妙) 속에 일어난다.
큰 지혜로 몰래 갈무리해서 멀고 가까움을 알고
섬세하고 미묘함을 다 통달하여 환하게 통하였다.
돌고 도는 물성(物性)을 누가 구별하는가?
너그럽고 넓은 도는 본래 그대의 생각과 같다.
경계가 삼재(三才)를 이루니 그에 따라 지위가 있고
신비한 광명은 방안을 비추어 동서(東西)가 아름답다.

천만 가지 온갖 품류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천지의 높고 낮음을 어찌 쉽게 궁구할 수 있겠는가?
바다와 산악의 높고 깊음은 세월 따라 바꾸어지나
신선이 모여 즐기는 것은 티끌 속에 숨어 있네.
이름과 이익을 구하는 일에서 벗어나면 탐욕의 적음을 알고
많은 일에서 한가롭고 바쁜 것은 모두 공허한 일이로다.
몇 사람이나 마음이 현명하여 평평하고 탕탕한가?
십주(十洲)와 삼도(三島)는 스스로 조용하도다.

구중(九重)의 하늘 위에는 옥황상제와 신선이 자리 잡고,
우매한 사람은 진리를 구하지만 도리(道理)에 성기도다.
혼돈이 처음으로 갈라진 후 오랜 세월 지나갔고
정혼(精魂)이 모이고 흩어지는 일, 단서(丹書)에 기록되어 있다.
이남(离男)ㆍ감녀(坎女), 모두가 서로 비슷하나
임자(壬子)와 병정(丙丁)은 경계가 다르고 특수하다.
겁을 거친 인연은 세상 따라 존재하나
음공(陰功)이 만물에 미침이 가장 현묘하고 특수하다.

품부 받은 기(氣)가 천연임을 또한 알았나니
모든 법은 바야흐로 사(事)와 이(理)가 온전하다네.
가합(假合)된 것 모두 와서 지극한 도에 귀의하고
원대한 도를 닦고 지니면서 더욱 현묘에 통하였네.
천지[二儀]가 교감하여 상서로움을 이루고
팔괘(八卦)의 강함과 부드러움이 속세에 끌려간다.
어찌하여 이 가운데서 황홀한 경지 생긴다고 말하는가?
곧바로 간곡하고 자세하게 정련(精硏)해 보라.

현문(玄門)의 지극한 도는 짐짓 끝이 없으니
스스로 사람 마음이 보는 바가 삿되도다.
지혜와 식별이 아직 대약(大藥)에 통달할 수 없었으니
어찌 쉽게 영광된 가문을 견주어 볼 수 있겠는가?
천년을 이어온 성스러운 경계가 어찌 허망하고 틀리겠는가?
백겁을 일찍 닦았다 하더라도 가로막을 필요가 없다.
용호(龍虎)로 연정(鍊鼎)을 이루고자 하면
이익의 길에서 어지럽게 상관하지 말라.

인연의 업장(業障)으로 진리를 만나기가 희박하니
황제(黃帝)가 용을 탄 일이 어찌 잘못이겠느냐?
지혜 있는 사람조차도 항상 황홀한 경지 의심하는데
몽매한 사람이 배워서 이해하려면 짐짓 서로가 어긋난다.
화지(華池)의 비밀은 인천 세계에 전수된 것
신실(神室)에 광채 드높으니 해와 달이 빛나도다.
지혜 있는 사람이 살아서는 당연히 입을 다무니
감히 장차 현기(玄機)를 쉽게 이야기하겠느냐?
봉황과 제비, 참새는 같은 언덕에 살지 아니하니
무리가 아닌 것은 으레 그렇다고 참으로 들은 일 있도다.
좋은 경관은 녹고 마모되어서 문득 꿈이 되었으니
비로소 알았노라, 허망한 거짓이라 뜬 구름과 같다는 것을.
한가롭게 읊조린 비유로 그 날을 밝히면서
슬기로운 도에 정을 남긴 옛날의 많은 서적들이여.
더불어 말하고 논할 만한 사람인지 누가 알아채겠는가?
순임금이 거문고로 베푸신 은혜가 남쪽에 훈훈하게 고동하도다.

어찌하여 선정(禪定)에 들면 성품의 마음과 똑같은가?
진여(眞如)가 사물 밖의 공(空)임을 해설하니
몇 사람이나 수행하여 인연 위에서 이 경지를 얻었는가?
많은 망상은 총명에 장애가 되고
이름 드러난 도리는 천세에 길이 남아
선과 악이 모두 만법 가운데로 돌아가네.
감응해 나타나서 기틀이 열리니 모두가 적묵(寂黙)하매
비로소 알았노라. 밝은 거울이 혼몽한 사람 비추는 것을.

얽매임도 없고 염려도 없어 먼지처럼 가볍게 번뇌 불사르고
손에 선경(仙經)을 들고 명아주 지팡이도 하나 짚고
사납고 날카롭게 사라지는 한가로운 세월이여.
현묘함 속의 묘도(妙道)는 구름 무지개에 들어가니
흥진 세계(紅塵世界)에 어찌 구속이 되겠는가?
백일하에 산천은 높고 또한 낮으니
가고 머묾이 스스로 그러해서 모두 적묵하고
소요를 빌리지 아니하고도 신선의 사다리를 오른다네.

높은 산 나뭇잎의 초록빛 삼삼한데
적정(寂靜)의 인(因) 가운데 도(道)가 가장 깊도다.
곤륜산에서 얻은 이익 모두가 박옥(璞玉)이고
여수(麗水)에 갈 필요 없이 진금(眞金)이 있었다네.
경박하고 더러운 풍속 점차 변하여 요임금 시대와 같아졌고
척박한 풍속은 장차 순임금의 거문고로 다스려지기를 생각하네.
화(禍)와 복(福)의 세월은 길어서 세상 따라 바뀌었어도
현문(玄門)의 화계(火戒)는 날아오르고 가라앉음에 비유되도다.

현주(玄珠)의 도는 입 속에 머금은 곳에 있고
전시대의 사람은 거울처럼 밝음을 아직 믿지 못하네.
한번 물어 보자, 마음 밭이 올올(兀兀:우뚝 솟은 모양)함이 거짓인가?
가련하다, 살과 뼈가 붙어서 우뚝 솟은 모양이여.
스스로 말하기를, 세계의 귀의가 중요하다 하지만
경문(經文)을 외울 뜻이 있으면 새로이 성의 둘레를 만들 필요는 없다.
수련으로 기(氣)를 얻은 이래로 몸 또한 건장하여
해가 기울면 항상 학이 깃드는 삼나무[杉] 바라보네.

사계절의 변천 또한 관찰할 수 있으니
비스듬한 문짝 절반은 가려 있고 절반은 닫혀 있네.
시로 바다와 산악을 읊조리는데 어두운 하늘 다하고
부채로 가을의 서늘함 느끼며 점차 한가하게 이완한다.
나무 그림자 창문에 임하니 먼 생각이 아득하고
목마른 새들은 물을 그리워하며 다시 날아 돌아온다.
문득 과실을 따게 하여 명심(瞑心)과 이야기하니
봉래도의 물이 천지 사이에 창창하도다.

가을 연기가 서린 산바람 불고 해는 아직 빛나지 않는데
도(道)의 정(情)을 이야기하고자 늙은 스님 기다린다.
문득 차 끓이는 단지에 마음 먼저 맡기니
소나무 흔드는 바람소리에 사념은 졸음에 잠긴다.
구소(九霄)9)에서 우는 학, 그림 속에 넣을 만한데
구름 평평한 삼계(三界)의 조화에 사심(私心)은 없다.
참다운 종지와 상징의 가르침은 헛된 말이 아니니
경계에 대해서 공(空)을 이루면 이것이 나의 스승이다.

성단(星壇) 비추는 밤, 바다와 산을 날아다니며
용이 모는 수레 흔들리며 끌고 가고, 날개 달린 구름 옷 입었네.
붉은 노을 그림자 속에 가벼운 연기의 빛깔
옥 촛불에 바람 맑은데 밝은 달은 빛나고
삼산도(三山島)의 꽃은 비단을 깔아 놓은 듯 밝고
천 년 묵은 학을 보내 금 사립짝에 내려앉았네.
신선의 집에 일 많지 않다고 말하지 말라.
열두 구슬 누각에 돌아가지 못함이 한이로다.

지나간 일의 슬픔과 기쁨은 한바탕 웃음거리니,
천지 안에 무슨 사량(思量)할 만한 일 있는가?
공연히 조화에 정이 많다고 알고 있다면
도리어 어리석고 몽매해서 영원하지 못하다.
세상일에 두루 통하고 돌아보고 그리움을 더하면
인간 세상의 선악(善惡)은 스스로 풀리고 벌어진다.
온화한 즐거움이 모두 무위(無爲)의 세계 속에 들어가니
밝은 달 맑은 바람에 길은 바쁘다.

지난 일을 생각하니 문득 소원함이 있고
허공의 한가로운 구름은 만 리를 날아간다.
눈에 가득 모두 오니 정은 더욱 새로운데,
힘겨운 마음 누가 잡기에 분주히 달리는가?
별과 해와 달이 하늘가에 높은데
구름 흩어지니 안개꽃이 바다 모퉁이에 두루하네.
도덕은 넓은 세계에 유행하니
때로 붓과 벼루 비틀다가 또한 책을 읽는다.

옳고 그름, 나와 남, 이익과 명예의 마음에서
정(情)이 거짓이면 말[言]도 똑같아서 바다처럼 깊어진다.
넓고 아득해서 가없는 곳에 이성(理性)이 이루어지고
무위(無爲)의 뜻이 크면 뛰어난 임무 맡길 수 있다.
천 년 세월을 두루 노닐며 존재해도
만 권의 시서(詩書)는 쉽게 찾을 수 없다.
세계는 넓고 또 먼데
혼돈이 나뉘면서부터 여인(如人)에 이르렀노라.
035_1001_c_01L御製緣識幷序 輕朕聞法門不二非賢聖無以皆通淸淨自然非智慧無以長久經文妙覺識種緣深誦華嚴而性海分演菩提而眞修實行慈悲喜捨法相周圓窮究化元絕其虛妄塗平而無滯礙去人我而順陰陽夫佛理者思極無涯遠譯東流之志行方便調御西域之民莫不澄寂涓深利益眞際恒沙喩於千界彼岸混於一法廣博談幽善能破於昏衢靈光照耀豈較量乎深化導應機善惡隨緣予將興無爲之天教力救蒼生之福業以日繼時因果必從常以百姓心而爲恢張一切而行利益聖人之教未得美矣天子之風未得周矣千古以降迄于今來寰宇廓淸民舒泰豈敢因循上天垂莫大之履地有詠歌之樂恬澹以虛無而惟在念禮讓以明祀其可交修洎乎由衷示信迺心冥而亘南方發願興懷慶雲高而連北斗隨意迴向盡爲法界之人睹境逍遙變成華胥之國三輪淨而離塵垢契神淸十善暢而達無生慈爲忍辱成功無間光炟赫於無邊邇遠益明觀群生於掌內燃慧燈於無極之際香散雲騰持寶剎於煩惱之中詮深妙用方知定力眞如猛利以從心去住自由妄想求虛而逐影謾作迷情之津要湛然色相以安閑類聚煙蘿莊嚴灌頂歸依諦信紀作序云
035_1002_a_15L御製緣識卷第二高山石室半空㠌選取雲芝草盡法意要修心一等道情焉用口三緘丹砂保重開淸境白髮相宜倚翠巖曩劫緣中因種在布衣鶴神鳳來銜歸依妙法要精專極目煙霄路不日月明通三界眼雲梯上有十洲仙慈悲願力彌何遠煩惱能除道最堅救苦觀音名利益經文曾與世間傅修心慕道入玄機方便門停次苐種性莫教拘執定因緣去住不相違離他少欲陰功積淡薄深來絕是非浮世利名常自遣眞空妄想一時歸耳根淸靜本來修萬法從心不外海嶽動搖山色異玄珠盡在眼中收持齋道士尋紅藥醉臥仙人未白頭麋鹿同群方可信逢春但笑樂花秋忘機悟卽見眞詮慕道威儀立善語默但教方外用玄微通達自彌堅利名染著還如夢性相歸來猛似泉三業之中堪發問勿令萬法不精專隨機發問絕親疏法界明文本不厭苦群生含萬像歸依大覺達三無蓮開湛寂眞如境屋裏空勞摠是虛緣起性中平等用直須樂道善心居道高人世禮周放語默如變似不洗滌要教心地靜狐疑勿類水蓱翻經書說盡修眞理歲月休防羅引援雅合無爲深見識陰陽去住白寒暄神丹妙道故延年豈是凡流識大老子尚猶能諱事軒皇不許亂相傅誰知造化功夫力罕見今生度宿緣猛虎伏來龍駕馭雲騰五色思悠然大道逢來是宿緣終期定可訪眞山中修鍊非州郡城裏無荒隱市廛秘術豈教容易得幽深還許遞相傅超凡入聖渾閑事問取人間十洞天靑松本不樹蕭條學士因何智自金水朗然明皎潔雪山堆積就中高志心犯覓三神藥凡目難觀萬里毫我獨閑人誰解意悠哉麗日壓靈鼇天地爲爐我自知人無遠令必生功失未石勞懸想境外聲問不攺移機巧豈逢容易得是非終究欲何之思量大海深淵理光陰虛度影參差崑崙山上聚神仙羽駕爭行意不積雪遠看欹下界巓峯高認涌流泉眞空的實難堪比異景皆從造化遷秘密豈教容易辯玄中之外更深玄溟溟滄海浪濤深霧蔽山巒不易紫蓋洞庭人駕鶴虹霓城郭道爲林幽玄相去何多少巧拙無由智慧侵盡是同緣相引接從容語話八仙心彩雲輕擧壓天津舞鶴迎鶿自在蟾影枝開三島樹桃花風弄十洲春相傅靈異無虛說道理分明盡是眞但信此中深護愼修行所願勿因循天非愛道許人修學士愚迷不到內境擬將何所用杳知深邃故難求丹霞隱密堪依仗雪月蹤撗入品流消息湏然潛世慮几故聖路有剛柔逍遙裏外混諸天澹蕩其中四敍拂拭塵埃明印月徧驅神思鎖驪山裝添出沒何奇異秘隱藏眞未是閑伹好消詳淸景內勿生疑慮動機閒龍虎剛柔隱聖方一時和合運陰周知配類無疏失物性從來理自長鼎裏花開裝五彩心明火候制三黃更能通得華池妙南北東西不可當水精宮殿月華明句玉爲牆火不八境風高騈羽駕九重天上絳霞深物情晃朗無遮隔非是凡間比類尋汗漫眞遊誰得到桂花香潔影森森還元到卽見冥歸不是虛傅羽化大護勿將閑設用精修別得便忘機安排穩入龍宮內變易終藏虎鼎威豁達乾坤神妙理逍遙鈆汞共相依泥丸本是命根宮消息臨時語話大道比來行氣術其餘效驗籍陰功物情之理皆淸淨造化玄微事莫同珍重此言深可意腹中日運鼎花空天生顏貌幾何般鶴骨飡霞厭俗赤水華池誰法則白銀爲闕又堪看來傅音旨俱然混立有尊卑勿異端逆順之中關理性心田靜外豈相干逍遙我命在玄穹鶴宿霞棲景致自得安寧兼養道更將利益䦕群雄淵深引古知今用躄斫區分盡可通和暢五音從豁達乾坤之內靄溟濛巓峯一望水深潭誰解緣情語話暗室自開明日月道心奇異老山菴硏窮妙理眞消息誡忌先賢讓不貪稽古尚爲今法則愚蒙太甚苦談談非人口似瀉汾河此輩塵中有甚心恨貌恭無定止舌誇端正亂乖訛爲官善政身榮祿利劍休教石上磨立待滿盈船陷水悲風從被海神拖精詳語議四門開舒慘陽和意外遠見風塵思往事無窮日月去還來樂耶指趣歸三體周旋道理偏九垓賢聖人天常法則鄕雲嶺上白皚皚貪染猶來理不通虛勞歲月面西從前自是凡心別利益須歸上帝功洞府名高同景致塵泥蹤迹莫知空去非但向鈆中作變化飛騰大道雄達道眞人見者稀豈教容易等閑陰陽造化無非實天地元精動合宜功行三千須及物還丹九轉上昇持忙中歲月忙中遣我本愚來性不移拪必隱逸故非常大約恒持要久淸淨好爲皆是益周旋理度審安詳法乾馭物須平穩順日成功自酌量倏忽之間堪四配臨時巧拙見圓方香湯沐浴更齋淸運動形驅四體魔鬼自然生怕怖神魂必定轉安寧從無入有皆眞實去住何難妙最精五行聚散歸一體靈源不用若煎烹一身獨善欲何之爭及衣冠解撫浮世淺情無限量愚蒙自是不相規直須憑仗分明說詰取靈源問得知要覓洞中閑日月除將濟事謾非爲尋思道味詠吟哦去住先賢有幾性識無疑關要妙浮沈依約不言多但將子細分明說猶恐閑非卻被魔救世比來心所願逍遙盡入扣玄歌無爲道大入幽玄幾許風光慕昔對境盡同閑見識汒中皆是急在煎配匹直須寬雅淡會有逢時不偶然修鍊伹教堅志氣參詳穩審更周旋人心多是少相投非識塵中上品不是眞宗歸物理難知妙道後先休生前內鼎宜烹鍊殊勝華池好漸修伹見完全憑土德能調火候藥皆秘玄之玄又見眞空巧拙臨時要妙大智伏藏知遠近纖微盡達了然通周旋物性誰區別坦蕩由來是且同境致三才隨有位神光照室瑩西東千般萬類不相逢天地尊卑豈易海缶高深隨日轉神仙聚樂隱塵中解求名利知貪少多事閑忙摠是空幾箇心賢平坦蕩十洲三島自從容九重天上帝仙居愚昧求眞道理混沌初分長日月精魂聚散記丹書离男坎女皆相類壬子丙丁異境殊歷劫因緣隨世在陰功及物最玄殊還知受氣稟天然百法方爲事理假合都來歸至道修持遠大更通玄二儀交感成祥瑞八卦剛柔被俗牽何謂此中生恍惚直須歡曲細精斫玄門至道故無涯自是人心所見智識未能通大藥豈將容易擬榮家千年聖境何虛謬百劫曾修不用遮龍虎欲成堪鍊鼎勿爲利路亂交加因緣業障遇眞稀黃帝乘龍豈是達識尚凝常恍惚愚蒙學解故相違華池秘密人天授神室光掦日月輝智者生常皆口默敢將客易論玄機鳳皇燕雀不同群非類宜然信有好景銷磨還作夢方知虛誕似浮雲閑吟比喩明女日雅道留情舊典墳堪與言論誰是識舞琴惠愛鼓南薰何爲禪定性心同解說眞如物外幾許修行緣上得惑多妄想障於聰名彰道理千世永善惡都歸歸萬法中應現機關俱寂默始知明鑑照昏蒙無縈無慮璸如黳手執仙經杖一猛利銷磨閑歲月玄中妙道入雲霓紅塵世界何拘束白日山川高又低去住自然皆寂默逍遙不假上仙挮高山樹葉翠森森寂靜因中道最利得崑崙皆璞玉不須麗水有眞金澆漓漸變同堯日薄俗將重理舜琴禍福年長隨世攺玄門大戒喩飛沈玄珠道在口中銜未信前人明似試問心田佯兀兀可憐肌骨瘦巖巖自言世界歸依重志誦經文不用攙鍊得氣來身且健日鈄常望鶴棲杉四敍相遷亦可觀斜扉半掩半欹詩吟海嶽昏空盡扇覺秋涼漸放閑樹影臨窗迷遠思渴禽戀水復飛還旋教摘果暝心話葉水蒼蒼天地聞秋鎖煙嵐日未曦道情欲話老僧旋烹茶竈心先喜搖撼松風睡思遲鶴唳九霄堪入盡雲平三界化無私眞宗象教非虛說對境成空是我師夜醮星壇海嶽飛龍車搖曳羽雲紅霞影裏輕煙色玉燭風淸皓月輝三島花明鋪錦繡千年鶴送下金扉仙家莫道無多事十二瓊樓恨不歸往事悲歡笑一場乾坤有甚可思空知造化情多矣卻是愚蒙不久長世上周通添春戀人間善惡自舒張熙熙盡入無爲內明月淸風道路忙尋思往事便堪疏空有閑雲萬里滿目都來情郁郁勞心誰把謾驅驅星辰日月高天際雲散煙花徧海隅道德流行寬世界時捻筆硯亦看書是非人我利名心情僞言同海似浩渺無涯成理性無爲志大可勝任千年歲月周遊在萬卷詩書不易尋世界之中寬更遠從分混屯至如人御製緣識卷苐二
  1. 1)참다운 진리로서 교법(敎法)을 뜻한다.
  2. 2)허공무위(虛空無爲)ㆍ택멸무위(擇滅無爲)ㆍ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의 세 가지를 말한다.
  3. 3)황제(黃帝)인 헌원씨(軒轅氏)를 말한다.
  4. 4)통천은 도교에서 말하는 신선의 거처이니, 동굴 안에 다른 천지가 있다는 뜻이다. 열 가지 대통천과 서른여섯 가지 소통천이 있다. 나중에는 풍경이 뛰어난 명승지를 가리키는 일반용어로 쓰였다.
  5. 5)전설에 나오는 바다 위 신선이 사는 산인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를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신선의 세계를 말한다.
  6. 6)삼신산을 가리킨다.
  7. 7)웅황(雄黃)ㆍ자황(雌黃)ㆍ유황(硫黃)을 말한다.
  8. 8)적수는 고대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물의 이름. 『장자(莊子)ㆍ천지(天地)』에는 “황제(黃帝)가 적수의 북쪽에서 노닐다가 곤륜의 언덕에 올라가서 남쪽을 바라보았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화지 역시 신화나 전설 속에 나오는 연못 이름으로 곤륜산 위에 있다고 한다.
  9. 9)일반적으로 하늘에서 가장 높은 곳을 말하는데, 도가에서는 신선이나 옥황상제가 사는 거처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