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集諸法寶最上義論 卷下

ABC_IT_K1430_T_002
040_0373_b_01L집제법보최상의론 하권
040_0373_b_01L集諸法寶最上義論 卷下


선적보살 지음
시호 한역
김치온 번역
040_0373_b_02L善寂菩薩造
西天譯經三藏朝奉大夫試光祿卿傳法大師賜紫臣施護奉 詔譯


다음으로 생하고 머무르고 달라지고 멸함[生住異滅]을 설하겠다. 이 네 가지 모습은 찰나찰나에 전전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상응함이 없는 모습이며 그 실체가 없다. 상응함이 없어 참된 모습이 없는 가운데에서는 두 가지 분별을 일으킬 수 없다. 동시라고 설할 수도 없고, 다른 때라고 설할 수도 없다. 동시와 다른 때에 생기(生起)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040_0373_b_04L復次今說生此之四相剎那剎那有所轉故不相應相而無其實於不相應無實相中不可起二分別不可說一時不可說異時一時異時無生起故
또 때도 없이[無時]라고 할 수도 없다. 이치에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만일 무너질 때라고 한다면, 무너짐은 곧 생함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생할 때에는 머무는 것이 없으며, 머무를 때 또한 그러하여 얻을 수 없다. 그 머무는 성품이 없는데, 어떻게 멸함이 있겠는가? 그 생하는 것과 머무는 것이 다름[異]이 된다고 한다.
040_0373_b_09L又不可說無時理相違故若說壞時壞卽不生故是故當知時無住住時亦復而無所得彼無住云何有滅彼生與住說名爲異
만일 본래 생하는 것이 없다면 어떻게 머무르는 것이 있겠는가? 만일 법이 머무는 것이 없다면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 생하는 것이 없으며 또한 머무르는 것이 없는데, 어떤 뜻으로 멸함이 있다고 하겠는가? 만일 법이 머무름이 있다면 머무르는 법 가운데에서 다른 성품을 설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이 이미 머무름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성품이 있겠는가? 다른 성품이 없는 데에서는 분별할 수 없다.
040_0373_b_12L本無生云何有住若法無住卽云何以無生故及無住故於何義中說有滅若法有住於住法中可說異法旣無住何有異性無異性中應分別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른 성품은 머무르는 성품이 아니며 실로 하나의 성품도 분별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모습과 분별하는 마음, 이것은 두 가지 종류라고 한다. 만일 모든 모습이 없다면 곧 분별이 없다. 그 모든 모습이나 분별하는 마음에 분별이 있다면, 둘은 모두 분별이다. 여실한 뜻은 모습도 없고 분별도 없다.
040_0373_b_17L當知異性而非住性實無一而可分別是故諸相及分別心爲二種若無諸相卽無分別若彼諸若分別心有分別者二俱分別實義者無相無分別
040_0373_c_02L 생하고 머무르고 달라지고 멸함이 만약에 자성이 있다면, 모든 때, 모든 곳, 모든 법에서 처음과 중간과 끝으로 나누어 안립할 수 없다. 만일에 능히 이와 같이 여실한 이치로써 사유한다면, 부처님께서는 이 사람은 이름하여 큰 지혜[大智]라고 하신다.
040_0373_b_21L若有性者於一切時一切處一切法初後分不可安立若能如是如理思惟佛說是人名爲大智
처음, 중간, 뒤의 모든 성품은 셋의 성품 중에서 실로 하나의 성품도 생기하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하나의 성품도 아니고, 다수의 성품도 아니다. 하나와 다수와 중간 모두 얻을 수가 없다.
040_0373_c_03L初分中分分諸性於三分性中實無一性有所生起是故諸法非一性非多性一多中閒俱無所得
만일 모든 법이 하나의 성품도 떠나고 다수의 성품도 떠난다면, 곧 항상과 무상으로 분별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무상도 아니고 무상이 아닌 것도 아니다. 그 가운데서 두 가지 분별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처음과 중간과 뒤는 동시에 생하지 않으며 동시에 있지도 않다. 마치 다른 사람의 성품이 곧 자신에게는 없는 것과 같다. 만일 자체의 성품이라면 타인에게 어떻게 있겠는가?
040_0373_c_06L若一切法離一性多性卽常與無常無所分別是故非無常非非無常不應於中起二分別當知初分中分後分不俱時生不俱時有如他人性卽自所無若自體性他云何有
이 중에 설한 바 자성은 없다 했는데 다른 성품이 어떻게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기도 한 성품이 없고 다른 것도 또한 성품이 없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의 법이 행하는 것과 짓는 것은 인의 성품[因性]을 떠나지 않는다. 무너짐과 무너지지 않음이 마음이 사량한 것이 아니라면 분별할 수 없다.
040_0373_c_11L此中所說自性尚無他性何有是故自亦無性他亦無性當知一切法所行所作不離因性若壞不非心所思不可分別
처음과 중간과 뒤를 여실하게 사유하면 모두 무위의 모습[無爲相]으로서 달리 다른 모습이 없다. 그 모든 법의 각각의 종자에 그 각각의 성품이 있다고 분별해서는 안 된다. 하나하나는 지혜 종자가 생한 것임을 떠나지 않는다. 찰나찰나의 때에 나뉘고 바뀌고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하나하나가 모든 법의 성품이다. 어떻게 마음이 능히 사유하여 생기하는가? 모든 법 가운데 차별된 현상의 모습[事相]이다. 인(因)도 없고 또한 차별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040_0373_c_14L後分如實思惟皆無爲相無別異相不應分別彼彼諸法各各種子彼各各性一不離智種子生剎那剎那時分轉是故彼彼一切法性云何心能思惟生起一切法中差別事相當知無亦無差別
모든 법은 본래 조작된 것이 없다. 비록 작용이 상속할지라도 어떻게 실체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알려지는 모든 법과 능히 아는 주체 이 둘은 찰나 중에 화합할 수 없다. 그 이와 같은 성품은 실로 능히 취하는 것이 없다. 이 중에는 있는 바도 없고 또한 얻는 것도 없다.
040_0373_c_20L諸法本來無所造作作用相續當何有實是故所知諸法及能知者是二於剎那中不能和合彼如是性實無能取是中無所有無所得
040_0374_a_02L 마땅히 모든 법은 생하자마자 무너진다고 관해야 한다. 만약 법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곧 생하는 법이 아니다. 법은 무너지기 때문에 얻는 것이 없다. 그 무너지지 않는 것은 항상 머무르는 성품이며 곧 항상 머무르는 성품 그것도 또한 다시 떠나는데, 곧 떠난다는 그 말도 이 가운데에서 또한 떠난다. 만약에 이와 같이 알면 곧 모든 법의 그 차별된 성품을 깨닫는다. 이것이 항상 머무르는 인(因)이며, 차별되는 성품이 없는 것 또한 이와 같다.
040_0373_c_24L當觀諸法生已卽壞若法不卽非生法以法壞故而無所得不壞者是常住性卽常住性彼亦復卽離之言是中亦離若如是知了諸法彼差別性是常住因無差別亦復如是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곧 생하고 곧 멸한다. 그러므로 머무르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에 머무름이 있다면 마땅히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 머무름이 없는 모습은 얻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머무름이 없는 법이니, 따라서 모든 행중에 모든 차별의 행과 상응한다. 만약에 그 하나하나의 성품이 얻는 것이 있다면, 차별이 없는 행을 어떻게 대치하겠는가? 그러므로 차별의 행 중에서 성품은 생할 수 없다.
040_0374_a_06L諸有爲法卽生卽滅名無住若有住者應有所得以無住無所得故彼無住法是故相應切行中諸差別行若彼彼性有所得於無差別行云何對治是故差別行中無性可生
거듭해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안(眼) 등의 여러 식은 현량(現量)의 성품이 있다. 대지니사(大至尼師)가 친히 설한 것이다. 만일 현량 성품을 떠나서 따로 양(量)과 비량(非量)을 취한다면, 그것은 여기에서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 세간이 가진 먼저 지어진 일은 모두 의지하는 바가 없다. 모든 지어진 것에 작용성이 없는 것과 같다. 만일 그것이 이와 같이 모든 현전하는 현상[事]이라면, 그 현전하는 것처럼 또한 이루어지는 바가 없다.
040_0374_a_11L復次當知眼等諸識有現量性大至尼師親所宣說若離現量性別取量非量者彼於此中當云何得世間所有先所作事皆無所依如諸所作作用性若彼如是諸現前事如其現亦無所成
이 가운데 만약 행하는 바와 행하는 바가 아닌 것이 있다면 곧 모든 작용의 뜻은 모두 서로 어긋난다. 그러므로 일체는 실로 일을 짓는 것이 없어 모두 허공과 같다. 항상함과 무상함을 모두 집착할 수는 없다.
040_0374_a_17L是中若有所行及非所卽諸作用義皆相違是故一切無實作事皆如虛空常與無常俱不可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법은 모두 연(緣)으로부터 생하여, 비록 생한다 할지라도 또한 조그마한 법도 얻을 수 없다. 연은 허깨비와 같으므로 생한 것도 허깨비와 같다. 즉, 그것이 이와 같이 모든 법을 출생하는 이러한 뜻으로 인하여 모든 법은 성품이 없으면서 또한 성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와 같은 뜻이다. 정등정각께서 널리 설하는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법은 집착이 없고 장애가 없다. 대승에서 이 진실을 설하고 있다.
040_0374_a_20L當知諸法皆從緣生雖生亦無少法可得緣如幻故所生如幻卽彼如是出生諸法以是義故諸法無性非無性此如是義正等正覺如實宣當知一切法無著無礙於大乘中此眞實說
040_0374_b_02L이와 같이 헤아려 알아야 한다. 즉, 보리심은 본래 평등하여 시방 삼세의 모든 여래를 여실하게 알기 때문에, 방편을 생하여 모든 깊고 깊은 법문을 널리 설하신다. 그 응하는 바대로 명언(名言)으로 분별하신다. 그러므로 각각 밝혀 설함은 모든 법을 생하는 것을 나타내 보인다. 이른바 그 하나하나의 법이 사제법(四諦法)이며 그 하나하나의 법이 유식법(唯識法)이다.
040_0374_b_02L如是了知卽菩提心本來平等十方三世一切如來如實知故出生方便宣說一切甚深法門如其所應名言分別是故各各宣說表示出生諸法所謂彼彼法是四諦法彼法是唯識法
비록 설한 것에 항상 진실이 있을지라도 그 하나하나의 법은 모두 다 허깨비와 같고, 허깨비와 같기 때문에 가히 찾을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알 수도 없으며, 나타내 보임도 없고, 거두어 갈무리함도 없다.
040_0374_b_07L雖有所說而常眞實彼彼諸法皆悉如幻由如幻故不可不可伺不可知無表示無攝藏
만일 이와 같은 것들을 떠난다면 곧 법의 진실을 알 것이고, 진실을 알기 때문에 보리심이 속히 해탈을 얻는다. 만일 보리심이 이와 같이 해탈한다면, 곧 모든 부처님 또한 해탈하게 되고, 중생 또한 해탈한다. 생사 또한 해탈하며, 열반 또한 해탈하고, 법계 또한 해탈한다. 그러므로 부처와 중생 둘은 평등하며, 생사와 열반 또한 평등하다.
040_0374_b_09L離如是等卽知法眞實以知眞實故而菩提心速得解脫若菩提心如是解脫卽諸佛亦然衆生亦然生死亦涅盤亦然法界亦然是故佛與衆生二俱平等生死涅盤亦復平等
만일 이 가운데에서 이와 같이 여실하게 이 뜻을 헤아려 안다면,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설하여 모든 부처님의 보리라고 하며, 나아가 모든 것에서 행한 바와 지은 바 모두를 능히 이루어 갖춘다 하셨다.
040_0374_b_14L於此中如是如實了知是義佛說此爲諸佛菩提乃於一切所行所作能成辦
여기서 설한 뜻은 제일의(第一義)이다. 이것을 떠나서 따로 제일의는 없다. 이 제일의는 모든 법을 거두어들인다. 이것은 생각할 수 없는[不思議] 진실한 말이며 행이다.
040_0374_b_17L此所說義是第一義離此無有第一義此第一義攝一切法不思議眞實語行
있음도 떠나고 없음도 떠나고, 지혜도 아니고 어리석음도 아니다. 적음도 아니고 많음도 아니며, 모습도 없고 성품도 없다. 비추어 도달하는 바가 없으며, 지혜로도 알 수 없고, 식으로 식별할 수 없다. 자성에 상즉[印]하지도 않고 자성을 상리[離]하지도 않는다. 취하지도 않고 버리는 것도 없어, 취하고 버리는 모습을 떠난다. 여실한 지혜로부터 출생하는 것으로, 출생하는 것에 따르고 언설하는 것에 따르고, 취하는 모습도 없고 거두어 갈무리하는 것도 없다. 마음이 사량할 바도 아니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눈이 본 것이 아니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마음은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040_0374_b_19L離有離無非智非非少非多無相無性無所照達不可知識不可識不卽自性不離自無取無捨離取捨相從如實智之所出生隨所出生隨所言說無取相無攝藏非心所思不可知故非眼所不可見故何以故心無自性故
040_0374_c_02L 마음이 자성이 없기 때문에 곧 모든 법이 스스로의 성품[自性]도 없고, 다른 성품[他性]도 없다. 자타 두 종의 차별이 없기 때문에 곧 일체법의 자성이 상응한다.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모이는 것도 없고 흩어지는 것도 없으며, 지혜도 아니고 어리석음도 아니다. 조그마한 법도 있지 않아, 드러내 보이는 것도 없으며, 비추어 도달할 것도 있지 않다.
040_0374_c_02L心無自性卽一切法無自無他以無自他二種差別卽一切法自性相應無生無滅無集無散非智非愚無有少法有所表示有所照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각각의 보리종자와 그 각각의 모습을 드러내어 헤아리기 위한 까닭이다. 만약에 그 각각의 모습에서 능히 무아(無我)를 관한다면, 보리의 종자 또한 생하는 바가 없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자성이 진실하여 훌륭한 방편으로써 세간에 출현하여, 큰 자비의 마음을 일으켜 증험한 바가 있음을 보이지만, 모든 보살의 자성은 진실로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다.
040_0374_c_06L當知彼彼菩提種子而彼彼相爲表了故若能於彼彼相觀無我者菩提種子亦無所生諸菩薩摩訶薩自性眞實以善方便出現世閒起大悲心示有所證而諸菩薩自性眞實無生無滅
마땅히 알아야 한다. 식의 법[識法]은 의혹을 멀리 떠나, 조그마한 법이라도 생기할 것이 없다. ‘나’와 ‘나의 것’은 공하며, 모습이 드러나 알고 나타내 보이는 것이 없다. 식의 모습[識相]은 광명이며 자성이 없다. 그러나 광명의 성품, 그것은 성품이 스스로 항상 하는 것이므로 ‘나’의 모습의 성품은 광명이 없다.
040_0374_c_11L當知識法遠離疑惑無有少法而可生起我我所空而無有相顯了表示識相光明而無自性然光明性彼性自常是故我相性者無有光明
광명이 없는 가운데 어떻게 광명의 모습이 있다고 설하는가? 모든 광명이 능히 어둠을 깨뜨리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둠과 밝음은 가까이 하지도 않고, 합하지도 않는다.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에 밝음이 어떻게 능히 깨뜨리며, 합해지지 않기 때문에 어둠이 어떻게 깨뜨려지는가? 만일 밝음과 어둠이 서로 멀리하면 또한 모두 얻는 것이 없다.
040_0374_c_15L無光明中云何可說有光明相如諸光明而能破暗然暗與明不近不合不近故明何能破不合故暗何所破若明暗相又俱無所得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밝음이 능히 어둠을 깨뜨리는 것은 상즉(相卽)하는 것도 아니고 상리(相離)하는 것도 아니다. 그 가운데에서 결정코 실로 분별할 수가 없다. 어둠이 비록 깨뜨려짐이 있을지라도 능히 깨뜨리는 법은 없다. 능히 깨뜨리는 법은 따로 분량(分量)이 없다. 왜냐하면, 깨뜨림은 머무름이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040_0374_c_19L是故當知明能破暗不卽不離不可於中定實分別暗雖有破無能破法彼能破法無別分量何以故破名無住故
040_0375_a_02L 이것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법은 인연이 화합하여 생하는 것이 있다. 연으로 생하기 때문이며 허깨비와 같이 이루어진다. 허깨비와 같은 법에서는 그 어리석음ㆍ어둠 등은 또한 번뇌가 아니다. 단지 지혜의 장애가 되어 헤아림이 없기 때문이며, 식의 분별을 떠난다. 또한 광명이 생기하는 것도 아니다. 이 두 가지 참된 성품은 모두 분별이 없다. 이 가운데 끝을 보아, 실로 얻음이 없다.
040_0374_c_22L由此應知彼一切法因緣和合而有所生以緣生故如幻而成如幻法中彼癡暗等亦非煩惱但爲智障而不了故離識分別亦非光明有所生起是二實性俱無分別此中見邊而實無得
또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촉(觸)ㆍ작의(作意)ㆍ수(受)ㆍ상(想)ㆍ사(思)ㆍ욕(欲)ㆍ승해(勝解)ㆍ염(念)ㆍ정(定)ㆍ혜(慧) 이와 같은 것 등은 심소유법(心所有法)이다. 그것은 모두 이 보리의 모습이고, 그리하여 그 하나하나는 자성이 청정하다. 만약에 어떤 법이 보리의 모습이 아니라면, 자체의 이치가 상응하지 않는다. 마치 허공과 같이 자성이 청정하니, 그러므로 그 지혜의 성품 또한 그렇게 청정하다.
040_0375_a_04L復次當知作意勝解如是等心所有法彼彼皆是菩提之相而彼一一自性淸淨若或有法非菩提相者而於自體理不相應當如虛空自性淸淨而彼智性亦然淸淨
만일 ‘나’의 모습[我相]의 실로 있는 바가 없음을 안다면, 곧 그 식심(識心) 또한 다시 생함이 없다. 만일 식이 생함이 없다면, 모든 법은 마땅히 어떻게 있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법은 모두 진실로부터 생하는 것이며, 모든 법은 인연이 화합하여 곧 생한다. 비록 생한다고 할지라도 실체가 없어서, 있는 바가 없다. 모든 법은 허깨비와 같고, 식심도 허깨비와 같고, 연(緣)도 허깨비와 같다. 이와 같으므로 식은 연으로부터 생한다.
040_0375_a_10L若知我相實無所有卽彼識心亦復無生若識無生者彼一切法當云何有是故應知諸法皆從眞實所諸法因緣和合卽生雖生無實無所有諸法如幻識心如幻緣亦如由如是故識從緣生
마땅히 알아야 한다. 지혜의 성품 또한 허깨비와 같아서 분별하는 것이 없으며, 헤아려 아는 것이 없다. 모든 법의 자상은 지혜로 알려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언설만 있을 뿐, 모두 상응하지 않는다. 이 가운데에서 만약에 능히 모든 분별을 떠난다면, 생하거나 멸하는 것을 모두 다 멀리 떠난다. 연(緣)하여 생함은 허깨비와 같고, 생한 것 또한 허깨비와 같다. 어떻게 허깨비와 같은 가운데 실로 생함이 있겠는가?
040_0375_a_15L當知智性亦復如幻無所分別無所了知諸法自相非智所知但有言說皆不相應中若能離諸分別若生若滅皆悉遠緣生如幻所生亦如幻云何如幻而實有生
마땅히 알아야 한다. 식심 그것이 허깨비와 같기 때문에 지혜 또한 허깨비와 같다. 지혜가 허깨비와 같기 때문에 아는 바도 또한 허깨비와 같다. 지혜와 아는 바 모두 허깨비와 같기 때문에 생하는 법 또한 그러하다. 생하는 법이 허깨비와 같기 때문에, 모든 법 또한 그러하다. 마치 사람이 허깨비로 지어진 모양을 보는 것과 같다.
040_0375_a_20L當知識心彼如幻故亦如幻智如幻故所知亦如幻智與所知俱如幻故生法亦然生法如幻諸法亦然如人見彼幻所作象其所生卽有三事世閒諸行亦復如
040_0375_b_02L그와 같이 생한 것은 곧 세 가지 현상이 있다. 세간의 모든 행 또한 이와 같다. 그와 같이 생한 것은 역시 세 가지 현상이 있다. 만일 이 마음에서 보는 것이 있다면 곧 언설과 짓는 일이 있다. 만일 마음 없이 헤아린다면, 곧 사랑하는 대상이 없다. 마음이 없고 사랑이 없다면 법이 어떻게 있겠는가? 만약에 나의 모습[我相]이 있고, 나의 것[我所]이 있다면, 봄[見]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와 나의 것이 없다면, 어떻게 봄이 있겠는가? 그 보리의 모습 또한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이 무아의 모습[無我相]은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040_0375_b_02L如其所生亦有三事若於此心有所見者卽有言說及所作事若了無卽無所思無心無思法云何有有我相及有我所可說有見無我我當云何見彼菩提相亦云何證無我相如是應知
모든 허깨비의 법[幻法]은 있는 바가 없다. 허깨비와 같이 나타난 것을 설하여 ‘있다’고 한 것이다. ‘있다’는 성품[有性]과 ‘없다’는 성품[無性] 그것은 자성의 성품이다. 이 성품은 집착 없이 모든 곳에 나타난다. 만일 법이 ‘있다’면, ‘없음’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이 ‘있음’ 또한 현전하지만 체[體]가 없다. 만일 법이 ‘없다’면 곧 ‘있음’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이 ‘없음’ 또한 현전하지만 실[實]이 있다. 그러므로 생함이 없고 또한 거두어 갈무리함이 없다. 이로 말미암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일 법이 ‘있다’고 말하면 이와 같은 것은 ‘있음’이 아니다. 만일 이와 같은 ‘있음’이 아니라면, 곧 ‘없음’에 상응한다. 이 가운데에서 ‘있다’라고 말한 것은 결정하여 기록할 수 없다.
040_0375_b_07L一切幻法而無所如幻所現說名爲有有性無性自性性此性無著一切處現若法是卽不應無此有亦復現前無體法是無卽不應有此無亦復現前有是故無生亦無攝藏由此應知法言有不如是有若不如是有卽應是無此中言有又不可定記
법계의 자성은 마땅히 이와 같이 설해야 한다. 만약에 모든 색법이 실유(實有)하는 체라면, 제일의(第一義)에서는 그러나 있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이 가운데 모든 지어진 현상[事]은 모두 허깨비와 변화신[幻化]으로부터 분별하여 일으킨 것이기 때문이다. 법이 성품이 있거나 법이 성품이 없는 것은 본래 스스로 이와 같다.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거나 성품이 없는 것이 아니거나 또한 이와 같다. 성품이 있음과 성품이 없음을 자성이 상응한다. 성품과 성품이 없음은 마음의 분별의 아니다.
040_0375_b_14L法界自性應如是說若諸色法是實有體第一義然無所有是故此中諸所作皆從幻化分別起故若法有性法無性本自如是若非有性若非無亦復如是有性無性自性相應與無性非心分別
040_0375_c_02L 만약에 언설로 설한다면, 모든 법은 하나하나 자성이 없다. 만일 언설로 설한다면, 모든 법은 다르고, 다름의 자성이 없다. 모든 법 가운데 자성의 성품은 없어서 얻을 수 없다고 설한다. 모든 부처님은 삼세에 따라서 전전하며 널리 세간의 일체 중생에게 모두 해탈을 얻게 하지만, 모든 부처님의 계[界]는 증장(增長)의 인(因)이 없으며, 그것은 또한 증장의 성품이 없다. 진실한 성품 가운데 모든 부처님께서 항상 계신다.
040_0375_b_20L若有說言諸法一一無自性若有說言諸法是異異無自性一切法中無自性性說不可所有諸佛隨三世轉普令世閒一切衆生盡得解脫而諸佛界無增長彼彼亦復無增長性眞實性中佛常有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법은 네 가지 종류로 분별한다. 이른바 있다거나 없다거나 둘이거나 둘이 아닌 것이다. 세간은 허깨비와 같고, 마음 또한 허깨비와 같아서, 어떻게 설함이 없는데, 설한 바가 있겠는가? 모든 법은 공하여서 모든 집착하는 것을 떠나고, 그 진여의 성품은 떠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희론(戱論)으로 분별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뜻으로 말미암아 모든 법은 성품이 없다고 이와 같이 설해야 한다.
040_0375_c_03L當知一切法四種分別所謂若有若無是二非二世閒如幻心亦如幻云何無說而有所說一切法空離諸所著空亦不離彼眞如性是中不應戲論分別以是義故諸法無性應如是說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부처님의 정등정각(正等正覺)은 성품도 아니고, 성품 없음도 아니다. 성품과 성품 없음 모두에 집착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즉 공도 아니고, 또한 공 아님도 아니다. 공과 있음의 중간에 또한 세울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생함도 없고, 성품도 없다. 생함도 없고 성품도 없기 때문에 모든 유(有)의 모습에 따라서 곳곳에 나타내 보인다. 그러나 그 모습의 뜻은 집착하여 얻을 것이 없으며 실로 취할 성품이 없다. 이것이 곧 진실이다.
040_0375_c_08L當知諸佛正等正覺非性非無性性與無性皆離著故此卽非亦非不空空有中閒亦無所立故一切法無生無性以無生無性故隨諸有相處處表示然其執相義無所得無實取性是卽眞實
모든 법은 생함이 없으며 또한 멸함이 없다. 그 모든 법은 모두 동일한 모습이다. 이 중에는 이와 같이 동일한 모습이기 때문에, 곧 모든 법은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다. 만일 모든 법이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다면, 마땅히 모두가 번뇌의 종자로부터 허망하게 생기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일 모든 법이 생함이 없다고 설한다면, 그것은 단견(斷見)을 더하는 말이라고 한다. 만일 모든 법이 멸함이 없다고 설한다면, 그것은 상견(常見)을 더하는 말이라고 한다.
040_0375_c_13L諸法無生亦復無滅彼一切法皆同一相此中如是同一相故卽一切法無染無淨若言諸法有生有滅當知皆從煩惱種子虛妄生起若說諸法爲無生者彼說名爲斷見增語若說諸法爲無滅者彼說名爲常見增語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법은 언설을 떠난 것으로, 생한다고도 할 수 없고, 멸한다고도 할 수 없다. 일체법 중에 생하거나 멸하는 것은 실로 조그마한 법도 얻을 것이 없다.
040_0375_c_19L是故應知諸法離言不可說生不可說滅一切法中若生若滅實無少法而有所得
040_0376_a_02L 만일 능히 그 두 종류의 더하는 말을 떠난다면, 곧 일체의 법은 단절함도 아니고 항상함도 아니다. 성품이 있음과 성품이 없음의 성품은 스스로 진실하여, 이 가운데 조그마한 법도 모습을 얻을 수가 없다. 하나의 현상이 실로 전전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든 법이 비록 생겨나도 실제 존재는 없는 것이고, 이 가운데 또한 다시 실제 경계도 없는 것이니, 지혜는 허공과 같이, 모든 유(有)의 모습을 떠난다. 지혜와 허공은 모두 다 평등하다.
040_0375_c_21L若能離彼二種增語卽一切法非斷非常有性無性性自眞實此中無有少法是所得相無有一事而實可轉諸法雖生而無所有是中亦復無實境界智如虛空離諸有相智與虛空皆悉平等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의 차별된 분별은 번뇌의 그물이 되어, 청정한 성품을 막지만, 진여는 모습이 없고, 모든 연하는 바를 떠나 자성이 청정하고 큰 광명이 있다.
040_0376_a_04L當知一切差別分別爲煩惱網礙淸淨性眞如無相離諸所緣自性淸淨有大光明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불ㆍ세존은 본래 진여의 성품이다. 이것을 불보(佛寶)라 한다. 청정한 인으로써 청정한 법을 보이고, 바른 이해를 열어 생하고, 자성을 맡아 지닌다. 이것을 법보(法寶)라 한다. 진실한 도를 가리켜 자체가 상응한다. 이것을 승보(僧寶)라 한다.
040_0376_a_06L是故當知諸佛世尊本眞如性是爲佛寶以淸淨因示淸淨法開生正解自性任持是爲法寶指眞實道自體相應是爲僧寶
이와 같은 삼보는 모두 무위의 모습[無爲相]이다. 온(蘊) 등의 법이 아니며, 모으는 것도 없고, 가지는 것도 없다[無所有]. 유의 모습도 있지 않고, 분별도 없다. 그러므로 모든 불ㆍ세존은 승의제(勝義諦)에 머무르시며, 여실한 도(道)로부터 여실하게 오시기 때문에 여래(如來)라 이름한다.
040_0376_a_09L如是三寶皆無爲相非蘊等法無所無所有無有相無分別是故諸佛世尊住勝義諦從如實道如實而來故名如來
여실하게 무아(無我) 등의 법을 헤아려 알기 때문에 모든 색(色)의 모습과 공덕의 법을 나타내고, 처음 발하는 마음[初發心]으로부터 모든 수승한 행을 닦아서, 불퇴전(不退轉)을 얻는다. 나아가 최후의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이르러 등정각(等正覺)을 이룬다. 이것을 인으로 하여, 무구진여(無垢眞如)로부터 모든 부처님 몸[佛身]을 나타낸다.
040_0376_a_13L如實了知無我等法是故現諸色相及功德法從初發心修諸勝行得不退轉乃至最後一生補處成等正覺此所因者從無垢眞如諸佛身
이렇게 나타나는 몸 이것은 방편으로 생하여, 모든 법을 널리 설하지만 설한 모습이 없다. 왜냐하면 성품이 없고,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식심(識心)이 청정하여, 이 식은 곧 모든 짓는 바 일[事] 또한 이와 같이 나타난다. 비록 나타날지라도 취하는 것이 없어서 또한 설함이 없다. 승의제로서 취할 수 없고 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040_0376_a_17L此所現身是方便生宣說諸然無說相何以故無性無所有故識心淸淨是識卽有諸所作事亦如是現雖現無取而亦無說以勝義諦不可取不可說故
즉, 이것은 취함이 없으며 설함이 없다. 성품의 본체가 스스로 진실하여 또한 설할 수 없다. 설할 수 없기 때문에 분별이 없다. 분별의 성품이 없는 것이 승의제이다. 승의제 가운데 일[事]의 분별에 따라서 모든 법의 소리를 가진다. 이러 이러한 모든 법을 설하여, 그 각각의 법들을 설하는 모습이 없다고 한다.
040_0376_a_21L卽此無取及無說性體自眞實亦不可說以不可說無分別無分別性是勝義諦於勝義諦中隨事分別所有所有諸法聲是如是諸法說彼彼諸法無說相
040_0376_b_02L 모든 법과 법의 성품은 모두 평등하며, 모든 법은 무아이며 또한 자성이 없다. 성품이 있음과 성품이 없음의 그 각각의 자성은 있음을 떠나고 없음을 떠나서, 취할 수 없고 또한 설할 수 없다. 이 가운데 이와 같이 있다거나 없다는 말의 뜻은 심히 깊고 깊어서 모습을 떠나서 설한다. 모든 법은 증명할 모습이 없다. 이것을 정등각이라 한다. 모든 법은 설하는 모습을 떠났다. 이것을 진실한 말씀이라 한다. 생함도 없고 또한 멸함도 없음이 모든 법의 깊고 깊은 뜻이다.
040_0376_b_02L法法性皆平等諸法無我亦無自性有性無性彼彼自性離有離無而不可取亦不可說此中如是若有若無語義甚深離相而說諸法無證相名正等覺諸法離說相是名眞實說無生亦無滅諸法甚深義
각각의 모든 경계는 무아이며 전전함이 없고, 밖의 법[外法]은 전전할 수 없고 취할 수도 없다. 보시ㆍ지계 등의 모든 법은 비록 설할지라도 모습이 없다. 그러므로 일체법에서 취할 바의 모습이 없어, 곧 집착하는 바가 없다. 이 가운데 또한 따로 작용이 없어, 설사 일을 짓는 바가 있을지라도 또한 공이라고 한다. 작용이 공하기 때문에 실재하는 행상이 없다. 실재하는 행상이 없는 가운데에 법은 증가함도 없고 멸함도 없다.
040_0376_b_08L各各諸境無我而無轉外法不可轉外法不可取施戒等諸法雖說而無相是故於一切法無所取相卽無所著此中亦復無別作用設有所作事亦說名爲空作用空故無實行相無實行相中法無增無減
만일 모든 법을 허망하게 분별하면, 마땅히 그 마음이 모습을 집착하는 가운데 전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은 번뇌의 성품에 집착하여 그는 해탈하지 못한다. 만약에 그러한 허망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모든 지은 일은 모두가 적정하다. 그는 능히 여실하게 해탈을 얻을 것이며, 분별이 없기 때문에 마음의 성품[心性]이 항상 적정하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연으로부터 생하며, 비록 생하는 바가 있을지라도 공이라고 한다. 마땅히 자법(自法)을 관하여 유의 모습이 있지 않다고 해야 한다.
040_0376_b_14L若於諸法虛妄分別當知彼心執相中轉起彼心故是愚癡者著煩惱性彼非解脫若不起彼虛妄分別諸所作事皆悉寂靜彼能如實而得解脫無分別故心性常寂是故諸法從緣而生雖有所生說名爲空當觀自法而無有相
정등정각은 이와 같이 설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법은 모임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며, 자신의 성품도 없고 다른 성품도 없다. 조그마한 법이라도 모습을 취하여 얻을 수 없다. 처음과 같이 또한 뒤도 같으며, 처음과 뒤가 상응한다. 그리하여 그 진여의 성품의 광명이 비춘다. 만일 능히 그 진여의 성품이 비추어 통하면, 모든 법은 연생(緣生)으로 나타나서 장애가 없다. 허깨비와 같이, 생한 것 또한 이와 같다고 설한다. 이것이 널리 펼치신 대승이 탄생한 내용이다.
040_0376_b_20L正等正覺作如是說當知諸法無集無散無自無他無有少法取相可得如初亦如初後相應而彼眞如性光明照能照達彼眞如性諸法緣生現而無如幻所生亦如是說此所宣說大乘出生
040_0376_c_02L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법이 혹 생하거나 혹 멸하는 것은, 찾아 구하고 자세히 관찰하는 도리[尋伺道]로는 능히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언어의 뜻의 끝을 집착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며, 그 진실한 성품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전에 취하여 집착하는 바가 없다. 지혜로운 자는 여실하게 모든 언설을 떠난다. 그 분별하는 마음을 그물이라고 하는데, 분별을 떠났기 때문에 곧 해탈을 얻는다. 그 해탈의 마음은 공과 같이 평등하다.
040_0376_c_03L當知一切法若生若滅非尋伺道而能知故何以故諸語義邊無所著故彼眞實性不可知故是故現前無所取著智者如實離諸言說分別心說名爲網離分別故卽得解彼解脫心如空平等
이와 같이 설한 것은 심히 깊은 법이다. 만일 이 중에서 여실하게 믿어 이해[信解]하는 크게 지혜로운 자가 되면 그 신해의 마음이 삼계 등과 더불어 있다. 이러한 마음의 청정함은 모든 티끌과 더러움을 떠나고, 또한 능히 일체의 물듦과 집착을 멀리 떠난다. 곧 모든 법에서 취하는 것도 없고 버리는 것도 없으며, 일체의 집착과 어리석음을 모두 다 멀리 떠나서 능히 열 가지 종류의 자재함을 획득한다. 그는 자신의 법에서 참된 성품을 깨달아 요달하고 자성이 없는 가운데에서 또한 머무는 바가 없다.
040_0376_c_08L如是所說甚深法若於此中如實信解是大智彼信解心與三界等是心淸淨諸塵垢復能遠離一切染著卽於諸無取無捨一切執著愚癡皆悉遠彼能獲得十種自在彼於自法了實性無自性中亦無所住
모든 법에서 여실하게 믿어 이해하며, 믿어 이해하는 바와 같이 여실하게 머문다. 비유하면 마치 허공이 두루 미쳐서 빠짐이 없는 것과 같다. 그 일체의 법이 원만하게 출생하는 것 또한 이와 같다. 이 법은 평등하여 일체에 널리 미친다. 여기에서 법은 오거나 가는 것이 없으며, 오고 가는 것이 없기 때문에 모든 법이 현전한다.
040_0376_c_14L於諸法如實信解如所信解如實而住如虛空周徧無缺彼一切法圓滿出亦復如是是法平等普徧一切中無法若來若去無來去故諸法現
이러한 뜻을 아는 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달하여, 일체의 법을 생함에 모두 집착하는 바가 없다. 이것과 달리 또 따로 법이 있지 않다. 이것이 대승 제법(諸法)의 중요한 도리로서 가장 높고 심히 깊어 여실하게 전전한다. 식심(識心)이 맑은 까닭에 일체에 집착이 없으며, 일체의 법과 더불어 이치에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040_0376_c_19L知是義者通達佛教一切生法悉無所著異此亦復無別有法此是大乘諸法要道最上甚深如實而轉心淨故一切無著與一切法理不相
040_0377_a_02L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의 집착하는 마음이 다한 곳에 법이 있다. 그 법은 심히 깊어 지혜로 관하는 바도 아니며, 깨달아 아는 바도 아니어서, 있고 없고의 두 곳을 동시에 세울 수 없다. 이러한 뜻이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보리는 능히 증득하는 자도 없고, 증득하는 곳도 없어서 보리의 법 가운데에 안립할 바가 없다.
040_0376_c_23L是故當知一切執心盡處有法法甚深非智所觀非所了知有無二俱不可立以是義故諸佛菩提無能證者無所證處菩提法中無所安
만일 능히 여실하게 스스로 부처님의 경지를 증득하면, 일체법과 더불어 스스로 상응하여, 모든 법은 원인도 없고 또한 지은 바도 없다. 어리석은 자들이 사유하고 분별하여, 만약에 원인이 없음에 집착하면 또한 다시 모든 복된 일을 모을 수가 없으며, 물든 마음을 일으켜서 악취(惡趣)의 과보를 초감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이 심히 깊고 미묘한 법 가운데에 여실하게 신해하여 존중하고 공경하여, 곧 한량없는 최상의 복의 더미를 얻는다. 이것을 이름하여 진실로 대승을 닦는 자라고 한다.
040_0377_a_04L若能如實證自佛者與一切法自相應諸法無因亦無所作諸愚癡思惟分別若執無因又復不能集諸福事起染著心感惡趣報是故智於此甚深微妙法中如實信解重恭敬卽得無量最上福聚是名眞實修大乘者
따라서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도리를 깨달아 요달하면, 이것이 여실한 도이며 집착 없는 도이고 가장 높고 가장 수승한 것이니, 능히 청정한 믿음을 내는 자라고 모든 부처님께서 칭찬한다. 지혜가 없이 삿된 견해를 가진 외도들은 그 집착하는 마음들을 능히 버리지 못하므로 이 깊고 깊은 법을 설하지 못한다. 만약에 설한다 할지라도 이치에 상응하지 않을 것이다.
040_0377_a_10L是故若人覺了此道如實道是無著道最上最勝而能發生淸淨信者諸佛稱讚有諸無智邪見外道不能捨彼諸執著心此甚深法不應爲說若爲說者理不相應

내가 칭찬하는 최상의 법은
처음도 중간도 뒤도 이치에 잘 상응한다네.
최상의 진실한 구절을 전체 거두어들이니
심히 깊고 미묘하여 헤아릴 수 없다네.
한량없고 끝없는 공덕을 모아
널리 일체 중생계에 베풀지어다.
040_0377_a_14L我所稱讚最上法
初中後善理相應
摠攝最上眞實句
甚深微妙不思議
集諸功德量無邊
普施一切衆生界
集諸法寶最上義論卷下
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