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1449_T_003
- 040_0500_a_01L광석보리심론 제3권
- 040_0500_a_01L廣釋菩提心論 卷第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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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계 지음 - 040_0500_a_02L蓮華戒菩薩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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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한역
김치온 번역 - 040_0500_a_03L西天譯經三藏傳法大師賜紫沙門臣 施護等奉 詔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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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이 중에서 차례로 저 모든 선정을 닦아야 한다. 만일 애욕을 여의고 희(喜)와 낙(樂)을 얻는다면, 내심(內心)이 청정하여 올바른 상응에 머물러서 심(尋)과 사(伺)가 있으니, 이것을 초선정(初禪定)이라 한다. 또한 다시 이 가운데 심(尋)은 없으나 사(伺)만이 있는 것을 중간선(中間禪)이라 한다. 초선의 경지에서 애욕을 이미 여의었다면 희와 낙을 얻고 내심이 청정하여 올바른 상응에 머무른다. 이것이 이선정(二禪定)이다. 이선의 경지에서 애착을 이미 여의었다면 즐거움[樂]과 평등함[捨]과 바로 앎[正知]을 얻어 올바른 상응에 머무른다. 이것이 삼선정(三禪定)이다. 삼선의 경지에서 애착을 이미 여의었다면 평등함과 기억함[念]이 상응한다. 이것이 사선정(四禪定)이다. 모든 무색정(無色定) 등의 행상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중에서 모든 반연된 모습을 응하는 대로 분별해서 반연 속에서도 마음을 견고히 하게 한다. 이치대로 짓는 바를 지혜로써 관찰하면 지혜의 광명이 생겨나서 무명의 종자를 깨뜨리고 궁극적으로 단절할 수 있어서 올바르게 상응한다. 이와 다른 것은 모두 외도들이 닦는 것으로 바른 삼마지가 아니라서 번뇌를 끊을 수 없다. - 040_0500_a_04L復次此中次第應修彼諸禪定,謂若得離欲愛所有喜樂,內心淸淨住正相應,有尋有伺是初禪定。又復此中無尋唯伺,名中間禪。初禪地愛若得離已,所有喜樂內心淸淨住正相應,是二禪定。二禪地愛若得離已,樂捨正知住正相應,是三禪定。三禪地愛若得離已,捨念相應,是四禪定。所有無色定等行相應知。是中諸所緣相如應分別,於所緣中令心堅固,如理所作以慧觀察,智光明生破無明種,畢竟得斷卽正相應;異此皆是外道所修,非正三摩地,不能斷煩惱。
- 여러 경에서 설하고 있는 것과 같이 올바르게 삼마지를 닦을 때 만약에 나라는 생각[我想]이 생기면 곧 되돌아서 다시 번뇌를 일으킨다. 이때에는 마음의 움직임을 그친 물[止水]과 같이 머물러서 삼마지에 들어가 관행(觀行)과 상응해야 한다.
- 040_0500_a_17L如諸經說,所有正修三摩地時,若我想生,是卽還復發起煩惱。爾時住心當如止水,入三摩地相應觀行。
- 040_0500_b_02L『능가경』에서 설한 것을 총체적으로 간략하게 말하면, “바른 지혜의 관행[正慧觀行]은 오직 마음만이 고요히 머물러서 밖으로 분별이 없다. 만일 진여를 반연한 것에 머무르면 이 마음은 지나가야 하고, 마음이 만약 지나간 후면 그것에 상대할 장애가 없으며, 응당 지나가서 상대할 장애가 없는 가운데 만일 이 대승관(大乘觀)에 상응하여 머무르면, 그것은 깨달음을 발하지 않는 가장 수승한 적정이니, 곧 수승한 무아의 지혜이며 상대할 장애가 없는 관[無對礙觀]이다.”
- 040_0500_a_20L如『楞伽經』說,摠略而言,正慧觀行唯心靜住,外無分別。若住眞如所緣,是心應過。心若過已,彼無對㝵而亦應過。無對㝵中若相應住是大乘觀,彼無發悟最勝寂靜,卽勝無我智無對㝵觀。
- 040_0500_c_02L여기서 뜻하는 것은 여실하게 관찰해서 마음 밖에 반드시 색법의 분별이 없으면, 이것이 곧 최상으로 상응하는 수승한 행이라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식(識)은 색과 어떤 다른 것이 있는가? 혹 다르지 않다면 식 또한 마땅히 상대할 장애가 있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마치 꿈과 같은 상태[分位]에서는 보이는 것이 실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식 밖을 여실하게 자세히 관찰하면 극미량의 색이라도 취할 수 없다.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이 오직 식[唯識]뿐임이 성립하며 다시 그 밖에 일체의 뜻이 있을 수 없다. 오직 마음을 고요히 머물면 밖으로 분별이 없는 것이다. 자세히 관찰하는 중에 색법을 여의었기 때문에 얻는 바의 모습[相]이 있다. 그리고 얻게 되는 것은 필경 얻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색법에서 마땅히 무색(無色)을 관해야 한다. 저 오직 마음뿐이라면 실로 능히 취하는 것[能取]도 없고 또한 취해지는 것[所取]도 없으니, 이러한 두 가지 취하는 성품은 실로 얻을 수 없다. 취하거나 버리는 것을 여의었기 때문에 곧 마음은 둘이 없고, 이와 같이 자세히 관찰하는 것 또한 두 모습이 없다. 진여의 소연(所緣) 속에서 이 마음은 또한 지나가며, 그 취한 모습[所取相] 또한 지나가서 둘은 상대할 장애가 없다. 이 둘이 없는 지혜 중에서 여실한 뜻[如實義]에 머무르면, 오직 마음뿐이라서 지나가고 나면 둘은 상대할 장애가 없으니, 이 지혜는 그 중에서 또한 마땅히 여의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성과 타성(他性) 중 모든 유(有)의 생겨나는 성품이라도 얻을 수 없고, 응하는 대로 자세히 관찰하면 모든 중생의 성품 또한 화합하지 않는다. 혹 취하든 혹 버리든 둘은 참된 성품이 아니므로 모두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일체 사물의 성품은 모든 유(有)의 취착이다. 둘이 없는 지혜 속에서 모두 마땅히 버리고 여의어야 한다. 상대할 장애가 없는 둘 없는 지혜 속에서 이와 같이 머문다면, 곧 일체의 법에 자성이 있지 않음을 여실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곧 능히 가장 높고 참된 성품에 들어가는 것이며, 분별이 없는 삼마지문에 들어가는 것이다. 또 만일 상대할 장애가 없는 둘 없는 지혜 가운데에 상응하여 머무른다면, 이것은 곧 가장 높고 참된 성품 가운데에 머무르는 것이며, 이것이 대승의 안목[大乘見]이다. 이와 같이 또한 가장 높고 참된 성품을 보는 것이니, 가장 높고 참된 성품을 보기 때문에 곧 일체의 법에서 지혜의 눈으로 (空)을 관하고 지혜의 광명 가운데에서 모두를 여실하게 보는 것이다.
- 040_0500_b_04L此中意者,如實觀察心外必無色法分別,是卽最上相應勝行。若爾,識之與色云何有異?或不異者,識亦應有對㝵義耶?不然,如夢分位所見不實,是故識外如實伺察,極微量色取不可得。以不可得故,如是成唯識,無復一切外義可有,唯心靜住外無分別。於伺察中以離色法故,有所得相而爲得者,畢竟無所得,是故於諸色法應觀無色。彼若唯心,無實能取亦無所取,是二取性實不可得。離取捨故卽心無二,如是伺察亦無二相。於眞如所緣中是心亦過,彼所取相亦復過已,二無對㝵,於是無二智中住如實義。所言唯心過已二無對㝵,是智於中而亦應離,是故自性他性中諸有生性而不可得。如應伺察,諸衆生性亦不和合,若取若捨二不實性悉應遠離。當知一切物性諸有取著,於無二智中皆應捨離。於無對㝵無二智中若如是住,卽於一切法如實覺了無有自性,彼卽能入最上實性,入無分別三摩地門。又若於是無對㝵無二智中相應住者,是卽最上實性中住,是大乘見,如是亦見最上實性。以見最上實性故,卽於一切法慧眼觀空,智光明中皆如實見。
- 경에서 설하기를, “어떻게 승의제(勝義諦)를 보는가? 일체의 법은 무견(無見)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도 이와 같다. 말한 바 무견이란 승의락(勝義樂)의 진실한 무견이지 세간의 맹인이나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과는 같지 않다. 그들은 반연(緣)이 빠졌기 때문에, 혹은 뜻을 짓지 않기 때문에 모두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유(有)의 성품인 전도(顚倒)된 종자라서 모두 끊을 수 없다고 하지만, 이는 그렇지 않다. 또한 마치 무상정(無想定)에 들어갔다가 나중에 나올 때에 되돌아서 다시 유(有)의 성품인 취착(取着)과 탐욕 등의 근본적인 번뇌더미들이 생기하여 해탈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유의 성품인 취착과 탐욕 등의 근본번뇌의 행상은 『성이제경(聖二諦經)』 등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한다면 분별이 없는 총지법문(總持法聞)에 들어가서 분별없는 법 가운데 색 등의 모습을 여의는 것이다. 결정적인 지혜로 무색 가운데서 얻을 것이 없음[無所得]과 작의가 없음[無作意]을 관하는 것이 승의락이니, 무상정 등으로 모든 색들의 취착법 속에서 작의(作意)하여 여의는 것과는 같지 않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앞에서 설한 것처럼 모든 색 등에서 작의하여 모습을 여의는 것이다. 만약에 바른 지혜가 없다면 곧 의혹의 종자를 능히 끊을 수 없을 것이니, 비유하자면 세간에 불이 있을 때 모든 물건이 타오르는 것과 같다. 만약에 삿됨을 조복시켜서 그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능히 사념의 한 법을 여읠 수 있겠는가?
- 040_0500_c_08L如諸經說,云何見勝義諦?謂一切法無見。此中如是。所言無見者,是勝意樂眞實無見,非如世間諸生盲者及瞑目人,緣闕故或不作意故而皆不見。彼等有性顚倒種子悉不能斷,此卽不然。又如入無想定,後或出時還復生起有性取著,貪等根本諸煩惱聚而不解脫。所言有性取著貪等根本煩惱行相,如『聖二諦』等經說。若復有言,入無分別摠持法門,無分別法中離色等相,以決定慧於無色中觀無所得亦無作意,是勝義樂。非如無想定等,於諸色等取著法中作意而離。是故當知,如前所說諸色等中作意離相,若無正慧卽不能斷疑惑種子。譬如世間火若存時,諸物燒然。云何能離思之一法?若不調止所有邪。
- 040_0501_a_02L이로 말미암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사마타의 모든 소연(所緣) 중에서 마음이 견고하게 머물러 이치대로 짓고 지혜로써 자세히 관찰하면, 지혜의 광명이 생겨나면서 밝음은 드러나고 어둠은 제거되며 지혜가 생하고 장애가 멸한다. 마치 사람의 두 눈이 양(量)에 따라 차이가 없는 것처럼, 모든 분위(分位)에서 밝게 비추는 것이 차이가 없으니, 지혜의 광명이 나오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광명 속에서는 어둠의 성품이 있지 않다. 밝음과 어두움의 두 법은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삼마지 중에서 어둠의 성품을 여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능히 심일경상(心一境相)에 머물겠는가? 그러므로 만약에 삼마희다(三摩呬多) 중에서 여실하게 깨달아 알면, 능히 한결같이 바른 지혜에 수순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설한 것은 모두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 040_0501_a_02L由此當知,所有奢摩他諸所緣中心住堅固,如理所作以慧伺察智光明生,明現暗除智生障滅。如人二目隨量無差,於諸分位照明無異;智光明出亦復如是。非光明中有冥闇性,明闇二法互相違故。當知三摩地中離冥暗性亦復如是。若不爾者,云何能住心一境相?是故若於三摩呬多中如實了知,卽能一向隨順正慧,此中所說悉不相違。
- 040_0501_b_02L다시 다음으로 삼마희다 속에서 마땅히 지혜로 모든 무색의 모습[無色相]을 관하면, 일체의 법에서 다 얻을 것이 없다. 저 온갖 상응하는 분위(分位)의 모습 중에는 나아갈 바도 없고 깨달음을 발할 것도 없다. 자기에서든 남에게서든 다 성품이 없음을 보면, 성품이 있다고 분별하는 희론의 모습 등 일체가 쉬어 멸한다. 이와 같이 바른 지혜로 모습 없는 성품[無相性]을 관하는 가운데서 상응함을 얻는다. 마음이 있는 분별[有心分別]은 모두 세울 수 없는지라 저 성품도 없고 또한 얻을 수도 없다. 만일 이 중에서 혹 성품이 있어서 볼 수 있다고 말한다면, 이런 견해는 마땅히 그쳐야 한다. 이와 같이 그친 후에 만일 성품이 없다는 분별로 바꾼다면,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설령 성품 있음이 삼시(三時)에 상응한다 하더라도 혜안(慧眼)으로 모습 없음과 얻을 것이 없음[無相無得]을 관한다. 또 어떻게 삿됨을 그치는가? 여실한 뜻[如實義]이란 성품이 있음과 성품이 없음을 마땅히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동일한 성품과 다른 성품 또한 분별할 수 없다. 이 가운데에서 만일 성품과 성품 없음의 두 분별을 여읜다면, 능히 모든 분별이 공(空)임을 비추어 통달할 것이라서 저 능히 비춤[能照]과 비추어지는 것[所照]의 성품 또한 있지 않으니, 이와 같아야 비로소 가장 높고 가장 수승한 분별 없는 상응을 얻는다. 이 중에 이와 같은 상응에 머무른다면, 곧 일체의 분별은 모두 능히 끊어져 멸할 것이다. 모든 번뇌의 장애와 지혜에 대한 장애도 또한 능히 끊어지는데, 저 번뇌장의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성품 중에서 성품 등 전도된 근본이 모두 제거된다.
- 040_0501_a_12L復次三摩呬多中,應以慧觀都無色相,於一切法悉無所得。彼諸相應分位相中,無所進趣、無所發悟,若自若他悉見無性,有性分別戲論相等一切息滅。如是卽於正慧所觀無相性中而得相應,有心分別悉不能立,卽彼無性亦不可得。若於是中或謂有性而可見者,是見應止。如是止已,若於無性分別轉者,此亦不然。設使有性三時相應,以慧眼觀無相無得,又何止邪?如實義者,有性無性不應分別,一性異性亦不可分別。是中若離性與無性二分別者,悉能照達諸分別空,卽彼能照及所照性亦無所有,如是乃得最上最勝無分別相應。此中若住如是相應,卽一切分別悉能斷滅,所有煩惱障智障而亦能斷。於彼煩惱障不生不滅性中,而性等顚倒根本悉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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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제경(聖二諦經)』 등에서 설하였다.
“이와 같은 상응의 행 속에서 일체의 성품 등의 분별이 끊어진 후에 성품 등의 전도(顚倒)가 두루 다하여 무명의 자성과 번뇌장의 근본이 즉시 끊어지며, 그 근본이 끊어진 후에는 모든 번뇌의 장애도 다 능히 끊을 수 있다.” - 040_0501_b_08L如『聖二諦』等經說,如是相應行中,一切性等分別斷已普盡,性等顚倒無明自性、煩惱障根本卽斷。彼根本斷已,諸煩惱障而悉能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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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_0501_c_02L또한 『성이제경』에서 설하였다.
“묘길상보살에게 물었다. ‘어떻게 능히 번뇌를 조복시킬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능히 번뇌를 깨달아 알 수 있습니까?’ 묘길상보살이 말하였다. ‘승의제 중에서는 필경 생하지 않는다. 그러한 일체법의 생하지 않는 성품 가운데에서 세속의 모든 것은 실답지 않은 전도이다. 마땅히 일체의 성품 등에 일으킨 전도된 사유분별을 그쳐 쉬어야 한다. 만약에 저 사유분별을 그쳐 쉬지 않으면, 곧 아공상(我共相:我로 비롯하는 공상)이 있게 되는데, 아공상이 있으면 곧 모든 견해가 일어나 성립된다. 만약에 견해가 일어나 성립되면 곧 번뇌가 굴러간다. 만약 천자(天子)가 능히 승의제 중에서 일체의 법이 필경 생함이 없음을 깨달아 알면, 곧 승의제의 열 가지 종류의 전도 없음을 갖추게 된다. 만일에 승의제 중에서 전도가 없으면 곧 분별이 없게 되고, 분별이 없으면 소멸의 상응[滅相應]을 얻게 되고, 소멸이 상응하면 아공상은 곧 얻을 수가 없고, 아공상이 이미 얻을 수 없다면 저 견해들은 능히 일어나 성립될 수 없으며, 나아가 승의제 중에 열반의 견해 또한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이와 같으므로 무생(無生)의 행(行) 중에서 일체의 번뇌가 필경 조복된다. 천자는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모든 번뇌는 승의제의 장애 없는 지혜[無礙智] 중에서는 필경 공(空)이며, 필경 모습이 없으며[無相], 필경 성품이 없다[無性]. 이와 같이 아는 자가 번뇌를 깨달아 아는 것이다. 천자여, 비유하자면 독사가 주술로 해로움을 입는 것처럼 저 번뇌의 종자 또한 마찬가지다.’ 천자가 또한 물었다. ‘무엇이 번뇌의 종자입니까?’ ‘묘길상이 천자에게 말하였다. ‘승의제의 필경 생함이 없는 성품 중에서 만약 일체의 법에 분별이 일어날 때라면, 이것이 곧 모든 번뇌의 종자가 된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성품 등의 전도가 일어나며, 전도 중에서는 능히 비추어 통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만약에 끊는 법[所斷法] 중에서 일체의 전도를 모두 능히 끊는다면, 모든 지혜의 장애는 능히 바르게 결정되어서 다 제거되어 버린다. 지혜의 장애가 끊어지고 나면 상속의 성품은 없어진다. 비유하자면 햇빛이 비치면 구름들의 가림이 사라지면서 모든 곳을 밝게 비추어 장애가 없는 것처럼 저 지혜의 광명도 청정하고 밝게 비추는 것이다. 색이든 마음이든 일체의 자성도 또한 이와 같다. 모든 사물의 참된 성품은 결정코 상속이 없는 성품 중에서 상주하니, 진실하게 일체 사물의 성품의 여실한 뜻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이 중에서 사물의 성품을 어떻게 말로써 설하여 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 승의(勝義)와 세속제(世俗諦) 가운데에서 여여하게 설한 바이니, 일체의 색상(色相)과 모든 사물의 성품을 여실하게 깨달아 안 후에 곧 일체지(一切智)를 얻는다. 이와 같이 설한 바의 장애를 끊는 뜻은 일체지의 가장 높고 수승한 도를 증득하는 것이니, 그것은 성문 등의 도가 아니다. 성문 등의 도로는 모든 전도를 능히 다 제거할 수 없고, 또한 다시 바르게 두 가지 장애를 끊을 수 없다.’” - 040_0501_b_12L又如『聖二諦經』中,問妙吉祥菩薩言:云何能得煩惱調伏?云何而能了知煩惱?妙吉祥言:勝義諦中畢竟不生。彼一切法無生性中,世俗皆是不實顚倒,應當止息一切性等所起顚倒思惟分別。若彼思惟分別不止息者卽有我共相,旣有我共相卽起立諸見,若見起立卽煩惱轉。天子!若能了知勝義諦中一切法畢竟無生,卽勝義諦具十種無顚倒。若勝義諦中無顚倒卽無分別,若無分別得滅相應,若滅相應彼我共相卽不能得,若我共相旣不能得,而彼諸見不能起立,乃至勝義諦中涅槃之見亦復不起。由如是故,卽於無生行中一切煩惱畢竟調伏。天子當知,諸煩惱於勝義諦無㝵智中畢竟空、畢竟無相、畢竟無性。如是知者,是爲了知煩惱。天子!譬如毒蛇爲呪所害,彼煩惱種亦復如是。天子又問:云何爲煩惱種?妙吉祥言:天子!彼勝義諦畢竟無生性中,若於一切法起分別時,此卽是爲諸煩惱種,由是起諸性等顚倒,於顚倒中不能照達。是故若於所斷法中一切顚倒悉能斷者,所有智障能正決定而悉除遣,智障斷已無相續性。譬如日光出時離諸雲翳,於一切處照明無㝵。而彼智光淸淨照明,若色若心一切自性亦復如是。諸物實性決定常住,於無相續性中眞實了知一切物性如實義者。此中物性,云何能以言詞宣說?是故於彼勝義、世俗諦中如如所說,如實了知一切色相及諸物性已,卽得一切智。如是所說斷障等義,是證一切智最上勝道。非彼聲聞等道,彼諸顚倒不能盡除,亦復不能正斷二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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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가경』에서 설하였다.
“대혜여, 저 성문인은 따로 다른 원인을 일으켜서 머물러 집착하는 바가 있다. 그는 법을 보고서 열반을 취하여 스스로 부처를 얻었다고 하지만 능히 법무아(法無我)의 도리는 보지 못하고 있다. 대혜여, 이것은 해탈이 아니다. 이와 같이 성문인은 자신의 지혜로 증득한 것이 아직 참된 출리(出離:미망의 세계에서 벗어 나옴)가 아닌데도 출리를 얻었다고 말한다. 다른 견해가 구르기 때문에 그가 지은 것은 이것과 상응하지 않으며 그가 행한 도는 참된 해탈이 아니다. 세존께서는 단지 일승(一乘)의 법을 설하셨을 뿐 성문 등의 도는 설하지 않았다. 저 성문인은 단지 온(蘊) 속에서 무아를 관찰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얻은 것은 인무아(人無我)이다. 여기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마땅히 삼계의 일체가 오직 식(識)뿐임을 관해야 한다. 만약에 식 밖에 어떤 뜻이 무아를 얻는다고 말한다면, 이와 같은 것은 곧 둘이 없는 지혜의 무아 속에 들어갈 수 없다. 다른 성품[他性]으로써 들어갔기 때문이다. 만약에 다른 성품으로 들어갔다면, 그것은 곧 오직 식뿐인 성품[唯識性]에 들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040_0502_a_03L如『楞伽經』說:大慧!彼聲聞人起別異因有所住著,彼見法已取爲涅槃自謂得佛,而不能見法無我理。大慧!此非解脫。如是聲聞人自智所證未眞出離,謂得出離,異見轉故。而彼所作非此相應,彼所行道非眞解脫。世尊但說一乘之法,不說聲聞等道。彼聲聞人但於蘊中觀察無我,而彼所得謂人無我。此中不然,應觀三界一切唯識。若說識外有義得無我者,如是卽於無二智無我中而不得入,以他性得入故。若他性得入者,彼卽非入唯識性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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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경의 「성출세품(聖出世品)』에서 설하였다.
“다시 다음으로 불자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삼계는 오직 마음이 나툰 것이며, 이 마음은 또한 중(中)과 변(邊)이 없어야 얻을 수 있다. 만약에 변(邊)이 있다고 말하면 곧 생하는 것이 있고, 중(中)이 있다고 말하면 곧 머무르는 것이 있다. 일체 모두가 분별의 모습이므로 만일 마음에 중과 변이 없으면 능히 저 둘이 없는 지혜에 들어갈 수 있으니, 이와 같이 들어가는 것이 진실로 들어가는 것이다. - 040_0502_a_16L又如此經「聖出世品」中說:復次佛子當知三界唯心,所現是心,亦無中邊可得。若言有邊卽有所生,若言有中卽有所住,一切皆是分別相故。若心無中邊,是故能入彼無二智,如是入者是眞實入。
- 040_0502_b_02L 이 중에 어떤 사람이 물었다. ‘만약에 그렇다면 모든 상응하는 분위(分位)는 마땅히 어떻게 생하는가?’ 답하여 말하길, ‘그것은 청정하고 수승한 원력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보살은 대비를 발하여서 두루 중생을 위하여 이로운 일을 짓는다. 그 원력으로부터 수승하고 높은 모든 보시 등의 명백한 선행이 생겨 나온다. 그것은 곧 진실하고 청정함에서 나온 것이며 또한 보살의 대비이다. 만일 일체의 중생이 아직 모든 법의 성품 없는 청정한 지혜에 다 들어가지 않았다면, 보살은 윤회에 따라 들어가긴 하지만 다시 윤회의 과오에 물들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 저 깨달음을 일으키지 않는 적정한 법 가운데에 머무르겠는가? 경의 게송에서 말하고 있다.
- 040_0502_a_22L此中有問:若如是者,諸相應分位當云何生?荅:由彼淸淨勝願力故,菩薩發起大悲,普爲衆生作利益事。從彼願力,出生勝上諸布施等明白善行,彼卽眞實淸淨所生。又復菩薩大悲,若一切衆生未能盡入諸法無性淸淨智中,菩薩乃至隨入輪迴,亦復不染輪迴過失,而豈住於彼無發悟寂靜法中。如經頌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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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장애가 없는 가운데에서 보는 것이
가장 수승한 무아의 지혜이도다. -
040_0502_b_08L無對㝵中見,
最勝無我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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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만일 둘이 없는 모습 가운데에서 둘이 없는 언어를 설한다면, 이것이 가장 수승한 것이니 곧 승의제 중에 참된 승의락(勝意樂)이다. 둘이 없고 상대의 장애가 없는 지혜 속에서는 필경 무아이며 자성이 있지 않아서 즉각 보는 바와 상응함을 얻는다. 저 봄[見] 있는 것은 따로 달리 봄은 없는 것이니, 일체에 분별이 없고 깨달음을 일으키지 않고 일체가 적정하다.’ 또한 묻기를, ‘만약에 그렇다면 어떻게 능히 모든 상응하는 행을 일으키겠는가?’ 답하기를, ‘그렇지 않다. 혹시 저 실다움을 보는 일이 있다면 승의를 수순할 수 없다. 무슨 까닭인가? 이 중에는 주재(主宰)가 자재(自在)하게 상응하는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봄이 있는가? 다만 세속의 법 중에서 색 등의 경계에 수순하는 모습뿐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지혜가 생기하면 식(識) 또한 세간에서 행한 바를 수순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저 지혜라는 걸 알아야 한다. 지혜 가운데에 그윽이 회통함(冥會)은 본 바가 있음을 말하지만, 또한 실제로 주재 등의 모습은 있지 않다. 만약에 둘 없는 상대의 장애가 없는 지혜가 생기할 때면, 여실하게 깨달음을 열어야 비로소 능히 이 지혜 가운데에서 여실하게 봄[如實見]을 얻는다. 일체의 법이 승의제 중에서는 자성이 있지 않으나 세속제는 결정코 상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이것과 달리 설한다면, 이것은 모든 중생들의 좁고 낮은 지혜이다.’” - 040_0502_b_09L是故若於無二相中說無二語,是爲最勝,卽勝義諦中眞勝意樂。於無二無對㝵智中,畢竟無我無有自性,卽得所見相應。彼所有見無別異見,一切無分別及無發悟、一切寂靜。又問:若爾,云何能起諸相應行?荅:不然;若或有見:彼實不能隨順勝義。何以故?是中無有主宰自在相應相故,而何有見?但以世俗法中隨順色等境界相故,若智生起,識亦隨順世間所行。是故應知此彼智者,智中冥會說有所見,且非實有主宰等相。若無二無對㝵智生起時,如實開曉,乃能於是智中得如實見。非謂一切法於勝義諦中無有自性,而世俗諦決定相應。若異此說,是諸異生狹劣之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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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_0502_c_02L『성이제경』에서 설하였다.
“승의제 중에서는 필경 성품이 없으니, 세속의 도에서도 그대로 따라서 관해야 한다. 만일 이것과 달리 한다면, 저 어리석은 범부 중생과 성문과 연각과 보살과 부처 등의 모든 분위(分位)가 어찌 성립한다고 말하겠는가? 말하자면 세속은 인이 없기 때문이며, 세속은 생함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것은 그렇지 않으니, 세속의 도(道)에서는 따라서 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승의제에서는 실로 생하는 바가 없으니, 승의제에서 만일 얻는 바가 있다면 마치 토끼의 뿔 등과 같은 것이다. 모든 세속의 법은 허깨비 같으며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 등과 같다. 이와 같음을 말미암기 때문에 세속의 반연하여 생함은 승의제와 함께 하는데, 이 가운데서 사물의 성품은 화합하지 않음이 없다. 저 살피고 생각하고 관찰함은 고쳐서 바꾸는 성품[改轉性]이 없으니, 이 가운데서도 마찬가지로 세간의 일체가 허깨비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번뇌의 업은 곧 허깨비의 원인이고, 중생들의 계속 생함은 곧 허깨비가 구르는 것이다. 복과 지혜에 상응하는 모든 행들도 또한 허깨비의 원인이니, 이와 같이 상응하는 지혜는 곧 허깨비 가운데 구르는 것이다.” - 040_0502_c_02L如『聖二諦經』說:勝義諦中畢竟無性,世俗道中隨亦應觀。若異此者,彼愚夫異生、聲聞、緣覺、菩薩及佛等諸分位,當云何立?謂世俗無因故、世俗無生故。今此不然,世俗道中隨應觀故,於勝義諦實無所生。勝義諦中若有所得,如兔角等。諸世俗法,如幻如影及如響等。由如是故,世俗緣生與勝義諦,是中物性非不和合。彼審思察無改轉性,此中如是。當知世間一切如幻,諸煩惱業卽是幻因,諸衆生生卽是幻轉;所有相應福智諸行亦是幻因,如是相應智卽於幻中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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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바라밀다경』에서 설하였다.
“수보리야, 모든 성문은 변화신과 같고[如化], 연각은 변화신과 같고, 보살은 변화신과 같고, 여래는 변화신과 같다. 번뇌는 변화신과 같고, 업은 변화신과 같다. 수보리야, 이러한 연고로 일체의 법이 변화신과 같다. 이와 같은 것들의 차별된 모든 행과 중생 등은 모두 허깨비의 모습과 같다. 저 허깨비 가운데서 요달해 아는 듯한 것은 모두 실제로는 취착하지 못한다.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알면 이것이 바로 상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이라 집착하고 취착하면 곧 어리석은 범부 중생이다.”
이와 같이 설한 것은 참으로 서로 어긋남이 없다. - 040_0502_c_15L如『般若波羅蜜多經』說:須菩提!所有聲聞如化、緣覺如化、菩薩如化、如來如化,煩惱如化、業如化。須菩提!以是緣故,一切法如化。此如是等差別諸行及異生等,皆如幻相。於彼幻中如所了知,皆是不實取著。若能如是知,是卽相應者。若執實取著,卽愚夫異生。如是所說,實不相違。
- 『성법집경(聖法集經)』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 040_0502_c_23L如『聖法集經』頌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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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_0503_a_02L
허깨비처럼 지은 일들이여,
변화신으로부터 해탈을 일으키도다.
이것은 앞에서 요달해 알았듯이
변화신 중에서는 취착함이 있지 않도다. -
040_0502_c_24L如幻所作事,
從化起解脫,
此如前了知,
非化中有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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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유(三有)를 설하여 변화신과 같음을
부처님과 보살님께서는 모두 아시니
알고서는 수승한 갑옷을 입으시고
세간의 이익을 지으시네. -
040_0503_a_03L說三有如化,
佛菩薩悉知,
知已被勝鎧,
作世間利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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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것들의 온갖 행(行) 중에서 마땅히 참된 성품을 관하여야 한다. 앞에서 설한 것과 같이 사마타 중에서 만약 밑으로 가라앉는 마음[沈下], 높이 들뜨는 마음[高擧心] 등이 일어날 때에는 마땅히 일체의 법은 모두 자성이 없다고 관해야 한다. 이때 높고 낮음의 작의지(作意智)를 마땅히 여의어야 성취함을 얻는다. 저 사마타와 비발사나(毘鉢舍那)의 상응하는 행이 행하는 도는 즉각 구족함을 얻고 나아가 능히 신해력(信解力) 등을 일으켜서 해행지(解行地)에 머무른다. 관을 행한 후에 욕망이 일어날 때에는 되돌아서 다시 승의제 중에는 자성이 있지 않음을 사유한다. 세속제도 또한 이와 같이 머무른다. - 040_0503_a_05L如是等諸所行中,應觀實性。如前所說奢摩他中,若沈下、高擧心等起時,應觀一切法皆無自性。爾時應離高下作意,智得成就。彼奢摩他、毘鉢舍那相應行者所行之道,卽得具足,乃至能起信解力等住解行地。觀後欲起時,還復思惟勝義諦中無有自性。彼世俗諦亦如是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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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_0503_b_02L『보운경(寶雲經)』에서 설하였다.
“보살은 어떻게 무아의 이치를 얻는가? 선남자여! 보살은 마땅히 바른 지혜로써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을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관찰할 때에 이 색의 생함은 얻을 수 없으며, 모임도 얻을 수 없으며 멸함도 얻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수ㆍ상ㆍ행ㆍ식의 생함[生]이나 모임[集]이나 멸함[滅] 모두 얻을 수 없다. 저 승의제 중에서 생함이 없는 행[無生行]을 깨달아 안 후에 혜관찰(慧觀察)을 일으키면 다시 행한 바에서 취착함이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자를 말미암으면, 이처럼 자성이 없는 가운데 성품이 있다고 집착해서 전도되어 취착한다. 그러므로 생사의 순환은 다함이 없으며 온갖 고통을 현실로 받음은 휴식이 없다. 보살의 대비는 이와 같이 항상 일어나니, 간단없는 사념으로 현전(現前)을 짓고 연민의 이익으로 수승한 원행(願行)을 일으킨다. 내가 행한 대로 따르면 일체지(一切智)를 얻어서 이 법성을 여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런 연후에 일체의 부처님과 보살님들께 공양과 칭송을 올리고, 지은 바를 이루고 나서는 공(空)의 비장(悲藏)으로부터 일체의 보시 등의 복행(福行)을 발생하는 것이다.” - 040_0503_a_13L如『寶雲經』說:菩薩云何得無我理?善男子!菩薩應以正智觀察色受想行識。彼觀察時,是色生不可得、集不可得、滅不可得,如是受想行識,若生若集若滅皆不可得。彼勝義諦中了知無生行已,起慧觀察,不復所行而有取著。由是愚無智者,於如是等無自性中執爲有性、顚倒取著,是故生死循環無盡,現受衆苦無有休息。菩薩大悲,如是常起無間思念、現前爲作,悲愍利益發勝願行,如我所行。隨得一切智已,於是法性如實覺了,然後於一切佛菩薩等供養稱讚。成所作已,從空悲藏發生一切施等福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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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법집경』에서 설하였다.
“만일 보살로서 여실하게 드러내 보이는 자라면, 말하자면 일체 중생 속에서 대비로 전전한다. ‘나는 이 삼마지의 즐거움을 일체의 법 가운데에 여실하게 드러내 보이니 일체 중생에게 지어서 이루는 것이다. 이 대비가 개발됨으로 말미암아 곧 증상의 계(戒)ㆍ정(定)ㆍ혜(慧) 등 모든 학문이 원만함을 얻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한다. 여기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지혜와 방편은 모든 보살들이 행하는 수승한 도에 상응하니, 세속제를 끊지 않고 승의제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만일에 세속을 끊지 않는다고 한다면 곧 능히 대비로써 선도하는 것이다. 중생을 위하여 훌륭히 이로운 일을 짓고 전도됨을 멀리 여의니, 이것을 출세간의 지혜를 능히 훌륭하게 건립한다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야 방편을 순조롭게 행하게 되어서 온갖 방편이 행해지는 때에도 허깨비와 같은 모습임을 요달해서 또한 전도되지 않는다. 출세간의 지혜로써[出世智] 가장 수승한 방편을 여여하게 잘 닦아야 능히 진실한 말 가운데서 용맹하고 굳센 뜻을 일으키며 수승한 지혜를 낳는다. 보살은 이 혜방편(慧方便)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소행(所行)의 수승한 도(道)에 머물면서 상응한다. - 040_0503_b_04L如『聖法集經』說;若諸菩薩如實顯示者,謂於一切衆生中以大悲轉我此三摩地樂,一切法中如實顯示,一切衆生爲作所成。由是大悲所開發時,卽得增上戒定慧等諸學圓滿,成就阿耨多羅三藐三菩提。此中應知,慧及方便是諸菩薩所行相應勝道,不斷世俗諦、顯示勝義諦。若不斷世俗,卽能以大悲而爲先導,善爲衆生作利益事、遠離顚倒。彼卽名爲善能建立出世間慧。由此乃爲順行方便。於諸方便所行時中,了如幻相亦不顚倒,以出世智如如善修最勝方便,能於眞實句義之中發勇悍意出生勝慧。菩薩得是慧方便已,乃住相應所行勝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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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의경(無盡意經)』에서 말하였다.
“선정이 다함없어야 능히 지혜와 방편을 낳을 수 있다. 그 낳은 것이 바로 행자(行者)가 행하는 수승한 도(道)에 상응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
040_0503_b_20L如『無盡意經』說:禪定無盡,而能出生慧及方便。其所出生,應知卽是相應行者所行勝道。
廣釋菩提心論 卷第三
丁未歲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