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宗鏡錄卷第九十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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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_0528_c_01L종경록 제99권


연수 지음
송성수 번역


저 논(論)을 짓고 경을 해석하여 옆에서 부처님 뜻을 펴는 것은 혹은 법신인 대사(大士)가 자취[迹]를 드리워 교화 돕는 문[助化之門]을 천양하기도 하고 혹은 종지를 얻은 높은 사람이 교(敎)에 의지하여 법 보시의 도[法施之道]를 넓히기도 하는 것이니, 의(義)ㆍ소(疏)ㆍ장(章)ㆍ초(鈔)ㆍ명(詺)ㆍ결(訣)ㆍ찬(讚)ㆍ서(序) 등과 종경(宗鏡)과 상응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인용하여 증명해야 한다.
그러므로, 중생의 언론은 모두가 법계에서 유행하는 바요, 외도의 경서(經書)는 모든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신 바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 이르되, “법을 논하고 부처에 들어가는 마음 속에는 하나의 적멸(寂滅)일 뿐이어서 하나의 3매문(昧門)이 한량없는 삼매를 포섭함은, 마치 옷의 한 귀퉁이를 끌어당기면 옷 전체를 얻게 됨과 같고 또한 꿀벌의 왕봉(王蜂)을 얻으면 그 밖의 벌도 다 따라 옴과 같다”고 했다.
또 게송에서 말했다.

불법에선 모양이 비록 ≺공≻하나
아주 없어진 것 또한 아니다
비록 생기나 항상한 것 아니니
모든 행의 업은 상실되지 아니한다.

모든 법은 마치 파초(芭蕉)와 같고
온갖 것은 마음으로부터 생긴다
법에 진실함이 없음을 알면
그 마음도 다시 ≺공≻하느니라.

비바사론(毘婆沙論)에 이르되, “선각 장자(善覺長者)가 나가(那伽)를 위해 4위타전(韋陁典)을 말하면서 이르기를, ‘만일 사람의 마음이 나는데도 일어나지 않거나 사람의 마음이 일어나는데도 소멸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일어나면서도 일어나고 마음이 소멸하면서도 소멸한다’”고 했다.
또 이르되, “만일 처음의 발심을 여의면 위없는 도를 이루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온갖 공덕은 모두가 첫 마음에 있다’”고 했다.
대승섭론(大乘攝論)에 이르되, “물었다. ‘무슨 까닭에, 이 식(識)이 경계가 됨을 알라고 하는가.’ 대답했다. ‘법으로서 능히 취하는 그 밖의 법은 없나니, 비록 이 식을 능히 취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변화로 생겨 나타남은 마치 티끌과 같다. 비유하면, 얼굴에 의지하여 얼굴을 보면서 ≺내가 영상을 본다≻고 말함과 같나니, 이 영상에 나타난 것은 서로가 비슷한 다른 얼굴이다”고 했다.
현양론(顯揚論)에 이르되, ‘의지할 바[所依]와 반연할 바[所緣]의 힘으로 말미암아서 건립되게 된다. 의지할 바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안식(眼識)에서부터 의식(意識)까지를 세우는 것이요, 반연할 바 힘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색식(色識)으로부터 법식(法識)까지와 청식(靑識)과 황식(黃識)으로부터 고식(苦識)과 낙식(樂識)까지를 세우는 것이다’고 했다.
발보리심론(發菩提心論)에 이르되, “과거는 이미 소멸되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현재는 머무르지 아니한다. 비록 이와 같이 심심수법(心心數法)이 생기고 소멸하고 흩어지고 무너진다고 관(觀)한다 할지라도 언제나 착한 뿌리를 쌓아서 보리(菩提)를 돕는 법을 버리지 않는 이것을 보살이 삼세를 관하는 방편이라고 한다”고 했다.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에 이르되, “계경(契經) 등과 같은 법은 이치대로 뜻을 지어 3마지(摩地)를 내는 것이니, 선정의 마음에 의지하여 선정 안에서 알 바의 영상(影像)을 생각하고 이 영상을 관하여 선정의 마음과 달라지지 아니하며, 이 영상에 의지하여 바깥 경계의 생각을 버리면서 선정만으로 자기 생각의 영상을 관한다.
그때에, 보살은 모든 법이 자기 마음일 뿐임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안에서 그 마음에 머물러 온갖 종류의 취할 바의 경계는 모두가 아무 것도 없는 줄 아나니, 취할 바가 없기 때문에 온갖 능히 취하는 것도 진실이 아니다.
그러므로 다음에는 능히 취함도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며, 다음에는 또 얻을 바를 떠나서 두 가지 제 성품으로 얻을 바 없음을 얻나니, 이런 도리에 의지하여 부처님ㆍ박가범(薄伽梵)은 오묘하게 잘 선설하는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설했다.

보살은 고요한 선정에 의지하여
마음에서 나타나는 영상을 관하나니
바깥 대경의 생각을 버리고
선정만으로 자기 생각을 관한다.

이러하면 안에서는 마음이 편안하고
취할 바가 있는 것이 아님을 아나니
다음에는 능히 취함의 ≺공≻을 관하고
나중에는 접촉하는 둘에도 얻을 것 없다.

의지함[依]이란 전의(轉依)를 말하는 것으로서, 온갖 추중(麤重)을 버리고 떠나 청정한 전의를 얻기 때문이다.
12문론(門論)의 게송에서 말했다.

뭇 인연으로 생기게 되는 법은
이는 곧 제 성품이 없는 것이니
만약 제 성품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법이 있다고 하겠는가.

해석하여 보자. 만법은 마음으로부터 생긴 바라 모두가 자성이 없다. 의지할 바[所依] 마음조차도 ≺공≻이거니 능히 의지함[能依]의 법이 어찌 있겠는가.
입대승론(入大乘論)에 이르되, 만일 중생을 여읜다면 보리의 도를 얻을 이도 없으리니, 중생계로부터 모든 부처님의 보리가 얻어지기 때문이다. 마치 존자 용수(龍樹)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과 같다.

허공으로부터 나오지도 아니하고
땅의 종자에서 생긴 것도 아니다
다만 번뇌 속에서
보리를 증득하여 이룰 뿐이니라.

그러므로, 마음으로부터 도를 증득하고 다른 인연을 빌리지도 아니하며 스승 없는 지혜와 저절로의 지혜를 이루게 되는 줄 알 것이다.
구사론(俱舍論)에 이르되, “눈이 실제로 보는 것을 볼바[所見]라고 하고, 다른 이로부터 전하여 듣는 것을 들을 바[所聞]라 하며, 자기 마음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각들을 깨달을 바[所覺]라 하고, 자기가 안에서 느끼는 바와 스스로가 증득한 바를 알 바[所知]라고 한다”고 했다.
불지론(佛地論)에 이르되, “현재 보이는 허공에서 비록 갖가지의 물질 모양과 상응한다 하더라도 모든 물질의 갖가지 모양은 없나니, 마치 연기와 안개 등이 함께 응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때로는 허공에 갖가지 모양이 있음을 보나 허망한 분별의 힘 때문이며, 그리고 마음이 청정한 법계는 명언(名言)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온갖 명언은 모두가 분별이 일어난 경계가 된다.
그러나, 모든 법교(法敎)는 역시 헛되이 버려지지 않나니, 이것은 법계를 증득하는 차츰차츰의 인연이기 때문이다. 마치 글자로 써 놓은 것을 보고 말하고자 하는 이치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법교는 바로 모든 여래의 대비가 흐른 것이다. 차츰차츰의 설은 언설을 여의는 이치인 것이니, 마치 여러 가지 채색으로 허공을 그리면 아주 회유한 것과 같다. 만일 언설로써 언설 여의는 이치를 말한다면 다시 그것보다 더 뛰어나리라”고 했다.
반야론(般若論)에 이르되, ‘수보리(須菩提)가 말하였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은 없다. 그 뜻은 무엇인가 하면, 여래 혼자만의 말씀이요 그 밖의 부처님은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하는 하나의 법도 없어서이니,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은 옛 부처님들의 가르침을 전하여 진술한 것일 뿐이요 스스로 지어서 하신 것이 아니다‘”고 했다.
해석하여 보자.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이 법은 과거 부처님이 이미 말씀하셨고, 지금의 부처님이 현재 말씀하시고, 미래의 부처님이 장차 말씀하실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한 부처님이 말씀하실 때는 10방의 부처님들께서 같이 증명하시며, 지혜와 국토ㆍ진리ㆍ세속 등의 법과 범부ㆍ성인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일하여 둘이 없나니, 한 가지인 한 마음일 뿐이다. 그와 다른 뜻은 없다.
마치 화엄경(華嚴經) 불불사의품(佛不思議品)에 이르되, “불자야, 모든 부처님ㆍ세존께는 열 가지 둘이 없는 행의 자재한 법이 있다. 무엇이 열 가지냐 하면, 이른바 모든 부처님들은 수기(授記)의 언사를 잘 말씀하시나니 결정코 둘이 없느니라. 모든 부처님들은 중생들의 생각을 따르면서 그들의 뜻을 만족하게 하시나니 결정코 둘이 없느니라. 모든 부처님들은 실제로 온갖 법을 깨달아서 그 이치를 연설하시나니 결정코 둘이 없느니라. 모든 부처님들은 과거와 미래와 지금 세상의 모든 부처님의 지혜를 갖고 계시나니 결정코 둘이 없느니라.
모든 부처님들은 삼세의 온갖 찰나가 곧 한 찰나임을 아시나니 결정코 둘이 없느니라. 모든 부처님들은 삼세의 온갖 부처님 세계가 한 부처님 세계에 들었음을 아시나니 결정코 둘이 없느니라. 모든 부처님들은 삼세의 온갖 부처님 말씀이 곧 한 부처님 말씀임을 아시나니 결정코 둘이 없느니라. 모든 부처님들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과 교화할 것인 모든 중생의 체성이 평등함을 아시나니 결정코 둘이 없느니라. 모든 부처님들은 세간의 법과 모든 불법의 성품에는 차별이 없음을 아시나니 결정코 둘이 없느니라. 모든 부처님들은 삼세의 부처님들이 지닌 착한 뿌리와 동일한 착한 뿌리임을 아시나니 결정코 둘이 없느니라. 이것이 열 가지니라”고 하심과 같다.
또 신심명(信心銘)에서 말했다.

반드시 생각과 상응해야 하며
둘이 아니라고 말할 뿐이니
견고한 믿음을 이룰 수 있어야
조그마한 의심가지 영원히 끊어진다.

곧 종경(宗鏡)의 글은 광명을 전하되 썩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광백론(廣百論)에 이르되, “깨달음과 지혜 등의 모든 심심법(心心法)은 실제의 존재[實有]를 따라 모든 법이 바뀐 것이 아니고 다만 익힌 습기에 따라 종자와 심소(心所)에서 나타나는 뭇 인연의 세력을 성숙시키고 변화시켜서 갖가지 경계의 차별을 내게 할 뿐이다.
외도들은 자기의 마음을 따라 변화하여 갖가지 모든 법의 성품[性]과 모양[相]을 내지만, 만일 법의 성품과 모양이 실로 존재한 것이라면 어찌 이렇게 마음을 따라 변화할 수가 있겠는가.
지혜로운 이들은 현재에 진실한 법이 있어서 생긴다고 하는 그의 집착을 인정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반드시 과거ㆍ미래의 두 세상으로부터도 아니고 제3의 어디서도 생길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소멸은 반드시 생김을 따르나 생김이 벌써 있는 것이 아니라면 소멸 또한 결정코 없다. 삼세의 행(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상대로 성립되는 것이니, 마치 길고 짧음 따위에 어찌 진실한 성품이 있겠는가”고 했다.
또 게송에서 말했다.

눈 가운데는 빛깔의 식(識)이 없고
식 가운데는 빛깔의 눈이 없다
빛깔 안에는 둘 모두 없나니
어찌하여 빛깔을 보게 할 수 있겠는가.

의타기성(依他起性)이 곧 심심법이니, 인연으로 생길 때에는 변하여 갖가지 모양과 이름 등의 대경과 비슷해진다. 심심법은 있되 마음 밖에 집착할 만한 모든 대경은 없을 뿐이라고 알아야 하거늘, 어떻게 결정코 알겠는가. 모든 법은 유식(唯識)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선현(善現)에게 말씀하시기를, “털끝만큼의 것도 실물로서 의지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하셨다.
보장론(寶藏論)에 이르되, “무릇 천지와 우주 사이에 하나의 보배가 있으니, 형산(形山)에 감추어져 있다. 물건을 알며 신령하게 비추되 안팎이 텅 비었고 고요하여 보기 어렵다. 그것을 현묘하고도 현묘함[玄玄]이라고 한다. 교묘함은 자미(紫微)의 곁을 나왔고 작용은 허무(虛無)의 사이에 있으며 끝은 변화하되 움찍하지도 않고 혼자면서 둘이 없으며 소리는 묘한 음향을 내고 빛깔은 아름다운 용모를 토하며 궁구하여 살펴보면 붙일 데가 없으므로 이름하여 공공(空空)이라고 한다. 그 소리만이 머무를 뿐 그 형상은 보이지 아니하고 그 공(功)만이 머무를 뿐 그 모습은 보이지 아니한다. 그윽히 드러나면서 밝게 비추고 물건의 이치는 현묘하게 통하니 삼라(森羅)의 보배 도장이요 만상(萬像)의 참된 종(宗)이다.
그 보배에 이르러서는, 번쩍번쩍 빛나면서 시방을 밝게 비추고 고요히 숨어서 물건은 없되 뚜렷이 응(應)하고 당당하다. 소리에 응하고 빛깔에 응하고 음(陰)에 응하고 양(陽)에 응하되 그 기이한 물건은 뿌리가 없으면서 미묘한 작용은 항상 존재한다. 눈이 아찔하여 보이지도 않고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아니한다. 그 근본 또한 그윽하고 그 변화 또한 나타나며 그 행위 또한 거룩하고 그 작용 또한 신령하나니, 가이 큰 도의 진정(眞精)이라 하겠다.
그 진정 심히 신령하여 만유(萬有)의 인(因)이요 응연(凝然)히 항상 머무르고 도(道)와는 짝을 같이하기 때문에 경에서 이르되, ‘그 마음의 청정함에 따라 곧 불국토도 청정하고,작용을 삼라만상에 맡기므로 그 이름을 거룩함[聖]이라고 한다’“고 했다.
석마하연론(釋摩訶衍論)에 이르되, “모든 법은 하나의 심량(心量)이요 마음 밖에는 법이 없으며, 마음밖에는 법이 없거늘, 어찌 한 마음의 법이 한 마음의 법과 더불어 장애되는 일을 짓겠으며, 또한 한 마음의 법이 한 마음의 법과 더불어 해탈하는 일을 짓겠는가. 장애도 없고 해탈도 없음이 한 마음의 법이다. 하나 그대로가 마음이요 마음 그대로가 하나이며, 하나와 다른 마음이 없고 마음과 다른 하나도 없으며, 온갖 모든 법은 평등하여 한 맛이요 한 모양이로되 모양이 없고 한 가지 광명이 마음 자리의 바다가 된다”고 했다.
보생론(寶生論)의 게송에서 말했다.

미소(微笑)로 큰 악마의 군사를 항복시키고
밝은 지혜 깨달아 알아 뭇 욕심 제거하여
이 대승에서 잘 머무르면
욕망 근원이 자기 마음인 줄 깊이 알리라.

보성론(寶性論)의 게송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허공은 온갖 것에 두루하면서도
허공은 분별이 없는 것처럼
자기 성품은 때[垢]가 없는 마음이라
역시 두루하여 분별이 없다.

금강삼매론(金剛三昧論)에 이르되, “온갖 마음의 모양은 본래가 근본이 없고 본래 근본의 처소가 업는지라 ≺공≻하고 고요하여 생김이 없으며, 만일 마음이 생김이 없으면 곧 ≺공≻하고 고요함에 들어가 곧 마음의 ≺공≻을 얻는다.
선남자여, 모양이 없는 마음이라 마음도 없고 ≺나≻도 없으며 온갖 법의 모양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니, 온갖 마음의 모양에는 종자가 근본이 되나 이 본래의 종자를 구하여도 영원히 얻는 바가 없다.
만일 이것이 현재라면 결과와 함께하여 근본과 끝의 다름이 없음은 마치 소의 양 뿔과 같고, 만일 지나간 과거라면 체성이 없기 때문에 마치 토끼 뿔과 같나니 이와 같은 도리는 본래부터 당연히 그러하기 때문에 ‘본래가 근본이 없다’고 한다.
또 생멸하는 마음이 생기면 반드시 본래의 처소에 의거할 것인데 본래의 처소가 이미 없는지라 생길 수가 없나니, 마음의 모양은 본래 생김이 없기 때문에 ≺공≻하고 고요하여 생김이 없다’고 한다. 들어갈 바의 ≺공≻하고 고요함 이것이 곧 한 마음이며 온갖 의지할 바[所依]를 자리[地]라고 하기 때문에 ‘곧 ≺공≻하고 고요한 마음 자리[心地]에 들어간다’고 한다”고 했다.
분별공덕론(分別功德論)에 이르되, “유론(有論) 사문이 모든 선관(禪觀)을 행하면서 혹은 무덤 사이에 있기도 하고 혹은 나무 아래에 있기도 했는데, 어느 때 무덤 사이에 있으면서 죽은 시체를 관하고 있었더니, 밤에 아귀가 하나의 시체를 때리고 있는 것이 보였으므로 사문은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 시체를 때리고 있는가.’ 대답하기를, ‘이 시체가 나를 이렇게 곤란하게 했으므로 때리고 있다’고 했다. 도인은 말하기를, ‘어째서 그대의 마음을 때리지 아니한가. 이 죽은 시체를 때린들 무슨 이익이 있단 말인가’고 했다.
잠시 후에 다시 하나의 하늘이 하늘의 만다라꽃을 한 악취나는 시체에다 흩뿌리고 있었으므로, 사문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 악취나는 시체에다 꽃을 흩뿌리는가.’ 대답하기를 ‘나는 이 시체로 말미암아 천당에 태어났습니다. 이 시체가 바로 나의 착한 벗이므로 와서 옛 은혜를 갚느라고 꽃을 흩뿌립니다’고 했으므로, 도인은 말하기를,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 속에다 꽃을 뿌리지 않고 악취나는 시체에다 뿌리는가’고 했다. 무릇 선악의 근본이 되는 것은 모두가 마음이 하는 일이거늘, 근본을 버리면서 끝을 구하겠는가”고 했다.
사익론(思益論)에 이르되, “온갖 것을 보지 아니하면 모든 법이 바로 보리의 모양이요, 한 법도 증득하지 않으면 모든 법을 증득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응공ㆍ정변지[應正徧知]라고 한다”고 했다.
금강론(金剛論)에 이르되, “마치 별이 해에 압도되어 있어서 나타나지 않듯이, 마음과 법 볼 수 있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고 했다.
해석하여 보자. 여기에는 두 가지의 해석이 있다. 하나는 만일 마음이 미혹되면 경계가 되어 마치 해가 눈빛에 쪼이면 방에 들어가도 자기의 물건을 보지 못하는 것 처럼, 바깥 경계에 교환을 당하면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는 것 또한 그와 같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만일 경계 이것이 마음인 줄 깨치면 만법은 별과 같고 한 마음은 햇빛과 같으므로 마음 광명이 두루 빛날 때에는 헤쳐 드러나게 할 수 있는 법이란 없다는 것이다.
법성론(法性論)에 이르되, “듣건대, 선각(先覺)이 이르기를, ‘체성이 ≺공≻하여 고요함에 듦에는 법을 보는 것보다 우선된 것이 없고, 법을 찾아 근원을 궁구함에는 성품을 얻는 것보다 묘함이 없다’고 했나니, 성품을 얻으면 근본을 비추고 근본을 비추면 자연(自然)을 통달하며 자연을 통달하면 연기(緣起)를 보고 연기를 보는 것이 바로 법을 본다는 것이다.
그 근원을 궁구하려면 반드시 그 목[要]에 둘 것이나 목이면서도 작용에 있다면 그것은 마음의 법일 뿐이리라.
마음의 법이란, 신령하게 밝은 영혼[營魄]이요 정밀하게 아는 단예(丹譽)이다. 그가 옮아 움직일 때 만 가지 행을 두루 다스리고, 그가 물건을 느낄 때는 뭇 수량을 회통(會通)하나니, 극단으로 말한다면 있지 않는 데가 없다”고 했다.
현성론(顯性論)에 이르되, “한 생각에 성품을 본다는 것의 성품을 본다[見性]는 이것은 범부와 성인의 본체이어서 온갖 것에 두루하면서도 온갖 것에 기울어지거나 동요를 받지 않나니, 물듦과 물들지 않음에 있으면서도 물듦을 능히 가리고 청정과 청정하지 않음에 있으면서도 청정함을 능히 가린다.
그 성품은 온갖 법에 있지 않으면서도 온갖 법에 두루하므로, 하나의 법을 관한다 해도 곧 성품을 보지 못하고 하나의 법을 관하지 않는다 해도 역시 성품을 보지 못한다. 그 성품은 관(觀)에도 있지 않고 관하지 않음에도 있지 않으며, 한 중생의 몸 속에서 심성을 보게 될 때에는 모든 중생들이 모두가 다 하나의 작은 티끌 속을 보므로 심성을 볼 적에는 온갖 작은 티끌도 모두 다 본다.
성품은 범부ㆍ성인과 선ㆍ악에 두루하기 때문에 범부 처소에서는 성인 처소까지 꿰뚫고 성인 처소에서는 범부 처소까지 꿰뚫으며 선악도 서로가 꿰뚫나니, 본래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다.
온갖 법은 다 같이 취할 수도 없고 다 같이 버릴 수도 없다. 성품과 모양이 스스로 그러하며 제 성품이 깨끗하기 때문에 하루 내내 설명하여도 하나도 설명하지 못하고 하루 내내 들어도 하나도 듣지 못하며 하루 내내 보아도 하나도 보지 못하고 하루 내내 알아도 하나도 알지 못하나니, 다 같이 범부ㆍ성인으로서의 벌여 세울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이르되, ‘내가 세간에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이 법은 언제나 그러하다’고 하셨다”고 했다.
현종론(顯宗論)에 이르되, “나의 이 선문(禪門)은 1승인 묘한 종지다. 생각 없음[無念]으로 종(宗)을 삼고 머무름 없음[無住]으로 근본을 삼으며 진공(眞空)으로 체성을 삼고 묘유(妙有)로 작용을 삼는다.
무릇 진여는 생각이 없으므로 생각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실상(實相)은 생김이 없거늘 어찌 물질과 마음으로써 볼 수 있겠는가. 진여에 생각이 없다는 생각[念]이란 곧 진여를 생각하는 것이요, 실상에 생김이 없다는 생김[生]이란 곧 실상을 내는 것이다.
머무름이 없으면서도 머무르므로 항상 머무르는 열반이요, 행함이 없으면서도 행하므로 저 언덕을 능히 초월하며, 여여(如如)하여 동요하지 않되 동요하는 자용은 끝이 없고 생각생각에 구함이 없되 항상 생각 없음을 구한다. 작용하면서도 항상 ≺공≻하고 ≺공≻하면서도 항상 작용하며, 작용하면서도 있지 아니한 그것이 곧 진공이요 ≺공≻하면서도 없지 않으므로 곧 묘유가 성립된다. 묘유는 곧 마하반야요 진공은 곧 청정한 열반이며, 반야는 봄이 없되 열반은 능히 보고 열반은 생김이 없되 반야는 능히 생기나니, 서천(西天)의 여러 조사들이 다 함께 머무름이 없는 마음을 전하였고 똑같이 여래의 지견(知見)을 말씀했다”고 했다.
현정론(顯正論)에 이르되, “물었다. ‘무슨 이치를 드러내려고 현정(顯正)이라 했는가’ 대답했다. ‘모든 중생의 본래 근원인 청정하고 생김이 없는 마음 자체가 바로 모든 부처님의 바른 성품[正性]임을 드러내 밝히려고 한 것이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온갖 만법은 마음이 그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심성은 도무지 의지한 데가 없고 본체 스스로가 원융하며 만법에 장애되지 아니한다. 비록 만법에 응해 나타날지라도 성품 스스로는 항상 참된 것이라 머무름도 없고 의지함도 없어서 취하거나 버릴 수가 없다’”고 했다.
승천왕경(勝天王經)에 이르되, “청정한 심성은 모든 법의 근본이 되되 제 성품은 근본이 없으며, 허망한 번뇌는 모두가 삿된 생각의 뒤바뀜에서 생기나니, 이 마음 이것이 가장 훌륭하고 청정한 첫째가는 이치요 모든 부처님들이 증득하여 알아서 돌아가는 곳인 줄 알아야 한다.
물었다. ‘결정코 어떤 법으로 마음의 본체를 삼습니까.’ 대답했다. ‘마음의 일정한 본체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 하면, 마음은 반연할 바[所緣]가 아니니 모양 없음도 없기 때문이요, 또한 능소(能所)가 아니라 하나니 상대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본체는 물이 들 수 없나니 성품이 항상 고요하기 때문이요, 합침도 아니고 흩어짐도 아니니 제 성품이 여의었기 때문이다. 연기(緣起)를 장애하지 않나니 성품이 비고 원융하기 때문이요 말하여 보일 수도 없나니 이름조차 ≺공≻했기 때문이다. 모든 법은 비고 고요하나니 인연이 서로 여의었기 때문이요, 신령하게 비추되 다함이 없나니 작용이 그지없기 때문이다. 과보가 같지 않나니 지은 업이 다르기 때문이요, 인과가 또렷하나니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진실도 아니니 업의 성품이 요술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끊이지도 않음은 하는 일을 나타내기 때문이요, 또한 취할 수도 없음은 마침내 ≺공≻이기 때문이다. 모든 법이 평등함은 한 마음으로서 여(如)하기 때문이요, 경계와 지혜가 차별이 없음은 분별을 떠났기 때문이며, 만법이 곧 ≺공≻함은 성품에 생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갖 분별은 자기 마음을 여의지도 아니했고 온갖 모든 경계는 이름과 모양을 여의지도 않는다. 만일 만법을 알면서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면 분별을 끊을 수 있는 까닭이 없다”고 했다.
또한 능가경(楞伽經)에 이르되, “만일 저 마음이 모두 다 소멸하여 수레와 타는 사람이 없다면 승으로서 건립할 것이 없으므로, 나는 1승(乘)이라고 말한다. 그 마음이란 곧 모양을 취하여 얻을 바의 마음이요, 1승이란 곧 모양을 여읜 청정하고 생김이 없는 마음인 것이니, 이 마음은 모든 법을 포함하고 싣고 운반할 수 있기 때문에 1승이라고 한다”고 했다.
법원주림(法苑珠林)에 이르되, “무릇 그 흐름을 막으려면 그 근원을 막음만 같음이 없고 그 끓는 물을 잠잠하게 하려면 그 불을 끄는 것만 같음이 없다. 왜냐 하면, 근원은 물을 내므로 근원이 막히지 않는다면 물은 끊이지 않을 것이요 불은 물을 끓게 하므로 불을 끄지 못하면 끓는 물이 어찌 쉬겠는가. 그러므로, 근원을 막는 손[客]이 있으면 흐름을 막지 않는데도 저절로 마를 것이요, 불을 두드려 끄는 사람이 있으면 끓는 물이 잠잠하게 하지 않는데도 저절로 그치리라.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마음은 근원이 되고 경계는 흐름이 되나니, 본래의 마음 근원을 살피지 않으면 모든 법을 따라 구를 뿐이다. 뜻은 불과 같고 일은 끓는 물과 같으므로 자기 뜻 자리를 제압하지 않는다면 경계를 좇아 흐를 뿐이다. 이 모두는 근본을 잃고 근원에 헷갈려서 흐름을 따르고 끝을 좇는 것이다.
만일 뜻 자리를 단번에 밝혀 마음 근원을 곧장 알면 모든 대경에서 벗어나려고도 하지 아니하고 하나의 법에서도 속박되지 않으리니, 끝을 궁구하여 근본을 만나고 흐름을 찾아 근원을 얻는 것이라 할 것이다. 마침내는 공(功)이 없는데도 저절로 이룩되고 지음이 없는데도 저절로 이루는 것이니, 이 한 마음이 드러나면 만법은 마치 거울과 같다”고 했다.
귀심론(歸心論)에 이르되, “무릇 심성을 논하자면, 만일 따로 각각의 중생과 부처를 말한다면 모두가 법계로써 몸을 삼으며 낱낱 마야(摩耶)의 태(胎) 안 역시 그와 같나니, 넓고 좁음이 모두 평등하여 서로가 방해되지 아니한다.
만일 총괄하여 말한다면, 낱낱의 중생과 부처는 똑같이 태 안에 있고 10방의 부처님들도 다 같이 하나의 법신이라, 서로가 숨고 서로가 나타나며 서로가 두고 서로가 빼앗으며 겹겹으로 서로서로 나타냄이 모두가 불가사의한 법신이므로, 말할 때에는 늘지 아니하고 말하지 않을 때에도 줄어지지 않나니, 성품의 바다가 이러하거늘 어찌 다하거나 다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고 했다.
육묘문(六妙門)에 이르되, “큰 근기 지닌 사람이 법요(法要)를 잘 앎은 차례를 경유하지도 않고 모든 법의 근원을 현격하게 비추는 것이니, 이른바 중생의 마음이다. 온갖 법은 마음으로 말미암으면서 일어나므로 만일 심성을 관하면서 마음의 근원을 얻지 못한다면 곧 만법에는 모두가 근본이 없음을 알게 되리라”고 했다.
돈교오위문(頓敎五位門)에 이르되, “첫째는 마음을 아는 것이니, 말하는 그것이 마음이요 보는 그것이 마음이요 듣는 그것이 마음이요 깨닫는 그것이 마음이요 아는 그것이 마음이다. 이것을 첫째로 깨치면 낱낱 것을 능히 알아서 이렇게 많은 마음도 이는 모두 한 마음일 것이요 한 마음은 온갖 처소에 두루할 것이다.
둘째는 몸은 무정(無情)과 동일한 줄 알 것이니, 몸은 아픔과 가려움과 좋음과 싫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므로 온갖 것은 다 마음이니 몸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 마음이 사람과 짐승을 만들 수 있고, 마음이 고기와 새를 만드는 것이다.
셋째는 4대(大)의 몸을 깨뜨리는 것이니, 몸 이것은 곧 ≺공≻이요 ≺공≻은 곧 생김이 없는 것이므로 ≺공≻에는 안팎과 중간이 없고 온갖 모양을 여읜 것이다.
넷째는 5음(陰)을 깨뜨리는 것이니, 색음(色陰)이 만일 있다면 네 가지 음도 거짓이 아닐 것이나 색음이 만일 없다면 네 가지 음이 어찌 있겠는가.
다섯째는 성품을 보고 성불하면 잔잔하면서 항상 머무른다”고 했다.
십주경(十住經)의 서문에 이르되, “신령하게 비추기 때문에 통틀어 한 마음이라 하고, 반연할 바이기 때문에 한데 묶어 한 법이라고 한다. 만일 이름이 수량을 따라 변한다면 넓디 넓어서 끝이 없게 되지만, 통틀어 마음의 법으로써 한다면 시작도 없고 둘도 아니다”고 했다.
십이문론(十二門論)의 서문에 이르되, “그를 논하는 이가 그 마음 근원을 궁구하려 하면, 그 지극한 이치를 다할 것이나, 만일 한 이치라도 다하지 못하면 여러 다른 것이 어지러이 일어나면서 미혹으로 나아가는 어그러짐이 있을 것이요 한 근원이라도 다하지 아니하면 여러 길이 초목처럼 우거지면서 다르게 이르는 자취가 있게 되나니, 다르게 이르는 길이 없어지지 않고 어그러지게 나아가는 미혹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 대사(大士)로서의 근심이로다”고 했다.
반야등론(般若燈論)의 서문에 이르되, “처음부터 만물은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마음은 요술과 같나니, 마음이 요술과 같기 때문에 비록 동요한다 하더라도 항상 고요하고 물건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록 일어난다 해도 생김이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요술과 같은 마음을 말하여 있는 것이 아닌 물건을 거울삼은 것이다. 물건이 물건 아님을 알면 물건마다 성품이 ≺공≻하고, 마음이 마음 없음을 알면 마음마다 체성이 고요하다.
달관(達觀)한 선비는 그 모여 귀착된 데를 얻어서 그 붙일 데를 잊는 것이니, 여기서는 분별과 쓸모없는 의론은 버리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지고 얻음이 없는 관문(觀門)은 닦으려 하지 않는데도 벌써 들어가 넓고도 크면서 나오지도 않고 있지도 않고 머무름도 없고 의지함도 없는 이이다”고 했다.
화엄론(華嚴論)에 이르되, “마치 큰 바다에는 청정한 덕이 있으면서 일곱 금산(金山) 등을 비춰 나타내는 것 처럼, 중생의 마음 바다도 6도(道)와 4생(生)을 비춰 나타내면서 분명하게 산하 대지와 물질ㆍ허공ㆍ밝음ㆍ어둠 등을 드러낸다”고 했다.
연생론(緣生論)에 이르되, “원래 이 한 마음이 삼계(界)를 쌓은 것이니, 범부는 미혹해서 허망을 일으키고 성인은 깨쳐서 진실을 통달한다”고 했다.
다라니삼매법문(陁羅尼三昧法門)의 게송에서 말했다.

이 법은 법 중에서 높으므로 마치 수미산과 같고
이 법은 법 중에서 바다이므로 뭇 근원이 함께 돌아가며
이 법은 법 중에서 밝으므로 마치 별들 가운데서 달과도 같고
이 법은 법 중에서 땅이므로
짊어지고 싣고 하여 10방에 두루하며
이 법은 법 중에서 어머니이므로 모든 부처 종자 출생시킨다네.

법화연비(法華演秘)에 이르되, “현상과 본체가 원융하다[事理圓融]는 것은 곧 갖가지의 현상이 본체에 맞으면서 두루하다는 것이니, 진여의 본체로 큰 화로를 삼고 융합된 온갖 현상으로 큰 대장간을 삼으면 쇳물이 철철 넘치면서도 다른 모양이 없다.
만일 권(權)을 열고 실(實)을 나타내되 온갖 것이 마음일 뿐이라면 역시 우선 융화를 근본으로 삼나니, 현상 마다 걸림이 없다[事事無碍]. 겹겹으로 서로가 비침은 마치 지옥의 고보(苦報)로 몸이 저마다 두루함 같고 생각키 어려운 묘한 일들이 본래 스스로 이와 같나니, 부처님들마다 저절로 깨닫되 중생들은 알지 못한다. 지금에야 알면 곧 중생의 마음 그것이 부처의 진혜인 줄 알게 되리니, 현상에 즉(卽)한 현묘함이 마음에 들어가 관(觀)을 이룬다”고 했다.
법화현찬소(法華玄贊疏)에 이르되, “마치 경 중에서 설한 ‘한 때[一時]란 바로 그것이 유식(唯識)일 때다. 말하고[說] 듣고[聽] 하는 두 무리의 심식(心識) 위에서 세 때[三時]의 형상을 변화시키면서 일으켜도 이것은 실로 현재인 것이며, 마음의 분한[分限]에 따라 길고 짧음을 변화시켜도 일의 실마리가 끝나면 모두를 한 때라고 한다. 마치 꿈에서 볼 적에는 생긴 것이 많다고 하다가 깨어서 보면 마음일 뿐이요 도무지 진실한 경계가 없는 것과 같다. 듣는 이의 마음이 변하면 삼세도 역시 그와 같다. 뜻[意]의 소연(所緣)일 뿐이므로 이것은 불상응행(不相應行)이요 온(蘊)의 법계인 법처소섭(法處所攝)이다.
여기서 말한 한 때에는, 첫째는 일정하지 않음[不定]을 찰나(刹那)에다 결부시키고, 둘째는 일정하지 않음을 상속(相續)에다 결부시키고, 셋째는 일정하지 않음을 4시(時)와 6시(時)와 8시(時)와 12시(時) 등에다 결부시키고, 넷째는 일정하지 않음을 성도(成道)한 이후의 연수(年數)와 시절(時節)에다 결부시키면서 통틀어 한때라고 했다.
다만 이것은 듣는 이의 근기가 성숙되어 부처님께 감(感)하므로 언설[說]이 되고, 말하는 이는 자비로 근기에 응(應)하면서 말하는 것[談]이 되므로, 말하고 듣는 일이 끝나면 통틀어 한 때라고 하게 된다.
일정하지 않음을 찰나 등에다 결부시킨다는 것은, 법을 듣는 무리의 근기가 혹시 무디기나 하면 설하는 이는 비록 짧게 한다 하더라도 들어서 이해하는 시간이 길게 되고, 혹 말하는 이의 시간이 길면 듣는 이도 역시 오래 될 것이니, 한 찰나 동안에도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찰나가 아니다.
또한 일정하지 않음을 상속에 결부한다는 것은, 말하는 이가 다라니(陁羅尼)를 얻었으면 한 글자의 뜻을 말할 적에도 모두 알게 되며, 혹은 듣는 이가 청정귀의 뜻을 얻었으면 한 글자를 들을 때에 온갖 것을 능히 알기 때문에 상속이 아니다.
하나의 듣는 이에게서는 근기에 영리함도 있고 둔함도 있지만, 여래는 시력으로 혹은 짧은 순간을 늘려서 오랜 겁[長劫]으로 하기도 하고 혹은 오랜 겁을 줄여서 짧은 순간이 되게도 하나니, 역시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말하고 듣는 것에서 보면 마지막에는 때[時]라고 한다.
또한 일정하지 않음을 4시ㆍ6시ㆍ8시ㆍ12시에다 결부시킨다는 것은 하나의 해와 하나의 달은 4천하(天下)를 비추는 것이어서 길고 짧고, 따뜻하고 춥고, 가깝고 멀고 하는 것과 밤과 낮은 모든 방소에 따라 같지 않는 것이니, 항상 두 천하가 동시에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또 이것을 제외한 이하와 이상의 여러 하늘 등에서는 이 4시와 8시 등의 경과가 없고, 위 땅의 모든 방소에서 유통시키려 하거나 4시 등의 유행을 말한다고 하면 다 두루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일정하지 않음을 성도 이후의 연수와 시절에 결부시킨다는 것은, 3승(乘)과 범부ㆍ성인의 소견과 부처님의 보신(報身)ㆍ화신(化身)의 연수의 장단과 성도 이후의 멀고 가까움이 저마다 같지 않기 때문이다”고 했다.
해석하여 보자. 위에서 말한 바의 ‘일정하지 않음을 찰나의 시간과 상속의 시간과 4시ㆍ6시ㆍ8시ㆍ12시 등에다 결부시키고, 그리고 성도 이후의 연수ㆍ시절에다 결부시키면서 한 때라고 한다’는 것은, 길고 짧음이 일정하지 않다면 앞과 뒤도 의거할 데가 없으므로 마음일 뿐인 한 때만으로 일정한 양이 될 수 있어야 모든 허물이 없게 되고 사리가 당연해진다.
이미 버리고 취하는 뜻이 없어진지라 또 단견(斷見)ㆍ상견(常見)도 끊어진 것이니, 한 때의 유식이라는 앎을 지을 뿐만이 아니라 실로 만 가지의 이치가 모두 한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교종(敎宗)에서도 옳다 하겠고 비밀한 종지에도 깊이 어울리므로 바른 소견이 열리어서 뭇 의심을 영원히 소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경에서 이르되, “모든 법은 실제(實際)로 일정한 양을 삼는다”고 했으며, 또 이르되 “대승만으로 해설하여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게 한다”고 했나니, 그러므로 대승만으로 말하면 허물이 없는 줄 알 것이다.
무릇 대승이란 곧 한 마음의 승(乘)이며, 승 이것은 운반하고 싣고 한다는 뜻이다. 만일 운반하고 싣고 하는 것을 논한다면 어찌 마음보다 더 뛰어나겠는가.
또, 마음을 알지 못한 사람이 법을 듣고 경을 본다면 이름과 모양만을 따르면서 경의 뜻을 얻지 못하리니, 마치 승애(僧崖)가 말한 “이제 경의 말씀을 들으매 귀절귀절마다 마음과 상응한다”고 함과 같다.
또 석법총(釋法聰)이 혜민(慧敏)법사의 설법을 듣다가 스스로 마음을 얻고는 탕연(蕩然)해져서 누(累)가 없어진 것이니, 온갖 경계를 보는 것에 이르기까지 역시 그와 같다.
만일 마음을 관하지 아니하면 모두가 물건에 따라 지배될 것이니, 그러므로 대승입도안심법(大乘入道安心法)에서 이르되, “만일 이것이 있음으로써 옳다고 여긴다면 있음은 옳지 아니한 바요, 만일 없음으로써 옳다고 여긴다면 없음도 옳지 않는 바다”고 했나니, 한 지혜의 문으로 백천의 지혜 문에 들어간다.
기둥을 보면 기둥이라는 앎을 짓다가 기둥의 모양을 얻으면 기둥이라는 앎을 짓지 않나니, 마음을 기둥이라고 관하지만 법에 기둥이라는 모양이 없다. 그러므로 기둥을 보는 것이 곧 기둥의 법을 얻는 것이니, 온갖 형태의 물질도 역시 그와 같기 때문이다.
화엄경(華嚴經)에 게송에서 말했다.

세간의 온갖 법은
마음을 주인으로 삼을 뿐이니
앎에 따라 뭇 형상 취하면
뒤바뀌어서 여실(如實)하지 않으리라.

또 옛 사람이 이르되, “6도(道)의 중생들은 이 문으로부터 나와서는 천 겁을 지나면서도 돌아오지 않으니, 모두가 애통하구나”고 했나니, 이러므로 알아야 한다. 마음으로 도를 얻음은 마치 나올 때 반드시 문을 경유함과 같거늘 무엇을 의심하는가.
백법초(百法鈔)에 이르되, “대승의 온갖 것은 다 마음에서 변한 바다. 그러므로 마음을 여읜 그 밖에는 다시 법이 없다. 곧 만 가지의 조작도 모두가 마음을 여의지 아니하나니, 천 가지 일으킨 말인들 어찌 마음 밖을 초월하겠는가‘고 했다.
법계관(法界觀)의 서문에 이르되, “모든 중생의 몸에는 마음이란 것이 본체이다. 본래부터 신령하게 밝고 넓게 사무치며 광대하고 비어서 고요하여 하나의 참된 경계일 따름이다. 형모가 없으면서도 대천세계(大千世界)를 벌여 놓았고 맨 끝이 업으면서도 만유(萬有)를 포용하며 마음 눈의 사이에 또렷하면서도 모양은 볼 수가 없고 물질인 대경 안에서 빛나면서도 이치는 분리할 수 없나니, 법에 사무치는 지혜 눈과 생각을 여읜 밝은 지혜가 아니고서는 자기 마음이 이처럼 신령하게 통함을 볼 수가 없다. 여기서 법계의 성품을 일컫는 화엄경을 말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자기의 몸 속에서 여래의 광대한 지혜를 얻어 법계를 증득하게 한다.
또한 부처님 몸의 한 털끝에서는 온갖 것을 두루하고 온갖 것을 포함했나니, 세계도 그렇고 중생도 그렇고 티끌마다 그렇고 생각마다 그렇고 법마다 그러하여서, 하나의 법도 결코 자체가 있으면서 홀로 성립된 것은 없다”고 했다.
제바전(提婆傳)에 이르되, “제바보살은 널리 알고 깊이 보아서 재주와 변설이 짝할 이 없었으므로 명성이 천축(天竺)에 널리 났고 모든 나라에서 추앙을 받았었다.
부끄러이 여기는 것은 능력을 다한 이가 되지 못한 것이었고, 오직 사람들이 그의 말을 신용하지 않는 것만이 근심이었다.
그 나라 안에는, 대자재천(大自在天)이라는 대천신이 있었는데 황금상(黃金像)으로 되었고 앉은 키가 두 길[丈]이었으며 아주 신령하여서 사람들이 원을 구하면 바로 이 세상에서 뜻대로 되게 하였다.
제바가 묘당(廟堂)으로 가서 들어가 뵈려고 하자, 묘당지기는 말했다.
‘천상(天像)은 지극히 신령하십니다. 사람이 가 뵙는다 해도 벌써 감히 똑바로 보지도 못합니다. 또 사람들이 물러간 뒤에는 백일 동안은 지키지 못하게 하십니다. 당신은 문에만 나가서 소원을 구하십시오. 무엇하러 뵈려고 하십니까.’
제바가 말했다. ‘만일 천신께서 반드시 그대의 말한 바와 같다고 하면 나로 하여금 뵙게 해 주십시오. 만일 그렇지 않으시다면 어찌 우리들이 뵙고 싶어하겠습니까.’
이때 사람들은 그의 지기(志氣)가 기특하고 그의 분명하고 바른 것에 감복되어 묘당에 따라 들어간 이들이 수천만 인이었다.
제바가 들어가자 천상은 꼿꼿이 움직이면서 성난 눈으로 그를 보았으므로, 제바가 물었다.
‘천신은 신령하시다더니 어찌 그리 사소하십니까. 정령(精靈)으로 사람을 감화하고 지혜와 덕으로 중생을 조복해야 할 터인데, 황금으로 된 눈으로 파려(玻瓈)를 굴리면서 현혹되게 하시니, 바라던 바가 아닙니다.’고 하고, 곧 사다리로 올라가 그의 눈을 파내어버렸으므로, 이때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가 의심하기를 ‘대자재천께서 어째서 한 조그마한 바라문에게 곤욕을 당하실까. 이름이 그 실제 거동보다 뛰어나므로 그의 말씨에 굴복한 것은 아니실까’고 했다.
제바는 여러 사람들을 깨우치며 말했다. ‘신명(神明)께서는 원대하시므로 비근한 일로써 나를 시험하신 것이며, 나는 그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에 금 더미에 올라가서 파려를 뽑아내어 그대들로 하여금 신(神)은 물질에 의지하지 않고 정신은 형상에 의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나는 오만하지 않았으므로 처신 역시 욕되지 않았습니다.’
말을 마치고 나와서는, 곧 그 밤에 모든 공양 준비를 하면서 다음날 아침에 천신에게 공경히 공양하려고 했다.
제바는 전부터 알려진 명성이 대단했고 게다가 지혜로 천신에게 참례하면서도 그의 하는 말이 계합되었으므로, 소문이 미치는 데마다 그를 도와 행동을 같이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하룻밤 동안에 공양 거리와 깨끗한 음식으로써 있는 물건이라면 모두 다 갖추어졌다.
대자재천은 네 길 높이의 한 육신의 형상으로서 왼 눈이 없이 와 앉아 있다가 마련된 공양 거리들을 두루 살피고는 전에 없던 일이라고 찬탄하면서 그의 덕의 힘으로 이렇게 되었음을 가상히 여기며 그에게 말했다.
≺그대는 나의 마음을 얻었지만, 사람들은 나의 형상을 얻었고, 그대는 마음으로 공양하지만, 사람들은 물질로써 대접하며, 알면서도 나를 공경한 이는 그대지만 두려워하면서도 나를 속이는 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대의 고양이야말로 더할 수 없이 잘 되었습니다마는 오직 나에게 없는 것을 바랄 때 줄 수 있어야만 참되고 으뜸 가는 보시입니다.’
제바가 말했다. ‘천신께서는 저의 마음을 살피시어 명(命)만 내리십시오. 따르겠습니다.’
천신이 말했다. ‘나에게 모자란 것은 왼쪽의 눈입니다. 나에게 주시겠다면 얼른 뽑아내시오.’
제바가 말했다. ‘천신의 명대로 공경히 받들겠습니다.’고 하고, 곧 왼 손으로 눈을 후벼 파서 내 주었는데, 천신의 신력 때문에 뽑아 내도 계속 생겼으며 또 한없이 요구했으므로 아침 내내 뽑아 낸 눈이 수만 개나 되었다.
천신이 찬탄하며 말했다. ‘장합니다. 마납(磨衲)이여, 참되고 으뜸가는 보시였습니다. 바라는 원은 무엇입니까. 반드시 그대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제바가 말했다. ‘제가 받을 것은 마음을 밝히는 것이며, 그 외에는 없습니다. 오직 한(恨)스런 것은 많고 많은 어리석은 이들이 저의 말을 믿어 받을 줄 모릅니다. 천신께서는 저의 원을 받아들이시어, 반드시 저의 말이 헛되이 베풀어지지 않게 하소서. 이것만이 소청이요 다른 것은 구할 것이 없습니다.’
천신이 말했다. ‘반드시 뜻대로 되실 것입니다.’
이리하여 여기서 물러나와 절로 가서는 출가의 법을 받들어 머리를 갂고 법복을 입고는 천축의 큰 나라 도읍을 두루 돌아다니며 교화하다가, 네거리 가운데에 높은 자리를 펴고 세 가지 주장을 세우며 말했다.
‘모든 성인들 안에서는 부처란 성인이 맨 첫째요, 온갖 법 안에서는 부처님의 법이 바로 첫째며 온갖 세간을 구제하는 무리에서는 불법의 스님이 첫째이니라.
8방의 논사(論士)들로서 이 말을 깨뜨릴 수 있는 이가 있다면, 나는 머리를 베어서 그에게 드리겠소. 무슨 까닭인가 하면, 주장한 이치가 명백하지 않으면 이것은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머리는 나에게는 필요가 없으므로 베어 드린다 해도 조금도 아깝지 않기 때문입니다.’
8방의 논사들이 이 말을 듣고 저마다 와 모여서 맹세하며 말했다.
‘우리들도 진다면 역시 머리를 베겠습니다. 어리석은 머리는 역시 아깝지 않습니다.’
제바가 말했다. ‘내가 닦고 있는 법은 어진 법이라 만물을 살리는 법입니다. 반드시 지게 되면 그의 수염과 머리칼을 깎아서 제자로 삼겠으며 머리는 베지 않겠습니다.’
이런 약속을 하고 나서는, 저마다 이름난 이치를 짓고 끝없는 이론을 세우면서 말을 주고받고 하며 토론했다. 지혜와 뜻이 천박한 이면 한 마디 말에도 굴복되었고, 지혜와 뜻이 심원한 이면 많이 간다 해도 2일만이면 말과 이치가 동이 났으므로 모두가 다 머리를 깎이었다. 이러는 동안 날마다 왕가(王家)에서 옷과 발우를 보내왔으며, 석 달만에 끝이 났을 때는 10여만 인이 제도되었다”고 했다.
해석하여 보자. ‘받을 것은 마음을 밝히는 것이요 그 외에는 없습니다’고 한 것은, 진실로 이 말대로라면 어디를 간들 좇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유능한 덕으로 신명을 감동시켰고 대자재천의 눈을 뽑아냈으며 교화하되 사람들의 뜻에 어울리게 하여 10만이나 되는 외도들의 마음을 제도한 것이니, 세간을 구제하는 어진 의사요 사람들을 제도하는 묘한 재주라 할 것이다. 이런 뜻을 얻지 못한다면 비원(悲願)이 어찌 이룩되겠는가. 자기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이치가 여기에서 다했도다.
천태(天台)가 무량수불소(無量壽佛疏)에 이르되 “한 글자에 나아가서 설한다는 것은, 석론(釋論)에서 이르기를 ‘행하는 바는 말하는 바와 같고, 말하는 바 이것이 곧 교(敎)이다’고 했다. 같다[如]하는 이것이 이치요 행이 곧 행이며 부처가 곧 법신이요 관(觀)은 곧 반야이며 무량수는 곧 해탈이니, 1에 즉하여 3을 통달하고 3에 즉하여 1을 통달하며 하나 가운데서 한량없음을 알고 한량없음 가운데서 하나를 아는 줄 알아야 한다.
한 글자 위에서 한량없는 이치를 통달하거늘, 하물며 모든 글자이겠으며, 하물며 한 제목이겠으며, 하물며 한 경이겠으며, 하물며 온갖 경이겠는가.
그러므로, 경에 이르되, ‘만일 첫머리 제목의 이름을 들으면, 얻게 되는 공덕이 한량없다’고 했나니, 만일 위와 같이 이해하지 않는다면 어찌 한량없는 공덕을 얻겠는가.
해석해서 이르기를, ‘만일 한 마음으로 돌아가 이해하지 않는다면 어찌 한없는 공덕을 얻겠는가’고 했나니, 한량없는 공덕은 곧 한 마음이 두루 갖춘 것이다. 만일 마음을 여읜 소견이라면 모두가 원만하지 않아서 다 삿된 뒤바뀜을 이룬다. 설령 수행문을 갖춘다 해도 모두가 분한(分限)을 이룬다”고 했다.
기신소(起信疏)에 이르되, “무릇 참 마음은 고요하고 휑하여 말과 형상이 통발과 올가미에서 끊어졌고, 깊은 이치는 막연하여 경계와 지혜가 주체와 객체에서 없어졌다. 생김도 아니고 소멸함도 아니어서 4상(相)으로는 옮아가지 아니하고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어서 3제(際)로는 바뀔 수가 없다.
다만, 머무름이 없음으로 성품을 삼으면 갈래 따라 나누어져서 미혹과 깨침을 좇으면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인연에 맡기면서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다. 비록 번성하게 일어나 날뛴다 하더라도 애초부터 마음 근원을 움직이지 못하고 고요히 비추며 비어 엉킨다 해도 일찍이 업의 과보에 어긋남이 없다.
그러므로, 변하지 않은 성품이면서도 인연이 생기게 하므로 더러움과 깨끗함이 항상 분리되고, 인연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곧 진실이라 범부와 성인이 일치한다. 그것은 마치 물결이 물의 움직임과 다름이 없으므로 곧 물은 물결에서 가려지고 물은 움직이는 습기와 다름이 없으므로 곧 물결은 물에서 밝혀지는 것과 같다. 이야말로, 움직임과 고요함이 서로 통하고 진리와 세속이 쌍으로 융화하며, 생사와 열반이 평탄하고 고르며 함께 통한다”고 했다.
안락집(安樂集)에 말하였다.
물었다. “어찌하여 한 염불(念佛)하는 힘으로 인하여 온갖 장애를 끊을 수 있겠는가.”
대답했다. “경에서 이르되, ‘마치 어떤 사람이 사자의 힘줄로 거문고 줄을 만들어서 소리 내며 한 번 타면 그 밖의 모든 줄이 다 끊어져버리는 것처럼, 만일 사람이 보리심 안에서 염불삼매(念佛三昧)를 행하면 온갖 번뇌와 모든 장애들이 모두 다 끊어진다. 또 어떤 사람이 소ㆍ양ㆍ나귀ㆍ말 등의 모든 젖을 짜서 한 그릇 속에 놓고는 만일 사자의 젖을 한 방울 떨어뜨리면 곧장 스며들면서 모든 젖들이 파괴되어 맑은 물로 변해버리듯이, 만일 사람이 보리심 가운데서 염불삼매를 행할 수만 있다면 온갖 악마와 모든 장애들이 곧장 사라진다’고 함과 같다”고 했다.
보장론(寶藏論)의 주(註)에 이르되, “‘실로 이것은 저것이 아니요 실로 저것은 이것이 아니지만, 새의 발자국과 허공에 쓴 글이 기특하게 나타난다고 하면 이것 저것[彼此]은 파괴될 것이다’고 했는데, 모든 법이 마치 요술과 같다는 것을, 이 새 발자국과 허공에 쓴 글이 모두 마음으로부터 생기므로 기특하게 나타난다는 것에 비교하였다”고 했다.
또 이르되, “빛은 해와 달보다 뛰어나고 덕(德)은 하늘보다 뛰어나다. 만물은 조작이 없고 온갖 것에는 이름이 없다. 천지를 종횡으로 자재하게 뒤바꾸는 이라도 만물을 스스로 세울 수 없으니 사람이 이름을 지어 붙인 것이요 모두가 자기 마음에서 일으켜 천지를 뒤바꾸는 것이다. 온갖 것이 마음일 뿐임을 분명히 알면, 만법은 그 신명(神明)에 누(累)가 없어서 곧 향하는 것에 자유롭고 그대로 종횡 자재하리라”고 했다.
천태(天台)의 열반소(涅槃疏)에 이르되, “번뇌는 몸과 더불어 때를 같이한다[一時]는 것은 그의 계획된 바에서 때를 같이하는 것은 제외한다. 만일 이런 이해로 때를 같이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앞과 뒤이면서 때를 같이하는 것이요 때를 같이하면서 앞과 뒤이다. 다만 때를 같이한다는 이치 가운데서 앞과 뒤가 있다고 말할 뿐이니, 곧 번뇌가 앞이 되고 몸이 뒤에 속한다. 왜냐 하면, 원인과 결과는 둘이 없고 물질과 마음은 본체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3도(道)와 3덕(德)은 한 생각과 어그러짐이 없고 5음(陰)과 5탈(脫)은 찰나의 도리가 평등하다. 귀한 것은, 고집을 깨뜨리고 고집하고 나서도 성품을 분명히 알아서 ≺공≻과 같이 되는 것에 있다.
≺공≻에 앞뒤가 없음은 마치 심지와 광명이 때를 같이 하며 있고 반드시 심지로 인하여 광명이 있어야 함과 같나니, 번뇌와 몸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앞뒤가 한 마음이요 한 마음이 앞뒤이니, 이렇게 이해한다면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다만 마음 밖에서 법을 취하면서 스스로 달리할까 두려울 뿐이다“고 했다.
두순(杜順)화상이 섭경귀심진공관(攝境歸心眞空觀)에 이르되, “3계(界)의 모든 법은 하나의 마음일 뿐이며, 마음 밖에 다시는 얻을 만한 한 법도 없으므로 마음에 돌아간다[歸心]고 하나니, 온갖 분별은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으며 일찍이 마음 밖의 경계가 마음과 더불어 연(緣)이 됨이 없을 뿐이다. 왜냐 하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바깥 경계는 본래가 ≺공≻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논(論)에 이르되, “유식(唯識)에 의지하기 때문에 경계는 본래자체가 없나니, 진공(眞空)의 이치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대경이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본식(本識)도 곧 생기지 않나니, 이 때문에 마음으로 말미암아 경계를 나타내고 경계로 말미암아 마음을 드러내는 줄 알 것이다. 마음은 경계에 이르지도 아니하고 경계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나니, 언제나 이런 관(觀)을 지으면 지혜가 매우 깊어지리라”고 했다.
유식서(唯識序)에 이르되, “마음을 여읜 경계는 눌러 없애고 식(識)에 즉한 대경이 이에 있다면, 수량을 띤 이름이 빨리 드러나고 유식이란 칭호의 조짐이 드러난다”고 했다. 그러므로, 한 마음의 종지를 얻으면 영원히 전하면서 다하지 아니하고, 8식(識)의 등불은 항상 켜 있어서 끝이 없을 것이다.
044_0528_c_01L宗鏡錄卷第九十九 茂慧日永明寺主智覺禪師 延壽 集夫製論釋經傍申佛意或法身大士垂迹闡助化之門或得旨高人依教弘法施之道乃至義疏章鈔銘訣讚序等與宗鏡相應者當引證是以衆生言論悉法界之所流外道經書盡諸佛之所說 大智度論云諸法入佛心中唯一寂滅一三昧門攝無量三昧如牽衣一角擧衣皆得亦如得蜜蜂王餘蜂盡攝又頌云佛法相雖空亦復不斷滅雖生亦非常諸行業不失諸法如芭蕉一切從心若知法無實是心亦復空 毘婆沙論善覺長者爲那伽說四韋陀典曰若人心生而不起若人心起而不滅心起而起心滅而滅又云若離初發心則不成無上道所以一切功德皆在初心 大乘攝論云何以故此識取此識爲境無有法能取餘雖不能取此識變生顯現如塵譬如依面見面謂我見影此影顯現相似異面顯揚論云由所依所緣力而得建立由所依力者謂立眼識乃至意識由所緣力者謂立色識乃至法識靑識黃識乃至苦識樂識發菩提心論云過去已滅未來未至現在不雖如是觀心心數法生滅散壞而常不捨聚集善根助菩提法是名菩薩觀三世方便大乘阿毘達磨雜集論云如契經等法如理作意發三摩地依止定心思惟定中所知影觀此影像不異定心依此影像捨外境想唯定觀察自想影像爾時菩薩了知諸法唯自心故內住其心知一切種所取境界皆無所有所取無故一切能取亦非眞實故次了知能取非有次復於內捨離所得二種自性證無所得依此道理佛薄伽梵妙善宣說偈菩薩依靜定觀心所現影捨離外塵想定觀自想如是內安心知所取非有次觀能取空後觸二無得依者謂轉依捨離一切麤重得淸淨轉依故 十二門論偈云衆緣所生法是卽無自性若無自性者云何有是釋曰故知萬法從心所生皆無自性所依之心尚空能依之法何有 入大乘論云若離衆生則無有得菩提道者從衆生界出生一切諸佛菩提如尊者龍樹所說偈云從虛空有亦非地種生但從煩惱中而證成菩提故知從心證道不假他緣能成無師自然之智 俱舍論云眼所現見名爲所見從他傳聞名爲所聞自運己心諸所思構名爲所覺自內所受及自所證名爲所知佛地論云現見虛空雖與種種色相相應無諸色種種相故如煙霧等共相應故有時見空有種種相由虛妄分別力故但見煙等有種種相非見虛空以虛空性不可見故至心淨法界離名言故一切名言皆用分別所起爲境然諸法教亦不唐捐是證法界展轉因故如見字書解所說義由此法教是諸如來大悲所流能展轉說離言說義如以衆彩彩畫虛空甚爲希有若以言說說離言義復過於彼 般若論云須菩提言如來無所說此義云何無有一法唯獨如來說餘佛不說謂佛所說但是傳述古佛之教非自製釋曰故知此法過去佛已說今佛現說來佛當說所以一佛說時十方佛同證乃至智慧剎土眞俗等法凡聖等性皆同無二唯共一心故終無異旨如華嚴經佛不思議品云佛子諸佛世尊有十種無二行自在法何等爲十所謂一切諸佛悉能善說授記言決定無二一切諸佛悉能隨順衆生心念令其意滿決定無二一切諸佛悉能現覺一切諸法演說其義決定無二一切諸佛悉能具足去來今世諸佛智慧決定無二一切諸佛悉知三世一切剎那卽一剎那決定無二一切諸佛悉知三世一切佛剎入一佛剎定無二一切諸佛悉知三世一切佛語卽一佛語決定無二一切諸佛悉知三世一切諸佛與其所化一切衆生體性平等決定無二一切諸佛悉知世法及諸佛法性無差別定無二一切諸佛悉知三世一切諸佛所有善根同一善根決定無二是爲十又信心銘要急相應唯言不二可成堅信永斷纖疑則宗鏡之文傳光不朽矣 廣百論云慧等諸心心法非隨實有諸法轉變但隨串習成熟種子及心所現衆緣勢力變生種種境界差別外道等隨其自心變生種種諸法性相若法性相是實有者豈可如是隨心轉諸有智者不應許彼所執現在實法有生以必不從去來二世更無第三可從生故必隨生生旣非有滅亦定無乃至三世行皆相待立如長短等何有實性又頌云眼中無色識識中無色眼色內二俱無何能令見色依他起性卽是心心法從緣起時變似種種相名等塵應知有心心法但無心外所執諸云何定知諸法唯識故佛告善現無毛端實物可依 寶藏論云夫天地之內宇宙之間中有一寶秘在形山識物靈照內外空然寂寞難見其謂玄玄巧出紫微之表在虛無之間端化不動獨而無雙聲出妙響色吐華容窮觀無所寄號空空唯留其聲不見其形唯留其功不見其容幽顯朗照物理玄通森羅寶印萬像眞宗乃至其寶也煥煥煌煌朗照十方隱寂無物圓應堂堂應聲應應陰應陽奇特無根妙用常存眴目不見側耳不聞其本也冥其化也形其爲也聖用也靈可謂大道之眞精其精甚靈萬有之凝然常住與道同倫故經云隨其心淨卽佛土淨任用森羅其名曰聖 釋摩訶衍論云一切諸法一心量無心外法以無心外法故豈一心法與一心法作障礙事亦一心法與一心法作解脫事無有障礙無有解脫一心之法一卽是心心卽是一無一別心心別一一切諸法平等一味一相無相作一種光明心地之海 寶生論偈云微笑降伏大魔軍明智覺了除衆欲於此大乘能善深識愛原唯自心 寶性論偈云如空徧一切而空無分別自性無垢心亦徧無分 金剛三昧論云一切心相本來無本本無本處空寂無生若心無生卽入空寂寂心地卽得心空善男子無相之心無心無一切法相亦復如是者一切心相種子爲求此本種永無所得若是現在則與果俱無本末異如牛兩角若已過去則無作因體性故猶如兔角如是道理本來法爾故言本來無本又生滅心生必依本處本處旣無則不得生當知心相本來無生故言空寂無所入空寂卽是一心一切所依名之爲地故言卽入空寂之心地 分別功德論云有論沙門行諸禪觀或在塚間或在樹下在塚間觀於死屍夜見餓鬼打一死屍沙門問曰何以打此死屍耶荅曰此死屍困我如是以打之道人曰何以不打汝心打此死屍當復何益也於須臾頃復有一天以天曼陀羅華散一臭屍沙門問曰何爲散華此臭屍耶荅曰由我此屍得生天上此屍卽是我之善友故來散華報往昔恩道人荅曰何以不散華汝心中乃散臭屍夫爲善惡之本皆心所爲乃捨本求末耶 思益論云不見一切諸法是菩提相不證一法而證諸法故說爲應正徧知 金剛論云教中譬如星宿爲日所映有而不現能見心法亦復如釋曰此有二解一若迷心爲境如日爍眼光入室不見自物如被外境所換不見自心亦復如是二若以悟境是心則萬法如星宿一心如日光心光徧爍時無法可披露法性論云蓋聞之先覺曰體空入寂莫先於見法尋法窮原莫妙於得性得性則照本本則達自然達自然見緣起見緣起斯見法將窮其原必存其要要而在用者其唯心法乎心法者神明之營魄精識之丹譽其運轉也彌綸於萬行其感物也會通於群數極而言則無不在矣 顯性論云一念見性者見性是凡聖之本體普徧一切而不爲一切之所傾動在染不染而能辯染在淨不而能辯淨其性不在一切法而能徧一切若觀一法卽不見性若不觀一法亦不見其性不在觀不在不觀於一衆生身中見心性時一切衆生悉皆見於一微塵中見心性時一切微塵悉皆見以性徧凡聖善惡故凡處徹聖處聖處徹凡處善惡相徹本性自以一切法竝不得取竝不可捨性相自爾自性淨故終日說不得一說終日聞不得一終日見不得一見終日知不得一知竝非凡聖之所安立是故經云若我出世及不出此法常然 顯宗論云我此禪門一乘妙旨以無念爲宗無住爲本眞空爲體妙有爲用夫眞如無念非念想能知實相無生色心能見眞如無念念者卽念眞如實相無生者卽生實相無住而住常住涅槃無行而行能超彼岸如如不動動用無窮念念無求常求無念用而常空空而常用用而不有卽是眞空空而不無便成妙有妙有卽摩訶般若眞空卽淸淨涅槃般若無見能見涅槃涅槃無生能生般若西天諸祖共傳無住之同說如來知見 顯正論云欲顯何義名爲顯正欲顯明一切衆生本原淸淨無生心體卽是諸佛之正性也所以者何切萬法心爲其本然其心性都無所依體自圓融不礙萬法雖應現萬法而性自常眞住無依不可取捨 勝天王經云淸淨心性爲諸法本自性無本虛妄煩惱皆從邪念顚倒而生當知此心卽是最勝淸淨第一義一切諸佛證知所歸問曰定以何法爲心荅曰不應求心之定體何以故心非所緣無無相故亦云非能所絕相待故體不可染性常淨故非合非散自性離故不礙緣起虛融故不可說示名字空故諸法虛淨緣相離故靈照不竭用無盡故果報不同作業異因果宛然不斷絕故亦非眞實業性如幻又不斷絕現施爲故亦不可取畢竟空故諸法平等一相如故境智無差離分別故法卽空性無生故是以一切分別不離自心一切諸境不離名相若了萬法不了自心別無由能絕乃至楞伽經云若彼心滅盡乘及乘者無有乘建立我說爲一乘彼心者卽取相所得心也一乘者卽離相淸淨無生心也此心悉能包含運載一切諸法故名一 法苑珠林云夫擁其流者未若杜其揚其湯者未若撲其火何者源出於水未杜而水不窮火沸於湯火未撲而湯詎息故有杜源之客不擁流而自乾撲火之人揚湯而自止故知心爲源境爲流不察本心但隨諸法轉意如火事如湯不制自意地唯從境界流斯皆失本迷源隨流侚末若能頓明意地直了心源不求脫於諸塵不繫縛於一法可謂究末遇本尋流得源矣遂乃無功而自辦無作而自成顯此一心萬法如鏡歸心論云夫論心性者若別說一一生佛皆以法界爲身一一摩耶胎內亦如是廣狹皆等不相妨礙若摠說一一生佛同在胎內方諸如來同共一法身互隱互顯互存互奪重重互現皆不思議法界說時不增不說時不減性海如是豈可言盡不盡耶六妙門云此爲大根人善識法要不由次第懸照諸法之原所謂衆生心也一切法由心而起若能反觀心性不得心原卽知萬法皆無根本 頓教五位門云第一識心者是心見是心聞是心覺是心知是心此是第一悟一一能知如許多心皆是一心一心能徧一切處第二知身同無情身不知痛痒好一切皆是心不干身事心能作人畜心能作魚鳥第三破四大身身卽是空空卽是無空無內外中間離一切相第四破五陰陰若有四陰不虛色陰若無四陰何有第五見性成佛湛然常住 十住經序云以靈照故統名一心以所緣故摠號一法若夫名隨數變則浩然無際統以心法則未始非二十二門論序云論之者欲以窮其心原盡其至理也若一理之不盡則衆異紛然有惑趣之乖一原之不窮則衆途扶疏有殊致之迹殊致之不夷乖趣之不泯大士之憂也般若燈論序云始夫萬物非有一心如幻如幻故雖動而恒寂物非有故雖起而無生是以聖人說如幻之心鑑非有之物了物非則物物性空知心無心則心心體寂達觀之士得其會歸而忘其所寄於是分別戲論不待遣而自除無得觀門弗假修而已入蕩焉不出不在無住無依者也 華嚴論猶如大海有淸淨德而能影現七金山等衆生心海影現六道四生分明顯現山河大地色空明闇等 緣生論云元是一心積爲三界凡則迷而起妄聖則悟以通眞陀羅尼三昧法門偈云是法法中高猶如須彌山是法法中海衆源所共歸是法法中明猶如星中月是法法中燈能破無邊闇是法法中地荷載徧十方是法法中母出生諸佛 法華演秘云事理圓融者卽種種事稱理而徧以眞如理爲洪鑪融萬事爲大冶鐵汁洋溢無異相也若開權顯實一切唯心亦先融爲本事事無礙也重重交映如地獄苦報身各自徧難思妙事本自如此佛佛自覺衆生不知今解此知卽衆生心是佛智卽事玄妙入心成觀 法華玄贊疏云如經中說一時者卽是唯識時說聽二徒心識之上變作三時相狀而起實是現在隨心分限變作短長事緖終訖摠名一時如夢所見謂有多生覺位唯心都無實境聽者心變三世亦爾唯意所緣是不相應行蘊法界法處所攝此言一時一則不定約剎那二則不定約相續三則不定約四時六時八時十二時等四則不定約成道已後年數時節名爲一時但是聽者根熟感佛爲說說者慈悲應機爲談說聽事訖摠名爲一時不定約剎那等者聽法之徒根器或鈍說時雖短聽解時或說者時長聽者亦久於一剎那猶未能故非剎那亦不定約相續者猶能說者得陀羅尼說一字義一切皆了或能聽者得淨耳意聞一字時一切能解故非相續由於一會聽者根機有利有鈍如來神力或延短念爲長劫或促多劫爲短念亦不定故摠約說聽究竟名時亦不定約四時六時八時十二時者一日一月照四天下長短暄寒近遠晝夜諸方不定恒二天下同起用故又除已下上諸天等無此四時及八時等經擬上地諸方流通若說四時等流行不徧故亦不定約成道已後年數時節者三乘凡聖所見佛身報化年歲短長成道已來近遠各不同故上所說不定約剎那時及相續時與四時六時八時十二時等及約成道已後年數時名爲一時者以長短不定前後無憑但說唯心之一時可爲定量無諸過失事理相當旣亡去取之情又絕斷常之見不唯一時作唯識解實乃萬義皆歸一心則稱可教宗深諧秘旨能開正見永滅群疑所以經云一切諸法以實際爲定量又云但以大乘而爲解令得一切種智故知但說大無過夫言大乘者卽是一心之乘乘是運載義若論運載豈越心耶又夫不識心人若聽法看經但隨名相不得經旨如僧崖云今聞經語句句與心相應又釋法聰因聽慧敏法師說法得自於心蕩然無累乃至見一切境亦復如是不觀心盡隨物轉是故大乘入道安心法云若以有是爲是有所不是若以無是爲是則無所不是一智慧門入百千智慧門見柱作柱解得柱相不作柱解觀心是柱法無柱相是故見柱卽得柱法一切形色亦復如是故華嚴經頌云世間一切法但以爲心主隨解取衆相顚倒不如實又古人云六道群蒙自此門出歷千劫而不返一切痛哉是知因心得道如出必由戶何所疑乎 百法鈔云大乘一切皆是心所變故離心之外更無有卽萬般造作皆不離心千種起言豈超心 法界觀序云法界者一切衆生身心之本體也從本已來靈明廓徹廣大虛寂一眞之境而已無有形貌而森羅大千無有邊際而含容萬有昭昭於心目之間而相不可睹晃晃於色塵之內而理不可分非徹法之慧目離念之明智不能見自心如此之靈通也於是稱法界性說華嚴經令一切衆生自於身中得見如來廣大智慧而證法界也乃至故佛身一毛端則徧一切含一切也界爾衆生爾塵塵爾念念爾法法爾無有一法定有自體而獨立者 提婆傳云提婆菩薩博識淵覽才辯絕倫誕名天竺爲諸國所所愧以爲所不盡者唯以人不信用其言爲憂其國中有大天神驗黃金像之坐身二號曰大自在天人有求願能令現世如意提婆詣廟求入拜見主廟者言天像至神有見者旣不敢正視又令人退後失守百日汝但詣門求願何須見耶提婆言若神必能如汝所說乃從令我見之若不如是豈是吾之所欲見耶人奇其志氣伏其明正隨入廟者數千萬人提婆旣入天像挺動其眼怒目視之提婆問天神則神矣何其小也當以精靈感人智德伏物而假黃金以目多動玻瓈以熒惑非所望也卽便登梯鑿出其眼諸觀者咸有疑意大自在天何爲一小婆羅門所困將無名過其實理屈其詞耶提婆曉衆人言神明遠大故以近事試我我得其心故登金聚出玻瓈令汝等知神不假質精託形吾旣不慢神亦不辱也言已而出卽以其夜求諸供備明日淸旦敬祠天神提婆先名旣重加以智參神契其所發言聲之所及無不響應一夜之中供具精饌有物必備自在天貫一肉形數高四丈左眼枯沒而來在坐歷觀供饌歎未曾有嘉其德力能有所而告之言汝得我心人得我形汝以心供人以質饋知而敬我者汝畏而誣我者人所供饌盡善盡美矣唯無我之所須能以見與眞上施也提婆言神鑑我心惟命是從我所乏者左眼能與我者便可出之提婆敬如天命卽以左手出眼與之天神力故出而隨生索之不已從旦終朝出眼數萬神讚曰善哉摩納眞上施也欲求何願必如汝意提婆言我稟明於心不假外也唯恨悠悠童蒙不知信受我言神賜我願必當令我言不虛設唯此爲請他無所須神言必如所於是而退詣寺受出家法剃髮法服周遊揚化於天竺大國之都四衢道中敷高座三論言一切諸聖中佛聖最第一一切諸法中佛法正第一一切救世衆佛僧爲第一方諸論士有能壞此語者我當斬首以謝其所以者何立理不明是爲愚癡愚癡之頭非我所須斬以謝屈甚不惜也八方論士旣聞此言亦各來集而立誓言我等不如亦當斬首愚癡之頭亦所不惜提婆言我所修法仁活萬物要不如者當剃汝鬚髮以爲弟子不斬首也立此要已各撰名理建無方論與酬酢智淺情近者一言便屈智深情遠者極至二日則辭理俱匱卽皆下髮如是日日王家送衣鉢終竟三月度十餘萬人釋曰明於心不假外者審如斯悟何往不從故能德動明神鑿大自在天之眼化諧人意度十萬外道之心可謂救世良醫度人妙術不得斯旨悲願何成自利利他理窮於此天台無量壽佛疏云就一字說者釋論云行如所說所說卽是教如卽是理行卽是行佛卽是法身觀卽般若無量壽卽解脫當知卽一達三卽三達一一中解無量無量中解於一字上達無量義況諸字況一題況一況一切經耶故經云若聞首題名字所得功德不可限量若不如上解者安獲無限功德耶釋云若不歸一心解安獲無限功德無量功德卽一心具足若離心所見皆不圓滿悉成邪倒設具行門皆成分限起信疏云夫眞心寥廓絕言像於筌罤沖漠希夷亡境智於能所非生非滅四相之所不無去無來三際莫之能易但以無住爲性隨派分岐逐迷悟而昇沈任因緣而起滅繁興鼓躍未始動於心原靜鑑虛凝未嘗乖於業果故使不變性而緣起染淨恒分不捨緣而卽眞凡聖一致其猶波無異水之動卽水以辯於波水無異動之濕故卽波以明於水是則動靜交徹眞俗雙融生死涅槃夷齊同貫 安樂集云何因一念佛之力能斷一切諸障如經云譬如有人用師子以爲琴絃音聲一奏一切餘絃悉皆斷壞若人菩提心中行念佛三昧者一切煩惱切諸障悉皆斷滅亦如有人搆取牛一切諸乳置一器中若將師子乳一渧投之直過無難一切諸乳悉皆破壞變爲淸水人但能菩提心中行念佛三昧者一切惡魔諸障直過無難 寶藏論注云實此非彼實彼非此鳥迹空文奇特現矣者破彼此也諸法如幻比鳥迹空文皆從心生奇特現矣又云光超日月德越太淸萬物無作一切無轉變天地自在縱橫者萬物不能自立爲作名皆自心起轉變天地了一切唯心萬法無累其神明卽所向自由卽自在縱橫天台涅槃疏云煩惱與身一時者除彼所計之一時若是所解言一時者此是前後而一一時而前後只於一時義中說有前後煩惱爲前身屬於後何以故因果無二色心體一三道三德一念無乖五陰五脫剎那理貴在破執執已了性同空空無前後如炷與明一時有要因炷有明煩惱與身亦然知前後一心一心前後如是解者有何差別恐心外取法而自異耳 杜順和尚攝境歸心眞空觀云謂三界所有法唯是一心外更無一法可得故曰歸心謂一切分別由自心曾無心外境能與心爲緣何以故心不起外境本空論云由依唯識故境本無眞空義成故以塵無有故本識卽不生此方知由心現境由境顯心心不至境境不入心常作此觀智慧甚深 唯識序云心之境克湮卽識之塵斯在帶數之名攸顯唯識之稱兆彰故得一心之旨永傳而不窮八識之燈恒然而無盡宗鏡錄卷第九十九音義呼貫反 煌胡光反火光也 眴舒聞反眴目也 屍劫之反屍柁也書藥反灼爍也 撲普木反拂也 冶羊者反銷也 洋與章反水流貌也苦郭反 誕徒旱反 挺徒鼎反挺出也 熒戶局反光明也在各反 饋求位反鉤也 誣武扶反 酬市流反在各反酬酢也 匱求位反乏也 諧戶皆反和也 沖直弓反和也恭各反沙漠也 泒疋卦反分流也戊申歲分司大藏都監開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