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문헌

청공원일晴空圓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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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원일晴空圓日
[표지]
청공원일晴空圓日
백운산白雲山 화과원華果院 백상규白相奎 저著
신규탁 *옮김
목차
0001_0002_b_01L자서自序

청공원일晴空圓日 상권


1. 본원인 각성을 논함
2. 본각과 시각과 구경각을 논함
3. 성과 상, 체와 용이 다르지 않음을 논함
4. 유심과 유식과 유물이 하나임을 논함
5. 신통 변화를 논함
6. 신령한 마음은 어디에도 통하고 무엇이든 다 앎을 논함
7. 만물은 변질도 소멸도 없음을 논함
8. 원래의 각성과 개별적 각성을 논함
9. 인연관에 대하여 논함
10. 인과를 논함
11.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도 인과를 벗어나지 않음을 논함
12. 천진의 화학 작용을 논함
13. 관법을 논함
14. 과보를 받는 인연은 옮겨 가고 바뀌더라도 업의 본성은 변함이 없음을 논함
15. 마음수련을 논함
16. 결택을 논함
17. 깨친 뒤에 수행을 논함
자서自序
覺曰諸法眞實相은不可以言宣이로다. 是法이住法位하야世間相이常住라하시니誠哉라是言也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諸法)의 진실한 모습은 말로써 가히 할 수 없다.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물러, 세간상이 상주한다.”라고 하셨다.
이 말씀이야말로 참으로 진실하구나.
能使人으로翻然心肝하야煥然明白者也로다. 諸法者는指世出世間萬法之謂也오. 實相者는指世出世間萬法本源之謂也오. 不可以言宣者은指諸法實相은言語道斷하고心行滅處之謂也오.
능히 사람의 마음과 간을 뒤집어 놓아 훤하고 밝게 하시는구나! 여기서 말씀하시는 ‘모든 법(諸法)’이란 세간과 출세간의 만법萬法을 지칭하여 하신 말씀이다. ‘진실한 모습’이란 세간과 출세간의 만법의 본원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가히 말로 할 수 없다’는 것은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은 말로도 할 수 없고 마음으로도 알 수 없다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是法이住法位者은指萬法이各住本法之謂也오. 世間相이常住者은指世間種種之相이常住不生하고常住不滅之謂也니非如他處에凡所有相이皆是虛妄之例也니라.
0001_0003_b_01L‘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문다’는 것은 모든 것이 각각 본래의 법에 머문다는 뜻이다. ‘세간상이 상주한다’는 것은 세간에 있는 갖가지의 모습이 상주하여 불생하고 상주하여 불멸하는 것을 말한다. 이 말씀은 예컨대 다른 곳(『금강경』)에서 “모양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라고 하신 예와는 다르다.
故로余取晴空圓日하야爲題者는空者는喩本覺之謂也오. 晴者는喩始覺之謂也오. 圓者는喩圓而不方之謂也오. 日者는喩智體之謂也오. 光者는喩慧用之謂也니照徹十方하야無所不照之謂也니라.
그러므로 내가 ‘청공원일晴空圓日’로 제목을 삼는 이유는 ‘공空’은 ‘본각’을 비유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요, ‘청晴’이란 ‘시각’을 비유한 것이고, ‘원圓’이란 동그라서 모서리가 없음을 비유한 것이요, ‘일日’이란 지혜의 본체를 비유한 것이고, ‘광光’이란 지혜의 작용을 비유한 것이니, 시방을 모두 비추어 비추지 않은 곳이 없음을 말한다.
日光이上照者는喩眞空眞空者은非頑空也之謂也오. 日光이下照者는喩妙有之謂也니合而言之하면卽眞空之妙有요卽妙有之眞空也니라. 又日光이照徹八方者는喩四正之體와四維之用也니就吾心之全體大用하야分開四照用하리라.
0001_0004_a_01L햇빛이 위를 비추는 것은 진공진공은 완공이 아니다.을 비유한 것이고, 햇빛이 아래를 비춘다는 것은 묘유를 비유한 것이다. 이 둘을 합해서 말해 보면, 즉 진공이 묘유이고 묘유가 진공이다. 또 햇빛이 동서남북과 그 팔방을 비춘다는 것은 네 정방(四正)의 본체와 네 간방(四維)의 작용을 비유한 것이다. 내 마음의 전체대용으로 나아가 사조용을 나누어 펼치겠다.
一은先照後用이요二는先用後照요三은照用同時요四는照用不同時也니라. 末後圓極之謂最初句也요最初圓極之謂末後句也니라. 原夫此道는如杲日이當空에無所不照也니天下大衆이了達斯義하면大覺之道ㅣ興於斯矣니라.
첫째는 선조후용先照後用이고, 둘째는 선용후조先用後照이며, 셋째는 조용동시照用同時이고, 넷째는 조용 모두 아닌 것(照用不同時)이다. 말후末後의 원극圓極을 두고 ‘최초의 일구’라고 하고, 최초의 원극은 일러 ‘말후의 일구’라고 한다. 천하의 대중들이 이 뜻을 완전하게 깨치면 대각의 도가 여기에서 일어나리라.
大覺敎創立十二年癸酉三月十三日
대각교 창립 12년 계유(1933) 3월 13일.
청공원일晴空圓日 상권
1. 본원인 각성을 논함(論本源覺性)
於是에龍城長老가與白雲道子로論道於華果院이러니時當二月이라春雪이紛紛하야峰增秀色하고樹鎖銀花러라.
이에 용성 장로가 백운 도자白雲道者와 함께 화과원華果院에서 도를 논하는데, 때는 음력 2월이라 춘설이 어지러이 날려 꽃봉오리가 장차 피려 하고 나뭇가지에는 은빛 꽃이 피었다.
白雲子ㅣ問曰世界는有成住壞空하고人畜은有生老病死하고妄心은有生住異滅호되物物이有始終生滅消長盈虛循環往復하야無窮無盡하니不知케이다. 那個是不生滅之本源心性이닛고?
0001_0005_b_01L백운자가 묻기를,
“세계에는 성주괴공이 있고 인간과 축생에는 생로병사가 있으며, 망심에는 생주이멸이 있되, 모든 사물들이 시작과 끝, 생김과 소멸, 줄고 늘어남, 차고 기움, 순환과 왕복이 있어 끝이 없고 다함이 없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무엇이 불생불멸하는 본원本源의 심성입니까?”
龍城曰難言也니라. 何者오? 眞性은本空니라. 空空絶跡者를難可道也니라. 到此恁麽田地하야種種體性과種種相貌와種種言辭와種種智慧와種種識見과種種空見과種種神通과種種哲學과種種科學과種種唯心과種種唯識과種種唯物과乃至一切心行을了不可得이니體非群相인故니라.
0001_0006_a_01L용성이 대답하기를,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진성은 본래 공하여, 공함 또한 공하여 일체의 자취가 끊어진 것을 가히 말하기 어렵느니라. 이런 경지에 이르러서는 갖가지의 체성과 갖가지의 모양과 갖가지의 언사와 갖가지의 지혜와 갖가지의 식견과 갖가지의 공견空見과 갖가지의 신통과 갖가지의 철학과 갖가지의 과학과 갖가지의 유심과 갖가지의 유식과 갖가지의 유물과, 나아가서는 일체 마음씀씀이로도 끝내 알 수 없으니, 체성은 어떤 모양도 아니기 때문이다.”
白雲子ㅣ問曰然則虛無自然否잇가斷滅空寂否잇가? 龍城曰如覺所言하야非自然이며非因緣이며非不自然이며非不因緣이라. 離一切相하고卽一切法이니라.
백운자가 묻기를,
“그렇다면, 허무자연입니까? 단멸공적한 것입니까?”
용성이 대답하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자연도 아니고 인연도 아니며, 자연이 아님도 아니고 인연이 아님도 아니다. 일체의 모양을 떠나고 일체법과 상즉하고 있다.”
白雲子ㅣ曰因何不見本性이잇고? 龍城曰本無能見所見이라. 能所絶對故ㅣ니此絶對之見도亦不可立也ㅣ니라.
백운자가 묻기를,
“어찌하여 본성을 보지 못합니까?”
용성이 대답하기를,
“본래 능견과 소견이 없어, 능견과 소견의 상대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능견과 소견이) 끊어졌다는 견해도 역시 성립될 수 없다.”
白雲子ㅣ曰眞性이空空寂寂하야呈似人不得하며說與人不得이니但了沒朕跡而已否잇가? 龍城曰向水不洗水處하야道將一句來하라. 斷天下人舌頭는易언이와却以無舌로語하야사始得이니라.
0001_0006_b_01L백운자가 묻기를,
“진성眞性이 공하고도 공하고 고요하고도 고요하여 남에게 드러낼 수도 없으며 남에게 설해줄 수도 없으니, 그저 분명하게 자취도 없을 뿐입니까?”
용성이 대답하기를,
“물(水)이 물을 세척할 수 없는 경지를 향하여 한마디를 가져다가 말해 보거라. 천하 모든 사람들의 혀는 끊기 쉽지만, 도리어 혀 없이 말해야지 비로소 된다.”
白雲子曰何者가是我之本性이잇고? 一切都無하야空空寂寂者가是我本性이잇가? 了無朕跡하야沒巴鼻者가是我本性이잇가? 靈明不昧하야了然鑑覺者가是我本性이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무엇이 저의 본성입니까? 일체가 모두 없어서 공하고 공하며 고요하고 고요한 것이 저의 본성입니까? 전혀 자취조차도 없어서 핵심을 잡을 수 없는 것이 저의 본성입니까? 신령스럽게 밝아 어둡지 않아 뚜렷하게 살피고 알아차리는 것이 저의 본성입니까?”
龍城曰若論本性컨댄摠不是也니라. 吾以二種으로分折호리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만약 본성을 논한다면, (그대가 말한 그) 모두가 아니다. 내가 두 종류로 분석하겠다.
一者는性相相對之性也니火有熱性하고水有濕性하고風有動性하나니凡有物相이皆然히有卽相差別之性也요.
첫째는 성性과 상相이 서로 상대하는 성이니, 불에는 뜨거운 성질이 있고 물에는 축축한 성질이 있으며, 바람에는 움직이는 성질이 있다. 무릇 존재하는 사물의 현상(物像)이 모두 그렇게 존재하면 곧 서로 차별되는 성질이다.
二者는性相絶對之性也이니火性이雖熱이나火滅之時에는熱性을了無可得이요水性이雖濕이나水乾之時에는濕性을了無可得이니性火인眞空과眞空인性火ㅣ가周遍法界하야常住不生하고常住不滅호되但因緣會合處에火能生光發熱하나니故로覺云諸法이從緣生從緣滅이라하시니라.
0001_0007_a_01L둘째는 성과 상의 대립이 끊어진 성이니, 불의 성질이 비록 뜨겁지만 불이 꺼진 때에는 뜨거운 성질을 전혀 찾을 수 없으며, 물의 성질이 비록 축축하지만 물이 마른 때에는 축축한 성질을 전혀 찾을 수 없다. 불의 본성(性火)인 참된 공(眞空)과 참된 공인 불의 본성이 법계에 두루 가득하여 상주하며 생함이 없고 상주하여 멸함이 없다. 다만 인과 연이 모여 합하는 곳에 불이 능히 광채를 내고 열을 낸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다만 모든 법이 인연을 따라 생하고 인연을 따라 멸한다’고 말씀하셨다.”
白雲子ㅣ曰但諸法이從緣生滅인댄譬如無根之樹가會緣而自生自滅인달하니豈有無情之草가但緣合緣散而自能生滅乎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다만 모든 법이 인연을 따라 생멸을 한다면, 비유하면 마치 뿌리 없는 나무가 인연이 모이면 저절로 생하기도 하고 저절로 멸하는 것과 같으니, 그 어찌 무정물無情物인 풀이 다만 인연이 모이거나 인연이 흩어졌다고 해서 저절로 생하기도 하고 저절로 소멸하기도 하겠습니까?”
龍城曰我先不道乎아? 四大元性이周遍法界하야無去無來하야常住不生하고常住不滅하나니此不生滅之四大元性이緣會而生하고緣散而滅하나니라.
0001_0007_b_01L용성이 대답하기를,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사대의 원성元性이 법계에 두루 가득하여 감도 없고 옴도 없어서 상주하여 생하지도 않고 상주하여 멸하지도 않는다. 이 생멸이 없는 사대의 원성元性이 인연을 만나면 생기고 인연이 흩어지면 멸하느니라.”
白雲子ㅣ曰四大元性이本是無情이라. 是無形無情之理氣가自生天地萬物耶잇가? 吾不敢聞命也ㅣ니다.
백운자가 묻기를,
“사대의 원성元性이 본래 알음알이(情)가 없는데, 이런 형체도 없고 알음알이도 없는 ‘이치의 기운(理氣)’이 저절로 천지의 만물을 낳는 것입니까? 제가 감히 하명하심을 듣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龍城이正色對曰水性火性風性等種種萬物之元素理氣가無形無相하야周遍法界하나니天地萬物種種諸相은元因於無形之理氣하고種種無形之理氣은因於頑空하고頑空之元素는因於阿賴耶識種元素하고阿賴耶識之元素는因於本覺이니本覺之性은眞實難言也ㅣ니라.
0001_0008_a_01L용성이 정색을 하고 대답하기를,
“물의 성질, 불의 성질, 바람의 성질 등 갖가지 만물의 원소의 ‘이치의 기운(理氣)’이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어서 법계에 두루 가득하느니라. 천지에 있는 만물들의 갖가지 모든 모양은 형체도 없는 ‘이치의 기운’을 ‘원초적 인(元因)’으로 삼고, 갖가지의 형체가 없는 ‘이치의 기운’은 완공을 인으로 삼으며, 완공의 원소元素는 아뢰야식 종자의 원소를 인으로 삼고, 아뢰야식의 원소는 본각을 인으로 삼는다. 본각의 본성은 참되고 실다워서 언어를 여의었느니라.
君이知否아? 水中鹽味가決定是有로되不可見인달하야最淸淨本然覺性도亦然하야呈似人不得이요說與人不得이니라. 此性은本無種種名相이로되元非虛無之無極이며又非混屯之太極이니何者오.
그대는 아는가? 물속에 짠맛이 분명 있지만 볼 수 없는 것과 같아서, 극도로 청정한 본연의 각성도 그러하여 남에게 보여 줄 수도 없고 남에게 말해 줄 수도 없다. 이 본성은 본래 갖가지의 명칭이나 형상도 없지만, 허무의 무극無極도 애초에 아니며, 또 혼돈의 태극도 아니다. 왜 그런가?
極於虛無之體는不可以生物也요太極混屯之元氣도亦不可以生物也ㅣ니라. 唯我之本源覺體는體非群相이로되無極太極이以之而起하며天地萬物이以之而立하며人類動物之了別識과無記識과靈明感覺者가皆以之而生하나니此性이元非生滅知覺이로되能生種種氣素하며能生空有天地萬物이니라.
0001_0008_b_01L허무의 궁극적 본체는 만물을 낳을 수 없고, 태극 혼돈의 원기도 또한 만물을 낳을 수 없다. 오직 나의 본원인 깨침의 본체는 본체에 어떤 형상도 없지만, 무극인 태극이 거기에서 일어나며, 천지 만물이 거기에 성립되며, 인류와 동물의 요별식了別識과 무기식無記識과 신령스럽고 밝게 감각하는 것이 모두 이것으로 인해서 생긴다. 이 본성이 생멸지각이 원래 아니지만 능히 갖가지 ‘기운의 원소(氣素)’를 생하며, 능히 허공 속에 있는 천지 만물을 낳느니라.”
白雲子ㅣ曰此本源性體를如何覺悟잇고?
백운자가 묻기를,
“이 본원의 성품 바탕을 어찌해야 깨칩니까?”
龍城曰吾以譬喩로說明하리니君이見月忘指하고得魚忘筌하야사始得다. 譬不全喩ㅣ라. 但比一喩而已니라. 君知否아? 月隱中峰에擧扇喩之하고風息太虛에搖樹示之ㅣ니吾擧數種譬喩하야以明之하리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내가 비유로 설명하겠다. 그대는 달을 보되 손가락을 잊고, 물고기를 잡고는 통발을 잊어야지만 된다. 비유로도 모두를 비유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비유에 견줄 뿐이다. 그대는 아는가? 달이 가운데 봉우리에 숨자 부채로 그것을 비유하고, 바람이 태허太虛 속에 멈추자 나뭇가지를 흔들어 보여 준다. 내가 여러 종류의 비유를 들어 이것을 밝히리라.
譬如虛空이體非群相이라. 全體是空인달하야此性도亦然하야體非種種이라. 全體是覺이니라. 譬如水中鹽味가決定是有로되不可見인달하야此性도亦然하야決定是有로되不可見이니라.
0001_0009_a_01L비유하면 마치 허공이 어떤 모양도 없어 전체가 그대로 허공인 것과 같아서, 이 본성도 역시 그러하여 그 본바탕은 여러 가지가 아니다. 전체가 그대로 깨달음(覺)이다. 비유하면 마치 물속의 짠맛이 분명 있지만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본성도 또한 그러하여 분명 있지만 볼 수 없느니라.”
白雲子ㅣ問曰此性이無識見鑑覺者ㅣ면豈非一種死物也리요?
백운자가 묻기를,
“이 본성이 식견과 감각이 없는 것이라면 어찌 일종의 죽은 물건이 아니겠습니까?”
龍城曰譬如大海가不起風浪之時에全水是濕이나濕性을了不可見인달하야此性도亦然하야全體是覺이나決定不可見이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비유하자면 마치 큰 바다가 풍랑을 일으키지 않을 때에는 모든 물 그대로가 적시는 성질이있지만 적시는 성질을 결코 볼 수 없는 것과 같아, 이 본성도 또한 그러하여 전체가 그대로 각覺이지만 끝내 볼 수 없는 것과 같느니라.
譬如風浪이滔滔에萬波競起나又不見其濕이라가海波가翻轉百萬眞珠하야猛打石頭之時에濕性이方現하야萬人이皆見인달하니此性도亦然하야決定是有나不可見이라가根境接觸之時에方現識體니라.
0001_0009_b_01L비유하면 마치 풍랑이 도도하여 온갖 파도가 다투어 일어나지만 또한 그 적시는 성질을 볼 수 없다가, 바다의 파도가 백만 개의 진주를 뒤집어 돌을 맹렬하게 타격할 때에 적시는 성질이 비로소 나타나 만인이 다 보는 것과 같으니, 이 본성도 역시 그러하여 분명 있기는 있지만 볼 수 없다가, 근根과 경境이 접촉할 때에 알음알이의 본체를 비로소 드러낸다.
水之元性이本不濕者면雖波擊石頭라도濕相을了不可見也요心之元性이本不覺者면雖根境이接觸이라도識相을了不可見也이니라.
물의 원래 본성이 본래 적심이 아니라면, 파도가 돌에 부딪치더라도 적시는 기능을 결코 볼 수 없고, 마음의 ‘원성元性’이 본래 각覺이 아니라면, 비록 근과 경이 접촉하더라도 알음알이의 기능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2. 본각과 시각과 구경각을 논함(論本覺始覺究竟覺)
白雲子ㅣ曰本覺始覺究竟覺之別이如何이니고?
백운자가 묻기를,
“본각本覺과 시각始覺과 구경각究竟覺의 구별이 어떻게 됩니까?”
龍城曰如覺所言하야覺海性이澄圓하고此난論本覺之性이自體澄圓하야虛明自照之謂也오圓澄覺이元妙라하시니此난自用而反이니卽用之體가照而常寂하야妙不可思議也니라此난卽本覺之性이寂而常照하고照而常寂之謂也니라.
0001_0010_a_01L용성이 대답하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바다 같은 깨달음의 성품이 맑고 원만하고이는 본각의 본성이 자체가 맑고 원만하여 비었으면서도 스스로 비춘다는 것임을 논하여 한 말이다. 원만하고 맑은 깨달음 원래 오묘(元妙)하다고 하시니,이는 스스로 작용하여 돌이킴이니, 작용에 상즉한 본체는 비추되 항상 고요하고 오묘하여 불가사의하다. 이는 즉 본각의 본성이 고요하면서도 항상 비추고 비추면서도 항상 고요함을 말한다.
又云空生大覺中이如海一漚發이라하시니其大覺云者는指其本覺妙性之謂也니라. 又云元明이照하야生所하고所立하야照性이亡이라하시니此는指迷之謂也니一迷爲境에迷而不返也니라.
또 ‘허공이 대각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비유하면 바다에서 물거품 하나가 일어나는 것과 같다’고 하시니, 여기에서 ‘대각’이라 한 것은 본각의 오묘한 본성을 두고 한 말이다. 또 ‘원래의 밝음(元明)이 비추어서 대상을 낳고, 대상이 성립되어 비추는 성품이 사라진다’고 하셨다. 이는 미혹해 가는 것을 지목하여 하신 말씀이다. 한번 미혹에 빠져 경계가 되고는, 미혹되어 돌이키지 못하는 것이다.
故로元明이照하야所境이生하고所境이立함에內隱靈明之眞性하고外緣諸境之色相하나니此는指迷之原因也니라. 如有智者가覺悟迷之原因하며覺悟本妙眞性故로名曰始覺이라하니라.
0001_0010_b_01L그러므로 원래의 밝음(元明)이 비추어서 대상이 생기고, 대상이 성립함에 안으로는 신령하고 밝은 참 성품이 숨고, 밖으로 모든 대상들의 색상을 반연한다. 이것은 미혹해 가는 원인을 지시하신 것이다. 예컨대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미혹과 깨침의 원인을 알아차려, 본래부터 오묘하게 갖추어진 본성을 알아차리기 때문에, 이름하여 ‘시각’이라고 한다.
又如覺言하야如銷金鑛에雖復本來金이나終以銷成就니一成眞金體하면不復重爲鑛인달하야此性도亦然하야消融無明惑하고一成眞性體하면不復重爲凡할名曰究竟覺이오. 又始本無二하야自覺覺他가圓滿無二故로名曰究竟覺이라하니라.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비유하면 금광석을 녹임에 비록 본래의 금을 회복했으나 마침내는 녹여서 얻은 것이니, 한번 금의 바탕이 이루어지면 다시는 광석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것과 같아서, 이 본성도 역시 그러하여 무명의 미혹을 녹여 없애고 한번 참 성품의 바탕을 완성하면 다시는 범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구경각이라고 이름한다. 또 (구경각이) 시각과 본래 다르지 않아서 스스로 깨침과 남을 깨침(自覺覺他)이 원만하여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름하여 구경각이라고 한다.”
3. 성과 상, 체와 용이 다르지 않음을 논함(論性相體用無二)
白雲子ㅣ曰性相體用이各有別異否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성과 상, 체와 용이 각각 별다름이 있습니까?”
龍城曰譬如大海가千波競起에全濕是水오全水是濕이니此는喩性相之無二也ㅣ오全水是波오全波是水이니此는喩體用之無二也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비유하면 마치 큰 바다가 수많은 파도가 막 일어남에 전체의 적시는 성질이 그대로 물이고, 전체의 물 그대로가 적시는 성질인 것과 같으니, 이는 성과 상이 둘이 아님을 비유한 것이다. 물 전체가 그대로 파도이며, 파도 전체가 그대로 물이니, 이것은 체와 용이 둘이 아님을 비유한 것이다.
又一曰體이오二曰用이요三曰卽體之用이요四曰卽用之體ㅣ니卽體之用故로體外에無用하고卽用之體故로用外에無體니라. 又三一이俱圓하고三一이俱泯하야如同神變하야自在無碍故로亦名無碍道人이니라.
또 첫째는 체이고, 둘째는 용이며, 셋째는 체에 상즉한 용이고, 넷째는 용에 상즉한 체이다. 체에 상즉하는 용이기 때문에 체 밖에 따로 용이 없고, 용에 상즉한 체이기 때문에 용 밖에 체가 없다. 또 셋과 하나가 모두 원융하고, 셋과 하나가 모두 사라져 마치 신령스러움과 하나 되어 자재하여 걸림이 없기 때문에 역시 무애도인이라고도 이름한다.
譬如水本無氷이라因寒成氷하고性本無凡이라因習成凡하나니氷消則水流潤하야方呈漑滌之功하고妄盡則心靈通하야應現通光之用은圭山이曾道哉인저.
0001_0011_b_01L비유하면 마치 물에는 본래 얼음이 없지만, 추위로 인하여 얼음이 이루어지고, 본성에는 본래 범부가 없으나 습기로 인하여 범부가 된다. 얼음이 녹으면 물은 흐르고 적시어서 물을 대거나 세탁할 수 있는 작용이 마침내 드러나고, 허망이 사라지면 즉 마음이 신령하게 통하고, 통하여 빛나는 작용을 응현한다는 말은 규봉 종밀이 일찍이 말했다.
又古云人人脚下에淸風拂하고箇箇面前에明月白이라하니此는人人箇箇全體인大用이本自具足함을和盤托出하야頓放諸人面前이니라. 又性起爲相이라相則是性이니所謂諸法이常住不生하고常住不滅이니라.
또 옛사람이 ‘사람마다 발밑에 맑은 바람이 나부끼고 저마다의 면전에 밝은 달이 빛난다’고 했으니, 이는 사람마다 낱낱이 완전한 본체인 위대한 작용(大用)이 본래 갖추어져 있음을 끄집어내어 여러 사람의 면전에 내던지는 것이다. 또 성이 일어나서 상이 되는 것이니, 상 그대로가 성이다. 이를테면 모든 법이 상주하여 생기지 않고, 상주하여 멸하지 않는다.
又百千元素가因性生起하고森羅萬像이因心成體하나니水凍成氷에氷氷이全水요性起爲相에相相이全性이니라. 古云眼若不睡하면諸夢이自除하고心若不異하면萬法無咎라하니不可以二見差別로論道也니라.
0001_0012_a_01L또 수많은 원소가 본성으로 인하여 생겨나고 삼라만상이 마음으로 인하여 본체를 이룬다. 물이 얼어 얼음이 됨에 얼음마다 모두 물이고, 본성이 일어나서 형상이 되니 형상마다가 모두 본성이다. 옛사람이 ‘눈에 졸음만 없으면 모든 꿈이 저절로 사라지고, 마음이 만약 달라지지 않으면 만법이 허물이 없다’고 하였다. 다르다는 견해의 차별을 가지고 도를 논할 수는 없다.”
4. 유심과 유식과 유물이 하나임을 논함(論唯心唯識唯物三者一致)
白雲子ㅣ問曰唯心唯識唯物을可得聞乎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유심과 유식과 유물에 대해서 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龍城曰虛無之無極者는無因이니因者는種也ㅣ니無因故로不能生物也ㅣ니라不能生物也ㅣ요太極混沌之氣는邪因이라亦不能生物也ㅣ니但以混屯之氣로生物인댄空氣電氣等이能生天地萬物情與無情也ㅣ요,
0001_0012_b_01L용성이 대답하기를,
“허무의 무극은 원인을 부정하는 것이니원인은 종자이니 종자가 없기 때문에 중생을 낳지 못한다. 태극의 혼돈 일기는 삿된 원인이어서 역시 중생을 낳지 못한다. 그런데 혼돈의 기운이 중생을 낳는다고 한다면, 공기와 전기 등이 능히 천지 만물의 유정물과 무정물을 낳아야 할 것이다.
但以虛無之空으로生物인댄何不空中에以能生物乎아? 無因邪因者로以爲天地生物之大本者는是ㅣ錯誤也ㅣ니라.
단지 허무인 허공으로 중생을 낳는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허공 속에서는 중생이 생기지 않는가? 무인설無因說과 사인설邪因說로 천지가 중생을 낳은 위대한 근본을 삼는다면 이것은 잘못이다.
君知否아? 原因覺性하야變爲識種하니此識이名爲阿賴識이라. 識體無形無記나是一箇活物之大種也니라.識體가原非物相也 此識이變爲氣分하니一切種種空氣等이是也ㅣ오.
그대는 아는가? 각성을 인으로 해서 변하여 식의 종자가 되니, 이 식을 이름하여 아뢰야식이라 한다. 식의 본체는 형체도 없고 무기無記이지만, 이것이 생명체(活物)의 위대한 종자이다.식의 본바탕은 원래 물체는 아니다. 이 식이 변하여 기가 나누어지니(氣分), 일체의 갖가지 허공의 기운 등이 이것이다.
此識이流動하야變成山河大地一切無情草木等하나니所以로印度之知跡草가能感覺人跡之有無하야自能卷縮하며啣羞草等이自能知觸하야能知卷舒하니라.
0001_0013_a_01L이 식이 유동하여 산하대지 일체의 무정물 초목 등을 변화 생성한다. 그런 까닭으로 인도 땅에서 나는 지적초 풀이 인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능히 감각하여 스스로 말았다 폈다 하며, 함수초 풀 등이 스스로 촉각을 능히 알아 말았다 폈다를 할 줄 안다.
又一切草木이皆有此識하야自能生活하며一切土石이皆有此識하야自能生死하니라. 卵等이無情이나此識이啣有하야變爲了別하야一隻活物이出來에凌空自在하며升降浮沈하니라.
또 일체 초목들이 모두 이 식이 있어서 스스로 능히 생활하며, 일체의 흙과 돌이 모두 이 식이 있어서 스스로 능히 나고 죽는다. 알 따위가 알음알이가 없으나 이 식이 생명을 머금어서(銜有) 변하여 요별 작용이 되어, 한쪽의 생명체(活物)가 나옴에 허공을 자유롭게 날며 올라갔다 내려갔다 떴다 가라앉았다 한다.
魚卵이雖微나此識이啣有하야變爲了別하야長江大海에縱橫自由하며浮沈逍遙하나니通以言之컨댄性起爲識하고識變爲物이라. 三箇爲一하야圓融無碍하나니切不可以偏愛偏憎으로論道也어다.
물고기 알이 비록 작지만 이 식이 생명(有)을 머금어서 변하여 요별 작용이 되어, 긴 강과 큰 바다에 이리저리 자유자재하며 오르락 내리락 소요한다. 통틀어서 말해 보면, 본성이 일어나서 식이 되고, 식이 변하여 만물이 된다. 세 가지는 하나가 되어 원융 무애하다. 결코 치우쳐 사랑하거나 치우쳐 증오해서는 도를 논할 수 없다.
君知否아? 松子가識種이啣有也ㅣ니此松子을植于厚土애連抱之木이出來하야千枝萬葉이鬱茂하며其色靑靑하나니根株枝葉은唯物也요識種은唯識也니라. 此松이非識이면不能成體故로松之根株枝葉全體가唯識이요唯識全體가松之根株枝葉이니라.
그대는 아는가? 소나무 씨는 식의 종자가 생명을 머금고 있으니, 이 소나무 씨를 두툼한 땅에 심으면 아름드리 큰 나무가 생겨나서 천 개의 가지와 만 개의 잎사귀가 울창하고 무성하며, 그 색이 푸르고 푸르다. 뿌리와 기둥과 가지와 잎사귀는 유물이고 식의 종자는 유식이다. 이 소나무가 식이 아니면 능히 본체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소나무의 뿌리와 기둥과 가지와 잎사귀 전체가 유식이며, 유식 전체가 소나무의 뿌리와 기둥과 가지와 잎사귀이다.
男女가交合에唯此賴耶識種이啣有凝滑하야漸成班點하여完成肉體에變成了別爲人하니라. 識種은本無形色하며亦無知覺故로初入胎之時에無眼耳鼻舌身하며無意根了別識情하야恰似箇無情土石無異也니라.
0001_0014_a_01L남녀가 교합함에 오직 이 아뢰야식의 종자가 엉키어서 점차로 반점을 이루다가 육체를 완성하여 요별 작용이 변화 생성하여 사람이 된다.
식 종자는 본래 형체나 색깔이 없으며 또한 지각 작용이 없다. 그러므로 태에 처음 들어갈 때에는 안이비설신이 없으며 의근과 요별하는 식의 알음알이가 없어, 흡사 하나의 무정 토석이나 다름이 없다.
此凝滑之體가漸成이나亦無知覺하며亦無搖動이라가久久之後에隱隱動搖하며又完成六根에知覺이發生하나니此는識種이轉變하야以成知覺하야完成爲人也니라. 然則此四大肉體는唯物也ㅣ요此識種은唯識也ㅣ니라.
이렇게 엉킨 본체가 점차로 성장하지만, 역시 지각 작용은 없으며 역시 요동함이 없다. 그러다가 오래오래 지난 뒤에 조금씩 요동하며 또 육근六根을 완성함에 지각 작용이 발생한다. 이것은 식 종자가 전변하여 지각 작용을 이루어 완성되어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이 사대四大 육체는 유물이요 이 식 종자는 유식이다.
此肉體가因識成體也ㅣ니成體者는唯物也ㅣ요識種者는唯識也ㅣ니라. 然則識外에無體하며體外에無識也로다. 此等을轉轉推求則唯性唯心이轉變爲識하고此唯識이轉變爲物하나니若通觀컨댄全體唯性唯心唯識唯物而已니라.
0001_0014_b_01L이 육체가 식으로 말미암아 몸체를 이루니, 몸체로 이루어진 것은 유물이요, 식 종자는 유식이다. 그렇다면 식 밖에 따로 몸체가 없으며, 몸체 밖에 따로 식이 있는 게 아니다. 이런 등등을 계속하여 추구해 가면, 유성 유심唯性唯心이 전변하여 식이 되고, 이 유식이 전변하여 만물이 된다. 만약 통틀어서 관찰하면, 전체가 유성·유심·유식·유물일 따름이다.
譬之於水컨댄水本無氷이라. 因寒成氷커든知者는全氷是水요全水是氷也이니唯心唯識唯物도亦然하니라.
물에 비유하면, 물에는 본래 얼음이 없다. 추위로 인하여 얼음이 얼면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얼음 전체가 물이고 물 전체가 얼음이다. 유심·유식·유물도 역시 그렇다.
如湯消氷에氷相을了不可見이니此는唯心者之所見也오. 水凍成氷에水相을了不可見이니此는唯物者之所見也니라. 若有通達之士댄切不可以二物로觀之也니라.
비유하면 끓여서 얼음을 녹임에 얼음의 형상을 결코 볼 수 없으니, 이는 유심론자의 소견이며, 물이 얼어 얼음이 됨에 물의 모양을 결코 볼 수 없으니 이는 유물론자의 소견이다. 만약 모두를 통달한 선비가 있다면 절대로 둘이 서로 다른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5. 신통 변화를 논함(論神通變化)
白雲子ㅣ問曰神通變化를可得聞乎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신통 변화에 대해서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龍城曰君不見道아? 識氷池而全水나借陽氣而鎔銷하고悟凡夫而卽覺이나資法力而熏修ㅣ니氷銷則水流潤하야方呈漑滌之功하고妄盡則心이靈通하야應現通光之用이라하고,
용성이 대답하기를,
“그대는 이런 말을 보지 못했는가? 언 연못이 전체가 물임을 알았더라도 양기陽氣를 빌려야 녹일 수 있으며, 범부가 부처인 줄 알지만 법력을 빌려 수행을 해야 한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흐르고 윤택하여 마침내 물을 대거나 세탁을 할 수 있는 작용이 드러나며, 허망이 다하면 즉 마음이 신령스럽게 통하여 광명을 통하는 작용이 그에 따라 드러난다는 말이다.
又是知事上神通은非一日之能成ㅣ라. 乃漸熏而發現也ㅣ라하니譬如黑雲이滿天에上明下暗이라가風吹雲散에杲日이麗天하야光啣萬像인달하야,
또 이로써 알겠다. 현상 위에 신통을 부리는 것은 하루 만에 능히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이는 점차로 훈습해서 발현되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검은 구름이 하늘에 가득하면 위는 밝지만 아래는 어둡다가 바람이 불어 구름이 흩어지면 밝은 해가 하늘을 비추어 빛이 만상을 머금는 것과 같다.
吾人의本覺明妙眞心도亦然하야五蘊無明黑雲이籠蔽明妙眞心하야性光이不現이라가慧風이吹之에無明黑雲이頓銷하고心華가發明하야照十方刹이니라.
0001_0015_b_01L우리 사람들의 본각명묘진심本覺明妙眞心도 역시 그러하여 오온 무명의 검은 구름이 명묘진심을 가두고 가려서 성품의 광명이 드러나지 못하다가, 지혜의 바람이 불어 무명의 검은 구름이 단박에 사라지고 마음의 꽃이 드러나 밝아져서 시방의 국토를 비춘다.”
白雲子ㅣ曰修心之法을願聞하노이다.
백운자가 묻기를,
“마음 닦는 법을 듣고자 합니다.”
龍城曰頓悟本覺이元自淸淨하며無漏智性이本自具足然後에依悟而修하야久久不已하면自然漸得無量正定하나니百千神通이從此卽發이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본각이 원래 스스로 청정함을 돈오하고, 번뇌가 없는 지혜의 성품이 본래 스스로 구족된 연후에 돈오에 의하여 수행하여 오래 하기를 그만두지 않으면 자연 점차로 무량한 바른 선정을 얻게 된다. 백천 가지의 신통력이 여기에서 발생한다.
如云六根이攝境하야心不隨緣을名之謂定이요心境이俱空하야照鑑無惑을名之謂慧라하며又云心地無亂이自性定이요心地無痴自性慧ㅣ라하니
마치 ‘육근이 경계를 포섭하여 마음이 인연을 따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선정이라 하며, 마음과 경계 둘 다 공하여 비추고 살핌에 미혹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지혜라 한다’고 한 것과 같으며, 또 ‘마음의 땅이 어지럽지 않은 것이 자성의 선정(自性定)이요, 마음의 땅이 어리석지 않은 것을 자성의 지혜(自性慧)라 한다’고 하였다.
照而常寂하며寂而常照하야任運寂知하야安閒恬靜하며虛融淡泊야動靜에無心며寤寐에惺惺야虛明自照而已니譬如淸潭水底에影像이昭昭하고虛隙日光에纖埃가了了인달 야眞性도亦然하니라.
0001_0016_a_01L비추면서도 항상 고요하며 고요하면서도 항상 비추어 어디에서나 고요하고 알아차려 한가하고 고요하며 허융담백虛融淡白하여 움직이나 고요하나 무심하며 자나 깨나 또렷또렷하여 텅 비었으면서도 밝아 스스로 비출 뿐이다. 비유하면 마치 깨끗한 연못 바닥에 영상이 또렷하고 틈새로 비치는 햇빛에 작은 먼지가 분명한 것처럼, 진성眞性도 역시 그렇다.
修心方便이無量이나歸源에性無二이니라. 或修三觀이니一曰空觀이요二曰假觀이요三曰中觀이니라. 又有三觀하니一曰理事無碍觀이요二曰靈心絶對觀이요三曰周遍含容觀이니라.
마음을 닦는 방법이 셀 수 없이 많지만 근원으로 돌아가면 본성은 다름이 없다. 혹은 삼관을 닦기도 하니, 첫째는 공관空觀이고, 둘째는 가관假觀이며, 셋째는 중관中觀이다. 또 삼관이 있으니 첫째는 이사무애관理事無礙觀이고, 둘째는 영심절대관靈心絶對觀이며, 셋째는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이다.
又有水觀하니行者가先息妄念하야身心이寂靜然後에以寂然淡泊之心으로觀淸淨之水호대先定界限周圍遠近하고次觀淸淨潭水가澄淸하며又觀我之四大가渾融爲水호되表裡內外가與淸潭水로同爲一體하야合爲澄淸潭水而已요更無二想이니라.
0001_0016_b_01L또 수관水觀도 있으니, 수행하는 사람이 먼저 망념을 쉬고 몸과 마음이 고요해진 뒤에 고요하고 담백한 마음으로 청정한 물을 관찰하되, 먼저 경계 안에 있는 주위와 멀고 가까운 것을 고요하게 하고, 다음으로 청정한 깊은 물이 맑고 깨끗함을 관하며, 또 나의 사대가 하나로 융해되어 물이 되는데 겉과 속, 안과 밖이 청정한 깊은 물과 함께 한 몸뚱이가 됨을 관찰하여, 합하여 청정한 깊은 물이 되는 것만을 관찰할 뿐, 절대로 다른 생각을 내지 않는다.
又專精觀之하야日久月深하면漸漸觀力이轉深하야凝定不移하야但見水相而已이라가又專精觀之하면能見所見이頓忘하고但水而已이니라. 如是久久하면行者之肉體가入定之時에消融爲水하야外人이見之에行者의肉體를了不可見이요但淸水而已이니라.
0001_0017_a_01L또 정신을 오로지하여 관찰해서(專精觀) 해가 오래가고 달이 깊어지면 점점 관찰하는 힘이 더욱 깊어져서 선정이 응어리져서 옮겨 다니지 않고 그저 물의 모양만을 보다가, 또 정기를 오로지하여 관찰하면 능견과 소견이 단박에 사라지고 다만 물만이 남을 뿐이다. 이렇게 오래 하면 수행하는 사람의 육체가 입정할 때에 녹아 융해되어 물이 되어 외부 사람이 이것을 봄에 수행자의 육체를 끝내 보지 못하고 다만 맑은 물만 볼 뿐이다.
又更加精進하야精力을全注하면漸得大定하야定力이超越하나니自然頓悟本性하야心光이虛靈하야虛徹十方하며光通三際하야無所不知하며無所不見하니라. 到此田地하야不生種種知見하며不生一切分別하면自然漸得無量正定하야定力이漸漸擴充하니라.
또 더욱 정진하여 정진의 힘을 온전히 쏟아부으면 위대한 선정을 차츰 얻어 선정의 힘이 초월한다. 자연히 본성을 돈오하여 마음의 광채가 텅 비었으면서도 신령스러워 시방세계를 두루 사무치며 마음의 광채가 과거·현재·미래를 통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되며 보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이런 경지가 되어서도 어떤 알음알이도 내지 아니하며 일체의 분별을 내지 않으면 자연 점차로 무량한 바른 선정을 얻어 선정의 힘이 점차로 확충된다.
又更加精進하야不爲知見之所障하며亦不作聖解하면自然覺路前進하야漸入漸深하야定成無上大覺하리라.
여기에서 더 정교롭게 나아가 지견의 장애를 받지 않고 또한 성스럽다는 견해를 내지 않으면, 자연히 깨침의 길로 앞으로 나아가서 점차로 들어가고 점차로 깊어져서 결정코 무상대각을 성취할 것이다.”
白雲子ㅣ曰成就觀力하야得正定者는如何作用이닛고?
0001_0017_b_01L백운자가 묻기를,
“관찰의 힘을 길러 바른 선정을 얻은 사람은 어떤 작용을 합니까?”
龍城曰得種種正定者는能觀山爲水하고觀水爲山하며觀山爲火하고觀火爲山하며又觀水爲火하고觀火爲水하며又觀土石爲金玉하고觀金玉爲土石하나니如是等種種無量之事을任意行之호되一無障碍하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갖가지의 바른 선정을 얻은 사람은 산이 물이 됨을 능히 보고 물이 산이 됨을 보며, 산이 불이 됨을 보고 불이 산이 됨을 보며, 또 물이 불이 됨을 보고 불이 물이 됨을 보며, 또 토석이 금옥金玉이 됨을 보고 금옥이 토석이 됨을 본다. 이렇게 등등으로 갖가지 무량한 일을 마음대로 행하되 한 점도 장애가 없다.
如水觀成就之事하야火觀等種種觀法도亦然하니라. 以大定力으로擲大千於方外하고納須彌於芥子호되無所障碍하나니其神通境界가不可思議也ㅣ니라.
수관水觀을 성취하는 일과 같이, 화관火觀 등의 갖가지 관법도 역시 그렇다. 위대한 선정의 힘(大定力)으로 대천세계를 세상 밖으로 내던지고, 겨자씨 속으로 수미산을 거두어들이되 장애되는 바가 없으니, 그 신통을 부리는 경계는 가히 생각할 수 없다.
六根이銷融하야無明이頓消하면三明六通이朗發하나니以法界眞身으로爲身古로盡虛空遍法界種種之事를無所不見하며無所不聞하며又無始過去種種事를無所不見하며無所不聞하며無所不知하며現在之事와未來之事도亦然하야無所不見하며無所不聞며無所不知하나니,
0001_0018_a_01L육근이 녹아 융해되어 무명이 단박에 소멸하면 삼명三明과 육통六通이 밝게 드러난다. 법계의 진신으로 몸을 삼았기 때문에 온 허공과 모든 법계의 갖가지 일을 보지 못함이 없으며, 듣지 못함이 없다. 또 시작 없는 옛적 과거의 갖가지 일을 보지 못함이 없고, 듣지 못함이 없으며, 알지 못함이 없다.
具足天眼通과天耳通과他心通과宿命通과神足通과漏盡通等하야世出世間之事를如意行之호되一無障碍나니,
천안통과 천이통과 타심통과 숙명통과 신족통과 누진통 등을 모두 갖추어 세간과 출세간의 일을 마음대로 행하되 하나도 장애됨이 없다.
此等之事는全非他術ㅣ라. 人人箇箇의本學妙性에元自具足也ㅣ니如蟲化蟬에作用이甚大인달야轉凡成聖에神通妙用이亦不可思議也ㅣ니라. 君知否아? 現今念動法과念寫法과透視法과千里眼等은全以識心力으로行之호되如意作用이온況成就無上大道者乎아.
0001_0018_b_01L이런 등등의 일은 모두 다른 요술이 아니다. 이것은 모두 사람마다 낱낱의 본각묘성에 원래부터 스스로 갖추고 있는 것이다. 마치 굼벵이가 매미가 됨에 작용이 매우 큰 것과 같아서 범부를 뒤집어 성인을 이룸에 신통묘용이 역시 불가사의하다. 그대는 아는가? 요즈음의 염동법念動法과 염사법念寫法과 투시법透視法과 천리안千里眼 등등은 모두 식심의 힘으로 행하되 마음대로 작용하는데, 하물며 위없는 대도를 성취하는 것은 말해서 무엇하리요.”
6. 신령한 마음은 어디에도 통하고 무엇이든 다 앎을 논함(論心靈無所不通無所不知)
白雲子ㅣ問曰心之所靈이無所不通고無所不知는何也ㅣ닛고?
백운자가 묻기를,
“마음은 신령하여 어디에도 통하고 무엇이든 다 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龍城曰體非群相故로無所不通也ㅣ오本覺故로無所不知也ㅣ니라. 君知否아? 譬如虛空이元非有相故로無所不通고無所不入也ㅣ니如掘土一丈에空亦一丈이오堀土百丈에空亦百丈이라. 乃至塵塵刹刹히無所不通하며無所不入也인달하야心亦如是하니라. 又如水本是濕故로波亦是濕인달하야心亦如是也ㅣ니라.
0001_0019_a_01L용성이 대답하기를,
“(마음의) 본바탕(體)은 아무런 형상도 없기 때문에 어디에도 통하고, (마음의 본바탕은) 본래 깨어 있기(本覺) 때문에 무엇이든 다 안다. 그대는 모르는가? 비유하면 마치 허공이 원래 형상이 없기 때문에 어디에도 통하고 어디에도 들어간다. 마치 땅을 한 길 파면 허공도 역시 한 길이 되고, 백 길을 파면 허공도 역시 백 길이다. 내지 온갖 티끌 어디에도 통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과 같아서 마음 역시 그와 같다. 또 마치 물에는 본래 습한 성질이 있기 때문에 파도도 역시 습한 것과 같아서 마음 또한 그와 같다.”
白雲子ㅣ曰心이充滿於虛空否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마음이 허공에 충만합니까?”
龍城曰若是充滿於虛空者ㅣ인대空是外殼이오心是內物也ㅣ리니是大不然하다. 夫心也者는空有가斯絶하고名相이斯空이라. 不可以心行計較로思議哉인저.
0001_0019_b_01L용성이 대답하기를,
“만약 허공에 충만하다면 허공은 겉껍질이고 마음은 속 알맹이인 셈이니, 결코 그렇지 않다. 대저 마음이란 ‘비었느니(空)’, ‘있느니(有)’ 하는 (분별과는) 관계가 없고, 명칭과 형상(名相)이 비었기 때문에 마음을 움직이거나 따져서 사유하거나 설명할 수 있겠는가!
君知否아? 心若始空인長空不有也ㅣ오心若是有인長有不空也ㅣ리니種種名相도亦復如是하니라.
그대는 모르는가? 마음이 만약 ‘빈 것(空)’이라면 드넓은 허공은 ‘있는 것(有)’이 아니고, 마음이 만약 ‘있는 것’이라면 드넓은 현실은 빈 것이 아닐 것이다. 갖가지의 명칭과 형상들도 역시 그와 같다.
若君이住心作空이면碍空而失其由自也ㅣ오住心作虛靈知覺이면碍於是而失其自由也ㅣ오住心作體用이면碍於是而失其自由也ㅣ오住心作非體非用이면碍於是而失其自由也ㅣ리니種種諸心도亦復如是하나니라. 故云心不住法하면道卽通流하고心若住法하면名爲自縛이라하니라.
만약 그대가 마음을 기울여 ‘빈 것’이라고 여기면 ‘빈 것’에 장애되어 자유를 잃어버릴 것이고, 마음을 기울여 ‘허령지각虛靈知覺’이라고 여기면 그것(허령지각)에 장애되어 자유를 잃을 것이며, 마음을 기울여 체용體用으로 조작하면 이것(체용)에 장애되어 자유를 잃을 것이고, 마음을 기울여 체도 아니고 용도 아니라고 조작하면 이것에 장애되어 자유를 잃을 것이니, 갖가지 여러 마음을 내도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마음이 어떤 법에도 머물지 않으면 도는 곧 소통하여 흐르고, 마음이 만약 법에도 머물면 스스로에게 묶인다고 이름한다’고 하였다.”
白雲子ㅣ曰道者는何謂也ㅣ닛고?
백운자가 묻기를,
“도道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龍城曰古云此道天眞이라本無名字언만은只爲世人이迷在情中일所以로聖人이出來化門하사說破此事하사權立道名하시니若情存學道하면却成迷道라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옛사람이 말하기를, ‘도道는 천진자연하여 본래 이름(名)이나 자字가 없지만 다만 세상 사람들이 번뇌(情)에 미혹했기 때문에 성인께서 교화의 문을 나오셔서 이 일을 말씀하시어 도라는 이름을 임시방편으로 설립하신 것이다. 만약 번뇌(情)를 남겨 두고 도를 배우면 도리어 도에 미혹하게 된다’고 하셨다.”
白雲子曰然則默默言說이爲道耶닛가?
백운자가 묻기를,
“그렇다면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 것이 도道입니까?”
龍城曰是大不然하다. 若達人分上에는無可無不可어니와若迷人分上에는觸道成滯야皆成迷道也ㅣ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절대로 그렇지 않다. 만약 통달한 사람의 분상에서는 그렇다고 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다고 할 것도 없지만, 만약 미혹한 사람의 분상에서는 도를 만나더라도 그것에 들러붙어 모두 도에 미혹된다.”
白雲子ㅣ曰道之一字가源出於何ㅣ닛고?
백운자가 묻기를,
“도道라고 하는 이 한 글자는 어디에 근원하여 나온 것입니까?”
龍城曰道之大源이出於覺也ㅣ니若悟本覺하면始本이一致하야究竟無二也ㅣ니라.
0001_0020_b_01L용성이 대답하기를,
“도의 궁극적 근원은 ‘깨달음(覺)’에서 나온다. 만약 ‘본래의 깨달음(本覺)’을 체험하면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이 결코 둘이 아니다.”
白雲子ㅣ問曰何者ㅣ爲妙用也이며何者ㅣ爲神通也ㅣ닛고?
백운자가 묻기를,
“묘용妙用이란 무엇이며 신통神通이란 무엇입니까?”
龍城曰妙用者는本自如然이니指示人人箇箇底本具之妙用也오. 神通者는依定發通也ㅣ니覺云深修正定하야得五神通也라시니是其明證也ㅣ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묘용이란 본래부터 스스로 한결같이 그러한 것이니 사람마다 본래부터 누구나 다 간직하고 있는 오묘한 작용을 지시한다. 한편 신통이란 선정(定)에 의지하여 발현되어 통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른 선정을 깊이 닦아야 다섯 종의 신통을 얻는다’고 하셨으니, 이것이 그 분명한 증거이다.”
白雲子ㅣ曰此神通妙用이於我에有否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이 신통과 묘용이 저에게도 있습니까?”
龍城曰甚也哉인저. 君迷也여. 君이卽今에揚眉瞬目고運手動足하나니是非妙用神通而何오? 故로古云神通幷妙用이運水及搬柴라하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그대의 미혹함이 심하구나! 그대가 지금 눈썹을 쳐들고 눈동자를 깜박이며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는데, 이것이 묘용과 신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신통과 묘용이 물 긷고 땔나무 해 오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白雲子ㅣ曰余觀微細蜫蟲호니身體極小故로作用이極劣하니想必其心也ㅣ小也며象馬等이其體大故로作用이亦大하니想必其心也ㅣ大也로소이다.
백운자가 묻기를,
“제가 미세한 곤충을 보니, 몸체가 매우 작기 때문에 ‘작용’이 아주 하열하니 생각건대 그 마음도 반드시 작을 것이며, 코끼리나 말 등은 그 몸체가 크기 때문에 ‘작용’도 역시 크니 생각건대 그 마음도 클 것입니다.”
龍城曰譬如一星火가燒却山積柴木하니此는譬極小而大也요又如衝天之大火가得一小之木하면但燒却此木而已ㅣ니此는喩大而極小也ㅣ니라. 火無大小而但遇依報之大小不等하야火之作用도亦然하니心靈도亦然하야報得大而用亦大하고報得小而用亦小也ㅣ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비유하자면 마치 작은 불꽃이 산처럼 쌓인 땔나무를 태워 버리니 이는 작지만 큰 것을 비유한 것이고, 또 마치 하늘까지 치솟는 큰 불이 작은 땔나무를 만나면 그저 그 땔나무만 태워 버릴 뿐이니 이는 크지만 작은 것을 비유한 것이다. 불 자체는 크고 작음이 없지만, 다만 의보依報가 크고 작음이 일정하지 않아서 불의 작용도 역시 그런 것이다. 마음의 신령함도 역시 그와 같아 큰 의보를 만나면 작용도 역시 크고, 작은 의보를 만나면 작용도 역시 작다.
譬大海가彌滿淸淨이라가萬波競起之時에波之大小가歷然하나波之小者도得大海之全分이오波之大者도得大海之全分이니濕無二相故也ㅣ니라. 心靈도亦然하야隨身體之大小不等하야作用은有差나皆從本覺之全分이니라.
비유하면 큰 바다가 청정함으로 가득했다가 온갖 파도가 다투어 일어날 때에 파도의 크고 작음이 분명하지만, 작은 파도도 큰 바다의 완전한 한 부분(全分)이고, 큰 파도도 큰 바다의 완전한 한 부분이어서 축축한 성질에는 다름이 없는 것과 같다. 마음의 신령함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몸체가 크고 작음이 달라 작용은 차이가 있지만 모두가 본각本覺의 완전한 한 부분이다.
螳螂은有轉圈之能하고蜘蛛는有布網之巧하고象王은有絶流之力하고大鵬은有凌空之飛하니此等大小之物이各得本覺之全分이나作用은皆不同也ㅣ니此所謂細入微塵하며大包無外하야無所不通하며無所不知也ㅣ니라.
0001_0022_a_01L사마귀는 팔 돌리기(轉圈)를 잘하고 거미는 그물 치기에 재주가 있으며, 임금 코끼리는 물살을 가로막는 힘이 있고 큰 붕새는 허공을 뛰어넘는 날아오름이 있으니, 이런 등등의 크고 작은 동물도 저마다 본각本覺의 완전한 한 부분(全分)을 간직하고는 있지만, 작용이 모두 같지는 않다. 이를 두고 작기로 말하면 티끌 속에도 들어가며 크기로 말하면 끝없음(無外)을 포괄하여 ‘(신령한 마음은) 어디에도 통하고 무엇이든 다 안다’는 것이다.
7. 만물은 변질도 소멸도 없음을 논함(論物不遷滅)
白雲子ㅣ曰一切物相이悉歸寂滅하야畢竟敗壞否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일체의 만물은 모두 적멸의 상태로 돌아가 마침내는 사라집니까?”
龍城曰君不見覺道否아?道는云也 一切諸法이常住不生하고常住不滅이라하시니其不生滅者는唯物乎인져. 君知否아? 一切萬物은原因於氣素하고氣素는原因於頑空하고頑空은原因於心王識하고心王識은原因於本覺하나니本覺은元非生滅이니라.
0001_0022_b_01L용성이 대답하기를,
“그대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지 못했는가?도는 말하는 것이다.
일체의 모든 존재(法)가 상주하여 생生하지 않고 상주하여 멸滅하지 않는다 하셨으니, 그 불생불멸하는 것은 오직 만물(物)이 아니겠는가? 그대는 아는가 모르는가? 일체 만물은 ‘기의 원소(氣素)’에 원인하고, ‘기의 원소’는 ‘물질적인 허공(頑空)’에 원인하며, ‘물질적인 허공’은 ‘심왕인 식(心王識)’에 원인하고, ‘심왕인 식’은 ‘본각本覺’에 원인하는데, ‘본각’은 원래 생성소멸하지 않는다.
自體淸淨하야本無諸相하며自體本然하야本無生滅이로되此性이深深極微妙하야不守自性隨緣成하나니譬如大海가千波競起에有生滅差別種種之相이라가風息浪靜에差別之相이頓空하고唯一眞水而已니到此田地하야萬波差別을了不可得인달하니라.
스스로의 본체가 청정하여 본래 모든 형상이 없으며 스스로의 본체가 본래 그러해서 본래 생성소멸이 없지만, 이것의 본성은 깊고 깊게 미묘하여 자신의 본성을 고집하지 않고 인연을 따라 (다양한 마음 작용을) 만들어 낸다. 비유하면 마치 큰 바다에 수많은 파도가 다투어 일어날 경우 갖가지 모양으로 생성소멸하는 차별이 있다가, 바람이 잦아 물결이 고요해지면 차별된 모양이 단박에 공해지고 오직 하나의 참된 물(水)일 따름이니, 이런 상태가 되면 온갖 파도의 차별된 형상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것과 같다.
本覺도亦然하야無數緣起가從此而發生이라가心浪이頓息에一切生滅諸相을了不可得이니波息爲海에水無生滅이오緣息爲心에心不生滅이니라.
‘본각’도 역시 그러해서 일체의 생성소멸하는 모든 형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파도가 잠들어 바다가 되면 물 자체는 생성소멸이 없다. 인연이 쉬어져서 ‘마음(心)’이 되면 ‘마음’ 자체는 생성소멸이 없다.
君知否아? 太陽이南下則爲秋爲冬하고太陽이北上則爲春爲夏하나니北上에地面陽氣가漸厚故로萬物이乘陽而發生하고太陽이南下에地面陽氣가漸薄故로萬物이乘陰而自死하나니此等之四大元性이彌滿法界하며差別種性이遍周空界하야逢緣而生하고違因而滅이나然이나此四大元性은全不生滅이니라.
0001_0023_a_01L그대는 아는가 모르는가? 태양이 남쪽으로 내려오면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며, 태양이 북으로 올라가면 봄이 되고 여름이 된다. 태양이 북으로 올라가면 지면의 양의 기운이 점점 두터워지기 때문에 만물이 양기를 타고 발생하고, 태양이 남으로 내려오면 지면에 양기가 점점 엷어지기 때문에 만물이 음의 기운을 타고 스스로 말라 죽는다. (지地·수水·화火·풍風) 이런 등 사대종四大種인 ‘원래의 성품(元性)’이 법계에 가득하며 차별된 갖가지의 성품들이 허공계에 어디에건 가득하여, 인연을 만나면 생하고 인연이 어긋하면 멸한다. 그러나 사대종인 ‘원래의 성품(元性)’은 온전하여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一切萬物이各具四大하야自成其體라가枯死之時에自體水分은流合外水하며又因太陽之曝射하야飛去空中야與空으로流散하야合於大海江水호되其水가不滅而水性인眞空과眞空인水性이遍周法界하야常住不滅하며,
0001_0023_b_01L일체의 만물이 저마다 사대종을 갖추어 스스로 그 ‘바탕(體)’을 만들고 있다가, (생물들이) 말라 죽을 때에는 자체에 있던 수분은 흘러나와 밖의 물과 합류하며, 또 태양이 작열하여 (수분이) 허공 속으로 날아가 허공과 함께 흘러 퍼져 큰 바다나 강물과 합하지만, 그 물(水)은 소멸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물의 본성인 진공과 진공인 물의 본성이 법계에 어디에건 가득하여 상주하여 불멸한다.
又萬物之枯死에自體가乾腐하야化爲土質하야與本土로爲一이라가起天地大三災之時에此等萬物이消蕩無餘로되此萬物之元性地水火風인眞空과眞空인地水火風이周遍法界하야常住不生하고常住不滅하나니,
또 만물이 말라 죽어 자체가 마르고 썩어 변화되어 토질이 되어 본래 흙과 하나가 된다. 그러다가 천지에 대삼재大三災가 일어날 때 이런 등등의 만물은 남김없이 사라진다. 그렇지만 만물의 ‘원래의 성품’으로서의 지地·수水·화火·풍風인 진공과 진공인 지地·수水·화火·풍風이 법계에 어디에나 가득하여 상주하여 불생하고 상주하여 불멸한다.
隨業發生則以成萬物之形하고還歸元性四大則頓無形質하나니譬如大海가起則以成波形하고息則波形이自滅하야頓成一海인달하야一切萬物도亦復如是하야萬物之元性은常住不遷 니라. 又萬物이全體則空이오全空則色이니空色이元不二體故也니라.
0001_0024_a_01L업을 좇아 생겨나게 되면 만물의 형체가 이루어지고, ‘원래의 성품’인 사대종으로 돌아가면 형체와 질료가 싹 없어진다. 비유하면 마치 큰 바다에 (바람이) 일어나면 파도의 형상이 만들어지고, (바람이) 멈추면 파도의 형상이 저절로 소멸하여 단박에 하나의 바다가 되는 것과 같다. 일체 만물도 역시 또 그러하여, 만물의 ‘원래의 성품’은 상주하여 달라지지 않는다. 또 만물은 ‘모든 바탕(全體)’ 그대로가 공空이고, ‘모든 공(全空)’ 그대로가 색色이다. ‘색色’과 ‘공空’이 원래 서로 다른 ‘바탕(體)’이 아니기 때문이다.
又吾人之性我가起爲世界萬物하나니其萬物者는誰也ㅣ며一切四大種種氣素가由性我而建立하나니其四大者는誰也오?
또 우리 사람들의 ‘본성으로서의 아(性我)’가 생기生起하여 세계의 만물이 되는데, 만물이란 누구인가? 또 모든 갖가지 기운의 원소가 되는 사대종이 ‘본성으로서의 아’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이니, 사대종이란 누구인가?
古云天地與我同根이오萬物이與我一體라하니其同根同體者非我而誰오? 譬如虛室千燈이自一火而以成千燈호되燈燈이互相賓主하야光光이無碍인달하니라.
그러므로 옛사람이 ‘천지와 나는 한 뿌리요, 만물이 나와 함께 바탕(體)이 동일하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같은 뿌리’와 ‘같은 바탕’이란 대체 ‘본성으로서의 아’가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비유하면 마치 빈 방에 켜진 천 개의 등불이 하나의 불씨에서 나와 천 개의 등불에 점등되지만 등불끼리는 서로서로가 ‘나그네(賓)’와 ‘주인(主)’이 되면서도 등불마다가 서로 장애하지 않는 것과 같다.”
白雲子ㅣ曰大覺이過去現在未來之事를歷歷皆知하시니未知케이나是何道力故也닛고?
0001_0024_b_01L백운자가 묻기를,
“부처님(大覺)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을 분명하게 모두 아시니, 이것은 무슨 도력 때문에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龍城曰君看留聲器否아? 一切種種歌曲談論을留於此器로대不見其跡며不聞其聲이라가雖百千年之後라도隨人應用야五音六律이悅可衆心인달하야吾人唯心大明體에印乎一切大小音聲言語談論이라가無明惑業이頓消하고慧日朗發之時에大小音聲이歷歷分明하야毫無隱者ㅣ니所以로一切聲이常住不生하고常住不滅이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그대는 유성기를 보았는가? 일체 모든 갖가지 가곡이나 이야기들을 유성기판에 담았지만 그 흔적도 보이지 않고 그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비록 백 년이고 천 년이고 뒤에 사람들의 응용에 따라 다섯 종류의 음音과 여섯 종류의 율律이 뭇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처럼, 우리네 사람들의 위대하고 밝은 바탕인 오직 ‘마음(心)’에 일체의 크고 작은 음성과 언어와 이야기가 찍혀 있으니, 무명혹업無明惑業이 단박에 사라지고 지혜의 해가 찬란하게 빛날 때는 크고 작은 음성이 역력하고 분명하여 털끝만큼도 숨겨지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일체의 소리가 상주하여 불생하고 상주하여 불멸한다.
譬如電氣가充滿虛空하야元無大小形像며亦無靑黃赤白이로隨人巧用하야光明이現發하며無線電話等을使用나니吾人之心도亦然야心華發明에照十方刹하야種種變化神通之事를無不應現하니라.
0001_0025_a_01L비유하면 마치 전기가 허공에 충만하여 원래 크거나 작거나 형상도 없고 역시 청·황·백·적의 색깔도 없지만 사람들의 정교한 기술에 따라 전기불빛이 나타나며 무선전화 등을 사용한다. 우리네의 ‘마음(心)’도 또한 그러하여 마음의 꽃(心華)이 밝아져 시방세계를 비추어 갖가지로 변화하고 신통을 부리는 일을 드러내지 못함이 없다.
又如江中投石에水成波紋하야四面普遍인달하야吾人之大小音聲이圓徹十方이어든諸有道者는普皆聞之이니一切心行差別과一切形貌差別과無始世界差別과無始衆生差別과無始賢聖差別과現在未來之事를普印於光明藏中하야炳然齊現이猶彼芥甁하야無所雜亂하나니是吾人之具足本分事라別無奇特也ㅣ니라.
0001_0025_b_01L또 강물 가운데로 돌을 던지면 물 파도 문양을 만들어서 사방으로 두루 퍼지는 것처럼, 우리네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음성이 시방세계에 완전하게 사무치면 도력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두루 다 듣는다. 마음에 일어나는 일체의 차별과, 형체나 모양 등의 일체의 차별과, 세계에 대한 시작 없는 차별과, 중생에 대한 시작 없는 차별과 현자이니 성인이니 하는 시작 없는 차별과, 현재와 미래의 일들을 ‘광명의 창고(光明藏)’ 속에 모두 찍어 환하고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마치 ‘겨자 병(芥甁)’처럼 난삽하거나 뒤섞임이 전혀 없다. 이것은 우리네 사람들에게 갖추어진 ‘본분사本分事’이지 특별히 기이하거나 특이한 것이 아니다.
吾人之法界眞身이橫遍十方하고竪窮三際하야通身是眼이오通身是耳니鼻舌身意도亦然하야通徹法界十虛故로其見聞覺知가圓徹十虛하야無有空缺하야同時見聞覺知了然明白호되如明鏡이當臺에頓照萬像인달하야毫無雜亂하니라.
우리네 사람들의 법계의 진신眞身이 공간적으로 시방에 퍼져 있고,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사무쳐서 온몸이 눈이고 온몸이 귀이고, 코와 혀와 피부와 마음(意)도 역시 그렇다. 법계의 시방 허공에 사무치기 때문에 보거나 듣거나 지각하거나 인식하는 작용이 시방 허공에 완전하게 사무쳐서 비거나 모자람이 없다. 보거나 듣거나 지각하거나 인식하는 작용이 동시에 뚜렷하고 명백하니, 마치 밝은 거울을 거울 받침대에 걸어 두면 온갖 형상을 단박에 비추는 것과 같아서 털끝만큼도 난삽하거나 뒤섞임이 전혀 없다.
君知否아. 吾人之平生所學文字와所見所聞之事를通印於心王心田하야不見其藏이로되隨時使用이면無有窮盡하야用之不渴也ㅣ니라.
0001_0026_a_01L그대는 모르는가? 우리네 사람들이 평생 배우는 문자와 보거나 듣는 일들을 심왕心王의 마음의 밭(心田)에 찍어 두었으니, ‘간직하는 창고(藏)’는 보이지 않지만 때마다 사용해도 다함이 없고 써도 고갈되지 않는다.”
白雲子ㅣ曰或有忘失而記憶者하며或有永失者하니其故는何也ㅣ닛고?
백운자가 묻기를,
“혹은 망실했다가 기억하기도 하며, 혹은 영원히 망실하는 것도 있으니,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龍城曰識之無記分子가覆弊光明體性故로間有忘失者하며忘而記憶者하니譬如密雲이弊天이라가日光이透漏에光明이下照인달하니所以로忘而記之者也ㅣ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아뢰야식(識) 속에 잠재된 ‘무기 분자無記分子’가 빛나는 ‘본바탕(體性)’을 가렸기 때문에, 간혹 망실하는 것도 있고 망실했다가 기억하는 것도 있다. 비유하면 마치 짙은 구름이 하늘을 가렸다가 태양이 그것을 투과하여 광명이 아래를 비추는 것과 같다. 그래서 잊었다가 기억하는 것이 있다.
聖人이三世之事를無不通達者는譬如黑雲이弊天이라가忽遇風吹雲散盡하면空含衆色暎天地호衆星이炳現인달하야吾人之心도亦然하야無始無明黑雲이頓消하면無始劫來에所見所聞之事를印於光明體性者가歷歷現露하야無所不通하며無所不知나니,
0001_0026_b_01L성인들이 과거·현재·미래의 일을 모두 통달하는 까닭은, 비유하면 마치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렸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구름이 모두 흩어지면 허공이 온갖 사물들을 드러내며 온 세상에 빛나 온갖 자잘한 것들이 훤하게 드러나는 것과 같다. 우리네 사람들의 마음도 또한 그러하여, 시작도 없는 때부터 있어 왔던 무명의 검은 구름이 대뜸 사라지면, 시작 없는 때부터 보고 들은 일을 빛나는 ‘본바탕(體性)’ 위에 찍어 두었던 것들이 또렷또렷하게 드러나서 어디에고 통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무엇이든 알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萬物之形像이入吾心者도歷劫常住不滅이온況光成體性이普印有情無情天地世界萬像者乎아. 以此觀之하면盡虛空遍法界一切所有物이皆常住不生하고常住不滅也니라.
온갖 사물의 형상이 내 ‘마음(心)’에 들어오는 것들도 긴 세월을 지나더라도 상주하여 불멸하는데, 하물며 빛나는 ‘본바탕(體性)’에 두루 찍어 둔 유정물과 무정물과 세상 온 세계에 있는 갖가지 사물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이렇게 관찰하면, 끝없는 허공과 두루한 법계에 있는 일체의 모든 사물들은 모두 상주하여 불생하고 상주하여 불멸한다.”
8. 원래의 각성과 개별적 각성을 논함(論元性箇性)
白雲子ㅣ曰那箇是本性이며那箇是箇性이닛고?
백운자가 묻기를,
“무엇이 ‘본원인 각성(本性)’이며 무엇이 ‘개별적 성(個性)’입니까?”
龍城曰本覺이起變爲識하고識變爲行하고行變爲想하나니想而伏澄하야變爲無記分子야以成世界하고想而空虛하야頑然冥昧하야靜成虛空하고想而亂動하야變爲知覺하야以成衆生하나니此三者ㅣ가於一想體에變成差別之相이나各得本覺氣分하야以成者也ㅣ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본원인 각성(本覺)이 생기하여 변하여 식識이 되고, 식이 변하여 행行이 되고, 행이 변하여 상想이 된다. 상想이 맑게 잠복하여 있다가 변하여 무기無記 분자가 되어서 세계가 형성되고, 상想이 텅 비어서 완연하게 아득하고 고요하여 허공이 이루어지며, 상想이 어지러이 움직여 변하여 지각知覺 작용이 생겨 중생이 이루어진다. 이 셋은 동일한 상想이라는 바탕에서 변하여 차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데, 그것들은 각각 모두 본각의 기운을 부분적으로 간직하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本源性은數法이本空故로不可以心行으로論之也ㅣ니라. 此本性은如虛空爲繩애無不貫之인달하야無所不入하고無所不通이니라. 一切萬物이各具本覺호되受稟이有偏正差別故로一切無情之物이各具差別之性也ㅣ니,
0001_0027_b_01L‘본원인 각성(本源性)’은 수많은 법이 모두 본래 공하기 때문에 알음알이(心行)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본원인 각성’은 마치 허공을 새끼줄로 삼으면 관통하지 못하는 게 없는 것과 같아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고, 통하지 못하는 곳이 없다. 일체의 만물이 저마다 각각 ‘본원인 각성’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을 받아 지님에 치우침과 온전함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일체의 무정물이 저마다 차별된 성을 간직한다.
椒有辛性하고火有熱性하고水有濕性하고風有動性하고空有通性하고地有碍性하나니如是多種을不能枚擧也ㅣ니라. 又人類動物이皆有知覺之性하니知覺은一切有識含靈이皆同하고習性은各異하니라.
후추는 매운 성질이 있고, 불에는 뜨거운 성질이 있으며, 물에는 적시는 성질이 있고, 바람에는 움직이는 성질이 있으며, 허공은 통하는 성질이 있고, 땅에는 가로막는 성질이 있다. 이런 여러 종류는 이루 다 들 수 없다. 또 인간과 동물이 모두 ‘지각하는 성질(知覺性)’이 있으니, ‘지각’은 일체의 알음알이가 있는 생명체들이 모두 같고, ‘습성習性’은 저마다 다르다.”
白雲子ㅣ曰請問本性箇性之樣子하노라.
백운자 묻기를,
“청하건대 ‘본원인 각성(本性)’과 ‘개별적 성(個性)’의 양상에 대해 여쭙니다.”
龍城曰譬如明月이當空에無所不照인달하니本然覺性도亦復如是하니라. 又譬如江河가常流어든全世界民衆이各持一器하고吸水歸來에摠得全月인달하니器喩衆生之情器不同也오水喩衆生之心同也요月喩衆生之稟性이同也니라.
0001_0028_a_01L용성이 대답하기를,
“마치 밝은 달이 허공에 뜨면 비추지 못하는 곳이 없는 것과 같다. 본연의 각성(本然覺性)도 그와 같다. 또 비유하면 마치 강과 하천이 항상 흐르면 전 세계 사람들이 저마다 그릇 하나씩 들고 물을 길어서 집으로 돌아가면, 모두가 저마다 온전한 달그림자를 얻는 것과도 같다. 그릇은 중생의 ‘감정의 그릇(情器)’이 저마다 다름을 비유한 것이고, 물은 중생의 마음이 동일함을 비유한 것이고, 달은 중생의 품성이 같음을 비유한 것이다.
又以一星火로點千萬燈光호自一以爲多하고自多以爲一이나而性相體用本末等은毫無差異하나니人之箇性도亦復如是야靈明知覺은是同也로되淸濁利鈍과習性差別은一一不同也ㅣ니라. 若一人이悟道에心光이遍周法界하나니無數衆生도亦復如是하니라.
또, 한 개비의 불로 천 개 만 개의 등에 불을 붙이는데, 하나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 하나가 되지만 성·상, 체·용, 본·말 등은 털끝만큼도 차이가 없다. 사람마다의 ‘개별적 성’도 역시 그래서 신령하고 밝은 지각은 같지만 (타고난 기가) 맑으냐 탁하냐, 영리하냐 둔하냐 하는 습성의 차별은 낱낱이 같지 않다. 만약 한 사람이 도를 깨치면 마음의 광채가 법계에 두루하는데, 무수한 중생들도 역시 그렇다.”
9. 인연관에 대하여 논함(論因緣觀)
覺曰諸法이從緣生從緣滅이라하시니此是千古不易之定言也ㅣ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이 인연에서 생기고 인연을 따라 멸한다.”
이 말씀은 천고에 불변하는 결정적인 말씀이다.
白雲子ㅣ曰願聞其事하노이다.
백운자가 묻기를,
“원컨대 그 일을 여쭙니다.”
龍城이手執洋火하고唐黃問曰此中에有火否아?
용성이 손에 서양 성냥당나라 황을 들고 묻기를,
“이 속에 불이 있느냐?”
白雲子ㅣ曰若謂有火라도不見其形이오若謂無火라도火必生也ㅣ니吾不知其所以也하노이다.
백운자가 대답하기를,
“만약 불이 있다고 말하더라도, 그 모습을 볼 수 없으며, 만약 불이 없다고 말하더라도 불은 반드시 생깁니다. 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龍城이急持引磨席上에忽起一星火어늘龍城曰此火가因何而起也ㅣ며因何而滅也ㅣ오?
용성이 얼른 성냥을 마찰종이(磨席)에 그어 대니 갑자기 한 점의 불꽃이 일어났다.
용성이 묻기를,
“이 불이 무엇으로 인하여 일어났으며, 무엇으로 인하여 멸하는가?”
白雲子忽然覺悟하고欣然答曰三緣이和合하야火能發生하고三緣이散盡하야火亦死滅하나니三緣者는藥木與人也니本有之火性이遇緣得生하고違緣死滅이로되眞空非賴空之謂也인火性과火性인眞空이周遍法界하야隨業發現하되其實本性은實無往來하야常住不遷하나니,
백운자가 홀연히 알아차리고 기쁘게 대답하기를,
“세 가지 인연이 화합하여 불이 능히 발생하고, 세 가지 인연이 다 사라지면 불도 역시 멸합니다. 세 가지 인연이란 화약과 나무와 사람입니다. 본래부터 존재하는 불의 성품이 인연을 만나면 생겨나고, 인연이 어그러지면 사라져 없어집니다. 그러나 참된 공(眞空)완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인 불의 성품과 불의 성품인 진공이 법계에 두루해서 업에 따라 발현하지만, 그 실제의 본성은 실로 오고 감이 없이 상주불멸합니다.
火性이本有나非藥이면不能生火하고木雖有之나非人之力이면亦不能生火하나니天地萬物이皆因因緣聚散하야而有生滅할所以로有無之問題가出現於世하나니다.
불의 성품이 본래 존재하지만 화약이 아니면 불을 낳지 못하고, 나무가 비록 있더라도 사람의 힘이 없으면 역시 불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천지 만물이 모두 인연의 모이고 흩어짐으로 인하여 생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물음이 세상에 나옵니다.”
龍城曰善라. 如覺所言하야有人이藥艾를備置於地上하고以火鏡으로比日光而對之하면於中에火能現發하나니然則火生於日耶아? 若謂火生於日인댄無火鏡이라도火能自生이요若火生於火鏡인댄何待日而後에生也ㅣ며若火生於艾인댄何待鏡日而後에生也ㅣ리오.
용성이 대답하기를,
“훌륭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어떤 사람이 약쑥을 땅 위에 갖추어 놓고 돋보기로 햇빛을 끌어들여 그곳에 모으면, 그 가운데 불이 능히 발현한다. 그렇다면 불이 해에서 생긴 것인가? 만약 불이 해에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면, 돋보기가 없더라도 불이 스스로 생겨야 할 것이고, 만약 불이 돋보기에서 생긴다고 한다면, 왜 해를 쪼인 뒤에 생기는가? 만약 불이 쑥에서 생긴다면, 왜 돋보기와 해를 만난 뒤에 생기는가?
是故로三緣이和合然後에本有之火性이現發하나니眞空인火性과火性인眞空이周遍法界하야應所知量하야隨業發現하되眞實本有之火性은無去無來하며無有方圓長短며無有靑黃赤白等諸色하나니,
0001_0030_a_01L그러므로 세 가지 인연이 모여진 뒤에 본래 존재하던 불의 성품이 발현한다. 진공인 불의 성품과 불의 성품인 진공이 법계에 두루하여 아는 만큼의 양에 따라 업에 따라 발현하되 참되고 실다운 본래 존재하는 불의 성품은 옴도 없고 감도 없으며, 네모남도 둥긂도 길고 짧음도 없으며, 청황적백 등의 여러 색도 없다.
天地萬物도亦復如是야無一物도非從因緣而來며亦非從因緣而去也ㅣ니世謂之偶然自然之說은但有言說이언졍都無實義이니是虛無麥浪之說也ㅣ니라.
천지 만물도 또한 그와 같아서 어떤 한 물건도 인연으로 인하여 나오며 인연으로 인하여 없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세상에 말하는 우연이니 자연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그저 말만 있을 뿐, 전혀 실다운 뜻이 없으니 이런 것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이다.”
10. 인과를 논함(論因果)
白雲子ㅣ曰大覺이常說因果하시니其事云何이닛고?
백운자가 묻기를,
“부처님께서 인과법을 항상 말씀하시는데 그 일이 무엇입니까?”
龍城曰夫因果者난天地之常經이오三世不易之大法이니一切天地世界萬物과一切含識動物之身心全體가摠是因果也ㅣ며一切行住坐臥와語默動靜과是非善惡等種種之事가摠是因果也ㅣ니切不可以異端虛誕之說로觀之也어다.
0001_0030_b_01L용성이 대답하기를,
“대저 인과라는 것은 하늘과 땅의 ‘변함없는 기준(常經)’이며, 과거·현재·미래에 바뀌지 않는 위대한 진리이다. 일체의 천지 세계 만물과 일체의 알음알이가 있는 동물들의 몸과 마음 모두가 다 이 인과이며, 일체의 행주좌와와 어묵동정과 시비선악 등 갖가지의 일이 다 이 인과로서, 모든 이단들의 부질없는 학설로는 이것을 볼 수가 없다.
就一切有情動物之身心全體야三種分釋하리라. 一은就本源覺性釋이니最淸淨普光明體는至虛無極而體性이常住고至靈無竭而妙用이自在하야不可思議哉인저.此는覺性正因
(이하에서) 일체 유정물들의 몸과 마음 전체에 나아가 세 종류로 나누어서 풀이하겠다.
(1) 첫째는, 본원각성에 나아가 풀이한다.
가장 청정하고 두루한 광명의 본체는 지허至虛하고 무극無極인 체성體性은 상주불멸하고, 지령至靈하고 마르지 않는 묘용妙用은 자유자재하여 가히 생각하거나 언급할 수 없다.이는 각성의 정인正因이다.
二는就心行心數釋이니此妙用眞心이不守自性하야能生太明輕擧하고不守가爲因이오太明輕擧가爲果이니라輕擧力勝야妄明이自立하고輕擧力勝이爲因이오妄明이爲果이니라妄明이力勝하야所境이自立하고妄明力勝이爲因이오所境이爲果니라所境이力勝하야內隱本妙眞性하고外發萬類諸相하나니所境力勝이爲因이오內隱眞性하고外發萬相이爲果니라一分生滅을發生하야還以不生滅性으로合者를名之爲阿賴耶識이니라.
0001_0031_a_01L(2) 둘째는, ‘마음의 씀씀이(心行)’와 ‘마음의 헤아림(心數)’에 나아가 풀이한다.
이는 묘용妙用인 참마음이 자성을 고집하지 않고 능히 ‘매우 밝고 가벼움’을 낳고,‘고집하지 않음’이 인因이 되고, ‘매우 밝고 가벼움’이 과果가 된다. 가벼움의 힘이 더욱 왕성해져서 ‘허망한 밝음(妄明)’이 자립하고,‘가벼움의 힘이 더욱 왕성해짐’은 인因이 되고, ‘허망한 밝음’은 과果가 된다. ‘허망한 밝음’의 힘이 왕성해져서 ‘대상(所境)’이 자립하고,‘허망한 밝음의 힘이 왕성해짐’은 인因이 되고, ‘대상’은 과果가 된다. ‘대상’의 힘이 왕성해져서 본묘진성本妙眞性을 안으로 숨기고 수많은 형상(相)을 밖으로 발현하니,‘대상의 힘이 왕성해짐’은 인因이 되고, ‘본묘진성을 안으로 숨기고 수많은 형상을 밖으로 발현함’은 과果가 된다. (그중에서) 생멸하는 한 부분을 만들어 내어 이것이 도리어 불생불멸한 본성과 화합하는데, 이를 아뢰야식이라고 이름한다.
夫本覺者는眞妄이本空故로不可以心行心數法으로論之也어니와眞立妄隨라眞妄同時니不可以先後次第로論辨也ㅣ니라. 此阿賴耶識이具三細相하니一曰業相이오二曰轉相이오三曰現相이니此識이微細하야凡不可以能辨也ㅣ니라.
0001_0031_b_01L대저 본각이라는 것은, 진眞과 망妄이 본래 공하기 때문에 ‘마음의 씀씀이(心行)’와 ‘마음의 헤아림(心數)’으로 논할 수 없다. 진眞이 자립하면 망妄이 수반되므로 진眞과 망妄이 동시간적이어서 선후나 순서로는 논변할 수 없다. 이 아뢰야식은 ‘세 가지 미세한 상(三細相)’을 간직하고 있으니, 첫째는 업상業相이고, 둘째는 전상轉相이며, 셋째는 현상現相이다. 이 식은 미세해서 무릇 능히 설명하기 어렵다.
業相者는初發念之時니微細極微細하야流注不停者를名之爲業相이니라. 轉相者난此識之微細流注力勝야發能見之細相故로名之爲轉相이니라. 現相者난能見之力이勝故로所境之相이現하나니見起故로根境世界等이妄現할名之爲現相이니此三細相을轉轉推求則互相爲因爲果也니라.
업상業相이란 것은, 망념이 최초로 발현하는 때이니, 미세하고도 극히 미세하여 흘러서 멈추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업상이라 한다. 전상轉相이란 것은 이 식의 미세하게 흐르는 힘이 점점 세어져서 능견能見의 미세한 ‘상相’을 드러내기 때문에 이름하여 전상이라 한다. 현상現相이란 것은, 능견의 힘이 더욱 세어져서 대상으로서의 ‘상相’이 드러난다. ‘견見’이 일어나기 때문에 근根과 경境과 세계 등이 허망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이것을 이름하여 현상이라 한다. ‘세 가지 미세한 상(三細相)’을 계속 미루어 찾아가면 서로서로가 인因이 되고 과果가 된다.
從此三細相하야能發六種麤相하나니 一者는智相이니識之所現相이從自心而生이어날不知心生種種法生하고常起慧數하야分別染淨하야堅執定相할세生法執俱生二惑이니라.
0001_0032_a_01L이 ‘세 가지 미세한 상(三細相)’으로부터 ‘여섯 가지 굵은 상(六麤相)’을 발현시킨다.
첫째는 지상智相이니, 아뢰야식에 드러난 상相이 제 마음에서 생긴 것인데, 마음이 생하면 갖가지 법이 생하는 줄을 알지 못하고 지혜로 헤아림을 항상 일으켜서 염법과 정법을 분별하여 그것들에게 결정적인 상相이 있다고 단단하게 집착한다. 그리하여 법집法執, 구생俱生의 두 가지 혹惑을 낳는다.
二者는相續相이니能依智相하야於苦樂境에起苦受樂受二覺하야數數起念하야生執法分別二種惑業이니라.
둘째는 상속상相續相이니, 지상에 능히 의지하여 즐겁거나 괴로운 경계에 맞이하여 즐겁다고 받아들이거나 괴롭다고 받아들이는 두 종류의 지각 작용을 일으켜서 자주자주 망념을 일으켜 집법執法, 분별分別의 두 종류의 혹업을 일으킨다.
三者는一爲執取相이니能起我執俱生二惑也오二爲計名字相이니能計我執分別하야執法堅定故로見自他之殊하야自計爲我하고彼計爲他하야堅執我相이니라.
셋째는, 하나는 집취상執取相이니 능히 아집我執, 구생俱生의 두 종류의 혹을 일으키고, 다음은 계명자상計名字相이니 능히 아집 분별을 일으켜서 법은 견고하고 결정되어 있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이쪽과 저쪽의 다름을 보아서 이쪽을 나라고 여기고 저쪽을 남이라고 여겨서 아상을 견고하게 집착한다.
四者는起業相이니因我執故로於愛我者에는我亦愛之하고於逆我者에는我亦嗔之하야愚痴計較하니라.
넷째는 기업상起業相이니, 나를 집착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자에게는 나 또한 사랑하고, 나를 거스르는 자에게는 나 역시 성내어 우매하고 어리석게 생각을 굴린다.
五者는造業相이니由貪嗔癡三毒하야善惡業因을無所不造也니라.
다섯째는 조업상造業相이니 탐·진·치 삼독으로 말미암아 선악업의 인因을 짓지 않음이 없다.
六者는受報相이니已造定業은難可廻避ㅣ니萬種果報가隨造必受니라.
여섯째는 수보상受報相이니 이미 만들어져 결정된 업은 회피하기 어려우니 만 가지의 과보는 짓는 대로 반드시 받는다.
三就身分釋
父母已三緣이和合하야此身을成就나니則是三愛之能因으로定受所成之身果也ㅣ니라. 依報身體也有病則心亦受苦病因으로心愛痛苦也하고心閒無事則身受閒果하며六根이完堅하고四大健强則身心이安樂하고四大不調하고六根이有缺하면心受苦痛하나니此等이摠是因果也니라.
0001_0033_a_01L(3) 셋째는, 몸에 나아가 나누어 풀이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 이 세 가지 인연이 화합하여 이 몸을 성취하게 된다. 세 가지 애愛를 능인能因으로 삼아 만들어진 몸(身)의 결과를 반드시 받게 된다. 의보依報신체를 말한다.에 질병이 있으면 마음 역시 괴로움을 받고,(몸의) 병이 원인이 되어서 마음이 아픔과 고통을 좋아한다. 마음이 한가롭고 일삼음이 없으면 몸이 편안한 과보를 받으며, 육근이 완연히 튼튼하고 사대가 강건하면 몸과 마음이 안락하지만 사대가 조화롭지 못하고 육근에 결함이 있으면 마음이 고통을 받는다. 이런 등등이 모두 인과이다.
心受六境에色聲香昧觸法이順合我意者ㅣ면心受樂果하고違逆不平이면心受憎果하며彼順我心이면心受樂果하고彼逆我意면心受憎果하나니憎愛是非가熾然故로善惡果報가如影隨形하니라.
마음이 육경六境을 받아들임에 색성향미촉법이 나의 의도와 잘 맞으면 마음이 즐거운 결과를 받아들이고, 어긋나고 거슬려서 평안하지 못하면 마음이 미워하는 결과를 받아들인다. 미워함과 사랑함, 옳고 그름이 불타오르기 때문에 선 또는 악의 과보가 마치 그림자가 본체를 따르는 듯하다.
凡有行住坐臥와一動一靜히摠是因果也ㅣ니我有善言이면彼必善言而對之하고我有惡言이면彼必惡言而對之하니普天下之大衆이一一皆如是하니라.
무릇, 행주좌와와 한번 움직였다 한번 고요함이 모두 인과이다. 내가 선하게 말하면 남도 반드시 선한 말로 대하고, 내가 악한 말을 하면 남도 반드시 악한 말로 대한다. 온 천하의 대중들이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이와 같다.
又天下가有治하면大衆이安樂하고天下不治하면大衆이塗炭하나니古今天下歷史에治亂善惡之因果가昭然明白하니君今思之하라. 不必虛誕이니라.
또 천하에 다스려짐이 있으면 대중이 안락하고 천하가 어지러우면 대중이 도탄에 빠진다. 예나 이제나 천하 역사에 다스려짐과 어지러움, 선과 악의 인과가 밝고 명백하니 그대는 지금 생각해 보거라. 절대로 허망하다고 하지 마라.”
白雲子ㅣ曰人生이氣聚則生하고氣散則滅하나니三生因果를未必可知也ㅣ로소이다.
백운자가 묻기를,
“사람의 태어남이란 기가 모이면 생하고, 기가 흩어지면 멸하니, 삼생의 인과를 반드시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龍城曰天下에無一物이永歸斷滅者ㅣ하니爲子言之호리라. 君之死也에身이永歸斷滅耶아? 身은以地水火風四大로建立者也ㅣ라.
0001_0034_a_01L용성이 대답하기를,
“천하에는 어떤 한 물질(物)이라도 단멸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없다. 그대를 위하여 말하겠다. 그대가 죽으면 몸이 단멸로 영원히 돌아가는가? 몸은 지수화풍 사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君之骨肉이腐敗爲土하니土不可以永滅也ㅣ오. 血水는必合外水호되受陽曝射에水分이飛去하야與空氣中水分으로合流而歸江河하며風火二大는飛空流散하야與元性으로合하나니敢謂永滅耶아.
그대의 뼈와 살은 썩어서 흙이 되니 흙은 절대로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다. 피는 외부의 물과 합쳐졌다가 태양의 내리쬐임을 받아 수분이 날아가서 공기 속의 수분과 함께 합류하여 강물이나 하천으로 돌아간다. 바람과 불 2대는 허공으로 날아올라 이리저리 퍼져서 원성元性과 합쳐지는데, 감히 영원히 소멸한다고 하겠는가!
又劫火洞然하야大千이俱壞之時에地水火風四大有形之質이還歸無形之元氣하야與空氣로相合하야或上或下하며潛流中邊야億劫常存하니敢謂永滅耶아.
0001_0034_b_01L또 겁화劫火가 활활 타올라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파괴되는 때에 지수화풍 사대의 형체가 있는 물질이 무형의 원기元氣로 되돌아가 공기와 더불어 서로 합쳐져서 혹은 올라가고 혹은 내려가며 그 중간에 가만히 흘러 억겁토록 항상 존재하는데 감히 영원히 소멸한다고 말하겠는가!
又四大元性이常存不滅하야眞空眞空者不是頑空也인四大元性과四大인眞空이周遍法界하야常住不生하고常住不滅하나니敢道永滅耶아. 四大와一切物質이皆然이온況乎아. 吾人之本源眞性乎아.
또 사대의 원성元性이 항상 존재하여 소멸하지 않아 진공인여기서 말하는 진공이란 완공이 아니다. 사대의 원성과 사대인 진공이 법계에 두루하여 항상 머물러 있어 생겨나지도 않고 항상 머물러 있어 소멸하지도 않는데, 감히 영원히 소멸한다고 말하겠는가! 사대와 일체 물질이 모두 그런데, 하물며 우리 사람들의 본원인 진성은 말해 무엇 하랴!
古云萬法이歸一에一歸何處오黃河九曲이라하니以此觀之컨대九曲이爲河오河爲九曲이니라. 又覺云諸法이常住不生하고常住不滅이라하시니由此觀之컨物不永滅이온況吾人之眞性乎아.
옛사람이 말하기를, ‘만법이 하나로 돌아감에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황하의 아홉 구비가 있다’고 했다. 이로써 보건대 아홉 구비가 황하가 되며 황하가 아홉 구비가 된다.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이 상주하여 불생하고 상주하여 불멸한다’고 하시니,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물질(物)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다. 그러니 하물며 우리 사람들의 진성은 말해 무엇 하랴!”
白雲子ㅣ曰此는迷性生起之第次어니와如何修之하야사返本還源去也ㅣ닛고?
0001_0035_a_01L백운자가 묻기를,
“이것은 본성(性)이 생성되는 차례를 미혹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행해야 본원本源으로 되돌아갑니까?”
龍城曰從末修斷하야사返本還源去也ㅣ니라. 譬如有人이逆流尋源이면必見其源인달하야據見聞覺知者하야逆流返照하되者箇見聞覺知之根이在甚麽處오. 如是尋之하야返流而去하야久久不已하면自然合着本源去也ㅣ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지말적인 것으로부터 닦아서 끊어야 본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지류를 거슬러 근원을 찾으면 반드시 그 근원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알아차리는 것에 의거해서 지류를 거슬러 반조하되 보고 듣고 느끼고 알아차리는 뿌리 ‘그것(者個)’ 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이렇게 찾아서 지말적인 흐름을 거슬러 가서 오래오래 하여 멈추지 않으면 저절로 본원本源과 합하게 된다.”
11.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도 인과를 벗어나지 않음을 논함(論世界起始不出因果)
此本源覺性은多口人士가轉不相應이니如何畵出此相고鴛鴦繡出從君看이어니와不把金針度與人이라하니라.
0001_0035_b_01L이 본원인 각성(本源覺性)은 말 많은 사람들은 말이 많을수록 그것과 하나 되지 못하니, 이것의 모양을 어떻게 그려 내야 하겠는가? 원앙을 놓은 수라면 그대에게 내어 보일 수 있지만, 정교한 바늘은 집어 들어 타인에게 건네줄 수 없다고 했다.
白雲子ㅣ曰言水에口不濕하고道火에口不燒하니却以無舌로語하야사始得이니다.
백운자가 묻기를,
“물을 말하더라도 입이 적셔지지 않고, 불을 말하더라도 입이 타지 않습니다. 도리어 혀 없이 말해야만 비로소 됩니다.”
龍城曰月隱中峰에擧扇喩之하고風息太虛에撓樹示之이니見眞月而莫滯於扇樹이니라. 古云設似一物이라도卽不中이라니此는呈似人不得이오說與人不得者也ㅣ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달이 산 중턱에 숨으면 부채를 들어 그것을 비유하고 바람이 멎은 큰 허공에 나무를 흔들어 그것을 보여 주는 것이니, 진짜 달을 보고 나서는 부채나 나무에 막혀서는 안 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한 물건(一物)이라고 하더라도 들어맞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것은 사람에게 보일 수도 없고, 타인에게 말해 줄 수도 없는 것이다.
古云絶名相하되貫古今하며圍六合며主於三才며王於萬法이로다. 蕩蕩乎其無比하며巍巍乎其無倫이로다. 不曰玄乎아. 先天地而無其始하고後天地而無其終이로다. 不曰神乎아.
0001_0036_a_01L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이름이나 형상이 끊어졌으면서도 옛날과 지금에 관통하며 온 우주를 에워싸며 천지인 삼재의 주인이 되며 만법의 왕이 된다. 깨끗하고 깨끗하여 어느 것도 견줄 수 없으며 높고 높아 어느 것도 짝할 수 없도다. 그러니 현묘하다고 이르지 않을 수 없다. 또 천지보다 먼저 있지만 그 시작이 없으며 천지보다 뒤이지만 그 끝이 없으니 어찌 신묘하다고 이르지 않을 수 없다.
昭昭於俯仰之間하고隱隱於視聽之際로다하니此一物은元非虛無之自然이며又非太極之混沌也ㅣ니何者ㅣ오?
또 쳐다봤다 내려다봤다 하는 사이에 밝고 밝으며 보고 듣는 즈음에 언듯언듯하다’고 했다. 이 한 물건(一物)은 원래 허무虛無도 자연自然도 아니며 또한 태극太極도 혼돈混沌도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但極於虛無者는一個死物故로不能生世界萬物也ㅣ요極於混沌之氣者도亦不能生世界萬物也ㅣ니但一種混沌死物之故也ㅣ니라.
단, 허무보다 더 궁극적인 것은 일종의 죽은 물건이기 때문에 세계 만물을 낳을 수 없으며, 혼돈보다 더 궁극적인 기氣라는 것도 역시 세계 만물을 낳을 수 없으니, 그것은 그저 일종의 혼돈의 죽은 물건일 뿐이기 때문이다.
夫虛無者는無因者ㅣ니以無因者로能生萬物乎며混屯之氣者는因이니以氣之邪因으로能生萬物乎아. 無因邪因이乃成大過耳니라.
0001_0036_b_01L대저 허무라는 것은 ‘원인이 없는(無因)’ 것이니, 원인이 없는 것을 가지고 능히 만물을 생하는 것이며, 혼돈의 기라는 것은 ‘삿된 원인(邪因)’이니, 기라고 하는 삿된 원인을 가지고 능히 만물을 낳을 수 있겠는가? 무인無因과 사인邪因은 큰 오류를 이룬다.
以今天下에身心一元論者와身心多元論者가滔滔彌滿이나但有言說이언졍都無實義이니라. 如大海之波動에一波動時萬波起나其本源則一與二가無하고心隨轉於萬境이나乃本源則一與二가無하니能所絶對하야一亦不可立이요絶對도亦不可立이니라.
현재 천하에는 심신일원론자와 심신다원론자가 넘치고 가득하지만, 그것들은 그저 말만 있을 뿐 전혀 참된 의미는 없다. 마치 큰 바다에 파도가 움직일 경우, 하나의 파도가 움직일 때에 만 가지 파도가 일어나는 것과 같아서, 그 본원本源은 곧 하나와 둘이 없으며, 마음이 만 가지 대상에 따라 전변하지만 본원은 곧 하나와 둘이 없다. 능能·소所의 대대待對가 끊어져 ‘하나’ 또한 성립할 수 없으며, ‘대대의 끊어짐’도 역시 성립할 수 없다.
本覺者는不可以理氣로論也며亦不可以智識等으로論也며亦不可以神明等으로論也며亦不可以陰陽動靜等으로論也며亦不可以相對絶對等種種之事로論也며亦不可以明暗色空方圓長短等種種之事로論之也니라.
0001_0037_a_01L본각本覺이란 것은 이理와 기氣로 논할 수 없고, 또한 지혜나 알음알이 등으로 논할 수 없으며, 신명神明 등으로도 논할 수 없고, 음양의 동정 등으로도 논할 수 없으며, 상대니 절대니 하는 등 갖가지 일로도 논할 수 없고, 밝음이니 어두움이니, 색이니 공이니, 둥그러니 네모나니, 기니 짧으니 등 갖가지 일로도 논할 수 없다.
此體非群象之明妙眞性이能生太明輕擧하야變爲心王識하고此心王識이微細流注하야變爲行하고行而相續하야變成爲想하고想而潛伏하야變爲無記識種하야以成世界하고想而空虛하야變爲冥昧識種하야靜成虛空하고想而亂動하야變爲知覺識種하야以成有情衆生也니,
‘일체 어떤 형상도 없는 이 본체의 밝고 묘하고 참된 성(此體非群象之明妙眞性)’이 능히 아주 밝고 가벼움을 생하여 그것이 변하여 심왕心王인 식識이 되고, 이 심왕인 식이 미세하게 흘러 그것이 변하여 행行이 되고, 행이 상속하여 그것이 변하여 상想이 되며, 상이 잠복하여 그것이 변하여 무기無記 식의 종자가 되어 세계를 이루고, 상이 비어지고 허해져서 그것이 변하여 명매冥昧한 식의 종자가 되어 고요함은 허공을 이루며, 상이 어지러이 움직여서 그것이 변하여 지각 작용을 하는 식의 종자가 되어 유정 세계의 중생이 된다.
觀其所以則本覺妙性이爲正因하야生識果고識因이能生行果하고行因이能生想果하고想因이能生世界虛空有情之果也니라.
0001_0037_b_01L그렇게 되는 까닭을 관찰하면, 즉 ‘본래부터 깨어 있는 오묘한 본성(本覺妙性)’이 핵심 원인(正因)이 되어 식이라는 결과를 낳고, 식이라는 원인이 능히 행이라는 결과를 낳으며, 행이라는 원인이 능히 상이라는 결과를 낳고, 상이라는 원인이 능히 세계와 허공과 유정 세계라는 결과를 낳는다.
此等이名雖爲三이나一種阿賴識之所變也니世界之所成元因은想而潛伏하야變爲無記分子하야生二種元素하나니一曰明分이요二曰昧分이니라.
이런 등등 이름은 비록 셋이지만, 동일한 아뢰야식이 변해서 된 것이니 세계가 만들어진 ‘원천적인 원인(元因)’은 상想이 잠복하였다가 그것이 변하여 무기無記 분자分子가 되어 두 종류의 원소元素를 낳으니, 하나는 밝음의 부분(明分)이고, 다른 하나는 어두움의 부분(昧分)이다.
又想而空虛하야頑然冥昧中에生二種元素나니一曰明分이요二曰昧分이니明分은有輕淸之力勝하고昧分은有重濁之力勝하니라.
또 상想이 공허해져서 거칠게 명매冥昧한 가운데 두 종류의 원소를 낳으니 하나는 밝음의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어두움의 부분이다. 밝음의 부분은 가볍고 맑은 힘이 세고, 어두움의 부분은 무겁고 탁한 힘이 세다.
此明分도含無記之識種하고此昧分도含無記之識種하나니昧分昧는土之元素也은有碍性하고明分明은水之原素也은有淸性니라.
0001_0038_a_01L그런데 여기 밝음의 부분 속에도 무기無記의 식 종자를 머금고 있고, 여기 어두움의 부분 속에도 무기의 식의 종자를 머금고 있다. 어두움의 부분어둠이란 흙의 원소이다.에는 장애하는 성질이 있고, 밝음의 부분밝음은 물의 원소이다.에는 청정한 성질이 있다.
右明昧二分이相沖成搖搖는風之原素也하야以成空輪之風也니動氣가勝於昧氣故昧氣가亦生强力强은金之原素也하나니라.
이상에서 말한 밝음과 어두움의 두 부분이 서로가 서로를 촉매하고 흔들어흔듦은 바람의 원소이다. ‘허공둘레(空輪)’의 바람이 되니, 움직이는 기운이 어두움의 기운을 이기기 때문에 어두움의 기운도 역시 강한 힘강함은 쇠의 원소이다.을 내게 된다.
此强力之氣가能克動氣故로動生强力하야以生電氣電은火之原素也하고電氣가能勝强氣故로强亦生氣하야能生水分하고此水分이能勝於電氣故로電亦生氣하야以生昧氣하나니此等五行之氣가皆含無記識種하야流注空界하야以能建立世界者也니摠是因果之所成者也니라.
이렇게 강력한 힘의 기운이 능히 움직임의 기운을 이기기 때문에 움직임이 강력한 힘을 내어 번개 기운(電氣)번개는 불의 원소이다.을 내고, 번개 기운이 능히 강한 기운을 이기기 때문에 번개도 역시 기운을 낳아서 어둠의 기운을 낳는다. 이런 등 오행五行의 기운이 모두 무기 식의 종자를 머금어 허공 세계에 흘러흘러 능히 세계라는 것을 만든다. 이것은 모두 인과로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原因阿賴耶之無記識種하야空氣之諸種原素가互相爲因爲果하야以成有形하나니世界地球와日月星宿之體와凡有萬物之有形者가皆含無記識種하야能生能死也니라.
0001_0038_b_01L아뢰야의 무기 식의 종자를 ‘원천적인 원인’으로 삼아, 공한 기운들의 여러 종종 원소가 서로가 인因이 되고 서로가 과果가 되어 형체가 있는 것을 만든다. 세계와 지구와 해와 달, 북극성과 뭇별의 바탕과 모든 만물의 형체 있는 것들이 모두 무기 식의 종자를 머금어서 능히 생기기도 하고 능히 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凡有質者가有淸有濁이나全以阿賴耶無記識種으로爲命者也니라. 凡有草木等이不知痛痒者는但有無記識種故也니라.
무릇 질료(質)가 있으면 거기에는 맑은 것도 있고 탁한 것도 있지만, 그들 모두는 아뢰야의 무기 식 종자가 생명(命)이다. 무릇 존재는 모든 초목 등이 아픔을 못 느끼는 까닭은 거기에는 무기 식의 종자만 있기 때문이다.
然이나知跡之草는能知入跡하고自能卷縮하며含羞之草는以能知觸하야自能急縮하니一切草木이有淸濁之分이나含無記識種은一般也니라.
그러나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알아차리는 풀은 능히 사람의 발자취를 알고 스스로 능히 이파리를 말아 움츠리며, 부끄럼을 타는 풀은 능히 부딪히는 것을 알아 스스로 능히 급작스레 수축한다. 모든 초목에는 맑거나 탁한 구분은 있지만 무기의 식 종자를 머금고 있음에는 같다.
又人類有情도亦有無記識種者는有善忘하고想而輕淸者는有善記也니라.
0001_0039_a_01L또 인류 유정물 중에도 역시 무기의 식 종자를 가진 자는 잘 망각하고, 생각을 하여 날렵하고 청정한 자는 잘 기억한다.”
12. 천진의 화학 작용을 논함(論天眞化學作用)
白雲子ㅣ問曰世界萬物之原素가有幾種分子이닛고.
백운자가 묻기를,
“세계 만물의 원소元素에 몇 종류의 분자分子가 있습니까?”
龍城曰隨其萬物之數하야有其原素也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만물의 숫자만큼 그 원소가 있다.”
白雲子ㅣ曰願聞其事하노이다.
백운자가 묻기를,
“원컨대 그 일을 듣고자 합니다.”
龍城曰本妙眞性이起變爲識阿賴耶識하야擾擾不停하야幻海識波가無量無邊而變成無數業因種性하고又此識이能生種種玄明氣分과種種冥昧氣分과種種動氣分과種種强氣分과種種電氣分等하야充滿於法界하야幻變無雙하야變爲水火金木土之原素하고此水火金木土之氣分이種種幻變하야能造萬物之四大體形也니라.
0001_0039_b_01L용성이 대답하기를,
“본묘진성本妙眞性이 생기 변화하여 식아뢰야식이 되어 흔들흔들 정처 없다가 ‘바다처럼 알 수 없는 환(幻海)’과 ‘파도처럼 무상한 식(識波)’이 셀 수 없고 끝없어 무수한 업인業因이 되는 종자(種性)로 변화시키고, 또 이 식識이 갖가지의 현명玄明한 기운 분자를 능히 낳으며, 갖가지의 명매冥昧한 기운 분자를 능히 낳고, 갖가지의 움직이는 기운 분자를 능히 낳으며, 갖가지의 강한 기운 분자를 능히 낳고, 갖가지의 번뜩이는 기운 분자를 능히 낳아, 법계에 가득하여 환幻 같은 변화가 무쌍하여 수·화·금·목·토의 원소로 변한다. 그리고는 이 수·화·금·목·토의 기운 분자가 갖가지로 환같이 변하여 능히 만물의 사대의 체형을 만든다.
業種性因은爲主觀的內分하고地水火風은爲客觀的外分하야合成世界萬物也니라. 業因種性中에有無量差別之種性하고又此種子性中에各具無量差別之性故로能生萬物之形形色色差別也니라.
‘업인종자의 성(業因種子性)’은 주관적인 내적 부분이 되고, 지·수·화·풍은 객관적인 외적 부분이 되어, 세계의 만물을 합성한다. 이 ‘업인종자의 성’ 속에는 각각 무량한 차별의 성품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능히 만물들의 형형색색 차별을 낳는다.
又地水火風等은但隨主觀的業因種子之性하야發育生長也니라. 又業因種性中에具種種氣分하며具種種色分故로千葉花와單葉花等이雜然現色也니라.
0001_0040_a_01L또 지·수·화·풍 등은 주관적 ‘업인종자의 성’을 따라 발육하고 생장한다. 또 ‘업인종자의 성’ 속에 갖가지 기운 분자를 갖추고 있으며, 갖가지 색깔 분자(色分)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천엽화千葉花와 단엽화單葉花 등이 골고루 색깔을 드러낸다.
又此業因種性中에具無量種種差別性故로火有熱性하고水有濕性하고鹽有醎性하고椒有辛性하고空有通性하고地有碍性하나니一切萬物이各具種種氣分差別性故로萬種藥品이因此發生也니라.
또 이 ‘업인종자의 성’ 속에 셀 수 없이 갖가지의 차별된 성질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불에는 뜨거운 성질이 있고, 물에는 축축한 성질이 있으며, 소금에는 짠 성질이 있고, 후추에는 매운 성질이 있으며, 허공은 통하는 성질이 있고, 땅은 가로막는 성질이 있다. 일체 만물이 저마다 갖가지의 기운 부분의 차별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 종류나 되는 약품이 이로 인하여 발생한다.
又如松子가雖微이나落落長松이出生하야千枝萬葉이鬱茂하나니此種子中에具業因故也니라. 又物物이皆然히一一各具業因種性하며又隨業因種性之差別하야做出種種形形色色과方圓長短大小等相也니라.
0001_0040_b_01L솔씨가 비록 작지만 낙락장송이 거기에서 나와 수천 가지와 수만 이파리가 울창하고 무성하게 된다. 이 종자 속에 업인業因이 간직되었기 때문이다. 또 사물들마다 다 같이 낱낱이 각각 ‘업인종자의 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또 ‘업인종자의 성’의 차별에 따라 갖가지 형형색색과 네모나고 둥글고 길고 짧고 크고 작고 등 모양을 만들어 낸다.
又宇宙空間에雖有四大元性이나非因阿賴耶識之幻變業種差別이면亦不能生種種物相也니라.
우주 공간에 비록 사대四大의 원성原性이 있더라도 아뢰야식 속에 간직된 환처럼 변하는 업종자의 차별이라는 원인이 없으면 역시 갖가지 만물을 만들어 낼 수 없다.
又一切萬物이各具業性하야四大和合이나不遇內外因緣和合이면亦不能發芽生育成長結果也니라. 內分者는業種四大也오外分者는地氣水氣空氣陽氣等이是也니라.
또 일체 만물이 각각 업의 성질을 갖추고 있어서 사대로 화합하지만 ‘안팎’의 인연 화합을 만나지 못하면 역시 발아하고 나서 자라 열매를 맺지 못한다. ‘안’이란 업종자와 사대이고, ‘밖’이란 땅의 기운과 물의 기운과 공기와 태양 등이다.
得地水而後에着根고得陽氣而後에發芽하고得風力而後에成長하고得空氣而後에生活고又得陽氣之薰力하야色香이姸美하고又兼得金氣之强力하야成熟結果하나니如是之事를不能一一枚擧也니라.
0001_0041_a_01L흙과 물을 만난 후에 뿌리를 내리고, 햇빛을 받은 뒤에 발아하며, 바람을 쏘인 뒤에 성장하고, 공기를 만난 뒤에 활력을 낳으며, 또 태양의 쪼이는 힘을 만나야 색깔과 향기가 곱고 아름다워지고, 또 겸하여 ‘쇠기운(金氣)’의 강력함이 보태져야 성숙해져서 열매를 맺는다. 이와 같은 일은 일일이 다 매거枚擧할 수 없다.
大凡天下萬事가卽事而通理하고卽理而通事하나니性起爲識하고識化爲業因하고業化爲無數種子하야與內外因緣으로和合然後에天眞化成作用이圓成也니라.
대개 무릇 천하의 만사가 현상(事)에 즉하여 이치(理)를 통하고, 이치에 즉하여 현상에 통한다. 진여자성이 일어나서 아뢰야식이 되고, 아뢰야식이 변해서 업인이 되며, 업이 변화해서 무수한 종자가 되어, 안팎의 인연과 화합한 뒤에 천연의 변화 완성의 작용이 완전하게 이루어진다.
有人이取曲子하야和飯溫熟而作苦酒하고取麥芽야和飯溫熟而成甘酒나니此는人爲的化學作用也니라.
어떤 사람이 누룩을 가지고 밥과 섞어서 따듯하게 하여 독한 술을 만들기도 하고, 싹 틔운 보리를 밥에 섞어 따듯하게 하여 감주를 만든다. 이것은 인위적 화학작용이다.
君知否아? 業因識種이化爲種子하야周遍空界하야與空氣로飛散合流하야遇緣而生하나니何以知然고?
0001_0041_b_01L그대는 아는가? 업인業因 아뢰식 종자가 변화하여 종자가 되어 허공계에 두루 퍼져 공기와 더불어 흩날리고 합류하여 연緣을 만나 생하게 된다. 그런 줄을 어떻게 아는가?
如百年耕田을一旦廢之하면不過數年之內에草木이生長하고如香栮一子가飛散合流하야逢着可生之木이면卽生香栮하나니所以로諸法이從緣生從緣滅也라하시니라.
백 년을 경작해 오던 밭을 어느 날부터 묵히면 몇 년 안 되어 초목이 자라나고, 예컨대 향기 나는 버섯 홀씨가 흩날려 합류하여 씨를 붙여 발아할 수 있는 나무를 만나면 곧 향기로운 버섯이 자라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法)는 인연을 좇아 생하고 인연을 따라 멸한다고 하신 것이다.
自古以來로此有三種見解하니一曰空宗이니三界萬法이全體是空이라하고二曰相宗이니三界萬法이唯識이라하고三曰性宗이니三界萬法이唯心이라하니라.
예부터 여기에는 세 종류의 견해가 있다. 첫째는 공종空宗이니, 삼계의 만법이 모두 공空이라고 한다. 둘째는 상종相宗이니, 삼계 만법이 오직 식識일 뿐이라고 한다. 셋째는 성종性宗이니, 삼계의 만법이 오직 심心일 뿐이라고 한다.
古云無明實性이卽覺性이오. 幻化空身이卽法身이라하며大鑑聖師云蘊之與界를凡夫는見二어니와智者는了達其性無二니無二之性이卽實性이니라.
0001_0042_a_01L옛사람이 말하기를, ‘무명無明의 진실한 본성 그대로가 깨달음의 본성이요, 허깨비같이 공한 육신 그대로가 법신이다’라고 했다. 육조 대감 선사께서는 말씀하기를 ‘오온五蘊과 십팔계十八界를 범부들은 서로 다르다고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들의 본성이 둘이 아님을 분명하게 통달하니, 둘이 없는 본성이 바로 실성實性이다.
此實性者는居賢聖而不增하고處凡愚而不減이라하시니此是唯心이卽唯物이오唯物이卽唯心者를頓放諸人面前하야一印看破也니라.
여기서 말하는 진실한 본성이란 현자나 성인이라고 해서 더 많은 것도 아니고, 범부나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해서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유식唯心이 곧 유물唯物이고 유물이 곧 유식임을 여러 사람들의 면전에 대뜸 던져 ‘하나의 도장(一印)’으로 간파하신 것이다.”
13. 관법을 논함(論觀法)
白雲子ㅣ問曰以何爲修心이닛고?
백운자가 묻기를,
“어떻게 마음을 닦아야 합니까?”
龍城曰如覺所言하야歸源에性無二나方便에有多門이니라. 水火二觀은已具前說이어니와今更陳略說호리라.
0001_0042_b_01L용성이 대답하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근원으로 복귀함에는 본성이 다름이 없지만, 방편에 여러 문門이 있다. 물과 불에 관한 관찰은 앞의 이야기에서 다 했으므로, 여기서는 간략하게 설하겠다.
有觀法하니名曰日沒觀이니若人이欲修此觀者는當日沒之時하야先觀日輪이如紅燈하고合眼觀之호되休息萬緣하야專心觀之하면心有生滅故로日輪이或隱或現하야觀不全一이라가,
관법觀法이 있으니, 이름하여 일몰관日沒觀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이 관법을 닦으려면 해가 지는 때에 즈음하여, 먼저 해 바퀴가 마치 붉은 등과 같음을 관하고, 그것을 눈에 떠올려 관하되 온갖 반연을 쉬고 온 마음을 쏟아 관하면,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이) 생겼다가 사라졌다가 하기 때문에 해 바퀴가 혹은 숨기도 하고 혹은 드러나기도 하여 관하는 행위가 온전하게 한결같아지지 않는다.
久久不已하면生滅心盡하고但見紅日이現前하리니如是久久不已하면自然萬慮가都盡하고我之心源이淸淨하야究竟에悟無上正道也ㅣ니라.
그래도 오래도록 하면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붉은 해만 앞에 드러남을 보게 된다. 이렇게 하여 오래 하면 자연히 온갖 ‘분별(慮)’이 모두 사라지고 내 ‘마음의 근원(心源)’이 청정해서 마침내는 위없는 바른 도를 깨치게 된다.
又有觀法하니名曰數息觀이니一切善惡是非를都莫思量하고但數鼻息호되以心想으로觀鼻端白하고自然出入之息을專心數之하야自一至十이니或數入息하며或數出息하고出入息을皆數하지마시오如是久久則我之心念生滅이都盡하고本源光明體性이頓現하며於無量世界雨滴數를一念之間에盡知其數也니라.
0001_0043_a_01L또 한 관법이 있으니, 이름하여 수식관數息觀이라고 한다. 일체의 선악과 시비를 모두 사량思量하지 않고 다만 코로 드나드는 숨만을 세되 ‘마음의 근원’으로 코끝의 흰색을 관하고 자연스레 출입하는 숨을 오직 마음으로 세어 하나에서 열까지 센다.혹은 들숨을 세며 흑은 날숨을 셀 뿐, 들숨과 날숨을 모두 세지는 마시오.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하면 내 마음의 생성소멸이 모두 사라지고 ‘마음의 근원’에서 나오는 광명의 본체가 단박에 드러나며, 무량한 세계에 내리는 빗방울 수를 일념 사이에 그 숫자를 모두 알게 된다.
又有觀法하니名曰空觀이니但端心正坐하야休息萬念하고觀我之身心內外全體是空하야專精不已則自然悟我本妙體性也니라.
또 한 관법이 있으니, 이름하여 공관空觀이다. 다만 마음을 단정하게 하고 바르게 앉아 온 생각을 쉬고, 내 몸과 마음의 안팎 전체가 공하다고 관하여 오로지 정교롭게 하기를 계속하면 자연 나에게 간직된 ‘본래의 오묘한 바탕 성품(本妙體性)’을 깨치게 된다.
又有觀法하니名曰假觀이니端坐正心하야休息萬慮하고一心觀之호되但一念이纔生이어던以妙用現前으로觀之하면一切假法이盡爲我之本妙性用이現前하야常寂常光이無所不周也니라.
0001_0043_b_01L또 한 관법이 있으니, 이름하여 가관假觀이다. 마음을 단정하게 하고 바르게 앉아 온갖 ‘분별(慮)’을 쉬고 일심으로 관하되, 그저 한 생각만이라도 잠시 생기려 하면, ‘오묘한 작용이 드러남(妙用現前)’을 사용하여 관하면 일체 ‘임시로 구성된 법(假法)’이 모두 나의 ‘본래의 오묘한 본성 작용(本妙性用)’이 드러나서 늘상 고요하고 늘상 빛나는 것이 두루하지 않은 곳이 없다.
又有觀法니名曰中觀이니但端身正坐하야深深觀之호되我此本性은非空非假며非體非用이라하야但觀中道하면體用이雙寂하나니如是用功호되密密綿綿야久久不已면自然彌滿淸淨하야中不容他也니라.
또 한 관법이 있으니, 이름하여 중관中觀이다. 다만 몸을 단정하게 하고 바르게 앉아 깊이깊이 관하되, 나의 이 본성은 공空도 아니고 가假도 아니며, 본체(體)도 아니고 작용(用)도 아니라고 생각하여, 다만 중도임을 관하면 본체와 작용이 둘 모두 고요해진다. 이렇게 수련하되 섬세하고 끊임없이 해서 오래도록 그만두지 않으면 자연히 청정함이 가득해져서 그 속에 어떤 것도 들이지 않는다.
借空觀而悟淸淨之本體하고借假觀而悟本有之妙用하고借中觀而頓悟體用之雙寂하며又悟體用之宛然야三事具足故로名之曰圓覺也니라.
0001_0044_a_01L공관空觀을 빌려 청정한 본래의 바탕(本體)를 깨치고, 가관假觀을 빌려 본래 있는 오묘한 작용(妙用)을 깨치며, 중관中觀을 빌려 바탕과 작용 둘 모두 고요함을 단박에 깨친다. 또 바탕과 작용이 완연함을 깨쳐서, ‘3종의 관법(三事)’이 갖추어지기 때문에 이를 두고 ‘완전한 깨침(圓覺)’이라고 이름한다.
又悟三者俱空며俱空之空도亦空也니到此田地하야三一이俱空하야了沒朕跡하야不可心思口議也니라.
또 3종의 관법이 모두 공하며 모두 공하다는 공함마저도 역시 공한 줄을 깨치니, 이런 경지에 이르면, 3과 1이 모두 공하여 완전하게 흔적이 없어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고 입으로 따질 수도 없다.
到此恁麽田地야更進一步하야轉身一路하면恁麽也得하며不恁麽也得하며恁麽不恁麽也摠得也ㅣ니三一이俱泯하고三一이俱圓하야如同神變하야自在無碍也니라.
이런 경지에 이르러,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길로 몸을 굴려 가면, 이래도 되고 이러지 않아도 되며, 이러거나 이러지 않거나 모두 된다. 3과 1일이 모두 사라지고 3과 1일이 모두 완전하여 마치 신통 변화와 같아 자유자재로 걸림이 없게 된다.
觀法이雖多ㅣ나如飮一滴之海水에可知大海之全昧인달야觀亦如是하니라.
관법이 비록 가짓수가 많지만 예컨대 바닷물 한 방울을 맛보아 큰 바다의 전체 맛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으니, 관법도 역시 이와 같다.”
14. 과보를 받는 인연은 옮겨 가고 바뀌더라도 업의 본성은 변함이 없음을 논함(論報緣遷謝業性不滅)
白雲子ㅣ問曰人之報緣이遷謝에還有不滅者否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사람들이 과보를 받는 인연이 옮겨 가고 바뀌더라도 불멸하는 것이 있습니까?”
龍城曰本覺之生起次第는前已具說故로不必再論이어니와以今略說하리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본각本覺이 생기生起하는 순서에 대해서는 앞에서 갖추어서 말했기 때문에 재론할 필요가 없으니, 지금은 간략하게 설하겠다.
本覺之光明體性은本無空有之相하야周遍充滿하고阿賴耶識體는等本覺之性하야亦周遍充滿하고頑空之體은等阿賴耶識體하야亦周遍充滿하고頑空之空氣는等頑空之體하야亦周遍充滿하고空氣之四大氣體도亦周遍充滿하나니,
0001_0045_a_01L본각의 광명체성은 본래 ‘공空’이니 ‘유有’니 하는 어떤 모양이 없으면서 (시방세계에) 두루 충만하고, ‘아뢰야식이라는 바탕(阿賴耶識體)’은 ‘본각이라는 본성(本覺之性)’과 같으며 역시 (시방세계에) 두루 충만하며, 허공이라는 바탕은 아뢰야식이라는 바탕과 같아서 역시 (시방세계에) 두루 충만하고, 공기의 사대 기체도 역시 (시방세계에) 두루 충만하다.
譬如虛空이無所往而無所不往하며無所入而無所不入인달하야右本覺之體와阿賴耶之識體와頑空之體와空氣之氣體와四大之元性도亦復如是하야幷呑天地宇宙萬像하亦入一切有情動物身中하야內外充滿호되無所往而無所不往하며無所入而無所不入者也니라.
비유하면 마치 허공은 가는 바도 없지만 가지 않는 바도 없으며, 들어가는 바도 없지만 들어가지 않는 바도 없는 것과 같다. 앞에서 말한 본각이라는 바탕과, 아뢰야식이라는 바탕과, 허공이라는 바탕과, 공기의 기체와 사대의 원성原性도, 역시 그와 같아서 천지 우주 만물을 다 머금으며 역시 일체의 유정물인 동물의 몸속에 들어가서 안팎으로 충만하지만, 가는 바도 없고 가지 않는 바도 없으며, 들어가는 바도 없고 들어가지 않는 바도 없는 것이다.
一切有情無情之生緣元素가周遍充滿하야常存不滅이로되得遇生緣하면必成萬類體相하나니譬如大海가引風起浪에遂成波體인달하며,
일체의 무정물과 유정물이 생하게 되는 인연들의 원소가 (온 법계에) 두루 충만해서 항상 존재하여 사라지지 않지만, 생하게 될 인연을 만나면 만류의 몸과 형상을 반드시 이루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큰 바다가 바람을 끌어 풍랑을 일으킬 경우에 마침내 파도의 바탕을 이루는 것과 같다.
又如電氣가因磨起電에遂成光體인달하야一切有情無情도亦然하야遇緣必生하나니라.
또 마치 전기가 마찰로 인해 전기를 일으킬 경우에 마침내 빛의 본체를 이루는 것과도 같다. 이처럼 일체의 유정물과 무정물도 그러하여 인연을 만나면 반드시 발생한다.
又如波息浪靜에波還爲海하고磨息機停에電還本素인달하야一切有情無情도亦然하야還歸本源에元不生滅이니라.
또 비유하면 파도가 잠잠해지고 물결이 고요해지면 파도도 다시 바닷물이 되고, 마찰을 멈추어 기계가 정지하면 전기도 다시 본래의 원소로 돌아가는 것과 같아서, 일체의 유정물과 무정물도 역시 그러하여 다시 본원으로 돌아가 원래 생멸이 없다.”
白雲子ㅣ曰其輪廻之說를可得聞乎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그렇게 윤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습니까?”
龍城曰內有六根하니曰眼耳鼻舌身意가是也오外有六塵하니曰色聲香昧觸法이是也니內六根과外六塵이相對하면六識이以生其中하나니此是十八界也라.
용성이 답하기를,
“안으로 육근六根이 있는데, 안·이·비·설·신·의가 그것이며, 밖으로 육진六塵이 있는데, 색·성·향·미·촉·법이 그것이다. 안의 육근과 밖의 육진이 서로 만나면 육식六識이 그 속에 생기니 이것이 십팔계十八界이다.
以此十八界가和合하야於可合境에生愛하고於不平境에生嗔하야嗔喜是非가熾然生滅할由此生滅習慣하야善惡諸業을無所不爲也니라.
0001_0046_a_01L이 십팔계가 화합해서 대상 경계가 (자기와) 맞으면 아끼는 마음을 내고, 대상 경계가 (자기와) 맞지 않으면 진노해서, 진노함과 기뻐함, 옳고 그름이 불같이 생기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 이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과 소멸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선과 악의 갖가지 업을 짓지 않은 적이 없다.
作是善惡諸業之時에唯眼耳鼻舌身之內分所依根에能依之五識은如明鏡之對境하야雖有照境이나無所分別이라가因意識之發動야了別諸境之差別也니라.
이런 선과 악 등의 여러 업을 지을 때에, 오직 안·이·비·설·신 등 안에 있는 ‘소의所依의 근根’에 다섯 종류의 ‘능의能依의 식識’이 마치 ‘밝은 거울’이 ‘대상 경계’와 만나는 것처럼, 비록 ‘대상 경계’를 비추는 기능은 있지만 분별이 없다. 그러다가 (여섯 번째의 식인) ‘의식意識’이 발동하여 여러 대상 경계의 차별상을 ‘뚜렷하게 분별(了別)’한다.
又六七二識이了別에種種辦事하야無所不爲也로되唯第八阿賴耶識은自體無記하야本不能作業也니라.
또, 제6식과 제7식이 ‘뚜렷하게 분별’하는 작용을 할 경우, 갖가지로 사안을 변별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없지만, 오직 제8아뢰야식만은 ‘본래의 바탕(自體)’으로 무기無記이기 때문에 본래 업을 짓지 않는다.
六七二識之所作諸業을八識이受熏自體之內하야含藏故로亦名含藏識이라하고因緣會遇之時에産出種子야成種種善惡諸業之果故로亦名種子識이라하고,
0001_0046_b_01L제6식과 제7식이 지은 갖가지 업을 제8아뢰야식이 ‘본래의 바탕(自體)’ 내부로 훈습해 들여 머금어 저장하기 때문에 이를 또한 (제8식을) ‘함장식含藏識’이라고도 이름한다. 또, 인과 연이 서로 만날 때에 종자種子를 산출하여 갖가지의 선과 악의 여러 업의 과보를 만들기 때문에 또한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이름한다.
又諸識之本故로亦名心王識이라하고或有卽因卽果者하며或有二三年後에受報者하며或有今生에造業하야來生에受報者하며或有人中에造業하야異類中에受報者故로亦名異熟識이라하나니各隨其所習하야重處偏墜也니라.
또 모든 ‘식識’의 본바탕이기 때문에 또한 ‘심왕식心王識’이라고 한다. 또, 혹은 원인을 짓자마자 과보를 받는 경우도 있고, 혹은 이삼 년 뒤에 과보를 받는 경우도 있으며, 혹은 금생에 업을 짓고 내생에 과보를 받는 경우도 있고, 혹은 어떤 사람의 경우는 업을 짓고 다른 부류의 중생으로 태어나서 과보를 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숙식異熟識’이라고도 이름한다. (이렇게) 각각 그 익힌 바에 따라 (지은 업의) 무거운 쪽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 윤회하기도 한다.”
白雲子ㅣ問曰人之所修善惡을臨命終時에有何物이携帶去也잇고?
백운자가 묻기를,
“사람들이 닦은 선악을 그 사람이 임종에 즈음하여 어떤 물건이 있어서 (그 업을) 휴대하여 갑니까?”
龍城曰譬如香林風過에風無形하고香無質이나風帶香臭하야移於他處인달하야人之所修善惡도亦然하야善惡이無質하고識亦無形이나阿賴耶識이受薰無形之善惡하야移於他生하야受善惡之果報도亦復如是하니라.
0001_0047_a_01L용성이 답하기를,
“비유하면 마치 향나무 숲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면 바람은 ‘형체(形)’가 없고 향기도 ‘질료(質)’가 없지만, 바람이 향냄새를 휴대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것과 같아서, 사람이 지은 선악도 역시 그렇다. 선악 자체에는 ‘질료’가 없고 ‘식識’ 또한 ‘형체’가 없지만 아뢰야식이 무형의 선악을 품어 훈습하여 다른 생生으로 옮겨 가서 선악의 과보를 받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譬如一年之花草가春時發花하야枝葉이茂盛하야專收春夏之精氣하야結子於枝頭라가隨風落地하야遇翌年之春緣하야更生根株인달하야人亦如是하야收一生之所修業因結果하야種植於心王心田이라가死後에移於他處하야遇緣發生하야自生身根하야必受果報하니라.
0001_0047_b_01L비유하면 마치 일년생 화초가 봄에 꽃 피어 (여름에)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하여 봄과 여름의 정기를 모두 갈무리하여, (가을에) 가지마다 열매를 맺다가, 바람에 날려 (그 열매가) 땅에 떨어져 다음 해에 봄의 인연을 만나 다시 발아하는 것과 같다. 사람도 역시 이와 같아서, 일생 동안 지은 업의 원인과 결과를 거두어들여, 심왕心王이라는 ‘마음 밭(心田)’에 심어 두었다가 사후에 다른 곳으로 옮겨 가 인연을 만나면 발생하여 스스로 ‘몸뚱이(身根)’를 낳아 과보를 반드시 받는다.
又如火之生命이付於木身이라가燒盡木體하면火之生命은必死로되火之死命은不滅야還歸火之元性인달야人亦如是하야生命이付於報身이라가老病必死에死命이還歸業性야遇緣隨生也니라.
또, 불의 생명이 나무에 붙어 있다가 나무가 다 타면 불의 ‘생명生命’은 반드시 죽지만, 불의 ‘사명死命’은 소멸하지 않아 다시 불의 원성元性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사람도 역시 그러하여, ‘생명’이 ‘과보로 받은 몸뚱이(報身)’에 붙어 있다가 늙고 병들면 반드시 사망하지만, ‘사명’이 다시 ‘업성業性’으로 되돌아갔다가, 인연을 만나면 따라 생겨난다.”
白雲子問曰一切有情動物이各有自性하야容受生死인댄超脫生死之說은都是虛言否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일체의 유정물인 동물이 저마다 자성自性이 있어서 삶과 죽음을 수용한다면, 생사를 벗어난다는 이야기는 모두 헛말이 아닙니까?”
龍城曰一切輪廻生死가皆因習慣而有也니但除習慣煩惱와無明惑業하면微細流注之生滅이永盡하고圓覺大智가朗然獨存하야於生死界에自由自在하니라.
0001_0048_a_01L용성이 대답하기를,
“일체의 생사윤회가 모두 습관 때문에 존재한다. 오로지 습관화된 번뇌와 무명으로 미혹된 업장業障만을 제거하면 〔생명현상(命根) 속에〕 미세하게 흐르는 (업의) 생성소멸이 영원히 사라지고, 원각의 위대한 지혜가 밝고 밝게 우뚝 실존해서 생사윤회하는 세계 속에 자유자재한다.”
白雲子ㅣ曰本覺眞性이周遍充滿인댄有何生死之可畏也잇가? 譬如海之起波에波則從海而起者也요滅則還歸於海者也니라.
백운자가 묻기를,
“본각인 참 성품이 (온 법계에) 두루 퍼져 충만하다면 어찌하여 생사윤회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비유하자면 마치 바다에서 파도가 일어나더라도 파도란 바다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바다에서 파도가) 소멸하더라도 다시 바다로 되돌아가는 것이듯이 말입니다.”
龍城曰隨緣生滅이皆本覺中事로되悟之者는成大體大用하야自由自在하고迷之者는觸處自縛하야不得自在하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인연 따라 생성소멸하는 것이 모두 본각 가운데 있는 일이지만, 깨친 이는 ‘큰 바탕(大體)’과 ‘큰 작용(大用)’을 이루어 자유자재하고, 미혹한 이는 만나는 일마다 스스로 (그 일에) 얽매여 자유자재하지 못하다.
譬如在夢者는所見所聞이悉皆是夢이니夢有瘡腫이면無中成實하야自受苦痛이라가忽然夢覺에瘡腫之苦가頓無인달하야悟亦如是하야頓悟本性하면三界大夢이一時頓消하고於生死界에自由自在하니라.
0001_0048_b_01L비유하면 마치 꿈속에 있는 사람은 보고 듣는 것마다 모두 꿈이다. 꿈에 부스럼이나 종기가 났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데 (꿈 때문에 뭔가) 실재한다고 여겨 제 스스로 고통을 받는다. 그러다가 홀연히 꿈에서 깨어나면 부스럼이나 종기로 인한 고통이 단박에 없어지는 것과 같다. 깨달음도 역시 이와 같다. 본성을 돈오하면 삼계에 펼쳐지는 ‘큰 꿈(大夢)’도 일시에 모두 사라지고, 생사윤회하는 세계 속에 자유자재한다.
本覺眞性이周遍充滿하고阿賴耶識이周遍充滿하고空氣가周遍充滿하고四大元性이周遍充滿하야透入塵塵刹刹호되入而無入하고無入而入하며,
본각인 참 성품이 (온 법계에) 두루 퍼져 충만하고, 아뢰야식이 (온 법계에) 두루 퍼져 충만하 며, 공기가 (온 법계에) 두루 퍼져 충만하고, 사대四大인 원성元性이 (온 법계에) 두루 퍼져 충만하여, (이것들이) 온갖 티끌마다 온갖 세계마다 사무쳐 들어가는데, 들어가면서도 들어감이 없고 들어감이 없으면서도 들어간다.
又透入一切有情之身分內外하야充滿周遍하야無入而入하고入而無入하야常住不滅하나니如海之起波에波從海而起하고波息而歸海인달하야一切衆生之身分이於性海中에常常出沒也니라.
또, 일체의 유정물의 육신 안팎으로 들어가서 두루 퍼져 충만한데, 들어감이 없으면서도 들어가고 들어가면서도 들어감이 없어 상주불멸한다. 마치 바다가 파도를 일으킴에 파도는 바다로부터 일어났다가 파도가 잠잠해지면 바다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그처럼 일체중생들이 몸을 받는 갈래(身分)도 참 성품의 바다 위에서 늘 그렇게 생겼다 사라졌다 한다.
又譬如空本無雲이나雲霧가彌滿하면空性이有碍인달야凡夫도亦然하야眞明性海에惑霧가彌滿하면本覺之眞空妙性이籠暗야以成染緣하야無量苦海가從此而生也니라.
0001_0049_a_01L또, 비유하면 마치 허공에는 본래 구름이 없지만 구름과 안개가 가득 차면 허공의 본성을 가리는 것처럼, 범부도 역시 그러하여, 참되고 밝은 본성의 바다에 미혹의 안개가 가득 차면 ‘본각의 참되고 공하고 오묘한 본성’이 어둠에 갇혀서 ‘염연기染緣起’를 일으켜서 하염없는 고해가 이로부터 생긴다.
若悟此理하야修心成功하면惑霧가頓消하고以眞空妙智로頓明本覺之性하리니有何可障也리요姑置是事어다.
만약 이런 이치를 깨달아 마음을 닦아 공력을 이루면 미혹의 안개가 단박에 사라져, ‘참되고 공하고 오묘한 지혜’를 사용하여 본각의 본성을 단박에 밝힐 것인데, 장애라니 어찌 가당키나 하겠는가! 이 일은 그저 그만둡시다.”
15. 마음수련을 논함(論心功)
白雲子ㅣ問曰觀法修行之外에有何簡易之法乎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관법觀法 수행 말고, 간단하고 쉬운 수행법으로는 무엇이 있습니까?”
龍城曰有二門하니一曰返照요二曰疑話也니라. 返照者는正心端坐하야或收視而返聽하며或返思而逆流하야細細密密히返照하되行住坐臥語默動靜에專精不忘이니時節因緣이到來하면其理가自彰也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반조返照’이고, 둘째는 ‘화두 의심(疑話)’이다.
‘반조’라는 것은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단정하게 하여 앉되, 혹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안으로) 거둬들이고 (밖으로 향하는) 청각작용을 (안으로) 되돌리기도 하며, 혹은 (밖으로 향하는) 생각을 (안으로) 되돌리고 (밖으로 흐르는 의식작용을 안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다. 섬세하고 면밀하게 반조하되 행·주·좌·와·어·묵·동·정에 철저하게 정교롭게 하여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계속하여) 시절 인연이 도래하면 그 이치가 자연히 빛난다.
又疑話者는大鑑聖師云吾有一物호되上柱天하고下柱地하며明如日黑似漆하야常在動用中이나動用中에收不得者是什麽오하시니是者는指一物之樣子也오什麽者는起疑之樣子也니라.
또, ‘화두 의심(疑話)’이라는 것은 육조 혜능 대감이신 성사聖師께서 이르시기를,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위로는 하늘을 떠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떠받치며, 밝기는 해와 같고 어둡기는 칠흑과도 같다. (내가) 움직이는 가운데에 항상 있으나, 움직이는 가운데 얻을 수 없는 것, 이뭣고.’라고 하신 것이다. ‘이뭣고’에서 ‘이’는 ‘한 물건’의 모양을 지칭하신 것이고, ‘뭣고’는 의심을 일으키는 모양이다.
不知一物之所以然故로大起疑情하야念念不忘하면自有透脫之期하리라.
0001_0050_a_01L‘한 물건’이 무슨 존재(所以然)인 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의심을 크게 일으켜 한 순간도 잊지 않으면 자연 (의심에서) 말끔하게 벗어날 기약이 있을 것이다.
普濟正士云念起念滅이謂之生死니當生死之際하야盡力提起公案是什麽也이니起滅卽盡處를謂之寂요寂中不昧公案을謂之靈이니如是空寂靈知가無壞無雜하야사必有大悟也라하니라.
(중국 송나라의) 영은 보제靈隱普濟(1179~1253) 선사께서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소멸하는 것을 두고 생사에 윤회한다고 한다. 생사에 윤회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 공안(이뭣고)을 들어야 한다. 생각의 일어남과 소멸이 사라진 자리를 고요함(寂)이라 하고, 고요한 속에서도 공안이 어둡지 않은 것을 신령스러움(靈)이라 한다. 이처럼 공하고 고요하고 신령스런 앎(空寂靈知)이 무너지지도 않고 (번뇌와) 뒤섞이지도 않으면 반드시 완전한 깨침이 있게 된다’고 하셨다.
修心用功之法을於覺海日輪에詳記故로略錄하노라.
마음을 닦고 공력功力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각해일륜覺海日輪』에 자세하게 기록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간략하게만 기록하였다.”
16. 결택을 논함(論決擇)
白雲子問曰本源之性이何時에生乎며何時에滅乎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본원의 성품은 어떤 때에 생기며 어떤 때에 사라집니까?”
龍城曰虛空이何時에生乎며何時에滅乎아?
용성이 대답하기를,
“허공이 어떤 때에 생기며 어떤 때에 사라지는가?”
白雲子曰空無始終하니何論生滅이닛고?
백운자가 말하기를,
“허공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데, 무슨 생성소멸을 논하십니까?”
龍城曰以有現空하고以空現有하나니空有迭彰하야始終이歷然하니라. 何者오? 迷妄有虛空이오依空立世界라하니迷妄은是生空之始也오覺悟는是滅空之終也ㅣ니覺亦如是야發眞歸源之時은覺生之始也오迷妄生空之時은覺滅之終也니라.
용성이 말하기를,
“있음(有)을 가지고 빔(空)을 드러내고, 빔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빔과 있음은 서로가 서로를 드러내어 시작과 끝이 분명하다. 왜 그런가? 미망하면 허공이 있고, 허공에 의지하여 세계가 건립된다고 한다. 미망은 빔이 생겨나는 시작이고 깨침은 빔의 끝남이다. 깨침도 역시 그렇다. 참을 발동시켜 근원으로 돌아갈 경우에는 깨침이 생기는 시작이고, 미망하여 빔이 생길 경우는 깨침이 사라지는 끝이다.”
白雲子曰覺有始終인댄何者가無始終乎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깨임에 시작과 끝이 있다면 시작도 끝도 없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龍城曰譬如風掃雲霧之時은日生之始也오黑雲蔽天之時은日滅之終也니라. 然이나在日體하야는無有始終生滅也니라. 又如虛空은體非群相故로無始終生滅인달하야覺亦如是하니라.
0001_0051_a_01L용성이 답하기를,
“비유하면 마치 바람이 구름과 안개를 쓸어 갈 때에는 태양이 생기는 시작이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릴 때에는 태양이 사라지는 끝이다. 그러나 태양의 바탕에 있어서는 시작도 끝도 생김도 사라짐도 없다. 또, 마치 허공은 그 바탕이 여러 형상이 있는 개별 사물은 아니기 때문에 시작도 끝도 생김도 사라짐도 없는 것과 같다. 깨달음도 역시 그렇다.”
白雲子曰不源覺性도有生滅乎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본원인 깨침의 본성도 생김과 사라짐이 있습니까?”
龍城曰熾然生滅이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치연하게 생김과 사라짐이 있다.”
白雲子曰何時에는性無生滅이라시고何時에는性有生滅이라하시니何戱論之甚耶닛고?
백운자가 묻기를,
“어떤 때는 본성은 생김과 사라짐이 없다고 말씀하시고, 어떤 때는 본성은 생김과 사라짐이 있다고 말씀하시니, 어찌 희롱하심이 이토록 심하십니까?”
龍城笑曰有時에性無生滅者은譬之於水컨댄淸也濕고濁也濕하고動也濕하고靜也濕하고波也濕하고流也濕하나니其淸濁動靜은雖異나濕性은本不異故로性無生滅이라하고性有生滅者은覺曰心生하면種種法生하고心滅하면種種法滅이라시고又云起唯法起하고滅唯法滅이라하시니如水有波인달하야性有生滅도亦然하니라.
0001_0051_b_01L용성이 웃으며 대답하기를,
“어떤 때는 본성이 생김과 사라짐이 있다고 한 것은 물에 비유해 보면, 맑을 때에도 적시는 성질이 있고 흐릴 때에도 적시는 성질이 있으며, 움직일 때에도 적시는 성질이 있고 고요할 때에도 적시는 성질이 있으며, 파도칠 때에도 적시는 성질이 있고 흐를 때에도 적시는 성질이 있다. 맑음과 흐림, 움직임과 고요함은 비록 다르지만 적시는 성질은 본래 다름이 없기 때문에 본성은 생김과 사라짐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어떤 때는) 본성이 생김과 소멸이 있다고 말한 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의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갖가지의 법이 사라진다’고 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일어나면 오직 법이 일어나고 사라지면 오직 법이 사라진다’고 하셨다. 이것은 마치 물에 파도가 있는 것과 같아서 본성에 생김과 사라짐이 있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
白雲子曰性有變異也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본성에는 변화나 달라짐이 있습니까?”
龍城曰性有變異하니現今空有等種種物相과人畜動物等이從那裡來오. 故로古云眞性深深極微妙하야不守自性隨緣成이라하시고又云眞性界中纔一念이閻浮早已八千劫이라하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본성에 변화와 달라짐이 있다. 지금 빔(空)과 있음(有) 등등의 갖가지 사물들과 사람이니 짐승이니 하는 동물 등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참 성품은 깊고 깊어 아주 미묘하여, 자신의 본성을 고집하지 않고 인연 따라 (사물들을) 이루어 준다’고 하셨으며, 또 (동안 상찰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참 성품의 세계 속에 한 생각 잠깐 일으키면, 염부제에서는 벌써 이미 8천 겁이라네’라고 했다.”
白雲子曰本源覺性은有壞否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본원인 깨달음의 본성은 파괴됨이 있습니까?”
龍城曰壞也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파괴된다.”
白雲子大驚曰本源眞性이有壞이라하시니是大違經文이니다.
백운자가 깜짝 놀라 묻기를,
“본원인 참 성품이 파괴됨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경전의 말씀과 크게 어긋납니다.”
龍城曰大鑑聖師云金剛이雖堅이나羖羊角이能破하고眞性이雖堅이나煩惱가能壞라하시니此是明證也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육조 대감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금강석이 비록 단단하지만 영양의 뿔이 그것을 부술 수 있고, 참 성품이 비록 견고하다고 하지만 번뇌가 그것을 능히 부술 수 있다’고 하셨으니, 이것이 그 증명이다.
又古云劫火洞然에大千이俱壞하나니者個覺性도壞也否잇가? 答云壞也니라. 其人이變色不平하야拂手而便去어날古德云汝到處行脚하야呈似諸方看하라.
고덕古德께 어떤 사람이 묻기를, ‘(온 세계를 다 태우는) 겁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면 삼천대천 세계가 모두 파괴되는데, 이 깨침의 본성도 파괴됩니까?’라고 하니, (고덕께서) 대답하기를, ‘파괴된다’고 하였다. 그 사람이 얼굴색을 바꾸고 불편해 하면서 손을 내저으면서 훌쩍 가 버리자, 고덕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가는 곳마다 수행하면서 여러 지방의 수행자들에게 (오늘 주고받은 대화를) 거론해 보아라’라고 했다.
其人이如敎하야到河南하야見一善覺者하고如上呈似한대善覺者具禮服焚香하고向北遙拜云此是大覺이出現於世也로다하시고囑云汝速去懺悔하라.
0001_0052_b_01L그 사람이 시킨 대로 해서 하남 땅에 도착해서는 한 선각자를 만나 위와 같이 거론하니 선각자가 예복을 갖추어 분향하고 북쪽을 향해 멀리 절을 올리고, ‘이는 대각 세존께서 세상에 출현하신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 질문한 스님에게 부촉하여 이르기를, ‘그대는 얼른 가서 참회하시오’라고 했다.
其人이依敎하야速廻湖北하니善覺者가已遷化하야無有悔過處也라. 復廻湖南하니其善覺者도已遷化하야無復懺謝處하고唯見空山이寂寞已而이니此是覺性壤空之樣子를頓放諸人面前也니라.
그 사람이 시킨 대로 호북으로 속히 돌아가니 선각자는 이미 입적하여 잘못을 뉘우칠 곳이 없어졌다. 다시 호남으로 돌아오니 그 선각자도 이미 입적하여 참회할 곳이 없고 그저 빈산만 보고 적막할 뿐이었다. 이것은 깨침의 성품이 파괴되어 사라진 모습을 여러 사람들의 면전에 대뜸 내놓은 것이다.
了達斯義하면覺悟趙州無覺性之義하리라. 若人이不達妙旨하면錯解眞理하리니豈不操心哉아? 余不注解者은使後人으로欲自肯自悟去也니라.
이 뜻을 분명하게 알면 조주 스님께서 말씀하신 깨침의 본성에 대한 의미를 깨달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든 오묘한 뜻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참된 이치를 잘못 오해할 것이니, 어찌 조심하지 않겠는가?
나 용성이 (이 문장에 대해) 주석을 달아 해설을 하지 않는 까닭은 뒷사람들에게 스스로 긍정하고 스스로 깨치게 하려 함이다.”
白雲子曰古云不貴子眼正이오只貴不爲我說破라하시니我從今以後로參究妙旨하야以悟爲則去也니이다.
0001_0053_a_01L백운자가 묻기를,
“옛사람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안목이 바른 것을 귀하게 평가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그저 내가 말해 주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이후로는 오묘한 뜻을 참구하여 깨침으로 법칙을 삼겠습니다.”
龍城曰善이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좋다.”
白雲子又問曰我有少疑하니願爲解說소셔. 世界種種之事를未然에不知고已然에方知니是何故也닛고?
백운자가 또 묻기를,
“저에게 약간의 궁금함이 있습니다. 바라오니 해설해 주십시오. 세계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을 때는 알지 못하고, 이미 발생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龍城曰一切有情之心數行事와世界之種種諸法事가生時에不言我起하고滅時에不言我滅하나니所以로不預知也니라. 一切萬物之本性이與我本性으로同體無異나隨其種種物相差別하야間隔有異할세所以로不知也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모든 유정물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과 세계의 갖가지 여러 법들이, 그것들이 생겨날 때에 ‘내가 생겨난다’고 말하지 않고, 소멸할 때에 ‘내가 소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알 수 없다. 일체 만물의 본성이 나의 본성과 더불어 같은 바탕으로 다름이 없지만, 갖가지로 물체로서의 모습에 차별이 있어서 (서로 간에) 간격이 있어 다름이 있다. 그래서 알지 못하는 것이다.”
白雲子曰如何修行하야사通達諸法乎잇가?
백운자가 묻기를,
“어떻게 수행해야지 모든 법을 통달할 수 있습니까?”
龍城曰見聞覺知之根과心生滅之本을密密返照하야察而復觀하면自然了達一念子之本空하야如桶底脫相似하야不可心思口議也니라.
용성이 대답하기를,
“보거나, 듣거나, 느끼거나, 지각 작용을 하는 감각 기관과, 마음의 생성소멸하는 근본을 면밀하게 반조返照해서 되돌려 관찰하면 일념이 본래 공한 것임을 자연스레 분명히 알아차려 마치 칠통 밑이 쑥 빠져나가는 듯하여 (그 상태는) 마음으로 헤아리거나 입으로 지껄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又細細密密觀之則麤念은已空이나或湛然如空고或黑柒如暗空하야冥然無分別이나其實은形容不得之微細念子가潛流不停也니라.
자세하고 자세하게 또 면밀하고 면밀하게 관찰하면 굵은 망념은 이미 공해진다. 그런데 혹은 허공처럼 맑고, 혹은 어두운 허공처럼 심하게 오염되어 아득하여 구별이 안 되지만, 실은 어떻게 형용할 수 없는 미세한 생각이 속으로 흘러 쉼이 없다.
到此田地하야又以返觀之精力으로專精觀照하야細密詳察則譬如虛隙日光에纖埃가擾擾인달하야頓明微細惑結也니라.
이런 지점에 이르러서는 ‘돌이켜 관찰(返觀)’하는 섬세한 힘으로 한결같이 정교롭게 관조觀照해서, 세밀하고 자세하게 살피면 곧 마치 좁은 틈새로 햇볕이 쪼이면 작은 먼지가 흔들리는 것과 같아서, 미세한 번뇌를 단박에 밝힐 수 있다.
到此田地하야風停야도波尙湧하고理現하야도念猶侵하야不可容易排遣也니라.
이런 경지는 (불던) 바람이 정지하더라도 파도는 여전히 일렁이고, 이치가 분명해져도 망념은 아직도 침략하여 용이하게 떨쳐버릴 수 없다.
又到恁麽時야猛着精彩하야細細密密觀照하면細微流注가頓消하고能所絶對하야唯一眞在而已니라.
또, 이런 때에 섬세하게 맹렬히 하여 자세하고 촘촘하게 관조하면 미세하게 흐르는 (번뇌가) 단박에 소멸하고, 주관과 대상이 끊어져서 오직 하나의 참된 본성만 일 뿐이다.
又到此田地하야如晴空一月이朗然獨存이나月中에猶有丹桂樹하야陰蔽月體故로大發勇猛心하야剪却月中桂하면淸光이應更多인달하야修心者도亦然하야斷却微細極微細之無明惑業하면但光明體性이圓明하야物我本源之眞性이周遍充滿하야萬像이頓現함이如澄淸大海에普印森羅인달하야一切世出世法之事를無所不照也며無所不知也니라.
0001_0054_b_01L또, 이런 경지에 이르러 맑은 하늘에 둥근 달 하나가 홀로 밝게 빛나지만 달 속에는 아직도 붉은 계수나무가 있어서 달은 본바탕을 어둡게 가리기 때문에, 용맹심을 크게 내어 달 속에 있는 계수나무를 베어 내면 맑은 광채가 더더욱 많아지는 것처럼, 마음을 닦는 사람도 역시 그러하여, 미세하고도 아주 미세한 무명의 미혹의 업을 잘라 내면 그저 광명의 본바탕 본성이 꽉 차고 밝아져서 사물과 나의 본래 본성인 참 성품이 (온 법계에) 두루하고 충만하여, 갖가지 형상들이 단박에 드러남이, 마치 맑고 깨끗한 큰 바다에 삼라만상이 두루 투영되는 듯하여 일체 세간법과 출세간법의 현상을 무엇이든 다 비추고 무엇이든 다 알게 된다.”
17. 깨친 뒤에 수행을 논함(論悟後修行)
白雲子問曰悟後如何修心이닛고?
백운자가 묻기를,
“깨친 뒤에는 어떻게 마음을 닦습니까?”
龍城曰頓悟自性하야徹底無疑然後에依眞修行하야稱合本性者를名之爲修이니라. 僞山이云但情不付物하면任他法性에周流하야莫斷莫續이니修與不修는是兩頭言이라하시며,
0001_0055_a_01L용성이 대답하기를,
“자신의 본성을 단박에 깨쳐 밑바닥까지 의심이 없어진 뒤에, 참됨에 의지하여 수행하여 본래의 성품에 칭합하는 것을 이름하여 수행이라고 한다. 위산 스님께서 이르시기를, ‘다만 마음이 외물에 들러붙지 않으면, 저 법성法性에 내맡기어 자유자재로워 끊을 것도 이을 것도 없으니, 닦느니 안 닦느니는 한쪽에 치우친 말이다’라고 했다.
六祖云安閒恬靜하고虛融淡泊하나니此名一相三昧라하시며又云心地無非自性戒이요心地無亂自性定이오. 心地無痴自性慧라하시니,
육조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편안하고 한가롭고 조용하고 고요하고, 텅 비어 원융하면서도 담박하니, 이것을 일행삼매一行三昧라고 한다’고 했으며, 또 이르시기를, ‘마음자리에 잘못이 없으면 자성의 계戒이고, 마음자리에 어지러움이 없으면 자성의 정定이고, 마음자리에 어리석음이 없으면 자성의 혜慧이다’라고 했다.
於行住坐臥와語默動靜一切時一切處에無修無證하며不澄不看하면唯我本心이無非無亂無痴하야虛明自照하야不勞心力者를名之爲修이니라.
행·주·좌·와, 어·묵·동·정, 언제 어디에서나 닦을 것도 깨칠 것도 없으며, 맑히려 하거나 관찰하려 하지 않으면, 오직 나의 본마음이 잘못도 없고 문란함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어 텅 비어 밝으며 스스로 비추어서 고연히 힘쓰지 않는 것을 ‘수행(修)’이라고 이름한다.
覺云不應住色生心하며不應住聲香昧觸法生心이니於法에應無所住하야而生其心이라하시니此는一切內外諸法에心無所住하면自然無住心體가靈知不昧하야不同木石하고性自神解也ㅣ니라.
0001_0055_b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물질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도 말고, 소리·냄새·맛·촉감·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지니, 모든 법에 응당 머무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내라’고 하셨다. 이는 일체 안팎의 모든 법에 마음이 머물지 않으면 자연히 머묾이 없는 마음의 바탕은 신령하게 알아차리고 어둡지 않아 나무나 돌과는 달라 본성이 저절로 신통하게 견해가 드러난다.
故로覺云若人이欲識覺境界댄當淨其意如虛空이라하시고六祖云五蘊이本空하며六塵이非有하며不出不入하며不定不亂하며自性이無住ㅣ라離住性寂하며本性無生이라. 離生性想하야心如虛空호되亦無虛空之量하야사與本性으로少分相應去라하시니,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꼭 그 마음을 허공처럼 맑게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육조 스님께서 이르시기를, ‘오온이 본래 공하며, 육진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나감도 없고 들어옴도 없으며, 고요함도 없고 산란스러움도 없으며, 자성은 어디에도 머묾이 없기 때문에 머묾이 사라진 본성은 고요하며, 본성은 남이 없기 때문에 남이 없는 본성은 영원해서 마음은 허공과 같지만 역시 허공으로 헤아리지도 않아야 본성과 더불어 약간이나마 서로 호응한다’고 하셨다.
有作修心과無作修心이都是妄想이라不可執着也ㅣ니라. 若作心無修하면碍於是而失其自由하며若作有修하면碍於是而失其自由하며若作空寂而修면碍於是而失其自由하며若作淸淨而修하면碍於是而失其自由하며若作虛靈不昧而修하면碍於是而失其自由也ㅣ니,
0001_0056_a_01L인위적인 조작이 있는 마음 닦음과 인위적인 조작이 없는 마음 닦음이 둘 다 모두 망상이니, 집착해서는 안 된다. 만약 ‘무심한 마음’을 내어 수행하면 여기에 걸려 자유를 잃게 되고, 만약 ‘유심한 마음’을 내어 수행하면 여기 걸려 자유를 잃게 되며, 만약 ‘공적한 마음’을 내어 수행하면 여기에 걸려 자유를 잃게 되고, 만약 ‘청정한 마음’을 내어 수행하면 여기에 걸려 자유를 잃게 되며, 만약 ‘허령불매한 마음’을 내어 수행하면 여기에 걸려 자유를 잃게 된다.
如是種種修心이皆住心修行이니故로云應無所住하야以生其心이라하니라. 君知否아? 如明鏡이無心야頓照萬像인달하야悟後修心者도亦復如是하야自己天眞妙體가本無住着하야虛而靈하고寂而妙하나니任運寂知야無修而修하며無行而行일名之爲道이니라.
이런 등의 갖가지 마음 닦는 수행이 모두 마음을 머물러서 하는 수행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고 하셨다.
그대는 아는가? 비유하면 맑은 거울이 무심無心해서 온갖 영상물을 비추는 것처럼, 깨친 뒤에 마음을 닦는 것도 역시 그렇다. 자기의 천진한 오묘한 바탕은 본래 (어디에도) 머물러 집착함이 없어 텅 비었으면서도 신령하고 공교하면서도 오묘하다. 어디에서고 고요하면서도 아는 작용이 있어서 닦지 않으면서도 닦고, 실천하지 않으면서도 실천하기 때문에 이것을 ‘도道’라고 이름한다.
古云心住心位하고境住境位하야有時에心境이相對야도心不取境하고境不臨心하면自然妄想이不生하고於道에無碍라하시니此乃無功之功이요非有心之功也ㅣ니라. 若住心觀靜하며取相爲行하면終不合於妙道也ㅣ니라.
옛사람이 이르기를, ‘마음이 마음자리에 머물고 대상 경계가 대상 세계 자리에 머물러 어떤 때에는 마음과 대상 경계와 상대하여도 마음은 대상 경계를 취하지 않고, 경계도 마음에 깃들지 않으면 자연히 망상이 생기지 않고 도에 장애가 없다’고 하셨다. 이는 힘들이지 않는 공부요, 마음 씀씀이 없는 공부이다. 만약 마음을 어딘가에 머물러 고요함을 관찰하며 모양을 취하여 수행 하면 오묘한 도에 끝내 합치지 못한다.”
白雲子問曰此是上根者之修行也ㅣ니那箇是中下根之修行也ㅣ닛고?
백운자가 묻기를,
“이는 상근기의 수행이니, 어찌 중근기나 하근기 사람의 수행이 되겠습니까?”
龍城曰君不見學道否아? 理則頓悟라乘悟幷消언이와事非頓除ㅣ라. 因次第而盡이라하시니悟則是同이나無明習氣가有厚薄故로修亦不同하니라.
0001_0057_a_01L용성이 대답하기를,
“그대는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못했는가? ‘이치(理)’는 돈오여서 깨침에 오르면 모두가 사라지지만, ‘현상(事)’은 단박에 제거되지 않으니 순차적으로 사라진다고 하셨다. 깨침은 (모든 중생이) 동일하지만, 무명의 습기는 두터움도 엷음도 있기 때문에 닦음(修) 역시 같지 않다.
如云六根이攝境하야心不隨緣을謂之定이오心境이俱空야照鑑無惑을謂之慧이니向爭勝處하야以此定慧로修習하야久久成熟하면曠劫無明과微細惑業이消盡無餘하야與上根과同一無二也ㅣ니라.
예컨대 ‘육근이 대상 경계와 접촉하더라도 마음이 인연을 따르지 않는 것을 선정(定)이라 하고, 마음과 대상 경계가 모두 공하여 비추어 관찰함에 번뇌가 없는 것이 지혜(慧)다’라고 한 것과 같다. 매우 고요한 곳을 향하여 이 선정과 지혜로 닦아 익혀 (그것이) 오래되어 익어지면 긴 세월 쌓인 무명과 미세한 번뇌와 업장이 다 소멸하여 남지 않아 (이런 사람은) 상근기와 비교하여 동일하여 다르지 않다.
或悟後에不忘照顧하면自然妄習이消盡하니라. 或惑業이尤重者는或借是什麽하야返觀自己本來面目하야猛着精彩하야久久純熟하면自然與道로相合也ㅣ니라. 故로云但盡凡情이언정別無聖解云云也ㅣ니라.
혹은 깨친 뒤에 살펴 관찰함을 잊지 않으면 자연히 허망한 습기가 녹아진다. 혹시 미혹의 업장이 매우 무거운 자는 혹은 ‘이뭣고’를 차용하여 자기 본래면목을 돌이켜 관찰하여 정교롭고 분명하게 맹렬히 하여 오래되어 푹 익으면 자연 도와 더불어 서로 합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다만 범부의 허망한 생각을 없앨지언정 달리 성스런 견해를 짓지 말라’고 운운 하셨다.”
大覺應世二千九百六十年三月十四日
대각응세 2960년(1933) 3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