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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237_b_01L석문상의초 상편釋門喪儀抄上篇승오복도僧五服圖3년은 25개월, 대공大功은 9개월, 소공小功은 5개월, 시마緦麻는 3개월. 같은 법문法門은 상喪에 따른다(隨喪).4)
조부모 【주년1】 속백숙 【대공】 부모 【3년】 승백숙 【대공】 증계사 【대공】 교수사 【주년】 득계화상 【3년】 갈마사 【주년】 수학사 【3년】 승속질 【소공】 승형제 【대공】 수업사 【3년】 속형제 【대공】 수업제자 【수상】 의형제 【수상】 친상제자 【주년】 의백숙 【소공】 친상법손 【대공】 수업을 받았던 스승의 복제服制는 1주년이다. 그러나 훈욱訓勗5)의 은혜를 입었거나 길러 준 덕을 입은 이로서 어릴 때부터 측근에서 모셨다면 그 의리가 또한 깊을 터이니 효행孝行을 지녀야 할 것이다. 복을 입는 제도만으로 그런 의리를 빼앗을 수는 없으니, 혹 3년복을 입는다 해도 이치에 어긋남이 없다.효의孝衣6)의 제도는 모두 법의法衣와 똑같이 하되 3년복은 삼베가 반드시 조금 거친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순수한 황갈색黃褐色으로 염색해야 할 것이며, 곧 두건頭巾도 만들어 써야 한다.관모冠帽에 대해서는 주년복周年服으로부터 대공大功의 복에 이르기까지 역시 법의를 따라 갖추어야 하고, 두건도 만들어 쓰되 3년의 복제와 똑같이 하면 된다.초종初終7)의 의례儀禮는 당연히 세속과는 다르니, 누워서 임종할 경우에는 곧 오른쪽 옆구리를 자리에 대고 머리는 북쪽으로 하고 얼굴은 서쪽을 향하게 한 다음 이불로 덮어야 한다. 만약 앉아서 임종한 경우라면 곧 승상繩床8)에 앉게 하고 얼굴은 남쪽을 향하게 한다. -
008_0237_b_01L釋門喪儀抄上篇
008_0237_b_02L
008_0237_b_03L1)碧巖覺性編
008_0237_b_04L僧五服圖
008_0237_b_05L三年者。二十
五月。大功者。九
月小功者。五
月。緦
008_0237_b_06L麻者。三
月。同法門者。隨
喪。
008_0237_b_07L祖父母 【周年】 俗伯叔 【大功】 父母 【三年】 僧伯叔 【大功】 證戒師 【大功】 敎授師 【周年】 得戒和尙 【三年】 羯磨師 【周年】 授學師 【三年】 僧俗姪 【小功】 僧兄弟 【大功】 受業師 【三年】 俗兄弟 【大功】 受業弟子 【隨喪】 義兄弟 【隨喪】 親上弟子 【周年】 義伯叔 【小功】 親上法孫 【大功】
008_0237_b_08L受業之師。服制周年。若以訓勗之恩
008_0237_b_09L育養之德。自少左右。其義亦深。孝行
008_0237_b_10L存焉。衣制不可奪。或服三年。理亦無
008_0237_b_11L失也。孝衣之制。皆同法衣。而其三年
008_0237_b_12L之服者。布須稍麁。純染黃褐。即添頭巾。
008_0237_b_13L以當冠帽。自周秊大功之服。亦隨法衣
008_0237_b_14L而備。即添頭巾。同三年之制度造矣。
008_0237_b_15L初終之儀。當須異俗。臥終卽以右脇着
008_0237_b_16L席。北首面西。以衾覆之。若坐亡即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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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237_c_01L중당中堂9)에 향과 등과 차茶를 진설해 놓고 시신을 입감入龕10)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정토주淨土呪11)와 존승주尊勝呪12)를 그 사이에 끼워 넣어 주는 것이 좋다. 일이 다 갖추어졌으면(事辦) 곧바로 입관하고 또한 제문을 고하며, 만약 일이 채 갖추어지지 않았으면 이불로 시신을 덮은 뒤에 곧 시신 옆에 임시로 승상을 설치하고 향을 사르고 등을 계속하여 밝히되 잠시라도 끊어짐이 없게 해야 한다.시신 동쪽에 풀이나 거적을 깔고 상주(孝子)는 거기 앉아서 곡을 하되 그 소리가 한결같아야 하며 다른 말이 섞여서는 안 된다. 만약 1주년 복을 입어야 하는 상주라면 곧 거적자리에 앉아서 혹 어떤 사람이 조문弔問을 오면, 다만 매우 슬퍼하기만 할 따름이다. 혹 손을 잡는 이가 있더라도 진실로 응답應答하는 말이 없어야 하며, 시신을 입관한 다음에 안착安着할 곳을 잡으면 그제야 도판과 같이 나열해 선다.
감구효당도龕柩孝堂圖북 백숙 삼베 휘장 제질 의상에는 망자가 평생 사용했던 도구들을 갖추어 놓음. 법복 등 동행 감구 승상에는 망자의 진영을 걸어 놓음. 그 다음엔 의가 서 향등 향과 꽃과 다과를 제 향 받을 이 앞에 진열 해서 공양함. 다음에는 맏상주 (孝), 자식에 해당하는 상주들(重孝), 장손 동 위패를 설치함. 절하는 자리에는 하 얀 상자에 예를 올리 는 자손들의 명단을 적은 종이를 비치함. 속가의 친척이나 비구니 대중들은 마땅히 따로 의상 을 설치해야 함. 삼베 휘장 같이 가르침을 받은 제자와 공부할 때 서로 오고가며 친분이 있었던 친구들 당문 남
장차 감구龕柩(관)를 들어내려고 하는 날 저녁에는 반드시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 따위나 희극 같은 일들을 해서는 안 되며, 범음梵音(범패)을 잘하는 사람에게 명하여 이 몸은 무상無常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며 텅 빈 것이라는 이치를 찬탄하게 하는 것이 좋다. 혹은 열반涅槃13)의 네 가지 덕德14)인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법을 찬양하여 읊으며, 사무를 거행할 때에도 마땅히 선한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는 방법이 좋다.15)다비茶毘·상례소喪禮䟽에서는 ‘소호䟽呼’를 ‘환산還山’이라고 하니 대체로 세속과는 다르다. 그 길례吉禮와 흉례凶禮의 도종導從16) 의식은 -
008_0237_c_01L繩床面南也。中堂設香燈茶。以候入龕。
008_0237_c_02L淨土呪及尊勝呪。可以間列。事辦即入
008_0237_c_03L龕柩。亦祭告之。若未辦。以衾覆後。即
008_0237_c_04L於屍邊。權設繩床焚香續明。庶無間斷
008_0237_c_05L屍東敷草薦。孝子坐哭。一任其聲。不
008_0237_c_06L用他詞。如周年之孝者。即坐席薦。若
008_0237_c_07L有人吊問。但哀哀而已。或執手。固無
008_0237_c_08L應答之詞。入龕柩然後。安着有所。今
008_0237_c_09L列于圖。
008_0237_c_10L龕柩孝堂圖
008_0237_c_11L北 伯叔 布幃 弟姪 儀床備平 生道具等 法服等 童行 龕柩 繩床 掛眞 其次 衣架 서 香燈 以香花茶果羅列 供養於此受祭 次孝重孝長孫 東 說位 拜席置素箱備 見禮孝名紙等 俗親或尼衆 當此別設儀床 布幃 受業弟子 時輩交往 堂 門 南
008_0237_c_12L將啓龕柩之夕。不須置歌挽之流。戱劇
008_0237_c_13L之事。宜命善梵音者。歎無常苦空之理。
008_0237_c_14L或讃詠涅槃四德常樂我淨之法。凡擧
008_0237_c_15L事務。當生善之道可也。赴茶此喪禮
008_0237_c_16L䟽。呼曰還山。盖異俗也。其吉凶導從之
008_0237_c_17L撰者名。補入{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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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238_a_01L망자의 덕망의 경중을 따라서 갖추어 행하는데, 너무 화려하게 지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먼저 길례에 갖추어야 할 것은 젊은 스님과 사미沙彌를 미리 가려 뽑아서 당기幢旗와 번기幡旗를 들게 하고, 손에는 향로香爐와 나발螺鈸 같은 사물을 들게 하여 두 줄로 행렬을 만든다. 범패 잘하는 사람을 시켜 큰 소리로 길게 늘여서 상락아정의 게송을 읊게 한다.만약 상여喪輿가 갖추어졌으면 다음에는 종鐘과 경쇠(磬), 향로와 여의주미如意麈尾와 법복法服 등의 물건을 안치하고 그 다음으로는 선상禪床(혼백을 모시는 가마)을 받들어 혼여魂輿(혼백을 태운 가마)를 대신한 것으로써 산에서 돌아오면, 다만 이 선상을 맞이하여 중당中堂17)에 안치하고 혼령의 자리(靈座18))를 만든다.다음에 흉례에 갖추어야 할 것은 흰 당기와 비단으로 만든 번기, 그리고 사라화沙羅花와 명銘과 지誌인데 삼오三五 동자19)를 시켜 수건과 깨끗한 물병, 짚신과 전대와 삿갓 따위의 물건들을 들도록 하고, 또 동자 네 명을 시켜 백련白練(흰 명주)을 끌게 하고 또 네 명에게는 흰 마불麻紼20)을 잡게 한다. 시신이 들어 있는 감구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은 바로 상주들인데, 그 중에서도 은혜가 중한 사람은 감구 곁 가까이에서 곡을 하고, 좀 가벼운 사람은 그 다음에 서서 곡을 하며, 높고 낮은 친우들은 감구를 둘러싸고 따라간다.산소에 이르러서는 먼저 광壙21)의 서쪽에 흰 천으로 된 차일을 치고 승상을 설치하고, 향과 차 따위의 물건을 갖추어 놓는다. 감구는 곧 광의 앞쪽에 놓아두는데 얼굴을 남쪽으로 향하게 하여 안치하고, 상주들은 시신이 든 관 동쪽에 있으며, 혹은 관 앞에 바짝 다가가 감구를 의지해서 애달프고 슬픔을 극진히 하여 곡을 하기도 한다.상례의 일을 집전하는 이가 다비茶毘를 하기에 앞서 제문을 고하고, 또 동쪽에 깨끗한 자리를 깔고 시식時食을 갖추어 차려 놓고 산야山野의 신에게 시식施食한다. 지주持呪(주문을 지송하는 것)를 잘하는 사람으로 음식을 가지加持22)하게 한다. 그런 일이 끝나면 도종들은 승상을 모시고 본원本院에 돌아와서 중당에 안치하고, 법에 따라 공양을 올린다. 서쪽에 하나의 상을 설치하고 평생토록 지녔던 도구道具들을 진열해 놓는다.미리 다비할 곳을 찾아 땅을 평평하게 골라서 대臺를 만들고 그 대의 중앙을 약 석 자 정도의 깊이로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물그릇을 넣어 둔다.
―이것을 중방수中方水라 한다. 언전諺傳23)에 의하면 “영골수靈骨水를 받든다.”라고 하는데 그 말은 잘못이다.24)중방수를 평평한 돌로 덮고 흙으로 메운 다음 그 위에 장작을 쌓는다. 감龕(널)을 들어 장작 위에 얹어 놓고 제문을 고한다. 제문 고하기를 마친 뒤에 법사와 대중들이 함께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열 번 외우고, -
008_0238_a_01L儀。隨亡者德望輕重而辦。戒其奢僭
008_0238_a_02L也。先具吉儀者。預選少僧及沙彌持幢
008_0238_a_03L幡。手爐螺鈸之物。爲兩行。以善唄者
008_0238_a_04L高聲長引。讃常樂我淨之偈。若備喪輿。
008_0238_a_05L當安鍾磬香爐如意麈尾法服等物。次
008_0238_a_06L擎禪床。以代魂輿還山歸。只延此禪床。
008_0238_a_07L安于中堂。以作靈座。次具凶儀者。白
008_0238_a_08L幢素幡沙羅花銘誌。三五童子。執手巾
008_0238_a_09L淨瓶鞋帒笠子之屬。又童行四人。引白
008_0238_a_10L練。及四人執白麻紼。在龕柩者。是孝
008_0238_a_11L子。重者近龕柩哭。輕者其次。尊卑親
008_0238_a_12L友擁從。而行到山所。先於壙西。設素
008_0238_a_13L帳。安繩床。具香茶等物。龕柩即在壙
008_0238_a_14L前。面南安置。孝子在柩之東。或進凭
008_0238_a_15L龕柩。盡哀而哭。掌事人告祭茶毗。又
008_0238_a_16L設淨席於東。具時食。施山野之神。命
008_0238_a_17L善持呪者。以加持之食。事畢。導從繩床。
008_0238_a_18L却回本院。置于中堂。如法供養。西置
008_0238_a_19L一床。列平生道具等。預於茶毗之地。
008_0238_a_20L平其土爲臺。掘臺中三尺。置水器。
008_0238_a_21L此則中方水也。諺傳云。奉靈骨水者
008_0238_a_22L非也。
008_0238_a_23L以石盖之。以土塡之。積薪其上。擧龕
008_0238_a_24L安于薪上。行祭訖。法師大衆。同誦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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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238_b_01L다시 관 위에 장작과 땔감을 쌓는다. (이와 같이 화장 준비가 모두 끝나면 오방기五方旗를 세우는데,) 장작더미 맨 위에 노란색 번기幡旗를 세운다. 파란색 번기는 동쪽에 세우고, 붉은색 번기는 남쪽에 세우며, 흰색 번기는 서쪽에 세우고, 검은색 번기는 북쪽에 세우는데, 노란색 번기가 있는 곳에서 사방四方 번기와의 거리가 각각 일곱 걸음쯤 떨어진 곳에 세운다.사방의 기旗 앞에도 각각 물그릇을 놓은 뒤 (오방五方 부처님께 이제 귀의하는 영가를 접인接引하여 주도록) 다음과 같이 범음으로 창송唱誦한다.
중방中方 비로자나毘盧遮那부처님께 귀의하오니, 아무(某) 영가를 황유리黃琉璃 세계로 인도하여 주옵소서.대중들은 따라서 다음과 같이 화답한다.
아미타부처님께 귀명歸命합니다.【아래에서도 대중들이 따라 화답하는 내용은 모두 이것을 따른다.】
범음으로 다시 다음과 같이 창송한다.
동방東方 약사유리광藥師琉璃光부처님께 귀의하오니, 아무 영가를 청유리靑琉璃 세계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또 다음과 같이 창唱한다.
남방南方 보승寶勝여래님께 귀의하오니, 아무 영가를 적유리赤琉璃 세계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또 다음과 같이 창한다.
서방西方 무량수無量壽여래님께 귀의하오니, 아무 영가를 백유리白琉璃 세계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또 다음과 같이 창한다.
북방北方 부동존不動尊여래님께 귀의하오니, 아무 영가를 흑유리黑琉璃 세계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한 연후에 법사가 거화擧火 착어着語를 하면 다섯 사람이 각각 불을 들고 오방에 서 있다가 법사가 다시 하화下火 착어를 마치면 곧바로 불을 붙인다. 그러면 대중들은 합창하여 염불하고 법사와 열 사람이 함께 「행원품行願品」을 독송한다.다음날 일을 집행하는 사람이 영골靈骨을 거두어 탑塔에 안치한다.【이상은 『오삼집』에서 뽑아낸 것이다.】석씨釋氏의 죽음을 열반涅槃·원적圓寂·귀진歸眞·귀적歸寂·멸도滅度·천화遷化·순세順世라고 말하는데 다 똑같은 의미이다. 편의에 따라 일컫는 말로서 아마도 세속과는 다를 것이다.감龕은 탑塔을 이르는 말이다.25) 석씨의 온몸(周身)의 모습이 탑과 같다. 그런 까닭에 감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또는 성盛(담는다는 의미)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아마도 세속과 다른 점이리라.비단으로 관을 만들어 시신을 덮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감자龕子가 없을 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배와 같은 모양으로 만든다.26)약자籥子는 대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
008_0238_b_01L念。又積薪龕上畢。立黃幡於積薪上。
008_0238_b_02L靑幡立東方。赤幡立南方。白幡立西方。
008_0238_b_03L黑幡立北方。而自黃幡。去四方幡。各
008_0238_b_04L七步許。四方前各置水器。然後
008_0238_b_05L梵音唱云。南無中方毗盧遮那佛。接引
008_0238_b_06L某靈駕黃琉璃界中。衆和云。歸命阿
008_0238_b_07L彌陁佛。下衆和。
皆倣此。
008_0238_b_08L梵音又唱云。南無東方藥師琉璃光佛。
008_0238_b_09L接引某靈駕靑琉璃界中。
008_0238_b_10L又唱云。南無南方寶勝如來。接引某靈
008_0238_b_11L駕赤琉璃界中。
008_0238_b_12L又唱云。南無西方無量壽如來。接引某
008_0238_b_13L靈駕白琉璃界中。
008_0238_b_14L又唱云。北方不動尊如來。接引某靈駕
008_0238_b_15L黑琉璃界中。
008_0238_b_16L然後法師說擧火着語。五人各擧火。立
008_0238_b_17L於五方。法師說下火着語。迺下火。大
008_0238_b_18L衆同聲念佛。法師及十人。誦行願品。
008_0238_b_19L次日掌事人。收靈骨入塔。此出五
杉集抄。
008_0238_b_20L釋氏死。謂之涅槃圓寂歸眞歸寂滅度
008_0238_b_21L遷化順世。皆一義也。隨便穪之。盖異
008_0238_b_22L俗也。龕塔也。釋氏周身。其形如塔。故
008_0238_b_23L名龕也。亦云盛也。此盖異俗也。作絹
008_0238_b_24L棺覆屍。此爲無龕子。故制若。籥子。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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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238_c_01L흰 비단으로 만鞔(수레를 끄는 줄)을 만든다.27)또 시신을 두루 감추는 것을 널(棺)이라고 말하는데 관棺은 관寬의 의미이다.28) 『석명釋名』에서는 ‘관關’이라 하였다. 관을 만드는 이유는 추한 형체를 가리기 위해서이다. 또 시신이 널 속에 있는 것을 구柩라고 하는데, 구는 ‘오래(久)’라는 의미이니 다시는 드러나지 못하기 때문이다.29)석씨의 상복喪服에 관해서는 『열반경涅槃經』과 모든 율律을 다 읽어 보았으나 어디에도 그런 제도가 없었다. 지금 『증휘기增輝記』에 준해 보면 『예기禮記』를 인용하여 이르기를 “복제服制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정복正服이고, 둘째는 의복儀服이며, 셋째는 강복降服이다.”라고 하였다. 『백호통白虎通』에 이르기를 “제자가 스승에 대하여 임금과 신하, 아비와 아들의 도리가 있기 때문에 살아 있을 적에는 존경하여 친근히 하고, 돌아가시고 나면 애통하게 여기면서 사모해야 한다. 은혜가 깊고 의리가 중하니, 그런 까닭에 강복의 제도가 생겨난 것이다.”라고 하였다.『석씨상의釋氏喪儀』에 이르기를 “만약 직접 가르침을 받은 화상에 대해서는 부모의 예와 똑같이 하고, 훈육訓育한 은혜가 깊으면 그 예는 다 3년의 복제를 따른다. 만약 의지사依止師30)에게서 양육과 법과 가르침의 도움을 받았을 경우엔 화상에 대한 상복의 절차를 따른다.”라고 하였다.
―스승에 대한 복은 모두 법복과 똑같이 하되 다만 조금 거친 삼베에다가 순수한 황갈색으로 염색해서 만들면 된다.31)『증휘기』에 이르기를 “다만 주름진 것 같은(蒼皴) 모습의 푸른색을 물들여서 평상복과 조금 다르게 할 뿐이다.”라고 하였다.관冠도 역시 거친 삼베로 만들되 이 또한 황갈색으로 염색해야 한다.【이른바 ‘의지사’란 우리나라 말로 하면 곧 나를 양육해 주신 스승이다.】
상주는 어버이를 잃고 나면 슬프고 애달파서 곡을 하며 울고,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신체가 마르고 병이 들기 때문에 지팡이로 몸을 부호扶護하나니 이는 죽음 때문에 산 사람이 상하는 일이 없게 하려 함이다. 어린아이나 부녀자는 지팡이를 짚지 않으니 그들은 병드는 일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석자釋子(승려)들은 마음과 형체가 속인과는 달라서 무상無常함을 통달해 알고 있기 때문에 비록 어버이나 스승을 잃었다 하더라도 곡기를 끊어서 병을 얻는 일이 없는데 어찌 지팡이가 필요하겠는가? 이는 불효하거나 부인이나 동자 등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대개 율과 예, 그리고 종교적인 것이 같지 않기 때문에 그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니 이 또한 과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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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238_c_01L竹爲骨。白絹鞔之故也。又周屍曰棺。
008_0238_c_02L棺寬也。釋名關也。所以有1)棺 [1] 者。以掩
008_0238_c_03L其形惡也。又屍在棺曰柩。柩久也。不
008_0238_c_04L可復彰也。
008_0238_c_05L釋氏喪服。讀涅槃經諸律。並無其制。今
008_0238_c_06L准增輝記引禮云。服制有三。一正服
008_0238_c_07L二儀服。三降服。白虎通云。弟子於師。
008_0238_c_08L有君臣父子之道。故生則尊敬而親之。
008_0238_c_09L死則哀痛而慕之。恩深義重。故爲降服。
008_0238_c_10L釋氏喪儀云。若2)受 [2] 業和尙。同於父母。
008_0238_c_11L訓育恩深例。皆三䄵服也。若依止師
008_0238_c_12L資飱法訓次。於和尙隨喪服。
008_0238_c_13L師服者。皆同法服。但用布稍麁。純染
008_0238_c_14L黃褐。增輝云。但染蒼皴之色。稍異於
008_0238_c_15L常𠇍 [3] 。冠亦麁布造作。亦染黃褐所謂依
止師者。
008_0238_c_16L即我國
養師也。
008_0238_c_17L孝子失親。悲哀哭泣。三日不食。身軆
008_0238_c_18L羸病故。以杖扶身。明不以死傷生也。
008_0238_c_19L童子婦女不杖。以其不能病也。今釋子
008_0238_c_20L心形異俗。達了無常。雖喪其親與師。
008_0238_c_21L未有絶漿而成病者。何必杖乎。非是不
008_0238_c_22L孝婦人及童子等。盖律禮宗致不同。故
008_0238_c_23L其杖不用。亦無過失也。
008_0238_c_24L「棺」筆寫{甲}。「受」加筆字形似「平人」{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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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239_a_01L곡哭『열반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시자 모든 성문聲聞 제자들이 다 곡을 하였는데, 욕망을 여의지 못한 이는 모두 땅에 뒹굴기까지 하였다.”라고 하였다.비구는 스승이 죽어도 크게 소리 내어 곡을 해서는 안 되며, 마땅히 작은 소리로 흐느껴 울면서 눈물을 흘려야 한다.32)무릇 석자들은 스승이 죽거나33) 어버이를 혹 잃으면 애통함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니 어찌 곡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소리를 놓아 울지 않고 사정이나 곡절을 이야기하거나, 허튼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하며 오직 한결같은 소리를 내어 슬픔을 극진하게 할 따름이다.
제전祭奠‘제祭’란 살피다(詧)라는 뜻이니, ‘살피다’라는 말은 이른다는 말이다. 사람의 일이 신에게 이르는 것을 말한다.34) 『석명釋名』에 이르기를 “전奠은 머무르다(停)라는 뜻이니, 오랜 기간 멈추어 있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무릇 석씨의 상례에서는 세속을 본받는 것이 옳지 않으니, 시약時藥35)·향香·꽃 등을 공양하는 것이 가하다.
행조行弔‘조弔’란 이르다(至)라는 의미이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신이 이르렀다.(神吊矣)”라고 하였다. 『오삼집五杉集』에 조문 의식이 매우 잘 갖추어졌으니 검토하여 사용하라.『오삼집』 「조의弔儀」에 말하였다.“무릇 조문을 가서 위로하는 의식은 상갓집 문안에 들어가면 슬픔을 품은 모습을 해야 한다. 상가(孝家)에는 손님을 인도하는 사람이 있으니, 곧 명지名紙36)를 통하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간다. 만약 승원僧院이면 영전靈前에 들어가 ‘우吁’37) 하고 두세 번 소리를 내고, 만약 소중한 사람의 죽음에는 곧 그 죽은 이에 대하여 예를 올린다. 의식을 버릴 때에(捨識之時) 계율도 따라 버리기 때문에 송종送終(죽은 이를 보냄)의 옷으로 반드시 오조가사를 걸치게 한다. 그런 까닭으로 굳이 예를 시설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상주만을 조문할 때에도 ‘우吁’ 하는 소리를 두세 번 하고 나가면 된다.상가에 만약 도반이 손님으로 와 있으면 조금 머물러 있고, 혹 상주와 깊은 친분이 있거나 서로 아는 사이면 들어가서 상주를 뵙고 손을 맞잡고 위문한다. 만약 아직 성복成服을 치르기 전이거나 혹 갓 성복례를 한 경우라면 위로하는 도리를 펴지 않고, 이미 칠재七齋를 치르고 난 뒤에 곧 위로해도 좋다. -
008_0239_a_01L哭
008_0239_a_02L湼槃經云。佛滅度後。諸聲聞弟子皆
008_0239_a_03L哭。未離欲者。皆宛轉于地。比丘師亡。
008_0239_a_04L不得擧聲大哭。應小小泣淚。凡釋子師
008_0239_a_05L主 [1] 。二親或喪。痛自心發。豈有不哭者
008_0239_a_06L乎。但不得縦聲委曲并致他詞。唯一任
008_0239_a_07L其聲。哀哀而已。
008_0239_a_08L祭奠
008_0239_a_09L祭者。詧也。詧至也。言人事至於神也。
008_0239_a_10L釋名曰奠停也。言停久也。凡釋氏之喪。
008_0239_a_11L不宜倣俗。可稱旹藥香花供養。
008_0239_a_12L行吊
008_0239_a_13L吊者至也。詩云。神吊矣。五杉集中。吊
008_0239_a_14L儀甚備。可撿行用。
008_0239_a_15L五杉吊儀云。凡吊慰者。入門懷悲愴之
008_0239_a_16L容。孝家有引客之人。即通名紙。從後
008_0239_a_17L隨入。若僧院則入1)靈 [1] 前。吁三兩聲。若
008_0239_a_18L重亡者。即設禮其亡者。捨識之時。戒
008_0239_a_19L亦隨捨故。送終之衣。須掛五條也。所
008_0239_a_20L以不用設禮亦得。便吊孝子。亦吁三兩
008_0239_a_21L聲便出。孝家若有伴客之人。略住。或
008_0239_a_22L與孝子有深分相知。入見孝子。執手
008_0239_a_23L叙慰。若是未成服。或初成服。無叙慰
008_0239_a_24L之道。已經齋七然後。即可叙慰也。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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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239_b_01L가령 속가라면 혼령만 위로하는 것을 상傷이라 하고 상주를 위문하는 것을 조弔라 한다.38) 만약 아버지와 백숙伯叔 형제라면 곧 혼령을 위문하고 나서 상주에게 조문하면 된다. 혼령에 조문하는 것과 상주에 조문하는 것도 다만 ‘우吁, 우吁’라고 하면 그만이다. 만약 어머니와 백숙모나 자매 등의 경우라면 혼령에 조문하는 것은 하지 말고 다만 상주에게만 조문하면 되며, 자식과 관련된 여인으로서 규방과 바깥의 구분이 없는 경우라면 꼭 혼령에 조문하지 않아도 된다. 조문을 간 사람이 돌아가신 이보다 나이가 적으면 시신이 있는 곳까지 가서 예를 올린다.”
—흔히 승려가 사망하면 계율도 버리기 때문에 절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무슨 까닭에 남산南山 대사가 이르기를 “돌아가신 사람보다 나이가 적으면 시신이 있는 곳까지 가서 예를 올려야 한다.”라고 하였으며, 또 경전에서는 “비구가 죽어 흙이 되면 부처님께서는 어떤 비구를 보내 예배하게 합니까?”라고 하였는가? 지금 이것을 상고해 보면 필시 죽은 이보다 나이가 많으면 예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 듯하다.
또 그 제자에 대해서는 그의 손을 잡고 위문한 다음에 그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가서 법에 의거하여 조문을 행해야 한다.
—여기에서 ‘제자’란 돌아가신 사람의 제자이다. 그의 미혹함을 인도하는 차원에서 그의 손을 잡고 위문하는 것이다. ‘그 스승’이란 돌아가신 이의 두 스승을 말한다.【두 스승이란 계사戒師와 수업사受業師이다.】
—『예기』 (「곡례曲禮」)에 이르기를 “살아 있는 분을 잘 아는 사이라면 상주에게 조문하고 돌아가신 분을 잘 아는 사이면 혼령을 조문한다.”라고 하였으며, 『열반경』에서는 “부처님께서 멸도하시자 하늘과 사람의 대중들이 모두 말하기를 ‘어찌 이다지도 괴로움을 주는가, 어찌 이다지도 괴로움을 주는가?’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혼령을 위문하는 말인 듯하다.
수조受弔화상和尙과 사리闍梨는 곧 휘장 밖에 있는 방석에 앉아 손님이 와서 조문을 하게 되면 동문수학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나이가 적으면 풀을 깔고 그 위에 서 있고 나이가 많으면 풀 자리 위에 앉는다.
—‘화상과 사리’란 곧 돌아가신 분의 두 스승이고 ‘동문수학한 이로서 나이가 적고 많다’는 것은 곧 돌아가신 분의 제자들이다.【이것은 『남산초南山抄』에서 뽑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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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239_b_01L是俗家。慰靈曰傷。慰孝子曰吊。若是
008_0239_b_02L父及伯叔兄弟。即可傷而後吊。傷與吊。
008_0239_b_03L亦只是吁吁而已。若是母及伯母姊妹
008_0239_b_04L等。不用傷。但吊。孝子緣女人。無閨外
008_0239_b_05L之分。不必傷也。
008_0239_b_06L行吊人。少於亡者。至屍所設禮。
008_0239_b_07L多云僧亡戒捨故。不得設拜。若𠇍
008_0239_b_08L何故南山大師云。少於亡者。至屍所
008_0239_b_09L設禮也。又經中。比丘化爲地。佛令
008_0239_b_10L有讎 [2] 比丘。設禮拜。今詳之。必是長
008_0239_b_11L於亡者。不禮𠇍。
008_0239_b_12L又於其弟子。執其手。慰問然後。至其
008_0239_b_13L師所。依法吊之。
008_0239_b_14L弟子即亡者之弟子也。以其導迷故。
008_0239_b_15L執其手而慰焉。其師即亡者之二師
008_0239_b_16L也。二師即戒師
受業師也。
008_0239_b_17L禮云。知生者吊。知死者傷。涅槃經云。
008_0239_b_18L佛滅度後。人天大衆咸曰。何斯苦哉。
008_0239_b_19L何斯苦哉。此似傷詞也。
008_0239_b_20L受吊
008_0239_b_21L和尙闍梨。即鋪床在幔外坐。擬有客來
008_0239_b_22L吊。同學小者布草立。大者坐於草上。
008_0239_b_23L和尙闍梨。即亡者之二師。同學小者
008_0239_b_24L大者。即亡者之弟子也。此出南
山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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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239_c_01L『상의喪儀』에 이르기를 “직접 득도시킨 제자라면 막幕 안에 들어가서 곡을 하고 학업을 받은 제자라면 장막 밖에서 곡을 한다. 보통 스님들이 와서 조문을 하면 곧 곡을 하고 엎드리며 속인이 와서 조문하면 곧 곡만 하고 엎드리지는 않는다. 만약 비구가 부모의 상을 당해서 속가에 가서 조문을 받을 적에는 곧 남녀 사이에 섞여 있어서는 안 되며, 장막 밖 당堂 앞에 풀이나 거적자리를 깔고 얼굴을 동쪽으로 향하고 앉아서 조문을 받는다. 어떤 사람이 와서 조문을 하면 곧 공수拱手39)하고 머리를 조금 숙이고 슬프디 슬프게 곡을 하며, 사람들이 와서 조문하는 이가 없으면 경을 독송하거나 염불을 한다.”라고 하였다.
분상奔喪40)석씨의 분상奔喪은 대가섭大迦葉으로부터 나왔다.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지 이미 7일이 지나서 가섭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비로소 영림靈林에 이르자 부처님께서 금관金棺에서 두 발을 내어 보이셨다.초鈔(『南山鈔』)에 이르기를 “가령 분상하는 이는 곧바로 시신이 있는 곳에 가서 예배한 뒤에 차례를 따라 제자리에 앉는다.”라고 하였다. 기記(『增輝記』)에 이르기를 “분상이라는 말은 멀리 외지外地에 있을 적에 스승이 돌아가시어 흉한 소식이 이르면, 친구들 간에 먼저 영위靈位를 설치하고,【이는 애도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 인도하여 그곳에 이르러 극진하게 애도를 표한 뒤에 속히 돌아가는데, 별을 보고 떠나기 시작해서 별을 보고 멈추어 쉬곤 한다. 이윽고 본원本院에 이르렀을 때 만약 감구龕柩가 끝나고 영골을 탑에 봉안하였으면 먼저 그곳에 가서 예배하고 극진한 애도를 표하고 그 탑을 몇 바퀴 돌고 난 다음 사찰로 돌아가서 법의 권속들에게 조문을 한다.”라고 하였다.초鈔에 이르기를 “만약 절개가 높고 뭇 사람들보다 뛰어나며 지금껏 청탁淸卓한 삶을 살아온 이라면 굳이 세속의 정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이 말도 역시 옳은 말이 아니다.】 만일 마음 쓰이는 대로 희로喜怒를 표하고 세속을 따라 부침浮沈하는 사람으로서 부모나 두 스승이 돌아가신 뒤에 호하護夏(여름 결제)로 인해 오지 못했거나 비록 왔더라도 슬픔을 다 펼치지 않으면 도속道俗이 다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라고 하였다.
장법葬法천축天竺(인도)에는 네 가지 법이 있다. 첫째는 수장水葬이니 시신을 강이나 하천에 던져 모든 어룡魚龍의 먹이로 삼게 하는 것이고, -
008_0239_c_01L喪儀云。親度弟子。哭於幕內。受學弟
008_0239_c_02L子。哭於幕外。凡僧來吊。即哭而伏。俗
008_0239_c_03L來吊。則但哭不伏。若比丘。於父母喪。
008_0239_c_04L徃俗家受吊。即不可雜於男女之中。即
008_0239_c_05L於幕外堂前。布草或薦。面東而坐受吊。
008_0239_c_06L有人來吊。則拱手低頭。哀哀而哭。無
008_0239_c_07L人來吊。則誦經念佛。
008_0239_c_08L奔喪
008_0239_c_09L釋氏犇喪。出自大迦葉。佛滅度已七日。
008_0239_c_10L迦葉領徒。方至䨥林。佛於金棺。出雙
008_0239_c_11L足示之。鈔云。若奔喪者。直至屍所禮
008_0239_c_12L拜而後。從次第位而坐。記云。奔喪者。
008_0239_c_13L謂在外處師亡。凶信至。用友間。先設
008_0239_c_14L靈位。此擧哀
儀也。然後引至其處。擧盡哀後。
008_0239_c_15L疾疾而歸。見星而行。見星而舍。旣至
008_0239_c_16L本院。若龕柩已歸。塔先歸其處。禮拜
008_0239_c_17L盡哀。繞數匝而後歸院。與法眷行吊。
008_0239_c_18L鈔云。若高節拔羣。由來淸卓者。固不局
008_0239_c_19L世情。此言亦
不可也。必若任情喜怒。隱俗浮沉
008_0239_c_20L者。或父母或二師亡。而護2)夏 [1] [NaN] 不來。雖
008_0239_c_21L來不展哀者。道俗同恥之。
008_0239_c_22L葬法
008_0239_c_23L天笁有四焉。一水葬。投之江河。飼諸
008_0239_c_24L「靈」加筆作「堂」{甲}。「夏」疑「憂」{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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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240_a_01L둘째는 화장火葬이니 장작을 쌓아 놓고 시신을 태우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토장土葬이니 언덕 옆에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묻어서 속히 썩게 하는 것이며, 넷째는 임장林葬이니 싸늘한 숲(寒林) 속에 시신을 드러내 놓아 새나 짐승들의 먹이로 삼게 하는 것이다.
—‘싸늘한 숲(寒林)’이란 곧 서역西域(인도)에서 시신을 내다 버리는 곳이다. 율律(『十誦律』)에 이르기를 “대부분 시신을 그 숲에 내다 버림으로써 모골毛骨이 오싹해지기 때문에 한림寒林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유闍維사유闍維란 이곳 말로는 분소焚燒라 한다. 율律(『十誦律』)에 이르기를 “비구가 의심하기를 ‘화장火葬을 하면 몸속에 있는 벌레들이 다 죽을 것이 아닌가?’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죽으면 몸속의 벌레들도 다 죽는다’고 하셨다.”라고 하였다.
송장送葬41)논論(『毘尼母經』)에 “『합사송장기闔寺送葬記』에 이르기를 ‘무상無常함을 관觀하게 하기 위해서이다’라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지금 선禪을 하던 스님이 죽으면 어른이든 젊은 사람이든 주인이든 객승이든 따지지 말고 모두 북을 치며 널리 청한다고 하였으니 대개 이 율을 따르는 것이다.
율律(毘奈耶)에 이르기를 “비구의 장례(送葬)에는 독송 잘하는 이로 하여금 『무상경無常經』 게송을 독송하게 하여 그를 위해 축원해 주어야 한다.”라고 하였으며, 『열반경涅槃經(정반왕열반경)』에서는 “정반왕淨飯王이 숨을 거두자 칠보관에 염殮을 하였는데, 부처님과 난타難陀는 관 앞에 공손히 엄숙하게 서 있었고 아난阿難과 라후라羅睺羅는 뒤에 서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미래 세상에 흉포凶暴한 승려들이 부모님의 깊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을까 염려하시어 직접 스스로 관을 메었다. 그때에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가 여섯 가지로 진동震動하고 때마침 사천왕四天王이 부처님을 대신하여 관을 메었다. 부처님께서 이에 향로를 받쳐 들고 관 앞에서 인도하시며 걸어가셨다.”라고 하였으니, 지금 석씨들은 부모님의 장례에 이 경을 기준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착한 마음을 내게 해야 할 것이다. -
008_0240_a_01L魚鼈。二火葬。謂積薪焚之。三土葬。謂
008_0240_a_02L埋岸傍速朽之。四林葬。謂露置寒林。
008_0240_a_03L飼鳥獸也。
008_0240_a_04L寒林即西域棄屍處。律云。多死屍。凡
008_0240_a_05L入其林者。可謂毛寒。故名寒林也。
008_0240_a_06L闍維
008_0240_a_07L闍維。此云焚燒。律云。比丘疑火葬則殺
008_0240_a_08L身中虫。佛言。人死虫已死。送葬論云。
008_0240_a_09L闔寺送葬記云。令觀無常故。
008_0240_a_10L今禪居僧亡者。不論尊少主客。竝打
008_0240_a_11L皷普請。盖准此律。
008_0240_a_12L律云。比丘送葬。可令能者。誦無常經伽
008_0240_a_13L陁。爲其祝願。涅槃經云。淨飯王命終。
008_0240_a_14L殮以七寶棺。佛與難陁在前。恭肅而立。
008_0240_a_15L阿難羅睺羅在後。佛念當來凶暴之僧。
008_0240_a_16L不報父母深恩。躬自擎棺。尒旹三千大
008_0240_a_17L千世界。六種震動。時四天王。代佛擎棺。
008_0240_a_18L佛乃執香爐在棺前。導引而行。今釋氏
008_0240_a_19L父母葬。可准此經。令人生善心。
- 4)주년周年 : 13개월.
- 5)훈욱訓勗 : 힘써 가르치고 권면함.
- 6)효의孝衣 : 수의壽衣와 같은 뜻이다. 수의란 염습殮襲할 때 시신에 입히는 옷을 말하는 것으로서 세제지구歲製之具라고도 한다. 유교의 의식을 따르기 전 우리나라의 옛 수의가 어떠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사람이 죽어서 입는 옷이니만큼 당시의 성장盛裝으로 수의를 삼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의는 주로 윤달에 마련하는데, 하루에 완성하여야 하고 완성된 것은 좀이 쏠지 않게 담뱃잎이나 박하 잎을 옷 사이에 두어 보관하며, 7월 칠석七夕에 거풍하였다. 재료는 양반집에서는 비단으로 하였으나 일반은 명주로 만들었다. 조선 시대에는 관冠·혼婚·상喪·제祭의 사례四禮를 유교, 특히 『朱子家禮』에 준하여 거행하였다. 수의는 『四禮便覽』 「喪禮條」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남자는 복건幅巾·망건網巾·심의深衣 또는 단령團領·답褡(소매 없는 氅衣) 또는 직령直領·대帶(條帶)·과두裹頭(배와 허리를 싸는 것), 포오袍襖(中赤莫)와 같은 설의褻衣, 한삼汗衫(몸에 다는 小衫, 속칭 적삼)·고袴·단고單袴(속바지)·소대小帶(허리띠)·늑백勒帛(속칭 행전)·말襪·구屨·엄掩(裹首)·충이充耳·멱목幎目(覆面)·악수握手(裹手)를 갖추었다. 여자의 경우는 사纚·심의 또는 단의褖衣 또는 원삼圓衫·장오자長襖子(속칭 長衣)·대·삼자衫子(속칭 唐衣)·포오(속칭 저고리)·소삼小衫(적삼)·과두裹肚(속칭 요대)·상裳·고·단고·말·채혜彩鞋·엄·충이·명목·악수 등이다. 위의 수의는 관습화하여 오늘날에도 특수한 종교 의식에 의한 염습 외에는 이를 따르며, 후박厚薄이 있을 뿐이다.
- 7)초종初終 : 보통 초상初喪이라는 말을 예문禮文에서 쓰는 말이다.
- 8)승상繩床 : 노끈으로 얽어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든 의자. 속칭 와상臥牀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교상交牀·승상繩牀·호상胡牀이라고도 한다.
- 9)중당中堂 : ① 당상堂上 남북의 중간. ② 천태종에서 본존本尊을 안치하는 본당을 이르는 말.
- 10)입감入龕 : 시신을 관에 넣는 절차를 말한다. 오늘날 승려의 경우에는 입감이라 하고, 재가자인 경우에는 입관入棺이라고 한다.
- 11)정토주淨土呪 : 무량수불설왕생정토주無量壽佛說往生淨土呪를 말한다. “나무 아미다바야 다타가다야 다디야타 아미리 도바비아미리다 싯담바비 아미리다 비가란제 아미리다 비기란다가미니 가가나 깃다가례 사바하.”
- 12)존승주尊勝呪 : 불정존승다라니佛頂尊勝陀羅尼를 말한다. “나모바가바테 트라이로캬 프라티비시스타야 붇다야 바가바테 타댜타 옴 비숟다야 사마사만타 바바사스파라나 가티가하나 스바바바비숟데 아비심차투맘 수가타바라바차나 아므르타비사이카이 아하라아하라 아유산다라니 솓다야솓다야 가가나비숟데 우스니사비자야비숟데 사하스라라스미삼수디테 사르바타타가타바루카니 사트파라미타파리푸라니 사르바타타가타흐르다야 디스타나디스티타 마하무드레 바즈라카야 숨하타나비숟데 사르바바라나바야두르가 티파리숟데 프라티니바르타야 아유숟데 사마야디스티테 마니마니마하마니 타타타부타 코티파리숟데비스포타보디숟데 자야자야 비자야비자야 스마라스마라 사르바붇다 디스티타숟데 바즈리바즈라가르베 바즈람바바투마마 샤 사리람사르바사트바남차 카야파리비숟데 사르바가티파리숟데 사르바타타가타스 차메사마스바사얌토사르바타타가타 사마스바사디스티테 붇댜붇댜 비부다야 비부다야 사만타파리숟데 사르바타타 가타흐르다야 디스타나디스티타 마하무드레 스바하.”
- 13)열반涅槃 : ⓢ Nirvāna. 적멸寂滅·불생不生·무위無爲·안락安樂·해탈解脫·원적圓寂·영생永生으로도 표기한다.
- 14)열반의 네 가지 덕(涅槃四德) : ① 상항불변常恒不變하여 생멸生滅이 없으며 수연화용隨緣化用이 부덕不德함을 말하는 상덕常德. ② 적멸무위寂滅無爲하여 언제나 안락무우安樂無憂함을 말하는 낙덕樂德. ③ 대아大我·진아眞我의 자실自實함을 말하며 용用에 있어서 팔대자재아八大自在我를 갖춤을 말하는 아덕我德. ④ 일체구염一切垢染을 해탈解脫하여 어떠한 경계에도 오염汚染되지 않음을 말하는 정덕淨德.
- 15)마땅히 선한~방법이 좋다 : 혹은 ‘마땅히 좋은 곳에 태어나리라라고 말해야 한다.’로도 해석된다.
- 16)도종導從 : 행렬의 앞뒤에서 수행하는 사람. 도導는 앞에 서는 사람, 종從은 뒤에 따라가는 사람을 이른다.
- 17)중당中堂 : 주 6 참조.
- 18)영좌靈座 : 신주를 모시는 자리.
- 19)삼오三五 동자 : 삼오는 세 명 내지 다섯 명인지, 아니면 15세 동자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일반적이라면 후자인 경우가 많다.
- 20)마불麻紼 : 삼으로 만든 상여를 멜 때 사용하는 줄.
- 21)광壙 :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파 놓은 구덩이.
- 22)가지加持 : ① 부처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한 힘의 가호를 받아 중생衆生이 불범일체佛凡一體의 경지로 들어가는 일. 진언종眞言宗·천태종天台宗의 밀교密敎의 행자行者가 손으로 인계印契를 맺고, 입으로 진언眞言을 외며 마음이 삼매三昧에 들면, 이 경지에 도달한다고 한다. ② 기도祈禱.
- 23)언전諺傳 : 속전俗傳과 같은 의미로서 민간에 말을 퍼뜨려 전함. 또는 그렇게 전하여 내려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 24)이 부분은 원문에 한 행 아래로 처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편자의 해설로 보이므로 ‘―’로 표시하고 본문보다 1자 들여쓰기로 구분하였으며, 원문에서도 별행 처리하여 1자 들여쓰기로 구분하였다.(이하 동일)
- 25)감龕은 탑塔을 이르는 말이다 : 『唐韻』에 나오는 말이다.
- 26)그러므로 마치~모양으로 만든다 : 원문에는 ‘고제약故制若’으로 되어 있는데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釋氏要覽』에는 ‘고제약선故制若船’으로 되어 있다. 후자에 따라 번역한다.
- 27)비단으로 만鞔을 만든다 : 『南山鈔』에 나오는 내용이다.
- 28)시신을 두루~관寬의 의미이다 : 『周禮』에 나오는 말이다.
- 29)관을 만드는~못하기 때문이다 : 『白虎通』에 나오는 말이다.
- 30)의지사依止師 : 그 문하에 있으면서 학업을 받거나, 선리禪理를 탐구하며 따라 모시던 스승.
- 31)스승에 대한~만들면 된다 : 『五衫集』에 나오는 말이다.
- 32)비구는 스승이~흘려야 한다 : 『五百問』에 나오는 말이다.
- 33)스승이 죽거나 : 원문에는 ‘사주師主’로 되어 있는데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釋氏要覽』에 ‘사망師亡’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를 따라 번역한다.
- 34)‘제祭’란 살피다(詧)라는~것을 말한다 : 『尙書』 「大傳」에서 인용한 것이다.
- 35)시약時藥 : 음식.
- 36)명지名紙 : 과거 시험에 쓰던 종이. 여기에서는 요즘 말로 하면 방명록에 자기의 이름을 기재하여 알리는 경우와 같은 것.
- 37)우吁 : 탄식하는 소리. ‘아!’와 같은 의미이다.
- 38)지금의 조문은 고인과 유족을 함께 위로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옛날에는 구별이 엄해서 고인의 친구는 유해를 찾아 애도의 뜻을 표했는데 이를 상傷이라 했다. 반면 고인은 모르지만 유족과 가까운 경우에는 유족의 슬픔을 위로했는데 그것이 조弔이다.
- 39)공수拱手 : 왼손을 오른손 위에 포개어 잡아 공경의 뜻을 나타냄. 또는 그런 예.
- 40)분상奔喪 : 먼 곳에서 부모가 돌아가신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돌아감.
- 41)송장送葬 : 망자의 가족과 친지·조문객들이 묘지로 가서 안장하는 것을 말한다.
- 1)撰者名。補入{編}。
- 1)「棺」筆寫{甲}。
- 2)「受」加筆字形似「平人」{甲}。
- 1)「靈」加筆作「堂」{甲}。
- 2)「夏」疑「憂」{編}。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김두재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