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가산고(伽山藁) / 月荷大和尙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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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 대화상 행장(月荷大和尙行狀)
화상의 법휘는 계오戒悟, 자는 붕거鵬擧, 호는 월하月荷이시다. 속성은 권씨權氏,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비조鼻祖는 고려의 시중을 역임하셨다. 부친의 휘는 모현慕賢, 모친은 밀양 박씨이며, 선사先師는 영조英祖 계사년(1773)201) 10월 7일에 경주 천태산天台山 아래에서 태어나셨다. 그분을 회임했을 때 박씨가 달이 품 안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고, 그 외로운 달이 둥실 뜨던 날에는 산이 세 차례나 울었다. 또한 수리부엉이가 찾아와 지붕 위에서 울었으니, 그의 호와 자는 실로 달 꿈의 징조와 수리부엉이의 상서를 취한 것이다.【세속에서는 수리부엉이를 붕새라 부르기 때문이다.】 태어나자 미목眉目이 수려하고 타고난 성품이 총명하였기에 마을 어른들이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부터 전해 오기를, 천태산이 바로 동해의 거령巨靈이고 이 산이 울면 반드시 기이한 일이 생긴다고 하였다. 이것이 그 징조였구나!”
일곱 살부터 글방에 다녔는데, 하루에 천여 자를 암송하고 재차 물어 선생님을 귀찮게 하는 법이 없었다. 젖니를 갈 무렵부터 시를 지었는데 걸핏하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말들을 하였다. 열한 살에 부모님의 뜻에 따라 머리를 깎고 팔공산八公山 월암 수좌月庵首座에게 출가하였으며, 지봉 화상智峰和尙202)의 법을 이어받았으니 화상은 바로 회암 화상晦庵和尙203)의 법을 정통으로 전한 3세이시다. 침허 법사枕虛法師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대덕들의 강석에 참여하여 공부하였으며, 식견과 이해가 출중하고 선지禪旨를 투철히 깨달아 스무 살 남짓에 이미 방패를 걸고 법을 연설하였다.
출가한 후에도 머무는 가람 곁에 흙집을 지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봉양하면서 잠시 떨어지는 것도 못 견뎌 하셨다. 어머니가 연로하여 눈이 멀었다가 나중에 홀연히 다시 밝아졌으니, 세상 사람들은 이를 두고 정성에 감응한 결과라 하였다. 또 남는 힘이 있으면 패엽貝葉을 읽는 틈틈이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하셨다. 그분의 문장은 민첩하고 풍부하고 호방하고 화창했으며 나물과 죽순의 기미라고는 전혀 없었다. 시는 매우 고상하고 예스러웠으며 애써 꾸미고 다듬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풍미가 있었다. 필법은 더욱 정밀하고 오묘했으니, 한 거리의 비석과 간판, 병풍 등이 거의 다 선사의 손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계율을 엄수하여 명예와 이익을 위해 길을 나서는 법이 없었음에도

010_0794_b_01L月荷大和尙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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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尙法諱戒悟字鵬擧號月荷俗姓
010_0794_b_03L權氏貫安東鼻祖高麗侍中幸考諱
010_0794_b_04L慕賢妣密城朴氏以正廟癸巳十月七
010_0794_b_05L擧先師于慶州之天台山下其懷妊
010_0794_b_06L朴氏夢月入懷中其懸孤也山鳴
010_0794_b_07L者三又有鵂鶹來鳴屋上其號與字
010_0794_b_08L實取夢月之兆鵂鶹之祥俗呼鵂鶹
爲鵬故云
生而
010_0794_b_09L眉目秀朗姿性聰慧父老曰古傳云
010_0794_b_10L天台山乃海上巨靈鳴必有異事此其
010_0794_b_11L徵歟七歲就塾日誦千餘言不煩敎
010_0794_b_12L離齔爲詩動輒有驚人語十一歲
010_0794_b_13L以父母之意祝剃于八公山月庵首座
010_0794_b_14L傳法于智峰和尙和尙乃晦庵和尙之
010_0794_b_15L三世的傳受具戒於枕虛法師叅學於
010_0794_b_16L大德講會識解超絕透悟禪旨弱齡
010_0794_b_17L已掛牌演法出家後築土室于所住伽
010_0794_b_18L藍之側奉母氏以㞐怡愉志養不忍
010_0794_b_19L蹔離母氏年老眼盲後忽復明世以
010_0794_b_20L爲誠感攸致又有餘力以貝葉之暇
010_0794_b_21L蒐獵百家其文敏贍豪暢絕無蔬荀氣
010_0794_b_22L詩甚高古不事彫琢而自有風致
010_0794_b_23L法又精竗一路之碑版屛障殆盡出於
010_0794_b_24L先師之手嚴守戒律不肎爲名利行脚

010_0794_c_01L진신 선생들이 모두 그와 함께 노래하고 화답하였으며, 훌륭함을 칭찬하며 스스로 방외의 인연에 의탁하였다.
예순이 넘어서자 시와 문장을 악업이요 마장이라 여겨 단칼에 잘라 버리고는 향을 사르고 면벽하면서 온 마음을 다해 염송하셨다. 그러다 헌종 기유년(1849) 2월 4일에 가지산伽智山 연등정사燃燈精舍에서 적멸을 보이셨으니, 세수는 77세요 법랍은 66년이셨다. 화장하던 날 저녁에는 무지개 같은 기운이 곧장 서쪽을 가리켰는데, 산 아래 여러 군에서도 이를 목격하고 이야기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에 시문 몇 권【유집 12권 가운데 10권은 간행하지 못하고 2권만 판각하였다.】을 수습하여 천을 바른 책 상자에 보관하고, 삼가 한평생의 삶을 대략 정리하여 당세의 입언군자立言君子를 기다릴 따름이다.
기유년(1849) 3월 일 문인 희겸喜謙이 눈물을 닦고 삼가 쓰다.

010_0794_c_01L而縉紳先生皆與之唱酬推奬自托於
010_0794_c_02L方外之契旣踰六十乃以詩文爲惡
010_0794_c_03L業魔障一刀斷除焚香面壁專心念
010_0794_c_04L憲廟己酉二月初四日示寂于伽智
010_0794_c_05L山燃燈精舍壽七十七臘六十六
010_0794_c_06L維之夕有氣如虹直指西方山下數
010_0794_c_07L郡人有所見而言者乃收拾詩文若干
010_0794_c_08L𢎥遺集十二卷中
卷未刊二卷入榟
藏諸巾衍謹搆平生
010_0794_c_09L大略用俟當世之立言君子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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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酉三月日門人喜謙抆泣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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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영조英祖 계사년(1773) : 원문은 ‘正廟癸巳’이다. 계사년은 영조 치세이므로 ‘英廟癸巳’라야 옳다. 행장을 지은 희겸喜謙의 착오로 추측된다.
  2. 202)지봉 화상智峰和尙 : 조선 스님. 법명은 거기巨機이고, 가지산 석남사石南寺에 부도가 있다.
  3. 203)회암 화상晦庵和尙(1685~1741) : 조선 스님. 법명은 정혜定慧이다. 9세에 범어사梵魚寺 자수自守를 찾아가 출가하자 자수는 그의 그릇이 뛰어남을 보고 충허冲虛에게 보냈으며, 충허는 그를 가야산 원민圓旻에게 데려가 참학參學시켰다. 이에 원민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장경藏經을 배웠다. 이어 향산香山의 추붕秋鵬이 호남에서 강석을 열자 원민의 허락을 얻어 참석하였고, 일암一庵·환성喚醒 등 고승을 두루 참방하고 금강산에서 좌선하였다. 이후 사람들의 청으로 석왕사釋王寺·명봉사鳴鳳寺·청암사靑巖寺·벽송사碧松寺 등지에서 강석을 열었고, 만년에 청암사에 주석하다가 1741년(영조 17) 5월 20일에 입적하였다. 저서로 『華嚴經疏隱科』·『禪源集都序著柄』·『別行錄私記畵足』·『諸經論疏句絶』 등이 있다. 불령산佛靈山 쌍계사雙溪寺에 그의 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