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선학입문(禪學入門) / 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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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
모든 수행은 육바라밀을 벗어나지 않으니, 선문禪門은 이 여섯 가지 중 하나의 문일 뿐이다. 삼지三止55)·삼관三觀56)을 핵심 종지로 삼는 것은 천태선天台禪이요, 문자를 내세우지 않고 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을 경전의 가르침 밖 종지로 삼는 것은 달마선達磨禪이라 한다.
무릇 설산 높은 곳에 있는 근원의 샘을 살핀다면 어찌 두 가지라 하겠는가. 하지만 나날이 아래로 흐르다 보면 성난 물결로 또 고요한 못으로 갈래가 나뉘고 달라지기도 한다. 저 후대의 학자들이 뿔뿔이 갈라진 것을 당연하다 한다면, 심지어 서로 질시하면서 창을 들기에 이른다 한들 어찌 괴이하다 하겠는가. 그러니 그 문을 얻으면 천태와 달마가 똑같이 한 시대의 바른 종사로서 봄 난초와 가을 국화처럼 제각기 그윽한 향기를 풍길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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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行不出六波羅蜜禪門但是六中之一
010_0926_b_19L以三止三觀爲頂門宗旨者是謂天台禪
010_0926_b_20L不立文字以直指人心見性成佛爲敎
010_0926_b_21L外宗旨者是謂逹磨禪觀夫雪山之高源
010_0926_b_22L曷云携貳及其日日流下也怒潮平潭
010_0926_b_23L分派或異宜彼末學支離甚至相疾視操
010_0926_b_24L何足怪焉然得其門也天台逹磨
010_0926_b_25L爲一代正宗猶如春蘭秋菊各自幽芳

010_0926_c_01L그 길을 잃어버리면 천태도 달마도 집안을 망치는 머리 깎은 도적을 면치 못해 성안의 여우나 사당의 쥐57)처럼 보기만 해도 미울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선禪이라는 것은 과연 문과 길이 있는 것일까? 있다면 “학이 둥지를 튼 소나무가 가장 늙고, 독룡이 서린 자리가 유독 맑다.”고 하겠다. 아니면 과연 문과 길이 없는 것일까? 없다면 “유월에 눈이 내려도 무방하고, 쇠로 된 나무에서도 꽃이 핀다.”고 하겠다.
저 달마 문하에 이를 것 같으면 허황된 ‘할’과 장님의 ‘방’이 어찌 그리도 많은가? 어리석음을 익히는 것이 가풍이 되어 이른바 미치광이나 백치가 엄숙한 표정에 눈을 부릅뜨고서 불자를 세우고는 큰 선지식이라고들 하고 있으니, 도리어 천태 문하만 못하다. 문자로 뜻을 온전히 표현하고 뜻으로 이치를 밝혀 오히려 뜻과 이치를 잃지 않으니, 선을 닦는 제자들에게는 (천태선이) 훨씬 낫다는 것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천태선의 방편은 말세의 학인들을 굽어살펴 간곡하게 난관을 뚫어 주고 있으니, 하류의 학인들을 완전히 매몰시키는 달마선보다 뛰어난 점이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 동방에서는 신라 중엽에 고승 법융法融·이응理應·순영純英58)이 석장을 나란히 하고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함께 천태 대사의 3세인 좌계 동양左谿東陽 대사59)의 묘법을 얻었고, 그 꽃과 향으로 우리 근역槿域60)의 창생들에게 공양한 세월이 무려 수백 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한양에 도읍을 정한 후로는 꽃도 시들고 향기도 사라져 사방을 둘러봐도 텅 빈 산뿐이니, 그 누가 좇아 치자꽃 향기를 맡을 수 있겠는가.
청신사 김병룡金秉龍은 선학을 매우 좋아하였지만 그 들어가는 문이 없음을 심히 개탄하였었다. 그러던 중 월창月窓 거사가 요점을 편찬한 『선학입문』을 얻고는 보시용으로 간행하여 세상에 널리 유포하고자 하였다. 하루는 나에게 발문을 써 달라고 부탁하기에 내 비록 글재주는 없지만 천태선학이 오늘날 되살아난 것이 너무도 기뻐 굳이 사양치 않았다. 그러나 두 선(二禪)의 득실만 서술했을 뿐이니, 그 입문의 차례가 본래의 서문에 다 실려 있어 어쩔 수 없이 생략하였다.
무오년(1918) 오월(榴花月) 상순(上浣)에 우산㝢山 사문沙門 정호鼎鎬61) 삼가 쓰다.

010_0926_c_01L失其路也天台逹磨未免破家秃賊
010_0926_c_02L如城狐社鼠徒見可憎如是則所謂禪之
010_0926_c_03L爲物果有門路乎有則野鶴巢邊松最老
010_0926_c_04L毒龍潜處水偏淸果無門路乎無則六月
010_0926_c_05L不妨降雪鐵樹亦見開花至若達磨門下
010_0926_c_06L虛喝盲棒何其多耶呆習成風所謂風
010_0926_c_07L癲白痴者儼爾怒目竪拂號爲大善知識
010_0926_c_08L反不如天台門下因字以詮義因義以明
010_0926_c_09L尙不失義理禪弟子之爲愈於是可見
010_0926_c_10L其天台禪之方便俯爲末學殷勤徹困
010_0926_c_11L越諸逹磨禪之了沒下學徑庭已我東之
010_0926_c_12L新羅中葉高僧法融理應英純聯錫游唐
010_0926_c_13L俱得天台下三世左谿東陽大師之妙法
010_0926_c_14L以華以香供養我槿域蒼生無慮數百年
010_0926_c_15L之久洎夫漢陽定鼎之後華亦萎而香亦
010_0926_c_16L四顧空山其孰從而能聞夫薝葍華香
010_0926_c_17L者哉信士金秉龍篤好禪學深慨無門
010_0926_c_18L得月窓居士纂要之禪學入門思欲公施
010_0926_c_19L將刊布天下一日屬鎬跋其事鎬雖不文
010_0926_c_20L驚喜天台禪學復活今日故不敢膠讓
010_0926_c_21L然但叙二禪之得失而已及其入門之倫
010_0926_c_22L蓋載本序姑略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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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午榴花月上浣㝢山沙門鼎鎬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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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55)삼지三止 : 천태종의 교설이다. 첫째 체진지體眞止는 일체만상이 인연에 의하여 생긴 것이므로 그 체體가 공空함을 체달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 둘째 방편수연지方便隨緣止는 공하다고 알면서도 가유假有의 존재를 긍정하여 기류機類에 응하여 설법하는 것, 셋째 식이변분별지息二邊分別止는 체진지가 공空에 치우치고 방편수연지가 가假에 치우치므로 중도中道의 이치를 체달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2. 56)삼관三觀 : 종공입가관從空入假觀·종가입공관從假入空觀·중도제일의제관中道第一義諦觀을 말한다. 천태종의 교설이다. 『보살영락본업경』에 설해진 내용에 따른 것으로 흔히 공관空觀·가관假觀·중관中觀이라 부른다.
  3. 57)성안의 여우나 사당의 쥐(城狐社鼠) : 몸을 안전한 곳에 숨기고 나쁜 짓만 일삼는 사람을 비유한다.
  4. 58)원문은 “法融理應英純”이지만, 『佛祖統紀』 권7(T49, 188b)과 같은 책 권50(T49, 444c)에 따르면 형계 담연荊溪湛然의 법을 이어받아 천태학을 신라에 전한 세 분은 법융法融·이응理應·순영純英이라 하였다. 따라서 순영으로 교정하였다.
  5. 59)좌계 동양左溪東陽 : 천태종 제8조인 현랑玄朗(673~754)을 가리킨다. 무주婺州 오상현烏傷縣 사람으로 호는 좌계左溪, 자는 혜명慧明, 속성은 부傅씨이다. 7세에 출가하여 20세에 동양東陽의 청태사에서 율의를 배우고 경론을 널리 연구하였으며, 또 동양 청궁사의 혜위慧威에게 『법화경』·『유마경』·『지도론』·『지관』 등을 배우고 관법을 닦았으며, 아울러 유교와 도교도 연구하였다. 천성이 산림을 좋아하고 세속을 싫어하여 30여 년을 무주 좌계산에 머물며 지관止觀을 닦았다. 저서로 『法華經科文』 2권이 있으며, 그의 제자 형계 담연荊溪湛然(711~782)이 천태종을 부흥시켰다.
  6. 60)근역槿域 : 우리나라의 별칭이다.
  7. 61)정호鼎鎬 : 조선 말기 스님으로 속명은 박한영朴漢永(1870~1948), 법명은 정호鼎鎬, 법호는 영호映湖·석전石顚이다. 전주全州 출신으로 19세에 전주 태조암太祖庵에서 승려가 되어 구암사·백양사·법주사·화엄사·범어사 등지에서 경론을 강하였다. 불교전문학교 교장직을 역임하였고, 1929년부터 1946년까지 조선불교 교정敎正을 지냈으며, 내장사에서 말년을 보냈다. 저서로 『石顚詩鈔』·『石林隨筆』·『石林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