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維摩詰所說經卷中

ABC_IT_K0119_T_002
009_0987_b_01L유마힐소설경 중권
009_0987_b_01L維摩詰所說經卷中


요진삼장 구마라집 역
009_0987_b_02L姚秦三藏鳩摩羅什譯


5. 문수사리문질품(文殊師利問疾品)
009_0987_b_03L文殊師利問疾品第五

그 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文殊師利, Mañjuśrī)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을 하도록 하라.”
009_0987_b_04L爾時佛告文殊師利汝行詣維摩詰問疾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 웃어른[上人]을 저는 상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는 실상(實相)에 깊이 통달하고, 진리의 요지를 훌륭하게 설하며, 변재에 걸림이 없고, 지혜는 막힘이 없습니다. 모든 보살에게 필요한 작법[法式]을 모두 알고 있으며, 모든 부처님의 비밀스러운 공덕[秘藏]을 모두 다 간직하고 있으며, 온갖 마군을 항복시키고 신통력을 마음대로 부리며, 그 지혜와 방편을 모두 원만히 이루었습니다.1) 그렇지만 부처님의 거룩한 뜻[聖旨]을 받들어 그를 찾아가 문병하겠습니다.”
009_0987_b_06L文殊師利白佛言世尊彼上人難爲詶對深達實相善說法要才無滯智慧無礙一切菩薩法式悉諸佛秘藏無不得入降伏衆魔戲神通其慧方便皆已得度雖然承佛聖旨詣彼問疾
이에 모인 많은 보살과 대제자들․제석천․범천(梵天)․사천왕(四天王) 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이제 두 보살[大士]이신 문수사리와 유마힐이 함께 이야기하면 반드시 묘법을 설할 것이다.’
이 때에 8천의 보살들과 5백의 성문(聲聞)들, 백천의 천인들 모두가 뒤따라가고자 원하였다.
009_0987_b_11L於是衆中諸菩大弟子四天王等咸作是念今二大士文殊師利維摩詰共談必說妙法卽時八千菩薩五百聲聞百千人皆欲隨從
그래서 문수사리는 수많은 보살과 대제자와 천인들이 공경하게 둘러싼 가운데 비야리 대성으로 들어갔다.
009_0987_b_15L於是文殊師利與諸菩薩大弟子衆及諸天恭敬圍繞入毘耶離大城
그 때 장자 유마힐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지금 문수사리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오고 있으니, 신력(神力)으로 방을 깨끗이 비워야겠다.’
그리고는 방안에 있는 것을 치우고 시자(侍者)들까지도 내보내고, 텅 빈 방안에는 오직 하나의 침상(寢床)만을 놓아두고, 앓는 몸을 눕혔다.
009_0987_b_17L爾時長者維摩詰心今文殊師利與大衆俱來卽以神力空其室內除去所有及諸侍者置一牀以疾而臥
문수사리가 그 집에 들어가자 방안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고, 뎅그라니 침상 하나만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때 유마힐은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문수사리여. 온다고 하는 상(相)이 없이 왔고, 본다고 하는 상이 없이 보았습니다.”
009_0987_b_20L文殊師利旣入其見其室空無諸所有獨寢一牀維摩詰言善來文殊師利不來相而不見相而見
009_0987_c_02L문수사리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거사님.만약 와 버렸다면 다시는 오지 않고, 만약 가 버렸다면 다시는 가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온다고 하지만 어디로부터 온 곳이 없고, 간다고 해도 어디로든 가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보이는 것은 또다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 이런 이야기는 그만두겠습니다.
거사님, 이 병은 어찌 견딜 만하십니까? 치료가 되어 병이 덜함이 있습니까, 더하지는 않았습니까? 세존께서는 매우 걱정하시며 문병하라 저를 보내셨습니다. 거사님, 이 병은 무엇 때문에 생겼으며, 또 얼마나 오래되었고,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겠습니까?”
009_0987_c_02L文殊師利言如是若來已更不來若去已更不去以者何來者無所從來去者無所至所可見者更不可見且置是事居士是疾寧可忍不療治有損不至增乎世尊慇懃致問無量居士是疾何所因起其生久如當云何滅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어리석음[痴]과 탐심[有愛]으로부터 나의 병은 생겼습니다. 일체 중생이 병들어 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만약 일체 중생의 병이 사라진다면 그 때 나의 병도 사라질 것입니다. 왜냐 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해 생사(生死)에 들어섰으니, 생사가 있는 곳에 병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생이 병에서 떠난다면 보살도 병이 없을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장자(長者)에게 외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이 병에 걸리면 그 부모도 병을 앓고, 만약 아들의 병이 나으면 부모도 낫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사랑하기를 내 자식 대하듯 합니다. 중생이 병을 앓으면, 보살도 병을 앓으며, 중생의 병이 나으면 보살의 병도 낫습니다.”
또 말했습니다.
“이 병이 무엇으로 인하여 생겨났느냐면, 보살이 병든 것은 드넓은 자비[大悲]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009_0987_c_08L維摩詰言從癡有愛則我病生以一切衆生病是故我病若一切衆生病滅則我病所以者何菩薩爲衆生故入生死有生死則有病若衆生得離病者菩薩無復病譬如長者唯有一子子得病父母亦病若子病愈父母亦菩薩如是於諸衆生愛之若子生病則菩薩病衆生病愈菩薩亦愈又言是疾何所因起菩薩病者以大悲起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거사님, 이 방은 어째서 텅 비어 있으며, 시자도 없습니까?”
009_0987_c_18L文殊師利言居士此室何以空無侍者
유마힐이 말했다.
“모든 부처님의 불국토도 모두 공합니다.”
009_0987_c_19L維摩詰言諸佛國土亦復皆
또 물었다.
“무엇을 공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又問以何爲空
답하였다.
“공(空)하기 때문에 공하다2)는 것입니다.”
答曰以空空
“무엇을 가지고 공(空)하다고 합니까?”
009_0987_c_20L又問空何用空
“공을 분별할 수 없기[無分別] 때문에 공한 것입니다.”
答曰以無分別空故空
“그렇다면 공을 분별할 수가 있습니까?”
009_0987_c_21L空可分別耶
“분별하는 것도 공합니다.”
答曰分別亦空
“그렇다면 공은 어디서 구해야만 합니까?”
009_0987_c_22L又問空當於何求
“그릇된 62견(見)에서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009_0987_c_23L答曰當於六十二見中
“62견은 어디서 구해야 합니까?”
又問六十二見當於何求
“모든 부처님들께서 해탈하신 곳에서 구해야만 할 것입니다.”
009_0987_c_24L答曰於諸佛解脫中求
009_0988_a_02L“부처님들의 해탈은어디서 구해야만 합니까?”
009_0988_a_02L又問諸佛解脫當於何求
“일체 중생의 마음가짐[心行, cittaprva-carita]에서 구해야만 할 것입니다. 또 그대는 왜 시자가 없느냐고 물었지만, 모든 마군과 온갖 외도들이 모두가 나의 시자입니다. 왜냐 하면, 온갖 마군들은 생사를 좋아하지만, 보살은 생사를 버리지 않고, 외도는 여러 가지 그릇된 견해를 좋아하지만, 보살은 이 그릇된 견해에 동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009_0988_a_03L答曰當於一切衆生心行中又仁所問何無侍者一切衆魔及諸外道皆吾侍也所以者何衆魔者樂生死菩薩於生死而不捨外道者樂諸見菩薩於諸見而不動
문수사리가 말했다.
“거사님의 병세는 어떤 상(相)이 있습니까?”
009_0988_a_07L文殊師利言居士所疾爲何等相
유마힐이 말했다.
“나의 병은 병상이 없으므로[無形] 볼 수가 없습니다.”
009_0988_a_08L維摩詰言我病無形不可見
“이 병은 몸과 관계된 병입니까, 아니면 마음과 관계된 병입니까?”
009_0988_a_09L又問此病身合耶心合耶
“몸과는 관계된 병이 아니니, 몸과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음과 관계된 병도 아니니, 마음은 허깨비[幻]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009_0988_a_10L答曰非身合身相離故亦非心合心如幻故
“지(地)․수(水)․화(火)․풍(風) 4대(大)에서 어느 것이 병든 것입니까?”
009_0988_a_11L又問地大水大火大風大於此四大何大之病
“이 병은 지대(地大)의 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대를 떠나서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수대․화대․풍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중생의 병은 4대로부터 생기며, 중생에게 이러한 병이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나도 병든 것입니다.”
009_0988_a_12L答曰是病非地大亦不離地大風大亦復如是而衆生病從四大起以其有病是故我病
그 때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보살은 병든 보살을 어떻게 위로해야만 합니까?”
009_0988_a_15L爾時文殊師利問維摩詰菩薩應云何慰喩有疾菩薩
유마힐이 말했다.
“몸은 무상하다고 설하여도 그 몸을 싫어하고 버리도록[厭離] 설하지 않고, 몸에는 괴로움이 있다고 설하여도 열반만 좋아하도록 설하지 않으며, 이 몸은 무아(無我)라고 설하여 중생을 가르치고 이끌 것을 설하고, 이 몸은 공[空寂]하다 설하여도 언제까지나 영원토록 공하다[畢竟寂滅]고 설하지는 않습니다. 전에 범한 죄를 뉘우치도록 설하여도 먼 과거에 몰입하라고는 설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병을 헤아려 남의 병을 마음 아파하고, 과거 무수겁(無數劫)에 걸친 괴로움을 알고서 모든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고자 마음먹습니다. (자신의 병을 헤아려) 지난날 닦은 공덕을 생각하며, 바른 생활을 염원합니다. 근심과 괴로움이 생기지 않도록 해서 항상 정진하는 마음을 내며, 훌륭한 의왕(醫王)이 되어서 온갖 중생의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발원합니다. 보살은 이같이 병든 보살을 위로하고 기쁨에 넘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009_0988_a_16L維摩詰言說身無常不說厭離於身說身有苦不說樂於涅槃說身無我而說敎導衆生說身空寂不說畢竟寂滅說悔先罪而不說入於過去以己之愍於彼疾當識宿世無數劫苦念饒益一切衆生憶所修福念於淨勿生憂惱常起精進當作醫王治衆病菩薩應如是慰喩有疾菩薩令其歡喜
009_0988_b_02L문수사리가 말했다.
“거사님, 병든 보살은어떻게 해서 그 마음을 다스리고 항복 받아야[調伏] 합니까?”
009_0988_b_02L文殊師利言居士有疾菩薩云何調伏其心
유마힐이 말했다.
“병든 보살은 반드시 이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나의 이 병은 모두가 전생의 망상(妄想)․전도(顚倒)․여러 가지 번뇌로부터 생긴 것이지 (나의 몸에는 병을 앓을 만한) 실체로서의 존재[實法]는 없다는데, 어떻게 병이 걸렸단 말인가? 왜냐 하면, 이 몸은 4대(大)가 결합한 것이므로 몸이라고 임시로 이름[假名]하였을 뿐이지, 이 4대에 주인[主, adhipati]은 없고, 또한 몸에는 나[我, tman]라고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이 병이 생기는 것은 나라고 하는 것에 대한 집착[著我, tmbhinivea]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라는 것에 대한 잘못된 집착을 일으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미 이같이 병의 근본을 알았으니, 곧 나라고 하는 잘못된 생각[我想]도, 중생이라는 것에 대한 잘못된 생각[衆生想]도 없애 버리고, 물질이라는 생각[法想, dharma-saja]을 일으켜야겠구나.’
또 이렇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 몸은 수많은 물질적인 것[法]이 합쳐져 이루어져 있다. 생겨날 때에는 다만 물질적인 것만이 생기고, 멸할 때에도 물질적인 것만이 멸한다. 또 이 물질적인 것(에는 마음이 없으므로) 서로 아는 일도 없으며, 생할 때에도 내가 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고, 멸할 때에도 내가 멸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009_0988_b_03L維摩詰言有疾菩薩應作是念今我此病皆從前世妄想顚倒諸煩惱生無有實法誰受病所以者何四大合故假名爲身大無主身亦無我又此病起皆由著是故於我不應生著旣知病本除我想及衆生想當起法想應作是但以衆法合成此身起唯法起唯法滅又此法者各不相知起時不言我起滅時不言我滅
이 병든 보살이 물질적인 것에 대한 생각[法想]을 떠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물질적인 것에 대한 생각도 그릇된 집착[顚倒, viparysa]이다. 이 그릇된 집착이야말로 마음의 커다란 병이니, 나는 반드시 이것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어떠한 것을 떠난다 하는가? 그것은 나라고 하는 것과 내 것[我所]이라는 것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나라는 것과 내 것이라는 것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가? 그것은 두 개의 (상대적인) 법(法)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두 개의 법으로부터 떠나는 것인가? 그것은 주관[內]․객관[外]의 온갖 존재를 마음에 두지 않고 평등한 마음을 행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평등인가? 나[我]와 열반(涅槃)과 함께 평등하다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나라는 것과 열반의 둘은 모두가 자성(自性, svabha)이 공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공하다 하는가? 다만 이름과 문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인 것이다. 이 같은 두 가지 것[法]은 변함이 없는 실체성[決定性]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평등함을 얻으면 다른 병은 있을 수 없으며, 다만 공한 병[空病]만이 남지만, 이 공(空)과 병(病)도 또한 공인 것이다.’
009_0988_b_12L彼有疾菩薩爲滅法想當作是念此法想者亦是顚倒顚倒者是卽大患我應離之何爲離離我我所云何離我我所離二法云何離二法謂不念內外諸法行於平等云何平等謂我等涅槃所以者何我及涅槃此二皆空何爲空但以名字故空如此二法決定性得是平等無有餘病唯有空空病亦空
009_0988_c_02L이 앓고 있는 보살은 (이미 괴로움과 즐거움을) 감수(感受)하는 일이 없지만, (중생을 위하여) 온갖 괴로움과 즐거움을 감수하며, 또 부처님의 모든 공덕[佛法, pariprabuddha dharma]을 아직 다 갖추지 않고, 또 모든 감수작용[受, vedana]을 없애 버리지 않고서 열반을 증득해야 합니다. 설령 자기의 몸이 괴로움을 받는 일이 있더라도 (죄의 과보로) 괴로운 삶의 길에 떨어져 있는 중생[惡趣衆生]들을 생각하고 무한한 자비심을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미 (괴로움을) 조복하였으므로, 일체 중생들의 고통도 조복해야만 한다.’
다만 그 병은 제거하지만 물질적인 것을 제거하지 않으며, 병의 근원을 끊어 없애기 위하여 이를 가르쳐 이끌어야 하니,무엇을 병의 근원이라고 하는가 하면, 대상을 따라 마음이 일어나는 것[攀緣, adhylambana]이니, 마음이 대상을 따라 일어나면, 곧 병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009_0988_b_21L是有疾菩薩以無所受而受諸受未具佛法亦不滅受而取證也設身有苦念惡趣衆生起大悲我旣調伏亦當調伏一切衆生除其病而不除法爲斷病本而敎導何謂病本謂有攀緣從有攀緣爲病本
무엇을 마음이 일어나는 대상으로 삼는가? 삼계를 대상으로 삼습니다. 어떻게 이 마음이 일어나는 대상을 끊습니까? 그것은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아야[無所有, anupalabdhi] 합니다. 만약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으면, 그 때 마음은 대상을 따라서 일어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무엇을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인가요? 상대적인 생각[二見, ddvaya]을 떠나는 것입니다. 무엇을 상대적인 생각이라고 하는 것인가요? 주관을 보는 견해[內見, adhytmadi], 객관을 보는 견해[外見, bahirdhdi]이니, (이들을 떠나는 것이)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는 것[無所得]입니다.
009_0988_c_04L何所攀緣謂之三界云何斷攀緣以無所得若無所得則無攀緣何謂無所得謂離二見何謂二見內見外見是無所得
문수사리여, 이것을 앓고 있는 보살이 그의 마음을 조복한다고 하는 것이며, 또 노․병․사의 괴로움을 끊어 없앤다고 합니다. 이것이 보살의 깨달음[菩提]입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미 닦고 다스렸던 것이 지혜로운 이익이 되지 못합니다. 비유하면 원수와 싸워 이겨야만 용사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나와 남의) 늙음과 병과 죽음을 함께 없애는 자를 보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이 앓고 있는 보살은 또 이렇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이 병이 진실한 것도, 실제로 있는 것도 아닌 것과 같이, 중생의 병도 진실한 것도 실제로 있는 것도 아니다.’
009_0988_c_07L文殊師利是爲有疾菩薩調伏其心爲斷老病死苦是菩薩菩提若不如是己所修治無慧利譬如勝怨乃可爲勇如是兼除老病死者菩薩之謂也彼有疾菩薩應復作是念如我此病非眞非有衆生病亦非眞非有
이와 같이 관할 때에 모든 중생들에 대해서 애욕에 물든 마음[愛見]으로 자비심을 일으켰다면 곧 그러한 생각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보살은 밖으로부터 주어진 번뇌[客塵煩惱]3)를 끊어 없애고 자비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애욕으로 물든 자비[愛見悲]에는 생사에 피곤해 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니, 만약 이 (애욕에 물든 마음을) 떠날 수가 있으면 피곤해 하고 싫어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어떠한 곳에 태어나더라도 애욕에 물든 마음[愛見]에 덮이지 않을 것입니다. 태어나는 곳에 속박되는 일이 없고, 중생을 위하여 가르침을 설하고 속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처럼, 만약에 자기가 (번뇌에) 결박되어 있으면서 남의 결박을 풀어 준다는 것, 이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결박되어 있지 않아야 남의 결박을 풀어 줄 수 있는 것, 이것이 옳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반드시 (번뇌의) 결박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009_0988_c_13L作是觀時於諸衆生若起愛見大悲卽應捨離所以者何菩薩斷除客塵煩惱而起大悲愛見悲者則於生死有疲厭心若能離此無有疲厭在在所生不爲愛見之所覆也所生無縛能爲衆生說法解縛如佛所說若自有縛能解彼縛無有是處若自無縛能解彼縛斯有是處是故菩薩不應起縛
009_0989_a_02L무엇을 속박이라 하며, 무엇을 해탈이라고 합니까? 참선의 기쁨[禪味]에 집착하는 것이 보살의 속박[無方便慧縛, upynu ptta-praj]이요, 훌륭한 방편을 가지고 (참선의 기쁨을 맛보며) 사는 것이 보살의 해탈입니다. 또 방편이 없는 지혜는 속박이며, 방편이 있는 지혜는 해탈입니다. 지혜가 없는 방편은 속박이며, 지혜가 있는 방편은 해탈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방편이 없는 지혜는 속박이라고 합니까?
보살이 애욕에 물든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불국토를 장엄하고,중생을 성취시키며, 공(空, unyat), 무상(無相, nimitta), 무작(無作, apraihita)의 (세 가지 해탈문)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조복하는 것을 방편이 없는 지혜는 속박이라 하는 것입니다.
009_0988_c_21L何謂縛謂解貪著禪味是菩薩縛以方便生是菩薩解又無方便慧縛有方便慧無慧方便縛有慧方便解何謂無方便慧縛謂菩薩以愛見心莊嚴佛成就衆生於空無相無作法中自調伏是名無方便慧縛
무엇을 방편을 갖춘 지혜의 해탈[有方便慧解, upyoptta-prja]이라고 합니까?
물들지 않은 마음으로 불국토를 장엄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며, 공․무상․무작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스스로를 조복시키지만 피곤해 하거나 싫어하지 않음을 방편을 갖춘 지혜의 해탈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지혜가 없는 방편의 속박[無慧方便縛, prajnupttopya]이라고 합니까?
보살이 탐욕과 분노와 사견(邪見) 등 온갖 번뇌에 얽혀 있으면서 많은 선근(善根)을 심고자 하는 것을 지혜가 없는 방편의 속박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지혜를 갖춘 방편의 해탈[有慧方便解, prajopttopya]이라 합니까?
탐욕과 분노와 사견 등 온갖 번뇌를 떠나서 많은 선근을 심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회향(廻向)하는 것을 지혜를 갖춘 방편의 해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009_0989_a_04L何謂有方便慧解謂不以愛見心莊嚴佛土就衆生於空無相無作法中以自調而不疲厭是名有方便慧解何謂無慧方便縛謂菩薩住貪欲瞋恚見等諸煩惱而植衆德本是名無慧方便縛何謂有慧方便解謂離諸貪瞋恚邪見等諸煩惱而植衆德本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名有慧方便解
문수사리여, 저 병을 앓고 있는 보살은 반드시 제법(諸法)에 대해 이같이 바르게 관해야 할 것입니다.
이 몸은 무상하며, 괴로움이며, 공하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자아는 없다[非我]고 관하는 것, 이를 지혜라고 이름합니다. 이 몸은 병들었어도 항상 생사 속에 있으면서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며, 피곤해 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것, 이를 방편이라고 합니다. 또 자기 몸을 관하기를, 몸에서 병이 떠나지 않고 병이 몸을 떠나지 않아 이 병이나 이 몸이 새로 생긴 것도, 오래 묵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관하는 것, 이를 지혜라고 이름합니다. 설령 몸은 병들었어도 영원히 멸하지 않는 것, 이를 방편이라고 합니다.
009_0989_a_13L文殊師利彼有疾菩薩如是觀諸法又復觀身無常是名爲慧雖身有疾常在生死益一切而不厭倦是名方便又復觀身不離病病不離身是病是身新非故是名爲慧設身有疾而不永是名方便
문수사리여, 병을 앓고 있는 보살은 마땅히 이같이 그 마음을 조복해야 합니다.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마음을 다스리지 않겠다는 마음[不調伏心]에도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왜냐 하면, 만약 조복되지 않는 마음에 그대로 머문다면 이는 어리석은 사람의 법이며, 만약 조복한다는 마음에 머문다면 이는 성문(聲聞)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언제나 조복하는 마음에도, 조복하지 않는 마음에도 머물러 집착[住]해서는 안 됩니다.
009_0989_a_19L文殊師利有疾菩薩應如是調伏其心不住其中亦復不住不調伏心所以者何若住不調伏心是愚人法若住調伏心是聲聞法
009_0989_b_02L그러므로 이 두 가지 법을 떠나는 것이 보살행이고, 생사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더러운 행위[汚行]를 하지 않고, 열반에 머물러 있어도 영원히 멸도해 버리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행이며,범부의 행도 아니고, 성자나 어진 사람의 행도 아닌 것이 보살행이고, 때묻은 행도 아니고, 청정한 행도 아닌 것이 보살행이며, 모든 마군을 초월한 행이지만, 아직도 여러 마군을 항복시키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4)이 보살행이고, 일체를 남김없이 아는 지혜[一切智, sarvajjna]를 구하지만, 때가 아닌 때에 얻고자 바라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또 비록 제법이 공하여 불생(不生)이라고 관하고는 있지만, 깨달음의 경계[正位]에 들고자 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고, 12연기[因緣]를 관하고 있으면서도 온갖 사견을 가진 중생들 속에 들어가는 것5)이 보살행이며, 중생을 자비심으로 감싸 안고는 있어도 애착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고, 멀리 떠나 있기[遠離]를 즐겨 하지만 몸과 마음의 업이 다한 경계를 의지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삼계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법성(法性)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009_0989_a_22L故菩薩不當住於調伏不調伏心此二法是菩薩行在於生死不爲污住於涅槃不永滅度是菩薩行凡夫行非賢聖行是菩薩行非垢行非淨行是菩薩行雖過魔行而現降衆魔是菩薩行求一切智無非時求是菩薩行雖觀諸法不生而不入正是菩薩行雖觀十二緣起而入諸邪見是菩薩行雖攝一切衆生而不愛著是菩薩行雖樂遠離而不依身心盡是菩薩行雖行三界而不壞法是菩薩行
공을 관하면서 수행하지만 온갖 공덕의 뿌리를 심는 것이 보살행이며, 무상(無相)의 도리를 알고 행하지만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것이 보살행이고, 무작(無作)의 도리를 알고 행하지만 생(生)을 받아 세간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보살행이며, 무기(無起, anabhisaskra)의 도리를 알고 살지만, 온갖 선행(善行)을 하는 것이 보살행이고, 6바라밀(波羅蜜)에 정진하지만 중생의 마음[心]과 그 마음의 작용[心數法]6)을 두루 아는 것이 보살행이며, 6통(通)을 행하면서도 번뇌[漏]를 끊어 버리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고, 4무량심(無量心)을 행하지만, 범천의 세계에 태어나려고 탐착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선정과 해탈과 삼매7)를 행하면서도 선의 즐거움만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009_0989_b_11L雖行於空而植衆德本是菩薩行雖行無相而度衆生是菩薩行雖行無作而現受身是菩薩行雖行無起而起一切善行是菩薩行雖行六波羅蜜而遍知衆生心心數是菩薩行雖行六通而不盡漏菩薩行雖行四無量心而不貪著生於梵世是菩薩行雖行禪定解脫三而不隨禪生是菩薩行
009_0989_c_02L4념처(念處, smtyupasthna)를 행하면서 신체[身, kya]와 감각[受, vedan]과 마음[心, citta]과 존재[法, dharma]를 영원히 떠나고자 하지 않는 것8)이 보살의 행이며, 4정근(正勤, samyakpradhna)행하면서도 (그 과보를 받지 않고) 심신의 노력을 버리지 않고 정진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4여의족(如意足, ddhipda)을 얻고자 행하면서도 이미 자유자재한 신통을 얻고 있는 것이 보살행이고, 5근(根)을 행하면서도 중생의 제근(諸根)의 예리하고 둔함을 아는 것이 보살행이며, 5력(力)을 발휘하면서도 부처님의 10력(力)을 구하는 것이 보살행이고, 7각지(覺支, saptabodhyaga)에 정진하면서도부처님의 지혜를 잘 분별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8정도(正道, ryagi-kamrga)를 수행하면서도 헤아릴 수 없는 불도(佛道, buddhamrga)를 행하고자 하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009_0989_b_19L雖行四念而不永離身受心法是菩薩行行四正勤而不捨身心精進是菩薩雖行四如意足而得自在神通菩薩行雖行五根而分別衆生諸根利鈍是菩薩行雖行五力而樂求佛十力是菩薩行雖行七覺分而分別佛之智慧是菩薩行雖行八聖道樂行無量佛道是菩薩行
지관(止觀) 37도법을 수행하면서도 결코 적멸(寂滅, praamana)에 머물고자 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고, 제법(諸法)은 생하는 것도, 멸하는 것도 아님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뛰어난 상호(相好)로 스스로의 몸을 장엄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성문이나 벽지불에게 갖추어져 있는 위의(威儀)를 나타내면서도 (중생을 버리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것이 보살행이고, 제법이 궁극적으로는 공이라는 청정상[諸法究竟淨相, atyantavisddhalakana]9)을 알고 있으면서도 인연에 따라서는 스스로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보살행이며, 또 제불의 국토는 영원히 적정(寂靜)하며 공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갖가지 청정한 불국토를 나타내는 것이 보살행이고, 불도를 얻고, 법륜을 굴리고, 열반의 경계에 들면서도 더욱 보살의 수행을 버리지 않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009_0989_c_04L雖行止觀助道之法而不畢竟墮於寂滅是菩薩行雖行諸法不生不滅而以相好莊嚴其身是菩薩行雖現聲聞辟支佛威儀而不捨佛法是菩薩行雖隨諸法究竟淨相而隨所應爲現其身是菩薩行雖觀諸佛國土永寂如空而現種種淸淨佛土是菩薩行雖得佛道轉于法輪入於涅槃而不捨於菩薩之道是菩薩行
이같이 설했을 때, 문수사리가 데리고 온 많은 대중과 그 중에서 8천의 천자들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다.
009_0989_c_13L說是語時文殊師利所將大衆其中八千天子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6. 부사의품(不思議品)
009_0989_c_15L維摩詰所說經不思議品第六

그 때 사리불(舍利弗)은 이 방안에 앉을 자리[牀座]가 없는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렇게 많은 보살과 수많은 대제자들은 어디에 앉아야 할 것인가?’
009_0989_c_16L爾時舍利弗見此室中無有牀座是念斯諸菩薩大弟子衆當於何坐
장자 유마힐은 그러한 마음을 알고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도대체 그대는 진리[法]를 구하기 위하여 온 것입니까, 아니면 앉을 자리를 원하는 겁니까?”
009_0989_c_18L長者維摩詰知其意語舍利弗言何仁者爲法來耶求牀座耶
사리불이 말하였다.
“저는 진리를 위해서 왔지, 앉을 자리 때문에 온 것은 아닙니다.”
009_0989_c_20L舍利弗我爲法來非爲牀座
유마힐은 말하였다.
“알았습니다, 사리불이여.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신명[軀命]도 돌아보지 말아야 하는데, 하물며 앉을 자리에 집착해서야 되겠습니까? 또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을 구하지 않으며, 계(界)나 입(入) 따위를 구하지 말아야 하며, 욕계․색계․무색계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009_0989_c_21L維摩詰言舍利弗夫求法者不貪軀命何況牀夫求法者非有色識之求非有界入之求非有欲無色之求
009_0990_a_02L사리불이여,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부처[佛]에게 집착하여 구하지 말고, 부처의 가르침[法]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며,승단[僧]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괴로움을 알고자[見苦] 함이 없이 구하고, 집착을 끊음[斷集] 없이 구하며, 깨달음을 다함[盡證] 없이 구하고, 깨달음에의 길을 닦고자[修道] 함이 없이 구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진리에는 무의미한 희론(戱論)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는 당연히 괴로움을 알고, 집착을 끊고, 깨달음의 경계에 이르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닦는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의미한 희론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009_0989_c_24L舍利弗夫求法者不著佛求不著法求不著衆求夫求法者無見苦求無斷集求無造盡證修道之求所以者何法無戲論若言我當見苦斷集證滅修道是則戲論非求法也
사리불이여, 진리[法]는 적멸(寂滅, upanta)입니다. 만약 생멸(生滅)을 (반복하면) 이는 생멸을 구하는 것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번뇌에 물듦이 없는[無染] 것입니다. 만일 진리 내지는 열반에 집착해 물들면[染] 그것은 오염된 집착[染着]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대상[行處]이 없습니다. 만약 진리를 대상으로서 취급하면 이는 곧 대상을 구하는 것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취사(取捨)가 없습니다. 만약 진리를 얻거나 버린다고 하면 이는 곧 취사하는 것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그를 거두어들이는) 처소가 없습니다.
009_0990_a_06L利弗法名寂滅若行生滅是求生滅非求法也法名無染若染於法乃至涅槃是則染著非求法也法無行處若行於法是則行處非求法也法無取捨若取捨法是則取捨非求法也法無處所
만약 그러한 처소에 집착하면 그것은 처소에 집착하는 것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형상이 없는 것[無相]입니다. 만약 형상[相]으로서 이를 분별하고자 하면 그것은 형상을 구하는 것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머물 만한 곳이 없습니다. 만약 진리에 머물고자 한다면 이는 진리에 머물고자 하는 것[住法]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보고, 듣고, 지각(知覺)하며, 식별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보고, 듣고, 지각하며, 식별해 알고자 하면, 그것은 보고, 듣고, 지각하며, 식별해 아는 (것을 구하는) 것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인연에 의하여 만들어지지 않는 것[無爲]입니다. 만약 만들고자 하면 이는 만들어지는 것[有爲]을 구하는 것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사리불이여, 그러므로 만약 진리[法]를 구하는 자는 마땅히 일체법에서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009_0990_a_12L若著處所是則著處非求法也法名無相若隨相識是則求相非求法也法不可住若住於法是則住法非求法也法不可見覺知行見覺知是則見覺知非求法法名無爲若行有爲是求有爲求法也是故舍利弗若求法者於一切法應無所求
이같이 말했을 때 5백 명 천자들 모두는 모든 사물[法]에 있어서 (진리를 바르게 볼 수 있는) 법안이 청정해짐[法眼淨]을 얻었다.
009_0990_a_19L說是語時五百天子於諸法中得法眼淨
그 때 장자 유마힐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문수사리여, 그대는 무량천만억(無量千萬億) 아승기(阿僧祇)나 되는 부처님의 나라를 돌아보았는데, 어느 부처님의 나라에 말할 수 없이 훌륭한 공덕이 이루어진 사자좌(師子座, Sihsana)가 있습니까?”
009_0990_a_20L爾時長者維摩詰問文殊師利仁者遊於無量千萬億阿僧祇國何等佛土有好上妙功德成就師子之座
009_0990_b_02L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거사님, 동쪽으로 36항하(恒河)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나라들을 지나서 수미상(須彌相, Merudhvaj)이라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 나라 부처님은 수미등왕(須彌燈王, Merupradīparaja)이라 이름하고,지금 현재 그 부처님의 신장은 8만 4천 유순(由旬)이며, 그 사자좌(師子座)의 높이도 8만 4천 유순으로 장엄된 아름다움이 제일입니다.”
009_0990_a_23L殊師利言居士東方度三十六恒河沙國有世界名須彌相其佛號須彌燈王今現在彼佛身長八萬四千由其師子座高八萬四千由旬嚴飾第一
그 때 장자 유마힐이 신통력을 발휘하자마자 그 나라의 부처님께서 3만 2천의 사자좌를 유마힐의 방에 들여보내셨는데, 그 사자좌들은 한결같이 높고 넓고 장엄하고 깨끗하였다. 여러 보살과 대제자들과 제석천․범천․사천왕 등이 일찍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 방은 넓고도 커서 이 3만 2천의 사자좌를 다 받아들이고도 거리끼거나 궁색함이 없었다. 그리고 비야리성과 염부제(閻浮提, Jambudvīpa) 사천하(四天下)도 좁아지거나 답답해짐 없이 어디를 보아도 전과 같았다.
009_0990_b_05L於是長者維摩詰現神通力時彼佛遣三萬二千師子座高廣嚴來入維摩詰室諸菩薩大弟子四天王等昔所未見其室廣博悉皆包容三萬二千師子座無所妨礙毘耶離城及閻浮提四天下亦不迫悉見如故
그 때 유마힐이 문수사리에게 말했다.
“문수사리여, 보살과 대제자들과 함께 사자좌에 올라앉으십시오. 저 사자좌에 앉으신 부처님 크기만큼 그대의 몸을 갖추어야 합니다.”
신통력을 얻은 보살은 곧 스스로의 몸을 바꿔서 4만 2천 유순으로 변하게 해서 사자좌에 앉았으나, 새로 발심한 보살[新發意菩薩]이나 대제자들은 아무도 올라갈 수 없었다.
009_0990_b_11L爾時維摩詰語文殊師利就師子座與諸菩薩上人俱坐當自立身如彼座像其得神通菩薩卽自變形爲四萬二千由旬坐師子座諸新發意菩薩及大弟子皆不能昇
그 때 유마힐은 사리불에게 권하였다.
“사자좌에 오르시오.”
사리불이 말하였다.
“거사여, 이 자리는 높고 넓어 제가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009_0990_b_16L爾時維摩詰語舍利弗就師子座舍利弗言居士此座高廣吾不能昇
유마힐이 말하였다.
“알았습니다, 사리불이여. 수미등왕여래(須彌燈王如來)에게 예배하면 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로 발심한 보살과 대제자들이 수미등왕여래에게 예배하자 곧 사자좌에 앉을 수 있었다.
009_0990_b_18L維摩詰言利弗爲須彌燈王如來作禮乃可得於是新發意菩薩及大弟子卽爲須彌燈王如來作禮便得坐師子座
사리불이 말하였다.
“거사님, 전에 없던 희귀한 일입니다. 이렇게 작은 방에 이같이 높고 넓은 사자좌를 수용하여도 비야리성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고, 또 염부제의 마을과 성읍과 그리고 사천하의 제천․용․귀신의 궁전이 좁아지거나 답답해지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009_0990_b_21L舍利弗言居士未曾有也如是小室乃容受此高廣之座於毘耶離城所妨礙又於閻浮提聚落城邑及四天下諸天龍王鬼神宮殿亦不迫迮
009_0990_c_02L유마힐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사리불이여. 제불보살에게는 불가사의(不可思議)라는 이름의 해탈이 있습니다. 만약 보살이 이 해탈에 머무르면, 높고도 넓은 수미산을 겨자씨 안에 넣어도 그 겨자씨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고, 수미산도 예전과 같기 때문이며, 사천왕이나 도리천(忉利天)과 같은 제천(諸天) 자신이 어디에 들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장차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사람10)만이 수미산이 겨자씨 안에 든 것을 알 뿐입니다. 이것을 불가사의한 해탈법문에 머문다고 합니다.또 사대해(四大海)의 바닷물을 하나의 털구멍에 넣어도 물고기와 자라와 큰 자라, 악어 그 밖의 물에 사는 동물을 괴롭히는 일이 없고, 그 대해는 본래 모습 그대로이며, 용․귀신․아수라들도 자신이 어디에 들어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이들을 괴롭히지도 않습니다.
009_0990_c_02L維摩詰言舍利弗諸佛菩薩有解名不可思議若菩薩住是解脫者以須彌之高廣內芥子中無所增減須彌山王本相如故而四天王忉利諸天不覺不知己之所入唯應度者乃見須彌入芥子中是名住不思議解脫法門又以四大海水入一毛孔不嬈魚黿鼉水性之屬而彼大海本相如故諸龍鬼神阿修羅等不覺不知己之所入於此衆生亦無所嬈
사리불이여, 또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는 보살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움켜쥐기를 마치 도공이 흙덩이를 오른쪽 손바닥에 움켜쥐고 항하(恒河)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세계 밖으로 던져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 안에 사는 중생은 자기가 어디로 갔는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며, 다시 제자리에 돌아와도 그 사람들에게는 갔다 왔다는 생각을 일으키게 하지 않고, 이 세계의 본래 모습은 예전과 같습니다.
009_0990_c_12L舍利弗住不可思議解脫菩薩取三千大千世界如陶家輪著右掌擲過恒河沙世界之外其中衆生不覺不知己之所往又復還置本處都不使人有往來想而此世界本相如故
또한 사리불이여, 혹 어떤 중생이 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고 제도해야 할 사람이라면, 그 보살은 곧 7일을 1겁으로 늘려 그 중생에게 1겁이라고 말하게 합니다. 혹은 중생이 오래도록 머물기를 원하지 않고, 제도해야 할 자가 있으면 보살은 곧 1겁을 7일로 줄여서 그 중생에게 7일이라고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009_0990_c_18L舍利弗或有衆生樂久住世而可度者菩薩卽延七日以爲一劫令彼衆生謂之一劫或有衆生不樂久住而可度者菩薩卽促一劫以爲七日令彼衆生謂之七日
009_0991_a_02L또 사리불이여,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르는 보살은 일체 불국토의 장엄을 한 나라에 모아 중생에게 보여 줍니다. 또 보살은 한 불국토의 중생을 오른쪽 손바닥에 올려놓고 시방세계를 날아다니며일체의 불국토를 보여 주지만, 본래 있던 곳을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또 사리불이여, 시방의 중생들이 제불께 드릴 공양거리를 하나의 털구멍 속에 다 볼 수 있게 하며, 또 시방의 세계에 있는 태양․달․성좌(星座)를 하나의 털구멍 안에 나타나게 하여 널리 보여 줍니다.
009_0990_c_22L舍利弗住不可思議解脫菩薩以一切佛土嚴飾之事集在一國示於衆生又菩薩以一佛土衆生置之右掌飛到十方遍示一切而不動本處舍利弗十方衆生供飬諸佛之具菩薩於一毛孔皆令得見又十方國土所有日星宿於一毛孔普使見之
또 사리불이여, 보살은 시방세계의 모든 바람을 남김없이 입 안에 빨아들여도 몸을 상하는 일이 없으며, 수많은 나무들이 넘어지거나 꺾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 또 시방세계의 세월이 다하여[劫盡]11) 불타 없어질 때, 모든 불길을 뱃속에 넣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불길이 자기 뱃속으로 들어오지만, 아무런 해를 입지는 않습니다. 또 아래쪽[下方]으로 항하의 모래알보다 많은 제불 세계를 지나 한 불국토를 들어 위[上方]로 항하의 모래알보다도 수많은 불국토를 지나 (그 부처님 나라를 그곳에) 두는 것이 마치 대추나무 잎사귀 하나를 바늘 끝 위에 올려놓아도 흔들리는 일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009_0991_a_06L舍利十方世界所有諸風菩薩悉能吸著口中而身無損外諸樹木亦不摧又十方世界劫盡燒時以一切火內於腹中火事如故而不爲害又於下方過恒河沙等諸佛世界取一佛擧著上方過恒河沙無數世界持鍼鋒擧一棗葉而無所嬈
또 사리불이여,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는 보살은 신통력으로 부처님의 모습[佛身]을 나타낼 수가 있고, 성문의 모습을 나타내거나, 벽지불의 모습을 나타내거나, 혹은 제석천의 모습을, 혹은 범천의 모습을, 혹은 세주천(世主天)12)의 모습을, 혹은 전륜성왕(轉輪聖王, cakravartin)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또 시방세계의 모든 중생이 내는 높은 소리[高音]․중간 소리[中音]․낮은 소리[低音] 등 (온갖 소리를) 부처님의 음성[佛音]으로 바꾸어 무상(無常)하고, 괴롭고[苦], 공(空)하고, 무아[無我]를 말하는 소리로 변하게 하고, 또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온갖 가르침을 그 소리를 통해 널리 들을 수 있게 합니다.사리불이여, 내가 지금 보살의 불가사의한 해탈의 힘에 관하여 간략하게 이야기하였지만, 만약 자세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영원한 세월[劫]이 다하여도 설할 수 없을 것입니다.”
009_0991_a_13L舍利住不可思議解脫菩薩能以神通現作佛身或現辟支佛身或現聲聞或現帝釋身或現梵王身或現世主身或現轉輪王身又十方世界所有衆聲上中下音皆能變之令作佛演出無常無我之音及十方諸佛所說種種之法皆於其中普令得聞舍利弗我今略說菩薩不可思議解脫之力若廣說者窮劫不盡
009_0991_b_02L이 때 대가섭(大迦葉)이 보살의 불가사의한 해탈법문을 설하는 것을 듣고 미증유하다고 찬탄하며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비유하자면, 어느 사람이 장님 앞에 여러 가지 색상(色像)을 그려 보여 주어도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이, 모든성문은 이 불가사의한 해탈의 법문을 들어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지혜로운 자라면 그 누가 이를 듣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어찌하여 이 마음[根]을 영원히 끊고서, 이 대승에 있어서 이미 썩은 종자[敗種]13)와 같아져 버렸습니까? 일체의 성문은 누구나 이 불가사의한 해탈의 법문을 들으면 반드시 큰 소리로 목놓아 울고, 그 울음소리는 삼천대천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며, 일체의 보살은 반드시 기쁨에 넘쳐 이 가르침[法]을 받을 것입니다. 만약 보살로서 불가사의한 해탈의 법문을 믿고 아는 사람이 있으면 모든 마군의 무리로 이를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009_0991_a_22L時大迦葉聞說菩薩不可思議解脫法門歎未曾有謂舍利弗譬如有人於盲者前現衆色像非彼所見一切聲聞聞是不可思議解脫法門不能解了爲若此也智者聞是其誰不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我等何爲永絕其根於此大乘已如敗種一切聲聞聞是不可思議解脫法門皆應號泣聲震三千大千世界一切菩薩應大欣慶頂受此法若有菩薩信解不可思議解脫法門者一切魔衆無如之何
대가섭이 이같이 설하였을 때 3만 2천의 천자들은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다.
그 때 유마힐은 대가섭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시방의 무량아승기의 세계에서 마왕이 된 자의 대부분은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르는 보살들입니다. 그들은 방편의 힘으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마왕의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009_0991_b_11L大迦葉說是語時三萬二千天子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爾時維摩詰語大迦葉仁者十方無量阿僧祇世界中作魔王者多是住不可思議解脫菩薩以方便力敎化衆生現作魔王
009_0991_c_02L또 가섭이여, 시방의 무량한 보살에게 손․발․귀․코․머리․눈․뇌수(腦髓)․피․살․가죽․뼈를 구걸하고, 마을․거리․아내․자식․하인․하녀와 코끼리․말수레나 온갖 탈것들, 금․은․유리․차거(車𤦲)․마노(馬瑙)․산호․호박․진주․의복․음식 등을 구걸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같은 사람들은 대부분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는 보살들입니다. 그들은 훌륭한 방편으로 당신들을 시험하고, 이로 하여금 마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불가사의한 해탈의 경계에 머문 보살에게는 위엄과 덕의 힘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온갖 핍박당하는 모습을 나타내 이 같은 곤란한 일을 중생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범부는 하열하기 때문에 힘이 없으므로 이같이 구도자에게 강요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비유하자면 용이나코끼리가 땅을 차며 힘차게 달려올 때 당나귀가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불가사의한 해탈의 경계에 머무는 보살의 지혜의 방편인 것입니다.”
009_0991_b_16L迦葉十方無量菩或有人從乞手足耳鼻頭目髓腦血肉皮骨聚落城邑妻子奴婢象馬車乘金銀琉璃車璖馬瑙珊瑚琥珀眞珠珂貝衣服飮食如此乞者多是住不可思議解脫菩薩以方便力往試之令其堅固所以者何住不可思議解脫菩薩有威德力故現行逼示諸衆生如是難事凡夫下劣有力勢不能如是逼迫菩薩譬如龍象蹴踏非驢所堪是名住不可思議解脫菩薩智慧方便之門

7. 관중생품(觀衆生品)
009_0991_c_04L維摩詰所說經觀衆生品第七

그 때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보살은 중생을 어떻게 관해야 합니까?”
009_0991_c_05L爾時文殊師利問維摩詰言菩薩云何觀於衆生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예를 들면, 마술사[幻師, mykra]가 마술로써 만들어 낸 꼭두각시를 보는 것과 같이, 보살은 중생을 이처럼 보아야 합니다. (보살은) 지혜로운 사람이 물에 비친 달 그림자를 보는 것처럼,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보는 것처럼, 뜨거운 여름날[熱時]의 아지랑이처럼, (사람을) 부르는 소리에 (답하는) 메아리처럼, 하늘에 뜬구름처럼, 파도의 물보라처럼, 물에 뜬 거품처럼, 파초(芭蕉)의 단단한 줄기처럼, 오랫동안 머무르는 (일이 없는) 번갯불처럼,14) (地․水․火․風의 4大 외에) 제5대(第五大)처럼,15) (色․受․想․行․識의 5陰 외에) 제6음(第六陰)처럼, (6識이 일으키는 6情 외에) 제7정(第七情)처럼, (12入處) 외에 제13입(第十三入)처럼, (18界 외에) 제19계(第十九界)처럼 이와 같이 중생을 보아야 합니다.
009_0991_c_07L維摩詰言譬如幻師所幻人菩薩觀衆生爲若此如智者見水中月如鏡中見其面像如熱時如呼聲響如空中雲如水聚沫水上泡如芭蕉堅如電久住如第五如第六陰如第七情如十三入十九界菩薩觀衆生爲若此
무색계(無色界)의 물질[色]을 보듯이, 불탄 곡식[燋穀]의 싹과 같이, (身見을 끊은) 수다원(須陀洹)이 신견(身見)을 갖는 것처럼, (다시는 胎를 통하여 태어나지 않는) 아나함(阿那含)이 다시 태에 들어 생을 받음과 같이, (貪․瞋․痴의 3독을 모두 끊어 버린) 아라한이 갖는 3독(毒)과 같이, 진리를 깨달은 경계에 안주[得忍]하는 보살이 탐욕과 성냄과 계율을 범하고자 함과 같이, 부처님께 남아 있는 번뇌의 습기[餘習]와 같이, 장님이 형상[色]을 보는 것과 같이, 마음의 작용이 이미 다한 경지[滅盡定]에 든 사람의 호흡(呼吸)과 같이, 공중을 날아간 새의 자취와 같이, 석녀(石女)가 낳은 아이와 같이, 꼭두각시[化人]가 일으키는 번뇌와 같이, 이미 잠에서 깨어나 생각해 보는 꿈과 같이, 열반[滅度]에 든 자가 다시 몸을 받는 것과 같이, 연기(煙氣) 없는 불과 같이, 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을 보아야 합니다.”
009_0991_c_13L如無色界色如燋穀牙如須陁洹身見如阿那含入胎如阿羅漢三毒如得忍菩薩貪恚毀禁如佛煩惱習如盲者見如入滅盡定出入息如空中鳥迹石女兒如化人起煩惱如夢所見已寤如滅度者受身如無煙之火菩薩觀衆生爲若此
문수사리가 물었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중생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관한다면, 어떻게 자(慈, maitrī)를 행할 수 있습니까?”
009_0991_c_20L文殊師利言若菩薩作是觀者云何行慈
009_0992_a_02L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보살은 이와 같이 관을 하고 나서 스스로 다짐합니다. 나는 마땅히 중생을 위하여 이와 같은 가르침[法]을 설할 것이니, 이것이 진실한 자(慈)입니다. 열반의 경지[寂滅]에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에게는) 이미 생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번뇌의 불에 타지 않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에게는) 번뇌가 없기 때문이며, 평등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에게는) 과거․현재․미래의 3세가 없기 때문이며, 다툼이 없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보살에게는 다툼이) 일어날 곳이 없기 때문이며, 차별이 없는[不二, advaya]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에게는) 안팎에 얽매임이 없기[內外不合] 때문이며, 무너지지 않는[不壞]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필경에 가서는 다하기 때문이며, 견고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그 마음이 깨질 수 없기 때문이며, 청정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제법(諸法)의 자성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끝이 없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의 마음이) 허공처럼 끝없기 때문입니다.
009_0991_c_22L維摩詰言菩薩作是觀已自念我當爲衆生說如斯法是卽眞實慈行寂滅慈無所生故行不熱慈煩惱故行等之慈等三世故行無諍無所起故行不二慈內外不合故行不壞慈畢竟盡故行堅固慈心無毀故行淸淨慈諸法性淨故行無邊如虛空故
아라한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번뇌라고 하는 도적[結賊]을 물리치기 때문이며, 보살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중생을 편안하게 하기 때문이며, 여래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제법의) 진실한 모습[如相]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중생들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며, 자연(自然, svarasamaya)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인연이 없이 스스로 깨달았기[無因得] 때문이며, 보리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평등하여 일미(一味)이기 때문이며, 모든 것을 초월한[無等, anropa]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온갖 애욕을 끊어 버렸기 때문이며, 대비(大悲)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대승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며, 싫증내지 않는[無厭]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공(空)과 무아(無我)를 관하기 때문이며, 진리를 베푸는[法施]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남겨 두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기 때문이며, 계를 지키는[持戒]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계율을 범한 이[毁禁]들을 교화하기 때문입니다.
009_0992_a_06L行阿羅漢慈破結賊故行菩薩慈安衆生故行如來慈得如相故行佛之慈覺衆生故行自然慈無因得故行菩提慈等一味故行無等慈斷諸愛故行大悲慈導以大乘行無厭慈觀空無我故行法施慈無遺惜故行持戒慈化毀禁故
인욕(忍辱)하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나와 남을 지켜 주기 때문이며, 정진(精進)하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중생들의 무거운 짐을 져 주기 때문이며, 선정(禪定)하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감각적인 기쁨[味]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며, 지혜(智慧)로운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교화하는) 올바른 때를 모르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방편(方便)을 갖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모든 것을 나타내 보여 주기 때문이며, 숨김이 없는[無隱]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올곧은 마음[直心]은 청정하기 때문이며, 깊은 마음[深心]으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잡되게 행함이 없기 때문이며, 속임수 없는[無誑]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헛되거나 거짓되지 않기 때문이며, 안락(安樂, sukha)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부처님의 행복을 얻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 보살의 자는 이와 같아야 합니다.”
009_0992_a_12L行忍辱慈護彼我故行精進慈荷負衆生行禪定慈不受味故行智慧慈不知時故行方便慈一切示現故無隱慈直心淸淨故行深心慈無雜行故行無誑慈不虛假故行安樂慈令得佛樂故菩薩之慈爲若此也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무엇을 비(悲, karu)라고 합니까?”
009_0992_a_18L文殊師利又問何謂爲悲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보살이 지은 공덕을 모든 중생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009_0992_a_19L答曰菩薩所作功德皆與一切衆生共之
“무엇을 희(喜, mudit)라고 합니까?”
009_0992_a_20L何謂爲喜
“이익을 얻으면 그것을 마음으로부터 기뻐하며 후회하지 않는 것입니다.”
答曰有所饒益歡喜無悔
“무엇을 사(捨, upeka)16)라고 합니까?”
009_0992_a_21L何謂爲捨
“복을 지어 도와주지만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答曰所作福祐無所悕望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생사에 두려움이 있는 보살은 무엇에 의지해야만 합니까?”
009_0992_a_22L文殊師利又問生死有畏菩薩當何所依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보살이 생사의 두려움에 있을 때에는 여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해야만 합니다.”
009_0992_a_23L維摩詰言菩薩於生死畏中當依如來功德之力
009_0992_b_02L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보살이부처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하고자 할 때에는 어디에 머물러야만 합니까?”
009_0992_b_02L文殊師利又問菩薩欲依如來功德之力當於何住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보살이 여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하고자 할 때 마땅히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키는[度脫] 일에 머물러야 합니다.”
009_0992_b_03L答曰薩欲依如來功德力者當住度脫一切衆生
또 물었다.
“중생을 제도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무엇을 제거해야 합니까?”
又問欲度衆生當何所除
답하였다.
“중생을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번뇌를 제거해야 합니다.”
009_0992_b_05L欲度衆生除其煩惱
“번뇌를 제거하고자 하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009_0992_b_06L又問欲除煩當何所行
“올바른 마음을 내어야[正念] 합니다.”
答曰當行正念
“어떻게 하면 올바른 마음을 쓸 수 있습니까?”
009_0992_b_07L又問何行於正念
“마땅히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도록 마음을 써야[行] 합니다.”“어떠한 것을 생하지 않게 하고, 어떠한 것을 멸하지도 않게 해야 합니까?”
009_0992_b_08L答曰當行不生不滅何法不生何法不滅
“불선(不善)은 생하지 않게 하고, 선법(善法)은 멸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009_0992_b_09L答曰不善不善法不滅
“선과 불선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又問善不善孰爲本
“몸[身, kya]을 근본으로 합니다.”
009_0992_b_10L身爲本
“몸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又問身孰爲本
“욕심과 탐심을 근본으로 합니다.”
009_0992_b_11L答曰欲貪爲本
“욕심과 탐심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又問欲貪孰爲本
“허망한 분별을 근본으로 합니다.”
009_0992_b_12L答曰虛妄分別爲本
“허망한 분별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又問虛妄分別孰爲本
“도리에 어긋난 그릇된 생각[顚倒想]을 근본으로 합니다.”
009_0992_b_13L答曰顚倒想爲本
“도리에 어긋나는 그릇된 생각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又問顚倒想孰爲本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無住]17)를 근본으로 합니다.”
009_0992_b_14L無住爲本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는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는 근본이 없습니다. 문수사리여, 이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가 근본이 되어 모든 법(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009_0992_b_15L又問無住孰爲本答曰無住則無本文殊師利從無住本一切法
그 때 유마힐의 방안에는 한 천녀(天女)가 있어서 여러 보살들이 설법하는 것을 보고 듣고서 그녀는 곧 몸을 나타내 하늘 꽃을 보살들과 (부처님의) 대제자들 위에 뿌렸다. 보살들 위에 뿌려진 꽃은 땅에 떨어져 버렸지만, 대제자들 위에 뿌려진 꽃은 그들의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제자들은 신통력으로 꽃을 떼어내 버리려 하였으나 떼어내지 못하였다.
그 때 천녀가 사리불에게 물었다.
“왜 꽃을 떼내려고 하십니까?”
009_0992_b_17L時維摩詰室有一天女見諸大人聞所說法便現其身卽以天華散諸菩大弟子上華至諸菩薩卽皆墮落至大弟子便著不墮一切弟子神力去華不能令去爾時天女問舍利弗故去華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이 꽃은 법답지[如法, yogya]18) 못하므로 떼내 버리려 합니다.”
答曰此華不如法是以去之
009_0992_c_02L천녀가 말하였다.
“이 꽃을 법답지 못하다고 하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이 꽃은 아무런 분별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킨 것일 뿐입니다.만약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받들어 출가하고서 분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법답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분별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법다운 것입니다. 저 보살들을 보시오. 꽃이 달라붙지 않는 것은 이미 분별하는 마음[分別想]을 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두려운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에 비인(非人)에 홀리기 쉬운 것과 같이, 제자들은 생사를 두려워하고 있으므로 빛깔[色]과 소리[聲], 냄새[香], 맛[味], 감촉[觸] 등으로 홀리는 것입니다. 이미 두려움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5욕 등이 전혀 힘을 미치지 못합니다. 번뇌의 습기[結習]가 아직 다하지 않았으므로 꽃이 몸에 달라붙은 것뿐입니다. 번뇌의 습기가 없어진 이는 꽃이 달라붙지 않습니다.”
009_0992_b_23L天曰勿謂此華爲不如法所以者何是華無所分別仁者自生分別想耳若於佛法出家有所分別爲不如法若無所分別是則如法觀諸菩薩華不著者已斷一切分別想故譬如人畏時非人得其便如是弟子畏生死觸得其便也已離畏者切五欲無能爲也結習未盡華著身結習盡者華不著也
사리불이 말했다.
“그대 천녀는 이 방에 머무른 지 오래되었습니까?”
009_0992_c_09L舍利弗言止此室其已久如
천녀가 답했다.
“제가 이 방에 머문 것은 고덕[耆年]19)께서 해탈(解脫)하신 것만큼 오래되었습니다.”
009_0992_c_10L答曰我止此室耆年解脫
사리불이 말했다.
“여기에 오래도록 머물렀습니까?”
舍利弗言止此久耶
천녀가 답했다.
“고덕이 해탈하신 것도 얼마나 오래되셨습니까?”
009_0992_c_11L天曰耆年解脫亦何如久
사리불은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다. 천녀가 말하였다.
“웬일로 고덕(古德)의 뛰어난 지혜를 지니고 계시면서 침묵하십니까?”
009_0992_c_12L舍利弗默然不天曰如何耆舊大智而默
사리불이 답했다.
“해탈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에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009_0992_c_13L答曰脫者無所言說故吾於是不知所云
천녀가 말하였다.
“말씀[言說]과 문자(文字)야말로 모두가 해탈의 모습입니다. 왜냐 하면, 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 안이나, 마음 밖이나, 또 그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자도 이와 같아서 안20)에도 밖21)에도, 또 안과 밖의 중간22)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덕이시여, 문자를 떠나서는 해탈을 말하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모든 것[法]은 그대로가 해탈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009_0992_c_14L天曰言說文字皆解脫相所以者何解脫者不內不外不在兩閒文字亦不內不外不在兩閒是故舍利弗離文字說解脫也所以者何一切諸法是解脫相
사리불은 말하였다.
“그러나 탐심[婬]과 성냄[怒]과 어리석음[癡]을 떠나는 것을 해탈이라 하지 않습니까?
009_0992_c_19L舍利弗言不復以離婬癡爲解脫乎
천녀가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증상만(增上慢)에 사로잡힌 이들23)을 위해서만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떠나는 것이 해탈이라고 설하셨을 뿐입니다. 만약 증상만이 없는 사람이라면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자성이 곧 그대로 해탈이라고 하셨습니다.”
009_0992_c_20L天曰佛爲增上慢人說離婬癡爲解脫耳若無增上慢佛說婬癡性卽是解脫
사리불이 말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천녀여, 그대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깨달았기에 그와 같이 훌륭히 설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까?”
009_0992_c_22L舍利弗善哉善哉天女汝何所得以何爲辯乃如是
009_0993_a_02L천녀가 대답했다.
“저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고, 깨달은 것도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무엇을 얻었다든가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은부처님의 가르침에서는 증상만에 사로잡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009_0992_c_24L天曰我無得無證故辯如是所以者何若有得有證者卽於佛法爲增上慢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세 가지 가르침[三乘] 가운데 어느 것에 뜻을 두고 있습니까?”
009_0993_a_03L舍利弗問天汝於三乘爲何志求
천녀가 대답하였다.
“저는 성문법(聲聞法)으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성문(聲聞)이며, 인연법(因緣法)으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벽지불(辟支佛)이기도 하며, 대비법(大悲法)으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대승(大乘)이기도 합니다.
사리불이여, 첨복(瞻蔔, Campaka)24)의 숲에 들어가면, 오직 첨복의 냄새만을 맡을 뿐, 다른 냄새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만약 이 방안에 들어오면 오직 부처님의 공덕의 향기를 맡을 뿐, 성문이나 벽지불의 공덕의 향기를 좋아하지 않게 됩니다.
009_0993_a_04L以聲聞法化衆生故我爲聲聞因緣法化衆生故我爲辟支佛以大悲法化衆生故我爲大乘舍利弗人入瞻蔔林唯嗅瞻蔔不嗅餘香若入此室但聞佛功德之香不樂聞聲聞辟支佛功德香也
사리불이여, 대체로 제석천이나 범천, 사천왕, 온갖 천신들, 용(龍), 귀신일지라도 이 방안에 들어온 자는 (유마힐이라고 하는) 훌륭한 분[上人]이 설하는 정법을 듣고, 모두가 부처님 공덕의 향기를 좋아하며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킨 다음에 나가게 됩니다. 사리불이여, 저는 이 방에 머문 지가 이미 12년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성문, 벽지불의 법을 설하는 것을 듣지 않고, 오직 보살의 대자대비(大慈大悲)와 불가사의한 제불(諸佛)의 가르침만을 들어 왔습니다.
009_0993_a_10L舍利弗有釋四天王諸天鬼神等入此室者聞斯上人講說正法皆樂佛功德之香發心而出舍利弗吾止此室十有二年初不聞說聲聞辟支佛法但聞菩薩大慈大悲不可思議諸佛之法
009_0993_b_02L사리불님, 이 방에는 항상 일찍이 한 번도 없었고[未曾有], 있기 어려운 일[難得之法] 여덟 가지가 나타났는데,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이 방은 항상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어 밤과 낮의 차이가 없으며, 태양과 달의 빛도 더 밝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또 이 방에 들어온 사람은 온갖 번뇌에 괴로워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이 방에는 항상 제석천[釋], 범천[梵], 사천왕천(四天王天), 그리고 타방(他方)의 보살들이 모여 와서 끊이질 않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이 방에는 항상 6바라밀과 불퇴전(不退轉)의 법이 설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네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또 이 방에서는 항상 천상과 인간[天人]의 가장 훌륭한 음악이 연주되고, 가야금의 줄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르침과 교화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이것이 다섯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009_0993_a_16L舍利弗此室常現八未曾有難得之法何等爲八此室常以金色光晝夜無異不以日月所照爲明爲一未曾有難得之法此室入者爲諸垢之所惱也是爲二未曾有難得之法此室常有釋梵四天王他方菩薩來會不絕是爲三未曾有難得之法此室常說六波羅蜜不退轉法是爲四未曾有難得之法此室常作天人第一之樂絃出無量法化之聲是爲五未曾有難得之法
이 방에는 네 개의 커다란 창고가 있어서 온갖 보배가 가득 차 있어서 가난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전부를 베풀어 주지만 그 바닥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이 방에서는, 석가모니불․아미타불․아촉불(阿閦佛, Akobhya)25)․보덕(寶德)․보염(寶炎)․보월(寶月)․보엄(寶嚴)․난승(難勝)․사자향(獅子響)․일체리성(一切利成)26) 등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부처님을 이 훌륭한 분[上人:유마힐]이 염(念)하기만 하면 곧 나타나 제불의 비밀한 가르침[秘要法藏]을 설하고 돌아갑니다. 이것이 일곱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이 방에는 제천의 엄숙하게 장식된 궁전이나 제불의 정토(淨土)가 모두 나타납니다. 이것이 여덟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사리불이여, 이 방에는 항상 여덟 가지 전에 없던 일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같은 불가사의한 일을 보면서도 누가 성문의 법 따위를 좋아하고 바라겠습니까?”
009_0993_b_03L此室有四大藏衆寶積滿賙窮濟乏求得無盡是爲六未曾有難得之法此室釋迦牟尼佛阿彌陁佛阿閦佛寶德寶炎寶月寶嚴難勝師子響一切利成是等十方無量諸佛是上人念時皆爲來廣說諸佛秘要法藏說已還是爲七未曾有難得之法此室一切諸天嚴飾宮殿諸佛淨土皆於中是爲八未曾有難得之法舍利弗此室常現八未曾有難得之法誰有見斯不思議事而復樂於聲聞法乎
사리불이 말했다.
“그대는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습니까?”
009_0993_b_14L舍利弗言汝何以不轉女身
천녀가 대답했다.
“저는 지난 12년 동안 (변치 않는) 여인의 상(相)을 찾아보았지만 찾아낼 수가 없었는데, 무엇을 바꾼단 말입니까? 비유하자면 마치 마술사가 마술로 허깨비 여인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허깨비에게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는가?’고 묻는다면, 이 사람의 물음이 옳은 것일까요?”
009_0993_b_15L天曰從十二年來求女人相了不可得何所轉譬如幻師化作幻女若有人何以不轉女身是人爲正問不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아니지요. 허깨비에게는 정해진 상[定相]이 없는데 바꿀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009_0993_b_18L利弗言不也幻無定相當何所轉
천녀가 말하였다.
“일체제법도 이와 같아서 정해진 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느냐고 물으십니까?”
009_0993_b_19L一切諸法亦復如是無有定相何乃問不轉女身
천녀는 즉시에 신통력으로 사리불을 천녀와 같이 바꾸고, 천녀 자신은 사리불과 같은 모습으로 몸을 바꾸고 물었다.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으십니까?”
009_0993_b_21L卽時天女以神通變舍利弗令如天女天自化身如舍利弗而問言何以不轉女身
사리불이 천녀의 모습을 하고 답하였다.
“나는 지금 어떻게 여인의 몸으로 바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009_0993_b_23L舍利弗以天女像而答言我今不知何轉而變爲女身
009_0993_c_02L천녀가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만약 당신께서그 여인의 몸을 바꿀 수가 있게 되면 모든 여인들도 몸을 바꿀 수가 있게 됩니다. 사리불께서 여인이 아니지만 여인의 몸을 나타내고 있는 것과 같이, 모든 여인들도 이와 같아서 여인의 몸을 나타내고 있지만 여인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일체제법은 ‘남자도 아니며 여자도 아니다’고 설하신 것입니다.”
009_0993_c_02L天曰舍利弗若能轉此女身則一切女人亦當能轉如舍利弗非女而現女身一切女人亦復如雖現女身而非女也是故佛說一切諸法非男非女
천녀는 곧 신통력을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사리불의 몸은 본래와 같이 되었다. 천녀는 사리불에게 물었다.
“여인의 몸의 특성[女身色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009_0993_c_06L卽時天女還攝神舍利弗身還復如故天問舍利弗女身色相今何所在
사리불이 답하였다.
“여인의 몸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닙니다.”27)
009_0993_c_08L舍利弗言女身色相無在無不在
천녀가 말하였다.
“일체제법도 그와 같아서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009_0993_c_09L天曰一切諸法復如是無在無不在夫無在無不在佛所說也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곳에서 죽으면 어디에 가서 태어날 것입니까?”
009_0993_c_11L舍利弗問天汝於此沒當生何所
천녀가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화신(化身, nirma)으로 태어나시는 곳에 저도 같이 태어날 것입니다.”
天曰佛化所生吾如彼生
사리불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화신으로 태어나시는 것은 죽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지요.”
009_0993_c_12L佛化所生非沒生也
천녀가 말하였다.
“중생도 그와 같아서 죽어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009_0993_c_13L天曰衆生猶無沒生也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앞으로 얼마만큼 지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게 됩니까?”
009_0993_c_14L舍利弗問天汝久如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천녀가 말하였다.
“만약 사리불님께서 다시 태어나 범부로 되돌아간다면, 그 때 저는 아뇩다라삼먁보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009_0993_c_15L天曰如舍利弗還爲凡夫我乃當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사리불이 말하였다.
“내가 또다시 범부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009_0993_c_17L舍利弗言我作凡夫有是處
천녀가 말하였다.
“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일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니, 왜냐 하면 깨달음[菩提]에는 머무를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도 없습니다.”
009_0993_c_18L天曰我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無是處所以者何菩提無住是故無有得者
사리불이 말하였다.
“현재에 제불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과거에 이미 얻은 부처님과 앞으로 얻을 부처님이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데, 이것은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009_0993_c_20L舍利弗言今諸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得當得如恒河沙皆謂何乎
천녀가 말하였다.
“이것은 모두 세속에서 쓰이고 있는 문자와 이치[數]를 빌렸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가 있음)을 설하였을 뿐, 깨달음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009_0993_c_22L天曰皆以世俗文字數故說有三世非謂菩提有去來今
천녀는 물었다.
“사리불이여, 당신은 아라한과[羅漢道]를 얻었습니까?”
天曰舍利弗汝得阿羅漢道耶
사리불이 말하였다.
“아무런 얻을 만한 것도 없으므로[無所得] 얻었습니다.”
009_0993_c_24L無所得故而得
009_0994_a_02L천녀는 말하였다.
“제불 보살님도그와 같이 얻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얻은 것입니다.”
009_0994_a_02L天曰諸佛菩薩亦復如是無所得故而得
그 때 유마힐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이 천녀는 지금까지 92억의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나서 이미 보살의 신통력을 마음대로 쓰면서 소원을 모두 이루고[具足], 무생법인[無生忍]을 얻었고, 이미 물러섬이 없는 경지[不退轉]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본원력(本願力) 때문에 마음대로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하고 있습니다.”
009_0994_a_03L爾時維摩詰語舍利弗是天女已曾供飬九十二億佛已能遊戲菩薩神通所願具足得無生忍住不退轉以本願故隨意能現敎化衆生

8. 불도품(佛道品)
009_0994_a_07L維摩詰所說經佛道品第八

그 때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보살은 어떻게 해야 불도(佛道)에 통달할 수 있습니까?”
009_0994_a_08L爾時文殊師利問維摩詰言菩薩云何通達佛道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만약 보살이 도가 아닌 길[非道]을 간다면 곧 불도에 통달한 것입니다.”
009_0994_a_10L維摩詰言若菩薩行於非道是爲通達佛道
또 문수사리가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도가 아닌 길을 간다는 것입니까?”
009_0994_a_11L又問云何菩薩行於非道
유마힐이 답하였다.
“만약 보살이 5무간죄[無間]를 범하여도 괴로워하거나 성내는 일이 없는 것이며,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모든 죄나 번뇌가 없으며, 축생에 떨어지더라도 어리석음[無明]28)이나 교만한 마음 등의 허물이 없으며, 아귀에 떨어지더라도 공덕을 갖추고 있으며, 색계나 무색계의 도에 이르러서도 잘났다고 뽐내지 않습니다. 탐욕을 부리는 것을 드러내어도29) 온갖 번뇌에 물드는 일이 없으며, 성내는[瞋恚] 모습을 드러내어도 분노를 품는 일이 없으며, 어리석은 모습을 드러내어도 지혜로써 그 마음을 다스리며, 인색하고 탐욕스런 모습30)을 보이면서도 안과 밖의 모든 것을 보시하며, 몸과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으며, 계율을 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마음은 편안하게 청정한 계율에 안주하고, 아무리 작은 죄에도 오히려 크게 조심하며, 성내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항상 너그럽게 참으며, 게으른 모습을 보여도 온 마음을 기울여 공덕을 닦으며, 마음이 혼란한 모습을 보여도 마음은 언제나 조용하게 선정을 닦으며,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도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에 통달해 있습니다.
009_0994_a_12L答曰若菩薩行五無閒無惱恚至于地獄無諸罪垢至于畜無有無明憍慢等過至于餓鬼具足功德行色無色界道不以爲勝示行貪欲離諸染著示行瞋恚於諸衆生無有恚閡示行愚癡而以智慧調伏其心示行慳貪而捨內外所有不惜身命示行毀禁而安住淨戒至小罪猶懷大懼示行瞋恚而常慈示行懈怠而懃修功德示行亂意而常念定示行愚癡而通達世閒世閒慧
009_0994_b_02L아첨하거나 거짓된 모습을 보여도 훌륭한 방편으로 경전의 뜻에 따라 교화하며, 교만하게 뽐내는 모습을 보여도 중생에게는 마치 교량과 같으며, 온갖 번뇌에 들끓는 모습을 보여도 마음은 항상 청정합니다. 마군의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도부처님의 지혜에 따르지 다른 가르침에는 따르지 않으며, 성문(聲聞)의 사이에 섞여도 중생을 위하여 아직까지 들어 보지 못한 가르침을 설하며, 벽지불(辟支佛)들 사이에 끼여도 대자비를 이룩하여 중생을 교화합니다.
가난에 찌든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도 보배를 낳는 손으로서[寶手] 공덕이 다하는 일이 없으며, 불구자[刑殘] 사이에 끼여도 온갖 상호(相好)를 갖추어 자신의 몸을 장엄하고, 비천한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도 부처가 될 소질[佛種性]을 가진 무리에 태어나서 온갖 공덕을 갖추고, 몸이 쇠약하고 추하고 비참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도 나라연(那羅延, nryaṇa)과 같이 힘센 몸을 얻어 모든 중생이 부러워 즐겁게 바라보는 대상이 되며, 늙고 병든 사람들 사이에 끼여도 영원히 병의 근원을 끊고 죽음의 공포를 초월합니다.
009_0994_a_23L示行諂僞而善方便隨諸經示行憍慢而於衆生猶如橋梁行諸煩惱而心常淸淨示入於魔順佛智慧不隨他敎示入聲聞而爲衆生說未聞法示入辟支佛而成就大悲敎化衆生示入貧窮而有寶手功德無盡示入刑殘而具諸相好自莊嚴示入下賤而生佛種姓中諸功德示入羸劣醜陋而得那羅延一切衆生之所樂見示入老病永斷病根超越死畏
재물이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항상 무상을 관하여 실제로 탐내는 것이 없으며, 아내와 첩과 채녀(采女)가 있는 것을 보여 주지만 항상 5욕의 진흙탕에서 멀리 떠나 있고, 말이 어눌하고 둔한 것같이 보이면서도 변재(辯才)를 성취하고 모든 것을 간직하여[惣持] 잊는 일이 없으며, 외도로 중생을 제도하는 모습[邪濟]을 보여도 부처님의 정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며, 온갖 세속의 길[道]에 두루 빠져드는 것처럼 보여도 그 인연을 끊고,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을 나타내 보여도 생사를 끊어 없애지는 않습니다. 문수사리여, 보살이 이같이 도 아닌 길[非道]을 행해 갈 수가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불도에 통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009_0994_b_10L示有資生而恒觀無常實無所貪示有妻妾采女常遠離五欲淤泥現於訥鈍而成就辯摠持無失示入邪濟而以正濟諸衆生現遍入諸道而斷其因緣於涅槃而不斷生死文殊師利菩薩能如是行於非道是爲通達佛道
그 때에 유마힐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무엇을 여래의 씨앗[如來種, tathgata-gotra]이라고 합니까?”
009_0994_b_16L是維摩詰問文殊師利何等爲如來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이 몸[有身, satkya]이 여래의 씨앗이며, 무명(無明)과 생존의 욕망[有愛, bhava]이 씨앗이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씨앗이며, 4전도(顚倒, vipary)와 5개(蓋, paca-varani)가 씨앗이 되며, 6입(入, sat-yatana)이 씨앗이 되며, 7식처(識處)31)가 씨앗이 되며, 8사법(邪法)32)이 씨앗이 되며, 9뇌처(惱處)33)가 씨앗이 되며, 10불선도(不善道)가 모두 씨앗이며, 요점을 취해서 말한다면 62견(見)이나 모든 번뇌가 모두 부처의 씨앗이 됩니다.”
009_0994_b_18L文殊師利言有身爲種無明有愛爲種貪恚癡爲種四顚倒爲種五蓋爲種六入爲種七識處爲種八邪法爲種九惱處爲種十不善道爲種要言之六十二見及一切煩惱皆是佛種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何謂也
009_0994_c_02L“무위(無爲, asaskta)를 보고 올바른 깨달음의 경계[正位]에 든 사람은 다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니, 비유하자면 마치 메마른 고원의 육지에서는 연꽃이 자라지 않지만 더럽고 습한진흙땅에서는 잘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이같이 무위법을 보고 올바른 깨달음의 경계에 든 사람은 끝내 다시는 불법(佛法)에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될 것이며, 번뇌의 진흙 속에 있는 중생이라야 불법에 마음을 일으킬 뿐입니다. 또 허공에 씨를 뿌리면 싹이 틀수가 없지만 거름으로 비옥한 땅[糞壤之地]에서는 무성하게 자라는 것입니다.
009_0994_b_23L答曰若見無爲入正位者不能復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譬如高原陸地不生蓮華卑濕淤泥乃生此華如是見無爲法入正位者終不復能生於佛法煩惱泥中乃有衆生起佛法耳又如殖種於空終不得生糞壤之地乃能滋茂
이와 같이 무위의 올바른 경계에 든 사람은 불법을 일으키는 일이 없습니다. 아견(我見)을 수미산과 같이 일으켜도 더욱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 불법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모든 번뇌가 여래의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대해(大海)의 깊은 밑바닥에 들어가지 않으면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번뇌의 대해에 들어가지 않으면 일체지(一切智)의 보물을 얻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009_0994_c_06L如是入無爲正位者不生佛法起於我見如須彌山猶能發于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生佛法矣是故當知一切煩惱爲如來種譬如不下巨海不能得無價寶珠如是不入煩惱大海不能得一切智寶
그 때에 가섭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문수사리여. 이 말씀 명쾌하게 설하시니, 참으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온갖 번뇌가 여래의 씨앗입니다. 저희들은 이제 다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설사 5무간죄를 지을 정도라야 더욱 발심하여 불법을 일으킬 수 있다 하더라도, 지금 저희들은 영원히 (그 마음을)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성의 불구자[根敗]는 5욕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과 같이 성문으로 모든 번뇌를 끊어 버린 자는 불법에 있어서는 또다시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서원을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009_0994_c_12L爾時大迦葉歎言善哉善哉文殊師利快說此語誠如所言塵勞之疇爲如來種我等今者不復堪任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乃至五無閒罪猶能發意生於佛而今我等永不能發譬如根敗之其於五欲不能復利如是聲聞諸結斷者於佛法中無所復益永不志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범부는 불법으로 다시 되돌아오지만34) 성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범부는 불법을 들으면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無上道心]을 내어서 불(佛)․법(法)․승(僧) 3보를 단절하지 않지만, 성문은 설사 목숨을 마치도록 불법․10력(力)․4무소외[無畏] 등을 들어도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영원히 일으키지 못합니다.”
009_0994_c_20L是故文殊師利凡夫於佛法有返而聲聞無也所以者何凡夫聞佛能起無上道心不斷三寶正使聲聞終身聞佛法無畏等永不能發無上道意
009_0995_a_02L그 때 이 법회에 참석한, 보현색신(普賢色身, sarvarpasadarana)이라고 불리는 보살이 유마힐에게 물었다.“거사님, 그대의 부모와 처자․친척․권속(眷屬)․하인[吏民]․벗[知識], 이들은 모두 어떤 사람들이며, 노비와 심부름꾼[僮僕], 코끼리와 말, 수레 따위는 모두 어디에 있습니까?”
009_0994_c_24L爾時會中有菩薩名普現色身問維摩詰言居士父母妻子親戚眷屬民知識悉爲是誰奴婢僮僕象馬車皆何所在
이에 유마힐은 게송(偈頌)으로 답하였다.
於是維摩詰以偈答曰

반야바라밀다[智度]는 보살의 어머니이며
방편바라밀로 아버지를 삼고
일체 중생을 이끄는 스승도
이것에 의지하지 않고는 태어나질 않네.
009_0995_a_05L智度菩薩母
方便以爲父
一切衆導師
無不由是生

법의 기쁨[法喜, dharmapramudit]으로 아내를 삼고
자비심으로 딸을 삼고
성실을 아들로 삼아
필경(畢竟) 공함은 집으로 삼는다네.
009_0995_a_07L法喜以爲妻
慈悲心爲女
善心誠實男
畢竟空寂舍

여러 번뇌는 나의 제자요
뜻에 따라 다스려 가고
37도품은 선지식으로
이것들이 깨달음에 이르게 하네.
009_0995_a_08L弟子衆塵勞
隨意之所轉
道品善知識
由是成正覺

여러 바라밀다[度法]는 모두 다 도반이며
4섭법[攝]은 기녀(伎女)일세.
노래하고 법다운 말씀을 읊조리니
이들을 음악으로 삼는다네.
009_0995_a_09L諸度法等侶
四攝爲伎女
歌詠誦法言
以此爲音樂

다라니[摠持]의 동산
무루법(無漏法)의 숲
7각의(覺意)의 청정하고 오묘한 꽃이 만발하고
해탈과 지혜의 열매가 무르익네.
009_0995_a_11L摠持之園苑
無漏法林樹
覺意淨妙華
解脫智慧果

8해탈[解]은 목욕하는 연못
삼매의 물[定水]이 가득 차
일곱 가지 맑은 꽃35)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거기 목욕하는 이는 모두 번뇌가 없는 이들[無垢人]이라네.
009_0995_a_12L八解之浴池
定水湛然滿
布以七淨華
浴此無垢人

다섯 가지 신통력은 코끼리와 말로 치달리고
대승은 수레로 삼아
한마음[一心]36)으로 잘 몰아 가며
8정도의 길을 잘 간다네.
009_0995_a_13L象馬五通馳
大乘以爲車
調御以一心
遊於八正路

32상으로 장엄하고
80종호로 모습을 잘 갖추어
참괴(慚愧)의 옷을 입고
깊은 마음은 꽃다발로 삼네.
009_0995_a_15L相具以嚴容
衆好飾其姿
慚愧之上服
深心爲華鬘

7재(財)37)의 보물을 재산으로
(佛法을) 가르침을 자애로운 휴식으로 삼아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깨달음으로 회향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네.
009_0995_a_16L富有七財寶
敎授以滋息
如所說修行
迴向爲大利

4선(禪)으로 자리펴고 앉아
정명(淨名)38)을 따라 살아가고
다문(多聞)으로써 지혜를 늘려 가고
스스로 깨달음을 음악으로 삼네.
009_0995_a_17L四禪爲牀座
從於淨命生
多聞增智慧
以爲自覺音

감로(甘露)의 법은 밥이고
해탈(解脫)의 맛은 국이 되어
맑은 마음으로 목욕하고
계품(戒品)으로 온몸을 향기롭게 바르네.
009_0995_a_19L甘露法之食
解脫味爲漿
淨心以澡浴
戒品爲塗香

번뇌의 도적을 무찌르니
그 용감함은 누구도 비할 수 없어
네 가지 마군39)을 항복받아
승리의 깃발을 도량에 휘날리네.
009_0995_a_20L摧滅煩惱賊
勇健無能踰
降伏四種魔
勝幡建道場

생과 멸이 없는 줄을 알면서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생사를 보여 주고
온갖 국토(國土)에 남김없이 나타내니
마치 태양이 비추지 않는 곳이 없는 것 같네.
009_0995_a_21L雖知無起滅
示彼故有生
悉現諸國土
如日無不見

시방 3세의 무량억(無量億)의 여래에게
공양을 올리면서도
그 모든 부처와 나의 몸을
분별하는 생각 전혀 없네.
009_0995_a_23L供飬於十方
無量億如來
諸佛及己身
無有分別想

모든 부처님의 나라와 중생들이
모두 공한 줄을 안다고 해도
항상 정토의 행을 닦아
모든 중생을 교화하네.
009_0995_a_24L雖知諸佛國
及與衆生空
而常修淨土
敎化於群生
009_0995_b_02L
모든 중생의
모습과 소리와 몸가짐[威儀] 그 모두를
두려움 모르는 보살은
일시에 남김없이 나타내 보인다네.
009_0995_b_02L諸有衆生類
形聲及威儀
無畏力菩薩
一時能盡現

온갖 마군의 소행을 알아
그들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서
훌륭한 방편의 지혜로써 선으로 이끌고
뜻에 따라 모두를 교화해 나타낸다네.
009_0995_b_04L覺知衆魔事
而示隨其行
以善方便智
隨意皆能現

늙고 병들고 죽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모든 중생을 성취하고자 함이니
모든 것이 허깨비[幻化]와 같음을 사무치게 알고
걸림 없이 모든 걸 통달한다네.
009_0995_b_05L或示老病死
成就諸群生
了知如幻化
通達無有礙

어느 때는 겁(劫)이 다함을 보이기 위해
하늘과 땅이 모두 불타는 것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항상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무상함을 환하게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이네.
009_0995_b_06L或現劫盡燒
天地皆洞然
衆人有常想
照令知無常

무수억(無數億)의 중생이
함께 와서 보살을 청한다면
일시에 그들의 집에 다가가
불도로 나아가도록 교화한다네.
009_0995_b_08L無數億衆生
俱來請菩薩
一時到其舍
化令向佛道

경전[經書]이든 주술서이든지
온갖 기술에 관련된 책이든지
남김없이 통달하여
중생들을 널리 이익 되게 베푸시네.
009_0995_b_09L經書禁呪術
工巧諸伎藝
盡現行此事
饒益諸群生

세간의 온갖 도를 닦아
그 모든 길에서 출가하여
이로써 사람의 미혹을 풀어 주고
사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네.
009_0995_b_10L世閒衆道法
悉於中出家
因以解人惑
而不墮邪見

어느 때는 해․달․하늘이 되고
그리고 범천과 세계의 주인이 되고
혹은 흙이 되고 물이 되며
혹은 바람이 되고 불이 된다네.
009_0995_b_12L或作日月天
梵王世界主
或時作地水
或復作風火

질병의 소겁 동안에는
온갖 약초가 되어
이것을 복용한 자는
온갖 독과 병을 없애 준다네.
009_0995_b_13L劫中有疾疫
現作諸藥草
若有服之者
除病消衆毒

기근의 소겁 동안에
몸을 바쳐 음식이 되어
먼저 그들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가시게 한 다음
가르침을 설하여 교화한다네.
009_0995_b_14L劫中有飢饉
現身作飮食
先救彼飢渴
卻以法語人

전쟁[刀兵]의 소겁 동안에
그를 위하여 자비심을 일으켜
저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싸움이 없는 땅[無諍地]에 살도록 한다네.
009_0995_b_16L劫中有刀兵
爲之起慈心
化彼諸衆生
令住無諍地

만약 커다란 싸움터가 있다면
병력을 고르게 나누고 나서
보살은 위세(威勢)를 나타내
항복받아 화평하고 편안하게 한다네.
009_0995_b_17L若有大戰陣
立之以等力
菩薩現威勢
降伏使和安

모든 국토 안에 있는
온갖 지옥까지도
서슴없이 찾아가 그곳에 이르러
힘써 그곳의 고뇌를 구제한다네.
009_0995_b_18L一切國土中
諸有地獄處
輒往到于彼
勉濟其苦惱

모든 국토 안에서
모든 축생들이 서로 물고 뜯으면
보살은 그곳에 태어나
그들 모두에게 이익을 주네.
009_0995_b_20L一切國土中
畜生相食噉
皆現生於彼
爲之作利益

5욕의 몸을 받는 것처럼 보여 주어도
마음은 선정을 닦아 안온한 모습 보이고
마군이 찾아와 마음을 어지럽히려 해도
아무런 힘을 미치지 못하네.
009_0995_b_21L示受於五欲
亦復現行禪
令魔心憒亂
不能得其便

불꽃 속에 연꽃을 피운다는 것은
매우 드물고 힘든 일일세.
욕정이 있으면서 선을 닦는 것도
이같이 매우 드물고 힘든 일이네.
009_0995_b_22L火中生蓮華
是可謂希有
在欲而行禪
希有亦如是

어느 때는 음탕한 여인이 되어
온갖 호색한[好色者]을 유인해다가
욕정의 갈고리로 끌어들여서
다음에 불도(佛道)에 들게 한다네.
009_0995_b_24L或現作婬女
引諸好色者
先以欲鉤牽
後令入佛道
009_0995_c_02L
어느 때는 마을의 읍장이 되고,혹은 상인을 이끌며
국사(國師)와 대신이 되어
중생을 복되고 이롭게 하네.
009_0995_c_02L或爲邑中主
或作商人導
國師及大臣
以祐利衆生

모든 빈궁한 자에게는
무진장한 곳간이 되어서
그들에게 베풀고 이끌어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내게 하네.
009_0995_c_03L諸有貧窮者
現作無盡藏
因以勸導之
令發菩提心

아상이 강해 교만한 자에게는
대역사(大力士)로 나타나
갖가지 뽐내고 교만한 마음을 굴복시켜
위없는 길[無上道]에 머물게 한다네.
009_0995_c_05L我心憍慢者
爲現大力士
消伏諸貢高
令住無上道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무리가 있으면
그들 앞에 나타나 위로하고 안심시켜서
두려움이 없는 마음을 베풀어 주고
마침내 도심을 일으키게 한다네.
009_0995_c_06L其有恐懼衆
居前而慰安
先施以無畏
後令發道心

어느 때는 음욕을 떠나
다섯 가지 신통력을 가진 선인(仙人)이 되어
모든 중생을 이끌어
계율과 인욕과 자비로움에 머물게 하네.
009_0995_c_07L或現離婬欲
爲五通仙人
開導諸群生
令住戒忍慈

공양을 구하는 자를 보면
그를 위하여 종이나 심부름꾼이 되고
그 마음을 기쁘게 하여
도심을 일으키도록 한다네.
009_0995_c_09L見須供事者
現爲作僮僕
旣悅可其意
乃發以道心

사람이 구하는 것에 따라서
얻게 해 불도에 이끌어 들이고
뛰어난 방편의 힘으로
모든 것을 풍족히 마련해 준다네.
009_0995_c_10L隨彼之所須
得入於佛道
以善方便力
皆能給足之

이와 같이 도는 무량하여서
행하는 것도 끝이 없으며
지혜는 또한 끝없이 무한하여서
무수한 중생을 해탈케 한다네.
009_0995_c_11L如是道無量
所行無有涯
智慧無邊際
度脫無數衆

가령 일체의 부처가
무량억겁에 걸쳐
그 공덕을 찬탄한다 해도
결코 다할 수 없다네.
009_0995_c_13L假令一切佛
於無量億劫
讚歎其功德
猶尚不能盡

그 어느 누가 이 같은 법을 들은 자라면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랴.
다만 저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을 제외하고서.
009_0995_c_14L誰聞如是法
不發菩提心
除彼不肖人
癡冥無智者

9.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
009_0995_c_15L維摩詰所說經入不二法門品第九

그 때 유마힐은 수많은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보살은 어떻게 하여 상대적 차별을 뛰어넘는[不二, advaya] 법문(法門)에 깨달아 들어가는지 저마다 생각하는 대로 말씀해 보십시오.”
009_0995_c_16L爾時維摩詰謂衆菩薩言諸仁者何菩薩入不二法門各隨所樂說之
모임 가운데 법자재(法自在)라고 하는 보살이 있어서 그가 말하였다.
“여러분, 생(生, utpda)과 멸(滅, nirodha)을 서로 대립하는[二] 것이라 하지만, 존재하는 것[法]은 본래 생하는 것이 아니므로 여기에 멸하는 일도 없습니다. 이같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 것을 곧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이라고 합니다.”
009_0995_c_18L會中有菩薩名法自在說言諸仁者生滅爲二法本不生今則無滅得此無生法忍是爲入不二法門
덕수(德守, rīgandha)보살이 말하였다.
“아(我, tman)와 아소(我所, tmīya)를 서로 대립하는 둘[二]이라고 하나, 아가 있음으로 해서 아소가 있는 것이요, 만약 아가 없으면[無我, antman] 아소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5_c_21L德守菩薩曰我所爲二因有我故便有我所若無有我則無我所是爲入不二法門
009_0996_a_02L불순(不眴, Animia)보살이 말하였다.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受, dna]과 느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不受, andn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합니다. 만약 존재하는 것[法]을 수(受)하지 않으면그 때는 (사물을) 받아들일 수가 없으며,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에 취하는 일도 버리는 일도 없으며, 짓는 일도 행하는 일도 없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5_c_24L不眴菩薩曰不受爲二若法不受則不可得以不可得故無取無捨作無行是爲入不二法門
덕정(德頂, Śrīka)보살이 말하였다.
“번뇌[垢, saklea]와 청정함[淨, vyava-dna]을 서로 대립한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번뇌 그 자체의 본성[實性, bhla-kana]40)을 보아도 청정한 모습[相]은 없고, 열반의 모습[滅相]을 따릅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a_04L德頂菩薩曰淨爲二見垢實性無淨相順於滅相是爲入不二法門
선숙(善宿, Bhadrajyotis)보살이 말하였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動, vikepa]41)과 아상을 가지고 그 모양을 파악하는 것[念, manasikr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곧 아상으로 파악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아상으로 파악하는 일이 없으면 곧 분별이 없는 것이므로 이 경지를 잘 통달한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a_06L善宿菩薩曰是動是念爲二不動則無念無念則無分別通達此者是爲入不二法門
선안(善眼, Sunetra)보살이 말하였다.
“하나의 모습[一相, ekalakaa]을 가진 것과 아무런 모습도 갖지 않는 것[無相, alaka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만약 어떤 모습이 있는 것[一相]을 어떠한 모습도 없는 것[無相]이라고 알고, 또 모습이 없는 것[無相]에도 얽매이지 않고서 평등을 체득하게 되면,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a_09L善眼菩薩曰一相無相爲二若知一相卽是無相亦不取無相入於平等是爲入不二法門
묘비(妙臂, Subbu)보살이 말하였다.
“보살의 마음과 성문(聲聞)의 마음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지만, 마음의 모습[心相]은 공하고 허깨비와 같은 것이라고 분명하게 알면, 보살의 마음도 없고 성문의 마음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a_12L妙臂菩薩曰菩薩心聲聞心爲二心相空如幻化者無菩薩心無聲聞是爲入不二法門
불사(弗沙, Puya)보살이 말하였다.
“선(善, kuala)과 불선(不善, akual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만약 선도 불선도 일으키지 않고 상이 없는 경지[無相際]에 들어서 이를 통달하면,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a_15L弗沙菩薩曰不善爲二若不起善不善入無相際而通達者是爲入不二法門
사자(獅子, Siha)보살은 말하였다.
“죄악[罪, svadya]과 복덕[福, anavadya]42)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지만, 만약 죄악 그 자체의 본성에 통달하면 복덕과 다름이 없음을 알게 되고, 금강과 같은 진실한 지혜로써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 속박되는 일도 없고 해방되는 일도 없으면,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a_18L師子菩薩曰福爲二若達罪性與福無異以金剛慧決了此相無縛無解者是爲入不二法門
사자의(獅子意, Sihamati)보살은 말하였다.
“유루(有漏, ssrava)와 무루(無漏, ansrava)를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나, 만약 모든 법이 평등함을 알면, 그 때 번뇌[漏]라든가 번뇌가 없다고 하는 생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생각43)에 집착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생각이 없는 상태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a_21L師子意菩薩曰有漏無漏爲二若得諸法等則不起漏不漏想不著於相亦不住無相是爲入不二法門
009_0996_b_02L정해(淨解, uddhdhimukti)보살이 말하였다.
“유위(有爲, saskta)와 무위(無爲, asaskta)44)를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그러나 일체 (유위의) 행위[數, saskara]를 떠나고 나면 마음은 허공과 같아져 (집착을 떠나) 맑은 지혜는 걸림이 없게 됩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a_24L淨解菩薩曰有爲無爲爲二若離一切數則心如虛空以淸淨慧無所碍是爲入不二法門
나라연(那羅延, Nryana)보살은 말하였다.
“세간(世間, laukika)과 출세간(出世間, lokottar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세간의 본성 자체가 공(空)(함을 깨닫는 것)이 그대로 출세간인 것이며,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들고 나는 일이 없으며, 넘치고 흩어지는 일도 없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b_04L那羅延菩薩曰世閒出世閒爲二閒性空卽是出世間於其中不入不溢不散是爲入不二法門
선의(善意, Dntamati)보살은 말하였다.
“생사(生死, svabhava)와 열반(涅槃, nirv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생사 그 자체의 본성이 곧 생사는 이미 없으며, (사람을) 얽어매는 것도 없고, 그로부터 벗어날 것도 없으며, 또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면 이를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b_07L善意菩薩曰生死涅槃爲二若見生死性則無生死無縛無解不生不滅如是解者是爲入不二法門
현견(現見, Pratyakadarana)보살은 말하였다.
“다하는 것[盡, kaya]과 다함이 없는 것[不盡, akaya]45)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사물[法]이 만약 끝내 다하고[盡], 만약 다하지 않는다고 해도, 모두 다한 모양[盡相]은 없습니다. 다한 모양이 없는 것은 곧 공(空)이며, 공하다면 곧 다한다든가 다하지 않는다고 하는 모양은 없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b_10L現見菩薩曰不盡爲二法若究竟盡若不盡皆是無盡相無盡相卽是空則無有盡不盡相如是入者爲入不二法門
보수(普守, Pariguha)보살이 말하였다.
“아(我)와 무아(無我)를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를 (찾아보아도 찾아내) 얻을 수 없는데, 하물며 비아(非我)를 어떻게 찾아내 얻을 수 있습니까? 아의 본성[實性]을 보는 사람은 다시는 이 두 가지 생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b_14L普守菩薩曰無我爲二我尚不可非我何可得見我實性者不復起是爲入不二法門
전천(電天, Vidyuddeva)보살은 말하였다.
“명(明, vidy)과 무명(無明, avidy)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명의 본성은 곧 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명 또한 집착해서도 안 됩니다. 일체의 이치[數]를 떠나 있으니, 그 안에서 평등하여 상대적인 두 가지 차별이 없는 것,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b_17L電天菩薩曰無明爲二無明實性卽是明明亦不可取離一切數於其中平等無二者是爲入不二法門
희견(喜見, Priyadarana)보살은 말하였다.
“색(色, rpa)과 그 색이 공한 것[色空, rpanyat]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나, 색은 그대로가 공(空, nya)한 것으로서 색이 멸함으로써 공한 것은 아니고, 색의 본성이 본래 공한 것입니다. 이같이 수(受)․상(想)․행(行)․식(識)도 그대로가 공인 것입니다. 식(識, Vijna)과 공(空, nyat)도 서로 대립한 둘이라 하나, 식 그 자체가 공한 것이지, 식이 멸했기 때문에 공한 것은 아닙니다. 식의 본성이 본래 공한 것입니다. 이같이 통달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b_20L喜見菩薩曰色空爲二色卽是空非色滅空色性自空如是受識空爲二識卽是空非識滅空識性自空於其中而通達者是爲入不二法門
009_0996_c_02L명상(明相, Prabhketu)보살은 말하였다.
“지․수․화․풍의 다른 것과 허공의 원소[空種, kadhtu]46)가 다른 것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4대의 본성 그대로가 허공[空種]의 본성인 것입니다. 과거[前際, purvanta]와 미래[後際, aparanta]가 다 공하기 때문에 중간인 현재[中際, pratyutpanna]의 본성도 공한 것입니다. 만약 이같이 저마다의 원소의 본성을 알 수가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c_02L明相菩薩曰四種異空種異爲二種性卽是空種性如前際後際空中際亦空若能如是知諸種性者爲入不二法門
묘의(妙意, Paramati)보살은 말하였다.
“눈[眼, cakus]과 색(色, rp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만약 눈의 본성(이 공하다는 것)을 알면, 색에 탐착하지 않을 것이며, 성을 내거나 어리석을 일이 없을 것이니, 이것을 적멸(寂滅)이라고 이름합니다. 이같이 귀[耳]와 소리[聲], 코[鼻]와 냄새[香], 혀[舌]와 맛[味], 신체[身]와 감촉[觸], 마음[意]과 마음의 대상[法] 등이 서로 대립하는 것을 둘이라고 하지만, 만약 마음의 본성을 알면 마음의 대상에 대해서 탐착하는 일도, 성내는 일도, 어리석을 일도 없을 것이므로 이것을 적멸이라고 이름하며, 그 안에 안주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c_06L妙意菩薩曰色爲二若知眼性色不貪不恚不癡是名寂滅如是耳鼻香舌味身觸意法爲二若知意於法不貪不恚不癡是名寂滅住其中是爲入不二法門
무진의(無盡意, Akayamat)보살은 말하였다.
“보시(布施, dna)와 공덕을 일체지로 회향하는 것[廻向一切智, sarvajna-pariman]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보시의 본성은 그대로 공덕을 일체지로 회향하는 본성인 것입니다. 이같이 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와 공덕을 일체지에로 회향하는 것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지만, (지계 내지) 지혜의 본성은 그대로 그 공덕을 일체지에로 회향하는 것의 본성인 것입니다. 그 안에서 이 진실한 도리[一相]47)를 깨닫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생각합니다.”
009_0996_c_11L無盡意菩薩曰布施迴向一切智爲布施性卽是迴向一切智性如是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迴向一切智爲二智慧性卽是迴向一切智性於其中入一相者是爲入不二法門
심혜(深慧, Gambhīramati)보살은 말하였다.
“공(空, nyat)과 차별의 모습을 떠나 있는 것[無相, nimitta], 바라며 구하는 뜻이 없는 것[無作, aparaihit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공은 차별의 모습이 없으므로) 공은 그대로 차별의 모습을 떠나 있으며, (차별의 모습이 없으므로 바라고 구하는 일도 없으므로) 차별의 모습을 떠나 있는 것은 그대로 바라고 구하는 뜻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공이며, 차별의 모습을 떠나고, 바라고 구하는 뜻이 없으면 곧 마음[心, citta]48)과 뜻[意, manas]과 식별[識, vijna]이 없고, 하나의 해탈의 문[一解脫門]이라는 그 자체가 곧 세 가지 해탈의 문[三解脫門]이라는 것을 (체득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c_16L深慧菩薩曰是空是無相是無作爲空卽無相無相卽無作若空無相無作則無心意識於一解脫門卽是三解脫門者是爲入不二法門
적근(寂根, ntendriya)보살은 말하였다.
“부처님[佛]과 부처님의 가르침[法], 그 가르침을 행하는 승단[衆]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나, 부처님은 곧 가르침[法]49)이며, 가르침은 곧 그것을 실천하는 승단인 것입니다. 이 3보 모두가 무위(無爲)의 상(相)으로서 허공과 같은 것입니다. 또 일체법도 이와 같아서 이것을 알고 잘 행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c_20L寂根菩薩曰衆爲二佛卽是法法卽是衆是三寶皆無爲相與虛空一切法亦爾能隨此行者是爲入不二法門
009_0997_a_02L심무애(心無碍, Apratihatanetra)보살은 말하였다.
“신체[身, satkya]와 몸 멸하는 것[滅身, Satkyanirodh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지만, 신체는 그대로신체가 멸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신체의 진실한 본성[實相]을 보는 사람은 신체도 신체가 멸하는 것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체와 신체의 멸과는 상대적인 차별이 없으며, 분별도 없습니다. 이것을 알고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6_c_24L心無碍菩薩曰身滅爲二身卽是身滅所以者何見身實相者不起見身及見滅身身與滅身無二無分別於其中不驚不懼者是爲入不二法門
상선(上善, Suvinīta)보살은 말하였다.
“몸[身, kya]과 입[口, vgmana]과 마음[意, savara]과 그 행위[善]를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하나 이 세 가지 행위[三業]에는 어느 것에도 행위[業]로서의 모습이 없습니다[無作相, anabhisaskralakana]. 몸의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은 그대로 입의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이며, 입의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은 그대로 마음의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입니다. 이들 세 가지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은 일체법의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입니다. 이같이 능히 행위가 없는 것[無作]을 아는 지혜에 따르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7_a_05L上善菩薩曰意善爲二是三業皆無作相身無作相卽口無作相無作相卽意無作相是三業無作相卽一切法無作相能如是隨無作慧是爲入不二法門
복전(福田, Puyaketra)보살은 말하였다.
“(욕계의 선행인) 복행(福行, puybhisaskra)과 (10악도의 악행인) 죄행(罪行, apuyabhisaskra)과 (색계, 무색계의 선행인) 부동행(不動行, nijybhisaskra)50)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하나 이들 세 가지 행의 본성[實性]은 그대로 공한 것입니다. 공이므로 거기에는 선행도 악행도 없습니다. 이 세 가지 행위에 아무런 차별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7_a_10L福田菩薩曰福行罪行不動行爲二三行實性卽是空空則無福行無罪無不動行於此三行而不起者爲入不二法門
화엄(華嚴, Padmavyha)보살은 말하였다.
“아(我)로부터 나와 남의 두 가지 구별을 일으켜 서로 대립한 두 가지라 하지만, 아의 진실한 모습을 (공이라고) 보는 사람[見我實相者, taparijna]은 (남과 나라고 하는) 두 가지 분별[二法]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만약 이 두 가지 것에 집착[住]하지 않으면 (나와 남이라는) 식별함이 있을[有識, vijna] 수 없고, 식별되는 것[所識, vijpti]도 없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7_a_14L華嚴菩薩曰從我起二爲二見我實相者不起二法若不住二法則無有無所識者是爲入不二法門
덕장(德藏, rīgarbha)보살은 말하였다.
“집착할 대상이 있는 것[有所得相, lambana prabhvita]을 대립하는 둘이라고 합니다. 만약 (제법이 공하다고 깨달아) 집착할 대상이 없다면[無所得, nirlambana] 취하거나 버릴 것은 없습니다.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7_a_17L德藏菩薩曰有所得相爲二若無所則無取捨無取捨者是爲入不二法門
월상(月上, Cantrottara)보살은 말하였다.
“어둠[闇, tamas]과 밝음[明, jyotis]을 서로 대립한 둘이라고 하나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으면 둘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예컨대 모든 마음의 작용이 다해 버린 적정한 삼매의 경지[滅受相定, saj-vedayita-nirodha- sampatti]에 들면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는 것과 같이 일체법의 모습도 그와 같기 때문이니, 그 안에서 평등하게 깨달아 들어가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7_a_20L月上菩薩曰闇與明爲二無闇無明則無有二所以者何如入滅受想定無闇無明一切法相亦復如是於其中平等入者是爲入不二法門
009_0997_b_02L보인수(寶印手, Ratnamudrhasta)보살은 말하였다.
“열반을 즐기는 것[樂涅槃, nirvbhirati]과 세간(世間)을 좋아하지 않는 것[不樂世間, sasraparikheda]을 둘이라고 하지만,만약 열반을 즐기지도 않고 세간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라면 곧 이 둘의 대립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번뇌의 속박이 있으면[有縛] 해탈이 있어야 할 것이지만, 만약 본래부터 속박된 것이 없다면 그 누가 해탈을 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면 곧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7_a_24L印手菩薩曰樂涅槃不樂世間爲若不樂涅槃不厭世閒則無有二所以者何若有縛則有解若本無縛其誰求解無縛無解則無樂厭是爲入不二法門
주정왕(珠頂王, Maikarja)보살은 말하였다.
“바른 길[正道, marga]과 삿된 길[非道, kumrga]을 서로 대립한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른 길에 머무는 사람은, 이것은 삿되고 저것은 옳다고 분별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차별을 떠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7_b_06L珠頂王菩薩曰正道邪道爲二住正道者則不分別是邪是正離此二者是爲入不二法門
낙실(樂實, Satyarata)보살은 말하였다.
“진실[實, satya]과 거짓[不實, m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보는 사람은 오히려 진실이라는 것 자체를 보지 않는데, 하물며 거짓을 보겠습니까? 왜냐 하면 (진실은) 육안(肉眼, msacakus)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지혜의 눈[慧眼, prajcakus]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면서도 이 지혜의 눈은 본다, 보지 않는다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009_0997_b_09L樂實菩薩曰不實爲二實見者尚不見實何況非實所以者何非肉眼所見慧眼乃能見而此慧眼無見無不見是爲入不二法門
이와 같이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설하고 나자 문수사리(文殊師利, Majurī)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불이법문[不二法門, advaya dharmamukha]에 깨달아 들어가는 것입니까?”
009_0997_b_13L如是諸菩薩各各說已問文殊師利何等是菩薩入不二法門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제 생각 같아서는 일체법에 대해서 말이 없고[無言], 설함도 없으며[無說], 가리키는 일도 없고[無示], 식별하는 일도 없으며[無識], 모든 질문과 대답을 떠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009_0997_b_15L文殊師利曰如我意者於一切法無言無說無示無識離諸問答是爲入不二法門
이 때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저희들은 각자가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였습니다. 당신께서 말하실 차례입니다. 어떤 것을 보살의 입불이법문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009_0997_b_18L於是文殊師利問維摩詰我等各自說已仁者當說何等是菩薩入不二法門
그 때 유마힐은 오직 아무런 말 없이[黙然]51) 침묵하였다.
009_0997_b_21L時維摩詰默然無言
문수사리는 감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고 참으로 훌륭합니다. 문자(文字)로도 언어의 설명[語言]까지도 전혀 없는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불이의 경지에 깨달아 들어가는 법문입니다.”
009_0997_b_22L文殊師利歎曰善哉善哉乃至無有文字語言是眞入不二法門
009_0997_c_02L이와 같이 입불이법문품을 설할 때, 이곳에 모인 대중들 가운데5천의 보살들 모두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009_0997_b_24L說是入不二法門品時於此衆中千菩薩皆入不二法門得無生法忍
維摩詰所說經卷中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이하에 현장 및 티베트 역에 있는 구절이 빠져 있다. 현장 역에 의하면 “이미 어떠한 문답에도 매듭을 지을 수 있으며, 자신이 있으며, 자유자재하여 어리석은 자의 변설로써 대적할 수가 없다”고 했다.
  2. 2)이 부분의 티베트 역은 “공성(空性)이므로 공이다”라고 되어 있다.
  3. 3)사람의 본성은 청정하며, 번뇌는 실제로는 본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번뇌를 마치 주인에 대해 손님과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4. 4)보살행이 모든 장애를 극복했다고 하는 것에는 번뇌의 극복과 수도하여 성불하는 것을 방해하는 악마의 소행이 있다. 이 두 가지를 극복하였음에도 계속해서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것은 본래 보살은 중생의 제도에 뜻이 있고 자기만의 수행에는 뜻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자의 장애는 자신의 수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장애이며, 후자의 장애는 중생제도 과정에서 생기는 장애이다. 따라서 이 후자의 장애는 중생이 있는 한 무한히 계속된다.
  5. 5)“사견 속에 들어간다”를 지겸․현장․티베트 역은 나집과 반대로 번역하고 있다. 지겸 역을 예로 들면 “온갖 견해를 가졌음에도 무욕(無欲)하다” 하였다.
  6. 6)심소(心所)와 같은 것, 즉 마음에 소속된 여러 가지 정신작용이다.
  7. 7)선정 이하를 나집은 “선정(禪定)․해탈(解脫)․삼매(三昧)”라고 번역했고, 현장은 “정려(靜慮)․해탈(解脫)․등지(等持)․등지제정(等至諸定),” 티베트 역은 “선정(禪定)과 평등(平等)과 삼매(三昧)에 드는 것”으로 번역했다.
  8. 8)이 부분을 현장은 “신(身)․수(受)․심(心)․법(法)을 멀리하는 행위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여 일치하고 있으나, 티베트 역에서는 “신․수․심․법을 진실로 행처(行處)로 하지 않는다” 하여 뜻이 반대다.
  9. 9)색(色)이나 형(形)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10. 10)나집은 ‘응도자(應度者),’ 지겸은 ‘이인(異人),’ 현장은 ‘신통력(神通力)의 조복자(調伏者),’ 티베트 역에서는 ‘신통에 의하여 화한 타인(他人)들’이라 하였다.
  11. 11)이 말은 세계의 성립과 괴멸의 과정이 끝났다고 하는 뜻을 포함한다.
  12. 12)사천왕, 혹은 범천, 대자재천이라고도 한다. 색계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세계의 주(主)라고도 하며, 혹은 욕계의 제6천(第六天)이라고도 한다.
  13. 13)자기만의 깨달음에 정진한 성자나, 깨달았어도 남에게 설하려고 하지 않는 부처를 이에 비유한다.
  14. 14)나집은 “여전구주(如電久住)”라고 번역했고, 현장 역에는 이 비유가 없고, 티베트 역에는 이 다음의 “제6음(第六陰),” 그 다음의 “제13입(第十三入),” “제19계(第十九界)”가 없다. 그러나 반대로 현장과 티베트 역에는 나집 역에 없는 “거북의 털로 만든 의복(衣服),” “젊어서 죽은 사람의 정욕(情欲)의 즐거움” 등이 있다.
  15. 15)만물의 구성 요소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대뿐이고, 다섯 번째로 존재하는 원소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16. 16)모든 차별을 버린 마음의 평등.
  17. 17)현장은 ‘무주(無住),’ ‘무소주(無所住),’ 티베트 역에서는 ‘의지하는 곳이 없는 것’이라 했다.
  18. 18)출가자가 지키도록 지어진 계율로, 예를 들면 사미(沙彌)는 그 10계(戒) 중에 향을 바르거나 장신구(裝身具)를 몸에 붙이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꽃이 몸에 붙어 있는 것은 출가가의 계율을 어기는 결과가 된다.
  19. 19)천녀가 사리불을 부를 때의 호칭은 기년(耆年), 기구(耆舊)이다. 티베트 역에서는 사리불 앞에 반드시 ‘존자(尊者)’를 붙여 존칭을 쓰고 있다. 여기에서는 불도수행에 오랜 세월을 정진하여 지혜와 학덕이 높은 출가자라는 뜻으로 ‘고덕(古德)’이라고 번역했다.
  20. 20)언설문자(言說文字)를 입에 담는 사람이다.
  21. 21)설(說)해지는 그 내용이다.
  22. 22)전달의 매개체인 음성(音聲)이다.
  23. 23)깨닫지 못하였으면서도 깨달았다고 하는 교만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다.
  24. 24)황금색의 꽃을 피우는 식물로 향기가 좋고, 껍질과 잎과 꽃에서 향료를 취한다.
  25. 25)무동(無動) 혹은 무동불(無動佛)이라 번역. 노(怒)와 음욕(淫欲)을 끊고서 서원하여 부처가 되었다. 정토(淨土)의 해화불(解化佛).
  26. 26)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부처님의 다른 이름이다.
  27. 27)티베트 본에서는 “여인의 몸의 특징은 만들어지지도(kta) 않았고, 변해지지도(vikta) 않았습니다”고 되어 있다.
  28. 28)세상의 상태나 도리에 대하여 명철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을 어리석음이라 하고, 그것을 현상적으로 파악한 것이 무명(無明)이다. 무명은 12인연(因緣)에서는 모든 미혹의 근원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여기서는 티베트 역 ‘무지(無智)의 어두움’이라는 뜻에 근거를 두고, 다만 ‘어리석음’이라고만 번역하였다. 또 이 대문의 나집 역은 다른 번역에서 보이는 아수라의 세계에 관한 부분이 없다.
  29. 29)이 대문의 나집 역은 “시행탐욕(示行貪欲)”으로 “탐욕(貪欲)을 행하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장은 “행탐욕행취(行貪欲行趣)”로 번역하고 있다. 이하에 있어서도 이 ‘행취(行趣)’의 표현을 인용한 ‘세계(世界),’ ‘장소(場所)’ 등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행(行)’은 ‘간다’는 뜻이며, 그것은 보살이 스스로 그에 타당한 업을 지어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티베트 역에서도 “탐욕(貪欲)이 있는 중생에게로 간다”고 했다.
  30. 30)‘인색하고 탐욕스런 모습’ 이하의 여섯 가지를 불교에서는 청정한 마음을 가리게 하는 여섯 가지 장애라는 뜻의 ‘6폐(蔽)’라고 한다. ①간탐(慳貪), ②파계(破戒), ③진에(瞋恚), ④해태(懈怠), ⑤산란(散亂), ⑥우치(愚痴)이다.
  31. 31)중생의 마음이 과보를 받아 거기에 머물기를 구하는 일곱 가지 안식처이다. ①욕계의 인간이나 천상의 세계 및 겁의 초기를 제외한 색계의 초선천(初禪天)인 신이상이식주처(身異想異識住處), ②겁 초기의 초선천인 신이상일식주처(身異想一識住處), ③제2선천(第二禪天)인 신일상이식주처(身一想異識住處), ④제3선천인 신일상일식주처(身一想一識住處), ⑤무색계(無色界)의 공무변천처(空無邊天處)인 공무변처(空無邊處), ⑥무색계의 식무변천(識無邊天)인 식무변처식주처(識無邊處識住處), ⑦무색계의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인 무소유처식주처(無所有處識住處)이다.
  32. 32) 8정도에 반대되는 것이다.
  33. 33)석존도 인과의 법에 따라 전생의 인연에 의하여 금생에서 받는 아홉 가지 고뇌가 있었다 한다. ①깨달음을 얻기 전의 6년 동안의 고행, ②바라문의 여인 손타리(孫陀利)가 한 비방(誹謗), ③전다녀(旃茶女)가 아이를 배태했다고 하는 비방, ④제바달다(提婆達多)가 바위를 떨어뜨려 발가락에 상처를 입힌 것, ⑤목창(木槍)으로 발을 다친 일, ⑥석가족이 유리왕(流離王)에게 살육을 당한 일, ⑦아기달다(阿耆達多) 바라문의 초청을 받아 마맥(馬麥)을 여러 달 동안 먹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일, ⑧동지 전후의 8일간을 3의(衣)만으로 추위를 견뎌야 했던 일, ⑨걸식(乞食)을 나갔어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다.
  34. 34)이 대문을, 나집은 “불법(佛法)으로 다시 되돌아온다”고 했으나 승조(僧肇)는 이것을 주석하여 “범부는 법(法)을 듣고 능히 불(佛)의 종(種)을 이을 수가 있으니, 곧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여 불법으로 되돌아옴[反復]이 있다(僧肇 選, 󰡔注維摩詰經󰡕, 卍續藏 27, p.492下)”고 했다. 현장, 티베트 역은 “불은(佛恩)에 보답한다”이다.
  35. 35)7정(淨)이라고도 한다. 청정한 행을 비유한 것이다. ①일상생활을 청정하게 하는 것[戒淨], ②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心淨], ③청정한 지혜에 의하여 신견(身見)을 끊고 바르게 보는 것[見淨], ④바르게 보고 의혹을 끊는 것[度疑淨], ⑤정도(正道)와 사도(邪道)를 바르게 보는 것[分別道淨, 道非道淨], ⑥번뇌를 끊고 지혜가 밝은 것[行斷知淨, 行知見淨], ⑦깨달음을 얻는 것[涅槃淨, 斷知見淨]이다.
  36. 36)나집의 설명에 의하면, 산스크리트 원본에는 ‘화합(和合)’이라고 되어 있다 하며, 그 화합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데, 수레를 잘 몰아서 마음대로 운전할 수 있는 것처럼 잘 다스리는 것을 화합이라고 했다(󰡔주유마힐경󰡕, 卍續藏 27, p.496上~下). 현장과 티베트 역에는 “깨달음에 나아가는 마음”이라고 되어 있으며, 지겸도 ‘도심(道心)’이라고 번역하여 같은 의견이다. 깨달음에 나아가는 마음은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는 마음이다.
  37. 37)7성재(聖財)라고도 한다. ①바른 가르침을 믿는 것[信], ②계를 지키는 것[戒], ③보는 것을 버려서 보시하는 것[施], ④바른 가르침을 많이 듣는 것[聞], ⑤진실한 지혜를 얻는 것[慧], ⑥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것[慚], ⑦타인(他人)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愧]이다.
  38. 38)비구가 걸식으로 깨끗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
  39. 39)①5온(蘊:五陰)은 죽음이 작용하는 대상이므로 이는 악마이다[五陰魔], ②번뇌는 내생(來生)의 근원이며 죽음을 초래한다[煩惱魔], ③죽음 그 자체[死魔], ④죽음을 초월하고자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天子魔]이다.
  40. 40)이하의 문장을 현장은 “번뇌와 청정함이 둘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알 때, 분별은 없고 깊이 분별을 끊어서”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현장의 역문을 참고했다.
  41. 41)이 부분에 대해서 현장은 “산동(散動)과 사유(思惟),” 티베트 역에서는 “동요(動搖)와 집착(執着)”이라고 했다.
  42. 42)현장, 티베트 역은 “유죄와 무죄”이다.
  43. 43)여기서 말하고 있는 ‘생각’을 나집은 ‘상(相)’이라고 했으나, 전문(前文)과의 관계로 보아 ‘상(想)’이 옳을 듯하고, 현장과 티베트 역도 ‘상(想)’이다. 또 이곳을 ‘상(相),’ ‘무상(無相)’이라고 한다면, 앞의 선안(善眼)보살과 중복되므로 지금은 ‘상(想),’ ‘무상(無想)’으로 번역했다.
  44. 44)이 부분의 티베트 역은 “이것은 업이다, 이것은 불업이다”이다.
  45. 45)이 부분은 현장 역, 티베트 역이 모두 일치하지 않고 뜻을 파악하기 힘들다. 󰡔주유마힐경(注維摩詰經)󰡕에 따르면 “무상은 공을 깨닫는 처음의 관문이니, 존재를 깨뜨려도 다 없어지지 않음을 부진(不盡)이라고 이름한다. 내지는 한 생각이라도 않으면 생할 것이 없으니, 생할 것이 없다면, 생이 다한다. 생이 다하면 곧 끝내는 공적[畢竟空]하니, 이를 진(盡)이라 이름한다”고 나집은 풀이하였다.(卍續藏 27, p. 504上)
  46. 46)허공(虛空)을 말한다. 즉 공간으로서 일체가 걸림이 없이 그 안에 안주시킬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또 이 부분은 현장 역과 같이 “네 가지 원소(元素)와 공(空)과는” 하는 것이 더 이해를 빠르게 한다.
  47. 47)앞의 선안(善眼)보살이 “일상(一相)과 무상(無相)”이라고 대립해서 이야기했고, 또 선안(善眼)보살의 이야기와 지금 것이 같지 않으므로 현장 역 ‘일리(一理),’ 티베트 역의 ‘일리취(一理趣)’를 참고하였다.
  48. 48)심(心)․의(意)․식(識)을 나집은 공 이하의 세 가지 것에 관계시켜 이것들이 없는 것에는 심․의․식의 세 가지 작용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지겸, 현장, 티베트 역에서는 모두 “이 세 가지 것을 바라는 생각이 없는 것[無作․無願]”이라고 했다.
  49. 49) 이 부분을, 현장은 “불(佛)의 본성(本性:法性)은 그대로 법의 본성,” 티베트 역에서는 “불의 본성은 가르침이다,” “가르침의 본성은 승단(僧團)이다”고 했다.
  50. 50)나집의 설명에 의하면, 복덕은 욕계의 선행으로 업의 과보를 가져오고, 악행은 10불선도(不善道)를 행하는 것으로 고의 과보를 가져오며, 무동행(無動行), 즉 부동행(不動行)은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행위라고 주석했다.(卍續藏 27, p.506下)
  51. 51)이것을 ‘유마의 일묵(一黙),’ ‘묵불이(黙不二)’라고 하며, 이것을 찬탄해서 선가에서는 흔히 “유마의 일묵(一黙)이 만뢰(萬雷)와 같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