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179_T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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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67_a_01L
불설아사세왕경(佛說阿闍世王經)1) 상권 - 010_1367_a_01L佛說阿闍世王經卷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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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後漢) 월지삼장(月氏三藏) 지루가참(支婁迦讖) 한역
현성주 번역 - 010_1367_a_02L後漢月氏三藏支婁迦讖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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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들었다. - 010_1367_a_03L聞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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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부처님께서 1만 2천 비구와 함께 왕사성(王舍城)의 기사굴산(祇闍崛山)에 계셨다.
또 이 자리에 참석한 8만 4천 보살은 낱낱이 다 매우 훌륭하고 뛰어난 분으로서, 모두 온갖 총지법문(總持法門)2)을 얻어서 걸림이 없는 변재[無所罣閡欲]3)를 지녔으며, 무생법인(無生法忍: 無所從生法)4)도 깨달았다. 또 삼매(三昧)의 지혜를 얻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위를 알아내고, 사람들이 원하는 경계를 따라서 설법하고 교화하여 알맞은 자리를 얻도록 하였다. - 010_1367_a_04L一時佛在羅閱祇耆闍崛山中,萬二千比丘俱,菩薩八萬四千,一一尊復尊,諸菩薩摩訶薩,悉得諸摠持、悉得無所罣閡欲、悉得無所從生法,而得如是三昧慧,悉得知一切人心之所行,如所欲以法教,令各得其所。
- 그리고 모든 사천왕(四天王)ㆍ제석천왕(帝釋天王)ㆍ제석천의 모든 천자(天子)ㆍ용ㆍ열차(閱叉:夜叉)ㆍ건타라(揵陀羅:乾闥婆)ㆍ아수륜(阿須倫:阿修羅)ㆍ가류라(迦留羅:迦樓羅)ㆍ진타라(眞陀羅:緊那羅)ㆍ마휴륵(摩休勒:摩睺羅伽) 등 사람 모양이면서 사람 아닌 무리[人非人]도 다 이 법회에 참석하였다.
- 010_1367_a_09L諸四天王及天帝釋,釋天及諸天子,龍、閱叉、揵陁羅、阿須輪、迦留羅、眞陁羅、摩休勒、人非人悉來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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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문수사리(文殊師利)보살은 그 산의 다른 한 쪽에서 훌륭한 스물다섯 사람들과 함께 자리하였다. 이 스물다섯 사람은 다 보살로서 각각 이름이 있었다.
야나사리(若那師利)ㆍ나라달(那羅達)ㆍ사리삼파(師利三波)ㆍ사리겁(師利劫)ㆍ파두사리겁(波頭師利劫)ㆍ사인타루(闍因陀樓)ㆍ다라니타루(陀羅尼陀樓)ㆍ라타파니(羅陀波尼)ㆍ라타모하다(羅陀牟訶多)ㆍ사하말(私訶末)ㆍ사하유가사구라(私訶惟迦闍俱羅)ㆍ가나가사(加那迦闍)ㆍ사하질두파침마차가(沙訶質兜波沈摩遮迦)ㆍ파괄진차살화파타(波栝鎭遮薩★波陀)ㆍ파지반구리(波坻盤拘利)ㆍ사갈말(沙竭末)ㆍ마하예루(摩訶麑樓)ㆍ기비타차아난타(耆非陀遮阿難陀)ㆍ비차파무(譬叉波貿)ㆍ기라야아난타(耆羅耶阿難陀)ㆍ아람유하라마저타(阿藍惟訶羅摩抵吒)ㆍ사모가저타(沙牟迦抵陀)ㆍ아유달(阿喩達)ㆍ살화알(薩和頞) 등이 훌륭한 스물 다섯 사람의 이름이다.5) - 010_1367_a_12L時文殊師利在山一面異處,與二十五上人俱。何謂二十五人者?悉是菩薩,各各有名,名曰:若那師利、那羅達師利、三波師利、劫波頭師利、波頭師利、劫闍因陁樓、陁羅尼陁樓、羅陁波尼、羅陁牟訶多、私訶末、師訶惟迦闍、俱羅加那迦闍、沙訶質兜波沈、摩遮迦波、栝鎭遮薩、和波陁波、坻盤拘利沙竭末、摩訶麑樓耆非、陁遮阿難陁、譬叉波貿耆、羅耶阿難陁、陁藍惟訶羅、摩抵咤沙、牟迦抵陁、阿喩達薩和頞悉,是爲二十五上人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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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67_b_02L네 도술천자(兜術天子:兜率天子)가 문수사리보살의 처소로 와서 법을 듣고자 하였다. 그 천자들의 이름은 사마타구칙마라(沙摩陀鳩遫摩羅:普等華)ㆍ무구칙마(無拘遫摩:光明華)ㆍ만나라건타사하(漫那羅揵陀沙訶:天香華)ㆍ구술담유하(漚術曇惟訶:信法行得)이다. 그 외 다른 천자(天子)들도 조금씩 모여들어 문수사리의 처소에 와서 설법을 듣고자 하였다.
스물다섯 보살과 천자들은 다 함께 앉아서 각각 말하였다.
“부처님의 지혜는 너무나 훌륭하십니다. 그 끝을 알 수 없고, 말로 나타낼 수도 없고, 셀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보통으로는 그 서원[僧那]을 따를 수도 없습니다.”
이어 모두들 말했다.
“우리들은 마땅히 어떻게 법을 닦고 방편을 알아야만 끝없는 지혜에 이를 수 있으며, 나아가 부처님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체지(一切智)6)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 010_1367_b_03L四兜術天子來到文殊師利所,欲聞法故,其天子名沙摩陁鳩遬摩羅、無拘遬摩、漫那羅揵陁沙訶、漚術曇惟訶,是爲四天子。復有異天子少少,來到文殊師利所,欲聽法故。上人諸天子悉坐,各各說佛智慧甚尊,無有極不可議、不可度不可量、不可以凡而應僧那,皆言:“當何作法證方便而至無極智慧,乃至佛一切智不可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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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수(慧首)보살이 말했다.
“싫증 없이 부지런히 공덕을 쌓으면서 온갖 공덕에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7_b_12L慧首菩薩言:“於功德無有厭,於諸功德無所悕望,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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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시(惠施)보살이 말했다.
“진실 그대로 고요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기쁘고 부드럽게 스스로 그 가르침을 따른다면, 곧바로 일체를 다 아는 지혜[薩芸若]의 마음을 지니게 되고 큰 서원[僧那僧涅]7)은 더욱 견고해집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마땅히 끝없는 지혜8)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7_b_14L惠施菩薩言:“等心如寂,其心悅懌柔軟,自隨其教,便持薩芸若心而堅固於僧那僧涅,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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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족평등(具足平等)보살이 말했다.
“겁수(劫數)를 세지 않고 닦아야 합니다. 미래의 겁이 한량없이 멀지라도 헤아리지 않고 닦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스스로 그 서원을 높이 떠받쳐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7_b_17L具足平等菩薩言:“不計挍劫數,其當來劫無央數不可以爲計,是爲僧那。於僧那不自貢高,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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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족행(具足行)보살이 말했다.
“자신의 편함만을 생각하지 않아야 끝없는 지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일체중생을 다 편하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야만 더 이상 자기의 편함을 구하지 않고 일체를 다 편안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마땅히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7_b_20L具足行菩薩言:“不自念安,可至無極慧。所以者何?欲令一切皆安故。作是念者,不求復悉安一切,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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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구족(蓮華具足)보살이 말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려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스려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려 굴복시킬 수 있어야만, 다른 사람의 마음도 다스려 굴복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마땅히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7_b_23L蓮花具足菩薩言:“其不自伏意者,亦不能伏他人意。其能自伏意者,乃能伏他人意,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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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67_c_02L연화구행겁(蓮華具行劫)보살이 말했다.
“욕망의 번뇌를 따르는 자는 욕망의 번뇌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욕망의 번뇌를 따르지 않아야만 비로소 그 욕망의 번뇌에서 벗어납니다. 그러한 보살은 이익을 얻거나 이익을 얻지 못하거나 그 마음에 변함이 없습니다. 또 괴롭거나 즐겁거나 비방을 당하거나 칭찬을 받거나 나쁜 일이거나 좋은 일이거나, 일체 집착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근심하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7_c_03L蓮花具行劫菩薩言:“其有隨欲者不可度欲,不隨欲者是乃度欲。其菩薩者得利不得利其心無有異,若苦若樂、若謗若歎、若惡若善於是無所著。所以者何?亦不憂亦不喜。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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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제근(制持諸根)보살이 말했다.
“다른 사람의 공덕으로 자기의 공덕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끝없는 지혜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마땅히 자기 혼자일 뿐 벗도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일체중생을 생각하여 닦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갖추지 못하는 공덕을 나는 마땅히 갖추리라는 각오로 잠시도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일체중생을 교화하려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7_c_08L制持諸根菩薩言:“不念他人作功德我可得,作是者不入無極慧。當念獨而無有伴。所以者何?念於一切故。諸不辦者我當辦之,須臾精進不以懈怠,欲教一切。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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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행여지(持行如地)보살이 말했다.
“비유하면 땅과 같습니다. 일체 초목과 약초와 집들과 성곽 등이 땅을 의지하여 머물지 않음이 없으나, 땅은 이들을 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체가 땅을 우러러보면서 살아가지만 땅은 부담스럽거나 번거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보살은 마땅히 이렇게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당연히 땅처럼 기뻐하거나 성냄이 없는 마음을 지니고 일체중생에게 각각 알맞은 자리를 얻게 하면서도 되돌려 받겠다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7_c_13L持行如地菩薩言:“譬若如地一切草木藥舍宅城郭,無不因地而住者,地亦無所置。一切仰而得活,亦不以爲煩荷。菩薩者亦當如是持心,當若地亦不喜怒持心,當令一切各各得其所,亦不念還復。其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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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68_a_02L보원(寶願)보살이 말했다.
“마땅히 거룩한 마음을 지닐지언정 스스로 비굴하지 않아야 하며, 꿈속이라도 두 갈래의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 하면 나한(羅漢)이나 벽지불(辟支佛)의 뜻을 두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보배처럼 귀중한 보살정신을 떠나지 않고, 모든 사람을 깨우치려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또 진귀한 보배를 탐하거나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누가 그 보배를 찾을지라도, 다 베풀어 깨우치면서 대승[摩訶衍]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무심(無心)의 경지가 이 마음과 평등하고, 무심(無心)의 지혜가 이 마음의 지혜와 평등한 사람은불어나는 일도 없고, 줄어드는 일도 없어서 그 마음에 탐하거나 아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7_c_19L寶願菩薩言:“當持心如尊不自卑,於夢中亦無二心。所以者何?無羅漢、辟支佛意。其所作者,譬若如寶不離菩薩,若不失一切人心,於珍寶心無所貪惜,其從索者皆開導爲摩訶衍。所以者何?無心與心等者,無心慧與是心慧等者,亦無所增無所減,其心無所貪惜。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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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수(寶印手)보살이 말했다.
“다섯 세상에서 나고 죽는 사람들을 보면 바다에 빠져 괴로워하는 것으로 여기고, 이들을 가엾게 여기면서 일체를 다 아는 지혜[一切智]의 손길로 건져줘야 합니다. 왜냐 하면 지식이 없는 이를 지식의 으뜸이 되도록 하고, 탐욕이 많은 이를 아낌이 없는 자 가운데 으뜸이 되도록 하며, 계를 지키지 않는 이를 지계(持戒)의 으뜸이 되도록 하고, 많이 성내는 이를 인욕(忍辱)의 으뜸이 되도록 하며, 게으른 이를 정진의 으뜸이 되도록 하고, 마음이 어지러운 이를 선정[一心]의 으뜸이 되도록 하며, 지혜가 없는 이를 지혜의 으뜸이 되도록 하고, 공덕이 없는 이를 공덕의 으뜸이 되도록 하면서, 공덕의 으뜸으로 세 가지 법보[三法寶]를 깨치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 법보(法寶)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일체중생을 교화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충분히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일이요, 둘째는 스스로 그 몸이 보배처럼 진귀한 공덕임을 알도록 하는 일이며, 셋째는 일체 온갖 법이 허공처럼 텅 비었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보(法寶)의 으뜸으로서 이를 셋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8_a_04L寶印手菩薩言:“視五道生死人譬如墮海,菩薩若心而愍念之,當以手授之。所以者何?爲無黠者作黠首,其貪者爲作無所惜首,其不持戒者爲作戒首,其瞋怒者爲作忍辱首,其懈怠者爲作精進首,其亂意者爲作一心首,其無慧者爲作智慧首,其無功德者爲作功德首,以功德首印三法寶。何謂三?令一切具足佛智慧教化而造作,自解其身珍寶功德,念一切諸法譬如空,是故爲法寶之首,是爲三。其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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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師子意)보살이 말했다.
“그 몸에 서원[僧那]을 세운 이는 겁내거나 두려운 일이 없고 무서워하지도 않으며, 물러나지도 않고 흐트러지지도 않으므로 털이 곤두서도록 놀라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나고 죽음을 싫어하지도 않고 열반[泥洹]을 닦지도 않으면서, 괴로움과 즐거움에 평등하게 머물러 두 마음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8_a_15L師子意菩薩言:“其身作是僧那者,無所恐懼亦不畏,亦不卻亦不解衣,毛不復起。所以者何?於生死無有惡故。亦不作於泥洹,等住於苦樂不作二心。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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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68_b_02L사자보과무구(師子步過無懼)보살이 말했다.
“그 근기가 약하고 열등한 자는 이 끝없는 지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보살은 이 끝없는 지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뛰어난 보살은 온갖 악을 버리고 사특하지 않으며, 질박한 경지를 그대로 따르면서 자신을 높이 받들어 교만하지 않으니, 성내는 마음도 없고, 잘못된 법을 따라 행하는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뛰어난 보살은 진실하고 바른 법을 닦아 탐욕[婬]과 질투가 없고 나쁜 마음이 없으나,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이 캄캄하여뛰어난 보살의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리석은 사람은 몸과 입과 뜻을 평등하게 닦아서, 말한 대로 실천하고 뜻을 잃지 않는 가운데 매우 훌륭한 경지를 성취하겠다는 뜻을 세워야 합니다. - 010_1368_a_20L師子步過無懼菩薩言:“其弱劣者不能逮此,是者大士之所作。所以者何?以捨衆惡、以不諛諂、以應質朴,則不貢高、無瞋恚之心,所作不從非法。所以者何?用忠政故則無婬嫉,以無惡心其愚癡若冥,以無此者其身口意以平等,所語如語不失其意,甚尊所作欲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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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 하면 지극히 진실한 경지를 닦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법과 함께 스스로 즐기고 법대로 행하면서, 수명(壽命)을 탐하거나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몸과 목숨을 탐하지도 않고 일체중생을 버리지도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탐내거나 아끼는 일 없이 베풀면서, 사람들에게 그 알맞은 자리를 얻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바른 경지에 들어가면 잘못된 길이 없어집니다.
가난한 이에게는 진귀한 보배의 창고가 되고, 병든 이에게는 의사가 되며, 두려운 이에게는 보호자가 되고, 나약한 이에게는 도의 자리[道地]를 마련해 주며, 잘못된 길로 들어간 이에게는 바른 인도자가 되고, 지혜가 없는 이에게는 지혜의 길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일체가 다 순조롭게 따르리니, 그 어떤 원한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뛰어난 보살은 이러한 해탈법인(解脫法忍)에서 법을 받아 지니고, 본래대로 머무는 것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라야 비로소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8_b_04L所以者何?用至誠故俱以法自娛樂。以如法者不貪惜壽命。所以者何?不貪軀命、不捨一切故。所施與無所貪惜,欲令人得其所故。所入者正則非邪道。其貧者爲作珍寶藏,其有病者則爲作醫,其恐懼者則爲作護,其劣者則爲作道地,其入邪者則爲作政導,其無智者則爲作智,一切諸順何所恨起意。大士以度脫此中忍,所受法本如住。作是者乃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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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마금색(紫磨金色)보살이 말했다.
“생각을 허공처럼 넓게 써야 합니다. 왜냐 하면 두루 미치지 않은 곳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대비[大哀]를 베풀어서 모자람 없이 덮는다면, 그 마음은 항상 즐겁고 그 얼굴은 언제나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온갖 욕망으로 즐기는 일은, 그 마음이 허망하여 그 가운데 있지 않으나, 보시[所施與]9)는 하늘이 덮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 지계(持戒)와 인욕(忍辱)과 정진(精進)과 일심(一心:禪定)과 지혜(智慧)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8_b_14L紫磨金色菩薩言:“所念譬如空。所以者何?無所不遍。以大哀無所不覆,其心常喜面頰而悅,諸所欲樂者其心不在其中,所施與譬如天無所不蔽,其戒、忍辱、精進、一心、智慧亦復如是。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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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의즉전법륜(發意卽轉法輪)보살이 말했다.
“새로 발심한[新發意]이가 있으면 마군(魔軍)이 그 틈을 엿볼 수 없도록 도와서, 모든 부처님과 하늘과 신들의 보호하는 뜻을 잃지 않고, 마음을 내어 머물 때마다 마땅히 법륜(法輪)을 굴려야 합니다. 왜냐 하면 훌륭한 마음을 일으키면서도, 또한 일체의 온갖 법에 마음을 일으키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8_b_20L發意卽轉法輪菩薩言:“其有新發意者,不當令魔得其便,不失諸佛天神意,作心住者以應法輪轉。所以者何?用發好心故。所以者何?一切諸法無所生。其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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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68_c_02L제어자연보무불입(諸語自然普無不入)보살이 말했다.
“마땅히 마음을 가지고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모든 법은 본래 자연 그대로 다 공(空)하기 때문입니다. 일체 언어도 다 공하여 허공처럼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보살도 마땅히 이와 같이 그 마음이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어야 하고, 하는 일을 말한 대로 행하면서, 그 지혜로 밝히지 못할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8_b_24L諸語自然普無不入菩薩言:“當持心無所不入。所以者何?諸法自然其本悉空,一切所語皆空,譬若虛空無所不入。菩薩者當復如是,其心無所不入,有所作如語,其智無所不曉。其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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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부동(樂不動)보살이 말했다.
“온갖 존재의 음성(音聲)이 존재하지 않으니, 온갖 존재의 성향(聲響)은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치를 아는 이는 기뻐하지도 않고, 근심하지도 않으며, 게으르지도 않습니다. 왜냐 하면 태산은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림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살의 마음은 좋은 소리나 나쁜 소리에, 기뻐하지도 않고 근심하지도 않습니다. 왜냐 하면 집착할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집착할 대상이 없으면 부처님의 말씀이나 외도의 말도 모두 공하여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욕망의 세계[欲有]에서 하는 일은 다 사라지는 존재로 보고 사라짐을 알기 때문에, 자신을 떠받들어 교만하지 않습니다. 이 법을 닦는 이는 빠르게 성불(成佛)의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8_c_07L樂不動菩薩言:“諸所有音無有音,諸所有聲而不可得,以知是者亦不以喜、亦不以憂、亦不懈怠。所以者何?譬若泰山而得風亦無所動。諸好音惡音,菩薩心亦不以喜歡、亦不以憂慼。所以者何?無所著。無所著謂佛語。若異道語俱空無所有,視諸欲有所作者皆有盡,以知盡而不貢高。作是法者疾成至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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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海意)보살이 말했다.
“바다가 온갖 것을 받아들이듯 그 마음의 지혜가 끝이 없어야 합니다. 마치 바다가 온갖 강물을 받아들여 한 맛[一味]을 이루는 것처럼, 보살은 온갖 존재를 합하여 한 법을 이뤄야 합니다. 왜냐 하면 미묘한 법의 작용으로, 12인연(因緣)의 변화에 휩쓸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늘거나 줄지 않는 법신(法身)을 생각하는 가운데 일체중생을 위하여 공덕을 닦고, 그 닦은 공덕을 일체중생이 다 얻을 수 있도록 바란다면, 이것을 다함이 없는 공덕이라고 합니다. 이 공덕을 마땅히 보호하여 집착하지도 않고 끊지도 않으면서, 의지의 능력을 다하여 몸을 다스리면, 모든 존재의 작용은 다 평등하여 차별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닦으면서 의지(意志)의 지혜를 일으켜야만, 모든 것을 충분히 갖추고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8_c_15L海意菩薩言:“其心當如海所受,慧而無極。譬如海,受於衆流合爲一味。菩薩以諸所有合爲一法。所以者何?用微妙故。不與十二因緣有所變,念法身亦不增亦不減,爲一切作功德。所作功德欲令一切皆得,是爲不可盡功德。當護不著不斷,以意力制身,諸所有所作皆等無有異。作是故發意慧者,具足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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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69_a_02L대광명(大光明)보살이 말했다.
“마음에 부처님의 지혜와 광명을 갖추는 일은, 세속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보살은 광명을 닦아서 비추지 않는 곳이 없도록 하겠다는 뜻을 세워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 법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려면, 보시(布施)의 광명을 닦아서 비추지 않은 곳이 없어야 하고, 지계(持戒)의 광명을 닦아서 비추지 않은 곳이 없어야 하며, 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일심(一心:禪定)ㆍ지혜(智慧)의 광명을 닦아서 비추지 않는 곳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8_c_24L大光明菩薩言:“當持心,其智慧、其光明如佛,非俗人之所作,其意習光明無所不照。所以者何?欲令世閒知以爲法,則其意習施與光明無所不照,習戒光明無所不照,忍辱、精進、一心、智慧悉習,其光明無所不照。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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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명(焰明)보살이 말했다.
“공덕의 지혜로 마음이 밝아져서 색(色)을 본다면, 색은 청정하게 보이므로 싫어하지 않습니다.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촉감[細滑]ㆍ법(法)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또 여섯 가지 일도 청정해집니다. 여섯 가지 일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눈ㆍ귀ㆍ코ㆍ입ㆍ몸ㆍ뜻입니다. 여섯 가지가 다 청정하니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습니다. 마음이 청정하므로 보는 사람마다 다 불법(佛法)으로 들어오게 하여, 그 바르지 못한 이들을 법으로 이끌어 교화합니다. 좋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낌없이 베풀어주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9_a_07L焰明菩薩言:“以功德慧心爲眼,淸淨所視色無有惡,聲、香、味、細滑、法亦復如是,以淨於六事。何謂六?眼、耳、鼻、口、身、意。諸所可者不那中作樂,用心淨故。所視人欲令悉入佛法,其不正者以法率化,所有好物人來索之無所愛惜,旣與不從後悔。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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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69_b_02L가의왕(可意王)보살이 말했다.
“비록 어떤 사람이 헐뜯고 욕하면서 손과 발로 때리고 몽둥이로 칠지라도 성내거나 원망하지 않고, 단지 그 법만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할 법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이 욕하는가. 무엇이 성내는가. 무엇이 치고 때리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욕설과 성냄과 때림 등은 안으로 텅 비어 얻을 대상이 없고, 밖으로도 텅 비어 의심할 대상이 없으며, 자기의 몸에서도 볼 수가 없고, 다른 사람의 몸에서도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손과 발을 구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기쁘게 베풀어주고, 머리를 취하려고 할지라도, 더욱 기쁜 마음으로 베풀어주며, 비록 성(城)과 진귀한 보배를 원할지라도 그 원하는 사람에게 탐내거나 아끼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처와 자식을 원할지라도 다 베풀어주면서 다른 마음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이 경전을 독송하면서 한 장구(章句)를 얻고 기뻐할지언정 금륜왕(金輪王)10)의 환락을 좋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쉬지 않고 설법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발심(發心)하여 보살이 되기를 좋아할지언정 범천(梵天)11)이 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부처님 뵙기를 기쁜 마음으로 원할지언정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12)의 진귀한 보배를 탐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항상 게으르지 않고 기뻐하면서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9_a_14L可意王菩薩言:“其有罵詈撾棰者亦不瞋恚,但念其法。以何念法?何所罵者?何所瞋者?其撾捶亦爾。以內空無所得,於外空無所疑,身於身無所見,亦不見於他人。所以者何?其索手腳者歡喜與之,其欲取頭者其心倍悅,若索城及珍寶,其有索者無所貪惜,其求妻子卽持施與無有異心。若諷誦起是經得一章歡喜,不樂爲金輪王歡樂,爲一切人說法而不作釋,願樂造一人發心爲菩薩,不作梵天願樂見佛,不貪三千大千剎土之珍寶。作是者常無懈怠,如是歡喜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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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무저(所視無底)보살이 말했다.
“일체의 온갖 존재를 볼지라도 자기의 소유로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다 청정한 세계로 보면서 존재[有]하고 존재하지 않음[無]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부처님을 볼지라도 색상(色相)으로 구할 생각을 내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법신(法身)을 닦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마음만을 볼 뿐, 모든 사람의 소유를 구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그 공덕의 눈으로 청정한 경지에 이르면 도의 눈[道眼]과 신통을 갖추고, 이어 지혜의 눈[慧眼]을 얻어서 바로 온갖 존재에 탐할 대상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나아가 깨달음의 눈[佛眼]을 얻어 열여덟 가지 법[十八法]13)을 다 갖춘 뒤에, 법의 눈을 얻고 열 가지 힘[十力]14)을 갖추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큰 서원을 세운 이는 곧바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9_b_04L所視無底菩薩言:“視一切諸所有,不念是我所。悉淸淨剎土,不念有與無。見諸佛不想色求。所以者何?用法身故。視一切人心,不求一切人之所有。所以者何?其德眼逮得淸淨,便有道眼神足備具。以得慧眼便知所有無所可貪,便得佛眼,十八法悉具。以得法眼者具足十種力,其作如僧那僧涅者便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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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무저행(作無底行)보살이 말했다.
“짓는 일은 모두 일체를 다 아는 지혜[一切智]와 다름없이 지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머무는 대상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머무는 대상이 없는 경지에서, 모든 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보살이 이렇게 닦는다면 모든 순경계(順境界)15)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니, 어찌 다른 곳에 떨어지겠습니까. 죄의 경계에 떨어지는 일도 없으며 마군(魔軍)의 경계에 떨어지는 일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법을 버리지도 않고 비법(非法)을 범하지도 않으면서 이 경지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죄업(罪業)으로 생긴 마군(魔軍)의 일을 벗어나서 이를 따른다면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9_b_13L作無底行菩薩言:“一切所作如薩芸若所作。何以故?無所住故,以無所住但念諸法。菩薩作是者不以諸順,何爲墮?亦不以罪墮,亦不以魔事墮。所以者何?不捨法故、不犯非法以故致是,以度罪所作魔事。以應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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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식애의(說息愛意)보살이 말했다.
“ ‘일체의 소유(所有)는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짓는 일마다 곧바로 온갖 마군(魔軍)에 홀린 것임을 스스로 아는 사람은 소유하지도 않고, 더 이상 마에게 유혹 당할 일을 하지 않습니다. 마에 홀리는 일을 알고 더 이상 하지 않으면, 곧 다섯 쌓임[五陰]16)을 다스리게 됩니다. 다섯 쌓임을 알면 마의 일이 없습니다. 마의 경계를 벗어난 사람은 닦는 중간에 방해를 받지 않으니, 이미 해탈하여 어떤 장애도 받지 않습니다. 이렇게 행하는 뛰어난 보살은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9_b_19L說息愛意菩薩言:“一切所有者亦不從人受,以所作便唵嗒諸魔。以自知者無所有亦無所復作,以知無所復作便制五陰,以知五陰者無有魔事,以度魔界者所作中道無所覆蔽,已度無所覆蔽菩薩摩訶薩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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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69_c_02L소기즉회(所起卽悔)보살이 말했다.
“온갖 닦는 일이 잘못된 법이면, 마음으로 곧 뉘우쳐야 합니다. 닦는 일을 법대로 행하여 그 마음이 달라지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항상 온 마음을 기울여 반드시 선행(善行)을 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몸으로 닦은 훌륭한 법을 행하여 사람들에게 옳지 못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 입과 뜻으로 닦은 훌륭한 법을 행하여 사람들에게 옳지 못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또 만일 근심하는 이가 있다면, 관대한 법을 베풀어서 근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닦는 뛰어난 보살은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9_c_02L所起卽悔菩薩言:“諸所作非法意而悔之,所作如法其心無異。所以者何?常當專心作善,其身有所作,不欲令人不可。若口若意所作,不欲令人有不可。其有愁憂者,以法寬大令不愁憂。作是者是爲菩薩摩訶薩,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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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일체원(得一切願)보살이 말했다.
“어떤 사람이 청정한 계(戒)를 지녀서 소원을 성취하고 청정한 계를 따라 행한다면, 더 이상 세속을 범하지 않습니다. 세속을 범하지 않으면, 37품(品)17)의 근본과 호응하여 일체를 다 아는 지혜와 다르지 않으니, 이것이 청정한 계법(戒法) 그대로 37품을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뛰어난 보살의 행이라고 하며, 이 행으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 010_1369_c_09L得一切願菩薩言:“其有如淨戒者所願必得,以如淨戒者不復犯俗,不犯俗者以應三十七品根林如薩芸若。其以如淨戒者不犯三十七品。是爲菩薩摩訶薩所作以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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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등화(普等華)천자가 말했다.
“나무에 꽃이 피면 이를 보고 좋아하는 것처럼, 일체중생은 닦은 공덕의 은혜를 입고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비유하면 도리천상(忉利天上)의 구기(拘耆) 나무에 꽃이 만발하면, 모든 하늘이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듯이, 법으로 일체중생의 안목이 되는 보살도 꽃과 같습니다. 또 천상(天上)의 마니보(摩尼寶)에 흠집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청정한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9_c_13L普等花天子言:“譬若樹有華,其見莫不歡喜,所作功德一切莫不蒙者。譬若忉利天上拘耆樹,而有花熾盛,諸天莫不愛樂。菩薩以法爲一切作眼,譬若花,若天上摩尼之寶而無瑕穢。菩薩淸淨其心如是,其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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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0_a_02L광명화(光明華)천자가 말했다.
“비유하면 해가 떠올라서 어둠이 사라졌을 때 모든 색(色)이 다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은 두루 비추지 않음이 없는 지혜로, 캄캄한 어리석음을 모두 활짝 열어 깨우쳐 줍니다. 왜냐 하면 그 캄캄한 어리석음은 끝내 밝음을 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둠에서 허덕이는 사람은 밝음을 보고 곧바로 바른 길을 찾습니다. 보살은 바른 길에 머물면서바른 길을 잃고 헤매는 이에게 길을 가리켜 보여줍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69_c_20L光明花天子言:“譬若如日出,衆冥索盡,所有諸色悉見。菩薩以智慧無所不照,其諸愚癡冥盡索爲開闢。所以者何?終不而當明故。其在冥者,見明便得道徑。菩薩以住道徑者,其忘失道徑者指示道路。以如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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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향화(天香華)천자가 말했다.
“비유하면 만다라(曼陀羅)의 향기가 네 방향의 높이와 너비와 위와 아래를 각각 40리까지 풍기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이 지닌 청정계(淸淨戒)의 삼매(三昧)는 지혜의 향으로서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에 두루 풍기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 향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함은, 그 청정계(淸淨戒)의 삼매(三昧)가 지혜의 향기를 풍기기 때문입니다. 이 삼매(三昧)에 머문 보살은 곧바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70_a_04L天香花天子言:“譬如漫陁羅花,其香聞縱廣上下四維各四十里。菩薩以所聞淨戒、三昧、持智慧以爲香,三千大千無不聞者。是香愈無央數人病,其以所聞淨戒、三昧、智慧。菩薩以住是者便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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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법행득(信法行得)천자가 말했다.
“법에 머물러서 마땅히 닦아야 할 일을 보살법(菩薩法) 그대로 행하려면, 항상 또 다시 게으름에 빠지는 일이 없어야 하고, 더 이상 아는 일도 없어야 하며, 더 이상 생각하지도 않아야만, 곧바로 열 가지 일을 얻게 됩니다.
열 가지 일이란, 첫째 여섯 가지 바라밀(波羅蜜)18)을 닦는 일이요, 둘째 네 가지 평등한 마음[四等心]19)을 행하는 일이며, 셋째 다섯 가지 신통[五旬]20)을 행하는 일이고, 넷째 네 가지 일[四事]21)을 행하는 일이며, 다섯째 세 가지 해탈과 인욕의 이로움[三脫忍辱利]22)을 다 거둬들이는 일입니다.
여섯째 사람들을 발심(發心)시키는 일이고, 일곱째 교화를 행할 때 고달픈 몸을 어렵게 여기지 않는 일이며, 여덟째 교묘한 방편[漚★拘舍羅]23)을 행하는 일이고, 아홉째 일체 법의 요지를 다 지니는 일이며, 열째 믿는 법에 변함이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 010_1370_a_09L信法行得天子言:“當住法當所作者,以如菩薩法者常不復懈怠,無所復懈無復念,便當得十事:習六波羅蜜,以四等心、五句、四事、摠三脫忍辱利令人發意,其身不離,以漚和拘舍羅教,悉持諸法要,所信無有異,是爲十事。其作是者可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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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文殊師利)보살이 뛰어난 보살들[上人]과 천자(天子)들에게 말했다.
“보살은 머물면서 머무는 대상이 없어야 합니다. 머물면서 머무는 대상이 없는 경지24)란 무엇이겠습니까.
삼계(三界)에 있을지라도 삼계의 일을 익히지 않아야 합니다. 안[內]도 익히지 않아야 하고, 밖도 구하여 익히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밖을 익힐지라도, 제자들이 닦아 익혀서는 안될 경계[聲聞地]에 떨어지지 않아야 하고, 또 벽지불(辟支佛)의 경계에도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25)
생사(生死)를 익혀왔다고 한다면 생사에 대한 무지(無知)를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이름[名]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 이름의 근거인 색(色)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인연을 따라 익혀 왔다고 한다면 인연에 대한 관찰[所見]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애착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 애착을 일으키는 근본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 010_1370_a_16L文殊師利謂諸上人及諸天子:“菩薩住無所住。何謂住無所住?於三界不以三界作習,不習者是爲內,亦不求習者是爲外。雖外不墮弟子無所習,復不墮辟支佛地。習謂生死,所學習謂無所知。習者是爲名,所學習是爲色。習者是因緣,所學習謂有所見。習者謂愛,所學習謂有所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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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0_b_02L또 ‘나’를 익혀 왔다고 한다면 나가 아닌 법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탐욕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 베풀고 나서 달라지지 않는 마음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계법(戒法)에 대한 범행(犯行)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계법(戒法)을 지키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성내는 행위[瞋怒]를 익혀 왔다고 한다면, 인욕(忍辱)을 닦으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정진하지 않는 일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어지러운 마음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 일심(一心:禪定)의 경지에 안주(安住)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를 익혀 왔다고 한다면 지혜를 닦으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하며, 공덕이 없는 일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 공덕을 쌓으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 010_1370_a_24L習者謂我,所學習謂非我。習者貪,所學習所施與無有異。習者謂犯戒,所學習謂不於戒自貢高。習者謂瞋怒,所學習忍辱而不貢高。習者無精進,所學習精進而不自貢高。習者謂亂意,所學習爲一心而不自貢高。習者謂無知,所學習智慧不貢高。習者謂無功德,所學習謂作功德而不貢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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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속의 법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 출세간의 법[道法]을 행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해탈이 없는 경계를 익혀 왔다고 한다면 해탈의 경지를 충분히 갖추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죄악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 죄악이 없는 법을 행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번뇌의 남음이 있는 경계를 익혀 왔다고 한다면 번뇌의 남음이 없는 법을 다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26)
이러한 모든 법을 닦을 때, 보살은 배우고 익히면서도 배우고 익히는 일이 없이 일체 법을 보호하면서 집착하지도 않고 끊지도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닦는 보살은 곧바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27) - 010_1370_b_08L習者謂俗法,所學習謂道法不自貢高。習者謂無脫,所學習謂得脫而具足不貢高。習者謂有罪,所學習無有罪亦不貢高。習者謂有餘,所學習無有餘盡亦不貢高。菩薩習無所習,一切護亦不著亦不斷,作是者便至無極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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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0_c_02L일체의 온갖 법은 얻을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들어가는 곳도 없고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일체를 다 아는 지혜는 곧바로 일체를 다 아는 지혜에 이릅니다. 얻을 대상이 없는 것이 일체를 다 아는 지혜이니, 일체를 다 아는 지혜를 얻은 경지는, 색(色)으로 헤아릴 수 없으며, 수(受:痛痒)와 상(想:思想)과 행(行:生死)과 식(識)으로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또 법수(法數)로도 헤아릴 수 없고, 비법수(非法數)로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또 일체를 다 아는 지혜는 보시[施與]로도 셀 수 없으며, 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로도 셀 수가 없습니다. 일체를 다 아는 지혜는 지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일체를 다 아는 지혜는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으니, 과거와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삼세(三世)를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일체를 다 아는 지혜는 눈으로 볼 수 없으며, 귀ㆍ코ㆍ입[舌]ㆍ몸ㆍ뜻이 작용할 수도 없습니다.왜냐 하면 6근(根)의 온갖 경계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 010_1370_b_15L諸法一切無所得。所以者何?無所入亦無所不入故。是一切智便至一切智,無所得者一切智。得一切智不可以色計,痛、痒、思想、生死、識亦爾。不從法數亦不從非法數,亦不一切智施與爲數。所以者何?施與者亦不離一切智。戒、忍辱、精進、一心、智慧亦不爲數。何以故?一切智從智慧。一切智者無所不入,亦不過去當來,亦不入現在。所以者何?以過三世故。一切智者不以眼而視之,耳鼻舌身意亦爾。所以者何?以過諸界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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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남자나 여인이 일체를 다 아는 지혜를 구하려고 한다면, 마땅히 일체를 다 아는 지혜와 다름없이 머물러야 합니다. 어떻게 머물러야 하겠습니까. 일체의 온갖 법에 머무는 일이 없어야만, 일체를 다 아는 지혜에 머무는 것입니다. 스스로 법을 나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닦는 것을 일체를 다 아는 지혜라고 합니다. 일체중생의 법과 깨달음의 법이 법 그대로 평등한 것을 일체를 다 아는 지혜라고 합니다.
만일 일체를 다 아는 지혜를 구하여 얻으려고 한다면, 4대(大)에서 얻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몸을 몸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인연을 짓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공덕법(功德法)이 있다고 할지라도 공덕법이 없으며, 그 소유를 나의 것으로 여길지라도 다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나란 생기는 대상이 없고, 생기는 대상이 없으면 헤아릴 수 없으니, 그 헤아림도 생기지 않는 법이라고 합니다. 비록 보이거나 볼지라도 다 생겨남이 없는 법이니, 생기지도 않고 생기는 대상도 없음을 아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행하는 경지를 일체를 다 아는 지혜라고 합니다. - 010_1370_c_03L若男子女人欲求一切智者,當如一切智住。當云何住?於諸法一切無所住,是爲一切智住。不自念法是我所,作是者爲一切智。一切人法佛法等,如是無有異,是爲一切智。其求欲得一切智者,會從四大得。所以者何?爲身不作身計。所以者何?不以作因緣故。其有功德法無有功德法,其所有是爲我所者皆非我所,我者無所生,無所生者無有計,其計者是爲不生,其示若見者是皆無有生,以知無生無所生慧,作是等者是爲薩芸若。”
- 문수사리(文殊師利)보살이 이 법사(法事)를 설했을 때, 이천 천자(天子)는 다 무생법인[無所從生法忍]을 얻었으며, 만 2천 사람이 모두 더없이 높고 평등한 어도[無上平等道]의 마음을 일으켰다.
- 010_1370_c_15L文殊師利說是事時,二千天子悉得無所從生法忍,萬二千人悉發無上平等道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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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1_a_02L낙부동(樂不動)보살이 문수사리보살에게 말했다.
“다 함께 부처님의 처소로 가서, 보살은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지를 물어 보도록 합시다.”
그러자 문수사리보살은 즉시 신통으로 여래를 변화시켜 법회 대중 가운데 앉게 하였다. 그 입은 옷과 형상은 석가모니부처님과 다르지 않았다.
문수사리보살이 파지반구리(波坁槃拘利:樂不動)보살에게 말했다.
“여쭈어 보십시오. 마침 부처님께서 여기에 계시니, 보살은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지에 대해 여쭈어 볼 수 있습니다.”
낙부동(樂不動)보살은 화신부처님인줄 모르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길게 끓어 앉아서 여쭈었다.
“부처님[怛薩阿竭]28)이시여, 보살은 어떻게 머물러야 합니까?”
화신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행하는 것처럼 보살도 이렇게 머물러야 하느니라.”낙부동(樂不動)보살이 또 여쭈었다.
“어떻게 해야 부처님처럼 행할 수 있겠습니까? - 010_1370_c_17L樂不動菩薩謂文殊師利:“共到佛所問菩薩當云何住。”應時文殊師利化作如來在衆會中而坐,其形狀被服如釋迦文佛。文殊師利謂波坻槃拘利菩薩言:“屬之所問,今佛在是,可問菩薩住。”波坻槃拘利菩薩不知是爲化佛,前長跪問:“怛薩阿竭!菩薩當云何有所住?”化佛言:“如我所作,菩薩當如是住。”復問:“云何如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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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시를 따라 행하지 않아야 하고, 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一心]ㆍ지혜(智慧)를 따라 행하지 않아야 하며, 또 욕망[欲]을 따라 행하지 않아야 하고, 색(色)을 따라 행하지 않아야 하며, 무색(無色)을 따라 행하지도 않아야 하느니라. 그리고 몸을 따라 행하지도 않아야 하고, 입을 따라 행하지도 않아야 하며, 뜻을 따라 행하지도 않아야 한다. 온갖 행하는 대상은 집착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 부처님께서 낙부동보살에게 물으셨다.
“환영(幻影)의 변화에 행의 근거가 있겠느냐?”
낙부동보살이 말했다.
“행의 근거가 없습니다.”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환영의 변화에 행의 근거가 없는 것처럼, 보살도 마땅히 이렇게 행해야 하느니라.” - 010_1371_a_03L其佛言:“亦不從施與,亦不從戒、忍辱、精進、一心、智慧,亦不從欲,亦不從色、亦不從無色,亦不從身行、亦不從口行、亦不從意行,諸所行無所著故。”其佛問波坻槃拘利:“化者而有所從行不?”則答言:“無所從行。”其佛言:“如化無所從行,菩薩當作是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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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반구리보살이 또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이 부처님은 변화한 부처님이 아닙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당신은 스스로 모든 법이 환영과 같다는 것을 아십니까?”
낙부동보살이 답했다.
“모든 법은 실로 환영과 같습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모든 법이 환영인 줄 알면서 어째서 또 변화한 여래가 아니냐고 물어 보십니까?”
문수보살이 이어 말했다.
“그대여, 모든 부처님도 다 변화한다고 합니다.”
낙부동보살이 또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무엇을 근거로 변화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하는 행이 본래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낙부동보살이 말했다.
“그 청정한 행을 근거로 변화하는 것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이어 말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우리도 없고 나도 없으며, 다른 사람도 없고 수명의 길고 짧음도 없으며, 목숨 자체도 없습니다. 또 부처님을 의지하여 머물지도 않고, 보통 사람을 의지하여 머물지도 않습니다.” - 010_1371_a_10L波坻槃拘利菩薩復問文殊師利:“是佛當無化佛乎?”文殊師利答言:“若自知諸法如化不?”則答言:“諸法實如化。”文殊師利言:“以知諸法化,何爲復問如來化?”文殊師利言:“仁者謂以諸佛悉化?”則復問文殊師利言:“佛者從何所化?”文殊師利言:“所作本淸淨,何以故而有化?”文殊師利言:“故佛無有吾、無有我、無有人、無有壽、無有命,亦不依佛住,亦不依凡人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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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반구리보살이 또 화신부처님께 여쭈었다.
“본래 무엇을 배워야만 스스로 부처님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 010_1371_a_19L波坻盤拘利菩薩復問化佛:“本何所學自致得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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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1_b_02L그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배울 대상이 없는 것이 보살의 배움이니라. 왜냐 하면 스스로 ‘나 자신이 이것을 구하고 싶다거나, 이것을 구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니라. 또 근심하지도 않아야 하고 기뻐하지도 않아야 하며, 인연하지도 않아야 하고, 따라 변하지도 않아야 하며, 보는 일도 없어야 하고 처소도 없어야 하느니라. 또 생각도 없어야 하고, 이름[字]도 없어야 하며, 색(色)도 없어야 한다. 일체에 대가를 바라지 않음이 바로 보살의 배움이니라.이렇게 배우는 것을 평등한 배움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배우는 이는 집착하지도 않고 묶이지도 않느니라. 이렇게 배우는 이는 탐욕도 없고 성냄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느니라. 이렇게 배우는 이는 사랑할 일도 없고 미워할 일도 없느니라. 이렇게 배우는 이는 스스로 ‘나는 이렇게 배운다거나, 이것을 배우기 위해 이렇게 배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렇게 배우는 이는 나쁜 길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 010_1371_a_21L其佛言:“無所學是菩薩學。何以故?亦不自念我欲求是亦不求是,亦不憂亦不喜,亦不緣亦不所化,亦無所見亦無處所,亦無有想亦無有字,亦無有色,一切無所希望是菩薩學。作是學者以爲等學,作是學者無所著、無所縛,作是學者無有欲、無有怒、無有癡,作是學者無所愛、無所憎,其學是者不自念我作是學,是爲學作是學。作是學者不墮惡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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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만일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내어 부처가 되려고 한다면, 마땅히 내가 배워 온 것처럼 배워야 하리라.”
낙부동보살이 또 여쭈었다.
“무엇이 부처님의 배움입니까?”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죄를 짓지도 않고 죄에 떨어지지도 않으며, 줄 것도 없고 가질 것도 없으며, 가지지 않을 것도 없느니라. 계를 지키지 않을지라도 계를 지킬 일이 없고, 인욕하지 않을지라도 마음에 거슬리는 일[惡意]이 없으며, 정진하지 않을지라도 게으르지 않고, 선정에 들지 않을지라도 어지러운 뜻이 없으며, 지혜를 닦지 않을지라도 알아야 할 일이 없고, 배우지 않을지라도 배워야 할 일이 없으며, 성취하지 않을지라도 성취해야 할 일이 없느니라. 또 보살도 아니고 불법(佛法)도 아니니, 자신의 몸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몸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느니라.
그 보는 일에도 생각이 없으니 법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법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느니라.” - 010_1371_b_07L其佛言:“若有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欲成至佛者,當作如我學。”復問:“何所是佛學?”其佛言:“亦不作罪亦不墮罪亦不所與,亦無所持亦無所不持,亦不持戒亦無有戒,亦不忍辱亦不惡意,亦不精進亦無懈怠,亦不禪亦不亂意,亦不智慧亦無所知,亦無所學亦不有所學,亦不所成亦無有所成,亦不菩薩亦不佛法,亦不自念有身亦不念他人有身。其所見者無有想,亦不法想亦不無法想不想無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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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1_c_02L그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이것을 환하게 아는 보살은 반드시 이렇게 배우느니라. 왜냐 하면 일체의 온갖 법은 환영(幻影)과 같기 때문이니라. 환영[是]으로 모양이 이뤄졌으니, 일체의 온갖 법은 다 합하여 이뤄진 것이니라. 왜냐 하면 비록 헤아릴 수 없는 현상[事]일지라도 이를 사유해[念] 보면 다 공(空)하여 존재의 실체가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니 합하여 이뤄진 모양은 텅 빈 것이니라.
모든 법은 볼 수 없느니라. 왜냐 하면 온갖 법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기 때문이니라. 또 모든 법은 말이 없는 경지이니라. 왜냐 하면 말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처소가 없느니라. 왜냐 하면 모든 법이 생겨남이 없기 때문이니라. 이렇게 믿는 이는 행할 대상을 생각하지 않고,해탈을 생각하지도 않으며, 보살의 경지를 높여 교만하지도 않느니라.” - 010_1371_b_18L其佛言:“曉了是者,菩薩當作是學。所以者何?諸法一切如幻是爲相。諸法一切皆合。所以者何?雖無央數事念之皆空,無所有合則爲空。諸法不可見。所以者何?諸法等而無差特。諸法悉嘿。所以者何?不語不言。是故無有處所。何以故?諸法無所生。其信是者,亦不念所行,亦不念得脫,亦不菩薩自貢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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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처님께서 또 이어 말씀하셨다.
“이를 듣고 배우는 이는 놀라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비유하면 허공이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비를 두려워하지 않고 연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구름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레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번개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왜냐 하면 바로 공(空)한 법이기 때문이니라. 보살이란 마땅히 이와 같이 겁내거나 두려운 대상이 없어야 하느니라. 보살이 마음을 허공처럼 비워야만, 결국 온갖 마군(魔軍)을 항복시켜 부처의 경지에 오를 수 있으며, 일체중생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니라.”
그 화신부처님께서 이 법을 설하고 나서 곧 사라져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 010_1371_c_03L其佛言:“若聞是學者,不恐不怖不畏,是故名爲菩薩。譬若空不畏火、不畏風、不畏雨、不畏煙、不畏雲,亦不畏雷亦不畏電。所以者何?是空法故。菩薩者當如是,一切無所畏懼。菩薩心以如空者乃伏衆魔,便能爲佛,能爲一切作護。”其化佛說是語竟便不復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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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반구리보살이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지금 여래[怛薩阿竭]께서는 어디로 가셨습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오신 곳이 가신 곳이며, 가신 곳이 오신 곳입니다.”
파지반구리보살이 문수사리보살에게 말했다.
“환화(幻化)란 본래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는데, 어째서 어디에서 온다고 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비유하면 환화(幻化)가 오는 길도 없고 가는 길도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마찬가지로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습니다.”
파지반구리보살이 또 물었다.
“모든 법의 처소는 어디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자연 그대로 진실하게 머무는 곳이 바로 그 처소입니다.” - 010_1371_c_10L波坻槃拘利菩薩問文殊師利:“今怛薩阿竭所湊?”則答言:“所從來處而所湊,所湊處從是來。”波坻槃拘利謂文殊師利:“其化者無所從來無所從去,何謂從來?”文殊師利答言:“譬若如化,來無道徑、去無道徑。諸法亦爾,無所從來、無所從去。”波坻槃拘利復問:“何所是諸法之處?”則答言:“自然住是之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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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반구리보살이 또 물었다.
“어느 곳이 일체중생의 처소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작용하는 바로 그 곳입니다.”
파지반구리보살이 또 물었다.
“모든 법은 작용할 대상도 없고 죄도 없지 않습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모든 법은 작용할 대상도 없고 죄도 없으니, 그 법은 작용하지도 않고 죄도 짓지 않습니다. 온갖 존재는 다 법신(法身)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파지반구리보살이 또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작용하지도 않고 죄도 없다면, 어째서 사람은 그 곳을 따라 작용한다고 말하십니까?” - 010_1371_c_18L復問:“一切何所處是其處?”“如所作是其處。”復問:“諸法無所作無有罪。”文殊師利言:“如是者諸法無所作無有罪。其法去亦無有作者、無有作罪者,諸所有悉入法身。”則復問文殊師利:“無有作、無有罪,何以言人隨其所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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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2_a_02L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참으로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사람 또한 작용할 대상도 없고죄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 사람들의 법이 법신(法身)이므로, 작용도 없고 죄도 없는 가운데, 작용하는 대로 얻으니, 이 셋29)은 평등합니다.”
파지반구리보살이 또 물었다.
“이 세 일은 평등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진리 그대로 옴[如來]이 평등하기 때문에 이 세 일도 평등한 것입니다.”
파지반구리보살이 또 물었다.
“진리 그대로 옴은 작용도 없고 죄도 없고 얻음도 없는데, 이 세 일을 무엇 때문에 평등하다는 것입니까?”
문수보살이 말했다.
“진리 그대로 옴은 작용도 없고 죄도 없고 얻음도 없으니, 그 작용과 죄와 얻음은 그 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평등합니다. 그 죄는 벗어나고 나면 보이지 않습니다. 죄를 이미 벗어났다면, 미래에도 진리 그대로 옴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평등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010_1371_c_24L文殊師利言:“審如所問,人亦無所作亦無有罪。所以者何?是人之法法身故,亦無有作亦無有罪,如所作如所得,是三者等。”波坻槃拘利菩薩復問:“是三事等乎?”文殊師利言:“怛薩阿竭等,故三事適等。”復問:“怛薩阿竭者,無作、無罪、無得,是三事何緣與等?”文殊師利言:“怛薩阿竭無作、無罪、無得。其作、其罪、其得,如所爲以故等。其罪以過了不見罪,已過當來亦不離怛薩阿竭故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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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석가모니 부처님의 처소에서는, 사리불(舍利弗) 존자와 아난(阿難) 존자와 그 외 훌륭한 비구들은 모두 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문수사리보살의 설법을 듣고 있었다.
사리불이 말했다.
“대단히 훌륭합니다. 저 뛰어난 보살은 하는 일이 법신(法身)을 떠나지 않았으니, 법으로 감동시키지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지혜 있는 이라면 그 누구도 바른 깨달음의 마음을 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저 보살이 말한 바와 같이 보살의 배움에는 배울 대상이 없어야만, 말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느니라. 심은 대로 열매를 얻는 것과 같이 저 보살은 지혜를 배워 지혜를 얻어서 이렇게 지혜대로 설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도 만일 이렇게 배운다면 스스로 이 지혜에 이르리라.” - 010_1372_a_12L是時如在釋迦文佛所,尊者舍利弗、阿難及諸尊比丘,悉承佛威神,皆聞文殊師利所說。舍利弗言:“善哉善哉!上人之所作,以法無所不感動,不離法身,其有智者聞是莫不發意。”佛言:“審如所語。菩薩者學無所學,所語平等無有異,如所種得其實。其菩薩者所學者慧,如是所說如慧。”佛語舍利弗:“汝若所學自致是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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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광명(頂中光明)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성문(聲聞)의 배움은 무엇이며, 보살의 배움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정된 견해에 집착한 배움을 성문의 배움[弟子學]이라고 하며, 한계도 없고 걸림도 없는 배움을 보살의 배움이라고 한다. 따라서 성문은 배움이 작고 약하니 그 지혜도 작고 약하지만, 보살은 배움이 크고 넓으니 그 아는 바도 끝이 없고 말도 걸림이 없는 것이니라.” - 010_1372_a_20L頂中光明菩薩白佛:“何所聲聞所學?何所菩薩所學?”佛言:“有限有著故爲弟子學,無有限無有㝵是爲菩薩學。如聲聞者其學小其智少;菩薩者學廣大,其所知無有極,所說無所罣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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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2_b_02L광지(光智)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감응(感應)을 내리시어 문수사리보살을 이 법회에 오도록 하옵소서. 그 이유는 이 법회의 대중들이 문수사리보살로부터 잃지 않고 간직할 법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 하면 문수사리보살의 설법은 매우 깊고 미묘하므로, 듣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 원을 따라 각각 알맞은 자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감응(感應)을 내리시니, 문수사리보살은 즉시 훌륭한 스물다섯 보살과 천자(天子)들과 함께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머물렀다. - 010_1372_b_02L光智菩薩白佛:“唯怛薩阿竭作感應,令文殊師利衆會悉來到是。所以者何?其在是會皆令得無所亡失。所以者何?文殊師利所說甚深微妙。其欲聞者,隨其所欲各令得所。”佛卽感動,文殊師利應時與二十五上人及諸天子俱到佛所,前作禮而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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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지보살이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 보살은 어째서 다른 곳에서 법을 설하였습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이곳에 오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시니, 혹시라도 저의 설법이 여래의 뜻에 알맞을지 알맞지 않을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한쪽에 있었던 것입니다.”
광지보살이 또 물었다.
“어떤 법을 설해야 여래의 뜻에 맞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부처님께서는 아시고 계십니다.”
광지보살이 또 말했다.
“비록 그럴지라도 보살은 여래의 뜻에 알맞은 법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010_1372_b_09L光智菩薩問文殊師利:“佛在是閒,而若何緣得在異處而說法?”文殊師利言:“所以不在是閒者,佛甚尊不可當,或所語可怛薩阿竭意、或不可意,故在一面。”其菩薩復問:“說何所法而可怛薩阿竭者?”文殊師利答言:“佛自知之。”復言:“雖爾會說其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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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제가 아는 대로 말하라고 한다면 조금은 할 수 있습니다.”
광지보살이 또 말했다.
“조금이라도 그 뜻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설할 바를 그대로 달라짐이 없이 설법해야만, 여래와 같고 불가사의한 본 바탕과 같게 됩니다. 그러니 법대로 머물러서 법대로 설해야만, 여래의 뜻에 알맞게 됩니다.
또 중지하는 일도 없어야 하고 단절하는 일도 없어야 하며, 인연하지도 않아야 하고 인연의 대상도 없어야 하며, 불어나는 일도 없어야 하고 줄어드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설해야만 여래의 뜻을 잃지 않습니다.
또 자신도 잃은 일이 없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잃지 않게 해야 하며, 법도 잃지 않아야 하고 생사(生死)도 잃지 않아야 하며, 열반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설해야만 여래의 뜻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 010_1372_b_16L文殊師利則言:“如我所知少當說。”則言:“何言是?”文殊師利言:“如所說,所說法而不異。如怛薩阿竭,如本際而不可說,如法住如法說。爲怛薩阿竭意,無所止、無所斷,亦不緣亦無所緣,亦無所增亦無所減,作是說而不失怛薩阿竭意,亦於身無所失,亦不令他人有所失,亦不亡法,亦不亡生死,亦不亡泥洹,作是說者亦不失怛薩阿竭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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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2_c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잘했다.문수사리가 말한 그대로 해야만, 여래의 뜻에 알맞게 되리라. 왜냐 하면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으니, 알맞게 중도(中道)에 있으면서 달리 생각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문수사리가 삼매를 떠나지 않고 법사(法事:바른 법에 관한 일)를 설했으나, 예전대로 모든 법이 불어난다거나 줄어든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수사리가 설한 그대로 하면, 여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느니라.”
이 법을 설했을 때, 8백 천자(天子)가 다 무생법인[無所從生法忍]을 얻었다. - 010_1372_c_02L佛言:“善哉善哉!如文殊師利所說,以可怛薩阿竭意。所以者何。亦不過亦不減。適在中無所想。所以者何?文殊師利俗三昧說事如故,不見諸法有所增者、有所減者。如文殊師利所說,不失怛薩阿竭意。”說是語時,八百天子皆得無所從生法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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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 법회에 2백 천자가 있었다. 이들은 이전에 보살심(菩薩心)을 일으켰으나, 그 뜻이 견고하지 못하여 타락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은 각각 생각하였다.
‘불법(佛法)은 끝이 없으니, 성불(成佛)하기란 너무 어렵다. 우리들은 보살의 배움을 그만두고, 차라리 나한(羅漢)이나 벽지불(辟支佛)의 법을 취하여 열반에 드는 것만 못하리라.’
부처님께서는 이들에게 보살도(菩薩道)를 성취할 능력이 있음을 아시고 계셨다. 부처님께서 이들이 타락하기 전에 그 마음을 되돌리시기 위하여 한 거사[迦羅越]30)를 변화시켰다. 그 거사는 온갖 맛난 음식으로 가득 찬 발우를 가지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예를 올렸다. 그리고 부처님께 발우를 올리면서 말했다.
“저를 가엾게 여기시고 이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곧 발우를 받으셨다. - 010_1372_c_09L爾時衆會中復有二百天子,皆前以發菩薩意而未堅固,皆欲墮落,各各有念:“佛法無有極,難得至佛。我等不在菩薩學中,不如取羅漢辟支佛而般泥洹。”佛悉知是人可成爲菩薩而中欲意轉,佛便化作一迦羅越,持百味飯滿鉢齎到佛所,前而作禮,以鉢上佛:“惟加哀受之。”佛卽受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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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부처님께 두 손 모아 아뢰었다.
“공양을 받으셨으니 옛 은혜를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사리불(舍利弗)이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부처님께서는 지난 세상에 문수보살에게 어떤 은혜를 입었기에 ≺옛 은혜를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일까?’
사리불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문수사리보살은 과거에 부처님께 어떤 공덕을 베풀었습니까?” - 010_1372_c_16L文殊師利便從坐起,叉手白佛:“雖食,當念故恩。”舍利弗心念:“佛本從何等,而文殊師利言當念故恩乎?”則問佛:“文殊師利本有何功德而置怛薩阿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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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3_a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라. 이제 너의 의심을 풀어주리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그 발우를 땅에 내려 놓으셨다. 그 발우는 곧 아래로 빠져 온갖 부처님의 세계로 내려가더니, 바로 아래쪽에 있는 72항하(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갔다. 이렇게 내려간 발우는 한 세계에 이르렀다. 그 세계의 이름은 명개벽(明開闢:漚呵沙)이며, 그 세계에 계시는 부처님의 이름은 광명왕(光明王:茶毘耶羅)으로서, 현재 설법하고 계셨다.그 발우는 붙들지 않아도 그 부처님 세계의 허공 가운데 떠 있었다. 발우가 지나온 모든 세계의 부처님의 시자(侍者)들은 허공에 떠 있는 발우를 보면서 그들의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발우는 어디서 왔습니까?”
모든 부처님께서는 말씀해 주셨다.
“위쪽에 인(忍:沙呵)31)이라고 이름하는 세계에 석가모니[釋迦文]라는 부처님이 계신다. 이 발우는 바로 그 부처님이 보내셨느니라. 왜냐 하면 타락한 보살들의 마음을 깨우치시기 위해, 신통변화로 감동시키려고 하셨기 때문이니라.” - 010_1372_c_20L佛言:“且忍,今爲汝決狐疑。”卽以鉢捨地,其鉢便下沒過諸佛剎,直下過七十二恒邊沙等剎土,剎土名曰漚呵沙 漚呵沙者天竺語,漢言名曰明開闢。其佛號茶毘羅耶 漢曰光明王,今現在。其鉢在彼佛剎住止空中,亦無持者。鉢所過諸佛剎,其佛侍者皆問佛:“是鉢從何所來?”諸佛言:“上方有剎名曰沙呵,佛號字釋迦文,鉢從彼來。所以者何?救護墮落菩薩意故,以變化感動。”
-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발우를 찾아오너라.”
사리불은 곧 자기 지혜의 힘에 부처님께서 내리신 위신력(威神力)을 받들고 1만 삼매에 들어가서 1만의 부처님 세계를 지나 끝까지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사리불은 삼매로부터 깨어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부처님께서 또 대목건련(大目揵連)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발우를 찾아오너라.”
대목건련도 자신의 신통력[神足力]에 부처님께서 내리신 위신력을 받들고 8천 삼매에 들어가서, 8천의 부처님 세계를 지나 끝까지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아서 가져올 수가 없었다. 대목건련은 삼매로부터 깨어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아서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須菩提)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발우를 찾아오너라.”
수보리는 곧 1만 2천 삼매에 들어가서 1만 2천의 부처님 세계를 지나 끝까지 찾아보았으나, 역시 보이지 않으니 가져올 수가 없었다. 곧 삼매로부터 깨어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아서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5백 비구가 차례로 각각 신통을 일으켜 발우를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아서 가져오지 못했다. - 010_1373_a_08L佛語舍利弗:“行求鉢來。”舍利弗卽承佛威神,自以慧力入萬三昧,過萬佛剎亦不見亦不得。從三昧還白佛:“求之不見不得。”佛言:“且捨。”佛復謂大目揵連:“行求索鉢。”則承佛威神,自蒙神足力入八千三昧,過八千佛剎,無所見無所得。則從三昧還白佛:“求之不見不能得。”佛語須菩提:“行求鉢來。”則入萬二千三昧,過萬二千佛剎亦不見亦不得。卽從三昧還白佛:“求之不見不能得。”則五百尊比丘,各各以神足行求索鉢,亦不能見亦不能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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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3_b_02L수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미륵(彌勒)보살에게 아뢰었다.
“당신은 훌륭한 능력을 지닌 일생보처(一生補處)32)로서, 분명 미래의 부처님입니다. 우리들은 발우를 찾아보았으나, 찾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하오니 부디 가서 찾아 주십시오.”
미륵보살이 말했다
“당신이 말한 대로 일생보처는 사실이지만, 현재로서는 문수사리보살이 닦은 삼매를 따를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삼매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제가 성불(成佛)했을 때도 저 항하(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중생들은 다 문수사리보살이 교화할 대상입니다.또 나로서는 그 분의 발을 올리고 내리는 일도 알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그 분을 따를 수 없으니, 문수사리에게 부탁하여 찾아오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수보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발 문수사리보살을 보내어 찾아오도록 하옵소서.” - 010_1373_a_20L須菩提從座起白彌勒菩薩:“仁者高才一生補處,現當來佛。吾等行求鉢不能得,惟行求之。”彌勒則答言:“如若所說實一生補處,今者不及文殊師利所作三昧及其名字。聽我所言。我作佛時,如恒邊沙等悉爲文殊師利,復不能知我行步擧足下足之事;如今者實不逮及。不如報文殊師利而行求之。”則須菩提白佛:“唯怛薩阿竭!當令文殊師利而行求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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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발우를 찾아오너라.”
문수사리보살은 조용한 소리로 부처님의 분부를 받들고 혼자 생각하였다.
‘부처님과 법회대중을 벗어나지도 않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이 자리에 발우를 가져오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곧 삼매에 드니 두루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었다. 바로 법회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손으로 땅을 가리키니, 그 손은 아래로 내려갔다.
그 손은 부처님의 세계를 지날 때, 만나는 부처님마다 발에 대어 예를 올리면서 석가모니불의 문안인사를 전하였다. 아래쪽 세계에서는 문안인사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곳이 없었다. - 010_1373_b_06L佛卽謂文殊師利:“行求鉢來。”文殊師利卽嘿聲,以受教卽自思念,而不起坐、不離佛、不捨衆會,於是便能致鉢。卽時三昧爲無所不遍入,卽於衆會以手指地,其手而下行,所過佛剎悉爲諸佛接其足,下方莫不聞其聲道:“釋迦文佛致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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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3_c_02L그리고 그 팔뚝의 낱낱 털에서 백억 천 광명을 놓으니, 낱낱 광명에서는 억백천의 연화가 솟아났고, 낱낱 연화 위마다 보살들이 있었으며, 그 보살들은 각각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찬탄하였다. 그 손이 지나간 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을 반복하였고, 그들 세계에는 매우 장엄한 온갖 당기(幢旗)와 번기(幡旗)가 세워졌다.
또 손이 이미 거쳐간 세계에서는 모두들 ‘문수사리의 오른손이 만나는 부처님마다 낱낱이 발에 대어 예를 올림과 동시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문안인사를 전하면서, 72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 명개벽(明開闢:漚呵沙) 세계에 도달하는 것’을 보았다.
문수의 오른손은 마침내 광명왕(光明王:多毘羅耶)부처님의 처소로 가서 예를 올리고 석가모니불의 문안인사를 전하였다. 그러자 그 팔뚝의 낱낱 털에서 억백천의 광명을 놓으니, 억백천의 연화가 솟아났다. 또 낱낱 연화마다 앉아 있는 보살들은 모두 석가모니불의 공덕을 찬탄하였다. 그 보살들의 광명과 저 부처님의 광명은 서로 섞이지 않으니 각각 서로 볼 수 있었다.광명왕(光明王)부처님을 곁에서 모시는 시자(侍者) 광존(光尊)은 뛰어난 보살이었다.
광존보살이 광명왕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누구의 손이기에 그 털에서 이토록 훌륭한 광명을 놓아 연화를 내며, 그 연화의 보살들은 노래로 저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것입니까?” - 010_1373_b_13L其臂者一一毛放億百千光明,一一明者有億百千蓮花,一一蓮花上者皆有菩薩,其菩薩者皆各各歎釋迦文佛。是所過剎土皆爲六反震動,其剎土皆嚴莊幢幡而起,所過處悉皆見文殊師利以右手悉接諸佛足,皆言釋迦文佛之所致問。過七十二恒邊沙等剎,到明開闢剎土,乃至茶毘羅耶佛所,前作禮,爲釋迦文佛致問。其臂上毛一一毛有億百千光明億百千蓮花,一一蓮花上各有坐菩薩,悉歎釋迦文佛功德。其菩薩光明彼佛光明如不相錯,各各自見光明王佛邊有侍者。而尊菩薩名曰光尊,自問其佛:“是誰手臂姝好乃爾?其毛光明,蓮花菩薩之所歌歎彼佛功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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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왕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위쪽으로 72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면, 인(忍)이라고 이름하는 세상에 석가모니라는 부처님이 지금 현재 설법하고 계시느니라. 바로 그 법회에 문수사리라는 보살이 있는데 본래 불가사의한 서원을 세웠으므로, 그 지혜는 해탈하지 못한 경계가 없느니라. 지금 계속 저 부처님 앞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앉은 자리에서 저 발우를 가져가기 위해 일부러 손을 내려 여기에 이른 것이니라.” - 010_1373_c_06L其佛言:“上方過七十二恒邊沙等剎土,名曰沙呵,其佛號字釋迦文佛,今現在前。有菩薩名文殊師利,不可思議僧涅,其智無所不度,以續在彼佛前,坐用鉢故而投手乃到是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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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들은 그 보살들은 생각하였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처럼 몹시 저 분들이 보고 싶구나.’
모두 광명왕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석가모니불과 문수사리와 그 세계를 보고자 하오니 보여주옵소서.”
그러자 광명왕부처님께서 두 눈썹 사이의 백호상[兩眉間中央相]에서 광명을 놓으시니, 72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사무쳐 비추고, 인(忍)세상에 이르니, 인(忍)세상은 다 환하게 활짝 열렸다. 그 광명을 본 사람들은 다들 전륜성왕(轉輪聖王)처럼 그 몸이 안온해졌고, 보통 비구들은 수다원(須陀洹)33)을 얻었으며, 3도(道)34)를 벗어난 이들은 다 8해탈[惟務禪]35)에 들어 즉시 나한(羅漢)을 얻었다. - 010_1373_c_10L其菩薩悉作是念,皆白其佛:“譬如渴人欲得飮,願欲得見釋迦文佛、文殊師利及其剎土。”其佛卽以兩眉中央相而放光明,徹照過七十二恒邊沙剎,乃至沙呵剎悉爲開闢,其有人見其光明者皆得安隱。其身譬如遮迦越羅,其有凡比丘者得須陁洹。其過三道上者,皆有八惟務禪,應時得羅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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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보살로서 몸에 이 광명을 받은 이들은 다 일명삼매(日明三昧)를 얻었다.
그 광명왕불(光明王佛)세계의 보살들은 그 자리에서 인(忍)세계와 그 곳의 성문(聲聞)들과 보살들을 보았다. 그 보살들은 인(忍)세상을 보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청정한 유리와 마니(摩尼)보배가 진흙 속에 떨어진 것처럼, 참으로 애석하기 그지없습니다. 왜냐 하면 인(忍)세상의 보살들은 가엾게도 저런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 010_1373_c_18L其菩薩身得是光明者,皆逮得日明三昧。茶毘羅耶佛剎諸菩薩,從彼閒悉見是閒及諸聲聞諸菩薩。以見是閒剎土則而淚出,便言:“若琉璃淸淨及其摩尼墮其污泥,誠可惜之。所以者何?沙呵剎土諸菩薩,誠可惜之,而生彼閒。”
- 010_1374_a_02L광명왕부처님께서 파기두(波羇頭)보살에게 말씀하셨다.“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이 세상에서 천겁 동안이나 닦아야 할 선정(禪定)의 공덕으로, 저 부처님 세계의 새벽으로부터 식사 때까지 행하는 자비의 공덕에 비하면, 절반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 보살들은 비록 과거의 업[宿命]이 있을지라도, 법을 행하여 손가락 튀기는 사이에 그 죄업을 다 없애느니라.”
- 010_1374_a_02L茶毘羅耶佛謂波羈頭菩薩:“汝不曉是,勿得說之。所以者何?我剎土千劫行禪,不如彼佛剎人行慈從日出至食,其所功德過倍是閒。彼之菩薩雖有宿命,行法如彈指頃者其罪盡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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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忍)세상의 보살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광명은 어디에서 왔기에 이렇게 몸을 조용하고 평온케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래쪽으로 72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면, 명개벽(明開闢)이라고 이름하는 세계가 있는데, 그 곳의 광명왕부처님께서 두 눈썹 사이의 중앙상(中央相)으로부터 광명을 놓은 것이니라.”
이 말씀을 들은 보살들은 다 부처님께 아뢰었다.
“명개벽(明開闢)세계와 광명왕(光明王)부처님을 보고자 하오니 보여주옵소서.” - 010_1374_a_07L是閒菩薩悉問佛:“是光明從何所來?今身皆安隱。”佛則言:“下方過七十二恒邊沙等佛剎土,名漚呵沙。何佛者?號字茶毘羅耶,放兩眉中央相光明。”菩薩悉白佛:“願聞欲見漚訶沙剎土及怛薩阿竭茶毘羅耶。”
- 그러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즉시 발바닥으로 광명을 놓으셨다. 그 광명은 아래쪽으로 72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서 명개벽(明開闢)세계와 광명왕(光明王)여래를 비추니, 그 세계는 다 환하게 활짝 열렸다. 저 세계의 보살들은 그 광명이 비춰 몸에 드는 것을 보고, 다 원만하게 수미광명(須彌光明:摩仳低)삼매를 얻었다. 이 곳의 보살들은 저 광명왕부처님과 그 세계를 보았는데, 마치 땅에 멈춰 있으면서 해와 달과 별들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며, 아래쪽에서 이 곳을 보는 것도 역시 이 곳에서 아래쪽의 광명왕 여래와 명개벽의 세계를 보는 것과 같았다.
- 010_1374_a_12L應時釋迦文放足下光明,照下方過七十二恒邊沙等剎,漚呵沙剎土及茶毘羅耶佛盡爲開闢。彼剎菩薩見其光明入其身,悉得摩仳低三昧具足 三昧者天竺語,漢解之名須彌光明。 是閒菩薩盡見彼佛及剎,譬如在地住者,莫不見日月星宿。下方見是閒,亦如是閒見下方茶毘羅耶漚呵沙剎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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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4_b_02L문수사리보살의 오른손은 헤아릴 수 없는 백천 보살들에게 호위(護衛)되어 그 발우를 가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올라오는 동안 지나온 모든 세계를 밝게 비췄던 털의 낱낱 광명과 연꽃들은 차츰차츰 사라져 갔다.
발우를 잡은 손이 이곳 영취산(靈鷲山)에 이르자, 문수사리보살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그 발우를 부처님께 드렸다. 부처님께서는 그 발우를 받으셨다.문수사리의 손을 따라 아래에서 올라온 보살들은 다 부처님께 예를 올린 뒤에, 각각 자신들이 모시는 부처님의 이름으로 석가모니부처님께 안부인사를 전했다. 부처님께서 각기 자리에 앉도록 분부하시니, 그들은 모두 분부를 받들어 자리로 가서 앉았다. - 010_1374_a_20L文殊師利以右手取其鉢,與無央數拘利那術百千菩薩俱而來上。所過諸剎土,其蓮花一一毛光明稍稍而盡,其鉢便在手中。是閒文殊師利則從座起,爲佛作禮,以鉢授佛,佛則受之。其菩薩從下上者悉作禮,各各自以佛名謝釋迦文佛。怛薩阿竭卽時各令就坐。悉皆受教,各各而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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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좀 전에 문수사리에 대하여 물었기 때문에 이제 너를 위하여 설하리라.
아득히 멀고 먼 옛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阿僧祗劫)의 일이다. 이때 무상(無常)이란 세상에 용막능승(勇莫能勝)이란 부처님께서 그 회상(會上)의 8만 4천의 성문들과 만 2천의 보살들을 거느리고 계셨는데, 그 부처님께서는 3승의 성자들[三道家]36)을 위하여 설법하셨느니라.” - 010_1374_b_05L佛謂舍利弗:“向之所問,用文殊師利所問故,今爲汝說之。已過去無央數不可計阿僧祇劫,爾時有佛號字勇莫能勝,其剎名無常。爾時諸聲聞八萬四千人,菩薩萬二千人俱悉會,其佛爲三道家如說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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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본래 용막능승여래께서 성불(成佛)하셨을 때는 5탁악세(濁惡世)37)였느니라. 이때 경법(經法)에 밝은 혜왕(慧王)이란 비구가 있었다. 이 비구는 발우를 가지고 유치국(惟致國)에 들어가서 걸식[分衛]하여 온갖 맛있는 음식을 얻었다.
이때 존자의 아들 이구왕(離垢王)이란 동자가 유모(乳母)의 품에 안긴 채 성문 밖에 있었다. 그 동자는 멀리서 경에 밝은 비구를 보자, 유모의 품으로부터 빠져나와 비구에게 그 음식을 달라고 했다. 비구는 곧 꿀떡을 주었다. 그 동자는 먹어보더니 단 맛을 알고 비구를 따라갔다. 유모는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곧장 따라가서 용막능승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비구와 함께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한쪽으로 가서 앉았다. - 010_1374_b_11L佛言:“時怛薩阿竭勇莫能勝,於五惡世而作佛。有比丘名慧王,明於經法,持鉢入惟致國中而行分衛,得百味飯若干種食。爾時有尊者子名離垢王,爲乳母所抱持,在城門外而住。其兒遙見明經比丘,欲從抱下,得下便取之求其食,比丘卽以蜜餠授與之。其兒則食之,知味甘美,隨比丘而行,不顧念乳母,便隨至勇莫能勝佛所,則爲佛作禮而坐一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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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4_c_02L혜왕[若那羅耶]비구는 음식이 담긴 발우를 동자에게 주면서 ‘이 발우의 음식을 부처님께 올려라’고 하자, 동자는 받아서 부처님께 받들어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발우의 음식을 받아 충분히 드셨으나,그 동자의 발우 음식은 부처님이 드시기 전과 다름없이 남아 있었다. 또 8만 4천 비구와 1만 2천 보살에게도 이 음식으로 각각 배가 부를 만큼 충분히 공양 올렸으나, 그 동자가 가진 발우의 음식은 역시 전과 같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때 동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신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과 자기 본래의 공덕이 일치한 상태에서 그 믿음을 다한 것이니라.
동자는 앞으로 나아가 서서 그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 010_1374_b_21L若那羅耶比丘以所持鉢得食而與是兒,令上其佛,兒則受之以上怛薩阿竭。其佛受食,鉢則爲滿,其兒所持鉢食續如故。復以是食遍八萬四千比丘及菩薩萬二千人,各各悉飽滿,其兒所持食續復如故。佛以威神令兒歡喜,幷蒙本之功德卽爲盡信,便前而住,卽歎其佛。
- 공양발우 받아들어 부처님께 올렸더니 여래께서 만족하게 발우 음식 드셨으니 발우 속에 들어 있는 온갖 진미 음식들은 공양 전과 다름없이 줄어들지 않는구나. 8만 4천 비구들과 1만 2천 보살들도 그 발우의 그 음식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차례대로 고루 나눠 넉넉하게 공양해도 본래대로 변함없이 줄어들지 않는구나. 줄어들지 아니하고 불어나지 아니함은 부처님의 공덕임을 지금에야 알게 되어 부처님을 받들어서 진심으로 섬겼으니 청정공덕 바른 법이 어김없이 불어나리.”
- 010_1374_c_05L所持鉢食而奉上,以應時滿,其所持者亦不缺減,遍比丘及諸菩薩其食續在,乃知佛尊亦不盡索而復增益。其供養佛者,功德可重而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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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동자는 이렇게 한 발우의 음식으로 7일 동안 충분하게 공양을 베풀었으나, 그 음식은 줄어들지 않고 이전대로 남아 있었느니라.
그 용막능승[阿波羅耆陀他]부처님께서는 그 동자를 가르치고 인도하여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승에게 귀의케 하셨으며, 5계(戒)를 주시어 잘못을 뉘우치게 하시고 공덕을 닦도록 도와주시니, 동자는 결국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阿耨多羅三耶三菩提]의 마음을 일으켰느니라.
그 부모가 동자를 찾아 여러 곳을 헤매다가 마침내 그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부처님 앞에 예를 올리고 머물렀다. 그 동자는 부모를 보자, 앞에 나아가 예를 드리고 부처님을 기리면서 말했다.
‘저는 이제 보살법(菩薩法)에 들어가서 중생들을 건지려는 서원을 세우고 발심하였습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은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 010_1374_c_09L佛語舍利弗:“是兒以一鉢食,乃至七日其食不減,滿則如故。其佛阿波羅耆陁陁教導其兒,自歸佛及法、比丘僧,授與五戒,教令悔過,勸助功德。乃發阿耨多羅三耶三菩心。其兒父母求索子無所不遍,乃至怛薩阿竭所,前爲佛作禮而住。其子見父母,前爲作禮而譽言:‘我今入菩薩法,用一切故願復發意。所以者何?難値佛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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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자는 이어 부모에게 말했다.
‘부처님의 32상(相)38)과 80종호(種好)39)를 보옵소서. 그 지혜는 고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시고 그 도는 모든 경계를 해탈하셨으니, 저는 이제 사문(沙門)40)이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 하면 여래(如來)를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말했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너의 원을 따라서 네가 구하는 일을 즐겁게 구하리라. 또 우리들은 다 너의 소원대로 발심하여 마땅히 너를 따라 불법(佛法)을 위해 살아가리라. 그리고 이제 집으로 가서 모든 것을 정리하여 버리고 너를 본받아 사문(沙門)이 되리라.’ ” - 010_1374_c_18L語其父母:‘視佛相及其種好,其慧無所不遍,其道以度。願欲我身令得作沙門。所以者何?難與怛薩阿竭會故。’父母卽言:‘善哉善哉!隨子之所欲歡樂。子之所求,悉如子之願。吾等亦復發心,當從汝爲法,則今悉放其舍宅,亦復效汝而爲沙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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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5_a_02L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동자의 말대로 그 부모와 5백 사람은모두 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阿耨多羅三耶三菩提心]을 내어, 용막능승(勇莫能勝)부처님의 처소로 가서 다 사문이 되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의심을 풀어주리라. 그 때의 혜왕(慧王:若那羅耶) 비구가 바로 지금의 문수사리이고, 존자의 아들 이구왕(離垢王:惟摩羅和耶) 동자가 바로 나의 몸이니라. 문수사리는 음식을 나에게 주고 공덕을 짓게 하여 발심하게 하였다. 그러니 이 비구는 지난 겁[本]에 나를 처음으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내도록 은혜를 베풀어준 스승이니라.”
부처님께서 또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이 부처의 열 가지 힘[十種力]41)과 네 가지 두려움이 없는 법[四無所畏]42)과 그 불가사의한 지혜43)를 얻은 근거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다 문수사리가 발심시켜 준 일이 그 근거이니라. 왜냐 하면 마음이 바로 근본이기 때문이니라.” - 010_1374_c_24L佛語舍利弗:“是兒之所言,父母及五百人悉發阿耨多羅三耶三菩心,悉於阿波羅耆陁陁佛所皆作沙門。”佛語舍利弗:“汝之所疑者,卽若那羅耶比丘者文殊師利是,其時兒尊者子惟摩羅和耶者則是我身。文殊師利以食與我,作其功德而令發心,是則本之初發阿耨多羅三耶三菩心恩師。”佛語舍利弗:“汝欲知其今佛十種力、四事無所畏,其智慧不可議,悉文殊師利之所發動。所以者何?心則是根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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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몸과 마찬가지로 헤아릴 수 없는 세계의 모든 부처님들도 다 문수보살에 의해 발심하여 석가모니불이라고 이름하였다. 이들 부처님 외에도, 제식비불(提式沸佛), 식불(式佛), 제화갈불(提和竭佛), 유위불(惟衛佛) 등 한없이 많은 부처님들이 계시느니라.” - 010_1375_a_12L佛復語舍利弗:“如我身等不可數阿僧祇剎土諸佛,悉爲文殊師利之所發動,號悉字釋迦文佛。如是佛數,復有號爲提式沸佛,復有號式佛,復有號提和竭佛,復有號惟衛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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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부처님의 이름들을 다 말하려면, 이 겁에서 저 겁까지 설한다 해도 끝이 없으리라. 이 셀 수 없는 부처님들도 다 문수사리가 발심시켰느니라. 이 밖에도 지금 현재 법륜을 굴리는 이, 열반에 드는 이, 보살도를 행하는 이, 도솔천상에 있는 이,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 있는 이, 태어나는 이, 집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구하는 이, 보리수[佛樹] 아래에 앉아 있는 이, 성불(成佛)하는 이 등 다 헤아릴 수 없느니라.” - 010_1375_a_17L佛語舍利弗:“悉說是諸佛字,從劫至劫未有竟時,皆悉文殊師利之所發動,今現在悉轉法輪中,有般泥洹者,中有行菩薩道者,中有在兜術天上者,中有在母腹者,中有生者,中有捨家求佛者,中有坐佛樹下者,中有成佛者,猶不可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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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5_b_02L부처님께서 또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니 문수사리는 보살의 부모이자, 선지식(善知識:迦羅密)44)이니라.너는 아까 이 여래가 어떤 은혜를 입었느냐고 물었느니라. 내가 성취한 일은 다 문수사리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니라.”
이 말씀을 듣고 있던 2백 천자는 스스로 생각했다.
“모든 법은 무엇을 배울지라도 반드시 성취할 수 있으니, 우리들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지금의 석가모니부처님도 문수사리보살에 의해 발심하고 성불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우리들은 게으름에 빠진다는 말인가.”
2백 천자는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모두 그 마음이 견고해져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완벽하게 믿었다. - 010_1375_a_24L佛謂舍利弗:“文殊師利者,是菩薩之父母,是則爲迦羅蜜。屬所問者,何緣而置怛薩阿竭?而我之所得,悉蒙文殊師利恩,以爲是恩故。其二百天子卽時自念:‘諸法學者乃可有所成,吾等尚可。所以者何?今是釋迦文佛,爲文殊師利所發意自致成佛,我等何爲懈怠?’用是念故其心則堅,悉得盡信阿耨多羅三耶三菩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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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보살은 손의 신통변화로 발우를 찾아와서, 감동(感動)시키지 않음이 없었으니, 이를 본래의 학습(學習)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서 아래쪽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거쳐왔는데, 모두가 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켰다.
지금 시방에서 현재 설법하시는 모든 부처님께서 보배 꽃 일산으로 법공양(法供養)을 베푸셨다. 그 일산은 삼천대천세계를 덮었고, 또 그 꽃 일산에서는 저절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석가모니불의 말씀 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이 또한 문수사리보살이 감동(感動)시킨 일이다. - 010_1375_b_09L文殊師利以手變化而得鉢,無所不感動,是謂本之學習。從是剎土乃到下方,過不可數人,皆悉發阿耨多羅三耶三菩心。十方今現在諸佛,皆以珍寶花蓋用供養法故,悉覆三千大千之剎土,從其花蓋盡聞其音,如釋迦文佛之所言,皆文殊師利之所感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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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남자나 여인이 빨리 열반에 들고자 한다면, 반드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왜냐 하면 어떤 사람은 생사의 해탈을 두렵게 여겨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킬 수 없게 되자, 성문(聲聞)에 머물러 아라한(阿羅漢)이 되어 빨리 열반에 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생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를 보아왔다. 그러나 또 어떤 보살은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미 성불(成佛)한 경우도 보았다. - 010_1375_b_16L佛語舍利弗:“若男子女人欲疾般泥洹者,當發阿耨多羅三耶三菩心。所以者何?有人畏生死而不能發心爲阿耨多羅三耶三菩心,欲求聲聞作阿羅漢早取般泥洹。其作是言者,我續見在於生死中。有菩薩而精進者,已成至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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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5_c_02L그 이유를 말하리라. 과거 헤아릴 수 없는 아득히 먼 겁의 일이다. 이때 일체도(一切度)라고 이름하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수명은 1만 세였으며, 백억 제자를 거느렸느니라.이 가운데 막능승(莫能勝)이란 비구는 뛰어난 제자로서 그 지혜가 대단히 훌륭하였으며, 또 그 다음 득대원(得大願)이란 비구도 역시 뛰어난 제자로서, 그 신통(神通)이 매우 훌륭하였다.
이때 일체도(一切度)여래께서는 비구들과 함께 법복(法服)과 발우를 바르게 갖추고 상명문(常名聞)이란 나라에 들어가서 걸식(乞食:分衛)을 행하셨다. 그 지혜를 원만하게 갖춘 비구는 부처님의 오른쪽을 모셨고, 그 신통을 원만하게 갖춘 비구는 부처님의 왼쪽을 모셨으며, 훌륭한 비구 회지(悔智)는 부처님을 모시고 뒤를 따랐으며, 8천 보살은 앞장서 인도하였다. 또 이 가운데는 제석(帝釋)과 같은 이, 천자처럼 옷을 입은 이, 하늘과 같은 이, 사천왕과 같은 이들이 여래께서 불편하지 않게 행하실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길을 청소하고 비켜서게 하였느니라.” - 010_1375_b_23L所以者何?以過去無央數不可計阿僧祇劫,爾時有佛號字一切度,壽一萬歲,有百億弟子。有尊比丘名莫能勝,其智慧甚巍巍。後有尊比丘名得大願,其神足甚亦巍巍。爾時怛薩阿竭整衣服持鉢,與比丘俱入常名聞國分衛。其尊比丘智慧備足者在佛之右,其神足比丘在佛之左,有尊比丘名悔智,隨佛後而侍之。八千菩薩而在前導,中有如釋者,中有如天子被服者,中有如天者,中有如四天王者,皆悉令人治道,用怛薩阿竭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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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일체도(一切度)부처님께서 성안으로 들어가시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市]을 지나가시다가, 세 귀한 집[尊者]의 아이들을 보셨다. 그들은 아직 어렸으나 매우 장엄한 복장을 차려 입고 함께 앉아서 놀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동자가 먼저 저 멀리 부처님께서 비구ㆍ보살들과 함께 드높은 광명을 찬란하게 비추시면서 오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 동자는 두 동자에게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자. 보아라. 부처님께서 오시는 모습이다. 찬란한 부처님의 광명을 따라 오시는 저 분들의 모습은 이보다 더 멋지고 훌륭할 수 없다.’
두 동자는 말했다.
‘그래. 보이는구나.’ - 010_1375_c_12L佛語舍利弗:“時佛以入彼城道徑而過於市。有三尊者子,各各尚小,莊嚴被服甚姝好,而共坐戲。是一兒遙見佛且來,及諸比丘菩薩光明甚巍巍。其小兒謂二兒,以手遙指示之,乃見怛薩阿竭來,光明與相隨者不甚好乃爾。其二兒則言:‘以見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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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6_a_02L그 동자는 이어 말했다.
‘이 분이야말로 일체 가운데 가장 훌륭하셔서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는 분이시니, 우리들은 마땅히 공양해야 한다. 왜냐 하면 공양한 복이 한량없기 때문이다.’
그 두 번째 동자가 응답하였다.
‘꽃도 향도 없는데 무엇으로 공양한다는 말인가?’
그 동자가 몸에 걸고 있던 하얀 구슬을 풀어 손에 쥐고, 두 동자에게 말했다.
‘이것이면 부처님께 공양할 만하다. 부처님을 뵈었으면 욕심을 버려야지.’
그러자 두 동자도 그 동자를 본받아 머리에 걸린 하얀 구슬을 풀어 손에 쥐고, 각기 찬탄하면서 말했다.‘가자,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부처님께 가면 마치 험난한 강을 건넌 것처럼 아늑하고 편하리라. 왜냐 하면 그 마음이 청정하여 평등하게 머물기 때문이지.’ - 010_1375_c_18L是一兒便言:‘此者一切之中極尊而無與等者,吾等當供養。所以者何?其福無量。’其二兒則答言:‘亦無花香,當何以供之?’其一兒則脫著身白珠著手中,便報謂二兒:‘是猶可以供佛智者。見怛薩阿竭,不當作貪。’則其二兒效解取著頭上白珠著其手中,卽各歎言,行至佛所,譬若度水。所以者何?以其心淨而等住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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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자가 두 동자에게 물었다.
‘이 공덕으로 무엇을 구하려는가?’
한 동자가 말했다.
‘부처님 오른쪽의 비구처럼 지혜가 뛰어나기를 바라노라.’
또 한 동자가 말했다.
‘부처님 왼쪽의 비구처럼 신통[神足]이 뛰어나기를 원하노라.’
이 두 동자는 각각 이렇게 원하면서 한 동자에게 물었다.
‘너의 소원은 무엇이냐?’
그 동자는 곧 대답하였다.
‘나는 부처님처럼 그 누구도 당할 수 없는 광명을 지니고, 사자처럼 홀로 걷는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동자가 이렇게 말하자, 허공에서 8천 천자가 다 함께 말했다.
‘훌륭하고 장하구나. 그대가 말한 대로 행한다면 하늘과 인간은 다 그대의 은혜를 입게 되리라.’ - 010_1376_a_04L是一兒復問二兒:‘持是功德以何求索?’其一兒言:‘願如佛右面尊比丘。’其一兒言:‘願如左面神足比丘。’是二兒各各有是願已,復共問一兒:‘若願何等?’卽報言:‘我欲如佛,其光明無輩,如師子獨步,常有衆而隨我。’是兒作是說時,虛空中八千天子皆言:‘善哉善哉!如若之所言,天上天下一切蒙若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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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동자는 하얀 구슬을 가지고 부처님의 계신 곳으로 향하였다.
그 일체도(一切度)여래께서는 시자(侍者) 사갈(沙竭)을 부르셨다.
‘너는 이제 하얀 구슬을 가지고 오는 세 동자를 보느냐? 그 중앙에서 오는 동자는 지난 겁에 기쁜 마음으로 정진해 왔으므로, 그 발을 한 번 들 고 내릴 때마다 각각 백 겁(劫)의 죄를 물리치리라. 또 뒤에 하는 일마다 백 차례에 걸쳐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백 차례에 걸쳐 제석(帝釋)에 오름도 이와 같으며, 백 차례에 걸쳐 범천(梵天)에 오름도 이와 같다. 뿐만 아니라 그 한 번 발을 드는 가운데, 부처님을 백 번 만날 수 있는 공덕이 들었느니라.’ - 010_1376_a_12L是三兒相將來至佛前。其怛薩阿竭呼侍者沙竭:‘汝乃見是三兒而持白珠來者不?其中央行小兒,悅心精進來行,擧其一足時,卻其罪百劫。如下一足,後事事當更百遮迦越羅。如是數,當復更釋亦如是,其梵天亦等如是,其一擧足之功德中百見佛。’
- 010_1376_b_02L마침 일체도(一切度)여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이 세 동자는 바로 도착하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나서, 각각 가지고 온 하얀 구슬을 부처님의 머리 위에 뿌렸다. 성문(聲聞)의 뜻을 일으킨 두 동자의 구슬은, 부처님의 어깨에 멈춰 있었으나,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킨 한 동자의 하얀 구슬은, 부처님의 머리 위에 멈춰 있다가 허공에서 구슬 꽃 교로장(交露帳)45)으로 변하였다. 그 교로장은 사방이 바르고 평등하였다. 여래께서는 교로장의 중앙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계셨다.이때 그 여래께서 웃으셨느니라.
- 010_1376_a_19L語適竟,是三兒已到,前爲怛薩阿竭作禮,各各以其白珠散佛上。其二兒發聲聞意者,所散珠各在佛上肩昇;其一兒發阿耨多羅三耶三菩心者,而散白珠在佛頭上,而在虛空化爲珠花交露之帳,正等而四方,中有牀,怛薩阿竭而坐之。其佛則時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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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시자(侍者) 사갈(沙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여래의 웃음에는 반드시 뜻이 있으시니, 그 뜻을 말씀하여 주옵소서.’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문(聲聞)의 뜻을 일으킨 두 동자를 보느냐? 왜냐 하면 두 동자는 다 생사의 해탈을 두렵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했느니라. 그 이유는 빨리 열반에 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시자가 여쭈었다.
‘그 한 동자는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그 중앙의 동자는 뒤에 스스로 성불(成佛)하게 되리라. 이 두 동자는 성문이 되어, 한 동자는 지혜가 대단히 훌륭하게 되고, 한 동자는 신통(神通)이 매우 뛰어나게 되리라.’ ” - 010_1376_b_03L沙竭勃問佛:‘怛薩阿竭所笑,會當有意。願聞其說。’佛言:‘見二兒發聲聞意者不?所以者何?皆畏生死之懼故,是以不發菩薩心。所以者何?欲疾般泥洹故。’其侍者問:‘其一兒當云何?’佛復謂言:‘是中央兒以後自致成佛,是二兒乃爲作聲聞,其一者智慧甚當尊,一者神足亦復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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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중앙의 동자가 누구인지 알겠느냐?”
사리불이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나의 몸이니라. 오른쪽 동자는 알겠느냐?”
사리불이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했다.
“그때의 오른쪽 동자가 바로 사리불이고, 그 왼쪽의 동자는 대목건련(大目揵連)이니라.” - 010_1376_b_10L釋迦文佛問舍利弗:“汝乃知是中央兒不?”舍利弗言:“不及。”佛言:“則我身是。乃知右面之兒不?”舍利弗言:“不及。”“爾時之兒,則舍利弗是。其左面之兒,則大目揵連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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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생사의 해탈을 두렵게 여겼기 때문에,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고 열반에 들려고 한 것이니라.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킨 동자를 보라. 지금의 나로서, 나 홀로 정진하여 성불하였으며, 너희들도 이렇게 나를 따라 불법(佛法)을 떠나지 않고 성문(聲聞)의 해탈을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진정으로 빨리 열반에 들고자 한다면, 마땅히 나와 같이 성불하겠다는 마음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좀 전에 말한 빠른 방법이란, 일체를 다 아는 지혜[一切智]보다 더 나은 법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걸림이 없고, 무엇보다 훌륭하고, 다함이 없으며,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으로서,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경지이고, 특별히 뛰어난 법이며, 모든 성문과 벽지불을 뛰어넘은 경지이기 때문이니라. 그 열반을 빨리 얻으려고 한다면, 곧바로 일체를 다 아는 지혜[薩云若]의 뜻을 얻는 경지도 이와 같다. - 010_1376_b_15L佛謂舍利弗:“汝等本畏生死故不發菩薩心,而欲疾般泥洹。觀其一兒發阿耨多羅三耶三菩心者,今我自致成佛。如汝等不離吾法,而作聲聞乃得解脫。”佛復謂舍利弗:“其欲疾般泥洹者,當發意求佛如我。向之所說其疾者,無過薩芸若。所以者何?無所罣㝵故、用持尊故、用無盡故、用阿耨多羅三耶三菩心故、莫能有及等故、持有好故、以過諸聲聞辟支佛故。其欲作者,便得薩芸若意,亦復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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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6_c_02L부처님께서 이렇게 대승품[摩訶衍品]46)을 설하시자, 1만 사람이 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켰다.
사리불(舍利弗)ㆍ마하목건련(摩訶目揵連)ㆍ아난(阿難)ㆍ사비(舍比)ㆍ마하가섭(摩訶迦葉)ㆍ라월난(蠡越難)ㆍ두야화치(頭耶和致)ㆍ난리분뇩(難離分耨)ㆍ두타수보리(頭陀須菩提) 등 낱낱 뛰어난 비구들은, 머리를 부처님의 발까지 조아려 예를 올리면서 모두가 다 기려 말했다.
“만일 남자나 여자가 도를 구하려면, 마땅히 훌륭한 뜻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만일 훌륭한 뜻을 일으키지 않는다면[所以者何], 비록 부처님께서 저희들을 위하여 백천 가지로 법을 설해주신다 해도, 저희들은 보살의 마음을 일으킬 능력이 없어서, 나한(羅漢)의 경지에 머물러 있는 것을 후회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전세[本]에 5역죄(逆罪)47)를 범한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죄는 벗어나고 나면 오히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저희들은 깨달음의 종자를 태워버렸기 때문에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 보살심(菩薩心)을 감당할 그릇도 못되니, 마치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이익이 없듯이 지금 저희들의 해탈은 이익이 없습니다.
두 발 혹은 네 발 달린 천상천하(天上天下)의 중생은 다 땅을 의지하여 살아가듯, 만일 어떤 사람이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킨다면, 모든 하늘과 사람들은 다 그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 - 010_1376_c_02L說摩訶衍品時,萬人悉發阿耨多羅三耶三菩心。其一一尊比丘,舍利弗、摩訶目揵連、阿難、舍比、摩訶迦葉、蠡越難頭、耶和致難離、分耨頭陁、須菩提等,悉以頭面著佛足,皆譽言:“若男子女人欲求道者,當發尊意。所以者何?如佛百千以法爲吾等說,不能復發作菩薩心,皆而有悔爲羅漢故,不如本作五逆惡,其罪猶有解脫,可發心爲阿耨多羅三耶三菩心。今者以無所益。所以者何?惟燒佛種故。其器者以不堪菩薩心。所以者何?譬若死人無益於生者。今吾等以得脫,無益於天上天下。有兩足若四足者,皆依地而得活。其有發心爲阿耨多羅三耶三菩心者,諸天及人皆蒙其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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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아사세왕(阿闍世王)48)이 네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여러 신하와 함께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렀다.
아사세왕은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나서 아뢰었다.
“모든 사람은 어떤 인연으로 죄를 짓습니까?”
부처님께서 아사세왕에게 말씀하셨다.
“우리와 나와 사람을 집착하기 때문에 곧 죄를 지으며, 몸을 탐하기 때문에 몸으로 죄를 행하느니라. 그러므로 그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니라.” - 010_1376_c_18L爾時阿闍世王乘四馬車與群臣俱出,而到佛所,前爲作禮而住,白佛言:“一切人從何因緣而作罪?”佛語阿闍世:“以住吾我人者便作罪,貪身故而有身用,是故不離其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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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7_a_02L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탐욕과 애착을 돕는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데[無黠]49)에 있느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무엇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근원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은 일이 생각과 다른 것이 바로 그 근원이니라.”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생각과 다르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근본과 다르게 지은 일이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그 근본과 다르다는 뜻은 무엇을 말합니까?” - 010_1376_c_23L阿闍世王復問:“助貪愛者根爲在何所?”佛言:“無黠是。”則復問:“誰是無黠根?”佛言:“所作與念異,是故根。”復問:“何所與念異者?”佛言:“其本異所作謂是。”復問:“本異者何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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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환영(幻影)처럼 변화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으니라. 그러므로 달라지느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누가 변화시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드는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변화하는 것이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생기는 일도 없고 존재하는 일도 없다면, 마땅히 어떻게 헤아리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생기는 일도 없고 존재하는 일도 없으므로 헤아릴 수 없느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의심은 어떤 인연으로 일어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믿음의 근거가 없는데서 일어나기 때문이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믿음의 근거가 없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령 말을 듣고 의심한다면, 이를 믿음의 근거가 없다고 하느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무엇이 도이며, 무엇이 믿음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탐욕[婬]과 성냄[怒]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남이 도이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의 근원을 체득하지 못했을지라도 달라지지 않는 마음이니라. 그러므로 이를 믿음이라고 하느니라.” - 010_1377_a_05L佛言:“如幻所化無所有是故異。”復問:“誰化者?”佛言:“無有造者是故化。”復問:“無所生無所有,當云何計?”佛言:“用無有生無所有,故不可計。”復問:“所疑從何因緣起?”佛言:“無所據故。”“何謂無所據?”佛言:“如所說聞之則疑,是謂不據。”復問:“何所是道?何所爲信?”佛言:“脫於婬怒癡是爲道。何所是信?”佛言:“不得諸法根本,其心不畏,是故爲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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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세왕이 곧 말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여래의 말씀대로 한다면, 모든 사람은 무엇 때문에 믿지 못하겠습니까? 믿지 못함은 스스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나쁜 사람의 말을 믿고 신하에게 명을 내려 스스로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나라를 탐내었기 때문이고, 재물과 보배를 탐내었기 때문이며, 벼슬과 백성을 탐내었기 때문이고, 존귀한 자리를 탐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신하를 시켜 아버지를 해쳤으니, 몸의 탐욕에서 생긴 무서운 의심을 스스로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마시고 먹는 연회의 즐거운 자리에서도, 나라의 일을 듣고 살피는 정전(正殿)에서도, 5욕락(欲樂)50)이 넘치는 중궁전(中宮殿)에서도, 홀로 있거나 많은 사람과 함께 있는 곳에서도, 밤낮으로 그 무서운 의심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마시거나 먹어도 소화시킬 수가 없고, 잠자리에 들어도 잘 수가 없으며, 얼굴빛은 초췌하여 기쁜 빛이 없고, 때마다 두려움으로 심장은 두근거리니, 지옥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 010_1377_a_13L阿闍世王卽言:“善哉善哉!如怛薩阿竭所說。一切人所以不信者何?自作故。今我用惡人之言,勅令臣下自殺其父,用貪利國故、用貪財寶故、用貪利宰民故、用貪利尊貴故。今我使臣下而害其父,貪身狐疑不能自解,若飮若食在戲樂、若在正殿聽省國事、若在中宮五樂之欲、若獨與衆俱,晝夜而不忘,飮食則不能消,亦無其臥,顏色亦無和悅。時其心常怖懅,知不離於泥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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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7_b_02L아사세왕은 이어 부처님께 말하였다.
“부처님을 받들어 모시면 눈먼 사람도 눈을 뜰 수 있고, 부처님을 의지하면 물에 빠진 사람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부처님께서는 고통받는 사람을 편안케 해주시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을 보호해 주십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가난으로 헐벗은 이에게 보배를 베풀어주시고, 길을 잃고 헤매는 이에게 바른 길을 보여주십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가엾게 여기는 마음[大哀]51)을 일으키시어 괴로운 경계도 괴롭게 여기지 않으시고, 일체 흔들림이 없는 평등한 마음으로 다 받아들이시어 두터운 덕을 베푸시며, 언제나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견디면서 모든 사람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지금 저의 몸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사오니, 부디 부처님께서는 보호하시어 위험에 처한 저를 편안케 해주시고, 아무도 구제해 주지 않는 이 몸을 구제해 주시고, 돌아갈 곳이 없는 저를 가엾게 여기시고 몸과 목숨을 다 바쳐 향하는 정성을 받아 주옵소서.
또 저는 눈먼 사람이나 다름없사오니, 부디 볼 수 있도록 해주시고, 쓰러지려는 사람이나 다름없으니, 제발 넘어지지 않고 설 수 있도록 하옵소서. 이제 저는 마땅히 무간지옥[阿鼻地獄]52)에 이어 다른 큰 지옥[大泥犁]으로 가야 하오니, 이러한 지옥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옵소서.
원하오니 부처님이시여, 이제 마땅히 알맞은 설명으로 마음이 열릴 수 있도록 제 의심을 풀어주시어 죽을 때까지 남은 의심이 없게 하시고, 이 크고 무거운 죄가 작고 가벼워지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 010_1377_a_24L則復陳言:“若盲者承佛所得眼目,若爲水所溺者依佛而得脫,其有苦痛者佛而令得安,其有恐懅者佛而爲作護,其有貧窮者佛能爲作珍寶,其有失道徑者能示於道路。佛以加大哀不以爲勤劇,等心於一切堅固而作厚,常忍於苦樂,不捨於一切人。今我身而怖懅,惟佛當加護,令危者而得安。身無有能救者,唯願而得濟,無所歸者惟願受其歸命。譬若無眼目惟得而視瞻,如人之欲躄惟令而得往。今當入阿鼻乃至大泥犂,願令得不入。惟怛薩阿竭今當爲我解說吾之狐疑,令心而得開至死無餘疑,令重罪而得微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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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아사세왕과의 대화를 생각해 보셨다.
“왕의 말은 매우 깊고 미묘하니, 나 또는 문수사리가 감응(感應)을 내리지 않는다면 이 병을 치료할 수 없겠구나.”
사리불이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들어 아사세왕에게 말했다.
“의심을 결단하시려면, 내일 아침 음식공양을 준비하여 문수사리보살을 초청하십시오. 만일 문수보살이 그 궁전으로 가서 공양을 받는다면, 왕의 관리들은 다 마땅히 그 복을 받을 것이며, 아울러 나열국(羅閱國)53)의 백성들은 그 공덕으로 반드시 본보기를 삼을 것입니다.”
사리불의 말을 듣고 아사세왕은 문수사리보살에게 아뢰었다.
“부디 큰 은혜를 베푸시어 덕을 낮추시고 내일 아침 궁전으로 오셔서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그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공양을 받았습니다.” - 010_1377_b_15L佛念阿闍世王,其所說甚深而微妙,是病莫能療之者,獨佛文殊師利而有感應。舍利弗承佛威神,謂阿闍世:“欲決狐疑者明旦作食,請文殊師利等,令到其宮受之者,其若之官屬皆當得其福,幷羅閱國諸民皆因是功德可而爲本。”阿闍世王則白文殊師利:“惟加大恩,明旦屈德就宮而食。”則文殊師利答言:“以足可爲供養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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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7_c_02L문수사리보살이 또 이어 말했다.
“불법은 의복이나 음식으로 그 대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사세왕이 곧 아뢰었다.“그렇다면 마땅히 무엇을 보답으로 베풀어야 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왕께서는 깊이 미묘한 경지에 들어가서 그 죄[其事]를 자세히 살피고 헤아려서, 더러운 일이 없고 집착하는 일도 없고 의심하는 일도 없고 어려운 일도 없고 두려운 일도 없고 한 점의 겁낼 일도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대비(大悲)를 내려 청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또 이어 아사세왕에게 말했다.
“모든 법을 생각할 때,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래야만 대비(大悲)를 내려 청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 마땅히 과거의 마음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미래의 마음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현재의 마음도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행해야만 대비(大悲)를 내려 청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왕은 마땅히 일체를 볼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진실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야만 대비를 내려 청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 010_1377_b_24L文殊師利復言:“佛法非以衣食故。”阿闍世卽白:“當何以施之?”則答言:“若深入微妙,其事審諦無所污亦無所著,亦無所疑無所難、無所畏無所一懼,如是者以爲得哀。”文殊師利復語阿闍世:“念諸法,亦不念有亦不念無,是者以爲得哀。不當念過去意,亦不當念當來意,亦不當念現在意,作是者以得加哀。汝不當念一切之所可見者,亦不誠作是者,以得加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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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세왕이 또 문수사리보살에게 아뢰었다.
“보살의 말은 다 경전에 실려 있는 법과 다르지 않습니다. 부디 이 몸을 위하여 마땅히 대비를 내리시고 청을 받아주십시오.”
문수사리보살이 또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 도는 이 몸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마시거나 먹을지라도, 왕은 우리와 나와 수명의 길이와 목숨과 사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야만 대비(大悲)를 내려 청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왕의 마음에도 가지는 일이 없어야 하고, 인연하는 일도 없어야 하며, 4대(大)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5음(陰)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6쇠(衰:塵)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삼계를 붙들어 지니지도 않아야 하며, 공덕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공덕이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세속을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고 출세간의 도를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며, 죄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죄가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남음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남음이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해탈의 경지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해탈의 경지가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생사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고 열반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대비(大悲)를 내려 청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 010_1377_c_11L阿闍世王復白文殊師利:“如所言,悉法之所載無有異,惟以身故當加哀受其請。”文殊師利復言:“且止。其道者非以是故若飮若食。若王不念有吾有我壽命,人以念是者以得加哀。若心無所持亦無所緣,亦不四大亦不五陰,亦不六衰亦不持三界,亦不於功德亦不念無有功德,亦不於俗亦不於道,亦不於罪亦不於無罪,亦不於餘亦不於無餘,亦不於脫亦不於無脫,亦不於生死亦不於泥洹,作如是者以得加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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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8_a_02L아사세왕이 또 문수사리보살에게 아뢰었다.
“이 법을 들으니 더욱 기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하려는 것입니다. 제발 저를 이 법의 인연으로 안온한 경지에 들게 하소서.”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당신은 인연의 대상을 두고안온한 경지에 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연하지도 않아야 하고, 안온한 경지를 바라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법에는 인연의 대상도 없고 안온한 경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을 떠받쳐 교만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일체에 생각하는 대상이 없어야만 그대로가 인연이요, 그대로가 안온한 경지입니다.
이 가운데 나쁜 뜻이 없어야만 뒤에 다시는 재앙의 변고가 없습니다. 뒤에 재앙의 변고가 있으면 불안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어야만 비로소 편안하게 됩니다.” - 010_1377_c_22L阿闍世王復白文殊師利:“聞如是法倍復踊躍,以是故欲請之,令我緣是而得安隱。”文殊師利答言:“汝希望有所緣欲得安隱,是以不緣則無安隱。所以者何?因其法無所緣無有安,不念是亦不貢高,一切無所念,是故緣是故安。於是中無惡意,後復無災變者。後有災變者是則不安,從本至竟無有異是乃爲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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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변하지 않는 법이란 무엇이기에 안온한 경지에 들 수 있다고 설하는 것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만일 공(空)하여 작용도 없고 작용시킬 수도 없으면, 모양도 없고 바라는 욕망도 없습니다. 작용도 없고 작용시킬 수 없음에도, 나에게 작용하는 일이 있다거나 작용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달라지고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하지도 않고 인연의 대상도 없는 가운데 몸과 입과 뜻이 작용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생기고 사라지는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에 비록 인연의 대상이 있을지라도, 마땅히 다 인연의 대상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 010_1378_a_08L阿闍世復問:“說何所法而無異可得安?”文殊師利言:“若空無作者,無有能作者,無有想、無有願、無有作,亦無有作者。其有念我有所作無所作,是故爲異。亦不求無所緣,身口意是爲作。所以者何?無生死想。是故諸法若有所緣,當知悉無所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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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생기고 사라지면서도 생기고 사라짐이 없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과거는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지금 현재도 무상(無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모든 법에 더하거나 덜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생기고 사라지면서도 생기고 사라짐이 없는 것입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아직 해탈하지 못한 이는 어떻게 해야 도(道)와 합하게 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해의 밝음이 어둠과 합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사세왕이 말했다.
“합하지 않습니다. 해가 떠오르면 온갖 어둠은 다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왕은 과연 그 어둠이 사라져서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아십니까?”
아사세왕이 답했다.
“그 어둠이 사라져서 어느 곳으로 갔는지 볼 수 없습니다. - 010_1378_a_14L阿闍世復問:“何謂生死無生死?”則言:“不念過去以盡。亦不念當來未至。亦不念今“現在而無常,於諸法不念有所增有所減,作者是生死則無生死。”阿闍世復問:“未脫者當云何與道合?”文殊師利言:“汝知日明與冥合不?”阿闍世言:“不合。所以者何?日出衆冥晦滅。”文殊師利言:“王寧知冥所去處乎?”答言:“不見可處,而在何所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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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8_b_02L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마치 해가 떠오르면 온갖 어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이른바 도의 지혜가 올 때에도 아직 해탈하지 못한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문수사리보살이 또 이어 말했다.
“도는 해탈하지 못한 경계와 평등하고, 해탈하지 못한 경계는 도와 평등합니다. 왜냐 하면 다 함께 공(空)하기 때문입니다. 해탈하지 못한 경계와 도가 평등하므로 모든 법이 평등합니다. 이렇게 아는 사람은 아직 해탈하지 못함을 도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해탈하지 못한 자체를 찾아보아도 그 자리를 알지 못함이 바로 도이며, 해탈하지 못한 자리를 찾아보아도 볼 수 없음이 바로 도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어째서 해탈하지 못한 자체를 도라고 하십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해탈하지 못한 자체를 도라고 할지라도, 도라고 생각하지 않음을 도(道)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 010_1378_a_23L文殊師利言:“所謂道智來時,譬若日出不可知衆冥所在,如是時亦不知未脫所在。”文殊師利復言:“道與未脫等、未脫與道等。何以故?俱空故,未脫與道等故。諸法平等,其知是者未脫則爲作道。何以故?求不脫不知處,是故曰道。其求不脫處而不可見,是則道。”阿闍世復問:“云何不脫而爲道?”文殊師利言:“於不脫是爲道,不作是者爲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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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그 도는 마땅히 어떻게 배워야 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모든 법을 배우는 그대로 배워야 합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모든 법을 배우는데 어찌 처소가 있겠습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배운다고 생각하면 도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그렇게 배운다면 반드시 열반에 도달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다시 말해서 어떤 법이 열반으로부터 왔다면, 나는 열반에서 왔노라고 말하겠습니까?”
아사세왕이 곧 말했다.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습니다.” - 010_1378_b_09L阿闍世復問:“其道者當云何學?”則答言:“如學諸法。”阿闍世復問:“以學諸法寧有處所不?”文殊師利言:“作是學道不可至。”阿闍世復問:“其學者當至泥洹不?”文殊師利言:“乃有法從泥洹來,言我從泥洹來?”阿闍世卽言:“亦無往者,亦無來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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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보살이 아사세왕에게 말했다.
“도를 배우면 처소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라고 합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마땅히 어떻게 해야 도에 머문 그대로 도를 배울 수 있겠습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머무는 대상이 없는 것이 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그렇게 도를 배운다면 청정한 계율과 삼매와 지혜에 머물렀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그 도는 계율을 인연하지도 않고, 삼매를 구하지도 않으며, 지혜에 머물렀다고 교만하지도 않습니다.” - 010_1378_b_15L文殊師利謂阿闍世:“其學道知無處所,是故道。”阿闍世復問:“當何所住道而學作是?”則答言:“無所住是爲學道。”阿闍世復問:“其學道者不作淨戒、三昧、智慧住?”卽答言:“其道者不緣戒、不求三昧、不貢高於智慧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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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378_c_02L문수사리보살은 이어 아사세왕에게 말했다.
“다시 말해서 가령 계율을 인연하고 삼매를 구하며 지혜를 높여 교만 한다면 머무는 곳이 있겠습니까?”
아사세왕이 말했다.
“없습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그러므로 마땅히 도에는 머무는 대상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남자나 여인이 마땅히 도에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도를 배워 나아가려면, 법에 영원하다 영원하지 않다는 견해가 없어야 하고, 법에 해탈의 경지가 있다, 해탈의 경지가 없다는 견해도 없어야 하며, 법에 편안하다든지 괴롭다는 견해도 없어야 하고, 또 법에 나의 존재가 있다든지 모든 사람의 존재가 있다는 견해도 없어야 하며, 또한 법에 생사가 있다거나 열반에 이른다는 견해도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도를 배운다면 도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 010_1378_b_21L文殊師利謂阿闍世:“乃可緣戒、求三昧、貢高於智慧,作如是則有住處不?”阿闍世言:“無。”文殊師利言:“故當如道無所住。”阿闍世復問:“若男子女人當云何自前於道?”文殊師利言:“其欲學道者,不見法有常無常,不見法有脫無有脫,亦不見法安若苦者,亦不見法是我若一切人,亦不見法在生死至泥洹者,作是學道者爲以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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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세왕이 곧 말했다.
“대단히 훌륭합니다. 문수사리보살께서 말씀해 주신 법은 틀림이 없습니다. 부디 이제는 그 청을 받아 주십시오. 왜냐 하면 의심을 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고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 모든 법에는 우리도 없고 나도 없으며, 수명의 길이도 없고 목숨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의심을 품은 것입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없는 그 자체를 있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없는 그 자체는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날 대상도 없습니다. 가령 나에게 해탈이 있다고 말할지라도 해탈이 없으므로, 해탈도 없고 해탈할 대상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모든 법은 다 그 자체가 해탈이기 때문입니다.” - 010_1378_c_07L阿闍世王卽言:“善哉善哉!如文殊師利菩薩之所言。惟願受其請。所以者何?用狐疑故。熟自思念,如諸法無吾無我、無壽無命,而我有狐疑。”文殊師利言:“如無者不可令有,以無者亦不脫亦無所脫,其說我者而有脫者,以無有脫者亦不脫亦無所脫。所以者何?諸法悉脫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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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아사세왕의 청을 받아들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여라.”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예. 여래의 분부를 어길 수 없으니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아사세왕은 뛸 듯이 기뻐하였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과 모든 비구와 문수사리보살에게 예를 올리고 그 곳을 나왔다. - 010_1378_c_14L佛謂文殊師利:“受阿闍世王請,用無央數人故。”文殊師利則言:“惟受怛薩阿竭教。所以者何?不違教故。”阿闍世則踊躍歡喜,便從座起,爲佛諸比丘及文殊師利作禮而去。
-
010_1379_a_02L아사세왕은 가다가 잠시 멈춰 사리불에게 물었다.
“문수사리보살이 거느린 대중은 몇 분이나 됩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5백 사람입니다. 이들은 다 궁전의 음식을 드실 분입니다.”
아사세왕은 길을 따라 성(城)으로 돌아오자, 곧 대신들에게 모든 것을 준비하도록 명하였다. 궁전의 권속들은 온갖 맛있는 음식을 장만함과 동시에, 그 날로 궁전을 청소하고 당기(幢旗)ㆍ번기(幡旗)ㆍ휘장(揮帳)ㆍ꽃 일산 등을 설치하였으며, 온갖 꽃을 땅에 깔고 좋은 향을 뿌렸다. 또 5백 개의 의자[床]를 진열하고, 그 의자마다 온갖 빛깔의 보배구슬로 짜여진 피륙을 깔아놓았다.그러자 온 궁전은 곳곳마다 두루 꽃과 향으로 깨끗하게 장식되었다. 그리고 칙령을 내려, 성곽의 모든 거리와 시전(市廛)의 마을들을 다 깨끗하게 소제하여 꽃을 흩고 향을 뿌리게 하였으며, 길가에도 휘장(揮帳)을 치고 당기와 번기를 달게 하였고, 그 마을의 문에는 양쪽으로 꽃다발을 걸어 놓게 하였다. 또 백성들에게는 “내일 아침 모두 거리로 나와 문수사리보살을 맞이하여 공양하라”고 명하였다. - 010_1378_c_19L阿闍世行,且問舍利弗:“文殊師利等輩者幾人?”舍利弗言:“五百人悉令於宮食。”便從道歸於城。卽勅大宮令作百味之食。卽日治其殿上,施其幢幡帷帳花蓋,以花布其地,悉持名香而薰之。設五百高牀,皆布名珠琬%(王*延)其色若干,合宮之內悉皆治嚴,以花香遍之。勅令城郭諸街市里皆而掃除,以花香從之。道邊者皆施帷帳幢幡而起除之,其里之門皆施雙結花,令諸人民明旦皆當道迎供養。
-
그 날 초저녁[初夜]에 문수사리보살은 홀로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적은 수의 비구들만 거느리고 왕의 청에 따른다면, 저를 감동시키기 어렵다. 이제 다른 세계로 가서 여러 보살들을 청하여 그들을 왕궁의 공양법회에 참석케 하고, 그들에게 나의 설법을 들려 주리라.”
이렇게 생각한 문수사리보살은 팔을 한번 펴는 사이에, 곧 이 곳에서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곧장 동쪽으로 가서 8만 2천의 부처님 세계를 지나 상명문(常名聞)이라는 세상에 이른 것이다. 그곳 부처님의 이름은 유정수(惟淨首)로서, 현재 많은 보살을 거느리고 있었다. 또 그 세상에는 불법(佛法)이외의 다른 도가 없었고, 언제나 물러남이 없는 법륜[阿惟越致法輪]54)이 구르고 있었다. - 010_1379_a_07L文殊師利卽初夜,文殊自念:“我與少少俱出至請,亦無他感動,乃可到他方剎土請諸菩薩,往到彼所令就請,復悉聽其所說法。”作是念時,應時如伸臂之頃便從是不現,到東方過八萬二千佛剎,其剎名常名聞,其佛號字惟淨首,今現在,有衆菩薩無異道,其剎土常轉阿惟越致法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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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땅의 모든 나무는 다 온갖 보배로서, 잎사귀들과 꽃들과 열매들은 헤아릴 수 없는 빛깔로 어우러졌는데, 바람이 한번 불어와서 흔들릴 때마다 그 온갖 나무에서는 단지 부처님의 소리와 법의 소리와 물러남이 없는 승보[阿惟越致僧]55)의 소리만 들려왔다. 이렇게 항상 끊임없이 삼보(三寶)의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에 그 세상의 이름을 상명문(常名聞:沙陀惟瞿吒)이라고 하였다.
이미 그곳에 온 문수사리보살은 유정수(惟淨首)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저는 소원이 있어서 여기에 왔습니다. 이 보살들을 다 인(忍:沙呵)세계로 보내시어 아사세왕의 궁전에서 공양을 받도록 하옵소서.”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고 싶은 보살은 가도록 하라.” -
010_1379_a_14L其土諸樹悉皆衆寶,其葉花實無央數色,風一起時吹其諸樹,但聞佛音、但聞法音及阿惟越致僧音。用是常聞三寶聲,故其剎土名曰沙陁惟瞿咤。文殊師利已在彼所,爲佛作禮,白其怛薩阿竭:“願用我故,盡令菩薩到沙呵剎土,至阿闍世所而就食。”佛則謂之:“其欲行者便可往。”
佛說阿闍世王經卷上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 1)본경(本經)의 이역본(異譯本)으로는 『문수지리보초삼매경(文殊支利普超三昧經:전 3권 13품)』과 『불설미증유정법경(佛說未曾有正法經:전 6권)』과 『불설방발경(佛說放鉢經)』 등이 전하고 있다. 이 가운데 『불설방발경』은 이 경의 방발설(放鉢說) 한 부분만을 번역한 것이다.
- 2)총지(摠持)는 다라니(陀羅尼)의 의역(意譯)으로서, 불교(佛敎)의 한량없는 법을 잘 간직하여 잃지 않는 것을 말한다.
- 3)본문의 무소괘애욕(無所罣閡欲)을 이 경의 이역본(異譯本)인『문수지리보초삼매경(文殊支利普超三昧經)』과 『불설미증유정법경(佛說未曾有正法經)』에서는 각각 변재무애(辯才無礙)와 무애변(無礙辯)으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이 무소괘애욕(無所罣閡欲)의 욕자(欲字)에 변재(辯才)란 뜻이 없으나, 이역본(異譯本)들을 참고하여 변재(辯才)로 번역하였다.
- 4)무생법인(無生法忍)은 생하고 멸함이 없는 법으로서, 보살의 경지이며, 3법인(法忍)의 하나이다. 본문의 무소종생법(無所從生法)은 무생법인을 달리 한역(漢譯)한 말이다.
- 5)한어(漢語)로 음역(音譯)된 이 스물 다섯 보살의 이름은 각 독립된 명칭을 구별하는데 난해(難解)한 부분이 있고, 본경의 의역명(意譯名) 또한 이역본(異譯本)마다 다르므로, 아래에 참고로 『문수지리보초삼매경(이하 三昧經으로 약칭함)』과 『불설미증유정법경』(이하 正法經으로 약칭함)의 의역명(意譯名)을 함께 밝혀둔다.
- 6)일체를 막힘 없이 다 아는 지혜로서, 살바야(薩婆若) 또는 살운야(薩云若)의 의역(意譯)이며, 일체종지(一切種智) 또는 도종지(道種智)라고도 의역한다. 이하에서는 일체지(一切智)를 ‘일체를 다 아는 지혜’로 번역한다.
- 7)승나승열(僧那僧涅)의 승나(僧那)는 홍서(弘誓) 또는 대서(大誓)로, 승열(僧涅)은 자서(自誓)로 각각 의역(意譯)하며, 합쳐서 말하면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뜻한다.
- 8)끝없는 지혜는 무극혜(無極慧)를 번역한 것으로 일체를 다 아는 지혜[一切智]에 거의 근접한 지혜를 뜻한다.
- 9)소시여(所施與)는 베푸는 일로서 보시(布施)를 뜻한다.
- 10)금륜(金輪), 은륜(銀輪), 동륜(銅輪), 철륜(鐵輪)을 굴리는 전륜성왕(轉輪聖王) 왕 중에서 금륜(金輪)을 굴리는 전륜성왕을 금륜왕(金輪王)이라고 한다.
- 11)색계(色界)의 초선천(初禪天)으로서 범중천(梵衆天), 범보천(梵輔天), 대범천(大梵天)을 다 범천(梵天)이라고 한다.
- 12)수미산(須彌山)의 아래쪽 사방에 위치한 남섬부주(南贍部洲:舊譯은 南閻浮提)ㆍ동승신주(東勝神洲:舊譯은 東弗婆提)ㆍ서우화주(西牛貨主:舊譯은 西瞿耶尼)ㆍ북구로주(北瞿盧洲:舊譯은 北鬱單越)의 4대주(大洲)와 여기에 수미산의 중턱에서 위쪽으로 위치한 사왕천(四王天)ㆍ도리천(忉利天:三十三天)ㆍ야마천(夜摩天:善時天 또는 時分天)ㆍ도솔천(兜率天:知足天)ㆍ화락천(化樂天:樂變化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6욕천(欲天)을 포함하여 한 세계로 하고, 이 한 세계의 천 단위를 1소천세계(小千世界), 1소천세계의 천 단위를 1중천세계(中千世界), 1중천세계의 천 단위를 1대천세계(大千世界)라고 하며, 천(千)이 세 번이므로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라고 한다.
- 13)성불(成佛)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부처님과 함께 공유(共有)할 수 없는 부처님의 18공덕법(功德法)으로서 ① 몸에 결점이 없음[身無失] ② 입에 결점이 없음[口無失] ③ 사유(思惟)에 잘못이 없음[念無失] ④ 중생을 평등하게 맞이하여 다른 생각이 없음[無異想] 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할지라도 선정(禪定)에서 벗어나지 않음[無不定心] ⑥ 일체를 다 비춰 알면서도 버리고 집착하지 않음[無不知已捨] ⑦ 중생을 제도하려는 소원이 줄어들지 않음[欲無減] ⑧ 성불(成佛)하기 전과 다름없이 정진함[精進無減] ⑨ 중생을 제도하는 사유력(思惟力)이 줄어들지 않음[念無減] 지혜의 경지가 들어들지 않음[慧無減] 해탈의 경지가 줄어들지 않음[解脫無減] 해탈지견(解脫智見)이 줄어들지 않음[解脫智見無減] 몸의 작용이 모두 지혜를 따라 행함[一切身業隨智慧行] 입의 작용이 모두 지혜를 따라 행함[一切口業隨智慧行] 뜻의 작용이 모두 지혜를 따라 행함[一切意業隨智慧行] 지난 세상을 아는 지혜가 걸림이 없음[智慧知過去世無礙] 미래의 세상을 아는 지혜가 걸림이 없음[智慧知未來世無礙] 현재의 세상을 아는 지혜가 걸림이 없음[智慧知現在世無礙]을 말한다.
- 14)여래(如來)의 10력(力)으로서 ① 바르고 바르지 못한 이치를 다 아는 지혜의 힘[處非處智力] ② 삼세(三世)의 업보(業報)에 대하여 인과관계(因果關係)를 여실하게 다 아는 지혜의 힘[業異熟智力] ③ 선정(禪定)의 해탈(解脫)과 삼매(三昧)에 대하여 얕고 깊음을 다 아는 지혜의 힘[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 ④ 중생의 근기(根機)에 대하여 높고 낮음을 다 아는 지혜의 힘[根上根下智力] ⑤ 갖가지 해탈방법을 다 아는 지혜의 힘[種種解脫智力] ⑥ 중생의 능력에 대하여 갖가지 범위를 다 아는 지혜의 힘[種種界智力] ⑦ 6취(趣)에 태어나는 중생의 인과와 행을 두루 아는 지혜의 힘[遍趣行智力] ⑧ 과거세상의 온갖 일을 기억하여 다 아는 지혜의 힘[宿住隨念智力] ⑨ 천안(天眼)으로 중생의 살고 죽는 때와 미래의 좋고 나쁜 세상을 다 아는 지혜의 힘[死生智力] 스스로 번뇌가 다 사라져서 다음에 받는 생(生)이 없음을 알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번뇌가 다 사라진 경지도 아는 지혜의 힘[漏盡智力]을 말한다.
- 15)안에서나 밖에서나 마음을 알맞게 맞춰 가며 나쁜 길로 유혹하는 일을 순경계(順境界)라고 한다.
- 16)색(色:物質)ㆍ수(受:感受)ㆍ상(想:想像)ㆍ행(行:遷流)ㆍ식(識:認識)의 5온(蘊)으로서, 물질의 구성요소[色]와 정신의 변화작용[受想行識]을 말한다.
- 17)37도품(道品), 37각분(覺分), 37보리분법(菩提分法), 37조도품(助道品)이라고도 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37종류(種類)의 수행법(修行法)으로서,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四正斷)ㆍ4신족(神足:四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支)ㆍ8정도(正道)를 말한다.
- 18)보살이 수행하는 여섯 가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덕목으로서, 보시(布施:檀那波羅蜜)ㆍ지계(持戒:尸羅波羅蜜)ㆍ인욕(忍辱:羼提波羅蜜)ㆍ정진(精進:毘梨耶波羅蜜)ㆍ선정(禪定:禪那波羅蜜)ㆍ지혜(智慧:般若波羅蜜)를 말한다.
- 19)4등심(等心)은 ①사랑으로 즐거움을 베푸는 자(慈) ②상대를 가엾게 여기면서 고통을 없애주는 비(悲) ③상대의 기쁨을 따라 기뻐하는 희(喜) ④일체를 평등하게 대하는 사(捨)의 한량없는 마음으로서, 4무량심(無量心), 4범주(梵住), 4범당(梵堂)이라고도 한다. 이 가운데 범주(梵住)와 범당(梵堂)이란, 이 4등심(等心)을 행하면 대범천(大梵天)에 태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 20)5신통(神通)으로서 ① 6도(道)의 모든 소리를 걸림 없이 들을 수 있는 천이통(天耳通) ② 6도(道)의 모든 형상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 ③ 상대의 마음을 환하게 아는 타심통(他心通) ④ 지난 세상의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숙명통(宿命通) ⑤ 여러 가지 변화신(變化身)으로 걸림 없이 작용하는 신족통(神足通)이다.
- 21)4섭법(攝法), 4사섭법(事攝法), 4섭사(攝事), 4섭(攝)이라고도 한다. ① 온갖 것을 베풀어주면서 바른 법으로 끌어들이는 보시섭(布施攝), ② 부드러운 말로 설득하여 바른 법으로 끌어들이는 애어섭(愛語攝), ③ 이익을 베풀어주면서 바른 법으로 끌어들이는 이행섭(利行攝), ④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어 살아가면서 바른 법으로 이끌어들이는 동사섭(同事攝)을 말한다.
- 22)3해탈(解脫)과 인욕(忍辱)의 이로운 행을 말한다. 3해탈은 ①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관하여 해탈하는 공해탈(空解脫) ② 온갖 상(相)에서 본래 모양이 없음을 관하여 차별(差別)을 떠난 무상해탈(無相解脫) ③ 원하여 찾는 생각을 내지 않는 무원해탈(無願解脫:無作解脫)이며, 인욕의 이로운 행은 참고 견디면서 이익을 베푸는 일이다.
- 23)구화구사라(漚★拘舍羅)는 한역(漢譯)의 방편선교(方便善巧) 또는 방편승지(方便勝智)로서, 중생의 마음을 잘 맞춰 교화하는 훌륭한 방법과 뛰어난 지혜를 말한다.
- 24)온갖 모양과 모든 법이 공(空)한 이치를 깨달아 집착하지 않고 머무는 경지로서, 문수설법(文殊說法)의 요지이다.
- 25)“삼계(三界)에 있을지라도 삼계의 일을 익히지 않아야 합니다”로부터 “벽지불(辟支佛)의 경계에도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까지는 ‘머물면서 머무는 대상이 없는 경지’에 대한 구체적 총론이다.
- 26)“생사(生死)를 익혀 왔다고 한다면 생사에 대한 무지(無知)를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로부터 “번뇌의 남음이 있는 경계를 익혀 왔다고 한다면 번뇌의 남음이 없는 법을 다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까지는 문수보살이 ‘머물면서 머무는 대상이 없는 경지’를 밝히기 위하여, 일반 보살들이 교화할 때 설할 수 있는 내용을 실례(實例)로 들어 구체적 각론(各論)으로 제시한 것이다.
- 27)“이러한 모든 법을 닦을 때”로부터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까지는 ‘머물면서 머무는 대상이 없는 경지’에 대한 결론이다.
- 28)달살아갈(怛薩阿竭)은 여래(如來)의 음역(音譯)이며, 진리에서 오셨다는 뜻이다.
- 29)셋은 작용과 죄와 얻음을 말한다.
- 30)가라월(迦羅越)의 의역(意譯)은 장자(長者), 가주(家主), 재가(在家)로서, 출가하지 않고 불법을 닦는 남자를 말한다. 뒤에 중국에서 거사(居士)로 이름하면서부터 거사란 명칭이 일반화되었다.
- 31)인(忍)은 사하(沙呵)의 의역(意譯)이다. 사하는 사바(沙婆), 사하(沙訶), 색하(索訶), 사부(沙桴)로도 음역하고, 인(忍)외에 감인(堪忍), 능인(能忍)으로도 의역한다. 갖춘 말은 사하루타(沙訶樓陀)로서, 사바세계(沙婆世界), 인토(忍土), 인계(忍界), 감인토(堪忍土)이며, 곧 남염부제(南閻浮提:新譯, 南贍部洲)를 말한다. 석가세존(釋迦世尊)의 교화권(敎化圈)에 속한 이 남염부제(南閻浮提)의 중생은, 번뇌의 괴로움을 견디고 참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며, 수행자 또한 괴로움을 견디고 참으면서 닦아야 하므로, 이 세계를 감인(堪忍)이라고 하였다.
- 32)일생소계(一生所繫)라고도 하는데, 마지막으로 일생(一生)만 미혹(迷惑)의 세계에 매어 있다가 다음 생에 불과(佛果)를 이루는 자리로서, 보살의 최고 경지인 등각위(等覺位)를 말한다.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등에 따르면, 미륵보살(彌勒菩薩)은 현재 도솔천(兜率天)에 있으나 여기서 일생을 보내고 나면, 인간계에 태어나서 성불(成佛)하고 석가모니불의 뒤를 이어 중생을 제도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 33)예류과(預流果)의 음역(音譯), 성문사과(聲聞四果)의 첫 과위(果位)로서, 처음 무루도(無漏道)에 들어간 지위(地位)이다
- 34)중생이 미혹(迷惑)한 업력(業力)에 따라 고통받는 세 갈래 길[三道]. ① 진리를 미혹하여 번뇌하는 혹도(惑道). ② 몸과 입과 뜻으로 업을 짓는 업도(業道). ③ 미혹과 업의 힘으로 불러들인 고도(苦道)로서, 이 혹(惑)과 업(業)과 고(苦)가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길이므로 도(道)라고 한다.
- 35)본문에는 인유무선(人惟務禪)으로 되어 있으나, 인(人)은 팔(八)의 잘못인 듯 하다. 이 번역문에서는 인(人)을 팔(八)로 고쳐 8유무선(八惟務禪)이라고 하였다. 8유무선(八惟務禪)은 8해탈(解脫)로서 ① 모든 색상(色相)에서 부정관(不淨觀)을 닦아 마음속의 색상(色想)을 버리고 벗어나는 해탈[內有色想觀諸色解脫] ② 마음속의 색상(色想)이 없어졌더라도 이를 굳게 다지기 위해 계속 부정관(不淨觀)을 닦아 색상(色想)을 완전히 버리고 벗어나는 해탈[內無色想觀外色解脫] ③ 앞 ①, ② 해탈의 부정관(不淨觀)에 매인 마음을 떠나서 정색(淨色)을 닦아 벗어나고 이를 원만하게 갖춰서 정(定)에 안주(安住)하는 해탈[淨解脫身作證具足住] ④ 모든 색상(色想)을 초월하여 공무변처(空無邊處)의 마음을 갖춘 해탈[空無邊處解脫:超諸色想滅有對想不思惟種種想入無邊空空無邊處具足住解脫] ⑤ 공무변처(空無邊處)의 마음을 초월하여 식무변처(識無邊處)의 마음을 갖춘 해탈[識無邊處解脫:超一切空無邊處入無邊識識無邊處具足住解脫] ⑥ 식무변처(識無邊處)의 마음을 초월하여 무소유처(無所有處)의 마음을 갖춘 해탈[無所有處解脫:超一切識無邊處入無所有無所有處具足住解脫] ⑦무소유처(無所有處)의 마음을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마음을 갖춘 해탈[非想非非想處解脫:超一切無所有處入非想非非想處具足住解脫] ⑧수상(受想)을 버리고 일체의 심(心)과 심소(心所)를 멸하여 멸진정(滅盡定)에 드는 해탈[滅受想定解脫身作證具足住:超一切非想非非想處入想受滅身作證具足住解脫]이다.
- 36)이 3도가(道家)를 이 경의 이역본(異譯本)인 『문수지리보초삼매경(文殊支利普超三昧經)』과 『불설미증유정법경(佛說未曾有正法經)』에서는 각각 3승교(乘敎)와 3승법(乘法)으로 한역(漢譯)하였기 때문에, 이를 참조로 3도(道)를 3승(乘)으로 보고 가(家)를 인칭(人稱)으로 보아 3승의 성자(聖者)로 번역하였다.
- 37)5탁(濁)은 5재(滓) 또는 5혼(渾)이라고도 하며, 다섯 가지 혼탁(混濁)으로서 ① 기근(饑饉), 질병(疾病), 전쟁(戰爭) 등 시대의 혼탁[劫濁] ② 사견(邪見), 사법(邪法) 등 부정한 사상이 넘치는 혼탁[見濁] ③ 인간의 미혹(迷惑)이 넘치는 혼탁[煩惱濁:惑濁] ④ 인간 전반에 걸쳐 도덕(道德)이 무너지고 인륜(人倫)을 저버리는 혼탁[衆生濁:有情濁] ⑤ 인간의 수명(壽命)이 점차 줄어들면서 고통을 당하는 혼탁[命濁:壽濁)을 말한다. 5탁악세(濁惡世)는 다섯 가지 혼탁이 넘치는 세상으로서, 인간의 최고 수명인 8만 4천 세에서 백 년마다 1세씩 줄어드는 감겁(減劫)이 진행되어 2만 세의 정명(定命)에 이르면, 다섯 가지 혼탁상(混濁相)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점차 강한 양상으로 이어간다고 한다.
- 38)부처님의 몸에 갖춘 32상(相)으로서, 32대인상(大人相), 32장부상(丈夫相)이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이 상(相)을 갖춘 사람이 세속에 있으면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고, 출가하여 도를 닦으면 부처님이 된다고 한다.
- 39)80수형호(隨形好)로서, 32상(相)에 딸린 섬세하고 훌륭한 모양을 말한다.
- 40)사문(娑門), 사문나(沙門那), 상문(桑門), 상문(喪門), 사라마나(舍囉摩拏), 실라말나(室囉末拏) 등의 음역(音譯)이 있으며, 근식(勤息), 식심(息心), 식악(息惡), 식지(息止), 구로(劬勞) 등으로 의역(意譯)한다. 인도 고대로부터 사용해 오던 출가수행자(修行者)의 일반 명칭이이나, 뒤에 불교에서도 비구(比丘) 등 수행자를 사문이라고 하였다.
- 41)여래의 10력(力). 주(註) 14) 참조.
- 42)설법할 때 네 가지 두려움이 없는 지혜의 힘으로서, 부처님의 4무소외(無所畏)와 보살의 4무소외로 구분한다. 여기 이 부분은 부처님의 4무소외로서 ① 모든 법을 평등하게 깨달았다고 자신 있게 설하여 두려움이 없는 정등각무외(正等覺無畏:諸法現等覺無畏, 一切智無畏) ② 온갖 번뇌를 영원히 벗어났다고 자신 있게 설하여 두려움이 없는 누영진무외(漏永盡無畏:一切漏盡智無畏, 漏盡無所畏) ③ 바른 깨달음을 가로막는 악법(惡法)을 자신 있게 설하여 두려움이 없는 설장법무외(說障法無畏:障法不虛決定, 授記無畏, 說障道無所畏) ④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는 요법(要法)을 자신 있게 설하여 두려움이 없는 설출도무외(說出道無畏:爲證一切具足出道如性無畏, 說盡苦道無所畏)를 말한다.
- 43)불가사의한 지혜는 언어(言語)와 사고(思考)가 미치지 못하는 부처님의 원만하고 걸림이 없는 지혜.
- 44)가라밀(迦羅密)의 의역(意譯)으로서, 선우(善友), 친우(親友), 선친우(善親友), 승우(勝友), 지식(知識)이라고도 한다. 뛰어난 지혜와 훌륭한 공덕으로 바른 법을 실천하고 설하여 일체 중생을 차별하지 않고 피안(彼岸)으로 인도하는 벗.
- 45)보배의 장식이 이슬처럼 어우러져 아름답게 반짝이는 휘장 막(幕)을 말한다. 신라 경흥(憬興)의 『관무량수경소(觀無量壽經疏)』에는 이 교로장(交露帳)을 “보배 구슬이 서로 어우러진 휘장 막으로서, 그 모습이 이슬처럼 달려 있기 때문에 교로(交露)라 한다(以寶珠交錯造幔 其形如垂露 故稱交露)”고 해석하였다. 또 이 교로장을 『법화경(法華經)』의 서품(序品)과 보탑품(寶塔品)에서는 ‘주교로만(珠交露幔)’과 ‘보교로만(寶交露幔)’으로,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는 ‘중보교로(衆寶交露)’로 달리 표현하고 있으나, 그 뜻은 같다.
- 46)마하연품(摩訶衍品)의 마하연(摩訶衍)은 대승(大乘)의 음역(音譯)으로서, 갖춘 말은 마하연나(摩訶衍那)이다. 대승의 승(乘)은 실어 운반한다는 뜻. 고해(苦海)에서 피안(彼岸)에 이르는 지혜를 배에 비유하여, 홀로 또는 중생을 작게 태우고 인도하는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을 소승(小乘),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동시에 행하여 많은 중생을 태우고 인도하는 보살(菩薩)을 대승(大乘)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하연품(摩訶衍品)의 품(品)은 품목(品目)으로서, 이 경이 여러 품목으로 구성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재로 이 경의 이역본(異譯本)인 『문수지리보초삼매경(文殊支利普超三昧經)』은 경문 전체를 13품으로 분류하였으니 참고할 만하다.
- 47)다섯 가지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중죄(重罪)로서, 소승의 5역죄와 대승의 5역죄로 구분한다. 소승의 5역죄는 ① 어머니를 죽임[殺母] ② 아버지를 죽임[殺父] ③ 아라한(阿羅漢)을 해침[害阿羅漢] ④ 부처님의 몸에 피를 흘리게 함[出佛身血:惡心出佛身血] ⑤ 화합승가를 파괴하는 것[破和合僧]으로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는 원인이다. 대승의 5역죄는 『대살차니건자소설경(大薩遮尼乾子所說經)』제4권의 설. ① 탑사(塔寺)를 파괴하고 경상(經像)을 태우고 삼보(三寶)의 정재(淨財)를 탈취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시켜 그런 일을 보면서 기뻐함(破壞塔寺 燒燬經像 奪取三寶之物 或敎唆他人行此等事 而心生歡喜) ② 성문(聲聞)ㆍ연각(緣覺)ㆍ대승법(大乘法)을 비방함 ③ 출가수행자(出家修行者)를 보면 그 수행을 방해하거나 살해함 ④ 소승의 5역죄 중에 하나를 범함 ⑤ 온갖 존재에는 업보(業報)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10악[十不善業]을 행하거나, 후세의 과보를 두렵게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10악(惡)을 행하도록 시킴.
- 48)중인도 마갈타국(摩竭陀國)의 왕. 아사세(阿闍世)ㆍ아사세(阿闍世)ㆍ아도다설돌로(阿闍多說咄路)ㆍ아사다설돌로(阿社多設咄路) 등으로 음역(音譯)한다. 의역(意譯)은 미생원(未生怨)으로서, 전세(前世)에 이미 원한을 품고 태어났다는 뜻. 부왕(父王)은 빈바사라(頻婆沙羅)이고, 모후(母后)는 위제희(韋提希)이다. 부왕이 늙도록 아들이 없음을 근심하여 신에게 기원하고 있을 때, 한 점술사가 “비부라(毘富羅)산의 한 선인(仙人)이 죽으면 태자로 태어난다”고 말했다. 부왕은 그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선인을 죽였고, 모후는 곧 태자를 잉태하였다. 잉태 중에 점술가에게 물으니 “뱃속의 태자가 원한을 품었다”고 하였다. 그 뒤 모후는 높은 다락에서 태자를 낳아 떨어뜨렸다. 그러나 태자는 손가락 하나만 잘렸을 뿐 다치지 않았으므로 무지(無指) 또는 절지(折指)라고 이름하였다. 태자는 자라서 제바달다(提婆達多)의 유혹으로 부왕을 죽이고 모후를 가두는 등 반역죄를 저질렀다. 왕위에 오르고 나서 주위의 작은 나라들을 합병하고 인도의 통일기반을 다져놓았다. 그 뒤 온몸에 종창이 번지자, 부처님께 지난 반역죄를 참회하여 병을 고치면서부터 부처님께 귀의하고 교단을 보호하였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 첫 번째 경전의 결집사업을 크게 도왔다. 불멸 후 24년에 죽음.
- 49)무힐(無黠)은 본경(本經)의 이역본(異譯本)인 『문수지리보초삼매경(文殊支利普超三昧經)』과 『불설미증유정법경(佛說未曾有正法經)』에서는 각각 무혜(無慧)와 무명(無明)으로 한역하였으나, 여기서는 힐(黠)을 지(知)로 보아 진리를 알지 못함이라고 번역하였다. 근본경전(根本經典)에서는 이 힐(黠)을 대부분 지(知) 또는 혜(慧)로 한역하고 있다.
- 50)이 5욕락(欲樂)에는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5경(境)을 애착하는 정욕(情欲)과 재(財)ㆍ색(色)ㆍ식(食)ㆍ명(名)ㆍ수(睡)의 다섯 가지를 집착하는 욕심(慾心)의 두 종류가 있다.
- 51)대애(大哀)는 대비(大悲)와 같다. 근본경전에서는 이 대비(大悲)의 비(悲)를 대부분 애(哀)로 쓰고 있다.
- 52)5역죄(逆罪)를 범한 중생이 떨어지는 8열지옥(熱地獄)의 제8 아비지옥(阿鼻地獄)이며, 남섬부주(南贍部洲)의 지하(地下)에서 2만 유순(由旬)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한다. 무간(無間)의 뜻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① 죽음과 동시에 중음신(中陰身:中有) 등을 거치지 않고 바로 떨어지는 취과무간(趣果無間) ② 이 지옥을 벗어날 때까지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 수고무간(受苦無間) ③ 시간이 1겁(劫) 동안 빈틈없이 계속 이어지는 시무간(時無間) ④ 지옥수명이 1겁 동안 쉴 틈 없이 계속 이어지는 명무간(命無間) ⑤ 몸의 형상이 지옥의 높이와 너비 8만 4천 유순만큼 빈틈이 없는 신형무간(身形無間)으로서, 그 과보(果報:趣果)와 수고(受苦)와 기간(期間:時)과 지옥수명(地獄壽命:命)과 몸의 형체[身形]가 빈틈도 없고 쉴 틈도 없다는 뜻이다. 아비지옥을 포함한 8열지옥에는 각 지옥마다 16소지옥(小地獄) 혹은 18소지옥(小地獄)이 있으므로, 이들 소지옥과 비교하여 8열지옥을 각각 대지옥(大地獄:大泥犁)라고 한다.
- 53)나열국(羅閱國)의 나열(羅閱)은 나열기(羅閱祇)ㆍ나열게리혜(羅閱揭梨醯)ㆍ나열기가라(羅閱祇伽羅) 등과 함께 왕사성(王舍城)의 음역(音譯)으로서, 인도의 고대 마갈타국(摩竭陀國)의 수도(首都)이다. 나열국은 곧 마갈타국을 말한다.
- 54)아유월치는 아비발치(阿毘跋致)와 함께 불퇴전(不退轉)의 음역(音譯)으로서, 불퇴(不退) 또는 불퇴위(不退位)로 의역(意譯)하기도 한다. 아유월치법륜은 미혹의 경계로 다시 물러나거나 빠지지 않고 진여(眞如)의 경지에서 끊임없이 굴리는 법륜을 말한다.
- 55)아유월치승(阿惟越致僧)의 승(僧)은 다시 미혹(迷惑)의 경계로 물러나거나 빠지지 않고 진여(眞如)의 경지에서 성불(成佛)이 기약된 보살승(菩薩僧)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