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673_T_001
- 019_0522_a_01L불설사제경(佛說四諦經)
- 019_0522_a_01L佛說四諦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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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後漢) 안식국삼장(安息國三藏) 안세고(安世高) 한역
현성주 번역 - 019_0522_a_02L後漢安息國三藏安世高譯
- 이와 같이 들었다.
- 019_0522_a_03L聞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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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이 때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에게 말씀하시니, 비구들은 대답하고 나서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다.
부처님께서 곧바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바르고 진실한 법이 있으니 네 가지 도리[四諦]라고 한다. 이 네 가지 도리는 바른 사유(思惟)ㆍ바른 견해[見]ㆍ바른 열림[開]ㆍ바른 앎[了]ㆍ바른 분별(分別)ㆍ바른 견해의 드러남[發見]을 갖췄느니라.
만일 여기에 있는 비구가, 지나온 세상의 여래(如來)ㆍ무소착(無所着)ㆍ정각(正覺)1)께서 바르게 설하신 네 가지 도리를 따라 수행했다면, 이 네 가지 도리에서 바른 사유ㆍ바른 견해ㆍ바른 열림ㆍ바른 앎ㆍ바른 분별ㆍ바른 견해의 드러남을 갖췄으리라. - 019_0522_a_04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是時,佛告諸比丘:“比丘!”應:“唯然。”比丘便從佛聞。佛便說是:“比丘!眞正法說,爲是四諦。具思惟見、開了分別發見。若所有比丘過世時,從如來無所著正覺是,亦從是正說,爲是四諦。具思惟見、開了分別發見。從是四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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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여기에 있는 비구가 다음 세상에 가서도, 여래ㆍ무소착ㆍ정각의 바른 법을 따라서, 현자(賢者)의 네 가지 도리를 참답게 수행한다면, 위에 설한 바른 사유 등의 법을 갖출 것이니라.
지금 바로 앞에 있는 여래ㆍ무소착ㆍ정각 또한 바른 이치로 이와 같이 네 가지 도리를 설하리니, 여기 비구들은 바른 사유ㆍ바른 견해ㆍ바른 열림ㆍ바른 앎ㆍ바른 분별ㆍ바른 견해의 드러남을 갖추리라. - 019_0522_a_10L若所有比丘從後世來者,從如來無所著正覺是,爲從是正法,眞爲賢者四諦。具如上說。今有比丘見在,如來無所著正覺是,亦從是正諦,說如是四諦,具思惟見、開了分別發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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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舍利弗)2) 비구는 빠른 지혜ㆍ민첩한 지혜ㆍ예리한 지혜ㆍ넓은 지혜ㆍ깊게 사무친 지혜ㆍ미혹에서 벗어나는 지혜ㆍ싫증 없이 바르게 볼 수 있는 지혜ㆍ구슬처럼 맑고 밝은 지혜ㆍ남의 마음을 따라 아는 지혜를 지녔느니라. 사리불 비구는 지혜가 훌륭하여[能], 상대를 잘 아느니라[所]. 사리불 비구는 현자(賢者)로서 네 가지 도리를 쉽게 설하는 능력을 갖췄느니라. 사리불 비구는 기인(奇人: 外道)을 상대로, 바른 사유(思惟)ㆍ바르게 보는 능력ㆍ바르게 여는 능력ㆍ바르게 아는 능력ㆍ바르게 분별하는 능력ㆍ바른 견해를 드러내는 능력을 자세히 설하여, 얼마간의 사람들을 도법(道法)으로 이끌었느니라. 사리불 비구는 누구보다도 매우 뛰어났으므로 사도(邪道)에서 잘 돌아왔느니라. - 019_0522_a_15L佛復告比丘舍利曰:“比丘!慧、疾慧、走慧、利慧、方慧、深徹慧、惡慧,不厭能見慧、珍寶慧隨。比丘舍利曰能,比丘舍利曰所,是賢者四諦,平說具能。舍利曰比丘爲奇人,具說思惟,能見能開,能了能分,別發能見,今多少隨道法。是舍利曰比丘,最無有過,從邪能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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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_0522_b_01L사리불 비구는 바른 도를 따르게 하는 능력을 지녔으며, 목건련(目揵連) 비구는 바른 도를 성취시키는 능력을 갖췄으니, 사리불 비구는 자식을 낳는 어머니와 같고, 목건련 비구는 자식을 기르는 어머니와 같다. 당연히 목건련 비구를 이와 같이 깨달은 자라고 해야 하리니, 마땅히 사리불과 함께 목건련을 섬겨야 하고, 받들어야 하며, 가서 물어야 하리라.
사리불 비구와 목건련 비구는 함께 배우는 이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대해 주면서, 다른 생각을 내지 않게 하였느니라.” - 019_0522_a_22L舍利曰比丘能令隨道,目揵連比丘能令竟道;舍利曰比丘如母生,目揵連比丘如母供養。當目揵連比丘如是覺者,舍利曰、目揵連,當可事、當爲供、當可往問。舍利曰比丘、目揵連比丘,爲同學者致樂念,令無有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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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기원정사의 방으로 들어가셔서 잠시 사유(思惟)에 드셨다.
때에 현자(賢者) 사리불 비구는 중생에게 이로움을 베풀기 위해서는, 부처님을 세상에 계시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때문에 이제 대신 네 가지 도리를 설하게 되었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괴로움[苦]이요, 둘째는 쌓임[習]이요, 셋째는 사라짐[盡]이요, 넷째는 닦는 길[道]입니다. 이 네 가지 도리를 받아 행해서 괴로움을 없애야 합니다. - 019_0522_b_06L佛已說如是,從坐起,入寺室,頃思惟在。時賢者舍利曰比丘,爲利故、令佛在世閒故,今爲說是四諦:“何等爲四?一爲苦,二爲習,三爲盡,四爲道,四諦受行令滅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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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현자(賢者)의 괴로움의 도리라고 하는가.
태어남에 따른 괴로움ㆍ늙음에 따른 괴로움ㆍ병드는 괴로움ㆍ죽음에 이르는 괴로움ㆍ좋아하지 않는 것과 서로 만나는 괴로움ㆍ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괴로움입니다. 그리고 구하는 대상을 얻지 못함도 역시 괴롭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섯 가지 쌓임의 괴로움[五種苦: 五陰盛苦]이 현자들의 괴로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태어남이란 무엇인가.
만일 사람이라면, 사람의 종류는 저들마다 태어남을 따라 더욱 생겨납니다. 이어 따르며 존재하기를 성취하려는 데서, 다섯 가지 쌓임[五陰]이 생겨 생명의 기능[命根]을 이루니, 이를 태어남이라고 이름하며, 현자들의 태어나는 괴로움입니다. - 019_0522_b_11L何等爲,賢者!苦諦?從生苦,從老苦,爲病苦,爲死苦,不哀相逢、苦離哀苦、所求不得是亦苦、倉卒五種苦生。賢者!苦生爲何等?若是人彼彼人種,從生增生,以隨以有欲成,五陰已生,命根已得,是名爲生。生,賢者!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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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태어남을 괴롭다고 하는가.
태어나는 사람은 몸을 소유하기 때문에, 접촉[更]되어 괴롭습니다.
몸의 접촉(接觸)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痛]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마음[意]이 접촉되어 괴롭습니다.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과 마음이 접촉되어 괴롭습니다.
몸과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지각(知覺)의 감수작용이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은 감각의 고뇌(苦惱)와 마주치게 됩니다. - 019_0522_b_16L何因緣生苦?爲生者人令身有故更苦,從更復更,從痛復痛,令意更苦。從更復更,從受復受,令身意更苦。從更復更,知受復受,令身待受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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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각(感覺)의 감수작용이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마음[意念]은 더욱 괴롭습니다.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지각(知覺)의 감수작용이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과 마음은 더욱 괴롭습니다.
몸과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은 더욱 심하게 피곤하고 더욱 괴롭습니다.
몸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마음은 더욱 심하게 괴롭고 피곤해져서 더욱 근심합니다. - 019_0522_b_20L從更復更,覺受復受,意念熱惱。從更復更,知受復受,令身意熱惱。從更復更,從受苦復苦,身熱疲熱惱。從更復更,從受復受,意熱惱疲令熱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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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_0522_c_01L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과 마음은 더욱 심하게 괴롭고 피곤해지며 생각을 따라 더욱 괴롭습니다.
더욱 심하게 피곤하고 괴로운 몸과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것입니다.
이상 설한 것이 현자들의 태어나는 괴로움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근거로 현자들의 늙는 괴로움이 있는 것입니다. - 019_0522_c_01L從更復更,從受復受,令身意惱熱疲。從念熱惱,從更復更,從受復受,生,賢者!苦上說苦,是故說從是有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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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이란 무엇인가.
곳곳의 사람들은 저마다 지치고 쇠약한 사람을 늙었다고 합니다. 살갗은 쭈그러지고 머리털은 하얗게 변하며 동작은 무디어 힘이 듭니다. 늙고 꾸부러져 지팡이에 의지하며, 수염과 머리털은 떨어지고, 저승꽃은 검게 돋아나며, 군살은 뿌리를 내려 불거집니다. 그러면 몸은 무너지려 하고, 빛깔은 변해집니다. 이렇게 늙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늙음이라고 이름하며, 현자들의 늙는 괴로움입니다. - 019_0522_c_04L賢者!苦老爲何等?所各各疲疲人,其爲是老,皺白力動以老,僂拄杖、鬢髮墮、黑子生變變、根已熟、身欲壞、色已轉、老已壽,是名爲老。老,賢者!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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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늙음을 괴롭다고 하는가.
사람이 늙어지면 몸이 접촉되어 괴롭습니다.
몸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행(行: 遷流)의 감수작용이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마음[意念]은 늙음에 접촉되어 괴롭습니다.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이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과 마음은 함께 괴로워집니다.
몸과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행(行)의 감수작용이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은 더욱 괴롭습니다.
몸의 접촉으로부터 반복하여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마음[意念]은 더욱 괴롭습니다. - 019_0522_c_08L何因緣說老苦?以人老身更苦,從更復更,行受復受,意念更苦。從更復更,作受復作受,身意亦苦。從更復更,行受復受,身熱惱。從更復更,從受復受,意念熱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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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반복하여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과 마음은 더욱 괴롭습니다.
몸과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서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은 더욱 심하게 괴롭고 피곤해져서 근심하며 고뇌합니다.
몸의 접촉으로부터 서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감수하는 데서, 마음[意念]은 더욱 심하게 괴롭고 피곤해져서 고뇌하고 근심합니다.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서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서로 감수하는 데서, 몸과 마음은 더욱 심하게 괴롭고 피곤해져서 고뇌하며 근심합니다.
더욱 심하게 고뇌하고 근심하는 몸과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서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자들은 늙음을 괴롭다고 말합니다. 이상이 그 괴로움을 설한 것입니다. - 019_0522_c_12L從更復更,從受復受,身意熱惱。從更復更,從受復受,身熱疲憂惱。從更相更,從受相受,意念熱惱疲惱憂。從更相更,從受相受,身意念熱疲憂惱。從更相更,從受復受,是故,賢者!說老苦。上說苦,爲是故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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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때문에 현자들의 병드는 괴로움을 설하게 됩니다.
병이란 무엇인가.
머리에 드는 병, 배에 드는 병, 귀에 걸리는 병, 코에 걸리는 병, 입에 걸리는 병, 입술에 걸리는 병, 혀에 걸리는 병 등이 있고, 또 목구멍에 걸리는 병, 구역질나는 병, 증세가 변덕스러운 병, 설사병, 열병, 임질 등이 있으며, 그리고 미친 병, 목구멍에 혹이 있는 병, 심심병(尋尋病), 골절 병, 피부병, 지방(脂肪)이 과도한 병, 피가 뜨거운 병, 담(痰)병 등이 있습니다. 그 외 다른 여러 종류의 병들과 함께 몸에 기생(寄生)하여 떠나지 않고, 다 몸에 붙어 있으니, 현자들의 병드는 괴로움이라고 합니다. - 019_0522_c_17L病,賢者!苦。病爲何等?有頭病、有腹病、有耳病、有鼻病、有口病、有脣病、有舌病、有咽喉病、有噦病、有變病、有下病、有熱病、有淋瀝病、有顚病、有咽瘤病、有尋尋病、有骨節病、有皮病、有肪病、有血熱病、有痰病,是亦餘若干,皆從猗生,不得離是,皆在著身。病,賢者!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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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_0523_a_01L무엇 때문에 병을 괴롭다고 하는가.
사람이 감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몸이 접촉되어 괴롭습니다.
몸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마음이 괴로워집니다.
마음[意念]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과 마음은 함께 접촉되어 괴로워집니다.
몸과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반복하여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은 더욱 괴로워집니다.
몸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마음은 더욱 괴롭습니다. - 019_0523_a_01L何因緣病苦?人受故令身更苦,從更復更從受復受,意念苦。從更復更,從受復受,幷身意念更苦。從更復更,從受復受,身熱惱。從更復更,從受復受,令意熱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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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반복하여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과 마음은 더욱 괴로워집니다.
몸과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은 더욱 심하게 피곤해져서 근심하고 고뇌합니다.
몸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마음은 더욱 심하게 피곤해져서 근심하고 고뇌합니다.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과 마음은 더욱 심하게 피곤해져서 근심하고 고뇌합니다.
더욱 심하게 근심ㆍ고뇌하는 몸과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반복하여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것입니다. 위에 설한 것이 현자들의 병드는 괴로움입니다.
그러므로 또한 이 인연을 따라서 현자들의 죽는 괴로움을 말하게 됩니다. - 019_0523_a_06L從更復更,從受復受,身意念熱惱。從更復更,從受復受,身熱疲憂惱。從更復更,從受復受,意熱疲憂惱。從更復更,從受復受,身意念熱疲憂惱。從更復更,從受復受,所說病,賢者!苦。是故說,亦從是因緣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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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존재는 허망합니다. 허망하게 존재한 사람에게는 생사(生死)가 있어서, 여기 저기서 버려지게 됩니다. 몸은 부서지고 무너져서 다시 볼 수 없고, 목숨의 기능이 다하고 나면 다섯 가지 쌓임도 흩어져 버립니다. 목숨의 기능이 이미 사라져서 죽을 때를 죽음이라고 이름하며, 현자들의 괴로움입니다.
무엇 때문에 죽음을 괴롭다고 하는가. - 019_0523_a_11L死,賢者!苦。死爲何等?所爲人有,所爲人有在生死,處處爲捨身廢壞滅,不復見命,已盡五陰、已捨命根、已滅死時,是名爲死。賢者!苦,何因緣死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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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사람의 몸을 접촉시켜 괴롭힙니다.
몸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마음이 접촉되어 괴로워집니다.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과 마음이 접촉되어 괴로워집니다.
몸과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이 더욱 괴로워집니다.
몸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마음이 더욱 괴로워집니다. - 019_0523_a_15L死者人爲身更苦,從更復更,從受復受,意念更苦。從更復更,從受復受,身意念更苦。從更復更,從受復受,令身熱惱。從更復更,從受復受,令意念熱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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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과 마음은 더욱 괴롭습니다.
몸과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은 더욱 심하게 피곤해져서 뉘우치며 고뇌합니다.
몸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과 마음은 더욱 피곤해져서 뉘우치며 고뇌합니다.
더욱 심하게 뉘우치며 고뇌하는 몸과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현자들의 죽는 괴로움이 있다고 설한 것입니다.
역시 이 인연을 따라서 현자들의 서로 좋아하지 않는 것과 서로 만나는 괴로움을 설하게 됩니다. - 019_0523_a_19L從更復更,從受復受,令身意熱惱。從更復更,從受復受,身熱疲悔惱。從更復更,從受復受,令身意念熱疲悔惱。從更復更,從受復受。死,賢者!苦,爲是因緣說,亦從是因緣有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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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_0523_b_01L서로 좋아하지 않는 것과 함께 만남이란 무엇인가.
현자들이여. 또 사람은 여섯 가지를 스스로 끌어안고 있는데[內六處]3), 좋아하지 않아야 하고, 좋아할 수도 없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것과 서로 만나서 하나의 무너지는 모양을 지니게 됩니다. 모이고 어우러져 함께 작용하다가 서로 떠나게 되면, 이것이 괴로운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깥 경계[外六處]4)도 또한 그러하며, 식(識)5)도 그러하며, 사(思)6)도 그러하며, 통(痛)7)도 그러하고, 또 사상(思想)8)도 그러하며, 염(念)9)도 그러하며, 애(愛)10)도 그러하며, 육행(六行)11)도 그렇습니다. - 019_0523_b_01L不相哀相逢會,賢者!苦。不相哀相逢會,爲何等有?賢者!人六自入,不哀不可,是從是相逢會。有是一壞相,離本相聚會、共事相離,是爲苦。如是外亦爾,識亦爾,思亦爾,痛亦爾,思想亦爾,念爲亦爾,愛亦爾,六行亦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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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현자들이여, 사람은 여섯 요소(要素)를 지니고 있지만, 좋아하지 않아야 합니다. 여섯 요소란 무엇인가. 땅의 요소ㆍ물의 요소ㆍ불의 요소ㆍ바람의 요소ㆍ공(空)의 요소ㆍ식(識)의 요소입니다. 이것이 한데 모여 계속 쌓여 합쳐 있으면서, 함께 어울려 같이 작용하는 자체가 바로 괴로움이기 때문에, 현자들의 서로 좋아하지 않는 것과 만나는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인연으로 현자들의 서로 좋아하지 않는 것과 함께 만나는 괴로움이라고 하는가.
현자들이여. 서로 좋아하지 않는 것과 함께 작용하며 어울림이, 사람의 몸을 접촉시켜 괴롭히는 것입니다. - 019_0523_b_07L有,賢者!人爲六種持不哀。何等六種?若地種,若水種、火種、風種、空種、識種。是一會相,有合聚,共會共事,是爲苦。不相哀會,賢者!苦。何因緣不相哀會,賢者!苦?不相哀共事會,賢者!人令身更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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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이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마음이 접촉되어 괴롭습니다.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이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과 마음이 접촉되어 괴롭습니다.
몸과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과 마음은 더욱 괴로워집니다.
몸과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은 더욱 심하게 피곤해지고 괴롭습니다. - 019_0523_b_12L從更復更,從受復受,令意更苦。從更復更,從受復受,令身意念更苦。從更復更,從受復受,令身意念熱。從更復更,從受復受,令身熱疲苦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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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마음은 더욱 심하게 피곤해지고 괴롭습니다.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데서, 몸과 마음은 더욱 심하게 피곤해지고 괴롭습니다.
더욱 심하게 피곤하고 괴로운 몸과 마음의 접촉으로부터 다시 접촉되고, 접촉된 감수작용으로부터 반복하여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현자들의 서로 좋아하지 않는 것과 함께 만나는 괴로움이라고 설하는 것입니다. - 019_0523_b_16L從更復更,從受復受,令意念熱疲苦惱。從更復更,從受復受,令身意念熱疲苦惱。從更復更,從受復受,不相哀相逢會,賢者!苦。是故所說亦從是,故從是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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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_0523_c_01L때문에 이를 근거로 현자들의 좋아하는 것과 서로 헤어지는 괴로움을 설하게 됩니다.
좋아하는 것과 헤어짐이란 무엇인가.
현자들이여, 또 사람들은 자신의 것[所自: 能取의 대상]과 자신의 소유[所入: 所取의 대상]로 여기며 좋아하지만, 여기에서 서로 헤어지고 없어져 버립니다. 서로 저마다 헤어져서 떠나버리니, 서로 함께 하지도 못하고, 어울리지도 못하며, 같이 있지도 못하고, 서로 만나지도 못하며, 접촉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이것을 괴롭게 여깁니다. - 019_0523_b_20L哀相別離,賢者!苦。哀別離爲何等?有是,賢者!人爲所,自所入哀,令從是相別離亡,相別相離、不相俱,不會、不共居、不相逢、不更,是爲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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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참으로 바깥[外六處] 역시 그러하며, 식(識)도 그러하며, 접촉의 애착[觸愛: 觸欲]12)도 그러하며, 감수[痛]도 그러하며, 염(念)도 그러하며, 애(愛)도 그러하며, 여섯 가지 지님[六持: 六界]도 그렇습니다.
현자들이여, 또 사람은 여섯 가지 요소를 지녔다고 좋아합니다. 여섯 가지 요소란, 땅의 요소ㆍ물의 요소ㆍ불의 요소ㆍ바람의 요소ㆍ공(空)의 요소ㆍ식(識)의 요소입니다. 여기에서 서로 헤어져서 없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서로 저마다 떠나버려서, 화합되지 않고 멀리 흩어지며, 같이 있지도 못하고, 서로 만나지도 못하며, 같이 접촉하지도 못하니, 이것이 괴롭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현자들의 좋아하는 것과 서로 헤어지는 괴로움이라고 설한 것입니다. - 019_0523_c_02L如是自外亦爾,識亦爾,更愛亦爾,痛亦爾,念爲亦爾,愛亦爾,六持亦爾。有,賢者!人爲哀六持,地持、水持、火持、風持、空持、識持,令從是相別離亡,相別相離、不會、遠離、不共居、不相會、不共更,是爲苦。是離,哀賢者!苦,爲是故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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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또한 이 인연을 따라서, 구하는 대상을 얻지 못함도 역시 괴롭다고 설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또 세상 법을 설해야 합니다.
현자들이여, 사람이 만일 태어남[生法]에 대해 태어나지 않겠다고 결단하면,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자들이여. 사람들은 늙는 일[老法]에서도 이와 같이 늙음에서 벗어나 보려고[欲生], 늙지 않겠다고 결단합니다. 그러나 애를 써도 태어남과 함께 벗어날 수 없습니다. - 019_0523_c_08L亦從是因緣說,若求不得是亦苦,是故復說。世閒法,賢者!爲人,若意生栽爲莫生,是亦可舍。老法,賢者!爲人,如是欲生爲栽莫老,是意不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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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이여, 병드는 일[病法]도 그렇습니다. 병드는 일이 결정된 사실임에도, 병에서 벗어나 보려고 자신은 병의 괴로움을 받지 않겠다며 벗어나려고 합니다. 현자들이여, 죽음의 일[死法]도 그렇습니다. 죽음의 길[死有]은 결정된 사실임에도, 죽음의 길에서 벗어나 보려고 자신은 죽지 않겠다고 하지만, 병의 괴로움과 함께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현자들이여, 또 사람들은 괴로움이 생기면, 기분 좋은 일이 아니요, 몹시 좋지 못한 일이요,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 기분 좋지 않고 몹시 좋지 못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괴로움을 벗어나 보려는 데서, 괴로움을 기분 좋은 일, 몹시 좋은 일, 마음에 드는 일로 되돌리려고 하지만, 욕망대로 결단할 수가 없습니다. - 019_0523_c_12L病法,賢者!人,病已受爲是欲生,令我莫有,苦是欲舍。死法者,賢者,人已應受死,有是欲生,令我莫死,得不從是舍。有,賢者!人,已生痛!不可、不貪、意不用,爲是欲生令是所生,痛不可貪、意不用,令是爲可、令是爲欲、令是爲意不得,從欲斷。
- 현자들이여. 또 사람이 사상(思想)을 추구한다면, 추구하는 생각의 즐김이나 애착이 소용없고, 의식(意識)을 둘 수도 없다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그러다가 마음을 일으킨 이가, 추구하는 생각의 즐김이나 애착이 소용없고, 의식을 둘 수도 없다고 하던 사상의 추구에 대해, 이 마음의 작용을 가능케 하고 뜻에 맞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은 이 마음으로 마땅히 즐김이나 애착을 작용시켜, 의식을 두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결단할 수가 없습니다.
- 019_0523_c_18L有,賢者!人爲求思想,亦念不可、不用意,不可有是意生,令是意生者,思想求不用、不可意、不可爲欲是意,用可可意,爲令我是意當用、當可不得,從是得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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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_0524_a_01L현자들이여, 또 이 사람에게 접촉의 작용이 가능하고 뜻에 알맞은 일이 있기도 합니다. 가령 이 의식의 접촉이 이미 생기고 작용이 가능하여 뜻에 알맞은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것을 영원히 떠나지 않도록 한다면, 이 욕구(欲求)는 당연히 결단하지 못합니다.
현자들이여. 가령 어떤 사람이 이 사상(思想)을 일으켜서 즐기고 애착하며, 뜻에 알맞도록, 이것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이 사상을 간직한 마음에 욕망을 일으키며, 뜻에 알맞게 하였을지라도, 항상 견고하게 이것이 서로 뗘날 수 없게 한다면, 이 소원은 결단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함도 역시 괴롭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019_0523_c_22L有是,賢者!人,有更用可可意,設有是意生所,是更已生用可可意,令是常不離,是欲不當斷。設有,賢者!人,生是思想,念愛可意欲,得爲是欲生,令是思想念生欲可意欲,得令是常堅勿相離,令是願莫斷。所求不得是亦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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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연을 따르기 때문에 본래부터 다섯 쌓임[五陰]을 괴롭다고 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또 말씀하시기를 “이 법에서 나온 온갖 법은 영원하지 않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불행한 변고와 질병[厄病]으로 무너지고 고통스러우며 시들어 노쇠해지니, 견고하지 않아 믿을 수가 없으며, 구르고 변하여 떠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본래부터 다섯 쌓임은 괴롭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과거 세상의 현자[賢者]들도 똑같이 괴로움의 도리라고 하였고, 미래 세상의 현자들도 또한 괴로움의 도리라고 할 것이며, 현재 세상의 현자들도 역시 괴로움의 도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달라짐이 없고, 뒤바뀌지 않으며, 미혹하지 않고, 있는 대로의 도리이며, 그대로 부합하는 도리로서 현자들의 도리입니다. 현자들은 이 도리를 알고 보고 해탈하여 그대로의 도리에 알맞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현자들의 도리라고 합니다. - 019_0524_a_05L是故說亦從是因緣故說,本爲五陰苦,是故復說,令從是法。是法非常,厄病爲壞,疾、敗、老、不堅、不信,欲、轉、離,爲是故本五陰苦。過世,賢者!同是苦諦,未來世,賢者!亦是苦諦,現在世,賢者!亦是苦諦,是無有異,不倒不惑。如有諦如,是如應賢者諦。賢者!諦賢者是諦知見解得應,如是諦覺,是故名爲賢者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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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현자들의 괴로움의 쌓임[苦習]으로서 현자들의 도리라고 하는가.
현자들이여, 또 사람이 여섯 가지를 스스로 끌어안은 몸으로 계속 좋아하며, 저것을 애착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친근하게 지내니, 이것을 쌓임[習]이라고 합니다. 자기의 몸과 같이 바깥 쌓임[外身]도 또한 그렇게 식별[識]하여 접촉[更]하고 판단[知]하여 조작[行]하며 좋아합니다[哀]. - 019_0524_a_13L何等爲,賢者!苦習賢者諦?或人,賢者!六自,入身相愛,彼所愛著近往,是爲習。如自身,外身亦爾,識更知行哀。
- 현자들이여, 또 사람은 여섯 가지를 지녔다고 좋아합니다. 여섯이란 첫째는 땅이요, 둘째는 물이요, 셋째는 불이요, 넷째는 바람이요, 다섯째는 공(空)이요, 여섯째는 식(識)입니다. 저것들을 애착의 대상으로 삼고 서로 친근하여 왕래하니, 이것을 쌓임이라고 합니다.
- 019_0524_a_16L有,賢者!人爲六持愛:一爲地、二爲水、三爲火、四爲風、五爲空、六爲識。彼所愛著,相近往發,是爲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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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응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에게 자식과 함께 아내와 딸린 종ㆍ마부ㆍ밭과 토지ㆍ사택(舍宅)ㆍ생활터전의 점포ㆍ잠자리의 기물[臥具]ㆍ돈놀이[便息] 등이 있어서, 애착하고 친근하여 접촉하고 왕래하며 구하니, 마땅히 이것이 애착의 쌓임이요, 괴로움의 쌓임으로서 현자들의 도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 019_0524_a_19L如是何應?若人在兒子,亦妻、從使御者、田地舍宅、坐肆臥具,便息爲愛,著近更發往求,當知是愛習爲苦習賢者諦。
- 019_0524_b_01L현자들은 과거 세상에 서도 역시 애착의 쌓임을 괴로움의 쌓임으로 여기며 현자들의 쌓임이라 하였고, 미래 세상에 서도 역시 애착의 쌓임을 괴로움의 쌓임으로 여기며 현자들의 쌓임이라 할 것이며, 지금 현재 세상에서도 역시 애착의 쌓임을 괴로움의 쌓임으로 여기며 현자들의 쌓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달라지지 아니하고, 있는 대로이며, 뒤바뀌지 아니하고, 미혹하지 않는 참된 도리이니, 바로 있는 그대로 현자들의 도리입니다. 현자들은 이 도리를 접촉해서 보고 해탈하여 그대로의 도리에 서로 알맞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의 쌓임을 현자의 도리라고 이름합니다.
- 019_0524_a_22L過世,賢者!時亦是愛習爲苦習賢者習,未來世時亦是愛習爲苦習賢者習,今現世時亦是愛習爲苦習賢者習。如是不異,如有不倒不惑,眞諦正如。有,賢者!諦,爲賢者諦,更見解得,相應如有覺。是故,苦習名爲賢者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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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의 사라진[苦盡] 현자들의 도리라고 하는가.
현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자기 몸 속의 여섯 요소를 스스로 끌어안고 있을지라도, 감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여기에서 해탈을 얻어 함께 접촉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미 끊어져서 치우침이 없고, 계속 벗어나서 다 사라지면, 다시 상대하는 일이 없어지고, 이미 다 없어져서 고요해집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입니다. 이 몸 속과 같이 바깥도 또한 그러하며, 식이 서로 친근하여 접촉[更]함ㆍ사상(思想)ㆍ간직된 생각의 작용[念行]ㆍ상대하여 좋아함[望愛]도 역시 그렇습니다. - 019_0524_b_05L何等爲,賢者!苦盡賢者諦?有,賢者!爲人六自身中種入,爲不受,得從是解,不共更,已斷、已捨、相離、已盡、不復望、已滅、寂然,是苦滅。如是內身,外亦爾,識相近,更思想,念行望,愛亦爾。
- 현자들이여, 또 사람이 여섯 가지 곧 첫째 땅ㆍ둘째 물ㆍ셋째 불ㆍ넷째 바람ㆍ다섯째 공(空)ㆍ여섯째 식(識)의 지님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여기에서 해탈을 얻어 함께 접촉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미 끊어져서 치우침이 없어지고, 이미 버리어 달라지면서, 마음을 쓰지 않아도 고요해진다면. 이것을 괴로움의 사라짐이라고 합니다.
- 019_0524_b_10L有,賢者!人六持不愛:一地、二水、三火、四風、五空、六識。從是得解,不共更,已斷、已捨、已棄、已異、不用、寂然,是爲苦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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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무엇인가.
만일 사람이 자식이 있고, 집이 있고, 종이 있고 마부가 있는데 애착을 두지 않는다면, 밭과 토지ㆍ사택(舍宅)ㆍ생활터전의 점포[居肆]ㆍ잠자리의 기물[臥具]ㆍ이자돈놀이[賣買利息]에도 애착을 두지 않습니다. 서로 가까이 하지도 않으며, 구하는 마음을 내어 이것을 소유하는 일도 없습니다. 마땅히 이 애착이 다 없어짐이 괴로움의 사라짐이요, 현자들의 도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 019_0524_b_13L是亦爲何等?若人無有愛著,在兒、在家、在使、在御、田地舍宅、居肆臥具、賣買利息,無有愛著,不相近、意生發求,無有是,當知是愛盡爲苦盡賢者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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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이여, 과거 세상에 서도 역시 애착이 다 없어짐을 괴로움의 사라짐이요, 현자들의 도리라고 하였으며, 미래 세상에서도 또한 그렇게 될 것이며, 지금 현재 세상에서도 역시 애착이 없어짐이 괴로움의 사라짐이요, 현자들의 도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달라지지 아니하고, 있는 대로이며, 뒤바뀌지 아니하고 미혹하지 않으며, 참된 도리로서 있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이 이미 다 사라진 것을 현자들의 도리라고 이름합니다. - 019_0524_b_17L過世,賢者!時是亦愛盡爲苦盡賢者諦,未來世亦爾,今現在世時亦是愛盡爲苦盡賢者諦。如是不異,如有不惑不倒,眞諦是如有,是故苦已盡名爲賢者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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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_0524_c_01L현자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을 다 사라지게 하는데, 받아 행할 현자들의 도리인가.
여기에 현자들의 여덟 가지 닦는 길이 있으니, 첫째는 바른 소견이요, 둘째는 바른 다스림이요, 셋째는 바른 말이요, 넷째는 바른 실행이요, 다섯째는 바른 생활이요, 여섯째는 바른 방편이요, 일곱째는 바른 생각이요, 여덟째는 바른 선정입니다. - 019_0524_b_21L何等爲,賢者!苦盡受行賢者諦?有是,賢者!八種道:一直見、二直治、三直語、四直行、五直業、六直方便、七直念、八直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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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바른 소견이란 무엇인가.
만일 현자들이 도를 배워 덕[道德]을 갖춘 제자13)라면, 괴로움에 대해서는 괴로움을 생각하고, 쌓임에 대해서는 쌓임을 생각하며, 사라짐에 대해서는 사라짐을 생각하고, 닦는 길에 대해서는 닦는 길을 생각하여, 분별의 관찰력[分別觀]을 얻고, 능숙하게 법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상상(想像)이 능숙하고, 관찰하여 상상함이 능숙하며, 격에 맞는 상상이 능숙하고, 받아들여 행함이 능숙해진다면, 이를 바른 소견이라고 이름합니다. - 019_0524_c_02L何等爲,賢者!直見?若,賢者!道德弟子爲苦念苦,爲習念習,爲盡念盡,爲道念道,得分別觀,能得法觀,能受想,能觀想,能可想,能受行,是名爲直見。
- 또한 과거 세상의 일을 관찰하여 지니고, 역시 도 닦는 일[道德]에 대해 일찍 행해야 한다는 마음을 간직하면, 보고 행하며 잘못을 뉘우쳐서 받아들인 감각을 소멸하여 안정[受止]시킵니다. 거짓 없는 생각[無爲念]으로 고요히 소멸하고 안정시켜 집착하지 않으면, 해탈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마음으로 분별하면서 도리의 관행(觀行)14)을 계속 행하고, 마음을 법에서 관찰하여, 계속 떠나지 않고 계속 모아 받아들인다면[會受], 이것을 바르고 곧은 소견이라고 이름하며, 도덕의 도리라고 이름합니다.
- 019_0524_c_06L亦觀持宿,亦念道德,蚤行見行悔受止、無爲、念寂然、止從不著、如得脫、意分別、觀行相、行意在法、觀相不離相會受,是名爲正直見,是名爲道德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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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바르고 곧은 다스림이란 무엇인가.
만일 현자들이 도를 배워 덕을 갖춘 제자라면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생각하고, 쌓임을 쌓임으로 생각하며, 사라짐은 사라짐으로 생각하고, 닦는 길을 닦는 길로 생각합니다. 만일 연달아 집중되는 생각을 따라 행한다면, 이것을 바른 다스림이라고 이름합니다. - 019_0524_c_10L何等爲,賢者!正直治?若,賢者!道德弟子,苦爲苦念,習爲習念,盡爲盡念,道爲道念,若行隨投念復念,是名爲直治。
- 또한 과거 세상의 일을 관찰하여 지니고, 역시 닦고 배운 행을 계속 마음에 간직한다면, 행을 따라 관찰하며 잘못을 뉘우치게 됩니다. 거짓이 없어져서 고요히 받아들임이 소멸되어 안정되면, 집착할 대상이 없어지면서 해탈을 얻습니다. 마음으로 관찰하여 안정시키고, 추구할 대상과 집중할 대상에, 다스리는 행을 간직하여 다스리는 행을 따른다면, 이것을 바른 다스림이라고 이름하며, 도덕의 도리라고 이름합니다.
- 019_0524_c_14L亦觀宿命持,亦所學行相念、從行觀悔、無爲、寂然受、止從無所著、得脫意、觀止、所求所投念行隨行,是名爲直治,是名爲道德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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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바르고 곧은 말이란 무엇인가.
똑같이 현자들이 도를 배워 덕을 갖춘 제자라면, 괴로움을 따라서 괴로움을 생각하고, 쌓임을 따라서 쌓임을 생각하며, 사라짐을 따라서 사라짐을 생각하고, 닦는 길을 따라서 닦는 길을 생각하면서, 입으로 범하는 네 가지 죄와 그 외 다른 구업(口業)의 나쁜 행을 소멸시켜 평정(平靜)합니다. 이로부터 평정하여 벗어남을 얻고, 평정하여 계속 벗어나며, 입을 거두어 지키면서 짓지 않아야 할 일은 짓지 않습니다. 받을 죄에서 받을 죄가 없도록 이미 소멸하여 평정되었다면, 이것을 바른 말이라고 합니다. - 019_0524_c_17L何等爲,賢者!正直語?同,賢者!道德弟子!爲從苦念苦,爲從習念習,爲從盡念盡,爲從道念道,止四口犯、有餘口惡行,從是得止離。止、相離、攝守、不可作,不作從受罪,無有罪,已止,是爲直語。
- 019_0525_a_01L또한 다시 과거 세상의 일을 관찰하여 지니고, 이미 행하는 일마다 닦는 길을 생각하는 경지에 들어간다면, 행을 따라 잘못을 뉘우쳐서 마음이 평정되고, 거짓이 없어져서 세속을 벗어납니다. 고요히 마음에 알맞게 소멸되고 안정되어 집착할 대상이 없어지면, 해탈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마음으로 분별하고 관찰하면, 입으로 짓는 네 가지 나쁜 짓이 없어져서, 여의고 평정되며 계속 벗어나게 됩니다. 입을 단속하여 지키면서 짓지 않아야 할 일은 짓지 않고, 받을 죄에서 받을 죄가 없도록 이미 소멸하여 안정되었다면, 이것을 바른 말이라고 이름하며, 도덕의 도리라고 이름합니다.
- 019_0524_c_23L亦復爲持宿觀,已入行行念道、從行悔意止、無爲、度世、寂然、可意、止、無所著,如得解脫意分別觀,除四口惡行,離、止、相離、攝守、不可作、不作從受罪、無有罪、已止,是名爲直語,是名爲道德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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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바르고 곧은 실행이란 무엇인가.
현자로서 도 닦는 덕을 마음에 간직한 제자라면, 괴로움에서 괴로움을 생각하고, 쌓임에서 쌓임을 생각하며, 사라짐에서 사라짐을 생각하고, 닦는 길에서 닦는 길을 생각하면서, 몸으로 짓는 세 가지 나쁜 짓을 없앱니다. 또한 몸으로 짓는 그 외 다른 나쁜 짓을, 여기에서 소멸하고 평정하여 벗어나게 되면, 몸을 단속하여 지키면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은 하지 않습니다. 받을 죄에서 받을 죄가 없도록 이미 소멸하여 평정되었다면, 이것을 바르고 곧은 실행이라고 합니다. - 019_0525_a_05L何等爲,賢者!正直行?念爲,賢者!道德弟子,從苦爲念苦,從習爲念習,從盡爲念盡,從道爲念道,除身三惡行亦餘身惡行,從是止、離、攝守、不可作、不作從受罪、無有罪、已止,是名爲直行。
- 또한 과거 세상의 일을 관찰하여 지니고, 역시 도덕의 행으로 세상에서 행동하기를 마음에 간직한다면, 소견이 잘못을 뉘우쳐 안정되고 거짓이 없어져서 세속을 벗어납니다. 소견이 고요히 소멸하여 안정되고 거짓이 없는 데서 세속을 벗어나 집착하지 않으니, 해탈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뜻으로 관찰하여 몸으로 짓는 세 가지 나쁜 짓을 없앨 수 있다면, 역시 몸으로 짓는 그 외 다른 나쁜 짓도 제거하고 벗어나서 평정하며 계속 벗어나게 됩니다. 몸을 단속하여 지키면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은 하지 않고, 받을 죄에서 받을 죄가 없도록 이미 소멸시켜 평정되었다면, 이것을 바르고 곧은 실행이라고 하며, 도덕의 도리라고 합니다.
- 019_0525_a_10L亦持觀宿命,亦從道德行,念世閒行見悔,止、無爲、度世見、寂然止、從無爲度世、不著、如得脫意得觀,除身三惡行亦除身惡行,離、止、相離、攝守、不可作、從受罪無有、罪已止,是名爲正直行,是名爲道德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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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바르고 곧은 생활이란 무엇인가.
만일 현자들이 도 닦는 덕을 갖춘 제자라면, 괴로움은 괴로움에서 괴로움을 생각하고, 쌓임은 쌓임에서 쌓임을 생각하며, 사라짐은 사라짐에서 사라짐을 생각하고, 닦는 길은 닦는 길에서 행하여 이루면서, 구해서는 안될 대상과 행해서는 안될 대상을 마음에 간직합니다. 여러 축생(畜生)의 삶은 삿된 행위로 자신을 살리려고 하니 이것을 삿된 삶이라고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 019_0525_a_16L何等爲,賢者!正直業?若,賢者!道德弟子,苦從苦念,苦習從習念,習盡從盡念,盡道從道行得念,所不應求、所不可行,若干畜生業,從邪行欲自活,是名爲邪業。
- 019_0525_b_01L또한 과거 세상에서 행해온 일을 관찰하여 지니고, 행하여 이룬 도를 가지고 세상에서 행하기를 생각하면, 관찰하고 뉘우쳐서 소멸하고 평정시켜 세속에서 벗어납니다. 거짓이 없는 관찰로, 고요히 소멸하여 안정되면, 세속을 벗어나서 집착하지 않으니, 해탈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마음에서 이뤄진 관찰을 통해서 마땅히 구하지 않아야 할 것은 구하지 않으니, 여러 축생이 자기 목숨만을 살리면서 살아가는 행위를 벗어나고 평정하며 계속 벗어나게 됩니다. 생활을 단속하고 지키면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은 하지 않고, 받을 죄에서 받을 죄가 없도록 이미 소멸하고 평정되었다면, 이것을 바르고 곧은 생활이라고 하며, 도덕의 도리라고 합니다.
- 019_0525_a_21L亦持宿命行觀,從行得道,念世閒行觀悔,止、度世、無爲觀、寂然、止得度世、不著、如得脫意從得觀,不應求不求,若干畜生業行自活命,離、止、相離、攝守、不可作、從受罪無有、罪已止,是名爲正直業,是名爲道德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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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바르고 곧은 방편이란 무엇인가.
현자들이 도 닦는 덕을 갖춘 제자라고 한다면,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생각하고, 쌓임을 쌓임으로 생각하며, 사라짐을 사라짐으로 생각하고, 닦는 길을 닦는 길로 생각하여, 정진(精進)의 대상ㆍ방편(方便)의 대상ㆍ벗어남의 대상ㆍ주지(住止)의 대상ㆍ주체적 대상ㆍ펼침의 대상ㆍ기쁨의 대상을 헐지도 않고 없애지도 않으면서 바른 평정[正止]을 마음에 간직하게 됩니다. 이것을 바르고 곧은 방편이라고 합니다. - 019_0525_b_03L何等爲,賢者!正直方便?賢者!道德弟子,苦爲念苦,習爲念習,盡爲念盡,道爲念道,所精進、所方便、所出、所住止、所能、所敷、所喜,不毀不滅念正止,是名爲正直方便。
- 또한 과거 세상의 일을 관찰하여 지니고, 역시 이룩한 행으로 세상에서 행하기를 생각하며, 보고 뉘우쳐 평정하면, 소견이 세상을 벗어나서 거짓이 없어집니다. 고요히 안정되고 집착하지 않는 데서, 이미 도의 관찰력을 얻고 해탈합니다. 정진의 대상ㆍ방편의 대상ㆍ벗어남의 대상ㆍ주지의 대상ㆍ펼침의 대상ㆍ기쁨의 대상에 대해, 헐거나 없애지도 않고, 바르게 거둬들여 안정된 방법을 마음에 간직하면, 이것을 바르고 곧은 방편이라고 이름하며, 도덕의 도리라고 이름합니다.
- 019_0525_b_08L亦有持宿命觀,亦從得行念,從世閒行見悔,止見、度世、無爲、寂然、止從、不著、已得道觀解脫意,所精進、所方便、所出、所住止、所敷、所喜、不毀滅念正攝止,是名爲正直方便,是名爲道德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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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곧고 바른 생각이란 무엇인가.
만일 현자들이 도 닦는 덕을 갖춘 제자라면,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생각하고, 쌓임을 쌓임으로 생각하며, 사라짐을 사라짐으로 생각하고, 닦는 길을 닦는 길로 생각하여, 계속 생각하고 생각을 따라 생각마다 잊지 않으며, 말을 적게 하여 바른 생각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이것을 곧고 바른 생각이라고 합니다. - 019_0525_b_13L何等爲,賢者!直正念?若,賢者!道德弟子,苦爲念苦,習爲念習,盡爲念盡,道爲念道,相念從念,念念不忘,少言、念不離,是名爲正直念。
- 019_0525_c_01L또한 과거 세상의 일을 관찰하여 지니고, 역시 이룩한 도행(道行)으로 세상에서 행하기를 마음에 간직하면, 뉘우칠 필요가 없는 경지에서 거둬 평정하고, 세속을 벗어나서 거짓이 없어집니다. 고요히 안정된 가운데 하나의 덕성(德性)을 보면, 집착할 대상이 없어져서, 해탈한 것과 같습니다. 뜻으로 바른 생각을 관찰하고 바른 생각을 간직하여, 생각마다 잊지 않고 말을 적게 하며, 바른 생각을 벗어나지 않으면, 이것을 곧고 바른 생각이라고 이름하며, 도덕의 도리라고 이름합니다.
- 019_0525_b_17L亦觀持宿命,亦從得道行,念世閒行不可悔,攝、止、度世、無爲、寂然、止見、一德、無所著、如解脫意觀念想念,從念念、念不忘、少言、念不離,是名爲直正念,是名爲道德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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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바르고 곧은 선정이란 무엇인가.
만일 현자들이 도 닦는 덕을 갖춘 제자라면,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생각하고, 쌓임을 쌓임으로 생각하며, 사라짐을 사라짐으로 생각하고, 닦는 길을 닦는 길로 생각합니다. 뜻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안으로 흔들리지도 않고 밖으로 달아나지도 않습니다. 이미 거둬 평정(平靜)하였기 때문에 뜻과 생각이 하나가 됩니다. 이것을 곧고 바른 선정이라고 합니다. - 019_0525_b_21L何等爲,賢者!直正定?若,賢者!道德弟子,苦爲念苦,習爲念習,盡爲念盡,道爲念道,意止故不動不走,已攝止故意念在一,是名爲直正定。
- 또한 과거 세상의 일을 관찰하여 지니고, 역시 해탈을 체득한 뜻과 생각으로 세상의 행위를 보고, 뉘우치며 거둬 평정하면, 세속을 벗어나서 거짓이 없어지고, 소견도 마땅히 얻은 그대로 집착할 대상이 없어집니다. 해탈한 인연을 따르니, 마음이 뜻한 대상을 향하여 관찰할지라도, 평정(平靜)한 중정(中正)이요, 안전한 하나입니다. 안으로 미혹하거나 밖으로 달아나지 않게 거둬들여 평정시키고, 염(念)과 정(定)을 바르고 곧은 두 생각[二念]에 둔다면, 이것을 바르고 곧은 선정이라고 이름하며, 도덕의 도리라고 이름합니다.
- 019_0525_c_02L亦觀持宿命,亦從得解意念,見世閒行悔,攝、止、度世、無爲、見可如、得無所著、從解脫因緣意向觀所意,止正安一、不惑、不走、攝止、念定在二念,是名爲正直定,是名爲道德諦。
- 현자들이여, 과거 세상에서도 역시 이것을 괴로움이 다 사라질 때까지 받아 지녔던 현자들의 도리었고, 미래 세상에서도 역시 여기에서 받들어 닦아야 할 현자들의 도리이며, 지금 현재 세상에서도 역시 여기에서 받아 행하여 괴로움을 없애는 현자들의 도리입니다.
- 019_0525_c_07L過世,賢者!亦是苦盡受賢者諦,後世未來時亦從是受行賢者諦,今現世時亦從是受行滅苦賢者諦,
- 이와 같이 달라지지 아니하고, 있는 대로이며, 잃지 않고, 미혹하지 않는 참된 도리이니, 본래대로 덕이 있는 그대로 도덕의 도리입니다. 현자는 이 도리를 접촉해서 보고, 도리에 알맞은 해탈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이 다 사라질 때까지 여기에서 행하니 도덕의 도리라고 이름합니다. 끝으로 줄여서 말한다면, 괴로움과 괴로움의 쌓임과 괴로움의 사라짐을 모두 이 닦는 길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행은 이렇게 한량이 없습니다.”
- 019_0525_c_10L如是不異,如有不失不惑,眞諦如本如有德道德諦,賢者!是諦更見得應解脫,是故爲苦盡。從是行名爲道德諦。從後斂說,苦、苦習、盡亦見道,佛所說行無有量。”
- 사리불이 이와 같이 설하니, 비구들은 받들어 행하여 숙명관(宿命觀)[대안반(大安般)에 이르기를, “본생(本生)의 인연을 확신하여 앎은 숙명(宿命)을 통해서 이뤄지니, 또 바른 견해[直見]라고 이름한다” 하고, 뜻을 결정하여 말하기를, “이전의 일[前事]을 미래의 일[後事]과 같이 앎이 이것이다”라고 하였다]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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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_0525_c_14L舍利曰說如是,比丘受行。持宿命觀『大安般』云“信本因緣,知從宿命有,名直見。”『義決』云“知前事,如後事是也”。
佛說四諦經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 1)여래(如來)ㆍ무소착(無所着)ㆍ정각(正覺)은 모두 부처님의 명호(名號)이다.
- 2)원문에는 모두 사리왈(舍利曰)로 되어 있다.
- 3)원문은 육자입(六自入)으로서, 내육처(內六處) 곧 육근(六根)을 말한다.
- 4)바깥경계는 외육처(外六處)로서, 색(色) 등 육경(六境)을 말한다.
- 5)바깥경계를 요별(了別)하는 마음의 작용.
- 6)심(心)과 심소(心所)를 발동시키는 마음의 작용.
- 7)통(痛)은 수(受)의 구역(舊譯)이며, 감수작용(感受作用)을 말한다.
- 8)사고작용에서 나온 의식의 내용.
- 9)경험한 일을 마음에 간직한 생각.
- 10)몹시 탐하여 집착함. 갈애(渴愛)와 같다.
- 11)안(眼) 등 육근(六根)이 각기 작용하여 행함을 말한다.
- 12)촉애(觸愛) 또는 촉욕(觸欲)을 말한다.
- 13)다문성제자(多聞聖弟子)와 같은 뜻으로, 참다운 도리를 많이 듣고 배워서 도의 덕성(德性)을 갖춘 제자.
- 14)참된 도리를 관하여 도리대로 행함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