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阿毘達磨界身足論卷上

ABC_IT_K0948_T_001
025_0130_a_02L아비달마계신족론(阿毘達磨界身足論)상권(上卷)
025_0130_a_01L阿毘達磨界身足論卷上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教序)1)
025_0130_a_02L大唐三藏聖教序


태종문황제제(太宗文皇帝製)
025_0130_a_03L太宗文皇帝製


대개 내가 듣건대, 하늘과 땅[二儀]은 형상[像]이 있어, 만물을 덮고 실음으로 모든 생명을 품고 있음이 드러나고, 네 계절[四時]은 형태[形]가 없어,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가며 만물을 기르는 것이 감춰져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하늘과 땅을 자세히 살펴봄으로, 평범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모두 하늘과 땅이 운행하는 이치의 실마리를 알게 되지만, 하늘과 땅의 이치인 음(陰)과 양(陽)을 명확히 꿰뚫어 보는 데에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그 변화의 모든 수를 다 아는 것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음양의 원리를 담고 있음에도, 음양의 이치를 쉽게 아는 것은 하늘과 땅이 형상이 있기 때문이요, 음양의 이치가 하늘과 땅에 담겨있을지라도 그 이치를 온전히 다 알기 어려운 것은, 음양의 변화는 형태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025_0130_a_04L蓋聞二儀有像顯覆載以含生四時無形潛寒暑以化物是以窺天鑑地庸愚皆識其端明陰洞陽賢哲罕窮其數然而天地包乎陰陽而易識者以其有像也陰陽處乎天地而難窮以其無形也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형상이 겉으로 드러나 그것을 파악할 수 있으면,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미혹되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고, 음양이 변화하는 모습이 감춰져 그것을 엿볼 수 없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오히려 미혹되어 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불도(佛道)는 형상이 없이 텅 빈 가르침을 숭상하고, 깊고 현묘한 진리에 오르고 완전한 고요 속의 깨달음을 이끌어서, 모든 중생을 널리 구제하고 온 세상을 맡아 다스리며, 신령한 위엄을 일으키면 위로 그 한계가 없고, 그 신묘한 힘을 억누르면 아래로 그 끝이 없으며, 그 가르침을 거시의 세계로 확장하면 우주에까지 미치고 미시의 세계로 축소하면 터럭까지도 주관하니, 소멸하는 것도 없고 생겨나는 것도 없어서 천겁(千劫)이 흘렀어도 낡지 않고, 감춰진 듯 드러난 듯 온갖 복[百福]을 주관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도다.
025_0130_a_10L 故知像顯可徵雖愚不惑形潛莫睹在智猶迷況乎佛道崇虛乘幽控寂弘濟萬品典御十方擧威靈而無上抑神力而無下大之則彌於宇宙細之則攝於毫釐無滅無生歷千劫而不古若隱若顯運百福而長今
현묘한 도는 그윽하고도 그윽하여서 그것을 아무리 좇아가더라도 그 끝을 알 수가 없고, 부처님의 법이 흘러 그 적멸의 경지에 깊이 잠기니 그 법을 아무리 퍼내어도 그 근원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어리석고 평범한 사람들과 초라하며 못난 사람들이, 불법의 뜻에 자신을 던지면 이 세상의 어떤 의혹도 없앨 수 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불교가 일어난 것은 서토(西土)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이제는 우리 당나라[漢庭]에 전해져 우리에게 희망의 환한 꿈을 꾸게 하는 것이요, 우리 중국에 부처님의 빛을 비추어 부처님의 자비가 흐르도록 한 것이다.
025_0130_a_16L妙道凝玄遵之莫知其際法流湛寂挹之莫測其源故知蠢蠢凡愚區區庸鄙投其旨趣能無疑惑者哉然則大教之興基乎西土騰漢庭而皎夢照東域而流慈
025_0130_b_02L옛날 온 세상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가르침이 아직 전해지지 않아도 교화가 이루어졌으나, 현 시대에는 백성이 부처님의 덕행을 우러러보고서야 따를 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이 진리의 빛으로 돌아서서 법도가 바뀌고 시대가 변화함에 이르러, 이전에는 부처님 얼굴[金容]의 찬란한 빛이 가려져서 삼천대천세계[三千]를 비추지 못하다가, 지금은 부처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펼쳐지게 되어 단정하신 부처님의 32상[四八之相]을 보게 되었다.
025_0130_a_20L昔者分形分迹之時言未馳而成化當常現常之世民仰德而知遵及乎晦影歸眞遷儀越世金容掩色不鏡三千之光麗象開圖空端四八之相
이에 부처님의 정미한 말씀이 널리 전해져서 중생을 삼도(三途)2)에서 구제하였고, 선각자들이 남긴 가르침이 널리 전파되어 중생을 십지(十地)3)로 인도하였다. 그러나 참된 가르침은 사람들이 받들어 따르기 어렵고 그 가르침의 뜻을 하나로 모을 수도 없으나, 세상에 아첨하는 가르침은 사람들이 따르기가 쉬워서 이에 참과 거짓이 얽히고설키게 되었다. 이 때문에 만물의 실체가 없다는 공론[空]과 모든 현상의 본체가 있다는 유론[有]이 더러는 옛 습속을 따라 시비(是非)를 일으킨 것이고, 대승과 소승이 때때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번갈아 흥하고 망하게 된 것이다.
025_0130_b_02L於是微言廣被拯含類於三塗遺訓遐宣導群生於十地然而眞教難仰莫能一其旨歸曲學易遵邪正於焉紛糾所以空有之論或習俗而是非大小之乘乍沿時而隆替
현장(玄奘) 법사라는 분이 있는데, 법문(法門)의 제일가는 스승이다. 그는 어려서 마음이 바르고 배우는 데 민첩하여 일찍 삼공(三空)4)의 마음을 깨달았고, 커서는 그 정신과 뜻이 불교의 가르침에 부합하여 먼저 사인(四忍)5)의 수행을 감당하였다. 소나무 숲에 부는 맑은 바람[松風]과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달[水月]도 그의 맑고 아름다움 성품에는 견줄 수 없었으니, 신선이 먹는 이슬[仙露]과 찬란한 구슬[明珠]을 어찌 그의 환하고 넉넉한 모습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의 지혜는 모든 것을 통달하여 얽매임이 없고, 그의 정신도 모든 것을 헤아리며 막힘이 없어서, 이미 육진(六塵)6)을 초월하고 멀리 벗어나니, 아득한7)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와 상대할 자가 없을 것이다.
025_0130_b_07L有玄奘法師者法門之領䄂也幼懷貞敏早悟三空之心長契神情先包四忍之行松風水月未足比其淸華仙露明珠詎能方其朗潤故以智通無累神測未形超六塵而迥出隻千古而無對
그는 자신의 내면을 닦는 데 모든 마음을 쏟으며, 불교의 정법(正法)이 업신여겨지고 쇠퇴함을 슬퍼하였고, 불문[玄門]을 깊이 고찰하여 불법의 심오한 경문이 잘못 전해짐을 안타깝게 여겨서, 불교 경문을 조리에 따라 이치에 맞게 분석하여 전에 들은 것들을 확장하고, 잘못된 것들은 끊어내고 참된 것들을 잇게 하여, 후학들에게 올바른 길을 열어주고자 하였다.
025_0130_b_12L凝心內境悲正法之陵遲拪慮玄門慨深文之訛謬思欲分條析理廣彼前聞截僞續眞開茲後學
이 때문에 그의 마음은 부처님이 계신 곳[淨土]으로 향하게 되어 멀리 서역(西域)으로 떠나게 되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 떠나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홀로 여행을 하니, 쌓인 눈이 새벽에 이리저리 날리는데 길에서 갈 곳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모래 바람이 저녁에 갑자기 일어남에 텅 빈 밖에서 갈 방향을 잃기도 하였다. 만리(萬里)를 가며 만난 산과 강을 지날 때에도 자욱한 안개와 노을을 헤치고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용감히 나아갔고, 온갖 추위와 더위 속에서도 서리를 밟고 비를 맞으며 묵묵히 앞으로 발을 디뎠다. 부처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중히 여기고 자신의 수고는 가볍게 여기며, 자신의 깊은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간곡히 구하여, 서역을 17년 동안 두루 다녔다. 그동안 불도가 전해진 지역을 모두 다니며, 정교(正教)을 묻고 구하였다.
025_0130_b_15L是以翹心淨土往遊西域乘危遠邁杖策孤征積雪晨飛途閒失地驚砂夕起空外迷天萬里山川撥煙霞而進影百重寒暑躡霜雨而前蹤誠重勞輕求深願達周遊西宇十有七年窮歷道邦詢求正教
025_0130_c_02L그는 쌍림(雙林)을 지나고 팔수(八水)에 이르러, 부처님의 도를 맛보고 불도의 유풍[風]을 느낄 수 있었으며, 녹야원[鹿苑]에 가고 영취봉[鷲峯]에 올라 부처님의 신비하고 기이한 유적들을 우러러볼 수 있었다. 그가 앞선 성인들의 지극한 가르침을 받들고 현인들의 참된 가르침을 이어받으며, 오묘한 법문을 깊이 탐구하고 심오한 가르침을 정밀하게 궁구하니, 일승(一乘)과 오율(五律)의 도(道)가 마음 밭에서 치달리며 뛰놀게 되었고, 팔장(八藏)과 삼협(三篋)의 문장[文]이 그의 입안에서 파도의 물결처럼 끊임없이 나오게 되었다. 이에 그는 자신이 지났던 나라들로부터 삼장(三藏)의 핵심 경문을 모두 모아 가지고 왔으니, 모두 657부(部)이다. 그리고 번역된 경문은 중국에 널리 배포되어, 그의 빼어난 공덕이 온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025_0130_b_20L雙林八水味道飡風鹿苑鷲峯瞻奇仰異承至言於先聖受眞教於上賢探賾妙門精窮奧業一乘五律之道驟於心田八藏三篋之文波濤於口爰自所歷之國摠將三藏要文六百五十七部譯布中夏宣揚勝
그가 서역에서 부처님의 자비로운 구름을 이끌고 와서 중국에 불법의 비를 내리게 하니, 결함이 있었던 불교가 다시 온전해지고, 죄 가운데 고통 받던 중생이 다시 복(福)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불난 집[火宅]의 활활 타는 불꽃에 물을 뿌려서 다시는 미혹된 길로 가지 않게 한 것이고, 애욕의 캄캄한 파도에 빛을 비춰 피안(彼岸)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이것으로 사람들은 악(惡)을 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업(業)이 생겨 지옥으로 떨어지고, 선(善)을 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극락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극락에 오르고 지옥에 떨어지는 실마리는 오직 사람이 행한 것에 근거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025_0130_c_04L引慈雲於西極注法雨於東垂教缺而復全蒼生罪而還福濕火宅之乾焰共拔迷途朗愛水之昏波臻彼岸是知惡因業墜善以緣昇墜之端惟人所託
비유컨대 계수나무는 높은 산봉우리에서 자라므로 구름이 내리는 깨끗한 이슬만이 그 꽃을 적실 수 있고, 연꽃은 맑은 물결 속에서 꽃을 피우므로 날리는 티끌이 그 잎을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연꽃의 본성이 본래 깨끗하거나 계수나무의 바탕이 본래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계수나무가 자라는 곳이 높기 때문에 탁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요, 연꽃이 의지한 곳이 맑은 물속이기 때문에 지저분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무릇 풀과 나무가 지각이 없을지라도 오히려 좋은 조건에 의지하여 선(善)을 이루는데, 하물며 사람은 지각이 있어 복된 조건을 가지고 복을 이룰 수 없겠는가. 지금 이 경(經)이 널리 전해져서 해와 달처럼 다함없이 이어지고, 이 복(福)이 멀리 펼쳐져서 하늘과 땅과 함께 영원하고 광대하기를 바라노라.
025_0130_c_08L譬夫桂生高嶺露方得泫其花蓮出淥波飛塵不能污其葉非蓮性自潔而桂質本貞由所附者高則微物不能累所憑者則濁類不能沾夫以卉木無知資善而成善況乎人倫有識不緣慶而求慶方冀茲經流施將日月而無斯福遐敷與乾坤而永大


황제술성기(皇帝述聖記)8)
재춘궁일제(在春宮日製)9)
025_0130_c_15L大唐皇帝述 聖記 在春宮日製


무릇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세상에 드러내어 널리 전함에,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면 그 가르침[文]을 널리 퍼뜨리지 못하는 것이요, 불법의 심오한 가르침을 받들어 분명히 밝히는 것도, 현명한 사람이 아니면 그 뜻[旨]을 정확히 확정할 수 없는 것이다. 대개 진여(眞如)의 성스러운 가르침은 모든 불법의 궁극적 근원이요, 모든 불경이 따라야 할 본보기이다. 그 담긴 내용은 너무나 넓고 크며 그 오묘한 뜻은 너무나 아득하고 깊어서, 공(空)과 유(有)의 정밀하고 미묘한 이치도 완전히 꿰뚫게 하고, 삶과 죽음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도 체득하게 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너무 많고 복잡하며 그 도리는 너무 다양하고 넓어서, 불법을 찾는 자가 그 근원을 다 탐구하기 어렵고, 그 경문은 세상에 드러났어도 그 의미는 깊이 감추어져 있어, 불법을 실행하려는 자가 불법의 극의를 분명히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025_0130_c_16L夫顯揚正教非智無以廣其文崇闡微言非賢莫能定其旨蓋眞如聖教諸法之玄宗衆經之軌躅也綜括宏遠奧旨遐深極空有之精微體生滅之機要詞茂道曠尋之者不究其文顯義幽履之者莫測其際
025_0131_a_02L 그러므로 부처님의 성스런 자비가 덧입혀져야 모든 중생의 업(業)이 선(善)으로 나아가고, 부처님의 신묘한 교화가 펼쳐져야 모든 세상의 인연[緣]에서 악(惡)이 끊어짐을 알게 되어, 불법의 그물[法網]이 넓게 펼쳐지고 육바라밀[六度]의 올바른 가르침이 널리 베풀어져, 모든 중생이 도탄(塗炭)에서 구원받고, 삼장(三藏)의 비밀스런 빗장[秘扃]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의 이름은 날개가 없어도 오래도록 세상에 전해졌고, 부처님의 도(道)는 뿌리가 없어도 영원히 견고하게 박혔으며, 부처님의 도와 이름으로 세상에 전해진 축복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고,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감동시킨 부처님의 모습은 헤아릴 수 없는 겁이 흘러도 손상되지 않은 것이다.
025_0130_c_22L故知聖慈所被業無善而不臻妙化所敷緣無惡而不翦開法網之綱紀弘六度之正教拯群有之塗炭啓三藏之秘扃是以名無翼而長飛道無根而永固道名流慶歷遂古而鎭常赴感應身經塵劫而不朽
새벽의 종소리[鍾]와 저녁의 게송 소리[梵], 이 두 가지 소리가 영취봉[鷲峯]에서 어우러지고, 부처님의 지혜의 빛[慧日]과 불법의 맑은 물[法流]이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돌아가 녹야원[鹿苑]에서 전해졌으니, 공중으로 치솟은 보개(寶蓋)10)는 떠도는 구름[翔雲]과 함께 나는 듯하였고, 들판의 무성한 봄 숲[春林]은 천화(天花)11)와 더불어 아름다운 광채를 발하였다.
025_0131_a_05L晨鍾夕梵交二音於鷲峯慧日法流轉雙輪於鹿苑排空寶蓋接翔雲而共飛莊野春林與天花而合彩
엎드려 생각건대, 황제폐하께서는 불교의 깊은 이치를 숭상함으로 복(福)을 받아, 옷을 늘어뜨리고 손을 꽂은 채로 있어도 온 세상이 다스려졌고, 그 덕(德)이 온 백성에게 입혀져, 공손히 옷깃을 여미고만 있어도 모든 나라가 고개를 숙이고 조공을 바쳤으며, 그 은혜가 죽은 자에까지 이르러 무덤에도 불교경전이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은택이 곤충에까지 미치어 금궤에도 불교의 게송이 담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아뇩달수(阿耨達水)12)가 중국의 중심13)에 흐르는 팔천(八川)14)과 통하게 되었고, 기사굴산(耆闍崛山:영취산)이 숭산과 화산[嵩華]의 푸른 봉우리와 맞닿게 되었다.
025_0131_a_08L伏惟皇帝陛下上玄資福垂拱而治八荒德被黔黎斂衽而朝萬國恩加朽骨石室歸貝葉之文澤及昆蟲金匱流梵說之偈遂使阿耨達水通神甸之八川耆闍崛山接嵩華之翠嶺
가만히 생각해보면, 불법의 본성은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여, 온전히 불법에 귀의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법을 깨닫지 못하고, 지혜의 대지는 깊고 그윽하여 간절하고 지극한 정성에만 감응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니, 어찌 칠흑 같은 혼돈의 밤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요, 화마가 휩쓰는 아침에 내리는 불법의 은택이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모든 하천은 다르게 흘러도 모두 함께 바다로 모이고, 모든 만물의 이치는 나누어졌어도 결국 모두 만물의 실재를 이루니, 어찌 탕왕[湯]과 무왕[武]의 우열을 비교하며, 요임금[堯]과 순임금[舜]의 성덕을 서로 견주겠는가.
025_0131_a_13L竊以法性凝寂靡歸心而不通智地玄奧感懇誠而遂顯豈謂重昏之夜燭慧炬之光火宅之朝降法雨之澤於是百川異流同會於海萬區分義摠成乎實豈與湯武挍其優劣堯舜比其聖德者哉
현장(玄奘) 법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담백하고 소박한 삶에 뜻을 두었으며, 정신은 어린 나이에도 한없이 맑았고, 신체도 세상 사람들보다 빼어났다. 선방[定室]에서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깊은 바위산[幽巖]에 자취를 숨겼으며, 삼선(三禪)15)의 세계에 오르고, 십지(十地)의 수행을 차례로 수행하였으며, 육진(六塵)16)의 경계를 초월하여 홀로 부처님의 땅[迦維:인도)을 밟고, 일승(一乘)의 뜻[旨]을 깨달아 그 근기에 따라 중생을 교화하였다.
025_0131_a_19L玄奘法師者夙懷聰令志夷簡神淸齠齔之年體拔浮華之世凝情定室匿迹幽巖拪息三禪巡遊十地超六塵之境獨步迦維一乘之旨隨機化物
025_0131_b_02L 현장은 중국에는 의거할 진경[眞文]이 없어 인도의 불경을 찾아서, 멀리 항하(恒河:갠지스 강)를 건너 불경을 가져오길 늘 바랐고, 이에 여러 차례 설산[雪嶺]을 넘어가 불경을 가져왔다. 도(道)를 물으며 인도에서 돌아오기까지 17년 세월 동안 불교 경전을 다 깨달아서,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에만 마음을 두게 되었다.
025_0131_a_23L以中華之無質尋印度之眞文遠涉恒河終期滿字頻登雪嶺更獲半珠問道往還十有七載備通釋典利物爲心
때문에 정관(貞觀) 19년 2월 6일 홍복사(弘福寺)에서 조칙[勅]을 받들어, 성교(聖教)의 중요한 문장을 번역하니, 모두 657부(部)이다. 이는 대해(大海)의 법류(法流)를 끌어다가 세속의 노고를 씻어서 마르지 않게 한 것이요, 지혜의 등불[智燈]을 전하여 세속의 어둠을 비춰 항상 밝게 한 것이니, 스스로 오랜 동안17) 좋은 인연을 심은 것이 아니라면, 어찌 불법의 뜻을 이렇게 드날릴 수 있었겠는가.18) 이것은 법상(法相)19)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 해ㆍ달ㆍ별[三光]의 광명처럼 분명하고, 우리 황제폐하의 복덕이 이 세상에 오는 것이 하늘ㆍ땅[二儀]의 견고함처럼 확실함을 말한 것이다.
025_0131_b_03L以貞觀十九年二月六日勅於弘福寺翻譯 聖教要文凡六百五十七部引大海之法流洗塵勞而不竭傳智燈之長焰皎幽闇而恒自非久植勝緣何以顯揚斯旨謂法相常住齊三光之明我皇福臻同二儀之固
엎드려 황제폐하께서 지으신 여러 경론의 서문을 보니, 옛일을 비추어 현재를 뛰어넘게 한 것으로, 그 이치는 금석(金石)과 같이 웅장한 소리를 담고 있고, 그 문장은 풍운(風雲)이 뿌리는 은택을 간직하고 있다. 나(治:고종의 이름)는 이에 가벼운 티끌을 거대한 산악에 덧붙이듯, 이슬을 떨어뜨려 강물에 첨가하듯 내 글을 폐하의 서문에 덧붙임으로, 간략하게 그 대강(大綱)을 들어서 이 기문을 짓는다.
025_0131_b_10L伏見御製衆經論序照古騰今理含金石之聲文抱風雲之潤治輒以輕塵嶽墜露添流略擧大綱以爲斯記


아비달마계신족론(阿毘達磨界身足論)1) 상권(上卷)
025_0131_b_13L阿毘達磨界身足論卷上
세우(世友) 지음
현장(玄奘) 한역
송 성수 번역
025_0131_b_14L尊者世友造
三藏法師玄奘奉 詔譯
1. 본사품(本事品)
025_0131_b_16L本事品第一
세 가지 지[三地]가 각각 열 가지요,
다섯 가지 번뇌[五煩惱]와 다섯 가지 견[五見]이며,
다섯 가지 촉[五觸]과 다섯 가지 근법[五根法]과,
36가지 신[六六身]과 상응(相應)하는 것이다.。
025_0131_b_17L三地各十種
五煩惱五見
五觸五根法
六六身相應
열 가지 대지법[十大地法]과 열 가지 대번뇌지법[十大煩惱地法]과 열 가지 소번뇌지법[十小煩惱地法]과 다섯 가지 번뇌[五煩惱]와 다섯 가지 견[五見]과 다섯 가지 촉[五觸]과 다섯 가지 근[五根]과 다섯 가지 법[五法]과 여섯 가지 식신[六識身]과 여섯 가지 촉신[六觸身]과 여섯 가지 수신[六受身]과 여섯 가지 상신[六想身]과 여섯 가지 사신[六思身]과 여섯 가지 애신[六愛身]이 있다.
025_0131_b_19L有十大地法十大煩惱地法十小煩惱地法五煩惱五見五觸五根五法六識身六觸身六受身六想身六思六愛身
025_0131_c_01L열 가지 대지법[十大地法]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첫째는 수(受)요 둘째는 상(想)이며, 셋째는 사(思)요 넷째는 촉(觸)이며, 다섯째는 작의(作意)요 여섯째는 욕(欲)이며, 일곱째는 승해(勝解)요 여덟째는 염(念)이며, 아홉째는 삼마지(三摩地)요 열째는 혜(慧)이다.
열 가지 대번뇌지법[十大煩惱地法]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첫째는 불신(不信)이요 둘째는 해태(懈怠)이며, 셋째는 실념(失念)이요 넷째는 심란(心亂)이며, 다섯째는 무명(無明)이요 여섯째는 부정지(不正知)이며, 일곱째는 비리작의(非理作意)요 여덟째는 사승해(邪勝解)이며, 아홉째는 도거(掉擧)요 열째는 방일(放逸)이다.
025_0131_b_23L十大地法云何作意勝解三摩地十大煩惱地法云何不信懈怠失念心亂不正知非理作意邪勝解掉擧放逸
열 가지 소번뇌지법[十小煩惱地法]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첫째는 분(忿)이요 둘째는 한(恨)이며, 셋째는 부(覆)요 넷째는 뇌(惱)이며, 다섯째는 질(嫉)이요 여섯째는 간(慳)이며, 일곱째는 광(誑)이요 여덟째는 첨(諂)이며, 아홉째는 교(憍)요 열째는 해(害)이다.
다섯 가지 번뇌[五煩惱]란 어떤 것이냐 하면, 첫째는 욕탐(欲貪)이요 둘째는 색탐(色貪)이며, 셋째는 무색탐(無色貪)이요 넷째는 진(瞋)이며, 다섯째는 의(疑)이다.
다섯 가지 견[五見]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첫째는 유신견(有身見)이요 둘째는 변집견(邊執見)이요 셋째는 사견(邪見)이요 넷째는 견취(見取)이며 다섯째는 계금취(戒禁取)이다.
다섯 가지 촉[五觸]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첫째는 유대촉(有對觸)이요 둘째는 증어촉(增語觸)이며, 셋째는 명촉(明觸)이요 넷째는 무명촉(無明觸)이며, 다섯째는 비명비무명촉(非明非無明觸)이다.
025_0131_c_05L十小煩惱地法云何忿五煩惱云何欲貪色貪無色貪五見云有身見邊執見邪見戒禁取五觸云何有對觸增語觸明觸無明觸非明非無明觸
다섯 가지 근[五根]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첫째는 낙근(樂根)이요 둘째는 고근(苦根)이며, 셋째는 희근(喜根)이요 넷째는 우근(憂根)이며, 다섯째는 사근(捨根)이다.
다섯 가지 법[五法]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첫째는 심(尋)이요 둘째는 사(伺)이며, 셋째는 식(識)이요 넷째는 무참(無慚)이며, 다섯째는 무괴(無愧)이다.
025_0131_c_12L五根云何樂根苦根喜根憂根捨根五法云何無慚無愧
여섯 가지 식신[六識身]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첫째는 안식(眼識)이요 둘째는 이식(耳識)이며, 셋째는 비식(鼻識)이요 넷째는 설식(舌識)이며, 다섯째는 신식(身識)이요 여섯째는 의식(意識)이다.
여섯 가지 촉신[六觸身]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첫째는 안촉(眼觸)이요 둘째는 이촉(耳識)이며, 셋째는 비촉(鼻觸)이요 넷째는 설촉(舌觸)이며, 다섯째는 신촉(身觸)이요 여섯째는 의촉(意觸)이다.
여섯 가지 수신(受身)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첫째는 눈[眼]의 접촉으로 생기는 수(受)요 둘째는 귀[耳]의 접촉으로 생기는 수이며, 셋째는 코[鼻]의 접촉으로 생기는 수요 넷째는 혀[舌]의 접촉으로 생기는 수이며, 다섯째는 몸[身]의 접촉으로 생기는 수요 여섯째는 뜻[意]의 접촉으로 생기는 수이다.
025_0131_c_14L六識身云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六觸身云何眼觸耳觸鼻觸舌觸身觸意觸六受身云何眼觸所生受耳觸所生受鼻觸所生受舌觸所生身觸所生受意觸所生受
025_0132_a_01L여섯 가지 상신[六想身]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첫째는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상(想)이요 둘째는 귀의 접촉으로 생기는 상이며, 셋째는 코의 접촉으로 생기는 상이요 넷째는 혀의 접촉으로 생기는 상이며, 다섯째는 몸의 접촉으로 생기는 상이요 여섯째는 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상이다.
여섯 가지 사신[六思身]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첫째는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요 둘째는 귀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이며, 셋째는 코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요 넷째는 혀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이며, 다섯째는 몸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요 여섯째는 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이다.
여섯 가지 애신[六愛身]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첫째는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愛)요 둘째는 귀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이며, 셋째는 코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요 넷째는 혀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이며, 다섯째는 몸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요 여섯째는 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이다.
025_0131_c_20L想身云何眼觸所生想耳觸所生想鼻觸所生想舌觸所生想身觸所生想意觸所生想六思身云何眼觸所生思耳觸所生鼻觸所生思舌觸所生思身觸所生思意觸所生思六愛身云何眼觸所生愛耳觸所生愛鼻觸所生愛舌觸所生愛觸所生愛意觸所生愛
수란 무엇인가? 이른바 느낌[受]이요 평등한 느낌[等受]이요 저마다의 평등한 느낌[各等受]으로, 이미 느낀 것[已受]이요 앞으로 느낄 것[當受]이니, 느낌에 속하는 것을 이름하여 ‘수’라고 한다.
상(想)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생각[想]이요 평등한 생각[等想]으로, 지금 생각하는 것[現想]이요 이미 생각한 것[已想]이요 앞으로 생각할 것[當想]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상’이라고 한다.
사(思)란 무엇인가? 이른바 사량[思]이요 평등한 사량[等思]으로, 지금 사량하는 것[現思]이요 이미 사량한 것[已思]이며 앞으로 사량할 것[當思]이니, 사량에 속하고 마음과 뜻으로 업[心意業]을 짓게 하는 것을 이름하여 ‘사’라고 한다.
촉(觸)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접촉[觸]이요 평등한 접촉[等觸]으로, 지금 접촉하는 것[現觸]이요 이미 접촉한 것[已觸]이며 앞으로 접촉할 것[當觸]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촉’이라 한다.
025_0132_a_06L受云何受等受各等受已受當受受所攝名受想云何謂想等想現想已想當是名想思云何謂思等思現思已思當思思所攝造心意業是名思云何謂觸等觸現觸已觸當觸是名
작의(作意)란 무엇인가? 이른바 마음이 [대상에] 이끌리고 따라 이끌리는 것으로, 지금 뜻을 짓는 것[現作意]이요 이미 뜻을 지은 것[已作意]이며 앞으로 뜻을 지을 것[當作意]이니, 마음을 일깨우는 것[警覺]을 이름하여 ‘작의’라 한다.
욕(欲)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하고 싶어하는 것[欲]이요 능히 하고 싶어 하는 성품[能欲性]으로, 지금 하고 싶어 하는 성품[現欲性]이요 기뻐하거나 좋아하는 성품[喜樂性]이며 향해 나아가는 성품[趣向性]이요 희망하여 원하는 성품[希欲性]이며 구하는 성품[欣求性]이니, 짓는 바가 있게 하려는 성품을 이름하여 ‘욕’이라 한다.
승해(勝解)란 무엇인가? 이른바 마음이 뛰어나게 이해하는 성품[心勝解性]으로, 이미 뛰어나게 알았고[已勝解] 앞으로 뛰어나게 아는[當勝解]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승해’라 한다.
025_0132_a_12L作意云何謂心引於隨引等隨引現作意已作意當作意警覺心是名作意欲云何謂欲能欲性現欲性樂性趣向性希欲性欣求性欲有所作性是名欲勝解云何謂心勝解性已勝解當勝解是名勝解
염(念)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생각하고[念] 따라 생각하고[隨念] 따로따로 생각하고[別念] 억념하는 것으로, 기억하는 성품[憶念性]ㆍ잊지 않는 성품[不忘性]이요 법을 잊지도 않고 잃지도 않는 성품[不忘法不失性]이요 법을 잃지도 않고 잊지도 않는 성품[不失法不忘法]이며, 마음으로 밝혀서 기억하는 성품[心明記性]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염’이라 한다.
삼마지(三摩地)란 무엇인가? 마음이 머무르되[住] 평등하게 머무르고[等住] 현재에도 머무르며[現住] 가까이 머물러서[近住] 어지럽지 않고[不亂] 흩어지지 않고[不散] 가다듬어 지니고[攝持] 고요히 그치고[寂止] 평등하게 유지하고[等持] 마음이 한 경계로 되는 성품[心一境性]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삼마지’라 한다.
025_0132_a_17L念云何念隨念別念憶念憶念性不忘性忘法不失性不失法不忘失性心明是名念三摩地云何謂心住等住現住近住不亂不散攝持寂止等持心一境性是名三摩地
025_0132_b_01L혜(慧)란 무엇인가? 이른바 법에 대하여 간택(簡擇)하는 것이니, 가장 지극히 간택[最極簡擇]하고 지극히 간택[極簡擇]하며, 법에 대하여 아는 모양[法了相]이요 가까이 아는 모양[近了相]이요 평등하게 아는 모양[等了相]이며, 뛰어나게 밝아서[聰叡] 통달(通達)하며, 자세히 살피고[審察] 결정하고 선택[決擇]하며, 깨닫고[覺] 밝히고[明] 슬기로운 행[慧行]이며 비발사나(毘鉢舍那)2)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혜’라고 한다.
025_0132_a_22L慧云何謂於法簡擇最極簡擇極簡擇法了相了相等了相聰睿通達審察決擇明慧行毘鉢舍那是名慧
불신(不信)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믿지 않는 것[不信]이요 믿지 않는 성품[不信性]이요 믿음을 드러내지 않는 성품[不現信性]이며, 받아들이지 않고[不印] 인정하지 않으며[不可] 이미 맡기어 믿지 못하였고[不已委信] 앞으로도 맡기어 믿지 못하며[不當委信] 현재도 맡기어 믿지 못하는[不現委信] 것이니, 마음으로 하여금 청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이름하여 ‘불신’이라 한다.
025_0132_b_02L不信云何謂不信不信性不現信性不印不可不已委信不當委信不現委信令心不淨是名不信
해태(懈怠)란 무엇인가? 이른바 정진하지 않는 성품[不精進性]이요 정진에 어두운 성품[昧精進性]이며 정진에 장애가 되고 정진을 그치게 하는 것이니, [지금도] 마음이 용맹스럽지 못하고[不勇猛] 이미 용맹스럽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용맹스럽지 못한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해태’라 한다.
실념(失念)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생각이 텅 빈 성품[空念性]이요 생각이 헛된 성품[虛念性]이며, 기억을 잊은 성품[妄念性]이요 기억을 잃은 성품[失念性]이며 마음으로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성품[不明記性]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실념’이라고 한다.
025_0132_b_05L懈怠云何謂不精進性劣精進性昧精進性障礙精進息精進心不勇悍不已勇悍不當勇是名懈怠失念云何謂空念性念性忘念性失念性心不明記性名失念
심란(心亂)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마음이 흩어지는 성품[心散性]이요 마음이 어지러운 성품[心亂性]이며 마음이 달라지는 성품[心異念性]이요 마음이 헤매는 성품[心迷亂性]이며, 마음이 한 경계에 집중되지 못하는 성품[心不一境性]이요 마음이 한 경계에 머무르지 못하는 성품[心不住境性]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심란’이라 한다.
무명(無明)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삼계(三界)에 지혜가 없는[無智] 것이다.
부정지(不正知)란 무엇인가? 이른바 이치대로 이끌지 못하는[非理所引] 지혜이다.
비리작의(非理作意)란 무엇인가? 이른바 [번뇌에] 물든 작의(作意)를 말한다.
025_0132_b_10L心亂云何謂心散性心亂性心異念性心迷亂性心不一境性住一境性是名心亂無明云何謂三界無智不正知云何謂非理所引慧非理作意云何謂染污作意
사승해(邪勝解)란 무엇인가? 이른바 [번뇌에] 물든 작의와 상응하는 마음으로 뛰어나게 이해하는 것이요 마음이 인순(印順)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사승해’라 한다.
도거(掉擧)란 무엇인가? 이른바 마음이 고요하지 못한 것[不寂靜]이요 지극히 고요하지 못한 것[不極寂靜]으로 고요하지 못한 성품[不寂靜性]이며, 들떠 움직이거나[囂擧] 평등하게 들떠 움직이는 것[等囂擧]으로 마음이 들떠 있는 성품[心囂擧性]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도거’라 한다.
방일(放逸)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착하지 못한 법을 끊고 착한 법을 끌어 모으는 일에 대하여 굳게 머물지 못하고 꾸준히 이루지 못하며 친히 하거나 가까이 하지도 않으며 닦지도 않고 익히지도 않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방일’이라 한다.
분(忿)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분노하는 것[忿]이니, 평등하게 분노[等忿]하고 두루 분노[遍忿]하고 지극히 분노[極忿]하며 이미 분노[已忿]하였고 앞으로 분노[當忿]할 것을 이름하여 ‘분’이라 한다.
025_0132_b_14L邪勝解云何謂染污作意相應心勝解心印是名邪勝解掉擧云何謂心不寂不極寂靜不寂靜性囂擧等囂擧心囂擧性是名掉擧放逸云何謂於斷不善法引集善法不堅住作不恒常作不親不近不修不習是名放逸忿云何謂忿等忿遍忿極忿已忿當忿是名忿
025_0132_c_01L한(恨)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마음에서 원한을 맺고[心結恨] 평등하게 두루 원한을 맺으며[等遍結恨] 마음에 원한이 맺힌 성품[心怨結性]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한’이라 한다.
부(覆)란 무엇인가? 이른바 지은 죄를 덮어 감추는 것이다.
뇌(惱)란 무엇인가? 마음에서 분을 내며 괴로워하고[憤惱] 굳게 집착[堅執]하고 몹시 허물을 책망하며 마음이 어그러진 성품[俍戾性]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뇌’라고 한다.
질(嫉)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마음으로 다른 이의 영화와 이익[榮利]을 참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간(慳)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재물[財]과 법(法)에 대하여 마음으로 집착하면서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광(誑)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남을 속여 미혹되게 하는 것이다.
첨(諂)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마음이 굽은 것이다.
025_0132_b_22L恨云何謂心結恨等遍結心怨結性是名恨覆云何謂隱所作罪惱云何謂心憤惱堅執尤蛆俍戾性是名惱嫉云何謂心不忍他之榮利慳云何謂於財法心著不捨誑云何謂矯惑他諂云何謂心曲
교(憍)란 무엇인가? 이른바 마치 어떤 이가 생각하기를 ‘나는 아름다운 용모와 재물ㆍ지위ㆍ기예와 청정한 생활[淨命]의 공덕을 갖추었고 형모가 단정하고 엄숙해서 많은 사람들이 보기를 좋아한다’고 하며,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문득 교만한 생각을 일으키거나 지극히 교만[極憍傲]해지고 도취되어 어둡거나[醉悶] 평등하게 도취되어 어두우며[等醉悶] 현혹하게 하고[▼(目+面)眩] 평등하게 현혹하게[等▼(目+面)眩] 하며 마음으로 뽐내고 방자한 성품[踞傲性]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교’라고 한다.
해(害)란 무엇인가? 이른바 유정에 대하여 매질하기를 좋아하고 갖가지로 손해를 입히거나 괴롭히는 일을 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해’라고 한다.
025_0132_c_04L云何謂如有一作如是念我具妙色財位技藝淨命功德形貌端嚴衆所樂由此因緣便起憍傲極憍傲醉悶等醉悶靦眩等靦眩心踞傲性是名害云何謂於有情樂爲捶撻諸損惱事是名害
욕탐(欲貪)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모든 원하는 것[欲]에 대하여 탐심[貪]을 일으키고 평등하게 탐내며[等貪] 가져 간직[執藏]하고 막아 수호[防護]하며 애착하여 좋아[愛樂]하고 탐착(耽著)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욕탐’이라 한다.
색탐(色貪)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모든 물질에 대하여 탐냄을 일으키고 평등하게 탐내며 가져 간직하고 막아 수호하고 애착하며 좋아하고 탐착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색탐’이라 한다.
무색탐(無色貪)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모든 무색(無色)에 대하여 탐냄을 일으키고 평등하게 탐내는 것이며 가져 간직하고 막아 수호하며 애착하고 좋아하며 탐착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무색탐’이라 한다.
025_0132_c_10L欲貪云何謂於諸欲起貪等貪執藏防護愛樂耽著是名欲色貪云何謂於諸色起貪等貪藏防護愛樂耽著是名色貪無色貪云何謂於諸無色起貪等貪執藏防護愛樂耽著是名無色貪
진(瞋)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유정들을 핍박하고 해를 가하고자 하여 속으로 앙심을 품는 것으로, 극히 성을 내고[極瞋恚] 두루 성을 내고[遍瞋恚] 평등하게 성을 내며[等瞋恚] 눈을 부릅뜨고[瞋] 지극히 눈을 부릅뜨고[極瞋] 마음으로 분과 성을 내며 현재에도 성을 내고 이미 성을 냈었고 앞으로도 성을 내려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진’이라 한다.
의(疑)란 무엇인가? 이른바 모든 진리[諦]에 대하여 망설이는 것이다.
유신견(有身見)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5취온(取蘊)에 대하여 따라 관하면서 나[我] 혹은 내 것[我所]이라고 집착하여 이로 말미암아 인(忍)ㆍ락(樂)ㆍ혜(慧)ㆍ관(觀)ㆍ견(見)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유신견’이라 한다.
025_0132_c_15L瞋云何於有情欲爲逼害內懷栽孽極瞋恚遍瞋恚等瞋恚瞋極瞋意憤恚現瞋恚已瞋恚當瞋恚是名瞋疑云何於諸諦猶豫有身見云何謂於五取蘊等隨觀執我或我所由此起忍樂慧觀見是名有身見
025_0133_a_01L변집견(邊執見)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5취온에 대하여 따라 관하면서 혹은 끊어졌다[斷]거나 혹은 항상 있는 것[常]이라고 집착하여 이로 말미암아 인ㆍ락ㆍ혜ㆍ관ㆍ견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변집견’이라 한다.
사견(邪見)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원인[因]을 비방하고 결과[果]를 비방하며, 혹은 작용(作用)을 비방하기도 하고 혹은 진실한 일[實事]을 무너뜨려서 이로 말미암아 인ㆍ락ㆍ혜ㆍ관ㆍ견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사견’이라 한다.
견취(見取)란 무엇인가? 5취온에 대하여 따라 관하면서 으뜸이라고 집착하거나 훌륭하다고 집착하고 묘하기가 제일이라고 집착하여 이로 말미암아 인ㆍ락ㆍ혜ㆍ관ㆍ견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견취’라 한다.
025_0132_c_21L邊執見云何於五取蘊等隨觀執或斷或常由此起忍樂慧觀見是名邊執見邪見云謂謗因謗果或謗作用或壞實事由此起忍樂慧觀見是名邪見見取云何謂於五取蘊等隨觀執爲最爲勝爲妙第一由此起忍樂慧觀見名見取
계금취(戒禁取)란 무엇인가? 이른바 5취온에 대하여 따라 관하면서 청정함에 집착하고 해탈에 집착하고 벗어남에 집착하여 이로 말미암아 인ㆍ락ㆍ혜ㆍ관ㆍ견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계금취’라 한다.
유대촉(有對觸)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다섯 가지 식과 상응하며 접촉하는 것[觸]이다.
증어촉(增語觸)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의식(意識)과 상응하여 접촉하는 것이다.
명촉(明觸)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무루(無漏)와 접촉하는 것이다.
무명촉(無明觸)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염오(染汚)와 접촉하는 것이다.
비명비무명촉(非明非無明觸)이란 무엇인가? 물들지 않은 유루(有漏)와 접촉하는 것이다.
낙근(樂根)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즐거운 느낌을 따르는 접촉[順樂受觸]을 행한 이가 몸과 마음의 즐거움을 일으키는 것이다. 고르고 안정된 느낌[平等受]으로 느낌에 포섭된 것을 이름하여 ‘낙근’이라 한다.
025_0133_a_05L戒禁取云何謂於五取蘊等隨觀執爲淸淨爲解脫爲出離由此起忍樂慧觀見是名戒禁取有對觸云何謂五識相應觸增語觸云何意識相應觸明觸云何謂無漏觸明觸云何謂染污觸非明非無明觸云何謂不染有漏觸樂根云何謂觸順樂受觸者所起身心樂平等受受所攝是名樂根
고근(苦根)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괴로운 느낌이 따르는 접촉[順苦受觸]을 행한 이가 몸의 고통을 일으키는 것이다. 고르고 안정되지 못한 느낌[不平等受]으로 느낌에 포섭되는 것을 이름하여 ‘고근’이라 한다.
희근(喜根)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기쁜 느낌이 따르는 접촉[順喜受觸]을 행한 이가 마음의 기쁨을 일으키는 것이다[喜]. 고르고 안정된 느낌으로 느낌에 포섭되는 것을 이름하여 ‘희근’이라 한다.
우근(憂根)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근심의 느낌이 따르는 접촉[順憂受觸]을 행한 이가 일으키게 되는 마음의 근심[憂]과 안정되지 못한 느낌으로, 느낌에 포섭되는 것을 이름하여 ‘우근’이라 한다.
025_0133_a_13L苦根云何謂觸順苦觸者所起身苦不平等受受所攝是名苦根喜根云何謂觸順喜受者所起心喜平等受受所攝是名喜憂根云何謂觸順憂受觸者所起心憂不平等受受所攝是名憂根
사근(捨根)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따르는 접촉[順不苦不樂受觸]을 행한 이가 일으키게 되는 마음의 버림[捨]이다. 안정된 것도 아니고 안정되지 못한 것도 아닌 느낌으로, 느낌에 포섭되는 것을 이름하여 ‘사근’이라 한다.
025_0133_a_18L根云何謂觸順不苦不樂受觸者所起身心捨非平等非不平等受受所是名捨根
심(尋)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마음으로 미루어 찾고[推覓], 두루 미루어 찾는 것[遍推覓]이니 드러내 보이고[顯示] 지극히 드러내 보이고[極顯示] 눈앞에서 드러내 보이며[現前顯示] 찾아 구하고[尋求] 두루 찾아 구하고[遍尋求] 세어 헤아리고[算計] 두루 세어 헤아리고[遍算計] 계획을 짜고[搆畫] 두루 계획을 짜며[遍搆畫] 분별하고[分別] 평등하게 분별하고[等分別] 평등하게 분별하는 성품[等分別性]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심’이라 한다.
025_0133_a_21L尋云何謂心推覓遍推顯示極顯示現前顯示尋求遍尋筭計遍筭計搆畫遍搆畫分別等分別等分別性是名尋
025_0133_b_01L사(伺)란 무엇인가? 이른바 마음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巡行] 두루 돌아다니고[遍巡行] 따라 두루 돌아다니며[隨遍巡行], 세밀하게 살피고[伺察] 두루 세밀하게 살피고[遍伺察] 따라 두루 세밀하게 살피며[隨便伺察], 따라 움직이고[隨轉] 따라 흐르며[隨流], 대상을 좇아 이어지는 성품[隨屬彼性]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사’라고 한다.
식(識)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 식신[六識身]으로 안식(眼識)에서 의식(意識)에 이르기까지이다.
025_0133_b_01L伺云何心巡行遍巡行隨遍巡行伺察遍伺察隨遍伺察隨轉隨流隨屬彼性名伺識云何謂六識身所謂眼識乃至意識無慚云何謂無慚無所慚無別慚無羞無所羞無別羞無敬無所敬無別敬無自在無所自在無別自無所畏憚自在而轉是名無慚
무참(無慚)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부끄러움이 없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고 특별히 부끄러워할 것도 없으며, 꺼림칙한 생각[羞]도 없고 꺼림칙하게 여길 것도 없고, 특별히 꺼림칙한 생각도 없으며 공경하는 마음[敬]도 없고, 공경할 것도 없고, 특별히 공경하는 마음도 없으며 자재(自在)함도 없고, 자재할 것도 없고, 특별히 자재할 것도 없으며 두려워하거나 꺼릴 것도 없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무참’이라 한다.
무괴(無愧)란 무엇인가? 이른바 다른 이에게 부끄러워함[愧]이 없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고 특별히 부끄러워할 것도 없으며, 창피함[恥]도 없고 창피할 것도 없고 특별히 창피할 것도 없으며, 죄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성품[於罪不怖性]이요 죄에 대하여 겁내지 않는 성품[於罪不畏性]이며, 모든 죄에 대하여 두려움을 보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무괴’라 한다.
안식(眼識)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눈[眼]과 물질[色]을 반연하여 생기는 것이 안식이다. 여기서의 눈은 증상(增上)이 되고 물질은 반연의 대상이 된다. 눈이 인식한 물질에 대하여 요별(了別)함이 있는 것이요 저마다 따로따로 요별하는 것[各別了別]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안식’이라 한다.
025_0133_b_08L愧云何謂無愧無所愧無別愧無恥無所恥無別恥於罪不怖性於罪不畏性於諸罪中不見怖畏是名無愧眼識云何謂眼及色爲緣所生眼識此中眼爲增上色爲所緣於眼所識色所有了別各別了別是名眼識
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이란 무엇인가? 뜻[意]과 법(法)을 반연하여 생기는 것이 의식으로, 여기에서의 뜻은 증상이 되고 법은 반연하는 대상이 되어 뜻이 인식하고 있는 법에 대하여 요별함이 있는 것이요 저마다 따로따로 요별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의식’이라 한다.
안촉(眼觸)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눈과 물질을 반연하여 생기는 안식에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접촉이 있게 된다. 이 가운데서 눈은 증상이 되고 물질은 반연하는 대상이 되며, 눈이 인식하고 있는 물질에 대한 모든 접촉[觸]이요 평등한 접촉[等觸]이며, 현재의 접촉이요 이미 지나간 접촉이요 앞으로 닥쳐올 접촉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안촉’이라 한다.
025_0133_b_14L鼻舌身意識云何謂意及法爲緣所生意識此中意爲增上法爲所緣意所識法所有了別各別了別是名意識眼觸云何謂眼及色爲緣生於眼識三和合故觸此中眼爲增上爲所緣於眼所識色諸觸等觸現觸已觸當觸是名眼觸
025_0133_c_01L이촉(耳觸)ㆍ비촉(鼻觸)ㆍ설촉(舌觸)ㆍ신촉(身觸)ㆍ의촉(意觸)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뜻과 법을 반연하여 생기는 의식에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접촉이 있게 된다. 이 가운데서 뜻은 증상이 되고 법은 반연하는 대상이 되며, 뜻이 인식하는 법에 대하여 일으키는 모든 접촉이요 평등한 접촉이며 현재의 접촉이요 이미 지나간 접촉이며 앞으로 다가올 접촉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의촉’이라 한다.
025_0133_b_21L耳鼻舌身意觸云何謂意及法爲緣生於意識三和合故觸此中意爲增上法爲所緣意所識法諸觸等觸現觸已觸當觸是名意觸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眼觸所生] 느낌[受]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눈과 물질을 반연하여 생겨난 안식에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접촉이 있으며 접촉을 반연하여 느낌[受]이 있게 된다. 이 가운데서 눈이 증상(增上)이 되고 물질이 반연하는 대상이 되며 눈의 접촉이 인(因)이 되고 눈의 접촉이 쌓임[集]이 되며, 눈의 접촉의 종류로서 눈의 접촉이 연(緣)이 되어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작의(作意)와 상응하는 눈이 인식하는 물질에 대한 모든 느낌[受]이요 평등한 느낌[等受]이요 저마다 따로따로의 평등한 느낌[各別等受]이며, 이미 느꼈거나 앞으로 느낄 것과 느낌에 포섭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느낌’이라고 한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수(受)란 어떤 것인가? 뜻[意]과 법(法)을 반연하여 의식(意識)이 생기니,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접촉이 있으며 접촉을 반연하여 느낌이 있게 된다. 이 가운데서 뜻이 증상이 되고 법이 반연하는 대상이 되고 뜻의 접촉이 인이 되며, 뜻의 접촉이 쌓임이 되며 뜻의 접촉의 종류로서 뜻의 접촉이 연(緣)이 되어 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작의와 상응하는 뜻이 인식하는 법에 대한 모든 느낌과 온전한 느낌과 저마다 따로따로의 평등한 느낌과 이미 느꼈거나 앞으로 느낄 것이니, 느낌에 포섭되는 것을 이름하여 ‘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수’라고 한다.
025_0133_c_02L眼觸所生受云何謂眼及色爲緣生於眼識三和合故觸觸爲緣受此中眼爲增上色爲所緣眼觸爲因眼觸爲集眼觸種類眼觸爲緣眼觸所生作意相應於眼所識色受等受各別等受已受當受受所攝是名眼觸所生受耳鼻舌身意觸所生受云何謂意及法爲緣生於意識三和合故觸觸爲緣受此中意爲增法爲所緣意觸爲因意觸爲集觸種類意觸爲緣意觸所生作意相於意所識法諸受等受各別等受已受當受受所攝是名意觸所生受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眼觸所生] 상(想)이란 어떤 것인가? 눈과 물질을 반연으로 하여 안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접촉이 있으며 접촉을 반연으로 하여 생각[想]이 있게 된다. 이 가운데서 눈이 증상이 되고 물질이 반연하는 대상이 되며, 눈의 접촉이 인이 되고 눈의 접촉이 쌓임이 되며, 눈의 접촉의 종류로서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작의와 상응하는 눈이 인식하고 있는 물질에 대한 모든 생각[想]이요 평등한 생각[等想]이며 저마다 따로따로의 평등한 생각[各別等想]이요 눈앞에 나타난 평등한 생각[現前等想]이며 이미 지나간 생각[已想]이요 앞으로 다가올 생각[當想]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상’이라 한다.
025_0133_c_14L眼觸所生想云何謂眼及色爲緣於眼識三和合故觸觸爲緣想此中眼爲增上色爲所緣眼觸爲因眼觸爲集眼觸種類眼觸爲緣眼觸所生作意相應於眼所識色諸想等想各別等想現前等想已想當想是名眼觸所生想
025_0134_a_01L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상(想)이란 어떤 것인가? 뜻과 법을 반연하여 의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접촉이 있으며 접촉을 반연으로 하여 생각이 있게 된다. 이 가운데서 뜻이 증상이 되고 법이 반연하는 대상이 되고 뜻의 접촉이 인이 되고 뜻의 접촉이 쌓임이 되며 뜻의 접촉의 종류로서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작의와 상응하여 뜻이 인식하고 있는 법에 대한 모든 생각이요 평등한 생각이며 저마다 따로따로의 평등한 생각이요 바로 앞에 나타난 평등한 생각이며 이미 지나간 생각이요 앞으로 다가올 생각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상’이라 한다.
025_0133_c_21L耳鼻舌身意觸所生想云謂意及法爲緣生於意識三和合故觸觸爲緣想此中意爲增上法爲所緣意觸爲因意觸爲集意觸種類意觸爲緣意觸所生作意相應於意所識法諸想等想各別等想現前等已想當想是名意觸所生想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思)란 어떤 것인가? 눈과 물질을 반연으로 하여 안식이 생기나니,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접촉이 있으며 접촉을 반연으로 하여 사량[思]이 있게 된다. 이 가운데서 눈이 증상이 되고 물질이 반연하는 대상이 되며 눈의 접촉이 인이 되고 눈의 접촉이 쌓임이 되며 눈의 접촉의 종류로서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작의와 상응하는 눈이 인식하고 있는 물질에 대해서의 모든 사량[思]이요 평등한 사량[等思]이며, 저마다 따로따로의 평등한 사량[各別等思]이요 눈앞에 나타난 평등한 사량[現前等思]이며, 이미 사량하였거나[已思] 앞으로 사량할[當思] 것이며, 사량에 포섭되고 마음과 뜻의 업을 짓는[造心意業]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눈의 접촉으로 생겨난 사’라고 한다.
025_0134_a_04L眼觸所生思云何謂眼及色爲緣生於眼三和合故觸觸爲緣思此中眼爲增上色爲所緣眼觸爲因眼觸爲集眼觸種類眼觸爲緣眼觸所生作意相應於眼所識色諸思等思各別等思現前等思已思當思思所攝造心意業是名眼觸所生思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思)란 어떤 것인가? 뜻과 법을 반연하여 의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접촉이 있으며 접촉을 반연으로 하여 사량이 있게 된다. 이 가운데서 뜻이 증상이 되고 법이 반연하는 대상이 되며 뜻의 접촉이 인이 되고 뜻의 접촉이 쌓임이 되며 뜻의 접촉의 종류로서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작의와 상응하는 뜻이 인식하고 있는 법에 대한 모든 사량이요 평등한 사량이며 저마다 따로따로의 평등한 사량이요 눈앞에 나타난 평등한 사량이며 이미 사량하였거나 앞으로 사량할 것이며 사량에 포섭되어 마음과 뜻의 업을 짓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라고 한다.
025_0134_a_11L耳鼻舌身意觸所生思云何謂意及法爲緣生於意識三和合故觸觸爲緣思此中意爲增上法爲所緣意觸爲因意觸爲意觸種類意觸爲緣意觸所生作意相應於意所識法諸思等思各別等思現前等思已思當思思所攝造心意業是名意觸所生思
025_0134_b_01L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愛)란 어떤 것인가? 눈과 물질을 반연하여 안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접촉이 있으며, 접촉을 반연하기 때문에 느낌[受]이 있고 느낌을 반연하여 애가 있게 된다. 이 가운데서 눈이 증상(增上)이 되고 물질이 반연하는 대상이 되어 눈이 인식하고 있는 물질에 대한 모든 탐(貪)이요 평등하게 탐하여 가져 간직하고 막아 수호하고 애착하며 좋아하고 탐착(耽著)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눈의 접촉으로 생겨난 애’라고 한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란 어떤 것인가? 뜻[意]과 법(法)을 반연하여 의식(意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접촉이 있으며, 접촉을 반연하여 느낌이 있고 느낌을 반연하여 탐애가 있게 된다. 이 가운데서 뜻이 증상이 되고 법이 반연하는 대상이 되어 뜻이 인식하고 있는 법에 대한 모든 탐이요 평등하게 탐하며 가져 간직하고 막아 수호하고 애착하며 좋아하고 탐착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라고 한다.
025_0134_a_18L眼觸所生愛云何謂眼及色爲緣生於眼識和合故觸觸爲緣故受受爲緣愛中眼爲增上色爲所緣於眼所識色諸貪等貪執藏防護愛樂耽著是名眼觸所生愛耳鼻舌身意觸所生愛云何謂意及法爲緣生於意識三和合故觸觸爲緣受受爲緣愛此中意爲增上法爲所緣於意所識法諸貪等貪執藏防護愛樂耽著是名意觸所生愛
2. 분별품(分別品) ①
제1문(第一門)
025_0134_b_05L分別品第二中初門
[이] 문(門)에는 여든여덟 가지[八十八]가 있다.
처음에는 종류를 달리하는 세 가지 문[三門]이니,
이른바 수(受)와 식신(識身)이며,
무참(無慚)과 무괴(無愧)이다.
025_0134_b_06L門有八十八
初異類三門
謂受幷識身
及無慚無愧
나머지 문(門)의 여든다섯 가지[八十五]란,
수(受) 등의 차례와 상응(相應)과 불상응(不相應)하는 것으로,
평등하게 계(界)ㆍ처(處)ㆍ온(蘊)에(까지 미친다).
025_0134_b_08L餘門八十五
謂受等次第
相應不相應
一行界處蘊
다섯 가지 수근[五受根]이란 낙근(樂根)ㆍ고근(苦根)ㆍ희근(喜根)ㆍ우근(憂根)ㆍ사근(捨根)이다.대지법(大地法)의 수(受)와 다섯 가지 수근은 몇 가지가 상응하고 몇 가지가 상응하지 않는가[不相應]? 나아가 뜻의 접촉으로 생기는[意觸所生] 애(愛)와 다섯 가지 수근에 이르기까지는 몇 가지가 상응하고 몇 가지가 상응하지 않는가?
대지법의 수(受)와 다섯 가지 수근은 상응하는 것이 없어서 모두가 상응하지 않는다. 대지법의 상(想)과 다섯 가지 수근은 모두 다 상응하여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다.
마치 상에서와 같아서 사(思)ㆍ촉(觸)ㆍ작의(作意)ㆍ욕(欲)ㆍ승해(勝解)ㆍ염(念)ㆍ삼마지(三摩地)ㆍ혜(慧)도 마찬가지이다.
불신(不信)과 다섯 가지 수근에 있어서는 다섯 가지 근과 상응하기도 하고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기도 한다.
마치 불신에서와 같아서 그 밖의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도 마찬가지이다.
025_0134_b_09L五受根謂樂根苦根喜根憂根捨根大地法受與五受根幾相應幾不相乃至意觸所生愛與五受根幾相幾不相應大地法受五受根無相應者皆不相應大地法想五受根一切相應無不相應者如想作意勝解三摩地慧亦爾不信五受五根相應五根不相應如不信大煩惱地法亦爾
025_0134_c_01L분(忿)ㆍ한(恨)ㆍ뇌(惱)ㆍ질(嫉)ㆍ해(害)는 두 가지 근3), 곧 우근[憂]ㆍ사근[捨]과는 상응하며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부(覆)ㆍ광(誑)ㆍ첨(諂)은 낙근과 고근을 제외한 세 가지 근과는 상응하고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교(憍)는 고근을 제외한 네 가지 근과는 상응하고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간(慳)은 두 가지 근, 곧 희근ㆍ사근과 상응하고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욕탐(欲貪)과 색탐(色貪)은 고근과 우근을 제외한 세 가지 근과는 상응하고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무색탐(無色貪)은 한 가지 근, 곧 사근과는 상응하고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진(瞋)은 낙근과 희근을 제외한 세 가지 근과는 상응하고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025_0134_b_18L忿二根相應謂憂五根不相應諂三根相應除樂五根不相應四根相應除苦五根不相應二根相應謂喜五根不相應欲貪色貪三根相應除苦五根不相應無色貪根相應謂捨五根不相應三根相應除樂五根不相應
의(疑)는 고근을 제외한 네 가지 근과는 상응하고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다섯 가지 견[五見] 중의 사견(邪見)은 고근을 제외한 네 가지 근과는 상응하고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그 밖의 네 가지 견[四見]은 고근과 우근을 제외한 세 가지 근과는 상응하고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유대촉(有對觸)은 희근(喜根)과 우근(憂根)을 제외한 세 가지 근과는 상응하고 고근을 제외한 네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증어촉(增語觸)은 고근을 제외한 네 가지 근과는 상응하고 희근과 우근을 제외한 세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명촉(明觸)은 고근과 우근을 제외한 세 가지 근과는 상응하고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025_0134_c_02L四根相應除苦五根不相應五見中邪見四根相應除苦五根不相應餘四見三根相應除苦五根不相應有對觸根相應除喜四根不相應除苦語觸四根相應除苦三根不相應除明觸三根相應除苦五根不相應
무명촉(無明觸)과 비명비무명촉(非明非無明觸)은 다섯 가지 근[五根]과 상응하기도 하고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기도 한다.
낙근(樂根)은 상응하는 것이 없어서 모두가 상응하지 않는다.
마치 낙근에서와 같아서 고근(苦根)ㆍ희근(喜根)ㆍ우근(憂根)ㆍ사근(捨根)도 마찬가지이다.
심(尋)과 사(伺)는 다섯 가지 근[五根]과 상응하고 고근과 우근을 제외한 세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식(識)은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며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다.
무참(無慚)과 무괴(無愧)는 다섯 가지 근과 상응하기도 하고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기도 한다.
안식(眼識)은 희근과 우근을 제외한 세 가지 근과는 상응하고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025_0134_c_09L無明觸及非明非無明觸五根相應五根不相應樂根無相應者不相應如樂根苦根喜根憂根捨根亦爾五根相應三根不相應除五根相應無不相應者無慚無愧五根相應五根不相應眼識根相應除喜五根不相應
마치 안식에서와 같아서 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도 마찬가지이다.
의식(意識)은 고근을 제외한 네 가지 근과는 상응하고 희근과 우근을 제외한 세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마치 여섯 가지 식신에서와 같아서 여섯 가지 촉신[六觸身]ㆍ여섯 가지 상신[六想身]ㆍ여섯 가지 사신[六思身]도 마찬가지이다.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수(受)는 다섯 가지 수근[五受根]과는 상응하는 것이 없어서 모두가 상응하지 않는다.
마치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수와 같아서 그 밖의 나머지 수신(受身) 역시 마찬가지이다.
025_0134_c_15L如眼識耳鼻舌身識亦爾意識四根相應除三根不相應除喜如六識身觸身六想身六思身亦爾眼觸所生受五受根無相應者皆不相應如眼觸所生受餘受身亦爾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愛)는 낙근과 사근, 두 가지 근과는 상응하고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마치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와 같아서 귀ㆍ코ㆍ혀ㆍ몸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 역시 마찬가지이다.
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는 고근과 우근을 제외한 세 가지 근과는 상응하고 다섯 가지 근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025_0134_c_20L眼觸所生愛二根相應謂樂五根不相應如眼觸所生愛耳鼻舌身觸所生愛亦爾意觸所生愛三根相應除苦五根不相應
025_0135_a_01L제2문(第二門)
025_0135_a_01L分別品第二中第二門
여섯 가지 식신[六識身]이 있으니, 이른바 안식ㆍ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이다.
대지법(大地法)의 수(受)와 여섯 가지 식신과는 몇 가지가 상응하고 몇 가지가 상응하지 않는가? 나아가 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意觸所生愛]와 여섯 가지 식신과는 몇 가지가 상응하고 몇 가지가 상응하지 않는가?
대지법의 수와 여섯 가지 식신과는 모두 다 상응하며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다.
마치 대지법의 수와 같아서 그 밖의 대지법도 마찬가지이다.
불신(不信)은 여섯 가지 식[六識]과 상응하기도 하고 여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지 않기도 한다.
마치 불신에서와 같아서 그 밖의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도 마찬가지이다.
025_0135_a_02L六識身謂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大地法受與六識身幾相應不相應乃至意觸所生愛與六識身幾相應幾不相應大地法受六識身一切相應無不相應者如大地法受餘大地法亦爾不信六識相應六識不相應如不信餘大煩惱地法亦爾
분(忿)은 한 가지 식, 곧 의식과는 상응하고 여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마치 분에서와 같아서 그 밖의 나머지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도 마찬가지이다.
욕탐(欲貪)은 여섯 가지 식과 상응하기도 하고 여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지 않기도 한다.
마치 욕탐에서와 같아서 진(瞋)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색탐(色貪)은 비식과 설식을 제외한 네 가지 식과는 상응하고 여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무색탐(無色貪)과 의(疑)는 한 가지 식, 곧 의식과는 상응하고 여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다섯 가지 견[五見]은 한 가지 식, 곧 의식과는 상응하고 여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유대촉(有對觸)은 의식을 제외한 다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고 한 가지 식, 곧 의식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025_0135_a_09L忿一識相應謂意六識不相應如忿餘小煩惱地法亦爾欲貪六識相應六識不相應如欲貪瞋亦爾色貪識相應除鼻六識不相應無色貪一識相應謂意六識不相應五見一識相應謂意六識不相應有對觸五識相應除意一識不相應謂意
증어촉(增語觸)은 한 가지 식, 곧 의식과는 상응하고 의식을 제외한 다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명촉(明觸)은 한 가지 식, 곧 의식과는 상응하고 여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무명촉(無明觸)과 비명비무명촉(非明非無明觸)은 여섯 가지 식과 상응하기도 하고 여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지 않기도 한다.
낙근(樂根)과 사근(捨根)은 여섯 가지 식과 상응하기도 하고 여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지 않기도 한다.
고근(苦根)은 의식을 제외한 다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고 여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희근(喜根)과 우근(憂根)은 한 가지 식, 곧 의식과는 상응하고 여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025_0135_a_16L語觸一識相應謂意五識不相應除明觸一識相應謂意六識不相應無明觸及非明非無明觸六識相應六識不相應樂根捨根六識相應識不相應苦根五識相應除意六識不相應喜根憂根一識相應謂意識不相應
025_0135_b_01L심(尋)과 사(伺)는 여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고 한 가지 식, 곧 의식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식법(識法)은 여섯 가지 식신과는 상응하는 것이 없으니, 모두 상응하지 않는다.
무참(無慚)과 무괴(無愧)는 여섯 가지 식과 상응하기도 하고 상응하지 않기도 한다.
안식(眼識)은 여섯 가지 식신과는 상응하는 것이 없으니, 모두 상응하지 않는다.
마치 안식에서와 같아서 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 역시 마찬가지이다.
안촉(眼觸)은 한 가지 식, 곧 안식과는 상응하고 안식을 제외한 다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025_0135_a_23L六識相應一識不相應謂意識法六識身無相應者皆不相應無慚無愧六識相應六識不相眼識六識身無相應者皆不相應如眼識耳鼻舌身意識亦爾眼觸一識相應謂眼五識不相應除眼
마치 안촉에서와 같아서 이촉ㆍ비촉ㆍ설촉ㆍ신촉ㆍ의촉 역시 그 응하는 바를 따라 상응함이 그러하다.
마치 여섯 가지 촉신[六觸身]에서와 같아서 여섯 가지 수신[六受身]ㆍ여섯 가지 상신[六想身]ㆍ여섯 가지 사신[六思身] 역시 마찬가지이다.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愛)는 한 가지 식, 곧 안식과는 상응하고 여섯 가지 식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마치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와 같아서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 역시 그 응하는 바를 따라 상응함이 그러하다.
025_0135_b_05L如眼耳鼻舌身意觸隨所應亦爾如六觸身六受身六想身六思身亦爾觸所生愛一識相應謂眼六識不相如眼觸所生愛耳鼻舌身意觸所生愛隨所應亦爾

제3문(第三門)
025_0135_b_10L分別品第二中第三門
두 가지 법[二法]이 있으니, 이른바 무참(無慚)과 무괴(無愧)이다.
대지법(大地法)의 수(受)와 이 두 가지 법과는 몇 가지가 상응하고 몇 가지가 상응하지 않는가? 나아가 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愛)와 이 두 가지 법과는 몇 가지가 상응하고 몇 가지가 상응하지 않는가?
대지법의 수(受)로서 착하지 못한 모든 것은 이 두 가지 법과 상응하여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그 밖의 수는 상응하는 것이 없이 모두가 상응하지 않는다.
마치 대지법의 수에서와 같아서 그 밖의 대지법 역시 마찬가지이다.
불신(不信)으로서 착하지 못한 모든 것은 이 두 가지 법과 상응하여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그 밖의 다른 불신은 상응하는 것이 없어서 모두가 상응하지 않는다.
마치 불신에서와 같아서 그 밖의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025_0135_b_11L二法謂無慚無愧大地法受與此二幾相應幾不相應乃至意觸所生愛與此二法幾相應幾不相應大地法受諸不善者二法相應無不相應餘受無相應者皆不相應如大地法受餘大地法亦爾不信諸不善者二法相應無不相應者餘不信無相應者皆不相應如不信餘大煩惱地法亦爾
025_0135_c_01L분(忿)ㆍ한(恨)ㆍ부(覆)ㆍ뇌(惱)ㆍ질(嫉)ㆍ간(慳)ㆍ해(害)는 모두가 두 가지 법과 상응하여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다.
광(誑)ㆍ첨(諂)ㆍ교(憍)로서 착하지 못한 것은 이 두 가지 법과 상응하여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그 밖의 광ㆍ첨ㆍ교는 상응하는 것이 없어서 모두가 상응하지 않는다.
욕탐(欲貪)과 진에(瞋恚)는 똑같이 두 가지 법과 상응하여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다.
색탐(色貪)과 무색탐(無色貪)은 상응하는 것이 없어서 다 같이 상응하지 않는다.
의(疑)로서 모든 착하지 못한 것은 이 두 가지 법과 상응하여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그 밖의 의는 상응하는 것이 없어서 결코 상응하지 않는다.
025_0135_b_20L忿皆二法相無不相應者憍諸不善者法相應無不相應者餘誑無相應者皆不相應欲貪瞋恚俱二法相無不相應者色貪無色貪無相應俱不相應諸不善者二法相應無不相應者餘疑無相應者定不相
다섯 가지 견[五見] 중에 두 가지 견4)은 상응하는 것이 없어서 다 같이 상응하지 않는다.
세 가지 견[三見]5)으로서 착하지 못한 모든 것은 다 같이 이 두 가지 법과 상응하여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그 밖의 세 가지 견은 상응하는 것이 없어서 모두가 상응하지 않는다.
유대촉(有對觸)ㆍ증어촉(增語觸)ㆍ무명촉(無明觸)으로서 착하지 못한 모든 것은 모두가 이 두 가지 법과 상응하여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그 밖에 이 세 가지 접촉[觸]은 상응하는 것이 없어서 모두가 상응하지 않는다.
명촉(明觸)과 비명비무명촉(非明非無明觸)은 상응하는 것이 없어서 다 같이 상응하지 않는다.
025_0135_c_04L五見中二見無相應者俱不相應三見諸不善者皆二法相應無不相應者餘三見無相應者皆不相應增語無明觸諸不善者皆二法相無不相應者餘三觸無相應者不相應明觸非明非無明觸無相應俱不相應
낙근(樂根)으로서 착하지 못한 모든 것은 이 두 가지 법과 상응하여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그 밖의 낙근은 상응하는 것이 없어서 결코 상응하지 않는다.
마치 낙근에서와 같아서 고근(苦根)ㆍ희근(喜根)ㆍ우근(憂根)ㆍ사근(捨根) 역시 마찬가지이다.
심(尋)과 사(伺)와 식(識)의 법으로서 착하지 못한 모든 것은 모두가 이 두 가지 법과 상응하여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그 밖의 심ㆍ사ㆍ식의 법은 상응하는 것이 없어서 모두가 상응하지 않는다.
무참(無慚)은 무괴(無愧)와 반드시 상응하여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무참과는 결코 상응하지 않아 상응하는 것이 없다.
무괴는 무참과 반드시 상응하여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무괴와는 결코 상응하지 않아 상응하는 것이 없다.
025_0135_c_10L樂根諸不善者二法相無不相應者餘樂根無相應者不相應如樂根捨根亦爾識法諸不善者皆二法相應無不相應者餘尋伺識法無相應者皆不相應無慚與無愧定相應無不相應與無慚定不相應無相應者無愧與無慚定相應無不相應者與無愧定不相應無相應者
025_0136_a_01L안식(眼識)으로서 모두 착하지 못한 것은 이 두 가지 법과 상응하여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그 밖의 안식은 상응하는 것이 없어서 모두가 상응하지 않는다.
마치 안식에서와 같아서 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여섯 가지 식신[六識身]에서와 같아서 여섯 가지 촉신[六觸身]ㆍ 여섯 가지 수신[六受身]ㆍ 여섯 가지 상신[六想身]ㆍ 여섯 가지 사신[六思身]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눈ㆍ귀ㆍ몸ㆍ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愛)로서 모두 착하지 못한 것은 모두가 이 두 가지 법과 상응하여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그 밖의 눈ㆍ귀ㆍ몸ㆍ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는 상응하는 것이 없어서 모두가 상응하지 않는다.
코와 혀의 접촉으로 생기는 애는 다 같이 이 두 가지 법과 상응하여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다.
025_0135_c_18L眼識諸不善者二法相應無不相應者餘眼識無相應者皆不相應如眼識耳鼻舌身意識亦爾如六識身六觸身六受身想身六思身亦爾眼耳身意觸所生諸不善者皆二法相應無不相應餘眼耳身意觸所生愛無相應者皆不相應鼻舌觸所生愛俱二法相無不相應者
說一切有部界身足論卷上
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教序):당(唐)의 현장 법사가 새로운 불경 번역을 완성하자, 이를 기념하여 태종과 고종이 서문과 기문을 작성하였는데, 태종이 작성한 서문이 바로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教序)이다.
  2. 2)죄를 지은 결과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세 가지 길로, 곧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을 말한다.
  3. 3)성문ㆍ연각ㆍ보살의 삼승이 공통으로 닦는 열 가지 수행 단계를 말한다.
  4. 4)삼해탈(三解脫), 또는 삼삼매(三三昧)라고도 한다. 아공(我空), 법공(法空), 아법구공(我法俱空)을 가리키기도 하고 삼공해탈(三空解脫), 무상해탈(無相解脫), 무원해탈(無愿解脫)을 가리키기도 한다.
  5. 5)여기서 인(忍)은 인가(忍可)ㆍ안인(安忍)의 뜻으로, 보살이 도리에 안주(安住)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인에는 무생법인(無生法忍)ㆍ무멸인(無滅忍)ㆍ인연인(因緣忍)ㆍ무주인(無住忍)이 있다.
  6. 6)인간의 심성을 더럽히는 여섯 가지 경계로,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육경(六境)을 말한다.
  7. 7)원문에는 ‘척(隻)’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맞지 않아 ‘형(夐)’으로 교정하여 번역하였다.
  8. 8)당(唐)의 현장 법사가 새로 불경 번역을 완성하자, 이것을 기념하여 태종과 고종이 서문과 기문을 작성하였다. 황제술성기는 바로 고종이 기문을 썼다는 의미이다.
  9. 9)고종이 황태자일 때 이 기문을 지었다는 뜻이다. 춘궁(春宮)은 황태자를 가리킨다.
  10. 10)『유마경(維摩經)』「불국품(佛國品)」에 나오는 보옥(寶玉)으로 꾸며놓은 화려한 일산(日傘)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상이나 탑의 상부를 장엄하게 꾸미는 데 사용된 덮개를 말한다, 본래는 천으로 만들었으나 후대에 내려오면서 금속이나 목재로 조각하여 만들기도 하였다.
  11. 11)고승이 불경을 강론할 때 하늘이 감동하여 하늘에서 꽃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12. 12)향취산(香醉山)의 남쪽, 대설산(大雪山)의 북쪽에 있다는 상상의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이 연못은 둘레가 8백 리이며, 여기에 용왕이 산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물이 흘러내려 섬부주(贍部州)를 비옥하게 한다고 전해진다.
  13. 13)경기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경기는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지역으로 왕성을 중심으로 사방 500리 지역을 말한다. 즉 나라의 중심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14. 14)중국 고대 관중지방에 흐르는 8개의 하천을 말한다. 당나라 수도인 장안이 바로 이 관중지방에 있다.
  15. 15)색계의 네 가지 단계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세계로, 물질세계는 존재하나 감각의 욕망에서는 벗어난 청정(淸淨)한 세계를 말한다.
  16. 16)마음을 더럽히는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17. 17)원문에는 ‘치(夂)’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따라 ‘구(久)’로 번역하였다.
  18. 18)원문에는 ‘양(楊)’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따라 ‘양(揚)’으로 번역하였다.
  19. 19)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이나 상태를 말한다.
  20. 1)해당하는 범어 제명은 Abhidharma-dhātukāyapāda Śāstra.
  21. 2)범어 vipaśyanā의 음사어이다.
  22. 3)우근과 사근을 말한다.
  23. 4)유신견과 변집견을 말한다.
  24. 5)사견ㆍ견취ㆍ계금취견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