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듣기론, 진공(眞空)은 형상[象]이 없으나 구체적인 형상의 가르침이 아니면, 그 참됨[眞]을 풀어낼 길이 없으며, 실제(實際)는 말[言]이 없으나 분명한 말의 실마리가 아니면 그 실체를 설명할 길이 없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용궁(龍宮)의 법경(法鏡)이 원만하게 비추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하고, 취령(鷲嶺)1)의 현문(玄門)2)이 넓고 크게 퍼져서 백억세계에 두루 미친 것이다. 스승 없는 지혜[無師之智]3)를 스승으로 삼으려면 반드시 수다(修多)4)에 의지해야 하고, 배움 없는 종지[無學之宗]를 배우려면 결국 기야(祇夜)5)에 의거해야 한다. 금인(金人)의 감몽(感夢)6)으로부터 보배로운 게송[寶偈]이 사방으로 전해졌는데, 패엽(貝葉)7)의 신령한 문장을 통해 북천축의 가르침이 아득히 먼 곳까지 전파되었고, 관화(貫花)8)의 은미한 뜻은 서진(西秦)의 번역을 통해 더욱 새로워졌다. 이로써 대승(大乘)ㆍ소승(小乘)을 근기에 맞춰 가르침을 펼쳤고, 반자(半字)와 만자(滿字)9)는 권실(權實)을 따라 서로 밝히게 된 것이다.
당나라가 다스리던 시기는 천하가 창성한 시기라, 대대로 3성(聖)10)이 70년간 이어져서, 순(舜)임금의 교화와 삼매의 물결[定水]이 함께 맑아졌으며, 요(堯)임금의 지혜와 자비의 등불[慈燈]이 나란히 비추었으니, 승복을 걸치고 서쪽으로 간 것이 어찌 법현(法顯)11)의 무리뿐이었겠으며, 백마(白馬)에 경전을 싣고 동쪽으로 온 것이 가섭마등[摩騰]의 무리뿐이었겠는가?12) 이렇듯 석존의 가르침을 널리 펼쳐서 오늘날까지 중생들을 교화하였으니, 이에 짐은 어릴 때부터 마음으로 피안(彼岸)에 귀의하여서, 3명(明)13)의 길을 힘써 넓혔고 8정(正)14)의 문을 숭상하게 되었다.
006_1323_b_02L 지난날엔 일찍이 극심한 재앙을 만나서 갑자기 아버님의 음덕을 저버렸고15), 근래에는 효성이 감응하지 못하여 다시금 어머님을 등지게 되었으니,16) 노초(露草)의 한탄17)은 날로 깊어지고 풍수(風樹)의 슬픔18)은 더욱 애절해졌다. 어느 곳이든 양친[二親]의 숨결이 깃들어 있지만, 특별히 장안과 낙양 두 곳의 옛 거처를 사용하여 역경장을 만들었으니, 사찰(招提)의 법우를 모두 결집하고 다함없는 법의 곳간을 다 채우지 않음이 없는 곳이었다. 이에 경성의 대덕(大德) 스님 10인을 모아서, 중천축국(中天竺國) 삼장법사19)와 함께 서태원사(西太原寺)에서 경론을 번역하게 하였다. 이들 법사들은 그 수행의 업(業)이 초지(初地)20)의 경지에 이르고, 그 도(道)는 하늘까지 걸쳤으니, 불법을 떠받치는 기둥이자 대들보이며, 지혜의 바다를 건너는 배와 노였다.
전후로 번역한 것이 모두 10부(部)이며, 때는 수공(垂拱)21) 원년(元年) 을유년(乙酉年) 8월22)이었다. 번역을 완성하고 책으로 엮어[汗靑]23) 비단으로 장식하니, 단 이슬[甘露]과 같은 가르침이 이미 깊어졌고 큰 구름[大雲]과 같은 깨우침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바라건대, 항사겁에 이르도록 영원히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널리 구제하고, 불을 전하듯 분명한 뜻이 절로 밝혀지고, 병의 물을 쏟아내 듯 막힘없는 변론이 더욱 윤택해지소서.
짐은 본래 어둡고 어리석었으나, 선조의 유지[顧託]24)를 공경히 받들어서, 항상 서원하길 ‘삼보(三寶)를 이어받아 융성하게 하여 대보(大寶)25)의 큰 기틀을 편안하게 하며, 8성(聖)26)을 발휘하여 선성(先聖)의 큰 업을 견고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이로써 4구(句)의 은미한 말씀은 발제하[提河]27)에 깊이 이르러 다했고, 일음(一音)의 오묘한 뜻은 암몰라 동산[菴園]28)에서 그윽한 뜻을 다했다. 대법고(大法鼓)를 치니 그 소리 무간지옥에 울려 퍼지고, 대법라(大法螺)를 부니 그 음률 유정천29)까지 통하였다. 이는 컴컴한 방에 밝은 횃불이요, 어두운 거리에 지혜의 달이니, 보리(菩提)의 명료한 뜻이 여기에 있도다. 부질(部帙)과 조목[條流]은 뒤에 나열한다.
006_1323_c_02L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가란타(迦蘭陀) 죽림(竹林)에 계면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하셨으니, 그 모두 아라한(阿羅漢)이라,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여 다시는 번뇌가 없었고, 자재(自在)함을 얻어서 마음도 지혜도 잘 해탈되어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비추어 아는 데에 걸림이 없었나니, 이는 큰 용[那伽]이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과 같이 할 일을 이미 마치고 크고 무거운 짐을 벗어 자기 이익을 얻었으며, 나고 죽는 데에 유전하는 고통을 이미 끊었고, 바른 지혜의 힘으로 중생의 마음이 가는 것을 잘 알았다. 이와 같이 위대한 성문 대중이었는데, 장로 사리불(舍利弗)이 우두머리가 되었다. 또 한량없는 보살마하살 대중이 있어 함께 모임에 참석하였다.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 세존의 고요하고 안온하며 뭇 덕의 갈무리로서 거룩하고 혁혁하고 명랑함이 큰 금 나무[金樹]와 같으신 것을 보고, 깊은 마음으로 믿고 존중하며 합장하고 사유(思惟)하여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였다. ‘뭇 사람이 칭찬하기를, ≺부처님께서는 일체지(一切智)이어서 일체를 널리 보시나니, 이 여래ㆍ아라하(阿羅訶)ㆍ정등각(正等覺)이라≻ 하더니, 참으로 헛되지 않도다.’ 하고,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자세히 보면서 서 있었다.
“원하오니, 세존께서는 불쌍히 여기시어 가르쳐 주옵소서. 저는 지금 비로소 부처님 처소에서 청정한 신심(信心)을 얻고 마음에 미묘한 법을 희구하여 묻고자 하나이다. 저는 오랫동안 나고 죽는 데에 있어서 번뇌의 괴로움에 빠져 어지러운 생각이 번잡하고 계(戒) 등의 업(業)엔 힘이 될 만한 것이 없나이다. 비록 마음으로 흠모하고 존중하오나, 저는 지금 이 어리석고 미혹하고 의혹한 그물 속에서 어떻게 하면 뛰어넘어 나고 죽는 것을 해탈할 것임을 알지 못하나이다.
006_1324_a_02L 세존께서는 이 일체지(一切智)이시니, 일체를 널리 보시나이다. 부처님께서 출현하심은 매우 어렵거늘, 희유(希有)하게 만났사오니, 여의주(如意珠)로 중생에게 안락을 베풀어 줌과 같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큰 여의주 보배이시니,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님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큰 안락을 얻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큰 부모이시며, 중생의 착한 근본이시니, 부처님인 부모로 인하여 바른 길을 얻어 보나이다. 원하오니 불쌍히 여기시어 의혹과 어두움을 열어 깨우쳐 주옵소서.”
때에 장로 아난은 현호 동진의 자태와 용모가 빛나고 윤택하며 색상이 구족함을 보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일찍이 있지 아니한 것이옵니다. 이 현호 동진은, 큰 복덕이 있고 광채와 빛이 풍성하여 모든 왕의 위상(威相)도 모두 가려지고 나타나지 아니할 정도이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현호승상 동진은 복업(福業)을 이룬 바로서 비록 인간에 있으나 하늘의 뛰어난 과보를 받아서 편안하고 안락하며 즐겁게 유희하여 기쁨이 넘치고, 마음대로 함이 마치 제석(祭釋)과 같으니라. 염부제(閻浮提) 내에서 월실(月實) 동진을 제외하고는 다시 짝할 자가 없느니라.”
006_1324_b_02L 6만 기녀(妓女)는 안수(安輸)를 입었는데, 뭇 색깔이 사이사이 섞이고 금 보배로 주름잡아 꾸미어 곱고 화려하여 광채가 눈이 부시고, 그 감촉은 아주 부드러워 하늘의 가차(迦遮)와 같아서 가볍고 무거워짐이 마음대로 되어 뜻에 알맞으며, 웃는 얼굴로 웃고 말하며, 노래 부르고 서로 즐기며, 한가롭고 곱고 순하며, 엄숙하고 청결하며, 부드럽고 공손하여 주인을 섬기고, 다른 사람에겐 애욕의 마음이 없고, 부끄러워하여 고개를 숙이며, 혹은 머리를 덮고 얼굴을 가리며, 살과 피부는 평만하고 부드럽고 연하고 섬세하고 윤택하며, 손발의 근육과 마디와 복사뼈 등과 뼈와 힘줄은 모두 다 나타나질 아니했으며, 이는 희고 가지런하고 빽빽하며, 털은 검푸르고 오른쪽으로 돌았으며, 밀[蠟]을 깎아 만든 인형과 그림으로 그려진 화상과 같으며, 명문 집 출생으로 명망이 높은, 이와 같은 부인이 시종하였느니라.
또 6만의 음식을 공급하는 부인이 있었는데, 밥과 떡과 모든 음식물이 가지가지로 다른 색깔이며, 향기로운 맛이 조화되고 아름다움이 하늘 음식과 같으며, 음식이 8덕(德)을 갖추어서 보는 이도 마음이 기쁘고 몸이 편안하고 뜻에 맞아서 수고롭지도 뜨겁지도 않게 하는 이 복된 음식이 마음을 따라 이르며, 더러운 것을 깨끗이 하고, 모든 병과 나쁜 것들을 제거하느니라.
정원과 집과 누대가 구비되었는데, 6만의 마니(摩尼)와 진주(眞珠)와 유리인 모든 보배를 씌우고 깔며 드리우고 꾸몄으며, 뭇 보배로 사이사이 장식하여 줄지은 것이 단정하고 아름다운데 채색 비단으로 씌우며 달고, 방울과 요령을 매달아서 바람을 따라 흔들리면 쟁그랑 하는 소리가 평화롭게 퍼지며, 땅은 유리와 같아서 뭇 그림자 모양이 나타나며, 잡색의 꽃은 여기저기 분포되어 있는데, 시원스럽고 쾌락하게 노닐고 즐기며 서식하여 마음과 뜻이 통창하고 기쁘니라.
006_1324_c_02L 또 허리가 가는 반나(般拏)와 공후(箜篌)와 긴 피리와 동발(銅鈸)과 맑은 노래와 가지가지 음악의 수효가 무릇 6만인데, 아름다운 소리와 곡조가 청아하여 멀리 들리고 요란하게 울려 퍼져서 부근 지역에 진동하나니, 복업으로 이룬 바라 즐겁게 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며, 비둘기 등 모든 새들이 날아 모여들어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마음과 귀가 통창하여 기쁘며, 등나무 덩굴과 뭇 꽃은 누대와 집에 얽히고 둘렀으며, 고운 꽃송이는 높이 빼어나서 무성하고 빛나며, 방울과 요령과 악기의 음향은 천궁(天宮)과 같고, 방사와 행랑은 밝아서 수미굴(須彌窟)과 같으며, 신비스런 약이 흘러 비추니라.
6만의 성과 높은 담은 우뚝 솟아 높은 누와 망대[櫓]를 갖추어 시설하였는데, 거리거리마다 분포되고 네거리엔 3면으로 터지고 미려하고 충일하여 여러 곳의 사람이 모여들어 올 수 있으며, 가지가지 의복 차림과 가지가지 언어와 법도가 만 가지로 다르고, 가지각색의 얼굴들이며, 진기한 상품이 상점에 즐비하고 장사꾼은 백천(百千)이어서 사고팔고 하는 소리가 시끄러워 성안에 진동한다. 정원 숲은 울창하고 무성하여 큰 나무와 작은 나무와 등나무 덩굴과 풀과 약초와 뭇 꽃이 다투어 피어서 맑은 물에 내려 비추면 얼기설기 곱고 빛나서 찬란함이 비단을 펼침과 같으며, 코끼리와 말과 수레의 그 무리는 백천인데, 왕래가 끊어지지 않고 성읍(城邑)에 충만하느니라.
아난아, 6만 성 안에 명망과 덕이 높은 사람과 모든 부호(富豪) 및 모든 상주(商主)들이 날마다 현호 동진을 칭찬하여 명성과 덕을 전파하며, 공손히 합장하고 예배하여 경의를 표시하나니, 교살라국(憍薩羅國)의 바사닉왕(波斯匿王)의 복력(福力)이 풍부하고 성하여도 현호에게 비하면 마치 가난한 자와 같으니라.
월실(月實) 동진은 한량없는 백천의 기녀와 시종이 모시고 감싸며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며, 사랑하고 기쁘게 하여 유희하매 뭇 낙(樂)이 의지한 바라, 비록 천제석(天帝釋)이라도 백천만 배나 월실을 따르지 못하리라. 현호 동진은 얼굴과 색상이 풍만하고 아름다우며, 호부(豪富)하여 자재하고 안락하고 즐거울지라도, 또한 백천만 배나 월실을 따르지 못하나니, 이는 모두 숙세의 복으로 얻어진 것이요,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라.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현호 동진은 옛적에 불법 가운데에서 복업을 닦고 심었기에 이 광대한 낙보를 받느니라. 과거에 부처님께서 계셨나니, 이름은 낙광(樂光)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시니라.
현호는 그때에 저 부처님 법 가운데에서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나니, 이름은 법계(法髻)였고, 계행을 많이 훼손하였으나, 수다라(修多羅)와 아비달마(阿毘達摩)와 비나야(毘奈耶) 등을 잘 강설하였으며, 3장(藏)의 깊은 교리를 모두 다 밝게 통달하여 항상 중생을 위하여 연설하고 전파하여 법으로 보시함이 끊어지지 않았고, 아름다운 음성은 심원하고 정중하며 정직하고 맑아서 분석하고 밝게 분변하매 듣는 자가 기뻐하여 연설한 법을 듣고 사유(思惟)하며 수행하여 나쁜 갈래[惡趣]를 벗어난 그 수효가 한량이 없느니라.
아난아, 법계 비구는 법을 보시한 공덕으로 90겁 동안 천상 인간의 과보를 받았느니라. 또 계를 청정하게 지니는 비구가 몸이 파리하고 수척함을 보고 항상 음식과 신발 등을 보시하였나니, 은근히 존중하여 정성이 사무친 청정한 마음으로 보시하였기에 지금에 이 큰 부귀 안락의 과보와 수승하고 미묘한 궁실과 기특한 보배 수레를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현호에게 말씀하셨다. “내 먼저 너에게 허락했나니, 네가 의심된 바 있거든 지금 네 마음껏 물어라. 내 마땅히 너를 위하여 분별하고 해설하리라.”
006_1325_b_08L佛告賢護:“我先聽汝,汝有所疑,今恣汝問,我當爲汝分別解說。”
현호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이 비록 의식(意識)이 있음을 아나 보물이 상자 속에 담겨 있는 것과 같아서 나타내어 보이지 않으면 알지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알지 못하는 이 식(識)은 어떤 형상으로 되었나이까? 무슨 까닭으로 식이라 이름하나이까? 중생이 죽을 때엔 손과 발이 어지럽게 움직이고, 눈빛이 변하여 억제하여도 자유롭지 못하고, 모든 감관[根]은 상실되고, 4대(大)는 어그러지며, 식은 몸을 떠나가나니, 어느 곳으로 가나이까? 자성(自性)이 어떠하오며, 어떤 색깔과 모양이 되옵나이까? 어찌하여 이 몸을 버리고 떠나서 다시 다른 몸을 받나이까? 어찌 신분(身分)을 여기에서 버리고, 모든 입(入)에 끌리어 당래의 과보를 얻어 가지가지 몸을 받는 것이 차별되어 같지 않나이까?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중생이 몸을 떠나고서 다시 모든 갈래에 태어나나이까? 어찌하여 금생에 복업을 쌓아 모으면 내생(來生)에 얻어지고, 지금의 몸이 복을 닦으면 당래에 스스로 받게 되나이까? 어찌하여 식이 능히 몸을 증장하오며, 어찌하여 식의 입(入)이 몸을 따라 변하여 바뀌나이까?”
006_1325_c_02L부처님께서는 현호에게 말씀하셨다. “식의 운전(運轉)하여 도로 없어지고 왕래하는 것이 마치 풍대(風大)와 같나니, 바람은 빛깔도 형체도 없어서 나타나 보이지 않지만, 능히 만물을 발동시켜 여러 가지로 다른 모양을 보이며, 혹은 숲과 나무를 흔들고 꺾으며 파열하여 큰 소리를 내기도 하며, 혹은 차갑기도 덥기도 하여 중생의 몸에 부딪쳐 괴로움도 즐거움도 짓는다. 바람은 손과 발과 얼굴과 눈과 형용이 없으며, 또 검고, 희고 누렇고, 붉은 모든 색깔이 없느니라.
현호여, 중생이 여기에서 죽으면 감수와 지각과 법계와 식계(識界)가 모두 몸을 떠난다. 식이 감수와 지각과 법계를 운전하여 다른 몸을 받는 것이, 비유컨대 바람이 뭇 좋은 꽃에 불면 꽃은 여기에 그대로 있으나 향기는 흘러서 먼 곳에 이르는 것과 같다. 바람의 체성(體性)이 좋은 꽃의 향기를 취한 것이 아니요, 향기의 자체와 바람의 자체와 신근(身根)도 함께 형상과 색깔이 없다. 그러나 바람의 힘이 아니면 향기가 멀리 퍼져 가지 못하느니라.
현호여, 중생의 몸이 죽으면 식이 감수와 지각과 법계를 가지고 다른 생(生)으로 이르러 가는데, 부모의 인연으로 인하여 식이 의탁하고 감수와 지각과 법계도 모두 식을 따름도 또한 다시 이와 같나니, 꽃의 뛰어난 힘으로부터 코에 냄새 맡는 것이 있게 되고, 냄새 맡는 뛰어난 힘으로부터 향기의 경계가 있게 됨과 같으며, 또 바람 자체의 뛰어난 힘으로부터 바람 빛깔의 부딪침이 있게 되고, 바람의 힘으로 인하여 향기가 먼 곳에 이르게 됨과 같다. 이와 같아서 식으로부터 감수(受)가 있고, 감수로부터 지각[覺]이 있고, 지각으로부터 법(法)이 있어서 드디어 선(善)과 선 아닌 것을 분별하여 아느니라.
006_1326_a_02L현호여, 또 화공이 벽이나 판자를 요리하여 그릴 수 있는 곳에 제대로 깨끗이 하고서 뜻에 하고 싶은 대로 뭇 형상을 그리는 것과 같나니, 곧 화공의 의식과 지혜는 모두 형상과 빛깔이 없건만 가지가지 기이한 얼굴과 이상한 모양을 만든다. 이와 같이 의식과 지혜는 형상이 없되, 6색(色)을 내나니, 말하자면 눈으로 인하여 색(色)을 보는 안식(眼色)은 형색이 없음이요, 귀로 인하여 소리를 듣는 소리는 형색이 없음이요, 코로 인하여 냄새를 아는 냄새는 형색이 없음이요, 혀로 인하여 맛을 아는 맛은 형색이 없음이요, 몸으로 인하여 감촉을 느끼나 감촉은 형색이 없으며, 법입(法入)의 모든 경계도 모두 형색이 없나니, 식이 형색이 없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현호여, 식이 이 몸을 버리고 다른 생을 받나니, 중생이 죽을 때엔 식이 업장(業障)에게 얽힌 바가 되거니와, 업보가 다하고 목숨을 마치면 멸정(滅定)에 든 아라한 의식과 같다. 아라한이 멸진정(滅盡定)에 드는 것과 같나니, 그 아라한의 식은 몸으로부터 변하여 없어진다. 이와 같아서 죽은 자의 식은 몸과 계(界)를 버리고 생각하는 힘을 타고 짓나니, 그는 이와 같아서 그가 평생에 지은바 일과 업(業)들이 죽을 때에 다다라서 모두 나타나고, 기억과 생각이 분명하여 몸과 마음의 두 감수[受]로써 고통이 핍박하는 것이니라.
비유컨대 해가 뜨면 일광의 비치는 바로써 뭇 어둠이 모두 없어지고, 해가 지고 일광이 사라지면 어둠은 문득 여전하다. 어둠은 형질(形質)이 없고 상(常)ㆍ무상(無常)이 아니건만 능히 그곳을 얻나니, 식도 또한 그와 같아서 형질이 없건만 수(受)와 상(想)으로 인하여 나타난다.
006_1326_b_02L 식이 몸에 있는 것이 어둠의 체성과 같아서 보아도 보이지 않고 잡아 볼 수도 없는 것과 같으며, 어머니가 아이를 회임하였는데, 능히 스스로 ‘남자인지 여자인지, 검은지 흰지 누런지, 감관[根]을 구족하였는지, 구족하지 아니하였는지, 손과 발과 귀와 눈이 같은지, 같지 않은지 알지 못하고 음식의 뜨거움이 자극하매 그 아이가 움직이므로 고통스러움을 느끼며 아는 것과 같다. 중생이 왕래하고 굴신(屈伸)하고 보고 깜짝이고 말하고 웃고 이야기하고 무거운 것을 운반하여 모든 사업을 짓는데 식의 모양이 갖추어 나타났건만, 그러나 식이 있는 바를 알지 못하고 다만 몸속에서 그 모양을 알지 못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현호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알라. 모두 이 업(業)을 짓는 이의 힘이니, 업을 짓는 것은 형체가 없고 다만 지혜로 운전함이다. 이와 같아서 몸의 기관도 식의 힘으로써 모든 사업을 지은 것이다. 신선[仙]과 건달바(乾闥婆)와 용과 귀신과 사람과 하늘과 아수라(阿修羅)들의 가지가지 업에 취향함이 모두 다 이에 의지한다. 식이 능히 몸을 낸 것이 장인[工]이 기관을 만든 것과 같나니, 식은 형질(形質)이 없으나 널리 법계를 지녀 지혜 힘이 구족했으며, 나아가 능히 숙명(宿命)의 일을 아느니라.
비유컨대 일광이 악업(惡業) 중생과 모든 깨끗지 못한 것과 시체와 냄새나는 것들을 치우침 없이 평등하게 비추나 모든 나쁜 것들에게 더럽혀지거나 물든 바가 되지 않는 것과 같나니, 식도 또한 이와 같아서 비록 돼지와 개의 부정을 먹는 유의 모든 나쁜 갈래의 몸에 있으나 그에게 물들고 더럽힌 바가 도지 않느니라.
006_1326_c_02L현호여, 식이 이 몸을 버리고 선악(善惡)의 업을 따라 옮겨 다른 보(報)를 받는 것이 비유컨대 ‘바람이 깊은 산과 깊은 골짜기에서 나와서 담복(薝蔔)의 뭇 향기로운 숲에 들어가면 그 바람은 문득 향기롭고, 더러운 똥이나 죽은 시체의 냄새가 고약스럽고 더러운 곳을 지나면, 그 바람은 문득 냄새나며, 만일 바람이 향기로움과 냄새나는 데에 함께 이르게 되면 바람은 향기로움과 냄새나는 것을 아울러 겸했으되 많은 것이 먼저 나타남과 같다. 바람은 형질이 없고, 향기와 냄새도 형질이 없으나 바람이 향기와 냄새를 가져다가 먼 데에 옮겨 놓는다. 식이 이 몸을 버리고 선악의 업을 가져다가 옮겨 다른 보를 받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저 바람이 물건의 향기와 냄새나는 것을 가져다가 다른 곳에 두는 것과 같다.
또 사람이 꿈에 뭇 색상(色像)과 가지가지 사업을 보고도 스스로 편히 누워서 잠자는 것임을 알지 못함과 같나니, 복덕이 있는 사람은 목숨이 다하고 식이 옮겨짐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안온하여 깨닫지 못하고 꿈과 같이 죽어가되 두려워하는 바도 없고, 식의 옮겨 나가는 것도 입과 목구멍과 모든 구멍을 거쳐 나가지 않나니, 어떻게 나가는 줄을 알 수 없고, 나가는 문호도 알지 못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현호에게 말씀하셨다. “비유컨대 오마(烏麻)와 담복 꽃이 향기롭기에 그의 기름도 향기롭고 아름다워 담복 기름이라 하나니, 보통 삼[麻] 기름과는 좋고 나쁜 것이 엄청나게 다르다. 기름은 애초 향기가 없건만 꽃의 향기가 종자에 훈습하여 기름이 드디어 향기를 이루었나니, 향기는 오마를 깨뜨리고 들어간 것이 아니요, 또 오마를 깨뜨리고 나온 것이 아니며, 또 형질도 없이 기름 안에 머물러 있다. 다만 인연의 힘으로 향기가 기름 안에 옮겨서 기름이 향기롭고 윤택한 것이다. 닭과 거위 새끼의 식이 알에 들어감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담복의 향기가 기름 안에 옮겨짐과 같다.
006_1327_a_02L 식이 옮겨 운동함이 해가 빛을 흘리는 것과 같고, 마니(摩尼)의 비춤과 같고, 나무가 불을 내는 것과 같으며, 또 ‘종자를 땅에 심으면, 그 자체가 땅속에서 변화하여 싹과 줄기와 잎이 골고루 밖으로 나타나서 희고 희지 않은 것과 붉은 등인 잡색 가지가지의 꽃이 피고, 가지가지의 힘과 맛이 성숙되며, 되는 바가 가지가지 차별된다. 동일한 대지(大地)에서 4대(大)가 평등하게 돕는데, 각기 그 종자를 따라서 나는 바가 문득 다른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은 한 식의 법계에서 일체 나고 죽는 몸이 생겨서 혹 검고 혹 희고 혹 누렇고 붉은 등이며, 순회하고 포악하여 가지가지 종류가 다르니라.
현호여, 식은 손과 발이 없고 지절(支節)과 언어도 없건만, 법계 가운데에 생각하는 힘이 강대함으로 말미암아 중생이 죽을 때에 식이 이 몸을 버리고 식이 생각하는 힘과 함께 내생의 종자가 된다. 즉 식을 떠나서는 법계를 얻을 수 없고, 법계를 떠나서는 또한 식을 얻을 수 없다. 식은 바람과 미묘한 염계(念界)와 수계(受界)와 법계(法界)와 함께 화합하여 옮기느니라.”
현호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이와 같을진대,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식을 형색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까?”
006_1327_a_11L賢護白佛言:“若如是者,云何世尊,說識無色?”
부처님께서는 현호에게 말씀하셨다. “색(色)이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내(內)요, 둘째는 외(外)다. 내는 안식(眼識)을 말하고, 외는 눈이다. 이와 같이 이식(耳識)은 내가 되고 귀는 외가 되며, 비식(鼻識)은 내가 되고 코는 외가 되며, 설식(舌識)은 내가 되고 혀는 외가 되며, 신식(身識)은 내가 되고 몸은 외가 되느니라.
현호여, 만일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꿈에 아름다운 색깔과 손과 발과 눈과 귀와 용모가 고운 것을 보고 문득 꿈속에서 크게 좋아하고 기뻐하다가 잠을 깨고 나서는 캄캄하여 보는 바가 없고 밤이 다하고 낮이 밝아서 사람들이 모이면 눈먼 자가 드디어 꿈속에 좋아한 들은 바를 말하되, ‘나는 곱고 아름다운 사람의 자태와 용모가 특수하고 동산과 누대가 화려하고 사람들이 백천인데 잘 장엄되고 즐겁게 노닐며, 살결은 빛나고 윤택하고 어깨와 어깻죽지는 풍만하고 팔은 길고 둥근 것이 코끼리 코와 같은 것들을 보고, 나는 꿈속에 큰 쾌락을 얻고, 마음에 맞아서 기뻐하고 탄복했노라’ 한다면, 현호여, 이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일찍이 물건을 보지 못했거니, 어찌하여 꿈속에 능히 색깔을 보았느냐?”
006_1327_b_02L부처님께서는 현호에게 말씀하셨다. “꿈속에서 본 것은 안의 눈으로 본 바니, 이는 지혜로 분별함이요, 육안(肉眼)으로 본 것이 아니다. 그 안의 눈으로 본 바의 것은 생각하는 힘인 까닭이니, 눈먼 자가 꿈속에서 잠깐 나타났다가 다시 생각하는 힘으로 깨어나서 기억함이니, 식의 내색(內色)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다시 현호여, 몸이 죽으면 식이 옮겨지는 것이 마치 종자를 땅속에 버려두고 4대(大)로 섭리하고 부지함이 싹과 줄기와 가지와 잎으로 차츰 옮겨 변화함과 같나니, 식이 염(念)과 수(受)와 선(善)과 불선(不善) 등 4법으로 섭리하고 부지함이 되어 몸을 버리고 옮겨 변화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현호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선과 불선의 법이 식을 섭리하고 부지하는 것입니까?”
006_1327_b_10L賢護白佛言:“世尊!云何善不善法攝持於識?”
부처님께서는 현호에게 말씀하셨다. “비유컨대 미묘한 파리(頗梨) 보배를 검은 물건이거나 흰 물건을 대하게 하면 보배의 빛이 물건을 따라 희게 되고 검게 되나니, 선(善)과 불선(不善)의 법으로 식을 섭리하고 부지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섭리하고 부지한 바를 따라서 선과 불선을 이루어 옮겨 변화하여 과보를 받느니라.”
부처님께서는 현호에게 말씀하셨다. “이 식은 쌓음도 모음도 없고, 또한 생장함도 없나니, 비유컨대 싹이 날 때에 종자가 변치 아니하고 생긴 것이 아니며, 또한 종자가 무너져서 생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싹이 생길 때엔 종자는 곧 변하고 허물어지느니라. 현호여, 뜻에 어떠하느냐? 그 싹이 있는 바는 어느 곳에 그치느냐? 종자냐, 가지냐? 줄기와 가지와 잎이냐?”
006_1327_c_02L“이와 같으니라, 현호여. 식이 몸에 있어서 그치는 곳이 없나니, 눈도 아니며, 귀와 혀와 몸 등이 아니다. 종자가 싹이 날 때는 식이 조금 지각함 같으며, 나아가 꽃이 결합할 때에 식의 감수[受]가 함축함과 같으며, 꽃이 필 때와 열매를 맺을 때에 이르러서는 식이 몸이 있는 것 같다. 식이 몸에서 나와서 몸과 사지에 하나 식의 그치는 바를 찾아보면 그 처소를 얻을 수 없고, 만일 식을 제외하고는 몸이 곧 나지 못하리니, 나무에 과일이 익으면 능히 장래 나무의 종자가 되어 익지 않은 것 아님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과보가 성숙되고 몸이 죽으면 식의 종자가 문득 나타나며, 식으로 인하여 수(受)가 있고, 수로 인하여 애(愛)가 있고, 애에 얽매여 문득 생각을 내며, 식이 생각을 섭취하여 선악의 업을 따르고, 풍대(風大)와 아울러 부모 생각할 줄을 알며, 인연이 합하여 대하매 식이 문득 의탁하나니, 마치 사람의 얼굴 그림자가 거울에 나타남과 같다. 깨끗하지 않고 밝지 않으면 얼굴 모양이 나타나지 않고, 거울이 밝은데 얼굴을 대하면 그림자 모양이 이에 나타나니, 거울 속의 모양은 수(受)도 생각도 없건만, 사람의 몸을 따라 구부리고 펴고 숙이고 우러르며, 입을 열고 농담하며 가고 오고 행동하며, 가지가지로 운동하느니라. 현호여, 그림자 모양은 누구의 힘으로 나타난 것이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얼굴은 그림자의 원인[因]이 되고, 거울은 그림자의 인연[緣]이 되나니, 원인과 인연이 화합하므로 그림자가 나타남이 있다. 식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수(受)ㆍ상(想)ㆍ행(行) 및 심소(心所)가 있고, 부모가 인연이 되어 인연이 화합하므로 몸이 나타남 있나니, 저 몸과 거울과 같다. 거울 속의 그림자는 몸이 가면 그림자도 없어지고, 몸이 있으면 그림자 모양이 나타나며, 혹은 달리 물 등의 속에도 나타나니, 식이 이 몸을 버리고 선악(善惡)의 업을 가지고 옮겨서 다른 과보를 받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또 니구타오담바(尼瞿陀烏曇婆) 등의 종자가 비록 적으나 능히 큰 나무를 내며, 나무가 다시 종자를 내고, 종자는 옛 나무를 버리고 다시 새나무를 내며, 옛 나무는 오래되면 질과 힘이 쇠약해지고 맛과 진액이 다하여 마르고 썩어지며, 이와 같은 적은 생명인 유들이 그 식이 몸을 버리고는 자기 업으로 인하여 혹은 가지가지 모든 종류의 큰 몸을 받는 것과 같으니라.
006_1328_a_02L 또 큰 보리와 작은 보리[小麥]와 오마(烏麻)와 녹두와 마사(摩沙) 등의 가지가지 종자들이 모두 종자 때문에 싹과 줄기와 꽃과 열매가 생장하고 성숙함과 같다. 이와 같아서 식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있는 종류로 따라 옮겨서 곧 문득 지각이 있고, 지각으로 말미암아 감수가 있고, 선악의 업을 가지고 가지가지의 몸을 받는다.
또 벌이 꽃에 붙어서 좋아하고 그리워하여 꽃의 맛을 빨아먹고 스스로 몸을 기르다가 벌이 이 꽃을 버리고 다시 다른 꽃에 붙으며, 혹은 향기를 버리고 냄새나는 데에 들어가며, 혹은 냄새나는 데를 버리고 향기로운 데에 들어가서 그 있는 바를 따라 스스로 사랑하고 좋아하여 탐착함과 같아서 식도 또한 이와 같아서 복업으로써 하늘 몸을 얻어서 수승한 쾌락의 과보를 받고, 혹은 하늘 몸을 버리고서 악업(惡業) 때문에 지옥의 과보를 얻어 뭇 고통의 과보를 받고 윤회하고 천변(遷變)하여 가지가지 몸이 된다.
식은, 울금(鬱金)과 홍람(紅藍)과 분타리(芬陀利) 등이 그 종자는 모두 희고 그 종자 속을 깨뜨려 봐도 싹과 꽃이 보이지 않으며 다른 색깔도 보이지 않지만, 땅에다 심고 수분으로 적시면 문득 싹 등이 생기고, 때를 따라 자라나면 꽃과 과일이 열고 맺어 혹 붉기도 하며 혹 희기도 하여 가지가지 색깔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색깔과 싹 등은 종자 속에 있지 않으나, 그러나 종자를 떠나서는 모두 나올 수 없는 것과 같아서 식(識)도 몸을 버리고서는 육신과 용모와 모든 감관[根]과 모든 입(入)이 식 속에서는 인연으로 화합한 것이 보이지 않으나, 식은 묘하게 보고 묘하게 들으며, 소리와 감촉과 맛과 법 및 생각과 입(入)으로 이미 지은바 선악 등의 업을 알고 몸의 과보를 취하는 것이 누에가 고치를 만들어 스스로 짓고 스스로 얽어서 그 속에서 죽어가는 것과 같다. 식도 또한 이와 같아서 식이 스스로 몸을 내고 도리어 스스로 묶고 얽어서 스스로 몸을 버리고 가서 다른 업보를 받는다. 종자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색(色)과 냄새와 맛이 있나니, 식의 몸을 버리고 그 옮기는 것을 따라서 모든 감관과 경계와 수(受) 및 법계도 모두 다 따라간다.
006_1328_b_02L 여의주(如意珠)의 있는 바를 따라서 오락의 물건들이 모두 따라감과 같고, 해의 있는 바를 따라서 광명이 모두 따라감과 같아서 식도 또한 이와 같아 그 옮기는 바를 따라서 수와 각(覺)과 상(想)과 법계 등이 모두 다 따라간다. 식이 몸을 버리고는 일체성(一切性)을 포섭하여 색(色)의 인(因)으로 몸이 되나 뼈와 살이 없는 몸이며, 모든 감관이 있기 때문에 수(受)와 미묘한 생각이 있어서 선악(善惡)을 취할 줄을 아느니라.
대추와 석류와 암라암륵(菴羅菴勒)과 비라(鼻螺)와 갈수(渴竪)와 겁필타(劫必他) 등 가지가지 과일이 혹 맵고 혹 쓰고 혹 시고 혹 달고 혹 짜고 혹 떫고 하여 맛의 힘이 각기 다르고 소화시키는 그 공효도 한결같지 않으며, 과일이 부패함에 당해서는 맛의 힘이 종자를 따라 옮겨 변화하여 생기나니, 이와 같은 식의 종자도 그 옮기는 바를 따라 수(受)와 염(念)과 선(善)과 악(惡)이 모두 다 따라가서 이 몸을 버리고 다른 과보의 몸 받을 줄을 알기에 식(識)이 된다고 이름한다. 선악의 업을 알며, 업(業)이 나[我]를 따름을 알며, 나[我]가 업을 가지고 옮겨 변화하여 과보 받음을 알기에 식이 된다고 이름한다. 몸이 하는 바를 모두 다 알기에 식이 된다고 이름한다.
비유컨대 바람의 형체는 취할 수 없고 형질을 잡을 수 없지만 인연으로써 모든 사업을 짓기에 ‘바람이 있어서 차가움과 뜨거움을 지니고 향내와 악취를 옮기고 나무숲을 흔들며, 혹은 치고 불리며 꺾고 타격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아서 식도 형질이 없고, 보고 듣는 것으로 취할 바가 아니나, 인연으로써 식의 모양이 골고루 나타나고, 식으로 말미암아 몸을 부지하고, 몸으로 괴로움과 즐거움을 알며, 광채와 윤기가 충실하고 가고 오고 하며, 말하고 웃고 즐겨 하고 근심하며 사업이 밝게 나타나나니, 식이 있는 것으로 알아야 하느니라.”
1)영취산, 혹은 기사굴산(嗜闍屈山)을 말한다. 중인도 마갈타국 왕사성의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법화경』을 설하셨다.
2)현묘한 법문이란 뜻으로, 불법의 교리가 깊고 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3)스승이 없이 혼자서 얻은 지혜로, 부처님의 지혜를 말한다.
4)수다라(修多羅)의 준말로, 12부경의 하나이다. 산문체로 된 대승과 소승의 모든 경전을 말한다.
5)십이부경(十二部經)의 하나로, 응송(應頌), 중송(重頌)이라 한역한다. 산문체인 수다라와 구분하여 운문 형태인 게송을 말한다.
6)중국 전래의 불교 설화에 따르면, 영평(永平) 10년(기원전 67년)에 한 명제(漢明帝)가 꿈에 금인(金人)을 보고, 불교를 받아들이기 위해 사신을 대월지국에 파견했다. 이때 가마섭등(迦摩葉騰)과 축법란(竺法蘭)이 백마에 불상과 경전을 싣고 낙양에 오게 되었는데, 명제가 칙령을 내려 낙양의 서양문(西陽門) 외곽에 정사(精舍)를 건립하게 하고 그들을 머물게 하였다. 이곳을 백마사(白馬寺)라고 칭했는데, 최초로 중국에 건립된 사원이라고 한다.
7)패다라엽(貝多羅葉)의 준말로, 옛날 인도에서 불경을 새겨 넣는 데 사용하였다. 그 잎이 넓고 단단하여 옛날 인도에서 종이 대신으로 글자를 쓰는 데 사용했다. 3장(藏)의 경전을 이 잎에 기록한 데서 불교 경전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8)화게(花偈)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실 때 천신들이 감동하여 꽃을 흩었기 때문에 생긴 비유이다. 경전의 산문을 산화(散花), 경문의 내용을 꿰뚫어 비유하는 게송을 관화(貫花)라고 한다.
9)소승교를 반자교(半字敎), 대승교를 만자교(滿字敎)라 한다. 아버지가 어리석은 아들에게 먼저 반자를 가르치고, 만자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 『열반경』 의 비유에 의한 것이다. 담무참(曇無讖)이 세운 판교(判敎)이다.
10)이전의 세 황제인 고조(高祖)ㆍ태종(太宗)ㆍ고종(高宗)을 지칭한다.
11)중국 동진 때 승려로, 399년(동진 융안 3)에 혜경ㆍ도정ㆍ혜달 등과 함께 장안을 떠나 서역의 여러 나라를 거쳐 북인도에 갔다. 마갈타국에 3년간 머물면서 『마하승기율』ㆍ『유부율』ㆍ『잡아비담심론』 등을 연구하고, 귀국 후 도장사(道場寺)에서 『마하승기율』ㆍ『방등경』ㆍ『니원경』 등을 번역하였다.
12)한(漢)나라 명제(明帝) 때 천축의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 처음으로 백마(白馬)에 불경(佛經)을 싣고 중국에 왔다. 두 승려가 백마에 불경을 싣고 낙양(洛陽)에 들어오자, 명제가 칙령을 내려 낙양의 서양문(西陽門) 외곽에 중국 최초의 정사(精舍)를 건립하게 하고 백마사(白馬寺)라고 칭했다 한다.
13)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불가사의한 작용인 6신통(神通) 중의 숙명통ㆍ천안통ㆍ누진통에 해당하는 숙명명(宿命明)ㆍ천안명(天眼明)ㆍ누진명(漏盡明)을 말한다.
14)불교의 근본 교의가 되는 8가지 실천 덕목으로 정견(正見)ㆍ정사유(正思惟)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ㆍ정정진(正精進)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의 수행법이다.
15)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어서 그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16)최근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17)부모님을 모두 잃어서 홀로 된 자식의 한탄을 말한다.
18)부모님이 돌아간 뒤에 효도를 다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말로, 『한시(韓詩)』 외전(外傳)에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樹欲靜而風不止]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子欲養而親不在]”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19)이 경의 한역자인 지바하라(地婆訶羅)를 말한다.
20)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인 52위 가운데 십지(十地)의 첫 단계, 곧 환희지(歡喜地)를 말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을 이루어서 마음에 기뻐함이 많다 하여 이르는 말이다.
21)당(唐) 5대 예종(睿宗, 684~690)의 연호로, 원년 을유(乙酉)년은 684년이다.
22)8월을 뜻하는 말로, 량(梁)은 딱딱하다는 뜻이다. 8월에 처음으로 흰 이슬이 내려 만물이 딱딱해지므로 대량이라고 했다.
23)옛날 대나무에 기록을 할 때는 먼저 대나무를 불에 구워야 글을 쓰기도 쉽고 병충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청(汗靑)은 저술을 완성한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한간(汗簡)이라고도 한다.
24)왕이 죽을 때 주위의 신하들에게 뒷일을 부탁하는 것을 말한다.
25)임금의 자리나 옥새(玉璽)를 의미한다.
26)수다원향(須陀洹向)·사다함향(斯陀含向)·아나함향(阿那含向)·아라한향(阿羅漢向)의 네 성자와 수다원과(須陀洹果)·사다함과(斯陀含果)·아나함과(阿那含果)·아라한과(阿羅漢果)의 네 성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팔현성(八賢聖)이라고도 한다.
27)아시다벌저하(阿恃多伐底河). 중인도 구시나게라국에 있는데, 석존께서 이 강의 서쪽 언덕에서 열반하셨다. 니련선하(尼連禪河)와 더불어 양하(兩河)라고 불리며 무승(無勝)이라고 한역한다. 보통 발제하(跋提河)라고 한다.
28)중인도의 비야리국에 있던 동산으로 기생 암몰라녀(菴沒羅女)의 소유였는데, 암몰라녀가 불교에 귀의하여 동산을 승단에 보시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암라수원 정사에 머물면서『유마경』등을 설하셨다.
29)색구경천(色究竟天)으로, 색계 4선천의 제9천이다. 유형세계의 가장 위이기 때문에 유정(有頂)이라 한다. 무색계(無色界)의 제4천,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을 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