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 기원(祇洹) 아난빈지아람(阿難邠坻阿藍)에 계시면서 무앙수(無央數)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와 우바이의 4부제자(四部弟子)와 더불어 그 중앙에 앉아 계시었다. 이 때 부처님께서 웃으시며 입 속에서 5색(色) 광명을 내시었다. 아난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정제하고 손을 모으고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아[長跪] 부처님께 여쭈었다. “제가 부처님을 모셔온 지 20여 년 동안 일찍 부처님의 웃음이 오늘과 같음을 보지 못하였사오니, 이제 부처님께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부처님을 생각하십니까? 홀로 뜻이 있으시나이까? 듣기를 원하옵나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시었다. “지난 옛적 가히 헤아리지 못할 겁 때 큰 나라가 있었으니 이름은 섭파(葉波)였으며, 그 왕의 이름은 습파(濕波)였다.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며 백성을 그릇되지 않게 하였다. 왕에게는 4천의 대신이 있었으며 60의 소국(小國)과 8백의 취락(聚落)을 거느렸고 크고 흰 코끼리 5백 마리가 있었다.
011_0357_b_01L또한 왕에게는 2만 명의 부인(夫人)이 있었으나 끝내 아들이 없자, 왕이 스스로 모든 신(神)과 산천(山川)에 기도하고 제사하여 부인이 곧 임신하였음을 깨달았다. 왕이 몸소 부인을 보살펴 평상과 침구와 음식을 모두 섬세하고 부드러운 것으로 갖추었으며 만(滿) 10개월에 이르러 곧 태자를 낳았다. 궁중의 2만 부인이 태자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다 기뻐하여 젖이 저절로 나왔다. 이 까닭으로 곧 태자를 수대나(須大拏)라고 이름하였다. 네 명의 유모(乳母)를 두어서 태자를 양호(養護)하였는데, 그 중에는 태자를 젖먹이는 이, 태자를 안아주는 이, 태자를 목욕 시키는 이가 있었고, 또 태자(太子)를 데리고 다니며 놀아주는 이가 있었다.
태자는 어려서부터 항상 천하의 백성과 나는 새와 기는 짐승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항상 그 복을 얻기를 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색하고 탐하여 보시하기를 즐기지 아니하며 어리석고 의혹되어 스스로 속이어 자기에게도 이익이 없지만, 지혜 있는 이는 세간에 살면서 보시가 덕이 됨을 알고 보시하는 보살을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과 벽지불(辟支佛)과 아라한(阿羅漢)이 함께 칭예(稱譽)하는 바가 되는 것이다.
태자의 나이 장성(長成)하니 대왕이 태자를 위하여 비(妃)를 들이었다. 비의 이름은 만지(曼坻)니 국왕의 딸이라 단정함이 둘도 없으며 묘한 유리와 금과 은과 여러 보배와 영락으로 그 몸을 꾸미었다. 태자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두었는데, 태자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단바라밀(檀波羅蜜)의 일을 지으리라’ 하였다. 태자는 왕에게 여쭈었다. ‘성 밖으로 나가서 노닐며 구경코자 하나이다.’ 왕이 바로 들어주어 태자는 곧 성을 나갔다. 그러자 천왕석(天王釋)은 내려와 가난하고 귀먹고 눈멀고 벙어리인 사람으로 변하여 길 가에 있었다. 태자는 보고 바로 수레를 돌려 궁으로 돌아와서 크게 근심하고 즐겨하지 아니하였다.
왕은 태자에게 물었다. ‘나가서 놀다가 돌아와서 무슨 까닭으로 즐겨하지 않느냐?’ 태자는 여쭈었다. ‘제가 마침 나가서 놀다가 모든 가난하고 귀머거리에다 눈멀고 벙어리인 사람을 보았나이다. 이 까닭으로 근심하나니 제가 부왕께 한 가지 원을 빌고자 하온데 부왕께서 마땅히 들어주실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011_0357_c_01L왕은 태자에게 대답하였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가 구하는 바에 있어서는 너의 뜻을 저버리지 아니하겠노라.’ 태자는 말하였다.
‘대왕의 창고 안에 있는 보배를 네 성문 밖과 저자 한가운데 두고 보시하되 구하는 대로 그 사람의 뜻을 어기지 않기를 원합니다.’ 왕은 태자에게 말하였다. ‘네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 너를 어기지 아니하겠노라.’ 태자는 곧 옆의 신하에게 수레로 보배를 실어내 성문 밖과 시장 가운데 두고 보시하되 사람이 구하는 대로 그 사람의 뜻을 어기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자 팔방과 위와 아래가 태자의 공덕을 들어 알지 못하는 이가 없었으니, 사방 먼 데의 인민이 백 리로부터 온 이와 천 리로부터 온 이와 만 리 밖으로부터 온 이도 있었다. 음식을 얻고자 하는 이에게는 밥을 먹였으며, 의복을 얻고자 하는 이에게는 옷을 주었으며, 금과 은과 보배를 얻고자 하는 이에게도 뜻대로 주어서 얻고자 하는 것에 있어서 그 뜻을 거스르지 아니하였다.
이 때 적국(敵國)에 원수가 있었는데 태자가 희사하기를 좋아하여 구하는 것이 있으면 보시하되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아니 한다는 것을 듣고 바로 모든 신하와 모든 도사를 모아 함께 의논하였다. ‘섭파국 왕에게 연꽃 위로 다니는 흰 코끼리가 있어 이름이 수단연(須檀延)인데, 힘이 세고 잘싸워서 언제나 여러 나라와 서로 싸우면 이 코끼리가 항상 이기니, 누가 능히 가서 청하겠는가?’ 모든 신하는 함께 말하였다. ‘능히 가서 얻을 이가 없나이다.’ 그 중에 도사 여덟 사람이 왕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저희가 가서 청하겠사오니 마땅히 저희에게 비용과 양식을 주십시오.’ 왕은 바로 주면서 말하였다. ‘능히 코끼리를 얻는다면 내가 너희에게 중한 상(賞)을 주겠노라.’
011_0358_a_01L도사 여덟 사람은 바로 떠나 지팡이를 가지고 멀리 산천(山川)을 건너 섭파국에 나아가서 태자의 궁문에 이르러 지팡이를 걸고 한 다리를 들고 문을 향하여 섰다. 이 때 문지기가 들어가 태자에게 여쭈었다. ‘밖에 도사가 있는데 모두 다 지팡이를 걸고 함께 한 다리를 들어 머물러서 스스로 말하기를 〈일부러 먼 데로부터 왔는데 청할 것이 있다〉고 하나이다.’ 태자는 듣고 매우 기뻐하여 바로 나와 맞아서 앞으로 나아가 예배하기를 아들이 아버지를 뵙는 것과 같이 하고 서로 위로하여 물었다. ‘어느 곳에서 왔으며 여행 길에 근고함이 없었으며 무엇을 구하려고 한 다리를 들었는가?’
도사 여덟 사람은 말하였다. ‘저희는 태자께서 희사를 좋아하여 보시하되 구하는 것에 있어서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아니한다는 것을 들었나이다. 태자의 이름이 팔방에 들리어 위로 창천(蒼天)에 사무치고 아래로 황천(黃泉)에 이르기까지 보시의 공덕을 가히 헤아릴 수 없어 먼 데나 가까운 데서 노래하고 외워서 들어 알지 못하는 이가 없나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태자께서는 진실로 허망하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이제 천인(天人)의 아들을 위하여 천인이 말한 것은 마침내 거짓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 태자께서 진실로 능히 보시하되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신다면 태자께 연꽃 위로 다니는 흰 코끼리를 요구하고자 하나이다.’
태자는 바로 그들을 데리고 코끼리의 우리에 이르러 그들로 하여금 한 코끼리를 취하여 가게 하였다. 도사 여덟 사람은 말하였다. ‘저희는 바로 연꽃 위로 다니는 흰 코끼리 수단연을 얻고자 하나이다.’ 태자는 말하였다. ‘이 큰 흰 코끼리는 부왕께서 몹시 아끼시는 것으로, 보기를 나와 다름 없이 보나니 그대들에게 주지 못하겠노라. 만일 그대들에게 준다면 곧 부왕의 뜻을 잃으리니, 혹 이 코끼리 때문에 죄에 걸려 나는 나라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태자는 곧 스스로 생각하였다. ‘내가 전번에 서원하기를 보시하는 것에 있어서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이제 주지 아니한다면 나의 본래 마음을 어김이다. 만일 이 코끼리로 보시하지 아니 한다면 어디로부터 마땅히 위없는 평등도(平等度)의 뜻을 얻겠는가. 허락하여 주어서 나의 위없는 평등도의 뜻을 이루겠노라.’
011_0358_b_01L그리하여 태자는 허락하여 말하였다. ‘좋다. 원하는 대로 주겠노라.’ 곧 좌우(左右)에 명령하여 코끼리에 금 안장을 입히어 지체 없이 이끌고 나와 태자는 왼손에 물 그릇을 들어 도사의 손을 씻게 하고 오른손으로는 코끼리를 이끌어다가 주었다. 여덟 사람은 코끼리를 얻고 곧 태자를 축원하였다. 축원한 뒤에 흰 코끼리에 모두 올라 타고 기뻐하면서 갔다.
나라 안의 모든 신하들은 태자가 흰 코끼리를 원수에게 보시하였다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고 두려워서 평상에서 떨어져 근심하고 즐겨하지 아니하여 생각하였다. ‘국가(國家)에서 다만 이 코끼리를 믿어 적국을 물리치는데’. 그리고 모든 신하는 왕에게 가서 여쭈었다. ‘태자께서 나라의 적을 물리치는 보배 코끼리를 원수에게 보시하였나이다.’
왕은 듣고 깜짝 놀랐다. 신하들은 다시 왕에게 여쭈었다. ‘왕께서 천하를 얻은 것은 이 코끼리가 있었던 까닭입니다. 이 코끼리는 60마리의 코끼리 힘보다 나은데 태자가 적에게 주었으니 장차 나라를 잃을까 두렵사오니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태자가 이와 같이 자기 멋대로 창고 속의 것을 보시하여 날로 비게 하니 신(臣)들은 나라와 그의 처자까지도 모두 다른 사람에게 내어줄까 두렵나이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더욱 크게 즐겨하지 아니하였다.
왕은 한 신하를 불렀다. ‘태자가 진실로 흰 코끼리를 가져다 적에게 주었느냐?’ 신하는 왕에게 대답하였다. ‘진실로 주었나이다.’ 왕은 신하의 말을 듣고 다시 크게 놀라서 평상으로부터 떨어져서 번민으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찬물로 씻고서 한참 후에야 다시 살아났으며 2만 부인도 또한 모두 즐겨하지 아니하였다. 왕은 모든 신하와 함께 의논하였다. ‘마땅히 태자를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 중에 한 신하가 있다가 말하기를, ‘다리로 코끼리의 우리에 들어갔으니 마땅히 그 다리를 끊고, 손으로 코끼리를 이끌어 왔으니 마땅히 그 손을 끊고, 눈으로 코끼리를 보았으니 마땅히 그 눈을 뽑아야 하나이다’ 하였고, 어떤 이는 마땅히 그 머리를 끊어야 한다고 하여 모든 신하가 함께 의논하는데 각기 말하는 것이 이와 같았다.
011_0358_c_01L왕은 이 말을 듣고 몹시 근심되어 모든 신하에게 말하였다. ‘아이가 크게 도를 좋아하여 사람에게 보시하기를 기뻐해서 그런 것인데, 어떻게 잡아 가두겠는가.’
그 중에 한 대신이 있어서 모든 신하의 의논이 마땅치 않음을 비난하기를 ‘왕에게 오직 이 한 아들이 있어서 몹시 사랑하고 중히 여기는데 어떻게 형벌을 주어 죽이려고 마음을 내는가’ 하고, 대신은 왕에게 여쭈었다. ‘신은 감히 대왕으로 하여금 태자를 잡아 가두라고 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쫓아서 나라를 나가게 하여 시골 산 속에다 12년 가량 두어서 그로 하여금 잘못을 뉘우치게 하소서.’
왕은 곧 이 대신의 말을 따라 곧 내인을 보내어 태자를 불러 물었다. ‘네가 흰 코끼리를 원수에게 주었느냐?’ 태자는 왕에게 말하였다. ‘진실로 주었나이다.’ 왕은 태자에게 물었다. ‘네가 이제 무슨 까닭으로 나의 흰 코끼리를 가져다 적에게 주면서도 나에게 말도 하지 않았느냐?’ 태자는 말하였다. ‘먼저 이미 부왕께 요청함이 있었나니, 모든 보시하는 것에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아니하겠습니다 하였으므로 이에 왕께 여쭈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은 말하였다. ‘먼저 청한 것은 스스로 보배를 이른 것인데 흰 코끼리는 어찌 끼워 넣느냐?’ 태자는 아뢰었다. ‘이것도 모두 왕께서 소유한 것들인데 어찌 코끼리만 그 가운데 들지 아니하겠나이까?’ 왕은 태자에게 말하였다. ‘빨리 나라를 떠나거라. 너는 꼼짝말고 단특산(檀特山) 가운데서 12년을 지내야 한다.’ 태자는 왕께 여쭈었다. ‘감히 대왕의 명령을 거스르지 않겠사오니 원하옵건대, 다시 7일 동안만 보시하여 저의 작은 마음을 펴게 하시면 나라를 나가겠나이다.’
011_0359_a_01L왕은 똑바로 앉아 말하였다. ‘네가 보시를 너무 하여 나라의 창고를 비게 하였으며 나의 적을 물리치는 보배를 잃게 한 까닭에 너를 쫓는 것이므로, 다시 머물러 7일 동안 보시함을 얻지 못할 것이니 빨리 나가거라. 너의 말을 들어주지 아니하겠노라.’ 태자는 왕께 여쭈었다. ‘감히 대왕의 명령을 거스르지 아니하겠사오나 이제 저의 사재(私財)가 있사오니 원하옵건대 보시를 다하고 이에 가겠사오며 감히 다시 국가의 재물과 보배를 번거롭게 아니 하겠나이다.’ 2만 부인이 함께 왕의 처소에 나아와서 태자를 머물러 7일 동안 보시하고 나라를 나가게 함을 청하였다. 왕은 바로 허락하였다.
태자는 곧 좌우로 하여금 널리 사방에 알려 그 재물을 얻고자 하는 이는 모두 궁문으로 오도록 하고는 말하였다. ‘사람에게 있는 재물은 항상 가히 보존치 못하는 것이어서 모이면 마땅히 무너지고 흩어지는 것이다.’ 사방의 인민이 모두 문으로 나아오자, 태자는 음식을 베풀고 보배를 뜻대로 보시해 주어서 가게 하였다. 그리하여 7일 만에 재물이 다하니, 가난한 이가 부(富)를 얻어 만민(萬民)이 기뻐하였다.
태자는 말하였다. ‘내가 보시를 너무 하여 나라의 창고를 비게 하고 힘센 흰 코끼리를 보시하여 원수에게 주었으므로 왕과 옆에 신하가 이런 까닭에 성내어 함께 나를 내쫓는 것입니다.’ 만지(曼坻)는 말하였다. ‘원하건대 나라가 풍족하여 대왕과 모든 옆의 신하와 관리와 백성의 크고 작은 이로 하여금 부(富)와 즐거움이 끝이 없게 하소서. 저는 다만 태자를 따라서 마땅히 노력(努力)하여 함께 산 속에서 부지런히 도를 구하겠나이다.’
태자는 말하였다. ‘사람이 산속 두려운 곳에 있으면 환난이 있을까 염려되며 범과 이리와 사나운 짐승이 크게 두려운데, 당신은 고고하게 즐거움만 익혔는데 어떻게 능히 이를 참을 수 있겠소. 그대가 궁중에 있으면 옷은 가늘고 부드러우며 자는 데는 곧 휘장을 두르고 음식은 달고 감미로워서 입에 맞는 대로 하는데, 산 속에 있으면 눕는 것은 풀 자리요, 먹는 것은 과실과 풀 열매니 당신이 어떻게 능히 이를 즐길 수 있겠소. 또한 바람과 비와 우레와 번개와 안개와 이슬이 많아서 사람을 놀라게 하고 차면 매우 차고 더우면 매우 더워서 나무 사이에로는 가히 의지할 데가 못 되며 더욱이 땅에 질리(蒺蔾)와 조약돌과 독벌레가 있는데 당신이 어떻게 능히 이를 참을 수 있겠소.’
011_0359_b_01L만지는 말하였다. ‘제가 마땅히 이 가늘고 부드러운 것과 휘장 장막과 달고 맛난 것을 위하여 태자와 이별하겠나이까? 저는 마침내 서로 멀리 떠나지 아니하고 마땅히 태자를 따라가겠나이다. 왕이란 것은 번(幡)으로 표지[幟]를 삼으며 불이란 것은 연기로 표지를 삼으며 부인이란 것은 남편으로 표지를 삼는 것입니다. 저는 다만 태자를 믿사오니 태자는 저의 하늘인 바 태자께서 나라에 계시어 사방의 여러 사람에게 보시할 적에는 제가 항상 태자와 함께하였지만, 이제 태자께서 멀리 가시니 만일 사람이 와서 비는 이가 있으면 제가 마땅히 어떻게 응하겠나이까? 사람이 와서 태자께 구함을 들을 때면 제가 마땅히 죽기를 생각할 것이니 어찌 의심하겠나이까?’
태자는 말하였다. ‘내가 보시를 좋아하여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아니하므로 어떤 사람이 나에게 와서 아이를 요구하든지 그대를 요구하는 이가 있으면 내가 아니 주지 못하리니, 그대가 만일 나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여 곧 나의 선한 마음을 어지럽게 하려면 모름지기 가지 마시오.’ 만지는 말하였다. ‘태자께서 보시하는 대로 따라 게으르지 아니하여, 보시에 있어 이 세간 어느 누구도 태자를 따라올 수 없게 하겠습니다.’ 태자는 말하였다. ‘그대가 능히 그렇게 한다면 매우 좋소.’
011_0359_c_01L태자는 비와 그 두 아이와 더불어 함께 어머니의 처소(處所)에 이르러 하직 인사를 하고 가려고 그 어머니에게 여쭈었다. ‘원하옵건대 자주 대왕께 간하여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인민을 삿되고 그릇되지 않게 하소서.’ 어머니는 태자의 이별의 말이 이와 같은 것을 듣고 곧 느껴 슬퍼하며 옆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의 몸이 돌과 같고 마음이 강철(剛鐵)과 같아서 대왕을 받들어 섬기되 일찍이 허물이 있지 아니하였으며, 이제 오직 한 아들을 두었는데 나를 버리고 가니 내 마음이 어찌 찢어져 죽지 않겠는가? 나뭇잎 같던 뱃속의 아이를 밤낮으로 길렀는데, 길러 겨우 크자마자 나를 버리고 가니 모든 부인들이 다 시원하겠노라. 왕께서 다시 나를 공경치 아니할 것이니까. 하늘이 나의 원을 어기지 아니할진댄 아들로 하여금 빨리 나라로 돌아오게 하소서.’ 태자는 비와 그 두 아들과 더불어 함께 부모께 예를 올리고 떠났다.
2만의 부인이 진주(眞珠)를 각각 한 꿰미씩 태자에게 주었으며, 4천의 대신이 칠보로 꽃을 만들어 태자께 받들어 올렸다. 태자가 궁중의 북쪽 성문을 나와서 칠보 구슬 꽃을 모두 사방 인민에게 보시하니 즉시에 모두 다하였다. 관원과 백성 크고 작은 이 수천만 사람이 다함께 태자를 보내면서 모두 가만히 의논하여 말하기를, ‘태자는 선한 사람이다. 이 나라의 신이신데 부모가 어찌 이 보배로운 아들을 쫓는가’ 하며 보는 이가 모두 함께 애석하게 여기었다. 태자는 성 밖의 나무 아래 앉아서 전송하는 이를 하직하고 이로부터 돌아가라고 하였다. 관원과 백성 크고 작은 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갔다.
태자는 비와 두 아이와 더불어 함께 수레를 스스로 이끌고 갔다. 앞으로 앞으로 가다가 이미 성에서 멀어져 나무 아래 쉬는데 바라문이 와서 말을 요구하였다. 태자는 곧 수레를 어거하는 말을 주고 두 아이는 수레 위에 놓고 비는 뒤에서 밀게 하고 자기는 멍에 안에 들어가서 끌고 갔다. 그렇게 앞으로 가다가 또 바라문을 만났는데 수레를 요구하였다. 태자는 곧 수레를 주었다. 그렇게 또 앞으로 가다가 또 바라문이 와서 요구하자, 태자가 말하였다. ‘내가 그대에게 주기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재물이 모두 다하였습니다.’
011_0360_a_01L바라문은 말하였다. ‘재물이 없으면 나에게 입고 있는 옷을 주십시오.’ 태자는 곧 보배 옷을 벗어서 주고 그가 입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렇게 또 앞으로 가다가 바라문을 만났는데 그가 요구하였다. 태자는 비의 의복을 주고, 다시 앞으로 가다가 또 바라문을 만났는데 그가 또 요구하였다. 태자는 두 아이의 의복을 주었다. 태자는 수레와 말과 돈과 재물과 의복을 보시해졌지만 처음부터 후회하는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태자는 아들을 업고 비는 그 딸을 업고 걸어서 나아갔다. 태자는 비와 두 아들과 더불어 온화한 얼굴로 기뻐하며 서로 따라 산으로 들어갔다.
단특산을 가기가 섭파국에서 6천여 리인데 나라에서 드디어 멀어졌을 적에 빈 못 가운데로 지나다가 크게 괴롭고 주리고 목말랐다. 도리천왕(忉利天王)인 제석이 빈 못 가운데 화하여 성곽(城郭)과 시장과 마을과 가항(街巷)을 만들고 기악과 음식을 지었는데, 성중에서 사람이 나와서 태자를 맞아 문득 이에 머물러 음식을 먹고 서로 오락(娛樂)하라고 하였다. 비는 태자에게 말하였다. ‘가는 길이 몹시 극심하오니 가히 틈내어 이에 쉬시겠습니까?’ 태자는 말하였다. ‘부왕께서 나를 내쫓으며 단특산에 머물렀다고 하셨는데 여기에 머무르면 부왕의 명령을 어긴 것이니 효자(孝子)가 아니오.’ 그리고는 곧 성을 나가서 그 성을 돌아다 보니 갑자기 보이지 아니하였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 단특산에 이르니 산 아래 큰 물이 있는데 깊어서 가히 건너지 못하였다. 비는 태자에게 말하였다. ‘또한 마땅히 여기서 머물렀다가 물이 줄거든 건너야겠습니다.’ 태자는 말하였다. ‘부왕께서 나를 단특산에 기거토록 하시었는데 여기서 머무르면 부왕의 명령을 어긴 것이니 효자라고 할 수 없소.’ 태자가 곧 자심삼매(慈心三昧)에 드니, 물 가운데 큰 산이 있어 물길을 끊었다. 태자는 곧 비와 더불어 바지를 걷고 건넜는데, 건넌 뒤에 곧 생각하였다. ‘이대로 간다면 물이 마땅히 돌려 대어서 모든 인민과 구물거리는 벌레와 나는 것과 꿈틀 기는 벌레와 움직이는 것[蜎飛蠕動]을 죽일 것이다.’ 태자는 곧 돌아와서 물을 돌아보고 말하였다. ‘다시 흐르기를 전과 같이 하고 만일 나의 처소에 이르고자 하는 이가 있으면 모두 건너게 하소서.’ 태자가 말을 마치자마자 물은 곧 다시 흘러 이전과 같았다.
011_0360_b_01L앞으로 나아가 단특산 가운데 이르러 태자는 산이 우뚝 선 것과 수목이 울창하고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 샘이 맑디맑으며 맛난 물과 단 과실과 물오리와 기러기와 푸른 백로와 물총새와 원앙새 등 기이한 유가 매우 많은 것을 보고 태자는 비에게 말하였다. ‘이 산 속에 나무를 보니 하늘에 닿을 듯 꺾을 이가 없겠으며 이 맛난 샘물을 마시고 이 단 과실을 먹으며 이 산 속에 또한 도를 배우는 이가 있겠구려.’ 태자가 산으로 들어가니 산중의 새와 짐승이 모두 크게 기뻐하여 태자를 맞았다.
산에는 한 도인이 있었으니 이름은 아주타(阿州陀)며 나이는 5백 세인데 절묘(絶妙)한 덕이 있었다. 태자는 예를 올리고 물러나서 말하였다. ‘이제 산 속에 계셨으니 어느 곳이 좋고 단 과실과 샘물이 있어서 가히 의지할 만하겠나이까?’ 아주타는 말하였다. ‘이 산속은 복이 두루하는 땅이므로 어디든지 가히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도인은 곧 말하였다. ‘이제 이 산속은 청정한 곳인데 그대는 어떻게 처자와 같이 와서 도를 배우고자 합니까?’
태자가 미처 대답하지 못하자, 만지는 곧 도인에게 물었다. ‘여기에 있으면서 도를 배운 지가 몇 해나 되나이까?’ 도인은 대답하였다. ‘이 산속에 의지한 지가 4, 5백 세입니다.’ 만지는 말하였다. ‘헤아리건대 나 같은 사람은 어느 때에 도를 얻겠나이까? 비록 오랫동안 산속에 있을지라도 또한 나무와 다름이 없어서 나 같은 사람은 가히 도를 얻지 못하겠나이까?’ 도인은 말하였다. ‘나는 진실로 이 일은 알지 못하겠나이다.’
태자는 곧 도인에게 물었다. ‘그대는 자못 섭파국 태자 수대나에 대해 들었습니까?’ 도인은 말하였다. ‘제가 자주 듣기는 하였지만 일찍이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태자는 말하였다. ‘내가 바로 그 태자 수대나입니다.’ 도인은 태자에게 물었다.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태자는 대답하였다. ‘마하연도(摩訶衍道)를 구하고자 합니다.’
011_0360_c_01L도인은 말하였다. ‘태자의 공덕이 그러하시니 이제 오래지 않아 마하연도를 얻을 것입니다. 태자께서 위없는 정진도(正眞道)를 얻을 때에 제가 마땅히 제일신족제자(第一神足弟子)가 되겠나이다.’ 그리고 도인은 곧 태자가 의지할 만한 곳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태자는 도인을 본따서 머리를 묶어 땋고 샘물과 과실과 풀 열매로 음식을 삼았다. 곧 장작을 취하여 작은 풀집을 짓고 아울러 만지와 두 어린아이를 위하여 각각 한 채의 띠풀집을 지으니 무릇 세 채의 띠풀집을 지었다.
산속의 새와 짐승이 모두 다 기뻐하여 태자에게 의지하였다. 태자가 정히 하룻밤을 자고 나자 산중의 빈 못에서는 모두 샘물이 나고 마른 나무와 모든 나무에서도 꽃과 잎이 나며 모든 독한 벌레와 짐승이 모두 소멸(消滅)되며 서로 먹고 먹히던 것들이 스스로 풀을 먹으며 여러 과실 나무가 저절로 무성하고 백 가지 새가 짹짹거리며 서로 화답하여 구성지게 울었다.
만지가 다니면서 과실을 캐어 태자와 그 아들아이와 딸아이를 먹였는데 두 아이도 또한 부모를 떠나 다니면서 물 가에서 새와 짐승과 더불어 희롱하며 혹은 자는 때도 있었다. 이 때 아들 야리는 사자 위에 올라타 달리면서 희롱하다가 사자가 뛰어 그만 땅에 떨어져 낯을 상하여 피가 나왔는데, 원숭이가 곧 나뭇잎을 따다 그 낯의 피를 씻고 물가에 데리고 가 물로 씻어 주었다. 태자가 앉아서 멀리 바라보고 말하였다. ‘새와 짐승도 이에 그런 마음이 있구나.’
011_0361_a_01L이 때 구류국(鳩留國)에 한 가난하고 궁한 바라문이 있었는데 나이 40에 부인을 맞이하였다. 부인은 단정한데 바라문은 열두 가지 추(醜)한 것이 있으니 신체가 검어서 칠(漆)과 같고 낯이 세 곳이나 찌그러졌으며, 코가 정히 모지고 엷으며, 두 눈이 또한 푸르고 낯에 주름살이 있으며, 입술은 딱 벌려졌고, 말은 더듬으며, 큰 배는 불룩 늘어졌고 다리는 또한 돌아 구부러지며, 머리는 또한 민머리이고 형상이 귀신과 같았으므로 그 부인(婦人)이 보기를 미워하므로 죽기를 원하였다. 부인이 다니며 물을 긷다가 많은 젊은이를 만났는데, 그 신랑을 비웃어 말하고 흉내를 내어 웃으면서 물었다. ‘그대는 뛰어나게 단정한데 어찌 그런 사람의 아내가 되었느냐?’ 부인은 나이 젊은 이에게 말하였다. ‘이 늙은이가 머리가 호호백발이라 서리가 나무에 잔뜩 내려앉은 것 같으므로 아침 저녁으로 그가 죽었으면 하지만 그가 죽지 않으니 어쩔 수 없노라.’
부인은 바로 물을 이고 돌아와서 그 신랑에게 울부짖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마침 물을 긷고 있는데 애젊은 것들이 함께 나를 조롱하였습니다. 마땅히 나를 위하여 종을 구해 주십시오. 내가 종이 있으면 스스로 다니면서 물을 긷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이 또한 나를 비웃지 아니할 것입니다.’ 신랑은 말하였다. ‘내가 몹시 가난하고 궁한데 어느 곳에서 종을 얻을 것인가?’ 부인은 말하였다. ‘만일 나를 위하여 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나는 바로 가버려 다시 함께 살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부인은 말하였다. ‘내가 항상 들으니 태자 수대나가 보시를 너무 한 까닭에 부왕이 쫓아내어 단특산 가운데 두었다는데 사내 아이와 계집 아이를 하나씩 두었다고 하오니 가히 가서 빌으소서.’
신랑은 말하였다. ‘단특산이 여기에서 가기가 6천여 리며 처음부터 산을 다녀보지 아니하였는데 마땅히 어느 곳에서 구하겠는가?’ 부인은 말하였다. ‘나를 위하여 종을 구하지 아니한다면 나는 마땅히 스스로 목을 찔러 죽겠습니다.’ 신랑은 말하였다. ‘차라리 나의 몸을 죽일지언정 그대를 죽게 하지는 않겠소.’ 그리고 신랑은 말하였다. ‘내가 떠나려면 마땅히 나에게 여비와 식량을 준비해 주시오.’ 부인은 말하였다. ‘그냥 가시오. 여비와 식량이 없습니다.’ 바라문은 스스로 여비와 식량을 준비하여 길을 떠났다.
011_0361_b_01L이에 바라문은 지름길로 섭파국에 나아가서 왕의 궁문 밖에 이르러 문지기에게 물었다. ‘태자 수대나가 이제 어느 곳에 있는가?’ 이 때 문지기는 들어가 바로 왕께 여쭈었다. ‘밖에 바라문이 와서 태자를 찾나이다.’ 왕은 사람이 태자를 찾는다는 것을 들으니 감정이 받치어 또한 성내어 말하였다. ‘다만 이런 무리들 때문에 죄에 걸리어 나의 태자를 내쫓았는데, 이제 이런 사람이 또 오느냐? 그리고는 왕은 곧 스스로 비유해서 말하였다. ‘불이 스스로 치열한데 다시 그 섶을 더함과 같이 이제 내가 근심하는 것은 비유컨대 불이 치열함과 같고 사람이 와서 태자를 묻는 것은 그 섶을 더함과 같다.’
바라문은 말하였다. ‘제가 먼 데서 온 것은 태자의 이름이 위로 창천에 사무치고 아래로 황천에 이르러 태자가 보시하되,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아니한다는 것을 들은 까닭에 먼 데로부터 와서 얻는 바가 있고자 하나이다.’ 왕은 말하였다. ‘태자는 홀로 깊은 산에 처하여 몹시 가난하고 궁하니 마땅히 무엇으로 그대에게 줄 것이냐?’ 바라문은 말하였다. ‘태자께 비록 있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서로 보고자 하나이다.’ 왕은 곧 사람을 시켜 길을 지시(指示)하였다.
바라문은 곧 떠나 단특산에 나아가 큰 물 가에 이르러 다만 태자를 생각하니 곧 건널 수 있었다. 바라문은 드디어 산 속으로 들어갔다가 한 사냥꾼을 만나서 물었다. ‘네가 산 속에 있었으니 자못 태자 수대나(須大拏)를 보았느냐?’ 사냥꾼은 본래 태자가 많은 바라문들에게 보시한 까닭에 죄에 걸리어 산 속에서 지내게 된 것을 알고 있었다.
사냥꾼은 곧 바라문을 잡아 얽어서 나무에다 달고 매로 쳐서 신체가 모두 상처나게 하고 꾸짖어 말하였다. ‘내가 너의 배를 쏘고 너의 고기를 먹고자 하노니, 태자를 묻기 때문이다.’ 바라문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제 내가 너에게 죽을 수야 있겠느냐? 마땅히 속여서 말하리라’ 하고 곧 말하였다. ‘네가 마땅히 나에게 묻지 않은 것이 있다.’
사냥꾼은 말하였다. ‘네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바라문은 말하였다. ‘대왕께서 태자를 보고 싶어서 나를 보내어 태자를 불러 나라로 돌아오라고 한 것이니라.’ 사냥꾼은 곧 풀어 놓고 맞아서 사례하였다. ‘진실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그 곳을 가르쳐 주었다. 바라문은 바로 태자의 처소에 이르렀다.
011_0361_c_01L태자는 멀리서 바라문이 오는 것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여 맞아서 예배하고 인하여 서로 위로하여 물었다. ‘어느 곳에서 오며 행하는 길에 피로함이 없으며 무엇을 구하십니까?’ 바라문은 말하였다. ‘제가 먼 데서 왔으므로 온몸이 아프고 또한 주리고 목마르나이다.’ 태자는 곧 바라문에게 자리에 들어오기를 청하고 과실과 풀 열매와 물과 미음을 내어 그 앞에 놓았다. 바라문은 물을 마시며 과실 먹기를 마치고 바로 태자에게 말하였다. ‘저는 이 구류국 사람인데 오래 태자께서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이름이 시방에 자자함을 듣고 제가 가난하고 궁하므로 태자로부터 빌고자 하나이다.’
태자는 말하였다. ‘내가 당신에게 주기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이 다하여 줄 것이 없습니다.’ 바라문은 말하였다. ‘만일 물건이 없으면 나에게 두 아이를 주어서 심부름꾼이 되게 하여 늙은 이를 공양케 하소서.’ 이와 같이 세 번을 이르자 태자는 말하였다. ‘그대가 일부러 먼 데서 와서 나의 아들과 딸을 얻고자 하는데 어찌 주지 아니하겠소.’
이 때 두 아이는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태자는 두 아이를 불러 말하였다. ‘바라문이 먼 데서 와서 너희를 빌므로 내가 이미 허락하였으니 너희는 바로 따라가라.’ 두 아이는 아버지의 겨드랑 밑으로 달려들어 눈물을 흘리면서 또한 말하였다. ‘제가 여러 번 바라문을 보았으나 일찍이 이런 무리는 보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바라문이 아니라 바로 귀신입니다. 이제 어머니께서 과실을 따러 나가시어 돌아오시지 아니하였는데, 아버지께서 저희를 귀신에게 주어 밥이 되게 하시니 죽는 것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이제 어머니께서 오셔서 저희를 찾다가 찾지 못하면 어미소가 송아지를 찾듯이 곧 울부짖으며 근심하실 것입니다.’
태자는 말하였다. ‘내가 이미 허락하였으니 어떻게 물리겠느냐? 이는 바라문이요, 귀신이 아니므로 마침내 너희를 먹지 아니할 것이니 너희는 바로 따라가거라.’ 바라문이 말하였다. ‘제가 가고자 하나 그의 어머니가 오면 또한 갈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태자께선 훌륭한 마음을 가져 나에게 줄지라도 아이들의 어머니가 오면 곧 당신의 훌륭한 뜻을 꺾게 할 것입니다.’ 태자는 말하였다. ‘나는 나면서부터 보시함에 일찍이 후회함이 없었노라.’
011_0362_a_01L태자는 곧 물로 바라문의 손을 씻어주고 두 아이를 이끌어다가 주니 땅이 진동(震動)하였으며 두 아이가 기꺼이 따라가지 아니하고 돌아와 아버지 앞에 이르러 꿇어앉아 아버지께 말하였다. ‘저희가 지난 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이제 이 괴로움을 만나나이까? 이에 국왕의 종자로 사람의 종이 되다니요. 아버지를 향하여 허물을 참회하오니, 이 인연으로 죄가 멸하고 복이 생기어 태어날 적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만나지 않게 하소서.’ 태자는 아이에게 말하였다. ‘천하의 은혜와 사랑은 모두 마땅히 이별하는 것이며 일체가 덧없는 것이니, 무엇을 가히 보존하여 지킬 것이냐. 내가 위없는 평등도를 얻을 때 마땅히 너희를 제도하겠노라.’
두 아이는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저희를 위하여 어머니께 인사 여쭈어 주세요. 이제 문득 영원히 끊어지게 되는데 대면하고 이별하지 못함을 한하나이다. 스스로 저희는 속세의 죄로 마땅히 괴로움을 만났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니 저희를 잃고 근심하고 고통하며 수고로울 것입니다.’ 바라문은 말하였다. ‘나는 늙고 또한 여위었는데 어린아이가 각기 나를 뿌리치고 달아나 그 어머니에게로 가버리면 내가 어떻게 얻겠습니까? 마땅히 묶어서 저에게 주소서.’
태자는 곧 도로 두 아이의 손을 잡아서 바라문으로 하여금 스스로 묶어서 서로 연하여 모두 그러잡아서 머리에 끈을 매었다. 두 아이가 순응하여 따라가지 아니하자 매로 치니 피가 나와 땅에 흘렀다. 태자가 보고 눈물을 흘리니 눈물이 떨어져 땅 위로 흘렀다. 태자는 모든 새와 짐승으로 더불어 모두 두 아이를 전송하여 보이지 아니해서야 돌아왔다. 모든 새와 짐승은 모두 태자를 따라 돌아와서 아이가 희롱(戱弄)하던 곳에 이르러 울부짖으며 뒹굴어 스스로 땅을 쳤다.
011_0362_b_01L바라문은 지름길로 두 아이를 데리고 가는데 아이는 끈을 나무에 둘러 따라가지 않으려 버티며 그의 어머니가 오기를 바랐다. 바라문은 매로 쳤다. 두 아이는 ‘다시는 나를 때리지 말라. 내가 스스로 가겠노라’ 하고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으며 말하였다. ‘산신(山神)과 수신(樹神)은 한 가지로 우리를 불쌍히 생각하소서. 이제 멀리 가서 사람의 종이 되는데 어머니를 못 뵈옵고 이별하오니 가히 우리 어머니에게 과실을 버리고 빨리 오시어 우리와 서로 보게 하라고 알려 주소서.’
이 때 제이 도리천왕(忉利天王)인 제석이 태자가 아이를 남에게 주었음을 알고, 비가 그 훌륭한 마음을 그르칠까 하여 곧 사자로 변하여 길을 막고 웅크리고 앉았다. 비는 사자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짐승 가운데 왕이요, 나도 또한 사람 가운데 왕의 아들과 함께 산 속에 있으니 원하건대 조금만 피하여 지나가게 해 주오. 내게는 두 아이가 있는데 모두 아직 어려서 아침부터 먹을 것이 없고 다만 나를 기다리고 있노라.’ 사자는 바라문이 멀리 간 줄을 알고 이에 일어나 길을 피하여 비로 하여금 지나가게 하였다. 비가 돌아가서 보니 태자만 홀로 앉아 있고 두 아이는 보이지 아니하므로 그 풀집 안을 찾아도 보이지 아니하고 다시 아이들의 집으로 가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아이들이 항상 장난치던 물가에 이르렀어도 보이지 아니하고 다만 더불어 어울려 놀던 새와 짐승과 노루와 사슴과 사자와 원숭이만 모여 있었다.
011_0362_c_01L만지가 앞으로 나아가 스스로 가슴을 치며 울부짖으니 못의 물이 그녀를 위하여 바싹 말랐다. 만지는 바로 돌아와서 태자의 처소에 이르러 태자에게 두 아이가 어느 곳에 있느냐고 물었다. 태자는 대답치 아니하였다. 만지는 또 말하였다. ‘아이들이 내가 과실을 가지고 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달려 나에게 뛰어오느라고 땅에 엎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뛰며 소리쳐 말하기를 〈어머니가 돌아오셔야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 하며, 앉을 때는 모두 좌우에 있으면서 나의 몸에 먼지가 있는 것을 보면 곧 나를 위하여 털어 주었는데, 이제 아이도 보이지 아니하고 아이가 또한 와서 나에게 매달리지도 아니하니 이 아이들을 누구에게 주었습니까? 이제 보이지 않아 내 마음이 찢어질 듯 하오니 빨리 저에게 말씀하시어 나로 하여금 미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와 같이 세 번에 이르러도 태자는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만지는 더욱 근심되어 사납게 말하였다. ‘두 아이가 보이지 않는 것은 오히려 또한 그럴 수 있다지만 태자께서 대답치 아니하시니 더욱 저로 하여금 어지럽고 당황하게 하나이다.’ 태자는 말하였다. ‘구류국에 있는 한 바라문이 와서 나에게 두 아이를 빌기에 주었소.’ 비는 태자의 말을 듣고는 문득 감정이 격해져 땅에 엎드려 태산(太山)이 무너지는 듯 뒹굴며 울부짖음을 가히 그치지 못하였다.
태자는 말하였다. ‘그만 그치오. 당신은 과거 제화갈라(提和竭羅)부처님 때 전생에 요청했던 것을 아시오? 나는 이 때 바라문의 아들이었으니 이름은 비다위(鞞多衛)였으며 그대는 바라문의 딸이었으니 이름이 수타라(須陀羅)였소. 그대는 꽃 일곱 송이를 가지고 나는 은전(銀錢) 5백을 가져 그대한테 꽃을 사서 부처님께 뿌리고자 하였는데, 그대가 두 송이의 꽃을 나에게 부쳐 부처님께 올리고 서원하기를, 원하건대 저의 후생에 항상 그대의 아내가 되어 예쁘든지 추하든지 떠나지 아니하게 하소서 하였소. 나는 이 때 그대에게 요청하기를, 나의 아내가 되고자 할진댄 마땅히 나의 뜻을 따라 보시하는 바에 있어서 보시를 받는 사람의 마음을 거스르지 아니하며 오직 부모만은 보시치 않고 그 나머지 보시는 모두 나의 뜻을 따르라고 하였소. 그대가 이 때 나에게 대답하기를, 그러마고 하였는데 이제 아이들을 보시한 것으로 도리어 나의 선한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오?’ 비는 태자의 말을 듣고 마음과 뜻이 열리고 곧 지난 세상의 일을 알아서 태자를 따라 보시하여 빨리 마음의 하고자 한 바를 얻었다.
천왕석은 태자의 보시가 이와 같음을 보고 곧 내려와서 태자를 시험하여 무엇을 구하고자 함을 알려고 바라문으로 변하였는데 또한 열두 가지 추함이 있었다. 그리고는 태자의 앞에 이르러 스스로 말하였다. ‘항상 태자께서 보시를 좋아하여 구하는 바에 있어서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아니한다는 것을 들은 까닭에 이르렀나이다. 원하건대 나에게 비를 비나이다.’ 태자는 말하였다. ‘좋다. 비를 가히 얻게 하겠노라.’
011_0363_a_01L비는 말하였다. ‘이제 저를 사람에게 준다면 누가 마땅히 태자를 공양하겠나이까?’ 태자는 말하기를 ‘이제 그대로 보시를 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위없는 평등도의 뜻의 얻을 것인가’ 하고 태자는 물로 바라문의 손을 씻기고 비를 이끌어다가 주었다. 석은 태자의 끝내 후회하는 마음이 없음을 알았으며 모든 하늘이 착함을 찬탄하고 하늘과 땅이 크게 진동하였다.
이 때 바라문은 곧 비를 데리고 일곱 걸음을 가다가 도로 비를 데리고 와서 태자에게 맡기면서 다시 사람에게 주지 말라고 하였다. 태자는 말하였다. ‘왜 데려가지 아니하오. 무엇이 마땅치 않은 것이 있소? 모든 사람의 부인 가운데 이 부인이 착하다오. 현재 국왕의 자식인데 그의 아버지가 오직 이 한 딸을 두었는데 이 부인이 나 때문에 스스로 끓는 물과 불에 몸을 던지고 거칠고 형편없는 음식을 먹으며 항상 할 바를 피하지 아니하여 정근(精勤)하며 얼굴이 단정하니 그대가 이제 취하여 가야 내 마음이 기쁘겠노라.’
바라문은 태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바라문이 아니라 바로 천왕석인데 일부러 와서 시험하였나니,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는 곧 제석의 몸을 회복하니 단정하고 수승하며 묘하였다. 비는 곧 예배하고 좇아 세 가지를 원하였다. ‘첫째는 바라문이 끌고간 나의 두 아이를 그들이 다시 이 나라에다 파는 것이요, 둘째는 저의 두 아이로 하여금 괴롭고 주리고 목마르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요, 셋째는 저와 태자가 하루빨리 나라 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천왕석은 말하였다. ‘마땅히 원하는 대로 하겠노라.’ 태자는 말하였다. ‘원하건대 중생들이 모두 도탈(度脫)을 얻어서 다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이 없게 하소서.’ 천왕석은 말하였다. ‘그 원하는 바가 크도다. 높고 커서 위가 없도다. 만일 하늘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해와 달의 왕이 되게 하며 세간의 제주(帝主)로 수명을 연장하고자 한다면 내가 능히 그대의 말한 바와 같이 할 수 있지만, 삼계의 가장 거룩한 일은 나의 미칠 바 아닙니다.’
011_0363_b_01L태자는 말하였다. ‘이제 또한 원하건대 나로 하여금 큰 부(富)를 얻어 항상 보시를 좋아함이 또한 이전보다 더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부왕과 모든 옆에 신하로 하여금 모두 나를 보고 싶어 하게 하소서.’ 천왕석은 말하였다. ‘꼭 원하는 바와 같이 하겠노라.’ 그리고 잠깐 사이에 갑자기 보이지 아니하였다.
구류국 바라문은 아이를 얻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부인은 도리어 꾸짖었다. ‘어떻게 차마 이런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는 겁니까?. 이 아이들은 국왕의 종자인데 인자한 마음이 없이 때려 몸에 종기가 생기어 온통 고름과 피니 빨리 데리고 나가 팔아 다시 부릴 만한 이를 구하시오.’ 신랑은 부인의 말을 따라 아이들을 팔고자 돌아다녔다. 천왕석주는 행색을 초라하게 꾸미고 시정을 돌아다니다가 말하였다. ‘이 아이들은 귀하므로 살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이다. 아이가 정히 주리고 목마르면 하늘이 자연(自然)한 기운으로 아이를 배부르게 할 것이다.’ 그리고는 천왕(天王)이 그의 뜻을 변하게 하니, 이에 섭파국에 이르렀다.
나라 안의 모든 신하와 인민은 이가 태자의 아이며 대왕의 손자임을 알고 온 나라의 크고 작은 이가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모든 신하는 이 아이를 얻은 내력을 물었다. 바라문은 말하였다. ‘내가 스스로 빌어서 얻은 것을 왜 나에게 묻는가.’ 모든 신하는 말하였다. ‘그대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므로 나도 또한 그대에게 묻는 것이오.’ 그리고는 대신과 인민이 곧 바라문의 아이를 빼앗고자 하였다. 그 중에 장자가 있어서 간(諫)하였다. ‘이는 태자의 보시하는 마음이 이에 이르른 것인데 이제 빼앗으면 마땅하지 않으며 짐짓 태자의 본래 뜻을 어기는 것이니 왕께 사뢰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왕께서 아시면 자연 이들을 구제해 주실 것입니다.’
모든 신하가 왕에게 고하였다. ‘대왕의 두 손자가 이제 바라문이 데리고 다니면서 파는 신세가 되었나이다.’ 왕은 듣고 크게 놀라 곧 바라문을 불러 아이를 데리고 궁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왕이 부인과 모든 시위하는 신하와 후궁과 채녀와 더불어 멀리서 두 아이를 보니 목메이지 아니한 이가 없었다. 왕이 바라문에게 물었다. ‘어떤 인연으로 이 아이들을 얻었는가?’ 바라문은 대답하였다. ‘제가 태자한테 빌어서 얻었나이다.’ 왕이 두 아이를 불러 안고자 하니 아이가 모두 울면서 나아가 안기려 하지 않았다.
011_0363_c_01L왕은 바라문에게 물었다. ‘아이를 파는데 얼마의 돈이면 되겠는가?’ 바라문이 미처 대답하지 못하자 사내아이가 바로 대답하였다. ‘사내의 값은 은전(銀錢) 1천 냥과 숫소 1백 마리며 계집아이의 값은 금전(金錢) 2천 냥과 암소 2백 마리이옵니다.’ 왕은 말하였다. ‘사내아이는 사람의 보배인데 무슨 까닭으로 사내는 천히 여기고 계집은 귀히 여기느냐?’ 아이는 말하였다. ‘후궁과 채녀는 왕과 친족도 아니라 혹은 미천(微賤)한 데서 났고 혹은 다만 종이었으나 왕의 뜻에 들기만 하면 곧 높고 귀함을 얻어서 보배로운 의복을 입으며 온갖 맛난 음식을 먹는데, 왕께서 오직 한 아들을 두셨지만 깊은 산으로 쫓아내고 날마다 궁중에서 채녀와 더불어 함께 즐기기만 할 뿐 마침내 아들을 생각하는 뜻이 없으시니 이로써 사내가 천하고 계집이 귀함을 분명히 아나이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이고 슬퍼서 콧물과 눈물이 뒤섞여 흐르면서 말하였다. ‘내가 너희를 저버렸다지만 너는 무슨 까닭으로 나의 품에 안기지 않고 나에게 성을 내느냐? 바라문이 두려운 것이냐?’ 아이는 말하였다. ‘감히 대왕을 원망하지도 아니하며, 또한 바라문을 두려워하지도 아니하나이다. 옛적에는 대왕의 손자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의 종이 되었는데 어떻게 종이 되어 국왕(國王)의 품에 안길 수 있겠나이까? 이런 까닭으로 감당치 못하나이다.’ 왕은 아이의 말을 듣고 갑절 더욱 슬퍼서 곧 그 말과 같이 바라문에게 값을 주고 다시 두 아이를 불러 안으니 두 아이는 곧 나아갔다.
왕은 두 손자를 안고 그 몸을 만지고 쓰다듬으며 두 아이에게 물었다. ‘너의 아버지가 산 속에 있으면서 무엇을 먹으며 입는 옷은 어떤 것이냐?’ 두 아이는 대답하였다. ‘과실과 풀 열매와 나물을 먹으며 갈베를 입어서 옷인 양하며 백 가지 새와 서로 오락하면서 또한 근심하는 마음이 없었나이다.’ 왕은 바라문을 보내어 가라고 하였다.
011_0364_a_01L사내아이는 왕에게 아뢰었다. ‘이 바라문은 괴롭고 주리고 목마른 분이니 원하옵건대 한 끼 밥을 주소서.’ 왕은 말하였다. ‘네가 분하고 성내는 마음이 없느냐? 무슨 까닭으로 그를 위하여 먹일 것을 구하느냐?’ 아이는 말하였다. ‘저의 아버지께서 도를 좋아하시어 더 이상 재물로 보시할 것이 없으므로 저를 빌었나니 이는 저의 주인입니다. 제가 아직 그의 심부름꾼이 되어 저의 아버지 도의 뜻을 따르지 못하였는데 이제 어찌 차마 그의 주리고 목마름을 보고 인자한 마음이 없겠나이까?’ 왕은 곧 바라문에게 밥을 주었다. 바라문은 먹기를 마치고 기뻐하면서 돌아갔다.
왕은 사신을 보내어 빨리 태자를 맞아 돌아오게 하였다. 사신은 명령을 받고 가서 태자를 맞으려는데 물이 막혀 건너지 못하였다. 다만 태자를 생각하니, 곧 지나갈 수 있게 되어 왕의 명령을 태자에게 고하였다. ‘마땅히 빨리 나라로 돌아오라고 하시며 왕께서 태자를 보고 싶어 하시나이다.’ 태자는 대답하였다. ‘왕께서 나를 산 속에 두시면서 12년으로 기한을 하였는데 아직 1년이 남아 있으니 해가 차면 마땅히 돌아가겠노라.’ 사신은 돌아와서 왕께 그와 같이 여쭈었다.
왕은 다시 손수 글을 지어 태자에게 보내었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가는 것도 또한 참고 오는 것도 또한 마땅히 참을 것인데 어찌 성내고 돌아오지 않느냐? 네가 와야 이에 밥을 먹겠노라.’ 사신은 다시 글을 가지고 갔다. 태자는 글을 받고 머리와 낯을 땅에 대어 예배하고 물러나 돌고는 일곱 번을 펴보고 또 펴보았다. 산 속의 모든 새와 짐승은 태자가 돌아간다는 것을 듣고 뛰며 뒹굴고 스스로 몸을 치며 부르짖었다. 샘물은 비고 말랐으며 새와 짐승이 젖을 먹지 아니하였고 백 가지 새가 모두 슬피 울었나니, 태자를 잃기 때문이었다. 태자는 곧 옷을 입고 비와 함께 돌아왔다.
011_0364_b_01L적국의 원수는 태자가 돌아온다는 것을 듣고 곧 사신을 보내어 흰 코끼리를 금과 은의 안장으로 꾸미어 입히고 금 발우에다가는 은 조[票]를 가득 담고 은 발우에다는 금 조를 가득 담아서 뿌리며 길 가운데에서 태자가 돌아옴을 맞아서 사례하고 허물을 참회하여 말하였다. ‘먼저 흰 코끼리를 요구할 것은 어리석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때문에 죄에 걸려 멀리 쫓겨났다더니 이제 돌아오신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기뻐하여 이제 흰 코끼리를 받들어 태자께 돌려보내며 금과 은 조를 올리나니, 원하옵건대 받아서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소서.’
태자는 대답하였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백 가지 맛난 음식을 베풀어 특별히 올리고서 그 사람이 먹은 뒤에 토해서 땅에 뱉었으면 어떻게 다시 향기롭게 씻어서 다시 먹겠느냐? 이제 내가 보시한 것이 비유컨대 또한 토한 것과 같아서 마침내 도로 받지 못하겠으니, 빨리 코끼리를 타고 돌아가서 그대의 국왕께 수고롭게 사신을 보내어 멀리 위문(慰問)하는 것을 거두시라고 하라.’ 이에 사신은 곧 코끼리를 타고 돌아가서 왕에게 그와 같이 아뢰었다. 이 코끼리를 인하여 적국의 원수가 자비롭게 변하여 국왕과 대중이 모두 위없는 평등도의 뜻을 발하였다.
부왕은 코끼리를 타고 나와서 태자를 맞았다. 태자는 곧 앞으로 나아가서 머리를 발에 대어 예배하고 왕을 따라 귀환하였다. 나라 안의 인민이 기뻐하지 아니한 이가 없어서 꽃을 뿌리고 향을 태우며 비단 기와 일산을 달았으며 향기로운 물로 땅을 씻고 태자를 기다렸다. 태자는 궁으로 들어가 바로 어머니 앞에 이르러 머리를 발에 대어 예배하고 안부[起居]를 물었다. 왕은 보배 창고를 태자에게 맡기니 뜻대로 보시하기를 먼저보다 더하여 보시하기를 쉬지 아니하여 스스로 부처님 도를 얻음에 이르렀다.”
011_0364_c_01L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었다. “나의 지난 생 때에 행한 보시가 이와 같으니, 태자 수대나는 나의 몸이요, 그 때 부왕은 이제 나의 아버지 열두단(閱頭檀)이요, 그 때 어머니는 이제 마야(摩耶)요, 그때 비는 이제 구이(瞿夷)요, 이때 산속의 도인 아주타는 마하목건련(摩訶目犍連)이요, 그때 천왕석은 사리불(舍利弗)이요, 그때 사냥꾼은 아난이요, 그때 사내 아이 야리는 이제 현 나의 아들 라운(羅云)이요, 그때 계집 아이 계나연은 이제 현 나한(羅漢) 말리(末利)의 어머니요, 그때 아이를 빈 바라문은 이제 조달(調達)이요, 바라문의 부인은 전차마나(栴遮摩羅)니라.